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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인권 모두 포기하고 망사업자와 잘살아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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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인권 모두 포기하고 망사업자와 잘살아보세!

admin | 수, 2020/05/20- 01:41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픈넷 이사)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 현 정부의 정보통신발전계획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야, 네이버, 카카오!
너희 구글, 페이스북 따라 잡겠냐.
너희들 망해도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망사업자들과 같이 국민들한테 통신요금이나 뜯고 외국업체들 망이용료나 뜯어보겠다.’

그 기조의 최근 발현이 2020년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를 통과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다. 

개정안의 악수

우선, 공공재인 주파수와 도로 위 전봇대나 아래의 관로의 독점적 이용을 불하받아 천문학적 이윤을 올리고 있는 기간통신사업자들에 대한 공적 통제의 마지막 보루인 (1) 요금인가제를 폐지하여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이동통신비를 그대로 두겠다고 한다.

요즘은 이동통신에서 음성전화보다 중요한 것이 인터넷이며 음성전화도 인터넷전화로 대체되고 있다. 그런데 아래에 다시 말하겠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가격을 유지하고 있어 이동통신가격이 떨어지기가 어렵다. 또 시장경쟁상황이 HHI지수 기준 인구 2천만 이상의 선진국에서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에서는 기간통신사업자들에 대한 공적 통제를 느슨하게 해서는 안 된다.

시장과점의 정도를 측정하는 HHI지수 국가간 비교. 한국 3,736

(2) 또 불법정보유통 예방을 위한 “기술적 조치” 의무를 망사업자들은 쏙 빼놓고 부가통신사업자 즉 인터넷을 통해 콘텐츠와 플랫폼을 제공하는 업체들에게만 부과하고 있다. 이는 이용자들에 대한 사적 검열과 사적 감시를 부추길 것이며 외국플랫폼으로의 망명을 부추길 것이다.

정부는 ‘일반적으로 공개된 정보’에만 적용하여 업체들에 대한 이용자 감시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n번방 재발 방지라는 입법 의도가 실효되는 것이다. 또 일반적으로 공개된 정보에만 적용된다고 할지라도 이를 유지해왔던 정보매개자 책임 제한 원리, 즉 자신이 몰랐던 불법정보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원리를 훼손하여 사업자가 이용자의 포스팅을 사전검열하거나 전면적으로 감시하도록 해 인터넷의 생명을 유지해왔던 ‘허락받지 않고 말할 자유’를 훼손한다(참고: 인터넷 검열 부추기는 정보매개자책임제도).

(3) 게다가 한낱 서버들의 묶음인 데이터센터들에게 기간통신사업자들에게나 적용되던 재난관리계획 제출의무를 지워 인터넷업체들을 허가제로 만들고 있다. 부가통신사업자는 ‘타인의 통신을 매개하는 모든 사업자’로 정의된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든 안하든 홈페이지 만들어놓고 댓글창이라도 달아두면 신고를 했든 안했든 부가통신사업자다. 학교도 도서관도 심지어는 오픈넷도 부가통신사업자인데 웹 서버를 자가로 하면 그게 결국 데이터센터인데 여기에 재난관리계획 제출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인터넷의 자유를 파괴한다.

인권과 경제 다 놓치는 악수 시리즈의 결정판은 (4) 부가통신사업자에게 ‘서비스의 안정적 제공’ 의무를 부과하는 조항이다. 미사여구가 동원되었지만 결국 인터넷접속 속도나 질에 대한 책임과 비용을 인터넷업체들에게 지우겠다는 취지로 읽힐 수 있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법이며 인터넷의 사회적 역할, 경제적 역할 모두 모두 포기한 법이라고 볼 수 있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

접근 가능 책임, ‘콘텐츠 제공자’에 분산 

망사업자들은 이미 인터넷접속료를 고객들로부터 받는다. 여기서 ‘인터넷 접속’이라는 상품은 전 세계 단말들에의 ‘접근가능성’(full connectivity)을 의미한다. 네이버, 카카오, 넷플릭스, 유튜브 등 어떤 서버이든 망사업자는 자신의 고객들이 이 서버들의 데이터를 원활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할 책임이 있다. 자신의 망 입구까지 전달만 된다면 말이다.

고객들에게 각자 초당 1GB의 접속용량(속도)를 판매했다면 그 속도로 전 세계 어느 서버들의 콘텐츠이든 받아볼 수 있어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1동네의 10가구에 그렇게 판매했다면, 그 동네 입구에는 초당 10GB 용량의 선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런 고객이 1천만 명이라면 자신보다 상위의 해외 망사업자와는 초당 1GB×1천만 명의 해외접속용량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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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두가 동시에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며 모두가 동시에 해외 콘텐츠를 보는 것은 아니니 합리적인 범위 내의 오버부킹(Overbooking; 실제 확보한 용량보다 더 많은 용량을 판매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예측이 어긋나서 혼잡이 발생한다면 자신의 고객에게 ‘접근 가능성’(full connectivity)를 약속하고 돈을 받은 망사업자‘가’ 약속한 속도가 나오도록 상류접속용량을 확보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이 책임을 콘텐츠 제공자에 분산시킴으로써 망사업자들의 책임을 희석시킨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네이버스포츠나 카카오TV 영상 중에 킬러콘텐츠가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면서 콘텐츠 제공 경로에 혼잡이 발생했다고 하자.

혼잡을 풀기 위해 망사업자가 접속용량을 확보하는 비용이 발생할 수 있는데 개정법 조항을 들어 망사업자가 네이버나 카카오에 그 비용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네이버나 카카오는 그들대로 인터넷접속료를 망사업자들에 냈고, 이들 역시 국내망사업자 고객들의 단말들을 포함한 전 세계 단말들에의 접근가능성을 약속받았다. 개정법은 네이버나 카카오에 자신의 콘텐츠를 온라인으로 송출할 때 필요한 접속용량에 대한 접속료 한 번 그리고 그 콘텐츠가 망사업자의 고객 단말기에 전달될 때 필요한 접속용량에 대한 접속료 한 번 이렇게 두 번 돈을 내라는 것이 된다.

개정안은 콘텐츠 사업자로부터 중복해서 접속료를 내게 한다.
개정안은 콘텐츠 사업자로부터 중복해서 접속료를 내게 한다.

결국, 국내 콘텐츠업체 죽이는 법 

법 추진 세력들은 국내 사업자에게 적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해외 콘텐츠업체들에게 적용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법이라는 게 그렇게 마음대로 적용 범위를 제한할 수도 없거니와 이미 구글, 페이스북 등은 우리나라 법상 부가통신사업자 신고 자체가 되어 있지 않다. 행정법의 집행력은 공공기관이 신고를 취소하는 등의 징계를 할 권한에서 나오는 것이니 해외 업체들에 대해서는 법 집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결국, 국내 콘텐츠 사업자들만 죽이는 법이 될 것이다.

게다가 우리 정부가 망사업자 보호를 위해 특별히 2016년부터 시행해온 역시 세계 유일의 발신자 종량제 덕에 네이버(734억 원+), 카카오(300억 원+), 아프리카TV (150억 원+) 등이 국내 망사업자에게 내고 있는 인터넷 접속료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참고: 망중립성 관점에서 ‘망 이용료’ 논쟁 이해하기).

영세업자에 제공되는 초고속인터넷 접속료가 미국과 수십배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망사업자들은 실제 제공하는 가격은 이것보다 저렴하다고 하며 예를 들어 SK브로드밴드가 제공하는 PC방 전용회선 상품을 살펴보면 실제로 1Gbps를 월1백만 원에 제공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정관이 법적 책임을 담보하는 문서이므로 실제 가격대비 속도를 정관이 더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업자들의 해명이 필요하다.

서울의 초당1MB 접속 가격이 파리의 8배 뉴욕의 5배다. 국가가 망사업자들이 서로 인터넷의 구동원리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데이터 발송 비용을 받도록 강요하고 있어 망사업자들이 서로 인기있는 콘텐츠 유치를 꺼리게 되었고 심지어는 일부 콘텐츠업자들은 아예 발신자 종량제로 접속료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세계 유일의 망 혼잡 해소 비용까지 콘텐츠업체에게 더 내놓으라니.

인터넷 접속료 국제 비교
인터넷 접속료 국제 비교

인터넷과 노벨평화상

결국 발신자 종량제는 인권도 죽인다. 인터넷이 노벨평화상 후보(2010년)에 오를 만큼 인권 보호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인정받는 이유는 바로 데이터 발송 비용이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전기, 수도 같은 종량제가 아니다. 거울에 빛이 반사되어도 아무런 비용이 발생하지 않듯이 텔레비전을 아무리 오래 보아도 수신료나 케이블월정액에 변함이 없듯이 인터넷도 똑같은 전자기파 신호라서 데이터량에 따른 비용 발생이 없다.

더욱이 인터넷은 지상파, 전화, 케이블TV와 달리 하나의 업체가 데이터 경로 전체를 책임지고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이웃의 데이터를 ‘옆으로 한칸씩’만 전달해주겠다는 상부상조의 약속으로 데이터 전달이 이루어져 데이터 전달 비용이라는 것을 서로 받지 말자고 만든 통신시스템이다.

인터넷은 2010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인터넷은 2010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카카오TV에 정부 비리를 고발하는 영상을 올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영상을 봐서 카카오TV 서버의 데이터가 많이 전달되더라도 고발자가 데이터 전달 비용을 걱정하지 말도록 하자고 만든 시스템, 즉 표현의 경제적 비용은 없애자는 것인데 우리 정부는 이걸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법이 통과되면 영상의 이용자들이 많은 지역의 망사업자가 ‘당신 영상 때문에 망혼잡이 발생하니 해소비용을 내라’고 카카오TV에게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영상 플랫폼에 킬러 콘텐츠가 올라오는 것이 두려운 업체들은 유료로 전환할 수밖에 없고, 이용자들은 유튜브로 페이스북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다.

경제, 인권 다 포기하고 망사업자들과 잘 살아보세.

이 글은 슬로우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202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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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성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오픈넷 이사장)

일제강점기 일본 조선총독부는 시국 불안정 등을 이유로 조선에 댄스홀을 허가하지 않았다. 1937년 잡지 삼천리에 실린 한 레코드 회사 소속 여성들의 ‘경성에 딴스홀을 허(許)하라’라는 제목의 기고는 조선총독부에 대한 탄원서 형식의 글이지만, 조선의 제도적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른 나라의 도시에는 있는 댄스홀을 유독 조선에만 허가하지 않는 것을 통탄하며 댄스홀에서 춤을 추게 해달라고 청원하는 것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상품 등의 정보제공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한 바 있다. 개정안의 주된 내용은 확률형 상품 판매 시 사업자가 공급 가능한 재화 등의 종류와 종류별 공급 확률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도록 하는 의무를 사업자에게 부과하는 것이다. 여기의 확률형 상품에는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도 포함된다는 것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기본입장이자 입법의도이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의 개정안은 매우 잘못된 정부규제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첫째,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서는 개정안보다 매우 높은 수준의 확률정보 공개 자율규제가 이미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는 2015년 한국게임산업협회 주도 확률형 아이템 확률정보 공개 시작부터, 2018년 확률정보 공개대상 범위 확대 및 개별 아이템 확률정보 공개로의 일원화, 2018년 게임자율규제기구인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의 출범을 거치면서 발전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게임 분야에서의 자율규제를 정부규제로 전환하는 것은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제공되는 게임서비스에서 정부규제는 결코 만능이 아니고, 과거처럼 정부규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생각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둘째, 공정거래위원회의 개정안이 시행되는 순간부터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규제수준은 떨어져서,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유도한다는 명분에 반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해 높은 수준의 자율규제와 낮은 수준의 정부규제가 동시에 공존하는 경우, 전체적인 규제수준은 당연히 떨어진다. 수범자인 사업자 입장에서는 공권력에 의한 제재가 적용되는 정부규제만 준수하면 되지, 비용도 많이 드는 높은 수준의 자율규제까지 준수할 필요성이나 유인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율규제가 적용되고 있는 영역에는 정부규제가 끼어들면 안된다. 사회적 요구에 비해 자율규제 수준이 낮은 경우에만 정부규제의 명분과 실효성이 생긴다.

셋째, 공정거래위원회의 개정안으로는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규제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에 대해서는 독립적인 게임자율규제기구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서 그 준수 여부를 감시하고 있다. 일정한 규제가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규제의 준수 여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위반자를 적발해서 제재를 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니터링기구, 위반 여부 심의를 위한 인적ㆍ물적 자원이 상당히 소요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개정안의 준수 여부를 어떻게 모니터링하고 어떠한 세부기준을 갖고 위반 여부를 심의할지 등에 대한 계획을 들어본 바가 없다.

넷째, 자율규제도 ‘규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부규제의 정당성 및 실효성 문제를 해소해 줄 수 있는 대체재 혹은 보완재 역할을 한다. 이러한 자율규제의 의미와 필요성을 정부가 먼저 나서서 부정하고, 이미 작동하고 있는 자율규제의 싹을 뿌리째 없애는 것은 오늘날의 스마트 시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구태의연한 모습이다. 아니면 최소한 자율규제에 대한 이해가 일천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국내 서버를 두지 않은 해외 사업자들의 경우에는, 정부규제도 속수무책이다. 오히려 의도치 않게 국내 사업자에 대한 역차별 문제만 발생시킨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부터 게임 규제는 산업계의 자율규제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지 않았는가. 국회 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서도 게임 자율규제의 확대 필요성을 밝힌 바 있다. 산업계는 갈수록 스마트해지는데, 정부는 산업계의 흐름을 제대로 따라 가지 못하는 것 같아 무척 안타깝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개정안을 당장 철회해야 한다. “게임 자율규제를 허(許)하라!

이 글은 아시아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2020.06.15.)

화, 2020/06/1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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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오픈넷은 2020. 6. 23. 헌법에 위반하여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위험이 높은 ‘역사왜곡금지법’(양향자의원 대표발의, 의안번호: 2100044)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국회에 반대의견을 제출했다.

‘역사왜곡금지법’에 대한 의견서

1. 법안 요지

역사왜곡금지법(양향자 의원 대표발의, 의안번호 : 2100044, 이하 ‘본 법안’)은 일제강점기 전쟁범죄, 5·18민주화운동 및 4·16 세월호 참사 등에 관한 국민의 역사의식을 제고하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① 일제강점기 전쟁범죄, 5·18민주화운동 또는 4·16세월호참사 등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부인 또는 현저히 축소·왜곡하거나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 ② 일제 식민통치 옹호단체에 내응하여 그들의 주장을 찬양·고무, 선전하거나 동조하는 행위, ③ 독립유공자와 전쟁범죄 피해자,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및 4·16세월호참사피해자 등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음.

2. ‘역사 부정·왜곡’ 행위에 대한 처벌은 민주주의 원리에 위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근본적 이유는 국가의 사상 통제를 벗어나 민주주의의 전제인 사상의 다원성·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함임. 국가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국론’이나 ‘진실’을 결정하고 이에 반하는 표현행위나 사상을 표출하는 행위를 ‘형사처벌’하는 방식의 규제는 국가와 정치권력이 반대자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남용할 위험이 높기에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금기시되는 규제 방식임. 본 법안은 제안이유와 목적 부분에서 밝히고 있듯 ‘국민의 올바른 역사의식 고취’, ‘국민화합’ 등을 주요한 입법 목적으로 하고, 이러한 목적을 국민에 대한 ‘형사처벌’로써 달성하려는 방식의 규제로써, 민주주의 원리에 반하고 있다고 보여짐.

“대저 전체주의 사회와 달리 국가의 무류성(無謬性)을 믿지 않으며, 다원성과 가치상대주의를 이념적 기초로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 표현의 허용 여부를 국가가 재단하게 되면 언론과 사상의 자유시장이 왜곡되고,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 민주주의에서 어떤 표현이나 정보의 가치 유무, 해악성 유무를 국가가 1차적으로 재단하여서는 아니되고 시민사회의 자기교정기능, 사상과 의견의 경쟁메커니즘에 맡겨야 한다”(헌법재판소 2002. 6. 27. 결정, 99헌마480 참조)는 헌법재판소의 설시를 고려하여야 함.

3. 명확성 원칙에 위반하여 표현의 자유 침해

헌법상의 명확성의 원칙은 법률을 명확한 용어로 규정함으로써 적용대상자에게 장래의 행동지침을 제공하고, 집행자에게는 객관적인 판단지침을 제공하여 차별적이거나 자의적인 집행을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임. 헌법재판소는 “법률은 되도록 명확한 용어로 규정하여야 한다는 명확성의 원칙은 민주주의ㆍ법치주의 원리의 표현으로서 모든 기본권제한입법에 요구되는 것이나,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입법에 있어서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현대 민주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국민주권주의 이념의 실현에 불가결한 것인 점에 비추어 볼 때, 불명확한 규범에 의한 표현의 자유의 규제는 헌법상 보호받는 표현에 대한 위축효과를 수반하고, 그로 인해 다양한 의견, 견해, 사상의 표출을 가능케 하여 이러한 표현들이 상호 검증을 거치도록 한다는 표현의 자유의 본래의 기능을 상실케 한다. 즉, 무엇이 금지되는 표현인지가 불명확한 경우에, 자신이 행하고자 하는 표현이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는 확신이 없는 기본권주체는 대체로 규제를 받을 것을 우려해서 표현행위를 스스로 억제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률은 규제되는 표현의 개념을 세밀하고 명확하게 규정할 것이 헌법적으로 요구된다”(헌재 1998. 4. 30. 95헌가16, 판례집 10-1, 327, 342 참조), “불명확한 규범에 의하여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게 되면 헌법상 보호받아야 할 표현까지 망라하여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규제하게 되므로 …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경우에 일반적으로 명확성의 요구가 보다 강화된다”(헌재 2002.06.27 결정, 99헌마480)고 판시하여 표현의 자유 제한입법에 대하여 보다 엄격한 명확성을 요구하고 있음.

또한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은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누구나 예견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게끔 구성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할 것을 요구한다. 형벌법규의 내용이 애매모호하거나 추상적이어서 불명확하면 무엇이 금지된 행위인지를 국민이 알 수 없어 법을 지키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범죄의 성립 여부가 법관의 자의적인 해석에 맡겨져서 죄형법정주의에 의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려는 법치주의의 이념은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헌재 1996. 12. 26. 93헌바65)라고 하여, 형벌조항에 대해서 더욱 강화된 명확성을 요구하고 있음.

본 법안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입법이며, 동시에 형벌조항에 해당하므로, 엄격한 의미의 명확성 원칙이 적용된다고 할 것임. 그런데 역사적 사실을 ‘부인’ 또는 ‘현저히’ ‘축소’, ‘왜곡’한다는 구성요건 개념은 추상적·주관적이고 불명확하여 판단자의 자의에 따라 남용될 위험이 높음. 또한 어떠한 표현에서 ‘의견’과 ‘사실’을 구별해내는 것은 매우 어렵고, 객관적인 ‘진실’ 부분과 ‘거짓’ 부분을 명확히 판별하는 것 역시 매우 어려우며, 따라서 어디까지가 이를 부인, 왜곡, 축소하는 행위인지도 명확히 확정할 수 없음. 즉, ‘현저한’, ‘부인’, ‘왜곡’, ‘축소’ 등의 개념은 표현의 허용 여부 및 형사범죄의 성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부적절하며, 헌법상의 명확성 원칙,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위배됨.

한편, 일제강점기 전쟁범죄, 5·18민주화운동 및 4·16 세월호 참사 “등”이라 규정하여, 규제 대상인 역사적 사건 및 사회적 재난 사건의 범위도 명확하지 않아 추후 무한정 확장 적용될 위험도 있음.

4. 과잉금지원칙(비례의 원칙)에 위반하여 표현의 자유 침해

표현행위로 인하여 초래되는 해악은 추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해악 발생의 가능성만으로 함부로 규제해서는 안 됨. 즉, 표현이 특정한 내용을 담고 있다거나 사회윤리 등에 반한다는 이유만으로 표현의 자유의 보호영역에서 애당초 배제된다고 할 수 없음(헌재 2009. 5. 28. 2006헌바109 참조). 특히, 표현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은 가장 최후의 수단으로써 형벌과 책임간의 비례원칙도 고려되어야 하며, 표현행위로 인한 해악이 일단 표출되면 처음부터 해소될 수 없거나 또는 너무나 심대한 해악이 발생하는 경우에만 정당화됨.

그러나 본 법안은 표현행위로 발생하는 ‘결과’나 ‘해악’을 구성요건으로 규정하지도 않고, 표현행위 자체가 역사적 사실을 ‘부인’, ‘왜곡’, ‘축소’하거나, 일제 식민통치 옹호단체의 주장을 ‘찬양·고무’, ‘선전’, ‘동조’했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처벌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음. 또한 ‘정보통신망’은 오늘날 국민 개개인의 대부분의 표현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표현 수단임에 비추어 ‘정보통신망의 이용’까지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과도한 검열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음.

국론 분열이나 역사 인식 왜곡은 표현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이 필요할 정도로 심대하고 명백한 해악으로 볼 수 없음. 역사 부정·왜곡 행위가 불러올 수 있는 해악은 ‘관련 사건의 유공자와 유족의 인격권 침해 등의 피해’ 및 ‘장래에 유사 사건의 재발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음. 그러나 유공자 등 사건 관련자들의 현저한 인격권 침해에 대해서는 현행 명예훼손·모욕 법제로도 충분히 규제가 가능함. 또한, 현재 사회통념상 건전한 상식을 가진 대다수의 국민들은 본 법안에 열거된 사건들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고, 각종 법률로도 공언되어 본 법안상의 ‘독립유공자 등’과 유족이 국가적으로 배상 및 예우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하에서, 열거된 사건들을 부인, 왜곡하는 소수의 표현행위로 인해 사건 관련자들이 사회에서 차별, 배제된다거나 유사 사건이 재발될 위험이 표현행위를 형사처벌할만큼의 명백·현존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움.

한편, 안 제8조가 독립유공자 등에 대한 명예훼손, 모욕에 대해서 “고소가 없거나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하는 때에도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은 인격권 침해 범죄에 있어 피해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형사법상의 대원칙에 거스르는 것으로써 입법 목적의 정당성 자체가 심히 의문스러운 부분임.

5. 결론

위와 같이 본 법안은 헌법상 여러 원칙들에 위배하여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높으므로 철회되어야 함.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email protected]

수, 2020/06/24-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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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의 균형적 보호를 위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개정방향’ 토론회

2020. 7. 28.(화) 오전 10:00 – 11:30 /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

사단법인 오픈넷은 이수진 (동작)의원실, 대한변호사협회와 공동으로 7월 28일(화)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의 균형적 보호를 위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개정방향’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한다.

현행 형법 및 정보통신망법은 진실한 사실을 말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진실 여부를 불문하는 명예훼손 법제는 정치적·사회적으로 악용되어 미투 운동, 내부 고발, 소비자불만글 등을 비롯한 각종 사회 고발 활동 및 언론 활동을 심대하게 위축시키는 폐단을 낳고 있으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를 침해하여 사회의 감시·비판 기능을 마비시키고 사회 진보의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 진실한 사실을 말한 경우에도 과거 성이력과 같이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사실을 적시하는 것은 제재할 필요가 있으며, 통신기술의 발달로 프라이버시 침해가 가져올 수 있는 폐해는 커진 반면 형법에 일반적인 프라이버시 보호 조항은 없기 때문에 이를 보완할 필요도 있다.

이에 본 토론회에서는, 명예훼손 법제가 헌법 및 국제인권기준을 준수하고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개인의 프라이버시도 균형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개정 방향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이번 토론회는 황성기 교수(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가 좌장을, 손지원 변호사(사단법인 오픈넷)가 주제발표를 맡고, 토론자로는 윤해성 박사(한국형사정책연구원), 장철준 교수(단국대학교 법과대학), 정성민 판사(사법정책연구원), 김한규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가 참여할 예정이다.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email protected]

화, 2020/07/21-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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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가 7월 9일, 광화문 S타워 22층에서 “온라인상 혐오표현 그 해법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2020 KISO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오픈넷 손지원 변호사가 토론자로 참석해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혐오표현 규제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유튜브 영상: https://youtu.be/8o8o07VgO5c)

[토론문] 혐오표현 규제와 표현의 자유

손지원(사단법인 오픈넷 변호사)

혐오표현은 혐오스럽다. 혐오표현 문제에 대하여 우리 사회는 대응할 필요가 있다. 혐오표현을 어떻게 정의하든 위 두 가지 명제에 대해서는 대체로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혐오표현을 ‘규제’의 대상으로 포섭시키려는 순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복잡해진다. 혐오표현 역시 원칙적으로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의 보호영역이며,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는 표현의 자유의 제한 원칙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는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라는 말이 있다. 모든 나쁘고 옳지 못한 표현을 남에게 불쾌감을 준다거나 사회적 해악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규제해서는 안 되고 규제할 수도 없다. 또한 모든 사회 문제에 대한 대응이 ‘규제’나 네거티브 방식(금지나 차단)일 필요도 없다. 그러나 분명 규제가 필요한 표현도 있다. 모든 기본권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공익을 현저히 해한다면 비례의 원칙에 따라 제한될 수 있고, 표현의 자유 역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면 제한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규제 필요성이 있는 ‘혐오표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우리가 혐오표현을 규제함으로써 막고자 하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나 해악이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함으로써 찾아낼 수 있다.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를 통해 진정으로 우리가 막고자 하는 것은 표현 그 자체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나타날 표적집단에 대한 차별, 폭력, 배제일 것이다. 즉, 혐오표현의 해악은 사회 전체에 대해 표적집단에 대한 차별과 적의를 확산시킬 뿐만 아니라, 표적집단 구성원 개인에게 불안과 공포를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개인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이로써 공론장에서 표적집단 구성원의 표현행위와 영향력을 위축시켜, 사회의 표적집단에 대한 배제와 차별의 공고화로 이어진다는 데에 있다.[1]

따라서 규제 대상 혐오표현을 정의함에 있어, 표적집단은 사회적 소수자 집단으로 한정될 필요가 있다. 혐오표현으로 인하여 실제 사회에서 그 집단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배제, 차별,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이에 대하여 구체적인 불안, 공포, 위축을 경험할 위험이 높은 집단이 그 대상이 되어야 한다. 혐오표현 정의 규정은 흔히 “국가, 인종, 민족, 종교, 성별, 성적 지향, 장애를 이유로”의 문구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분류 및 한정도 필요하지만, 이 문구만을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규제가 필요한 범위를 넘어 지나치게 광범위한 표현물, 즉 사회에서 주류적 지위를 차지하거나, 차별, 배제, 공포, 위축의 위험이 거의 없는 국가, 인종, 종교, 성별 집단 등에 대한 모든 부정적, 비판적 표현마저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모욕죄가 시위대 등 경찰의 공권력 행사에 저항하는 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기 위하여 남용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광범위한 혐오표현 규제는 오히려 거친 언사나 미러링, 패러디 등으로 기득권층에 대한 불만이나 저항을 표출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그런데 ‘사회적 소수자’라는 기준은 상대적·가변적인 개념으로서 불명확성을 안고 있어 이를 어떻게 최대한 명확한 문언으로 녹여낼지에 대한 심층적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여기서 또 다른 혐오표현 규제의 한계점이 도출된다. 혐오표현 규제는 필연적으로 불명확성과 추상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UN 자유권규약 제20조 제2항 “차별, 적의 또는 폭력의 선동이 될 민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증오의 고취”가 대표적인 혐오표현 규제의 정의 규정이라 할 수 있겠으나, 이 역시 명확한 개념은 아니다. 표현 규제에 있어 명확성의 원칙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혐오표현에 대하여 형사처벌을 규정하거나 사업자에게 임시조치 등의 의무를 부과하고 위반시 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등의 공적 규제, 강제 규제는 위헌의 소지가 매우 높다.

자율규제의 경우에는 강제 규제와 같은 수준의 헌법원칙의 준수가 요구되지는 않기 때문에 다소 추상적인 기준으로 표현물을 규제할 수도 있다. 또한 투명성과 이용자와의 원활한 소통이 바탕이 된다면 사회적 소수자가 보호되는 건전한 공론장을 만들기 위하여 혐오표현의 자율규제는 매우 필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 공론장, 사상의 시장은 결국 이용자, 시민이 형성하여야 하는 것이고, 정부나 기업의 검열과 개입은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면에서, 자율규제의 경우에도 표현의 자유 보장의 의미와 그 제한원리의 근본적인 의미를 되새김으로써 그 적정한 수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KISO의 경우 ‘지역·장애·인종·출신국가·성별·나이·직업 등으로 구별되는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모욕적이거나 혐오적인 표현방식을 사용하여 해당 집단이나 그 구성원들에게 굴욕감이나 불이익을 현저하게 초래하는 게시물’을 규제하고 있는데, 이는 보통 ‘차별, 적의 또는 폭력을 선동’을 요건으로 하고 있는 혐오표현 규제보다 폭넓다. 그런데 위에서 논한 혐오표현의 규제 필요성을 고려할 때, 규제 대상 혐오표현은 표적집단 구성원에게 불안, 공포, 위축을 불러일으키고, 사회에서 실제적인 배제, 차별, 폭력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는 표현이어야 한다고 본다. 표적집단의 특성 등 구체적인 ‘사실’을 언급하며 사회에서의 차별, 배제를 정당화하거나 조장하는 표현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이르지 않고 집단의 구성원이 모욕감,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단순한 감정의 표명이나 단발적인 비하적 용어, 별칭의 사용을 규제하는 것은 과도한 검열을 낳을 수 있다.

한편 혐오표현 규제로 잃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해야 하는 이유는 잘못되거나 올바르지 않은 표현일지라도 일정한 가치와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밀(John Stuart Mill)은 자유론에서 ‘탄압하려는 의견이 설령 잘못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의견을 탄압하는 것은 틀린 의견과 옳은 의견을 대비시킴으로써 진리를 더 생생하고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하였다. 나쁜 사상은 늘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이 보이지 않도록 막는 것은 그것이 사회 어딘가에 상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만들고 적절한 대응의 기회만 놓치게 되는 일일 수 있다. 또한 표현의 가치는 그 표현의 내용이나 화자의 의도대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고, ‘표현행위’ 자체가 하나의 사실 정보로서 대중의 알 권리의 대상이 된다는 면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유력 정치인의 혐오표현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혐오를 부추기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 정치인의 자질을 판단하는 정보로서 더 큰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표현의 자유 보장의 정신을 고려할 때, 혐오표현을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차단할 수 있는 규제를 만드는 것보다는 이에 대항하는 논증의 축적과 반박, 비판을 통해 혐오문화를 타파하는 방향의 해결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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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승현, “혐오표현 규제에 대한 헌법적 이해”, 「공법연구」 제44집 제4호, 한국공법학회, 2016. 6.

화, 2020/07/2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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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에마뉴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인터넷에서의 인종차별적, 반유대주의적 혐오 발언에 대하여 강력한 조치를 마련할 것을 약속한 이후, 2019년 3월 집권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LREM)의 대변인 래티시아 아비아(Laetitia Avia) 의원은 독일의 네트워크집행법을 모델로 한 ‘인터넷에서의 혐오 콘텐츠 규제 법안’(이하 “인터넷 혐오표현 금지법”) 일명 ‘아비아법’을 발의했다. 동 법안은 2019년 7월 프랑스 하원을 통과하고 상원으로 올라갔으나, 법안에 반대하는 일부 상원의원들이 헌법재판소에 위헌심사를 청구했다. 그리고 2020년 6월 18일, 프랑스 헌법재판소(Conseil constitutionnel)는 인터넷 혐오표현 금지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프랑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환영하며, 이 결정이 임시조치 제도와 ‘n번방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제22조의5 부가통신사업자의 불법촬영물 유통방지 의무 등 한국판 아비아법에 갖는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비아법’은 SNS, 검색 엔진 등 플랫폼 사업자에게 신고가 들어온 지 24시간 이내에 ‘명백한(manifestly)’ 불법 콘텐츠를 삭제할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한 사업자를 처벌하는 법이다. 명백한 불법 콘텐츠에는 인종, 종교, 민족, 성별, 성적 지향 또는 장애를 이유로 차별, 적대감, 폭력을 선동하는 혐오표현, 이러한 집단이나 개인에 대한 차별적 모욕, 홀로코스트 부인, 성폭력 등이 포함된다. 아울러 테러 미화·선동 콘텐츠나 아동음란물은 행정당국의 요청이 있으면 1시간 이내에 삭제해야 한다. 사업자가 이를 어길 경우, 개인은 1년 이하의 징역 및 25만 유로 이하의 벌금, 법인은 125만 유로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아비아법에 대해 프랑스 내부에서도 혐오 콘텐츠의 범위가 모호하고, 사업자에게 과도한 검열 권한을 준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찬성파 의원들은 인터넷 혐오표현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플랫폼에 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사업자가 합법적인 콘텐츠마저 삭제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의원들도 상당수였다. 아울러 국가디지털위원회(CNNum: Conseil national du numerique), 국가인권자문위원회(la Commission nationale consultative des droits de l’homme), 프랑스의 디지털 권리 단체인 라 캬드라튀르 뒤 넷(La Quadrature du Net)과 같은 기관들도 이 법안의 채택을 반대해왔다. 민간 사업자에 검열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었다. 또한 국제적 인권단체인 아티클19은 아비아법이 표현의 자유에 관한 국제 인권 기준에 반한다고 하면서, 플랫폼과 불법 콘텐츠의 범위가 광범위하며 법원의 판단이 배제된 사적 검열을 강화하고, 24시간 이내라는 삭제 기한이 너무 짧고, 처벌이 과도하여 콘텐츠의 과잉 삭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비판해왔다.

프랑스 헌재는 아비아법의 해당 조항들이 프랑스 헌법상 표현과 의사소통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헌재는 먼저 테러 콘텐츠 또는 아동음란물 1시간 이내 삭제 조항에 대해서는 1. 테러 콘텐츠인지 아동음란물인지가 콘텐츠의 본질적인 특성에 따라 결정되지 않고 행정당국의 판단에 전적으로 달려있다는 점, 2. 사업자가 1시간이 경과한 후에 삭제 요청에 대해 이의를 신청하거나 1시간 기간을 정지시킬 수 없다는 점, 3. 사업자가 콘텐츠 삭제 전 법원의 결정을 받을 시간이 없는 점, 4. 형량이 과도한 점을 들어 목적을 달성하기에 필요하고 비례적인 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다음으로 명백한 불법 콘텐츠 24시간 이내 삭제 조항에 대해서는 1. 신고가 접수되었을 때 명백한 불법 콘텐츠로서 삭제할지 여부에 대한 결정을 법원이 아니라 전적으로 사업자가 내리는 점, 2. 명백한 불법 콘텐츠인지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 있다는 점, 3. 사업자는 24시간 이내에 결정해야 하는데 불법성 판단의 어려움과 사업자가 검토해야 할 신고의 건수가 많을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24시간은 매우 짧은 기간이라는 점, 4. 사업자 책임 면책 조항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 5. 형량이 과도하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동 조항은 사업자가 신고가 들어오면 콘텐츠의 불법성과 상관없이 삭제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보았다.  

정보매개자에게 자신이 인지하지 못한 불법적인 이용자 게시물에 대해서 책임을 지워서는 안 된다는 정보매개자 책임제한 원리(intermediary liability safe harbor)는 국제 인권 기준의 일부이다. 왜냐하면 정보매개자가 사전검열이나 일반적 감시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아비아법은 행정기관이나 사인의 신고가 있는 게시물에 대해 책임을 지운다는 면에서 본연의 정보매개자 책임제한 원리를 위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나, 게시물의 존재만 인지했을 뿐 그 불법성을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보매개자에게 게시물에 대한 책임을 지운다는 면에서 정보매개자의 사적 검열을 강요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프랑스 헌재가 아비아법 결정에서 불법성 판단을 행정당국 또는 사업자에게 전담시킨 것에 표시한 불만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비추어 우리나라 법을 살펴보자면 우선 “임시조치”라고도 불리는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가 바로 이런 문제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1] 권리자가 정보의 삭제를 요청하면 사업자가 게시물이 권리를 침해했는지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실무적으로는 요청이 들어오면 판단을 거치지 않고 무조건 차단(임시조치)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심각하게 제한하고 있다. 또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법 제21조 3호 및 4호에 의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2]의 통신심의 역시 행정기관이 표현물의 삭제를 강제한다는 면에서 아비아법 전반부와 비슷하다. 여기에 더하여 ‘n번방 방지법’이라는 미명 하에 개정된 전기통신사업법 제22조의5는 제1항에서 불법촬영물등에 대한 신고가 들어왔을 때 사업자가 지체 없이 삭제할 사후적 의무를 지우고 있고, 제2항에서 사업자가 불법촬영물등의 유통을 방지하기 위한 사전적 조치를 취할 의무를 지우고 있다.[3]

사업자의 불법정보 사후적 유통방지 의무를 규정한 아비아법은 콘텐츠 게시자가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절차와 악의적인 신고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 침해를 완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위헌 판단을 받았다. 그렇다면 프랑스 헌재의 입장에 비추어볼 때 제22조의5 제1항의 사후적 유통방지 의무는 이의제기 절차도 없고, 신고 남용에 대한 제재도 없으며, 불법성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전혀 개입하지 않으므로 위헌의 소지가 높다. 게다가 제2항에 따른 사전적 유통방지 의무는 사업자가 게시물의 불법성 및 존재 자체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형사책임을 지운다는 면에서 정보매개자 책임제한 원리를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으며 아비아법보다 위헌성이 훨씬 크다. 

오픈넷은 불법촬영물의 유통을 방지하고자 하는 ‘n번방 방지법’의 입법 취지와 그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유통방지에 전혀 실효적이지 않으면서 플랫폼 사업자에게 사전적인 사적 검열 의무를 지워 인터넷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전기통신사업법 제22조의5 제2항에는 반대한다. 제22조의5 제1항 역시 정보통신망법의 ‘임시조치’ 제도 및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행정심의와 함께 이번 프랑스 헌재 위헌 결정에 비추어 계속 재검토가 되어야 한다. 오픈넷은 이번 프랑스 아비아법 위헌 결정의 취지와 같이 한국판 아비아법들에 대한 입법적 개선이 이루어지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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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에관한법 제44조의2(정보의 삭제요청 등) ①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일반에게 공개를 목적으로 제공된 정보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가 침해된 경우 그 침해를 받은 자는 해당 정보를 처리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침해사실을 소명하여 그 정보의 삭제 또는 반박내용의 게재(이하 “삭제등”이라 한다)를 요청할 수 있다.
②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제1항에 따른 해당 정보의 삭제등을 요청받으면 지체 없이 삭제ㆍ임시조치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고 즉시 신청인 및 정보게재자에게 알려야 한다. 이 경우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필요한 조치를 한 사실을 해당 게시판에 공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용자가 알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③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자신이 운영ㆍ관리하는 정보통신망에 제42조에 따른 표시방법을 지키지 아니하는 청소년유해매체물이 게재되어 있거나 제42조의2에 따른 청소년 접근을 제한하는 조치 없이 청소년유해매체물을 광고하는 내용이 전시되어 있는 경우에는 지체 없이 그 내용을 삭제하여야 한다.
④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제1항에 따른 정보의 삭제요청에도 불구하고 권리의 침해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거나 이해당사자 간에 다툼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해당 정보에 대한 접근을 임시적으로 차단하는 조치(이하 “임시조치”라 한다)를 할 수 있다. 이 경우 임시조치의 기간은 30일 이내로 한다.
⑤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필요한 조치에 관한 내용ㆍ절차 등을 미리 약관에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⑥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자신이 운영ㆍ관리하는 정보통신망에 유통되는 정보에 대하여 제2항에 따른 필요한 조치를 하면 이로 인한 배상책임을 줄이거나 면제받을 수 있다.

[2]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및 운영에 관한 법 제21조 제3호와 제4호 (심의위원회의 직무) 심의위원회의 직무는 다음 각 호와 같다. [중략]
3.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7에 규정된 사항의 심의
4. 전기통신회선을 통하여 일반에게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 중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정보의 심의 및 시정요구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에관한법 제44조의7 (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등) [생략]
② 방송통신위원회는 제1항제1호부터 제6호까지, 제6호의2 및 제6호의3의 정보에 대하여는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또는 게시판 관리ㆍ운영자로 하여금 그 처리를 거부ㆍ정지 또는 제한하도록 명할 수 있다. 다만, 제1항제2호 및 제3호에 따른 정보의 경우에는 해당 정보로 인하여 피해를 받은 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하여 그 처리의 거부ㆍ정지 또는 제한을 명할 수 없다. <개정 2016.3.22, 2018.6.12>. . . [전문개정 2008.6.13]

[3] 전기통신사업법 제22조의5(부가통신사업자의 불법촬영물 등 유통방지) ① 제22조제1항에 따라 부가통신사업을 신고한 자(제22조제4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를 포함한다) 및 특수유형부가통신사업자 중 제2조제14호가목에 해당하는 자(이하 “조치의무사업자”라 한다)는 자신이 운영ㆍ관리하는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일반에게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 중 다음 각 호의 정보(이하 “불법촬영물등”이라 한다)가 유통되는 사정을 신고, 삭제요청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ㆍ단체의 요청 등을 통하여 인식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해당 정보의 삭제ㆍ접속차단 등 유통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1.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에 따른 촬영물 또는 복제물(복제물의 복제물을 포함한다)
2.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의2에 따른 편집물ㆍ합성물ㆍ가공물 또는 복제물(복제물의 복제물을 포함한다)
3.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제5호에 따른 아동ㆍ청소년성착취물
② 전기통신역무의 종류, 사업규모 등을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조치의무사업자는 불법촬영물등의 유통을 방지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술적ㆍ관리적 조치를 하여야 한다.

2020년 7월 30일

사단법인 오픈넷

문의: 사단법인 오픈넷 02-581-1643,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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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0/07/30-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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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오픈넷은 유명인의 사진을 이용해 해당 유명인을 비판하는 포스터를 제작한 패션노조 대표에 대한 저작권법 위반 형사사건을 2016년 6월부터 공익소송으로 지원해왔다. 대법원은 지난 2020. 6. 25. 무려 3년간 상고심에 계류 중이던 해당 사건에 대해 저작권법 위반이라는 원심(서울남부지방법원 2017. 4. 13. 선고 2016노1019 판결)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는 판단을 내렸다(대법원 2020. 6. 25. 선고 2017도5797 판결). 패러디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해학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다분하며 구체적인 오픈넷의 입장은 아래와 같다.

법원은 패러디에 대한 엄숙주의에 머물러 있어, 전향적 태도 변화가 필요

원심은 해당 작품이 패러디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패러디는 “누가 보더라도 기존의 원작품을 과장하여 흉내낸 것으로 풍자하거나 희화화한 것이 명백하여야 할 것”이라는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 법원은 그동안 패러디를 원작품에 대한 풍자만 가능하고 해당 작품을 통한 사회현상의 풍자나 비판은 패러디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서울지방법원 2001. 11. 1.선고 2001카합1837 결정, 이른바 ‘컴배콤’ 사건[1]) 본 사건을 계기로 패러디의 범위를 넓히고 엄숙주의에서 벗어날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대법원이 기존 입장을 고수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원심은 원 저작물이 “나체를 진지하게 담아낸 작품”인 반면 해당 저작물을 이용한 포스터는 “조롱하고 비하”하기 위한 것으로 보면서 “노동착취 현실을 고발하기 위한 목적은 통상적인 프로필 사진을 게재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대중에게 공표된 사진을 이용한 행위만으로 “조롱하고 비하”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판단한 것도 유감이지만, “진지”함을 기준으로 예술을 바라보는 원심 법원과 대법원의 시각이 바뀌어야 함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법원은 원 저작물에 대한 “조롱”과 “비하”가 패러디의 주된 창작 동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 연방대법원 역시 이른바 ‘pretty woman’ 사건(Campbell v. Acuff-Rose Music, Inc.)에서 조롱이 패러디의 표현적 요소임을 인정한 바 있다. 원 저작물에 대한 “조롱”으로 인하여 원 저작물에 대한 수요를 죽인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유형의 침해는 비평의 결과이지 상업적 경쟁의 결과가 아니며, 공정이용 분석을 위해 시장침해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패러디는 재기발랄하고 웃음을 자아내는 해학적 요소가 핵심을 이룬다. 법원은 이러한 예술적 성취를 “진지”하지 않다는 이유로 보호해야 할 표현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른바 ‘컴배콤’ 사건에서도 법원은 해학적 요소에 대해 “단순히 웃음을 자아내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라고 판단하여 해학적 표현의 가치를 가벼이 여긴 바 있다. 법원은 남에게 웃음을 주는 일이 얼마나 철저한 준비와 “진지”한 노력이 필요한 것인지 다시 한 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처럼 법원이 패러디의 범위를 엄격하게 해석하는 이상 해학적 표현의 자유는 계속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 사건 원 저작물과 포스터_오픈넷 소송자료.jpg
<원저작물과 인용작(패러디물)>

형태적 변형 없이 새로운 미적 효용을 불러 일으키는 개념 예술에 대한 협소한 이해

원심은 이 사건 패러디물의 2차적 저작물 해당성을 판단하면서 원 저작물의 “상하좌우 여백을 약간 삭제하였거나 제2저작물의 사진 부분을 제외한 전시안내 문구부분을 삭제한 후 이를 제1,2 포스터에 그대로 삽입한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하면서 “어떠한 새로운 창작성이 더해졌다고 판단되지 않는다.”라고 판단하였다. 이 역시 예술과 창적성에 대한 협소한 이해에서 비롯된 아쉬운 판단이 아닐 수 없다.

이는 형태의 변형이 물리적으로 이루어져야 비로소 창작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판단에 다름아니다. 원 저작물이 가진 미적 효용이 유명인의 “순수함”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 있었다면, 이 사건의 패러디물은 이러한 순수성과 대비되는 패션계 저임금노동 현실과 대비되어 피사체의 이중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새로운 미적 효용을 가져다준다. 요컨대 이 사건 패러디물은 원 저작물의 물리적 변형 없이 그대로 이용해야만 패러디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기획된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이른바 “변형적 이용”을 물리적인 변형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제한 해석함으로써 예술에 대한 협소한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 사건 원 저작물에 포함된 다소곳하게 인사하는 포즈의 누드사진은 전시회 포스터가 아닌 해당 피사체 인물의 행위를 비판하는 포스터에 자리하는 것만으로 새로운 미적 효용이 발생한다. 이 사건에서처럼 법원이 2차적 저작물 작성의 창작성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물리적 변형 유무라는 기계적 잣대만을 적용하게 되면 패러디 표현의 다양한 기획을 저해할 것이다.

패러디, 장르적 특성을 반영해 출처표시 의무에 대한 예외 적용 필요

패러디물에 대해 법원은 공정이용에 대한 네 가지 요건을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은 채 출처를 명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정이용 해당성을 손쉽게 부인하였다. 그러나 패러디라는 장르적 특성상 원 저작물을 표시하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고, 패러디된 저작물의 경우 대부분 사회적으로 유명하고 잘 알려져 있는 저작물이기 때문에 출처명시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학계의 유력한 견해가 있다(오승종, <저작권법> 제2판, 614면).

이 같은 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패러디 기법을 사용한 예술작품은 “성공”한 패러디인 경우가 아니라면 출처표시를 누락했다는 이유로 저작권 위반으로 처벌될 위험이 크다. 특히 법원이 보기에 “진지”하지 않은 패러디물은 더욱 그러하다. 출처표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저작물의 공정이용의 전제가 됨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법원이 패러디의 범위를 좁게 해석하더라도 출처표시 의무 이행과 관련하여 패러디라는 장르적 특성을 충분히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작자의 동의 여부를 공정이용의 판단의 기초로 삼은 법원의 태도는 표현의 자유 침해

한편 이 사건 판결에서 “저작자의 포스터 삭제 요청이 있었다”는 이유를 들어 저작물의 통상적인 이용방법과 충돌하지 아니하고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아니하는 경우 즉, 공정이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는 저작권이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침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저작자는 대체로 패러디 방식의 이용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 사건에서처럼 오히려 적극적으로 반대할 경우가 많을 것이다. 

공정이용 조항은 저작자로부터 동의를 받기 어려운 창작 행위에 대해서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 예외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기능한다. 저작권의 보호와 저작물의 이용을 통한 표현의 자유 간 균형을 고려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서 법원이 저작자가 적극적으로 반대하였다는 사실관계를 판단의 기초로 삼은 것은 입법취지를 몰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법원이 패러디물 창작에 저작자의 동의 여부를 따져보는 순간 공정이용 조항이 적용될 기회마저 빼앗아 버리는 셈이다. 

본 판결로 인해 공정이용 조항의 판단에 저작자의 동의 여부를 포함시키는 관행이 생기면 안 된다. 저작자가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패러디적 표현에 형사처벌을 감내하는 결단을 요구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법원이 보기에 진지하지 않은 조악한 패러디일수록 손쉽게 형사처벌로 금지하기보다 공정이용 요건을 적극적으로 판단하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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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피신청인들이 이 사건 원곡에 추가하거나 변경한 가사의 내용 및 그 사용된 어휘의 의미, 추가·변경된 가사 내용과 원래의 가사 내용의 관계, 이 사건 개사곡에 나타난 음정, 박자 및 전체적인 곡의 흐름 등에 비추어 피신청인들의 이 사건 개사곡은 신청인의 이 사건 원곡에 나타난 독특한 음악적 특징을 흉내어 단순히 웃음을 자아내는 정도에 그치는 것일 뿐 신청인의 이 사건 원곡에 대한 비평적 내용을 부가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보이지 아니하고(피신청인들은 자신들의 노래에 음치가 놀림받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비판하거나 대중적으로 우상화된 신청인도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등의 비평과 풍자가 담겨있다고 주장하나, 패러디로서 보호되는 것은 당 해 저작물에 대한 비평이나 풍자인 경우라 할 것이고 당해 저작물이 아닌 사회 현실에 대한 것까지 패러디로서 허용된다고 보기 어려우며, 이 사건 개사곡에 나타난 위와 같은 제반사정들에 비추어 이 사건 개사곡에 피신청인들 주장과 같은 비평과 풍자가 담겨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피신청인들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 사건 원곡을 이용하였으며, 이 사건 개사곡이 신청인의 이 사건 원곡을 인용한 정도가 피신청인들이 패러디로서 의도하는 바를 넘는 것으로 보이고, 이 사건 개사곡으로 인하여 신청인의 이 사건 원곡에 대한 사회적 가치의 저하나 잠재적 수요의 하락이 전혀 없다고는 보기 어려운 점 등 이 사건 기록에 의하여 소명되는 여러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결국 피신청인들의 이 사건 개사곡은 패러디로서 보호받을 수 없는 것이라 하겠다.”

2020년 8월 5일

사단법인 오픈넷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email protected]

수, 2020/08/05-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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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보고서는 아주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수행하고 오픈넷이 참여한 ‘2019년도 국가인권위원회의 정보인권 보고서 개정 발간 연구용역보고서’의 일부분입니다.

본 보고서는 출처표시, 상업적 이용금지,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연구참여자: 김가연,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

제1절 통신의 비밀과 자유의 보호 현황과 쟁점
1. 통신의 비밀과 자유의 의의와 최근 침해 양상
(1) 통신의 비밀과 자유의 헌법적 의미
(2) 통신의 비밀의 보호대상
(3) 최근 침해 양상
2. 국제 동향 및 기준
(1) UN
(2) EU
(3) 각국의 법제 동향
(4) 시민사회
3. 국내 법·제도 현황
(1) 관련 법제 현황
(2) 헌법재판소 주요 결정례
(3) 국가인권위원회 주요 결정례
4. 주요 쟁점 사례
(1) 통신자료 제공 남용 사례
(2) 기무사의 세월호참사 유가족 사찰 및 불법감청 사건
(3) 전교조 서버 압수·수색 사건
(4) 국가정보원의 이탈리아 해킹팀 RCS 프로그램 구입 및 실행 사건
(5) 사인간 감시 사례

제2절 통신의 비밀과 자유 증진을 위한 개선방안
1.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1) 통신제한조치(감청) 제도 개선
(2)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제도 개선
2. 통신자료 제공 제도 개선
3.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 제도 개선
4. 정보수사기관 개혁
5. 사인간 감시 문제

제3절 온라인에서의 표현의 자유 보호 현황과 쟁점
1. 온라인에서의 표현의 자유의 의의와 제한
(1) 일반적인 표현의 자유의 의의와 제한 원리
(2) 온라인상 표현의 자유의 제한 유형
2. 국제 동향 및 기준
(1) UN 자유권규약위원회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일반논평 34호
(2) UN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라 뤼의 한국보고서
(3) 유럽평의회의 인터넷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자유를 위한 7원칙
(4) UN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데이비드 케이의 기업 책임에 대한 보고서
(5) 정보매개자 책임에 관한 마닐라 원칙
(6) FOC의 인터넷의 자유와 인권 보호에 관한 정책 및 관행 수립을 위한 탈린 의정서
3. 국내 법·제도 현황
(1)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신심의제도
(2) 선관위 선거법 위반 정보 삭제 명령 제도
(3) 정보통신망법 임시조치 제도
(4) 선거기간 인터넷 실명제
(5)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모욕죄
4. 주요 쟁점 사례
(1) 혐오표현 규제
(2) 허위정보 규제

제4절 온라인 표현의 자유 증진을 위한 개선방안
1.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통신심의 제도의 폐지 혹은 개정
2. 임시조치 제도의 개정
3. 공직선거법상의 실명제와 선거관리위원회 삭제명령제도 폐지
4.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의 폐지
5. 혐오표현에 대한 대응
6. 허위정보에 대한 대응

수, 2020/08/12-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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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

얼마 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떠돌았을 때, 많은 사람이 ‘우리는 북한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라는 말을 새삼 실감했다. 북한 특유의 폐쇄성으로 인해 그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는 특히 북한에 대해 무지한 부분이 많다. 북한을 반국가단체나 적으로 취급하든, 혹은 같은 언어와 민족성을 나누는 통일과 화합의 대상으로 보든, 상식적으로 우리가 분단국으로서 북한을 제일 잘 알아야 하는 나라임을 고려하면 더욱 아이러니하다.

왜 그럴까. 한국은 북한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뿌리 깊은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가 생긴 배경에는 북한을 찬양·미화하는 표현물을 ‘이적표현물’로 보고, 이의 유포와 소지를 범죄화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제7조가 가장 큰 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많은 남용의 역사를 거쳐, 법원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 등으로 처벌 규정을 엄격히 해석하는 기준을 마련하긴 했다. 그러나 이는 개인을 형사처벌하는 경우에만 고려될 뿐, ‘이적표현물’ 조항의 존재는 여전히 우리가 북한에 대해 알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하고 위축시키고 있다.

북한의 폐쇄성, 통제성으로 인해 북한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조선중앙통신, 우리민족끼리 등 북한의 국영·선전매체가 직접 생산한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에는 누구나 알다시피 낯간지러운 북한 체제에 대한 찬양·미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이 때문에 우리 정부는 이들 콘텐츠와 북한 사이트 등 거의 모든 북한발 정보를 이적표현물(국가보안법 위반 정보)로 분류하고 온라인상에서 차단하고 있다.

이러한 관행으로 수난을 겪은 두 명의 외국인 ‘마틴’ 씨들이 있다. 북한 기술과 관련한 뉴스를 전달하는 온라인 매체인 ‘노스코리아테크’를 운영하는 영국인 ‘마틴 윌리엄스’는 뉴스의 출처로써 조선중앙통신을 링크하고 있다는 이유 등으로 사이트가 차단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노스코리아테크는 북한발 보도에 의혹을 제기하거나 독자적·학술적 분석을 해온 매체였기 때문에 법원에서 차단 처분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받아 차단은 해제되었지만, 그는 한국 정부가 북한 정보를 통제하는 방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북한학을 공부하는 독일인 ‘마틴 와이저’씨는 연구를 위해 북한의 장애인 관련 단체 사이트를 비롯한 각종 북한 사이트에 접속하려고 했지만 대부분이 차단되어 있어 한국에서 정상적인 인터넷 활동으로 북한의 정책이나 관행을 연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고 한다. 그는 인권위에 정보 접근권 침해를 이유로 민원도 넣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그는 아마 한국이 전 세계에서 북한 연구가 가장 힘든 곳일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최근에는 외국인이 운영하는 KCNA watch라는 사이트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결정으로 한국에서 차단된 것 같다는 제보를 받았다. 이 사이트는 조선중앙통신 등의 북한 매체 및 각종 온라인상 북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아카이빙하여 검색 편의를 제공하는 사이트로, 북한 연구자, 외교부, 통일부 등 공공기관 관계자, 언론 등에서 많이 활용했던 사이트다.

우리나라는 북한에 대한 정보가 최대한 많이 파악되고 공유되어야 하는 나라다. 북한발 정보의 왜곡·과장·미화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대부분의 국민이라면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또한 모든 ‘정보’가 그러하듯, 정보를 어떻게 수용하고 활용할지는 정보에 대한 접근 이후 비로소 독자들이 선택하는 영역이다. 북한발 정보가 북한 체제에 대한 찬양·미화적인 요소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의 존립·안전에 위협이 될리는 만무하다. 또한 세계적 시각에서 북한의 동향은 늘 ‘핫한’ 이슈로, 한국의 국가 가치 역시 북한과의 관계에서 중요성이 더 크다. 실리적 관점으로도 북한 정보에 대한 접근을 수월하게 하여 이해관계나 언어적 이해력이 가장 높은 우리나라가 북한 연구와 보도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럼에도 북한발 정보를 국가보안법 위반 정보로 보는 뿌리 깊은 관행으로 인해 우리 국민의 북한 정보에 대한 접근권이 사실상 원천적으로 통제·차단되는 위헌적 결과가 발생하고 있다. 나아가 우리 국민의 보도·연구 활동이 오히려 다른 나라에 비해 크나큰 제약을 받게 됨으로써, 북한의 소식을 외신을 통해 접하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장과 통일부 장관이 새로 임명되었다. 정부는 더 이상 국가보안법을 확대해석하여 우리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불필요하게 옥죄는 구태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새 수장을 맞이한 기관들이 당장 이적표현물 조항의 폐지 추진은 어렵더라도, 최소한 북한 정보에 대한 우리 국민의 자유로운 접근과 활용을 보장하는 열린 태도를 견지하길 기대한다. 그것이 바로 정부가 우리 체제와 북한 체제와의 근본적인 차이를 선언하는 길이자, 우리 국민과 체제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을 보여주는 길일 것이다.

*이 글은 미디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2020.08.05.)

수, 2020/08/12-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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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오픈넷이 2020. 8. 21. 2020 한국인터넷거버넌스포럼(KrIGF)에서 진보네트워크센터와 ‘인터넷 공간의 안전’이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개최합니다. 

한국인터넷거버넌스포럼(KrIGF)은 국내 주요 인터넷 공공정책 이슈에 대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간의 대화 및 토론을 위해 다자간인터넷거버넌스협의회(KIGA),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 기관 및 단체가 함께 연 1회 개최하는 포럼입니다.

2020 한국인터넷거버넌스포럼(KrIGF)은 “팬데믹 시대의 인터넷 거버넌스: 뉴노멀, 연결, 안전”이라는 주제로 8월 21일(금) 온라인웨비나로 개최될 예정입니다. 국내 인터넷 이용자의 관심사를 폭넓게 반영하고자 다양한 이해관계자로부터 프로그램을 제안 받아 KrIGF 프로그램을 구성하였습니다. 

KrIGF에 꾸준히 참여해왔던 오픈넷은 진보네트워크센터와 함께 2020 KrIGF의 이슈 중 인터넷 환경의 안전에 집중하여 “인터넷 공간은 ‘모두’에게 안전하고 정의로운 공간인가?”라는 제목의 워크숍을 개최합니다. 본 워크숍을 통해 오픈넷과 진보넷은 사회적 소수자에게 인터넷은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하는지, 모두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이를 위해 우리가 해야할 것들은 무엇인지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인터넷 공간은 ‘모두’에게 안전하고 정의로운 공간인가?”

일정: 2020년 8월 21일(금) 13:00-14:30
기획: 오경미, 미루 
사회: 미루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여는 말: 오경미 (오픈넷 연구원)
토론1: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활동가)
토론2: 왹비 (주홍빛연대 차차 활동가)
토론3: 이승현 (비온뒤 무지개 재단 이사장)
토론4: 오영택 (국가인권위원회 혐오차별대응기획단 사무관)

참여방법: 

  • 한국인터넷거버넌스포럼(KrIGF) 홈페이지(krigf.kr)에서 2020 참가자 사전등록하실 수 있습니다.
  • 사전등록자에 한해 Zoom을 통한 ‘2020 KrIGF’ 온라인 웨비나를 진행합니다. (링크 및 비밀번호 제공)
  • 사전등록하지 않은 일반참가자는 유튜브 ‘한국인터넷거버넌스포럼’ 채널을 통해 워크숍을 시청할 수 있습니다.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email protected]

토, 2020/08/15-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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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모 중학교에서 수업시간에 프랑스 영화 <억압받는 다수>를 상영했다는 이유로 검찰에 송치당한 배이상헌 교사가 8월 11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광주시교육청에 의해 수사의뢰와 직위해제를 당하고 2019년 9월, 경찰에 의해 아동복지법 위반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당한 후 거의 1년 만이다. 결정이 좀 더 빨리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지만 헌법이 전문성과 자주성을 보장하는 교육 영역에 대한 국가의 일방적 개입을 우려하고 교권 보장을 위해 교육 당사자가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해왔던 사단법인 오픈넷은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환영하는 바이다.

오픈넷은 앞서 검찰에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불기소처분을 요구하는 논평을 발표했으며 관련 토론회에 참여하여 해당 사건은 수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학생과 교사 간의 의사소통 부족이 갈등의 원인임을 지적했다. 배이 교사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증폭되면서 젠더 갈등의 양상을 띠게 된 것이지, 담당 교사가 학생들에게 프랑스 예술영화 <억압받는 다수>를 보여준 행위 자체는 성비위에 해당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건의 중심이었던 영화에 대해서도 감독이 선택한 ‘미러링’ 기법이 몇몇 학생들에게 거북함을 불러일으켰을지 모르나 수업의 맥락과 무관한 영상이 아니었고, 인간의 신체를 설명하기 위해 인간의 신체를 교육용 자료로 보여주는 것과 다를 바 없어 이를 성비위로 보는 것은 수업의 목적을 훼손하고 교사의 재량권을 위축시킨다고 주장했다. 광주지검 역시 8월 11일, 영화의 화면에 모자이크 처리 등을 하지 않아 중학생 교육용으로는 부적절할 수 있지만 남녀 차별에 대한 인식 개선을 다룬 영화인 점, 성교육 자료로 사용한 점을 토대로 아동학대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8월 7일, 검찰에 검찰시민위원회의 판단을 받아들일 것과, 해당 학교 성고충심의위원회가 성비위가 아니라고 결론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직위해제 처분한 광주시교육청에 직위해제를 즉각 취소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불기소처분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이번 사건이 성비위가 아님에도 스쿨미투라 규정했다. 아마도 스쿨미투를 학생들이 교사들로부터 당하는 성희롱과 성폭력을 고발하는 운동이라고 규정하기보다 비대칭적인 학교내 권력의 관계를 문제삼고 전반적인 학생의 인권을 향상시키는 운동이라고 규정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스쿨미투의 정의가 이렇게 확장된다면 학교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건이 스쿨미투의 범주에 포함될 것이며 그로 인한 혼란도 초래될 수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스쿨미투에 대한 개념이 보다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정작 학생들이 제기한 문제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는 것이다. 2차 가해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나 사건의 본질을 명확하게 판단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사건의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질 필요가 있다. 추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학생들을 보호하면서도 그들이 제기한 문제를 어떻게 공론화시킬 것인지, 그리고 이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소외시키지 않으면서 이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째서 해당 교과목의 영상자료에서 학생들이 느낀 불쾌감이 이렇게나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었는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모든 교사가 모든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과 충분히 소통하는 것은 아닐 것이며, 이러한 수업에 대해 불만과 불쾌감을 느끼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왜 타 수업에서 느낀 불쾌감은 문제가 되지 않고 성과 관련한 수업에서 느낀 불쾌감은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가? 이 질문은 성교육이라는 수업의 교육 내용과 방식에만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성인지적 감수성의 수준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담당 교사 개인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는 없다.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문제이다.

2020년 8월 24일

사단법인 오픈넷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email protected]

[관련글]
[논평] 수업시간에 성평등 영화를 상영한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경찰의 기소의견을 우려한다 (2019.10.01.)
[발제문]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경찰 기소의견을 비판해야 하는 이유” – 학교성평등교육, 어디로 가야하나? 토론회 (2019.11.15.)
월, 2020/08/24-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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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오픈넷은 2020. 8. 24. 언론 및 표현의 자유를 부당하게 위축시킬 수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정청래, 2829, 신현영, 2613)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전용기, 2828)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요지로 국회에 반대의견을 제출했다. 

이른바 ‘가짜뉴스’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언론사에게 시정명령을 하고 이에 따르지 않은 경우 과태료 부과대상으로 삼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정청래, 2829)은, 결국 국가기관이 ‘허위’와 ‘진실’을 결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표현행위를 규제하는 것으로써 민주국가에서 금기시되는 국가의 표현물 ‘검열’과 다름없다.

기사에 대한 열람차단청구권을 규정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신현영, 2613)은, 기사의 대상이 된 공적 인물들이 자신에 대한 의혹 제기나 비판적 내용의 보도에 대하여 열람차단청구를 남발하여 언론중재법상 절차에 대응할 사실상의 의무가 있는 언론사와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의 언론활동을 심대하게 저해·위축시키는 수단으로 남용될 위험이 높다.

‘상대방을 혐오·차별하거나 혐오·차별을 선동함으로써 상대방에게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내용의 정보’를 규제 및 처벌 대상으로 정의하고, 피해자가 자살에 이른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의 처벌을 규정하고 있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전용기, 2828)은, 추상적·상대적·불명확한 기준으로 규제 대상 표현을 정의하여 명확성 원칙에 반할 뿐만 아니라, 모욕적 표현(행위)과 상대방의 자살(결과) 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이 거의 불가능하고, 자살은 행위자가 합리적으로 예견가능한 결과라고도 보기 어려움에도 과중한 형벌을 예정하고 있는 위헌적인 법안이다.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email protected]

화, 2020/08/25-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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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8. 4.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산업기술보호법’)이 이수진 의원(비례, 더불어민주당)의 대표발의로 발의됐습니다. 2019. 8. 2. 개정된 산업기술보호법의 심각한 문제를 일부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에는 공감이 가지만, 결과적으로는 문제를 바로잡기에 많이 부족하고 무기력한 안이라고 판단합니다.

개정 산업기술보호법의 문제로 지적된 부분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제9조의2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는 공개해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 조항으로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반도체 등을 만드는 사업장이라면 어떠한 정보도 비공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습니다. 삼성전자 공장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 같은 안전보건정보도 바로 이러한 근거를 들어 비공개되었습니다. ‘영업비밀’을 내세워 알 권리를 막아왔던 기업들의 행태를 조금씩 바로잡아왔던 법원의 판결도 무력화되었습니다. 사업장의 안전을 감시하기 위해서도, 직업병을 인정받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안전보건정보가 가려지면서 노동자들의 안전은 다시 캄캄한 어둠 속으로 떨어졌습니다. 국제적으로 ‘국가핵심기술(national critical technologies)’ 지정제도는 영업비밀보호 차원이 아니라 외국기업의 기술소유 방지 차원으로 운영된 것이서 규제되는 행위가 ‘정보유출’이 아니라 ‘인수합병’이었음을 고려했을 때, 정보의 흐름을 규제하는 우리나라 법은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법입니다.

하지만, 이번 이수진 의원의 개정안은 이러한 알 권리 침해조항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핵심 독소조항을 방치한 무기력한 안이고, 시민사회의 우려를 거의 담아내지 못한 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이 조항의 문제를 알려왔던 오픈넷과 시민사회는 실망을 감출 수 없습니다.

개정 산업기술보호법의 두 번째 심각한 문제는 안전보건 목적 등 정보의 정당한 활용에 대해서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제14조 제8호는 ‘적법한 경로를 통하여 산업기술이 포함된 정보를 제공받은 자가 정보를 제공받은 목적 외의 다른 용도로 그 정보를 사용하거나 공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처벌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부정한 목적으로 혹은 부정한 방법으로 산업기술을 취득하고 활용할 경우 처벌하던 법이 이제 적법한 목적과 적법한 방법으로 취득했다 하더라도 취득 목적 외로 사용하면 처벌하는 것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제34조 제10호는 ‘정보공개 청구, 산업기술 소송 등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한 자’를 처벌하도록 되었습니다. 사업장의 안전보건 위험을 알리는 행위도, 직업병 인정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습니다. 안전보건활동 전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을 가하는 것입니다. 지역의 환경을 훼손하거나 개인정보를 침해했는지 등 공공복리를 침해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필요성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이수진 의원 개정안은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만 예외를 둘 수 있도록 제14조 제8호를 수정하였을 뿐, 위와 같이 다른 여러 공공복리가 침해되는 경우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마저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정보를 공개하는 행위’만 예외를 두어 실제 효과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도록 하였습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신창현 의원이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시민사회의 문제제기를 접한 후 제9조의2를 포함한 더 폭넓은 법률개정이 필요하다는 법률개정 촉구 국회의원 연명에 함께한 바 있습니다. 심각한 잘못을 조금만 바로잡는 것은 문제를 방치하는 것입니다. 잘못을 제대로 바로잡으려면 문제를 꼼꼼히 살펴보고, 무엇이 필요한지 의견을 충분히 들어야 합니다. 개정 산업기술보호법에 대한 노동시민사회의 문제제기는 이미 충분히 이루어져왔고, 이 과정에 뜻있는 국회의원들도 함께 해왔습니다. 21대 국회가 개정 산업기술보호법에 대한 시민사회의 정당한 우려를 진지하게 듣고, 문제를 바로잡을 제대로 된 개정안을 마련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2020년 8월 27일

사단법인 오픈넷,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email protected]

[관련 글]
[반도체·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 및 산업기술보호법 청구 기자회견] “국민의 알권리와 건강권을 침해하는 산업기술보호법, 위헌이다!” (2019.03.05.)
[토론문] “비밀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모두 비밀이 되는 것이 아니다 - 헌법상 국민의 알권리에 근거한 산업기술보호법 제9조의2의 문제점” – 산업기술보호와 알권리 토론회 (2020.01.14.)
목, 2020/08/27-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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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픈넷 이사)

역사는 항상 희극과 비극이 섞여 있는 회색 덩어리 같은 것이다.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말은 보통 역사의 비극에 초점을 두고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상징한다. 그런데 비극으로부터 배우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면 비극에 갇혀 있을 수도 있다. 공산주의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만으로 가득 찬 사회는 자본주의의 착취로 나아갈 수 있고, 그 반대 벡터도 가능하며 양극단 사이에서의 진동이야말로 진정한 비극이 될 것이다. 비극의 관점에서만 역사를 볼 것이 아니라 비극이 실현되지 않은 경우의 수들, 즉 희극도 엄연히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는 자세가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칭했다고 하여 명예훼손 유죄가 선고되었다. 과거에 공산주의자라는 칭호가 국민들에게 씌웠던 누명과 천형을 생각하며 종북몰이에 대한 경계심을 갖는 것은 올바른 일이다. 필자도 수년 전 이정희 의원에게 ‘종북’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민사 손해배상 판결이 난 것에 대해서 ‘국가보안법의 역습’이라고 자위했다. 진보적인 인사들이나 독재에 순응하지 않은 사람들을 부당하게 처벌하고 심지어는 정치에 무관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엮었던 역사를 생각해본다면, ‘종북’ 칭호는 상대를 공공의 적으로 간주하는 것이며 맹목적인 반공 사회의 사법적 피해자에 대한 혐오 표현이라고 볼 수 있었다. 분단사회의 질곡이라는 역사로부터 배우려면 저런 판결도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공산주의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역사의 비극으로부터 너무 많이 배우려다가 역사의 비극 속에 갇히는 사례가 될 것이다.

명예훼손 형사처벌은 세계 각국에서 사문화하거나 폐지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명예란 도대체 무엇인가? 불특정 다수가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평가의 집합, 곧 평판이다. 평판은 나를 고찰하는 사람의 사상과 의견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내가 통제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내가 아무리 천사처럼 살아도 아무런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할 수 있다. 그런데 내 평판이 훼손되었다고 해서 훼손의 씨앗이 된 말을 한 사람의 신체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은 비례성에 어긋난다. 민사 손해배상으로 한정되어야 한다. 더욱이 명예훼손이 형사처벌의 형태로 존재하면 기소와 압수수색만으로도 피의자들의 삶을 피폐화할 수 있는 검찰은 쉽게 권력 연장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역사의 희극은 더 이상 종북몰이가 먹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민중은 완전히 승리하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승리했다. 역사는 항상 그런 것이다. 그런데 역사의 비극, 즉 분단사회에서 진보 인사들이 받은 핍박에만 매몰되어 종북 발언, 공산주의자 발언을 형사처벌까지 하려고 든다면 그 역사의 다른 면에 갇힐 수밖에 없게 된다. 이 항소심 판결이 대법원에서도 유지된다면 이제 문재인 정권을 ‘독재’라고 불러도 나를 포함한 문재인 정권 지지자들은 할 말이 없게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제 ‘공산주의’를 포함한 다른 진보적인 사상들, 즉 사회주의 등등은 우리 사회가 절대로 언급해서는 안 되는 극악의 지표로 남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판결을 절대로 진보적인 판결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이다.

명예훼손으로 법정 구속된 종편 출신 송아무개 기자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송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수위는 송의 디지털스토킹이 불러왔을 피해자에 대한 비난의 수위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피해자가 송의 ‘만행’을 먼저 알렸다면 피해를 막지 못했을까? 혹시 알리지 못한 이유는 거꾸로 송으로부터 명예훼손 고소를 당할 위험 때문 아니었을까? 우리가 피해자가 겪은 비극으로부터 배우려는 자세에만 매몰되어 형사처벌을 통한 검열에만 심취한다면, 소비자들의 이용후기가 위축되는 것은 물론 죄 없는 기업들의 블랙컨슈머리즘에 대한 고발도 같이 위축될 것이다.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말은 항상 반만 옳다.

이 글은 한겨레에 기고한 글입니다. (2020.09.03.)

금, 2020/09/0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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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중립성에 대한 인터넷 이용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단법인 오픈넷이 지원하고 박경신 이사가 감수한 특별기획 웹툰(글: Nica, 그림: farming)이 나왔다. 웹툰은 ‘라이즈 오브 망중립성의 수호자’, ‘리턴 오브 망중립성의 수호자’라는 제목으로 총 2부작으로 제작되었다. 1편 ‘라이즈 오브 망중립성의 수호자’는 주인공이 정체불명의 박교수와 함께 2030년 망중립성이 사라진 미래로 시간여행을 하게 되면서 인터넷 세계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망중립성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2편 ‘리턴 오브 망중립성의 수호자’에서는 2020년으로 돌아온 주인공이 박교수가 알려주는 망이용료 및 발신자종량제 상호접속고시, CP서비스안정화의무법 등 현재 이슈들의 문제를 깨닫고 망중립성 지키기 운동을 벌여 인터넷의 미래를 바꾼다는 내용이다. 특히 ‘커뮤니티 네트워크’라는 국내에 생소한 개념을 소개하여 서울시 공공와이파이 논란의 맥락도 짚어준다.  

인터넷은 서로가 서로의 정보를 품앗이로 전달해줌으로써 누구나 무료로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망중립성’이란 각자가 정보 전달에 돈을 받으려거나 정보의 내용에 조건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단말 간 상부상조의 약속이다. 오픈넷은 그동안 인터넷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 보장, 건강한 인터넷 생태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망중립성 강화 운동을 지속해왔다. 최근 망중립성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용자들에게 망중립성 원칙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웹툰을 만들게 되었다. 

5G폰을 왜 지금 사면 안 되는지, 인터넷은 왜 전화나 우편에 비해 무료인지, 인터넷은 왜 “쓴 만큼 내는 것”이 아닌지, 왜 한국 인터넷기업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는지, 왜 국내에서 넷플릭스와 페이스북 접속속도가 느린지 등등 인터넷 이용자가 실생활에서 직접 겪었을 상황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지금처럼 미래에도 인터넷을 자유롭게 이용하기 위해서 망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도 공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웹툰은 오픈넷 홈페이지(opennet.or.kr)에서 볼 수 있으며, 망중립성에 대한 좀 더 자세하고 세부적인 내용을 알길 원하는 독자에게 웹툰과 더불어 아래의 글을 읽기를 권한다. 

[망중립성 특별기획 웹툰①] 라이즈 오브 망중립성의 수호자
[망중립성 특별기획 웹툰②] 리턴 오브 망중립성의 수호자

<망중립성 더 읽기>

문의: 오픈넷 사무국 02-581-1643, [email protected]

월, 2020/09/07-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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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유수의 시위 현장에서 목격하게 되는 무기가 있다. 바로 ‘비살상 무기’다. 비살상 무기는 경찰이 사용하는 살상 무기 사용에 비해 사망의 위험이나 부상의 위험이 적은 진압 무기다.경찰 등의 법 집행 공무원은 여러 폭력 속에서 시민들을 보호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필요에 따라 비살상 무기를 사용해야 할 수 있다. 국제 법 집행 기준에 맞게만 사용한다면 비살상 무기는 시위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적법한 무기이다.

8월 30일, 시위를 위해 거리로 나온 벨라루스 시위대

8월 30일, 시위를 위해 거리로 나온 벨라루스 시위대

 

지난 8월 30일, 벨라루스에서는 벨라루스 현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집회가 개최됐다. 알렉산더 루카센코Alexander Lukashenko 대통령의 26년 장기 집권에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수도 민스크Minsk를 비롯해 각 도시에서 시위가 일어났고 최소 10만명의 시민이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 참여자들은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고, 정부가 벌인 인권 침해에 대한 조사를 촉구했다.

 

대통령 선거 이후 지지자들에게 연설을 하는 알렉산더 루카센코 대통령

대통령 선거 이후 지지자들에게 연설을 하는 알렉산더 루카센코 대통령

벨라루스 시위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지난 8월 9일, 벨라루스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26년간 장기 집권 중인 현 대통령 알렉산더 루카센코가 자신이 선거에서 압승했다고 주장하자, 선거가 조작되었다고 판단한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시위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나?

시위는 평화적이었지만 벨라루스 정부는 광범위한 체포, 폭력으로 대응했다. 경찰들은 시위대를 향해 고무탄, 섬광 수류탄, 최루가스, 물대포 등을 사용했다. 벨라루스 내무부의 발표에 따르면 8월 9일부터 14일까지 무려 6,700명이 체포되었다. 50명 이상의 기자들이 구금되었으며 이외 다수의 기자들이 자격을 박탈당하거나 벨라루스에서 추방되었다. 8월 30일 당일에도 140명의 평화적인 시위대가 구금되었다.

 

시민들을 체포하는 경찰들

시민들을 체포하는 경찰들

 

시위 진압, 체포 과정에서 어떤 경찰 폭력이 있었나?

시위 시작 이후, 국제앰네스티는 민스크에서 이루어진 잔인한 진압 행위를 모니터링하고, 전 구금자를 만나 그들의 경험을 직접 들었다. 이들 다수의 증언에 따르면, 민스크와 벨라루스의 각 도시에서 구금된 사람들은 경찰 버스에 끌려들어간 그 순간부터 구금 기간 내내 심하게 구타를 당했다. 이러한 폭행은 구금자들이 “분류”되는 경찰서에서도 계속되었으며, 석방 또는 재판 전까지 머무르는 임시 구금 시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신에 대한 자료는 다 갖고 있다.
여기서 다시 만나면 죽이겠다

카츠얄리나 노비카바를 풀어주며 경찰이 그에게 건넨 말

 

사례 1

카츠얄리나 노비카바Katsyaryna Novikava는 8월 10일 저녁 민스크 도심에서 수퍼마켓을 가던 도중 구금되었다고 국제앰네스티에 증언했다. 그는 범죄자격리시설TSIP에서 34시간을 보냈다. 카츠얄리나는 이 시설의 앞마당에는 체포된 남자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으며, 모두 흙바닥에 강제로 누워 있어야 하는 상태였다고 한다. 시설 내부에는 남성 수십 명이 알몸이 상태로 엎드리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경관들은 그들을 발로 걷어차고 경찰봉으로 폭행했다. 카츠얄리나 역시 강제로 무릎을 꿇어야 했으며, 다른 피해자들의 비명 소리를 들어야 했다.

카츠얄리나는 4인용 감방에서 다른 여성 20명과 함께 갇혔으며, 모두 바닥에서 잠을 잤다. 구금 기간 동안 물이나 음식은 전혀 제공되지 않았고, 의사의 진료도 받을 수 없었다. 함께 수감되었던 여성 중 여러 명은 경찰관에게 강간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8월 12일 아침 석방되었다. 경찰관은 석방되는 카츠얄리나에게 “당신에 대한 자료는 다 갖고 있다. 여기서 다시 만나면 죽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여권, 아파트 열쇠를 비롯한 소지품은 석방된 이후에도 돌려받지 못했다.

시민들을 체포하는 경찰들

시민들을 체포하는 경찰들

 

사례 2

러시아의 온라인 뉴스매체 Znak.com의 기자인 니키타 텔리졘코Nikita Telizhenko는 8월 10일 밤 체포되었다. 그는 기사를 통해 그날의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경찰 버스에서 사람들이 계속 구타 당하고 있었다. 문신을 했거나, 머리가 길다는 이유에서였다. “게이 자식, 교도소에서 제대로 된 인간으로 만들어주지!” 그들[경찰관]은 그렇게 소리쳤다.”

니키타는 마스코스키 내사 사무소에서 16시간을 보냈다. 그는 그곳에서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경찰은 구금자들에게 강제로 기도를 하고, 성서를 읽게 했다. 거부하는 사람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폭행했다. 강당에 앉아 있는데 아래층과 위층에서 사람들을 때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정말 무서웠다. 나도 온갖 일을 다 겪은 사람이지만,
그건 정말 무서운 광경이었다.

체포되었던 기자 막심 솔로포브의 증언

 

사례 3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있거나, 바닥에 다리를 펴고 앉아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 ] 정말 무서웠다. 나도 온갖 일을 다 겪은 사람이지만, 그건 정말 무서운 광경이었다.”

또 다른 기자인 막심 솔로포브Maksim Solopov도 매체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위와 같이 증언했다. 러시아 국적으로 라트비아의 온라인 매체 Meduza에서 일하는 막심은 8월 9일 밤 체포된 이후 40시간 동안 강제 실종됐다. 그는 여론의 압박과 러시아 대사관의 중재 끝에 석방되었으나, 눈에 띄게 몸에 멍이 든 상태였다.

인권단체 비아스나Viasna가 수집한 증거에 따르면, 일부 경찰서에서는 구금자들이 몇 시간 동안 바닥에 엎드려 있어야 했거나 복도 또는 마당에서 벽을 보고 서 있어야 했으며, 조금만 움직여도 폭행을 당했다. 이는 다수의 증언과 외부로 유출된 동영상을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시민들을 체포하는 경찰들

시민들을 체포하는 경찰들

 

사례 4

구금자 수백 명의 행방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일부 구금 사례는 강제 실종에도 해당할 수 있다. 대부분 8월 9일부터 구금된 사람들이다. 구금자들의 가족과 변호인은 경찰서에 전화를 걸거나 ‘법률대리인 없이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고 법원에 경고하는 등, 이들의 행방을 알아보려 노력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8월 12일, 전경은 아크레츠냐 구금시설 앞에서 평화적으로 집회를 연 구금자 가족 200여 명을 무력을 동원해 강제 해산하기도 했다.

 

경찰 폭력을 겪고 눈물을 흘리는 시위대

경찰 폭력을 겪고 눈물을 흘리는 시위대

 

국제앰네스티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시위 과정에서 체포되어 구금된 평화적 시위대와 행인들은 독방에 구금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가장 기본적인 절차 규정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들의 기본권이 전혀 보장되고 있지 않은 상태다.

벨라루스 정부는 구금자들에 대한 고문 및 부당대우를 즉시 중단하고 자의적으로 체포한 사람들을 모두 석방해야 한다. 독립 감시단은 지금 즉시 아무런 방해 없이 모든 구금 시설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장에서 과도한 폭력을 사용한 경찰관, 인권침해를 명령하거나 방관한 지휘관 등 인권침해에 관여했거나 공모한 사람은 모두 처벌을 받아야 한다.

마리 스트러더스Marie Struthers 국제앰네스티 동유럽 및 중앙아시아 국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아래와 같이 밝혔다.

“벨라루스 정부는 지금까지 시위대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위가 벌어지기 시작했던 초기 며칠 동안 경찰이 자행한 대규모로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 관련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국제앰네스티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평화적인 시위대 수백 명을 잔인하게 고문했던 경찰에 대해서는 단 한 건의 형사기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반면 시위대를 대상으로는 수십 건의 형사기소가 이루어졌다. 범법 행위가 있었다는 믿을 만한 증거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벨라루스 시민들은 이처럼 (인권침해를 한 사람들이) 처벌받지 않는 위험한 문화를 막기 위해 평화적으로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위정자들과는 달리, 벨라루스 시민들은 이례적일 정도로 훌륭한 자제력을 보여줬으며 집회 역시 매우 평화적으로 진행했다. 수도 민스크를 비롯해 각 도시를 행진했던 수만 명의 시위대 모두가 거리의 쓰레기를 청소하고, 벤치 위로 올라갈 때는 신발을 벗고 올라갈 정도였다.”

국제앰네스티는 벨라루스 정부에 즉시 경찰의 폭력을 중단하고, 지난 1달 동안 벌어진 심각한 인권침해행위에 대해 조사할 것을 촉구한다.

목, 2020/09/1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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