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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대한 제재중지가 생명을 구하고 평화를 가져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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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대한 제재중지가 생명을 구하고 평화를 가져다 준다

admin | 화, 2020/04/07- 02:09

<현재의 팬데믹 상황은 우리의 일상에 대한 극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COVID-19의 위기는 한반도 상황을 대한 국제적 협력으로 전환시킬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기에, 이를 활용하여 의료행위에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여 교착상태의 북미관계를 복원시켜야 한다>

평양시의 평촌지역 내에 소재한 병원 입구에서 체온을 축정하는 간호인의 모습.

전세계에 백만 명이 넘게 확진자가 나오고 수만 명이 희생된 가운데, 북한의 상황에 대한 염려가 가중되고 있다. 아직 북한당국이 COVID-19 확진자에 대해 공식적인 발표를 하고 있지 않지만, 북한이 의료 자재를 요청하는 상황에 비추어, 세계 의료전문가들은 어느 정도 감염이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만약 북한에도 감염이 확산되기 시작하면, 그렇지 않아도 고립된 상황에서 사회경제적 여건이 열악하고 의료체제가 낙후된 환경으로 인하여 (이는 미국의 대북정책에서 비롯되었다) 큰 재앙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평상시의 대응에 극적인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COVID-19의 위기는 한반도 상황을 대한 국제적 협력으로 전환시킬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활용하여 의료행위에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여 교착상태의 북미관계를 복원시켜야 한다.

COVID-19의 대처에 필요한 시급한 인도적 지원을 서둘러야 하는 지금, 두 가지 중요한 정책을 전환시켜야 한다: 제제를 중단하는 것과 한미간의 군사훈련을 취소하는 것이다.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외교정책의 핵심이며,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지구적 팬데믹 상황에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3월 27일 UN 사무총장은 ‘제재로 인한 갈등과 전쟁을 중지하고, 우리의 생명을 구하는 진정한 싸움에 힘을 합쳐야 한다’고 요청하였다. 쿠테흐스 사무총장은 ‘ 전쟁의 당사자들은 총구를 내리고, 폭격을 멈추며, 공습을 중단해야만, 비로소 생명을 살리는 지원활동을 함께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선언은 북한에 정확히 해당되는 말이다.

지난 3월, 한미 군사책임자들이 만나 한미군사연합훈련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은 매우 다행스럽고 사려가 깊은 행동이었지만 이번을 계기로 합동훈련을 영구히 취소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했다.

미국과 한국은 오랜동안 상기의 연합훈련이 본질적으로 방어적인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솔직하게 이를 ‘전쟁게임’ 또는 ‘도발적 행동’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군사훈련과 광범한 제재를 실시하는 것은 유행병에 대처하는 의료 지원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미국이 전세계에 홍보하는 ‘비핵화와 인권증진’이라는 기획적 의도와도 배치된다.

북한은 미국이 적대적 정책을 진행하면 할수록 핵개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임을 천명해 왔다. 반대로 미국이 군사적 훈련을 중지할 때마다, 북한은 이에 상응하여 긴장완화와 대화라는 조치를 단계적으로 취하여 왔다.

세계적 규모의 공공보건과 경제활동이 위협받고 있는 지금, 한미 당국은 대규모 군사훈련에 소모되는 자원을 우리 모두의 생명을 위협하는 코로나바이러스를 봉쇄하는 것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이에 따른 이점은 한미 간의 수억 달러의 군사비를 줄이는 것을 넘어서, 생명을 구하는 과정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적대와 긴장을 완화시켜 줄 것이다.

이에 더하여 북한에 시급한 인도적 물자의 지원을 방해하는 제제를 중단하는 것에 유엔 안보리를 설득시켜야 한다. 북한에 인도주의적 활동을 지원해온 하버드 의학대학의 신경외과 전문의인 박기(Kee Park)박사는 “이러한 제제가 고립 차단된 국가에게 가장 기본적인 의료자재들과 장비들의 접근조차 금지시키면서, 장애와 전염병 그리고 고질적 질병을 치료하는데 심각한 어려움을 야기시킨다.”

우리는 반드시 북한에 필요한 의료자재들을 제공하여야 하고, 이를 계기로 평화와 반핵의 대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만약 북한에 이미 COVID-19가 널리 퍼졌다면, 의료체계의 인프라가 황폐화된 상태에서 겉잡을 수 없는 상태로 진입하면서 장기간 지속될 것이고, 이는 다시 한국과 중국까지도 재감염시킬 위험에 빠지게 할 것이다. 아마도 남한 당국은 테스트 키트를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임에도, 현재의 제재 시스템이 남북 간의 협력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여기저기에서 제재완화와 지원제안에 대한 단계적인 조치들이 진행되고 있다. 국제적십자와 적반월(Red Crescent)조직들이 유엔안보리 제제에서 제외되는 승인을 득했고, 생명을 구하는 인도적 지원이 가능해졌다. 더구나 김정은의 누이가 북한 언론매체에 공개하였듯이, 트럼프 자신이 북한에게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한 지원을 제안하는 편지를 보냈다. 김여정에 의하면, 트럼프는 편지 속에 양국 간의 관계를 증진시키는 계획을 제시하고 유행병과 싸움에 협력을 제공하는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되풀이 하지만,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외교에는 매우 중요하며, 지구적 규모의 팬데믹과 공동으로 싸워가면서 상호 간에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COVID-19는 ‘지정학적 협상을 핑계로 국가 간의 단절을 야기하고 시급한 인도적 지원을 방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로 인한 인류의 생명과 희생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영구적인 한미간 군사훈련의 중단은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며, 한미군사간 대비태세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평화를 향한 매우 긍정적인 조치가 될 것이다. 이제 코로나바이러스가 국경을 넘어 생명을 위협하는 지금이, 모두를 위하여, 건강과 평화를 앞세우며 협력할 시점이다.

 

Christine Ahn

‘Korea Policy Institute’의 발기인이며 ‘Women Cross DMZ’의 실행이사

Kevin Martin

‘Peace Action’의 대표이며 20만 명이 참여하는 ‘Peace Action Education Fund’의 책임자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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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진리라 함은 주체의 인식과 인식 대상이 일치할 때 그 인식 내용을 일컫는다는 근대철학의 진리개념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하여 근대철학은 신이 예정해준 진리를 벗어나서 인간이 스스로 진리를 찾아 나서게 되는데 이를 인식론이라고 부르게 됩니다만 당시 접근방식의 차이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을 따른 대륙의 합리론과 베이커가 이끌은 영국의 경험론으로 나누게 됩니다.

이후 진리의 획득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무렵 칸트가 나타나 경험론과 합리론을 종합하여 선험적 종합판단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진리를 주관화하며 절대적인 진리를 획득하였다며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을 이루었다고 선언하게 됩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는 경험론과 합리론의 한계를 상호 보완하는 측면에서 종합을 시도하였을 뿐이지 절대적인 진리의 인식방법론을 완성한 것은 아니라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대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진리는 인식론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론의 영역으로 승격되면서 절대적 진리는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지기에 절대적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근대의 인식론은 더 이상 존립할 토대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특히 양자역학을 통하여 인식주체와 무관한 객관적인 대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식주체와 대상 또한 양자얽힘에 의해 상호 내재적으로 생성관계에 있어 인식주체를 배제한 대상에 대한 절대적인 기술을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후 과학철학의 발달에 힘입어 실재론이 힘을 잃고 토마스 쿤이 주도하는 비샐재론, 즉 존재에 대한 진리의 기술은 단지 잠정적인 담론에 불과하다는 패러다임이론이 등장하게 됨에 따라 절대적인 진리를 인식하거나 또는 절대적인 진리가 존재한다라는 이론은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에 의하면 관찰이 대상을 창조한다고 보는데 이 이론을 포함한 코펜하겐 해석이 정통해석으로 받아들여진 오늘날 대상에 대한 관찰, 즉 인식작용은 단지 대상에 대한 앎이 아니라 대상을 창조하는 작용을 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규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파악이론(특히 개념적)이나 지각이론의 상징적 연관개념을 통해 인식론을 존재론으로 흡수하여 버리게 되면서 진리의 절대성과 보편성은 불가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는데 이 또한 그가 아인쉬타인과 교류할 정도로 현대 물리학에 대한 소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진리에 대한 개념을 폐기해야할지 아니면 개념을 새롭게 정립해야할 지를 고민할 시점이 오지 않았나 생각하게 됩니다.

즉, 근대의 진리개념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어버린 상황에서 진리라는 개념을 폐기하는 것이 타당한지 아니면 진리마저 폐기해버리면 무정부적인 세기말적 상황에서 인간은 중심가치가 없이 표류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진리개념을 새롭게 정리하는게 타당한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진리를 논하기 전에 먼저 근∙현대의 철학적 존재론을 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고대 파르메니데스부터 근대 인식론까지 서구를 지배해온 존재론은 실체론인데 그 특징은 모든 존재는 실체(실체의 의미는 플라톤은 제1원인자, 자기원인자인 이데아라고 해석하였으나 근대철학자들은 타자와 내재적 관계가 없이 독립적으로 존속하는 존재)이기때문에 고정불변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에 인간은 이러한 실체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였기 때문에(예를 들면 신의 계시) 존재론은 겨우 유명론 논쟁 외에는 터부시되어왔으며 오로지 주체가 실체인 대상을 있는 실상 그대로 파악하기 위한 인식론만 발달하게된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철학의 시조이자 실체론의 파괴를 시도했던 니이체와 하이데거를 거쳐 화이트헤드에 걸쳐 실체론은 폐기되기에 이르렀으며 결국은 반실체론인 생성론(이는 달리 합생이론, 사건론, 관계론, 과정론이라고도 불립니다)이 21세기의 새로운 존재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생성론의 입장에서는 존재라 함은 사건들의 연속적인 인과과정이라고 정의합니다.

다시 말하면 시공간상의 사건들의 인과적 흐름을 존재라 부르기에 여느 존대도 다른 존재와 내재적 생성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존립할 수가 없기에 우주는 하나라고 보게 됩니다.

하여 실체론에 기초한 기계론적 세계관을 버리고 유기체적 세계관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생성론의 존재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고 끝없이 상호작용하며 생성해가는 연속적인 사건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이러한 존재의 실상에 대한 파악은 주체나 객체가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지 않고 주체의 인식이 객체의 생성과정에 내재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따라서 고정불변의 실체는 없기에 근대의 실체의 고정불변의 본질이나 속성 을 파악하려는 진리를 찾아내고자했던 인식론은 이제는 심리학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존재의 실상에 대한 앎으로서의 진리는 이제는 설 자리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진리의 개념을 바꾸어 진리를 추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실체론이 폐기되었기 때문에 존재의 본질이나 속성을 알아내는 의미에서의 진리추구는 무의미해졌지만 즉, 성론의 입장을 따르게 되면 절대적 앎이 허구라는 것이 밝혀졌읍니다만 그렇다하더라도 생성의 작용원리와 생성의 목적은 인간사회의 가치규범의 근거로서 반드시 밝혀내야할 과제로 다시 우리 앞에 놓여지게 되었기에 이러한 작용인과 목적인을 진리로 삼아 보편적인 지혜, 즉 직관지로 받아들여야만 뭇 존재의 질서와 평화가 가능해지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적인에 대해서는 오늘날 천체물리학과 복잡계이론의 성과를 반영하여 우주의 항상성 유지를 위한 자기 조직화를 목적인으로 받아들여 이를 인간사회에 부합되게 새롭게 재해석하여 우주 자체를 인간사회의 질서와 평화와 생명의 창조자로 받아들여야만할 것이며 나아가 작용인에 대해서는 현대물리학, 특히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과 불교사상과 복잡계이론에서 존재의 작용인에 대해서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가 있는데 예를 들면 생성론의 연기법은 상호생성의 작용인을 제시하는데 중요한 예시가 된다할 것입니다.

특히, 현대과학은 자연의 존재법칙과 인간사회의 당위규범이 서로 전혀 별개의 원리로 작용하는 것이 깊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데, 예를들면 오늘날 인지과학에 의하면 생명의 중요한 요소인 마음을 단지 정보에 대한 통합적인 관리시스템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이를 달리 표현하면 복잡계이론의 자기조직화 기능과 같은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에 따르면 산소원자와 수소원자와 합해서 반드시 물분자만을 만드는 것도 자기 조직화 작용이 있다고 볼 수 있기에 산소와 수소도 마음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나아가 인간사회와 다른 생명체의 집단간에는 변용modification이 필요한 양적인 차이는 있지만 똑같이 자기조직화와 창발작용을 하면서 복잡계를 유지하기에 근본적으로 구조적인 차이가 없다고 보기에 우주의 자연법칙과 인간의 사회규범 간에는 깊은 상관관계가 있기에 자연법칙으로부터 인문학적 존재론을 찾아내어 뭇 존재의 작용인과 목적인을 철학적으로 재구성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여 종교와 과학을 융합하여 새로운 21세기의 철학을 구축하여야할 것입니다.

목, 2019/11/28-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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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미중 간의 신냉전적인 대결구도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아래의 칼럼은 일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긍정적인 비판을 담고 있다 해도, 첫째 서구제국의 백인우월주의 시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둘째 수천 년의 역사적 경험과 중국인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기반으로 출범한 중국공산당의 체제를 레닌 또는 스탈린 체제의 수준으로 이해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여전히 패권적 국제질서를 옹호하면서 팩트를 과장하고 왜곡하는 미국지식인의 자기도취적 한계를 보이고 있다. 100년 역사의 중국공산당은 당주석 개인의 독재가 아닌 대중들의 풀뿌리 참여와 현안에 대한 실사구시적 절차 그리고 인민집중적 당중심의 권력에 의해 운용되고 있다고 평가해야 마땅하다.


Xi Jinping은 소명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2012년 말에 집권한 후 그는 자신의 정치적 권위를 강화하고, 중국공산당(CCP)의 만연한 부패를 제거하고, 상대를 제압하고, 중국의 첨단기술 및 금융 대기업 집단을 길들이고, 내부의 반대를 억제하고,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학대하려는 주장을 강력하게 지지합니다.

중국의 “핵심이익”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시진핑은 자신의 이웃국가들과 적대적인 국가, 특히 미국과의 대결을 택했습니다. 그의 전임자들은 중국이 급속한 경제성장과 기존 세계질서에 대한 전술적 타협을 통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시간을 두고 점차적으로 확대해야 한다(韜光養晦)고 믿었지만, Xi는 현상유지를 거부하고 참을성 없이 성급하게 국제질서에 도전(新型大國)을 시도하면서 상당한 수준의 위험을 감수하였습니다.

그는 왜 그렇게 서두르고 있습니까? 대부분의 관찰자들은 정반대되는 두 가지 가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시진핑이 중국공산당에 유리한 조건으로 세계질서를 재편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광범위한 정책의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견해는 그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삐걱거리고 낡은 레닌주의식 정치체제를 유지하려고 고군분투하는 불안한 감독자라고 주장합니다. 두 이야기 모두 진실의 부분적 요소를 포함하지만 Xi의 긴박감에 대한 배경을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보다 정확한 설명은 Xi의 계산은 자신의 열망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타임라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Xi는 10년에서 15년이라는 짧은 시간의 기간 동안 중국이 일련의 중요한 기술 및 지정학적 변화를 활용할 수 있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좁은 시야로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강력한 힘으로 광대한 권력을 통합하려고 시도하면서 세계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Xi는 “한세기 만에 진행되는 심오한 변화”라고 칭하면서 심각한 인구통계학적 역풍, 구조적 경제침체,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 그리고 미패권이라는 글로벌 권력의 전환시기를 인지하면서 이에 대한 즉각적이고 대담한 대응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10년에서 15년이라는 연한으로 미래비전의 기간을 설정함으로써 Xi는 중국의 고질병같은 국내문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수준의 글로벌 중심국가로 도약하기 위하여 중국 정치시스템에 집중과 결단력을 심고자 합니다. 시진핑의 기획이 성공하면 중국은 떠오르는 다극화 시대의 중심국가로 자리매김하고 경제는 소위 중간소득의 함정에서 벗어날 것이며 제조업과 군사의 기술력은 선진국의 기술에 필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야심적인 기획과 이를 실현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이야기입니다. 시진핑은 이제 중국을 위험한 궤도에 올려 놓았는데, 이는 그의 전임자들이 마오 이후에 성취한 업적을 위협하는 것입니다. 중국공산당이 경제를 이끌어야 하고 정부가 민간부문을 통제해야 한다는 그의 믿음은 중국의 미래경제 성장을 제약할 것입니다. 당간부들에게 이념적 정통성을 고수하고 그에 대한 개인적인 충성을 보여 달라는 요구는 국가 거버넌스 시스템의 유연성과 역량을 약화시킬 것입니다.

국가안보에 대한 광범위한 규정에 대한 그의 강한 요구는 국가를 더욱 내향적이고 편집적인 방향으로 이끌 것입니다. 고삐풀린 그의 민족주의적인 “늑대전사” 전술은 더욱 공격적이고 고립된 중국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중국 정치체제 내에서 Xi의 확고한 유일의 위상은 정책대안과 진로수정의 가능성을 봉쇄할 것입니다.

Xi는 자신이 과거역사의 황제들처럼 중국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는 오만함을 자신감으로 착각하고 있으나 아무도 감히 그에게 달리 조언하려 하지 않습니다. 중국의 현대사가 잘 보여주고 있듯이, 편협한 심성을 지닌 유일한 지도자가 불편한 진실을 들을 수 없는 정치환경은 재앙으로 들어서는 길입니다.

돌이켜보면 Xi의 성급한 타임라인은 임기의 초기부터 명확했습니다. 그동안 중국은 그의 전임자인 신중하고 안정된 후진타오의 느린 속도에 익숙해졌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진핑도 경제개혁에 중점을 두면서 선임자를 따라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2012년 집권을 시작한 지 몇 달 만에 Xi는 국내정치 및 경제환경을 전혀 다르게 조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중국공산당 내의 전면적인 숙청이 이루어졌습니다. Xi 이전의 중국공산당은 국내의 여러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반복적으로 보여 주었지만, 시스템 내부에 모순이 심각하게 누적되었습니다. 부패가 만연하여 대중의 불만과 조직규율의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당의 조직규모는 빠르게 확대되고 있었지만 중국공산당의 예외주의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지 않는 개인들로 충원되어 왔습니다. 국영기업 내의 핵심당원 조직 그리고 민간기업과 비정부 조직들은 수수방관의 상태에서 조직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상급단위의 의사결정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여 고립되었습니다.  선전기관들은 냉소적인 시민집단들에게 당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Xi의 등장으로 상기의 모든 문제가 동시에 해결되었습니다. 2013년 일년 내내 전면적인 반부패 운동을 시작했고, 대중담론에서 정치적 다원주의와 자유주의 이념을 제거하기 위한 ‘대중노선 ‘의 캠페인을 시작했으며, 당원의 무조건 충원을 제한하는 새로운 지침을 발표했으며, 당원이 되기 위한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자격요건을 추가했습니다. 진정한 신념을 지닌 당원들로 구성되지 않는다면 공산당의 조직규모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그는 믿었습니다. 1990년대 초 소련이 붕괴위기에 처했을 때 “인구비례적으로 소련공산당의 규모가 중국공산당보다 컸지만, 문제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Xi는 지적합니다.

시진핑의 다음 의제는 세계무대에서 중국의 이익을 방어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Xi는 신속하게 남중국해에서 인공섬의 매립(건설)을 시작했고, 동중국해 분쟁지역에 대한 방공식별 구역을 구축했으며, 신개발은행(BRICS 은행이라고도 함)의 출범을 도왔으며 대규모 국제인프라 프로젝트인 일대일로BRI를 발표했습니다. 연이어 이를 지원하기 위한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도 제안했습니다.

Xi는 임기 5년의 전반기 동안 현상유지의 관례를 계속 흔들어댔고, 후반기 5년의 시한이 끝나가고 있음에도 이러한 활동의 강도를 줄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권력통합 노력은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는 국내에서 정치적 라이벌과 어려운 경쟁에 직면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임기제한을 제거했으며 주요 직책에 자신의 충성파들을 배치했습니다. 당의 교육센터는 그의 글과 연설을 연구하는데 전념하고, 당 관리들은 그의 지혜와 미덕을 공개적으로 칭찬하며, 당규정과 정부계획 문서는 점점 더 “시진핑 사상”을 기반으로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중국사회와 경제생활의 방대한 영역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우위를 주장했으며 심지어 영향력있는 비즈니스 및 기술분야의 거물들에게 당에 대한 충성도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이를 강요하였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외부관찰자들은 당이 COVID-19 발생을 억제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중국 시스템의 약점이라고 믿습니다만, 이후 2020년 여름까지 Xi가 주도한 전염병의 국내확산을 제어하는 중앙집중식 통제의 장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의 정치적 권위를 훼손하는 것과는 별도로 중국의 바이러스 퇴치에 대한 철통같은 접근방식은 이제 중국의 국가적 자부심이 되었습니다.

Xi의 신속한 개혁의 속도는 지정학적, 인구통계학적, 경제적, 환경적, 기술적 변화의 수렴으로 가능했습니다. 이를 진행하는 과정에 파생할 수 있는 위험은 매우 위협적일 수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개혁의 성과와 변화는 괄목할만한 것입니다.

첫 번째 주요 변화는 서방의 권력과 영향력이 가속적인 쇠퇴국면에 접어 들었다는 베이징의 평가이며, 결과로 다극주의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고, 중국이 원하는 국제질서가 형성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스스로 평가합니다. 이러한 견해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국이 전쟁에 개입하였으나 실패하면서 확인되었고 미국의 세계적인 명성에 대한 골칫거리였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국지도부의 입장은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대통령으로 선출됨에 따라 미국과 더불어 서방진영이 쇠퇴하고 있다는 공감대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의 지도력이 회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2035년이면 82세를 맞이하는 Xi의 수명연한에 대한 염려로 인하여 서방진영의 퇴조를 그저 방관하면서 바라만 볼 수 없다는 것이 북경당국의 현재 입장입니다.

시진핑이 직면한 두 번째 중요한 과제 현안은 중국의 인구통계 및 경제전망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취임할 때 이미 중국의 인구는 고령화와 감소를 동시에 겪고 있었고, 중국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의료 및 연금 시스템에 의존하는 은퇴자의 급증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사회 과학아카데미는 현재 중국인구가 2029년에 정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중국인구가 세기 말까지 거의 50 %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2016년에 이미 예외없는 1자녀정책을 종료했지만 지난 12개월 동안 출산율이 15 % 감소했습니다. 중국정부는 2033년까지 인구의 3분의 1이 60세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러한 문제에 더하여 중국의 노동력 감소에 따른 임금상승이 이루어지면서 2005년 이후 평균 10 % 증가했습니다. 높은 급여는 근로자에게 좋은 일이지만 글로벌 제조업체는 중국에서 저비용 국가로 사업을 옮겨가고 있습니다. 향후 중국의 저숙련 노동자는 점차 실업자 혹은 임시취업 상태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노동력의 12.5 %만이 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에 (미국의 24 %에 비해), 중국의 현재 노동력으로 미래의 고숙련 일자리에 대한 수요를 채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걱정스러운 인구통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중국경제의 둔화입니다. 연간 GDP 성장률이 2007년의 최고14 %에서 오늘날 한자리 수 중반으로 떨어짐에 따라, 중국이 양탄자 밑에서 숨겨왔던 고질적인 문제 중 상당수가 현재화되고 있으며, 빚을 지고 있는 기업을 포함하여 대부분 기업과 개인이 국가의 세금금고에 더 많이 지불하도록 요구하는 것을 포함하여 이제 경제적이며 정치적 고통을 받아들일 의지가 필요합니다.

중국의 성장문제의 핵심은 생산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등소평의 개혁 이후 처음 수십 년 동안 계획경제가 해체되고 시장세력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면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도시와 해안지역을 찾아 고향인 시골을 떠나면서 보다 높은 수준의 생활을 약속했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을 실현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했습니다. 외국기업들이 투자와 기술노하우를 중국 국내에 도입하면서 산업효율성은 지속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프라, 특히 도로와 철도에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여 연결성과 생산성이 향상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빈곤하고 주로 농업 경제가 선진 경제를 빠르게 따라 잡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진핑이 권력을 잡을 무렵의 정책입안자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한 것처럼 지속불가능한 수준의 부채를 창출하지 않고 추진력을 유지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 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중국은 이미 교통인프라가 포화상태이기 때문에 추가 1마일의 도로 혹은 고속철도의 건설은 성장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유능한 노동자들이 이미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했기 때문에 노동력을 재배치한다고 해서 생산성 저하를 막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이전성장 패러다임으로 사회적 및 환경적 비용은 지속 불가능하고 불안정해졌습니다. 엄청난 대기오염과 환경파괴가 중국 시민들 사이에서 극심한 분노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Xi의 임기 중에 발생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아마도 인공지능, 로봇공학 및 생물 의학 공학과 같은 새로운 기술의 발전일 것입니다. Xi는 이러한 새로운 도구의 “엄청난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중국의 경제, 군사 및 지정학적 운명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으며 중국을 첨단기술 강국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당을 동원했습니다.

여기에는 반도체에서 배터리에 이르기까지 국가 안보에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기술에 대한 국가의 R & D 및 생산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막대한 금액을 지출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Xi가 2014년에 언급했듯이 선두의 영광은 “과학과 기술 혁신의 소를 잡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Xi는 또한 새로운 기술이 공산당이 중국의 거의 모든 국내 문제를 극복하거나 적어도 우회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감소하는 인구의 부정적인 영향은 자동화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로 약화될 수 있으며 전통산업의 일자리 손실은 새로운 첨단기술 부문의 기회로 상쇄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국제무대에서 입지를 굳히고 ‘중산층의 함정’을 넘을 수 있는지 여부는 과학기술 혁신역량의 향상에 크게 좌우됩니다.”

새로운 기술은 다른 용도로도 사용됩니다. 얼굴인식 도구와 인공지능은 중국의 내부 보안기관에게 시민을 감시하고 반대의견을 억압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합니다. 당의 “민군융합” 전략은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여 중국군대의 전투능력 을 크게 강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녹색기술의 발전은 경제성장과 오염저감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전망을 제공합니다. 중국은 일반적으로 긴장 상태에 있는 상기의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와 발전의 수렴은 2012년에 누가 중국에서 권력을 잡았는지에 관계없이 발생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다른 지도자도 비슷하게 대담한 의제를 수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중국 정치인 사이에서 시진핑은 관료적 내부갈등에 대한 독보적인 역량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중국공산당의 운명을 좌우하는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 인물이라고 분명하게 믿고 있습니다.

중대한 변화를 추진하기 위해 시진핑은 중국공산당의 권력과 권위의 대폭적인 강화를 뒷받침하는 새로운 정치질서의 구축을 직접 감독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당권력의 강화를 넘어서는 시진핑의 가장 중요한 유산은 아마도 광범위한 국가안보 재정의 증액일 것입니다.

그는 2014년 초 ‘종합적인 국가안보 개념’을 옹호했으며 지난 4월 연설에서 중국이 ‘역사상 가장 복잡한 내부 및 외부의 위협 요인’에 직면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비록 이것이 명백히 과장된 것이었지만 – 한국에서 미국과의 전쟁, 1950년대 후반의 전국적인 기근이 더 복잡했지만 – Xi의 정치 체제에 대한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위험과 불확실성의 새로운 시대에 당이 전면적으로 맞선다는 것입니다.

중국공산당의 오랜 피신의 경험(연안정부), 쿠데타 시도, 외부 인사들에 의한 전복은 마오 쩌둥 시대에 열풍을 불러 일으켰던(문화혁명의) 극심한 편집증에 걸리기 쉽습니다. Xi는 이러한 편집증적인 스타일을 제도화할 위험이 있습니다. 내부 안보와 외부 위협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또 하나의 요인은 위협에 대한 과장입니다.

범죄율이 낮고 위험도가 낮은 지역의 당간부들도 테러리즘, “칼러혁명” 및 “기독교침투”를 경고합니다. 신장에서는 분리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전체지역을 디스토피아적인 첨단감옥으로 바꾸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홍콩에서 Xi는 중국의 철권통치에 대한 위협을 걸러내면서 현지의 법규를 무시하고 완전한 비밀로 운영할 수 있는 “국가안보” 관료제를 설립했습니다.

국내에서 시진핑은 중국을 외부의 적들에게 둘러싸여 포위당하는 것으로 짜맞추고, 과거에 대한 깊은 감정적(그리고 매우 왜곡된) 견해를 이용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에 대한 중국의 투쟁과 미국에 대한 “승리(한국전쟁)”를 낭만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민족주의적 정서를 자극합니다. 중국이 ‘적대적인 외세’의 위험이 높아진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경고로 시진핑은 중국 시민들이 앞으로 어려운 시기에 대한 생각을 수용하고 당과 Xi자신이 안정세력으로 인식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편, 미국이 세계정세에서 퇴각하는 동안 이러한 기회의 창을 활용하기 위해 중국은 여러 외교 정책전선에서 공격적으로 전진했습니다. 여기에는 남중국해에 대한 영토권을 주장하기 위해 상업용 어선을 사용하고 지부티에 중국최초의 해외 군사기지를 설립하는 것과 같은 “회색 지대” 전술이 포함됩니다. 중국의 광대한 국내시장은 시진핑이 COVID-19를 유발하는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를 요구하는 캔버라의 요청에 대응하여 중국이 최근 호주에 대한 경제 강압 캠페인을 통해 입증된 바와 같이 정치적 외교적 순종을 보여주지 않는 국가를 위협할 수 있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시진핑은 중국을 비판하거나 적대하는 상대국가를 협박하고 괴롭히는 “늑대전사” 외교관을 장려했습니다.

마오 쩌둥과 덩 샤오핑은 글로벌 무대에서 중국의 이익을 주장하는데 전략적 인내심을 보여 주었습니다. 실제로 마오는 닉슨 미국대통령에게 중국이 대만을 되찾기 위해 100년을 기다릴 수 있다고 말했고, 덩은 50년의 지방자치 기간이라는 약속을 제시하며 홍콩반환을 협상했습니다. 두 지도자는 중국의 상대적 취약성과 신중하고 미묘한 정치의 중요성에 대해 깊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Xi는 평정심이나 장기적인 해결책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이는 시진핑이 인민해방군 창립 100주년인 2027년까지 대만을 무력으로 장악하기 위해 매우 위험한 도박을 시도할 것이라는 우려를 불러 일으킵니다. 물론 그가 중국해안선에서 불과 110 마일 떨어진 섬때문에 미국과의 군사적 갈등을 불러 일으킬지는 여전히 의심스럽습니다. 대만의 점령시도는 Xi의 다른 글로벌 및 국내의 야망을 거의 모두 소진시킬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시나리오는 당분간 가능성이 낮지만 Xi는 계속해서 이웃국가들에게 중국의 힘을 과시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외부를 향하도록 할 것입니다. 수많은 현안에 대하여 그는 자신의 임기 안에 해결을 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미래의 궤적 과정을 정확히 형성할 수 있다고 믿는 Xi의 경향은 미래의 어느 영역 혹은 가장 작은 편차조차도 ”단기적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버리고 미리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가 행위자들에 의존하는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변화에 중요한 것은 중국의 기술혁신에 대한 중국의 접근방식을 형성하기 시작했을 때 전임자인 후진타오의 임기가 거의 끝날 때까지 선호되지 않았던 경제운용의 도구인 산업정책에 대한 당의 개입이라는 Xi의 선택이었습니다. 2015년은 주어진 기술이나 산업을 발전시킬 뿐만 아니라 경제의 전체 구조를 재편하려는 초대형 산업정책 프로그램의 도입과 함께 중요한 변곡점의 시기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주요부문에서 중국의 제조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Made in China -2025 계획이 포함됩니다. 보다 전통적인 산업에 정보기술을 통합하는 계획인 Internet Plus 전략; 그리고 중국의 외국기술 도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야심찬 의제를 설명하는 14차 5개년 계획, 이러한 정책을 통해 베이징은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업, 기술 및 부문에 수십 조 위안을 투자하여 왔습니다. 직접 보조금, 세금환급, 준시장적 “정부지원기금”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는 마치 국가가 통제하는 벤처캐피탈 회사와 유사합니다.

지금까지 이런 분야에서 베이징의 실적은 확실하게 혼합되어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막대한 투자 금액이 적은 수익을 가져 왔습니다. 그러나 경제학자 Barry Naughton이 경고했듯이 “중국의 산업 정책은 너무 크고 새롭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 이를 평가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성공한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지만 비참하게 귀결될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습니다.”

산업 정책과 관련하여 중국의 민간부문 기업에 대한 Xi의 접근방식은 불과 몇 년 전 관측통들이 정치 및 사회변화의 주체로 간주했던 많은 기술 및 금융 거대기업 들을 포함합니다. 기술혁신으로 인해 Ant Group 및 Tencent와 같은 회사들은 중요한 새로운 데이터 흐름과 금융기술을 제어할 위치에 있으며, Xi는 이것을 용납할 수 없는 위협으로 인식합니다. 이는 중국공산당이 최근에 Ant Group의 초기공모에 많은 지금이 모여든 상황에서 당에 대해 비판적이라고 인식한 설립자 Jack Ma의 발언을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Xi는 당의 이익을 보호하고 비즈니스 엘리트에게 신호를 보내기 위해 중국의 재정적 명성이 국제사회에서 훼손되는 것을 기꺼이 수용할 것입니다. 당이 우선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중국의 명목상 민간기업과 정치체제 사이의 긴밀하고 지속적인 연결을 고려할 때 가족불화에 더 가깝습니다. 실제로 중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가 대부분은 중국 공산당의 일원입니다. 그리고 많은 기업의 성공여부는 외국 경쟁으로부터의 보호를 포함하여 당사자의 호의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전 중국지도자들은 민간 부문에 넓은 권한을 부여했지만 Xi는 강력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의 혁신 능력이 더욱 제한되었습니다. 베이징의 규제기관과 국가투자자가 아무리 정교하더라도 지속적인 혁신과 생산성 향상은 활기찬 민간부문 없이는 발생할 수 없습니다.

일시적인 이점을 포착하고 국내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Xi는 15년의 게임에 자신을 바치고 있습니다. 게임의 성공을 위해 도전을 허용하지 않는 명령시스템의 놀라운 기능을 동원했습니다.  Xi의 압축된 타임라인은 베이징의 정책 의제, 위험허용 및 타협하려는 의지를 규제하는 긴박감을 야기합니다.

미국은 미국사회의 회복력을 강화하고 미국정부의 역량을 향상시킴으로써, 민주주의가 위축되고 워싱턴의 역량이 약화되고 있다는 중국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습니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혁신과 인적 자본에 투자한다면, 신흥 및 핵심기술에서 선점 우위를 확보하려는 Xi의 노력을 막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계질서를 형성하는데 있어 보다 적극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미국의 역할은 자신의 국경 너머로 불법적인 이념을 전파하는 중국의 능력을 제약할 것입니다.

시진핑이 권력을 잡기 이전의 중국공산당은 규칙적이고 평화로운 권력전환을 위한 예측가능한 과정(格代指定)을 수립했습니다. 내년 가을에는 제 20차 당대회가 열리며, 이에 따르면 시진핑은 차기지도자에게 권력을 이양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Xi가 그렇게 할 것이라는 기대는 없습니다. 이것은 중국공산당 자체뿐 아니라 중국의 미래에도 매우 위험한 현상입니다. 후계자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시진핑이 향후 10년 안에 예기치 않게 사망하면 중국은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시진핑이 권력을 유지하는 동안 건강이 유지된다고 가정하더라도, 그의 임기가 오래 지속될수록 중국공산당은 마오 쩌둥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인격(우상)숭배가 수없이 발생할 것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 분명해졌고, 중국의 정치계급 사이에 눈에 띄는 획일성은 이제는 표준이 되었습니다. “시진핑 사상”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것은, 단순히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조차 우스꽝스럽고 심지어 외부인을 놀라게 할 수 있지만, 주요한 의사결정의 질과 당내 정보 흐름에 해로운 영향을 미칩니다.

당과 국가를 구하려는 사명을 가진 지도자 시진핑이 오히려 이들 모두를 위태롭게 했다면 아이러니하고 비극적일 것입니다. 그의 현재 과정은 지난 40년 동안 중국이 이룩한 위대한 전진을 되돌릴 위험이 있습니다.  Xi의 판단처럼 향후 10년이 중국의 장기적인 성공을 결정하는 매우 중차대한 시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진핑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가장 큰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출처 : Foreign Affairs(포린어페어) on 2021-06-25.

Jude Blanchette

캘리포니아 대학의 21세기 중국연구소 책임자를 역임했으며, 현재 미국전략연구기관인 CSIS의 중국연구센터 비상임 의장을 맡고 있다

수, 2021/07/07-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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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화석연료 중심의 성장과 소비 경제모델의 위협에 대한 인식의 증가에 대한 반응은 미디어의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한 보도 차단과 교육과 정책토론에서의 심각성 경시풍조로 나타나고 있다.

청소년들이 앞장서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우리는 사회는 물론 경제를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 시작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가장 헌신적인 기후 운동가들, 심지어 구속되거나 신체 부상을 입을 각오가 되어 있는 기후환경운동가들조차도 여전히 석탄이나 천연가스로 가열된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디젤 동력 화물선과 디젤 연료를 사용하는 트럭으로 배달되어 석유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야채를 먹습니다.

시위를 조직하고 기후변화에 관한 기사를 쓸 때 사용되는 컴퓨터와 전화기같은 부품들도 석탄 및 다른 유독물질을 사용하는 인도, 중국, 태국의 공장에서 제작됩니다. 함께 연대하는 활동가들을 연결시켜주는 인터넷을 작동시키는 전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후변화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의 퇴직기금은 화석연료 수익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회사의 주식에 묶여 있습니다. (관련성이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음)

화석연료산업을 비난하는 시위표지를 작성하기 위해 석탄으로 가동되는 말레이시아 공장의 펜 부품에 사용되는 플라스틱과 석유연료를 사용하는 트럭과 비행기로 운송된 일회용 펠트펜을 사용한다는 모순에 직면합니다.

환경시위는 숨겨진 진실에 대해 주목하지만 행진이 끝나면 우리는 화석연료를 피할 수 없는 악몽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육식을 선택 또는 거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비와 성장의 파산 개념과 일치하는 산업경제를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그 시작은 미미할지라도 화석연료의 사용을 선택할 수 있는 요건이 주어진다면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우리의 모든 행동들이 시위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지구 위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화석연료와 전혀 연관되지 않은, 또는 관련한 산업으로 발생한 돈과 관련 없는 경제 체제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아침에 일어나 이를 닦는것부터 밤에 불을 끄고 잠에 드는것까지의 모든 행동들이 도덕적 시민들의 시위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공동체는 추출적이고 약탈적인 경제 질서의 중간에 있는 약간의 환경보호적 활동이 아닌 새로운 대안 경제의 문을 열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시위가 나아가야할 다음 단계는 세계적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화석연료를 100% 사용하지 않는(FFF) 지역사회 형성이어야만 합니다. 초기단계에서 100명 또는 500명만 지원할 수 있다 하더라도 지역 차원에서 이러한 경제, 사회 및 정치 구성단위를 만든다면 대중에게 실행 가능한 대안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석연료해방(FFF) 커뮤니티는 화석연료 사용금지에 기여하고자 하는 투철한 윤리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언행을 일치 시킬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 단지 슈퍼마켓의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것이 아닌 플라스틱을 절대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써 말입니다.

더 나아가 화석연료해방(FFF) 커뮤니티를 만드는 첫 단계는 즉시 실행 가능합니다. 냉소적인 정치가들이 20년 30년 걸려 실행할 탄소중립 경제를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FFF 커뮤니티 창조

FFF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은 초반에 상당한 용기와 희생을 요구할 것이며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제한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한 임계질량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모든 FFF 커뮤니티가 음식, 에너지, 협동조합의 재정, 또는 화석연료와 연관된 은행들에 대해 100% 독립적일수는 없기에, FFF 커뮤니티는 오늘날의 단체들이 할 수 없었던 그들의 목소리를 마음껏내며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향력은 설립 초기 단계보다 훨씬 더 강해질 것입니다.

이는 전 세계의 다른 지역사회에 모델이 될 것이며, 화석연료와 관련된 자금 의존으로 인하여 실행단계에 옮길 수 없었던 저널리즘과 교육시스템을 생산할 것입니다.

소규모 FFF 커뮤니티가 다국적 투자은행 및 석유회사를 인수 할 수 있는 강력한 경제 및 정치 플레이어가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며, 수익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방향으로 화석연료 문제에 맞서는 데 있어 모호하고 결과가 정확하지 않은 대안이 아닌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화석연료 사용 종말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자료에 따르면 정부와 기업의 보고서에 제시된 2050년 탄소 중립 경제 창출은 터무니없이 늦은 시기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홍수와 폭풍, 해수면 상승, 사막 확산, 기아, 견딜 수 없는 폭염, 지구에 남아있는 부족한 자원을 장악하고자 하는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인해 수십억의 인간(및 다른 종)이 죽는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서는 몇 년 또는 몇 달 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주류 미디어는 기후 비상사태에 대한 시위와 정부의 선언문을 다루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가끔씩 지붕 위에 태양 전지판이 설치되는 것을 볼 수는 있지만 모든 식품을 현지에서 유기농으로 생산하고 태양열 및 풍력을 이용하여 모든 건물을 완벽하게 단열시키며, 100 %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대중교통의 동력을 공급하게 하는 법률은 (시행은 고사하고)거의 고려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역사회와 서로를 장기적으로 지원하며 지역사회에서 생산되는 FFF 제품에만 전적으로 의지할 것을 약속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모아야 합니다(100% FFF 수송체계가 설립될 때까지). 만약 체포될 위험까지 감수하는 열렬한 환경운동가들이 있다면, 그 중 FFF 공동체에 기꺼이 헌신하려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멤버와 공동체간의 협약은 진중하게 다뤄져야 할 것입니다. 구성원들과 커뮤니티 간에는 반드시 법적으로 유효한 계약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FFF 공동체는 애초에 우리를 곤경에 빠뜨린 피상적인 소비문화, 분열, 단편적 사고와 같은 문화에 일치하여 운영될 수 없습니다.

신규회원은 평생동안 그들을 책임지겠다는 공동체의 약속에 대한 대가로 FFF 커뮤니티에 자산을 위탁할 것입니다. 또는 다른 형태의 깊은 사회적, 윤리적 약속 또한 가능합니다.

 

자본주의와 글로벌 농업: 포드(Ford)부터 몬산토(Monsanto)까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화석연료해방 공동체(FFF)는 초반에는 작은 범위로 시작할 것이며, 우리가 계속해서 지속 가능한 접근법을 채택했을때 어떠한 사회가 될지에 대한 모델을 제공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에게는 해당 모델이 거의 없고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FFF 커뮤니티 경제의 핵심은 100% 유기농 식품을 생산해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수송하는 유기농 농장이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지역사회의 시민들의 식생활에 대한 다양성이 현저하게 감소할 것이지만, 그들의 노력과 희생을 통해 진정한 화석연료 자유경제의 토대를 마련할 것입니다. 음식들은 집, 옥상, 인근 빈 공간에서 재배되거나 지역 농장에서 들여올 것입니다.

혁신적인 사고를 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화석연료에서부터 해방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웃과 함께 협력하는 행위가 신문에 글을 기고하고, 권력가나 재력가들을 로비하거나 환경 NGO 단체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완전한 의미에서 화석연료로부터 자유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플라스틱,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생산된 제품,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운송 된 제품이 없는 상태)은 FFF관련자들에게 결정적인 노력이 될 수 있습니다.

(기업과 소비자 간의 거래가 아닌) 농부와 시민 간의 협력을 장려하는 공동 시장에서 식품을 판매(또는 물물 교환을 통해 교환)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장은 화석연료에서 완전히 분리된 새로운 형태의 경제 교환의 토대가 될 수 있으며 전 세계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유기 농업 공동체는 전혀 급진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인간이 기후를 파괴하지 않고 수천 년 동안 살아남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아미쉬와 메노나이트 공동체에서 모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계나 인공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공동체를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라왔지만, 그들을 제외한 미국의 지역들이 세계무역과 연관된 산업화된 비정상적인 농업 생산 시스템을 수용하는동안 이 공동체들은 지속적인 경제를 추구해오고 있었습니다.

공동체의 유기농업 방식은 농업과 유통에서 젊은이들에게 실질적인 일자리를 제공 할 것입니다. 지구의 파괴에 기여 하지 않는 음식을 만드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받아 그 노력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도덕적 행동입니다.

공동체의 또 다른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음식 및 기타 물품에 대한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FFF) 운송수단의 창출입니다. 초기에 제공된 FFF 운송만 사용하겠다는 약속이 심하게 제한적이더라도 시민들은 그것을 불쾌한 불편으로 간주하지 않고 도덕적인 용기의 서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깨끗한” 에너지를 제공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정치인들은 천연가스, 전기 및 심지어 원자력이 당연히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FFF커뮤니티의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제조업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제조업에 관하여 완전히 다시 재고해보아야 합니다: 삶에 필요한 물품의 생산 및 사용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화석연료나 플라스틱을 쓰지 않고 어떻게 물품들을 생산할 것인지에 대하여 반드시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경박스럽고 사치품과 같은 제품들의 마케팅과 소비를 완전하게 종료해야 합니다.

FFF공동체의 제조업은 100% 현지에서 시작해야 합니다(지역 및 세계적으로 공동체를 연결 할 수 있는 화석연료를 100% 쓰지 않는 운송체계를 갖추기 전까지).

화석연료를 제거한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물품을 사용을 줄여야 하며 오랫동안 지속 될 수 있는 품목을 제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20-50년 이상 지속될 책상과 의자, 책장과 도마, 셔츠와 스웨터, 컵과 냄비가 필요합니다. 우리 경제의 이러한 변화는 상업적인 소비 중심 문화의 종식과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제작된 제품에 중점을 두며, 이미지가 아니라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FFF 커뮤니티에서 이케아(IKEA)나 갭(GAP)과 같은 관련 상품은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100% 화석연료 비사용 제품의 생산과 유통은 우리 아이들과 이웃의 아이들에게 장기적 일자리를 창출할 것입니다. 제조는 현지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내구성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은 우리 환경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우리는 경쟁, 자유 무역 및 산업화의 위험한 개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성장에 관한 잘못된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 개념, 태도의 변화

FFF 지역사회는 화석연료에 관한 선전과 눈에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으면 충실한 삶을 살 수 없음을 주장하는 기업의 사상에서 반드시 벗어나 있어야 합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기술과 거버넌스의 진보적 혁신이 아니라 태도의 혁명에서 시작됩니다. FFF 공동체는 자동차를 홍보하고 분별없는 음식 소비를 장려하는 광고가 없는 문화적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모든 시민은 기후변화가 지역사회에 있어 즉각적이고 압도적인 위협임을 인식해야할 뿐만 아니라 짚 깔기, 유리 재활용, 금속 해체, 비료사용을 위한 인분 수집, 카트를 통한 식품 수송, 또는 (운동에도 도움이 되는) 자전거를 통한 전기 생산 활동이 엄연히 도덕적인 것이며 가치 있는 사회적 기여라는 인식이 잡혀있는 문화를 반드시 만들어야 합니다. 상업 경제에 의해 만들어진 자기만족감과 즉각적 만족에 대한 숭배는 도덕적 철학, 절제, 겸손 및 정직한 선행으로써의 사회적 참여에 기초한 문화로 대체되어야 합니다.

이 변화는 완전하게 “진보적인”것은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겸허, 절제, 지적 및 영적 참여의 중요성과 같은 전통적인 가치와 결부됩니다. 이러한 커뮤니티가 커질수록 전 세계를 지배하는 상업 문화에 대한 대안이 더 강력해질 것입니다. 전기, 소비, 재산의 막대한 증가, 도시화 및 개인 자동차와 비행기 같은 운송수단에 의해 인간의 환경이 개선되었다는 현대의 관념에서 비롯된 잘못된 추측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더 큰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시스템 생성에 도전하지 않으면 생존에 필요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친환경화는 상품과 서비스의 소비에 입각하고 있는 화석연료의 생산과 유통에 뿌리를 둔 경제의 겉치레적인 변화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영화와(그리고 영화 전후에 나오는 광고들) 뉴스 보도에서 강조하는 현대화의 신화 뒤에 감추어진 체계를 반드시 가시화해야 합니다. 사회의 전반에 깔려있는 생각은 아이폰을 사용하고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 비싼 자동차나 전용 비행기로 전 세계의 수도에서 수도를 누비는 사람들, 넓은 집에 살고 좋은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제품을 나르고, 공공장소를 청소하고, 우리의 식량을 재배하며 요리하는 사람들보다는 아무래도 더욱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악이 되는 자원낭비, 화석연료로 인한 환경오염,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된 부는 상업적 미디어에서 마치 선량한 도덕적 행동처럼 보여집니다.

FFF 공동체는 부동산, 개인 재산, 소유권에 관한 오해 소지가 많은 개념에 대해 완전히 개혁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회는 언론에 의해 시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계약법과 기업 법에 의해 통제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돕거나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커뮤니티 회원 간 구속력 있는 계약이 없습니다. FFF 커뮤니티는 이러한 계약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FFF 공동체에 가입하여 화석연료의 사용을 끊고자 하는 충성 서약이 회원자격의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부동산과 소수의 사람에 자본이 집중되기 전에 유럽, 아시아, 미주 지역의 농업 공동체의 중심이었던 마을 계약과 동등한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마을 계약은 상징적이라기보다는 구속력 있는 방식으로 각 개인이 식품, 도구, 가구, 운송 및 거버넌스의 생산에 기여해야하는 책임과 구성원들에게 평생동안 커뮤니티를 갖추어준다는 공동체의 책무에 대해 설명해야 합니다

 

거버넌스 중심 환경과 인간 정착의 관계를 형상하는 이로쿼이 부족 (Iroquois Nation)의 헌법 부활은 금융, 재산권 및 부동산에 중점을 둔 법적 왜곡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됨.

현재 혁신주의자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항의에 참여하는 동시에 화석 연료와 관련된 수익을 올리는 회사에 자산을 투자하는 것이 허용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행을 없애고 모든 투자가 지역사회 활동과 관련이 있고 FFF 경제 창출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해야합니다.

FFF공동체 회원가입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어야 하며 자산, 교육 수준, 문화 감수성 정도에 따라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Teslas를 구입하거나 태양 전지판 패널을 구입할 수 있는 상류・중산층 사람들에게 포커스된 녹색 경제가 인류를 구할 것이라는 망상을 버려야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교육과 주변 매체를 통하여 기후위기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빈곤층과 노동 계급에게 기후위기를 설명하고 응답에 참여한 대가로 양질의 교육과 경제적 기회를 얻는데 도움이 된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갈라 디너, 억만장자의 기부 및 기타 활동으로 기후 변화에 대해 연설하는 것은 사회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만의 FFF 화폐를 만드는 것은 이 과정에서 대단히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화폐는 개인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나타내며 지역 사회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및 기타 제조 제품에 의해 뒷받침 될 수 있습니다. 초반에는 사용에 극히 제한적일 지라도 이 통화가치는 화석연료와 연관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즉, FFF 화폐는 지역경제 전반에 걸쳐 사용이 확대되고 결국 세계경제로 확장됨에 따라 화석연료와 연결되지 않고 유사한 독립적 인 금융 시스템의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은 세계무역과 기후변화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침묵입니다. 투자은행의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지구를 가로질러 상품을 운송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탄소배출과 공장지대 설립을 위한 산림 및 정글파괴, 자연을 희생하여 끊임없이 이익을 얻고자 하는 공장의 설립으로 인해 엄청난 환경의 파괴를 가져다줍니다. 세계 무역에서 추진되는 식량(특히 육류)의 비생산적인 대량 생산은 토양, 산림 및 강과 바다에 장기적인 피해를 줍니다. 또한 식품 및 제품의 생산 및 유통에 대한 산업적 접근 방식은 지역 경제를 파괴하고 전례 없는 부의 집중을 조장하였습니다. FFF공동체는 시민들에게 이 파괴적인 악몽을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을 최초로 제공합니다.

 

결론

우리는 미디어와 토론회에서 지구를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들의 관행을 바꾸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대부분의 배출량은 소수의 다국적 기업에 집중되기 때문에 그것을 먼저 해결해야 하며 우리 자신의 삶에 탄소 발자국이 적기 때문에 세상을 구하고 있다고 순진하게 생각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논쟁을 목격하곤 합니다.

개인의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데 지나치게 근시안적인 사고를 가지게 된다면 우리 경제의 깊은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위험이 있지만 매일 행동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특정 원칙을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우리는 세계 문화를 변화시키기 시작하고 그 문화는 즉, 최선의 길은 두 가지 전략을 결합하는 것입니다. 개인적 선택을 지역 사회의 선택으로 만들고 그 지역사회를 대체 경제의 기초가 될 경제 단위로 만드는 것입니다.

화, 2020/03/1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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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해야 우리는 국회를 개혁할 수 있을 것인가?

‘국회’라는 말이 나오게 되면 누구든지 목소리를 높여 맹비난한다. 모든 사람들이 국회를 우리 사회에서 가장 긴급하게 개혁할 대상 1호로 지목한다.

그러나 막상 우리 모두의 ‘사고뭉치 국회’를 과연 어떻게 개혁해나갈 것인가의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정작 명쾌한 방안이 없이 수십 년 째 “그 밥에 그 나물”, 도돌이표 레토릭일 뿐이다.

국회 개혁, 이제 추상적이고 원론적이며 환원론적 논리는 지양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문제의 핵심에 접근해야 한다. 국회 개혁의 진실을 분석하고 실제적인 해결 방안을 도출해내야 한다.

방안을 모색하기 위하여, 쉬운 예를 들어보겠다.

학생의 본업은 과연 무엇인가? 바로 수업, 즉 학습이다. 그런데 만약 학생이 수업을 하지 않고 대리 수업을 한다든지 대리 시험을 본다면 어떻게 될까? 한 마디로 말해, 그것은 학생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은 학습과 수업을 하지 않고서 나가서 연애나 하고 패싸움하고 게임하고 놀 수밖에 없다. 패싸움 금지규정을 만들어본들 막을 수 없다. 수업을 하지 않고 시간이 남고 남아돌아서 날이면 날마다 패싸움하고 연애하고 게임하는데, 예를 들어, 패싸움금지법, 연애금지법, 게임금지법 등등을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본들 그것들을 막아낼 재간이 없다. 또 이러한 상황에서 아무리 좋은 학생을 선발해본들 학생이 수업을 하지 않는 그 본질을 고치지 않는다면 선발된 그 좋은 학생들도 수업을 안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교사를 초빙한다고 해도, 수업을 하지 않는 그 자체를 고치지 않고서 왜곡된 이 상황을 결코 바꿀 수 없다.

동일한 논리로 나는 오늘 국회 문제의 핵심이 바로 국회가 국회의 본분, 즉 입법을 국회의원들 스스로 하지 않고 ‘방기’ 혹은 ‘피동적으로 배제’된 데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 국회처럼 이렇게 입법으로부터 ‘자유로운’ 또는 ‘소외된’ 의회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입법이야말로 의회의 본령이고, 이 본령을 방기한다면 그것은 이미 의회가 아니다.

 

인식하지 못하면,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해내지 않고서는 아무리 유능하고 의욕에 넘치는 국회의원을 선출해본들 모든 국민들이 바라마지 않는 ‘좋은 국회’, ‘신뢰받는 국회’로 발전할 수 없다. 그렇게 ‘입법’을 방기하는 객관적 조건을 바꿔내지 않는 한, 그 어떠한 좋은 선거법에 의해 좋은 인물을 선출해도 ‘좋은 국회’, ‘좋은 국회의원’이 나올 수 없다.

지금 ‘국회 문제’를 말하면, 모두 입을 모아 “지긋지긋한 정쟁(政爭)의 종식”을 말하지만, 의원들이 자신들의 본업인 ‘입법’에 몰두한다면 솔직히 ‘정쟁’할 시간적 여유조차 없다.

이것이 오늘 우리 국회 문제의 ‘진실’이다.

 

일하지 않는 국회의 숨겨진 진실

얼마 전 국회의 한 의원실에서 ‘검토보고서’가 처음엔 찬성 취지였다가 중간에 부정 취지로 바뀌는 바람에 법안 통과가 무산되자 의원이 수석전문위원을 의원실로 불러 문제를 제기하던 중 보좌관과 입법조사관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빚어져 경찰이 출동하기까지 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사건은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들의 깊은 불신의 영향으로 “국회의원의 갑질 사건”으로 쉽게 이해된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사실이 있다.

해당 사건에서 수석 전문위원은 항의하는 보좌관의 태도를 문제 삼아 “건방지다”라고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은 그야말로 “갑중의 갑”으로 통하는 위상이다. 그런 ‘높으신’ 국회의원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보좌관에게 “건방지다”라는 말을 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갈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실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서 보듯, 국회 수석전문위원은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수석전문위원의 힘이 얼마나 센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 ‘검토보고서’가 바뀌는 바람에 결국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다음 단계로 가지 못하고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국회의원과 전문위원 중 과연 누가 입법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국회의원은 국민이 선출하여 입법권을 부여한 것이다. 그것이 곧 대의민주주의다. 그렇다면 국민이 입법권을 부여하지 않은 국회 전문위원은 어떻게 하여 이렇게 “국회의원보다 더 큰” 입법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것일까?

이전 시기에 기업들은 재경부(지금의 기획재정부, 기재부)에 로비를 하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회에 로비를 한다. 기재부 관료에게 해봤자 다시 국회의 문턱에서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다시 반전이 존재한다. 바로 국회에 대한 로비에서 그 로비의 대상이 국회의원이 아니라 바로 ‘국회 전문위원’이라는 사실이다.

이들 국회 전문위원은 각종 법안만이 아니라 예산 심의에 대한 검토보고 권한도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회 공무원인 예산결산위원회 수석 전문위원에게는 장관들이 머리를 숙이고 부탁한다. 나아가 국정감사 때 피감기관을 얼마든지 요리할 수 있기 때문에 가히 무소불위 ‘권력의 핵심’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국회 주변에서는 “(국회공무원인) 수석 전문위원이 초선 의원 5,6명을 합한 것보다 힘이 세다”라는 말이 널리 퍼져있었다.

“일하지 않는 국회”, 이 말은 반만 맞는 말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지금 우리 국회는 국민들의 불신 대상 1위다. 하지만 국민들은 비록 그렇게 불신을 받는 국회지만 입법이라는 본연의 업무는 미흡하지만 그럭저럭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입법이라는 의회의 본연의 직무 수행에 있어 우리 국회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왜곡과 비정상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나마 국회의원은 국민들이 싫어할 경우 투표로써 심판할 수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 뒤에 가려져 국민들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권력 ‘국회 전문위원’은 알려지지 않은 숨은 권력이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본업인 입법에서 분리된 국회의원

오늘의 우리 국회를 명실상부 국민 의사를 대표하는 기구라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아마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완강하게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국회는 정확하게 민의를 반영하여 올바르게 구성되어 있을까? 그러나 한마디로 유권자의 민심은 국회 의석수에 정확하게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이를테면 과반이 넘는 표가 사표(死票)로 되고 있고, 18세 청년들의 투표권은 계속 거부당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정당 득표율에 따라 국회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은 철저히 저지된 채 거대 정당들의 독과점 체제만이 군림하고 있다.

오늘 우리 국회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그야말로 첩첩산중 쌓여있다.

이 시점에서 과연 어떠한 문제부터 풀어야 이 국회를 바꿔낼 수 있을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 것인가?

시민운동은 이제까지 국회의원에 대한 평가에서 입법건수 발의를 기준으로 삼아왔다. 이는 한 마디로 방향 착오다.

흔히 법률안에 대한 ‘검토보고’라고 하면 당연히 국회의원이 그 책임 주체가 되어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회에 소속된 공무원들이 검토보고의 ‘준비’와 그 ‘발언’까지 모두 담당한다.

우리 국회법은 제58조에 “위원회는 안건을 심사할 때 먼저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듣고”라고 명문화하고 있다. ‘검토보고’란 국회의원이 제출하는 법률안에 대해 국회 공무권이 ‘검토’하는 것으로서 예·결산에 대한 검토도 모두 그들의 몫이고 권한이다.

사실 국회에 대한 불신이 극대화된 현실에서도 국민을 위해 진정성 있게 열과 성을 다하려는 국회의원이 적지 않다. 그러나 현재의 국회 입법과정에서 의원 개인이 높은 의욕을 가지고 아무리 열심히 해보려 해봐도 그 역할은 대부분 입법발의의 단계에서 끝나게 된다. 결국 현 국회는 근본적으로 의원의 의욕과 능력이 발휘될 수 없는 구조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아무리 똑똑하고 열의에 불타는 사람이라도 사실상 할 일이 없게 된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어느 누가 국회의원이 되어도 예외 없이 모두 아무 탈 없이 임기를 무사히 채울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한 지인은 초등학생을 국회에 갖다놔도 충분히 국회의원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유치원3법’이나 ‘김용균법’ 등을 둘러싸고 의원들이 갑론을박, 거칠게 논란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의원들이 입법을 주도한다고 쉽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빙산의 일각’처럼 그야말로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로 부각된 극히 일부 법안에만 해당될 뿐이다. 왜냐하면 현재 국회 입법은 법안 발의 그 단계에서 의원들의 개입은 사실상 종결되기 때문이다. 대다수 법안들은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사이에 법안 검토부터 모두 철저히 입법관료들의 손으로 넘어가 처리된다.

그리하여 결국 국회개혁의 핵심은 바로 국회의원들과 ‘분리’된 국회의 본업, 즉 입법 활동을 다시 ‘복원’하여 결합시키는 것에 있다. 즉, 입법의 전 과정을 국회의원이 그 ‘검토’부터 모두 ‘직접’ 수행하는 것이다.

화, 2020/01/14-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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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은 타인, 환경과 살아가는 방식이다

생태문명’이란 맥락에서 ‘문명’이란 용어는 대개 ‘공유된 가치를 가지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뜻한다. 문명은 농업부터 경제, 거버넌스, 교육, 종교, 교통, 의학, 건축, 예술, 음악 등 모든 것을 포함한다. 기본적으로 우리 인간이 타인, 그리고 환경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방식이다.

(생태문명이라는 대안이 필요한) 현재 우리의 문명은 ‘현대문명’ 혹은 줄여서 ‘현대성’으로 불린다.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현대문명을 탐구한 뛰어난 학자인데, 그는 주류 제도들이오늘날 사람들에게 얼마나 자명한 것으로 보이는지 설명한다.

내 가정은 서구 현대성의 핵심이 사회의 새로운 도덕적 질서라는 것이다. 처음에 도덕적 질서는 몇몇 영향력 있는 사상가들의 정신에 있는 단순한 아이디어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광범위한 사회적 상상력을 형성하며 사회 전체로 퍼진다.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 자명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중 하나의 가능한 개념으로 바라보기 힘들다. 도덕적 질서에 대한 이런 관점의 전환은 서구 근대성을 특징짓는 사회적 형식을 발전시켰다. 시장경제, 공공영역, 자율적인 인간이 그것이다.

테일러는 현대문명의 세 가지 명백한 특성을 강조한다. 1)우리는 상호번영을 증진하기 위해 재화와 서비스를 교환하는 경제로서 사회를 상상하게 됐다. 2)우리는 낯선 사람끼리 상호관심사를 숙고하고 토론하는 은유적 장소로서 공공영역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우리는 초월적 원리에 의지하지 않고 세속에 “기초”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자율적 인간이라는 아이디어를 발명했다.

이런 실천과 가치는 현대인에게 너무 자명해서 아예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바꿀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과연 그럴까? 현대성의 개념적 토대를 생각해보자. 이른바 현대사상의 아버지인 르네 데카르트는 인간 주체를 의미와 가치의 유일한 원천으로 삼는 전환을 감행했다. 데카르트는 동물을 단지 기계로, 자연을 정신과 사고의 모험을 위한 배경으로 간주했다. 그럼으로써 세계를 “사고하는 존재”와 “확장된 존재”둘로 나눴다. 데카르트의 인간중심주의는 “자아”를 생각하는 주체로 특권화하는 개인주의와 쌍을 이뤘다.

개인주의는 자연스럽게 경쟁과 지배의 모델로 흘러갔다. 1649년 정치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인간의 조건이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며 따라서 지구상의 생명은 “추잡하고 짐승 같고 단순하다”고 단언했다.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곧바로 그의 동료들에 의해 “이빨과 발톱이 피로 물든”(앨프리드 로드 테니슨)자연으로 해석됐다. 이런 지배의 태도가 인간 존재와 사고의 전 영역에 만연하면서 남성과 여성, 백인과 흑인, 대국과 소국, 과학과 종교, 인간과 비인간, 부자와 빈자의 위계를 가져왔다. 물론 다양한 형식의 협력이 존재한다. 그러나 함께 일하는 게 성공을 위한 더 근본적 전략이라는 공생(symbiosis)의 아이디어는 대개 배척당했다.

현대문명에서 사회는 개인을 위해 존재하며, 유사하게 국가는 시민을 위해 배타적으로(“아메리카 퍼스트”) 존재한다. 존 로크는 그의 『통치론』 제2논고에서 국가는 재산권을 가진 (남성)시민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지켜주기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했다. 존 스튜어트 밀이 국가의 목표는 각 개인의 자유를 최대화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그는 이런 현대적 이상의 대변인이 됐다. 밀은 이 전통을 확장시켜, 한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해로울 때만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민의 행동은 살인처럼 다른 사람에게 직접 해를 끼쳐 국가가 규제해야 할 때까지는 “사적 영역”에 속한다는 게 밀의 주장이다. 개인은 공공선을 위해 존재한다는 견해인 공동체주의는 현대적 패러다임 안에서 개인주의를 이기지 못한다.

마침내 현대성은 스스로의 옹호자가 됐다. 이전 단계의 역사는 모두 “전(前)과학적’이며 과학시대에 비해 열등한 것이 됐다. 현대 정치철학자들은 낡은 정치체제와 철학, 사회적· 정치적 조직의 형식들이 대체됐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이룬 위대한 진보는 현대성의 원리 덕분이며, 사회는 점점 좋아진다는 신념인 사회개량론이 올바른 태도로 여겨진다.

 

우리는 현대문명의 끄트머리에 있다

당연히 현대문명은 유일한 문명이 아니다. 문명의 등장은 농업 발전과 연결돼 있는데, 기원전 3000년 최초의 문명은 농업이 인간에게 잉여의 음식과 안전을 보장했을 때 등장했다. 식량안전성이 증가하면서 많은 인구가 기본적 생존을 넘어 예술이나 여가 활동 같은 다른 문제들에 눈을 돌릴 수 있었다. 그래서 문명은 인구의 집적, 문어(文語), 기념비적 건축물, 고유한 예술양식, 통치체제, 복잡한 분업, 그리고 사회적 계급으로 특징지어진다. 문명들은 농업과 더불어 등장하며 무역, 전쟁, 탐험 등으로 확대된다. 대부분 문명은 다른 확장되는 문명에 합병되거나 붕괴하거나 단순한 형식으로 회귀함으로써 사라진다.

과거 문명의 범위는 산과 대양과 원거리로 인해 제한됐다. 그래서 헬레니즘 문명은 중국문명이나 마야문명과 같은 시대에 공존했다. 오늘날 우리는 최초로 하나의 글로벌 문명 안에서 살고 있다.

교통과 통신기술의 발전은 서로 다른 문명들을 갈라놓았던 지리적 한계를 극복했다. 스마트폰, 할리우드 영화, 인터넷은 군대와 전쟁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해냄으로써 공유된 가치, 국가 간의 균형(혹은 불균형), 그리고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 기초한 하나의 글로벌 공동체를 창조했다.

현대인과 현대국가는 이전에 없었던 하나의 글로벌 문명으로 함께 묶여있다. 점점 강력해지는 기술에 매혹됨으로써 소비자들은 전지구적으로 하나의 욕망과 열망 앞에 도열했다. 그 결과 기술력을 가진 기업들은 점점 거대한 부를 축적한다. 그들은 지금까지 어떤 군대와 예술작품, 문화적 성취도 성공하지 못한 곳에서 소비주의를 통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글로벌 시민으로 묶어냈다. 물질적 성취에의 매혹은 거대한 자석이 돼 모든 저항을 물리치고 글로벌 소비자를 “예스맨”으로 만들었다.  “세계를 주머니에 넣는” 스마트폰은 전세계의 필수품목 가운데 하나다.

끝없는 진보라는 신화는 유혹적이다. 의약품은 질병을 물리치고 사망률은 떨어졌다. 오늘의 문제는 내일의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기술이 소비자들을 위해 준비한 안락과 효율의 초입에 서있을 뿐이다. 더 큰 번영과 즐거움으로의 전진은 무한정 계속될 수 있다. 삶은 점점 더 편안하고 즐거울 것이다. 사람들은 원하는 물건이라면 뭐든지 가질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사기 위해 돈만 있으면 된다. 글로벌 자본주의와 시장의 성공 덕분에 더 많은 부가 창출되고,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계속 개선될 것이다.

이런 현대성의 마술은 화석연료 덕분에 가능해졌다. 전례 없이 에너지가 풍부해졌고, 우리가 당연시하는 대부분의 기술은 엄청난 탄소를 배출함으로써 유지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지구의 한계에 이르렀다. 지구인 모두가 이런 문명의 변화를 지지한 건 아니다. 그러나 현대문명은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었고, 최소한 다른 사람들이 가진 물건을 갈망하도록 했다. 인디아의 소농도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을 가졌다. 아주 외딴 마을의 주민도 서구식 티셔츠를 입고 코카콜라를 마신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오래 살수록 더 많이 소비해야 하며 지구에 더 큰 스트레스를 준다. 지구가 우리 욕망보다 먼저 고갈될 것이다. 지구 스스로 현대문명을 끝장낼 것이다. 현대의 막바지인 지금에 와서야 우리는 지난 몇 세기를 돌아보면서 이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뒤늦게야 마지막 단계에서 우리 문명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됐다.

문명에 대한 짧은 학습의 결론은 분명하다. 앞선 모든 문명들과 마찬가지로 현대문명도 끝날 것이다. 언제 어떤 방식이 될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끄트머리에 서 있는 건 분명하다. 이는 다음의 핵심적 질문을 불러온다. 현대성 뒤에 진정으로 생태적이고 지속 가능한 문명이 올까? 인간은 현재의 문명이 막다른 지점에 이른 뒤 땅, 다른 생명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와 경제, 급진적으로 다른 삶의 방식을 발견함으로써 지구적 붕괴를 막고 문명을 재건할 수 있을까?

 

생태학에서 상호의존성을 배워야 한다

지난 지난 수십 년 간 우리는 생태과학 분야의 폭발적인 성장을 지켜봤다. 이제 생태적이라는단어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이 단어는 살아있는 세계가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지의 사실과 더불어 어떻게, 그리고 왜 이런 자연생태계를 보존해야 하는지의 가치를 모두 담고 있다. 우리의 존재자체가 생태계에 기반하기 때문에, 이 경우 사실과 가치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인간은 하나의 종으로서 생태계없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생태계는 매우 중요하고 가치가 크다. 따라서 생태계와 관련된 사실은 우리가 지구에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다.  홈즈 롤스턴에 따르면, “어원상 ‘생태학(ecology)’이라는 말은 생명체들이 자신의 집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뜻하며, 이는 똑같이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 우리가 사는 세계)란 어원을 가진 ‘보편적(ecumenical)’이라는 말과 관련이 있다.”

생태학은 탹월한 상호의존성의 과학이다. 물론 이를 부정하면서 모든 과학이 보다 근본적인 법칙을 이용해 복잡한 상호작용을 설명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생태과학 역시 다른 과학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이는 과학적 성공이 생태계에서 유기체로, 유전자로, 다시 생화학, 화학, 마지막에는 가장 기초가 되는 물리학으로 이루어진 환원의 사다리를 내려가는 것으로 정의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예일대 삼림과학대학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는 특정 숲에서 전체 나뭇잎의 표면적을 계산한 뒤 나뭇잎들의 생화학적 처리능력의 총량을 이용해 그 숲의 진화를 설명하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생태계 연구는 이런 식으로 환원적이지 않다.

생태계는 부분의 합보다 크고 복잡한 창발적 실재이며, 그런 복잡하고 통합적인 전체의 견지에서 개별적 유기체가 이해돼야 한다. 높은 수준의 상호의존성 때문에 환원주의적인 설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 종의 번성은 다른 종들의 번식률과 영양 수요에 달려있으며, 식물과 동물 간의 균형은 양쪽이 생존하는데 필수적이다. 매우 큰 유기체와 아주 작은 유기체가 상호의존의 복잡한 춤에 참여한다. 정교하게 조정된 그들의 공생적 관계는 생존확률을 높이는 협동의 형식을 보여준다. 물론 다윈 식의 경쟁이 여전히 존재하며, 자연에 더 잘 적응한 유기체들이 경쟁자를 압도하고 더 많은 수의 자손들을 생식가능연령에 도달하게 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종 간의 협력이 그들의 생존과 생태계, 그리고 생태계를 이룬 다른 유기체들의 번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유기체들은 서로 외향적인 영향만 주고받는 게 아니라 내향적으로도 상대를 변형시킨다. 포유류나 썩은 나무의 배출물이 다른 종들의 먹이가 된다. 생태계 내부의 이런 풍부한 상호의존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안에 사는 생물들의 행동은 이해될 수 없다.

생태문명은 생태과학의 이런 통찰에 따라 만들어진 모델이다. 이것은 경제와 정치, 생산, 소비, 농업 등의 사회 시스템이 지구적 한계 안에서 재설계되는, 완전히 다른 미래를 향한 비전이다. 이러한 비전은 현대의 확장, 정복, 소비 정신의 죽음으로부터 나오며 계약, 협력, 육성 등의 정신에 기초하여 살아있는 지구와의 조화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말한다.

 

생태문명은 가장 중요한 사고 실험이다

생태문명이 기존 다른 문명들과 가장 뚜렷하게 구분되는 점은 자연세계와의 관계이다. 다른 문명 형태들의 가장 큰 특징이 인간을 위한 자연의 조작인 것과 달리, 생태문명은 사람뿐 아니라 자연의 웰빙도 고려하면서 자연환경을 지속 가능하고 공생적인 방법으로 변형시킨다. 이는 원초적인 자연의 순수성으로의 회귀와 같은 낭만적 이상이 아니며, 어쨌든 문명의 한 형식이다. 생태문명은 단순히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번영을 위해 사람들끼리도 서로 평화롭게 살아가자는 것까지 포함한다.

19세기까지는 다른 모든 문명을 정복하고 제거할 수 있는 하나의 문명, 즉 글로벌 문명이 존재하지 않았다. 문명이 지역적 형태를 띨 때는 하나가 사라져도 다른 것들은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었기에 그 위험성은 낮았다. 오늘날 지구는 최초로 과학, 기술, 국가, 전지구적 소비자들에 기반한 현대문명이라는 하나의 글로벌 문명이 지배하고 있다. 과거 다른 문명들이 그랬듯이 이 단일 문명이 사라진다면, 그 결과는 엄청날 것이다. 미국정부는 몇몇 은행이 “파산하기에는 너무 크다”고 믿을지 모르지만, 이 글로벌 문명이 휘청거릴 경우 우리를 구제할 수 있는 힘은 없다. 인류 역사에서 50번째 혹은 100번째로 다시 한번 문명변화의 율동적인 순환과정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 첫 번째 북소리가 지금 들린다.

다음문명, 즉 사회조직의 다음 패턴은, 만약 그것이 존재한다면 생태문명이 될 것이다. 여기서 “생태적”이라는 말은 유토피아적 꿈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며, 최소 한도로 우리의 현재 문명 뒤에 올 어떤 것을 뜻할 뿐이다. 어쩌면 다른 문명이 없을 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나무에서 살거나 모두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문명이 끝난 뒤에도 어떤 종류의 안정된 사회가 지속된다면, 그 사회는 지속가능한 문명이 돼야 한다. 즉 현대문명이 지금 초래하는 종류의 파괴적 손상을 피하거나 되돌릴 수 있을 만큼 환경과 충분히 조화를 이뤄야 한다.

제레미 렌트에 따르면, “생태문명의 배후에 있는 중요한 생각은 대다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사회가 훨씬 더 깊은 수준에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재생 에너지에 투자하고 고기를 덜 먹고 전기 자동차를 운전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전지구적인 사회적, 경제적 조직의 내재적인 틀이 바뀌어야 한다.” 현대성이 (아마 말 그대로) 스스로를 소진시키고 그 계승자가 등장할 때, 과연 어떤 종류의 문명-어떤 종류의 세계관과 생명관–이 부상할 지 생각해보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고 실험이다. 생태과학은 우리가 발전시켜야 하는 문명의 종류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우리는 현대의 고통스러운 실수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구체적으로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일으키고, 과소비 및 자원의 과도한 사용을 초래하고, 공공선보다 개인의 이익을 위한 사회구조를 형성했으며,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에너지원에 의존하도록 만든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결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웠을까? 우리의 생태문명은 어떤 모습일까?

번역: 한윤정 한국생태문명 프로젝트 디렉터

 

앤드류 슈왈츠(Andrew Schwartz)

미 생태문명연구소 부대표·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 조교수

월, 2019/11/11-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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