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공개센터 회원이자, 부산경실련 활동가로 일한 안일규님이 새해를 맞이하여 지역에서 정보공개 청구를 할 때 느끼는 어려움들에 대해 칼럼을 써 보내주셨습니다. 정보공개센터는 주로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다보니, 다른 지역에서 정보공개 청구를 할 때 경험하는 문제들이 항상 궁금했는데 자신의 경험을 잘 이야기해주셨네요. 글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정보공개센터는 항상 회원 여러분들의 글을 기다리고 고대하고 있습니다! 어려워 말고 보내주세요!
지역에서의 정보공개청구는 급증하고 있다. 부산시의 경우 2015년 2,977건에 비해 2019년 6,000건(예상치)으로 4년 사이 2배 이상 늘어났다. 부산시와 부산지역 16개 구·군을 합치면 2015년 24,161건에서 2019년(10월까지) 34,180건으로 40% 이상 늘어났다. 알권리 확대에 긍정적인 지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보공개청구를 적극 활용해야 할 지역의 시민사회 등은 정보공개청구에 적극적이지 않다. 수치로 드러난 것은 없지만 오거돈 체제가 들어서면서 정보공개청구 대신 다른 통로를 이용하거나 견제 기능이 약화됨에 따라 정보공개청구를 외면하는 상황으로 변했다.
시민들도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습득한 정보를 공적으로 공개하는 행위를 하거나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한 상태도 아니다. 알권리를 넘어 공유의 가치가 필요한 상황에서 공유보다는 정보의 사유화로 귀결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그러나 지역에서의 정보공개청구는 근본적인 어려움을 낳고 있다. 필자는 매년 200건 이상(다중청구 포함)의 정보공개청구를 해왔지만 이 어려움에 항상 고민하고 있다. 정보의 제공권한은 피청구기관에 있어 청구자는 각종 회유나 압력행사에 시달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칼럼을 보내주신 안일규 회원님이 정보공개 청구 취하 요구를 받은 내용에 대해 부산MBC와 인터뷰하는 내용
필자는 <부산일보>의 부산 오페라하우스 건립비용 관련 보도와 관련한 내용을 알아보고자 기획재정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는데 이 사실이 부산시 정무라인에서 인지하게 된 일이 있다. 부산시 정무라인에서는 필자에게 정보공개청구로 인해 부산항만공사의 부산 오페라하우스 건립비용 지원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정보공개청구 취하를 요구한 바 있다.
대다수 일반 시민이라면 이 취하 요구를 넘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필자도 이겨내기 쉽지 않은 압력이지만 퇴직을 결정한 터여서 이겨낼 수 있었다. 정보공개청구 자료가 나오면 언론과 협업해서 후속 보도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지역에서의 정보공개청구가 어렵지 않으려면 알권리를 확대하는 정책과 투명한 정보공개, 공개된 정보의 공적공유가 이뤄져야 한다. 현행법으로는 불성실하게 정보를 공개하거나 부당한 압력을 행사해도 피청구기관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점은 정보공개법 개정을 통해 보완되어야 한다.
지역에서의 정보공개청구는 예민한 사안으로 갈수록 피청구기관의 각종 압력을 수반한다. 정보공개청구는 여전히 유효한 운동이며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찾는 운동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2020년을 정보공개법 강화를 위한 입법활동 원년의 해로 삼고, 지방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정보공개청구를 좀 더 활성화하면서 지방에 거주하는 회원들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 독려를 했으면 한다.
지난 5월 23일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한 번째 기일이었다. 올해도 많은 정치인들이 봉하마을로 향해 추도식에 참여했다. 너나할 것 없이 ‘노무현 정신’ 계승을 이야기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런데, ‘노무현 정신’을 이야기할 때 빼놓아선 안 될 이야기가 있다. 바로 노무현의 ‘기록 정신’이다. 노무현은 역대 대통령 중 그 누구보다도 공공기록물 관리의 중요성을 깨닫고, 체계적인 기록관리 정책을 추진한 대통령이었다.
참여정부 이전까지 정부의 공공기록물 관리 수준은 아주 처참했다. 2005년 [공공기록물 보존 및 관리실태]에 대한감사원 감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1952년 제1차 개정헌법부터 제5차 개정헌법까지의 원본들을 원본인 줄 모르고 일반서류로 보관하고 있었고, 오히려 필사본을 원본으로 여기고 귀중 기록물 보존서고에 보존하고 있었다. 심지어 제헌헌법 원본, 제1대 국새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기록물들은 분실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화폐나 우표 원본 도안도 사라졌다. 통치사료로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대통령기록물 역시 제대로 수집 관리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12년 동안 장기 집권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경우 현재 남아있는 대통령기록물이 9만 3천여건, 16년을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 7만 6천여건에 불과하다.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점차 대통령기록물의 양이 늘어나긴 했지만, 무엇이 대통령기록물인지, 기록물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불분명한 상황이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노무현 정신은 곧 기록 정신 “우리가 이렇게 해서 새출발 못합니다”던 육성
472년 간의 역사를 정리한 조선왕조실록, 국왕의 업무와 각종 행정사무들을 매일매일 기록한 승정원일기 등 세계에 자랑할 만한 기록 문화유산을 가진 나라에서, 정작 정부의 기록물 관리는 엉망진창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 2004년 당시 참여연대와 세계일보는[기록이 없는 나라]라는 기획 연재를 통해 정부의 기록물 관리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했다. 이러한 시민단체와 언론의 비판이 이어지자, 노무현 대통령은 즉각 국가기록관리의 혁신에 나설 것을 천명했다. 2004년 7월 20일 국무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해서 새출발 못합니다. 기록물관리부터 새롭게 하고 지난날의 이런 처리에 대해서 얼렁뚱땅했던 것도 다 국민들 앞에 진상 공개하고 앞으로 안 그러겠다고 맹세해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친필 메모ⓒ뉴스타파 홈페이지 캡처
노무현의 ‘맹세’는 공염불에 그치지 않았다. 정부 수립 후 최초로 국가기록관리 체제 혁신을 공식화한 ‘국가기록관리혁신 로드맵’을 세우고, 이에 따라 공공기록물법을 전면 개정하여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 체계를 바로잡았다. 무엇보다도 노무현의 ‘기록 정신’을 잘 드러내는 지점은 대통령기록물법을 제정한 것이다. 이전까지 대통령기록물은 사실상 대통령과 비서실, 측근들의 사유물과 다름없었다. 박정희가 죽자 유가족들은 트럭 6~7대 분량의 대통령기록물을 들고 나왔고,(관련 기사)전두환 역시 퇴임 시트럭 서너대 분량의 통치기록을 집으로 가져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영삼 역시컨테이너 세 대 분량의 대통령기록물을 개인적으로 보관하다가, 향후 이를 대통령기록관에 기증했다. 노무현은 달랐다. 본인이 직접 개발에 참여했던 전자문서관리시스템인 e지원을 청와대에 도입하여 문서의 생산과 관리, 보고와 결재 등을 상세히 기록할 수 있도록 하였고, 이를 토대로 800만 건에 달하는 대통령기록물을 퇴임하면서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했다.
이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기록물을 상세히 남긴 것은 후대 대통령들이 이전 정부의 통치자료를 참고하여 국정 운영에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하고자 함이었고, 또 훗날의 연구자들이 1차 사료들을 토대로 참여정부를 연구하고 역사적 평가를 할 수 있도록 기록을 남기고자 한 의미도 있다. 기록을 남기는 것이 되려 대통령 자신에 대한 비판의 도구로 쓰일지도 모르지만, 대통령기록물은 폐기나 은폐, 누락이 없어야 하고 가급적 많은 기록물이 사회와 시민들에게 공개돼야 한다는 신념이 노무현의 ‘기록 정신’이었다.
그러나 노무현의 뒤를 잇겠다는 허다한 정치인들 중에서, 정작 그의 ‘기록 정신’을 본받은 이는 찾기 어려운 것이 오늘날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지난 5월 19일, MBC뉴스데스크는 임기를 마치고 국회를 떠나는 국회의원들이의원실의 각종 문서들을 마구잡이로 폐기하고 있는 장면을 보도했다. 방위사업청의 무기 구매 비공개 문건, 용산 참사 수사기록, 국무총리의 주민등록번호가 담긴 문건 등 민감한 정보를 담은 문서들이 폐지로 버려졌다. 의원실에서 생산하거나 접수한 문서들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의정활동 기록’이라는 인식이 없기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문제는 이렇게 의정활동 기록이 버려지고 있는 것이 20대 국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19대 국회가 마무리되던 4년 전에도, 마찬가지로“4년 마다 국회 사초가 실종된다”며 문제를 제기한 언론들이 있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국회의원들은 전혀 변화가 없는 셈이다.
내다버린 ‘총리 개인정보·국방문서’…국회서 무슨 일이?ⓒMBC 방송 캡처
노무현 정신을 따른다면서 기록을 남기지 않는 정치권 21대 국회는 ‘국회의원기록물법’ 만들길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 기록은 행정부의 문서와 마찬가지로 공공기록물로 보존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국회는 의원실이 제작한 토론회나 정책연구 자료집 등 일부 기록만 국회도서관을 통해 보존할 뿐, 대다수 의정활동 기록물들은 파쇄되거나, 의원실 관계자들이 개인적으로 가져가거나, 때로는 그냥 버려지기도 한다. 의정활동 기록을 국회도서관에서 관리한다는 원칙만 있지, 이를 의무적으로 강제할 만한 법적 규정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정보공개센터와 한국기록전문가협회는 각 의원실에 공문을 보내 의정활동 기록물들을 그냥 폐기하지 말고 국회도서관 국회기록보존소로 기증을 해달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러나 기증을 약속하거나, 이미 기증을 했다고 밝힌 의원실은 전체 20대 국회의원 중 10개 의원실에 불과했다. 이후 세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서른 명 가까운 의원들이 국회도서관에 의정활동 기록을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래 봤자 전체 의원의 10%에 불과한 정도다. 90%의 국회의원들은 ‘기록을 남긴다’는 인식이 전혀 없는 것이다.
기록물 기증을 요청했을 때, 부정적인 의사를 밝힌 의원실의 공통적인 반응은 “의원실의 문서들은 내부자료가 많아서 외부에 기증하기 어렵다”, “대외비가 많아서 공개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세금으로 세비를 받아 활동하는 국회의원이 의정활동을 하면서 생산하거나 접수한 문서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공공기록물이다. 의원실에서 생산한 문서니까 의원실 내부에서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문서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국회 내부 기구에 기록물을 기증하는 문제를 두고 ‘내부’, ‘외부’를 따지는 것도 사실 웃기는 일이다. 기록물을 기증한다고 해서 그 자료가 바로 공개되는 것도 아니다. 국회기록보존소에서 자료의 이런 설명을 충분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내부자료’라거나 ‘대외비’라는 표현으로 기증을 거부하는 것은 국회의원들 대다수에게 얼마나 ‘기록 정신’이 부재한지 보여주는 사례라 볼 수 있다.
‘기록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은 대통령 재임 당시 회의나 면담 중에 남긴 손글씨 메모들도 대통령기록물로 남겼다. 청와대 공식 노트 뿐 아니라 해외 순방 시 머무른 호텔 메모지에 끄적인 메모 하나하나까지 그대로 기록으로 남았다.대통령기록관에 보존된 266건의 친필 메모들은 십수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시민들 누구나 쉽게 살펴볼 수 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떤 생각으로 국정 운영에 나섰는지 알 수 있는 자료로 쓰이고 있다. 이렇게 메모지 하나까지 공적인 기록으로 남기고,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 노무현의 기록관리에 대한 신념이었다. 2005년 10월 4일 국무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기록관리를 100%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기록 중에 필요 없는 기록이 상당히 많겠지만 100% 기록을 남긴다는 원칙을 가져가지 않으면 아주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서 모든 기록들이 사멸이 되어버리고 결국 기록문화는 유지할 수 없는거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대로, 어떤 기록은 남기고 어떤 기록은 버린다는 판단을 자의적으로 내리면 결국 기록문화가 유지 될 수 없다. 지금처럼 국회의원이 자의적으로 어떤 자료는 자기가 가져가고, 필요 없는 문서는 폐기하고, 일부 문서만 기증하는 방식으로는 국회 기록물들이 제대로 보존될 리 만무하다. 21대 국회는 달라져야 한다. 노무현이 ‘대통령기록물법’을 만들었듯, ‘국회의원기록물법’을 만들어 노무현의 기록 정신을 이어갈 용기 있는 국회의원을 기다려 본다.
최근 'N번방 사건'으로 대표되는 성 착취 동영상 제작 및 유포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주범들뿐만 아니라 혐오범죄가 자행될 수 있도록 돈을 지불하고 영상을 시청한 가입자 모두의 신상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강력하게 이어지고 있다. 신상공개는 사실 인권과 범죄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인식이 직결된 상당히 민감한 문제이며 많은 인권운동가들은 신상공개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최소한 유보적 태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이번 ‘N번방 사건’만큼은 지금까지의 신상공개 요구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흉악범의 신상공개는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한 조치로서 어김없이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범죄자에게 낙인을 찍어 재사회화를 어렵게 한다는 측면에서 범죄예방의 효과도 크지 않으며 이미 법적 처벌을 받은 범죄자에 대한 이중처벌의 소지가 있다는 측면에서 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텔레그램에서 불법 성 착취 영상을 제작, 판매한 n번방 사건의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씨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2020.03.25ⓒ민중의소리
나는 그동안 정보공개 운동에 몸을 담아온 활동가로서, 시민의 알 권리가 흉악범의 신상공개 문제에서 유독 집중적으로 조명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이러한 경향은 종종 신상이 까발려지는 것 자체가 공익인 것처럼 호도함으로써 '알 권리'가 본디 사회적으로 생산되는 정보에 대한 접근과 정치적 의사형성을 다룬다는 데에서 담지하고 있는 공공성을 삭제시켜왔기 때문이다. 흉악범의 모습, 가정환경과 교우관계, 그동안의 언행 등 범죄자의 서사에 몰두한 수많은 보도들은 범죄가 드러내고 있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공론장을 형성하기보다는 '특별한' 개인에게 모든 이목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더욱이 신상정보의 공개가 '공익'의 종착지로서 제시되는 구도는 피해방지와 안전을 위한 해결책을 '알아서 피하라'는 식의 개인적 차원에서 머무르게 만들어 오히려 공권력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도록 하는 구실을 제공하기도 했다.
N번방과 성 착취 관행의 민낯,
어떤 사례를 남길 것인가
이와 같이 신상공개의 '부작용'에 대한 합리적인 우려에도 불구하고, N번방 가담자에 대한 신상정보공개 요구는 보다 전환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성 착취 동영상 구매자에 대한 신상공개 요구는 수많은 여성들의 구체적인 현실 진단과 정치적 결단 속에서 등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요구는 성 착취라는 극도로 폭력적인 범죄를 '야동' 제작쯤으로 축소시키고 있는 고위공직자들의 인식과 '본 것만으로는 절대 처벌되지 않는다'는 남성들의 공공연한 공모, 그리고 성범죄에 대한 뿌리 깊은 불처벌의 역사 속에서 점점 더 크게 자라온 성 착취 관행과 범죄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주장이다. 또 이제는 '죽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이 사회와 인식구조를 바꿔내야만 하며, 그 선행 조치로서 처벌 형량 강화, 구매자를 포함한 철저한 처벌, 그리고 전례 없는 대규모 범죄집단에 대한 신상공개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200만 명 이상이 참여한 N번방 신상공개 청원에서 청원자는 "가담자에 대한 처벌을 하지 않을 거라면 신상이라도 알려 달라"고 말하며 신상공개 이전에 공식적인 처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재까지 성범죄자가 실제로 받는 형량은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고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에도 2, 3년만 지나면 사회에 복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상공개는 최소한의 방어 및 응징 수단으로서 요구되는 측면이 있다. 지금까지의 구형과 판결에 비추어 보았을 때 현행 법제도는 전혀 신뢰할 수 없고, 이 때문에 여성들은 자구력으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해결방법을 찾아 나서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번 사건에서 '신상공개'는 익명성에 기대어 성범죄를 저지르고, 아마 걸리지 않을 것이며 걸리더라도 벌금이나 집행유예 정도로 마무리될 것이라 예상한 많은 가담자들에게 엄청난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신상공개가 가지는 사회적인 의미는 매우 크고 중요하다.
3월 20일 시작된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200만명을 넘기며 역대 가장 많은 동의를 얻은 청원이 됐다.ⓒ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범죄 가담자들의 사이에서는 신상공개가 인권침해라는 여론이 높다. 하지만 모든 범죄에는 어느 정도의 기본권 제한이 따라붙는다. 심지어 범죄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기본권들이 충돌할 때에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보장의 여부가 조정된다. 이를테면 신상공개에는 취업의 제한이 병행되는데, 성범죄자에 대해 교사, 청소년 관련 업종 등 특정 직업을 가질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아동청소년이 최대한 성범죄로부터 안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기본권 제한의 정도와 양상은 그것이 어떠한 종류의 범죄인지, 그 피해가 얼마나 큰지, 이와 같은 범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지 등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만약 그 범죄가 피해자의 인격을 파괴하는 성범죄,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향한 조직적인 혐오범죄라면 범죄자의 처분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지금보다 단호하고 엄격한 방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사람들의 분노는 N번방 참가자들에 대한 무차별 신상털기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제도가 사회적인 공분을 적절하게 중화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더욱 공권력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가 중요하다.
N번방의 사건에서 가담자 개인은 단순히 특정 개인만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공식적으로 파악된 수만 약 6만여 명, 아마 실제로는 이를 훨씬 넘어서는 수의 사람들이 성 착취에 가담해왔을 것이고, 이는 우리 사회의 상당수가 여성에 대한 혐오문화를 공유한다는 방증일 것이다. 때문에 이번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동일한 종류의 성범죄를 허용할 것인지, 허용하지 않을 것인지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과 일련의 처리 과정들은 주요한 경험으로서 사회구성원들에게 학습될 것이다. 그리고 N번방 사건이 사회구성원들에게 성 착취물을 구매하고 영상을 시청하는 행위를 허용하는 메시지로 남게 된다면 이는 또다시 혐오문화의 자양분이 되어 더 충격적인 사건으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신상공개가 최선의 해결책은 아니지만, 지금은 성범죄 영상을 구매하는 것 자체, 보는 것 자체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비난이 필요하다. 적어도 가담자들이 그러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고 현실세계의 엄중함을 보여주는 것이 보다 중요한 때이다.
어릴 때 전화번호부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나와 같은 이름을 쓰는 사람은 누가 있는지 찾아보거나 주소로 우리 동네 사람들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특이한 이름을 가진 사람에게는 장난전화도 걸어봤습니다. 이게 가능했던 건, 당시 전화번호부에는 사람 이름과 집 주소, 전화번호가 다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전화번호부는 거의 모든 집마다 한 부씩 있을 정도로 구하기 쉽기도 했지요.
요즘엔 전화번호부를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니 옛날의 그런 전화번호부가 있을 수 없습니다. 만약 통신사들이 ‘이름’ ‘전화번호’ ‘주소’라는 개인정보가 들어있는 책자를 집마다 배포한다면 사람들은 개인정보 유출이라며 들고 일어설 겁니다. 예전과 지금의 개인정보에 대한 기준과 제도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전화번호부처럼 과거엔 공개하는 게 아무렇지 않았지만, 지금은 공개하는 게 도리어 이상한 게 되기도 하고, 반대로 예전엔 절대 비공개였던 게 지금은 인터넷에 검색만 해봐도 공개가 되기도 합니다. 공공정보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보를 공개하거나 비공개 하는 것은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절대적으로 비공개해야 하는 정보들도 일부 있습니다)
90년대 말 업무추진비는 비공개가 당연한 정보였습니다. 아무도 시장과 구청장이 쓰는 업무추진비를 공개하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정보공개법이 생겼고, 비공개를 당연하다 여기지 않은 사람들이 공개하라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업무추진비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비공개하거나 아주 제한적으로만 공개 했습니다. 지자체 단체장 업무추진비 공개운동을 벌였던 전국의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은 정보공개소송까지 가서야 업무추진비 집행정보를 공개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요? 업무추진비 집행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지자체를 찾아보는 게 더 어렵습니다. 아주 세부적인 내역은 아직도 정보공개청구를 해야만 볼 수 있긴 하지만, 월별로 어디에서 얼마나 썼는지 정도는 공개하는 게 추세가 되었습니다. 소송을 하지 않아도 볼 수 있는 정보가 된 것입니다. 과거에는 업무추진비 내역이 시민들이 함부로 볼 수 없는 공공기관장의 권위의 상징 같은 거였다면 지금의 업무추진비는 적극적으로 공개해서 투명성을 어필할 수 있는 수단으로 바뀐 거죠. 이뿐인가요. 과거엔 영업비밀이라며 비공개 했던 각 병원의 항생제 처방률은 이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정보로 가장 내세우는 정보가 되기도 했습니다.
공개와 비공개의 기준은 과거와 현재에만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따라 공개여부가 갈리기도 합니다.
한국의 경우 개인의 과세정보는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정보공개청구를 해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국세기본법에 따라 납세자의 과세정보는 비밀유지 대상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비공개인 이 정보가 핀란드에서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정보입니다.
핀란드 정부는 매년 11월 1일 시민 개개인의 과세 정보를 공개합니다. 핀란드 국세청은 이 날 전국 28곳 지방 세무서의 전용 PC를 통해 전 국민의 과세데이터를 공개하는 건데요. 다른 사람이 얼마를 버는 지, 그래서 얼마의 세금을 내는지 확인해 ‘질투심’을 가지게 된다고 해서 이 11월 1일에는 ‘질투의 날’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핀란드 뿐 아니라 여러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과거부터 시민의 과세정보를 공개정보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과세정보를 공개함으로써 탈세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기도 하고, 과세정보의 공개가 조세행정의 신뢰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업무추진비 정보든, 한국과 핀란드의 개인과세정보든 비공개정보와 공개정보에서 내용의 차이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공개에 대한 사회의 요구와 인식의 차이입니다.
공공기관들이 당연하게 비공개하는 정보들이 있습니다. 의사결정과정이라며, 영업비밀이라며 이유도 사유도 구체적입니다. 일견 타당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비공개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당연하지도 않습니다.
당연해야 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시민에 대한 존중일 것입니다. 그리고 비공개는 민주주의나 시민의 참여와는 당연히 어울리지 않습니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호와 제도개선을 위해, 이른바 ‘사회적 문제제기’의「 과정에서 많은 인권·시민 단체들이 공익인권소송을 제기합니다. 하지만 해당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승소한 상대방, 특히 국가가 법원에 거액의 소송비용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비용확정청구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때 법원도 해당 비용을 기계적으로 수용하여 결국 인권·시민 단체 등이 거액의 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공익소송은 기존의 주류적 판례에서 인정하고 있지 않은 새로운 법해석을 통해 사회 모순 개혁, 인권 개선을 목표로 진행하는 소송인 만큼 개개인의 이해관계 보다는 사회 전반의 문제 해결과 발전을 목표로하는 소송입니다. 그렇지만 현행 소송비용 제도는 공익소송 제기 자체를 위축시키는 족쇄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공익인권소송 패소시 과도한 소송비용 부담은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없는 사회적 약자에게 높은 문턱으로 작용하여 국민의 재판 청구권을 크게 제약하고 궁극적으로 공익인권소송을 통한 인권개선과 제도개선 시도를 가로막는 것입니다. 그동안 시민사회는 이런 공익인권소송시 패소비용의 문제점을 계속해서 지적해 왔습니다.
이에 1월 8일 (수) 그간 공익소송의 소송비용 부담 사례와 현황, 그로 인한 공익소송 제기의 위축 심각성을 살펴보고 제도 개선의 필요성 공론화 및 제도 개선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아래와 같이 토론회를 개최합니다.
기갑의 돌파력으로 차별을 없애겠다며 웃던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 하사가 끝내 스스로 목숨을 거뒀다. 변 하사의 부고 소식 며칠 전에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정치를 한다던 논바이너리(남성/여성으로 구분되지 않는 젠더) 트랜스젠더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들의 죽음으로 사망통계에서 자살원인 비율은 늘어나고 인구통계는 두 명이 줄어들겠지. 청년 인구통계에서도 두 명, 변 하사는 지난해 성별 정정을 마쳤으니 여성인구 통계에서도 한 명. 김기홍은 어느 통계에서 사라졌을까. 스스로의 정체성 맨 앞에 내걸었던 논바이너리 통계는 존재하지도 않는데.
휴가 중 해외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돌아온 육군 부사관 변희수 하사가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군인권센터에서 군의 전역 결정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고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육군은 휴가 중 해외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돌아온 부사관 A하사에 대해 '계속 복무할 수 없는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이날 전역을 결정했다. 2020.1.22 ⓒ뉴스1
어쩌면 이 둘은 생전에 항상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갔었는지도 모르겠다.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내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경험이 있는 만 13~18세 성소수자 청소년 2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성소수자 청소년 5명 중 1명은 자살시도 경험이 있다는 결과가 보고됐다. 이 조사 후에 상황은 나아졌을까. 자료들을 찾아보았지만, 관련 데이터를 찾을 수 없었다.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누군가 했다는 이 말은 그래서 더욱 시리다. “그런데 슬프게도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아픔은 통계로도 안 잡히잖아요.”
우리는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청소년 자살시도율 통계를 보며, 저 숫자 어딘가에 성소수자 청소년의 고통이 녹아있겠거니 유추할 뿐이다. 현대 사회에서 데이터는 사회 시스템 조직과 구성의 근거가 되고, 정책을 위한 자료가 된다.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세상을 더 평등하고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모든 일에 데이터는 쓰인다. 그러나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존재는 이처럼 통계로도 기록되지 않아 그들을 위한 정책들도 당연히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통계로도 잡히지 않는 투명인간이 어디 성소수자 뿐인가. 우리 사회는 ‘표준’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많은 존재를 데이터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여성운동가인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는 그녀의 책 <보이지 않는 여자들:편향된 데이터는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지우는가>를 통해 표준인간을 남성으로 설정해 놓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여성의 존재가 지워지는지를 고발한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여성 데이터가 없다며 젠더데이터 공백 문제를 꼬집었다. “의학부터 직장, 도시계획, 경제, 정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간 수집되었고 지금도 수집 중인 방대한 데이터는 대부분 남성의 것이고, 그 결과 지구상의 거의 모든 제도와 시스템, 환경이, 남성 디폴트(기본값)로 설계됐다."는 것이다.
젠더 데이터 공백은 우리가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 때문에 악화된다. 2017년에 쓰인 한 논문은 “성희롱이 얼마나 만연한가에 관한 대용량 데이터가 없다”라고 말한다. 저조한 신고율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범죄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여자들> 中 -
김기홍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녹색당
우리에게는 어떤 데이터가 충분하고, 어떤 데이터가 부족할까.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데이터는 또 무엇인가. 우리는 데이터에서도 ‘표준’ 밖의 성소수자, 이주민, 난민, 청소년, 노인, 장애인, 여성을 지워버린 것은 아닐까. 모든 사람은 데이터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데이터에 대한 권리는 누구나 데이터를 활용하는 데 차별받지 않을 권리, 데이터의 활용 과정에서 인권을 보호받을 권리뿐만 아니라 데이터가 될 권리를 포함한다. 누구나 국가의 데이터에 포함되어 정책의 대상으로 인정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세상은 평등하지 않다. 데이터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들은 존재를 드러내고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때로는 목숨을 걸 정도로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번번이 세상에 인정되지 못하고, 통계로도 존재하지 못한다. 세상이 평등하지 못한 건 혹시 데이터 때문은 아닐까. 데이터로도 남지 못한 사람이, 통계에서도 지워져 버린 사람들을 위한 정책과 시스템을 만들 만큼 우리 사회는 친절하지도, 성실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데이터는 의사 결정을 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데이터가 없으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있는지, 몇 살에 사망하는지, 얼마나 많은 남자, 여자 그리고 아동이 여전히 빈곤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얼마나 많은 아동에게 교육이 필요한지, 얼마나 많은 의사가 훈련받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학교가 지어지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세금이 사용되고 있으며 그 효과는 어떠한지, 온실가스가 늘어나고 있지는 않는지, 해양의 어류 자원은 멸종 위기일 정도로 줄어들지는 않는지, 어떤 업종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종사하는지, 어떤 회사가 무역을 하고 있으며 경제활동 상태가 어떠한지 알 수 없다. - UN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데이터 혁명:셀 수 있는 세계>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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