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교육 후기] 민변 사무처 주관, 을 듣고 / 김종귀 회원

지역

[교육 후기] 민변 사무처 주관, 을 듣고 / 김종귀 회원

admin | 화, 2019/12/31- 00:16

민변 사무처 주관,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 및 장애인식 개선 교육>을 듣고

민변 미군문제위원회 김종귀

2019년 12월 16일 월요일에 민변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 및 장애인식 개선 교육>을 들었습니다. 2019. 7. 16. 부터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되면서 ‘직장 내 괴롭힘’이 법적으로 금지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민변 사무처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과 대응을 위한 교육을 직장 내 장애인식 개선교육과 병행하여 개최하였습니다. 이번 교육은 우리 모임의 사무처가 주관하여 사무처 구성원을 대상으로 개최된 교육으로서, 각 위원회의 위원장 또는 부위원장도 참석해줄 것을 요청 받게 되어 미군문제연구위원회의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저도 함께 교육을 들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 시간에는 정소연 노동위원회 부위원장님이 강연을 해주셨는데, <직장갑질119>에서의 풍부한 상담 경험을 토대로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주셨습니다. 노동위원회 회원이면서도 노동위원회 행사에 거의 참석하지 않아서 정소연 변호사님을 처음 뵙게 되었는데(부위원장님인지도 몰랐음;;) 완벽한 강연에 반했습니다.

민변 회원들도 권리이자 의무로서 근로기준법상 관련 규정을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아 강연을 듣고 나서 법조항을 찾아봤습니다. 비교적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어서 2번만 읽어두시면 분명히 도움이 되실 겁니다.

76조의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하 “직장 내 괴롭힘”이라 한다)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76조의3(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치)

①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그 사실을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다.

② 사용자는 제1항에 따른 신고를 접수하거나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그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실시하여야 한다.

③ 사용자는 제2항에 따른 조사 기간 동안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근로자(이하 “피해근로자등”이라 한다)를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해당 피해근로자등에 대하여 근무장소의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이 경우 사용자는 피해근로자등의 의사에 반하는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④ 사용자는 제2항에 따른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이 확인된 때에는 피해근로자가 요청하면 근무장소의 변경, 배치전환,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⑤ 사용자는 제2항에 따른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이 확인된 때에는 지체 없이 행위자에 대하여 징계, 근무장소의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이 경우 사용자는 징계 등의 조치를 하기 전에 그 조치에 대하여 피해근로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⑥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 및 피해근로자등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93(취업규칙의 작성신고)

상시 10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용자는 다음 각 호의 사항에 관한 취업규칙을 작성하여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이를 변경하는 경우에도 또한 같다.

11.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 등에 관한 사항

109(벌칙)

① 제36조, 제43조, 제44조, 제44조의2, 제46조, 제56조, 제65조, 제72조 또는 76조의3 6을 위반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정소연 변호사님은 민변 조직이 가지는 특수성에 맞춰서 잘 준비해주셨습니다.

사무처 상근자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로 개별 민변 회원들이 ‘개념 없이’ 일삼는 언행을 꼽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무처 상근자를 법률사무소 직원을 대하듯 하대하는 태도가 지적되었습니다(물론 법률사무소 직원을 하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무처 상근자와 민변 회원의 관계는 결코 상하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급한 일도 아닌데 업무시간 외에 지나치게 늦거나 이른 시각에 연락을 한다던가 대내외적인 자리에서 반말을 하는 행위도 언급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민변 회원이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과 매뉴얼을 만들어서 배포하고 위원회별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민변을 건강한 일터로 만들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강연을 들으면서 저 또한 과거와 현재의 상근자들에게 무심코 상처를 주는 언행을 하지 않았을까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제가 상처를 드린 적이 있다면 이 글을 빌려 사과드립니다.


 

이어진 직장 내 장애인식 개선교육의 강사는 두분이었습니다. 한 분은 갈홍식 나야 장애인권교육센터 교육활동가였고, 다른 한 분은 전원용 나야 장애인권교육센터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교육 강사였습니다. 전원용 강사는 장애당사자이기도 하였는데요, 장애당사자분을 통해 강연을 듣기는 처음이어서 알아듣기에 다소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 의미는 훨씬 생생하게 전달되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이나 시설에서 나오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이동수단이 부족하고 이동에 제약이 많은데다가 장애인에 대한 멸시와 차별의 시선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반면에 북유럽에서는 장애인을 거리에서 훨씬 쉽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신체적 장애를 보충해주는 사회적 인프라가 갖춰져 있기 때문이죠(그래서 ‘장애’라는 것도 역사적·사회적 개념입니다). 장애인을 위한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공동체가 함께 부담해야 할 당연한 의무라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도 장애인을 배제하거나 불편하고 불쌍한 존재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는 인격체라는 전제에서 장애를 보충하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에 자원을 우선적으로 투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육을 받기 이전까지는 장애인의 이동권, 취업할 권리, 교육권, 참정권 등에 대해서 시간을 가지고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인권적 측면에서 가장 열악한 처지에 있는 장애인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했던 자신에 대해서 반성했습니다. 내가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 시작으로 최근에 출간된 ‘장애학의 도전’을 주문했습니다.

The post [교육 후기] 민변 사무처 주관,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 및 장애인식 개선 교육>을 듣고 / 김종귀 회원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민변 대구지부

영풍 석포제련소 폐쇄를 위한 법률대응단 활동

 

2018. 11. 11. 아침, 제3차 낙동강 현장기행 시민조사단과 함께 영풍 석포제련소로 출발했다. 경북 봉화군 석포면의 석포제련소. 영풍그룹 계열인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와 함께 국내 아연 생산의 쌍벽을 이루는 곳이다. 철제품 부식방지 도금용으로 주로 쓰이는 아연은 한국에서 자급 가능한 몇 안 되는 비철금속이라고 한다.
석포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다가설수록 미세먼지를 머금은 안개가 짙어졌고 인적은 드물었다. 석포 초입의 휴게소에서 내려다 본 낙동강은 차고 맑아보였으나 아래쪽에는 무시무시한 게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길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석포사람들이 불편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았다. 그들은, 아직 큰일 없었으니 앞으로도 쭉, 아니 자식들을 먹일 동안이라도 모른 체 해달라고 하는 듯 했다. 허나 그곳엔 진짜 무시무시한 게 살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것은 희뿌연 무언가를 쉼 없이 뱉어내고 있었다. 희뿌연 무언가를 온전히 받아낸 산은 시뻘건 맨살을 내놓고 있었다. 맨살을 드러낸 산을 감싼 낙동강은 휴게소에서 본 그 낙동강이 아니었다. 48년이나 아팠던 낙동강은 더운 숨을 내쉬면서 왜 이제야 왔냐고 우리를 나무라는 듯했다.

「김무락 변호사(대구지부 사무차장)의 석포제련소 환경오염 실태 조사 후기」

2018. 11. 11. 제3차 낙동강 기행 중 영풍 석포제련소 환경오염 실태 조사 모습

영풍 석포제련소는 1,300만 영남인의 상수원인 낙동강의 상류에 자리하고 있어 석포제련소가 야기하는 식수원 오염에 대한 불안감이 낙동강을 따라 영남지역 전체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에 민변 대구지부에서는 법률대응단을 구성하였습니다. (김무락, 박경찬, 백수범, 성상희, 이유정, 정재형, 최지연 변호사)

1970년 영풍이 봉화군 석포면에 제련소를 준공, 가동하여 온 이래 50년 가까이 누적되어 온 환경오염의 문제는 석포면이 위치한 지역의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전국적으로 알려지지 못하고, 석포면 인근 주민과 소수의 사람들만이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문제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 6월에 와서야 시민들이 석포제련소부지 내 토양이 중금속에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고 국민권익위에 신고를 하였고, 2015. 3. 토양정밀조사결과 석포제련소 부지 내 6만여 ㎡의 토양이 토양오염우려기준의 최대 414배 초과하는 중금속이 검출되면서 비로소 많은 사람들이 심각성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봉화군이 1,2공장 부지의 오염토양을 정화할 것을 명령하였으나 주식회사 영풍(이하 ㈜ 영풍)은 토양정화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가 봉화군에 토양정화기간을 2년 연장해 줄 것을 신청하였고, 봉화군이 거부하자 2017. 5. ㈜영풍은 봉화군수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행정소송에서 1, 2심은 ㈜영풍이 승소하였고, 현재 대법원에 상고심이 진행중입니다.

2018년 2월 시민들이 ㈜영풍의 폐수 70만톤 무단방류 사실을 신고하였고, 관계기관의 합동점검 결과 7가지 불법행위가 적발되어 2018. 4. 5. 경상북도가 조업정지 20일 행정처분을 내렸습니다. ㈜영풍은 이에 불복하여 경상북도지사를 상대로 조업정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심판을 제기하였다가 기각되었는데도 다시 대구지방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현재 1심이 계속중이고, 2019. 4. 3. 법률대응단에서는 봉화주민 4명, 안동주민 2명으로 피고 보조참가인을 모집하여 보조참가신청서를 대구지방법원에 제출하였습니다. 피고 보조참가인 소송대리인에 대구지부 회원 19명이 연명에 동참하였습니다.

 

▷ 민변 대구지부 주최 토론회

2018. 11. 14. 민변 대구지부와 영풍 석포제련소 공동대책위원회는 ‘낙동강 최상류 영풍 석포제련소로 인한 식수원 오염 실태와 법률대응 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였습니다. 토론회의 발제자로 나선 백수범 변호사는 영풍 석포제련소 환경오염 행위에 대한 법률대응 방안을 차분히 설명하였고, 토론자로 참여한 최지연 변호사는 백수범 변호사의 법률대응 방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지정토론을 마무리하였습니다. 토론회에는 정재형 변호사(토론사회), 김무락 변호사(전체 사회), 오랜 기간 영풍 석포제련소 문제를 다뤄 온 맹지연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장,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 이상식 영풍제련소 공대위 공동대표, 신기선 영풍제련소 공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이 참여하였습니다.

 

▷ 2018. 11. 30. KBS 추적60분

“낙동강 미스터리, 48년 영풍공화국의 진실”방영

2018. 12. 18.~19. 1박 2일간 봉화 승부리를 방문한 백수범, 김무락 변호사

 

 

2019. 3. 14. 영풍공대위와 법률대응단 합동회의 및 대구민변과의 간담회

 

▷ 법률대응 진행상황

토지정화명령 건은 법률검토를 거쳐 봉화군과 대법원에 법률의견서를 제출하기로 하며 현 상황에서 적절하고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 추가 대응방법을 검토하기로 하였습니다. 3공장 불법건축물의 합법화 과정, 2, 3공장 폐수 무단방류와 관련하여서도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형사고발과 감사청구 등의 법률대응을 하기 위해 검토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손해배상소송 관련하여서는 우선 소수의 원고라도 모집하여 시범소송으로서 영풍 석포제련소 오염물질 배출로 인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법률대응기금 마련을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 1차 모금 마무리하였습니다. 개인과 단체 합하여 101명이 참여했고 모금액은 2천여만원입니다. 모집된 성금은 원고들이 소송비용에 대한 부담없이 소송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변호사보수를 포함한 각종 법률비용으로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의 노력이 쌓여 다행히도 최근 여러 방면의 환경이 진전되어 가고 있으니 이 불씨를 잘 살려가면 머지 않아 문제해결의 적기가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민변 대구지부는 그동안 애써오신 영풍제련소 공대위와 봉화대책위 및 활동가 분들과 협력하여 영풍 석포제련소 문제에 함께 대응해 나아기로 하였습니다. 대구지부의 활동에 전국 회원님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리며 대구지부 근황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The post [대구지부] 영풍 석포제련소 폐쇄를 위한 법률대응단 활동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금, 2019/04/05- 16:10
20
0

민변에는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동료들이 있다

– 강은옥 변호사 인터뷰 –

 

변호사님 민변에는 최근에 가입을 하셨죠?

아니요, 2007년에 가입했습니다. (웃음)

[, 초장부터 이런 실수를보통 기본적인 사항을 다 숙지하고 가는데, 변호사님과의 친분 때문에 중요한 체크를 빠뜨렸습니다.]

 

변호사님을 처음 뵌 것이 2018년 봄이어서 막연히 그때라고 생각했어요.

그 즈음이 제가 교육부 TF 일을 끝내고 잠시 여행을 다녀왔다가 슬슬 민변에 다시 나오기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전주에서 서울로 다시 이사를 온 것이 17년 9월이었어요.

제가 민변에 들어온지 얼마 안 됐다고 느끼시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공무원일 때는 점심 모임이나 위원회 회의 같은 민변 모임에 나가기가 어려웠고요, 그래서 시간이 맞는 총회나 연말 송년회 정도에만 참석을 할 수 있었어요. 지방에 내려가 있을 때는 더욱 참석이 힘들었지요.

작년부터 개업을 하면서 사무실도 민변에 가까워지고 하니까, 시간이 되면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자주 참석하려고 해요. 노는 모임에 특히요.

 

민변에 가입할 때 이야기를 부탁드려요.

연수원 수료를 2007년에 했어요. 수료하고 취업된 후 바로 가입했던 것 같아요. 2007년 5월쯤이었나…

민변 변호사님들하고 연을 맺은 건 91년도였어요. 유현석, 김창국, 박연철, 이석태 변호사님께서 도움을 주신 일이 있어서 민변을 알게 되었죠. 당시 변호사님들께서 정말 헌신적으로 일하셨고 굉장히 훌륭하신 분들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저도 법대에 다니면서 사법시험을 응시할 생각을 하고 있던 때였을 때라, 나도 변호사가 되면, 민변에 들어가야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가입할 때 추천인이 누구였더라?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정연순 변호사님이셨을 것도 같고… 그때 정연순 변호사님이 국가인권위에 계셨을 때니까, 김진 변호사가 했나? 잘 모르겠네요

위원회는 여성위, 교육위, 노동위 순서로 가입했어요. 여성인권위원회는 여성변호사로서 민변에 들어오면 당연히 가입해야겠다는 생각에 가입했었고, 교육청소년위원회는 제가 교육청에서 일한 경력이 있으니까 이용우 변호사가 같이 일하자고 해서 들어갔죠. 노동위원회는 올해 2월에 김진 변호사 송별회하는 술자리에서 김진 변호사가 ‘노동위에 들어오라’고 가입 권유를 했고, ‘알았다’하고 들어가게 되었습니다(작년에 오사카 노변단 교류회 참석도 했고, 노동위 들어가서 노동 관련 일을 배우고 싶기도 했어요)

변호사님께서는 연수원 마치고 송무를 바로 하실 생각은 없으셨던 건가요?

연수원 나왔을 때 제 나이가 서른일곱이었어요. 당연히 여기저기 지원을 했죠. 용납할 수 없는 사무실을 제외하고요. 어디서든 송무를 해 볼 생각이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그 나이대의 여성변호사를 고용하려는 사무실이 거의 없었어요. 흔하지 않았지요. 연수원 수료하고 두어 달 동안은 취직이 안 돼서 고민을 했어요. 그렇다고 아무 회사, 기관이나 가고 싶은 생각은 또 없었고,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났습니다. 그때 마침 인권위에 결원이 생겨서 지원을 한거죠.

제가 인권위에서 나온 게 11년 6월이니까, 4년 2개월 정도 일했네요. 퇴직하고서는 1년 가까이 쉬었고, 12년 5월부터 16년 7월까지 전라북도교육청에서 일을 했어요. 그리고 17년도 10월부터 18년 2월까지 교육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TF에서 일했습니다.

 

변호사가 인권위에서 하는 업무에는 어떤 것들인가요?

기관마다 다르겠지만, 송무를 하기도 해요. 지금은 많이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들어갈 때를 생각해보면 인권위에서 변호사를 꼭 배치하는 몇몇 부서가 있었어요. 결정문 작성할 때 검토를 하기 위해 상임위원실에 한 명, 조사국에도 변호사를 배치했고요. 법무감사실에도 변호사를 배치했는데, 송무, 질의회신, 법규제개정 등의 업무를 담당했고요. 인권상담센터에도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당시 인권위 시스템이 그랬어요. 저같은 경우는 정책 업무도 했고, 조사과에도 있었고 상임위원실, 법무에도 있었어요. 교육 쪽 말고 인권위에서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업무는 제법 많이 경험했습니다.

 

인권위원회 업무라고 하면 막연하게 보람도 있고 재밌도 있겠다고 생각이 드는데, 퇴직하겠다는 결정은 어떻게 하시게 되셨나요?

제가 들어갈 때의 인권위와 나올 때의 인권위는 완전히 다른 곳이라고 보아도 될 정도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2008년 쯤 이명박 정권 때 제일 먼저 시도했던 것이 ‘인권위 없애기’였어요. 그게 여의치 않으니까, 정부에서 인권위의 소속을 변경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원래 인권위는 정부 부처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걸 대통령 산하로 두느냐 마느냐 하는 작업이 진행되다가 그것도 잘되지 않았어요. 그러면 인권위의 힘을 빼는 나머지 방법은 결국 기구 축소, 구체적으로는 정원 축소가 있지요.

제일 먼저 별정직과 계약직부터 정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계약직 공무원은 통상 최초 2년 계약 기간이 지나면 3년을 재계약하고, 그 기간이 끝나면 공고를 내어 다시 5년을 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요. 본인이 원하면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거지요. 인권위 내에서 처음 5년의 계약기간이 끝나고 다시 기회를 주지 않은 경우는 제가 알기로 없었어요. 실제로 대부분 그 사람들이 일을 다들 정말 잘했으니까요. 2010년 말이었어요. 5년 계약이 끝나는 사람들이 생겼는데, 인권위에서 그분들과 재계약을 안 하기 시작했어요. 내부에서 직원들이 당연히 문제를 제기했지요. 그러다가 당시 노조 부지부장이었던 분이 2년 계약이 끝나고, 3년 추가 계약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그 분에 대해서 추가 계약을 하지 않고 내쫓아버렸어요. 참고 있던 직원들이 그때는 ‘더 이상 이건 아니다’라는 공감대가 형성이 되었고, 1인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저도 같이 했어요.

그러자 1인 시위한 사람들을 감사하더라고요. 저는 감사를 거부했습니다. 감사를 받을 수가 없다고 했던 것이, 감사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재계약 대상자들의 인사문제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던 사람들이었고, 또 구체적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저는 그 사람들이 감사를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당시 제가 조사국에 있었는데, 국장님이 다른 사람에게라도 감사를 받으라고 했는데, 저는 잘못한 게 없다고, 받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러자 그 이후 직장내에서 저를 따돌리기 시작했어요. 그전까지 같이 일하면서 친해진 사람들도 유학, 육아휴직 등을 이유로 회사를 나와 뿔뿔이 흩어져 있고, 남아있는 동료들도 각자가 다들 힘든 상황이라 서로 연대하기도 쉽지 않게 되었어요.

입사해서 만난 제 남편은 이미 회사를 떠나 지방으로 내려간 상태이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그 때 저희 엄마가 돌아가신지 1년도 안 되는 상황이었고, 간병 등으로 몸도 많이 안 좋아진 상태였어요. 내가 여기 더 있으면 정말 죽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나왔습니다.

 

그럼 퇴직 후에 1년 정도 쉬셨다고 말씀하신 때가, 요양 목적도 있었던 거군요.

그렇죠. 남편이 전북교육청에 자리가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원해서 먼저 내려갔어요. 전북교육청에 교육감이 새로 취임하고 감사팀을 새로 만드는데 조사경력 있는 사람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원을 한거죠. 감사과가 1, 2, 3팀, 그리고 법무팀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4팀을 새로 만들면서 외부인력으로 채우기로 했어요. 남편이 먼저 들어갔고, 저는 좀 쉬다가 2012넌 5월에 학교폭력 담당으로 변호사를 뽑는다고 해서 지원했습니다. 당시 대구에서 학교폭력으로 인해서 학생이 자살하는 일이 있어서, 대대적으로 학폭법이 개정되고, 교육부에서 교육청별로 특별교부금을 지원해서 학교폭력과 교권을 담당하는 변호사를 채용하도록 했습니다. 신분은 공무원은 아니고, 근기법 적용되는 기간제 근로자였어요. 그렇게 2년 3개월을 일했고, 그 이후 2년은 임기제 공무원인 인권옹호관(학생인권교육센터장)으로 근무를 했습니다.

 

전주에서 생활은 가족과도 함께 있고, 더 좋으셨겠습니다.

일상적인 생활은 굉장히 좋았어요. 전주가 생활 여건이 좋은 도시예요. 편안하고.

근데 일을 하면서 불편함을 느낀 부분이 있었어요. 지역적인 차이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겠지만, 제가 경험한 범위 내에서 성에 관한 의식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당황해서 그냥 넘어가기도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지금 상황과 제 의식 사이에 괴리감도 커지고, 어느 정도 지나니 제 의식이나 생각이 고인 물이 되어 썩어간다는 느낌마저 들더라고요. 잘못되었다고 판단한 부분들에 대해 지적하면, 오히려 그런 점을 지적하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미처 인터뷰에 담지는 못했지만, 정말? 아직도? 라고 생각되는 상황이 많았습니다.]

또 토박이가 아닌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텃세(?)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그나마 내가 변호사여서 이 정도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16년 7월 교육청에서 재계약이 안되고, 17년 가을 서울에 올라와서 개업을 하려고 했는데, 그때 또 마침 교육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TF에 지원해보라는 권유를 받았고, 이것도 지금 아니면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원을 한거죠.

 

지금은 송무를 하시는 거죠.

그쵸. 그렇지만 그렇게 많이 하고 있진 않아요. 개업 초반에는 아무래도 일이 많이 없잖아요. 개업하고서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이 성북구 인권위원 활동이었어요. 경력이 있어서인지, 여기저기서 소개를 많이 해주셔서인지 위원회 위원 제의가 계속 들어오더라고요. 제가 배워보고 싶어서 먼저 지원한 곳들도 있고요. 그렇게 일을 늘려가다 보니 지금은 참석해야 하는 위원회가 너무 많아져서 정리하는 중입니다. 얼마 전에는 행정심판위원회 위원을 하게 되었는데, 어휴, 그거 되게 힘들더라고요. 사전에 안건을 다 검토해서 의견서도 내야 하고요, 회의도 네 시간 걸렸는데 다른 위원님들이 그거면 빨리 끝난 편이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작년에 친한 언니가 하는 말이, ‘너 초반에 일 없다고 이것저것 다 받으면 나중에 가랑이 찢어진다’고 했는데…(웃음) 진짜 그래요. 그래서 지금은 정리하려고 하고 있어요. 다음 주 월요일엔 회의가 4개가 있네요.

일 하면서 많이 배우는 경우도 있어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방심위 실무자분들께서 일을 워낙 잘 처리해주셔서 가서 회의에 가서도 부담이 많이 없기도 하고요.

 

재판 수임을 일부러 좀 가리시는 면도 있으신 것 같아요.

그런 면도 없지 않습니다. 사실은 돈을 벌어야 할 시기라 가릴 처지는 아닌데… 막상 이 일을 맡아야 되나 하고 생각을 해보면, 힘들겠다 싶은 느낌이 올 때가 있어요. 제가 스트레스를 잘 받는 편이라, 합이 안 맞는다 싶으면 수임을 거절하기도 해요. 많지는 않은데, 그런 적이 약간 있었죠. 아직 배가 덜 고픈 건가 잘 모르겠네요. (웃음)

제가 비교적 육체적 스트레스는 잘 참는 편인 것 같은데, 정신적 스트레스에는 너무 취약해요. 정신적으로 공격을 받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을 하느니, 아예 시작을 안 하는거죠. 여가 시간을 보낼 때에는 머리를 안 쓰는 일을 선호해요. 예를 들어 제가 야구를 엄청 좋아하는데요, 이건 일하는 것처럼 머리를 쓰지 않아서 좋아하는 면이 꽤 커요. 남편이 제가 야구를 좋아하니까 에이전시 같은 업무를 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기도 했어요. 요즈음 변호사님들중 하는 분들이 꽤 있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에이전시 일을 하게 되면, 야구는 더 이상 오락이 아니라 일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 안 하겠다고 했지요.

 

변호사님을 민변 모임에서는 자주 뵐 수 있는 건, 변호사님께 민변은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인가요?

네, 그렇죠. 제가 역량이 좀 되면 가고 싶은 모든 모임을 다 나가서 활동하고 싶은데, 아직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있어요. 그것하고 별도로 민변 모임이 요즈음은 아주 조금 부담이 되는 면이 있어요. 예전에는 모임에 나가서 같이 어울리고 노는 데에 큰 문제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저도 나이가 들다보니 민변 모임에서 어떤 사업에 대해서 함께 협업을 하게 되면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는데, 역량도 부족하고 아직 그럴 상황이 못 되는 것 같아서 조금 고민스러워요.

민변이 맘 편하고 좋은 이유는 계산하지 않는 동료가 있다는 점이에요. 지난 신입회원 설명회 때도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그게 참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서로가 되게 많이 다르지만, 큰 그림에서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또 내가 이런 말을 했을 때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물론 그런 생각을 전혀 안 하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런 불필요한 사심 없이 이야기가 통할 수 있는 동료들이란 점이 참 좋지요. 그런 편안함에 끌려서 민변에 가는 것 같아요.

 

2018.10. 민변 회원월례회에서.

 

계속 공직에 계셨으니, 변호사님 해 오셨던 일 중에 지금 하고 계신 일이 가장 (경력상으로는) 짧은 일이겠어요.

그렇죠. 월말과 월초에 쌓여가는 정산금과 마이너스액을 보면서 역시 고정된 월급이 좋다면서 후회를 하다가도, 국정감사 시즌이 딱 되는 순간, 친구들이 SNS에 국감, 행감 이야기를 올리는 걸 보는 순간 아, 그쪽엔 이게 있었지, 하면서 위안하죠. (웃음)

 

오랫동안 조직(?)에서 일하다가, 이제 혼자 일을 하시는 게 낯설지는 않으신가요?

조직에서 일할 때는 결재를 받으면서 다른 사람이 같이 업무를 보잖아요. 이게 단점이면서 장점이지요. 물론 상급자가 이상한 지시를 하면 굉장히 피곤해지지만 그래도 결재 라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변호사는 순간순간 혼자 결정해야 하고, 내가 내린 판단과 결정이 과연 맞는 것인지,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를 계속 고민해야 하는 고충이 있지요. 이 일이 제가 전에 했던 것과 연속성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아니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되니까 사전 지식이 충분하다고 할 수도 없고요.

내 문제라면 내 결정에 나만 책임지면 되는데, 재판은 남의 인생이 걸려 있으니 더 부담스럽지요. 특히나 이혼 같은 가사사건의 경우는 굉장히 예민한 문제라서 늘 신경이 쓰입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겠지만 다른 사람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거라 생각해요. 내가 제대로 하고 있나, 하는…

노동쪽이나 가사사건에서 모르는 점이 생기면, 그 분야를 잘 아는 변호사님께 물어봅니다. 솔직히 저는 물어보는 걸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물어보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원래도 남한테 부탁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어서, 알아서 최대한 혼자 이리저리해보다가 마지막에 묻는 스타일이에요. 아무래도 연차로는 적지 않은 연차여서 묻는 일이 자존심 상할 때도 있지요, 솔직히.

 

다시 변호사 초임 때로 돌아간다면, 송무를 선택하시겠어요, 아니면 공직에 가실 것 같으세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요. 기관에 가기로 했으면 그 기관에 계속 있거나, 나중에 퇴직하고 관련 업무를 변호사로서 계속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근데 저는 둘 다 아니었거든요. (웃음) 전에 일했던 기관들에서 사건을 주는 것도 아니고요. 가끔 자문요청이야 들어오지만요. 지금은 서울에서 개업했으니 제가 만약 수도권에 있는 기관에 있었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랐겠지만, 저는 지방에 있었으니까요.

연수원을 나오면서 개업을 같이하자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그때는 되게 겁을 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겁낼 일은 아니었는데, 그때는 몰랐죠. 제일 좋은 건 고용변호사로 배우고 일하면서 차곡차곡 업무역량을 쌓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아마도 저는 고용변호사로 일하는 것을 못 버텼을 확률이 굉장히 높아요. 업무강도가 워낙 세니까요… 다시 돌아가서 그 상황이 된다면, 지금은 다 아니까, 개업을 그렇게 겁내진 않았어도 괜찮았겠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쨌건 아직 변호사의 주 업무는 송무잖아요. 가급적이면 변호사로서의 업무를 많이 하는 게 낫지 않나 싶어요.

 

개업을 그렇게 겁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 개인적으로는 참 좋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또 저희 때랑은 상황이 너무 달라서, 그걸 간과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지난번에 한 신입변호사님에게 개업 이야기를 했더니 자신이 없다고 하더라구요. 뭐, 저도 그랬는데요. 얼마 전에 만났던 한 선배변호사님에게 어떻게 돈을 버시냐고 여쭈었더니, 먹고 살 만큼은 번다고 하시더라구요. 의뢰인이 다른 의뢰인을 소개시켜주기도 하고, 어떻게든 되는 것 같긴 해요.

그래도 요즘의 개업은 예전과 또 상황이 많이 다르니까요. 무어라 말하기 쉽지 않네요.

 

민변 후배님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시간 날 때마다 부담 없는 자리부터 시작해서 꾸준히 참석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업무가 많이 부과될 일은 없으니까요. 물론 여건이 되면 일도 같이 하면 되는 것이고요. 아시는 것처럼 제가 노는 자리는 안 빠지잖아요. (웃음) 그런 식으로 인간관계를 돈독히 해야 나중에 일할 때도 서먹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제가 고용변호사로 일해본 것이 아니라, 요즘 고용변호사님들이 얼마나 바쁠지 가늠은 안가지만요. 그래도 잠깐이라도 짬 내서 서로 얼굴을 익혀놔야지 서먹해지면 어느 순간 참석하고 싶어도 쉽지 않게 되는 때가 와요. 같이 일을 하건, 같이 놀건 중요한 것은 사람과의 연대와 신뢰니까요. 처음에는 부담 갖지 말고 자주자주 나오면 어느 순간 관계도, 신뢰도 넓혀지고 민변이 편하고 좋아지는 때가 올 거예요.

 

무뚝뚝한 표정에서 이따금 터지는 유머에 정신 못차리는 인터뷰어 사진으로 당시 인터뷰 분위기를 전하며, 인터뷰글을 마무리 합니다. ^^

The post [회원 인터뷰] 민변에는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동료들이 있다 – 강은옥 변호사 인터뷰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수, 2019/11/20- 01:34
17
0

안녕하세요 회원 여러분~ 소수자인권위원회입니다. 작년 10월에 뉴스레터를 통해서 활동 소식을 전해드린 이후 5개월 만에 인사드리네요. 작년 하반기와 올 해 소수자위가 주요하게 활동했던 소식들 전달해드릴게요.

(사진1 : 2월 월례회 – HIV/AIDS 감염인의 인권을 말하다 강연을 듣고 있는 소수자위 위원들) 

 

  • <HIV/AIDS 감염인의 인권을 말하다> 강연

소수자인권위원회에서는 기존에 주요하게 활동하고 있던 성소수자, 장애 인권 영역을 넘어, 올해는 새로운 소수자 인권 이슈의 발굴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새로운 소수자 인권 이슈에 대한 연례 기획강좌를 계획하고 있는데요, 2월 월례회 때는 <HIV/AIDS 감염인의 인권을 말하다> 강좌를 진행했습니다.

이날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의 박상훈 활동가님이 ‘소수자인권의 시각에서 보는 HIV/AIDS 짚어보기’를 주제로,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의 타리(나영정) 활동가님이 ‘HIV/AIDS를 둘러싼 법·정책 이슈’를 주제로 강연해주셨습니다.

HIV, AIDS 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HIV는 바이러스의 이름이고 AIDS 는 질병의 이름! 이라는 것, 감염의 경로, 치료와 예방 등)를 나누고, UN AIDS 의 예방정책에 대해서도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이 감염인에게 어떻게 과도한 인권침해가 되는지(전파매개행위의 금지 조항이 ‘추상적 위험’에 대한 형벌규정의 타당성, 과도한 감염인에 대한 취업제한 조치들의 사례 등), HIV/AIDS를 둘러싼 혐오와 차별의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어떤 맥락에 의해 유통되고 조장되고 있는지 알아보고, 재소자/이주민/병역/취업 정책에서 어떻게 감염인을 배제하도록 설계되었는지 공부하는 등 자세한 논의까지 진행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4회의실의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가장 많은 회원이 참여한 월례회였습니다!)

 

 

 

 

 

 

 

 

 

 

(사진2 : 2월 월례회 – HIV/AIDS 감염인의 인권을 말하다 강연자 타리(나영정) 활동가) 

 

 

 

 

 

 

 

 

 

 

(사진3 : 2월 월례회 – HIV/AIDS 감염인의 인권을 말하다 강연을 듣다가 눈 마주친 김동현 위원장) 

 

 

 

 

 

 

 

 

 

 

(사진4 : 2월 월례회 – HIV/AIDS 감염인의 인권을 말하다 강연자 박상훈 활동가) 

 

  • 소수자인권판례평석(가칭) 발간 작업

소수자인권위원회는 아동인권위원회와 공동으로 판례평석집 발간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민변에는 노동위가 편찬하는 ‘노동판례비평‘, 여성위가 편찬하는 ‘사법정의와 여성’ 등 각급 법원의 판결과 결정을 분석하는 평석집이 발간되고 있는데요, 소수자위와 아동위도 소수자 인권의 시각에서 판례평석집을 제작해보자! 하여 의기투합하여 집필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아동, SOGI(성적지향·성적정체성), 장애, 수형자, 고령자 등 영역을 선정하고, 영역별 주목하고 비평해야하는 각급 법원의 판결, 인권위 결정을 선정하여 열심히 집필 중 입니다! 6월 발간을 목표로 제작하고 있으니, 회원 여러분들께서 많이 읽어주시길 바랄게요!

 

  •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부스 참가 신청 및 기획운영팀 모집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는 5월 31일 서울 핑크닷(전야제), 6월 1일 퀴어퍼레이드 본 행사로 날짜와 장소가 확정되었습니다! 민변에서는 지난 2년 동안 소수자인권위원회, 공익인권변론센터 명의로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부스를 운영해왔고, 작년에는 민변 무지개 깃발을 제작하여 자긍심 행진에도 참여하는 등 성소수자 인권 증진의 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습니다.

그간 소수자인권위원회와 공익인권변론센터 명의로 부스 참여를 하였지만, 두 단위에 소속되지 않은 많은 회원분들도 부스 프로그램 운영에 참여해왔기에, 올해는 민변 명의로 서울퀴어문화축제 부스 운영을 신청하였습니다! 그래서 부스 기획 운영팀을 모집하고 있으니 당일 뜨겁지만 시원한(?) 태양 아래에서 부스 운영을 하며 즐거운 시간 보내실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래요!

부스 기획운영팀 참여 신청 링크 : https://forms.gle/QfXUTTi5ebEuvoLQA

 

 

 

 

 

 

 

 

 

 

(사진5 : 작년 7월 서울퀴어문화축제 때 개시한 민변 프라이드 플래그) 

 

  • 인천퀴어퍼레이드 법률지원단 (인천지부, 소수자위)

작년 인천퀴어문화축제 때 혐오세력의 조직적 방해와 폭력 행동이 있었습니다.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한 이후 인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에서 민변 인천지부와 소수자인권위원회에 법률지원 요청을 해오셨습니다. 하여 법률지원단을 구성하여 혐오세력의 증오범죄를 방치한 인천지방경찰청과 인천동구청을 상대로 고소 고발을 진행하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개별 피해자들의 고소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난 1월 24일에는 <한국사회 증오범죄 진단과 대안 : 2018 인천퀴어문화축제 현장을 중심으로> 토론회를 이정미의원실, 인천퀴어문화축제 비상대책위원회,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공동으로 주최하여 인천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 이루어진 증오범죄 실태를 중심으로, 나날이 혐오와 차별이 심각해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증오 범죄의 현황, 문제점 및 제도적 대안 마련과 국가의 역할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인천퀴어문화축제 토론회 자료집 : https://lib.minbyun.or.kr/document/2331)

 

 

 

 

 

 

 

 

 

 

(사진6 : 인천퀴어문화축제 국회 토론회에 모인 사람들) 

 

  • 수용자 인권 증진모임

천주교인권위,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소수자인권위원회가 모여 현재 수용자 인권 증진모임을 구성하여 해당 이슈와 논의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수용자 인권 이슈는 과거 민변에서 활동하던 단위와 회원들이 있었으나, 현재 다뤄지지 않고 있던 이슈였는데요, 수용자의 과밀수용, 재사회화 권리, 최저임금 미달 노역 사례 등을 재조명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되어 회원들과 활동가들이 모여 공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각 단체에서 수신 받는 구금 서신 중에서 공동대응 사례를 발굴하고, 자유권 규약 심의 중 수용자 부분과 관련한 집필을 진행할 예정이니, 해당 이슈에 관심 있는 회원들은 언제든 연락 부탁드려요!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

민변 명의로 참여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작년 10월의 평등의 행진 이후 차별금지법의 필요성 및 발의를 목표로 많은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참여 단체들을 방문하여 2019년 한 해의 주요 활동 계획을 공유하고, 각 단체의 사업계획과 차제연의 활동의 결합력을 논의하기 위한 ‘똑똑똑, 우리지금만나!’ 간담회도 진행 중입니다. 아 그리고 민변의 김호철 회장님이 올 해부터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공동대표를 맡게 되었습니다! 아직 국회에서 발의조차 되지 못한, 어쩌면 ‘금기어’처럼 되어버린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위해 민변 회원 여러분께서도 향후 있을 다양한 활동들에 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 장신대 무지개사건 대리인단

작년 장신대에서 아이다호(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데이를 기념하여 ‘무지개 퍼포먼스‘를 한 학생들에 대하여 부당징계 처분을 한 일이 있었고, 위 학생들을 지원하는 대리인단이 구성되어 징계에 대한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하는 등 활동 중에 있습니다.

[보도자료] 장신대 ‘무지개 사건’ 징계에 대한 무효확인소송 제기: http://minbyun.or.kr/?p=41297

이와 비슷한 사례들이 장신대 뿐만이 아니라 종교를 기반으로 둔 많은 대학에서 일어나고 있는데요, 대리인단에서는 종교 학교와 차별의 문제에 대해 전반적인 자료를 보고 스터디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공부 모임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소수자위는 매달 3번째 수요일에 월례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약물 인권 이슈를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있으며, 판례 모니터링 (인권위 결정례, 장애, 수형자, 북한이탈주민, SOGI, 감염인, 고령자 등)을 매달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4월 5일(금)-6일(토)에는 월례회 겸 워크숍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장소는 무려 이태원!!!인데요, 이날 아주 재밌는 워크숍이 준비되어 있으니 쭈뼛쭈뼛하시지 마시고 많이들 워크숍에 참여해주세요!

언제든 소수자위는 열려있으니 회원들께서 문을 자주 두드려주세요! 그럼 다음 소식 때 만나요! 안녕~

 

(참여 문의 : 장길완 간사 010-7750-9413, [email protected])

 

 

 

 

 

 

 

 

 

 

 

(사진7 : 2월 뒷풀이 때 – 셀카는 놓칠 수 없다) 

 

 

 

 

 

 

 

 

 

 

(사진8 : 3월 월례회 때 익숙한 뒷모습과 신입회원) 

 

 

 

 

 

 

 

 

 

 

(사진9 : 작년 12월 송년회 때 너무 친해보이는 두 사람) 

 

 

 

 

 

 

 

 

 

 

(사진10 : 열공하는 소수자위 위원들) 

The post [소수자인권위] 지난 5개월 동안의 활동소식! – HIV/AIDS 감염인의 인권을 말하다 강연 등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수, 2019/03/27- 16:35
12
0

  다양한 ‘부캐’의 소유자, 이동준 변호사를 만나다.  (부캐: ‘부(副)’와 ‘캐릭터(character)’의 합성어로 원래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를 … 더보기

The post [회원인터뷰] 다양한 ‘부캐’의 소유자, 이동준 변호사를 만나다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월, 2021/02/08- 23:13
9
0

과거사청산위원회 소식

-여순민중항쟁 71주기 워크숍- 

0.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입니다. 저희 과거사위원회는 2019. 10. 19. 여순민중항쟁 71주기를 맞아 여수로 1박 2일 워크숍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과거사위 활동 소식은 워크숍 여정을 중심으로 전달해드릴까 합니다.

 

1. 제71주년 여순사건 희생자 합동 추념식

 

    과거사위는 2019. 10. 19. 오전 11시 이순신 광장에서 열린 제71주기 여순사건 희생자 합동 추념식에 참석하였습니다. 이 날 유족과 시민 500여 명이 참석한 추념식은 문화공연에 이어 추념사와 헌화 순으로 진행되었고, 오전 11시 정각에는 여수시 16개 민방위 경보시설에서 묵념 사이렌이 울렸습니다.

    그간 추념식은 여수지역사회연구소를 비롯한 다양한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주도되어 왔습니다. 이후 여수시가 추념식을 주관하게 되면서 올해 처음으로 위 묵념 사이렌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울리게 된 것입니다.

    또한 올해는 지난해 경찰서에서 순직 경찰위령제를 지냈던 순직 경찰 유족을 비롯해 많은 안보보훈단체 회원들이 추념식을 함께 지켜봐 상생과 화합의 도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 등 아직 가야할 길이 멀지만, 무엇보다도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된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의 아픔에 시민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대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2. 여수지역사회연구소에서의 강연


    추념식이 끝난 후에는 여수지역사회연구소로 이동하여 이영일 소장님으로부터 여순항쟁의 원인과 경과, 현 시점에서의 과제 등에 대한 강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소장님께서는 여순항쟁의 성격을 일부 좌익계 사병들이 일으킨 단순한 반란이 아니고, ‘부당한 명령에 맞선 항쟁’이며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 운동’이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또한 “제주 4·3사건이 없었다면 여순사건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여순항쟁은 제주 4·3사건의 연장선상에서 평가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948년 4월 3일 단독선거·단독정부 수립 반대를 주장하던 제주도민들을 국가는 무참히 학살하였고, 이 과정에서 진압명령을 하달 받은 여수 주둔 14연대 병사들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군대가 오히려 국민을 진압하고 학살하라는 명령을 따르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명하며 무기를 들었던 것입니다.

    끝으로 여순항쟁을 기화로 제정된 국가보안법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발생시킨 폐해를 언급하시면서 여순항쟁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하셨습니다. 다행히 제주 4·3사건의 경우 1999년 12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11년 동안 7차례에 걸쳐 추가 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반면 여순항쟁을 비롯한 많은 과거사 사건들은 여전히 진상 규명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앞으로도 현대사의 질곡을 온전히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 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가 더욱 노력을 경주해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3. 사적지 답사

  . 14연대 주둔지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서완종 국장님과 함께한 과거사위원회의 여수 첫 답사지는 1948년 여순항쟁의 시발점이 된 육군 제14연대 주둔지였습니다. 1976년 7월 23일부터 현재까지 한화여수공장이 입주하여 가동 중인데, 옛 부터 평화로운 원주민 마을을 강제로 이주시킨 후 일본과 미군에 이어 한국군의 병영지로 쓰이다가 급기야는 화약공장이 들어선 민족현대사의 아픔과 질곡을 간직하고 있는 비극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군사보안시설로 지정되어 현재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으며, 최근 인근 지역에 아파트를 비롯한 많은 주거시설이 확충되면서 화약공장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공장 가동률이 4분의 1로 하락함에 따라, 여수시가 한화와 부지 매각에 대한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하나, 지나치게 높은 매입금액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이 더욱 컸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나. 중앙동 인민대회장과 종산초등학교


    다음으로는 중앙동 인민대회장과 종산초등학교(현 중앙초등학교)에 방문하였습니다. 중앙동 인민대회장은 1948년 10월 20일 오후 3시경 중앙동 로터리 광장에서 수많은 시민들과 14연대 봉기군이 함께 참여하여 인민대회를 열었던 장소입니다. 인민대회에서는 ’38선이 무너졌다. 제주 출병을 거부한다. 동포가 동포를 죽일 수 없다’고 선언한 뒤 인민위원회를 조직할 것을 결의하고,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 실시 등을 내용으로 하는 6개 항의 결정서를 채택하였습니다.

    이후 여수가 진압되고 부역혐의자를 색출하면서 인민대회장에 나갔다는 이유만으로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현장에서 즉결처형 되거나 종산초등학교 등으로 압송되어 수용되었습니다. 종산초등학교는 여수경찰서와 가깝다는 이유로 수도경찰과 전남경찰 및 여수경찰서 특수대, 국방경비대 군인들의 공동 주둔지가 되었습니다. 10월 28일부터는 소위 가담자 색출이라는 이름으로 여수와 인근 읍면 지역에서 끌려온 혐의자를 속옷만 입힌 채 10명씩 포승줄로 묶어 12월 중순까지 수용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부산의 5연대장이었던 김종원은 혐의자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재판 없이 즉결처분을 자행하였는데, 권총이나 일본도로 목을 치는 광란적인 학살 만행을 자행하여 백두산 호랑이라는 악명을 떨치기도 하였습니다. 일본군 하사관 출신인 김종원은 여순사건 이후에도 거창양민학살을 주도하였고,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 등의 만행을 일삼다 1960년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아무런 재판과정도 없이 학살되어 암매장되거나 만성리, 민드래미 골짜기, 호명과 봉계동 등지에서 학살된 사람 모두가 이 학교에 수용되었던 혐의자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아직까지 그 규모와 내용이 밝혀지지 않은 채 71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다. 만성리 학살지와 형제묘


    만성리 학살지는 부역혐의자로 잡혀있던 종산초등학교 수용자 중 수백여 명의 민간인들을 끌고 와 집단학살을 자행한 장소입니다. 깊은 골짜기 형태를 한 이곳에서, 군경은 1948년 11월 초순경부터 종산초등학교에 수용되었던 여순사건 부역혐의자들 일부를 학살하고, 협곡과 같은 골짜기 속으로 던져 넣은 후 흙, 모래와 돌로 암매장하였습니다. 사건 당시의 증언을 토대로 한 기록을 보면 1948년 11월 13~14일 양일간 제3차 고등군법회의가 열려 재판 회부자 458명 중 사형언도자가 102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사건이 지난 후 이 골짜기를 지나는 사람들은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 작은 돌을 계곡에 던져 넣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풍속이 한동안 지속되어 돌탑무덤이 솟아오르기도 하였고, 현재는 2009년에 건립된 여순사건 희생자위령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여순사건 희생자위령비에는 오직 6개의 점(……)만이 덩그러니 새겨져 있습니다. 위령비 건립 당시 전・현직 경찰관 모임인 경우회가 희생자 유족들이 새긴 추모 문구에 이의를 제기했고, 이에 유족들은 사실을 왜곡할 바에는 아무런 문구도 새기지 않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무력으로 자국민을 학살하고, 그 죄적을 은폐하기 위해 희생자들을 암매장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유족들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위령비에서도 사회는 침묵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희생자와 그 유족들이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거나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차가운 현실이 위령비에 새겨진 6개의 점과 함께 무겁게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만성리 학살지와 함께 널리 알려진 이 곳 형제묘는 학살 후 시신을 찾을 길이 없던 유족들이 죽어서라도 형제처럼 함께 있으라고 ‘형제묘’라 이름 붙인 곳입니다.

    여순사건의 부역혐의자가 되어 종산국민학교에 수용되었던 사람들 중 제4차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125명이 1949년 1월 13일 이 자리에서 총살되고 불태워 졌습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여수경찰서 사찰계 형사는 “‘5명씩 총살 한 후에 다시 5명씩 장작더미에 눕혀 5층으로 쌓은 큰 더미 5개, 모두 125명이 매장되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처형은 헌병들이 주도하였으며, 장작더미에 기름을 부어 불을 태웠고 처형된 가족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보초를 세우고 태워진 시신 위로 큰 바위를 굴려서 덮었다고 전해집니다.

    형제묘의 커다란 봉분 한 켠에는 작은 봉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묘에는 정기만, 정기순, 정기덕, 정기옥 남매가 합장되어 있습니다. 정기순 위원장은 여순항쟁 당시 민주여성동맹(여맹) 위원장으로 인민대회 5인의 연설자 중 유일한 여성 지도자였습니다. 항쟁 당시 진압군에 의해 오빠인 정기만과 동생인 정기덕이 사망하였고, 두 형제는 유골조차 찾을 수 없이 형제묘에 함께 매장되었습니다. 살아남은 정기순 위원장과 여동생 정기옥씨도 ‘빨갱이’, ‘부역자’ 등으로 평생을 지탄받으며 삶을 마감하셨습니다.

    동생인 정기옥씨는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모진 일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그마저도 주기적인 경찰의 신원조회 및 감시로 인해 직장을 잃기 일쑤였습니다. 결국 세상을 비관하던 정기옥씨는 이른 나이에 요절하였고, 정기순 위원장의 어머니는 막내딸을 오빠들과 함께 매장해 주고자 형제묘 옆에 작은 봉분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형제묘에 또 하나의 작은 봉분이 만들어졌고, 정기순 위원장 역시 사망 후 화장하여 그 유골을 형제묘에 뿌려 가족들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형제묘는 여순항쟁의 희생자들과 그 유족의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장소입니다. 희생자가 가해자와 주변인들로부터 ‘빨갱이’로 매도되어 한 평생을 죄인처럼 살아야만 했습니다. 2019년이 된 지금에도 그 자손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기에 우리 과거사위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더욱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4. 나가며


    답사를 마친 뒤에는 숙소에 짐을 풀고 워크숍 일정에서 느낀 소회를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석해주신 많은 선배 변호사님들께 좋은 말씀을 많이 들을 수 있었고, 앞으로 더욱 노력하자는 마음가짐을 다잡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상희 변호사님과 위원장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변화는 더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우리 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상으로 10월 민변 과거사 청산위원회의 활동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The post [과거사위] 여순민중항쟁 71주기 워크숍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토, 2019/11/02- 02:14
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