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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성명] 국회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의 목숨을 건 농성에 당장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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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성명] 국회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의 목숨을 건 농성에 당장 응답하라

admin | 금, 2019/11/08- 04:53

20대 국회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의 목숨을 건 농성에 당장 응답하라

 

2017년 11월 7일 시작한 최승우, 한종선 피해생존자의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농성이 오늘로 2년이 됐다. 6일 오후, 최승우 씨는 “침묵하는 이 사회를 비난하며, 나는 결국 무기한 고공 단식을 결심하고 택했다”고 말하며 국회 앞 엘리베이터 탑에 올랐다. 최승우 씨는 왜 2년의 국회 앞 농성에 이어 다시 고공 단식을 선택해야만 하는가?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19대 국회에서 폐기되고, 20대 국회에서 계류되고 있으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법(‘진화위법’)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입법 투쟁에 새로운 물꼬가 트였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2년 전 발의된 진화위법 개정안은 올해 10월 22일이 되어서야 겨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갔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 당시 진화위 설립을 2018년 하반기로 약속했던 것이 무색할 뿐이다. 피해자들이 개정안의 법사위 통과를 애끓게 기다리고 있지만, 20대 국회는 일손을 놓은 지 오래다. 내년 총선이 시급한 사안이 된 20대 국회에서 진화위법 개정안이 통과될 지가 미지수다.

 

2018년 검찰과거사위원회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을 조사하고 국가책임을 인정하면서, 문무일 검찰총장이 눈물로 사과했고 총장 권한으로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신청했다. 부산시도 조례를 제정하며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 것 같았다.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언론에 오르내리며 형제복지원 사건은 금방 “해결”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국가기관이 과거에 자행한 과오를 반성한다는 외양을 완성시킬 뿐 아직도 실제 사건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위해 제도로 정착된 것은 없다. 검경, 부산시 등 국가기관이 인정한 그들의 과오와 이에 대한 책임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제도의 설립이 절실하다. 

 

피해자들의 투쟁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일인 시위, 삭발 시위, 국토대장정(부산 형제복지원 터부터 청와대까지 486.55km), 그리고 2년째 계속 되는 국회 앞 노숙 농성. 아스팔트 위 추위와 더위 속에서 최승우, 한종선 씨는 법안 통과를 기대하며 여야의원을 찾아 “읍소하고 부탁했다”. 그러나 특별법이 발의되어 기대하니 폐기·계류되고, 촛불 광장으로 새 정권이 출범하여 기대하니 별다른 변화가 없다. 비상상고도 진행상황을 알 길이 없고, 진화위법 개정안 통과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기대와 절망의 반복으로 들쑤셔지며, 피해자들의 무력감과 자괴감만 커지고 있다. 현 정권에서 20대 국회가 진화위법 개정안의 통과를 서둘러야만 하는 이유이다.

 

진화위법 개정안이 법제사위까지 이르렀으나 뚜렷한 기약없이 또 다시 기다림의 굴레에 놓인 최승우는 고공단식농성에 나섰다. 우리는 2년간의 거리 노숙농성에 이어 이 선택을 내리기까지 최승우 씨가 겪어야만 했을 기다림과 분노, 고통 앞에서 침통함을 느낀다. 

 

최승우 씨는 개정안의 법제사위 통과가 확실해질 때까지 농성을 계속하겠다고 말한다. 20대 국회는 피해자들의 목숨을 건 투쟁에 당장 응답하라. 진화위법 개정안의 조속한 법제사위, 본회의 통과를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 우리는 최승우 씨를 비롯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진상규명 투쟁에 뜻을 힘껏 보태며 끝까지 함께 할 것이다.

 

2019년 11월 7일

4.9.통일평화재단, 광주인권지기 활짝, 국제민주연대, 다산인권센터,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기념)단체 연대회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 빈곤사회연대,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원불교인권위원회, 인권운동공간 활,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의학연구소·김근태기념치유센터,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제주평화인권센터,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천주교인권위원회, 한국전쟁유족회, 한베평화재단, (사)제주다크투어, (재)진실의 힘 (전국 총 21개 단체)

 

▶공동성명 https://docs.google.com/document/d/1pe1XWFLJREtGfz4vjufDkHmaK1BMT-M0elb-... target="_blank" rel="nofollow">[원문보기/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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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한국의 흑역사 형제복지원 사건 재조명 – AP 보도로 드러난 군사독재의 가장 어두운 페이지 – 도화선은 박정희, 진상 밝힐 기회를 없앤 건 전두환 –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 … 잊혀져버린 피해자들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가 22일 최근 AP통신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시 들여다봤다. 필립 퐁스 특파원은 ‘부랑아의 아픈 추억에 사로잡힌 한국’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1970년대 ...
일, 2016/04/24-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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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AP통신,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탐사 보도 – 피해자 증언과 정부 자료 근거로 구타, 강간, 노예노동 등 인권침해 사례 적시 – 형제복지원이의 정치적 목적, 그리고 박인근 원장이 챙긴 부당이득 사례도 밝혀 형제복지원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그야말로 ‘최악’으로 기억될 인권침해 사건이다. 형제복지원은 박정희 정권 때 시작됐고, 뒤이은 전두환 정권이 거리 ‘정화’를 명분으로 부랑자, 고아 등을 수용하면서 번창하기 ...
일, 2016/04/24-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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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뉴스, 한국인권단체 ‘형제복지원’ 조사 촉구 – 과거 독재정권 ‘길거리청소’로 수천명 강제수용 및 노역 – 국가 인권위원회, 특별법 통과 권고 및 UN서명 비준 촉구 부산 형제 복지원은 과거 독재정권의 부끄러운 모습 중 하나이다. 이곳에서 노숙자와 장애인, 어린이 수천 명이 길거리 청소라는 이름으로 강제 수용되어 강제 노역과 학대에 시달렸다. AP는 단독 입수한 문서 수백 개와 관계자 및 ...

The post ABC뉴스, 한국인권단체 ‘형제복지원’ 조사 촉구 appeared first on Newspro Inc..

토, 2017/12/0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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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1987, 형제복지원 사건 진실을 규명하라!”

 

 

 

영화 “1987”이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1987년 1월 박종철군이 경찰의 물고문으로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생과 시민들은 군사독재 정권의 폭력에 항거하며 민주주의에 열망을 안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전 국민의 6월 항쟁으로 이어졌고, 헌법 개정을 통해 직선제를 쟁취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속에 잊혀진 사건이 있습니다. 가장 가난했고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입니다.  

 

1975년 국가는 「내무부훈령 410호: 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 지침」를 근거로 ‘부랑인’이라는 허구의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집이 없거나 가난하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쓸모없는 인간”이란 낙인을 찍고, 거리에서 보이지 않게 ‘수용소’에 잡아 가두도록 국가가 지시했습니다. 부랑인을 2등 시민쯤으로 여겼고, 감금과 배제를 당연한 통치 수단으로 여겼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국가 주도하에 진행한 불법 감금, 폭력, 노동 착취, 사망 등 국가폭력의 문제였습니다. 

 

1987년은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이 거리로 뿜어져 나온 혁명의 해로 기억되지만 그 해 따뜻한 봄날, 거리로 나오지 못하고 또 다시 수용소로 ‘전원조치’된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자리에 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 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동안 피해생존자들은 ‘니가 못나서 잡혀 온 거야’란 끊임없는 세뇌를 받았고 그로 인해 감금당한 채 착취당한 삶을 부끄러워하며 ‘부랑인’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고자 차라리 ‘침묵’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인권’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터득한 피해생존자들은 지난 30년의 세월을 ‘그림자 인간’처럼 보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형제복지원 같은 수용소 정책이 국가 정책이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실상에 대해서는 길게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살아남은 아이’(한종선, 전규찬, 박래군 공저)의 출간과 대책위, 피해생존자모임이 지난 6년간 지난하게 해온 이야기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자리는 ▲누가, 왜, 시민들을 잡아가두었는가 ▲수사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그리고 ▲수사축소와 왜곡으로 우린 어떤 참혹한 결과를 가져 왔는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검찰 과거사위원회>에 조사대상 사건으로 인정해줄 것을 제안합니다.

 

최근 10여년의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적폐만 주로 청산하겠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의 적폐를 인지하고 안 순간, 시기를 정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당시 검찰수사에서는 박인근 원장 개인의 횡령 등을 중심으로 수사하다가 피해자 인권침해로 전환하려는 순간, “그만 둬”라는 수사중단 외압을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피해자 입소과정, 수용 중 폭력과 강제노역, 성폭력, 과다약물 투여, 그리고 사망 사건은 전혀 수사를 착수할 수 없었습니다. 수사 기간 중 폭력으로 사망한 수용자의 사망진단서에 ‘자연사’로 기재된 것을 발견하고 그 허위 사망진단서를 발급한 촉탁의를 기소하려는 것조차 윗선의 압력으로 진행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이렇듯 국가는 과거에도 또 현재에도 형제복지원 사건의 그 실체적 진실을 전혀 밝혀내지 않고 있습니다. 19대 국회, 20대 국회...이렇게 5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형제복지원 특별법만 바라보던 피해생존자들이 특별법 통과를 염원하며, 벌써 72일째 국회 앞에서 찬바람과 싸워가며 노숙투쟁을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87년 봄은 따뜻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소외되고 잊혀진 우리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국가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우리 모두의, 철저히 조작되고 은폐된 한국 사회의 민낯이기도 합니다. 검찰의 재조사로 권력에 의해 묻혀진 형제복지원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조금이라도 밝혀지길 기대합니다.

 

▶ 보도자료 [원문보기/다운받기]

▶ 별첨1: 검찰과거사위 공문 [원문보기/다운받기]

▶ 별첨2: 검찰과거사위 보도자료 [원문보기/다운받기]

▶ 표1: 형제복지원 수사방해 개요도 [원문보기/다운받기]

▶ 표2: 형제복지원 국가책임 [원문보기/다운받기]

 

 

▶기자회견 순서

•일시 장소: 2018.1.17.(수) 오전 11시  / 서초구 대검찰청 앞 

•주최: 형제복지원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 형제복지원사건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모임

 

◦발언 1: 한종선(피해생존자모임대표, 현재 국회 앞 노숙농성 72일차)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은 1987년 영화를 보는 것이 두렵습니다”

◦발언 2: 최정학(민주주의법학연구회, 방송대 법학과) 

    “검찰 과거사위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재조사해야 하는 이유”

◦발언 3: 김용원(당시 수사검사) 

    “수사외압에 대한 상황 설명, 그리고 외압으로 못다한 수사” 

수, 2018/01/1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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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xe_content"><h1 dir="ltr">진상규명을 위한 발걸음 ‘뚜벅뚜벅’<br /> - 형제복지원 피해신고센터를 운영하며</h1> <p> </p> <h3 dir="ltr" style="text-align:right;">장승호 사회복지연대 활동가</h3> <p> </p> <h2 dir="ltr">형제복지원 사건을 바라보는 변화의 움직임</h2> <p dir="ltr">존재하지 않을 것 같던 형제복지원 신상기록카드가 세상에 공개되고, 6ㆍ13 지방 선거를 거쳐 민선 7기가 출범하면서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부산시장의 사과와 검찰의 비상상고 결정, 검찰총장의 사과 등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부산시도 부산시장의 사과 이후로 그간의 행보와 다르게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을 고민하였는데 그 시작이 전포지하철역 지하상가에 위치한 ‘뚜벅뚜벅’ 형제복지원 피해신고센터 운영이다.</p> <p> </p> <p dir="ltr">제도적 준비(특별법 제정, 센터 운영을 위한 조례 등)가 되어있지 않은 채 개소한 센터는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현재는 한시적으로나마 형제복지원사건부산대책위와 부산시가 협력하며 센터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3월 이후에는 추경과 조례제정, 상근자 채용 등을 통해 더 안정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 밝혔다).</p> <p> </p> <p dir="ltr" style="text-align:center;"><img alt="<사진 1> 진실, 정의, 뚜벅뚜벅" src="https://lh6.googleusercontent.com/b82hVFjVvIiKQPwvSGw7pjqewju1zkz26ML0I…; /></p> <p dir="ltr" style="text-align:center;"><span style="color:#3498db;">▲ 진실, 정의, 뚜벅뚜벅 형제복지원사건 피해신고센터 <사진 = 사회복지연대></span></p> <p> </p> <p dir="ltr">사회복지연대는 부산에서 형제복지원의 과거와 해산과정에 이르기까지를 추적하고 자료를 발굴해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진실을 위해, 피해신고센터의 역할이 조금이나마 진상규명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센터 개소 이후부터 계속 함께하고 있다.</p> <p> </p> <p dir="ltr">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특별법(과거사정리, 형제복지원 모두를 일컫는다) 제정이 되지 않은 현실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이 제약적이기 때문에 특별법 제정이 속히 이루어져야겠으나, 신상기록카드 발견이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처럼 피해자분들의 기록이 쌓이며 진실을 향한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애쓰며 활동하고 있다.</p> <p> </p> <h2 dir="ltr">형제복지원 피해신고센터 ‘뚜벅뚜벅’</h2> <p dir="ltr">부산시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신고센터를 설립한다고 했을 때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모임 대표가 그 이름을 고민했고 송소연 진실의 힘 상임이사가 뚜벅뚜벅이란 이름을 제안해 지금의 센터 이름이 뚜벅뚜벅이 되었다. 30여 년간 숨죽이며 숨어 살아온 피해생존자들이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피해사실을 드러냄으로써 자신들과 같은 피해를 겪는 이들이 없게 당당하게 피해상담센터를 찾아와 자신의 피해사실을 증언하는 그 장소야말로 자신이 주인공으로서 설 수 있음을 말한다는 의미로 지어지게 되었다.</p> <p> </p> <p dir="ltr">형제복지원사건은 인권유린과 유착으로 인한 사건은폐 등으로 진실이 가려져 왔지만 지금까지 진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고 또 아직 다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뚜벅뚜벅센터는 오늘도 운영되고 있다.</p> <p> </p> <p dir="ltr">2018년 12월 26일, 개소식을 시작으로 진실을 향한 첫 발을 내딛은 피해신고센터는 피해생존자 및 실종자가족의 신고접수를 비롯하여 대면상담, 형제복지원 자료 수집ㆍ정리, 피해 생존자 모임 공간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루 평균 4~5명의 피해생존자들이 꾸준히 찾아오고 있다. 부산뿐만 아니라 구미, 청주 등 타 지역에서 먼 길을 달려와 찾아주시는 이도 있으며, 거동이 불편한 사람과는 전화상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p> <p> </p> <p dir="ltr">센터를 찾아오시는 대부분의 피해생존자들은 오래 전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로 상담을 시작하지만 어렴풋이 형제복지원에 가게 된 경위, 생활했던 내무반의 구조, 함께 있었던 동기의 별명, 구타로 생긴 흉터들을 말하며 결국엔 아픈 기억들을 조금씩 기억해내곤 한다. 상담을 마쳐갈 때쯤에는 쉴 새 없이 울분을 토해내며 순간순간의 상담이 진행되고 있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인권유린을 겪은 피해자들에게 당시의 기억은 잊힌 기억이 아닌, 잊고 싶었던 기억임을 알 수 있었다. 센터를 찾는 피해자들 중에는 글을 몰라서 대신 기록을 부탁하기도 하고, 형제복지원에서의 후유증에 허리 통증을 호소하기도 한다.</p> <p> </p> <p dir="ltr">“내가 형제복지원에 끌려가지만 않았어도...” 형제복지원이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놓은 것에 대해 버릇처럼 내뱉는 원망의 말은 상담하는 내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심지어는 맨정신으로 상담이 힘들어 약주를 하고 오는 피해자도 있다. “부산시장이 사과해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솔직히 보상에 큰 의미 안 둡니다. 오늘 죽던지 내일 죽던지, 내가 죽어버리면 그 보상 아무 소용없습니다. 근데 내가 왜 버티고 있는지 압니까? 나는 그저 선량한 시민이고, 부랑인이 아니었다는 걸 사람들 모두가 알아주기를 바라서, 그 억울함이 너무 커서 안 죽고 버티는 겁니다.”</p> <p> </p> <p dir="ltr">부랑인이라는 낙인을 가진 채 살아온 지 30여 년, 국가의 잘못에 대해 마땅히 사과 받고, 배상받아야 할 입장에서 고개 숙여 감사인사를 표현하는 장면에서 느끼는 거리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억으로 남아있으며, 우리 사회가 한 노력은 피해생존자들이 받은 소외감을 어루만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음을 느끼며 센터는 운영되고 있다.</p> <p> </p> <p dir="ltr">또 센터를 운영하며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제보는 실종자 가족의 이야기이다. 당시 실종되었는데 형제복지원으로 갔을 것 같다는 추측성 제보도 많지만 형제복지원 안에서 봤다, 경비실 입출대장에 기록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럼에도 아직 가족을 찾지 못했다며 어떻게 찾을 수 있냐고 센터로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에게는 현재의 기록만 가지고는 해드릴 수 있는 게 제한적이다.</p> <p> </p> <p dir="ltr">아직 사망신고도 차마 하지 못한 채, 당시 아버지의 주민등록증과 도장 등을 가지고 센터로 찾아와서 생사확인만이라도 하고 싶다고, 자식 된 도리로 제사라도 지내고 싶다고 말씀하는 원망과 한숨 속에서 진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야 할 이유를 다시 한 번 무겁게 새기며 활동하게 된다.</p> <p> </p> <h2 dir="ltr">진실을 향해 뚜벅뚜벅</h2> <p dir="ltr">형제복지원 사건은 30여 년이 넘게 지났지만, 피해생존자들은 아직 30년 전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앞 농성은 1년을 넘어 500일을 바라보고 있다. 하루빨리 특별법(과거사정리, 형제복지원 등) 제정을 통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져 피해자들의 멈춰버린 시계를 돌리고, 떳떳하게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명예가 회복되어야 한다. 향후 부산시 조례제정을 통해 센터운영의 사무를 피해생존자 모임에서 맡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경찰, 구청, 사회복지시설 등에 흩어져있는 기록들을 유기적으로 조회하고 취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삶을 추적해 내야 한다. 특별법을 통한 진상조사위원회가 만들어 지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더 이상 시간을 흘려보낼 수 없다. 센터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목적을 잘 수행하길 기대한다.</p> <p> </p> <p dir="ltr">사회복지연대는 진상규명을 바라는 피해자들의 바람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형제복지원 피해신고센터가 뚜벅뚜벅 활동해 나가는 데 함께할 것이다.</p></div>
금, 2019/03/0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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