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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우리는 무덤 위에 살고 있다…유해로도 돌아오지 못한 99만80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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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우리는 무덤 위에 살고 있다…유해로도 돌아오지 못한 99만8000명

admin | 금, 2020/06/26- 01:55

[한국전쟁 70주년 기획]
-학살, 잠들지 않는 기억
2006년 진실화해위, 전국 168곳 집단매장추정
실제 발굴은 13곳 불과…유해는 1617구 수습
2014∼2020 민간단체가 8곳 380구 추가발굴
대부분 사유지·도로·택지 등으로 접근에 난항
현재 정부 대신 지자체 나서 유해 발굴 지원
올해말 재가동 예정인 2기 과거사위에 기대
정권따라 활동 제약…발굴상설기구 설립해야

9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고은리 여우굴에서 민간단체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단원들이 보도연맹 희생자 발굴을 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email protected]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지는 전국 곳곳에 산재돼 있다. 학살 추정지만 170곳에 이른다. 우리는 무덤 위에 살고 있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지난 2010년까지 유해발굴을 벌인 민간인 학살 현장은 전국 13곳밖에 안 된다. 진실화해위 해산 이후 유해발굴은 지방정부의 지원 아래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 어렵게 이어오고 있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 출범을 앞두고 유해발굴 현황과 과제를 짚어봤다. 유족들은 억울하게 숨진 가족의 유골만이라도 수습할 수 있기를 70년 동안 기다리고 있다.

‘골로 간다.’

이 말의 유래는 민간인 학살과 관련이 있다. 학살터가 대부분 골(계곡)에 위치해 있던 까닭에 골로 간다는 말은 죽으러 간다는 뜻이 됐다. 민간단체인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조사단)은 그 죽음의 시원을 찾아 ‘골로 가는’ 이들이다.

지난 9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고은리 여우굴에서는 유해발굴이 한창이었다. 지난달 26일부터 유해발굴이 시작된 여우굴은 한국전쟁 초기 주민들이 임시피난처로 판 굴이었다. 지금은 형태를 찾아볼 수 없다. 단원 10여명은 30℃가 넘는 더위 속에서 차양막과 얼음물에 의지한 채 길이 50m, 너비 5~10m인 발굴터 바닥을 호미로 1㎝씩 조심스레 긁어내고 있었다. 여우굴 희생자들은 가매장이 됐기 때문에 지표면에서 50㎝ 아래까지 확인해야 했다. 단원들은 가끔 특이한 물체가 나오면 물로 세척해 유해 여부를 가렸다. 돌이나 나무토막으로 판명되면 다시 호미를 들었다.

발굴은 원래 땅인 생토층이 나올 때까지 중장비를 동원해 표토층을 걷어낸 뒤 10여개 구획으로 나눠 진행된다. 이날 위령제를 끝으로 종료된 이번 조사에서 모두 8구의 유해(허벅지뼈 기준)가 발견됐다. 1950년 6월 말부터 7월 초 사이 육군방첩대(CIC), 경찰 등이 청주형무소에 수감된 예비검속자 1200~1500명을 학살한 이른바 청원보도연맹사건 희생자 중 일부로 추정됐다. 함께 출토된 엠(M)1 소총 탄피 1점, 카빈 소총 탄피 1점은 가해 무기와 주체를, 여름옷용 흰색 단추 1점은 매장 시기를 가늠하게 했다. 조사단은 정밀감식을 거쳐 유해와 유품 등을 세종시 ‘추모의 집’에 안장할 계획이다.

9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고은리 여우굴에서 민간단체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단원들이 보도연맹 희생자를 찾기 위해 호미로 땅바닥을 긁어내고 있다. 김용희 기자 [email protected]

여우굴 희생자들은 하마터면 영원히 잊혔을 수도 있었다. 여우굴은 2007~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유해 336구를 발굴한 분터골에서 500여m 떨어져 있다. 유족들은 당시 진실화해위에 “여우굴에도 20여명이 묻혀 있다”고 증언했지만 진실화해위 활동이 2010년 종료되며 조사가 기약 없이 미뤄졌다.

이후 고은리 일대에 전원주택 건설 열풍이 불며 경사진 땅을 평탄하게 하는 작업이 곳곳에서 진행됐다. 여우굴은 조사단이 올해 3월 진행한 시굴조사에서 유골 64점을 발견했지만 정식 조사를 준비하는 사이 토지 소유주가 브이(V)자 형태 골짜기를 높이 5m 이상 흙으로 메워 주택공사를 시작했다. 문화재와 달리 유해는 공사 중단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조사단은 ‘공사기간에 지장을 주지 않고 조사 종료 뒤 원상복구’를 조건으로 토지 소유주의 동의를 얻은 끝에 발굴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발굴 조사를 총괄 진행하는 안경호(54)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은 “한국전쟁 70년이 지나며 대부분 지형이 바뀌고 사유지이기 때문에 조사가 쉽지 않다. 여우굴은 다행히 주택공사를 시작하기 전 조사를 할 수 있었지만 우리나라 곳곳에는 학살지였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경작지로 쓰이거나 택지가 들어선 곳이 많다. 어쩌면 우리 발밑에 희생자들이 잠들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2015년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 대전시 동구 낭월동에서 출토한 한국전쟁 희생자 유해. 조사단 제공

2006년 진실화해위가 접수한 한국전쟁 전후(1948~1953) 민간인 피해사건 조사신청 건수는 집단희생 사건 7922건, 적대세력 관련 사건 1687건 등 9609건에 이른다. 진실화해위는 신청기간이 1년으로 한정됐고 피해자와 유족들이 신청을 꺼려 포기한 경우도 있어 실제 희생 건수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봤다. 학계나 민간단체들은 여순사건, 제주 4·3사건, 보도연맹, 부역 혐의 희생자 등을 모두 더하면 최소 100만명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진실화해위는 목격자·유족 증언과 경찰기록 등 문헌, 지표조사 등을 통해 모두 168곳을 집단희생사건 관련 유해매장 추정 장소로 파악했다. △경남 41곳 △전남 35곳 △경북 28곳 △수도권 25곳 △충북 22곳 △충남 9곳 △전북 4곳 △강원 2곳 △제주 2곳이다. 대부분 산이나 골짜기, 바닷가지만 광산, 굴, 공동묘지 등 외진 장소와 심지어 양곡창고, 우물도 있었다.

진실화해위는 이 중 59곳에서 유해발굴이 가능하다고 파악하고 시급성, 현장 특정 여부 등을 고려해 39곳을 우선 발굴 대상지로 선정해, 2009년까지 13곳(중복 포함)을 발굴했다.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수습 유해 370구), 충남 공주시 상왕동(317구), 충북 청원 분터골(336구), 경남 산청 원리와 외공리(257구), 대전 동구 낭월동(34구), 전남 구례 봉성산(14구), 진도 갈매기섬(19구), 전남 순천 매곡동(유해 미발견) 등에서 총 1617구, 유품 5600여점을 수습했다.

1950년 7월 촬영된 대전·충청지역 형무소 재소자 학살 현장.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보고서 갈무리

진실화해위는 2010년 4월 활동기간이 종료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에서는 활동기간을 2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지만, 보수정권의 압박으로 두달 연장에 그쳤다. 진실화해위는 훗날을 기약하며 전국 10개 시·도, 32개 시·군·구 64곳에 한국전쟁 희생자 매장 추정지임을 알리는 안내표지판을 설치했다. 또 조사보고서를 통해 유해발굴을 이어갈 수 있는 정부기구 설립 등을 권고했으나, 추가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며 유해발굴 재개 가능성이 작아지자 민간단체가 나섰다. 2014년 2월18일 한국전쟁유족회의 요청으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족문제연구소 등 단체들이 모여 조사단을 구성했다. 단장은 진실화해위 조사를 주도했던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가 맡았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위에서 조사팀장을 지낸 안경호 사무국장이 조사단을 이끌었다.

민간단체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단원들이 이달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고은리 여우굴 터에서 한국전쟁 희생자 유해 발굴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조사단 제공

조사단은 같은 달 24일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원 718명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 발굴에 들어가 유해 39구를 수습했다. 이듬해 2월에는 대전시 동구 낭월동 골령골(추정 희생자 1800~7000명)에서 유해 20구를, 2016년 2월에는 충남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36명)에서 유해 21구를 찾았다. 2017년 2월에는 진주 용산고개 1차 발굴지에서 100m 떨어진 곳을 조사해 유해 38구를 수습했고 2018년 2월에는 충남 아산시 배방읍 설화산(150~300명)에서 208구를 찾았다. 지난해 3월 충북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150명)에서는 40구를, 같은 해 5~9월 아산시 염치읍 대동리(수십명)에서는 6구를 수습하는 등 조사단은 이달 청주 여우굴까지 8차례에 걸친 조사를 진행해 희생자 380명의 넋을 달랬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경북 경산시 폐코발트광산에서 수습한 유해에 조화가 놓여 있다. 이곳에서는 한국전쟁 초기 보도연맹원 등 민간인 3500여명이 학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보고서 갈무리

한달 1억원가량이 드는 발굴조사를 8차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데에는 기초자치단체들의 지원이 큰 몫을 했다. 조사단이 활동에 들어가자 2013년부터 최근까지 제주를 제외한 16개 광역시·도와 60개 기초자치단체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을 지원할 수 있는 조례를 제정하며 유골발굴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 안경호 사무국장은 “2017년 4차까지는 후원금으로 발굴비용을 충당했지만 2018년부터는 아산시와 충북도 등에서 지방보조금사업으로 비용을 지원받았다. 중앙정부가 해야 될 일을 안 하니까 지방정부가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 2014년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용산고개에서 발굴한 희생자 유해. 조사단 제공

유족들과 전문가들은 지난달 20일 과거사법 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올해 말 재가동 예정인 2기 진실화해위에 기대를 걸고 있다. 2기는 1기보다 활동기간(최대 4년)이 짧고 위원 규모(9명)도 적지만 정부 유해발굴 전문기구 설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박선주 교수는 “발굴된 유해와 유족의 유전자 일치 검사를 한번 하는 데 100만원 상당이 든다. 전체 규모로 봤을 때 한국전쟁 유해발굴은 자치단체나 한시 기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부 상설기구를 만들고 유해 전문가를 양성해 연구자료를 꾸준히 축적해야 한다. 분열된 한국 사회를 통합하려면 지난 70년간 빨갱이로 몰려 땅속에 잠자고 있는 억울한 원혼들을 달래야 한다”고 했다.

김용희 기자 [email protected]

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민간인 매장 추정지를 보존하기 위해 설치한 안내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보고서 갈무리

<2020-06-25> 한겨레 

☞기사원문: 우리는 무덤 위에 살고 있다…유해로도 돌아오지 못한 99만80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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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8/02/0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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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시민단체, 일본 정부에 4번째 요청서 제출
일본 정부 “한국 정부 구체적 제안 있으면” 일관
한국 관련 예산 없어…상황 진척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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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일본 도쿄 참의원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태평양전쟁 때 희생된 한국인 유골 반환 문제에 대한 회의가 열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구체적인 제안을 하면 한국인 유골 반환을 검토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어렵게 상황을 진척시켰으니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일본 시민단체도 열심히 지원하겠습니다.”

8일 일본 도쿄 참의원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열린 회의에서 일본 시민단체 ‘전몰자 유골을 가족 곁으로’의 활동가인 우에다 게이시는 한국 정부가 태평양전쟁에 군인·군속으로 동원됐다가 희생된 한국인 유골 반환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한국의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 소속 유족들과 민족문제연구소, 일본 시민단체는 일본 정부에 한국인 유골 반환 요청서를 제출했다. 2014년 이후 네번째다. 유골로도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조선인은 최소 2만10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는 2016년 4월 ‘전몰자 유골 수집 추진법’을 만들어 태평양전쟁 일본인 전몰자 유골 수집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대상을 ‘우리 나라(일본) 전몰자 유골’로 한정해 한반도 출신을 배제했다.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국인 유골도 찾으라는 요구를 계속하지만, 일본 후생노동성은 “한국 정부로부터 구체적인 제안이 있으면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한·일 시민단체는 유골에 대해 디엔에이(DNA) 감정과 함께 안정동위체 감정을 실시하라고 일본 정부에 요청했다. 안정동위체 감정은 방사기원동위원소를 활용해 유골 주인이 어느 지방 출신인지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한국 정부가 한국전쟁 전사자 유골 신원 확인에 사용하는 방법으로, 나라뿐 아니라 출신 지역까지 가려낼 수 있다. 일본 정부도 필리핀에서 수집한 유골 중 일본군 유골을 구별하기 위해서 안정동위체 검사 도입 연구비를 내년 예산에 500만엔을 책정한다. 하지만 후생노동성 원호국 사무과장 요시다 가즈로는 “안정동위체 감정은 아직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며 안정동위체 검사를 한국인 유골 구별에 사용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일본 국회의원들도 “‘일본인 유골은 일본인 품에, 한국인 유골은 한국인 가족 품에’가 맞다”고 말했지만, 요시다 과장은 “한국 정부의 구체적 제안이 있으면 검토하겠다”며 “한국 정부에서 구체적 제안은 아직 없다”고도 했다.

한국 정부는 관련 예산도 책정하지 않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은 “일본 정부에 오키나와에서 숨진 것으로 보이는 이들의 유족 유전자 자료를 줄 테니 일본이 한국인 유골을 가려달라고 요청했으나, 일본은 검토하겠다고만 한다”며 “한국 정부가 처음부터 유골 발굴에 참여하는 것은 외교적 문제 등이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인 유골 반환을 위해 지난해 예산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올해도 관련 예산은 반영되지 않았다”며 “오키나와 관련 유족 유전자 검사는 (한국에서) 50명을 했는데 사업비 2천만원은 사할린 유골 반환 사업에서 절약한 예산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mail protected]

<2018-02-08> 한겨레

☞기사원문: “한국인 유골 반환 한국 정부가 나서달라”

금, 2018/02/0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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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포트 ▶

오는 4월 일본 초등학교에 보급되는 도덕 교과서입니다.

생명과 재산도 필요없다는 사람이 아니면 나라를 만드는 일을 할 수 없다.

19세기 조선침략 이른바 ‘정한론’을 주장한 ‘사이고 다카모리’를 일본의 발전을 이끈 영웅으로만 표현됩니다.

[오우카/ 일본 시민단체] “침략전쟁을 추진하고 협력한 사람들입니다. 그럼 사람들을 도덕 교과서로 롤모델로 하는 것은 안 됩니다.”

다른 교과서들도 ‘요시다 쇼인’이나 ‘사카모토 료마’ 같은 정신적 지도자들을 다뤘는데 조선침략에 앞장섰던 ‘이토 히로부미’ 등이 이들의 영향을 받은 후계자들입니다.

특히 2차 대전에 대해서는 원자폭탄으로 폐허가 된 일본을 언급하며 자신들을 피해자로 묘사했습니다.

반면 위안부나 난징학살 등 일본이 주변나라에 끼친 범죄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규수/히토츠바시대학 교수] “침략자의 모습은 다 상실 돼버리고 피해자 의식만이 남아 있는 그것도 역사적 왜곡의 일종이라고 우리의 입장에서는 말할 수 있겠습니다.”

출판사 측은 조선 침략을 미화한 내용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일본 도덕 교과서 출판사 관계자] “‘사이고 다카모리’가 정한론을 주장한 것은 역사적으로 맞습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는 그런 내용을 다루지 않았습니다.”

내년 검정을 앞둔 중학교 교과서 파일럿판에는 침략전쟁에 참가한 군인들을 전쟁영웅으로 묘사하는 등 군국주의적 색채가 더 강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일본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원우/동북아 역사재단 교수] “침략론자가 평화론자로 학생들에게 잘못 인식 되어질 수 있는, 아베 정권이 의도하는 헌법의 개정 그리고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들자는….”

교과서를 검정한 일본 문무 과학성은 학습 지도요령에 따라 각 출판사가 작성했을 뿐 정부차원에서 요구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우리 정부는 일본 도덕 교과서의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최종 보급된 교과서를 검토한 뒤 대응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MBC뉴스 손령입니다.

손령기자 ([email protected])

<2018-02-02> MBC

☞기사원문: 70년 만에 부활한 日 도덕 교과서..일본이 피해자?

금, 2018/02/0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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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17개 학교 친일 확인…광덕 중·고 ‘새 교가’ 만들기로
충북 19곳 확인, 충남·울산 조사 나서…친일 잔재 청산 운동

광주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친일 음악인 등이 만든 ‘친일 교가’를 바꾸는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이 학교들은 입학식 때 교가 제창을 식순에서 빼고, 교가를 바꾸는 작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친일 교가 교체는 교육계가 펼치는 친일청산 작업 가운데 하나다.

교가 바꾸기의 물꼬를 튼 것은 광주지역 학교들이다. 광주시는 광주교대 산학협력단에 맡겨 지난달 9일 나온 ‘지역 친일 잔재 조사용역’에서 17개 학교 교가가 친일 음악인이 작곡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18일 밝혔다. 작곡가 김동진이 서강중·고, 동신중·고, 동신여중·고 등 11개교, 현제명이 숭일중·고 등 3개교, 김성태가 광덕중·고 등 2개교, 이흥렬이 광주일고 교가를 각각 작곡했다. 이 가운데는 전남대·호남대·서영대 등 대학 3곳도 있다. 이들 학교 교가 작곡가 4명은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 있다. 광덕중·고 신흥수 이사장은 졸업식에서 교가 제창을 하지 않도록 하고, 3월 입학식 때 신입생이 새로운 교가를 부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학교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후손이 설립한 학교다. ‘학생독립운동의 발원지’인 광주일고는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에 학교 측이 학부모·교사를 상대로 설문조사에 나섰고, 동문회가 지난 11일 열린 총동창회에서 교가 바꾸기 여부에 대한 토론을 벌여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동문이자 ‘님을 위한 행진곡’ 작곡가인 김종률씨에게 교가 작곡을 맡기기로 했다. 올해로 건학 111주년을 맞은 광주 첫 사립학교인 숭일중·고도 3월 교가 교체 대책반을 꾸리기로 했다. 나머지 중·고교도 올해 1학기 안으로 교가를 바꾸기로 했다.

울산시교육청은 다음달부터 친일 교가·교명 등에 대한 조사를 벌인다. 경남도교육청도 지역 교육계에 남은 친일 잔재에 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도교육청은 친일 교가 교체 작업을 위해 다음달부터 친일 행적 의혹이 있는 4명의 작곡가들에게 대한 검증을 시작할 계획이다. 검증을 마친 뒤 친일 관련 교가를 바꾸는 작업을 순차적으로 진행한다.

충청지역에서도 도내 교가 가사·작곡가 명단을 <친일인명사전>과 대조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충북도교육청은 현재 19개교 교가를 친일 음악가가 작곡한 것으로 확인했다. 충남도교육청은 전체 학교 713곳 교가의 친일성 여부를 조사해 20일 조사 결과와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충남도교육청 관계자는 “전수조사 결과에 따라 해당 학교 구성원들에게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할 수 있도록 협의할 것을 권고하고 필요에 따라 교육청이 강제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명재·백승목·권순재 기자 [email protected]

<2019-02-18> 경향신문 

☞기사원문: “친일 작곡가가 만든 ‘교가’ 바꾸자” 광주 학교들 선두로 확산

※관련기사 

☞연합뉴스: 친일인사 교가 없애고 일본 나무 뽑고…일제 잔재 지우는 교육계 

☞연합뉴스: “친일 음악가가 만든 교가 교체”…충북교육청 전수조사 

☞굿모닝충청: 친일 음악인이 만든 교가 충남에 ‘수두룩’ 

☞한겨레: 광주일고, 친일 음악인이 작곡한 교가 바꾼다

화, 2019/02/1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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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공원을 독립공원으로]

독립운동가 묘역 만들었지만
임시정부 기념관 하나 없어

효창공원 안장된 애국지사들
대한민국 정통성 상징적 인물
민족독립공원 성역화에 최적
보훈처 “국가차원 예우 바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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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16일 오전 하늘에서 내려다본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의 모습. 삼의사 묘역과 의열사 앞으로 효창운동장이 거대하게 들어서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 있는 효창공원(옛 효창원)을 국가 차원의 민족·독립 공원으로 격상하자는 논의가 쏟아지고 있다. 백범 김구 등 임시정부 지도자들이 묻힌 효창공원을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분명히 하자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효창공원 성역화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지난해 1월 펴낸 책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우리는 임시정부를 기념하는 기념관 하나 없다. 적어도 효창공원에 독립열사들을 모시는 성역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썼다. 문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인 2015년 2월9일에도 효창공원의 김구 선생 묘소를 참배한 뒤 “후손으로서 제대로 도리를 다하자면 효창공원 일대를 우리 민족공원·독립공원으로 성역화하고, 여기저기 흩어진 우리 임시정부 요인들의 묘역도 함께 모아야 한다. 중국에서 모셔오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유해도 다시 봉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독립운동에서 찾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지난 3·1운동 기념사에서 “3·1운동의 정신과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대한민국 역사의 주류로 세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지난해에는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광복절’에 효창공원을 참배한 뒤 “독립운동가들을 더 이상 잊혀진 존재로 남겨두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독립운동가 등 애국자들에 대한 정책을 담당하는 국가보훈처도 효창공원 독립공원화에 긍정적 태도다. 보훈처의 고위 관계자는 27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효창공원을 민족공원으로 탈바꿈시키고 그곳에 안장된 독립운동가들을 국가 차원에서 예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내부적으로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효창공원 앞에 나쁜 의도로 지어진 효창운동장을 철거하고, 효창공원의 원래 모습을 회복시켜 국민들이 이곳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보훈처는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효창공원 민족공원화 사업’을 추진했다가 체육단체, 주민 등의 반발에 부딪혀 좌절한 경험이 있다.

여당 쪽에서도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연구소인 민주연구원은 최근 ‘대한민국 정통성 확립을 위한 역사의 재정립’ 보고서를 펴냈다. 박혁 연구위원은 이 보고서에서 “백범 김구를 비롯해 효창원에 안장된 분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불의에 항거한 민주주의 이념, 평화통일 이념 등 ‘대한민국 헌법적 가치’를 세운 인물들”이라며 “대한민국 정통성과 헌법 정신의 회복을 위해 효창원에 계신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들에 대한 국가적 예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를 위해 효창원을 성역화하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효창공원에 묻힌 독립운동가는 7명이다.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과 이동녕 주석, 차리석 비서장, 조성환 군무부장, 그리고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모시기 위한 가묘도 마련돼 있다. 이들은 대한민국 독립과 건국의 아버지들이지만, 아직 제대로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효창공원은 국립 시설이 아니다. 서울시 용산구가 근린공원으로 관리하고 있다.

성역화 방안은 다양하게 제시된다. 먼저 효창공원을 국립묘지로 격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시업 성균관대 전 명예교수는 “효창원 묘역은 그곳에 안장된 이들에 걸맞게 국립선열묘지가 돼야 한다”며 “효창독립공원, 국립 효창원 등 이름을 어떻게 짓건 국립묘지로 지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효창공원과 지역적으로 무관한 경기도의회도 지난해 8월 ‘효창원 국립묘지 승격 촉구 건의안’을 채택해 국회에 제출했다. 김민석 민주연구원장은 “백범 김구 선생 등 건국의 주역을 국립묘지에 모셔야 하며, 이장이 어렵다면 효창공원을 국민적 상징성이 있는 공간으로 승격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효창공원에 임시정부청사를 복원하자는 제안도 있다. 한시준 단국대 교수(사학)는 “국내에서 임시정부와 가장 깊은 관계가 있는 곳이 효창원”이라며 “중국 충칭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를 이곳에 이전 복원하고, 효창원을 임시정부를 기념하는 독립공원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편안하게 찾아올 수 있게 효창공원을 경건한 추모 공간과 개방적 시민 공간으로 함께 만들자는 의견도 나온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독립운동가들의 묘역이 조성된 쪽은 경건한 추모의 공간으로 성역화하고, 현재의 효창운동장 자리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광장이나 숲을 조성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김경욱 기자 [email protected]

<2018-05-31> 한겨레

☞기사원문: 김구 등 7명 잠든 효창공원, 독립운동 성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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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8/05/3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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