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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 목, 2020/02/13-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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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아테네를 여행하고 있었다. 새벽잠에서 깨어 파르테논 신전 주변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보랏빛 하늘에 분홍빛 어스름이 퍼지고 있었다. 주인이 없는 고대의 신전의 주인공은 개였다. 길거리 개들은 여기저기를 분주히 돌아다녔다.  
아테네 거리에는 개들이 많았다. 홀로 삶을 꾸리고 있는 것인지, 집에 있다가 나처럼 산책 나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거리의 개들은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했다. 
선진국이라면 ‘유기견’ 신고를 받고 출동한 요원이 그들을 데려갔을지 모른다. 신고한 사람도 가여워하는 마음이 앞섰을 것이다. 이 개의 주인을 제발 찾아주세요. 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 채.
인도 출신 영국의 동물지리학자가 영국 개와 인도 개의 통치 시스템을 분석한 적이 있다. 영국에는 두 가지 개가 존재한다. 반려견과 유기견. 동물복지 선진국인 영국에서 반려견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은 삶의 질을 누린다. 그러나 길거리 개는 이 나라 법 제도에 없다. 그래서 반려견 아닌 모든 개는 ‘유기견’으로 분류되어, 대체로 동물보호소 입소 후 주인을 기다리다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다. 대개의 선진국의 법 제도가 반려견 아니면 유기견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반면 인도에서는 길거리 개의 ‘존재’가 인정된다. 거리에서 뻔뻔하게 낮잠을 자고, 구걸하다가 발에 채일지라도, 개는 납치되어 안락사되지 않는다. 인도 말고도 여러 나라가 그렇다. 태국 치앙마이의 길거리 개는 아침 저녁 제 끼니를 챙겨주는 친절한 사람들을 차례로 방문하며 매일 규칙적인 여행을 한다. 여러분도 동남아시아에서 이런 개들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인도 한가운데를 안방처럼 퍼 자고 있는 개를. 그들은 주인이 없다고 안락사 되지 않는다.
영국과 인도, 두 나라 개 중에 어떤 개가 행복할까? 삶은 개별적이고 행복은 지수화할 수 없어 부질없는 질문이다. 그러나 그간 내 생각이 좁고 편협했던 건 확실하다. 
영국으로 대표되는 문화권에서 개는 삶과 죽음의 담벼락을 위태롭게 걷는다. 누군가의 소유일 때는 행복하게 지내지만, 누군가에게 버려지는 것은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다. 반면, 인도로 대표되는 문화권에서 개는 도시 생태계의 다양성 아래 존재한다. 어느 정도 독립적이고 어느 정도 보살핌을 받는다. 물론 그들이 영국 개보다 항상 행복하다는 건 아니다. 선진국의 ‘우아하고’ ‘제도적인’ 안락사의 반대편에 전근대적인 학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독립적이고 자유로워 보이는 개와 고양이를 관찰하고 사진을 찍었다. 자유와 속박은 극단에서 우리를 유혹한다. 그러나 우리는 무한의 자유도 무한의 속박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는다. 그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둘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하는 게 인생의 지혜라는 것도.  
그날 낮, 파르테논 신전에 오르고 있었는데, 전망 좋은 자리를 누런 개가 차지하고 엎어져 자고 있었다. 너의 집은 어디니? 조금만 비켜줄래. 나도 좀 낮잠을 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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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잠들었는데 신이 잠깐 왔다 간 순간, 소음과 혼란에서 갑자기 완벽한 조화가 찾아든 순간, 영원에 닿아있는 이 시간을 우리는 '에피파니'라고 부릅니다. 세계를 여행하며 만난 동물과 자연에 대한 짧은 생각을 한 장의 사진과 함께 담아봅니다.

<필자 소개>
남종영 생태지평연구소 운영위원 / <한겨레> 기자
15년 전 캐나다 처칠에서 북극곰을 만난 뒤 기후변화와 고래, 동물 등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월, 2020/12/2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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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근새근 자는 아기(사진: 이승은)

아기를 낳았다
2019년 2월부터 아기를 뱃속에 품고 열 달을 지내고 12월에 아기를 낳았다. 나는 임신 중에 입덧도 심하지 않고, 여름 더위도 힘들지 않게 지나가고, 막달에도 크게 힘든 줄 모르고 생활을 했다. 단, 예정일이 지나도록 아기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아서 마지막에는 고생을 조금 했다.
아기가 뱃속에 있는 열 달 동안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예비하는 시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출산은 정말 떨리고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출산 후 며칠 동안 몸은 힘들었지만 쉴 새 없이 모유 수유를 하면서 아기를 만나는 시간은 너무 신비롭고 행복했다. 그리고 산후조리원을 거쳐 집으로 돌아오면서 임신,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아기와 같이 나는 엄마로 ‘태어났다’.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까
엄마가 되고 보니 가장 많이 하게 되는 것이 ‘비교’였다. 우리 아기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아기들의 몸무게, 분유, 수유량, 잠드는 시간 등의 신체 상태는 물론이고, 무슨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지 어떤 침대에서 자는지 등이 모두 비교꺼리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비교 대상은 바로 ‘엄마’이다. 나는 모유 수유를 길게 하지 못해서 100일, 6개월, 1년이 넘도록 모유 수유를 하는 엄마들을 보면 부럽고 내가 더 노력했어야 하는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예쁜 아기의 모습을 찍어서 SNS에 올리고, 아기의 성장과정을 기록하는 엄마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내가 덜 해주는 것 같고 더 부지런히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지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아기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고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고 만족할 수 있게 돌봄을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리고 아기가 세상을 경험하는데 흥미롭고 즐거울 수 있도록 다양한 자극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자꾸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로 존재하기 위하여
엄마가 되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기에서 수유를 한 뒤 잠든 아기를 품에 안고 가만히 얼굴을 보고 있을 때다. 자그마한 아기가 내 품에 쏙 들어오면 너무 따뜻하고 포근하고 소중하다. 아기도 배부르게 먹고 엄마 품에서 스르륵 잠이 들었을 때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엄마는 품을 내어주고 존재하는 것으로 아기에게는 이미 충분하게 소중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아기에게 무엇을 남들만큼 더 해주지 못하는 걸 괴로워 할 것이 아니라 지금 더 많이 안아주고 눈 맞춰주면서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주면 될 것이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건강하게 존재’하는 것이 어떤 엄마가 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존재하는 것은 아름답다
나에게 제주도에 살면서 주는 것과 관계없이 존재만으로 의지가 되는 것이 있다. 바로 한라산이다. 내가 산을 좋아하는 까닭도 있겠지만, 제주도에서는 어느 곳을 가던지 한쪽에 자리하고 있는 한라산을 먼저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한라산은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1,950m)이고, 1966년 천연보호구역으로, 1970년 천연보호구역 지정되었다. 2002년에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고, 200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높은 가치가 있는 산이다. 한라산 국립공원은 매년 100만 명 가량의 등산객이 찾는다. 1월은 한라산에 가장 많은 등산객이 찾는 달로 한 달 동안 10만 명 이상의 관광객(2014~2019년 탐방객 현황,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이 겨울 산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한라산에 오른다. 
한라산 고지대 중에서도 해발 1,500m 이상의 아고산대에는 고산식물 100여종(제주특산종 33종)이 살고 있어 그 가치가 더욱 크다(참고: 한라산의 고산식물, 국립산림과학원). 특산식물에는 한라꽃창포, 눈개쑥부쟁이, 한라솜다리, 애기솔나물, 섬잔대, 한라송이풀, 깔끔좁쌀풀, 좀향유, 제주사약채, 좀갈매나무, 두메대극, 제주황기, 한라개승마, 제주산버들, 붉은호장근, 한라장구채, 섬매발톱나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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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백록담(사진: 이승은)

2018년 8월 태풍 ‘솔릭’이 왔을 때 강한 중형급 태풍으로 큰 피해가 날 것이 우려되었는데, 육지에 올라온 솔릭은 예상과 달리 세력이 급격하게 약해졌다. 태풍이 약해진 원인에 대해 기상청에서는 한라산이 방패막이로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솔릭이 제주도 부근에 오래 머물면서 한라산 인근에 1,000mm 넘는 많은 비를 쏟아서 에너지를 다 방출하고 수증기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이제 제주도민인 나에게 한라산의 가치는 위의 내용들 그 이상으로 중요하게 여겨진다. 내가 늙어서 할머니가 되어도 한라산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한라산이 건강하게 제주도의 중심을 잡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기는 제주도가 고향이다. 
아기가 자라 육지에 올라가지 않는다면 제주도에 살면서 한라산을 계속 보며 자라게 될 것이다. 한라산이 인간에게 주는 다양한 혜택이 아니더라도 한라산을 바라보며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한라산처럼 아기와 오래오래 함께 하며, 아기가 자라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다시 포근한 품을 기억하고 언제든지 오고 싶을 때 돌아올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아기의 고향은 엄마의 품이다. 
::다음 이야기:: 제주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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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삶>은 필자가 제주에 내려와서 살고 정착하기까지 2년 동안 지내면서 겪은 제주의 환경, 생태, 생활 이야기를 담습니다. 






<필자 소개>



이승은 전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원, 제주도민



생태지평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다가, 대학원에서 환경과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제주도로 내려와 살고 있습니다.

월, 2020/02/2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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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스페인독감 약 5000만명, 1957년 아시아독감 약 100만명, 1968년 홍콩독감 약 70만명, 1976~2019년 에볼라 출혈열 약 1만2950명, 2002~20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775명, 2012년 3~2017년 4월 사이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737명, 2013년 이후 조류인플루엔자 616명.

시기마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했던 전염병들과 그로 인한 사망자의 수다. 이처럼 숱한 희생자를 만들어낸 전염병들의 공통점은 동물에서 비롯돼 인간에게 피해를 준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사실이다. 이들 질병 외에도 신종플루, 유행성 출혈열(한탄바이러스), 흑사병, 결핵, 광견병(인간에서는 공수병), 광우병(변종크로이츠펠트-야콥병), O-157, 탄저병, 뇌염 등 익숙한 이름의 질병들 역시 모두 인수공통전염병의 범주에 들어간다. 최근 중국에서 시작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를 불안에 떨게 만들고 있는 코로나19 역시 박쥐가 지니고 있던 코로나바이러스가 병원체가 된 인수공통전염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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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카페의 부적절한 동물 접촉 모습. 출처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전문가들은 야생동물은 다양한 병원체를 지닌 저장고 같은 역할을 하며 인수공통전염병이 점점 증가하는 원인으로 야생동물과의 접촉 기회가 늘어나는 것을 꼽는다. 가축의 밀집 사육과 야생동물로 인한 감염, 체험동물원이나 실험동물, 반려동물 등 사람과 동물이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증가하는 것이 인수공통전염병 발생의 주 원인이라는 것이다. 실제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감염병 중 약 75%는 동물과 인간이 모두 걸릴 수 있는 인수공통감염병에 해당한다. 동물, 특히 야생동물의 체내에는 언제라도 변이를 일으켜 인간에게 전파될 수 있는 병원체가 상존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국내 연구진의 다양한 연구결과에서도 이미 증명된 내용들이다.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 연구진이 지난해 5월 대한인수공통전염병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국내 야생박쥐 코로나바이러스 감시현황 및 결과’를 보면 국내의 야생박쥐에도 과거 감염병을 일으킨 코로나바이러스와 유사한 바이러스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이 국내에 서식하는 야생 박쥐의 사체와 배설물, 구강 내 샘플 등을 조사한 결과 전남에서는 샘플 189개 중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바이러스와 유사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13개, 충북과 경북, 광주에서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와 유사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각각 1개씩 검출됐다.
다행히 국내 박쥐에서 검출된 코로나바이러스의 인체 감염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한국 역시 박쥐로 인한 코로나바이러스 발생에 있어 안심할 수 없으며 야생 박쥐에 대한 꾸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크기_말이나 인간 등에게 헨드라 바이러스를 옮기는 호주큰여우박쥐. 출처 듀크대.jpg

말이나 인간 등에게 헨드라 바이러스를 옮기는 호주큰여우박쥐. 출처 듀크대

박쥐로 인한 코로나바이러스가 잠재적인 위협이라면 흔히 살인진드기로 알려진 참진드기 매개의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는 이미 국내에서도 매년 여러 건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는 대표적인 감염병이다. 서울대 수의대 채준석 교수가 지난해 같은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국내 동물의 SFTS 바이러스 검출 현황’에 따르면 멧돼지, 고라니, 길고양이, 군견, 재래식 농장의 돼지, 소, 흑염소 등 다양한 동물에서 이 바이러스의 항원이 검출됐다. SFTS는 아직 치료제나 백신도 개발돼 있지 않은 질병으로, 국내의 기후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탓에 감염 사례가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상이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3년 처음 발생한 SFTS는 진드기로부터 동물, 동물로부터 다른 동물이나 인간 등으로 전염되는 질병이다. 치사율이 평균 20%에 달하는 탓에 정부가 법정감염병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람이 직접 진드기에게 물려서 감염되는 사례뿐 아니라 반려동물로부터 전염될 위험도 커지고 있다는 보고들이 나오고 있다. 수의학 전문매체 데일리벳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는 반려견이 이 질병에 걸린 사례가 4건 보고됐다. 지난달에는 한 임상수의사가 이 질병에 감염돼 치료를 받은 사례도 확인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한 수의사가 진료한 고양이로부터 SFTS에 감염돼 입원 치료를 받은 사례도 보고됐다. 이밖에도 중국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바 있는 조류인플루엔자 역시 상존하는 위협 중 하나로 꼽힌다.

크기_서울 청계천의 한 반려동물 매장에서 조류와 토끼 등을 좁은 우리에 가둬둔 모습. 출처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jpeg

서울 청계천의 한 반려동물 매장에서 조류와 토끼 등을 좁은 우리에 가둬둔 모습. 
출처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이처럼 야생동물과의 무분별한 접촉이 인류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경고들이 나오지만 중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여전히 밀렵과 야생동물의 불법거래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중국 연구진에 의해 코로나19의 중간숙주로 지목된 천산갑은 주로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미신에 가까운 보신 욕구 때문에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기도 하다.

천산갑은 몸 길이 50~80㎝에 꼬리 길이 20~50㎝ 정도로 이마부터 꼬리 끝까지 모두 어두운 빛깔의 비늘로 덮여 있는 동물이다. 이가 없어 개미핥기처럼 긴 혀로 먹이인 개미, 흰개미 등을 핥아먹으며 주로 밤에 활동한다. 언뜻 보면 파충류처럼 보이는 비늘에 덮인 몸과 길쭉한 주둥이를 지닌 천산갑은 포유류 중 유일하게 비늘을 지닌 동물이다. 이 비늘이 바로 천산갑을 멸종위기에 몰아넣는 원인이 됐다. 이를 약재와 가죽 등으로 사용하기 위한 밀렵이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중국 등에서 성행했기 때문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따르면 아프리카에 4종, 아시아에 4종이 서식하는 천산갑은 모두 IUCN의 멸종위기종 목록인 적색목록에 포함돼 있고 현재도 모두 개체 수가 감소 중이다. IUCN은 2014년 천산갑의 야생 개체 수가 21년 만에 기존의 20% 이하로 급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전체 8종 중 순다천산갑, 필리핀천산갑, 중국천산갑은 위급(CR), 인도천산갑, 자이언트그라운드천산갑 등 3종은 위기(EN), 나머지 두 종은 취약(VU) 범주로 분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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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천산갑. 출처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하지만 천산갑의 수가 급감하고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가죽을 노린 밀렵과 불법 거래는 여전히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2월 말레이시아에서는 30t 무게에 해당하는 천산갑의 사체가 적발된 바 있다. 무분별한 밀렵으로 인해 기존에 천산갑을 쉽게 볼 수 있었던 보르네오섬에서는 대부분 사라진 상태다. 전문가들은 적발된 천산갑은 실제 불법거래되는 양의 10분의 1 정도로 보고 있다.

천산갑의 국제 거래는 2017년부터 금지됐지만 적어도 67개국에서 밀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중국과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으로 보내진다.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2011~2013년 사이 살해당한 천산갑은 11만6990~23만3980마리로 추산된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200개가 넘는 업체가 천산갑의 비늘을 포함한 약을 60여종 제조하고 있다. 연평균 26.6t의 비늘이 약재로 사용된다. 이는 천산갑 7만3000마리에 해당하는 양이다. 그러나 중국이 1994~2014년 수입한 천산갑 비늘은 15t에 불과해 여전히 새로 밀렵된 천산갑이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 중국 세관은 2017년에는 12t 가까운 천산갑 비늘을 압수했고, 2018년에는 홍콩 세관이 7t을 압수한 바 있다. 중국으로 유입되는 천산갑 비늘이 대부분 약재로 사용되고, 고기는 별미로 여겨진다. 미국 등에서는 천산갑 가죽이 카우보이들의 부츠와 벨트, 지갑 등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처럼 멸종위기에 처한 천산갑은 현재 코로나19의 중간숙주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중국 화난농업대 연구진은 지난 7일 천산갑을 2차 숙주로 지목하면서부터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유행 당시 사향고양이가 변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인간에게 옮긴 것처럼 박쥐의 바이러스를 천산갑이 인간에게 옮겼다는 얘기다. 만약 중국 연구진의 주장이 맞다면 이번 코로나19의 대유행은 결국 천산갑을 무분별하게 이용한 인간 자신의 자업자득일 가능성도 높은 셈이다. 다만 아직 천산갑이 숙주인지 여부가 과학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은 상태다.

밀렵과 불법거래로 희생되는 동물은 물론 천산갑만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이른바 보신 문화로 인해 동물을 밀렵하고, 유통시키다가 적발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3월 환경부 영산강유역환경청은 지난해 3월 고라니, 너구리, 꿩, 살모사, 유혈목이 등 야생동물 83개체를 불법 포획한 밀렵꾼 2명을 적발했다. 당시 압수된 야생동물 중에는 삵과 구렁이, 큰기러기 등 멸종위기종도 5개체 포함돼 있었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무분별한 야생동물 이용이 앞으로도 더 큰 위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는데 특히 바이러스의 저수지라는 별명을 얻은 박쥐의 서식지 파괴와 교란이 인간 자신도 위협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나와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버클리캠퍼스(UC버클리) 연구진은 지난 10일 국제학술지인 이라이프(eLife)에 박쥐가 바이러스를 지니고도 생존할 수 있는 메커니즘에 대한 새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박쥐 서식지 파괴와 교란이 박쥐에게 더 큰 스트레스를 주고, 이는 다른 동물들을 감염시킬 수 있는 분비물, 배설물 등을 더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추정도 내놨다. 즉 인간이 동굴을 훼손하는 등의 활동을 해서 박쥐가 위협을 받게 되면 인간도 위험해지게 된다. 기존에 인류를 위협했던 인수공통전염병들 역시 인간이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훼손하고, 해당 동물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전염된 사례가 많다는 점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국제적인 환경단체, 동물보호단체들도 야생동물 밀렵과 불법거래가 전세계의 공중보건에  심각한 위협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야생동물 불법거래의 완전 근절을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자연기금(WWF)은 지난 4일 발표한 성명에서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뿐 아니라 한국의 야생동물 불법거래 역시 활발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학적 근거가 미미한데도 야생동물의 한약재 사용이 여전히 만연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생활환경 주변에 시민들이 쉽게 동물과 접촉할 수 있는 시설들이 다수 존재하는 점도 문제다. 아직 곳곳에 남아있는 개시장이나 최근 증가 추세인 체험 동물원, 동물카페 등이 모두 시민들이 동물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시설들이다. 사실상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 시설에 대한 법적 제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에 따르면 개를 포함해 다양한 동물이나 동물 사체를 파는 상점이 집중된 대구 칠성시장에서는 최근 꿩을 매달아 놓고 파는 모습이 목격됐다. 불법 도살된 개들의 신체 부위가 판매되는 것은 물론이다. 칠성시장은 성남 모란시장, 부산 구포시장 등이 폐쇄된 이후 전국에서 개고기 판매 상점이 가장 집중된 곳으로 꼽힌다. 경주 안강시장과 함께 불법 개 도축시설을 갖춘 몇 안 되는 시장이기도 하다. 서울 청계천 등에서는 아무런 수의학적 관리도 이뤄지지 않는 상태로 토끼나 새 등을 좁은 우리에 넣어 밀집해 놓은 채 판매하는 경우도 많다.

농촌에서는 올무 등으로 야생동물을 밀렵해 식용으로 삼는 경우 역시 여전히 만연해 있다. 녹색연합은 지난 3일 태백산국립공원 경계 밖 지역에서 밀렵도구에 걸려 폐사한 삵의 사체를 발견했으며 주변에서 다수의 올무를 확인했다. 지리산에 서식하던 반달가슴곰 ‘KM-55’도 2018년 전남 백운산으로 이동했다가 올무에 걸려 희생됐다. 최근에는 엽사들이 멧돼지를 사냥한 후 자가도축해 식용으로 삼는 것이 아프리카돼지열병 사태로 인해 드러나기도 했다.

많은 시민들이 경계심 없이 동물에게 노출되는 체험 동물원과 동물카페는 최근 법적인 제한이 없는 상황을 틈타 우후죽순 증가하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이들 시설 대부분이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이기 때문에 동물들의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병원체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에 동물복지를 크게 훼손할뿐 아니라 공중보건에 있어서도 위협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카라는 “동물복지는 물론 국민건강을 위해서도 야생동물 거래 및 도살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전국에 산재한 재래 개시장 등의 전면 폐쇄 및 전업 유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도 “국내 사설동물원들이 체험을 빙자해 동물을 만지고 먹이를 주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며 “야생동물카페에서는 라쿤, 미어캣, 사향고양이, 파충류 등 여러 종의 동물을 한 공간에 전시하면서 동물 간, 동물과 인간 간 질병 감염 위험이 높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인류는, 그리고 한국 사회는 야생동물을 포함한 동물들과 인간 사이의 접촉을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무분별하게 이용하는 행태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동물을 위해서뿐 아니라 인간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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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 기자의 사람과 자연>은 필자가 경향신문 지면을 통해 소개한 사람과 동물, 환경에 대한 이야기와 지면에 다 담지 못했지만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담습니다. 

<필자 소개>

김기범 생태지평연구소 운영위원 / 경향신문사 기자


2006년 경향신문 입사했고, 2013년 환경부를 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동물면 담당을 맡고 있으며 환경전문기자가 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2020년 3월부터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에서 공부할 예정입니다.
화, 2020/02/25-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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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_사진1 원본크기 _DSC2811s 내성천 중류 예천.jpg

내성천 중류 예천, 모래강은 아이들을 엄마처럼 품었다. 모래강은 다시 흘러야 한다. 박용훈

국토부가 아닌 환경부가 시험담수라는 이름을 내걸고 영주댐 수문을 닫았다. ‘종합진단’을 끼워 넣었지만 거대한 녹조를 재현하고 멸종위기종 서식지를 훼손하는 일이다. 4대강 보를 ‘자연성 회복’ 방향으로 열어 조사하는 것과는 정반대 행보였다. ‘4대강 살리기는 생명 살리기’라고 홍보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사라진 내성천과 영주댐 이야기, 지금 내성천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떠올려 글을 쓰기 위해 숨을 크게 돌려야 했다. 벌써 아마득한 시간이 되어버린 그때를 찾아가려면, 사라진 것들을 하나하나 불러보려면…
내성천이라는 모래집이 있었다 
내성천은 백두대간 고산준령에서 봉화, 영주, 예천, 문경 쪽 영남지역으로 쏟아낸 물길들이 대간에서 뻗은 문수지맥과 만나 모여 흐르는 강이다. 대간 아래로 중생대에 관입한 화강암층이 오랜 세월 풍화하여 봉화-영주 분지를 만들었고, 물길들이 이곳의 모래를 끌어다 내성천에 부려놓아 우리나라 최고의 모래강으로 만들었다. 강과 산맥이 함께 흐르며 굽이마다 펼쳐놓은 하얀 모래밭과 그 여백이 조화를 이뤄 한국 최고의 산수라는 평을 받는다. 명승 110곳 가운데 4곳이 내성천 유역에 있을 정도로 강의 경관이 매우 빼어났다. 명승 제16호인 회룡포와 제19호인 선몽대일원이 내성천 하류에 있으며, 하류의 하곡 폭은 평균 700미터에 이른다.
2009년 여름, 4대강 사업 종합계획이 나온 뒤 ‘생태지평’을 따라 낙동강 보 예정지로 가다가 낙동강 구담습지와 멀지 않은 예천 오천교에서 이 강을 처음 보았다. 비가 왔는지 물이 조금 불었고, 모래가 가득했다. 그해 여름휴가 때 낙동강을 기록하는 일정에 내성천을 넣었다. 그 뒤 내 좌표를 다시 설정하는데 이 강의 존재는 매우 중요했다. 4대강 사업이 시작됐고, 강 이곳저곳에서 ‘속전속결’이란 표현에 걸맞은 ‘전쟁터’ 같은 죽음의 모습들을 마주해야 했다. 그러다 찾은 백두대간 아래 평은의 마을들은 여느 산골 고향마을이었고, 그곳을 흐르는 강은 그저 평화롭고 잔잔했다. 어디나 넓고 판판한 강은 햇살에 반짝이며 은빛 여울로 흘렀다. 
그곳의 모래는 강에 들어가 찬찬히 보면 알갱이들이 쉬지 않고 흘러갔다. 강물은 바닥의 두툼한 모래 덕에 그 빠름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모래 위로 자신의 모습을 일부만 보여준 채 흘러갔다. 한여름 밤 내성천 강변에서 반딧불이가 생명의 춤을 추듯, 강 안을 걷다 보면 무언가 반가움에 몸을 비비는 듯 차가운 물길이 발을 감싸곤 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모래 속과 모래 위에서 물은 모였다 갈라지고 다시 모이면서 바다로 향했다. 생각해보면, 흐르는 것들은 그것을 바람이라 하든 시간이라 하든, 또는 비라 하든 강이라 말하든 모두 섭리의 발현이다. 작은 모래알 하나도 지구의 다른 시간들이 서로 만나야 할 곳에서 만나 모래가 되어 그곳에 다다른 것이다. 강물이 흘러가다가 무심히 내려놓은 곳에 상 없는 상을 새기다가 또 다른 강물을 만나 바다로 향했다. 그곳에 작은 언덕과 골을 이뤘다가 흩어지고, 다시 언덕이 생기고 골이 생겼다. 모든 생명이 다 인연을 따르는 것이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으며, 너무 얕지도 깊지도 않은 곳을 따라, 수줍은 듯 모래로 집을 삼는 흰수마자는 내성천이라는 모래집에 들어 뼈와 살과 비늘을 받은 내성천의 귀한 아이였다.
아름다운 지구 정원이 온갖 삶을 품었다 
비가 와서 큰물이 지면 수달과 고라니, 삵이 다녀간 모래들도 큰물을 따라 바다로 떠났다. 늘 그 자리를 지켜온 모래톱은 사실 그 자리를 지켜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모래톱이었다. 만약 늘 그 자리를 지켜왔다면 풀과 나무가 자라 땅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래톱이 모래톱으로 있어야 하는 소명은 기실 다른 데 있었다. 작은 물새들은 이른 봄부터 강변에 맑고 높은 소리를 남기다가 어느 순간부터 도통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알락할미새들이 쌍쌍으로 강물 위에서 날렵한 곡예를 뽐내지만, 그것은 너무 조용해진 강변의 지루함을 깨려는 작은 마법이거나 대를 잇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물새들을 응원하기 위한 장엄한 화음임에 틀림없다. 흰목물떼새가 흰 모래밭 위에 가장 먼저 알을 낳아 품으면 시간을 두고 꼬마물떼새가 슬금슬금 자리를 잡는다. 강에 붙은 산에서는 황조롱이나 수리부엉이가 모래톱을 주시하고, 한낮 달궈진 모래밭에서 물새들은 서서 그늘을 만들거나 강물을 몸에 적신 뒤 살금살금 돌아와 알의 체온을 낮춰준다. 강에서 장마기 홍수는 큰 변곡점이다. 때가 되면 강이 몸을 부풀려서 떠나야 할 것들을 데리고 떠나는데, 물새들은 그 시간이 되기 전 서둘러 새끼를 키워낸다. 
큰물이 지나간 자리, 강과 연결된 작은 물웅덩이에는 치어들이 줄지어 오가고, 새 모래톱에는 낯익은 흔적들이 다시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사람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농사를 지어왔듯이, 그 강에서는 늘 그렇게 강물이 흘렀고, 흰수마자가 살아왔으며, 흰목물떼새가 해마다 온 힘을 다해 알을 품어왔다. 그 강에 들어서는 것은 수십억 년 동안 온갖 생명의 기운이 함께 빚어낸 아름다운 지구 정원의 문 하나를 여는 것이어서, 그것을 단박에 알아보는 아이들은 탄성을 지르며 강으로 뛰어가곤 했다. 
곶자왈에서 아이들이 내성천을 찾았다. 처음 강의 모래를 밟아본 아이들 표정에는 신기함이 가득했다. 몇 명의 어른과 10여 명의 아이들은 모래밭을 걷고, 모래 위에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함께 강을 건너고, 흠뻑 소나기를 맞고, 편을 나눠 꼬리잡기를 하고, 물 위에 둥둥 떠서 팔다리를 뻗은 채 눈을 감고 강물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내성천은 ‘아이들의 강’이 되었다. 그해 가을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수사님 한 분이 내성천을 찾았다. 비를 맞으면서도 동영상으로 강을 여러 날 기록한 그는 이 땅에서 피어날 여러 피카소의 싹을 영주댐이 없앨 것이라면서 탄식했다. 지난여름 회룡포는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아픈 상처를 드러냈다. 아이들은 여전히 찾아왔고, 내성천은 품에 안았다. 바다 같던 그 품이 볼품없이 작아지고 있다. 
적당한 봄날 산마루에 서서 물결치는 연록의 잎들을 보면서 교과서에 실렸던 <신록예찬>을 떠올렸던 적이 있다. 그리고 강변에도 이런 계절이 있다는 것을 그 강에서 처음 알았다. 덩치가 가장 큰 왕버들은 작은 버드나무들에게 먼저 오는 봄을 양보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한꺼번에 연록의 빛을 뿜어냈다. 이에 화답하듯 강을 따라 이어진 산 여기저기에서 산벚꽃이 일제히 분홍빛을 뽐냈다. 볕 좋은 봄날에 강이 굽이굽이 펼치는 한 편의 카드섹션이었다. 평은과 이산에는 굵은 왕버들이 큰 군락을 이뤘었는데, 이산이 물새들에게는 좀 더 아늑했던지 봄이면 원앙을 비롯한 여러 야생오리들이 모여 느긋하게 봄볕을 즐겼고, 저녁이면 아름드리 20여 그루의 왕버들 가지마다 멧비둘기들이 수없이 날아와 앉았다. 늦봄, 산 절벽 밑 물가에 핀 하얀 찔레꽃은 그냥 예쁘고 소박할 뿐이어서 장사익이 부른 것처럼 “너무 슬프고 서러워서 목 놓아 울어야 하는” 그런 하얀 꽃은 결코 아니었다. 한여름이면 왕버들 그늘 아래로 물고기가 모여들었고, 맞은편 절벽 숲의 나무들에는 백로와 왜가리들이 적당히 자리 잡은 채 해를 산 뒤로 보냈다. 강을 따라 넓고 긴 모래밭과 너무 일찍 베어진 왕버들 군락 밑으로 70년 세월의 녹물이 교각에 밴 송리원철교가 있었고, 그 아래로 금강마을 사람들이 불로산이라 부른 크고 깊은 계곡이 별유천지로 펼쳐졌다. 계곡 숲 여기저기에서 작은 산새들의 고운 울림이 얕고 맑게 흐르는 강물 위를 타고 퍼져나갔고, 계곡의 침입자를 끝까지 주시하는 물떼새들과 달리 할미새들은 호기심 반 무관심 반으로 사람을 대했다. 수달은 곳곳에 흔적을 남겼는데, 그 계곡을 여러 번 찾았어도 먹황새가 그곳에서 해마다 겨울을 나는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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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 중류 예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인 흰수마자, 영주댐 건설로 자취를 감췄다.  박용훈
8년치 모래를 파낸 뒤 강은 숨을 멈췄다 
어느 날 많은 포클레인이 댐 상류의 평화로웠던 강으로 들어왔다. 흡사 4대강 준설현장을 다시 보는 듯했다. 영주시는 2012년 한 해에만 댐 상류에서 내려오는 8년치 양의 모래를 파냈다. 모래는 돈이 되는 골재였을 뿐, 환경부조차도 흰수마자의 서식처로 여기지 않은 듯했다. 4년 동안 모래를 파낸 뒤 2013년에는 다묵장어가 보이지 않았고, 2014년에는 흰수마자가 확인되지 않았다. 불로산 계곡에서 사람들의 발길을 멈춰 세웠던, 큰 바위를 뿌리로 감싼 왕버드나무가 어느 날 베어져 강물에 던져졌다. 그해 겨울 계곡에서는 요란한 전기톱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영주댐에서 상류로 20킬로미터 일대 강 양쪽 산의 나무들이 베어졌다. 평은과 이산의 왕버들도 모두 사라졌다. 이십여 마리씩 한가롭게 떠 있던 원앙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400년 된 느티나무가 천수를 누리지 못했고, 무엇보다 영남의 전통문화를 잘 간직해온 400년 된 마을들이 전통을 살리자는 21세기 초입에 사라졌으며, 531세대가 고향땅을 등져야 했다. 귀한 손님인 먹황새는 해마다 겨울을 보내던 계곡을 나와 강 여기저기를 떠돌았는데, 지난해 겨울에는 이 새를 보았노라고 반갑게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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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 상류 영주 금강마을 앞, 내성천을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마음을 모았다.  박용훈

댐 하류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 극심한 골재 채취와 댐 공사 뒤 모래가 하류로 흘러간 만큼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내성천은 점점 빈약해졌으며, 풀과 나무가 뿌리를 내리면서 모래톱들은 더 이상 바다를 향해 나아가지 못했다. 여뀌에 이어 달뿌리풀과 버드나무가 모래톱을 차지할수록 작은 물새들의 번식지는 줄어들었다. 넓고 판판하던 물길이 좁아지고 빨라진 채 깊어졌으며, 강바닥은 더욱 거칠어졌다. 고운 모래가 급속히 줄어들었고, 2017년까지 영주댐 사후환경영향조사에서 180개체 넘게 나왔던 흰수마자가 2018년도에는 단 9개체만 확인됐다. 내성천 모든 구간에서 흰수마자가 멸종의 벼랑으로 내몰리는 것이 확인되자 환경부는 서식처 복원은 외면한 채 치어 방류에 급급했다. 한편 2016년도부터 내성천 흰목물떼새에 대한 시민공동조사가 이어졌고, 해마다 이십 몇 개씩 둥지가 확인되면서 내성천이 국내 최고 서식지임을 확인했는데, 그 가운데 댐 상류의 서식밀도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흰수마자나 흰목물떼새 모두 서식지 보전대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환경부는 오히려 지난 9월에 영주댐 시험담수를 강행했다. 
정부는 영주댐의 목적은 ‘갈수기에 낙동강에 물을 흘려보내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이는 백두대간의 물을 받아 두툼한 모래층에 저장하면서 낙동강에 보내온 내성천이 잘 해오던 일이었다. 2016년 1차 시험담수를 했으나 녹조가 심해 2018년 3월, 김은경 전 장관 재임 시절에 전량 방류했다. 그 뒤 1년 반 동안 아무 일도 안 하던 환경부는 국토부에서 넘어온 수자원공사가 발전기 부하시험 같은 이유를 내세워 시험담수를 요청하자 댐의 철거·존치에 대한 처리방안 마련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확보하는 종합진단을 2년 동안 함께 하겠다면서 허가했다. 댐 착공 뒤 10년, 강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고, 흰수마자는 절멸 직전인 긴박한 때에 2중대 소리를 듣던 환경부가 이제 하천유지용수 공급용 댐이라는 새로운 댐의 시대를 열며 무대 전면에 나서는 모양새다.
몇 해 전 대구의 어린이들과 함께 회룡포 전망대에 오른 적이 있다. 강이 곧장 가면 편할 것을 왜 이렇게 한 바퀴 빙 돌아가느냐고 물었는데, 아직 고사리 손인 지웅이가 “마을을 돌아서 물을 주려고요”라고 말했다. 아이들만 할 수 있는 답이었다. 지웅이는 강에 도착하자 모래성을 쌓고 풀잎 물고기를 그 안에 띄워 놀았다. 흰수마자와 흰목물떼새를 위해, 그리고 지웅이를 위해 내성천은 예전처럼 흘러야 한다. 뒤늦은 면피성 조사가 아니라, 복원과 보전을 위한 결단이 필요한 때다. 그 결단에 지금 당신의 응원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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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 268호 '강'특별호 '우리 땅 우리 강의 말'에 실린 글을 옮겨 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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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풍소식>은 초록사진가이자 생태지평 운영위원인 박용훈 님이 사진과 글로 강이 전하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필자 소개> 
박용훈 – ‘초록사진가’라는 이름으로 미처 알지 못한 아름다운 강, 우리가 잃어버린 강, 위기에 처한 우리의 강들을 사진에 담아 세상에 알리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내성천의 아름다움과 상처를 기록해왔다. 
화, 2020/03/24-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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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꼬마물떼새는 수만리 바다를 오가고, 
   사람들은 집요하게 물떼새의 서식처를 훼손하고
>● 메추리와 붕, 그리고 꼬마물떼새
“북명에 고기 있어 그 이름을 곤이라 하니, 곤의 크기 그 몇 천리임을 알지 못하겠더라. (변)화하여 새 되면 그 이름을 붕이라 하니 붕의 등이 몇 천리임을 알지 못하겠더라. 노하여 날면 그 날개가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으니, 이 새 바다가 움직인 즉 장차 남명으로 옮겨가잔 것이더라. 남명이란 천지다.” 
함석헌 선생님이 「씨알의 옛글풀이/한길사」에서 전국시대에 살았던 장자의 사상을 소개하면서 「소요유逍遙遊」 의 첫 글을 번역한 내용이다. 이 글은 계속 이렇게 이어진다. “「제해齊諧」란 것은 괴상한 것을 기록한 책이라. 해諧의 말한 것이 이렇다. 붕이 남명으로 옮겨가려 할 때 물을 때리기 2천리를 하고 회리바람에 날개 쳐 오르기 9만 리를 한 다음 가기를 여섯 달 하여서 쉬더라...”
소요유는 뒤에 또 이렇게 이어진다. “척안(메추리)이 웃으며 말하기를 저가 또 어디를 가자는 거냐, 내 솟구쳐 올라가도 두어 길에 지나지 못하고 내려오는 것이요, 쑥대 사이에 호르락거리는 이것이 낢의(날아가는) 끝인데, 그런데 저가 또 어디를 가는 거냐 했다” 소요유와 관련하여 함석헌 선생님은 “장자는 당시 부국강병의 포악한 지배주의 때문에 희생되는 인생을 건지기 위해 말한 것이었다”고 배경을 설명하였다. 
‘붕’이라는 새는 상상의 새이지만 물을 때리기를 2천리를 한다는 따위가 허황된 이야기는 아니다. 몇 해 전에 만난 외국 NGO의 한 조류전문가에게 내성천에서 포란하는 꼬마물떼새 영상을 보여주었더니 호주지역까지 이동하는 경이로운 새라고 말해주었다. 꼬마물떼새는 어른 손바닥보다 더 작다. 이 작은 새가 새끼를 키우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수천 킬로미터를 오가는 것을 장자는 알고 있었을까? 마지막 남은 한 뼘의 꼬마물떼새 둥지 터마저 사람의 땅으로 만들려 하고, 빼앗은 땅은 어떻게 해서라도 돌려주려 하지 않으려하고, 해마다 녹조가 식수원을 오염시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도 가둔 물을 흐르게 하지 않으려하고, 심지어 강의 자연성을 회복하겠다고 선언해놓고도 돌아서서는 강을 훼손하는 참으로 고약한 시대를 보았다면 무어라 말했을까? 
● 작은 물새들의 처지, 우리시대 약자들의 처지
뱃속에 아이가 생기면 태교를 한다.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하고, 말을 가려서 하고, 마음을 차분히 하며 생각을 바르게 하려 한다. 모래톱에서 번식하는 작은 물새들도 알을 품으면서 알들에게 어미의 소리를 계속 들려준다. 새와 사람의 태교가 어떤 차이가 있든 생명의 신비로움은 그 무게가 다르지 않아 보인다.
 2017년 봄, 내성천에서 흰목물떼새의 서식현황을 조사하는 생태지평 시민생태조사단 모니터링을 하다가 중류의 외진 모래톱 한 곳에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꼬마물떼새 새끼 4마리를 발견했다. 한 눈에 다 들어오는 좁은 공간에서 몇 뺨씩 떨어져 모래톱에 바짝 엎드린 자세로 눈 하나 꼼짝하지 않았다. 카메라로 기록한 후 멀찍이 떨어져서 쌍안경으로 지켜보았다. 한 마리가 저만치 떨어져 있던 어미를 향해 종종걸음을 하더니 한 곳에서 멈춰 선다. 그렇게 한 마리씩 차례대로 모두 자리를 옮겼다. 봄부터 여름까지 모래밭의 적막 속에는 새끼를 지키면서 키우기 위한 물떼새들의 팽팽한 긴장이 배어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생사의 갈림길이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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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 꼬마물떼새 유조. 2017년 5월. <시민생태조사단>
2019년 봄, 내성천 중류의 또 다른 외진 곳에 흰목물떼새가 둥지를 틀었다. 내성천에서 오랜 기간 영상 작업을 해온 한 생태다큐 팀이 둥지와 거리를 둔 곳에 위장막을 치고 이 한 쌍의 포란 기간 일부와 부화과정을 지켜봤다. 흰목물떼새는 약 28일간 알을 품는데, 때가 지나도 새끼들이 나오지 않았다. 예정일을 잘못 잡은 모양이었다. 며칠이 더 지나 첫째가 알을 깨고 나왔다. 세 번째 녀석까지 잘 나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막내가 나오지 않는다. 애를 먹이던 막내가 새벽녘에 드디어 부리 끝의 하얀 난치로 껍질을 깨고 나왔다.
새끼들이 모두 깨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아침에 현장에 도착했다. 네 마리가 엄마 품에 안겨 있을 전형적인 그림을 상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솜털이 다 마르고 쌩쌩해진 세 형제를 애비가 거느리는 모습이 먼저 쌍안경 안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 그들과 떨어진 곳에 있는 어미를 다시 확인하면서 뭉클했다. 품을 파고드는 새끼를 보듬은 채 어미는 사방을 경계했다. 난산 끝에 늦게 태어나 몸을 잘 가누지도 못하는 새끼를 어미는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냉정한 자연의 법칙처럼 버리지 않았고, 그렇다고 다른 새끼들과 함께 두지도 않았다. 4대강사업 이후 자연성회복을 위한 과정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꼼짝을 못하는 현 정부보다 이 작은 새 한 쌍이 훨씬 단호하면서도 지혜로웠다. 
2017년 봄에 꼬마물떼새 유조를 확인한 모래톱에는 2019년 여름 달뿌리풀이 넓게 군락을 이룬 채 자리를 차지했다. 2019년에 흰목물떼새가 난산을 한 둥지 주변 모래톱으로는 2020년에 풀이 많이 들어왔다. 천적을 먼저 보기 위한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곳에서 포란을 시도하면 둥지뿐만 아니라 어미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그렇다고 그 자리를 버리자니 갈 곳 또한 마땅치 않다. 
4대강사업과 영주댐 건설로 이들이 살만한 곳은 이미 크게 줄었고, 지칠 줄 모르는 각종 하천정비사업은 지천에 남은 서식처마저 위협한다. 둥지를 틀만한 모래톱을 둘러싼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어서 내성천에서는 제방 가장자리 쇄석 위에다가 흰목물떼새가 알을 낳은 것이 확인되기도 했다. 이런 작은 물새들의 처지는 최소한의 사회적인 안전망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여러 현장에서 상해와 죽음의 위협 속에 일해야 하는 작업환경에 노출된 우리시대 사회적 약자들의 처지와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 텅 비어 있음의 섭리 – 강에서.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이렇게 시작된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평생 농민과 농촌을 위해 사셨던 쌍천 이영춘 박사님이 생전에 산상수훈을 한문으로 옮겨 쓴 서예에는 가난하다는 자리에 빌 허를 놓았다. ‘心虛爲福’ 텅 비어 있어서 복된 자리이고, 충만한 자리다. 어떤 말로 표현하든 “말씀”을 온전히 다 담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숙련된 어떤 전문가라면 작업도구들은 선반 등에 정리해서 필요할 때 찾기 좋도록 해놓고, 일하는 작업테이블 위는 깨끗하게 비워둘 것이다. 그래서 비워둔다는 것은 어떤 여건을 조성하거나 어떤 것을 이룰, 어떤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겠다.
한편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無常’의 뜻을 보니 “항상 함이 없다. 끊임없이 변화해서 사라진다” 이런 풀이가 되어 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누가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닌데, 텅 빈 하늘에 조화가 무궁하다. 늘 비어 있어서 아름답다. 강에서는 어떨까? 20011년 봄의 내성천을 찾아가보자. 
내성천 중류 또는 하류 어느 곳이어도 좋다. 또는 댐 공사를 시작한 상류여도 상관없다. 한쪽으로는 하얀 백사장이 넓게 펼쳐 있고, 내리쬐는 햇빛에 맑게 빛나며 흐르는 강 안쪽으로도 군데군데 작은 모래톱이 머리를 물 위로 내밀고 있다. 수리부엉이는 강을 내려다보는 산 중턱 바위그늘에서 졸고 있고, 이따금 황조롱이 한마리가 정지비행을 하다가 몸을 내리 꽂거나 하늘에 예리한 선을 그으며 산 너머로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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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 중류 모래톱. 2014년 5월.
흐르는 강물 위로 작고 예쁜 새 한 쌍이 멋진 곡예비행을 한다. 할미새다. 이런 비행은 모래톱 터주 대감의 모습은 아니다. 갑자기 텅 비어 있는 넓은 모래톱 위로 높고 맑은 물새 소리와 함께 선회비행을 하는 새들이 눈에 들어온다. 꼬마물떼새 또는 흰목물떼새다. 번식을 위한 준비기간이다. 커다란 모래톱을 차지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하다.
어느 순간부터 물떼새들의 노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모래톱에는 텅 빈 고요가 이어진다. 그 모래톱과 내가 하나가 되면 어디선가 모래톱과 하나가 된 작은 새를 보게 된다. 한 눈에 다 들어오는 모래밭에서 당당하게 알을 품는다. 
텅 빈 모래밭에는 영겁의 세월 지구를 지탱해온 섭리가 배어 있다. 크고 강하다고 모래밭을 지배할 수 없다. 수달도, 황조롱이도 수리부엉이도 잠깐 들렀다가 떠나야 한다. 작은 물새들만 이곳에 터를 잡고 당당하게 알을 품는다. 하얀 모래밭은 작고 연약한 물새들의 피난처이며 성소다.
텅 빈 모래밭에 작은 거미들이 가만히 있다가 종종걸음을 한다. 메뚜기가 슬금슬금 날고 참뜰길앞잡이가 낮게 직선으로 난다. 명주잠자리 애벌레가 모래에 만든 기하학적인 구조물은 흡사 아름다운 우주의 블랙홀 같다. 있는 줄 없는 줄 모르는 물떼새 새끼들은 곤충을 잡아먹다가도 태아 때부터 익힌 어미 소리를 따라 엎드린다. 고라니가 지나가며 파놓은 작은 구덩이, 어미가 만들어놓은 위장 둥지 등 숨을 곳은 천지다. 그냥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기만 해도 된다. 무궁무진한 형상의 모래밭 자체가 그들의 피난처다.
하얀 모래만 보이는 그 곳에 생명들이 웅크리고 있다. 모래는 강에 의지해서 사는 약한 종들의 삶터이자 피난처다. 사는 동안 그들이 강의 주인이다.
모래톱의 원래 주인은 물론 강이다. 강은 모래톱을 늘 깨끗하게 비워두고 기다린다. 물떼새들이 이른 봄부터 강이 준비해 둔 모래톱을 살펴본 후 적당한 자리를 정하면 그때부터 알을 낳고 품어 부화하기까지 온 힘을 다한다. 해가 너무 강하면 서서 그늘을 만들어주고, 날이 너무 더우면 강물을 가슴에 묻혀 알을 적셔준다. 비가 오면 꼼짝하지 않은 채 비를 다 맞으면서 알의 체온을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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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 모래톱의 흰목물떼새 유조. 2015년 6월.

천적이 나타나 어미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햇볕을 받은 모래가 대신 알을 품어준다. 태아를 감싸 보호하며 성장을 돕는 양막을 ‘모래집’으로 부른 시작이다. 알이 깨어나서 걷고 뛰고 자란다. 생로병사는 어디에나 있는 법. 살아남은 것들이 묵묵히 대를 이어간다. 물떼새들에게 자리를 제공한 대가로 강은 하늘 높이 울리는 맑은 물새 소리를 즐기고, 예쁜 알과 새끼들의 성장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면서 생명이 넘치는 아름다움을 보상받는다. 
강 가장자리에서는 뱁새라고 부르는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앙증맞은 눈으로 덤불에서 폴싹대고 그 옆에서 왕버드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가끔 씨앗을 모래톱 물가로 날려 보내 싹을 틔워보기도 하지만 강은 물새들의 삶터에 이들이 자리 잡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장마에 불어난 강물이 자기 영역에 들어온 것들을 청소해내는데, 버티고 싶어도 성난 강물이 뿌리를 내린 모래까지 쓸고 가버리니 어쩔 도리가 없다. 강은 홍수를 이용해 모래를 적재적소에 옮겨놓은 후 생명력이 넘치면서도 텅 빈 상태로 다시 돌아가고, 이듬해 꼬마물떼새와 흰목물떼새들은 늘 그래온 것처럼 알을 품는다. 강이 곧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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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박용훈 – ‘초록사진가’라는 이름으로 미처 알지 못한 아름다운 강, 우리가 잃어버린 강, 위기에 처한 우리의 강들을 사진에 담아 세상에 알리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내성천의 아름다움과 상처를 기록해왔다. 

화, 2020/11/24-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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