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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 민변에는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동료들이 있다 – 강은옥 변호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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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 민변에는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동료들이 있다 – 강은옥 변호사 인터뷰

admin | 수, 2019/11/20- 01:34

민변에는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동료들이 있다

– 강은옥 변호사 인터뷰 –

 

변호사님 민변에는 최근에 가입을 하셨죠?

아니요, 2007년에 가입했습니다. (웃음)

[, 초장부터 이런 실수를보통 기본적인 사항을 다 숙지하고 가는데, 변호사님과의 친분 때문에 중요한 체크를 빠뜨렸습니다.]

 

변호사님을 처음 뵌 것이 2018년 봄이어서 막연히 그때라고 생각했어요.

그 즈음이 제가 교육부 TF 일을 끝내고 잠시 여행을 다녀왔다가 슬슬 민변에 다시 나오기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전주에서 서울로 다시 이사를 온 것이 17년 9월이었어요.

제가 민변에 들어온지 얼마 안 됐다고 느끼시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공무원일 때는 점심 모임이나 위원회 회의 같은 민변 모임에 나가기가 어려웠고요, 그래서 시간이 맞는 총회나 연말 송년회 정도에만 참석을 할 수 있었어요. 지방에 내려가 있을 때는 더욱 참석이 힘들었지요.

작년부터 개업을 하면서 사무실도 민변에 가까워지고 하니까, 시간이 되면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자주 참석하려고 해요. 노는 모임에 특히요.

 

민변에 가입할 때 이야기를 부탁드려요.

연수원 수료를 2007년에 했어요. 수료하고 취업된 후 바로 가입했던 것 같아요. 2007년 5월쯤이었나…

민변 변호사님들하고 연을 맺은 건 91년도였어요. 유현석, 김창국, 박연철, 이석태 변호사님께서 도움을 주신 일이 있어서 민변을 알게 되었죠. 당시 변호사님들께서 정말 헌신적으로 일하셨고 굉장히 훌륭하신 분들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저도 법대에 다니면서 사법시험을 응시할 생각을 하고 있던 때였을 때라, 나도 변호사가 되면, 민변에 들어가야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가입할 때 추천인이 누구였더라?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정연순 변호사님이셨을 것도 같고… 그때 정연순 변호사님이 국가인권위에 계셨을 때니까, 김진 변호사가 했나? 잘 모르겠네요

위원회는 여성위, 교육위, 노동위 순서로 가입했어요. 여성인권위원회는 여성변호사로서 민변에 들어오면 당연히 가입해야겠다는 생각에 가입했었고, 교육청소년위원회는 제가 교육청에서 일한 경력이 있으니까 이용우 변호사가 같이 일하자고 해서 들어갔죠. 노동위원회는 올해 2월에 김진 변호사 송별회하는 술자리에서 김진 변호사가 ‘노동위에 들어오라’고 가입 권유를 했고, ‘알았다’하고 들어가게 되었습니다(작년에 오사카 노변단 교류회 참석도 했고, 노동위 들어가서 노동 관련 일을 배우고 싶기도 했어요)

변호사님께서는 연수원 마치고 송무를 바로 하실 생각은 없으셨던 건가요?

연수원 나왔을 때 제 나이가 서른일곱이었어요. 당연히 여기저기 지원을 했죠. 용납할 수 없는 사무실을 제외하고요. 어디서든 송무를 해 볼 생각이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그 나이대의 여성변호사를 고용하려는 사무실이 거의 없었어요. 흔하지 않았지요. 연수원 수료하고 두어 달 동안은 취직이 안 돼서 고민을 했어요. 그렇다고 아무 회사, 기관이나 가고 싶은 생각은 또 없었고,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났습니다. 그때 마침 인권위에 결원이 생겨서 지원을 한거죠.

제가 인권위에서 나온 게 11년 6월이니까, 4년 2개월 정도 일했네요. 퇴직하고서는 1년 가까이 쉬었고, 12년 5월부터 16년 7월까지 전라북도교육청에서 일을 했어요. 그리고 17년도 10월부터 18년 2월까지 교육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TF에서 일했습니다.

 

변호사가 인권위에서 하는 업무에는 어떤 것들인가요?

기관마다 다르겠지만, 송무를 하기도 해요. 지금은 많이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들어갈 때를 생각해보면 인권위에서 변호사를 꼭 배치하는 몇몇 부서가 있었어요. 결정문 작성할 때 검토를 하기 위해 상임위원실에 한 명, 조사국에도 변호사를 배치했고요. 법무감사실에도 변호사를 배치했는데, 송무, 질의회신, 법규제개정 등의 업무를 담당했고요. 인권상담센터에도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당시 인권위 시스템이 그랬어요. 저같은 경우는 정책 업무도 했고, 조사과에도 있었고 상임위원실, 법무에도 있었어요. 교육 쪽 말고 인권위에서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업무는 제법 많이 경험했습니다.

 

인권위원회 업무라고 하면 막연하게 보람도 있고 재밌도 있겠다고 생각이 드는데, 퇴직하겠다는 결정은 어떻게 하시게 되셨나요?

제가 들어갈 때의 인권위와 나올 때의 인권위는 완전히 다른 곳이라고 보아도 될 정도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2008년 쯤 이명박 정권 때 제일 먼저 시도했던 것이 ‘인권위 없애기’였어요. 그게 여의치 않으니까, 정부에서 인권위의 소속을 변경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원래 인권위는 정부 부처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걸 대통령 산하로 두느냐 마느냐 하는 작업이 진행되다가 그것도 잘되지 않았어요. 그러면 인권위의 힘을 빼는 나머지 방법은 결국 기구 축소, 구체적으로는 정원 축소가 있지요.

제일 먼저 별정직과 계약직부터 정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계약직 공무원은 통상 최초 2년 계약 기간이 지나면 3년을 재계약하고, 그 기간이 끝나면 공고를 내어 다시 5년을 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요. 본인이 원하면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거지요. 인권위 내에서 처음 5년의 계약기간이 끝나고 다시 기회를 주지 않은 경우는 제가 알기로 없었어요. 실제로 대부분 그 사람들이 일을 다들 정말 잘했으니까요. 2010년 말이었어요. 5년 계약이 끝나는 사람들이 생겼는데, 인권위에서 그분들과 재계약을 안 하기 시작했어요. 내부에서 직원들이 당연히 문제를 제기했지요. 그러다가 당시 노조 부지부장이었던 분이 2년 계약이 끝나고, 3년 추가 계약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그 분에 대해서 추가 계약을 하지 않고 내쫓아버렸어요. 참고 있던 직원들이 그때는 ‘더 이상 이건 아니다’라는 공감대가 형성이 되었고, 1인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저도 같이 했어요.

그러자 1인 시위한 사람들을 감사하더라고요. 저는 감사를 거부했습니다. 감사를 받을 수가 없다고 했던 것이, 감사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재계약 대상자들의 인사문제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던 사람들이었고, 또 구체적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저는 그 사람들이 감사를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당시 제가 조사국에 있었는데, 국장님이 다른 사람에게라도 감사를 받으라고 했는데, 저는 잘못한 게 없다고, 받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러자 그 이후 직장내에서 저를 따돌리기 시작했어요. 그전까지 같이 일하면서 친해진 사람들도 유학, 육아휴직 등을 이유로 회사를 나와 뿔뿔이 흩어져 있고, 남아있는 동료들도 각자가 다들 힘든 상황이라 서로 연대하기도 쉽지 않게 되었어요.

입사해서 만난 제 남편은 이미 회사를 떠나 지방으로 내려간 상태이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그 때 저희 엄마가 돌아가신지 1년도 안 되는 상황이었고, 간병 등으로 몸도 많이 안 좋아진 상태였어요. 내가 여기 더 있으면 정말 죽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나왔습니다.

 

그럼 퇴직 후에 1년 정도 쉬셨다고 말씀하신 때가, 요양 목적도 있었던 거군요.

그렇죠. 남편이 전북교육청에 자리가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원해서 먼저 내려갔어요. 전북교육청에 교육감이 새로 취임하고 감사팀을 새로 만드는데 조사경력 있는 사람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원을 한거죠. 감사과가 1, 2, 3팀, 그리고 법무팀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4팀을 새로 만들면서 외부인력으로 채우기로 했어요. 남편이 먼저 들어갔고, 저는 좀 쉬다가 2012넌 5월에 학교폭력 담당으로 변호사를 뽑는다고 해서 지원했습니다. 당시 대구에서 학교폭력으로 인해서 학생이 자살하는 일이 있어서, 대대적으로 학폭법이 개정되고, 교육부에서 교육청별로 특별교부금을 지원해서 학교폭력과 교권을 담당하는 변호사를 채용하도록 했습니다. 신분은 공무원은 아니고, 근기법 적용되는 기간제 근로자였어요. 그렇게 2년 3개월을 일했고, 그 이후 2년은 임기제 공무원인 인권옹호관(학생인권교육센터장)으로 근무를 했습니다.

 

전주에서 생활은 가족과도 함께 있고, 더 좋으셨겠습니다.

일상적인 생활은 굉장히 좋았어요. 전주가 생활 여건이 좋은 도시예요. 편안하고.

근데 일을 하면서 불편함을 느낀 부분이 있었어요. 지역적인 차이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겠지만, 제가 경험한 범위 내에서 성에 관한 의식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당황해서 그냥 넘어가기도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지금 상황과 제 의식 사이에 괴리감도 커지고, 어느 정도 지나니 제 의식이나 생각이 고인 물이 되어 썩어간다는 느낌마저 들더라고요. 잘못되었다고 판단한 부분들에 대해 지적하면, 오히려 그런 점을 지적하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미처 인터뷰에 담지는 못했지만, 정말? 아직도? 라고 생각되는 상황이 많았습니다.]

또 토박이가 아닌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텃세(?)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그나마 내가 변호사여서 이 정도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16년 7월 교육청에서 재계약이 안되고, 17년 가을 서울에 올라와서 개업을 하려고 했는데, 그때 또 마침 교육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TF에 지원해보라는 권유를 받았고, 이것도 지금 아니면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원을 한거죠.

 

지금은 송무를 하시는 거죠.

그쵸. 그렇지만 그렇게 많이 하고 있진 않아요. 개업 초반에는 아무래도 일이 많이 없잖아요. 개업하고서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이 성북구 인권위원 활동이었어요. 경력이 있어서인지, 여기저기서 소개를 많이 해주셔서인지 위원회 위원 제의가 계속 들어오더라고요. 제가 배워보고 싶어서 먼저 지원한 곳들도 있고요. 그렇게 일을 늘려가다 보니 지금은 참석해야 하는 위원회가 너무 많아져서 정리하는 중입니다. 얼마 전에는 행정심판위원회 위원을 하게 되었는데, 어휴, 그거 되게 힘들더라고요. 사전에 안건을 다 검토해서 의견서도 내야 하고요, 회의도 네 시간 걸렸는데 다른 위원님들이 그거면 빨리 끝난 편이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작년에 친한 언니가 하는 말이, ‘너 초반에 일 없다고 이것저것 다 받으면 나중에 가랑이 찢어진다’고 했는데…(웃음) 진짜 그래요. 그래서 지금은 정리하려고 하고 있어요. 다음 주 월요일엔 회의가 4개가 있네요.

일 하면서 많이 배우는 경우도 있어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방심위 실무자분들께서 일을 워낙 잘 처리해주셔서 가서 회의에 가서도 부담이 많이 없기도 하고요.

 

재판 수임을 일부러 좀 가리시는 면도 있으신 것 같아요.

그런 면도 없지 않습니다. 사실은 돈을 벌어야 할 시기라 가릴 처지는 아닌데… 막상 이 일을 맡아야 되나 하고 생각을 해보면, 힘들겠다 싶은 느낌이 올 때가 있어요. 제가 스트레스를 잘 받는 편이라, 합이 안 맞는다 싶으면 수임을 거절하기도 해요. 많지는 않은데, 그런 적이 약간 있었죠. 아직 배가 덜 고픈 건가 잘 모르겠네요. (웃음)

제가 비교적 육체적 스트레스는 잘 참는 편인 것 같은데, 정신적 스트레스에는 너무 취약해요. 정신적으로 공격을 받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을 하느니, 아예 시작을 안 하는거죠. 여가 시간을 보낼 때에는 머리를 안 쓰는 일을 선호해요. 예를 들어 제가 야구를 엄청 좋아하는데요, 이건 일하는 것처럼 머리를 쓰지 않아서 좋아하는 면이 꽤 커요. 남편이 제가 야구를 좋아하니까 에이전시 같은 업무를 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기도 했어요. 요즈음 변호사님들중 하는 분들이 꽤 있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에이전시 일을 하게 되면, 야구는 더 이상 오락이 아니라 일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 안 하겠다고 했지요.

 

변호사님을 민변 모임에서는 자주 뵐 수 있는 건, 변호사님께 민변은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인가요?

네, 그렇죠. 제가 역량이 좀 되면 가고 싶은 모든 모임을 다 나가서 활동하고 싶은데, 아직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있어요. 그것하고 별도로 민변 모임이 요즈음은 아주 조금 부담이 되는 면이 있어요. 예전에는 모임에 나가서 같이 어울리고 노는 데에 큰 문제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저도 나이가 들다보니 민변 모임에서 어떤 사업에 대해서 함께 협업을 하게 되면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는데, 역량도 부족하고 아직 그럴 상황이 못 되는 것 같아서 조금 고민스러워요.

민변이 맘 편하고 좋은 이유는 계산하지 않는 동료가 있다는 점이에요. 지난 신입회원 설명회 때도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그게 참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서로가 되게 많이 다르지만, 큰 그림에서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또 내가 이런 말을 했을 때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물론 그런 생각을 전혀 안 하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런 불필요한 사심 없이 이야기가 통할 수 있는 동료들이란 점이 참 좋지요. 그런 편안함에 끌려서 민변에 가는 것 같아요.

 

2018.10. 민변 회원월례회에서.

 

계속 공직에 계셨으니, 변호사님 해 오셨던 일 중에 지금 하고 계신 일이 가장 (경력상으로는) 짧은 일이겠어요.

그렇죠. 월말과 월초에 쌓여가는 정산금과 마이너스액을 보면서 역시 고정된 월급이 좋다면서 후회를 하다가도, 국정감사 시즌이 딱 되는 순간, 친구들이 SNS에 국감, 행감 이야기를 올리는 걸 보는 순간 아, 그쪽엔 이게 있었지, 하면서 위안하죠. (웃음)

 

오랫동안 조직(?)에서 일하다가, 이제 혼자 일을 하시는 게 낯설지는 않으신가요?

조직에서 일할 때는 결재를 받으면서 다른 사람이 같이 업무를 보잖아요. 이게 단점이면서 장점이지요. 물론 상급자가 이상한 지시를 하면 굉장히 피곤해지지만 그래도 결재 라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변호사는 순간순간 혼자 결정해야 하고, 내가 내린 판단과 결정이 과연 맞는 것인지,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를 계속 고민해야 하는 고충이 있지요. 이 일이 제가 전에 했던 것과 연속성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아니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되니까 사전 지식이 충분하다고 할 수도 없고요.

내 문제라면 내 결정에 나만 책임지면 되는데, 재판은 남의 인생이 걸려 있으니 더 부담스럽지요. 특히나 이혼 같은 가사사건의 경우는 굉장히 예민한 문제라서 늘 신경이 쓰입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겠지만 다른 사람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거라 생각해요. 내가 제대로 하고 있나, 하는…

노동쪽이나 가사사건에서 모르는 점이 생기면, 그 분야를 잘 아는 변호사님께 물어봅니다. 솔직히 저는 물어보는 걸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물어보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원래도 남한테 부탁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어서, 알아서 최대한 혼자 이리저리해보다가 마지막에 묻는 스타일이에요. 아무래도 연차로는 적지 않은 연차여서 묻는 일이 자존심 상할 때도 있지요, 솔직히.

 

다시 변호사 초임 때로 돌아간다면, 송무를 선택하시겠어요, 아니면 공직에 가실 것 같으세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요. 기관에 가기로 했으면 그 기관에 계속 있거나, 나중에 퇴직하고 관련 업무를 변호사로서 계속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근데 저는 둘 다 아니었거든요. (웃음) 전에 일했던 기관들에서 사건을 주는 것도 아니고요. 가끔 자문요청이야 들어오지만요. 지금은 서울에서 개업했으니 제가 만약 수도권에 있는 기관에 있었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랐겠지만, 저는 지방에 있었으니까요.

연수원을 나오면서 개업을 같이하자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그때는 되게 겁을 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겁낼 일은 아니었는데, 그때는 몰랐죠. 제일 좋은 건 고용변호사로 배우고 일하면서 차곡차곡 업무역량을 쌓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아마도 저는 고용변호사로 일하는 것을 못 버텼을 확률이 굉장히 높아요. 업무강도가 워낙 세니까요… 다시 돌아가서 그 상황이 된다면, 지금은 다 아니까, 개업을 그렇게 겁내진 않았어도 괜찮았겠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쨌건 아직 변호사의 주 업무는 송무잖아요. 가급적이면 변호사로서의 업무를 많이 하는 게 낫지 않나 싶어요.

 

개업을 그렇게 겁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 개인적으로는 참 좋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또 저희 때랑은 상황이 너무 달라서, 그걸 간과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지난번에 한 신입변호사님에게 개업 이야기를 했더니 자신이 없다고 하더라구요. 뭐, 저도 그랬는데요. 얼마 전에 만났던 한 선배변호사님에게 어떻게 돈을 버시냐고 여쭈었더니, 먹고 살 만큼은 번다고 하시더라구요. 의뢰인이 다른 의뢰인을 소개시켜주기도 하고, 어떻게든 되는 것 같긴 해요.

그래도 요즘의 개업은 예전과 또 상황이 많이 다르니까요. 무어라 말하기 쉽지 않네요.

 

민변 후배님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시간 날 때마다 부담 없는 자리부터 시작해서 꾸준히 참석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업무가 많이 부과될 일은 없으니까요. 물론 여건이 되면 일도 같이 하면 되는 것이고요. 아시는 것처럼 제가 노는 자리는 안 빠지잖아요. (웃음) 그런 식으로 인간관계를 돈독히 해야 나중에 일할 때도 서먹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제가 고용변호사로 일해본 것이 아니라, 요즘 고용변호사님들이 얼마나 바쁠지 가늠은 안가지만요. 그래도 잠깐이라도 짬 내서 서로 얼굴을 익혀놔야지 서먹해지면 어느 순간 참석하고 싶어도 쉽지 않게 되는 때가 와요. 같이 일을 하건, 같이 놀건 중요한 것은 사람과의 연대와 신뢰니까요. 처음에는 부담 갖지 말고 자주자주 나오면 어느 순간 관계도, 신뢰도 넓혀지고 민변이 편하고 좋아지는 때가 올 거예요.

 

무뚝뚝한 표정에서 이따금 터지는 유머에 정신 못차리는 인터뷰어 사진으로 당시 인터뷰 분위기를 전하며, 인터뷰글을 마무리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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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언론위 김정욱 변호사

 

우리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외양간을 관리하는 자와 소의 주인이 다른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외양간을 관리하는 자가 타인의 소를 제멋대로 한다면요?

박근혜 씨가 탄핵되었지만, 그 후유증은 사회 곳곳에 얼룩으로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언론기관이 아닐까 합니다.

언론위에서는 ‘공범자들’ 영화 개봉을 오랫동안 기다려 왔습니다. 영화가 개봉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MBC와 김장겸 사장, 김재철, 안광한 전 사장 등 MBC 전, 현직 임원 5명은 법원에 영화 <공범자들>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초상권과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한다며 상영금지가처분을 신청했습니다. 영화개봉을 불과 사흘을 앞둔 시점이었던 8월 14일(월)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은 기각 결정이 되었고, 우리는 ‘공범자들’ 단체 관람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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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자들’ 개봉 바로 다음날인 8월 17일 오후 4시 여의도 CGV 앞에서 언론위 이강혁 변호사, 김준현 변호사, 류신환 변호사, 김정욱 변호사, 이희영 변호사, 이수연 간사가 모였습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언론을 장악하던 작태들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 가감 없이 보였습니다. 촛불 집회 때 시민들이 등돌리고 외면하던 공영방송사들, 하지만 그 내부에서도 언론의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해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던 여러 기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모두가 영웅이었고 또 다른 촛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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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람 후 저녁을 간단히 먹고 자리를 옮겨, KBS 앞마당에서 시민들과 공영방송국 관계자들이 함께하는 돌마고 불금파티에 참석했습니다. 언론의 기능이 망가져 있음을 스스로 느끼면서 마봉춘과 고봉순이 돌아오길 외치는 언론인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이전의 네 번의 불금 파티가 눈에 가시였는지 다섯 번째 불금 파티 장소는 KBS 앞마당을 사용하지 못하고 그곳에서 더 떨어진 좁은 인도로 밀려나 있었습니다. 언론의 초라한 현실을 느끼면서, 과거와 현재를 영상으로 돌아보며 열기를 더 해 가던 불금파티는 가수 이한철의 ‘괜찮아, 다 잘 될거야’ 노래로 절정에 치달았습니다.

불금 파티 종료 후 자리를 정리하고 쓰레기를 치운 후, 근처 둘둘치킨에서 뒤풀이 시간을 가졌습니다. 촛불 혁명 등으로 높아진 시민 의식과 더불어 아래로부터의 개헌 논의가 한창입니다. 언론위도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기본권 조항에 대하여 많은 토론을 해 오던 차였습니다. 여러 다른 나라의 헌법 조문들을 비교하고,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헌법 개헌안에 대하여 고민을 하였습니다. 작금의 언론 사태를 보면서, 정부가 언론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개헌안에 어떻게 반영시킬지에 대하여 고민하였습니다.

무더운 여름은 이제 끝나갔습니다.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폭염도 여름의 끝자락에서 더는 힘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시원한 밤이었습니다. 정부의 언론 통제도 이제 그 끝이 보입니다. 외양간은 고장 났고 보수해야 하지만, 다행히도 소는 주인에게로 돌아왔습니다.

화, 2017/09/26-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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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미세먼지 없는 맑은 날씨로 기분 좋은 금요일 오후, 민변 사무실에서 이경재 변호사님, 조미연 변호사님을 만났습니다. 뉴스레터 200호 특집을 핑계로 선배 변호사님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컨셉에서 조금 벗어나, ‘후배(라는 표현이 가능하다면) 변호사님’들을 대표할 수 있는 두 분을 뵙고 싶었지요.

점심 식사를 마치고 “후인정을 닮은, 최순실 변호인과 이름만 같은 이경재입니다.”라는 말씀을 시작으로 두어 시간, 우리 모임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심재섭 출판소통팀장 : 요즘 변호사님들이 가장 관심가지고 계신 건 뭔가요?

이경재 변호사 : 돈 버는 거요. 하고 싶은 활동을 지금처럼 계속 유지하려면 물질적인 불안이 없어야 할 것 같아요. 개업하면서 지속적으로 민변과 함께하기 위해 내가 할 몫으로 돈을 벌어야 할 필요를 강하게 느낀 거예요. 처음 민변에 가입했을 때 최고의 관심사는 단연 사법농단이었습니다. 제가 가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법농단 이슈가 막 터졌어요. 내가 앞으로 민변에서, 혹은 변호사로서 어떻게 살아 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중요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집도 가까워서 농성장에 매일 상주하다시피 살다 보니 활동가분들, 변호사 선배님들을 많이 뵙고 좋았어요.

조미연 변호사 : 전 지금은 취업이 가장 중요해요. 꼭 가고 싶었던 곳이 있는데, 요즘 면접기간이거든요.

 

심재섭 팀장 : 두 분, 민변에 가입하게 된 계기는 어떠한가요?

이경재 변호사 : 원래 노동법 및 공익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공감 등 사회단체를 쉽게 접했던 터라 민변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원래 로스쿨 재학당시 이소아 변호사님 등이 학교를 방문하고, 특별회원 가입 등을 권하시기는 했는데, 변호사도 아닌데 ‘변호사 모임’에 가입하는 것이 뭔가 불편해서 좀 미뤘어요. 변호사시험을 끝내자마자 마침 김준우 변호사님의 권유도 있었고, 로스클 때부터 알고 있던 최용근 변호사님이 추천도 했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가입했어요.

 

심재섭 팀장 : 가입하기 전부터 민변을 좀 알고 계셨군요?

이경재 변호사 : 로스쿨에서 뵈었던 선배들, 민변 변호사님들이 있었어요.

조미연 변호사 : 한승헌 변호사님, 김선수 변호사님처럼 책이나 매체를 통해서 동경해 오던 분들이 있었으니까요. 민변의 존재 자체를 모르기는 쉽지 않아요. 전 전북에서 로스쿨을 다녔는데, 당시 전주전북지부 민변에서 인권법학회 간담회를 하면서 특별회원을 모집했어요. 그 전에 당연히 가입해야하지 하다가 그 기회에 특별회원으로 먼저 들어왔습니다.

이경재 변호사 : 최근에 SNS에도 글을 올렸지만, MBC 파업 당시에 신인수 변호사님에 대해서 매체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김민석 피디가 ‘현실에서 영웅을 봤다’라는 내용의 글을 썼거든요. 제가 ‘따뜻한 가슴, 차가운 머리’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김민석 피디가 소개한 신인수 변호사님 이야기에서 그런 점을 느꼈어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감정적으로 분노하면서 냉철하게 다가가 현실적인 조언을 하는 그런 모습이요.

조미연 변호사 : 전 요즘 김종보, 류하경 변호사님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아요. 현장연수부터 저랑 가장 가까이 있는 선배이기도 하고, 활동력도 탁월하셔서 배울 점이 많아요. 사실 민변에서 변호사님들을 보면 꼭 하나씩은 배울 점이 있으시더라고요. 누굴 특정해서 닮고 싶다 할 것 없이 주위에 계신 분들 떠올려보면…

 

(민변 소속 변호사로서 잘 살아가는 모습, 그 활동 자체가 홍보가 된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심재섭 팀장 : 법조계에 들어오고자 했을 때 생각했던 모습하고 지금하고 얼마나 같은가요?

조미연 변호사 : 전 로스쿨 입학할 때 자기소개서에 검사를 거쳐 10년 뒤에는 우리나라 프로보노 활성화에 앞장서는 공익활동을 하고 싶다고 썼었어요. 검사라는 조직과 직역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스쿨을 다니고 보다 진지하게 공부를 하게 되면서, 그쪽은 내 길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변호사인데, 변호사가 되면 공익전담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이경재 변호사 : 교수님이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어요. 로스쿨 들어오는 애들 3분의 1은 인권, 3분의 1은 IP, 3분의 1은 M&A 하겠다고 한다는 거지요. 그만큼 공익이나 인권이라는 목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그쪽 일을 계속 해나가지 못하는 현실이나 로스쿨 단계에서의 진로 설정이 막연하다는 점을 지적하신 것 같아요. 공익변호사라는 말이 어떨지 모르지만, 어찌되었든 전 공익인권의 분야를 놓지 않겠다는 정도의 결심은 꾸준히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로스쿨에선 다들 불안하고 막연하긴 해요. 저도 로스쿨에서 사람에 대한 기대가 부질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통합진보당 해산 헌재 결정이 있었잖아요. 당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 혼자서 열 받아 있는데 주변 동료들을 보니 어느 누구도 분노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만 하더라고요. 분노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감정적인 변화가 없어 보였어요. 그런 점을 보면서 옆에 있는 사람을 마냥 믿고 의지하는 방식은 아니겠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해야 될 일이 있을 것이고, 조금 종교적으로 표현하자면 소명이랄까, 그렇게 접근하기로, 실망을 덜하면서 꾸준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좀 외로웠어요. 저와 같이 생각하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변호사가 되었고, 민변에 왔지요. 변호사라는 직업이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 가장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직업이라 좋았고, 천막농성하면서 만난 활동가분들, 당사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길이 맞다는 확신도 들었습니다.

심재섭 팀장 : 민변에 가입하면서 기대했던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경재 변호사 : 동료들을 보면 다들 잘하시니깐, 모든 면에서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기대라는 말은 좀 어색하고, 특히 좋아하는 부분을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민변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책임을 자진해서 감당하려는 자세였습니다. 함께 일을 하다보면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민변 동료들은 그런 면에서 달랐던 것 같아요. 정치, 경제 이슈에 있어서 다수의 지지를 당장 얻지 못하는 주제라 하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옳다는 판단한 행동을 하는 것을 자주 봤어요.

조미연 변호사 : 인권변호사라는 말에서, 인권이란 말을 떼는 것이 맞다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굳이 인권변호사라는 표현을 쓰고 싶은 이유는, 변호사라는 일에 한 걸음씩 다가갈수록 공익 이슈, 인권을 수호하는 활동에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어려운 분야에서 꾸준히 활동을 하고 이를 원하는 많은 변호사들의 플랫폼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이 민변이잖아요. 여기에 들어와서 내가 무엇을 원한다, 하고 싶다 이런 생각조차 없이 당연히 가입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특별히 제가 색깔이 없어서 그런지 어떤 방향이나 기대를 말씀드리기가 좀 어색합니다.

▲ 2018. 11. 사법적폐청산 국민대회 참가 사진

 

심재섭 팀장 : 특별히 색이 없다고 말씀하시기에는, 지난 1년 가까이 민변의 많은 모임과 사업에 참여하셨어요. 엄청 특징적인 거잖아요. 어느 모임에 계시지요?

조미연 변호사 : 노동위, 민생위, 아동위, 여성위하고 사무처에서 회원팀을 하고 있어요. 봉변님(이경재 변호사님이 동기들 사이에서 불리우는 애칭)은 노동위, 소수자위, 환경위, 여성위 또 뭐 있더라…

심재섭 팀장 : 엄청 많잖아요.

이경재 변호사 : 철이 안 들어서 그래요.

심재섭 팀장 : 동기들은 다른 길을 찾아 가잖아요. 취직을 하든, 개업을 하든… 그런데 이렇게 민변에 시간을 들일 수 있는 동력은 뭘까요.

이경재 변호사 : 그러니까 철이 안 들어서 그렇지요.

조미연 변호사 : 회원분들이 보면 진짜 쟤들 뭐하는 애들이냐 할 것 같기도 해요.

이경재 변호사 : 다들 가입하게 된 사연들이 있어요.

조미연 변호사 : 전 그냥 재밌어 보이는 곳은 다 한 거예요. 이렇게 오래 유지될지는 몰랐어요. 제가 취업하고 싶은 곳의 채용이 최근까지 없었기 때문에 그 전까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있어요. 사실 변호사가 어렵다고 하잖아요. 어렵다는 현실을 부정할 것은 아니지만, 변호사라는 직업도 얼마든지 어려울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1년 정도 취업을 미루었다고 하여도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훌륭한 경험을 민변에서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러니까 다른 것을 포기하고 민변에 있었다, 이런 표현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이경재 변호사 : 저는 변호사를 하면 당연히 생계와 공익 활동을 병행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민변에 참여하는 것이 특별히 무리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개인적인 이유로는,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종교적인 것이든 아니든 마음속으로 얼마 정도는 이런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거요. 한 2년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심재섭 팀장 : 수습 끝나고 10월 지나서 하나 둘 취업하게 되면 민변에서 뵐 수 있는 동기들 숫자도 줄어드는데 (변시) 7회는 안 그런 것 같아요. 이유가 뭘까요?

이경재 변호사 : 첫째는 저 때문이죠.

조미연 변호사 : 와, 이거 진심이다.

이경재 변호사 : 농담이구요. 다들 서로 애정이 있어요. 독특한, 나름대로 특색 있는 분들이 있어요. 고시공부를 오래 한 분이 있고, 학생운동에 투신하신 분들도 있고, 오랫동안 나름대로 스텝을 제대로 밟아서 로스쿨 가신 분들도 있구요. 그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긴 정말 쉽지 않고 동기분들과 만난 게 행운이라고 밖에는 설명하기 어려워요. 성인이 되어 만난 모임에서 특히 변호사 모임에서 누군가의 주장을 받아주는 게 쉽지 않은데, 서로 싫은 소리를 하더라도 잘 들어주더라고요. 운이 좋았던 거죠. 사법농단 때 농성장을 지키면서 많이 얼굴 뵙고, 농성장 해단하면서 맥주 한 잔 마시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 게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조미연 변호사 : 단체톡방도 소소하게 많이 있고, 오프라인에서도 그러니까 민변 행사가 있으면 자주 만나고 해요. 노동위원회의 경우 매주 회의를 하면서 매주 얼굴 보고 밥 한 끼 먹고, 차 한 잔 마시기도 하죠. 한 번이라도 더 많이 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특별히 나오라고 독려한 게 아니고 자율적으로 다들 결합하시는데 얼굴 한 번 더 볼 때마다 더 친밀해지는 기회가 되는 거죠.

심재섭 팀장 : 나오라고 두 분께서 독려를 하시는 거군요?

조미연 변호사 : 아니요, 그건 아니구요. 그냥 다들 시간 되시면 참여해 주세요. 그래서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심재섭 팀장 : 두 분이 참여하는 사업, 소송, 행사들이 많잖아요. 전 처음에 초임인 내가 여기에 참여해도 되나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두 분은 어떠세요?

이경재 변호사 : 대부분의 민변 회원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요. 이제 막 변호사가 된 입장에서 내가 이걸 해도 되나 하는 두려움이 있을 거예요. 그러다 보니 참여를 못하게 되는 경향이 있고요. 저는 제가 무슨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집회나 회의에서 머릿수 채우는 역할만 하자고 맘을 먹는 것이에요. 저희도 두려움은 있죠.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는 것 보다는 참여하는 게 맞으니까요.

조미연 변호사 : 머릿수를 채우다보면 어느 순간 긴 호흡을 함께할 수 있다고 김선수 변호사님이 말씀해주셔서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 이경재, 조미연 두 변호사는 지난해 사법농단 진상규명,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저지를 위해 활발히 활동하였다. 위 사진은 릴레이 1인 시위 당시 모습.

 

심재섭 팀장 : 이런 것은 어때요? 집회나 회의를 참가하기로 했는데 나만 참석하게 되는 경우, 송무를 맡았는데 실제 같이 일을 하는 분들이 나와 같은 초임인 경우…

조미연 변호사 : 실제로 민변에서 미진한 부분들이 그런 점인 것 같아요. 사업에 들어갔을 때 맡게 되는 업무가 생각보다 무거운 업무인 경우도 있고, 역량 밖이라고 느껴질 경우가 있죠. 책임감 있게 하고 싶어서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면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겠죠. 선배들의 약간의 도움이 있다면 훨씬 수월할 것 같아요. 신입설문조사에서도 그런 점이 많이 나타났죠.

심재섭 팀장 : 신입설문조사요?


조미연 변호사 : 네, 이번에 회원팀에서 신입회원들을 대상으로 민변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어요. 저는 민변 회원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회원팀 활동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회원팀에 있다는 것만으로는 회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신입의 입장에서 신입의 목소리를 모아서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담으려고 설문조사를 시작했어요. 34분 정도가 설문을 해주셨는데, 지금 주제에 관한 것이 있어요. 신입 회원분들이 민변 활동에 잘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의 첫 번째는 바빠서이고요, 그 다음 이유로는 민변에서의 업무가 너무 과중해서, 민변에서 어떻게 활동해야 할지 막연해서,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이 부족해서라고 해요. 첫 번째 바빠서는 관점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머지 이유는 신입회원의 입장에서 새로운 조직에 들어오는 시점에서 기존 구성원들의 역할을 고민하게 해주는 유의미한 답변이라고 봐요.

이경재 변호사 : 바쁘다는 건 좀…….

조미연 변호사 : 그쵸, 바쁘다는 건 핑계일 수 있죠. 그런데 한정된 시간에서 민변을 우선할 수 있도록, 조금 접근하기 편하게 선배 회원들이 손을 내밀어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요.

 

(두 분 변호사님께서 그간 느끼고 생각한 바가 많으셨더라고요. 이 지면에 다 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고민이 있었고, 그런 점에서 감사했습니다.)

 

심재섭 팀장 : 두 분의 의견은 어때요. 기존 선배 변호사님들이 이런 점을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 하는 점이요.

이경재 변호사 : 저는 민변이 다른 법조조직에 비해 시대적인 변화에 적응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구시대적인, 권위주의적인 양태가 가끔 보일 때가 있어요. 그게 활동의 방향에 관한 거라면, 새로운 방법에 대해서 유연한 태도들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조미연 변호사 : 회원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작은 단위에서의 관계요. 평등하고 대등한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과, 일을 같이 하는 데에 있어서 경력과 경험의 차이를 기초로 한 효율적인 협업을 잘 구분해서 둘 다 놓치지 않았으면 해요. 예를 들어 대등한 관계라는 점이 업무수행까지 적용되면 꼭 필요한 지시 내지 조언이 생략되는 문제가 생기잖아요. 실질적인 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초임 입장에서 어떻게 보면 방치되었단 느낌을 받을 수도 있어요.

 

이경재 변호사 : 서면으로 된 산출물에 대해서, 선배들께서 어려워서든지 다른 이유에서든지 피드백을 주지 않으시는 것이 어떻게 보면 무관심으로 이해될 수 있겠죠. 애정을 가지고 후배들을 많이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떠한 실수가 있을 때 확실하게 짚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미연 변호사 : 신입 회원들에 대해서 계속 궁금해 하셨으면 좋겠어요. 끊임없이 후배들에게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고 많이 물어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경재 변호사 : 후배 변호사들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성인이잖아요. 먼저 나서서 적극적으로 말했을 때 싫어하시는 선배 변호사들은 없으니까요.

조미연 변호사 : 그럼 서로에 대한 관심을 놓지 말자, 정도로 하면 좋겠어요.

 

심재섭 팀장 : 뉴스레터는 많이 보셨나요? 어떤 파트가 가장 재미있으셨나요?

이경재 변호사 : 전 인터뷰를 주로 봐요. 인터뷰를 제일 좋아하고요. 이유는 오프라인에서 우리 서로 개인적인 일들을 묻지 않는 편이잖아요, 그래도 궁금할 때가 있어요. 이 사람은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의 이런 모습을 갖게 되었을까 하는 점이요.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더라구요. 그런 점들, 보통 술자리에서나 할 수 있는 개인의 인생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여서 좋은 것 같아요. 최근 인터뷰 중에 최정규 변호사님 편 정말 좋았어요. 업무적으로도 종종 뵙는데, 이렇게 왕성하게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던 차에 인터뷰를 통해서 알게 되니까 좋더라구요.

조미연 변호사 : 저도 최정규 변호사님 인터뷰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뉴스레터를 잘 못 봐요.

심재섭 변호사: 안 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조미연 변호사: 음… 귀차니즘인 것 같아요. 다 글이니까. 일하면서도 글을 보고 글을 쓰는데, 대부분의 소식이 글로 오니까 더 핑계거리가 되지요. 같은 소식이라도 영상으로 오게 되면 더 먼저 보게 될 것 같아요. 정보를 수집할 때, 간단한 문자, 짧은 영상이 우선이고, 장문의 글은 그 다음. 만약에 하드카피 문헌이라면 가장 늦게 손이 가요. 그런데 이건 개인적인 문제라, 출판소통팀에서 내용이나 구성이나 부족한건 아니지요. 혹시 여력이 된다면, 출판소통팀에서 SNS나 영상 컨텐츠적으로 접근을 좀 더 한다면 회원들이 더 많이 보게 될 것 같아요. 짧은 글이라던지, 짧은 영상들을 더 넣는다면 좋을 것 같아요.

이경재 변호사: 민변이 해야 할 역할 중 진중함이 있을 텐데, 영상으로 할 땐 한계가 있을 순 있을 것 같아요. 아주 작은 시도부터 하면 좋지 않을까요? 여전히 글이 길다는 느낌은 받고 있어요. 임팩트라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입니다.

 

(뉴스레터 이야기가 나올 때에는, 마치 우리 출판소통팀 회의 시간이라고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선배 변호사님께서 모임에 대한 애정으로 많이 읽어주시는 것을 알고 있는데, 아무래도 최신의 트렌드(라는 것이 있다면)에는 좀 맞지 않는 것인가 하는 고민도 들었습니다.)

 

심재섭 팀장 : 민변 회비는 부담이 되시나요?

조미연 변호사 : 솔직히 조금 부담스럽기는 해요. 절대적인 숫자가 크다고 할 수는 없는데, 변회(서울변호사협회) 회비도 있고요, 민변에 들어오는 변호사님들이라면 개별적으로 후원하는 단체들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그렇다면 꼭 민변 회비만 떼어서 보긴 어렵고 월 지출 총액을 고려하면 아무래도…….

 

심재섭 팀장 : 앞으로의 계획은 어때요?

조미연 변호사: 첫 직장을 잡는 거죠. 꼭 가고 싶은 직장이 있어요. 민변에서 신입회원으로 활동을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 직장에서 변호사로서의 처음을 제대로 다지고 싶어요. 거기에 하나 더 생각한다면 민변 회원으로서 긴 호흡법 연습하기가 있어요. 머릿수만 채우면 된다고 하지만 그걸 10년, 20년 머릿수만 채울 수는 없잖아요. 그것에 대한 고민들이 있어요.

이경재 변호사: 1년차 때에는 머릿수 채우기로 정신없이 보냈는데, 앞으로 더 많이 경험하고 실력을 갖추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려면 어설프게 마음만 줘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정말 도움이 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하잖아요. 4월에 새로 합격하시는 변호사님들, 또 그 뒤의 변호사님들께 제가 선배님들에게 받았던 느낌을 똑같이 주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경험과 실력을 갖춰야 할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 실력을 갖출 수 있을까가 요즘 가장 큰 고민이에요.

 


처음 민변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1년을 넘겨서도 초기의 활동력과 애정을 유지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갈수록 변호사의 고용‘시장’이 어려워지고, 법률시장 자체가 팍팍해져 가는 현실에서 신입회원들이 빨리 방향을 달리 정하고 민변 활동에서 멀어지는 것 역시 개인적으로 충분히 공감합니다. 오히려 탈회하지 않는 마음이 고맙지요.

이번 두 분 변호사님과의 대화에서 민변에 대한 사랑, 변호사 직업에 대한 열정, 그리고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현실적인 고민들을 모두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 분 변호사님이 신입 회원의 모든 의견을 대변하는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신입 변호사님들이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하고 있는지 공감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2018년 활동 사진 한 장을 달라는 출판소통팀의 요청에 이경재 변호사님이 아래 사진들을 보내왔습니다. 보낸 모든 사진을 실어달라는 이경재 변호사님의 요청에 답하며 인터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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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9/03/1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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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018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60년 만에 맞는 황금개띠 해라고 합니다. 황금개띠는 풍년과 다산을 상징한다고 하는데요, 저출산 시대를 맞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들을 내놓는 것도 좋겠지만, 이와 더불어 이미 태어난 아동들이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더욱 관심을 가지고 제도 개선을 이뤄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동이 단순히 보호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서 당당히 인정받는 그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저희 아동인권위원회는 올 한해도 최선을 다해 다양한 활동들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이번 아동인권위원회(이하 ‘아동위’라고 함) 활동 소식에서는 2017년 한 해 동안 저희 위원들이 아동인권 향상을 위해 어떤 활동들을 해왔는지 사진을 통해 돌아보고자 합니다.

1. 입양제도 개선을 위한 활동

지난 한 해 동안 저희 아동위의 강정은, 김경은, 김영주, 소라미 위원은 「대구포천 입양아동 학대 사망사건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이하 ‘진조위’라고 함)」에 참여하여 현행 입양제도의 문제점을 조사하고, 제도 개선을 위한 입양특례법 개정을 촉구하는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위원들의 진조위 활동 내용은 월례회를 통해 모든 아동위 위원들과 공유되었고, 아동위 위원들은 7월 월례회에서 워크샵을 진행하면서 현행 입양제도의 한계 및 문제점에 대해 알아보고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아동위는 지난 활동을 통해 가지게 된 입양제도에 대한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향후 입양특례법 개정, 강제추방 된 해외입양인을 대리한 국가배상 청구 소송 등 입양제도의 문제를 알리고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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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16.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소라미 위원이 입양특례법 전부 개정안에 대한 발표를 하고 있다.》

2. 각종 아동학대 사건 대응

2017년에도 아동학대 사건은 끊이지 않고 발생하였는데요, 아동위 위원들은 ‘관악구 지역아동센터 아동학대 법률지원단’을 구성하여 피해 아동들 위한 법률지원을 하는 등 각종 아동학대 사건에 대응에 왔습니다. 한편 저희 위원회의 강정은, 김영주, 김희진, 신수경, 이혜선 위원은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발간한 「아동학대사건 법률지원 매뉴얼」의 집필진으로 참여를 하였습니다. 본 매뉴얼은 아동위 위원들이 그동안 각종 아동학대 사건들을 다루면서 얻게 된 실무적 노하우가 집약되어 있는 것으로 실제 아동학대 사건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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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연대활동

아동위는 2017년에 아동인권 시민단체들과의 연대 활동 강화를 신년 계획으로 삼았었는데요, 그 활동의 일환으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에 민변아동위의 이름으로 결합하였고, 김수정 위원장이 공동상임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1) 16세 청소년 참정권 확대, 2) 아동‧청소년 인권기본법 제정, 3) 학생인권의 법제화를 위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목표로 조직된 단체입니다. 2018년에도 아동위는 아동‧청소년이 권리의 주체로서 바로 서고 우리 사회의 당당한 시민으로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그 날까지 적극적으로 연대활동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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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보편적 출생등록 제도 도입 촉구 활동
우리 사회에는 제도적‧법적 공백으로 인해 출생신고 되지 못하는 아동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동은 출생신고 된 후에야 비로소 국가에 의해 ‘법 앞에의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동이 출생 즉시 공적으로 등록될 권리는 최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동위에서는 ‘아동이 출생즉시 등록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보편적 출생등록 제도 도입을 촉구 하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2017년에는 UBR(Universal Birth Registration) 법률지원단을 구성하여, 출생신고 되지 못한 아동들의 사례를 접수하여 법률적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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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1. 27.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김진 위원이 미등록 이주아동 문제에 대해 발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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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8. 22. UBR 법률지원단 워크샵 모습》

5. 친목활동

아동위 위원들은 작년 한 해 숨 가쁜 활동들을 이어가면서도 틈틈이 만나서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함께 웃으며 좋은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누구보다 끈끈한 우애로 뭉친 아동위 위원들이 올 한해도 멋지게 활약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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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3. 17-18. 부암동 G하우스에서 열린 아동위 워크샵. 밤늦게까지 이어진 수다 타임에서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아래 사진은 끝까지 살아남은 멤버들끼리 의기투합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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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번개!번개! 어디선가 누군가가 번개!를 외치면 한달음에 달려와 주는 아동위 위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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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위 활동의 하이라이트! 연말 송년모임! 조덕상 준비위원장을 포함한 준비위원들 덕분에 다정한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 감동적인 시와 아름다운 음악이 함께 하는 따뜻한 연말이 되었습니다. 》

 

수, 2018/01/3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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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위원회 활동소식

미투입법 관련 활동소식

 

 

안녕하세요. 민변 여성인권위원회입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미투입법관련 소식을 회원 여러분께 전달해드립니다.

 

1. 여성들의 목소리

올 봄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도 생각도 다른 다양한 연령대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폭로가 이어져왔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과거 피해사실을 상담하면서 시효가 지났다거나, 현행법으로는 처벌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좌절하는 모습에 많은 안타까움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민변 여성위에서는 이러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반영할 수 있도록 기존 여성폭력방지팀에서 2018. 3.부터 미투대응팀을 신설하여 개별사건 지원 외에 입법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 미투관련 입법활동

입법활동은 크게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두 축으로 하여 진행되어왔으며, 여성인권위원장이신 위은진 변호사님, 부위원장님인 이한본 변호사님, 대응팀장이신 이경환 변호사님을 비롯하여 많은 여성위 위원님들께서 2주에 한 번씩 모이는 일정에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참석하여 주셨습니다.

가해자 처벌과 관련하여 비동의간음죄 신설, 의제강간 연령상한, 불법촬영 관련죄 구성요건 일부수정 및 형량강화, 위장형

 

카메라관리법안 등을 검토하였습니다.

피해자 보호와 관련하여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여부, 성폭력피해를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 소멸시효기간 연장, 미성년자 피해자의 소멸시효 정지규정,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처분금지 등을 주로 논의하여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여성에 대한 폭력 방지와 피해자 보호 지원에 관한 국가의 책임을 명백히 하고, 여성폭력방지정책의 종합적‧체계적 추진을 규정하며, 여성폭력 특수성을 반영한 피해자 지원시스템 및 일관성 있는 통계구축, 교과과정 내 폭력예방교육을 통한 성평등 의식 확산 등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고자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발의되기도 하여 이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8. 8.부터는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함께 미투 관련 법안에 대하여 발제 및 검토하는 등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는 입법이 될 수 있도록 다른 단체와도 협력하여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용감하고 씩씩한 여성위 변호사님들이 문구 하나하나 신경써가면서 입법취지를 살리기 위해 입법안을 검토하고 공유해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성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입법만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이후 입법취지대로 실제 사건에 적용되고 있는지도 모니터링할 예정입니다.

3. 우리는 돌아갈 수 없다

여성위 변호사님들과 함께 입법안을 검토하고 논의하면서, 실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성위 변호사님들 역시 같은 마음으로 피해자 지원과 입법활동을 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 가져주시고 지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활동에 참여하고 싶으신 회원께서는 언제든지 사무처의 장길완 간사에게 연락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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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8/09/1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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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부 소식

 

신지현 변호사 (울산지부 사무국장)

 

▶ 2019. 1. 1.자로 김태엽변호사가 신입회원으로 가입을 하였습니다.

 

▶ 본부 회장단과 울산 지부 회원 간의 만남

2018. 10. 30. 오후 5시경 울산 남구 옥동에 위치한 가꾸상에서 본부 회장단(회장, 사무총장, 간사 등)과 울산 지부 회장단 및 회원들간의 만남이 있었고, 울산지방변호사회 신면주 회장님도 본부 회장님과의 인연으로 함께 참석하셨습니다. 저녁 식사를 겸한 자리에서 향후 본부와 울산 지부 간 원활한 소통과 협력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윤종오 전 울산북구청장 구상금 면제 청원 관련 기자회견 참석 및 의견서 제출

윤종오 전 울산북구청장은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으로 코스트코가 울산에 입점하기 위한 허가를 반려하였고, 이에 대하여 코스트코 측이 울산 북구청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하였음, 북구청이 코스트코 측에 손해배상금을 지급한 후 윤종오 전 구청장을 상대로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하여 약 4억원에 이르는 구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확정된 후 윤종오 전 구청장 개인 재산에 대한 압류 절차를 진행하게 되었음, 이에 대하여 지방차지법에 따른 면제가 가능한지 여부에 대한 의견서 요청이 울산지부에 접수되어, 장석대 변호사가 의견서를 제출하였고, 2018. 11. 19. 진행된 기자회견에 장석대, 정기호 변호사가 참석하였습니다. 참고로 이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장석대 변호사가 대책회의에 결합하여 법률검토 등 여러 사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양승태 사법농단 울산시국회의 1인 시위 참여

2018. 12. 7. 정기호 변호사님이 큰 추위에도 불구하고 법원 앞에서 진행 된 1인 시위에 참여하였습니다.

▶울산지부 송년모임 개최

2018. 12. 10. 울산지부 송년모임을 개최하여 회장단 이임식과 신입 회원 환영회를 함께 하였습니다.

▶신임 집행부 구성

2019. 1. 1.부터 지부장 설창환 변호사(연수원 30기), 부지부장 한정희 변호사(연수원 34기), 사무국장 신지현 변호사(연수원 36기)로 새롭게 집행부를 구성하고 활동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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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9/01/10-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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