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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리뷰 언론기고] 난방비 걱정없는 패시브 하우스를 선택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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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리뷰 언론기고] 난방비 걱정없는 패시브 하우스를 선택하려면?

admin | 수, 2020/01/15- 18:26

 

 

난방비 걱정 없는 패시브 하우스

 

한반도의 겨울이 추운 것은 피할 수 없다. 지구가 지금과 같이 자전축이 기울어진 채 자전하면서 공전하는 한 그렇고, 한반도가 지구상에서 지금과 같은 위도와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는 한 계속 그럴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기후가 예전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약 45억 년에 걸친 변화 끝에 대략 1만 2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 이후로 형성된 기후이다. 그리고 지구적 규모의 변화는 계속 될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시간으로는 그 변화를 감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기후변화’, ‘기후위기’가 많이 언급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해 국제사회는 ‘1988년 UN총회 결의에 따라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에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을 설치하였고,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에서 개최된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에서 기후변화협약(UNFCCC)을 채택하는 등 범지구적 차원의 국제협약을 체결·추진’하고 있다.

사소한 것 같은 난방비 가지고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는 것은 사소한 것과 거창한 것이 별개가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인류가 비로소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구평균 기온 2℃ 정도의 변화면 기후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의 각 활동분야가 2℃ 상승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는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의 배출 주범이 난방으로 인한 것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강 큰 배출의 주범은 산업시설, 즉 경제활동이고 자본인 것이다. 물론 그 경제활동과 성장을 통해 우리가 지금 이 물질적 부와 풍요를 누리고 있으니 소비자인 우리도 방조범 정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일까? 사람들이 난방비를 줄여서라도 기후위기를 막아보고자 눈물겨운 분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시스템과 구조를 그 목적에 걸맞게 구축해 놓으면 같은 비용으로 더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민주적인 사회체제나 패시브 하우스가 그 하나이다. 더 이상 유리창에 뽁뽁이 비닐을 붙이지 않아도 되며, 취사열로도 실내난방이 가능하다. 이런 패시브 하우스는 쉽게 말하면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집으로 1991년 독일에서 처음 시도되었다고 한다. 패시브 주택은 “일반적으로 1년에 면적 1㎡당 사용되는 난방에너지가 1.5L로 고단열·고기밀로 설계가 이루어지고 열교환장치 및 환기장치 등을 이용해 버려지는 에너지를 철저하게 회수하는 방식의 건축물”로 정의되고 있다. 이 개념을 보면 지금 우리 한국사회가 못할 사회적, 경제적, 기술적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주택시장은 아파트만 공급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액티브 하우스도 있다. 액티브 하우스는 에너지 절약하는 것을 넘어 생산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패시브에 재생에너지 생산 시설을 더한 것이다. 태양광, 태양열, 지열, 바이오 매스 등을 활용해 에너지를 생산하여 조명, 조리 등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충당한다. 문제는 이런 추가적인 시설로 인해 비용이 추가된다. 그렇지만 한 번 설치되면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외부로부터 받는 에너지도 최소화할 수 있다. 패시브와 액티브 하우스는 자재와 첨단 기술이 들어가지만, 그 방식과 문제의식을 보면 친환경 주택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여기다 물질적 순환시스템까지 더해진다면 지속가능한 생태주택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기후변화가 세계적 환경의제로 대두된 지 한 세대가 지나가고 있음에도 이런 주택의 보급 확산이 왜 잘 되고 있지 않을까?

패시브와 액티브 하우스는 친환경적이고 건강하고 경제적인 주택이다. 그리고 그것을 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 자재도 있다. 그리고 대중들의 환경에 대한 인식도 어느 정도 확산되었고 깊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패시브 하우스 등의 보급은 뚜렷하지 않다. 그것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기술의 보급은 단지 경제성과 기술 자체의 경쟁력이나 탁월함 같은 몇몇 요소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기술이 하나의 특정 기술이 아니라 ‘체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 하나의 기술과 기술체제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특정 기술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지만, 기술체제는 사회적 배경을 포함하고 있다.

순천시가 2018년에 패시브 하우스를 지을 경우 사업비 50%내에서 최대 2천만 원까지 지원하였다. 이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볼 때 친환경적인 정책사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이 있다. 그것은 기술을 하나의 사회체제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난방비 문제가 아니라 미세먼지와 기후변화 등 환경문제 때문에 친환경주택 건축을 지원하기로 했다면 비용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법률 등을 통해 건축에 대한 에너지 효율 및 단열 기준을 강화하고, 제도적 지원방안을 마련하여 시장형성의 최소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수요를 감당할 자본과 기술인력의 환경 인식 제고, 그리고 시장 수요를 위해 건축과 환경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 형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행정적으로 뒷받침할 행정 역량 육성과 부서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법률 제정을 위해 의회도 설득해야 하고, 그런 생각을 가진 의원들이 의회에 진출해야 한다. 이는 또 유권자인 시민의 의식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을 실현할 기술과 자본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서로 맞물려 있어 하나의 해결책이 있을 수 없다.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우리 사회가 재테크로 아파트를 선택하는 대신, 환경과 나의 건강, 우리 자식들의 미래를 생각해 패시브, 액티브 하우스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나의 선택과 노력이 선순환의 시작이 된다. 변화는 ‘거기서 그렇게’ 시작된다.

 

 

신동혁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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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 빈 손짓에 슬퍼지면 /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이렇게 가슴을 저리게 다가오는 노랫말들이 거리에 툭툭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게 되는 가을의 날입니다. 거리에 나무들을 바라보며 노래가 들리면 나무의 심정을 듣는 듯합니다.

청주의 대표적인 가로수의 플라타너스는 수피가 벗겨지는 모습이 버짐이 피는 것 같다 해서 그리고 서양에서 들어왔다고 양버즘나무라 부릅니다. 발에 툭툭 밟히는 양버즘나무의 낙엽들을 바라보면 봄의 초록색, 여름의 녹색, 가을의 노란색, 겨울의 갈색으로 사계절의 색을 한 잎에 다 잡아 두었습니다. 한 잎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한 해가 지나갑니다. 양버즘나무를 밟다 보면 쿰쿰한 향이 돕니다. 식물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향을 갖고 있습니다. 그 향은 다른 식물들과의 삶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며 곤충 및 다양한 생명들과의 방어 및 교감을 위해 사용합니다.

무심천 가을의 안개는 알싸하고 겁겁한 향이 납니다. 안개가 지나는 들녘으로 가면 낮은 향들이 코를 자극합니다. 들깨를 베고 말리고 터는 향입니다. 이 향기가 나면 몸이 반응을 하는데 깻잎에는 들어있는 페릴케톤(perill keton)의 향입니다. 이 향은 천연 방부제로 깻잎의 파이톨 성분과 함께 항암효과를 주는데 모두 정유성분이나 알코올의 성분으로 식물의 몸에 녹아있는 것입니다. 향기가 나는 물질이라 방향물질이라 부르며 넓게 생각하면 우리에게 친근한 허브도 피톤치드도 같은 내용입니다.

가을비가 소리 없이 날리고 깻대를 태우는 향이 돌면 걸음을 자꾸 멈추게 됩니다. 식물들마다 태우면 각각 다른 향들이 나는데 그 역시 식물이 갖고 있는 다양한 정유성분들이 불에 타면서 발산하기 때문입니다. 잘 마른 나무를 태우면 향이 적은 이유도 이런 성분들이 말라가며 다 날아갔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무와 다르게 향나무는 이런 정유성분들이 줄기 가운데 남겨 놓는데 나무의 겉보다 줄기 가운데 향이 더 강하게 발산합니다.

단풍이 들고나면 솜사탕 향이 생각납니다. 바로 계수나무 때문입니다. 계수나무는 중국 남부 지역의 나무로 우리나라에는 공원이나 수목원에 심어 가꾸는 나무입니다. 다른 나무와 달리 꽃이 아닌 잎에서 달콤한 향이 나는데 단풍이 짙게 드는 바로 이 시기에 그 향이 더 그윽해집니다. 계수나무 잎에는 잎 속에 들어있는 탄수화물의 일종인 엿당(maltose)의 성분이 있는데 가을이면 이 성분이 더 강해져 공기 중의 휘발되는 양도 많아집니다. 캐러멜 혹은 솜사탕 향이라고 하는데 원래는 잎이 나는 봄부터 여름에도 향이 나긴 합니다. 계수나무는 동요에 나오는 계수나무와는 상관없이 처음 나무를 들여왔을 때 이름을 붙여서 계수나무가 되었습니다. 실제 그리스 신화와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달의 계수나무는 없는 나무입니다. 다만 중국의 전설에 항아가 불사의 약을 갖고 달로 가는데 계피나무를 뜻하기도 합니다. 껍질인 계피가 중국에서는 신선의 약재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껍질을 다지기 위해 방아를 찧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어쩌면 가을은 황홀하고 아름답지만 슬픔이 쌓여가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온몸의 감각으로 가을을 느끼는 것은 생명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 느낌들이 쌓여가 우린 생명의 지혜들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혜가 늘수록 슬픔도 느나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슬픔 역시 늘리는 것이리라’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가을이 더 슬프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지극히 당연한 생명의 감정이겠죠.

화, 2015/11/2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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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으로 맘고생을 하다가 이젠 비에 맘고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도 없어서 힘든 것보다 넘쳐서 힘든 것이 마음이 편한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무심천도 몇 번의 하상도로의 범람이 있었습니다. 장마 때 하천에 흐르는 많은 물은 생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곤 합니다.

첫 번째로 무심천에 겨울과 봄에 쌓였던 많은 퇴적물들이 하류로 모두 이동하여 수질이 좋아지게 됩니다.
쉽게 이해하면 하천을 깨끗하게 물청소를 한 것과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모래와 자갈의 이동이 생기게 됩니다. 모래톱이 자연적으로 형성되기도 하고 모래와 펄이 쓸려간 곳은 자갈 여울로 바뀌게 됩니다.
하천의 자연적인 퇴적층 변화는 다양한 수서동물의 건강한 서식지로 탈바꿈됩니다.
세 번째로 하천 주변의 식생의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유실된 지형도 범람해서 만들어진 습지에도 또 새로 퇴적된 모래톱에도 다양한 식물들이 자리 잡고 살아가게 됩니다.

거침없이 흘러가는 무심천을 바라보면서 저 빠른 물속에서 물고기를 어떻게 보낼지 궁금해집니다.
물고기들은 각각의 방법으로 이 어려운 환경을 피해 살아갑니다.
대부분이 유속이 느린 곳이나 수초 사이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도 맘을 놓을 순 없는 일입니다.
피라미 치어 같은 경우는 몇십 km 떠내려가 그 하천에서 다시 자리를 잡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체 변화해 진화적인 방법으로 물살을 이겨내는 물고기도 있습니다. 바로 망둑어 종류입니다.

우리와 친숙한 망둑어는 보통 망둥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속담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 ‘바보도 낚는 망둑어’로 자주 사용됩니다. 하지만 망둑어를 그리 좋게 평가하진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망둑어의 어원은 망동어(望瞳魚)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그냥 불리던 이름을 한자로 옮겨 붙였을 수도 있습니다.
정약전 선생의 자산어보에 망둑어가 등장합니다. 망둑어는 무조어(無祖魚)로 설명되는데 ‘제 살을 뜯어먹어 조상도 못 알아본다.’라고 전해집니다.
실제 망둑어는 그리 나쁜 평을 들어야 할 물고기는 아닌데 그 생김새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겼나 봅니다.
예나 지금이나 예쁜 것이 대접받나 봅니다.

무심천에도 망둑어가 살고 있습니다. 2016년 조사에 채집된 망둑어로는 민물검정망둑과 밀어, 갈문망둑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민물에도 망둑어 종류가 여럿 살고 있는데 날망둑, 꾹저구, 갈문망둑, 밀어, 민물두줄망둑, 검정망둑, 민물검정망둑 등이 하천, 강, 저수지, 기수역 등에 서식하고 있습니다. 특히 민물검정망둑은 우리나라 하천 어디에도 만날 수 있고 일본에도 살아가는 물고기입니다.

이제 민물검정망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유속이 빨라지면 민물검정망둑은 돌에 몸을 붙여서 자리를 잡습니다. 배에 있는 가슴지느러미가 유리에 붙이는 빨판 식으로 변화되어 진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물고기들도 지느러미가 자신의 용도에 맞게 바꿔 진화하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물고기 몸속에 있는 부레의 기능이 크게 작용합니다.
부레는 물고기들이 물속에서 헤엄을 치지 않아도 떠있을 수 있는 역할을 하는데 그런 다양한 기능으로 지느러미를 진화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민물검정망둑은 몸의 색을 변화하기도 하는데 짙은 암갈색에서 밝은 색으로 주변의 색과 비슷하게 바꿔 자신을 보호하기도 합니다.
민물검정망둑은 생태적으로 특이한 생활을 하는데 5월부터 7월까지 산란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수컷은 구애 행동으로 머리를 흔들며 소리를 내고 암컷은 밝은 갈색으로 몸의 색이 밝아집니다.
또 돌 틈에 산란실을 만들어 알을 조밀하게 붙이는데 수컷은 이 알들이 부화할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산란실을 지킵니다.
이렇게 부성애가 강한 물고기들이 대표적으로 몇 종이 있는데 소설에 등장해서 눈물을 흘리게 한 가시고기와 자신의 알 말고도 탁란 된 돌고기 알까지 지켜주는 꺽지가 있습니다.
특히 민물검정망둑은 현대 남성들이 특히 갖아야 결혼할 수 있는 산란실, 부성애 모두 갖고 있는 능력자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그 형태와 모습을 보고 평가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주 본 익숙한 형태를 선호하게 되곤 합니다.
하지만 망둑어처럼 특이하고 개성 있는 존재가 생태적인 다양성을 이루어가는 주축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주위에도 개성 있는 사람들이 있어 즐거운 에너지를 받고 있지 않나요?

수, 2018/04/18-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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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치 성체>


<누치 치어>

무심천 벚꽃이 찾아왔습니다. 꽃비가 무심히 떨어지는 모습이 꼭 무심히 흐르는 무심천과 닮아 있습니다.
꽃의 끝은 생명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벚꽃이 지고 나면 무심천의 다른 생명들도 본격적으로 삶이 시작됩니다.
물속 역시 4월부터는 새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혼인식이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무심천에 많은 물고기 중에 대형종이 있습니다.
40센티 이상 몸길이가 되어야 큰 물고기라는 명함을 내밀 수 있습니다.
무심천에 서식하는 잉어, 누치, 강준치, 메기, 대농갱이, 쏘가리, 드렁허리 들이 40센티 이상 자라는 물고기입니다.
그중에 우리가 흔하게 무심천에서 보는 물고기는 바로 누치입니다.

누치는 보통 눈치라는 이름으로 가장 많이 불리는 물고기로 크기가 50센티 이상 자라는 물고기입니다.
몸은 길고 옆으로 납작하고 주둥이가 튀어나왔습니다.
어릴 때는 몸에 검은 점이 있는데 자라면 잉어처럼 매끄럽게 없어집니다.
눈이 상당히 큰 편인데 머리 높이에 절반 정도를 차지합니다.
누치가 어릴 때는 참마자 혹은 어름치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특히 참마자와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눈치라는 이름은 눈이 커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추측하는데 또한 겁이 많아 몸이 재빠르게 도망가기 때문에 눈치가 빨라 붙여진 이름이라는 속설로 남아 있습니다. 누치는 옛 기록에는 눌어(訥漁)로 표기되어 있는데 눌(訥)은 ‘말을 더듬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말을 더듬는 것과 눈이 큰 누치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그래도 가장 신뢰성 있는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누치의 주둥이는 길게 튀어나와 있는데 위턱에 비해 아래턱이 작아 입이 아래로 향해 있습니다.
누치를 잡아 보면 입을 굼적굼적 거리며 아래로 향하는데 그 모습이 답답해 보여 말을 더듬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눌어(訥漁)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누치는 모래나 자갈이 깔려 있는 바닥 층에서 생활을 하는데 돌에 붙은 미생물을 먹거나 곤충, 실지렁이, 갑각류 등을 먹고 살아갑니다.
식생활이 그러다 보니 입이 앞으로 향하는 것보다 아래로 향해야 먹이를 쉽게 먹고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갖게 된 것입니다.
생명의 이름은 사람들이 짓기 때문에 사람 관점으로 눌어(訥漁)라는 이름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만약 다른 생명들이 사람을 관찰하고 나서 이름을 지었다면 어떤 이름을 붙여줬을까요?

누치는 4월 말부터 6월 초까지 번식기입니다.
그중 24절기 하나인 곡우(穀雨) 시기에 가장 절정에 이루는데 누치 암수가 떼를 지어 얕은 여울로 올라가 서로 자갈 틈에 알을 낳기 시작합니다.
보통 암컷 한 마리에 여러 마리의 수컷이 쫓아가면서 뒤섞이는 모습인데 5월에 무심천 다리 위에서 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알을 낳으면 피라미, 끄리 등이 달려들어 알을 집어삼키는데 여러 물고기들이 떼로 모여 한바탕 소란이 이러나니 옛 어른들은 이런 행동을 ‘누치가리’라고 이름을 붙여 불렀습니다.

누치의 옛 기록은 서유구 선생의(1764~1845) 『난호어목지』나『전어지』에 눌어로 소개되어 “살에 가시가 많고 곡우를 전후로 해서 수컷이 주둥이로 돌에 붙은 물때를 떼어 내면 암컷이 그 뒤를 따르며 물때를 삼키면서 새끼를 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기와 특성을 보면 바로 ‘누치가리’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봄에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합니다.
봄처럼 따듯한 시기가 왔으면 하는 바람인데 누치 같은 후보자는 어떨까요?
첫 번째로 누치는 어눌한 눌어(訥漁)입니다. 잉어처럼 화려한 스펙을 갖고 있지 않고 쏘가리처럼 화려하지 못한 어눌한 물고기입니다.
하지만 『강의목눌(剛毅木訥)이라는 고사성어를 빌려 ‘의지가 굳고 용기가 있으며 꾸밈이 없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 진실을 말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눈치입니다. 눈이 큰 누치는 눈치가 빠르고 겁이 많은데 주변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바로 민심을 읽어 살길을 열어가는 지혜가 있습니다.
셋째로 떼를 지어 다니는 습성입니다. 누치는 자기 영역을 고집하지 않으며 자신과 다른 생명을 배척하지 않습니다.
의견이 달라도 함께 품어갈 수 있는 덕목을 지녔습니다.
어떤가요? 괜찮은 후보 같지 않습니까?

봄입니다.
봄은 생명의 시작이자 희망입니다.
아름다운 봄날에 투표장에서 뵙겠습니다.

원문 중부매일 http://www.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91122

월, 2017/04/1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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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귀>

앉은부채

<앉은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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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바람꽃>

 

 

 

생명의 보금자리

 

매섭던 꽃샘추위가 얼마 안 남은 겨울새들과 함께 떠나가면 이제 완연한 봄입니다. 3월에 들어오면서 온도가 초여름 날씨에 가깝게 오르곤 합니다. 이제 봄비가 스치고 갔으니 숲에는 생명들이 들썩들썩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봄이 오면 일찍 시작하는 풀꽃들이 있습니다. 매서운 추위와 눈을 뚫고 나와 꽃을 피우는 앉은부채와 너도바람꽃입니다. 앉은부채는 앉은부처라는 이름과 함께 불리곤 합니다. 아마도 앉은부처라는 이름에서 앉은부채로 변한 것 같지만 모두 이 풀의 형태를 보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산양의 뿔처럼 생긴 잎이 눈을 뚫고 나와 뾰족 솟아오르고 좀 더 지나면 이 잎이 점점 벌어져서 동그란 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동그란 꽃이 불상의 머리와 참 닮아있습니다. 그래서 망토를 쓴 부처와 닮았다고 해서 앉은부처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부채라는 이름은 꽃이 지고 여름이 오면 넓고 큰 잎만 보입니다. 다른 풀들에 비해 잎이 얼마나 큰지 부채만 합니다. 그래서 부채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앉은부채는 습하고 나무 그늘이 잘 조성되어 있는 곳을 좋아합니다. 멀리 이동을 못하기에 대부분 그곳에 대부분 군락을 지으며 살아갑니다. 청주에서 미원으로 가는 낭성 중간에 이 앉은부채의 군락지들이 몇 곳 있습니다. 숲에서 자주 볼 수 없는 풀이기에 서식지에 대한 표지판도 설치해 두었습니다.

올 봄에 이 서식지 중 한 곳을 다녀왔는데 작년에 주변의 낙엽송을 벌목했나 봅니다. 솟아야 할 꽃들이 어디에도 없고 그 큰 군락지에 한 두 송이만 남고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나무가 없어지면서 그늘이 사라지고 벌판을 좋아하는 미국자리공이 그 자리를 다 차지해 버렸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러한 변화에 모두 사라지는 것이 바로 풀들의 처참한 운명이기도 합니다.

앉은부채 외에도 봄에 일찍 꽃을 피우는 너도바람꽃이 있습니다. 무주의 구천동 계곡, 월악산의 일부 지대, 소백산의 일부 계곡 등에 피우는 아주 작은 바람꽃입니다. 덕유산에 너도바람꽃이 피었다는 기사가 실릴 정도로 이른 봄에 사랑을 받은 꽃이기도 합니다.

너도바람꽃은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작은 잎을 틔우고 밥알 같은 작은 꽃봉오리를 세웁니다. 그리고 숲 바닥에 오십 원 동전만 한 꽃을 대규모로 피우기 시작합니다. 꽃은 보통 삼일에서 일주일 정도 피우고 곤충에 의해 수분이 되면 사라집니다. 꽃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눈 속에 핀 너도바람꽃 사진을 무척 좋아하고 자랑하곤 합니다. 이름에 너도-,나도-라는 이름이 붙는데 이 이름에는 참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너도-’는 비슷한 식물들이 너도 우리와 같은 식물이다.라는 것으로 주위에서 인정한 것이고, ‘나도-’는 본인 스스로가 너희들과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고 ‘너도-’, ‘나도-’라는 것은 그 본래 식물과 많이 닮은 식물들에게 붙여진 이름입니다. 비슷한 것이 바람꽃들은 미나리아재비과 인데 여기서 아재비 역시 미나리와 닮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너도바람꽃은 속리산국립공원 몇 곳의 계곡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시기가 일찍 시작해서 나무를 간벌하는 시기와 겹치곤 하는데 안타깝게도 일부 서식지는 간벌 도중 파헤쳐 지거나 밟혀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나마 손이 닿지 않은 곳에 군락지에는 올봄에도 활짝 꽃들을 피웠습니다.

벌목과 간벌도 숲의 장기적인 것을 생각하면 일부는 필요한 활동입니다. 특히 간벌은 숲의 나무들을 잘 자랄 수 있도록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숲의 보호 차원에 실행되곤 합니다. 다만 몇몇의 중요한 나무들만 보존하겠다는 생각 때문에 다른 생명들은 처참히 서식지를 빼앗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양성산의 노루귀 군락지, 감태나무 군락지, 매화노루발 군락지 역시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서식지의 범위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린 모든 생명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 생명들이 함께 살아갈 때 다른 생명들 역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생명의 대한 존중과 배려는 바로 서식지 보호가 기본이 되는 첫 바탕이기에 서식지에 대한 보호 안내를 통해 지켜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화, 2015/04/1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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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은 제법 눈이 흔합니다. 그래도 그 흔적이 오래가지 않아 눈이 내렸나 하면 다시 건조해지는 맑은 날들이 이어집니다. 이렇게 파란 하늘의 맑은 날에는 시야가 훨씬 길어집니다. 그리고 작은 소리도 귓가에 잘 들립니다. 멀리 새들의 소리가 들립니다.

새는 보통 조류라고 부르며 날개가 있어 날아다니는 동물을 흔하게 뜻합니다. 새는 사람의 삶과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내려왔으며 생태적으론 생명의 순환 단계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는 동물입니다. 환경에 대한 관심과 환경운동의 시작을 알린 것도 바로 새들과 살충제의 사건이었으니 더 애틋한 관계입니다.

새는 크게 사는 곳에 따라 물에서 사는 물새와 산이나 들에서 사는 산새로 나눠봅니다. 그다음으로 계속 한 지역에만 사는 텃새, 여름에 보이는 여름철새, 겨울에 보이는 겨울철새,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나그네새 정도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분류학적으로 과, 속, 종으로 나눠집니다.

새들을 사는 곳으로 먼저 나누는 것은 사는 곳에 따라서 새들의 신체적인 특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새들의 각자 자신의 서식지와 먹이를 따라 특성에 맞게 변화되어 왔습니다. 부리 경우 맹금류는 날카롭고 뾰족하고 뜯기 좋은 형태로, 오리류는 주걱처럼 풀들을 뜯기 좋은 형태로, 참새나 콩새들은 쪼아서 먹기 좋은 형태로 모양이 각자 다릅니다. 발가락 역시 나무에 잘 매달리게 생긴 발과 수영하기 좋은 오리발, 사냥을 하기 위한 날카로운 발 등으로 변화되어 왔습니다.

무심천에는 이런 다양한 특징을 갖은 새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특히 겨울에는 무성하던 풀들이 쓰러지고 물새들이 많아서 더 관찰하기 좋은 시기입니다. 먼저 물에 둥둥 살아가는 오리류 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장 많은 개체수와 텃새 역할까지 하고 있는 흰뺨검둥오리, 부부끼리 꼭 붙어 다니는 청둥오리, 몸집이 작지만 문양이 선명한 쇠오리, 부리가 넓은 넓적부리, 갈색의 시골스러운 알락오리, 머리가 붉은색에 노란 이마를 갖고 있는 홍머리오리, 목에 흰 줄이 맵시 있게 보이는 고방오리, 머리털을 바짝 세우고 부리 끝이 매서워 보이는 비오리 등이 있습니다.

물가 근처에서는 긴 다리를 뽐내며 물고기 사냥을 하는 백로들이 살아갑니다. 회색 잿빛의 옷을 입고 왝왝 울어대는 왜가리, 흰 깃털을 휘날리며 긴 다리로 사뿐사뿐 걸으며 물고기를 낚고 있는 중대백로, 작은 키에 노란 장화를 신은 쇠백로 등 무심천에서 자주 보는 가장 큰 새들입니다.

물에서 나와 작은 덤불에도 새들이 살아갑니다.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뱁새인 붉은머리오목눈이, 앙증맞은 모습에 울음소리가 아름다운 박새, 꼬리를 딱딱 터는 딱새, 야생 비둘기인 멧비둘기, 나는 것보다 뛰는 모습이 어울리는 꿩들이 있습니다.

또 무심천 벌판에는 맹금류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늘에 붙박이처럼 멈춰 서있는 황조롱이, 큰 날개를 펼치며 비행을 하는 말똥가리 등 포식자들도 무심천에 살아갑니다.

무심천에서 이제 볼 수 없는 새들도 있습니다. 전까지 있었지만 개발을 통해서 오지 않는 보통 백조라 불리는 천연기념물인 고니들입니다. 며칠 전에 무심천 상류인 장평교를 산책하던 중 흰색의 큰 새를 만났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기에 가까이 가서 사진을 담아보니 큰고니 새끼였습니다. 놀랍기도 했지만 고니는 보통 무리를 지어서 다니기 때문에 혼자 있는 것이 이상한 상황이었습니다. 살펴보니 부리에 붉은 그물들이 잔뜩 감겨있습니다. 아마도 다른 곳에서 먹이를 먹다 그물을 삼켰나 봅니다. 안타까운 것이 이런 상황에 구조를 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생태에 관해서 몇 년을 몸을 담아왔지만 저도 구조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니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무심천에는 지금도 평화롭게 새들이 살아갑니다. 이런 새들과 사람이 건강한 관계를 맺어줄 공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다른 지역에선 새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관찰하고 체험할 공간이 있는데 청주시에는 아직 없습니다. 그리고 야생동물들이 부상이나 위기에 처했을 경우 조치를 취할 방법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실정입니다. 앞으로 이런 생명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조치들이 취하길 바람입니다.

중부매일  2015년 1월 25(일) [열린세상]

금, 2015/02/0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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