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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과세를 위한 직접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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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과세를 위한 직접 민주주의

admin | 금, 2020/03/13- 19:42

이탈리아는 세계에서 공공 부채율이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이렇게 부채로 치닫는 현상은 정당에 신임을 주어 선출하는 시민들의 암묵적인 동의로 인한 것이다. 더욱이 시민들은 경제 분야의 정치나 특히 공공 재정public finance 관련 모든 직접 참여에서 배제되어, 헌법에서조차 세금 관련 레퍼렌덤의 시행을 허용하지 않는다. 최근의 발전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조처는 정당한가?

 

공공 재정문제에서 목소리를 빼앗긴 시민들

공공 부채는 근본적으로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고 납세자들의 지갑에 영향을 준다. 현재도 그렇고 미래에도 마지막으로 청구 금액을 지불하는 것은 납세자들이지만 그들에게는 공공 재정의 결정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더욱이 시민들의 레퍼렌덤 권리 강화에 대해 토론할 때, 공공 재정의 문제는 가장 민감한 문제중의 하나다. 곧 시민들이 재정 및 세금 관련 결정에 연루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개 민주주의를 강화하면 정부의 역할은 축소되고, 시민들은 공익을 책임져야 하는 정치인들과 달리 늘 세출은 늘이고 각자에게 돌아가는 세금은 줄이려 들 것이라는 우려에 겁을 먹는다. 실제 상황은 그 반대이다. 이탈리아에서 국가 세입 및 세금 관련 문제는 레퍼렌덤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고, 시민들은 그 어떤 정부 차원의 공공 예산문제에서도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현재 이탈리아는 엄청난 부채를 안고 있다. 지배 정당들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엄청난 부채를 안고 있는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에서도 공공 지출과 세금 관련 문제들은 레퍼렌덤 권리에서 배제되어 있다. 재정에 관한 정치적 선택에 있어서 시민들을 모든 형태의 참여에서 배제시키는 것은 무분별한 지출과 부채 의존을 부채질할 듯하다. 실제로 헌법(제75조 2항)은 예산과 세금 관련 법률에 대한 레퍼렌덤 투표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금지는 헌법 제정자들 사이에서 존재했고, 지금까지 기존 정당들에 널리 퍼져있는, 시민들은 국가 재정에 그 어떤 책임도 없다는 가정 때문이다.

시민들의 특성상 늘 더 낮은 세금에 더 큰 사회복지를 요청하는 경향이 있다고 가정하곤 한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현실은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을 보면 전반적으로 비교적 높은 세금을 지불하는 반면 공공 서비스의 질은 매우 낮은 상태이다. 불필요한 프로젝트에 공공 자금 낭비, 공공 사업 경영의 불찰, 횡행하는 파벌주의는 공공 재정의 불안에 기여했다. 시민들이 세금 관련 사항에 개입할 기회가 없는 곳에서는 정치인들이 부채를 엄청나게 조장해 심각한 공공 적자를 가져온다. 많은 유럽 국가들에서 축적된 공공 부채는 예를 들자면, 국민 레퍼렌덤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장기적으로 균형을 잃은 국가 재정 정책의 영향은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가 아무런 대책 없이 높은 세금을 감당할 수 밖에 없게 되며, 결국 지역사회에서 다수결로 요청된 바가 없는 공공 사업이나 프로젝트에 대한 지출이나 부채 이자로 인한 지출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지금이건 앞으로건 늘 납세자들이다. 정치 대의원들은 임기가 끝나면 임무가 바뀌고 종종 “연금 수당”의 부당이득을 누리고, 공공 예산의 균형을 바로잡을 책임은 그들의 후임자들에게 전가된다. 결국 공공 지출에 대한 책임의 논리는 뒤집혀야 한다. 지출과 수입 결정의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늘 시민들이니, 그와 관련한 최종 발언권은 시민들에게 주어져야 할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의 반증

실제로 공공 자금의 운용에서 시민들이 정치인들보다 책임감이나 장기적 안목이 부족하지는 않은 듯하다. 미국과 독일에서 수십 년 간 걸쳐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시민들 2/3가량의 다수가 단기적으로도 공공 예산이 균형을 이루는 것을 선호한다는 결과가 늘 나왔다. 엄청난 공공 부채는 국민, 특히 그 부담을 떠 안게 될 젊은 세대들이 바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정치의 결과이다. 공공 부채의 지속적인 증가는 사실 정당들의 전략적 선택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어 연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드러난다.

▪ 다수 정당들의 연합 내에서 분열이 클수록, 부채 증가 경향이 더 크다.
▪ 정부가 다음 선거에서 질 가능성이 클수록, 부채 증가 경향이 더 크다.
▪ 한 정부의 지속 기간이 짧을수록, 부채 의존 경향성이 더 크다.

이로 미루어, 엘리트 정치인들의 단기적인 논리가 공공 부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표를 얻기 위해 부채에 의존한다.

다른 한편으로 재정 및 국가 세입 관련 문제에도 시민들이 개입할 권리를 지닌 나라들이 있다. 스위스에서 시민들은 확정적 레퍼렌덤을 갖추고 있어서 정치인들이 지나친 과세나 공공 지출로 공공 예산에 너무 큰 부채를 지우고 그 결과 미래의 납세자들인 젊은 세대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지우는 듯 여겨질 때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민발안으로(이탈리아에서는 대개 ‘제안적 레퍼렌덤’이라고 정의한다)는 보다 균형 잡힌 국가 세입을 위한 시민들의 제안을 투표에 부침으로써 부채를 제한하고, 정치인들이 좀 더 공정하고 균형잡힌 지출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거부 수단으로써 긴급 제동을 걸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안 수단으로써 정치 계급과 정당들이 움직이지 않을 때 가속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위스의 거의 모든 칸톤과 많은 기초자치단체에는 재정관련 레퍼렌덤이 존재한다. 어떤 공공 프로젝트가 미리 정한 지출 한도(평균 2백 5십만 스위스 프랑 혹은 약 2백만 유로)를 넘어설 때 시민들은 의무적으로 레퍼렌덤을 통해 의사를 표명하도록 소집된다. 이런 직접민주주의 도구는 매우 단순한 원칙에 따라 작동한다. 곧 어떤 특정 공공 프로젝트를 위한 지출이 법으로 미리 정한 총액 한도를 넘어설 때 모든 유권자들은 이에 대해 결정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선택적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최소 인원의 서명을 모은 시민들이 특정 지출의 승인과 관련하여 거부권으로서 레퍼렌덤을 요청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의무적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가끔 어떤 공공 지출이 어떤 정해진 총액 한도를 넘기면, 국민투표를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물어서 해당 칸톤이나 기초자치단체의 공공 지출을 승인하거나 거부한다는 뜻이다.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국민들이 지출 승인에 반대하여 국민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조세나 지방세로 충당되는 지출을 통제하거나 억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스위스 시민들은 어쨌든 국민발안과 실행적 레퍼렌덤이라는 두 가지 오랜 도구로 국가 세입관련 법령과 세금 제도에 개입할 수 있다.

대부분 이 도구를 활용하려는 성향의 칸톤에서는 “재정관련 레퍼렌덤”이 없는 칸톤들에 비해 공공 지출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나타난다. 스위스의 학자들(Kirchgassner, Feld, Savoiz, 1999년)은 131개의 스위스 도시와 칸톤에서 의무적 재정관련 레퍼렌덤의 영향을 분석했다.

기초자치단체들은 칸톤과는 달리 예산을 변경할 수 있는 여지가 더 크다. 분석에 따르면,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기초자치단체 예산의 적자를 줄이는 데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다. 게다가 세금과 과세에 대해 레퍼렌덤 투표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시민들은 그 결과 늘 세금 감면을 선택한다는 주장은 입증되지 않았다.

1978년~1999년 사이 미국에서는 국세 관련 130건의 국민발안이 펼쳐졌는데 그중 86건이 감세를 목표로 한 것이었고, 27건은 증세, 17건은 과세와 관련하여 중립적인 것이었다. 증세 방향의 발안 중 39%가 승인된 반면, 감세를 위한 발안은 조사한 사례의40 %가 수용되었다.

그 외에도 스위스 사람들은 증세에 동의한 경우도 많았다. 1984년 국민발안으로 고속도로의 일반 통행새 징수를 위한 스티커가 도입되었다. 1993년에는 레퍼렌덤으로 석유 리터 당 0.2스위스 프랑의 새로운 추가세가 도입되었다. 1998년 스위스 사람들은 육상 화물 교통(중량급 화물)에 대해 세금을 도입하여 산고타르도San Gottardo의 새 터널을 만드는 데 든 지출을 충당했다. 2009년에 스위스 사람들은 일정 기간 동안 부가가치세의 일시 증액에 동의했다. 다른 한편으로 시민들 편에서 부가가치세의 도입을 세 차례 기각했다. 2001년 12월 스위스 사람들은 레퍼렌덤 투표로 “부채 동결”을 승인했다. 그 해부터 스위스 연방 공공 부채는 지속적으로 내려가서 2018년 국내 총생산GDP의 28.8%로 조정되었다. 2018년 3월에 스위스 시민들은 공영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 사업의 연방(국)세를 폐지하기 위한 국민발안을 기각했다.

산갈로San Gallo 칸톤을 예로 들 수 있을 텐데, 이곳에서는 현행법으로 충당하지 못하는 새로운 지출 항목을 위해 일괄 지불로 1천 5백만 스위스 프랑 이상을 지출하거나, 혹은 여러 해에 걸쳐 1백 5십만 스위스 프랑의 지출을 결정할 때 의무적 재정관련 레퍼렌덤이 공고되어야 한다. 칸톤 예산 총액 50억 스위스 프랑(2018년)에 미루어, 위의 금액은 비교적 적다. 선택적 레퍼렌덤은 3백만 스위스 프랑 이상에 준하는 지출과 30만 스위스 프랑 이상의 현행 지출 심의를 위해 요청될 수 있다.

이를 목표로 40일 안에 4천 명의 서명을 모아야 한다. 약 30만 유권자 숫자를 고려하면 이 서명 기준점은 당연히 지나치지 않다. 다양한 조사에 따르면Kirchgassner(2001년),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공공 지출을 제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도구를 갖춘 기초자치단체들은 시민들에게 이 권한을 주지 않는 기초자치단체에 비해 1인당 지출 수준이 더 낮은 양상을 보인다. 유권자들이 지역 법규에 대해 의사를 표명할 수 있는 곳에서는 과세와 부채율, 탈세 또한 더 낮다.

재정관련 레퍼렌덤 외에도 바로 직접 민주주의의 매커니즘이 함께 작용하여 스위스를 공공 부채가 적고, 과세율이 더 낮으며, 공공 행정의 효율성이 높고 경제가 안정된 나라의 하나로 만들었다. 스위스만이 아니라 캘리포니아와 미국의 다른 연방 주들에서 실시한 수많은 연구에서도 이러한 역동성을 볼 수 있다. 곧 직접 민주주의 매커니즘이 잘 작동하는 곳에서는 다음 양상이 나타난다.

▪ 공공 행정을 위한 지출이 더 적고, 세금 부담 수준이 낮다.
▪ 더욱 공평한 소득 분배
▪ 세금에 대한 시민들의 책임감이 더 높다.

실제로 탈세에 맞선 싸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세금 문제에 대해 투표를 더 많이 하는 칸톤에서는 탈세가 더 낮았다. 이는 한가지 단순한 연결고리를 보여준다. 곧 시민들이 자신이 직접 선택 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에도 공공 행정에 더 만족할수록, 더욱 기꺼이 의무로 부과된 세금을 납부하려 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공익 사업에 대한 지출과 과세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을수록 더욱 공적인 책임 의식을 가지며, 공공 지출을 통제할 수 있을수록 더욱 기꺼이 국가의 세입 노력을 지원하고자 하게 된다.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순환고리이다.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 근본적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어째서 직접 민주주의가 더 발전한 체제들은 대개 이런 민주주의는 물론, 국가 재정과 경제적 안정에서도 건강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레퍼렌덤을 통한 시기적절한 개입으로 시민들은 단지 5년에 한 번씩 다음 선거에서 다시 과반수로 선출하여 무능한 이들을 처벌할 수 있는 대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입법 회기 중에도 개입하여 특정 지출, 과세, 대형 프로젝트, 낭비 등을 차단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최근 전국 레퍼렌덤으로 핵발전의 선택이라는 엄청난 낭비를 피할 수 있었지만, 이미 납세자들의 어깨를 무겁게 할 태세가 된 다른 많은 대형 프로젝트들이 있다.

▪ 시민들은 레퍼렌덤 덕분에 공공 지출이나 정책 전반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전달받는다. 시민들은 경험을 통해 자신들이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신중하고 책임감을 갖는다.

▪ 레퍼렌덤이 있는 시민들은 정치 비용 또한 조절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다른 유럽 국가 정치적 대의원들의 평균 지출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정치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 정치인들의 바람과 시민들의 바람 사이의 단절이라는 커다란 문제를 직면한다. 잘 조직되고, 자금력이 있으며, 정확한 시기에 공공 지출과 정부 방침을 좌우하는 막강한 이익 집단들이 있다. 반대로 선거를 기하여 시민들은 보통 이념적인 이유로 한 정당에 “표몰이”를 하지만, 많은 현안에 대해서는 선거 이후 구성된 정부가 취한 선택과는 다른 견해를 지닌다.

과세 사안에서 시민들에게 직접 민주주의의 혜택이 부족한 점이나 공공 지출에 대한 이 간단한 언급을 통해, 국가 재정 관련 결정에서 시민들을 배제시키는 것은, 아마도 ‘이탈리아 제헌 국회Assemblea Costituente’가 상상했던 것과는 반대 현상을 가져왔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탈리아에는 세금 압박이 (사회적 기부를 포함하여) 매우 크다. 공공서비스의 질은 그다지 좋지 않고, 전국적으로 탈세가 만연해있으며, 공공 부채가 기록적인 수치에 이르고, 공금 낭비의 사례가 많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시민과 납세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각각의 결정을 통제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저 더 많은 의사 결정력과 중앙 집권화 만이 국가 세입에 대해 더 큰 책임감을 갖게 만들 것이라는 것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주권자들의 더 강력한 역할은 국가 재정을 회복시키기 위해 필수적이다.

이탈리아는 그리스 다음으로 가장 높은 국가부채율을 자랑하는데, 2017년 말 약 2조 3천 억 유로가 아직 GDP의 약 130%선에 머물러 있다. 동시에 가장 큰 재정적 압박을 받고 있는 유럽연합 가입국 첫 여섯나라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며, 43.3%(2017년 GDP 대비 세금과 사회복지 총액)에 달하는 재정적 압박을 호소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탈리아는 탈세율이 높은 편이다(2017년 1천 1백 억유로 추정). 반면 공공 서비스의 질은 떨어진다. 또한 지방 차원에서 국세-재정 관련 사안은 레퍼렌덤 사안에서 배제된다. 이탈리아에서 정치인들과 정당들은 일단 공공 지출을 운용할 수 있는 권력을 손에 넣으면, 공공 예산을 마치 셀프서비스 수퍼마켓처럼 여겼다. 2007년 40만명 이상이 직접 정치를 생업으로 삼았다(Salvi-Villone 2007년 참조).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심지어 이탈리아 취업자들 중 5%인 1백 10만명에 달한다(ILO 제3차 보고서-정치의 비용, 2013년 12월). 2018년 입법부만도 2017년에 비해 1.85%가 증가한 9천 6백 8십만 유로를 지출하게 될 것이다. 헌법 기관에 대해서는 2018년 이탈리아 중앙 정부는 총 24억 5천 8백 만 유로를 지출하게 될 것이다. 2012년 이탈리아 전역에서 지방의회에 약 10억 유로가 들었다. 이탈리아 전역에서 1117여 개의 지방의회 각각에 든 총 수당은 20만 유로를 조금 넘어선다. 한 의원의 지출 전체를 고려에 넣으면, 이탈리아 평균 연간 87만 5천 유로 정도이다. 대의 정치의 모든 간접 비용을 포함시키면, 총액은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그 어떤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대의 정치 비용이 이탈리아만큼 높지는 않다. 여당은 납세자들의 모든 직접 개입을 배제함으로써 늘 이런 특권을 지켜낼 수 있었다.

전후 지금까지 수십 년간 산더미 같이 쌓인 부채를 이탈리아 시민들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다양한 사회경제적 이유도 있겠지만 여당들 사이에 만연한 무책임한 지출 경향을 호도해서는 안된다. 또한 시민들 쪽에서는 전혀 거부권이 없다는 정치적 요인도 고려해야 한다. 가끔 국민발안 법 제안들이 제출되지만(2015년 봄, CGIL 노동조합에서 추진한 “보다 공평한 세입을 위해” 제안) 거의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고, 이런 제안들은 국회에서 급속도로 잊혀지고 만다.

한편 레퍼렌덤이 가능한 사안에서 국가 세입 및 세금 관련 사안을 배제하는 것이 전혀 당연하게 여겨진 적이 없었던 스위스의 경우가 있다. 스위스 사람들 사이에서 국가 재정 현안은 가장 인기 높은 사안에 속한다. 그러므로 전통적으로 국가 재정의 운용에서 정치적 대의원들을 단속하는 것에 큰 관심이 뒤따른다. 이 목적으로 칸톤과 기초자치단체에 “재정관련 레퍼렌덤”이 도입되었다.

 

시민들의 권리가 더 많을 때 정치인들은 재정적으로 더욱 책임있게 행동한다

스위스의 사례는 레퍼렌덤 가능 사안에서 국가 재정 사안을 배제하는 것은 정당성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반대로 시민들이 공공 지출 심의에 더 많이 참여할수록, 국민들 사이에서 책임의식도 더 커지고, 탈세도 더 줄어들고, 공공 자금낭비도 덜 생긴다. 민주주의와 공공 지출 사이의 관계는 단순하다. 시민들은 늦건 빠르건 자신들이 더 무거운 세금 압박을 통해 새로운 지출을 감당해야 할 것임을 알고 있으며, 그러므로 그들은 새로운 분야의 지출을 인가하는 것에 매우 조심스럽다.

어떻게 직접 민주주의로 공공 재정에 이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몇 가지 가능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 선거로 유권자들은 정치 대의원에게 일종의 백지수표를 발행하여, 단지 4, 5년 후에나 그것을 되찾을 수 있다. 레퍼렌덤 권한의 부재시, 시민들은 잘못된 투자나 공공 자금의 낭비, 불필요한 지출, 정당성 없는 세금 등을 막기 위해 개입할 수 없다.

▪ 만일 시민들이 공공 재정관련 사항에 투표할 수 있다면, 즉각 시민들 자신이 더욱 그 사안에 관심을 갖고 정보를 얻게 된다. 결국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시민들이며, 이들은 보통 새로운 지출 요청 앞에서 더 조심스럽다. 이탈리아에서는 2011년 시민들이 핵발전소에 대항하는 투표로 엄청난 공공 자금 낭비를 피해갔다. 그러나 보통 이탈리아 시민들은 새로운 지출 요청 앞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권리가 없다.

▪ 확정적 레퍼렌덤으로 시민들은 지나친 정치 비용 또한 제한하고 정치적 족벌주의의 만연을 견제할 수 있다.

▪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는 아직 공공 행정상의 부패율이 높다. 지출 심의와 특정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치는 시민들의 권리는 이런 위험을 제한한다.

▪ 시민들이 바라는 것과 대의원들이 바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부합하지 않는다. 영향력 있는 이익 단체들과 여러 막강한 세력들은 늘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기호에 따라 공공 지출과 투자를 이끌어 가는 것을 제한할 수 있다.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이런 힘이 없다. “모든 것을 포괄하여” 한 정당에 투표하고, 모든 각각의 공공 자금 관련 결정은 정치인들의 몫으로 남겨지며, 시민들은 그에 대해 아무런 발언권이 없다.

이탈리아에 적용된 의무적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미리 정한 기준치(가령, 5천만 유로)를 넘어서는 지출을 수반하는 모든 프로젝트에 대해 자동 국민투표를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명을 모아야 하는 수고를 피하여, 시민들은 상당한 재정적 규모의 어떤 프로젝트가 가져올 영향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시민들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거대 프로젝트의 경우 미리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야 할 것이다. 다른 나라에 존재하는 이 권리는 오랫동안 이탈리아의 공공 재정을 괴롭혀온 무책임한 지출에 대해 효과적인 제동 장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금관련 레퍼렌덤 권한을 포함한 공공 재정에 대한 시민들의 직접 참여는, 세금에 대한 입법부의 권한이 좀 더 지방분권 방식으로 분산되고 관리된다면 더욱 합리적이 될 것이다. 한 가지 예는 또 다시 스위스의 연방제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탈리아의 주와 기초자치단체들은 세금과 지방세 관련 법에서 더 많은 자치권을 얻어야 할 것이다. 이탈리아의 주들은 과세 문제에 권한이 매우 적으며, 세입의 적은 일부만이 주 자체 내에서 부과한 세금으로 충당되고, 가장 큰 몫은 나라에서 보전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나친 지출을 막기 위한 목적의 재정관련 레퍼렌덤은 유용하겠지만, 세금에 개입하기에는 법적, 정치적 연결고리가 부족하다. 거의 모든 세금들이 국가의 권한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첫 단계는 재정적 연방제fiscal federalism라는 더 나은 시스템을 갖추는 것일 것이다. 다음으로 재정적 연방제를 직접 민주주의와 결합시키는 것이 낭비와 지나친 세율의 과세를 줄이기 위한 방법이다. 정부의 모든 차원에서 진정한 납세자인 시민들이 회계 감사관 역할을 하는, 정치적 책임을 담당함으로써 공공 재정이 더욱 튼튼해지게 된다.

이탈리아에서─특히 돈을 헤프게 쓰는 정치인들이─종종 우려하는 것은 세금과 관세에 대한 직접 민주주의로 시민들은 근거가 충분하지 않는 세금을 삭감하기만 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시민들, 곧 납세자들의 직접 참여는 국가 재정을 더욱 견고하고 공정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스위스의 경험에 따르면 시민들은 공공 재정에 필요한 책임 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 스위스 시민들이 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 나라는 사회적 기능이 원활하고, 질 높은 기간 시설, 적은 공공 부채 및 낮은 세율을 자랑한다.

이탈리아에서는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재정 운영에 대한 직접 통제 부족과 재정 시스템의 중앙 집중은 지나친 낭비, 잘못된 투자, 보스 정치 및 엄청난 공공 부채를 조장했다. 근래 수십 년 동안 뿌리내린 보스 정치를 지탱한 것은 바로 “돈-표-자리”라는 비정상적인 삼각지대에서 나타나는 표 거래 구조 덕분이다. 의무적 재정관련 레퍼렌덤이라는 열쇠로 이런 자동적인 악의 순환을 배양하는 음지를 밝은 곳으로 끌어내어 정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재정 관련 레퍼렌덤과 세금 관련 법률과 법규는 물론 대형 프로젝트에 대한 레퍼렌덤은 단순히 민주주의를 작동시켜 헌법에 규정된 “균형 예산”을 보완하며, 늘어나는 부채에 최선의 제동 장치를 제공할 것이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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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미 간 무역전쟁이 한창이다. 미국은 1차로 지난 7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총 500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산 수입품에 추징관세를 부과한데 이어, 최근 다시 2,000여억 달러에 대한 추가적인 관세를 부과하였다. 중국도 이에 맞서 미국산 제품에 대해 상응한 보복관세를 매김으로써 맞대응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이제 누구의 눈에도 양국이 전면적인 무역전쟁에 돌입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현재 세계경제를 이끌고 있는 G2 두 나라 간의 무역전쟁은 분명 국제질서 전반과 한반도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핵무기의 존재 때문에 강대국 간의 갈등이 ‘전쟁’으로 전면화할 수 없는 오늘날 조건에서, 이렇듯 거의 전 산업에 걸친 대규모의 ‘전면적 무역전은 전쟁을 제외한 강대국 간 갈등의 최고 표현 형식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열강들은 먼저 자신의 세력권을 배타적으로 ‘블럭화’ 하였는데, 이 같은 보호무역을 실시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면 전쟁이 시작되었다.

칼럼_181005 바이두
사진: 바이두

그렇다면 이렇듯 양국 간에 무역전이 전면화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우선, 금번 무역전쟁은 오바마정권 때 본격화한 ‘아시아 회귀전략’으로 대표되는 대중국 억제전략의 연장이자, 그 새로운 발전단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바마정부의 ‘아시아회귀전략’ 은 처음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한 ‘대리전적 갈등’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당시 미국은 필리핀을 앞세우고,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역내 관련국들의 권리주장을 적극 부추기면서 그 배후에서 이들을 지원하는 형국을 취하였다. 이 단계는 필리핀정부의 국제중재법원에의 제소가 승소판결을 받은 2016년7월에 정점에 달하였다. 그러나 이후 점차 기세가 누그러지면서, 특히 당해 말 실시된 필리핀 대선에서 아키노정부를 잇는 친미파가 정권을 상실하고 현재의 비교적 자주적이며 친중국 성향의 두테르테 신정부가 탄생함으로써 ,이 단계에 있어 미국의 전략은 거의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남중국해 카드가 실패로 끝나면서 미국은 할 수 없이 새로운 전장을 물색하게 된다. 이 경우 미국에게 남겨진 것은 ‘대만’ 과 ‘무역전쟁’ 두 개의 카드라 할 수 있다. 그중 대만 카드는 자칫 중미관계의 근저를 뒤 흔들면서 진짜 ‘전쟁’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위험한 카드이기에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예컨대, 대만독립파인 현 민진당 정부가 미국의 지원을 믿고 진짜로 독립을 선언할 경우, 중국은 ‘반국가분열법’에 의해 자동적으로 대만을 무력통일하게 된다. 그럴 경우 미국의 입장은 매우 난처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트럼프정부로서도 대만카드에 대해선 아직까진 신중한 접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무역전쟁’이 중미 대결의 제2단계 주요형식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둘째로, 미국 내부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에 대해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로부터 지금의 중미대결이 ‘무역전쟁’이라는 형식을 빌려 표출할 수밖에 없는 직접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파생되는 다른 문제들, 예컨대 미국이 자신의 동맹국으로까지 무역전을 확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역시도 이해할 수 있다.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는 미국의 경우 내적 연관을 갖고 있다. 이들은 ‘쌍둥이 적자’로 일컬어지는 대단히 미국적인 현상인데, 1980년대 중반 레이건정부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쌍둥이 적자’ 가운데 발단은 ‘재정적자’라 할 수 있다. 즉, 재정적자를 메꾸기 위해 미국정부가 달러 발행을 남발하게 되고, 그 다음 증가된 달러를 가지고 국내의 공급부족에 따른 물품 결핍을 해외수입을 통해 메우다 보니 무역적자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세계 기축화폐인 달러를 보유한 미국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참고로 미국의 재정적자는 아래 표에서 보듯 현재 이미 GDP의 130%에 육박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나라 같으면 파산선고를 해야 할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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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 국가통계포털 (KOSIS)

어떻든 이 같은 재정적자로 인해 야기된 ‘무역적자’는 최종적으로 국내의 산업공동화고용문제를 야기한다. 이 때문에 미국의 통치세력으로서는 언제까지나 이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지 못한 기층 대중들의 불만이 이미 위험수위에 이르러 미국사회 불안의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트럼프는 정작 이 같은 대중들의 불만을 등에 업고 등장하였기 때문에,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고 차기 재선을 노리고 있는 그로선 어떻게든 일자리문제에 있어 내세울 만한 업적을 만들어야 만하는 처지이다. 그를 위한 좋은 소재가 바로 타국과의 무역 분쟁을 이슈화 하는 것이다. 트럼프정부는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거대한 무역적자가 바로 중국을 비롯한 대미 흑자국가들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들로부터의 수입을 규제함을 통해 국내 산업과 일자리를 보호하겠다는 낡은 공약을 내걸고 있다.

마지막으로, 트럼프라는 ‘우연적 요소’ 역시 간과될 수 없다. 사실 앞서 열거한 두 가지 요인 사이에 모순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완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트럼프이기 때문이다. 그간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세계 각국의 개방화와 지구화시대의 경제일체화를 선도하여 왔다. 이처럼 시대적 흐름을 이끌어 왔기에 미국은 탈냉전 이후의 지구화시대에 있어 패권국가로서의 지위와 리더십을 지금까지 어느 정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앞서 쌍둥이 적자와 관련된 부분은 사실상 미국에게 ‘보호무역주의’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비록 유일패권을 노리는 미국에 있어 대중국 억제전략이 시급한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그간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부정하면서까지 지구화시대에 역행하는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앞뒤가 맞지 않다.

이 같은 상황에서 워싱턴 정가의 정통노선과 이질적인 트럼프의 등장은 얼마간 이 같은 모순을 완화시켜 줄 수 있다. 트럼프는 이 경우 하나의 ‘우연적’ 사건으로 간주될 것이며, 미국 전략의 내적 모순에 대한 일종의 절충적 해결방안으로 치부되게 될 것이다. 사실 트럼프 자신이 매우 모순적인 존재이다. 그가 이끄는 행정부는 얼핏 보아도 상호 충돌하는 정책들로 가득 차 있다. 예컨대, 한편에선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국내 일자리 창출을 위해 동맹국들과 얼굴을 붉히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같은 포퓰리즘적 국수주의 정책을 미국 내에선 ‘신고립주의’라고 부른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최근 오바마정부가 어렵사리 성사시킨 이란과의 협정을 파기하면서까지 중동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강력한 미국’ 노선의 관철을 위해 군비를 대폭 증강하는 정책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며, 트럼프정부가 여전히 세계 패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트럼프의 돌출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개성’은 워싱턴의 정통엘리트들을 한편에선 골치 아프게 하면서도, 다른 한편 그의 ‘파격’과 ‘돌발성’은 미국의 서로 다른 전략 목표들 간의 모순을 은폐시켜 준다.

우리는 이상에서 금번 중미 간 무역전쟁이 기존의 대중국 억제전략의 한 단계 발전이자 ‘쌍둥이 적자’의 누적과 관련되어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와 동시에 새로 등장한 트럼프정부의 독자적인 경제·정치 정책이라는 우연적 요소 역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금, 2018/10/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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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변혁의 존재론

 

최근에 불교철학을 공부하다보니 그 핵심인 공과 연기 그리고 중도 사상 중에서 가장 관심을 갖는 분야가 연기 사상이라 할 것입니다!

최근 40년 전에 시작되어 우주의 발생인과 작용인을 가장 잘 정합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으로 알려진 것이 복잡계 이론인데 이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과 진화론을 창발이론을 이용하여 설명하고자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데 이는 불교의 연기론, 즉 상호인과론과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즉 인지과학의 제3패러다임인 체화되고 확장된 인지주의EM이론은 마음은 물질인 신경세포 및 시냅스가 환경과의 되새김 feed back 작용에 의한 (즉, 상호인과 작용) 창발적 현상emergence이며 진화 또한 개체 또는 종 집단과 환경과의 연기, 즉, 상호인과인 되새김작용에 의한 창발작용임을 보여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마음은 복잡계의 되새김 작용에 의한 자기-재조직화의 극한상태인 임계점critical point (임계점을 넘어서면 종전의 물리계와는 전혀 다른 물리현상과 물리법칙이 생성됩니다!) 에서 일어나는 창발현상으로서 이는 원인과 조건 또는 원인과 결과의 상호작용인 연기적 인과론과 너무나도 유사하다할 것입니다!

(한편 인지과학은 마음을 정보들의 상호처리 통합 시스템으로 보고 있는데 불교의 유식사상도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인 업이 저장된 아뢰야식과의 상호연기, 즉 업이라는 무의식 정보에 대한 의식의 통합적 처리시스템으로 보고있어 서로 유사하다할 것입니다!)

 

한편, 선불교는 점수를 계속하다보면 어느 순간 임계점에 다달아 돈오의 경지 이르게 되어 분별지의 세계에서 직관지의 세계로 도약하면서 우주의 실상을 체득하게 된다고 가르치는데 이도 복잡계의 되새김의 자기-조직화 및 창발현상이론과 너무도 유사하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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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러한 복잡계 이론을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살펴봅시다!

 

첫째, 존재는 고정불변한 동일자로서 타자와의 내재적 생성, 즉 존재론적인 공생관계를 거부하는 실체론substance은 이제는 종말을 고하고 원인과 조건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가는 생성론creation이 과학적인 존재론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할 것이며, 둘째, 원인이 단지 조건에 의존하여 결과를 낳게 된다는 수동적이며 숙명론적인 결정론을 벗어나서 원인도 조건과의 상호연기, 즉 되새김의 조직화 과정속에서 충분히 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 즉 개체가 구조의 변혁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나비효과라 할 것인데 이는 원인인 개체의 힘이 비록 미약할지라도 임계점에 다달아서는 나비효과를 일으키며 새로운 구조와 질서를 창발해낸다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할 것입니다!

이는 현대의 신다윈주의에서도 나타나게 되는데 진화는 단순히 개체나 종의 자연선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돌연변이에 따른 종의 다양성이 역으로 환경도 변화시킨다는 공진화co evolution를 의미하는 것처럼 인간사회에서 원인인 개체가 조건, 즉 기존 사회질서를 변혁시킨다는 사실을 복잡계 이론을 통해 새롭게 깨달아야 인간사회의 변혁에 개개인들의 노력과 의지의 결집이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 지를 다시금 깨달아야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승불교의 보살정신도 개체의 자비나 보시에 머물지 않고 상호연기에 따라 원인(개체의 의지나 행동)이 조건(사회체제)을 바꾸는 시스템 변혁의 차원으로까지 승화시켜 해석하여야할 것입니다!

이로써 개인과 사회의 관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연기작용을 하는 생성적 관계라는 관점은 불교의 연기법뿐만 아니라 복잡계 이론이나 진화론에서 충분히 입증되었기 때문에 개체도 역사의 발전 동인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라는 근거와 가능성을 존재론적으로 확신하여야할 것입니다!

하여 개인을 원자적 개체로 해체시킨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도 인간은 개체의 욕망충족을 억압하는 제도와 체제에 대해 분연히 맞서 싸울 수 있는 존재론적 근거와 당위 그리고 가능성을 위에서 본 연기법 및 복잡계 이론 등에서 찾았다할 것입니다!

결국 힘의 역학관계를 이용하여 개인을 욕망의 소비적 노예로 전락시켜 자유의 생명력을 거세시킨 근대적 장치(국민국가와 자본주의 등)에 대해 저항할 존재론적 근거를 우리는 자연의 법칙들속에서 명백히 확인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개체적 차원에서 점수의 되새김을 통하여 직관지인 진리를 탐구하여야하는 것은 물론 위에서 언급한 상호연기와 복잡계 이론을 믿어 의심치 말고 기존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변혁을 요청하는 존재론적 당위를 거부하여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더구나 현대물리학의 양자 얽힘, 자기닮음이론과 화엄사상은 개체가 전체이고 전체가 개체라는 전일주의 The Holism를 진리로 선포하기에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태풍을 몰고 오는 현상은 너무나 당연하다할 것이므로 인간은 자신이 처한 시공간의 삶의 현장에서 미력하나마 쉼없이 날개짓을 하여야할 것입니다!

하여 생성론을 존재론으로 받아들여야하며 타자를 대상이 아니라 공생자로 보듬고 안아가는 가치 및 삶의 공동체를 먼 곳이 아니라 자신의 구차하지만 바로 가여린 구체적 현장속에서 창조해가야 할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앞으로의 시민운동은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획득하는 방식과 기성체제에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시민의 욕구를 대변하는 거버넌스 방식 외에도 현 질서나 체제를 변혁시키기 위한 대안적 가치와 모델을 단순한 담론적 차원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 현장에서 생성, 검증하는 작업을 지구적 차원에서 수행함과 동시에 이를 자신의 구체적인 삶터에서 구현시키는 공동체를 모색함으로써 미래의 시민사회의 대안을 찾는 실험을 계속하여 추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ㅡ존재에서 당위로!

월, 2018/09/10-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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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무장관 폼페이오는 23일 다음 주에 북한을 방문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하루 사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 방문을 취소하였다. 24일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이 방문을 취소한 것은 그가 느끼기에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에 있어 충분한 진전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는 또, “그밖에 우리가 중국에 대해 무역에서 더욱 강경한 입장을 취했기에, 그들이 비핵화 과정에서 예전처럼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이는 전형적으로 도둑이 도둑 잡으라고 외치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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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북 대화가 정체되고 있는 것은 그 주요한 책임이 미국 측에 있다. 김-트 회담 후 북한은 풍계리 핵심험장을 파괴하고 미사일발사장 시설을 철거하였으며, 미군 유해를 송환하는 등 구체적인 행동으로 성의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미국 측은 지금까지 상응한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였으며, 여전히 끊임없이 일방적으로 북한에 대한 제재 위협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쌍방의 대화가 계속 진행될 수 있겠는가.

보건대, 백악관은 마치 좋은 핑계거리 하나를 발견한 것 같다. 한반도 비핵화와 중국의 무역전에 있어서의 단호한 반격을 연계시키는 것인데, 이로써 미국 국내의 김-트 회담 성과에 대한 의혹을 완화시키고, 또 부단히 상승하는 백악관의 무역정책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에 회답함으로써 중간선거에 앞서 더 많은 지지표를 획득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백악관이 한반도 비핵화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전혀 성의가 없음을 폭로하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시간표가 필요한데, 이 시간표의 빠르고 느림은 미국 측의 자의적인 조작에 의존할 수는 없다. 미국이 만약 진심으로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마땅히 북한과 정치적으로 ‘시간 맞추기’를 해야 하며, 북한의 시계가 늘 미국의 시계에 맞추어지도록 해서는 안 된다. 한반도 비핵화가 전진하려면, 미국은 필히 북한의 체제안전에 대한 요구를 고려해주어야 한다.

과거 한반도 비핵화 문제의 결정적 순간을 회고해 보면, 거의 항상 돌파구가 한발짝 남아 있을 때 후퇴하였으며, 그 원인은 바로 미국이 늘 자신의 정치적 시간표에 따라 일을 처리하려했기 때문이다. 얼마간 겉으로 성의를 보여야 할 때는 백안관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정책 변동이 요구될 때에는 백악관은 다시 자신의 북한정책의 기점으로 되돌아갔으며, 북한이 가장 중시하는 안전보장 문제에 있어 계속해서 강한 압박을 유지하였다. 이번에는 다만 백악관이 중국으로 하여금 이 누명을 쓰도록 하려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미국은 동북아 국가가 아니다. 미국의 이 지역에서의 이익은 주로 정치적인 것이다. 미국에게도 안보적 이익이 있긴 하지만, 미국의 안보 이익은 동맹국에 대한 군사적 약속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여전히 그 정치적 이익에 복무하는 것이다. 이 지역에 강력한 군사력이 존재하는 미국은 그 지휘권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미국의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대한 사고의 출발점은 먼저 정치적 필요성이다. 당연히 워싱턴이 가장 근심하는 것은 이 지역 국가들이 받게 될 안보적 압박 내지는 경제와 사회 발전에서의 제약이 아니라, 백악관이 정치적으로 이득을 얻느냐의 여부이다.

중국은 줄곧 미북 대화에 대한 적극적 입장을 간직하면서 이를 위해 적지 않은 일을 해왔다. 중국의 지지가 없었더라면 미·북은 오늘날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중국은 계속해서 미·북이 대화를 통해 쌍방 이익이 절실한 지점에서 일정한 공통점을 찾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굳건한 기초를 놓기를 희망한다. 그렇지만 워싱턴이 마땅히 고려해야 할 점은, 미국이 무역문제에서 중국에 난폭하게 이전투구를 하면서 또 중국이 이전처럼 자신과 보조를 맞추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문제를 카드로 삼지 않을 것이지만, 중미 간의 상호 신뢰가 쇠약해지면 필연적으로 수많은 영역에서 중미 간 협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은 미국이 일으킨 무역전에 대항하고 반격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기에, 한반도 비핵화라는 카드를 사용할 필요가 전혀 없다. 미국의 무역전 압력 하에서도 중국이 더욱 희망하는 바는 비핵화의 진전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로써 이 지역 국가들의 정치적 제약과 제재를 완화시켜 동북아지역의 경제발전 잠재력이 석방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지역 다른 나라들 역시도 똑 같은 희망을 품고 있다.

지금 보면 백악관은 여전히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의가 부족하며, 더욱이 한반도의 최종적이고 지속적인 평화를 위한 어떠한 준비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백악관이 이 문제에 있어 ‘보여주는’ 것은 자신의 세계정책이 처한 상황을 절사(折射)하는 것이다. 정치·경제· 무역·안보 등 제반 문제에 있어서의 ‘재조정’은 미국을 ‘다시 강대해’지도록 하지는 못한다. 반대로 각종 저지와 반격과 협력 거부에 부닥친 후, 미국은 국면을 어지럽게 하는 방해자에 더욱 가깝게 된다. 미국 고위층의 이러한 졸렬한 곡예를 얼마나 더 오래할 수 있을지 진정 알 수가 없다.

토, 2018/09/0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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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민족으로서 우리의 건국설화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여 매우 특별하다. 대부분 나라의 경우. 건국설화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배경으로 설정하거나 초인적인 영웅의 이야기로 출발하여 지배권력을 미화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하여, 우리 설화의 경우에는 태백을 거점으로 삼아 상제의 아들인 환웅이 보기에 아름다운 땅을 선택하여 나라를 세우면서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이의 근본으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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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 모셔져 있는, ‘환인, 환웅, 단군왕검’의 초상화

단군신화로 알려진 위의 이야기가 후대에 민족의 주체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지어낸 것인지, 오랜 역사 속에 체화되고 전승되어온 이야기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한반도의 역사를 관통하는 문화적이며 정치적인 토대를 형성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인간의 언어로서 가장 감동적이며 성스러운 내용을 담아낸 성경의 주기도문과 같이,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해 나라를 세우며(이화세계) 널리 모두를 이롭게 하는 것으로 규범(홍익인간)을 삼는다는 것은 종교사적 견지에서는 황금률적인 표현이며 정치학적 의미에서도 제1의 공의적 원칙이다. 이번 글을 통하여 상기의 원칙들이 한국 역사에 투영된 기록을 찾아가며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가름해 보고자 한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무속적 신앙에 기초한 공동체적 모습으로 수렵사회를 반영한 제천행사가 부여 영고, 동예의 무천, 고구려의 동맹 등 형태로 행하여졌다고 전해지며, 농업이 번성하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단오와 추석과 같이 마을 사람 모두가 함께 음식과 가무를 즐기는 명절로 발전해 왔다고 한다.

이후 신라의 기록을 보면 불교가 전해지면서 지배계층인 화랑이 중심이 되여 향도(香徒)라는 조직이 만들어져 지배질서로서 종교적 규범을 강조하고 생활의 실천적 지침을 삼아 내려오다, 이후 일반백성에게까지 조직이 확산되면서 새로이 절을 짓거나 탑을 쌓거나 불공의 행사에 다중들이 함께 모여 공력을 제공하고 신앙적 공동체를 형성해 왔다.

고려 왕조로 들어서면서 종교적 배경과 행사를 위해서 조직되고 활동하였던 향도는 이제 향촌의생활 속에 자리를 잡으면서 香徒가 아닌 鄕徒가 되여 생활의 공간과 내용을 공유하면서 함께 노동하고 함께 즐기고 서로를 도와가는 양속으로 이동했다. 마을의 공동노역, 혼례, 장례, 마을 수호신 제사를 함께 치르면서 자연스레 상부상조적 조직으로 변모해 갔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한민족 역사를 줄곧 관통해온 두레라는 협동적 노동방식과 상부적 자조금융인 다양한 형식의 계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향촌의 통치 방식에서도 지방을 대표하는 인물을 내세워 왕권을 대신하여 중앙에서 향촌으로 파견된 관리 간에 협의 내지는 역할 분담을 이루면서, 읍사(邑司)가 중심이 되어 일종의 지역자치를 이루면서 내려온 셈이었다. 그러나 고려말 성리학이 도입되어 확산되면서 자치적 성격이 강했던 향도와 읍사는 양반 중심의 지배계층에 의해 유교의 가르침과 규범을 가르치는 향약(鄕約)으로 흡수되어 재구성된 것으로 보여진다. 향약은 사원과 함께 향촌에 뿌리를 내린 사림의 지위를 강화하면서 중앙정치의 훈구 세력에 맞서는 일종의 정치적 거점으로 변모한다.

왕권을 정점으로 하는 신분제적 관료체제인 고려와 조선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경제의 축을 이루는 농업 기반인 토지의 사용 및 소유의 형태와 조세정책의 변화에 따라 이해를 달리하는 지배권력간의 이권과 세력다툼, 그리고 권력의 틈새에서 민중들 스스로 자조하고 순응하며 때로는 협약하고 저항해온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경제의 기반과 운용의 결과물을 놓고 지배계급과 기층민중간에 전개되는 ‘정치동력학’적 궤적이다.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확고히 정립한 조선조 초기에는 주요 경제기반인 농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산업정책의 기본으로 정하고 소농의 농민을 중심으로 백성을 위한 민본(民本)의 왕도사상을 정치적 지향으로 삼아 왔다.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 조준 등이 비록 의도했던 균전제를 온전히 도입하지 못했으나 과전 및 직전법을 시행하여 고려 말 혼란하고 무질서했던 토지 소유관계와 조세체계를 바로 잡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왕족과 세도가들의 토지겸병 현상이 심화된다. 수조권을 기반한 토지지배구조가 약화되거나 붕괴되고 매득(買得), 장리(長利,) 개간(開墾) 등 통하여 토지의 사적 소유가 확대되면서 농지를 떠나는 유민(流民)들이 대거 발생하고, 일부 양반들이 사노(私奴) 또는 소작농으로 전락된다.

이에 지방에 기반을 둔 사림세력은 성리학의 창시자인 주희가 만든 주자증손여씨향약을 제도적 모범으로 삼고 사원과 유향소의 부활을 구실로 삼아, 탐욕스런 중앙의 왕족들과 세도가들을 견제하며 나라의 기반인 농촌사회가 무너져 가는 것을 방지하고 성리학을 정치사회적 규범으로 삼아 봉건적 질서를 유지하고자 목숨을 건 정치투쟁을 전개한다.

중종에서 시작하여 명종을 거쳐 임진왜란 전의 선조 대에 이르기 까지 백 년 가까운 세월 동안, 김안국이 경상도 관찰사 시절에 향약을 한글로 보급한 것을 시작으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인물들인 조광조, 이퇴계 그리고 이율곡 등으로 이어지면서 사림파와 훈구파 간에 성리학의 해석을 겸한 권력투쟁과 향약논쟁의 역사가 펼쳐진다.

향약의 내용을 살펴보면 중국 섬서성의 한 향촌에 국한되어 행하였던 여씨향약을 주자가 국가단위의 시행을 위하여 새로이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주나라의 제도를 따라 다음과 같이 주요 4개의 덕목으로 요약하였다.

덕업상권(德業相勸) : 좋은 일, 바른 일은 서로 권한다.

예속상교(禮俗相交) : 미풍양속으로 서로 교제하여 이를 널리 확산시킨다.

과실상규(過失相規) : 잘못한 일은 지적하고 비판하여 바로 잡는다.

환난상휼(患難相恤) : 개인 또는 향촌이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돕고 함께 극복해 나간다.

향촌에 거점을 두고 있던 조선조 사림의 양반들은 상기 향약의 내용과 제도를 무기로 삼아, 한편에서는 중앙정치의 세도가들의 탐욕과 패악을 견제하면서, 동시에 성리학적 윤리도덕을 기반으로 현존의 상하 신분관계를 분명히 하는 가운데 향촌의 공동체에 자발적 참여를 통한 자치기능을 부여하여 스스로 규계(規戒)하고 향촌을 유지 발전시키는 규칙을 세우며 고조선 이래 배달민족의 양속인 향음주례(鄕飮酒禮)의 전통을 지켜 나가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사림파들의 향약 실천에 대한 강력한 요구와 움직임에 대하여 중앙의 왕족과 세도가들은 다양한 이유를 들어 거부한다. 예건데 인물이 부족하다거나, 인심과 풍속이 투박하여 오히려 역작용의 폐해가 예상되며, 신분제의 붕괴가 염려되고, 왕권의 향촌을 다스리는 힘이 약화된다는 등 이유를 핑계로 삼아 몇 번의 사화를 통하여 사림파들을 숙청하고 제거하는 과정을 거친다.

권력의 다툼과 논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향약은 오래된 것으로 이를 실시된 곳마다 사람들이 서로 보살피고 돌아보며, 서로 돕고 질병에 함께 대응하며 구제하며, 자제로 하여금 유학의 가르침을 따라 효제의 뜻을 두텁게 하는 것을 가르치니, 삼대지치(三代之治)를 융성하게 하고 풍속을 아름답게 한다 – 化民成俗”라는 상소에 따라 중종 시절부터 적극적인 시행을 논의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매우 주목할 만한 인물이 조선중기 최고의 지성이자 실천적 행정가였던 이율곡 선생이다. 본인이 관직에 있을 당시 향약을 권하면서 파주향약의 서문을 직접 작성하였고 청주목사로 재직 시에는 서원향약을 만들어 시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선조가 향약을 전국적으로 시행하려 하자 오히려 시기가 너무 이르다(時期太旱)고 주장하며 시행을 보류하도록 간곡히 주청하여 계획을 중단시켰다. 더욱 기이한 것은 본인이 훗날 향촌에 머물면서 다시 완성도가 매우 높은 해주향약을 제정하여 보급하였다는 사실이다.

일견 서로 모순되고 상반된 이런 대목은 선조라는 못난 왕의 됨됨이를 살펴보면 이해가 가능할 듯하다. 사림들의 줄기찬 요구에 따라 신하들의 논의를 거쳐 향약의 전국적 실시를 결심할 단계에서 이율곡은, 선조가 민본의 왕도정치에는 별로 뜻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왕권 강화에만 마음이 머물러 있어, 이런 상태에서 향약을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향촌의 자치적 기능과 양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훼방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왕권과 중앙정치의 강화를 위한 하부 조직으로 전락할 것을 심히 염려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점은 필자가 제3 섹타경제론의 서론에서 제기한 지적과도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겨우 유아기 수준에 머물고 있는 현재단계의 사회적 경제영역은 당연히 지자체를 포함한 정부와 공공기관의 법제적 도움과 재정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揚水論), 제3 섹타가 추구하는 자발적 참여와 스스로 역동적이어야 할 네트워크 형성을 정치와 행정 권력이 저해하거나 왜곡시켜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되풀이 언급하지만, 제2 섹타와 더불어 세 분야 영역 모두 병렬적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율곡 선생이 보여준 천재적이면서도 백성을 진심으로 위하는 실천적 지식인의 전형적 모습을 다시 한번 반추해 볼 수 있다. 그는 단지 패자적 왕권과 세도가들의 영향을 차단한 것만이 아니라, 주자에 의해 체계화된 여씨향약을 당시 조선의 현실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하여 실천적인 내용을 담아내었다. 자발적 참여와 회원들간 원만한 합의를 유도하기 위하여 향약의 조직과 운영에 대한 세칙을 정치하게 기술하였고, 실천적이고 구속력 있는 모임이 되기 위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선악부(善惡賦)의 작성 요령과 규칙을 세밀히 규정하여 향촌내 세력가들이 행할 자의적인 패악을 엄하게 금하였으며, 향약의 기능을 사창(社倉)과 통합하는 사창계약속(社倉契約束)을 제창하여 현대적 의미에서 향촌단위의 사회안전망적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율곡 선생이 지향했던 향약 실천의 뜻을 다시 정리해보자면 단순히 기존의 지배 질서를 온전히 유지하고자 하는 것을 넘어서서, 위로부터의 통치가 아닌 백성들의 자발적 참여에 따른 자치를 이루고, 성리학적 규범 가치를 공유하면서 예(禮)를 통한 윤리적 절제로 향촌의 도덕적 질서를 유지하며, 향촌 단위로 상호부조를 통해 사회경제적 안전망 기능을 부여하고, 전체적인 강제보다는 개인과 공동체간의 관계성 회복에 초점을 두었다 할 것이다.

이는 필자의 앞선 칼럼 ‘인본적인 사회주의자’에서 소개한 19세기 초 프랑스 사상가 사를 푸리에의 기획과 일맥 상통하며 1990년대 노벨경제학을 수상한 인디애나 대학의 오스트롬 교수의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라는 저작에 담긴 구상과 비견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다시 한번 대학자의 경륜과 가르침에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하고 싶다. 안타까운 것은 필자가 역사 공부에 어둡고 한문이 서툴러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분야의 전문학자님들께서 좀더 구체적이고 풍부한 내용을 밝혀주시길 희망할 뿐이다.

아쉽게도 향촌 단위의 자치적 분권을 의도하였던 향약의 보급과 시행은 임진왜란 이후 기존 신분제의 급격한 붕괴, 다양한 원인으로 촉발된 농민층의 분화, 향시(鄕市)를 넘어선 격지 간 상업의 발달, 세도정치의 패악, 삼정의 문란 등으로 멈추어 서게 된다.

반면에 사림의 양반이 주도하였던 향약 운동을 대신하여, 모내기를 도입한 이양법으로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왔던 일반 백성 중심의 집단협동적 노동방식인 두레와 상호부조적 금융시스템인 다양한 계의 모임이 활발히 되살아 나고, 외척과 부패한 관리 등 지배층의 탐욕과 패악에 대항한 산발적인 민란이 지속되면서 새로운 자각과 실천 운동들이 벌어지게 된다.

청제국을 파탄내는 서세동점 흐름과 한국땅에 상륙한 가톨릭과 개신교 등 기독교의 충격 속에 북학파를 시작으로 전개된 다양한 실사구시적 운동, 위로부터 자강을 시도한 개혁파의 시도, 일반 백성들의 근대적 각성을 촉발한 동학을 중심으로 사회변혁운동 등이 전개되었고, 불행하게도 이후 일제강점기, 해방과 분단 등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반쪽뿐인 현대 한국의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칼럼_181004(4)통일뉴스
사진: 통일뉴스

2018년 현재, 남한사회는 양가(兩價)적이며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견 일인당 GDP가 3만 불을 넘어서면서 수치상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였고, 국력에 있어서도 세계 11위권을 유지하면서 강력한 미들파워 국가로 부상하였다. 반면에 외부적 조건이 불리한 가운데 양극화가 극심하고 사회적 불안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소득의 불평등 상황이 미국과 함께 OECD국가 중 가장 열악하여 1%의 국민이 20% 정도의 소득을 점하고 있고, 자산소득은 더욱 극심하여 이의 정도를 알려주는 피케티지수(국민순자산/국민총생산)가 10에 근접하고 있으며 (역사적 경험으로 지수가 6을 넘어서면 전쟁을 부추긴다고 피케티는 설명하고 있다), 1%의 부자와 재벌기업들이 민간소유 토지의 50%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자본 시장의 경우는 심한 정도를 넘어서서 1%의 자본가가 90%의 배당소득을 차지하는 등 극한적인 실태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한국의 사회경제적 현실은, 마치 왕족 및 세도가와 이들의 하수인격인 권노(權奴)들이 불법적인 토지겸병의 탐욕으로 국가질서를 뒤흔들고 온갖 수단으로 백성들을 수탈하던 조선중기 이후의 패악스런 모습이 다시 부활한 듯, 더욱 뿌리를 깊이 내린 채 난공불락의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타결책으로 어리석게도 국민소득 4 만불의 수치적 성장론을 제시한다거나 소중한 그린벨트를 풀어서 주택 건설량을 늘려 투기를 막고 주거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상황을 더욱 나쁜 방향으로 악화시킬 뿐이다.

핵심은 소수를 위하는 양적 성장에서 전환하여 일반시민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민본중심의 사회경제적 운영의 철학과 방향 위에서, 저마다 생업에 전념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투기적 부동산 소유에 대해 실질적이며 현실적인 고통을 가하고 불로적 지대소득에 대한 확실한 누진과세를 적용하며, 경제적 성과를 국민 모두가 골고루 향유하는 배분과 순환의 원칙을 정립하는 것이다.

역사적 변혁기에 서있는 한국사회는 당면한 문제를 본질적으로 직시하고 접근해야 한다. 부패하고 탐욕스런 무리와 이를 부추기는 관행 및 제도에 대항하여, 향촌의 사림들이 시도하였던 향약의 시행과 더불어 백성들의 자조적인 운동이었던 두레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것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건국 신화로 전해지는 이화세계와 홍익인간의 역사문화적 DNA를 다시 발견하고, 이를 사회생물학적으로 우리 생활 속에 살아있는 유전적 밈(meme)으로 진화되도록 제도와 관행을 바꾸어 가야 한다.

목, 2018/10/0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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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엽서가 아니었다.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고 백두산 천지 앞에 섰다. 그 장면이 실시간으로 우리에게 중계되었다. 그 뿐인가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렇게 상상을 뛰어 넘는 변화를 가져온 원동력은 어디서 왔을까? 여러 가지 요인을 들 수 있겠지만 ‘촛불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24주간동안 광장에 밀집된 민의의 힘은 헌법을 다시 소환했고 국회, 헌법 재판소 등의 국가기관을 깨웠다. 그 질풍노도의 힘이 평화의 물꼬를 열고 있다. 광장만으로 된 것은 아니지만 광장의 힘이 정치제도와 기관을 견인하게 된 것이다. 광장과 제도가 결합될 때 놀라운 역량이 발휘되는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칼럼_180924경향신문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민주공화정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왕정의 역사가 수천 년인 나라가 공화국을 만든다는 것은 지구촌 전체 국가에서 많지 않은 사례이다. 더욱이 헌법 제 1조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하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구체화한 경우도 드물다. 물론 이런 급격한 공화정의 설립이 제도의 도입과 가치의 괴리가 가져오는 ‘역문화지체’의 감기 몸살기를 늘 달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구하는 외침과 ‘민주주의가 밥먹여주는가’라는 냉소가 늘 공존해 왔다. 많은 근대적 가치가 그렇듯 민주주의도 수입된 단어이다.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기본권 개념이 종이 위의 활자에서 외침으로, 그리고 내면화된 가치로 안착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계몽이 필요한 상태이다. ‘공화국’의 개념이 낯설고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데모크라시는 ‘민치’(民治)를 뜻한다. 데모크라시를 민주주의로 번역하면서 민주주의는 필수가 아닌 선택, ‘주의’ ‘주장’ 중의 하나로 인식되었다. ‘이제는 산업화도 성공하고 민주화도 성공했다’는 자화자찬의 성취감 속에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갈등은 일시적으로 봉합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기가 조금만 침체의 기미를 보이면 민주화 탓을 하는 주장이 여전히 여과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역주의 정당논리가 산업화의 성과와 민주화의 성과를 분점하는 방식으로 재구성되면서 민주화와 산업화는 적어도 동일차원 그리고 여전히 민주화가 하위차원인 것 같은 위치설정이 도전받지 않고 있다.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면 민주주의는 유보될 수 있다는 생각은 비서구 지역의 권위주의 정권의 정당성의 논리로 차용되었다. 민의를 억압했던 억압적 국가기구의 동원의 어두운 역사의 그림자는 아직도 지구촌 지도에 짙은 음영을 드리우고 있다. 사회발전, 정치 발전, 경제발전이 나란히 이루어진 서구 국가에서는 순서도 사회발전을 토대로 정치발전과 경제발전이 함께 이루어졌다. 비서구 국가에서는 다른 것을 희생하여 이중의 한 가지만 선택하도록 강요당해 왔다. ‘갑질’과 ‘미투’는 사회발전의 지체가 폭발된 것이다. 우리는 선 경제성장, 저항을 통한 민주화, 그리고 그 힘으로 사회발전과 평화보장을 향한 길 위에 서있다.

민의를 전면에 등장시키는 것은 아직도 요원하다. 민의는 ‘ 대의’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 민의’를 드러내는 것은 정당을 통한 ‘대의원’을 선출하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다. 오랜 왕정의 전통 때문에 ‘ 대의원’은 대의된 권한을 위임받은 자 이상의 ‘ 권력’을 행사하고 ‘ 특권’을 누리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 대의’가 결정권의 독점 또는 특권으로 잘못 인식되면서 잘못된 결정에 대한 저항과 청원이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ìº´ À§ÇèÀ¸·ÎºÎÅÍ ¾ÈÀüÇÏÁö ¾ÊÀº ¹Ì±¹»ê ¼è°í±â ¼öÀÔ¿¡ ¹Ý´ëÇÏ´Â ½Ã¹ÎµéÀÌ 7ÀÏ Àú³á ¼­¿ï ÅÂÆò·Î ´ö¼ö±Ã ¾Õ¿¡¼­ Àü¸é ÀçÇù»óÀ» Ã˱¸Çϸç ÃкÒÀ» ¹àÈ÷°í ÀÖ´Ù.

‘직접민주제’를 이야기 하면 고대 아테네에나 가능했던 제도라고 이야기 한다. 직접민주제를 제도화하고 있는 스위스를 이야기하면 인구수가 적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그들의’ 이야기로 밀어 놓는다. 미국의 절반에 해당하는 주에서 채택했다고 말해도 ‘아직 우리는’이라고 하면서 민주발전단계론 뒤로 숨는다.

직접민주제는 현대와 같이 복잡하고 그리고 유권자의 수도 많은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제도라고 응수한다. 그리고 이어 파퓰리즘을 말한다. 민치의 전면적인 등장을 강조하는 이태리의 오성운동, 스페인의 포데모스의 등장을 ‘파퓰리즘’이라는 개념으로 가두고 있다. ‘경제 성장의 걸림돌’ ‘ 파퓰리즘’ ‘혼란과 질서회복’ 모두 민의의 전면적 등장을 가두기 위해 사용하는 박스들이다. 민주주의가 안착하기도 전에 ‘중우정치’에 대한 우려가 앞선다. 직접민주제를 말하는 순간 그것이 대의제의 보완제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대의제의 모든 특권에 도전하는 것으로만 인식한다. 직접 민주제를 이야기 하면 정당을 발전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도 한다.

한국에서는 정당 명부식 비례 대표제가 선진적인 제도로 소개되곤 했다. 정작 그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에는 정당 관료제 과잉의 문제에 대응하는 ‘ 더 많은 ’ 민주주의 활동가들이 있다. 히틀러가 국민 투표로 당선되었다는 트라우마 때문에 독일에서는 정당 중심의 대의제가 발달하고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하였다. 저항을 통해 민주화를 이룩해 온 역사적 배경을 가진 나라가 직접민주제의 제도화보다 정당 명부제를 강조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아직도 ‘좋은 제도 수입’으로 좁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정당 발전보다 사회운동의 역사가 긴 우리의 민주화의 역사에서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은 광장의 민심을 직접민주제라는 제도로 수렴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더 많은 민주주의’ 활동가들은 독일이 이제는 직접민주제를 도입할 만큼 민주시민 훈련이 되었고 정당 관료제가 민의를 대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함부르크 주에서 ‘더 많은 민주주의’ 운동을 하고 있는 맘포드 박사는 자신이 직접민주제 운동에 뛰어들게 된 이유를 설명하였다. 스위스에서는 사회기반 시설 공사비가 적게 들지만 더 내구성이 있는데 반하여 왜 독일에서는 공사비도 더 많이 들고 공사 내용은 부실한가를 질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해답으로 스위스에서는 큰 공사비가 드는 사안은 주민 투표로 결정되기 되기 때문에 예산 집행이 투명하고 더 많은 공론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는 추론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맘포드 박사는 모든 정당은 대의제의 특권 방어라는 측면에서 카르텔을 구성한다고 하면서 사민당이 집권하고 있는 함부르크 주 의원실의 귀족정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의원휴게실을 보여주었다. 함부르크에서 녹색당 의원들이 오랜 보존 녹지에 항공기 제조사를 건립하는 안에 찬성하는 상황도 설명해 주었다. 그는 시민의 직접 참여를 통한 견제가 없이는 의사결정권의 독점권이 가져오는 폐해를 막기 어렵다는 점을 거듭 설명하고 있다. 사민당이 집권하고 있는 함부르크에서 당초 예산 보다 10배가 넘는 예산을 소요되는 하펜시티 개발의 문제, 올림픽 유치의 문제가 주민들의 공론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올림픽 유치의 정당성에 대해 대대적인 홍보를 한 연후에 주 정부는 요식행위 차원에서 주민투표에 부쳤는데 소요예산을 따져 본 주민들이 올림픽 유치를 부결시켜 주정부 관계자를 놀래게 한 일 도 설명해 주었다. 올림픽 유치 찬반에 대한 주민투표 결과가 발표되기도 전에 언론은 올림픽 유치를 기정사실화 했지만 ‘유치 반대’라는 투표 결과에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올 여름 학생들과 도시재생을 주제로 함부르크를 방문했을 때 맘포드 박사가 들려준 이야기들이다.

직접 민주제적 방식의 의사 결정이 도입되면서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는 소요 예산의 문제, 환경문제에 대한 고려 때문에 정치인과 행정부가 밀어붙이는 큰 대회 유치가 번번이 주민투표에 의해 부결되고 있다고 한다.

9월 26일부터 29일까지 로마에서는 세계 직접민주주의 대회가 열린다. 2008년 스위스 아라우를 시작으로 2009년 서울, 샌프란시스코, 몬테비데오, 튀니스, 상 세바스챤을 거쳐 말 그대로 글로벌 포럼의 면모를 갖추었다. 2000년대 초입에 세계경제 포럼인 다보스 포럼과 세계 사회포럼인 포르토 알레그레 포럼이 같이 출발하였다. 2008년에 세계직접민주주의 포럼이 시작된 지 10년이다. 2018년에서는 오성운동의 결과 당선된 로마시장의 적극적 유치로 500여명이 넘는 전 세계 직접민주주의 활동가가 함께 한다. 광장의 도시 로마에서 전 세계 직접민주주의 활동가들과 함께 광장의 민의를 제도로 수렴하는 방법을 더 많이 고민하고 돌아오고자 한다. 촛불 민의의 역량을 담는 실질적 그릇을 만드는 도공의 심정이다. 직접민주제는 일정 수 이상의 유권자가 요청하면 투표를 통해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이다. 청원과는 차원이 다르다. 결정권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월, 2018/09/24-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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