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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과세를 위한 직접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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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과세를 위한 직접 민주주의

admin | 금, 2020/03/13- 19:42

이탈리아는 세계에서 공공 부채율이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이렇게 부채로 치닫는 현상은 정당에 신임을 주어 선출하는 시민들의 암묵적인 동의로 인한 것이다. 더욱이 시민들은 경제 분야의 정치나 특히 공공 재정public finance 관련 모든 직접 참여에서 배제되어, 헌법에서조차 세금 관련 레퍼렌덤의 시행을 허용하지 않는다. 최근의 발전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조처는 정당한가?

 

공공 재정문제에서 목소리를 빼앗긴 시민들

공공 부채는 근본적으로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고 납세자들의 지갑에 영향을 준다. 현재도 그렇고 미래에도 마지막으로 청구 금액을 지불하는 것은 납세자들이지만 그들에게는 공공 재정의 결정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더욱이 시민들의 레퍼렌덤 권리 강화에 대해 토론할 때, 공공 재정의 문제는 가장 민감한 문제중의 하나다. 곧 시민들이 재정 및 세금 관련 결정에 연루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개 민주주의를 강화하면 정부의 역할은 축소되고, 시민들은 공익을 책임져야 하는 정치인들과 달리 늘 세출은 늘이고 각자에게 돌아가는 세금은 줄이려 들 것이라는 우려에 겁을 먹는다. 실제 상황은 그 반대이다. 이탈리아에서 국가 세입 및 세금 관련 문제는 레퍼렌덤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고, 시민들은 그 어떤 정부 차원의 공공 예산문제에서도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현재 이탈리아는 엄청난 부채를 안고 있다. 지배 정당들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엄청난 부채를 안고 있는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에서도 공공 지출과 세금 관련 문제들은 레퍼렌덤 권리에서 배제되어 있다. 재정에 관한 정치적 선택에 있어서 시민들을 모든 형태의 참여에서 배제시키는 것은 무분별한 지출과 부채 의존을 부채질할 듯하다. 실제로 헌법(제75조 2항)은 예산과 세금 관련 법률에 대한 레퍼렌덤 투표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금지는 헌법 제정자들 사이에서 존재했고, 지금까지 기존 정당들에 널리 퍼져있는, 시민들은 국가 재정에 그 어떤 책임도 없다는 가정 때문이다.

시민들의 특성상 늘 더 낮은 세금에 더 큰 사회복지를 요청하는 경향이 있다고 가정하곤 한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현실은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을 보면 전반적으로 비교적 높은 세금을 지불하는 반면 공공 서비스의 질은 매우 낮은 상태이다. 불필요한 프로젝트에 공공 자금 낭비, 공공 사업 경영의 불찰, 횡행하는 파벌주의는 공공 재정의 불안에 기여했다. 시민들이 세금 관련 사항에 개입할 기회가 없는 곳에서는 정치인들이 부채를 엄청나게 조장해 심각한 공공 적자를 가져온다. 많은 유럽 국가들에서 축적된 공공 부채는 예를 들자면, 국민 레퍼렌덤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장기적으로 균형을 잃은 국가 재정 정책의 영향은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가 아무런 대책 없이 높은 세금을 감당할 수 밖에 없게 되며, 결국 지역사회에서 다수결로 요청된 바가 없는 공공 사업이나 프로젝트에 대한 지출이나 부채 이자로 인한 지출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지금이건 앞으로건 늘 납세자들이다. 정치 대의원들은 임기가 끝나면 임무가 바뀌고 종종 “연금 수당”의 부당이득을 누리고, 공공 예산의 균형을 바로잡을 책임은 그들의 후임자들에게 전가된다. 결국 공공 지출에 대한 책임의 논리는 뒤집혀야 한다. 지출과 수입 결정의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늘 시민들이니, 그와 관련한 최종 발언권은 시민들에게 주어져야 할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의 반증

실제로 공공 자금의 운용에서 시민들이 정치인들보다 책임감이나 장기적 안목이 부족하지는 않은 듯하다. 미국과 독일에서 수십 년 간 걸쳐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시민들 2/3가량의 다수가 단기적으로도 공공 예산이 균형을 이루는 것을 선호한다는 결과가 늘 나왔다. 엄청난 공공 부채는 국민, 특히 그 부담을 떠 안게 될 젊은 세대들이 바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정치의 결과이다. 공공 부채의 지속적인 증가는 사실 정당들의 전략적 선택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어 연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드러난다.

▪ 다수 정당들의 연합 내에서 분열이 클수록, 부채 증가 경향이 더 크다.
▪ 정부가 다음 선거에서 질 가능성이 클수록, 부채 증가 경향이 더 크다.
▪ 한 정부의 지속 기간이 짧을수록, 부채 의존 경향성이 더 크다.

이로 미루어, 엘리트 정치인들의 단기적인 논리가 공공 부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표를 얻기 위해 부채에 의존한다.

다른 한편으로 재정 및 국가 세입 관련 문제에도 시민들이 개입할 권리를 지닌 나라들이 있다. 스위스에서 시민들은 확정적 레퍼렌덤을 갖추고 있어서 정치인들이 지나친 과세나 공공 지출로 공공 예산에 너무 큰 부채를 지우고 그 결과 미래의 납세자들인 젊은 세대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지우는 듯 여겨질 때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민발안으로(이탈리아에서는 대개 ‘제안적 레퍼렌덤’이라고 정의한다)는 보다 균형 잡힌 국가 세입을 위한 시민들의 제안을 투표에 부침으로써 부채를 제한하고, 정치인들이 좀 더 공정하고 균형잡힌 지출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거부 수단으로써 긴급 제동을 걸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안 수단으로써 정치 계급과 정당들이 움직이지 않을 때 가속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위스의 거의 모든 칸톤과 많은 기초자치단체에는 재정관련 레퍼렌덤이 존재한다. 어떤 공공 프로젝트가 미리 정한 지출 한도(평균 2백 5십만 스위스 프랑 혹은 약 2백만 유로)를 넘어설 때 시민들은 의무적으로 레퍼렌덤을 통해 의사를 표명하도록 소집된다. 이런 직접민주주의 도구는 매우 단순한 원칙에 따라 작동한다. 곧 어떤 특정 공공 프로젝트를 위한 지출이 법으로 미리 정한 총액 한도를 넘어설 때 모든 유권자들은 이에 대해 결정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선택적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최소 인원의 서명을 모은 시민들이 특정 지출의 승인과 관련하여 거부권으로서 레퍼렌덤을 요청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의무적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가끔 어떤 공공 지출이 어떤 정해진 총액 한도를 넘기면, 국민투표를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물어서 해당 칸톤이나 기초자치단체의 공공 지출을 승인하거나 거부한다는 뜻이다.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국민들이 지출 승인에 반대하여 국민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조세나 지방세로 충당되는 지출을 통제하거나 억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스위스 시민들은 어쨌든 국민발안과 실행적 레퍼렌덤이라는 두 가지 오랜 도구로 국가 세입관련 법령과 세금 제도에 개입할 수 있다.

대부분 이 도구를 활용하려는 성향의 칸톤에서는 “재정관련 레퍼렌덤”이 없는 칸톤들에 비해 공공 지출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나타난다. 스위스의 학자들(Kirchgassner, Feld, Savoiz, 1999년)은 131개의 스위스 도시와 칸톤에서 의무적 재정관련 레퍼렌덤의 영향을 분석했다.

기초자치단체들은 칸톤과는 달리 예산을 변경할 수 있는 여지가 더 크다. 분석에 따르면,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기초자치단체 예산의 적자를 줄이는 데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다. 게다가 세금과 과세에 대해 레퍼렌덤 투표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시민들은 그 결과 늘 세금 감면을 선택한다는 주장은 입증되지 않았다.

1978년~1999년 사이 미국에서는 국세 관련 130건의 국민발안이 펼쳐졌는데 그중 86건이 감세를 목표로 한 것이었고, 27건은 증세, 17건은 과세와 관련하여 중립적인 것이었다. 증세 방향의 발안 중 39%가 승인된 반면, 감세를 위한 발안은 조사한 사례의40 %가 수용되었다.

그 외에도 스위스 사람들은 증세에 동의한 경우도 많았다. 1984년 국민발안으로 고속도로의 일반 통행새 징수를 위한 스티커가 도입되었다. 1993년에는 레퍼렌덤으로 석유 리터 당 0.2스위스 프랑의 새로운 추가세가 도입되었다. 1998년 스위스 사람들은 육상 화물 교통(중량급 화물)에 대해 세금을 도입하여 산고타르도San Gottardo의 새 터널을 만드는 데 든 지출을 충당했다. 2009년에 스위스 사람들은 일정 기간 동안 부가가치세의 일시 증액에 동의했다. 다른 한편으로 시민들 편에서 부가가치세의 도입을 세 차례 기각했다. 2001년 12월 스위스 사람들은 레퍼렌덤 투표로 “부채 동결”을 승인했다. 그 해부터 스위스 연방 공공 부채는 지속적으로 내려가서 2018년 국내 총생산GDP의 28.8%로 조정되었다. 2018년 3월에 스위스 시민들은 공영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 사업의 연방(국)세를 폐지하기 위한 국민발안을 기각했다.

산갈로San Gallo 칸톤을 예로 들 수 있을 텐데, 이곳에서는 현행법으로 충당하지 못하는 새로운 지출 항목을 위해 일괄 지불로 1천 5백만 스위스 프랑 이상을 지출하거나, 혹은 여러 해에 걸쳐 1백 5십만 스위스 프랑의 지출을 결정할 때 의무적 재정관련 레퍼렌덤이 공고되어야 한다. 칸톤 예산 총액 50억 스위스 프랑(2018년)에 미루어, 위의 금액은 비교적 적다. 선택적 레퍼렌덤은 3백만 스위스 프랑 이상에 준하는 지출과 30만 스위스 프랑 이상의 현행 지출 심의를 위해 요청될 수 있다.

이를 목표로 40일 안에 4천 명의 서명을 모아야 한다. 약 30만 유권자 숫자를 고려하면 이 서명 기준점은 당연히 지나치지 않다. 다양한 조사에 따르면Kirchgassner(2001년),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공공 지출을 제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도구를 갖춘 기초자치단체들은 시민들에게 이 권한을 주지 않는 기초자치단체에 비해 1인당 지출 수준이 더 낮은 양상을 보인다. 유권자들이 지역 법규에 대해 의사를 표명할 수 있는 곳에서는 과세와 부채율, 탈세 또한 더 낮다.

재정관련 레퍼렌덤 외에도 바로 직접 민주주의의 매커니즘이 함께 작용하여 스위스를 공공 부채가 적고, 과세율이 더 낮으며, 공공 행정의 효율성이 높고 경제가 안정된 나라의 하나로 만들었다. 스위스만이 아니라 캘리포니아와 미국의 다른 연방 주들에서 실시한 수많은 연구에서도 이러한 역동성을 볼 수 있다. 곧 직접 민주주의 매커니즘이 잘 작동하는 곳에서는 다음 양상이 나타난다.

▪ 공공 행정을 위한 지출이 더 적고, 세금 부담 수준이 낮다.
▪ 더욱 공평한 소득 분배
▪ 세금에 대한 시민들의 책임감이 더 높다.

실제로 탈세에 맞선 싸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세금 문제에 대해 투표를 더 많이 하는 칸톤에서는 탈세가 더 낮았다. 이는 한가지 단순한 연결고리를 보여준다. 곧 시민들이 자신이 직접 선택 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에도 공공 행정에 더 만족할수록, 더욱 기꺼이 의무로 부과된 세금을 납부하려 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공익 사업에 대한 지출과 과세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을수록 더욱 공적인 책임 의식을 가지며, 공공 지출을 통제할 수 있을수록 더욱 기꺼이 국가의 세입 노력을 지원하고자 하게 된다.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순환고리이다.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 근본적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어째서 직접 민주주의가 더 발전한 체제들은 대개 이런 민주주의는 물론, 국가 재정과 경제적 안정에서도 건강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레퍼렌덤을 통한 시기적절한 개입으로 시민들은 단지 5년에 한 번씩 다음 선거에서 다시 과반수로 선출하여 무능한 이들을 처벌할 수 있는 대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입법 회기 중에도 개입하여 특정 지출, 과세, 대형 프로젝트, 낭비 등을 차단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최근 전국 레퍼렌덤으로 핵발전의 선택이라는 엄청난 낭비를 피할 수 있었지만, 이미 납세자들의 어깨를 무겁게 할 태세가 된 다른 많은 대형 프로젝트들이 있다.

▪ 시민들은 레퍼렌덤 덕분에 공공 지출이나 정책 전반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전달받는다. 시민들은 경험을 통해 자신들이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신중하고 책임감을 갖는다.

▪ 레퍼렌덤이 있는 시민들은 정치 비용 또한 조절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다른 유럽 국가 정치적 대의원들의 평균 지출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정치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 정치인들의 바람과 시민들의 바람 사이의 단절이라는 커다란 문제를 직면한다. 잘 조직되고, 자금력이 있으며, 정확한 시기에 공공 지출과 정부 방침을 좌우하는 막강한 이익 집단들이 있다. 반대로 선거를 기하여 시민들은 보통 이념적인 이유로 한 정당에 “표몰이”를 하지만, 많은 현안에 대해서는 선거 이후 구성된 정부가 취한 선택과는 다른 견해를 지닌다.

과세 사안에서 시민들에게 직접 민주주의의 혜택이 부족한 점이나 공공 지출에 대한 이 간단한 언급을 통해, 국가 재정 관련 결정에서 시민들을 배제시키는 것은, 아마도 ‘이탈리아 제헌 국회Assemblea Costituente’가 상상했던 것과는 반대 현상을 가져왔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탈리아에는 세금 압박이 (사회적 기부를 포함하여) 매우 크다. 공공서비스의 질은 그다지 좋지 않고, 전국적으로 탈세가 만연해있으며, 공공 부채가 기록적인 수치에 이르고, 공금 낭비의 사례가 많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시민과 납세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각각의 결정을 통제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저 더 많은 의사 결정력과 중앙 집권화 만이 국가 세입에 대해 더 큰 책임감을 갖게 만들 것이라는 것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주권자들의 더 강력한 역할은 국가 재정을 회복시키기 위해 필수적이다.

이탈리아는 그리스 다음으로 가장 높은 국가부채율을 자랑하는데, 2017년 말 약 2조 3천 억 유로가 아직 GDP의 약 130%선에 머물러 있다. 동시에 가장 큰 재정적 압박을 받고 있는 유럽연합 가입국 첫 여섯나라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며, 43.3%(2017년 GDP 대비 세금과 사회복지 총액)에 달하는 재정적 압박을 호소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탈리아는 탈세율이 높은 편이다(2017년 1천 1백 억유로 추정). 반면 공공 서비스의 질은 떨어진다. 또한 지방 차원에서 국세-재정 관련 사안은 레퍼렌덤 사안에서 배제된다. 이탈리아에서 정치인들과 정당들은 일단 공공 지출을 운용할 수 있는 권력을 손에 넣으면, 공공 예산을 마치 셀프서비스 수퍼마켓처럼 여겼다. 2007년 40만명 이상이 직접 정치를 생업으로 삼았다(Salvi-Villone 2007년 참조).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심지어 이탈리아 취업자들 중 5%인 1백 10만명에 달한다(ILO 제3차 보고서-정치의 비용, 2013년 12월). 2018년 입법부만도 2017년에 비해 1.85%가 증가한 9천 6백 8십만 유로를 지출하게 될 것이다. 헌법 기관에 대해서는 2018년 이탈리아 중앙 정부는 총 24억 5천 8백 만 유로를 지출하게 될 것이다. 2012년 이탈리아 전역에서 지방의회에 약 10억 유로가 들었다. 이탈리아 전역에서 1117여 개의 지방의회 각각에 든 총 수당은 20만 유로를 조금 넘어선다. 한 의원의 지출 전체를 고려에 넣으면, 이탈리아 평균 연간 87만 5천 유로 정도이다. 대의 정치의 모든 간접 비용을 포함시키면, 총액은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그 어떤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대의 정치 비용이 이탈리아만큼 높지는 않다. 여당은 납세자들의 모든 직접 개입을 배제함으로써 늘 이런 특권을 지켜낼 수 있었다.

전후 지금까지 수십 년간 산더미 같이 쌓인 부채를 이탈리아 시민들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다양한 사회경제적 이유도 있겠지만 여당들 사이에 만연한 무책임한 지출 경향을 호도해서는 안된다. 또한 시민들 쪽에서는 전혀 거부권이 없다는 정치적 요인도 고려해야 한다. 가끔 국민발안 법 제안들이 제출되지만(2015년 봄, CGIL 노동조합에서 추진한 “보다 공평한 세입을 위해” 제안) 거의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고, 이런 제안들은 국회에서 급속도로 잊혀지고 만다.

한편 레퍼렌덤이 가능한 사안에서 국가 세입 및 세금 관련 사안을 배제하는 것이 전혀 당연하게 여겨진 적이 없었던 스위스의 경우가 있다. 스위스 사람들 사이에서 국가 재정 현안은 가장 인기 높은 사안에 속한다. 그러므로 전통적으로 국가 재정의 운용에서 정치적 대의원들을 단속하는 것에 큰 관심이 뒤따른다. 이 목적으로 칸톤과 기초자치단체에 “재정관련 레퍼렌덤”이 도입되었다.

 

시민들의 권리가 더 많을 때 정치인들은 재정적으로 더욱 책임있게 행동한다

스위스의 사례는 레퍼렌덤 가능 사안에서 국가 재정 사안을 배제하는 것은 정당성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반대로 시민들이 공공 지출 심의에 더 많이 참여할수록, 국민들 사이에서 책임의식도 더 커지고, 탈세도 더 줄어들고, 공공 자금낭비도 덜 생긴다. 민주주의와 공공 지출 사이의 관계는 단순하다. 시민들은 늦건 빠르건 자신들이 더 무거운 세금 압박을 통해 새로운 지출을 감당해야 할 것임을 알고 있으며, 그러므로 그들은 새로운 분야의 지출을 인가하는 것에 매우 조심스럽다.

어떻게 직접 민주주의로 공공 재정에 이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몇 가지 가능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 선거로 유권자들은 정치 대의원에게 일종의 백지수표를 발행하여, 단지 4, 5년 후에나 그것을 되찾을 수 있다. 레퍼렌덤 권한의 부재시, 시민들은 잘못된 투자나 공공 자금의 낭비, 불필요한 지출, 정당성 없는 세금 등을 막기 위해 개입할 수 없다.

▪ 만일 시민들이 공공 재정관련 사항에 투표할 수 있다면, 즉각 시민들 자신이 더욱 그 사안에 관심을 갖고 정보를 얻게 된다. 결국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시민들이며, 이들은 보통 새로운 지출 요청 앞에서 더 조심스럽다. 이탈리아에서는 2011년 시민들이 핵발전소에 대항하는 투표로 엄청난 공공 자금 낭비를 피해갔다. 그러나 보통 이탈리아 시민들은 새로운 지출 요청 앞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권리가 없다.

▪ 확정적 레퍼렌덤으로 시민들은 지나친 정치 비용 또한 제한하고 정치적 족벌주의의 만연을 견제할 수 있다.

▪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는 아직 공공 행정상의 부패율이 높다. 지출 심의와 특정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치는 시민들의 권리는 이런 위험을 제한한다.

▪ 시민들이 바라는 것과 대의원들이 바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부합하지 않는다. 영향력 있는 이익 단체들과 여러 막강한 세력들은 늘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기호에 따라 공공 지출과 투자를 이끌어 가는 것을 제한할 수 있다.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이런 힘이 없다. “모든 것을 포괄하여” 한 정당에 투표하고, 모든 각각의 공공 자금 관련 결정은 정치인들의 몫으로 남겨지며, 시민들은 그에 대해 아무런 발언권이 없다.

이탈리아에 적용된 의무적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미리 정한 기준치(가령, 5천만 유로)를 넘어서는 지출을 수반하는 모든 프로젝트에 대해 자동 국민투표를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명을 모아야 하는 수고를 피하여, 시민들은 상당한 재정적 규모의 어떤 프로젝트가 가져올 영향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시민들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거대 프로젝트의 경우 미리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야 할 것이다. 다른 나라에 존재하는 이 권리는 오랫동안 이탈리아의 공공 재정을 괴롭혀온 무책임한 지출에 대해 효과적인 제동 장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금관련 레퍼렌덤 권한을 포함한 공공 재정에 대한 시민들의 직접 참여는, 세금에 대한 입법부의 권한이 좀 더 지방분권 방식으로 분산되고 관리된다면 더욱 합리적이 될 것이다. 한 가지 예는 또 다시 스위스의 연방제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탈리아의 주와 기초자치단체들은 세금과 지방세 관련 법에서 더 많은 자치권을 얻어야 할 것이다. 이탈리아의 주들은 과세 문제에 권한이 매우 적으며, 세입의 적은 일부만이 주 자체 내에서 부과한 세금으로 충당되고, 가장 큰 몫은 나라에서 보전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나친 지출을 막기 위한 목적의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유용하겠지만, 세금에 개입하기에는 법적, 정치적 연결고리가 부족하다. 거의 모든 세금들이 국가의 권한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첫 단계는 재정적 연방제fiscal federalism라는 더 나은 시스템을 갖추는 것일 것이다. 다음으로 재정적 연방제를 직접 민주주의와 결합시키는 것이 낭비와 지나친 세율의 과세를 줄이기 위한 방법이다. 정부의 모든 차원에서 진정한 납세자인 시민들이 회계 감사관 역할을 하는, 정치적 책임을 담당함으로써 공공 재정이 더욱 튼튼해지게 된다.

이탈리아에서─특히 돈을 헤프게 쓰는 정치인들이─종종 우려하는 것은 세금과 관세에 대한 직접 민주주의로 시민들은 근거가 충분하지 않는 세금을 삭감하기만 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시민들, 곧 납세자들의 직접 참여는 국가 재정을 더욱 견고하고 공정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스위스의 경험에 따르면 시민들은 공공 재정에 필요한 책임 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 스위스 시민들이 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 나라는 사회적 기능이 원활하고, 질 높은 기간 시설, 적은 공공 부채 및 낮은 세율을 자랑한다.

이탈리아에서는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재정 운영에 대한 직접 통제 부족과 재정 시스템의 중앙 집중은 지나친 낭비, 잘못된 투자, 보스 정치 및 엄청난 공공 부채를 조장했다. 근래 수십 년 동안 뿌리내린 보스 정치를 지탱한 것은 바로 “돈-표-자리”라는 비정상적인 삼각지대에서 나타나는 표 거래 구조 덕분이다. 의무적 재정관련 레퍼렌덤이라는 열쇠로 이런 자동적인 악의 순환을 배양하는 음지를 밝은 곳으로 끌어내어 정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재정 관련 레퍼렌덤과 세금 관련 법률과 법규는 물론 대형 프로젝트에 대한 레퍼렌덤은 단순히 민주주의를 작동시켜 헌법에 규정된 “균형 예산”을 보완하며, 늘어나는 부채에 최선의 제동 장치를 제공할 것이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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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연방의 최저임금을 시간당 7.25달러에서 15달러로 인상하는 것이 가능할 만큼,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의원들은 경제적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확고한 입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최저임금의 인상은 적정한 일자리에 대한 촉진제로 작용할 것이며, 이것이 바로 서구의 경제권에 부족했던 사항입니다. 적정한 최저임금의 인상이 고용을 감소시킬 것이라는 그간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보스턴 – 민주당이 백악관과 의회를 장악하면서 연방의 최저임금을 시간당 7.25달러에서 15달러로 인상하려는 미국인들의 노력에 동력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이제 최저임금에 대해 예전처럼 회의적이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노동시장이 완벽하게 (자동적으로) 작동하여 자본가가 투자한 실제의 자본에 대한 공정한 이익 이상의 ‘불로초과수익’을 획득할 독점기반의 기회가 없다고 가정했습니다. 이러한 전제에서 기존의 경제학은 높은 최저임금이 오히려 고용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예측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이후의 연구는 대체로 최저임금이 적정하게 인상될 경우 이에 따른 실업의 부정적 효과를 찾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 연구성과는 Berkeley 대학의 David Card와 Princeton University의 Alan B. Krueger (부분적으로 Lawrence F. Katz 와의 공동작업)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의 저서인 ‘최저임금의 신경제 – 미신(잘못)과 실제 (Myth and Measurement : The New Economics of the Minimum Wage)’의 주요 연구내용은 최저임금의 인상으로 고용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일부의 경우에는 임금의 하한선이 상승하였을 때 오히려 실제의 고용이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연구의 발견은 당시에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지만, 이후 방대한 샘플과 세밀하게 조정된 경험적 접근방식을 기반하여 이루어진 추가연구의 성과가 이를 재확인했습니다. 최저임금이 고용에 영향을 주지 않거나 혹 일부 줄어드는 것과는 상관없이, 맥도날드 또는 월마트 등 저임금 노동자를 대규모로 고용하는 사용자들은 불로초과수익을 실현하는 시장지배력을 여전히 유지한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기존의 경제학 문헌은 최저임금으로 인한 간접적 잠재이익을 과소평가했을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최저임금의 인상정책은 단순히 저임금의 근로자소득을 증가시키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최저임금의 인상은 저임금 수준의 고용을 억제하고 높은 임금, 상대적 안전, 경쟁력 향상 등의 가능성을 가진 적정한 일자리창출에 대한 자극을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재의 경제상황에서는 대학학위가 없는 근로자들에게 취업의 기회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가 GIG형태의 일시직업과 임시직(Zero-hour)계약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의 인상이라는 정책의 필요성이 더욱 시급해졌습니다.

사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아직도 최저 임금이 기술훈련 및 노동자의 생산성에 대한 투자를 저해 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그러나 런던 경제스쿨의 Steve Pischke와 필자가 제시한 것처럼 이러한 우려는 과장되었습니다. 사용자가 미국처럼 저임금으로 불로의 초과수익을 얻고 있다면, 직원들을 해고하지 않고도 최저임금을 상당 수준으로 인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지는 강점은 사용자가 노동자들에게 높은 임금을 지불할 때 노동자들에게 생산성을 높이려는 자기욕구가 강해진다는 것 입니다.

더욱이 민주당 의원들은 이미 최저임금의 인상을 옹호하는 확실한 경험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만 비경제적 요인을 고려할 때, 이를 제도적으로 시행하는 경우, 생산성의 제고에 대한 유인이 더욱 강력해 집니다. 철학자 Philip Pettit가 설명했듯이, 인간은 “다른 사람의 자비에 따라 살아가고, 다른 사람이 자의에 따라 취약하고 의존적으로 살아야 하는” 지배로부터의 자유를 위해 노력합니다.

이러한 정의는 노예생활을 경험한 인류역사 전반에 걸친 사람들의 경험을 포착합니다. 그러나 James A. Robinson 과 필자가 저술한 책인 ‘좁은 통로 The Narrow Corridor ‘에서 강조했듯이, 서양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더 이상 잔인한 강제노동에 대하여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취업에 대한 안전망이 부재하고 생활에 필요한 적정한 수입이 없으면, 여전히 억압에 종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Pettit와 필자가 이런 내용을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영국의 복지국가 설계자 중 한 사람인 윌리엄 베버리지는 1945년에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자유는 정부의 임의적 권력에서의 해방 이상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부족과 사회악에 종속된 경제적 노예상태에서 해방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자의적인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굶주린 사람은 자유롭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1948년 세계인권선언의 제 23조는 “일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과 가족들이 인간존엄에 합당한 존재로서 보장받을 수 있는 정당하고 호의적인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최저임금인상과 노동자 보호확대를 위한 미국 민주당의 노력은 사실 너무 오랫동안 무시되어온 사회적 의제의 복귀(부활)로 평가해야 합니다.  불평등이 심해지고 계층화가 진행된 경제에서 공정한 균형을 유지하고 강압을 억제하는 정책은 오랫동안 방치되었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정책의 상세한 설계가 중요합니다. 어느 시점과 수준에서는 연방의 최저임금인상이 아마도 실업을 초래하기 시작할 것이며, 뉴욕과 미시시피의 생활비 차이를 고려할 때 동일한 최저 임금이 전국 모든 지역에 적용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합리적입니다.

따라서 일부 경제학자들은 주정부단위의 최저임금을 도입하고 해당지역 노동시장의 평균소득을 기반으로 조정하도록 요구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에서는 최저임금의 인상에 앞장서려고 하지 않았으며, 대신하여 연방정부가 새로운 최저임금의 기준을 설정했습니다.

연방최저임금의 인상은 강력한 경제적 효과와 상징적 효과를 가져올 것입니다만 물론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직장에서 민주적 절차가 생략되고 안전한 작업환경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은 고용주의 “강압적이고 자의적인 영향력”을 받게 됩니다. 연방최저임금의 인상만이 바이든 대통령의 임기 동안 민주당이 시행한 유일한 노동시장 정책이라면 이것만으로는 많은 것을 성취하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사용자가 노동자를 고용하는 대신에 많은 작업을 자동화하도록 유도하는 역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서구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점은 자동화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기술과 작업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해지면서 적정한 일자리가 부족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저임금의 인상은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지만,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술적 혁신을 지향하고 사용자가 적정한 일자리와 향상된 작업조건을 수용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이 함께 동반되어야 합니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on 2021-02-24.

DARON ACEMOGLU

MIT 경제학 교수이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저서인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 Why Nations Fail : The Origins of Power, Prosperity and Poverty’ 그리고 ‘좁은 통로 – The Narrow Corridor : States, Societies, and the Fate of Liberty’의  공동 저자입니다

수, 2021/04/28-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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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트럼프가 핵합의JCPOA을 거부하고 이란에 대한 전면적인 압박을 시행한 것이 오히려 이란의 핵개발을 부추기고 이의 명분을 제공하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하였다. 이에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2015년의 합의에 복귀하는 협상을 현재 제네바에서 진행 중에 있다. 이의 과정과 결과는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면서 중단되어 있는 북미회담의 재개여부에 대한 예고편이다.


제목의 사안에 대한 지지자와 비평가들 모두에게 JCPOA로 알려진 미국과 이란 간의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의 합의원칙으로 복귀할 수 있는 짧은 시간이 열려 있습니다.

2015년에 이란이 매우 염려스러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포기하고 강력한 사찰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세계 강대국들이 이란에 가해진 국제제재를 완화한다는 합의문에 서명했습니다. 핵협정은 물론 온전히 평화에 관한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합의였습니다. 그러나 2018년 트럼프행정부는 상기 합정을 일방적으로 철회하면서 미국이 훨씬 강압적인 제재를 가하면 이란이 매우 모욕스럽지만 이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도박은 실패했습니다. 새로운 제재는 이란경제가 마비될 만큼 고통을 주었지만, 그러나 그들은 합의에 의해 중단했던 핵개발 작업을 재개하도록 촉발시켰습니다. 이란과 핵협정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였던 유럽 강대국과 중국 등 다른 국가들은 미국의 일방주의에 실망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이란과의 교역의 재개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이든 대통령의 이란특사인 로버트 말리가 4월 첫 주간을 기존의 협약에 복귀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하여 비엔나에서 보냈던 이유 입니다. 외교적 교섭의 관례대로, 유럽 외교관들은 미국과 이란 대표단을 왕복해서 오가며 별도의 호텔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건설적이고 결과지향적”으로 묘사되는 줄다리기의 회담은 다음 주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신중한 낙관론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미국의 제안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을 세계경제로부터 차단하기 위해 쌓은 방벽인 “최대 압력” 제재의 대부분을 종식시키는 것입니다. 압력이라는 제재는 중앙은행, 석유부처, 이란의 국영석유회사를 포함한 다양한 국가기관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Araghchi 외무차관은 미국이 합의에 따라 약속된 제재를 해지하면 이란은 핵개발작업을 중단하고 취소할 수 있다고 암시했습니다. 물론, 애시당초 이란과 합의를 원하지 않았던 옛 방해자(spoiler)들은 미국이 협상을 재개하는 모습에 질색합니다.

가장 일반적인 비판의 내용은 미국의 전통적인 외교압박 수단인 제재를 해제하는 것은 지난 3년 동안 축적된 레버리지를 포기한다는 주장입니다. 트럼프대통령의 이란특별대사를 역임한 엘리엇 아브람스와 같은 공화당 멤버와 상원의 외교위원회를 이끄는 뉴저지출신의 밥 메넨데즈와 같은 민주당 의원의 태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메넨데즈 의원은 43명의 상원의원들이 함께하는 서명운동을 주도하였는데,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및 중동지역의 시아파 민병대 지원에 대해 강력한 제약을 두는 새로운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현재의 강력한 제재를 유지하도록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서명된 서신은 대화의 재개를 기대하는 것보다는 제재를 요구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란이 그러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려고 했다면 이미 오래 전에 그랬을 것입니다. 현 시점에서 미국의 이란에 대한 강경접근법은 상식에 어긋납니다. 첫번째 합의를 존중하지 않았는데, 이란인들은 왜 미국이 두번째 합의를 존중할 것이라고 믿겠습니까?

또 하나 불편한 사실은 “최대압력”의 제재가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철회가 이란의 행동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지 못했습니다. 정반대 입니다. 합의의 실천을 거부한 미국에 보복하기 위해 협상이 좌절된 상황이 어떤 사태를 가져올지 미국에게 경고를 보내며, 이란은 기존의 협정을 절도있게 위반하며 행동을 과시하여 왔습니다. 기존의 핵협정에 따르면 이란은 무기등급보다 훨씬 낮은 3.67 %의 순도까지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순도를 20 %까지 높여가고 있습니다. 핵협정에 의하면 이란의 우라늄생산은 202.8kg으로 제한되었습니다만, 현재 3톤 정도 비축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기존의 핵협정에 따르면, 국제사찰단이 사전의 예고없이 핵연료사이클이 진행되는 모든 횟수를 사찰하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이제 사찰단은 이란의 허가없이 현장을 방문할 수 없습니다. 오는 5월까지 핵협정이 복원되지 못하면, 국제사찰단은 이란의 핵단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상황은 정체되어 있지도 않고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수도 없습니다. 처음부터 이란이 유럽 및 아시아 국가들과 거래를 못하도록 제재를 가한 목적은 이란이 협상에 응하도록 잠정적으로 고통을 가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제제를 항구적으로 가하여 경제전반이 위험에 빠지게 되면, 80백만 명의 인구를 지녔으며 상대하기 지난한 국가인 이란은 다양하게 암거래를 진행할 것입니다.

결국은 혁명수비대를 포함하여 자국 내의 강경한 테러집단들이 주도권을 잡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오는 8월에 임기가 만료되는 현재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을 포함하여 미국과 협상을 자산으로 삼는 온건파들이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제이콥 류 전직 재무장관은 2016년에 금융제재를 남용하면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이란과 거래하는 타국의 은행 및 기업들을 처벌하겠다는 미국의 위협에 진저리를 내면서, 다른 국가들은 미국의 금융시스템을 거치지 않는 대안을 찾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제재가 힘을 잃을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미국 금융산업과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지위도 약화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제재가 너무 오래 지속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우리는 현재로써 경험하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이 이란에서 수입하는 대가로 4,000억 달러를 석유와 가스 생산 및 운송 인프라에 투자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은 이제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부담스러운 제재를 준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란의 선량한 시민들에게까지 일상생활에 제재가 가해지고 있기 때문에 현상유지가 지속될 수 없습니다. 권위주의적 이란정부는 나름대로 제재를 우회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일반 사람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습니다. 사담 후세인의 권력을 통제하는데 실패한 제재조치로 인해 50만 명 이상의 이라크 어린이들이 영양실조로 사망한 사건이 1990년대 중반의 이라크에서 얻은 교훈이었습니다.

오늘날 이란시민들은 인슐린과 다른 약물의 부족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이란 정권이 미국에게 핑계를 댈 수 있는 죽음입니다. 이란에 대한 식품 및 의약품 판매에 대한 제재에 인도주의적 예외가 있지만 이란은행에 대한 제재의 광범위한 적용은 필수품의 조달노력을 어렵게 합니다. 이란은 또한 코로나바이러스 백신비용을 지불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지불에 필요한 외화가 해외은행들의 창구에서 동결되기 때문입니다. 이란을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지로 방치하는 것은 인류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제재로 인한 비참함으로 인해 언젠가는 이란국민이 일어나 종교권력을 버리고 서방을 포용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과 같은 매파의 희망은 참으로 암담합니다.  리비아, 시리아 및 다른 곳에서 일어난 봉기는 장미빛 환상의 어리석음이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란국민은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정부를 찾을 자격이 있지만, 그것이 일어날 것이라는 일방적인 기대에만 의존할 수 없으며, 현재의 정권 이후에 오는 차기 정부가 나아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중동의 다른 국가들은 이란의 시아파 민병대지원과 탄도미사일기술의 확산에 대해 근거있는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부 국가들은 트럼프 시대처럼 강력한 제재를 통해 이란이 그러한 장난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을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봉쇄는 지금까지 효과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란을 더욱 호전적인 이웃국가로 만들었습니다.

이란의 핵프로그램을 평화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면, 지역국가들의 연합을 통하여 이란의 도발을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기회의 레버리지는 풍부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시대에 가해진 추가적 제재를 철회하더라도 여전히 미국제재의 대부분이 그대로 남아있어 후속합의를 체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향후 협상의 레버리지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바이든의 외교팀은 핵협정을 “길고 강하게” 그리고 가치있는 목표로 만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를 향한 첫 번째 단계는 기존의 핵합의로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출처 : 뉴욕타임즈(NYT) on 2021-04-10.

수, 2021/05/0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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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중국과 독일의 양국관계가 점차 심화되고 있는데 반하여, 바이든의 미국이 유럽과 대서양 동맹을 재개하고 강화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상업적인 Nord Steam-2공사에 대하여 제재를 가하고 추가적인 조치를 위협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독일의 현 집권여당인 기민기사당은 이를 국가주권에 대한 간섭이라고 크게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아래의 칼럼은 독일 내 친미인사가 기고한 것으로 미국의 입장과 시각을 대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통적 동맹 독일에게조차 자국이기주의를 강요하는 미국외교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Nord Stream-2 공사는 현재 계속 진행되고 있다.


Nord Stream 2 공사 현장 Kingisepp, Russia, June 2019

지난 2월 뮌헨 안보회의에서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은 “유럽과 재결합”하고, 대서양 횡단동맹에 다시 참여하며, 독일에 주둔한 미군 철수계획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2015년 착공이래 미국과 독일 간의 관계를 긴장시킨 문제의 프로젝트에 대하여 Biden은 상기의 연설에서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가스파이프 라인 Nord Stream -2에 대해서 말입니다.

러시아에서 독일로 매년 최대 550억 입방미터의 천연가스를 가져오도록 설계된 파이프 라인은 현재 약 92% 완성되었습니다. 베를린은 이를 유럽 에너지 시장을 강화하는 상업적으로 유익한 프로젝트로 보고 있지만 워싱턴과 다른 유럽 국가들의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파이프라인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럽을 러시아 가스에 연결하여 정치적인 영향력을 얻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럽과 미국이 상호신뢰를 회복하기 전에, Nord Stream-2가 이제 막 재결합하는 대서양 횡단동맹에 부담을 줍니다. 설상가상으로 이 파이프라인은 독일의 목에 맷돌이 되어 외교정책의 신뢰도를 약화시키고 동부국가인 다른 EU회원국(우크라이나) 및 미국과의 관계에 부담을 줍니다.

따라서 독일정부는 보다 적극적인 외교적 접근 방식을 채택해야 합니다. 파이프 라인을 협상의 수단으로 사용하여 러시아에게 외국해킹-캠페인을 중단하거나 야당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를 석방하겠다는 약속 등 양보를 유도해야 합니다

 

좁은 창- A NARROW WINDOW

독일정부는 프로젝트 진행여부(현재 러시아가 EU가스 수입의 40%를 차지함)에 관계없이 러시아가 유럽의 주요 에너지 공급업체로 남을 것이며, 미국 역시 러시아로부터 연간 수십억 달러의 웜유를 수입한다는 이유로 Nord Stream-2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최근 몇 년간 유럽에서 러시아 가스수입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대륙 자제는 실제로 에너지 시장을 자유화, 다양화 그리고 통합한 개혁의 결과로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특별한 이점도 없고, Nord Stream-2가 유럽에 대한 모스크바의 영향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국제적 두려움을 덜어 주지 못합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프로젝트에 대한 반대를 비밀로 하지 않았습니다. 3월 18일 Antony Blinken 국무 장관은 파이프라인을 “나쁜 거래”라고 말하고 “Nord Stream-2 파이프라인에 관계하는 모든 주체(기업과 공공조직)는 미국의 제재를 받을 위험이 있으며, 파이프라인 작업을 즉시 포기해야 합니다”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독일파트너와 함께하는 NATO장관회의에서도 다시 한번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Biden 행정부는 EU에서 미국의 영토주권의 개입이라는 광범위한 비판으로 민감해진 상기의 프로젝트에 관계하는 회사들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추가로 확대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미국연방의회는 초당파적으로 언제든지 제재를 확대할 수 있습니다. Nord Stream-2에 대한 새로운 국무부 보고서가 5월에 의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며 이에 따라 연방의회가 추가적인 제재의 조치를 취할 추진력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Nord Stream-2는 대서양 횡단동맹의 재결합에 부담을 줄 것이라고 위협합니다.

Nord Stream-2 분쟁을 축소하고 파이프라인의 성공적인 완료를 보장할 수 있는 계기가 주어진다면 공사는 빠르게 준공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국제적인 반대에 더하여, 독일 내에서도 역풍에 직면해 있습니다. 9월로 예정된 총선 이후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녹색당과 자유민주당의 연합정부는 아마도 Nord Stream-2에 대한 독일의 공약을 축소시킬 것입니다. 자유민주당은 파이프라인 건설의 일시 중단을 주장하는 반면에, 녹색당은 환경과 정치적 이유로 전면적인 중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파이프라인이 다음 연합정부의 주요 국내 및 국제 걸림돌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베를린은 적극적인 외교적 접근 방식을 펼쳐야 합니다. 베를린은 건설을 중단하는 대신 Nord Stream-2을 모스크바와의 정치적 협상수단으로 사용하여 러시아에게 양보를 조건부로 파이프라인을 최종적으로 준공해야 합니다. 이러한 조건을 EU 내 파트너 및 대서양횡단 동맹국가(미국)와 긴밀히 조율함으로써 독일정부는 현안을 러시아로 넘길 수 있습니다.

베를린은 파이프라인의 주요 소유주이자 운영주체인 러시아의 Gazprom에게 Nord Stream-2에 대한 국내 및 국제적 반대가 심각한 수준으로 증가하여 프로젝트가 더 이상 정치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Gazprom에 대한 메시지는 분명해야 합니다. 러시아는 독일이 유럽에 가스가 공급되도록 청신호를 줄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을 만들도록 도와야 합니다. 베를린은 파이프라인 완성을 모스크바와 양국 관계개선 및 독일과 동맹국의 논쟁적인 문제 해결과 연계시킬 수 있습니다.  다른 문제들 중에서도 해킹중단, 허위정보, 외국지역에서 암살기획 등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유럽 인권재판소의 결정인 Navalny의 석방, 그루지아 및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의 분쟁 해결 등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조건의 제시와는 관계없이, 이는 가스 파이프라인을 러시아의 결정에 의존하게 만드는 것에 대하여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이 공동의 강력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낼 것입니다. 독일이 파이프라인을 폐쇄하면 러시아는 보복하겠다고 위협할 수 있지만, 유럽의 협상지위는 몇 년 전보다 훨씬 더 강력합니다.  유럽가스시장의 통합은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강화시켰고 글로벌 가스시장은 “구매자 시장”으로 이동했습니다. 더욱이 유럽의 녹색에너지로의 전환은 가속화되고 있으며, “Bridge-에너지(100% 신재생에너지로 넘어가는 중간단계)”로서 천연가스에 대한 필요성이 감소하고 있어서, Nord Stream-2와 같은 프로젝트의 경제적 및 환경적 근거를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파이프라인이 가동된 후 모스크바가 약속이행을 포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독일은 필요한 경우 가스구매를 중단할 수 있는 “비상중단”의 계약조항을 삽입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베를린은 특히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중부 및 동유럽 국가들과 에너지 인프라와 연결성을 개선함으로써 유럽가스시장의 지위를 더욱 강화하는 포괄적인 계획을 제안하는 동시에, 수소와 같은 녹색 에너지의 기술연구와 개발 및 생산에 지원을 강화하여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계획은 유럽에너지 시장이 더욱 견고하고 지속가능한 기반에 놓이는 데 도움이 되는 “종합적인 대서양횡단 녹색의제”를 구축하자는 유럽위원회의 최근 제안과 일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은 러시아로부터 화석 연료를 수입할 필요성을 더욱 줄이고 우크라이나와 같은 국가들이 함께하도록 계획을 추진함으로써 러시아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독일은 Nord Stream-2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특정 접근방식에 관계없이 유럽집행위원회와 유럽 및 대서양 횡단파트너와 긴밀하게 협력해야 합니다. 베를린의 외교 정책은 대서양 횡단동맹을 다시 재개하고 대서양 횡단관계를 심화할 뿐만 아니라 신뢰성을 강화해야 합니다.

 

출처 : Foreign Affairs(포린어페어) on 2021-04-22.

Wolfgang Ischinger

2008 년부터 시작한 뮌헨 안보회의의 의장으로 2001년부터 2006 년까지 미국주재 독일대사를 역임했습니다

월, 2021/05/1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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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로베르토 M.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가 출간되었습니다.

‘시대의 예언자’ 혹은 ‘미래를 향한 메시아’로 불리는 웅거는 브라질 태생으로 하버드 법대를 다니며 비판법학 운동을 주도하면서 약관 29세에 종신교수직을 획득하고 이후 수많은 화제의 저술을 남기면서 국내에도 ‘주체의 각성’ ‘민주주의를 넘어’ ‘정치 3부작’ ‘진보의 대안’ 등이 번역 소개된 미국을 대표하는 현시대 최고의 지성입니다.

그는 현재의 산업체계를 ICT첨단기술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칭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를 ‘지식경제의 시대’라고 명명합니다. 실제로 ICT 첨단기술이 산업과 생활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켰지만, 2000년을 넘어서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산업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고 일부 집단이 소위 e-Flatform이라는 이름으로 독과점을 강화하고 경제운용의 성과를 독차지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약직과 비선형적 고용의 불안정이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웅거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첨단기술을 소수의 그룹이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狹域(프린지)의 폐쇄적 전위주의와 거대기업들이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해와 지위를 강화하는 유사적 전위주의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지식경제의 소명은 가장 선진화된 기술과 생산관행을 생활과 산업전반으로 확산하고 보편화시키는데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이를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르면서 이를 실현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세가지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인지적 교육적 요건 – 사회적 도덕적 요건 – 법적 제도적 요건.

이어서 웅거는 기존의 경제학인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고전경제학, 마샬과 빈-학파에 의해 주도된 한계(효용)학파와 미시경제, 그리고 이단이라는 표현으로 케인즈의 이론, 이후의 신자유주의와 이에 타협한 사민주의의 타락과 제3의 길 등을 모두 비판하면서 새로운 경제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는 아마도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못지않게 매우 난해하고 추상적인 저술입니다만, 기존의 논리와 관행에 갇혀 있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도전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른백년의 지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구매를 요청합니다. 책의 내용은 매주 한차례씩 20여 주에 걸쳐서 다른백년의 홈에 게재됩니다. 두손모아,

다른백년 이사장  이래경


우리는 현재 지식경제가 경제의 각 분야에서 섬과 프린지의 형태로 제약되어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흔히 지식경제와 그 가장 친숙한 형태(소수의 세계적인 거대기업들과 주변부의 신생기업들이 추진하는 첨단기술산업)를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한편으로는 규모와 상관없이 어떤 기업이 그 운영방식을 달리 변경하지 않으면서 지식경제의 제품과 서비스, 특히 컴퓨터와 기타 정보기술을 사용하여 복잡한 정보를 조직하고 업무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경우에도 우리는 지식경제와 그 제품 혹은 서비스를 혼동한다. 이러한 지식경제의 제품과 서비스의 사용이 새로운 생산방식의 잠재력 중 극히 일부를 포착할 뿐이라는 명백한 신호는 그러한 사용이 반짝했다가 곧 사라질 생산성의 일시적인 상승을 제공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그것은 1994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에서의 생산성의 일시적인 상승을 해명하는 데에 유용한 변화였다. 즉 정보관리를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고자 디지털 기술을 채택하는 흐름이 일회적인 상승을 낳았다.

우리는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참된 성격을 파악하려면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이 널리 보급되고 이러한 보급을 통해 심화되고 급진화되는 것을 상상해야만 한다.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은 넓고 다양한 경제활동 영역을 가로질러 펼쳐짐으로써 그 성격과 잠재력을 보여준다.

우선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지식경제는 생산활동의 수행에서 자본, 기술, 기술관련 역량 및 과학의 축적이다. 지식경제의 특징적인 이상은 제품과 기술뿐만 아니라 절차와 방법의 영구혁신(permanent innovation)에 있다. 지식경제는 특징적인 기술적 장비를 통해서 상품과 서비스의 또 다른 생산방법으로 그치기를 원하지 않는다. 지식경제는 자체적인 재발명을 지속하는 생산패러다임이 되기를 원한다. 우리는 이러한 지식경제의 이상이 의미하는 바를 우선적으로 경영, 조정, 생산의 좁은 수준에서, 이윽고 세 가지 더 심층적인 속성들에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성들은 지식경제를 지금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보급되고 급진화된 다음 존재할 수 있는 모습으로 기술한다.

경영과 생산 공학의 제약적이고 상대적으로 피상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지식경제는 대규모 생산과 ‘탈규격화’나 맞춤제작을 조화시키고, 생산계획의 일관성 및 추진력의 유지와 기업활동의 분산화를 조화시키는 관행이다. 이러한 성과들은 얼마나 많이 성취되는지에 따라 사소한 의미를 갖거나 혹은 중대한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기업 안에서 재산과 권력을 재편하지 않은 채 개인적 주도성과 팀워크를 위한 더 큰 여지를 노동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효율성의 부수적인 향상과 노동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전략을 재현할 수 있다. 혹은 이러한 성과들은 업무조직과 궁극적으로는 재산체제에서 누적적이고 중요한 변화의 일부를 구성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생산방식의 이러한 더 피상적인 특성들의 재현과 발전은 모두 내가 나중에 논의할 더 깊은 특성들의 진보에 따라 달라진다.

적층제조(3차원 프린터), 로봇 공학 및 더 일반적으로 유연하고 수리적으로 제어되는 기계도구는 가능한 변형을 탐구하면서 제품의 다각화를 가능하게 하고 또한 엄청난 다각화와 생산규모를 조합할 수 있게 한다. 생산활동과 실험과학 사이의 격차를 줄이는 다양한 능력을 동원하고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기술적인 역량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3차원 프린터는 사용자가 제품의 개념과 실현 사이에서 신속하고 부단히 움직이는 것과 구체화 과정에서의 발견에 비추어 개념을 수정하는 것을 허용한다. 인공지능은 기계가 우리 대신에 수행할 수 있는 일(아직 반복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 영역으로 우리가 전진할 수 있도록 이미 반복 방법을 터득한 것이라면 기계의 도움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명료화함으로써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생산규모와 탐험적인 제품 차별화 및 변형과 조화시키는 것만큼이나 사람들이 함께 작업하는 방식(기술적인 노동분업)을 변화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요체는 일관성과 추진력을 잃지 않고서 주도권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업무를 조직하든지 간에 개인이나 집단에 의한 분권적이고 재량적인 주도권의 장점들과 그러한 추진력과 일관성의 유지 사이에는 완전한 모순은 아닐지라도 녹록치 않은 긴장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지식경제의 방식은 현재의 고립된 형태에서도 이러한 긴장을 해소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를 완화시킨다.

지식경제의 한 가지 방식은 업무의 조직방법에 대한 포괄적인 재량을 누리는 작업반에게 업무를 할당하는 방식이다(예컨대, “도요타 생산방법”). 또 다른 방식은 이러한 팀들의 활동을 조정함으로써 작업반들과 반장들에 의한 생산계획의 협력적인 개발과 수정으로 중앙의 경영권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더 훌륭하게 개선의 기회를 확인하고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더 고차원적이고 더 유연한 형식을 낳는다.

기술만으로는 규모와 차별화의 결합 나아가 조정된 전진운동과 분산적인 주도권의 결합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한다. 기술의 사용은 작업방식에서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경제의 제도적 안배와 생산작업 참여자들의 교육과 문화에서 더 심층적인 변화 방향을 가리키는 관행과 태도로 밑받침되어야만 한다.

거의 무제한적인 제품 차별화 또는 맞춤제작과 규모의 결합은 자사제품의 수요를 외생적이고 불변적인 여건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신규수요, 신규소비자층, 신규시장의 창출을 추구하는 기업을 이해하고 발전시키는 방식을 전제한다. 상품과 서비스 등의 차별화에 대한 욕구는 소비자들이 새로운 선택지들에 대해 놀라워하고 대규모 시장 위한 제조업생산이 엘리트를 위한 장인생산의 특성을 일부 갖게 되며, 제조업과 서비스간의 구분이 붕괴됨으로써 탄력적일 수 있다. 선진적인 제조업은 서비스와 결부된 제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넓은 범위에서 결정(結晶)된 지적 서비스들로 구성된다.

분산적 주도권과 조정된 생산계획의 일관성 간의 화해는 업무조직에 대한 지휘통제 접근법과 양립할 수 없다. 그러한 화해는 기술적 노동분업의 성격(생산과정 참여자들의 협력방식)에서 변화를 요구한다. 감독역할과 집행역할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사라져야만 한다. 생산계획은 집행의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수정되어야만 한다. 감독역할과 집행역할의 차이를 완화시키는 것은 모든 전문화된 집행역할들을 상대화하는 것을 동시에 요구할 것이다. 이와 같은 경직된 전문화는 개념의 수립과 집행 사이의 극명한 차이를 전제한다. 유동적인 내부 조직을 가진 작업반은 전문가를 대체한다. 기술적 노동분업의 성격에서 이러한 변화는 생산과 과학의 관계에서 더 심층적인 변화를 미리 보여준다.

경영과 생산 공학의 수준에서 다루어지는 국한된 지식경제의 외견상 피상적인 특징들은 결국 그렇게 피상적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한 특성들을 완전히 성취하려면 더 중요한 변화들이 요구된다. 그러한 변화들은 억압된 변혁적 잠재력의 존재를 암시한다.

지식경제가 경제 전반에 걸쳐서 입지를 구축하려면 지식경제는 고립된 전위 부문들에 제약되어 있는 대신에 지금으로서는 먼 장래의 약속에 불과한 권능들을 지속적으로 이행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선진적인 생산방식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어야만 할 것이다.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보급과 그 급진화는 불가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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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21/05/2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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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로베르토 M.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가 출간되었습니다.

‘시대의 예언자’ 혹은 ‘미래를 향한 메시아’로 불리는 웅거는 브라질 태생으로 하버드 법대를 다니며 비판법학 운동을 주도하면서 약관 29세에 종신교수직을 획득하고 이후 수많은 화제의 저술을 남기면서 국내에도 ‘주체의 각성’ ‘민주주의를 넘어’ ‘정치 3부작’ ‘진보의 대안’ 등이 번역 소개된 미국을 대표하는 현시대 최고의 지성입니다.

그는 현재의 산업체계를 ICT첨단기술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칭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를 ‘지식경제의 시대’라고 명명합니다. 실제로 ICT 첨단기술이 산업과 생활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켰지만, 2000년을 넘어서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산업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고 일부 집단이 소위 e-Flatform이라는 이름으로 독과점을 강화하고 경제운용의 성과를 독차지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약직과 비선형적 고용의 불안정이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웅거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첨단기술을 소수의 그룹이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狹域(프린지)의 폐쇄적 전위주의와 거대기업들이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해와 지위를 강화하는 유사적 전위주의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지식경제의 소명은 가장 선진화된 기술과 생산관행을 생활과 산업전반으로 확산하고 보편화시키는데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이를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르면서 이를 실현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세가지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인지적 교육적 요건 – 사회적 도덕적 요건 – 법적 제도적 요건.

이어서 웅거는 기존의 경제학인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고전경제학, 마샬과 빈-학파에 의해 주도된 한계(효용)학파와 미시경제, 그리고 이단이라는 표현으로 케인즈의 이론, 이후의 신자유주의와 이에 타협한 사민주의의 타락과 제3의 길 등을 모두 비판하면서 새로운 경제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는 아마도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못지않게 매우 난해하고 추상적인 저술입니다만, 기존의 논리와 관행에 갇혀 있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도전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른백년의 지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구매를 요청합니다. 책의 내용은 매주 한차례씩 20여 주에 걸쳐서 다른백년의 홈에 게재됩니다. 두손모아,

다른백년 이사장  이래경


나는 이제 표층에서 심층까지, 실험주의적이고 지식집약적인 생산이 발전하고 확산될 때에만 드러나는 세 가지 특성들을 논의하겠다. 지식경제가 현재 프린지 안에 고립되어 있는 경우 지식경제는 그 본성을 숨긴다. 우리는 현재의 고립적인 지식경제가 제공하는 파편적인 증거에서 지식경제의 잠재력을 이끌어내야만 한다.

이와 같이 더 심층적인 첫 번째 특성은 한계수확체감(다른 요소들이나 투입물들이 불변적인 상황에서 하나의 요소나 투입물의 연속적인 증분들의 한계산출에서 수확체감)의 제약조건을 완화하거나 심지어 역전시키겠다는 약속이다. 하나의 투입물이나 요소의 연속적인 증분들의 생산성은 특정한 지점을 넘어서면 감소하기 시작한다. 경제생활의 어떤 특징도 한계수확체감의 제약만큼 경제생활의 보편적이고 초시대적인 법칙으로 여겨질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

한계수확체감의 법칙과 그 가능한 수정이나 대체물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법칙과 종종 혼동되는 다른 관념, 즉 규모수익(returns to scale)을 구별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이 최상이다. 규모수익이란 두 가지 정량의 관계를 말한다. 첫 번째 정량은 생산에서 모든 투입물이나 요소들이 같은 비율로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경우에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에 활용되는 요소나 투입물의 증감이다. 두 번째 정량은 장기간에 걸쳐 표시된 산출물의 결과적인 증가 또는 감소이다.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에 활용되는 투입물의 증감에 비례하여 산출물이 증감할 때 규모수익은 불변적이다.

규모수익은 통상적으로 불변적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규모수익의 체증이나 체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모든 투입물이 동일비율로 증가된 더 큰 공장은 더 작은 공장보다 더 효율적일 수도 있고 덜 효율적일 수 있다. 규모수익불변의 발생은 결코 경제생활의 법칙으로 당연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그것은 기껏해야 반박가능한 사실적 가정이다. 그러한 가정은 생산의 투입물이나 요소들 사이의 유익한 또는 유해한 상호작용을 포함하여 그 가정을 부정할지도 모르는 무수한 상황 중 어느 것도 없는 경우에만 유효하다. 이런 의미에서 그 가정은 뉴턴 역학에서 불변적인 운동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기존의 허다한 경제분석과 마찬가지로 계시적 단순화를 용이하게 하기 때문에 유용한 개념이다.

많은 사람들은 지식경제가 규모수익체증과 관련이 있고 이러한 추정을 정당화하는 원인을 이러한 생산방식의 일정한 특징들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 중 일부는 지식경제의 일부가 누리는 장점, 즉 플랫폼사업의 사용자 커뮤니티에 새로운 고객을 추가하는 데 거의 제로에 가까운 한계비용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주장들은 그러한 장점을 갖지 못한 지식경제의 다른 부분들이 어떻게 규모수익체증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기껏해야 지식경제의 특정 분야에 대한 주장이다.

다른 제안들은 지식경제의 기업들이 의존하는 통찰력, 기술, 인력들에 의해 발생되는 긍정적 외부효과를 강조한다. 이러한 기업들은 실천적인 지식의 생산자일 뿐만 아니라 소비자다. 이러한 기업들이 판매하는 재화와 서비스는 그러한 지식을 풍부하게 구현하고 효과적인 사용을 위해 지식기반 기술을 요구할 개연성이 높다. 게다가 지식경제의 기업들은 그들 주위에 자신의 사업에 도움이 되는 사람, 제도, 관행, 아이디어의 넓은 잠재 영역을 창조해야만 번창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육화되거나 암묵적인 모든 지식은 경제학자들이 “비경합적” 재화라고 부르는 유형을 대표한다. 지식재산법이 비경합적 재화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자 개입하여 이를 “배제적인” 재화로 만드는 경우를 제외하고 비경합적 재화는 일부 사람들의 재화 사용이 다른 사람들의 재화 사용을 막을 수 없는 재화를 의미한다. 지식경제에서 공유된 암묵적 지식과 능력의 확산은 생산체계의 선진기업들과 선진분야들의 발전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성공적 기업과 부문들(성공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선도성을 확장함으로써 번창하는 것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 것이다. 바로 이들은 (유형적 자원뿐만 아니라 무형의 기술축적에 의해) 지식경제의 비경합적이고 비배제적인 재화를 이용할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긍정적 외부효과는 지식경제만의 특성이라고 보기 어렵다. 긍정적 외부효과는 비슷한 제한 아래서 이전의 생산형태들에서도 일상적이었다. 예컨대, 이전의 생산방식들이 19세기의 기계발명들뿐만 아니라 이러한 발명가들을 지원한 과학, 문화, 제도들에도 의존하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긍정적인 외부효과는 기계화된 제조업과 공장제 대량생산의 전성기에도 일상적이었다.

거의 제로에 가까운 한계비용이나 긍정적 외부효과에 대한 이러한 추측들이 과잉포섭이나 과소포섭 없이 그들의 주제(지식경제)를 충분히 차별화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추측들은 더 기본적인 결함을 가질수도 있다. 즉 이러한 추측들은 우선적으로 편의적이고 우발적이고 경험적인 가정에 불과한 표준(규모수익불변)에서 한계적인 이탈을 설명할 수도 있다.

우리는 생산성의 미래에 대한 지식경제의 혁명적 중요성을 다른 부분에서, 즉 지금까지 사실상 경제법칙에 준하는 것으로 여겨진 한계수확체감의 법칙을 완화하거나 역전시키는 지식경제의 잠재력에서 찾아야만 한다. 생산과정에 모든 투입요소들을 불변적으로 유지하고 그 중 하나의 투입요소를 증가시켜보자. 그 투입요소의 증가에 대한 산출물의 수확은 증가하다가 한계에서 감소할 것이다.

산출물의 감소를 막고 회피하고 지연시키는 것은 개념적, 과학적, 기술적, 조직적 또는 제도적 혁신이다. 그러나 혁신들이 일련의 산발적인 일회성 조치들로 그친다면 각 혁신은 수확체감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 투입요소와 등가적인 요소가 된다. 혁신은 산출물의 증가를 낳지만 이윽고 혁신이 가진 촉진적인 잠재력은 소진되고 혁신의 더욱 확장적인 사용에 대한 한계수확은 체감하기 시작한다. 한계수확체감의 법칙(다른 투입물들이나 요소들을 불변적으로 유지하는 가운데 생산에서 하나의 투입물이나 요소의 연속적인 증분에 따른 생산성의 체감)은 규모수익불변과 모순되지 않는다.

실제로 한계수확체감의 법칙은 이 법칙이 적용되는 단기간에는 규모수익불변을 당연시한다. 한계수확체감의 법칙이 관행상 장기적이기보다는 단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지만 이러한 법칙의 발생은 엄청나게 중요한 장기적 결론을 내포한다. 이러한 결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계수확체감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이 경제의 작동방식을 이해하는 데 매우 근본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한계수확체감의 기초에 대한 명료한 이해가 별로 없다는 사정은 주목할 만하다. 그 기초는 혁신의 일회적 또는 불연속적 성격이고, 이러한 성격은 생산체계에서의 진보가 생산체계 외부에 있는 과학적 기술적 (그 자체로 일회적인) 돌파구들에 의존함으로써 악화된다. 혁신은 한계수확체감을 상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요소이다. 그러나 혁신이 지속적이고 영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일회적이거나 불연속적인 것이라면, 각 혁신은 마치 동일한 한계수확체감의 제약 아래서 새로운 투입요소 혹은 수정된 기존 투입요소인 것처럼 작동할 것이다.

이전의 선진적인 생산방식, 특히 지식경제의 바로 직전 형태인 공장제 대량생산과 그 선행 형태인 기계화된 제조업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혁신들의 특성을 이루어온 세 가지 불연속 형태를 고려해보자. 첫 번째 불연속 형태는 과학적 발견의 역사 자체에서 존재하는 것으로서, 자연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의 발명과 이로부터 나오는 이론, 실험, 절차의 조직이나 규칙화가 동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번째 불연속 형태는 과학적 통찰을 과학기술적 발명에 적용하는 데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과학의 관행에 대한 과학기술적 발명, 특히 과학적 장비의 역(逆)작용으로 강화된다는 점이다. 세 번째 불연속 형태는 생산체계가 과학에 기초한 기술을 이용하는 데에서의 불연속이다. 이러한 중첩적이고 누적적인 불연속들은 생산 외부의 진보에 생산이 의존한다는 점과 결합하여 한계수확체감이라는 제약조건의 궁극적인 기초를 형성한다.

지식경제는 한계수확체감의 궁극적 기초를 무너뜨리고 따라서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을 극복하거나 심지어 역전시킬 잠재력을 창출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리하여 한계수확체감의 완화 또는 역전은 지식집약적인 생산이 왜 규모수익체증을 산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에서 원용된 이유들보다 더 근본적이고 동시에 더 특수한 이유들 때문에 일어날 수 있다.

내가 다음 절에서 논의하게 될 지식경제의 더 심층적인 특징들 중 하나는 우리의 협력방식을 상상력의 작동방식과 더욱 유사하게 만들고 노동자가 기계의 거울이라기보다는 기계의 대립물이나 보완물이 될 수 있게 하는 과학적 실험주의의 모형에 따라 생산을 쇄신하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앞으로도 불연속적인 상태에 머물지 모른다. 그러나 지식경제를 특징짓는 실험주의적인 생산은 과학적인 발견과 기술적 발명을 이전보다 더 직접적으로 또한 더 지속적으로 생산활동으로 변형할 수 있다. 더욱이 그러한 생산은 과학기술의 진보가 가져다주는 결과물의 수동적인 수혜자로 머물지 않고 관행과 제품뿐만 아니라 아이디어들에서도 스스로 끝없는 혁신의 원천으로 변한다. 그러한 생산은 과학기술을 더욱 닮아가기 때문에 과학기술이 창조한 것을 더 기꺼이, 더 완전하게, 더 항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혁신이 일회성보다는 영구성을 띨수록, 혁신이 생산체계 외부에서 발전된 아이디어와 기계의 이용뿐만 아니라 생산체계 내부에서도 더 많이 일어날수록,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을 완화시키거나 심지어 역전시킬 가능성은 그 만큼 더 커진다. 이러한 제약조건은 기술 속에 구현된 지식과 관련해서도 나아가 노동과 자본을 포함한 생산과정의 모든 투입요소와 관련해서도 완화되거나 역전될지도 모른다. 각 요소와 각 투입물의 성격과 그 생산적 잠재력은 지식경제의 일부가 됨으로써 변화된다.

이러한 사변적 명제들은 반증가능한 가설을 낳는다. 우리는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이 완화된다는 점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지식경제의 심화와 확산에 비례하여 그러한 완화가 발생한다는 점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제약의 극복에서의 성패는 한가한 호기심이 아니다. 나는 이 책에서 그러한 성패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물질적 도덕적 이익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을 완화하거나 극복하는 것은 생산의 성격에 중대한 변화를 두드러지게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관점에서 보면 인류의 경제사는 대체로 세 시기로 구분된다.

가장 원시적인 조건에만 해당하는 경제사의 제1기에서 경제성장의 결정적인 제약은 현재의 소비를 공제한 잉여의 규모, 즉 마르크스가 본원적 축적(primitive accumulation)이라고 불렸던 바다. 스미스와 마르크스 둘 다 본원적 축적이 지속적으로 자신의 주요한 연구대상인 그 시대의 경제성장의 가장 중요한 한계라고 믿었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사회의 계급적 성격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아래서 매매상품으로서 노동력의 취급에 대해서도 지배적인 설명은 잉여의 강제추출을 확보할 필요성이었다. 스미스에게 있어서 기술적인 노동분업의 계층적이고 전문화된 형태 아래서 노동자의 비인간화는 경제적 진보를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미래 성장에 필요한 자본 스톡을 증가시키기 위한 조건의) 일부를 형성했다.

스미스와 마르크스 둘 다 오류를 범했다. 그들의 시대에도 이미 잉여의 규모가 아니라 관념적, 기술적, 조직적, 제도적 혁신이 성장에 대한 결정적인 제약이었다. 영국은 꽤나 높은 수준의 국내 민간저축과 정부저축을 유지하였다는 점에서 아시아의 농업적-관료적 제국들과 다르지 않았다. 역사적 연구는 영국이 도리어 다수의 아시아 제국들보다 낮은 저축수준을 유지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영국은 혁신과 이에 적합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배경에서 이러한 아시아 사회들과 달랐다.

문명의 시작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의 역사 전체에 해당하는 경제적 진화의 제2기에는 혁신의 수준, 범위, 속도 나아가 생산기술과 생산안배에서의 혁신과 제도, 과학, 문화에서의 혁신의 관계가 경제성장의 주요한 제약조건이 되었다. 다양한 형태의 혁신은 성장의 주요한 동력으로 전환되었다.

저축은 성장의 원인이기보다는 성장의 결과가 되었다. 그러나 혁신에 의해 촉발되고 지속된 성장은 희소성과 한계수확체감의 이중적인 비호 아래서 일어났다. 혁신은 비록 다면적이지만 단속적이었다. 혁신은 여타지속적인 관행과 안배에서 일련의 불연속적인 변화였다. 가장 중요한 혁신은 사람들의 협력방식과 인간의 편익을 위한 자연의 변형이나 자연적 요소들의 동원과 관련된 혁신이었다. 기계의 설계와 사용은 두 가지 유형의 실험(자연에 대한 실험과 협력적 관행에 대한 실험)의 흔적과 이러한 실험을 연관시키는 방법의 흔적을 간직하였다.

경제사의 제3기는 혁신이 그 단속적인 성격을 상실하고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이 완화되거나 심지어 역전되는 때 시작된다. 희소성과 부족한 자원의 분배와 이용에 관한 다양한 방법들의 불평등한 결과는 계속해서 경제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이다. 그러나 혁신은 일회성보다는 영구성을 갖는다. 혁신은 생산체계 외부에서 도입된 과학과 기술에 의존하게될 뿐만 아니라 생산과정에 내부적으로 된다. 좋은 기업이 좋은 학교를 닮기 시작하고 생산의 발전이 지식의 발전을 닮기 시작하는 까닭에 한계수확체감의 제약은 이완된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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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21/05/29-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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