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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풍소식] 모래강이 흐르지 않자 생명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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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풍소식] 모래강이 흐르지 않자 생명도 멈췄다

admin | 화, 2020/03/24- 02:25
크기_사진1 원본크기 _DSC2811s 내성천 중류 예천.jpg

내성천 중류 예천, 모래강은 아이들을 엄마처럼 품었다. 모래강은 다시 흘러야 한다. 박용훈

국토부가 아닌 환경부가 시험담수라는 이름을 내걸고 영주댐 수문을 닫았다. ‘종합진단’을 끼워 넣었지만 거대한 녹조를 재현하고 멸종위기종 서식지를 훼손하는 일이다. 4대강 보를 ‘자연성 회복’ 방향으로 열어 조사하는 것과는 정반대 행보였다. ‘4대강 살리기는 생명 살리기’라고 홍보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사라진 내성천과 영주댐 이야기, 지금 내성천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떠올려 글을 쓰기 위해 숨을 크게 돌려야 했다. 벌써 아마득한 시간이 되어버린 그때를 찾아가려면, 사라진 것들을 하나하나 불러보려면…
내성천이라는 모래집이 있었다 
내성천은 백두대간 고산준령에서 봉화, 영주, 예천, 문경 쪽 영남지역으로 쏟아낸 물길들이 대간에서 뻗은 문수지맥과 만나 모여 흐르는 강이다. 대간 아래로 중생대에 관입한 화강암층이 오랜 세월 풍화하여 봉화-영주 분지를 만들었고, 물길들이 이곳의 모래를 끌어다 내성천에 부려놓아 우리나라 최고의 모래강으로 만들었다. 강과 산맥이 함께 흐르며 굽이마다 펼쳐놓은 하얀 모래밭과 그 여백이 조화를 이뤄 한국 최고의 산수라는 평을 받는다. 명승 110곳 가운데 4곳이 내성천 유역에 있을 정도로 강의 경관이 매우 빼어났다. 명승 제16호인 회룡포와 제19호인 선몽대일원이 내성천 하류에 있으며, 하류의 하곡 폭은 평균 700미터에 이른다.
2009년 여름, 4대강 사업 종합계획이 나온 뒤 ‘생태지평’을 따라 낙동강 보 예정지로 가다가 낙동강 구담습지와 멀지 않은 예천 오천교에서 이 강을 처음 보았다. 비가 왔는지 물이 조금 불었고, 모래가 가득했다. 그해 여름휴가 때 낙동강을 기록하는 일정에 내성천을 넣었다. 그 뒤 내 좌표를 다시 설정하는데 이 강의 존재는 매우 중요했다. 4대강 사업이 시작됐고, 강 이곳저곳에서 ‘속전속결’이란 표현에 걸맞은 ‘전쟁터’ 같은 죽음의 모습들을 마주해야 했다. 그러다 찾은 백두대간 아래 평은의 마을들은 여느 산골 고향마을이었고, 그곳을 흐르는 강은 그저 평화롭고 잔잔했다. 어디나 넓고 판판한 강은 햇살에 반짝이며 은빛 여울로 흘렀다. 
그곳의 모래는 강에 들어가 찬찬히 보면 알갱이들이 쉬지 않고 흘러갔다. 강물은 바닥의 두툼한 모래 덕에 그 빠름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모래 위로 자신의 모습을 일부만 보여준 채 흘러갔다. 한여름 밤 내성천 강변에서 반딧불이가 생명의 춤을 추듯, 강 안을 걷다 보면 무언가 반가움에 몸을 비비는 듯 차가운 물길이 발을 감싸곤 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모래 속과 모래 위에서 물은 모였다 갈라지고 다시 모이면서 바다로 향했다. 생각해보면, 흐르는 것들은 그것을 바람이라 하든 시간이라 하든, 또는 비라 하든 강이라 말하든 모두 섭리의 발현이다. 작은 모래알 하나도 지구의 다른 시간들이 서로 만나야 할 곳에서 만나 모래가 되어 그곳에 다다른 것이다. 강물이 흘러가다가 무심히 내려놓은 곳에 상 없는 상을 새기다가 또 다른 강물을 만나 바다로 향했다. 그곳에 작은 언덕과 골을 이뤘다가 흩어지고, 다시 언덕이 생기고 골이 생겼다. 모든 생명이 다 인연을 따르는 것이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으며, 너무 얕지도 깊지도 않은 곳을 따라, 수줍은 듯 모래로 집을 삼는 흰수마자는 내성천이라는 모래집에 들어 뼈와 살과 비늘을 받은 내성천의 귀한 아이였다.
아름다운 지구 정원이 온갖 삶을 품었다 
비가 와서 큰물이 지면 수달과 고라니, 삵이 다녀간 모래들도 큰물을 따라 바다로 떠났다. 늘 그 자리를 지켜온 모래톱은 사실 그 자리를 지켜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모래톱이었다. 만약 늘 그 자리를 지켜왔다면 풀과 나무가 자라 땅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래톱이 모래톱으로 있어야 하는 소명은 기실 다른 데 있었다. 작은 물새들은 이른 봄부터 강변에 맑고 높은 소리를 남기다가 어느 순간부터 도통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알락할미새들이 쌍쌍으로 강물 위에서 날렵한 곡예를 뽐내지만, 그것은 너무 조용해진 강변의 지루함을 깨려는 작은 마법이거나 대를 잇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물새들을 응원하기 위한 장엄한 화음임에 틀림없다. 흰목물떼새가 흰 모래밭 위에 가장 먼저 알을 낳아 품으면 시간을 두고 꼬마물떼새가 슬금슬금 자리를 잡는다. 강에 붙은 산에서는 황조롱이나 수리부엉이가 모래톱을 주시하고, 한낮 달궈진 모래밭에서 물새들은 서서 그늘을 만들거나 강물을 몸에 적신 뒤 살금살금 돌아와 알의 체온을 낮춰준다. 강에서 장마기 홍수는 큰 변곡점이다. 때가 되면 강이 몸을 부풀려서 떠나야 할 것들을 데리고 떠나는데, 물새들은 그 시간이 되기 전 서둘러 새끼를 키워낸다. 
큰물이 지나간 자리, 강과 연결된 작은 물웅덩이에는 치어들이 줄지어 오가고, 새 모래톱에는 낯익은 흔적들이 다시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사람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농사를 지어왔듯이, 그 강에서는 늘 그렇게 강물이 흘렀고, 흰수마자가 살아왔으며, 흰목물떼새가 해마다 온 힘을 다해 알을 품어왔다. 그 강에 들어서는 것은 수십억 년 동안 온갖 생명의 기운이 함께 빚어낸 아름다운 지구 정원의 문 하나를 여는 것이어서, 그것을 단박에 알아보는 아이들은 탄성을 지르며 강으로 뛰어가곤 했다. 
곶자왈에서 아이들이 내성천을 찾았다. 처음 강의 모래를 밟아본 아이들 표정에는 신기함이 가득했다. 몇 명의 어른과 10여 명의 아이들은 모래밭을 걷고, 모래 위에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함께 강을 건너고, 흠뻑 소나기를 맞고, 편을 나눠 꼬리잡기를 하고, 물 위에 둥둥 떠서 팔다리를 뻗은 채 눈을 감고 강물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내성천은 ‘아이들의 강’이 되었다. 그해 가을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수사님 한 분이 내성천을 찾았다. 비를 맞으면서도 동영상으로 강을 여러 날 기록한 그는 이 땅에서 피어날 여러 피카소의 싹을 영주댐이 없앨 것이라면서 탄식했다. 지난여름 회룡포는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아픈 상처를 드러냈다. 아이들은 여전히 찾아왔고, 내성천은 품에 안았다. 바다 같던 그 품이 볼품없이 작아지고 있다. 
적당한 봄날 산마루에 서서 물결치는 연록의 잎들을 보면서 교과서에 실렸던 <신록예찬>을 떠올렸던 적이 있다. 그리고 강변에도 이런 계절이 있다는 것을 그 강에서 처음 알았다. 덩치가 가장 큰 왕버들은 작은 버드나무들에게 먼저 오는 봄을 양보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한꺼번에 연록의 빛을 뿜어냈다. 이에 화답하듯 강을 따라 이어진 산 여기저기에서 산벚꽃이 일제히 분홍빛을 뽐냈다. 볕 좋은 봄날에 강이 굽이굽이 펼치는 한 편의 카드섹션이었다. 평은과 이산에는 굵은 왕버들이 큰 군락을 이뤘었는데, 이산이 물새들에게는 좀 더 아늑했던지 봄이면 원앙을 비롯한 여러 야생오리들이 모여 느긋하게 봄볕을 즐겼고, 저녁이면 아름드리 20여 그루의 왕버들 가지마다 멧비둘기들이 수없이 날아와 앉았다. 늦봄, 산 절벽 밑 물가에 핀 하얀 찔레꽃은 그냥 예쁘고 소박할 뿐이어서 장사익이 부른 것처럼 “너무 슬프고 서러워서 목 놓아 울어야 하는” 그런 하얀 꽃은 결코 아니었다. 한여름이면 왕버들 그늘 아래로 물고기가 모여들었고, 맞은편 절벽 숲의 나무들에는 백로와 왜가리들이 적당히 자리 잡은 채 해를 산 뒤로 보냈다. 강을 따라 넓고 긴 모래밭과 너무 일찍 베어진 왕버들 군락 밑으로 70년 세월의 녹물이 교각에 밴 송리원철교가 있었고, 그 아래로 금강마을 사람들이 불로산이라 부른 크고 깊은 계곡이 별유천지로 펼쳐졌다. 계곡 숲 여기저기에서 작은 산새들의 고운 울림이 얕고 맑게 흐르는 강물 위를 타고 퍼져나갔고, 계곡의 침입자를 끝까지 주시하는 물떼새들과 달리 할미새들은 호기심 반 무관심 반으로 사람을 대했다. 수달은 곳곳에 흔적을 남겼는데, 그 계곡을 여러 번 찾았어도 먹황새가 그곳에서 해마다 겨울을 나는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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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 중류 예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인 흰수마자, 영주댐 건설로 자취를 감췄다.  박용훈
8년치 모래를 파낸 뒤 강은 숨을 멈췄다 
어느 날 많은 포클레인이 댐 상류의 평화로웠던 강으로 들어왔다. 흡사 4대강 준설현장을 다시 보는 듯했다. 영주시는 2012년 한 해에만 댐 상류에서 내려오는 8년치 양의 모래를 파냈다. 모래는 돈이 되는 골재였을 뿐, 환경부조차도 흰수마자의 서식처로 여기지 않은 듯했다. 4년 동안 모래를 파낸 뒤 2013년에는 다묵장어가 보이지 않았고, 2014년에는 흰수마자가 확인되지 않았다. 불로산 계곡에서 사람들의 발길을 멈춰 세웠던, 큰 바위를 뿌리로 감싼 왕버드나무가 어느 날 베어져 강물에 던져졌다. 그해 겨울 계곡에서는 요란한 전기톱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영주댐에서 상류로 20킬로미터 일대 강 양쪽 산의 나무들이 베어졌다. 평은과 이산의 왕버들도 모두 사라졌다. 이십여 마리씩 한가롭게 떠 있던 원앙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400년 된 느티나무가 천수를 누리지 못했고, 무엇보다 영남의 전통문화를 잘 간직해온 400년 된 마을들이 전통을 살리자는 21세기 초입에 사라졌으며, 531세대가 고향땅을 등져야 했다. 귀한 손님인 먹황새는 해마다 겨울을 보내던 계곡을 나와 강 여기저기를 떠돌았는데, 지난해 겨울에는 이 새를 보았노라고 반갑게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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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 상류 영주 금강마을 앞, 내성천을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마음을 모았다.  박용훈

댐 하류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 극심한 골재 채취와 댐 공사 뒤 모래가 하류로 흘러간 만큼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내성천은 점점 빈약해졌으며, 풀과 나무가 뿌리를 내리면서 모래톱들은 더 이상 바다를 향해 나아가지 못했다. 여뀌에 이어 달뿌리풀과 버드나무가 모래톱을 차지할수록 작은 물새들의 번식지는 줄어들었다. 넓고 판판하던 물길이 좁아지고 빨라진 채 깊어졌으며, 강바닥은 더욱 거칠어졌다. 고운 모래가 급속히 줄어들었고, 2017년까지 영주댐 사후환경영향조사에서 180개체 넘게 나왔던 흰수마자가 2018년도에는 단 9개체만 확인됐다. 내성천 모든 구간에서 흰수마자가 멸종의 벼랑으로 내몰리는 것이 확인되자 환경부는 서식처 복원은 외면한 채 치어 방류에 급급했다. 한편 2016년도부터 내성천 흰목물떼새에 대한 시민공동조사가 이어졌고, 해마다 이십 몇 개씩 둥지가 확인되면서 내성천이 국내 최고 서식지임을 확인했는데, 그 가운데 댐 상류의 서식밀도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흰수마자나 흰목물떼새 모두 서식지 보전대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환경부는 오히려 지난 9월에 영주댐 시험담수를 강행했다. 
정부는 영주댐의 목적은 ‘갈수기에 낙동강에 물을 흘려보내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이는 백두대간의 물을 받아 두툼한 모래층에 저장하면서 낙동강에 보내온 내성천이 잘 해오던 일이었다. 2016년 1차 시험담수를 했으나 녹조가 심해 2018년 3월, 김은경 전 장관 재임 시절에 전량 방류했다. 그 뒤 1년 반 동안 아무 일도 안 하던 환경부는 국토부에서 넘어온 수자원공사가 발전기 부하시험 같은 이유를 내세워 시험담수를 요청하자 댐의 철거·존치에 대한 처리방안 마련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확보하는 종합진단을 2년 동안 함께 하겠다면서 허가했다. 댐 착공 뒤 10년, 강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고, 흰수마자는 절멸 직전인 긴박한 때에 2중대 소리를 듣던 환경부가 이제 하천유지용수 공급용 댐이라는 새로운 댐의 시대를 열며 무대 전면에 나서는 모양새다.
몇 해 전 대구의 어린이들과 함께 회룡포 전망대에 오른 적이 있다. 강이 곧장 가면 편할 것을 왜 이렇게 한 바퀴 빙 돌아가느냐고 물었는데, 아직 고사리 손인 지웅이가 “마을을 돌아서 물을 주려고요”라고 말했다. 아이들만 할 수 있는 답이었다. 지웅이는 강에 도착하자 모래성을 쌓고 풀잎 물고기를 그 안에 띄워 놀았다. 흰수마자와 흰목물떼새를 위해, 그리고 지웅이를 위해 내성천은 예전처럼 흘러야 한다. 뒤늦은 면피성 조사가 아니라, 복원과 보전을 위한 결단이 필요한 때다. 그 결단에 지금 당신의 응원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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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 268호 '강'특별호 '우리 땅 우리 강의 말'에 실린 글을 옮겨 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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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풍소식>은 초록사진가이자 생태지평 운영위원인 박용훈 님이 사진과 글로 강이 전하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필자 소개> 
박용훈 – ‘초록사진가’라는 이름으로 미처 알지 못한 아름다운 강, 우리가 잃어버린 강, 위기에 처한 우리의 강들을 사진에 담아 세상에 알리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내성천의 아름다움과 상처를 기록해왔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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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신축년,
몸은 멀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가까운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생태지평의 모든 연구원은 생태사회를 향해 올해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현장과 이론이 만나는 연구소 생태지평 드림 -

목, 2021/02/11-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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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유착은 정치와 환경의 만남, '정(치와 환)경유착'을 꿈꾸는 조성주 회원님의 연재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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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뉴딜(Green New Deal)’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정부도, 시민사회도 이제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문제는 적어도 피할 수 없는 과제 중 하나라고 인식해가고 있는 듯 하다. 기업들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최근에 유행처럼 대두되는 ‘ESG(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경영에서도 강조되고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경제도 역설적으로 그린뉴딜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다양한 그린뉴딜 사업으로 불확실한 경제상황을 극복해나가고자 하는 각 나라 정부들의 의도도 작용할 것이다. 관심도가 높아진 만큼 ‘그린뉴딜’의 본래적 의미를 되짚어보고 원칙과 방향에 대해서 고민하고자 하는 시도도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다. 그린뉴딜이 말그대로 “모든 영역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며 경제의 탈탄소화를 넘어서 전체 경제 시스템을 재구성하거나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과정(김현우)”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체제로 가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지금의 경제 시스템, 일자리들이 가지는 문제점은 무엇이고 이것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의로운 전환’의 핵심개념은 기후변화 등에 대응하기 위해 산업적 이동이 있을 때 기존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고 새로운 녹색일자리로 안전하고 공정하게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기후변화가 우리 공동체 모두의 책임이고 이로 인한 일자리, 노동의 변화가 시급한 문제라면 이는 당연히 기존 노동자들의 피해없이 전환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대해서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렇게 전환되는 노동은 누구나 말하듯이 ‘적절한 임금’, ‘복지’, ‘고용안정’ 등이 전제되어야 함에도 이견이 있기는 어렵다. 전환되는 그린뉴딜 일자리가 비정규직, 저임금에 복지도 불충분한 그런 일자리라면 이는 체제전환을 핑계로 한 노동의 배제와 소외일 뿐일 것이다. 아마도 ‘정의로운 전환’을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여기까지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진짜 문제는 지금 부터다. ‘대기업-공공부문-유노동조합- 정규직’과 ‘중소기업-무노동조합–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이중 노동시장’이라는 현실에서 ‘정의로운 전환’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그린뉴딜로 인해 만들어지는 ‘정의로운 전환’에 해당하는 일자리의 임금체계는 ‘연공급제 임금체계’인가? 정의로운 전환에서 말하는 ‘고용안정’은 ‘정년연장’을 의미하는가? ‘정의로운 전환’에서 보장되어야 하는 ‘복지’는 ‘기업복지’를 의미하는가? 앞서 우리는 그린뉴딜이 그리고 이어지는 정의로운 전환이 ‘경제의 탈탄소화’를 넘어 기존 경제시스템의 문제들을 극복하는 새로운 체제로의 이행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위에 던진 질문들은 사실 한국 노동시장에서 ‘정의로운 노동’을 둘러싼 핵심적이고 논쟁적인 질문들이며 기존 경제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로 지적되는 주제들이다. 이 질문들에 대해서 ‘그린뉴딜’과 ‘정의로운 전환’은 어떤 답을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자신이 하고 있는 노동이나 직무가 아닌 어떤 ‘기업’에 다니는가와 근속년수로 임금이 결정되는 한국 노동운동이 선호해왔던 ‘연공급 임금체계’는 결과적으로 ‘기업’ 이라는 성벽을 횡단하지 못함으로서 같은 노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다르다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실현하지 못했다. 오히려 대중소기업간 격차로 인해 불평등을 확대하고 여성과 청년 들에게 불리한 임금체계로 평가된다. 한편 직무나 숙련도에 상관없이 해당기업에만 있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임금이 상승되기에 기업에게 외주화, 하청화, 신규채용의 축소 등의 압력으로 작동하고 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이를 묵인하기도 한다.  ‘연공급’의 대안으로 이야기되는 ‘직무급 임금체계’가 있지만 한국적 상황에서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그린뉴딜의 일자리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는 임금체계를 지향해야 불평등 완화에 긍정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노동조건 격차의 가장 큰 원흉으로 지적되는 ‘기업복지’는 어떠해야 할까? 사회 전체의 복지제도 확대가 없이 R&D투자나 자본력에서 우위에 있는 재벌대기업들을 중심으로 그린뉴딜이 선행될 때 해당 일자리는 다시 대-중소기업간 기업복지의 격차가 그대로 조성될 가능성이 높다. 그린뉴딜 일자리의 창출에 앞서 복지제도의 설계가 깊이있게 고민되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연금의 세대간, 고용형태간 불평등성이 강하게 지적되는 가운데 ‘정년’은 어떤 의미일지도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 제기된 질문들은 정부와 기업에게만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게도 제기되는 질문들일 수 밖에 없다. 

그린뉴딜과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것이 현재 우리 노동시장의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가는 ‘전환’이라면 이것은 작금의 한국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그대로 확대하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전환’은 말그대로 기존의 낡은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이행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우리 노동시장과 경제시스템에서 ‘낡은 것’, ‘불평등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조금 더 냉정하게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낡고 불평등한 것은 화석연료 산업에만 있지 않다. 기후변화로 인한 이 위기가 우리 모두가 만들어 온 결과인 것처럼, 불평등한 노동시장과 일자리 역시 우리 모두가 함께 불평등에 공모해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전환은 우리들 스스로의 낡음도 함께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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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조성주 / 정치발전소 대표, 생태지평 회원
어릴적 천문학자를 꿈꾸다가 어느새 지구별의 사회문제를 고민하는 사람이 되어있다. 다양한 곳에서 노동문제를 주로 다루어왔고 현재 정치발전소 대표를 맡고 있다


화, 2021/04/27-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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