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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하구 생태조사와 한반도 평화 (1)

지역

한강하구 생태조사와 한반도 평화 (1)

admin | 목, 2020/11/19- 19:18

. 문제 제기접경지역의 생태계적 상호협력의 역동성

경계라는 말의 사전적 뜻풀이에 따르면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분간되는 한계’다. 접경지역이란 말 그대로 그 경계와 경계가 접하는 지역이다. 서로 다른 성격(체제와 국가)의 공간이 만나는 지역이다. 이 이질적인 경계 사이에는 통제가 존재하며 기준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넘나드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경계가 단절적인가 서로 협력적인가는 이 경계를 넘어 어떤 교류가 존재하는가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단절의 공간이 아니라 소통의 공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질적인 것이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작용할 경우 접경지역은 경계를 넘어선 역동성으로 상호침투와 융합이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분단으로 민족과 조국이 양분돼 있는 남북의 경계는 분단의 결과이자 분단을 재생산하는 핵심 공간이지만, 그러기에 경계가 만나는 접경지역에서의 상호협력과 소통은 분단을 넘어서는 바로미터이자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미 접경지역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남북연결 도로와 철도 개설 등으로 평화 정착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갔었다. 잠시 멈춰섰던 걸음을 이제 다시 내디뎌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성공단 금강산 등과 같은 접경지역에서의 협력은 남북당국간 정치적 협상과 회담의 결과이지만 그 과정은 남북 주민이 공동체적 질서를 구축해 삶의 과정에서 마음으로 좀 더 가까워지는 신뢰구축 작업으로 지속적으로 진행되야 할 것이다.

특히 임동근은 “접경지역을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정치적 역동의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각 부문을 연결하는 다기능(multi-function)을 수행하는 행위 주체의 등장과, 이들 간의 재화와 서비스의 흐름을 만드는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개성공단의 경우 남한의 기계와 북한의 노동력이라는 단순한 구도였지, 평양-개성-서울을 오고가는 네트워크의 진화는 고려하지 않았었다”고 비판했다. “에너지, 물자, 사람, 정보 등 생태계를 구성하는 흐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무엇’이 접경지역을 오고가며 기존에 불가능했던 역동성을 만들어 낼 것인가라는 ‘대상’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1】

 

. 남북 협력과 평화의 시발점으로서의 한강 하구

▣ ‘한강 하구’의 특수성- 경계의 소멸로서의 중립수역

○ 지리적 역사적 그리고 정치 군사적 의미의 한강하구

‘한강하구’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지리적 풍경적인 개념으로 임진강 한강 예성강이 만나는 조강(祖江, 염하를 포함)과 서해가 만나는 수역을 말한다. 그러나 흔히 이 지역을 한강하구로 부르는 것은 꼭 들어맞지가 않는다. 정왕룡 김포시 의원 같은 이들은 “예로부터 이 지역에 맞는 조강이라는 이름이 있으니, 한강하구라는 보통명사적 용어 대신에 조강이라는 원명칭을 복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곳은 임진강 예성강 등이 합쳐졌기에 더 이상 한강으로 부를 수 없다는 것이며, 그 범위도 한강과 임진강이 합수하는 지점부터 서해로 흘러나가는 유도까지, 혹은 넓게 보자면 예성강 부근까지 한강하구 일대를 가리키는 포괄적 용어였다는 것이다.【2】 게다가 남북분단으로 더 이상 사람이 갈 수 없게 되면서 언제부터인가 잊혀진 이름이 되었으니 그 명칭의 복원은 분단을 넘어서려는 것이기도 하다. 조강은 글자 그대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강(祖江)이란 뜻으로, 흔히 총길이 514km에 달하는 한강이 조강에 이르러 그 수명을 다했다는 뜻에서 온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 한강 하구라는 말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정치 군사적인 개념으로 정전협정상에 명시된 지역으로서의 의미다. 여기서 한강하구는 군사적으로 남쪽과 북쪽이 대치하는 적대적인 군사지역 가운데 정전협정 5항에 의해 규정된 수역이 된다. 정전협정은 이 수역을 한강 예성강 임진강이 흘러들어 만나는 수역으로 파주시 탄현면 만우리부터 서해 강화군 서도면 말도까지 67㎞로 구체적으로 명시해두고 있다.

정전 협정상에 규정된 이 ‘한강하구’(Han River Estuary)는 특별하다. 비무장지대(DMZ)의 다른 접경지역과 근본적으로 다른 한반도 유일의 중립수역이기 때문이다. 정전협정 제1조 5항은 다음과 같이 한강하구를 ‘군사분계선이 없는 자유항행 지대’로 규정하고 있다.

“한강하구의 수역으로 한쪽 강안이 일방의 통제 하에 있고 다른 한쪽 강안이 다른 일방의 통제 하에 있는 곳은 쌍방의 민간 선박의 항해에 이를 개방한다. 쌍방 민간선박이 항행함에 있어 자기 측의 군사통제 하에 있는 육지에 배를 대는 것은 제한받지 않는다.”

이 규정에 따르면 남북한의 민간선박은 한강하구를 자유 항행할 수 있고, 남이든 북이든 출항한 쪽이면 어디든 자유로이 입항할 수 있으며, 이는 정전협정에 규정된 육상의 비무장지대(DMZ)와 달리 한강하구가 중립지대(수역)라는 특수한 지위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한강하구는 ‘한반도 남북 접경지대에서 군사분계선(MDL)이 그어지지 않은 유일한 지역’이다. 그럼에도 위 지도에서 보듯이 많은 지도들과 그래픽이 이곳에도 군사분계선을 그어놓고 있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한강하구 지역은 군사분계선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유항행을 보장하는 중립수역이다. 그런 점에서 보통 DMZ 바깥쪽에 설정되는 민통선도 한강하구에서는 법적 존재근거가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 유엔사 관할권의 차등적 구조와 한강하구에 대한 법적 통제

정태욱 인하대 교수(법학)는 정전협정을 보면 유엔사의 이른바 군사통제에 근거한 관할권이 적용되는 비무장지대 및 접경지역의 범위는 이처럼 각 지역에서의 ‘군사적 필요’의 정도에 따라 차등적 구조로 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접경지역, 즉 육상의 비무장지대, 한강하구, 서해5도 수역들에 대한 정전협정의 규정과 유엔사의 관할권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우선 비무장지대의 경우에는 “적대행위의 재발을 초래할 수 있는 사건의 발생을 방지”(정전협정 제1조 제1항)하기 위하여 민간인 출입과 왕래 자체를 금하는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한강 수역(한강하구)의 경우에는 ‘쌍방의 민용 선박의 항행에 개방’하고, 다만, 그 ‘항행규칙을 규정하는’ 차원에서만 관할권을 행사하고 있다(정전협정 제1조 제5항), 또 서해 5도 수역에서는 바다 자체에 대하여는 직접적인 관할권을 정하지 않고, 다만, 섬들에 대한 군사통제만을 획정하고(정전협정 제2조 제13항 ㄴ목), 인접 해면을 존중하고 어떠한 종류의 봉쇄도 하지 못하게(정전협정 제2조 제15항) 하는 소극적인 차원에서만 관할권을 행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다르다. 한강하구도 여전히 군사통제구역으로 존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해 정태욱 교수는 “군사적 통제구역이 되었다고 하여 그것을 유엔사 관할권 행사의 결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실적인 통제 상태와 법적인 통제구역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강하구가 법적으로 통제구역으로 돼 있는 것은, 정전 협정상의 통제가 아니라 남한의 국내법적 통제인데, ‘군사기지 및 시설 보호법’(군사시설 보호법은 폐지) 상의 민통선, 그리고 해양수산부가 제정한 선박조업 안전규칙 등에 의한 어로한계선이 그것이다. 이는 남한 당국이 육상의 비무장지대와 동일한 원칙을 한강하구에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이러한 국내법적 통제는 정전협정이나 유엔사의 관할과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우리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해제되거나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3】

물론 한강하구가 정전에 관한 국제법이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한강하구가 정전협정의 적용 대상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남북관계에서 한강하구는 무력 충돌의 위험 뿐만 아니라 70년대까지만 해도 적대행위가 빈발했다는 점에서 정전협정에서 한강 하구를 민간에 개방하였다는 사실만으로 그 구역에서 유엔사의 관할권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한강하구가 유엔사의 관할 구역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허가권(관할권 행사)을 비무장지대에서의 그것과 같이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태욱 교수는 이를 “민간의 평화적 이용권을 확인하는 협력적 확인행위”로 표현했다. 유엔사가 부속협의서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명시하기도 한 한강하구의 항행에 관한 정전협정 상의 민간선박 등록절차 등을 보건데 ‘금지를 해제하는’ 허가가 아니라, 단지 “자유의 행사를 인정하고 그것이 휴전체제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해 주는 절차라고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4】

 

▣ ‘한강 하구’의 미래- 남북협력을 통한 ‘한강의 기적’

○ 한강하구의 특수한 지위와 남북 협력의 가능성

한강하구는 특별한 지위에 있다.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군사적 통제 아래 있는 육상에서의 비무장지대와 서해(동해) 수역에서의 북방한계선을 둘러싼 남북간의 군사적 갈등과 비교해 본다면 접경지역에서의 남북 협력을 추진하는데 가장 적합한 독특한 지위에 있는 것이다.

국제법적으로 이러한 한강하구의 특수한 지위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선행적 실험을 추진할 수 있는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은 군사적 대결의 정전협정 체체를 넘어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이뤄가기 위해서는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 미국(유엔사) 중국 등의 관할에서 남북의 관할과 합의로 바뀌어야 하며, 그런 합의 절차(평화협정 체결)가 요구된다. 예컨대 기존 정전협정상의 군사분계선(MDL)은 남북기본합의서의 ‘남북 불가침 경계선’으로, 군사정전위원회는 기본합의서의 ‘남북군사공동위원회’로 바뀌고, 중립국감시위원회는 ‘한반도 평화관리 국제위원회’로 전환돼야 할 것이다. 그에 비한다면 정전협정 상의 한강하구는 이미 경계가 없는 중립수역이라는 지위에 있기에 그런 합의 이전에도 현재의 정전협정에 의거해 남북이 공동관리하는 데 합의할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정전협정 상의 이러한 특수한 지위는 한강하구 사업이 남북관계의 부침이나 안보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중립수역일 뿐만 아니라 북방한계선(NLL) 등 서해 동해에서의 경계 논란과 군사분계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불필요한 정치적 논쟁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인정되고 있는 항행의 자유와 평등의 원칙에 따라 강의 본래 기능을 되찾는 남북 공유하천으로 만들어간다는 방향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이에 반해 서해 동해 등의 해역에서는 중립수역임에도 이른바 유엔사령관이 일방적으로 정한 북방한계선이 본래 취지와는 정반대로 남쪽이 북의 남하를 막는 군사적 남방한계선으로 고착화했으며, 이 북방한계선이 정전협정의 어디에도 근거가 없고 국제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북이 ‘불법적인 선’으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심각한 군사적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게다가 남쪽이 이 북방한계선을 실효 지배의 경계선으로 고수한다면 노무현 정부에서의 서해평화협력지대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이 합의한 서해 해상에서의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의 범위를 설정하는 데 북이 동의할 수 있는 수역을 정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북방한계선은 이처럼 서해에서의 평화를 진전시키지 못하는 딜레마가 되고 있다.

한강하구에서의 협력에 관한한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접경지역 협력에서 남쪽이 중요시한 철도 도로 연결에 대해 북은 상대적으로 매우 소극적이었다. 대륙으로 가는 육로나 철도 연결은 남이 단절돼 있던 것이지 북은 늘 연결돼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임진강 예성강 등을 통한 서해로의 자유로운 진출, 해주 등 서해에서의 항행 자유 등은 북 또한 매우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한강하구의 이러한 정전협정 상의 특수한 지위 등 법적 지리적인 여건에 입각해 볼 때 한강하구야 말로 남북간에 가장 유망한 접경지역 협력 지대로 만들어가기 위한 적극적인 조처가 필요한 것이다.

한강하구는 예로부터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한 전략적인 요충이자 물류의 중심이었다. 고구려 신라 백제의 삼국시대에는 치열한 세력다툼의 전장이었고 고려, 조선시대에는 삼남지방의 물자를 실어나르는 주요교통로였다. 병인, 신미양요 때는 프랑스, 미국 군함이 오르내렸고 분단이전 까지만 해도 임진강 예성강 한강은 살아 쉼쉬며 이 지역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육지와 바다를 이어주는 주요한 물길이었다. 그런 점에서 정전협정에서 한강하구 중립수역의 자유항행을 보장하고 있고, 한강(임진 예성강)이 예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주요 뱃길의 하나였다는 관점에서 이곳의 포구를 복원해 뱃길을 여는 사업은 본래의 강을 되찾아가는 일이자 분단을 넘어서는 본래 하나였던 삶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으로서 최우선적 과제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5】

 

○ 생물 다양성의 기수역(汽水域)이자 남쪽의 마지막 자연하구

생태 환경적으로 본다면 한강하구는 남쪽에서는 이제 마지막 남은 자연하구다. 특히 바닷물과 강물이 하루에 두번씩 교차하며 뒤섞이는 조수간만의 차가 큰 이 지역은 기수역(汽水域)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민물고기와 바닷고기가 공존하는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습지와 뻘 등이 넓게 분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곳은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 경로의 주요 중간 기착지이기도 하다. 북의 황해 연안 지대와 함께 이곳은 연중 일부를 한반도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여타 대양주 아시아 지역에서 보내고 여름 번식기를 위해 시베리아 알래스카로 날아가는 세계적인 철새 이동경로의 하나다.

한강하구에는 예로부터 황복, 웅어, 농어, 새우, 뱀장어, 숭어 등이 풍부했으며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인 저어새 노랑부리 백로 등이 서식한다. 특히 황복과 웅어는 예로부터 임금님 수라상에 올려 보내는 귀한 물고기였다. 갈대밭에 서식하는 웅어는 환경파괴 등으로 많이 사라져버렸으나, 바다에서 잡히는 일반 복들과 달리, 강에서 잡히는 유일한 민물복어인 황복은 고가의 ‘황금물고기’로 지금도 임진강의 명물이 되고 있다. 특히 장어는 현재 한강하구 어민들의 주된 수입원이 되고 있다. 흔히 풍천(風川) 장어라고 하면 풍천이라는 지명의 장어로 혼동하는데 본래 풍천이라고 하는 지역 또는 마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바닷물(짠물)이 하루에 두번씩 밀물로 들어올 때 바람이 함께 들어와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기수역을 풍천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런 곳(짠물과 바닷물이 뒤섞이는 곳)에서 생산되는 장어를 바람이 함께 몰고 들어온다고 해서 ‘풍천 장어’라고 하는 것이다.

남북이 이 지역의 생태 서식 실태를 파악하고 지켜나가기 위한 환경 생태적인 차원에서도 공동 관리와 보호를 위한 긴밀한 협력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자연적으로 방치된 상태가 아닌 강의 수자원 기능과 수로 항행 기능이 보장되고 인간으로부터 차단된 자연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면서 생태적 가치를 유지하도록 관리하고 보호하는 적극적 환경보호와 평화적 이용의 관점을 견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강하구 뱃길 및 주운 활성화, 포구의 복원, 한강과 서해의 연결, 홍수 방지와 같은 핵심적 사업은 생태환경 가치의 보존과 함께 병행될 필요가 있다.

 

○ 다시 시작하는 한반도 평화

한강하구의 평화는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고 남북관계가 개선돼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된 이후에 가능한 사업이 아니다. 오히려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어려운 상황에서 상호 호혜와 신뢰의 구축을 통해 협력의 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업이다. 즉 평화를 유지하고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사업으로서 의미가 있으며. 우선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민간 선박의 자유항행(뱃길 열기)을 그 맨 앞에 두려는 것은 앞서 살펴봤듯이 정전협정에서 이미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강 하구 중립 수역에 대한 뱃길 수로 및 생태 환경 조사는 이 자유 항행을 위한 선결 조건인 셈이다. 아울러 이 생태 환경 수로조사는 자체로 이 지역의 자유항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길을 열어가는 일이 길을 만들어가는 것인 셈이다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안전 조처 등 항로 개설에 필요한 절차와 관행을 확립해 정전협정이 보장한 민간선박이 오가게 된다면, 문재인 정부가 판문점 정상회담 이래 내건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이라는 구호에 걸맞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현재의 북핵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유엔제재 아래서도 남북관계를 변화시키는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수도권 장기발전 구상과 서해 해상 평화 벨트와의 연계

이러한 한강하구의 복원 및 남북의 평화적 활용은 남북간 긴장 완화 및 접경지역 남북교류협력 활성화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남쪽 내부의 관점에서 본다면 한강하구 주변 지역 사회들의 발전을 이끌어 나가는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 북은 북대로 임진강, 예성강, 사천강을 통해 개성 등 황해도 내륙지역의 서해로의 출구를 확보하면서, 서해 NLL을 둘러싼 영해 논란을 우회해서 한강하구를 통한 자유항행으로 서해에서의 통항의 자유를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며, 서해 5도와 인접한 군사적 긴장으로 인해 가로막혀 있던 강령 녹색시범구, 해주항 개발 등 황해도의 개발과 발전을 추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과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기조에서 볼 때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수도권의 과밀과 서울 집중을 완화하는 균형발전의 광역 수도권(메가 폴리스) 전략을 결합시켜 추진하는 비전이 될 수고 있을 것이다.【6】 지난 30년간 시행된 수도권 종합개발계획 및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정책과 규제의 성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지속되고 있지만, 대체적인 평가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인구와 산업의 분산이라는 정책목표 달성에 실패했고, 수도권과 지방이 모두 만족하지 못해서 국토 균형발전 목표도 이루지 못했다는 의견이 많다.

따라서 남한 유일의 자연하구인 한강의 옛 뱃길을 복원하여 분단된 한강(조강)을 하나로 만들어가는 길은 넓고 길게 본다면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자, 반쪽이 아닌 남북을 아우르는 온전한 의미에서 새로운 성장의 동력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가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1】 임동근 한국 교원대(국토지리학), 접경지역시군구협의회와 한겨레통일문화재단 공동주최, ‘2018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접경지역 협력’ 1세션(2018 남북정상회담 이후 경계를 넘어선 협력의 모색) 토론문. 2018년 6월 27일, 제주 국제컨벤션센터.

【2】 정왕룡 김포시 의원, 신년특집 김포 통일시대를 꿈꾸다 <김포저널> 2015년 1월8일.

【3】 정태욱 인하대 교수(법학) ‘한강하구에 관한 유엔사의 관할권’, ‘7.27 한강하구 평화 배 띄우기 조직위원회’ 주최의 “한강하구의 평화정착과 생태‧평화적 발전전략” 토론회 발표문 2007년 6월20일.

【4】 한강 하구의 항행규칙은 제8차 정전협정 후속 합의서인 <한강 하구에서의 민용 선박 항행에 관한 규칙 및 관계사항(1953.10.3.)> 제6항 (민간에서 오랫동안 관습적으로 사용하여 온 한강 하구 수역 내에 성문화되지 않은 항행규칙과 습관은 정전협정에 저촉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쌍방 선박이 이를 존중한다)에 규정돼 있다. 이 항행규칙은 군사정전위에서 정했으며, 다른 비무장지대의 경우 민간인의 출입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면, 한강하구는 규정에 근거해 등록된 민간선박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불허할 뿐 원칙적으로 항행을 허용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5】 생태 교란, 선박의 항행의 안전등 논란이 되고 있는 신곡수중보 철거여부 문제도 생태적 관점만이 아니라 닫혀 있는 한강을 열어 온전히 복원하는 자유로운 항행의 관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이처럼 한강 및 수도권과 관련한 많은 사업계획 및 환경 생태관련 사업은 남북의 한강하구 공동관리의 관점에서 재검토되고 그런 방향에서의 장기 전망 아래 추진돼야 할 것임. 일단 당면 과제는 한강하구의 자유항행을 통한 한강 뱃길의 복원이라는 관점을 견지할 필요가 있음.

【6】 김동성 외(2017). 『한강하구 평화적 활용을 위한 경기도 주요과제 연구』, 경기연구원, p. 174.

 

2020-06-05.

강태호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편집위원장, 전 한겨레 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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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과 마카오는 1997년, 1999년에 각각 중국에 반환된 이후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로 정의되는 방침에 따라 통치되었다. 홍콩과 마카오 모두 중국과의 재통합 이후 특별행정구역(SARs)으로서 50년간고도의 자치권을 보장받았다.

두 도시는 중국령이 되었지만 중국 본토로부터 독립된 행정, 입법, 사법 자치권을 통해 독자적인 국정을 관할한다. 홍콩 기본법에는 중국 정부가 외교와 국방에 대한 주권을 갖는다고 규정되어 있다. 자치권 보장이 끝나는 2047년에 과도 시한이 끝나고 나면 홍콩 도시의 미래는 중국에 귀속된다.

선거가 치루어진 이후, 중국 인민일보의 1면 논평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실렸다.

“홍콩은 중국의 홍콩이고 홍콩 사무는 중국 내정에 속한다. 홍콩 문제에 외부 세력의 간섭을 불허하는 것은 중국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브라질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 밝힌 바와 같이 중국 정부는 변함없이 홍콩 문제에 대한 외부 세력의 어떠한 개입도 반대할 결의를 지녔다고 전했다”는 내용도 이어졌다.

지난 11월, 홍콩에서 구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중국의 환구시보(環球時報)는 범민주당이 “전체 452의석 중 347석을 차지하면서 압승을 거뒀다”고 보도하며 18개 구 중 17곳을 장악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홍콩 구의회(DC)는 홍콩 입법회와는 다르다. 홍콩 구의회는 “지역 사회를 위해 존재하며,교통, 환경, 거주 환경과 같이 생계와 관련하여 대중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한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는 수개월 간의 ‘반체제 반향’으로 인해 2015년 선거때 47% 투표율과 비교했을 때 71%의 높은 투표율로 이어졌고, 투표 결과 또한 상당히 상이하게 나타났다고 전했다.

“범민주당이 선거에 압승하여 득의만만하자 유권자들 전반에 걸쳐 명백하게 불만스러운 모습이 나타났다.  2015년 이후 이번 선거전까지는 건제파가 지방의회를 차지하고 있었다.” 최대 친중 정당인 민주건항 협진연맹(민건령, DAB)은 기존 119석에서 줄어든 21석을 얻는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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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민주파는 홍콩행정장관을 선출을 담당하는 선거위원회에서 중요한 대표성을 띄게 된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식 폭력, 공공 기물 파손(반달리즘)과 혼돈 대신에 비교적으로 평화로운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에 중국을 와해하려는 워싱턴의 양당 강경파들의 분노를 감안했는지 여부는 향후 지켜볼 필요가 있다.

도시 거주민 대부분은 과거에 벌어졌던 폭력적인 상황에 명백하게 반대했다. 그들은 평온하고 정상적인 상황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홍콩을 와해 및 약화시키려는 (내부의 또는 외부의) 시도는 실패할 것이라면서 홍콩 도시는 중국의 특별 행정 구역임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주에 미국을 “세계 불안정의 가장 큰 근원”이라 일컬으며 “미국 정치인들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세계적으로 중국을 모함하고 있습니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대대적으로 일방주의와 보호주의에 관여하면서 다자주의와 다자 무역 체계를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미국이 제로섬 게임을 이어간다면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중국과 미국 간의 협력과 공영만이 올바른 길입니다”이라고 덧붙였다.

패권주의적 목적을 위해 다른 국가에 대한 우세를 추구하고 상호 협력을 거부하는 것은 확실히 미국의 운영 방식이 아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 지방 선거 결과를 보도하면서 다음과 같이 전했다.

“이번 구의원 선거는 현재는 철회되었으나 도시의 불안을 촉발시켰던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이후로 홍콩특별행정자치구에서 처음 시행된 여론의 결과입니다.”

“지난 5개월 이상 동안 폭도들은 외부(미국)세력과 협력하여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강화하여 사회 및 정치적 대립, 사회적 정서 내 균열을 일으키고 경제와 민생에 지장을 초래했습니다.”

“수개월간 이어진 사회적인 동요는 선거 과정에 심각한 지장을 주고 있다. 일부 폭도는 선거 당일에도 애국적인 후보를 교란했습니다.”

“오늘날 홍콩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여전히 폭력 및 혼란의 종식과 질서의 회복입니다.”.

신화통신은 선거 결과를 보도하지 않았다. 인민일보 역시 투표율이 높았고, 개표 작업을 완료했으며, 의원 사무실 100곳이 파손되었다는 사실을 약간 더 언급했을 뿐 선거 결과를 보도하지 않았다.

중국 영자신문 차이나데일리는 야당이 승리를 주장하고자 한다면, 동시에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뻔뻔스럽게 무법적 행동을 취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이는 명백한 사실이라고 보도했다. 도시 주민들은 몇 달 동안 CIA에 의한 폭력, 공공 기물 파손, 혼돈 속에서 인질로 잡혀 있었다.

현재의 상대적 평온함이 회복되고 지속된다면 미국이 새로이 중국 내정에 간섭하기 이전의 휴지기일 뿐일지도 모른다.

홍콩에서 보여준 무법천지의 배경은 바로 미국 제국주의의 사회악이다. 그들의 어두운 세력은 자만심, 오만함, 그리고 변화를 꺼리는 마음에 의해 홍콩 시민들이 스스로 파멸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Stephen Lendman(스티븐 렌드먼)

시카고에 거주하는 자유 연구자로서 글로벌리서치의 정기기고자이다.

월, 2019/12/3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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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아래의 칼럼은 NYT에 실린 내용으로 기고자는 현재의 위기에 도덕적 기준을 잣대로 구제지원을 선별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른백년은 이런 관점에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다만 생산적인 논쟁을 위하여 게재를 결정했다.

우리는 지난 IMF 시기와는 달리하여 은행과 거대 기업에 지원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대신, 수요자인 시민들과 중소기업자들에게 필요한 만큼 무제한적으로 직접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거래은행은 해당산업의 지원과 존폐여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며, 정부는 이번 위기를 미래의 일상적 혁신을 위해 대규모 산업구조조정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요에 따라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큰 기업과 은행의 파산에 대응하면서, 정부가 선택적으로 이들을 공기업으로 전환하되 경제가 정상화된 이후, 시장에 재매각을 검토해야 한다.


미국의 경제는 수직으로 추락하고 있으며, 수천만 명이 실직을 당하고, 셀 수 없이 많은 기업들이 부도의 위기를 맞고 있다. 연방의회는 위기의 확산을 차단하려고 이미 3조 달러의 지원을 승인하였고, 추가의 금액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에 신속하고 무제한적으로 이루어진 결정에 대하여 다른 정치적인 견해들이 분노와 함께 돌출하기 시작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인들과 언론매체 그리고 일반시민 사이에 잠재적인 불황을 방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수혜자들이 과연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여부를 밝히는 것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좌파적 정치인들은 거대기업들이 연방정부의 지원혜택을 받거나 연방준비제도가 공급하는 초저금리의 신용공여를 받는다는 것에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 반면에 우파에 속하는 측은 연방행정부가 주정부나 지방정부를 지원하거나, 실업자들을 돕기 위해 고용보험을 확대하는 것에 화를 내고 있다. 여론매체들은 스테이크하우스 체인이나 사설학원같이 자격미달인 조직들에게 지원금이 투입되는 것에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실제로, 수조 달러에 달하는 연방지원금을 받을 자격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 누구인지 결정하는 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여기엔 자금이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오는 제로-섬 게임의 위험이 존재한다. 이는 위기가 종결되기 이전에 곤궁에 빠진 개인과 기업 그리고 공조직에 대한 연방정부의 대응수단을 제한하고 지원을 중단시킬 잠재성을 지닌다.

“보수적인 견해를 지닌 친구들은 주정부나 지방도시는 지원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현재 해밀톤 전략연구소의 파트너를 일하고 있는 Tony Fratto는 이야기한다. ”반면 진보적인 인사들은 민간기업들에게 도움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자유주의자들은 누구에게도 지원을 제공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이들 각자의 견해는 나름대로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고통의 결과물들이라고 덧붙였다.

2008년 세계적 규모의 금융위기와 후유증을 겪은 지금은 물론 보다 합리적인 주장을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이 매우 긴급한 사항이다.

지난 위기 과정에, 보수주의자들은 감당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택구매자금을 담보조건으로 융자해준 사실을 비난한다. 당시의 은행들은 거대한 ‘모랄-해저드’라는 문제를 동반하면서 금융조직들이 부동산 저당의 거품에 자금을 공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한 결과에 대해 전액의 구제지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중인 Covid-19에 대하여 같은 내용으로 비난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당시 주택버블과 금융위기를 야기했던 금융회사들이 구제지원을 받은 것은 비도덕적인 것으로 이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한 것은 정당한 일이지만, 이번의 사태는 경우가 다르다”고 자유 루스벨트 재단의 연구원인 Mike Konczal은 주장한다.

금융위기 상황과 확실하게 다른 것은 기업들이 코로나를 야기시킨 장본인들이 아니라 희생자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언론분야와 금융분야에 종사하는 자유주의적 인사들이 이를 묵살하고 있는데 이들은 과거에 구제를 받았던 기업들이, 지난 수 년간 바이-백을 통하여 주주들에게 배당을 높이는 행동을 보여 왔다며, 이제 다시 정부에 도움을 청하고 있다는데 분노를 터트린다.

이런 비판에 앞장서온 Oaktree Capital의 Howard Marks는 최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비도덕인 행위를 한 기업을 정부가 보호해 준다고 사람들이 느낀다면, 이는 분명히 ‘모랄-해저드’에 해당한다. 이들 조직과 관련 투자자들은 고통에서 보호를 받겠지만 이는 아주 나쁜 사례를 남기는 것이다.”

수많은 기업들, 특히 부채가 많아 충격에 취약한 조직들이 우선적으로 파산의 위기에 몰리겠지만, 동시에 현재 전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이런 충격에는 어떤 기업조직도 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연방준비제도가 기업채권에 자금을 투입하지 않으면, 많은 기업조직들이 자신의 실책 때문이 아니라 단지 순간의 자금을 융통하지 못해서 파산에 이를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파산은 부실기업을 주주로부터 분리시켜 신용제공자에게 되돌려주는 효율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팬데믹과 같은 충격에 대해 정부가 온전히 방관으로 일관하면 파산이 밀물처럼 몰려오고, 결과적으로 일하는 미국시민들과 경제전반이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경제가 좋은 호시절에도 파산의 정리과정에서 신용제공자(채권은행)와 노동조합 또는 노동계약자들 간에 협상을 통하여 퇴직보상이 없는 정리해고를 자주 허용하기도 한다. 여러 산업분야를 관통하며 수 천개의 기업들이 상법 제11조의 파산신청에 들어간다고 상상해 보자. 이로 인해 파산법정의 업무에 과부하가 걸릴 것이고, 구조조정의 기간 동안 조업을 지속하도록 하는 부채정리의 과정이 지연될 것이다. 따라서 많은 우량기업들이 살아남기 보다는 청산되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연이은 파산사태는 부채에 시달려온 투자자들이 헐값에 가치있는 자산을 사들일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는 재앙이 될 것이며, 산업이 소수의 거대기업으로 집중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잘못된 경제관계를 회복하려면 오랜 기간이 소요될 것이다.

“정상적이고 건강한 경제상황에서는 파산이 창조적인 파괴의 선순환으로 작동하지만, 지금은 파괴가 거대한 조업중단과 폐업을 야기할 것이다”라고 경제혁신그룹의 책임자로 일하는 John Lettieri는 이야기한다.

비슷한 논리가 연방정부 구제지원의 여러 분야에 걸쳐서 적용되고 있다.

상원의 주류인 공화당 총무인 Mitch McConnell은 지난 4월의 한 인터뷰에서 현금유동성이 부족한 주정부들을 파산시킬 가능성을 제기했다. 나중에 그런 입장에서 후퇴하기는 했지만, 그와 공화당 동료들은 민주당 소속의 주정부들이, 한편에서는 대규모 공공실업연금의 의무를 시행하면서, 연방정부의 구제지원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많은 주정부들이, 위기 이전에는 건전한 재무상황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이제는 세수가 격감하면서 향후 수년간 재정지출을 심각하게 축소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민간분야가 회복된다 하더라도 경제가 정상화되는 것이 지연될 수 있다.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대상에 대한 논란의 와중에도, 고용을 유지하는 조건에서 중소기업들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지불보호정책을 서명하는 주정부들의 노력이 진행되어 왔다.

우선적으로 3,500억불의 자금지원 프로그램을 승인하는 연방의회의 결정여부에 있으며, 문제는 상기 금액으로는 중소기업들의 임금지불을 충당하는데 역부족이라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차적인 자금의 집행으로는 부족하여, 논쟁의 대상이 되는 대규모의 스테이크 체인사업체들뿐만 아니라, 벤처지원 기업들을 포함하여 지원할 가치가 있는 조직들도 희생당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자금이 부족하다는 이유 때문에,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 수 만개의 기업들 중에 섞여 일부 불량기업이 구제지원 자금을 받는 것에 분노한다는 사실이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며, 사람들이 누가 자격이 있고 누가 없다는 식으로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은 문제를 잘못 접근하는 것이라고 Lettieri는 말한다.

팬데믹에는 도덕적 기준이 없다. 경제를 회복시키는 조치가 공정성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의존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원을 받을 자격이 없는 대상이라고 분노하는 것은 상황을 개선시키지 않는다.

 

2020-05-04.

Neil Irwin

뉴욕타임즈 경제칼럼 기고가

수, 2020/05/20-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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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복지국가는 국민의 행복증진을 목적으로 하며, 복지국가의 성숙도가 높을수록 국민의 행복 수준 또한 높다고 여겨진다. 유엔의 「세계행복보고서 2021」에 따르면, 핀란드(1위), 아이슬란드(2위), 덴마크(3위), 스웨덴(6위), 노르웨이(8위) 등 복지국가의 모습을 가장 잘 갖추었다는 나라들이 행복순위의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다.[1] 이러한 주장은 직관적으로는 이해가 쉽다. 하지만 여기에는 복지국가의 정착에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는 중요한 오해의 소지가 있다. 따라서 복지국가 5.0을 디자인하기에 앞서 복지국가와 행복 사이의 특별한 관계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부정적/긍정적 감정과 행복

우리나라 표준국어대사전은 행복을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라고 규정하고 있다. 영어의 happiness는 ‘기쁨이나 만족감을 느끼는 상태’를 의미한다. 불어의 bonheur는 “인간이 자신에게 좋아 보이는 것을 얻었을 때,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완전히 충족시키고 다양한 열망을 완전히 달성하며 개성들의 조화로운 발전에 있어서 균형을 찾았을 때, 인간이 정신차원에서 일반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사전적 의미들을 종합해 보면, 행복이란 “원하는 바을 얻었을 때 도달하게 되는 긍정적인 감정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감정들 중에 기본감정(primary emotion)이란 범주가 있다. 연구자마다 다소 다르지만, 기본감정은 대략 6~8개의 감정들로 구성된다. 플루치크(Plutchik)의 8감정(기쁨, 슬픔, 두려움, 분노, 기대, 놀람, 신뢰, 증오)이, 희로애락애오욕(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사랑, 증오, 욕심)이라는 칠정(七情)이 대표적이다.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수백 가지의 감정은 바로 기본감정에서부터 나온다. 예를 들어, 기쁨이란 기본감정에서 감정의 정도가 낮으면 평안 높으면 황홀이 된다. 그리고 2개의 기본감정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감정이 만들어진다. 기쁨과 신뢰 사이에서 사랑이, 두려움과 놀라움 사이에서 경외라는 감정이 나온다.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의 연구들은 행복이란 감정을 기본감정으로 여기지 않고, 둘 이상의 기본감정을 포함하는 집합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위 사전적 규정에 따르면 행복은 최소한 기쁨(joy), 만족(satisfaction), 즐거움(amusement)이라는 3가지의 기본감정을 아우르는 분류적 개념이다. 달리 말하면, 기뻐도 행복한 것이고 만족해도 행복한 것이며 즐거워도 행복한 것이다.

그러나 당장의 욕망이나 욕구가 충족됨으로써 생기는 기쁨, 만족, 즐거움만을 행복으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한가? 그렇다면, 슬픔∙두려움∙고통 등이 없을 때 갖게 되는 감정은 행복이라 부를 수 없을까?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도 행복이라 여긴다. 따라서, 행복을 규정할 때 슬픔∙두려움∙고통 등의 부정적 감정과 함께 동시에 기쁨∙만족∙즐거움 등의 긍정적 감정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조합으로 구성해보면, 1) 슬픔∙두려움∙고통이 있고, 기쁨∙만족∙즐거움이 없는 상태, 2) 슬픔∙두려움∙고통이 없고, 기쁨∙만족∙즐거움도 없는 상태, 3) 슬픔∙두려움∙고통이 없고, 기쁨∙만족∙즐거움이 있는 상태 등 총 3가지가 나온다 (그림1 참고).

그림. 동일 사안에서의 행복과 불행의 감정 범위

 

행복의 2가지 유형: ‘0의 행복’, ‘+의 행복’

동시에 긍정-부정의 감정을 스펙트럼으로 보는 것 또한 행복의 의미 구성에 중요하다. 현재의 나의 감정은 최대의 부정상태에서 최대의 긍정상태까지 연속되는 스펙트럼 중 어딘가에 위치한다. 그런데 문제는 긍정-부정의 스펙트럼의 중간에 0의 영역이 있다는 점이다. 즉 긍정도 아니고 부정도 아닌 상태가 있다. 원래 건강했던 사람의 다리골절을 예로 들어보자. 어느 날 자동차 사고로 다리가 부러졌다면 부정(-)의 상태가 되고, 수술과 통증치료를 잘 마치게 되면 고통이 없는 (0)의 상태가 되며, 물리치료, 운동치료 등의 재활을 잘 해서 다시 운동도 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면 원래의 긍정의 상태인 (+)상태가 된다.

이제 2가지의 기준을 동시에 적용하여 종합적으로 행복을 규정해 보자. 우선, 하나의 사안과 관련해 아픔∙걱정∙고통 등이 있다면, 동시에 기쁨∙만족∙즐거움이 있을 수는 없다. 다리골절은 고통이지 기쁨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슬픔∙걱정∙고통 등이 있다면 기쁨∙만족∙즐거움이 없는 상태가 되는데, 이는 정신적으로 부정적인 (-)상태이며, 소위 말하는 불행이라 할 수 있다. 불행을 나타내는 불어의 malheur라는 용어는 “존재하는 것의 존재함을 어둡게 하고 그것을 정신적인 비참함과 절망에 빠뜨리는 고통의 상태”라고 사전적으로 규정되는데, 바로 이런 상태이다.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한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해당 슬픔, 걱정, 고통을 없애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를 없앤다고 해서 곧바로 기쁨∙만족∙즐거움이 있는 긍정적인 정신상태가 되지는 않는다. 단지 부정적인 정신상태로부터 해방되었을 뿐이다. 이 상태가 바로 슬픔∙걱정∙고통도 없고 기쁨∙만족∙즐거움도 없는 (0)의 상태이다. 나는 이런 상태를 ‘0의 행복’이라 부른다. 이 유형의 행복은 주로 편안함, 안정감, 평화로움 등의 감정이 지배적이다.

(0)의 상태에서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더 해야 한다. 앞의 예를 다시 들자면, 고통이 없는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재활과정을 거쳐 능동적인 활동이 가능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운동이나 여가생활 등의 신체적 활동을 해야 비로소 건강이 주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슬픔∙걱정∙고통은 없고 기쁨∙만족∙즐거움이 있는 상태를 ‘+의 행복’이라 부른다. 요컨대, 당장의 슬픔, 걱정, 고통 등을 없애거나 사전에 이런 부정적 감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함으로써 이르게 되는 슬픔, 걱정, 고통이 없는 상태가 ‘0의 행복’이고, 여기에 더 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을 통해 기쁨∙만족∙즐거움을 얻는 상태가 ‘+의 행복’이다.

 

현재의 복지국가의 목표는 주로 ‘0의 행복’의 실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0의 행복’과 ‘+의 행복’을 구분하는 것은 복지국가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함이다. 복지국가의 정책들 중에 상당 부분은 ‘0의 행복’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안되었다. 복지국가의 핵심적인 정책인 사회보장정책은 눈앞에 나타난 질병, 실업, 육아, 요양, 장애, 주거, 소득부족 등의 사회적 위험, 즉 인간적으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것들이 결핍됨으로써 발생하는 고통을 벗어나거나 그러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들이다. 건강보험은 아팠을 때, 국민연금은 노후시기의 소득 부족을 대비하기 위해, 고용보험은 실업에 따른 소득 결핍을 위한 것들이다. 소득보장 관련 정책들은 소득의 결핍으로 인한 고통을 해소하거나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반면, 복지국가는 ‘+의 행복’을 직접적으로 제공하기보다는 주로 그것의 토대를 마련해준다. 우선, 사회구성원의 역량(capability)를 키우는 데 초점을 둔다. 유럽 복지국가들은 19세기부터 ‘교육국가’라고 부를 정로도 공교육의 제공을 제일 중요한 책무로 여겼다. 현재에도 대부분의 유럽 복지선진국은 대학교까지 공교육체제를 갖추고 있어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며 학비걱정 없이 역량을 쌓을 수 있다. 또한, 직업고등학교도 잘 발달되어 있으며 이에 대한 사회적 평가도 높다. 최근에는 직업재교육체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직장생활을 하던 중에 대학교 및 대학원 진학을 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사회구성원은 ‘+의 행복’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제도와 관행 그리고 암묵적 규칙 등에 의해 방해를 받는다. 이러한 장애물을 제거하고 노력과정이 더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는 장치들을 깔아주는 것이 ‘+의 행복’을 위한 복지국가의 두 번째 방점이다. 요컨대,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원하는 ‘+의 행복’에 필요한 조건들을 제도적으로 구축하는데 힘을 쏟는다.

 

‘+의 행복’을 위한 복지국가의 노력들

노동을 통한 사회참여는 일상의 1/3~1/4를 차지하므로 ‘+행복’의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이다.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고 그런 직업이 차별 없이 공정한 평가를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직업선택이 잘못 되었을 때, 취업서비스, 직업재교육, 실업시기의 소득보장 등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직업으로 옮겨갈 수 있어야 한다. 유럽의 복지선진국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 구축에 있어 매우 앞서 있다. 그 결과 국민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다. 특히 복지국가 4.0에서 가장 앞선 북유럽 국가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으며 스웨덴의 경우에는 2019년 기준으로 73.4%에 이른다.[2]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여유시간의 보장은 ‘+의 행복’을 위한 또 다른 주요 조건이다. ‘+의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절대적 시간을 필요로 한다. 직장에서 일을 하는 시간이 길수록 다른 곳에서의 행복을 느끼기 위한 활동을 할 여지는 줄어든다. 물론 근래 유럽에서 나타나는 노동시간단축은 일자리를 나누기 위한 목적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단축된 노동시간을 자신의 역량 개발이나 여행이나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는 등에 사용함으로써 ‘+의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유럽의 복지선진국들은 지방자치제도의 완성도를 높여 국가의 주요 사무들이 주민들의 ‘+의 행복’을 실현하는데 공헌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지방정부가 사회서비스에 대한 규제, 관리, 재정 모두에 대해 책임과 자율권을 가지고 있다. 시민사회 출신자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지방정부의 주요 요직에 자리잡음으로써, 그들이 주민들과 맺은 네트워크가 주민들의 직간접적인 참여통로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기반은 주민들이 자신들의 ‘0의 행복’을 보장하는 일을 직접 기획하고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 즉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지역주민의 일원으로서 지역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위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의 행복’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적 구조는 사회서비스의 영역을 넘어 다른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복지선진국이 보여주는 정책상의 특징 중 하나는 동행서비스를 적극적으로 도입∙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행서비스는 사회구성원이 욕구를 충족하는 과정에 부족한 요소들을 보조하는 인원이 동행하면서 채워주는 것이다. 장애인의 경우 직업교육이나 직업생활을 할 때 동행인인 함께 생활하면서 활동에 도움을 제공한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일환으로 각각의 구직자에게 동행인을 붙여주어 취업계획작성부터 시작해 취업이 될 때까지 현장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준다. 이러한 동행서비스는 각 개인이 삶의 주체가 되어 일상에서 중요한 일들을 스스로 기획하고 결정하며 그것을 추구∙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의 행복’의 실현을 가능하도록 한다.

 

 

복지국가 5.0은 ‘0의 행복’ 보장을 유지하면서 ‘+의 행복’ 보장을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구축된 복지국가 4.0은 ‘0의 행복’과 ‘+의 행복’ 사이에 심각한 불균형의 문제를 안고 있다. 위에서 기술한 ‘+의 행복’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복지국가 4.0은 ‘0의 행복’의 보장에 치우쳐 있다. 이런 불균형은 복지국가 4.0이 주로 보장하는 행복과 국민이 실제로 요구하는 행복 사이에 미스매치가 낳고 있으며, 이는 결국 복지국가 5.0으로의 변화를 추동하는 압력 중 하나로 작동하고 있다.

유럽의 복지선진국은 ‘0의 행복’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와 프로그램을 이미 촘촘하게 갖추고 있다. 국민의 대다수는 이미 형성된 슬픔, 걱정, 고통에 대한 방지책으로 인해 편안함과 안정감을 갖고 생활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즉 많은 사람들이 이미 구축된 제도와 프로그램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주는 효능감이 낮아지고 있다. 따라서 ‘0의 행복’의 강화를 위한 요구는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다만 ‘0의 행복’을 지원하는 제도들을 축소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할 뿐이다.

반면,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들의 ‘+의 행복’에 대한 요구는 더욱 커져가고 있는데 이를 충족시킴에 있어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당장의 실업률의 문제로 인해, 정부는 취업 자체에 초점을 맞추느라 일자리의 질에 대한 고려는 줄어들고 있다. 비록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통해 즐거움을 주는 일을 제공하고자 노력은 하지만 충분치가 않은 상황이며, 특히 새롭게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층의 불만은 커져가고 있다. 경제활동에 있어서의 주체적인 참여 요구는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은 단순히 취업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생산을 주도적으로 관장하려 하지만 그를 위한 토대가 별달리 구축되어 있지 않다. 현재 도입된 노동이사제는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운영권 내지는 결정권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나마 조합원의 주체성을 보장하는 협동조합이 활성화되고 있을 뿐이다. 요컨대, 복지국가 5.0으로의 성공적인 전환을 위해, 유럽의 복지선진국들은 ‘+의 행복’의 증진을 위한 정책들을 새롭게 도입하고 강화해야 할 필요에 직면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상황이 좀 더 복잡하다. 우리 국민의 대부분은 ‘0이 행복’에 대한 인식 없이 ‘+의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일자리를 확보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 또는 임금이 높은 일자리를 원한다.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항상 보다 높은 자리 또는 높은 위상을 가지려 한다. 주거의 안정성보다는 자기의 집을 사려는 데 보다 더 큰 열의를 쏟아 붓는다. 적당한 소득보다는 자기가 벌어들일 수 있는 최고의 소득수준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맥락에서 ‘0의 행복’에 초점을 맞춘 복지국가는 국민들로부터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게 된다. 결국, 행복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의 이해는 복지국가패러다임을 지배적 통치패러다임으로 위치 지우는 데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의 행복’은 ‘0의 행복’을 보장하는 제도들을 조건으로 달성 가능한 것인데, 우리나라는 토대가 없는 사상누각을 꿈꾸고 있다.

 

[1] Helliwell, John F., Richard Layard, Jeffrey Sachs, and Jan-Emmanuel De Neve, eds., World Happiness Report 2021, New York: Sustainable Development Solutions Network, 2021, p.18.

[2] 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01&tblId=DT_2KAA301_OECD&conn_path=I3

 

이권능

정책연구소 함께살기 소장. 정치학도로 시작해 프랑스 파리제1대학과 그로노블정치대학(IEP de Grenoble)에서 사회정책을 전공한 후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 연구실장으로 활동했음. 현재는 복지국가를 마을에서부터 만들기 위한 운동을 진행 중. 사회사상, 복지국가와 복지정치, 사회보장, 건강 및 요양, 복지도시 등을 사회성(the social)과 이론-실천의 통합 관점에 기반해 연구 중

목, 2021/09/02-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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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코리아 양국체제

코리아 양국체제1란 대한민국(ROK)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 두 나라가 주권국가로서 서로 인정하여 공식 수교하고 평화롭게 공존, 교류, 협력하는 일 민족 이 국가2의 평화체제, 공존체제이다. 코리아 양국체제는 지난 70여 년 남북 간에 쌓이고 쌓인 적대와 불신을 완화하고 해소함으로써 평화적 통일로 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경로다.

지난 70여 년 남북은 수없이 많은 ‘통일방안’을 경쟁적으로 제안해 왔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통일은 멀어졌다는 역설 속에서 살아왔다. 지금까지 한국과 조선은 서로를 국가 대 국가로서 인정한 바 없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아무리 통일을 말해봐야 통일이 이뤄질 리 없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반드시 통일하자고 하니까 전쟁까지 했던 것 아닌가. 그래서 통일을 하자고 할수록 통일이 멀어지는 역설이 여태껏 발생해왔다고 하는 것이다.

평화로운 통일로 가는 ‘제1보’가 양측이 상대를 진심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인정하는 데 있음은 굳이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은 자명한 사실이다. 국가로서 성립되어 있는 양자 간의 관계에서 그렇듯 진정에서 우러난 실제적인 인정이란 서로를 정당한 주권국가로서 인정하는 것이다. 남북 서로가 국가로서의 정당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각자의 내부에서 상대를 부정하고 적대했던 심리와 제도가 바뀌기 시작한다. 그래야 편지 한 통 오가는 데서 시작해서, 전화가 오가고, 사람이 오가고, 그리고 마음이 오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음 간의 긴장이 먼저 풀려야, 정치적 긴장도 풀리고, 군사적 긴장도 따라 풀릴 것이다. 이 길이 평화로운 통일로 가는 ‘제1보’이고 그러한 상태가 이루어지는 것이 코리아 양국체제다.

그러나 지난 70여 년 동안 그 ‘제1보’는 한 번도 제대로 떼어지지 못했다. 첫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하면서 내달리고 도약하기를 꿈꾸는 온갖 화려한 통일안들이 난무했다. 코리아 양국체제는 여태껏 미뤄져온 그 첫걸음을 제대로 분명하게 내딛자는 제안이다. 통일에 이르는 첫걸음이 될 양국체제가 정착되고 안정되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 첫 과정을 제대로 이수(履修)하는 데만 많은 노력과 인내와 창의력이 요구된다. 이 가장 기본적인 과정을 분명한 목표로 인식하고 그 과제의 실현을 위해 실제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 과정을 애매모호하게 남겨둔 채 2단계, 3단계로 건너뛰자는 통일안들은 말만 화려할 뿐 실효가 없다. 오히려 갈등과 불신만 키워왔다.

양국체제란 단순히 한반도에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두 국가 간에 ‘국가로서의 상호 인정’이 공식적으로 이뤄지고 그러한 상호 인정 관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어야 비로소 양국체제라 할 수 있다. 2018년 현재 세계 157개국이 남북 두 국가를 동시에 인정하고 수교하고 있으니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세계인이 인정하고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한반도에 양국체제가 성립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은 전혀 아니다. 막상 남북 두 국가는 서로를 국가로서 정식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치르고 극단적으로 적대했던 두 국가가 엄혹했던 냉전 기간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은 상황 탓으로 넘겨본다 하더라도, 소련·동구권이 붕괴하여 미소 냉전이 해소되고 1991년부터는 남북 두 나라가 유엔의 정식 회원국이 되었음에도 그 후로도 거의 30년을 서로 국가 대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지내왔다는 것은 분명 비정상이다.

그러나 현실이 크게 변하여 이러한 비정상이 더는 지속되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같은 해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리면서 한국전쟁(Korean war)의 종전과 북미 수교가 남, 북, 미 3국의 공식 어젠다에 올랐다.3 정전 상태를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할 당사자가 될 남북 두 국가가 이제 서로를 정상적인 국가로서 인정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여기에 더하여 이후 북미·북일 수교가 이뤄지는 날이 올 것인데, 그때에도 남북만은 끝내 상대를 국가로서 인정하지 않은 채 준 전쟁 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이제 양국체제가 눈앞의 현실로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도 놀라운 것이지만 그러한 변화를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대중적 힘이 대한민국 내부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에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힘은 물론 2016년 겨울 이후 형성된 촛불혁명의 민의다. 촛불혁명은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이 드러나면서 시작되었지만, 그 배경에는 정권의 모든 실정(失政), 무능, 독단에 대한 항의와 비판을 ‘종북’으로 싸잡아 억누르고 ‘블랙리스트’로 묶어 배제했던 박근혜 ‘신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환멸과 거부가 있었다. 결국 북을 이용해 독재를 강화하는 낡은 공식을 재탕·삼탕하려다 국민적 대저항에 부딪쳤던 것이다. ‘보수가 안보는 잘할 거’라는 근거 없는 공식도 완전히 깨졌다. 이명박, 박근혜 소위 ‘보수정부’ 시절 내내 안보 위기·전쟁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높아만 갔다.

높아가는 안보 위기, 전쟁 위기에 대한 국민적 불안과 불만이 매우 심각한 상태였음은 2018년의 판문점, 싱가포르 회담에 대한 여론의 압도적 지지에서 여실히 드러났다.4 2019년 2월 하노이에서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면서 상황은 교착되는 듯했으나, 같은 해 7월 1일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다시 만나 70년 적대를 종식시킬 대장정의 새 장을 열었고, 여론은 여기에 대해 흔들림 없는 지지를 보냈다. 이 지지는 촛불민의의 연장이자, 촛불민의를 믿고 과감한 대북 화해, 북미 화해를 성공적으로 주도했던 새 정부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기도 했다. 이제 남북미 간의 평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의지와 역량이 새 정부가 ‘촛불정부’임을 입증하는 핵심 증표가 되었다. 이로써 양국체제로의 현실 변화는 남북미 간의 해빙 기류와 이를 지지하는 광범한 대중적 지지를 통해 안팎의 든든한 근거를 갖추었다. 코리아 양국체제는 어느덧 이미 시작된 사건이었다. 이제 코리아 양국체제는 학술적 발상이나 탐구의 수준을 넘어서 눈앞에 다가온 현실이 되었기 때문에, 양국체제에 대해 보다 체계적인 인식을 정립하여 임박한 변화에 준비된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에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상식이기 때문에 양국체제에 대한 이해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 상식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간단해 보이나 실은 간단하지 않은 문제인 것이다. 양국체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흥미로운 현실의 블랙박스를 먼저 풀어야 한다. 오랜 세월, 상식이 현실로 되지 못하게 가로막아온 모종의 강고하고 거대한 장애가 우리 자신의 안팎에 존재해왔던 것이다. 따라서 양국체제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 정립을 위해서는 먼저 이 거대한 장애를 분석하는 데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작업은 현실에서의 시도와 실패에 대한 분석을 포함한다. 양국체제로의 첫 전환 시도가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첫 시도는 너무나 짧은 시간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시도가 어떻게 가능했고 왜 실패했는지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양국체제에 대한 체계적 인식은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양국체제 발상이 억압되어온 까닭

먼저 양국체제에 대한 기본적인 상(像)을 그리기 위해, 한중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현재 한국과 중국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중국은 2003년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제1교역국이 되었고, 2017년에는 중국에 체류하는 한국인과 한국에서 체류하는 중국인이 각각 100만 명을 넘어섰다.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진 후 벌어진 놀라운 변화다. 편지 한 통 자유로이 오가는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이러한 큰 변화가 이뤄진 것은 한중 두 나라가 국가로서 서로를 인정하고 정식으로 수교했기 때문이다. 먼저 정식 외교관계가 이뤄지면 여러 변화가 물꼬를 터서 연이어 진행되게 마련이다. 한중 수교와 교류는 한중 양국에 큰 혜택을 주었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수교 이전의 냉전시대 한중 관계는 사실상 전무했다. 당시엔 중국을 중국이라 부르지도 못하고 ‘중공’이라 불러야 했다. ‘적성공산국가’를 마치 정상적인 나라인 것처럼 부를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교류는커녕 교류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적대와 금기의식이 지배했다. 러시아(구소련)와의 관계, 베트남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제 달라졌다. 실로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었다.

주지하듯 이러한 변화는 미소 냉전체제의 붕괴로 인해 가능했다. 더는 이념과 체제의 차이가 교류와 협력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수많은 일반인들이 서로 만나 협력하고 사업하는 데 이념의 차이를 물고 늘어질 이유가 없었다. 한중, 한러, 한베 수교국 정부 사이의 공무(公務)를 수행하는 데서도 서로의 이념이나 체제를 문제 삼아 마찰을 일으킬 이유가 없었다. 간단히 말하면, 코리아 양국체제란 한국과 조선 두 나라 사이에도 한중, 한러, 한베 사이와 같은 정상적인 교류와 협력이 이뤄지는 상태를 말한다.

물론 한국과 조선은 같은 민족의 두 국가이지 서로 민족이 다른 외국이 아니다. 같은 민족의 두 국가 간의 관계는 일반 외국과의 관계보다 긴밀하고 특수할 수밖에 없다. 양국체제란 일종의 ‘한 민족 두 국가 간의 특수한 관계’를 말한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 지금까지는 불행하게도 삼엄한 휴전선을 경계로 대치하면서 어떤 정상적 교류도 불가능한 상태에 머무르도록 지극히 부정적으로 작용해왔다. 일반적인 대외 관계와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철저히 가로막힌 상태였다. 그러나 과거 냉전시대 ‘적성국’이었던 중국, 러시아, 베트남과의 관계가 정상화되고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일반인 사이에서도 ‘왜 북과는 같은 민족인데도 그럴 수 없느냐’는 자연스러운 질문들이 생겨났다. 그래서인지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일반인 대상으로 양국체제를 설명하면 쉽게 이해하고 그 필요성을 인정한다. 기본적인 소개만 하고 나면 오히려 필자보다 더 적극적으로 그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서기도 한다. 그럼에도 왜 남북 간의 양국체제는 여태껏 현실화되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러한 발상조차 분명한 형태로 제기되지 못했던 것일까?5 흥미로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양국체제를 설명하다 보면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반응을 자주 접하게 된다. 뒤집어 보면, 비록 막연하게나마 그런 방향과 방식으로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생각을 분명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엇인가 그러한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을, 또는 그런 식의 생각을 표출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었다는 뜻이다. 정신분석의 용어로 말하면, 그러한 생각과 발상은 무엇인가에 의해 ‘억압’되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무엇이 그렇듯 양국체제적 생각과 발상을 억압해왔던 것일까?

먼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각 개인의 외부로부터 오는 억압이다. 이는 주로 그동안 북을 인정하지 않고 적대시했던 국가와 국가기관으로부터 오는 억압이다(남북이라는 말을 바꾸어도 상황은 정확히 같다). 일례로 우리는 오랫동안 ‘북한사람’을 우연이라도 만나게 되면 공포를 느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살아왔다.6 국내에서는 물론이려니와 해외에서도 그러했다. 북을 불법화하고 있는 국가 당국이 언제든 그런 ‘접촉’을 ‘간첩사건’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이러한 억압은 독재의 수단으로 오랜 세월 애용되어왔다. 어떤 정당한 비판도 ‘종북’이라 몰고, 어떤 비인도적 탄압도 ‘종북 척결’로 정당화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양국체제적인 발상을 떠올리기도, 꺼내놓기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앞 절에서 말했듯 촛불혁명을 전후하여 국내외의 상황이 크게 바뀌고 있다. 이러한 외적 억압은 점차 약화되고 있고, 앞으로 더욱 약화되어갈 것임에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런 외부 억압은 억압을 당하는 각자의 의식 속 내면화를 수반하기도 한다. 스스로 ‘종북’ 딱지에 걸리지 않도록 자기검열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소위 ‘내 귀의 도청장치’가 생긴다.7 이런 자기검열을 통해 북에 대한 경계와 공포, 적대감이 내면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듯 외적 억압에 의해 내면화된 의식 역시 결국 외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외적 억압 요인이 약화·소멸됨에 따라서 같이 또는 다소의 시차를 두고 약화·소멸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부터 비롯된 억압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이 억압은 원인이 내적인 것이기 때문에 앞서 살펴본 외적 억압이 사라져도 존속할 수 있다. 그러한 억압은 과연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보면 그것은 우리 내면의 ‘분단의식’임을 알 수 있다. 남북뿐 아니라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고 있는 모든 코리안들에게 ‘분단’이란 그저 단순한 한마디의 말, 언어가 아니다. 범상치 않은 단어다. 반드시 ‘비원(悲願)’이나 ‘한(恨)’과 같이 강렬한 정서적 에너지가 고도로 응축되어 있는 표현을 수반한다. ‘분단’이란 모든 코리안에게 깊은 고통과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수반하는 상처의 표현이다. 일제에 억눌리면서 맺혔던 한이 풀리나 했던 순간 야밤의 봉변처럼 닥쳐왔던 것이 민족분단, 조국분단이었다. 일본을 몰아낸 미국과 소련의 힘, 그리고 그들 사이의 냉전이 분단을 가져왔다. 민족의 심장에 꽂힌 가시가 반드시 뽑혀야 하듯, 이 ‘분단’은 반드시 거부되고, 부정돼야만 한다. 따라서 ‘분단의식’이란 강렬한 ‘분단부정의식’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분단’에는 또 항상 ‘극복’이란 말이 따라 붙는다. 그 결과 ‘분단의 비원’과 ‘분단의 극복’은 항상 짝을 이루는 말이 된다. 이러한 분단은 나뉘어 있되 결코 둘이 아님을, 아니 결코 둘일 수 없음을 말한다. 지금은 나뉘어 있지만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함을 정언적(定言的)으로 명령하는 말이다. 정신분석에서 무의식(이드)을 ‘억압’하는 것은 초자아(슈퍼에고)이고, 이 초자아의 명령은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과 닮아 있다. 정언명령을 닮은 이 ‘분단(부정)의식’이 ‘한 민족이 이룬 두 개의 국가’, ‘두 개의 코리아’라는 생각, 양국체제의 발상을 억압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무의식적 금압, 터부는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한중, 한러, 한베 수교 이후 현실이 크게 변했음에도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한반도에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상식”이 되었음에도 그렇듯 상식적인 양국체제적 발상을 제기한다는 것이 왠지 쉽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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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1/15-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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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법 제40조는 국회의원의 상임위원 임기를 2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당초 제헌의회 때 상임위원 임기는 의원의 임기와 같이 4년이었다. 그랬던 것이 1953년 1월 22일 국회법 개정에 의한 이승만 정권의 국회 무력화 과정에서 1년으로 단축되었다가 다시 1963년 11월 26일 박정희의 제3공화국에서 2년으로 연장되었다. 그러나 제3공화국 당시 본회의 중심 체제를 상임위 중심 체제로 전환한 것은 의회기능 강화의 목적이 아니라 독회제도 폐지 등 행정부 안의 신속한 국회 통과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특히 이 상임위 중심 체제는 말이 상임위 중심이었지 의원의 정책전문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상임위 중심체제에서는 극히 기형적인 “임기 중 상임위원 개선(改選) 제도”였을 뿐이다. 이 점에서 “임기 중 상임위원 개선제도”는 권위주의 정권에 의한 의회 무력화의 도구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현재 국회의장 임기도 2년이다. 국회의장 임기도 제헌의회 때는 4년이었다. 그러나 1951년 3월 15일 당초 임기 4년이던 국회의장 임기를 “국회 운영의 원활을 기하기 위해” 1년 임기제로 개정하고자 했다. 이 개정안은 심지어 “토의시간만 허비하는 전원위원회 제도 폐지”를 제안하기도 했다. 결국 반발에 부딪혀 의장 임기는 2년 임기로 수정되었다.

 

국회의원의 업무 전문성은 어떻게 높아질 수 있는가?

우리 국회에서 의원들의 업무 전문성에 있어서의 취약성은 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받고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그 취약성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제도적으로 관행적으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의원의 업무 전문성이란 임기 동안 혹은 선수(選數)를 쌓으면서 “동일한 상임위원회를 유지”함으로써 업무 전문성을 축적하는 것이다. 미국 의회의 경우 의원의 업무 전문성은 상임위를 중심으로 업무 전문성이 축적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에는 집권당 내 위원회를 중심으로 전문성이 축적된다. 미 의회에서 상임위원회는 의회와 행정부 간의 정책결정의 중심무대로서 따라서 자연스럽게 상임위를 중심으로 한 정책형성은 의회 활동의 중심으로 되었다. “한 상임위 내에서의 선임 순위가 위원장이나 간사로 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는 미 의회의 불문율, 즉 ‘선임우선제’는 위원회 내의 승진에 대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자동적이고 공평한 원칙이었다.

한편 일본은 자민당 일당독재가 고착화되는 과정에서 법안과 예산 심의가 의회 위원회가 아니라 자민당 내 정책결정기구인 정무조사회로 되었고, 이 정무조사회의 각 부회(部會)가 의회 위원회 역할을 대신하였다. 그리하여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동일 위원회와 부회를 유지하면서 관청과의 인적 네트워크 및 영향력을 확보하면서 이른바 ‘족(族)의원’의 위치를 확보하게 됨으로써 관련분야의 정책전문가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의원들이 2년마다 상임위를 변동할 뿐 아니라 상임위 배정 뒤 임기 2년 중에도 수시로 상임위를 변동하고 있다. 실제 역대 국회의원 임기 중 상임위 변동률은 50%를 상회한다. 심지어 최근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상임위원장을 1년씩 ‘쪼개기’로 맡는 것이 관행화되고 있다. 또한 현역의원이 재선될 경우 전임기의 상임위를 그대로 유지하는 비율도 40%를 넘지 못한다. 미국 재선의원의 90%가 전임기의 상임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과 전혀 딴판이다. 더구나 우리 국회는 1963년에 김종필에 의해 도입된 당정협의체제는 행정부 주도 하의 정부여당 협의기구로 오늘날까지 존속하면서 의회와 상임위 위상을 크게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동되어왔다.

임기 중 상임위의 빈번한 변동과 재선 시 상임위 변동은 의원의 업무 전문성 축적에 결정적 저해 요인이다. 상임위 변동으로 소관 업무 및 관련 행정부처 역시 변경되고, 의원은 물론 보좌진도 새로 업무를 파악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원과의 통로를 어렵사리 뚫어 놓아봤자 그 다음 만나면 이미 소속 상임위가 바뀌는 바람에 다시 다른 의원을 알아봐야 하는 고충을 겪어야 한다.

의원들의 업무 전문성은 의회 발전의 중요한 토대이다. 우리 국회의 정상화와 발전을 위해서는 한 의원이 동일 위원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함으로써 업무 전문성을 축적해야 한다. 상임위원 임기는 의원 임기와 일치되어야 하며, 또한 재선 시에 전임기와 동일한 상임위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국회는 너무 오래 이승만-박정희 체제의 관행에 머물러 있다. 이제 권위주의 정권이 국회 무력화를 위해 만들어놓은 국회 상임위 2년 체제를 벗어나야 한다.

 

적대적 공존’, 그 나눠먹기의 시작

본래 우리 국회도 상임위원장은 다수당이 독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국가 의회든 의회의 일반적 형태이다. 그런데 우리 국회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탄생된 이른바 ‘87 체제’의 여소야대 4당 체제 정국에서 상임위원장을 의석 비율에 따라 배분하게 되었다. 긍정적 측면에서 평가하자면, 이는 의회 상임위 활동에서 독점을 해소하고 공존과 균형 그리고 타협의 공간을 제공했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측면에서 평가한다면, 여야 나눠먹기의 전형적 형태라 할 수 있다.

당시 여소야대 4당 체제에서는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 조항도 신설되어 각 당이 정책연구위원을 ‘나눠 갖게’ 되었다. 그리고 줄곧 여당의 몫이었던 국회도서관장 자리도 제1야당의 몫으로 가져가기로 되었고, 이 관행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이 과정은 당시 제1야당으로 올라선 평민당의 의도가 관철되었다고 평가될 수 있다. 물론 이는 DJ의 구상과 ‘철학’이 반영된 셈이었다. 이러한 DJ식 정치는 “상인적 현실감각”에 대한 강조에서 드러나듯, 독점된 권력을 분배하고 균점하는 계기로 작동되었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나눠먹기’, ‘기득권의 공존’ 혹은 개량주의라는 단점 역시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우리 국회의 고질적 폐단이기도 한 여야 간 ‘적대적 공존’의 토대로 기능해온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장기적으로 살펴본다면,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은 우리 국회의 중요한 폐단인 “나눠먹기” 혹은 “적대적 공존”이 관행적으로 구축되는 중요한 계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수, 2020/07/01-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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