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칼럼] ‘아버님’, ‘어머님’, ‘언니’, ‘이모’ – 이상한 호칭의 기원

지역

[칼럼] ‘아버님’, ‘어머님’, ‘언니’, ‘이모’ – 이상한 호칭의 기원

admin | 월, 2020/11/23- 22:12

[월간경실련 2020년 11,12월호 – 우리들이야기(2)]

[전문가칼럼]
‘아버님’, ‘어머님’, ‘언니’, ‘이모’ – 이상한 호칭의 기원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

“이모, 여기 젓가락 좀 갖다 줄래요?”
“여기 있어요, 언니.”

식당에서 들은 옆 테이블의 손님과 종업원 사이의 대화인데, 둘 사이의 관계는 무엇이길래 ‘이모’라고 부른 사람한테 ‘언니’라고 하는가? 물론 막장 드라마처럼 출생의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닌데.

요즘 이런 이상한(?) 호칭들이 난무한다. 예컨대, 중년의 남성이나 여성이 상점이나 병원 같은 곳에 가면 기본적으로 듣는 호칭이 ‘아버님’, ‘어머님’이다. 이런 식의 호칭에 이제는 만성이 되어 그러려니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전히 어색해 하거나 심지어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왜 이런 호칭이 사용되기 시작했을까?

언어학적 관점에서 보면 사실 이런 현상은 낯선 것이 아니다. 우리말에는 오래전부터, 본래 친족을 가리키는 단어를 비슷한 연령대의 일반인을 가리키는 말로 확장하는 기제가 있어 왔기 때문이다.
우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러하다. 이들은 본래 조부(祖父)와 조모(祖母)를 가리키는 친족어이지만, 어린아이를 기준으로 볼 때 조부모와 비슷한 연령대에 있는 사람, 즉 노인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분명 자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닌데도 말이다. 영어에서는 친족어로서의 의미, 즉 조부, 조모의 의미로는 grandfather, grandmother라고 하지만 단지 노인을 가리킬 때는 old men, old lady라는 다른 단어를 쓴다. 우리말에 ‘할아버지’가 이렇게 두 가지 뜻이 있다 보니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는데, 예전에 어떤 젊은 학생 통역이 ‘저 할아버지가 물건을 가져갔다’고 하는 말을 ‘the old man’이라고 하지 않고 ‘the grandfather’로 통역하는 것을 보았다.
다음으로 ‘아주머니’, ‘아저씨’가 있다. 이 말들도 본래는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항렬의 친척, 예컨대 오촌 당숙을 지칭하는 친족어이지만, 요즘은 오히려 일반인을 가리키는 말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사실 요즘은 사촌들도 잘 안 보는데, 오촌을 볼 일이 있겠는가!
그 다음으로 또 ‘형’, ‘언니’, ‘누나’, ‘오빠’ 같은 단어들도 그러하다. 이들도 본래는 친족어이지만, 전혀 피가 섞이지 않은 학교 선후배나, 그저 가까이 지내는 사람을 친근감 있게 부를 때 많이 쓴다. 특히 ‘오빠’는 남자친구를 부를 때 쓰는 말로 워낙 많이 쓰여서 친오빠와 함께 있을 때는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헷갈릴 수 있다. 심지어 결혼 후에 남편이 되어도 계속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용법까지 사전에 수록한다면, ‘오빠’의 뜻풀이를,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손위 남자’라는 본래의 의미뿐 아니라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친한 남자’에서부터 ‘남자친구 또는 애인’과 ‘남편’까지도 추가해야 할 것이다. 의미의 전이가 심해도 너무 심한 편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다. 이런 단어들을 친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쓰는 것은 이제 전 국민적인 동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여 년 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일단의 단어들이 보여주는 이상한 의미의 확장은 사람들 사이에 아직 완전한 동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우선 식당의 종업원 같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이모’와 ‘삼촌’으로 부르는 것을 들 수 있다. 아니 도대체 처음 보는 사람을 왜 이렇게 부를까? 어린아이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이 이모와 삼촌의 연령대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친근하게 부르는 것이다. 여성 종업원의 경우에는 ‘언니’라고도 불리는데, 심지어 머리가 백발인 할아버지(‘조부’가 아니라 ‘노신사’)도 이들을 ‘언니’라고 부를 정도이다. 처음엔 이런 분들이 여종업원에게 ‘언니’라고 부를 때면 한 번 돌아다 보기도 하였다. 성전환을 한 것도 아니고, 화자가 나이 지긋한 남성임에도 ‘언니’라고 부를 정도이니 이 정도면 친족어적인 기원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급기야는 ‘아버님’, ‘어머님’이라는 단어들까지 여기에 가세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아버지’, ‘어머니’라고까지는 하지 않는 것 같은데, 과연 이렇게까지 진척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처럼 친족에게만 쓰는 호칭을 피 한 방울 안 섞인 일반인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상대방에게 그만큼 친하다는 느낌을 주고자 하는, 즉 친근감을 기반으로 관계를 확장하고자 하는 심리적 의도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렇다, 친근감!
그런데 바로 이 친근감이 문제이다. 말하는 이에게는 ‘친근감’이지만 상대에게는 ‘부담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언제 봤다고 친한 척하느냐고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또 다른 하나의 동인은, 모르는 사람을 아이에게 설명할 때 쉽고 간단하게 설명하려는 의도라 할 수 있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아이가 “저 사람 누구야?”라고 할 때 설명하기도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질 때 어떻게 하겠는가? 그냥 이미 알고 있는 ‘삼촌’에 빗대어 그냥 삼촌 같은 사람이라고 간단히 설명하기 위해 ‘삼촌’이라고 부르면 편할 것이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우리말에는 친족을 가리키는 말이 그 의미를 일반인으로 확장하는 시스템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것이 언제부터인가 ‘언니’, ‘오빠’를 넘어 ‘이모’, ‘삼촌’의 영역까지 침범(?)해 왔다. 그리고 급기야 ‘아버님’, ‘어머님’의 영역에까지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아버님’, ‘어머님’ 호칭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내 생각에는, 사람들이 이 두 단어를 친족용어 확장의 마지노선으로 느끼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 아닐까 한다. 아마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른 친족과 비교할 때 가까워도 너무나 가까운, 그래서 결코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리라. 부모는 결코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지 않은가!
아니 어쩌면 그보다 이 같은 친근감을 담보로 하는 상업적인 마케팅이 우리의 원초적 혈연관계까지 위협한다는 불쾌감과 불안감 때문은 아닐까?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월간경실련 2021년 3,4월호 – 시사포커스(1)]

LH 사태로 본 농지 문제

오세형 경제정책국 팀장

지난 3월 2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한 공개와 관련 언론보도가 있었다. 2018년 4월부터 2020년 6월까지 LH 임직원과 그 가족들이 사들인 토지는 총 10필지(2만 3,028㎡, 약 7,000평)로, 매입비용이 약 100억 원에 달했고 이 중 58억 원 넘게 지역 농협 등에서 대출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당 토지의 98.6%가 농지였다고 한다. 이러한 투기는 정책 입안·실행 관련자의 내부정보 이용, 이해충돌 등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투기의 대상이 결국 ‘농지’였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경실련 농업개혁위원회는 작년부터 농지 정의 실현을 핵심과제로 삼아 행정부 고위공직자와 입법부 국회의원의 농지 소유 등을 조사하여 발표하고 농지법 개정 토론회 등을 개최하면서 꾸준히 농지 문제를 제기하여왔다. 그것은 농지에 관한 경자유전의 원칙이 무너지고 있음을 밝히고자 했던 것이고, 이번 LH 사태 역시 농업인이 아닌 자의 농지 소유가 매우 광범위하고 쉽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 것이다.

헌법 제121조 제1항은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하고 있다. 그래서 농지법 제6조 제1항은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고 하고 규정하고 있다. 비농민의 농지 소유가 금지되어야 함에도 그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많은 예외조항으로 농지 소유가 가능하게 되어 있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농민에게 농업인에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농지를 소유하기 위해선 농지취득자격증명이 필요하고 해당 증명을 발급 받기 위해서는 농업경영계획서 등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농민의 농지 소유가 가능했던 것은 그러한 최소한의 절차마저 제 기능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향후 영농계획서 등을 엄격하게 심사하고, 계속적인 현장조사를 통해 비농민의 농지 소유와 이용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농업회사법인의 농지 매입과 매도로 얻는 시세차익 등의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허술한 법률과 제도를 악용하여 농업회사법인이 사실상 농지투기회사가 된 것이다. 정부는 목적 외 사업을 운영하고 있거나, 실제 운영이 거의 없는 농업법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기초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여 해산 등을 실시해야 한다. 국회는 완화되어 있는 농업회사법인 설립요건도 강화하여 본래 취지의 농업경영과 농산물의 출하·유통·가공·수출 및 농어촌 관광휴양사업을 성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비농업인의 출자비율이나 조합원 요건에 비농업인을 최소화하여, 농업경영체 육성 취지에 맞게 법률과 제도를 고쳐야 한다.

다시 한 번 밝히지만, 이번 땅 투기 문제의 또 다른 핵심은 허술한 농지취득 및 농지관리이다. 정부는 LH 투기 사건 관련 합동조사를 하면서 다른 공공사업에서의 농지 관련 매매 부분도 조사하여 투기 의혹을 밝혀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농지의 소유 및 이용실태를 정기적으로 조사하여, 상시적으로 투명하게 공개하는 ‘농지통합정보관리시스템’을 구축하고, ‘농지관리기구’를 설치하여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직자 부동산투기 신고센터를 개소했다. 많은 제보로 투기 문제가 제대로 밝혀져 더 투명하고 깨끗한 공직사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더 늦기 전에 농업계의 해묵은 숙제인 농지 소유와 이용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을 찾도록 정부와 국회가 의지를 갖고 강력하게 해결해 나가길 바라본다. 끝으로 한 문장을 더한다면, “농지는 농민에게!”

금, 2021/04/02- 18:26
3
0

[월간경실련 2019년 9,10월호 이슈진단4]

한일 경제갈등으로 본 한국경제의 개혁 방향

권오인 재벌개혁본부 국장

일본 아베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 노동자에 대한 배상 판결에 대해 일종의 경제적 보복 조치로 수출규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7월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개 품목(고순도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에 대해 건별로 허가를 받도록 하는 수출 규제 조치를 공식 발표했다. 이로 인해 우리 주식시장의 7월 5일 코스피 지수는 전일보다 51.15p(2.56%) 하락한 1946.98p에 마감되었고, 코스닥은 전일 615.7p보다 45.91p(7.46%) 하락한 569.79p로 마감되었다. 급락했던 코스닥시장에 한국거래소가 3년 정도 만에 사이드카까지 발동시키는 등 일본의 수출규제는 그간,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등과 겹쳐 한국 증시에 막대한 충격을 더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8월 7일 수출우대조치, 백색국가(화이트 리스트)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하겠다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공포했다. 한국은 일본의 수출규제 발표 이후 이에 대응하기 위한 종합계획을 8월 2일 발표했으며, 8월 12일에는 우리나라도 일본을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국민은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해 규탄하며 자발적으로 불매운동을 해오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다른 품목과 산업에 대해서도 추가로 이어질 수 있기에 우리 정부와 기업, 국민 등 국가 구성원 전체가 주목하고 있다.

일본은 왜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핵심 3개 품목을 택했나?

우리나라의 2018년 무역의존도는 70.4%(수출: 37.3%, 수입: 33.0%) 정도로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한국무역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총수출액은 약 6,048억 달러로, 반도체 수출(1,267억 달러·약 148조 원)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말 기준 20.9%로 품목 중 1위였다. 디스플레이는 4.1%로(249억 달러)로 4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무역의존 상황에서 일본이 규제한 핵심 3개 품목은 일본 의존도가 매우 높은 품목들이다. 무역협회 자료(2019년 1월에서 5월 기준)를 보면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일본 의존도는 93.7%, 포토레지스트는 91.9%, 불화수소는 43.9% 수준으로 최근 중국 46.3%보다 낮아졌지만, 여전히 대일 의존도가 높은 품목들이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부품과 소재, 장비 산업을 키우지 않고, 해외에서 조달하여 최종재를 생산하는 구조를 택해왔다. 따라서 부품 등의 자체 조달 등 대응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일본의 수출규제는 한국 무역에 단기적으로 타격을 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내막에는 수년 간 이어져 오는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과 하이닉스의 D램 독주체제를 흔들어 보겠다는 포석도 크다.

한국정부의 대응정책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있은 후 8월 2일 ‘일본 정부의 백색국가 배제 등 수출규제 및 보복조치 관련 종합 대응 계획’을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했다. 주요 대책으로는 ▲대 일본 협의 및 대응 ▲국제공조, ▲기업 피해 최소화 및 단기 대책, ▲근본적·항구적 대책, ▲대응 거버넌스 구축 등 이었다. ‘기업피해 최소화 및 단기대책’을 보면, 소재부품수급 대응 지원센터를 통한 애로사항 접수 및 맞춤형 지원, 단기 공급 안정화를 위해 주요 품목 물량확보 지원, 신규 대체 수입처 확보 지원, 인허가 기간 단축, 인력운용 유연화를 통한 공장 신증설 지원, 포괄허가 활용이 가능한 CP 기업 활용 지원, 피해기업 등에 대한 정부의 예산과 세제, 금융지원 등이다. 근본적 대책으로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를 위해 100여 개 전략 핵심 품목을 중심으로 R&D 등 매년 1조 원 이상 투자, R&D 경쟁력 강화, 수요-공급기업 간 및 수요기업 간 협력모델 정착을 위한 규제 완화 등을 제시했다. 정부는 이 정책을 위해 예산 7조 8,000억 원, M&A 2조 5,000억 원 이상, 금융 29조 원 등을 집중적으로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이후 8월 22일에는 일본 수출규제 대응을 위해 약 1.92조 원 규모의 3개 연구개발사업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 추진 등 후속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정책의 문제와 우리 경제의 현실

정부 정책을 보면 금융과 예산, 세제 지원 등 경제적 지원책에 그치고 있다. 물론 피해를 보는 산업과 기업들에 대한 지원책은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자금지원을 통해 전략 핵심 품목과 기업, R&D경쟁력을 키우는 것에 중점을 두어, 재벌과 수출 의존도가 높게 된 근본적 원인에 대해서는 접근하지않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측면이다. 즉 삼성, 하이닉스로 대표되는 반도체 산업만 하더라도 우리 정부와 재벌가들은 부품과 소재, 장비에 대한 기술과 국내 기업들을 성장시키지 않고, 부품과 소재산업이 발달한 일본 등 해외에 의존하는 것을 택해왔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발생해 허점이 드러나자 뒤늦게 관련 산업과 기업을 성장시킨다고 나선 것이다. 한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R&D를 포함하여, 상당한 기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아쉬운 대목이다. 그리고 부품과 소재, 장비 등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의 성장과 기술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구조개혁 정책이 없다는 점에서 부족한 측면도 있다. 막대한 재정을 중소기업과 R&D에 투입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R&D의 경우 지금도 20조 원 정도(GDP 대비 4.6%)로 세계 1위이다. 그런데도 기술혁신이 부재하고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등이 성장하지 못한 이유는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와 비효율적인 지원 정책 때문이다. 우리 산업구조는 경제력 집중이 심화된 재벌들의 기술탈취와 불공정거래 행위를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 없고, 진입장벽 또한 매우 높다. 쓸 만한 기술을 만들면 재벌들에게 탈취당하거나, 진입장벽과 불공정거래행위에 가로막혀 제대로 판매하기 어렵다. 이러한 재벌중심의 경제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이 없다는 점에서 대응책으로서의 한계가 있다. 아울러 R&D를 비롯한 정책자금 지원에서, 지원대상과 방법 등에 있어서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하고 있다.

일본 수출규제를 핑계로 한 재벌 규제 완화는 지양해야

정부는 일본 수출규제 완화와 큰 관련성이 없음에도 이를 핑계로 재벌들이 이야기해왔던 규제 완화를 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정부는 종합대책에서 핵심소재·부품·장비 관련 기술에 대해 신성장 R&D 및 시설투자 세액공제 적용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 기술에 대해 R&D 법인세 공제율을 대기업 및 중견기업(20%+최대 10%), 중소기업(30%+최대 10%)에 적용하고, 시설투자 법인세 공제율 또한 대기업(5%), 중견기업(7%), 중소기업(10%)에 각각 적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법인세 공제를 증가시켜, 실효세율을 떨어뜨린다. 근로소득보다 담세능력이 큰 재벌과 대기업들의 법인세율을 낮춘다는 점에서 형평성 문제도 발생한다. 정부는 이 외에도 소재·부품·장비 분야 1.92조 원 규모 3개 연구개발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한다고 밝혔다. 그간 예비타당성을 거친 R&D 사업도 소위 장롱면허가 대부분이었고, R&D를 가장한 토건사업도 많았다. 지원정책의 효율과 형평보다는 지원속도와 금액에만 치중하는 모습이다.
물론 중소혁신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집중적으로 세제지원을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분야에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순위가 낮거나, 실효성이 낮은 다른 분야의 공제항목들을 조정하여, 세제의 형평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수익이 나지 않아 세액공제 혜택을 못 받은 중소벤처기업들에 대한 지원책도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한편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8월 20일 전경련회관에서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과 정책간담회를 진행했다. 총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임에도 일본 수출규제를 빌미로 전경련 산하 단체와 정책논의를 하면서, 정경유착까지 이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국정농단으로 인해 19대 대선 과정에서 ‘전경련 해체 찬성’했던 더불어민주당이 오히려 해체되어야 할 조직과 함께하면서 부활을 돕는 한편, 규제완화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일본 수출규제의 교훈,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의 개혁

한일 무역분쟁은 앞으로도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부품뿐 아니라, 일본 의존도가 높은 다른 산업에서도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무역분쟁은 한국 경제와 산업구조의 개혁에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한국 경제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재벌개혁, 공정경제 정책을 통해 혁신의 유인과 기회를 만들어 경쟁력 있는 기술과 제품, 기업과 산업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간 경제력이 집중된 재벌은 수직계열화와 내부거래로 중소벤처 혁신기업의 시장진입을 막아왔다. 아울러 기술탈취, 불공정 갑질,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으로 혁신을 저해해왔다. 따라서 출자규제, 재벌 부동산 투기 규제 등으로 인한 경제력 집중 억제와 징벌배상제와 디스커버리를 도입함으로써 스타트업, 벤처기업, 중소기업들이 혁신할 수 있는 공정한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이러한 재벌개혁이 전제되어야지 정부가 발표한 각종 지원정책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재벌개혁이 단행된다면, GDP의 27%를 차지하는 제조업 또한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 일본 수출규제에서 드러났듯이 부품·소재·장비 산업은 물론, 제조업 등 기술 경쟁력이 높은 독일과 미국, 일본 등에 비해 고전하고 있다. 이는 그간 재벌들이 기술경쟁보다는 가격 경쟁에 중심을 두고 성장해왔고, 정부는 이를 방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가격경쟁조차 중국 등 신흥국에 밀리는 상황이 되었다. 물적 자본과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기술력 있는 제조업과 중소·중견기업, 인적자본 중심의 구조로 전환된다면, 제조업의 경쟁력 회복은 물론, 혁신형 경제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아울러 제조업의 고부가가치화와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 완화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강화 될 것이다. 이렇게 튼튼하고 고도화된 산업구조가 된다면 일본을 비롯해 어떤 나라에도 흔들리지 않는 우리나라가 될 것이다.

금, 2019/09/27- 02:07
3
0

[월간경실련 2019년 9,10월호 이슈진단3]

일본수출규제에 따른 국내 중소기업의 영향과 대응방안

박근호 경실련 중소기업위원회 위원장 / 강남대 글로벌경영학부 교수

일본이 지난 7월 4일 불화수소 등 반도체 소재의 수출규제에 이어 8월 28일부터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출규제를 강행하였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함에 따라, 한국은 더 이상 ‘일반 포괄허가제’를 적용받지 못하는 ‘특별 일반 포괄허가제’ 대상 국가가 되었다. 일반 포괄허가제 하에서는 일본의 수출기업이 1,120개 품목의 전략물자에 대해 한 번 수출 허가를 받으면 3년간 자유롭게 수출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수출 건마다 일본 정부로부터 심사를 받아야하고, 심사 기간도 90일까지 늘어날 수 있게 되었다. 제출서류도 허가신청서 등 2종에서 3종 이상으로 늘어나며, 품목에 따라서는 최대 9종까지 필요하게 되었다. 수출업체가 정해진 허가기준을 충족하는지는 전적으로 일본 정부의 자의적인 판단 기준에 따르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에는 수출허가가 나지 않거나 다시 수출허가를 받는 등 수출심사 기간이 대폭 늘어날 수도 있게 되었다. 또한,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전략물자가 아니더라도 식품과 목제를 제외한 거의 모든 품목에 ‘캐치올’ 규제가 적용된다. 캐치올 규제는 일본 정부가 수출품이 군사전용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여 수출업체에 수출허가를 받으라고 통지 시 개별 허가를 받아야만 하는 규제로서, 대 한국 수출기업의 수출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이러한 대 한국 수출규제 행위는 글로벌 공급 사슬(GVC: Global Value Chain)의 후방에 존재하는 자국의 소재부품이나 장비의 공급 단절을 통해 전방에 있는 한국 산업과 기업에 타격을 주겠다는 노골적 의도와 다름없다. 물론, 이러한 일본의 조치가 우리나라에만 타격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이러한 조치는 수십 년간 구축되어 온 전 세계적인 글로벌 공급 사슬의 효율성을 희생시키고, IT 산업에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일본정부의 이러한 행태는 글로벌 공급 사슬에 참여하는 일본기업의 신뢰를 붕괴시켜 장기적으로는 일본 산업의 기반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일본산 제조장비와 부품을 대량으로 수요하는 한국 기업들뿐 아니라 주요 글로벌 IT 기업들이 공급선 다변화 등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기 때문이다. 1993년 스미토모화학이 전 세계 물량의 60%를 생산하던 반도체 에폭시 수지 제조공장에서의 폭발사고 후, 국내 반도체 기업이 중국과 대만 업체로의 수입선 다변화로 인하여 결국,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해당 사업을 대만 기업에 매각한 것이 그 사례이다. 일본 정부가 한일 간의 역사적 문제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정치적 불만을 ‘수출 규제’라는 경제적 보복 수단으로 표출하는 것에 대해, 정치적 갈등이 고조되고 불매운동 등 국민의 감정이 악화되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보다 냉철한 대응이 필요하다. 국내 산업과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단기적 대응정책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대응 방안을 수립하는 것이 긴요하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현실화될 경우 국내 산업이 타격을 입는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7월 4일 플로우린 폴리이미드 등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생산 핵심 소재에 대해 우선적으로 수출규제를 시행한 것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대외교역과 국가경쟁력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산업의 경우 핵심 소재와 장비의 일본 의존도가 높아 타격이 예상된다. 또한,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분야 외에도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정밀기계, 화학, 배터리 산업 등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산업에서도 적지 않은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수출규제 조치로 인한 피해가 가시화되지는 않았지만,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일본이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품목에 대해 수출절차를 지연하거나 수출을 허가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확실성에 노출되었다는 두려움이 가장 큰 어려움이 되고 있다.

이러한 두려움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그중에서도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에게 더 가중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8월 12일 발표한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제외와 관련해 일본 제품을 수입하는 중소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조사에 따르면, ‘한일 무역분쟁 부작용 완화를 위한 준비 정도’를 묻는 질문에 과반이 넘는 52%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답했으며, ‘대부분 준비되어있다’고 응답한 기업은 8.6%에 불과하였다. 특히, 종사자 규모별로 보았을 때, 10인 미만의 기업 중 59%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답하였는데, 이번 조사에 따르면 10인 미만인 기업은 작년 총 수입액 대비 일본 수입액 비중이 ‘60~80%’라는 응답이 44.6%, ‘80~100%’라는 응답이 36.1%로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큰 영세한 중소기업일수록 수출규제가 가시화되었을 때, 대응책이 별로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업들의 대응 방안도, 단기적이고 다소 소극적 대응 방안인 ‘재고분 확보’가 46.5%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대일본 거래축소 및 대체시장 발굴’(31.3%), ‘기술 개발 등 경쟁력 강화’(15.3%) 등의 순이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해 정부와 기업의 대응방안은 단기적 대응방안과 장기적 대응방안으로 구분되어 추진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일본의 수출규제조치를 통하여 불확실한 환경에 처하거나 피해를 입는 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하여야 한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소재와 부품 국산화를 위한 대책, 예컨대, 대·중소기업 협업을 통한 생산설비 구축과 규제 완화 등의 정책은 시간이 오래 소요되는 정책이기 때문에, 당장 소재·부품 대체재를 찾아야 하는 중소기업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기적으로는 중소기업이 일본 외의 국가에서 대체재를 신속하게 조달하여, 생산물량의 축소로 인한 유동성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정책이 필요하다. 대체재의 거래정보 제공 및 거래지원, 수입절차 간소화 및 통관지연 해소 등에 의해 신속한 수입허가 절차 등 무역 지원을 통해 생산 상의 애로사항을 최소화하여야 한다. 또, ‘할당관세제도’의 선별적 도입을 통해 일본기업 외의 제3국의 공급자를 통해 부품과 소재, 장비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고려하여야 한다. 또한, 국산대체재 개발을 위한 기술 및 생산 지원과 긴급경영 안정자금 등의 지원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며 자생력을 키우도록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위기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수평적인 상생협력 생태계 구축의 기회로 삼는 계기가 삼아야 한다. 일본의 수출규제 외에도 트럼프 정부의 등장 이후 증대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의 대두로 글로벌공급사슬상의 위험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공급사슬 위험관리 측면에서도 부품 및 소재의 국산화를 통한 국내기업의 공급사슬 참여는 확대되어야만 한다. 국내의 부품 및 소재분야 중소기업들의 기술 및 제품개발 단계에서부터 수요처인 대기업이 참여하고, 또 이와 같이 생산된 제품을 수요 기업이 안정적으로 구매하는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구매자-공급자 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국내 글로벌대기업들의 공급사슬의 안정성을 가져올 뿐 아니라, 다른 국가의 공급망 다변화 과정에서의 협상에서도 레버리지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다. 특정 공급기업이 기술적 우위가 있고, 품질이나 비용 측면에서 우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기업의 공급사슬관리위험 측면에서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번 일본의 수출규제는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공급사슬관리에서 말하는 ‘7대 3’ 구매전략, 즉, 공급자를 복수로 운영하여 주 공급자에게서는 70%를 공급받아 규모의 경제 효과를 충분히 누리고, 대체 공급자에게는 30%를 공급받아 상황에 따라 주 공급자와 대체 공급자를 상호변경 가능하도록 하여 경쟁하도록 하는 전략적 대응의 측면에서도 국내 중소기업의 공급사슬참여는 매우 필요한 측면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중소기업들이 글로벌경쟁력을 갖춘 부품 및 소재를 개발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지원 노력이 요구된다. 기술개발지원 뿐 아니라, 기술기반의 중소기업들이 글로벌 공급사슬에 효과적으로 편입될 수 있도록 판로 및 마케팅 지원, 금융지원 등의 전주기적인 지원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글로벌 공급사슬을 활용하는 대기업의 입장에서는 맹목적인 애국심과 정부의 강제에 의해서 국내의 공급망을 이용할 수도 없고, 이러한 방식으로는 지속적인 글로벌경쟁우위의 달성도 불가능하다. 일본의 IT산업 및 전자산업 분야의 제조기업들이 일본 기업이 개발한 기술과 서비스로 일본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추는 방향으로 발전하다가 결과적으로 글로벌 시장의 니즈와 국제표준을 충족시키지 못하여 글로벌경쟁력을 잃어버린 갈라파고스현상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국내 부품소재분야의 중소기업들이 글로벌강소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글로벌 공급사슬의 핵심 참여자가 될 수 있도록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인 혁신 지원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또한, 기존의 관행인 대중소기업 간 전속거래 행위, 납품 단가 후려치기 등 중소기업의 자생력과 경쟁력을 갉아먹는 불공정한 관행의 개선에도 힘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특별히 전속거래의 경우 일반적인 하도급 거래에 비해 기술탈취 행위, 경영 간섭행위, 납품 단가 후려치기 등의 불공정 행위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의 진전으로 산업 간 경계가 불투명해지고 기술융합이 가속화되며 수요자 중심의 연구개발 필요성으로 협력업체의 역할이 중요해짐에 따라, 선진국에서는 위탁대기업과 협력업체간의 수평적 협력이 중심이 되어 동반성장을 가져오는 확장형 공급사슬이 증가하고 있다. 금번 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국내 글로벌 대기업들도 협력기업을 하청업체가 아닌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하는 확장형 공급사슬의 확대 계기로 삼을 때, 국내 산업시스템이 개방형 혁신 생태계로서 한 단계 진전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화학물질 규제의 일부를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규제를 풀어서라도 대응하겠다는 정책적 의지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시행되고 있는 화학물질 규제 관련 법률은 과거 우리 사회가 치른 화학물질사고에 따른 뼈아픈 반성과 사회적 합의에 의해 제정되었고, 그 시행도 채 몇 년이 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현재,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피해가 가시화되었다기보다, 기업의 불확실성 증가로 인한 대응의 어려움, 공급사슬관리의 위험성 증가의 측면이 크다는 점에서, 정부는 섣부른 규제 완화를 지양해야 한다. 규제완화보다 대체재의 조달과 부품 및 소재 개발을 위한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는 단기적 지원과 기술혁신 지원과 대기업-중소기업 수평적 상생협력 생태계를 강화하는 방향의 장기적 정책지원방향을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모쪼록, 일본의 수출규제 행위가 국내 글로벌 대기업들의 글로벌 공급사슬의 강화와 안정으로 이어지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수평적 상생협력 생태계가 강화되며, 국내 소재 및 부품 장비 분야의 중소기업들이 글로벌 강소기업들로 성장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해마지 않는다.

금, 2019/09/27- 01:57
3
0

[월간경실련 2021년 5,6월호]

철학과 원칙 있는 부동산 정책을 기대한다

윤순철 사무총장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개편이 논의되고 있다. LH는 지난 5월 7일 LH의 경영과 사업 분야의 혁신을 총괄하는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고, 14일에는 임직원의 토지거래, 투기행위에 대한 외부 감시, 임직원 불법행위 조사 및 처리 과정에 대한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해 ‘준법감시위원’를 가동하였다.

국회와 정부도 LH의 개편을 서두르고 있다. 언론에 따르면, LH를 주거복지 기능과 자회사를 감독하는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고, 주택공급 기능인 토지, 주택, 도시재생 등 핵심 기능만 남기고나머지는 분리한다. 그리고 주택관리 등 여타 기능은 별도 자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이다. 지난 3월 2일 참여연대가 LH 직원들의 광명, 시흥 신도시 사전투기 의혹 공익감사청구를 제기한 후 정부가 약속했던 해체 수준의 개혁에는 못 미치지만, 조직과기능의 개편 방향이 자리 잡아가는 모양이다.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쏘아 올린 불꽃에 땅을 사랑하는 공직자들, 가짜 농민들, 관세청·행복청·기재부·행안부 등 부처들이 짬짜미로 만든 유령청사 등 공익보다 사익을 탐냈던 우리 공직사회의 민낯이 드러났다. 국회가 서둘러 이해충돌방지법을 제정하였으나 그 여파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지난 4년 동안 부동산 가격 안정화에 실패한정부, 집을 소유하고 있으나 곧 발부될 세금 고지서를 두려워하는 유주택자, 안정적인 주거지를 마련하지 못했으면서도 터무니없이 폭등한 집값에내 집 마련을 포기한 무주택자, 경제 부정의로 투기와 불로소득으로 지목하며 근절 활동했던 시민단체, 정책의 선순환과 지속성을 촉구했던 학계, 미래를 접은 청년세대까지 온 국민들의 분노는 이어질 전망이다. 7월과 9월의 재산세와 12월의 종부세 고지서가 발부될 예정이고, 올 가을과 내년 초 이사철에 집 구하러 발품 팔아야 하는 서민들은 또 한 번 억장이 무너지는 경험을 할 것이다. 켜켜이 쌓인 마음들은 내년 3월 제20대 대통령선거와 6월 제8대 전국동시지방선거로 향할 것이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두 가지 면에서 한계가 있었다. 하나는 도시재생 중심의 정책이다. 도시재생은 신산업(하이테크·IT산업·바이오산업)으로 변화되는 산업구조, 신도시 위주의 도시 확장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기존 도시에 새로운 기능을 도입하여 부흥시키는 도시사업이다. 이러한 정책은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었고, 이전 정부 시절 주택경기 하락으로 투기적 거래가 부활하기 어려울 것으로 봤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 이 기조에서 정부는 주택의 수요를 대부분 투기적 가수요로 보는 정책들을 내놓았다. 주택의 수요는 투기적 수요도 있지만 자가 보유 욕구, 급증한 1-2인 가구, 헌집을 새집으로 바꾸려는 수요, 면적을 조정하려는 수요도 있다. 정부가 투기적 가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썼던 세제 강화로 다주택자들이 실수요 외의 주택을 시장에 매물로 내놓게 하겠다는 것은 다주택자들이 세금을 감당할 수 없는 한계점을 넘어야 해서 당장의 가격 안정이 필요한 대책과는 시간적 불일치가 너무 커 효과를 보기 어려웠다. 수십 차례의 대책에도 정책의 효과는 실종되고 가격이 폭등하자 강력한 금융규제 등 가능한 수단을 동시에 적용하면서 각 정책 간의 합리성도 상실하였다. 여기에 다주택자들을 파악하기 위해 실시한 임대주택사업자 등록제는 과도한 혜택을 부여하여 당초 계획과 다르게 다주택자들이 주택 쇼핑에 나서게 만드는 역효과를 초래하였다. 다른 하나는 제대로 된 균형발전 정책의 부재였다. 골고루 잘사는 대한민국을 표방하였으나 실효성 있는 균형발전 대책은 추진되지 못하고 지방 도시들이 비전과 활력을 잃으면서 지역의 돈과 사람이 수도권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소멸되는 지방과 인구와 돈이 집중되는 수도권 확장 현상은 만성적인 주택과 교통 등 도시 인프라 부족을 초래하였다. 신도시를 아무리 많이 건설해도 이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여건이 되었다.

정부의 25번의 부동산 대책은 집값 안정화 실패, 실수요자 배려 없는 금융규제, 부동산의 취득-보유-양도 단계의 합리성 결여된 세금체계 등으로 어느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정책 난맥을 초래하였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위의 논의는 현 정부의 철학과 원칙이 실종된 채 자중지란의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정부의 정책은 국민들이 수용할 때 힘을 갖는다. 부동산 정책은 장기적 관점에서 인구 구성과 라이프사이클, 경제력에 부응하는 다양한 유형의 수요에 부합한 주택의 공급,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여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하는 세제, 도시의 특성과 환경을 반영한 국토정책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 비정상적인 가격 조정과 실수요자 지원을 위한 금융정책 등 장단기적인 계획하에 일관성 있게 추진되어야 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현 정부가 어떠한 철학과 원칙으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특히 공공부문과 민간의 합리적인 역할 분담이 이뤄져야 당면한 LH 조직 개편 방향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09년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역할과 기능을 명확히 정하지 않고 조직통합만 추진하여 비효율적인 거대 공기업으로 유지되는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실사구시로 현실을 직시하고 냉정하게 분석하며 시간이 가도 인내하여 바른 대책을 만드는 유연한 정부의 대응을 기대한다.

목, 2021/05/27- 23:58
3
0

[월간경실련 2021년 1,2월호 – 특집. 코로나19와의 불편한 공존(1)]

코로나 1년, 방치된 자영업자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 총연합회 사무총장

 

지난 14일 정부의 방역 조치 조정안 발표를 앞두고 중소상인, 자영업자 단체들이 모여 정부에 ‘거리두기 지침을 전면 재검토하라’라는 요구의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해당 단체들은 헬스장, 필라테스, 코인노래방, 실내 골프연습장, 스터디 카페 등 집합 금지 및 제한 조치가 적용된 업종의 단체들이다. 단체들은 대부분 그간 영업 제한에 따른 손실 보상과 향후 정상적인 영업을 요구하는 요구안을 발표했다. 이번 집단행동은 그간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변화에 따라 집합 금지 및 제한을 반복했던 중소상인 및 자영업자들의 상황이 임계점에 도달했으며, K방역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그들의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라 볼 수 있다.

2020년 1월 20일은 한국에서 첫 번째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날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의 위력은 전 세계의 사회, 경제 활동을 마비시켰고 국내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동안 한국은 K방역의 성과를 통해 전 세계에 방역 모범국가로 맹위를 떨친 적이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방역체계의 균열이 시작됐고, 몇 번의 위기 상황을 통해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기도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한 정부의 핵심 방역 정책은 바로 집합 인원의 제한이다. 사적 모임의 인원수를 제한했고, 사적 모임의 장소로 지목된 소매업과 서비스업종에 대해 집중적인 집합 금지와 제한 명령이 내려졌다. 대표적으로 실내 스포츠업은 영업이 전면 중단됐고, 카페업은 매장 내 취식이 금지되고 테이크아웃만 허용됐다. 수도권에서는 다중이용시설에 대해 밤 9시 이후의 전면 영업 제한 조치가 이루어졌다.

피해업종에 대한 지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재난지원금의 형식으로 지원된 피해업종에 대한 지원은 1차의 경우 지역사랑상품권의 방식으로 전 국민에게 보편 지급되었는데, 이는 경기 활성화가 주된 목적이었다. 2차와 3차의 경우에는 영세 업체들에 대한 집중 지원이 목적이었고, 여기에 집합 금지와 제한 업종들에 추가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업체별로 2~300만 원 정도가 지급됐다. 그 과정에서 선별 지원과 보편 지원의 양자 선택을 두고 효율과 타당성 논란이 야기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이제는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들의 피해를 강요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논쟁은 의미가 없다. 선별과 보편 지원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집합 금지와 제한 업종에 대한 두터운 손실 보상을 해야 한다. 손실 보상 내용이 전혀 없는 현행 감염병예방법과 지자체 고시에 의한 집합 금지와 제한은 더는 반복돼서는 안 된다. 오죽하면 헌법 소원의 대상이 됐을까. 가까운 일본에서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보상으로 하루 63만 원에 이르는 금액을 지급하는 사례를 살펴야 한다. 경직된 소비 시장과 오프라인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 지원과, 집합 금지와 제한 업종을 대상으로 하는 소비 쿠폰 역시 필요하다. 거의 모든 업종에 걸쳐 소득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소비 활성화를 위한 보편 지원과 맞춤형 소비 활성화 정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들의 피해의 핵심인 상가 임대차 문제도 이번 기회에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정부의 선별 재난지원금에 대해 집합 금지, 제한 업종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도 임차료가 원인이다. 한 달에만 수백만 원에서 1~2천만 원의 임차료를 여전히 지급해야 하는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들에게 재난지원금은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임대료 멈춤법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법안이 발의되긴 했지만, 임대인의 재산권 침해라는 기득권의 주장에 힘을 잃고 있다. 과연 임대인의 재산권 침해만큼 임차인의 재산권 침해는 존중받았던 적이 있는가?

지금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재정 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기재부 장관이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 대기업 규제 완화를 약속할 게 아니라, 영업 중단과 제한을 통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을 만나야 한다. ‘코로나로 죽으나 굶어 죽으나 어차피 죽는다면 그냥 장사하면서 죽겠다’고 불법 영업 선언을 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심정을 아는가? 결국 이러한 불법 영업으로 인해 코로나가 더욱 확산된다면, 그것은 방역의 차원에서도 결코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당한 보상만이 방역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다. 그것만이 훗날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들의 몰락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치르게 될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예방하는 유일한 정답일 것이다. 가래로 막기 전에 호미로 막아야 한다.

화, 2021/02/09- 19:53
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