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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사태와 광주항쟁의 차이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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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사태와 광주항쟁의 차이 3가지

admin | 화, 2019/11/19- 23:19

[경희대 임채원교수는 최근 자신의 경향신문 기고문 “시진핑의 헛된 꿈 중국몽”에서 중국정부가 홍콩시민의 민주주의와 자치 요구를 무시한 채 강경대응을 지시함으로써 ‘일국양제’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임교수는 지금의 홍콩 정세를 완전히 거꾸로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완강한 폭력적 저항을 계속하고 있는 일부 홍콩시위대야말로 행정수반에 대한 완전한 ‘직선제’를 요구함으로써 사실상 ‘홍콩독립’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6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홍콩사태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한국 언론들은 그것을 ‘제2의 광주항쟁’이라는 시각에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작금의 홍콩 사태와 80년 광주항쟁은 다음 몇 가지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첫째, 광주항쟁은 전두환 신군부의 등장에 맞선 ‘민주화 투쟁’이었는데 반해, 지금의 홍콩 사태는 이미 민주주의가 고도로 실현된 기반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홍콩은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오랜 기간 민주주의가 잘 정착된 국제적 개방도시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동안 반년 넘게 별 탈 없이 진행되어 온 집회와 시위, 그리고 그것들이 자유롭게 취재되고 시시각각 해외로 보도되고 있는 활발한 언론 활동은 지금 홍콩의 민주주의 수준이 어느 정도에 와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80년 당시의 광주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널리 알려진 바대로, 홍콩은 기본적으로 ‘일국양제(一國兩制)’ 하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자치’를 보장받고 있다. 예컨대 독자적인 홍콩화폐를 발행하고, 경제정책에 있어선 완전히 독자적인 정책결정이 이루어진다. 또 자체 경찰병력을 보유함으로써 일상의 치안유지를 책임지며,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교육체계와 그 내용 역시 스스로 결정한다. 일각에선 이 때문에 과거 영국 식민지하의 ‘서구 우월주의’ 교육 잔재가 아직도 청산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이다. 사실 이 점은 최근 학생들이 왜 반(反)중국 정서와 친 서구성향을 보여주는지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하다. 어떻든 입법, 경제, 행정, 치안, 교육 등 제 방면에서 이 정도의 높은 자치를 누리는 도시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광주항쟁은 순수하게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주된 것이었다고 한다면, 홍콩은 사실상 ‘독립’에 대한 요구를 제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홍콩 시위대가 표면상 요구하고 있는 것은 행정장관에 대한 ‘직선제’이다. 하지만 이들 시위대가 이미 여러 차례 공식적으로 천명했듯이 이 같은 직선제는 사실상 ‘홍콩독립’에 대한 요구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한번 생각을 해보자. 홍콩과 같이 고도로 개방된 국제도시에서, 또 거기에는 미국 시민권을 가진 자가 6만여 명이고, 영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3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 만약 행정수반에 대한 ‘직선제’까지 이루어진다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비근한 예로 요즘 스페인 카탈루냐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들 수 있다. 그곳에서는 지난 2017년 완전한 주민 직선제로 선출된 행정수반과 각료들이 독립을 선언했다가 스페인 정부에 의해 거부당하고 체포당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최근 대법원에서 반역죄로 기소된 이들에 대해 중형이 선고되면서, 카탈루냐 주민들은 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와 연일 과격한 항의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홍콩에서도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만약 독립 성향의 후보가 당선된다면 홍콩은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할 것이고, 중국정부는 결코 그것을 허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홍콩은 자칫 ‘내전’이라는 커다란 비극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갈 수 있다. 우리가 일찍이 이라크, 우크라이나 그리고 시리아 등지에서 무수히 보아 왔던 사태가 바로 한반도 가까운 인근에서 재현되게 되는 것이다. 중국궐기 저지를 제일의 국책으로 삼고 있는 미국과 서구세력이 배후에 있는 한 이 같은 시나리오는 결코 공상 만은 아닐 것이다. 원래 문제의 발단이었던 ‘송환법’이 이미 공식 철회되었음에도 아직까지 홍콩 사태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결국 지금의 홍콩 사태는 그 성격에 있어 단순한 민주주의 투쟁이라고는 볼 수 없다. 사실상 그것은 ‘일국양제’를 인정하는가 부정하는가의 문제라고 보여 진다. 이 점에서 80년 광주 민주화운동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 광주시민들은 비록 신군부의 만행에는 분노하였지만, 광주와 전라도의 독립을 추호도 꿈꾸지는 않았다.

셋째, 언론의 보도태도에 있어서의 차이점이다. 80년 당시 한국 언론들은 광주항쟁에 대해 ‘친정부’ 일색으로 보도하였다. 그것은 당시 언론통제 하에서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홍콩 사태에 대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보도가 그와는 정반대로 ‘친시위대’ 일색인 것은 의외라 할 수 있다. 이는 한편에선 앞서 지적한 홍콩에서의 취재와 언론보도가 매우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면을 보여줌과 동시에, 다른 한편 그것을 보도하는 언론 매체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사실 광주항쟁 당시 한국 언론들은 봉쇄되지 않았다. 조중동과 KBS 등 신군부 편에 섰던 언론매체들은 시위대가 군인들한테 돌을 던지고 불을 지르는 것과 같은 정부쪽에 유리한 장면만을 보여주었다. 지금 홍콩 사태에 대해서 우리가 언론을 통해서 접할 수 있는 것은 시위대에 유리하고 우호적인 장면뿐이다. 그렇지만 직접 중국어 인터넷매체를 통해서 보게 되면 홍콩정부와 경찰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규모 역시 상당히 큰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홍콩 빅토리아만에서 경찰의 질서수호 노력을 격려하는 어선이 플랭카드를 내걸고 항해하는 모습, 일부러 경찰서를 방문해 격려와 위로를 보내는 시민집단의 행렬이 이어지는 장면도 목격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와 관련된 보도들은 한국 언론에선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시위대가 폭력화하는 것을 비판하는 홍콩 시의원이 백주대낮에 테러 당해 병원에 실려 가거나, 신화사 기자가 폭행당하는 사건은 국내에선 아예 무시되거나 심지어는 시민들의 ‘정당한’ 적개심의 표현으로 미화되기까지 한다. 이는 시위대 중 누군가가 경찰에 의해 부상당하는 장면에 대해선 일제히 대서특필하는 태도와 선명하게 비교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홍콩 사태의 보도와 관련한 이 같은 언론의 공정성 문제는 물론 한국 언론만의 문제는 아니다. 앞서 잠깐 언급한 카탈루냐 사태와 비교할 때 그 점은 더욱 선명하다. 사실상 양쪽 모두 주민자치에 기반 한 ‘분리 독립’을 지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홍콩처럼 카탈루냐 사태를 줄기차게 보도하는 언론매체를 한국과 서구에선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 같은 편파보도는 자칫 한국 독자들의 공정한 판단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민플러스, 2019년 11월 18일 (필자가 일부 수정후 다른백년에 게재하는데 동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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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구성된 국회에서도 역시 ‘법사위’가 커다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주지하는 바처럼, 우리 국회에서 법사위의 힘은 막강하다. 바로 법사위가 모든 법률안의 체계ㆍ자구 심사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사위는 모든 상임위원회 중에서도 ‘상원 아닌 상원’ 혹은 ‘제2원(院)’이라 칭해지기도 한다.

그간 우리 국회에서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법사위의 ‘월권’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법사위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법안을 스톱시킬 수 있고, 때로는 소관 상임위에서 의결한 법안 내용 자체를 수정하여 상임위 간 갈등이 빚어진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2013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불산가스 등의 유해물질 배출 기업에 대해 해당 사업장 전체 매출액의 최고 10%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지만, 법사위는 규제 기준을 대폭 완화하여 5%의 과징금 부여로 낮췄다. 뿐만 아니라 단일 사업장의 경우 매출액 대비 2.5% 이하의 과징금을 매기도록 했다. 이에 대해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법사위가 재계의 입법로비에 무릎을 꿇고 자구 체계를 벗어나는 월권을 했다며 크게 반발하였다.

 

제헌의회; “자구 정리를 법사위에 부탁할 수 있다

그런데 법사위의 체계ㆍ자구 심사 조항이 처음부터 오늘날처럼 철옹성의 룰로 군림했던 것은 아니었다.

제헌의회 당시 국회법의 해당 조문은 단지 “제3독회를 마칠 때에 수정결의의 조항과 자구의 정리를 법제사법위원회 또는 의장에게 부탁할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그 뒤 1951년에 개정된 국회법은 “위원회에서 입안 또는 심사한 법률안은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를 경유하여야 한다. 단, 법제사법위원회는 법률안의 체계와 형식에 대한 심사를 하여 소관위원회에 회송한다.”라고 규정하여 처음으로 ‘법사위 심사’ 규정이 출현했다. 하지만 이 당시의 해당 조항에 대한 개정안 제안 취지는 “본회의 시간을 절약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법사위 심사’는 본회의 3독회 체제 중 본회의 1독회 전에 이뤄지는 보조적 기능에 지나지 않았다.

법사위의 체계ㆍ자구 심사에 공식성이 부여된 것은 2공화국 국회법에서였다. 1960년 9월 26일에 개정된 국회법은 “위원회에서 법률안의 심사를 끝내거나 또는 입안한 때에는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하여 체계와 자구에 대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라고 규정하였다. 다만 당시에도 여전히 본회의 3독회 체제 하에 본회의 2독회에서 축조심사가 이뤄졌기 때문에 본회의에 부의되기 전에 행해지는 법사위의 체계ㆍ자구 심사는 그 의미와 역할이 상대적으로 작은 것이었다.

 

유신정권이 확립한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권한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사실은 다음의 사실에 존재한다. 즉, 오늘날과 같이 법사위의 체계ㆍ자구 심사 기능이 막강해진 것은 바로 1973년 유신정권에서 이뤄진 국회법 개정이라는 점이다.

박정희 정권은 1963년에 이어 1973년에 다시 국회법을 개정하여 그간 본회의에서 시행하도록 규정되어왔던 축조심사 기능을 소관 상임위에 이전시켰다. 동시에 위원회 심사를 거친 안건에 대하여 질의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였다. 이제 법사위의 체계ㆍ자구심사 기능은 마침내 오늘날처럼 극대화되고 ‘법제화’, 제도화되었다.

이렇게 하여 법사위의 ‘제2원’ 기능을 분명하게 보장했을 뿐 아니라 유신정권의 유정회에 의해 보장된 집권 다수당의 본회의 ‘문지기’ 역할을 법사위가 담당할 수 있게 제도화한 것이다(서복경, “법제사법위원회 ‘제2원 기능’의 역사적 기원에 관한 연구”, 「의정논총」 제10권 제2호, 2015년).

 

상임위의 평등성과 의원의 평등대표성 원리에 위배

의회 상임위원회에서 소관 위원회의 결정을 다른 위원회가 존중하는 이른바 ‘위원회 소관주의(Jurisdictionalism)는 중요한 의회 규범 중 하나이다. 우리 국회처럼 법사위가 여타 상임위에서 이미 심사, 의결한 법안에 대한 체계ㆍ자구 심사를 함으로써 위원회 위에 옥상옥으로 군림하는 것은 위원회의 평등성 원리 그리고 국회의원의 평등 대표성 원리에 대한 심각한 침해에 해당된다.

세계 어느 의회에도 우리와 같은 법사위의 이러한 ‘제2원’ 권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미국 의회에서는 각 상임위원회 내에 ‘축조심사회의(Mark up)’가 구성되어 여기에서 수정안 작업과 체계ㆍ자구 심사의 기능을 수행한다. 즉, 체계ㆍ자구 심사는 세계 모든 나라 의회에서 너무도 당연하게도 각 상임위원회에서 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스스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바꾸지 않으면 불신 당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국회는 과거 군사독재 권력에 의한 국회 무력화와 통제의 유제(遺制)에 포획되어 있다. 이 ‘유제’를 ‘군사독재의 잔재’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단순한 ‘잔재’가 아니다. 왜냐하면 독재 권력이 만든 그 제도와 시스템들은 거의 변화됨 없이 현재까지도 거의 원형 그대로 유지되고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국회의원들 자신들이 이러한 군사독재의 유제나 잔재, 혹은 적폐에 계속 안주하여 무임승차해왔던 것이 가장 핵심적인 장애물이다. 동시에 지식인을 포함한 거의 모든 사람들도 이 적폐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가 지금과 같이 그 적폐의 틀과 관행을 개혁하지 않고 그대로 안주하고 있는 한,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더욱 심화된다. 바꾸지 않으면 불신 당할 수밖에 없다.

법사위의 체계ㆍ자구 심사 문제는 과거 독재권력 유제의 중요한 한 요소로서 이 땅의 정치발전과 민주주의 전진을 위해 반드시 개혁되어야 할 우리 시대의 중요한 과제이다. 왜곡으로 가득 찬 우리 국회는 이제부터라도 한 가지 한 가지씩 바꿔나가 의회로서의 ‘기본’과 ‘원칙’을 복원시켜야 하며, ‘법사위 문제’ 역시 이러한 차원에서 의회로서의 최소한의 원칙과 기본을 갖춰 정상화되어야 한다.

월, 2020/06/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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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는 전염(복사)을 확산시키려고 하고, 우리는 이를 중지시켜야만 한다. 바이러스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인간은 선택할 수 있다. 이번 팬데믹은 금세기 최초의 대규모 전염병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지만, 극복되는 과정에서 세계를 새롭게 변화시킬 것이다. 1918년 전쟁 통에 발생했던 ‘스페인독감’과는 달리 이번 사태는 세계가 평화롭게 번영을 구가하는 와중에 발생하였다. 우리는 이를 반드시 제대로 극복해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극적으로 악화되는 상황을 각오해야 한다.

올바른 선택을 하려면 다양한 해결 방안들을 검토하고 이들이 지닌 도덕적인 암시를 함께 이해해야 한다. 주요한 선택의 문제는 각국이 직면한 국내의 현안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서는 국가 간의 협력에 관한 것이다.

부유한 국가들에게 있어 가장 일차적인 선택은 매우 공세적으로 바이러스의 감염을 중단시키는 일이다 동시에 이에 발생하는 비용을 누가 얼마나 부담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어떤 의견은 바이러스 감염을 차단하려고 경제를 깊은 불황에 빠뜨리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불필요한 혼란(disruption)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바이러스가 전염되도록 방치해도 스스로 집단적 면역(herd immunity)이 형성될 수 있으며, 취역한 계층에만 방역을 집중하면서 경제활동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공세적인 방역 대신자유방임적 완화를 기대하는 것으로 과연 경제가 문제없이 잘 돌아갈지는 결과를 알 수 없는 위험한 선택이다. 정부가 강제하기 전부터 이미 시민들은 알아서 여행을 중단하고 외식과 영화관람, 쇼핑을 꺼려하였다.

전염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신규확진자’들을 추적하여 관리하는 것이 방치하는 것보다 오히려 경제적 불황을 조기에 종결하는 선택으로 판단된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적극적인 방역조치를 해야 국제적인 공공의료체계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영국왕립대학의 COVID-19 대응팀의 보고서에 따르면, 방역을 포기하면 영국과 미국 전역에 전염될 것이고 노인층의 상당수가 의료조치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될 것이라고 한다. 중국 후베이 지역의 경험에서 보았듯이 강력한 봉쇄가 이러한 불행을 막는 길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중국에서조차 수용할 수 없는 의료재난(방치에 따른)을 선진국인 영국과 미국이 허용해야 한단 말인가? 다만 상기의 견해가 부분적으로 옳은 것은 주요 경제활동을 장기간 중단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일단 강력한 방역조치를 선택하면, 빠른 시일 내에 성공적으로 시행되어야 하며, 재감염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어해야만 한다.

강력한 방역조치가 시행되는 동안, 정부와 금융기관들은 경제활동이 지속되고 생산적 역량이 위축되지 않고 시민들, 특히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실제적으로 가능한 모든 조처들을 취해야 한다.

국내의 현안 못지않게 국경을 넘어선 연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제 막 시작된 금융의 불안정과 불경기(아마도 불황)은 개발국가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할 것이다. IMF는 3월23일 현재 830억불 규모의 국제자본이 개발국가들에게서 이탈했다고 발표했다. 대부분 수출에 의존하는 개발국가들에게 상품가격의 폭락현상도 매우 심각한 것이다.

이들 국가군은 국내에 번지는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급격히 위축되는 국내수요와 싸워야만 하지만, 이러한 외부적 압력을 감당해낼 역량이 매우 제한되어 있어, 경제적 사회적으로 심각한 재앙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IMF는 80여 국가들로부터 긴급구제금융 요청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부유한 국가들이 전염병을 차단하고 경제를 되살려내면 취약한 국가들도 혜택을 받게 될 것이지만, 단기적인 측면에서는 사정이 매우 급하다. 개발국가들은 즉각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이러한 선순환적인 지원은 모든 국가들의 경제회복에 도움이 된다. 바이러스와 동시에 지구적 규모의 불경기는 모두에게 닥친(공유된) 도전이다 보편적 지원이라는 연대가 필요하고 정당한 실제적인 이유이다.

유럽연합의 경우에도 같은 이야기가 적용된다. 현재의 연합을 규정하는 핵심은 지역집단적 대의를 위하여 개별국가 단위로 이루어지는 재정회계와 주권적 통화를 포기한 것이다. 지난 금융위기 시절에 적지 않은 국가들의 실책이 있었고 당시에는 각자의 실책에 대한 윤리적 비판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 팬데믹의 경우에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이를 대응하는 과정에 함께 연대하지 못하면, 실책이 있을 경우, 양해와 용서가 있을 수 없다. 이로 인한 상처는 깊고 치명적일 수 있다. 누구의 실책도 아닌 위기에 직면하여 함께 연대하여 대처하지 못하면 유럽연합이라는 거대한 기획은 윤리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사망선고를 받게 될 것이다. 국경을 넘어서는 연대와 지원은 단순히 재정적인 것에 국한되어서도 아니 되며, 의료적 지원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의료의 공급체계를 파괴할 수 있는 수출제한 조치가 시행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행히 이번 유행하는 전염병은 우리의 선조들이 겪은 치명적인 질병에 비하면 치사율이 매우 낮지만, 다른 한편 현존하는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실제적 위기이다. 따라서 종합적인 정보에 근거하여 결정을 내려야 하는 현실적 도전이며, 동시에 인류의 윤리적 수준에 대한 도전이다.

우리는 현실과 윤리라는 두 측면을 모두 살펴가면서 판단을 내려야만 한다.

지도자들이 평정을 유지하며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경제적 타격을 최소화하면서 유행병을 퇴치할 수 있을까? 가장 취약한 계층과 가난한 국가들을 우선적으로 보호한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갈등과 대립을 넘어선 연대 그리고 폐쇄적인 자국이기주의를 대신하는 지구적 연대를 선택할 수 있을까? 팬데믹이 지난 이후 열악해진 세상 대신 개선된 세상을 다음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을까?

이에 대하여 바이러스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인류인 우리는 가지고 있다, 현명한 것으로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을!

 

2020-03-24

마틴 울프

파이낸스타임지 수석해설가

목, 2020/04/09-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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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세계는 자유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경제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부패에 마주하고 있으며, 시간이 경과하면서 더욱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한국은 지난 70여 년 동안 다양한 형태의 부패문화로 고통을 받아 왔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이에 용감히 맞섰고, 2016년과 2017년에는 촛불혁명을 일궈냈다. 그 결과 한국은 힘겹게 그러나 꾸준히 부패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있다.

정부의 변화를 요구하며 결성된 대한민국 서울의 촛불시민운동 <출처: 여성평화걷기(Women Cross DMZ)>

희망하건대, 한국의 경험이 모범이 되어 개발도상국들이 부패의 노예가 되지 않고 경제 발전을 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부패에 관하여 풍부한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다음의 두 가지 한계를 지녔다.

첫째, 부패의 복잡성을 다루기에는 너무나 협소하게 정의된 부패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둘째, 부패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의 범위를 충분히 다루지 못한다.

기존 연구의 대부분은 부패를 타인의 희생을 통해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행되는 위법활동 정도로 정의한다. 그러나 일부 법규와 조직은 부패를 제도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음을 반드시 지적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부패를 “타인 또는 타 집단의 안녕을 희생시키면서 개인 또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행되는 모든 위법 또는 비도덕적 인간활동”이라 정의하고자 한다.

본 글의 목적은 한국의 경험을 근간으로 부패와의 싸움을 용이하게 해줄 적절한 방안을 찾는 것이다.

 

본 글은 다섯 부분으로 구성된다

제1절에서는 한국의 부패 경험을 바탕으로 부패의 유형을 분류한다. 부패와 부패에 관여한 개인 및 조직의 활동을 짝지어 보면 쉽게 부패의 유형을 분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제2절에서는 부패의 진화 단계를 설명한다. 부패의 현상이 단계별로 진화한다고 판단되며, 부패의 수준, 내용, 영향은 단계에 따라 다양하다. 따라서 적절한 반(反)부패 방안을 찾기 위해서는 부패의 내용이 어떤 단계에서 모습을 드러내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3절에서는 부패를 통해 얻는 이익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을 논한다. 실제로 한국에서 부패의 열매를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잔혹하고 정교한 전략이 활용되었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제4절에서는 부패의 영향을 다루되, 이를 경제적 영향과 도덕적 영향으로 구분하고자 한다. 당연히 두 가지 유형의 영향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이 둘이 상호 결합되면 한 나라를 망가뜨릴 수 있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제5절에서는 어떻게 한국인들이 지난 70여 년간 목숨 걸고 기본적인 인권 침해를 견디어 가며 부패에 맞서 싸웠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동시에 어떻게 민주적 정부가 한국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부패와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이 경험한 부패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알리고자 한다.

 

1.부패의 유형 분류

부패는 진행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 및 조직이 관여했는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다음의 부패 유형은 다른 국가에서도 일어나고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a)노골적인 공적자금 도용

한국에서 가장 악명높은 부패는 수십 억 달러에 달하는 공적자금 횡령일 것이다. 우익 진영의 대통령, 공무원, 공기업 사장, 연구기관의 수장, 심지어는 유치원 원장들까지 자금을 횡령했다.

특히 전두환 장군이 대통령 재임 시 미화 2억 달러 이상을 횡령한 사건은 악명이 높다. 이로 인하여 그는 부패와 권력남용으로 옥살이를 했다. 당시 법원은 그에게 횡령한 금액을 정부에 갚도록 명령했으나, 그는 은행 잔고 260달러가 전(全)재산이라고 우기면서 여전히 한국 사법체계를 우롱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 중에는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를 통해 수십억 달러의 공금이 사라진 것으로 의심된다. 현재도 이에 대한 수사는 진행 중이다.

사립 유치원이 정부 보조금의 대부분을 공공연하게 사적으로 착복하여 보석 구입 및 개인 용도로 사용한 사건 역시 공금횡령의 또 다른 예시다.

b) 특혜를 통한 부패

특혜를 거래하는 시장은 거대하다.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길고 긴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러나 공무원에게 뇌물을 건네면 법과 규제를 건너뛸 수 있는 특혜를 얻을 수 있다.

예컨대 공무원에게 뇌물을 지급함으로써 합법적인 또는 불법적인 건축허가를 좀 더 빠르게 받을 수 있다. 뇌물만 있으면 그린벨트를 주거용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혜의 공급자는 공공기관이며, 그 수요를 결정하는 것은 기업이다. 특혜의 대가는 특혜의열매를 금전적 가치로 환산한 것에 기반한다.

이러한 특혜의 시장 가격은 곧 뇌물의 액수가 된다. 뇌물의 액수를 판단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건설업계가 분양금액의 5%를 뇌물로 제공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즉, 뇌물의 총액이 수백억 달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c) 정보의 도용을 통한 부패

한국에서는 증시 및 토지개발 감독을 담당했던 공무원이 퇴직 후 부자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국토부의 고위 공무원으로서 미리 국가의 토지개발계획을 파악한 후, 타인의 이름을 빌려 토지를 매입하여 엄청난 매매차익을 얻는 것이다.

증권시장 감독기관의 직원은 기업의 투자계획에 대한 기밀정보에 접근, 해당 주식을 매도 또는 매수하는 방식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다. 이들이 이러한 기밀정보의 절도를 통해 얼마나 많은 불법이익을 챙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d) 조달과정의 부정부패

정부와 정부 산하 수많은 기관은 매년 수십억 달러를 재화 및 서비스 구입에 소비한다. 국방분야 하나만 보더라도 한국은 연간 미화 500억 달러를 쓰고 있다. 정부 및 관련 기관이 재화와 서비스를 조달하기 위해 실제 가격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지급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

정부가 지급하는 가격과 실제 가격 사이의 차액은 공급자와 구매자가 나눠 가진다. 이를 소위 “킥백”, 즉 리베이트라 한다. 군사 장비 조달 분야의 경우, 장비 구매가의 10%정도가 킥백(뇌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e) (사법분야) 자의적 결정라는 부패

자의적 거래 역시 또 다른 형태의 강력한 부패가 아닐까 한다. 부패한 사법 체계 하에서는 범죄와 부패를 저지른 자가 뇌물로 사법과정에서 자의적 결정권을 살 수 있다.

경찰은 제아무리 범죄와 부패의 흔적이 뚜렷해도 범인이 권력자라면 뇌물을 받고 체포하지 않는다. 검찰은 용의자가 뇌물을 줄 용의가 있는 기업인이라면 분명한 부패 사건이라 해도 수사하지 않는다. 또한 검찰은 수사를 통해 명백한 부패의 증거가 드러난다 해도 뇌물을 제공한 혐의자들을 기소하지 않는다. 그동안 여러 재벌 회장들이 부패 혐의를 받았지만 실제 재판까지 이어진 일은 드물었다.

설사 유죄 판결이 난다고 해도, 이들은 곧 석방되었다. 그리고 검찰이 유죄 증거를 제시해도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사례가 많았다.

f) 입법과정의 부패

재벌이 국회의원에게 위장 선거운동 자금을 지급하는 대신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률의 통과를 사주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바다.

대한민국 국회가 채택하는 법률은 재계와 기타 이익단체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법에 가장 예민한 단체는 대기업이다. 실제로 대기업들은 그들에게 불리한 법은 막고, 유리한 법은 조장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특화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여러 법률 중에서도 노동 관련 입법과정이 가장 빈번하게 대기업 로비의 타깃이 된다.

그동안 재벌은 입법부에 엄청난 뇌물을 써서 노동친화적 법률의 채택을 막아왔다. 한국의 저임금,장시간 노동의 배경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g) 일자리 제공이라는 부정부패

또 다른 유형의 부패는 바로 일자리의 거래이다. 한국의 강원 카지노는 뇌물을 받고 일자리의 80%를 국회의원의 지인 또는 박근혜 정부 당시 실력자들에게 불법으로 제공했다.

최순실씨(비리 및 불법 정책개입으로 20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는 거액의 뇌물을 받고 장관, 판사, 기타 고위 공무원 임명에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2. 부패의 진화 단계

한국의 부패는 다음의 단계를 밟으며 진화했다.

경제개발과 정경유착

부패한 집권층 형성

부패한 조직의 네트워크 구성

1단계) 경제개발 및 정계와 재계 간 유착

일본과 한국의 경제기적을 이룬 주요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일본주식회사 그리고 한국주식회사라는 개념이다. 이들 주식회사에서 정부와 기업은 하나의 회사인 것처럼 행동한다는 뜻으로, 이들은 경제 정책과 개발을 위한 동등한 파트너에 가깝다.

이와 같이 긴밀한 정부와 기업의 협력은 필연적으로 공업화와 경제개발의 계획 및 이행 과정을 통해 정경유착으로 이어졌다.

박정희 전대통령과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 회장,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결탁한 이야기는 전설에 가깝다.

정경유착 단계는 한국경제가 비상하던 시기와 맞물렸다 (1960-1970). 역설적으로 한국주식회사 그리고 정부와 기업의 결탁으로 한국은 채 30년도 되지 않아 극빈상태에서 벗어났다.

2단계) 집권층 부패의 형성

경제개발이 박차를 가하고 경제개발계획이 시행되면서, 계획의 성공을 위해 관료제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특히 경제기획부처는 경제계획 성패의 요체가 되었다. 그 결과, 경제기획부처 구성원과 재무부처 고위공무원, 기타 공무원 등은 위에서 설명한 유착에 관여하였다. 이는 정계-관료-재계의 삼자 유착으로 귀결되었다.

이 삼자 유착이 한강의 기적에 막대한 기여를 했다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만 이러한 유착을 면밀하게 감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해당 유착의 당사자들은 경제개발의 성과를 멋대로 사익을 위해 전용하고자 했다.

이 구성원들은 목적 달성을 위해 친밀한 하나의 계층을 형성함으로써 자신들의 불법적, 비도덕적 활동을 은폐했다. 그리고 이들은 배타적인 집권층이 되었다. 대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그 대가로 대기업에게 각종 특혜를 배분하는 것도 해당 집권층의 역할 중 하나였다.

정부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대기업에 공공의 자원을 제공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정책 금융이 가장 매력적인 정책이었다. 시장의 금리가 20%를 상회할 때에 정부는 5% 미만의 금리에 거액의 대출을 지원했다.

해당 자금은 공업화와 수출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이렇게 제공된 정책 금융 중 일부는 공장의 건설과 수출을 위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렇게 빌린 자금을 5%보다 훨씬 높은 금리로 사채시장에 대출하는 방법으로 큰 부를 축적했다.

대기업에게는 세금혜택도 주어졌다. 이들은 무료로 산업공단에 입주할 수 있었고, 산업용지로 활용될 예정이었던 토지를 받아 일부를 부동산 투기에 사용하기도 했다. 이들 재벌은 온갖 허가와 특혜를 받았으며, 분명치 않은 이유로 엄청난 장려금과 보조금을 챙겼다.

이렇게 집권층을 형성하는 단계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진행되었다. 20여 년 기간 동안 세계경제가 신자유주의로 활발히 재편성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신자유주의는 대기업에게 더 큰 힘을 주는 반면, 정부의 권력은 상당 부분 약화시켰다. 기업에게는 이러한 상황에서 뇌물 공여를 통해 유리한 정책을 조작하기가 더 쉬워졌을 것이다.

80-90년대는 한국 산업이 중화학공업으로 변모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를 통해 한국의 대기업은 무제한에 가까운 자금줄을 손에 넣게 되었다.

3단계) 부패 조직의 네트워크 형성

이렇게 형성된 집권층은 미디어와 학계, 보수 시민단체와 불법 수익을 공유함으로써 스스로를 더욱 공고히 할 필요를 느꼈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부패의 네트워크가 확대되면서 부패 공동체가 조직적으로 확립되었다.

부패 공동체의 목적은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넓혀 반부패세력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잘 방어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사회는 한편에서는 보수와 진보, 다른 한편에서는 부패세력과 반부패세력라는 이중적 구조로 분열되었다.

이러한 부패 조직의 네트워크는 진보세력이 집권한 2000년대에도 작동되었다. 즉 김대중 전 대통령(1997~2002) 및 노무현 전 대통령(2003~2008))의 기간에도 살아남았다.

물론 해당기간 동안 보수진영의 부패 네트워크는 부패 활동의 속도를 늦추어야 했다. 하지만 조직의 확대와 강화를 위한 예비적 투자는 계속 진행되었다.

이후 2008년에는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2013년에는 박근혜가 그 뒤를 이으면서 한국의 우익정당은 9년 간을 집권했다(2008~2017). 이 기간동안, 부패 공동체는 몸집을 키우며 부패 활동을 확대하고 가속화했다.

실제로 상기 9년의 기간 동안 한국의 부패 정도는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사독재 시절보다 심각했다. 결과적으로 박근혜는 25년 형을 선고 받았으며, 이명박은 15년 형과 함께 추가 범죄 혐의로 고발당한 상태다.

 

3. 부패의 이익을 비호하는 전략

부패 조직의 이익을 비호하기 위한 전략은 다음을 포함한다.

첫째,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집권 당시 보수정권은 반대파의 목소리를 잠재우고자 수십만 명의 무고한 시민을 학살했다.

둘째, 언론의 자유는 잔혹한 경찰 또는 뇌물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여기서 정말 슬픈 것은 대부분의 언론사가 재벌들의 광고수수료 없이 살아남지 못하며, 때문에 광고가 뇌물로 쓰인다는 점이다.

한국의 3대 유력 신문사는 조선, 중앙, 동아(일명 조-중-동)인데, 한국 내 주요 일간지의 전체 판매부수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1910~1945)에도 존재했으며, 친일적인 보수 일간지로 일관하여 왔다. 이후 부패 공동체를 비호하기 위해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받아 왔다.

셋째, 한국의 첩보기관은 진보, 반부패 세력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평범한 시민을 간첩으로 몰았다. 이들 시민들은 공권력의 남용과 기타 불법 탄압의 피해자가 되었다.

넷째, 보수정권에 불리한 내용을 발표한 학자는 해당 연구비를 박탈당했다.

한국에는 “뉴라이트”라는 학술단체가 있는데, 이들은 일본의 한반도 강점을 정당화한다. 일본은 한국인을 위해 한국경제를 개발하고자 헸을 뿐이라는 내용으로 근대사 교과서를 바꾸기도 했다.이들은 세계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25만 명에 달하는 한국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성노예 범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뉴라이트 학자들은 유권자의 보수 정권 지지를 유도하기 위해 우익진영과 함께 진보세력을 “빨갱이”라 비난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다섯째, 보수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 약 1만 명의 예술가, 가수, 영화배우 및 소설가 등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정부의 지원에서 배제되었다. 영화 “기생충”의 감독인 봉준호 역시 다른 감독들과 함께 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여섯째, 부패 공동체는 대한민국 6ㆍ25 참전 유공자회 및 다양한 노인단체를 포함, 우익성향의 시민단체에 자금을 제공한다. 그러면서 해당 단체 회원들은 진보세력을 비판하는 가두시위에 참여한다. 결국 이들의 집회 참여를 위해 최종적으로 돈을 지급하는 최종 당사자는 재벌이다.

마지막으로, 부패 공동체를 확장하고 공고히 하기 위한 또 다른 방법으로 정략결혼을 선택한다. 이러한 경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건 우익 정치인과 재벌가 자제들간의 혼인이다.

 

4. 부패의 부정적 영향

부패로 인한 주요 부정 영향은 경제적 영향과 도덕적 영향을 구분할 수 있다.

a) 경제적 영향

부패는 단기적으로는 국가 경제의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일본의 사례처럼 수십 년이 지속되는 디플레이션을 가져올 수 있다.

경제적 영향은 미시경제적 영향과 거시경제적 영향으로 나눌 수 있다.

미시경제적 영향은 다양한 모습을 가진다. 경쟁을 감독하는 조직 및 기구가 부패한 경우, 대기업을 편애하여 시장의 공정한 경쟁 추구를 훼손하고, 중소기업의 경쟁력 상실을 초래할 수 있다.

정부가 뇌물을 받고 파산기업을 구제하는 경우, 파산기업의 수명은 길어지겠지만 그 결과 한국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다.

부패한 정부의 조달 체계는 형편없는 품질의 재화 및 서비스 구매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 한국은 킥백(뇌물)을 받으려다 잠수를 할 수 없는 잠수함을 구매한 바 있다.

부패의 거시경제학적 영향은 미시경제학적 영향만큼이나 좋지 않다.

집권층의 수출 중심 정책으로 GDP가 상승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수출만으로는 이들이 내세우는 낙숫물 효과를 만들어내지도, 일자리를 창출하지도 못한다. 오히려 실업률은 상승하고, 공정하고 공평한 소득의 분배가 어려워진다.

한국의 경우, 전체 기업 수의 99%가 중소기업이다. 그리고 이들이 전체 일자리의 87%를 창출한다. 그럼에도 집권층은 친재벌, 반중소기업 정책을 도입했다.

수출 중심 정책은 수출의 증가에 기여했다. 동시에 이는 재벌의 수익을 확실히 끌어올렸다. 재벌의 수익이 커졌다는 것은 뇌물로 쓸 돈도 많아졌다는 의미이다.

친재벌 정책의 또 다른 특징은 재벌의 수익을 위해 중소기업을 착취한다는 것이다. 우익정권 시절에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이 개발한 신기술을 훔치도록 용인했으며, 중소기업에 지급해야 할 금액을 제 때 지급하지 않아 계약을 위반했고, 하도급 계약시 일방적으로 하청계약의 가격을 낮추기도 하였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는 잘 알려져 있듯이 매우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중소기업의 발전을 막았으며, 보통의 시민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망가뜨렸다. 최악인 것은 이러한 정책으로 내수산업의 발전이 지연되는 동시에,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b) 도덕적 영향

부패의 도덕적 영향은 경제적 영향보다 훨씬 더 파괴적이다.

한국의 오랜 속담 중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말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청와대가 부패의 뿌리라고 믿는다. 다시 말해 윗물이 흙탕물이기 때문에 아랫물도 엉망이라는 것이다. 부패는 물이 흐르듯 한국 사회 전역으로 퍼졌다.

우익정권 하에서 부패세력은 돈의 축적을 1차 목표로 삼았다. 인간은 돈의 노예가 되고, 돈은 법은 물론, 유교적 가치, 심지어는 신보다 위에 섰다.

돈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고, 사회계층을 결정한다. 재벌 총수는 왕이요, 그 일가는 왕족이 된다.그리고 왕 중의 왕은 삼성그룹 회장이다. 실제로 우익정권 당시 한국은 삼성공화국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재벌은 전직 장관들을 고용하여, 마치 정부보다 자신들이 더 권위있는 것처럼 으스대며 부와 권력을 뽐냈다. 돈 없는 전직 장관들은 친재벌 정책을 위해 로비하며 배를 불렸다.

돈의 힘은 부와 권력을 가진 자가 가난한 자를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는 일명 “갑질”을 불러왔다.세계는 2014년 발생한 “땅콩회항”사건을 기억할지 모른다 .당시 대한항공 회장의 장녀는 기내에서 땅콩 봉지를 열지 않고 제공했다는 요상한 이유로 욕설과 함께 기내 직원을 폭행했다.

대형교회 목사들은 매년 수백만 불의 소득을 벌며 왕이 된 듯 돈과 권력을 남용하면서 신도들을 학대하기도 했다. 사실 수많은 목사들이 교회 자금을 훔쳤다는 의심을 받아왔지만 범죄 혐의 없음으로 풀려났다. 뇌물이 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많은 기업에서 직원들은 업무와 관련 없는 일에 강제로 동원된다. 부패한 보수 지도자들이 사회에 미치는 위험한 도덕적 영향은 돈의 숭배, 정직과 품위, 진실의 파괴, 상호존중과 사랑의 상실로 요약해 해석할 수 있다.

 

5. 부패에맞선 시민들의 전쟁

만일 한국이 경제 성과로 계속 세계의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독재와 부패에 맞서 싸운 한국시민들 덕분이다.

사실 2016년에서 2017년까지 이어진 촛불혁명 이전에도, 수백만 한국인들은 거리로 나가 부패한 대통령들에 용감하게 맞섰다. 1960년 4월에는 이승만에게, 1979년에는 박정희에게, 1980년 봄과 그리고 1987년 6월에는 전두환에 저항했다.

그리고 2016년 말에서 2017년 4월까지 8개월 동안 한국 사회 각계 각층의 연인원 17백만 명이 차가운 거리 위로 나가 외쳤다. “박근혜를 탄핵하라! 부패를 청산하라!”

촛불혁명은 성공적이었고, 부패하고 파괴적이었던 9년간의 보수정권을 끝내고 민주정권을 세웠다.그렇게 문재인은 대통령이 되었다.

문대통령은 민주진영에서 탄생한 세 번째 대통령이다. 처음은 김대중 대통령이었고 (1998-2002),두 번째는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2003-2008).

김대중 대통령은 노동조합 결성을 독려하고, 기존의 노동조합을 회생시키고, 진보 시민운동을 육성하면서 반(反)부패세력을 강화했다. 나아가 재벌에는 내부순환출자 중단과 투명한 회계처리를 요구하며 대규모 개혁을 이끌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의 자유 보장과 경찰 및 검찰, 법원, 첩보기관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 애썼다. 부패공동체에게 노무현 정부의 조치는 실질적인 도전이었기에 이들은 온갖 거짓 이유를 들이대며 대통령 탄핵을 공모하였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결국 탄핵되지 않았고, 임기를 끝까지 마쳤다. 그러나 부패공동체가 가장 우려한 것은 공정사회와 평등 민주주의에 대한 노무현의 정치적, 이념적 유산이었다.

이러한 유산을 말살하기 위해 수구세력은 노대통령의 아내, 권양숙 여사가 고급 시계를 뇌물로 받아 논두렁에 숨겼다는 가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 이야기는 이명박 우익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노무현의 퇴임 후에도 그의 일가에 대한 공권력, 보수언론, 검찰의 괴롭힘은 지속됐다. 이는 노무현에게 견디기 힘든 부담이었고, 그는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한국 우익세력이 얼마나 깊숙이 부패에 관여하고 있는지, 이들이 왜 이런 허무맹랑한 가짜 뉴스를 만들어 부패한 부자들에게 매달리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고, 70여 년간 축적된 부패의 문화를 청산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지금 부패를 도려내지 못한다면 정상적이고 건전한 국가로 살아남기 어렵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에 문대통령은 아래와 같은 반(反)부패 조치를 도입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거시적 조치와 미시적 조치로 분류해볼 수 있다.

a) 거시적 반부패 조치

거시적 조치에는 북한과의 평화 프로세스, 소득분배의 개선이 포함된다.

남북한 평화 프로세스는 북한이 더 이상 남한을 위협하지 않는 화해국면을 추구한다.

그동안 우익세력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선거에서 승리하는 등 남북 간의 긴장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마치 군사독재가 북한 문제를 처리할 더 좋은 자격이 준 것 마냥 행동했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한 사회경제 정책 중 하나는 바로 공정한 소득 분배를 통해 경제성장을 꾀하는 것이다. 정부는 최저임금을 인상하려 했고(불행히 중단되었다), 국민연금을 확대했으며, 노인을 위한 소득 수당을 제도화했다. 동시에 주당 근로시간을 감축하려 했고(역방향으로 수정되었다), 부동산세제의 개편을 시도하는(시행되지 못했다) 한편, 부유층의 소득상승은 늦추고 빈곤층의 소득상승은 가속화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러한 정책은 경제성장의 건전한 근간을 세우는 효과가 있다. 빈곤층이 더 많은 수입을 올리고, 부패와 “갑질”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

b) 미시적 반부패 조치

민주정부는 부패와 싸우고자 여러 미시적 조치 또한 시행하고 있다.

우선, 부패의 여러 원인 중 하나는 청와대 직원의 영향력 행사라고 판단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에는 어떠한 영향력 행사도 발생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모친은 지난 2년간 가족 외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가족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보수 언론의 가짜 뉴스를 피하기 위해서다.

두 번째, 문대통령은 권력기관의 기능을 크게 줄였다. 예컨대, 국가정보원의 기능을 국제 정보의 관리로 국한시켰다. 우익정권 하에서 국정원은 정부에 반대하는 자들을 북한 간첩으로 몰아 체포하는 기능을 맡은 바 있다.

뿐만 아니라 기무사령부를 폐지했다. 기무사는 본디 군대의 위법행위를 막는 기능을 담당했으나,우익정권을 비판한 자들에 대한 불법감찰에 관계하였다.

세 번째, 부패 공동체가 자행한 것이 분명한 부패 및 범죄 사건을 재수사하는 위원회를 임명했다. 예컨대, 과거 법무부 전직 차관이 여성을 강간한 사건이 있었는데, 뇌물과 우익정권 내 권력자와 유지한 관계 덕분에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네 번째, 부패 공동체의 편에 서서 기자노조를 탄압한 일부 언론사의 사장이 교체되었다.

다섯 번째, 유치원 원장이 공적자금을 도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유치원법을 포함, 다양한 반(反)부패 법안을 통과시켰다.

여섯 번째, 우익진영의 부패 공동체에 가담한 전 청와대 직원들은 처벌을 받았다.

일곱 번째, 검찰과의 싸움이다. 아마도 문재인 대통령이 시작한 싸움 중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한다. 한국의 검찰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체제를 가지고 있다. 범죄 및 부패를 수사할 권한을 가진다. 경찰도 물론 수사권을 가지지만, 최종적 판단은 검찰의 몫이다. 뿐만 아니라, 검찰은 독점적 기소권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수천 건의 부패 및 권력남용 사건이 고발되었지만, 검찰의 벽을 넘어 법원까지 간 일은 거의 없었다.

요약하면 한국은 사법권을 독점한 부패한 검찰 때문에 부패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었다.

한국에는 검찰을 제어할 수 있는 권력이 없다. 대통령 조차도 검찰을 어쩌지 못한다. 어찌 보면 검찰이 부패문화의 가장 강력한 방어벽 역할을 잘하여 왔던 수호자인 셈이다.

검찰에 맞서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은 검사를 포함한 고위공무원을 감독하는 제도인 공수처 법안을 통과시켰다. 싸움 하나를 겨우 이겼다. 그러나 부패문화를 완전히 청산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부패의 궁극적인 수호자는 돈이다. 보수세력이 지난 70여 년간 부패로 쌓은 돈은 수천억 달러에 달한다. 현금, 부동산, 주식의 형태로 세계 곳곳에 은닉했다. 이 때문에 한국사회가 부패문화를 완전히 부수기까지는 민주정권이 10년 이상, 어쩌면 20년 이상 필요할 지 모른다.

 

교훈

한국사회가 경험한 부패로부터 몇 가지 교훈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부패는 진화의 첫 단계, 즉 정계와 재계 양자 간 유착단계에서 반드시 차단시켜야 한다.

둘째, 일단 부패가 집권층을 형성하는 단계에 이르면, 아주 어려운 대응책이 요구된다.

셋째, 부패조직의 네트워크를 청산하려면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현재의 한국이 그런 경우이다.

넷째, 부패의 청산을 위해 정부에만 항상 의존할 수는 없다. 정부 자체가 부패한 일도 많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현재의 문재인 민주정권이 부패와의 싸움을 잘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부패를 청산하는 과정에는 평범한 시민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시민들이 반드시 함께 참여하여야 한다.

 

조셉 정(Joseph H. Chung)

퀘벡대학교 몬트리올캠퍼스 (UQAM) 경제학 교수이자 동 대학 Centre d’Études sur l’Intégration et la Mondialisation (CEIM) 산하 동아시아연구소(OAE) 부소장.

토, 2020/04/1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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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미국의 가장 충실한(충성스런) 동맹국가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간 워싱턴이 보여준 비정상적인 조치 – 특히 주둔 비용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요구한 내용들은 서울의 입장을 피해갈 수는 없다.

동맹 간의 협상에 있어서 흔히 벌어지는 갈등은 오히려 정상적인 것이긴 하다. 그러나 한미 간에 방위비 분담에 대한 워싱턴의 지난친 요구는 양국 간 방위동맹에 대한 대화의 범위와 전반적인 재조정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양측의 동맹은 한국이 중국과 협력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하여 전향적(conductive)으로 고려해야 한다.

한국 국내정치의 파열음은 여전히 냉전적 관점을 지속시키고 신북방정책(New Northen Policy)같은 경제협력의 새로운 기회를 어렵게 하고 있다. 미국은 외관상 평화롭고 통일된 한국을 희망하는 듯 하다. 그러나 통일에 대한 한국의 기대와 미국의 북한군사력 억제 우선정책 간의 차이는 문재인 정부의 평양에 대한 우호정책 이전에 이미 갈등의 씨앗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의 국가적 방위에 대해 서울이 더 많은 책임을 지면 질수록, 한반도에서 미국의 역할이 줄어들 것이다. 이 또한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한 억지력과 평화로운 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가지게 될 것이다.

북한의 재래적인 위협에 대응하여 한국은 58만 명의 정규군과 3백만의 예비병력을 가지고 있으며, 북한에 대해 군사기술 측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지니고 있다. 한국은 북한이 가하는 재래적인 위협에 스스로 억제할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미군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2만 8천명의 주둔병력 수요를 줄어나갈 수 있다.

한국에 미군이 현재 상태의 주둔을 지속하면, 중국이 북한을 안전중립지대(buffer Zone)로 보는 시각을 영구화하게 한다. 반대로 주한미군의 머릿수를 줄여나가면 한반도의 평화로운 통일과정에 대한 한중 간에 정치적 협력의 공간을 넓혀갈 수 있다. 북한의 돌발사태에 대한 개입이 아니라면 중국은 한국 주도에 의한 점진적 평화통일을 수용할 수도 있으며 – 이는 미국의 이해와도 충돌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과 방위동맹을 중국에 대한 지정학적 봉쇄로 재구성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2019년 말에 있었던 한일 간의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에 대한 한국정부의 종료의사를 미국이 강력히 반대하는 핵심에는 바로 미국이 의도한 중국봉쇄를 약화시킨다는 점이 자리잡고 있다.

베이징과의 전략적 경쟁에서 한미동맹을 최전방에 두려는 미국의 의도 때문에, 중국과 지역안보에 협력하려는 한국의 시도는 좌초될 듯싶다.

중국의 평양에 대한 비대칭적인 영향력과 한반도에 대한 이해관계를 감안하면, 한반도 안보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한국은 반드시 중국과 함께 해야(work with) 하며, 이런 맥락에서 한국정부는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희망하고 있다. 미군의 일방적 사드배치에 따라 냉각된 양국관계를 회복한 최근 사례가 이를 반증한다.

미군이 현재처럼 주둔을 지속하게 되면,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한중간의 협력은, 불가능한 정도는 아닐지라도, 매우 어렵다. 반대로 방위비분단금협상 대신에 한반도 안보책임에 대한 미국의 부담을 줄여가며 이를 서울에 점차 양도하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미국과 중국이 함께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호주국립대학교 내 East Asia Forum (EAF), 2020-03-02.

Anthony V Rinna(안토니 V 리나)

EAF 러시아 외교정책의 책임 연구자. 중국 및 북한 전문가

목, 2020/04/09-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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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3월 30일)에도, 매서운 기세로 확산 일로를 치닫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그 공포와 고난과 고통에 더하여, 우리가 하나의 지구촌에 살고 있는 생명공동체임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거의 세계 모든 나라에서 국경폐쇄나 이동금지조치가 내려지고 있지만 그것은 이번 사태의 악화를 막기 위해 취해지는 일시적인 조치로서, 폐쇄나 단절이 그 장면의 주제가 아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하나로 통해 있음’을, 그리고 인간이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사례이다.

이번 사태로 사망하신 분들이나 그 유족의 슬픔은 말할 것도 없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살신성인하는 의료진, 그리고 확산 방지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분들과 헌신하는 봉사자들, 이에 호응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하나하나가 거룩하고 아름답고, 슬프다. 슬픔과 고통의 바로 그 자리에서 감동과 의지가 더 화려하게 피어나는 것을 볼 때, 각성과 참회, 감사와 희망이 교차한다. 각국에서 취해지는 조치들은, 인류 역사에서 ‘마지막 세계대전’이던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임에 분명한 극단적인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바야흐로 1백 년 만에 맞이하는 세계적인 대전(大戰) – 3차 세계대전의 상대가 ‘적국(敵國) 인민(人民)’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라는 사실은 한편으로 공포감을 주지만 한편으로 (박멸의 대상이 ‘人間’이 아니라는 점에서)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1차, 2차 대전과 마찬가지로 이번 세계대전도 근대 세계의 폐해(인간의 삶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바이러스의 침투 경로가 확장된 것)로 인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제3차 세계대전’은 근대 세계의 종말을 재확인하고, 기대컨대는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다시 개벽 시대’를 재조명하는 등불이 될 것이라고 전망해 본다.

앞서 말한 안도감은 근원적으로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 인류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통의 고난 경험’을 공유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나의 種으로서의) ‘인류’에 다시 한 걸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는 데서 온다. 그것은 인류[人間]를 지금 당장, 지구상에서 현재보다 더 높은 위치로 올려놓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인류가 지구상의 생명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즉 N분의 1로서 자리매김하여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 스스로의 생명력을 고양하는 길이고, 가장 ‘자연스러우며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태도이며, 또한 가장 지속가능하고 행복 지향에 적합한 현실-존재 인식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지난 20세기 내내 끊임없이 경계의 대상이 되어 왔던 인간중심주의(human-centralism), 시나브로 그 입지가 좁아져 왔으나 여전히 현실적으로 위력을 떨치고 있는 그 파멸적 근대 문명의 기저에, 분명한 구멍=문(門)을 만드는 일이다. 이 문을 통해 우리 인류와 지구생명공동체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을 일러 ‘다시 개벽 시대’로의 진전이라고 하면, 적확할 것이다. 이 개벽에 즈음해서야 비로소 우리는 ‘인류’가 된 것이다.

기회는 늘 위기와 함께, 낙관적인 상황은 언제나 비관적인 상황과 함께 온다. ‘인류공동체, 지구공동체, 생명공동체’를 존재/인식이 거의 일치하게 경험/인식하는 ‘다시 개벽 시대’의 도래와 함께, 우리는 이제 인간이 치명적인 멸종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되었으며, 사방이 생명에 위협적인 지뢰투성이인 지역/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실감하게 되었으며, 전 지구적 차원에서 그리고 전 인류의 지평에서 공통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목격하고 경험하고 공감할 수 있는 물질적, 정신적, 소통적(疏通的) 토대가 구축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인류) 집 문 앞에 배달된 택배(과제)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되겠지만(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만), 그 종식을 알리는 ‘카톡 알림’은 그다음 택배(‘코로나20’일지, ‘코로나v.2’일지 모르지만)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초인종을 소리에 불과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 세계의 수많은 전문가들이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인류는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위험 요소에 더욱 빈번하게 노출될 것이며, 그 위험의 강도도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다시 말해 코로나19로 인한 지금의 사태는 빙산의 일각으로, 그 아래에는 훨씬 더 크고 무거운(무서운) 위험 요소들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대기 중이라는 것이다.

답은 언제나 문제 속에 있기 마련이다. 코로나19의 대량 감염국 중국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중국보다도 빠른 속도로 확진자가 늘어나던 2월 초순경만 해도 세계인의 의심스런 눈초리가 한반도로 쏟아졌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국민들은 끊이지 않는 돌발변수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침착하고 의연하게 사태를 수습해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은 역전되었다. 이제 전 세계 각국에서 한국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한국을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 지구촌을 감싸고돈다. 이번 사태 직전에 있었던 BTS(방탄소년단)의 K-POP 세계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에 이어서, 현재의 상황은 대한민국의 현 위치가 우연적이고 일회적인 것이 아님을 확인하게 하는 또 하나의 쾌거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자화자찬으로 치달아서도 안 되고, ‘국뽕’으로 흘러서도 안 된다. 분명한 것은 이것은 우리끼리 알고, 우리끼리 (이 성공적인 대응의 혜택을) 누리고 말 사태는 아니라는 점이다. 작더라도 실질적이고 실제적이며 실용적인 의미를 발굴하고, 발견하고, 발전시켜 인류 전체에 베풀어 나가야 한다(弘益人間 在世理化). 필자가 보기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에게 이번 사태는 ‘세월호 이후’와 ‘촛불 혁명 이후’의 일로써 다가왔다. 재난이 일어나는 방식(‘세월호’ ‘메르스’)을 잊지 않고, 평화 시에 전쟁을 준비하는 그 자세로 방역 시스템과 의료체계를 정비해 왔으며(의료체계-의료보험제도 등-의 대부분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갖추어진 것이지만, 대한민국의 메이저 의료기관은 메르스 이후 유사한 사태에 대비한 훈련을 주기적으로 진행해 왔다), 또 그것을 극복하는 한국인 특유의 방법론(‘촛불혁명’의 그 위대한 참여정신)이 결합되어서 이번 코로나19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시민)의 반응과 대응은 전 세계 국가에게 모범이 되고 온 인류에게 희망이 될 여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는 우리가 세월호와 아이들을 잊지 않은 덕분[性靈出世]이며, 메르스의 비극을 외면하지 않은 덕분[臥薪嘗膽]이다. 무엇보다 문제에 정면으로, 정직하게, 정성껏 대응하는 것이 그 문제 해결의 정 도(正道)라는 것을 생생히 보여준 점이, 이번 사태 진전에서 대한민국의 첫 번째 인류사적인 기여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이번 사태로 인하여 목숨을 잃은 분들, 고통과 고난을 겪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후폭풍 (특히 경제나 생활-학생들의 학사일정 등)’ 등을 생각할 때, 이번 사태는 지난 세월호나 메르스(에볼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전면적인 전환의 숙제를 우리에게 지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국내나 동아시아 일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전 인류에 걸쳐 전면적으로 전개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개벽신문>을 통해 여러 차례 밝혔듯이 ‘촛불혁명’은 120여 년 전의 ‘동학농민혁명’의 경험으로부터 이어져 온 면면한 이력을 갖는다. 동학농민혁명은 ‘서세동점’의 정점과 ‘동학의 다시개벽’의 전망이 부딪친 사건이며, 그런 점에서 ‘근대세계’와 ‘근대 이후 세계’, 즉 다시개벽 시대의 전초전에 해당하는 사건이었다. 이번 코르나19는 바로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 인류가 도달한 근대세계, 그 대서사의 한 단락이 매듭지어진다는/지어져야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데에 첫 번째 의미가 있다. 이번 사태에 즈음하여 서구 소위 ‘선진국’ 또는 ‘서구사회’가 보여준, ‘결과적으로’ 지리멸렬함과 그로 인한 시민들의 피해는 단지 국가 지도자의 입장 차이나 국가 시스템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선진문명’이 놓여 있는 자리, 딛고 있는 토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본다. 한국 정부와 국민(시민)에 주어진 숙제는 이 위기를 ‘아국운수(我國運數) 먼저 하여’ 극복할 뿐만 아니라, ‘포스트 코로나’의 세계체제를 어떻게 재구축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과 예시, 그리고 비전을 제시해 주는 데까지 닿아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바로 ‘다시개벽’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속히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고,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또 돌아가서 도 안 된다. 문자 그대로 ‘널뛰듯’ 폭락과 폭등을 되풀이하는 증시 상황은 이번 사태에 즈음한 경제의 팬데믹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오늘 현재(3월 말) 시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3,000조원이라는 거액의 예산을, 이번 사태로 인해 ‘위기’에 빠진 경제가 더 깊은 수령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아 내기 위해 책정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것도 ‘우선’ 그 정도이고, 여차 하면 후속 투입도 마다하지 않을 기세이다. 어느 누구랄 것 없이, 어떤 부문이랄 것 없이 부도와 파산의 위기에 내몰리는 기업, 자영업자와 그에 딸린 수십, 수백만의 경제 인구를 생각할 때, 아니 사실은 전 세계 모든 인류의 삶(생활, 경제)에 영향을 끼칠 이번 사태의 후폭풍을 생각할 때 경제 붕괴가 일어나는 일을 상상할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인 것처럼 보기는 한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 보면, 이번 사태 수습의 목표점이 사태 발생 이전, 물질적 풍요 문화적 만끽이 난무하던 그 상황, 이른바 ‘일상으로 돌아가기’, 경제적으로 발전을 거듭하던 그 시절로의 복귀하는 것이어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멈춤!’의 첫 번째 경고판을 지나친 후과가 이 정도이다. 두 번째 경고판이 있을지, 곧장 절벽이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제라도/이제야말로 근대세계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근대문명, 현대문명, 물질문명의 질주를 멈추고 진로를 수정하는 일이다. 백척간두진일보란 바로 지금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벼랑 끝, 벼랑과 벼랑 사이, 그 너머에는 ‘다시개벽’의 새 시대가 놓여 있다. 과거로의 회귀, 예전 일상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새로운 인간-하늘 관계, 새로운 인간-인간 관계, 새로운 인간-만물 관계를 경천(敬天)과 경인(敬人)과 경물(敬物) 같은 개벽적 관점에서 모색하고 실천하는 것만이, 이번 사태에 즈음하여 우리가 치른 고통과 희생에 값하는 길이다.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대한국민(시민)’의 지혜로운, 은혜로운, 감동적인 일거수일투족 – 전 세계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일동일정(一動一靜)에 이미 그 씨앗이 싹트고 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자가 격리, 사회적 거리 두기, 통행금지, 여행금지, 국경폐쇄, 도시봉쇄 들은 ‘잠시 멈추어 보자’는, ‘참회의 자리/시간을 만들자’는, 보이지 않는 그 속에서 보이는 것을 찾고, 들리지 않는 그 가운데서 들리는 소리를 들어보자는, 홀로가 됨으로써 다시 동귀일체(同歸一體)를 생생(生生)하게 생득(生得)하는, 전일적(全一的) 생명으로서의 인류 양심(養心)-하늘[天]의, 거룩한 개벽의 소리이다. 하나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 ‘다시개벽의 그 시대’가 열리고 있다.

 

박길수

월간 ‘개벽신문’의 주간,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대표

금, 2020/04/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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