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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질병관리청장 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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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질병관리청장 정은경

admin | 토, 2020/10/10- 00:12

그는 전 국민을 걱정했지만, 전 국민은 그를 걱정했다.

코로나19 위기 국면을 맞아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능력은 빛을 발했다. 시민들은 코로나19 대응에서 가장 신뢰하는 기관으로 질병관리본부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정 청장의 머리카락은 점점 더 희끗희끗해져 갔고 얼굴은 까칠해졌다. 첫 브리핑 때 그는 깔끔한 재킷을 입었지만 이내 노란색 민방위복으로 바뀌었다.

정 청장은 코로나19 환자가 처음으로 국내에 발생한 1월19일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대개 오전 7시에 출근해서 밤 12시에 퇴근했다. 숙소는 질병관리청 옆 관사였다. 186일을 연달아 일한 뒤 7월24일 오후부터 25일까지 처음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그러나 다소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싶었던 코로나19는 8월 들어 또 다시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세가 이어졌다. “5월 연휴로부터 촉발된 2차 유행이 진행되고 있다”며 경고한 정 청장의 말대로였다.

시민들은 다시 정 청장만 바라보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 독립하면서 정 청장의 어깨도 더 무거워졌다. 정 청장은 취임사에서 “아직 우리는 태풍이 부는 바다 한가운데 있지만 질병관리청이라는 새로운 배의 선장이자 또 한명의 선원으로서 저는 여러분 모두와 끝까지 함께 이 항해를 마치는 동료가 되겠다”고 밝혔다.

 

메르스 때문에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못 볼 뻔

정 청장은 1965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전남여고, 서울대 의대를 거쳐 서울대병원에서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의사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갈 수도 있었지만 정 청장은 공공의료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시작은 1994년 경기 양주시의 보건소였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그는 전염병 신고 기준을 만들어 주목을 받았다. 1998년에는 질병관리본부의 전신인 국립보건원에 연구관으로 특채되면서 공직에 들어섰다.

2006년부터는 보건복지부로 옮겨 혈액장기팀장을 맡았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당시 노연홍 복지부 보건의료정책본부장(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이 ‘삼고초려’ 끝에 데려왔다고 한다. 정 청장은 처음에 연구원에 남아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며 제안을 거부했다. 연구원에서 복지부로 넘어와 행정을 하려는 사람이 많았지만 정 청장은 반대였다. 막상 자리를 맡은 뒤 업무 처리 능력은 탁월했다. 노 전 수석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정 청장이 업무를 맡은 이후 “대형 혈액사고가 사라졌다”고 밝혔다.

2009년에는 복지부 질병정책과장을 맡아 신종플루 대응에 참여했다. 본격적으로 감염병 업무를 맡기 시작한 셈이다. 2014년부터는 다시 질병관리본부로 돌아왔다. 2015년에는 질병예방센터장을 맡았고,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는 정부 대책본부 현장점검반장으로서 역학조사 과정을 지휘했다.

메르스는 정 청장에게 좋지 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2016년 감사원은 메르스 방역 실패의 책임을 물어 보건의료 분야 공무원 9명의 중징계를 요구했다. 정 청장은 이때 정직 처분을 받았다가 나중에 감봉으로 한 단계 낮은 징계를 받았다. 과도한 징계 처분에 공직사회를 떠난 보건·역학 전문가들도 있었다. 정 청장 역시 자리를 떠났다면 지금의 그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정 청장을 질병관리본부 본부장에 임명했다. 당시 국장급이었던 정 청장을 차관급인 본부장에 임명한 것은 2단계를 뛰어넘는 파격 인사였다. 정 청장은 본부장으로 임명된 이후 역학조사관 충원, 진단 검사 및 동선 추적, 위기단계별 전략 등 신종 감염병 대응 전략을 착착 진행했다.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정 청장의 준비는 빛을 발했다.

전문가들도 정 청장의 능력에 신뢰감을 표한다.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질병관리본부 본부장을 제안 받은 정 청장이 자신에게 “너무 책임이 큰 자리라 두렵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말했다. “그때 놀랐습니다. 남자 공무원은 야망이 앞서서, 일단 수락하고 카리스마로 휘어잡는데… 이분은 책임질 생각부터 하시는구나. 정 본부장 리더십의 핵심은 ‘책임감’이에요. 그 자리에서 하루하루 책임의 기적을 이뤄가는 분이죠.”

박도준 전 국립보건연구원장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정 청장에 대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우리나라 최고 방역 전문가”라며 “차관급은 보통 2년 이상 자리를 보전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그는 올해로 본부장을 맡은 지 3년이 됐다. 대체할 만한 전문가가 없다는 방증 아니겠나”라고 평가했다.

 

위기에 빛난 정은경의 브리핑

최근 한 현역 의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은경이 한 게 브리핑밖에 더 있냐”라고 비판해 논란이 됐다. 그럴 리도 없겠지만, 설사 ‘브리핑’밖에 없다고 해도 그 브리핑의 무게감은 컸다. 시민들은 정 청장의 말 하나하나를 무거운 신호로 받아들였다. 작가 김훈은 <한겨레>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그는 늘 현실의 구체성에 입각해 있었고, 당파성에 물들지 않았고, 들뜬 희망을 과장하지 않았으며, 낮은 목소리로 간절한 것들을 말했다. (…) 모두의 힘을 합쳐야 희망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거듭된 호소는 가야 할 방향을 설득했다. 그는 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말했는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말하기는 매우 희귀한 미덕이다. (…) 나는 날마다 정은경 청장이 하라는 대로 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같은 미증유의 상황은 종종 사람들이 이성적 판단을 하기 어렵도록 만든다. 방역의 최고 책임자가 우왕좌왕하거나, 팩트를 자꾸 바꾸거나, 상황에 따라 감정적인 기복을 보였다면 시민들은 더 불안에 빠졌을 것이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한국의 방역 총 책임자가 정 청장이었다는 사실은 행운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렇게 평가했다. “사람들은 정 본부장이 그 사실을 믿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정 본부장의 말을 사실로 믿었다.”

무엇보다 정 청장 스스로의 자세가 신뢰감을 줬다. 감염병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됐던 지난 2월, 정 청장은 머리 감을 시간도 아껴야 한다며 짧은 단발머리를 숏컷으로 다시 한 번 잘랐다. 브리핑 때 “1시간도 못 주무신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묻자 “한 시간보다는 더 잔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 세계가 정 청장과 한국의 방역에 찬사를 보낼 때도 자신의 치적에 대해 한 마디의 언급도 없었다. 인터뷰는 가급적 피하고 ‘국민에게 보고한다’는 원칙으로 브리핑에 집중했다.

지난 5월 <시사저널>이 정 청장의 100일간 브리핑 내용을 분석한 결과 정 본부장에 사용한 단어는 대개 감정이 배제된 ‘중립적 표현’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 이를테면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코로나19 검사 건수를 축소한다는 의혹이 제기됐을 때 “사실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드린다”며 단호한 어조를 취했다.

대신 그의 말 속에는 정확한 수치들이 가득하다. 확진자가 급증했을 때도, 한 자리로 줄었을 때도 ‘안심할 수 없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보냈다. 착오나 실수는 즉각 수정하고 모르는 부분은 ‘확인하고 알려드리겠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이태원 클럽 관련 집단 발병 사태가 벌어졌을 때는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정 청장의 브리핑이 단순한 사실 전달만은 아니었다. 그는 “마스크 자국이 선명한 의료진의 얼굴을 떠올려달라”고 호소했고,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마음의 방역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도 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특집 브리핑도 열었다.

이인숙 ‘플랫폼9 3/4’ 이사는 정 청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을 5가지로 정리했다. 없는 것 5가지는 이렇다. “① 정은경이 없다 ② 희망고문과 과장이 없다 ③ 전문용어가 없다 ④ 뜨거움과 차가움이 없다 ⑤ 정치색이 없다” 있는 것 5가지는 이렇다. “① 데이터와 팩트가 있다 ② 잘못과 한계가 있다 ③ 부탁과 당부가 있다 ④ 공감과 감사가 있다 ⑤ 원팀이 있다” 어쩌면 쉬워 보이는, 기본적인 원칙처럼 보이지만 아홉 달 가까이 일관성 있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란 쉽지 않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정 청장은 봉준호 감독과 함께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됐다. 오랜만에 확진자 수도 두 자리 수를 유지하는 추세가 계속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 청장은 감염 위험을 경고하는데 주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 등장하는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라는 문구를 인용해 타임지에 직접 정 청장에 대한 소개를 썼다. “정 청장의 성실성이야말로 우리에게 남겨질 가치가 있는 이야기, 세계 곳곳에서 코로나와 맞서는 수많은 ‘정은경’들에게,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은 인류 모두에 영감을 주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청장은 지난 7월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종결되고 나면 무엇이 제일 하고 싶으냐는 당시 진행자 박원순 서울시장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일단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웃음) 국민들께서도 그러시는 것처럼 저희도 예전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는 것 같습니다.” 하루 빨리 그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기 위해, 아마 시민들은 오늘도 정 청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다.

 

참고자료

[시사저널 2020. 5. 1] 정은경 100일 브리핑 분석 – 상황은 흔들려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중앙일보 2020. 9. 16] 돈 안되는 시골의사로 26년…’코로나 헌터’된 문학소녀 정은경

[동아일보 2020. 7. 30] 186일 연속근무후 첫 휴가… 정은경 “집근처서 안전하게”

[WSJ 2020. 4. 4] Thank God for Calm, Competent Deputies

[한겨레, 2020. 9. 14] 김훈 거리의 칼럼 – 정은경

[조선일보, 2020. 2. 25] “머리 감을 시간도 아껴야” 숏컷한 질본본부장

[조선일보, 2020. 9. 13]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 “희망 버려야 살 길 생겨, 코로나 2~3년 더…생활 태도 바꿔라”

[김현정의 뉴스쇼 2020. 7. 3] 정은경 “국민이 백신입니다. 이길 수 있습니다”

<이인숙의 새로운 발견19>‘닥터 코로나’ 정은경에게 없는 5가지, 있는 5가지

<신동아 2020. 3. 28> 정은경 본부장이 날마다 직접 브리핑하는 이유

 

황경상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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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에게 세금을!’은 진보적 정치집단이 흔히 외치는 슬로건이고, 경제적 불평등은 노벨상 수상자들과 국제정책을 주도하는 유명인사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구호를 내세운 좌파정치 그룹에게 기대하는 승리를 가져다 주지 않았다. 그 이유는 99%시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불평등보다 사회경제적 불안이기 때문이다.

물론 불평등은 불안정을 나타내는 징표의 하나이다. 그러나 불평등에만 집중하는 것은 문제에 접근하는 분석적 실책이다. 구매력의 향상을 위해 단순히 부를 재분배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보다 급진적인 것, 즉 보다 안정되고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사회의 토대를 요구해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COVID-19 팬데믹은 이 점을 다시 부각시켰다.

불평등에 대한 비판은 줄곧 정치적 패배를 가져 왔는데,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부자를 부러워하기 때문이다. 물론 소수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 주제에 대해 무심하다. 현존의 사회주의가 보여주는 지나친 평등주의 역시 빈부격차만큼 문제투성이로 보이며, 사람들은 칙칙하고 단조로운 삶을 싫어한다. 이러한 감성이 지속되는 한, 불평등에 매달리는 정치는 성공할 가능성이 적다.

불평등은 통계적 팩트이며, 손쉽게 측정되고 관심을 끌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적 불평등의 통계가 곧바로 사회적 불의를 형성하는가? 부자계층이 사회적 특권을 누리고, 거대부자들이 권력을 장악하여 자신들을 위해 약탈적으로 행동하면 사회적 부정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현실적 대응은 재분배 정책보다는 이를 견제하는 정치적 힘이어야 한다. 노조와 대중조직을 강화하고, 이들과 결합된 정치정당을 만들고, 경제적 범죄를 단죄하고, 정치인들이 부자들에게 포획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이다.

두 번째의 문제점은 자금이 사회안전망의 유일하고 명백한 자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인데, 이는 현재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편견이다. 자동화와 세계화 그리고 공적서비스 분야의 축소 등이 결합되면, 일반 시민들에게 광범한 경제적 불안을 야기하는데 이는 남녀노소뿐만 아니라 전문직과 일반직 그리고 가난한 계층뿐만 아니라 중산층까지 영향을 파급시킨다. 물론, 소수자와 이주자 그리고 장애인 그룹들에게는 불안의 심도가 한층 심해진다.

팬데믹은 현존의 정치가 조작해낸 사회적 불안요소인 임시직업의 어려운 상황을 확대시킨다. 99% 시민들을 불안과 걱정으로 내모는 것은 공공서비스의 부족, 일반교육의 취약, 대학졸업자들의 은행부채 그리고 무엇보다 공공의료의 취약함과 더불어 재정적 이유로 의료보험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러한 실상은 사회가 평등해진다고 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문제는 단순히 임시직 계층(프레카리아트)를 형성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끝없이 확대하는 미궁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COVID-19가 불러온 위기는 나라마다 공공의 영역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덴마크와 독일 등에서는 병원내 침대숫자와 테스트 역량과 치료시설 등 안정적이고 수준높은 공공의료 인프라 덕분에 잘 견디어 내고 있는 반면에, 영국과 이탈리아에서는 지난 수 십 년간 긴축재정을 시행하면서 공공의료시스템이 형편없이 낙후되어 왔다. 미국은 이익중심의 의료체계가 어떤 것이지 교과서적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불안은 정치적으로 보수 집단을 키워내며, 본능적으로 반동적인 성격을 지닌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노동자 계층은, 이들이 급진적으로 변할 것으로 기대한 좌파의 희망을 배반하고, 일관되게 우익 집단에게 투표를 하였다. 팬데믹은 이러한 성향을 더욱 강화시킬지 모른다. 커져가는 프레카리아트의 상황을 이대로 방치하면, 다음차례 공공의료의 위기상황에 우리 모두를 더욱 취약하게 만들 것이다.

소수의 부자들에게 증세를 하여 재정자금을 마련하고 이를 재분배하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에 더하여, 공공의료와 전략적 과학기술에 긴급히 투자하고, 사회적 보험과 공공 서비스의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정치를 이동시키는 유일한 방책이자 유인이다.

 

출처: FT, 2020-04-28.

Albena Azmanova

벼량 끝에서 선 자본주의의 저자이자, 켄트 대학교의 국제연구소 교수이다

월, 2020/06/08-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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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지난 4월초부터 진행해온 기획특집 <코로나 이후 세계는?>은 이번주 다음 세 개의 글을 소개하면서 일단의 매듭을 짓는다.
1)피켓티 교수와 가디언지의 인터뷰 내용
2)글로벌 남반부의 지성을 대표하는 필리핀 상원의원 출신 벨로의 칼럼
3)동국대 강정구 명예교수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며 과제상황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글

개별화된 공유적 사회주의를 제창하며 <21세기 자본론>에 이어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출간하여 또다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토마 피켓티는 제도와 시장보다 이를 강제하는 이념과 정치의 중요성에 방점을 두고 있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 역시 핵심적인 주제로 탈세계화에 우선하여 불평등의 폭력성을 제거하고 부의 재분배를 위한 노력(거대 기업과 자산에 대한 획기적인 누진과세)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Piketty는 The Guardian과의 인터뷰에서 작금의 팬데믹 사태가 더욱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가능성에 대해 고민했다고 말한다.

 

이번 팬데믹 선언은 과거의 팬데믹과 어떻게 다른가?

대다수의 부정적인 모델링에서는 이번 판데믹 사태에 적절히 개입하지 못하는 경우, 전세계 희생자 수가 결국 4천만명 내외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인구수를 조정해서 해석하면 1918년 스페인독감 대유행 당시 사망자 수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다만 이러한 수학적 모델링은 불평등이라는 요소를 놓치고 있다. 즉 모든 사회 그룹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충격을 받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부유한 국가와 빈곤한 국가가 받는 충격도 다르다는 점은 간과하는 것이다.

신작인 자본과 이데올로기(Capital and Ideology by Thomas Piketty)에서는 불평등이 불합리함을 알면서 왜 줄이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는 1918년 스페인독감 대유행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인구의 0.5%에서 1%가 희생된 반면, 인도의 희생자는 6%에 달했다. 이러한 전염병은 그 자체로도 충격적이지만 그로 인해 드러나는 불평등도 충격적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불평등의 폭력성까지 마주하게 되었다. 넓은 아파트에서 겪는 봉쇄가 노숙인이 겪는 봉쇄와 같을 리 없기 때문이다.

 

서구 사회는 1918년보다 더욱 불평등해진 것인가?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불평등의 수준은 10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훨씬 낮아졌다. 이는 어느 정도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낙관론자로서 나는 장기적인 배움과 발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발전은 사회 보장 제도와 누진세 제도를 확립하고, 재산 시스템을 탈바꿈한 정치적, 지식 운동을 바탕으로 일어났다.

19세기의 재산은 극히 신성한 것이었지만, 그 신성한 지위는 점차 사라졌다. 현재 우리는 훨씬 안정적으로 소유자, 노동자, 소비자, 지방 정부의 권한 사이의 균형을 갖추었다. 이는 재산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고, 이제는 재산을 건강 및 교육의 증대와 연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1980년대보다 불평등은 커졌다. 교정이 필요한 것일까?

그렇다. 지금의 위기에 적절한 대응은 북반구 선진국의 사회국가를 복구하는 동시에, 남반구 개발도상국의 발전은 가속화하는 것일 것이다. 새로운 사회국가는 공정한 조세 제도를 요구할 것이며, 해당제도로 세계의 가장 거대하고 부유한 기업들을 유도할 수 있는 국제금융 등록제(international financial register)를 탄생시킬 것이다. 오늘날의 자유로운 자본순환 체제는 1980년대와 90년대 가장 부유한 국가,특히 유럽의 영향력 하에 확립된 후, 여러 부호와 다국적 기업의 탈세를 조장하고 있다. 이는 빈곤 국가의 공정한 조세 제도 수립을 방해하고, 결국 사회 국가를 이룩할 능력을 저해하게 된다.

 

자본과 이데올로기(Capital and Ideology)에서는 전쟁이나 팬데믹 같은 충격이 어떻게 위에 언급한 교정의 원동력이 되는지 설명한다. 극단적인 불평등으로 그러한 충격이 유발될 수도 있을까? 다시 말해, 그런 불평등이 장기적으로 스스로 교정하는 것은 아닐까?

어느 정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나는 두 번의 세계대전은 세계1차 대전 이전 유럽 사회에 존재하고 있던 극단적 불평등에 크게 기인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식민시대의 자산이 축적된 결과, 유럽과 국제사회에 팽배한 불평등이었다.

지속이 불가능했던 이 불평등은 결국 해당 사회들의 폭발을 초래했는데, 세계1차 대전, 러시아 혁명, 1918년 스페인독감 등 그 방식은 각기 달랐다. 스페인독감 대유행은 상대적으로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사회의 취약 계층을 노렸고, 상황은 전쟁으로 더욱 악화되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쌓인 불평등은 이러한 충격들을 압축한 결과이다.

 

책에서 팬데믹이 교정을 주도한 주요사례로 14세기의 흑사병을 언급했다. 흑사병 이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오랫동안 농노의 폐지는 흑사병의 결과라는 이론이 주장되어 왔다. 일부 지역에서 흑사병으로 인구의 절반 가량이 사라지자 일손이 크게 부족해졌고, 이에 따라 노동자는 스스로 더 큰 권리와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보다 복잡했다. 오히려 흑사병이 농노제를 부추긴 지역도 있었다. 노동력이 부족하다는 바로 그 이유로 지주들이 농노를 강제할 동기가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은 팬데믹, 전쟁 또는 금융위기 등 강력한 충격은 사회에 영향을 끼치지만, 그러한 영향의 성격은 당대 사람들이 역사와 사회, 힘의 균형을 보는 이론, 즉 각 사회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결정되며, 이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점이다. 사회가 평등한 방향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본격적인 사회적, 정치적 동원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번 팬데믹 이후 당신이 추천하는 참여형 사회주의(participatory socialism)에 다가갈 수 있을까?

아직은 무어라 말하기 이르다. 팬데믹은 정치적 동원과 사고에 상반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의료 부문에 대한 공공투자의 타당성은 힘을 얻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유형의 영향도 가능하다. 역사적으로 팬데믹은 외국인 혐오와 함께 국가들이 빗장을 걸어 잠그게 만든 바 있다. 프랑스의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Marine Le Pen)은 유럽연합 내 국가 간 자유 이동을 너무 빨리 재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유럽 내 최종 사망자 수가 다른 지역 대비 너무 높을 때에는 트럼프와 르펜의 반(反)유럽주의가 동인을 얻게 될 위험이 있다.

 

이번 팬데믹 때문에 치솟는 공공부채 문제는 어떻게 보는가? 정부는 부채를 통제하기 위해 행동을 취하지 않겠는가?

아마 그래야 할 것이다. 유럽연합과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공공부채가 너무 높은 수준에 도달하면 상환이 거의 불가능하거나 느리기 때문에, 정부는 색다른 해결책을 도모할 필요에 직면한다. 역사를 보면 수많은 예시를 찾을 수 있다. 19세기 영국은 나폴레옹 시대의 부채를 상환해야 했는데, 기본적으로 당시 정부는 상류층 채권자의 돈을 갚기 위해 저소득층과 중산층에 세금을 부과했다. 19세기 초까지는 부자들만 투표할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는 오늘날에는 불가능할 것이라 본다. 한편 세계2차 대전 이후 독일과 일본은 다른, 그리고 개인적으로 과거보다 낫다고 판단되는 해결책을 찾았다. 이들은 일시적으로 부자들에게 세금을 매겼는데, 결과로 1950년대 중반부터 공공부채 없는 국가 재건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필요가 발명을 만드는 법이다. 예컨대 유로존을 살리기 위해 유럽중앙은행이 회원국의 부채 중 더 많은 부분을 책임지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좀 더 지켜보자.

 

팬데믹이 유럽연합도 바꿀 수 있다는 말인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위기에 의존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위기가 변화의 자극제가 될 수는 있다. 브렉시트를 기점으로 EU의 분열은 시작되었다. 가난한 자들이 국수주의에 빠진다는 주장만으로는 브렉시트를 설명하기 부족하다. 문제는 사회적 목적 없이 자유 무역과 단일 통화만 있을 때에는 가장 자유롭고 부유한 시민들이 자유로운 자본의 이동을 독점하고,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고립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자본 이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보건 및 교육에 대한 공동 투자를 비롯, 공동의 과세와 사회정책이 동반될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도 역사는 교훈을 준다. 민족국가 체제에서 복지국가를 세우는 일은예부터 쉽지 않았다. 부유층과 빈곤층이 하나의 합의를 도출해야 했고, 엄청난 정치 싸움이 필요했다. 국가 간이라면 이것이 가능할 것이라 본다. 다만 우선 소수의 국가 간에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나중에 해당 이데올로기에 믿음이 생긴다면 다른 국가들도 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EU를 깨지 않고 이러한 작업이 이뤄지길, 언젠가 영국이 돌아오길 바란다.

 

이번 위기 후 탈세계화가 진행될 것이라는 말이 있다. 실현될 것으로 보는가?

다음 팬데믹을 더 잘 준비해야 한다는 단순한 이유로 의약용품 등 일부 전략 부문에서는 탈세계화가 올 것으로 본다. 전반적인 탈세계화를 위해서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관세를 한번 올리기 시작하면 어디에서 멈춰야할 지 모르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국제무역에 0%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바로 현재 우리의 이데올로기적 선택이다. 이는 19세기 부의 재분배 논의와 유시하다. 사람들은 부를 일부 재분배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노예소유라 할지라도 재산소유의 극단적인 불평등을 지키는 쪽을 선호했다.

일단 부의 재분배가 시작되면 결국에는 모든 재산이 몰수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유사 이래 보수주의자들이 견지해온 전형적인 논리의 비약이다. 이제는 기후변화와 팬데믹 등 세계적 위협에 맞서기 위해 무관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관세를 멈추는 지점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해야 한다. 그리고 역사에서 보듯이 해결책이 항상 단 하나인 것만은 아니다.

 

출처: Guardian

Thomas Piketty

21세기에 마르크스에 비견되는 진보적 경제학자, 베스트셀러인 21세기 자본론(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2013))의 저자로 최근에는 불평등의 역사를 다룬 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Capital and Ideology (2019))를 발표하여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목, 2020/06/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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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지난 4월초부터 진행해온 기획특집 <코로나 이후 세계는?>은 이번주 다음 세 개의 글을 소개하면서 일단의 매듭을 짓는다.
1)피켓티 교수와 가디언지의 인터뷰 내용
2)글로벌 남반부의 지성을 대표하는 필리핀 상원의원 출신 벨로의 칼럼
3)동국대 강정구 명예교수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며 과제상황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글

해외칼럼의 마지막은 교수이자 상원의원 출신이며 시민사회 활동가로 세계의 주목을 받아온 벨로박사의 글이다.
벨로박사는 북반구 지식인들의 한계를 지적하며 코로나이후의 세계는 남반부의 시각을 담아낸 좌파적 입장을 대변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따른 사재기로 텅 비어 버린 호주슈퍼마켓의 화장지 선반

코로나 바이러스가 촉발한 대혼란을 보는 여러 의견 중, 특히 세 개의 관점이 주목을 받았다.

그 첫 번째는 비상사태에는 특별대책이 필요하지만 기본적인 생산과 소비의 구조는 견고하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것이 언제고 “정상”으로 돌아갈 것인가를 판단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이런 얘기는 정계와 재계 엘리트 사이에서만 설득력이 있을 뿐이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올해 3월 중순, 유명한 골드만삭스 후원 아래 개최된 한 화상회의에서 이러한 전망이 대표적으로 주장되었다. 수많은 증권시장 당사자들이 참여한 해당 회의의 결론은 “시스템 리스크는 없다. 아무도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정부는 시장개입을 통해 시장안정화를 꾀하고, 금융시장은 적절히 자본화 되어 있어 안정적이다. 현재의 위기는 2008년 금융위기보다는 9/11사태 때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이제 “뉴-노멀”에 접어들었고, 세계경제 시스템이 심각하게 망가진 것은 아니지만, 일부 경제요소에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이를테면 직장을 사회적 거리두기에 용이하도록 재설계하거나 공중보건시스템을 강화하거나 (심지어 Boris Johnson도 영국의 국가보건서비스 덕분에 목숨을 구하자 이를 옹호하고 있다), 나아가 “보편적 기본소득 (universal basic income)”을 지향하자는 것이다.

세 번째로 이번 팬데믹은 뿌리깊은 경제적, 정치적 불평등으로 점철되어 있는 사회 생태계를 흔들어 기존 시스템을 바꿀 기회라는 주장이 있다. 단순히 “뉴-노멀”의 수용이나 사회안전망의 확대만 떠들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향한 결단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선진산업국 중심의 글로벌 북반부(global North)에 필요한 변화를 흔히 “그린 뉴딜”이라 표현한다.경제의 “친환경화”와 동시에 생산과 투자의 사회화, 경제적 의사결정의 민주화, 소득 불평등의 과감한 축소 등을 추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개발도상국 중심의 글로벌 남반부(global South)에서는 기후 위기의 타파와 함께 팬데믹을 통해 고질적인 경제, 사회, 정치 불평등을 해소할 기회를 강조하는 전략들이 제안되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필리핀의 라반 응 마사(Laban ng Masa) 시민연대가 발표한 “코로나 19이후 필리핀을 위한 사회주의 선언”이다. 해당 선언문은 장단기 이니셔티브를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으며, 도입부에 다음과 같이 공포한다.

현재의 위기에 대응하는 패권주의자들의 방식과 무질서를 통해서는 과거의 체제는 회복될 수 없고, 집권층은 더 이상 기존의 방식으로 사회를 통제할 수 없음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 19로 암울하고 막막한 혼란과 불확실, 두려움 등이 생겨났지만, 한편으로는 이 위기가 우리 사회와 그에 수반하는 정치, 경제, 사회적 요소를 조직하고 관리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여 대중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기회와 과제를 잉태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사회주의자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지적하였듯이 “우리가 문제를 야기한 것과 똑같은 사고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번에는 정말 다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생각은 과격한 변화의 가능성을 간과하고 있다. 대중의 반응이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 비슷할 것, 즉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겠지만 큰 변화, 특히 과격한 변화는 더더욱 원하지 않을 것이라 내다본다. 이 생각은 2008년 그리고 현재의 위기를 겪으며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를 동일시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위기가 언제나 본격적인 변화로 귀결되진 않는다. 변화는 객관적인 것, 즉 시스템 위기와 주관적인 것, 즉 위기에 대한 사람들의 결정적 심리반응 간의 상호작용 또는 시너지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심각한 자본주의의 위기였지만, 주관적 요소, 즉 대중의 자본주의 시스템 이탈이 임계량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20여 년간 빚을 내어 소비지출을 했고, 그 결과 호황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금융위기가 닥치자 크게 놀랐지만, 금융위기 중에도 그리고 이후 여파에서도 자본주의를 이탈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글로벌 북반부에서는 코로나의 발발 전부터 이미 신자유주의에 대한 불만과 소외감이 꽤 깊었다.금융위기 이후의 암울한 10년 내내 기성 엘리트들은 무너지는 삶의 질과 치솟는 불평등을 반전시키기 못했기 때문이다. 해당기간 동안 미국의 지도층은 수백만 명의 파산자들을 구하거나 대규모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대형은행을 살리기 바빴고, 대다수 유럽국가들, 특히 남부 유럽에서는 지난 10년간 사람들의 머리 속에 긴축이라는 단어 하나만 각인되었다.

대부분의 글로벌 남반부에서는 이미 주변부 자본주의론에 의한 저개발이라는 만성적 위기가 있었고, 19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의해 더욱 악화되었다. 이는 2008년 위기가 오기 전에 이미 세계화의 주요 기관인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국제무역기구 등의 정통성을 갉아먹었다.

짧게 말해,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은 이미 깊은 정통성 위기에 봉착해 불안정한 상태였던 글로벌 경제시스템 사이로 터져 나온 것이다. 우선 모든 것이 전통적인 정치적, 경제적 관리를 벗어나 통제 불가라는 충격적 현실 자각이 다가왔다. 지도층의 개탄스러운 무능력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이제 금융위기 이후 끓어오른 분개와 분노의 감정으로 이어진다.

주관적인 요소, 즉 심리적 임계치가 바로 여기 있다. 정치세력의 포획을 기다리는 회오리 바람같은 것이다. 문제는 -누가 성공적으로 이 힘을 활용할 것인가- 이다.

물론 세계의 기득권은 “올드노멀(old normal)”을 복원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분노와 분개, 불안이 터져버렸다. 마술사 지니를 그냥 요술램프로 밀어 넣을 힘이 없다. 자본주의 국가의 모든 분야가 전반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 중에서도 지난 몇 주간의 대규모 재정 통화 개입은 다른 우선순위와 가치를 가진 또 다른 시스템에서는 무엇이 가능한지 분명히 보여줄 뿐이었다.

신자유주의는 죽어가고 있다. 다만 대니 로드릭(Dani Rodrik)의 설명처럼 그 소멸이 “빠를 것인가”, “느릴 것인가”의 문제이다.

 

호랑이 등에 올라탈 자 누구인가?

오직 좌파와 우파만이 또다른 시스템을 불러오기 위한 이 경주에 진지하다.

진보주의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진정한 시스템 변화를 지향하기 위해 여러 가지 흥미로운 아이디어와 패러다임을 내놓았으며, 이들은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와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등 좌파의 기술관료적 케인즈 학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렇게 급진적인 대안 중에는 이미 언급한 그린 뉴딜이나 민주 사회주의, 탈성장, 탈세계화, 에코페미니즘, 식량주권, “웰빙”을 뜻하는 “BuenVivir”등이 있다.

문제는 이런 전략들이 현장에서 아직 충분한 임계량을 채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통 그 이유를 설명할 때 사람들이 “아직 준비가 안됐다”고 한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좌파의 이러한 역동적 움직임을 중도좌파와 연결하고 있다는 설명도 빼먹을 수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현장인데, 현장의 대중은 아직 이러한 전략과 옹호자들을 유럽의 사회민주당이나 미국의 민주당과 구분하기 어렵다.

이들은 한때 “진보의” 얼굴이 필요하다며 불신한 신자유주의 시스템에 연루되었다. 독일의 사회민주당(SPD), 프랑스의 사회당, 미국의 민주당 등은 여전히 대다수 시민에게 좌파의 얼굴로 각인되어 있는데, 이들이 걸어온 길은 아무리 좋게 봐도 그다지 고무적이지 않다.

글로벌 남반부에서는 좌파정당들이 “구조적 조정”의 미명 아래 신자유주의적 조치를 채택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정부의 리더십 또는 정부참여를 통해 이들 정당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실제로 남미의 “핑크 타이드”정권조차 자기모순에 빠졌고, 동아시아의 공산주의 국가들은 신자유주의를 적극 수용하여 국가자본주의를 확립했다. 한때 과거의 청산으로 여겨지던 칠레의 콘세르타시온(Concertacion), 브라질의 노동당,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주의(Chavismo), 일명 베이징 컨센서스(Beijing Consensus)는 이제 과거의 일부로 여겨진다.

요약하자면, 중도좌파는 글로벌 남반부에서 신자유주의 조치를 적극적으로 채택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글로벌 북반부에서는 진보정당 및 그에 동조하는 국가들과 함께 신자유주의에 완전히 타협했고, 이는 진보의 전全영역을 변색시켰다. 다만 이들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비판을 처음 시작한 비주류 좌파였다.

이는 진보진영이 대중의 끓어넘치는 분노와 울분을 긍정적이고 해방적인 힘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반드시 없애야 할 암흑의 유산이다.

 

유리한 입지는 우파에 있다

불행히도 극우파가 전세계적으로 쏟아지는 불만을 이용하기에 가장 좋은 입장에 서있다. 이미 이번 팬데믹 이전부터 극우정당은 기회주의자처럼 반신자유주의적 요소와 독립 좌파 프로그램의 요소만 골라 줍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세계화 비판, “복지국가”의 확대, 국가의 적극적 경제개입 등을 우파 게슈탈트 안에 담은 것이다.

그래서 유럽에는 마린 르펜이 이끄는 프랑스의 국민전선(National Front), 덴마크의 사회인민당(People’s Party), 오스트리아의 자유당(Freedom Party),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an)이 이끄는 헝가리의 시민동맹(Fidesz Party) 등의 급진적 우익 정당이 있는 것이다. 이들은 과거의 신자유주의 일부를 버리면서 자유주의를 옹호하고, 과거 자신들이 지지했던 세금의 감세를 요구한다. 이들은 이러한 조치가 복지국가를 위한 것이고, 국제사회에서 자국경제를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말하지만,사실 이는 “적절한 피부색”, “적절한 문화”, “적절한 민족”, “적적한 종교”를 가진 자들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구태의연한 “국가사회주의적” 계급차별주의다. 다만 인종적, 문화적으로 배타적인 성분을 가졌다. 현재 이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자가 바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다. 그런데 불행히도 어려운 시기에는 이들이 힘을 얻는다. 극우 정당이 사회민주주의의 노동자 계층을 난도질하고도 예상을 뒤엎고 선거에서 성공하는 걸 보면 잘 알 수 있다.

동기간 글로벌 남반부에서는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Rodrigo Duterte)와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등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들이 계층을 넘어선 인기를 얻었다. 이들은 독재 프로젝트를 위해 자유민주주의 정권을 향한대중의 불만을 이용했다. 과거 정권에서 탄생한 심각한 사회구조 불평등이 해당정권의 민주주의적 허세를 드러냈고, 신자유주의와의 타협을 방관한 진보정당은 “포퓰리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계급주의적 패러다임에 갇히거나, 종파 간 갈등으로 와해되었다. 이제 독재자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핑계로 매우 열렬한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채 더욱 억압적인 정치시스템 통제권을 손에 쥐었다.

 

그래도 좌파를 배제하지 말라

좌파를 배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역사는 복잡한 변증법적 이동을 보여주고, 종종 예상치 못한 전개로 과감하게 도전하는 자,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자, 집권을 위한 예측불가의 길에 기꺼이 호랑이의 등에 올라탈 수 있는 자들에게 기회를 열어주었다. 이들 중 많은 이가 우리 편에 있다. 특히 젊은 세대에 많다.

하지만 역사는 자비롭지 않다. 두 번의 같은 실수는 여간해서 용납하지 않는다. 만약 진보 진영이 또다시 이미 신뢰를 잃은 유럽의 사회 민주주의 정당이나 미국의 오바마나 바이든 타입의 민주당 인사를 허용한다면, 그래서 진보 정치를 죽어가는 신자유주의와의 협상테이블로 다시금 끌고 간다면, 그 결과는 참으로 참혹할 것이다.

그런 불상사가 생긴다면영화 카바레(Cabaret)에서 젊은 나치에 이끌린 평범한 사람들이 ”내일은 나의 것”을 부른 과거의 소름끼치는 장면이 또 한번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출처: CommonDreams.org, 2020-05-16.

Walden Bello(월든 벨로)

필리핀 전前상원의원이며 이론가이자 시민활동가. 제3세계 출신으로 전全세계의 예외적인 주목을 받는다. 현재 방콕소재 비정부기구인 Focus on the Global South의 공동창립자로 활동 중이고, 뉴욕 주립대학교의 사회학과 국제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3년에는 일명 대안노벨상이라 불리는 바른생활상(Right Livelihood Award)을 수상했고, 2008년에는 국제정치학회의 우수 공공연구학자(Outstanding Public Scholar)로 선정되었다

금, 2020/06/12-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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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행정부가 홍콩에 부여한 무역의 특별한 지위를 중단하는 제재조치에 착수했다고 선언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제재가 홍콩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호주의 중국무역협회 의장인 Daryl Guppy와 중국국제방송CGTN 간에 이루어진 인터뷰 내용을 번역 소개한다.


CGTN: 홍콩에 부여한 특별무역지위를 종결한다는 선언을 행한 이후, 트럼프가 취할 제재의 내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Guppy: 글쎄요, 정확한 내용은 저도 알 수 없습니다만, 다양한 조치들이 취해질 수 있을 겁니다. 우선은 미국기업들이 홍콩에서 사업하기가 좀더 어려워 지겠지요. 일부 사업분야에는 직접적으로 금지조치가 행하여질 것이지만, 가장 주요한 관심은 비자의 제약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홍콩에 들어가는 비자를 받는 것이 중국으로 들어가는 비자처럼 받기가 어려워 지겠지요. 이점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아마도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홍콩에서 철수하는 것입니다. 대단히 극적이고 나쁜 시나리오인 셈입니다. 일단의 충격으로 투자알선 기금들, 즉 현재 홍콩지수를 투자의 대상 삼고 있는 기관들과 헤징 조직들이 크게 영향을 받을 것 같습니다.

미국의 자본들이 홍콩을 통해 중국본토에 접근을 합니다만 이렇게 되면 자본시장도 충격을 받겠지요. 다시 말하면, 미국의 제재가 이루어지면 홍콩을 통해 중국본토에 흘러 들어가던 자본의 흐름에 장애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상황에서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만, 상기에 언급한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반면에 한가지 보탬이 되는 측면은 미국에 상장된 기업들이 중국의 중시로 복귀하는 일이 늘어날 것입니다. 진작에 Alibaba와 Tencent가 미국의 증시를 떠나 홍콩의 증시로 이동하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이러한 움직임이 빨라질 수 있습니다만, 기억해야 하는 것은 홍콩이라는 도시가 WTO에 의해 여전히 독립적인 관세지역으로 취급을 받고 있다는 점이며, IMF와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에서도 독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CGTN: 홍콩에 직접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요?

Guppy: 향후 홍콩이 상해처럼 변해가는 것이 불가피할 듯 합니다. 상호연계된 자본시장 특성상, 중국에서 직접 거래하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따라서 홍콩이 지난 시절에 자본시장에서 차지했던 비중이 상대적으로 축소될 것이고 반면에 중국경제 전체와 결합되는 수준은 높아질 것입니다. 물론 이는 거대한 대국을 지향하는 중국에게는 좋은 일이죠. Greater Bay(광동-홍콩-마카오)의 결합도 함께 증가할 것입니다.

전체적인 영향을 종합해 보면, 홍콩이 중국경제의 전반과 상당한 수준으로 결합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그러나 홍콩을 경유하던 국제투자 행위들은 향후에는 중국본토에서 직접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CGTN:  홍콩 내의 미국기업들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되는지요?

Guppy: 미국 기업들이 받을 중요한 충격은 관세와 관련된 것입니다. 현재 660억불의 무역이 홍콩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데, 무관세이던 이들 무역거래에 관세가 부과되면 이는 매우 심각한 부담과 위험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미국에서 홍콩으로 수출되는 액수가 500억불이고, 나머지가 홍콩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액수인데 그간의 용이했던 거래에 관세라는 충격이 다가오는 것이죠.

다른 한가지는, 이것도 매우 주요한 충격으로 작용할 텐데, 과거에는 누구나 홍콩을 들어가고 나오는 일이 비자라는 과정없이 매우 용이하게 이루어 졌습니다. 이제 미국이 제재를 가하고 미국인들의 이동에 비자를 요구한다면 홍콩에서 사업하는 것의 용이함이 줄어들게 되고, 사업의 편이함이 사라진다는 것은 결국 불리한 점이 되겠지요.

CGTN: 트럼프가 이런 조치를 취하게 된 동기와 배경이 무엇이라고 판단하시는지요?

Guppy: 첫 번째 동기는 트럼프가 재선을 위하여 반중 캠페인을 무기로 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배경이고, 트럼프 진영은 무엇인가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느꼈을 것이고, 이 시점에서 매우 큰 조치를 취하거나 최소한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손쉽게 판단한 듯 합니다.

홍콩은 중국의 일부입니다. 이는 변경시킬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간 홍콩은 매우 큰 자유를 누려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6개월 간 혼란을 겪으면서 중국당국이 홍콩을 안정화시키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예들 들어 미국 내에 전국적으로 시민적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고 봅시다(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런 경우 미국은 중국이 홍콩에 가한 것보다 훨씬 강제적으로 진압을 하려 할 것입니다.

사업은 시위진압처럼 그렇게 되질 않습니다. 당신이 사무실에 나갈 수도 없고, 사업을 계속할 수 없으면 당연히 그런 억압적인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겠지요. 어떤 사회도 그런 상황을 용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대응을 해야 할까요? 중국은 미국의 제재조치에 대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면에 미국에게 중국이 자국 영토에서 시민적 질서를 회복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도록 요구를 해야겠지요.

 

출처: CGTN, 2020.06.07.

화, 2020/06/1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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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전역에 적용하는 탄소세는 기후위기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기본적 해법이다. 동시에 세계탄소은행(World Carbon Bank)를 설립하여 이의 지침에 따라 선진국가들은 개발국가들에게 상당한 수준의 재정적 지원과 기술적 전문성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케임브리지 –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조 바이든이 기후변화에 대하여 새롭고 이성적인 접근을 선언한 지금이야말로, 세계탄소은행을 설립하여 개발도상 국가군들도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도록 재정을 지원하고 기술을 이전할 적기이다.

국제에너지기구 IEA에 의하면, 향후 20년 탄소배출의 순수 증가량은 신흥국가군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한다. 중국이 최근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고 다짐을 한 것은 세계탄소의 생산량과 사용량의 반을 차지하는 국가로서 매우 분별력있는 결정이었다. 인도 역시 태양에너지를 열심으로 개발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발전은 풍부한 석탄 부존량에 의존하고 있다.

2025년에 파리기후협약이 이루지긴 하였지만, 세계적 차원의 신규에너지 투자에서 신생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34% 수준으로 5년째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으며, 현재 풍력과 태양광은 글로벌 에너지 수요의 겨우 8%를 충당하고 있다. 국제에너지 기구의 예측으로는, 화석연료기반의 현존 발전소를 설계수명이 다할 때까지 운용을 허용하면 지구의 온도는 산업화 이전의 온도에서 섭씨 1.7도 이상 상승할 것이라고 한다.

당장에라도 개발국가들에게 탄소배출량을 줄이도록 격려할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한 접근 방식은, 탄소세를 일단 보류한 채, 수입국가들에게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이러한 방식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으며 미국 신임재무장관인 Janet Yellen이 회원으로 있는 기후지도자회의(climate-leadership-council) 역시 이를 지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탄소세(유럽이 제안하는 탄소가격체계는 매우 서툴다)의 개념을 선호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탄소를 배출하고 소비하는 행위자들이 지구라는 공유재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도입하려 해도, 현재 시점의 개발도상국들은 탄소배출을 해결할 재원도 기술력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선진국가들이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배경에는 자신들의 생산공장을 신흥국가들에게 이전하여 그곳에서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화석연료 발전소의 조업수명은 대략 50년 정도이며 선진국가들의 발전소 평균나이는 43년인데 반하여, 아시아 지역의 발전소 평균연령은 겨우 12년에 불과하다. 인도와 중국의 경우에는 석탄이 몇 안되는 가용자원인 탓에 석탄발전소의 조업을 중단하는 것은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 또한 아프리카의 경우, 전기의 접근이 어려운 인구 숫자가 팬데믹 상황에서도 여전히 6억 명에 달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야심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역량의 격차는 지구북반부에 위치한 부국들과 지구남반부에 있는 빈국들의 재력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작년 이후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선진국가들은 GDP 평균 16% 수준의 예산을 투입하였으나, 신흥국가군들은 6% 그리고 개발도상국가군에서 겨우 2%만 지출할 수 있었다고 IMF는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커다란 격차는, 향후 몇 년 안에 발생할 개발도상국가들의 부채상환 부담에 팬데믹 관련비용까지 겹쳐진 것으로 감안하면, 지구적인 탄소중립화 계획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구단위의 탄소세는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궁극적이고 근본적인 접근 방식이지만, 선진경제권은 개발도상국들에게 채찍이 아닌 당근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세계탄소은행을 설립하여 이의 지침에 따라 상당한 수준의 재정을 지원하고 기술적 전문성을 공유하는 실제적 관행의 형태를 실천해야 한다.

세계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 그리고 지역별 개발기금 등도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이들은 자신의 고유 업무영역을 가지고 있어서 기후위기라는 도전을 효과적으로 대응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하다. 반면에 정부간 지원이 기후문제를 해결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못한다고 판단하는 그룹들은 경제적 성과에 지나치게 예민하지 않은 정부소유 기업들이 대체로 석탄산업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간 지원이 중요하다).

자기중심적인 선진경제권이 개발도상국가군을 돕기 위해 자신의 소유를 표기한 거대한 재정지원, 연간 1000-2000억 달러규모를 흔쾌히 집행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너무나 낙관적이지 않을까?

코로나-19에 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40개국의 빈국들에게 부채의 부담을 경감시켜 주기 위해 G20 그룹이 제공한 금액은 겨우 수십억 달러에 불과하였다. 반면에 이들 부국들은 자신의 국민들을 위해서는 수조 억 달러를 지출하였다.

장기간에 걸쳐 지속가능한 기금을 모으기 위해 탄소세와 탄소가격체계를 도입하는 것은 좋은 방안이긴 하지만 이것이 실현되기까지 기다리기에는 기후위기의 상황은 너무나 절박하다.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를 실현하겠다고 약속한 유럽과 미국 등이 이에 함께하는 것은 칭찬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NIMBY(not-in-my-backyard, ‘내뒷마당은 안돼’)방식의 환경보호운동으로는 기후위기라는 지구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선진국가들은 개발국가군들을 의무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on 2021-01-06.

Kenneth Rogoff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교수로 공공정책분야의 전문가로 국제적인 명성을 지니면서 2001-2003년 간에 국제통화기금IMF의 연구담당임원 겸 수석경제분석가를 역임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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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1/05/07-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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