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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상황에 대한 미국의 지도력에 동맹들은 실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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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상황에 대한 미국의 지도력에 동맹들은 실망한다

admin | 목, 2020/07/30- 20:16

국제정치의 전문가와 외교관 그리고 분석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미국이 코로나 팬데믹과 싸움에서 국제사회를 방치하고 지도국가로서 역할을 포기하면서 세계무대에서 뒷걸음치고 있다고 평가한다.

전통적으로 국제적 위기에 대한 협력을 논의하는 테이블을 주도하던 미국이, 이번에는, 코로나에 대응하는 백신의 개발에 대한 협력을 논의하기 위하여 WHO(세계보건기구)와 유럽이 주관한 국제영상회의에 참석을 거부했다.

전직 대통령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위협적인 팬데믹 상황을 정치무기화하여 동맹국가들을 소외시키고 중국을 몰아 부치면서, 다른 나라들이 미국 편에 가담하기를 강요하는 위험한 짓을 벌리고 있다고 경고를 보낸다.

창궐하는 팬데믹에 국제적인 대응과 협력을 조직해야 하는 적격의 국제조직인 WHO에 대한 분담금을 거부하면서, 미행정부는 국제보건 전문가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지난 6월 19일 전염병 대유행으로 황폐화되고 있는 지구촌을 집단적으로 지원하기 위하여 모든 국제적인 분쟁과 전투를 중단하자는 취지 하에 열린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미국은 이의 제안을 거부하였다. 미국은 구체적으로 WHO를 거명하고 지적하는 대신에 유엔의 “전문적인 보건기구 specialized health agencies”라는 표현으로 일체의 타협을 거부했다고 참석한 외교관들이 밝혔다.

미국은 G7과 G20의 회의에서도 중국과 WHO에 대한 비난을 근거로 유사한 제안을 거부했다.

과거의 미국은 이러한 모임과 회의에서 주도하는 목소리를 내었던 반면에, 현직 트럼프 대통령의 상기와 같은 입장에 대해 아시아 태평양과 유럽을 대표하는 참석자들은 반신반의와 호기심과 슬픔을 동시에 공유하면서, 미국의 대외적 이미지가 크게 손상당하고 있다고 증언한다.

미국 담당자들은 이에 대하여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하여 상당한 자금을 대고 있으며 트럼프가 세계지도자들과 50회가 넘는 통화를 진행하면서 주요 7개국 그룹들과 당자간의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떠벌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온전한 국제적 협력이 없이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오히려 대응과정을 지연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전세계의 확진자가 4백만 명을 넘어서자, 국제사회의 외교관들은 과거 전염병에 대해서 미국 지도력이 보여준 사례, 즉 에볼라에 대응한 오바마 대통령 시절과 HIV/AIDS에 대해 보여준 부시 대통령의 역할을 언급하면서, 미국의 확고한 지도력을 기대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미국에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미국이 개발국가들을 포함하여 여러 나라들과 많은 일들을 양자간의 방식으로 훌륭히 해온 것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많은 나라들은 환호를 보냈다. 현재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점(pivotal moment)이며, 국제사회는 미국은 이러한 시점마다 주요한 역할을 맡아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유럽의 외교관들은 이야기한다.

비판을 하는 측은 ‘트럼프 행정부가 팬데믹과 대처하는 과정에 집중하지 않고, 오히려 불확실성만 증가시키면서 미국에 대한 존경심을 사라지게 만들고 국제적인 협력체제가 더 이상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세계는 지금 국제적인 지도력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이는 말 그대로 지구촌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입니다. 강대국의 지도자들이 나서서 건설적 방식으로 협력하고 대응체제를 구축해야 할 때입니다” 라고 영국의 싱크탱크에서 국제보건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는 Robert Yates는 주장한다 “국제적 노력을 조정하는 미국의 주도적 역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만, 현재는 이것이 완전하게 결여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국제보건의 책임자들은 팬데믹이 한창 진행중인 가운데 WHO에 대한 분담금을 거부한 것에 대하여 ‘숨을 순간적으로 멈추게 하는 일 – absolutely breathtaking’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Yates는 ‘협력의 부재보다 악질적인 파괴적 행위’라고 첨언한다.

국무부의 고위관리는 출입기자들에게 ‘대통령이 WHO를 신뢰하지 않으며 트럼프는 WHO가 중국 편을 들고 있다고 비난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들 공직자들은 미국이 세계에서 보건과 인도적 활동을 가장 크게 지원하는 국가라는 것을 재차 강조하면서 G7의 의장으로서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는 팬데믹과 전투에서 국제적인 협력을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영리단체인 ONE Campaign의 회장인 Gayle Smith는 미국이 주도한다는 국제적 대응기구가 작동조차 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대체로 그녀는 다음과 같은 사항에 주목한다 “우리는 정상회담에서도, 유엔안보리에서도, 주요 국가들의 책임자들 모임에서도 어떻게 조직하고 어떤 방식으로 관리해야 하고 국제적으로 필요한 물자를 어떻게 공급해야 하는 것 등 논의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지구촌의 대부분 같은 물자를 기다리고 있다. 세계경제가 이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공급해 준다는 것을 어떻게 자신할 수 있을까?”라고 전직 국제개발처의 국장이었던 Smith는 질문을 던지면서 “미국이 세계를 다차원에서 움직이는 별도의 노력에 경주하는 것을 보고 싶다”는 심정을 털어 놓는다

미국의 공직자들은 트럼프가 G7의 장관들이 서로 협력하도록 정기적인 화상회의를 주관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백악관은 백신을 개발하고자 하는 국제회의를 거부하고 해당 전문가들을 방치해 놓고 있다.

WHO가 주관하기도 하고 40여 국가가 참여하는 별도의 회의와 여러 기구들이 모여서 백신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80억 불을 조성하기로 결의했고 효과적인 개발이 확인되는 대로 전세계 가능한 모든 국가들이 생산하도록 약속을 확인했는데, 정작 미국이 모임에 불참한 것이다.

이는 “미국에게 대단히 대단히 불행한 사건으로, 미국은 전통적으로 지도적 역할을 해왔다. 해당모임은 백신과 치료법의 개발을 촉진시키려는 것이고 백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며, 당연히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협력의 기반에 함께 해야만 했다”고 Smith는 탄식한다.

국제전략연구소의 국제보건정책 책임자인 Stephen Morrison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가장 재무적 역량이 크고 개발시스템도 제일 잘 갖추었고 이해관계가 깊은 나라가 미국인 만큼, 상기 모임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미친 짓이고 일을 망치려는 것이다.”

백신개발회의에 미국이 불참한 것에 대하여 계속적인 질문이 쏟아지자, 국무부 해당 담당자는 코로나와 싸우는데 미국은 엄청난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더니, 다음 날에는 미국이 이미 별도의 백신국제연맹과 같은 조직과 일하면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성명과 함께, 언급된 백신개발모임은 미국의 노력에 보조적인 역할 정도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추가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미국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국제적 싸움에 진전을 보이고 있으며, 중국과 WHO의 역할에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 동맹과 협력자로 동조하는 나라들을 평가하고자 한다.”

미국이 중국을 동맹으로부터 분리시키려 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이를 백악관이 대선의 해에 팬데믹을 잘못 대응한 것에 대한 비난으로부터 트럼프를 보호하며 동맹들에게 미중 간의 선택을 요구하는 정치적 행위로 간주한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증거를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바이러스가 중국의 연구소에서 시작되었다는 정보를 계속적으로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독일의 외교관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모든 것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것이 걱정스럽다. 폼페이오의 주장은 대선 캠페인의 일부임이 분명하다.”

프랑스의 외교관은 퉁명스럽게 답했다 “프랑스는 중국과 등을 돌릴 수 없다. 중국은 매우 중요한 파트너이며 누구도 이를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중국과 파트너-쉽을 유지해야만 한다.”

유럽의 외교관은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 많은 국가들간에 현재 같은 상황에서 지구적으로 번져가는 팬데믹과 싸우기 위해 엄청난 협력이 요구되며….. 중국은 협력의 핵심적 국가이고 WHO도 깊이 관여해야 한다….. 누구도 협력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에 이를 방해하려 한다면, 모두를 화나게 하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의 행동은 이미 많은 국제관계자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이들 전문가 집단은 어려운 시기에 미국이 지도적 힘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사라지고 있는데 이는 트럼프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TV인터뷰 내용, 즉 Yates가 황당무계하다고 지적한 것과 깊이 관련된다고 이야기한다.

일부 목격자들은 트럼프가 코로나를 예방하기 위해 소독제 주사를 맞으라고 제안하는 것을 비난하고 나섰다. 이런 위험한 발상에 대하여 전세계 보건당국자들은 즉각적으로 부인하고 나섰고, 호주의 보건행정 책임자는 카메라 앞에서 공개적으로 비웃기도 하였다.

프랑스 파리에 소재한 국제관계 연구소의 책임자는 유럽인들은 팬데믹에 대응하는 트럼프의 모습을 재미있어 한다면서 그의 행동을 공상소설보다 괴이한 것이라고 평했다.

그는 우리에게 즐거움(황당함)과 슬픔을 뒤섞어 제공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대통령에서 기대해선 안되는 내용들이다 라고 프랑스 언론인이 평했다. “트럼프를 바라보고 있으면, 일단은 매우 흥미롭다(우스꽝스럽다). 그러나 결코 즐거운 일은 아니다.”

 

출처 : CNN Report on 2020-06-25.

CNN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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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어업 상습 국가” 낙인찍힌 한국 원양어업, 환골탈태만이 답이다

○ 한국이 다시 <불법어업국가>라는 오명을 썼다. 2019년 9월 20일, 미국으로부터 예비불법어업국 지정 통보를 받았다. 2013년 미국과 유럽연합으로부터 예비불법어업국가로 지정받은 이후, 규제 강화를 강조한 원양산업발전법 개정으로 2015년에 해제되었지만 겨우 4년 만에 불명예는 되돌아왔다.

○ 불법어업국가로 지정된다는 것은 원양수산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 수출길에 차질이 생기는 경제적 손실은 물론, 외교 무대에서 뼈아픈 약점을 잡힌다. 특히, 체제가 불안하거나 경제발전이 더딘 저개발국가들 위주로 된 불법어업국가 목록에 포함되는 것 자체가 국격에 치명타를 입힌다고 할 수 있다.

○ 이번 지정의 발단은 2017년 한국 원양선박이 남극해에서 보존조치를 위반한 사건 때문이다. 국내외 환경단체들은 해당 위반 행위에 대해 수차례 강한 우려를 표하며, 해수부와 원양업계에 이 사건의 심각함과 함의를 알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업계를 대표하는 원양산업협회는 ‘일부 기업의 소소한 위반을 침소봉대하지 말라’며 의미를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 사건을 엄정하게 처리해야 할 해수부도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법적 문제가 없다’, ‘현상태에서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국제여론까지 악화되자 그제서야 관련 원양산업발전법 재개정안을 부랴부랴 마련했다. 그나마도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로, 통과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 위에 언급한 원양산업발전법의 개정안은 작년부터 업계와 시민사회가 참여한 논의가 진행되었으나, 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업계의 영향으로 불법어업에 대한 벌금과 제재를 강화하는 정책들이 상당부분 약화된 채 발의되었다. 이마저도 업계에서는 훨씬 더 큰 폭으로 약화하고 싶어했다.

○ 결정적으로, 이 사태는 불법어업 규제가 강화되는 국제적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해수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2018년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 회의에 참가한 당시 정부 대표단은 불법어업 사건을 신속하고 엄정히 처리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안이하게 대응을 하였고 이는 결국 오늘의 예비불법어업국 지정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회의에 참가한 정부 대표단 중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불과 약 1년 전 (2018년 10월)만 해도 당당하게 “한·EU, 국제적인 불법어업 근절을 위한 공동선언” 까지 채택한 한국이 또다시 원양 전선에서 추락했다. 불법어업 국가의 오명을 벗고 효과적인 제재를 가하다가 다시 개혁의 긴장 고삐를 늦추면서 벌어진 일이다. 시민단체는 국민을 대표하여 묻지 않을 수 없다. 또다시 억울함을 호소하며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자세로 이런 외교적 망신을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 불법 어업자들을 확실하게 걸러내어 오히려 불법어업 근절을 선도하는 국제적 리더로 거듭날 것인가? 정부와 업계의 문제 해결의지와 책임있는 행동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이에 시민사회는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 해수부, 특히 본 사태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당시 정부 대표단 대표는 책임을 져야 한다.
○ 불법, 비보고, 비규제 (IUU) 어업이 재발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도록 하는, 보다 강력한 제재안을 원산법 개정안에 포함시키고, 불법어업 통제 관리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 원양업계는 불법어업을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업체를 퇴출시키는 등 자정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 정부와 업계는 시민사회와 함께 불법 어업 방지를 위한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공익법센터어필,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재단

참고:
남극 이빨고기 불법 어업 관련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2070600105

한국 환경단체 성명서:
http://kfem.or.kr/?p=196313

공동선언문 채택:
https://www.yna.co.kr/view/AKR20181018168300098

금, 2019/09/2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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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새로운 10년(decade)의 시작에 들어 왔다. ‘20년대’가 시작되면서 대다수 사람들은 20년대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게 되었다. 현대사에서 매 10년은 더 포괄적인 역사적 서술로 엮인 저명한 상징, 사건 및 주제로 정의되는 경향이 있다. 비록 주어진 사건 또는 발견의 이면에 있는 요소들이 더 오래 지속되거나 깊이 뿌리 박혀 있을지라도 말이다. 예건데, 세계는 1940년대를 전쟁 및 파멸의 시기로, 1960년대를 반체제 문화 및 반항의 시기로, 1990년대를 새로운 ‘현대성’의 시기 등으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역사는 2010년대를 어떻게 돌아볼 것인가? 필연적으로 역사는 항상 나중에서야 깨달음을 주기 때문에 현재의 대답은 불가피하게도 미완성이다. 우리는 세계가 아직 이루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미래 역사가들이 회고할 수수께끼에 오늘날의 사건들이 어떻게 ‘들어맞을지’ 확실히 예상하거나 파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2010년대의 10년사가 1991년에 구축된 ‘자유주의적 합의’가 무너지기 시작한 시대로 개념화되어 역사의 예비 전환점(preliminary turning point in history)으로 회고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0년 동안 통합 및 조화로운 세계에 대한 꿈이 흐지부지 사라졌다.

온라인 대중 매체가 부상하면서 사회가 극적으로 변화하도록 촉진되었고, 성난 반체제 정치 및 정체성 갈등이 뒤끓던 서구에 새로운 형태의 불만을 매개했다. 세계화는 역행했고, 10년이란 시간은 한 때 역사에 국한된 것으로만 여겨졌던 거대한 패권 경쟁이 재현됨에 따라 결국 퇴색되었다.

2010년대는 ‘소셜 미디어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소셜 미디어가 정식으로 출시된 시기는 그보다 10년 전이지만, 페이스북(Facebook), 트위터(Twitter) 및 기타 미디어는 스마트폰이 등장함에 따라 세계 문화로 확고히 통합되었는데 이런 현상은 최근 몇 년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바로 이 장치 곧 스마트폰은 수십억의 인생을 영구적으로 바꾸었고 기존에 시간 할당제로 편리함을 주었던 인터넷을 일상 활동 자체의 본질적 요소로 이에 맞게 편리해질 수 있도록 탈바꿈시켰다. 소셜 미디어는 그 자체가 없는 상황을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전 세계 사회에 융합되었다.

결과적으로 대중 소셜 미디어의 부상에는 심오한 정치적 영향이 있었다. 기존 언론매체를 벗어나,이제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견해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새로운 플랫폼과 방식이 생겼다. 그 동안 자주 소식을 접할 수 없던 사람들도 오늘날에는 수백만 명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신문, 텔레비전과 같은 전통적인 매체를 넘어 사람들의 정보원 및 연락망이 다양해졌다.

자연스레 이러한 매체가 없었다면 사회에서 고립되고 소외되었을 이들이 새로이 불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가 생겼다. 2008년 서양 국가들에서 벌어진 금융위기라는 사건과 뒤따른 긴축 재정에 대해 사람들이 소식과 견해를 공유하면서 분노하고 환멸을 느끼게 되었고, 정치가 양극화되기 시작했다.

정치가 양극화되고, 좌파 및 우파의 새로운 움직임이 대중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회에 영향을 미치면서 1991년 이후의 소위 ‘자유주의적 합의’가 산산조각이 났다. 새로이 부상한 포플리즘 운동은 현 상황을 유지하고자 하는 엘리트 계층과 권력 계층을 공격했고, 결과적으로 전세계 곳곳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선거 결과를 야기했다. 이제 ‘중도 정치’를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2010년대는 브렉시트, 도널드 트럼프 등으로 기억되는 시대가 되었다. 확실하게 인지된 세계화의 불확실성 속에서 급속히 형성되는 대중의 불평을 무기 삼아 나타난 현상들이다.

미국 내 변화는 지정학적 파급력을 지닌다. 이른바 1991년 자유주의적 성향을 지닌 서구의 승리가 더 이상의 영향력을 상실하자, 변화하는 세계를 중심으로 엄청난 불안과 불확실성이 자리잡았다. 정치인들은 정치적 문제, 불평등 및 자신들의 실패에 대해 새로운 희생양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에 부상하는 포플리즘을 이용하여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두려움이 조직적으로 자리잡도록 악용하였다.

미국 엘리트 계층은 트럼프 대통령의 부상이 러시아의 잘못이며 모스크바가 소셜 미디어의 거대 기업을 활용하여 편집증을 유발시켰다고 비난했다. 이런 대외 의혹 풍토 속에서 정작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중국에 대한 공포와 미국의 ‘강대국 패권 경쟁’의 부활을 조성하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라는 문구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이것이 2010년대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 그것은 2010년대가 불확실성과 불안정의시대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고 시사한다.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으로 소셜 미디어 문화가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성난 포플리즘적 민족주의로 변모한 서양사회에 새로운 불안정을 초래했다.

미국은 세계에 대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점점 더 편집증적이 되었다. 이후 미국은 공격적으로 두려움을 유발하고 지정학적 투쟁을 추구하며 오랫동안 유지된 팍스-아메리카나를 여전히 갈망함으로써 실패로부터 벗어나 다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던 시기였다.

 

톰 포우디(Tom Fowdy)

중국 국영방송 CGTN 칼럼니스트

옥스포드 대학교의 중국학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더럼 대학교에서 정치학 전공

목, 2020/01/1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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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년 아펜젤로-이네르호덴Appenzello-Innerrhoden칸톤 주민들은 매년 4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군도로 무장하고 모여서 칸톤의 새로운 법률을 결정했다. 1990년이 되어서야 모든 칸톤에서 여성들도 선거의 참여가 허용되었고, 일반 남자들의 경우에도 1971년부터 보통 투표가 시작되었다. 글라로나Glarona 칸톤에도 아직 전통적인 “란트스게마인더Landsgemeinde”가 존재하는데, 이는 야외에서 열리는 칸톤 시민들의 입법회의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중세 스위스 특유의 민주적 회의는 다른 모든 칸톤에서는 투표소에서나 우편으로 하는 레퍼렌덤 투표로 대체되었다. 많은 스위스 기초자치단체에서 매년 총회가 열려서 시민들은 기초자치단체에서 정치적으로 필수 현안들에 대해 직접 투표한다.

 

150년 동안 지속된 전통

스위스는 전 세계에서 민주적인 많은 기관들과 국책 사업에서 큰 모범이 되고 있다. 리히텐슈타인을 제외하고 어떤 다른 나라보다 레퍼렌덤 권한이 매우 잘 발달되어 있다. 스위스의 정치 생활에서 직접 민주주의는 특히 칸톤과 기초자치단체 차원에서 사실상 특별한 역할을 담당한다.

의회에서 바라는 헌법 개정에 대한 의무적 실행 레퍼렌덤이 있는 직접 민주주의의 첫 제도들이 1848년 현대 스위스의 첫 헌법에 이미 포함되었다. 처음에 의원들은 오늘날 주변 국가의 많은 정치인들이 계속해서 그러듯이 직접 민주주의의 도입에 반대했다. 1870년대에는 의회를 장악했던 자유-자본주의적 과두정치에 대항하여 장인匠人, 소작농, 노동자 및 지식인 층 시민들의 강력한 국민 운동이 펼쳐졌다. 이 국민운동은 정당의 지나친 권력에 대항하여 더 큰 통제권과 더 큰 직접 참여를 주장했으며, 1874년에는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을 법제화하는데 성공했다. 이 국민 거부권은 오늘날 스위스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레퍼렌덤 도구이지만, 이탈리아에서는 헌법 제138조에 따른 헌법적 레퍼렌덤을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위스 사람들은 국민발안으로 헌법을 개정하여 새로운 규정을 도입할 수 있는데, 몇몇 칸톤에서는 1840년 대부터 이미 정치적 권리가 존재했다. 당시에도 금융과 상업의 중심지였던 취리히 칸톤은 1869년 국민발안을 마련했다. 이 도구는 1891년 연방 차원에서 도입되어 1921년 국제 조약에 대한 선택적 레퍼렌덤이 추가된다. 1949년에는 연방정부의 긴급하고 법적 구속력 있는 심의를 위한 의무적 레퍼렌덤이 제정된다. 1977년 UN 등의 국제 기구에 대한 가입 결정에 대해서, 그리고 2003년에는 곧 연방법 채택을 의미하는 국제 조약에 대한 승인 결정에 대한 레퍼렌덤 권리가 뒤따른다.

연방 일반법ordinary law에 대한 입법 국민발안(제안적 레퍼렌덤)은 2003년 도입되어야 했는데 입법자들의 거부로 가로막혔다. 기초자치단체와 칸톤에는 그 밖의 직접 민주주의 권리들도 있는데, 그중 재정 관련 레퍼렌덤도 있다. 만일 기초자치단체의 지출에 관한 어떤 결정이 규정된 최소한의 문턱을 넘으면 이 결정은 시민들의 요청에 따라 혹은 법적 의무 상으로도 레퍼렌덤 투표에 부쳐져야 한다.

 

스위스 시민은 어떤 레퍼렌덤 권리를 이용할 수 있는가?

연방차원에서 유권자인 시민들은 (2018년 현재 약 5백만 명) 세 가지 주요 레퍼렌덤 도구들을 이용할 수 있다. 이 모든 권리들은 칸톤 차원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모든 레퍼렌덤 투표는 법적 구속력이 있다.

1. 헌법상 의무 레퍼렌덤(1848년부터): 모든 헌법 개정이 발효되려면 시민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스위스의 몇몇 국제 기구 가입 또한 의무 레퍼렌덤의 대상이 된다.
2.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1874년부터): 5만 명의 시민들(유권자들의 약 1.1%)은 의회에서 승인되었지만 아직 발효되지 않은 법률에 대해 레퍼렌덤 투표를 요청할 수 있다. 서명을 모으기 위해 유효한 시간은 법률 반포로부터 100일 동안이다.
3. 국민발안(1891년부터): 10만 명의 시민들(현재 유권자의 약 2%)이 특정 헌법 조항의 개정, 연장 혹은 폐지를 요청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헌법상의 발안”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주안점은 특정 주제에 대해 정치적 토론을 불러일으키거나 촉진시키는 것이다. 서명을 모으기 위해 유효한 시간은 18개월이다. 의회는 레퍼렌덤 투표에 대한 반대 제안을 제출할 수 있다.

국민발안을 통해 스위스 사람들은 거의 모든 정치적 사안에 대해 레퍼렌덤 투표를 요청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처럼 직접 민주주의에서 배제되는 사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는 세금이나 관세, 국제 협정에 대해서는 투표가 허락되지 않지만, 스위스에서는 어떤 정치적 의제라고 하더라도 모두 시민 투표에 부쳐진다. 직접 민주주의에서 배제된 유일한 주제는 스위스에서 비준된 국제 권리의 규정들이다. 이렇게 모든 정치적 사안에 개입할 수 있는 주권자의 보편적 권리는 스위스 정치체제에서 레퍼렌덤 현상의 중요성을 잘 반영해 준다.

국민발안은 형식과 내용의 일치라는 전제 조건을 존중해야 한다. 이는 국민발안의 법 제안에서 두 가지 이상의 주제를 다룰 수 없음을 뜻한다. 현행 법은 결국 실행 불가능한 제안들은 직권상 기각될 수 있음을 분명히 규정하지만, 그런 상황은 매우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어떤 법 제안이 레퍼렌덤 투표에 부쳐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예전에 투표에 대해 공공 지출로 그렇게 규정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스위스에서는 여전히 세금, 공공 지출, 군사 및 방위 문제, 심지어 정부 형태에 대한 법 제안들이 거듭되고 있다.

국민발안으로 시민들이 능동적으로 정치적 의제를 결정할 수 있고, 그러므로 연방의회와 함께 일하여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한편으로, 스위스 사람들은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으로 의회에서 승인된 법률에 반응하여 그것을 가로 막거나 확정할 수 있다. 칸톤의회에서 승인된 모든 법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스위스에서는 제도권 기관에서 선포하는, 곧 의회나 정부 측에서 요청하는 레퍼렌덤 투표가 없다. 그것은 자문적 성격이건 심의적 성격이건 마찬가지이며, 앞서 말했듯이 플레시비트 또한 그러하다. 레퍼렌덤 도구는 의무적인 것이거나, 다시 말해 특정한 경우 헌법으로 엄격히 규정되었거나 서명을 모아 시민들이 주도한다.

이런 국민발안의 제안은 형식적 기준에 정확하게 부합되어야 하며, 내용 면에서도 그렇다. 제안을 제출한 후 칸톤의회와 발안위원회 간의 협상이 시작된다. 발안 위원회는 항상 자신들의 제안을 철회할 권한이 있다. 합의에 도달하지 않으면, 시민들의 제안은 레퍼렌덤 투표로 넘어간다. 그러나 의회는 그에 대한 입장을 다수결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 제안을 투표에 부칠 권한이 있다.

국민발안권의 경우 스위스 사람들은 칸톤 헌법의 완전 개정이나 부분 개정, 또 법 의사나 법 조항 제안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칸톤 중 약 2/3 가량에서 시민들은 국민투표를 통해 칸톤 정부의 법령 또한 수정 할 수 있다. 몇몇 칸톤에서는 선출된 정치인들의 소환투표권이 제정되었다. 소환투표의 요청은 국민발안을 통해 개시되지만, 어쨌듯 이 권한은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

확정적 레퍼렌덤의 경우, 선택의 폭이 더 넓은데, 법률에 대한 레퍼렌덤이나 헌법 개정에 대한 레퍼렌덤, 의무 혹은 선택적 레퍼렌덤, 재정 혹은 행정 관련 레퍼렌덤, 연방에서 규정한 국제 협정에 관한 레퍼렌덤 등이 있다. 국민발안이 시민 위원회에서 바라는 입법 절차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반면, 레퍼렌덤은 입법 절차의 마지막 단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항상 그 요청에 대한 다른 시민 청원자들의 숫자가 충분하다는 조건으로 국민투표에 이른다. 최소 서명 인원은 유권자들의 0.8%(취리히)에서 5%(티치노) 사이이다. 레퍼렌덤 요청 후에 발안 위원회는 필요한 서명을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모아야 한다.

 

150여 년간 지켜 온 민주주의 관행

스위스의 이 모든 직접 민주주의 형식들의 특징이 되는 네 가지 기본 원칙이 있다. 첫째, 항상 참여 정족수 없이 찬반을 결정한다. 둘째, 모든 레퍼렌덤 요청이나 국민발안 요청에는 단 하나의 사안을 담을 수 있다. 셋째, 레퍼렌덤 캠페인은 열려 있어서, 누구나 개입하고 찬반을 표명할 수 있다. 넷째, 시민들과 선출된 대의원들, 그리고 행정부 관리들을 포함시키는 민주적 절차이다. 연방이나 칸톤의회를 무시하고 투표에 착수하는 것이 아니다. 연방 차원의 서명 기준점으로 실행적 레퍼렌덤을 위해서는 5만 명, 국민발안에는 10만 명의 서명이 필요하다. 참여 정족수는 스위스에서 토론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없다. 투표하는 사람이 결정하며, 그 이상 이론異論은 없다.

시민들의 제안이나 선출된 대의원들이 제출한 법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요청하기 위한 절차에서 서명의 보증, 확인 및 공증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는 발안 위원회에 이런 것들을 요청한다. 또한 서명 운동을 펼치기 위한 공공 장소 사용의 문제처럼 재정적 측면에서도 서명 모으기 작업을 방해하거나 번거롭게 만드는 관료적 올가미 없이, 자유롭게 서명 운동을 펼치고 정치적 권리를 행사한다. 스위스의 관청에서는 투표 때마다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의 논점을 모아 설명하는 정보를 담은 소책자 형태의 안내서를 발행한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레퍼렌덤 권리는 확정적 레퍼렌덤 권한으로서 발안한 시민들의 높은 성공률을 자랑한다. 레퍼렌덤은 단순히 경고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므로 레퍼렌덤을 시작할 역량을 갖춘 시민 조직은 부득이 입법 절차에 참여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스위스는 수십 년 전부터 독특한 공적 조사 및 공청회 양식을 마련했다. 현재 무엇보다 인터넷을 통해 실시하는 이런 형태의 공청회 덕분에 연방 국회나 칸톤의회는 모든 정당과 조직 및 기업들을 초대하여 각자의 입장을 밝히게 할 수 있으며, 이렇게 견지된 입장은 공식 사이트에서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절차가 더욱 투명해지고, 입법 계획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이 준비 단계에서부터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선택적 레퍼렌덤으로 모든 연방 법률이 국민투표에 부쳐질 수 있다. 국회는 대개 입법 과정에서 사실상 비판적인 입장을 수용함으로써 이런 종류의 레퍼렌덤을 피하려고 한다. 결과적으로 승인된 법률 중 일부 소수만이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1874년부터 183차례 있었는데, 그외 34건의 경우 레퍼렌덤 위원회는 필요한 지지를 모아내지 못했다(DFAE, <현대의 직접 민주주의>, 2018).

국민발안은 레퍼렌덤에 비해 성공률이 확연히 낮다. 스위스의 역사상 2017년 2월까지 제출된 446건의 국민발안 중 324건이 10만 명 최소 서명 인원 요건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으며, 209건은 연방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투표자 다수결이나 26개 칸톤의 다수결로 단 22건만이 통과되었다. 114건의 경우, 발안자들이 필요한 서명을 모으는 데 성공하지 못한 반면, 96건의 경우 발안 위원회가 절차가 끝나기 전에 제안을 철수했다(DFAE, <현대 직접 민주주의>, 2018, 11). 1891년부터 2014년까지 연방 차원에서 189건의 연방 발안이 전개되었지만 국민 제안의 단 10%만이 투표 심사를 통과했다. 칸톤 차원에서 국민발안의 성공률은 좀 더 높은 23%이다. 분명 스위스 사람들은 직접 참여를 좋아하는 듯하지만 또 혁신적인 제안들에 대해서는 다소 보수적이기도 하다.

 

법의 속성

보통 스위스 사람들은 한 해 3차례 투표소로 가서 연방, 칸톤, 시군 차원의 사안들에 대해 한꺼번에 투표를 한다. 평균 참여율은 40%대를 맴돌지만, 유엔이나 유럽경제공간SEE 가입처럼 막중한 현안에 대한 투표들이 있어서, 선거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참여율을 보인다. 스위스에서도 99%의 결정이 선출된 정치인들의 몫으로 남겨지지만, 직접 민주주의는 칸톤과 연방의 정치적 결정 과정에 강력한 인장처럼 새겨져 있어 스위스 정치 문화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대체로 1866년에서 2018년 3월 사이 스위스 사람들은 617건의 국가적 레퍼렌덤 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 그 취지들은 298건의 경우 받아들여졌으며, 333건의 경우 기각되었다. 이런 규칙적이고 집중적인 빈도의 자문은 국민발안이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눈에 띄는 영향력을 미친다. 각각의 사안에 대한 공식 정보 전달 기능도 있는 레퍼렌덤 캠페인은 광범위한 공공 토론이 이루어지게 하며, 각계각층의 국민들이 그에 대한 지식과 비판 의식을 심어 준다. 국민발안의 약 2/3가량이 그저 다음 3가지 영역, 곧 환경과 에너지 보호, 사회 정치 및 제도적 법규와 시민권리의 주제에 관한 것이다.

스위스의 독특한 점 중 하나는 연방 레퍼렌덤 투표에서 이중 찬성이라는 필수조건이다. 어떤 확정적 레퍼렌덤이나 국민발안이 유효하려면 전국 모든 투표자들이 던진 표의 과반수뿐만 아니라 26개의 칸톤 중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렇게 칸톤들 사이에서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조건은, 현실적으로 이 나라의 연방주의를 지키기 위해 다소 골치아픈 문제이기 때문에 적어도 13개 칸톤에서 그 찬성을 얻어내어야 하는 것이다.

때로 학자들은 스위스의 체제를 “절반의 직접 민주주의”로 정의한다. 국회의 입법 절차를 시민들의 레퍼렌덤 권리나 투표를 통한 선거와 결합시킴으로써 정치인들과 시민 사회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대화하도록 압박하기 때문이다. 권리를 온전히 지닌 스위스인들은 그들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자신들을 “주권자”라고 정의한다. 단지 정치인들을 뽑을 뿐만 아니라 언제라도 특정 현안이나 사안들에 대해 결정할 권한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칸톤과 연방 차원의 정치적 결정의 98%는 정치인들이 담당한다. 정치인들은 또 레퍼렌덤 투표의 결과를 적용해야만 한다. 직접 민주주의에서 정치인들은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주역으로 참여하며, 선거구 시민들과 더욱 직접적인 관계에 놓인다.

자주 이런 종류의 직접 민주주의는 입법 절차를 지나치게 지연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날 입법 생산성의 문제는 법의 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질에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마찬가지다. 틀림없이 이탈리아 국회는 지나치게 많은 법률을 양산해 내고, 그것도 지나치게 많은 성공적이지 못한 법률들을 만들어 낸다. 스위스에서는 법률 생산량이 부족한 것을 불평하지 않으며, 입법 절차 상 시민 동의나 직접 관련된 모든 사회적 그룹들의 공적인 참여에 훨씬 더 주의를 집중한다. 행정부는 효율적이고, 경제는 번영하고, 시민 만족도는 높고, 공공 부채는 낮은 스위스는 인구 대비 GDP상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스위스에서도 체제의 개혁을 논한다. 예를 들어, 인구 통계학적 성장에 비례하여 레퍼렌덤 투표를 개시하기 위해 필요한 서명 인원을 늘리는 것이나 연방 차원의 재정적 레퍼렌덤 도입 등을 다룬다. 헌법을 지나치게 부풀리지 않기 위해 일반 법률 상의 연방 국민발안이 제안되었다. 이 도구는 입법자들을 설득해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스위스는 국가에서 조인한 국제 협정에 대해 시민들이 투표할 권리를 훼손하지는 않으면서도 스위스가 지켜야 할 국제적 의무에 어긋나는 레퍼렌덤 투표를 막기 위한 헌법적 권한 행사에 대해 숙고하고 있다. 그러나 참여의 정족수 도입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스위스의 시스템을 이탈리아로 옮겨올 수 있을까?

사람들은 종종 역사적 발전과 특수한 전통을 바탕으로 직접 민주주의는 오로지 스위스에서만 작동할 수 있으며, 유럽 다른 지역에서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스위스에서 특정한 형태의 시스템이 발전했으며, 정치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는 최고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무엇보다 결과이다. 직접 민주주의가 잘 발달하면 시민들은 정기적으로 구체적인 현안에 대해 투표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그러한 전통이 없다는 것이 직접 민주주의가 확대되는 것에 반대할 논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그러한 문화가 발달할 수 있도록 레퍼렌덤 권한을 규정해야 할 것이다.

많은 경우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반대의 목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스위스 사람이 아니니 이러한 모델을 이탈리아의 현실에 이전할 수 없다.” 직접 민주주의를 스위스에서만 적용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나라는 독특한 발전을 이루어 왔으며, 매우 특별한 정치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혹은 이론적으로 모든 의회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보완할 수 있는 일련의 법률이나 도구가 있기 때문인가?

물론 스위스는 이탈리아나 이탈리아의 지방들에 비해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스위스는 매우 독특한 연방정치를 발전시켰으며, 스위스 사람들은 자신의 칸톤에 대한 소속 의식이 매우 강하다. 게다가 스위스는 정부 구성에서 화합의 원칙을 실천한다. 어떤 “연금술”에 따르면, 연립 정부에도 늘 더 강력한 정당들이 존재한다. 스위스의 모든 정치 관련 조직들은 촘촘한 연결망으로 연결된 강력한 연합주의를 자랑하며, 스위스 사람들은 대개 자신들의 전통에 매우 큰 애착을 갖고 있다.

스위스의 또 다른 독특함도 있다. 국제 정치에서 절대적 중립을 지키고, 지역성을 원칙으로 여러 언어를 사용하며(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모든 칸톤은 그들 특유의 공식 언어가 있다), 다양한 교파의 그리스도교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고, 2017년 현재 이주민 비율이 25%를 넘는다.

연방 조직이 모두에게 공통되는 하나의 연방 국가라는 큰 틀을 유지하는 가운데, 26개 칸톤에 각자의 언어와 문화, 개성을 개발할 수 있게해 준 한편으로, “국민의 권리”, 곧 직접 민주주의 권리들은 시민들로 하여금 각자의 정치 시스템을 자기 자신과 완전히 동일시하게 한다.

연방주의와 직접 민주주의, 이 두 가지는 스위스에서 국가와 사회통합의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아니, 이는 스위스인들 공통의 역사적 유산이 되었다. 결정 과정에서 민주주의 면모는 더 잘 드러난다. 즉 대의민주주의 기구들 말고도 시민들은 구체적인 단일 정치적 현안에 대해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시민 직접 참여의 노정이나 기회는 시민들에게 유리한 법규를 갖춘 명확한 권리에 기반을 둔다. 또한 스위스 시민들은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레퍼렌덤 투표로 결정할 수 있으며, 의회 또한 그러한 사안들을 토론하고 심의한다. 요컨대, 스위스에서는 정치적 주권자인 시민들이 사실상 최후의 발언권을 지닌다. 이 모든 것이 다른 민주주의 체제, 특히 중부 유럽에서 그렇지만,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가능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종종 스위스 사람들은 여러 다양한 레퍼렌덤 투표에서 용납할 수 없는 투표를 했다는 비난을 받곤 한다. 예를 들어, 1992년 스위스가 “유럽 경제 공간European Economic Space”에 가입하는 것을 거부했을 때 그랬고, 그 후 2001년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한 협상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했을 때도 그렇다. 최근에 이탈리아 언론을 떠들썩하게 한 새로운 이슬람교 사원의 건설 금지(2009년)와 솅겐Schengen(유럽연합에 속한 26개국들로 서로 여권 검사 없이 국경을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다)협정으로 합의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왕래를 철회하기로 한 결정(2014년)도 있었다. 이 경우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필터”가 작동된다. 이런 몇몇 불쾌한 결정들은 다른 나라에서 늘 직접 민주주의의 적들의 이용을 당하는 반면, 그 밖의 수백 건에 달하는 다른 사안들에 대한 투표에 대해서는 전혀 주목하지 않고 언급도 하지 않는다. 스위스 사람들은 이민과 난민 관련 정치에서 원칙적으로 소수자 및 외국인들에게 개방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주관적인 이데올로기적 필터를 가동하여 스위스의 어떤 레퍼렌덤 투표의 결과에 대해 “잘못”되거나 “불의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투표 결과를 레퍼렌덤 도구 자체와 혼동하는 심각한 오해가 있는 듯하다. 직접 민주주의는 역사의 특정한 순간에 국민들 내부에 존재하는 입장을 반영하는 거울과 다름 없다. 비춰지는 모습이 싫다고 거울을 깨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외부에서 볼 때 정치적으로 주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때 스위스에서는 “긍정적” 결과와 “부정적” 결과가 교차한다. 스위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태도를 갖고 있지만, 세상과 사회 및 정치 개혁에 열려 있는 국민으로서
항상 최고의 전문가들도 깜짝 놀라게 만들 준비가 되어 있다.

스위스에서 실행된 직접 민주주의의 주춧돌은 이미 다른 많은 나라로 이전되었다. 1900년대 초 미국 서부의 연방 주들은 공공연히 스위스의 모범을 따라 주와 기초자치단체 차원에서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요소로서 국민발안와 헌법상의 레퍼렌덤을 시작했다. 일단 미국 연방 24개 주들이 이 권리를 적용한다. 세계적으로 37개국이 적어도 일부 이 참정권을 갖추고 있다. 또한 여러 대표단과 관료들도 매년 스위스를 방문하여 직접 민주주의 운영을 담당하는 기관들을 둘러보며 그 기능을 연구하고 있다.

직접 민주주의는 현대적인 개념이며, 성공적이고 수출에 적합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적어도 150여 년간의 경험으로 스위스는 레퍼렌덤 권한이 모든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 적용 가능함을 보여준다. 의심할 여지없이 스위스에 비해 이탈리아는 모든 차원의 레퍼렌덤 권리에서 매우 뒤쳐지고 있다는 것이 보고된다. 이탈리아에서 주 차원의 직접민주주의는 스위스의 칸톤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종종 직접 민주주의와 관련된 토론에서 스위스의 모델은 다른 곳으로 이전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스위스의 모든 법령을 그대로 베껴 쓸 필요는 없더라도 이 시스템의 기반을 이루는 주춧돌은 참고로 하여 이탈리아 민주주의의 개혁을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위스적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스위스에서 일관된 형태로 실행된 보편적 직접 민주주의의 모델이 존재할 뿐이다. 이 보편적 모델의 다양한 요소들이 이탈리아에서도 적어도 기초적인 형태로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확정적 (헌법상의) 레퍼렌덤, 정족수제로, 낮은 진입 장벽, 주 정부의 심의에 대한 레퍼렌덤, 몇몇 특별자치주에서 실시하는 제안적 레퍼렌덤 등이 그것이다. 어쨌든 이런 권리들은 대개 제대로 규범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러니 이탈리아 사람을 스위스 사람들로 바꿔놓자는 것이 아니라 세계 모든 민주주의 체제에서 실행할 수 있는 법규를 이탈리아에서도 실시하자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잘 법제화되고 시민들에게 유리한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더 스위스화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더 민주적인 나라가 될 것이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금, 2020/02/1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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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화석연료 중심의 성장과 소비 경제모델의 위협에 대한 인식의 증가에 대한 반응은 미디어의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한 보도 차단과 교육과 정책토론에서의 심각성 경시풍조로 나타나고 있다.

청소년들이 앞장서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우리는 사회는 물론 경제를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 시작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가장 헌신적인 기후 운동가들, 심지어 구속되거나 신체 부상을 입을 각오가 되어 있는 기후환경운동가들조차도 여전히 석탄이나 천연가스로 가열된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디젤 동력 화물선과 디젤 연료를 사용하는 트럭으로 배달되어 석유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야채를 먹습니다.

시위를 조직하고 기후변화에 관한 기사를 쓸 때 사용되는 컴퓨터와 전화기같은 부품들도 석탄 및 다른 유독물질을 사용하는 인도, 중국, 태국의 공장에서 제작됩니다. 함께 연대하는 활동가들을 연결시켜주는 인터넷을 작동시키는 전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후변화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의 퇴직기금은 화석연료 수익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회사의 주식에 묶여 있습니다. (관련성이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음)

화석연료산업을 비난하는 시위표지를 작성하기 위해 석탄으로 가동되는 말레이시아 공장의 펜 부품에 사용되는 플라스틱과 석유연료를 사용하는 트럭과 비행기로 운송된 일회용 펠트펜을 사용한다는 모순에 직면합니다.

환경시위는 숨겨진 진실에 대해 주목하지만 행진이 끝나면 우리는 화석연료를 피할 수 없는 악몽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육식을 선택 또는 거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비와 성장의 파산 개념과 일치하는 산업경제를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그 시작은 미미할지라도 화석연료의 사용을 선택할 수 있는 요건이 주어진다면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우리의 모든 행동들이 시위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지구 위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화석연료와 전혀 연관되지 않은, 또는 관련한 산업으로 발생한 돈과 관련 없는 경제 체제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아침에 일어나 이를 닦는것부터 밤에 불을 끄고 잠에 드는것까지의 모든 행동들이 도덕적 시민들의 시위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공동체는 추출적이고 약탈적인 경제 질서의 중간에 있는 약간의 환경보호적 활동이 아닌 새로운 대안 경제의 문을 열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시위가 나아가야할 다음 단계는 세계적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화석연료를 100% 사용하지 않는(FFF) 지역사회 형성이어야만 합니다. 초기단계에서 100명 또는 500명만 지원할 수 있다 하더라도 지역 차원에서 이러한 경제, 사회 및 정치 구성단위를 만든다면 대중에게 실행 가능한 대안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석연료해방(FFF) 커뮤니티는 화석연료 사용금지에 기여하고자 하는 투철한 윤리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언행을 일치 시킬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 단지 슈퍼마켓의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것이 아닌 플라스틱을 절대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써 말입니다.

더 나아가 화석연료해방(FFF) 커뮤니티를 만드는 첫 단계는 즉시 실행 가능합니다. 냉소적인 정치가들이 20년 30년 걸려 실행할 탄소중립 경제를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FFF 커뮤니티 창조

FFF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은 초반에 상당한 용기와 희생을 요구할 것이며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제한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한 임계질량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모든 FFF 커뮤니티가 음식, 에너지, 협동조합의 재정, 또는 화석연료와 연관된 은행들에 대해 100% 독립적일수는 없기에, FFF 커뮤니티는 오늘날의 단체들이 할 수 없었던 그들의 목소리를 마음껏내며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향력은 설립 초기 단계보다 훨씬 더 강해질 것입니다.

이는 전 세계의 다른 지역사회에 모델이 될 것이며, 화석연료와 관련된 자금 의존으로 인하여 실행단계에 옮길 수 없었던 저널리즘과 교육시스템을 생산할 것입니다.

소규모 FFF 커뮤니티가 다국적 투자은행 및 석유회사를 인수 할 수 있는 강력한 경제 및 정치 플레이어가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며, 수익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방향으로 화석연료 문제에 맞서는 데 있어 모호하고 결과가 정확하지 않은 대안이 아닌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화석연료 사용 종말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자료에 따르면 정부와 기업의 보고서에 제시된 2050년 탄소 중립 경제 창출은 터무니없이 늦은 시기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홍수와 폭풍, 해수면 상승, 사막 확산, 기아, 견딜 수 없는 폭염, 지구에 남아있는 부족한 자원을 장악하고자 하는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인해 수십억의 인간(및 다른 종)이 죽는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서는 몇 년 또는 몇 달 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주류 미디어는 기후 비상사태에 대한 시위와 정부의 선언문을 다루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가끔씩 지붕 위에 태양 전지판이 설치되는 것을 볼 수는 있지만 모든 식품을 현지에서 유기농으로 생산하고 태양열 및 풍력을 이용하여 모든 건물을 완벽하게 단열시키며, 100 %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대중교통의 동력을 공급하게 하는 법률은 (시행은 고사하고)거의 고려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역사회와 서로를 장기적으로 지원하며 지역사회에서 생산되는 FFF 제품에만 전적으로 의지할 것을 약속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모아야 합니다(100% FFF 수송체계가 설립될 때까지). 만약 체포될 위험까지 감수하는 열렬한 환경운동가들이 있다면, 그 중 FFF 공동체에 기꺼이 헌신하려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멤버와 공동체간의 협약은 진중하게 다뤄져야 할 것입니다. 구성원들과 커뮤니티 간에는 반드시 법적으로 유효한 계약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FFF 공동체는 애초에 우리를 곤경에 빠뜨린 피상적인 소비문화, 분열, 단편적 사고와 같은 문화에 일치하여 운영될 수 없습니다.

신규회원은 평생동안 그들을 책임지겠다는 공동체의 약속에 대한 대가로 FFF 커뮤니티에 자산을 위탁할 것입니다. 또는 다른 형태의 깊은 사회적, 윤리적 약속 또한 가능합니다.

 

자본주의와 글로벌 농업: 포드(Ford)부터 몬산토(Monsanto)까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화석연료해방 공동체(FFF)는 초반에는 작은 범위로 시작할 것이며, 우리가 계속해서 지속 가능한 접근법을 채택했을때 어떠한 사회가 될지에 대한 모델을 제공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에게는 해당 모델이 거의 없고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FFF 커뮤니티 경제의 핵심은 100% 유기농 식품을 생산해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수송하는 유기농 농장이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지역사회의 시민들의 식생활에 대한 다양성이 현저하게 감소할 것이지만, 그들의 노력과 희생을 통해 진정한 화석연료 자유경제의 토대를 마련할 것입니다. 음식들은 집, 옥상, 인근 빈 공간에서 재배되거나 지역 농장에서 들여올 것입니다.

혁신적인 사고를 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화석연료에서부터 해방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웃과 함께 협력하는 행위가 신문에 글을 기고하고, 권력가나 재력가들을 로비하거나 환경 NGO 단체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완전한 의미에서 화석연료로부터 자유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플라스틱,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생산된 제품,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운송 된 제품이 없는 상태)은 FFF관련자들에게 결정적인 노력이 될 수 있습니다.

(기업과 소비자 간의 거래가 아닌) 농부와 시민 간의 협력을 장려하는 공동 시장에서 식품을 판매(또는 물물 교환을 통해 교환)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장은 화석연료에서 완전히 분리된 새로운 형태의 경제 교환의 토대가 될 수 있으며 전 세계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유기 농업 공동체는 전혀 급진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인간이 기후를 파괴하지 않고 수천 년 동안 살아남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아미쉬와 메노나이트 공동체에서 모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계나 인공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공동체를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라왔지만, 그들을 제외한 미국의 지역들이 세계무역과 연관된 산업화된 비정상적인 농업 생산 시스템을 수용하는동안 이 공동체들은 지속적인 경제를 추구해오고 있었습니다.

공동체의 유기농업 방식은 농업과 유통에서 젊은이들에게 실질적인 일자리를 제공 할 것입니다. 지구의 파괴에 기여 하지 않는 음식을 만드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받아 그 노력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도덕적 행동입니다.

공동체의 또 다른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음식 및 기타 물품에 대한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FFF) 운송수단의 창출입니다. 초기에 제공된 FFF 운송만 사용하겠다는 약속이 심하게 제한적이더라도 시민들은 그것을 불쾌한 불편으로 간주하지 않고 도덕적인 용기의 서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깨끗한” 에너지를 제공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정치인들은 천연가스, 전기 및 심지어 원자력이 당연히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FFF커뮤니티의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제조업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제조업에 관하여 완전히 다시 재고해보아야 합니다: 삶에 필요한 물품의 생산 및 사용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화석연료나 플라스틱을 쓰지 않고 어떻게 물품들을 생산할 것인지에 대하여 반드시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경박스럽고 사치품과 같은 제품들의 마케팅과 소비를 완전하게 종료해야 합니다.

FFF공동체의 제조업은 100% 현지에서 시작해야 합니다(지역 및 세계적으로 공동체를 연결 할 수 있는 화석연료를 100% 쓰지 않는 운송체계를 갖추기 전까지).

화석연료를 제거한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물품을 사용을 줄여야 하며 오랫동안 지속 될 수 있는 품목을 제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20-50년 이상 지속될 책상과 의자, 책장과 도마, 셔츠와 스웨터, 컵과 냄비가 필요합니다. 우리 경제의 이러한 변화는 상업적인 소비 중심 문화의 종식과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제작된 제품에 중점을 두며, 이미지가 아니라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FFF 커뮤니티에서 이케아(IKEA)나 갭(GAP)과 같은 관련 상품은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100% 화석연료 비사용 제품의 생산과 유통은 우리 아이들과 이웃의 아이들에게 장기적 일자리를 창출할 것입니다. 제조는 현지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내구성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은 우리 환경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우리는 경쟁, 자유 무역 및 산업화의 위험한 개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성장에 관한 잘못된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 개념, 태도의 변화

FFF 지역사회는 화석연료에 관한 선전과 눈에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으면 충실한 삶을 살 수 없음을 주장하는 기업의 사상에서 반드시 벗어나 있어야 합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기술과 거버넌스의 진보적 혁신이 아니라 태도의 혁명에서 시작됩니다. FFF 공동체는 자동차를 홍보하고 분별없는 음식 소비를 장려하는 광고가 없는 문화적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모든 시민은 기후변화가 지역사회에 있어 즉각적이고 압도적인 위협임을 인식해야할 뿐만 아니라 짚 깔기, 유리 재활용, 금속 해체, 비료사용을 위한 인분 수집, 카트를 통한 식품 수송, 또는 (운동에도 도움이 되는) 자전거를 통한 전기 생산 활동이 엄연히 도덕적인 것이며 가치 있는 사회적 기여라는 인식이 잡혀있는 문화를 반드시 만들어야 합니다. 상업 경제에 의해 만들어진 자기만족감과 즉각적 만족에 대한 숭배는 도덕적 철학, 절제, 겸손 및 정직한 선행으로써의 사회적 참여에 기초한 문화로 대체되어야 합니다.

이 변화는 완전하게 “진보적인”것은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겸허, 절제, 지적 및 영적 참여의 중요성과 같은 전통적인 가치와 결부됩니다. 이러한 커뮤니티가 커질수록 전 세계를 지배하는 상업 문화에 대한 대안이 더 강력해질 것입니다. 전기, 소비, 재산의 막대한 증가, 도시화 및 개인 자동차와 비행기 같은 운송수단에 의해 인간의 환경이 개선되었다는 현대의 관념에서 비롯된 잘못된 추측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더 큰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시스템 생성에 도전하지 않으면 생존에 필요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친환경화는 상품과 서비스의 소비에 입각하고 있는 화석연료의 생산과 유통에 뿌리를 둔 경제의 겉치레적인 변화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영화와(그리고 영화 전후에 나오는 광고들) 뉴스 보도에서 강조하는 현대화의 신화 뒤에 감추어진 체계를 반드시 가시화해야 합니다. 사회의 전반에 깔려있는 생각은 아이폰을 사용하고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 비싼 자동차나 전용 비행기로 전 세계의 수도에서 수도를 누비는 사람들, 넓은 집에 살고 좋은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제품을 나르고, 공공장소를 청소하고, 우리의 식량을 재배하며 요리하는 사람들보다는 아무래도 더욱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악이 되는 자원낭비, 화석연료로 인한 환경오염,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된 부는 상업적 미디어에서 마치 선량한 도덕적 행동처럼 보여집니다.

FFF 공동체는 부동산, 개인 재산, 소유권에 관한 오해 소지가 많은 개념에 대해 완전히 개혁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회는 언론에 의해 시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계약법과 기업 법에 의해 통제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돕거나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커뮤니티 회원 간 구속력 있는 계약이 없습니다. FFF 커뮤니티는 이러한 계약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FFF 공동체에 가입하여 화석연료의 사용을 끊고자 하는 충성 서약이 회원자격의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부동산과 소수의 사람에 자본이 집중되기 전에 유럽, 아시아, 미주 지역의 농업 공동체의 중심이었던 마을 계약과 동등한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마을 계약은 상징적이라기보다는 구속력 있는 방식으로 각 개인이 식품, 도구, 가구, 운송 및 거버넌스의 생산에 기여해야하는 책임과 구성원들에게 평생동안 커뮤니티를 갖추어준다는 공동체의 책무에 대해 설명해야 합니다

 

거버넌스 중심 환경과 인간 정착의 관계를 형상하는 이로쿼이 부족 (Iroquois Nation)의 헌법 부활은 금융, 재산권 및 부동산에 중점을 둔 법적 왜곡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됨.

현재 혁신주의자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항의에 참여하는 동시에 화석 연료와 관련된 수익을 올리는 회사에 자산을 투자하는 것이 허용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행을 없애고 모든 투자가 지역사회 활동과 관련이 있고 FFF 경제 창출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해야합니다.

FFF공동체 회원가입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어야 하며 자산, 교육 수준, 문화 감수성 정도에 따라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Teslas를 구입하거나 태양 전지판 패널을 구입할 수 있는 상류・중산층 사람들에게 포커스된 녹색 경제가 인류를 구할 것이라는 망상을 버려야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교육과 주변 매체를 통하여 기후위기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빈곤층과 노동 계급에게 기후위기를 설명하고 응답에 참여한 대가로 양질의 교육과 경제적 기회를 얻는데 도움이 된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갈라 디너, 억만장자의 기부 및 기타 활동으로 기후 변화에 대해 연설하는 것은 사회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만의 FFF 화폐를 만드는 것은 이 과정에서 대단히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화폐는 개인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나타내며 지역 사회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및 기타 제조 제품에 의해 뒷받침 될 수 있습니다. 초반에는 사용에 극히 제한적일 지라도 이 통화가치는 화석연료와 연관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즉, FFF 화폐는 지역경제 전반에 걸쳐 사용이 확대되고 결국 세계경제로 확장됨에 따라 화석연료와 연결되지 않고 유사한 독립적 인 금융 시스템의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은 세계무역과 기후변화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침묵입니다. 투자은행의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지구를 가로질러 상품을 운송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탄소배출과 공장지대 설립을 위한 산림 및 정글파괴, 자연을 희생하여 끊임없이 이익을 얻고자 하는 공장의 설립으로 인해 엄청난 환경의 파괴를 가져다줍니다. 세계 무역에서 추진되는 식량(특히 육류)의 비생산적인 대량 생산은 토양, 산림 및 강과 바다에 장기적인 피해를 줍니다. 또한 식품 및 제품의 생산 및 유통에 대한 산업적 접근 방식은 지역 경제를 파괴하고 전례 없는 부의 집중을 조장하였습니다. FFF공동체는 시민들에게 이 파괴적인 악몽을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을 최초로 제공합니다.

 

결론

우리는 미디어와 토론회에서 지구를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들의 관행을 바꾸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대부분의 배출량은 소수의 다국적 기업에 집중되기 때문에 그것을 먼저 해결해야 하며 우리 자신의 삶에 탄소 발자국이 적기 때문에 세상을 구하고 있다고 순진하게 생각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논쟁을 목격하곤 합니다.

개인의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데 지나치게 근시안적인 사고를 가지게 된다면 우리 경제의 깊은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위험이 있지만 매일 행동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특정 원칙을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우리는 세계 문화를 변화시키기 시작하고 그 문화는 즉, 최선의 길은 두 가지 전략을 결합하는 것입니다. 개인적 선택을 지역 사회의 선택으로 만들고 그 지역사회를 대체 경제의 기초가 될 경제 단위로 만드는 것입니다.

화, 2020/03/1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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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한반도 비상국가체제는 남북의 극단적 적대에 기인하고, 그러한 적대의 극단성은 동서진영 대립과 분단국가 대립의 중첩 속에서 탄생했다 하였다. 그런데 진영 대립은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의 동구권 붕괴와 소련 해체로 이미 종식되었다. 극단적 적대가 생겨나는 원인의 한 축이 이미 무너졌던 것이다. 그 시기는 공교롭게도 한국의 87년 민주화 이후 과정과 맞물렸다. 이 시점은 한국 사회가 후기근대 상황으로 접어드는 때로 볼 수 있다. 대항쟁으로 표출되었던 민주화 동력이 온전히 발휘되었다면 한반도 비상국가체제 종식의 계기를 분명히 마련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다. ‘마의 순환고리’는 그 과정에서 작동기제가 해체되어가고 민주화는 순탄하게 정상 상태에 이르기까지 진행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했던 시기에 상실한 기회에 대해서 엄정한 복기(復碁)가 필요하다.

실패의 싹은 87년 민주화 동력의 분열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분열한 절반(김영삼 지지세력)은 이후 구체제 세력과 합류했다(3당 합당). 이 상황은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었고, 이는 ‘마의 순환고리’가 재작동하는 텃밭이자 온상이 되었다. 구체제에 합류한 김영삼 정부는 노태우 정부보다 오히려 더욱 강경한 대북정책을 고수했는데 그 배경에는 경쟁 정치집단(김대중 지지세력)에 대한 견제논리가 강하게 작동했다. 대북 온건정책이 경쟁 세력의 집권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그리하여 냉전 해체에 적극적 행보를 보였던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은 사라지고 공격적인 흡수통일 노선이 들어섰는데, 이러한 대북 강경책은 북한을 선군주의와 핵무장에 올인하도록 밀어부쳤다. 이런 상태에서 국가부도와 IMF 사태라는 돌발적 상황에서 출범한 김대중 정부와 그를 이은 노무현 정부는 과감한 대북화해정책(햇빛정책)을 폈지만 결국 장기적 실효를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 없다. 북은 민주정부 10년의 기간에도 핵무장 노선을 결코 놓지 않았고(2006년 1차 핵실험), 한국의 냉전대결 세력은 이를 ‘마의 순환고리’를 재작동시키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했다. 냉전 세력은 남(南)의 화해정책과 대북 지원이 북의 핵 개발을 조장했다고 공격했고 이는 민주정부의 신자유주의 양극화 추세 억제 실패와 맞물려 민주진영 집권 10년은 급격한 지지 하락으로 마감되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이런 배경에서 출현하여 이윽고 87년의 민주화 동력을 철저히 소진시키고 ‘마의 순환고리’를 다시금 완벽하게 부활시키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마의 순환고리’는 완성되어 극점에 이르는 순간, 자체의 과잉으로 붕괴를 자초하는 역사적 패턴을 보여주었다. 결국 ‘국정농단’이 박근혜 탄핵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지만, 그 배경에는 독선·독단에 따른 여러 실정(失政)에 대한 불만이 겹겹이 쌓여 있었고, 그중에는 무대책이 된 대북 강경책의 완벽한 실패(2~5차 핵실험과 SLBM, ICBM 등 발사체 개발에 무대책으로 일관) 역시 중요한 일부를 이루고 있었다. 박근혜 체제가 오작동을 거듭하면서 비상국가체제의 절대무기인 ‘종북’, ‘이적’ 공세가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촛불혁명은 제2의 87년과 같은 상황을 조성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사라진 것이다. 그 결과 촛불을 끄자며 한때 가두를 요란하게 메웠던 태극기 – 성조기 집회와 일베식 폭력성은 오히려 구 보수의 자폐적 기이성을 노출했을 뿐, 어떠한 확장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대외 상황에 대한 인식은 87년보다 진전되었다. 87년 당시 급변하는 대외 상황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은 매우 미약한 것이었다. 반면 이제는 냉전 종식에 이어 미국 일극주의도 종식되었다는 것, 이제 한국의 활로는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넓게 보는 데서 찾아진다는 사실이 상당히 널리 공유되는 일반적 인식이 되었다. 전방위로 활발해진 SNS 소통, 정보 생산과 유통에서의 민주화가 낳은 한 귀결이기도 하다. 새로운 번영의 기회가 유라시아 길로 열리고 있고 세계는 일극체제가 아닌 다극체제로 변모하고 있음을 이제는 일반인들까지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87년 당시 놓치고 말았던 ‘마의 순환고리’를 이윽고 끊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다시금 보다 좋은 여건에서 확보하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물론 구질서의 해체과정에는 불확실성과 새로운 위기가 수반되기 마련이지만, 그러한 상황일수록 내적으로 결집된 힘의 주동적 역할이 중요하게 된다. 이 점에서 세계가 경탄한 촛불혁명의 주역인 각성한 시민사회, 그리고 그 힘 위에서 특별히 강한 정통성을 갖게 된 새 정부가 들어선 현재의 대한민국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중대한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 만큼의 내적 역량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그렇듯 중요한 변화의 핵심고리가 ‘코리아 양국체제’의 정립으로 모아진다고 주장해왔다. 한반도에 양국체제가 정립될 때, 그동안 운명처럼 보였던 ‘마의 순환고리’도 ‘비상국가체제’도 이윽고 종식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코리아 양국체제

대한민국(ROK)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은 1991년 9월 유엔에 동시 가입한 두 개의 국가다. 2018년 7월 현재 한국의 수교국은 190개국, 조선의 수교국은 161개국이며, 동시 수교국은 157개국에 이른다. 국제법상, 현실의 국제관계상, 여러모로 한국과 조선은 두 개의 별개의 국가로 존재하고 있다. 이 객관적이고 엄연한 사실을 두 나라가 사실 그대로 받아들여, 서로의 주권과 영토를 상호 인정하고 정상적인 수교관계를 맺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코리아 양국체제다.

그렇지만 그렇듯 당연한 현실이 현실로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남북의 현 상태다. 이 두 국가는 서로 상대의 주권과 영토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를 다만 자기 주도의 통일에 의해 소멸시켜 흡수할 대상으로 바라볼 뿐이다. 양국 헌법 모두 현재의 남북은 하나의 나라가 분단된 상태임을 전제하고 있고, 그 분단을 극복하여 통일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명시하고 있다. 그로 인한 남북 간의 극심한 적대와 긴장, 사회 전 부면의 비정상 상태를 1970년대 초반 이후 한국 지식계에서는 ‘(남북) 분단체제’라 불러왔다. 따라서 ‘분단체제’란 그 자체가 부정과 극복의 대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이 개념으로 한반도의 부정적 상태를 정의(定義)했던 편에서 분단체제론이란 분단체제 비판론이지 않을 수 없고, 분단체제의 부정과 극복의 목표는 통일에 맞추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점에서 기존의 분단체제 비판론은 여기서 주장하는 양국체제론과 크게 다르다. 양국체제론은 1991년 유엔 동시가입 이후 한반도 남북이 두 개의 별개의 국가가 되었다 보고, 이 두 국가의 상호 인정과 평화공존을 우선적 목표로 삼는다. 양국체제론은 80년대 말~90년대 초반의 미소 냉전 해체와 동서 해빙, 그리고 1991년의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같은 해 12월의 <남북기본합의서>의 교환을 남북 분단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그 이전까지의 ‘분단극복론’은 현실적 가능성이 희박한 저항적 당위 차원의 논의였다. 엄혹한 냉전대결 상황에서는 남의 북진(또는 멸공)통일론과 북의 조국통일론의 지배력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소 냉전 해체와 19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을 계기로 부정적 의미의 ‘분단체제’를 긍정적 의미의 ‘양국체제’로 전환시킬 현실적 가능성이 열렸다. 양국체제론은 두 국가의 통일을 당면한 우선적 목표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었을 때야만 오히려 남북의 극단적 적대관계를 실제적으로 해소하는 단초가 열릴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반면 분단체제 비판론은 반독재 투쟁에서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결국 분단체제의 강박적 적대가 오히려 강화되는 순환기제의 일부가 되고 말았다. 그 순환기제의 작동구조를 살펴보기로 하자.

분단체제에서는 남북 상호간과 남북 각각의 내부에 여러 겹의 적대적 대립이 서로 맞물려 순환적으로 상승한다. 코리아전쟁 종전 이후 공식적으로 정전(停戰) 상태에 있는 남북은 전쟁이 미완·미결의 상태로 남아 있다고 본다. 잠시 쉬고 있는 상태일 뿐, 전쟁은 심리적으로 내연(內燃) 중인 것이다. 따라서 전시적(戰時的) 비상 상태를 유지하려는 관성이 지속된다. 상대의 동향에 대한 강박적·전시적 피해의식이 자꾸만 증폭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한 상황은 남과 북이 거울처럼 방향이 바뀌어 있을 뿐 꼭 같은 형태다(거울 동형).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러한 전시적 강박상황에서 통일 세력과 반통일 세력의 구분이 그다지 선명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코리아전쟁 자체가 남북 쌍방 모두 통일을 하겠다고 벌였던 일이다. 이러한 전시적 비상 상태 의식은 권력의 비상한 독점 즉 강력한 독재체제의 심리적 온상이 되고, 이러한 상태는 사회 전 부문으로 관철된다. 권력. 부, 기회의 독점이 전시적 비상 상황을 빌미로 지극히 폭력적으로 정당화되기 때문에 그 독점과 독재는 기형적으로 심화되기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비상국가체제’다. 따라서 비상국가체제는 분단체제의 핵심축이기도 하다. 실제 전쟁 상태가 아님에도 이러한 ‘전시적 비상 상태’가 지속될 때 이에 대한 반발과 비판이 강력하게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이러한 문제적 현실에 대한 비판은 지극히 정당한 것인데, 이 비판 세력이 제기해왔던 논리의 주요 흐름이 분단체제(비판)론이었다 할 수 있다.

한국의 역대 독재정권은 이러한 비판을 (대부분 사실이 아니었음에도) ‘이적’ ‘용공’ ‘친북’으로 몰아(=조작하여) 탄압해왔다. 이들이 통치체제를 비판하면서 주장하고 있는 통일이란 결국 대치하고 있는 적의 편에 동조하는 통일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이러한 상황은 정치체제의 차이만 있을 뿐 남과 북에서 동형적으로 진행되어왔다. 분단체제란 이러한 분단체제 비판 세력을 식량으로 먹어치우면서, 즉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탄압하면서 자신의 몸체를 괴물처럼 더욱 키워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반면 독재정권이 비판 세력을 ‘적’으로 상정하고 탄압하는 한, 극악한 탄압을 당하는 비판 세력 역시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독재정권을 ‘적’으로 상정하고 맞서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독재정권은 비판 세력이 자신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이적단체’에 불과한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강변해왔다. 이로써 상호를 적으로 간주하여 투쟁하는 상승적 순환 구조가 남과 북의 정권 사이에서, 그리고 남 내부와 북 내부 각각에서 형성되고 교차하면서 가속도를 얻어 작동한다.

이러한 악순환의 상승압이 ‘마의 순환고리’와 ‘비상국가체제’의 에너지원이 되었고, 87년 이후에도 30년 가까이 이 상승적 악순환은 끊기지 않았다. 이제 촛불혁명이 그 악순환을 비로소 끊어낼 기회를 주고 있다. 그 핵심은 양국체제의 정립에 있다. 민주정부 시기 10년의 대북 화해정책 역시 그러한 상승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여러 성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오히려 반발 세력의 강한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이들 반대 세력은 민주정부의 남북화해정책을 친북적 분단체제 종식 운동으로 간주하면서 이에 맞서는 대대적인 반대운동을 일으켰다. 분단체제론의 담론 구조 안에서는 남북의 어느 정치 세력이든 당면 목표로 분단 종식 즉 통일을 앞세울 때 (또는 그렇다고 간주될 때) 분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어떤 통일인가 누구를 위한 통일인가 매우 복잡하고 갈등적인 논란이 시작되고 이러한 상황 자체가 적대의 상승적 악순환을 부채질하게 된다.

이렇듯 작동하는 분단체제의 순환적 상승압은 비상국가체제를 강화해 사회 전반의 정상화를 결정적으로 가로막아왔다. 그런 비정상의 장기지속의 결과가 이번 촛불집회에서 적시된 ‘적폐’일 것이고, 그 적폐를 청산해갈 핵심고리가 양국체제 정착이 될 것이다. 비상국가체제의 역사가 길었던 만큼 적폐청산의 목록이 길다. 그러나 목록이 길어질수록 무엇이 핵심 목표인지 모호해질 수 있다. 병증(病症)의 핵심 원인을 정확히 찾아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양국체제 정착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소멸 또는 부재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결국 우파 흡수통일론이 우세한 여론 장(場)을 말하고, 그 핵심에는 코리아전쟁 시의 ‘미완의 북진통일’을 완수하자는 생각이 있다. 이 역시 분단체제론의 일종, 즉 우파 주도의 분단체제 종식론, 즉 통일론이라 할 수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해소는 이번 촛불혁명의 가장 중요한 성과인데, ‘정상 상태’란 기울어진 비정상이 기울어짐 없는 정상으로 회복됨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한 기울어짐 없는 정상 상태란 분단체제적 사고관습으로부터의 탈피를 전제한다. 분단체제론의 인식장(認識場)에는 반드시 좌와 우의 기울기가 있기 때문에 그 운동장은 좌로든 우로든 기울게 되고, 그러한 기울어짐은 반드시 상호 적대의 순환적 상승압을 고조시킨다. 두 번의 ‘마의 순환고리’가, 그리고 지난 60년의 한국 정치사가 그렇게 작동해왔다. 이러한 악순환은 양국체제가 안정적으로 정립될 때야만이 근본에서 끊긴다. 분단체제의 인식장이 해소되는 것이다.

촛불혁명 이후의 현재 상황에서 양국체제 정립을 주도할 일차적 힘은 대한민국에 있고 그 최대의 수혜자도 대한민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양국체제의 정립으로 비상국가체제의 비정상을 종식시켜 정상 상태에 이를 때 세계의 찬사를 받았던 대한민국의 민주적 동력은 만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측 역시 생존의 강박에서 벗어나 정상적 내부 개혁의 경로를 차분히 개발해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렇듯 상호 적대와 긴박한 생존의 강박에서 벗어날 때 남북이 협력하여 공영을 모색할 수 있는 영역은 오히려 넓게 열릴 수 있다. 한반도의 잠재력이 억압에서 해방되어 다극 구도 상황의 유라시아와 태평양으로, 세계로 힘차게 뻗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양국체제론에 대해 예상되는 반대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반통일론, 분단고착화론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는 앞서 살펴본 분단체제 비판론 중에서도 강경한 입장에서 제기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반대편에서의 비판인데 ‘북한’을 절대로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또 다른 강경론이다. 이 입장은 북한 정권 타도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을 주장한다. 이 두 입장은 극과 극의 반대로 보이지만 한반도 두 국가 상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뒤집어져 있을 뿐 구조적 동형이다. 양국체제가 평화통일의 전망을 실제적으로 열어준다는 점이 잘 설득된다면 이러한 반대들이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겠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두 번째 입장은 지난 촛불 정국에서 등장한 ‘태극기 – 성조기 집회’와 중첩되는 것으로 이후 양국체제론에 대한 적극적 반대 집단으로 나설 수 있다. 그러나 촛불 정국에서 보았듯 이 집단의 여론 확장력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아울러 이러한 두 입장을 강경하게 견지하는 층은 양적으로 그다지 크지 않고 세대적으로 점차 축소되어가는 추세다. 젊은 층일수록 이러한 입장에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래는 양국체제의 편에 있다.

양국체제론은 우선 대한민국에서 진보와 보수를 떠나 합리적 다수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을 크게 완화함으로써 한국의 경제적·문화적 활로 개척에 큰 기회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사라지고 일베식 보수가 크게 위축된 여건은 양국체제 정립을 위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흔치 않은 역사적 기회를 주고 있다. 관련 헌법 조항(3, 4조) 개정 등을 포함한 적절한 절차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이룬 후, 이 합의를 북측(조선)과 주변국으로 확장해감으로써 한국은 동아시아 – 태평양 평화 정착의 주요 행위자로 능동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이러한 이니셔티브에 대해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설 명분이 어떤 주변국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북측 역시 대한민국의 국민적 합의에 바탕을 둔 행보에 굳이 반대하고 나설 이유가 없을 것이다.

분단체제에서는 남북이 서로 적대할 수밖에 없다. 반면 양국체제에서는 남북이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한다. 이 상태로 진입해야 주변국과 얽힌 긴장과 마찰의 매듭도 풀 수 있다. 정부와 민간을 막론하고 진보, 보수를 불문하고 영향력 있는 여론 주도자들은 통일에 대한 미사여구를 풀어내기 좋아한다. 그러나 통일을 정말 진지하고 현실적으로 생각한다면, 순서는 반대임을 알아야 한다. 통일보다는 상호 인정과 평화공존이 우선이다. 통일을 우선적으로 내세우는 한, 현실의 긴장과 대립은 오히려 격화된다. 단추를 거꾸로 채울 수는 없다. 상호 인정과 평화공존을 우선 과제로 명확히 설정하고 흔들림 없이 이 목표에 충실할 때, 통일은 비로소 어느 날 현실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코리아 양국체제는 그저 ‘대북정책’에 그치지 않는다. ‘분단체제에서 양국체제로의 체제전환’은 ‘촛불혁명’이 진정 혁명이었음을 입증하는 최종 증거가 될 것이다. 그동안 분단체제의 현실이야말로 총체적 비정상의 근원이었다. 촛불이 제기한 ‘적폐청산’ 역시 양국체제 정립을 분명한 목표로 할 때 제대로 순서와 방향을 잡아 차근차근 성사해낼 수 있을 것이다.

 

촛불혁명과 체제전환: 분단체제에서 양국체제로

2016~2017년에 걸쳐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민주정부를 출범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촛불혁명’이라 불려온 거대하고 평화로웠던 대중행동이 진정 ‘혁명’의 이름에 부합하는 결과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체제(앙시앙 레짐)에서 새로운 체제로의 ‘체제변화’를 수반해야 할 것이다. 이 장은 한국 사회가 이루어야 할 그러한 ‘체제변화’를 ‘분단체제에서 양국체제로의 이행’으로 집약해보았다.

이러한 체제변화는 한국 현대사에서 적대적 분단 상황이 강요해왔던 ‘비상국가체제’를 종식시키고, 4·19, 87년 민주항쟁과 같은 거대한 민주적 열망의 분출을 독재체제로 반복적으로 회수하는 ‘마의 순환고리’를 구조적으로 끊어내, 한국 사회를 새로운 질적 단계로 접어들게 할 것이다. ‘분단체제’가 남북이 서로 상대의 주권과 존재를 부정하고 적대적 긴장을 고조시킴으로써 항시적 비상 상태의 ‘비정상’을 영구화해온 반면, 양국체제에서는 남북이 서로의 주권과 존재를 인정하여 이러한 항구적 비상 상태의 근거를 해소함으로써 양국 모두가 ‘정상 상태(normal state)’로 진입해갈 조건을 조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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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0/04/16-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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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논쟁의 중심에 있는 임미리 교수의 칼럼은 한국사회에 대한 단초적인 스냅사진일뿐.

소모적인 논쟁으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다가오는 총선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된다!

“정작 빼고 찍어야 할 대상은 미래한국당이라는 좀비를 급조해낸 거시기집단이다.”


<출처: 국민일보>

활자판 경향신문의 오랜 구독자로서 1월말 당시 놓쳐버린 임미리 교수의 칼럼을 다시 읽어 보았다. 촛불연대의 정신을 잃어버린 문재인 정권을 출범부터 격하게 비판해온 필자의 평소 생각과 임교수의 비판 내용이 너무나 유사하여 오히려 감사하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를 어찌하랴! 그의 마지막 멘트 ‘민주당만 빼고 찍자”는 앞서 기술한 비판적 지성의 내용을 쓰레기로 만드는 자해행위이자, 역사적 흐름에 대한 배신이며, 기득권 체계에 시달려온 일반시민들을 우롱하는 기만적 행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을.

앞에도 언급했지만, 지난 2-3년 간 보여준 민주당의 잘못과 패착에 대한 임교수의 지적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는 눈앞에 보인 장면을 스냅사진으로 찍으면서, 현재의 시점을 이루는 역사적 맥락을 놓치고 있으며,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촛불혁명의 원인이 되었던 수구의 기득권 체계를 묵인하고 옹호하는 오류를 범한 셈이다.

이 지점에서 현대중국의 분기점을 이룬 ‘서안사건’과 주역인 ‘장학량’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도올 선생은 지난 해 공중파의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오늘의 중국을 만들어 낸 일등공신은 신해혁명의 주역인 손문 선생도 아니고, 중국공산당을 이끌어 온 모택동 주석도 아닌 서안사건의 주인공 ‘장학량’이라고 분명하게 언명하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지만 요약해서 적어 본다. 군국주의자들이 이끄는 일본제국의 군대가 만주와 중국의 중북부 연안지역 대부분을 점령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당의 장개석 총통은 중국민족의 해방을 위한 항일투쟁보다는 팔만대장정 끝에 연안으로 피신해 간 공산당의 괴멸을 위하여 민족전쟁이라는 명분으로 민족내부의 투쟁에 군사적 역량을 집중한다.

마침 그의 휘하에서 서부지역 부사령관직을 맡고 있던 ‘장학량’은 1936년 말 장개석이 서안을 방문하자, 그를 구금시키고 연안의 주은래를 초빙하여 국공합작을 성사시킴으로써 소모적인 민족내부의 싸움을 항일해방전쟁으로 전화시키는데 성공한다. 덕분에 중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과정에서 주요한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승전국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장개석이 남경으로 복귀한 이후 1990년 초까지 오랜동안 가택연금 상태에 놓이게 된다.

역사적 계기를 마련한 ‘서안사건’을 거울삼아 우리 시대의 정말 중요하고 핵심적인 현안이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현재의 민주당 모습이 1936년 당시 정신나간 장개석의 국민당 정권과 흡사 닳았다고 인정하자. 그런데 국민당 정권이 패착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며 장개석의 처형을 요구했던 일부의 주장을 그대로 실행했더라면 겉잡을 수 없는 대혼란으로 중국대륙 전체가 일제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식민지화 되었을 것이 명약관화했던 상황이다. 당시에는 항일투쟁을 위한 ‘국공합작’만이 정답이었다.

이제 다가온 총선을 앞두고 ‘서안사건’ 당시 일본 군국주의자들에 비견되는 현재 한국사회의 매판적이며 반역사적 세력이 누구인지를 꼼꼼히 헤아려 볼 일이다.

일제강점기 기간에 친일부역한 세력들의 뿌리와 잔재,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워싱턴에 팔아먹고 해방 이후에도 새로운 시대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짓밟으며 독재를 자행하였던 이승만과 추종세력, 일본군국주의와 괴뢰 만주정부의 행태를 완벽하게 재현시킨 박정희 유신독재와 하수인들, 광주를 피로 물들이며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등장한 신군부 세력과 이에 협조를 다한 속물 언론과 지식인 그룹들, 현재로 사법적 처벌을 기다리고 있는 부패하고 무능한 이명박근혜 정권과 이를 태동시킨 수구정당 등이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가는 우리의 발길을 가로막았던 정치적 장애물들이었으며, 다행스럽게 한국 민중들의 역량에 의해 4.19 혁명, 10.26 사건과 80년의 봄, 6월 민주화 그리고 촛불시민혁명 등으로 이미 역사적 평가를 받은 셈이다.

다가온 총선과 관련하여 지난 70여 년 민족의 역사를 더럽힌 정당이름을 역사적 순서로 나열해 보면, 자유당 공화당 민정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등이다. 더구나 촛불시민의 요구에 따라 도입되어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되는 연동형 비례제 도입의 취지를 무참하게 짓밟고 이를 악용하여 좀비 정당인 미래한국당을 태동시킨 거시기 집단들이야말로 상종을 못할 무뢰배들로 총선을 통하여 이제는 용도가 폐기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던가?

촛불정부를 자임하고 출범한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지난 2-3년 동안에 보여준 기대 이하의 행보는 혹독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해방 이후 대부분의 선거역사에서 그랬듯이, 자연스레 그간의 업보에 대한 심판은 총선을 통하여 주권자인 시민들의 집단지성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잘못했다 해서 지난 역사를 그르친 적폐의 집단을 묵인하고 오히려 옹호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서안사건’이라는 극적인 계기를 통하여 참략자 일본군대를 격퇴하기 위한 ‘국공합작’이 이루어지며 중국이 회생하였듯이, 역으로 2020년 한국사회가 민주당의 패착을 빌미로 이명박근혜의 잔당들이 다시 정치를 좌우하는 암흑의 시대로 되돌아 갈수는 없는 일이다.

임미리 교수의 민주당에 대한 비판의 진정성과 본심을 그대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의 마지막 멘트는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빼고 찍어야 할 대상은 미래한국당이라는 좀비를 급조해낸 거시기 집단이다”.

월, 2020/02/17-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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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코리아 남쪽의 대한민국(ROK)의 눈에는 코리아 북쪽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이라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눈에는 남쪽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없다. ‘코리안 블라인드(Korean blind)’다. 한쪽 눈만 뜬 채 상대를 맹점 지대에 넣어놓고 서로가 상대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헌법에는 ‘한반도’에 오직 대한민국만이 존재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헌법에는 ‘조선반도’에 오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만이 존재한다. 헌법만이 아니라 두 나라의 어느 공식적인 법과 제도에도 상대는 국가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한번쯤은 마리오트 맹점 실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혹시 안 해본 분이라면 이번 기회에 직접 한번 해보시기 바란다.(아래 그림) 먼저 왼쪽 눈을 가리고 오른쪽 눈으로 그림의 십자 표시를 응시한다. 그리고 눈을 멀리 가까이 하여 거리를 조정하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검은 원이 사라져버린다. 다음에는 반대로 오른쪽 눈을 가리고 왼쪽 눈으로 그림의 검은 원을 응시하면서 거리를 조정하다 보면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 십자가가 사라져버린다.

지금 코리아 남북의 두 나라가 꼭 마찬가지 아닌가. 그러나 두 눈을 다 뜨고 바라보면, 멀리 보든 가깝게 보든, 뒤집어 보든 바로 보든, ‘코리아’에는 엄연히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2019년 현재 세계 157개국이 한국(ROK)과 조선(DPRK) 두 나라를 모두 인정하여 동시 수교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코리아 남북의 두 나라는 서로 상대를 부정하고 있으니 세계인의 시각에서 볼 때는 매우 이상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코리아 양국체제란 이제는 두 코리아 모두 정상적인 세계인의 시각을 갖자는 것이다.

코리안 블라인드는 있는 것을 없다고 우기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거꾸로 없는 것을 있게 만드는 놀라운 신박을 부린다. 아직도 여전히 1980년 5월의 광주 시민항쟁 대열에 북에서 보낸 수백 명의 특수부대(소위 ‘광수’)가 있었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 망상 허언에 증거가 있을 리 없다. 5·18 당시 계엄사령부와 미국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맹목의 외눈박이들에게는 증거가 중요하지 않다. 필요하지도 않다. 오직 ‘그래야만 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외눈박이 맹목의 당위가 있을 뿐이다. 존재를 부정하는 북과 연결시켜야 5·18 광주를 부정할 수 있고, 그래야 광주 시민들에 대한 피의 살육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있는 것을 없다고 하고,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외눈박이 맹점 놀음은 이렇게 내통하고 있다. 이러한 지록위마(指鹿爲馬) 뺨치는 외눈박이 맹점 놀음으로 오랜 세월 독재체제를 정당화해왔다. 심지어 세월호 참사 항의도 촛불집회도, 북과 연결시켜 압살하려 했던 공작들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코리아 양국체제란 외눈박이 넌센스, 블라인드 기만술로 지탱해온 독재체제, 독재심리를 영구히 종식시켜 정상체제, 정상심리가 확고히 자리 잡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난 70년 코리아 남북에 독재체제, 독재심리가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양측이 ‘내전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전 상태’란 하나의 주권, 하나의 영토를 누가 차지하느냐를 놓고 벌이는 필사의 전쟁 상태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절박하고 극단적인 심리 상태다. 그래서 상대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불법단체’나 ‘반란집단’으로 간주한다. 내전체제는 전쟁체제고 비상체제다. 6·25 전쟁 이후 남과 북 사이가 그랬고, 남과 북 내부가 그랬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남이든 북이든 독재의 위협을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전쟁 상태, 내전 상태이므로 독재가 정당화된다. 내전 상태로 맞선 남북이 ‘상응(相應)하여’ 자신의 독재를 정당화해온 체제를 1970년대 이래 한국의 민주화운동권에서는 ‘분단체제’라 불러왔다. 이러한 ‘내전 상태=분단체제’가 지속되는 한, 순수한 통일 의지와 통일 열망은 오히려 내전 격화와 독재 강화의 불쏘시개로 역용(逆用)되었을 뿐이다.

오늘날 코리아가 이러한 ‘내전 상태=분단체제’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다. 하나의 주권, 동일한 영토를 놓고 벌이는 필사의 전쟁 상태를 끝내야 한다. 그러자면 한국과 조선 두 국가가 서로의 주권과 영토를 인정하고 공존해야 한다. 코리아 남북은 이미 70여 년 동안 두 개의 주권국가다. 국가주권의 구조적 작동논리는 혈연적 정서논리와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이해하고 대처해야 마땅하다. ‘한 민족 한 형제인데 두 나라가 웬 말이냐’는 식의 민족정서·혈연논리만으로는 내전 상태의 두 나라, 두 주권 간의 적대와 대립을 결코 해소할 수 없다. 1950년 코리아전쟁부터가 한 민족에 두 나라가 있을 수 없다는 논리의 귀결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남북이 서로의 주권과 존재를 인정해야만 통일로 가는 길이 열린다는 것은 사실은 너무나도 상식적이고 당연한 말이다. 상대를 인정하기를 기필코 거부하면서 우리는 둘이 아니니까 반드시 합쳐야 한다고 우겨봐야 하나가 될 리 없다. 갈등만 더 증폭될 뿐이다. 누가 보더라도 서로 합칠 생각이 없는 둘의 모습이다. 반대로 상대를 진정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서로 충분히 확인한 연후에 이제부터 어떻게 합칠 것인가를 이야기해보자고 한다면, 이제야 비로소 누가 보더라도 정말 합칠 생각이 있는 둘의 모습이다.

분단체제에서는 남북이 서로를 결코 인정하지 못한다. 분단체제에서 가능한 입장이란, 남과 북 어느 한쪽만을 인정하든지(남과 북 당국의 공식입장), 아니면 양자 모두를 부정하는 입장(둘 모두에 비판적인 입장)일 수밖에 없다. 반면 양국체제에서는 남북이 서로를 마땅히 인정하게 된다. 시늉이나 속임수로서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상대가 더는 자신의 영토와 주권을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서로에게 확고해져야 한다. 그것이 코리아 양국체제다. 그때서야 통일의 길은 비로소 열린다. 하나가 되자고 하면 오히려 하나가 되자는 둘이 우선 분명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고 애당초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하나가 되자고만 해왔던 것이 오히려 분란과 갈등을 키워왔다. 코리안 블라인드를 걷어내고 둘임을 인정해야, 하나가 되자는 양편의 진실성이 입증된다. 오직 이 길을 통해서만 통일은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코리아 양국체제는 한 민족 두 나라 공존을 통해 평화적 통일에 이르는 길이다.

이 책의 제목을 ‘한반도 양국체제’가 아니라 굳이 ‘코리아 양국체제’라 한 이유를 눈 밝은 독자라면 이미 눈치 채셨을 것이다. 반도 남쪽의 대한민국(ROK)에서는 ‘코리아 반도(Korean peninsula)’를 ‘한반도’라 부르지만,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RPK)에서는 ‘조선반도’라고 부른다. 양국체제는 한국과 조선 두 나라 모두를 인정하고 위하자는 것인데, 그 이름을 한국에서만 쓰고 있는 용어로 ‘한반도 양국체제’라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름부터 남북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공통의 것을 쓰자는 취지이다. 또 ‘코리아’라고 하면 지리적인 의미의 ‘코리아 반도’만이 아니라 코리아 반도와 전 세계 도처의 코리아 사람들(Korean people), 코리아 민족(Korean nation)을 포괄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앞으로 양국체제가 정착되어 양국이 합의하여 양국을 통칭하는 합의된 언어를 찾기까지는 아쉬운 대로 ‘코리아 양국체제’라는 용어를 쓰기로 한다.

 

기회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첫 가능성은 이미 지난 1989~1991년 사이에 한번 열렸던 바 있다. 미소(美蘇) 냉전 종식 국면에서 한국(ROK)과 조선(DPRK)은 유엔에 동시 가입했고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조선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 합의할 수 있었다. 노태우 정부는 양국체제 전망에 적극적이었고, 북 역시 북미 수교를 타진하면서 남북 공존을 통한 체제 보장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코리아에서의 냉전대결 국면을 연장시키려는 국내외 세력은 ‘북한 조기붕괴론’을 유포하면서 양국체제의 전망을 가로막았고, 소련·동구권 붕괴에 이은 ‘북한 붕괴’의 위협으로 궁지에 몰린 북은 핵 개발에 올인하게 되었다. 1987년의 민주화 동력이 하나로 뭉쳐 1987년의 대선에서 정통성이 강한 민주연합정부를 수립했다면, 이러한 내외의 방해를 물리치고 이미 1990년대에는 코리아 양국체제가 출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민주화 동력은 분열되었고 양국체제의 전망은 ‘북한붕괴론’과 ‘북핵위기론’의 공세에 밀려 너무나 빨리 닫히고 말았다.

그러나 거의 30년 만에 코리아 양국체제의 새로운 가능성이 다시 열리고 있다. 2016년 말 한국의 촛불혁명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 그리고 2017년 조선의 핵 완성이라는, 각각이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세 요소가 한 시점에 합류하면서 그 조건이 형성되었다. 한국의 촛불혁명은 1960년 4·19와 1987년 민주항쟁이 미처 이루지 못했던 나라의 민주적 정통성의 필요충분조건을 비로소 충족시켰다. 촛불혁명은 남북 대결과 적대의 경사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소시켰고 그 힘이 온전히 민주정부로 이어졌다. 반쪽국가가 아닌 온전한 한 국가로서 안정된 정당성과 자신감을 갖춘 것이다. 그렇기에 2017년 북미 간 전쟁 위기의 고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남북 화해, 북미 화해의 길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 결실이 2018년부터 남북미 간 정상회담으로 맺히기 시작했다.

1989~1991년 소련·동구권 붕괴 이후 미소 냉전이 종식되었지만 당시 미국은 곤경에 빠진 조선(DPRK)을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붕괴를 위한 압박과 제재를 강화했다. 그 결과 ‘북핵문제’가 본격화했다. 북핵 개발과 제재·압박의 벼랑 끝 줄다리기는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되어 2017년까지 계속됐다. 이 30년의 위기와 긴장 속에 북미 간만이 아니라 남북 간의 적대와 대결의식도 고조되어왔다. 이 적대와 대결의 고조를 한국의 촛불혁명이 먼저 끊었다. 그리고 조선의 ‘핵 완성’ 선언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북핵문제의 해결은 북핵 완성을 통해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그 역설은 미국 주류 정치의 국외자인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이 북미 대화의 파트너가 되면서 현실화의 실마리를 찾았다. 2018년 벽두부터 남북이 극적으로 화해의 물꼬를 텄다. 촛불혁명을 통한 한국의 자신감과 핵 완성을 통한 조선의 자신감이 당당하게 만날 수 있었다. 양국체제의 기반이 형성된 것이다. 이어 한국이 북미 간 협상을 성공적으로 중재함으로써 영영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남북미 간 화해의 협주가 가능해졌다. 이제 남북미는 종전과 평화협정, 그리고 한조·북미 수교와 한반도 비핵화를 일정에 올려두고 있다. 코리아 양국체제가 바로 우리 코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두 번째 기회

이렇게 다시 열린 코리아 양국체제의 두 번째 기회는 매우 소중하다. 그러나 이 기회를 어떻게 해서든 다시 한번 닫아버리고 싶어 하는 냉전대결 세력도 여전히 남아 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제야말로 북한체제를 끝장낼 때’라고 소리를 높이고 있는 세력들이 그렇다. 정확히 1990년대 초반의 북한 붕괴 – 북핵 위기 – 전쟁위기론의 복사판이다. 1991년 12월의 역사적인 <남북기본합의서>에 남북 양측 총리가 서명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한국 보수 언론에서 ‘북핵위기론 – 북한붕괴론’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채 2년 반이 지나지 않은 1994년 5~6월, 코리아는 전쟁 일보 직전의 초비상 위기 상태에 빠졌다. 그 후 양국체제의 전망은 굳게 닫히고 말았다. 냉전대결 세력은 이 순간 코리아의 상황을 다시금 그때와 꼭 같이 몰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과 30년이 지난 촛불 이후 현재의 상황은 너무나도 다르다. 1992~1994년의 반전의 핵심은 당시 냉전대결 세력이 한국의 여론의 방향을 남북 화해에서 남북 적대 기조로 뒤집어놓는 데 성공한 데 있었다. 당시는 남북대결체제를 남북공존체제로 밀고 나갈 지형과 중심이 아직 충분히 형성되어 있지 못했다. 노태우 정부는 군부연장 세력인 데다가 허약했고, 87년 시민항쟁을 이끌었던 민주화 세력도 분열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 반쪽은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냉전대결 세력과 합쳐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냉전 세력과 합친 민주화운동 세력의 한 축이 ‘북한붕괴론 – 북핵위기론’에 동조했다. 그래서 쉽게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고 말았고, 그러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촛불 이후 오늘날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우선 촛불혁명이 30년 전 만들어진 ‘기울어진 운동장’을 소멸시켰다. 그리고 촛불혁명 이후 들어선 정부의 민주적 정통성이 과거 노태우 정부에 비해 훨씬 강하다. 촛불혁명의 주도 세력의 일부가 냉전대결 세력과 야합할 가능성도 없다. 오히려 냉전대결 세력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자체를 거부하고 폭력적이고 억지스런 대중동원을 고집하면서 합리적 보수층의 마음으로부터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국제적 상황 역시 차이가 크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가능성이 처음으로 열렸던 1990년대 초반은 냉전 승리 이후 미국 일극(一極)주의의 전성기였다. 1990~1991년 사이의 ‘걸프전쟁’을 돌이켜 보면 이 당시 전 지구상에 미국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또 ‘북한붕괴론’이 먹히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 엄청난 소련도 무너졌는데 ‘북한’이 따라서 무너지지 않겠느냐는 여론이 국내외에 상당히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완연히 다르다. 미국 일극주의란 냉전 종식 이후 단지 10년의 에피소드였을 뿐이었다. 세계가 미소 양극으로 나뉘어 필사적인 세계내전을 벌이던 시대는 영영 끝났다. 세계사는 이제 일극주의가 아니라 주요 지역 문명권들의 공존체제 형성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이 대표하는 미영 문명권은 이제 그러한 주요 문명권 중 하나일 뿐이다. 현금의 미중 갈등은 세계가 어느 한편에 서야 했고 어느 한쪽이 망해야 끝났던 미소 냉전과 본질적으로, 근본적으로 다르다. 앞으로도 밀고 당김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제 미래는 여러 문명이 협력하여 공존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데 세계의 이해가 모아지고 있다. 1990년대 초의 ‘북한붕괴론’이 실제와 동떨어진 엉뚱한 이야기였다는 것도 이제는 분명해졌다. 동아시아의 조선, 중국, 베트남은 소련·동구권과는 다른 역사적·문명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소련·동구권 붕괴 이후에도 독자적 근거 위에서 존속할 수 있었다. 유럽 기원의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세계내전적 폐쇄회로와는 다른 문맥에서 동아시아 역사를 새롭게 볼 때가 되었다. 이렇듯 30년 전과 상전벽해(桑田碧海)처럼 크게 달라진 세계 상황에서 30년 전과 꼭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사람들에게 귀 기울일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제 코리아 양국체제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세계사적 상황이 무르익은 것이다.

필자가 양국체제론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은 촛불혁명 전이었다. 필자는 21세기 들어 세계사의 큰 흐름이 코리아에 아주 유리한 기회를 주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냉전의 족쇄를 풀고 아메리카 – 태평양권과 유라시아권을 이어주는 절묘한 위치에서 새 도약의 호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한국의 정치상황은 자꾸만 과거로 역주행하고 있었다. 왜 그럴까? 너무나도 오래 지속된 코리아 내전체제, 분단체제 때문이었다. 특히 1990년대 초반 양국체제의 첫 기회가 깨진 이후 줄곧 심화되어온 북핵문제와 남북·북미 간 대결 기조가 문제였다.

이 역주행의 순환고리를 깨뜨리고 벗어나야만 했다. 당시의 현실이 아무리 어둡고 비관적으로 보이더라도, 현실이 이렇게까지 나빠진 원인을 정확히 알면 반드시 빠져나갈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문제만 해결하면 코리아엔 큰 기회가 온다고 믿었다. 오랜 고심과 궁리 끝에 그 족쇄를 푸는 핵심 방법이 코리아 양국체제 정립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촛불혁명 이전이었다. 그러나 당시는 어둠이 너무나도 짙었던 오밤중이었지 않은가?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하더라도 과연 그 족쇄 풀기가 실제로 언제나 가능할까? 까마득하지 않은가? 그냥 상상으로 끝나는 것 아닌가? 그럴 때마다 나는 그때보다 더 어둡고 더 힘들었던 87년 이전의 시간들을 생각했다. 설혹 나 혼자의 외침이라 하더라도 누군가는 시작해야 할 일이 아니겠냐고 자신을 북돋았다. 그런 막막한 기분으로 양국체제를 이야기해가던 중, 촛불혁명이 일어났다. 변화가 이렇게 빨리 그리고 그렇듯 거대한 규모로 시작되리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그 엄청난 에너지 속에서 양국체제론은 현실의 발판을 얻고 한층 구체화될 수 있었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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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20/01/07-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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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한 친구에게 도덕과 외교 정책에 관한 책을 집필했다고 전하자, 그녀는 “아주 짧은 소개서 이겠구나”라고 빈정거렸다. 이러한 회의론은 일반적이다. 놀랍게도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미국 대통령의 도덕적 견해가 그들의 외교 정책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참고할 만한 서적은 거의 없다.

저명한 정치 이론가인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는 1945년 이후 미국의 국제 관계론 대학원 교육과정에서 “도덕적인 논쟁은 관행적으로 행해지는 외교적 예의 규칙과 어긋난다”고 서술했다.

회의적인 근거는 명백해 보인다. 역사가들이 미국적인 예외주의와 도덕주의에 대해 기술했을 때, 냉전시대 미국 ‘봉쇄’ 정책의 아버지로 알려진 조지 F. 케넌(George F. Kennan)과 같은 현실주의 외교관들에 의해 오랫동안 미국의 도덕주의-법률주의 전통이 추락된 것을 경고해 왔다.

국제 관계는 무정부 상태의 영역이다. 질서를 규정하는 세계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는 각자의 이해를 방어해야 하고, 생존이 위태로울 때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가치를 지닌 선택이 없는 곳에는 윤리가 있을 수 없다. 철학자들이 “당위는 가능을 예시한다”고 말하듯이 불가능한 일을 하지 않는다고 타인을 나무랄 수는 없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윤리와 외교정책을 결합하는 것은 칼을 선택할 때 잘 드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좋은 것을 고르거나, 빗자루를 사면서 잘 쓸리는 것보다 비싼 것을 묻는 것과 같은 멍청한 실책이며, 따라서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판단할 때는 단순히 외교정책이 도덕적인지 묻기보단 그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는 일부 장점이 있는 반면 어려운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함으로써 회피하기도 한다. 세계 정부가 부재한다고 해서 모든 국제질서도 부재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부 외교 정책 사안은 국가의 생존과 관련이 있지만 대부분 사안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여러 차례 전쟁에 참전했지만 미국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전쟁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인권, 기후 변화, 인터넷 사용의 자유에 대하여 다양하고 중요한 외교 정책을 선택하는 과정에는 전혀 전쟁이 수반되지 않는다.

실제로, 외교 정책 사안 대부분은 엄격한 국가 이성(raison d’état)이라는 공식의 적용이 아니라 선택을 요구하는 조건에서 가치와 균형을 맞추는 과정을 포함한다. 어떤 냉소적인 프랑스 관료는 언젠가 필자에게 “저는 프랑스 이익에 좋은 것을 좋은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도덕은 무관합니다”고 말했다. 그는 그의 발언 자체가 도덕적인 판단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 것 같았다. 만일 그가 “모든 국가가 각국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려고 한다”고 말하려 했다면 상식적인 논리 또는 싱거운 언급을 중복한 셈이다.

개별적이고 상이한 상황에서 국가 지도자들이 국익을 어떻게 정의하고 추구할 지 선택하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이다.

더욱이 우리가 좋든 싫든 미국인들은 끊임없이 대통령과 외교 정책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부당한 요청을 했다는 전화 통화가 익히 알려지기 이전부터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행실은 뉴스 톱기사에 오르면서 이론적인 질문으로부터 도덕성 및 외교 정책에 대해 회의를 일으켜 왔다.

예를 들어 2018년 자말 카슈끄지(Jamal Khashoggi) 사우디 반체제 기자가 이스탄불 영사관에서 살해된 뒤, 트럼프는 사우디 왕세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잔혹한 범죄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를 무시했다고 비난받았다.

진보 성향의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는 카슈끄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비양심적인 거래이고 사실 관계를 무시한 것”이라고 기술했고, 보수 성향의 월스트리트저널(Wall Street Journal)은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이나 린든 존슨(Lyndon Johnson)처럼 철저한 실용주의자로 간주되는 대통령을 포함해 역대 어느 대통령도 공개적인 성명에서 가치와 원칙을 준수하는 미국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사설에서 전했다.

석유, 무기 판매, 지역 안정 모두 국익과 관련된다. 다른 한편 많은 사안과 관련하여 우호적인 가치 및 원칙 또한 국익에 중요하다. 어떻게 그것들을 조합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윤리와 관련하여 현재 미국 외교정책에 대한 다양한 판단은 무계획적이고 사고 수준이 형편없으며 현재 논쟁의 다수가 트럼프의 성향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필자가 새로 집필한 저서 «도덕은 중요한가?»에서는 트럼프의 일부 행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통령들이 보인 전례가 있는 행동임을 보여줌으로써 이러한 판단을 바로잡고자 했다.

어떤 통찰력 있는 기자는 필자에게 “트럼프는 특별하지 않지만 극단적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미국인들에게 때론 외교 정책을 판단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 우리는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과 같은 대통령을 도덕적으로 명료한 진술을 했다며 칭송한다.

마치 잘 표현된 선한 언급이 도덕적인 판단을 하는데 충분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과 조지 W. 부시(George W. Bush)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적절한 수단을 선택하지 않은 선한 의도는 도덕적으로 잘못된 결과를 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베르사이유 조약이나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때 우리는 단순히 결과를 통해 대통령을 판단한다.

몇몇은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킨 리처드 닉슨을 칭찬하지만, 그는 미국인 21,000명의 생명을 희생시켜서 체면치레를 위해 ‘그럴듯한 휴전’을 이끌었다. 이는 패배의 길에서 덧없는 휴전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훌륭한 도덕적 추론은 의도, 결과, 수단을 저울질하고 균형을 맞추면서 입체적인 성향을 지녀야 한다. 외교정책은 이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또한, 도덕적인 외교 정책은 타국에서 핍박을 받거나 반체제 성향을 지닌 집단을 돕는 것과 같은 특별하게 뉴스 가치가 있는 행위 외에 도덕적 이익을 조장하는 제도적 질서를 유지하도록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전쟁 때 헤리 S. 트루먼(Harry S. Truman)대통령이 핵무기를 사용하자는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의 권고를 따르기 보다 교착 상태와 국내 정치적 불이익을 수용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와 같은 도덕적인 결단을 포함하는 것이 중요하다.

셜록 홈즈(Sherlock Homes)가 말한 유명한 발언처럼 짖지 않는 개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올해에도 여전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외교정책 논쟁에서 윤리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외교 정책을 판단하기 위해 항상 도덕적인 추론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인지해야 하며, 해당 과정을 더 잘 해내기 위해 꾸준히 학습할 필요가 있다.

 

Joseph S. Nye (조지프 S. 나이)

하버드 대학 교수이자 ‘소프트 파워”의 저자로 잘 알려진 인물, “도덕은 중요한가? 루스벨트에서 트럼프까지 대통령과 외교 정책”라는 신작 출간예정

출처: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2020

화, 2020/01/28-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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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냉전시대 오랜 기간 남북에 존속했던 ‘반쪽국가의식’은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양국의식’ 쪽으로 이동했다. 그래서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이 이뤄진 1991년을 양국체제로의 전환이 최초로 시작된 때라고 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아직 불충분하고 불완전했다.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모두 그러했다.

우선 남북 유엔 동시가입을 전후하여 한국은 소련, 중국과 수교할 수 있었지만 미국은 북과 수교하지 않았다. 미국의 강한 영향 아래 있는 일본도 북과 수교하지 않았다. 유엔 동시가입을 통해 남북의 수교국은 증가했지만,10 북의 체제 안정에서 핵심적인 미국과의 수교가 이뤄지지 않았고 일본 역시 미국을 따랐다. 국제적으로 두 개의 코리아는 공인되었지만, 그 출발은 불완전하고 불균형한 것이었다.

기본합의서에서 이루어진 내적 상호 인정 역시 불완전했다. 상호 인정을 한다고 하면 과연 상대를 어떤 수준에서 인정하는지가 중요하다. 특히 남북과 같이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여 전쟁을 했고, 그 전쟁을 아직도 끝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합의서 전문에서는 상호 인정하는 “쌍방”의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 규정했다. 그 결과 3장 25조에 이르는 합의서 전체에서 합의 양 당사자를 서로의 정식 국호로 부르지 못하고 ‘쌍방’ 또는 ‘남과 북’이라 애매하게 지칭했다. 합의서 말미에 서명자로 ‘대한민국 국무총리 정원식’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 총리 연형묵’이라 써서 딱 한 번 양국의 국호가 언급되었을 뿐이다. 물론 그조차 하지 못하고 “서로 상부의 뜻을 받들어. 이후락 김영주”라고 끝맺었던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에 비하면 분명 발전은 발전이라 하겠다. 그러나 아직 불완전한 발전이었을 뿐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란 앞서 분석한 ‘반쪽국가의식’에 정확히 상응하는 표현이다. 흔히 <남북기본합의서>는 1972년 체결된 <동서독기본조약>을 준용한 것이라 한다. 그것은 사실이지만, 상호 인정의 수준에서 <남북기본합의서>가 <동서독기본조약>에 크게 못 미친다는 사실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동서독기본조약>은 서문, 10개조, 그리고 2개조의 추가조항 전체에서 조약 쌍방을 정식국호인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이라 분명히 칭하고, 두 국가가 주권과 영토를 상호 인정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구절은 <동서독기본조약>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필자가 독일의 동방정책과 관련해서 이와 그나마 가까워 보이는 표현을 조사해본 바로는, 1969년 10월 28일 서독 수상 빌리 브란트(Willy Brandt)의 연방정부 성명 중에 “독일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하더라도 그 국가는 상호 외국이 아니며, 그 상호관계는 특수한 종류인 것”이라 했던 것이 처음이었다. 그 성명의 핵심은 독일에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이라는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는 것이었다.11 다만 그 두 국가는 서로 외국이 아닌 특수관계라는 뜻이었다. 먼저 국가로서 인정하면서, 그다음에 그 두 국가 간의 관계는 특수하다 한 것이다. 하나의 민족이 이룬 두 개의 국가(one nation, two states) 간의 관계이니 특수하다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동서독은 기본조약 이후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일반 수교국 대사보다 격이 높은 장관급 대표를 상호 파견했다. 그런데 <남북기본합의서>는 그와 전혀 다르다. 국가로서 인정하지도 않았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고 거듭 확인까지 하고 있다.

당시 상황을 냉정하게 보면 비록 냉전이 종식되었다 하더라도 미국이 북을 인정할 의도가 없는 상태에서 남북 양측만으로 종전(終戰)을 이루기 어려웠다. 아직 전쟁도 공식적으로 끝마치지 못한 상대를 국가로 인정한다는 것은 앞뒤가 바뀐 일이기도 하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미국과 별개로 독자적으로 북과 종전처리를 하고 상호 국가 인정까지 밀고 나갈 만큼의 의지와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위기에 처한 당시의 상황을 우선 모면하는 데 급급했지 장기적인 비전을 차분히 재정립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듯 남북 모두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제약된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낮은 수준의 합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남북기본합의서>가 <동서독기본조약>에 비해 상호 인정의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불완전한 합의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면 문제가 없다.12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으면 그것을 극복해갈 방향도 정확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낮은 수준에서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거꾸로 뒤집어 그것이 마치 오히려 더욱 높은 수준의 심오한 합의의 결과였던 것처럼 생각한다면 문제가 된다.

실제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표현은 그러한 혼란을 유발할 여지가 없지 않다. ‘남북은 국가 대 국가로 서로를 (아직 능력이 부족하여)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뜻이 높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남북은 애당초 두 국가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이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읽으면 이 구절은 마치 ‘우리가 지금 하나는 아니지만 결코 둘일 수 없다’라는 높은 민족적 이상에 남북 대표가 의기투합한 결과, 곧바로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통일로 직행하려는 속마음이 이심전심으로 표현되었던 것처럼 과잉 해석될 수도 있다.13 이런 혼란에 빠지면 남북관계가 어디만큼 왔고, 어디가 한계이며,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올바른 방향을 잡기 어려워진다.

지금까지의 분석에서 분명해진 사실은 다음과 같다. 기본조약을 통해 동서독은 서로를 주권국가로서 인정함으로써 ‘반쪽국가의식’을 극복하고 ‘양국체제’로 확실히 이행한 반면, 남북의 기본합의서는 서로 체제는 인정하되 국가로서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애매한 절충에 그쳐 ‘반쪽국가의식’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또 1972년 <동서독기본조약> 체결 이후 미국은 1974년 동독과 수교했다. 반면 <남북기본합의서> 이후 미국은 북의 수교 요청을 거부했다. 동방정책의 서독이 동독과 미국의 수교에 적극 나선 반면, 북방정책의 한국은 조선과 미국의 수교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 성사시킬 의지나 능력이 없었다. 그 이후의 차이 역시 분명하다. 양국체제로의 전환을 확실히 한 동서독은 활발하고 광범위한 교류와 협력을 이루었지만, 낮은 수준의 애매한 절충에 머문 남북관계는 기본합의서 채택 이후 채 1년이 못 돼 흔들리기 시작해 곧 파탄에 이르고 말았다.

지금까지 한반도 남북의 ‘반쪽국가의식’이 ‘양국의식’으로 바뀌어갔던 첫 번째 역사적 계기를 살펴보았지만, 그러한 전환은 결코 순조롭지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남북에 뿌리 깊은 반쪽국가의식이 자리 잡게 된 데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냉전시대 두 코리아는 코리아 바깥에서 볼 때 각각 세계의 반쪽으로부터만 지지·인정을 받았던 반쪽국가였고, 코리아 내부에서 볼 때도 남북은 서로 상대를 부정한 채 소멸시켜 흡수해야만 온전한 하나가 된다고 생각하는 반쪽국가였다. 이 같은 내외의 반쪽의식은 남북관계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화해 대신 대결과 적대가 증폭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고, 그 결과 한반도는 2중으로 고통받는 안팎곱사등이 신세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반쪽의식은 87항쟁, 냉전 붕괴, 유엔 동시가입, 기본합의서 채택이라는 연쇄적 대사건들을 통해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크게 약화됐다. 그 자리에 점차 상대를 인정하는 양국의식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양국체제로 가는 길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그 전환은 아직 불완전했고, 짧은 시간에 그 길은 금방 닫히고 말았다.

양국체제의 최초의 싹이 그렇듯 빨리 꺾이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이 원인 분석은 매우 중요하다. 앞서 보았듯 분단체제는 너무나 오랜 시간 지속되어 어느덧 익숙해진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이 체제가 다른 체제로 바뀌는 데는 많은 어려움과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 글을 쓰는 시간, 양국체제로의 두 번째 진행이 이뤄지고 있고, 그 조건이 첫 번째에 비하여 여러모로 좋은 상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성공이 자동적으로 보장되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안팎의 장애가 아직 남아 있다. 그렇기에 첫 번째 열림이 실패했던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양국체제를 향한 두 번째 항로에 대해 가장 도움이 되는 지침이 될 것이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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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1/29-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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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의 주택 중간가격은 1백만 달러(약 11억 6천만 원)를 훌쩍 넘었다(“Life on the Dirtiest Block in San Francisco,” New York Times, October 8, 2018). 트위터와 우버 같은 세계적인 기업의 유치를 집값 폭등의 탓으로 흔히 돌리곤 한다. 그곳엔 일자리가 있고 일자리를 얻는 이들이라면 거주할 곳이 필요하니까. 그러나 지금의 터무니없이 오른 가격은 그것로만으로는 충분히 설명이 안 된다. 그렇다면 그 가격을 누가 왜 어떻게 올렸을까? 거기에 누가 일조하고 그 큰 그림을 누가 그렸는가? 그 큰 그림의 승자와 패자는 누구인가? 그것을 따져 보는 것이 이번 편의 목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미국의 부동산 시장에서 적용된 ‘자유주의 정책’과 직결되어 있다.

이를 위해 힌트를 주는 장면 하나를 먼저 보자.

 

임차인과 사모펀드

#장면 1.

2018년 11월 어느 날 일군의 시위대들이 캘리포니아의 산타모니카(Santa Monica)의 한 회사 사무실 앞으로 몰려가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그 회사는 뉴욕에 본사를 둔 사모펀드 블랙스톤(Black Stone)의 지부이다. 이들은 ‘법률개정안 10(proposition 10)’―일종의 임대차 보호법안 통과―이 좌절되자 이에 항의하기 위해 여기로 모여든 것이다.(“Protesters arrested during Santa Monica rally over rejection of Prop 10,” ABCNews7, November 8, 2019). 도대체 사모펀드와 임대법이 무슨 관련이 있기에 그럴까?

“집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구호를 들고 임대차보호법지지 시위를 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민들 <출처: AP>

그 답은 간단하다. 사모펀드 블랙스톤이 바로 주택임대사업을 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런데 보통의 임대업이 아니니까 문제다. 영국의 매체 가디언은 캘리포니아 주에서의 주택 가격과 임대료가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매체는 이것을 ‘성층권 가격’stratospheric price이라고 묘사했다. 얼마나 높이 치솟았으면 성층권이라는 것일까?) 서민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는데 그 원흉이 바로 블랙스톤을 위시한 사모펀드라고 콕 짚어 지적하고 있다.(“How California public employees fund anti-rent control fight unwittingly,” The Guardian, October 23, 2018). 도대체 미국의 임대주택 시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것은 블랙스톤을 위시한 사모펀드가 어떻게 서민들의 삶을 작살냈는지를 살펴보는 것을 의미한다.

 

부동산 업계의 최강 제국, 사모펀드 블랙스톤

스티브 슈워츠만(Steve Schwarzman) 블랙스톤 회장은 2015년 가을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에 “블랙스톤이 현재 세계 제일의 부동산 소유주다”라고 선언했다.(“Blackstone is now ‘the largest owner of real estate in the world’,” Business Insider, November 16, 2015). 그의 말은 허튼 소리가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제시한 다음의 도표를 보라. 그야말로 부동산업계의 제국 중 제국이 바로 블랙스톤이다. 도표는 2010년에서 2015년 사이에 부동산 업계에서 선두를 달리는 10개의 사모펀드를 보여준다. 블랙스톤은 그 중 최강으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도표: 부동산시장의 선두 그룹 사모펀드 현황>

설명: 2010년~2015년 동안 부동산 투자 총액으로 본 사모펀드 선두 그룹의 순위. 블랙스톤이 약 470억 달러(약 55조 원)로 단연 업계 1위이고 그 다음이 스타우드, 론스타가 있다. <출처: 파이낸셜타임스>

어느 정도라 회장이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일까? 블랙스톤은 2012년 7월 기준 미국 14개 지역에 86억 달러 들여 44,000채의 주택을 구입했고, 2019년 6월 현재 17개 지역에서 80,000채를 보유한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부동산업체다. 그런데 부동산은 원래 블랙스톤(Black Stone)의 주력 사업이 아니었다. 했다 해도 상업용만 조금 손댔을 뿐이다. 그러나 2012년부터 전략을 확 바꿨다. 부동산에 주력했고 그것도 상업용 보다는 일반 주택에 꽂혔다. 그런데 그것도 주택을 사고 파는 것이 아닌 임대사업으로.

블랙스톤은 가격이 대폭락한 지역의 은행에 압류된 집들을 대거 매입해서 되팔기보다는 임대사업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채택했다. 알다시피 사모펀드는 현금총알(loads of cash)이 두둑한 재력가들(deep-pocketed investors)로 이루어진 자본 제국이다. 게다가 이 제국은 ‘임대주택증권’(rental-home-backed security)을 발행해 더 많은 자금을 끌어 들여 헐값에 내 놓은 주택들을 아귀처럼 쓸어 담았다.

 

그라운드 제로는 애리조나 주, 피닉스

그런데 블랙스톤이 맨 처음 임대사업 시작한 것은 캘리포니아가 아닌 애리조나 주의 피닉스(Phoenix, Arizona)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피닉스가 2008년 이후 주택가격이 정점에서 2011년 무려 60%나 떨어진 대폭락 지역이기에 그렇다.(“The Future of Housing Rises in Phoenix: High-tech flippers such as Zillow are using algorithms to reshape the housing market,” Wall Street Journal, June 19, 2019). 둘째, 막대한 이익을 노리는 사모펀드에겐 그저 수십 채의 주택 매집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대량매집이 훨씬 남는 장사이니까. 대량매집의 최적지가 바로 피닉스였다. 왜냐하면 피닉스는 뉴욕과 보스턴 같은 대도시가 아니니 원래부터 주택가격이 높았던 지역이 아니다. 대도시는 아무리 거품 붕괴로 주택 가격이 떨어졌다고 해도 피닉스처럼 대량매집이 불가능하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지 반대로 되기는 어렵다. 그처럼 부동산 초짜들이 사업에 손을 대기에는 원래 가격이 낮았던 데다가 거품까지 꺼져 대폭락까지 한 피닉스만한 데가 없었다.

블랙스톤을 위시한 대형 임대주택투자자(큰손)들은 피닉스를 발판(그라운드 제로)으로 하여 조지아 주 아틀란타(Atlanta, Georgia)와 텍사스 주 달라스(Dallas, Texas)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이제는 미국 전역에서 30만 채 이상을 싹쓸이 하고 있다. 물론 캘리포니아도 포함된다. 몸집을 불렸으니 총알은 탄창에 두둑한터. 그 때문에 로스엔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압류된 주택들의 대량매집도 가능하게 됐다. 게다가 이들은 주택공급이 부족한 시장을 선택해서 지역 건축업자들과 결탁해 자신들만을 위한 주택을 짓는 이른바 ‘핀셋 건축’ 꼼수 부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The Future of Housing Rises in Phoenix: High-tech flippers such as Zillow are using algorithms to reshape the housing market,” Wall Street Journal, June 19, 2019).

 

2008년 이후는 사모펀드 세상

2008년 이후는 그야말로 사모펀드의 세상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월가의 대형투자은행은 어느 정도는 감시의 대상이 된 듯 보였다. 적어도 그런 것처럼 시늉을 냈다. 그러나 월가에 기반 한 사모펀드는 거기서조차도 완전히 빗겨 나있다. 그래서 설사 밑천이 별로 없어도 초저금리 거래가 가능해 얼토당토않은 사업 구상도 현실화 할 수 있었다. 수익률에 걸신들린 투자자들이 냄새를 맡고 사모펀드로 마구 유입되었다. 감시와 규제가 없는 곳, 그것은 투기꾼들의 천국이다. 그것은 새로운 월가의 블랙홀이다.

사모펀드의 경영 전략은 매우 단순하다. 사모펀드가 부채를 안고 기업을 인수 한 후 값을 최대한 올려 매각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것을 투자자에게 배분한다. 수익이 난다는 소문이 나면 날수록 돈은 몰려들게 되어 있다. 이른바 차입매수(Leveraged Buyout). 사모펀드가 매수 대상의 자산과 수익을 담보로 은행에서 자금을 차입하여 매수합병을 하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현재 가진 돈 없어도 인수할 기업을 위해 빚을 지고 기업을 인수한다. 그러나 그 빚은 인수 대상에게 떠넘기고 바이, 바이! 망해가거나 저렴한 기업 인수한 뒤 분칠 살짝 해서 또 다른 구매자에게 팔아치운다. 거기에 비상장회사가 상장회사를 사서 합병하는 우회상장도 당연히 포함된다. 그러면 이를 주도한 사모펀드는 엄청난 수익을 창출한다. 때로 이것을 넘어 사모펀드는 매수한 회사의 직접 경영에 손을 대서 인수 기업에 “감 놔라 배 놔라”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수기업에 대한 애정을 갖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오직 목적은 수익창출. 그것도 막대한 수익창출. 수익이 나면 곧 바로 미련 없이 떠난다. 다른 먹잇감을 찾아서.

 

블랙스톤의 2인자 존 그레이 좌우명

블랙스톤은 임대주택 사업을 자회사 인비테이션 홈즈(Invitation Homes)를 통해 시행해 천문학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 그 책임자는 현재 블랙스톤의 2인자, 존 그레이(Jon Gray). “절대로 적게는 먹지 않는다. 크게 먹는다. 그것도 상상이상으로 왕창!”이라는 좌우명을 갖고 사는 월가 사람이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신부동산부호(the new property barons)’라고 칭한 그는 다음과 같이 인터뷰 한 바 있다.

“나는 성공의 취약성을 안다, 그것은 [아버지 다이달로스(Daedalus)의 경고를 무시하고 밀랍의 날개로 날다 태양에 너무 접근해 밀랍이 녹아 바다에 떨어졌다는 인물] 이카루스(Icarus)와 같다. 나는 내 무덤에 ‘그저 상당한 내부수익율(internal rates)을 올렸을 뿐’ 이라는 묘비가 적히길 원치 않는다.”(“Investment strategy: The new property barons,” Financial Times, April 4, 2016).

임대주택 사업에 뛰어들어 사모펀드 블랙스톤을 세계 부동산업계 1위에 올린 존 그레이. 그는 웬만한 수익은 성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상상이상의 수익만을 추구한다고 공공연히 천명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그가 블랙스톤의 자회사 인비테이션 홈즈를 통해 손댄 임대주택사업이다. <출처: 파이낸셜타임스>

가히 그저 고만고만한 성공은 성에 안 찬다는, 즉 확실한 대박만을 노린다는 거대 탐욕의 노출 선언이다. 그것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존 그레이의 투자 철칙: 바이(Buy), 픽스(Fix), 앤드 셀(Sell).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미국의 단독 주택 가격은 절반 이하로(40~70%) 수직 하강했다. 특히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가 심했다.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었던 대표적인 곳이기에 그렇다(왜 그곳이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었는지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거품이 갑자기 꺼지고 모든 이들이 부동산 시장에서 손을 털 때, 존 그레이는 역발상으로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즉 매매가 아닌 임대사업으로. 돈 버는 데는 가히 천재적이다. 왜냐하면 당시엔 아무리 집이 헐값에 나와도 구매할 사람들이 없었으니까. 투자처로서의 매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진짜로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대출 자격 요건이 안 돼서 못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으니까 그렇다.

이것을 간파한 자가 블랙스톤의 존 그레이다. 그는 이런 이들이 발걸음을 옮길 곳이 임대주택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자가가 아니면 월세를 살아야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니까(미국엔 전세가 없다). 그래서 그간 등한히 해 온 부동산 사업에, 그것도 전혀 해 본 적 없는 임대주택 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뛰어들자마자 바로 압류된 주택 시장의 최강자로 등극했다. 그의 예감은 적중했다. 그것을 파이낸셜타임스가 제공한 도표에 잘 보여준다. 임대주택 비율이 금융위기 이후 대폭 상승했기 때문이다. 2005년 33%에서 2014년엔 37%로 증가했다. 2014년 현재 1천 5백만 가구가 임대하고 있다. 그러면 그 이전에는 왜 임대사업이 월가의 큰손들의 구미를 당기지 못했을까? 그것은 시장규모가 작았기 때문이다. 2005년 당시에는 1천 2백만~3백만 가구만 임대해 거주했기 때문에 큰손 투자자들의 눈에 들어오지 못했다. 월가의 제국들은 적당히 먹는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 탐욕에 찌든 야수들에겐 먹잇감도 덩치가 커야 덤벼들 가치가 있으니까.

<도표: 미국 자가주택 대 임대(월세)가구 구성 비율 현황>

설명: 2005년에 임대가구는 33%인데 비해 2014년에는 37%로 4%p 더 증가했다. <출처: 파이낸셜타임스/미 인구조사국>

그레이의 임대주택 투자 전략도 사모펀드의 기본 경영 방침과 그대로 일치한다. 매수대상을 헐값에 차입매수 해서, 약간 분칠해 매각하듯, 임대주택도 개당 헐값에 대량매집해서(buy), 25,000 달러(약 3천만 원) 정도 들여 간단히 손 보고(fix), 임대(sell)하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부동산업계의 절대 강자가 되었다(“Investment strategy: The new property barons,” Financial Times, April 4, 2016; “Jonathan Gray: The Man Who Revolutionized Real Estate Investing On Entrepreneurship In A Big Company,” Forbes, October 18, 2016).

 

규제 없는 곳에 우뚝 선 망나니 제국, 블랙스톤

그런데 임대가구가 늘어난 것은 이들 사모펀드 제국들이 그린 큰 그림 때문이기도 하다. 일종의 피드백효과라 할까? 이제 막 붙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니까. 이들이 주택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았기 때문에 그렇다. 대량매집 자체가 주택 가격 올려놓은 일차적 효과 가져온다. 그리고 대량매집으로 공급도 줄어든다. 그러면 실수효자들의 ‘내 집 마련’ 꿈은 요원해 진다. 천정부지로 오른 집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러니 임대가구가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미국만이 전 세계에서 ‘나 홀로’ 경기가 좋다고 말들 하는 데 앞의 사실의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일반 서민들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것은 왜일까? 규제 없는 곳에 어김없이 제국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즉 자유주의 정책은 망나니를 양산할 뿐이다. 이것의 한 가지 예를 지금 캘리포니아를 위시한 미국의 전 지역에서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모펀드의 난동으로 미국의 집값이 하늘로 치솟는 폭등을.

 

내부의 적에게 강탈당한 영토

모든 전쟁은 궁극적으로 영토를 차지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미국의 사모펀드는 이 전쟁에서 백전백승의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자. 사모펀드는 미국의 외부의 적인가? 내부의 적인가? 내부의 적이 승승장구하는 곳엔 자멸이 다음 수순이다. 하긴 서민들의 주거안정성이 파괴되는 마당에 그런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그러니 미국은 더 이상 외부의 적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호들갑은 떨지 말기를….

그렇다면 사모펀드가 집값만을 올려 서민들을 괴롭히고 있을까? 결코 아니다. 모든 제국은 하나를 주면 열을 달라하는 법. 하나에 만족하는 신사 제국은 없다. 다음은 임대업에 뛰어든 사모펀드에 의해 피를 보고 있는 임차인들의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미리 살짝 결론만 말해주고 이 글을 마치고 싶다. 사모펀드가 대량매집 하는 데 아무런 규제가 없듯이, 임대업을 하는 데도 아무런 규제가 없다. 오직 그들이 맘대로 활개를 칠 수 있게 만든 자유주의 정책들만 있을 뿐이다.

 

<참고자료>

“Blackstone is now ‘the largest owner of real estate in the world’,” Business Insider, November 16, 2015.

“Life on the Dirtiest Block in San Francisco,” New York Times, October 8, 2018.

“How California public employees fund anti-rent control fight unwittingly,” The Guardian, October 23, 2018.

“Protesters arrested during Santa Monica rally over rejection of Prop 10,” ABCNews7, November 8, 2019.

“Jonathan Gray: The Man Who Revolutionized Real Estate Investing On Entrepreneurship In A Big Company,” Forbes, October 18, 2016.

“Investment strategy: The new property barons,” Financial Times, April 4, 2016.

“The Future of Housing Rises in Phoenix: High-tech flippers such as Zillow are using algorithms to reshape the housing market,” Wall Street Journal, June 19, 2019.

수, 2020/01/0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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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

2016~2017년의 촛불 이후 70여 년 전 코리아 남북의 분단 이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이에 따라 통일을 향한 새로운 길도 함께 열리고 있다. 이 새로움의 의미가 무엇인지 통일에 관한 자유와 책임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숙고해보고자 한다. 무엇에 대하여 ‘새로운 시대’인가를 먼저 밝혀두어야 하겠다. 신시대와 차별되는 구시대란 무엇인가? 지난 70여 년의 코리아 남북의 분단과 적대의 시대다. 새로운 시대란 그 70년 적대와 대립을 종식시키고 공존과 평화를 일구어가는 시대를 말한다.

그러나 새로운 남북 공존과 평화의 시대에서 자유와 책임을 생각하자면, 의당 그 전제와 배경이 되는 분단과 적대의 시대에서 자유와 책임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먼저 살펴보아야 하겠다. 새로운 시대란 전혀 새로운 무엇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시대의 굳은 껍질 안에서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숙성된 후 움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장은 이 같은 작업을 두 개의 의미심장한 텍스트에 대한 분석을 통해 시도해보려 한다. 그 텍스트란 작가 최인훈의 소설 『광장』(1960)과 통일운동가 김낙중의 전기(傳記) 『탐루』(2005)다. 두 텍스트 모두 남북 분단과 전쟁, 그리고 냉전체제 – 분단체제의 가혹한 체험을 증언한다. 그 속에서 개인이 겪는 자유와 책임, 그에 수반하는 고뇌와 수난의 경험만이 아니라, 이를 강요했던 남북의 사회와 국가의 성격과 특징까지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 두 텍스트에 대한 분석 이후, 비로소 우리는 최근 새롭게 열리고 있는 평화와 공존의 시대의 자유와 책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장에서 고찰하려는 자유와 책임이란 일차적으로는 한국(ROK), 그리고 더 넓게는 북(DPRK)까지를 고찰 범위에 넣은 한반도(Korean peninsula)에서의 그것이고, 아울러 1945년 해방에서부터 최근까지의 시간대 안에서 한반도, 한반도의 두 국가, 두 사회, 두 체제 안에서의 자유와 책임이 되겠다. 자유와 책임의 문제를 구체적이고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고찰해보겠다는 뜻이다.

우선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두 텍스트의 큰 맥락과 함의를 개괄해본다.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과 전기 『탐루』의 주인공 김낙중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해방 이후 분단과 전쟁의 체험이 그들의 삶을 규정한다. 모두 남한 출신(이명준 – 서울, 김낙중 – 파주)이지만 고뇌 끝에 월북하여 북의 체제 역시 체험한다는 점, 그리고 분단과 전쟁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같다. 그들의 평화적 소망(所望)은 현실의 벽에 부딪쳐 고난과 좌절을 맛본다. 그들이 모두 20대 때 문리대 학생이었다는 점도 같다(이명준은 철학과, 김낙중은 사회학과). 물론 차이점도 있다. 전쟁 포로 신분이 된 이명준은 남과 북 모두의 현실에 절망하여 남과 북 모두를 버리고 중립국행을 선택하지만, 김낙중은 남과 북 모두를 끝까지 껴안고 ‘평화통일’을 위해 평생 이 땅에서 분투한다.

그러나 이 차이는 일견 커 보이지만 표면적일 수 있다. 이명준의 ‘중립국행’이 상징하는 것은 ‘통일된 나라의 중립국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명준과 김낙중의 캐릭터의 차이도 빼놓을 수 없다. 이명준이 불행한 현실 앞에 늘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반면, 김낙중은 고통 속에서도 시종 희망적이고 진지하다. 그러나 이 차이 역시 부차적이다. 이명준은 남북의 현실을 보며 점차 회의적이고 냉소적으로 변해갔던 것이지 애초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명준은 인도로 향하는 중립국행 선박에서 바다에 투신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꿈과 현실의 너무나도 큰 괴리를 상징한다고 하겠다. 김낙중은 이명준이 생을 마감할 즈음 자신만의 사명을 분명히 자각한 활동에 들어간다. 김낙중은 실재 인물, 이명준은 가공의 캐릭터지만, 묘하게도 두 인물은 하나의 인물인 것처럼 시간적으로 중첩되고, 릴레이처럼 이어진다.

물론 『광장』은 실화가 아닌 소설이고, 『탐루』는 실화인 전기다. 그러나 이 두 텍스트의 역사적 사실성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광장』은 소설이지만, 해방 이후 남북의 정국, 전쟁, 그리고 포로수용소에서 중립국을 택한 전쟁포로 등 모든 소재와 배경이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다. 이 소설이 4·19 혁명 발발 6개월 후에 첫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 역시 이 소설의 사실성을 또 다른 각도에서 입증해준다.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오랜 시간 ‘말할 수 없었던 사실’의 소설적 진술이었던 셈이다.

오직 4·19라는 혁명적 공간 안에서만 출현하고 발화(發話)될 수 있었던 사실이었고, 그리하였기에 출간 즉시 그토록 큰 호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명준은 최인훈이라는 작가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character)이고, 김낙중은 실존하였고 여전히 생존해 있는 현실의 인물(person)이라는 차이는 물론 분명한 것이다. 1936년 출생인 최인훈이 이명준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1960년은 그의 나이 불과 스물다섯 때다. 1960년의 자신(최인훈)을 해방 직후 전쟁까지의 시간대, 즉 10여 년 이전의 시간대에 투사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1950년의 이명준은 1960년 최인훈의 지식수준, 역사감각을 갖춘 캐릭터로 창조되었던 것이고, 따라서 이명준의 인식 세계에는 어느 정도 사후적인 것(즉 60년대의 인식)이 불가피하게 섞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소설적 사후성을 실시간적으로 완벽하게 보완하는 것이 김낙중의 『탐루』다. 김낙중은 1931년 생으로 1950년 20세의 나이로 전쟁을 맞는다. 소설 속 이명준의 1950년의 나이는 25~26세 정도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명준 – 김낙중의 순으로 이 장을 풀어가는 것은 여러모로 맞아 떨어진다. 나이순으로도 그러하고, 이명준이 생을 마치는 1953~1954년 즈음 김낙중은 색깔이 뚜렷한 자신만의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명준과 김낙중은 모두 ‘자유혼’의 보유자다. 억압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현실을 바꾸기 위해 현실의 벽에 몸을 내던진다. 이 부딪침이 이들 ‘자유혼’의 자유 행사 방식이다. 그러나 그 자유는 거듭 좌절한다. 진정한 자유를 꿈꾸었던 이명준에게 좌절을 넘어서는 궁극적 방식은 자살을 통한 현실 부정이다. 반면 김낙중은 좌절하고 또 좌절해도 또다시 일어나 부딪친다. 그에게 자유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는 이 자유의 주체를 개인만으로 국한하지 않았다. 남북의 민족 전체로 확장해서 생각했다. 김낙중의 처절한 고난사를 읽어갈 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감상은 단순한 경이로움이 아니다. 공포와 두려움을 수반하는 경이로움이다. 칸트가 말했던 ‘숭고(sublime)’에서 그와 비슷한 느낌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무거울 뿐 아니라 두려운 그 사명을 스스로 짊어지는 모습, 이것이 자유인 김낙중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책임이었다. 자신과 남북의 동포 모두에게 향하는 책임.

그러나 그 책임의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김낙중은 북에서 한 번, 남에서 네 번 간첩으로 몰렸다. 그때마다 참혹한 고문을 당하고 도합 18년의 투옥을 대가로 치렀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결코 당사자의 그것보다는 덜한 것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가족들은 스스로 선택한 행동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감옥 안 당사자보다 감옥 밖 가족들의 시간이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특히 ‘간첩’으로 낙인찍힌 사람의 가족들, 즉 졸지에 ‘간첩의 가족’이 되어버린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자유와 책임이란 개인만의 문제일 수 없다. 따라서 『광장』과 『탐루』는 이명준과 김낙중 두 개인, 두 자유혼의 이야기에 그칠 수 없다. ‘광장’이 절망했던 ‘죽은 광장의 사회 – 국가 – 체제’, 그리고 ‘탐루’가 고발했던 ‘눈물 없는 사회 – 국가 – 체제’가 두 텍스트의 이면에 숨어 있는, 그러면서도 두 개인보다 주동적이며 절대적으로 강한 ‘자유와 책임’의 행위자(agent)요 주역(protagonist)일 수 있다. 과연 이들은 어떠한 사회, 국가, 체제였는가. 또한 이들 사회, 국가, 체제가 표방했던 자유와 책임은 어떠한 것이었는가. 이제 이러한 의문을 아울러 추적해보자.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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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2/19-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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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아래의 칼럼은 다른백년에 자유롭게 수시로 기고하시는 김광수 박사의 글로 다른백년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선거를 앞두고 만절필동(萬折必東)과 그림책 <사자와 소년>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대의는 지켜지고, 정도(政道)를 넘어서는 감동이 이번 선거에서 꼭 연출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도 예외 없이 그런 대의존중과 감동은 없을 것이다. 선거라는 것이 언제나 그러하였듯이 정치교본에 따른 선거의미보다는, 정파의 입장과 각 정당들의 이해득실에 따른 현실의 문제로 더 압박해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비례위성정당문제이다. 애초 선거법 개정을 통해 얻고자 했던 등가성의 원칙과 소수정당에 대한 배려의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다수당이 되기 위한 이전투구만 남아있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이는 선거를 정치의 한 과정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이기고지는 게임의 문제’, ‘이익의 문제’, ‘프레임의 개념’으로 이해하다보니 필연적으로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게 되고, 이익이 걸려있다 보니 진영논리가 만들어져 네편·내편으로 나눠져 피터지게 싸울 수밖에 없고, 더해서 우월적 프레임으로 도그마(dogma)하여 승자·패자를 분명히 하려하다보니 승패만 남게 되어서 그렇다. 그렇게 상대방을 죽여야만 내가 사는 것이다.

선거가 이렇게 잔인하다.

연동되어져 진보와 보수를 떠나 과장된 언술과 정치적 선전선동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의도와 속임수는 다반사이고, 주의주장은 포퓰리즘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정도와 비(非)정도는 구분되지 않아 넘지 말아야할 선도 없다. 오직 있다면 유권자와 후보자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직립보행 진화과정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선거는 현실적인 문제이고, 권력을 향한 무한질주이다.

이를 위해 모든 정치세력들은 프레임 전쟁을 펼친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선거는 세 개의 프레임이 작동한다.

정권심판 VS. 야당심판 VS. 적폐세력 부활저지다.

전자는 미00이, 중간 것은 민00이, 그리고 제일 마지막 것은 시민사회진영의 프레임이다.

과연 어느 프레임이 더 많은 민심을 정확하게 반영하게 되고, 승리하게 될까?

당연히 긴 시간과 역사적 관점, 운동적 대의측면에서는 적폐세력 부활저지가 보다 많은 유권자들의 동의를 얻어내어야만 하지만, 현실에서는 반드시 그렇게 일치하지도 않는다.

다만, 최선을 다 할뿐이고, 그 중심에 우리가(시민사회진영과 진보적 대중정당이) 왜 이번 선거를 전략적 사고로 접근해야하는지, 그 결과 얻어진 결론이 야당심판세력과 적폐세력 부활저지세력 간의 연대여야 한다.

이유는 지금의 현 정부가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촛불시민항쟁으로 만들어진 정부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니 이번 선거는 당연히 적폐세력을 축출한 촛불시민항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이번 선거는 적폐세력들 간의 부활노림이 최고치로 도달하고 있어 이들 세력의 부활을 막는 것이야말로 너무나도 당연한 절체절명의 과제로 되고 있다.

해서 이번 선거는 누가 뭐래도 촛불시민항쟁 버전-2(version-2)이다. 그러니 각 정당들이 제아무리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야당심판이니, 여당심판이니, 대통령 국정전반에 대한 평가이니 하면서 떠들어 댄다하더라도 이번 선거의 의미와 본질이 변할 수는 없고, 적폐세력의 부활저지라는 목표가 부정될 수는 없다.

똑 같은 적용으로 제 아무리 진보적 대중정당의 독자적 후보전술의미가 커다하더라도 적폐세력 부활저지라는 목표를 넘어설 수는 없고, 연동하여 진보적 대중정당 후보당선도 적폐세력의 부활저지라는 목표를 넘어설 수는 없다.(당선시키지 말자는 의미가 아니다. 그렇게 오역하지 않았으면 한다.) 철저하게 적폐세력 부활저지에 복무하는 독자후보전술이어야 하고, 당선전략이어야 한다.

이를 위한 기준점과 관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적폐세력의 범주문제이다. 여러 기준점을 상정할 수는 있겠지만, 함의되고 합의되는 지점은 ①친일세력 ②분단세력 ③보수수구세력으로 규정할 수 있다.

둘째, 민주당에 대한 입장정리문제이다. 여러 주장들이 난무할 수는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 정당의 성격이 보수정당이라는 사실, 이것만은 변하지 않는다. 또한 분명한 것은 적어도 이 정당이 보수수구세력은 아니라는 점, 이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게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을 어떤 태도와 관점으로 대해야 되는지가 분명해졌다.

다름아닌, 이번 선거가 적폐세력의 부활저지에 있다면 이 당과는 연대의 관점에서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이다.

설명은 이렇다. 촛불시민의 이해를 제대로 대변하는 진보적 대중정당이 독자적 힘으로 적폐세력의 부활을 막아낼 수만 있다면, 위 ‘둘째’와 같은 그런 전략적 고려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현실은 진보적 대중정당이 촛불민의를 100% 반영해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 정부와 집권여당 민00에 의해 촛불민의가 일부 반영된 개혁입법이 그것조차도 적폐세력의 저항으로 좌절되고 있는 것도 한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는 민00과도 연대해 반드시 이번 선거에서 과반이상의 의석수를 차지해야만 하는 당위가 충분히 발생한다.

그렇게 개혁입법을 완성시켜 낼 수 있는 동력이 이번 선거에서 마련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이번 선거는 반드시 민00을 포함한 비(非)적폐세력들이 과반이상의 의원확보를 해내어야만 한다.

셋째, ‘첫째’와 ‘둘째’를 함의하는 선거전술의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적폐세력 후보를 제외한 모든 당선 가능한 후보에 표를 집중해주고, 정당투표는 반드시 진보적 대중정당에게 투표하는 전략적 선택이 그 정답임을 알 수 있다.

왜 그런지는 다음과 같다.

각 정당들의 셈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민00은 거의 모든 선거구에서 후보를 내서 자당 중심으로 과반이상을 목표로 하고, 반대로 진보적 대중정당은 이번 선거가 적폐세력의 부활저지에는 동의하나 자당후보의 당선도 포기할 수는 없기에 나름 전략지구를 중심으로 후보를 내려할 것이다. 후보가 그렇게 대립한다.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답은 위에서 확인한대로 적폐세력의 부활저지라는 이번 선거목표에 충실하면서도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토대강화라는 조직적 강화관점을 견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지역구에 진보적 대중정당 후보가 없을 때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민00 후보를 찍으면 되겠지만, 문제는 진보적 대중정당 후보가 있을 때이다.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적 셈법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 적폐세력 부활저지에 더 무게중심을 둘 것이냐, 아니면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토대강화 구축이라는 명분, 혹은 당원으로서 자당후보의 당선을 위해 최선의 의무를 다할 것이냐에 따라 그 선택지가 분명 달라질 것이다.

했을 때 단일화가 되면 좋겠지만,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최종 투표선택을 해야 한다.

▪기준1: 여러 차례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이번 선거의 최고 당면목표는 누가 뭐래도 적폐세력의 부활저지이다, 그래서 이 관점에서 투표행위가 이뤄져야만 하는 것은 당위이다. 제아무리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토대강화와 독자후보전술의 의의가 커다하더라도 이 선거의 의미를 뛰어넘어 설 수는 없다.

해서 감정적으로야 어느 교수의 심정대로 ‘민주당만 빼고’로 투표하고 싶지만,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유는 집권당인 민00이 백번이고 비판받고, 또 역사적으로도 심판받아야 하겠지만, 위 ‘첫째, 적폐세력의 범주문제’에서 확인받듯이 민00이 적폐세력이 아님은 분명하고, 또 현실적인 측면에서 진보적 대중정당이 민00만큼 촛불민심을 제대로 수용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상황은 이 당을 포함한 당선 가능한 모든 비(非)적폐세력의 후보들에게 전략적 투표행위를 해 적폐세력의 부활저지라는 선거당면목표에 반드시 부합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적폐세력의 부활을 저지해야 한다.

▪기준2: 위 ‘기준1’과 같은 기준으로 투표했다하더라도 투표할 기회는 한 더 번 남아있다. 다름 아닌, 정당투표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제대로 된 진보의 미래와 평화, 통일을 위한 여정은 계속하기 위해서는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토대마련이 결코 포기되어져서는 안 된다. 해서 비례에 있어서만큼은 연동형비례대표제의 도입취지에도 맞고, 또 민00으로는 한국사회의 근본개혁과 통일지향이 불가능함으로 반드시 진보적 대중정당들에 대한 전략적 투표행위가 이뤄져야만 한다.(여기서 ‘진보적 대중정당들’이라고 복수화한 것은 유권자 각자는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과 지지정당 선호도 등에 따라 진보적 대중정당을 달리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문제를 반영한다.)

이렇게 이번 4.15 총선은 철저하게 촛불시민항쟁의 연장선상으로 바라봐야 하고, 그러려면 비록 차선(혹은, 차차선)이라도 민00과 함께 적폐세력들의 발호를 막아내어야만 한다. 이것이 민00이 갖는 한계는 명백하지만, 민00을 버리고 갈 수 없는 명백한 이유이다.

그뿐만 아니다. 굳이 이번 선거가 아니더라도 민00과는 연대의 대상으로 바라봐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정말 온전한 주권국가이고, 분단이 되어있지 않다면 시민사회진영은 위와 같은 그런 전략적 고민들을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민00과 후보·정책연대 등을 그 핵심으로 하는 선거연대·정책연대 등을 고민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유럽등과 같이 진보적 대중정당을 직접 창당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진보적 대중정당 후보를 지지하여 일반 민주주의 정치를 구현해나가면 된다.

하지만, 분단국가의 숙명은 위와 같은 일반론적인 의미에서의 시민사회진영의 정치개입 방식과는 좀 다른 필연을 낳을 수밖에 없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국가보안법 등이 존재하여 온전한 정치적 활동을 보장받지 못할 수밖에 없다는 법·제도의 측면이다.

▪또 다른 하나는 분단극복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 운동방식이 정당정치를 포함한 광범위한 전선적 조직운동이라는 그 측면 때문이다.

바로 위 2가지가 민00이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보수수구이자 적폐세력의 본산인 미00을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들이 진보적 대중정당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헌법적 책무라 할 수 있는 분단극복(=평화통일) 실현을 위해 연대해야 한다.

더군다나 국가보안법 등 악법들이 존재하는 엄연한 상황하에서는 분단을 넘어서려는 그 어떤 정상적인 제도권 정치활동마저도 쉽지 않고, 그렇게 쉽지 않은 만큼 민00을 정치파트너 우군으로 함께 해야 할 전선적 원리가 발생한다.

해서 대한민국 정치는 광의적 개념으로 전선운동으로서의 정당운동도 함의하고, 좁은 의미로서의 제도권 정당운동으로서의 정치운동도 공존하는 그런 개념이 된다.

대한민국 정치의 숙명이 그렇게 규정되어진다. 진보적 대중정당의 독자적 강화를 주선으로 틀어쥐면서도 비(非)적폐세력인 민00과는 전략적 연대를 끊임없이 고려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운동적 요구가 그렇게 발생한다.

그래서 이번 4. 15선거는 현 정국하에서 민00과 함께 과반이상의 국회의원 획득과 진보적 대중정당의 대중적 토대강화라는 원래의 조직적 목적이 충족되는 그런 수확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향후에는 진보적 대중정당들이 분단극복을 위한 일상적 정치활동이 가능하게 되고, 촛불민의를 보다 일상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확장된 정치 공간과 이후 선거에서는 보다 유리한 환경 속에서 진보적 대중정당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독자후보전술을 쓸 수 있어야 한다.

분명 이번 선거는 그런 선거가 되어야한다. 하지만, 대단히 우려스러운 것은 코르나19와 적폐세력들의 의도된 ‘낮은 투표참여전략’으로 조직선거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져 있다는 사실이다.

넘어설 묘책이 필요하다.

▪우선은 이 글 전반에 걸쳐 관통하고 있는 맥락, 이해관계와 당리당략을 떠나 크게 대의적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나 자신부터 투표허무주의나 무용론에서 빠져나와 차선(혹은, 차차선)이라하더라도 투표하고, 선거투쟁을 통해 유권자들을 반드시 투표장으로 안내하자.

구호는 다음과 같다.

‘4.15투표를 통해 적폐세력 청산하자!!!’,

‘촛불시민항쟁은 4.15투표를 통해 완성된다!!!’,

‘4.15선거투표 없는 적폐청산 없다. 투표로 적폐세력 심판하자!!!’

참여하고, 지혜로운 선택을 통해 그렇게 촛불시민항쟁을 계속 이어나가자.

 

민플러스, 2020년 3월 13일에 게재된 글입니다 (필자와 협의하여 수정 후 본지에 실린 것임).

토, 2020/03/21-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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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어업 상습 국가” 낙인찍힌 한국 원양어업, 환골탈태만이 답이다

○ 한국이 다시 <불법어업국가>라는 오명을 썼다. 2019년 9월 20일, 미국으로부터 예비불법어업국 지정 통보를 받았다. 2013년 미국과 유럽연합으로부터 예비불법어업국가로 지정받은 이후, 규제 강화를 강조한 원양산업발전법 개정으로 2015년에 해제되었지만 겨우 4년 만에 불명예는 되돌아왔다.

○ 불법어업국가로 지정된다는 것은 원양수산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 수출길에 차질이 생기는 경제적 손실은 물론, 외교 무대에서 뼈아픈 약점을 잡힌다. 특히, 체제가 불안하거나 경제발전이 더딘 저개발국가들 위주로 된 불법어업국가 목록에 포함되는 것 자체가 국격에 치명타를 입힌다고 할 수 있다.

○ 이번 지정의 발단은 2017년 한국 원양선박이 남극해에서 보존조치를 위반한 사건 때문이다. 국내외 환경단체들은 해당 위반 행위에 대해 수차례 강한 우려를 표하며, 해수부와 원양업계에 이 사건의 심각함과 함의를 알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업계를 대표하는 원양산업협회는 ‘일부 기업의 소소한 위반을 침소봉대하지 말라’며 의미를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 사건을 엄정하게 처리해야 할 해수부도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법적 문제가 없다’, ‘현상태에서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국제여론까지 악화되자 그제서야 관련 원양산업발전법 재개정안을 부랴부랴 마련했다. 그나마도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로, 통과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 위에 언급한 원양산업발전법의 개정안은 작년부터 업계와 시민사회가 참여한 논의가 진행되었으나, 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업계의 영향으로 불법어업에 대한 벌금과 제재를 강화하는 정책들이 상당부분 약화된 채 발의되었다. 이마저도 업계에서는 훨씬 더 큰 폭으로 약화하고 싶어했다.

○ 결정적으로, 이 사태는 불법어업 규제가 강화되는 국제적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해수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2018년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 회의에 참가한 당시 정부 대표단은 불법어업 사건을 신속하고 엄정히 처리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안이하게 대응을 하였고 이는 결국 오늘의 예비불법어업국 지정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회의에 참가한 정부 대표단 중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불과 약 1년 전 (2018년 10월)만 해도 당당하게 “한·EU, 국제적인 불법어업 근절을 위한 공동선언” 까지 채택한 한국이 또다시 원양 전선에서 추락했다. 불법어업 국가의 오명을 벗고 효과적인 제재를 가하다가 다시 개혁의 긴장 고삐를 늦추면서 벌어진 일이다. 시민단체는 국민을 대표하여 묻지 않을 수 없다. 또다시 억울함을 호소하며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자세로 이런 외교적 망신을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 불법 어업자들을 확실하게 걸러내어 오히려 불법어업 근절을 선도하는 국제적 리더로 거듭날 것인가? 정부와 업계의 문제 해결의지와 책임있는 행동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이에 시민사회는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 해수부, 특히 본 사태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당시 정부 대표단 대표는 책임을 져야 한다.
○ 불법, 비보고, 비규제 (IUU) 어업이 재발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도록 하는, 보다 강력한 제재안을 원산법 개정안에 포함시키고, 불법어업 통제 관리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 원양업계는 불법어업을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업체를 퇴출시키는 등 자정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 정부와 업계는 시민사회와 함께 불법 어업 방지를 위한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공익법센터어필,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재단

참고:
남극 이빨고기 불법 어업 관련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2070600105

한국 환경단체 성명서:
http://kfem.or.kr/?p=196313

공동선언문 채택:
https://www.yna.co.kr/view/AKR20181018168300098

금, 2019/09/2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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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어업 상습 국가” 낙인찍힌 한국 원양어업, 환골탈태만이 답이다

○ 한국이 다시 <불법어업국가>라는 오명을 썼다. 2019년 9월 20일, 미국으로부터 예비불법어업국 지정 통보를 받았다. 2013년 미국과 유럽연합으로부터 예비불법어업국가로 지정받은 이후, 규제 강화를 강조한 원양산업발전법 개정으로 2015년에 해제되었지만 겨우 4년 만에 불명예는 되돌아왔다.

○ 불법어업국가로 지정된다는 것은 원양수산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 수출길에 차질이 생기는 경제적 손실은 물론, 외교 무대에서 뼈아픈 약점을 잡힌다. 특히, 체제가 불안하거나 경제발전이 더딘 저개발국가들 위주로 된 불법어업국가 목록에 포함되는 것 자체가 국격에 치명타를 입힌다고 할 수 있다.

○ 이번 지정의 발단은 2017년 한국 원양선박이 남극해에서 보존조치를 위반한 사건 때문이다. 국내외 환경단체들은 해당 위반 행위에 대해 수차례 강한 우려를 표하며, 해수부와 원양업계에 이 사건의 심각함과 함의를 알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업계를 대표하는 원양산업협회는 ‘일부 기업의 소소한 위반을 침소봉대하지 말라’며 의미를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 사건을 엄정하게 처리해야 할 해수부도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법적 문제가 없다’, ‘현상태에서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국제여론까지 악화되자 그제서야 관련 원양산업발전법 재개정안을 부랴부랴 마련했다. 그나마도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로, 통과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 위에 언급한 원양산업발전법의 개정안은 작년부터 업계와 시민사회가 참여한 논의가 진행되었으나, 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업계의 영향으로 불법어업에 대한 벌금과 제재를 강화하는 정책들이 상당부분 약화된 채 발의되었다. 이마저도 업계에서는 훨씬 더 큰 폭으로 약화하고 싶어했다.

○ 결정적으로, 이 사태는 불법어업 규제가 강화되는 국제적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해수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2018년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 회의에 참가한 당시 정부 대표단은 불법어업 사건을 신속하고 엄정히 처리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안이하게 대응을 하였고 이는 결국 오늘의 예비불법어업국 지정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회의에 참가한 정부 대표단 중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불과 약 1년 전 (2018년 10월)만 해도 당당하게 “한·EU, 국제적인 불법어업 근절을 위한 공동선언” 까지 채택한 한국이 또다시 원양 전선에서 추락했다. 불법어업 국가의 오명을 벗고 효과적인 제재를 가하다가 다시 개혁의 긴장 고삐를 늦추면서 벌어진 일이다. 시민단체는 국민을 대표하여 묻지 않을 수 없다. 또다시 억울함을 호소하며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자세로 이런 외교적 망신을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 불법 어업자들을 확실하게 걸러내어 오히려 불법어업 근절을 선도하는 국제적 리더로 거듭날 것인가? 정부와 업계의 문제 해결의지와 책임있는 행동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이에 시민사회는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 해수부, 특히 본 사태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당시 정부 대표단 대표는 책임을 져야 한다.
○ 불법, 비보고, 비규제 (IUU) 어업이 재발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도록 하는, 보다 강력한 제재안을 원산법 개정안에 포함시키고, 불법어업 통제 관리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 원양업계는 불법어업을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업체를 퇴출시키는 등 자정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 정부와 업계는 시민사회와 함께 불법 어업 방지를 위한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공익법센터어필,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재단

참고:
남극 이빨고기 불법 어업 관련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2070600105

한국 환경단체 성명서:
http://kfem.or.kr/?p=196313

공동선언문 채택:
https://www.yna.co.kr/view/AKR20181018168300098

금, 2019/09/2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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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어업 상습 국가” 낙인찍힌 한국 원양어업, 환골탈태만이 답이다

○ 한국이 다시 <불법어업국가>라는 오명을 썼다. 2019년 9월 20일, 미국으로부터 예비불법어업국 지정 통보를 받았다. 2013년 미국과 유럽연합으로부터 예비불법어업국가로 지정받은 이후, 규제 강화를 강조한 원양산업발전법 개정으로 2015년에 해제되었지만 겨우 4년 만에 불명예는 되돌아왔다.

○ 불법어업국가로 지정된다는 것은 원양수산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 수출길에 차질이 생기는 경제적 손실은 물론, 외교 무대에서 뼈아픈 약점을 잡힌다. 특히, 체제가 불안하거나 경제발전이 더딘 저개발국가들 위주로 된 불법어업국가 목록에 포함되는 것 자체가 국격에 치명타를 입힌다고 할 수 있다.

○ 이번 지정의 발단은 2017년 한국 원양선박이 남극해에서 보존조치를 위반한 사건 때문이다. 국내외 환경단체들은 해당 위반 행위에 대해 수차례 강한 우려를 표하며, 해수부와 원양업계에 이 사건의 심각함과 함의를 알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업계를 대표하는 원양산업협회는 ‘일부 기업의 소소한 위반을 침소봉대하지 말라’며 의미를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 사건을 엄정하게 처리해야 할 해수부도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법적 문제가 없다’, ‘현상태에서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국제여론까지 악화되자 그제서야 관련 원양산업발전법 재개정안을 부랴부랴 마련했다. 그나마도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로, 통과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 위에 언급한 원양산업발전법의 개정안은 작년부터 업계와 시민사회가 참여한 논의가 진행되었으나, 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업계의 영향으로 불법어업에 대한 벌금과 제재를 강화하는 정책들이 상당부분 약화된 채 발의되었다. 이마저도 업계에서는 훨씬 더 큰 폭으로 약화하고 싶어했다.

○ 결정적으로, 이 사태는 불법어업 규제가 강화되는 국제적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해수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2018년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 회의에 참가한 당시 정부 대표단은 불법어업 사건을 신속하고 엄정히 처리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안이하게 대응을 하였고 이는 결국 오늘의 예비불법어업국 지정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회의에 참가한 정부 대표단 중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불과 약 1년 전 (2018년 10월)만 해도 당당하게 “한·EU, 국제적인 불법어업 근절을 위한 공동선언” 까지 채택한 한국이 또다시 원양 전선에서 추락했다. 불법어업 국가의 오명을 벗고 효과적인 제재를 가하다가 다시 개혁의 긴장 고삐를 늦추면서 벌어진 일이다. 시민단체는 국민을 대표하여 묻지 않을 수 없다. 또다시 억울함을 호소하며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자세로 이런 외교적 망신을 되풀이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 불법 어업자들을 확실하게 걸러내어 오히려 불법어업 근절을 선도하는 국제적 리더로 거듭날 것인가? 정부와 업계의 문제 해결의지와 책임있는 행동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이에 시민사회는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 해수부, 특히 본 사태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당시 정부 대표단 대표는 책임을 져야 한다.
○ 불법, 비보고, 비규제 (IUU) 어업이 재발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도록 하는, 보다 강력한 제재안을 원산법 개정안에 포함시키고, 불법어업 통제 관리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 원양업계는 불법어업을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업체를 퇴출시키는 등 자정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 정부와 업계는 시민사회와 함께 불법 어업 방지를 위한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공익법센터어필,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재단

참고:
남극 이빨고기 불법 어업 관련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2070600105

한국 환경단체 성명서:
http://kfem.or.kr/?p=196313

공동선언문 채택:
https://www.yna.co.kr/view/AKR20181018168300098

금, 2019/09/2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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