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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큰 그림 행동주의가 필요하다

지역

[16] 큰 그림 행동주의가 필요하다

admin | 화, 2020/03/10- 00:45

경제를 지역으로 가져오기

때론 세상에 온통 나쁜 소식만 들려오는 것 같다. 기후혼란, 생물멸종, 고용불안, 빈곤, 폭력사태∙∙∙. 이런 소식들은 우리를 답답하고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직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은 대부분 같은 원인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여러 문제를 따로 해결할 필요 없이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다.

나는 저개발국가에서 가장 산업화된 선진국까지, 세계 여러 곳을 관찰하고 연구한 끝에 무엇이 문제인지 확실히 알았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들이 경제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의 우선순위를 혼동하는 바람에 잘못된 순위를 앞세워 다른 대안들을 묵살함으로써 부지불식간에 글로벌 경제를 지지한다. 글로벌 경제는 몹시 비대하고 강해져서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글로벌 경제는 기술-경제 체제로서 인간생활의 모든 것, 심지어 생명까지도 상품으로 만든다. 글로벌 경제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을 분리시키며 번영하고 있다.

그러나 꼭 이런 길로 가야 할 필요는 없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구태의연한 권력기관과는 전혀 다른 풀뿌리 운동이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경제구조를 지역화하여 생태계와 공동체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육대주에서 일어나 힘을 모으고 있다. 이들은 경제가 문화와 생태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생태가 경제를 주도하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풀뿌리 운동은 사람들의 힘과 인내, 선한 의지를 증명하고, 신속하게 확산하여 앞으로의 정치와 경제 지형을 바꿔놓을 것이다.

지역화는 글로벌 경제가 입힌 손상을 만회하는 가장 전략적이고 효과적이며 상식적인 방법이다. 지역경제가 튼튼해지면 개인, 즉 ‘내부’의 변화뿐 아니라 정치 변화, 곧 ‘외부’의 변화까지 일어난다. 지역화는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경제학이다. 빈부 격차를 크게 줄이고, 에너지 사용과 공해를 줄인다. 아울러 지역화는 행복의 경제학이다. 개개인을 공동체, 그리고 자연과 다시 이어주기 때문이다.

지역화는 고립화가 아니다. 사실 정책적으로 세계화에서 지역화로 전환하려면 국제협력이 필요하다. 글로벌 은행과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자유무역조약이 아니라 환경을 보호하는 구속력이 있는 협정을 맺어야 한다. 풀뿌리 운동에서도 시급히 정보를 공유하고, 국가와 사회 안팎의 각계각층과 협력해야 한다. 지역화는 융통성 없이 꽉 막힌 처방이 아니다. 오히려 경제활동을 변화시켜서 지역사회와 인간을 다양하게 만든다. 나는 지역화를 ‘경제를 지역으로 가져오기(bring the economy home)’라고 부르고 있다.

 

큰 그림 행동주의

글로벌에서 로컬로 방향을 바꾸는 지역화를 위해서는 두 가지 사뭇 다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즉 풀뿌리 운동과 정책 변화를 동시에 병행해야 한다. 상향식 풀뿌리 차원에서 로컬의 수많은 기업은 현재 기본수요를 장악하고 있는 소수의 독점기업들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이미 증명해 보였다. 이러한 지역사회기반의 경제구조는 사회와 경제 구조를 재편하여 자연과 인간의 기본욕구를 모두 충족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을 더 확대하려면 하향식 정책변화도 필요하다. 세금혜택과 보조금을 로컬로 돌려야 하고, 무역과 금융을 규제해서 (은행을 포함한) 기업들이 지역에 기반을 두고 사회가 정한 규칙과 법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세계화를 지원하는 공공정책의 방향을 지역화로 바꾸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까닭은 전 세계의 정책결정권자들이 대기업과 은행의 요구를 계속 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운동이 점진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 운동은 발전의 방법(동반경제성장, 무역진흥, 첨단기술, 기업후원 등)이 정확히 일치하는 보수나 진보의 정치인들에게 희망을 걸기 보다는,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시민운동은 서로 연대하여 양분된 좌우를 초월하고, 구태의연한 정치를 넘어서고 있다. 사람들은 무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 현 체제를 조금 손보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근본적인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들의 수가 임계치에 달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근본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의미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변화를 만들어낼 결정적 다수를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 내가 말하는 ‘큰 그림 행동주의(big picture activism)’의 목표다. 시민의 의식을 높이려면 이론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지역화 사업의 감동적인 사례를 날마다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북반구와 남반구에서, 도시와 농촌에서, 사람들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건하자마자 다양한 정신적∙심리적∙실용적 혜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큰 그림 행동주의는 기본 전제에 잘못이 없는지 폭넓게 재검토한다. 신화와 잘못된 정보를 기반으로 한 오늘날의 소비자문화는 모순적인 개념으로 사람들을 혼란스럽고 당황하게 만든다. 한편에서는 저녁뉴스에서 소비자 지출이 감소하면 당장 세상이 멈출 것처럼 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소비자의 탐욕이 세상을 파괴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경제체제를 만든 것은 개인의 탐욕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도 보조금과 법, 세금을 이용해 지구와 개인의 안녕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제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다.

최근까지 글로벌 경제를 해체하는데 필요한 폭넓은 관점은 찬밥 신세였고, 그 분야에는 편협한 시장근본주의자들이 득세했다. 결과적으로 유일한 길은 계속 팽창하는 비인간적인 경제규모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고, 부와 권력은 더 적은 소수에게 집중되었다. 그러나 큰 그림 행동주의는 우리에게 다른 길이 있다고 말해준다.

큰 그림 행동주의가 성공하려면 몇 가지 장벽을 극복해야만 한다. 어떤 문제를 발견하면 곧장 해결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우리는 이미 경제가 문제라는 것도 알고 있고 기업이 너무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안다. 왜 그걸 계속 논의하고 앉아있나?”라고 말한다. 그러나 경제세력이 환경문제와 사회정의문제 이면에 있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은 많아도, 경제가 문화와 개인의 자부심을 허물고, 민족∙인종∙종교 갈등을 높이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무역조약이 기업과 은행에 막대한 힘을 실어준 덕분에 그들은 사실상 세계정부가 되고 좌익이든 우익이든 어떤 정당이 선출되더라도 그 정당을 배후에서 지배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이미 기업의 지배에 반대하는 사람이 글로벌과 로컬을 아우르는 폭넓은 관점을 가지면 문제에 더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로컬의 미래를 위한 정책 제안

(1) 로컬 경제를 위한 대안무역 지침

국가들은 글로벌 무역규제를 계속 완화하거나 철폐하는 대신 함께 힘을 모아 건강한 국가경제와 로컬경제를 우선하는 협약을 체결할 수 있다. 앞으로 무역의 목적은 기업의 이윤과 국내총생산(GDP)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잉여생산물을 시장에 공급하고 국내에서 생산할 수 없는 재화를 획득하는 것이다.

무역규제철폐를 더 이상 관용할 수 없는 개인과 단체들이 이미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유럽에서는 80개가 넘는 단체들이 연대해서 대안무역지침의 초안을 마련했고 총선후보자 193명이 그 지침의 목표를 지지하겠다고 약속했다.

(2) 지역기반의 금융체계 확립

은행과 금융체계를 다시 규제해서 유령자산을 만들지 못하게 제한하고 무질서한 자본의 흐름을 줄여야 한다. 아울러 지역투자부문에서는 지역민이 연금기금과 증권교환을 통해서 지역사회에 투자하는 길이 거의 막혀있는 구시대적인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

은행의 대출관행도 변해야 한다. 상업은행들은 대기업에 비해 상당히 높은 대출이자를 요구하면서 작은 기업들을 차별해왔다. 게다가 대기업 중역들에게는 개인대출보증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소상공인들에게는 요구하기도 한다. 지역사회의 은행과 신용협동조합을 더 많이 지원하고 이용하면 훨씬 더 다양한 중소기업이 번영할 수 있다.

(3) 건전한 경제지표 적용

의사결정권자들은 흔히 국내총생산(GDP)이 성장하면 이를 가리켜 정책이 주효한 증거라고 말한다. 국부의 척도라는 GDP가 끔찍한 혼선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모르는 소리다. GDP는 시장의 활동, 주인을 갈아타는 돈의 총량을 말해줄 뿐이다. GDP는 바람직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비용과 이익을 구별하지 않는다. 암, 범죄, 교통사고, 기름유출에서 나가는 지출이 증가하면 GDP도 덩달아 오른다. GDP에는 돈이 오가는 거래만 고려하고 가족과 공동체, 환경의 기능은 산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돈은 GDP에 들어가는 반면 가족이 집에서 자녀를 돌보는 것은 들어가지 않는다.

이에 사람들은 GDP를 대신할 다양한 대안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실질진보지표(GPI)이다. 기존의 지표에다 경제∙환경∙사회의 중요한 요소를 단일체계에 넣어서 발전과 실패의 정확한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다. 오스트리아, 캐나다, 칠레, 프랑스, 핀란드,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코틀랜드, 영국에서는 이미 GPI를 계산해서 발표하고 있다.

(4) 편파적인 세금체계의 개선

거의 모든 나라가 체계적인 세금규제로 중소기업을 차별한다. 지속 가능한 소규모 생산은 보통 더 노동집약적인데 소득세, 사회복지세, 근로소득세 등 무거운 세금을 노동에 부과한다. 한편 자본집약적, 에너지집약적 기술을 사용하는 대기업 생산자는 세금우대(가속상각, 투자세공제, 세액공제)를 받는다. 편파적인 세금체계를 바꾸면 로컬경제를 살릴 수 있을 뿐 아니라 기계보다 사람을 더 선호하게 되어 일자리도 더 많이 창출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생산에 쓰는 에너지에 세금을 물리면 첨단기술투입에 덜 의존하는 기업, 곧 노동집약적인 소기업이 진흥한다. 게다가 생산과 소비로 일어나는 환경파괴대책을 포함해 화석연료에 세금을 부과하면 실비가 가격에 반영될 테니 운송은 줄고 지역소비를 위한 생산은 늘며 경제는 건강하게 다각화될 것이다.

(5) 재생에너지의 분산작업

현재 재생에너지 기술로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은 화석연료에 비해 5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이러한 불균형을 뒤집으면 오염은 줄어들고 일자리는 늘어나며 장기적인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를 비롯해 어떤 형태의 에너지든 발전소는 분산하는 것이 좋다. 에너지원을 최종 용도에 가까이 두면 전송망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에너지원을 분산하면 지역경제에서 돈이 새는 것을 막을 수 있어 정치권력도 확실히 분권화한다.

완벽한 정책은 없지만 전 세계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분산된 재생에너지의 확산을 촉진하는 새로운 법을 채택하고 있다. 이를테면 세금우대, 보조금, 발전차액지원제도 같은 금융지원, 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 등이 있다. 미국은 주 차원에서 재생에너지를 일정비율 의무적으로 공급하도록 하는 정책인 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가 불씨가 되어 태양광발전소와 풍력발전소가 급격히 늘어났다.

(6) 다품종 유기농 생산지의 확대

대다수 국가는 농업보조금을 대규모 산업농 기업에 몰아준다. 세계무역기구 회원국 사이에서 보조금의 3분의 2는 부유한 거대농가가 받는다. 농업연구자금도 생명공학과 화학∙에너지 집약 단일품종농업에 크게 편중되어 있다.

소규모 다품종 농업을 장려하는 연구를 더 많이 지원하면 농촌경제가 활기를 띨 뿐 아니라 생물이 다양해지고 토양이 건강해지며 식량안보를 이룩할 수 있다. 또한 식단에 균형과 다양성이 생기고 식재료가 더 신선해질 것이다.

(7) 소규모 로컬생산자를 위한 규제 완화

소규모 기업은 대규모 생산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규제하는 법 때문에 부당한 세금을 내야 하는 일이 빈번하다. 예를 들어 공장형 밀집사육방식의 양계장은 분명히 환경과 보건규제를 철저히 받아야 한다. 그러나 닭 여남은 마리를 놓아 기르는 소농 같은 소규모 생산자도 기본적으로 같은 규제를 받기 때문에 치솟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서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일리노이주는 일명 ‘코티지푸드’ 법안을 통해 잼과 피클 같은 여러 보존식품을 소규모로 생산하는 생산자를 위한 규제완화를 고려하고 있다. 비슷한 법안 17개가 미국 전역에 도입되었다.

(8) 토지사용규제의 합리적 개선

지역과 지방의 토지사용규정을 개정하면 야생지와 공지, 농지를 개발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목적으로 설립된 토지신탁에 정치지원과 금융지원을 해야 한다. 지방정부가 공공자금으로 농지개발권을 사서 교외 확장을 막고 농부들의 금융부담을 덜어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 사례도 있다.

(9) 로컬미디어와 로컬엔터테인먼트 지원

지역사회 라디오 방송국부터 라이브 뮤직과 극장 등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공연예술문화시설을 지원하면 세계화한 미디어를 대신할 대안으로 발돋움할 것이다. 춤과 노래, 축제 같은 공동창작 엔터테인먼트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지역사회의 유대감은 한층 더 튼튼해질 것이다.

(10) 로컬에 기반한 교육으로의 전환

학교교육은 장차 현재의 아이들을 고용할 기업의 요구에 맞게 점차 변하고 있다. 기업에 맞춘 교과과정에서 벗어나 지역에 기반한 다양한 형태의 학습으로 전환하면 막대한 혜택을 얻을 것이다. ‘고용 없는 성장’ 경제를 위한 경쟁적이고 전문화를 장려하는 교육이 아니라 다양한 환경과 문화, 지역화한 경제에 맞게 변할 것이다. 지역에 맞는 농업과 건축, 적합한 기술교육을 제공하면 기본수요를 충족시키는 생산분권화가 더욱 진전할 수 있다.

 

세계 지역사회의 다양한 풀뿌리 활동

(1) 로컬금융

공동체은행과 신용협동조합은 주민들이 멀리 있는 기업이 아니라 마을과 지역사회에 투자할 수 있는 금융기관이다. 이 두 곳에서는 창업자금을 대기업에만 대출해주는 시중은행과 달리 소기업에도 낮은 금리로 대출해준다.

지역투자는 앞으로 새로운 트렌드를 이룰 것이다. 슬로머니(로컬 식량체계에 대한 자본투자를 돕는 비영리단체)의 여러 지부에서는 이미 많은 투자를 소농과 식품기업에 유치했다. 지역증권거래, 소액투자편드, 협동조합투자편드, 지역에서 투자하는 연금펀드 같은 여러 구상도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지역화폐를 만들어 사용하면 돈을 지역경제 안에 붙잡아둘 수 있다. 마찬가지로 타임뱅크(비시장영역에서 봉사활동을 시간가치로 환산하여 기록, 저장, 교환하여 공동체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운동으로, 시간의 가치교환을 위해 가상화폐를 발행하기도 한다)와 지역통화운동(Local Exchange Trading System)은 사실 대규모 지역사회 물물교환체계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제공할 수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희망금액을 게시한다. 따라서 돈이 부족하거나 실물화폐가 없는 사람들도 지역경제 안에서 돈을 흐르게 할 수 있고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2) 바이 로컬, 로컬기업

바이 로컬(Buy Local)운동은 막대한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로컬기업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 운동은 지역경제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뿐 아니라 먼 곳에서 제조해서 인위적으로 가격을 낮춘 상품에는 환경과 지역사회가 지불할 비용이 숨어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교육효과도 있다.

지역의 중소기업들이 연대해서 연합체를 만들면 서로 지원하고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북미의 자영업자 약 3만개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80개 이상의 네트워크를 갖춘 지역생활경제기업연합(BALLE)을 조직했다.

(3) 로컬에너지

전 세계에는 지역사회가 소유하는 분산형 에너지시설에 투자한 도시가 많다. 예를 들어 콜로라도주 포트콜린스에서는 600킬로와트 ‘태양광 정원’ 설립을 계획하고 있고, 인도 비하르주 다니이마을에서는 350가구에 전기를 공급할 태양광 에너지 ‘마이크로 그리드’를 설치하고 있다. 이러한 소규모 사업들은 무공해 재생에너지원을 이용한다는 것 이상의 이점이 있다. 첫째, 현지에서 전력을 생산하기 때문에 송전인프라를 확충할 필요가 없다. 둘째, 주민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전력회사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에너지 비용을 관리한다. 셋째, 지역투자자들은 남는 전기로 수익을 얻는다.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시민들이 다른 지역 투자자 소유 전력회사(IOU)에 넘어간 에너지체계의 소유권과 운영권을 되찾으려고 지방정부를 설득하고 있다.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완전히 다시 공영소유로 만들거나 시와 군이 IOU 외에 지역에서 새로운 전력공급자를 지정할 수 있는 지역사회 선정권(Community Choice)이라는 정책을 채택하면 된다.

(4) 로컬푸드

로컬푸드 운동은 전 세계에서 매우 큰 성공을 거둔 풀뿌리 활동이다. 소비자와 근거리에 있는 농부를 직접 연결하는 공동체지원농업(CSA) 덕분에 규모가 작은 다품종 농장들이 번창하고 점점 더 늘어났다. 소비자들은 대개 자신이 먹을 식재료가 자라는 농장을 직접 알고 있고, 농장에서는 일손이 부족하면 소비자들의 도움을 반긴다. 소농들은 믿을 수 있는 안정된 시장을 확보할 수 있고, 소비자들은 슈퍼마켓보다 더 신선하고 건강한 식재료를 구입할 수 있다. 미국은 1986년에 단 두 개였던 CSA의 수가 2014년에는 6200개 이상으로 급증했다.

농부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농부직거래장터 역시 지역경제와 환경에 이롭다. 미국의 농부 직거래 장터의 수는 1994년 1755개에서 2014년 8268개 이상으로 증가했다. 직거래장터와 관련해 로컬 유기농 먹거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유기농 농지면적이 2001년부터 두 배로 증가했다.

지난 50년동안 북반구와 남반구에서는 청년들이 농촌을 떠나는 추세여서 도시화가 빠르게 이어졌고 농촌사회도 사라졌다. 오늘날 여러 청년농부는 그러한 트렌드를 뒤집고 있다. 미국에서 결성된 전국청년농업인연합(NYFC)은 600명이 넘는 회원이 가입했다. 전 세계 73개국 2억 농민이 연대한 비아캄페시나에는 청년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회원단체가 있다.

(5) 로컬미디어

지역사회의 대중매체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목소리를 낼 기회를 주고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안을 알려준다. 아울러 시민들의 힘을 모아서 지역사회문제를 해결하고 결속을 다지고 지역문화를 유지하는 역할도 한다.

‘망 중립성’이 공격을 받아 위협에 처하자 통신망 접근을 자유롭고 평등하게 유지하려는 여러 단체가 힘을 합쳐서 싸우고 있다. 최근 ‘지역사회가소유한브로드밴드’ 운동이 일어나 지역사회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제하는 힘을 기르고 있다. 2015년 현재 미국 전역에서 500개가 넘는 지자체들은 자체 브로드밴드 망을 구축하고 더 많은 주민이 믿고 쓸 수 있는 빠른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여 지역경제를 살린다.

(6) 대안교육

자연결핍장애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자 야생지나 농지를 교육장소로 활용하는 학교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다. 예를 들어 숲속 학교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종일 야외에서 지내면서 현지에서 자라는 식물과 버섯 종류에 정통한 전문가가 된다. 청소년과 성인에게 야생에서 자립할 수 있는 지식을 가르치는 학교들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는데 미국 버몬트주에 있는, 전통기술을 익혀서 뿌리를 되찾겠다는 뜻의 루츠(ROOTS) 학교도 그러한 곳이다.

(7) 로컬기반의 보건의료

몇 해 사이에 전통대체의학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일반의사들조차 약초치료법, 동종요법, 바디워크요법, 이완요법에 관심을 가질 정도다. 이같이 차분하게 예방을 강조하는 의술은 더 인간적인 보건의료체계로 돌아가는 길이다. 지역에 기반한 보건의료체계는 인간의 전인(全人)을 강조하며 생명을 더 넓게 바라본다.

(8) 로컬 계획공동체의 건설

규모가 몇몇 가구에서 수백 가구에 이르는 생태마을은 매우 인기가 높고 성공적이고 다양한 계획공동체의 하나다.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연합체로서 ‘글로벌 에코빌리지 네트워크’를 통해서 연결된 생태마을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에 걸쳐 수백 곳에 이른다.

전환마을은 탄소집약적인 글로벌 경제에서 전환을 선택한 소도시와 대도시의 공동체 모임으로, 북미와 유럽에서 인기가 높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모여서 식량, 에너지, 상업, 예술, 교통, 보건 등 로컬 경제의 여러 부문별 사업을 계획한다.

 

갈림길에서

우리는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수십 년 동안 경제성장을 강조하는 길을 걸어왔지만 이제 다른 길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현재의 글로벌 경제체제는 더 이상 대다수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인식하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다. 이 체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진정한 지속 가능성을 실현하려면 지금까지와는 반대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거주형태, 에너지원, 식량생산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분산을 시켜서 사람과 자연의 밀접한 관계를 재건해야 한다.

이 새로운 경제의 중요한 요소는 규모이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자립경제에 기초한 경제적 지역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지역중심의 경제에서는 사람과 환경을 소중하게 여기고, 금융구조와 상업활동이 지역과 문화에 맞춰 변화할 것이며 문화와 생물, 농업 등 모든 면에서 다양성을 존중할 것이다. 진정한 지역화가 이루어진다면 의미 있는 일자리들이 많이 생기고, 튼튼하고 탄력 있는 지역사회의 토대도 구축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의 소속감과 목적의식, 결속력이 높아지면서 마음 충만한 행복을 누릴 것이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로컬퓨처스 대표, 『오래된 미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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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는 전염(복사)을 확산시키려고 하고, 우리는 이를 중지시켜야만 한다. 바이러스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인간은 선택할 수 있다. 이번 팬데믹은 금세기 최초의 대규모 전염병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지만, 극복되는 과정에서 세계를 새롭게 변화시킬 것이다. 1918년 전쟁 통에 발생했던 ‘스페인독감’과는 달리 이번 사태는 세계가 평화롭게 번영을 구가하는 와중에 발생하였다. 우리는 이를 반드시 제대로 극복해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극적으로 악화되는 상황을 각오해야 한다.

올바른 선택을 하려면 다양한 해결 방안들을 검토하고 이들이 지닌 도덕적인 암시를 함께 이해해야 한다. 주요한 선택의 문제는 각국이 직면한 국내의 현안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서는 국가 간의 협력에 관한 것이다.

부유한 국가들에게 있어 가장 일차적인 선택은 매우 공세적으로 바이러스의 감염을 중단시키는 일이다 동시에 이에 발생하는 비용을 누가 얼마나 부담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어떤 의견은 바이러스 감염을 차단하려고 경제를 깊은 불황에 빠뜨리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불필요한 혼란(disruption)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바이러스가 전염되도록 방치해도 스스로 집단적 면역(herd immunity)이 형성될 수 있으며, 취역한 계층에만 방역을 집중하면서 경제활동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공세적인 방역 대신자유방임적 완화를 기대하는 것으로 과연 경제가 문제없이 잘 돌아갈지는 결과를 알 수 없는 위험한 선택이다. 정부가 강제하기 전부터 이미 시민들은 알아서 여행을 중단하고 외식과 영화관람, 쇼핑을 꺼려하였다.

전염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신규확진자’들을 추적하여 관리하는 것이 방치하는 것보다 오히려 경제적 불황을 조기에 종결하는 선택으로 판단된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적극적인 방역조치를 해야 국제적인 공공의료체계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영국왕립대학의 COVID-19 대응팀의 보고서에 따르면, 방역을 포기하면 영국과 미국 전역에 전염될 것이고 노인층의 상당수가 의료조치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될 것이라고 한다. 중국 후베이 지역의 경험에서 보았듯이 강력한 봉쇄가 이러한 불행을 막는 길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중국에서조차 수용할 수 없는 의료재난(방치에 따른)을 선진국인 영국과 미국이 허용해야 한단 말인가? 다만 상기의 견해가 부분적으로 옳은 것은 주요 경제활동을 장기간 중단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일단 강력한 방역조치를 선택하면, 빠른 시일 내에 성공적으로 시행되어야 하며, 재감염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어해야만 한다.

강력한 방역조치가 시행되는 동안, 정부와 금융기관들은 경제활동이 지속되고 생산적 역량이 위축되지 않고 시민들, 특히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실제적으로 가능한 모든 조처들을 취해야 한다.

국내의 현안 못지않게 국경을 넘어선 연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제 막 시작된 금융의 불안정과 불경기(아마도 불황)은 개발국가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할 것이다. IMF는 3월23일 현재 830억불 규모의 국제자본이 개발국가들에게서 이탈했다고 발표했다. 대부분 수출에 의존하는 개발국가들에게 상품가격의 폭락현상도 매우 심각한 것이다.

이들 국가군은 국내에 번지는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급격히 위축되는 국내수요와 싸워야만 하지만, 이러한 외부적 압력을 감당해낼 역량이 매우 제한되어 있어, 경제적 사회적으로 심각한 재앙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IMF는 80여 국가들로부터 긴급구제금융 요청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부유한 국가들이 전염병을 차단하고 경제를 되살려내면 취약한 국가들도 혜택을 받게 될 것이지만, 단기적인 측면에서는 사정이 매우 급하다. 개발국가들은 즉각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이러한 선순환적인 지원은 모든 국가들의 경제회복에 도움이 된다. 바이러스와 동시에 지구적 규모의 불경기는 모두에게 닥친(공유된) 도전이다 보편적 지원이라는 연대가 필요하고 정당한 실제적인 이유이다.

유럽연합의 경우에도 같은 이야기가 적용된다. 현재의 연합을 규정하는 핵심은 지역집단적 대의를 위하여 개별국가 단위로 이루어지는 재정회계와 주권적 통화를 포기한 것이다. 지난 금융위기 시절에 적지 않은 국가들의 실책이 있었고 당시에는 각자의 실책에 대한 윤리적 비판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 팬데믹의 경우에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이를 대응하는 과정에 함께 연대하지 못하면, 실책이 있을 경우, 양해와 용서가 있을 수 없다. 이로 인한 상처는 깊고 치명적일 수 있다. 누구의 실책도 아닌 위기에 직면하여 함께 연대하여 대처하지 못하면 유럽연합이라는 거대한 기획은 윤리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사망선고를 받게 될 것이다. 국경을 넘어서는 연대와 지원은 단순히 재정적인 것에 국한되어서도 아니 되며, 의료적 지원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의료의 공급체계를 파괴할 수 있는 수출제한 조치가 시행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행히 이번 유행하는 전염병은 우리의 선조들이 겪은 치명적인 질병에 비하면 치사율이 매우 낮지만, 다른 한편 현존하는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실제적 위기이다. 따라서 종합적인 정보에 근거하여 결정을 내려야 하는 현실적 도전이며, 동시에 인류의 윤리적 수준에 대한 도전이다.

우리는 현실과 윤리라는 두 측면을 모두 살펴가면서 판단을 내려야만 한다.

지도자들이 평정을 유지하며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경제적 타격을 최소화하면서 유행병을 퇴치할 수 있을까? 가장 취약한 계층과 가난한 국가들을 우선적으로 보호한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갈등과 대립을 넘어선 연대 그리고 폐쇄적인 자국이기주의를 대신하는 지구적 연대를 선택할 수 있을까? 팬데믹이 지난 이후 열악해진 세상 대신 개선된 세상을 다음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을까?

이에 대하여 바이러스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인류인 우리는 가지고 있다, 현명한 것으로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을!

 

2020-03-24

마틴 울프

파이낸스타임지 수석해설가

목, 2020/04/09-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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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3월 30일)에도, 매서운 기세로 확산 일로를 치닫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그 공포와 고난과 고통에 더하여, 우리가 하나의 지구촌에 살고 있는 생명공동체임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거의 세계 모든 나라에서 국경폐쇄나 이동금지조치가 내려지고 있지만 그것은 이번 사태의 악화를 막기 위해 취해지는 일시적인 조치로서, 폐쇄나 단절이 그 장면의 주제가 아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하나로 통해 있음’을, 그리고 인간이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사례이다.

이번 사태로 사망하신 분들이나 그 유족의 슬픔은 말할 것도 없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살신성인하는 의료진, 그리고 확산 방지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분들과 헌신하는 봉사자들, 이에 호응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하나하나가 거룩하고 아름답고, 슬프다. 슬픔과 고통의 바로 그 자리에서 감동과 의지가 더 화려하게 피어나는 것을 볼 때, 각성과 참회, 감사와 희망이 교차한다. 각국에서 취해지는 조치들은, 인류 역사에서 ‘마지막 세계대전’이던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임에 분명한 극단적인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바야흐로 1백 년 만에 맞이하는 세계적인 대전(大戰) – 3차 세계대전의 상대가 ‘적국(敵國) 인민(人民)’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라는 사실은 한편으로 공포감을 주지만 한편으로 (박멸의 대상이 ‘人間’이 아니라는 점에서)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1차, 2차 대전과 마찬가지로 이번 세계대전도 근대 세계의 폐해(인간의 삶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바이러스의 침투 경로가 확장된 것)로 인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제3차 세계대전’은 근대 세계의 종말을 재확인하고, 기대컨대는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다시 개벽 시대’를 재조명하는 등불이 될 것이라고 전망해 본다.

앞서 말한 안도감은 근원적으로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 인류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통의 고난 경험’을 공유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나의 種으로서의) ‘인류’에 다시 한 걸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는 데서 온다. 그것은 인류[人間]를 지금 당장, 지구상에서 현재보다 더 높은 위치로 올려놓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인류가 지구상의 생명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즉 N분의 1로서 자리매김하여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 스스로의 생명력을 고양하는 길이고, 가장 ‘자연스러우며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태도이며, 또한 가장 지속가능하고 행복 지향에 적합한 현실-존재 인식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지난 20세기 내내 끊임없이 경계의 대상이 되어 왔던 인간중심주의(human-centralism), 시나브로 그 입지가 좁아져 왔으나 여전히 현실적으로 위력을 떨치고 있는 그 파멸적 근대 문명의 기저에, 분명한 구멍=문(門)을 만드는 일이다. 이 문을 통해 우리 인류와 지구생명공동체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을 일러 ‘다시 개벽 시대’로의 진전이라고 하면, 적확할 것이다. 이 개벽에 즈음해서야 비로소 우리는 ‘인류’가 된 것이다.

기회는 늘 위기와 함께, 낙관적인 상황은 언제나 비관적인 상황과 함께 온다. ‘인류공동체, 지구공동체, 생명공동체’를 존재/인식이 거의 일치하게 경험/인식하는 ‘다시 개벽 시대’의 도래와 함께, 우리는 이제 인간이 치명적인 멸종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되었으며, 사방이 생명에 위협적인 지뢰투성이인 지역/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실감하게 되었으며, 전 지구적 차원에서 그리고 전 인류의 지평에서 공통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목격하고 경험하고 공감할 수 있는 물질적, 정신적, 소통적(疏通的) 토대가 구축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인류) 집 문 앞에 배달된 택배(과제)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되겠지만(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만), 그 종식을 알리는 ‘카톡 알림’은 그다음 택배(‘코로나20’일지, ‘코로나v.2’일지 모르지만)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초인종을 소리에 불과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 세계의 수많은 전문가들이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인류는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위험 요소에 더욱 빈번하게 노출될 것이며, 그 위험의 강도도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다시 말해 코로나19로 인한 지금의 사태는 빙산의 일각으로, 그 아래에는 훨씬 더 크고 무거운(무서운) 위험 요소들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대기 중이라는 것이다.

답은 언제나 문제 속에 있기 마련이다. 코로나19의 대량 감염국 중국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중국보다도 빠른 속도로 확진자가 늘어나던 2월 초순경만 해도 세계인의 의심스런 눈초리가 한반도로 쏟아졌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국민들은 끊이지 않는 돌발변수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침착하고 의연하게 사태를 수습해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은 역전되었다. 이제 전 세계 각국에서 한국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한국을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 지구촌을 감싸고돈다. 이번 사태 직전에 있었던 BTS(방탄소년단)의 K-POP 세계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에 이어서, 현재의 상황은 대한민국의 현 위치가 우연적이고 일회적인 것이 아님을 확인하게 하는 또 하나의 쾌거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자화자찬으로 치달아서도 안 되고, ‘국뽕’으로 흘러서도 안 된다. 분명한 것은 이것은 우리끼리 알고, 우리끼리 (이 성공적인 대응의 혜택을) 누리고 말 사태는 아니라는 점이다. 작더라도 실질적이고 실제적이며 실용적인 의미를 발굴하고, 발견하고, 발전시켜 인류 전체에 베풀어 나가야 한다(弘益人間 在世理化). 필자가 보기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에게 이번 사태는 ‘세월호 이후’와 ‘촛불 혁명 이후’의 일로써 다가왔다. 재난이 일어나는 방식(‘세월호’ ‘메르스’)을 잊지 않고, 평화 시에 전쟁을 준비하는 그 자세로 방역 시스템과 의료체계를 정비해 왔으며(의료체계-의료보험제도 등-의 대부분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갖추어진 것이지만, 대한민국의 메이저 의료기관은 메르스 이후 유사한 사태에 대비한 훈련을 주기적으로 진행해 왔다), 또 그것을 극복하는 한국인 특유의 방법론(‘촛불혁명’의 그 위대한 참여정신)이 결합되어서 이번 코로나19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시민)의 반응과 대응은 전 세계 국가에게 모범이 되고 온 인류에게 희망이 될 여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는 우리가 세월호와 아이들을 잊지 않은 덕분[性靈出世]이며, 메르스의 비극을 외면하지 않은 덕분[臥薪嘗膽]이다. 무엇보다 문제에 정면으로, 정직하게, 정성껏 대응하는 것이 그 문제 해결의 정 도(正道)라는 것을 생생히 보여준 점이, 이번 사태 진전에서 대한민국의 첫 번째 인류사적인 기여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이번 사태로 인하여 목숨을 잃은 분들, 고통과 고난을 겪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후폭풍 (특히 경제나 생활-학생들의 학사일정 등)’ 등을 생각할 때, 이번 사태는 지난 세월호나 메르스(에볼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전면적인 전환의 숙제를 우리에게 지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국내나 동아시아 일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전 인류에 걸쳐 전면적으로 전개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개벽신문>을 통해 여러 차례 밝혔듯이 ‘촛불혁명’은 120여 년 전의 ‘동학농민혁명’의 경험으로부터 이어져 온 면면한 이력을 갖는다. 동학농민혁명은 ‘서세동점’의 정점과 ‘동학의 다시개벽’의 전망이 부딪친 사건이며, 그런 점에서 ‘근대세계’와 ‘근대 이후 세계’, 즉 다시개벽 시대의 전초전에 해당하는 사건이었다. 이번 코르나19는 바로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 인류가 도달한 근대세계, 그 대서사의 한 단락이 매듭지어진다는/지어져야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데에 첫 번째 의미가 있다. 이번 사태에 즈음하여 서구 소위 ‘선진국’ 또는 ‘서구사회’가 보여준, ‘결과적으로’ 지리멸렬함과 그로 인한 시민들의 피해는 단지 국가 지도자의 입장 차이나 국가 시스템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선진문명’이 놓여 있는 자리, 딛고 있는 토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본다. 한국 정부와 국민(시민)에 주어진 숙제는 이 위기를 ‘아국운수(我國運數) 먼저 하여’ 극복할 뿐만 아니라, ‘포스트 코로나’의 세계체제를 어떻게 재구축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과 예시, 그리고 비전을 제시해 주는 데까지 닿아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바로 ‘다시개벽’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속히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고,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또 돌아가서 도 안 된다. 문자 그대로 ‘널뛰듯’ 폭락과 폭등을 되풀이하는 증시 상황은 이번 사태에 즈음한 경제의 팬데믹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오늘 현재(3월 말) 시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3,000조원이라는 거액의 예산을, 이번 사태로 인해 ‘위기’에 빠진 경제가 더 깊은 수령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아 내기 위해 책정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것도 ‘우선’ 그 정도이고, 여차 하면 후속 투입도 마다하지 않을 기세이다. 어느 누구랄 것 없이, 어떤 부문이랄 것 없이 부도와 파산의 위기에 내몰리는 기업, 자영업자와 그에 딸린 수십, 수백만의 경제 인구를 생각할 때, 아니 사실은 전 세계 모든 인류의 삶(생활, 경제)에 영향을 끼칠 이번 사태의 후폭풍을 생각할 때 경제 붕괴가 일어나는 일을 상상할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인 것처럼 보기는 한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 보면, 이번 사태 수습의 목표점이 사태 발생 이전, 물질적 풍요 문화적 만끽이 난무하던 그 상황, 이른바 ‘일상으로 돌아가기’, 경제적으로 발전을 거듭하던 그 시절로의 복귀하는 것이어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멈춤!’의 첫 번째 경고판을 지나친 후과가 이 정도이다. 두 번째 경고판이 있을지, 곧장 절벽이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제라도/이제야말로 근대세계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근대문명, 현대문명, 물질문명의 질주를 멈추고 진로를 수정하는 일이다. 백척간두진일보란 바로 지금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벼랑 끝, 벼랑과 벼랑 사이, 그 너머에는 ‘다시개벽’의 새 시대가 놓여 있다. 과거로의 회귀, 예전 일상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새로운 인간-하늘 관계, 새로운 인간-인간 관계, 새로운 인간-만물 관계를 경천(敬天)과 경인(敬人)과 경물(敬物) 같은 개벽적 관점에서 모색하고 실천하는 것만이, 이번 사태에 즈음하여 우리가 치른 고통과 희생에 값하는 길이다.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대한국민(시민)’의 지혜로운, 은혜로운, 감동적인 일거수일투족 – 전 세계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일동일정(一動一靜)에 이미 그 씨앗이 싹트고 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자가 격리, 사회적 거리 두기, 통행금지, 여행금지, 국경폐쇄, 도시봉쇄 들은 ‘잠시 멈추어 보자’는, ‘참회의 자리/시간을 만들자’는, 보이지 않는 그 속에서 보이는 것을 찾고, 들리지 않는 그 가운데서 들리는 소리를 들어보자는, 홀로가 됨으로써 다시 동귀일체(同歸一體)를 생생(生生)하게 생득(生得)하는, 전일적(全一的) 생명으로서의 인류 양심(養心)-하늘[天]의, 거룩한 개벽의 소리이다. 하나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 ‘다시개벽의 그 시대’가 열리고 있다.

 

박길수

월간 ‘개벽신문’의 주간,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대표

금, 2020/04/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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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을 삼켜버린 코로나19는 앞으로 제법 긴 시간 많은 이들의 기억에서 잊히지 않을 바이러스가 될 것이다. 각자의 경험과 기억의 방식으로 지금의 위기를 느긋하게 회자하기에는 상처들이 깊다. 중국을 시작으로 현재는 유럽을 휩쓸고 있고, 이제는 미국을 필두로 전 아메리카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단시간 감염자와 사망자 수가 마치 기록경신 경쟁이라도 하듯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우리 모두에게 가져올 파장이 얼마만큼일지는 아직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이 질병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글로벌 위기인 것은 분명하다. “세계는 하나”라며 ‘공동’의 번영을 외치며 달려온 21세기가 아니던가. 그럴듯하게 들리는 공허한 번영의 외침에 묻혀버린 10억 빈민들의 목소리는 온 간데없다. 전 세계 부는 2000년 117조 달러에서 2014년 262조 달러로 증가했지만, 부유한 상위 20%가 부의 94.5%를 차지했다. 이 사실이 더는 놀랍지도 않은 현실이다. 가히 21세기 신자유주의가 선사한 ‘걸작품’이 아닐 수 없다.

세계의 질서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특히 20세기 후반 유일한 ‘슈퍼파워’로 등극한 미국의 독무대에 열광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단연 자본주의 국가들의 지배계급이다. 이들은 시장의 논리가 항상 옳지 않다는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믿음을 지지해주는 단단한 근거나 사실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세계적으로 부가 넘쳐 나는 21세기에 10억의 빈민들을 양산하는 시장이라면 무엇이 문제인지 질문이 먼저여야 하지 않는가. 적어도 경제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것이라면 말이다.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는 빈곤과 불평등이라는 고질적인 악순환의 고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지역의 맹목적인 시장주의자들은 대부분 극우파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자본주의 만세’를 무조건 외치는 자들일 확률이 100%이다. 이른바 라틴아메리카 매판자본의 뿌리이다. 미국 지배계급의 이익은 이들과의 계급적 공조로 보장되었고, 이들이 헐벗은 민중들의 저항을 받는 ‘어려움’에 처하면 미국은 주저 없이 군대를 파견해서 이들을 도왔다. 이들의 공생관계가 라틴아메리카 근현대사 비극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21세기 벽두에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반미·반제를 외치며 등장했으니 북쪽 ‘이웃’ 국가의 반응이 어떠했을지는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다. 심지어 21세기 사회주의라니! 1959년 쿠바의 ‘악몽’을 떠올렸을까. 이후 라틴아메리카 역내의 브라질, 에콰도르,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등 소위 미국을 ‘찬양’하지 않는 정부들이 속속 들어서며 역내 정치지형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적지 않은 성과이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역내 정치의 롤러코스터 같은 과정에서 극우 정치화되지 않은 국가는 베네수엘라뿐이다. 물론 그 대가는 혹독하다. 반정부 정치인을 임시 대통령으로 지목하는 우스꽝스러운 ‘희극’ 정도 연출하는 것은 이제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5년간 계속되는 경제봉쇄와 전 세계 15개국 국가들의 은행에 있는 50억 달러(한화 6조 원)를 동결하며 모든 금융거래를 차단하고, 베네수엘라 경제를 마비시키기 위한 모든 수단이 동원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라틴아메리카 좌파정부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전 인류가 국적이나 인종에 상관없이 세계화 이후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미국의 볼썽사나운 행보는 점입가경이다. 지난 26일 코로나19의 여파로 미국 국민의 안전도 위태로운 지경에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과 그 행정부 각료들에게 마약 불법밀매 혐의를 물어 체포 명령을 내렸다. 심지어 마두로 대통령에 대해 천오백만 달러(약 170억원)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마두로와 그 행정부 각료들이 마약 불법밀매를 이용해서 미국에 마약이 넘쳐 나도록 조장했다는 혐의다. 물론 조잡한 증거들만 넘쳐 날 뿐이다. 혐의를 증명할 수 있는 명백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론 베네수엘라를 향한 미국의 병적인 집착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코로나19사태를 대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미국은 고전적 카드인 “마약 불법밀매”를 꺼내 들었다. 1989년 미국의 파나마 침공 당시 노리에가 대통령을 납치하기 위해 사용했던 시나리오와 판박이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에는 당시 파나마 침공을 기획한 인물들이 포진해 있다는 것은 우연일까.

베네수엘라는 코로나19 진단 장비조차 구매하는 것을 방해하는 미국을 강력히 비난하며, 경제제재의 부당함과 위법성을 강력히 규탄하는 것으로 맞섰을 뿐이다. 국제사회가 침묵하고 있는데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처절한 몸부림이다. 미국을 상대로 끝나지 않는 전쟁을 치르는 것과도 같다.

그러는 사이, 미국에서는 지난 29일 의료보험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에서 치료를 거부한 17살의 소년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보스턴 병원에서 코로나19 치료를 받은 미국의 한 시민은 한화 4천만 원에 해당하는 병원비를 지급해야 한다며 경악했다. 비록 개인 의료보험을 가진 경우라도 치료비가 수백만 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는 예사롭지 않다.

미국의 경우 약 4천만 명이 의료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인구로 추산되고 있다. 8천만 명은 불완전한 개인 의료보험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미국 인구의 절반 약 1억 6천만 명만이 그나마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민간보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인구 절반에 해당하는 1억이 넘는 미국의 국민은 코로나19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기층민중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남미 대륙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강력한 경제 파워블럭 중의 하나인 브라질의 상황은 조금 다를까. 현재 남미의 가장 극우적인 성향을 보이는 볼소나로 대통령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국 영토 내 미군 주둔을 ‘파격적’으로 제안하는 것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현재 코로나19 사태를 다루는 그의 행보는 한층 더 엽기적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단지 가벼운 ‘감기’에 불과할 뿐이며, 브라질 사람들에게는 이미 면역체계가 만들어져 있으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유지해야 한다고 독려하고 있다. 최근 이를 더는 참지 못한 연방 주지사들이 자체적으로 대안 방안을 마련하자, 오히려 볼소나로 대통령은 이를 보이콧 하도록 대국민 선전을 위해 거액의 돈을 쏟아붓는 것으로 응수했다. 코로나19가 브라질 경제에 악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신념이다. 그의 행보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연상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들에게 진정 경제적 가치에 우선하는 것은 없는 것일까.

얼마 전 G20 화상 정상회담이 열렸다. 코로나19로 발생한 전례 없는 위기를 각 국가의 공조와 연대를 통해 극복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과는 딴판으로 이참에 눈엣가시였던 베네수엘라를 제거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베네수엘라 민중들은 우려와 분노를 감추지 않는다.

카라카스에서 살며 문화 운동을 하는 간호사 알레한드라는 말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봉쇄에 따른 약품 부족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미국의 지치지 않는 내정간섭과 군사 개입의 움직임”이라고.

금, 2020/04/10-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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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3월 23일 현재 16개 주, 9개 현(county), 3개 도시의 1억 5천 8백만 명의 미국인이 이른바 자택격리 명령(shelter-in-place order)이 내려졌다. 이것은 긴급한 상황 이외의 모든 출입을 금지하며 집에만 머물러 있으라는 일종의 이동제한 명령(stay-at-home order)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대번에 다음 질문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집이 없는 사람들은 어찌하나? 이번 회에선 신종코로나 발 세계 경제의 대침체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미국에서 이들 취약계층이 어떠한 곤경 속에 처해있는지를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아울러 이런 서민들의 고통과는 아랑곳없이, 악재조차 호재로 혹은 호기로 삼아 승승장구하는 제국들에 대해 짚어보기로 한다.

 

억만장자들에게 신종코로나는 남의 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온 버니 샌더스는 “억만장자들에게 코로나 창궐, 이런 것은 그저 남의 일이다. 결국 코로나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서민들이다”라고 조 바이든과의 경선 토론장에서 이야기했다.(“Bernie Sanders: ‘If you’re a multimillionaire … you’re going to get through’ the coronavirus pandemic,” CNBC, March 16, 2020). 가장 비싼 의료보험 있고,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진 대부호들이야 설사 신종코로나가 걸린다 한들 그게 문제나 되겠느냐면서. 문제는 국민 중 겨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이 태반인데 이런 이들에게 코로나는 정말로 재앙이라고 이야기했다. 여기서 샌더스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것은 바로 미국의 극심한 불평등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의 코로나의 창궐이 곧 서민들 삶 자체의 궤멸을 의미함을 지적하고 있다.

이동제한 명령이 내려진 캘리포니아 지역 사정을 알리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 1면 가판대 사진 <출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자택격리 명령의 허구 : 그럼 집 없는 사람은?

코로나 창궐에 대비하기 위해 가장 취약한 계층인 노숙자에게 내려진 명령은 “텐트서 꼼작 마!”이다. 여태껏 쏟아져 나오는 노숙자 퇴치를 위해 보통 낮에는 경찰과 노숙자들이 쫓고 쫓는 상황이 연출됐었다. 그러나 코로나 창궐이 염려되자 대부분의 지역에서 내려진 조치는 “노숙자는 텐트에서 머물라”이다.(“To combat virus, L.A. will let homeless encampments stay up throughout the day,” Los Angeles Times, March 17, 2020). 얼마나 웃기는가? 텐트가 자택인가? 언제는 텐트는 집이 아니라며 죽어라 쫓아내려 하더니만 이제는 텐트가 집이니 그냥 가만히 죽치고 거기만 있으란다. 이게 무슨 대책인가? 가뜩이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존해야 하는 노숙자들이 코로나로부터 가장 먼저 보호받아야 할 대상임을 인식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들이 감염원의 인자로 간주해 텐트서 처박혀 나오지 말라 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방기(放棄)를 넘어 인권침해다. 게다가 자택격리 명령으로 주요 다중시설 이를테면 공공도서관, 빌딩 등이 폐쇄되었다. 그나마 그곳은 노숙자들이 손과 얼굴을 씻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그런 곳들마저 폐쇄된 마당에 이들이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이것뿐이리라. “(코로나?) 걸리면 죽는 거지 뭐.(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If I get it, I die’: homeless residents say inhumane shelter conditions will spread coronavirus,” The Guardian, March 19, 2020. ; “For the homeless, coronavirus is a new menace in a perilous life,” Washington Post, March 21, 2020). 현재 미국엔 약 50만 명의 노숙자들이 있으며, 그들 중 약 65%가 노숙자 대피소에서 밤이슬을 피하고 있으나 약 20만 명의 나머지 노숙자들은 길거리에서 비유가 아닌 문자 그대로 풍찬노숙을 하고 있다.(“‘Wash your hands’ is tough advice for Americans without soap or water,” The Guardian, March 23, 2020).

샌프란시스코 노숙자에게 꽃을 건네는 시민 <출처: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종코로나 염려는 차라리 호사

그렇다. 이런 그들에겐 건강염려는 호사(豪奢)일 런지도 모른다. 정녕 그들에겐 그것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놓여 있으니 말이다. 당장 먹고 살 문제. 그것에 비하면 잠복기가 2주나 걸리는 코로나 같은 것은 그들에겐 문제 축에도 들지 않으니까. 목구멍이 포도청인 까닭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노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서민들도 지금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왜냐면 코로나로 일들이 끊겨서.

현재 미국의 학교도 우리처럼 폐쇄했다. 그러나 학교가 아니면 삶을 이어나가기 힘든 이들이 있어 점심시간에만 잠시 여는 학교가 미국에 많다. 아이들의 돌봄이 필요해서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뉴욕타임스는 텍사스주 브렌햄(Brenham)의 6명의 자녀를 둔 부부 이야기를 소개했다. 엄마는 33세의 상이용사, 남편은 목수. 그러나 코로나 창궐로 남편의 일거리는 없어지고 6명의 자녀를 도저히 먹일 방법이 없어 한 끼의 식사는 무료급식으로 때운다. 학교는 코로나로 폐쇄됐으나 무료급식이 필요한 아동들이 많아 점심 무료급식을 학교 운동장에서 드라이브스루(차에서 내리지 않게 하고 음식을 주는 방법)로 제공하고 있다. 그나마 엄마는 아이들 먹이느라 식사는 굶기 일쑤. 만일 학교의 무료급식이 없었다면 “스트레스로 멘탈이 완전히 붕괴했을 것”이라며 자신의 굶주림은 외려 문제가 아니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딱한 사정은 단지 이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폐쇄 중에도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학교는 텍사스를 비롯해 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오리곤 등 여러 주에서 시행 중이다. 또 점심 한 끼뿐만 아니라 다음 날 아침 두 끼까지 가져가는 아동들이 계속 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의 학군에서는 거의 1만 1천 명의 학생들이 두 끼의 식사를 무료로 가져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하루 동안 아이들이 먹는 식사의 전부다. 미시간대학의 사회사업학과 쉐퍼(H. Luke Saefer)교수는 “[코로나사태처럼] 일이 잘못됐을 때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이들이 바로 서민들이며 또한 회복되는 데에도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층이 바로 그들이다.”라고 말했다.(“Coronavirus and Poverty: A Mother Skips Meals So Her Children Can Eat,” New York Times, March 20, 2020).

 

서민들의 가장 큰 걱정은 다음 달 임대료

그런데 먹을거리 걱정이 저런 식으로라도 해결이 된다면 서민들에게 그다음 가장 큰 걱정거리가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임대료다. 위에서 소개한 6명의 자녀를 둔 여성도 가장 큰 걱정거리가 매달 어김없이 돌아오는 1,000달러(약 120만 원)의 임대료라 말했다. 당장 수입이 없으니 그렇다. 워싱턴포스트는 현재 시점(2020년 3월)에서 대다수 미국인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임박한 다음 달(4월) 임대료라고 보도했다.(“Many Americans’s Biggest Worry Right Now is April 1 Rent and Mortgage Payments,” Washington Post, March 22, 2020). 물론 임차인이 아니고 집을 소유한 서민들이라 해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 대부분의 집값을 은행에서 대여해서 집을 소유한 것이라 매달 이자와 원금을 갚아야 하는데 지금 일거리가 갑자기 뚝 끊겨 소득이 없으니 그렇다. 소득이 끊겨도 단 한 달 만이라도 버틸 여유 자금이 미국인들 대다수가 없다.

3월 현재 많은 미국인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다음 달(4월) 임대료와 주택할부금이라는 워싱턴포스트의 기사 제목. 정부가 주는 1200달러짜리 수표가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많은 이들은 그것은 임대료를 충당하지도 않을 것이고 또 설사 그렇다 해도 그들이 돈을 지불하기 전에는 도착하지 않을 것이라 우려를 표하고 있다는 부연설명이 달려있다. <출처: 워싱턴포스트>

 

미국 경제는 전인미답의 영역으로: 그 와중 빠르게 급증하는 실업률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경제가 지금 전인미답의 영역(uncharted waters)로 접어들었다고 선언했다.(“Coronavirus Recession Looms, Its Course ‘Unrecognizable’,” New York Time s, March 21, 2020). 즉 과거 전례가 없던 대혼란 속으로 진입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가 올 2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 30.1%가 될 것으로, 그리고 불라드(James Bullard) 연준 세인트 루이스 은행장은 50% 하강할 것으로 내다봤다고 보도했다.(“Morgan Stanley, Goldman See Virus Causing Greater Economic Pain,” Bloomberg, March 23, 2020). 옥스퍼드 경제연구소(Oxford Economics)의 미국경제팀장인 다코(Greg Daco)는 “이것이 단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을 겪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왜냐면 이런 급작스러운 경기 하강은 선진국에선 유례가 없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심지어 10년 전의 금융위기와 1920년대 대공황 때조차도 사람들에게 집 밖으로 나가지 마라거나 여러 사람과 모이지 말라 했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경제는 결국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고 그것은 사람들이 만나 교류해야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뉴욕타임스는 이를 ‘전시적 곤경’(wartime privation)이라 말한다.(New York Times, March 21, 2020).

이번이 ‘전시적 곤경’이라 불리는 이유는 바로 그 직접적 타격을 서민들이 최초로 입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강력하게. 2008년 금융위기가 월가에서 시작되어 서민들에게 미치기까지는 그래도 시간이 조금 걸렸다. 직장에서의 해고는 월가의 은행들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나머지 직종의 해고와 실물경제 하강은 그것과는 시차가 조금 있었다. 그러나 이번 신종코로나는 그 경우가 완전히 딴 판이다. 사람들의 이동이 멈추니 영세자영업자들이 먼저 그 타격을 고스란히 맞는다. 식당, 이발소, 선술집 등의 업종이 줄줄이 타격이다. 이를 두고 매씨(Gabriel Mathy) 아메리칸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침체는 아마도 서비스 부분에서 시작된 세계에서 유례없는 최초의 경기침체다”라고 지적한다. 소상공인들과 영세자영업자들은 현금보유도 얼마 없고 신용도 제한적이다. 다른 큰 회사들처럼 채권을 발행할 수도 없다. 따라서 손님이 끊기면 바로 존폐의 기로에 놓이며 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폐업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거기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벌써 이들의 대량 해고가 시작되었다.(New York Times, March 21, 2020).

3월 19일 미 노동부는 실업수당 신청자가 28만 1천 명으로 전주와 비교해 33%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201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다.(“Unemployment Spikes 33% Amid Coronavirus Pandemic,” US News and World Report, March 19, 2020). 그러나 이 수치는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가 전망한 그다음 주 수치 225만 명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그러나 한 주가 지나 이런 전망은 완전히 빗나간 것으로 판명됐다.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3월 셋째 주 주간 신규 실업수당 신청자는 328만 3천 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한 주 만에 신규 실업자 수가 300만 명이 늘었다.(“Coronavirus Live Updates: U.S. Jobless Claims Are Highest Ever; House to Take Up $2 Trillion Stimulus,” New York Times, March 26, 2020).

옥스퍼드 경제연구소의 다코는 4월 미국의 실업률을 10%로, 재무부 장관 스티븐 무누신(Steven Mnuchin)은 효과적인 개입이 없다면 실업률이 20%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심지어 연준의 불라드(James Bullard)는 30%까지 나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New York Times, March 21, 2020; Bloomberg, March 23, 2020; “As layoffs skyrocket, the holes in America’s safety net are becoming apparent,” Washington Post, March 19, 2020).

 

2008년 금융위기 회복은 허상: 실업률 폭증이 그 증거

볼 스테이트 대학 경제학과 힉스(Michael Hicks)교수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3월이 미국 역사상 가장 최악의 해고 수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말했다.(Washington Post, March 19, 2020).

이렇다면 이러한 대량 해고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이들은 이런 실업대란 사태가 단순히 코로나로 발생했다며 코로나 탓을 돌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코로나 사태가 어떤 촉발요인은 되었지만, 이러한 급작스러운 실업대란은 미국이 그동안 말해주지 않는 미국 경제의 실체 때문이라고 본다. 코로나 사태는 단지 그것을 들춰내 미국 경제의 민낯을 보여주는 역할만 했을 뿐이다. 이 말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번 실업대란은 바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미국의 경제가 회복되었다고 선언하며 우쭐댔던 것이 모두 허상이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동안 미국은 경제 회복의 증거로 고용률의 증가, 즉 실업률(2019년 10월 현재, 3.6%)의 저하를 내세웠다. 그런데 그것은 허드레 일자리의 증가로 뚝딱뚝딱 만든 숫자 놀음에 불과했다는 것이 이번 코로나 사태로 여실히 드러났다. 즉, 그것은 튼실한 일자리가 아니었다. “눈 가리고 아웅”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정부가 나서서 실업률이 최저치로 낮아졌다며 “이것 봐라. 실업률이 얼마나 낮은가. 그래서 미국인은 행복하다!”라며 미국의 경제 회복을 아무리 발표를 해도 공허하기만 했던 것이다. 왜냐면 서민들의 삶은 금융위기 이후에도 전혀 개선된 것이 없었으니까.

만약 미국 정부의 발표대로 국가 경제가 그리고 서민들의 삶이 나아진 것이 사실이었다면 이런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서민들이 이처럼 추풍낙엽처럼 일시에 대량 해고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왜냐면 아무리 해고가 밥 먹듯이 쉬운 미국이라 해도 그래도 좋은 직장이라면 그렇게 쉽게 근로자를 내보내지 않을 테니까. 어느 정도는 뜸을 들일 테니까. 그래도 큰 기업은 이런 상황에서 어느 정도(단 한 두 달이라도)는 버틸 능력이 있으니까. 다시 말해 진정한 경제 회복은 뭐니 뭐니 해도 서민들의 직업 안정성의 보장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정반대다. 그래서 신종코로나 사태로 사람들을 일터에서 대거 몰아내고 있으니 실업률이 갑자기 높아진 것이다. 애초에 서민들이 취업했다는 직장이 번듯한 직장이 아니었다. 파트타임, 기간제,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등의 일자리 채운 것으로 정부가 고용률의 증가와 실업률의 하락이라고 얼버무렸다. 그런데 어찌 되었든 그런 허드레 일자리에서조차 밀려나 이렇게 실업률이 높아지면 그것은 곧 금융위기 이전으로 곧장 회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미국 경제가 아무것도 금융위기 이후 달라진 것도 나아진 것도 없다는 것을 이번 대량 해고 사태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탕발림한 실업률과 고용률 지표에서 사탕을 싹 제거하자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즉 지표들은 그저 숫자 장난이었고 신기루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그 와중 서민들은 두서너 개의 아르바이트로 연명하고 있었을 뿐이다. 코로나 사태로 하루아침에 이런 짓거리가 들통 난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다가오는 침체의 폭풍이 밀려오고 있다는 기사 제목에 달린 뉴욕타임스의 일러스트레이션 <출처: 뉴욕타임스/아담 심슨(Adam Simpson)

 

모래로 쌓은 성

그렇다면 금융위기 이후에 전 세계가 그 깊은 신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에도 미국 홀로 시쳇말로 “잘 나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미국 홀로 경기가 좋았다는 것은 누구를 위한 축제의 판이었던 것일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속도가 더디더라도 잘못된 것들을 시정 해 기초 체력을 다져서 튼실한 경제를 재건하기보다는 임시방편으로 구멍 난 곳을 돈을 찍어 처발라 메우고 그 열매는 모두 극소수의 가진 자들, 즉 제국이 취했다. 그리고 그 돈들은 죄다 돈 놓고 돈 먹는 놀이인 금융자본으로 치환되어 금융화(financialization: 산업에서 금융 부분이 비대해지는 것: 필자의 『부자는 어떻게 가난을 만드는가?』참조)는 더욱더 박차를 가하였다. 그 결과는 주식시장의 활황과 부동산의 폭등, 즉 이들 시장에 잔뜩 낀 거품이었다. 그리고 그 주역은 대형금융회사가 아닌 사모펀드였다. 그러나 이들은 초록이 동색. 사모펀드조차 월가에 속한 것이니까. 우리의 비례 정당만이 ‘위성’이 아니다. 미국의 사모펀드 또한 월가의 위성 투자사이다. 겉으로만 보면 얼마나 그럴듯한가? 한없이 오르는 주식과 부동산. 특히 미국 외부에서 보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금융위기 이후에 쏟아부은 돈 때문인 것은 쉽게 간과했다.

 

2년 전부터 예견되었던 거품 붕괴와 침체: 터트리기 위해 만들어진 거품

그러나 그러한 눈부신 금융화의 진전이 모래로 쌓은 성이었다는 것이 이번 신종코로나 사태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렇게 부풀려진 자산시장의 거품이 완전히 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발발하기 전에 미국의 거품 붕괴의 위험성은 이미 2년 전부터 예견되었다. 이런 예견은 단지 전문가들만 할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다. 왜냐면 거품은 언젠가는 반드시 꺼지게 마련이니까. 필자도 강연 등 기회 있을 때마다 이것을 줄곧 알렸었다. 물론 귀담아듣는 이가 별로 없어 문제지만.(“Economists Think the Next U.S. Recession Could Begin in 2020,” Wall Street Journal, May 10, 2018.; “U.S. Economy Flashes Signs It’s Downhill From Here,” Wall Street Journal, Oct. 29, 2018.; “The Economy Faces Big Risks in 2019. Markets Are Only Now Facing Up to Them.”, New York Times, Dec. 7, 2018). 비유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자신의 거대한 몸 때문에 바로 서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거인이 돌부리에 발이 걸려 완전히 넘어가듯, 바로 이번 신종코로나 사태가 그런 돌부리 역할을 한 것일 뿐이다. 코로나는 방아쇠 역할은 했지만 이미 거인은 쓰러지고있는 중이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Coronavirus Could Spark a Global Recession,” U.S. News &World Report, March 16, 2020).

 

코로나: 월가가 바라마지 않던 책임 전가의 호재

어쩌면 월가를 주축으로 한 제국들은 오히려 코로나가 무척 반가울 수도 있겠다. 왜냐면 거품은 반드시 꺼질 텐데 그 책임을 다른 데(코로나)로 돌릴 수 있을 테니까. 2008년엔 금융위기 주범으로 몰려 얼마나 호된 뭇매를 맞았었는가? 그렇게 보면 코로나 사태 같은 악재는 제국들엔 확실히 호재! 마치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과 같다(쓰러지는 제국들의 기업은 어찌하고 이런 소리를 하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은 조금만 기다려 주기를 바란다. 곧 뒤에서 그 답이 나온다). 이것저것 떠나 제국들은 악재든 호재든 모두 자신들의 호재로 만드는 데 귀재다. 보라. 어떤 제국은 경기하강에 내기를 해서 떼돈을 벌고 있지 않은가? 2천 7백만 달러(약 329억 원) 가지고 단숨에 100배를 번 펀드 회장도 있다.(“Bill Ackman claims firm made $2.6bn betting on coronavirus outbreak,” The Guardian, March 25, 2020). 거품이 이는 동안 재미를 톡톡히 본 제국 중 그것이 꺼질 것을 감지한 이들은 이미 정리할 것들은 다 팔아 곳간을 두둑이 채워두었다. 그리곤 악재에 베팅까지 해 또 한 번 재미를 보는 것이다. 제국에게는 어려운 장사란 없다. 그들에겐 모든 장사가 다 누워 떡 먹는, 그렇게 쉬운 것이다. 그런데 그것만일까?

 

가재는 게 편: 트럼프는 대기업이 우선!’

전례가 없는 코로나 사태 폭탄으로 미국 경제가 위기에 몰렸다며 트럼프 발 경기부양 패키지 법안이 상원에서 통과되었다. 미국의 한 해 예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물경 2조 2천억 원(약 2천 7백조 원)의 현금이 시중에 쏟아진다. 그러나 그중 성인 한 명당 1,200달러(약 146만 원) 지원되는 2,500억 달러(약 304조 원)와 실업급여 등에 사용될 2,500억 달러를 빼면 나머지는 모두 기업을 위한 돈 들이다. 이것이 바로 코로나 재난으로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인 서민들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기업을 우선하는 정책을 편다고 트럼프가 비난받는 이유이다. 확실히 가재는 게 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앞서 “왜 쓰러지는 제국의 기업이 있는데 코로나 같은 악재가 호재가 될 수 있느냐”는 의문에 대한 답이다. 제국의 기업은 악재에 아무리 손해를 보아도 그것을 벌충해줄 든든한 뒷배가 있다. 곧 친기업 정책을 펴는 제국의 친구, 아니 그들의 하수인인 든든한 정치인과 지도자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제국의 친구들이라고 해도 정치인들이 맨입으로 제국을 위해 돈을 풀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가재가 게 편을 그냥 들어주지는 않는다. 제국은 그의 하수인들이 움직일 만큼 기름칠을 한다. 나랏돈을 받아내기 위해서 사활을 건 대 정치권 로비전을 벌이면서. 가디언지는 워싱턴의 로비스트들이 수십억 달러의 코로나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광란의 전쟁에 너도나도 앞다퉈 뛰어들었다고 보도했다.(“Washington lobbyists in frenzied battle to secure billion-dollar coronavirus bailouts,” The Guardian, March 20, 2020). 이 때문에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 나왔던 엘리자베스 워런이 일찌감치 코로나 사태 구제금융은 기업이 아닌 노동자들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Any Coronavirus bailout must put workers first: Sen. Elizabeth Warren,” USA Today, March 20, 2020). 그런데 이런 말 하는 사람들은 다 ‘아웃’이다. 미국 정치계 물 사정이 다 그렇다.

 

노동자 우선인 구제금융주장하는 샌더스

물론 기업이 도산하면 거기의 근로자들이 대량 해고되니 기업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조건을 달아야 한다. 근로자의 해고 금지라든지 급여의 삭감 금지 등의 전제조건 말이다. 그런데 그런 단서 조항 없이 기업에 무작정 돈을 살포하면 그다음은 어찌 될지 뻔하다. 결국 그 모든 돈은 최고위 임원진들의 보너스와 주식을 보유한 부자들의 호주머니 속으로만 홀랑 흘러가게 된다. 근로자들은 나 몰라라 내칠 것이 분명하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선 구조조정이 필수라면서. 이런 모든 일은 이미 2008년 금융위기 때 겪었던 터라 예견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선수도, 게임의 룰도 그때와 바뀌지 않았고 유사한 게임은 계속되고 있다. 한 번 승자는 모든 것을 독식하는 게임, 게다가 계속해서 승자가 되는 이상한 게임. 그렇다면 이런 게임에서 감히 제국을 상대하는 서민들의 운명은? 그들의 승률은 백전백패.(Callahan, The Cheating Culture; Giridharads, Winners Take Al; Milanovic, Global Inequality 참조).

그래서 샌더스가 경기 부양 구제금융이 대기업이 아닌 노동자에게 먼저 제공되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부득이하게 대기업에 제공될 경우 근로자를 위한 전제조건을 달아 지급되어야 한다면서. 그러나 거의 모든 주요 언론이 왜 샌더스는 실질적으로 결판이 난 것과 진배없는데 경선을 포기하지 않고 저런 딴죽을 거냐면서 비아냥거린다. 소위 진보언론이라는 뉴욕타임스조차. 심지어 워싱턴 포스트는 코로나로 많은 미국인이 피해를 보고 있는 이때 단 한 사람 유일하게 샌더스만 수혜를 입고 있다고 빈정댄다. 소위 진보언론이라는 것들이 코로나의 유일한 승자가 될 제국들은 놔두고 외려 이것을 지적하는 샌더스를 공격하다니!(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밝히기로 한다).(“As Coronavirus Crisis Unfolds, Sanders Sees a Moment That Matches His Ideas,” New York Times, March 26, 2020. ;The coronavirus is hurting millions of people. But there’s one person who could benefit. Washington Post, March 26, 2020).

샌더스의 말대로 구제금융이 서민에게 먼저 맞추어져야 하는 이유는 거품 붕괴의 모든 덤터기를 결국 중산층 이하 서민들이 온전히 뒤집어쓰게 되니 그렇다.(“The Middle Class Faces Its Greatest Threat Since the 1930s,” Brookings, March 20, 2020). 이렇게 악재가 왔을 때 제국들은 유유히 손 털고 장을 떠나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의 몫. 경기 하강의 직접적인 타격은 아무 죄 없는 서민들에게 가해진다. 따져 보라. 그들이 거품을 끼게 했는가? 그들이 금융화를 가져왔는가? 그들이 사모펀드를 했는가? 그들이 집을 마구 사들였는가? 그들이 주식을 했는가? 그들이 한 일이라곤 어려움 속에서도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이일 저일, 두 서너 개의 허드렛일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한 죄밖에 없다.

“보통사람은 못 받는 코로나 테스트를 어떻게 부자들과 명망가들은 받는가?”란 제목의 영국 매체 가디언 기사 캡처

 

코로나 위험 속 퇴거 위험에 놓인 임차인들

그리고 일이 끊기고 실업자가 되고, 그래서 수입이 없으면 사는 곳에서 나가야 하는 압박과 처지로 내몰리게 되는 게 서민들이다. 지금쯤 그들은 다음 달 임대료 지급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아마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이 어떤 때인가. 코로나 사태로 밖에 나가면 걸린다고 집에 머무르라 하지 않는가. 이른바 ‘쉘터 인 플레이스’ 명령! 그런데 방세를 못 내면 당장 방을 빼란다. 임대차 보호법은 거의 사문화 되었다. 특히 사모펀드가 집주인으로 등극한 이후에는 더더욱. 악덕 집주인들에겐 피도 눈물도 없다.(“’No heart. No understanding’: During coronavirus, renters face eviction uncertainty,” MSNBCNews, March 20, 2020).

워싱턴포스트는 코로나 사태로 뒤숭숭한 이 시점에 집주인에게서 가차 없이 방을 빼라는 퇴거통지를 받은 위스콘신주 밀워키(Milwaukee)에 사는 66세의 할머니를 소개하고 있다. 만성기관지염과 만성폐쇄성 폐질환을 가지고 있는 이 할머니는 밖에 나가면 자기 같은 기저 질환자의 경우 특히나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지금 공포에 떨고 있다.(“Facing eviction as millions shelter in place,” Washington Post, March 22, 2020).

트럼프는 3월 17일 “미국주택도시개발부(HUD)가 주택소유자와 임차인이 주택 압류와 퇴거하는 것을 4월 말까지 유예하는 즉각적인 조치를 곧 취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것은 허언이었다. 적어도 임차인들에게는. 전국적으로 3,000만 명에 이르는 주택소유자들은 돈을 못 내 쫓겨나는 것에서 60일간의 유예기간을 주었지만, 임차인들은 아니었다. 이렇게 지금 코로나 사태 속에서 퇴거명령 처지에 처한 임차인들은 전국적으로 4,000만 명. 그러나 이들을 위한 보호책은 아무것도 없다.(Washington Post, March 22, 2020; “Most renters won’t receive eviction protections amid coronavirus pandemic under Trump proposal,” Fortune, March 20, 2020).

이제 임차인들에게 고작 남은 유일한 희망은 정부가 경기부양 패키지로 쏜다는 현금 1200 달러. 그러나 이전 회에서 이야기했듯이 대도시의 임대료는 사모펀드의 장난질로 엄청나게 올랐다. 그 돈 가지고는 턱도 없다. 설사 준다 해도 임대료 지급 날짜를 맞출지도 의문이다.(Washington Post, March 22, 2020). 그래서 트럼프가 쏜다는 현금은 기껏해야 언 발에 오줌 누기다. 그리고 소상공인들에게 대출해 준다는 돈들도 그림의 떡이다. 그것도 대출인데 이 사태가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 아닌데 또 빚을 져서 어떻게 갚는단 말인가. 그들이 이 시점에서 원하는 것은 대출 그 이상의 생명줄이다.(“Small Businesses Seek a Crisis Lifeline Beyond Loans,” New York Times, March 23, 2020; “Checks to Americans will ease the coronavirus slump, but they may not be much of an economic stimulus,” Los Angeles Times, March 18, 2020). 그러나 그것은 철저히 외면되고 오로지 구제금융의 혜택은 또다시 제국으로만 향하고 있다.

도표: 미국인 평균 수명은 소득 상위 1%의 남성이 하위 1%의 속한 남성보다 15년 더 오래 살며, 여성의 경우 기대수명이 10년 차이가 난다 <출처: 가디언>

 

코로나는 누구나 걸릴 수 있으니 공평하다?

코로나는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걸릴 수 있어 공평하다는 말이 나온다.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존슨 총리도 걸렸으며, 배우 톰 행크스와 그의 부인도 걸렸으니 말이다. 그런 거 보면 코로나가 신분을 안 가리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하긴 코로나바이러스에 눈이라도 달렸겠는가.

하지만 그 공평하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왜냐면 테스트를 받을 수 있는 자는 지체 높은 고관대작들이었으니까. 제국들이었으니까. 그들은 테스트를 받아 확진 판정을 받는 것조차 대서특필된다. 어떤 이들은 그런 테스트를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데 말이다. 이들은 조명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제국은 이들에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서민들이야 죽든 말든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직 자신들만 오케이면 된다. 자기들만 조명받으면 된다. 자기들만 병원 가서 테스트받고, 걸리더라도 병원 치료하고, 이제 다 나았네 하며 언론의 플래시를 받으면 된다. 자신들만 이 난국은 잠시 피하면 된다. 아니다. 제국은 이 난국을 또다시 자신들의 배를 불릴 절호의 기회로 삼을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벌써 그런 시도는 시동을 걸었다.

그래도 사태가 사태인지라 뒤통수가 몹시 따가웠는지 미국의 제국들이 서민들을 위해 고작 만들었다는 것이 테스트는 무료로 검사해주겠다는 조치였다. 그러나 걸렸으면 치료는 돈 내고 하란다.(“Coronavirus Tests Are Now Free, but Treatment Could Still Cost You,” New York Times, March 19, 2020). 몇천만 원이 나올지 모르는 병원비를 어찌하라고. 누가 감히 그렇게 하겠는가? 그것은 오히려 서민들을 두 번 울리고 완전히 절망에 빠트리는 것과 같다.(“Why are the rich and famous getting coronavirus tests while we aren’t?,” The Guardian, March 21, 2020). 그리고 그렇게 사태는 늘 과거처럼 변함없이 흘러가면서 미국인의 경제적 불평등은 수명의 불평등으로 고대로 이어진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부자와 빈자의 평균 수명은 10년 이상(남자는 15년, 여자는 10년) 차이가 난다.(“If Americans are better off than a decade ago, why doesn’t it feel that way?,” The Guardian, Nov. 5, 2019). 이것은 어김없이 이번 코로나 사태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슬프게도 돈 앞에서는 수명조차 불공평하다.

 

참고자료

김광기, 『부자는 어떻게 가난을 만드는가?』(파주: 21세기북스), 2016.

Callahan, David, The Cheating Culture: Why More Americans Are Doing Wrong to Get Ahead (New York: NY: Havest Book, 2004).

Giridharads, Anand, Winners Take All: The Elite Charade of Changing the World (New York, NY: Alfred A. Knopf, 2018).

Milanovic, Branko, Global Inequality: A New Approach for the Age of Globalization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16).

“The coronavirus is hurting millions of people. But there’s one person who could benefit,”Washington Post, March 26, 2020.

“As Coronavirus Crisis Unfolds, Sanders Sees a Moment That Matches His Ideas,” New York Times, March 26, 2020.

“’The universe is collapsing’: Bernie Sanders mocks Republicans over coronavirus aid – video,” The Guardian, March 26, 2020.

“Bill Ackman claims firm made $2.6bn betting on coronavirus outbreak,” The Guardian, March 25, 2020.

“Coronavirus Live Updates: U.S. Jobless Claims Are Highest Ever; House to Take Up $2 Trillion Stimulus,” New York Times, March 26, 2020.

“Coronavirus Could Spark a Global Recession,” U.S. News &World Report, March 16, 2020.

“Bernie Sanders: ‘If you’re a multimillionaire … you’re going to get through’ the coronavirus pandemic,” CNBC, March 16, 2020.

“To combat virus, L.A. will let homeless encampments stay up throughout the day,” Los Angeles Times, March 17, 2020.

“‘If I get it, I die’: homeless residents say inhumane shelter conditions will spread coronavirus,” The Guardian, March 19, 2020.

“‘Wash your hands’ is tough advice for Americans without soap or water,” The Guardian, March 23, 2020.

“Coronavirus and Poverty: A Mother Skips Meals So Her Children Can Eat,” New York Times, March 20, 2020.

“For the homeless, coronavirus is a new menace in a perilous life,” Washington Post, March 21, 2020.

“Many Americans’s Biggest Worry Right Now is April 1 Rent and Mortgage Payments,” Washington Post, March 22, 2020.

“Coronavirus Recession Looms, Its Course ‘Unrecognizable’,” New York Times, March 21, 2020.

“Morgan Stanley, Goldman See Virus Causing Greater Economic Pain,” Bloomberg, March 23, 2020.

“As layoffs skyrocket, the holes in America’s safety net are becoming apparent,” Washington Post, March 19, 2020.

“Economists Think the Next U.S. Recession Could Begin in 2020,” Wall Street Journal, May 10, 2018.

“U.S. Economy Flashes Signs It’s Downhill From Here,” Wall Street Journal, Oct. 29, 2018.

“The Economy Faces Big Risks in 2019. Markets Are Only Now Facing Up to Them.”, New York Times, Dec. 7, 2018.

“Any Coronavirus bailout must put workers first: Sen. Elizabeth Warren,” USA Today, March 20, 2020.

“Washington lobbyists in frenzied battle to secure billion-dollar coronavirus bailouts,” The Guardian, March 20, 2020.

“Most renters won’t receive eviction protections amid coronavirus pandemic under Trump proposal,” Fortune, March 20, 2020.

“’No heart. No understanding’: During coronavirus, renters face eviction uncertainty,” MSNBCNews, March 20, 2020.

“Small Businesses Seek a Crisis Lifeline Beyond Loans,” New York Times, March 23, 2020.

“Checks to Americans will ease the coronavirus slump, but they may not be much of an economic stimulus,” Los Angeles Times, March 18, 2020.

“Unemployment Spikes 33% Amid Coronavirus Pandemic,” US News and World Report, March 19, 2020.

“Why are the rich and famous getting coronavirus tests while we aren’t?,” The Guardian, March 21, 2020.

“Coronavirus Tests Are Now Free, but Treatment Could Still Cost You,” New York Times, March 19, 2020.

“If Americans are better off than a decade ago, why doesn’t it feel that way?,” The Guardian, Nov. 5, 2019.

“The Middle Class Faces Its Greatest Threat Since the 1930s,” Brookings, March 20, 2020.

“As Coronavirus Crisis Unfolds, Sanders Sees a Moment That Matches His Ideas,” New York Times, March 26, 2020.

“Coronavirus Tests Are Now Free, but Treatment Could Still Cost You,” New York Times, March 19, 2020.

“Facing eviction as millions shelter in place,” Washington Post, March 22, 2020.

 

김광기 경북대 교수의 연재 ‘인사이드 아메리카’는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토, 2020/04/1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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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헌법은 각 주의 주 법률에 지방법과 행정 조례에 대한 발안과 레퍼렌덤 권한을 규정할 권리를 부여한다(헌법 제123조 3항). 헌법 1999년 제1호, 2001년 제2호 법률을 근거로 각 주는 주 차원에서 직접민주주의를 더욱 강화시키고 확대할 권한을 얻었다. 이런 개혁으로 이들은 그때까지 아직 헌법에 규정되지 않은 새로운 레퍼렌덤 도구와 참여 방식들을 도입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제118조 4항에도 이렇게 규정되어 있다. “국가, 주regioni, 대도시, 현province및 기초자치단체들comuni은 보완성(중앙 정부는 지방 정부가 행하기 어려운 업무를 보완한다는 원칙─역자 주)의 원칙을 기반으로 전반적인 관심 활동의 전개를 위해 개개인 및 단체로서 시민들의 자율적인 발안을 장려한다.” 통상 법령의 주이건 특별 자치주이건 거의 모든 주들은 레퍼렌덤 설치에 대한 새로운 법률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확대를 위한 초안 작성 단계

이탈리아의 주들은 레퍼렌덤 설치를 시행하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존재하는 권리들의 모체를 따랐다. 국민발안(국민투표에 부칠 권한이 없는)법 제안과 자문형 레퍼렌덤, 특히 전국 차원의 법폐지를 위한 레퍼렌덤과 같은 선상의 주 법률 폐지를 위한 레퍼렌덤 등이 있다. 현재 고전적 형태의 국민발안(제안적 레퍼렌덤, 5장 참조)을 규정할 수도 있겠지만, 발레 다오스타, 사르데냐 및 볼자노 자치주에서만 레퍼렌덤 투표권에 연결된 국민발안을 도입했다. 다른 자치주인 트렌티노는 어떤 명확한 법 제안을 레퍼렌덤 투표에 부칠 권리를 규정하지 않은 채 그저 일반적인 형태의 국민발안만을 도입했다. 시칠리아에서 레퍼렌덤에 관한 주법은(2004년 1항) 제안적 레퍼렌덤을 승인하지 않는다. 아오스타 및 티롤 남부 지방의 모범을 따라 캄파니아는 새로운 법령으로 “법폐지를 위한 레퍼렌덤”을 도입했다.

라치오 주의 2004년 새로운 법령(제62항)에는 국민발안의 법제안 허용이 공고된 후 한 해 안으로 주의회가 이를 심의하지 않는다면, 이는 제안적 레퍼렌덤에 부쳐질 수 있다고 규정한다. 만일 레퍼렌덤 결과가 유권자 과반수가 투표에 참여하여 유효표의 과반수 이상을 얻었다면 그것은 승인을 뜻한다. 그 경우 60일을 넘기지 않고 “의회는 그 법 제안을 검토해야 한다.”

트렌티노 주에서도 이런 형태의 불완전한 제안적 레퍼렌덤 이상으로 발전되지 않았다. “레퍼렌덤이 긍정적인 결과를 얻는다면, 주 정부Giunta 혹은 주 의회Cosiglio는 3개월 안으로 레퍼렌덤 결과의 실행을 위한 발안과 법률 조항을 채택한다”(트렌티노 주 법 제3호/2003년 제16조). 심의 권한이 없는 레퍼렌덤을 말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 주에서 3만 명의 유권자들은 주 의회에 법률 제안을 제출할 수 있다(FVG 주법 제5호/2003년, 제 123조). 이것이 1년 안에 상정될 경우, 레퍼렌덤 투표에 넘겨진다(50% 참여 정족수로). 만일 유권자들의 승인을 받으면 주 의회는 법률 제안을 검토해야 하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사르데냐에서도 주 의회는 국민발안 법률 제안 심의로 제 기능을 다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주 의회의 그런 식의 심의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러므로 국민투표는 심의 효력이 없으며, 모든 결정권이 주 의회의 수장에게 집중된다.

주 라치오,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 및 사르데냐에서 채택된 “제안적 레퍼렌덤”의 모델들은 하나의 제안적 레퍼렌덤 이상으로 “강화된” 국민 입법 발안의 양상을 띤다고 한다. “강화되었다”는 것은 주 의회가 일정 기간 안에 그들의 의사를 표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정 기능이 있는 레퍼렌덤 투표가 아니다. 그러므로 스위스의 모델과는 상당히 다르며, 법적 효력 면에서 심각한 한계를 지닌 모델이다.

현재 주 내부에 국민발안의 허용성을 평가하기 위한 독립적인 기구들도 존재한다(보증 위원회). 그런 방식으로 허용성의 판단은 대의 기구, 곧 정당에서 내리는 대신, 법률가들과 그외 전문가들로 구성된 한 공정한 기구에 양도된다. 이는 직접 민주주의 제도를 강화시키는데, 불안이나 정치적 동요, 실패 등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외적인 경우(사르데냐, 롬바르디아, 에밀리아-로마냐, 토스카나, 발레 다오스타 및 볼자노 주)를 제외하고는 모든 주에 50% 참여 정족수가 그대로 시행되고 있다. 다른 주들에서는 정족수가 35%~45% 사이를 맴돈다. 이런 정족수는 아직 기권 캠페인에서 벗어나기에는 지나치게 높지만 개선된 것은 확실하다.

레퍼렌덤 투표를 요청하기 위해 필요한 서명 인원 기준점은 최소 시칠리아의 0.99%에서 바실리카타에 규정된 최고 10%까지 폭넓은 비율을 보인다. 대체적으로 이 기준점은 유권자의4 % 선이다.

몇몇 주들은 주 법률에 심의 참여의 원형적 도구들 또한 규정해 놓았는데, “공공 조사관”이나 “공공 토론”, 법령의 결정 절차에서 시민들의 “자문 형태”, 입법 절차 중에 자문을 구하거나 정책적 지침을 규정하기 위한 “단체 등록부” 등이 그 도구들이다. 토스카나 주는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장려하고자 “주 차원의 참여를 위한 기관”을 설치했다. 이 방법들은 참여를 돕기 위해 유용하지만, “결정권이 있는” 레퍼렌덤 권한들, 곧 좁은 의미의 직접 민주주의를 대신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모든 형태와 모든 채널의 시민 자문을 활용하여 대의원과 유권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개선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때로 공정하고 올바른 법규를 갖춘 레퍼렌덤 권한을 통해 주권자인 시민들이 바랄 때마다 그들에게 최종 발언권을 주어야 하는 필요 자체를 없애지는 않는다. 이는 모든 차원의 정부에서 유효한 원칙이다.

요컨대, 주법으로 설정된 권한이라는 관점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틀은 전국적 상황에 비해 조금 낫다고 하더라도 아직 그리 안심할 수 있는 사정은 아니다. 그 어떤 주에서도 강력한 형태의 레퍼렌덤 권리와 레퍼렌덤을 위한 새로운 법규를 채택하도록 그들에게 제공된 법적 영역을 전부 활용하지는 못했다. 심지어 70여 년 동안 같은 정당이 지배하는(SVP, 1993년부터는 PD와 연립으로 구성) 볼자노 자치주도, 한 시민 운동에서 제기한 5건의 국민발안 법제안과 두 건의 레퍼렌덤 투표 촉구에도 불구하고, 아직 고답적이고 제한적인 2005년 직접 민주주의에 관한 주법 개혁을 완성하지 못했다.

이런 권리들의 적용 현실은 그러므로 비참한 편이다. 뒤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이탈리아의 주에서 시민들은 이런 권리에 의존하는 예가 극히 드문데, 효과적이고 잘 잘동하는 레퍼렌덤 도구가 없고, 주 차원의 주요 입법권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족수와 다른 실질적 장애물에 좌절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참여권 면에서 실제적으로 가장 발전한 곳의 하나인 볼자노 주에서조차2 001년부터 현재까지 단 세 차례의 투표가 기록되었다. 한 차례는 제안적 레퍼렌덤(2009년, 정족수에 도달하지 못하여 실패), 또 한 차례는 정부 형태에 대한 주 법률 관련 확정적 레퍼렌덤(2014년 법률 기각), 그리고 주 의회에서 반포한 자문형 레퍼렌덤(2016년, 유권자들이 승인한 사안)이다.

 

부정적 측면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주 법률을 심층 분석하지 않고도 현재 직접민주주의의 주 차원의 법률에서 다양한 결함을 찾아 볼 수 있다.

▪각 주의 대다수는 아직 제안적 레퍼렌덤, 곧 “고전적” 국민발안을 도입하지 않았다. 이는 정치인들에게 박차를 가하기 위해 시민들의 손에 쥐어진 가속 장치이다. 제안적 레퍼렌덤의 도입은 도로 한가운데 멈춰 서 있으며 잘 규정해 놓은 곳에서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발레다오 스타와 볼자노 주에서 도입한 형태들은 더욱 효과가 큰 반면 트렌티노와 라치오, 사르데냐 및 프리울리 베네치아 쥴리아에서 규정한 것들은 좁은 의미에서 국민발안이 아니다.

▪참여 정족수는 헌법으로 규정된 의무가 아니지만, 주 차원에서도 계속해서 직접 민주주의 법률을 오염시키고 있다. 단 다섯 주에서만 50%의 정족수에서 근소하게 낮아지는 데 성공했다(롬바르디아 40%, 에밀리아 로마냐와 토스카나 40%, 사르데냐 33.3%). 그러나 33.3%의 정족수도 아직 기권 캠페인을 자극할 만큼 충분히 높다. 주 차원에서 이 권한이 가동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과단성 있는 정당이 레퍼렌덤에서 참여 정족수 폐지를 위해 나서야 할 것이다.

▪주 정부Giunta에서 승인된 주 법률에 대해서건 행정 법령에 대해서건 그 법이 발효되기 전에 법정法定 발안권이나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이 규정되어 있지 않다. 주 정부는 대규모나 예산도 큰 프로젝트나 공공 사업의 실현에서 점점 더 큰 권력을 지닌다. 그러므로 시민들이 “긴급 제동권”, 곧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 권한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국민투표에서 지나치게 많은 정책적인 사안, 특히 국세-관세 관련 사안들을 배제한다. 게다가 주의 역량은 이미 크게 제한되어 있다.

투표 개시 및 실시 절차 관련 법안들 또한 여전히 뒤쳐져 있다(제도적 정보권, 지출금 상환, 지나치게 형식적인 서명 모음 방법, 부재자 우편 투표 및 전자 투표 등등)

 

각 주들에는 아직 선택권이 많지 않다

이탈리아 중앙 정부의 법규는 현재 모든 주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재가동할 수 있게 해준다.

▪레퍼렌덤 도구의 폭을 넓히며, 특히 곧바로 제안적 레퍼렌덤(국민발안)과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을 도입하고, 그렇게 주 혹은 현의 행정부에서 행정 법령의 형태로 결정한 대규모 사업들에 대해 시민들이 의사를 표명할 수 있게 해 주는 헌법 제123조의 의도를 실현 가능하게 만들고,

▪법정 발안권을 도입하고, 이미 존재하는 법정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을 보완하며,

▪참여 정족수를 폐지하거나 줄이되, 적어도 덜 치명적인 차원으로 참여 정족수를 줄이고(15~20%까지),

▪발안이나 레퍼렌덤에 착수하기 위해 필요한 서명 인원수를 낮추고, 참여를 장려하기 위한 모음 방식으로 발안 위원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형사상의 책임하에 그 서명을 공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발안의 주창자들을 위해 보다 공정한 법률과 보다 견고한 보장으로 헌법 제118조의 정신과 의도를 실행에 옮긴다. 지출금 상환, 모든 유권자들에게 정보 소책자를 발송하여 시민들의 정보권 보장, 모두에게 열려있는 전문가 무료 상담 등.

▪허용성의 판단을 보증 기구에 맡기어 레퍼렌덤 발안 초기에 판단을 하게 하며,

▪지나치게 많은 문제들을 레퍼렌덤에 부칠 수 있는 사안에서 배제하지 않고,

▪우편 투표와 전자 투표를 시험하고 인터넷 서명 모음 가능성이 도입되어야 한다. 이는 롬바르디아에서 이미 시행 중이며 2017년 10월 20일의 자문형 레퍼렌덤 시에 적용되었다.

요컨대, 주 차원의 레퍼렌덤 권리의 두 번째 세대 또한 다른 나라들에서 연방이나 지방 단위에서 실시하는 직접 민주주의 형식과 대조해보면, 이용할 수 있는 기관들이나 적용 법령에 관해서나 아직 매우 제한적이다. 주나 자치주Provincia autonoma나 좀 더 앞으로 나아간 곳(아오스타와 볼자노)에서도 국민들은 2003년과 2005년 승인된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제한적인 법들을 넘어서는 데 큰 관심을 보였다. 주 차원의 직접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은데, 그것은 주 정부의 기존 정당에 대한 무관심과 반감 때문이고, 레퍼렌덤 권리를 시행할 수 있게 하는 헌법 및 국가법(L. 352/1970)의 개혁이 부재한 상황에서 근본적인 변혁을 일으킬 수 없는 주 법률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어떻게 도달할 수 있을까? 주에서 공공 여론은 지금까지 이런 종류의 직접 참여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당과 정치적 엘리트 계층은 아직 개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시민들 자신도 아직 지방 정치의 질을 개선시키기 위한 그런 도구들의 잠재력을 깨닫지 못했다. 정치적 참여는 ‘예술을 위한 예술’ 식의 빈말이 아니라 대의원들을 견제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자극하며, 명백히 국민들의 이익에 반하는 정부의 결정을 막는 데 의미가 있다. 얼마나 민주주의가 실천되고 있는가는 시민들 자신이 얼마나 공익을 잘 돌보느냐에 달렸으며, 주와 기초자치단체의 행동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삶의 질 자체이다. 곧 시민들에게 더 큰 권력을 줌으로써, 정치의 ‘성과’가 나아지고 정치인들과 지역 행정 기관의 책임의식이 개선된다. 이탈리아의 주에서는 그러므로 시민 정치 참여권 적용의 제3단계에 착수할 필요가 있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화, 2020/04/14-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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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의 방지용으로 의료자재들에 대한 국제적 수요가 폭증하는 가운데, 독일 경찰조직에 배달되어야 할 마스크 선적물량이 미국으로 빼돌려지고 다른 국가들이 입찰에 응하지 못하도록 고가의 가격으로 투찰하는 등 미국의 해적 행위에 대한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베를린 당국에 의하면, 독일경찰조직을 위해 주문되었던 N95의 마스크 20만 장이 태국에서 항공편 환적 중에 미국으로 빼돌려 졌다고 한다.

베를린 주 내무장관 Andreas Geisel은 이러한 행위를 ‘현대판 해적질’이라고 비난하면서 독일정부가 워싱턴에 국제적 교역질서를 준수하도록 요청할 것을 청원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무리 위기적 상황이라 하더라도 대서양 협력국들 사이에 서부개척 시기에나 있을 법한 강도 짓을 해서는 안된다.”

독일 언론들은 해당 마스크의 공급사인 미국 3M이 중국에서 생산한 것으로 보도하고 있으나, 정작 공급자인 3M은 베를린 경찰에게서 주문을 받은 기록이 없으며 상기 기사의 출처가 어디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독일 측은 의료자재들이 부족해지자, 미국 행정부가 항상 그랬듯이, 시장에서 마음대로 미국의 힘을 마구 휘두르며 국가 간에 마구잡이 경쟁을 야기시키고 있다며 일치된 목소리로 비판하고 나섰다.

파리를 포함하는 프랑스의 핵심지역 Île-de-France의 주요 책임자인 Valérie Pécresse는 미국이 야기한 마스크 쟁탈싸움을 ‘보물찾기’라고 이름 지었다.

“관행상 우리가 구매가능한 마스크 물량을 확보했는데도 미국인들이 – 나는 미국정부라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 (고가의 가격으로) 투찰하면서 우리를 배제시켰다. 미국인들은 싯가의 3배를 제시하였고 그것도 현장에 직불하겠다고 제안하였다. 우리는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투찰할 수 없었고, 지불조건도 인수 후 품질검사가 끝난 후에나 가능하다. 결국 우리는 응찰에 실패하였다”고 현지 TV 방송에서 이야기하였다.

그녀는 계속해서 프랑스 다른 지역책임자들의 증언을 보태어 다음과 같이 이어갔다 “확인할 수 없는 미국 구매자들이 마스크 물량, 그것도 겉포장에 ‘프랑스’이라고 인쇄된 물량들에 대해 투매를 하였다.”

이미 COVID-19가 심각하게 감염된 지역인 대서부(Grand Est)지역 의회의 의장인 Jean Rottner 박사도 RTL라디오 방송에 나와 말한다 “우리는 반드시 싸워야 한다” 그는 연이어 트위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빼돌려진 2백만 장의 마스크는 프랑스가 공식적으로 주문하지는 않았지만 과거의 관행상 우리에게 양도되어야만 했다” 프랑스 미디어들은 이를 ‘마스크 전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미국회사인 3M사는 일반의료용 마스크보다 보호기능이 뛰어난 호흡질환용 마스크(respirator)인 N95를 중국 포함하여 여러 해외 생산기지에서 생산해 왔는데, 지난 금요일 트럼프 행정부에게서 미국향(向) 선적물량을 대거 증가하도록 요구를 받았으며 중국정부로부터 1천만 장의 마스크 선적에 대해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동시에 3M은 미국 행정당국으로부터 미국 내에서 생산하는 마스크를 캐나다와 남미지역으로 수출할 수 없다는 통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당 회사는 이러한 요구는 의료 분야 종사자들에 필요한 공급물량조차 중지하라는 것으로 인도주의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해당국가들로부터 보복조치를 당하는 불이익을 발생시킬 것을 경고했다.

“만약 이런 일이 강행된다면, 결국은 미국 내 공급할 수 있는 호흡질환용 마스크 공급량이 줄어들게 될 것이고, 이는 우리나 행정당국이 추구하는 것과 배치되는 일이다” 라고 진술했다.

캐나다 수상인 Justin Trudeau 역시 미국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며, 미국 역시 캐나다로부터 의료자재를 공급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마스크와 의료자재들의 쟁탈전에는 미국은 매우 유리한 장점을 갖고 있는데, 항공화물 수송능력이 중국에 비해 3배나 되고 연방과 주정부 그리고 민간 수요에 대응하는 수많은 수입업체들이 상하이에서 활동 중에 있다.

상하이에서 활동 중인 무역상인 Michael Crotty은 뉴욕 타임즈에게 ‘중국의 생산공장들은 이런 전쟁상황에서 최고가를 지불하는 고객을 선호한다며, 이런 기회(초과이익을 가질)는 흔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친분 관계가 때때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억만장자인 Robert Kraft는 매세츄세스 주지사인 Charlie Baker에게 보잉 767기를 빌려주어 마스크 1.2백만 장과 의료보호장구들을 매세츄세스로 항공편으로 운송하도록 도왔다.

이 항공기는 뉴잉글랜드의 영웅(Patriot)인 농구팀의 전용으로 구입한 두 대의 비행기 중 하나이며, 뉴욕에 있는 중국 영사 Huang Ping의 도움을 받아 주말에도 영사관을 열어 필요한 절차와 서류를 갖출 수 있었고, 심천 공항에서 승무원들이 입국절차를 생략한 채 비행기에 대기하고 있는 상태에서 3시간 만에 화물적재가 이루어졌고 단 3분만에 이륙허가가 떨어졌다.

공화당 소속의 Baker 주지사는 도착한 비행기 앞에서 감동적으로 울먹이며 말했다 “이번 의료보호장구(gear)는 대단히 특별합니다. 이런 보호장구들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힘들고 도전적인 일이라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닙니다. 저는 현장에서 일하는 의료진과 환자들을 지켜주는 보호장구들을 구입하는 특별한 노력을 계속할 것입니다. 점점 더 많은 물량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처럼 미국의 여러 주정부들과 연방정부는 각자 장비들을 구입하는데 치열한 경쟁을 벌리고 있다. 뉴욕 주지사인 Andrew Cuomo는 ‘마치 50 개 주정부가 e-Bay에서 서로 먼저 물품을 구매하려고 싸움질을 하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트럼프가 자신의 정치적 선호에 따라 자신이 높이 평가하는 주를 우선으로 지원할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각 주지사들은 연방정부의 재고가 급속히 소진되는 것을 가만히 지켜만 볼 수가 없게 되었다. Baker주지사는 트럼프와 통화에서 아래와 같이 불평하였다 “세 번의 좋은 물량 기회 모두, 연방정부에게 선수(先手)를 놓쳤다. 만약 누군가 물량을 가지고 있고 당신(연방정부)과 나(매세츄세스 주정부)사이에 판매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매번 놓칠 수 밖에 없다”. 이후 트럼프가 정부 간에 충돌이 생기면 연방정부가 응찰을 포기하라고 말하기는 했다.

미 연방정부의 비상관리국(Emergency Management Agency)이 개입하여 미국 구매업자들 간의 싸움을 조정하고는 있지만 분배의 네트워크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못하고, 오히려 민간업체들이 더 잘할 것이라고 변명을 대고 있는 실정이다. ‘연방정부는 의료자재들의 수출을 금지하는 것을 포함하여 자재수급을 비공식적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다.

브라질 역시 중국으로부터 의로보호 장구를 구매하려 하였지만 실패하였다고 밝혔다. 브라질 보건장관 Luiz Henrique Mandetta은 “고가응찰이라는 문제가 개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4월초 현재 미국은 세계에서 제일 많은 25만 명의 확진자와 6천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마스크 등 주요한 보호장구의 물량확보가 절대적인 상황이다.

출처: 영국 가디안 (The Guardian)


 

<관련 논평>

현대판 해적질로 미국의 지도력이 침몰하고 있다

최근 독일 당국은 독일경찰조직을 위해 주문한 20만장의 마스크가 태국에서 항공화물 환적 과정에서 고가로 투찰한 조직에 의해 미국으로 빼돌려 졌다고 공개적으로 미국을 고발하였다. 이 뉴스는 최근에 벌어진 여러 사건 중 하나로, 거래 관행상 공급이 예정되었던 의료자재들이 워싱턴에 의해 싯가의 3-4 배에 해당하는 고가로 투찰(投札)하면서 마지막 순간에 행선지가 바뀐 사례들에 대해 비판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피해를 본 국가군에는 캐나다와 프랑스가 포함되어 있다. 캐나다 수상인 트뤼도는 이를 매우 염려스러운 사태로 받아들인다고 말하면서 캐나다에 할당된 물량은 반드시 캐나다로 반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프랑스의 로트너 박사는 미국인들이 마지막 순간 응찰에 가담하여 3-4배 가격으로 그것도 현장에서 현금을 지급하면서 우리의 주문량을 빼돌리고 있다고 불평했다.

COVID-19 확진자가 수십 만 명에 달하면서, 미국은 이제 바이러스 감염의 중심국가가 되었고, 사전의 준비가 없었던 탓에 여러 주정부들이 갑자기 의료자재 구매에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이런 상황에 이르자, 세계 지도국가로서 자신감을 보여 왔던 미국은 자국 상황에 대해 적정하게 대처하기는커녕, 비윤리적인 행태로 시장을 교란시키며 동맹들을 어려움에 빠뜨리고 있다.

미국은 건국이래 수많은 위기에 직면해 왔지만, 이번 COVID-19 돌출과 같이 충격적인 사태를 맞이해본 적이 없는 듯 하다. 과장된 말이 아니다. 지난 100년을 돌이켜 보아도, 대불황과 제2차 세계대전, 진주만 기습, 소련과 핵전쟁 대치 그리고 9/11 사태 등을 겪어 왔지만 이번 COVID-19 사태처럼 미국 내부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명성에 먹칠을 하며 제국이 무릎을 끊게 한 일은 일찍이 없었다.

국가경제가 이처럼 절단이 난 적도 없으며, 4월초 기준으로 25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했고 10만 명이상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에 따라, 주정부 단위로 제각각 의료자재의 부족을 해결하는 일에 절망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지난 세기 미국은 여러 번에 걸쳐 유럽의 동맹들을 지원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껴 왔으나, 이번처럼 국가가 진흙탕 속에 처해져, 자신을 위한 생존의 정치(survival politics)라는 긴박한 절망감으로 다른 국가들을 어려움에 빠트리는 적이 없었다. 미국의 주정부들이 시장 가격의 4배로 투찰(投札)하며 마스크, 호흡기 등 의료자제를 구매하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는 것은 미국 전통의 신뢰, 안정 또는 힘의 정치 모습이 아니다.

반대로 이는 재앙이라는 신호이다. 재앙이라는 표현은 가볍게 사용할 단어가 아니지만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불가피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초기 대응은 경멸스러울 만큼 무능하고 사전준비가 없었으며, 그 결과로 이 세계 어느 지역보다 심각한 전염상태를 보이고 있다. 최상위 지도력의 부재와 주정부 단위 간에 진행되는 불협화음은 국가의 대처능력을 박살내고 국가단위의 전략도 부재하여, 따라서 코로나바이러스는 더욱 창궐하고 있다. 가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몽땅 잘못 돌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 결과로 단순히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까지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현재 미국은 국제적 현안에 대해 동맹들을 안심시키고 지원하는 지도적 국가로서 역할을 하기는커녕, 괴팍스럽고 억척스럽게 동맹들을 어려움에 빠트리고 있다. 더구나 이런 상황이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유럽의 동맹들이 미합중국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워싱턴 자체가 대응과정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커다란 부채를 짊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상황이 트럼프 대통령이 추구해온 정책인 ‘America First’이란 독트린과 뒤섞이면서, 미국은 유럽을 단순히 연대의 파트너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목표를 추구하는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제 유럽대륙의 국가들은 워싱턴과의 관계가 현재의 상황이 종료되면 이전으로 돌아 갈수 있다고 믿지 않게(doubtful) 되었고, COVID-19의 사태는 미국과 ‘유럽 또는 타동맹’ 간의 관계를 ‘America First’ 에서 ‘America Only’로 빠져들게 하였다.

출처: CGTN

Tom Fowdy

영국 Durrham 과 Oxford 대학에서 국제관계 정치학을 전공했고 세계주요 언론에   영국, 미국, 중국 그리고 북한에 관련한 칼럼을 쓰는 자유기고가

목, 2020/04/16-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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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다른백년 이래경 이사장의 ‘시민주권 시대의 정치경제론’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시민권력의 정치경제를 위하여

한국사회의 새로운 전환을 위한 담론을 실천하고 있는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이래경 이사장이 다른백년 홈페이지에 ‘기획칼럼-이래경의 제3섹터 경제론’이라는 이름으로 1년 반 동안 연재한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 책 『시민주권 시대의 정치경제론』은 촛불혁명 이후 한국 사회의 로드맵을 제안하는 내용이다. 격변과 전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탐욕적 시장경제의 폐해를 극복하고, 참여와 혁신 그리고 연대에 기초한 시민경제로 전환하는 로드맵은 저자 나름의 ‘해방과 자유의 논리’이다.

저자가 2018년에서 2019년 동안 연재한 ‘제3섹터 경제론’의 토대는 촛불혁명이었다. 촛불혁명은 기득권에 포획되어 박제화 된 형식적 민주 제도와 절차의 한계를 뛰어넘어 시민주권과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요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사회의 성찰과 새로운 좌표’라는 주제를 ‘제3섹터 경제론’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하면서 저자는 촛불혁명의 의미를 반추하고, 시장과 공공의 영역에서만 바라보고 해석해 왔던 기존의 경제론을 시민의 영역, 좀 더 구체적으로는 ‘시민주권과 시민권력’의 관점에서 재구성을 시도했다.

저자에 따르면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 해결의 핵심은 제2섹터인 시장을 중심으로 제1섹터인 공공영역과 제3섹터 부문을 종속적으로 연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각각의 역할로 분리시켜 상호보완적이며 병렬적으로 각자의 역할을 맡도록 하면서 궁극적으로 제3섹터의 몸집을 키워나가는 데 있다. 정부는 축적된 과학기술과 지식을 효율적으로 운용하여 산출된 시장경제의 성과를 제3섹터의 영역으로 적정하게 옮겨 나르는 양수(PUMPING)의 몫을 담당해야 한다. 즉 미래의 무한한 일자리의 보고인 제3섹터 영역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이것이 저자의 문제의식을 함축한 ‘제3섹터 경제론’의 핵심이다.

 

출판사 서평

촛불혁명 이후 정치적 영역에서 직접민주주의를 통한 시민권력의 실현은 한국사회의 역사적 이정표이다. 저자는 책에서 시민권력을 위한 물적 기반의 재구성을 위하여 조세정책의 양수역할과 사회적 경제의 실천을 통한 삼투막 기능을 제안한다. ‘정부에 의한 양수와 삼투막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며 강화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12장 ‘조세개혁과 사회적 상속에 대하여’, 13장 ‘사회적 혁신과 전환을 위한 로드맵’, 14장 ‘협력과 공유의 사회를 꿈꾸며’ 등에 잘 나타나 있다.

한편 저자는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모든 시민의 존엄과 탁월성을 구현하는 기본소득과 기본자산 및 선택적 복지청구권 도입을 주장한다. 나아가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라는 기존 경제학의 이론적 허구를 폭로하면서, 역사적 사회적 선택적 그리고 시천주의 존재로서 인간이 지닌 가능성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인간 본연의 모습에 기초한 사회주의를 시원적으로 고민했던 사를 푸리에와 이를 실현하려 했던 로버트 오웬, 그리고 20세기 일본 시민사회의 전설로 남아 있는 가가와 도요히코라는 인물 등을 2장 ‘인간품성에 대한 재발견’, 4장 ‘형제애적 실천에 대하여’ 등에서 살펴보고, 한국인들의 혈통 속에 흐르는 공동체적 유전인자 밈과 풍속을 5장 ‘한국역사에서 배우는 향촌의 자치운동’에서 조명하고 있다. 또한 명백하게 한계에 도달한 자본제적 시장경제의 문제점과 성격을 고발하고 대안을 담은 내용을 3장 ‘자유주의에 대한 성찰과 비판’, 6장 ‘사유재, 공유재 및 관계재 그리고 행복’, 7장 ‘길 잃은 자본주의 위기에 대응하는 다양한 흐름’, 8장 ‘자본의 탐욕에 갇혀 있는 기업사회 비판’ 그리고 9장 ‘시장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해석을 위하여’에 담았다.

모든 것은 정치로 통하고 정치에서 결정된다는 말이 있듯이, 현재 한국사회 현안의 모든 근원은 정치제도와 절차적 과정의 결함에 있으며, 이를 직업적으로 다루고 있는 정치인들이 일차적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11장 ’한국사회,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 15장 ‘행정사법관료는 공복인가 관비인가’는 적폐가 청산되지 못한 역사적 한계와 제도의 결함 뒤에 숨어 기회주의적 행위를 일상적 관행으로 삼아온 행정사법 관료제의 폐해를 지적하는 글이다. 저자는 국회 구성에 있어서 100% 연동비례제, 시민소환제 및 시민발안과 연동된 국민투표 등 직접민주제 도입은 촛불시민혁명 이후 이제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정신이 되고 있다고 확신한다.

인간다움을 보장하는 최저임금제와 노동시간 제한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며, 한국 경제 규모에 걸맞는 사회안전망이 구축되어야 마땅하다. 이는 현대국가에 있어 정언적 의무사항에 해당한다. 핵심은 시행의 여부가 아니라 의지를 담아내는 해당 정책의 정합성과 현실성, 일관성의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1장 ‘시대의 현안’과 17장 ‘스핀햄랜드 및 노동자기금의 경험에 대한 성찰’에 담았다.

 

저자소개

저자 : 이래경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부 입학 후, 1975년 서울대생 김상진 할복자살 사건과 1980년 광주민주항쟁과 관련된 일련의 시위로 두 번 제적을 당했다. 서울대학교 공대생으로서는 처음으로 1996년에 명예졸업장을 취득했다. 다양한 사회 경험 후 독일의 대표적 기계공업사와 합자한 (주)호이트한국 대표이사를 27년간 역임했다. 민청련 발기인 및 초대 상임위원, 민주기업가회의 회장, 한반도재단 이사 및 운영위원장, 국민주권연구원 상임이사를 지냈으며 지역 시민사회 중심의 보살핌 운동을 지향하는 사단법인 일촌공동체를 설립했다.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공동대표를 지낸 후 현재 사단법인 다른백년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철든 이후 시대와 사건 속에서 정신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너와 내가 우주이고 역사’라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서로 만나야 연대가 있고, 진보의 방향으로 ‘다른 백년’이 시작된다는 믿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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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0/04/16-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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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느끼듯이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점은 의심에 여지가 없지만, 이러한 돌출사태가 새로운 세계질서(NWO, New World Order)의 출범을 알리는 왕좌의 역할을 할지, 또는 많은 이들이 학수고대하였듯이 세계화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것에 머물지, 의견이 나뉘어 있다.

 

The COVID-19 Game-Changer

COVID-19는 게임체인저

지난달 중국에서 처음 시행하고 이후 서구 전 지역으로 확산된 COVID-19에 대한 현재 같은 엄청난 봉쇄적 방역조치를 세계는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했다.

오로지 공공보건이라는 이유로, 마치 계엄령이 내려진 듯, 수 주간 고립되어 식료품과 의약품 그리고 은행거래와 같은 기본적 서비스 외에는 외출을 금한 적은 지난 전쟁의 시기에도 없었다.

전례가 없는 사태로 인해 어떤 물리적인 충돌(전쟁)보다 급격히 국민경제가 황폐화되면서, 국유화와 공적 구제의 논의가 시작되고 있으며 시민집단들은 어느 때보다 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빠졌다.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벌어지고 우리들 삶이 며칠 사이에, 극적으로 표현하자면 하룻밤 사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서구인들은 망연자실하고 있다.

연극하듯이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사실들에 대해, 겨우 정신을 차려가며 코로나바이러스가 새로운 질서NWO를 가져올 왕좌의 출현인지, 모두가 학수고대 하였듯이 세계화에 치명타를 날리는 사건이지, 두 개의 입장으로 나뉘어져 논쟁이 시작되고 있다.

 

NWO vs. Anti-Globalization

새로운 질서NWO vs 반세계화

각 입장마다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관점들을 지니고 있다.

새로운 질서NWO라는 관점은 서방의 정부들이 경제의 주요한 영역을 통제하고 장악하거나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내부에서 다시 두 개의 상반된 입장(사회주의로 이행과정이냐, 본질적으로 파시즘화이냐)으로 갈라진다.

이들에 의하면, 일단 초기에는 각국 정부가 돌발적 사태에 대해 독자적이지만 비슷한 유형의 대처를 진행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공동적인 노력을 통하여 지정학적 또는 지구적 차원의 일반적 계획을 수립할 것이고, 현재의 긴급한 의료위기 상황에 대응한 ‘지구적 정부’의 구축을 위해 노력하면서 결국은 모든 영역에 걸쳐 ‘지구적 정부’의 영향이 커지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반면에 반세계화라는 입장에서는, 트럼프와 몇몇 서구 지도자들처럼 즉각적으로 전략적 영역의 산업에 대한 부품공급체계(supply chains), 예를 들어 제약과 의료기기 생산, 등을 해외기지에서 국내로 회귀시키기를 원할 것이며, 가까운 미래에 지구는 결코 평평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듯 경제적 ‘자국우선’주의의 회귀경향을 사회적 정치적 영역으로 확산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국경개방, 자유무역, 유엔조직 등은 과거의 산물이며, 국가주의라는 시대정신, 국경강화, 공정한 무역(관세징수), 정치적 다자주의의 축소 등으로 대치된다는 것이다.

 

The Death of The “Old World Order

구질서의 종말

현재의 시점에서 미래에 관한 상기의 두 가지 관점 중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날지 또는 두 관점이 서로 섞이면서 하이브리드적 시나리오로 진행될 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다만 구질서(OWO, Old World Order)는 결코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구질서OWO란 단극체제, 양극체체 또는 다극체제 중 무엇이라 칭하던지, 미국과 소련 또는 중국 간의 내부경쟁을 통하여 하나의 세계를 지향 하던 경향성을 의미한다.

이런 흐름은 트럼프가 등장하면서 역류하기 시작했으며 주로 통상분야에서 강하게 나타난 반면에 국가 간의 국경선을 넘나드는 인적 자유이동에는 미미한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COVID-19 발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뒤늦게나마 협력적 대응이 가장 효과적 인 것을 인정하면서도, 물론 트럼프가 선두에 서서 시작했지만 많은 국가들도 역류적인 경향에 따라 자국의 이익에 우선하려는 본능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과 경향은 신자유주의가 가르치는 국제관계에 대한 교의, 즉 같은 가치와 이해를 공유하는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같은 행동의 지침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불신하는 것이며, 실제로 신자유주의적 교의가 증명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소위 세계적 명사들에 의해 인용되었던 온갖 화려한 언사와 형식과 현란함을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추구했던 예의 협력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은 신속하게 ‘신자유주의’를 포기하고 ‘신현실주의’로 돌아섰다.

 

The NWO

새로운 질서

지구적 규모의 위기가 초래되면서 새로운 질서이론NWO이 추구하는 변화가 이루어 질 듯도 싶다. 지난 시기의 비협조적이었던 혼돈상황에서 벗어나 보건위기에 대응하는 긴급조치를 통하여 보다 협력적 방향으로 나가는 것은 자연스런 해법이며, 새로이 형성된 국유화된(nationalized) 경제권(특히 EU 안에서) 간에 형성될 합동재건기금(joint reconstruction fund) 그리고 정기적으로 실시될 다자간의 봉쇄훈련이라는 ‘비상법규’를 매개로 경제적 정치적 영역으로 확장되어 갈 듯 하다.

그러나 Schengen Zone(유럽 26개국이 참여한 무관세 지역)은 이번 위기를 통해 최소한 원형 그대로의 형태로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며, 지난 몇 주간 실시된 방역의 봉쇄라는 연쇄적 퇴행(reaction)과정에서 개별국가마다 자신의 이해를 방어하기 위해 어떻게 반응했는지 결과에 따라 향배가 결정될 것이다.

이번 위기 또는 유사한 사태가 향후 전개될 경우, 국가단위(또는 EU라는 지역단위)에서 즉각적인 봉쇄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아마도 주도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개별국가 단위에서 생존을 위하여 폐쇄적 자급자족의 양상을 보일 것이고, 이는 실제적으로 지역단위의 중앙 결정에 따라 협력한다는 기존 합의에 반하여, 역설적으로 반세계화의 교의에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Anti-Globalism

반세계화

실제 지속적으로 반세계화적 시나리오를 향해가면서 개별국가 단위에서, EU같은 초국가적인 지역단위 대신에, 자국 내 유기적이며 자급자족의 경향을 내보이면서, 한편에서는 여전히 과거에 추구하였던 세계화라는 강력한 전설(legacy)속에 갇혀 있으면서도, 독자적인 국가주권을 더욱 강화하려 할 것이다.

이는 필자가 연전(年前)에 묘사한 트럼피즘의 경향이 현실화되는 것을 의미하며, 성향이 같은 국가들이 모여 가치와 이해를 공유하면서 신자유주의와 신현실주의가 모순적으로 결합된(twist) 형태로 협력을 모색해 나갈 것이다.

기존 세계화의 종말은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BRI)에 가입하는 것보다 트럼피즘을 수용하는 소수의 국가들에게 이점을 가져다 줄 것이다. 전자(BRI)의 경우에는, 중국이 미국보다 2개월 먼저 겪은 COVID-19로부터 회복된 장점(다시 재발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에서 특별한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이후에 전개될 지구적 규모의 체제 변화에서 많은 것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취해야 하는 접근은 거대전략의 이해(利害)를 확산시키기 위하여, 복잡계 이론과 전략사고(Chaos Theory & Strategic Thought)에 의거하여, NWO의 관점에 따라 비대칭적인 세계질서를 창출하는 것이다.

다시 표현하자면, 트럼피즘을 추구하는 미국은 반세계화 모델을 선호하는 반면에 중국은 새로운 질서NWO모델을 지지한다.

 

Predictable Constants

예측가능한 상수들

앞의 두 가지 상반된 관점 중의 하나 또는 하이브리드적으로 미래의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몇가지 변하지 않을 상수들이 존재한다.

우선은 국제적 백신 캠페인의 성공 여부에 따라 사회적 세계화라는 사람들의 자유왕래가 급격히 축소되면, 국가단위에서 과거 서구사회에서 기본적 자유로 묘사되었던 내용들을 희생시켜 가면서라도 개별정부가 스스로를 위하여 전례없이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사회적 변화의 하나로 모든 시민들은 일정 나이에 이르면 군대복무와 같이 의무적으로 공공의료 봉사에 참여하여 향후 또 다른 보건위기가 발생하면 의료진을 대신하게 될 것(또는 긴급상황 시 정부의 계획에 의하여 해당되는 정부조직 내 또는 사회봉사에 대체근무)이며, 또한 대중언론매체들에 대한 검열관리가 강화될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 있어서도 개별정부들은, 이를 사회주의적이라 부르던 파시즘적이라 칭하던, 경제활동에 대한 통제를 늦추지 않을 것이며, 개별시민들이 정부에 보다 많이 의존하게 되는 대신 사회적 혜택(이전소득 등)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새로운 질서NWO와 반세계화 관점의 차이만큼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국가 간의 관계가 지구적 규모의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던가(NWO), 협력을 기피하던가(반세계화), 아니면 지역적 수준에 집중(하이브리드)하는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다.

 

Concluding Thoughts

결론적 내용들

새로운 질서의 도래가 이루어질지, 아니l면 기존의 세계화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지 아직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어떤 결과가 이루어지던, 현재의 상황은 세계가 수년 전부터 염려해 왔던 블랙스완(검은백조, 아주 예외적인 상황)의 사건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개별적 방역의 봉쇄조치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강화되어 갈 것이며, 결과적으로 서서히 현존의 질서를 대치하며 새로운 세계의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제목처럼 던져진 화두에 대한 확실한 모습이 언제쯤 이루어질 것인지 시간적 프레임은 불확실하지만 한가지 가장 중요하게 지켜보아야 하는 변수는, 진행중인 위기로부터 다양한 개별국가들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선호하는 방식인 반세계화와 중국이 지향하는 새로운 질서NWO간에 이루어지는 경쟁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듯이, 중국이 위기로부터 먼저 회복되어 세계를 돕는데 앞서 나가는 반면에, 이러한 상황은 차후 트럼프가 취하는 행보에 따라 전향적인 방향으로 변할 수도 있다. 누가 승자가 되던 누가 패지가 되던 누가 웃고 누가 울게 될지는 알 수는 없어도, 위에 언급한 세가지(NWO, 반세계화, 하이브리드)의 시나리오에 따라서 세계는 개선되거나 악화되는 두 가지의 방향 안에서 크게 변하게 될 것이다.

이 칼럼 기사는 ‘One World’에서 발췌된 것입니다, 2020-03-20

Andrew Korybko

모스크바에 주재하는 미국인으로 아프리카-유라시아에 대한 미국전략, 중국의 일대일로 및 하이브리드(이념선전, 제재, 문화, 홍보조작 등)전쟁에 대한 국제정치 전문연구자

금, 2020/04/17-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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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고든 바이런【1】은 장시〈Childe Harold’s Pilgrimage〉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자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유명해져 있었다.”(I awoke one morning and found myself famous) 는 말로 소감을 표현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우리는 이렇게 표현해야 할 것이다. “어느 날 아침에 잠에서 깨어 보니 우리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We awoke one morning and found ourselves to live in another world).

코로나-19 전염병이 맹렬하게 확산 중인 상태에서 코로나-19 이후의 변화된 모습을 예측하는 것은 너무 주제 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초래한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사태의 진행을 예의주시하고 이미 발생한 예후를 조심스럽게나마 진단해보는 것은 결코 이르지 않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세계로 양분될 것이라는 점이다. 즉, 각국이 처한 조건에 따라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우리가 이전에 살았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 되어있을 것이다.

세계1차대전이 끝날 즈음 미국 시카고에서 시작된 스페인독감은 2년여에 걸쳐서 2,500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내면서, 전사자 900만 명이었던 세계1차대전보다 2배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스페인독감이 전세계에 빠르게 확산된 것은 전쟁의 종식에 따른 각국 병사들의 본국 귀환 때문이었다. 전쟁이라는 이벤트가 없음에도 코로나-19가 이렇게 빠른 시일내에 팬데믹이 된 것은 지구촌의 세계화에 있다. 이번 코로나-19의 팬데믹은 신자유주의가 주조한 세계체제 그 자체가 전염병을 팬데믹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기능을 하였다.

신자유주의의 두 가지 기제가 작동하였다. 하나는 자본과 무역의 자유화에 따라 무역의 주요 대상이 과거의 자원이나 완성품에서 소재와 부품으로까지 확장된 가치사슬의 글로벌화(Global Value Chain)에 따른 인적교류 증대다. 또 하나는 정부의 공공지출을 삭감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교의에 따라 각국의 사회복지와 공공의료 프로그램의 축소다. 그 결과가 이번 코로나-19의 빠른 팬데믹 확산이다.

이렇게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한 지역에서 발생한 전염병이 순식간에 전지구적으로 확산하는 것을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가 구축한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코로나-19 확산의 고속도로 역할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한 대응은 가장 원시적인 방법인 국경을 통제하고 개인의 이동을 금지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물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편입된 정도에 따라 각국의 통제의 수준은 다르겠지만 기본적인 대응은 국경 통제다. 이번 사태로 셍겐조약에 따라 역내 국가들의 자유로운 이동권이 보장된 EU조차도 역내 국가들의 국경 통제로 셍겐조약【2】의 정신은 실종되었다.

국경 통제와 개인의 이동권 제한으로 특징되는 지구촌의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에서 양 극단의 모델을 보여주는 두 개의 나라가 있다. 혹자는 한국식 모델과 중국식 모델을 얘기하지만 오히려 더 극명하게 차이를 보여주는 곳은 남한과 북한의 모델이다. 북한은 아예 국경을 봉쇄하였고 국내적으로는 최장 40일간의 격리,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를 통해서 가장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e) 정책을 실행했다. 반면 남한은 국경을 열어놓았으며 사회적 거리두기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방식으로 이뤄졌고 국제적인 호평속에서 개방모델의 전형을 보여줬다. 세계 각국은 남한과 북한의 두 모델 사이에서 어떤 국가는 더 강력한 통제를 다른 국가는 좀 더 느슨한 방식으로 대처방식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상태에서 불가피한 가택연금이나 다름없는 자가격리라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가장 원시적인 대책이지만 전염병을 차단하는 가장 강력한 조치다.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국가간의 자유로운 이동은커녕 집밖도 못나가는 기묘한 형국이다. 각국은 말 그대로스트레스 테스트【3】를 받고 있는 중이다. 각국은 생존을 위해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개인의 자유에 대한 통제와 함께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쏟아내면서 이 힘겨운 스트레스 테스트를 겪고 있다.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와 역학조사를 위해 개인의 사생활을 완전히 발가벗기고 있는 상황이 뉴노멀이 되었다.

남한과 북한의 두 모델은 글로벌한 세계체제 속에 편입된 정도를 반영한 대처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북한 모델은 미국과 UN안보리가 강요한 경제제재로 강제된 모델이다. 북한이 방역물자 등을 외부에서 들여올 방법이 없는 조건에서 국경을 봉쇄한 것은 최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남한은 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자본시장, 상품시장, 인적교류 등 모든 분야에서 개방하였고, 이후 각국과 FTA를 체결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전면적으로 깊숙이 편입되었다. 이런 조건에서 남한의 코로나19에 대한 개방적 대처 또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잘 알다시피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워싱턴 컨센서스【4】의 이데올로기에 따른 결과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198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었던 라틴아메리카를 시발로 1990년대 동구 사회주의권의 시장경제로의 체제전환과 함께 가속화되었고 이어서 아시아 외환위기를 거치고 각국이 FTA를 체결하면서 지구촌을 거침없이 세계화 하였다. 거침없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이 지구촌 주민들과 국가들을 양극화의 정점으로 끌고 가던 순간에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였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천지는 불인(天地不仁)하다고 했듯이 코로나-19는 지구촌의 구석구석을 강타하였다. 공공의료시스템을 갖춘 곳은 그나마 덜하지만 이를 갖추지 못한 나라들의 가난한 사람들을 정확하게 타격하였다. 코로나-19의 국가간 전파 초기에 숙주가 된 감염자들은 비즈니스든 아니면 여행이든 해외를 나다니는 사람들이었지만, 국가 내의 지역감염이 되는 순간 무방비 상태에 있던 가난한 사람들이나 노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주요 표적이 되었다. 코로나19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 층들이 바로 이들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만들어낸 부의 양극화로 가난해진 사람들, 그리고 국가의 공공지출 삭감으로 공공의료시스템이 망가져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노인 등 병약자들이 코로나19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것이다. 신자유주의 물결이 지나간 곳에서는 ‘국유화’ 단어는 사라졌고 ‘민영화’가 이를 대체했다. 이런 과정에서 의료의 공공성은 약화되었다. 미국의 경우 빈민층은 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는 ‘국유화’라는 단어를 다시 소환하고 있다. 스페인은 의료시설을 일시적으로 국유화했고 미국은 전시법까지 동원하였다.

양극화로 불평등이 만연된 세계에서 코로나-19는 단계적으로 빈민층에게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 먼저 코로나-19에 대한 예방, 진단, 치료, 자가 격리 등 코로나-19에 대한 노출과 대처에서 불평등 문제다. 미국의 경우가 전형적이다. 한국의 경우 진단에서 치료까지 무료인 반면 미국의 경우는 정부가 개입하기 전까지는 공공의료제도의 취약으로 민간의료보험이 없는 경우 400만 원 정도의 진단비용이 들었다.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보험에 가입할 형편이 되지 못하는 개인은 수천만 원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여 치료 자체를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 재택근무가 확산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빈민층이 종사하는 직종은 재택근무와는 거리가 멀다. 가장 단적인 예가 밀집된 곳에서 일하는 콜센터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업무 특성상 마스크를 착용할 수도 없고 재택근무를 할 수도 없는 직종으로 코로나-19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가 야기할 다음 단계는 경제 불황이다. 이 불황에 따른 고통을 1차적으로 겪는 층도 빈민층이다. 구체적으로 서비스업종의 자영업자, 고용안정성이 없는 시간제 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 월세입자 등이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코로나-19가 짧은 기간에 종식되지 않고 상대적으로 장기화되면 이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될 것이다. 대응책이라고는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사회적 격리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길거리 자영업이 1차적으로 타격을 받고, 이어서 노동유연화(해고의 용이성)가 높은 국가들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순차적으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영업 단절을 겪는 자영업자들과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사라진 노동자들에게 마트의 사재기 뉴스는 남의 얘기일 뿐이다. 수입이 끊어진 상태에서 매월 꼬박 꼬박 지불해야 하는 상가 임대료 및 주택 임대료는 이들에게 지불 위기를 가져다 줄 것이다. 이런 상황에 가장 노출된 사회가 미국이다.

코로나-19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지만 그 피해의 결과는 신자유주의가 주조한 세계를 거울처럼 반영할 것이다. 각국은 신자유주의에 편입된 정도에 따라 그에 걸맞는 정도의 대처와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말을 뒤집으면 코로나-19 사태가 몰고 올 빈민층 고통 편담을 전사회적 고통분담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사회적 연대의 힘에 따라 그 사회적 비용은 각 나라별로 달리 나타날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민중의 사회적 연대의 힘이 얼마나 조직되어 있느냐에 달렸다. 사회적 연대의 힘이 약한 사회는 그만큼 더 사회적 갈등이 폭발할 것이다.

코로나-19로 가장 위험한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에서 순식간에 코로나-19가 확산된 것은 트럼프 정부의 어설픈 대응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미국이 신자유주의 종주국이라는 점을 간과하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미국은 신자유주의 교의가 작동되는 시스템 그 자체다. 2008년 금융위기의 발원지임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처방을 하지 못하고 신자유주의 체제 작동 메카니즘을 유지한 채 모기지로 집을 구입했던 서민들과 미국 밖의 나라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면서 임기응변식 땜질 처방으로 위기를 넘겼을 뿐이다. 코로나-19 사태는 형편없는 공공의료시스템, 세계에서 가장 쉽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노동유연성, 방역물자의 해외 아웃소싱으로 인한 미국 내 제조업 부재 등 미국의 취약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미국이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저항력이 얼마나 취약한지 잘 보여주는 것이 실업수당 신청 숫자다. 본격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된지 일주일 만인 3월 셋째주(15-21일) 실업수당 신규 신청자가 328만 건을 넘겼다. 이 수치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향후 단기간에 코로나-19를 잠재우지 못하면 1920년대 대공황 시기보다 훨씬 많은 실업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공포스러운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은 미국의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이 고용유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구조조정이 가능하게 만든 극단적인 노동유연화 정책 때문이다.

이런 사태의 심각성 때문에 발 빠르게 미의회는 2조2천억 달러(약 2천700조원) 규모의 경기부양 패키지 법안을 통과시켰고 그 중 22.7%인 5천억 달러(616조원)를 2천5백억씩 실업수당(실업보험 포함)과 개인에 대한 지원을 포함하였다. 연소득 7만5천 달러 이하 개인에게는 1,200 달러의 현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응급처치를 하였지만 문제는 코로나-19를 조기에 통제하지 못하면 미국이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치솟을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면 미국은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가 가장 강력하게 지배하는 사회적 양극화가 정점에 이르러 빈부격차가 극심하고 공공의료 시스템이 형편없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종차별과 같은 편견이 심하며 총기 소유 자유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폭동과 같은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가장 농후한 국가가 미국이다. 최근 미국에서 총기 판매 급증이 이를 반영하고 있다. 미국이 코로나-19가 촉발시킨 미국-내 모순을 국내적으로 수습하지 못하면 그 불똥은 경제적 차원이던 전쟁 차원이던 미국 밖으로 전가될 것이다.

코로나-19는 현재 진행형이며 그 확산의 정도에 따라 지구촌에 어떠한 파장을 일으킬지 그 폭과 깊이에 대해 미지수다. 이에 대한 각국의 정책 또한 이제 시작 중이다. 코로나19는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흐름에 각 나라가 능동적이든 피동적이든 동승할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신자유주의 정책의 다양한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우리의 의식, 관념, 경제시스템, 국제질서, 국가 정책의 자율성 등 우리사회의 모든 가치와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테스트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사회적 연대 또한 테스트할 것이다. 코로나-19가 더 지나가봐야 알겠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새로운 대안이 모색되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1】 George Gordon Byron. 영국의 시인. 1788~1824.

【2】 1985년 프랑스, 서독, 네델란드, 벨기에, 룩셈부르그 등 5개국이 맺은 조약으로 국경 개방조치가 주 내용임. 이후 EU가 창설되면서 참여국이 확대되었다.

【3】 경제와 경제외적 변동에 대해 금융기업이 얼마나 대처할 수 있는지를 평가

【4】 1980년대 말 워싱턴에 소재하는 미재무부, IMF, WB 등이 개발도상국과 90년대 사회주의권의 체제전환 과정에서 관철한 정책들을 일컫는다. 공공지출 삭감 등의 긴축재정, 변동환율제와 외환시장 개방, FDI와 무역자유화, 공기업 민영화, 탈규제 등의 정책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 이데올로기 컨센서스를 말한다.

 

김서진

(사)개성공단기업협회 상무 / 북한학(경제·IT)

토, 2020/04/18-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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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연방의회 의원의 입법 활동서면 인터뷰>

연방의회 바이에른 아욱스부르크 지역구 의원 울리케 바르 (Ulrike Bahr, 사회민주당•SPD) 의원실 답변으로 본 독일 연방의회의 입법과 의원의 역할:
상임위원회 법안 검토보고 및 토의과정을 중심으로

작성자: 지역구 보좌관 크라취(Kratzsch)

 <각 교섭단체는 상임위원회별로 주제에 따라 검토보고 의원을 둔다>

 

1. 연방의회의 한 의원이 공약사안 등과 관련하여 야심적인 법안을 발의하고자 하는 것을 상정하였을 때, 이 과정에서 의원, 의원실, 의회공무원 등이 어떠한 역할로 어느 정도의 기여를 하는가?

답변:

a) 의원의 역할

바르 의원은 ‘가족위원회’(가족/노인/여성/청소년 위원회 약칭) 및 그 산하 ‘시민연대소위원회’ 상임위원이다. 추가로 보건위원회 및 가족위원회 산하 아동소위원회 대리위원이다(해당 상임위 및 소위 상임위원 궐석 시에 대리).

연방의회 의원들은 다양한 상임위 가운데 적절한 위원회에 배정받음으로써 전문정치가가 된다. 각 원내 교섭단체는 한 상임위 내에 전문 주제에 따라 각각 전문 검토보고 위원을 둔다. 바르 의원은 가족위원회에서 “아동‧청소년복지, 시민연대, 취약아동건강” 사안 등에 대한 전문검토 보고자이다.

법안이 연방의회에 발의되는 것과 관련하여 먼저 구분해야 할 것은, 누가 발의자이고 어느 상임위가 주관 상임위인가이다. 그러므로 바르 위원의 경우, 가족부가 주관상임위이고 해당법안이 바르 의원의 전문검토보고 분야에 해당하는가가 관건이 된다.

대부분의 연정교섭단체의 법안은 해당 부처에서 준비되고, 내각(국무회의)에서 의결되어 의회에 발의된다. 이어서 연정 교섭단체는 법안의 변경 여부에 대하여 토의를 한다. 의원발의법안은 사실상 야당의원들이 발의하는 것인데 의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바르 의원이 찬성한 동성혼인허용법(민법개정)”을 사례로 본 당과 의원의 역할을 보자면)

연방의회가 열리는 매주 사회민주당(SPD)은 의원 전원이 참석하는 의원총회를 개최한다. 여기에서 연방의회 본회의를 앞두고 논의될 법안과 의결될 법안에 대한 토의가 이루어진다. 당에는 연방의회의 각 상임위원회 구성에 상응하는 원내 교섭단체 워크그룹(Arbeitsgruppe/AG)이 존재한다. 각 워크그룹 대표는 여기에서 현안의 내용과 각 상임위원회의 토의 및 표결 결과에 대하여 설명을 한다.

이 과정에서 예컨대 바르 의원은 관련 상임위원회와 사회민주당 소관 워크그룹의 논증을 비교하여 어느 입장을 따를 것인지를 결정한다. 당의 표결 권고(당론)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각 의원은 여기에서 자기 당의 모든 의원과 최고위원회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개진할 수 있다. 표 분산을 막기 위해서 당론 구속이 존재하는데, 원내 교섭단체는 의원총회가 진행되는 동안에 해당 워크그룹 대표를 통해 소속의원들에게 표결권고(당론투표)를 전달한다. 하지만 의원들은 법적으로 이에 구속받지는 않는다.

매 상임위원회 회의가 있기 전에 당의 상임위원들은 소속 당 워크그룹과 만나, 상임위 회의에 대비한 논의를 한다. 검토보고자들은 상임위에서 토의될 사안에 대하여 정보를 제공하며, 여기서 의원들은 특정 사안이나 법안에 대한 토론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정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 당 소속 워크그룹이 상임위에서 법안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가 조율된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워크그룹이 스스로 이니셔티브를 주도하고자 하면 스스로 법안이나 의안을 작성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연정의 상황에 따라 연정파트너와 조율을 하고 각 교섭단체별 의결을 거쳐 상임위나 본회의에 회부되어야 한다.

검토보고자는 상임위에서 다른 교섭단체에 대하여 자기 교섭단체가 사안에 대하여 어떻게 결정하였는지에 대하여 설명한다. 예컨대 바르 의원의 검토보고 사안인 경우 바르 의원이 워크그룹 및 다른 동료의원과 원내 교섭단체의 제1 대화창구가 된다. 바르 의원은 검토보고에 충실을 기하기 위하여 유관 기관 및 활동가들과 수많은 면담을 진행한다. 물론 비판적 견해도 환영한다. 이로써 자신의 결정이 가능한 현실적이고 정의롭게 내려질 수 있도록 최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형성하기 위해서이다. 바르 의원은 교섭단체 내 워크그룹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판단과 평가 및 바람직한 수정사항 등을 다른 위원들에게 전달한다.

 

b) 각 의원의 보좌진

보좌진은 바르 의원을 위해 내용적인 작업을 한다. 문의사항에 대하여 리서치를 하고, (전문가) 소견을 청취하고, 간담회 일정을 준비하며 의원을 위한 현안보고서를 작성한다. 특정사안에 있어 불명확성이 존재하는 경우 바르 의원에게 완전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보좌진이 활용할 수 있는 거대한 정보원으로서 예컨대 연방의회학술서비스(입법지원실)와 연방통계청 등이 있다. 보좌진들은 다른 의원실로부터 정보를 입수하기도 하며 소속 당 보좌진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c) 정당의 전문위원

사회민주당 원내 교섭단체에는 각 상임위에 상응하는 워크그룹에 최소한 1명의 전문위원을 배치하고 있다. 전문위원은 의원들과 보좌진들을 응대하여 법안 제출 및 토의 과정에서 이들을 내용적으로 지원한다. 전문위원들은 워크그룹 대표들과 밀접하게 공조한다. 각 의원실의 업무가 전문위원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할 수 있다. 전문위원들은 다른 원내 교섭단체들, 특히 연정 파트너와의 회합을 주선하여, 법안의 논쟁 부분을 적시에 인지하고, 필요한 경우 의견 조율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주나 지자체 의원 보좌진과의 공조는 이루어지지 않는데, 이는 법이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민주당 당중심부도 사회민주당 원내 교섭단체와는 별도로 움직인다.

 

d) 연방의회 공무원

연방의회학술서비스(입법지원실)의 학술지원직(입법조사관)들은 현안들에 대한 정보를 중립적으로 의원들에게 제공한다. 이러한 작업은 단지 의원이나 의원실의 의뢰가 있는 경우에만 이루어진다. 이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각 의원실에 달려있다.

상임위원회를 위해 일하는 연방의회 직원들은 조직 관련 사무지원인력으로서 일한다. 이들은 의사규칙의 준수를 살피면서 회의록을 작성한다. 입법과정에는 내용적으로 일체 개입하지 못한다.

이와 달리 각 부처의 공무원들은 법안 작업을 하며 법안의 구성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이들이 부처의 정치적 의지와 지시에 구속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법안 검토의원 아닌 다른 사람이 대리한다면, 그것은 의회라 할 수 없다>

 

2. 법안의 발의 및 상임위원회 토의 과정

a) 상임위원회 참석자: 상임위원회 위원

▪상임위 위원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 대리참석자가 지정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대리위원이 존재한다. 보좌진이나 입법조사관에 의한 대리는 불가능하다. 회의는 위원회가 선출한 위원장에 의해 진행된다. 위원장은 회의를 가능한 중립적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검토보고자는 각 원내교섭단체의 의원이며, 이들이 가장 먼저 법안과 의안에 대하여 발언을 한다.

▪연방의회 상임위원회 직원은 표결‧발언권이 없이 회의에 참석하여 회의진행을 지원하고 회의록을 작성한다.

▪연방정부 장관 및 차관 또는 부처의 대표단은 의원의 질문이 있는 경우 배석한다.

▪공청회 전문가는 해당 전문사안과 관련하여 초빙되어 의원들에게 해당 사안에 대하여 의견을 진술하고 질의응답을 한 후 해당 사안에 대한 토의가 끝나면 퇴장한다. 공개 공청회인 경우는 예외이지만, 일반적으로 상임위원회는 비공개로 진행된다.

▪연방의회학술서비스(입법지원실) 입법조사관의 경우, 미리 신청 등록을 한 경우 ‘등록된 게스트’로 상임위원회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허용되지만, 발언권은 주어지지 않는다.

 

b) 상임위원회 회의 진행

상임위원장에 의한 개회선언

▪의사일정의 소개

▪간사(일반적으로 워크그룹 대표)들이 회의 시작 전 진행일정에 대해 최종 합의: 당일 토의사항에 대한 연기라든지 표결 진행 등

▪검토보고자의 보고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의원의 직무이며, 입법조사관(전문위원)이 대신할 수 없다. 상임위 위원이 회의에 참석할 수 없는 경우, 반드시 대리위원을 지명하여야 한다.

 

c) 상임위 법안 토의 및 의결 과정

법안이 상임위에 도달하면 토의가 시작되는데, 각 원내 교섭단체의 입장을 표명하는 검토보고로부터 시작된다. 이어서 법안의 세부사항에 대한 토의가 이루어지며, 이는 연방의회 의사규칙이 정한 순서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진행된다. 모든 수정요청 사항은 위원회 다수결로 확인되어야 한다.

연정 원내 교섭단체들의 검토보고자들은 각 당 워크그룹 대표들과 때로는 부처 대표단과 회합을 갖고 위원회 표결을 준비하기 위하여 자체 검토보고자 회의를 갖는다. 종종 심야에 이르기까지 아주 오래 걸리는 토의과정에서 법안의 세부사항들이 연정 파트너들 사이에 조율되고 확정된다.

법안의 세부사항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면 위원회는 이에 대한 표결을 실시하며 본회의의결 권고안을 작성한다. 위원장은 결과를 접수한 후 직권으로 수정안을 본회의에 회부한다.

 

3. 법안발의자로서 본회의 의결과정에서 의원의 역할 여부?

사회민주당은 대연정 파트너이고 대부분의 법안은 각 부처에서 올라오며, 그 법안들의 토대는 연정협약이라고 할 수 있다. 바르 의원의 경우 소관 검토보고자로서의 지위에서 관련 법안에 대하여 코멘트를 하고 평가를 할 수 있다. 사전에 당 워크그룹에서 의견조율을 한 후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수정제안도 할 수 있다.

법안은 본회의에서 3회독을 거치며, 각 원내교섭단체가 본회의에서 법안에 대해 코멘트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이 역할을 (상임위) 검토보고자인 의원이 담당한다.

<이 글은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학모 연구위원이 2018년 9월 독일 연방의회 아욱스부르크 지역구 의원 울리케 바르 의원실에 보낸 질의에 대한 답변으로서 독일어 원문을 박학모 연구위원이 옮겼다.>

화, 2020/04/21-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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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해체 이후 근대 세계사는 새로운 단계인 후기근대(late modern age)에 접어들었다. 세계인이 이를 점차 실감하고 있는데, 촛불 이후 남북 코리아는 더욱 그러하다. 새로운 시간의 실감 속에서 최원식 교수가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글 「남북연합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강조하고 코리아 남북연합이 그 촉진자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후기근대의 세계 상황이 두 코리아의 공존체제·평화체제를 가능하게 하고 있으니 이를 위한 내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평자로서는 동의하고 환영한다.

이제 촛불혁명과 판문점, 싱가포르 선언으로 그 가능성은 바로 코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촛불 직전인 2016년 5월 《프레시안》과 ‘다른백년’이 주관했던 4회 강연에서부터 평자는 공존체제, 평화체제보다 ‘양국체제’라는 개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공존체제나 평화체제는 ‘그냥 맞는 말’로 들릴 수 있다. ‘좋아.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공존과 평화를 이뤄낼 실제적 방법, 핵심고리가 중요한데, 이것이 ‘코리아 남북 양국의 주권국가(sovereign state)로서의 상호 인정’에 있다는 것이다. 결국 양국체제가 돼야 공존과 평화가 가능하다. 양국체제란 양국 공존체제, 양국 평화체제의 줄임말이다. 공존과 평화를 실현할 양국체제가 남북연합의 바탕이 될 것도 자명하다.

발제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우선 발제문은 ‘國際(inter-national)’보다 ‘民際(inter-civic)’를 중시하기에 통상 쓰는 ‘(남북)국가연합’이 아니라 국가를 빼고 ‘남북연합’이라 하는 듯하다. 국제(International)에 민간관계가 빠지는 게 아니니 민제라는 말이 굳이 따로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국제와 민제가 따로는 아니겠다. 발제문이 언급한 한중일 관계만 하더라도 국제가 안 풀리면 민제도 어려워진다. 극적 사례는 1992년 한중 수교였다. 국제를 트니 민제가 크게 열렸다. 남북관계는 국제(이 경우는 inter-national이 아니고 inter-state가 된다)가 막혀 민제는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있다 할 형국이니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남북연합 논의에서도 국가(state) 대 국가(state)로서 남북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발제문은 그와 전혀 다르게 본다. 아래 문단은 관련 주장이 집약된 것으로 보이는데, 의외로 ‘양국론’에 대한 ‘경계 긋기’로 시작한다.

최근 세를 얻고 있는 양국론에 대해서도 경계를 그을 필요가 없지 않다. 양국체제론자들의 논의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탓에 단정하긴 어렵지만 남북은 일국도 아니지만 양국도 아니다. 분단으로 두 쪽이 난듯이 보여도 남과 북은 분단체제의 드러남으로 연계된바, 분단체제를 상정하지 않은 양국론과는 애초에 무관하다. 그렇다고 그냥 일국론도 물론 아니다. 정말로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不一不二]. 요컨대 분단체제를 상정한 남북연합론을 설령 통일의 최종형태로 삼는다고 해도 그 연합이 두 나라의 단순 병치가 되기는 애시당초 그른 것이매 남북연합론은 주변 4강의 의심을 풀고 내부의 대국주의를 절약할 요체가 아닐 수 없다. 요컨대 남북연합론은 일국적 통일론과 양국적 반통일론을 가로지르는 중형국가적 분단해소론이다.

국가 대 국가의 문제를 시종 비켜가고 있다. 일국도 아니고 양국도 아니라 한다. 과연 그런가? 현실은 일 민족, 이 국가(one nation two states)이다. 둘이되 하나요, 하나이되 둘[一而二, 二而一]이다. 엄연한 사실이 그러함에도, 즉 이 두 개의 국가가 국제적으로는 모두가 널리 공인된 국가이면서, 막상 양국은 아직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이것이 문제요, 비정상 아닌가? 그러나 「발제문」은 거꾸로 본다. 이런 상태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여기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 ‘불일불이(不一不二)’라 한다. 불일불이란 불가(佛家)의 진리관[中論]을 표현하는 높고 찬란한 언어다. 진리적 불일불이가 ‘분단체제’라는 개념에도 적용되고 있다. “분단으로 두 쪽이 난듯이 보여도 남과 북은 분단체제의 드러남으로 연계된바 …… ”라고 하였다. 분단체제를 이렇듯 고도로 긍정적인 개념으로 보기 때문에, 발제자의 ‘남북연합’이 “분단체제를 상정한 남북연합론”이라 하였다. 그동안 ‘분단체제’란 말은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왔기 때문에 이를 이렇듯 고도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용법이 일반인에게는 매우 낯설다. 분단체제는 남북이 적대하는 체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국가로서 인정하지 못해왔던 체제 아닌가?

거듭 말하여, 현실은 일 민족 이 국가 상태다. 체제 보장은 북미 간에만 아니라 남북 간에도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양국체제다. 과연 무엇이 분단과 분단체제를 영구화시켜왔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둘임을 부정했기 때문에, 둘을 부정한 채로 결코 하나이자고 했기 때문 아닌가? 둘이 서로 인정하는 것이 이 함정을 벗어나는 제1보다. 돌아가는 것 같지만 그것만이 바른 길이다. 『노자(老子)』 22장에서 “곡즉전 왕즉직(曲則全 枉則直)”이라 했던 게 양국체제의 취지와 닿아 있다.

양국체제 없이 남북연합이 제대로 될까? 국(state) 간의 際가 안 열렸는데 民 간의 際가 활짝 열릴까? 그렇듯 국제가 닫힌 채로 가능한 남북연합이란 어떤 것일까? 양국체제가 성립하고 안정돼야 비로소 그 두 국가(state) 간의 남북연합이든 국가연합이든, 낮은 단계든 높은 단계든, 비로소 현실화되는 것 아닌가? 촛불혁명, 그리고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선언으로 이제 양국체제는 목전의 현실문제가 되었다. 판문점, 싱가포르 회담 한참 이전부터 줄곧 강조해온 것처럼 종전과 북미 수교는 양국체제의 입구요 일부다.

양국체제란 1973년 <동서독기본조약> 이후의 동서독 관계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동서독기본조약>에서 양독(兩獨)은 서로를 국가로서 분명히 인정했고, 기본조약 이후 미국은 동독과 수교했다. 그 두 고리가 풀리면서 양독 관계는 안정됐다. 반면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는 이 둘 다 이루지 못했다. 유엔 동시가입으로 코리아 양국체제의 외적 모양새는 일단 시작되었지만 완성되지 못했다. 불완전하고 불균형했다. 그랬기에 그 경로는 금방 닫혔다. 반면 동서독의 양국체제는 안정적으로 지속됐다. 정권이 바뀌어도 존속했다. 이런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당시 남북이 처해 있던 여러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낮은 수준에서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거꾸로 뒤집어서 그것이 마치 아주 높은 수준의 결과였던 것처럼 생각한다면 문제가 된다.

「발제문」의 ‘불일불이’ 구절을 읽으면서 연상을 금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의 유명한 “(남북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구절이다. 이 표현은 매우 외교적인 것인데, 이를 액면가보다 낮추어 읽는 것이 아니라(외교문서를 읽는 기본이다), 오히려 액면가보다 훨씬 높게 읽는 경향이 있었다. 마치 ‘남북은 국가 대 국가로 서로를 (아직 외적 조건과 내적 능력이 부족하여)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뜻이 높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남북은 애당초 두 국가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이기 때문이다’라는 식이다. 그렇게 읽으면 이 구절은 마치 ‘우리가 지금 하나는 아니지만 결코 둘일 수 없다(불일불이)’라는 높은 이상에 남북 대표가 의기투합하여 ‘우리는 결코 두 국가가 될 수 없으니 이러한 불일불이의 상태에서 곧바로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통일로 직행하자’라는 뜨거운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표현한 것이 된다. 실제로 그런 오독들이 꽤 있었다. 서로 국가로 인정하지도 않는데 연합이든 연방이든, 어떻게 가능할까? 여기에 대한 답은 여태껏 듣지 못했다.

끝으로 ‘말이 아닌 말’을 일부러 만들어낼 필요는 없겠다. 위 인용문에서 “양국적 반통일론”이 그렇다. 앞서 설명한 대로 양국체제 없이는 공존체제도, 평화체제도, 남북연합도 담보되지 않는다. 양국체제 자체가 통일은 아니지만, 어떠한 경로보다 통일 촉진적이다. 양국체제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바람직한 통일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반통일’일까? 또 이 말과 짝을 걸어놓은 “일국적 통일론”이란 뭘까? 진보진영에는 실체가 없는 것으로 안다. 북(DPRK) 역시 이 입장을 폐기한 지 오래됐다. 그럼 뭘까? 발제자의 뜻을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런 게 있다면 우스꽝스런 무엇일 듯하다. ‘말이 아닌 말’을 만든 것으로 부족하여 실체 없는 허깨비와 짝을 붙여놓은 꼴이다. 왜 이래야 했을까? 양측에 ‘극단’을 세워놓고 중간에 끼어들어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은 때로 쓸 만하다. 단, 그 양쪽 입장이 단단하고 분명해야 한다. 그럴수록 자신의 입장이 힘을 받는다. 그렇지 않고 ‘말이 아닌 말’과 ‘대립 아닌 대립’을 세워놓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식이라면 별다른 의미나 성과가 없을 듯하다. 또 그렇듯 가로지르는 게 ‘중형국가적 분단해소론’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국가’는 어떤 국가이고(일 국가? 이 국가?), 여기서 ‘분단 해소’는 어떤 해소인지(분단체제의 해소? 분단의 해소?)도 궁금하다. 어쨌거나 지금 필요한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들 사이의 ‘경계 긋기’가 아니라 존재하고 있는 것들의 공통점을 모으는 일이 아니겠나 생각해본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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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4/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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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주요 거리와 광장은 텅 비워가는 중에, 수많은 병원들은 혼잡과 고통 속에 빠져드는 것을 지켜 보노라면 가슴이 무너진다. COVID-19가 유럽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창궐하면서, 팬데믹 현상이 이후 세상을 바꿀 것이 보다 분명해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대처를 할 것이지 결정하는 오늘의 선택에 미래가 달려있다.

우선 코로나바이러스를 세계 공동(일반)의 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물론 이는 물리적 전쟁은 아니지만 전쟁유사상황에 준하는 물자이동의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위기상황에는 본능적으로 위축되고 이기적으로 되기 싶다. 이러한 반작용은 이해를 할 수 있지만 바로 패배로 가는 길이다. 혼자 해결하려 들면 싸움은 길어질 수밖에 없고, 경제적 인명적 피해는 훨씬 커지게 된다. 적(敵)은 폐쇄된 자국주의를 자극하지만, 국경을 넘어선 협력을 통해서만 이를 격퇴시킬 수 있다.

선진국가들뿐만 아니라 취약한 국가군들과 이해가 충돌되었던 지역 간에도 팬데믹을 퇴치하기 위한 국제적 접근이 필요하다. 나는 이 점을 지난 G7 외교장관 모임과 주요한 국제회의 때마다 강조하였다. 유럽연합(EU)은 이러한 노력의 일부이자 주도하는 세력이 되어야 한다.

바로 지금이 연대라는 표현이 빈 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다행히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마스크 수백만 장을 서로 교환하고 독일이 프랑스와 이탈리아 환자를 자국 내 병원으로 수용하면서 이미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 자국주의라는 조치를 넘어서서 국가간 연대로.

해당 책임부서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주요한 의료장비들의 공동구매가 용이해지고 경제촉진 구제정책에 함께 협력하고 외국에서 곤경에 빠진 국민들을 자국 내로 귀환시키는 영사활동의 협력이 이루어 지고 있다. 유럽의회에서 의결이 이루지면서, EU지도자들 간에 유럽단위의 위기관리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하기 위한 공동전략에 협력적 노력을 한층 강화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COVID-19는 국간 간에 또는 체계경쟁을 향한 전쟁이 아니다. 이미 팬데믹의 진행단계에 맞추어 유럽과 중국 그리고 기타 지역 간에 상호지원과 연대가 상호적으로 진행되어 오고 있다. 전염병이 발발되자 유럽은 중국을 지원하였고, 이제는 회복된 중국이 전세계에 의료자재와 의료진을 보내주고 있다. 지국적 연대와 협력의 귀중한 사례가 되고 있고 이를 규범화해야 한다.

COVID-19를 접근하는 한가지 선택은 이를 통해 역사를 변화시켜야 한다. 변화의 내용이 무엇이 될는지 아직 모르지만, 팬데믹이 주는 메시지와 결과에 대해 EU가 중국과 미국이 함께 공동적인 노력을 하도록 일치단결하여 목소리를 내야 한다. 상기 3개의 힘들이 함께 같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만 G20와 UN 역시 달라 질 수 있다.

단순히 정부간의 국제적 공조를 넘어서서, 과학자와 경제학자 그리고 정책입안자들 간에도 협력이 확산되어야 한다. 2008년 세계경제가 수직으로 추락하는 위기에서 구출하는데 G20의 협력이 핵심적 역할을 한 경험이 있다. 같은 선상(線上)에서 다시 한번 그리고 긴급하게 주요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이다.

국제적인 협력을 추진하는데 4가지 우선적 사항이 있다.

첫 째, 국제적인 공공선을 실행하기 위하여는 방역조치와 백신개발에 모든 자원을 공유해야 한다.  둘 째, 금융과 재정적 구제조치와 국제통상의 보호에 힘을 합하여 경제적 타격을 최소화 해야 한다.  셋 째, 건강책임 당국이 긍정 신호를 보내면 닫혀진 국경들을 호혜적 방식으로 다시 개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음해적 정보를 퍼트리는 것을 차단하기 위하여 함께 노력해야 한다.

최근에 있었던 G20 회상회의에서 상기 사항들이 일반적 형식으로 언급되었으나, 정말로 필요한 것은 당장 그리고 수주 내에 다자적이고 구체적인 실행이 유지되고 충분할 만큼 추가되어야만 한다.

추가하여 아프리카에 특별히 중점을 두어야만 한다. 지난 2014-16 년간에 있었던 에볼라 출현으로 이미 경험이 축적되어 있기는 하지만, 전 대륙을 통하여 의료시스템이 전반적으로 취약한 상태에서 감염자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많은 빈곤 국가군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선택의 여지가 없이 비공식 경제를 통하여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야만 한다. 이들 국가군에서는 상하수도 시설도 없는 상태에서 집단적인 캠프생활을 하기 때문에 손을 씻거나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전염병과 싸우기 위해서는 국가재정이 필요한데, 빈곤국가들은 재정에 대해 다음 3가지 자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 외국의 투자, 송금 그리고 관광인데. 그러나 모두 현재 상황에서 크게 타격을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투자자본은 안전지대로 신속히 흘러가 버렸고, 돈을 벌러 외국에 간 빈국의 노동자들은 실직을 당하여 본국으로 송금할 여력이 없다.

현재 세계적 규모의 불황에 직면하여 있는 가운데, 빈곤 국가들이 파탄 상황에 빠지게 하지 않으려면, 재정적 지원과 신용의 제공이 절실하다 – 그것도 매우 긴급하게. 국제금융기구와 (선진국)중앙은행 간의 협력만이 이를 풀어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전반적으로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장기적인 대립을 피할 기회가 있다. 벌써 경쟁 국가들 간에 협력의 긍정적인 신호들이 오가고 있다. 심각하게 감염된 이란에 대해 적대적 이웃이었던 UAE와 쿠웨이트 등이 지원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누구라도 동시에 다자(면)적인 전쟁을 수행할 수는 없는 일이다. UN 사무총장이 촉구하였듯이, 현재의 위기를 평화를 회복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 동안 세계는 비협조적으로 위기의 상황을 맞이했고 경고의 신호를 무시했으며 대부분 국가들은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이제는 분명해 졌다 – 모두가 힘을 합치는 것만이 앞으로 전진하는 길이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2020

Josep Borrell

유럽연합 국제관계 및 안보정책의 책임자이자, 유럽연합 집행위의 부위원장

 

<보충칼럼>

국제적 문제는 국제적 해결을 요구한다- G20의 역할론

급격히 악화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은 무엇보다 공중 보건 측면에서 비상사태이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전파되어 정부가 질병을 억제하고자 극적인 조치를 취했음에도 바이러스는 급속도로 번지면서 국제경제에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수요 감소, 공급망 교란, 불확실성 증가가 이어지면서 일자리 감소가 만연하고 회사가 폐업하고 기타 2차적 경제충격의 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근대에 발생한 가장 엄청난 보건 및 경제의 위기임이 분명하다.

사회의 접촉망을 철저하게 차단하여 바이러스 전파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막을 수 있는지에 따라 코로나-19의 경제적 충격의 영향력이 좌지우지될 것이다. 신속하고 효과적인 조치가 행해지지 않는다면 사망자 및 확진자의 급격한 증가, 보건 시스템의 과부화, 기업의 정상 운영 불가능, 세계 경제의 심각한 결과가 초래할 것이다. 경제 성과와 보건(수명) 사이의 밀접한 상관 관계를 고려할 때 경제가 어려울수록 보건부문 또한 장기적으로 더욱 심각한 영향을 초래하게 된다.

각국 정부가 대내 정책을 점차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동시에 국제적 차원 또한 경시해서는 안 된다. 만약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한다면 해외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국내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호주의 경제적 번영은 코로나-19의 지역적 확산뿐 아니라 무역 상대국 및 세계 경제가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달려 있다. 초연결 세계에서 이러한 점은 모든 국가에서 통용된다. 모든 국가는 다른 국가에서 시행된 효과적인 보건 및 경제 정책과 가능한 협력에 대해 불가피한 이해 관계를 갖는다.

G20 정상들은 이와 관련하여 코로나19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일반종합행동계획’에 속히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 G7은 공동 대응을 논의하고자 비상 화상회의를 소집하고 있다. 이에 G20은 코로나-19의 국제적 대응을 위해 주된 역할을 담당하면서, 국제적 권한에 따른 국제적 대응을 통하여 폭넓은 회원국 (주요 선진국 및 주요 개발 도상국 모두 포함)을 포용해야 하며, 세계 금융위기의 성공적 극복에 기여하여야 한다.

G20 창설의 주요 추진국인 호주는 현재 G20 정책에 목소리를 낼 특별한 책임이 있다. 코로나-19 확산방지용 국제대응을 강화하기 위한 집단간섭 및 안정적으로 세계 경제를 회복하기 위한 조정 정책 모두 G20 대책에 포함되어야 한다.

G20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필요한 세계적 리더십을 보여줄 기회와 의무가 있다. 코로나19는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고 국제 시장의 신뢰 상실과 변동성 증가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세계 금융 위기를 극복한 것처럼 G20 정상들은 전 세계 기업, 시장, 시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증가하는 불확실성과 잠재적인 경제 혼란에 맞서 신속하고 결단력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현재까지는 국가 간 조정 또는 협력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국이 이탈리아에 보낸 의료 물품과 같은 쌍방의 계획을 통해 현재 이탈리아 내 코로나19 발생을 약화시키며 인명 구조에 도움을 주고 있다. 더 많은 국가들이 함께 하면 더 많은 결과를 이뤄낼 수 있다. 국제적 협력을 통해 다른 국가와 함께 하면 국내에서 일어나는 어려운 상황을 더욱 쉽게 이겨낼 수 있다. 반대로 인종집단 및 노인계층을 차별하는 반사적인 대응은 다른 국가들이 위기에 대처하기 어렵게 만든다.

G20 정상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필수 의료물품 이용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정방안에 합의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해당 방안에는 최소한 핵심요소 세 가지가 포함되어야 한다.

첫째로 G20 정상들은 필요한 모든 의약품, 의약품, 소독제, 비누 및 개인 보호 장비의 자유 유입에 대한 수출 금지 또는 제재를 풀어야 한다. 국제 팬데믹에서는 필수 장비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 세계 보건위기 동안 ‘근린궁핍화 (beggar-thy-neighbour)’ 정책에 의존하면 다른 국가에 경제적 어려움 이상으로 훨씬 큰 피해를 주어서 궁극적으로 자국에도 피해를 입히게 될 것이다.

둘째로 국가 정상들은 필요한 의약품의 가격을 낮춰야 한다. 이는 관세, 수입 쿼터 및 정부 부과 비용을 철폐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리고 셋째로 정부는 최소한 세계 최빈국에서도 코로나-19에 대응할 수 있도록 공공보건을 위한 기금을 확대하거나 세계 보건 기구의 코로나-19 연대대응기금에 대한 사업, 자선 및 개인 기부를 장려함으로써 공공보건 재정의 규모를 조정해야 한다.

정부는 시민보호를 절대적으로 우선시해야 하면서 세계 정상들은 경제침체에서 벗어나 세계경제의 신뢰, 성장, 일자리를 복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행할 것임을 함께 다짐해야 한다. 세계 정상들이 타격을 받은 분야 및 중소기업에 공동으로 지원하겠다고 합의하면 불확실성이 완화되고 신뢰가 구축되며 중요한 시기에 경제가 기능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방안에 대한 G20 정상들의 논의는 팬데믹에 대응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증진하고 코로나-19의 사회적,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할 것이다. 호주는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대응을 주도할 기회 및 책임을 지닌다.

위기를 각국이 개별적으로 대처하려 하면 보건 및 경제적 비용이 더욱 커질 뿐이다.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위기를 타개하려면 진정한 국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바로 G20라는 조직을 통해서 가장 효과적이고 합법적인 방안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들의 정상들은 지체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출처 : 동아시아포럼(East Asia Forum), ANU. 2020/03/19.

존 WH 덴톤

파리에 기반을 둔 국제상업회의소 (ICC) 사무총장 그리고 피터 드리즈데일, 호주 국립대(ANU) 공공정책학교 부설 동아시아경제연구소 소장이자 명예교수

 

목, 2020/04/2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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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와 메르스 참사가 대통령 탄핵과 촛불혁명으로 이어진 한국의 당대 정치사를 배경으로 하여, 한국 정부는 코로나19에 매우 기민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했다. 정부의 관심은 오로지 성공적인 방역에 있었겠으나, 그 의도하지 않은 부대작용으로서 한국은 어느새 세계 민주주의의 선진국으로 우뚝 발돋움한 형국이 되었다. 절제되지 못한 신자유주의화의 파고 속에서 사회질서의 방향을 잃은 듯 보이는 영국과 미국의 자국 비판적 언론을 중심으로, 한국의 방역에 대한 칭찬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의 평가는 애초에는 매우 야박했다. 독일의 헌법학자는 한국의 확진자 동선추적 체계를 문제 삼아 보건 파시스트 국가라는 단어를 썼고, 프랑스 정부의 과학자문위원은 한국의 방역체계가 극단적으로 사생활을 침해하므로 유럽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대중적 변호사가 한국을 중국과 다르지 않은 감시국가라고 폄훼한 칼럼이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 대륙이 미국보다 먼저 코로나19의 중심지로 대두하면서, 유럽 언론의 태도는 바뀌었다. 이탈리아의 스키장이 코로나19 전파의 진원지로 알려지고,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호소에도 젊은이들이 클럽에서, 그리고 이후에는 집에서 파티 모임을 그치지 않자, 마침내 국경폐쇄와 주민 이동제한/금지 조치들이 시행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동의 자유라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그런 비상조치들이 지속하면서, 유럽의 경제적 손실과 국민 생활의 질 하락은 ‘2차대전 이후 최대 위기’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그러자 유럽에서 한국의 방역을 보는 관점이 점차 너그러워지더니 결국에는 미국·영국의 여론을 따라 칭찬을 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관심을 표명하는가 하면, 독일에서는 정부 인원을 파견하여 한국의 방역을 배우고자 했다. 독일 보건장관은 확진자 위치추적 앱의 필요성을 제안했다가 정부 회의에서 거부되었음에도, 여전히 앱 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위치추적이 아닌 블루투스 사용 앱을 개발하여 확진자와 근거리에 있는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애플과 구글이 연합하여 블루투스 방식 앱을 개발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뿐 아니라 처음에는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의 상징이던 마스크가 이제는 구미에서도 전략물자 대우를 받으면서, 때아닌 ‘현대판 해적 행위’까지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앱 사용과 함께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오스트리아는 현재 이동제한 조치를 점진적으로 완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 외의 유럽 어느 나라에서도 그와 같은 시도를 하지 못한다. 시민에게 마스크 착용을 독려하고 싶어도 의료인에게조차 마스크가 부족하고, 이동제한 외의 다른 대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식의 표적 검사를 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확진자 동선 추적이 필요한데,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법적인, 또 국민정서상의 문제 때문에 그것을 시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선진국이자 인권 수호의 전진기지인 서구 그리고 미국에서 이렇게 강력한 주민 이동제한 정책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프랑스 르 피가로지의 아시아 특파원은 프랑스 엘리트의 오만을 꾸짖는 기사로 자국 변호사의 한국 폄훼에 대응했다. 한마디로, 이 비상상황에서 ‘뭣이 중헌디?’라고 물은 것이다. 개인정보 보호를 절대시하느라 이동권 제한이라는 기본권 침해를 기약도 없이 지속하는 프랑스 사회의 모순을 따갑게 지적한 것이다.

이렇게 한국이 국경폐쇄는 물론 주민 이동제한조차 시행하지 않은 민주적 방역 선진국으로 인식되면서, 이제 민주주의 선진국에 대한 새로운 판별기준이 등장하게 되었다. 즉 개인정보 보호가 더 중한가 아니면 이동의 자유가 더 중한가? 생명권이 더 중한가 아니면 사생활 보호가 더 중한가?의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반면 정작 한국에서는 확진자 동선추적을 허용한 특별법의 합헌성이나 그것의 실질적 적용 실태 등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나 감시가 이루어진 적이 없다. 물론 비상사태이기 때문이다. 비상사태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개인정보 수집은 불가피하다는 암묵적 합의가 지배적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자유주의 전통이 약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세월호·메르스의 이어진 재난 충격으로 인해서, 한국 사회에서 ‘사생활’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기적으로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 또 생명이 우선이라는 절박감이 내재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시국에 터진 n번방 사건은 한국 사회의 개인정보 보호 개념이 지나치게 무디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조주빈이 피해자 개인정보를 이용하여 범죄를 일삼았을 뿐만 아니라, 권한 없는 공익요원이 주민의 개인정보에 불법적으로 접근하는 일이 너무 쉬웠음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또 그 와중에 한 주민센터 홈페이지에서는 n번방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8일 동안이나 공개했다.

법적 근거도 없는 해외 입국 자가격리자 전자팔찌 착용을 애교스러운 ‘손목밴드’라는 단어를 쓰며 실시하겠다고 해도, 반대보다 찬성하는 국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말하자면 저 프랑스 특파원과 함께 서구의 개인정보 보호가 생명권에 앞설 만큼 중하냐고 따지는 그 순간에, 우리는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한국 정부와 시민의 인식에 대해서도 물어야 한다. 코로나19가 한국을 새로운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떠올리며 동시에 제기한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국가적 비상시에 이동의 자유뿐만 아니라 개인정보 보호 역시 어느 정도로 제한해야 합당한가? 그것의 부작용은 무엇일 수 있는가? 또 그런 기본권 제한이 정확히 비상시국에만 한정되도록, 시민은 국가권력을 어떻게 견제할 수 있는가?

정신없이 달려온 한국 민주주의 고속열차의 속도를 잠시 늦추어 개인정보 보호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하라고, 코로나19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발 빠른 진단키트 개발이나 혁신적인 정보통신 수준과 같은 과학·산업 측면뿐 아니라 수준 높은 시민정신으로 성공적 방역이 가능했다고 자부하는 현시점에서, 그런 자부심을 유지하고 후대에도 물려줄 수 있는 길은 바로 민주주의를 더 공고히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홍찬숙

현재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 독일 뮌헨대학교 사회학 박사, 전공영역: 위험사회 및 개인화 이론, 연구주제: 현대사회의 불평등, 사회변동, 페미니즘.

금, 2020/04/24-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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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가 돌출하자 첫 번째로 확인해야 할 작업은 역사적 유사성을 검색하는 것이었다 – 1914년, 1929년 아니면 1942년? 현재까지 몇 주가 지나면서, 그리고 앞으로도 몇 주 또는 몇 개월 겪겠지만, 역사적으로 전혀 새로운 충격을 맞이하고 있는 듯하다. 일단 당장의 충격으로 미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25% 수준의 위축을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이것은 대공황 시기와 비슷한 규모이지만, 차이는 대공황 시기에는 충격이 몇 년에 걸쳐서 나타났지만, 이번 경우에는 불과 수개월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하늘아래 처음으로 겪는 돌발적 상황이다, 정말 공포스럽다.

지난 3월 초만해도 미국의 실업률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으나, 겨우 4주가 지난 3월 말에는 13% 수준으로 치솟았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다. 더구나 실업률 통계시스템이 실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충격의 첫 주차에는 3.3백만에서 2주 차에는 6.6백만 명이 그리고 연속해서 3주 차에도 6.6백만 명이 실업보험을 신청했다. 이러한 통계에 기반하여 뉴욕타임즈의 경제분석가인 Justin Wolfers는 매일 0.5%로 실업률이 오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속도의 증가라면 이번 여름에 30.0%의 실업률에 도달하리라는 추정이 비현실적인 것만도 아니다.

서구(유럽)의 경제권도 자신들이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잔인하고 심각한 경제적 충격에 직면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충격은 경기변동에 예민한 부동산과 건설업에서 시작하여 투자에 의존하는 산업엔지니어링 그리고 국제적 경쟁이 심한 자동차 산업 등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 이들 분야의 고용 비중은 대충 25%선 미만이지만, 이들의 위축은 경제영역 전반에 점차적으로 확산되게 마련된다.

코로나 방역봉쇄 조치는 서비스 분야에 직격탄을 날린다 – 소매업, 부동산 임대, 교육, 여가산업 그리고 요식업 등 – 이는 미국인의 80%가 직업으로 일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결과는 매우 즉각적이고 재앙적 일수 밖에 없다. 특히 소매업 분야는 이미 온라인 판매로 인해 심한 압박을 받아온 영역으로 임시적인 휴업은 치명적이다. 아마도 상당수의 가게들은 다시 문을 열기 어려울 것이고, 이에 고용된 수백만의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이들 가족들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충격은 다만 미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사회안전망으로 잠시의 휴직에 수당을 지급하면서 하강국면을 완화시키겠지만, 경제 전반에 걸친 붕괴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북부 이탈리아는 단순히 고급스런 관광지역일 뿐만 아니라, 해당 국가 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지역이다. 독일의 GDP는 수출에 크게 의존하면서 미국의 충격이상으로 위축될 것으로 예상한다. OECD의 최근 예측은 전(全)회원국에게 재앙적이며, 특히 바이러스 충격이 이제 시작단계인 일본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임을 암시한다. 그래도 부유한 국가들에 대해서는 일단 충격의 수준을 대충 가늠할 수 있다.

중국은 가장 먼저 지난 1월23일 격리봉쇄를 시행하였으며, 최근의 공식보도로는 약 6.2%의 실업률을 보이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1990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이다. 중국 당국은 줄곧 실업은 자본주의 국가들에게서 나타나는 문제라고 주장해 왔던 터라, 상기의 수치는 중국내의 위기상황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비공식적으로는 임시직 2억 5천만 명의 노동자들이 휴직상태라고 알려져 있으며, 이는 중국 노동자 전체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인도의 경우, 모디 수상의 갑작스런 21일간의 봉쇄명령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누가 감히 측량할 수 있겠는가? 인도의 4억7천만 명의 공식 노동자 중에 겨우 19%만이 사회안전망에 보호를 받으며, 3분의 2에 해당하는 노동자는 취업계약서조차 없으며, 1억명 수준이 임시직에 해당한다. 이들 대부분은 기약도 없이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는 인도가 분할된 1947년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이렇게 거대하게 펼쳐지는 경제의 대추락이라는 인류의 드라마는 추산(推算)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제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올해부터 전세계의 GDP를 신뢰도있게 집계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도상국가들의 경제(emerging market)가 그저 위축되고 있다는 통계 이외에는 별다른 내용을 내놓을 수 없는 처지에 빠졌다. 한 마디로 전세계 경제가 한 순간에 멈추어 섰다.

이러한 붕괴는 금융위기의 결과도 아니고, 팬데믹이 직접적으로 초래한 것도 아니며, 심사숙고한 정책적인 선택의 결과인 점이 전혀 새롭고 급진적인 사태인 것이다. 선택의 내용은 경제를 촉진하는 것보다 멈추어 세워야만 (팬데믹의)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것으로, 이는 인류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미국의 연방의회가, 사회봉쇄를 결정한 수 일만에, 평화시기에 있었던 최대규모의 재난지원책을 결정하면서 연이어 전세계에 걸쳐 유사한 조처들이 뒤따랐다. 국가재정에 매우 보수적인 독일조차 공공부채에 대한 제한을 철회하였다. 전반적으로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연대적 재정구제의 노력을 목격하고 있으며, 조처의 효과는 수 주 내지는 수개월 뒤에 판명될 것이다.

이미 한가지는 분명해졌다. 우선 당장 급한 것은 거대한 금융위기가 도래하기 전에 추세를 되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연방준비위원회의 제롬 파웰의장이 2008년에 준비된 매뉴엘에 따라 조처를 취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사실이며, 금융시장의 모든 영역을 지원하기 위해 매일 새로운 구제 프로그램이 발표되고 있다. 핵심은 연방준비위의 개입 규모에 있다. 봉쇄조치에 따른 광범한 충격에 대처하기 위하여, 이에 응당한 거대한 규모의 유동성이 파도처럼 제공되고 있다.

3월말 경에는 매일 900억 달러의 금융자산이 매입되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규모보다 큰 것이다. 평소에는 연방준비위는 초단위로 백만 달러 정도의 연방채권과 담보성 유가증권을 현금으로 스왑(교환)하여 왔다.  그런데 공포스러운 실업숫자(6.6백만 명)가 발표되던 날인 4월 9일 아침에, 연방준비위는 2.3조 달러어치 금융자산의 구매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신속하고 거대한 대응조처 덕분에 즉각적인 세계금융의 위기를 당장에는 방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장기간 지속될 수요와 투자의 격감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3월에만 미국 가구의 73%가 가계의 수입에 곤란을 겪고 있다고 보고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수입이 끊기면 당장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생필품 부족과 고통 그리고 파산으로 몰린다. 금융채무자들의 부채 불이행이 치솟을 것이고, 금융산업의 손실을 가져올 것이다. 불요불급한 지출은 미루어 질 것이고, 유럽에서는 이미 석유소비가 88% 격감되었다 한다. 신규 자동차 수요는 돌같이 동결되었고 유럽과 아시아 지역의 자동차 업체들은 재고가 쌓여 있는 거대한 주차장에 앉아 있는 꼴이다.

봉쇄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경제에 미치는 상처는 깊어지고 회복은 지연될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중국은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접근하고 있지만, 제2, 제3 돌출의 위험이 도사린 가운데 언제 어느 속도로 정상적인 생활로 되돌아 갈 수 있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극적인 의료사고를 차단한다는 것은 봉쇄조치가 수시로 취해지고 해당지역의 통행이 제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경우에는 V자형의 힘찬 회복보다는 장기간 지루하게 지연되는 양상이 예상된다.

더구나 현재의 생산과 고용이 재가동된다 하더라도 앞으로 수 년간은 금융의 불안이 계속될 것이다. 당장은 재정정책에 논란의 여지는 없을 것이고 급한대로 돈을 푸는 것에 쉽게 동의가 이루어질 테지만, 사태가 진정되면 논쟁은 싸움처럼 변할 것이다. 위에 언급하였듯이 평화시절에 유례가 없는 대규모의 공공부채를 발생시켰고 중앙은행의 재무제표에 부채를 주차시켜 놓은 꼴이다. 중앙은행들은 초저금리를 유지하면서 발생한 공공부채를 감당 못할 수준은 아니겠지만, 문제는 향후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보수적인 입장에 따르면 향후 재정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늘려서 갚아나가야 한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에 따르면, 좀더 급진적인 대안들이 존재한다. 하나는 인플레를 발생시키면서 현재의 경제조건을 과감하게 재편해가는 것이지만 이에 대한 전망은 분명하지 않다. 다른 대안은 국가부채의 면제인데 이는 공공의 파산을 점잖게 표현한 것으로 실제로 중앙은행의 재무표상에 부채로 기재하는 것처럼 그렇게 충격적인 것은 아니다. 일부의 의견은 중앙은행이 정부발행 채권의 구입을 중단하고 거대한 규모의 화폐발행으로 직접적으로 정부에 신용을 제공하는 것이 오히려 단순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지난 4월9일 영국은행이 선언한 내용과 동일한 것으로, 어떤 목적과 의도와 상관없이, 돈을 찍어내는 것이다. 보수적인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방식을 채택한 것은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보여 준다. 재미있는 것은 금융시장의 반응으로 이에 대해 심하게 항의하거나 곧바로 공황적 투매를 진행하지 않고 그저 어깨만 들썩인(little more than a shrug) 것이다. 이들은 중앙은행들이 취하고 있는 묘기행진에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반증이다.

이러한 절제된 태도는 위기를 극복하는 입장에서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침묵이 지속될 것으로 기대해서는 아니 된다. 뚜껑이 열리는 시점이 되면, ‘국가부채의 적정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정치적 공격과 논쟁이 재개될 것이다. 더구나 누적된 국가부채의 거대한 규모를 감안하면, 논쟁은 이전투구의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여기서 다시 돌이켜 볼 것은 우리가 알듯이 과거 이미 경제와 금융이 급진적인 혼란을 겪었다는 사실이다. 2008년의 금융위기 시절, 예상치 못한 불확실성에 대해 수많은 논의와 필요한 조처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왔고 이를 수확적 확률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도 경험하였다. 솔직히 전문적 예측에 의존하는 것은 오만함과 만능이라는 환상을 부추기는 것이다.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등장이라는 충격으로 포플리즘이라는 변덕스러운 정치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들이 회자되었다. 트럼프의 공격적인 통상정책과 중국과 벌이는 세계주도권 경쟁은 세계화의 미래에 대한 안이한 전망을 뒤흔들었다. 2019년까지 이러한 불확실성은 투자를 주저하게 하고 불황의 위험을 높이는 수준에 머물렀다.

중앙은행들은, 2008년 이후 극적인 개입을 정상화하고 통화량을 줄어가면서 정상적 궤도로 진입하는 와중에, 이제 경로를 급변경하며 초저금리로 회귀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결국은 다시 중앙은행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시기로 진입하는 절박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정말로 괴이한 것으로 우리는 돌출적인 불안정성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인류의 상당수가 일상에 필수적 것을 수급받지 못할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누구도 언제 팬데믹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불과 수주전인 지난 1월에는 모든 것이 정상적이었다 이전에는 돌출적인 상황이 예외적인 염려의 대상이었으나, 이제는 일상적인 것이 되었고, 모든 독감(flu)발생에 지극히 조심해야만 한다. 의학적인 비유로 말하자면 우리가 스스로 완치를 선언하려면 얼마나 더 기대려야 하는가?

봉쇄가 끝나면 지출의 규모가 반등되는 효과가 있을 수 있겠지만 얼마나 지속되겠는가?  이러한 충격에 대한 우리 경험상 분명한 반응은 위축이다. 2008년 이후 미국에서 나타난 현저한 추이의 하나가 가계 비중이 축소된 것이다. 세계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인들의 소비가 확실하게 침체되었고, 이에 따라 투자도 줄고 생산성도 정체되었다. 이러한 침체는 서구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개발도상의 시장들도 함께 침체되었다. 우리는 이를 전반적 침체(scular stagnation)라고 불러왔다.

전례없던 코로나 팬데믹의 충격에 대한 기업과 가계의 반응이 안전에 대한 싸움으로 나타난다면, 이는 복합적인 침체를 가져올 것이다. 이번 위기로 인해 발생한 공공부채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재정축소라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반대로 미래를 내다보는 정부라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주도적으로 행동해야 합리적이고 상식에 맞다.  이 지점에서 핵심은 어떤 정책적 조처를 취하고 누구를 위한 정치세력이 이를 통제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2020.04.09.

Adam Tooze

콜롬비아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이자 유럽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고 있다. 그의 최근 저서로는 “Crashed: How a Decade of Financial Crises Changed the World,”가 있고 기후위기에 대한 역사를 집필하고 있다.

토, 2020/04/25-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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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의 외딴섬 같았던 쿠바에도 바이러스는 비껴가지 않았다. 3월 11일 이탈리아 출신 관광객이 처음 확진자로 확인되었고, 세계적으로 확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터라 코로나 대응을 위한 쿠바 정부의 첫 공식발표가 이어졌다. 약 한 달간 쿠바 국적자, 거주 비자 소유의 외국인을 제외한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외국인의 입국 제한을 시작으로, 이미 쿠바 체류 중인 약 6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출국권유 등 코로나 대응을 위한 쿠바의 발 빠른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

바로 이어 초등학교를 비롯한 모든 고등교육과정을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하는 등 이른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작되었고, 의과대학의 경우 교과 내용이 포함된 과목별 학습지침을 전달받는 개별학습으로 전환되었다. 매년 4월 3번째 주 약 일주일간의 방학이 예정되어 있음을 고려한다면 실제로는 약 4주에 해당하는 조치인 셈이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코로라 바이러스로 인해 이탈리아의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치닫자 급기야 이탈리아 정부는 쿠바 의료진 파견을 공식 요청했다. 이에 쿠바 정부의 응답은 신속하게 이루어졌고, 지난 3월 21일 의사와 간호사 인력을 포함한 약 52명의 의료진을 파견한 바 있다. 지난 2014년 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수많은 인명피해를 내자 가장 먼저 의료진들을 보내 아프리카에 손을 내밀었던 바로 그 쿠바 맨발의 의사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난한’ 나라의 쿠바의 의사들이 궁금하다.

특히 재난 지역과 같은 험지와 오지 등지에서 활약상이 돋보이는 그들에게서 진정한 인류애를 느꼈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 내에서는 의사란 고소득을 보장받는 기득권층이라는 계급적 인식이 팽배하다. 그래서 의사들의 사명감, 헌신, 봉사 등은 우리에게는 친숙하지 않다. 하지만 단지 익숙하지 않다는 사실로부터 그 같은 가치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해 버리지만 않는다면, 쿠바 맨발의 의사들을 이해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를 위해 이번 코로나 사태로 쿠바에서 불거진 댓글난을 잠시 소개해볼까 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후 13일 만인 3월 24일 쿠바 의과대학은 수업의 전면 중단에 해당하는 휴교령이 아닌, 학과목별 학습지침을 전달받아 진행하는 개별학습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병원 임상 실습 경험이 누적된 3학년 이상 고학년을 우선하여 이른바 지역사회 건강상태 여부를 전수조사하는 페스키사헤(Pesquisaje)가 진행되었다. 우리나라의 준종합병원 정도에 해당하는 폴리클리닉(Policlinic)은 해당 지역사회의 진료소와 함께 일차보건의료가 이루어지는 구조다.

지역의 건강상태 전수조사는 매 학기에 한 번씩 약 일주일 동안 관할 지역의 폴리클리닉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교과 과정 일부이기도 하다. 의과대학의 학생들은 평소 분반별 배정되는 폴리클리닉에서 실습과 이론수업을 겸한다. 이번 코로나19 경우 “사회적 거리 두기” 방침에 따라,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도록 학생들의 거주지를 고려하여 집에서 가까운 폴리클리닉을 배정하여 전수조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조치가 있자마자, 소식을 전하는 신문들과 쿠바의 SNS는 초반 온라인에서 뜨거운 댓글 전쟁이 불거졌는데…

이 논쟁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은 의대생을 자녀로 둔 한 어머니의 호소이자 학생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어처구니’없는 조치라는 항변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의대에 다니는 딸을 둔 엄마이며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아주 위험한 상황에 아직 학생들에 불과한 아이들을 지역 감염자를 확인하는 전수조사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잘못된 결정으로 현재 공부하는 학생들은 우리 미래의 의사들인데 이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어리석은 일이다우리의 미래이기도 한 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대체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전수조사 과정에서 우리 아이들이 감염된다는 것을 상상해보시라당장 학생들에게 그만두라고 해야 한다 등…’

아직 졸업하지 않은 의과대학의 학생들을 ‘실전’에 참여시키는 일을 두고 의대생을 자녀로 둔 어머니의 호소는 기실 치열한 논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그녀가 남긴 의견에 쿠바 ‘네티즌’들의 댓글 융단폭격으로 더는 쟁점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재학 중인 학생을 포함, 의대 교수, 그리고 일반 시민까지 댓글 논쟁에 합류했다.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었으나 대부분 논쟁을 불러일으킨 어머니의 ‘항변’에 대해 예의 바른 답변부터 ‘냉소적’인 응답까지 모두가 어머니의 문제 제기에 ‘문제 제기’를 하는 형국이었다.

나도 의과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며, 의사가 되기 위해 의대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쿠바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역할과 의무가 있으며, 희생이 따르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선택한 전공이다지금과 같은 상황에(질병에) 언제든지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각오하고 약속했기에 의대에 올 수 있었다지금이 바로 의과 대학생으로서 그 역할이 주어진 것이며 만약 지금이라도 그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의대를 그만두면 된다 등…’

 나는 의대 교수이며, 나의 아이도 의대에 다니고 있다어머니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그러나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의사가 되어 가는 교육 과정의 일부이며 의무기도 하다.., 모두가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키도록 지도하고 있으니 너무 염려하지 마시라 등 …’

쿠바에서 아주 잠깐 불거졌던 이 같은 댓글 전쟁은 결국 쿠바 지역사회에서 의사가 되려는 사람이 갖추고 있어야 하는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헌신에 대한 가치가 사회적 동의라는 형태로 분명히 자리를 잡았구나! 라는 인상을 주는 논쟁의 과정이었다. 이를 촉발한 어머니의 절실했던 항변이 부당해서라기보다, 개인보다 공동체적 가치가 여전히 쿠바 사회에서 우세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간혹 냉소적인 반응을 감추지 못하는 쿠바의 네티즌도 여럿 존재하기 마련이다.

 쿠바에서 의사라는 직업은 지금과 같은 위급한 상황에 얼마든지 놓일 수 있다는 것을 각오한 것과 다름없다당신의 자녀가 그러한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 싫다면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 것이다(의대를 그만두면 된다는 의미로 이해됨)… 만약 당신의 자녀가 해외 미션을 나가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달러를 벌 수 있으니 선뜻 그러라고 할 것 아닌가요? …’

 한편, 코로나19로 촉발된 의대생들의 페스키사헤를 두고 일어났던 예기치 않은 논쟁 이후 이번에는 스페인에서 날아든 SNS가 학생들 사이에 공유되었다. 지셀(Geysel)이라는 이름의 여성이 쓴 것으로 그녀의 글을 전달한 사람은 그녀를 스페인의 의사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그녀의 SNS 은 쿠바 의대생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는데!

쿠바 의과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잘 들어난 쿠바에 친구들도 많아지금 하고 있는 페스키사헤를 당장 중단해 지금 전달하는 내용은 스페인에서 지셀 박사가 보내온 SNS인데, 너희가 하는 일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경고하고 있으니, 읽고 가능하면 많은 이들과 공유해. 아주 급한 거야. 지금 너희들은 지금과 같은 위험한 팬더믹 위기에 총알받이로 사용되고 있는 거라고.!…

결국, SNS의 ‘혈전’은 쿠바를 떠나 조국을 흠집 내려는 애벌레(Gusano)【1】들의 전형적인 온라인 ‘공작’으로 취급되며 마무리되었다. 물론 이 내용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 학생들의 폭발적인 반응부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들까지 반응은 다양했다. 쿠바에는 ‘표현의 자유’를 포함해 자유가 억압받는 사회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보고 싶은 순간이다. 쿠바의 억압받는 자유가 무엇인지 말이다.

쿠바도 피할 수 없었던 코로나19 사태를 둘러싼 의대생들의 SNS 설전은 쿠바 사회의 다양한 면면을 드러내는 기회이기도 했다. 쿠바 지역사회가 의사로서 요구되는 사명감과 봉사 정신을 당당히 요구하는 모습은 사뭇 놀랍다. 아주 잠깐이지만 이 댓글 전쟁이 내게 남긴 인상이 강렬했던 이유다. 과연 미래의 쿠바 의사들은 어떤 모습일까. 쿠바의 모든 의사가 맨발의 의사들을 연상케 하는 사명감과 봉사 정신으로만 무장되었을 리는 없지 않은가.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지금의 의대생들은 세계가 여전히 주목하는 보건의료시스템을 이끌어 가는 인재가 되어있을까. 앞으로 지켜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1】 Gusano 구사노라는 의미의 애벌레는 쿠바를 떠나 외국에서 살며 쿠바체제를 비난하고 조국을 등진 쿠바인들을 가리켜 은유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임.

월, 2020/04/27-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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