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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 소유라는 달콤한 유혹 앞에서 존재의 손을 들고 싶습니다. – 문현웅 변호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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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 소유라는 달콤한 유혹 앞에서 존재의 손을 들고 싶습니다. – 문현웅 변호사 인터뷰

admin | 수, 2020/02/12- 01:02

 

 

대전충청지부장 문현웅 변호사 인터뷰

소유라는 달콤한 유혹 앞에서 존재의 손을 들고 싶습니다.

 

 

인터뷰어: 심재섭 변호사 (출판소통팀 팀장)

 

대전 법원 맞은 편 건물에 자리 잡은 사무실로 찾아뵈었다. 서울의 여느 변호사 사무실과는 다른 널찍한 방에서, 청바지 차림의 변호사님께서 반가이 맞아주셨다.

 

안녕하세요. 대전충청지부는 처음 인사드립니다. 지부장님이셔서 아무래도 회원 숫자가 신경이 쓰이실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우리 지부는 사실 신규 회원이 많이 들어오는 지부는 아니에요. 그냥 꾸준히 몇 명씩은 가입하는 지부이지요. 민변으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던 분들이 이명박근혜 정부 시절을 겪으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변호사로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시고 가입하신 분들이 몇 분 계세요. 대학 때 잠깐 운동 경력이 있으신 분도 있고, 또 변호사로서 어떤 활동을 목표로 하셨던 분들도 아니셨는데요. 그렇게 나이와 경력이 좀 되시는 회원들이 가입을 했고요.

젊은 신입 회원 분들도 꾸준히 가입하고 계세요. 많이는 아니고 꾸준히요. 작년에 후배님들 몇 명과 일주일에 한 번씩 시간 되는 대로 점심을 하자고 했는데, 평균 적으로 5, 6분 정도, 많으면 7, 8분 정도가 모였어요. 회무를 이야기하는 모임이 아니라, 밥 같이 먹으면서 수다 떨자 하는 것이 목표였어요. 그렇게 어울리고 친해지면서, 나중에 일도 같이 잘 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매주 모이는 숫자가 그 정도 모임라면, 상당히 긍정적인 것이 아닌지요. 대전 충청 지부가 관할하는 지역이 원체 넓기도 하지 않습니까.

광주지부, 대구지부 같이 숫자도 많고 결속력이 강해 보이는 지부들을 생각하면, 우리 지부도 뭔가를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여러 지역에 있는 회원님께서 우리 지부에서 이렇게 열심히 활동해 주시는 것을 들여다보면 이 정도 유지하는 것도 훌륭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 이전에 우리 지부 사무처장을 하신 선배님이 83학번이세요. 선배님들 연배가 젊다고 하긴 좀 어려운 거죠. 우리 후배들이 모임에서 적극적으로 요청을 드리면 흔쾌히 참석하고 도와주시지만, 우리가 먼저 선배님께 기대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늘 보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과는 별도로, 어서 우리 후배 그룹들이 일머리를 키우고 활동력을 늘려서 이 모임을 끌고 가야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 역할은 그 징검다리가 충실히 되는 거지요.

 

지부에서 후배 회원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특별히 있을까요.

지금 우리 지부에서 떠오르는 분이 두어 분 정도 계세요. 시민사회단체와 긴밀하게 소통하고 연대하는 분이요. 저희가 무언가를 알려 주었다기 보다는, 모임을 통해서 얻게 된 약간의 기회를 잘 활용한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라고 이름을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로스쿨에 있을 때 우리 사무실에서 연수를 하신 분이세요. 로스쿨에 재학 중이셨을 때부터 우리 민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시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제가 제안을 했어요. 내 일상을 같이 해 보면서, 민변 변호사가 어떤 것인지 날 것 그대로 느껴보자고요. 법정에도 같이 들어가고, 퇴근 후 시민사회단체 회의에 갈 때도, 활동가분들과 술 한잔 하는 자리에도 함께 했지요. 그렇게 모든 일과를 함께 했습니다. 이후 우리 모임에 가입을 했고, 그간 소식을 구체적으로 듣지 못하다가, 최근에 소식을 들었더니, 우리 모임과 지역 시민사회 단체의 주축으로서 열심히 역할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때 활동가들과 밥 한 번씩 같이 먹고, 회의에도 참석했던 그 경험을 꾸준히 스스로 확장시켜 나가신 거에요. 물론 워낙 훌륭하신 분이어서 그 기회가 없었더라도 스스로 잘 찾아서 나가셨을 것 같긴 합니다.

 

일과를 공유한다는 것이 인상 깊습니다. 저희 사무실에 누가 연수를 오셔서, 아니 친구 하나라도 제 하루를 다 본다면 민망하고 부끄러울 것 같아요.

에이, 누구라도, 저 역시 제 일과를 다 공유한다는 것은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죠. 그런데 우리 모임에 관심이 있는 후배에게, 그런 마음이라면 꾸밈없는 그대로 지역 민변 변호사를 경험하게 해드리고 싶었던 거예요. 지역 활동가들과 술을 먹든 밥을 먹든 돈은 우리가 다 내는 거고, 어느 달은 수임이 잘 될 수도 있고, 답답할 정도로 안 될 때도 있고요. 소송구조나 민변 공익 사건을 하기도 하는데 좋은 사건도 있고, 수임하기 싫은 사건도 있고 그렇지요. 민변 변호사라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으니, 객관적으로 판단해 보시라, 민변 지부의 변호사로서 살 수 있는지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라는 거였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지부에서의 활동은 본부와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아요. 본부라면 열심히 하면 기사화되기도 하고, 명성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민변의 활동이 그렇게 자신의 커리어가 될 수가 있을 텐데, 여기에 그런 것은 없어요. 그렇지만 활동하다 보면 나름대로 민변의 역할이 있지요.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을 로스쿨 재학 중일 때 미리 알게 되는 것은 장래 변호사가 되는 데에 있어서, 그리고 민변 활동을 결심하는 데에 있어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말씀 중에 소송구조를 하신다는 점이 특히 귀에 들어옵니다. 변호사님 이런 저런 글을 보면 국선변호에 대한 말씀도 있으신 것으로 압니다. 변호사님께서 지금 15년 이상 변호사 생활을 하고 계시는데, 여전히 소송구조나 국선을 하고 계시는지요.

예,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왜 하고 있는지 물어보면, 할 말이 많지만 결론적으로 변호사라면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사실 소송구조가 힘든 것은 사실이에요. 오죽하면 법원에서 변호사를 붙이라고 명령을 할까요. 법원이 보기에 스스로 정리하는 것이 쉽고 별 어려움이 없다고 판단하면 소송구조를 내주지 않는 것 같아요. 당사자가 소송 진행하는 것도 거칠고, 법원이 소송지휘하기가 힘들 때 주로 소송구조를 붙여주지요. 소송 자체가 보람이 있거나 하는 경우는 솔직히 거의 없어요. 국선도 마찬가지죠. 대부분의 경우에 소위 뻔한 상황들에서 부인하는 경우, 아니면 구속을 마음먹은 경우에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선을 붙여주는 것 아니겠어요. 이런 부분이 소송구조, 국선 변호에 대해 가지는 한 가지 생각인 것은 맞아요.

그래도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기고 말고를 떠나서 변호사가 꼭 옆에 있어줘야 하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합니다. 별론인데, 보수도 나쁘지 않아요. 사선에 비해서 보수가 좀 넉넉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보수를 잘 확인하지 않고 일을 하잖아요. 그래서 체크를 안 하고 있다가 몇 달이 지나서 한꺼번에 보수가 입금되면, 또 희한한게 그런 보수는 형편이 어려울 때 들어고고 하니까, 재정적인 측면에서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됩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은 변호사에 대한 존중에 관한 거예요, 사회 각계 여러 부문에서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예전에 비해서 권위라는 것이 해체되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저 초임 때만 해도 변호사 그 자체가 가지는 권위가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소송구조 의뢰인이라든가 국선 피고인이 변호사를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때 이제 내가 그만 둬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변호사로서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버티는 겁니다. 말씀드리다보니 생각이 나네요. 2년 차에 국선을 해드렸던 분이 계신데, 공소사실 2개 중 1개를 무죄를 받았습니다. 2심에선 사선변호사를 선임하신 걸 보면 돈이 없으신 분이 아니었는데도 저를 참 힘들게 하신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뒤로 1년에 2번, 추석하고 설날 명절마다 꾸준히, 지금까지 15년이 넘게 과일을 선물로 가지고 오시면서 인사를 하세요. 10년 정도 되었을 때 제가 이제 그만 하시라고 말씀을 드렸는데도 여전히 계속 인사를 와주십니다. 제가 그분에게 친절하게 했다거나, 저 스스로 보람이 있었다고 평가할 것까진 아니었어요. 너무 힘들게 하셨거든요. 그래도 정말 열심히는 했습니다. 변호사가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해준다는 사실 자체로, 그게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힘이 되는 경험이라고 느꼈습니다. 100명 중 99명이 나를 힘들게 하고 국선, 소송구조 변호사를 무시한다고 해도 그 한 분 때문에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후배 변호사님들에게도 소송구조와 국선변호를 권하시나요.

저는 후배들에게 소송구조와 국선변호를 하라고 권하죠. 특히 형사사건은 무작정 한다고 변호사 실력이 느는 것이 아니라, 무죄를 다투는 사건을 다뤄봐야 실력이 느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를 도와준다고 하는 생각 이전에,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열심히 하시라고 하지요. 실력이 확실히 늡니다. 저도 초기에는 기록을 보는데 어느 정도 절대적인 시간을 들여야 했고,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 맘이 답답하고 그랬습니다. 그게 익숙해지는 기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훈련이 안 되면 정말 힘을 발휘해서 성과를 내야 할 사건에서 위축되고 힘들어지고 하는 거니까요.

 

변호사님 SNS 보면, 개업변호사로서 생계를 열심히 꾸려나간다는 의미의 겸손한 소개글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대전에서 개업변호사로서 활동하실 생각을 하셨는지요.

연수원 생활 대부분을 천주교 인권위원회 활동으로 보냈습니다. 2년을 열심히 생활하다가 연수원을 수료할 무렵이 되자, 뭘 해야 할지 구체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지요. 당시 고민이 있었죠. 당시 천주교 인권위원회에 계셨던 다른 활동가 분들하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런 시민단체 내지 활동가 단체에서도 상근으로 변호사를 채용하는 것에 대한 의견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상근변호사를 채용할 여력이 있었던 것은 공감이었습니다. 제가 연수원에서 변호사 전문 연수를 공감에서 했어요. 정말 좋은 곳이라 지원을 해볼까 했는데, 우리 동기였던 황필규 변호사님, 필규 형이 저한테 이야기를 했죠. 야, 거기 지원하면 안 돼, 나도 지원할거야 하고 말이지요. 어차피 1명 뽑는데 둘이 같이 경쟁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서 또 변호사 역할을 하면서 사회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법무법인 덕수를 마음에 두었습니다. 변호사 시보를 덕수에서 하기도 했고요. 시보생활을 할 때 제 방이 거기 있었습니다. 물론 창문은 없었지요. 그때 점심식사를 최병모 변호사님을 비롯해서 여러 선배님들과 같이 하곤 했죠. 이런 이야기가 있었어요. 식사할 때에 선배 변호사님들 질문에 답을 잘 하면 입사가 가능하다고요. 그런데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저의 수입도 그렇고 월급 주는 회사도 그렇고 돈이었습니다. 어차피 급여를 받으며 사회활동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면, 맘 편하게 내가 벌어서 내 시간 쓰고 후원도 하면서 참여하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개업을 결심하게 되었고, 개업을 할 거라면 제가 초중고를 보낸, 그리고 처갓집이 있는 대전에서 개업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개업 직후부터 민변에 가입하신 걸로 압니다. 당시 민변을 통해서 수임한 사건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요.

사실 개업하고 1, 2년 동안에는 민변을 통해서 수임하게 된 사건도 별로 없었어요. 참여정부 때라서 그런지, 국보법 사건도 별로 없었습니다. 민변을 통해서 처음 접한 사건은 가입하고 3년 정도 되었을 때로 기억합니다. 충남도청에 불이 난 사건, 그러니까 FTA반대 시위 중에 방화로 번진 사건의 형사 대응을 민변 지부 회원들이 나눠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 민변 활동이라고 하면… 선배님들, 우리 간사님들하고 술을 많이 먹고,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변호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민변 변호사로서 어떤 지향을 가져야 하나 하는 주제로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작게는 수임료를 제대로 신고하고 있느냐 하는 주제도 있었어요. 이거 누락을 하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선배님께서 민변 변호사가 당연히 제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라고 정리를 해 주셔서 그렇게 마음을 다집기도 했고요. 변호사로서 여려 기본적인 것부터 생활을 잡아 나갔지요.

 

개업 후에 수임은 잘되셨나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2005년에 개업을 했는데 3년차까지는 힘들었던 것 같아요. 힘들 때, 사건도 없고 일도 없는데 방에 있지 말로 밖에 나가라, 하는 말을 누가 했어요. 어느 날은 괴로워서 구두 신고 차 몰고 속리산을 갔어요. 차로 한시간 반 정도 걸리거든요. 혼자서 주변 산책하면서 지금은 담배를 끊었지만, 저쪽에 아름드리나무가 큰 게 있었는데, 그 아래서 담배도 한 대 피우고, 그렇게 3년 고생했어요.

수임 자체가 안 되는 고민도 있었지만, 취업을 할 걸 뭐 이런 저런 선택에 대한 후회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죠, 어쩌겠어요. 버텨야지…

 

그때도 어려웠다면, 지금 신규 개업하는 후배들이 어렵다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에 우리 지부 후배님들과 유사한 주제의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사실 우리 누구나 금전적인 부분에 대한 걱정을 덜 하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요. 그런데 그렇게 잘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매번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면 부러운 존재들이 있어요. 첫째가 전관 변호사, 둘째가 영업력이 참 좋아서 개별적인 수임이 별도로 없이도 기관, 회사들로부터 지속적인 사건 제공이 되는 변호사들이지요. 가만 생각을 해보니, 제가 전관 변호사는 될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영업력을 키우고 싶은 맘도 있었지만, 그러니까 모임이나 골프나 이런 방법들로 영업을 하겠다는 삶을 선택하지는 않았고요. 이런 사실을 인정하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되지도 못할 거면서 왜 부러워하고 비교를 하느냐, 하는 결론에 이르더라고요. 우리가 부러워하고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렇게 될 수 있으면 부러워하자, 그런데 이미 그 길을 걷지 않기로 어떤 의미에서 결단을 했으면 더 이상 그런 쪽에 마음을 쓸 필요가 있느냐 하는 결론이요..

저 중학교 졸업할 때 즈음 1년 선배가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을 권해줬어요. 당시는 안 읽고 나중에 읽었겠지요. 우리는 소유냐 존재냐 하는 이 갈림길에서 늘 고민하는 것 같아요. 소유쪽의 유혹이 굉장히 강렬하죠. 돈도 벌고 싶고 명예도 얻고 싶고, 거기에 더해서 권력도 좀 가지면 더 좋고… 이렇게 소유쪽에 매력을 많이 느끼는데, 그래도 학창시절에는 당연히 소유보다 존재에 손을 들었어요.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하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지내오다가 변호사 개업하고 3년 동안 힘들다고 잠시 그 생각을 잊게 된 거에요. 애도 크고 돈은 벌어야 되고 그러면서요.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내가 변호사로서, 특히 민변 변호사로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되새겨보면, 다시 그때 그 질문을 마주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소유라는 쪽에 방점을 찍고 욕심을 부린다고 해서, 반드시 그게 오는 건 아니에요. 우리는 욕심을 부리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절대 그렇지는 않지요. 전 신이 계시다고 하면, 사람들마다 똑같은 양의 복을 주었다고 생각을 해요. 어떤 사람에게는 돈 복을 더 많이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자녀 복을 주고, 처복을 주고, 동료 복을 주고, 이렇게요. 이 사람에게는 인간관계의 복을 주었으니 돈 복은 좀 없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가진 것을 좀 더 소중히 하면 복이 새끼를 치고 불어나는데,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자꾸 욕심내면 내가 가진 복도 달아난다고 느껴요. 결국 굳이 내게 주어지지 않은 것을 좇을 필요는 없다.

그런데 늘 유혹적이니까, 소유라는 것이 너무 달콤한 유혹이니까 쉽지가 않죠.

 

대전 충청지부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와의 관계는 어떤가요. 시민단체와 연을 이어나간다는 것이 변호사 업무를 하는 데에 지장이 될 정도로 시간 할애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입할 때부터 이미 선배님들을 통해서 우리 지부와 관계를 맺은 단체들이 있고, 또 이슈가 생길 때마다 알음알음으로 연을 맺고 사업을 같이 하면서 저변을 확장해 나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힘들고 바쁘고 한 것 확실해요.

제가 대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까지 했다가 좀 쉬었습니다. 올해 공동의장 선거 진행 중이고 제가 출마는 했는데,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제 경험상, 시민단체 활동을 열심히 할 때, 그러니까 쉬기 전까지는 정말 바빴어요. 쉴 필요가 있더라고요. 일부러 쉬었다고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네요.

시민단체 이야기를 해 보자면, 대전 참여연대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움직이는데, 전체적으로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듯한 느낌도 있었어요. 일을 하다보면 중앙에서의 이슈를 가지고 지역에서도 동조를 해야 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죠. 그런데 이런 것들을 개별 지역에서 다시 논의하고 우리는 어떻게 하겠다, 이렇게 소통이 되어야 하는데, 중앙이 일방적으로 하달되고 지역은 단지 실행에 그치는, 그런 역할을 하게 될 때 참 속상했어요. 예를 들면 소녀상 건립에 관한 이슈가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설치를 하더라도 각 단위 별로 다양한 의견을 내어 논의를 하고 진행했으면 하는데, 이건 하기로 한 거야, 너희 단위에서 참여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라는 식으로 일률적으로 일이 처리되는 면이 있어서 회의를 느낀 적도 있습니다. 민주주의, 지방 분권을 이야기 하는데, 조금 늦더라도 다양하게 의견을 교환해 볼 필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겨레 21에 어느 전문가가 기고를 하기도 했어요. 전국적으로 동상을 세우는 것이 정말 적절한 방식이냐 하는 이야기였지요. 시민단체일수록 다른 생각이 필요한데, 중앙의 이슈를 그대로 가져오는 방식으로는…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 외에 여러 사정이 있어서 쉬었어요. 5년 정도 쉰 것 같네요.

좀 쉬면서 밖에서 보니까 보이더라고요. 나의 문제는 뭔지, 우리 단체의 문제는 뭔지, 이걸 어떻게 풀어갈지, 정말 풀어갈 수 있는 문제인지…

 

6년의 사무처장직을 수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땠나요.

사무처장을 맡으면서 여러 생각이 있었습니다. 원래 대전충청 원래 사무처장 임기는 3년이었는데, 3년은 너무 길다는 의견이 있어서 2년으로 단축을 하자, 그리고 필요하면 2년을 연임하도록 하자라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사실상 2년을 하고 나서는 당연히 2년을 더 하는 것으로 운용되었어요. 예전 같으면 3년이니 1년만 더 한다는 분위기였지요. 제가 2년으로 감축되고 사무처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연임까지 4년을 마치고 나니, 20주년 기념행사가 예정되어 있더라고요. 마땅히 그 준비를 맡아 줄 분을 구하지 못해서 2년을 더 하게 되었다. 여러 고민이 있었습니다. 나이든 연배든 제 상황이라면 후배들이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가교 역할을 해 줘야 되잖아요. 바로 후배들한테 직무를 이관하기도 애매한 상황에서 더 하게 되었어요.

저는 6년 생활이 나름대로 즐거웠어요. 사무차장으로서 많은 집회에서 발언을 요청하는 일들이 많았고, 다 수용할 수는 없었겠지만 법률가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모임에는 많이 참석을 했습니다.


 

전에도 여쭙고 싶었는데 책장에 의학서적이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개업하고 초창기에 의료 소송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의사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저 책들이 기본서적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구입을 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열심히 했고 승소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의료소송이 들어오지는 않더라고요. (웃음) 그래도 재밌었습니다. 공부를 해야 서면을 쓰니까, 재밌게 했습니다. 신장의학, 내과학, 당뇨병 관련 서적들을 다 사서 봤습니다. 주변에서 다들 이야기했어요,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그래도 어떻게든 공부를 하면 달아나진 않으니까요.

 

말씀을 듣다 보니, 변호사님께서는 정말 직접 송무를 계속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아, 좀 지치긴 하는데…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요즘엔 판사님들이 조심하는 면이 있지만, 법관평가도 없는 옛날에는 정말 속상하게 하는 판사들이 많았어요.

떠오르는 형사사건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진실은 모르겠어요. 그런데 형사사건은 누구도 진실을 모르는 거잖아요. 증인이 정말 많아서 하나하나 신문을 했습니다. 검찰 증인인데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증언이 나올 때마다 재판장이 개입해서 완전히 뒤집어 놓는 겁니다. 주심판사가 다시 물어봐서 또 우리에게 유리한 답이 나오면 다시 재판장이 개입해서 뒤집고. 이게 반복되는 거예요. 너무 속이 상해서 최후 변론을 좀 강하게 준비했습니다. 출근하기 전에 아내에게 보여줬어요. 나 이렇게 읽을 거라고. 아내가 변호가 그만 하려고 하느냐고 하더라고요. (웃음) 할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최후진술 준비해 간 원고를 법정에서 30분 동안 읽었어요. 방청석에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고, 선고일도 아니었는데 재판장이 바로 우리 피고인을 법정구속 시키더라고요.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정말 그 정도로 이상한 재판 진행도 많았죠. 어떤 사건은 증거가 없는 사건에 대해 우리가 끝까지 무죄를 다투었는데, 법관이 검찰에 입증 촉구를 1달에 1번씩 1년 동안 하더니, 하고 결국 유죄 내리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힘든 일이 많았는데도요, 열심히 해서 무죄가 나온다거나 하면 이게 또 마약같아요. 그 기분에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책을 보고, 글을 쓰시고 하는 것을 좋아하신다고 느껴집니다.

책을 보는 것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아요. 사실 소설책을 좋아합니다. 머리 식히는 데에는 소설책만한 것이 없으니까요. 작년에는 술 끊고 신앙 서적을 주로 보았습니다.

기고도, 여러 인연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쓰게 되었습니다. 강연하면서, 혹은 소송을 진행하면서 어떤 주제에 관여하고 있으면, 신기하게 관련 기고 요청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런데 좋다고 평을 받는 글들은 연구하고 공부하고 쓴 글이 아니라, 그냥 제 삶을 돌이켜 보면서 제 시각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것들이었습니다. 최근에 술 끊었다는 내용으로 쓴 글을 우리 논설 실장님이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문현웅의 공정사회라고 타이틀이 붙어있으니까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어야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문현웅 변호사님이 서울신문에 기고하신 글 몇 가지. 더 많은 글은 서울신문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현웅의 공정사회] 바리사이의 기도

[문현웅의 공정사회] 사라진 젠더

[문현웅의 공정사회] 법정 패션


 

책을 보는 절대적인 시간은 어떻게 확보를 하시는지요.

저희 집에 텔레비전이 없습니다. 결혼하고 샀다가 몇 년 안 되어서 없앴어요. 그러니까 집에 가면 할 게 없습니다. 당연히 책을 읽게 되죠. 쉬면서.

사실 저 때문에 텔레비전을 없앴어요. 퇴근하면 지치고 힘드니까 누워서 리모콘 들고 텔리비전만 보는 거예요. 아내, 아이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거의 없어졌고, 어느 날 문득 이런 상황이 정말 싫더라고요. 텔레비전을 없애니까 일단 대화를 많이 하게 되고, 아이들과 몸으로도 놀아주게 되고, 산책도 하고. 애들 어릴 때는 뱀주사위 놀이판이 엄청 큰 게 있어서 그걸 장만하고 같이 게임을 했어요. 최근에는 가족들과 윷놀이를 많이 해요. 심변도 고민 중이라면, 과감하게 없애는 쪽으로 결단하는 걸 추천합니다.

변호사님의 청바지 패션에 대해서도 궁금합니.

아유, 청바지 원래 안 입었었죠. 또 저 대학교 때는 청바지 입는 것이 미 제국주의와 연결되어서 일부러 기피하던 세대였지요. 그런데 옷이 많지 않은 사람은 청바지가 코디하기 참 좋아요. 사실 머리 기르고 청바지 입기 시작한 때는 박근혜 당선 즈음이에요. 전 2012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정말, 심각하게 괴롭고 우울했어요. 2012년도 대선 기간을 나름 열심히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당시 민주당 정치인의 행태를 직간접적으로 느끼건대, 이 선거에 완전히 몰입한다는 것이 아니었거든요. 당과 후보가 따로 놀았다는 표현이 맞았어요. 그렇게 지고 나니까 분노와 화가 너무 많아졌습니다. 술만 먹으면 다른 사람들 욕하고 그랬어요. 그때 술을 끊었고, 스스로 새로운 기분을 얻고 싶었습니다. 마침 한석규 배우 머리 기른 것이 보기 좋아서 나도 길러봐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당시 일도 하기 싫어서 사건 수임도 좀 줄였더니 정장 입을 일이 많이 없어서 청바지 차림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것이 있어요. 그때 제가 청바지를 입고 다닐 때 선배 변호사님들 몇 분이 변호사가 복장이 왜이래 하면서 핀잔을 주셨는데, 지금은 다들 저처럼 편하게 입고 다니세요.

 

저도 개업하면서 복장, 권위 등 외형적인 모습에 대한 고민이 좀 있었습니다.

그런 고민을 할 필요도 있다고 봐요. 어떻게 보면 단계적으로 거치는 과정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는, 어제 참여자치시민연대 회의에서 한 말이기도 합니다만, 우리가 당위적인 강박에서 좀 벗어나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난 변호사니까 이래야 돼, 민변이니까 이래야 돼 하는 당위를 좀 탈피하고 자연스럽고 자발적으로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옷도 편하게 입고요.

민변 선배님들 중에서는 나이는 지긋하신데도, 불필요한 당위나 강박이 전혀 없으신 분들도 많이 있는데, 정말 존경스럽죠.

‘뒤로 넘긴 장발’은 문현웅 변호사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민변이 변호사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예전에는 후배든 누구에게든 민변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전해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다른 누구에게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민변이 가지는 의미를 자문하곤 합니다. 오늘 인터뷰를 오신다고 하는 생각에, 아침에 샤워하면서 민변을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나에게 민변이 뭔가 생각하는데 영화라는 답이 떠오르더라고요.

우리 어릴 적 굉장히 감동하고 나도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 하게 되는 영화들이 있잖아요. 저에게 민변은 그런 영화입니다. 민변의 도도한 역사와 활동을 보면서, 민변 회원들 개개인의 삶을 통해서 감동을 받고, 내 모습을 점검하고, 그런 계기가 됩니다.

아까 나온 이야기지만, 소유냐 존재냐 하는 것은 모든 인생을 걸쳐 떨칠 수 없는 고민인 것 같아요. 저 스스로 소유 쪽에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잘못되었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런 고민을 가지면서 한편의 영화 같은 민변을 보면, 내가 존재 쪽에 손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적어도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단초는 됩니다. 10번 정도 소유와 존재가 싸운다고 하면 최소한 한 번, 두 번 정도는 존재 쪽에 손을 들어줄 수 있는 그런 내가 되고 싶다고 희망하는데, 그런 결정을 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민변입니다.

오늘 아침 샤워하다 생각이 났어요.

 

열심히 치열하게 살고 계시면서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과장되지 않은 편안한 매력의 문변호사님을 뵙고 오는 기차에서 생각이 많아졌다. 가까이에 본받을 수 있는 선배이자 동료로서 문변호사님의 인터뷰가 잘 전달되기만을 바란다.

The post [회원 인터뷰] 소유라는 달콤한 유혹 앞에서 존재의 손을 들고 싶습니다. – 문현웅 변호사 인터뷰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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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위원회 최근 활동 소식

– 장경욱 변호사

1. 제8회 산악회장배 6.15체육대회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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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위원회는 지난 6월 6일 덕성여대에서 개최된 제8회 6.15 산악회장배 6.15체육대회에 참가했습니다. 6.15공동선언을 기념하기 위해 2011년부터 매년 열린 체육대회에 우리 위원회는 참가에 의의를 두고 꾸준히 참가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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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판문점 선언과 6.12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발표된 중대한 전환적 국면이 열린 올해 참가는 그 의미가 더욱 남달랐습니다. 6.15공동선언 18주년 기념에 더하여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다짐하는 뜻깊은 행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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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식 축사 중인 채희준 통일위원장

이날 체육대회 개막식 축사에서 채희준 통일위원장은 4.27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기 위하여 올해 12월 1일 국가보안법 제정일에 반드시 국가보안법 장례식을 치르자며 국가보안법폐지 투쟁을 호소하였습니다.

이번 6.15체육대회에 참가한 단체는 우리 위원회를 비롯하여 통일뉴스, 범민련 남측본부,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민중민주당, 평화협정체결운동본부, 6.15합창단까지 모두 7개 단체였습니다. 이날 덕성여대 운동장에 모인 각 단체 회원들은 축구, 피구, 단체줄넘기, 이어달리기 종목에서 선의의 경쟁을 벌렸습니다. 체육대회를 위해 각 단체에서 정성들여 준비한 술과 음식을 함께 들며 서로 친분을 두터이 하였습니다. 체육대회를 마친 후에는 흥겨운 대화와 노래가 가득한 뒷풀이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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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위원회에서는 채희준 위원장을 비롯한 참가 위원들(심재환, 양승봉, 장경욱 위원) 만큼이나 가족들의 참가(채 위원장의 가족 3명과 장 위원의 가족 2명)가 더 많았습니다. 또한 우리 위원회 위원들로부터 국가보안법사건 변론을 받은 탈북자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들이 대거 참가하였습니다. 유우성씨 가족이 전원 참가한 것을 비롯하여 홍강철씨, 허성일씨 등이 참가하여 우리 위원회 소속으로 각 종목경기와 응원에 열성을 다했습니다.

이날 체육대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채 위원장의 딸(초등학교 4학년)과 장 위원의 아들 장(중학교 1학년)이 선수로 참여한 단체줄넘기에서 전체 2등을 차지한 것이었습니다. 성인 참가자들(채 위원장, 양승봉, 장경욱 위원 부부)과 함께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위한 한 마음, 한 뜻으로 22번 단체줄넘기를 성공하였습니다. 어린 미래세대의 거친 호흡을 들었던 단체줄넘기의 기억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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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재미교포 초청강연회

지난 6월 8일 우리 위원회는 민변 대회의실에서 재미동포 목회자 최재영 목사와 재미 언론인 박대명 선생을 초청하여 4.27 판문점 선언시대를 맞이한 국내외 정세변화의 전망을 들어보는 강연회를 개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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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거주하는 재미동포로서 통일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강연자들의 강연은 북에 우호적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4. 27 남북정상회담과 6. 12 북미정상회담을 이끌어낸 힘에 대해 강연자들은 한미동맹이 추동했던 최대한의 압박과 재제정책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국내 언론과 전문가의 분석을 부정했습니다. 현하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 도래하고 있는 긴장완화(평화)와 관계개선의 흐름은 오랜 기간 대북제재와 압박 속에 핵무력을 완성한 북의 역량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고, 미국(트럼프 대통령)조차 북미 간 핵전쟁의 위기를 각오하지 않고서는 한반도 종전과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북미관계정상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북 지도자의 한반도 비핵화 의지와 핵실험 중단 등 비핵화 조치는 평화협정의 체결에 의한 주한미군철수를 담보하기 위한 단계적, 동시행동의 원칙에 입각한 북의 능동적이고 선제적 조치로서, 세계 비핵화로 이어지는 과정이 될 것으로 전망하였습니다. 특히 북미 평화협정 체결과정에서 미국은 한국전쟁 시기 남북에 끼친 전쟁피해에 대해 천문학적 배상금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고 확언하였습니다.

0608 통일위 기자회견2

2018. 6. 8. 최재영 목사 국가보안법 위반 출석요구 규탄 기자회견

남북을 수시로 오가며 분단의 질곡을 깨고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열기 위해 애써온 최재영 목사는 방한 기간 중 초청강연 당일 오전을 비롯해 2차에 걸쳐 보안경찰들로부터 국가보안법위반 조사를 받았습니다. 과거 북을 방문하여 활동한 것을 트집 잡은 것입니다. 10.4 선언 5주년 기념토론회 참석, 정전협정 60주년 행사에 참석하여 종전과 평화협정 촉구, 재북 인사 묘역 묘비사진 등 제공, 방북 과정에서 유엔 주재 북 대사관과 일정 조율 등 혐의 내용 어느 것이나 판문점 선언에 비추어 볼 때 판문점 선언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었습니다. 판문점 선언을 합의한 문재인 정부 하에서 벌어진 이번 최재영 목사에 대한 국가보안법위반 공안탄압은 문재인 정권의 일관성 없고 이중적 대북인식과 대북정책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국가보안법에 의한 공안탄압을 받는 가운데 또다시 국가보안법의 위협을 무릅쓰고 초청강연을 해주신 강연자 분들께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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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초청강연회와 이어진 뒷풀이 자리에는 서울대 최종길 교수 사건에 연루되어 독일에서 33년 동안 들어오지 못 하시다가 참여정부 때 입국하였으나 3년 전 박근혜 정부 때 인천공항에 들어오자마자 다시 입국을 거부당하고 독일로 쫓겨 가신 김성수 박사님께서 참석하셔서 더욱 뜻깊은 행사가 되었습니다.

목, 2018/06/2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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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사랑방인가요?

전 우리 민변이 이런 사랑방처럼 편안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18년 3월 민변 사무실 내 휴게공간인 사랑방에서 김호철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가 진행된 사랑방처럼 민변이 ‘소통, 공감, 편안함과 행복’의 모습으로 후배들에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소신을 밝혔다.

 

“2000년대 초반, 민변은 너무 엄숙주의에 빠져 있다고 선배들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민변 회원이라 하면 만나서 반가워 농담도 하고, 변호사로서 영업을 하다가 도움이 되었던 것을 서로 공유도 할 수 있는 건데, 민변은 너무 근엄하고 진지한 얘기만 한다고 했다가 분위기가 썰렁해졌습니다.(웃음) 아, 괜히 이야기했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조금 더 격이 없는 소통을 할 수 있고 유쾌발랄한 분위기를 더 가질 수 있도록 모임을 개선해야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뭐, 요즘 후배들도 우리를 바라보면서 너무 어렵고 엄숙주의에 빠져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할 수도 있겠지만요. (웃음)”

 

김호철 변호사는 현재 민변의 부회장이며 최근 13대 민변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민변과 함께한 그의 변호사 활동들과 차기 회장 당선인으로서 가진 포부는 어떤 것일까.

 

 

이혜정 김호철 변호사님, 얼마 전에 차기 회장으로 당선되셨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대부분의 민변 회원들이 뉴스레터를 통해 변호사님 인터뷰를 접할 텐데요, 특히 신입회원들의 경우 김호철 변호사님을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호철 1994년 변호사 개업 당시, 민변 회원이셨던 ‘고 최일숙’, ‘정영원’변호사와 함께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현 서울동부지방법원) 근처에 법률 사무소를 열었습니다. 당시 초년생에 불과했던 변호사 셋이서 그래도 변호사의 품위와 의무를 다하고자 공익적인 업무를 더불어 하자는 결정을 했고, 법무법인 ‘동부종합법률사무소’를 개설하여 2002년까지 활동했습니다. 당시 저희 세명이서 민변 국가보안법 사건의 동부관할 사건을 대부분 소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외에도 환경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환경위원장을 맡기도 했고 당시 출판홍보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민변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이혜정 와~ 활동 많이 하셨는데요? (웃음)

 

김호철 (웃음) 네, 그리고 민변 선배님의 추천으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상임위원으로 들어가 3년간 공무원 신분으로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3년간의 위원회 일을 마치고) 복귀 후에는 공백이 너무 커서 본업인 변호사 일에 전념하느라 2009년부터 2015년까지는 민변 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가 지금 회장님이신 정연순 변호사님의 제안으로 2015년도에 민변의 부회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변호사 개업과 함께 당연하듯 시작한 민변 활동, 회장후보에 출마할 의무감을 안기다.

 

이혜정 변호사가 되면 바로 민변에 가입해야겠다고 이전부터 생각을 하신건가요?

 

김호철 당연하죠. 변호사 생활은 민변활동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이재명 시장(현 성남시장)이 밝혀서 민변이 대중에게도 알려지긴 했지만, 사법연수원시절부터 우리사회 인권과 민주사회 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을 나누던 멤버들이 있었습니다.

 

이혜정 회장 후보 출마를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을 텐데요.

 

김호철 제가 자격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쉽게 나서지 못했습니다. 민변이 오랜 기간 쌓아온 사회적인 신뢰에 걸맞은 신뢰 자산을 내가 구축하고 있는가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민변 회원들을 대표해서 개별 회원들의 사정과 바람을 잘 파악하고 실현할 수 있을까… 여러모로 자신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 등록을 한 것은 20여 년간 회원으로 있으면서 의무감이 들어서 입니다. 과거에 회원들의 활동들을 쫓아가면서 죄송함과 부채 의식을 지니고 있는 와중에 후보등록자가 없어서 고민하시는 선배님들과 회원 분들을 보며, 의무감이 발동했습니다.

 

이혜정 민변 회장에 나간다고 하니 가족이나 주변 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김호철 그 점에 대해서 지금 있는 법무법인 한결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법무법인 내에 후배변호사들과의 협업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기도 하고요. 민변에서의 활동으로 인한 저의 공백을 기꺼이 감수해주는 법무법인과 후배변호사들에게 감사합니다.

가족은 뭐….(웃음) 변호사 생활 내내 가족에게 미안해하면서 눈치 보면서 살아와서.. (웃음) 이번에도 적절하게 ‘눈치껏’ 별 일 아닌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환경문제는 환경운동이 우선이고 소송은 다음이라는 원칙

 

이혜정 변호사님 프로필을 쭉 살펴보면 주로 환경전문 변호사로서 활동을 많이 하셨던데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김호철 사법연수원 시절에 환경권 학회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학회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공해 현실을 제대로 알기 위해 찾아간 곳이 지금의 환경운동연합에서 진행한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그때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의 공해 문제, 환경 문제의 현실을 현장에서 공부할 수 있었죠. 이런 것들이 이어져 자연스럽게 환경운동 volunteer라는 저만의 정체성을 갖게 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소송이니까 환경소송을 담당하게 된 거구요.

환경소송을 할 때는 ‘환경문제는 운동이 우선이고 소송은 다음’이라는 저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임해 왔습니다. 새만금 소송과 일조 침해소송, 핵폐기장 설치 관련 소송부터 최근의 월성 원전 수명연장 취소소송까지, 운동을 우선적으로 하고 법적 판단은 보충적이고 최종적으로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임했습니다. 덕분에 관련 쟁점들이 많이 정리되었고 사회적 공방 속에서 상대측의 문제들을 충분히 인식하며 일해 좋은 결과를 많이 얻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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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직접 진행하셨던 월성원전 소송부터 최근에 생긴 신고리공론화위원회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탈핵’이나 ‘탈원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탈핵’이나 ‘탈원전’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나라를 위한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일까요.

 

김호철 인류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기후변화인데, 이는 인류의 욕망 때문에 발생한 온실가스가 가져온 인공적 위험이고 자연의 정화능력이나 순환을 교란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위협이죠. 하지만 자연을 무작정 개발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난다면 재생에너지처럼 생태계를 교란시키지 않으면서도 자연의 무한한 힘을 잘 선용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핵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핵무기 개발이라는 반생명적인 활동의 부산물이 초래하는 인공적 위험은 가공할만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탈핵’의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자연이 보유한 무한한 에너지를 얼마든지 인류에게 최대한 위험이 없는 방향으로 개발할 수 있습니다. 탈핵은 그동안 인류가 공감해온 방향이지, 시대에 역행하거나 일부 사람들의 편협한 이념적 잣대에서 비롯된 주장은 아닙니다. 재생에너지나 기존의 자연의 힘을 이용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연구와 투자를 해야 하고 법률가로서 이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혜정 최근 신입회원들의 관심사를 보면 환경 분야에 관심 있는 회원들이 많더라고요. 관련해 환경전문 변호사로서 후배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요?

 

김호철 우선은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 중 가장 (먼저) 풀어야할 숙제가 기후변화와 탈핵입니다. 법률가로서 이 문제를 풀어나갈 방법을 찾고 관심을 지속적으로 갖는 게 중요할 것입니다. 환경보건위원회를 찾아가서 예비 법조인을 위한 민변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추천드려요.

원자력 발전에 있어 가장 큰 원칙은, 진흥과 규제가 분리되어서 규제가 독립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다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서야 미미하게 지켜지는 실정이에요. 그러다보니 규제기관이 규제권한을 행사하는 틀과 체계가 잡혀있지 않고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법률가는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규제가 제대로 행사되었는지 법률적으로 살펴야 하고,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소송이나 정책 제안 혹은 정책 비판을 함으로써 시민들의 안전을 담보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원자력 발전소 하나 닫는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위험관리가 되고 있는지 감독하는 것도 법률가가 마땅히 수행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해결해야 할 중요한 사안들은 많은데 관심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또 환경보건 분야는 활동영역이 국제적으로도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의 3년 중 얻은 문제의식

 

이혜정 변호사님께서는 환경문제 외에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도 하셨습니다. 최근에는 워낙 군대 관련 사건 사고들이 많이 발생하기도 하고 관련한 사법개혁 논의도 진행되고 있는데요. 변호사님께서 경험하셨던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군대 문제는 어떠한 방향으로 해결되어야 할지, 특히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김호철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 당시 여호와의 증인이 박정희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인해 폭행과 가혹한 고문을 당하다가 사망한 사건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이 분 외에도 양심에 따라 집총거부를 주장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이 많이 계시죠. 문제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는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집총거부에 대한 양심의 순결함은 사회가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양심을 지켜주기 위한 사회적 배려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인권의 문제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법적 판단, 제도적 보완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군의문사와 관련해서는, 폐쇄적이고 통제적인 군사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어렵더라도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군복무라는 것이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 시민이 일정기간 희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민으로서의 인권이 군사법을 통해 최대한 보장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경우 민주화가 정착됨에 따라 군대 내 사망자 수가 점점 줄긴 했어요. 5공화국 시절 자살자를 비롯한 군대 내 사망자가 1,000명에 가까웠다면 노태우 시절 400~500명 정도로 떨어졌고, 김영삼 정부시절 300~200정도, 김대중 시절 100명대, 노무현 시절도 100명대 초반 유지를 하다가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면서 현재는 100명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예전보다 좋아진 거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이기 때문에 폐쇄적 군대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짓눌린차기 회장 당선인이 해야 할 일들과 회원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

 

이혜정 다시 민변으로 돌아와서요, 차기 회장으로 당선되신 만큼 앞으로 많은 회원들과 스킨십도 하셔야 할 텐데요. 김호철호 민변을 통해 그려나가고 싶은 민변은 어떤 모습인가요.

 

김호철 안 그래도 요즘 민변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고 있는데, 책을 찾다보니 (가방에 있던 민변 발전 전략 보고서 꺼내들며) 2012년도 당시 김선수 회장님 때 발간된 민변 발전전략보고서가 있더라고요. 현 회장님 역시 이 전략발전보고서에 나와 있는 과제들을 충실히 이행해 오신 것 같아서 이제는 발전전략보고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비전, 발전 전략을 세워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새로운 사무처 구성을 선결 과제로 삼고 이후에 머리를 맞대 각 위원회의 활동 역량을 충분히 모아서 새로운 세대가 민변의 주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실천적인 발전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혜정 올해 민변은 30주년을 앞두고 있고, 변곡점에 있어요. 회원들이 늘어났지만 예전만큼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생계가 어려워서 시간을 내서 민변 활동하기가 어렵다는 회원들도 있고, 일부 회원들은 회비 내는 것도 부담스러워 탈회하기도 해요. 이런 회원들을 아우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성 많은 회원들을 이끌어가면서 우선적으로 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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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철 본부와 지부 회원 간의 정서격차, 민변 활동 회원과 비활동 회원 사이의 이질감, 민변활동에 참여하는 양상의 차이, 이런 점들을 우선적으로 파악해야할 것 같습니다. 비활동 회원이 민변에 바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먼저 경청해야 할 것 같아요. 그분들이 말을 하실 수 있도록 오프라인, 온라인의 소통의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필요하면 찾아가고, 또 오시도록 하면서 거기서부터 답을 찾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질의 소통공간을 찾아가야 할 것 같아요.

 

이혜정 그런 문제가 끊임없이 고민되어 와서 인트라넷, 페이스북 민변 그룹 등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고민 지점이죠. 지금 이 자리에서 민변의 선배, 후배 변호사들에게 차기 회장으로서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말씀해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김호철 부족한 사람이 회장으로 당선 되어서 거대한 민변을 끌고 가기엔 아직 짓눌려 있어요. 짓눌린 회장 당선인이 좀 기를 펼 수 있도록, 민변이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잘 이끌 수 있도록 좀 도와달라는 그 말씀을 우선 드리고 싶어요. 많이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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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마지막으로 변호사님께 있어 ‘민변이란’ 어떤 것인가요?

 

김호철 삶의 등불이죠 (웃음). 변호사 생활을 하다보면 다양한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형성합니다. 그러다보면 자칫 일탈하기 쉬울 수도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변호사 개업 당시부터 지금까지 일탈하지 않고 나름 원칙을 갖고 (변호사 생활을)할 수 있었던 것은 민변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민변은 ‘내 삶의 등불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금, 2018/03/3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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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대한민국 제8차 국가보고서 심의 참가기

전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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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UN 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CEDAW, 이하 ‘위원회’)는 제네바 현지 시각으로 2018. 2. 22. 대한민국 정부가 제출한 제8차 국가이행보고서에 대한 심의를 진행하였습니다. 민변 여성인권위원회(이하 ‘여성위’)는 지난 2011년에 있었던 위원회 제7차 대한민국 정부 심의에 참석하여 대응한 이래로 위원회 권고 사항의 국내이행 여부에 관한 모니터링을 하였고, 지난 2월에 열렸던 제8차 정부심의에도 대응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에 여성위 소속 변호사들(류민희, 박인숙, 장보람, 전민경)이 위 심의 대응을 위하여 조직된 한국 NGO 단체 대응팀에 결합하여 스위스 제네바 현지활동을 마친바, 이하에서 위원회 제8차 대한민국 심의참가 소식을 간략하게 전해드리려 합니다.

 

 

2.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란?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유엔 주요 조약기구 9개 중 하나로, 1981년에 발효된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이하 ‘협약’)에 기반하여, 동 협약의 이행을 위한 진전 사항들을 심의할 목적으로 설치되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1984년에 위 협약을 비준하였고(이듬해 1월 26일에 협약 발효), 이에 따라 1986년 2월에 제1차 정부보고서를 제출한 이래, 2015년에 제8차 정부보고서를 위원회에 제출하였습니다., 이 제8차 정부보고서에 대하여 지난 2월 22일에 위원회의 본 심의를 받게 된 것입니다.

 

 

3. 2018년 제8차 정부심의에 대한 국내 NGO의 대응

 

위원회는 정부에 대한 본 심의에 앞서, 사전심의과정을 통하여 본 심의에서 주로 다룰 쟁점목록(List of Issues)을 도출하는데, 이 쟁점목록에 대하여 정부가 답변서를 제출합니다. 정부는 쟁점목록에 대한 답변서를 지난해 12월 초에 제출하였는데, 이를 바탕으로 국내 여성인권단체(총 15개 여성단체)들은 정부의 답변에 대한 반박보고서를 작성하고, 지난 2월 초에 위원회에 제출하였습니다. 또한 민변 여성위를 비롯한 6개의 인권단체들(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은 본 심의 대응을 위한 ‘NGO 참가단’ 모임을 꾸려, 작년 12월부터 본 심의 대응을 준비하였고, 본 심의 기간동안 스위스 제네바 현지에서 정부 심의과정에 직접 참여하였습니다.

 

특히 ‘NGO 참가단’은 위원회의 NGO 미팅(Informal Public Meeting)에서의 구두발언(Oral statement), 위원회 위원들과의 오찬 간담회(NGO Lunch Briefing)개최 및 개별면담을 통하여 위원들에게 한국의 여성인권 현황을 전달하고, 정부보고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대하여 한국의 여성 인권 상황 개선과 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한 실효성 있는 권고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 구체적인 현지 활동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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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8(일) : 위원회와 NGO간담회 준비 워크샵 (IWRAW-AP NGO 워크샵)

 2/19(월) : 위원들과의 심의 대상 4개국 NGO 간담회 (Informal Public Meeting_NGO)

 2/21(수) : 위원들과의 한국 NGO 간담회 (NGO Lunch Briefing)

 2/22(목) : 위원회 한국 제8차 본 심의 모니터링

 2/23(금) : NGO 참가단 활동 결과 보고 및 마무리 작업

 

 

4. 본 심의 주요 내용

 

본 심의에서 다루어진 주요 내용은 1) 성평등 개헌 노력,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의 정비 및 차별금지법 제정, 2) 성폭력 피해자의 2차 피해에 관한 대책을 포함한 다양한 젠더 폭력 문제, 3) 낙태 비범죄화 등 여성 건강권에 대한 논의, 4) 성별임금격차를 포함한 여성의 노동 시장 내 차별, 5) 취약계층 여성인권, 6) 일본군 성노예 문제 등으로, 위 내용을 비롯한 한국 사회의 주요 여성인권 현안이 협약의 조항 순서에 따라 다루어 졌습니다.

 

위원회 위원들은 한국 여성 인권 현실에 대하여, 한국의 여성인권단체가 작성한 NGO 보고서 및 NGO 참가단과의 간담회를 통하여 보다 깊게 파악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 대표단에게 협약의 이행여부에 관한 날카로운 질문을 제기 하였습니다..

 

(1) 위원회의 질의

 

1) 성평등 개헌 노력,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의 정비 및 차별금지법 제정

위원회는, 한국이 본 협약의 선택의정서(협약 위반 사항에 대하여 개인이 위원회에 진정을 할 수 있게 하는 ‘개인진정절차’를 담은 의정서)를 채택한 몇 안 되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위원회에 한국정부의 여성차별을 대상으로 한 개인진정이 한 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정부가 국내의모든 이해관계자들이 협약 상의 권리침해절차(개인진정절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을 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또한 2005년 「성차별금지법」 폐지 이후, 성차별 방지 관련 법률의 부재함을 지적하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고 있는 것은 위원회 협약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빠른 시일 내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기도 하였습니다.

 

2) 젠더에 기반한 폭력 문제

젠더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gender based violence against women)은 전 세계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로, 위원들은 한국 사회에서의 젠더 기반 폭력이 만연한 상황에 대하여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문제제기를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지적사항은 ① 한국의 「형법」 제297조가 강간죄의 성립하기 위하여 ‘피해자의 동의 여부’가 아니라, 가해자의 폭행 및 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요건을 필요로 하고 있어서, 강간죄의 성립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점, ② 피해자들이 어렵게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고소를 하여도,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기소가 남발되어 2차 피해를 야기하고 있다는 점, ③ 인터넷 환경의 발달로, 상대방의 동의 없이 신체를 촬영하거나, 이를 유포, 유포 협박, 저장, 전시하는 등의 사이버 성폭력이 새롭게 문제되고 있다는 점 등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였습니다.

또한 직장 내 성희롱 문제에 관해서도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나, 조직 내에서 문제제기를 할 경우 가해자가 징계처벌을 받지 아니하고, 피해자가 오히려 괴롭힘의 대상이 되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현실로 인하여, 문제제가 자체가 되는 사례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한국정부의 정책적 해결책을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3) 낙태 비범죄화 등 여성 건강권 문제

위원회는 또한 여성의 임신중단에 관하여, 모자보건법에 따라 강간이나 근친상간과 같은 특정한 상황에서만 낙태가 허용될 뿐, 여전히 낙태는 형법상 처벌이 가능한 범죄라는 사실을 지적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형법으로 낙태를 처벌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안전한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으며,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은 고비용 · 비위생적인 불법시술을 받거나 온라인에 유통되는 위험한 약물에 의존하고 있고, 후유증이나 의료사고에도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는 현실을 꼬집으며 정부에 낙태죄 비범죄화를 촉구하였습니다. 이러한 제도적 부재는 여성의 성과 재생산 건강 및 권리(SRHR : Sexual and Reproductive Health and Rights)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정부의 SRHR에 관한 정책이 임신을 하거나 자녀를 양육하는 여성에게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도 지적하였습니다.

특히 트렌스젠더나 인터섹스인 사람들에 대한 SRHR에 대한 실태조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공간을 마련하고, 당사자들의 현실에 기반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도 역설하였습니다.

 

4) 성별임금격차를 포함한 여성의 노동 시장 내 차별

여성 고용부분에 대한 질문에서, 위원회는 한국이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 성 격차 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에서 성 격차 지수 순위를 매긴 144개국 가운데 123위이며, 성별임금격차는 37%로서 OECD 국가 중 최고로 높다는 점을 제시하며, 국내 성별임금차이를 줄이기 위하여 지난 회기 동안 정부가 이행했던 개선책이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였습니다. 동시에 여성임금노동자 중 41%는 비정규직이고, 비정규직의 26.9%가 최저임금보다 낮은 보수를 받고 있어서, 남성 정규직과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격차가 64%로 매우 심각하다는 점도 지적하였습니다.

 

5) 취약계층 여성인권

위원회는 이주, 난민 여성의 국적 문제에 관해서는, 특히 아동 출생 등록 제도의 부재로 인하여 결혼하지 않은 이주여성의 자녀가 무국적 상태의 위험이 놓여 있는 점을 비롯하여, 농업에 종사하는 이주여성노동자들이 한국인 고용주와 관리자로부터 반복적으로 성폭력을 경험하고 있으나 언어제약 및 체류자격 불안으로 인하여 가해자로부터 쉽게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하였습니다. 또한 탈북여성의 고용과 관련하여 정부가 운영하는 직업훈련교육은 서울 1곳으로, 지방의 탈북여성은 이러한 혜택에서 고립되어 있으며, 탈북여성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성평등 및 인권교육 등도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후속조치에 불과함을 지적하였습니다.

 

6) 일본군 성노예 문제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관하여 위원회는, 종전의 일본 정부 심의에서 ‘(일본)정부가 조속히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피해자 배상조치를 실시하고 가해자를 기소하도록 하며, 이러한 범죄를 일반 대중에게 알리는 것을 포함한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는 노력을 할 것을 반복적으로 권고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 심의에서 일본군 성노예 이슈가 제기된 것은 금번 회기가 처음으로, 피해자 중심주의적 접근법에서 벗어난 한일합의를 비판하며, 2015년 한일 정부간 위안부 합의의 결과로 도출된 ‘화해치유재단’의 존속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후속조치를 모색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2) 정부 답변

 

이처럼 위원회의 질의가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꼼꼼한 분석을 토대로 날카롭게 진행되었다면, 정부의 답변은 미리 한국에서 준비해 온 예상 질문에 대한 답안을 그대로 읽는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그 내용은 이미 정부가 위원회에 사전에 제출한 정부 보고서 및 답변서의 내용과 일치하여서, 일부 위원은 ‘정부대표단이 기존에 제출한 정부보고서의 내용을 그대로 읽는 것에 불과하고, 실질적인 이행 계획을 제시하지 못할 것이면 위원회가 왜 굳이 모여서 정부의 답변을 들어야 하냐’며 정부를 향하여 호통을 치기도 했습니다.

더군다나 동 협약이 여성에 대한 직간접적, 교차적 차별을 모두 철폐하기 위한 법과 제도의 즉각적인 이행을 국가의무로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아직도 제정되지 않고 있다는 위원의 질문에 대하여, 정부는 “차별금지법의 차별 금지 사유에 대한 사회적 논란으로 인해 합의가 필요하다”는 답변만을 반복하여서, 정부가 과연 위원회의 권고를 수행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5. 최종 권고의 주요 내용

 

위와 같이 위원들의 날카로운 질문과 정부의 불성실한 답변이 오갔던 가운데, 지난 3월 9일, 위원회는 ‘대한민국의 제8차 정기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를 내 놓았습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 및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배치할 것
  • 지방정부의 성별영향분석 평가 제도를 강화하고, 성 인지 예결산 협의체의 법적 근거를 마련할 것
  • 폭행,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강간을 판단하도록 형법 제297조를 개정하고, 배우자 강간을 범죄화 할 것
  •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형사소송 남용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시행하고, 피해자의 성 이력을 사법 증거로 채택하는 것을 금지할 것
  • 직장 내 성희롱 예방 및 효과적인 관리 감독 체계를 확립 할 것
  • 탈북 여성들에 대한 적절한 상담 등 적절한 재원을 탈북여성센터에 제공할 것
  • 팔레르모 의정서 기준에 상응하는 포괄적 인신매매방지법을 제정할 것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생존자 및 그들의 가족에 대한 진실과 정의 배상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며, 공정하고 적절한 배상을 즉각적으로 추진할 것
  • 여성의 대표성 확대를 위한 비례대표제를 강화하고 여성할당제의 강제이행 조치를 마련할 것
  • 이주 여성의 귀화 절차 기간을 축소하고 한국 배우자의 신원보증서 제출 제도 및 관행을 폐지 할 것
  • 남녀고용평등법의 동일가치 동일임금 조항의 엄격한 시행 및 위반 시 제재를 강화할 것
  • 남녀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하여 공사기업에서의 임금공시제를 시행할 것
  • 여성의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의 보장을 위하여 관련 법제도를 개선할 것
  • 건강보험 등 트렌스젠더 여성의 의료 접근권을 보장하고, 인터섹스인 사람들에 대한 비자발적 의료조치가 발생되지 않도록 할 것
  • 낙태 비범죄화 및 수술 이후의 질 높은 지원 체계를 마련할 것
  • 가정폭력 피해자의 이혼청구 시 이혼 결정 이전에 가해자와 강제로 화해나 조정절차를 거치지 않도록 할 것
  • 비혼 동반자 관계에 있는 여성에 대한 사회경제적 보호를 확대할 것
  •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2030 아젠다의 이행과정에서 실질적인 성 평등을 실현할 것

 

 

6.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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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현장에서의 일주일은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NGO 브리핑 자료, 런치브리핑

자료, 제안 질문지, 제안 권고문 등을 작성하고 다듬으면서, 우리의 문제의식이 위원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을지, NGO 보고서의 내용 역시 오늘날의 현실과 괴리가 있는 것은 아닌지 많은 고민이 오갔습니다. 이러한 고민들로 인하여 NGO 참가단은 결국 제네바 현장에서, 한국에서 준비해왔던 작업을 뒤집고 새로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정도의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그만큼 힘도 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여러 여성단체에서 참여하신 대표단 분들과 함께 한국 사회의 여성인권 문제에 대하여 압축적으로 공부하고 논의 할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본 심의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지내는 동안, 위원회의 최종권고문도 나왔고 이 권고문을 토대로 한 토론회도 개최하며 권고사항에 대한 사회적 공유 작업도 시작되었습니다. 최종권고들은 다음 회기의 정부 심의 전까지 한국 정부가 이행해야 할 우선 과제라고 할 것이고, 이를 토대로 한국의 여성인권단체들은 정부에 그 이행을 촉구할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로 인하여 한국사회에서의 ‘실질적 성평등’ 실현이 한 발 더 가까워지길 바래봅니다.

금, 2018/03/3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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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3. 3. ~ 3. 7. 오키나와에서 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와 오키나와 자유법조단의 11회 평화교류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지난해 10월 태풍으로 한차례 연기된 뒤에 이루어진 만남이라 그 의미와 반가움이 더 컸습니다. 회원을 비롯하여 함께 해준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며 다가올 만남을 또 기다립니다.

 


  

 

 

오키나와, 이름만으로도 설렌 그 곳 도착

 

오민애 변호사

 

 

오키나와. 인터넷 검색창에 이 네 글자를 입력하면 에메랄드빛 바다와 평화로운 섬의 풍경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막연히 좋은 관광지로만 여겨졌던 오키나와는, 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와 자유법조단 오키나와지부의 10년이 넘는 교류의 역사 속에서, 저에게 너무나 새로운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길고도 짧았던 시간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2016년 10월, 서울에서 광주에서, 그리고 사드 배치 문제로 매일매일 치열했던 성주에서 오키나와 변호사님들을 처음 만났습니다. 처음 참석한 교류회에서, 일본어라고는 안녕하세요, 잘먹겠습니다, 밖에 할 줄 몰랐던 제가 불편함 없이 함께 밥 먹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좋았습니다. 성주 주민분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사드 가고 평화오라’고 외쳤던 그 순간이 아직 생생한 채로, 2017년 가을, 오키나와로 갈 날을 하루하루 기다려왔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오키나와 교류회가 예정된 날짜에 태풍이 오키나와를 지나간다는 예보가 있었고, 결국 2017년 교류회 일정은 연기되고 말았습니다. 오키나와에 갈 생각에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는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아직은 추위가 가시지 않았던 2월말, 오키나와를 떠올릴 때면 아직 느껴보지 못한 오키나와의 공기도, 변호사님들의 얼굴도 참 따뜻하고 푸근했습니다.

 

2018년 3월 3일, 그렇게 고대하던 오키나와 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이틀 먼저 오키나와에 가셨던 박진석 변호사님의 전언으로는 계속 비가 내리고 궂은 날씨였어서, 걱정도 많이 됐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예정된 비행시간보다 40분정도 늦게 나하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비는 거의 그쳐가고 있었고, 감사하게도 오키나와 교류회 일정 동안 날씨도 교류회를 도와주었습니다.

 

삼삼오오, 오키나와 변호사님들의 차를 나눠 타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어떻게 대화를 할까, 머릿속에 맴돌던 고민은 기우였습니다. 짧디 짧은 영어로, 손짓으로 반가움을, 안부를 전하는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아, 그리고 하나 더, ‘파파고’의 고마움을 절실하게 느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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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숙소로 향해서 짐을 풀고, 근처 음식점에서 첫 ‘친목회’의 자리를 가졌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또 함께 한 분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순간이 아직도 생생한데요. 정말 따뜻하게 저희를 진심으로 반겨주시고, 함께 할 시간을 기다려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 년에 한번씩, 3-4일씩 만나왔다면, 어쩌면 만날 때마다 서먹서먹할 수도 있을텐데, 일주일 전에 만났던 것처럼 서로 반가워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함께여서 좋았던 첫 날

 

오키나와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고 언급하셨던 이야기 중 하나가 ‘촛불집회’였습니다. 아베 총리의 부인까지 연루된 사학 비리 스캔들이 연일 드러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목소리가 모이거나 정권의 문제점에 대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와 함께, 어떻게 촛불집회가 있을 수 있었고 정권교체까지 나아갈 수 있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셨습니다. 2017년 한국에서 만들어진 역사가 자랑스럽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면서도, 다음날 세미나에서 제가 발제를 맡은 주제이기도 해서, 마음 한 켠 궁금해하시는 내용을 잘 전할 수 있을까, 준비를 잘 한 것일까, 걱정과 불안이 엄습해왔습니다. 그렇지만 그 마음을 꾹꾹 누를 수 있을만큼, 맛있는 음식과 술과 이야기들로 가득 채운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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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사와 변호사님이 직접 그린 시샤. 시샤는 오키나와 나하시의 전설의 동물로, 나쁜 기운을 가져가고 좋은 기운을 가져다 준다는 수호신입니다. 지난해 예정되었던 교류회 일정에서 민변 변호사들에게 주기 위해 그리셨던 그림인데(2017. 10. 27.), 일정이 조정되면서 이번에 직접 전달해주셨습니다.

 

평화와 연대, 그 소중함에 대하여

 

이튿날, 숙소 근처의 변호사회관에서 세미나가 진행됐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된 세미나에서는 한국과 일본에서의 평화 관련 이슈에 대한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고등학교에서의 수업 이후, 이렇게 오랜 시간 한 자리에 앉아서 발표를 듣고 메모하고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진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 시간이 어색하거나 길게 느껴지지 않았던, 신기한 시간이었습니다.

 

오전에는 공통테마에 대한 발제와 토론, 그리고 오후에는 양국의 사례보고를 이어갔습니다. 공통테마는 ‘일본 헌법의 평화주의-군사대국으로의 책동’, 그리고 ‘촛불혁명과 우리의 주권’이었고, 토론이 열띠게 이어졌는데요. 먼저 하야시 치가코 변호사님의 발제에서 언급된 일본 자민당이 마련한 헌법개정안은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헌법을 전체주의 관점으로 재정비하고, 자위권의 발동을 가능하도록 명문 규정을 넣는가 하면, ‘긴급사태(내각총리대신은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 내란 등에 의한 사회질서의 혼란, 지진 등에 의한 대규모 자연재해 그 밖의 법률에서 정하는 긴급사태에 있어 특별한 필요가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각의에 상정하여 긴급사태의 선언을 발할 수 있다)’에 관한 조항을 신설하여, 국민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공고히 하는 방식의 헌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비판이 계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방향의 헌법개정안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고, 현재 일본의 집권 정당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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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헌법에 대한 논의는 다양한 고민지점을 던져주었습니다. ‘군대’를 헌법에 명문으로 두는 것이 군대에 대한 통제근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두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통제되도록 하는 것이 맞는가. 한국에서의 전시작전권 문제, 군대에 대한 민주적 통제에 관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갈 것인가. 국민들이 일상을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를 가장 직접적으로 위협하면서도 아닌 것처럼 숨어있는 군사 문제에 대해, 언제나 국가기밀이다,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해야한다는 논리로 감추기 급급해하는 많은 이들이 떠올랐습니다. 군대, 전쟁 문제로 대표되는 국가의 국민에 대한 통제 시도를 어떻게 국민들이 저지할 수 있을 것인가. 질문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우리는 어떤 고민을 하고 무엇을 해야할지, 또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어서 한국에서의 ‘촛불혁명’에 관한 발제와 토론이 있었습니다.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계속되었던 촛불집회와, 그 과정에서 발현된 많은 변화들에 대한 평가는 각기 다르지만, 오키나와 분들은 ‘촛불혁명’이라 명명하고 그 시간을 궁금해했습니다. 함께 촛불집회의 모습이 담긴 짧은 영상을 보고, 어떻게 진행되어왔는지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이 순간 이렇게 함께 지난 1년을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다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한 시작이었다는 점을 공감하고, 일본에서의 정권교체를 함께 그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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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양국에서 어떤 사안들이 문제되었고 어떻게 대응하여왔는지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오키나와 변호사님들의 아시아 태평양 법률가 협회(COLAP)와 국제 민주 법률가 협회(IDAL) 활동에 대한 보고, 마샬제도 관련 보고와 한국의 문재인 정부 이후 남북 정세 관련 발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키나와가 제기한 암초 파쇄 행위의 금지청구 소송과 기지 내 인권침해에 대한 대응 활동, 2차 후텐마 기지 폭음 소송, 오키나와 전투‧남양전 소송에 대한 보고가 있었고, 한국의 사드 배치 관련 소송 보고가 진행되었습니다.

 

해외 미군기지는 현재 800여개 정도가 있고, 규모로 분류하면 크게 세 분류가 있는데, 그 중 한국과 오키나와는 미군의 가족들까지 함께 생활할 수 있는 형태의 대규모 기지가 주둔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기지로 인하여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를 근본적으로 침해당하고 인근 주민들의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등 수많은 문제를 겪게 된다는 공통점이 있어, 서로의 상황에 깊이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한편 서글프기도 했습니다. 사사모토 준 변호사님은 일본과 한국의 국내에서의 운동, 나아가 미군의 군사력을 통제할 수 있는 세계적인 운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 그 연대의 힘을 잘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 교류회 현장 또한 연대의 기초가 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마샬제도’에 대한 발제였습니다. 오랜시간 미군 기지 문제에 관여하고 연구해 오신 하지메 이노우에 변호사님의 설명이, 이름도 낯설기만 했던 ‘마샬제도’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마샬제도는 오세아니아에 있는 섬국가로,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일본의 신탁통치를 받던 곳으로 지금도 일본어가 사용되는 곳입니다. 미국은 이곳을 2086년까지 빌리는 형태로 협정을 체결하였는데, 1년에 4번씩 이곳에서 미사일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미사일 훈련 2주 전에 훈련이 있다는 사실을 통보 받는 것 외에는 달리 대응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마샬제도 외부장관은 핵군축조약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로 국제형사재판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곳인지 전혀 알지 못했던 마샬제도에서는, 지금도 협정과 약속이라는 이름 아래 군사훈련이 수시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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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심재환 변호사님이 문재인 정부 이후 남북 정세 전망에 대하여 발제를 해주셨습니다. 교류회가 진행되던 당시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마친 직후였고, 올림픽을 전후로 남북관계가 급속히 달라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대립과 견제, 갈등이 아닌 ‘평화’를 중심 가치로 두고 남북 평화통일을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고 그렇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매일매일 달라지고 있는 남북관계를 어떻게 봐야할지, 많은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사드 배치 관련 법적 대응에 대하여 오현정 변호사님의 발제가 있었습니다. 정권이 교체되고 많은 적폐를 청산하고 변화하기 위한 일들이 추진되고 있지만, 사드 배치는 계속 추진되었고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이에 한국에서 사드 배치 발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헌법소원, 행정소송, 형사고발 등 관련하여 진행해온 법적 대응에 대한 보고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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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오키나와에서도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와 이에 대한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백충 변호사님 발제에 의하면, 오키나와에서는 헤노코 기지 건설을 위한 암초파쇄행위에 대한 금지소송을, 오키나와 현이 제기하여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오키나와 현의 허가를 받아야 암초를 파쇄할 수 있기 때문에, 허가 없이 파쇄하면 안된다는 취지의 소송이었습니다. 이어 사이토 유스케 변호사님은 2016년 4월, 헤노코 신기지 건설에 항의하던 중 미군 헌병에 의해 체포‧구속된 메도루마의 국가배상청구 사건에 대하여 들려주셨습니다. 변호사를 불러달라는 요구도 무시하고 신체구속 상태로 두었고, 이에 대한 국가배상을 청구한 사건인데, 미군의 공무집행 중 불법행위는 일본국이 대신 책임진다는 규정에 따라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후텐마 기지와 가네다 기지의 폭음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진행 중이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우에하라 도모코 변호사님의 발제가 있었습니다. 기지 주변의 폭음으로 인한 손해배상소송은 여러 차례 진행되었고, 후텐마 기지에서는 2차, 가네다 기지에서는 3차로 소송이 진행 중이었는데, 폭음과 건강피해의 인과관계를 일부 인정하고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내용의 1심 판결이 선고되었다고 합니다. 비록 비행금지청구는 일본의 지배가 미치지 않는 미군의 행위의 금지를 요구할 수는 없다는 취지로 기각되었으나, 이에 대해서는 이후 고등재판소에서 다툴 예정이라고 합니다. 오키나와의 마지막 사례보고는 오키나와전, 남양전 소송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 대한 마쓰모토 게이타 변호사님의 발제였습니다. 오키나와 전은 주민들이 사는 지역에서 전쟁이 벌어진 유일한 사례로, 1945년 4월 1일 오키나와 중부 해안에 미군이 상륙(미군55만명, 함정 1400척 이상)한 이후 격전이 벌어져 현 인구 4분의 1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메이지 헌법 하에서 발생한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논리로 기각되었는데, 이는 메이지 헌법 하에서 공권력이 잘못된 행사를 하지 않는다, 책임을 져야 하는 대상은 천황이지 국민들이 아니라는 이유였습니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금전적 배상으로나마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만, 여전히 만들고 싸워나가야할 문제들이 산적해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주희 변호사님의 미군기지 내 한국여성 성매매의 위법성을 인정한 서울고등법원 판결에 대해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법원이 국가가 성매매를 정당화하고 조장했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배척하면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는데, 이는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미군기지 주변에 관한 정책에 대한 판단까지 나아갔다는 점에서 중요하고 의미 있는 판결이라는 소개에, 참석자 모두 공감하면서 마지막 발표를 마쳤습니다.

 

함께 하고 있음을, ‘우리를 확인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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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너무도 당연하고 소중한 것이기에, 정작 그 중요함을 잊고 살게 되는 것은 아닌지, 수많은 사람들의 삶 하나하나가 만들어낸 소중한 가치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평화를 지켜내고 또 함께 만들어갈 것인지, ‘평화’라는 이름으로 함께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는 ‘우리’여서 자랑스럽고, 또 그 ‘우리’에 함께일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각자, 또 함께 해나갈 수 있을지, 서로 마음 한 켠에 고민을 접어두고 찐한 뒷풀이가 계속되었습니다.

 


 

오키나와를 통해, 일본과 한국, 그리고 평화를 마주하다 교류회 3일차

 

이 윤 주 변호사

 

두 개의 풍경, 아름다운 풍광과 내면의 죄책감이 교차하는 곳

 

오키나와, 교류회에 참여하기 이전 이곳은 저에게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세계일주의 시작점으로 생각하는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휴양지였습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몸과 마음을 모두 편하게 하는 휴식을 할 수 있는 곳이라는 마음을 안고 오키나와로 향했던 것 같습니다. 도착해서 바라본 오키나와의 아름다운 풍광은 ‘그대로’였습니다. 탁 트인 넓은 바다, 청량한 바람, 미세먼지 가득한 서울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파란 하늘, 따뜻하게 내리쬐던 햇볕. 그런데 이곳에서 어느 순간부터 마음 속 깊이 느껴지던 고통과 더 이상 이 풍경을 마음 놓고 아름답다고만 말하지 못하겠던 저의 죄책감은 어디서 시작된 것이었을까요. 풍경의 아름다움에 찬탄하며 말을 내뱉던 저의 입은 이제 머뭇거리기 시작하였고, 마음에는 죄책감의 그늘이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후텐마 비행장, 일상을 위협하는 군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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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차 오키나와 교류회 평화기행의 첫 일정으로 ‘후텐마 비행장’으로 향했습니다. 후텐마 비행장은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해병대 전용 비행장이라고 합니다. 높은 곳에 올라 내려다 본 군용비행장과 일반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며 살아가는 마을 간의 거리는 말 그대로 ‘지척’이었습니다. 이 물리적 거리는 무시로 우리의 일상에 쏟아지는 군용비행기의 소음과 상공을 날아다니는 헬리콥터 등으로부터 부산물 등의 낙하로 누군가 다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상존하는, 군국주의로부터 위협받는 위태로운 일상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바람이 존중받지 못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착잡한 마음으로 마을로 다시 내려오자 그곳에서는 공을 차며 놀고 있는 어린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가득 퍼졌습니다. 이율배반적이라고 느낄 만큼 상반된 두 풍경 사이에서 우리의 평화로운 삶을 관통하는 군국주의를 보았습니다.

 

동굴 진지 속, 깊은 어둠 속에서 참상과 마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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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교류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면, 그건 아무래도 동굴진지를 체험했던 일일 것입니다. 그곳에서 물리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깊은 어둠을 만났습니다. 전쟁 시기, 이곳에 숨어들었던 사람들이 있던 공간, 동굴 곳곳에 보존되어 있던 그 시절의 잔해들을 보며 그 시간 이곳에서 자신을 지켜내야 했던 사람들의 절박함을 떠올렸습니다. 전쟁이라는 야만의 시간을 통과해야 했던 사람들이 자신을 숨기기 위해 선택했던 곳, 반세기라는 시간적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저는 이곳에서 버텨야 했던 사람들의 공포감이 어느 정도였을지 생각해보려고 애썼습니다. 작은 불빛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곳에서 그 긴 시간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공포감으로 버텼던 것일까요? 발끝에 느껴지던 울퉁불퉁한 바닥과 손끝에 느껴지던 습기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어둠을 여전히 저의 온 몸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평화기념공원 – “분단은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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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전투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하였습니다. 남쪽 바다 끝 절벽 가까이에 위치한 이 평화기념공원을 둘러싼 풍경은 굉장히 아름다웠고, 이 바다 끝 기자절벽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쟁 끝에 자결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비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평화의 초석”이 길에 길게 세워진 공원을 걸으며 기록된 이들의 희생과 아직 기록되지 못한 자들의 희생을 생각했습니다. 총 24만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길게 서있는 초석들 중 발걸음을 유난히 붙잡았던 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이 분리되어 각인된 초석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의 분단이 이들의 이름조차 강제로 나누어 기록해 놓은 모습을 보며, “분단은 어디에나 있다”는 어떤 변호사님의 말귀가 와서 박혔습니다.

 

히메유리 기록관 – “전쟁은 인간이 일으키는 최대의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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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유리 여고생들의 기록을 시민들의 힘으로 남긴 기록관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기록관에서 본 그들의 앳된 얼굴에서 저의 평범했던 여고생 시절을 떠올리며 그들이 겪어야 했던 비극을 가늠해보려 노력했습니다. 히메유리 여고생들의 죽음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아름다운 영웅들로 포장해내는 일본 정권의 민낯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은폐하려는 야만적 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처절한 죽음에 대한 인간적 애도는 사라지고 영웅이라는 이름으로 상찬하기에 급급한 것은 지금을 사는 자들의 정치적 야욕을 위한 것이 아닐는지요. 비극적 죽음 앞에서도 반성과 성찰은 사라진 이 행태에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누군가의 죽음에도, 그곳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삶을 지탱하고 있는 생존자들에게도 결코 해서는 안 될, 무례와 야만 그 자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곳 관장님께서 우리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전해주셨던 “전쟁은 인간이 일으키는 최대의 잘못이다”라는 이 말씀을 가슴에 아로새기며 기록관을 나섰습니다.

 

이번 오키나와 교류회를 통해 “전쟁은 인간이 일으키는 최대의 잘못이다.”라는 이 한 문장을 손에 단단히 쥐고, 가슴에는 평화라는 구체적인 가치를 담고 저는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통해 일본 오키나와 자유법조단께서 보여주신 극진한 환대에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내년에 이곳 한국에서 서로 좋은 소식을 가득 안고 다시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금, 2018/03/3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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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개헌 논의 워크샵 후기

유원정 회원

무더운 여름의 한 가운데, 7월 20일 민변 여성위원회의 월례회에서는 ‘헌법개정안 중 여성인권, 성차별 관련 헌법조항에 관한 검토’를 주제로 하여 무더운 여름만큼이나 뜨거운 성평등 개헌 논의 워크샵이 열렸습니다.

2017년부터 민변 여성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참석한 여성위 월례회는 저에게 항상 즐겁고 열정적이며 또 편안한 시간이었습니다. 올해 초반부터 개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성평등 개헌에 대해서는 저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관심을 갖고 살펴보고 있던 주제였기 때문에 다른 날보다 특히 더 설레는 발걸음으로 민변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헌법이 제정된 것은 1948년. 마지막 개헌은 1987년으로 무려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사회, 경제, 정치 등 모든 영역에서 변화가 있었고, 또 성평등한 사회에 대한 요구도 그 어느 때보다 커졌습니다. 성평등은 개헌 논의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핵심적인 부분인 것입니다.

민변 회의실에 도착하니, 익숙하고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습니다. 이날 워크샵의 발제는 조숙현 변호사님과 천지선 변호사님이 맡아주셨습니다.

먼저 한국여성단체연합의 개헌TF에서 논의한 내용을 회원님들과 함께 헌법 조문 순서대로 살펴보았는데, 논의된 내용은 과연 매우 흥미롭기도 했지만 이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상적인 개념을 많이 사용하는 헌법의 특성상, 성평등한 사회라는 지향점을 달성하기 위해서 단어 하나를 고르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발제가 끝나고 난 후에는 회원들 각자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개헌TF에서 이미 논의된 내용도 생각보다 방대하고 꼼꼼했으나, 역시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가진 여러 사람이 모여 논의하니 또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시된 의견들이 흥미로우면 흥미로울수록 사실 저는 성평등 개헌이 정말 너무나 어려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어 하나에 따라올 수 있는 일반적인 관념들을 생각하고, 그런 관념들이 우리 사회에 가져올 수 있는 영향을 고민하다보니, 결론이 쉽게 나지 않을 것 같은 부분들도 보였습니다. 저 스스로도 의견을 말하면서, 말이 끝나고 나면 생각이 다시 바뀌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열띤 토론이 이어지며 나온 다양한 생각들은 또 다시 개헌TF에서 논의되며 다듬어질 것입니다. 날씨도 토론도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워크샵이 끝나고 회원님들과 마시는 맥주 한잔이 너무 상쾌했던 기억이 납니다.

개헌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의 삶에 직접적으로 닿지는 않는 추상적인 단어들의 변화이지만, 그 추상적인 단어들의 변화가 우리 삶에 직접 닿는 물결이 되어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더 설레는 작업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은 푹푹 찌는 무더위도 지나가고, 선선한 바람과 풀벌레 소리와 함께 그날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민변 여성위원회 활동을 시작하고서 참석한 월례회 중 개인적으로는 가장 재미있었던 월례회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언젠가 확정된 개헌안을 제 눈으로 보게 될 날이 오겠지요? 그날에도 다시 회원님들과 모여 맥주와 함께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여성위원회뿐만 아니라 다른 민변 회원님들도요!

수, 2017/08/3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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