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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검토보고제’,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의 합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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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검토보고제’,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의 합작품

admin | 화, 2020/02/11- 23:13

국회의원과 국회 공무원

소위원장 〇〇〇 아니, 〇〇〇 위원님 말씀하신 그것…….

수석전문위원 〇〇〇 그것은 우리가 자료 받은 게 없잖아.

소위원장 〇〇〇 전자문서로 뽑을 수 있는 것 아니예요?

수석전문위원 〇〇〇 그것 뽑는 것밖에 없는 거지…….

소위원장 〇〇〇 그러니까 공문 보낸 것을 달라고요.

17대 국회의 어느 상임위 소위원회 회의록에서 발췌한 기록이다.

잘 알다시피 수석전문위원은 국회 공무원이고 소위원장은 국회의원이다. 그런데 위의 속기록을 보면, 수석전문위원은 약간 반말 투다. 이 속기록의 상황을 일반적 시각으로 본다면, 수석전문위원의 ‘위상’이 더 높아 보이고, 최소한 동등한 위상이다.

한편 다음의 또 다른 소위원회 회의록에서도 수석전문위원의 위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만든다.

OOO 위원 지금 수정안대로 하게 되면 기재부의 의견을 충분히 참작하는 것 아니예요? 그래서 수정안대로 하면 기재부에서…….

수석전문위원 OOO 기재부 의견은 저희가 여기 비고에 적시한 것처럼 이걸 적극적으로 다 수용한다 그런 정도의 입장은 아니고요. 교육부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한번 기재부하고 협의한 사항이 있으면 말씀을 해주시지요.

OOO 위원 저도 잠깐만 말씀…….

OOO 위원 아니, 저도 질문 다 안 끝났는데요.

수석전문위원은 회의를 주재하다시피하며 의원의 발언을 중간에 끊기도 하고, 심지어 교육부와 기재부 등 정부 부처들까지 아우르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국회 전문위원은 비단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예산과 결산에 대한 ‘검토보고’도 수행한다. 예·결산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의 이 검토보고는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보다 그 위력이 보다 강하게 발휘된다. 그런 이유로 위의 사례처럼 거의 독주하는 경향이 발견된다. 관련 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행정부처 피심사기관들은 대체로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수용’하는 자세로 심사에 응한다.

 

전두환에 의해 명문화된 검토보고, ‘국회 무력화의 의도

이렇듯 국회 입법공무원의 권한을 강화시키고 그 위상을 높게 만든 것은 바로 ‘검토보고’라는 제도 때문이다.

다른 나라 의회에서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이 ‘검토보고’ 제도는 도대체 어떻게 우리 국회에 출현하게 되었을까?

국회 공무원인 ‘전문위원’이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검토’하는 이 제도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의 국회법 규정에는 “위원회는 회부안건을 심사함에 있어서 먼저 그 취지의 설명을 듣고”라고 하여 검토보고의 주체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지 않았다.

그 조항이 지금 국회처럼 완전히 국회공무원의 권한으로 공식화된 것은 바로 1980년 전두환 국보위(국가보위입법회의) 때였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권력을 장악한 뒤 이른바 국보위의 ‘선거법등 정치관계법 특별위원회’를 조직하였고, 이 조직은 1981년 1월 22일에 회의를 개최하고는 국회법을 전면 개정했다. 여기에서 국회법 제56조 (위원회의 심사) 조항은 “위원회는 회부안건을 심사함에 있어서 먼저 그 취지의 설명과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듣고”라고 둔갑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 제도는 명문 규정으로 전환되었다.

당시의 회의록을 보면, 국회법개정의 목표와 기본방향에 대하여 “비리와 선동과 당리당략을 일삼는 정치폐습에서 탈피하여”라고 되어 있고, 개정의 ‘주요 골자’에서는 “직업정치인의 독무대화 현상을 배제하고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유능 신인의 국정참여 기회를 부여할 수 있도록”이라고 밝히고 있다.

전두환 군사정권이 이 제도를 추진한 목적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국회의 무력화와 순치(馴致)’였다. 즉, ‘구 정치질서’를 극도로 혐오한 전두환 신군부 측이 관료를 수단으로 하여 자신들의 의도대로 국회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통제하려는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추진한 것이었다.

 

유신에 의해 국회의원의 전문위원 선발권 뺏겨

현재 국회 전문위원은 국회 사무총장이 사실상 임명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본래 국회 전문위원은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이 선발했었다. 하지만 그러한 제도는 박정희 유신 정권에 의하여 완전히 뒤바뀌었다.

1972년 12월 27일, 이른바 유신헌법으로 장기집권 체제의 근거를 만든 유신 정권은 곧이어 1973년 2월 7일, 국회법을 개정하였다. 이 개정에서 “전문위원은 당해 상임위원회의 제청으로 의장이 임명한다.”는 국회법 제42조 제2항 규정을 “전문위원은 사무총장의 제청으로 의장이 임명한다.”는 규정으로 바꿔놓았다.

이로써 상임위원회 활동에 필요한 ‘전문적인’ 인물을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이 논의하여 선임하던 제도를 여당 임명직인 국회 사무총장이 임명하도록 되었다. 이는 국회 전문위원에 대한 상임위원회 의원의 선출권을 없애고 독재 권력에 의한 입법권 장악을 제도화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전문위원으로는 거의 행정부 관료로 충원함으로써 국회에 대한 통제를 확실하게 강화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조치는 뒷날 1981년 전두환의 국보위에 의한 전문위원 검토보고제 규정의 명문화와 결합되어 전문위원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상실하게 만들고, 관료를 매개로 하여 의원들의 입법권을 사실상 무력화했다는 점에서 우리 국회 운영을 근본적으로 왜곡시킨 결정적 장면이었다.

 

검토보고제가 있는 한, 정상적 국회를 기대하기 어렵다

세계 어느 나라 의회에도 우리 국회처럼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반드시 국회 공무원의 검토를 받아야 한다는 ‘본말전도된’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충실하게’ 모방하고 있는 일본 국회에서도 전혀 그렇지 않다. 일본 국회는 상임위 법률 심의에서 가장 먼저 법률안 취지에 대한 설명을 청취하게 된다. 이때 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은 발의자 혹은 제출자의 취지설명으로부터 시작되며, 이 과정에서 증인의 증언, 참고인의 의견 청취가 가능하고 보고서 및 기록 등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그 뒤 그 의원과 1문 1답의 질의를 진행하고, 질의가 끝나면 토론에 들어가는데, 1인이라도 수정동의를 제출할 수 있다.

또 흔히 우리가 쉽게 정치 후진국이라고 과소평가하고 있는 타이완에서도 입법원의 <입법원직권행사법> 제8조(제1독회 절차)는 “입법위원이 제출한 의안은 제안자가 취지를 설명한 뒤 대체토론을 거쳐 심사 혹은 제2독으로 넘기거나 혹은 기각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단 한번이라도 눈을 감고서 진지하게 성찰해봐야 한다. 도대체 왜 의원이 제출한 법안에 의원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검토’가 필요한 것인가?

본래 입법권이라는 직책은 당연히 국회의원들의 필수 임무다. 그리고 국회의원은 바로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국민들이 선출한 것이며, 국회의 존재 이유다. 그것은 의사가 본인이 아니라 사무장이나 다른 사람에게 치료를 시키는 것과 같고, 판사가 다른 사람에게 재판을 맡기는 것과 같다. 이래서는 언필칭 의사라고 할 수 없고 판사라 부를 수 없으며, 그야말로 ‘가짜 병원’이고 ‘가짜 재판’이다.

이와 전적으로 동일한 논리로 자기의 일, 즉, 본업을 하지 않는 국회의원을 국회의원이라고 부르기 어렵고 의회라 칭하기 민망하다. 국회가 국회답지 못하고 정당이 정당답지 못하며, 이러한 조건에서는 결코 의회다운 의회, 정치다운 정치가 존재할 수 없다.

 

변이(變異)된 국회, 변종(變種)된 국회의원

실제 어느 나라 의회든 의원이라면 너무도 당연하게 입법 활동과 그와 관련된 토론과 논의 그리고 연구, 조사 등에 대부분의 시간을 투여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입법이 곧 의원의 ‘본업’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국회의 경우에는 전혀 이와 다르다. 입법 과정의 대부분을 공무원이 ‘대리’한다. 겉모양만 의회이고 무늬만 의원이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변이(變異)된 국회, 변종(變種)된 국회의원이다.

필자에게 한 의원은 사석에서 자신이 유럽 국가들의 의회를 방문했을 때 그곳 의원들이 모두 소형차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평소 법안과 정책 연구 조사에 몰두하지 않으면 매일같이 이어지는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의원들 간의 토론이 진행될 때 크게 망신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니 우리 의원들처럼 지역구 관리에 몰두할 시간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 의원은 그럼에도 연봉은 우리 국회가 몇 배나 많다고 실토하였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도 2018년 5월 폴란드에서 열린 나토(NATO) 의원 총회 참석했을 때 크게 놀랐다고 증언하고 있다. “300명에 달하는 미국과 유럽 의원들의 진지함과 박식함에 놀랐다. 외국의 국회의원들은 보좌관 없이 그 전문적인 내용을 실무자처럼 토론했다.”(“배지 달고 2년만 지나면 국회의원이 멍청해지는 이유”, 「오마이뉴스」 2018년 7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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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의 시작을 알리는 『흔들리는 분단체제』가 출간된 것은 1998년이다. 앞서 말했듯 이 제목은 역설적이다. 분단체제가 흔들리고 있음을 알리면서 분단체제 개념은 장기화되고 분단체제론은 안정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2006년에는 “지금 돌이켜 보면” 분단체제가 1987년 6월부터 이미 “동요하기 시작했었다”고 하였다. 1987년 6월은 양국체제론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분단체제의 양국체제로의 전환’의 가능성이 이때부터 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단체제론의 강조점은 다르다. 이렇듯 일찍부터 분단체제가 동요하고 흔들리고, 더 나아가 허물어지고, 해체되고 있다고 하면서, 그럴수록 분단체제는 묘하게 더욱 장기화하고 그에 따라 분단체제론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고 하는 이론적 메커니즘이 분단체제론 2기의 특징이다.

이 메커니즘의 숨은 비밀은 19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한 매우 높은 평가에서 출발한다. 물론 이 두 사건은 높게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나 역시 매우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높게 평가하는 대목이 크게 다르다. 아무튼 ‘분단체제론적 고평가’는 1997년 발표한 「분단체제극복운동의 일상화를 위해」에서부터 표명되기 시작하는데, 이 글은 1991~1994년 사이에 발표된 글들에서 보인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한 경계와 유보, 그리고 이를 전제로 한 소극적 인정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입론의 첫 단계(1991~1994년)에서 분단체제론은 아직 분단체제극복운동과 현실과의 접맥점을 잘 찾지 못하고 있었다. 접맥점이란 그렇듯 높은 목표를 갖는 분단체제극복의 경로와 주체를 구체화하는 것이 될 터인데, 첫 입론 단계에서는 아직 “통일운동이 민중운동이 될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거나, “범한반도적 민중운동 …… 남북한 민중연대의 가능성”을 원론적 수준에서 언급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러한 ‘범한반도적 민중운동’과 ‘남북한 민중연대’ 주장이 “남북한의 현실을 ‘현실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볼 때 …… (현실적 근거가 없는) 당위론적이고 관념론적인 이상론이 아닌가”라는 비판에 대해, “문제의식은 정당한데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아서 구체적인 성과가 미미한 것과 문제의식 자체가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당위론 내지 관념론·이상론이라는 것은 마땅히 구별해야 할 터”라고 소극적으로 변명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원론적 시각에서 볼 때 남북 유엔 동시가입이나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이 ‘남북한 민중연대에 기초한 범한반도적 민중운동’의 기준에서 한참 못 미침은 자명했을 것이고, 그래서 백 선생은 1991년 “유엔 가입을 포함한 한국 정부의 ‘북방정책’의 성과”가 “반민주적 분단체제의 부분적 개량에 불과함이 명백하다”고 썼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것은 문자 그대로 개량이요 개선이지 개악은 아니며, 분단체제의 장기화에 이바지할 가능성과 더불어 분단체제극복운동에도 새로운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라는 흥미로운 표현을 덧붙였다. 소극적인 인정의 표현이기는 하지만, “분단체제 장기화에 이바지”라고 하는, ‘분단체제의 장기화’가 긍정되는 묘한 표현과, 그 분단체제의 장기화가 “분단체제극복운동에도 새로운 공간을 열어”준다고 하는, 분단체제론의 독특한 개념적 함수관계가 처음으로 명료하게 드러난 대목이기도 하다.

우선 유엔 동시가입 등 북방정책의 성과가 ‘분단체제의 장기화에 이바지했다’는 말은 명백하게 틀렸다. 사태를 정반대로 말하고 있다. 유엔 동시가입 등 북방정책의 성과들은 분단체제를 분명히 균열내고 흔들었다. 그 균열과 동요를 틀어막았던 것, 즉 진정 “분단체제 장기화에 이바지”했던 쪽은, 그 유엔 동시가입이나 <남북기본합의서>의 효과가 북미・북일 수교로, ‘남북 양국(평화공존)체제’의 성립으로 이어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던 내외의 냉전대결 세력들이었다. 어쨌거나 이 말에서 드러난 분단체제론의 독특한 개념적 함수관계를 정리해본다면, ‘분단체제론은 분단체제의 장기화에 의거하여 분단체제극복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가기 위한 이론’이 될 것이다. 이 독특한 함수관계는 몇 년의 숙고를 거친 후인 1997년,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표현을 얻게 된다.

통일을 향한 획기적인 한 걸음을 뜻하면서도 분단체제의 급격한 붕괴를 피하는 국가체제라면 비교적 느슨한 형태의 복합국가인 국가연합(confederation)이 아닐 수 없다고 본다 …… 북의 ‘연방공화국’ 제안이 영어로는 ‘confederal republic’(즉 국가연합 공화국)으로 표현되었고 1991년 남한 정부의 ‘한민족공동체’ 통일안에 국가연합 단계가 포함되었다는 사실들을 떠나서라도, 남북 간에는 국가연합을 향한 더욱 실질적인 합의가 이미 이루어진 상태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북한의 UN 동시가입이야말로 국가로서의 상호 인정이라는 면에서 그 어느 공동선언보다 실질적인 조치였으며, 이렇게 상호 인정을 나눈 두 국가 당국은 1991년 12월에 조인되어 92년 2월에 발표한 ‘남북합의서’에서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한 관계”로 규정함으로써 이미 국가연합 형태의 단초를 열어놓은 형국이다.

“통일을 위한 획기적인 한 걸음”으로서 남북의 “국가로서의 상호 인정”을 강조하고, 남북 유엔 동시가입이 이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였음을 언급하는 대목은 마치 분단체제론이 아니라 양국체제론의 논거를 펼치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피상적으로 보면 분명 그렇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어가 보면 그렇지가 못하다. 오히려 중요한 점에서 인식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 글을 쓴 1997년은 어떤 시간인가. 유엔 동시가입 이후 상당한 시간이 지났고 한국은 중국, 러시아와 수교한 반면, 북(DPRK)은 결국 미국, 일본과 수교하지 못한 채 매우 위축된 상황에서 고난의 시기를 보내고 있음에도, 이러한 상태를 ‘국가로서의 상호 인정’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매우 후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은 양국체제론의 시각과 분명히 다르다. 양국체제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남북 양국 모두에서 내적 외적으로 안정된 인정구조가 우선 성립되어야 한다. 남북 유엔 동시가입은 외부 세계가 남북 두 국가를 각각 정상적이고 온전한 국가로 인정하는 ‘양국체제의 외적 인정구조 성립’을 위해 중요한 일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불완전하고 불균등했다. 한국은 소련, 중국 및 동구권 모든 국가와 수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은 그러지 못했다. 미국은 냉전 해체 이후 위기에 처한 북을 압박을 통해 붕괴시키려만 했지 인정할 의도가 애초부터 없었다. 그 결과 일본을 비롯하여 미국의 영향력이 강한 많은 국가가 북과 수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남과 북은 국제적으로 매우 불균등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이런 상태는 남북 간의 긴장의 소지를 오히려 높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듯 여전히 위태로운 상황 속의 남과 북 두 나라의 관계가 ‘국가로서의 상호 인정’이 이미 ‘실질적으로’ 이루어져 마치 안정된 평화적 동반 관계가 이미 달성된 상태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분명 현실과 한참 동떨어진 인식이었다.

양국체제론의 현실 인식과의 차이는 이어지는 다음 대목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양국체제론은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의 이제는 유명해진 구절인 “(남북 쌍방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한 관계”라는 표현을 매우 문제적인 것으로 본다. 나는 다른 글에서 그 이유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보았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란 앞서 분석한 ‘반쪽국가의식’에 정확히 상응하는 표현이다. 흔히 <남북기본합의서>는 1972년 체결된 <동서독기본조약>을 준용한 것이라 한다. 그것은 사실이지만, 상호 인정의 수준에서 <남북기본합의서>가 <동서독기본조약>에 크게 못 미친다는 사실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동서독기본조약>은 서문, 10개조, 그리고 2개조의 추가조항 전체에서 조약 쌍방을 정식국호인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라 분명히 칭하고, 두 국가가 주권과 영토를 상호 인정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구절은 <동서독기본조약>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필자가 독일의 동방정책과 관련해서 이와 그나마 가까워 보이는 표현을 조사해본 바로는, 1969년 10월 28일 서독 수상 빌리 브란트의 연방정부 성명 중에 “독일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하더라도 그 국가는 상호 외국이 아니며, 그 상호관계는 특수한 종류인 것”이라 했던 것이 처음이었다. 그 성명의 핵심은 독일에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이라는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는 것이었다. 다만 그 두 국가는 서로 외국이 아닌 특수관계라는 뜻이었다. 먼저 국가로서 인정하면서, 그다음에 그 두 국가 간의 관계는 특수하다 한 것이다. 하나의 민족이 이룬 두 개의 국가(one nation, two states) 간의 관계이니 특수하다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동서독은 기본조약 이후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일반 수교국 대사보다 격이 높은 장관급 대표를 상호 파견했다. 그런데 <남북기본합의서>는 그와 전혀 다르다. 국가로서 인정하지도 않았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고 거듭 확인까지 하고 있다.(이 책 1부 1장, 52~53쪽)

따라서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의 문제의 그 구절은 ‘국가로서의 상호 인정’을 표현하고 있다고 결코 볼 수 없는 것이다. 아직 그 상태에 이르지 못한 남북 양 당국의 곤혹스러운 상황을 외교적 언어로 봉합하거나 절충하는 표현에 불과한 것이었다.

당시 상황을 냉정하게 보면 비록 냉전이 종식이 되었다 하더라도 미국이 북을 인정할 의도가 없는 상태에서 남북 양측만으로 종전(終戰)을 이루기 어려웠다. 아직 전쟁도 공식적으로 끝마치지 못한 상대를 국가로 인정한다는 것은 앞뒤가 바뀐 일이기도 하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미국과 별개로 독자적으로 북과 종전처리를 하고 상호 국가 인정까지 밀고 나갈 만큼의 의지와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북 역시 ‘남조선’을 곧바로 국가로서 인정할 만한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못했다. 위기에 처한 당시의 상황을 우선 모면하는 데 급급했지 장기적인 비전을 차분히 재정립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듯 남북 모두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제약된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낮은 수준의 합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남북기본합의서>가 <동서독기본조약>에 비해 상호 인정의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불완전한 합의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면 문제가 없다.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으면 그것을 극복해갈 방향도 정확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낮은 수준에서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거꾸로 뒤집어 그것이 마치 오히려 더욱 높은 수준의 심오한 합의의 결과였던 것처럼 생각한다면 문제가 된다.

실제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표현은 그러한 혼란을 유발할 여지가 없지 않다. ‘남북은 국가 대 국가로 서로를 (아직 능력이 부족하여)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뜻이 높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남북은 애당초 두 국가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이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읽으면 이 구절은 마치 ‘우리가 지금 하나는 아니지만 결코 둘일 수 없다’라는 높은 민족적 이상에 남북 대표가 의기투합한 결과, 곧바로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통일로 직행하려는 속마음이 이심전심으로 표현되었던 것처럼 과잉 해석될 수도 있다.(이 책, 53~54쪽)

앞서 인용했던 1997년도의 백 선생의 글이 바로 그런 과잉 해석의 두드러진 일례다.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의 바로 그 문제의 구절을 “국가연합 형태의 단초를 열어놓은 형국”이라거나, “연방제 통일로의 길도 열어놓았”고 “이미 형성되기 시작한 일종의 연합관계를 추인”하는 것이라고 극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런 고평가는 이후 글에서 거듭 되풀이된다.

한쪽(DPRK)은 ‘고난의 행군’에다 ‘핵사찰’의 압박 속에서 생사존망의 위기에 빠져 있고, 휴전선의 삼엄한 대치와 긴장은 여전한데, 그러한 상황에서 ‘연방제 통일의 길’이 이미 열려 있고 남북 간 ‘연합관계’가 이미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강조한다? 실제 1991년은 그러한 ‘양국 평화공존 체제’의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열렸던 순간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한국 민주화운동 세력이 분열되고, 내외 냉전대결 세력의 힘이 압도하면서 금방 닫히고 말았다. 사정이 그러했기 때문에 1991년의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를 1997년에 돌아보면서 쓰는 글이라면, 그 가능성이 어떻게 열릴 수 있었으며, 어찌하여 그렇게도 빨리 닫히고 말았는지,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지적하는 글이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랬더라면 훨씬 더 시의적절했을 것이다. 아쉬운 대목이다.

1997년 쓴 백 선생의 이 글이 왜 그렇게까지 낙관적인 글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분단체제론을 초기 입론한 1994년의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의 한반도 정세와 분단체제론」에는 유엔 동시가입과 기본합의서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 1992년의 「분단체제의 인식을 위하여」에는 지나가는 말로 “남북 양쪽에서 제기된 국가연합을 전제한 민족공동체라든가 연방제, 연합성 연방제 등”이라고 딱 한 번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이 단계에서는 두 사건이 분단체제론의 입론에서 별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1997년에는 이 두 사건에 대한 매우 높은 사후 평가가 분단체제론의 새로운 입론의 근거가 되고 있다. 그렇게 변화한 사정을 잘 알 수는 없지만, 시기상 남북 화해와 통일정책에 적극적이었던 김대중 씨의 집권 가능성이 생겼다는 상황과 연관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당시 미국의 클린턴 정부가 북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는 사정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어느 것이든 짐작일 뿐이다. 그렇지만 순전히 이론적 차원에서만 본다면, 백 선생의 분단체제론이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를 적극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입론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이미 19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 직후에 이 속에서 “분단체제의 장기화에 이바지할 가능성”, 그와 더불어 “분단체제극복운동에도 새로운 공간을 열어”줄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분단체제론 2기에는 ‘국가연합(또는 남북연합)’이 분단체제론의 키워드로 부상한다. 이 점이 1기와의 큰 차이다. 그런데 어떤 국가연합이든, 구 소련연방 국가들의 ‘국가연합(CIS)’이나 유럽연합(EU) 등 어떤 사례를 보더라도, 국가의 연합이라 하면 먼저 국가 간 국가로서의 완전한 상호 인정과 정식 수교를 전제로 한다. 그래서 국가연합을 이룬 나라들은 국가연합 이전에 당연히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대사를 교환한다. 우리와 같이 한 민족이 두 나라를 이루고 있는 경우에 이 두 나라(ROK와 DPRK)의 수교관계란 마땅히 일반 외국 사이의 수교관계보다 더 높은 것이 된다. 그래서 동서독도 기본조약 이후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양국에 대표부를 설치했고, 일반 대사보다 급이 높은 장관급의 대표를 교환했다. 그것이 양국체제고, 그것이 전제되어 있지 못한 국가연합, 즉 ‘국가 간 정식 수교관계 없는 국가연합’이란 도대체 성립될 수 없는 말이다. 국가연합을 하자면 먼저 국가 간 수교가 당연히 선행해야 되지 않겠는가? 먼저 밥을 지어놓아야 그것으로 비빔밥이든 볶음밥이든 만들 것 아닌가. 밥도 해놓지 않고 비빔밥 나와라 볶음밥 나와라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애당초 불충분하고 불완전했던 것이 1991년의 유엔 동시가입과 기본합의서였다. 이것이 양국체제론의 시각이다. 그러나 백 선생은 그 유엔 동시가입과 기본합의서의 취지조차 그 후 북핵문제와 전쟁소동으로 빛이 바래버린 1997년에 이르러, 1991년에 남북은 이미 국가로서의 상호 인정이 이뤄졌고, 더 나아가 기본합의서를 통해 “국가연합을 향한 더욱 실질적인 합의가 이미 이루어진 상태”라고 쓰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조건이 무르익은 국가연합의 완성을 위해 이제 일로매진만 하면 된다. 이로써 분단체제론은 현실과의 실천의 접면을 비로소 발견한 것이다. 국가연합의 완성을 위해 일로매진할 때, 앞서 1991년의 글에서 예고하였듯, ‘분단체제극복운동에 새로운 공간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 새로운 공간이란 ‘분단체제 장기화’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분단체제론은 이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마련되어 있는 이곳, 국가연합(남북연합)의 터가 바로 분단체제론의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라! Hic Rhodus, hic salta! 동시에 바로 이곳이 ‘지평선 도달하기 운동’의 출발점이다. 이곳에 출발선을 그은 이상, 이제 여기서부터의 한 발짝은 모두 지평선을 향한 한 발짝이다. 우리가 발걸음을 떼는 만큼 우리는 지평선에 가까워진다. 분명하지 않은가! 지평선 도달하기 운동의 실체성, 실천성은 이로써 명확해진다.

백 선생이 “나라 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고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기본합의서 서문의 구절을 1997년에 이르러 그토록 높게 평가했던 이유를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분단체제는 하나의 체제다’라는 분단체제론의 명제에서의 강조점이, 이론 1기에는 ‘체제’ 쪽에 있었다면, 2기에는 ‘하나의’로 쪽으로 이동했다. 분단체제란 결코 둘일 수 없는, 둘이어서는 안 되는 ‘하나의’ 체제다. 그렇다면 남북관계를 “나라 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고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했던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의 표현은, 이렇듯 (나라 대 나라 사이의) 둘의 관계가 아닌, ‘하나의’ 체제 안에서 이루어지는 “특수한 관계”라고 하는 ‘분단체제’의 성격을 지극히 절묘하게 표현해준 것으로 읽힌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상태를 “국가연합을 향한 더욱 실질적인 합의가 이미 이루어진 상태”와 등치하게 된다.

앞서 최원식 교수가 “분단체제를 상정한 남북연합론”이라 했던 표현의 근원이 어디였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다. 남북연합(국가연합)은 ‘하나의’ 체제인 분단체제를 상정하고 전제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하나의’ 체제인 분단체제를 상정하지 않고 ‘두 개의 나라’를 전제하는 양국체제론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는다. 이런 사고법에서는 양국체제가 안정되어야 비로소 정책연합이든 국가연합이든 통일로 가는 다음 단계가 가능해진다는 생각은 자리 잡을 데가 없어진다. 분단체제론이 국가연합과 함께 강조해온 남북 민중연대(또는 시민연대)도 양국 수교를 통한 안정된 민간 교류 속에서 훨씬 대대적으로 현실화될 수 있다는 생각은 애초에 가로막혀 있다. 다만 양국체제는 ‘국가연합과 연방제를 통해 통일로 직행하는 길’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로 간주될 뿐이다.

분단체제론 1기에서 분단체제 개념의 ‘과잉이론화’는 분단체제의 장기화와 분단체제극복 과제의 초역사적 보편화라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2기에서의 과잉이론화는 분단체제가 국가연합(남북연합)의 전제조건으로 상정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로써 분단체제 자체가 국가연합이라는 적극적인 실천목표와 어느덧 엉켜버린다. 국가연합의 목표 실현을 위해서는 분단체제의 존속이 상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후 국가연합(남북연합)은 분단체체론의 ‘분단체제극복운동’의 초점이 된다. 이로써 분단체제론은 분단체제의 존속을 상정해야만 하게 되었다. 앞서 이를 ‘분단체제론의 곤경(딜레마)’이라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분단체제론의 출발에서 비판과 극복의 대상이었던 분단체제가 이제 ‘남북연합’이라는 분단체제극복운동의 목표와 뒤엉키면서, 어느덧 분단체제 자체가 적극적인 긍정의 대상으로, 처음과는 정반대의 존재로 환골탈태하고 만다. 앞서 이를 ‘분단체제론의 역설(패러독스)’이라 했다. 이 분단체제의 곤경과 역설은 이론 2기에 이르러 이제 그 전모를 완연히 드러내게 되었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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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0/05/2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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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체제의 순환고리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

백낙청 선생은 1997년 쓴 「분단체제극복운동의 일상화를 위해」를 통해, ‘국가연합(남북연합)’을 자신이 1990년대 초반 이래 제기해온 ‘분단체제론’의 새로운 맥점으로 제시했다. 이 제시는 시기적으로 절묘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민주정부 10년’이 시작되었다. 통일문제에 경륜이 깊은 김대중 대통령과 미국 민주당 클린턴 정부와의 궁합이 맞아떨어져 1999년에는 ‘페리 프로세스’에 남북미가 합의할 수 있게 되었고(1994년의 제네바 합의는 북미 간의 합의였다), 2000년에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져 6·15 공동선언을 내놓을 수 있었다. 더욱이 공동선언의 제2조는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라고 하여 분단체제론이 1997년 이래 새롭게 강조했던 (국가 또는 남북) ‘연합’ 통일 방안에 대해 드디어 남북이 모두 합의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6·15 선언 직후 백 선생은 이 조항의 합의가 “획기적”이라 썼고, 더 후일인 2012년에 쓴 「포용정책 2.0을 향하여」에서는 이 조항이 “6·15 공동선언의 가장 빛나는 성취에 해당”한다고 극찬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어 들어선 노무현 정부에서는 우선 2005년 백 선생 자신이 “남·북·해외가 함께 만든 ‘6·15 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의 남측대표라는 중책”을 맡아 “3월과 6월 및 8월에 금강산과 평양, 서울에서 각기 공동행사를 치르는 등 ‘6·15 시대’가 크게 활력을 되찾는 현실을 체험”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2007년의 10·4 정상선언으로 “남북연합의 건설은 …… 이미 시작되었”다고 후일 회고한다. 당시 고위급회담에 총리가 나가고, 그 총리 회담의 정례화가 언급되고, 정상회담도 수시로 열자는 언급이 오갔던 것 등이 바로 “(남북)연합기구에 해당하는 조치들이 많이 마련된” 것이었다고 풀이하고 있다.

이상 백낙청 선생의 여러 회고를 종합해보면, ‘남북연합’은 1989년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 처음 등장하여, 6·15 선언에서 버전 1.0을 완성하고, 2007년 10·4 선언에서 1.5가 이뤄지며 (2012년 대선 때 백 선생이 제안한 ‘2013년 만들기’에서의 버전 2.0 기획은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으로 무산되었지만) 이제 촛불 이후에 2012년 대선 실패로 유실되었던 그 버전 2.0의 완성을 기다리고 있는, 시간의 축을 따른 직선적, 선형적 성장도면이 그려진다. 간단히 도식하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위 <그림 3>은 내가 겪어왔고, 생각해왔던 ‘87년 이후 지난 30년’, 1987년 6월에서 2016년 촛불 직전까지의 상(像)과 크게 다르다. 내 실감 속에서 그 30년은 ‘분단체제의 마의 순환고리’가 87년의 거대했던 민주 동력을 서서히, 그리고 완전히 삼켜버린 시간이었다. 그 느낌을 실감 그대로 전하기 위해서 촛불혁명 이전인 지난 2015년 12월 17일, 필자가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했던 강연을 강연문 그대로 인용하면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2015년이 채 보름도 남지 않았다. 새해가 되면 87년 이후 29년째다. 87년 태어난 아기가 우리 나이로 서른이 된다. 한 세대가 지났다. 벌써 그런가. 87년의 벅찼던 희망과 기대가 어제 일 같은데, 벌써 그렇다. 그 30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세상은 어떻게 변했는가?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다는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누구는 지금이 1972년의 유신 전후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말하고, 누구는 더 거슬러가 1894년 청일전쟁 전야의 상황과 비슷하다고까지 말한다.

민주화운동 세력은 87년 6월 항쟁 이후 이제 대한민국은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민주주의의 다리를 건넜다고 확신했다. 4·19 때처럼 역사가, 민주주의가 거꾸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결코 없다고. 60 – 70 – 80년대 30년 동안, 4·19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힘이 자라났고, 그랬기에 그 철벽같았던 전두환 군사독재를 밀어뜨릴 수 있었다고. 이제 한국은 제대로 된 민주국가, 정상국가가 되었다고. 어둠의 임계점을 넘어 광명의 땅으로 들어섰다고. 세계도 환호하며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고. 역사발전의 곧고 탄탄한 정상궤도로 확실히 진입했다고. 다소의 저항이 있겠지만 시대의 대세는 돌이킬 수 없다고. 그런데 시간이 꼬여버린 듯하다. 다 지나왔다고 생각해왔던 시간 안으로 거꾸로 다시 떠밀려가고 있다는 느낌이니 말이다.

지난(2016년) 10월 ‘백년포럼’에서 이부영 전 의원은 87 민주화운동 성취 이후, 주도 세력에게 ‘그림’, ‘로드맵’이 없었다고 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림이 분명했다. 그 그림은 4·19 이후 30년의 민주화운동이 산출한 것이다. 이 그림은 직선 몇 개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그림 4>)

문제는 이 그림에 있었다. 87년의 주도 세력은 이 그림처럼 앞에 열린 길이 탄탄한 평지 위의 직선 길이라고 생각했다. 87년을 통해 획득한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를 열심히 하면, ‘경제사회적·실질적 민주주의’가 자연스럽게 따라 이뤄질 거라고 생각했다. 잔잔한 호수 위에 돌을 하나 첨벙 던지면 차츰차츰 퍼져가는 가는 동심원처럼.

그런데 그 후 30년의 실제는 어떠했는가. 87년 10주년에는 ‘IMF 사태’를 당했다. 20주년에는 ‘6월 항쟁을 통해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 내지 정치적 민주주의는 달성했으나 경제·사회 면에서의 실질적 민주주의는 여전히 부실하거나 심지어 후퇴했다’는 식의 진단들이 나왔다. 이제 30년이 코앞인데, 이제는 그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 정치적 민주주의조차 제대로 ‘달성’된 것이었는지 의문이 드는 지경이다.

나는 87 주도 세력이 개인 욕심에 빠져 민주화의 대업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는 식의 설명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진단은 흔히 동기가 의심스럽거나, 혹은 너무 단순하여 그렇듯 의심스러운 동기에 이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런 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정치권으로 들어간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할 이유도 없는 것 같다. 중요한 점은 나름 열심히 한다고들 했는데 엉뚱한 곳에 와 있는 원인이 뭐냐다. 직선을 따라 30년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다시 둘러보니 왠지 출발한 지점으로 다시 돌아와 있다는 느낌, 기분 좋지 않은 데자뷔, 기시감이다.

이 강연 당시(2015년 12월)는 박근혜 정부의 전성기였다. 그때의 사회 분위기를 기억하는 분이라면 모든 게 막힌 듯 얼마나 암담했는지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87년의 에너지는 완전히 실종된 것으로 보였다. 민주주의는 철저히 재갈 물리고 총체적 블랙리스트가 정치, 사회, 학술, 문화 전방위를 지배했다. 남북관계는 뿌리까지 얼어붙어서 오히려 87년 이전인 전두환 정부 시기보다 대화가 더 막혀 있다고 느낄 지경이었다. 이제는 수십 년이 갈 ‘제2의 10월 유신’이 목전에 왔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러다 이 강연 4개월 후, 4·13 총선이라는 최초의 반전이 왔다. 그러나 그 후에도 박근혜 정부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촛불혁명이 왔다. 87년 역시 그러했다. 당시 누구도 87년 6월과 같은 거대한 ‘판 갈이’를 예상하지 못했다. 4·19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를 회고하여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새벽은 결국 온다’거나 ‘민주주의는 역시 반드시 승리한다’라고 낭만적으로 칭송하는 데 그친다면, 좋게 말해 순진하다. 엄격히 반성해봐야 할 일이다. 도대체 한국 사회에는 어떤 마(魔)가 씌워 있기에 세계를 놀라게 한 그토록 대단한 민주혁명이 연이어 벌어졌음에도 그것이 모두 번번이 독재로 회귀하고 말았는가? 촛불혁명이 또다시 같은 운명을 겪지 않게 되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2018년 촛불 이후 백 선생의 지난 시간의 회고를 보면 그런 긴박감, 절박감, 위기의식, 그 30년의 진행 상황에 대한 회오나 반성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동안 남북연합 잘 해왔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잠시 정체가 있었지만, 이제 다시 해온 대로 남은 길 그대로 마저 밀고 나가면 된다는 식이다. <그림 3>의 남북연합 완성의 직선도와 <그림 4>의 민주화 완성의 직선도는 그래서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역사적 이정표를 세웠고, 2005년 9·19 합의와 2007년 2·13 합의는 북핵문제 해결의 경로를 예시했으며, 같은 해 <10·4 남북정상선언>은 종전과 평화체제문제를 화두에 올렸다.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물어야 한다. 그럼에도 왜 6·15 선언 이후 채 몇 개월이 안 되어서부터 강한 ‘퍼주기’ 후폭풍에 시달려야 했고, 6자회담의 중요한 합의들은 왜 금방 휴지 조각이 되어야 했으며, 10·4 선언의 성과는 오히려 왜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총체적 종북몰이의 단골 먹거리 메뉴로 역용당해왔던 것일까. 과연 그 성과들은 ‘포용정책 버전 1.0, 1.5, 2.0’에 이르는, 그리고 이르게 되고야 말, 순탄한 직선적 상승 코스였던 것일까. 오히려 이 과정은 그 상승만큼의, 아니, 그 상승 폭을 오히려 능가했던 후폭풍과 역풍을 수반하여 그 직선의 방향을 하향으로 짓누르고 구부려 뜨려 결국 앞으로 나간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원주(圓周)를 따라가 역방향으로 돌아갔던 것 아닌가? 즉 분단체제가 다시금 강화되고 있었고, 그에 따라 그 가공할 ‘마의 순환고리’가 굉음을 일으키며 다시금 작동하기 시작했던 것 아닌가? <그림 5>처럼 말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많은 이들이 ‘분단체제의 역풍’이 다시 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을 때, 백 선생은 상황이 좋지 않음을 인정하면서도, 결론적으로는 “결코 그렇게만 볼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여전한 신념이다 …… 회복 불능은 아니다. 심지어 정지 상태도 아니다. 한반도식 통일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궁극적으로는 시민참여 통일과정으로 될 가능성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라고 썼다. 이미 시작된 남북연합이 돌이킬 수 없는 추세가 되었기 때문에 분단체제는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그의 신념 때문이었다.

이러한 분단체제론의 사고법에는 분단체제가 시대를 역진하여 민주혁명 이전의 상태로 완전히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반복적 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그 ‘마의 순환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절적 단절’이 필요하다는 사고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양적 변화의 사고법만 존재한다. 이는 <그림 3>의 남북연합의 직선도에서 유추할 수 있다. 남북연합의 증가만큼 분단체제는 감소한다. 역시 직선적 관계다. 백 선생이 신념을 가지고 말하듯 남북연합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추세로 항상 작동한다. 간혹 정부 간의 길이 막히더라도 백 선생이 제기했던 ‘시민참여 통일과정’의 길로 더욱 열심히 나가면 된다. 그렇게 하여 남북연합의 힘이 커지는 만큼 분단체제의 힘은 계속 약화된다.(<그림 6>)

분단체제는 어차피 ‘흔들리고, 무너지고, 해체되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그런 분단체제가 다시 강고해질 수가 없다. 그리하여 어느덧 분단체제는 더 이상 그다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닌 것으로 인식된다. 이미 별다른 힘을 쓸 수 없는, 사멸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게 하나 있다. 그 ‘사멸의 끝’은 어디일까? 과연 <그림 4>에서 굵은 직선은 분단체제가 0이 되는 지점에 언제나 도달할까? 과연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혹시 영원한 점근선 아닐까? ‘지평선 도달하기’와 같은 것 말이다. 그 사멸의 끝은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에 있다. 자, 그러니 분단체제의 완전한 사멸에 이르기까지 흔들리지 말고 계속 나가자. 그러나 지평선이란 다가가는 만큼, 정확히 그만큼, 더욱 멀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저 지평선에 도달할 그 시점(즉 분단체제가 종식될 그 시점)이 남북연합이 완성된 ‘1단계 통일’ 때일지, 아니면 그 이후 더욱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질 ‘2단계 통일’ 때일지 전혀 명확하지 않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어느덧 이 과정에서 ‘분단체제’가 이제는 별로 유해하지 않은, 잘 길들여진, 순치(馴致)된 존재가 되어버린 듯하다. ‘남북연합’과 ‘과정으로서의 남북연합’ 그리고 ‘과정으로서의 통일’은 ‘분단체제를 상정’한다고 하니, 이제 분단체제는 1단계, 2단계 통일의 전제, 바탕이 된다. 더 나아가 인류의 보편문제의 해결을 지향하는 원대한 분단체제론의 장도(長途)를 동반하는 충직한 종자(從子)가 되어버린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진정 고민되는 것은 그렇듯 한가한 ‘먼 미래문제’가 아니다. 과연 민주혁명의 동력을 (4·19와 87년 6월) 그토록 완벽하게 말아먹고 말았던 ‘분단체제의 마의 순환고리’를 지금 여기서 (촛불혁명 이후) 어떻게 완전히 끊어야 하느냐라는 절박한 현실의 문제다. 지금껏 해온 대로 ‘남북연합’ 열심히 하고, 혹시 정부가 시원치 않으면 ‘시민참여 통일과정’을 마찬가지로 열심히 하면, 결국 문제없다는 것이 분단체제론의 해법이었다. 그러는 어느 사이 분단체제론에서 ‘분단체제’는 이제 별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으로 되어버린 듯하다. 오래 전부터 ‘흔들리고’ ‘허물어지고’ ‘해체되어’ 왔다고 하였으니, 어느 사이 이제는 무해(無害)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일까?

그러나 이런 방식의 사고법으로는 분단체제를 결코 빠져나올 수 없고(빠져나올 생각이 별로 없다), ‘마의 순환고리’를 끊을 수도 결코 없다(그런 게 반복적으로 작동한다고 보지도 않는다). 분단체제론의 사고법은 양적 점증(漸增), 점변(漸變)론이다. 백 선생이 제시해온 ‘남북연합’과 ‘시민참여 통일과정’을 열심히 하면(점증), 분단체제는 서서히 사라지고 통일은 서서히 온다(점변). 결국 현상유지론이다. 반면 양국체제론은 ‘질적 단절’을 주장한다. 분단체제는 마의 순환고리를 통해 대략 30년을 주기로 완강하고 반복적으로 작동해온 강력한 실체다. 확실한 ‘질적 단절’을 통해서만 끊어낼 수 있다. 분단체제를 끊어내야, 현상을 타파해야만, 비로소 통일의 길이 열린다. 그러나 분단체제론에는 이러한 ‘분단체제 현상타파’의 사고법이 없다. 어느덧 ‘분단체제 현상유지론’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일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만 실제로 통일로 가는 길은 “두루뭉수리 …… 어물어물 진행되는 통일” 과정이라고 할 뿐, 그 실체가 묘연하다.

‘분단체제의 마의 순환고리’는 이미 4·19 이후 30년 동안에도 한 차례 작동했던 바 있다. 박정희 – 전두환 정권은 일체의 비판과 저항을 용공·좌경·친북으로 몰아치면서 ‘비상국가체제’의 철옹성을 높이 세웠다. 이 과정에서 4·19 주도 세력은 처절하게 무력화되고 말았다. 과연 그때 통일론이 없고, 통일에 대한 의지와 열망이 없고, 분단체제극복운동이 없어서, 4·19는 그렇듯 실패해버리고 말았던 것일까? 이어 87년의 거대한 민주적 에너지가 이윽고 그 ‘비상국가체제’를 종식시킨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힘조차 동구권 붕괴 이후 ‘북한붕괴론, 흡수통일론, 북핵위기론’이라는 새로운 교의로 무장한 신(新) ‘비상국가체제’ 세력에 의해 다시금 ‘종북’, ‘퍼주기 세력’으로 몰려 다시금 ‘귀 빼고 뭣 뺀 당나귀’처럼 무력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순치되었던 것은 분단체제가 아니라, 그 분단체제를 끝장내보겠다 했던 저항 세력, 87년의 민주 동력이었다. 그 시간 역시 30년이었다. 87년 6월은 과연 승리한 것인가? 아니다. 4·19가 그랬던 것처럼 실패했다.

암울했던 2015년 겨울의 강연에서 나는 그것을 쓰라리게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쓰라렸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내 자신 80년대의 대변동에 미미한 일부였을지라도 풍찬노숙해가며 온몸을 던졌던 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몽땅 말아먹은 이유를, 아프지만, 아파도 견디면서, 꼼꼼하게 추적해보았다. 그 결과 악몽 같은 과정이 ‘반복’된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그 핵심에 ‘남북의 극단적 적대’를 동력으로 작동하는 ‘분단체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을 ‘마의 순환고리’ ‘분단체제의 반복강박’이라 불렀다.

절망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반대로 절망을 빠져나가는 길을 찾자는 것이었다. 반드시 찾아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원인을 모르는 게 문제다. 원인을 확실히 알면 해법이 반드시 있다. 그 12월의 강연에서는 평화체제, 공존체제를 이야기했다. ‘분단체제’가 문제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분단체제에서 공존체제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뭔가 아직 석연치 않았다. 평화체제, 공존체제는 좋다. 누구나 좋다고 한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그 평화체제, 공존체제를 이룰 수 있는가? ‘분단체제’를 종식시킬 열쇠, 핵심이 뭔가? 여기에 답하지 못하면 ‘그냥 좋은 말’ ‘공자님 말씀’하고 끝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질적 단절’의 그 고리가 무엇인가?

강연 이후 오래 생각했다. 답은 가까운 데 있었다. 양국체제였다. 그것을 2016년 5~6월의 4회 대중강연에서 밝힐 수 있었다. 그리고 2017년부터 대중적인 매체를 통해 칼럼 형식으로 가능한 널리 알려 나갔다. 양국체제가 현실화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로 보았기 때문이다. 2018년 4·27 판문점 회담 결과를 예견하는 글을 마지막으로 칼럼 활동은 일단 접었다. 이제는 큰 흐름이 잡혀가는 것으로 보였고, 그 상황에서 그런 방식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일단 다했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책 출판을 준비했다. 그것이 학자로서 해야 할 남은 숙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서 양국체제의 발상을 압축하여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마의 순환고리’는 ‘분단체제’를 통해 작동한다. 어떤 시스템도 동력이 끊어지면 정지하듯이 어떤 역사적 체제도 그 선행조건이 사라질 때, 같이 사라진다. ‘분단체제’는 미소 냉전과 남북 적대라는 두 개의 동력(선행조건)으로 작동되어왔다. 90년대 초 미소 냉전이 이윽고 종식되었음에도 분단체제가 존속해온 이유는 남은 동력인 남북 적대가 존속했기 때문이다. 이 적대를 해소해야 분단체제가 씌워놓은 마(魔)와 주술(呪術)에서 풀린다. 우선 남과 북이 서로 상대가 자신을 소멸시키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게 돼야 한다. 남과 북처럼 참혹한 전쟁을 한 사이에서 그 믿음이 완전해지기는 어렵다. 그나마 현실적으로 가장 분명한 것은 서로를 국가 대 국가로 완전히 인정하는 공식적·제도적인 조치들이다. 서로의 주권과 영토를 인정한다고 서로 그리고 세계만방에 약속하는 것이다. 그것이 양국체제다. 서로 정식 수교하여 대표부를 교환하고 이를 시발로 교류의 폭을 점차 늘려가는 것이다. 한국(ROK)과 조선(DPRK) 두 나라의 수교는 ‘한조(韓朝) 수교’다. 한조 수교는 코리아 양국체제가 공식화되는 첫 단추가 된다.

국가 간 수교가 적대관계 해소에 미치는 영향은 한중 수교에서 볼 수 있다. 서로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했던 수교 이전과 이제 서로 100만명씩 서로의 땅에 거주하고 있는 수교 이후의 차이는 너무도 명백하다. 남북 수교가 한중 수교만큼 당장 빠른 효과를 내기는 어렵겠지만, 수교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수준의 교류와 협력이 이뤄질 것은 분명하다. 분단체제론이 강조해온 남북 민중연대, 시민연대도 이때 비로소 본격화될 수 있다. 여기서 반드시 빠뜨려서는 안 될 문제가 있다. 양국체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북미 적대 역시 풀어야 한다. 미소 냉전이 종식되었음에도 한반도에서 냉전의 여파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것은 그 파생물이었던 남북 적대와 함께 북미 적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북미 역시 전쟁을 한 사이다. 그러나 미국은 전쟁을 했던 중국, 베트남과 이미 수교했다. 북미 적대 해소의 가장 현실적인 방법 역시 북미 수교에 있다. 따라서 양국체제는 남북 수교와 북미 수교를 통해 현실화된다. 남북 수교와 북미 수교가 이뤄지면 ‘분단체제’는 동력을 잃고 해소된다. ‘마의 순환고리’ 역시 따라서 끊긴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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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5/27-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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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주:

한국에는 ‘백년의 급진’이란 저서로 알려져 있는, 중국의 삼농三農문제 최고 전문가 원톄쥔溫鐵軍 (전)인민대학교 교수가 중국 인터넷 신문 포털 ‘오늘의 헤드라인今日頭條’에서 2월중순부터 매주 1회 세차례에 걸쳐 “팬데믹 영향하의 글로벌라이제션 위기”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강연을 행했다. 매 강연은 수백만명의 시민, 청년 대학생, 지식인들이 시청하는 등, 뜨거운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강연자의 동의하에 이를 녹취 번역해 ‘월간 공공정책 4월호’에 게재된 것을 ‘공공정책’지의 허락으로 ‘다른백년’에도 옮겨싣는다.


나는 우선 ‘글로벌라이제이션 위기’를 역사적으로 삼단계로 구분하고자 한다. 그 첫번째는 전자본주의 식민지시기, 두번째는 자본주의의 산업자본발전시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1970~80년대부터 시작된 금융자본주의시기이다.

전자본주의 식민지시기에 유럽사회에 존재하던 초기산업자본은 세계의 여타 대륙, 즉 남북미주, 아프리카, 오세아니아를 1차산업의 원재료 생산지, 그리고 노예노동 공급원으로 삼아서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수행하였다. 식민화 과정에서 벌인 그들의 반인륜적인 행위의 대가는 주로, 근대민족 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부락에 거주하는, 피식민지의 원주민과 ‘생태환경’이 지불하게 하였다. 즉, 이 시기의 ‘글로벌라이제이션 위기’는 유럽식민주의자들이 아니라, 이들 제3세계 민중들에게 닥친 것이었다.

제2차 글로벌라이제이션은 산업자본 중심이었는데, 대부분 지역성을 갖고 있었고, 공업화 열강국들에 집중됐다. 즉, 자본은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고, 노동계급은 국경을 초월하여 노동잉여를 착취하는 전세계의 자본가계급에 무장투쟁을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1921년 창당한 중국 공산당도 마르크스의 국제주의를 받아들여, 강령과 그 실행에 반영하였다. 그런데, 산업/공업자본이 과잉생산을 하게 될 때, 그 생산에 참여한 무산계급은 구매여력이 부족하여,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고, 경제위기가 오는데 이것을 자본주의의 기본모순이라고 하고, 이런 내적 모순에 의한 충돌은 전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초기에 독일은, 주로 해상을 통해 영역을 넓혀 나간 영국인들의 식민주의 전략을 본받아서, 대륙진출을 시도했다. 철도를 깔아, 터키,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그리고 동아시아로 진출할 계획을 세웠다. 즉, 산업자본이 생산과잉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소비시장을 개척하려 한 것인데, 이것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의 계기가 됐던 장소인 세르비아, 즉 발칸반도가 바로 독일이 터키로 진입하기 위한 철도를 놓는 출발점인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자본주의 내부의, 즉 다른 국적을 가진 산업자본간의 갈등에서 비롯한 충돌이다. 레닌이 말한 제국주의의 전쟁인 것이다.

서방세계에서 벌어진 두번째 생산과잉은 1929-33년의 대공황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유럽에서는 전쟁이 일어난 반면, ‘국가자본주의’옹를 채택한 미국과 소련은 위기를 적절히 넘길 수 있었다.

미국은 루즈벨트의 뉴딜정책, 즉 신국가주의를 내걸고, 과잉생산능력을 초대형 국가인 북미대륙의 내부 인프라 건설에 사용했다. 만일, 역으로 독일이 일차대전 발발전에 의도했던대로 유라시아 철도를 건설하면서, 자국의 과잉생산능력을 해소했다면, 전쟁과 패망에 이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루즈벨트는 철도를 놓고, 고속도로를 깔고, 댐을 건설하면서 미국의 위기를 극복했다.

소련의 경우 레닌이 인정하고 스탈린이 계승한 국가자본주의 발전경로를 따르게 되는데, 이러한 국가주의적 발전정책을 통해서, 산업자본의 내부 충돌과 전쟁을 면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제2차 글로벌라이제이션 위기는 산업자본의 위기라고 말할 수 있고, 자본주의 발전 원칙에 의해서 반복적으로 야기되는 생산과잉이 역시 내부 충돌과ᅠ전쟁의 반복으로 귀결되게 된다. 2차대전 이후, 미소의 냉전시대가 열리면서,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진 않지만, 한반도 전쟁이라든가 베트남전쟁 등, 국지전이 반복되면서, 해당지역은 역시 산업자본의 내부모순과 충돌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미소가 진영을 나눠, 미국의 경우, 40년대의 마셜플랜을 통해 서유럽을 개발하고, 소련은 동유럽을 개발했다. 그리고 한반도 전쟁과 그 이후의 회복과정을 통해, 미국은 전쟁을 지원하는 동시에 일본의 공업화를 추진하고, 소련은 전후에 중국으로 대량의 공업설비를 이동시켜 중국을 공업화시켰다.

이렇게 굴기한 미국, 유럽, 일본이 1960~70년대에 다시 생산과잉위기를 맞게 되는데, 주로 노동집약형 산업을 위주로, 새로운 생산기지를 찾게 된다. 서방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 칠레 등의 라틴아메리카 국가, 아시아의 일본은, 소위 네마리 용/ 호랑이에게 산업을 대규모로 이전하게 된다. 한편, 서방은 산업이전후, 사회모순과 갈등, 대립이 점차 약화되는 가운데, 인권과 사회의 발전, 복지 등의 가치를 추구하게 되고, 북구의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모델, 그리고 북구의 정도에는 못미치지만, 역시 지나치게 약탈적이지 않은, 서유럽의 ‘라인모델’이 만들어지게 된다. 일본 역시 산업구조가 장비제조업 및 기술집약형 산업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전체 동아시아의 자본주의 모델이 완성된다.  즉 대영제국 식민주의 시절에 시작되고 미국이 계승한 앵글로-아메리칸 모델이 지역별로 서로 다른 자본주의의 세가지 모델을 파생시키게 된 것이다.

서방이 산업자본을 이동시키면서, 선택한 지역은 모두 권위주의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60년대에 산업이전이 시작되고, 70년대에 대규모 이전, 80년대에 규모를 달성하는데, 서방세계의 산업을 인수한 중남미 국가 모두 군사독재정권이었다. 동아시아는 한국의 박정희 정권, 계엄을 유지한 대만 장제스의 국민당 정권, 싱가폴, 태국,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이 역시 모두 권위주의 혹은 군사독재국가였다. 제1세계가 이전시킨 노동집약형 산업은 일반적으로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 격렬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아직 노동운동 역량이 형성되지 않았거나, 형성이 쉽지 않은, 권위주의 국가들이 선호된 것이다. 역으로, 사회적 갈등이 줄어든  서구사회는 인권과 사회복지, 공공윤리 등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사회를 발전시키는데, 이러한 갈등과 모순이 함께 국외로 이전된 덕으로 볼 수도 있다. 발전된 사회와 낙후된 사회의 제도차이는 이런 역사적 맥락을 갖는다. 앵겔스는 낭만적 국제주의에 머물렀던 마르크스와 달리, 이런 자본의 국적과 그에 따른 국가별 차이를 인식했고, 영국의 노동계급이 식민지에서 착취한 초과 잉여를 분배받음으로써 귀족화한점을 정확히 지적했다. 앵겔스는 마르크스보다 오래 살았기 때문에, 국제 사회의 변화를 더 장기간 관찰한 결과로 얻게된 통찰이다.

그래서, 서구사회의 어떤 이념으로 어떻게 포장을 하든, 우리가 객관적으로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보며 이해하게 되는 것은, 세계체제의 변화과정에서 ‘비용’이 국가간에 이전 혹은 전가된다는 것이다.

산업자본이 글로벌라이제이션을 달성한 80년대 이후, 서방과 그 우두머리격인, 앵글로아메리칸 국가인 미국과 영국은  금융자본에 의한 글로벌라이제이션 시기로 이행하게 된다. 특히, 미국은 국제통화인 ‘달러’를 찍어내서, 산업자본을 인수한 개발도상국이 생산한 물품을 소비하고, 대금을 결제한다. 또, 모든 산업생산국가들은 이렇게 얻은 외화, 즉 국제통화를 비축해 놓아야만, 원재료, 상품과 서비스의 국제교역을 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영미가 자국 GDP의 80%를 금융서비스업으로 구조전환하는 경제고도화를 달성하면서, 역시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도 독점하게 되는데, 이것이 금융자본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인 것이다. 그래서, 서방의 산업이 이전된 국가들에게는 역시 자본수출국가의 금융자본과 이에 수반한 제도의 도입이 요구된다. 제도 도입 과정에서 사람이 파견돼, 지도, 감독, 조정이 필요하고, 이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요구 받게 된다. 이렇게 산업자본의 글로벌 재배치국면에서 금융자본은 막대한 초과수익을 달성한다.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산업자본은 최저가의 생산요소를 제공하는 국가를 찾아 나서게 되고, 가치사슬내에서 국제적 분업이 이뤄지면서, 어떠한 국가도 더 이상, 하나의 제품을 엔드-투-엔드end-to-end로 생산할 수 없게 됐다. 특히 서방국가는 노동생산요소가 값싼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와 같은 나라들을 찾아 생산기지를 이동하는데, 이를테면, 패션과 같은 경공업 제품이라면, 서방세계는 브랜드를 갖고, 생산은 개발도상국이 담당한다. IT산업이라면, 저부가가치의 소프트웨어 인프라를 구축하는, 프로그래머 역할은, 영어가 가능하고, 값싼 고급인력이 풍부한 인도로 이전되지만,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적 재산권은 여전히 서방국가에 귀속된다.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에 이상이 생기면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거는데, 전화를 받아드는 것은 역시 아웃소싱된 인도의 서비스 회사, 콜센터에 위치한 인력들이다.

이제 금융자본주도하에 가상자본주의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이뤄지고, 자본주의는 한층 더 고도화를 달성한다. 제조업뿐 아니라 서비스업도 이렇게 전세계적인 국제분업에 동참하고, 각 가치사슬의 고리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그중 하나의 고리만 유실되어도, 글로벌 위기상황을 맞게 된다. 오늘 강의 내용은 이처럼 어떠한 가치판단도 배제한, 자본주의의 발전 역사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서술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중국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 이것은 글로벌라이제이션 위기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 중국의 많은 생산현장에 여전히 노동자들이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데, 복귀율은 3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2020년 2월17일 당시). 선진국들 대부분이 중국에 대한 높은 산업의존도를 갖고 있는데, 미국만해도 30%에 이른다. 중국에 대한 산업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경제에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중국은 국가의 적극적인 교육투자로, 노동자들의 수준이 높고, 거의 대부분 산업의 생산능력을 갖고 있으며, 주로 중간재 부품의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중국의 부품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 최종 제품을 생산하는 한국, 일본, 미국, 유럽 등 모든 국가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럼 다음 단계로 중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기업이 줄도산하고, 대량실업사태가 발생한다. 기업대출금은 불량채권이 되고, 은행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된다. 전체 경제상황 악화에 따라서, 금융권 부실이 이어지고, 이미 상당한 적자수준을 보이는, 중앙과 지방정부의 재정이 악화한다. 올해 구직시장에 나올 800만 대졸자들도 일자리를 얻을 수 없게 된다. 중국에 연결된 산업의 가치사슬에 위치한 다른 국가들이 영향을 받게 되고, 그들이 입는 타격은 다시 중국에 되돌아온다. 그래서, 중앙정부는 전심전력을 다해서, 방역대책에 나서는 동시에, 노동자들의 일터 복귀를 독려하는 것이다. 중국의 생산이 멈추면, 전세계적 경제위기가 발생한다.

금융자본은 이럴 때 어떻게 움직이는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상황을 복기해보자.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당시에 QE(Quantitive Easing), 양적완화라는 개념을 미국에서 만들어냈다. 사실은 대량으로 화폐를 찍어내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한 것이다. 당시의 위기는 실물경제가 아니라 금융자본이 초래한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돈을 찍어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에 나눠줬고, 이들이 석유나, 식량, 원자재와 같은 commodity시장에 투자하게 해서 위기를 넘겼다. 미국은 국제통화인 달러를 발행하고, 금융자본으로 세계경제를 지배한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은, 이렇게 전가된 금융자본 비용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갑자기 늘어난 달러 때문에, 당시 석유선물은 가격이 네배 이상 뛰었고, 밀과 같은 식량은 두배 이상 뛰었다. 당시 무려 30여개국이 기아 문제를  겪게 됐는데, 이는 역사적 식민화와도 관계가 있다. 미주나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대륙 등이 식민지 시절 밀가루를 주식으로 삼는 유럽 식문화를 받아들였고, 한편으로 이 지역의 농업은 다국적 농산업 기업이 지배하게 됐다. 그래서, 이들 지역의 많은 후진국과 개발도상국가들은, 자국의 식량대신, 커피, 사탕수수, 목화 등을 플랜테이션 재배하고, 밀과 같은 식량은 다시 수입해서 공급해야 하는데, 넘치는 달러 유동성 때문에, 갑자기 폭등한 밀의 가격을 감당할 수 없어서, 굶주림에 처하게 된 것이다. 석유는 또 어떤가, 중국은 70%이상의 석유를 수입하고 있고, 역시 유가변동에 의한 타격을 입게 된다. 미국이 뿌린 달러 때문에, 전세계 모든 국가들이 인플레이션을 겪게 되고, 중국과 같은 큰 나라는, 겉으로 보기에는 이를 무난히 소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속병이 들었다. 치솟는 에너지와 원재료 가격에 대응하기 위해, 역시 인민폐를 대량으로 발행하고, 이렇게 공급된 유동성이 중국 경제를 실물경제에서 가상경제, 즉 거품경제로 이행하게 만들었다. 2009~2010년을 전후하여, 부동산, 주식투기열풍이 전국을 뒤덮은 것이 그 결과적 현상이다. 특히, 농촌에서 마을단위로 부패한 기층간부와 범죄집단이 결탁하여, 살인, 폭력, 사기 등의 수단으로 축재하고, 이러한 투기에 참여한 사례가 많다. 일단, 거품이 발생하면, 조정은 쉽지 않다.

미국은 QE1~ QE4를 거쳐 2013~2014년에 들어서야 양적완화를 멈추고 디플레이션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그렇다면, 국제금융자본 외에 누가 인플레이션으로 예기치 않은 이익을 봤나 ? 에너지 생산국인 러시아의 푸틴이 전성기를 맞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스타가 됐다. 차베스는 국유화된 석유를 팔아 얻은 초과수익으로 빈민들을 위한 각종 포퓰리스트 정책을 펼쳤고, 심지어, 라틴아메리카의 쿠바와 같은 이웃 나라들을 지원하여 반미국전선을 형성했다. 이란도 석유주권을 사용해서 상당한 이익을 봤다. 그래서 이 나라들은 미국의 주적이 된다. 반면, 중국은 자국 경제에 발생한 거품을 떠안으면서, 미국을 도와준 덕에, 적으로 지목되는 시기를 늦출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당시에는 차이메리카나 G2로 불리며 미국의 파트너 대접을 받고, 경제발전을 지속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야기한 국제수요의 지속적 하락속에 생산과잉 문제가 고질병이 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신농촌건설이나 향촌진흥과 같은 중국내의 인프라건설이고, 이는 중국판 뉴딜정책에 해당한다. 당연히 대부분 국유기업이 이를 주도하게 되고, 투자생산성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농촌과 저개발된 내륙지역에 대한 인프라 투자는 근본적으로 단기수익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고, 사기업이 뛰어들 리 없다는 점에서, 이는 공리공론의 교과서적 비판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중국 농촌 99% 마을에 포장도로가 깔리고 100% 전기가 보급됐다. 이는 농담삼아 케인즈식 정책을 설명하는, 땅을 파고 다시 이를 묻는 식으로 만든 GDP가 아니라, 인민의 실제적 복리가 되는 인프라건설이다. 농민들은, 도시처럼, 수치상의 경제적 효과를 위해서, 자원을 낭비해가며, 밤에 전등을 켜놓지 않는다. 또, 고속도로가 아닌, 농촌의 도로에서 통행비라도 걷지않는 이상, 어떻게 투자수익을 바로 회수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미국이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수출한 인플레이션을 중국은 고통스럽게 감내했고, 이제 2014년부터 다시 미국이 수출한 디플레이션도 소화했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살아남았고, 전세계 산업자본은 여전히 큰 문제없이 돌아간다. 여기서 부품을 만들고, 밖으로 보내져 완성돼, 브랜드가 붙여진다. 이것이 오늘날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실제 시스템이다.

지난번 세계금융위기를 겪어내며, 중국은 ‘신농촌건설’을 통해서, 현급 이하의 농촌을 발전시키고, 성진화城鎮化 이뤄냈다 (역자주: 중국의 행정단위는 성省-시市-현縣/구區로 내려가는데, 농촌의 현은 우리의 군郡에 해당하지만, 인구나 면적으로 따지면, 도道규모에 더 가깝다. 중국에서는 흔히 도시화城市化 대신에 성진화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일반적으로는 도시화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대도시에 집중되는 도시화 보다는 농촌지역의 읍면, 소도시의 인프라 확충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러한 별도의 표현을 사용한다) 인프라가 갖춰져서 중소기업이 농촌에 자리잡을 수 있게 됐다. 이번 위기를 통해, ‘향촌진흥정책’을 관철시켜야 한다. 농촌에 다양한 산업이 자리잡을 수 있게 하고, 생태적인 개발을 추진하며, 가난을 구제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시 국가의 투자가 필요하고, 당연히 단기 투자회수는 기대할 수 없다. 중국과 같은 대국만이, 거대한 국토안의 농촌에서 이런 내부투자를 받아 안을 수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중국이 무너진다면, 전세계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중국은 이번에도 전세계에 배치된 산업자본시스템을 떠받쳐야 하고 동시에 글로벌화한 금융자본도 지탱해야 한다.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모두가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좀 더 분석이 필요하다. 미국은 2018년부터 끊임없이 중국에 무역전쟁을 도발하고 있는데, 목적이 무엇인가? 70년대 브래튼우즈협약을 포기한 이후, 미국 달러는 전세계 결제화폐의 70%를 차지하고, 외화준비금의 60%를 점유하고 있다. 미국은 금융자본의 핵심대국으로서, 금융을 통해 돈을 벌고, 3D업종을 포함한 제조업은 다른 나라에 떠넘긴지 오래이다. 하지만, 금융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는 쉽지 않다. 월스트리트가 고용하는 인력은 고작 30만명에 지나지 않는다. 산업이 국외로 이동하면서, 실업률이 높아질 수 밖에 없고, 실업으로 잡히지 않는 비정규직은 훨씬 더 많다. 당연히 소득세를 포함한 세수가 줄고,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서 재정을 메워야 한다. 그러려면 다시 금융에 의존하면서 금융산업만을 키워주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금융자본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은 더욱 심화한다.

오바마가 문제를 해결해보려 했지만, 금융자본이 배경인 민주당 정권하에서, 한계만 절감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와 그에 앞선 산업공동화는, 두 전직 대통령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니, 오바마를 탓해도 소용없다. 장기 호황을 누리던, 클린턴의 신경제 이후, 2001년 닷컴버블의 붕괴로, 글로벌 산업자본은 탈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미국 국내적으로는 금융화 진전, 투기적 파생상품 시장의 비대화로, 2008년 금융위기의 기반이 마련됐고, 산업자본은 국외로 이동했다. 마침, 장쩌민, 후진타오 집권하의 중국은 대규모 인프라 투자로 산업기반을 강화했고, 저임금에 교육수준이 높은 노동력이 풍부한 중국이 이들에게 선호된 것은 (늘 중국 정치 체제를 비판하는) 정치적 판단과는 상관 없이, 저비용, 고효율, 고수익을 추구하는 자본의 속성일 뿐이다. 이렇게 중국이 세계 최대의 산업자본국가가 된 것이다. 중국은 이제 역사상으로도 공업생산총량과 수출입량이 최대이고, 금융자본총량마저도 최대인 국가인데, 이것은 중국을 포함한 특정 국가의 의도가 아닌, 글로벌 자본의 성과물이다. 대분류상 중국 산업의 2/3는 외자가 지배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외자가 아니라, 중국이 발행한 채권을 통해, 국유기업을 강화하고, 내륙건설에 힘을 쏟아, 현재 위치를 유지하려고 한다. 이때 등장한 트럼프가, 미국 노동자, 농민을 대변하여,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ke America great again”라고 외친다. 하지만, 실제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글로벌 금융자본의 강화이고, 이를 지탱하는 것이 군사패권주의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 다시 군수산업, 우주항공산업과 같은 주요 장비제조산업이 도사리고 있다. 여기서, 첨단무기 등의 주요부품은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제조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일반 부품은 해외에서 수입할 수도 있는데, 만일, 미국의 이런 요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다시 금융 재제를 통해 생산국가를 협박한다. 물론, 이도 안되면, 다시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

다시 정리하자면,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과정에서, 원재료 시대의 식민지 글로벌라이제이션, 산업화 시대의 산업자본 글로벌라이제이션, 그리고 금융화 시대의 금융자본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이어지면서, 변함없이 자본주의의 내부적 모순에 의해 위기가 반복되게 된다. 그러므로 코로나19 팬데믹이 새로운 위기를 촉발하는 것은 객관적인 역사발전법칙에 다름아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움직임들이 발생할까? ‘종속이론’에 의하면,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중심국가에 대한 의존을 벗어나 독립적인 주권을 확보하려면 단절(de-linking)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명한ᅠ’세계체제론’ 4인방 학자중 한명인 사미르 아민의 견해이다. 중국 현대사에서 여러번의 이와같은 단절이 발생하는데, 1949년, 1960년에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 최근 우리 연구팀은 1949년의 사태를 분석한 ‘탈종속去依附’이라는 저서를 출간하기도했다.

‘단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팬데믹 상황을 겪고 난후 정말로 주의깊게 들여다 봐야 할 곳은 어디인가? 그것은 바로 농촌이다. 모두가 정부의 방역대책만을 이야기 한다. 전쟁의 최전선에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농촌에서 벌어진 일들을 회고해봐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농촌 기층 간부들이 무식하고, 어처구니없다고 비판한다. 황당한 정부선전이나 앵무새처럼 따라하고 정부시책을 로보트처럼 실행한다고. 하지만, 중국이 이번 사태를 극복하는데 최대의 숨은 공신들이 바로 이들이다. 이들이 마을을 효과적으로 봉쇄했기 때문이다.

방역을 위한 의료자원이 가장 부족한 곳이 어디였나? 바로 농촌이다. 도시에서 일하는, 수억의 중국 노동자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또한 농촌이다. 그들이 설을 맞아 인산인해가 되어 고향에 돌아갔지만, 농촌은 코로나-19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 대부분의 농촌 마을에서 단 한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2003년 사스SARS사태가 발생했을 때, 마침 우리 그룹은 농촌에서 향촌학교를 운영하고 있었기에 상황을 분석해볼 기회가 있었다. 농촌 마을의 생산 역량은 아직 파괴되지 않았고, 완전한 단절, 봉쇄 속에서도 자급자족, 자립생존이 가능하다. 이는 바꿔 말하면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맞서는 서구 지식인과 활동가들이 외치는 행동강령인 ‘로컬라이제이션’이 이미 이루어져 있다는 뜻이다. 글로벌라이제이션 위기에 맞서는 중국 사회의 진정한 역량은, 여전히 외부에서 기인한 리스크를 저비용으로 차단할 수 있는, ‘로컬’ 향촌사회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다시 중국 정부가 내세우는 향촌진흥정책, 생태문명건설 정책을 치열하게 살펴봐야 한다. 중국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21세기의 발전전략을 다시 숙고해야 한다. 단지 거버넌스 능력뿐아니라 발전모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화, 2020/06/16-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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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숙 의원 등 끊이지 않는 국회의원 및 공직자 등의 농지투기 근절을 위해

모든 농지에 대한 전수조사 즉각 실시하라!

지난 주(25일)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본인 부친의 농지법 위반 의혹과 관련해 의원직 사퇴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지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농지투기 의혹 조사 발표에 이어, 국민의힘 의원들에 대한 조사도 발표도 이루어진 바, 윤희숙 의원의 농지투기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세종시에 있는 윤 의원 부친 명의의 농지는 주변 지역이 개발되어 가격이 매입 당시보다 최대 2배가량 오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또한 직접 농사를 짓기 위해 농지를 구입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농업경영 계획서를 제출하고 농지 3,300평(1만871㎡)을 산 아버지가 농사를 지은 적이 없고, 주소지만 대리 경작한 주민의 집으로 몇 달간 옮겨놓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형적인 농지투기 방식이다.

더욱이 윤희숙 의원 아버지가 매입한 세종시의 농지는 산업단지들 가까이에 있다. 일각에서는 윤 의원이 일했던 한국개발원(KDI)이 국가산업단지 예비타당성조사 기관인 점을 들어 내부 정보를 이용한 농지투기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하고 있다.

LH사태 이후 한국 사회에 만연한 땅 투기는 결과적으로 불평등을 가져오고 땅 투기의 90% 이상이 농지임이 드러난 바 있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사문화되고 농지법에서 농민이 아닌 누구나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해 놓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바꾸기 위해 정부는 농지법 개정안을 지난 8월 국회에서 통과시킨 바 있다. 하지만 8월에 개정된 농지법은 이전 농지투기 등 불법 농지 소유에 대해서는 묵인하고 새롭게 이후 상황에 대한 관리만 강화하자는 것으로 농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준이 되지 않는다.

농지는 국민에게 식량을 공급해줄 수 있는 공공재이다. 그리고 OECD 평균이 102%에 달하고 있는데 한국의 식량자급율은 20%에 불과하다. 앞으로 농지가 농민의 것이 아니어서, 농지가 영농의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면, 국민들에게 공급할 식량을 생산할 토대인 농지가 사라지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기후위기로 생산량이 급감하고 수입농산물 가격이 폭등하여, 밥상 물가도 폭등하는 현실을 현재도 경험하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농지는 국민 모두에게 식량 공급이라는 이익을 제공하는 공공재이다. 더 이상 농지가 자산증식의 수단으로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위해 농지투기부터 근절해야 한다.

농지투기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농지 전체 필지에 대한 전수조사가 먼저 진행되어야 한다. 기존 투기 농지를 그냥 두고 관리만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농지관리를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다. 과연 투기를 목적으로 농지를 구입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수익을 포기하고 정부의 농지관리에 협조하겠는가? 더 이상 농지투기를 방치해서는 안된다.

경자유전의 원칙을 확립하고, 농지투기를 근절하기 위한 근간으로서, 농지에 대한 전수조사를 즉각 시행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윤희숙 의원 부친의 농지투기 의혹의 진상을 밝히고 특히 한국개발원 등의 내부 정보를 이용한 투기가 아닌가에 대한 수사도 진행할 것을 요구한다.

2021년 8월 31일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길

(가톨릭농민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친환경농업협회,

(사)전국쌀생산자협회, (사)전국양파생산자협회, (사)전국마늘생산자협회)

성명

화, 2021/08/3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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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자들을 정리하면서 느낀 소회를 적어 봅니다.

현대철학은 니이체와 프로이트 및 마르크스으로부터 시작되는데, 니이체는 존재는 생성이다라고 선언하면서 서구의 존재론인 실체론을 폐기하고 생성론을 새로운 존재론으로 제시하였으며 프로이트는 인간을 이성적인 인식의 주체가 아니라 무의식의 지배를 받기에 칸트의 주체철학은 종말을 고했다고 선포하였으며 마르크스는 서구의 관념론을 거부하고 유물론적 변증법을 제시하면서 물적 토대에 대한 구조적인 변혁의 필요성을 설파하였습니다.

한편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마르크스는 토대인 생산양식의 혁명을 주장하였으며(마르크스는 혁명은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엥겔스의 객관적인 결정론을 버리고 토대의 모순이 극대화된 임계상황에서 정치적 의식화를 통한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의지가 고양되었을때 토대인 자본주의의 혁명이 일어난다고 보았습니다), 한편 후기 포스트모더니스트인 슬라보이 지젝은 상부구조인 이데올로기의 혁명을(대중의 계급의식이 소멸함에 따라 토대의 혁명은 불가능해졌기에 상부구조가 만들어낸 허위의식인 이데올로기의 혁명이라도 이루어야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혁명은 토대와 상부구조의 동시적 변혁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결국 유와 무가 둘이 아니듯 불교의 중도사상과 양자역학 의 중첩성의 원리를 진리로 받아들인다면 어느 하나만의 혁명은 온전한 변혁이 아니기에 결코 그에 따른 희생에 비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한편 마르크스의 혁명이 종국에 실패한 것은 상부구조에 위치한 욕망의 상대적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고 단지 상부구조는 토대에 종속된다고 해석하였기 때문인데 이는 이분법적인 실체론에 입각한 유물론의 필연적인 결론이라 할 것이므로 욕망의 본성을 반영하지 아니한 새로운 생산양식의로의 혁명의 성공가능성은 애초부터 희박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토대에 대해 상부구조의 상대적 독자성, 즉 상대적 결정론을 주장한 발터 벤야민이나 조르주 루카치의 견해를 계승한 지젝의 상부구조의 혁명론도 현실적으로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결코 절반의 치유책에 불과하기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생존을 위한 대중의 기본적 욕망의 결핍을 대부분 해소하였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욕망의 절대적 결핍상태를 벗어나는 것을 넘어서서 자본이 자신의 확장 및 심화를 위하여 생산한 잉여욕망을 마치 본래적인 인간의 욕구인 것처럼 왜곡시켜버렸기 때문에 대중은 무한한 잉여욕망을 당연한 본성인 것처럼 추구하다보니 결핍에 따른 계급의식 또는 투쟁의식을 상실하였다할 것입니다.

따라서 자본이 만든 잉여욕망을 주입시키는 이데올로기(허위의식)를 못 벗어난 대중이 어떻게 이데올로기가 허위의식임을 깨닫고 이를 해체할 수 있을까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물론 이에 대해 진지전 이론을 개진한 안토니오 그람시는 전통을 옹호하는 전통적 지식인 대신에 유기적 지식인이 전선의 참호에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드러내어 이를 해체하는 진지전을 펼침으로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국가나 자본을 해체하여 재구성 하자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하여 자본이 만든 잉여욕망의 노예로 전락한 대중보다는 깨어있는 유기적 지식인이 중심이 되어 이데올로기를 해체하자는 의미에서의 혁명이론운 제시한 그람시의 이론이 더욱 실현가능성이 있지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현실을 볼 때 지식인들은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해 유물적인 심층분석 보다는 특정 정치집단이나 특정 진영의 이데올로기나 포플리즘의 전위로서 정치적 구호에 흡수되어 자신의 변혁적 역할을 방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착잡함을 금하지 않을 수없습니다. 예를 들어 아직도 한국사회를 진보 또는 보수의 이항대립적 대결구도로 해석하면서 피상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문제해결을 시도할 뿐 결코 한국의 국가재벌독점자본주의의 기본 모순에 대해서는 과감히 눈을 감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면 참으로 답답함을 금치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온전한 혁명은 상부. 하부구조의 동시적 변혁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보는데 언듯 이러한 생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바램이 아닌가 생각하기에 인간에게는 온전한 혁명은 이상적인 꿈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하는 좌절감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대중은 물론 지식인조차 자본이 만든 잉여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토대와 상부구조를 변혁할 선구적 대안을 제시하는 지식인의 지혜와 토대를 변혁할 대중의 결집된 주체의식과 투쟁의지가 가능하지 않다고 보게 되는 것이며 나아가 이들을 전위에서 창도하고 대안을 설계할 수 있는 유기적 지식인도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인간은 결국 토대와 상부구조를 주체적, 자발적인 혁명에 의해서는 불가하므로 결국 외부적 사건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라고 슬프지만 어쩔 수없이 추단해봅니다. (그나마 한국사회의 시민운동은 정치권력, 경제권력과 사회 권력에 대해서 저항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시민사회의 독립성과 자구성을 확보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시민운동이 시민단체운동으로 협소하게 왜곡되어버리고 그나마 시민이 아닌 실무자 중심의 운동으로 전락해버렸으며 그 결과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면서 시민운동을 한 단계 레벨업을 시키기보다는 대부분이 정치운동으로 흡수되면서 결코 시민운동과 주체는 물론 목적과 작동방식이 다른 정치운동의 하부구조로 전락해버려 시민운동의 존재의미마저 의심받는 처지에 몰리게 되었기에 이제는 시민운동에 대한 기대마저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면 페스트에 의해 중세가 몰락하고, 세계대전에 의해 근대가 몰락한 역사가 반증하고 있듯이 현대 산업화의 모순에 따른 인간사회의 불평등과 지구적 차원의 파괴도 인간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서는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라는 회의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하여 이번 코로나 팬더믹 사태가 인간의 생존방식과 생산양식의 변환을 가져올 사건, 즉 알랭 바디우의 진리사건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따라서 데리다의 ‘부재의 진리’를 찾는 노력도 우리에게 그나마 혁명의 당위성을 가르쳐주고 있읍니다만 이 또한 관념적 철학자의 현실불가능한 꿈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래도 지젝은 불가능에 도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만.

그러나 여기서 고민해야할 문제점은 현재의 생산양식이 가지고 있는 모순은 다른 생산양식으로 대체해야 할만큼 치명적인 결합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수정자본주의 또는 사회적 복지국가를 통하여 이미 자본주의 모순을 완화시켜왔기에 다른 보완재로 치유가 가능한 것인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사회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기본모순인 계급모순외에 한국만의 독특한 재벌자본주의에 따른 독점모순과 나아가 신자유주의에 따른 불평등 모순 및 기타 부가적 모순인 분단모순 및 지역모순 등을 열거할 수가 있는 바, 과연 그러한 모순들이 한국사회 시스템으로 하여금 정상적인 방법으로 치유불가능한 치명적 상황을 만들었기에 대체재가 필요한 임계상황인지 아니면 재정비하거나 보완하는 차원으로 치유가 가능한 상태인지를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으나 어떤 결론이 나던지간에 이들을 치유하는 방식은 결국 구조적인 접근방식으로 분석하고 해답을 내놓아야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사 진보정권이라하여도 지금껏 계급과 계층 및 집단을 망라하여 한국사회 모순에 대한 구조적인 진단과 근본적인 치유책에 대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해집단을 초월하여 진지한 연구와 성찰과 변혁의지가 부재한 실정이었다고 생각하기에 긴 안목으로 한국사회를 구조적으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과학적 자세를 갖춘 열린 대중과 유기적 지식인의 참여와 연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금, 2020/06/19-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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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가 지나간 곳엔 시체가 즐비하다. 흔히 사모펀드를 기업사냥꾼이라 부른다. 그러나 사모펀드는 기업사냥꾼이라 불리는 것도 모자라 사냥한 후에는 기업을 완전히 시체로 만들어 버리고 장사를 지낸다. 그래서 나는 사모펀드를 ‘기업장의사’라 부른다. 사모펀드가 어떤 식으로 기업의 흡혈귀와 장의사 노릇을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미국의 예를 보기 전에 먼저 우리나라 예다. 경상북도 영덕으로 가보자.

사모펀드가 기업장의사임을 즉시적으로 보여주는 뉴욕타임스 기사. “어떻게 사모펀드가 신발소매업 체인점 페이리스(Payless)를 장사 지냈는가”란 기사 제목이다.

 

경북 영덕주민들 두 번 울린 사모펀드

경상북도 영덕에 가면 영덕풍력발전단지가 있다. 바람의 언덕이라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 뒤에 지역주민들의 분노와 눈물이 있다. 이 풍력발전공사를 외국계 사모펀드 회사가 이른바 “먹튀”(먹고 튄다는 속어)를 했기 때문이다. 호주계 사모펀드 맥쿼리PE가 영덕풍력발전공사를 인수한 것은 2011년, 200억 원을 들여 유니슨 등으로부터 매입했다. 그리고 2019년 삼천리그룹의 삼탄에 매각했다. 7년간 맥쿼리가 소유주로 있는 동안 올린 수익은 630억 원. 그러나 현재 회사는 자본잠식상태다. 깡통회사란 뜻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2018년 한 해만 보더라도 영덕풍력발전은 한 해 동안 약 81억 원의 매출에 영업이익은 약 19억3천만 원을 올렸다. 하지만 이자비용으로 45억 원을 지출해야 했다. 이렇게 7년간 맥쿼리에 이자비용(전환사채 차입에 대한)으로 지출한 것이 총 319억 원이다. 결국 모든 것을 계상하면 결손금 117억 원이 자본총액 40억 원을 초과해서 자본잠식 상태에 놓인 것이다. 빚밖에 남는 게 없는 것이다. 그러나 멕쿼리는 2013년 영덕 근처의 영양풍력발전공사까지 인수했다가 작년 영덕풍력발전까지 한데 묶어 삼탄에 1천9백억 원을 주고 매각했다. 이로써 수백억 원의 매각 수익에 이자, 거기에 7년 동안 올린 수익을 쏙 빼먹고 튄 것이다. 영덕군이 올린 수입은 부지 대부료로 매년 331만 원 받은 것이 전부. 각종 기반시설 지원 등에 군민 혈세가 들어간 것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지역 경제 활성화라며 기대한 일자리는 고작 7명이다.

그럼 이게 다일까?

새 인수자 삼탄 역시 사모펀드와 은행을 끼고 영덕 및 영양풍력발전공사를 차입매수 했다. 각각 192억 원과 854억 원을 30년간 대출로 연리 12%의 이자를 내도록 했다. 해서 영덕과 영양풍력발전공사는 연간 각각 23억 원, 102억 원의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이익을 내봤자 아무 소용없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계속될 것이다. 영업을 할수록 손해만 쌓인다. 더 못 버티고 곧 문을 닫을 것이다.(『영남경제』, 2019. 9. 5; 2019, 9. 6; 2019, 9. 18).

 

기업흡혈귀와 장의사 사모펀드의 기업 고사 방식

다른 나라(미국) 이야기를 먼저 하면 관심이 덜 할 것 같아서 우리나라의 사례를 먼저 들었다. 그렇다면 사모펀드가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법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이것을 보면 사모펀드가 왜 기업장의사와 기업흡혈귀란 명칭이 어울리는지를 알 수 있다.

첫째, 사모펀드는 경영상태가 안 좋은 회사를 좋게 만들겠다는 명분을 들고 회사를 싼 값에 매입하거나 돈을 빌려준다. 그리고 경영에 감 놔라 배 놔라 참견을 한다. 이 뒤에 따라오는 명분들은 수익을 내는 튼실한 회사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질의 일자리도 창출 하겠다는 것이다. 매입 대상 업체는 둘 중 하나다. 상장사의 주식을 대거 매입해 상장을 폐지해 나중에 재상장해 매각 수익을 얻거나, 비상장사를 사서 상장사와 합병하는 우회상장을 통해 가치를 높여 매각해 수익을 얻는 방식이다. 공통된 것은 사정이 어려운 회사가 사냥의 대상이다.

둘째, 그러나 그 명분은 말만 그럴 뿐, 회사의 구성원이나 회사 자체를 위하지 않고 오로지 주주나 소유주의 이익 실현을 위해서 무지막지한 구조조정 등을 강행한다. 그렇게 해서 장부상으론 이전 보다 괜찮은 회사로 거듭난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리고 매각해 막대한 이익을 남긴다. 즉 회사의 정상화나 건실화 등이 목표가 아니고 오로지 산 것 보다는 비싼 값에 매각하는 것이 사모펀드의 목표다.

셋째, 회사를 매입할 때 절대로 자기의 돈으로만 하지 않는다. 남의 돈을 빌려 매수한다. 즉 차입매수(leverage buyouts)를 한다. 그 빚과 이자는 고스란히 회사에 떠넘긴다. 그러나 알맹이(수익)는 철저히 주주들과 소유주의 몫이다. 그러면 회사엔 뭐가 남는가. 계속해서 손실만 쌓이고 고사하는 것밖엔 다른 방도가 없다. 사정이 안 좋은 회사에 도움은커녕 설상가상으로 빨대를 꽂은 격이다.

넷째, 이렇게 부채더미를 쌓고 있는 회사는 위험하기 그지없다. 그러면 사모펀드는 이런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 어떤 짓을 하는가? 부채에 대한 파생금융상품인 “대출채권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loan obligations, 이하 CLO)을 발행한다. 부채를 담보로 해서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 또 한 번 재미를 보는 것이다. 노리는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위험분산, 나머지 하나는 수수료로 인한 수익창출이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장사를 하다가 실제로 위험이 닥쳐도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국가가 그 위험을 떠안아 주니까. 구제금융으로. 이들이 그 때 내세우는 명분은 대마불사다. 자신들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 이렇게 노나는 장사가 어디 있을까? 잘 나갈 땐 그 열매를 온전히 자신들의 몫으로, 위기가 닥쳐 망할 땐 국가가 나서서 국민의 혈세로 대신 메워준다.

코로나19가 악성 회사채를 가지고 무모한 노름을 하고 있는 월가(사모펀드)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고 기사를 낸 뉴요커

CLO는 2008년 금융위기를 몰고 온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때 월가에서 써먹던 “부채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s, CDO)의 사촌 격으로 작동 원리는 똑 같다. CDO는 대형금융회사가 서브프라임업체로부터 받은 불량채권에 대한 위험을 분산하고 동시에 투자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써먹었던 일종의 대출에 대한 보험 상품으로 우량과 불량대출을 섞어서 위험이 없는 것처럼 살짝 분칠해 파는 것이다.(김광기, 『정신차려 대한민국』, 2012). 본질 면에서 CDO와 똑같은 CLO는 대형금융회사나 사모펀드 자체가 발행, 관리 및 판매한다. 그렇게 거짓되게 위험을 분산한 것처럼 보이게 한 후 투자자를 모아 수수료까지 챙긴다. 그러나 위험은 인위적으로 희석되어 가려졌을 뿐 여전히 상존하고 있으며, 위기가 오면 그 실체가 드러난다. 그러면 사모펀드는 망하게 된다. 이 때 그들이 들고 나올 것이 바로 앞서 언급한 대마불사론이다. 2008년 월가가 써먹던 수법 그대로 전수받은 것이다. 이게 바로 금융주도자본주의(finance-driven capitalism)의 실상이다.

 

잉글랜드은행 전 총재 마크 카니의 경고

잉글랜드은행(Bank of England)의 전 총재 마크 카니(Mark Carney)는 2019년 1월 영국 하원에 나와 전 세계적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회사부채(corporate debt)의 폭증에 대해 경고했다. 당시는 코로나 때도 아니고 트럼프가 “나(미국)홀로 잘나가!”하면서 경제의 호황을 자랑하던 때다. 카니는 파행적인 회사부채 시장을 2008년 금융위기 때에 견주어 경고했다. 회사부채 시장에서의 이른바 “약식대출”(covenant lite loans: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확인하는 절차(검사)를 생략한 채 이루어지는 대출)의 만연이 “서브프라임과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채권인수’(no doc underwriting)라는 의미에서 그 때와 동일선상에 있다”고 증언했다. 2019년 1월 현재 차입대출의 85%가 약식대출이다(Bank of England, Financial Stability Report, Issue No. 44, November 2018; “Leveraged loans at pre-crisis levels — and I’m worried, says Carney,” The Times, Jan. 17, 2019; “The risky ‘leveraged loan’ market just sunk to a whole new low,” Business Insider, Feb. 17, 2019).

급증하는 회사채와 레버리지대출을 2008년 금융위기에 견주어 경고하고 있는 잉글랜드은행 전 총재 마크 커니 <출처: 타임스/로이터스>

그런데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영국은행 총재의 저런 경고는 개 코로도 듣지 않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사실 수십 년 전에는 소위 잘나가는 회사라면 높은 신용등급과 과도한 부채의 회피가 그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것은 완전히 구식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돈 놓고 돈 먹는 금융주도자본주의에 편승한 뒤로는 사모펀드가 이것을 선도했다. 인수와 자사주매입을 위해 많은 대출이 이루어졌고 차입매수가 성행했다. 미국 연준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4분기부터 2019년 4분기까지 비금융권기업의 회사부채는 총 6조1천억 달러(7,527조 원)에서 10조1천억 달러(1경2,463조 원)로 증가했다.

회사부채는 채권발행으로도 조달되었지만 위에서 말한 새로운 형태의 이른바 “레버리지대출”(leveraged loans)의 확산으로도 이루어졌다. S&P글로벌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9년까지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에까지 대출해준 협조융자(syndicated loan: 둘 이상의 은행이 공통의 조건으로 기업에 자금을 융자해주는 대출) 총액은 5,540억 달러(684조 원)에서 1조2천억 달러(1,481조 원)로 급증한다. 이런 레버리지대출은 앞에서 언급한 CLO를 창출하는데 사용되었다. 2019년 말까지 7천억 달러(864조 원) 상당의 CLO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말하자면 빚을 놓고 그것에 대한 금융상품이 투자 상품으로 따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위험천만한 돈 놓고 돈 먹는 돈 놀이가 지금 월가에서 사모펀드 주도하에 가진 자들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The Coronavirus Is Exposing Wall Street’s Reckless Gamble on Bad Debt,” New Yorker, May 24, 2020). 문제는 그런 돈 놀이에 말려든 기업들과 거기에 속한 종업들이 말라 죽어나가고 있다는 데 있다.

 

백화점의 서거: 니만마커스와 JC페니

5월 초 미국의 유명 백화점체인 두 개회사가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니만마커스와 JC페니다.(“Neiman Marcus and the demise of the US department store,” Financial Times, May 8, 2020; “J.C. Penney, 118-Year-Old Department Store, Files for Bankruptcy,” New York Times, May 15, 2020). 두 회사는 모두 미국 백화점 업계의 대명사이다. 니만마커스는 최고급백화점이고, JC페니는 서민들을 위한 백화점이다. 두 회사의 역사는 각각 113년, 118년으로 둘 다 유서 깊다. 이를 두고 대부분의 매체들은 코로나 사태와 디지털시대에 맞는 변신에 실패를 파산신청의 원인으로 꼽고 있는데 내가 보는 견해는 다르다.

물론, 앞서 언급한 이유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코로나사태가 백화점에 직격탄으로 작용한 것은 도표에서 보듯 부인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미 이들 백화점이 두 손 두 발을 들 수밖에 없었던 기저질환이 도사리고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경제는 주식과 부동산 빼고는 나아진 게 없었다. 그 대표적 예가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쇼핑몰들의 폐쇄다. “쇼핑몰의 서거 경제학과 향수”라는 제목의 2015년 뉴욕타임스 기사

그 기저질환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2008년 이후 미국 경제가 살아났다고 하지만 증시와 부동산시장만 호황이었을 뿐 나머지 부문에서는 오히려 나아진 것이 없었다. 백화점의 서거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백화점과 단독 점포가 들어선 대규모 쇼핑몰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 전역에서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쇼핑몰은 미국인들에겐 애틋한 정서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딱히 재미라고는 달리 찾을 수 없는 건조한 미국식 삶 속에서 그나마 쇼핑도 하고 사람구경도 하고 놀기도 하는 곳이 쇼핑몰이기 때문이다. 하교 후 청소년들이 친구들과 친목을 도모하던 곳 중 하나도 쇼핑몰이다. 그런 곳이 문을 닫으니 뉴욕타임스 같은 곳은 쇼핑몰의 서거가 향수를 불러온다고 제목을 달아 기사화를 했던 것이다.(“The Economics (and Nostalgia) of Dead Malls,” New York Times, Jan. 3, 2015). 그런 기사가 났던 것이 2015년이다. 그리곤 마침내 이제 백화점의 종언까지 고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는 이미 휘청거리며 넘어지고 있던 백화점의 발에 살짝 걸린 돌부리와 같다. 다시 말해, 코로나가 미국 백화점 사망의 주효한 원인은 아니다. 이미 코로나 이전에 심각한 기저질환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니만마커스와 JC페니 등이 파산보호신청을 하자 백화점의 서거를 알리는 2020년 4월 뉴욕타임스

 

기업장의사 사모펀드에 의해 이미 고사 중이던 업계

나머지 기저질환은 사모펀드 때문에 생긴 것이다. 따라서 이번 파산신청의 주된 원인은 사모펀드다. 이것들의 농단으로 백화점들이 완전히 작살났다. 바야흐로 디지털시대에 온라인 쇼핑으로 노선을 바꾸고 재기할 자구노력과 자생력조차 사모펀드는 완전히 압살했다. 수익이 나는 족족 배당금과 이자로 현금을 다 빼갔으니 그렇다. 어떻게? 맨 처음 우리나라 영덕풍력발전공사의 경우에서와 같이 말이다.

대표적으로 백화점 업계의 귀공자 니만마커스가 어떻게 엄청난 빚만 짊어진 채 빈껍데기만 남은 회사가 되었는지 보자. 현재 니만마커스의 부채는 50억 달러(약 6조2천억 원)이다. 심각한 수준이다. 2005년 사모펀드 TPG와 워버그핀커스(Warburg Pincus)는 51억 달러(약 6조 3천억 원)로 니만마커스를 차입매수 한다. 그리곤 2013년 사모펀드 아레스매니지먼트(Ares Management)와 캐나다연기금운용회사(CPPIB)에 60억 달러(약 7조 4천억 원)를 주고 매각한다. 이들 회사는 니만마커스의 가격을 높이기 위해 2015년 기업공개(IPO)를 시도하려했으나 불발로 끝났다. 니만마커스는 지난 2년 동안 50억 달러의 부채를 조정해 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이자는 수억 달러가 지출되었다. 2018년 마지막 회계보고엔 49억 달러(약 6조5백억 원)의 수익이 있었다. 그러고도 빚이 50억 달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은 매해 나는 수익이 한 푼도 안 남기고 거의 다 주주들의 배당과 이자 지불로 빠져 나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디스는 니만마커스의 부채를 두고 “지탱하지 못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The Pandemic Helped Topple Two Retailers. So Did Private Equity,” New York Times, May 14, 2020;“J.C. Penney, 118-Year-Old Department Store, Files for Bankruptcy,” New York Times, May 15, 2020). 이런 판에 온라인쇼핑으로 전환하려는 자구노력을 어떻게 하는가? 그것도 돈이 들어가는 일종의 투자인데 말이다. 거기에 들어갈 돈들이 주주들과 소유주에게 배당금과 이자로 다 홀랑 가버리는데….

 

사모펀드가 손 댄 소매업체마다 좀비기업으로

그렇다면 백화점만 그럴까? 아니다. 사모펀드가 손 댄 소매업체마다 사정이 똑같다. 그리고 기업은 회생은커녕 시체로 거듭나고 있다. 대표적 예를 두 곳만 더 보자. 옷가게 제이크루(J. Crew)와 중저가신발업체 페이리스(Payless)다.

먼저, 2011년 사모펀드 TPG와 레오나드그린&파트너스(Leonard Green & Parners)가 제이크루를 30억 달러(약 3조7천억 원)에 차입매수 한다. 소비자 옹호 단체인 <미국금융개혁연대>(Americans for Financial Reform)이 추산한 바, 2011년 이후 제이크루는 소유주인 사모펀드에게 배당금, 이자 및 수수료로 7억6천만 달러(약 9천4백억 원)를 지불했다. 니만마커스와 마찬가지로 온라인쇼핑 등의 영업 전환 모색 등에 들어갈 돈은 한 푼도 없이 사모펀드가 탈탈 털어갔는데 무슨 자구노력이 가능했겠는가.(New York Times, May 14).

페이리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12년 사모펀드 골든게이트캐피탈(Golden Gate Capital)과 블룸캐피탈(Blum Capital)이 페이리스를 20억 달러에 차입매수 했다. 2015년 1월을 기준으로 과거 2년 동안의 에비타(EBITDA: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기업의 현금창출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를 보면 기가 막힌다. 페이리스는 그 기간에 3억2,200만 달러(약 3,986억 원)의 에비타(세전이자지급전이익)를 올렸다. 그러나 주주들에게 배당금으로 3억5,200만 달러(약 4,357억 원), 그리고 이자로 8,300만 달러(약 1,027억 원)가 돌아가서 손실만 기록했다. 이것을 쉽게 계산하면, 회사로 1달러(약 1200 원)가 들어올 때마다, 소유자에겐 1.09달러(약 1350원)가 대출자에겐 0.26달러(약 322 원)가 돌아가게 되어서 1달러 벌 때마다 계속해서 0.35달러(433 원)의 빚이 쌓이는 꼴이다.(“How Private Equity Buried Payless,” New York Times, Jan. 31, 2020).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딱 그 짝이다.

뉴욕시 진보단체인 <대중민주의센터>(The Center for Popular Democracy)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이후 파산한 소매점 체인 14개 중 10개가 사모펀드가 소유주로 밝혀졌다.(New York Times, May 14). 이렇게 기업은 시체가 되고, 사모펀드는 살이 통통 오른 승냥이와 장의사가 된다. 그리고 또 다른 먹거리와 시체거리를 찾아 어슬렁거린다.

 

워런과 코르테스는 왜 코로나사태 동안 기업의 인수합병 금지를 주장 했는가?

그러니 회사들로서는 어떤 노력을 경주해도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가 덮쳤고 완전히 고꾸라졌다. 그렇다면 사모펀드 입장에서는 언제가 그들에겐 가장 호기인가? 바로 헐값에 기업을 살 수 있을 때다. 가지고 있다가 적당한 기회를 봐서 비싸게 팔면 되니까. 이 칼럼시리즈 초반에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부동산 투자의 철칙인 “바이(buy), 픽스(Fix), 앤드 셀(Sell)”이 여기서도 그대로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헐값에 사서 비싸게 팔 기업이 사라지면 사모펀드에겐 안 좋은 시기다. 따라서 코로나19야 말로 그들에겐 최적기다. 기업사냥을 하기에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위험과 위기는 사모펀드의 전가의 보도와 같은 것이라 사모펀드가 정말로 오매불망 기다리는 시간이다. 위험을 빙자해 고수익을 올렸으니(CLO가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 위험을 회피하면서 동시에 위기가 있어야만 장사가 되는 모순이 사모펀드가 떼돈을 벌 수 있게 하는 주된 동력이다. 또한 위기 시엔 파산하는 기업체가 즐비하다. 그것들을 헐값에 거머쥘 수 있으니 위기란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위기는 사모펀드에겐 노다지인 셈이다. 죽어가는 회사를 기사회생 시키는 데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직 관심은 그걸로 더 큰 돈을 버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사모펀드가 막강한 현금동원 능력을 가지고 기세가 등등한 사이 이들에게 더 많은 투자가 들어오고 그걸 가지고 전 세계 사업들에 마수를 뻗치며 제국으로 등극하고 있는 것이다.(“Scary Times for U.S. Companies Spell Boom for Restructuring Advisers,” New York Times, March 3, 2020; “Some Big Investors Smell Profit in Virus-Plagued Companies,” New York Times, April 3, 2020).

이 때문에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과 오카시오 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가 코로나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의 인수합병을 금지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인수합병이 대다수는 사모펀드에 의해 벌어지기 때문이다.(“Elizabeth Warren and AOC’s Call for a Merger Ban May be a Moot Point,”, CNN, May 5, 2020).

 

사모펀드가 이끈 금융주도자본주의의 폐해

소위 미국식 선진금융의 핵심은 전 산업부문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금융화라 한다. 그것이 주도하는 자본주의를 금융주도자본주의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그것을 주도하는 선두에 현대의 제국 사모펀드가 있다.

산업자체가 이런 식으로 바뀌면 두 가지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 하나는 기업이 저렇게 좀비가 되고 파산에 이르게 되면, 거기에 종사하던 근로자는 어떻게 되겠는가. 모두가 실업자가 된다. 이런 펜데믹 시기에는 영원한 실직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2018년 현재, 미국에서 사모펀드가 소유한 회사에 약 880만 명의 근로자가 있으며, 이 회사들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5%를 차지한다.(New York Times, Jan. 31, 2020).

두 번째 문제는, 노동이 신성하다는 가치는 사라지게 된다. 경상도 말로 “쌔(혀)가 빠지게” 노력해서 돈 버는 것에 대한 회의가 많은 사람들에게 일 게 뻔하다. 이것은 경제와 관련한 관념과 가치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세상 어디에 저런 젖과 꿀이 흐르는 장사가 있겠는가. 땀 흘려 일 안하고 남의 돈 빌려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기술만 터득할 수 있다면 누구나 득달같이 덤벼들어 하려 들 것이다. 이게 바로 금융주도자본주의의 폐해다. 경제와 노동 가치의 왜곡, 그것은 기업의 시체가 늘비해진 상황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것을 막을 방법은 딱 하나. 규제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미국에서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는 월가의 대형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보다 훨씬 더 느슨하다. 그 틈을 타고 제국들이 탐욕의 눈이 박힌 머리를 바짝 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완화와 당국의 방치는 한국이 더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와중 우리에게도 사모펀드란 이름이 어느덧 익숙해지고, 이윤에 이악스런 자들은 남 보다 한 발 더 빠르게 사모펀드에 벌써부터 발을 담갔다. 사모펀드의 구성요건이 49명 미만에서 그 이상으로 풀어졌으며, 10%이상을 한 종목에 투자하는 것이 금지하는 “10% 룰”의 제한에서도 사모펀드는 제한이 없다. 500만 원 미만의 소액으로도 투자가 가능하게 문을 열어 놨다. 그리고 그 결과 이미 작년 우리나라의 사모펀드 시장 규모는 2천조 원을 넘겼다. 사모펀드의 규제완화는 정권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한국경제』, 2019. 5. 1; 뉴시스1』, 2019. 10. 4; 『한국경제매거진』, 2019. 6; 『동아일보』, 2018. 9. 28; 『이뉴스투데이』, 2020. 5. 28). 그리고 이 와중 어떤 이들은 막대한 이윤을, 어떤 이들은 소중한 노후자금까지 날리고 있다. 지금 한가하게 미국의 사모펀드 걱정할 때가 아닌 것이다.

 

참고자료

김광기, 『정신차려 대한민국』, (서울:랜덤하우스코리아), 2012.

“영덕풍력발전 매각한 맥커리는 호주의 최대 투자금융,” 『영남경제』, 2019. 9. 5.

“경북 영덕풍력발전 외국계 사모펀드 기업사냥하는 동안 손 놓고 있었던 영덕군,” 『영남경제』,2019. 9. 6.

“외국계 사모펀드의 고리대금에 멍들은 영덕·영양풍력발전,” 『영남경제』, 2019. 9. 18.

“자산운용시장 2000조원 돌파 “사모펀드 규제 완화로 위험성↑”,” 『한국경제』, 2019. 5. 1.

“2015년 사모펀드 규제완화 후 은행 파생상품 판매 49% 늘어,” 『뉴시스1』, 2019. 10. 4.

“사모펀드, ‘고공행진’…쏠림은 ‘우려’,” 『한국경제매거진』, 2019. 6.

“사모펀드 규제완화… 한국판 ‘엘리엇’ 생긴다,” 『동아일보』, 2018. 9. 28.

“금융위, 코로나19발 구조조정 위해 1조펀드 모은다,” 『이뉴스투데이』, 2020. 5. 28.

“Leveraged loans at pre-crisis levels — and I’m worried, says Carney,” The Times, Jan. 17, 2019

“The risky ‘leveraged loan’ market just sunk to a whole new low,” Business Insider, Feb. 17, 2019

Bank of England, Financial Stability Report, Issue No. 44, November 2018.

“The Death of the Department Store: ‘Very Few Are Likely to Survive’,” New York Times, April 21, 2020.

“The Economics (and Nostalgia) of Dead Malls,” New York Times, Jan. 3, 2015.

“Neiman Marcus and the demise of the US department store,” Financial Times, May 8, 2020.

“The Coronavirus Is Exposing Wall Street’s Reckless Gamble on Bad Debt,” New Yorker, May 24, 2020.

“Hertz, Car Rental Pioneer, Files for Bankruptcy Protection,” New York Times, May 22, 2020.

“J.C. Penney, 118-Year-Old Department Store, Files for Bankruptcy,” New York Times, May 15, 2020.

“The Pandemic Helped Topple Two Retailers. So Did Private Equity,” New York Times, May 14, 2020.

“How Private Equity Buried Payless,” New York Times, Jan. 31, 2020.

“Scary Times for U.S. Companies Spell Boom for Restructuring Advisers,” New York Times, March 3, 2020.

“Some Big Investors Smell Profit in Virus-Plagued Companies,” New York Times, April 3, 2020.

“Elizabeth Warren and AOC’s Call for a Merger Ban May be a Moot Point,”, CNN, May 5, 2020.

 

김광기 경북대 교수의 연재 ‘인사이드 아메리카’는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화, 2020/06/2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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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2017년부터 준비되어 2018년 큰 물꼬를 텄고, 최근 하노이 북미회담에서 일시적 교착국면에 빠진 남북미 간 평화체제 정착은 어떻게 수순을 풀어야 할까? 남북관계든 북미관계든 핵심은 ‘신뢰의 확증’에 있다. 남북과 북미관계가 대화 지속 – 신뢰 축적의 트랙을 이어가면 남북·북미관계 서로를 선(善) 방향으로 추동한다. 그러나 지금 하노이 회담 이후 보듯, 북미관계에서 지체가 생길 수 있다. 그럴 때 남북관계의 주동성, 추동력이 더욱 부각될 수 있다. 남북관계의 게임의 차원을 바꾸는 것이, 북미관계의 게임의 차원을 바꾸는 일보다 우리의 주동력이 발휘될 수 있다. ‘양국체제론’은 남북관계가 동북아 주변관계에 최대의 주동성, 추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구상되었다.

남북관계의 고리를 획기적으로 풀어나가는 방법을 우리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 신뢰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면 된다. 신뢰에는 ‘피상적 신뢰’가 있고, ‘심층적 신뢰’가 있다. 심층적 신뢰란 가장 기본적인,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신뢰를 말한다. 남북 간에 그렇듯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신뢰가 무엇이겠는가. 남북이 서로의 존재를, 존립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명환 교수의 글에도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이 있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 정식 국교를 맺고 적대정책을 철회하더라도 남한의 존재가 위협이라는 현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고, “남북 교류가 활성화되고 북한 사회가 개혁·개방에 노출될수록 북의 체제 운영자들은 정치적 위협을 심각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 북한 당국이 자신의 주민이 친족방문을 위해 남을 왕래하는 일을 허용하는 일은 상당 기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부분이다. 김명환 교수는 이런 사정 때문에 양국체제는 어렵고, ‘남북연합만이 올바른 길’이라 하였지만, 김 교수가 언급한 내용이 필자에게는 오히려 김 교수의 주장을 반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북미 수교, 북일 수교는 가능하더라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교, 즉 ‘한조(韓朝) 수교’는 오히려 불가능하다고 보는 듯하다. 글쎄 그럴까. 북미 수교와 북일 수교라는 토픽이 미국과 일본의 정책 캐비넷에 올라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베까지도 이 판에 끼어보려 하고 있다. 그러나 북미 수교, 북일 수교는 오히려 한조 수교가 물꼬를 터줌으로써 빠르게 뒤따라올 가능성이 더욱 크다. 왜냐하면 ‘근본적 신뢰의 확증 순서’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북의 안보조건에서 미국과 일본 쪽에 자신의 존립에 대한 근본적 신뢰를 먼저 확보하려고 할 가능성은 낮다. 반면 한국과는 그 가능성이 더 높다. 촛불 이후의 국면에서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앞서 김명환 교수가 말한 “남한의 존재가 위협이라는 현실”은 이제 북에게도 더 이상 그렇게 자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스스로가 북(DPRK)의 존립에 위협이 되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물론 30년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단번에 일소한 촛불혁명의 힘, 그리고 그 힘에 의해 들어선 촛불정부의 역할 때문이다. 아니, 30년이 아니라, 코리아전쟁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의 민의가 이만큼 남북의 공존과 평화를 소망하는 방향으로 모아져본 적이 없다. 남의 한국도, 북의 조선도 이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과 조선 간에 그러한 ‘근본적 신뢰’를 확증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무엇일까? 백낙청 선생, 그리고 백 선생을 항상 충실하게 조술(祖述)하는 김명환 교수도, 그 방법이란 ‘남북연합’이라고, ‘남북연합밖에 없다’고, 되풀이해왔다. 그런데 지금 이 마당에 그 ‘남북연합’의 방책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분명히 한 것이 없다. 필자가 본 단 하나의 예외라면 백 선생이 2018년 《창작과비평》 181호에 “미국이 어느 시점에 변심하여 북을 다시 침공하거나 적대정책으로 되돌아갈 태세가 되었을 경우, 이것이 곧바로 대한민국이 가담한 국가연합에 대한 침공 내지 적대가 될 수밖에 없도록 제도화해 놓는 일”이라 한 것인데, 이 정도로 높은 수준의 ‘국가연합’이란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국가 간의 관계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누가 읽어도 당연히 그렇게 읽히는 말이다.(이렇게 읽은 것이 ‘오독’이고 ‘비약’이라는 김명환 교수의 반론에는 아쉽게도 무엇이, 왜, 어떻게 ‘오독’이고 ‘비약’이라는 것인지 설명이 없다. 다만 ‘기성 사회과학 교과서에 맞춰 재단한 탓’이라 하고 만다.)

현재 이 순간의 남북관계에서 생각해보자. 백 선생과 ‘분단체제론’에서는 현재 이 순간 역시 당연히 ‘남북연합’, ‘국가연합’ 상태다. 남북연합은 분단체제를 상정·전제하는 것이라 하니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재의 남북관계 또는 남북연합 관계에서 백 선생이 말한 바와 같이 “미국이 어느 시점에 변심하여 북을 다시 침공하거나 적대정책으로 되돌아갈 태세가 되었을 경우, 이것이 곧바로 대한민국이 가담한 국가연합에 대한 침공 내지 적대”가 된다고 어느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물론 너무나 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다. 그렇다면 백 선생이 그리는, 그렇듯 높은 수준의 ‘국가연합’까지 한참을 올라가야 할 것인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높이 올라가기 위한 첫 계단, 첫 단추가 무엇이냐다. 나는 지금껏 여기에 대한 답을 들어본 바 없다.

그 답이 어려워서 그런 것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필자가 지난 글들에서 여러 차례 설명해놓았다. 기존의 남북 간의 고통을 아주 기본적인 수준에서 느껴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다 알 수 있는 문제다. 남과 북이 서로의 존립을 보장하는 신뢰의 확증이 무엇이겠는가? 그 첫 단추가 무엇이 될까? 상대방을 적으로, 붕괴와 소멸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확증 장치다. 지금 남과 북의 상태에서 무엇이 그런 확증 장치가 될까? 남은 북을, 북은 남을, 영토와 주권을 가진 정당한 국가 대 국가로서 서로 인정하고 이를 만천하에 공표하고 상호 대표부를 교환하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과 조선 두 나라의 수교, 즉 ‘한조(韓朝) 수교’다. 이렇게 될 때 ‘분단체제’라는 과거의 룰은 폐기되고 ‘양국체제’라는 새로운 차원의 관계가 시작될 수 있다. 이 ‘한조 수교’의 역사적 파급력은 1972년 ‘동서독 수교’에 못지않을 것이다. 동서독 수교 이후 상호 교류와 협력이 크게 증가했던 것은, 상호 간의 ‘근본적 신뢰’의 문제를 일차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두 국가가 상호의 존립을 위협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지켜질 것임을 서로가 믿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2018년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역시 그러한 근본적 신뢰를 확증해가는 과정이었다. 그 결실이 머지않은 미래에 맺어지기를 바란다. 한국이 북미 대화를 잘 중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일이 있다. 남북이 만나는 모든 자리에서, 남북의 모든 논의와 합의가 어떤 쪽을 향해가고 있는지 방향감각이 무엇보다 우선 분명해야 한다. 그것은 ‘남북 간의 근본적 신뢰의 확증’이며 ‘남과 북이 서로를 정당한 국가 대 국가로 인정’하는 일이다. 북미 수교가 한조 수교에 선행하기보다, 한조 수교가 북미 수교를 성사시키는 경로가 더 현실적이다. 소위 ‘대북제제’ 문제도 ‘한조 수교’라는 역사적 임팩트에 틀 자체가 변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김명환 교수는 여전히 북은 ‘남한의 존재의 위협’을 벗어날 수 없고, 남 역시 마찬가지로 ‘북한의 존재의 위협’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할까? 한 발 물러서 생각해보자. 물론 ‘한조 수교’가 이뤄지자마자 남북이 서로에게 위협이 되는 상태가 당장 100퍼센트 깨끗하게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사에 그런 일은 없다. 그러나 ‘한조 수교’가 이뤄지면 역사적 첫 단추가 채워진다. 게임과 트랙이 달라지는 것이다. 코리아의 지난 70년 적대 상태를 생각해보면, 당장 100퍼센트는 언감생심이고, 우선 절반만 해소된다고 하여도 획기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이런 것이 바로 ‘질적 변화’다. ‘위협’은 강박이어서 붙들려 있을수록 커진다. 기존의 ‘분단체제론’에는 그러한 ‘위협’을 넘어서고 극복할 담대한 전망이 부족했다.

그렇듯 질적 변화를 이루어내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그 후의 과정 역시, 그만큼, 또는 그보다 더욱 중요할 것이다. 상호 신뢰를 확인하고 쌓아가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배려들이 교환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매우 많다. 동서독 간 성공적 교류의 선례도 있다. 나는 ‘분단체제론’이 이러한 양국체제의 전망을 아주 적극적으로 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원래 분단체제론은 분단체제를 비판하고 극복하자는 이론이었다. 분단체제론이 양국체제의 전망을 수용한다는 것은 그러한 원래의 이론적 취지와 포부에도 부합한다.

 

독일 양국체제의 경험을 다시 생각한다

끝으로 앞서 몇 차례 언급한 만큼, 동서독 사례의 의미에 대해 첨언해보려 한다. 1970년대 브란트의 동방정책과 동서독 수교(=<동서독기본조약>)의 의미를 다시 새겨볼 때가 되었다. 1990년대 초반 백낙청 선생이 분단체제론을 처음 입론하고 있을 때, 백 선생은 당시 이뤄졌던 독일의 흡수통일 사례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았고, 그래서 독일과 한반도의 분단 원인과 통일 전망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당시 백 선생이 그러한 태도를 취했던 데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동구권이 붕괴하고 동독이 서독으로 흡수통일 되었던 당시에는 ‘북한 조기붕괴론’을 펴는 사람들 중에 독일식 통일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았다. ‘북한’은 어차피 곧 붕괴될 것이니까 한국은 서독처럼 흡수통일 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그러한 생각은 물론 허황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독일의 사례를 무조건 백안시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1970년대 동서독 수교와 독일 양국체제이지, 1990년의 흡수통일이 아니다. 1972년 동서독 수교와 1990년 흡수통일은 전혀 다른 맥락에서 벌어진 전혀 다른 사건이다. 이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제는 1990년대 초반에 독일 흡수통일의 스펙터클에 눈이 팔려 1970년대의 독일 양국체제 경험의 역사적 중요성을 놓치고 있지 않았는지 다시 물어야 할 때가 되었다. 백낙청 선생과 김명환 교수도 다시 주목해주기 바라는 대목이다. 1989~1991년 당시 남북의 ‘당국자’들은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인 시각에서 양국체제의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북이 유엔에 동시가입할 수 있었고, <남북기본합의서>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볼 때도 대단한 용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정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남북 수교까지 이루었다면 코리아 양국체제는 이미 그때 성립할 수 있었다. 왜 이 길이 막혔던가? 누가 막았었나? 남쪽의 노태우 대통령도, 북쪽의 김일성 주석도 아니었다. 이들은 오히려 더 속도를 내서 이 방향으로 나가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 길을 막았던 것은, 이 책 1부 1장에서 상세히 분석해둔 바와 같이, 북미 수교를 거부하고 북의 조기붕괴를 도모했던 미국과 한국의 냉전대결 세력들이었다.

1970년대의 동서독 수교 – 독일 양국체제와 1990년대 흡수통일이 전혀 성격이 다른 사건이라는 것은, 흡수통일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반추해볼 시각을 1970년대 양국체제의 경험이 제공해주고 있다는 데서도 볼 수 있다. 독일 흡수통일의 최대 문제는 동독을 내부 식민지로, 동독인을 열등국민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통일독일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동구권 – 소련 붕괴라는 충격 속에서 통일과정이 눈사태와 같은 파국적 양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1972년 <동서독기본조약> 체결 이후 1989년 소련·동구권 붕괴 이전까지 독일의 양국체제는 동서독의 차이를 장기적이고 점진적으로 줄여나간다는 분명한 공동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독일 양국체제의 경험이 우리에게 여전히 귀중한 타산지석이 되는 이유다.

더구나 과거 독일 양국체제를 둘러싼 국제적 상황에 비해 오늘날 코리아 양국체제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훨씬 더 안정적이다. 1970~1980년대 미소 간의 적대와 대립은 오늘날 미중, 미러, 또는 중일 간의 갈등에 비해 훨씬 날카롭고 높았다. 냉전 이후 세계는 진영 간 이념 적대가 사라지고 국가 간 지역 간 상호 의존이 깊어졌다. 필자는 이러한 새로운 세계상황을 ‘후기근대’로 정의하면서, 이 새로운 역사 단계의 세계사적 의미에 대해 여러 차례 분석하고 음미해본 바 있다. 후기근대에는 과거 소련·동구권 붕괴와 같은 진영 붕괴가 발생하지 않는다. 과거와 같은 수준의 진영 자체가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중국 혹은 미국이 머지않아 과거 소련과 같이 극적으로 붕괴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이 세계의 그 많은 ‘전문가’ 중에서 단 한 사람도 없는 이유다. 그리고 이는 코리아 양국체제가, 성공적으로 정립되기만 한다면, 과거 독일의 양국체제보다 훨씬 성공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예상해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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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0/06/25-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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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법 제40조는 국회의원의 상임위원 임기를 2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당초 제헌의회 때 상임위원 임기는 의원의 임기와 같이 4년이었다. 그랬던 것이 1953년 1월 22일 국회법 개정에 의한 이승만 정권의 국회 무력화 과정에서 1년으로 단축되었다가 다시 1963년 11월 26일 박정희의 제3공화국에서 2년으로 연장되었다. 그러나 제3공화국 당시 본회의 중심 체제를 상임위 중심 체제로 전환한 것은 의회기능 강화의 목적이 아니라 독회제도 폐지 등 행정부 안의 신속한 국회 통과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특히 이 상임위 중심 체제는 말이 상임위 중심이었지 의원의 정책전문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상임위 중심체제에서는 극히 기형적인 “임기 중 상임위원 개선(改選) 제도”였을 뿐이다. 이 점에서 “임기 중 상임위원 개선제도”는 권위주의 정권에 의한 의회 무력화의 도구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현재 국회의장 임기도 2년이다. 국회의장 임기도 제헌의회 때는 4년이었다. 그러나 1951년 3월 15일 당초 임기 4년이던 국회의장 임기를 “국회 운영의 원활을 기하기 위해” 1년 임기제로 개정하고자 했다. 이 개정안은 심지어 “토의시간만 허비하는 전원위원회 제도 폐지”를 제안하기도 했다. 결국 반발에 부딪혀 의장 임기는 2년 임기로 수정되었다.

 

국회의원의 업무 전문성은 어떻게 높아질 수 있는가?

우리 국회에서 의원들의 업무 전문성에 있어서의 취약성은 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받고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그 취약성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제도적으로 관행적으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의원의 업무 전문성이란 임기 동안 혹은 선수(選數)를 쌓으면서 “동일한 상임위원회를 유지”함으로써 업무 전문성을 축적하는 것이다. 미국 의회의 경우 의원의 업무 전문성은 상임위를 중심으로 업무 전문성이 축적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에는 집권당 내 위원회를 중심으로 전문성이 축적된다. 미 의회에서 상임위원회는 의회와 행정부 간의 정책결정의 중심무대로서 따라서 자연스럽게 상임위를 중심으로 한 정책형성은 의회 활동의 중심으로 되었다. “한 상임위 내에서의 선임 순위가 위원장이나 간사로 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는 미 의회의 불문율, 즉 ‘선임우선제’는 위원회 내의 승진에 대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자동적이고 공평한 원칙이었다.

한편 일본은 자민당 일당독재가 고착화되는 과정에서 법안과 예산 심의가 의회 위원회가 아니라 자민당 내 정책결정기구인 정무조사회로 되었고, 이 정무조사회의 각 부회(部會)가 의회 위원회 역할을 대신하였다. 그리하여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동일 위원회와 부회를 유지하면서 관청과의 인적 네트워크 및 영향력을 확보하면서 이른바 ‘족(族)의원’의 위치를 확보하게 됨으로써 관련분야의 정책전문가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의원들이 2년마다 상임위를 변동할 뿐 아니라 상임위 배정 뒤 임기 2년 중에도 수시로 상임위를 변동하고 있다. 실제 역대 국회의원 임기 중 상임위 변동률은 50%를 상회한다. 심지어 최근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상임위원장을 1년씩 ‘쪼개기’로 맡는 것이 관행화되고 있다. 또한 현역의원이 재선될 경우 전임기의 상임위를 그대로 유지하는 비율도 40%를 넘지 못한다. 미국 재선의원의 90%가 전임기의 상임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과 전혀 딴판이다. 더구나 우리 국회는 1963년에 김종필에 의해 도입된 당정협의체제는 행정부 주도 하의 정부여당 협의기구로 오늘날까지 존속하면서 의회와 상임위 위상을 크게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동되어왔다.

임기 중 상임위의 빈번한 변동과 재선 시 상임위 변동은 의원의 업무 전문성 축적에 결정적 저해 요인이다. 상임위 변동으로 소관 업무 및 관련 행정부처 역시 변경되고, 의원은 물론 보좌진도 새로 업무를 파악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원과의 통로를 어렵사리 뚫어 놓아봤자 그 다음 만나면 이미 소속 상임위가 바뀌는 바람에 다시 다른 의원을 알아봐야 하는 고충을 겪어야 한다.

의원들의 업무 전문성은 의회 발전의 중요한 토대이다. 우리 국회의 정상화와 발전을 위해서는 한 의원이 동일 위원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함으로써 업무 전문성을 축적해야 한다. 상임위원 임기는 의원 임기와 일치되어야 하며, 또한 재선 시에 전임기와 동일한 상임위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국회는 너무 오래 이승만-박정희 체제의 관행에 머물러 있다. 이제 권위주의 정권이 국회 무력화를 위해 만들어놓은 국회 상임위 2년 체제를 벗어나야 한다.

 

적대적 공존’, 그 나눠먹기의 시작

본래 우리 국회도 상임위원장은 다수당이 독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국가 의회든 의회의 일반적 형태이다. 그런데 우리 국회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탄생된 이른바 ‘87 체제’의 여소야대 4당 체제 정국에서 상임위원장을 의석 비율에 따라 배분하게 되었다. 긍정적 측면에서 평가하자면, 이는 의회 상임위 활동에서 독점을 해소하고 공존과 균형 그리고 타협의 공간을 제공했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측면에서 평가한다면, 여야 나눠먹기의 전형적 형태라 할 수 있다.

당시 여소야대 4당 체제에서는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 조항도 신설되어 각 당이 정책연구위원을 ‘나눠 갖게’ 되었다. 그리고 줄곧 여당의 몫이었던 국회도서관장 자리도 제1야당의 몫으로 가져가기로 되었고, 이 관행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이 과정은 당시 제1야당으로 올라선 평민당의 의도가 관철되었다고 평가될 수 있다. 물론 이는 DJ의 구상과 ‘철학’이 반영된 셈이었다. 이러한 DJ식 정치는 “상인적 현실감각”에 대한 강조에서 드러나듯, 독점된 권력을 분배하고 균점하는 계기로 작동되었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나눠먹기’, ‘기득권의 공존’ 혹은 개량주의라는 단점 역시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우리 국회의 고질적 폐단이기도 한 여야 간 ‘적대적 공존’의 토대로 기능해온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장기적으로 살펴본다면,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은 우리 국회의 중요한 폐단인 “나눠먹기” 혹은 “적대적 공존”이 관행적으로 구축되는 중요한 계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수, 2020/07/01-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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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좌담은 줄곧 한반도 평화정책을 표방해온 문재인 정부가 지난 2년간 ‘왜 대북전단 문제에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마련됐다. 좌담에는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탈북민 김민경(가명) 씨, 탈북민 정착 사업을 하고 있는 양영창 선교사, 탈북아동공동체 우리집의 마석훈 대표 세 명을 초청했다. 좌담회 사회는 김화순(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위원)이다.


사회: 지난 6월 일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되었고, 남북한의 긴장이 고조되다 잠시 쉬고 있습니다. 북측은 지난 6월 4일 김여정 당중앙위 제1부부장 명의로 남측을 비난하는 담화를 발표하였으며, 이튿날 통일전선부 대변인 명의로 대남 관계를 대적(對敵) 관계로 규정한다고 언급하고 잇달아 담화 발표 및 대남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지금 잠시 진정국면에서 접어들었습니다만, 이처럼 남북한의 긴장관계가 격화된 계기에는 박상학 등 일부 탈북민들이 북한으로 보내는 대북전단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대한민국 정부는 왜 지난 2년간 대북전단문제에 대해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았을까?”가 궁금합니다.

 

대한민국 주권 가지고 할 수 있는게 그렇게 없습니까?”

사회: 반갑습니다. 세 분을 좌담회에 모시고, 대북전단 살포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안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내 주시겠습니까?

김민경: 시작하기 전에 제가 남한에 온 지 6년이 되어가지만 북한출신으로서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묻는데요. 대한민국 주권 가지고 할 수 있는게 그렇게도 없습니까? 이명박시대에 삐라를 하라고 탈북인단체를 부추긴 것은 그럴만했다고 치고요. 그때는 북한이 붕괴하기를 기대하는 정권이었으니까. 그런데 평화로 가자는 방향으로 시대가 바뀌었는데 문재인 정부는 왜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까요? “결국 평화라는건 미국이 허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잖아요. ”남북관계는 쇼였나요?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대결시대에는 삐라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는데 약속을 내챙개치고 삐라라니, 언론의 자유라니. 지난 2년간을 통해 우리가 깨달은 건 평화라는 건 미국이 승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잖아요. 결국 한반도 평화는 안된다는 겁니까?

사회: 뼈아픈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남북한관계 파국의 원인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대북전단사건부터 복기하여 원인과 책임을 찾아 이런 일이 다시 없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선 대북전단의 발생 원인부터 이야기해볼까요?

마석훈: 대북전단 풍선을 날리는 원인을 ‘특별함이 주는 중독현상’ 때문이라고 봅니다. 탈북자분들이 남한에 와서 세뇌가 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탈북자분들이 북쪽이 아니라 오히려 남쪽 사회에서 세뇌가 된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왜 남한에 왔나? 그러면 흔히 자유 찾아 왔다고 하지만 정말 자유를 찾아왔는가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한에 와서 출세하려면 튀어야 한다는 게 일부 탈북자들의 생각입니다. 여기에 온 사람이 3만 3천입니다. 박상학 씨는 대북전단을 어제 날렸고, 앞으로도 계속 날릴 것입니다. 학생운동 할 때처럼 구속되어도 나와서 또 하고. 그게 옳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 박상학 씨는 이미 하나의 확신범 같이 본인은 대북전단을 날려야지만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방식으로 ‘북한과의 문제를 야기하는’게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대북전단살포 문제는 정치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에 대한 처벌도 엄중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도 민주화를 위해 산다는 게 얼마나 가난하고 어려운지 겪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집단만 민주투사가 될까?”

양영창: 마선생님이 원인을 잘 짚어주셨습니다. 돈 대는 단체들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돈대는 단체로 ‘미국의 소리’가 이번에 뉴스에서 지목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많습니다. 제가 아는 단체는 미국에 있는 교포단체인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돈을 댄다고 하면서 정작 민주주의가 없습니다. 한인교포들은 미국 국민들보다 트럼프를 더 지지합니다. 최고존엄을 저격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들의 생각이 무엇이기에 탈북민들을 분란시키는가? 아는 탈북민 친구들과 전화를 해보면 선생님 그렇게라도 하면 우리 식구들이 얻어먹을 거 아니예요? 그런다. 태극기 들고 있는 친구. 태극기는 5만원이다. 대북전단은 그것보다 더 돈을 많이 줍니다. 당일 치기도 하고 1박 2일도 하고. 이들을 조정하는 팀들이 누군지 밝혀내야 합니다. 나는 탈북민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고 그냥 한국사람으로 그냥 우리 사회 일원으로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석훈: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집단만 왜 정의투사, 민주투사가 되어가는지 그 현상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한국 말고 그런 사례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미국에도 소수지만 가고, 캐나다 영국에도 몇 백 명이 있는데 정치행위에 나서는 탈북자집단은 한국 말고는 없습니다. 즉, 캐나다에 간 탈북자들 영국 등에 있는 탈북자들은 왜 생계에만 천착해서 살아갈까라는 측면을 생각하면 답이 나옵니다.

양영창: 요즘 단체들의 창업지원을 하러 많이 돌아다니다보니 풍선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언론에는 자유북한운동연합이나 큰 샘과 같은 몇 개 단체 이름만 나왔습니다. 기실 방송 듣고 넘어오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전단살포가 자기네들의 이득과 단체들의 이득과 돈 때문에 한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과거 초기에 이민복 씨가 했을 때부터 (대북전단을 보내는 것을) 직접 보았는데, 대북전단살포가 그렇게까지 효과적이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북전단살포를 생각 외로 많이 합니다. 문제는 (대북전단) 돈을 대주는 팀들인데 그들이 뒤로 다 빠져 있습니다. 재정(돈)을 대주는 팀들이 누구인지 언론은 잘 모릅니다. 이러다가 대북전단살포법을 만든다고 해도 일이 잘못되다 보면 (탈북민) 몇 명만 때려잡고 말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김민경: 마선생님 말씀처럼 캐나다에 간 사람들은 그곳을 너무 좋아합니다. 거기 가니 스트레스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남북한이 싸우는 짬에 끼워지는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거기 가서 오히려 북조선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찾게 됩니다. 저도 캐나다에 가서 미국에서 자금을 받아 아시아방송을 운영하는 탈북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북한 인권을 하는 사람이 몇 있고, 방송을 하는 정도이지 여기처럼 심하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남한에 ‘수요’가 있기 때문에 대북전단을 보내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봅니다. 반공주의 프레임이 가동되면서 반공주의가 생존의 열쇠인 그런 세력들. 그런 사람들이 탈북자를 돌격대를 만들어 내세웁니다. 그들은 남남갈등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해방 후 북에서 넘어온 월남자들 일부가 서북청년단을 뭇고 앞장에 서서 상대진영을 말살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듯이 말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국정원에서 이용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은 안보강사로 다 내보냈습니다. 그들은 안보강연을 통해 북한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키우고 반공주의를 강화시키는데 일조했죠.

또한 남한의 정부와 국민들이 용인해온 결과이기도 합니다. 사회적으로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였다면 주류사회의 눈치를 보면서 정착하고 살아가야 할 소수집단인 탈북자들이 과연 그들이 그렇게 했을까요? 이런 행위들을 너무 당연시했던 같습니다. 북한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이 남한 사람들 속에 뿌리 깊게 있기 때문에 북한은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는 생각이 오늘에 이르게 된거죠. 또한 한미동맹으로 얽혀 있는 남한내에서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과 아시아 패권전략에 따른 문화적 침투의 일환으로 미국의 자금이 국내에 상당히 유입되면서 기생하는 세력들이 생겨나기 마련이죠.

 

“막말을 해도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북한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

사회: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수요가 있기에 풍선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서북청년단을 이용했던 그 세력이 수요처다. 보수를 지칭하는 분단세력들이 지금 대북풍선의 원인이다라는 지적을 남북한 분들 공통적으로 지적해주셨습니다.

김민경: 대북전단살포를 요구하는 세력은 돈도 많습니다. 언론들은 이런 것을 지적해야 하는데 이 같은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남한에 오니 자유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억이 막히는데 여기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뭔가? 오히려 분단 70년동안 자유를 말살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하던 세력이 바로 그들입니다. 제가 가장 본질적으로 말하고 싶은 핵심적인 이야기는 개인의 자유가 아무리 중하다 한들 생명권보다 더 중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과연 개인의 자유가 생존권을 우선할 수 있냐? 그들의 표현의 자유 운운 하면서 삐라 날리면 접경지역 주민들은 생명위협에 노출됩니다. 연평도 포격사건을 비롯해서 삐라 때문에 남북간 총성이 오고간 사례들이 많죠. 이 문제를 제기하고자 합니다. 언론에서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말살한다고 말하죠. 요즘 어떤 판사도 표현의 자유를 말살한다고 했죠. 자유가 아니라 방임입니다. 삐라 내용도 정제된 언어가 아니라 일베 수준의 저열한 내용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냉전시대에나 날리던 삐라를 평화이행기에 들어선 오늘날까지 날리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행위입니다.

사회: 저도 엊그제 제가 패러글라이더 한 분을 만나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6년 전에 불법적인 전단살포 행위를 통일부가 나서서 변호했다는 군요. 특히 대북풍선을 날리는 북한접경 지역은 항공관리법이 적용되는 특수지역이어서 법으로 금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탈북단체들이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오히려 10년 가량 정부의 묵인과 비호를 받으며 대북 전단 살포용 풍선을 버젓이 날려왔습니다. 전단 살포용 풍선이나 드론이나 똑같이 항공안전법 제2조 제3호에 같이 규정되어 있는 “초경량비행장치”에 해당하며 각각은 “기구류”와 “무인비행장치”에 속하기에 불법입니다.​ 접경지역에서는 패러글라이드도 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북전단을 풍선으로 띄우는 것에 항공법에 저촉된다는 지적을 국회의원이 당시 청문회에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통일부 관료들이 말이 안되는 해석을 했다고 합니다. 왈, 지상통제장치가 없기 때문에 대북전단 풍선은 항공법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렸다고 합니다. 【1】대북전단을 날려도 된다는 거지요.

정부가 전단을 막을 수 있는 상황이었고 교통부, 국방부 등까지 관련되었는데 왜 그랬을까? 대강 짐작이 가지요. 통일부에서 법의 해석을 무리하게 하면서까지 대북 전단살포를 허용했다. 한마디로 전단풍선살포는 정부의 허용 내지는 대북상대의 일종의 심리전으로 인정받은 행위였던 겁니다. 마선생님이 ‘왜 한국에서만 그러냐.. 다른 지역에서는 그러지 않는데’라고 말하는데, 탈북민들이 전면에 나서는 이유는 국가 정부가 탈북민들을 앞에 세웠기 때문입니다. 국정원 댓글부대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하겠지요. 탈북단체들은 그 앞장에 서서 생존해왔습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국가가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민경: 한마디로 분단세력이죠. 북한이 나쁘다는 것을 극대화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박상학이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고 계속 요구합니다. 대한민국의 토착세력이 문제입니다. 새터민이 아니라 헌터민들이 문제입니다. 저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북한’에 대한 인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중국이 독재하는 것을 다 알지만, 중국에다 대고 너네 왜 독재하냐고 삐라를 날리지는 않습니다. 왜냐? 우리가 중국을 함부로 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북한에는 막 해도 됩니까? 북한에 대고 온갖 표현을 해도 용납이 되는 남한사회 전체의 인식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삐라의 변질, 돈 주는 사람들은 왜 북의 최고 존엄을 겨냥하는가?”

양영창: 과거에 정부가 독려하고 돈을 주었는데 북에서 이야기가 나오니까 (탈북민을) 잡아넣겠다고 합니다. 차라리 왜 이렇게 대북전단을 하느냐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지방에 가서 대북전단을 하는 탈북민을 만났더니 그들이 한번 정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봤냐? 고 합니다. 내가 너희 국회의원 하려고 그러냐? 고 물어보았더니, 그렇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처음에 삐라를 시작했을 때 강화에서 이민복 씨가 주로 했는데 지금같이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돈을 주는 사람들의 요구가 많이 변화한 것 같습니다. 최고존엄을 건드리면 안되는데. 이 사실은 탈북자들이 더 잘 압니다. 나는 최고존엄을 건드리라고 돈을 주는 사람들이 그렇게 요구한게 아닌가 의심합니다.

어떻게 삐라가 이렇게까지 변질이 되었는지 돈이 어떻게 들어갔고 왜 이렇게 이들이 하는지가 밝혀져야 합니다. 그런데, 언론과 이야기해보니 기자들은 문제를 ‘탈북민’전체로 돌립니다. 나는 법을 어기면 제재는 따라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은 탈북민사회가“대북전단 살포는 안된다.” “가족들이 피해를 본다”고 강하게 소리치고 있습니다. 때려잡는게 아니라 탈북민들과 이야기할 것은 이야기해야 할 때입니다. 이미 다음 세대가 대북전단 살포행위를 이어받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돈을 주는 세력이 있는 한,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회: 양선교사님 말씀은 돈을 주는 쪽에서 최고 존엄을 건드리는 쪽으로 푸시를 했다. 이제는 공론의 장에서 이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탈북민사회에 이 문제에 가지고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정리하겠습니다.

김민경: 대북전단 풍선날리기 문제는 남한의 정치풍토와 관련이 있습니다. 남한의 진보진영이 70년 동안 위축되었습니다. 진보진영을 공격할 때 쓰는 키워드가 있죠. 빨갱이, 종북, 북한 이 세 가지입니다. 지금도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데 있어서 진보 진영을 공격하는데 있어 반드시 북한이 동원됩니다. 아주 강력한 무기죠. 정치꾼들이 북한 인권을 빌미로 색깔론을 부추기고 앞장에 내세우던 인물들이 있죠. 그런 사람이 국회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할 가장 절실한 사람들”

사회: 대북전단을 북한에 날리는 행위의 원인이 탈북민을 사주하는 분단세력에게 있다는데 여기 모인 분들 간에 이견은 없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논의를 통해 탈북인들의 대북전단 행위에 대해 대화적인 접근을 해서 설득할지 아니면 강력한 법적 제재를 할 것인가로 의견이 나뉘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더 이야기해볼까요? 이 문제에 대해 여러분의 의견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석훈: 저는 지금 공론의 장에서 논의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봅니다. 이 문제가 가시화되어 법이 만들어지게 되었으니까요. 한 가지 더 문화적인 측면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북한 분들이 나오는 이만갑, 모란봉을 보면 탈북여성들은 미녀만 나오는가? 여성은 모두 미녀고 남자들은 김일성대학출신이고. 제가 보는 탈북민들은 보통 사람들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뭔가 특별한 사람들을 발굴해내려는 문화가 존재합니다. 미국에 가보니 난민의 경우 경비를 3개월에 뱉어내도록 하는데, 한국에 온 탈북민들은 각종 공짜들이 늘어나기만 합니다. 특례입학 등 다른 방법으로 정착한다. 여명학교, 원불교 한겨레학교에 들어가는 돈, 돈을 기부하는 분들은 바로 이 삐라 만드는 사람들의 좋은 자양분입니다. 우리 사회에 자리잡은 탈북민에 대한 공정하지 못한 기부행위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대북전단을 하는 사람들이 구속되면 효과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감옥에 가면서까지 그 일을 계속할 사람은 해야지 어쩌겠어요?

김민경: 우리 북한이탈주민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라도 대북전단행위를 이번에 근절해야 한다고 봅니다. 박상학을 비롯하여 탈북민전체가 혐오의 대상으로 되면서 10년간의 정착노력이 부정당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대북전단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빨리 정리해야 합니다. 남북관계가 70년간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렵게 오늘까지 오게 된 과정을 모든 국민들이 지켜보았습니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남북화해노력을 80%까지 지지했습니다. 그만큼 평화에 대한 갈망이 높다는 거죠. 오늘날에 와서 평화를 깨뜨리는 것은 범죄이고. 더 이상 분단과 반공에 기생하던 풍토를 청산해야 합니다. 탈북민은 우리 사회의 소수자로 축소되어 살아가는 사람인데 남한 사회에서 제대로 관계를 가지고 살려면 이 문제가 근절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우리 탈북자들이 남북관계해결의 이해당사자입니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할 가장 절실한 사람들이고, 우리가 남북화해의 매개체가 되어야 할 사람들인데 일부 탈북자들의 행동으로 남북갈등을 부추기는 촉매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대북전단 픙선을 날리는 사람들 때문에 탈북자 집단이 사회 혐오집단으로 낙인되고 정착과정에서 우리의 모든 노력이 부정당할 우려가 커지는 현실에 살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깨어나야 합니다.

양영창: 그렇지 않습니다. 탈북민이 소수자로 된 것은 삐라 사건만은 아닙니다. 탈북민에 대한 남한 사람들의 생각이 표출되었다고 봅니다. 이 사건만이 아니라 보수정권에서도 그렇다. 법적 제재 전에 논의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마석훈: 이런 시점에 탈북민사회를 대변할 수 있는 단체나 어른이 없다는 게 정말 안타깝습니다. 탈북민에게 신뢰를 받는 단체나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도 안타깝습니다. 이런 상황이 왔을 때 중재를 하는 존재 하나 만들어내지 못 했다는 게 부끄럽습니다.

양영창: 제가 가장 힘든 게 그것입니다. 국내에서 정착지원활동을 하고 해외에서 일을 20년 넘게 했는데 내가 무엇을 했는지 자괴감이 듭니다. 너무 힘듭니다. 내가 왜 이 사역을 했나 싶습니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이해하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북한도 지금 군사행동을 멈추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쉼표를 가지고 직접 탈북민 자신이 나서서 목소리를 내봅시다. 뒤에서 이야기할게 아니라 보수는 서로 목소리를 내서 잘잘못에 대해 이야기 하자. 우리가 남남갈등 하지 말고, 원수가 안 되었으면 좋겠다.

 

통일부가 대북사업과 탈북민 사업 양자를 함께 하는게 가능한가?”

사회: 이 좌담회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왜 지난 2년간 대북전단문제에 대해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았을까?”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입니다. 참석자 모두가 한마디씩 해주셨으면 합니다.

양영창: 대북전단 풍선에 반대하는 생각을 가진 단체들은 논의의 자리가 있으면 오겠다고 해요. 한 번씩은 다 와서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방송에 나서 시끄러워집니다. 대북풍선을 날린 사람들이 나와서 함께 깊게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대북전단살포를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그 내막을 알지 못합니다. 탈북민이 한 사람의 구성원이라고 인정한다면 법내용에 대해 알고 논의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직은 시기가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법이 만들어지면 포괄적으로 법내용이 만들어지면 발표하고 서로 문제제시도 하고 방향을 잡아가는게 촛불정부인 더불어민주당의 방식이어야 합니다. 왜 자꾸 왜 논의의 장을 열어야 하냐고 주장하냐면, 탈북민들은 지금 불안하고 애가 타기 때문입니다. 왜 이 방법을 쓰지 않는가? 빈대 한 마리 잡는데 초가삼간을 왜 태우냐. 정부가 그동안 잘못했다. 풍선을 하도록 했고 전단내용을 바꾼 세력이 있는 한 피해자는 탈북민이 됩니다. 나는 그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사회: 이 사태를 수습하려면 양선생님 이야기처럼 공론의 장에서 대화하는 자리가 많이 있어야 하는데. 통일부나 하나재단 모두 작년 탈북모자사망 사건 때 무력했습니다. 남북하나재단이 이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까요? 누가 이 단체들을 연결해서 그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석훈: 탈북민을 관리한 기관에서 그런 자리를 마련하는 게 맞긴 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중요한 사건이 생기면 남북하나재단은 늘 자기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 일을 하라고 월급을 주는 건데. 대북전단은 인권운동이 아니라 상업적 운동입니다. 이미 하느니 마느니 합의할 수준은 넘어섰습니다. 관련법도 제출이 되었고 이재명지사가 경기도에서 행정권으로서 접경지역 출입금지라든가 고발할 수 있는 근거가 있으니, 이제 법을 시행하는 단계가 되었다. 합의는 이미 지나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현재 여당이 압승을 했습니다. 설문조사 결과도 그렇습니다. 대북전단에 대해 반대하는 국민여론이 60%를 넘어 70%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대북전단을 하니 마니 합의하거나 논의할 시점은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김민경: 과연 남북문제 해결에 있어 국회가 한 일이 뭐냐? 남북 간의 비방을 안 하기로 합의했던 4.27성명 발표 후 국회는 이를 뒷받침 하는 법안 하나 내지 않고 팔짱을 끼고 강건너 불구경 하듯 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남북관계가 파탄나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르죠. 문재인정부를 공격할 구실이 생기니까요. 직무유기죠. 대북전단에는 정치세력과 기독교, 미국의 대북관련 단체들을 비롯한 다양한 세력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자제를 권유하는 방식으로 방지할 수 없습니다. 평화를 파괴하는 범죄로 규정하고 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저도 사회자의 입장을 떠나 탈북민문제 연구자로서 제 생각을 한 마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사건은 과연 통일부가 대북사업과 탈북민 사업 양자를 함께 하는게 가능한가라는 가장 본원적인 문제를 제기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촉망받던 김연철장관이 아무 일을 하지 못한 채 사표만 내고 떠났는가? 이와 유사한 형태로 작년 탈북모자사망 사건때도 결국 하나재단 고경빈 이사장이 사표를 내고 나가는 것으로 마무 리짓고 말았는데 조직체계의 근본적인 혁신없이 어공 윗사람 한 사람의 사표로 마무리지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늘공 조직의 과감한 쇄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북전단이 왜 방치되었는지 국회가 대한민국 정부가 왜 지난 2년간 대북전단문제에 대해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았을까?”라는 시민들의 상식적인 의문에 답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개성공단 등 통일 각분야에서 부딪히고 있는 답답함과 장벽을 제거할 수 있는 길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 경향신문. 2014. 10.23. <북한 비판 풍선은 되고 정부 비판 풍선은 안된다?.. 정부, 항공법 적용 제각각>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대북 전단 살포가 비행금지구역인 휴전선 인근에서 이뤄지게 될 경우 항공법으로 규제가 가능한지에 대해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한 결과 대북 전단 살포용 대형풍선은 지상에서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기 때문에 항공법 적용대상인 초경량 비행 장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토, 2020/07/04-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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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0년 6월 26일 개최된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 춘계학술대회의 기획주제 세션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한국 지식사회에서 ‘개인화’는 흔히 신자유주의적 고립이나 공동체적 연대윤리의 상실 및 이기주의의 확대,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위험이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되는 현상 등을 단편적으로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여기서는 서구 근대부터 2차대전 이후까지 다소 선형적으로 발전해온 산업사회가 그 역사적 성공 이후 깊은 변동을 겪는 과정을 묘사하는 개념으로서, 울리히 벡이 사용한 ‘개인화’ 개념에 기초하여 복지체계의 변화 필요성을 촉구하고자 한다. 현대의 복지체계가 산업사회의 규범에 기초하여 제도화한 ‘유기적 연대’의 형태라면, 위험사회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진행되는 개인화 상황 속에서는 사회적 연대의 형태 역시 한층 개인화한 방식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1. 현대 복지체계의 규범적 출발점

현대 복지체계는 유럽에서 발전한 자본주의 및 그것이 초래한 계급 대립 속에서 형성되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봉건적 신분제로부터 개인을 해방/고립시키는 이중의 과정을 불렀다. 따라서 봉건적 신분과 달리 계급은 1차적 집단관계가 아니다. 계급은 개인들 간의 사회경제적 성취의 격차로부터 2차적으로 형성된 집단적 격차의 문제로 정의되는데, 개인적 성취 격차를 집단적 격차로 구조화하는 것은 자본의 소유관계이다. 이 소유관계로부터 집단적 분배 격차가 생겨나는데, 복지국가는 소유관계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인 분배 격차를 완화함으로써 사회갈등을 약화하려는 시도에서 비롯한다.

그런데 소유관계는 핵가족이라는 새로운 신분적 관계―‘사생활’로 축소된―를 통해서 상속되기 때문에, 계급은 사실상 1차 집단으로서의 성격과 2차 집단으로서의 성격이 교차하는 특성을 갖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계급 갈등 속에서 과거의 신분적, 가부장적 문화를 매개로 계급결속이 형성되면서, ‘계급’(마르크스) 개념은 ‘사회계급’(베버) 개념으로 발전했다. 그리하여 계급 격차는 계급집단 간 경제적 격차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격차, 즉 가족생활 향유에서의 격차와 집단문화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따라서 복지의 문제 역시 그와 같은 ‘사회적 삶’을 보장하는 문제로 확대되었다.

복지체계가 소유관계 자체가 아니라 분배 격차를 문제 삼는 것은, 자본주의의 생산력 향상이 분배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자본의 사적 소유가 생산력 발달 또는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보고, 그 결과물을 보다 평등하게 분배하는 데에 초점을 둔다. 따라서 현대 복지체계에서 당연시하는 사회이론적 전제는 1)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통한 경제 성장, 2) 사회경제적 불평등인 계급 격차의 완화, 3) 사회적 삶의 보편적 단위인 핵가족의 보호, 4) 핵가족 부양에서의 계급 간 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이론적 전제들에 제대로 포괄되지 못하고 외부화한 문제들이 들어 있다. 각각의 문제를 이 사회이론적 전제들과 관련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1)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문제

경제발전의 틀에서는 생산력 향상을 위한 투입 요소로 노동력과 자본만을 고려한다. 그러나 생산을 위해서는 원료나 토지, 기계 등의 형태로 자연 물질의 투입 역시 필요하다. 또 노동력의 투입을 위해서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자연 물질적 특성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본의 상속 역시 자녀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인간의 몸이라는 물질적 특성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따라서 노동력 재생산과 자녀 출산, 양육 등에 동원되는 여성의 몸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는 그러한 ‘자연 물질’의 문제를 모두 외부화하여 고려하지 않는다. 따라서 복지체계 역시 생산관계가 초래하는 분배 정의의 문제만을 ‘사회문제’로 보고, 자연 물질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문제를 외부화했다. 이것은 자연과 사회를 엄격히 구분하여, 사회문제의 영역에서 자연 물질의 문제를 개념적으로 배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경제적 평등이란 지속가능성 문제를 배제한 절반의 ‘정의’ 개념에 기초한 것이다. 그리하여 장기적으로 볼 때, 생태 파괴 및 인구 돌봄 문제로 인해서 성장모델 자체가 불가능해질 가능성을 내포한다.

 

2) 사회경제적 불평등 = 자본주의 계급 격차

사회경제적 격차를 계급 격차로 보는 관점에는 위에서 보았듯이, 핵가족 생활공동체를 인간 삶의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단위로 보는 관점이 녹아들어 있다. 이것의 배경은 19세기 이래 유럽에서 확산한 ‘기혼여성 지위(덮어씌위기, coverture)’의 제도화이다.【1】 기혼여성은 재산을 소유할 수 있어도 더는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고 또한 더 이상 법정에서 발언할 수 없도록 혼인 제도가 변화했다. 기혼여성의 법적 권리가 남편의 법적 권리 속에 묻혀서, 남편이 가족을 대리하는 법적 대표자가 된 것을 말한다. 여성은 시민권의 출발점인 계약할 권리에서 배제되었다.

그와 함께 아동기가 발명되고, 아내와 자녀가 모두 아버지의 성을 취하는 ‘가족성(family name)’ 제도가 일반화하면서, 남성은 재산 소유에서는 내부적으로 격차를 보여도 ‘가장’으로서는 동질화하는 ‘보편화’ 과정이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이러한 남성 가장들 사이의 계급 격차로 정의되었다. 반면 여성은 앞서 보았듯, ‘자연 물질’과 유사하게 취급되어 남성의 사생활 영역에 묻힌 존재가 되었다. 따라서 여성은 정치경제적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3) ‘정상가족’의 규범

기혼여성 지위가 법적으로 차별적으로 규정됨으로써, 남성이 가족을 부양하고 여성은 살림을 도맡는 ‘정상가족’의 규범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정상성은 특히 생물학과 정신의학 등에 의해 과학적으로 뒷받침되면서, 근대적 성역할 규범을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현상으로 규정―‘자연화’(푸코)―했다. 그리하여 이제 보편적 정상가족을 향유하는 권리의 문제가 ‘사회권’의 내용으로 등장했다. 남성에게는 가족 부양의 기준에 따라 임금이 지불되고, 남녀 간 임금격차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여성의 경제활동은 비정상적―임시적, 예외적, 보조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4) 계급 평등 = 가족 부양자 남성 간의 격차 완화

결국 복지는 모든 성인을 대상으로 한 분배 평등 또는 남녀를 불문한 가장들 간의 분배 평등이 아니라,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남성의 능력을 보장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성역할 규범과 연관된 엄격한 공/사 구분으로 인해서 ‘노동’의 원형은 ‘가장 남성’의 노동으로 정의되었다. 특히 공장제 산업사회의 형태로 조직화한 제조업 육체노동이 노동의 원형이 되었고, 여성의 직업으로 분류되는 저숙련 서비스직이나 가족 내 삶을 위한 노동은 ‘노동’ 개념으로부터 주변화 또는 배제되었다.

그러나 복지국가가 발전하고 또 탈제조업중심의 산업변화가 진행되면서, 이와 같은 평등 개념은 현실적 토대를 잃게 되었다. 우선 복지국가 발전의 역설적 결과로서, 평등이 계급집단 간의 갈등보다 개인이 국가에 청구하는 ‘사회권’ 개념으로 변화했다(‘제도화한 개인주의’ 또는 ‘고객주의’). 탈산업화로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증가하고 기혼여성의 경제활동이 증가하면서, 남성 노동 중심의 복지체계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다. 그리고 여성의 교육수준 향상과 경제활동 증가, 직업 세계에서의 경쟁 격화, 이동성 증가 등으로 인해서 1인 가족이 증가하며, 노동의 목적이 ‘가족 부양’에서 ‘본인 부양’ 또는 ‘가족 공동부양’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나타났다(‘노동과 가족의 개인화’).

 

2. 개인화 및 그것이 복지체계에 던지는 과제들

울리히 벡은 앞서 본 바의, 산업사회가 외부화―즉 단순한 리스크로 처리―한 ‘자연 물질’ 관련 문제 중에서 생태적 위험과 관련된 ‘불확실성’이 정치적 공론화의 의제가 되는 과정을 ‘위험사회’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다.【2】 그리고 위험사회의 노동과 삶의 측면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양상들, 즉 산업사회에서 형성된 노동 및 가족 규범의 ‘탈정상화’를 ‘개인화’라고 표현했다. 노동 규범의 탈정상화는 정상노동모델의 약화를 의미하고, 가족 규범의 탈정상화는 탈핵가족화 또는 근대적 성역할 규범의 변화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새로운 불확실성’(생태위험)의 증가와 탈산업화로 인한 생애위험의 탈계급화뿐만 아니라, 서구 복지국가의 발전 역시 크게 작용했다. 특히 서구 복지국가의 발전으로 인해서 개인주의가 단순한 문화나 이념이 아니라 ‘법적 권리’로 제도화―‘제도화한 개인주의’―했기 때문에, 노동과 가족의 탈규범화는 단순한 아노미가 아니라 근대 이후 진행된 개인화가 한층 급진적 형태로 심화하는 것(‘2차 개인화’)이라고 보았다.【3】

그뿐만 아니라, 정치적 공론화의 의제 및 사회적 저항의 조직방식이나 주체들에서 변화가 진행되면서, ‘정치적인 것’ 자체가 기존의 공/사 구분이나 사회/자연의 구분을 넘어서 혼종화하는 경향―‘새로운 사회운동’―이 나타났고, 이 역시 개인화와 함께 진행되는 정치변화라고 설명했다. 정치적 의제나 저항의 조직방식, 주체화 등이 개인별 위험 인식에 따라 유동적 네트워킹 방식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개인화의 이러한 양상들이 복지체계에 던지는 의미는 앞서 말한 복지의 사회이론적 전제들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1) 우선 평등 분배의 단위가 가족을 부양하는 남성에서 모든 개인과 아동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고, 2) 제조업 육체노동자의 노동을 원형으로 삼아 발전한 계급모델과 사회보험 중심의 복지제도에서 탈피해서 상품화한 모든 노동―불완전고용과 여성노동 포함―에 평등한 분배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3) 기혼여성의 경제활동 증가 및 1인 가족 증가로 야기되는 일·가족 양립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4】 4) 소득 분배에 의한 생존권 외에 ‘자연 물질’과 관련된 안전권―인간 돌봄, 생명 안전, 생태적 안전권 등―의 문제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돌봄과 관련된 문제

이러한 도전 중에서 여기서는 돌봄과 관련된 문제에 집중하고자 한다. 노동과 가족의 개인화 그리고 정치적 의제 및 주체의 개인화와 관련된 문제인 만큼, 돌봄 문제를 다룰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 1) 우선 생존권 개념이 정상가족 단위의 생존이 아니라, 성인과 아동 개인 단위의 인권문제로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경우에는 돌봄이 가족이라는 사적 공동체에서 근대적 성역할 규범에 기초하여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 필요에 따라 수행되는 동시에 사회적 서비스의 형태로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낸시 프레이저가 말하는 보편적 생계부양자-보편적 돌봄제공자 모델에 기초하되,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개인이 두 가지 보편적 역할을 병행할 수 있도록 사회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5】 사회서비스로 제공될 경우 돌봄노동에 대한 가치평가나 돌봄노동자의 조직력 역시 향상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2) 노동위험이 불안정 노동으로 인한 개인별 생애위험으로 변화하므로, 이에 대한 안전보장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기본소득 대 전국민 고용보험’이라는 형태로 이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고용보험의 보편적 확대는 적용대상자에 대한 조사와 분류가 필요하여 시간 및 행정의 비용이 예상될 뿐만 아니라 사각지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또 자동화와 인공지능의 사용으로 각종 서비스 단말기 사용이 일상화하면서 일상의 삶에서 가치를 생산하는 활동이 증가하며, 노동과 삶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경제적 가치 생산이 이처럼 단말기와 일반인의 상호작용에 기초하여 사이보그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민의 삶 속에서 수행되는 경제적 기여에 대한 보상이 포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6】 또한 (사회서비스 제공에도 불구하고 개인들에게 일정 정도 남겨질 수밖에 없는) 돌봄노동이 보편화한다고 해도, 그 역시 부불노동으로 남는다. 재정마련을 위해서는 다른 방법과 함께, 역진성을 약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세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3) 복지제도에 의해 개인별 생존권이 어느 정도 보장된 상태에서, 노동과 돌봄이 통합된 형태로 연계될 수 있도록 노동조직의 변화가 필요하다. 코로나19 이후로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건강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의제가 되었다. ‘아프면 쉬는’ 문화와 함께 ‘아픈 가족원을 돌볼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도록 사업장 문화가 바뀐다면,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부담 역시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예방책으로 가장 실현되기 어려운 조건이 ‘아프면 쉬는’ 문화라는 것이 여론조사의 결과였다. 또 인구 고령화와 함께 돌봄에 대한 수요가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므로, 돌봄을 사적 비용으로 또는 대면적 공동체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서 바뀌어야 할 것이다.

4) 생태적 지속가능성은 세대 간 정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간에 대한 돌봄은 생태에 대한 돌봄과 유리될 수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공장가동 중지로 미세먼지가 줄어든 것, 그리고 개인별 위생수칙의 철저한 수행으로 호흡기 질병이 줄어든 것 등을 볼 때, 생태적 지속가능성이 사회의 돌봄 비용을 전반적으로 낮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태적 지속가능성 분야에서의 일자리 창출 및 생존권 보장을 통해서 일과 삶, 돌봄을 한층 유기적으로 통합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위에서 말한 새로운 틀은 돌봄을 사회서비스로 제공함으로써 보편적 생계부양자 모델을 제도화한 북유럽 모델을 기초로 하되, 돌봄의 보편성을 한층 강조하고 또 거기에 일상 속 노동을 소득으로 보상하는 기본소득을 더한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스웨덴 모델에 대한 실망과 한국식 모델의 모색

한국에서 그간 복지국가 모델로 크게 주목받은 스웨덴이 코로나19로 집단면역 실험을 하면서 상당한 실망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그간 스웨덴에 대한 환상이 너무 컸다는 비판이 올라왔다. 또 코로나19를 계기로, 서구 복지국가에서 살거나 노동하는 외국인의 열악한 생활상이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노동유연화에 대한 대처에서 북유럽 모델이 스웨덴 모델과 덴마크 모델로 갈렸던 것처럼, 코로나19에 대한 대처에서도 스웨덴과 덴마크는 상이한 방식을 보여주었다. 이런 점들에 유념할 때, 북유럽 모델을 하나의 동질적인 모델로 이해하는 대신, 각 사회에서 고유하게 발전한 복지모델의 역사를 추적함으로써 한국 사회에 적절한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는 데에 참고하는 것이 한층 발전적일 것이다.

 

【1】 캐롤 페이트먼, 2001, 『남과 여, 은폐된 성적 계약』, 이충훈·유영근 옮김, 이후.

【2】 울리히 벡, 1997, 『위험사회』, 홍성태 옮김, 새물결.

【3】 울리히 벡, 2013, 『자기만의 신』, 홍찬숙 옮김, 길.

【4】 독일의 노동 4.0에서는 개인화가 복지체계에 주는 의미를 ‘시간 주권’의 문제, 즉 일·가족 양립의 문제로만 이해했다. 홍찬숙, 2018, “노동 4.0인가 제2의 노동세계인가? 노동 4.0의 산업사회 관점 및 그 한계,” 『경제와 사회』 119: 165-192 참조.

【5】 낸시 프레이저, 2017, 『전진하는 페미니즘』, 임옥희 옮김, 돌베개.

【6】 기본소득의 노동 근거로서 필자는 울리히 벡의 ‘시민노동’이 아니라, 일상의 다양한 부불노동에 주목하고자 한다. 사이보그적 가치 생산에서 소비자 노동이 사실상 비가시화되며, 돌봄노동 역시 사회적 생산에 필수적인 노동으로 여겨져야 한다. 반면 벡은 위험사회에서 시민의 기여가 ‘노동’에서 ‘정치참여’로 바뀐다고 보며, 그것을 기본소득의 근거로 제시한다. 이에 대해서는 울리히 벡, 1999, 『아름답고 새로운 노동세계』, 홍윤기 옮김, 생각의나무 참조.

월, 2020/07/06-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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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터지나 싶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터졌다.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의 사망 사건. 이번엔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의 조지 플로이드(George Flyod) 사건이다. 체포 과정에서 백인경찰이 무릎으로 흑인 플로이드의 목을 눌려 죽인 끔찍한 사건으로 미국 전역에서 항의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시위가 격렬해지자 통행금지 명령이 내려졌고, 트럼프는 군 헬기 블랙호크를 띄웠으며 과격 시위와 약탈이 계속될 경우 군을 동원해 진압하겠다고 위협을 가하고 있다.(“8 Minutes and 46 Seconds: How George Floyd Was Killed in Police Custody,” New York Times, May 31, 2020; “What Happened in the Chaotic Moments Before George Floyd Died,” New York Times, May 29, 2020).

조지 플로이드 사망 관련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워싱턴D.C.의 링컨 기념관 앞에 정렬한 주방위군. 워싱턴포스트는 이 정경이 미국의 이상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며 군대가 국민을 방어할 것인가 아니면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눌 것인가를 묻고 있다.

잊힐 만하면 흑인에 대한 백인 경찰의 과잉·강압에 의한 사망사건으로 시위가 벌어졌지만 이번만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시위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격화되고 있고 잦아들 기미가 안 보인다. 이번엔 백악관 앞까지 시위대가 밀고 들어갔다. 트럼프는 백악관 지하벙커로 대피하기까지 했다. 심상치 않다.

그런데 이번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를 단순하게 흑백간의 인종차별적 인권 유린 문제로만 보는 것은 사태를 잘못 짚은 것이다. 왜 그럴까? 미국의 모든 문제의 정점에는 반드시 인종문제가 있다. 마치 끓어오르는 화산의 마그마가 가장 약한 지반을 뚫고 폭발하듯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가 비등할 때 터져버리는 취약점이 바로 인종이다. 그래서 인종문제는 점잖은 표현으로 종합선물세트, 나쁘게 표현하면 오물통 같은 것이다. 오물이 쌓고 쌓이면 결국 흘러넘치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나는 격화된 시위를 단순히 흑백간의 차별에 분노한 시위, 즉 인종 간 문제 해결 요구로 축소시키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경계하고자 한다. 거기엔 다른 모든 문제들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종문제는 단지 그 분출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나의 우려와 경계는 이번엔 기우가 될 지도 모르겠다. 시위를 전하는 언론들도, 심지어 시위에 나온 필부필부들조차도 이번 사건을 기화로 뭔가 미국에 변화가 있어야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경찰의 잔인한 폭력을 징벌하라는 데만 있지 않고, 망가진 미국 시스템을 전체를 교정할 때가 왔다라고 하는 근본적인 문제제기에 근접해 있는 것 같아 보여서 그렇다. 과거엔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미국에서 이전에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 많은 호응을 얻지 못하고 단발성에 그쳐버리고 근본적인 문제제기나 비판에는 한 발도 못나가고 그저 흐지부지 끝나버리는 것에 실망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성급한 나만의 바람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미국과 미국인 자신이 자신들의 상태가 어떤지에 대해 확실히 알고 난 뒤에나 벌어질 일이었기 때문이다. 뭐든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과외나 학원보다 자기주도 학습이 더 중요하듯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이야기가 사뭇 다른 것 같다.(“The America We Need,” New York Times, April 9, 2020).

미국 언론은 지금 미국은 부싯깃 통(tinderbox)라고 이야기한다.(“American Is a Tinderbox,” New York Times, April 22, 2020). 불똥만 튀면 터져버리기 직전의 일촉즉발의 상태라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미국과 미국인들을 이런 상태로 만들어 버린 것이 되었을까? 그 계기는 코로나19다.

조지 플로이드 학살사건 항의 시위에 나와 시위 도중 경찰이 쏜 고무탄환에 맞아 눈이 부은 미니애폴리스의 한 시민. 제목은 일촉즉발(부싯깃 통)의 미국이다. <출처: 뉴욕타임스/로이터스>

미국의 역사학자 헨리 코마거(Herny Steele Commager, 1902~1998)는 그의 책 <미국정신>(The American Mind, 1950)에서 “인류 역사상 미국처럼 성공을 거둔 나라는 없다. 그리고 모든 미국인이 그 사실에 대해 안다”라고 썼다. 그러나 코마거가 아직도 살아서 코로나를 겪고 있는 미국을 보고 있다면 아마도 저 문장을 다시 썼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이 거둔 성공은 어쩌면 허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든 미국인들이 그것이 착각임을 알게 되었다”라고.

뉴욕타임스 칼럼처럼 코로나 침공은 미국 역사상 미국 본토에서 일어난 최초의 침공으로 기록될 만하다.(“The First Invasion of America,” New York Times, May 21, 2020). 그리고 그 결과는 실로 참혹했다. 6월 3일 현재 확진자는 180만 명, 사망자는 10만6천 명을 넘어섰다. 미비한 의료체계와 환경으로 검사조차 받지 못하고 죽어나간 자들이 그 몇 배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걸 감안하면 완전한 참패다. 그러나 참혹함은 미국인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코로나는 미국 본토에서 벌어진 첫 번째 침공으로 기록 될 만큼 위력이 대단했고 참혹한 결과를 남기고 있다. 그 후유증은 미국 사회를 어디로 인도할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다. <출처: 뉴욕타임스>

코로나로 인해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창피를 떨었다. 그런데 속된 말로 그 ‘쪽팔림’은 당하는 당사자들만 모르면(혹은 모른 체하면) 아무런 문제가 안 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이 정확한 사태 파악을 어느 순간 하게 되면 그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마치 안데르센 동화의 벌거숭이 임금님과 간신들처럼. 너나없이 벌거숭이 임금님을 칭송하던 이들이 임금이 벌거벗었다며 “올레리꼴레리” 외치는 아이의 돌직구에 정신을 차렸던 것처럼, 코로나가 지금 미국인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일상에 금이 간다. 현상학적 사회학이 알려주듯 당연시되던 것들은 그것의 의문이 제기되지 않는 동안만 그 당연시가 유지될 뿐이다. 일상은 그렇게 깨진다. 당연시 되던 것들이 의문시 되면 모든 것이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이제껏,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는 훨씬 더 해결할 능력이 있고, 그렇게 하고 있으며, 그래서 미국이 세계 제1의 국가로 당당하게 군림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아니라고 떠벌여 그렇게 알고 있던 코로나라란 괴질조차 통제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허둥대는 국가 체계의 무능함과 부실함을 보면서, 그 때문에 자신들의 생명이 절대적 위협을 받게 되면서, 미국인들은 보건문제를 넘어 그 이상의 다른 모든 것들까지 도매금으로 의심하게 되었다. 아차, 꾸나! 미국이란 나라가 벌거숭이 임금님 꼴은 아니었나 하고 말이다.

우리(미국인)는 실패한 국가에 살고 있다는 제목의 애틀랜틱 기사

그리고 나온 말이 “이게 나라냐!”이다.

우리가 몇 년 전 창피해하며 되뇌던 바로 그 말이다. “이게 나라냐!”라는 외침은 무한한 자긍심을 갖고 믿었던 국가에 대한 실망, 좌절, 분노에서 오는 단말마적 비명이다. 그것은 “실패한 국가”에 대한 자괴감의 발로이다.(“We Are Living in a Failed State,” The Atlantic, April 20, 2020). 즉, 창피함에서 오는 미국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의 울림이다. 그러나 그 창피함은 어떻게 이런 나라가 세계최강일 수 있느냐는 다른 나라의 손가락질이(“The World Is Taking Pity on Us,” New York Times, May 8, 2020; “Fintan O’Toole: Donald Trump has destroyed the country he promised to make great again,” The Irish Times, April 25, 2020.) 자조감으로 변하면서 자연스레 생긴 자기모멸이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그렇게 스스로 비웃다 스스로 창피해하고, 결국 자기 연민에 빠졌다.(“The United States Is A Country To Be Pitied,” Washington Post, May 14, 2020). 그리고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최고의 국가 미국에 살고 있다는 생각하는 이들에게 먼저 불쌍한 처지에 놓인 우리 꼴을, 우리 자신의 몰골을 볼 줄 알아야 그 나마 이 나라를 다시 세울 일말의 희망이라도 엿보일 것이라고 일갈하고 있을 정도다.(“There’s No Hope For American Unless We Can Pity Ourselves,” Washington Post, May 15, 2020). 과거에 이런 일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어디 감히 세계 제1의 대국 자랑스런 미국의 시민을 깔보며, 어찌 스스로 자신들의 처지를 불쌍히 여긴단 말인가).

우리(미국인)가 불쌍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한 일말의 어떤 희망도 없다고 전하는 워싱턴포스트

코로나 창궐에 속수무책인 나라. 의료체계가 엉망진창인 나라. 실직하면 하루아침에 중산층에서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해버리는 나라. 먹을 것을 무상으로 얻기 위해 몇 킬로미터의 줄을 서야만 하는 나라. 대부분의 국민이 팍팍한 삶으로 끔찍한 하루하루를 버텨야하지만 부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더 배를 불리는 나라. 이런 것을 해결해 줄 생각일랑 눈곱만큼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나라에 대한 불만.

한 번 터지니 한꺼번에 우르르 봇물이 터져버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모든 게 의문에 휩싸여버렸다. 그러한 고질적 문제와 병폐들 가운데 단 하나라도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나빠지는 나라. 그 정점에 있는 빈곤과 불평등과 인종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아니 어떤 시도조차 하지 않는 나라에 대한 좌절.

빌어먹을 아메리칸 드림은 어디에나 있단 말인가? 그것도 혹시 허구? 그런 회의가 물 밀 듯 밀려오는 지금의 미국이다. 그 민낯이 이번 코로나사태로 수면 위로 완전히 드러나고, 뿐만 아니라 어쩌면 영원히 해결될 수도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한 이들의 절망.

천하를 호령하던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 쉽게 이야기하면, 미국이 여러 나라들 중 지존이란 표현)는 빈곤과 불행 그리고 사망의 의미로 희화화되었다.(“Under Trump, American Exceptionalism Means Poverty, Misery and Death,” The Guardian, May 10, 2020). 하다못해 과거의 영광스런 “예외주의” 딱지는 발가락의 때보다 생각 안하던 나라, 한국 같은 나라에게 붙이는 해프닝도 벌어졌다.(“What’s Behind South Korea’s COVID-19 Exceptionalism?” The Atlantic, May 6, 2020).

이렇게 자신이 거주하는 외부환경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 그 다음 수순은 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We’re Discovering Our Character,” The Atlantic, May 6, 2020). 세계 최강 국가의 국민에서 이제는 자신들이 무시했던 제 3세게 국가의 국민과 같은 처지에 놓였다고 생각하게 된다.(“Top Economist: US Cornoavirus Response Is Like Third World Country,” The Guardian, April 22, 2020). 그러면 차별, 불평등, 좌절과 분노, 그리고 절망은 단지 흑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전에는 흑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그래서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로 알았던 것들이 모두 내 자신의 이야기라는 처절한 자각!

지금 미국인들은 아메리칸 드림이 무너진 미국과 미국인의 실체를 파악하는 중이라고 전하는 애틀랜틱 기사

그러니 뉴욕타임스가 현재 미국인들 사이에 팽배한 정서를 “공포(Fear), 불안(Anxiety), 분노(Anger), 절망(Desperation)”으로 짧게 규정한 것도 무리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것들이 길거리로 사람들을 나가게 한다. 해서 지금 미국 도처에는 흑인 사망사건의 피해자 조지 플로이드가 흘러넘친다. “내가 바로 목 눌려 숨져간 그 피해자, 조지 플로이드”라는 각성이 사람들을 인종, 지역, 연령, 직업에 상관없이 항의 시위에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다. 동변상련과 감정이입. 그것이 길거리를 수많은 조지 플로이드들로 강물처럼 흘러넘치게 한다. 플로이드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In Every City, There’s a George Floyd’: Portraits of Protest,” New York Times, June 2, 2020). 하여 백인 경찰은 단순한 대립각에 서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것은 피폐해진 나의 삶을 질식시키고 있는 기성체계와 못된 세력들로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여태껏 존재했던 차이와 그로 인해 벌어졌던 문화전쟁들을 매우 하찮은 것들로 여길 정도로 코로나의 위력은 대단했다. 왜냐하면 삶과 죽음의 갈림길 앞에서는 플라스틱 빨대냐 종이 빨대냐, 와인이냐 싸구려 맥주냐의 차이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The Coronavirus Makes Our Old Culture Wars Seem Quaint,” New York Times, April 22, 2020). 이처럼 여태까지의 인종차별의 갈등 양상은 코로나 이후 큰 변화를 갖는다. 흑인 대 백인의 대립구도는 지금 “네 편 내 편”으로 갈릴 문제가 아닐 정도로 진화했다. 물론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트럼프는 이들의 정서를 집중 공략해 지지자를 결집시킨다)

어쨌든, 코로나 속에서 많은 이가 참여하는 저항이 가능할까란 칼럼(“Will the Coronavirus Crush the Resistance?,” New York Times, April 21, 2020)이 나온 지 얼마 안 돼 과거엔 볼 수 없던 시위가 터졌고 더 대규모로 더 극력하게 더 오래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이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의 지적도 나온다. 시위와 저항이 미국적인 게 아니라는 비판이다. 그러나 미국식이란 뭔가? 저항정신이야말로 자유를 지키고자 대서양을 건너온 청교도 정신이 아니었는가? 저항정신이야말로 미국적인 것 아닌가?(“The Double Standard of the American Riot,” The Atlantic, May 31, 2020). 사리에 맞지 않는 저항에 대한 이중 잣대는 무시해야 한다.

그럼에도 시위에 참여한 미국인들에게 건네고 싶은 몇 마디가 있다.

첫째,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약탈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약탈은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약탈을 하는 순간 시위의 정당성과 취지는 훼손되고 더 많은 지지를 얻어 낼 수 없으며 상대 쪽에 되치기 당하는 빌미를 줄뿐이다. 또한 약탈로 인해 피해를 입는 이들의 대다수는 같은 처지에 있는 소상공인들과 대형할인마켓의 필수노동자들이다.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코로나로 수 개월간 벌이가 신통치 않았고 감염의 위험성 속에서도 먹고 살기 위해 사지에 나가 일을 해야 했다. 당장의 처지가 어려워졌기에 생긴 물욕 때문에 그들에게 약탈의 위협을 가하는 것은 또 하나의 폭력이다. 폭력을 규탄한다면서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형편이 어려우면 오히려 구걸을 하는 게 낫다.

둘째, 하는 말 족족, 하는 짓 족족 밉상인 트럼프가 설혹 불에 기름을 붓는 짓을 한다 해도(“Episcopal bishop on President Trump: ‘Everything he has said and done is to inflame violence’,” Washington Post, June 2, 2020; “Editorial: Trump’s failure of leadership for a nation in crisis,” San Francisco Chronicle, May 31, 2020; “Intelligence Experts Say U.S. Reminds Them of a Collapsing Nation,” Washington Post, June 3, 2020), 미국의 모든 잘못을 트럼프 탓으로 돌리는 것은 그야말로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물론 그의 탓도 매우 크다. 하지만 미국이 안고 있는 중증 문제가 모두 트럼프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아니다. 트럼프는 그 일을 다룸에 있어 그 이전의 대통령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을 택했을 뿐이다. 그의 방식은 뻔뻔하고 조잡한 무시 전략. 그래서 일말의 동정심도 없는 것 같이 보일뿐이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골수 지지자들을 결집시킨다.

트럼프 이전의 다른 지도자들은 동정하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지 문제 해결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오바마가 그 썩어 문드러진 체계를 고치려 시도했는가? 아니다. 트럼프나 다른 이들이나 모두 자신들이 선택한 정치적 행위를 할(했을) 뿐이다. 누구를 위한? 기득권을 위한 정치적 행위! 대표적인 문제인 계층 계급간의 불평등을 보라. 그것은 트럼프 이후 급증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있었던 미국의 중증 기저질환이다. 심각한 기저질환이 지속되었고 아무도 그것을 치유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오히려 불평등을 부채질 해왔던 기득권세력들, 내가 말하는 제국들을 위해 열심 봉사 했을 뿐이다. 미국은 그 둘의 노선 사이를 왔다 갔다 할 뿐, 아니 트럼프가 나와서 둘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 것 같이 보이게 했을 뿐, 관통하는 사실은 단 하나 국민이 아닌 제국을 위한 정치였다. 따라서 모든 문제를 트럼프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문제의 해결커녕 더 엉클어트리는 결과를 초래한다.(이 때문에, 나는 트럼프 정권하에서 미국의 예외주의가 빈곤, 불행, 사망으로 변해버렸다고 말하는 로버트 라이시의 견해엔 동의할 수 없다. 미국의 예외주의는 그가 노동부장관으로 재직했던 클린턴 때도 이미 그렇게 변질 되어 있었다).

따라서 문제는 트럼프가 아니다. 잔인무도한 폭력을 행사한 백인 경찰이 아니다. 물론 이것들도 큰 문제이지만 그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더 큰 근본적인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공부가 필요하다. 내가 보건데 미국의 모든 문제의 핵심엔 원흉인 월가가 있다. 해서 이번 일의 동변상련과 감정이입 다 좋다. 그러나 비판(과 개혁)의 대상을 공략할 때는 대상의 층위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흑백문제와 공권력의 만행 문제는 그 수준으로 공략하라. 그리고 일상생활에서의 곤경과 불안한 경제적 삶, 그리고 암울한 미래에 대한 문제는 그것대로 따로 공격 대상을 정해 공략하라. 이 수준에서 생성된 공포와 좌절, 절망과 분노의 유발자로는 원흉 월가가 있으니 월가와 거기에 동참해 당신들의 삶을 척박하게 만들어가는 데 일조하는 정치권에 그 화살을 겨누라. 그렇게 하지 않고 “흑인의 삶도 중요하다”며 “백인경찰의 엄중처벌”만을 요구한다면 뒤에서 비웃을 이들은 월가와 정치가들이다.

최루액을 시위대에 뿌리는 텍사스 오스틴 경찰 사진 <뉴욕타임스/AP>

그래서 공격의 타깃은 썩어문드러진 미국의 시스템의 교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탑다운(위에서 아래로) 방식이어야 한다. 고작 20달러(약 2만 원)짜리 위조지폐 사용 혐의(위조지폐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가 사망에 이를 정도의 중범죄라면, 나라 전체를 강탈하고 전 국민의 삶을 위험에 빠트리는 월가의 대형은행과 사모펀드의 사기와 강도짓은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에 대해 물어야 한다. 처벌은커녕 그들에게 두둑한 보상(구제금융)까지 주고 있는 것에 대한 끝까지 저항이 있어야 한다.(그런데 여러 가지 여건 상 과연 거기까지 갈 수 있을 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과연 <애틀랜틱>의 진단처럼 미국 역사상 2020년이 최악의 해가 될 것인가?(“Is This the Worst Year in Modern American History?,” The Atlantic, May 31, 2020). 귀추가 주목된다.

 

참고자료

Henry Steele Commager, The American Mind: An Interpretation of American Thought and Character Since the 1880’s (New He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1959).

“We Are Living in a Failed State,” The Atlantic, April 20, 2020.

“There’s No Hope For American Unless We Can Pity Ourselves,” Washington Post, May 15, 2020.

“The United States Is A Country To Be Pitied,” Washington Post, May 14, 2020.

“The America We Need,” New York Times, April 9, 2020.

“‘In Every City, There’s a George Floyd’: Portraits of Protest,” New York Times, June 2, 2020.

“Intelligence Experts Say U.S. Reminds Them of a Collapsing Nation,” Washington Post, June 3, 2020.

“What’s Behind South Korea’s COVID-19 Exceptionalism?” The Atlantic, May 6, 2020.

“The Double Standard of the American Riot,” The Atlantic, May 31, 2020.

“Is This the Worst Year in Modern American History?,” The Atlantic, May 31, 2020.

“Retailers, Battered by Pandemic, Now Confront Protests,” New York Times, June 1, 2020.

“We’re Discovering Our Character,” The Atlantic, May 6, 2020.

“8 Minutes and 46 Seconds: How George Floyd Was Killed in Police Custody,” New York Times, May 31, 2020.

“What Happened in the Chaotic Moments Before George Floyd Died,” New York Times, May 29, 2020.

“Will Protests Set Off a Second Viral Wave?” New York Times, May 31, 2020.

“Will the Coronavirus Crush the Resistance?,” New York Times, April 21, 2020.

“The First Invasion of America,” New York Times, May 21, 2020.

“Under Trump, American Exceptionalism Means Poverty, Misery and Death,” The Guardian, May 10, 2020.

“Top Economist: US Cornoavirus Response Is Like Third World Country,” The Guardian, April 22, 2020.

“The Coronavirus Makes Our Old Culture Wars Seem Quaint,” New York Times, April 22, 2020.

“American Is a Tinderbox,” New York Times, April 22, 2020.

“The World Is Taking Pity on Us,” New York Times, May 8, 2020.

“‘They just kind of destroyed the place’: Businesses closed for months now face looting aftermath,” Boston Globe, June 1, 2020.

“Editorial: Trump’s failure of leadership for a nation in crisis,” San Francisco Chronicle, May 31, 2020.

“Episcopal bishop on President Trump: ‘Everything he has said and done is to inflame violence’,” Washington Post, June 2, 2020.

 

김광기 경북대 교수의 연재 ‘인사이드 아메리카’는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수, 2020/07/08-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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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북미에 이어 남미로, 이제는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 빠른 속도로 확산 중이다.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크게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멕시코는 물론이거니와 브라질을 포함한 대부분 국가에서 거침없이 퍼져가는 이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건 생존의 기회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분명한 현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는 빈곤하지 않다. 살인적인 사회적 불평등이 뿌리 깊은 똬리를 틀고 있는 곳일 뿐, 결코 ‘가난’ 한 대륙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진 덕분에 일찌감치 주변 강대국의 먹이사슬에 저항할 틈도 없이 예속되어 버린 탓에, 외국자본과 소수 매판 자본가 계급이 주축이 되어 형성한 ‘신식민지’가 지금의 라틴아메리카이다.

형식적인 정치적 독립은 중요하지 않다. 자본의 힘이라면 정치 권력쯤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저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지개혁이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쿠데타가 일어났고, 혹독한 독재자에게 저항하여 민중 정부라도 세우면 어김없이 외세의 지원을 받는 반군이 득세하는가 하면, 선거를 통해 집권한다 한들 기득권층인 자본가 계급의 맘에 들지 않으면 ‘우매한’ 대중이 선동에 이끌러 선택한 ‘합법적’이지 않은 정권이 된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20세기 내내 반복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는 여전히 진해 중이다. 유럽의 식민지로 시작해 미국의 ‘신’식민지로 전락한 이 대륙의 운명은 소위 자본주의 시스템이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여지없이 보여주는 곳이다. 이성과 합리가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라, 소수 독점자본의 이해를 보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회를 해체하여 개인 각자도생의 길만을 열어놓았으니,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외면당하는 수많은 라틴아메리카 국민의 설 자리는 벼랑 끝이다.

특히, 지금과 같이 전 세계가 전염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사회로 외면당한 이들에게 남은 것은 코로나19의 위험을 애써 외면하는 일일 것이다. 당장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 막막한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고, 지켜야 할 수칙을 이야기한 들 공허한 소리일 뿐이다. 이를 개인의 문제나 책임으로 치부해 버리지 말자. 자신의 하루 일 노동이 나와 가족 생계의 전부가 되는 사람들에게 중산층의 경제적 여유와 안정을 갖춘 이들에게나 가능할 법한 전염병 대처나 위기 인식 등을 요구하는 것은 더욱 혹독하다. 그렇다. 현재 그들에게 하루의 생계보다 중요한 것은 없지 않은가.

멕시코, 페루, 칠레, 콜롬비아, 브라질 등 소위 라틴아메리카 대부분 국가의 비공식 경제부문은 거의 50%에 육박하고, 이는 구조적으로 국가와 사회시스템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음을 의미한다. 이들에게 삶이란 사회적 공존의 영역이 아니라 원자화된 개인의 치열한 생존의 투쟁이다. 계층의 이동이라는 것은 존재한 적도 없다. 그렇게 차곡차곡 만들어진 라틴아메리카의 이른바 사회질서는 공고하다.

얼마 전 에콰도르 과야낄(Guayaquil)이라는 도시에서 코로나 감염 사망자들의 시신이 길거리에 방치되는 것이 국내에 보도되자, 많은 이들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브라질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사망자를 매장하는 모습이 소개되기도 했다. 외신의 ‘선택’을 받은 극적인 장면들만 국내 포털을 통해 전달될 뿐이다. 미국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제1세계와 제3세계의 기층민중들의 운명은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들 국가와 사회의 시스템이 어떻게 다수의 국민 혹은 사회의 구성원들을 소외시키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낼 수 있었는가이다. 현재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 확산되는 코로나19는 분명 ‘계급’에 따른 ‘선별적’ 감염이 두드러질 것이다. 유명인 몇몇이 감염되고 정치인들이 감염되었다고 해서, 이 전염병의 계급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첨단 기술을 갖춘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고 완치될 수 가능성이 있지만, 사회보장은커녕 의료보험도 없는 다수 기층민중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테니까. 코로나19의 급습은 유럽은 물론 미국과 같은 자칭 제1세계가 구축한 체제가 양산한 사회의 배제시스템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세계적으로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지금, 멕시코에서는 코로나19 감염으로 병원을 찾으면 고통 없이 빨리 죽을 수 있도록 주사를 놓는다는 괴담에 가까운 이야기가 SNS와 Facebook을 통해 번지고 있는 모양이다. 이 같은 문제의 본질은 결국 그 소문의 진위보다는 평소 멕시코 의료체계에 대한 불신과 공중보건 시스템의 부재가 낳은 불안과 공포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당뇨나 심장병과 같은 만성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전체 질병의 70%에 이르지만, 현재 멕시코의 공공의료 시스템으로는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여지는 적다. 그렇다고 민영의료 시스템이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멕시코 전체 인구의 약 천 육백만 명이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안정적인 정치와 시장경제가 정착했다고 알려진 칠레도 별반 다르지 않다. 1973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피노쳇 군부 정권은 일찌감치 미국 시카고 대학 출신의 경제관료들을 앞세워 가장 ‘모범적’인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했다. 그 결과 현재 역내 가장 불평등한 민영 의료시스템을 구축했고, 가장 비싼 약값을 치러야 하는 국가이다. 참고로 최상위 1%가 전체 국부의 26.5%를 소유하고, 반면 취약계층의 50%가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2.1%에 불과하다. 2019년 10월부터 시작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구조적 원인인 셈이다.

이번 코로나19로 지금까지 구축되어 온 의료체계의 붕괴, 의료 민영화, 의료의 공공성 등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비판, 그리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러나, 병상이 부족해 환자들이 방치되고 산소 호흡기가 부족했다는 사실보다 정작 문제의 본질은 과연 바이러스라는 공동의 적으로부터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가이다. 단순히 의료시스템만의 문제로만 좁혀서 다루어질 수 있을까. 국가 예산을 들여 병상을 확보하고 호흡기를 대량 구매하는 것이 위기를 대처하는 퍼포먼스에 그치지 않으려면 말이다. 얼마 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볼리비아의 과도기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의료장비 구매 과정에서 불거진 부패 스캔들로 곤욕을 치렀지만달라진 것은 없다.

상점과 마트에 풍부하게 진열된 손소독제나 마스크는 그것을 구매할 수 있는 이들에게나 해당한다. 그리고, 여전히 라틴아메리카의 상당수 국민은 상점에 즐비하게 진열된 손 세정제를 사는 것이 부담스럽다. 반면, 쿠바에는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 돈만 있다면 흔하게 살 수 있는 잘 포장된 손 소독제 따위는 없다. 이 팬더믹으로 더욱 좁혀오는 경제봉쇄를 차치하더라도, 턱없는 물자 부족은 쿠바인들의 일상이 되었다. 이를 사회주의의 ‘저주’라고 속단하지 않기 바란다. 그 이면에는 반세기가 넘도록 미국의 경제봉쇄를 버텨온 저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니까.

쿠바에서 팬더믹이 시작되고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지역사회 중심으로 시작된 공동행동이다. 쿠바의 모든 의료진과 의대생들이 각 지역으로 파견되고, 노인과 감염 취약계층을 파악하는 특별전담의료진들도 구성이 된다. 이 같은 사회적 행동의 목적은 하나다. 코로나19의 급습으로부터 함께 생존할 수 있는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하려는 사회의 빠른 대처였고, 소외 계층이 없도록 하려는 부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그래서 쿠바는 여전히 옳다. 적어도 코로나19의 급습을 받는 지금.

수, 2020/07/08-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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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향촌건설운동 20주년을 맞아, 원톄쥔 교수가 운동의 회고와 함께 그 이론적 배경을 정리해나가고 있다. ‘맛보기’에 해당하는 이 짧은 비디오 강연에서는, 신향촌건설운동의 큰 사고의 틀을 규정하는 중국 전통사상에 대한 간략한 언급과 함께, 자신들의 이론 다섯가지를 정리해서 설명하고 있다. 

미국과의 갈등이 초래한 직접적 압력과 이에 대한 중국정부의 각종 지정학적 대응, 코로나 사태로 인한 전세계적 혐중분위기와 함께, 최근 홍콩보안법 통과는 미국과 서방을 대체하는 대안 거대담론의 제시자로서, 중국에 대한 세계의 기대를 크게 잠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톄쥔 교수와 그의 추종자/찬동자들은 중국의 주류와 비주류, 그리고 관방/시장과 민간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고 있다는 점에서, 계속 외부 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이 이론들은, 기후변화, 불평등과 같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초래한 전지구적 문제들에 대한 대답으로, 큰 틀에서는 생태문명 건설, 구체적으로는 로컬라이제이션과 향촌건설이라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각급 정부의 ‘향촌진흥’정책에 실제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또, 그 내용들이, 중국 바깥 세계와의 충돌을 최소화하거나, 오히려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초래한 다양한 리스크를 줄이는 방향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위협론을 반박할만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원톄쥔 교수의 이론은 주로 중국 (근)현대경제사의 실전적 분석과 정책수립/실천, 민간대안운동 경험을 그 재료로 삼는 2~30년 이상의 실천과 10년간의 연구 성과에 기반하고 있다. 특히, 그의 세계체제속에서의 비용전가론이나 농촌균형발전론은 중국내에서도 여전히 비주류에 속하긴 하지만, 오랜 기간 숙성돼온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문명파생론’은 그의 전문적 연구 영역에서 다소 벗어난 최근의 고민으로, 학계의 활발한 논의대상으로 격상된 것 같지는 않다. 사실, 그 다음 이론인  ‘제도파생론’과 함께, 이 주장들은 서구 학계의 중국문명/ 정부 비판에 대한 대응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학문적 주장으로서의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외부세계와의 열린 논쟁의 과정과, 추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경제학자로서, 그의 사상적 고민, 형이상학적 논의는 그의 연구결과에서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중국 ‘생태문명’의 기반사상이나 그가 스승으로 여기는 ‘량슈밍’사상 등에 주목하는 중국 바깥의 연구자나 활동가들은 이를 궁금하게 여기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강연이, 도덕경을 직접 언급하거나, 중용을 이야기하는 것은, 상당히 예외적이지만, 역시 정확한 학술적 표현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삼농문제는 개발도상국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중국의 삼농문제는 1990년대 급진적인 현대화 개혁이래, 중국사회의 큰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고, 21세기에 진입하는 시점에, 공산당과 국가의 중요한 관심사가 됐다. 2001년 이래 신향촌건설운동을 진행하면서, 삼농문제의 완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과거 20년간, “민생을 보호하고, 연대를 촉진하며, 다원화를 제창한다”라는 생태문명 이념을 받들어 오며, 지식인과 청년학생들이 선도해서, 사회 각계층이 스스로 참여하고, 기층민중과 함께, 향토문화가 결합된 실천적 사회개량 실험을 해왔다. 그 결과, 중국 곳곳에 실천 현장이 생겨났다.

 신농촌건설로부터, 향촌진흥에 이르기까지, 식품안전으로부터, 안전한 문화, 안전한 생태환경, 그리고 국가안보에 이르기까지, 20년에 걸쳐, 향촌건설참여자들의 분투는 쉼이 없었다: 향촌건설에서, 도농교류, 국제교류에 이르기까지, 사회공익에서 사회적 기업에 이르기까지, 인재육성에서, 농민과의 협력, 농민공지원, 사회적 생태농업 (커뮤니티 지원 농업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향토문화부흥, 향촌건설연구에서 향촌종합발전에 이르기까지, 지난 이십년간, 다양한 사회적 모색이 지속돼 왔다.  


향촌건설사상이론체계

여러분들에게 우리 향촌건설의 실천과정중에 만들어진 이론 체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는 60세부터 시작하여 이제 70세에 이를 때까지, 우리 연구진들과 함께, 각종 연구를 수행하는 가운데, 만들어진 성과이기도 하다.

우리의 이론체계는 5개 관점으로 정리할 수 있다. 동시에 이 5개 관점에 대한 연구는 어떻든, 완전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해야겠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미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연구 그룹의 스타일이다. 우리는 중국 전통문화의 정수를 잘 간직하고 유지해왔다. 이것이 우리 연구의 태도에 일관되게 반영이 돼 있다.

중국전통문화는 근대 자연과학과 같이 분과가 명확하게 나뉘어 그 구조를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선, 큰 틀을 만들어, 전체적인 대략의 얼개를 이해하려고 한다. 이런 태도는 우리가 지금 강조하는 생태문명 전략의 전환과도 관련이 있다. 21세기를 맞아, 갈수록 공업화, 자본화가 진행되면서 초래된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중국은 생태문명으로 전환을 시작했다. 큰 방향성의 전환이었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생태자원이란 단어는 대단히 풍부한 내용을 품고 있다. 극단적으로 다양화한 자원체계이고, 그 요소들이 함께 묶여 있어서, 하나 하나 분리해 낼 수도 없다. 현재 중국의 국가지도자가 강조하는 ‘양산사상兩山思想’ (역자주: 시진핑이 녹수청산綠水青山이 금산은산金山銀山이다라고 한 표현을 이르는 말, 환경생태자원이 경제적 가치도 가진다는 의미)은, 산과 물, 전답, 숲, 호수, 풀 등의 자원이 종합적인 하나의 시스템으로 개발돼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원을 쪼개서 시장에 내놓으면 그 가치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생태자원은 구조화된 하나의 시스템으로, 원래 시장 논리로 명확하게 분절될 수 없는 자원이다. 전일적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생태 시스템이다. 인류는 공업화 시대에 생태자원을 생산요소로 변화시켰다. 이를테면, 공업화와 도시화는 토지를 사용해야 하는데, 토지는 생산요소로 인식된다. 이렇게 토지를 사용하기 위해, 숲의 나무를 베어내고, 불을 질러 황무지로 만든다. 그 결과로 우리는 생태위기를 목도하고 있다. 아마존 열대우림이 매년 감소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전통적인 개발은 이렇게 토지를 평면자원으로만 인식한다. 그 토지안에 자라는 나무, 풀, 서식하는 동물 등은 토지 자원 관점에서는 전혀 가치가 없기 때문에, 모두 제거돼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물 다양성 자원은 사실,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인류 사회와 매우 고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각도에서 보자면, 우선 생태문명 전환이 요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사상의식 측면에서 개명돼야 한다는 것이고 바로 이것이 최근 향촌건설이 강조해온 일련의 기본이념과도 통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대상무형大象無形, 대음희성大音希聲 (도덕경 41장)을 강조해 왔다. 만일 당신이 한마리 코끼리를 묘사하고자 한다면, 특히나 체계적으로 코끼리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다름아니다. 다리를 만지면, 기둥이라고 할 것이고, 배를 만지면, 벽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야기하는 대상무형은, elephant 즉 코끼리 이야기가 아니라, 커다란 객관적인 세계를 의미한다. 중국의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전략이 결합적으로 말하는 물과 숲, 전답 등을 아우르는 생태자원은 또한 구조적으로 쪼개서 분석할 수 없는, 담론상 하나의 객관적인 사물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가 대상무형을 강조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다원화사회구조속의 활동에 참여하도록 독려할 때, 무성무식無聲無息 (출전: 시경, 전혀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정체를 알 수 없음)이 더 명확히 드러난다. 지난 몇년간 외국에서 수많은 친구들이 찾아왔다. 농촌에 가서 수많은 향촌건설 현장을 돌아보고 나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현장이 생겨났는가?” 물었다. 우리 대답은, 허탈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별거 없다. 원래 이렇게 해왔다. 무슨 본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뚜렷한 리더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모두들 자기 일을 하는 거다. 판은 크게 벌리려고 노력하지만, 큰 소리가 나는 것도 아니다. 소식을 챙겨 들으려고 해도 따로 들을 수 없지만, 가보면 만날 수 있다.” 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도가의 철학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은 이 사회가 원래 이런 상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이 자연의 다양성을 갖춘 생태 시스템안에서 느끼는 것과 유사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만일, 지속적으로 생태화를 진행하다보면, 사람은 자연생태와 긴밀하게 결합돼 간다. 인류사회의 다양성은 자연생태의 다양성과 일치한다. 그래서 이런 감각으로 계속 진행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입어중도立於中道”에 처한 자신을 발견한다. 중도는 무엇인가 ? 대도중용大道中庸이다 – 누가 누구이고,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를 판별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의 행위는 어떻든 다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표현으로 나타날 때는, 비이성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존재라면, 각각의 행위에서 나름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존재는 다 합리적이다.

이런 상대적이며, 다양한 이유와 합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중도에 서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처지에 도달했을 때, 이것을 “중도이립中道而立,비비가장야臂非加長也,이종치자중而從之者眾” (역자주 – 맹자와 순자를 동시에 인용하고 있다.  활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활시위를 당기지만, 발사는 하지 않는다. 또,  높은 곳에 올라 팔을 뻗으면 팔이 길지 않아도 보인다. 배우는 사람들이 쉽게 따라 올 수 있도록 여지를 둔다라는 의미 )이라고 할 수있다. 이 표현은 왜 향촌건설운동에 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지 잘 설명해 준다.  그래서, 향촌건설은 서구의 냉전형 이념이 만들어낸, 인문사회과학으로 포장된 시스템을 통해, 오직 하나의 정치형태만이 정답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항상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원선생 어째서 늘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소?” 나는 원래 습관이라고 답하면서 미소를 짓는다. 왜냐하면 매사에 흑백논리를 들이 댈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요즘 연구지도 사상으로 중국전통문명중에서도 비교적 변증론적 색채를 가진 것을 취한다. 또 비교적 자연주의에 가까운 노자의 사상을 채택한다. 물론 공자의 사상도 결합돼 있으며, 불가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실은 전통 사상내에서 유불도儒佛道 삼자를 분리해내기도 어렵다. 그래서 향촌건설연구는 서구의 사회과학이 채택하는 분과학문적 분류를 채택하지 않기로 한다. 특정 이념에서 출발한 연구도 지양한다.

 

회고해보는 우리의 관점

첫번째 관점은 역사적으로 중화민족의 문명전승을 염두에 둔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만년에 달하는 문명이고, 이 문명의 전승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다. 세계 문명사를 돌아보아도 문명의 연속성은 단순한 인위에 의해서 확보되지 않았다. 그래서 특정 인종이 선진적이라 할 수 없고, 그들이 다른 기타 정신요소를 더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실제는 외부의 환경차이가 있을뿐이다. 그래서 문명의 형성 조건이 다르고, 각각의 인류 문명의 차이를 낳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옳고 그름도 없고, 선진과 후진도 없다고 규정한다. 다양한 인류문명은 각기 스스로 합리성을 가지고 존재한다.   내재적으로 합리적 요소를 갖춘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부락 사회가 낙후된 것이라고 하고, 생존방식이 원시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원시적 생활방식은 그 자체로 생존을 위한 내재적 합리성을 갖고 있다. 왜 이것을 후진적이라고 단정해야 하는가? 이것은 자본주의가 인류문명의 차이를 구별하며 만든, 일종의 주관적 판단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가치관을 배제한 채 인류의 문명을 관찰하려고 한다. 중요한 관찰의 포인트는, 기후의 주기변화에 따라 파생된 적응성 변화이다. 기후주기변화는 또 기후대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렇게 각각의 기후대는 직접적으로 지표의 자원에 영향을 끼친다. 인류사회는 일찍이 원시시대에 농업과 수렵문명의 시기로 접어들었고, 주로 지표의 자원에 의존해서 생존해왔다. 그래서, 기후의 주기변화와 특정 기후대에서의 지표지리자원의 변화가 인류문명의 차이를 가져왔다.

만일 우리가 세계관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면, 우리 향촌건설연구자들의 세계관은 ‘객관적인 역사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인류는 주로 식민화에 의해 결정된 이념에 몰입했고, 실은 서구중심주의가 서방의 이러한 변화 과정을 선진이자 보편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서구중심주의를 포기한다면, 동방의 문명이든 서방의 문명이든, 남방 혹은 북방의 국가이든 각양의 생존 방식이 본래부터 다른 문화로 나타났을 것이고, 당연히 문화다양성의 합리적 내적요인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 향촌건설을 통해서 사람과 자연간의 긴밀한 결합을 추진하고자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식민화 이래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이 세계의 새로운 생태화 세계관과 가치관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예전에 홍콩 링난대학의 라우킨치 LAU Kin Chi 劉健芝선생의 도움으로 국제비교연구를 했을 때, 내 강연에서 beyond cosmology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현재의 세계관을 뛰어 넘어야하고, 가치 판단을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당시에는 스스로도 매우 명료한  뜻을 가지고 한 말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나의 중요한 관점중 하나가 됐다.

다음은 근대 인류사회에서 우리가 형성한 연구 관점을 돌아본다.

과거 개발도상국의 많은 사람들은, 우리 중국인을 포함해서, 모든 것이, 제도의 문제라는 ‘제도결정론’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거시적 비교를 한 후에, 역사가 내포하는 세계관을 통해서, 제도문제를 연구해서 ‘제도파생론’을 만들어 냈다.

만일 우리가 앞서 언급한 첫번째 관점을 ‘인류문명차이 파생론’이라고 명명한다면, 그 내용은 자연환경조건의 변화에 따라서 문명의 형태가 결정되고 파생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 다음단계는 ‘제도파생론’인데, 일정한 자원의 구속조건하에서 상이한 인류문화가 형성되고, 거기에 맞는 각각의 제도가 파생됐다는 뜻이다. 

왜냐면, 각 지역에 부여된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식민화이후 수립된 대부분의 후발국가들은 모두 그들의 자원조건을 다시 변화시키는 것이 매우 어렵다. 이런 자원환경이 제한하는 조건하에서, 제도는 요소구조의 변화에서 파생된다. 혹은 요소구조변화가 이런 제도를 형성한다. 그리고 후속제도변화의 경로의존을 결정하게 된다. 제도 변화의 경로가 앞서의 제도 구조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말하자면, 우리는 제도결정론이 아니라, 제도파생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두번째 관점은 사실 하나의 이론 프레임을 형성하게 된다.

세번째 관점은 개발도상국가가 현재 직면한 큰 도전과제들이 실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제도적 비용이 외부에서 전가된 것이라는 점이다. 

한걸음 더나아가 이 이론과 월러스타인, 사미르 아민 그리고 아리기의 이론과 함께 결합해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세계가 사실은 핵심국가-반핵심반주변국가-주변국가의 순서대로 비용이 전가 되는 구조로 운용된다는 것이다.

왜 선진국은 선진국이 됐나? 왜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은 늘 수많은 재난에 직면해야 하는가? 사실은 전자의 비용이 후자에 전가됐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두번째 관점과 관계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어떤 제도변천도 모두 본래 제도의 프레임안에서 수익을 점유하고 비용은 다른 이에게 떠 넘기는 행위를 주도하는 이익집단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목적은 수익은 극대화하고 비용은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획이 성공한다면,  유도된 변천이라고 부를 수 있다. 실패한다면, 이번엔 타인에게 비용을 부담하라고 강요하고, 이를 강제적 제도변천으로 부를 수도 있다. 이런 관점으로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설명하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은 핵심국가 (지금은 미국이 가장 노른자이다)에서 반주변부 국가로 그리고 순차적으로 주변부 국가로 비용이 전가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주변부 국가마저 이 끊임없이 늘어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그 비용을 자연 환경에 전가하게 되며, 이는 생태환경의 파괴, 즉 기후변화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이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엄중한 도전이다. 이러한 글로벌라이제이션 시스템은 그러므로 파멸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다양성을 전제로한 생태문명으로 전환하지 못한다면, 이런 결과를 직면하는 것은, 자연법칙에 다름아니다.

우리의 네번째 관점은 개발도상국은 이런 정해진 틀과 운명에 빠져나갈 수 없고, 즉, 발전함정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주권을 외부에 빼앗겼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은 스스로 정권을 수립할 때, 대부분의 경우 식민지 종주국과 협상을 통해서 국가의 주권을 쟁취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일정한 거래를 하게 되는데, 주로 자원주권을 내줄 수 밖에 없다. 심지어는, 핵심 경제주권을 내주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금융과 재정에 대한 것이다. 이때 얻게 되는 정치주권은 명목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 지도자는 집권을 하면서 사회에 일정한 발전의 약속을 하게 되는데, 경제자원에 기반한 자주개발 수익을 얻을 수 없으므로, 그 약속도 지킬 방도가 없게 된다. 그래서, 개발 도상국은 이러한 주권외부성이 정한 운명의 족쇄안에서, 자기 국가의 발전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전체 20세기는 비록 짧았고, 미완의 혁명도 이미 과거사가 됐으나, 우리는 오늘날 대다수 개발도상국들이 발전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주요한 원인이 주권외부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반식민지 혁명은 완성되지 못했고, 주권외부성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섯번째 관점은 만일 비선진국들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도시화를 추진해서 향촌을 파괴한다면, 많은 사회적 리스크를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향촌의 전통 마을 사회는 외부성 문제를 내부화해서 층격을 완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논리는 사실 간단하다. 국내의 현재 모든 학문적 이론은 대부분 미국의 담론체계를 수용한 채 따라가면서, 다른 이론을 배타시한다. 만일, 우리가 농가의 경제적 합리성을 언급한다면, 모두 시카고대학의 시어도어 슐츠의 소농경제합리성 이론을 떠올릴 것이다. 당연하다. 그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시대적 한계를 지닌다. 소농경제는 자본주의 요구에 맞는 시장주체로서 부합해야 했고, 이 또한, 이념의 반영이다. 슐츠 이전에는 차야노프의 생존소농 이론을 모두 이야기했다. 농가에서는 그 가족 성원을 내칠 수 없기 때문에, 가정내에서 노동을 배분하는 것이 합리적이었고, 여기서 발생한 수익도 가정내에서 배분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래서 소농경제는 가정내의 경제적 합리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소농의 가정이 외부에서 기인한 리스크를 내부화해서 처리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마을 공동체가 같은 방식으로 외부 리스크를 내부화하여 다루는 메커니즘을 논하고자 한다. 마을에 모두 모여살기 때문에, 마을의 자산 경계는 지연에 의해서 형성된다. 그러므로 마을은 함부로 마을에 소속된 농가를 추방할 수 없다. 가정이 그 가족 성원을 내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마을공동체는 반드시 공동의 업무를 공동의 노력으로 완성시켜야 한다. 외부성을 내부화해서 처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중국 향진기업의 발전이 그러하다. 중국 향촌마을의 집체경제의 발전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것은 마을 공동체 조직의 내부화 메커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같은 이치에 따라, 전세계가 글로벌라이제이션 위기에 직면했을 때, 도시화 정도가 높은 개발도상국일수록 큰 리스크를 떠안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일부는 국가 도산에 처해서,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중국이나, 인도와 같이, 큰 농촌지역을 가진데다가, 농촌인구 비율이 높은 국가라면,  큰 위기에 직면했을 때, 상당부분, 향토사회가 위부 위기 비용을 내부화해서 떠안는 기능을 하면서 국가 전체가 위기를 넘기곤 한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다시 중국의 도농2원구조 제도를 평가해보면, 충분히 그 장점을 발견할 수있고, 개발도상국에게 있어서, 과도하고 급진적이며, 빠른 도시화가 강조돼서는 곤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향촌사회의 발전을 일정하게 유지할 때, 안정된 국가체제운영이 가능하다. 특히, 중국대륙과 같이 전면적인 글로벌라이제이션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국가는 오히려 향촌에 대한 국가의 투자를 강화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해진다.

이와 같은 다섯가지 관점이 우리들의 최근 10년간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문헌소스: 2019년 12월23일 Global University 그룹 원톄쥔 교수 방문 비디오 채록

https://mp.weixin.qq.com/s/3jyIticS8LempH2bAU726w

금, 2020/07/10-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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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만원씩 수령한 법사위 수석전문위원

2018년 7월 5일에 참여연대가 공개한 2011~2013년 국회 특수활동비 지출결의서 내역은 오늘날 국회가 가진 ‘전근대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수많은 언론들은 전직 국회의장이 얼마를 받았는지, 국회 내 상임위원장들이 얼마를 받았는지 다뤘다. 또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다른 상임위 소속 의원들과 달리 월 50만원 씩 수령했다는 사실도 비중 있게 보도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새로운 사실’이 제대로 보도되지 않은 경우다. 어떤 언론도 국회사무처 법사위 수석전문위원의 특수활동비 수령액이 매달 150만 원씩이었다는 것을 주목하지 않았다. ‘다른 상임위 소속 의원보다 권한이 세다’고 평가받는 법사위 위원의 수령액보다 3배 더 많다는 팩트가 있는데도 말이다. 이는 법사위 위원과 수석전문위원, 양자 간의 위상 혹은 권력 차이의 반영이거나 최소한 그 역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반영일 것이다.

전에 국회 상임위원장을 역임했던 한 의원은 필자에게 “‘뭐든 희망하시는 일을 말씀하시면, 힘써드리겠다’라는 수석전문위원의 말에 ‘이 사람들이 완전 자기들이 주인이고 우리(국회의원)는 그저 왔다 갔다 하는 객(客)으로 아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전문직 분야에 있는 한 지인은 자기들 협회에서 국회의원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힘을 가지고 있는 전문위원에게 로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국회 전문위원 스스로 강조한 전문위원은 정책 결정의 실질적인 주체다

국회 전문위원이 갖는 이렇게 센 힘의 원천은 그들의 ‘검토보고’ 권한에 있다.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면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발의된 법안을 심사하게 되는데, 국회법 상 전문위원의 검토를 반드시 거치게 돼 있다. 국회법 58조에 1항에 따르면 “위원회는 안건을 심사할 때 먼저 그 취지의 설명과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듣고 대체토론[안건 전체에 대한 문제점과 당부(當否)에 관한 일반적 토론을 말하며 제안자와의 질의·답변을 포함한다]과 축조심사 및 찬반토론을 거쳐 표결한다”라고 명기돼 있다.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 검토보고서의 지적 내용을 위원회 회의 과정의 발언과 통과법안의 수정 부분을 비교한 한 논문은 그 두 내용 간에 높은 인용· 일치율로 미루어 상임위 전문위원의 영향력이 지대하다고 논술하고 있다.1

한편 국회에서 일하는 입법관료 스스로 검토보고의 영향이 크다는 점을 알고 있다. 2010년 12월 상임위 입법조사관 12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조사대상의 90.8%가 법안 검토보고서가 중요한 참고자료로서 국회 상임위원회 심사과정에 영향을 끼친다고 답했다.【2

특히 한 국회 수석전문위원이 재직 당시에 쓴 논문은 아예 국회 전문위원의 역할이 지원 차원이 아니라 실질적 주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 제출된 총 44개 조항으로 이뤄진 한 법률안에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의 전문위원이 19개의 검토 조항을 보고하였고 결국 법안은 11개 조항을 수정하였다. 그런데 이 11개 수정안 모두 전문위원이 적성한 검토보고에서 주장한 그대로 수정되었다는 사실을 기술하면서 “전문위원은 소속 위원회 입법 활동의 단순한 지원 차원을 넘어 정책 결정의 실질적인 주체로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3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은폐되고, 견제 받지’ 않은 권력은 위험할 수 있다.

2017년 8월 22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는 국회사무처가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당시 국회사무처에서는 수석전문위원 2명이 성추행과 횡령 혐의로 면직 처리되기도 했으며 국회사무처 직원 간 음주폭행 사건도 발생하여 이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들끓었다.

 

최저임금법 개정 사례에서 드러난 검토보고의 한계

그렇다면 이토록 영향력이 큰 검토보고는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기로 한다. 최근 국회에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은 법안이 있다면 단연 ‘최저임금법 일부법률개정안’이 손꼽힌다. 이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법안 처리를 반대해왔다.

그런데 ‘최저임금법 일부법률개정안’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 내용을 살펴보면 단지 임금의 개념에 대해 언급한 것이 전부였다. 최저임금법이 개정된 뒤 생긴 사회적 갈등과 논란을 봤을 때, 진정한 의미의 ‘검토보고’라면 마땅히 이 법안이 사회적으로 마칠 파장까지 충분히 검토했어야 할 일이다.

한국 사회에는 단순히 입법관료의 검토보고에 의해 처리되어서는 안 되는 법률과 쟁점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보다 심층적으로 토론하고 논의하기 위하여 국민의 대표자로서 국회의원이 선출되는 것이다. 또한 이들 국회의원들의 활동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정당이 존재하고 그 정당 소속의 정책위원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법안 처리의 길목에 국회 입법관료는 일종의 게이트키핑(gatekeeping)의 역할을 한다. 국회사무처는 전문위원 임용자격에 관한 규칙에서 전문위원의 자격기준(국회에서 10년 이상 재직하고 2급 이상의 공무원이 돼 2년이 경과한 자로서 입법심사와 조사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자 등)을 정해놨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은 선출되지 않은, 그리고 전문가집단에서 선발되지 않은 ‘행정사무’의 역할을 갖고 있는 공무원일 뿐이다.

특히 전문위원의 업무상 전문성에는 의문부호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물론 전문성이란 ‘개인이 조직에 들어오기 전 그가 사회화 과정을 겪으면서 취득하는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의미하는 통상적인 의미로서의 ‘개인적 전문성’ 외에도 ‘조직에 들어와 업무를 수행하게 됨으로써 그 업무를 통하여 획득하게 되는 전문적 지식’을 뜻하는 ‘업무상 전문성’의 측면이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 국회 전문위원의 경우, ‘개인적 전문성’의 측면만이 아니라 ‘업무상 전문성’의 측면에서도 순환 보직 근무의 관행으로 인해 깊은 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실제 지금은 퇴직한 한 수석 전문위원은 불과 몇 년 사이에 각기 다른 세 곳 상임위원회의 수석전문위원을 맡았다.

 

관료들은 전문성 있다’, 왜곡된 신화

흔히 공무원들은 대단한 전문성을 지니는 존재로 이해된다. 적지 않은 언론매체들이 그러한 시각으로 기사를 쓰고 있으며, 심지어 진보 쪽에 있는 정당들의 관계자도 예를 들어, “(정치인들이) 전문성으로 무장한 공무원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 등의 논리를 계승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혹시 부분적으로나 특수한 상황에서 타당할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잘못된 ‘선입견’이다. 무엇보다 공무원들은 ‘전문성’을 기준으로 선발된 것이 아니라 단지 공무원시험을 통해 선발되었을 뿐이다. 더구나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대부분의 경우 2년을 단위로 여러 부서를 옮겨 다니며 순환 근무하게 된다. 결국 전문성을 축적할 기회가 근본적으로 차단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관료들은 전문성이 있다”는 시각은 우선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최소한 정보 접근성이 압도적으로 용이한) 공무원들의 객관 조건으로부터 비롯될 수 있다. 또 절차나 수속 등의 행정업무 분야에서 공무원들이 전문성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시각이 그런대로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밖의 관련 분야의 전문지식이나 분석력 등 순수한 의미의 ‘전문성’ 측면에서 관료집단은 근본적으로 결여되어 있거나 혹은 대단히 미흡할 수밖에 없다.

공무원들이 높은 전문성을 지니고 있다는 ‘잘못된’ 선입견과 시각은 우리 사회의 강고한 관료주의를 유지시켜주는 주요한 이데올로기로 작동되고 있다.

 

국민을 너무 힘들게 하는 국회

국회는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라는 꿈도 야무진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과연 그렇게 생각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국회의원들은 입만 열면 스스로의 특권을 줄이겠다고 매일 같이 다짐하지만, 그러나 실천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지칠 줄 모르는 정쟁과 내로남불, 외화내빈의 말잔치만 난무한다.

‘국민을 힘들게 하는 국회’라는 말이 훨씬 정확하고 설득력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본업을 수행하지 않고 방기하는 조직은 왜곡되고 부패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의 본업인 입법을 스스로 올곧이 수행하게 될 때, 국회는 시민의 진정한 대표로서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발전하는 출발선에 다시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국회 전문위원 제도의 개혁이 절실하다.

 

1】 장봉아, “국회상임위원회 공무원의 입법과정상 영향력 분석: 법안 심사 회의록과 검토보고서의 일치 여부에 대한 사례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4.

【2】 배용근, “국회 상임위원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의 영향요인과 발전방안”, 「의정논총」제6권 제1호, 2011

【3】 김춘엽, “논변 모형을 통해 본 법률 제정 과정에서의 전문위원 검토보고의 영향력에 관한 연구”, 「한국인사행정학보」제5권 제2호, 2006.

화, 2020/07/14-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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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 미국 역사상 가장 불행한 세대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에 항의하는 미국의 항의시위가 전혀 잦아들 기미가 안 보이고 있다. 그런데 시위 현장을 중계하는 뉴스들을 보고 있노라면 유독 청년들의 많은 참여가 눈에 들어온다. 그들이 시위의 주축이다.(“Across the country, young activists take different approaches in the name of justice for George Floyd,” CNN, June 3, 2020; “How the New York Protest Leaders Are Taking On the Establishment: They’re young, charismatic and drawing crowds of thousands around the city,” New York Times, June 11, 2020; “Young people turned out to protest. Now, will they vote?,” APNews, June 11, 2020).

청년층이 시위에 나섰다. 이제 이들이 투표장으로도 향할지를 묻는 에이피 기사

그렇다면 왜 미국의 청년들이 특히 분노하는가? 무엇이 그들을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하고 있는가? 어떤 이들은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코로나로 집구석에 박혀 있다가 좀이 쑤셔 하던 차에 조지 플로이드 사망을 핑계 삼아 그 혈기를 발산하러 밖으로 나왔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주 조금, 일말의 일리가 있을지도 모르다.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청년들은 재미를 보자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분노에 차서 길거리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들의 사정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게 이 시점에서 중요하다. 그것을 톺아보면 미국의 문제를 들여다보게 된다.(“What Students Are Saying About the George Floyd Protests,” New York Times, June 4, 2020; “‘Apathy is no longer a choice’: will the George Floyd protests energize young voters?” The Guardian, June 8, 2020; “Most political unrest has one big root cause: soaring inequality,” The Guardian, Jan. 24, 2020; Joseph E. Stiglitz, “Opinion: Why young people are angry about generational injustice,” MarketWatch, March 16, 2016).

청년들을 일컬어 소위 밀레니얼 세대라고 부른다. 1981년에서부터 1996년 사이에 태어난 청년들로 24세~39세에 이르는 사회의 중추세대다. 국가의 미래다. 이런 그들이 좌절하고 있다. 절망하고 있다. 그리고 분노를 터트리고 있다.

왜일까?

그들에게 미래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아메리칸드림이 사라져 버린 미국이라 그렇다. 왜 하필 우리 세대에? 그들의 입장에서 그런 말이 나올만하다. 평균적으로 대략 그들은 부모 밑에서 세상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다. 그리고 자신들의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라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고 자랐다. 그러나 막상 그들이 세상에 나와 사람 몫을 하려고 들 때, 당당하게 한 사람의 성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하려 할 때, 세상은 그들의 생각대로가, 듣던 대로가 아니었다. 미국이 가장 부유한 나라라는데 왜 나에게 번듯한 직장을 잡을 기회는 오지 않는가? 그것이 왜 낙타가 바늘귀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가? 왜 나는 부모가 결혼한 나이에 결혼을 하지도 못하는가? 왜 아이도 낳지 못하는가? 왜 나는 이렇게 비정규직으로 이곳저곳을 전전해야 하는가? 왜 나는 아무리 갚아도 끝이 없는 빚쟁이 인생을 계속해야 하며 빈털털이인가? 등등. 그러나 부모들은 말한다. 자신들은 청년시절에 비록 많이 배우지도 못했을지라도 일가를 이루고 사업을 이루고 돈을 모았는데 지금 네 꼴은 뭐냐고. 부끄러운 줄 알라고. 더 좀 열심히 노력하라고. 승부근성과 헝그리 정신이 결여된 나약한 인간이라고 혀를 쯧쯧 차댈 뿐이다.

젠장! 나도 할 만큼 노력한다. 그런데 안 되는 걸 어찌하는가? 취직을 해보려한들 안 되는 걸 어찌하는가? 기를 쓰고 돈을 모아보려 애써보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은 걸 어찌하란 말인가. 그러한 좌절 속에서도 미국 청년들은 왜 자신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대부분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고 마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왜 할아버지세대와 부모세대는 그렇게 가정도 일구고 그랬는데 왜 나는 그게 딴 세상의 이야기로만 느껴지는 것일까? 오리무중의 궁금함 속에서 눌리고 눌려왔던 좌절과 짜증이 코로나로 집안에 갇혀있으며 증폭되다가 플로이드로 터져버렸다. 게다가 직장조차, 알바조차도 코로나로 다 날아가 버렸다. 이판사판 밑바닥인데 잃을 게 뭐가 있나. 가만히 보니 내 처지가 가장 불쌍하다. 이렇게 불공평한 세상이 어디 있나? 왜 젊음이 축복이 되지 못하고 이렇게 지리멸렬한 것이 되었나. 왜 우리 또래의 청년들만 가장 불행한 것처럼 여겨지는가? 그걸 따지러 나가야겠다. 뭔가 변화를 부르짖어야 되겠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분노가 삭여지질 않는다. 이게 요즘 미국 청년들이 심적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The unluckiest generation in U.S. history,” Washington Post, June 6, 2020; “’Perfect storm’: Coronavirus lockdown, joblessness fuel longstanding grievances,” NBC News, June 6, 2020; “Why rage over George Floyd’s killing is more explosive this time,” San Francisco Chronicle, June 1, 2020; “’It was never just about Floyd’: Protests reflect anger over inequality, neglect,” Buffalo News, June 8, 2020).

 

운도 지지리 없는 저성장시대에 태어난 죄

미국의 불평등 연구자들은 밀레니얼세대가 미국 역사상 가장 불행한 세대라고 진단한다.(“The Unluckiest Generation in U.S. History,” Washington Post, June 6, 2020). 그게 사실이라면 청년 세대가 좌절하고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먼저 경제성장면에서 보면, 밀레니얼세대가 노동시장에 막 진입하는 때에 미국엔 굵직굵직한 안 좋은 일들이 터졌다. 911테러,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의 코로나19 사태다. 모두 경제에 치명타를 안기는 사건들이다. 그런 사태가 한 번 터지면 경제가 위축되고 일자리는 줄어들며 그 폐해는 오래 지속된다. 그래도 힘든 시기를 견디고 극복해서 일어설만하면 또 다른 타격이 온다.(Kevin Rinz, “Did Timing Matter? Life Cycle Differences in Effects of Exposure to the Great Recession,” Working Paper, Center for Economic Studies, US Census Bureau, Sept. 8, 2019). 그 과정을 겪는 동안 밀레니얼 세대의 경력은 이탈되었고, 재정은 파탄 났으며, 그들의 사회적 삶도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 코로나다. 그러니 코로나세대(C세대: 코로나이후에 태어난 세대를 말하지만, 코로나를 겪은 청년들도 포함하는 신조어)는 이젠 아예 “어디에고 비빌 언덕이 없다”(nowhere to turn)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Generation C Has Nowhere to Turn,” Atlantic, April 13, 2020).

18세에 노동력 시장에 나온다고 가정한 뒤, 그 후 15년 동안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세대별로 측정한 결과치를 보면 미국역사상 경제성장이 가장 안 좋은 시대에 태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 몫을 하기 위해 노동시장에 진입한 이후의 15년 동안 가장 안 좋은 경험을 했다는 것은 단지 그 사실로만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향후의 밀레니얼 세대의 전 생애 동안 경제적인 상처를 깊이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낮은 임금으로 시작한 직장은 그 만큼 이전 세대 보다 재산을 적게 모은다는 것을 말하고 그것은 자택의 소유에서부터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하는 모든 것들의 지연이나 포기를 의미한다. “삼포세대” 같은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이러니 특히 경제가 안 좋을 때 청년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는다.(“Millennials really are special, data show,” Washington Post, March 16, 2019; “Middle class Americans can no longer afford to get married due to huge debts as just 50 per cent now tie the knot,” DailyMail, March 10, 2020; “Affluent Americans Still Say ‘I Do.’ More in the Middle Class Don’t.,” Wall Street Journal, March 8, 2020). 반면 그 이전 세대인 베이비부머세대(1946년~1964년 출생: 현재 56세~74세)와 X세대(1956년~1980년 출생: 현재 40세~55세)에 이르는 선배세대는 밀레니얼 세대보다 호시절에 태어나 누릴 것을 그나마 어느 정도는 누릴 수 있었다고 봐야 한다.(“The Unluckiest Generation in U.S. History,” Washington Post, June 6, 2020).

세대별 1인당 GDP 성장상황. 각 세대의 노동시장진입 후 첫 15년 동안의 1인당 GDP성장률. 밀레니얼 세대는 가장 아래에 위치한다. <출처: 워싱턴포스트>

 

아메리칸드림의 소멸: 자수성가는 옛 말

1940년생과 1980년생의 비교를 한 연구가 있다. “당신의 부모와 같은 나이 대에 당신은 부모 보다 더 많이 벌었는가?”란 질문, 즉 자수성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 1940년생 미국인들은 92%가 그렇다고 답했다. 심지어 실직이나 이혼, 질병과 여타 금전적인 문제가 있었다 해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의 부모보다 더 많이 벌고 더 잘 살았다. 지금 80세 노인세대다. 그러나 1980년생 미국인 중에서 그렇다고 대답한 이는 50%만 차지한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아메리칸드림을 이루는 것은 이제는 거의 “동전던지기”(coin flip) 같다고 이야기 한다. 복불복이라는 이야기다. 즉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아메리칸 드림의 소멸을 의미한다.(“America Will Struggle After Coronavirus. These Charts Show Why,” New York Times, April 10, 2020; “Parents’s Jobs Increasingly Shape How Far Kids Get in Life,” Wall Street Journal, Sept. 3, 2018; Raj Chetty, et al., “The fading American dream: Trends in absolute income mobility since 1940,” Science 28, Vol. 356, Issue 6336, pp. 398-406. Apr 2017; “If Americans are better off than a decade ago, why doesn’t it feel that way?,” The Guardian, Nov. 5, 2019; “American Dream collapsing for young adults, study says, as odds plunge that children will earn more than their parents,” Washington Post, Dec. 8, 2016).

1940년생부터 1980년생까지의 자수성가 비교. 부모 세대보다 당신 대에서 동일한 연령대에 부모보다 더 많이 재산을 일구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1940년생은 92%가, 1980년생은 절반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불평등의 끝은 세습사회

이러니까 청년들에겐 미래가 안 보일 수밖에. 아메리칸드림은 개뿔. 아무리 노력을 해도 부모세대나 할아버지세대가 누렸던 것들을 자신들은 향유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실제로 겪어나가면서 청년들은 사회가 부조리하다는 것을 절감했을 것이 분명하다. 청년들은 그 거대한 부조리의 결과가 불평등이라는 것과 자신들이 그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체계의 피해자임을 간파하게 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국가나 나이든 사람들은 이런 구조적 부조리함을 시정할 생각일랑 없는 것으로 보이고 오히려 타박만 가할 뿐. 그런데 이 대목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모든 불평등의 끝은 세습사회의 도래라는 것이다.

극심한 불평등은 청년들을 진취적이기 보단 소극적으로 만든다. 지독한 복지부동과 안전지향 성향을 띄게 한다. 왜냐하면 아차 하고 자칫 실수를 범하는 순간 그나마 현재 손에 쥔 것마저도 홀랑 날릴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보일 이런 경향의 끝에는 결국 세습사회밖에 남을 게 없다. 청년들은 안전만을 지향하면서 동시에 매사에 다음 같은 사고를 할 공산이 크다. 노력이 뭐가 필요 있나? 실력이 뭐가 필요 있나? 부모가 고관대작이 아니고 재산 갖고 있지 않으면 난 개털인데. 이제 기댈 것은 부모의 배경과 돈밖에 없는데. 그런 잘 나고 부자인 부모를 두면 게임 끝. 별 볼일 없는 나는 인생 끝.(“When It’s This Easy at the Top, It’s Harder for Everyone Else,” New York Times, Feb. 28, 2020). 그런데 이런 자포자기와 자조는 불평등이 양산할 웬 못된 결과인 세습사회의 도래를 더욱 앞당길 뿐만 아니라 그것을 더욱 공고화한다.

최상층의 사람들에게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것이 나머지 사람들에겐 점점 더 어려운 것이 되어가고 있다. 미국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늘 상존했다. 그러나 지금은 계단식 체계(tiered system)가 요지부동의 카스트제(caste system)로 변질되고 있다. 신분제사회와 세습사회화 되고 있는 것이다. <출처: 뉴욕타임스>

어쨌든, 미국이 능력사회? 웃기는 소리다. 그렇다면 어쩌다 미국이 이렇게 변해 버렸나? 클린턴의 마누라가 대통령후보로 나왔고, 그 딸을 대통령 만들려 불철주야 돈 모으고 애쓰고 있는 것을 보라. 한 집안에서 돌아가며 대통령이 나오고, 나와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그런 나라가 되어버렸다. 미국이 어쩌다 대통령의 딸 이방카와 사위를 백악관의 고문으로 떡하니 앉히고 나랏일에 훈수를 두는 족벌주의(nepotism) 정치를 해도 아무 말도 안 나오는 그런 세습사회가 되어버렸나. 이방카를 비롯한 남매가 차기 대권을 감히 노리며 권력 암투를 벌이는, “트럼프왕조”(Trump Dynasty)라는 말이 회자되는 그런 거지같은 나라가 되었나?(“The Heir: Ivanka was always Trump’s favorite. But Don Jr. is emerging as his natural successor.” The Atlantic, Oct. 2019; “Of COURSE the Trumps are planning to be a political dynasty,” CNN, Sept. 9, 2019; “Inside Ivanka’s Dreamworld,” The Atlantic, April, 2019; “The Dynasty Ends With King Donald: There will be no President Ivanka. No President Jared. And certainly no President Donald Jr.,” Politico, Sept. 9, 2019).

트럼프왕조의 차기 상속자에 대한 권력 암투를 보도한 <애틀랜틱> 기사의 한 장면

문제는 이것이 단지 트럼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트럼프뿐만 아니라 돈과 권력이 많다고 재세하는 자들이, 즉 내 말로 “제국”들이 죄다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려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모든 제국들의 트렌드다. 자기 자식만큼은 너무나 특별하고 독특해서 자기가 가진 것을 자식들이 온전히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제국들의 욕망의 발로다. 하지만 그들이 속한 나라의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굴러가도록 이미 만들어져 있어서 그것이 가능하다.(물론 제국들이 시스템을 그렇게 만들었다). 하여 이제는 가만히만 있어도 저절로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일이 그런 식으로 술술 굴러간다. 그렇게 모든 것들이 자식들에게 전승되고 그러면 자식들은 아무런 노력없이, 그리고 아무런 자질이 없어도 승승장구한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런 귀결이다. 극심한 불평등이 활개를 치는 사회에서는 극히 당연한 결말이다. 불평등은 사람을 둘로 나눈다. 귀족과 노예로! 그리고 그 선은 절대로 넘어 갈 수 없다. 그 경계를 넘어 갈 수 없는 신분제 사회, 그게 바로 세습사회다. 부모의 것이 자식에게 그대로 대물림 되는 사회. 하여 있는 놈만 결혼하고 있는 놈만 집 사고, 있는 놈만 좋은 대학가고 있는 놈만 좋은 직장 갖고, 있는 놈만 부와 높은 소득 얻는다. 그것은 뒤집을 수 없다. 빌어먹을 무슨 놈의 나라가 이런 사회가 되었는가? 그러니 아메리칸드림은 없어진 거다. 아메리칸드림의 진수는 자수성가니까. “빽” 그런 것 없이 노력만 하면 뭔가를 성취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기울어진 운동장, 아니 기울어지다 못해 거의 90도의 수직 낙하된 운동장은 한 번 삐끗하면(주로 부모 잘 못 만나면) 도저히 헤어 나오지 못하는 그런 절망의 늪이 되어 버렸다. 한 번 이긴 자는 승자독식에 이어 계속해서 승자가 되는 연승의 게임. 반면, 그곳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이들은 서서히 익어가는 끓는 물 속 개구리처럼 그렇게 익어가고 나중엔 단말마의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Robert Frank and Philip Cook, The Winner-Take-All Society, 1996; Branko Milanovic, Global Inequality: A New Approach For the Age of Globalization, 2016).

이처럼 세습사회, 신분제사회는 한 번 고착되면 어지간해서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지하감옥과 같은 것이라 그 조짐이 보일 때 바로 척결해야 하는 게 답이다. 정녕 그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적이기에 그 싹이라도 보이면 바로 제거해야 마땅하다. 사소한 하나라도 우습게 알고 용인했다가는 큰코다치고 만다. 그러나 지금 미국 사회는 그 도를 넘겨버렸다. 무슨 짓을 자행해도 아무도 토를 다는 이 없는 서방에 위치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 그런 순응의 나라가 되어 버렸다. 법이고 나발이고, 오직 닥치고 돈과 권력이 최고인 세상. 그것들끼리 야합하고 서로가 서로를 뒷배를 봐주고 세세토록 해 먹는 빌어먹을 세상이 되어버렸다. 나머지는 시궁창과 같은 삶 속에서 헤어 나올 엄두도 감히 내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겉으론 그 잘나 빠진 능력주의, 개인주의와 세계 제 1의 국가 시민이라는 미명 아래 도끼자루 썩는지 모르고 돈을 숭배하며 살다 결국 저 짝이 나 버렸다. 계층의 상향이동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꽉 막혀 버린 세상. 그것이 바로 아메리칸드림이 사라진 세상이며, 청년들이 좌절하는 세상이며, 있는 자와 가진 자(제국)가 천하를 호령하며 그의 자손대대로 가진 것을 향유하게 하고 부모가 하던 짓거리를 자식 대에도 그대로 해대는 그런 나라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그러나 미국이 그런 나라가 되든 말든 지금 무슨 상관이랴. 내 코가 석자인데. 나는 이 칼럼을 연재하면서 의식적으로 한국 이야길 꺼내는 것을 가급적 피했다.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서다. 그러나 오늘은 좀 해야겠다.

신분제사회와 세습사회. 이게 미국만의 일일까? 우리나라는? 세습사회의 특징은 뭔가? 그것은 온갖 특권과 반칙의 난무이다. 기득권세력(제국)들끼리의 서로 봐주기. 품앗이. 작당. 상부상조. 그래서 세습사회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법치의 파탄이다. 법치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것을 말한다. 죄 지은 자는 법대로 신분고하, 재산과 권력의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죄 값을 물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그건 법치가 무너진 것이고 민주주의와 능력주의가 사라지고 신분에 의한 세습사회가 된 것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며칠 전 이재용의 구속영장기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각설하고, 이재용은 참 좋겠다. 소위 보수도, 진보도, 그 진영을 대표한다는 정권도 죄다 자기편을 들어줘서. 이전 정권, 현 정권 가리지 않고 이재용에게 친화적이어서. 고백컨대 난 솔직히 법에 대해 1도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정말 무식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집행유예로 중간에 풀어주는 것도 이상하고, 그렇게 풀려난 자를 수차례 대통령이 만나는 것도 이상하다. 증거가 확실히 잡힌 다른 건으로 다시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 자에게 재판부가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라고 권유하는 것도 이상하고, 수사심의위라는 것도 난생 처음 들어보았고, 공장바닥에 컴퓨터를 박아 두는 증거인멸을 했는데도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것도 정말 이상하다. 더더욱 이상한 것은 왜 이재용의 부친 이건희 회장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국가 기관이 아직도 확인하지 않는다는 게 정말 이상하다. 그것은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불법행위 여부 판단에 더 없이 중대한 사안이라고 생각되기에 그렇다. 전 정권에서 안 했다면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왜 정의와 공정의 기치를 내세운 문재인 정권에서는 하지 않는가?

삼성 앞에만 서면 왜 정권과 정치권과 사법부는 한 없이 작아지는가? 아니 왜 삼성의 이씨 일가 앞에서만 서면 그렇게 민망할 정도로 쪼그라지는가. 대한민국에 무슨 “신(新)이씨왕조”라도 있단 말인가? 이런 걸 용인하는 세습사회의 도래를 인정하겠다는 뜻인가? 만일 그렇다면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 사법부에 앉아 판단을 할 자격이 없다. 입법부에 앉아 법을 제정할 자격이 없다. 다들 물러나라. 왜? 세습사회는 근본적으로 법치를 부정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적인 법치의 파탄을 가져오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법치의 파탄을 방치하거나 가져온 자들이 어찌 법을 제정하고, 법에 의거해 판단을 내리고, 법에 의해 정치를 한다는 말인가? 실로 역겹다.

왕조를 넘어 절대로 넘어가지 않는 제국으로 우뚝 선 기득권세력들. 감시와 제재, 그리고 저항은커녕 그들을 방치하고 그러다 못해 물심양면으로 조력하는 사이 한국의 청년들은 미국의 청년들처럼 깊은 곳에서 나오는 신음을 토해내고 있다. 헬조선! 올 5월 현재 청년 체감실업률은 26%로 청년 4명 중 1명은 백수다. 실제는 더 심하다. 미국과 똑 같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력직 위주의 취업시장 재편으로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들은 피를 보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 코로나사태로 청년들은 또다시 직격탄을 맞았다. 오늘도 그들은 마스크를 끼고 알바 장소로 독서실로 향하고 있다. 누가 그들의 어깨를 활짝 펴줄 것인가? 그 관건은 세습사회의 싹수를 초장에 잘라버리는 것이다. 그러려면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부터 서릿발처럼 다시 세울 일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백약이 무효. 남을 것은 청년들의 분노와 신음 그리고 국가 미래의 부재다. 나아가, 그것 보다 청년들의 정신마저 썩어버릴까 더 걱정스럽다. 이들에게 법과 정의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고 지키라 할 것인가? 왜곡된 법과 정의 개념이야말로 그들을 진정으로 망하게 하는 것이다. 망조가 든 대한민국을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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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ynasty Ends With King Donald: There will be no President Ivanka. No President Jared. And certainly no President Donald Jr.,” Politico, Sept. 9, 2019.

 

김광기 경북대 교수의 연재 ‘인사이드 아메리카’는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목, 2020/07/16-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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