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과거사위] 여순민중항쟁 71주기 워크숍

지역

[과거사위] 여순민중항쟁 71주기 워크숍

admin | 토, 2019/11/02- 02:14

과거사청산위원회 소식

-여순민중항쟁 71주기 워크숍- 

0.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입니다. 저희 과거사위원회는 2019. 10. 19. 여순민중항쟁 71주기를 맞아 여수로 1박 2일 워크숍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과거사위 활동 소식은 워크숍 여정을 중심으로 전달해드릴까 합니다.

 

1. 제71주년 여순사건 희생자 합동 추념식

 

    과거사위는 2019. 10. 19. 오전 11시 이순신 광장에서 열린 제71주기 여순사건 희생자 합동 추념식에 참석하였습니다. 이 날 유족과 시민 500여 명이 참석한 추념식은 문화공연에 이어 추념사와 헌화 순으로 진행되었고, 오전 11시 정각에는 여수시 16개 민방위 경보시설에서 묵념 사이렌이 울렸습니다.

    그간 추념식은 여수지역사회연구소를 비롯한 다양한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주도되어 왔습니다. 이후 여수시가 추념식을 주관하게 되면서 올해 처음으로 위 묵념 사이렌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울리게 된 것입니다.

    또한 올해는 지난해 경찰서에서 순직 경찰위령제를 지냈던 순직 경찰 유족을 비롯해 많은 안보보훈단체 회원들이 추념식을 함께 지켜봐 상생과 화합의 도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 등 아직 가야할 길이 멀지만, 무엇보다도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된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의 아픔에 시민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대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2. 여수지역사회연구소에서의 강연


    추념식이 끝난 후에는 여수지역사회연구소로 이동하여 이영일 소장님으로부터 여순항쟁의 원인과 경과, 현 시점에서의 과제 등에 대한 강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소장님께서는 여순항쟁의 성격을 일부 좌익계 사병들이 일으킨 단순한 반란이 아니고, ‘부당한 명령에 맞선 항쟁’이며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 운동’이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또한 “제주 4·3사건이 없었다면 여순사건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여순항쟁은 제주 4·3사건의 연장선상에서 평가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948년 4월 3일 단독선거·단독정부 수립 반대를 주장하던 제주도민들을 국가는 무참히 학살하였고, 이 과정에서 진압명령을 하달 받은 여수 주둔 14연대 병사들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군대가 오히려 국민을 진압하고 학살하라는 명령을 따르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명하며 무기를 들었던 것입니다.

    끝으로 여순항쟁을 기화로 제정된 국가보안법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발생시킨 폐해를 언급하시면서 여순항쟁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하셨습니다. 다행히 제주 4·3사건의 경우 1999년 12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11년 동안 7차례에 걸쳐 추가 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반면 여순항쟁을 비롯한 많은 과거사 사건들은 여전히 진상 규명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앞으로도 현대사의 질곡을 온전히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 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가 더욱 노력을 경주해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3. 사적지 답사

  . 14연대 주둔지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서완종 국장님과 함께한 과거사위원회의 여수 첫 답사지는 1948년 여순항쟁의 시발점이 된 육군 제14연대 주둔지였습니다. 1976년 7월 23일부터 현재까지 한화여수공장이 입주하여 가동 중인데, 옛 부터 평화로운 원주민 마을을 강제로 이주시킨 후 일본과 미군에 이어 한국군의 병영지로 쓰이다가 급기야는 화약공장이 들어선 민족현대사의 아픔과 질곡을 간직하고 있는 비극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군사보안시설로 지정되어 현재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으며, 최근 인근 지역에 아파트를 비롯한 많은 주거시설이 확충되면서 화약공장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공장 가동률이 4분의 1로 하락함에 따라, 여수시가 한화와 부지 매각에 대한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하나, 지나치게 높은 매입금액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이 더욱 컸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나. 중앙동 인민대회장과 종산초등학교


    다음으로는 중앙동 인민대회장과 종산초등학교(현 중앙초등학교)에 방문하였습니다. 중앙동 인민대회장은 1948년 10월 20일 오후 3시경 중앙동 로터리 광장에서 수많은 시민들과 14연대 봉기군이 함께 참여하여 인민대회를 열었던 장소입니다. 인민대회에서는 ’38선이 무너졌다. 제주 출병을 거부한다. 동포가 동포를 죽일 수 없다’고 선언한 뒤 인민위원회를 조직할 것을 결의하고,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 실시 등을 내용으로 하는 6개 항의 결정서를 채택하였습니다.

    이후 여수가 진압되고 부역혐의자를 색출하면서 인민대회장에 나갔다는 이유만으로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현장에서 즉결처형 되거나 종산초등학교 등으로 압송되어 수용되었습니다. 종산초등학교는 여수경찰서와 가깝다는 이유로 수도경찰과 전남경찰 및 여수경찰서 특수대, 국방경비대 군인들의 공동 주둔지가 되었습니다. 10월 28일부터는 소위 가담자 색출이라는 이름으로 여수와 인근 읍면 지역에서 끌려온 혐의자를 속옷만 입힌 채 10명씩 포승줄로 묶어 12월 중순까지 수용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부산의 5연대장이었던 김종원은 혐의자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재판 없이 즉결처분을 자행하였는데, 권총이나 일본도로 목을 치는 광란적인 학살 만행을 자행하여 백두산 호랑이라는 악명을 떨치기도 하였습니다. 일본군 하사관 출신인 김종원은 여순사건 이후에도 거창양민학살을 주도하였고,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 등의 만행을 일삼다 1960년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아무런 재판과정도 없이 학살되어 암매장되거나 만성리, 민드래미 골짜기, 호명과 봉계동 등지에서 학살된 사람 모두가 이 학교에 수용되었던 혐의자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아직까지 그 규모와 내용이 밝혀지지 않은 채 71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다. 만성리 학살지와 형제묘


    만성리 학살지는 부역혐의자로 잡혀있던 종산초등학교 수용자 중 수백여 명의 민간인들을 끌고 와 집단학살을 자행한 장소입니다. 깊은 골짜기 형태를 한 이곳에서, 군경은 1948년 11월 초순경부터 종산초등학교에 수용되었던 여순사건 부역혐의자들 일부를 학살하고, 협곡과 같은 골짜기 속으로 던져 넣은 후 흙, 모래와 돌로 암매장하였습니다. 사건 당시의 증언을 토대로 한 기록을 보면 1948년 11월 13~14일 양일간 제3차 고등군법회의가 열려 재판 회부자 458명 중 사형언도자가 102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사건이 지난 후 이 골짜기를 지나는 사람들은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 작은 돌을 계곡에 던져 넣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풍속이 한동안 지속되어 돌탑무덤이 솟아오르기도 하였고, 현재는 2009년에 건립된 여순사건 희생자위령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여순사건 희생자위령비에는 오직 6개의 점(……)만이 덩그러니 새겨져 있습니다. 위령비 건립 당시 전・현직 경찰관 모임인 경우회가 희생자 유족들이 새긴 추모 문구에 이의를 제기했고, 이에 유족들은 사실을 왜곡할 바에는 아무런 문구도 새기지 않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무력으로 자국민을 학살하고, 그 죄적을 은폐하기 위해 희생자들을 암매장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유족들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위령비에서도 사회는 침묵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희생자와 그 유족들이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거나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차가운 현실이 위령비에 새겨진 6개의 점과 함께 무겁게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만성리 학살지와 함께 널리 알려진 이 곳 형제묘는 학살 후 시신을 찾을 길이 없던 유족들이 죽어서라도 형제처럼 함께 있으라고 ‘형제묘’라 이름 붙인 곳입니다.

    여순사건의 부역혐의자가 되어 종산국민학교에 수용되었던 사람들 중 제4차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125명이 1949년 1월 13일 이 자리에서 총살되고 불태워 졌습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여수경찰서 사찰계 형사는 “‘5명씩 총살 한 후에 다시 5명씩 장작더미에 눕혀 5층으로 쌓은 큰 더미 5개, 모두 125명이 매장되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처형은 헌병들이 주도하였으며, 장작더미에 기름을 부어 불을 태웠고 처형된 가족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보초를 세우고 태워진 시신 위로 큰 바위를 굴려서 덮었다고 전해집니다.

    형제묘의 커다란 봉분 한 켠에는 작은 봉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묘에는 정기만, 정기순, 정기덕, 정기옥 남매가 합장되어 있습니다. 정기순 위원장은 여순항쟁 당시 민주여성동맹(여맹) 위원장으로 인민대회 5인의 연설자 중 유일한 여성 지도자였습니다. 항쟁 당시 진압군에 의해 오빠인 정기만과 동생인 정기덕이 사망하였고, 두 형제는 유골조차 찾을 수 없이 형제묘에 함께 매장되었습니다. 살아남은 정기순 위원장과 여동생 정기옥씨도 ‘빨갱이’, ‘부역자’ 등으로 평생을 지탄받으며 삶을 마감하셨습니다.

    동생인 정기옥씨는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모진 일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그마저도 주기적인 경찰의 신원조회 및 감시로 인해 직장을 잃기 일쑤였습니다. 결국 세상을 비관하던 정기옥씨는 이른 나이에 요절하였고, 정기순 위원장의 어머니는 막내딸을 오빠들과 함께 매장해 주고자 형제묘 옆에 작은 봉분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형제묘에 또 하나의 작은 봉분이 만들어졌고, 정기순 위원장 역시 사망 후 화장하여 그 유골을 형제묘에 뿌려 가족들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형제묘는 여순항쟁의 희생자들과 그 유족의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장소입니다. 희생자가 가해자와 주변인들로부터 ‘빨갱이’로 매도되어 한 평생을 죄인처럼 살아야만 했습니다. 2019년이 된 지금에도 그 자손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기에 우리 과거사위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더욱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4. 나가며


    답사를 마친 뒤에는 숙소에 짐을 풀고 워크숍 일정에서 느낀 소회를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석해주신 많은 선배 변호사님들께 좋은 말씀을 많이 들을 수 있었고, 앞으로 더욱 노력하자는 마음가짐을 다잡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상희 변호사님과 위원장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변화는 더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우리 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상으로 10월 민변 과거사 청산위원회의 활동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The post [과거사위] 여순민중항쟁 71주기 워크숍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2020년 4월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진행한 코로나19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시민 10명 중 8명이 코로나 사태의 근본원인이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 때문이라는 사실에 동의하였습니다.  코로나19와 생태계 파괴, 기후변화의 연관성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가운데 우리의 사회·경제 시스템의 급격한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사회 전환과 환경이슈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설문조사를 통해 알아보았습니다. 시민들과 환경단체 회원들이 생각한 환경운동의 역할과 […]

The post 환경운동의 방향, 시민들에게 묻다 first appeared on 녹색연합.

수, 2020/12/23- 05:00
0
0

[인터뷰] “진정으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운동, ‘시대에 적합한 운동’에 대한 답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용과 형식 면에서 다요. 지금 이순간 우리가 하고 있는 운동이 함께 살아가는 동료 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운동인가? 그들이 요구하고 있는 운동이고,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운동이고, 그들이 협력자로 따라나설 운동인가?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길예 전남대 명예교수 […]

The post 에너지 전환과 먹거리 전환을 기후위기 대응의 쌍두마차로 first appeared on 녹색연합.

수, 2020/12/23- 05:29
0
0

‘코로나19 시대 환경운동이 나아갈 길’이라는 거창한 주제에 몰입했던 3개월이었습니다. 물론 한 가지 일에 골몰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환경활동가들의 일상이 그리 한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평소에 전혀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주제였던 우리의 일이라고 일컬어지는 ‘환경운동’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볼 수는 있었다는 건 참 다행이었고 좋은 기회였습니다. 원론적인 부분부터 새로운 관점까지 아주 넓은 스펙트럼의 끝에서 끝까지 건너온 기분이라고 […]

The post 코로나19 시대, 함께 나아가기를 제안합니다 first appeared on 녹색연합.

수, 2020/12/23- 05:41
0
0

소중한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목, 2021/01/14- 23:53
0
0

사단법인 오픈넷은 2021. 3. 17. 형법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조항(제307조 제1항)을 모든 사실이 아닌 ‘사생활에 관한 중대한 비밀을 침해하는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만 적용하도록 하고, 명예훼손죄를 친고죄로 개정하는 내용의 형법 일부개정법률안 (최강욱 의원 대표발의, 의안번호 2108530)에 대한 찬성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1. 개정안의 요지

–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최강욱 의원 대표발의, 의안번호 2108530, 이하 ‘본 개정안’)은 형법 제307조 제1항(이하 ‘본 조항’)을 ‘사생활에 관한 중대한 비밀을 침해하는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만 적용되도록 하고, 명예에 관한 죄는 모두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친고죄로 개정하는 내용임.

2. 현행 규정의 문제점 및 최근 헌법재판소의 견해

– 최근 본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2017헌마1113, 형법 제307조 제1항 위헌확인)이 있었으나, 이는 진실을 말한 경우에도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본 조항이 미투 운동 등 각종 사회 부조리 고발 활동을 위축시키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현실을 도외시한 것이란 비판이 있음. 이번 헌재 결정에서도 4인의 재판관이 지적한 바와 같이, 진실한 사실을 토대로 토론과 숙의를 통해 공동체가 자유롭게 의사와 여론을 형성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진실한 사실이 가려진 채 형성된 허위·과장된 명예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효과를 야기하면서까지 보호해야 할 법익이라고 보기 어렵고, 향후 재판절차에서 형법 제310조로 무죄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있더라도 본 조항의 존재 및 공익성 입증의 불확실성으로 표현행위에 대한 위축효과가 심대한 점,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법질서에 의해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행위로 보기 어렵고, 진실한 사실의 적시로 손상되는 것은 잘못되거나 과장된 사실에 기초한 허명에 불과하므로 사실적시 명예훼손 행위를 형사처벌이 필요한 정도의 행위반가치와 결과반가치를 가진 행위로 볼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본 조항의 위헌성은 심대함.

–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2018년 10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했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약 43,000명의 국민이 참여하였으며, 나아가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중 1944명의 변호사가 참여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9.9%(970명)가 해당 조항을 폐지하고 민사상의 손해배상의 문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답하였음. 2018년 4월에는 법학 교수 및 변호사 등 법률가 330인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촉구하는 법률가 선언문’이 발표됨. 유엔 인권위원회는 우리나라가 비준한 유엔 자유권 조약 중 표현의 자유 부분에 대하여 말한 사실이 진실한 경우에는 최소한 형사처벌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유권해석을 내린바 있으며, 미국, 독일, 프랑스 등 대부분의 선진국들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두고 있지 않으며, 2015년 유엔 자유권 규약 위원회와 2011년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역시 대한민국 정부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권고한 바 있음.

– 이러한 본 조항의 위헌성 및 국민의 법감정, 국제사회의 권고 등을 고려할 때, 본 조항은 폐지, 개정되는 것이 바람직함. 다만 이번 헌재 결정에서 공통적으로 설시된 내용은 진실한 사실이더라도 개인이 숨기고 싶은 병력·성적 지향·가정사 등 사생활의 비밀을 공개하는 행위는 형사처벌로 규율할 필요가 있는 영역이라는 것임. 이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현재 본 조항은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경우를 넘어 임금체불, 대리점 갑질 고발 등에도 실제로 적용되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음. 따라서 본 조항의 위헌성을 감소시키면서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을 조화롭게 보호하기 위하여, 본 조항을 모든 사실의 적시가 아니라 공익과 무관한 단순한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 한정하여 적용하도록 개정할 필요가 있으며, 본 개정안은 이러한 헌법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내용으로 평가됨. 

3. 본 개정안 도입의 효과

– 본 개정안이 도입되는 경우, 모든 일반적인 사실의 적시가 아니라 ‘타인의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사실의 적시’가 있는 표현물에 대해서만 고소 및 수사의 개시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최소한 내부고발과 같은 업무상 행위 기타 사회적·공적 행위에 대한 사실의 적시들은 초기부터 형사처벌 대상에서 배제되어 현행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단을 현저히 감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임.

–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사실’ 개념의 불명확성을 우려하는 견해가 있으나, 헌법재판소는 공공기관이 보유ㆍ관리하는 개인정보를 공개하면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이를 비공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의 조항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판단하면서,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의 개념이 다소 추상적이기는 하나 헌법의 해석을 통하여 구체화될 수 있는바, 헌법재판소의 상당수 선례에 의하여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에 관한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해석기준이 제시되고 있는 이상, 법 집행기관이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할 염려는 희박하므로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시한바 있으며, 이에 따라 다수 법률에서도 ‘사생활’, ‘사생활의 비밀’을 법률용어로 사용하고 있음. 이번 헌재 결정의 반대의견에서도, “물론 ‘사생활의 비밀’이란 용어가 다소 추상적이라고 볼 수 있으나, ‘사생활의 비밀’은 헌법 제17조에 명시되어 있는 헌법상 기본권이다. 현재 … 다수 법률에서도 ‘사생활의 비밀’을 법률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헌법 및 개별 법률의 실무 영역에서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해석기준이 제시되고 있으므로, 그 용어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시함.

– 한편, 본 개정안으로 명예훼손죄가 현재 반의사불벌죄에서 친고죄로 개정되면, 명예훼손죄가 수사기관이 자의적으로 수사를 착수하거나 제3자의 고발에 의한 ‘전략적 봉쇄소송’ 등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됨.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더라도 수사기관이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친고죄보다 형벌권의 발동 시기를 앞당겨 위축효과를 더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불러올 수 있어 공적 인물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위축시키기 위해 정치적으로 남용될 수 있는 위험을 매우 크게 안고 있음. 현재 명예훼손죄를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는 다른 입법례를 찾아볼 수 없으며, 인격권이라는 개인적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명예훼손 법제의 취지에 맞도록 친고죄로 개정하는 것이 타당함.

<끝>  

목, 2021/03/18- 01:18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