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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사태와 광주항쟁의 차이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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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사태와 광주항쟁의 차이 3가지

admin | 화, 2019/11/19- 23:19

[경희대 임채원교수는 최근 자신의 경향신문 기고문 “시진핑의 헛된 꿈 중국몽”에서 중국정부가 홍콩시민의 민주주의와 자치 요구를 무시한 채 강경대응을 지시함으로써 ‘일국양제’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임교수는 지금의 홍콩 정세를 완전히 거꾸로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완강한 폭력적 저항을 계속하고 있는 일부 홍콩시위대야말로 행정수반에 대한 완전한 ‘직선제’를 요구함으로써 사실상 ‘홍콩독립’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6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홍콩사태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한국 언론들은 그것을 ‘제2의 광주항쟁’이라는 시각에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작금의 홍콩 사태와 80년 광주항쟁은 다음 몇 가지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첫째, 광주항쟁은 전두환 신군부의 등장에 맞선 ‘민주화 투쟁’이었는데 반해, 지금의 홍콩 사태는 이미 민주주의가 고도로 실현된 기반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홍콩은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오랜 기간 민주주의가 잘 정착된 국제적 개방도시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동안 반년 넘게 별 탈 없이 진행되어 온 집회와 시위, 그리고 그것들이 자유롭게 취재되고 시시각각 해외로 보도되고 있는 활발한 언론 활동은 지금 홍콩의 민주주의 수준이 어느 정도에 와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80년 당시의 광주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널리 알려진 바대로, 홍콩은 기본적으로 ‘일국양제(一國兩制)’ 하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자치’를 보장받고 있다. 예컨대 독자적인 홍콩화폐를 발행하고, 경제정책에 있어선 완전히 독자적인 정책결정이 이루어진다. 또 자체 경찰병력을 보유함으로써 일상의 치안유지를 책임지며,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교육체계와 그 내용 역시 스스로 결정한다. 일각에선 이 때문에 과거 영국 식민지하의 ‘서구 우월주의’ 교육 잔재가 아직도 청산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이다. 사실 이 점은 최근 학생들이 왜 반(反)중국 정서와 친 서구성향을 보여주는지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하다. 어떻든 입법, 경제, 행정, 치안, 교육 등 제 방면에서 이 정도의 높은 자치를 누리는 도시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광주항쟁은 순수하게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주된 것이었다고 한다면, 홍콩은 사실상 ‘독립’에 대한 요구를 제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홍콩 시위대가 표면상 요구하고 있는 것은 행정장관에 대한 ‘직선제’이다. 하지만 이들 시위대가 이미 여러 차례 공식적으로 천명했듯이 이 같은 직선제는 사실상 ‘홍콩독립’에 대한 요구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한번 생각을 해보자. 홍콩과 같이 고도로 개방된 국제도시에서, 또 거기에는 미국 시민권을 가진 자가 6만여 명이고, 영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3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 만약 행정수반에 대한 ‘직선제’까지 이루어진다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비근한 예로 요즘 스페인 카탈루냐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들 수 있다. 그곳에서는 지난 2017년 완전한 주민 직선제로 선출된 행정수반과 각료들이 독립을 선언했다가 스페인 정부에 의해 거부당하고 체포당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최근 대법원에서 반역죄로 기소된 이들에 대해 중형이 선고되면서, 카탈루냐 주민들은 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와 연일 과격한 항의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홍콩에서도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만약 독립 성향의 후보가 당선된다면 홍콩은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할 것이고, 중국정부는 결코 그것을 허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홍콩은 자칫 ‘내전’이라는 커다란 비극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갈 수 있다. 우리가 일찍이 이라크, 우크라이나 그리고 시리아 등지에서 무수히 보아 왔던 사태가 바로 한반도 가까운 인근에서 재현되게 되는 것이다. 중국궐기 저지를 제일의 국책으로 삼고 있는 미국과 서구세력이 배후에 있는 한 이 같은 시나리오는 결코 공상 만은 아닐 것이다. 원래 문제의 발단이었던 ‘송환법’이 이미 공식 철회되었음에도 아직까지 홍콩 사태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결국 지금의 홍콩 사태는 그 성격에 있어 단순한 민주주의 투쟁이라고는 볼 수 없다. 사실상 그것은 ‘일국양제’를 인정하는가 부정하는가의 문제라고 보여 진다. 이 점에서 80년 광주 민주화운동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 광주시민들은 비록 신군부의 만행에는 분노하였지만, 광주와 전라도의 독립을 추호도 꿈꾸지는 않았다.

셋째, 언론의 보도태도에 있어서의 차이점이다. 80년 당시 한국 언론들은 광주항쟁에 대해 ‘친정부’ 일색으로 보도하였다. 그것은 당시 언론통제 하에서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홍콩 사태에 대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보도가 그와는 정반대로 ‘친시위대’ 일색인 것은 의외라 할 수 있다. 이는 한편에선 앞서 지적한 홍콩에서의 취재와 언론보도가 매우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면을 보여줌과 동시에, 다른 한편 그것을 보도하는 언론 매체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사실 광주항쟁 당시 한국 언론들은 봉쇄되지 않았다. 조중동과 KBS 등 신군부 편에 섰던 언론매체들은 시위대가 군인들한테 돌을 던지고 불을 지르는 것과 같은 정부쪽에 유리한 장면만을 보여주었다. 지금 홍콩 사태에 대해서 우리가 언론을 통해서 접할 수 있는 것은 시위대에 유리하고 우호적인 장면뿐이다. 그렇지만 직접 중국어 인터넷매체를 통해서 보게 되면 홍콩정부와 경찰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규모 역시 상당히 큰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홍콩 빅토리아만에서 경찰의 질서수호 노력을 격려하는 어선이 플랭카드를 내걸고 항해하는 모습, 일부러 경찰서를 방문해 격려와 위로를 보내는 시민집단의 행렬이 이어지는 장면도 목격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와 관련된 보도들은 한국 언론에선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시위대가 폭력화하는 것을 비판하는 홍콩 시의원이 백주대낮에 테러 당해 병원에 실려 가거나, 신화사 기자가 폭행당하는 사건은 국내에선 아예 무시되거나 심지어는 시민들의 ‘정당한’ 적개심의 표현으로 미화되기까지 한다. 이는 시위대 중 누군가가 경찰에 의해 부상당하는 장면에 대해선 일제히 대서특필하는 태도와 선명하게 비교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홍콩 사태의 보도와 관련한 이 같은 언론의 공정성 문제는 물론 한국 언론만의 문제는 아니다. 앞서 잠깐 언급한 카탈루냐 사태와 비교할 때 그 점은 더욱 선명하다. 사실상 양쪽 모두 주민자치에 기반 한 ‘분리 독립’을 지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홍콩처럼 카탈루냐 사태를 줄기차게 보도하는 언론매체를 한국과 서구에선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 같은 편파보도는 자칫 한국 독자들의 공정한 판단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민플러스, 2019년 11월 18일 (필자가 일부 수정후 다른백년에 게재하는데 동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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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코로나 폐렴역병이 왜 세계를 개변시키는가? 이는 현실문제일 뿐 아니라 더욱더 이론의 문제이기도 하다. 현대 국제관계 이론과 역사 서술 중에서, 바이러스 전염병의 각도에서, 역병이 도대체 인류의 기본 사회생활, 국가사이의 권력경쟁 및 이익분배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총결산하는(总结) 글은 거의 없다(少有).

그렇지만, 이번 신코로나 역병은 민족, 국적, 성별, 피부색, 연령 등을 구분하지 않고, 이미 세계 200여 국가와 지역에 확산되었다. 이로써 인류의 위기와 재난의 서술을 새롭게 다시 쓰게 되었고, 우리의 세계정치이론 인식과 역사경험을 변화 및 개선시켰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신코로나 역병은 다음의 4가지 방면에서(从以下四方面) “전대미문”적으로 세계를 개변시키고 있다.

첫째, 신코로나 폐렴역병이 인류의 경제질서와 경제활동에 가져온 충격은 전례가 없을 정도이다(前所未有的). 이 전염병 때문에, 세계 절대 다수 국가가 자가격리를(居家隔离) 경험하고, 또 사회적 거리두기를(社交距离) 유지하고, 심지어는 도시봉쇄까지(封城) 해서, 경제활동 중의 소비수요는 압축을 받아(被压缩到了) 생활필수품 공급에 그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산업과 제조업은 모두 정상적 운영을 하지 못하고, 자본도 역시 명확한 투자방향을 제대로 못 잡고 있다. 이는 경제활동의 모든 요소가 정지상태(停摆)에 놓여 있음을 말한다.

신코로나 역병이 궁극적으로 어떠한 전 지구적 경제쇠퇴를 가져올지에 대해, 어떤 사람은 앞으로 1929-1933년 대공황(大萧条)이후 최대의 세계 경제위기가 될 것이고, 심지어 어떤 이는 대공황시기에 비해 더 엄중할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둘째, 신코로나 폐렴역병은 대국간 전략경쟁을 모든 요소의 대결시대로 진입하도록 만들고 있고, 현재의 중·미관계 악화는 이의 전형적인 보기이다. 우리들이 과거에 인식한 중·미관계의 경험적 사실은 “좋긴 하지만 좋아 보았자 얼마나 좋아지겠는가? 또 나쁘긴 하지만 나빠 보았자 얼마나 나빠지겠는가?”였다(“好也好不到哪里,坏也坏不到哪里”). 그렇지만 오늘날의 중·미관계에는 이미 거대한 “범주적(파라다임의, paradigm) 변화(范式变化)”가 발생해버렸다. 정말로 총체적 대결의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경제나 군사뿐 아니라 과학기술협력, 인문교류, 각자 국내시장과 경제관리체계 등의 방면에까지 포괄하여, 모두 충돌과 대결의 추세로 나아가고 있다. 중·미관계가 오늘날 악화되는 과정 중에 가장 위험한 요인은 감정화와 정치화이다(情绪化和政治化). 특히 미국정부는 “잘못을 남에게 떠넘기기(甩锅)”위해 끊임없이 중국의 거동에 대해 “낙인찍기(污名化)”를 해왔다. 중·미관계는 “최악은 아니지만, 단지 더욱 악화될(没有最坏,只有更坏)” 가능성이 높다.

셋째, 신코로나 폐렴역병이 냉전종식 근 30년래 전대미문의 정치와 사회 사조에 새로운 격동과 기복을(激荡起伏) 가져왔다. 냉전종식은 자유주의 가치관과 그 실천의 세계화를 가져오도록 했고, 구체적으로 시장에 그 요소를 배치하고, 가치 및 산업의 연계구조의 배치를 통해 세계화를 구현했다. 더 나아가 각국 정치, 사회의 협치 프레임과 중대한 초국가적 의제설정과 협치(관리, 거버넌스 governance) 기제의 세계화도 가져왔다.

신코로나 역병이 폭발하면서, 유럽연합(EU)과 같은 지역 협치(거버넌스) 기제가 엄중한 도전을 받고 있다. 이뿐 아니라 더욱더 “미국우선주의”의 협애한 대중영합주의(狭隘民粹主义, 포퓰리즘) 때문에 국제제도의 규칙을 기초로 하는 전 세계적 협치(글로벌 거버넌스, global governance) 역시 심각하게 쇠약해지고 있다. 역병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 사회 및 개인의 관계는 중대한 역사적 조정을 겪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정부의 개입과 자원배치 능력을 강화시키는 “신국가주의”가 전 세계 각지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넷째, 신코로나 폐렴역병이 전세계의 여론방향을 재(再)설정하고(다시 빗고, 重塑) 있다. 전대미문의 여론 “히스테리화”를 조성하고, 민족주의, 인종주의, 배외주의가 다시 일어나고 있다. 세계화 시대의 자유 및 상호개방과 국가와 지역을 넘어선 사회적 교류왕래는, 신코로나 사태 이후, 엄중한 타격과 제한에 직면해 있다.

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의 중요 경제체 사이에 상호 방어 장벽을 유발하고, 전략경쟁은 경제, 사회 및 여론 등 영역에까지 전면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래서 각국이 가치와 관념에서 상호 경계와 장벽을 치는 새로운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일부 아프리카 국가는 서방 매체의 영향을 받아 “중국차별론”으로 대응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서방매체는 더 나아가서 도발의 기회를 잡고 중국에게 아프리카 국가의 채무를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일부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정체를 강요당하고 있기도 하다.

신코로나 폐렴역병은 전 세계적으로 4단계의 “충격효과”를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각각은 “공공위생위기” “경제와 민생위기” “사회위기” 그리고 일부 국가에 나타나는 “정치위기”라고 할 수 있다. 이제까지 충격은 제1, 제2 단계에 처해 있었고, 지금은 제3단계로 향해 건너가고 있는 이행기다. 제4단계는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신코로나 역병은 어떻게 세계를 개변시킬까? 필자는 다음 3개 방면의 개변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고 본다.

하나의 방면은 세계가 “신 전국시대”로 진입해서, 국가 간 경쟁, 방어, 경계 등의 전선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장기화(持续拉宽和拉长)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전에 우리는 언제나 “단극” 또는 “다극”을 이야기 해왔지만, 신코로나 폐렴역병은 앞으로 “극”의 개념을 전례가 없을 정도로 공허하게(空前虚化) 만들 것이다.

국제구도는(国际格局) 더 이상 간단하게 “극”이란 개념을 주체의 권력분배 구조로 삼을 수가 없다. 오히려 이해관계의 경계, 방어, 충돌 등이 더욱 세밀해 지고, 전면적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 결과 국제구도는 앞으로 국제질서의 주도적 영도 역량이(리더십, leadership) 부족해지고, 국가 간 다(多)영역, 다(多)전선, 다(多)차원의 “옥신각신 다투는(明争暗斗)” 신시대가 열릴 것이다.

우리가 본래 적극적으로 만들었던 브릭스(BRICS)국가협력기제, 상하이협력조직기제, 신흥경제체협력기제 등 모두가 앞으로 매우 많은 새로운 도전과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국제역량에서 “동승서강东升西降—동양은 상승하고 서양은 하강하는” 구도(格局) 또한 중대 시련을 겪을 것이다. 브릭스국가와 신흥경제체제는 역병발생으로 비교적 큰 충격을 받았고, 남아프리카, 브라질, 인도의 화폐는 지난 2개월 동안 대폭 평가절하 되어 사람들이 우려하게 되었다.

미래의 세계 권력과 이익구조는 다시 재조직될 것인가? 우리는 이 “신(新)전국(戰國)시대”를 어떻게 넘길 것인가? 이러한 도전은 전대미문이다.

또 하나의 방면은 대국의 전략경쟁이 더욱더 엄준한 신단계로 진입한다는 점이다. 이미 중국과 미국은 “신냉전” 진입을 시작한 바와 다름없는 것 같다. 이 문제는 여전히 논쟁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현재의 추세를 두고 볼 때, 중·미관계는 “신냉전”으로부터 아마 한 걸음 떨어진 정도로 다가 와 있는 것 같다(只有一步之遥). 만약 미국 트럼프정부가 역병 방역의 실패를 덮고 또 선거에서 경쟁하기 위해, 중국 “낙인찍기”를 계속한다면, 중·미는 역병 이후 시대에도 아마 “신냉전”이라는 악마의 그림자에서(魅影) 벗어나기는 힘들(难以摆脱) 것이다.

“신(新) 냉전”과 구(舊) 냉전의 최대 차이는 국제체계가 다시는 간단하게 새로운 진영 편입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과 미국은 경제와 상업에서 여전히 서로 뒤얽혀(交集, 교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면적인 적대는 아마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在所难免). “신냉전”은 중국이 원하는 바가 결코 아니고, 더욱이나 중국굴기의 전략이익에 부합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트럼프정부가 만약 “신냉전”을 한사코(硬要) 중국에 강압하면(强加于中国), 우리로서도 물러날 길이 없게 된다(无路可退)!

또 다른 하나의 방면은 세계 경제 질서가 대규모로 새로 짜질 수 있고(重组), 세계화 진행의 조정 또한 피할 수 없는 추세(势在必行)라는 점이다. 1990년도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 빈곤인구 수는 끊임없이 내려가고 있다. 그렇지만 신코로나 폐렴역병은 세계적으로 4-6억 빈곤인구를 새로이 증가시킬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숫자는 계속 확대될 것이다.

게다가(再加上) 새로운 세계적 가뭄과 신코로나 폐렴역병의 반복 출현 가능성으로, 전 세계적으로 근 40개 국가에 엄중한 경제후퇴가 나타날 것이다. 신코로나 역병은 전 세계 발전의 현존 구도를(现有格局) 개변시킬 것이다.

신코로나 폐렴역병에 의한 세계의 개변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이에 우리들은 사상, 심리, 지식 등에서 충분한 준비를 갖출 필요가 있다.

 

출처: 新冠疫情会如何改变世界 (환구시보 게재)

역자: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

중국 환구시보에 실린 글을 강정구 동국대 명예교수가 번역하여 통일뉴스(20.05.09)에 실린 글로 역자의 동의를 얻어 본지에 실린 것임.

저자: 주펑(朱锋)

난징대학 국제관계연구원 원장 / 난징대학 중국남해공동혁신연구센터 소장

토, 2020/05/30-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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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이중순환고리”전략은 1) 국내의 소비수요가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동시에 2) 다른 국가들과 장기적인 교역을 확대하고 발전시키자는 개념으로 매우 합당한 근거를 지니고 있습니다.

14억 인구라는 내수시장의 거대한 잠재구매력을 활용하는 것은 장기적인 성장의 지속을 보장합니다. 기술혁신과 발전에 대한 맞춤형 투자는 최첨단 제조분야를 활성화시키고 선도적인 반도체생산의 자급체제를 형성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일대일로BRI를 통한 교역과 투자활동의 확대를 통하여 다른 나라들과 경제관계를 더욱 확장하고 다양화시킬 수 있으며, 미국의 통제를 받는 서구 및 일본 등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해 집니다.

“이중순환고리”라는 전략개념은 지난 5월에 처음으로 언급되었습니다만, 미중 간에 악화되는 무역 기술 및 지정학적 대결로 인하여 곧바로 신속하게 현실정책으로 채택되었습니다. 미국의 제재와 진행중인 무역단절decoupling의 충격을 완화시키려면, 내부적 순환고리 즉 국내의 생산과 분배와 소비를 경제성장의 엔진으로 삼아야만 합니다.

“내부순환고리”형성의 핵심은 혁신적인 제조기법의 활성화와 개인소비의 진작에 있습니다. 1.4조 달러 상당 투자를 향후 5년간 선도적인 반도체와 첨단기술 개발에 집중하여 내수의 공급사슬 구조를 형성하고 기술적 자립을 기획하는데 있습니다.

동시에 현대적 도시화를 추진하여 현재의 5억 명에 달하는 도시주민에 더하기 이주노동자들을 안착시키면 전체 가계의 소득이 늘어날 것이고 자연히 개인소비가 증가할 것입니다.

과거에는 내부의 순환고리가 외부의 순환고리의 지원을 받아 첨단 기술분야의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외부의 기업들에게 제품을 공급해주는 공급사슬을 강화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루어 왔습니다.

2021년부터 5년간 시행될 “이중순환고리” 전략은 합당할 뿐만 아니라 매우 실제적입니다. 예를 들어 서구경제권의 내수 규모는 GDP대비 70% 수준인데 반하여 중국의 내수규모는 40%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내수를 확장할 수 있는 잠재력은 상당합니다 (참조: 한국의 GDP대비 내수규모도 49% 수준으로 매우 빈약한데, 이는 양극화와 부동산투기에 기인한다).

이에 더하여 중국인 가계저축은 가처분 소득의 25% 수준으로 거대한 규모이며, 부채 수준도 아주 양호하다. 소비세를 낮추거나 투자를 진작하는 등 적정한 동기를 부여한다면, 14억에 달하는 소비자들은 지갑을 활짝 열어 소비를 학대하면서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중국농촌인민들이 도시거주민으로 전환하면 개인소비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늘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농촌에 머물던 시절처럼, 더 이상 자가소비용으로 농사를 짓지 않고 의복을 만들거나 생활용품을 스스로 만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지역의 거점도시들이 형성되면, 이 자체가 지역의 경제발전을 가져다 주면서, 건설수요와 가전제품의 생산, 물류수송, 의료시설 그리고 부수적인 산업에 투자를 야기시킬 것이다. 사업활동과 고용이 늘어나면서, 가계의 소득 역시 증가하면서 소비주체인 중산층이 확대된다.

1.4조 달러가 혁신분야에 맞춤형으로 투자되면, 선진적 반도체의 생산과 개발뿐만 아니라 첨단 기술분야 역시 자급자족하게 될 것이다. 상기 수치의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면,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총명한 과학인재들이 중국으로 몰려들 것이며, 매년 수백 만 명의 대학졸업생들이 첨단기술의 노동시장에 투입될 것이다.  상기의 대규모 인력 중에는 소수이겠지만 창의적이고 뛰어난 인물들이 배출될 것이고, 이에 따라 연구개발 분야에 양적 질적으로 인재들이 충원될 것이다.

“외부순환고리”이라는 견지에서 보면, 중국의 발전을 촉진하는 해외시장이 이미 광범하게 존재하며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일대일로BRI 사업은 팬데믹과 미국의 악선전에도 불구하고 확장을 거듭하여 왔다.

북경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138개 국가들과 30여 개의 국제기구들을 포함하여 사회인프라와 문화 분야 등 광범한 지역과 분야에서 200개가 넘는 협약이 체결되었다. 미국의 확고한 동맹이라고 알려진 국가들도 일대일로BRI라는 역마차에 몸을 실었는데, 이는 경제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나 이익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당연한 것이다.

일대일로BRI에 참여하는 국가들과 중국 간의 쌍방향적 교역과 투자는 2019년 한 해에 1.9조 달러와 350억 달러에 달하였다. 이러한 수치는 2020년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는데 현재 중국만이 양의 성장을 보이고 있는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악의에 찬 선전에도 불구하고 점점 많은 국가들이 중국과 협력하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내 미국의 대부분 기업들 역시 중국에서 사업을 계속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중국에서 떠나도록 압력을 가한 트럼프의 노력은 비참할 정도로 실패하였다. 중국 내 미국상공회의소 회원사의 90% 이상이 중국에 잔류하면서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이중에 4%정도의 기업이 중국을 떠나기로 결정하였는데 이들은 주로 노동집약 제조업 분야의 사업을 운용하면서 더 이상 저임의 노동자를 구할 수 없는 것이 떠나는 실제적 배경이다.

중국을 떠나는 것은 경쟁력의 상실뿐만 아니라 수익성이 보장된 거대한 시장을 상실하는 것이다. 전반적이고 효율적인 사회 인프라 체계와 적정한 공급-사슬망을 갖춘 중국보다 제품을 생산하는 비용이 효과적인 국가군은 미국을 포함하여 전세계에 찾아 보기 어렵다.

실제로 미국의 첨단기술회사들의 가장 큰 수요처인 중국수요를 무시하는 트럼프는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내에서도 중국기업들의 활동을 방해하고 저지하면서 퀄컴과 같은 기업과 첨단 혁신기업들이 이미 부담을 크게 지고 있다.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케인즈가 중국이 “이중순환고리”라는 전략을 채택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신의 이론적 가치를 공산국가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즐거워할 것이다.

 

출처 : 중국국제방송 CGTN on 2020-09-14.

Ken Moak

중국 등 아시아권의 대학에서 33년 간 경제이론과 공공정책 그리고 세계화 등을 강연하였으며, 현재 CGTN의 국제경제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2015년에 “China’s Economic Rise and Its Global Impact”를 공저하였다

수, 2020/09/23-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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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은 죽은 경제학자들의 삶에 얽매여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간의 시스템을 변화시키려면 시간과 노력,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힘을 얻고 지배력을 갖추면서 굳어진다. 기득권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자 한다. 그러나 복잡한 시스템은 가만히 멈추어 있지 않는다. 현 상태를 더 길게, 더 강하게 유지할수록 시스템은 더 심하게 뒤틀리다가 결국에는 부서지고 변한다.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이다.

기존의 ‘무제약-고삐풀린’ 자본주의’가 바로 이러한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 자본주의는 수년간 손이 닿는 모든 것을 움켜쥐었다. 천연자원을 착취하고 생태계를 망가뜨렸다. 우리의 시간, 노력, 심지어는 희망과 꿈까지 앗아갔다. 자본주의는 이것들을 마치 극소수 기득권의 체계적 시스템 속 자신들만의 소유물처럼 여겼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토대를 이루는 생각은 맹목적일 정도로 단순하다. 이익 극대화, 이 한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그러한 이익 추구가 다수의 이익이라는 거짓말 하나만 받아들이면 된다. 믿기 어려울지 몰라도 비판도 없이 따르다 보면 나의 이익이 곧 선의인 것처럼 믿게 되는 속임수가 하나 숨어있다. 이렇듯 많은 이들이 기꺼이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은 업턴 싱클레어(Upton Sinclair)의 유명한 농담 한 구절에 잘 드러난다.

“고용주가 자신의 이익을 이해하지 못하면, 종업원들에게 월급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도 어렵다.”

이러한 생각들이 터무니없는 재물숭배(cargo cult)를 낳았다. 사람들에게는 마치 하늘에서 만나가 떨어질 것이리라 말하면서도 가진 자들은 늘 더 많은 것을 가져가려 한다. 환경파괴의 시대에도 여전히 성장이 정답이라 한다. 그러나 성장은 현재 목격하듯이 코로나 대유행과 함께 무너져 내리고 있는 불안정한 시스템이다. 우리의 식량 시스템이 대표적인 예다.

팬데믹 초기부터 도축공장의 상태가 강력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문제는 일어나고 있었다. 2020년 4월 말에는 노동자 5,000명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고 도축장 십여 곳이 문을 닫았다. 가축 수백만 마리는 식용이 아닌 목적으로 도살 당했다. 재무적 손실을 경감하기 위해서였다. 가난의 배고픔이 만연하고 있을 때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스템은 재무적 수치 외의 문제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팬데믹 이전, 미국의 식량부족에 처한 인구는 어린이 1천1백만명을 포함, 총 3천7백만명이었다. 다시 말해 이들은 건강한 음식을 살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미국 전역의 푸드뱅크들을 아우르는 피딩 어메리카(Feeding America)의 2020년 6월 추정에 따르면 추가로 1천7백만명이 식량부족의 그룹에 편입될 위기에 처해있다.

지난 4월 12세 이하 아동을 키우는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음식이 떨어져 간다고 응답한 비율 및 음식을 살 돈이 부족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약 40%에 달했다. 기존에도 15-20%로 심각한 수준이었는데 훨씬 가파른 증가세를 보여준 것이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수백만 마리의 동물는 헛되이 죽어 가고, 수백만 명의 사람은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됐다. ‘훌륭한(수익성있는) 기업 결정’의 결과였다.

가계 경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2019년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무언가를 팔거나 대출을 받지 않으면 500 달러도 벌지 못하는 미국인이 전체 인구의 40%에 육박했다. 다른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9%가 월급에 의지해 근근이 살아갈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실업수당 청구가 4천6백만 건을 넘어서기 전의 수치다. 그 사이 미국 부유층의 총 자산 가치는 6천억 달러 이상 상승했다. 같은 기간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240억 달러를 벌었다.

이를 인종으로 분류해보면 상황이 더욱 골치 아프다. 흑인 가정과 히스패닉 가정의 저축 규모는 백인 가정에 비해 극히 미미하기 때문이다. 주거형태에서도 이들은 주택구입자가 누리는 법적 보호장치에서 소외된 세입자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 공동체에는 징역형 선고 만큼이나 퇴거명령의 바람도 유독 가혹하다. 그 와중에도 월세 날짜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2020년 4월에는 3분의 1에 가까운 세입자가 제때 임대료를 납부하지 못했다. 2019년 대비 상당한 증가세다. 대량 실업의 여파로 각 주 정부는 퇴거 유예 조치를 도입했으나, 이러한 보호장치의 유효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글로벌 팬데믹과 함께 수백만명이 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인가?

모두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외치는 미국의 현재 시스템 속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불평등은 선택된 재앙이자 피할 수 없는 실패이다.

답은 간단하다. 현재와 다른 상황은 자본주의의 핵심적 전제인 이익 추구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더 많은 이익, 그 한가지 재주 밖에 부릴 줄 모르는 광대이다.

오랫동안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돈을 못 버는 것은 개인의 탓이라고 말하는 경제 시스템의 늪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욱더 열심히 일했다. 이제는 그것이 거짓임을 안다. 모두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외치는 이 시스템 속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불평등은 선택된 재앙이자 피할 수 없는 실패이다.

자본주의를 다시 생각해 볼 시점이다.

기존의 시스템은 죽어가고 있다. 다만 조용히 죽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계속 이곳 저곳 들쑤시며 더욱 어두운 사회를 만들도록 내버려 둘 수 있다. 하지만 더 나은 세상을 만들도록 싸울수도 있다. 정의와 평등을 향한 움직임이 지역사회에서 시작되고 있다. 현실은 심각하지만 그 안에도 새로움의 기회는 있다.

케네스 볼딩(Kenneth Boulding)은 “유한한 환경에서 무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믿는 자는 미친 사람이거나 경제학자”라 주장한 바 있다. 암스테르담은 생태계의 법칙 안에 살면서 모든 이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방식을 보여준 케이트 레이워스(Kate Raworth)의 “도넛 경제학(doughnut economy)”을 수용하여 그런 미친 생각에서 벗어나고 있다.

인간이 지구의 한계 내에서 살 수 없다면 인류라는 프로젝트는 실패다. 모두의 필요를 충족하지 못하면 인류는 의미가 없다. 이 둘은 정말 중요한 문제다. 레이워스의 생태위기적 생각은 필자의 새 책 “팬데믹 자본주의(Pandemic Capitalism)”과 검토해 볼만한 대안을 근본적으로 관통한다.

봉쇄조치의 맥락에서도 문제를 생각해봐야 한다. 대다수가 집에서 일해야 할 때는 음식을 가져다주고 쓰레기를 처리해주는 사람들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기존의 자본주의가 오랫동안 이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경제 시스템을 다시 생각해본다면 무엇을 귀하게 여기고 무엇에 대해 보상할 것인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적어도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먹고 살 만큼 돈을 벌어야 하지 않을까?

미국 바이오 제약회사 길리어드(Gilead) 사의 코로나 19 치료제, 렘데시비르(Remdesivir)를 생각해보자. 렘데시비르는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제로 날로 그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연구 결과, 해당 약품을 투여한 후 입원 기간이 약 4일 단축되었으며 입원환자의 사망률과 심각한 부작용 역시 약 5-6% 감소했다.

그런데 길리어드가 일반적 투여량에 대한 가격을 $2,340으로 책정하자 소비자는 격분했다. 이에 길리어드 사의 회장은 공개 편지를 통해 해당가격의 결정이 공익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약으로 미국 환자들은 대략 12,000달러의 병원비를 아낄 수 있게 되었고, 평소라면 “약이 제공하는 가치에 맞게 가격을 매겼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업튼 싱클레어와 같은 작가의 눈으로 보았다면 끔찍한 발상이었을 테지만 말이다.

길리어스 사의 방침을 조나스 소크(Jonas Salk)와 앨버트 세이빈(Albert Sabin)에 비교해보자. 이들은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하여 평범한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혜택이 돌아가게 했고 그 결과는 소아마비의 근절로 이어졌다.

소크와 세이빈은 개인의 부를 마다했다. 반면 길리어드 사는 신약 개발을 위해 세금 7천만 달러를 지원받아놓고, 납세자가 그 약을 쓸 때에는 수천 달러를 청구하고 있다. 그 와중에 설정된 가격은 현재의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가능한 ‘할인가격’이라고 말한다.

알다시피 이는 자본주의가 가져온 ‘일반적인’ 그러나 이상한 결과물이다. 필수 서비스와 연구 분야를 기업의 통제에서 분리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와 별개로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s)은 모두가 확실한 수익흐름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한다. 위와 같은 대안을 기초로 경제 시스템을 구동할 수 있다면 이익 경쟁의 감소가 더 많은 소크와 세이빈의 육성을 도울 것이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팬데믹을 계기로 경제 시스템의 폭압은 더욱 날카로운 시선을 받게 되었다. 우리에겐 선택권이 있다. 인간의 존엄과 독립성을 되찾을 것인가?

 

출처: CommonDreams.Org on 2020-07-07.

크리스 오스테라이치(Chris Oestereich)

탐마삿대학교(Thammasat University)에서 사회혁신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인류의 가장 큰 문제들에 주목하는 언론인 단체인 Wicked Problems Collaborative를 설립했으며 co-founded the 시스템 디자인 실험실 Circular Design Lab을 공동 설립했다. 최근 저서로는팬데믹 자본주의(Pandemic Capitalism)가 있다

화, 2020/07/28-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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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팬데믹의 경제위기를 대응하고 부실한 안전망을 구축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한국정부의 취약한 재정수입에 대하여, 다른백년은 MMT라고 불리는 현대금융이론이 하나의 해답을 제공한다고 판단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중장기적으로는 MMT효과가 혁신을 통한 산업의 구조조정과 자산중심의 증세정책을 통하여 보완되어야 한다.

토마 피케티가 지적하였듯이, 제도와 이론보다는 이를 작동시키는 시대의 이념적 틀과 정치권력의 성격이 현실 속에 우선한다. 아래의 칼럼은 미국을 중심으로, MMT라는 동일한 정책의 수단에 관하여, 이를 다수의 국민들을 위해 실물경제에 투입하는 것과 소수의 자산가를 위해 금융산업과 부동산에 투입하는 것과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전체의 요약

통화론자들을 중심으로 수십 년 간의 비판을 받아온, 정부가 적자재정을 운용하는 것은 불안정한 것이 아니라 안정을 가져온다는, 현대금융이론의 개념이 갑자기 이를 비판하던 다양한 정치집단으로부터 찬사를 받기 시작한다: 은행 등 금융분야뿐만 아니라 특히 공화당 집단까지 칭찬일색이다. 그러나 이들이 칭찬하는 내용인즉 MMT를 지지해온 사람들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현대금융이론은 경제소비활동 영역에서 수요와 실물분야에서 투자를 늘려서 완전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적자재정을 운용해도 문제가 없다는 논리에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오바마 시절인 2008년 은행구제와 이후 트럼프의 세율인하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 재정지원에서 발생하는 적자재정의 운용은 실물경제에 투자를 늘려 고용을 증가시키고 임금을 인상하여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부의 자금투입과 양적완화는 금융과 보험 그리고 부동산 (FIRE, finance insurance & rental)분야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MMT가 추구하는 목표와는 정반대로 이를 악용한 부정적 결과를 가져왔다.

금융분야를 지원하고 이들이 짊어진 부채를 탕감하는 것은, 실물경제를 지원하기는커녕, 디플레를 가져오는 정책이 되어 버렸다. 결과적으로 비생산적이며 수탈적인 형태를 띠면서 신용과 부채만을 만들어내는 은행산업을 강화시켜 주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민간분야의 활동을 다음의 두개 분야로 분리해서 확인하여야 한다: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실물경제 분야가 임대지대, 독점지대 그리고 금융부채의 양산 속에 이루어지는 부채와 지대의 수탈이라는 금융의 망에 포위되어 있다. 이러한 활동영역의 분리를 통해 1) 고용과 생활수준의 향상을 유지하는 것에 기여하는데 정부자금을 투입하여 발생하는 긍정적 적자재정과 2)부패한 정부가 비생산적인 FIRE(finance, insurance & rent)처럼 수탈과 부채의 디플레를 초래하는 영역에 투입하는 악질적이고 만성적인 적자재정을 구분해내야 한다.

 

MMT의 본질과 정책적 목표

MMT는 다양한 수요를 촉진하기 위해서 재정을 적자로 운용해도 무방하다는 화폐이론을 설명하기 위해서 개발되었다. 이러한 논리는 이미 1930년대에 케인즈에 의해서 공인을 받았는데 그의 개념은 사용자와 임금노동자 간의 선순환이론에 기반한 것이었다 재정적자를 통해서 공공분야의 일자리를 늘리고 수요를 촉진하여 경제활동에서 적정이윤으로 생산활동이 이루어지도록 생산품을 소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의 목표는 합리적으로 완전고용 수준을 유지 또는 회복하는 것에 있다.

그러나 생산과 소비만이 경제활동의 전부는 아니다. MMT는 시카고 학파의 우파적인 정책을 비판하면서 1990년대에 금융분야를 경제활동 전반에 보다 실제적이고 기능적으로 결합시키려는 Abba Lerner의 기능적 금융이론과 Hyman Minsky 등 노력에서 공식적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시카고 학파를 비판하는 핵심은 Warren Mosler의 통찰에 찰 요약되어 있는데 ‘화폐발행권이 있는 나라에서는 시민들이 돈을 사용하기 전에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세금을 내기 전에 돈을 먼저 지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MMT는 완전고용을 성취하기 위해 경제영역에 구매력을 공급하는 수단으로 정부의 재정적자를 옹호한다는 점에서 포스트-케인즈에 속했다. 이러한 연구의 노력으로 정부의 재정적자는 민간분야의 부채가 야기하는 불안정을 안정으로 대치시킨다 것을 입증해 보였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접근으로 불경기는 정부의 적자재정으로 단순하게 치유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반면에 2008년 금융위기 과정에 미국과 유럽지역에서 거대한 재정적자를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경제는 부진을 면치 못하는 반면에 오로지 금융과 부동산 분야만 활성화되었다.

경제활동에 있어 정부의 역할이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공공기업과 인프라 투자 그리고 재정적자와 시장개입을 반대한 주요 집단은 금융론자들이었다. 소위 오스트리아 그리고 시카고 학파의 금융론자들은 MMT에 결사적으로 반대하면서 정부가 재정적자로 운영되면 인플레를 유발할 것이라며, 1920년대의 독일 바이마르 시대와 짐바브웨 등에서 있었던 재정적자 사례를 들먹이면서, 정부의 재정적자를 자유시장에 대한 개입이라고 묘사한다 (MMT는 실제로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과 개입을 추구한다).

MMT 학자들은 정부가 흑자재정 또는 균형재정을 이루면 경제활동에서 발생한 수입을 흡수하게 되고 재화와 서비스의 수요를 축소시키면서 실업을 야기한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적자재정을 시행하지 않으면, 경제는 민간분야의 은행에서 대출에 의존해야만 비로소 성장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고 판단한다.

이런 사례로 실제 미국에서 클린턴 행정부시절의 말기에 흑자재정을 시현했다. 그러나 정부가 흑자를 보인 반면에 민간분야에서는 부채가 누적되었다. 정책적 측면에서 보면,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금을 얻기 위해서는, 무역에서 흑자를 시현하던가 아니면, 민간분야에서 부채를 누적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구조화되면 이자와 상환의 부담으로 불경기가 찾아오고, 궁극적으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나타난 것처럼 만성적인 불황과 부채에 의한 디플레라는 정치적 부담을 맞이하게 된다.

 

적자재정과 MMT를 반대하는 공화당과 금융분야

정부가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적자재정을 통해 충분한 구매력을 제공하지 못하면, 화폐와 신용을 제공하는 역할이 은행으로 넘어가면서 이자와 수익을 위하여 은행들은 주로 부동산과 주식 그리고 채권 구매에 신용대출을 발생시킨다. 이런 측면에서 은행들은 정부와 경쟁관계를 형성하면서 사용목적에 상관없이 경제활동에 자금과 신용을 대여한다.

은행들은 정부가 단순히 화폐를 공급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금융과 가격정책, 조세와 기업을 규제하는 법규제정 활동에서 퇴출되기를 원한다. 금융분야는 정부가 필요보다는 정책적으로 자금이 부족하거나 외환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자금을 제공하면서, 이의 대가로 자연자원 또는 기초공공 인프라를 사들이면서 공공재를 독점하려고 의도한다 (과거에는 전쟁과정에서 그러했고, 현재에는 외채상황을 이용한다)

이러한 지위를 획득하려면 은행은 정부가 필요한 자금을 스스로 만드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민간은행들의 신용제도와 공공영역의 자금창출력 간에 충돌이 발생한다. 공공자금은 기본적으로 생산과 소비의 성장을 유지하려는 사회적 목적으로 집행된다. 그러나 민간은행의 신용은 토지와 금융자산의 거래, 즉 부동산과 주식 그리고 채권에 집중된다.

 

적자재정의 운용을 반대하는 논리

레이건과 부시 행정부시절에는 적자재정을 운용하였는데, 이는 사회적 지출을 위해서 지불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세금인하와 특히 부동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회안전망을 위시하여 의료와 교육 등에 지출할 예산을 삭감하는 것을 재정절감이라며 시행하였다. 이러한 목표는 클린턴과 오바마 시절에 더욱 노골화되어 ‘책임있는 재정의 개혁을 위한 국가위원회 National Commission on Budget Responsibility & Reform’ 이라는 기구를 만들었다. 이름이 반영하듯이 책임은 균형재정을 뜻하며, 결국 사회지출 프로그램의 축소를 가져왔다.

정부지출 프로그램을 반대하는 그룹은 재정지출을 축소하고자 하는 정치적 집단을 이용하여 재정적자에서 오는 정부부채의 증가를 비난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공화당파와 중도적인 민주당파들은 오랫동안 사회안전망을 축소시켜야 하는 이유를 찾고 있었다. 이런 배경으로 오스트리아와 시카고의 금융학파들이 정부로 하여금 활동을 축소시키고 가능한 역할을 민영화하여 시장이 자원을 배분하도록 촉구하고 나섰다.

이후 대규모의 부채를 발생시킨 금융업계는 자원과 자금의 할당을, 정부에서 금융분야로, 워싱턴에서 월가로, 다시 외국으로 진출하여 런던과 파리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중권가로 전환시켰다. 그러나 이들은 군사비 지출에 대해서는 일체의 바판을 행하지 않았고, 급기야 정부는 2000년 닷컴버블과 2008년 불량부채의 금융위기를 맞이하여 결국 경제의 신용과 자산분야의 구제를 위해 거대한 규모의 자금을 지원하였다.

 

MMT를 악용한 오바마와 트럼프의 금융구제 정책 사례들

MMT 지지자들과 포스트-케인즈 경제학자들에게 적자재정의 긍정적 역할은 자금을 ‘경제’의 수입을 위하여 투입하는 것이다. 여기서 ‘경제’라는 것은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실물분야를 의미하는 것이지 금융과 부동산 시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물경제를 살리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 중 하나는 부채규모를 현실적인 시장가격과 임대수준에 맞추어 축소시키는 것이다. 다른 방식은 돈을 대주고 지원금을 제공하여 채무자인 시민들이 자신의 주택에 머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금융문제의 현안을 해결하고 고용과 주택보유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지지자들을 두 번씩이나 배신하면서, 금융권의 불량대출과 기타부채를 연장시키면서, 현실적인 시장가격으로 조정하는 대신에, 불량대출(사기적인 행위)을 야기시킨 은행들을 지원하고 구제하였다.

은행이 새로운 신용을 창출할 수 있도록 재무표를 경감시켜주면서 오바마 행정부는 자신이 신용을 창출하는 역할에 발을 담았다. 이를 통해 은행과 그림자 은행 그리고 비은행 금융기관들에게 황금을 만들 기회를 제공하면서 이들에게 저당잡힌 주택들을 다시 사들여 임대부동산을 활성화시켰다.

이러한 정책은 Blackstone사에 의해서 주도되었고, 금융의 위기는 오히려 지분 참여자들에게 엄청난 배당을 가져다 주는 기회로 바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경제적 양극화가 이루어지면서 이런 기회에 참여하려는 투자자의 지분참여 최저액이 5백만 불을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연방준비제도가 시행한 양적완화 액수인 4.6조 달러는 실물경제에 자금을 창출하지 못했고, 마치 알라딘의 램프가 오랜 된 것에서 새 것으로 바뀌는 것처럼, 불량자산이 양질로 교체되는 기술적 스왑을 이루었을 뿐이다. 이러한 스왑은 저축이 유입되는 것과 같다. 은행으로 하여금 주식과 채권시장에서 능력이 없는 자들을 갈아 치우고, 새로운 채무자에게 대부를 제공하는 재무적 투기를 시행한 것이다. 월가는 MMT를 핑계로 악용하여 실물경제를 살린 것이 아니라 금융자산을 부풀린 것이다.

경제성과를 어떻게 측정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있다. 소수의 1% 또는 10%에게 경제라는 것은 시장이며, 특히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자산(부동산, 주식과 채권)의 시장가치를 의미한다. 이런 자산이 실물의 생산과 소비경제를 포위하면서 임금과 이익에 비례하여 점차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올려간다.

또한 이들의 가치는 정부의 지원과 신용창출(부동산과 금융자산에 대한 세금축소), 경제적 지대, 재무적 수수료와 이자 그리고 서비스 비용 등으로 부풀려 지는데, 이러한 증가가 마치 실물경제에 기여한 것처럼 GDP의 일부로 계상된다.

따라서 우리는 두 개의 경제영역을 다루어야 하는데, 하나는 생산수단과 유동자산 그리고 노동의 영역(이는 일반적으로 GDP로 측정된다)과 금융 및 부동산으로 노동과 실물자본에 의해서 발생한 수입에서 지대비용을 수탈해 가는 영역으로 구분해야 한다.

금융조작이 산업성과를 대체해 가는데 이는 정치적 로비과정을 통해 세금을 인하시키고 지대에 대한 특혜를 제공받고, 정부의 지원을 받아내면서 이루어 진다. 부동산과 금융자산 그리고 기업에 대한 소유권을 증대시키기 위해, 이들은 신용과 정부의 지원을 유도해 내는데 이는 생산과 고용을 증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식의 바이백과 배당금을 올리는 방식으로 주가를 올리는 것이다. 바이백은 소위 ‘자본되사기’로 불리며 투자확대가 아니라 투자축소에 해당한다. 이는 세법에 의해 선호되는데 배당금에 대한 과세에 비교하여 자본이익에는 세금인하 내지 면세가 적용된다.

 

오용된 MMT의 사각지대: 실물경제가 아닌 투기적 FIRE 영역

FIRE 영역과 생산-소비의 실물경제 간의 표면적 착시현상은 전통적 금융공식인 MV=PT라는 지나치게 단순한 형태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이에 의하면 경제는 단순히 민간과 정부의 영역으로만 구분된다. 무역분야인 국제수지균형을 별도로 하고, 정부가 지출하는 것은 국내경제에 자금을 대는 것이고 반대로 재정흑자는 자금을 빨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의 문제점은, MMT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정부가 FIRE 및 금융자산의 영역에 지출하는 것과 간접자본투자를 포함한 실물경제의 고용과 생산에 투하하는 것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이 없으면 고용과 생산활동을 지원하는 생산적인 재정지출과 단순히 금융자산을 지원하는 것을 구별하여 확인할 수가 없으며, 후자의 경우 신용제공자의 채무자에 대한 채권을 보장하는 과정에서 상환이 불가능한 채권에 대해 정부의 자금을 밑빠진 독에 쏟아붓는 꼴이 된다.

금융분야를 지원하고 이에서 발생하는 악성 부채를 변제하는 것은 실물경제에 긴축을 가하는 것을 의미하며, IMF식으로 말하자면 ‘월가에 MMT를’이라는 모순어법으로, 완전고용을 지향하는 실물경제의 반대편에 서있는 꼴이다.

 

MMT, 공공 그리고 민간의 부채

자금이 생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부채이다. 정부의 자금은 공공의 목적, 즉 고용과 생산량을 높이고 번영을 촉진하기 위해 사용한다. 그러나 현재의 양상을 보면, 민간분야의 부채는 다분히 수탈적이며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 즉 부채디플레를 발생시킨다.

정부는 국내통화만 사용한다는 조건에서 디폴트가 발생하지 않는 공공의 부채를 창출할 수 있으며 언제든지 필요하다면 화폐를 만들어서 갚을 수 있다.  생산량과 고용을 늘려 성장을 지원하는 것에 지출하기만 한다면, 공공의 부채는 인플레를 일으키지 않는다. 정부는 공공부채를 세금으로 되갚으면서 통화에 의미를 부여한다. 따라서 통화시스템은 본래적으로 재정정책과 연계되어 있다. 이러한 정책의 고전적 전제는 생산과 소비라는 실물분야의 임금과 이익에 과세하기 보다는, 주로 불로소득 즉 경제지대에 과세를 하면서 경제의 비용구조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민간분야의 부채이다. 대부분의 부채는 은행에 의해서 형성된다. 은행의 신용은, 은행 고객이 가지는 채권으로, 채무자가 이를 갚을 수 있는 수입의 능력을 넘어서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배경에는 민간의 부채 대부분이 생산적이고 활동에서 수익을 올리는 것에 사용되기 보다는 자산소유권의 이전(신용의 증가율에 따라 자산가치가 영향을 받는)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실물경제 활동에 연동되지 않은 신용의 투입은 부채디플레를 유도한다. 정부는 적자재정을 운용하여 경제활동에 구매력을 증가시키는 대신, 민간부채는 약정기간 동안 경제분야에서 이자와 원금상환 그리고 수수료를 빼어 나간다.

대부분 담보대출의 경우, 채무자가 부동산을 처분하여 발생하는 금액을 초과하는 이자비용을 발생시키며 종결된다. 약정기간이 만료될 때마다 복식이자로 계산되면서, 담보물의 부채는 여러 번에 걸쳐 은행에 원리금을 상환된다. 결과적으로 은행이야말로 담보대출서비스를 통해 지대수입을 회수하면서, 궁극적으로 자본증식(자산가치의 추가획득)의 주요 수혜자가 된다.

은행의 신용제도에 통화의 특성을 부여하는 것은 – 부채를 통화로 지급하도록 허용하면서 – 정부가 은행을 공적으로 유용한 기구로 인정하고 은행의 제예금을 보증하고, 궁극적으로 은행을 파산에서 보호하는 것이다.

금융분야를 지원하면서 적자재정가 발생한다는 것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부채의 감당비용을 경제활동이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복식이자의 계산결과로 감당비용이 늘어나면서, 구제의 규모도 덩달아 커지고, 은행과 금융분야에서 발생한 결손을 보충하는 대안으로 부채의 감당비용을 지원하는 적자재정(스왑의 합의를 포함하여)의 규모도 커지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진행되는 것을 지켜본 내용이다. 금융분야에 휘둘리면서 결국 경제의 주요흐름이 적자재정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만 적자재정이 금융과 FIRE 분야 등에 주로 지원되지만, 일반시민들에게는 돌아가지 않는다. 이는 케인즈 경제와 MMT가 의도했던 진짜 경제 – 실물경제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정부적자재정을 MMT의 적용이라고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정책적 목표가 정반대의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레이건 시절의 적자재정은 사회적 지출(사회안전망, 의료보호제도, 교육 등)을 축소시키며 여러 번 펀치를 날렸다면, 최근의 오바마와 트럼프 시기의 적자재정은 금융분야를 구제하기 위하여 사회프로그램을 축소시켜야 균형재정을 이룰 수 있다는 경고로서 작용하였다.

월가가 마술을 부려 ‘경제’를 대표하는 것으로 변신하는 동안에, 오히려 노동과 산업 분야는 중앙은행과 재무부와 공생관계를 형성한 금융분야에 부담을 주는 비용적 요소로 간주되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금융분야, 민간자본, 긴축재정과 중앙계획

이제 또다시,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실물경제를 희생시키면서 월가를 구제한다면, 미국은 결정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금권이 지배하는 과두제 국가로 바뀔 것이다. 그런데 요상하게도 적극적인 정부가 민간분야보다 본래적으로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이 주효하면서, 정부의 역할은 축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로비스트의 표현에 의하면 욕조의 하수구에 들어갈 만큼 축소되어야 한다).

그러나 금융분야에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허용한다는 것은 경제의 질서를 회복한다는 것은 저축은행과 금융투자자들의 손실을 보상한다는 의미이며, 이는 결국 경제에 대규모로 손실을 끼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현시기의 금융분야에 종사하는 은행가들과 금융투자자들은 19세기 당시 지주의 역할을 하고 있다. 당시 지대의 가격은 비용가치를 능가하면서 영국과 중부유럽을 고비용의 경제로 만들었다. 고전경제학이 가르치는 내용이 바로 이것으로, 생산의 비용은 실제적이고 사회적이며 경제적인 원칙에 따라 시장가격으로 형성되어야 된다는 것이다.

경제지대는 불필요한 비용의 상승요인으로 작용하는데 특혜, 세습적 토지소유, 공공의 영역에서 신용제공자가 제멋대로 행사하는 독점, 전쟁부채를 갚아준다는 구실로 받는 반대급부의 제도적 보상 등이 이에 해당한다.

지대계급은 경제의 주요 부가가치를 즐기는 주요 수혜자일 뿐만 아니라, 의회를 통하여 정부를 조정한다. 현재의 미국정치는 돈많은 후원자들이 해괴한 선거자금법을 이용하여 선거철마다 정치인들을 움직인다. 정치인들의 사무소는 민간 경매품이 되어 가장 고가의 응찰자에게 팔려 나간다. 이들 후원자들은 주로 월가와 금융기업에서 활동하는 자들이다.

2008년 이후 주식과 채권은 DJIA 평가기준으로 8,500에서 30,000 포인트로 급상승하였다. 이러한 상승은 소위 자유시장에 지나치게 제공된 중앙은행의 지원에 의해서 조작된 것이다. 양적완화를 시작하기 전의 주식가격은 지난 세기의 평균가격선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양적완화는 주식가격을 2019년 공황과 2000년의 버플을 뛰어넘어 상종가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코로나 사태가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주식가격은 그린스펀 의장시절 이전의 가격보다 높이 형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를 버블이 아니라 기포의 수준으로 받아들이면서, 코로나 이후 실물경제가 극적으로 수축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대폭락없이 버티어 내기만을 기대하면서 정부는 금융분야에 지원을 계속하려는 낌새이다.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누구를 살려야 하나? 하루의 고된 생활이 생계수단인 일반 시민들인가? 아니면 생계가 위축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호화생활을 즐기는 과두제의 수탈자들인가?

이런 모든 것이, 경제지대를 배제하고 불로소득을 고립시키려고, 가치이론을 중심으로 설계한 고전경제학자들에 의해 이미 설명된 것이다.

 

Hudson의 모순 : 재정, 가격 그리고 지대경제

FIRE영역과 실물경제를 구별하지 않고는, 자산-인플레와 상품가격-인플레를 일으키는 정부의 적자재정을 설명할 길이 없다.

여기에 일종의 모순이 존재한다. 은행의 신용은 담보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주로 부동산, 주식과 채권 등에 이루어지게 되고, 이런 자산에 투입되는 자금이 증가하는 효과를 가져오면서, 우선 주택가격이 오르게 되고 뒤를 이어 금융증권이 뒤따른다. 주택가격이 오르면 주택을 사려는 매입자는 더욱 많은 대출액수를 일으켜야 한다. 이런 분야로 대출이 집중되면서 상품과 서비스에 지출할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게 된다.

은행의 대출에서 오는 자산가격 인플레효과(자산효과)는 따라서 상품가격을 낮추는 충격을 주게 되는데 이는 대출비용 부담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살수 있는 소비자들의 실질 구매력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은행대출의 디플레 효과는 불량채무를 발생시키고 이에 따라 중앙은행과 민간은행 간의 대출채권에 대한 스왑방식(실제 돈이 거래되는 않는다)을 통하여 정부는 은행을 구제하게 된다.

이는 위의 MV=PT라는 등식의 역방향에 해당하며,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과 무관하게 통화량만 늘리면 된다는 식이다. 이는 정부의 적자재정의 운용과 비교하여, 은행의 신용창출은 자산을 사들여 자신인플레를 일으킨다는 차이점을 분간하지 못하면서, 공공과 민간 분야 간에 이루어지는 과거의 통화이론과 새로운 MMT간의 구분을 인식하지 못하고, 생산과 소비라는 실물경제에 사용되는 임금과 수익을 FIRE 영역의 자산과 부채간에 이루어지는 거래로부터 분리시킬 필요성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민간은행 시스템에 내재하는 신용창출은 대출에 대한 이자라는 형태를 취한다. 이자를 지불하는 부채가 증가하면 할수록, 산업과 노동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줄어 든다. 그 결과 경제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부채디플레로 나타난다.

이를 다음과 같이 우화적으로 요약할 수 있다.

– 배고픈 사람에게 생선을 주면 하루를 먹일 수 있다.

– 생선을 잡는 법을 가르쳐 주면, 고객을 잃게 된다.

– 그러나 그에게 생선을 잡을 배와 어망에 사도록 이자증식의 자금을 빌려주면, 그는 자신이 잡은 모든 생선으로 당신에게 갚을 것이다. 당신은 부채라는 노예를 소유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미국에서 정부와 금융산업이 MMT를 빙자하여 일반시민들을 수탈하고 있는 모습이다.

 

출처 : Global Research Center, 2020.-04-28.

Michael Hudson

캔서스시에 있는 미주리 대학 연구교수이자 Bard 대학의 조세경제 연구소 연구원이다 부채탕감에 대한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Dirk Bezemer, 네덜란드 Groningen 대학교수이다.

월, 2020/05/18-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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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파리에서 행해진 기후 변화 협약이 이번에는 12월 1일부터 2주간 마드리드에서 이루어 졌다 (불행하게도 모임은 회기를 연장하면서 강제성 있는 합의를 도출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고, 심각성의 문제만 제기한 채, 내년에 있을 영국의 글래스고우 모임으로 강제성이라는 임무를 순연시켰다). 장소는 바뀌었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동일하다. 세계는 비극적인 기후변화를 막을 시간이 부족하다. 유엔 사무총장은 산업화 이전 평균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섭씨 2도보다 낮게 유지하고 이상적으로 1.5도 이하로 제한하는 2015 파리협약을 준수하기 위한 노력이 “전적으로 불충분”하다고 밝혔다.

안토니오 구테흐스(Antó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스페인에서 열린 배출권 거래 협상을 위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COP25)에 앞서 지구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시점 (환경 복원이 불가능한 시점- tipping point)”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화석 연료 보조금을 지속하고 탄소세 부과를 거부하는 정치인들을 비난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아마도 과학 저널 네이처에 실린 지구 온난화 상태가 현재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기후적으로 가망이 없는 상태인지 추측하는 연구 결과를 읽었을 것이다. 기후 ‘티핑포인트’ 9 종류의 분석을 통해 과학자들은 현재 ‘행성 비상사태’에 처해 있고, 아마도 온실지구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결론 내렸다.

역사적으로 빙하 격감과 같은 일부 기후 위험은 지구 평균 기온이 섭씨 5도 상승할 경우 발생한다고 예측되어 왔지만, 이후 모델을 통해 해당 기온의 폭을 1도에서 2도 사이로 낮췄다. 심각하게도, 연구진은 알려지지 않은 방식으로 티핑 포인트가 상호작용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연쇄 피해를 일으킬 조짐을 보인다고 경고한다.

독일 및 덴마크 학자들과 협업한 티모시 렌턴(Timothy Lenton) 영국 엑시터 대학 지구시스템 연구소 소장은 “악영향을 끼치는 급변 연쇄 작용을 막을 수 없다면 이는 문명에 실제적인 위협이 될 것입니다” 라고 전했다.

연구진은 위기 관리 측면에서 평균 기온 상승폭을 섭씨 1.5도 이하로 유지하기 위한 즉각적인 정치적, 경제적 행동을 촉구했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 (IPCC)에서는 지구 기후 시스템의 ‘대규모 불연속’을 티핑 포인트로 정의했다.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요소에는 북극해 빙하와 아마존 열대 우림과 같이 익숙한 상징이 포함된다.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요소로는 열대 지방의 따뜻한 한 물을 북쪽으로 이동시키고 심해의 차가운 물을 남쪽으로 가져오는 대서양 자오선 역전순환류인 ‘컨베이어 벨트’와 북위도를 감싸며 때로는 영구 동토층 위에 자리해 광활한 탄소 저장소 역할을 하는 상록수 숲인 타이가가 있다.

실제로 티핑 포인트는 작은 변화로도 되돌릴 수 없는 급격한 효과를 야기할 수 있는 임계점을 의미한다. 연구진은 세계 기후의 일부 요소는 기타 요소보다 임계점에 더 가까이 도달했다고 주장한다. 그린란드 빙하는 임계점에 거의 도달했을지도 모르며 빙하는 티핑 포인트가 지나면 가차없이 사라질 것이다. 또한, 북극해 빙하 감소도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여있다. 빙하는 심해보다 빛을 더 많이 반사하므로, 빙하가 녹으면 열 흡수율이 증가함에 따라 온난화가 가속된다.

두 현상 모두 북대서양에 더 많은 담수를 유입시키고 컨베이어 벨트를 늦춤으로써 이미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조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속도가 늦어진 순환이 서아프리카의 몬순을 흩뜨려서 아프리카 사헬 지역의 가뭄을 촉발할 수 있다. 이후의 도미노 효과로는 남극 대륙의 빙하 손실을 가속화하는 남극해의 기온 상승이 있다. 기후 도미노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면 위험성은 두 배로 증가한다. 지속적인 온실 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는다면, 지구는 이미 지하에 저장된 탄소를 배출하기 시작할 것이다.

예를 들어서 영구 동토층으로 부터의 배출을 통해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 100기가톤(1Gt = 10억톤)을 채울 수 있다. 이는 3년 동안의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양에 해당한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2018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3.1Gt이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종말론적 분석을 완전히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피어스 포스터(Piers Forster)리즈 대학 기후변화학 교수이자 IPCC 저자는 “1.5C의 온난화에서 그린란드의 빙하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낮거나 녹아내리더라도 수 세기가 걸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티핑 포인트에 대한 독자들의 인식과 일치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포스터 교수는 탈탄소를 위한 행동의 지연은 “우리 자신을 비극적인 미래로 몰고 나갈 것” 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세계 온난화가 진행됨에 따라 위험성에 대처하고 온난화에 적응하기 위해 적절하게 자금을 운용해야 한다. 이는 온실 가스 배출량을 네트 제로(net zero)로 만들기 위해 사회 내 재력과 능력을 활용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재앙이 닫쳐 오더라도 종말은 오지 않을 것이다. 접근의 관점은 다르겠지만 전달하는 메시지는 동일하다.

 

안자나 야후자(Anjana Ahuja)

 FT 과학 평론가

목, 2020/01/09-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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