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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가장 긴 전쟁을 끝내야 할 시점 –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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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가장 긴 전쟁을 끝내야 할 시점 – 한국전쟁

admin | 목, 2020/06/25- 18:58

편집자 주:

지난 주간 미국 워싱턴에서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이한 한반도평화활동가주간KPAW의 모임이 있었다. 아래의 내용은 참석자의 한사람이며 미국 내 저명한 반전평화 및 환경운동가 Garl Smith의 참가 보고서 요약본이다.


미국이 진행하고 있는 가장 ‘오랜 전쟁’의 타이틀은 아프칸이 아닌 한반도에 주어져야 한다. 이는 한반도의 대결이 여전히 공식적으로 종결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한국전쟁은 종전대신에 전쟁 당사자들간에 물리적 열전을 보류하는 정전형태의 Amnesty(사면)합의에 서명함으로써 군사적 대결에서 대치로 전환되었다.

오는 6월 25일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아프칸의 미국전쟁은 18년 동안 열전 중에 있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한국전쟁은 이보다 4배가 넘는 기간 동안 여전히 내연되고 있다.

아프칸에 워싱턴 당국이 개입하면서 그동안 미국시민의 세금이 2조 달러이상 투입되었지만, 한반도를 방어한다는 명분으로 해당지역을 군사화하고 남한지역에 미군을 주둔시키면서 발생한 현재까지 70년간의 비용을 감안하면 아프칸에 투입된 전비를 훨씬 넘어선다.

활동가들을 초청하고 6.25를 기념하는 것과 별도로,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전을 요구하는 Ro Khanna(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의 ‘의원결의-152호’에 동료의원들의 서명참여를 요청하고자 한다.

2 주전에 나는 한국평화활동가주간(KPAW, Korean Peace advocacy week)에 200여 명 활동가들과 함께 참여하였는데, 이 모임은 한국평화네트워크, Korea Peace Now!, 그리고 Women Cross DMZ 등 풀뿌리 시민단체들이 공동으로 주관한 행사이다.

나와 자리를 함께한 6 명은 카리스마가 넘치는 한국계 미국여성들이었는데, 이 중에는 Bay Area 영화제작자이자 활동가이며 “Women Cross DMZ” 다큐를 제작한 Borshay Liem도 있었다.

30분간 워싱턴에 있는 Barbara Lee 민주당 연방의원과 줌을 통한 영상대화가 있었고, 얼굴을 맞댄 토론과 준비된 노트북의 활동보고 그리고 온라인으로 올라오는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전쟁없는세상(WbW)’이 북한의 실상에 대한 소개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하였다.

▪한국은 1200여년 동안 통일된 왕국을 유지하여 왔으나, 1910년 일본이 식민지로 강점하면서 통일된 역사는 끝이 났다. 이후 북한을 만들어 낸 것은 다름아닌 바로 미국이었다.

▪그것은 1945년 8월 14일 즉 제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직후였으며, 미군부의 2명 장교가 한반도를 가르는 분단의 선을 설정하였다.

▪한국전쟁 중에 유엔의 경찰작전(police action)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폭격기들이 63만톤의 각종 폭탄과 32만톤의 네이팜탄을 투하했는데,, 이로 인하여 북한지역에서만 78개의 도시와 5000개의 학교, 1000여 개의 병원과 50만 채의 민간주택이 파괴되었고, 군인이 아닌 60만 명의 일반시민이 사망하였다. 현재까지 북한사람들이 미국을 증오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늘 현재, 북한은 남한의 50개와 일본내의 100여 개 미군기지로 둘러 쌓여 있으며 평양을 폭격할수 있는 거리의 괌섬에 전략핵무기의 장착이 가능한 B-52 폭격기가 대기하고 있다 (최근 비공식적 정보에 의하면, 미군은 중국의 중거리 미사일 사정거리에서 전략폭격기들을 철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백년).

▪1958년부터 미군은 정전협정을 위반하면서 남한에 핵무기를 반입하기 시작하였다. 한떄 950개에 달하는 핵탄두가 남한 내에 배치되기도 하였다.

▪미국은 북한이 제안하는 침략금지조약을 일방적으로 거부(무시)하여 왔다. 이런 배경에서 북한의 다수는 핵무장만이 미국의 침공에서 조국을 방어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외교적 활동이 진행되어 온 것을 지켜 보았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이 플라토늄 생산을 중지하는 대가로 경제적 지원을 제공한다는 일반협정-Agreed Frame에 서명하였다.

▪2001년 출범한 부시정권은 상기의 일반합의를 비난하고 제재를 가했다. 북한은 이에 대응하여핵무기 계획을 재개하였다.

▪북한은 북한을 위협하는 한미합동 군사훈련을 중단하면 미사일시험 역시 보류하겠다고 반복적으로 제안하였다.

▪2019년 봄에 미국은 봄철에 예정되었던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하는 것에 동의하였고, 김정은은 미사일시험을 중단하는 것으로 화답하였다. 이후 이들은 DMZ에서 재회하였으나, 미국은 합동훈련을 재개하였으며, 북한은 전술핵시험을 반복적으로 실시함으로써 대응하였다.

▪이제 미국은 중국이 주도하는 제안에 따라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하고 평화협정에 서명해야 할 시점이다.

지난 주말에 민주당 Barbara Lee연방의원으로부터 우리의 요청을 받아들여 HR6639의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전제안에 서명하고 이의 지원활동에 동참한다는 메시지를 접수하였다.

– 여기까지가 지난주에 있었던 한국평화행동주간 회의에 대한 요약 보고서이다 –

 

지난 해에는 75 명이 참여하였는데, 올해에는 200 명으로 늘어 났고, 이중 50% 정도가 한국계 미국시민들로, 캘리포니아에서 뉴욕 주까지 26개 주에서 자발적으로 참석하였고 워싱턴 수도에서 84 명의 공직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다음과 같은 성과에 대해 성급하지만 보고를 하고자 한다.

Rep. Carolyn Maloney (NY)와 Rep. Barbara Lee (CA) 두 분이 처음으로 HR 6639에 동참하였다.

Sen. Ed Markey (MA)와 Sen. Ben Cardin (MD) 두 분이 상원에 계류 중인 S.3395에 동참하였다.

북한의 인도적 지원법(S.3908)을 공식화하기로 하였으며, 내용은 곧 준비될 예정이다.”

한 회의에서 연방의회 직원에서 “우리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이하여 이런 행사를 갖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하자, 그에게서 다음과 같이 황당한 답변을 받았다 “아니, 한국전쟁은 이미 끝난 것이 아닌가요?”

한국전쟁 70주년 행사를 진행하면서, KPAW 기획팀과 참여단체들은(Korea Peace Network, Korea Peace Now! Grassroots Network, Peace Treaty Now, Women Cross DMZ 등) 각자 해당지역의 정치인들에게 함께할 것과 한국전쟁의 종전을 공식적으로 요구할 것을 촉구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한국전쟁의 개시일인 6월 25일에서 정전협정의 서명이 이루어진 7월 27일까지 진행되기를 희망한다.

더불어 한국평화네트워크(Korea Peace Network)에서 정리한 요점을 소개한다.

“2020년은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종결되지 않은 한국전쟁 70주년의 해이다. 전쟁의 지속상태는 군사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한반도에 긴장을 야기하는 원인이다. 평화를 정착시키고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해야 한다.

미군은 여전히 70년 동안 북한과 전쟁상태로 대치하고 있다. 이제는 긴장과 적대를 끝내고 이러한 대결을 해결해야할 시점이다.

대립상태가 해결되지 못하면서 수천 가족들이 여전히 헤어져 살고 있다. 반드시 전쟁을 끝내고 가족들이 다시 결합하고 70년 간의 기나긴 대결과 분단의 고통을 이제 치료하여야만 한다.”

.

출처 : Berkeley Daily Planet via WorldBeyondWar on 2020-06-21

Gar Smith

WbW과 함께하는 반전평화활동가이자, 버클리에서 활동하는 환경운동가 겸 저술가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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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소련과 러시아

1) 소련 붕괴 25주년

1989년 12월, 미국과 소련은 정상 회담을 통해 “냉전이 끝났다.”고 선언하였다. 미국은 소련에 대한 봉쇄 정책을 종결짓겠다고 했고 소련은 핵무기 감축에 동의했다. 개혁과 개방이라는 소련의 새로운 대외 정책이 가져온 결과였다. 소련의 지도자 고르바초프는 앞으로 동유럽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였고, 소련 내에서도 공산당 이외의 정당을 허용하고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겠다고 약속하였다.

1989년 헝가리를 시작으로 동유럽 모든 국가에서 민중들이 봉기하였다. 공산당 정권은 무너졌고,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는 형태로 독일이 통일되었다. 1991년에는 소련이 러시아를 비롯한 14개 공화국으로 분리되면서 세계 최초 사회주의 혁명(1917년)을 통해 형성된 소련이 70여 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91년 12월 25일. 소련연방 대통령 고르바초프의 사임 연설이다.

“독립국가연합이 창설됐기 때문에 저는 소련 연방 대통령으로서의 활동을 마칩니다.“

단 한 장의 간단한 성명서와 함께 소련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고르바초프

1991년 말,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과 우크라이나 대통령 레오니드 크라브추크, 벨라루스 대통령 스타니슬라우 슈슈케비치가 한자리에 모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더 이상 존속하지 않는다는 데에 합의하였다. 그해 8월 모스크바에서 쿠데타 시도가 일어난 뒤 소련 공산당은 급격히 위축되었으며, 그 권력과 특권도 붕괴되었다.

옐친에게 소련과 소련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불편한 존재로 남아 있었다. 전자를 없애면 후자도 자연히 따라서 사라지게 되며, 러시아 연방 내에서 옐친의 권력을 확고하게 해줄 것이었다. 그는 독립국가연합(CIS)이 소비에트 연방을 대체하고 세계에서 소련이 차지해왔던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소비에트 연방 소속이었던 공화국 대다수, 특히 우크라이나는 CIS가 러시아에의 종속을 끝낼 수 있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였다. 심지어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은 아예 CIS 가입을 거부하였다.

많은 러시아인들은 소련이 소유했던 힘의 상실을 아쉬워했고, 우크라이나가 영구적으로 떨어져나갔다는 사실을 수용하지 못했다. 러시아와 전 소비에트 연방 회원국들과의 관계는 항상 불편했으며, 이들 중 다수는 러시아가 자국의 내정에 간섭한다고 분노하였다. 이들 나라에 거주하는 2,500만 러시아인들은 하루아침에 외국인이 되어버렸으며, 종종 심각한 차별 대우를 받았다.

러시아 연방 내에 존속한 민족 가운데 일부도 독립 투쟁에 나섰다. 1994년 체첸이 독립을 선언하자 야만적인 전쟁이 발발하였다. 러시아 내부에서는 극단적인 민족주의 세력이 등장하여 인종 차별적인 폭력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지금도 전 소련 회원국들은 많은 러시아인이 잃어버린 제국을 되찾기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모스크바 거리2016년 12월 25일. 소련 붕괴 25주년을 맞아 필자는 모스크바 시민들을 만나 25년간의 변화와 소련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다. 상당수 러시아 사람들 특히 노년층은 옛소련에 대해 강한 향수를 느끼고 있었다.

71살 루드밀라 쥬라블료바씨는 전직 회계사로 지금은 연금생활자이다.

그녀는 ”소련시절에는 모두가 평등했으나 지금은 부자와 가난한 자가 생겼다. 나는 즐거움과 미소, 행복함으로 소련시절을 회상한다. 우리는 빈곤하게 살았지만 서로에게 모두 친절했다. 그 친절함, 다정함이 그립다. 지금은 나쁜 일을 저지르는 사악한 인간들이 너무 많다“라고 말했다.

역시 연금생활자로 일자리를 찾고 있는 50대의 이리나씨는 ”나도 긍정적인 측면 때문에 소련시절을 때때로 그리워한다. 그 시절에는 국가가 우리를 필요로 하고, 우리가 국가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 느낌은, 국가가 일부 사람들에게 무관심하다는 것이다.“라고 심경을 털어 놓았다.

유럽부흥개발은행과 세계은행이 공동조사해 2016년 12월 14일 언론을 통해 보도된 내용을 보면 옛소련시절 보다 현재의 삶이 더 나아졌다고 느끼는 러시아 사람은 전체의 15%에 불과했다. 현재의 시장경제 체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대학의 엘레나 포노마료바 교수는 ”소련이 붕괴된 후 사람들은 엄청난 부자들(super-rich)과 최빈층(super-poor), 극단적 사회 양분화는 물론 이른바 ‘신빈곤층(new-poor)’의 등장을 목도하며 고통스러워(괴로워)하고 있다. 신빈곤층이란 잘 교육받은 엔지니어, 의사, 선생님들이 돈을 많이 벌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 낙오자가 돼가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러시아 문명은 결코 돈 만으로 평가받지 않았고 세계관이나 도덕성, 사회 정의 등으로 평가받았다.“라고 역설했다.

포노마료바 교수는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제국 경영, 세계 경영 국가의 기억이 남아있다. 그런데 이제 그 힘의 상실감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젊은 세대와 구세대 모두 러시아가 피터 대제가 이룩한 러시아 제국과 같지 않다는 점을 가슴 아파하고 있다. 국제적 위상도 예전같지 않다는 점이 고통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련을 회고하고 그때의 장점을 취하고 부정적인 측면은 바꾸기를 원하고 있다. 러시아 사람들이 푸틴 시대 들어 ‘강한 러시아’를 추구하는 정부 방침을 지지하는 것도 이같은 배경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냉전시절 세계의 절반에 영향력을 미치던 소련은 15개 나라로 조각났지만 최근에는 러시아를 중심으로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키르기스스탄, 아르메니아 등 독립국가연합(CIS) 내 5개국이 ‘유라시아 경제연합(EAEU)’을 결성하는 등 경제적 통합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또 ‘위대한 러시아 재건’을 부르짖는 푸틴 대통령이 등장한 이후에는 우크라이나 사태,크림반도 병합, 시리아 내전 개입 등 국제무대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양상이다. 여기에 푸틴이 최근 전략 핵무기 강화를 연설한데 대해 트럼프도 핵 능력 확장을 언급하고 나서 미-러간 핵 경쟁이 부활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2) 사회주의 혁명 100주년

2017년 11월. 사회주의 혁명 100주년을 맞은 해에 필자는 러시아 땅에 특파원으로 있었다. 100년이란 숫자가 던지는 무게감, 사회주의 및 혁명이란 단어가 한국사회에서 갖는 복잡성 등을 안고 필자는 혁명의 도시로 향했다.

2017년 11월 4일.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100주년(7일)을 사흘 앞두고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화려한 ‘빛의 축제’가 펼쳐졌다. 1917년 10월 혁명 때 상트페테르부르크(당시 이름은 페트로그라드)는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다.

에르미타주 광장

‘빛의 축제’는 황제가 살던 겨울궁전, 즉 예르미타시(에르미타주) 박물관과 구 참모본부 건물로 둘러싸인 ‘궁전 광장’에서 펼쳐졌다. 건물과 구 참모본부 건물이 대형 스크린으로 변한 것이다. 특히 구 참모본부 건물의 외벽은 6,700m²로 축구장 면적에 해당한다.

‘빛의 축제’란 건물 외벽에 직접 영상을 투영하는 이른바 ‘비디오 매핑’(video mapping)을 말한다. ‘비디오 매핑’이란 건물이나 조형물 등을 3D로 스캔한 뒤 표면의 굴곡에 따라 영상물을 제작해 해당 외벽에 직접 영상을 투영해 미디어 기능을 구현하는 것이다.

빛축제 4월테제

구 참모본부 건물 외벽에는 1917년 혁명의 한 해가 13분 영상물로 압축돼 투영됐다. ‘우리에게 빵을 달라’는 굶주린 백성과 2월 혁명,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퇴위, 스위스 망명에서 돌아온 레닌의 혁명전술 4월 테제, 그리고 10월 혁명까지… 격동의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순양함 오로라호예르미타시에서 볼 때 네바강 건너편에 전시돼 있는 순양함 오로라호에서도 현란한 3D 비디오 매핑이 시연됐다. 오로라호는 10월 혁명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오로라호에서 발사된 대포 한 발은 10월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오로라호에서는 1917년부터 지금까지 100년간의 역사가 압축적으로 소개됐다.

이번 빛의 축제를 총감독한 예카테리나 갈라노바는 “과거로부터 배우고, 과거를 재평가하고, 미래엔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빛축제 혁명

빛의 축제를 본 시민들은 대체로 혁명의 불가피성은 인정하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선 그다지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반응이었다. 모스크바 시민인 시스템 분석가 아나스타샤는 “나는 혁명에 대해 부정적이다. 당시 모든 것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표출됐지만, 실상은 거짓이었다”라고 말했다. 연금 생활자인 루드밀라는 “이제 시대는 달라졌고 관점은 바뀌는 법이다. 혁명의 진행에 대한 많은 부분이 아직 논쟁 중이다”라고 말했다. 대학생 비카는 “최근에 황제 일가의 최후에 대해 읽었다. 혁명이 일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황제 일가에게 벌어진 일들은 끔찍하다”라고 밝혔다. 다수의 시민들은 더 이상 혁명이나 혼란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빛축제 황제 니콜라이

어쩌면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야 말로 러시아인들이 겪는 혼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니콜라이 2세와 그의 일가는 1917년 혁명에서 총살됐지만, 소련 붕괴 후 2000년에 러시아정교회는 니콜라이 2세 일가를 성인으로 시성했다.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정치탄압의 희생양이 됐다는 이유에서다.

100주년 기념 공산당 행사

혁명 100주년을 맞은 11월 7일 오후 러시아 공산당은 모스크바 중심가 거리를 행진했다. 레닌과 스탈린,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의 사진을 든 공산당원들이 푸시킨광장에서부터 마르크스동상이 있는 혁명광장까지 행진하며 혁명 100주년을 기념했다. 행진에는 이탈리아·스페인 등 80개 나라 공산당·좌파 정당 대표들도 함께했다.

혁명광장에서 열린 기념집회에서 쥬가노프 러시아 공산당 당수는 “레닌과 스탈린의 20년 근대화는 우리나라의 능력을 70배 향상시켰다. 10월 혁명으로 탄생한 소비에트 국가는 전 세계 생산의 1/5을 생산했다. 나는 사회주의 깃발이 러시아와 전 세계에 휘날릴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연설했다. 쥬가노프는 7일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년 대선에 다시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이 5번째 도전이다.

볼셰비키의 맥을 이은 러시아 공산당은 현재 전체 450개 의석인 러시아 하원에서 42석을 차지해 집권당인 ‘통합 러시아당’(343석)에 이어 두 번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공산당 행진

공산당 소속 레베데프 하원의원은 혁명이 추구했던 사회주의 이념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공산당은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레베데프 의원은 “공산당은 미래를 확신한다.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입당하고 있다. 그 이유는 오늘날 일자리를 얻기 힘들고 소비에트 시절 주어졌던 각종 특혜들을 이젠 아무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반대중의 30%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혁명에 대한 평가를 질문하자 레베데프 의원은 “혁명 이후 적군과 백군 간 내전이 벌어져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다. 또 스탈린 독재 기간에 과도한 행동들이 있었다. 그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어마어마한 진보가 있었다. 우주개발에 나섰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대규모 건설로 국민의 85%가 무상으로 집을 받았다. 이것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붉은광장 퍼레이드

11월 7일 오전. 모스크바의 심장부 크렘린궁 앞 붉은광장에서는 5,000명의 군인들이 참가한 군사퍼레이드가 성대하게 펼쳐졌다. 그런데 이 퍼레이드는 혁명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년의 군사퍼레이드를 재현하는 ‘1941년 대독일 출정식 76주년 기념’ 열병식이었다.

모스크바로 진격해오는 독일 나치군과 전쟁 중이던 1941년 11월 7일, 소련은 군인들과 국민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붉은광장에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벌였었다. 전제 권력을 무너뜨린 민중 혁명 대신, 나치 독일에 맞선 소련 국민과 군인들의 영웅적 애국정신을 기념한 것이다.

혁명 100주년을 맞았지만 러시아 정부 차원에선 이렇다 할 행사나 공식 성명조차 없다. 옛 소련시절에는 11월 7일을 휴일로 지정하고 붉은광장에서 대대적인 퍼레이드 행사로 혁명을 기념했다. 하지만 지난 2005년 러시아 당국은 11월 7일을 공휴일에서 제외하고 대신 16세기말 폴란드의 간섭으로부터 국가를 지킨 것으로 기념하는 11월 4일을 ‘국민통합의 날’이라는 기념일로 지정했다. 그래서 올해는 11월 4일(토)부터 6일(월)까지 3일 연휴이건만 정작 11월 7일은 평일이다.

붉은 광장 행진

혁명 기념일인 11월 7일은 옐친 대통령 시절인 1995년에 ‘모스크바 자유의 날’(국민통합의 날)로 이름이 바뀌는 등 수난을 겪다가 결국 2005년에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소련 붕괴 후 90년대를 집권했던 옐친 대통령은 러시아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뿌리 내리면서, 여러 분야에 걸쳐서 러시아 혁명과 ‘소련 지우기’에 나섰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소련 붕괴 이후에도 당시 최대 야당으로 정치적으로 옐친 대통령의 최대 정적이었던 러시아 공산당을 견제하기 위한 측면이 컸다는 분석도 나온다.

푸틴 대통령이 혁명 기념일에 침묵하는 이유에 대해선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하다. 우선 본인이 2000년 이후 17년째 장기집권 중이기 때문에 ‘혁명’이란 단어 자체가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2014년 이후 계속되는 대러 서방 제재와 국제 유가 하락 등으로 악화된 경제난에 불만을 품은 반정부 민심이 혁명기념 분위기를 타고 반정부 시위 등으로 표출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 3월 26일 야권 운동가 나발니가 주도해 전국 80개 이상의 주요 도시에서 반부패·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는데, 그 이후에도 모스크바 등 대도시에서 간헐적으로 반정부 시위가 지속되면서 푸틴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푸틴 대통령의 65번째 생일이었던 지난 10월 7일에는 그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3,000여 명의 시민들이 푸틴의 장기집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푸틴은 또 2000년대 말부터 소련을 초강대국으로 이끌었던 스탈린의 지도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스탈린 재평가 작업’에 열을 올렸다. 푸틴은 스탈린을 앞세워 옛 소련시절의 영광을 기억하는 러시아인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미국과 유럽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스탈린과 같은 권위주의적 통치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내년 3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아직 공식 출마 선언은 안 했지만)해 집권 4기를 준비하고 있는 푸틴으로서는 이래저래 생각이 많을 것 같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혁명 100주년을 바라보는 러시아 사람들의 입장이 모호하다는 점도 이 같은 사회적 현상과 무관치 않다.

‘전 러시아 공론 연구센터’가 지난 10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10월 혁명에 대한 긍정적·부정적 견해가 각각 46%로 나타났다. 즉 “누구의 관심 속에 혁명이 발발했느냐?”는 질문에 46%는 대중의 관심 속에 혁명이 일어났다고 확신한 반면, 다른 46%는 “소수 혹은 몇몇 크지 않은 단체에 의해 발발했다”고 응답한 것이다. 또 응답자의 92%는 “오늘날 러시아에 혁명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레바다 여론조사 기관의 구드코프 대표는 “대다수는 혁명이 불가피했다고 인식하지만 혁명의 결과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평가하고 있다”며 “혁명의 이중성 때문에 여전히 러시아인들이 혼란스러워한다”고 말했다. 구두코프 대표는 “혁명은 소비에트 체제와 스탈린식 근대화, 급속한 산업화를 만들어냈다. 단기간의 변혁으로 소련을 핵무장한 슈퍼파워로 만들었고, 우주개발도 성공시켰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새로운 특권층, 관료주의가 득세하면서 결국 스탈린 독재로 이어져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다”고 말했다.

공산당 행진 속 중국인들

러시아 내부 상황이 이런데 이 와중에 혁명 100주년을 맞아 러시아를 찾는 중국인들 이른바 ‘홍색 관광’(Red tourism)이 2016년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러시아 혁명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고, 중국의 운명도 바꿔 놓았으니 중국인들에게는 모스크바 붉은광장의 레닌묘를 찾는 것 자체가 관광 이상의 의미, 즉 성지순례 같은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러시아 관광 당국은 모스크바로부터 동쪽으로 약 720km 떨어진 볼가 강변의 소도시로 레닌의 출생지인 울리야놉스크에도 2017년 당시 6,000명의 중국 관광객들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했다.

사회주의 혁명 100주년. 20세기 최대의 체제 실험은 좌절된 것으로 치부되고 있지만, 사회적 불평등과 분배의 형평성 문제 등을 제기하면서 ‘자본주의의 방부제’ 역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주장도 있다.

수, 2019/12/04-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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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표충비의 눈물은?

지난 11월 18일 등을 포함한 많은 언론매체들에서 ‘밀양 표충비가 18일 오전 5시간 동안 1L 가량 땀을 흘렸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비록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국가중대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땀을 흘리는 것으로 유명한 비석이기에 언론도 주목하지 않았나, 그렇게 추측할 수 있다.

<출처: 민플러스>

실제 1894년 동학농민 운동, 1919년 3·1독립만세운동, 1945년 8·15 해방, 1950년 한국전쟁, 1985년 남북고향 방문 등에 땀을 흘렸다고 한다.

그럼 이번 눈물의 의미는? 아무래도 지소미아 연장결정(11월 22일)때문인 것 같다.

이유는 지소미아 연장결정이 국난(國難)에 해당되고, 이는 일본의 강점으로부터 지리학적 해방은 분명하나, 여전히 우리 대한민국이 이번 결정을 통해 정신사적·정치적 해방이 아직 요원함을 반증해줘서 그렇다.

달리는, 일본의 아베정부는 이번 문재인 정부의 결정을 통해 도저히 불가능해보였던(강조, 필자) 군사안보적인 지소미아문제를 역사와 경제문제로 연결시킨 것에 대한 정당성 획득과, 기간 식민지배에 대한 부정과 한일기본조약 인정 등 역사왜곡 문제도 용인 받을 수 있는 그런 양득을 취했다.

 

2. 지소미아 연장결정에 대한 진실

아시다시피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결정은 문재인 정부가 ‘일본이 하는 걸 보고 최종적으로 지소미아 종료 여부를 결정 하겠다’면서 내놓은 근거이다. 이것만 보면 마치 칼자루를 우리(우리 정부)가 쥔 것처럼 보이는 논리포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발효·개정·기간 및 종료를 담은 지소미아 협정문 제21조의 3항 그 어디에도 ‘조건부 종료’나 ‘조건부 연장’ 조항은 없다.

그렇다면 이 결정은 ‘사실상’ 일본정부에 대한 굴복이고, 포장만 그렇게 되고 있을 뿐이다.

백번양보해 정부의 논리를 수용한다 하더라도-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아무 때나 지소미아를 중지시킬 수 있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왜 이제까지 박근혜 정부의 적폐 중의 적폐였던 지소미아 종료결정을 이제까지 하지 못했던가? 그 물음에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 결정은 철저하게 미국의 전 방위적인 압박과 현 정부에 포진되어있는 친미관료들과 참모들의 숭미의식, 적폐세력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한나라당 등 보수우파의 집중공격에 대한 굴복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해서 이번 결정은 ‘사실상의’ 일본정부에 대한 굴복과 함께, 누가 뭐래도 촛불민심과는 거리가 먼 세력들에 대한 항복일 뿐이 되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다음의 정부 태도에서 금방 알 수 있다.

모욕적인 ‘진실게임’대신, 정부의 연장결정 논리대로라면 연장결정 파기를 하면 되는데도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진실게임’만 하고 있다? 연장결정 된 순간, 이제는 미국의 승인 없이는 연장철회 결정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논리적 진실과 그렇게 맞닿는다.(강조, 필자)

 

3. 이제는 물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 과연 촛불정부인가?

이렇게 결과를 놓고 보면 진작 물었어야 했지만, 그래도 일말의 기대가 남아있어 미적미적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번만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어 묻는다.

일본을 주인공으로 하여 미국이 총 연출한 정치·군사적 막장드라마이고, 수출규제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제거되어야 할 박근혜 정부의 적폐 중의 적폐이고, 또 내용적으로도 지소미아문제는 그 본질이 한일군사정보교류를 넘어 군수지원, 한반도 자위대 파견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며, 일본에 군사기술과 정보의 종속을 불러와 일본의 한반도 재침략의 길을 열어주는 전쟁동맹에 불과한데도 이를 촛불정부임을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다?

역사에 ‘큰 과오가 있는’ 그런 정부로의 전락이다.

아마도 정상적이었다면 문재인 정부는 이번 일본 아베정부의 패착을 잘 활용해 지소미아 종료선언과 함께, ‘불평등한’ 한미동맹체제에서 탈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하질 못했고, 그 원인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이미 곳곳에서 그러하지 못한 이유가 착착 포착되었다. 단지, 우리는 그걸 보지 않으려고 했을 뿐이다.

이름하여 재임임기 반을 돈 지금 양극화 해소, 소득주도 경제를 비롯한 일자리창출, 청년실업해소정책,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제 완전도입 등 곳곳에서 공약후퇴와 기층민중 중심의 정책은 파탄되고 있었다. 대신, 경기활성화라는 미명아래 삼성 등 재벌 총수들에게는 면죄부를, 재벌해체는 요원해져버렸다.

남북관계가 기대이하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정치적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인도주의 문제이자 박근혜 정부 하에서도 추진되었던(강조, 발제자) 이산가족 상봉 및 식량지원 문제(의료품 포함) 등도 기대만큼 추진되지 못하고, 공약사항을 이미 넘어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합의된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등도 재가동, 혹은 재개되지 못하였다.

명백히 우리 (민족내부)문제이고, 나름 주권국가 두 정상이 합의한 사항인데도 미국에 승인받아 진행하겠다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는 태도가 그렇게 발목을 움켜잡고 있다 보니, 그러다 보니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민족자주와 자결의 원칙’에 합의해놓고도 미국의 내정간섭 기제인 한미 워킹그룹을 생성시켜 그 합의를 무색케 한다.

일련의 이런 후퇴들이 결국 지소미아 연장결정까지 오게 한 것이다.

 

4. 무엇이 문제이던가?

이를 원인 없는 결과가 없다했을 때 그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면 대략 3가지의 분명한 이유가 읽혀진다.

첫째는, 대통령 자신의 문제이다.

▲대통령으로써 가져야 할 철학이 분명한가? ▲촛불시대정신에 대한 이해가 명확한가? ▲촛불민심을 제대로 읽으려는 공감능력을 갖고 계신가? ▲결국 용인술(마키아벨리적 사고)의 부족과 인사정책에 대한 실패가 도드라진다.

둘째는, 내각과 참모의 무능, 혹은 사대의존 문제이다.

▲미국에 대한 新재조지은(再造之恩)이 보수정권을 충분히 능가한다. ▲민족적 시각은 거의 제로이고, 반면 동맹시각은 거의 100%이다. ▲촛불로 탄생된 정권에 대한 사명은 온데간데없고, ‘누구의’ 청와대이며 ‘누구를’ 위한 내각이던가? 그 물음만 남긴다.

셋째는, 집권여당 민주당의 사상누각 망상문제이다.

▲진보능력은 하나도 없으면서도 진보이미지는 절대 빼앗기려 하지 않는 과잉진보이득집착이다. ▲촛불민심 수용은 내뱉어 치면서 장기집권 20년 플랜만 몰두한다. ▲정책에 내 탓은 없고, 오로지 남 탓(전임정권과 적폐·보수야당)만 있다. ▲정당의 본령인 정치 대신, 대통령 뒤에만 꽁꽁 숨어있다.

이 모든 결과가 맞아떨어져 트럼프가 한 발언, “그들(한국 정부)은 우리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20181010, 현지시간)”가 쏙 귀에 박힌다.

 

5. 결론을 대신하며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그렇게 발생한다.

많은 분들이 현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가 민주당만의 정권이어서가 아니라 촛불정부이기 때문이었는데, 그 정치적 지지가 #3에 의해 흔들리고, #2에 의해 심리적 지지마저도 할 수 없게 만드니 그 어찌 안타깝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촛불민심과는 그렇게 멀어지고 마, 민주당 정권만으로 전락되니 (정권으로서의) 그 역사성은 분명 사라진다. 떠받치고 있던 두 기둥 중 한 기둥이 그렇게 무너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또다시 성립시켜 물어본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과연 촛불정부라 할 수 있겠는가?(강조, 필자)

물을 수밖에 없고, 판단은 이제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그렇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기에 필자로써 마지막 한 순간까지 부연설명하며 대통령께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은, 당신께서는 왜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가? (스스로를) 되묻고, 그 끝에 임기 5년만을 무난히 채우고자 한 것이 아니라면 ‘과연 나는 참모들과 관료들을 제대로 잘 쓰고 있는가?’를 그 시작으로 ‘과연 나는 지금 촛불시민들의 열망과 염원을 제대로 받아 안고 있는가?’, ‘과연 나는 지금 촛불시대정신을 제대로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는 있는가?’, ‘과연 나는 지금 소명 받은 그 역사의 길에서 떳떳하게 잘 가고는 있는가?’

묻고, 최종적으로는 그 결론에 민주당만의 정권에서 촛불정부로 다시 귀환하는 그런 정부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민플러스, 2019년 11월 29일에 게재된 글입니다 (필자와 협의하여 수정 후 본지에 실린 것임).

목, 2019/12/05-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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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에 이어 <도시가 사라진다>를 몇 회 더 쓰기로 한다. 오늘 처음 이 글을 보는 독자는 반드시 이전 글을 찾아 읽어 보기 바란다. 그래야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잡을 수 있을 테니까.

 

샌프란시스코 도심에 인분이 널린 이유: 내재적 접근

자, 그럼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자.

왜 샌프란시스코 도심의 길거리에 사람 똥이 널렸을까? 그야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똥을 싸 재꼈으니 그렇다. 그럼 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똥을 쌀까? 답은 간단하다. 쌀 데가 없어서가 답이다. 똥을 쌀 공공 화장실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사람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 화장실은 턱없이 부족하고, 마천루 빌딩의 화장실은 노숙자들을 반기지 않을뿐더러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백번 아량을 베풀어 노숙자들이 이용하게 한다고 해도 문을 닫는 밤이면 화장실 이용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용변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어떤 명사가 애용하는 내재적 접근을 한 번 해보도록 하자. 노숙자 입장에서.

누구에게나 용변을 보는 행위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보이고 싶지 않은 그런 창피한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용변을 볼 때 아주 제한된 공간에서 은밀하게 그 일을 치른다. 아무도 보길 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변태들 빼고는. 그런데 그렇게 수치스런 일을 길거리에서 버젓이 하고 있다고? 그것도 지상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는 나라 미국, 더군다나 최고부자 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사람들이?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는 그런 대로변에서? 사정이 어느 정도면 그리 하겠는가?

UFC챔피언 제이크 실즈(Jake Shields)가 샌프란시스코 자기 차 앞에서 찍은 노숙자 사진. 그는 “그 아름다웠던 이 도시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하고 한탄하는 트위터를 날렸다

 

안전마약투약소 법제화 서두르는 샌프란시스코

제정신을 가진 이들이라면 아무리 급하더라도 수치심을 잃어버릴 정도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용변을 보는 데는 매번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그럴 진데 길거리에서 정말로 스스럼없이 배변 행위를 할 정도라면 제정신이 아닐 공산이 매우 크다. 그것도 인생의 막장까지 갔다는 자괴감마저도 상실할 정도로.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도심의 노숙자들은 이런 이들로 북적인다. 물론 여기엔 실질적으로 공짜로 제공되다시피 하는 마약이 한 몫을 한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부정하고픈 사람들에게, 그래서 전혀 제정신이고 싶지 않을 이들에게 마약만한 것이 어디 있을까. 똥 더미 곁에 널브러진 마약 주사들을 보면 그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San Francisco’s dirtiest street has an outdoor drug market, discarded heroin needles, and piles of poop on the sidewalk,” Business Insider, Sep 20, 2019).

오죽했으면 샌프란시스코 시는 연방법이 엄격히 금하고 있는 ‘마약투약소’(safe injection site)까지 만들어 낼 궁리까지 했겠는가. 거기다 ‘안전’이란 수식까지 붙여서.(“SF resumes push for drug injection site after judge’s ruling,” San Francisco Chronicle, October 2, 2019).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세상에 마약만큼 위험한 게 어디 있나. 그러니 아무리 마약에 찌든 마약쟁이라도 자식에게 마약을 권하지는 않을 터. 그런데 그 마약을 공짜로 그것도 깨끗한 주사까지 제공해 주고 간호사 앞에서 투약하게 한다고 해서 그게 과연 ‘안전’한 것일까?

샌프란시스코 도심에 버려진 마약주사기들 <출처: AP>

 

산송장들의 땅’(the land of the living dead)

그런데 노숙자들의 똥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시당국이 그 문제는 둘째 치고, 돌려쓰는 마약 주사기로 인한 에이즈나 간염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 일단 이런 조치를 취하려 하고 있다니 말문이 막힌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미국의 대도시가 어느 정도나 사람 살 곳이 못되는 곳으로 변하고 있는지를 간파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의 노숙자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가늠할 수 있다. 수시로 도심 곳곳에서 발견되는 사람 똥과 똥냄새, 그리고 그 옆에 함께 널브러진 주사바늘 등, 코를 막고 고개를 젖힐 수밖에 없게 하는 이런 장면들을 매일 목격하며 사는 주민들에겐 그것은 지옥의 장면과도 같다. 오죽했으면 샌프란시스코 도심의 한 주민은 취재 나온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여기는 산송장들의 땅”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을까. 산송장들의 땅. 서양식으로 말하면 좀비들의 땅. 그곳에 가면 머리에 꽃보다는 샌프란시스코 시 보건당국자 고든(Rachel Gordon)이 충고하는 것처럼 길을 걸을 때 똥냄새 때문에 “숨 쉬는 것을 참아야만 하는 곳”이 되었다.(“Life on the Dirtiest Block in San Francisco,” New York Times, October 8, 2018). 그러니 도시가 사라진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노숙자 증가원인: 집값 폭등

결국 노숙자가 문제다. 그럼 그 많은 노숙자들은 대체 어떻게 양산된 것인가? 그 답을 하기 전에 이 쯤에서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 집값이 오르면 마냥 좋기만 한 것일까? 통상 집을 가진 이들이라면 “그렇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결코 아니다. 집값이 오르면 물가도 덩달아 오르고 물가 오르면 인건비도 당연히 오른다. 그게 그런 식으로 순환하는데 그냥 순환하는 게 아니고 악순환 한다. 결국 이렇게 되면 맨 먼저 저임금 노동자들과 서민들만 피를 보게 된다. 물론 집 가진 자들도 나중에 피해를 보게 된다. 집값 오르면 뭐 하나. 사람 살 곳이 못 되고 있는데… 저임금 노동자들과 서민들의 경우, 그깟 최저임금 조금 오르면 뭐 할까. 물가 앙등으로 생활비는 더 들고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니 집을 사기는커녕 월세 살기도 빠듯해진다. 월세는 집값 상승 대비 연동되어 함께 오르게 되어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월세 내고 나면 살길이 막막해진다. 그야말로 생활이 아닌 생존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먹는 건 손가락 빨고 사는가? 그럴 순 없으니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를 고를 수밖에. 월세가 도심에 비해 저렴한 도시 밖으로 나가든지 아니면 도시 안에서 노숙자가 되든지. 도시 밖으로 나가면 그나마 허드레 일자리 구하기도 하늘에 별 따기. 그 경우 출퇴근은 어찌하나? 그렇다면 막장 인생 그것이 유일한 답.

“어떤 도움이든 감사할 것!”이라 쓴 푯말을 들고 구걸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자 <출처: Flickr>

독자들은 이 대목에서 오해하지 마시라. 노숙자들이 원래부터 배우지도 못하고 게다가 게으기까지한 별 볼 일 없는 하층민이었지 않겠느냐고. 천만에 말씀. 치솟는 집값과 임대료의 상승은 심지어 동부의 명문 예일대 졸업생까지 한 순간에 노숙자로 전락하게 만든다.(“He was a Yale graduate, Wall Street banker and entrepreneur. Today he’s homeless in Los Angeles”, CNN, September 18, 2019). 그러니 절대로 현재 미국 대도시에 쏟아져 나오는 노숙자들을 평범한 이들과 구분되는 천민정도로 취급하지 말기 바란다. 그들의 대부분은 집값이 오르기 전엔 그야말로 필부필부였으니까. 결국 노숙자 문제는 서민들의 문제다.

엔리코 모레티(Enrico Moretti) 버클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집값이 10% 상승할 때마다 식당 등을 포함한 지역 소비 물가는 6% 증가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집값의 중간값(the median home price)이 2012년 이래 두 배 증가했다.(“San Francisco Restaurants Can’t Afford Waiters. So They’re Putting Diners to Work”, New York Times, June 25, 2018.) 샌프란시스코는 최첨단 기술 기업들이 소재하는 이유로 주택의 수요가 높고 그에 따라 한정된 공급으로 집값이 대거 상승했다. 이것은 집을 소유하지 못하고 임대를 해야만 하는 서민들의 입장에선 내 집 마련 꿈은 점점 더 요원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커녕 현재 사는 월세조차 위협받는 것을 말한다. 왜냐고?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최저임금이 2014년 시간당 10.74달러에서 2018년 7월 15달러로 상승했다. 그러나 집값 상승에 따른 임대료 상승 그리고 생활비의 상승은 시급 오른 것을 한껏 비웃을 뿐이다. 부동산을 잡지 않는다면 그깟 소득 얼마 찔끔 오른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샌프란시스코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 명이 집 구매할 때 세 명이 노숙자 되는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 만 지역사무소 소장인 제이미 알만자(Jamie Almaza)의 말을 들어 보면 이 지역의 주거 불안정성이 어느 정도나 심화되었는지 알 수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알만자는 샌프란시스코 시에서 한 명이 집을 갖는 동안 두 명의 노숙자가 탄생한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올 8월에 열린 토론회에서 그것을 수정했다. 한 명이 집을 가지면 이제는 세 명이 길거리 노숙자가 된다(“California homeless crisis: San Francisco tackles costly waste problem with ‘poop patrol”, FoxNews, August 20, 2019.). 샌프란시스코 시가 기존의 방식으로 집계한 노숙자 수는 올해 8천11명으로 2017년에 비해 17% 증가한 것으로 나오지만, 새로운 기법으로 으로 집계해 본 결과 그 두 배인 17,595명에 달해 3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San Francisco’s Homeless Population Is Much Bigger Than Thought, City Data Suggests,” New York Times, November 19, 2019).

 

비등점에 이른 로스앤젤레스 노숙자

로스앤젤레스의 노숙자 문제는 한층 더 심각하다. 작년에 비해 노숙자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광역)에서 12%가 늘어나고 로스앤젤레스 시만 보면 16% 증가했다. 해서 그 수는 각각 58,936명, 36,300명으로 집계되었다(“Homeless Populations Are Surging in Los Angeles. Here’s Why.”, New York Times, June 5, 2019).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인근 오렌지카운티는 43% 증가했다(“California mayor says high cost of living is root of homeless crisis,” FoxNews, June 26, 2019). 물론 이것도 공식적 집계이니 실제로는 더 그 수가 더 늘어난다. 폭스뉴스는 로스앤젤레스의 노숙자 문제는 이제 “비등점”에 이르렀다고 코멘트를 달았다. 그리고 이렇게 노숙자문제가 극단적으로 악화된 데에는 이구동성으로 집값 상승을 지목한다. 로스앤젤레스 시민단체 소장 엘리스 뷰익(Elis Buik)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우리의 주택위기가 곧 노숙자 위기”라고 정곡을 찌른다. 더도 덜도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멀쩡한 서민들을 노숙자로 만드는 주범은 바로 “거주부담능력”(housing affordability)이라 말한다. 그런데 착각하지 마시라. 여기서 거주부담능력이란 주택 구입 부담능력이 아니다. 월세 감당력을 말한다. 로스앤젤레스 노숙자담당국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로스앤젤레스에서 월세 중간값을 내고 방을 얻으려면 적어도 시급을 47.52달러(약 5만 원) 받고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최저 시급은 14.25달러(약 1만5천 원)이다. 죽었다 깨어나도 살인적 거주비용을 임금이 따라잡을 수 없다. 이러니 많은 수의 평범한 시민들이 노숙자로 길거리로 나갈 수밖에.

로스앤젤레스 도심에 늘어선 노숙자 텐트들 <출처: 로이터>

 

바보야, 문제는 부동산이야!

이제 미국 전통적인 대도시가 사라져 가는 이유를 어느 정도 파악했으리라 믿는다. 서민이 살지 못하는 도시, 중산층이 몰락하는 도시, 그것은 무늬만 도시지 사실 도시가 아니다. 그저 소수의 몇 십 명도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임대한 아파트에서도 쫓겨나 길거리에서 노숙해야 하는 곳이 어떻게 사람이 사는 도시라고 할 수 있을까? 결국 노숙자의 퇴치(?)를 위해서는 치솟는 집값과 임대료를 내려야 한다. 그것이 아니고서는 미국 대도시의 노숙자 문제는 해결할 방도가 없다. 샌프란시스코처럼 ‘똥 순찰대’를 고용해 똥 치우고, ‘안전마약투약소’를 설치하는 것은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리 쉽게 될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미국 대도시에 집값을 상승시킨 주범들이 미국 어딘가에 떡하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실마리를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소도시 라구나 힐스(Laguna Hills)시장 돈 세지위크(Don Sedgwick)의 언급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이 문제를 쟁점화 시켜야한다. 수 킬로미터에 걸친 노숙자 행렬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것도 한 때는 그들도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가려했던 멀쩡한 이들로 우리의 이웃이었다는 점에서 가슴이 미어진다. 그러나 정말 환장하겠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이 문제의 근원에 캘리포니아의 천정부지로 치솟은 살인적 거주비용에 대해선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문제 삼지 않고 외면한 바로 그 자유주의적 정책들이 캘리포니아의 노숙자 문제를 키워온 원흉이다”(“California mayor says high cost of living is root of homeless crisis,” FoxNews, June 26, 2019).

자, 그러면 그 자유주의적 정책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차례이다. 물론 다음 회에서…

 

<참고자료>

“He was a Yale graduate, Wall Street banker and entrepreneur. Today he’s homeless in Los Angeles”, CNN, September 18, 2019.

“San Francisco Restaurants Can’t Afford Waiters. So They’re Putting Diners to Work”, New York Times, June 25, 2018.

“Why is San Francisco … covered in human feces?” the Guardian, Aug. 18. 2018

“SF resumes push for drug injection site after judge’s ruling,” San Francisco Chronicle, October 2, 2019.

“San Francisco’s dirtiest street has an outdoor drug market, discarded heroin needles, and piles of poop on the sidewalk,” Business Insider, Sep 20, 2019.

“Life on the Dirtiest Block in San Francisco,” New York Times, October 8, 2018.

“San Francisco Restaurants Can’t Afford Waiters. So They’re Putting Diners to Work”, New York Times, June 25, 2018.

“San Francisco’s Homeless Population Is Much Bigger Than Thought, City Data Suggests,” New York Times, November 19, 2019.

“California homeless crisis: San Francisco tackles costly waste problem with ‘poop patrol”, FoxNews, August 20, 2019.

“Homeless Populations Are Surging in Los Angeles. Here’s Why.”, New York Times, June 5, 2019

“California mayor says high cost of living is root of homeless crisis, FoxNews, June 26, 2019.

 

김광기 경북대 교수의 연재 ‘인사이드 아메리카’는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금, 2019/12/0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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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사고와 화이트헤드 철학

화이트헤드와 생태문명은 내 삶의 심장과 같은 주제이다. 나는 화이트헤드 철학을 만나면서 인생의 무의미함에서 탈출했다. 그의 철학은 근대적 사고를 무조건 규범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켰다. 내 경험상 근대적 사고는 늘 니힐리즘으로 귀착된다. 무엇이 옳은지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근대적 사고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전제들에 근거하고 있다는 통찰이었다.

나는 화이트헤드를 통해 나의 주관적 경험, 목적, 결정, 감정이 완전히 현실이며, 따라서 인과적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또한 내 경험이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비슷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모든 인간은 경험하며, 이는 모든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화이트헤드 철학은 경험의 어떤 특징들을 더욱 확장하면서 이원론을 피해가도록 도와준다. (역주: 흄, 칸트를 비롯한 대부분의 서구 철학자들은 우리와 세계의 관계가 감각기관, 특히 시각에 의해 중재된다고 생각했으며, 이는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대상인 객체의 분리를 낳았다. 화이트헤드는 이런 전제를 거부한다. 감각은 우리에게 의식적 지식을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우리는 훨씬 근본적인 방식으로 세계의 존재를 느낀다. 화이트헤드는 전자를 현시적 직접성, 후자를 인과적 효과성이라 부르며, 실제 우리 경험을 분석하면 인과적 효과성이 현시적 직접성의 지각을 받쳐준다고 주장했다. 인과적 효과성의 지각은 앞선 사건의 어떤 측면을 새로운 생성의 참여자로 만드는데, 이를 파악이라 명명한다. 생성의 모든 순간은 물리적 극점과 정신적 극점을 동시에 지니기에 물리적 실체와 정신적 실체라는 이원론을 대체한다.) 경험의 세계에 산다는 것은 내 경험, 그리고 다른 모든 존재의 경험이 갖는 가치를 매우 명백하게 만든다. 경험은 거기에 가치가 더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사실”이 아니다. 경험이란 “가치가 더해진 사실”이다. 경험에는 가치가 있고, 그것 자체가 가치일 뿐만 아니라 뒤따르는 경험의 가치를 증가시킬지, 감소시킬지 결정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느끼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이 중요하며, 차이를 만들어낸다.

화이트헤드 연구자들은 모든 것이 중요성을 갖는다고 여기며, 그러므로 사방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갖는다. 1969년 나는 갑작스럽게 내가 이전까지 당연시했던 사회구조와 개발 패턴이 인류를 전 세계적인 자기파괴로 이끌고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되었다. 사방에서 인간의 요구에 부응해온 세계의 용량이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인류는 인간 자신을 포함한 자연을 착취하는 가운데 지속 불가능한 길을 가고 있다.

전 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 시대에 이런 사실을 알고, 인간사회를 지속 가능한 길로 돌려놓기 위해 헌신했다. 나는 그들에게 가담했고 지금까지도 그들 중 한 명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지속가능성” 이상의 것이다. 우리가 지속시키고자 하는 것은 건강한 공동체로 이루어진 세계이다. 우리는 또한 모든 것이 상호의존적이라고 본다. 우리의 목표를 좀 더 매력적이며 의미 있는 방식으로 명명할 필요가 있다.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세계관을 유기체 철학이라고 불렀다. 그의 핵심적 강조점은 유기체들의 상호연관성이다. 만약 화이트헤드가 생태철학이라는 용어를 알고 있었다면, 그는 자신의 철학을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중국을 통해 나는 내가 희망하는 세계를 ‘생태문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역주: 중국은 2007년 제17차 공산당 당대회에서 생태문명 건설을 주요 국정지표로 처음 제시한다. 필자는 화이트헤드철학을 매개로 중국 학계와 지방정부의 생태문명 논의에 깊이 관여해 왔다.) 세계의 구조 자체가 매우 생태적이고, 근대성이 그런 생태적 특징을 약화시키거나 심지어 파괴해 왔음을 이해하게 됐을 때, 나는 내가 희망하는 세계를 생태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는 점을 깨달았다. 모든 사람들이 이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 자신은 이 이름을 사용하며, 현재까지 유용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생태문명이라는 개념이 화이트헤드 연구자들로부터 나온 것은 아니다. 생태학이란 개념은 생물학의 하위분야에서 유래했으며, 자연에서 모든 식물이 다른 식물들, 곤충들, 동물들과 잘 연결됐을 때 잘 자란다는 점이 강조되면서 대중의 주목을 끌게 됐다. 만약 자연이 건강한 상태이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개별 종의 건강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건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런데 근대 세계는 금전적 잣대를 들고 자연에 접근했다. 그 목적은 단위 면적의 토지에서 가능한 최대의 이윤을 거두는 것이다. 인건비가 내려가면 이윤은 올라간다. 따라서 생태계를 단일경작으로 대체하면 노동의 수요를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생태학자들은 1960년대 후반에 대중의 주목을 끄는 방식으로 경종을 울렸다. 우리는 그들에게 많은 빚을 졌다. 현대문명이 전체적으로 생태적 고려사항들을 무시하고 문명을 지속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했을 때, 이런 문명은 생태적으로 민감한 문명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매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 철학 혹은 종교에 헌신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런 생각은 매력적인 것이었다.

화이트헤드 철학에 대한 흥미가 없더라도 생태문명을 지지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현대세계에서 철학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일은 드물고, 만약 생태문명을 위해 헌신하는데 그런 과정이 필요했다면 이 운동의 전망은 사실상 매우 암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화이트헤드 철학을 생태문명과 관련이 없는 것, 심지어 방해물로 만드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치중립적 교육의 문제

우리 시대에 대학들에서 벌어지는 일을 살펴봄으로써 화이트헤드의 생태철학과 생태문명이 갖는 관계에 대한 나의 관점을 설명할 수 있다. 현대 대학에 대해 나는 매우 비판적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우리가 생태학을 전공한 대학교수들을 통해 생태위기를 인식하게 됐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겠다. 좀 더 최근에는 기후학 교수들을 통해 기후 위기를 인식하게 됐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대학들은 방대한 양의 정보를 제공하며, 때때로 매우 중요한 방식으로 이런 정보를 대중과 공유한다.

존 캅 교수 <출처: 중앙일보>

그럼에도 이제 비판적으로 접근하겠다. 오늘날의 대학들은 여러 학과들의 집합으로 구성돼 있다. 이것은 어떤 특수하고 경계가 분명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정보를 보탠다는 연구 목표에 따라 조직된 것이다. 이런 학과들은 가능한 한 객관적이고 “사심 없는” 상태를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각자의 분야에서 가치를 배제함으로써 자신들의 연구 목표를 이루고자 한다. 예를 들어 하버드 대학은 스스로를 가치중립적 연구중심 대학이라고 소개한다.

기후학자들이 나름의 가치를 지향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들은 인간의 활동이 기후를 부정적인 방향, 심지어 재앙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깊이 좌절했다. 그들은 지구를 인간이 살기에 쾌적한 상태로 만드는 기후에 가치를 매긴다. 나는 다른 학과에서도 이와 비슷한 어떤 가치들이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역할은 인정되지 않는다. 학계 분위기는 각 학과들이 건강한 지구에서 건강한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방향을 지향하도록 권유하지 않는다. 학계는 중립을 권유한다. 실용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대학의 연구 주제들이 연구자금의 수혜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는 뜻이다.

대학교수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영향력 있는 책의 제목이 『당대의 세계를 구해라(Save the World on Your Own Time)』이다. 이 책은 대학 강의실에 가치를 위한 자리는 없다고 설명한다.  교수는 자신이 속한 분야의 지식을 증진시키고, 그것을 학생들과 공유하며,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그 분야의 지식을 증진시키는데 참여할 수 있는지 가르치기 위해 고용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런 방대한 지식이 부족한 자원의 소모를 가속화하는데 쓰이는 시대에 교수의 역할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아이들을 염두에 두고 그런 염려가 자신들이 공부하는 내용과 방법에 영향을 미치도록 가르치는 것이며, 이것이 세계에 더 큰 이익을 가져온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가치중립적 고등교육은 모든 가치들에 대해 중립적이지 않다. 그것은 인본주의적 가치가 뚜렷했던 인문대학(리버럴 아츠 컬리지)들을 대체했다. 인문학 교수들은 학생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걸 목적으로 삼고, 학생들이 장차 사회의 지도자로서 자신들의 문화적 자산을 활용하도록 가르쳤다. 50년 전에는 많은 학생들이 이런 가치를 위해 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더 보수가 높은 직업을 얻기 위해 대학에 들어간다. 부라는 가치가 중심이 된 것이다. 이것은 사회 전반에서 마찬가지다. 그러나 부에 대한 추구가 사회적 가치가 되면 될수록 다가올 재앙 또한 커질 것이다. 인류의 운명이란 관점에서 볼 때 고등교육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부에 대한 봉사와 부라는 목적의 전파는 우리의 건강한 생존 기회를 감소시키고 있다.

많은 교수들이 강의 외의 시간에 인류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일한다. 고등교육에 대한 나의 비판이 교수들을 향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바란다. 나와는 관련이 없다는 식의 사고, 그 이상을 부추기는 시스템에 반대하는 것이다. 왜 이런 시스템이 고등교육을 바꿔놓은 것일까?

 

생태문명을 위한 철학의 역할

이 시스템은 근대세계를 구성하는 근본적 개념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아마도 불가피한 결과물일 것이다. 근대문명은 눈부시게 성공한 자연과학과 함께 성장해 왔다. 자연과학은 자연을 기계로 보는 관점으로부터 탄생했다. 이것은 자연에 내재한 어떤 가치도 부정해 왔다. 자연은 인간을 위한 도구적 가치를 가질 뿐이다.

19세기 후반까지 근대문명은 이원론적이었다. 자연이 기계라는 사고와 함께, 근대문명은 고대 그리스와 히브리에서 유래해 중세에 통합된 인본주의적 이해를 계승했다. 인문학에는 중세 대학들의 사고가 뿌리내리고 있으며, 19세기까지 이런 전통은 계속됐다.

그러나 19세기에 찰스 다윈은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증명했다. 이는 자연을 다시 생각해 보거나, 인간도 자연이라는 기계의 일부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기계론적 과학에 대한 근대의 헌신은 매우 확고한 것이었기 때문에 후자가 승리를 거둔다. 중세적 인본주의는 근대적 기계론 앞에 무릎을 꿇었다. 기계적 세계는 어떤 목적이나 가치도 갖고 있지 않다. 대학은 가치중립적이 되기를 스스로 희망했을 것이다.

물론 교수들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를 좀비(기계인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임마누엘 칸트는 우리가 좀 더 사실에 근거한 정보를 얻는데 사용하는 “이론적 이성”과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하는데 필요한 가치를 고려하는 “실천적 이성”을 구별함으로써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는데 기여했다. 칸트에게는 둘 다 중요했다. 그러나 대학들이 스스로를 이론적 이성의 영역에 가둠으로써 우리 문화에 지침을 주는 어떤 곳도 없었으며, 이는 아이들에게 가치에 대한 진지한 사고가 중요하지 않거나 심지어 가능하지 않은 종류의 일이라고 가르치는 결과를 낳았다.

교수들이 강의하지 않는 시간에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자유롭게 일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정보에만 가치를 두고 판단을 정지하도록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사회를 조직하는 것은 좋지 않다. 이 같은 교육의 구조화는 현대세계의 근본적 믿음에서 나온 결과물이기 때문에, 이것이 자기파괴를 피하도록 도와야 하는 절망적 상황에서 사회를 조직하는 최선의 방식이라고 믿지 않는다면 그 근본 전제들을 검토해야 한다. 이 전제들이 잘못됐다고 판단하면 더 나은 전제로 대체해야 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바는 생태문명으로 전환하는데 철학의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생태문명이 필요하다는 것은 상식의 문제일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식들과 손자들이 쾌적한 지구에서 살아가길 바란다. 이는 행동의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는 윤리적 관점에서 현재의 나쁜 행동을 바라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구의 미래라는 관점에서 볼 때 나쁜 행동이 근대적 원리와 믿음을 내면화한 많은 이들에게는 좋은 행동이 된다. 재차 강조하지만 토대를 이루는 믿음들이 문제다. 그러한 믿음들이 무엇인지 드러내고 토론해야 한다. 이것이 철학의 임무이다.

혹자는 대학의 철학 교수들이 이런 임무에 종사한다고 기대할 수도 있다. 몇몇 교수들은 그렇다. 아마 모든 교수들이 변화를 이끌어내는 기회를 주는 인식을 갖도록 학생들을 북돋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재의 본성에 관한 근본적인 전제들을 검토하는 철학이다. 이것은 형이상학의 영역이다. 대부분의 근대철학은 이 과제를 스스로 포기했다. 근대철학은 다른 학과들과 나란히 서서 또 하나의 학과가 되고자 했다. 다행히 예외는 있다. 그러나 근대적 사고의 전제들을 비판하는 과제를 근대 철학자들에게 맡기는 것은 실수일 것이다.

짧게나마, 필요한 비판이 제기됐던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것이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다윈의 증명에 대한 반응으로서 나왔다고 간주한다. 다윈의 증명은 근대의 이원론적 사고에 대한 극적 도전이었다. 형이상학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나는 이에 대해 두 가지 응답이 가능하다고 앞에서 지적했다. 하나는 자연에 대한 근대적 이해를 유지하면서 인간을 그 안에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기계론적 사고가 근대성의 중심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불가피했다. 그러나 자연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공적 논의가 일어났다. 이 선택지는 신자연주의라고 불렸다. 이런 움직임은 기계적 모델이 모든 것에 적용될 수 없다는 과학적 증거가 늘면서 지지를 얻었다. 기계적 설명의 한계는 점점 상식이 되었다. 과학을 개혁하고자 하는 이들은 대체로 학회나 대학으로부터 배제 당했지만, 반복해서 그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들은 바로 이런 신자연주의 철학자들이다. 앙리 베르그송은 당대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상가였으며, 오늘날에도 그를 따르는 이들이 있다. 테이야르 드 샤르댕도 그 중 한 명이다. 윌리엄 제임스와 찰스 퍼스는 미국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으며 지금까지도 영향력이 있다. 이들보다 영향력이 적지만 많은 사상가들이 있었다.

 

기계론을 넘어 생태론으로

내가 명확히 했듯이, 나는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가 가장 종합적이고 통찰력 깊은 업적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물리학은 자연과학의 토대를 이루는데, 그는 뛰어난 수리물리학자였다. 나는 우리 화이트헤드 연구자들이 이런 신자연주의 사상가들의 후예들을 열광적으로 지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오늘날 과학자들의 발견이 이원론적 사고의 변화를 폭넓게 지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변화의 시기가 온 건 같다.

화이트헤드는 기계론에서 유기체론으로, 실체적 사고에서 사건적 사고로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것은 형이상학의 변화이다. 실체는, 설령 그런 것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언제, 어디에 존재했는지에 상관 없이 그저 그것 자체일 뿐이다. 그러나 사건은 오직 언제,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만 그것 자체일 수 있다. 사건이 관계들의 통합으로 이해될 수 있는 반면, 실체에서는 관계들이 배제된다.

우리 경험에서 객관적인 것이 갖는 중요성으로부터 경험 자체의 중요성으로의 변화도 일어났다. 세계의 많은 부분이 감정으로 구성된다. 감정에는 근본적으로 가치가 들어있다. 가치중립적인 물체들의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가치들의 영향을 받은 목적과 결단의 작용이 모든 경험에 들어있다.

형이상학 강의를 더 이어갈 생각은 없다. 그러나 생태적 형이상학은 기계적 형이상학과는 매우 다를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생태적 형이상학이 교육에 갖는 함의는 혁명적일 것이다. 경제학, 정치학, 농업, 산업에 갖는 함의 역시 혁명적일 것이다. 이 형이상학의 함의는 형이상학에 대한 의식적 지식이 없이도 이미 진행되고 있는,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이라는 움직임을 지지할 것이다. 화이트헤드 형이상학의 많은 부분은 미래를 염려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에 대해 확신을 주고, 이를 지지한다.

근대적 정신은 형이상학을 거부했으며, 따라서 형이상학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주장에 설득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근대적 정신은 미국인들의 사고에 만연해 있다. 그들은 그저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싶어할 뿐이다. 그래서 올바르게 행동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미국인들에게 모든 관심사는 이론적이기보다 실용적인 것이어야 한다.

이에 비해 중국에는 기본적인 믿음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개방성이 있다. 중국인들은 근대 유럽인들의 사고가 자신들의 전통적 사고와 매우 다르다는 점을 인식한다. 그들은 사고의 차이가 개인의 삶과 사회 제도에 만들어내는 차이를 목격했다. 그들은 또한 부르주아적 사고와 행동, 그리고 마르크시즘 사이의 깊은 차이 역시 경험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들은 근본적인 믿음의 체계가 현실에 형태를 부여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비록 중국에서 생태문명이란 개념이 체계적 철학과는 상관없이 생겨났지만, 많은 이들이 중국의 생태문명 개념과 화이트헤드 철학 사이의 연관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런 점은 중국에서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이라는 일을 진행하기 쉽게 만들었다. 우리는 생태문명이란 주제로 수많은 컨퍼런스를 열고, 그것의 현실적 성격을 설명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보장받았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화이트헤드 철학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지만, 중국인들은 생태문명의 바탕에 깔린 전제들이 생태적 철학을 구성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개인에게 필요한 변화조차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이해가 이제 등장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생각하는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지식을 구획화하기보다는 지식 사이의 상호연관성을 봐야 한다. 일상에서도 관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부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뿌리 깊은 전제는 점점 문제시되고 있다. 요컨대 근대성은 더 이상 대중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지배하지 못한다. 거기에 새로운 문명, 즉 생태문명을 향한 희망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 좀 더 좋은 철학이 그런 이상에 도달하도록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다.

 

존 캅(John B. Cobb)

종교철학자,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 명예교수

월, 2019/12/09-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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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부세 시즌이 돌아오자 거의 모든 미디어들이 세금폭탄을 합창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올해 종부세 납세 의무자는 59만5000명으로 지난해보다 12만9000명(27.7%) 증가했는데, 이는 전체 1,998만 가구의 약 2.5%수준이다. 납세의무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종부세 총액도 3조 3,471억원으로 전년보다 1조 2,323억원(58.3%) 늘었다고 한다. 작년에 서울 아파트 가격이 폭등했고 그 폭등이 공시가격에 일부라도 반영됐으니 종부세 납세의무자와 세액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를 노무현 정부 시즌 2라고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종부세(과세기준 및 세율)를 노무현 정부 수준으로 복원시키지도 못할 정도로 보유세 강화에 대한 의지가 약한 정부다. 게다가 2008년 헌법재판소에 의해 종부세 부부합산과세가 위헌결정을 받은터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올해 예상되는 종부세 추정세수가 3조 3천억원이 넘는다는 건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이 얼마나 많이 폭등했는지를 잘 알려주는 증거다. 참고로 종부세가 생긴 이래 최대 세수는 참여정부 당시인 2007년의 2조 7,671억원이었다.

종부세로 대표되는 보유세는 거의 모든 학자들이 가장 좋은 세금으로 평가하는 세금이며, 부동산 투기억제의 버팀목 노릇을 하는 세금이다. 대한민국은 보유세가 너무 약하기 때문에 부동산 투기가 횡행하고 부동산 과다보유자들이 천문학적 불로소득을 사유하고 있다. 보유에 따른 부담이 거의 없다보니 누구나 부동산을 통해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인 14~16년의 서울 아파트 평당평균가격 상승률이 실거래가 기준으로 16.0%였는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17~19년 동안 무려 37.5%가 상승한 데에도 문재인 정부의 보유세 강화 의지 박약이 큰 몫을 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주요선진국들과 비교해봐도 대한민국의 보유세는 너무 낮다. 대한민국의 GDP 대비 보유세 비율(2015년 기준)은 0.8%로 OECD 평균(1.12%)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며, 보유세와 거래세를 합친 재산과세에서 보유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OECD 평균은 69.8%인데 반해, 대한민국은 고작 28.7%에 불과할 정도로 기형적 구조다.

또한 보유세 부담의 정도를 직접 보여주는 실효세율(실효세율은 실거래가 기준으로 보유세를 실제 얼마내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예컨대 보유세 실효세율이 1%라고 하면 실거래가 10억짜리 아파트의 보유세가 1년에 1천만원인 셈이다)을 보면, 2015년 현재 OECD 주요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호주(0.31%), 캐나다(0.87%), 일본(0.57%), 영국(0.78%), 이탈리아(0.62%), 미국(0.71%)이고, 한국(0.16%)을 제외한 15개국의 평균은 0.39%이다. 한국은 주요 선진국의 1/3~1/5밖에 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말해 보유세 폭탄 운운하는 미디어들의 주장은 전형적인 곡학아세이자 견강부회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는 미디어들의 거짓선동에 현혹되지 말고 보유세 강화 로드맵을 입안해 발표해야 한다. 획기적인 보유세 강화 로드맵은 발표만으로도 시장에 미치는 효과가 클 것이다.

화, 2019/12/1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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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극소수 부유층의 금융자산에 대해 부유세를 부과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후폭풍과 위험을 잘 지적해 주는 칼럼이다. 우리는 이미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 시절 부유세를 피하기 위해 수 조억 달러(?)가 해외로 도피한 사례를 경험했다.

한국의 경우에도, 투기가 극성을 피우는 가운데 해외로 도피가 불가능한 부동산에는 누진적 보유세가 정답이지만, 이동이 가능한 금융자산에는 부유세 대신 거래세가 현실적임을 알려준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달 조 바이든이 민주당 후보지명 캠페인의 일환으로 금융거래세 (FTT)를 추가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류의 세금을 오랫동안 지지해왔던 우리에게는 좋은 소식이다.

이 문제에 대해 버니 샌더스는 대학등록금 무료화를 내세운 그의 계획의 일환으로 금융거래세를 포함시키면서 대통령 후보자들 사이에서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몇몇의 다른 후보자들 또한 금융거래세를 지지하고 있으나, 만약 민주당의 유력한 중도성향 후보자가 이런 세금을 옹호한다면 주요 정치적 논쟁의 안에서 새로운 척도의 수용으로 나타날 것이다.

워렌 상원의원은 금융거래세를 지지하는 축에 끼지 않는다는 사실은 다소 놀라울 수도 있다. 분명히 그녀가 부자들의 이익에 도전하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그녀는 부유층과 권력층의 이익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다양한 방안들을 제시해왔다.

워렌의 제안에서 가장 야심찬 항목은 부유세이다. 워렌의 세금 관련 공약에 의하면 5천만 달러 이상의 부에 연간 2%의 세율, 그리고 10억 달러 이상의 부에는 연간 3%의 세율을 부과한다 (샌더스는 심지어 더 큰 재산세를 내세우고 있다). 아주 부유한 사람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싶은 충분한 이유가 있는 한편, 금융거래세는 확실히 더 나은 경제 정책이며 훨씬 더 나은 정치 전망이 있다.

연방 정부의 과세에 대한 동기를 고려해보면 금융거래세의 경제성이 뛰어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현대 통화 이론(MMT) 지지자들이 상기시켜준 것 처럼, 연방 정부는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과세대신에 화폐를 인쇄할 수 있다. 연방 정부의 과세 목적은 소비를 줄이기 위한 것이고, 그로 인해 정부지출을 위한 경제적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만일 정부가 엄청난 양의 돈을 재정으로 지출하면서 세금을 거둬들이지 않는다면, 과다수요의 창출로 인해 인플레이션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논점이다.

경제적인 측면이나 정치적 측면에서 모두 금융거래세는 금융자산에 대한 부유세보다 얻는 이점이 많다.

연방정부가 내년에 청정 에너지와 대중교통 보조금 같은 ‘그린 뉴딜 정책’에 1조 달러(현 연방지출 보다 20% 정도 인상한 비용)를 더 지출할 것이라고 예를 들어 생각해 본다면 이 점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세금이 인상되지 않는다면, 해당 영역에서 수요의 급증으로 인하여 인플레이션이 초래 될 것이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금리 변동을 피하기 위해 단순히 더 많은 돈을 인쇄한다고 가정할 경우).

미국의 가장 부유한 사람들에게 매년 1조 달러의 혜택을 주었던 공화당 스타일의 세금감면을 시행하면서도, 지출을 감소시키지 않거나 또는 다른 세금을 인상하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경우에, 우리는 확실히 인플레이션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제프 베조스, 빌게이츠를 포함한 다수의 억만장자들은 그들이 쓸 수 있는 돈을 이미 다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정부 혜택은 그들의 주식자산의 구성을 풍족하게 만들어 줄 것이나 경제 수요에는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인플레이션까지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 다시 뒤집어서 억만장자들에게 세금혜택을 주는 대신에 우리는 매년 3퍼센트의 비율로 그들의 부에 세금을 매기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베조스, 게이츠, 그리고 여탸 부자들은 여전히 그들의 자산으로 돈을 벌고 있기에 그들의 재산은 거의 영향 받지 않을 것 이다. 극소수 부유층의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며 이는 우리가 추가적인 정부 지출을 위한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수요에 대한 영향은 다른 방향으로 재현될 가능성도 있다. 대부분의 억만 장자들은 그들의 자산증식을 좋아한다. 부유세 시행은 그들이 회계사, 변호사, 그리고 절세 및 탈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고용할 강한 동기를 부여한다. 간단히 계산를 하자면, 만약 제프 베조스가 20년 동안 10 억 달러를 숨겨놓을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그는 6억 달러(연간 3.0%)를 절약하게 된다 (이자는 제외한 예시이다). 이것은 그가 영리한 회계사와 세무 변호사에게 5억 달러를 지출한다 해도 오히려 돈을 더 버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회계사와 세무변호사에 대한 베조스의 지출은 비도덕적일지라도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창출을 위한 지출이다. 이러한 이유로, 부유세는 경제수요를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증가시키는 편이 될 것 이다.

반대로, 금융거래세를 피하는 방법은 거래를 줄이는 것이다. 금융 분야에서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적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대부분의 추정치를 통해 FTT로 인한 거래 비용을 올리면, 거의 비슷한 비율로 거래량이 감소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FTT가 주식이나 옵션의 거래 비용을 40% 인상한다면 거래량은 대략 40% 감소할 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에 의하면, 사람들은 각 거래 마다 40%를 더 지출하게 되지만, 40% 적게 거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거래에 지출한 총액은 우리가 세금으로 지불한 것을 포함한 후에도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다른 우선 순위에 지출할 수 있도록 경제에서 자원을 확보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세금으로부터 기대하는 것이다.

금융산업은 거래에서 거둬들인 수익이 거의 세금의 크기만큼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세금의 전액만큼 축소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부가 다른 우선 순위에 지출할 수 있도록 경제적 자원을 확보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세금으로부터 기대하는 바 이다.

금융산업은 다소간 규모의 축소를 허용 할 수 있는 경제의 한 분야이다. 좁은 의미의 금융 부문 (증권 및 금융상품 거래) 규모는 1970년대에 GDP의 대략 0.5%에서부터 오늘날의 GDP의 2%이상으로 지난 40년 동안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금융거래세는 부분적으로 이 상승을 억제시킬 것 이다. 나의 계산에 따르면, 금융거래세는 향후 10년동안 1조6천억 달러에 이르는 GDP의 0.6%에 육박하는 액수로 올릴 수 있을 것이며 그 돈은 금융 부문의 축소에 상응하는 수준이다.

이런 류 거래량 감소로만 경제적 비용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지난 40년 동안 엄청난 거래량 증가가 있었기 때문에 거래량 감소가 50%에 달하여도 1990년대의 수준으로 돌려놓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확실히 미국은 1990년대에 매우 튼튼한 금융시장을 가지고 있었다. 금융 부문의 목표는 자본을 최선의 용도에 쓰일 수 있도록 배분하는 것이다. 주택 거품과 잇따른 금융 위기를 겪으며 살았던 미국 국민들에게 금융 거래량의 증가로 금융산업이 수십 년 전 보다 더 나은 자본배분의 기능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모든 종류의 세금 인상에 관한 정치란 항상 어렵다. 만약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강요를 받는다면, 그들은 그들의 재정적 권력을 사용하여 그러한 제도를 통해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사람들을 설득 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 이다. 그러나 부유세에는 특이점이 하나 있다.

이러한 돈뭉치들은 지극히 일부의 그룹에 속한 사람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이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시민권을 포기함으로써 세금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할 수 있는 옵션이 있다. 이것이 이상하게 들린다면, 당신은 아마도 최근 몇 년간 부자들의 정치적 행동을 지켜보지 않은 것임에 틀림없다. 이들은 민주주의 또는 미국에 헌신하는 애국자가 아니다.

그들 중 다수는 세금을 아끼는 것이 인종차별주의, 반유대주의, 민주주의와 법치에 대한 모독을 눈감아줄 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믿기에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고 투표를 한다. 만약 누구든 부자들이 일반인들의 소득세 부담을 줄이는 것으로 보여지는 부유세를 기꺼이 낼 것이라 생각한다면, 이들은 미국 정치를 정말 모르는 탓이다.

워렌의 부유세 정책은 시민권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몰수적 출국세(confiscatory exit tax)를 부과 할 수 있다. 그러나, 세금이 법으로 통과되기 전에 억만장자들이 시민권을 포기하는 것을 막을 방도는 없다.

억만장자들을 큰 재산을 모으는 천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황당한 상상이긴 하나, 그들의 대부분이 멍청이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 하다. 만약 그들이 부유세를 지불할 의향이 없다면 그들은 의회가 부유세를 시행하려고 하는 즉시 시민권을 포기할 수 있다. (참고로, 시민권을 포기한다고 해서 그들이 미국을 떠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의회가 부유세를 통과시키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면, 대다수의 부유층이 시민권을 포기할 것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이 있는가?

이 협박 자체가 의회에서 재산세 통과 전망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부가 10조원에 달하는 1천명의 극소수 부유층 사람들이 워렌 대통령의 부유세를 진행한다면 시민권을 포기하겠다는 그들의 의견을 의회에 서면으로 전달했다고 가정해보자. 추측하건대, 설사 부유세를 지지하고 있었을 지라도, 의회는 부유세를 통과시키지 않을 변명으로써 이 위협을 아주 기쁘게 이용할 것이다. 만약 의회가 법안 통과를 강행하고 상당수의 억만장자들이 그들의 위협을 실행한다면, 워렌 정부는 아주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물론 금융거래세는 금융산업의 격렬한 반대를 직면할 것이지만, 여기엔 큰 이점이 하나 있다. 그들이 하는 모든 주장은 거짓이 될 것이다. 금융 부문은 거래량이 50%로 떨어진다 해도 아주 잘 돌아갈 것이다. 훨씬 더 작은 금융 의 규모로도 지난 과거 별탈 없이 잘 지내왔다. 또한, 소규모 투자자들이 퇴직연금 비용을 부담할 것이라는 주장도 거짓처럼 보일 수 있다. 거래당 비용이 높을수록 거래량 감소가 상쇄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인정하고 싶진 않겠지만 금융거래를 통해 보통 투자자들이 돈을 벌 수는 없다. 평균적으로, 이기고 지는 것에는 일정한 균형을 유지 하고 있고, 활발한 금융산업의 영역에서 고수익을 내는 수익자는 거래를 통해 (타자의 손해를 통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다. 금융거래세를 추진하고자 하는 대통령은 이러한 점을 일반 대중에게 알려야만 한다.

요약하자면, 경제 및 정치적인 측면에서 금융자산에 대한 FTT는 부유세보다도 더 많은 이점(利點)을 제공한다. 지난 40년간 보여진 불평등의 엄청난 증가에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 잘 설계된 FTT가 정답이다.

 

딘 베이커

공공정책 연구소 (CEPR)의 공동대표이다. 그는 ‘완전 고용으로 돌아가기- 노동자들을 위한 더 나은 협상,’ ‘루저 자유주의의 종말 -시장의 진보화,’ ‘1980년 이후의 미국,’ 등 여러 책을 집필한 작가이며, 한겨레 신문의 기고자이기도 하다.

수, 2019/12/11-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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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민주주의의 선수들

직접 민주주의는 선수들과 참가자들이 많은 하나의 “경기”인데, 시민들에게 그저 관람석에 앉아 있는 방청객이 아닌 현장의 주인공 역할을 하게 한다. 순전히 대의적인 제도에서는 오로지 선출된 대리인들만이 테이블에 앉아 경기의 규칙을 지시하지만, 직접 민주주의로 시민들은 온전한 의미의 주권자가 된다. 잘 정비된 모든 레퍼렌덤 권리에 관한 법규에서는 제도권의 다른 선수들에게도 중요한 역할이 주어진다. 의회 및 주 의회, 기초자치단체 의회는 경기의 규칙을 정하고 국민발안에 응답하며, 대의 기구들은 레퍼렌덤의 발안자들과 협상하고, 다른 기관들은 공식 정보전달을 담당한다. 법정은 중재자 역할을 자청하거나 시민들의 불만을 다룬다. 단 두 가지 행위만이 이제 더 이상 선출된 정치인의 권한에 속하지 않게 되는데, 그들이 경기를 방해할 수 없다는 것과 만일 시민들이 레퍼렌덤 도구를 통해 요구한다면, 그들은 규칙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회, 주 의회와 기초자치단체 의회

직접 민주주의 기제로 보완된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입법 절차는 법률의 승인으로 끝나지 않고 확정적 레퍼렌덤 기간의 종료와 그에 이은 법률 반포로 끝난다. 입법 발안은 헌법에 규정되어 있듯이 선출된 대의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에게 권리가 있으며, 시민들은 거부권(확정적 레퍼렌덤) 또한 지니게 된다. 이는 고대 로마 정치 제도의 전통이다. 다른 한편으로 의회는 시민들이 제출한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견해를 밝힐 의무가 있으며, 그 내용을 대폭 수용하여 발안자들의 동의가 있으면 국민투표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자신들의 반대 제안을 레퍼렌덤 투표에 가져갈 수 있다. 현재 이탈리아에서 이런 것이 아직 가능하지 않지만, 스위스에서는 근 150여 년 동안 실시되어온 관행이다. 이 경우 의회가 유일하게 앞장서서 경기에 참여하지 않는다. 확정적 레퍼렌덤의 경우 원칙적으로 다수파가 자신들의 법 제안을 방어하고, 소수파는 다른 입장을 취한다. 레퍼렌덤 의제에 관한 원내 정당들의 성향은 여전히 시민들의 동향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선출된 대의원들과 투표권을 지닌 시민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이 “경기”에서 늘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은, 직접 민주주의에서는 어떤 정당에 대한 신임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안을 다룬다는 점이다. 견해나 다수파의 형성은 횡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선출된 대의원들은 물론 시민들 사이에서도 구속성이 훨씬 적다. 레퍼렌덤 투표가 정부나 다수파에 대한 신임 투표로 해석되거나 이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나곤 한다. 국민투표 이후 선출된 기관은 오직 겸손하게 결과를 존중하고 시행에 옮겨야 한다.

 

집행 기관: 정부와 지방 정부

정부와 주 정부 혹은 기초자치단체 정부의 구성원들이나 그 외 공무기관의 공무원들은 어떤 레퍼렌덤 캠페인을 지지할 수 있는가? 아니면 정부와 행정당국은 원칙적으로 모든 종류의 레퍼렌덤 투표의 홍보행위를 삼가해야 하는가? 공공 기관이나 공기업(우편, 철도, 방송국, 전화국 은행 등)들이 직접 참여하여 후에 해당 기관의 자금을 유용流用하는 것은 더욱 민감한 문제일 것이다. 가끔 시장이나 주지사들이 어떤 레퍼렌덤 의제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며 직접 활동을 펼치는 것을 목격한다. 그런데 이는 좋은 직접 민주주의 관행에 속할까?

정부나 지방 정부가 자신들이 지닌 수단과 기간 시설, 자금을 갖고 레퍼렌덤 투쟁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인지 논란이 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큰 불균형을 가져올 것이다. 납세자들이 납부한 공공 재원을 확보하고 있는 정부는 대중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사회 및 정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입장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민주적인 대결이 왜곡된다. 공기업이나 공익 단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이 직접 현장에서 선수로 참가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정확성과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다.

흔히 집행 기관은 직접 민주주의를 하나의 걸림돌로 바라본다. 시민들에게 어떤 법률이나 국책 사업을 무효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시민들 편에서는 그 실행이나 그에 대한 승인을 확정적 레퍼렌덤에 부칠 수 있으므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민투표에서 기각되면 그런 법률이나 국책 사업은 시행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적들이 위협을 느끼는 “입법 기능의 마비”를 상상하기는 힘들다. 그것은 근거없는 두려움이다. 그게 아니라면 스위스는 벌써 수십 년 전부터 마비되고 손댈 수 없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중재자: 사법부

어떤 경기에서건 흔히 속임수나 반칙을 저지르는 이들이 있다. 직접 민주주의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공적 혹은 중립적 관계자들은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국민발안 법 제안의 모든 공식적인 측면들을 검토하는 특정 위원회가 설치된다. 의제 작성, 제안의 허용성, 서명 인원수와 인증, 기간 고려 등 모든 것이 공공 기관과 “보증 위원회”에서 확증되어야 한다. 발안 위원회의 지출과 레퍼렌덤을 위한 최대지출 허용 한계 또한 관리해야 한다. 이러한 위원회들의 심의가 나중에 법정에서 지연될 수도 있다.

대개 이 보증 위원회는 재판관magistrate(일반적인 판사judge와 달리 ‘하급 판사’ 혹은 ‘치안 판사’를 지칭.─역자 주)과 법률 전문가로 구성된다. 법정에서는 종종 정치 기구들과는 다른 결론에 도달하곤 하는데, 판사들 또한 법이나 레퍼렌덤 제안들을 서로 다른 관점과 대조적인 방식으로 해석한다. 이탈리아에서는 가령 헌법재판소에서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로 레퍼렌덤 의제들을 부적격한 것으로 판결한 사례가 많다. 직접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다양한 단계에서 사법부가 개입한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헌법 재판소의 역할은 어쨌건 매우 중요한데, 법률이 국회나 국민의 승인 여부와 상관없이 헌법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 연방 법정은 칸톤이나 기초자치단체 차원의 레퍼렌덤을 무효화할 수 있지만 연방 차원의 레퍼렌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스위스에는 헌법 재판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보증인과 재판관은 직접 민주주의라는 경기장의 심판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들은 때로 경계를 넘나들며 직접 선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정당: 관중만이 아니다

정당은 정책과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정치적 단체이며, 그 자체로 대의민주주의에서 필수 불가결하다. 선거를 통해 의회 및 지방의회에서 의석을 나눠 갖고, 집행 기구의 책임직을 분배한다. 이탈리아에서 ‘정당정치partitocrazia: partycracy’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당정치에서 전통 정당들은 아무런 제한 없이 공공 자금과 공공 기관에서 제공하는 권력을 누린다. 엄청난 정치적 후견인주의clientelism와 직업적 정치인 계급에게 지나친 특권을 부여하게 되어버린 체제이다.

다른 한편으로 정당들은 권력과 선거를 통해 정치적 인물을 선택할 뿐만 아니라 레퍼렌덤 경기에서도 핵심적인 선수들이다. 정당들 또한 시민 사회와 연합주의자associationist들과 협력하거나 대결하는 과정에서 레퍼렌덤 권리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직접 민주주의에서 정치 무대의 유일한 주역으로서 정당의 중요성은 줄어들고 있다. 자유롭고 자립적이며 정당으로 조직화되지 않은 시민들이 여기 합세하기 때문이다. 대개 지배 정당들은 레퍼렌덤 권리를 강화하는 것에 반대하는데, 권력과 통제력을 잃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야당들은 대개 호의적인데, 그들은 대안적인 제안들에 대해 행동할 수 있는 도구들을 얻게 되고, 그것으로 더 큰 적법성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접 민주주의는 무엇보다 이미 현존하는 원내 정당들이 아닌 시민들에게 명확한 의사표현 도구를 제공해야 하지만, 정당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정치에 헌신하는 시민들의 단체로 제시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직접적으로 입법 제안을 표명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수년 동안 군소 정당인 급진당Radicali이 “레퍼렌덤당”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며, 일련의 법폐지 레퍼렌덤을 시도했다. 또 다른 정당들은 레퍼렌덤을 통해 집권하는 다수에게 도전을 시도하여, 그것을 정부에 대한 불신임 투표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이것이 직접 민주주의의 목적이 아니다. 결국 정부 또한 자문형 레퍼렌덤을 시도하여 국민에게 최종 발언권을 줄 수 있다. 이 마지막 대안은 앞에서 설명한 플레비사이트, 곧 시민들이 주도하지 않고 정부가 주도한 레퍼렌덤 투표라는 특수한 경우에 들어간다. 어느 누구도 어떤 정당의 당원이 레퍼렌덤 제안을 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이 게임에서 주요 역할은 어쨌든 정당이 아닌 시민들에게 주어져 있다.

 

시민 사회와 시민들

직접 민주주의 절차들로 시민들은 정치적 결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수단을 얻는다. 그것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대개 위원회나 단체를 결성하고, 여러 단체나 조직된 시민 사회계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종종 어떤 프로젝트나 특정 층의 개입을 저지하거나 추진하려는 목적의 시민 위원회나 여러 단체와 비정부기구NGO들의 플랫폼이 구성된다. 이렇게 임시로 구성된 플랫폼이 종종 광범위한 동의를 이끌어 내면 성공 가능성이 높다. 2014년 실시된 어떤 분석에 따르면, 1874년부터 2013년까지 전 세계에서 시행된 전국 차원의 537건의 레퍼렌덤 중 시민 사회 단체들이 주도한 레퍼렌덤의 성공률은 38.4% 정도인 반면, 야당들의 성공률은 24.9%에 그친다. 이 모든 레퍼렌덤 투표의 대부분은(336건) 스위스에서만 실시되었다.

시민 위원회는 즉각적인 공적 행동과 저항이 필요한 시기에 생겨나며 명확한 구조가 없고, 국회에 대리인들이 없으며, 하나의 특수 목적만을 쫓는 경우가 많다. 국민투표 후에는 해산한다. 국민적 차원의 결정이 필요한 순간에 집중되기 때문에 동원이 가능하고 예산이 크지 않다. 이탈리아에서도 그런 발안이 수백 건에 달해─사냥 반대, 핵 발전소 반대, 해안의 천공 반대 등─큰 관심을 글었으며, 종종 레퍼렌덤 도구를 통해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단체와 위원회들에게 직접 민주주의의 도구들은 매우 큰 헌신이 필요한 도전이다. 종종 이런 작은 단체들은 어느 지방 전체의 유권자들이나 심지어 전국의 유권자들을 상대로 다수를 설득하여 투표장에 나가게 만들고, 또 그들 제안에 투표하도록 만들려고 힘쓴다. 이러한 단체들은 자기들 생각을 “국민의 뜻”인 양 선포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가진 역량으로 자기들 메시지를 전 국민에게 전달하고 설명해야 한다. 이런 임무는 최대한 의사 전달을 잘하기 위해 힘쓰게 함으로써 정치를 더욱 흥미롭고 생생한 것으로 만든다.

물론 큰 기업이나 노조 등 다른 큰 단체들 또한 직접 민주주의 도구들을 활용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경제적 카테고리에 드는 이들이 레퍼렌덤 권리에 대해 가장 확신하고 있는 지지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정당과 정부의 정치 권력 보유자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더욱 직접적이고 생생한 채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통치자를 겨냥하는 정치적 로비는 적어도 투표하는 시민의 절반 이상을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한 레퍼렌덤이라는 노선보다 더 효과가 크다.

레퍼렌덤 투표에서 때로 큰 조직과 더 강력한 정당의 이익에 대항하는 다수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노조이건 기업가 부류이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모든 시민들의 자유롭게, 의견이 여과되지 않고, 정당의 지원 없이도 자유롭게 국민발안이나 확정적 레퍼렌덤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레퍼렌덤 권리를 제대로 갖춘 체제는 정치를 더욱 공평하고 접근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언론 기관들

민주주의에서 의견과 표현의 자유는 떼어놓을 수 없다. 모든 시민들은 정보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기본권을 지닌다. 출판의 자유와 인터넷 사용의 자유는 헌법과 다양한 국제 헌장으로 보장된 자유이다. 그러나 실상 그것이 미디어 권력이 동등하게 분배되며, 모든 시민이 여론에 영향을 미칠 동등한 기회를 갖는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제안을 갖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을 배려하지도 않으며, 그들은 정치적 차원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것과 다름없다. 로비는 권력을 쥔 사람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듣게 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직접 민주주의의 도구들 또한 큰 미디어 그룹에 의지하지 않는 “보통”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게 만드는 데 활용된다. 그들은 협력자들과 지지자들을 찾아서 레퍼렌덤을 준비하고 서명을 모으며 레퍼렌덤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그렇다면 레퍼렌덤 절차에서 미디어는 어떤 역할을 담당할까?

모든 정치적 생리가 그렇듯이, 직접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도 미디어는 장내의 가장 중요한 선수들 중의 하나이다. 독재 체제의 통치자들이 무엇보다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제하려 드는 것도 그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그렇게 정보의 주인이 될 뿐 아니라, 반대파 사람들이 대중 여론이나 지지자들과 소통하는 것을 막는다. 침묵으로 반대파를 질식시킨다. 미디어를 통제하는 사람은 정보의 흐름을 관리하고 대중 여론을 자기들 입맛에 맞추어 이끌어 간다. 인터넷에서 정보와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소통을 위해 자체적으로 운영되는 많은 공간들이 열렸지만, 거대 미디어에서 발표하는 뉴스만이 중요성을 지닌다. 거대 미디어에서 배척당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며 자유로운 사고의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러시아, 터키, 이란, 이집트 등의 독재 권력은 군사력 외에도, 민주주의라는 가면 뒤에서 권력자들에게 다수의 지지를 쉽게 보장해 주는 정보의 통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레퍼렌덤 도구의 사용에서 미디어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암호와 소셜 미디어만으로 필요한 서명 인원수나 레퍼렌덤 투표에서 승리하기 위해 요청되는 표를 모으는 것은 어렵다. 어떤 주제를 많은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각계 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도달하여 관심을 받고 타당성을 얻어내려면, 가장 중요한 거대 일간지나 TV 채널에 노출되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미디어 자체에서도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시민들이 전면으로 꺼내든 논점들을 다루는 것에 관심이 있는데, 매우 중요하고 현실적인 정치적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그들의 독자인 시민들에게서 자극을 받는다. 그러나 미디어 권력이 지배적인 과도 권력으로 변질되지 않고 정확성을 보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규제가 필요하다. 이런 취지에서 미디어와 정보에 대한 권리에는, 대중이 알아야 할 권리가 있는 정보를 다루는 기관에 대한 접근 가능성에서 시민들과 정치 세력들의 “공평성”에 대한 규정이 추가되었다. 미디어는 선거 캠페인에서와 마찬가지로 레퍼렌덤 캠페인에서 “공평성”의 원칙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 다시 말해 레퍼렌덤 투표에 도전하는 모든 이들에게 아무런 차별이나 누군가가 더 큰 혜택을 얻는 일 없이, 동일한 시간과 공간을 보장하는 것이다. 사적인 인터넷 출판이나 미디어에는 같은 의무가 부과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늘 소수의 거대 언론들이 큰 몫을 점유하고 있는 정보 시장에서는 중립적이고 공식적인 정보가 모든 투표권을 지닌 이들의 가정에 직접 전달되도록 보장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시민들은 이 경기를 하고 싶어 할까?

직접 민주주의의 회의론자들 중에는 오늘날 현실 민주주의에서는 어쨌든 선출된 정치인들을 그리 중요시하지 않으며, 가끔 있는 레퍼렌덤 투표로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는 시민들은 더욱 적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이들이 있다. 정치 생리에서 참으로 중요한 세력은 그와는 완전히 다른 세력이리라는 것이다. 이는 대의민주주의든 직접 민주주의든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숨은 주역, 배후 조종자들이 있다고 가정하는 그런 접근법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정부와 지방 정부 및 정당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지닌 강력한 권력자들이 더 이상 직접 민주주의를 장악하고 있지 않다. 직접 민주주의는 어쨌든 정치 권력을 분산시키고, 그 권력의 일부를 시민들에게 돌려 주며, 소수 여당의 소수 지도자 몇몇의 권력 독점을 막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적 이익과 정치 및 행정 권력들 간의 관계가 얽히는 것을 막기 위해 레퍼렌덤 권리가 더 필요한 이들은 정치 권력과 경제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또 너무나 많은 현안에 대해 모든 정부 차원에서 이미 투표가 지나치게 많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당연히 참정권이 불충분하고, “정치 계급과 정당들”에 대해 전반적으로 실망이 큰 체제에서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도 더 크다. 본질적으로 레퍼렌덤 권리는 일단 도입되고 정기화되면 시민들도 활용할 것이다. 다룰 논점과 현안들은 물론 부족하지 않다. 부족한 것은 주권자인 시민들이 자유롭고 합리적으로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신뢰이다.

결국 대개 직접 민주주의에 활발히 참여하지 않는 이들을 위해서도 직접 민주주의 도구들을 언제든 쓸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스위스에서는 모든 레퍼렌덤 투표에 정기적으로 참여하지는 않는 시민들이 많지만, 막상 직접 민주주의가 제한된다면 이들은 분개할 것이다. 효율적인 레퍼렌덤 권리 앞에서 정치인들은 보통 시민들에게 더욱 존중심을 지니게 된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목, 2019/12/12-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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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의 경합과정에서 보이는 중도 구파의 모습에서 현재 한국 제도정치의 모습을 그대로 읽어볼 수 있다. 촛불혁명 덕분에 출범한 현재의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실패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현실에 도전하여 개혁할 의지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기득권 세력과 야합하는 무기력한 정치 때문일 것이다. 특히 오바마는 미국에서 트럼프를 등장시킬 빌미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이명박근혜와 함께 한반도의 평화 프로세스를 망쳐버린 장본인이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대비하며 공화당만큼 권력의 상실을 두려워할만한 미국의 또 다른 정치계층은 중도성향의 민주당 그룹이다. 버락 오바마 前대통령은 최근 자유주의 성향의 부유층 기부자를 대상으로 한 행사에서 “대부분의 국민은 제도를 완전히 해체하고 재정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하며, 그들의 두려움을 구체화했다. 그것은 “MediCare for All (모든 사람을 위한 의료제도)”, “그린뉴딜”과 같은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행동계획 또는 엄청난 재산의 일부를 환원하는 억만장자에 부과되는 “자산세”에 대한 빗발치는 요구를 저격하는 노골적인 언급이었다.

오바마의 발언은 해시태그 “#TooFarLeft (극심한 좌파성향)”를 타고 트위터에서 반발을 불러 일으켰으며, 사람들은 여러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과감한 해결책을 요구하는 것이 극심한 좌파성향(too far left)으로 비춰진다면 “그것이 사실이다”는 입장을 보였다. 여전히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전직 대통령이 진보적 후보자들을 훈계한 사건은 지난 몇 주간 두 번이나 발생했다. 그는 10월말에 있었던 한 행사에서 “순수하다고 믿는 신념, 결코 타협하지 않는 태도, 항상 정치적으로 ‘깨어있는’ 태도라고 치부하는 태도는 하루 빨리 극복해야 하는 병폐다”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마치 고집스런 보수적 세대의 미국인들이 좌파를 “암적 존재”라고 비난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하였다.

짐작하건데, 오바마는 자신이 속한 당의 진보적인 목소리뿐만 아니라 좌파정치를 실현하고 있는 가장 인기있는 두 대통령 후보자인 버몬트주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와 메사추세츠주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렌으로부터 위협을 느끼고 있는 듯 하다. 상기 두 대통령 후보자는 여론조사에서 중도성향의 선두주자이자 오바마 정권시절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보다 점차적으로 누적 지지율을 꾸준히 높여오고 있다. 오바마의 발언은 밀레니엄 세대에 대해 꼰대 “OK Boomer”가 신랄한 반박을 하는 것에 해당한다, 젊은 세대들은 불의에 대해 침묵을 지키라는 꼰대들의 잔소리에 지쳐 있다.

중도파들은 바이든과 오바마보다 매우 진보적인 후보, 즉 자신들이 속해있는 당파의 정체성을 위협을 하는 후보를 중심으로 결집할 수밖에 없을 상황에 우려하고 있다.

흔들림없는 샌더스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오바마의 비판을 무시하면서, 자신이 “최저임금을 생계가능한 수준의 임금으로 올려야 된다고 말한 것은, 미국의 시스템을 망가뜨리자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는 정의의 실현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보건의료 분야에 관련하여 “미국만이 세계 주요국 중 유일무이하게 남녀노소의 의료보험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불명예를 종식시키자고 이야기하는 것 역시 시스템을 망가뜨리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미 30년 전에 시작했었어야만 했던 일을 이제 하려는 것뿐 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이러한 발언들은 하루하루 고생하며 살아가는 수 백만의 미국인들의 가슴을 울리지만, 불평등한 체계를 통해 이익을 받고 있는 (기득권)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간단히 말해서, 미국정치는 지금까지 양당의 야합으로 경제체제를 부유한 엘리트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갔으며, 이들 입법자들은 지난 날 미국의 부를 더욱 공평하게 분배한 적절한 제도(뉴딜)를 “폐지”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백만장자가 아닌 미국 국민들이 “역사상 최초로, 지난 해 미국 백만장자들이 중산층보다 적은 세금을 내게 되었다” 라는 보도 자료를 읽었을 때, 이는 마치 오바마가 우리에게 이런 좋은 제도를 폐지하지 말아야 된다는 말처럼 매우 모욕적으로 들린다. 그런데 좋은 제도는 백만장자와 오바마를 포함한 백악관과 의회에 있는 그들의 추종자들에 의해서 붕괴되어 왔다.

샌더스와 워렌의 인기는 미국 내 곳곳에 퍼진 국민들의 분노를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편, 당연스레 부유한 엘리트층의 걱정을 자아내고 있다. 그들의 상상할 수도 없는 만큼의 부(1억 달러를 갖던 10억 달러를 갖던 한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에 있어서 실제로 아무런 차이도 못 느끼는)를 지키려는 어설픈 언설로, 그들이 처한 곤경을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과 비교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의 백만장자 레온 쿠퍼맨은 그가 비난을 받은 상황에 대해 불평했다. “백만장자가 무슨 잘못이 있나요?  당신도 사람들이 즐겨 구매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한다면 백만장자가 될 수 있는걸요” 라며, 그는 아주 쉽게 역겨울 정도로 엄청난 부를 얻었다는 듯이 말했다.

쿠퍼맨은 불공평한 세금정책, 해외조세도피, 납세자 보조금 등 그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조작하여 일반국민들에게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해서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무시했다. 그는 워렌이 제안하는 자산세에 대해 “나는 누진소득세와 부유층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것은 워렌이 싸질러놓은 빌어먹을 아메리칸 드림이다. “라고 말하며 맹렬히 비난했다.

워렌과 샌더스 같은 후보를 못된 트럼프 형의 그러나 좌파로 낙인을 찍은 사람들도 있다. “저명한 월스트리트의 해지펀드 매니저이자 워렌의 라이벌을 위해 모금하고 있는 민주당 소속”으로 알려진 어떤 이는 메사추세츠 상원의원에 대해 “트럼프 때 공화당원들이 겪었던 경험과 같습니다. 당신은 그녀를 평가하면서 그녀가 국가를 위해 끔찍한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당신이 그것에 대해 어떤 말을 하든 그녀를 더욱 강하게(고집스럽게) 만들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허둥대는 부자들은 한참 늦은 단계에서야 그들이 지지하는 후보들을 선거운동에 참여시켰다. 최근 경쟁에 합류한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개인의 재산이 너무 많아 선거자금을 모을 필요도 없을뿐더러 반트럼프 광고에 1억 달러를 쓸 계획이다. 이에 열광하는 월스트리트의 경영진들은 그를 지지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한편, 경쟁에 뛰어든 또 다른 신인인 메사추세츠 전(前)총재 데발 패트릭은 그 시점에 다른 후보들이 더러운 돈이라며 피하던 수퍼 PAC(전미회의: 기득권자 집회)을 통해 들어온 기부금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패트릭은 또한 기업과 자본주의를 옹호 하는 것을 출마의 핵심으로 잡았으며, AP통신 인터뷰 도중 “이 나라에 진행되고 있는 사적 이익의 투기가 만들어낸 좋은 예들이 많다”라고 언급했다. 한편 AP 통신은 패트릭이 ” 석유 및 가스회사의 자문역으로 일했던 사실과 비우량 대부회사로 2012년대선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중산층에게 약탈적인 회사라고 비난했고 롬니 후보의 목을 조여왔던 사모펀드 베인 캐피털에서 중역으로 봉사했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민주당 후보 중 중도파의 상위를 형성하고 있는 바이든과 인디애나의 사우스밴드 시장인 피트 부티지지는 많은 후보들로 넘쳐나는 지역에서 선두가 되기 위해 헛수고를 해왔다. 바이든의 아들 헌터가 우크라이나 석유회사 이사회에서 보여준 부도덕적인(불법이 아니라면) 입장이 계속해서 언론의 헤드라인에 대두되면서 바이든은 하락세를 타고 있다. 前부통령 스스로도 최근 대마초를 “게이트웨이 드럭 (습관형성 약물)”이라고 칭하는 시대착오적 발언을 하는 등 끊임없는 말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부티지지가 일단의 상승세를 타고 있을지는 몰라도, 그는 민주당의 중요한 지지층인 흑인유권자의 저항에 직면해 있다. 흑인유권자들이 대놓고 동성애자 후보를 불편하게 여긴다는 단순하고 인종차별주의적인 주장을 넘어, 그는 사우스밴드 사법제도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현재,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흑인유권자 지지를 조작한 것에 대한 조사를 앞두고 있다.

앞으로 몇 달 뒤면 민주당내 중도세력으로부터 트럼프를 이기기 위해 자신들 성향의 단일후보를 집중해서 밀어주자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될 것이다. 그러한 후보는 공화당과 타협하고 본질적으로 인종차별이 덜한 노선, 즉 트럼프 이전의 현상유지를 유지할 수 있는 온건한 중도주의자여야만 한다는 이야기 또한 들을 것이다. 중도주의자들은 유권자들이 무식하다고 비난할 것이고, 그들 스스로 샌더스나 워렌 후보 간에 단일후보화 하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오바마가 좌파를 비난한 행사에서 그는 “그들이 오차범위의 밖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오바마는 조심성이 없는 대통령 후보 때문에 2016년 대선에서 패배한 최근의 기억을 완전히 잊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사람들”은 신중하지 않다. 불평등을 유지 보존하고자 하는 (기득권) 사람들이 신중한 사람들이다. 아무리 그들의 입장에서 희망스럽게 전망하려 해도, 그들의 시대가 이미 끝나가고 있다는 현실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Sonali Kolhatkar

Truthdig의 주요 기고자이자, “Rising Up With Sonali,” TV & Radio show 설립자 겸 진행자

원본출처: Commondreams.org. 

금, 2019/12/13-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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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파트 가격이 24주 연속 상승했다는 기사, 서울의 매수우위지수(100을 기준으로 이 보다 높으면 매수희망자가, 이 보다 낮으면 매도희망자가 많다는 뜻이다)가 125.2로 10월 초 100을 돌파한 후 계속 상승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는 심정은 울적했다.

작년 9.13종합대책 이후 거래가 격감하고 일부 랜드마크 단지들은 가격이 꽤 큰 폭으로 떨어지기도 했는데 6월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몇몇 이유들이 떠오른다. 우선 사상 최저치인 기준금리(1.25%)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금리가 낮다는 건 경제주체들의 체질이 그만큼 허약하다는 의미도 되지만, 단기적으로는 자산상승의 실탄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아울러 박근혜 정부 당시 초이노믹스와 발맞춰 이주열의 한국은행이 공격적이고도 추세적인 금리인하를 했고, 그게 2014년 가을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의 뇌관 역할을 했음을 많은 시장참여자들은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화폐개혁 논의도 서울 아파트 시장의 상승세 전환에 일정 정도 역할을 한 것 같다. 화폐개혁을 하면 강남 및 서울 아파트를 들고 있는게 유리하다는 이상한 논리가 빠르게 전파되며 그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꽤 있었던 듯 싶다.

물론 ‘서울 아파트는 오늘이 바닥이다’, ‘서울 아파트는 공급이 부족해 더 오른다’라며 곡학아세와 참주선동을 일삼는 미디어와 자칭, 타칭의 부동산 전문가들 영향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 시장의 상승세 전환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건 다름 아닌 문재인 정부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시기부터 불기 시작한 투기광풍을 출범 초에 압도적인 정책수단들을 집중적으로 투사해 잠재워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8.2부동산 종합대책으로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줄어들자 그해 12월에는 임대주택사업자에 대한 세제 및 대출혜택을 오히려 크게 늘리는 치명적 패착을 저질렀다. 그 결과 다주택자들이 대거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또 다시 투기에 나서는 사태가 벌어졌다.

작년 여름에 엄청난 투기폭풍이 불고 서울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자 문 정부는 부랴부랴 9.13부동산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9.13종합대책에도 투기심리를 꺾는 특효약이라 할 보유세의 획기적 강화와 임대사업자에 대한 특혜의 전면 철폐는 담기지 않았다.

정부가 투기와 전쟁을 벌일 의지가 없고 부동산 불로소득을 제대로 환수할 의지가 약함을 시장참여자들은 귀신 같이 간파한다. 부동산을 사거나 들고 있는게 이익 보다는 손해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시장참여자들은 사소한 재료나 소식에도 금방 투기심리에 포획되곤 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서울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는 걸 방관한다는 건 총선을 포기한다는 의미이니 문재인 정부가 3차 부동산 종합대책을 내놓긴 할 것 같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 3차 부동산종합대책에는 시장참여자들의 투기심리를 완전히 잠재울 대책들을 담아야 할 것이다.

언뜻 생각나는 것이 ‘보유세의 획기적 인상 로드맵 발표’, ‘3개월 정도의 유예기간을 둔 양도세 중과’, ‘임대사업자에 대한 혜택의 전면적이고도 소급적 폐지’, ‘투기의 자금 역할을 하는 전세자금대출 제도에 대한 엄격한 관리’,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지역의 대거 확대’ 등이다.

토, 2019/12/14-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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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서구와 한국의 언론들은 8년 전에 튀니지로부터 시작된 아랍권의 색깔혁명을 민주화 봄이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해당 지역의 전문 연구자의 기술과 평가는 정반대 편에 서 있다. 현재에도 서구와 한국 언론들은 여전히 중국의 일국양제에 대한 일부 홍콩인들의 폭력적 저항을 민주항쟁이라고 연일 보도하면서도 남미에서 격렬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민중들의 신자유주의와 미패권에 대한 치열한 해방투쟁은 제대로 보도조차 하고 있지 않다.

북한 역시 리비아의 사례를 크게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구 언론들의 언술적 마법에서 벗어나 10년 뒤의 홍콩과 남미 국가들의 모습을 상상해면서 아래의 칼럼을 번역 소개한다.


무아마르 알 카다피

지난 9월, 미국이 지지해주고 있던 이드리스 왕을 전복한 무아마르 카다피의 리비아 혁명 이후 반세기를 맞았다. 1969년 리비아 혁명에서 무아마르 카다피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들 중 하나인 리비아를 승계 받았다. 그러나 42년 뒤, 그가 암살 당했을 당시 카다피의 사회주의를 통해 리비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되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리비아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기대수명이 가장 높았다.

2011년의 서구세력의 반체제 운동으로 리비아는 실패한 국가가 되었고 경제는 혼란에 빠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중 최악의 실수는 리비아”이며, “(카다피 정권 붕괴) 이후를 위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라고 말했다.

지난 50년 동안 리비아에서 일어난 두 개의 혁명은 확연하게 정반대의 형태를 띠고 있다. 카다피의 사망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초래 했다. 서구의 대사관은 모두 리비아를 떠났고, 리비아 남부는 테러리스트들의 피난처가 되었으며, 북부 해안은 대량 이주자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집트, 알제리, 튀니지는 모두 리비아와의 국경을 폐쇄했다. 이러한 모든 상황은 중심부가 붕괴된 국가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학살, 강간, 고문과 더불어 발생했다.

2011년, 서구는 확실히 아프리카에서 생활수준이 가장 높은 리비아 국민을 돕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았다. 카다피를 몰아내고 꼭두각시 체제를 만들어, 리비아의 천연자원을 장악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사람들은 서구의 리비아 개입이 또 다른 석유 강탈에 불과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군사 개입의 목적은 미국에 있어서는 무기, 이탈리아에 있어서는 석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프랑스에 있어서는 물 때문이었다. 리비아가 아프리카, 지중해, 아랍 지역의 전략적 요충지의 가장 중심에 있다는 것을 고려 할 때, 리비아를 통제 하는 것은 서방국가들이 이 세 지역에 세력을 뻗칠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2011년 혁명에 대한 프랑스의 지지는 석유보다 더 귀중한 자원인 물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물은 20세기에 석유가 보장했던 것을 21세기에 약속한다. 물은 국가의 부와 운명을 좌우하는 귀중한 자원이 될 것이다. 기름과 달리 물을 대체 할 수 있는 자원은 없다. 자연은 물의 공급을 규정한다. 한편 물에 대한 수요는 인구가 증가하고 인간의 삶이 풍요로워짐에 따라 거침없이 증가한다. 인구 증가, 기후 변화, 공해, 도시화가 끈끈하게 결합되어 있기에 2040년에는 물 수요가 공급을 40퍼센트 앞설 것으로 예상한다.

리비아는 석유보다 더 귀중한 자원인 세계 최대의 지하수 공급원인 누비아 샌드스톤 아퀴퍼(Nubian Sandstone Aquifer)에 자리잡고 있다. 이 화석수의 대수층은 약 2만년 전에 형성되었으며, 15만 큐빅 킬로미터의 신선한 물을 수용하고 있다. 카다피는 하루에 200만 큐빅 킬로미터의 물을 수송할 수 있는 사막 아래에 4,000km 길이의 복잡한 수로를 설치하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the Great Man-Made River Project) 에 250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 같은 기념비적인 물 유통 프로젝트는 95%가 사막으로 뒤덮인 리비아를 자급자족이 가능한 작물을 경작 가능한 오아시스로 만들기 위함 이었다.

오늘날 수에즈, 온데오 및 사우르와 같은 프랑스의 다국적 물 기업은 이미 세계산업의 4억달러에 달하는 지구상 물 시장의 45프로 이상을 통제하고 있다. 이런 프랑스에게 2011 리비아 혁명은 리비아의 놀라운 수자원의 통제와 민영화를 진행시키는 것과 같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리비아에 폭탄을 투하하기 몇 달 전 미 중앙정보국(CIA)은 “… 강과 호수, 대수층 등 미래의 국가안보 자산이 되는 자원을 쟁취하기 위한 미래의 ‘수자원전쟁’에 대해 경고했으며 용병과 대리인 국가들을 통해 통제했다. 리비아의 정권교체 혁명은 패권국가들의 수자원 전쟁이라는 주요한 예시가 되었다.

이제 리비아의 물로 인한 수익은 서부 세력이 취하고 있으며, 놀랍지도 않게 리비아의 서부는 식수 고갈을 겪고 있다. 기업의 욕심과 방치로 인해 나라의 주요 수도관의 3분의 2가 더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리비아의 유니세프 대변인인 무스타파 오마르는 향후 대략 4백만명의 리비아인들은 지구상의 가장 큰 대수층을 바로 아래 두고도 안전하게 마실 물을 구하기 어려워질 것 이며, 이로 인해  A형 간염, 콜레라 및 다른 설사병들이 발병할 것으로 예측 했다.

이탈리아의 경우, 그들의 전 식민의 석유와 가스를 착취하고자 하는 갈망으로 2011 혁명의 지지 의욕을 불태웠다. 리비아는 아프리카에서 석유 매장량이 가장 높다. 카다피 정권 아래 석유 수출의 85%는 유럽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카다피 정권 이전의 아이드리스 국왕은 근본적으로 스탠다드 석유회사가 리비아의 석유법을 작성하도록 했다. 카다피 정권은 이러한 행위를 중지 시켰고, 석유로 벌어들인 돈은 모든 리비아 국민의 은행 계좌로 직접 입금되었다. 이탈리아가 석유 회사들은 이러한 고귀한 관행을 멈추어버린 것은 놀랍지도 않은 행위였다.

리비아의 석유는 근접성, 추출의 용이함, 유황분이 적은 원유의 특성을 갖고 있어 이탈리아에게 아주 중요한 자원이다. 이탈리아와 다른 지역 대부분의 정제소는 유황분이 적은 리비아산 원유를 취급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이 설비들은 리비아산원유 부족으로 인해 대체되는 묵직한 사우디 원유를 취급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리비아는 52.7조 큐빅 피트 이상의 천연가스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방대한 면적의 지역이 여전히 탐구 되고 있다. 리비아산 석유의 확보로 이탈리아는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덜 의존하게 되었고, 이에 대하여 유럽 본토에게 자랑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 거대 석유회사인 Eni는 영국 석유의 리비아 자산에 대한 통제 지분을 최근 매입했으며 매일 7억6천만 규빅 피트의 천연가스를 추출하도록 리비아 정권과 거래 했다.

프랑스인들은 리비아의 물 시장의 전리품을 누리고 있으며, 석유와 천연가스의 대부분은 이탈리아인들에게 돌아간 반면에 결과적으로 2011년 혁명에서 미국은 무기밀매의 시장을 노리게 되었다.

뉴욕타임즈는 2019년 6월 미국이 지지한 리비아 반란군의 무기고에서 미국의 중화기들이 발견되었다고 보도하였다. 뉴욕타임즈는 “미사일 상자는 무기 밀매거래의 대부이자 공동 제조업체인 Raytheon과 Lockheed Martin 것임을 확인하였으며, 1억 1천 5백만 달러에 해당하는 재블린 미사일 주문거래 번호 또한 표기되어 있었다.”라고 언급했다. 리비아는 이제 미국 무기거래상에게 노다지가 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허술한 무기 은닉처가 되었다. 2011년 리비아 혁명은 서구를 위해 석유, 물, 무기, 천연가스까지 수십억 달러를 긁어 모아 내어줬으며, 리비아인들에게는 끝없는 불행과 내전만을 일으켰다.

50년 전 카다피의 혁명은 완전히 달랐다.

40여년 동안 카다피는 경제민주주의를 장려했고, 리비아인들을 위한 진보적인 사회 복지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위해 국유화된 석유를 활용했다.  카다피 통치 하에서 리비아인들은 무료 의료 서비스와 무료 교육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무이자 대출과 무료 전기 혜택을 누렸다.

NATO의 카다피 퇴진에 힘입어 한때는 번창했던 지역인 트리폴리는 이제 정전사태가 흔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수천 명의 필리핀 의료 서비스 인력들이 해외로 도피하여 의료 부문은 붕괴 직전까지 치닫고 있으며, 동부 전역의 고등교육기관들이 문을 닫고 있다.

서구의 지지를 받은 2011년 혁명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은 집단 중 하나는 리비아의 여성들이다. 다른 많은 아랍 국가들과 달리 카다피의 리비아 여성들은 교육, 직업, 이혼, 재산 보유, 수입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유엔 인권이사회는 카다피가 여성의 인권을 증진시켰다고 칭찬하기 까지 했다.

1969년 카다피가 정권을 잡았을 때 대학교에 진학한 여성은 거의 없었다. 2011년, 미 공군이 리비아를 폭격하기 직전에는 리비아 대학생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다. 카다피가 1970년에 처음 통과시킨 법안들 중 하나는 노동 평등과 그에 따른 동등한 임금 제공에 관한 법안 이었다.

2011년 혁명 이후, 새로운 ‘민주주의’ 리비아 정권은 여성 인권을 탄압하고 있다. 새로운 지배층은 가부장적 전통에 강하게 사로잡혀있다. 또한 개입 후 리비아 정치의 혼란을 틈타 양성평등을 서양의 도착적인 행위로 보는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이 군림하게 되었다.

서구의 언론에서 ‘카다피의 군사 독재’라고 표현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실과 반대로, 리비아는 사실 민주주의 국가였다. 카다피의 독특한 직접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전통적인 정부기관은 해체되고 폐지되었으며, 각종 위원회와 의회를 통해 국민들이 권력을 갖게 되었다.

리비아는 한 사람의 손에서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강한 분권력을 지니고 있으며, 국가내 “미니 자치주”와 같은 다수의 작은 공동체들로 나뉘어져 있다. 이 자치주들은 그들의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으며, 석유 수입과 예산 기금을 분배 방법을 포함하여 다양한 결정권을 갖고 있었다.  이 작은 자치주 내에서 리비아 민주주의의 3대 주체는 지방 인민 회의, 기초 인민 회의, 총 인민 회의 였다. 리비아의 기본 인민회의(BPC 또는 Mu’tamarshaʿbiasāi)는 본질적으로 영국 의회의 하원 미국 의회의 하원의원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

그러나 리비아의 8백 명의 기초인민회의는 그들만을 위한 법을 만드는 부유층의 선출 된 대표들로 구성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의회는 모든 리비아 시민들이 법제정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2009년 카다피는 리비아에 뉴욕 타임즈를 초청하여 2주 동안 리비아의 직접 민주주의를 지켜볼 수 있게 하였다. 뉴욕 타임즈는 카다피가 실행하고 있는 민주주의에 관해 “리비아에서는 모든 사람이 모든 결정에 관여한다. 시민들은 위원회에서 만나 외교 조약에서부터 학교 설립에 이르기까지 모든 안건에 대해 투표를 한다.” 라고 말했다.  카다피 정권 하의 리비아는 군사독재와는 반대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번창한 민주주의 국가였다.

오늘날 리비아 내의 서구형 ‘민주주의’ 에서 지역, 부족, 대륙, 이슬람, 범죄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된 민병대가 최근 두 개의 파벌을 형성했다. 리비아는 현재 각각 총리, 의회, 군대를 꾸리고 있는 두 개의 정부가 있으며, 이들은 영구적인 내전을 부채질하고 실제 민주주의 국가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기회를 파괴하고 있다.

카다피의 혁명은 확실히 21세기 경제민주주의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실험 중 하나가 되었다. 이와 아주 대조적으로, 서구 지지 하에 이루어진 2011년 반정부 시위는 21세기의 가장 큰 사회적, 군사적 실패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 될 것이다.

 

 

Garikai Chengu

고대 아프리카의 저명한 역사학자. 하버드와 스탠퍼드 및 콜롬비아 대학에서 평생 아프리카 지역을 연구하였다.

 

출처 : Global Research Center in Canada.

월, 2019/12/16-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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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방경제포럼

1) 극동개발

지금까지 러시아는 유럽 국가들과 협력해왔고, 국내적으로는 중부 지역에 관심을 뒀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개발이 완료되고 인구도 충분한 데 반해 극동 지역은 사정이 여의치 않다. 극동지역의 인구는 660만 명, 러시아 전체 인구의 5% 정도로 가장 낮은 인구밀도를 보이고 있다. 면적은 617만 ㎢로 국토의 36%인데 프랑스 영토의 10배이며 남북 거리 4500 ㎢, 동서 거리 3000 ㎢이다. 그런데 다이아몬드의 98% (야쿠츠크), 백랍 80%, 황금 50%, 어류.수산물 40%, 러시아 삼림 30%가 이 지역에 있어 원자재의 보고이다.

푸틴이 집권한 2000년부터 러시아는 극동지역을 개발하기 위한 전략을 모색했다. 극동지역은 동북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 확보는 물론 아태지역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을 위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극동.시베리아 지역 개발과 아태 경제권으로의 편입이라는 과제에 직면하면서 러시아 중앙과 지방이 윈윈할 수 있는 개발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러시아 중앙정부는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을 계기로 블라디보스토크시를 아태지역 국제협력센터의 중심지로 육성하려 했다. 국제정치와 경제의 중심지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낙후된 러시아 극동지역을 개발해 이러한 국제질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고 했다.

푸틴 대통령은 극동지역을 선도적으로 개발하되 단기간이 아니라 21세기 내내 관심을 갖는 프로젝트가 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빅토르 고르차코프 연해주 입법의회 의장은 2016년 7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방 차원에서 100년간 보장되는 개발사업으로 보면 된다. 연방 정부에 극동개발부가 신설된 것도 그 일환이다. 또 푸틴 대통령이 극동에서 추진 중인 사업 가운데 변경된 건 전무하다. 불황으로 지원 예산이 삭감된 지역이 많지만 극동러시아만은 한 푼도 줄지 않았다. 또 우크라이나 사태로 대외환경이 어려워졌지만 러시아는 2015년에 이어 올해도 9월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방경제포럼을 열기로 결정했다. 푸틴 대통령의 뜻이 강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지역을 개발하면서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지역개발에 필요한 자원 조달 문제는 동북아 주요 국가의 참여 유도로 해결하려 하고, 노동력 부족 문제는 중국, 북한 등 옛 사회주의 형제국들의 노동력을 유입하면서 해결하려 한다. 특히 극동은 지역개발에 필요한 인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극동지방의 인구는 지난 1992년부터 2001년까지 10년 동안 100만 명 정도가 줄었다. 인구 감소의 주 원인은 출산율 저하와 외부로의 인구 유출이 꼽힌다. 육체노동을 꺼리는 현지 주민들의 노동의식도 한몫 작용하고 있어 지역 개발을 위해서는 외국 노동력을 수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실제 상당수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되고 있다. 이 가운데 중국인 노동자의 진출이 절대적으로 많다. 2005년을 전후한 시기에 극동에 체류중인 중국인 노동자가 80만 명 정도인 것으로 추산됐다. 그런데 상당수 러시아인들은 중국인 이주가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것이며 최악의 경우 중국인들에게 러시아 영토의 일부가 상실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한다.(신황화론)

여기에 극동으로 파견되는 북한 노동자들이 러시아의 고민을 다소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근면한 북한 노동자들은 중국 노동자들의 노동 현장 및 지역 시장 잠식을 어느 정도 제어하면서, 러시아가 우려하는 ‘극동지역의 중국화’ 문제를 해결하는데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 본다면, 북한 노동자들은 중국인 노동력 진출에 따르는 잠재적인 안보 위협의 해소와 극동지역 개발에 필요한 노동력 부족분을 충족해주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래서 러시아의 고민은 자연스럽게 한반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북한과의 관계를 통해 문제 해결에 접근하려 한다. 북한과의 관계는 지역안보와 북한 노동력 유입, 그리고 북한을 통한 한국의 투자유치 문제로 구체화되고 있다.

 

2) 첫 동방경제포럼

푸틴 대통령은 2012년 연방정부 내에 ‘극동개발부’라는 부처를 신설하고 극동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5년 9월에 처음 열린 동방경제포럼(Eastern Economic Forum)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나는 9월 3일부터 5일까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을 취재했다.

극동연방대학; 동방경제포럼 개최 장소

국내에선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지만, 러시아 내에서는 대단히 큰 규모의 행사였다. 푸틴 대통령이 참석해서가 아니라, 이 포럼을 기획. 추진한 당사자가 푸틴이기 때문에 그렇다. 최고 지도자가 의지를 갖고 밀어 붙이니 밑에서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트루트네프 러시아 부총리 겸 극동연방지구 대통령 전권대표가 총감독이 되고, 극동개발부가 발로 뛰어 만든 작품이다.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이렇게 초대형 경제포럼이 열린 것은 2015년 당시가 처음이다. 동방경제포럼은 한마디로 외국투자 유치 설명회라고 할 수 있겠다. 러시아는 투자하기 힘든 곳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파격적인 조치들이 대거 발표됐다. 그 중 핵심은 ‘선도 개발구역 조성’과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선포’이다.

▷ 선도 개발구 : 극동에 분야별로 특화되고 경제자유구역(EEZ)과 비슷한 여러 개의 산업기지를 조성해, 정부가 인프라를 구축해 주고 각종 행정.세제상의 특혜를 부여 함으로써 국내외 입주 업체들을 끌어들이려는 사업이다.

9개 선도 개발구는 다음과 같다.

1)하바로프스크 선도개발구역(공업 위주): 하바로프스크 지방

2)콤소몰스크 선도개발구역(공업 위주): 하바로프스크 지방

3)나데즈딘스키 선도개발구역(경공업.식품공업.운송-물류): 연해주 지방

4)미하일로프스키 선도개발구역(축산업.농식품 공업): 연해주 지방

5)프리아무르스키 선도개발구역(공업.운송-물류): 아무르 지방

6)벨로고르스크 선도개발구역(농업 위주): 아무르 지방

7)캄차트카 선도개발구역(관광-휴양.항만-공업.농업): 캄차트카 지방

8)베링고프스키 선도개발구역(광업): 추코츠키 자치구

9)칸갈라스 선도개발구역(공업 단지): 사하(야쿠티아) 공화국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개념도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 블라디보스토크 뿐만 아니라 남쪽 포시에트항, 자루비노항, 동쪽으로 나홋트카항, 북쪽으로 우수리스크, 한카이스키 군 등 15개 지자체가 포함돼 면적은 2만 8,400 평방미터에 이른다. 이 지역을 홍콩.싱가포르 등과 유사한 세계적 자유항으로 개발하려는 계획이다. 앞으로 70년 동안 자유항의 지위를 누리게 되는데, 자유항 방문객들에게는 입국시 8일 동안 비자가 발급된다. 거주자들을 위해 관세 및 세금을 감면받을 수 있는 자유관세지역이 설치된다.

이같은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외국기업들에게는 최초 5년간 법인세.재산세.토지세 등을 면제해 주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달콤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비자 절차 간소화, *행정 규제 완화, *각종 세제상의 혜택.

이는 푸틴 대통령이 연설에서 직접 언급한 내용이다. 그는 무엇이든 요구하라고 했다. 트루트네프 부총리에게 전권을 위임했으니 그에게 무엇이든 요청하라고 했다.

아무튼 이 달콤한 제안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한마디로 기대 반 관망 반이었다. 우선 파격적인 제안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우리측 관계자는, “러시아의 입장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당신들이 투자를 안할꺼요?” 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를 오래동안 지켜본 김승동 LS 네트워트 대표이사는 무엇보다 극동개발부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 기대가 된다고 했다. 김 대표이사는 “극동개발부 사람들은 장관.차관부터 젋고 일하는 것도 아주 적극적이다. 어떤 때는 한국 사람들보다 더 빨리 빨리 일한다. 이 사람들을 보면 무언가 가능성이 보인다. 그래서 이번 기회가 우리 기업들이 극동지역에 진출해야 하는 절호의 타이밍이 아닌가 생각한다” 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신중론도 있다. 연해주에서 오래동안 사업을 하고 있는 장민석 유니베라 러시아 법인장은,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지정 법안만 해도 세부적인 규정은 현재 계속 검토중이고, 10월 초에나 발효된다. 그때 가봐야 우리 기업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혜택이 돌아오는지 알 수 있다. 그때가서 각자의 입장을 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러시아가 워낙 복잡한 행정 절차 등으로 악명이 높아서, 그런 타성이 쉽게 고쳐질지 회의하는 목소리도 있다. 9월 5일 포럼 마지막 날, 한-러 비즈니스 대화가 열린 자리에서 한국측 위원장인 송용덕 호텔롯데 대표이사는 그동안의 애로사항을 털어놓았다. 송 대표이사는 “2010년 모스크바에 호텔을 지을 당시 각종 인.허가 과정이 100여 개나 되는데, 그걸 승인받는데 1년이 넘게 걸렸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러시아 극동개발부의 오시포프 제1차관은, “극동지역에선 행정 절차를 대폭 줄이겠다. 다시는 롯데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동방경제포럼

극동지역 최초로 열리는 경제포럼에 러시아가 남북한을 동시에 초청하면서 가슴이 설렜다. 모처럼 남북한 회동이나 남북러 3자 회동을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가 컸던 것이다. 남북러 3자가 한자리에 앉는 것은 2002년 이후 13년 만의 일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8월 말에 남북한 포격전이 발생하면서 정국이 급속하게 얼어붙었다. 주최측에 몇번이고 물어봐도 북한측에서 누가 올지 답변이 없다고 밝혔다. 다행히 ‘8.25 합의’가 극적으로 체결되자 비로소 북측 대표단이 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포럼 개막 직전에, 북한이 남북러 3자 회동에는 참석하지 않기로 통보해 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대가 낙담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윤상직 산업통상부 장관(왼쪽), 리용남 북한 대외무역상(오른쪽)

물론, 남북한 대표가 자연스럽게 만남을 가진 적은 있었다. 9월 3일 저녁, 투르트네프 부총리가 예고 없이 각국 대표단을 초청해 상견례를 겸한 행사장 견학 일정을 마련한 자리였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이용남 북한 대외무역상은 이 자리에서 30분간 회동했다. 두 사람은 ‘안녕하십니까’ 라는 간단한 인사말을 건넨 뒤 별다른 의견 교환 없이, 주최측이 마련한 행사장 견학을 마쳤다고, 윤 장관측은 전했다. 그나마 이같은 만남 때문인지 그 이튿날 전체회의에서 윤 장관이 이용남 대외무역상을 다시 만난 자리에서는, 북한 나선지구 홍수 피해를 잘 마무리 하시라고 덕담을 전했다고 한다. 폐쇄적이고 경직된 북한 체제를 감안해 볼때, 이미 남북러 3자 회동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방침이 내려진 이상, 현장에 나와있는 장관급 대표가 남한 대표를 만난다 하더라도 특별히 할 말이 없을 것이란 관측은 할 수 있다. 이번에 남북한 회동이나 남북러 3자 회동이 이뤄졌더라면, 나진~하산 물류.네트워크 사업이나 한반도 가스관 연결 사업 등 이미 벌여 놓은 각종 사업들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해보는 기회가 됐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결국 남북러 3각 경제협력이 제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남북간에 순풍이 불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경제포럼이 끝난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러시아 극동개발부에서는 내년에도 경제포럼을 다시 열 계획이라며, 조만간 그 준비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내년에는 제발 남북러 3자 회동이나 남북간 회동이 반드시 이뤄져 극동에서 남북경협의 물꼬가 확 터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3) 갈수록 판이 커지다

이듬해인 2016년 제2회 동방경제포럼이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9월 2일과 3일 이틀 동안 열렸다. 2015년에는 3일 동안 열렸는데, 2016년엔기간을 이틀로 단축하고 대신 내실을 기했다. 한국과 일본의 정상들을 초청해 주가를 한층 올렸다. 오히려 한·러, 일·러 정상회담 때문에 본질인 경제포럼이 뒷전으로 밀린 듯한 느낌마저 든다. 아무튼, 이틀간 포럼에서 214건, 1조 8,500억 루블(약 31조 원) 상당의 계약이 체결됐다고, 러시아 극동개발부 공보처가 밝혔다.

앞서 지적했듯이 시베리아. 극동지방의 석유·가스·전력 생산은 세계 톱 상위권을 차지하지만, 인구가 현저히 적고, 자본·기술이 부족한 게 문제이다. 중·러 국경 너머로 중국 동북 3성에는 1억 3천만 명이 바글대는데, 극동 연해주 인구는 고작 600만 명 정도이다. 이번 포럼 전체 회의 사회를 봤던 마이클 케빈 전 호주 총리는, “극동의 영토 크기는 호주 정도인데, 인구는 싱가포르 정도이다.”라고 비유했다.

극동지역의 산업구조 변화도 요구된다. 현재 1차 산업 중심의 구조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다변화할 필요가 절실하다. 여기에 한국과 중국·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동방경제포럼은 아태 국가들에 극동지역 진출을 위한 멍석을 깔아주는 자리다. 이번엔 각국 정상들까지 초청해 제법 성대한 행사를 치른 이유다. 한국과 일본 역시 각각 안보, 영토 문제가 걸려 있으니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박근혜 대통령

9월 3일 오후 열린 전체회의에서 한러일 정상들이 기조연설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조연설에서 “극동은 한국과 러시아를 이어주는 중요한 통로이며, 블라디보스토크는 물류의 대동맥이 시작되는 중요한 도시”라며 지역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극동개발의 구체적 방안으로 “주택, 보건, 의료 분야 등에서 투자 증대와 협력 강화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러 기업 간 협력을 통한 교통·항만 등 극동지역 인프라 확충, 북극 항로 개발, 극동지역 고속도로 건설사업 및 폐기물 처리를 위한 친환경 사업 협력, 냉동창고 및 가공공장 건설 참여 등 극동지역 수산클러스터 조성 등을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하지만 무엇보다도 북핵 문제에 연설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박 대통령은 “지금 우리가 시급성을 갖고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북한의 핵 위협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라고 북한 핵 개발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북한이 동해 상으로 발사하는 탄도미사일은 극동지역의 선박마저 위협한다”며 북핵 문제가 단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역설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에 대해 “평양의 자칭 ‘핵보유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답했다. 또 러시아는 한반도 긴장 상황을 협상 국면으로 돌리기 위해 북한을 최대한 설득할 것이라고 답했다.러시아가 그동안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우리에게 비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던 것에 비 하면 푸틴의 이번 답변은 상당히 긍정적이라는 분석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이번 동방경제포럼 참석이 나름의 성과를 얻은 셈이다. 물론 민감한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을 여전하다.

아베 총리

아베 일본 총리의 연설에서는 러시아의 환심을 얻고자 하는 의도가 그대로 드러났다. 어떻게 들으면 아첨에 가깝게도 들릴 정도다. 아베 총리는 “저는 이번에 블라디보스토크를 처음 방문했습니다. 저는 전용기를 타고 왔지만, 이곳은 항구가 아름다운 도시이기 때문에 배를 타고 와야 할 것입니다. 100년 전 노르웨이 출신 탐험가 프리드쇼프 난센은 블라디보스토크를 보며 이렇게 말했죠. 여기보다 아름다운 곳이 어디에 있을까?”라며 한껏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치를 칭찬했다.

아베 총리는 또 동방경제포럼장이 있는 루스키 섬으로 들어오는 세계 최장의 사장교(길이 3km)를 일본 기업이 건설한 점을 상기시키면서, 아름다운 도시 건설에 일본 기업을 동참시켜 달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이와 함께 러-일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았다면서 이 같은 비정상적인 상황에 종지부를 찍자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 년에 한 번 이곳에서 정례 회담을 하자”라는 새로운 제안도 내놓았다.

아베 총리는 발언에는 그가 남은 2년 임기 동안 러시아가 필요로 하는 경제협력을 당근 삼아 쿠릴열도, 북방영토 문제를 매듭짓기로 작정한 것 같은 의도가 드러난다. 아베는 앞서 지난 5월에도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러시아 남부 소치에서 푸틴을 만나 ‘8개 항목의 협력방안(이른바 포괄적 접근)’을 제시한 바 있다.

물론 푸틴 대통령이 당장 아베 총리의 구애에 화답할 것 같지는 않다. 푸틴 대통령은 전체회의에서 러시아 관점에서 러-일 관계의 전략적 중요도는 어떤지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영토 문제는 러시아의 국익에 관계된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러시아와 일본의 시각이 다르다. 현재의 러시아가 이 문제를 만든 것이 아니다. 1956년에 이 문제가 해결되었어야 하는데 아쉬움이 있다.”

(소련-일본 간 공동선언에서 당시 소련은 시코탄과 하보마이 등 쿠릴열도 4개 섬 중 2개 섬을 일본에 돌려주겠다고 제안한 바 있음)

푸틴 대통령

푸틴은 또 “당시에는 일본이 거절했다. 당시의 제안에 대해서 일본이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한다. 러시아와 일본에게 서로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영토문제는 해결되리라고 생각한다. 나와 아베 총리가 소치에서 합의한 8개의 협력방안, 이것이 중요하다. 영토문제와 평화협정문제는 해결책을 찾아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양국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할 것이다.” 고 답했다.

이틀간의 잔치는 끝났다. 정상회담 덕분에 굵직한 계약체결. 각종 MOU 체결 관련 기사들이 쏟아졌다. 기자 개인의 관심사는, 한국과 일본의 정상들이 언급한 안보, 영토 문제를 러시아는 과연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베가 제안한 ‘매년 정례 정상회담’에 대해 러시아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도 관심사다. 문제는 러시아 사람들은 반응을 보이기까지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기다려 볼 일이다.

 

4) 극동개발의 노림수

한러일 정상들

푸틴 대통령은 왜 극동개발에 열을 올리는걸까? 푸틴은 2000년 7월 집권 1기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북한을 방문했다. 옛 소련시기를 통틀어 러시아 국가정상이 평양을 방문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때부터 극동개발에 박차를 가한 뒤 15년 만의 결실이 이번 동방경제포럼이라고 할 수 있다. 극동개발의 목적은 결국 아시아.태평양으로의 진출로 요약된다. 푸틴 대통령은 포럼 개막식 연설에서, “아시아.태평양 연안국가들은 지금 세계 경제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아태국가들과 긴밀히 유대관계를 맺는 것은 러시아의 전략적 이해관계”라고 설파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미 자루비노 항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남쪽으로 230km 위치. 중국 국경과 가까움)의 항만 현대화에 합의했다. 우리측 관계자는,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동해안을 따라 부산항에 이르러 아시아.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것이 러시아의 목표일 것이라고 귀뜸했다.

 

5) 연해주 한국 공단

개성공단이 가동된지 꼭 10년째 되던 2013년 4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3차 핵실험 등 잇달은 북한의 강경 조치로 결국 남북한 종업원들이 모두 철수하면서 개성공단 중단 사태가 벌어졌다. 필자는 당시 북중 접경지역인 지린성 도문의 북한 전용공단에서 북한 노동자들의 실태를 취재하고 있었다. 개성공단이 문을 닫으면 개성지구 노동자들이 북중 접경의 도문 공단으로 옮겨올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또 남한 정부에서는 개성공단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남북한 협력 모델을 북한 땅이 아닌 제3국에서 시행하는 방안을 모색한다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제3국 중 유력한 후보지가 러시아 극동 연해주라는 첩보도 입수했다.

중국 전용 공단

그해 12월 필자는 <북방의 문을 열다> 라는 제목으로 철도 연결 등 남북러 3각협력 가능성을 타진하는 내용의 신년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극동 연해주를 방문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110km 떨어진 작은 도시 우수리스크. 필자는 우수리스크에서 아주 흥미로운 장소를 취재했다. 시 외곽에 중국 전용 공단이 있었다. 2012년에 가동을 시작한 이 공단에 20개 업체 1500여 명이 일하고 있었다. 원자재를 중국에서 들여와 신발.운동복.박스 등을 만드는 봉제가공업체들이었다. 상품은 모스크바를 거쳐 유럽으로 수출한다고 했다. 북한 노동자들 고용하는 조선족 공장도 있었다. 그동안 수지가 맞지 않아 일부 중국업자들이 철수한 탓인지 최근에는 300여 명 정도로 규모가 줄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공단을 보면서 필자는 연해주에 한국 업체들을 위한 전용 공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러시아측 입장에서는 중국인들 보다는 북한 노동자들을 더 선호한다는 말을 너무나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중국 전용 공단2

2019년 1월 산업연구원은 한반도 평화 정착과 경제성장을 위해 남북러 3국이 산업단지를 함께 조성하는 등 협력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산업연구원은 장기적으로 북한 내 산업단지와 더불어 한러 협력산업 집중지역에 점진적으로 ‘남북러 협력 산업단지’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러시아가 극동지역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점에 주목해, 남북러 협력의 최우선 대상 지역으로 극동지역을 제시했다. 연구원은 유엔의 대북제재 해제 추이에 따라 러시아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고려해 러시아의 협력을 최대한 유도하고, 남북러 수송망 구축과 유라시아 시장 확대에 필요한 수출형 제조업 분야 프로젝트를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남북러 협력사업이 러시아 정책과 부합하도록 러시아가 극동지역에서 추진하는 루스키섬 과학·기술센터 조성, 가공산업 육성,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사회·수송 인프라 건설 정책 등을 활용한 프로젝트를 검토 대상으로 제시했다. 북한과 러시아가 전력, 광물자원, 철강, 수송망, 무역·투자, 농업 등 분야에서 진행해온 기존 협력사업을 활용할 것도 제안했다.

블라디보스토크

그런데 실제로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이런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LH는 2019년 9월 4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5차 동방경제포럼에서, 연해주 나데진스카야 선도개발구역(ASEZ) 내에 ‘한-러 경제협력 산업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에서 15km 거리에 위치해있다. 단지 조성은 총 150만㎡(45만 평) 가운데 50만㎡(50 ha=15만 평)를 시범사업으로 우선 추진할 예정인데, LH가 러시아 정부로부터 개발권을 획득해 산업단지를 조성한 뒤 한국기업에게 입주권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만약 미분양 시에는 외국기업에게 입주권을 허용할 방침이라고 LH는 설명했다.

사업비는 100억원 이내로 2020년부터 3년간 추진할 계획이며 현재 사업타당성 조사용역을 진행중이다. LH는 지난 2월에 FEIEA(러시아 극동투자 수출지원청)와 이번 사업의 포괄적 내용을 담은 MOU를 체결하고 7월에는 국내 기업들의 입주 수요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LOI, 즉 입주의향서를 낸 기업은 28개로 17.1만평을 요구했는데, 이는 분양면적인 13.4만평을 128% 초과한 것이다. LH는 우리 기업의 연해주 진출 장점으로 다음과 같은 3가지를 들었다.

①생산 거점: 저렴한 전기.가스 비용, 노동력 등을 활용해 생산 단가 절감과 향후 CIS 진출을 위한 거점으로 활용 가능

②물류 거점: 북.중.러 접경지역에 국제물류 요충지로 성장이 예상되며 국내 시장과도 근거리에 있어 물류비용 절감 가능

③After Market: 극동아시아 지역은 중고차 점유율이 높아 A/S 부품 및 차량관리 용품 등에 대한 적지 않은 시장 규모 형성

LH는 9월에 사업타당성 분석을 마치고 12월 13일 러시아 정부와 ‘예비 사업시행 협약’을 맺었다. 이번 사업은 우리 정부가 2017년 9월 러시아에 제안한 9개 분야의 한‧러 간 경제협력사업(산업단지, 가스, 철도, 항만, 전력, 북극항로, 조선, 농업, 수산업) 즉 ‘9-Bridge 전략’의 하나로, 중소기업의 러시아 진출을 지원하기위한 방안이라고 LH는 소개했다. 또 이번 시범사업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창출해 제2, 제3의 한국형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필자는 진심으로 이 사업이 성공해 크게 번창하기를 바란다. 돌이켜보면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이후 러시아 극동 연해주에 진출을 시도한 국내 기업들은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살아남은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우수리스크에 있는 롯데 농장 (예전에 현대중공업 소유였다가 매각됨), 롯데 호텔(예전의 현대 호텔), 크라스키노에 있는 유니베라 농장, 대순진리교 농장 등이다. 필자는 앞으로 이 산업단지에 북한 노동력까지 가세해서 진정한 남북러 3각 협력사업으로 꽃피우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목, 2019/12/1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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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민주주의의 영향과 실행에 대해 경험을 기반으로 한 총체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사회-경제적 맥락과 역사-문화적 배경, 레퍼렌덤 권리의 발전 단계, 법적인 틀과 국가적으로 각 현실의 정치적 상황 등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이를 시행한 모든 체제에 적합한 어떤 단일한 결론을 이끌어 내기란 어렵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모든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판단을 내릴 수는 없지만, 국제적인 차원에서도 다양한 연구 기관에서 실시한 경험적 조사에서 나타나며, 꾸준히 찾아볼 수 있는 몇 가지 효과들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들을 요약한다.

 

민주주의라는 근본적인 원칙에는 변화가 없다

직접 민주주의는 어떤 정치체제의 토대를 허물어 내는 수단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시민들은 정치적 권리들을 확장시키고 손질하기 위해 정치체제의 몇 가지 근본 요소들을 개선할 자유가 있다. 민주 사회에서 정치 참여는 기본권에 속하며, 정치법을 바꾸는 데 활용될 수도 있다. 국민 대다수가 바라는 레퍼렌덤 권리들은 사실상 민주주의의 정착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레퍼렌덤으로 엄청난 정치적 분열이 일어난 적은 없다. 새로운 정치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체제에 새로운 국민의 권리를 통합시키는 것이다.

스위스에서 1900년대 후반 국가 권력 구조의 근본적인 개혁과 더 힘없는 계급들의 해방을 바란 좌파의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처음에 보수층은 직접 민주주의를 확대하면 개인 소유주들의 권리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을 두려워했고, 유산有産계급은 새로운 국민 권력을 일종의 위협으로 느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두려움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소수당에 불이익은 없다

직접 민주주의는 덩치에 따른 선거 제도를 만들려는 지배당의 시도에 대항하기 위한 피난처이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적 요소는 자유선거와 복수 정당제이다. 때로는 강한 정당들이 레퍼렌덤을 이용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선거법을 바꾸려는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이런 논란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그런 정당들은 의회에서 다수당인 덕분에 어찌되었건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레퍼렌덤 권리는 이런 효과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다수당들을 통제하는 데 유용한 도구라는 것이 드러났다. 스위스에서 시민들은 레퍼렌덤 투표로 소수 정치 세력들에게 더 유리한 비례 제도를 적용했다. 반면 1990년대에 이탈리아에서는, 군소 정당들의 발안으로 완전 비례 제도가 폐지되고 정당 연합을 결성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주로 다수 편향적인 제도에 자리를 내어주었다.

때로는 야당들이 특정 정치 현안에 대해 집권 다수당을 좌절시키려는 과정에서 “레퍼렌덤이라는 방법을 시도해 보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 집권당 연합 또한 거의 플레시비트와 유사한 술책의 형태로서 유권자들에게 결정권을 맡김으로써 별로 반갑지 않은 결정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대개 모든 레퍼렌덤에서 각 정당은 공개적으로 찬반으로 편을 나누거나 투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호소했다. 요컨대 선거 제도의 입법에서 직접 민주주의는 소수 정당들에게 피해를 주기보다는 이익을 가져다 준 것을 볼 수 있다. 여러 나라에서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군소 정치 세력들이 종종 레퍼렌덤 도구를 활용하는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며, 이탈리아의 급진당Partito Radicale은 1974년부터 2006년까지 20개 이상의 레퍼렌덤 사안을 추진했던 것도 사실이다.

 

국민발안과 연합주의Associationism를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

직접 민주주의는 이익단체들이나 시민발안의 역할과 가능성을 강화시키는 한편 때때로 각 현안에 대한 정당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아무런 정치적 책임이 없고, 선거에 후보자를 내지 않으며 로비 활동처럼 집단의 이익을 위해 조직적으로 일하지도 않는 단체나 어떤 운동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관심 있는 특정 현안에 영향을 미칠 기회가
있다.

직접 민주주의는 보통 레퍼렌덤 투표에서 선거 때 투표한 정당과 완전히 같을 필요가 많지 않아, 시민사회 및 연합주의 단체나 운동의 역할을 강화시키고, 대화와 타협에 나서도록 정당들을 압박한다. 레퍼렌덤 도구 덕분에 국민 대다수는 필요할 경우 비상 브레이크나 안전 잠금 장치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연방제도: 직접 민주주의 가동에 유리한 조건

연방제도와 지방자치는 레퍼렌덤 권리의 발전에 유리한 기반을 제공한다. 지방(주, 현, 기초자치단체)에 더 큰 법적 권한이 더 부여될수록, 레퍼렌덤 권리를 가동할 수 있는 정치 부문이 더 확대된다. 이 권리는 일종의 “민주주의의 훈련장”이다. 지방 정치에서 시민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레퍼렌덤 투표에 참여하려 하는데, 다루는 사안이 그들 자신과 밀접히 관련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시민들이 담당해야 할 정치적 책임이 더 클수록, 시민들은 레퍼렌덤 도구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또한 레퍼렌덤 권리를 법적으로 잘 정비하여 미래의 지방법 개정을 위해 투표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포함시키면, 중앙에 비해 지방 정부들의 입지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사실상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지방의 책임을 기꺼이 중앙 정부에 양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직접 민주주의는 연방제도 또한 강화시킨다. 곧 시민들은 가능한 한 자신들의 참정 기회가 훨씬 큰 지방 정부급에 힘을 실어주려 할 것이다.

 

소수의 위험과 기회

직접 민주주의는 사회적, 정치적 소수자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그들의 관심을 명확히 밝히거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론상 레퍼렌덤 도구는 소수자들에게 불리하게 쓰일 수도 있다. 우선 두 부류의 소수자를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한쪽은 “영속적인” 사회적 소수자들이 있다(예를 들어, 장애인, 집시, 동성애자, 소수 민족, 소수 종교인 단체, 이민자 등). 다른 쪽은 정치적 소수자나 가변적인, 다른 부류의 소수자들이다. 발안은 사회적 소수자에게 정치적으로 결정하고,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기회를 보다 많이 제공한다. 그러나 그들 혼자서 해낼 수는 없다. 정치적 다수가 그들의 관심사에 찬성해야 하기 때문에 더 광범위한 사회적 집단들과 협력해야 한다. 레퍼렌덤을 통해 소수자들도 새로운 연합에 들어가고 심지어 국회의 다수를 꺾을 가능성도 갖게 된다. 이런 권리의 존재만으로도 정당과 정부를 압박하여 더욱 진지하게 소수의 이익을 고려할 수 있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 패배한 체계적이지 않은 소수자들 또한, 때로는 그들이 바라는 개혁을 위해서는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음을 깨닫고, 정치적이건 사회적이건 레퍼렌덤 투표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어떤 경우이건 소수자들과의 공개적이고 바람직한 대면은 그들의 사회적 통합을 촉진시킨다. 물론 그것을 목표로 소수자들에게 레퍼렌덤 권리를 완전히 행사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 조달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어쨌건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의회에 도달하지 못하는 단체로서는 조직하기 어려운 사회적 빈민층이나 정치적 소수자들의 이익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직접 민주주의는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점에 국민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수의 입장을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므로 때로 사회적 소수자들은 직접 민주주의 절차의 틀 안에서 적대감과 뿌리 깊은 편견으로 똘똘 뭉친 집단들에게서 소외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공적인 토론은 그 자체로 역동성이 있으며, 매우 다각화된 우리 사회에서 그 어느 누구도 단 한 가지만 소수에 속하거나, 또 늘 소수자로 남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의회에서도 소수의 이익은 종종 다수당의 논리에 희생된다. 어쨌건 헌법과 국제 협약 및 인권 조약에서 마련된 기본권들로 구성되고, 거의 모든 나라에서 지방법 및 유럽연합 조약으로도 비준된 레퍼렌덤 권리들에는 한계가 있다.

 

정치적 엘리트의 확대

누가 정치적 엘리트에 속하는가? 정부, 국회, 행정부, 정당의 정치적 인물들과 정치적 성격을 지닌 거대 조직의 인물들이다. 엘리트, 혹은 적어도 이런 형태의 리더들의 집단은 대개 대의민주주의를 선호하며, 의사 소통 채널을 만들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한다. 직접 민주주의는 주로 그들에게 일반 국민들과 관계를 맺도록 독려함으로써 상황을 변화시킨다. 한편으로 각각의 레퍼렌덤 발안 또한 오로지 기꺼이 헌신하고, 어떤 대의를 위해 투쟁할 태세가 된 능동적인 시민들 덕분에 태어난다. 이들은 사회적 엘리트 층을 형성하지 않으며, 하나의 정치적 주제나 프로젝트를 이끌어 나갈 역량을 지닌 소수자들이다. 제기한 사안과 관련하여 항상 이 시민들의 비중은 무시 못할 정도인데 특히 레퍼렌덤 권리가 얼마나 발전되었느냐에 따라 더욱 그렇다. 직접 민주주의는 그저 엘리트 층 사이에서 어떤 주제를 대면하도록 자극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계급과 국회 차원에 존재하지 않는 그룹들 간의 토론도 자극한다. 정치적 절차가 그렇게 더욱 확대되고 풍요로워진다.

 

직접 민주주의는 적법성legitimacy을 더 부여한다

“적법성”이라 함은 어떤 결정이나 어떤 조직에 대한 정치적 평가 수준을 의미한다.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록 그 결과는 더 적법성을 지닌 것으로 간주된다. 이런 의미에서 더 강력한 적법화의 형태는 두말할 나위 없이 온 국민이 참여하는 레퍼렌덤 투표, 혹은 선거의 경우 국가 원수나 지방 행정부 수장의 직접 선거이다.

만일 레퍼렌덤 도구를 통해 대의 기관의 심의에 반대하거나 행정부에서 바라는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집단들이 레퍼렌덤 투표에서 패배한다면, 그들이 제안한 주제의 유효성이 아니라 그들 반대의 적법성이 사라지게 된다. 민주주의에서는 다수의 이익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한편 각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레퍼렌덤 투표에서 패배한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전반적인 신임이나 총선을 통해 그들이 부여받은 위임의 적법상이 아니라, 단순히 국민과 의견을 달리하는 어떤 명확한 선택과 관련한 적법성을 잃는다.

 

진보주의의 온상도 보수주의의 온상도 아니다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토론에서 정치인들이 제기하는 첫 번째 질문의 하나는, “이 도구는 어떤 방식으로 나의 정치에 도움이 될까?’ 이다. 보수 세력이건 자유주의 세력이건, 좌파건 진보 진영이건 국민은 직접 질문을 받고 그들 견해를 밝힐 것을 요청받는다. 과거에는 과연 직접 민주주의가 사회의 진보를 옹호하거나 방해할 수 있을지 자문하는 것은 주로 좌파였다. 좌파들이 봉착한 딜레마는 직접 민주주의는 국민에게 더 큰 결정권을 넘겨 주지만, 과거에도 현재도 이것이 꼭 진보적 해결책을 옹호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대개 국민발안은 단지 여러 사람들이 느끼는 긴급 현안들을 제기하여 정치인들을 포함한 모두가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일 따름이다. 이 도구들은 시민 단체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공적으로 표현하여 국회와 정부의 의도에는 어긋나는 것이더라도 그것을 다수의 결정으로 이끌어 낼 수 있게 해 준다. 만일 레퍼렌덤 절차가 대규모 토론과 함께 이루어진다면, 레퍼렌덤의 결과는 항상 열려 있다. 국민발안들 사이에서도 주요 구분을 할 필요가 있다. 곧 보수적인 국민발안이 있고, 혁신적인 국민발안이 있다. 직접 민주주의가 사회의 진보적 입장과 세력을 희생하여 보수적 입장과 세력을 옹호하려 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단순히 전통적인 통로만으로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국민들에게 좀 더 목소리를 실어 주는 것이다.

 

정치 시스템 전반의 효율성 증진

어떻게 정치에서 “효율성”을 측정할까? 만일 어떤 정치적 승인에 도달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측정 기준으로 잡는다면, 직접 민주주의는 확실히 결정 과정을 간소화시키지도 않고, 그 기간을 줄여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평균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이나 좀 더 보편적인 시각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실시는 정치체제의 안정을 증진시키며, 그러므로 그 효율성 또한 증진시킨다. 대개 효율성은 한 정치체제의 유익성과 비용 사이의 관계로 정의된다.

종종 정치인들은 레퍼렌덤 도구들이 정부의 통치 능력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레퍼렌덤 투표가 선출된 정치적 책임자들과 거대 조직 책임자들의 결정 범위를 지나치게 제한하게 될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정보 전달과 공개 토론 비용 및 투표 자체의 실시 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비용 증가와 정치적 절차가 어느 정도 지연되는 것이 다른 이점들, 곧 지속성과 안정, 적법성 및 레퍼렌덤 승인으로 채택된 해결책의 수용 등의 이점을 없애지는 않는다. 시민들은 종종 선거 중간에 개입할 수 있는 그 어떤 정치적 도구도 없이 법적으로 호소하거나 좀 더 급진적인 항의 형식에 의존하여 어쨌든 프로젝트들을 막아내곤 한다. 그러나 직접 민주주의로 정치권은 미리 국민들의 동의를 구해야만 한다.

 

최고 수준의 정보 전달 덕분에 이루어지는 일반 교육

정치적 이익과 “정치적 성숙”을 위해서는 적절한 학습과 교육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모든 시민들은 참여 여부에 상관없이 레퍼렌덤에 즈음하여 생겨나는 공적 토론에 노출되게 된다. 직접 민주주의의 사회화 효과는 시민들과 정치인들 간에 직접 접촉으로 정치적 대면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더 크다. 이 효과는 시민들이 대개 그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느끼는 지역적 차원에서 더 생생하다.

그들은 다양한 입장이 있다는 것과 모든 이들의 논점과 목소리가 모두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민이 내린 결정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불특정의 시민은 한 번은 승리한 다수에 속하고, 또 다른 때는 패배한 소수에 속하게 된다. 레퍼렌덤 과정에서 다수를 설득해내지 못한다면 그 어떤 세력도 더 이상 “국민”을 운운할 수 없다. 미국과 스위스에서 투표 참여는 늘5 0%를 넘지 않지만, 진정한 민주주의의 성취로 여겨지는 레퍼렌덤 권리를 훼손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면 국민 저항이 매우 높다.

 

승인된 해결책의 수용율은 높고, 잠재적 갈등은 줄어든다

레퍼렌덤 투표에서는 특정 현안에 집중하며 그것을 전반적인 정치적, 사회적 갈등과 섞지 않는다. 레퍼렌덤 절차가 규정을 완전히 존중하여 시행된다면, 곧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모두가 받아들인다면 투표는 국민들과 의회 다수당, 정부 사이, 그리고 정치 세력들 간의 긴장을 명확히 설명하고 완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어떤 이는 직접 민주주의가 복잡한 현안들을 다룰 때 반듯이 필요한 타협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지만 대신 의회에서는 그런 타협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스위스에서는 레퍼렌덤의 예측 불가능함을 염두에 둔 세련된 기제가 존재한다. 자신들이 레퍼렌덤에 착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그룹들을 참여시켜 “예방 공간”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타협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때로는 직접 민주주의가 제도적 차원에서 진전이 없는 어떤 상황을 돌파할 수 있게 해 준다. 만일 의회가 타협점을 찾을수 없어 법을 정하지 않는다면 국민발안은 시민들에게 최후의 발언권을 준다. 스위스에서는 대개 국민 50% 이하가 레퍼렌덤에 참여하지만, 결과의 수용율은 높다. 각자 자신들이 원한다면 참여할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주제가 잘 알려져 있고, 단순하고, 토의를 거친 것일수록 레퍼렌덤에 더 적합하다

모든 정치 현안이 레퍼렌덤 절차로 쉽게 다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하고, 잘 알려져 있고, 논의를 거쳐서 정보 제공이 많이 필요하지 않으며, 그에 대해 어떤 가부가 명확한 답을 줄 수 있는 의제가 바람직하다. 원칙에 따른 정치적 차원에서 내린 모든 결정은 평균적인 시민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의 현대적 개념은 자유롭고 정보를 갖춘, 의식 있는 시민을 전제로 한다. 그 밖에도 상당한 서명을 모으는 일이 민주주의의 여과기 역할을 한다. 헌법 개정, 정부 형태 변경, 초국가적 기구에 주권의 양도 등 더욱 강력한 합법성을 요하는 의제들이 존재한다. 많은 유럽 국가에서 실시한 유럽연합 가입 관련 레퍼렌덤들이 이런 막중한 정치적 결정을 합법화하는 법적 구속력을 지녔다.

예를 들어, 연간 예산 관련법 같이 여러 차원에서 타협을 요하는 복잡한 현안들은 레퍼렌덤 절차에 놓이는 것이 그리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특정 세금 관련법의 경우는 다르다. 캘리포니아 또한 몇몇 정치적 사안을 직접 민주주의에서 배제시키지만, 스위스는 그렇지 않다. 스위스에서는 그 어떤 사안도 배제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공공 예산과 관련하여 “참여적 예산”이라는 흥미로운 경험이 존재한다(11장 참조).

대체적으로 직접 민주주의의 긴 전통을 지닌 나라에서 실시한 선험적 조사에 따르면, 좋은 직접 민주주의에 따른 주요 효과는 다음과 같다(Gross 2007과 Kaufmann/Buchi/Braun 2009 참조).

▪ 직접 민주주의는 정치를 더욱 전달력 있게 만든다. 구체적인 정치적
현안에 관한 정치적 결정의 합법성에 대해 시민들 측에서 의문을 제
기할 수 있으며, 정치인들 측에서는 충분한 근거를 들어 이를 설명
해야 한다.
▪ 직접 민주주의는 모든 관계자들이 사실과 주제에 기반한 공개 토론
에 나서게끔 함으로써 정치적 대화를 더욱 진지하고 합리적인 것으
로 만들어 준다.
▪ 직접 민주주의는 수적으로 열세한 그룹이나 소수자들도─국회와
의회에 존재하지 않는─공개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밝히고
압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 준다.
▪ 직접 민주주의는 보다 공평하고 정확한 정치 권력 분배를 가능하게
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그의 정치를 정당화시킬 필요가 없을 정도로
또는 국민 레퍼렌덤 투표에서 다수를 설득할 정도로 큰 특권을 주지
않는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금, 2019/12/20-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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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탄생과 변화

대학은 1000년전 지금과는 매우 다른 환경에서 탄생했다. 그때는 인구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고, 기술도 거의 발달하지 않았으며,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어서 지상에서의 존재란 영원한 삶으로 가는 중간단계라는 종교적 사고방식이 지배했다. 그때 이후 많은 것이 변했고 대학도 중세에서 현대, 후현대로의 역사적 변천으로 규정되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변화에 대응해 여러 차례의 중요한 변형을 겪었다. 현재 세계의 상태를 고려할 때 고등교육의 주요한 목적은 무엇일까? 중요한 전제 가운데 하나는 고등교육은 인간이 더 의미 있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도록 함으로써, 그리고 사회적 정의와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증진시키도록 도움으로써 이 세계를 더 나은 곳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학은 이런 역할에 실패하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 도덕적 헌신을 상실하고, 다른 면에서 잘못되고 파괴적인 사고방식에 헌신하며, 또 다른 면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아는 걸 어렵게 만들기조차 한다.

현대 대학은 복잡하고 모순적인 존재이다. 과거에는 기독교에 뿌리를 두었지만 이제 매우 세속적인 기관이 됐다. 한때는 엘리트 집단이었으나 이제 수백만의 학생들에게 열려있다. 이론을 모든 것의 우위에 놓는 동시에 지극히 실용적이어서 문학비평과 이론물리학이 컴퓨터 프로그래밍, 엔지니어링, 경영, 디자인과 나란히 존재한다. 대부분 학문분과들이 각자의 형이상학적 배경을 가졌지만, 대학의 전반적 구조는 통일된 세계관의 가능성을 갉아먹는다. 대학들은 경제성장에의 헌신이라는 지배적 문화에 긴밀하게 묶여있는 동시에 이성과 숙고의 삶을 증진시키는 것을 추구한다. 문화적 전통을 보존하려는 기관이면서도 이런 전통의 기본적 가정들이 타당한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지금 세계의 상태가 전반적으로 좋거나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현재 형식의 대학을 심각하게 재고할 이유가 없다. 현대 대학들은 세계가 현재의 상태에 이르게 하는데 공로를 세웠다.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에 공헌했으며 부분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기여했다. 그러나 최소한 진보의 길에 서지는 않았다. 현대 대학들은 나아지지 않았으며 자신의 목적과 바탕의 가정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대학은 산업과 정치의 지도자들, 계획가와 분석가들, 교사와 시민들을 교육하며 우리의 파괴적 관행을 떠받치는 세계에 대한 이해의 방식을 발전시키고 합법화한다. 현대 대학의 영향력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환경위기가 가장 심각하고 사회적 부정의(이는 환경의 쇠퇴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가 역사상 가장 증가한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공동체 해체와 환경 파괴에서 대학이 해온 역할은 크게 주목 받지 않는다. 환경위기에 대한 전통적인 설명은 과잉인구, 과소비, 대규모 산업, 공공정책, 생육하고 번성하고 정복하라는 성경의 가르침 등에 초점을 두었다. 대학은 대규모 산업, 정부, 종교의 이해와는 떨어져 있거나 거기에 적대적이라고 스스로를 이해했다. 전반적으로 대학구성원들의 입장은 자연세계의 파괴에 대한 비난이 다른 곳으로 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동체 붕괴에 있어서도 대학의 책임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현대 대학들이 도시화를 촉진하는 이동성과 개인주의를 교육한다는 사실은 대체로 간과돼왔다.

 

현대적 믿음에 대한 대학의 헌신

나는 현재 형식의 대학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데, 특히 학문분과, 철학적 유물론, 그리고 경제주의-무한한 경제성장이 가능하고 바람직하다는 믿음-에 대한 헌신 때문이다. 대학이 세계의 선을 위한 세력이 되려면 이 세 가지를 넘어서야 하며 인간의 삶이 갖는 의미, 지구와 모든 서식자의 내재적 가치, 생명이 갖는 상대적 속성을 긍정하는 세계관을 보증해야 한다.

학문분과는 매우 강력한 동시에 통일된 세계관의 가능성을 저해하는 특별한 방식의 구조적 사고이다. 대학이 분과 형식의 사고에 매진하는 한, 대학은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학문분과의 시각에서 보면 세계는 일관성과 통일성과 의미가 부족하다. 한 분과의 다양한 전제와 발견은 다른 분과의 전제와 발견에 의해 영향 받거나 점검되지 않는다. 경제학자들은 무제한의 경제성장이 가능하고 바람직하다고 가정하는 반면 물리학자들은 지구의 파괴를 경고하는데, 이런 경고와 발견은 경제학자들에 의해 고려되지 않은 채 넘어간다. 마찬가지로 물리학자들은 모든 실재가 물질로 환원되고 그런 물질은 내재적 가치, 경험, 자유가 없다고 가정하는데 비해 (암묵적으로는 대다수 과학자들을 포함해서) 대학의 다른 학자들은 최소한 인간의 삶에는 의미가 있고 어느 정도까지 스스로의 행동과 믿음에 책임이 있다고 가정한다. 대학의 분과구조는 이런 모순적 관점이 어떻게 두 가지 모두 진리로 통용되는지 생각하지 않은 채 공존하는 것을 허용한다. 전반적으로 통일된 실재에 대한 관념을 공유하는 대신, 서로 정반대인 추상적 개념을 내놓는다.

이런 방식으로 현대 대학은 현대성의 한 버전인 철학적 유물론이라는 후현대적 입장을 보태놓는다. 이 견해에 따르면 실재하는 모든 것은 물질, 그리고 중력 같은 물질적 힘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것은 현대 대학에서 발견되는 근대적 세계관, 즉 오래 되고 이원론적인 세계관의 잔여일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세계관이다. 유물론은 초기의 이원론에 비해 더 큰 장점을 갖는다. 비이원론이기 때문에 형이상학적으로 분명한 실체들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데 따른 문제를 피해간다. 이렇게 설명되지 않는 것에는 경험(인간의 경험을 포함), 자유(인간의 자유를 포함), 내재적 가치(인간의 내재적 가치를 포함), 도덕적 미적 규범 등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세계는 생명이 없고 의미와 목적을 피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유물론이라는 세계관을 향유하는 개인의 존재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현대 대학은 또한 경제주의에 경도돼 있다. 경제주의에 따르면 세계의 대부분의 문제들은 돈으로 해결되며 돈은 은총처럼 무한하다. 세계경제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여섯 배나 팽창했는데도 세계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대다수가 더 나빠졌다는 사실, 전반적인 환경이 전지구적 부의 증가에도 불구하고(대개는 바로 그것 때문에) 심각하게 쇠퇴했다는 사실은 이런 믿음에 대한 반증이 되지 않는다. 세계의 경제활동이 무한히 팽창하며 모든 이들에게 이익을 주고 건강한 생태권역과 양립 가능하다는 믿음이 너무 깊은 나머지, 경제주의가 보편적 부라는 공공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에 설득되지 않는다. 그러나 경제주의는 잘못되고 파괴적인 이데올로기로서 점점 큰 지구의 쇠퇴와 인간의 고통을 가져온다. 단순히 말해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경제성장은 가능하지 않다. 현대 대학들이 직간접적으로 경제주의를 지지하는 한, 환경적으로 건강하고 사회적으로 공정한 세계와 한편이 될 수 없다. 경제주의는 삶의 의미를 소비와 소득의 관점에서 정의하기 때문에 이런 목적을 수용한 대학은 자연세계의 파괴를 가속화하고 인간의 고통을 증진시킬 뿐이다.

 

대학이 토론하지 않는 열세 가지 생각

우리가 사는 세계를 파괴하고 있는데도 대학에서 공개적으로 토론하지 않는 열세 가지 생각이 있다. 더 나쁜 것은 이 모든 생각이 진리로 간주되며, 전 세계의 고등교육기관으로부터 공개적으로 인증됐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대학들은 세계를 파괴하고 있는 바로 그 생각들에 자신의 권위를 부여한다. 그 열세 가지 생각은 다음과 같다.

1. 실재는 내재적 가치를 갖지 않는다.

2. 우주는 목적이 없다.

3. 진리, 정의, 아름다움은 완전히 주관적이어서 중요하지 않다.

4. 사회 전반의 건전도는 GDP로 측정될 수 있다.

5. 광범위한 경제적 불평등은 문제가 아니다.

6. 교육은 직업훈련과 출세에 관련된 것이다.

7. 공장식 농축산업은 효율적이고 필요하며 지속가능하다.

8. 모든 중요한 문제는 시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9. 개인이 사회보다 더 현실적이다.

10. 가능한 최선의 세계질서는 하나의 슈퍼파워만 존재하는 것이며, 이것은 미국이다.

11. 글로벌 경제는 필연적이고 지속 가능하다.

12. 전쟁과 부정의는 피할 수 없다.

13. 경제성장은 기후안정성이나 생물다양성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

만약 한국과 미국이 지속 가능한 문명을 이루려면, 고등교육을 재발명하거나 현재 상태의 고등교육을 다른 종류의 고등교육으로 보완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세계를 파괴하는 생각에 도전하고 그것을 보다 진실에 가까운 생각으로 바꾸도록 해주는 형식의 고등교육이 필요하다.

나는 위에 제시한 열세 가지 생각에 대해 토론하고 이 목록에 다른 생각들이 추가되기를 바란다. 아마 내가 만든 목록은 의도하지 않고 의식하지 못했지만, 미국 중심적일 것이다. 그러나 내 요점은 대학들이 당대의 문화적 가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몇몇 중요한 생각들은 현재 구축된 고등교육의 맥락에서는 추호의 의심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형식의 대학이 세계를 파괴하는 생각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대학의 구조와 관련이 있고, 둘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형태 짓는 광범위한 문화적 가정과 관련이 있으며, 셋째는 정치적인 문제이다.

 

대학이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세 가지 이유

오늘날 대학은 학문분과에 따라 조직돼 왔다. 과거에는 반드시 그렇지 않았고 미래에도 그럴 필요가 없다. 학문분과는 탐구분야, 기본적 가정의 세트, 방법론으로 구성된다. 학문분과에 맞지 않거나 현재 분과의 기본가정과 모순되는 생각은 오늘날 고등교육의 맥락 안에서는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내가 지구에서 인간이 영위하는 삶에 해롭다고 꼽았던 위의 모든 생각들은 이런 범주에 들어간다.

만물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갖는다는 생각을 예로 들어보자. 물리학과 화학이라는 분과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가정 위에 놓여있기 때문에 실재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가능성을 음미하는데 닫혀있다. 이론상 철학 같은 다른 분과는 실재하는 모든 것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거나 이것이 실재에 대해 생각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는 생각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현대 철학자들은 인간의 인식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세계에 대해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없으며, 따라서 만물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은 말이 안 된다거나 우리는 물리학자들의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 초점은 실재하는 것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가정이 더 개연성이 있다고 설득하려는 게 아니다. 현재 대학이 구조화된 방식 때문에 이런 생각이 대학에서 타당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 산업화된 농업은 산출하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토양을 파괴하기 때문에 지속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들어보겠다. 농경제학이라는 분과는 그것이 바이오기술과 결합돼 있는데다 대규모 농화학제품 기업들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기 때문에 위의 생각이 사실이 아니라고 가정한다. 이런 생각이 잘못됐다고 증명하거나 토론하지도 않는다. 그냥 무시해버린다. 많은 대학에 있는 환경연구, 지속가능발전, 음식연구 관련 학과들이 현대 농업은 지속 가능하다는 생각을 공개적으로 거부하지만, 이런 학과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고 일반적으로 대학 안에서 낮은 지위를 차지한다. 이 학과들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농업정책과 관행을 만들어내는 농과대학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대학들이 위의 열세 가지 생각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하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는 대부분이 이미 “상식”이 되어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심각하게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등교육의 목적은 개인의 성취라는 생각과 끝없는 경제성장이 가능하며 바람직하다는 쌍둥이 생각을 예로 들어보자. 모든 사람들이 경제성장은 끝없이 가능하며 대학에 가는 이유는 좋은 직업을 얻는 것, 즉 많은 돈을 버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한국의 경우 고등교육이 고강도 노동, 탁월한 경제정책과 함께 삶을 엄청나게 개선한 주역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런 생각에 도전하는 것은 상식을 배반한다. 그러나 전체 그림은 좀더 복잡하다. 한국의 삶이 모든 면에서 과거보다 나아진 것은 아니며, 10년마다 두 배가 되는 경제성장 역시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한강의 기적은 그림자를 드리웠으며 이것은 경제성장이 끝없이 가능하다는 잘못된 가정에 그 뿌리가 있다.

대학은 바깥 세계로부터 단절된 “상아탑”으로 불려왔다. 어떤 면에서는 사실이다. 그러나 더 깊은 진실은 대학이 사회적 구성물이며 문명의 상식이 교육과정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경영대학원과 경제학과는 경제학이 자연의 법칙과 사회의 도덕규범에 순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런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대학, 최소한 미국 대학들이 “경제학은 자연의 법칙과 사회의 도덕규범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처럼 위험한 생각을 고려하는 게 지극히 어려운 세 번째 이유는 정치적인 것이다. 미국에는 대개 소규모인 사립대학들과 대개 대규모인 공립대학들이 섞여 있다. 미국의 대다수 학생들은 공립 대학에 다니고 있다. 공립대학 교수들은 각 주에 고용돼 있다. 일부는 종신직위를 보장받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현재는 70%의 교수들이 종신고용을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다.

공식적으로는 모든 교수들이 어느 정도의 학문적 자유를 누리지만, 매년 계약이 끝나는 비정규직 교수들에게 이런 자유는 다음 학년초에 계약을 연장해야 한다는 열망에 의해 제한된다. 비정규직 교수들은 다시 고용되지 않을까 두려워서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는 생각들을 강의하는 게 결코 편안하지 않다. 슬프게도 정규직 교수들조차 종종 승진하지 못하거나 학생들의 평가에서 별점을 덜 받을까 두려워서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는 생각들을 피한다.

한국 대학들이 대개 사립이라고 하더라도, 내 짐작으로는 상식적 생각들에 도전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정치적 압력들이 존재할 것 같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전반적으로 대학들은 세계를 파괴하고 있는 바로 그 생각들에 대해 다루지 못한다. 이런 일반화에는 예외가 있으며 이런 예외를 축하해야 하지만, 이런 예외가 더 큰 진실을 가리도록 허용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대학들은 상황을 호전시키지 않는다. 대체로 자신들의 상당한 권위를 공개적으로, 비공개적으로 잘못되고 파괴적인 생각에 부여함으로써, 그리고 지구를 파괴하는 “지식”을 재생산함으로써 상황을 점점 나쁘게 몰아간다.

 

대학을 변화시키는 두 가지 제안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미국과 한국에서 모두 통할 수 있는 두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런 두 가지 제안은 가능성의 전부가 아니며 얼마든지 다른 제안이 더해지길 바란다.

큰 대학의 교수들은 위에 제시된 위험한 생각들 가운데 하나 혹은 그 이상에 대해 탐구하는 독서그룹을 조직할 수 있다. 대여섯 명으로 구성된 독서그룹에서 한 학기 동안 한두 권의 책을 공들여 읽도록 한 다음, 이 문제들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자신들과 전공이 다른 동료들과 서너 번 만나도록 하면 된다.

우리는 애팔래치안 주립대학(노스 캐롤라이나 주의 중간규모 주립대학)에서 한 학기 동안 이것과 비슷한 강의를 시도했다. 주제는 기후변화와 그것의 사회적 함의였다. 결과는 희망적이었다. 많은 교수들이 같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다른 교수들과 만나고, 자신들의 특수한 학문분과 바깥에서 중요한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환영했다. 이런 위험한 생각을 가르치는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대학의 분과구조였다. 비록 임시적 토대에서 이뤄진 일이지만, 교수들이 자신의 전공을 넘어 함께 생각하도록 만든 것은 현재의 대학 구조를 변화시키는 한 가지 방법이다.

이 독서그룹이 거둔 눈에 띄는 성과는 어떤 생물학과 조교수가 학생들이 생물학 전공기초 강의에서 전지구적 기후변화의 생물학적 함의에 대해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기후변화의 생물학적 함의 부분은 선택강의이며 많은 강사들이 이 부분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 이후로 생물학과는 전공기초 강의에서 기후변화의 생물학적 함의를 필수강의로 지정했다. 이론상 다른 학과의 교수들도 전공기초를 정하면서 비슷한 결정을 할 수 있다.

이 강의에서 얻은 또 다른 결과는 약 100명의 교수들이 기후문제에 대해 자신들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정도의 정보를 자신들의 강의에 넣겠다고 자발적으로 서약한 것이다. 이런 서약은 교수들에게 부과된 의무사항이 아니라 개인적 결정이었으나, 그들이 이 서약을 따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현대 대학처럼 오래 되고 존경 받는 제도를 금방 뜯어고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함께 독서를 하는 것 같은 간단한 일들이 변화를 위한 맥락을 만들어내는데 놀라운 효과를 거두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종류의 분과를 횡단하는 노력들이 현대 대학의 문화를 변화시키는 잠재력을 가질 것이다.

나의 두 번째 제안은 대학 바깥에 대규모로 존재하는 성인학습센터와 관련된 것이다. 1920년에 독일 철학자 프란츠 로젠츠바이그는 독일 대학들의 비인격적 교육에 맞서 레흐르하우스(Lehrhaus, 교육의 집)로 알려진 기관을 설립했다. (역자주: 당시 독일에서 제기된 평생교육의 필요성에 부응하면서도 유대의 전통에 기초한 성인교육기관으로, 회당(synagogue)을 학교(lehrhaus)로 바꾸되 거꾸로 하지 말라는 탈무드의 가르침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유대역사에서 첫번째 레흐르하우스는 제1차 바빌론 유수때 세워졌으며 혁신적 교육방법으로 신앙의 의무를 지켰다.) 레흐르하우스의 강조점은 전통적인 유대식 삶에 대한 현대성의 도전에 대응하고 비위계적인 교수법을 도입하는데 있었다. 1930년대에 나치에 의해 폐쇄될 때까지 레흐르하우스는 독일에서 가장 활기 있는 교육기관이었다. 1970년에 레흐르하우스 모델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어느 정도 부활했다.

1960년대에는 몇몇 “대안대학”들이 미국에 설립됐는데, 이는 그 시대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제도권 대학들이 실패한 데 대한 대응이었다. 미국이나 한국에서 지속 가능한 농업, 건강한 공동체, 지속 가능한 경제학 같은 구체적인 문제 혹은 생태적이고 정의로운 문명을 증진시키는 발상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조직하는 성인학습센터 혹은 “대학”을 설립하는 게 가능하다. 이런 “대학” 혹은 성인학습센터는 위에 제시된 위험한 생각들을 얼마든지 탐구할 수 있다.

나의 주안점은 현재 형식의 대학들이 문제의 일부라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 운영하는 대학들은 구조적으로,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지구를 파괴하는 생각들을 분석하고 평가하는데 무능력하다. 물론 문화 자체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고등교육을 변화시킨다는 건 불가능하다. 우리는 대학을 내부와 외부에서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하며, 동시에 현대 문화의 모든 다른 측면들까지 변화시키려고 힘써야 한다.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하나의 출발점은 없다. 그럼에도 새로운 종류의 문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식의 고등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마커스 피터 포드

철학자, 『현대 대학을 넘어: 구성적 후현대 대학을 향해』 저자

월, 2019/12/23-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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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대표는 말한다. “미국에 협상 마감 시한은 없다.(12.16)” 발언 취지로만 본다면 미국은 ‘북이 얘기해온 연말’이란 시한에 개의치 않으며 계속 협상해 나가고 싶다는 정도의 의미 같다. “우리는 시한 없다. 일하자”는 동 발언에서도 같은 속내가 읽혀진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하지만, 이 발언은 명명백배하게 틀렸다. 이유는 미국 자신은 갑(甲)이고, 북은 을(乙)이라는 인식과 비례되어져 이 인식은 결국 마감 시한 결정권은 오직 미국 자신에게만 있다는 오만함으로 연결되어져서 그렇다.

그래서 만약 이 논리를 북이 수용하게 된다면 북은 협상 종료될 때까지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 아무런 국가적 행위 없이 무조건적으로 인내하고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이 시한과 기간에 대한 보상은 누가 해줘야한단 말인가? 동등하지 않는 공정성이다.

시한이 있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지금의 문제, 즉 미국이 북의 요구인 ‘새로운 계산법’에 대해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 시간의 문제라기보다는 자국이 처해있는 정치·군사적 및 정파적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는 미국이 풀어내어야 할 숙제이지, (이 숙제를) 자신들이 풀지 못한다하여 그 책임모두를 상대방인 북에게만 전가한다? 정직하지도 외교적이지도 않다.

구체적으로는 ▲먼저, 협상을 계속 하겠다 면서도 미국은 북에게 줘야할 보상과 양보가 전혀 없다. 이른바 북은 미국과의 적대 관계개선을 위해 핵실험도, ICBM발사도,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등도 단행하였지만, 이 선의에 대해 미국은 그 어떤 보상이나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명백한 대북제재결의 위반이다. 웬 대북제재결의 위반? 유엔결의안 239728(강조, 필자. 이 결의안에는 명백하게 대북제재 결의안이란 용어는 없다. 원문도 제재를 의미하는 ‘sanction’이 아닌 ‘Resolution’ 결의안또는 해결책이 나오며 연번호가 있을 뿐이다. 해서 결의 제0‘ ‘0호 결의라 번역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그런데도 유독 북에게만 대북제재 결의안이라고 번역하고 일반화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의도 때문이다. ‘해결보다는 제재에 방점 찍고 싶어 하는 미국과 분단적폐세력들의 농간 말이다.)에는 ‘북(조선)이 결의안을 준수하는 정도에 따라 (제재를 강화 또는) 수정·중단·해제할 수 있도록’한 조항이 있는데, 이 조항을 과연 미국은 이행하고 있으며 그럴 의지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결과 미국은 ‘유엔결의안 2397호 28항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이고,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역행하여 제재를 강화한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즉, 자신들은 약속을 하나도 지키지 않으면서 협상을 계속 하자고 하는 것은 결국 자신들은 하나도 보상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목적인 북의 추가적 군사도발을 막고자 하는 자신들의 국익만 앞세우는 이율배반적 도발행위 다름 아니다.

공정하고 대등해 될 약속이 이렇게 어느 일방(=북한)에만 적용되고, 희생적으로 적용되어져서는 안 된다는 일반적 정의를 위배한다.

그래놓고 생각을 한번 잠깐 해보자. 미국은 당연히 자신들이 지켜져야 할 시간이 없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트럼프에게는 당장 좋다. 재선활용카드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적으로도 패권지위를 계속 유지하는데 시간에 쫒기지 않는다. 북의 군사적 도발이 없는 한 손해 볼 것이 없다.

그러니 계속 그렇게 갑 질 해나가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북은? 절대적으로 그렇지(=괜찮지) 않다. 모든 주권국가가 규범적으로 보장되어있는 자주권과 발전권이 침해당해 북은 엄청난 고통과 곤란을 계속 겪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①대북제재가 지속됨으로 인해 국가의 정상적인 경제발전 경로를 왜곡시킨다.

②국가 간 외교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아 국가경쟁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다.

③정전협정의 지속으로 인해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계속 시달려야만 한다.

▲다음으로는 등가의 문제이다. 즉, 북의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대가는 경제적 혜택이나 번영에 대한 언급 정도이다. 이걸 믿고 북이 핵을 포기한다? 너무나도 처절한 반면교사가 있어 이 논리는 북으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날강도의 논리와 똑같다.

리비아의 경우가 그 예다. 미국으로부터 핵프로그램을 폐기만 하면 경제지원 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리비아는 핵프로그램 폐기했다. 그런데 돌아온 미국의 약속은 약속한 경제지원은 고사하고, 내전을 빙자한 미국의 공격에 무너졌다. 이걸 너무나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북이 그 말만 믿고 핵을 폐기한다? 불가능한 상상력이다.

동시에 확실한 등가가 보장된 것도 아닌데, 달리 말하면 안보와 군사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등가가 안보와 군사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등가여야 한다고 한다면 북과 미국 사이에 존재하는 공정하고도 공평한 등가는 적대정책 철회 대(對) 평화협정체결을 중심에 놓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보장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이 약속은 하지도 않고, 양보해 지금 한 약속도 미국 자신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쥐꼬리만 하게, 그것도 가역적인 방식으로만 하겠다는 것이고, 반면 북에게는 사실상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하는 미국의 태도야 말로 현찰 받고 어음 주는 격, 그것도 의도된 부도어음에 가까운 것을 주겠다니 말도 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미국은 위에서 확인받듯이 자신들이 지켜야 할 유엔의무는 하나도 지키지 않으면서 북 보고는 핵·미사일 활동을 재개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라며 전면전을 경고하는 미국이야 말로 완전 사기범이고 범죄국가가 아니고 뭣이란 말인가?

하여 굳이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정당하지도 외교적이지도 못한 방식으로 시한을 무한정 연장하려는 미국의 태도야 말로 제아무리 선의적으로 이해하려 해도 일방적이며 패권적이고, 마피아집단과 너무나도 똑같은 폭력적 범죄 집단이라고. 또 이런 ‘나쁜’폐단을 막으려면 오히려 국제사회가 미국에게 (마감)시한을 줘 유엔외교를 정상화해야 된다고.

해서 다시한번 강조할 수밖에 없다. 백번양보해 재선을 앞두고 반드시 외교성과를 보여줘야 할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리고 그 유일한 외교적 성과가 북의 추가 군사행동(ICBM 발사 등)은 막아지면서도 예의 ‘bad deal’까지는 안가는 그런 외교적 성과라고 한다면 이는 어디까지나 트럼프 행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이자 곤궁함이지 북이 풀어야 할 숙제이고 곤궁함은 아니지 않는가?

다른 말로는 북의 입장에서는 계속 시간을 유예하고, 고통을 감내해가며 인내해야 할 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협상이 결렬되면 결렬된 상태에서 주권국가로서의 국가행위를 정상적으로 할 수 있으며 그 활동으로 미국과 다시 협상의 룰(rule)을 마련하면 되는 것이다.

연동해 지금의 문제가 시한의 문제라기보다는 위에서 확인받듯이 미국이 처해있는 정치·군사적 환경과 정파적 이해관계로 인해 발생한 문제라고 한다면 북은 이에 대한 책임을 전혀 질 필요는 없다. 하여 북의 입장에서는 협상 시한을 정해놓고 미국에게 요구할 자기근거와 주장, 입장을 충분히 분명하게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정당성도 비교적 명확하다.

▲우선은, 2017년 11월 29일 국가핵무력완성 선언이후 단 한 번도 유엔결의 위반을 한 적이 없다. 핵실험과 ICBM을 발사한 적이 없다는 말이고, 비례해 이에 대한 상응 대가를 유엔결의 정신에 비춰 미국에게 충분히 요구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시한을 정해 그 이행정도에 따라 다음 전략을 선택해야 될 명백하고도 분명한 근거가 북에게는 있다. 다름 아닌, 김정은 위원장이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올 12월 31일까지 ‘새로운 계산법’을 제시하라며 충분한 시간과 명분을 줬기 때문이다.

적용하려면 이렇듯 그것이 비록 시한이라 하더라도 똑 같이 두 국가(=북, 미국)모두에게 공히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

 

민플러스, 2019년 12월 21일에 게재된 글입니다 (필자와 협의하여 수정 후 본지에 실린 것임).

수, 2019/12/25-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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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문재인 정부의 주요 성과로 평가되는 한-아세안 협력여부는 세계최대 규모의 무역협정으로 평가되는 RCEP의 실현 여부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인도-태평양 안보전략으로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은 다양한 방식으로 RCEP의 체결을 방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 한국을 방문한 미국무부 동아시아 차관보인 스틸웰의 임무 역시 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과 경제협력이 절실하며, 중국을 경계해야 하는 인도가 일단 RCEP에서 한발을 빼자, 일본 역시 이를 무력화하는데 앞장서는 양상이다. 파트너로서 신뢰할 수 없는 아베 정권은 경제보다 안보를 우선하는 듯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히데키 마키하라 일본 경제산업성 부대신(차관)은 지난 11월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인도가 참여하지 않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서명을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는 의외의 발언을 했다. 해당 언급은 세계 최대 규모로 평가되는 무역 협정의 운명을 애매하게 만들었다.

이번 달 초,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가장 취약한 시민 계층에게 미칠 수 있는 협상의 잠재적 위험성을 언급하며 인도는 협상에 불참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인도가 협상에서 빠지게 되면, 일본 또한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생김으로써 협정 추진을 위해 노력하는 기타국가들이 또 한번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저우융성(周永生) 중국 외교학원 국제관계연구원 교수는 이번 일본의 결정 뒤에는 안보에 대한우려의 우세가 있던 것 같다고 전하며 “일본은 아직도 미국의 무역 관세 압력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RCEP를 타결하고자 하는 동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본 단독으로는 지역 내에서 중국의 권력과 균형을 잡을 수 없기에 인도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라고 덧붙였다.

일본은 협상 초기부터 인도가 RCEP에 참여하도록 설득해 왔다. 일본은 인도가 협정에서 이탈한 이후 인도가 다시 협정에 참여해야만 협상에 서명하겠다고 밝히며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일본과 인도 간의 관계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 일본의 RCEP 이탈 가능성이 불거졌다.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일본과 인도의 외교·국방장관(2+2) 회의는 토요일에 시작했고, 양국은 안보 및 국방 관계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또한 조만간에 아베 일본 총리의 인도 방문도 예정되어 있다.

중국과 아세안 국가의 관계가 완화하고 일본과 한국(ROK) 관계가 악화하는 현 시점에는, 아시아내에서 신뢰할 수 있는 안보 파트너간의 협력은 특히 전략적으로 필수적이다. 일본도 RCEP에서 같은 배를 타고 있다고 내비치는 표현은 더욱 여세를 몰아서 인도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필요한 요소일 뿐이다.

저우교수는 일본-인도 협력은 전략적, 지정학적 합의를 통해 소위 ‘중국 위협론’을 억제하기 위해함께 노력하겠다는 점에 항상 중점을 두었다고 가리켰다. 양국은 이미 2011년에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양국간 무역관계에는 거의 진전이 없었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대일 인도 수출은 거의 절반으로 줄었고 대일 인도 무역적자는 여전히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과장된 위협 담론 아래에서 상호 안보 이익을 이유로 양국이 동맹을 맺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진정으로 이번 협상에서 빠지기로 결정한다면, 경제 전망의 어두운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현재로서는 일본이 상황을 살피면서 다른 국가가 어떻게 반응할지 확인하기 위한 잠정적인 움직임으로 보인다.

해당 발언은 향후 일본이 RCEP 협상 테이블에 다시 합류하도록 할 수 있는 부대신으로부터 나왔다. 일본의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2%를 기록하며 지난 2분기 성장률 1.8%에 견줘도 대폭 하락한 점은 아베 총리의 내각이 경제 촉진 부양책을 대폭 강화할 필요성에 대해 갖는 상당한 중압감을 의미한다.

RCEP 협정문은세계적인 경기 침체에 맞서 동아시아 무역을 활성화하는 강력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 WTO 개혁이 교착 상태에 빠지고 보호무역주의가 대두되면서 RCEP 체결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더욱 통합된 동아시아를 이룩하기 위해 중요한 첫 관문이다. 이미 중-미 무역 전쟁이 세계 수요에 타격을 주고 있기 때문에 수출 주도의 일본경제는 RCEP와 같은 협약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일본이 협약에서 빠지는 쪽으로 결정한다면 거짓된 담론을 통해 안보 우려를 경제적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저우 교수는 “심화된 지역경제는 제지할 수 없는 추세이며 단일 국가나 지도자에 의해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다른 RCEP 국가는 일부 국가의 계획적인 결정 때문에 핵심 지역의 이해 관계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목, 2019/12/26-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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