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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위안부 피해자 위한 평화재단 설립 21대 국회 나서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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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위안부 피해자 위한 평화재단 설립 21대 국회 나서달라”

admin | 목, 2020/04/16- 00:36

온라인 수요집회 “피해자 중심주의 근거해 문제 해결하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34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되고 있다. 2020.4.8/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정의기억연대가 1435차 온라인 수요집회를 열고 새로 뽑히는 국회의원들이 여성인권평화재단을 설립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법안을 속히 통과시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해 앞장설 것을 촉구했다.

국회의원 총선거날인 15일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열린 수요 집회에서 정의기억연대는 “우리가 30년 동안 거리에서 외치고 많은 국민이 함께했던 간절함을 담아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법안이 통과되고 시행되는 국회가 되길 바란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의기억연대는 “새로운 국회의원은 할머니들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진정한 피해자 중심주의에 근거한 해결이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며 “여기 모인 우리는 그들이 진정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활동하도록 똑똑히 지켜볼 것이며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에 더욱 큰 목소리로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성인권평화재단은 일본군 ‘위안부’ 관련 사업과 연구를 지속하고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기관으로 20대 국회에서는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않고 있다.

한경희 사무총장은 “여성인권평화재단의 설립 근거 기반을 갖출 수 있는 뜻 있는 국회의원들을 20대 국회에서 (기대했는데) 논의조차 못했다”며 “우리가 30년동안 외치고 많은 국민들이 함께했던 간절함을 담아 법안이 통과되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에 한발짝 나갈 수 있는 국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 총장은 이날 인도네시아 위안부 피해자인 자헤랑 할머니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혜랑 할머니는 12살에 직물공장 공장장한테 끌려가 일본 군대 위안소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자헤랑 할머니는 이후 곳곳에서 증언하고 위안부 피해문제를 알리다가 지난 11일 오전 9시에 소천했다.

수요집회에는 만 18세로 처음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 청소년들의 발언문을 정의기억연대 관계자가 대신 읽으며 투표를 독려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올바른 지도자를 뽑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올바른 지도자를 뽑아야 하며 할머니들이 일본으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지난 지방선거까지도 투표권을 행사한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는 투표 의지는 있으나 이번 총선에서는 투표장에 가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4일 건강상의 이유로 병원에 입원하고 13일에 퇴원했으나 여전히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서울=뉴스1) 최현만 기자 [email protected]

<2020-04-15>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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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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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

수, 2017/08/02-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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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다운로드]


한국 외교부의 어깃장에 강력 항의한다.


중앙일보 2017년 8월 3일자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시절인 지난해 11월 외교부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일본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 행사에 부정적 견해들을 인용한 의견서(이하 외교부 의견서)를 대법원에 전달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2012년 5월 24일 대법원은 1965년의 한일 청구권협정과 상관없이 일본 기업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을 내렸다.

외교부 의견서는 대법원의 판결 취지를 사실상 부정하고 있어 피해자들과 피해 회복을 위해 싸워온 시민단체로서는 분노와 함께 절망감을 떨칠 수 없다. 지난 5년간 피해자들은 대법원이 최종 확정판결을 내리길 손꼽아 기다렸다. 그 사이 피해 당사자 원고들은 모두 돌아가셨다. 확정판결이 이렇게까지 늘어진 데는 일본기업의 지연 전술이 있었다. 그러나 항간에는 한국정부가 방해하고 있어 늦어지고 있다는 강한 의혹도 돌았다. 그런데 이번 보도로 그것이 의혹이 아니라 사실임이 확인됐다. 그동안 외교부가 강제동원 피해자를 위해 일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으나 이제 그걸 수정해야겠다. 일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일을 방해했다고.

외교부 의견서를 보면서 지난 2002년 외교부가 한일협정 문서 공개를 거부하면서 내세운 ‘악명 높은’ 답변이 떠오른다. 문서를 공개했을 때 한일 관계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답변을 받아보고서 우리는 한국 외교부가 일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본 외무성 한국지부가 아닌가 착각했다. 외교부 의견서 역시 같은 기조에 서있다. 불리하면 새로운 논리를 개발해서라도 자국 피해자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자 국가의 의무 아닌가.

국제관계라는 것이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문제는 형세가 불리하거나 논리가 부족하더라도 피해자를 위해 일하려고 노력하고 있느냐이다. 피해자들로서는 그것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될 것이다. 정 안되면 하는 척이라도 해라. 그게 국가가 존재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하에서 외교부는 무엇을 했나. 피해자와 시민단체가 유골 조사와 봉환 문제를 비롯해서 노동자의 통장 반환 문제, 야스쿠니문제 등을 두고 일본정부와 씨름을 할 때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배상 판결까지 부정하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했으니 도대체 누구를 위해 일하는 기관인가. “이게 나라냐”라는 비난이 달리 나온 것이 아니다.
최근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놓고 외교부는 피해자 중심주의에 서서 해결책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국가에 의해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들이 피해를 극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나갈 수 있도록 국가가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모든 국가가 지켜야할 국제법의 한 원칙이기도 하다. 이 원칙은 위안부 피해자분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권피해자들에게 적용되며 일제에 의한 강제동원 피해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국가는 자국민의 인권보장을 위해 외교적으로 필요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이번 외교부 의견서가 보여주는 것처럼 책임회피에 급급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외교부가 지고의 가치라고 여기고 있는 1965년의 한일 청구권협정 역시 인권과 정의에 기초하여 재검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해방 후 7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신음하며 절규하는 피해생존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제의 폭압적인 통치하에서 이들이 어떠한 경위로 동원되어 비인간적인 조건하에서 인권유린을 당하고 일제의 침략전쟁이 끝난 다음 어떤 과정을 거쳐 귀국했으며, 돌아가신 경우 사망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밝히고, 유골이라도 수습해 생사도 모르는 가족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일차적인 책임은 모두 일본 정부에게 있다.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이러한 피해자들의 권리를 대변하기 위해 진지하게 과거를 성찰하고 성실하게 진실을 규명해 이들이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당당하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돕는 데 있다. 형식적인 법 논리를 들이대며 궁색하게 잘못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을 변명하면서 ‘어쩔 수 없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것은 법을 말하곤 있지만 힘의 논리만이 정의라는 법과 인권을 부정하는 인식과 다를 바 없다. 잘못된 시대, 잘못된 정부에 의해 잘못된 합의가 피해자들의 삶을 또다시 유린한다고 한다면 이를 바로 잡는 일은 이 시대에 바로 오늘 제대로 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비판의 화살이 국정을 농단한 주범들에게만 겨냥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국정 농단을 가능하게 했던 수많은 ‘아이히만’들에게도 그 화살이 겨눠져 있다. 외교부라고 여기서 비껴갈 수 없을 것이다. 외교부의 아이히만들이 바뀌지 않는 한, 그리고 뼈를 깎는 반성과 혁신이 없는 한, 한국 외교의 미래는 없다. 변화는 피해자들에게 사죄를 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다시 묻는다. 한국 외교부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 기관이며, 관료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들인지를. 이제 당신들이 답변할 차례다.


2017년 8월 4일
민족문제연구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금, 2017/08/0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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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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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귀 언론사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2. 2017년 8월 12일,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일본 도쿄에서 ‘천황제’와 야스쿠니신사에 반대하는 촛불행동을 진행합니다. 올해 도쿄 촛불행동은 2018년 메이지유신 150년을 염두에 두고 “동아시아의 시점에서 ‘메이지유신 150년’을 다시 묻는다.”는 주제로 열립니다. 2006년부터 매년 8월 도쿄에서 개최되어온 이 행사는 이제 일본 시민사회에서 평화집회의 새로운 전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이 행사에 대한 우익들의 노골적인 방해와 위협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격렬해지고 있습니다.

3. 현재 일본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아베 신조 일본총리는 올해 안에 ‘전후체제’를 끝내고 ‘새로운 일본’으로 나아가겠다는 포부를 공공연히 밝혀왔습니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일본정부는 국민 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쟁법’과 ‘공모죄’를 잇따라 성립시켰으며 그토록 염원하던 평화헌법의 개정을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4. 아직도 일본은 자신들이 저지른 ‘침략전쟁’과 ‘식민지지배’를 반성하지 않고 전쟁책임을 부정하는 역사왜곡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야스쿠니신사입니다. 야스쿠니신사는 아시아·태평양전쟁시기에 일본인들에게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전쟁동원을 합리화하는 역할을 한 ‘침략신사’입니다. 이곳에는 지금도 일본의 침략전쟁에 동원되어 희생당한 조선인 21,000여명이 합사되어 있고, 야스쿠니신사는 희생당한 가족의 이름을 빼달라는 한국 유족들의 요구를 여전히 묵살하고 있습니다.

5. 많은 관심과 취재를 부탁드립니다.


※ 행사 세부일정
1) 때 : 8월 12일(토) 오후 1시30분

2) 곳 : 도쿄 한국YMCA 지하 스페이스 Y (http://www.ymcajapan.org/ayc/hotel/jp/access-access.html)

3) 심포지움 “동아시의 시점에서 ‘메이지유신 150년’을 다시 묻는다’

・다카하시 테쓰야(동경대 교수): 아베정권은 무엇을 노리고 있는가?
・하라 다케시(방송대 교수): 천황의 대물림과 ‘메이지 150년’
・남상구(동북아역사재단) : ‘동양평화’ 확립의 시점에서 본 일본-아베 총리의 역사인식

4) 유족증언 : 한국, 일본 유족

5) 콘서트 : 고토부키, 손병휘, 이정열

6) 19:00 ~ 촛불행진 출발

목, 2017/08/10-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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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영화 ‘군함도’의 모든 것이 담긴 ‘군함도’ 무비멘터리 ‘1419일, 필사의 여정’이 14일 밤 9시 채널CGV를 통해 방송된다.

‘군함도’는 일제 강점기, 일본 군함도(하시마, 군함 모양을 닮아 군함도라 불림)에 강제 징용된 후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는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0717-24

‘군함도’ 무비멘터리는 딸과 함께 군함도에 오게 된 악단장 ‘이강옥’ 역 황정민의 내레이션을 바탕으로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촬영 현장의 생생한 비하인드 스토리와 작품에 임한 배우들의 진솔한 이야기, 전에 없던 초대형 규모의 세트 제작 과정이 모두 담겨 있어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치열한 촬영 현장 속에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촬영에 함께한 류승완 감독과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 김수안의 모습은 이들의 완벽한 호흡을 엿볼 수 있다.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1945년 군함도의 내부와 외부를 고스란히 재현해 영화의 비주얼을 완성한 제작진의 노력과 이러한 세트 제작 과정을 담아내 눈길을 끈다.

류승완 감독은 “촬영장이 너무 리얼해 어느 장소에서 촬영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군함도’는 일제강점기 수많은 조선인들의 강제 징용이 있었던 숨겨진 역사를 모티브로 류승완 감독이 새롭게 창조해낸 이야기이며, 파워풀한 캐스팅이 더해진 2017년 최고 기대작으로 오는 7월 26일 개봉한다.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곽명동 기자 [email protected]

<2017-07-14> 마이데일리

☞기사원문: ‘군함도’ 오늘(14일) 채널CGV서 무비멘터리 ‘1419일, 필사의 여정’ 방송

※관련기사

☞KNS뉴스통신: ‘군함도’ 무비멘터리 ‘1419일, 필사의 여정’ 방송 채널CGV서 방송

☞서울경제: ‘군함도의 모든 것’ 오늘(14일) 채널CGV 무비멘터리 방송

☞이슈데일리: ‘군함도’ 오늘(14일) 무비멘터리 방송…비하인드 스토리 공개

월, 2017/07/1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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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차 맞은 대전수요문화제


“굴욕적 한일합의 당장 무효화하라!”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반대한다!”
“한미일 군사동맹 반대한다!”
“역사적폐 끝까지 청산하자!”

7월 12일, 20차를 맞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한반도 평화 실현! 대전수요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외친 구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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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2일 저녁 7시, 대전평화의 소녀상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한반도 평화 실현! 대전수요문화제”가 20차를 맞았다.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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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폐청산, 민족통일’ 구호를 함께 외치자며 선창을 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 박해룡 지부장. ⓒ 임재근

첫 번째 발언에 나선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박해룡 지부장은 “사람이 살면서 3가지 만남이 필요하다”며, 이 3가지 만남을 ‘자기 자신과 냉철한 만남’, ‘국민의 자존심과 국가의 권위도 살릴 수 있는 역사와의 만남’, 그리고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라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회와의 만남’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런 만남을 위해 여기 오신 분들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더불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적폐청산이고, 더불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통일이라며 ‘적폐청산, 민족통일’ 구호를 함께 외치자며 선창하기도 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카이스트 내에 작은 소녀상 건립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힌 카이스트 소셜메이커의 정지윤 학생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저지른 문제에 대해서도 사과할 줄 알이야 한다”며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성노예 범죄 해결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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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연리지 장애가족협동조합 회원과 조합원들도 발언에 나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 임재근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 ‘피플큐브’의 최준호, 김관영 회원과 연리지 장애가족협동조합 백장현, 김요진 조합원도 함께 무대 앞으로 나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최준호씨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참상이 SNS를 타고 퍼지는데도 일본은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며, “이것은 정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돈 몇 푼이 아니라, 진정한 사과”라며 “일본은 고개를 숙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백장현씨는 “위안부 범죄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될 가혹한 일”이라며,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라”고 외쳤다.

김관영씨도 “일본이 용서를 구하고, 국가에서 사과문을 전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요진씨는 ‘난 알아요’ 곡으로 노래공연을 펼쳐 큰 박수를 받았다.

대전청년회 김원진 대표도 발언에 나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더불어 강제징용 문제도 해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원진 대표는 군함도로 대표되는 강제 징용의 사례를 들며, “일본을 제외한 나라들에서는 강제징용과 관련한 사실과 끔찍했던 광경들을 알고 있는데, 당사자인 일본만 피하려고 한다”며 일본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대전청년회에서는 군함도 강제징용의 참혹했던 피해 상을 고발하는 전시물을 직접 만들어 문화제 주변에 전시했고, 올해 11월에는 군함도를 직접 다녀와 강제징용 여론을 확산시킬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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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함도 강제징용 관련 전시물을 보고 있는 참가자들과 시민들. ⓒ 임재근

보릿고개에 입 하나 덜자고 나선 길이었다.
떨어져 살아도 고향 쪽 하늘 바라보면
엄마도 이쪽을 바라보겠지
그렇게 떠난 길이었다.
한 줌 빛줄기 들지 않는 열차 속에서
겁먹은 표정의 앳된 얼굴의 마주 앉은 낯선 아이의 손을
꼬옥 쥐어주며
이제 공장 가면 돈 많이 벌어
고향 집에 흰 눈처럼 소복한 솜옷 보내자 말했을 때
그 아이는
자기는 이불 보내고 싶어요
수줍게 웃었지…

양보규 대전지역 희망노동조합 위원장은 ‘이 땅 위에’란 제목의 자작시를 지어 낭송하기도 했고, 대전청년회 노래모임 ‘놀’에서는 독립영화 ‘우리 학교’ 삽입곡인 ‘우리’와 통일 노래인 ‘경의선 타고’를 부르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과 더불어 통일을 염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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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는 대전민중의힘 소속 단체 대표자들. 왼쪽부터 김원진 대전청년회 대표,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정선 공동대표, 대전장애인부모연대 최명진 대표, 대전민중의힘 상임대표 민주노총대전본부 이대식 본부장, 대전민중의꿈 김창근 상임공동대표,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 박해룡 지부장. ⓒ 임재근

수요문화제는 ‘평화나비대전행동’이 주최하는 데, ‘평화나비대전행동’ 소속 단체들이 돌아가며 주관을 해오고 있다. 이번 달 수요문화제는 대전민중의힘이 주관했고, 소속 단체 대표자들이 함께 나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부르며 마무리했다.

대전수요문화제는 매월 두 번째 수요일 저녁 7시에 대전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개최된다. 다음 수요문화제는 8월 9일에 개최된다.

임재근 기자

<2017-07-1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 모두 가혹하고 끔찍.. 일본은 사과하라”

목, 2017/07/1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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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역적 여름특집] 박주민의원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박한용 실장과 박주민 의원이 만났습니다~!

수, 2017/08/1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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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서] [서문] [주문하기]

항일음악-표지-앞

▲ 양장, 724쪽. 75,000원 / 노동은 편저. 민족문제연구소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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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1-2▲ 노동은(1946~2016)

목원대학교 교수·음악대학장, 중앙대학교 교수·국악대학장, 한국음악학회 회장,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부위원장, 한국음악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하였다. 2016년 12월 2일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한국 근현대 음악 관련 30여 권의 단행본과 400여 편의 논문을 남겼으며 항일음악과 친일음악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 업적을 쌓았다. 1996년 단재학술상을 수상했으며, 2004년 ‘한국의 미래를 열어갈 100인’으로 선정되었고, 2005년 정율성국제음악제 조직위원장을 역임했다.

주요 논문으로 「음악기학」·「가정성과 직관성」·「만주음악연구」·「제국의 음악가 현제명」 등을 발표했고, 『한국근대음악사』, 『경기음악』(京畿音樂)1·2, 『지영희평전』등의 저서를 펴냈다.

♦ 330곡의 연대별수록 곡 수
⓵ 1860∼1900년대 : 83곡
⓶ 1910년대 : 68곡
⓷ 1920년대 : 72곡
⓸ 1930년대 : 63곡
⓹ 1940년대 : 44곡

1. 『항일음악 330곡집』 발간의 의의

항일의 현장에는 국내외 어느 곳이든 항일음악이 있었고, 우리 민족은 항일노래를 함께 부르며 굳건하게 단결했다. 항일음악은 일제침략에 맞서 국권을 회복하고 독립을 이루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모든 노래를 가리키며, 시기적으로는 일제의 한반도 침탈 야욕이 노골화한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부터 1945년 해방까지의 음악이다. 항일음악의 장르는 가요뿐만 아니라 가곡 동요 가극(한유한의 ????아리랑???? 등) 무용(유희 등) 등에 걸쳐 있으며, 군가 혁명가 투쟁가 애국가 계몽가 망향가 추도가 등 여러 형태로 보급됐다.

『항일음악 330곡집』일제침략기 국내와 만주 및 중국 관내, 러시아의 원동, 하와이와 미국 본토, 멕시코 지역 등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노래(악보)를 집대성하고, 연대별로 구분한 최초의 항일노래집이라는데 그 의의가 있다.

또, 국내외에서 부른 항일가 100여 곡을 새로이 발굴해 수록하였으며, 기존에 알려진 노래를 망라하여 총 330곡을 악보로 복원했다. 작사자와 작곡자의 실명 여부, 가사 원문과 출전, 원곡과 출전, 노래의 성격과 유래, 원곡과의 관계, 보급된 지역, 그 밖의 음악적인 특성 등을 밝힌 점도 특기할 만하다.

 

2. 세계적인 명곡을 활용

항일음악은 국내외 항일 현장에서 가사와 곡조를 창작하여 부른 노래도 있지만 다수는 기존 악곡을 개사하거나 편곡해 활용했다. 기존 악곡은 국내 창가나 민요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의 대중적으로 알려진 노래들을 많이 선택했다.

국내의 민요를 차용한 노래로는 「광복군 아리랑」 1(아리랑), 「미나리타령」(도라지), 「광복군 석탄가」(사발가), 「광복군 아리랑」 2(밀양아리랑) 등이 있으며, 창작 민요곡으로는 「기쁨의 아리랑」을 보기로 들 수 있다.

서양 곡조로는 하이든의 「황제찬가」, 베토벤의 「이 어두운 무덤에」(In Questa Tombao Squra), 도니젯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의 아리아, 베를리오즈의 오페라 벤베누토 첼리니』 중 「로만체」(Romanze), 미국의 스티븐 포스터의 「스와니강」, 「켄터키 옛집」, 미국에서 포스터와 쌍벽을 이룬 작곡가 헨리 워크의 「조지아행진곡」(Marching Through Georgia), 「파수꾼이여! 종을 울려라」(Ring the Bell, Watchman) 등을 항일가로 개사하여 불렀다. 특히 진취적이고 용맹한 느낌을 주는 조지아행진곡의 곡조는 경성2, 국문창립기념, 만세가, 구주전장 한인군가, 나라보전, 독립군가1, 보국, 신흥무관학교 교가, 작대, 어린이날 노래, 조선의 자랑등 다수의 항일가와 계몽가로 개사되어 널리 불렸다.

「조지아행진곡」 못지않게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많이 부른 외국곡은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오랜 옛날부터 old long since)이다. 해방 직후까지 “동해물과∼”로 부르는 대표적인 애국가 곡조로 사용되었으며 우리 근현대사에서 민족의 애환을 함께 한 노래라 할 수 있다. 독립을 희원하는 「애국가」로, 「천부여 의지 없어서」라는 찬송가로도, 때로는 ‘졸업가’, ‘망년가’ 등 이별을 노래하는 송가로 불린 감상적인 노래였다. 1900년대 전후로 부른 무궁화가」·애국가」·전씨 애국가, 1910년대의 앞 뫼의 칡같이, 1920년대의 신년축하가조선소년군 단가, 1930년대의 주일학교 교가이 모두 「올드 랭 사인」의 곡조를 쓰고 있다.

또 많이 차용된 곡조는 아일랜드 민요 「여름날의 마지막 장미」(The Last Rose of Summer), 「아! 목동아」(대니 보이 Danny Boy), 독일 민요 「전나무」(O Tanenbaum), 중국 민요 「모리화」 등이다. 특히 여름날의 마지막 장미나의 사랑 한반도, 도산선생 추도가, 사랑하는 자유등으로 개사되어 불렸다.

심지어 적국인 일본의 창가와 군가도 이용했다. 오오노 우메와카(多梅稚) 작곡의 철도창가용진가1, 용진가3, 운동1, 운동2, 전쟁과 우리, 조상을 위해, 학도권면가, 혁명군행진곡으로, 나가이 켄시(永井建子)의 소남공(小楠公)메데가1로, 코야마 사쿠노스케(小山作之助)의 일본해군소년군가로, 세토구찌 토오키찌(瀬戸口藤吉)의 군함행진곡조선물산장려가2, 카미나가 료오게쯔(神長瞭月)하이카라 부시(ハイカラ)용진가2, 조국산수가, 승전가, 대감자 혁명가, 유격대행진곡으로 개사해 사용했다.

 

3. 항일가를 창작한 작사가와 작곡가

『항일음악 330곡집』에 두 편 이상의 작품이 실린 작사가는 안창호(安昌浩), 김인식(金仁湜), 이범석(李範奭), 김여제(金與濟), 이정호(李正浩), 이두산(李斗山), 이용준(李容俊), 김창만(金昌滿), 김학규(金學奎), 신덕영(申悳泳), 이해평(李海平) 이다. 특히 안창호거국행, 격검가, 만나생각, 모란봉가, 소년남자가, 심주가, 애국가1, 학도가2, 한반도, 혈성대1 다수의 항일가를 작사해 계몽가로서 음악의 효용성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을 짐작하게 해준다.

그리고 두 편 이상의 작품이 실린 작곡가는 이상준(李尙俊), 이성식(李聖植), 김인식(金仁湜), 이정호(李正浩), 이두산(李斗山), 정율성(鄭律成), 한유한(韓悠韓, 한형석韓亨錫) 으로 이들은 초창기 한국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한국광복군 제2지대 소속의 한유한은 광복군이 가장 많이 불렀던 광복군 제2지대가」·국기가압록강행진곡」·여명의 노래」·우리나라 어머니」·조국행진곡등을 비롯하여 오페라 ????아리랑????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정율성은 의열단이 설립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졸업한 뒤 루쉰(魯迅)예술학원 음악학부를 다녔으며, 연안송·연수요를 비롯하여 팔로군 대합창을 창작하는 한편 루쉰예술학원에서 성악을 가르쳤다. 1942년 옌안(延安)을 떠나 화북조선혁명군정학교 교육장을 맡고 조국 향해 나가자」 「혁명가등을 창작했다.

 

4. 참고  

1) 국내 작곡가의 창작곡

작곡가 대표곡 (괄호안의 번호는 『곡집』의 연번)
이성식 「격검가」(4), 「학도가」 2(75), 「복수회포」(108, 학도가 편곡), 「독립가」 3(99), 「소년건국가」(110), 「체육」(138), 「창검가」(323)
이상준 「거국행」(1), 「소년남자가」(38), 「의무」(61), 「해」(79), 「깊이 생각」(90), 「우리의 옛 역사」(122), 「제국역사」(129), 「결사전가」 1(154), 「광복군가」 2(289)
이두산 「선봉대」(247), 「광복군가」 1(288)
이정호 「혁명가」 2(277), 「중국의 광활한 대지 위에」(321)
한유한 「광복군 제2지대가」(293), 「국기가」 2(294), 「신출발」(303), 「압록강행진곡」(305), 「여명의 노래」(307), 「우리나라 어머니」(309), 「조국행진곡」(315), 「황하강변의 달」(329), 「흘러가는 저 구름」(330)


2)
항일가를 작사하고 독창한 성악가

성악가 대표곡(괄호안의 번호는 『곡집』의 연번)
이용준 「나라 찾으려면」(298) : 베를리오즈, Opera 벤베누토 첼리니, 1막 로만체
「이동녕선생 추도가」(311) : 베토벤,「이 어두운 무덤에」


3)
연대별 대표적인 항일가

연대 대표곡(괄호안의 번호는 『곡집』의 연번)
1860~1910 「거국행」(1), 「격검가」(4), 「대한혼가」(19), 「무궁화가」 2(29)=「애국가」 4(48), 「새야새야 파랑새야」(36), 「소년남자가」(38), 「애국가」 2(46), 「정신가」(70), 「한반도」 2(77), 「혈성대」 1(81)
1910년대 「국민」 1(86), 「국치일노래」(88), 「내 고향을 이별하고」(93), *독립가4(100), 「신흥무관학교 교가」(112), 「연해주빨찌산가」(117), 「작대」(128), 「피묻은 옷」(140), 「혁명가의 노래」(145), 「효순」(151)
1920년대 「단심가」(169), 「독립군가」 2(170), 「두만강」(172), 「부여의 민족아!」(184), 「31 소년가」(187), 「십진가」(191), 「전기가」(204), 「추도가」 1(214), *태평양가(216), 「혼을 위로하노라」(220)
1930년대 「도산선생 추도가」(235), 「민족해방가」(240), 「선봉대」(247), 「우리 영광 끝 없네」(254), 「자유의 기」(257), 「조선의 노래」 3(264), 「최후의 결전」 1(268), 「혁명가」 2(277), 「혁명객의 아리랑타령」(281), 「혁명군가」 1(282)
1940년대 「광복군가」 1(288), 「광복군 아리랑」 2(292), *기쁨의 아리랑(297), 「압록강행진곡」(305), 「조국행진곡」(315), 「조선의용군 추도가」(320), 「중국의 광활한 대지 위에」(321), 「진군가」(322), 「창검가」(323), 「혁명군가」 2(326)


4)
최초공개 항일가 104

곡번호 곡명 작사자 작곡자
  1860~1900년대
4 격검가 안창호 이성식
37 생욕사영가 정재홍 스코틀랜드민요(올드 랭 사인)
59 우덕순의노래 우덕순 요한 B. 크래머
65 전씨 애국가 전명운 스코틀랜드민요(올드 랭 사인)
75 학도가 2 안창호 이성식
  1910년대
84 개천절가 (미상) 헨리 S. 톰슨
85 구주전장 한인군가 (미상) 헨리 C. 워크
86 국민 1 (미상) 카를 빌헬름
88 국치일노래 (미상) 스티븐 C. 포스터
91 나라보전 (미상) 헨리 C. 워크
92 나라의 한 아버지들 (미상) 독일민요(전나무)
94 다시 산 태극기 (미상) 윌리암 H. 돈
98 독립가 2 (미상) 퍼시 몬트로즈
99 독립가 3 이성식 찰스 록하르트
100 독립가 4 (미상) 헨리 C. 워크
102 동반도 옛집 곽임대 스티븐 C. 포스터
104 만주들 장백산인 지암피에트로 토놀리
109 3·1절가 (미상) 로버트 로우리
114 앞 뫼의 칡같이 (미상) 스코틀랜드민요(올드 랭 사인)
115 어천절가 (미상) (미상)
116 역행가 강영소 루이스 하트소우
120 옥야삼천리 (미상) 요한 C. 린크
122 우리의 옛 역사 (미상) 이상준 원곡
126 자유로 죽고 살아라 기산 아서 F. M. 커스턴스
139 태극기가 창해소년 필립 필립스
140 피묻은 옷 어느 배우 스티븐 C. 포스터
142 학도권면가 (미상) 오오노 우메와카
145 혁명가의 노래 (미상) (미상)
147 협사가 (미상) (미상)
149 환영가 1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에드워드 F. 림볼트
150 환영가 2 (미상) 조지 F. 루트
  1920년대  
153 거기 정순이 쉬는데 동해수부 헤르만 뢰어
157 경성감옥가 (미상) (미상)
158 경축가 2 (미상) 존 B. 다익스
159 고대 은암 시므온 B. 마쉬
160 고향 동원 제임스 L. 몰로이
161 고향 떠나는 길 (미상) (미상)
162 고향생각 (미상) (미상)
168 내 나라 동해수부 토머스 à 베킷
170 독립군가 2  (미상)  (미상)
172 두만강 동원 제임스 I. 러셀
182 반도가(꽃동산반도) 김태연 윌리엄 스테프
184 부여의 민족아! 김창만 루제 드 릴
185 불속에 김창만 빅터 허버트
186 산지조종 태백산 문양목 한국민요(산염불)
192 애국의 피 (미상) 로버트 로우리
194 어머님 생각 (미상) (미상)
198 을지문덕 (미상) (미상)
201 자유의 노래 1 이정대 정사인
204 전기가 (미상) (미상)
205 조선독립가 (미상) (미상)
208 조선반도 (미상) (미상)
209 조선산수가 (미상) 카미나가 료오게쯔
211 조선의 노래 1 (미상) (미상)
213 천도교 청년당가 이광수 (미상)
216 태평양가 동원농부 아브라함 F. 프랑켄슈타인
220 혼을 위로 하노라 김창만 조지 F. 루트
221 흥사단 나아가 이광수 로버트 로우리
222 흥사단 너도나도 김여제 (미상)
223 흥사단 단가 김여제 헨델
  1930년대  
225 고향이별가 (미상) (미상)
226 국민회가 성우 헨리 C. 워크
227 국치가 이화용 토머스 헤이스팅스
228 근화낙원 (미상) 다이엘 D. 에밋
230 기러기 (미상) (미상)
231 나의 사랑 한반도 (미상) 아일랜드민요(여름날의 마지막 장미)
233 대감자 혁명가 (미상) <카미나가 료오게쯔
234 대장간 박세영 맹오영
235 도산선생 추도가 주요한 아일랜드민요(여름날의 마지막 장미)
239 묵경 한인청년가 황보영주 조지 F. 루트
240 민족해방가 (미상) (미상)
243 사랑하는 자유 (미상) 아일랜드민요(여름날의 마지막 장미)
244 3‧1기념가 1 이세창 에드워드 F. 림볼트
245 3‧1기념가 2 (미상) 아더 S. 설리반
248 선현추도가 (미상) 아일랜드민요(아 목동아)
249 송구영신 대암생 찰스 H. 가브리엘
253 우리나라 한석원 (미상)
256 응원가 (미상) 헨리 C. 워크
257 자유의 기 (미상) (미상)
258 전쟁과 우리 김준 오오노 우메와카
259 정숙추도가 죽혈 (미상)
270 추도가 3 유진태 헨리 W. 베이커
271 충의열사 추도가 대암생 조셉 P. 웹스터
274 한양감옥 (미상) 태인수
276 혁명가 1 (미상) (미상)
278 혁명가 3 (미상) (미상)
280 혁명가 5 (미상) (미상)
282 혁명군가 1 (미상) (미상)
283 혁명군의 노래 (미상) (미상)
  1940년대
289 광복군가 2 (미상) 이상준 원곡
295 군도를 높이 들고 (미상) (미상)
296 군민도라지 (미상) 한국민요(도라지타령)
297 기쁨의 아리랑 (미상) (미상)
298 나라 찾으려면 이용준 H. 베를리오즈
299 무궁화 (미상) (미상)
302 승리의 깃발 배항진 장춘성
310 우리는 조선의 전사 (미상) (미상)
311 이동녕선생 추도가 이용준 루드비히 판 베토벤
313 전가 (미상) (미상)
321 중국의 광활한 대지위에 이정호 이정호
322 진군가 (미상) (미상)
323 창검가 (미상) 이성식
324 처의 명상 (미상) (미상)
326 혁명군가 2 안정송 로버트 로우리

 

※ 참조
『항일음악 330곡집』에 수록된 항일음악 중 5곡의 공연영상을 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영상보기 클릭). 이 5곡은 지난 2011년 11월 열린 ‘항일음악회’(주최: 신흥무관학교100주년기념사업회, 주관: 항일음악회조직위원회·민족문제연구소, 후원: 국가보훈처)에서 공연한 20여 곡 중 선별한 노래입니다. 당시 노동은 교수가 항일음악회조직위원장을 맡아 행사를 지휘하였습니다.

▶ 항일음악회 연주 노래

048-애국가 4, 작사 한국인 공동, 작곡 스코틀랜드 민요, 1900년대
048_애국가4

305-압록강행진곡, 작사 박영만, 작곡 한유한, 1940년대

305_압록강행진곡

목, 2017/08/1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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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길게 줄을 선 사람들.


대통령이 일하는 곳, 청와대를 보러 온 관람객들입니다.


<인터뷰> 홍영수(경기도 고양시) : “주말에는 6개월 치가 다 예약이 마감돼 있었고,(이것도 방학이라서) 평일 날은 좀 어려웠어요. 간신히 했어요.”


1시간 반가량 청와대 곳곳을 둘러보는 관람 코스.


제한된 장소에선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 후원엔 관람객들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문화재가 한 점 있습니다.


바로 통일신라시대 불상입니다.


<인터뷰> 신상빈(경기도 용인시) : “못 봤어요. 아예 못 봤어요. 코스에 없나 본데.”


<인터뷰> 홍순(인천시 서구) : “저희는 가족들이 놀러 다니면서 이런 불상도 많이 보는데 여기서는 못 본 것 같아요. 확실히.”


이 불상은 최근 한 시민단체가 원래 위치로 되돌려 달라는 진성서를 청와대에 내면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인터뷰> 혜문(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 “(불상이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겁니까?) 아닙니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통일신라 불상이 왜, 언제부터, 청와대 안에 있게 된 걸까?


청와대 직원들조차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보안구역에 있다는 불상.


직접 본 사람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더더욱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는데요.


청와대 불상에 얽힌 길고도 복잡한 사연을 들여다봤습니다.


청와대 후원 숲 속, 보호각 아래 다소곳이 앉아 있는 석조 불상.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만들어진 석조여래좌상입니다.


불상의 높이는 1.16m.


석굴암 본존상의 축소판으로 불릴 정도로 빼어난 예술성을 보여주는 보물급 문화재로 꼽힙니다.


<인터뷰> 박임관(경주학연구원 원장) : “양어깨가 딱 벌어지고 가슴이 볼륨이 있고 그다음 무르팍이 아주 크게 웅장하게 되어 있어서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불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빼어난 작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불상은 관람이 쉽지 않습니다.


대통령 관저에서 가까워 일반인의 접근이 철저하게 금지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 화면 역시 지난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찍은 것으로, 그 뒤로는 단 한 번도 촬영 허가가 난 적이 없습니다.


취재진이 청와대에 불상을 직접 찍을 수 있는지 물었지만 보안 문제 때문에 안 된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최근에 불상을 직접 본 사람은 없을까?


수소문 끝에 취재진은 문화유산 답사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강대철 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강 씨가 청와대에서 불상을 직접 본 때는 2015년 11월.


아주 우연한 기회에 청와대 불상을 가까이서 관찰하고 사진도 찍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불상의 옆 모습과 뒷모습을 담은 사진입니다.


1000년이 넘는 세월에도 보존 상태가 좋다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 강대철(옛문화답사회 대표) : “딱 보니까 석굴암의 본존불 생각이 딱 나더라고요. 당당한 자세라든가 또는 조각기법, 그다음에 전체적인 느낌 같은 것이 상당히 가치 있는 문화재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이렇게 좋은 작품이 좀 더 대중들한테 보여졌으면 좋겠는데 외롭게 여기 계신가 하는 생각이 좀 많이 들었죠.”


통일신라 불상이 청와대에 있게 된 이유는 뭘까?


불상 앞에 놓인 돌에는 경주 남산 절터에 있던 것을 일제 때 옮겨온 거라고 적혀 있습니다.


불상이 처음 있었던 자리를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신라의 천년 고도, 경주 시내에서 20여 분 거리에 있는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


논밭을 지나 마을 뒷산 쪽으로 걸어 올라가자, 산 아래 탁 트인 지형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신라시대에 ‘이거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여겨지는 장소입니다.


1,000년이 훌쩍 넘는 세월에 무너져 내린 석탑만 황량한 절터를 지키고 있습니다.


청와대 불상의 고향을 이곳으로 보는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

는 1939년에 작성된 조선총독부 문서.


당시 일본인이 남긴 경주 출장 보고서를 보면, 이 불상은 본래 경주군 내동면 ‘도지리’의 절터에 있던 것을 옮겨온 거라고 돼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이곳에선 도지마을, 도지동이란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또 다른 근거는 삼국사기의 기록.


삼국사기 신라본기 성덕왕 조를 보면, 737년에 왕이 돌아가시자 ‘이거사’ 남쪽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인터뷰> 박임관(경주학연구원 원장) : “성덕왕릉의 북쪽에 이거사가 있다는 건데 북쪽에 절터는 이곳이 거의 유일한 절 터이기 때문에 이거사가 정확한 걸로 보고, 이곳에서 청와대에 있는 미남 불상을 옮겨갔다, 이렇게 보고 있죠.”


이 불상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은 한일병합 늑약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초대 총독이 된 데라우치 마사타케.


1912년 말 경주를 방문한 데라우치는 한 일본인의 집 정원에서 잘생긴 불상 한 점을 만납니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조선총독부 문서를 보면, 데라우치 총독이 불상을 거듭 되돌아보며 유심히 살피자, 집 주인이 총독의 의중을 눈치채고 불상을 즉시 경성(서울)의 총독관저로 보냈다고 기록했습니다.


총독 진상품 신세가 된 불상이 경주를 떠나 처음 도착한 곳은 서울 남산의 총독 관저.


남산 북쪽 길을 따라 남산공원 방향으로 오르다가, 지난해 새롭게 조성된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안으로 발을 들여 놓으면, 치욕의 역사를 보여주는 비석이 서 있습니다.


통감 관저, 훗날 총독 관저가 있던 자리입니다.


이 터 옆을 자세히 보면 절벽 아래 깎아지른 바위가 있습니다.


바로 이곳이 불상이 옮겨졌던 장소입니다.


1913년 2월 데라우치는 자신의 일기에, 불상을 절벽 바위 아래 안치하고, 개안식을 열었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취재 과정에서 입수한 한 장의 사진.


일본 관리들 사이에 불상의 얼굴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이순우(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 “그 기록이 분명히 남아 있기 때문에 그렇고 그래서 그 당시 위치는 사진 자료도 있습니다만 일단 총독관저 이웃한 절벽 아래쪽에 있다고 그랬거든요. 큰 나무면서 절벽 아래니까 저기 바로 보이는 저 위치라고 보실 수가 있는 거죠.”


이후 1927년 총독 관저가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새로 지어지면서 불상도 함께 옮겨진 겁니다.


그 뒤 1934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불상에 관한 기사가 실립니다.


불상을 ‘미남석불’이라 부르고, “오래전 자취를 감췄던 경주의 보물”이라며 상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 뒤 8.15 해방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까맣게 잊혔던 불상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건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기자인 이구열 소장.


1973년에 초판을 펴낸 <한국문화재 수난사>란 책에 통일신라 불상의 기구한 사연을 상세하게 소개했습니다.


<인터뷰> 이구열(미술사학자) : “우리로선 문화재 수난의 참 하나의 사례죠.근데 어쨌든 그렇게 됐던 건데 그게 일본으로 건너가지 않고 경주에 있다가 서울에 와서 지금 청와대에 있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에요. 그때 많은 것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도 많거든.”


다시 세월이 흘러 청와대 불상이 세간의 이목을 끈 때는 지난 1994년.


구포역 열차 전복부터, 아시아나 여객기 추락, 서해 훼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충주호 유람선 화재까지…


갖가지 대형참사가 잇달아 터지며 민심이 흉흉해지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 불상을 치워버린 게 화근이 됐다는 등 온갖 유언비어가 나돌았습니다.


급기야 청와대가 출입기자단에 불상이 멀쩡하다는 사실을 공개하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집니다.


해방 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식민지 시대의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청와대 통일신라 불상.


그동안 제자리로 되돌려달라는 숱한 요구가 있었지만, 아직 달라진 건 없습니다.


<인터뷰> 이순우(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 “(불상이 청와대에 있어야 할 이유가 하나라도 있습니까?) 전혀 없죠, 당연히. 그것은 뭐냐면 불상 자체는 워낙에 우리가 잘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죠. 그런데 우리 한국을 강제 병합했던 바로 그 당사자인 데라우치 총독의 손을 거쳐서 그 불상이 지금 총독관저에 옮겨지게 됐고, 바로 그다음에 총독관저 옮겨지는 거에 따라서 청와대에 들어갔지 않습니까? 그거는 전형적인 일제잔재의 한 유형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광복 72주년을 맞은 올해 시민단체가 또다시 문제 제기에 나섰습니다.


청와대에 있는 불상을 원래 자리인 경주로 돌려보내 달라는 진정서를 청와대에 낸 겁니다.


<인터뷰> 혜문(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 “과거사에 대한 청산, 과거 권위주의적인 시대 청와대의 모습에서 탈피하고 적폐청산을 강조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새 정부 출범과 더불어서 청와대 불상이 원래 제자리로 돌아간다면 과거 시대와 다른 새로운 시대의 청와대의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고 굳게 닫혀 있던 청와대 문을 활짝 열겠다고 약속한 새 정부.


여기에 맞춰 청와대 불상도 과연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김석기자 ([email protected])


<2017-08-20> KBS

☞기사원문: ‘청와대 불상’ 경주 가나?



※관련기사

KBS: ‘아픈 역사’ 청와대 석조불상…경주로 이전?

월, 2017/08/21-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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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가기 [텀블벅 펀딩]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사라져가는 기억을 위해 집을 지어주려 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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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남쪽, 나가사키 항에서 약 1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하시마(군함도)는 야구장 두 개 정도 크기의 작은 섬입니다. 1916년 일본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이 세워져 근대화의 상징으로 불렸던 이 섬은 좁은 섬에 근대식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서는 모습이 마치 군함처럼 보여 그때부터 ‘군함도’라고 불렸습니다. 과거의 영화를 그대로 간직한 그 섬에서 과연 누가 살았을까요?

지상에서 일하는 일본인과 달리 강제동원 된 조선인 노동자들은 지하에서 석탄을 캐야 했습니다. 그 지하는 숨 쉬기조차 어렵고 몸을 펼 수 없을 만큼 좁았으며, 식량과 식수조차 주어지지 않는 말 그대로의 지옥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석탄 채굴을 위해 강제동원 되었지만, 그곳에서 죽어간 사람들에 관한 기록은 단 한 줄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한때 조선인 희생자들의 유골이 담긴 항아리가 족히 10개는 넘게 들어 있다는 납골당과 공양탑은 지금은 파괴되어 들여다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일본이 ‘근대화의 상징’, ‘자랑스러운 세계유산’으로 포장하려는 군함도(하시마)는 일본의 근대화가 강제징용 된 조선인들의 무덤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었습니다. 0712-3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많은 나라들이 과거를 돌이켜보며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역사적으로 평가를 내리고 정리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어떨까요? 우리는 아직도 친일문제가 분명하게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습니다. 한일 과거사를 청산하고, 굴절된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반민특위 정신을 이어받고,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설립되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한일 과거사 문제뿐만 아니라 박정희기념관 건립 저지, 친일파기념사업 저지와 같은 다양한 활동과 전시회를 통해 국민들에게 과거사 청산의 당위성을 알리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이제 행사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민족문제연구소가 꾸준히 모아온 자료를 시민들과 함께 공유하며 우리의 과거를 제대로 바라보고 기억하기 위해 2018년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건립하려 합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의 건립은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부지를 정했지만,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박물관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 많은 것들이 부족합니다. 0712-4 Print

일본은 한일 과거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근거 없음’이라고 주장합니다. 과거에 동아시아에서 침략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도리어 동아시아 안보를 지키는 파수꾼이라 자처합니다. 게다가 일본은 일제 침략 이후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진 한국의 상황을 토대로 경제부흥을 이끌었지만, 전후 보상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강제동원의 역사를 부정하는 발언을 그치지 않습니다. 한국정부는 그렇다면 자기 역할을 제대로 했을까요? 한국정부 역시 일본정부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한국정부는 국민적 합의 없이 한일협정을 진행해 그 청구금을 경제발전의 재원으로 사용한 바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위안부 합의 역시 당사자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진행하여 피해자들에게 다시 한 번 눈물을 쏟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곁에는 과거를 부정하는 세력들에 저항하며 물러서지 않고 목소리를 내온 역사의 산 증인들이 살아 계십니다. 그러나 역사의 산 증인이신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며 과거를 증명하는 목소리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조금씩 사라지고 흩어져가는 기억들을 이제 한 곳에 모아 모든 이들이 함께 기억하고, 세대를 넘어 기억을 전달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지어주려 합니다. 이 기억들이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시민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시민들이 함께 모여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건립하여 제대로 된 역사 인식과 함께 역사를 통해 성찰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합니다.

역사의 참혹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민의 귀에 닿도록 만든 것은 피해자의 용기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용기가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도록 곁에서 도운 것은 한국에서 조직된 시민들의 힘이었습니다. 역사는 시민의 것입니다. 강한 자들이 제멋대로 헝클어놓은 역사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기 위해,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이제 역사 위에서 성찰하기 위해 시민의 힘이 필요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을 통해 과거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역사로 나아가기 위한 큰 길을 내고 싶습니다. 함께 동참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수, 2017/07/12-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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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다운로드]

국정교과서 부역자에 대한 인적 청산,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1. 최근 교육부의 김연석 과장이 인천의 한 중학교 교장으로 발령이 났다가 철회된 것을 두고 일부 보수 언론을 비롯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두 야당이 ‘전 정부의 정책을 맡았던 실무 공무원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었다’고 호들갑을 떠는 코미디를 연출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4월 한국교원대학교 사무국장 발령을 받았다가 학교 구성원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자 이준식 전 교육부 장관이 학술원으로 전보 조치한 박성민 부단장까지 거론하며 두 사람을 정권교체의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파렴치한 작태를 보이고 있다. 두 야당과 보수 언론은 두 사람을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와 ‘복종의 의무’ 규정에 따라 주어진 업무를 성실히 수행한 ‘실무 공무원’으로 정의하며, 이들에 대한 발령 취소나 전보가 선량한 공무원들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한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공무원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라는 망발도 서슴지 않는다.

2. 우리 헌법 7조는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라고 하여, 공무원의 법적 지위·책임·신분과 정치적 중립성 등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은 그 임용주체가 국민이고, 그 직무가 공공성을 띠기 때문에 특정인이나 특정의 당파·계급·종교·지역 등 부분이익만을 대표하여서는 아니 되고, 국민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봉사해야 한다. 국민은 국가권력을 이들에게 신탁(信託)한 주권자이기 때문에,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公僕)이어야 하는 것이다.

3. 한국갤럽이 작년 12월 2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을 찬성한다는 응답자는 17%에 불과했다. 반대 의견이 67%, 유보한다는 답변이 15%로 나타났다. 국정교과서 현장 검토본이 공개된 후 여론조사에서 내용이 적절하다는 반응은 11%에 그쳤고, 71%는 부적절하다고 응답했다. 국민 절대 다수가 국정교과서 추진 자체에 반대하고 서술내용 또한 부실하다는 데 동의한 것이다.

4. 이런 여론조사 결과를 접하고서도, 교육부 고위 공무원인 두 사람이 지난 2년 동안 박근혜 정권이 밀어붙인 국정교과서 정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사실을 되돌아보면, 이들이 ‘국민의 공복’이 아니라 ‘정권의 충견’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결코 ‘선량한 실무 공무원’이 아니라, 중립의무를 저버리고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거역한 ‘불량한 어용 공무원’이었던 것이다.

5. 김연석은 박근혜 정권이 국정화를 강행하던 2015년, 역사교육지원팀장, 국정화 추진 비밀 T/F팀 기획팀장,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 기획팀장을 연이어 맡았던 인사이다. 그가 거쳐 간 조직은 총리령으로 급조된 것으로 국정교과서 제작을 위해 만든 기구들이었다. 특히 그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공무원임에도 불구하고 2015년 국정감사 당시에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만 기존 한국사 교과서를 좌편향으로 정의한 ‘색깔론 보고서’를 작성해 몰래 전달하기도 했다. 직속상관인 장·차관의 결재도 받지 않은 이 행위에 대해,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 교문위원들은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한 것이라고 강력 항의하고 질책한 적이 있다.

6. 박성민 역시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 부단장으로 국정교과서 추진의 핵심 인사였다. 고위 공무원 신분인 박성민은 새누리당 전희경 의원의 주관한 국회 토론회에 참석하여, 자신이 부임한 후 1년 동안 국정교과서 작업을 총괄하면서 ‘전혀 부끄럽지 않게 작업했다’고 말했다. 학계의 ‘국정교과서가 오류투성이의 균형감각을 상실한 편향적인 역사책’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공연히 ‘시비를 건다.’며 조롱했다. 게다가 역사교사들이 수능 필수가 아니라서 ‘설렁 설렁 수업을 한다.’거나 학생들이 ‘촛불집회 한다니까 우르르 가서 막 이야기한다.’ 등의 막말로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 속에서 진행되는 촛불집회를 폄하하고 역사교사들과 학생들을 모욕했다. 박성민 역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심각하게 위반한 대표적인 인사다.

7. 지난 3월 17일 대구지방법원은 문명고등학교 학부모가 낸 ‘연구학교 지정처분의 효력 정지 신청’을 인용하였다. 법원은 문명고가 국정교과서를 주교재로 하여 역사수업을 진행함으로써 학습자인 학생들의 인격발현과 학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면서, 그 근거로 학생의 학습권 및 학부모의 자녀 교육권은 결코 희생되어서는 아니 되는 “헌법상 보장되는 중요한 기본권”이라는 점을 들었다. 불법, 탈법, 위법, 꼼수로 점철되었던 국정교과서 제작에 충성을 다한 김연석과 박성민은 ‘헌법 가치’인 학생의 ‘학습권’과 부모의 자녀에 대한 ‘교육권’을 침해하는 데 일조한 ‘범법자’인 것이다.

8. 최근 문재인 정부의 각 부처는 과거 정부의 정책 중 국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진행했던 정책을 되돌아보고 같은 실수를 방지하기 위한 TF를 꾸리고 있다. 외교부는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TF’를, 통일부는 ‘정잭 검증 TF’, 문체부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 TF’를 각각 구성했다. 심지어 국정원도 ‘국정원 적폐청산 TF’를 구성해 이전 정권의 적폐를 밝히는 데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9. 반면 ‘역사쿠데타’의 주역인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는 대 국민 사과는 물론 적폐 청산을 위한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준식 전 장관은 어떤 정치적 책임도 지지 않고 퇴임사에서 ‘국정교과서가 최선은 아니었다.’는 한마디만을 남기고 다시 서울대 명예교수로 돌아갔다. 이영 전 차관은 퇴임식에서 국정교과서를 추진했던 시기를 ‘힘들었지만 보람 있는 시간’이라 말하고 한양대 교수로 돌아갔다. 전 교육부 차관 김재춘 역시 현재 한국교육개발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10. 교육부뿐만이 아니다. 집필진 구성, 집필기준 작성, 그리고 탈법 감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실무를 맡았던 국사편찬위원회의 진재관 편사부장, 박덕호 역사교과서 편수실장도 국정교과서 폐기 이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바뀌었지만, 국정화에 찬성하였던 뉴라이트 성향의 위원들은 아직도 뻔뻔스럽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들은 출세를 위해 기꺼이 정권의 ‘충견’이 되어 주권자인 국민이 반대하는 국정교과서 정책을 밀어붙임으로써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고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 ‘역사의 죄인’이다.

11. 그러는 사이 국정화 추진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교육부 관료들은 오히려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범법자’들을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나서서 비호하고 있는 형국이다.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는 시대착오적인 야당과 보수언론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국정교과서 부역자에 대한 강도 높은 인적 청산을 함으로써, 교육적폐 청산을 바라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끝>


2017년 8월 21일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월, 2017/08/2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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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역적 여름특집2] 도쿄 야스쿠니 반대 촛불행동에 가다

목, 2017/08/2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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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보기] * 각 목차를 클릭하시면 해당페이지로 이동합니다.

201706-1

월, 2017/08/2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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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군함도 개봉 기념 국내외 팬클럽 연합해 기부…송중기도 영화 촬영당시 2천만원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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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송중기가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영화 ‘군함도’ 제작보고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배우 송중기의 국내외 팬들이 영화 군함도의 개봉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12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인 나눔의집에 1200만원을 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나눔의집은 “이번 기부는 잊지 말아야할 아픈 역사를 재조명하는 영화의 메시지와 ‘배우 송중기’를 비롯하여 영화에 참여한 모든 분들의 마음을 기억하고 싶은 취지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왔다”면서 “일본군 ‘위안부’ 및 강제동원의 희생자분들을 기리고 생존자 분들께 미력하게나마 도움이 되고자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밝혔다.

이번 모금을 결성한 ‘송중기팬연합’은 국내 ‘송중기 갤러리’, ‘공식 팬클럽 키엘’을 비롯한 중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등의 해외 팬덤들과 국내 외의 많은 팬들이 참여했다.

‘송중기 팬연합’은 나눔의 집 외에도 <시민역사박물관> 건립을 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에도 후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우 송중기는 지난해 10월 18일 영화 ‘군함도’ 촬영 당시 2천만원을 나눔의집에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7-07-13>

☞기사원문: “아픈 역사 잊지 않겠다” 송중기 팬들 나눔의집에 1200만원 기부

※관련기사

☞YTN: ‘군함도’ 개봉 기념하며 송중기 팬들이 한 따뜻한 선행

☞TV리포트: ‘군함도’ 송중기 이어 팬 연합도 ‘나눔의집’에 1200만원 기부 ‘훈훈’

☞스타뉴스: “‘군함도’ 응원”..송중기 팬연합 1700만원 기부

월, 2017/07/1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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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광복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는데요.

광복 80주년까지 4년 남은 지금, 더 늦기 전에 생존 애국지사의 모습을 남기는 작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철희 기자가 만났습니다.

[기자]

광복군으로 활동하며 독립을 위해 싸웠던 김영관 애국지사.

어느덧 올해 98살이지만 또렷한 말투에선 자긍심이 넘칩니다.

1944년, 만 20살에 경성사범대를 다니다 일본군에 징집돼 중국 저장성으로 끌려갔습니다.

일본을 위해 싸울 수 없다는 마음으로 목숨 걸고 부대를 탈출해 가까스로 광복군에 합류했습니다.

[김영관 / 애국지사 : 태극기를 앞세우고 우리를 마중을 왔더라고요. 저는 그 태극기를 보고 하염없이 그냥 눈물 흘리고 감격을 느꼈습니다. ‘아, 내가 저 태극기를 위해서 여기까지 목숨 걸고 왔구나.’]

그로부터 2년 뒤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여생은 후대에 올곧은 저항 정신을 남기는 데 쏟자고 다짐하고 기념사업회를 세워 일하고 있지만, 갈수록 독립의 정신이 흐려지는 사회가 안타깝습니다.

지사로서의 삶 역시 쓸쓸히 잊히는 건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김영관 / 애국지사 : 역사를 잊은 민족이나 국가에는 미래가 없다. 또 역사적 사실, 역사적 팩트를 잊어버리면, 외면하면 똑같은 일이 또 되풀이된다. 이런 엄혹한 현실을 잊지 말고….]

김 지사와 같은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이들이 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으로 유명한 김운성, 김서경 작가가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생존한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남기는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3D 프린터 등을 이용해 애국지사의 두상과 손발의 형상을 남기는 겁니다.

[김서경 / 작가 : 기록물을 모은다고 생각을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게 언제 어떻게 발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살아계신 분들을, 다 돌아가시기 전에 저희가 기록하는 게 무척 중요할 것 같아서….]

첫 번째 주인공은 김영관 지사.

단순히 외관뿐 아니라 일생의 이야기와 품고 있는 생각들까지 모두 사료에 담을 계획입니다.

치열한 하루하루를 살아온 한 사람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운성 / 작가 : 모든 애환과 아픔과 가족 간의 갈등, 고통 이런 게 있을 거예요. 그런 것들이 일상생활에서 느꼈던 것들을 같이 한번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광복 80주년까지 4년도 남지 않은 지금.

작가들은 그사이 지사 한 분이라도 더 만나 한 마디라도 더 생생하게 남기겠다는 목표로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YTN 김철희입니다.

YTN 김철희 ([email protected])

<2021-09-22> YTN

☞기사원문: “더 늦기 전에”…생존 독립운동가 손발까지 영원히 남긴다

수, 2021/09/22-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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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다운로드]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혁명 모독하는
박성진 장관 후보자 지명을 즉각 철회하라!

1.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 아래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벤처기업을 위해 야심차게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를 출범시켰다. 중소기업·소상공인의 경쟁력 강화와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통해 국민경제의 활력 제고와 균형 있는 성장 촉진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운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중기부 장관후보자로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을 지닌 인물을 지명함으로써, 정작 당사자인 중소상인들로부터 “이럴 거면 왜 중소벤처기업부를 신설하는지 조차 의심스럽다”는 항의와 함께 지명철회를 요구받고 있는 실정이다.

2. 박성진 후보자는 이승만 독재를 “당시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립을 위해 불가피했다”거나 새마을운동을 “국민의 정신개조 운동, 진정한 신분 계층 제도의 타파” 평가했고 “과도한 노동 운동, 책임을 망각한 과도한 민주주의, 노력 이상의 과도한 복지”등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성장의 동력을 서서히 잃어가면서 저성장기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긴 역사의 앙금은 여전히 우리의 삶 전반에 자리 잡고 있다”면서 “친일 프레임, 편협한 민족주의, 과도한 민주주의, 갑을 논쟁” 등 “계층적 분열의식이 우리들 마음속에 드리워져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는 “자신의 생각과 활동이 문재인 정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혁명’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이승만-박정희’를 승계한 것이 된다.

3.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혁명의 에너지를 흡수하여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승화”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는 촛불집회가 한창인 때 대표적인 뉴라이트 학자를 초청해 ‘건국 세미나’를 벌인 인물을 중기부 장관후보로 지명하는 자기모순을 범하였다. 이에 대해 비난여론이 거세게 일자, 청와대 관계자는 “박성진은 생활 보수일 뿐이며…이런 문제로 낙마시키면 인재풀이 좁아질 수 있는 문제가 생긴다.”는 어처구니없는 해명을 하였다. 인사검증이 허술했다는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4. 청와대가 ‘이승만-박정희 신도’인 박성진 중기부 장관 지명을 강행하고자 한다면,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이자 새롭게 집권한 민주정부”라는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포기하기 바란다. 그것이 촛불민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청와대는 인사 검증 실패를 깨끗이 인정하고, 시대착오적인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박성진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즉각 철회하기 바란다.<끝>


2017년 9월 1일
친일・독재미화와 교과서 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

금, 2017/09/0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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