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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양국체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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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양국체제론

admin | 수, 2020/01/15- 21:14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코리아 양국체제

코리아 양국체제1란 대한민국(ROK)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 두 나라가 주권국가로서 서로 인정하여 공식 수교하고 평화롭게 공존, 교류, 협력하는 일 민족 이 국가2의 평화체제, 공존체제이다. 코리아 양국체제는 지난 70여 년 남북 간에 쌓이고 쌓인 적대와 불신을 완화하고 해소함으로써 평화적 통일로 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경로다.

지난 70여 년 남북은 수없이 많은 ‘통일방안’을 경쟁적으로 제안해 왔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통일은 멀어졌다는 역설 속에서 살아왔다. 지금까지 한국과 조선은 서로를 국가 대 국가로서 인정한 바 없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아무리 통일을 말해봐야 통일이 이뤄질 리 없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반드시 통일하자고 하니까 전쟁까지 했던 것 아닌가. 그래서 통일을 하자고 할수록 통일이 멀어지는 역설이 여태껏 발생해왔다고 하는 것이다.

평화로운 통일로 가는 ‘제1보’가 양측이 상대를 진심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인정하는 데 있음은 굳이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은 자명한 사실이다. 국가로서 성립되어 있는 양자 간의 관계에서 그렇듯 진정에서 우러난 실제적인 인정이란 서로를 정당한 주권국가로서 인정하는 것이다. 남북 서로가 국가로서의 정당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각자의 내부에서 상대를 부정하고 적대했던 심리와 제도가 바뀌기 시작한다. 그래야 편지 한 통 오가는 데서 시작해서, 전화가 오가고, 사람이 오가고, 그리고 마음이 오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음 간의 긴장이 먼저 풀려야, 정치적 긴장도 풀리고, 군사적 긴장도 따라 풀릴 것이다. 이 길이 평화로운 통일로 가는 ‘제1보’이고 그러한 상태가 이루어지는 것이 코리아 양국체제다.

그러나 지난 70여 년 동안 그 ‘제1보’는 한 번도 제대로 떼어지지 못했다. 첫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하면서 내달리고 도약하기를 꿈꾸는 온갖 화려한 통일안들이 난무했다. 코리아 양국체제는 여태껏 미뤄져온 그 첫걸음을 제대로 분명하게 내딛자는 제안이다. 통일에 이르는 첫걸음이 될 양국체제가 정착되고 안정되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 첫 과정을 제대로 이수(履修)하는 데만 많은 노력과 인내와 창의력이 요구된다. 이 가장 기본적인 과정을 분명한 목표로 인식하고 그 과제의 실현을 위해 실제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 과정을 애매모호하게 남겨둔 채 2단계, 3단계로 건너뛰자는 통일안들은 말만 화려할 뿐 실효가 없다. 오히려 갈등과 불신만 키워왔다.

양국체제란 단순히 한반도에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두 국가 간에 ‘국가로서의 상호 인정’이 공식적으로 이뤄지고 그러한 상호 인정 관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어야 비로소 양국체제라 할 수 있다. 2018년 현재 세계 157개국이 남북 두 국가를 동시에 인정하고 수교하고 있으니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세계인이 인정하고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한반도에 양국체제가 성립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은 전혀 아니다. 막상 남북 두 국가는 서로를 국가로서 정식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치르고 극단적으로 적대했던 두 국가가 엄혹했던 냉전 기간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은 상황 탓으로 넘겨본다 하더라도, 소련·동구권이 붕괴하여 미소 냉전이 해소되고 1991년부터는 남북 두 나라가 유엔의 정식 회원국이 되었음에도 그 후로도 거의 30년을 서로 국가 대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지내왔다는 것은 분명 비정상이다.

그러나 현실이 크게 변하여 이러한 비정상이 더는 지속되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같은 해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리면서 한국전쟁(Korean war)의 종전과 북미 수교가 남, 북, 미 3국의 공식 어젠다에 올랐다.3 정전 상태를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할 당사자가 될 남북 두 국가가 이제 서로를 정상적인 국가로서 인정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여기에 더하여 이후 북미·북일 수교가 이뤄지는 날이 올 것인데, 그때에도 남북만은 끝내 상대를 국가로서 인정하지 않은 채 준 전쟁 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이제 양국체제가 눈앞의 현실로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도 놀라운 것이지만 그러한 변화를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대중적 힘이 대한민국 내부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에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힘은 물론 2016년 겨울 이후 형성된 촛불혁명의 민의다. 촛불혁명은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이 드러나면서 시작되었지만, 그 배경에는 정권의 모든 실정(失政), 무능, 독단에 대한 항의와 비판을 ‘종북’으로 싸잡아 억누르고 ‘블랙리스트’로 묶어 배제했던 박근혜 ‘신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환멸과 거부가 있었다. 결국 북을 이용해 독재를 강화하는 낡은 공식을 재탕·삼탕하려다 국민적 대저항에 부딪쳤던 것이다. ‘보수가 안보는 잘할 거’라는 근거 없는 공식도 완전히 깨졌다. 이명박, 박근혜 소위 ‘보수정부’ 시절 내내 안보 위기·전쟁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높아만 갔다.

높아가는 안보 위기, 전쟁 위기에 대한 국민적 불안과 불만이 매우 심각한 상태였음은 2018년의 판문점, 싱가포르 회담에 대한 여론의 압도적 지지에서 여실히 드러났다.4 2019년 2월 하노이에서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면서 상황은 교착되는 듯했으나, 같은 해 7월 1일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다시 만나 70년 적대를 종식시킬 대장정의 새 장을 열었고, 여론은 여기에 대해 흔들림 없는 지지를 보냈다. 이 지지는 촛불민의의 연장이자, 촛불민의를 믿고 과감한 대북 화해, 북미 화해를 성공적으로 주도했던 새 정부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기도 했다. 이제 남북미 간의 평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의지와 역량이 새 정부가 ‘촛불정부’임을 입증하는 핵심 증표가 되었다. 이로써 양국체제로의 현실 변화는 남북미 간의 해빙 기류와 이를 지지하는 광범한 대중적 지지를 통해 안팎의 든든한 근거를 갖추었다. 코리아 양국체제는 어느덧 이미 시작된 사건이었다. 이제 코리아 양국체제는 학술적 발상이나 탐구의 수준을 넘어서 눈앞에 다가온 현실이 되었기 때문에, 양국체제에 대해 보다 체계적인 인식을 정립하여 임박한 변화에 준비된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에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상식이기 때문에 양국체제에 대한 이해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 상식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간단해 보이나 실은 간단하지 않은 문제인 것이다. 양국체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흥미로운 현실의 블랙박스를 먼저 풀어야 한다. 오랜 세월, 상식이 현실로 되지 못하게 가로막아온 모종의 강고하고 거대한 장애가 우리 자신의 안팎에 존재해왔던 것이다. 따라서 양국체제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 정립을 위해서는 먼저 이 거대한 장애를 분석하는 데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작업은 현실에서의 시도와 실패에 대한 분석을 포함한다. 양국체제로의 첫 전환 시도가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첫 시도는 너무나 짧은 시간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시도가 어떻게 가능했고 왜 실패했는지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양국체제에 대한 체계적 인식은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양국체제 발상이 억압되어온 까닭

먼저 양국체제에 대한 기본적인 상(像)을 그리기 위해, 한중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현재 한국과 중국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중국은 2003년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제1교역국이 되었고, 2017년에는 중국에 체류하는 한국인과 한국에서 체류하는 중국인이 각각 100만 명을 넘어섰다.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진 후 벌어진 놀라운 변화다. 편지 한 통 자유로이 오가는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이러한 큰 변화가 이뤄진 것은 한중 두 나라가 국가로서 서로를 인정하고 정식으로 수교했기 때문이다. 먼저 정식 외교관계가 이뤄지면 여러 변화가 물꼬를 터서 연이어 진행되게 마련이다. 한중 수교와 교류는 한중 양국에 큰 혜택을 주었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수교 이전의 냉전시대 한중 관계는 사실상 전무했다. 당시엔 중국을 중국이라 부르지도 못하고 ‘중공’이라 불러야 했다. ‘적성공산국가’를 마치 정상적인 나라인 것처럼 부를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교류는커녕 교류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적대와 금기의식이 지배했다. 러시아(구소련)와의 관계, 베트남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제 달라졌다. 실로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었다.

주지하듯 이러한 변화는 미소 냉전체제의 붕괴로 인해 가능했다. 더는 이념과 체제의 차이가 교류와 협력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수많은 일반인들이 서로 만나 협력하고 사업하는 데 이념의 차이를 물고 늘어질 이유가 없었다. 한중, 한러, 한베 수교국 정부 사이의 공무(公務)를 수행하는 데서도 서로의 이념이나 체제를 문제 삼아 마찰을 일으킬 이유가 없었다. 간단히 말하면, 코리아 양국체제란 한국과 조선 두 나라 사이에도 한중, 한러, 한베 사이와 같은 정상적인 교류와 협력이 이뤄지는 상태를 말한다.

물론 한국과 조선은 같은 민족의 두 국가이지 서로 민족이 다른 외국이 아니다. 같은 민족의 두 국가 간의 관계는 일반 외국과의 관계보다 긴밀하고 특수할 수밖에 없다. 양국체제란 일종의 ‘한 민족 두 국가 간의 특수한 관계’를 말한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 지금까지는 불행하게도 삼엄한 휴전선을 경계로 대치하면서 어떤 정상적 교류도 불가능한 상태에 머무르도록 지극히 부정적으로 작용해왔다. 일반적인 대외 관계와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철저히 가로막힌 상태였다. 그러나 과거 냉전시대 ‘적성국’이었던 중국, 러시아, 베트남과의 관계가 정상화되고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일반인 사이에서도 ‘왜 북과는 같은 민족인데도 그럴 수 없느냐’는 자연스러운 질문들이 생겨났다. 그래서인지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일반인 대상으로 양국체제를 설명하면 쉽게 이해하고 그 필요성을 인정한다. 기본적인 소개만 하고 나면 오히려 필자보다 더 적극적으로 그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서기도 한다. 그럼에도 왜 남북 간의 양국체제는 여태껏 현실화되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러한 발상조차 분명한 형태로 제기되지 못했던 것일까?5 흥미로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양국체제를 설명하다 보면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반응을 자주 접하게 된다. 뒤집어 보면, 비록 막연하게나마 그런 방향과 방식으로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생각을 분명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엇인가 그러한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을, 또는 그런 식의 생각을 표출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었다는 뜻이다. 정신분석의 용어로 말하면, 그러한 생각과 발상은 무엇인가에 의해 ‘억압’되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무엇이 그렇듯 양국체제적 생각과 발상을 억압해왔던 것일까?

먼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각 개인의 외부로부터 오는 억압이다. 이는 주로 그동안 북을 인정하지 않고 적대시했던 국가와 국가기관으로부터 오는 억압이다(남북이라는 말을 바꾸어도 상황은 정확히 같다). 일례로 우리는 오랫동안 ‘북한사람’을 우연이라도 만나게 되면 공포를 느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살아왔다.6 국내에서는 물론이려니와 해외에서도 그러했다. 북을 불법화하고 있는 국가 당국이 언제든 그런 ‘접촉’을 ‘간첩사건’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이러한 억압은 독재의 수단으로 오랜 세월 애용되어왔다. 어떤 정당한 비판도 ‘종북’이라 몰고, 어떤 비인도적 탄압도 ‘종북 척결’로 정당화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양국체제적인 발상을 떠올리기도, 꺼내놓기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앞 절에서 말했듯 촛불혁명을 전후하여 국내외의 상황이 크게 바뀌고 있다. 이러한 외적 억압은 점차 약화되고 있고, 앞으로 더욱 약화되어갈 것임에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런 외부 억압은 억압을 당하는 각자의 의식 속 내면화를 수반하기도 한다. 스스로 ‘종북’ 딱지에 걸리지 않도록 자기검열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소위 ‘내 귀의 도청장치’가 생긴다.7 이런 자기검열을 통해 북에 대한 경계와 공포, 적대감이 내면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듯 외적 억압에 의해 내면화된 의식 역시 결국 외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외적 억압 요인이 약화·소멸됨에 따라서 같이 또는 다소의 시차를 두고 약화·소멸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부터 비롯된 억압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이 억압은 원인이 내적인 것이기 때문에 앞서 살펴본 외적 억압이 사라져도 존속할 수 있다. 그러한 억압은 과연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보면 그것은 우리 내면의 ‘분단의식’임을 알 수 있다. 남북뿐 아니라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고 있는 모든 코리안들에게 ‘분단’이란 그저 단순한 한마디의 말, 언어가 아니다. 범상치 않은 단어다. 반드시 ‘비원(悲願)’이나 ‘한(恨)’과 같이 강렬한 정서적 에너지가 고도로 응축되어 있는 표현을 수반한다. ‘분단’이란 모든 코리안에게 깊은 고통과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수반하는 상처의 표현이다. 일제에 억눌리면서 맺혔던 한이 풀리나 했던 순간 야밤의 봉변처럼 닥쳐왔던 것이 민족분단, 조국분단이었다. 일본을 몰아낸 미국과 소련의 힘, 그리고 그들 사이의 냉전이 분단을 가져왔다. 민족의 심장에 꽂힌 가시가 반드시 뽑혀야 하듯, 이 ‘분단’은 반드시 거부되고, 부정돼야만 한다. 따라서 ‘분단의식’이란 강렬한 ‘분단부정의식’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분단’에는 또 항상 ‘극복’이란 말이 따라 붙는다. 그 결과 ‘분단의 비원’과 ‘분단의 극복’은 항상 짝을 이루는 말이 된다. 이러한 분단은 나뉘어 있되 결코 둘이 아님을, 아니 결코 둘일 수 없음을 말한다. 지금은 나뉘어 있지만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함을 정언적(定言的)으로 명령하는 말이다. 정신분석에서 무의식(이드)을 ‘억압’하는 것은 초자아(슈퍼에고)이고, 이 초자아의 명령은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과 닮아 있다. 정언명령을 닮은 이 ‘분단(부정)의식’이 ‘한 민족이 이룬 두 개의 국가’, ‘두 개의 코리아’라는 생각, 양국체제의 발상을 억압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무의식적 금압, 터부는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한중, 한러, 한베 수교 이후 현실이 크게 변했음에도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한반도에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상식”이 되었음에도 그렇듯 상식적인 양국체제적 발상을 제기한다는 것이 왠지 쉽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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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번 칼럼에서 중국공산당 19차 당 대회와 관련한 국내 언론의 보도가 시진핑 일인의 권력 강화에만 초점을 맞춘 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였다. 당시 국내외 언론들은 당 대회가 ‘시진핑 사상’을 강조하고 이후 그것이 헌법에 정식 수록되었음을 근거로 시진핑이 마치 마오쩌동과 같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고까지 해석하였다. 이 같은 해석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이번 호에선 ‘시진핑 사상’에 대해서 다루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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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논란이 된 소위 ‘시진핑 사상’의 실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국내외 언론에서 ‘시진핑 사상’이라고 약칭해서 부르는 이 이론의 정확한 명칭은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사상이다. 그런데 진작 이 같은 ‘시진핑 사상’ 이란 것을 뜯어보면, 이론 명칭에 ‘시진핑’ 이란 개인 이름이 들어간 것 외에는 별반 개인독재의 내용이나 요소들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예컨대 그 같은 사상이 탄생하게 된 동기에 있어서 보자면, “신시대에 어떠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견지하고 발전시킬 것인가, 중국특색 사회주의라는 이 중대한 시대적 과제를 어떻게 견지하고 발전시킬 것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둘러싸고” 이 사상이 탄생하였다고 하였다. (<중국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의 18기 중앙위원회 보고에 관한 결의>, 이하 <결의>로 약칭)

또 그것을 탄생시킨 주체와 관련해서도 분명히 ‘우리당’ 이라고 하였는데, 즉 시진핑 개인이 창안한 것이 아니라, “당과 인민의 실천 경험과 집단적 지혜의 결정판으로써” 생겨났다고 하였다. (위 <결의>)

우리는 여기서 ‘시진핑 사상’이 새로 탄생한 사상이나 이론 앞에 당시 당지도자 명칭을 붙여준다는 중국공산당의 관행이 적용된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시진핑 사상’은 그에 앞선 사상 이론과의 일정한 연관 선상에서 그것을 새롭게 계승 발전한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음도 발견할 수 있다. 즉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사상은 맑스레닌주의, 마오쩌동사상, 등소평이론, ‘3개 대표’ 중요사상, 과학적 발전관의 계승이자 발전이며, 맑스주의 중국화의 최신 성과” 라는 것이다. (위 <결의>) 이것은 시진핑이란 한 천재에 의해 갑자기 하늘로부터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난 이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단지 사상이론 앞에 개인의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 외에는, 우리가 소위 ‘시진핑 사상’으로부터 어떤 개인숭배의 요소를 발견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이 같은 사상이론이 나오게 되었는지 그 출현배경과 관련해서 중국공산당의 철학적 입장에 대한 이해가 일정 정도 필요하다. 필자의 관찰에 따르면 중국공산당은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대단히 중시하는 조직이다. 양자의 관계에 있어서 보자면, 변증법적 유물론의 인식론적 관점에 입각하여 실천의 일차적 우위성을 인정한다. 즉 인식(이론)은 실천으로부터 나오며, 또 그 진리성 여부도 실천을 통해 최종 검증된다고 간주한다. 이와 동시에 이론의 능동성, 즉 실천을 지도하는 과학적 이론의 중요성 또한 인정한다. 이 때문에 인민대중과 당의 일정한 실천 활동 뒤에는 반드시 이론적 총괄이 뒤따라야 하며, 이 같은 이론은 다시 인민대중과 당의 정확한 실천을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개혁개방의 40년의 역사는 이렇듯 끊임없이 이론과 실천이 상호 작용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중국은 13억 인구를 대상으로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결합하는 거대한 실험을 수행하면서도,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는 달리 별반 큰 실수를 범하지 않고 지금까지 잘 이끌어 올 수 있었다.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중국에서 대략 10년 주기로 매번 새 지도부가 들어설 때마다 왜 새로운 이론과 사상이 등장하는지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이 같은 중국공산당의 인식론에 입각한 것이며, 달리 보면 이는 그들의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형식상의 선전이나 개인의 우상화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실제로 중국의 각 지도자 이름과 관련된 사상과 이론을 보노라면 당시 중국이 부딪쳤던 핵심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예컨대 ‘등소평 이론’은 사회주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건설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학설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초기 개혁개방을 위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이후 장쩌민의 ‘3개 대표이론’은 개혁개방이 본격화한 상황에서 당 건설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이 담겨져 있다. 후진타오 시절의 ‘과학적 발전관’은 당시 20여년의 발전을 통해 초기 ‘선부론’ 전략과 양적위주 발전이 점차 한계에 부딪치게 된 상황에서, 어떻게 ‘균형발전’을 이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져 있다. 따라서 진작 중요한 것은 사상이나 이론 앞에 붙는 개인의 명칭보다도, 바로 이 같은 특정 이론이나 사상이 태어나는 배경과 동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제2기에 들어선 지금의 시진핑 지도부가 맞부딪치고 있는 문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중국사회 주요모순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간 중국사회에는 과연 어떠한 변화가 발생하였나? 주지하다시피 중국은 지난 세기 70년대 후반 개혁개방을 본격적으로 실시한 이래, 40년에 걸친 세월동안 거의 매년 9%이상의 성장을 하는 등 놀랄만한 경제 및 사회발전을 이룩하였다. 이에 따라서 인민대중의 욕구에도 변화가 생겼으며, 처음에는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주거할 데가 있는 생활(温饱)에 대한 바램으로부터, 점차 좀 더 나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생활로 변화 발전하게 되었다. 당 대회 보고서는 이 같은 시대 상황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중국특색의 사회주의가 신시대에 진입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주요모순은 이미 인민의 날로 성장하는 아름다운 생활(美好生活)에 대한 요구와, (이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주) 불균형과 불충분한 발전 간의 모순으로 변화되었다. 우리나라는 십 수억 명의 풍족하게 먹고 입는 문제를 안정적으로 해결하였으며, 전체적으로 볼 때 소강사회(小康社会)를 실현하였고, 머지않아 장차 전면적인 소강사회 건설을 이룰 것이다. 인민대중의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수요가 날로 광범위해지고 있으며, 물질문화 생활에 대해 더욱 높은 요구를 제기할 뿐만 아니라, 또한 민주·법치·공평·정의·안전·환경 등 측면에서의 요구가 날로 성장하고 있다. 동시에 우리나라 사회생산력 수준은 전체적으로 현저하게 제고되었으며, 사회생산능력이 많은 영역에서 세계 선두에 진입함으로써, 더욱 현저해진 문제는 발전이 불균형하고 불충분한 문제이다. 이는 이미 인민의 날로 성장하는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수요를 만족시키는 주요한 제약요소로 되고 있다.”(<19차 당 대회 보고>)

여기서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이란 명칭에서 언급되는 ‘신시대’ 개념에 대해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신시대’ 개념은 보통 ‘지구화시대’라는 국제적 개념을 지칭하거나, 인공지능 등 제4차 과학기술혁명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인류역사적 개념과는 달리, 단순히 중국사회의 내부의 변화를 설명하는 개념임에 유의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중국사회 ‘주요모순’ 변화의 배경이 된다. 또 이 같은 ‘신시대’는 몇몇 지도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중국 인민의 장기간의 노력과 투쟁을 통해 맞이한 것임이 강조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대회는 강조하길, 장기간의 노력을 경과하여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는 신시대에 진입하였다. 이는 우리나라의 발전에 관한 새로운 역사적 위치 규정이다.”라고 언명되고 있는 것이다. (위 <결의>)

그럼에도 한국 언론이 중국공산당의 당 대회를 보도하면서 일면에만 치우치고 그 전체적 메시지를 읽지 못하는 것은, 지난 번 지적했듯이 일차적으로는 공산주의국가는 독재국가이기에 그에 관한 보도는 특정 개인에의 권력집중에 맞춰져야 한다는 뿌리 깊은 선입관이 작용한다. 이와 함께 지적되어야 할 것은, 중국에서 ‘주요모순’ 개념이 갖는 중요성에 대한 국내언론의 무감각이다.

중국공산당에 대해 어느 정도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주요모순’이란 개념이 중국공산당 내에서 아무렇게나 사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이해한다. 그것은 마오쩌동의 대표적인 철학저술인 <모순론>에서 매우 중시되는 개념인데, 거의 ‘한 시대’를 규정할 때나 그 개념을 사용하며 또 그 변화를 논한다. 지금 이 같은 ‘주요모순’이 다시 거론되는 것은 시대적인 변화가 발생했다는 뜻이며, 이 ‘신시대’에 대한 규정과 관련해서는 앞서 언급했듯이 그간 대중들의 급격한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인한 인민 요구의 큰 변화가 그 주요한 내용을 이룬다. 이 때문에 과거와는 달리 단순한 경제성장이나 물질적 만족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및 정치민주화 그리고 생태환경에 대한 요구와 같은 정신적 요구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인민이 주인인 사회주의체제는 분명 이 같은 대중의 요구를 일차적으로 만족시켜주어야만 하는데, 이 때문에 앞으로 정치적으로 본다면 민주주의가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실제 시진핑 자신이 행하였던 19차 당 대회 보고의 주요 내용들은 대부분 그와 관련된 걸로 채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이번에 당규와 헌법 개정을 통해서 삼차 연임 제한을 철폐한 목적이 단순히 시진핑 일인권력의 강화를 위한 것이었다면, 이는 아마도 이 같은 시대적 흐름을 스스로 거스르는 것이 될 것이며, 당이 언급한 ‘주요모순’ 규정과도 충돌되는 결과를 빚게 된다.

필자가 지난여름 중국을 방문했을 때 그곳 벗들과 나눈 대화를 여기서 잠시 소개하자면, 그들 역시도 시진핑의 삼차 연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해석은 한국 사람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역사적으로 관건적 시기에 처한 지금의 중국으로서는 시진핑 개인의 삼차 연임 가능성은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2020년 전면적인 소강사회 실현, 2035년 기본적인 현대화 목표 달성, 2050년 현대화된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목표를 지향하는 중국으로서는, 우선 지금부터 2030년까지의 기간을 무사히 넘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대내외적인 도전과 위험 요소도 훨씬 줄어들 것이며, 이에 따라 중국은 경제와 사회 전반에 있어 좀 더 안정적인 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미국의 대중압박이 날로 강화되고 이에 따라 대외적인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시진핑과 같이 기층에서 단련되어 이미 그 지도력이 검증된 지도자의 존재는, 혹시 그로부터 초래될지도 모르는 ‘독재’의 위험성보다도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기를 무사히 통과하고 나면, 중국사회는 어차피 몇몇 정치지도자가 아닌 보다 안정적인 사회적 기반위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당사자들의 판단은 확실히 국외자의 시각과는 다름을 느낄 수 있다. 물론 8억이라는 세계에서 제일 큰 인터넷 인구를 갖고 있는 지금의 중국에서 과거와 같은 일인독재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들 생각의 기초에 깔려있다.

금, 2019/01/0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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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천하

이병한 선생님, 새해 벽두에 보내주신 개벽소식 잘 받아보았습니다. 마침 새해 첫 출근길이었습니다. 천지가 잠자고 있을 때 서울에서 보낸 편지를 천지가 깨어날 무렵에 열차 안에서 읽을 수 있다니, 새삼 물질개벽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첫날 일과를 마치고 대학 근처의 심야카페에 와서 답장을 쓰고 있습니다. 곧 자정이 되려 합니다.

편지를 일독하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논어』에 나오는 “후생가외”라는 말의 의미였습니다. 대개는 후학의 <실력>의 출중함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인데,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실력>보다도 <힘>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은 세대의 기상이 넘쳐 기성세대가 두려움을 느낄 정도라는 것이죠.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프레시안》에 쓰신 글의 부제가 “유학국가에서 동학국가로”여서 깜짝 놀랐는데, 이번에는 “개벽국가의 탄생”이라는 표현에 거듭 놀랐습니다.

제가 아무리 개벽파를 자칭한다고 해도 “동학국가”나 “개벽국가”와 같은 대담한 표현은 감히 쓰지 못합니다. 지식이나 지혜는 배울 수 있을지 몰라도 기개나 기운은 압도당하는 것이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정보가 공유되는 세상에서는 “역발산(力拔山) 기개세(氣蓋世)”와 같은 패기가 정말 중요하겠다 싶습니다. 지난 겨울에 소개해주신 하자센터의 ‘공공하는 청년들’에게서도 같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트럼프가 한반도의 대통령인양 나대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거리로 뛰쳐나와 남북평화를 노래하기 시작했더니 거짓말처럼 남북대화가 시작됐다는 그 용감한 십대들 말입니다. 평화의 뒤에는 용기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이런 패기는 젊은 세대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 있었던 원광대학교 시무식에서도 박맹수 신임총장께서 “개벽대학”이라는 표현을 쓰시더군요. 신임 이사장님도 신년사에서 같은 표현을 쓰셨고요. “원광대학이 다시 개벽하여 개벽대학으로 만들자”는 취지였습니다. 이 기세에도 제가 압도당했습니다. 두 분 다 저보다는 한 세대 위의 분들입니다. 이번에는 “선생가외”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원불교 이념으로 “개벽의 일꾼”을 길러내자고 개교한 원광대학교가 왜 그동안 “개벽대학”이라는 슬로건을 내놓지 못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혹시 뭔가에 억눌려 주저주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개화(서학)나 척사(유학)에 억눌려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원광대학교의 모습이 그동안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첫 번째 화두로 제기하신 중국의 ‘다시 천하’ 이야기,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제가 모르는 중국의 근황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득 “천하위공(天下爲公)”을 “천하이공(天下二公)”으로 바꿔야 하는 시점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이 스스로를 ‘공’(보편)이라고 자처하던 시대에서 미국이라는 새로운 ‘공’이 등장하게 되었으니까요. 고공(古公)과 신공(新公)의 상박(相搏)이라고나 할까요? 아마도 이 이공(二公) 사이에서, ‘척사’와 ‘개화’ 사이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서, 김태창선생님 식으로 말하면 ‘공공’을 열기 위해서, ‘개벽’을 들고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식의 근대의 시작이었고, 그래서 “한국 근대의 탄생”은 “한국 개벽의 탄생”으로 바꿔 말할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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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시 근대

사실 제가 ‘한국의 근대’라는 진부한 주제를 다시 꺼낼 수 있기까지에는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의 ‘인도-아프리카 연구’와 선생님의 『유라시아 견문』이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동학에서 원불교에 이르는 개벽종교만으로는 “개벽이 근대”이고, 그 근대는 “영성적 근대”였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아프리카가 그랬고, 인도가 그랬고, 이란이 그랬고, 러시아가 그랬고, 지금도 그렇게 “성속합작”을 하고 있다는 전문가와 견문가의 ‘증언’을 듣고 나서야 확신이 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선생님께서 작년 5월 1일에 원광대학교에서 발표하신 <나와 동북아시아/유라시아 연구>의 충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치 『장자』에 나오는 우물 안 개구리가 동해의 자라에게 바다이야기를 처음 듣고 어안이 벙벙해졌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동안 동아시아 전통과 서구 근대에 갇혀 있던 자신의 좁은 시야를 뼈저리게 반성하게 해준 자리였습니다. 30여 년 전에 서울에서 김용옥 선생님의 동양학 저서를 처음 접했을 때, 그리고 15년 전에 일본에서 Brook Ziporyn 교수의 노장 해석을 처음 접했을 때 이후로 받은 세 번째 지적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작년에 꼽은 최고의 글은 당연히 선생님의 견문록입니다. 특히 《프레시안》에 실린 두아라 교수와의 인터뷰, 1979년의 이슬람혁명 이야기, 그리고 《한울안신문》에 실린 인터뷰가 압권이었습니다. 세상이 ‘다시 개벽’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칭 ‘개벽파’라면서 원광대에 나타나셨을 때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습니다. 이제서야 비로소 우리의 치우친 근대사를 다시 쓸 수 있는 고수가 나타났구나 하는 희망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도 한국의 젊은이들 중에는 과거의 제가 그랬던처럼, 개화와 척사 사이에서, 서학과 유학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적어도 다음 세대에게만큼은 제가 걸었던 것과 같은 정신적 방황의 길을 반복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앞 세대를 원망하면서 살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디 잊혀진 ‘개벽사’를 복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돕겠습니다.

 

3. 부채와 치유

몇 년 전에 우연히 서울의 홍은동에 있는 대종교 총본사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총본사라고는 하지만 굽이굽이 비탈길을 올라가서 산꼭대기에 허름한 건물이 두어 채 있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더 놀란 것은 창고에 방치된 채 쌓여 있는 방대한 대종교 경전과 문헌들이었습니다. 그 귀중한 문서들이 전혀 관리되지 않은 채, 방 한 곳에 랩으로 쌓여 있었습니다. 도서목록도 없었고 자료정리도 전혀 안 되어 있었습니다. 자료실이나 박물관 같은 것은 엄두도 못내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럴 인력이나 재정도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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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중추였음에도 방치되어 있는 대종교 문헌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장서각이나 안동에 있는 국학진흥원에 비교하면 너무나도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유학 연구에는 나라에서 방대한 재정을 쏟아 부으면서 정작 항일독립투쟁을 가장 치열하게 전개했다고 하는 대종교에 대해서는 왜 저렇게 냉정하고 무심하나 싶었습니다. 신종교라는 편견이 있어서일까요? 이렇다 할 가문이 없어서일까요?

저는 비록 종교는 없지만 그냥 한국의 소중한 사상자원으로 느껴졌습니다. 가문을 떠나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주벌판의 혹한의 전장에서, 혹독한 감옥에서, 수련을 해가면서 써내려간 경전과 문헌들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울대 규장각, 고전번역원, 안동의 국학진흥원… 온통 조선시대 유학을 연구하는 기관들뿐입니다. 이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한국학의 편중과 독식을 뼈저리게 절감하게 해준 사건이었습니다. 유학이 싫어서가 아니라 불균형은 불건강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오구라 기조 교수가 한국인들은 ‘우리’ 아니면 ‘남’이라고 했는데, 유학은 ‘우리’지만 대종교는 ‘남’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대종교는 비록 ‘개벽’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을지 몰라도 ‘개천(開天)’을 말했습니다. “새로운 하늘을 연다”는 개천은 “새로운 세상을 열자”는 개벽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종교도 큰 틀에서는 개벽종교이자 개벽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개벽이 ‘부채’로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전공에 상관없이 이 땅에서 인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통과의례처럼 연구해야 할 숙제 같은 느낌입니다.

개벽을 모르고서 한국의 근대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최근에 창작과 비평사에서 나온 『문명의 대전환을 공부하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근대성에 관해 토론한 책이었는데, 어느 선생님께서 “개벽파는 척사파의 일종이 아닌가요?”라는 발언을 하시더군요. 불과 몇 년 전의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개벽사상을 모르고서 한국의 근대를 논한다는 것은 계몽주의를 모르고서 서구의 근대를 논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한국의 근대에 관한 모든 논의는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모래성을 쌓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개벽의 역사는 어두운 과거, 패배한 역사라서 보기가 싫다고도 하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피해가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면서 개벽사를 읽어내려 가다 보면 거기에도 밝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부채’이자 동시에 ‘치유’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지적하신대로 중국의 지식인들이 천하를 고수하고, 일본의 위정자들이 개화에 기댈 때, 한국의 민중들은 개벽을 창안했기 때문입니다.

 

4. 개벽의 힘

지난 연말에 일본의 동북대학에서 ‘토착적 근대’를 주제로 한일공동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발표자로 참석하신 동경대학교의 이타가키 유조 명예교수께서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동학의 보편성을 설명하는 일이다”는 총평을 하셨습니다. 주최측인 동북대학의 가타오카 류 교수는 학술대회 후기에서 “한국의 동학이나 촛불혁명과 비견할만한 일본사상의 지하수맥을 발견하는 작업을 한국과의 공동연구의 형태로 지속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근대성을 주제로 몇 년 동안 지속적인 학술교류를 한 끝에 마침내 양국 연구자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졌음을 느꼈습니다. 비록 소수의 인원이었지만 해원상생의 가능성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이 “개벽의 힘”입니다.

일본 동북대학에서 열린 학술대회

학술대회가 끝나고 우리는 일본적 개벽의 흔적을 찾기 위해 하치노헤에 있는 안도 쇼에키 자료관을 방문했습니다. 18세기에 동북지방에서 활약한 안도 쇼에키는 극심한 기근에 3천여명의 농민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당시의 사무라이 지배층을 “성인의 이름을 빌려 무위도식하는 도둑놈들”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성인 중심의 지배질서를 정면으로 비판한 동아시아 최초의 사상가였습니다. 동학식으로 말하면 향벽설위에서 향아설위로의 전환을 시도했다고나 할 까요? 비록 동학처럼 세력화가 되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메이지시대에 농민들과 함께 공해반대 운동을 벌인 다나카 쇼조의 유적지를 찾아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지적하신대로 개벽의 가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서구 근대의 중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최근에 일본에서 활동하는 어느 중국인 연구자가 한국에 와서 “전 세계에서 서구 근대의 독을 가장 많이 먹은 나라는 한중일 삼국이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정곡을 찌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정작 중독이 된 당사자들은 이 말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아프리카 케냐의 작가 구기와 지 옹오는 “정신의 탈식민지화”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 디톡스 작업이야말로 개벽학에서 말하는 정신개벽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이 아직도 개벽이 여전히 진행중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으로 첫 번째 답신을 마치고자 합니다. 좋은 대화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금, 2019/01/1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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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작년 북한농업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강연에 중국인민농업대학의 원로인 원톄쥔 교수를 초빙하게된 배경에는 이병한 다른백년 이사와 김유익선생의 남다른 노력이 있었습니다. 김유익 선생은 농업과 농촌의 미래적 가능성을 바라보며 원교수가 추진하는 중국의 신향촌 건설 사업에 참여하여 몸소 체험하고 있는 이 시대의 참으로 귀한 분입니다. 중국의 소위 삼농 사업은 실히 인류의 문명사적 대실험입니다. 생태문명의 실현이라는 대명제와 더불어 농민공을 합쳐 농촌에 적을 두고 있는 인구가 9억에 육박하는 가운데, 과학기술과 ICT 산업의 눈부신 발전으로 기존의 산업에서 일자리가 새로이만들어 지지 않는 상황을 맞이하며 중국 지도부는 젊은 세대들이 농촌에서 미래를 찾도록 정책적 지원과 조언을 진행하고 있으며, 다른 측면에서 미패권주의의 말기적 패악에 대응한 근거지로 중국 농촌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以農村包衛覇權 이랄까요. 오늘부터 시작되는 김유익 선생의 칼럼 ‘신향촌건설’에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베이징에서는 3월초부터 2주간에 걸쳐, 흔히 양회兩會로 불리는 인민대표자회의와 정치협상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어김없이 중국 언론 지면은 그 소식으로 도배된다. 올해도 2월18일에 나온 (2019년)중앙 1호 문건으로 시작되는 중국의 대외 정치 메시지 발표 일정은 그렇게 이어진다. 그 메시지에 공통적으로 작년과 올해, 제일 먼저 언급된 정책이 무엇일까 ? 중미무역협상, AI와 전기자동차, 5G같은 첨단기술개발, 아니면 홍콩, 마카우, 광둥 지역의 11개도시를 선봉으로 삼는 粤澳港大湾区 개발?

정답은, 한국말로 읽으면 다소 촌스럽게 들릴 수도 있는, ‘향촌진흥鄉村振興정책’이다. 이게 중국의 새마을 운동 같은 건가 ? 사실 아닌 게 아니라 중국은 10년도 전에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열심히 벤치마킹했다. 그래서, 2005년부터 ‘신농촌건설운동’ 정책을 추진했었고, ‘화끈한’ 재정투입을 통한 그 성과가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순탄하게 넘기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원톄쥔, “토지개혁으로 위기를 극복해온 중국” 녹색평론 2018년 1-2월호). 향촌진흥정책은, 어찌보면 중국 농촌 구석구석까지 도로, 전기, 수도, 전화, 인터넷 등의 ‘5통通’인프라를 완성한 ‘하드웨어판’ 신농촌건설 정책의 ‘소프트웨어판’ 후속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중국정부의 양회 공식 선전 웹사이트, 정책 심화 이해를 돕기 위한 문답식 설명 – 1번으로 향촌진흥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향촌진흥정책은 2017년 연말 세간의 화제가 됐던 19대 공산당 전당대회의 가장 중요한 의제중 하나였는데, 한국을 포함한 해외언론은 주로 시진핑 장기집권 레짐을 위한 헌법개정논란에 치중하다보니, 소홀히 다루어진 감이 없지 않다.

중국을 논하다 보면, 최근의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문제, 아니면 경제나 외교정치영역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는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중국 정부가 ‘삼농문제’(三農- 농민, 농업, 농촌)를 重中之重 – 가장 중요한 정책 현안으로 다룬 것이 이미 16년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 흐름의 형성과 실천에는, 흔히 상상하기 쉬운, 대약진 운동이나 문화혁명과 같은 관제 프로파간다와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신향촌건설운동’이라는 민간 사회운동의 개입이 존재한다.

신(新)향촌건설운동이라 했으니, 앞서 향촌건설운동이 있을법한데, 그렇다면 역사공부부터 해보자. 올해가 삼일운동 백주년이라 새로운 다음 백년에 대한 다짐이 꼭 필요한 곳이 이 지면인데, 바로 그 당시, 굴곡많은 동아시아 근대화 여정의 초입에 벌어졌던 이웃나라의 이야기이니 우리의 역사 회감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에도 100여년전에 근대화를 고민하던 기라성같은 선각자들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마지막 유학자’로 불린 량슈밍(梁漱溟 1893~1988) 선생이 있다. 그는 약관의 20대에 명문 북경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됐는데 그 좋은 자리를 박차고 농촌으로 갔다. 그 핵심문화가 농업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농민의 나라 중국에서, 자주적 근대는 농민의 자각과 농촌의 변화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불교철학과 신유학의 대가로서, 제(諸)문명의 사상을 깊이 연구하여, 서구사상, 인도철학, 중국의 사유를 비교한 역저 ‘동서문화와 철학’을 남긴 국학대사(國學大師)답게, 동양 고유의 정신과 문화, 제도와 사회구조를 기반으로 어떻게 중국의 근대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상아탑안에만 안주할 수 없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던 그는, 직접 농촌으로 들어가, 향촌의 문화와 자원을 기반으로 한 근대화 개혁 실험을 진행했다. 량슈밍을 비롯한 중국의 지식인과 계몽청년들이, 향촌을 기반으로 저마다 중국의 전역에서 벌였던 실험이 시작된 계기가 된 것은, 동아시아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친, 특히 한국과 중국에게는 감격과 통한이 교차하는 사건이었던 1894년 갑오동학농민운동과 바로 이어진 청일전쟁이다. 굴욕적인 패전과 전쟁부채 배상 등으로 인한 막대한 손실이, 중국인들을 움직인 것이다. 이 당시에도 대다수의 지식인들이 ‘부국강병’의 꿈을 이루기 위해, 위로부터의 계몽을 통한 서구적 민주, 과학의 근대 혁명을 역설하고 있을 때, 또다른 일군의 지식인들은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꾀하며, 향촌으로 뛰어들었다.

특히, 허베이河北성 딩定縣현 쟈이청翟城村마을은 1904년에 지역엘리트였던 미춘밍米春明, 미디강米迪刚 부자의 마을자치 실험이 시작된 곳으로, 중국 역사상 최초의 향촌건설운동 실험지로 알려져 있으며, 1926년, 대표적인 향촌건설운동 지식인/활동가 중 하나인 옌양추晏陽初가 이를 이어받아 딩현에서 평민교육 운동을 펼쳐나가기도 했다. 또, 아들 미디강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의 농촌자치 실험을 공부하고 돌아왔다하니, 동아시아 삼국의 향촌건설과 농촌공동체 운동은 그 역사적 연원이 서로 몸을 섞고 있음에 틀림없다.

20년~30년대에 황금기를 맞았던 향촌건설운동은 중국 전역의 600여개 단체 1,000여개가 넘는 실험마을을 헤아릴 정도로 활성화됐다고 한다(中國鄉村建設 百年圖錄, 西南師範大學出版社,2018).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과 함께, 대부분 중단되었고, 일본의 침공을 피해 국민당 임시정부가 위치했던 충칭重慶에서 명맥이 유지되는 정도였다. 이곳 지역의 기업가인 루쭈어푸魯作孚의,항일활동과 병행된 향촌건설사업은 마침 이곳으로 피난왔던 량슈밍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일제의 패망, 국공내전을 거쳐,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됐을 때, 량슈밍과 같은 일부 향촌건설운동 활동가들도, 자연스럽게 새로운 국가의 건설에 참여하고 있었다. 중국 공산당의 승리는 마르크스/레닌이 서유럽의 상황에서 이론적으로 설파한 것과 같은, 도시 노동자가 주축이 된 것이 아니라, 농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량슈밍선생 (사진: 바이뚜백과사전)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중국 공산당의 향촌혁명파와 향촌건설파는 마오쩌뚱과 량슈밍의 관계가 협력과 긴장사이에서 줄타기를 한 것과 같이, 실천방법과 핵심주제차원에서 다른 방향을 취하고 있었다. 전자가 주로 무력투쟁에 의한 토지혁명과 그 운용을 지속적으로 고민했다면, 후자는 문화와 교육을 통한, 주민들의 자치역량 강화에 방점이 찍혀있었다. 하여, 기실 상당수의 향촌건설운동 참가자들은 대륙을 떠나 대만 등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1938년 량슈밍과 옌안延安의 토굴에서 밤새워 토론하는 마오쩌뚱 (중국 인민대학교 ZHOU Li교수)

이제 현재형 향촌건설운동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필자는 2015년부터 매년, 중국CSA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공동체지원농업)대회를 참관할 기회를 얻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국여성농민연합회, 한살림협동조합, 홍성의 풀무학교 공동체와 같은 단체들이 이 대회에 초청을 받아 연사로 참여하는 데, 다리 놓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작년 연말에도, 중국 각지에서 1,000여명 이상의 국내외 농민과 활동가, 학자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성황리에 행사를 마쳤다. 이번 행사가 10회차였고, 중국 최초의 CSA 농장이라고 일컬어지는 베이징 교외의 작은당나귀 농장도 마침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국내에는 ‘채소 꾸러미’로 더 잘 알려진 CSA 개념을 실천하는 농장들이 이미 중국 전역에 2,000개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면, 어떤 이들이 이런 농장을 운영하고 있을까? 이들 대부분이 바로 중국에서는 반향청년(返乡青年)이라 불리는 귀농청년들이다. 또 이들중 대다수는 소농이자 가족농장, 혹은 우리로 치면, 영농조합법인 정도의 중소농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소비자가 얼굴을 아는 생산자를 만나는 것이 CSA의 핵심요건중 하나임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이다. 또 필연적으로, 친구나 가족같은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꼭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해야 하고, 그래서 생태농업, 즉. 유기농 혹은 자연농을 경작방법으로 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신향촌건설운동’의 성과인 것이다. 그럼, 대체 누가, 왜 ‘신향촌건설운동’을 제창하고 참여해왔을까? 그것은 민간 조직의 NGO 활동가들과 함께하는, ‘깨인’ 생산자와 소비자들이다. 그리고, 100년전 향촌건설운동에 량슈밍이 있었다면, 신향촌건설운동에는 중국 삼농문제의 최고 권위자중 한명이며 스스로를 역시 이 운동의 견결한 자원활동가로 칭하는 인민대학의 원톄쥔(溫鐵軍)선생이 있다.

중국인민대학교 원톄쥔(Wen Tiejun) 교수

원톄쥔은 중국을 연구하는 전세계의 학자들에게, 중국 근대화에 대한 독창적 분석으로 널리 알려진, 중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중 한명이다. 그런데, 량슈밍이 그러했듯, 단순히 뛰어난 학자가 아니라, 사회운동가로서의 활약이 적지 않다. 국내에도 그의 대표적 저작인 ‘100년의 급진’ 등이 소개되어 있는데, 시진핑 시대에, 관변화되어 가거나, 독립적인 목소리를 잃어가는 중국의 ‘지식인’들에 대한 실망이 적지 않음에도, 정부와의 마찰은 피하면서, 계속 중국 사회의 진보를 위해 노력하는 그에게 여전히 기대를 거는 이들이 많다.

대학에서 출발한 학자가 아니라, 연구관료 출신이었던 그는 80년대부터 현장을 발로 뛰면서 농촌문제를 연구하다가, 2001년부터 ‘신향촌건설운동’의 기치를 내걸게 된다. 정책제안을 통한 위로부터의 개혁만으로는 목표하는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었음을 알았기 때문에, 대학생들과 함께, 농촌으로 들어가서 농민과 연대하기 시작한다. 청소년 시절 문화대혁명기의 상산하방 경험을 통해, 11년간 기층 농민의 생활을 체험했던 그였지만, 이를 개인적 트라우마로 남기지 않고, 자기수행과 사회변혁의 재료와 동기로 삼아, 향촌과 중국의 변화에 헌신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중국 전역의 대학에서 이루어진 방학중 농활과 정기적인 교내 독서모임 등으로 유지되던 산발적인 참여활동은, 향촌건설운동의 효시가 됐던 허베이성 딩현에 2003년 만들어진 ‘옌양추농민학교’와 2004년 베이징에 만들어진 ‘량슈밍향촌건설센터’의 설립과 함께 본격적인 사회운동으로 진화하게 된다. 옌양추농민학교에서는 의식이 있는 전국의 농민을 모아서, 협동조합, 생태농업, 생태건축 등을 무상으로 교육하였다. 량슈밍센터에서는 매년 10~20여명의 젊은이를 선발, 농민학교에서 수학한 농민들이 협동조합과 마을만들기 등을 진행하는 실험지로 1년 이상 파견하여 생활과 학습, 향촌건설 사업을 병행하게 하였다.

엔양추 농민학교는 지역 정부의 간섭으로 결국 2006년에 문을 닫게 됐다. 다른 한편으로 활동가들은, 농촌의 변화를 위해서는 도시 소비자들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됐다. 그래서, 농민학교 운영에 참여했던 이들 중 일부가 베이징으로 집단 이주하여, 유기농재배쌀과 같은 생태농업 생산물 판로를 개척하기 위한, 소비자 협동조합 실험을 시작하는 동시에, 2008년 작은 당나귀 시민농원을 설립하게 된다.

당시의 ‘빠링호우’(80년대 출생) 대학생들과 이에 영향을 받은 젊은 농민들이 지금은 중국 각지의 농촌으로 들어가, 유기농 농장운영과 마을자치 실험을 하고, 도시에서 학계, NGO, 사회적 기업 활동을 통해 소비자와 생산자를 잇는 역할을 하며 신향촌건설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30대의 핵심일꾼들이다.

중국의 귀농청년들

이들이 사명감으로 이 운동에 임하게 된 것은 중국 농촌이 90년대에 겪은 파괴적 변화를 당사자로서 경험한 때문이다. 78년에 시작된 중국의 개혁개방의 시발점은 사실 우리가 상상하는 북경이나 상해가 아니라, 농가책임경영제(大包干)를 처음 실시한 안휘성 봉양(鳳陽)의 한 시골마을이었다. 국가가 더 이상 개별 농가의 생계를 책임지지 않는 대신, 개인 노력의 성과를 인정해주겠다는 계약에, 18명의 농민이 수결로써 합의한 것이다. 이렇게 생산성이 향상된 농업은 당시 농촌 지역 공동체에 기반한 중소규모 마을기업인 ‘향진(鄕鎭)기업’ 육성과 함께, 농촌과 도시의 소득 격차를 줄이는데 기여하여 80년대 중국 농촌의 르네상스를 가져온다. 하지만, 88~89년의 인플레이션에 동반한 거래수단의 화폐화, 연안지역을 중심으로 한 도시화, 수출 제조업 중심의 공업화, WTO가입을 계기로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적극적으로 편입하기 위한 금융화 흐름이 강화된다. 이에, 농촌은 환경파괴와 더불어, 인력과 자본의 심각한 유출로, 공동체가 해체되는 수순을 밟게 된다. 국가 현대화의 비용을 농업, 농촌, 농민에게 전가하는 ‘삼농문제’가 최악의 상태로 치달은 것이다. 결국 앞서 언급한 젊은이들은, 유년기에 가난하지만 먹고는 살만하고 아름다웠던 농촌을 기억하는 동시에, 그 쇠락의 과정을 생생히 지켜 본 마지막 세대였던 것이다.

공동화되어가는 중국 농촌

중국이 농민들의 지지속에 성공한 공산혁명후에도 농민과 농촌의 희생을 요구했던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49년 신중국 건국직후 발생한 한국전쟁의 참화속에 적대국인 미국과, 공산권의 라이벌 맹주인 소련에 맞서기 위한 전쟁무기 생산기술과 자본이 긴요했던 마오쩌뚱은 농민 노동력을 시초자본 축적의 도구로 삼았다. 량슈밍이 이때 공식 회의석상에서, 농민을 배신하지 말라며 마오쩌뚱에게 항의하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 것은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그래서, 원톄쥔 등은 21세기에, 현대화를 추구하는 발전주의가 농민들의 삶과 농촌을 피폐하게 만든 것에 대해서, 다시 문제를 제기한다. 2000년 농촌지역 당간부였던 리창핑李昌平이라는 이가 당시 주룽지 총리에게 공개서신을 보내, “농민의 삶은 진정 고통스럽고, 농촌은 심각한 빈곤에 찌들어 있으며, 농업은 매우 위험합니다(农民真苦、农村真穷、农业真危险)라고 표현한 것이 ‘삼농’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 문제의식을 상당부분 수용한 중국 공산당 정부는 신농촌건설을 시작했고, 2012년부터 생태문명 건설이라는 목표를 헌법에 명시했으며, 2018년부터 앞서 언급한 ‘향촌진흥’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이 안에는, 생태농업과 6차산업(6차산업은 1차 (농업생산), 2차 (가공), 3차 (서비스 산업)이 결합된 농촌의 융복합 산업을 지칭한다) 육성등을 통한, 농촌의 환경과 경제적 삶의 질 개선정책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데, 인프라의 문제가 상당부분 해결되고 절대빈곤을 벗어난 지금 시점부터 농촌과 도시의 문화적 생활수준 격차와 실질적 경제능력 격차를 줄이려는 목표를 설정하게 된 것이다.

중국 정부가 삼농문제를 중시하게 된 것은, 농민혁명정부라는 대의명분에 충실하기 위함이 아니라. 환경오염문제, 먹거리 주권과 안전문제, 도시화의 문제가 체제의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이미 2007년에 중국의 제1환경 오염원은 도시나 공업이 아니라 농업임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바 있다. 항생제와 촉진제, 그리고 첨가물 범벅인 중국의 농축수산물 문제는 더 이상 스캔들 축에도 들지 못한다. 이미 60%이상 진행된 도시화를 감당하기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미 실제 생산에 참여하는 농민은 2~3억도 안될지 모른다고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데, 농기계, 화학비료, 농약 등 과도한 에너지 사용과 환경파괴를 불가피하게 초래하는 관행농이 아니면, 소수의 농민이 그 많은 인구를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가 ? 이전 세기 서구열강처럼 해외 식민지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 한국같이 농민인구가 5% 미만으로 줄어들거나, 식량 자급률이 20%대로 떨어지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강대국’은 역사속에 존재한 적이 없다.

신향촌건설운동에는 원톄쥔교수뿐 아니라 많은 대학과 연구소에 재직하는 상당수의 지식인들도 참여하고 있다. 긴밀하게 조직화된 형태는 아니지만, 그들은 소위 ‘대향촌건설운동’이라는 기치하에, 다양한 학술포럼이나 활동가, 농민들, 소비자들도 참여하는 행사에서도 지속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이들은 현장에 기반한 정책 연구와 제안, 향촌건설운동의 역사와 이념 정립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동시에 대중들과의 소통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리고, 원톄쥔 교수의 활동과 연구가 중앙과 각급 지역정부와의 일정한 긴장관계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정책에 반영됐듯이, 이들 그룹의 연구 성과가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중국 정부의 정책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향촌진흥정책의 얼개와 세부 내용을 살펴 보면, 소농/가족농 중심의 생태농업, 도농교류, 시민하향, 전통문화와 생태자원에 기반한 향촌의 6차산업 발전 등이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신향촌건설운동의 15년에 걸친 실험 성과나 목표와 정확히 일치한다. 다만, 권위주의 정부의 성격상, 여전히 자본투하와 상명하달 지시를 통한 대중 동원이 정책의 주요한 실행수단인 반면, 신향촌건설 진영의 학자들은, 농민들의 재조직화를 통한 자발성과 주체의식 배양이 최우선 과제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어 방법상의 이견이 존재한다.

또, 이런 정책 흐름에 발맞춰 시민하향과 동시에 진행되는 자본하향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자아내게 하는 지점이다. 제한된 정부자원과 중앙, 지방정부의 급격한 채무 증가를 신경써야할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민간자본의 참여가 요구된다. 또, 도시의 부동산 개발에 의한 초과 이윤이 더 이상 녹녹치 않은 상황에서, 민간자본도, 투자처를 물색하며, 향촌진흥정책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한편으로 물적 자본뿐 아니라, 문화자본을 갖춘 도시 중산층과 고학력자, 전문가 그룹의 참여가 향촌진흥 성패의 관건중 하나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미, 도시 생활의 경쟁적 환경에 지친, 젊은 중국인들이 귀농귀촌에 자발적으로 동참하기 시작하거나, 향촌생활경험을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혹은 소비트렌드로 받아들이는 것도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중국의 국내농촌관광 매출액이 이미 2018년 연말 기준으로 8천억 위안, 즉 한화 135조원에 상당하는 금액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중국인민망 기사).

이때, 정부와 자본, 다양한 유관활동에 참여하거나 귀농귀촌한 중산층 시민 그리고, 현지 농민들이 협치를 이루고, 공정하게 과실을 나눌 수 있는,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신향촌건설 연구자들은 그러한 문제의식 속에 다양한 정책 등을 연구하고 있는데, 필자는 매달 한편씩 이들의 연구 성과를 번역 소개하려고 한다. 이 글들이, 국내 독자들의 중국 사회에 대한 이해범위 편향 문제를 다소나마 해소하고, 더불어, 양국 연구자와 활동가, 그리고 인민들의 보다 폭넓은 연대 및 교류의 출발점으로 작동하기를 기대해 본다.

[대산농촌문화] 통권 101호(2019신년호)에 게재된 글입니다(기고한 글을 일부 수정하고 대산농촌재단의 허락을 득하여 본지에 실린 것임).

목, 2019/03/2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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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이르러 인간은 종교 철학에 있어서 개벽의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는 21세기의 존재론이 실체론에서 생성론으로 전환을 하게 되면서 종교철학 또한 이 영향으로 벗어날 수 없기에 당연한 결론입니다. 하여 실체론에 입각한 유일신 종교들은 이제 소명을 다하게 되면서 21세기의 종교는 표층종교에서 심층종교로, 믿음의 종교에서 깨달음의 종교로, 타력의 구원에서 자력의 체험으로 근본적인 전환을 다시 모색할 수 밖에 없는 시점이기에 필자는 새로운 종교철학의 태통을 위한 단서를 찾아내기 위해 인류 사고의 원형태인 신비주의에 대하여 먼저 모색을 시도해보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신비주의(Mysticism)라 함은 절대적 존재(ultimate reality)와의 합일을 의미하는 종교적 양식을 일컫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존재론에 따라 신비주의의 의미가 전혀 다르게 갈라지는데, 예를 들면 실체론의 입장중 하나인 일원론의 관점을 따르면 개체는 태생적으로 본래 하나인 실체가 단지 다른 양태들로 변용되어 나타났기에 절대적 존재인 실체와 개체는 속성상 완전히 같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데 이런 관점을 일관한 철학이 스피노자의 범신론pantheism이라할 것이며, 실체론의 입장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인 이원론의 입장을 따르는 유일신 사상은 절대적 존재와 개체는 서로 다른 실체이므로 존재론적으로 간극이 있을 수 밖에 없어 속성상 일치라는 개념은 성립될 수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원론을 극복하고 신과 인간의 일치를 주장하는 이면의 흐름이 있는데 이에 부합하는 종교철학으로 네오플라토니즘에서 비롯된 기독교 신비주의, 이슬람 수피즘, 유대교의 카발라신앙, 힌두교의 베단타 신학 등으로 이루어진 신비주의들을 들 수가 있습니다.

칼럼_190121
화이트헤드

한편 실체론에 반대하는 비실체론, 즉 생성론의 입장을 견지하는 화이트헤드의 과정신학과 불교의 불성사상도 네오플라토니즘의 신비주의적 유출론 체계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넒은 의미에서 신비주의에 포함시켜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신비주의는 단지 특정한 종교적 양식이 아니라 인종이나 지역 또는 시대의 차이를 뛰어넘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인류 정신문명의 보편적 구조라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구조주의자 레비 스트로스가 인류의 보편적 사고의 양식으로서 주장한 ‘야생적 사고’(그는 근친상간의 법칙을 야생적 사고의 가장 보편적이고 원초적 형태라고 주장하였습니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신비주의는 세계 모든 인종이나 종교나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기에 이를 인류의 보편적 문화유산으로 인정하고 더욱 확산, 심화시켜 나가야하지 않을까하는 바램을 갖게 되는데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신비주의는 절대적 존재와 인간과의 본래적 일치 또는 합일 체험을 중시하는 종교적 양식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신과 인간 나아가 초월과 내재의 합치, 즉 직접적 합일체험을 통해 신과 인간의 이분법적 분리를 전제로 하는 실체론에 입각한 유신론들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현대종교의 문제점인 중간적 존재인 성직자와 종교적 공간 및 상징 등을 통하지 않으면 신을 만날 수 없도록 제도화된 오늘날의 종교적 장치로 인해 발생하는 폐해들도 극복할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한편 신비주의와 유사한 종교적 형태가 샤마니즘이라할 것인데 다만 기존 보편적 신비주의와 다른 것은 신과 인간 사이를 매개하는 무당(shanman)이 있기에 합일체험을 간접적으로 전달받는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는 유사 신비주의라 할 것인데 오늘날 기성 종교들의 폐해는 이러한 매개자들을 마치 신의 대변인인양 왜곡하는 종교적 형식과 장치에서 비롯된다할 것인데 특히 한국의 종교적 유전자는 우랄알타이 산맥에서 발원한 샤마니즘shamanism에서 발원하였기 때문에 기성종교의 성직자들이 신도들에게 자신들을 마치 샤먼처럼 신의 전달자라고 세뇌시킴으로서 종교의 폐해를 키우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샤머니즘화하고 있는 한국 기성종교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비주의의 올바른 부활이 반드시 필요하다할 것입니다.

또한 신비주의는 합리적 이성(철학)과 종교적 직관(종교)의 결합, 즉 분별과 직관 또는 이성과 감성의 결합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과학(이성)만능의 현대에도 과학의 한계를 뛰어 넘는 종교가 왜 필요한지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할 것입니다. 나아가 신비주의는 신과의 일체를 보여줌으로서 신과 인간, 초월과 내재, 이성과 감성, 인간과 자연, 정상과 비정상, 동일자와 타자 등의 이원성을 극복하고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제시하고 있으며 또한 바울의 초월적 종말과 구원이 아닌 역사적 예수의 현세적이고 내적인 구원을 더욱 빛나게 한다 할 것입니다. 하여 예수를 신화적 예수로서의 구원Christos자가 아니라 성육인의 화신Incarnattion으로 사건화된 인간, 즉 역사적 예수로 재해석하게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할 것입니다. 하여 예수를 성육신의 사건event으로 해석하고 또한 모든 인간도 같은 성육신의 사건event으로 본다면 우리는 예수와 같이 성육화된 사건이기 때문에 인간도 예수와 동질적인 동지가 될 수 있는 기반이 닦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성육화된 예수가 되기 때문에 신화적 예수를 도반으로 하여 그가 걸었던 십자가의 길을 같이 걸어가야만 하는 신학적 토대를 마련할 수가 있다할 것입니다(이에 대해서는 추후 알랭바디우의 진리의 신학과 안병무 선생의 사건의 신학과 화이트헤드의 과정신학을 융합 하여 다시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신비주의의 가장 중요한 장점은 기성종교의 결정론을 버리고 인간의 주체적 지향과 자유의지를 중시한다는 점인데 왜냐하면 신과의 합일체험은 반드시 인간의 의지와 수행을 통하여만 가능한 것이 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신의 선택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결정론은 폐기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나아가 신비주의의 또다른 특징은 자연의 존재법칙에 가장 부합하는 종교적 양식이라 할 것입니다.

이는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신비주의의 범주에 속하는 필자가 주장하는 일심사상도 자연법칙인 현대물리학(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과 천체물리학 나아가 복잡계 이론과 인지과학의 융합에서 얻어낸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칼럼_190121(1)

이에 따라 신비주의 양태를 검토해보고합니다.

무엇보다 기독교 신비주의는 네오플라토니즘Neo platonism의 플로티누스의 유출론에서 비롯되는데 궁극적 실체로서 제 1원인자인 헨Hen으로부터 제 2의 실체인 인격신(유일신) 누스Nous가 출원 하며 다시 누스로부터 제3의 실체이자 인간의 영혼인 프시케Psyche로 흘러드는데 이 영혼에는 우주적 영혼(니르구나 브라만)과 개인적 영혼(사구나 브라만)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결국 그의 철학의 방점은 유출에서 시작하여 마지막에 방향을 역류하여 영혼의 최초의 고향인 헨Hen으로 돌아가서 정화하는 과정, 즉 환원하는 과정을 그리면서 결국 자의식을 정화purification하여 신의 순수의식에 몰입되는 일치체험을 중시하게 됩니다. 이는 이후 마이스터 에카르트는 유출론을 더욱 심화, 확장시키면서 제 1원인을 신성Gottheit라 불렀습니다만 그 구조는 위 유출론과 큰 차이는 없다할 것이며 역시 그도 자아의식을 버리고 절대적 존재와의 합일unification을 도모하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고 갈파한 것입니다.

그 외에 이슬람교의 수피즘은 성자인 만수르에서 그 절정을 보는데 ‘그는 내가 사랑하는 나이고 나는 그가 사랑하는 그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신비주의의 극단을 보이고 있으며 나아가 유대교에는 카발라신앙이 있으며 힌두교에는 상카라가 주창한 불이론의 베단타 신앙(위에서 본 니르구나 브라만Nirguna Brahman과 사구나 브라만Saguna Brahman의 일치)이 있으며 불교에는 불성사상이 있어 세상은 여래성기, 법성현기이기 때문에 누구나 부처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편 현대에 들어와서 신비주의의 특징을 유지한 채 나타난 비실체론적인 생성론에 기반한 신학이 화이트헤드의 과정 철학이라 할 것입니다.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을 보게 되면 신God의 위상과 역할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유출-환원론과 유사하다할 것인데 그는 현실적 실재actual entity들의 합생concrescence에 신도 참여를 하는 데 신은 자신의 ‘원초적 본성’을 이용하여 현실적 실재들에게 자신의 주체적 지향aim으로서의 목적인을 부여하고 과 영원한 객체everalsting object를 통하여 작용인을 부여하는 ,즉 유출작용을 시작합니다. 이후에는 자신의 ‘결과적 본성’을 통하여 현실적 계기들을 구제하는 역할, 즉 환원작용을 마무리합니다.

결국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도 그 골격은 네오플라토니즘과 마이스터 에크하르의 유출-환원론을 철학적으로 갈무리한 것에 불과하다할 것입니다. 하여 필자는 생성론자인 화이트헤드가 기독교의 신을 다시 호출하여 신을 유일신인 누스Nous처럼 인격화하여 신에게 다른 현실적 실재를 출산하고 구원하는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신을 초월적이면서도 내재적인 존재로 그리는 범재신론(panentheism)을 주창한 점에 대해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비록 중세의 오로지 ‘초월적인 기독교’의 인격신의 개념을 버린 점은 높게 사고 싶습니다.)

결국 그는 ‘초월’과 ‘내재’라는 이중적인 신의 개념을 새롭게 제시하기는 하였으나 근원적으로 종전의 기독교적 신God 개념을 차용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모순을 노정하고 있는데 특히 초월자로서의 신의 속성인 ‘동시성’ ‘영속성’ 문제는 오늘날 현대물리학 이론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어 그조차 제대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하여 필자는 그러한 신의 초월성도 우주의 내재 속에서 찾아내야한다는 당위성을 자각하면서 신비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새로운 종교철학을 시도하였습니다. 그 결과 ‘일심사상’이라는 종교철학을 구축하게 되었는데 그 큰 틀을 설명드리자면 여기서 말하는 ‘일심’은 그냥 하나의 유기체로서의 ‘우주 자체’를 의미합니다. 복잡계 이론에 의하면 우주 자체는 무한한 구성요소로 이루어져있지만 그러한 구성요소와는 전혀 다른 존재로 창발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주 자체는 구성요소들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구성요소들의 합과는 전혀 다른 하나의 유기체, 즉 분리되었지만 분리되지 않은 한 몸the devided undevideness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주 자체는 구성요소와는 전혀 다른 독자적인 하나의 생명체인 유기체이기에 그러한 유기체는 물리적 요소와 정신적 요소를 모두 갖추어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지과학, 특히 토토니의 정보통합이론에 의하면 마음은 정보의 통합처리시스템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주도 자신의 항상성 유지를 위해 쉬지 않고 자기-조직화를 수행하면서 우주내의 정보를 통합적으로 처리하고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우주는 당연히 마음을 가진 존재라는 결론을 도출하게 됩니다.

또한 우주는 정보로 이루어져있다고 주장하면서 대세로 떠오른 ‘정보우주론’에 의하면 우주는 정보로부터 출발하였는데 이를 존 아치볼트 휠러는 it from bit 즉 우주는 정보로부터 태어났다라는 것인데 오늘날은 bit(0 또는 1)가 아닌, Q bit(0 과 1)로 이루졌다고 보며 큐비트 256개만 주어지면 우주의 모든 정보를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쉬뢰딩거의 파동함수에 우주의 모든 정보가 담겨져 있다고 해석하는 것과 상통하는 것으로 결국 우주는 정보의 통합적 처리시스템이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하다면 결국 우주 자체는 마음을 가진 존재이기에 물리적 측면과 정신적 측면을 구유한 하나의 전일적인 유기체라 할 것입니다.

결국 우주 자체는 구성요소와의 합과는 전혀 다른 하나의 생명체, 즉 유기체이기 때문에 우주 자체는 화이트헤드의 ‘신의 원초적 본능’처럼 자신의 구성요소에게 작용인과 목적인을 부여하면서 우주안의 세계들을 설계designer하며 창도advocator합니다. 즉, 우주는 ‘항상성homeostsis유지’라는 ‘목적인’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위해 항상 ‘자기-조직화self organization’를 멈추지 않는 ‘작용인’을 가지고서 세계를 설계하며 창도하는 것입니다.

한편 우주 자체 또한 자신의 구성요소들에 의해 생성되기 때문에 우주 자체는 구성요소인 세계로부터 작용인과 목적인을 새롭게 부여받음으로써 우주와 세계는 서로 창조하면서 창조되는 상호작용을 하는 상호인과관계, 즉 연기적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런 상호 인과적 관점은 화이트헤드의 신의 위상에 대한 설명과 동일하다할 것입니다만 다만 일심사상은 신은 우주자체를 의미하기에 화이트헤드의 과정신학, 즉 범재신론panentheism이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신의 초월성문제(즉, 신은 다른 현실적 실재와 동시적인 존재라는 ‘동시성’과 신은 다른 현실적 실재와는 달리 항상 초월적이며 영원하다라는 ‘영속성’의 문제)는 생길 여지가 없는 장점이 있다할 것입니다. 또한 이런 관점을 연장한다면 인간도 단지 신의 피조물로서 결정론을 따르는 대상이 아니라 신과 함께 우주의 ‘설계’와 ‘창도’를 아우르는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존재로 승격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일심사상은 굳이 초월적인(엄밀히 말하자면 ‘초세간’transcendent을 의미) 신의 개념을 동원하지 않고도 우주의 생성과정을 초월적이며 내재적인 ‘일심’만으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기에 현대의 비실체론, 즉 생성론(사건론, 과정론, 관계론)에 가장 부합하는 종교철학이 된다할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종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존재의 법칙을 무시한채 존재법칙과는 무관한 선험적인 당위법칙을 만들어 무조건적인 신앙을 강요하는 측면때문에 발생한다할 것인데, 즉 존재Sein를 벗어나 그와 어긋난 당위Sollen를 강요함으로써 종교가 도리어 족쇄가 되어버린 것이라 할 것인데 위에서 언급한 신비주의나 필자의 일심사상은 우주의 존재법칙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종교철학을 추출한 것이기에 몸에 딱 맞는 옷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할 것이며 또한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원론이든 일원론이든 실체론에 입각한 종교로 인해 나타나는 폐해를 조금이라도 없앨 수 있는 ‘자연신학’이라할 것입니다.

즉 ‘일심사상’은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의 ‘합생이론’과 양자역학의 ‘존재론’ 및 상대성이론의 ‘상호인과론’ 나아가 복잡계의 ‘창발이론’ 및 인지과학의 ‘마음’개념을 융합한 과학적인 종교철학으로 신비주의의 입장을 받아들이는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종교철학이라 할 것입니다.

-존재에서 당위를!

월, 2019/01/2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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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일자리를 걱정하는 정부, 보다 큰 시각을 가지라.

우리 경제는 중소제조업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할 지점에 와 있다. 일자리문제는 단기적으로 생각해서는 절대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고용의 질을 무시하고 고용의 양만을 말하는 것도 중장기적으로 볼 때는 전혀 의미없는 것이 된다. 그리고 대기업, 특히 베트남에 나가 있는 삼성전자가 고용을 만들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눈과 입을 가려라.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와 산업정책, 고용정책을 아울러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소제조업의 구조조정이다. 이는 일자리문제의 근원적 방안이며, 기업의 구조, 주력 업종과 규모, 인력구성 등의 변화를 포함한 중소제조기업의 체질변경이며 이를 위해서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획기적이고 능동적인 경제, 산업정책 변화가 필요하다.

 

칼럼_190122(1) SBS뉴스
사진: SBS뉴스

 

1. 번지수를 잘못 찾은 성장론 (혁신성장)

혁신성장론, 혁신과 성장을 붙여놓은 말이다. 위키에서 혁신성장을 찾아보니 혁신이란 Innovation을 말하고, 소득주도성장이 소득을 늘려 경제성장을 주도한다면 공급측면에서는 주로 IT, 서비스산업, 문화산업, 의료, 금융 산업을 전면에 내세워 성장을 만들어 가자는 논지인 것 같다. 정부의 경제관료들이 좋아하는 말이 혁신성장이지만 애석하게도 예산투입 대비 실제로 효용은 별로 없을 것 같다. IT 분야는 돈을 붓고, 매출이 늘어나도 일자리는 그다지 늘지 않는다.

성장이란 무엇인가부터 말해 보자. 주류경제학의 용어로서 성장은 Growth, 선진경제 특히 미국식 성장은 ‘현대 미국 자본주의가 맞이하는 장기 불황과 실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투자를 기반으로 하는 GDP의 증가가 필요하다’고 할 때의 GDP증가를 경제성장이라고 말한다. 즉 성장은 ‘일상적인 자본주의 진행을 위해 필요한 것’, 자본주의 내부의 경기흐름 속에서 실업문제나 인플레이션, 과도한 채무문제 등을 피하고 순탄한 진행이 되려면 어느 정도 적절한 성장이 필요하다는 논지에서 얘기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적정성장’을 넘어선 과도한 성장도 인플레만 유발할 뿐 경제에는 좋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혁신성장이란 무엇인가? ‘혁신을 통해서 적정성장을 이루자’ 정도 되겠다. 특히 IT나 서비스업종의 성장을 통해서 실업해결 등 전체 경제의 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나 중국같은 개발도상의 나라에서 이같은 주장이 통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아직도 산업화 과정에 있다. 특히 중소제조기업을 중심으로 산업생산성이 많이 낮은 상태이고, 그 결과 국민소득도 선진국의 2/3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개발도상, 따라잡는 경제, 경제발전을 필요로 하고 있는 나라다. 한마디로 말해 선진국, 미국에서 사용하는 적정성장 개념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실업과 불황을 제어할 정도의 적정성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 성장이 필요하고 (인플레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를 통해서 산업혁명을 거치고 선진경제로 진입하겠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성장은 경제의 균형을 위한 것이라면, 따라잡는 국가의 성장은 경제발전을 위한 것이니 가능한 한 높은 성장률이 좋고 필요하다.

또한, 미국의 경우는 전체산업에서 제조업의 비중이 10% 조금 넘는다. 따라서 제조업투자로 인한 고용효과가 작다고 생각들 한다. 더욱이나 제조업 투자의 결과로 초래되는 공급과잉에 대해서 책임지겠다고 하는 경제학자는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제조업의 붕괴로 인한 고용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심각하게 생각) 그래서 유통을 비롯한 서비스업에 대한 투자, 그리고 기술개발비를 지불함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일자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심지어 고용유발지수가 제조업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IT나 금융산업에 대한 투자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1) 달리 투자를 유도할 만한 제조업기반이 사실상 무너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2) 그마나 기업들이 제조업 현장설비에는 투자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제조업의 서비스업화를 선호한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개발도 제조업 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자본의 입장에서 제조업 투자로 인한 이익은 불확실하지만 소비자 금융에 투자하는 것은 확실한 이윤을 보장하기 때문에, 혹은 엔젤 투자처럼 위험을 관리하는 확률게임으로 보다 확실한 이익을 보장받는 방법이 있기 때문에- IT, Entertainment, 의료, 금융, 유통 등에 한정하여 몰리고 있다. 혁신성장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알고 나서라면, 적어도 우리나라와 같은 개발도상에 있는 나라에서 ‘숭상’할 금과옥조는 아니라는 것이다.

 

2. 산업성장, 고용 그리고 발전

현재 우리나라의 혁신성장론의 모토는 ‘4차산업혁명’인 듯하다. 이 말의 기원은 Industry 4.0이고 독일이 제조업 혁신을 위해 국가적으로, 전산업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인데, 한마디로 ‘4차산업혁명’은 우리나라만 주로 사용하는 아류다. 이 아류는 인문학적으로 소양이 부족한 가운데 나온 말이다. 우선 산업혁명에 1~4차를 가른다는 것이 별로 유쾌하지 않다. 산업혁명은 역사적인 것이며 한 나라 경제가 산업화를 통해서 선진국, 자본주의 앞열에 서는 국가가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다. 이는 단순히 기술발전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며 정치, 법제도, 노동과 계급구성, 사회와 문화 등 전사회적인 변동을 의미한다. (지배계급, 정치와 민주주의, 복지와 산업을 위한 교육제도, 여성권리 등등) 예를들면 OECD국가라고는 하지만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남부 같은 경우, 아직 산업혁명을 거치지 못한 곳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자본의 축적과 그에 따른 산업생산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민주주의 발달도 미비하고 산업이나 금융자본가들이 아니라 지주나 토호들이 정치를 하고 있다. 제조업에서 생산력과 생산방식의 발전으로 출발한 Industry 1.0~4.0의 개념을 무리하게 사회전체에 해당되는 사회적 혁명에 비견하는 것은 어불성설, 진실로 개념부족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서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론은 Industry 4.0과 용어만 다른 것이 아니다. 바라보고 있는 산업이 완전히 다르다. 즉 4차 산업혁명 주창자들은 앞서말한 혁신성장을 달리 ‘고상하게’ 표현한 것뿐이다 보니 IT, 금융, 문화, 유통산업의 대한 ‘정부투자’를 말하는데, Industry 4.0은 이와는 완전히 다른 제조업 혁신, 그것도 산업계가 중심이 된 혁신을 말한다. (이쯤되면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론자들이 누구일지 짐작이 갈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 IT붐을 타고 국고를 열심히 탕진했던 무리들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혁신성장에서 말하는 서비스분야는 고용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서비스분야의 투자 결과, 은퇴 후 창업창직은 적정한 수의 두 배에 달하도록 편의점 개수만 늘렸다. 실리콘벨리에서 엔젤투자를 받는 90%는 이미 직장을 다니고 있는 이들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일반적으로 4년~5년차 직장인의 효율이 제일 높다는 사실을 무시한 청년창업 종용은 실업자를 양산하는 밑빠진 독이 되었다. 대학교에 졸업대상자를 창업반을 만드는 것에 지원하는 정부관계자는 이 사악한 지원이 청년들을 수렁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하는 것인지, 모르고 하는 것인지…

 

3. 중소제조업의 구조조정에 대한 기획

중소제조업을 위한 정부의 지원은 이전 정부에 비해 나름대로 양적으로 늘어났고(특히 4대보험이 시행되는 중소제조업체 6만7천개 중 3만개를 하겠다는 스마트공장사업), 정부책임자도 많이 주목하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현 정부의 (경제)산업정책에는 큰 그림이 없다. 10년 뒤, 20년 뒤 어떤 모양이 되어야 하는지를 아무도 모르고 있다. 중소제조기업의 주된 업종과 산업별 분포는 어떻게 되고, 평균매출은 어떻게 되고, 고용이 어떻게 변화하고,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은 어떻게 되고, 수출과 내수, 완성품과 부품제작, 단순하청, 설계제작 등에 대한 변화와 향후 진로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청의 늘공들은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감시자이자 관리자이지 지원자인 적이 없었다.

현재 우리나라 주요 대기업, 자동차, 조선, 철강, 전자 등의 유수의 기업들은 중소기업들을 협력업체로 삼아 제반 부품을 조달받는 하청계열화를 통해서 완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직접 수출하거나 국내에 판매하여 이윤을 얻고 있다. 이때 중소기업들 중 극히 일부만이 자기 기술에 기반하여 부품생산에 들어가고 대부분은 단순 하청(기계설비만 투자하면 누구나 생산할 수 있는 부품의 조달)에 목을 매고 있다. 더 나쁜 것은 중소기업이 자기기술에 기반한 부품을 만들어 납품할 경우, 많은 대기업들이 (연속적이며 안정적인 조달을 핑계로) 이들로부터 설계도면을 요구하고 제작 기술을 바치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제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이 나왔다. 스마트공장 등 고도화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부문 중에 설계, 디자인 인력이 필요로 하는 중소제조기업이 되도록 하는 것, 스스로 금형을 설계하여 부품을 납품하는 기업, 자신들이 만든 PLC 로직으로 자동화설비를 제작하여 제품들을 생산하는 기업들을 만들어 내기 위한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한 개의 대기업이 아니라 다수의 기업에 납품하는 기업, 50명 고용에 50억 매출이 아니라, 70명 고용에 200억 매출을 하는 기업이 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과기부는 중소기업을 위한 기술을 제공하는 산학의 중심을 전국 각지에 만들어야 하고 많은 정부 R&D 프로젝트들도 중소기업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어야 하며, 중기부는 감독과 관리하는 부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을 찾아서 직접 지원하는 조직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교육부도 산업현장교육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 설계, 관리, 유지보수를 위한 노동자 교육/재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중견, 대기업으로 하여금 산업구조조정에 필요한 기반 산업, 즉 로봇설계와 제작 산업과 금형설계, 디자인, 자동화설비와 기계제작, 메카트로닉스 설계와 제작 산업에서 투자하도록 하고 초기에 충분한 시장을 열어주기 위한 지원을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 IOT, AI, 빅데이타 등은 뭔가 거창한 것이 아니다. Fordism에서 컨베이어 벨트와 같은 것이며 테일러리즘에서 전선줄과 같은 것이다. 새로운 기술은 당면 사업 속에서 녹아나오도록 하는 것이지 그를 위한 산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맞춤한 Industry 4.0, 혹은 산업혁신이 산업구조조정과 이어지고 그 기술적인 도구로서 위의 기술들이 적용되는 것이다.

 

4. 독일이나 스웨덴의 성장모델에서 배울 점

독일이나 스웨덴의 성장은 미국경제학에 기초한 성장이론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다. 최근 자기네식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현재 미국과 우리나라를 제외한 OECD 상위 20개국 전체에서 시행 중인 것을 정부는 아는지?)을 실시한 일본이 실업률 0에 근접하는 획기적인 상황을 맞이하였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 독일과 일본은 아직도 제조업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는다. 우리나라는 26% 수준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즉 우리나라는 제조업 투자로 인한 고용유발이 제일 높을 수 있는 나라이다.

장기적 관점에서라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가능하려면 산업간 중소기업, 대기업간의 격차가 줄어야 한다. 생산성과 임금 모두 격차를 줄여야 한다. 중소제조기업의 구조조정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10억 미만의 매출로 계속 유지되는 단순하청업체에 대한 단계적 정리와 현재는 50명 고용하고 있는 50억 매출 기업이 25명 이하의 고용으로 운영되도록 지원하는 것(보다 나은 방식은 50명 고용에 100억 매출로)이다. 노동의 숙련화, 설계기술, 관리력 향상, IT접목, 스마트공장 중간단계 등에 대한 지원은 당장 나서야 하는 것들이다.

우리나라 관료들이 숭상해 마지않는 미국경제는 예전 영국이 미국에게 패권을 넘겨주던 시기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자본은 쉽게 돈 벌 수있는 길만 걸어가려고 한다. 돈벌기 어려운 제조업에 발들이기를 싫어 한다. 제조업을 서비스화 하는 것, 즉 제품개발, 마켓팅, 판매유통은 하되 제조할 노동자는 자국 내에 두지 않으려 한다. 왜 이를 배워서 따라 하려고 할까?

 

5. 결론 – 우리나라 경제의 갈길 = 숙련노동 중심으로 중소기업의 고도화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공장하면 고용이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한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Industry 4.0이 바라보는 현장에는 3가지 종류의 인력이 존재한다. 앞서 언급한 제품개발(CAD/CAM, 디자인, 설계), 생산현장관리(계획실행, 품질, 모니터링), 유지보수 등의 숙련된 인력이 필요로 되고 단순가동을 위한 인력은 모두 퇴장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현재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구조조정이다. 인력과 기술, 설비 등의 조정이 모두 필요하고 보다 많은 제품개발인력이 필요하고 로봇과 자동화설비의 운영인력과 보수인력이 필요하다. 당연히 설비투자 중심의 조정과 함께 인력 감축도 예상할 수 있다. 즉 매출 대비 인력 비율이 변화해야 한다. 현재 50억 매출의 2차 협력회사는 50명 이상의 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이것이 200억 매출에 75명 고용으로 발전한다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60억 매출에 30명이 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일 것이다. 특히 하청구조에서는 매출이 마음대로 증가할 수 없는 것이다.

독일과 중국처럼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산업전체에서 노동시간을 감축하여 고용을 유지하는 것은 Industry 4.0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이라 하겠지만, 한국 제조업에서는 정글의 법칙이 휘몰아 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나마 정부가 생각이 있어 로봇, 자동화설비 등 보다 고도화된 산업에 대한 시장을 형성하는 일을 지원한다면 산업의 재편, 고도화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동일노동/동일임금을 실시하기 위한 전제로서 중소제조업의 구조조정이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 사내하청 같은 경우는 당연히 동일노동이지만, 중소기업 2차업체의 노동생산성은 대기업 대비 3~50%미만인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서 초저임금으로 대응하는 현재 산업구조를 가만히 두고서 동일노동/동일임금을 시행할 수가 없다.(그 후에 가서야 30시간대의 노동시간 단축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계급은 산업과 기술의 발전에 대해서 두려워하거나 그를 회피해서는 안된다. 큰 시각에서 볼 때 지금 닥쳐온 구조조정은 숙련화, 고도화된 노동을 필요로하는 산업환경으로의 전이과정이다라고 이해해야 한다.

현재의 산업변화시기에 맞춘다면 우리나라도 적어도 20년 안에는 노동시간 주 30시간 미만의 사회가 될 것이라는 것이 큰 그림이라면 그 노상에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시행되어야 하고 그를 위해서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중소제조기업의 생산성 향상이다. 현재의 2차업체 생산성이 3~50% 선에 머무르는 것을 1차업체 수준인 7~80% 선까지 끌어 올려야 하고 그 기반하에서 산업단위의 동일임금을 적용할 수 있다. (최저임금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하위요소에 불과하다)

노동자들은 다가오는 변화를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국가와 사회에, 교육과 단련을 통해 새로운 산업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중 것을 요구해야 한다. 특히 지금의 정부(산업관련, 과학기술관련 부처)는 무엇보다도 중소제조업체를 위한 현실성있는 지원, ‘구조’조정을 지원해야 한다. ‘최저임금 어렵다는 우는 소리만 한다’라고 듣지 말고 자동화 지원과 로봇산업 시장을 적극 (현재 대당 2500만원하는 협업로봇이 1500만원이 되도록) 활성화하고, 금형 등의 설계 능력 향상을 위한 지원을 하라는 것이다. 해당 산업이 자리를 잡기까지 매칭자금 지원 등 선행적인 시장을 만들어 주고 공동연구단위와 지역기반의 설계와 기술관련조직을 만들도록 지원해야 한다.

제조업을 지원하지 못하는 R&D은 눈먼 돈이다. 혁신성장은 신기루다. 산업의 실질적인 발전없이는 고용도 없다. 어설픈 성장을 외치면서 되지도 않는 고용을 찾지마라, 번지수가 틀렸다.

화, 2019/01/2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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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에 ‘을의 경제학’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장흥배 님이 1월 10일 ‘시장은 어떻게 지배하는가’라는 주제로 쓴 글의 일부를 아래로 다시 소개한다..

최저임금제의 의의는 임금 최저선의 결정(이라는 영역)에서 시장에 대한 사회의 우위를 확인한 것이다. (중략) 문재인 정부하에서 최저임금제의 역사적 의미는 시장의 힘을 극복하려는 것이었지, 이에 굴복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촛불항쟁, 여야 대선주자들의 공약 경쟁, 이를 통해 들어선 정부의 정책 수립을 통해 탄생한 최저임금 1만원이 가리키는 정책 방향은 공룡 재벌에 의해 망가진 공정거래 질서의 복원, 만약의 고용 위기를 상쇄할 과감한 복지와 소득재분배, 부동산 지대경제의 청산 등이었다. 요컨대 시장과 경제를 16.4%의 최저임금 인상이 수용될 수 있는 환경으로 개혁한다는 것이 인상을 결정한 사회적 합의의 요구였던 것이다. 달리 보면 이 모든 과제에서 허탕을 치고 역진하는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무력화하는 온갖 꼼수로 나가는 것은 예정된 수순일 수밖에 없다.

좌절로 가는 최저임금 1만원 실험에서 남아야 할 교훈이 있다. 지배계급은 언제나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에 따른 선택을 객관적인 시장의 힘에 의한 제약으로 위장한다는 것이다. (반작용적) 역효과 명제는 이를 통해 대중의 사고를 효과적으로 지배한다. 실상 신비한 시장의 힘으로 포장된 상자를 뜯어보면 재벌, 상가와 아파트 자산가, 상위 10% 고소득자들의 경제적 이권을 유지·확대하려는 (탐욕의) 이해가 대개의 내용물이다”

 

명쾌한 선언이다! 시장은 당연히 시민사회의 필요와 합의에 따라 작동하고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촛불의 이름을 앞세워 집권한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한국 사회의 모습은 시장논리와 경제성과라는 미명으로 극소수의 기득권층 탐욕이 합리적인 것처럼 포장되고 이들에 의해 전일적으로 지배당하는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본인과 가족들의 패악행위 등으로 스스로 경영능력이 없음을 만천하에 노출한 조양호 대한항공 그룹회장의 경영권을 박탈하기 위하여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연기금 등 공공투자 지분의 주주권 행사(stewardship)를 유보하면서 오히려 수구언론과 보수진영에서 이를 마치 사유재산권과 경영권의 침해하는 것으로 오도하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명백하고 노골적으로 탈법과 불법을 저지른 이재용을 삼성이라는 한국 대표기업의 주주이자 경영자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구속을 면책하고 석방하였다. 결국 대한항공과 삼성이라는 거대한 기업집단들이 국민적 자산이 아니라 일개 가문의 전횡적 사유물이라는 것을 공인한 셈이다.

시민들에게서 수임한 개혁을 추진하는 대신 애매하게 삼성과 연대하며 황당하게 시장의 논리를 전면적으로 내세웠던 지난 세월의 참여정부에 이어, 역시나 이익 방어에 노련한 기득권의 간교와 교언영색으로 포장된 예의 시장논리에 포획되고 투항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최저임금제 실현과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역사적 명제에서 말머리를 돌려 뒷걸음친 문재인 정부는 이제 더 이상 촛불과 시민을 정권의 명분과 장식용으로 운운해서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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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ixabay

시장은 기본적으로 무죄이다. 문제는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작동하는 기득권과 자본의 탐욕과 이를 정당화하는 논리와 이데올로기와 매카니즘, 그리고 이에 조응하여 형성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구조가 문제이다. 이에 한걸음 더 들어가 시장이라는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용어를 시장, 시장가격, 시장기구(역할), 시장경제 등으로 다시 세분하여 들여다 보고자 한다.

경제학 사전에 의하면 시장은 일군의 공급자와 수요간에 성립하는 재화 내지는 용역의 교환 또는 매매의 관계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역사적 흐름으로 볼 때 상품경제가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는 교환 내지는 매매 행위가 특정 장소에서 이루어졌으나, 상품경제가 일반화된 이후에는 구체적 매매 행위에 더하여 개념적 추상으로서 시장이 존재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 관계와 범위의 내용이 특정 장소를 대신하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아담 스미스 이래 경제학의 핵심은 가치에 대한 논쟁과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는 과정에 관한 것일 것이다. 개념으로서 가치와 시장 가격 간에 존재하는 괴리에 대한 관점과 해석이 지난 수백 년간 서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경제 산업의 내용을 역동적으로 규정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필자는 다만 기업인으로서 30여 년간 실물 경제를 체험한 바탕으로 경제와 시장에 대해 기존의 논쟁과는 다른 의견을 만용스럽게 개진해 보고자 한다.

육체라는 유기체적 형태를 지닌 인간에게는 의식주의 해결이라는 절대적 필요가 존재하며 어떠한 상황과 조건에서도 이를 충족하는 재화와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비로소 해당 사회가 지속될 수 있다. 이를 해결하려는 국가단위의 시스템을 현대적 의미에서 복지의 사회안전망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수 차례의 산업적 혁명과정을 통하여 인류의 노동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지고 기본적으로 의식주의 수요를 해결하면서, 이제 추가적으로 진행되는 생산(경제)활동은 역사의 흐름이라는 시간적 요소와 더불어 사회와 정치적 관계구조 속에서 상대적이며 개별적으로 형성되는 수요와 연동하여 다양하게 전개된다.

현장에서 물물교환과 단순한 매매가 이루어지던 시대를 지나 근대에 이르면 위에 언급한 다양한 형태의 시장과 사회적 권력구조 속에서 집단적 공급과 수요의 균형적 만남을 통하여 시장가격이 형성된다. 이때 시장이라는 구체적 또는 추상적 공간에서 현상적으로는 수급상황과 한계효용의 논리에 따라 가격이 형성되지만, 실현된 가격이라는 현상 뒤에는 생산 및 공급의 수단과 유통망 기반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형성된 사회적 지위와 정치적 권력구조가 실제적인 힘으로 작동하게 된다.

현대의 대부분 경제학자들은, 알프레드 마샬이 제시하였듯이 일군의 공급과 수요에 의한 균형에 의해서 합리적으로 시장가격이 형성되고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규정된 인간들에 의해 한계효용적이고 판단논리적인 행위에 의해, 기존에 형성된 가격선이 수학의 법칙처럼 이동한다고 곧이 곧대로 믿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시장가격과 변동은 사회평균 생산력에 의한 노동가치에 기반하되 혁신적 기제와 더불어 사회구조와 세력간의 힘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에 더하여 체제의 주류집단이 주도하는 미디어 매체의 홍보와 문화적 환경 속에서 개별적 집단적 심리 욕구가 인위적으로 형성되면서 소비자들로 하여금 의도하지 않은 수요를 촉발하게 만든다.

권력구조에 따라서 전개되는 시장 현실과는 별도로, 이론적으로 이상적인 조건하에 수급 균형과 한계적 효용가치 이론이 작동하는 시장경제에서는 매체 또는 공간이라는 장소를 통하여 재화와 서비스의 공급지를 확인할 수 있으며 가격을 매개로 실제적인 수요가 보내는 신호를 확인하면서, 일차적인 수요와 공급에 대한 정보와 균형의 기능에 더하여, 경제적 유효 자원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배분하고 결합시키는 역할과 기능을 갖게 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관점에 서면 20세기 전체주의적인 극우 파시즘과 극좌적인 스탈린 시대의 경제체제를 경험하였던 빈 학파의 미제스와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적 이론과 입장이 일면 타당하고 이해할 만한 것이다. 혹독한 시대적 경험을 겪은 빈 학파의 입장에서 보면 시장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핵심 사항으로 반드시 개인적 자유주의와 무제한적 사유재산권이 전제되어야 하며 국가의 역할을 상기 요소들을 보호하고 보장하는 것으로 제한해야 한다. 좀더 나가서는 인간의 자의적 판단을 배제하면서 시장에게 만능의 능력을 부여하여 신과 동등한 위치까지 올려 놓는다. 이제 시장 만능주의는 ‘반드시 시장에 복종해야 하며 다른 대안은 없다(TINA’)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발전해 나간다.

반면에 폴라니와 케인즈 등의 입장에 서면 자본가들의 지나친 탐욕으로 자유시장의 기능이 실패하고 독점의 폐해가 커져가면서 사유적 자본의 자기조정과 이익실현이라는 매카니즘이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을 무리하게 강행하여 한편에서는 과잉생산물이 누적되는 반면에 식민지를 포함하여 빈곤과 결핍으로 탈진한 시장의 과소소비 상황이 겹치면서, 이러한 공황적 상황을 정치권력의 강제이던 군사적 물리력이던 국가단위 또는 연합적 지역단위에서 폭력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으로 파시즘이 태동한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 한마디로 파시즘은 탐욕 때문에 실패한 시장 기능을 강제적으로 작동시키면서 발생하는 반동적 현상인 것이다. 따라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시민들의 선택에 의해 위임된 정치적 강제력으로 잘못된 시장질서와 왜곡된 산업구조에 개입하고 수정을 시도하는 것은 정당하고 마땅한 일이다.

상기의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이 대치하는 가운데, 지난 백여 년간 경험을 통하여 되돌아 보면 시장기능과 시장경제의 역할은 결국 역사적 상황에 따른 사회적 정치적 관점과 입장의 문제로 다시 귀결된다. 마치 근대 정치철학의 출발점에서 공히 국가의 성립을 사회계약론으로 해석하면서도, 홉즈는 기존 질서의 권력자인 군주의 입장에 서고 로크는 신흥 유산자 계층의 편협한 이익을 옹호하는 논리를 전개하지만 루소는 모든 공민들의 참여와 합의에 의한 일반의지에 기초하여 근대적 민주주의를 주창한 역사적 경험을 되돌아 보게 한다. 판단의 기준은 ‘무엇과 누구를 위한 것 인가’ 이다.

이에 더하여 제3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의 생산성 격차에 따른 보몰 효과가 나타나고 제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절대적 경제력에 의해 달러에 기초하여 형성된 기존의 통화시스템에 미국경제가 위축되는 과정에서 심각한 비대칭성이 형성되면서 고전적인 경제와 통화의 이론에 괴리와 변종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무형재를 중심으로 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출현과정에서는 기존의 시장경제 이론인 재화 및 서비스의 배타성과 경쟁의 논리 및 수확체감의 법칙 등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금융과 산업변천의 경제사를 오랜동안 연구해온 건국대의 최배근 교수는 최근의 저작 ‘위기의 경제학? 공동체의 경제학!’을 통하여 (기존의) 경제학은 없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에 의하면 현재의 경제적 위기는 지난 시기 공업화에서 벗어나는 탈공업화 과정에서 새로운 출구를 찾지 못하면서 과다하게 금융산업에 의존하게 되었고 위에 언급한 달러 중심의 통화시스템과 금융산업이 미국의 패권과 결합하고 세계화를 통하여 전지구적 불균형과 극심한 소득불평등이 확대를 거듭하면서 양극화의 위기 상황을 초래하였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적나라한 현실이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최교수는 인터넷 망과 ICT 기술의 기반을 전제하는 미래적 사회에서는 탈물질적인 무형재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이러한 무형재적 미래의 산업에는 혁신적 창의성과 자율성이 가치창출의 핵심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기존 경제와 산업의 영역에서 지배적 형태였던 소모적이고 경쟁적이고 배제적인 방식에서 탈피하고 데이터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협력과 공유라는 새로운 방식과 논리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혁신 역시 협력과 공동작업을 통해서만 실현가능하고 가치창출방식과 사업모델에도 다다익선의 가치체증의 법칙이 작동하면서 이타자리(利他自利)형 경제 모델과 법칙이 작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교육 역시 타인과 경쟁적인 지식축적의 암기형에서 협력을 기반으로 더불어 함께 과제를 인식하고 문제의 해결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하며, 금융도 기축통화 중심과 중앙은행의 통제적 개입 방식에서 벗어나 블록체인과 플랫홈 공유를 통한 민주적이며 다원적인 시스템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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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최배근 교수가 ‘공동체 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던지는 새로운 문제의식의 도전과 혁신적인 패러다임의 전망에 전적으로 지지하고 동의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을 보완하여 지적하고자 한다. .

우선 인간이 유기적 육체를 지닌 존재라는 조건으로 인하여, 자연재에 노동을 가하여 의식주의 수요를 해결하는 절대적 기초재와 인터넷 기반과 ICT 기술에 기반으로 새로이 형성되는 무형재를 구별하여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기초재 중에서도 의복은 대충 해결된 상태이지만 식량은 여전히 국가단위에서는 안보적 차원의 주제이고 개별적인 시민에게도 일상적으로 중요한 주제이다. 주거의 문제는 특히 투기가 극성을 부리는 한국사회에서는 사회 안전망으로서 복지의 핵심적 내용을 차지하면서 공공의 개입과 역할이 반드시 요구되는 영역이다. 양보할 수 없는 의식주의 전반적 영역에서는 고전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배타적 경합성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무형재 일반 역시 성격에 따라 섬세한 재분류가 필요할 것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및 제공의 효율을 드높이고 자유의 가능성을 제고하는 역할이 있는가 하면, 제한된 인생의 시간을 사이버 공간에서 허비하고 무의미하게 하는 낭비성 또는 중독성의 문제를 야기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경제는 시장에서 표현되는 단순히 수치로만 평가해서는 안되며 인간적 삶의 가치를 고양하는데 주어진 역할을 하여야만 한다.

따라서 최교수도 언급하였듯이 경제학 또는 시장의 개념을 단순히 과거형으로 고전적 해석과 영역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이에 더하여 새로이 전개되는 조건과 상황에 응동하고 변화를 추구하고 내용을 확장하여야 한다. 마치 물리학에서 뉴톤의 법칙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그리고 또 다시 양자론으로 변신을 시도하듯이, 폴라니가 언급하는 복합사회(정치, 산업, 사회, 문화, 기술 등이 상호작용하는)속에서 조건과 상황에 따라 과거의 이론을 포괄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실험정신으로 접근해야 할 것으로 본다. 역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한 시장논리이고 누구를 향한 경제이론인가 라는 근본적 질문에 응답해야 하는 것이다.

인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과학과 기술이라면 이도 역시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강제를 통하여 개입하고 전향적인 방향으로 유도하여야 한다. 과학과 기술에 중립성은 없다.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인터넷 환경이라는 공유재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공유경제를 명확히 구분해야 하며 구글과 폐북 그리고 우버 등에서 경험하였듯이 설령 이들이 인류에게 보편적인 편이와 효율성을 제공한다 하더라도 기술 특성상 어마어마한 운용의 과정과 성과를 개인과 특정 기업이 독점하는 것에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다. 따라서 공유기반의 소유와 운용의 과정에 공공적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며, 실현된 운용의 성과를 시민사회 또는 인류가 함께 향유할 때만이 명실공히 공유경제라는 용어를 비로소 부여할 수 있다. 지혜와 합의가 필요한 영역이다.

미래에 전개되는 산업사회에서는 로봇과 AI에 의해 대부분의 반복적인 육체노동뿐만 아니라 단순한 정신적인 판단과 관리업무도 대체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물론 진행 과정에서 새로운 직업과 일자리가 생기겠지만 숫자나 내용에 있어서 소멸되는 기존의 직업군을 모두 보충하고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점이 기존에 있었던 산업혁명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속도를 조절하여 실업의 충격을 완화할 수는 있겠지만 단기적인 해결책일 뿐이다. 기존의 산업과 체계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자연스레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적 행위이다.

근본적으로 기존적인 계약방식의 전일적인 직업으로 받아들이는 일자리의 개념을 바꾸어 가야 한다. 많은 학자들은 자본제 이전에 있었던 자기실현적 자영 형태의 농업과 수공업이라는 오래된 과거에서 새로움을 찾고자 한다. 미래 사회에서는 시장과 기업의 요구사항 대부분이 사회적 역사적 노동의 축적된 형태인 과학기술로써 해결될 것이다. 기존의 방식과 다른 ‘새로운 일자리’라는 개념의 도입은 기존 복지체계의 재구성, 기본소득의 도입 그리고 조세체계의 대변화를 요구하는 매우 광범하고 중요한 주제이기에 추후에 다시 언급해 보기로 한다.

결론은 인간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복합적 공간으로서 시민사회가 만능적 시장의 일방적 지배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동물들은 자연의 법칙에 지배를 받고 진화하면서 살아 남았지만, 인간은 언어와 대화라는 방식으로 인위적인 합의와 협력을 통하여 역사를 이루어 왔고, 대자적인 질문과 성찰을 통해 누적된 지식을 기반으로 발전을 이루고 자유의 범위를 확대하여 왔다.

시장은 신이 만든 만능의 법칙이 아니라, 인간들이 일구어낸 매우 소중한 인공적 성과물의 하나이며, 따라서 시장은 시민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효율적 수단과 관계적 방식으로 작동해야만 한다. 시장이라는 이름과 논리로써 오히려 인간의 삶을 왜곡시키고 구속하려고 한다면, 정치적 영역에서 혁명을 일으켜서 폭군을 몰아내었듯이, 시장이라는 포장의 뒤에 숨어 있는 탐욕을 제거하고 기득권 체계를 전복시켜서라도 시장으로 하여금 시민사회에 풍요로운 삶의 조건을 제공하고 봉사하는 충복으로 역할을 다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시장은 인간사회에 봉사하는 유능하고 유용한 도구이어야 한다. 이것이 경세제민經世濟民이요, 제민지산制民之産의 요체이다.  2019-01-21.

목, 2019/01/2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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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벽의 바람

이병한 선생님, 두 번째 편지 잘 받아보았습니다. 먼저 편지를 쓰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는 말을 듣고서 저도 덩달아 기뻤습니다. 뭔가 답답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서요. 마침 엊그제 원불교대학원대학교의 김경일 총장님도 페이스북에서 비슷한 표현을 쓰셨더군요. “서구 근대문명이 들어올 때 위정척사나 개화파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동학류의 개벽에 대한 자리매김이 늘 고민이었는데 (『한국 근대의 탄생』을 읽으니) 이것을 풀어낼 단서를 찾아주신 것 같아 저도 가슴이 후련했습니다.” 아마도 전통(척사파)과 현대(개화파)라는 양분법으로 단절된 한국사상사에서 ‘근대’(개벽파)라는 연결고리를 찾으셔서 이런 표현을 쓰신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뭔가 막혀있는 지금의 상황을 뚫을 수 있는 사상적 실마리는 역시 ‘개벽’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성환 사진2 유상용선생님과
유상용 선생님과~

실제로 요즘 제 주위를 보면 여기저기에서 개벽바람이 불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한국 근대의 탄생』을 읽으셨다는 유상용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30년 동안 국내외에서 공동체운동을 하다가 개벽으로 돌아오신 분인데, 그 귀환의 심정을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고 계십니다: “나는 92년 이래로 정신과 물질이 고루 발달한 풍요로운 이상사회를 지향하는 ‘야마기시즘’을 현실사회에 실현하기 위한 실천과 활동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된 나의 ‘뿌리찾기’의 과정에서 시작된 탐구와 실천의 한 과정일 뿐이지 전부는 아니다. 뿌리찾기 과정에서 도착한 곳은 조선 정신의 용출인 개벽사상이었고, 그것을 사회화하기 위해 시도했던 것이 원불교사상을 기반한 새로운 사회 만들기였다. … 작년 말에 나는 다시 돌아왔다, <개벽>으로 -. 한국의 상황에서, 지금 여기로, 뿌리에서 올라오는 울림으로, 나의 느낌으로…”

이렇게 ‘다시 한국’으로 귀환하신 분과 원광대학교에서 6시간 동안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30년 동안의 체험과 실천에서 우러나오는 ‘말씀’으로부터 개벽학과 관련해서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가령 동학은 일종의 한국인의 사상적 뿌리찾기로 해석할 수 있고,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개벽적 주체의 정립이며, 한살림은 생산성 중심의 과학농업에서 철학에 기반한 인문농업으로의 전환을 시도한 운동이다 등등… 유상용 선생님도 며칠 뒤에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리셨더군요.

“요즘 동학‧증산‧원불교 관련 글들을 읽으며 그 때 선조들의 바람은 무엇이었는지, 시대적 과제와 자각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많이 읽고 떠올려 보았다. 특히 최제우 선생은 조선과 동양의 몰락을 감지하고, 유학이 당면한 과제를 알고, 기독교-서학의 내용이 의미있다는 것을 이해한 후에, 유학이 현상의 관찰에 머물러 초월을 몰랐고, 서학이 초월을 인간 밖에 두어 외화되었다고 판단하고서, 스스로 기도를 통한 초월적 체험을 시도하여 새로운 길을 열고, 양쪽의 모순을 극복한 ‘내안의 하느님을 모시는’ 시천주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고 이해하게 되었다. 전에도 비슷하게 생각했었지만, 조선 문명의 절실한 과제의 해결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이해하니 더욱 선생과 선조들의 마음이 가깝게 느껴진다.”

탁월한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초월의 문제와 관련해서 동학의 입장에서 유학과 서학의 한계를 지적한 부분은 왜 개벽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사상사적으로 정확히 짚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분들의 도움을 받으면 이 시대에 필요한 개벽학을 정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날 유상용 선생님의 소개로 마침 익산에 오신 이남곡 선생님도 함께 만나뵐 수 있었습니다. 30년 전에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감옥에서 나온 뒤에 어느 사찰에 들어가서 「혁명에서 개벽으로」라는 글을 쓰신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벽’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냐고 여쭤봤더니 “밝음을 창출하는 에너지”라는 한마디로 명료하게 정의해 주셨습니다. 어둠과의 싸움이나 정치적 투쟁이 아니라 “자기 안의 밝음을 신장시키려는 노력”이라는 것입니다.

순간 저는 한국의 전통적인 ‘신명사상’과 장일순 선생의 ‘보듬는 혁명론’이 떠올랐습니다. ‘신명’이 바로 ‘밝음의 에너지’이고, ‘신명난다’는 말은 “밝은 기운이 나온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투쟁이나 저항의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전환시키는 길은 밝음의 에너지로 상대를 보듬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남곡 선생님이 작년에 『논어: 삶에서 실천하는 고전의 지혜』의 개정판을 내셨다고 하는데, 이런 마인드로 『논어』를 독해하셨다면 저로서는 일종의 『개벽논어』와 같은 느낌이 듭니다.

 

2. 창조성과 도덕성

선생님의 편지에서 두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점은 “정신을 개벽하여 물질을 개벽하자!”는 역발상입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정신개벽은 ‘서구중심주의’로부터의 탈피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최제우가 ‘중국중심주의’로부터의 탈피를 ‘다시 개벽’이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종래의 성학(聖學)을 술(述)하지 않고 동학(東學)을 작(作)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한국 근대의 시작으로 보았습니다. 적어도 사상사적으로는 이렇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국중심주의나 민족주의로 나가자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사실 모든 ‘중심주의’로부터의 탈피가 정신개벽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지요. 천도교나 원불교 경전에서 마음/정신의 최고 상태를 ‘자유심’이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로운 마음/정신 상태가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새로운 생각, 새로운 학문, 새로운 동학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다고 봅니다. 뭔가에 얽매여 있는 상태에서는 새로움을 창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새로움’이 바로 이남곡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밝음’이나 한국사상에서 말하는 ‘신명’ 그리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유레카’와도 상통하고요. 아울러 이렇게 정신이 개벽되면, 즉 정신이 자유로워지만 창조적인 주체가 될 수 있고, 이렇게 창조성이 발현될 수 있을 때 새로운 물질개벽의 차원이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것이 ‘창조경제’이고, 인문디자인의 관점에서 본 정신개벽과 물질개벽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해석입니다.

조성환 사진2 새교포럼 박맹수 강연1
세교포럼 박맹수 강연(왼)

물론 정신개벽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자각하여 구세하자”는 자각정신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지난주에 창비빌딩에서 있었던 세교포럼에서 원광대학교 박맹수 총장님이 “문명전환기에 다시 보는 한국근현대사상”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셨는데, 이에 대해 세교연구소 고문이신 백낙청 교수님께서 이중과제론적 입장에서 코멘트를 하셨습니다. 원불교에서 말하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슬로건의 의의는 이 시대를 물질개벽, 즉 자본주의의 시대로 설정하고 그것에 대한 정신적 대응으로써 정신개벽을 주장했다는 데에 있고, 그래서 원불교에는 근대적응(물질개벽)과 근대극복(정신개벽)이라는 이중과제가 다 들어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이 한마디에 그동안 말로만 듣던 백낙청교수님의 이중과제론의 내용이 명료하게 들어왔습니다. 아울러 원불교의 개벽론이 지니는 현대적인 의미도요. 물론 개인적으로는 “물질개벽=자본주의”보다는 “물질개벽=과학혁명”이라고 하는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과학혁명과 자본주의가 현실적으로 맞물려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강같습니다.

저는 이런 의미의 정신개벽을 나타내는 말이 개벽파가 주장한 ‘도덕’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월 최시형이 말하는 ‘도덕문명’(『해월신사법설』「기타」)이나, 소태산 박중빈이 말하는 물질문명과 대비되는 ‘도덕문명’(『대종경』 「교의품」 32장)이 그러한 예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정신개벽이라는 말에서 도덕성과 창조성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읽어내고 싶습니다. 도덕성이 원 문맥에 충실한 개념이고, 선생님이나 백낙청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자본주의라는 근대를 극복하는 정신적 태도나 삶의 자세라고 한다면, 창조성은 정신개벽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신을 개벽해서 물질을 개벽하자”는 선생님의 역발상에서의 정신개벽은 이렇게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성환 사진2 새교포럼 박맹수 강연2

 

3. 한국학과 신동학

마지막 부분에서 “동학을 연구하기보다는 신동학을 하자!”는 선생님의 제언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다만 제가 ‘개벽사’라는 사상사 서술에 집착하는 이유는 역사에 대한 인식이 우리의 실천을 결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이 실천이나 현장을 우선시하는 분들과 저 같은 연구자와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학의 틀을 바꾸고 싶습니다. 척사와 개화, 유학과 서학에 치우친 한국학에서 ‘척사-개화-개벽’이 천지인(天地人) 삼재처럼 균형이 잡힌, ‘유학-서학-동학’이 삼발이처럼 정립된, 그런 한국학을 그리고 싶습니다. 유학이 동아시아라는 전통적 배경이고, 서학이 세계라는 현대적 환경이라고 한다면, 동학은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재적 풍토입니다. 그래서 어느 것 하나 소외되고 무시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현재적 풍토는 잊혀지고 무시된 감이 있습니다. 그것이 개벽이라는 근대였습니다. 이 폄하되고 경시된 한국적 근대에 대한 기억을 복원시키는 일이야말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균형잡힌 한국학이 정립되지 않으면 실천도 방향을 상실하리라 생각합니다. 개벽의 근대를 제외한 유학 중심의 ‘전통과 현대’라는 틀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제 입장에서는 “동학을 연구하는” 것도 일종의 “동학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한국 근대의 탄생』의 출간을 인연으로, 한평생 실천현장에 몸담고 계셨던 실천가들을 만나 뵙고, 아울러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자극을 받고서, 저도 비로소 실천에 대한 필요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도 새로운 ‘자각’이 생겨난 셈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25년이 문헌연구-사상연구에 치중했다고 한다면, 앞으로의 25년은 실천현장에 계셨던 분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새로운 ‘학’의 정립과 실천에도 힘을 기울이고 싶습니다.

 

4. 언어의 한계

마지막으로 맨 처음에 제기해 주신 ‘일본의 개벽’이니 ‘토착적 근대’에 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는 것으로 이번 답장을 마치고자 합니다. 당연히 지적하신대로 일본의 개벽파를 상정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에는 개벽파라고 할만한 운동은 희미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도 동의하시는 바입니다. 다만 우리와 같은 개벽의 흔적이 있는지를 찾고 싶었고, 그것이 안도 쇼에키와 같은 사상가가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결코 한국 개벽의 원형이나 시작이 일본에 있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동학=개벽’의 가장 큰 사상사적 의의는 중국적 성인질서로부터의 탈피인데, 이런 주장을 안도 쇼에키가 이미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안도 쇼에키는 사회운동의 차원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이것이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였다고 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관점이 제가 ‘근대=자본주의’와 등치시킬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세계’의 관점에서 보기보다는 ‘한국’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입니다(물론 한국은 세계 안에 있지만요-.). 그래서 근대의 기준이나 내용을 규정할 때에도 저로서는 중국(유학)과의 관계가 중요해지고요. 마치 서양 근대가 중세(신학)와의 관계 속에서 나왔듯이 말입니다. 단지 관점이 달라서 표현이 달라질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개벽’이라는 표현은 ‘한국의 근대’라는 표현과 유사하게 생각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즉 modern의 번역어로서의 ‘근대’라는 말을 한국의 ‘개벽’을 설명하기 위해서 차용해서, 그 상대적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서 ‘영성적 근대’니 ‘자생적 근대’라는 말을 썼듯이, 이번에는 반대로 한국의 ‘개벽’과 유사한 현상을, 즉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이라는 현상을 일본사상사에서 찾아서 적용해 본 용어입니다. 그래서 서양의 근대와 한국의 근대의 내용이 완전히 일치할 수 없듯이, 한국의 개벽과 일본의 개벽도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토착적 근대’니 ‘비서구적 근대’니 하는 용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시기에 굳이 ‘토착’이니 ‘비서구’니 하는 용어를 쓸 필요가 있느냐는 문제제기에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방편적인 용어에 불과합니다. 서구중심주의를 상대화시키기 위해서요. 가령 김치가 한국의 토착음식이라고 할 때, 김치의 재료나 요소가 한국에만 국한된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해외에도 김치가 보급되고 있는 상황에서 김치가 한국만의 음식이라는 뜻도 아니고요. 다만 김치라는 음식이 나온 고장이 한국이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존재론적으로는 모든 게 연결되어 있지만요. 토착적 근대니 비서구적 근대라는 말도 이 정도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우려하는 것은 보편이니 지구화니 글로벌이라는 말에 의해서 놓칠 수 있는 한국이라는 로컬이나 지역이나 특수성이었습니다. 이것은 제 전공이 한국사상사이기 때문에 강조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오랜만에 개벽에 대해 쓰고 나니 가슴이 후련해졌습니다. 요즘 많은 분들이 개벽에 대해 호응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힘이 납니다. 선생님을 비롯하여 여러분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금, 2019/01/2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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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엇이 근대이고 어째서 개벽인가

꼬장꼬장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꼬치꼬치 따져야 할 대목이 적지 않습니다. 지난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근대론과 개벽론이 서걱서걱 착종되어 있습니다. 근대는 무엇이고 왜 개벽인가 흐릿하고 희뿌옇습니다.

‘New’와 ‘Modern’은 다릅니다. 새로운, 이라는 형용사와 역사적 개념으로서의 근대는 엄격하게 분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새 시대가 곧 근대는 아닙니다. 앙시앙 레짐에서 탈피한다고 하여 아무데나 ‘근대’를 갖다 붙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 식이라면 ‘근대’라고 수식할 수 있는 시대가 너무나도 많아집니다. 자칫 ‘근대 이후’(Post-Modern)조차 ‘근대’(New)가 됩니다. 사실상 역사적 개념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상실하고 마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作)이 중요한다 한들, 그간의 숱한 ‘술’(述)을 죄다 기각시켜버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게 가볍게 퉁-치기에는 근대에 대한 치열하고 치밀한 논의들이 너무나도 많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저는 근대의 숨은 주어가 자본주의 세계체제라는 백낙청 선생의 견해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다만 그 주창자 월러스틴처럼 14-15세기 지중해까지 거슬러 오르는 것에는 회의적입니다. 여전히 아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형 세계체제가 작동할 무렵이었습니다. 19세기 이후에나 일어나는 동/서 역전을 지나치게 먼 시기까지 소급 적용하고 있습니다. 또 이은선 선생님의 지적처럼 조선을 ‘조숙한 근대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고 봅니다. 미야지마 히로시의 ‘유교적 근대’에도 수긍하는 쪽입니다. 글로벌 히스토리, 세계사 다시 쓰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근대성의 많은 특징이 송나라에 기원을 두고 있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송 이후의 원, 즉 몽골세계제국의 유라시아 네트워크를 통하여 그 근대성의 씨앗들이 동서남북으로 확산되었던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고려와 조선은 그 영향 또한 일찍 받았음이 자연스럽습니다. 조선이 과거제로 운영되는 고도의 합리적 관료제 국가를 일찍이 이룬 까닭입니다. 그 다기한 복수의 (초기) 근대성이 19세기 이후 서구적 근대성으로 획일화되듯 보였다가 목하 서구/비서구를 가르지 않는, 신대륙/구대륙을 나누지 않는 지구적 근대성으로 합류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지구적 근대(후기 근대?)의 발현에 지난 200년 주눅 들었던 비서구의 다양한 가치들이 재기하고 재활하는 대반전의 형세입니다. 대체로 김상준 선생의 역작 <맹자의 땀, 성왕의 피>에서 그려내었던 중층근대성 이론에 가까운 축입니다.

역사적 시간은 축적되는 것이지, 물리적 시간처럼 차원 변경이 여의치 않습니다. 하여 ‘중국적 성인질서의 탈피’가 곧 근대라는 발상에 동의하기 힘듭니다. 그러하면 동학이 탄생했던 1860년이라는 시점의 유별남과 각별함이 도리어 탈색되고 맙니다. 탈중국은 이미 부차적인 무렵이었습니다. 아편전쟁 이래 중국은 벌써 을로 전락했던 시점입니다. 동학 창도와 베이징조약 체결이 같은 해라는 점은 여러모로 상징적입니다. 당시 중국은 영국과 프랑스에만 굴복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연해주, 한반도보다 훨씬 넓은 강역을 러시아에 통째로 넘겨준 해가 바로 1860년입니다. 비단 영토 상실로 그치지만도 않았습니다. 제국의 중심, 자금성이 함락되고 원명원은 불에 타는 수모마저 겼었습니다. 그로써 조선은 졸지에 낯선 동방정교회 제국과 국경을 접하게 되는 전례 없는 시대로 휘말려 들어갑니다. (돌아보면 남/북 분단의 먼 기원입니다.)

즉 서세동점의 갑질에 중국조차 대응할 역량이 없음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 또한 스스로 떨쳐 일어서야 했던 것입니다. 탈중국은 어디까지나 방편일 뿐이며, 서구에 대한 대응이야말로 시급한 시대과제였습니다. 그래서 명명 또한 ‘東學’이었던 것입니다. 명명백백 서학에 대한 응수였습니다. 서세의 약진에 대한 주체적이고 자각적인 반응의 소산이었습니다. 비단 황해 건너 중국만도 아닙니다. 1853년 동해 지나 일본에도 시커먼 페리 함대(흑선)가 당도했습니다. 1857년 저 멀리 남쪽 인도양에서는 세포이항쟁이 진압되고 무굴제국이 몰락했습니다. 지중해는 또 어떻습니까. 크림전쟁으로 오스만제국의 핵분열이 시작된 것도 1853년입니다. 대청제국, 무굴제국, 페르시아(사파비드)제국, 오스만제국 등 포스트-몽골 시대를 주름잡던 유라시아 제국들이 공히 쇠락해가던 무렵입니다. 유라시아의 서쪽 모퉁이, 서구 국가들이 집단적으로 굴기하던 대분기(Great Divergence)의 시세입니다. 산업혁명 이래 자본주의(물질개벽)의 힘이 동서남북 도처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히고 있던 것입니다. 서구의 내부에서조차 ‘악마의 맷돌’을 수습하려는 <공산당 선언>(1848)이 나왔을 만큼 그 기세는 파상적이었습니다. 즉 1860년이면 이미 중화세계보다는 지구적 맥락이 더 중요해졌다고 보아야 합니다. 세계체제로 편입되어가는 대전환기의 벽두에 ‘다시 개벽’이라는 일성(一聲)이 터져 나왔다는 점이야말로 동학의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다나카 쇼조

그 절치부심 속에서 유학은 부채가 아니라 자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침몰하지 않고 튕기어 되오를 수 있는 저력에 유학국가 500년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었다고 여깁니다. 이걸 사뿐히 소거시킨 얼치기와 양아치들이 개화파 아니었던가요? ‘중국적 성인질서의 탈피’를 곧 ‘근대’라고 규정한다면 개화파들이야말로 그 과제를 철두철미 철저하게 수행하려고 했던 것 아닐지요? 후쿠자와 유기치가 표방한 “탈아입구”(脫亞入歐)야말로 탈중화세계를 표방하는 사상의 정수, 캐치프레이즈 아니었습니까? 일본이 그토록 맹렬하게 문명개화=서구화로 질주할 수 있었던 까닭도 유학적 세계관의 중력과 장력이 부족해서라고 여깁니다. 약육강식과 무한경쟁으로 작동하는 무도한 ‘금수의 세계’에 재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유교국가의 경험이 일천해서라고 봅니다. 그 마주 편에서 메이지유신의 그늘을 직시하고 자본주의 근대문명의 심층을 응시했던 다나카 쇼조를 일본의 ‘개벽파’로 칭하는 데는 조금의 이의도 없습니다. ‘다시 개벽’은 어디까지나 ‘서구의 충격’ 이후의 외침이고 깨침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유학국가의 유산이 역력했던 중국과 조선과 월남은 모두 ‘저항’했습니다. 저항의 결과로 공히 사회주의로의 경로에 친화적이었습니다. 고로 동학과 유학을 신/구(新舊)로 무 자르듯 나눌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금(古今)으로 끈끈하게 연결되었다고 여깁니다. 유학이 무르익고 농익어서 비상한 시국에 동학으로 터져 나온 것입니다. 묵은 것과 낡은 것은 다릅니다. 곪은 것과 삭은 것 또한 다릅니다. 옛 것과 새 것의 분단체제야말로 개화파가 획책했던 몹쓸 습성의 잔재입니다. 제가 유학과 단절된 동학보다는, 유학의 급진적 민주화/민중화로서 동학을 접근하는 까닭입니다. 개화와 개벽이 날카롭게 분기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개화파가 전통을 내팽겨 치고 편승과 추수로 시종했다면, 개벽파는 전통을 승화시켜 저항과 극복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전자가 나를 버리고 남을 따랐다면, 후자는 나도 바꾸고 남도 바꾸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세계체제 이후에 대한 단서까지도 내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백년을 예비하고 새로운 백년을 태비하는 마르지 않는 영감의 샘이 되어줍니다. 오늘날 우리가 ‘또 다시 개벽’을 논하는 까닭 또한 민주화 이후의 ‘타는 목마름’을 해갈할 수 있는 시원한 물줄기를 애타게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개화기인가 개벽기인가

‘뭔가 답답한 대한민국의 현실’이라 하셨습니다. ‘뭔가 막혀있는 지금의 상황’이라고도 하셨습니다. 갑갑하고 답답한 그 무엇인가를 잘 헤아리고 해명하는 것이 선결과제 같습니다. ‘서구중심주의 탈피’만으로는 다소 부족해 보입니다. 이미 서구는 지방화, 국지화되고 있습니다. 독일어와 프랑스어의 위상 저하가 괜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커녕 거의 모든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 주구장창 읊조렸던 상투적 클리셰야말로 서구중심주의 비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족문학론, 제3세계론, 종속이론, 탈식민주의론 등등 진부하다 못해 지겨운 감마저 없지 않습니다. 저는 ‘개벽’이라는 소중한 개념을 고작 서구중심주의 탈피라는 별반 새로울 것도 없는 화두에 헐값으로 넘겨주고 싶지 않습니다.

개벽은 목하 한국은 물론이요 전 인류에게 임박한 ‘6번째 대멸종’을 돌파할 수 있는 파상력(破狀力)을 담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동안의 근대 논의와는 다른 차원에서 오늘날의 세계는 19세기에 만들어졌다는 점에 수긍합니다. 단지 산업혁명을 통하여 유럽과 아시아 간 대분기가 일어났다는 차원에 그치지 않습니다. 산업혁명의 심층은 지상(地上)과 지하(地下)를 결합시킨 데 있습니다. 땅 아래 묻혀 있던 석탄과 석유를 마구 퍼다 썼습니다. 지하자원을 본격적으로 활용하면서 지상자원에만 의존하던 기존의 인류문명을 바꾸어버린 것입니다. 인류는 이제 대기에는 이산화탄소를 배출시키고, 대지에는 질소를 누적시킴으로써 대양의 구성 비율까지 바꾸어내었습니다. 2019년의 대기와 대지와 대양은 오롯이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46억년 지구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고작 200년 사이의 변화입니다. 인간이 하늘과 땅과 바다를 변화시키고 동식물의 진화까지 좌지우지하게 된 것입니다. 1945년 이후 제3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근대화(산업화+민주화)로 내달리면서 이 지구적 변화의 속도는 더욱 가팔라졌습니다. 대기와 대지와 대양의 지구적 운동이 천상(天上)의 기후를 형성합니다. 그 기후가 극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비상경보등이 울려 퍼진지도 이미 오래입니다.

제가 보건대 산업화를 추동했던 개화우파는 물론이요, 민주화를 추진했던 개화좌파도 이 임박한 지구적 위기에 대한 근본인식과 근본대책이 없습니다. 시대정신이 결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고작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하여 경기부양에 안달할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답답하고 갑갑한 것입니다. 1987년 이후 돌림노래가 30년이 넘도록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즉 민주화세력 또한 이미 기득권입니다. 정체되고 적체되어 있습니다. 제가 스무 살 새내기 때 집권했던 세력이 마흔 살 대학교수가 되어서 재집권한 것이 ‘진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성찰이 부재하니 ‘20년 집권론’이라는 허튼 소리를 내뱉는 것입니다. 한 세대도 모자라 반세기를 허비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선생님이 다른 자리에서 적확하게 꼬집으셨던 것처럼 현 정부는 촛불혁명의 수혜자일 뿐입니다. 어부지리였습니다. 그런데도 제 분수를 모릅니다. 도무지 ‘구시대의 막내’라는 자각이 없습니다. 척사파의 꼿꼿한 심성과 개화파의 식상한 발상이 기묘하게 뒤섞여 있습니다. 하자센터의 어느 발랄한 10대 친구의 말을 빌자면, ‘죽 써서 개 준 꼴’입니다.

숲의 원리를 도시 건설에 활용한 _포레스트 시티_ 조감도

갈수록 아득해지고 있는 촛불혁명의 출로가 ‘다시 개벽’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정신을 개벽하야 물질을 개벽하자’고 문장의 순서를 바꾼 것은 단순히 정신주의, 백년 전 루쉰이 그토록 신랄하게 비꼬았던 아Q식 정신 승리법이 아닙니다. 물질개벽의 진보가 특이점을 돌파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정신과 물질을 가를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사물인터넷, 사람과 사물이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수준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생산’혁명과 ‘생각’혁명이 결합되어 만물이 활물되는 제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20세기 후반의 생태주의로 족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자연(Nature)과 문화(Culture) 또한 이미 불가분입니다. 글로벌리스트(개화파 2.0)의 파상공세에 펀더맨털리스트(척사파 2.0)적 대응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앞으로 30년, 귀농은커녕 더더욱 많은 인류가 도시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21세기 중반 인류의 7할이 도시에 살게 됩니다. 물질과 정신이 고도로 연결된 스마트시티가 살림살이의 주요한 형태가 될 것입니다. 그럴수록 마음가짐과 마음다짐이 실시간으로 전 지구적으로 온 생명적으로 파동을 일으키고 파장을 미치게 됩니다. 시시각각 마음을 잘 써야 지구와 우주가 잘 돌아갑니다. 고작 4, 5년마다 투표를 통하여 겨우 한 나라의 일반의지를 확인하는 19세기형 민주주의로는 어림도 없는 신시대가 도래하는 것입니다. 기왕의 (개화적)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두가 이미 수명을 다했습니다. 정권교체에나 연연할 뿐 문명전환에는 깜깜하고 캄캄합니다. 개벽정치의 창조, 개벽경제의 창안, 개벽문화의 창달이 시급합니다.

다시 왜 개벽사를 써야하는가로 돌아갑니다. 다른 미래는 다른 서사의 창출에서 비롯하기 때문입니다. 술(述)이 아니라 작(作)이 필요합니다. 선도하고 있는 쪽은 오히려 개화우파 같습니다. 지난해 실학론의 허상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기획특집을 선보인 곳이 <중앙일보>였습니다. “리셋 코리아”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고 봅니다. 그쪽에서는 ‘제3의 개항’이라는 말도 즐겨 씁니다. ‘또 다시 개화’라고 고쳐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더더욱 개화’는 남을 넘어 북까지 아우릅니다. 북조선을 ‘친미적 개화국가’로 전변시키려 듭니다. 일본으로 미국으로 기울었던 20세기를 21세기에도 반복하고 복제하고자 합니다.

실제로 현재 ‘근대문화유산’ 하면 대체로 일제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인 경우가 많습니다. 개화사로 근대사를 썼기에 부지불식간 일본의 영향이 두드러집니다. 요사이 떠들썩했던 목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비단 목포뿐이겠습니까. 군산도 부산도 인천도 개항과 개화의 유산만 부각되어 있습니다. 1876년 강화도조약, 개항을 시발로 삼는 ‘개화기’라는 시대구분 탓입니다. 서둘러 1860년 동학 창건으로부터 시작하는 ‘개벽기’라는 시대인식을 바로 세워야하겠습니다. 개벽의 흥망성쇠를 개화의 물결과 견줌으로써 우리의 근대사 또한 한층 풍요롭고 더욱 온전하게 복원될 수 있을 것입니다.

3.1운동의 중심지였던 천도교중앙대교당

자각적인 개벽보다 외래적인 개화를 더 중시하는 도착은 비단 문화유산 기념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개화우파의 고질병만도 아닙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개화좌파의 역사인식에도 깊숙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지난 몇 달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에서 주도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상하이 국제학술회의 조직을 거들었습니다. VIP가 ‘민주공화국’에 대한 애정과 애착이 남다르셔서 3.1운동(과 5.4운동)을 전후한 동아시아의 민주와 공화 담론을 복기해보자는 얘기가 오고갔습니다. 제가 우선으로 추천한 분이 원광대 정혜정 교수와 <모시는 사람들>의 박길수 대표입니다. 동학의 후신인 천도교의 독창적인 정치사상이 어떻게 한국의 독자적인 공화담론으로 진화해갔는지를 중국에서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별반 논의도 못한 채 묻혀버렸습니다. 기획회의에 모였던 다른 선생님들이 영 뜨악하고 뚱한 눈치였습니다. 3.1운동이 ‘제2의 동학운동’, ‘다시 개벽 운동’이라는 감이 좀체 없습니다. 결국 다른 분이 섭외되었습니다. 그 분의 책은 진즉에 읽어보았습니다. 서구의 공화담론이 일본의 번역을 통하여 유통되는 과정과 신해혁명이 한국에 미친 영향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개화(좌)파의 발상인 것입니다. 안보다는 밖을 살피는데 더 능합니다. 이래서는 ‘2019년을 개벽파 재건의 원년으로 삼자’는 제안이 무색해질 지경입니다. 더욱 배포를 다지고 치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흩어진 개벽파를 세력화하고, 투박한 개벽론을 세련화하고, 소심한 개벽학을 세계화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3.1운동 100년의 의미를 되짚는 담론을 선도적으로 개진했으면 좋겠습니다. ‘개벽기’의 실상 복원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연구해 오신 분이 조성환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득의와 발군의 3.1혁명론이 기대됩니다. 선창을 요청 드립니다. 제가 후창을 잇겠습니다. 그리하여 기어이 3월이면 삼천리금수강산, ‘또 다시 개벽’의 떼창이 방방곳곳 울려 퍼지면 좋겠습니다.

금, 2019/02/0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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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영웅 너마저 ‘미투’를 외치고 있다. 그녀가 올림픽 스타이기 때문에 더 놀라는 것이 싫지만 스타마저도 당한다면 나머지는 오죽하랴라는 생각을 끌어내 주었다는 점에서 그 용기가 더 값지게 다가온다. 그녀가 스타의 신화와 눈부심으로 가려진 장막을 젖히고 민낯을 보여준 용기에 더 부끄럽다. 무대 전면만 보고 환호해 온 어른으로서 하루 이틀도 아닌 장기간의 ‘폭력’을 방치해 왔다는 공범 같은 느낌이 든다.

‘미투’와 ‘갑질’의 사례가 봇물 터지듯이 등장한다. ‘미투’를 외치는 비명은 ‘갑질’을 폭로하는 저항의 용기와 일맥상통한다. 한 끗발만 더 유리한 고지에 있어도 상대에게 무제한의 권력을 휘두르는 ‘갑질’은 ‘신분에서 계약’으로 이행했다는 근대사회의 논리가 허구인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왜 ‘미투’와 ‘갑질’을 함께 다루는 지 의아할지 모른다. ‘미투’의 문제를 성 대결의 특수성으로 잘 못 보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갑질’과 함께 다룬다. 그것은 사회발전의 지체가 응어리지고 곪아터져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건이 오랜 동안 잠복되어 왔던 사건들이다. 수면아래 잠자던 또는 ‘침묵의 카르텔’ 속에 봉인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만들어 준 작은 영웅들을 지켜주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내 아이를 위한 보호막을 일류학교 졸업장과 ‘갑질’할 수 있는 지위 획득이라고 생각하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가르쳐 왔다. 모든 사회문제에 눈을 감고 질주하라고 부추겨 온 어른으로서 젊은이들이 도처에서 마주치는 ‘갑질’의 폭력을 눈을 감고 외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갑을’관계는 모든 거래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설사 특정 상황에서는 갑이라고 해도 언제든 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갑질은 누군가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며 ‘사회문제’이다. ‘미투’와 ‘갑질’의 문제가 소송으로 귀결되고 있지만 해결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연대’와 사회적 합의 그리고 공론의 구성이 필요하다. 법정에서의 사실의 다툼은 가치 판단을 해체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더 많은 폭로와 ‘함께’를 외치는 힘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일단 확인 시켜주는 의미도 있고 무엇보다 피해자에게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사막을 혼자 걷는 것과 누구라도 함께 걷는 것을 비교해 보면 ‘함께’가 주는 위안의 깊이를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하면 예견된 일이었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유보해도 좋다는 사회적 묵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경제발전을 위해 권위주의 정권을 용인해야 한다는 담론이 오랫동안 정설로 자리 잡았다. 담론이 공론은 아니다. 냉전 속에 ‘열전’을 치르면서 ‘사회’ 또는 사회적이라는 단어를 금기로 만들었다. 1960년대부터 이어진 경제성장 중심의 담론은 정치발전의 과제를 미루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심지어 민주정권 통치 기간에도 정치 발전의 성패는 경제발전에 의해 재단되는 것을 수용하는 분위기다. 정치발전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양보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만드는 담론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정치발전의 토대가 없는 상황에서 정치발전은 이익집단의 무한 경쟁, 정치적 대표성의 이름으로 다당제에 대한 예찬 등으로 이해되는 중이다. 민주화가 표현의 자유, 사유재산권의 신성불가침, 시장의 자유로 해석되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정책 결정의 공공성 구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정당 이름이 변화무쌍 하여 정당의 정체성과 당명을 일치 시키는 것도 어렵다. 당원자격이 주어지는 방식, 당원과 선출직과의 관계 등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이런 차원에서 정당 투표를 강화하려는 주장이 정치적 올바름인 양 제시되고 있다.

정치발전이 장기적인 집합적 저항을 통해 틀을 갖추어가는 반면 사회 발전의 과제는 ‘ 전통의 미화라는 가면으로 위장 되어 수면에 드러나지도 않았다. 법인의 성격을 띠는 회사가 주인 노예의 관계의 관행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학교에서는 근대적 가치를 가르치고 헌법에서도 기본인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사회관계는 봉건제 이전의 노예제적 성격을 지닌다. 이 불균형 속에 발랄한 21세기의 미래 세대가 갇혀 있다. 그들의 단말마적인 외침을 외면한다면 미래는 없다. 사회발전을 기초로 정치 발전과 경제발전이 이루어지는 서구 근대사와는 반대로 선 경제 발전 정치발전 그리고 장기간 유보된 사회발전이라는 기형적 구조 속에서 터진 아우성이 바로 ‘미투’와 ‘갑질’의 폭로로 드러나고 있다.

이 폭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가 외면하는 가운데 이 외침은 지속적이었고 그 울림은 새로운 규범을 지구촌 차원에서 만들어 낸지 오래다. 1992년 1월 8일부터 시작된 수요 집회가 이제 26년을 넘겼다. 한주도 거르지 않고 일본대사관 앞에서 이어진 전시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사죄요구는 국경을 넘었고 지구촌의 규범을 만들어 내었다. 전시 성폭력 문제가 국제 형사 재판소에서 반인권적 전쟁 범죄로 규정된 것이 2000년이다. 2000년 10월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가 결의안 1325를 채택하였다. 성폭력 피해자인 여성이 평화프로세스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지구촌은 21세기를 맞아하였다. 성폭력피해자가 입을 열지 못하게 만드는 지구촌의 침묵의 카르텔을 깬 것은 ‘살아남은’ 할머니 들이었다. 이 기간 동안 할머니들은 소녀가 되어 갔다. 할머니가 ‘소녀상’으로 바뀌면서 성폭력 피해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 싫은 입장에서는 소녀상을 치울 수 있는 물건으로 보았고 소녀상을 세운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물건이 아니라 기억해야할 역사였다. 어느 해 기록적인 한파가 찾아온 날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 근처를 지나가게 되었다. 영하 수십 도의 날씨에 일본 대사관 앞에서 소녀상을 철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천막을 치고 새우잠을 자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았다. 시대의 과제를 그 때 그 때 해결하지 못하고 미뤄온 어른으로서의 부끄러움이 앞섰다. 그 생생한 기억 속에 떨리는 듯한 미투의 외침이 겹쳐 들려온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일제 강점기를 다룬 영화 그리고 드라마가 등장하고 있다. 지난 100년의 반성의 끝자락에서 폭로된 ‘미투’와 갑질은 100년 동안 미뤄온 사회발전의 지체된 과제를 이행하라는 준엄한 명령이다. 이 명령을 외면하고 4차 산업의 화려한 어휘로 도피한다면 정말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미래는 없다.

화, 2019/02/05-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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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성찰과 개벽의 귀환

 <개벽론>과 <근대론>을 구분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본말이 전도되고 ‘달’이 아닌 ‘손가락’에 집착할 수 있으니까요. 박맹수 교수님께서도 한국 근대의 탄생이 나올 때 개화에서 개벽으로를 제목으로 잡아야 한다고 충고해 주셨습니다. ‘근대’는 진부한 주제라고 하면서요. 아마 같은 역사학자라서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만 막상 책이 나오고 난 뒤에 일부 독자들이 “근대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후기를 써주셔서, 학계와는 달리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는 ‘근대’가 반드시 진부한 주제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근대’ 개념에 대한 재인식과 더불어 ‘개벽’이라는 말도 사회적으로 서서히 확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록 더디기는 하지만 신비적인 이미지도 조금씩 걷히고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지적하신 대로 꼭 ‘근대’라는 번역어에 기대지 않고 곧바로 ‘개벽’으로 들어갈 수 있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이렇게 된 데에는 선생님의 “다른 백년, 다시 개벽”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많은 공헌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유라시아 견문이라는 ‘실증’을 통해서 나온 결론이 ‘개벽’이어서 종래와 같은 거부감 없이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미래학으로서의 개벽학

“개벽학은 미래학이요 지구학이고 동서학의 회통과 신문명의 창조”라는 말씀에 개벽학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한국학은 ‘미래학’이라기보다는 ‘해석학’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 모릅니다. 기존에 있는 것들을 소개하고 해설하는 데 주력해 왔으니까요. 그것도 바깥에서 빌려오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는, 적어도 학문적으로는, 항상 바깥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나 처방을 외국의 유명한 학자에게 구하려는 태도도 이러한 학문풍토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지난 이천년 가까운 세월 동안 우리의 DNA에 각인되어 온 관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에 반해 19세기의 ‘개벽’은 우리 스스로가 미래를 개척하겠다는 일종의 태도전환이었습니다. 그래서 역사상 처음으로 독자적인 경전도 만들어 본 것이고요. 그리고 이러한 개척정신은 「삼일독립선언서」의 첫머리에 “자가의 신운명을 개척한다”는 말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개벽학의 첫걸음은 100여 년 전의 미래지향적이고 주체적인 태도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우리의 미래의 주인이라고 하는 ‘주인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마음가짐, 이런 의식이 개벽학의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학으로서의 개벽학

‘지구학’은 전통적 개념으로 말하면 ‘천지학’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지난 2천년 동안 가지고 있었던 우주론을 지난 2백여 년 동안 상실한 것입니다. 한문고전을 보면 거의 모든 우주론이 원기(元氣)에서 시작해서 천지가 형성되고, 거기에서 음양과 오행이 분화되고, 여기에서 다시 인간과 만물이 생성되는 순서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절대로 인간이 먼저 나오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시대 학문은 기본적으로 ‘지구학’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지학에서는 “만물이 하나”라고 하는 네트워크적 세계관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다고 보는 세계관입니다. 그래서 요즘과 같이 인터넷이나 디지털로 만물이 연결되는 시대의 세계관과 더 잘 부합됩니다. ‘한울’이나 ‘한살림’이라는 말에는 이러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개벽학은 이런 천지학적인 우주론, ‘한울학’적인 세계관을 회복하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근대인’, ‘개화인’에서 ‘지구인’, ‘개벽인’으로 전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동학의 세계사상사적 의미

“<동서 문명의 회통과 신문명의 창조>라는 21세기의 과제가 이미 (동학의) ‘다시 개벽’의 외침과 깨침에 내장되어 있다”는 선생님의 지적은, 윤노빈 식으로 말하면 “동학의 세계사상적 의미”를 정확히 짚어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아무도 동학을 이렇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실패한 혁명’이나 ‘일제에 대한 저항’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니까요.

몇 년 전에 어느 학술대회에서 동학에 대해 발표하시는 선배 학자의 토론을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선생님의 발표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은 동학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계시는 것은 아닌가요?”라는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반대로 “선생님은 동학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계시는 것은 아닌지요?”라고 반문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저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여전히 동학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비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기 안에 있는 소중한 것을 못 보고 외국의 사례찾기에 급급합니다. 눈이 바깥으로만 향해 있으니까요. 물론 지나친 국수주의나 민족주의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타자가 배제되니까요. 모두가 양극단입니다. 동학은 우리 것이라서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 것이라서 좋은 것도 아닙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동서학을 회통시켜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려고 했기 때문에 세계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아마 신생철학(1974)의 저자인 윤노빈 선생님도 이 점을 말하고 싶어서 「동학의 세계사상적 의미」를 썼을 것입니다.

 

회통과 창조의 정신

동학의 특징이라고 하신 ‘회통’과 ‘창조’는 개벽학의 기본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회통은 중화주의와 같은 중심주의나 제국주의와 같은 패권주의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발상입니다. 항상 자기가 중심이 되고 타자는 주변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니까요. 일종의 ‘본말’ 관계입니다.

반면에 회통은 본말을 설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것을 아우르려 하는 ‘포함’의 태도입니다. 최치원이 ‘포함삼교’(包含三敎)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타자를 맹목적으로 쫒아가는 ‘축물’(逐物)과는 다릅니다. 장자나 율곡 식으로 말하면 자기를 비우고 타자를 받아들이는 ‘허심응물’(虛心應物)에 가깝습니다.

창조는 이러한 비움과 회통의 태도에서 가능합니다. 어느 하나의 틀에 사로잡혀 있는 축물의 상태에서는 모방과 추종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에 ‘근대의 캐슬’과 ‘개화의 아성’으로부터의 탈출이 요구됩니다. ‘근대’라는 정신적 식민지상태, 영혼의 중독상태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개벽은 이러한 영혼의 해방을 도와주는 일종의 ‘역사적 도우미’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중화주의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개벽이 탄생했듯이, 지금의 근대주의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는 개벽의 경험을 참고해야 합니다.

  

개벽교육과 교육개벽

선생님이 <개벽학당>을 구상하신 것도 이러한 작업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잊혀진 개벽사를 복원시켜 다가올 개벽사를 개척할 ‘개벽의 일꾼’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개벽교육’이자 ‘교육개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취지로 저희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도 오는 3월부터 은덕문화원에서 매달 <개벽포럼>을 개최할 예정입니다. 한 달에 한 명씩 각 분야에서 한국사회를 개벽하기 위해 실천하신 분들을 모셔다가 말씀을 듣고 대화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도법스님의 <생명평화와 개벽>을 비롯해서, 원불교대학원대학교 김경일 총장님의 <원불교와 개벽>, ‘다른 백년’ 이래경 이사장님의 <경제와 개벽>, 연찬문화연구소 이남곡 소장님의 <『논어』와 개벽>, 『역주 용비어천가』의 저자 박창희 선생님의 <세종과 개벽>, 한살림운동을 하신 이병철 선생님의 <살림과 개벽>, 인도에서 오신 원현장 교무님의 <동서융합과 개벽>, 하자센터와 로드스꼴라 김현아‧황지은 선생님의 <교육과 개벽>, ‘토착적 근대론’을 제창하신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의 <종교와 개벽>, 그리고 선생님의 <유라시아와 개벽>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제가 ‘개벽학’을 구상해 보겠다고 마음먹으면서 부딪힌 가장 큰 벽이 ‘실천’ 경험의 부족입니다. 개벽학은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와 같이 엄밀한 형이상학체계이기보다는, 실학과 같이 현실에 밀착된 일종의 실천학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현장에서 실천하면서 이론적인 고민도 해 오신 분들의 말씀을 많이 듣고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개벽사를 복원하는 것은 문헌공부나 현장답사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미래의 개벽학은 실천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칫 공허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개벽포럼>은 저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개벽이라는 역사적 경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제가 생각하기에 일본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는 근대기에 ‘개벽’ 경험의 유무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개벽’은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그리고 자생적으로 새로운 사상을 만들고, 그것에 입각해서 전국적인 사회운동을 전개한 역사적 경험을 말합니다. 한국은 동학개벽에서 삼일개벽을 거쳐 최근의 촛불개벽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중요한 분수령에서 개벽의 경험을 해왔습니다. 반면에 일본은 이런 경험이 부재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오늘날 일본이 처한 사상적 곤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화가 저물어 가는 시기에 새로운 돌파구가 안 보이는 거지요. 150년간 개화의 틀에만 의존해 왔기 때문에요.

개화를 못해 식민지를 당했지만 개벽이 일어났던 한국과, 개화가 빨라서 산업화에는 앞섰지만 개벽의 경험이 없었던 일본. 이것이 두 나라의 근대기의 명암입니다. 오구라 기조 교수님은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일본에서 도덕은 진부하고 한국에서 도덕은 풋풋하다”고 하셨는데, 이 말을 빌리면 “일본의 근대는 진부하고 한국의 개벽은 풋풋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일본인이 본 동학

다나카 쇼조

작년 8월 22일자 《아사히신문》에 “메이지유신 150주년” 특집기사로 <근대 일본의 빛과 그림자>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여기에서 ‘그림자’는 일본 근대화 과정의 어두움을 말합니다. 150년이 지나서 비로소 일본 근대를 성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기사에서 “동학은 문명적”이라고 절찬한 일본 최초의 환경운동가 다나카 쇼조(1841~1913)를 ‘또 하나의 근대’를 지향한 사상가로 평가했습니다. 일본이 선택한 제국적 근대, 침략적 근대가 아닌 생명적 근대, 평화적 근대를 추구했다는 것이지요.

박맹수교수와 죠마루 요이치 기자(한일시민동학시행)

이 기사를 쓴 죠마루 요이치(上丸洋一) 기자는 작년 10월에 <한일시민동학기행>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이 기행은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님과 박맹수 교수님이 10년 넘게 진행해온 동학답사입니다. 이때 죠마루 기자는 다른 일본시민들과 함께 태안, 공주, 천안 등지의 동학전적지를 둘러보았습니다.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님은 90이 가까운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처럼 한국인들에게 정식으로 ‘사죄’하는 것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 후 죠마루 기자는 이때의 기행을 기사화해서 올해 1월에 5회에 걸쳐 《아사히신문》에 연재했습니다.

이 연재에서 동학을 ‘독자적 근대’를 추구했다고 소개했습니다. 다나카 쇼조를 (서구 근대와는 다른) ‘또 하나의 근대’를 추구한 사상가라고 평가한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런데 동학에 비하면 다나카 쇼조는 너무나 외롭습니다. 조직이나 공동체가 있었던 게 아니니까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정부에 맞서 싸우다가 쓸쓸하게 홀로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개벽의 차이입니다. 다나카 쇼조도 동학적으로 말하면 분명 개벽을 추구한 사상가이자 운동가임에 틀림없지만 그를 도와줄 개벽의 동지들이 없었습니다.

 

개벽학 센터의 꿈

마지막 부분에서 한국학과 관련해서 중요한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도학과 과학의 병진”이라는 문제제기입니다. 이것이야말로 21세기 한국학으로서의 개벽학의 최대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동학과 원불교의 개벽학이 도학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홍대용과 최한기의 기학은 과학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이 양자를 회통시키고 융합시키는 철학적 작업이 필요합니다. 실학과 개벽학이 만나야 합니다. ‘개벽실학’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 개벽실학을 모델로 해서 21세기 개벽학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과학은 최신과학의 성과를 반영하고, 도학도 최근의 수양 프로그램을 반영해서 말입니다. 저는 이런 실험적 작업을 하는 ‘개벽학 센터’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도학과 철학과 과학이 어우러진 개벽학을 디자인하는 작업실 같은 곳 말입니다. 이곳에서 개벽사상을 담은 새로운 민주주의이론도 구상할 수 있을 수 있겠지요. 해원(解冤)의 수양과 경물(敬物)의 윤리와 신명(神明)의 도덕을 겸비한 ‘개벽민주주의.’

 

개벽의 역할분담

유상용선생님과 송지용연구원

마지막으로 유상용 선생님의 ‘제도개벽론’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번 답신을 마치고자 합니다. 지난 수요일 아침에 공동체운동을 하시는 유상용 선생님이 원광대학교에 오셨습니다. 수덕호에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봉황각 커피숍에서 종교문제연구소의 김재익 연구원, 원불교사상연구원의 황명희 연구원, 송지용 연구원과 함께 2시간 가까이 개벽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유상용 선생님의 제도개벽론이었는데, 골자는 물질개벽과 정신개벽뿐만 아니라 양자를 잇는 제도개벽도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듣고 보니 우리는 모두 제도나 시스템의 영향 하에 살고 있습니다. 교육 커리큘럼에 따라 정신이 개벽되기도 하고 세뇌되기도 합니다. 개벽학당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고요. 개벽파가 주로 도덕개벽과 정신개벽에 치중했다면, 개화파는 제도개벽과 물질개벽에 중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산업화가 물질개벽을 강조했다면 민주화는 제도개벽을 강조했습니다. 1987년에 민주화투쟁으로 얻은 직선제가 그러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정신개벽 서울선언

정치나 시민운동을 하는 분들은 주로 제도개벽에, 종교나 철학을 하는 분들은 주로 정신개벽에, 과학이나 상업을 하는 분들은 주로 물질개벽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각각 자기 역할이 있고 서로 보완해 줍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분야에 있든 개벽의 마인드를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무엇’을 개벽하느냐보다는 개벽을 ‘한다’는 의식이 중요한 거죠. 그리고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쉽게 좌절하지도 않고 자만하지도 않습니다. 반면에 ‘무엇’에 초점을 맞추면, 그 ‘무엇’을 얻은 순간 개벽이 멈추게 됩니다. 반대로 얻지 못하면 지쳐서 개벽을 포기하게 되고요. 공자는 “배우는데 일정한 스승을 두지 않았다”(學無常師)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말하면 “개벽에 일정한 대상을 두지 않는다”(開闢無常)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하노이에서 보내시는 「삼일개벽선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금, 2019/02/2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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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스트-웨스트(Post-West)

복병이 있었습니다. 하노이에 들르기 전 싱가포르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무척 좋아하는 곳입니다. ‘미래도시’에 가장 근접한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다운타운을 걷노라면 수많은 언어가 동시에 들려옵니다. 영어와 중국어, 힌디어와 아랍어, 독일어와 일본어, 말레이어에 한국어도 곧잘 들립니다. 그만큼 다인종, 다민족, 다종교, 다문명 도시입니다. 지구촌을 축약시킨 듯한 이 글로벌 시티를 산책하노라면 뇌가 말랑말랑 활성화되어 풀가동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참새 방앗간, 단골 서점 또한 빠뜨릴 수 없었습니다. 오차드(Orchard) 거리에 있는 키노쿠니야(紀伊國屋)입니다. 일본의 대형서점 체인이 동남아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방콕에도 자카르타에도 쿠알라룸푸르에도 키노쿠니야가 있지요. 하지만 단연 싱가포르가 빼어납니다. 구미는 물론이요 중화권과 일본까지 아울러 최신의 서적들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의 정보와 지식이 실시간으로 유통되고 세상의 변화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하는 곳이 싱가포르이기 때문입니다. 베스트셀러를 진열해 둔 곳부터 단박에 시선을 끌었습니다. 『The Future is Asian』, 『The New Silk Roads』, 『Belt and Road : A Chinese World Order』. 세 권 모두 딱 제 취향입니다. 거시적이고 종합적이며 전망적입니다. 토막토막 일국학도 아니며, 꼬장꼬장 인문학도 아닙니다. 시원시원한 지구학이자 호쾌장쾌한 미래학입니다. 빅픽쳐를 그려가며 메가트렌드를 추적합니다. 공항에서도 비행기에서도, 심지어 하노이에 도착해서도 틈나는 대로 탐독했습니다. 간만에 상하이와 뭄바이와 두바이에 이스탄불과 카불과 모스크바를 아우르는 저작들을 읽어가니 시야가 뻥뻥 뚫리는 쾌감이 입니다.

하노이 시민

싱가포르 직전에는 조호루에도 다녀왔습니다. 말레이시아와의 국경에 자리한 접경 도시입니다. CJ그룹의 아시아태평양 사업본부에서 열린 전략회의에 초청받았습니다. 미얀마부터 파키스탄까지 16개국 주재원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간 여러 자리에서 강연을 해왔지만 단연 생산적이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질문과 응답, 토론으로만 1시간 반을 훌쩍 넘겼습니다. 역시나 현장감을 익힌 기업인들이기에 생동감 넘치는 대화가 오갈 수 있었습니다. 몇 차례는 도리어 제가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일정을 다 마치고도 에너지를 소진했다기보다는 기운을 얻어간다고 느낀 적은 이 번이 두 번째입니다. 처음이 바로 작년 초여름 하자센터에서의 강연이었죠. 푸릇푸릇한 청년들과의 대화와 펄떡펄떡한 기업인들과의 소통 속에서 저 또한 신이 나고 흥이 돋습니다. 그에 견주자면 상아탑의 학술회의는 어쩐지 영 맥이 빠집니다. 형식적인 발표와 의례적인 토론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일쑤입니다. 저는 <개벽파 선언> 연재를 준비하면서부터 출간 이후의 북 콘서트를 줄곧 궁리해오고 있습니다. 미래세대와 소통하고 현장에서 실천하고 있는 분들과의 결합으로 책 잔치와 말잔치 또한 풍성하게 이끌어보고 싶습니다.

19세기 수운과 해월은 전국 방방곳곳에 접(接)을 만들어 동학을 전파했다 했습니다. 우리는 지구촌 구석구석에 개벽학을 소개하고 ‘글로벌 개벽파’와 연대하는 거점(hub)을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Think Global, Act Local)는 개벽파에 더욱 요청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천지만물과 천하를 숙고하면서, 가정과 마을에서부터 성심성의를 발휘해야 하겠습니다.

 

2. 다시 천하

공교롭게도 세 권의 책이 공히 포스트-웨스트를 논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아시아의 세기’라고도 하고 다른 이는 ‘유라시아의 세기’라고도 하지만, 서방세계 즉 유럽과 미국이 주도한 세계질서가 끝나가고 있다는 전망만은 일치합니다. 아니 끝나가고 있다, 도 아닙니다. 유라시아의 세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아시아의 세기의 초입에 진입했다, 가 공통된 서술입니다. 하긴 21세기도 벌써 19년차, 1/5을 지나고 있습니다. 20세기는 과거완료형, 21세기는 미래진행형이 더욱 어울리는 시점입니다.

다만 포스트-웨스트가 전혀 새로운 현상만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기시감이 없지 않습니다. 기해년으로부터 꼬박 일백년 전, 1919년 기미년도 그러했습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대반전의 분수령이 됩니다. 근대문명의 원조이자 총아라고 간주된 유럽에서 발발한 전대미문의 세계전쟁이 비서구의 맹목적 서구화에 급제동을 걸었습니다.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 1권이 출간된 해가 바로 1918년입니다. 비유컨대 ‘개화의 몰락’을 목도한 것입니다.

량치차오

그 세계사적 전환의 기운을 가장 예리하게 흡입하여 사상적 회심을 단행한 이로 량치차오를 꼽을 수 있습니다.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경험한 인물입니다. 중국 근대 계몽주의의 기수이자 개화파의 선봉이었습니다. 양무운동에서 변법자강운동으로 진화할 때 그가 있었습니다. 변법으로도 모자라 다시 신해혁명을 추진할 때도 그가 자리했습니다. 양무에서 변법으로, 변법에서 혁명으로 반세기를 거쳐 서구화 노선이 더더욱 강화된 것입니다. 그랬던 그가 1919년을 기점으로 “탈서방화, 재동방화”의 사상적 회향을 감행합니다. 1918년부터 두 발로 직접 유럽을 방문하여 두 눈으로 몸소 유럽을 관찰했기 때문입니다. 그 체험과 체득을 기록으로 남긴 문헌이 <구유심영록>(歐遊心影錄)입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에서 ‘동방문화 구세론’이 부상하고 있는 지적 풍경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유교와 불교, 도교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던 대학생들이 <도덕경>을 들고 다니며 ‘유럽의 중국인’을 자처하는 ‘신청년’으로 변모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량치차오 또한 더 이상 중국의 서방 학습이 아니라 중국의 세계 구제를 골똘하게 궁리하게 됩니다. ‘과학만능의 꿈’(물질개벽?)이 초래한 폐허를 직시하고 중국은 신문명 재건의 길(정신개벽?)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가 보건대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근원은 둘이었습니다. 첫째가 자본주의요, 둘째가 국민국가입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처방전으로 사회주의가 흥기하고 있음을 면밀하게 학습했습니다. 국민국가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국제연맹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표하고 논평을 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후자에서 중국의 사상과 역사적 경험이 일조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전후 신문명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민족주의 국가가 아니라 ‘세계주의 국가’(Cosmopolitan nation)를 건설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세계주의 국가를 만들어야만 일국의 발전을 넘어서 전 인류의 행복을 위한 문명의 기초가 될 수 있습니다. 개개인이 인생의 최대 목적을 인류 전체를 위해 공헌하는 일에서 찾는 인생관도 공유해야 했습니다.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아니, 익숙했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대학>의 현대적 의의를 확인한 것입니다. 중국은 일찍이 천하위공(天下爲公)을 지고의 이념으로 삼는 역사적 실천 경험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즉 국제연맹을 성공적으로 건설하기 위한 사상적 자원으로 ‘천하’를 재발견했던 것입니다. 량치차오가 누굽니까. 앞장서서 ‘신민’(新民)을 만들자고 목청껏 외쳤던 사상가였습니다. 신민이란 곧 국민(國民)이었습니다. 중국인의 희박한 국가의식을 타박하며 국민 만들기에 노심초사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새파란 국민 너머의 지긋한 천하인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신문화운동 또한 극적으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신해혁명의 좌절 속에서 신세대들은 1915년 <신청년>(청년잡지>를 창간했습니다. 좌와 우의 차이는 있으되 대저 전반서화, 전면적 서구화를 표방했습니다. 그러나 아뿔싸, 창간 1년 전에 이미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들의 스승이자 선배였던 량치차오마저 탈서방화와 재동방화를 피력하게 된 것입니다. 하여 신/구 간에 동/서 간에 일대 논전이 벌어집니다. 1920년대의 대사상 논쟁, 동서문화논전이 격발된 것입니다. 허나 량치차오는 더 이상 전위가 될 수 없었습니다. 1873년생, 1929년에 숨을 거둡니다. 그의 말년 사상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동방문명의 가치를 사수하는 신성(新星)으로 부상한 인물이 바로 량수밍입니다. 제가 ‘중국의 개벽파’로서 아껴 부르는 바로 그 분입니다. 1893년생, <동서 문화와 그 철학>을 탈고한 1922년만 해도 여전히 파릇파릇할 시절입니다. 하기에 그를 ‘최후의 유학자’라고 일컫는 수사가 마땅치 않습니다. 20세기의 감각이 부여한 어긋난 별칭입니다. ‘개신유학의 원조’이자 ‘생태문명의 태두’라고 기려야 모자람이 없습니다. 다른 백년을 앞서 사셨던 분입니다. 선구자이자 선지자였습니다. 두어 달 후면 5.4운동 100주년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개벽파’ 량수밍 이야기는 그 무렵에 더욱 보태볼까 싶습니다.

 

3. 다시 개벽

5.4와 3.1은 긴밀합니다. 구태여 선후를 따질 것은 없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후폭풍, 전 지구적인 동시대 운동이라고 보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헌데 3.1운동 전후로 불거진 공화정 논의가 신해혁명의 영향이라는 설이 없지 않습니다. 이웃나라의 대혁명이었으니 어찌 영향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피상적입니다.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공화춘(共和春), 공화의 봄은 짧디 짧았습니다. 곧바로 왕정복고, 반동의 시절로 접어듭니다. 그래서 신청년들이 신문화운동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중국의 신해혁명은 반면교사에 더 가까웠을 법합니다. 무엇보다 선생님이 거듭 강조하시는 것처럼 조선은 이미 1860년 동학 창도 이래 중국으로부터 사상적 독립을 완수한 터였습니다. 독립문이 그 물질적 기표라면, ‘동학’이라는 말은 그 사상적 기호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기미년 3.1혁명 또한 포스트-동학의 장기 지속적 지평에서 이해하는 편이 적절하다 하겠습니다. 동학혁명의 환생이 3.1혁명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개벽의 부활절이 바로 3.1절이었습니다. 고로 ‘개벽절’이라 고쳐 부른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정명(正名)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개화파(일본)과 척사파(조선왕조)의 협공에 처절하게/철저하게 패배했던 동학몽이 다시금 그 거대한 뿌리를 역사의 전면에 드러냈던 것입니다.

사진(좌): 3.1혁명의 주역, 손병희 선생(한국학중앙연구원), 사진(우): 손병희의 _준비시대

와신상담 반세기를 거치며 동학은 더더욱 단련되고 진화했습니다. 도전(道戰), 언전(言戰), 재전(財戰)을 태비한 손병희의 <준비시대>부터 이미 동학 2.0, 다시 개벽과 ‘도의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철저한 비폭력운동으로 대안 문명으로서의 합법성을 쟁취합니다. 서학을 거부하고 유학에 도전하며 동학만을 고수하는 배타성도 떨쳐냈습니다. 서학과의 합작에도 앞장섰습니다. 개화를 배타하지 않고 개벽과 개화의 공진화를 꾀합니다. 천도교가 선봉에 서되 기독교도 더불어 가는 득의의 지혜를 발휘합니다. 불교와 유교도 폭넓게 아우르고자 품을 넓혔습니다. 3.1운동이 이 땅에서 펼쳐지는 동서종교 화해운동, 동서문명 회통운동으로서 세계사적 장관을 연출할 수 있었던 기저입니다. 기미독립선언서가 일제에 맞선 일국의 민족주의 선언이 아니라, 신문명 건설을 촉구하는 온누리와 만천하의 헌장으로서도 손색이 없을 만큼 완미하고 완숙한 까닭입니다.

무엇보다 천도교 진영의 공화국 담론이 탁월합니다. 얼마 전 오상준이 지은 <초등교서>(1907)를 탄복하며 읽어갔습니다. 세속적 정치문명과 영성적 종교문명을 무 자르듯 가르지 않습니다. 성과 속의 공진화를 통한 도덕문명을 궁리합니다. 종교란 religion의 번역어가 아닙니다. 일신교의 배타성이라고는 한 움큼도 없습니다. 종교(宗敎)는 문자 그대로 종지가 되는 가르침일 뿐입니다. 개인과 국가의 근간을 떠받치는 정신적 힘이자 사상을 말합니다. <초등교서>에서 모색하는 공화국은 천인(天人) 정신에 입각한 합의체입니다. 천인의 마음을 통한 사회의 영성화를 지향합니다. 천인은 요즘말로 ‘호모 데우스’라 고쳐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호모 데우스의 집합의지와 집합행동으로 만들어가는 공화국, 지상의 천국을 염원한 것입니다. 따라서 인권이 아니라 ‘천권’(天權)이라 명명했음이 눈을 찌릅니다. 응당 천부인권과도 발상이 다릅니다. 인권은 그저 신으로부터 소여된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늘과 하나로 합일된 사람, 그 천격(天格)을 이룬 천인으로서 천권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부단한 인성 도야로 천성(天性)을 발현할 것을 당부하고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화국 인민의 의무라고 하겠습니다. 응당 인격을 천격에 부합하도록 부단하게 수양하고 수행하고 수련해야 합니다. 인격을 끊임없이 고양하는 근본적인 정치운동이자 근원적인 영성운동이었던 것입니다. 고로 천직(天職)이라 함은 곧 천성을 따르는 삶이라고도 하겠습니다. 그래야 이 세계는 천계(天界)가 될 것이요, 온누리 만인은 천인(天人)이요, 온천하 만물은 천물(天物)이 됩니다. 그래야만 개별나라들 또한 국격을 드높여 천국(天國)으로 환골탈태합니다. 그래야만이 비로소 태평천국의 인류운명공동체, 태평천하도 완수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한울님/하느님/하는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다시 개벽과 다시 천하의 상호진화가 영구혁명과 영구평화의 첩경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천인공화국의 발상에 앞으로 우리가 모색해야 할 다종다양한 ‘제도개벽’의 단서 또한 무궁무진 담겨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4. 개조 : 다시 개화

그러나 일백년 전 개벽천하 운동은 좌초되었습니다. 개화의 새 바람이 불어 닥칩니다. 이번에는 북풍이었습니다. 1917년 러시아혁명이 성공한 것입니다. 1922년에는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도 출범합니다. 자본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참신한 대안이 등장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개화 신파’가 부상한 것입니다. 개화 좌파라고도 하겠습니다. 개화 구파, 개화 우파의 세속주의, 이성주의를 더욱 극단적으로 밀어부칩니다. 일체의 영성을 허용하지 않는 과학적 무신론 국가를 완성시킵니다. 때를 맞춤하여 서유럽의 몰락으로 수세에 몰렸던 신청년들이 대거 개화좌파로 갈아탑니다. 신상(품)을 좋아하고 유행을 쫓는 그 얄팍한 면모를 탈피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동유럽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홀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좌파의 언어로 동아시아의 전통을 타박합니다. 중국공산당이 창당한 것이 1921년이었습니다. 이 때부터 논쟁의 방향도 일변합니다. 동서문명논쟁은 흐릿해지고 동서이념논쟁, 동서체제대결이 뾰족해집니다. 량수밍이 북경대 교수직을 내던지고 향촌건설운동에 투신한 것에도 공산주의에 대한 대응이 한 몫 했음은 의미심장한 대목입니다.

개화좌파의 약진은 개화우파의 소생에도 일조했습니다. 좌우투쟁이 격화될수록 동아시아 전통을 일신하여 신문명을 건설하자는 세력들은 ‘문화보수주의’로 기각되고 소외되어갔습니다. 1945년 이후 동서냉전의 먼 기원이라 하겠습니다. 동아시아에서는 특히나 치명적입니다. 북조선과 남한, 대륙과 대만,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분단의 씨앗이 바로 1920년대에 뿌려지기 때문입니다. 동서문명회통에서 좌우이념대결로의 퇴행, 돌아보면 볼수록 뼈가 아프고 피눈물이 나는 지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사상적 분화로 말미암아 동아시아는 중국전쟁(국공내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으로 이어지는 ‘제3차 세계대전’의 화약고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개화우파와 개화좌파의 아웅다웅에 신물이 나다못해 진물이 흐른다고 표현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수렁이고 구렁이라 하겠습니다.

 

5. 삼일절과 개벽절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

그 동서냉전의 잔상이 마침내 종언을 구하는 줄 알았습니다. 나흘째 온종일 하노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던 까닭입니다. 그 역사적 획기를 개화세에서 개벽세로 이행하는 터닝포인트로 기념하고파서 굳이 이 곳까지 찾았던 것입니다. 이 곳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깊이 음미해보겠노라는 약속은 지키지 못합니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회담에 온신경이 쏠려서 백년 전 문자가 영 눈에 들지 않았습니다. 호안끼엠 호수를 에둘러 멜리아 호텔과 메트로폴 호텔과 오페라하우스를 걷고 또 서성거렸습니다. 지금 이 글 전체가 하노이 시내를 오가며 짬짬이 떠오르는 대로 핸드폰 메모장에 휘갈긴 것입니다. 그러나 끝내 뜻밖의 협상 결렬 소식에 망연자실, 무릎이 꺽입니다.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는 책망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기차를 타고 삼일 동안이나 대륙을 주파했던 정은이와 여정이에게 토닥토닥 소주라도 한 잔 사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싱가포르 서점의 베스트셀러

돌연 삼일혁명 백돌에 친일 잔재 청산만 운운해서는 한가로운 일이라는 냉철한 판단마저 일어납니다. 일백년 전에도 일본의 뒷배는 미국이었습니다. 제2의 동학운동, 다시 개벽 운동이 좌초한 데에도 그 심급에는 전후 세계의 리더로 부상한 미국이 자리했었습니다. 1945년 해방 이후는 더 말할 것도 없겠습니다. 1860년 중국으로부터 사상적 독립을 감행한 것처럼, 1919년 일본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선언했던 것처럼, 2019년에는 필히 ‘개화의 지존’ 미국으로부터의 자립과 자주를 요청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딴청을 피우는 미국에 연연하여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에 연동시킬 것이 아니라, 남북이 선도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협조함으로써 미국과 일본을 견인하는 ‘새로운 길’을 탐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시아 퍼스트, 아메리카 라스트, 그편이 목하 개창되고 있는 포스트-웨스트, 포스트-아메리카, 유라시아의 세기와도 정합적이라고 하겠습니다. 싱가포르의 그 베스트셀러 제목을 빌려 말하자면, 미래는 아시아입니다.(The Future is Asian.)

다소 거칠고 산만한 글을 정리되지 않은 채로 보냅니다. 그래도 되지 않을까 뻔뻔해 진 것은 요사이 강호와 재야의 ‘샤이 개벽파’들이 속속 커밍아웃하여 개진하고 있는 언설들이 워낙 빼어나서입니다. 이남곡 선생님, 박길수 선생님, 유상용 선생님, 강주영 선생님, 이은선 선생님 등등이 토해내고 계신 절창들이 휘황합니다. 더할 것도 없고 덜어낼 것도 없는 훌륭한 문장들로 빼곡합니다. 굳이 저 같은 풋내기가 설익은 말을 섞지 않아도 3.1절이 곧 ‘다시 개벽절’이라는 진의는 충분히 전달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서울로 돌아가서 연구자의 자세로 올해 ‘범개벽파’의 집합지성이 쏟아낸 각종 3.1혁명론을 요령껏 갈무리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이제 3.1 백돌, 개벽절 100주년을 맞이하러 광화문으로 이동합니다. 인천행 비행기의 탑승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막 시작되었습니다. 응답하라 1919, 기해년에서 기미년으로 이륙합니다.

금, 2019/03/0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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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로티 한 장을 위해서 생산지인 인도네시아에는 2불을 지불하는데, 이를 미국 소비자는 왜 70불을 주고 구입해야 하는가?

* 사람들은 이같은 가격체계에 대해 당연히 경제학이 설명해 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지금의 경제학 어디에도, 경제학자 누구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실은 많은 사람들이 노벨상 경제학자가 주식해서 망했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현실의 경제현상에 대해 경제학이 설명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담 스미스가 1776년 국부론을 발표하였고, 맑스는 1867년 자본론 1권을 출간하였다.

국부론에서 말하는 생산시스템은 사실 자본주의 생산시스템이 아니다. 그가 제창한 균형이론, 즉 보이지 않는 손의 신화는 그를 경제학의 아버지,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사람으로 숭상하게 하고 있지만 정작 국부론에서 다루는 생산시스템은 본격적인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공장제 수공업 시대를 배경이라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그리고 당연히 스미스는 1820년대 처음으로 발생한 경제공황에 대해서는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을 터, 즉 보이지 않는 손, 균형이 깨어지는 상황이 거의 7~8년간이나 지속되고 이후 매 10년마다 반복되는 비정상(?)상황을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칼 맑스는 영국이 한창 자본주의 금자탑을 쌓고 있던 1860년대에 자본론을 썼다. 그가 목도한 경제공황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폭발시키는 과정이었고, 그가 생각해낸 이윤율 경향저하의 논리는 자본주의가 스스로 몰락의 길로 갈 것이라고 많은 이들로 하여금 믿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150년, 맑스시대 영국이 경험한 자본주의 역사, 100년 보다 1.5배는 긴 기간을 지내 오는 동안, 자본주의는 이윤율 경향적 저하론과 무관하게 비교적 자~알 지내고 있으며, 도리어 그 경쟁 상대였던 현실사회주의를 경쟁에서 패퇴시켜 인류유일의 경제시스템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 우리는 자본주의와 경제학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담 스미스의 살아 생전에는 본격적인 자본주의가 채 시작되지도 않았었는데 그 시점에서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기본원리로서 고전경제학이 시작되었고, 그 숭고한 잣구의 한 점 오류도 없이, 경제학은 해마다 노벨상을 받고 있다.

맑스 사후 150년 간 자본주의는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여 전 세계 80억 인류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생산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자본주의는 세계 유일의 경제시스템이며 어디에나 그의 제조공장을 만들 수 있고, 증권화를 통해 산업과 분리되어 있으며, 사람의 오감을 대신하는 기계적 장치로 인하여 자율 생산까지 가능한 시대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매 10년마다 불황, 혹은 장기적 만성불황이 일어나고 있고, 전혀 망할 기색 없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권력은 250년간 자본의 철옹성이지만 시민사회와 노동자들이 정치와 경제의 실제적인 소비자로 등장한 만큼, 그만큼의 지분이 존재하는 사회가 되었다.

* 잠깐 다시 처음의 폴로티의 가격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를 이야기해 보자. 여러분이 짐작하듯이 학생 때 잠시 안면이 있었던 노동가치설만 가지고는 인도네시아에서 미국까지의 그 험난한 과정을 설명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생산하는 곳과 소비하는 곳 사이의 엄청난 가치의 차이, 우리 주변에서 넘쳐나는 음식물과 생산이 많아 밭에서 썩히고 있는 농산물과 비교되는 수많은 아프리카 아동들의 굶주림, 이들에게 하루 1불이면 2~3명이 풍족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하는데요!

자본주의 경제학은 소비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왜냐하면 생산된 상품은 당연히 소비될 것이므로! 이는 맑스 경제학도 마찬가지이다. 즉 상품의 개념, 그 자체가 다른 상품에 의해 교환되어야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전경제학의 출발점을 그대로 채용하고 있어서이다.

오늘날 인터넷 쇼핑이 오프라인 쇼핑을 압도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자본주의 초반에는 모든 생산이 상업자본의 의한 주문생산이 이루어졌다. 즉 1700년대 말에서야 근대적인 소매점이 생겼고, 귀족이 아닌 일반 자본가에게조차 상시적 소비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 이때부터 산업자본이 상업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가능성이 생겼다. 그리고 그로부터 150년여가 지난 1900년대 초중반이후 노동자에게도 전면적인 소비의 기회가 주어진 대량소비의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이제 인터넷쇼핑 시대, 유통의 힘이 생산을 압도하고 나아가서 소비가 생산을 압도할 준비가 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 2019년, 우리는 150년 전의 맑스는 상상하지 못했던 자본주의 세상, 생산과 분리된 자본의 시대, 국제금융의 시대, 새로운 노동에 의한 생산이 예고된 시대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 250년 역사를 통해서 발전해온 가치와 가격에 대한 사고를 보다 발전시켜야 할 때이다.

* 가치와 가격에 기본사고로부터 출발하여 현실자본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탐험이 필요하다. 모든 사변이 과학적이려면 그 사변의 근거가 되는 환경을 반드시 고려하여 생각해야 한다. 선언이 말하는 1800년대 노동자들은 지금의 노동자와 많이 다르다. 근대교육이 없던 시절의 노동자들은 신문물과 과학에 대해서 가장 감수성이 높은 계층이었다. 현실세상이 변하는 만큼을 사변, 학문, 특히 사회과학은 따라 가지 못한다. 우리는 현재의 우리 주변의 것이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를 이해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더욱이 학문이라는 것도, 역사적 사실들도 지배적 계층입장에서 보고 싶은 것들만 보니, 지금 우리 주변의 현상들이 아무리 자연스러워도, 그의 기원을 몰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현대 종교도 생겨날 시점에서는 최고의 과학이며 인간 사고의 최고봉이었다. 하지만 2000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2000년 전의 사고체계를 우러러 숭상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다고 생각해 보지는 않는가? 특히 산업혁명 이후 우리 인류는 새로운 종으로 거듭 났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인류는 자신만이 가진 것, ‘과학적 사고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참으로 게으른 종족이다.

* 일생의 노력으로 새로운 경제학적 사고를 시작해 보자. 자본주의 원리인 가격과 가치에 대해서, 맑스 사후 150년 지나고도 이윤율저하는 계속되고 있는지, 그리고 현실사회주의는 어째서 붕괴했는지,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는 현재 어떤 단계이고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 현대 자본주의 내부에 위치한 화산들은 어느 지점에 있고 어떻게 분출될 것인지 등을 힘 닿는대로 밝혀 보고 싶다. (‘힘되는만큼’에 방점!!! ㅎㅎㅎ)

 

월, 2019/03/0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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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통계국은 지난 1월 21일 2018년도 GDP 성장률이 6.6%라고 발표하였다. 인민폐로 90조가 조금 넘으며, 평균환율로 계산할 경우 13.6조 달러에 달한다. 일 년 사이에 8조 위엔의 부가가치가 늘었는데, 그것은 한국 전체 GDP 약 1조5천억 달러보다 조금 적은 수치이다.

그럼에도 이 같은 통계수치를 받아들고 해석하는 국내외 언론의 논조는 사뭇 달라서 필자를 다소 어리둥절하게 한다. “1989년 ‘톈안먼 사태’이래 28년 만에 최악” (중앙일보, 1월22자), “중국이라는 성장엔진이 꺼지고 있다”, “중국 발 경제위기 신호” 등등의 비관적인 분석과 평론 일색이다. 심지어는 신중해야 할 정부기관까지도 금년도 한국경제를 전망하는데 있어 중국 발 경제침체 위험성을 들먹인다. 그것이 막대한 예산계획을 세우고 실제 집행하면서 수많은 기업과 민생 관련한 경제정책을 책임져야 할 경제부처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을 끌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정말 6%대 경제성장률이 낮다는 말일까? 이미 세계 두 번째인 경제규모를 갖고 있는 중국에게 있어서 말이다. 사실 중국은 이 같은 ‘낮은 성장률’을 가지고서도 지난 해 세계경제 성장에 있어 30%의 공헌을 하였다. 즉 세계경제 성장률의 30%는 중국에서 나왔다는 뜻이다. 아마도 서구와 한국 언론의 이 같은 비관적 평가는 중국의 기여도가 자신들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것에 대한 불평쯤으로 여기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마치 중국이 세계경제에 어떤 큰 짐을 지운다거나, 심지어는 중국경제가 지금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는 식으로 운운하는 것은 무언가 상식에 어긋나는 것처럼 들린다. 이것은 단순히 언어 표현상의 문제일까?

과연 위기인지 아닌지 중국경제 6.6% 성장의 내면을 직접 한 번 드려다 보도록 하자. 먼저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더라도 물가가 너무 오르면 결국 허탕이다. 하지만 중국의 2018년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2.1% 상승하여 애초 3% 좌우의 예상치보다 낮았다. 주민생활의 실질 내용이 좋아졌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또 도시화와 산업화의 와중에 있는 중국으로서는 방대한 농촌인구를 도시로 이전시키기 위해 매년 고용목표 1천만 명을 달성하여야 한다. 이 목표 역시 GDP 6.6% 성장 속에 별반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지난해만 해도 1361만 명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월별 10만 명 목표치가 매우 사치스러워 보이는 한국의 고용상황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이를 밑받침 하듯 2018년 중국의 신규 등록 기업은 670여 만 개로 전년 대비 10.3% 성장하였다. 일일 평균으로 1.84만 개가 새로 등록한 셈인데, 창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고용과 주민소득 향상을 반영하듯, 소비도 활발해서 최종소비의 경제성장에 대한 공헌율은 전년대비 18.6% 상승하여 76.2%를 기록하였다. 이제 경제성장의 삼두마차인 수출, 투자, 소비 중 소비의 주도성이 중국경제에서도 확고해 졌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경제성장률이 정부가 마구 돈을 뿌린다거나, 기업들의 무절제한 금융대출 위에서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다. 국내외 언론에서 많이 주목하고 있는 중국 지방정부의 채무 상황을 보자면, 지난해 말 집계된 전체 지방정부 채무 잔여는 18조2900억 위엔이다. 이는 전국인민대표자회의가 비준한 한계 내에서 통제되고 있는 수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경제는 지금 과잉생산 분야에 대한 구조조정을 진행 중에 있는데, 철강과 석탄이 그 대표적인 분야이다. 그중 강철은 작년에 3000만 톤 이상 생산능력 감축 목표를 조기에 달성하였으며, 석탄은 1.5억 톤 이상을 퇴출시킴으로써 이 역시 목표를 완수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 같은 성과는 굴뚝산업 비중의 축소와 새로운 하이테크 제조업 비중의 증가를 가져왔는데, 후자의 경우 전년대비 11.7% 성장하였으며 이에 따라 규모이상 기업의 공업생산부문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3.9%로 확대되었다. 다른 한편 이는 에너지절약과 오염방지의 효과를 가져 오면서 이 분야에 있어 1만 위엔 GDP당 에너지소모는 3.1% 하락하였으며, PM2.5 농도는 39웨이커/입방미터로 전년도에 비해 9.3%가 줄었다.

이상이 2018년도 중국 GDP 성장 6.6%에 포함된 내용들이다. 이렇게 본다면 양적으로나 질적인 면에서 별반 흠잡을 데가 없는 경제성장임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아직도 2009년의 금융위기로부터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각국이 부러워할 만한 성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단순히 겉으로 들어난 수치만 가지고 “28년 내 최악의 경제성장” 운운하는 경제 분석가들을 보면, 이들이 진짜 전문가가 맞는지 의아심이 들 때가 있다. 경제에 대한 약간의 기본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좀처럼 그와 같은 판단을 내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의 ‘저성장’을 우려하는 평론들을 볼 때면, 필자로 하여금 과거 한국 언론들의 정반대의 태도를 생각나게 한다. 중국은 2001년 WTO 가입 이래 2008년 말 세계 금융위기가 폭발하기 직전까지 9%~10%대의 고속성장을 지속하였다. 이 무렵 국내언론의 주요한 논조는 지나친 ‘과속 성장’, “중국이 세계 자원을 모두 휩쓸어간다”, 환경문제, 빈부격차, 부정부패 같은 단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중국이 당시 한창 열중하던 ‘고속철도’ 사업에 대한 기사이다. 마침 2011년 중국 절강성 윈조우에서 철도 탈선사고가 발생하였는데, 그 때 국내 언론들은 일제히 ‘시속 250킬로’로 운행하는 고속철도와 중국의 고속성장을 빗대어 ‘과속 성장’이 빚어낸 결과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면서 이제는 속도를 적당히 낮추라는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이제 중국이 수출과 생산요소 투자에 지나치게 의존하던 방식을 바꾸어 6~7%대 성장률의 ‘신상태(新常态)’를 만들어 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국내외 언론의 반응은 의외였다. 기존 산업구조 하에서 중국정부가 설정한 ‘바오 8’(保八, 8%대 성장률 사수) 정책을 회상시키며, 국내외 언론들은 일제히 중국경제 위기가 곧 닥칠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었다. 하지만 중국경제는 기존의 과도한 제조업 위주에서 탈피하여 새롭게 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킴으로써, 그 같은 성장률 하에서도 매년 1000만 명이라는 신규 고용창출 목표를 거뜬히 달성하였다. 그리하여 예견하였던 중국경제 위기는 7%대 성장 하에서도, 그리고 다시 6%대 성장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대신 중국은 경제발전에 비해 그동안 상대적으로 낙후되었던 사회보장제도 건설에 적극 나서는 한편, 지속적으로 임금을 올리는 식으로 내수를 키웠다. 이 같은 사회적 기반이 있었기에 지난해 미국과 유례없는 무역 전쟁이 전면화 되었을 때 별반 큰 충격 없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 지금 우리가 목격하듯이 중국경제는 4차 산업혁명에도 적극 호응하면서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중이다.

그런데 필자가 위에서 소개한 2018년 GDP 관련한 수치들은 전혀 비밀스럽거나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것들이 아니다. 이미 중국 국가통계국이 1월21일 정기 발표회를 통해 세상에 공표한 것들이며, 또 당일 기자회견까지 열어 국내외 기자들의 질의응답을 받아가면서 친절하게 설명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왜 이런 사실들이 한국의 일반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또 경제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왜 이런 기본적인 통계수치들을 자신들의 분석에서 활용하지 않는 것일까? 이 점은 우리로 하여금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중국 통계수치에 대한 잘못된 해석은 사실 ‘지식수준’의 높고 낮음의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또한 단순히 개별 언론사의 보도태도 문제만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좀 더 복잡한 배경이 깔려있다. 위 중국 GDP 6.6%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각은 단순히 두 개의 경제 해설만의 문제가 아닌, 두 개의 가치관과 그 것을 뒷받침하는 적대적인 두 진영의 존재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G2라고 부르는 오늘날 두 초강대국 간의 대립이 세계의 정신세계 및 가치관의 형성에 끼치는 심대한 영향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미국으로 대변되는 서구진영의 입장은 확실히 통일되어 있으며, 그들은 일관되게 반중국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그리고 그간 중국에 대한 비우호적 해석과 입장을 견지해온 한국의 언론 역시도 대체로 이 같은 서구적 가치를 옹호하는 진영에 참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과거 냉전시대에나 어울릴법한 진영논리를 펼치며 적인가 우리 편인가를 확연히 가르고, 이에 입각하여 가치판단을 하는 것이 지금의 지구화시대에 있어서도 과연 올바른 것인지 필자는 의문이 든다. 앞서도 보았듯이 다른 나라 같았으면 훌륭한 경제지표라고 칭찬과 부러움의 대상이 될 만 한 것도, 일단 상대가 중국이다 싶으면 갑자기 ‘비관적’ 전망으로 바뀌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상식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인간의 보편이성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객관사물에 대한 이러한 편견과 잘못된 인식은 결국 인식 주체 스스로에게 그 결과가 돌아 올 수밖에 없다. 예컨대 그것은 오늘날 ‘시장’을 대체하려는 새로운 대안에 대한 탐색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게끔 만들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중국이 실행하고 있는 ‘공유제기업이 주도하는 시장경제’는 일종의 그러한 시도 중의 하나이며, 그 과도기적 형태라 보여 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같은 사회적 편견이 초래할 피해로부터 개인 또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번처럼 편견과 오독 속에 중국경제와 중국사회가 매번 보도되어 지고, 개인은 그것에 기초해서 판단하고 연구하고 투자할 때, 그 손해는 결국 누가 짊어지게 되는 것일까? 투자자 한 사람 한 사람, 그리하여 우리 사회 다수가 피해자가 되지 않을까? 진실은 그 무엇보다도 위대한 힘이며, 한 사회와 한 나라의 강건함은 진실을 숭상하고 우상을 타파하며 건전한 상식을 키우는 데서부터 비롯된다고 믿는다.

화, 2019/03/0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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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북미정상회담의 합의문 발표가 갑작스럽게 취소된 것은 필자가 기억하는 역사적인 사건들 중 가장 복잡하고 모순된 사건들 중 하나였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와 마이크 폼페이오가 결렬 직후 진행한 즉흥적인 기자회견은 전혀 복잡하지 않았다. 기자회견은 미디어를 의식하여 짜낸 진부한 쇼였고, 변명 이상의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으려는 꼼수였다.

트럼프는 김정은, 신조 아베, 시진핑 그리고 문제인과 맺고 있는 “깊은 관계”에 대해 이야기 했고, 그런 모습은 갑작스런 방송사고 프로그램의 공백을 채우려 애쓰는 심야 프로그램 코미디언 같아 보였다. 하지만 트럼프가 던진 긍정적인 언어들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앙들로부터 사람들의 눈을 돌리지 못했다. 김정은 위원장과 가졌던 “생산적인 시간”들에 대한 달콤한 말들이, 세계 곳곳에서 수직 상승중인 전쟁의 위험성을 가려주지 못 한 것이다.

솔직히 이야기 해 보자. 세계평화의 차원에서 봤을 때 북한은 특출난 위협이라기보단, (1945년 샌프란시스코 회담으로 구축된 세계 질서가 붕괴되며 뒤따라 벌어진) 비교적 안정적인 섬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압제적이고 폐쇄적인 국가라는 사실은 특별히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미국은 어떤가? 현재 미국 정부는 정부로서의 전문성을 모두 잃었고, 이슈와 정책에 대한 분석은 급격히 사유화되었으며, 부가 극도로 집중되며 문화 또한 변질되어 가고 있다. 미국은 이제 고립주의와 군사주의로 빠져들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놀랍지 않을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 제재완화에 대한 연방 의회의 강한 반발, 혹은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헨의 저속한 증언들로 인해, 하노이에서의 쇼는 어떤 결과도 얻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은 트럼프를 기다려주지 않고 있다. 핵 보유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이 전쟁의 기로에 서 있으며, 이 두 나라가 대립하는 이유 중 작지 않은 부분은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의 정치게임에서 나오고 있다. 미군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중앙 아시아,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에 개입하고 있으며, 새로 선출된 연방의회는 거기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것 같아 보인다.
남미에는 정치적 문제 해결에 강제력을 동원하겠다는 협박을 일삼을 뿐만 아니라 이득을 위해서 분별없는 반지성주의 풍조를 부채질하고 아마존의 우림을 파괴하려 하는, 나아가 인류의 멸망을 앞당기려 하는 브라질의 볼소나로 덕분에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동시에 네오콘의 사상적 쌍둥이라고 할 수 있는 엘리엇 에이브람스와 존 볼턴은 베네수엘라의 정권 교체를 위해 불철주야 일하고 있다.

그들은 마두로 정권을 무너뜨리고 다국적 기업들을 위해 석유생산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역겨운 행동 중 하나는 우익 상원의원 중 하나인 마르코 루비오가 본인의 트위터 계정에 리비아의 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사진을 올린 일이다. 이는 마두로가 계속 미국에 저항한다면 무아마르 카다피와 비슷하게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암시였다.

자원장악을 목적으로 하는 이러한 음모는 석유와 석탄 재벌인 찰스 코흐와 앤디 코흐 형제가 이끌고 있다. 이들이 또한 그대로 두는 것이 나을 듯한 북한의 금, 석탄 그리고 다른 지하자원들을 노리고 있다는 혐의의 기조에 큰 힘을 싣고 있다. 이는 김정은과의 회담에 있어서 트럼프가 이야기하는 경제적 기적이 북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제 투자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북한과의 접촉은 이란과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적대적인 행동들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하지만 이는 반쪽짜리 이야기일 뿐이다. 미국이 INF(중거리 핵전력 협정) 협정에서 탈퇴하게 하려는 존 볼턴의 행동들은 발전한 기술 덕에 1950년대에 있었던 군비경쟁보다 훨씬 위험한 군비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이란핵협상의 일방적인 파기와 더불어서, 이런 광기가 독일, 러시아, 중국, 미국, 터키, 일본, 인도 그리고 이란 사이의 군비 경쟁을 부추기고 있으며, 이는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앞서 말한 모든 나라들은 멀지 않은 미래에 핵전력을 갖출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과 그의 참모들은 현재의 혼란한 정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찬에서 김정은이 지어 보였던 미소 뒤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하노이 2차 회담은 양측이 모두 극심한 자기기만을 받아들이고자 했기에 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트럼프가 시진핑에게 했던 친절한 말들은 미 국방성이 중국과의 전쟁을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리지 못한다. 트럼프와 주변인들이 제재를 무역 정책의 일환으로 전쟁 위협을 협상 전략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어떠한 문민통제도 없이 미군의 힘을 사이코패스들의 영향아래 둔다면 이는 인류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미국 민주당의 반응 그리고 남한과 일본 보수층의 반응은 트럼프가 국제법을 무시하며 군사주의를 받아들이고 그의 파시스트적 기반에 영합하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비판들이었다. 미국이 모든 나라들이 핵 확산 금지 조약을 지키도록 하는데 실패하고 이란과의 핵협상도 파기되면서, 국방성은 1조 달러를 들여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하기로 했다. 명백한 조약 위반이지만 이에 대한 업급이 금기시되는 주제이다.

 

반지성주의의 대두와 미디어의 부패
북미 정상화담의 뒤에 숨은 정치학적 의미는 간단하지 않았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지정학적 변화가 거대하다는 것이다. 각국의 정부들이 기득권과 타협하고 사익에 스스로를 팔아 넘기면서 정치인들은 재벌들에게 잘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우리의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침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고 있다.
하지만 미디어는 다국적 기업이나 투자은행들을 답습하여 이 세상을 소개하고 있다. 미디어 또한 또 하나의 사업이 되었고, 기업체들의 홍보부 역할을 맡고 있다. 세상의 현 상태에 대한 지성적인 탐구는 없고, 뉴스를 만드는 데 있어서 도덕적 문제는 고려대상이 아니다.많은 기사들은 혼란과 오해를 부추기기만 하고 있다.
회담에 대해 미디어가 제공한 자세한 사항이라고는 김정은이 하노이까지 어떻게 기차를 타고 왔는지, 호텔과 외교적 관례에 주요한 지점 주위의 통행이 어떻게 차단되었는지 밖에 없었다.

미디어는 죽었고 반지성주의의 커다란 파도가 미국을 휩쓸었으며, 많은 나라들은 더 이상 비판적 분석이 불가능한 지경이 이르렀다. 우리 세상에 어떤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는지 생각할 능력이 없는 것은 트럼프뿐만이 아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온라임 게임, 포르노 혹은 소셜 미디어에 중독되어 옹알거리는 바보가 되어가고 있고, 더 이상 복잡한 문제를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퇴화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회담의 끝에 던져졌어야 할 중요한 질문은 “다음 회담이 언제 열릴까?” 가 아닌, “많은 단체나 기관들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문제를 토론하는 소통의 문화가 자리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누군가는 물어야 한다. 하노이 회담에서 어떤 주제들이 다뤄지지 않았는가?
어떤 것들이 우리 시대의 진정 중요한 주제인가?

세상의 부가 몇몇 사람들의 손에 급격히 집중되는 현실은 분명 트럼프나 김정은 누구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한반도를 사막화 시킬 수도 있는 기후 변화와 규제 없는 오염과 석탄 사용 증가로 인해 나빠지는 공기질 또한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동북아에서 고조되고 있는 핵전쟁의 위험과 점점 가속화되는 군비 경쟁 또한 (이 문제가 북한이 가진 불안정성의 중심적인 이유였음에도)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그리고 남한의 군수업체들이 벌어들이는 돈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꼭 1차 세계대전 직전처럼 무기와 전쟁 위협은 주요한 수입원이 되고 있다.
정상회담에 대한 초점은 북한이 핵무기를 어떻게 포기할 것인지에 맞춰져 있었다. 이는 핵무기의 선제적 사용금지조차 천명하지 않은 채 전쟁위협을 거듭하고 있는 미국이 가진 수천 개의 핵무기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은 문제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또 한 차례의 정상회담이 자리한다고 해서 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시민들의 진정한 우려가 반영된 대화가 자리잡을 때 해결될 것이며, 국제 관계에서의 진정한 위협이 무엇인가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담은 담론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정책이나 행정부의 변화가 아닌 문화 자체의 변화를 필요로 할 터다.

목, 2019/03/07-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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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문 없이 결렬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3월 4일부터 6일까지 모스크바에서 <9차 북-러 경제협력위원회>가 열렸다. 8차 경제협력위가 지난해 3월 평양에서 열린 것을 보면 정기적으로 열리는 회의이건만, 마치 북한이 하노이 북미 회담에서 기대하던 제재 해제가 안풀리자 대안으로 러시아와 경제협력을 꾀하는 듯한 양상으로 일부 언론에서는 묘사하고 있다. 이번 경제협력위에서는 두만강 자동차 전용 교량 건설 문제와 러시아내 북한 노동자 이슈 등이 논의됐다. 김정은 위원장의 방러 문제는 이번 경제협력위에서 논의되지 않았다는데, 러시아 정부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방러 초청장을 전달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또 실무선에서는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지만, 외교가에선 북한의 협상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김정은 위원장이 이미 여러차례 방문한 중국에 이어 러시아를 조만간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직후, 러시아에 특사를 파견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극동개발을 위한 협력방안을 논의했고, 러시아의 극동개발부에 맞춰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전담하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설치했다. 또 2017년 9월, 3차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한 자리에서 ‘신북방정책’을 발표하고 한-러간 실질적 경제협력 방안을 푸틴 대통령과 논의했다. ‘신북방정책’은 러시아와 몽골, 카자흐스탄 등 북방 나라들과 정치.경제,사회분야의 협력 강화를 추진하는 외교정책을 말하는데, 역대 정부의 북방사업이 남북관계의 부침에 따라 자주 중단돼 추진 동력을 잃었다는 인식에서 시작됐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 등 G2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탈피하고 기존의 주력산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신북방정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지금 당장은 북방국가들과의 교역이 크게 늘지 않아 경제적 중요성이 커보이지 않지만, 북한의 문이 열려 국경의 개념이 없어지고 대륙을 바로 통과할 수 있게 되면 경제협력 규모가 획기적으로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16년 9월 2차 동방경제포럼/ 블라디보스토크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유럽과 가까운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경제성장을 추구해온 러시아는 높은 유럽 의존도와 안보 위기를 줄이기위해 아시아.태평양으로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2012년 정부 내에 ‘극동개발부’를 신설하고, 러시아 극동 연해주 지역을 대대적으로 개발하는 한편 아.태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를 꾀하는 ‘신동방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극동.시베리아 개발계획을 보면 2025년까지 9조 루블(390조 원)을 투입할 예정으로 돼 있다. 여기에는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0년 7월, 역대 소련 지도자들 중에서 최초로 북한을 방문했을 만큼 아태 지역, 특히 한반도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푸틴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 러시아 두마 첫 연설 (2018년 6월 22일)

지난해 6월 21일 19년 만에 러시아를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러시아 국가 두마(하원)에서 연설을 통해 “푸틴 대통령의 ‘신동방정책’은 평화와 공동번영의 꿈을 담은 유라시아 시대의 선언입니다. 내가 지난해 발표한 ‘신북방정책’은 ‘신동방정책’에 호응하는 한국 국민들의 꿈입니다. 나는 한국과 러시아의 협력이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번영의 주춧돌이라 생각합니다” 라고 말했다. 2017년 190억 달러였던 한-러 교역규모는 2018년에는 248억 달러로 증가했는데, 양국 수교 30주년이 되는 2020년까지 양국간 교역액 300억 달러, 인적 교류 100만 명 시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한러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의 방한을 공식 초청했고, 푸틴 대통령은 이를 수락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됨에 따라 여러 가지 변수가 예상되지만 만일 2019년에 푸틴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다면,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에 러시아의 적극적인 개입과 역할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주경기장 루즈니끼 경기장

필자는 2015년 7월 1일부터 2018년 6월 30일까지 만 3년 동안 KBS 모스크바 특파원을 지냈다. 모스크바에 도착한 직후 한러 수교 25주년 기념행사들을 치렀고 그해 9월엔 아태 진출을 열망하는 푸틴 대통령의 야심작 ‘제 1회 동방경제포럼’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맞이했다. 2016년은 소련붕괴 25주년, 2017년은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맞았고, 2018년엔 러시아 대선과 월드컵 경기를 동시에 치렀다. 그런가하면 2016년과 2017년 사이 북한은 3차례의 핵실험과 수십차례의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감행하면서 ‘핵 보유국’지위에 도전했고, 이에 상응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의 강도도 높아져 북한의 외교적 고립은 깊어지고 남북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다행히 2018년 들어 상황이 급반전돼 남북.북미, 북중 정상회담이 잇달아 열리면서 한반도에 해빙 무드가 진행되고 있다. 햇수로 4년간의 특파원 생활 기간 벌어진 숨가쁜 사건들을 목도하면서, 취재 현장에서 느낀 소회를 여기에 담았다.

크렘린궁 기자실에서 (2017년)

우선 첫 번째 글은, <남북한과 러시아>를 다룰텐데 북-러 관계와 남북러 3각 협력문제를 거론하면서, 특히 2016~2017년 사이 북한의 전략적 도발에 대한 러시아의 대응과 2018년 대반전 드라마를 서술하고자 한다. 두 번째 꼭지는 <푸틴의 극동개발 전략>으로, 동방경제포럼의 창설과 푸틴의 극동개발 노림수, 수교 30주년을 앞둔 한-러 관계를 짚어본다. 그 다음은 <푸틴과 러시아>로 20년째 장기집권중인 푸틴의 통치 비결은 무엇이고, 그 와중에 발생하는 반정부 시위는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우크라이나 사태. 크림반도 병합, 시리아 내전 개입 등 러시아의 대외현안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또 <시베리아의 보배>에선, 북극개발에 적극적인 푸틴과 시베리아 야말반도의 가스전 개발, 한국산 세계 최초 ‘쇄빙 LNG’ 선박에 대한 얘기를 담는다. 이밖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러시아와 CIS(독립국가연합)내 고려인 이야기와 러시아의 군사 분야에 대한 얘기들을 추가하고자 한다.

한국이 북방으로 진출하려는 길목에 위치한 러시아. 러시아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존재이고, 우리는 러시아와 어떻게 지내야할까.

필자는 한국에게 러시아는 아직도 저평가된 주식과 같다고 감히 평가하며 한러 관계가 더욱 긴밀히 발전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화, 2019/03/1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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