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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최장수 이낙연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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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최장수 이낙연 총리

admin | 화, 2019/10/22- 21:51

한동안 조국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논란으로 정국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둘로 갈라진 거대한 열광과 분노, 냉소와 조롱이 한국 사회를 뒤덮었다. 그 와중에 이낙연 국무총리의 안정감과 신뢰감이 조용히 주목받았다. 혼란 속에서도 이 총리는 ‘책임 총리’로서 돼지열병과 태풍 방재에 전념하는 등 안정적으로 내치를 관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느덧 이 총리는 각종 여론조사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총리는 오는 22일에는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 한국 정부 대표로 참석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회담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통’으로서 일본과 외교 분쟁을 해결할 돌파구를 마련할 것으로 주목받았던 터라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총리에게는 ‘할 일은 확실히 한다’는 이미지가 계속 쌓이고 있다. 과거 고건 총리나 황교안 총리처럼 혼란스런 정국 속에서 2인자인 총리가 주목받는 일이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현재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총리에게 주목할 만큼 떨어져 있진 않다. 어느 날 갑자기 주목을 받았다고 말하기에는 이 총리의 내공도 만만치 않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총리로 지명됐된 이낙연 총리는 지금까지 큰 과오 없이 직을 수행함으로서 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최장수 총리라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자연스럽게 현재 정국에 대한 해결사 노릇도 이 총리에게 바라는 모습이 종종 관측된다. 최근에는 권노갑·정대철 전 의원 등 원로 정치인들이 이 총리를 만나 “조국 법무부 장관이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자신을 내세우는 요란한 대응은 그간 이 총리의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 차기 대권에 대한 질문에도 “아무 계획이 없다”며 말을 아낀다.

 

품격 있는 사이다 발언으로 존재감

“MBC, KBS의 불공정 보도를 본 적 있느냐?”(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

“MBC, KBS를 잘 안 본다. 오래전부터 좀 더 공정한 채널을 보고 있다.”(이낙연 총리)

“수십 조 씩 퍼붓는 복지 예산을 늘릴 때인가?”(김무성 바른정당 의원)

“복지 예산은 대부분 지난 대선 때 모든 정당들이 공통으로 공약한 것이다.”(이낙연 총리)

이 총리는 2017년 9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대정부질문에서 야당 의원들의 파상공세에도 불구하고 ‘품격 있는 사이다 발언’으로 상대방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시민들은 이 총리의 대정부질문 답변에 환호했고 그의 주요 발언 장면은 소셜미디어 등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이 총리의 존재감이 본격적으로 부각된 순간이다. 고 노회찬 의원은 이날 이 총리의 모습을 보고 “중학생을 대하는 자상한 대학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자해공갈단 같은 거였는데, 자해만 하고 공갈은 못 하는 그런 상황이 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오랜 언론인 생활과 다섯 번에 걸친 대변인 생활은 그에게 ‘말과 글’을 단련할 시간을 주었다. 명대변인으로 꼽혔던 그는 여러 차례 기억에 남을 말들을 남겼다. “지름길을 모르거든 큰길로 가라. 큰길을 모르겠거든 직진하라. 그것도 어렵거든 멈춰 서서 생각해 보라.” 2002년 10월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사퇴를 압박하는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 의원들의 공세가 최고조에 달하자 당시 선대위 대변인이었던 이낙연 총리가 남긴 논평이다. 이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취임사의 최종 정리를 맡았다. 노 대통령은 연설문을 극찬하며 토씨하나 고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달 대정부질문에서도 이 총리에게 조국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질문이 쏟아졌다. 이 총리는 비판할 것은 비판하면서도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인사청문회 이후 조 장관에 대해 어떻게 판단했느냐”라는 질문에 이 총리는 “문 대통령께 (임명 전에) 저의 의견을 충분히 말씀드렸다”며 “저의 의견을 여기서 공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이 총리가 사실상 반대 의견을 표명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 장관이 자택 압수수색 당시 담당 검사와 통화한 것에 대해서도 이 총리는 “적절하지 않다, 아쉬움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이 총리는 검찰에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인사청문회 당일 조 장관 부인을 검찰이 기소한 것에 대해서는 “검찰의 의도와 별개로 국회의 검증권한과 대통령의 인사권에 영향을 미쳤다”며 일침을 놓았다. 또한 “이미 알려져 있는 것 가운데는 사실도 있겠지만 추측에 불과한 것도 있고 거짓도 있다”며 “진실이 가려지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조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 요청에 대해서도 “훗날 저의 역할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것은 자연스레 알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21년 동안의 기자 생활 동안 네 가지를 배웠다고 한다. 첫째, 진실은 몹시 알기 어렵다. 둘째, 어느 경우에나 공정해야 한다. 셋째, 말과 글은 알기 쉬워야 하며 그러려면 평범하고 명료해야 한다. 넷째,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 일주일에 하루는 책을 읽으려 한다. 그 중에서도 진실에 신중하다는 것과 “공정을 내 브랜드로 삼고 싶다”는 말에 눈길이 간다. 이 총리는 국회의원에게 의사당에서 주먹질을 당했지만 세상에 알리지 않는 대신 동료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앞으로 그 의원 기사는 자네가 써 주게. 나는 공정할 자신이 없네.” 지금의 이 총리의 모습에서 보이는 신중하면서도 강단 있는 태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꼼꼼한 일처리, 공백 없는 삶

이 총리는 늘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꼼꼼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그의 좌우명은 근청원견(近聽遠見)이다. 가까이 듣고 멀리 본다는 뜻이다. 전남 지사 시절에는 ‘이 주사’로 불리기도 했다. 실무를 맡는 6급 공무원 같다는 의미다. 보도자료 문구 하나하나도 직접 챙긴다고 한다. 이 총리는 국회의원 시절에도 의정활동 우수로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전남 지사직 수행도 ‘100원 택시’ 정책 등 대체로 후한 평가를 받는다.

이 총리는 취임 이후 장관들의 ‘군기’를 잡는다는 소문도 났다. 보고를 제대로 못한다고 질책도 서슴지 않는다. 2017년 8월 살충제 계란 파동 당시 국정현안점검조정 회의에서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관련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자 “제대로 답변 못 할 거면 기자들에게 브리핑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이 총리의 스타일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인자한 어머니(자모)’, 이낙연은 ‘엄격한 아버지(엄부)’라는 말이 돌 정도다. 어느 날 이 총리가 장관들의 술자리에 참석한 일이 있는데 “총리님 질문 좀 하지 마세요”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매주 월요일마다 이 총리와 정례 오찬 회동을 진행한다. 2018년부터는 정부부처 업무보고를 문 대통령이 아닌 이 총리가 주재하기도 했다. 역대 정부에서 매년 신년 부처 업무보고를 대부분 대통령이 주재한 것을 보면 이 총리에게 실리는 무게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과거 신문사 논설위원 시절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마치 최근의 이 총리에 대한 경구인 것 같기도 하다. “정상외교는 단발적이지만 내정은 연속적이다. 정상외교는 효과가 금방 나타날 수 있으나 내정에 효과가 나려면 많은 절차와 시간이 소요된다. 사람들은 그것을 참기 싫어한다. 그래서 하나라도 확실히 매듭짓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전략이 필요해진다. 많은 것을 펼쳐놓고 별로 주워 담지 못한다면 펼치지 않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소수정부가 가장 의지해야 할 것은 국민의 감동이다. 감동을 주기는 어렵지만 잃기는 쉽다.”

최근 일본과의 갈등 국면에서 이 총리는 특사로 파견될 것이란 기대도 받았다. 이 총리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래 전에 장관을 하고 잠깐 쉬는 사이 한국에 들렀을 때 비 내리는 삼청각에서 소주를 마셨던 일화가 있다. 그 자리에서 이 총리는 일본이 한센병 피해자 보상에 조선인만 차등을 둔 것을 지적했고, 아베 총리는 “알아보고 시정하겠다”고 답했다. 아베 총리는 1년 뒤 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해 결국 고쳤다.

이 총리는 일본에 가게 된다면 도쿄의 이자카야에 가서 ‘곤방와(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마침 30년 전 이 총리는 도쿄 특파원 시절 아키히토 일왕 즉위 행사에 참석한 경험도 있다. 이번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 참석해서도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어떻게 보면 이 총리는 정치인으로 한 번의 낙선도 없는 ‘꽃길’만 걸어온 것처럼 보인다. 동아일보 기자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의 눈에 띄어 정계에 입문했고 성공가도를 달렸다. 언론인 출신 정치인 중에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이 총리는 가난한 농부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렵게 서울대 법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사법시험의 길을 걷지 않고 취업의 길을 택한 뒤 기자가 된 것도 어려운 집안 사정의 영향이 컸다. 한 인터뷰에서 이 총리는 “인생에서 무직 상태로 있었던 것은 기자를 그만두고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전 50일이었다”며 “이력서에 공백이 있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는 공백이 있으면 굶어죽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남지사 후보 경선에 도전할 때도 만만치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80%는 주승용 의원에게 진다고 했지만 국회의원직을 던지고 도전하는 길을 택했다. 경선 당시 돈이 없어서 광주시내 값싼 원룸에서 지냈는데 겨울에 곰팡이가 슨 바지를 입으면 피부에 달라붙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를 ‘곰팡이 같은 내 인생’이라고 곱씹으며 막판에 극적인 승리를 일궜다.

 

장점이자 단점 ‘무난함’

취임 이후 이 총리는 무난한 내정 관리를 수행해 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8년 9월에는 3년 만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확진 환자가 나오자 이 총리는 신속하게 대처해 확산을 조기에 차단했다. 조류인플루엔자, 살충제 계란 대응도 무난했으며 돼지 열병에 대한 대응도 아직까지는 괜찮은 편이다.

몇 가지 논란도 있었다. 이 총리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김영란법의 선물비 상한액 5만원을 농축산물에 한해 10만원으로 올리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농어민들을 배려한 조치였지만 결국 고무줄 규제가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남북 단일팀 구성에 대해서도 “메달권에 있거나 그렇지는 않다”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이 총리는 “가령 좋은 북한 선수 몇 사람을 추가해서라도 승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우리 선수들 사이에서도 생기고 있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해명했지만, 마치 어차피 메달권 밖이라 단일팀을 구성해도 괜찮다는 발언처럼 들려서 뭇매를 맞았다.

때로는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글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 총리는 지난 7월 우정노조가 총파업 계획을 철회하자 “한 번도 파업하지 않은 자랑스러운 전통을 지키셨다”는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노동조합이 자신의 가장 강력한 권리인 파업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 원인이 있을 텐데도 이를 두고 ‘전통’이라 표현한 것은 노동자 파업에 대한 이 총리의 경박한 인식을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 총리는 이후 해당 문구를 삭제하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주신 노조원들께 감사드린다”고 수정했다.

차기 대선주자로서 이 총리에게 관심이 쏠리고는 있지만 안정감과 신뢰감 외에 확실한 이미지를 굳히지 못한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아직까지 이 총리는 차기 대권에 대해서는 철저히 입을 다물고 있다. 언론의 집요한 질문에도 “지금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참 두려운 일” “아무런 계획도 없다” “총리가 계획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총리를 그만둔 뒤에나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2007년 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안을 두고 벌어진 여야 토론회에서 이 총리는 당시 박형준 한나라당 의원과 설전을 벌였다. 그 자리에서 박 의원은 “링컨은 민심과 함께하면 실패할 것이 없고 민심과 함께 하지 않으면 성공 없다고 했다”고 공격했다. 그러자 이 총리는 “세네카는 이런 말을 했다. 민심에 거스르기만 하면 국민에 의해 망할 것이고, 민심에 따르기만 하면 국민과 함께 망할 것이다.”라고 맞받았다.

앞으로 이 총리가 걸어야 할 길도 비슷할 것이다. 지난 10년 사이 민심은 더욱 집채만한 파도처럼 요동치고 있다. 때로는 성내고, 때로는 열정이 넘치고, 때로는 냉소하고 조롱하고 뒷짐지는 민심 사이에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진지하게 ‘민심’만을 내세우는 정치인치고 제대로 된 정치인은 없었다. 세네카의 말을 인용했던 이 총리라면, 그 길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유종민, <총리의 언어>(타래)

[신동아 2019. 7. 17]‘지일파 해결사’ 이낙연 국무총리

[노컷뉴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2019. 1. 22][인터뷰] 이낙연 “여론조사 1등? 대권 생각 자체가 두렵다”

[한겨레 2019. 5. 13] 이낙연 총리 “민주주의 끊임없이 위협”…태극기부대·일부 야당 행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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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9월에서 연말까지 4개월간, 남북 유엔 동시가입,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숨 가쁘게 이루어졌다. 이렇듯 양국체제를 향해 열리는 듯했던 문은 이듬해인 1992년부터 급속히 닫히고 만다. 그리고 1993~1994년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에 빠진다. 특히 1994년 5~6월은 한반도가 6·25 전쟁 이후 전쟁 발발에 가장 가까이 갔다는 순간이었다.14 전쟁 시뮬레이션은 엄청난 인명피해와 전쟁비용을 예고했고 북미는 충돌 직전에 가까스로 돌진을 멈췄다. 그 결과가 1994년의 북미 간 제네바 합의였다. 그러나 이미 남북 간, 북미 간의 적대와 불신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높아져 있었다.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의 정신은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양국체제로 가는 문은 다시금 굳게 닫히고 말았다. 이후 2000년 6월과 2007년 10월의 남북 정상회담도 이 상태를 되돌리기에는 이미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대반전의 기류가 본격적으로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92년부터였다. 우선 소련·동구권 해체 이후 미국의 대(對)한반도 정책, 대북정책의 본심이 분명히 드러났던 때가 1992년 1월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북의 노동당 국제비서 김용순이 미국을 방문하여 미 국무부 차관 아널드 캔터를 만난 자리에서 밝혀졌다. 당시 북은 1991년 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까지 합의한 후 이제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 의중을 밝힌 것이 1992년 1월 미국을 방문한 김용순의 발언이었다. “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을 테니 북미 수교를 하자”는 요구였다.15 김용순은 김정일의 오른팔로 알려진 인물로, 김일성 – 김정일의 의사를 직접 전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동안 주장해왔던 미군 철수를 내리고 대신 북미 수교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이는 북의 대남 전략이 통일에서 공존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신호였고, 이를 미국에 분명히 표명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북미 수교를 하자는 것은 앞으로 한국 역시 정식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의도의 표현으로 읽힌다. 북미 수교의 제안에는 한국과도 정식 수교관계를 맺고 공존하겠다는 뜻이 깔려 있었다. 앞서 동서독 동방정책 사례에서 미국과 동독의 수교(1974년)가 동서독이 양국체제로 가는 데 중요한 징검다리였음을 확인한 바 있는데, 남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북은 1990년의 독일이 아니라, 1972년(<동서독기본조약>), 1974년(미국 – 동독 수교)의 독일을 보면서 정책 전환을 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김용순의 제안을 미국은 거부했다. 미국은 한국만을 인정할 뿐, 북은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소련·동구권 해체 이후 미국의 한반도, 대북정책의 본심을 처음으로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류는 92년 이전부터 물밑에서 형성되고 있었다. 이미 89년 동구권 붕괴 직후부터 북(DPRK)은 루마니아와 같이 곧 붕괴할 것이며, 한국 정부의 북방정책은 망해가는 북을 연명시키고 있을 뿐이라는 분석과 주장이 미국과 한국의 정보라인으로부터 점차 확산되어 가고 있었다.16 미국과 한국의 대북 강경세력은 애초부터 북을 인정할 의도가 없었고, 오히려 위기를 조성하여 북을 붕괴시키는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있었다. 이후 30년 동안 한반도에 신냉전 기조를 유지하게 했던 ‘북한붕괴론 – 흡수통일론’이 여기서 나왔다.17 그러한 의중을 보여주는 첫 신호는 1991년 2월 미국의 북 핵 개발 의혹 제기였다고 할 수 있다. 나중에 미국 측의 조사에 의해 확인된 바, 당시 북의 핵 개발 준비 상태는 현실적인 위협이 전혀 되지 못하는 매우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했다.18 의혹 제기의 목적은 핵위협의 실제성이 아니라 이를 빌미로 북과의 관계 정상화를 거부하고 여러 제재와 압박으로 묶어두기 위함에 있었다. 그 의도가 1년 후 김용순의 방미 때 분명히 드러났던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의중은 먼저 한국의 주류 언론사들의 과장된 보도를 타고 한국 여론에 확산되어갔다. 북핵 의혹이 제기된 1991년에는 남북 정부 당사자 간에 대화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는데, 한국 측 대표단에게도 미국 측 ‘전문가’와 ‘정보요원’들이 한국의 대북 협상대표단을 수시로 방문하여 북핵 상황에 대해 “교육하다시피 설명”했다고 한다.19 북핵 정보를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협상 대표단은 이 ‘교육’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91년까지는 남북 대화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북핵 의혹’이 결국 진행 중인 모든 변화를 정지시킬 거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1992년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이 결정되고, 한국에 배치된 미국 핵무기 철수가 이뤄졌으며, 북이 강제사찰을 제외한 일반 핵사찰을 수용하면서 연말에는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이뤄져 핵의혹 문제도 봉합되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제동은 1992년부터 걸리기 시작했다. 당시 남북 협상단의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인 임동원의 회고에 의하면 남북 대화의 주 통로였던 남북 고위급회담은 1992년 초 <남북기본합의서>의 부속합의서 작성 단계에서부터 “우리 측의 지연전술”에 들어가 결국 그해 연말에 파탄에 이른다. 지연전술의 주역은 시종 안기부 비선이었는데, 그 방법은 주로 강경한 핵사찰 요구를 내세워 최종 합의를 불발·지연시키는 것이었다.20 결국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 간 합의·채택되기는 했으나 남쪽에서는 국회 비준을 얻지 못했고, 부속합의서 작성에도 실패했기 때문에 결국 채택 후 1년도 못 되어 실행도 못하고 사문화되어버린 셈이다.

이 남북 대화 지연전술 또는 방해공작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뤄졌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유명한 1992년 9월의 ‘대통령 훈령 조작 사건’이었다. 당시 8차 고위급회담차 평양으로 간 한국 측 대표단은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지난번 회담에서 성사되지 못한 ‘이산가족방문단 교환방문’을 이번에는 일부 양보를 하더라도 반드시 성사시키라는 당부를 받았다. 협상은 잘되어 장기수 이인모 씨를 송환해주는 조건으로 이산가족 교환방문은 합의되었다. 그러나 이 합의에 대해 청와대에 훈령을 다시 확인해보자는 의견이 제시되어 야밤에 훈령 요청 전문을 보냈는데, 새벽에 온 답신은 이상하게도 이 합의를 취소하라는 것이었다. 대표단의 서울 귀경 후 이 훈령에 의문이 제기되었고 내부 조사가 이뤄졌는데, 그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평양에서 보낸 대표부 훈령 요청 전문을 안기부가 서울에서 받아 청와대에 보내지 않고 자체 접수하였고, 안기부 독단으로 합의를 취소하라는 가짜 훈령을 평양의 대표단에 보냈던 것이다.21 이 놀라운 사건은 당시 대표단의 일원으로 평양에 가 훈령 조작을 주도했던 안기부 특보와 서울에서 조작 훈령을 보낸 안기부장 두 사람의 경질로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1992년은 노태우 정부의 임기 마지막 해였다. 12월이면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다. 이미 차기 권력의 의중이 안기부 비선을 통해 작용하고 있었다. 당시 여당인 민자당의 대통령 후보는 이 해 5월에 확정된 김영삼 씨였다. 김영삼 후보 진영은 남북 대화의 순조로운 지속이 대선의 야당 후보인 김대중 씨에게 유리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남북회담을 그렇듯 지연시키고 방해하려 했던 것이다. 당시 김영삼 후보의 선거캠프에는 북한붕괴론 – 흡수통일론을 믿고 전파하는 세력이 집결해 있었다. 1987년의 민주화운동을 대표했던 김대중, 김영삼 두 정치인의 이러한 대립은 이미 87년 12월 대선 당시 두 김 씨의 분열에서부터 예견되었던 것이다. 대선에서 양 김씨는 승리를 당시 노태우 후보에게 헌납했고, 1990년 김영삼 씨는 3당 합당을 통해 옛 군사독재 세력과 합치고 말았다. 이로써 87 민주화 세력은 양분되었을 뿐 아니라 그 절반이 신냉전·흡수통일 진영으로 합류해버린 것이다. 이후 2016년 말 촛불혁명 때까지 한국 정치를 지배했던 ‘기울어진 운동장’이 이렇게 성립되었다.

1992년 초 미국은 북의 수교 제안을 거부했고, 가을에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그 한 해 중지했던 팀스프리트 훈련을 1993년에는 재개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여기에 더해 1993년 3월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의 핵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요청했다. 북의 모든 군사시설을 요구하는 대로 다 보여 달라는 것이다.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고 판단한 북은 며칠 후인 3월 12일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해버린다.22 이제는 아예 내놓고 핵무기 개발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초강수 대응이었다.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직후 북에 화해의 신호를 보냈지만 그 신호가 북의 NPT 탈퇴라는 초강수로 돌아오자 곧바로 강경대응으로 돌아선다. 북미, 남북 간 위협이 오가면서 적대적 갈등이 급속도로 높아졌다. 1994년 6월 북폭 일보 직전까지 상황은 흘러갔다. 적대와 불신은 북방정책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갔다. 아니, 6·25 전쟁 이후 가장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북에 대한 압박이 커질수록, 체제 존립에 위기감을 느낄수록, 북은 필사적으로 핵 개발에 몰두했다. 이후 1998~2007년 민주정부 10년도, 2003~2007년 6자회담 4년도 이 상황을 돌이킬 수 없었다.

 

첫 번째 양국체제 시도가 실패했던 원인은 무엇인가

코리아 양국체제는 여러 초대형 사건들이 중첩되면서 모종의 불가사의한 힘의 작용에 의해 열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 첫걸음이 이렇듯 짧은 시간에 좌절되고 말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코리아 양국체제의 성패’에 초점을 맞추고 그 전후 관계를 밝히는 시각에서 발견적 질문(heuristic question)은 다음과 같다. 양국체제의 첫 열림을 주도했던 힘, 행위자의 성격은 어떤 것이었는가? 이 힘, 그리고 그 주도행위자는 87년 민주항쟁, 88년 서울 올림픽, 89~91년 소련·동구권 해체 등의 대형 사건들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했는가? 양국체제의 성취와 실패는 그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드러났는가?

먼저 결론적으로 말하면, 양국체제의 첫 시도가 단기간에 실패로 마감됐던 핵심적인 이유는 두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양국체제로의 전환을 이끌어간 내부 주도 역량의 한계다. 그 한계의 배경에는 87년 민주항쟁 이후 민주화 역량의 분열이라는 뼈아픈 변수가 있다. 이 분열은 양국체제의 출발을 불안정하게 했고, 이후 체제전환을 지속해 나갈 힘을 크게 약화시켰다. 두 번째는 소련·동구권 붕괴 이후 북이 느끼는 체제 위협이 커짐에 따라 발생한 북핵문제다. 이로 인해 북미, 남북 간 높아진 적대적 긴장은 양국체제의 동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결국 이 두 가지 원인이 결합되어 양국체제의 첫 시도는 너무도 짧은 시간에 종결되고 말았다.

우선 코리아 양국체제의 첫 시도가 냉전대결 세력에서 파생한 노태우 정부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태생적 한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노태우 정부는 운이 좋았다. 87년 민주항쟁 이후 야권이 분열해주어 대통령 선거에서 이겼고, 취임 첫해에 열린 88년 서울 올림픽에 소련과 중국 그리고 거의 모든 동구권 국가들이 참석했다. 임기 초반부터 북에 대해 대담한 화해정책을 제시할 수 있었던 자신감의 배경이었다. 화해정책의 배경에는 돌이키기 어려운 87년 민주화의 대세에 순응할 필요, 30퍼센트대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된 취약한 정당성을 대북정책의 성과로 만회해보려는 내부 정치적 요인 역시 강하게 작용했다.23 노태우 정부의 대북정책은 의외의 사건들의 연속에서 자기진화한 것이었다. 원래 ‘북방정책’은 전두환 대통령 시기 기안된 것으로 애초에는 동구권 수교를 확대하여 북을 고립시키려는 냉전적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 올림픽 개최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과 남북 화해를 적극적으로 표방했고 89년 초부터는 남북 간 예비회담이 시작될 수 있었다. 같은 해 9월에는 노태우 대통령이 국회에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발표하였는데, 이 ‘방안’은 서독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과 1972년의 <동서독기본조약>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24 애초에 냉전적 사고에서 출발했던 ‘북방정책’이 사건의 흐름 속에서 탈냉전적인 ‘동방정책’을 조금씩 닮아가게 된 것이다.

그러다 같은 해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구권 붕괴라는 엄청난 사건이 이어졌다. 한국과 소련, 중국, 동구권과의 수교라는 애초의 목적이 놀라운 속도로 달성되었다. 외교상의 우위를 이뤘다고 생각한 노태우 정부는 이제 북에 대한 화해정책을 통해서도 남이 주도하는 통일로 갈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 사태가 이렇게 흘러가면서 남북 양측 모두에서 ‘상대의 인정’이라는 필요가 생겼고, 이 필요들이 서로 확인되었기에,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라는 ‘사건’은 비로소 가능했다. 노태우 정부의 자기 동력 때문이라기보다는 큰 사건들의 흐름 속에서 남북화해정책이 자기진화를 한 셈이다.

그러나 이렇듯 행운이 겹치면서 정책의 자기진화는 이루었으나, 그렇듯 형성된 양국체제의 싹을 지키고 키워낼 힘은 노태우 정부에 없었다. 노태우 정부의 정치기반인 민정당과 정치 군부는 냉전대결 체제의 기득권을 가장 강하게 대변하는 세력이었다. 이 세력은 올림픽 성공과 동구권 붕괴라는 유리한 사건이 이어질 때는 잠시 관망하는 듯했지만, 곧 북한붕괴론과 북핵위협론을 들고 나와 남북화해정책을 흔들기 시작했다. 여기에 맞서 장기적 화해정책을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밀고 나갈 만한 세력은 노태우 정부와 여권 내에 극히 미약했다. 이런 상태에서 북미 관계 정상화를 중재하고 이끌 역량은 전혀 기대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더하여 3당 합당을 통해 합류하여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김영삼 후보 진영이 북한붕괴론과 북핵위협론 진영에 합류함으로써 화해정책을 밀고 나갈 힘은 여권 내에서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그 결과 노태우 정부의 마지막 1년은 그 이전에 이뤄진 화해정책의 성과가 모두 유실되는 시간이 되고 말았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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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2/0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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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은 북한 핵무기 및 장거리 미사일 프로그램 중단을 위한 협상에서 “책임 있는 어른으로서” 행동하고 있다. 어른으로서 협상을 되돌리는 동시에 동북아에서 북한이 할 수 있는 생산적 역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간 각자의 목표 달성을 위한 초반 작업에 상당한 시간과 공을 들인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다소 불공평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국가의 지도자는 그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다양한 힘과 그 힘을 실용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을 이해해야 하며, 주요 당사자들과 함께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국가의 “핵심” 이익을 수호해야 한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김정은 위원장은 분명 앞장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북한에 대한 논의는 당사자 그 누구보다 김 위원장에게 중요한 일이다. 또한 그는 가장 경험이 풍부한 조언자들을 등에 엎고 있는데, 이들은 하나의 행동 방침으로 단결되어 있다. 그 결과 직설적이고 명료한 언어로 북한의 목표와 필요를 표명하는 리더십이 탄생했고, 김 위원장이 이제 게임을 주도하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손에 쥔 자신들의 자산을 허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핵심 이익은 십중팔구 권력의 유지일 것이므로, 북한은 외부의 공격 시 의존할 수 있는 핵무기 및 미사일 대응책을 우선시할 것이며 정치경제적 안정성을 최대한 지키려 할 것이다. 이러한 핵심 이익은 김 위원장이 조선노동당 전체회의에서 선보인 일장연설과 지난 몇 주간 북한 고위급 관료들이 발표한 성명과도 일치한다. 나아가 2018년 3월,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첫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강렬한 브로맨스와도 맞닿아 있다.

북한과 중국은 이후 네 차례의 정상회담을 더 가졌다. 중국은 북한 내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기댈 말한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되, 가급적 북한이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확대하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하려는 듯하다. 북한이 불안이나 절망에 처하는 것은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북한에 양날의 검을 제시했다. 경제 및 안보 상 이익이 충분했다면, 한국의 경제적 개입과 인적자원의 투입도 용인될 수 있었을 것이다. 대규모 경제성장과 국제사회에서의 정통성을 얻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과 함께 평화협정을 근거로 외부 공격에 대한 안보가 적절히 확보되었다면, 미국이 주장한 개방적 사찰을 포함한 북한 핵무기 및 ICBM프로그램의 점진적 해체 역시 정당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김 위원장도 한국과 미국과 함께 그 가능성을 타진해보려는 듯 보였다.

마침내 각자의 패가 드러난 하노이 회담 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트럼프와 그의 참모진이 불협화음을 낸 그 순간, 그 처참하고 무례했던 순간, 근본적으로 나약하고 무기력한 미국의 입장이 분명해졌다. 미국 최고 당국자들이 계속 입장을 거짓으로 둘러대 왔다는 사실을 통해 미국의 입장이 얼마나 현실성 없는 것인지 재확인된 셈이다. 이렇게 속이 텅 빈 미국의 입장은 이미 회담 2주 전부터 스티븐 비건(Stephen Beigun)대북정책 특별대표 그리고 앤디 김(Andy Kim) 전 CIA 코리아미션센터장에 의해 예고된 바였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이 미국의 이익 보호를 명분으로 언제든 제재를재추진할 수 있는 “스냅 백 (snap-back)”방식 쪽으로 기울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빠르게 회담장을 빠져나가려 하자 최선희 조선 외무성 제1부상은 영변의 “모든” 시설이 북한의 핵시설 해체에 포함될 것임을 확인시켜주었다. 이후 보도에 따르면 폼페이오(Pompeo) 장관과 볼튼 (Bolton) 전 보좌관이 함께 그랬는지, 아니면 볼튼 전 보좌관이 단독으로 그랬는지는 불확실하나, 이들은 치열한 협상이 이뤄지기도 전에 바로 북한과 합의하면 트럼프가 “나약해” 보일 수 있다며 트럼프를 만류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 후에 개인적으로 트럼프대통령과 전략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의 측근들은 어떨지 몰라도 트럼프는 조기 합의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내린 결론, 즉 트럼프를 제외한 그 누구도 북한이 수용할 만한 거래는 지지하지 않는다는 결론 역시 무시할 수 없을 듯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중단, 제한, 해체하는 동시에 이를 “힘”을 보여주고자 하는 헛된 욕구로 대체하는 것이 곧 자신의 최대 이익이라고 착각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는 유엔의 주요 제재를 경감하는 것이었으나, 그는 이를 간과했다. 게다가 그는 외교와 결합된 가상의 경제전쟁에 사로잡혔다. 이렇게 속이 뻔히 보이는 미국의 태도는 조지 부시(George W. Bush) 정권 이래 국가 정책처럼 자리를 잡았다.

하노이 회담의 실패는 문 대통령에게도 경고 사인이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과의 첫 정상회담을 능숙하게 마무리했다. 이후 김 위원장의 초대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극적으로 화답하면서 이들 사이에 마치 무언가 진행되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첫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에는 오랜 긴장을 풀고 새로운 유대를 맺자는 내용이 담겼고, 이는 실로 대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를 언급하지 않고, “코피 터뜨리기”위협을 거둔 것만으로도 진정 무언가를 성취한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위협은 소용이 없었을 뿐더러, 트럼프 대통령은 물에 빠진 사람이 구명조끼를 부여잡듯 김 위원장의 초대장을 움켜잡았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줄곧, 트럼프와 참모진은 미국과 북한 모두가 수용할 만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한국은 계속 트럼프 정권에 의지했다. 하노이 회담 후, 한국에게는 상황의 재평가가 절실했다. 그러나 재평가가 이루어졌나? 물론 한국 정부와 정계 안팎에서는 엄청난 비용을 들이지 않고 핵심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일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하노이에서 중단된 잠정적 합의의 제안자이자 리더로서 한미동맹 안에서 이를 이끌어야 한다는 현실인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달에는 트럼프 대통령 탄핵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은 상원의 탄핵 심판을 기다리게 됐고, 그 자신은 물론 그 측근과 지지자들 역시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2월 5일부로 탄핵안은 상원에서 부결되었다). 이러한 미국 내 상황이 한국의 정책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지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 같지는 않다. 작년에 미국, 북한, 중국, 그리고 일본까지 문재인 대통령을 푸대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의 평화 및 경제발전이라는 한국의 핵심 이익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모두 증발해버린 것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드라마 같은 대북 협상 속에서 문대통령이 가장 유연한 위치에 있다. 그는 한국의 주요 이익을 구축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풍부한 권력의 원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한반도를 버릴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다른 미 동맹국의 반복적인 괴롭힘이 한국을 불안하고 움츠러들게 하는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문 대통령이 민주주의적 정통성, 절충과 관리의 전문성 측면에서 트럼프 대통령보다 훨씬 앞서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게임의 결과는 외국의 어떠한 당사자보다 (김정은 다음으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중요하다. 다행히 문 대통령에게는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짊어진 빈곤, 고립, 취약함이 없다. 누가 동북아시아의 어른이 될 수 있는가, 또는 되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스테판 코스텔로 (Stephen Costello)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조지워싱턴대학교(George Washington University)에서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0년대에는 아태재단(Kim Dae Jung Peace Foundation) 워싱턴 지부장을 역임했으며, 1999년부터 2004년까지 대서양위원회(Atlantic Council)에서 한국 프로그램을 지휘했다. 현재는 동북아시아의 안보, 발전, 정치에 중점을 둔 정책 이니셔티브인 AsiaEast.Org를 이끌고 있다.

금, 2020/02/07-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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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에서 강도”(intensity)라는 용어가 맡는 역할에 가장 상응하는 용어는 름다움의 힘이다. … 물론 여기서 아름다움은 자연의 미적 성질이나 예술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것들은 보는 사람의 경험이 가지는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지금 문제삼고 있는 것은 경험이 갖는 아름다움 그 자체다. 그 주요성분은 감각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다. 비록 감각이 감정의 깊이에 명백하게 관여하는 것이라 해도 말이다. … 화이트헤드는 아름다움을 어떤 경험의 계기에서 주체성이 갖는 조화의 완전함이라고 이해한다. 그것의 힘은 두 가지 요소, 즉 구성요소의 다양성과 그러한 구성요소를 개별적으로 느끼면서 얻는 강도를 조합하는 데서 나온다. 그러므로 강도란 여전히 가치에 기여하는 것이지만, 여러 구성요소 중 하나로서 기여하는 것이다. – 존 캅, 화이트헤드의 가치론(https://www.openhorizons.org/whiteheads-theory-of-value.html)

어니스트 캘런벡의 1975년 소설 <에코토피아>의 영화 이미지컷. 미국 샌프란시스코 일대를 배경으로 에코토피아라는 이상향의 생활을 그렸다.

 

개요와 소개

“아름다움”은 생태문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여기서 아름다움이 의미하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다: (1)일상의 직접성에서 감정적으로 느낀 경험의 조화와 강도, (2)그러한 느낌을 환기시키는 경험의 객체, 즉 타인, 다른 형태의 생명, 인간 관계, 자연 세계를 뜻한다. 아름다움이란 반드시 예쁨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며 삶의 예술적 측면에만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 관계적 관점에서 볼 때 아름다움은 삶 자체의 내면에서 발현하는 활력이자 번영이다. 인간은 삶의 모든 순간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이는 다른 동물도 그렇다. 아름다움은 삶을 “삶”답게 만드는 요소이다.

아름다움의 경험에 수반되는 마음과 정신의 성질은 인간의 정신적 알파벳을 형성한다고 말할 수 있는 폭넓은 감정들로 구성된다: 예를 들면 주목(attention), 연결(connection), 헌신(devotion), 열광(enthusiasm), 신념(faith), 용서(forgiveness), 감사(gratitude), 관용(generosity), 환대(hospitality), 상상(imagination), 정의(justice), 친절(kindness), 경청(listening), 사랑(love), 의미(meaning), 양육(nurturance), 개방성(openness), 재미(playfulness), 호기심(questing), 삶에 대한 열정(zest for life), 그리고 신비에 대한 감각 등이다. (번역자주: 필자는 아름다움과 관련된 감정의 요소가 갖는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해 알파벳 순서로 단어를 나열했다.) 생태문명은 교육과 예술, 건강한 가정 생활과 시민으로서의 삶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이런 감정적 성질들을 느끼고 알고 실제 그렇게 살도록 돕는다. 또한 이를 통해 타인이나 보다 큰 생명공동체에 존중과 관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생태문명은 아주 이상적으로는 아름다움을 위한 온실이라 할 수 있다.

아름다움의 다섯 가지 형식은 생태문명에서 특히 중요하다: (1)자연적 아름다움 (언덕과 강, 나무와 별), (2)인간이 창조한 아름다움 (예술, 음악, 그림과 음악의 풍경), (3)사회적 아름다움 (사람들, 그리고 인간세계를 넘어선 사회로부터 얻는 관계의 느낌), (4)도덕적 아름다움 (연민, 친절, 정의), (5)전인적 아름다움 (깊이와 넓이를 동반하는 ‘폭넓은’ 영혼의 성장). 이러한 것들은 모두 ‘아름다움의 생태학’의 구성요소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생태문명이라고 하는 건축물을 세우고 유지하게 만드는 벽돌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공동체인가!

이런 공동체가 “아름다운” 이유는 창조적이고 연민적이고 참여적이고 다양하고 포용적이고 동물에게 자비롭고 지구에 좋고 정신적으로 만족스러우면서 누구도 뒤처지도록 방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고등교육의 근본적인 목적은 학생들로 하여금 이런 공동체를 상상하고 발전시키고 실현할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을 갖추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생태문명이라는 “전공”의 목적이다. 이 전공의 예비 과정은 “아름다움의 생태학: 세계 최고의 희망으로서의 생태문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글이 이러한 다양한 아이디어에 대한 더욱 심화된 고찰을 이끌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글은 네 부분으로 나눠진다: (1)왜 아름다움이며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2)아름다운 공동체, (3)대학의 생태문명 전공에 아름다움을 도입하기, (4) 아름다움의 생태학.

 

1. 왜 아름다움이며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수 년 전에 맥신 홍 킹스톤(湯婷婷)이 우리 대학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버클리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의 명예교수인 그녀는 재능 있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중국계 미국인이 미국에서 겪는 경험에 대한 여러 편의 논픽션 저자이기도 하다.

킹스톤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탄생일에 강연을 했는데, 그녀는 킹의 연민적 공동체에 대한 구상을 자신의 참조틀로 사용하였다. 알다시피 킹은 연민적 공동체를 “사랑의 공동체”(beloved community)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서로를 걱정하며 보살피는, 그러면서 누구도 뒤처지도록 방치하지 않는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환기시키는 문구였다. 사랑의 공동체는 연민적인 공동체이며 애정 어린 공동체이다.

킹스톤은 킹의 문구에 기대어 예술이 어떻게 그러한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는 배려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나 그녀는 킹의 문구를 인용할 때마다 실수로 “사랑의 공동체” 대신 “아름다운 공동체”(beautiful community)라고 말하곤 했다. 그 때마다 그녀와 청중들은 매번 웃음을 터트렸다. 어떤 지점에서 킹스톤은 결국 고쳐 말하기를 그만두고 강연 내내 예술과 정의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계속해서 “아름다운 공동체”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나를 포함한 청중들은 아름다운 공동체라는 문구에 익숙해졌고 또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그리고 킹스톤에게 사랑의 공동체는 사실상 아름다운 공동체였던 것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름다움 자체처럼 본질적으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러한 언어가 필요하다. 우리 자신을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는 시적인 언어 말이다. 이 점은 뛰어난 과정철학자인 샌드라 루버스키가 쓴 「아름다움을 말하라(Speak the Name of Beauty)」라는 짧지만 우아한 글을 떠올리게 만든다. 자연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해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연과 아름다움 사이의 연결을 분명히 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자연의 질에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중요하다. … 자연 세계는 인간의 경험을 위한 미결정적인 배경이나 인간이 가치를 매기는 마술봉을 휘두른 다음에야 가치를 얻는 중립적 캔버스가 아니다. 자연 세계는 각자 가치를 가지는 생명들의 관계로부터 비롯되는 경이로운 풍성함이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삶을 격상시키는 만드는 관계들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가치다.

이처럼 자연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 그리고 삶을 격상시키는 아름다움이라는 이해를 바탕으로 킹스톤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그녀의 강연이 끝나갈 즈음에 한 학생이 질문을 던졌다: “아름다운 공동체는 지구와 다른 생명체를 어떻게 취급하게 될까요? 그들은 올바른 대접을 받게 될까요?” 그녀의 대답은 긍정이었다. 킹스톤은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운 공동체는 생명의 그물의 아름다움에 대해, 인간과 다른 생명체에 대해 수용적일 것입니다. 그것은 생태 공동체가 될 거예요.”

그 순간 우리는 단순히 인간에 기반을 둔 공동체가 아니라 지구에 기반을 둔 공동체로 “아름다운 공동체”라는 개념을 확장시켜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자신은 대학생들이 그러한 공동체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을 공부할 수 있는 “전공” 혹은 전문분야에 대해 상상하기 시작했다.

 

2. 아름다운 공동체

세계 어딘가의 대학에 생태문명 전공이 개설되어 있다고 상상해보라. 나아가 그 전공이 캠퍼스 내에서 가장 인기 있다고 상상해보라. 학생들은 그 전공이 실천적이면서 희망적이고 전일적이면서 창조적이기에 매력을 느낀다. 생태문명 전공의 목적은 학생들로 하여금 활기차고 삶을 격상시키는 공동체를 지역 단위로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기술과 능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킹스톤의 말을 빌리자면, 아름다운 공동체 말이다.

이런 공동체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그런 공동체의 아홉 가지 중요한 특성 혹은 성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1)창조적이다.

(2)연민적이다.

(3)참여적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참여한다.)

(4)다양하다. (공동체가 종교적, 문화적인 다양성을 환영한다.)

(5)경제적으로 포용적이다. (기본적인 필요가 충족되며 경제적 격차가 크지 않다.)

(6)동물에게 자비롭다.

(7)지구에 좋다. (오염을 수용하고 자원을 공급하는 한계 내에서 살며 다른 생명체의 서식지를 남겨둔다.)

(8)정신적으로 만족스럽다.

(9)누구도 뒤쳐지지 않는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보살핀다.)

이러한 공동체의 “영성”은 감성적 지성과 일상에서 구현된 지혜가 조합된 것으로, 종교를 갖고 자신의 종교로부터 “영성”을 찾아내는 사람들에게도, 영성에는 관심이 있으나 특정 종교에 연계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수용 가능한 것이다. 영성은 인간성의 영적 알파벳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서로 관련된 형식의 마음과 정신의 광범위한 특성을 포함한다: 주목(attention), 연민(compassion), 연결(connections), 친절(kindness), 경청(listening), 상상(imagination), 재미(playfulness), 호기심(wonder), 침묵(silence), 정의(justice), 숭배(reverence), 삶에 대한 열정(zest for life). (번역자주: 여기서도 다시 알파벳 순으로 단어를 나열한다.) 간단히 말해서 이것은 내가 “전인적 아름다움”이라 부르는 것의 부분들이다.

물론 이러한 공동체는 바람직한 이상이다. 지구상의 어떤 공동체도 이러한 특성들을 완전히 구현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아홉 가지 이상을 상당한 정도로 실현한 현존하는 공동체들은 사실상 생태문명이라고 하는 건축물을 구축하는 벽돌들이다. 생태문명 전공은 학생들이 이러한 공동체를 세우고 발전시키도록 돕는 걸 목적으로 한다. 그 과정에는 긍정심리학, 도시계획, 유기농업, 사회정의, 영성, 종교 간 대화, 교육, 건강 관리, 환경경제학, 진화생물학, 생태학 실습 등의 과목이 포함된다. 생태문명 전공은 또한 학생들이 스스로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실행하며 평가함으로써 생태문명의 역동성을 구현하는 실천적이며 능동적인 배움의 요소가 요구된다.

 

3. 대학의 생태문명 전공에 아름다움을 도입하기

생태문명 전공을 위한 예비 과정은 “아름다움의 생태학: 세계 최고의 희망으로서의 생태문명”이라 부른다. 이 과목은 학생들에게 생태문명의 철학적 기반이 될 수 있는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전반적인 사상, 그리고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이상인 “아름다움의 힘”에 대한 화이트헤드의 생각을 가르친다.

처음에 학생들은 교과목의 제목에 아름다움이라는 단어가 있는 것을 듣고 놀랄 것이다. 기계론적 세계관과 개별적인 주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서양철학의 편협한 척도에 영향을 받은 그들은 아름다움을 순수하게 사적인 감각, 개인의 취향 혹은 예술에만 한정된 어떤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아름다움은 공공의 선도 아니며 “실제 세계”에 속하는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교수들은 이 과목에서 아름다움이 사실은 공공의 선이라는 점을 설명한다. 아름다움은 단순한 예쁨도 아니며 예술 작품에서 발견되는 성질에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 아름다움은 화이트헤드가 “아름다움의 힘”을 통해 말하고자 한 어떤 것이다. 아름다움은 조화와 강도의 조합이며 경험을 살아있는 것으로 만드는 활력이다. 아름다움은 인간과 여타의 생명체들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의 힘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 인간, 그리고 인간을 넘어선 것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활력과 살아있음(강도)의 감각을 조합한다.

교수들이 강조하듯 아름다움을 이렇게 이해할 때 그것은 우리를 이끄는 이상이자 희망의 원천으로서 생태문명과 그것의 출현을 위한 일차적인 가치가 된다. 학생들은 곧바로 이 점을 이해하게 된다. 그들은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생태문명이 파국적인 미래에 대한 공포나 현재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분노로부터 출현할 수는 없다는 점을 이해한다. 생태문명은 좀 더 창조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살아갈 수 있다는 감각으로부터 등장해야 한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것보다 좀더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방식이 있다는 감각 말이다. 아름다움은 희망을 제공한다.

다음으로 학생들은 몇몇 화이트헤드의 관념을 배우며 그 관념들을 통해 교수들이 “아름다움의 우주론”이라 부르는 것을 형성하게 된다. 이 관념들은 다음과 같다.

(1)인간은 생명의 그물의 일부다: 인간이 거대한 생명의 그물의 일부이지 그 바깥에 있지 않다는 관념.

(2)모든 것은 상호 생성의 과정에 있다: 전체로서의 그물, 그리고 그물의 각 매듭은 언제나 과정 혹은 되어감에 있다는 관념.

(3)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내재적 가치가 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은 각자의 권리로서 가치를 지니며 존중 받아 마땅하다는 관념.

(4)모든 곳에 살아있음의 활력과 같은 것이 있다: 땅의 가장 깊은 곳부터 하늘의 가장 높은 곳까지 “생명” 혹은 “살아있음”과 같은 것이 있다는 관념.

(5)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아름다움을 향한 에로스에 의해서 내면적인 활력을 얻는다: 살아있는 것이라면, 그 안에 만족 혹은 삶의 충족을 향한 에로스가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경험의 풍부함 혹은 “아름다움”을 지향한다는 관념.

(6)전체로서의 우주 또한 아름다움을 향한 에로스에 의해 움직인다: 우주 안에서 모든 것이 살아가고 움직이고 자신의 존재를 갖는 동시에 전체로서의 우주 자체가 어떤 종류의 생명이며 우주 역시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향한 에로스를 갖고 있다는 관념.

이러한 관념들은 학생들이 지식을 얻기 위해 반드시 동의해야 한다는 식의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이런 관념들은 고려해볼 가치가 있는 것으로, 또 그것들이 서로 어우러질 때 아름다움의 생태학을 위한 우주론적 배경을 형성하는 것으로 제시된다. 여기서 다른 철학적, 문화적 전통, 아마도 특히 동아시아 전통들에서 유사한 관념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도 강조된다.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전통으로부터 비슷한 관념을 찾고 공유하도록 권장된다.

 

4. 아름다움의 생태학

이렇게 학생들은 아름다움의 생태학이라고 부르는 것에 입문한다. 생태문명을 건설하고 유지하려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종류의 아름다움들이 있다. 자연적 아름다움, 인간이 창조한 아름다움, 관계적 아름다움, 도덕적 아름다움, 전인적 아름다움이 그것이다. 이 다섯 가지는 몇몇 중요한 점에서 구분되기는 하지만, 서로 통합되어 생태문명의 아름다움이 된다. 아름다움의 생태학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1)자연적 아름다움: 언덕, 강, 나무, 별, 동물, 식물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서로 연결돼 존재한다.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삶에서 외경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과학연구가 증명하듯 인간의 행복에 본질적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샌드라 루버스키의 말의 떠올려라: “자연 세계는 인간의 경험을 위한 미결정적인 배경이나 인간이 가치를 매기는 마술봉을 휘두른 다음에야 가치를 얻는 중립적 캔버스가 아니다. 자연 세계는 각자 가치를 가지는 생명들의 관계로부터 비롯되는 경이로운 풍성함이다.”

(2)인간이 창조한 아름다움: 인간이 설계한 다양한 형식의 아름다움. 인간이 창조한 아름다움은 도구와 가구, 건물과 도시경관 같은 유형의 생산물을 포함하며 상징과 로고스, 이야기와 시, 춤과 음악 또한 포함한다. 인간이 창조한 아름다움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참여하거나 그것과 협동한다. 그것은 거대한 생명의 그물과 함께하는 공동창조의 행위이다.

(3)관계적 혹은 사회적 아름다움: 사람들이 우정과 가정생활, 그리고 인간을 넘어선 세계와 맺는 만족스러운 관계에서 오는 아름다움. 이런 아름다움은 예를 들어 유교경전, 성경, 코란의 세계관에서 찾을 수 있는 긍정적 연결의 영성에도 내포돼 있다.

(4)도덕적 아름다움: 연민, 봉사, 정의를 추구하는 행위에서 오는 아름다움. 수필가 이푸 투안은 이를 이렇게서술했다: “사심 없는 기품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관용의 행위는 용기 있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도덕적 아름다움의 사례이다. 진실된 겸손도 이타적인 사랑과 마찬가지로 예시가 될 수 있겠다. 몇몇 사람이 신체적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듯이 몇몇 사람은 도덕적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도덕적 아름다움은 타고 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러한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고무하는 사회에서는 쉽게 등장하고 번창한다.”

(5)전인적 아름다움: “통합적인 되어감”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지혜와 연민, 창조성을 키우는 전인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혹은 되고자 추구하는 아름다움. 아일랜드의 시인 존 오도노휴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아름다움은 멋진 사랑스러움에 관한 것이 아니다. 아름다움은 보다 통합적인 것, 실체가 있는 되어감, 원만함의 출현, 은혜로움과 우아함의 위대한 감각, 깊이에 대한 깊은 감각, 그리고 만개하는 삶에 대한 풍성한 기억으로의 돌아감에 관한 것이다.”

예비과정의 끝에서 학생들은 아름다움이란 관념이 이처럼 생태적인 문맥에서 이해될 때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생태문명을 실현시키고자 활기차게 노력하기 위한 촉매로 작용할 수 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학생들은 또한 지구에 기반을 둔 사랑의 공동체가 진정으로 아름다운 공동체이며, 아름다움이 갖는 매력은 삶의 활력과 격상을 위한 영감을 제공한다는 맥신 홍 킹스톤의 생각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제이 맥다니엘

미 헨드릭스대 철학과 교수, 웹사이트 오픈 호라이즌즈 운영자

월, 2020/02/10-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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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과 국회 공무원

소위원장 〇〇〇 아니, 〇〇〇 위원님 말씀하신 그것…….

수석전문위원 〇〇〇 그것은 우리가 자료 받은 게 없잖아.

소위원장 〇〇〇 전자문서로 뽑을 수 있는 것 아니예요?

수석전문위원 〇〇〇 그것 뽑는 것밖에 없는 거지…….

소위원장 〇〇〇 그러니까 공문 보낸 것을 달라고요.

17대 국회의 어느 상임위 소위원회 회의록에서 발췌한 기록이다.

잘 알다시피 수석전문위원은 국회 공무원이고 소위원장은 국회의원이다. 그런데 위의 속기록을 보면, 수석전문위원은 약간 반말 투다. 이 속기록의 상황을 일반적 시각으로 본다면, 수석전문위원의 ‘위상’이 더 높아 보이고, 최소한 동등한 위상이다.

한편 다음의 또 다른 소위원회 회의록에서도 수석전문위원의 위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만든다.

OOO 위원 지금 수정안대로 하게 되면 기재부의 의견을 충분히 참작하는 것 아니예요? 그래서 수정안대로 하면 기재부에서…….

수석전문위원 OOO 기재부 의견은 저희가 여기 비고에 적시한 것처럼 이걸 적극적으로 다 수용한다 그런 정도의 입장은 아니고요. 교육부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한번 기재부하고 협의한 사항이 있으면 말씀을 해주시지요.

OOO 위원 저도 잠깐만 말씀…….

OOO 위원 아니, 저도 질문 다 안 끝났는데요.

수석전문위원은 회의를 주재하다시피하며 의원의 발언을 중간에 끊기도 하고, 심지어 교육부와 기재부 등 정부 부처들까지 아우르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국회 전문위원은 비단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예산과 결산에 대한 ‘검토보고’도 수행한다. 예·결산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의 이 검토보고는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보다 그 위력이 보다 강하게 발휘된다. 그런 이유로 위의 사례처럼 거의 독주하는 경향이 발견된다. 관련 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행정부처 피심사기관들은 대체로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수용’하는 자세로 심사에 응한다.

 

전두환에 의해 명문화된 검토보고, ‘국회 무력화의 의도

이렇듯 국회 입법공무원의 권한을 강화시키고 그 위상을 높게 만든 것은 바로 ‘검토보고’라는 제도 때문이다.

다른 나라 의회에서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이 ‘검토보고’ 제도는 도대체 어떻게 우리 국회에 출현하게 되었을까?

국회 공무원인 ‘전문위원’이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검토’하는 이 제도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의 국회법 규정에는 “위원회는 회부안건을 심사함에 있어서 먼저 그 취지의 설명을 듣고”라고 하여 검토보고의 주체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지 않았다.

그 조항이 지금 국회처럼 완전히 국회공무원의 권한으로 공식화된 것은 바로 1980년 전두환 국보위(국가보위입법회의) 때였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권력을 장악한 뒤 이른바 국보위의 ‘선거법등 정치관계법 특별위원회’를 조직하였고, 이 조직은 1981년 1월 22일에 회의를 개최하고는 국회법을 전면 개정했다. 여기에서 국회법 제56조 (위원회의 심사) 조항은 “위원회는 회부안건을 심사함에 있어서 먼저 그 취지의 설명과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듣고”라고 둔갑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 제도는 명문 규정으로 전환되었다.

당시의 회의록을 보면, 국회법개정의 목표와 기본방향에 대하여 “비리와 선동과 당리당략을 일삼는 정치폐습에서 탈피하여”라고 되어 있고, 개정의 ‘주요 골자’에서는 “직업정치인의 독무대화 현상을 배제하고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유능 신인의 국정참여 기회를 부여할 수 있도록”이라고 밝히고 있다.

전두환 군사정권이 이 제도를 추진한 목적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국회의 무력화와 순치(馴致)’였다. 즉, ‘구 정치질서’를 극도로 혐오한 전두환 신군부 측이 관료를 수단으로 하여 자신들의 의도대로 국회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통제하려는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추진한 것이었다.

 

유신에 의해 국회의원의 전문위원 선발권 뺏겨

현재 국회 전문위원은 국회 사무총장이 사실상 임명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본래 국회 전문위원은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이 선발했었다. 하지만 그러한 제도는 박정희 유신 정권에 의하여 완전히 뒤바뀌었다.

1972년 12월 27일, 이른바 유신헌법으로 장기집권 체제의 근거를 만든 유신 정권은 곧이어 1973년 2월 7일, 국회법을 개정하였다. 이 개정에서 “전문위원은 당해 상임위원회의 제청으로 의장이 임명한다.”는 국회법 제42조 제2항 규정을 “전문위원은 사무총장의 제청으로 의장이 임명한다.”는 규정으로 바꿔놓았다.

이로써 상임위원회 활동에 필요한 ‘전문적인’ 인물을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이 논의하여 선임하던 제도를 여당 임명직인 국회 사무총장이 임명하도록 되었다. 이는 국회 전문위원에 대한 상임위원회 의원의 선출권을 없애고 독재 권력에 의한 입법권 장악을 제도화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전문위원으로는 거의 행정부 관료로 충원함으로써 국회에 대한 통제를 확실하게 강화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조치는 뒷날 1981년 전두환의 국보위에 의한 전문위원 검토보고제 규정의 명문화와 결합되어 전문위원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상실하게 만들고, 관료를 매개로 하여 의원들의 입법권을 사실상 무력화했다는 점에서 우리 국회 운영을 근본적으로 왜곡시킨 결정적 장면이었다.

 

검토보고제가 있는 한, 정상적 국회를 기대하기 어렵다

세계 어느 나라 의회에도 우리 국회처럼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반드시 국회 공무원의 검토를 받아야 한다는 ‘본말전도된’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충실하게’ 모방하고 있는 일본 국회에서도 전혀 그렇지 않다. 일본 국회는 상임위 법률 심의에서 가장 먼저 법률안 취지에 대한 설명을 청취하게 된다. 이때 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은 발의자 혹은 제출자의 취지설명으로부터 시작되며, 이 과정에서 증인의 증언, 참고인의 의견 청취가 가능하고 보고서 및 기록 등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그 뒤 그 의원과 1문 1답의 질의를 진행하고, 질의가 끝나면 토론에 들어가는데, 1인이라도 수정동의를 제출할 수 있다.

또 흔히 우리가 쉽게 정치 후진국이라고 과소평가하고 있는 타이완에서도 입법원의 <입법원직권행사법> 제8조(제1독회 절차)는 “입법위원이 제출한 의안은 제안자가 취지를 설명한 뒤 대체토론을 거쳐 심사 혹은 제2독으로 넘기거나 혹은 기각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단 한번이라도 눈을 감고서 진지하게 성찰해봐야 한다. 도대체 왜 의원이 제출한 법안에 의원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검토’가 필요한 것인가?

본래 입법권이라는 직책은 당연히 국회의원들의 필수 임무다. 그리고 국회의원은 바로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국민들이 선출한 것이며, 국회의 존재 이유다. 그것은 의사가 본인이 아니라 사무장이나 다른 사람에게 치료를 시키는 것과 같고, 판사가 다른 사람에게 재판을 맡기는 것과 같다. 이래서는 언필칭 의사라고 할 수 없고 판사라 부를 수 없으며, 그야말로 ‘가짜 병원’이고 ‘가짜 재판’이다.

이와 전적으로 동일한 논리로 자기의 일, 즉, 본업을 하지 않는 국회의원을 국회의원이라고 부르기 어렵고 의회라 칭하기 민망하다. 국회가 국회답지 못하고 정당이 정당답지 못하며, 이러한 조건에서는 결코 의회다운 의회, 정치다운 정치가 존재할 수 없다.

 

변이(變異)된 국회, 변종(變種)된 국회의원

실제 어느 나라 의회든 의원이라면 너무도 당연하게 입법 활동과 그와 관련된 토론과 논의 그리고 연구, 조사 등에 대부분의 시간을 투여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입법이 곧 의원의 ‘본업’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국회의 경우에는 전혀 이와 다르다. 입법 과정의 대부분을 공무원이 ‘대리’한다. 겉모양만 의회이고 무늬만 의원이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변이(變異)된 국회, 변종(變種)된 국회의원이다.

필자에게 한 의원은 사석에서 자신이 유럽 국가들의 의회를 방문했을 때 그곳 의원들이 모두 소형차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평소 법안과 정책 연구 조사에 몰두하지 않으면 매일같이 이어지는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의원들 간의 토론이 진행될 때 크게 망신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니 우리 의원들처럼 지역구 관리에 몰두할 시간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 의원은 그럼에도 연봉은 우리 국회가 몇 배나 많다고 실토하였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도 2018년 5월 폴란드에서 열린 나토(NATO) 의원 총회 참석했을 때 크게 놀랐다고 증언하고 있다. “300명에 달하는 미국과 유럽 의원들의 진지함과 박식함에 놀랐다. 외국의 국회의원들은 보좌관 없이 그 전문적인 내용을 실무자처럼 토론했다.”(“배지 달고 2년만 지나면 국회의원이 멍청해지는 이유”, 「오마이뉴스」 2018년 7월 4일.)

화, 2020/02/11-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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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양국체제 시도의 실패는 양국체제의 첫 문을 냉전대결 세력의 한 분파가 열었다는 역사적 아이러니, 태생적 한계에서부터 예고되어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분석 수준을 한 단계 심화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그 한계를 짚어보는 데 그치지 않고, 이 ‘한계’를 뒤집어 이렇듯 진행된 실패 과정 이면(裏面)의 가능성까지를 분석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뒤집어 읽기, 심화된 분석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만일 노태우 정부가 아닌 87년 민주항쟁의 힘을 온전히 받은 민주정부가 양국체제의 첫 문을 열었더라면 사태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이는 물론 87년 말의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 분열이 없었다면 가능했던 일이다. 이러한 가정은 단순한 역사적 흥밋거리가 아니라 양국체제로 전환하는 성패의 조건을 보다 정확하고 깊게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이다.

역사적 가정의 방법론적 유효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왜 꼭 “만일 노태우 정부가 아닌 87년 민주항쟁의 힘을 온전히 받은 민주정부가 양국체제의 첫 문을 열었더라면”이라는 가정인가? 예를 들어 ‘서울 올림픽이 소련, 중국, 동구권 등이 참가하지 않아 실패했더라면?’ 또는 ‘소련·동구권 붕괴가 없었더라면?’ 또는 ‘1988년 미국 대선에서 H.W. 부시 후보가 아닌 경쟁 상대인 민주당의 급진파 듀카키스 후보가 당선되었다면?’이라는 식의 다른 가정이 의문으로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뒤의 가정들은 앞의 가정보다 분석대상인 양국체제의 성패의 조건을 파악하는 데 그 유효성이 크게 떨어진다. 이유는 두 가지, 가정의 직결성과 범위 때문이다. 먼저 앞의 가정은 양국체제와 직결돼 있지만, 뒤의 가정은 양국체제와 직접 연관된 문제가 아니다. 둘째, 앞의 가정은 87년 한국이라는 시공간적으로 제한된 상황에서 비롯되어서 가정에 따른 추정(counterfactual reasoning)의 설정이 통제범위 내에서 가능하지만, 뒤의 가정들은 가정의 시간과 공간의 범위가 너무 커서 추정을 통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제 “만일 노태우 정부가 아닌 87년 민주항쟁의 힘을 온전히 받은 민주정부가 양국체제의 첫 문을 열었더라면 사태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라는 가정의 추론적 분석을 시작해보자. 먼저 87년 민주항쟁 이후 대선을 앞두고 야권과 민주화 진영은 분열하지 않고 힘을 모아 대선에 임한다. 그 결과 대선은 민주진영의 압승으로 끝나고 새로 들어선 민주정부의 정통성과 지지는 전례 없이 높았을 것이다. 압도적 지지 위에 선 새 정부는 과감한 남북화해정책을 펴고, 북은 바로 호응하여 나왔을 것이다. 그 결과 최소한 서울 올림픽에 북이 참가하거나 혹은 남북 공동개최까지도 가능할 수 있었고, 태극기와 인공기는 이때부터 남과 북에 동시에 게양되었을 것이다. 그 성과 위에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이 88년 내에 성사되었을 수 있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기초인 두 국가 정통성의 상호 인정이 이 과정을 통해 단단하게 다져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한 상태에서라면 89년 9월 이후의 동구권 붕괴의 여파가 북한붕괴론의 확산이 아니라 오히려 남북 화해의 가속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때 한국 정부는 소련, 중국과의 수교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북미, 북일 수교를 적극적으로 중재하는 입장에 섰을 것이다. 애초에 북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미국의 H.W. 부시 정부 시기(1989~1993년)에 북미 수교가 이뤄지기는 어려웠겠지만, 한국의 적극적 중재 노력은 남북 간 이미 형성된 양국체제의 기초를 흔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 나아가 미국이 별 근거 없이 제기한 북핵 의혹과 북한붕괴론 – 흡수통일론은 강력한 민주정부 시기의 한국에서 (노태우 정부 때처럼) 냉전유지를 바라는 세력의 과장된 반응을 일으키기 어려웠으리라. 그 결과 민주정부 버전의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은 훨씬 단단한 상호 신뢰의 기반 위에 이뤄졌을 것이다. 끝으로 87년 민주화의 단합된 성과인 민주정부의 성과를 이어받은 민주 세력은 다음 대선에서도 승리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민주정부 1기의 남북화해정책은 민주정부 2기에 의해 충실히 그리고 발전적으로 계승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노태우 정부의 양국체제 초기 버전이 임기 말년에 급속히 약화되고 곧이어 발생한 전쟁 위기로 양국체제의 동력이 급격히 고갈되어버린 사태가 발생할 이유가 없게 된다. 민주정부 1, 2기를 통해 남북관계는 상당히 안정된 양국체제 상태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러한 상태에서라면 한국의 민주정부와 친화적이었을 미국 클린턴 정부 시기(1993~2001년) 초기부터 북미 관계가 대화 기조로 진입하여 클린턴 재임 중 북미 수교가 성사될 기회도 생겼을 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에서는 ‘북핵문제’도 ‘1993~1994년의 전쟁 위기’도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2018년 6월의 북미 간 싱가포르 회담으로 분명해진 사실이지만, ‘북핵문제’가 발생했던 근원은 냉전 해체 이후에도 미국이 줄곧 북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북은 체제 보장과 대미협상력 강화를 위해 결국 핵 개발에 올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87년 한국에 강한 정통성을 가진 민주정부가 출범했다는 가정에서 출발하면 이후 북이 한국과 미국으로부터 받는 체제 위협 요인이 현저히 감소함에 따라 북이 핵 개발에 필사적으로 올인해야 할 이유 자체가 사라진다.

이상의 역사적 가정에 따른 분석은 코리아 양국체제의 안정적 성립요건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가장 밑바탕에는 남북, 북미 간 적대적 긴장의 해소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남북 모두 고도의 적대에 기반한 ‘비상국가체제’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남북 두 ‘비상국가체제’의 극한적 대치는 바로 ‘분단체제’ 작동의 핵심 동력이기도 하다. 따라서 남북의 ‘비상국가체제’를 작동 정지시킬 만큼의 강력한 변화가 발생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변화는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되는 것일까?

체제의 성격과 체제를 둘러싼 환경의 성격상 그렇듯 강력한 새로운 동력은 북이 아닌 남에서 발생할 개연성이 크고, 실제 역사가 그러했다. 1960년 4·19가 첫 번째 분출이었다. 4·19는 이승만 독재체제 즉 ‘비상국가체제’를 일시 작동 정지시켰다. 그러나 4·19는 세계 냉전체제가 강고했던 상황에서의 분출이었기에 양국체제로 이어질 계기를 찾을 수 없었다. 4·19의 남북 화해 움직임은 불과 1년 만에 ‘반공을 국시로’ 내건 군사정부에 의해 압살되고 말았다. 두 번째 대분출이 87년의 민주대항쟁이었다. 이 힘은 박정희 –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비상국가체제’의 오랜 철벽통치를 크게 흔들어놓았을 뿐 아니라, 미소 냉전의 해체라는 세계사적 대전환과 맞물리면서 분단체제가 양국체제로 전환될 가능성을 최초로 열어주는 동력이 되었다. 앞서 보았듯 분출한 이 힘이 분열되거나 손상되지 않고 온전히 한국의 민주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면, 남북 간 적대는 노태우 정부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폭으로 해소되고, 북미 적대도 마찬가지로 크게 완화되어, ‘북핵문제’ 자체가 발생할 소지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양국체제는 안정 궤도로 접어들 수 있었을 것이다.

양국체제의 요점은 한국(ROK)과 조선(DPRK)이 서로를 주권국가로서 인정하는 데 있다. 상대 체제에 대한 인정은 우선 자기 체제의 정당성에 대한 자신이 있어야 가능하다. 내부의 강한 지지가 있으므로 상대에 대한 인정을 자신 있게 밀고 갈 수 있다. 87년의 힘을 온전히 실은 민주정부였다면 그것이 가능했다. 노태우 정부는 요행히 그 길을 열기는 했으나 난관을 뚫고 밀고 나갈 힘은 없었다. ‘북한붕괴론’과 ‘서울불바다론’이 오가고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를 겪으면서 남북, 북미 간 불신과 적대의 골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깊어졌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이렇듯 형성된 불신과 적대로 균형을 잃은 여론 지형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이렇듯 이미 기운 여론 지형을 바꿀 수 없었다. 민주화운동의 대의를 이은 민주정부임은 분명했지만 이미 87년의 지지와 열기의 절반이 빠진 후였다. 두 정부에서 두 번의 정상회담이 있었으나 북의 핵 개발과 핵실험은 그와 무관하게 진행되었고 이미 확산된 ‘북한붕괴론’은 ‘핵위협 – 퍼주기론’과 결합하여 오히려 더욱 기승을 부렸다. 결국 두 정부의 대북사업 성과를 몽땅 원점으로 되돌리고 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등장을 막을 수 없었다. 상황은 이제 87년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촛불혁명이 없었다면 반드시 다시 한번 유신체제의 등장을 맞아야 했을 것이다.

 

코리아 양국체제로의 전환은 돌이킬 수 없는 추세가 되었다

이 글 서두에서 “코리아 양국체제란 대한민국(ROK)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DPRK) 두 나라가 주권국가로서 서로 인정하여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평화롭게 공존, 교류, 협력하는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 공존체제이다. 코리아 양국체제는 지난 70여 년 남북 간에 쌓이고 쌓인 적대와 불신을 완화하고 해소함으로써 평화적 통일로 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경로다”라고 했다. 지금껏 이 언명이 현실화될 수 있는 조건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 결론적으로 이상의 논의를 기초로 코리아 양국체제의 의미를 종합해보기로 한다.

분단 – 전쟁 – 정전 상태의 지난 70년, 남북은 시종 적대적 대결관계를 해소하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양측은 줄곧 통일을 주장해왔으나 그런 상태로 통일이 이루어질 리 없었다. 우선 상대를 인정할 수 있어야 했다. 진정 하나가 되자 하면 먼저 서로 인정하는 둘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전쟁까지 하면서 적대해왔던 상대를 인정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자신이, 그리고 서로가, 안팎으로 온전하고 정당하며 안정되게 서야 한다. 이 조건이 무르익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17~2018년 촛불혁명과 북핵 완성,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라는, 각각이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세 요소가 한 시점에 합류하면서 그 조건이 무르익었다.

한국(ROK)의 촛불혁명은 4·19와 87년 민주항쟁이 미처 이루지 못했던 나라의 민주적 정통성의 필요충분조건을 비로소 충족시켰다. 4·19 직후 장면 정부와 87년 이후 노태우 정부는 필요조건은 갖췄으나 충분조건은 갖추지 못했다. 4·19는 세계 냉전의 한가운데서 발생하였으나 냉전의 흐름에 맞서는 민주 분출이었다. 그럼에도 민족화해의 봄으로 이어지기에는 시대의 제약이 너무나 컸다. 반면 87년 민주항쟁은 89년 이후 냉전 해체와 중첩되어 있었기에 그 가능성이 실재했다. 그리하여 분단 이후 처음으로 양국체제로의 첫 문이 잠시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87년 민주화 동력의 분열로 그 가능성은 충분히 현실화될 수 없었다. 이제 촛불혁명은 남북 대결과 적대의 경사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그 힘이 온전히 민주정부로 이어졌다. 반쪽국가가 아닌 온전한 한 국가로서 안정된 정당성과 자신감을 갖춘 것이다. 그렇기에 2017년 북미 간 전쟁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남북 화해, 북미 화해의 길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 결실이 2018년부터 맺히기 시작했다.

소련·동구권 붕괴 이후 미소 냉전이 해소되었지만 곤경에 빠진 조선(DPRK)을 미국은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붕괴를 위한 제재와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그 결과 ‘북핵문제’가 본격화했다. 북핵 개발과 제재 압박의 벼랑 끝 줄다리기는 1990년 초부터 시작되어 2017년까지 계속됐다. 이 30년 위기와 긴장 속에 북미 간만이 아니라 남북 간의 적대와 대결의식도 고조되어왔다. 이 적대와 대결의 고조를 한국의 촛불혁명이 먼저 끊었다. 그리고 조선의 ‘핵 완성’ 선언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북핵문제의 해결은 북핵 완성을 통해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또 그 역설은 미국 정치의 국외자인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과 만나 해결의 단초를 열었다. 2018년 벽두부터 남북이 화해의 물꼬를 텄다. 핵 완성을 통한 조선의 자신감과 촛불혁명을 통한 한국의 자신감이 당당하게 만날 수 있었다. 이어 한국이 북미 협상을 통한 북핵문제 협상을 성공적으로 중재함으로써 영영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남북미 간 화해의 협주가 가능해졌다. 이제 남북미는 종전과 평화협정, 그리고 북미 수교와 한반도 비핵화를 일정에 올려두고 있다.

이러한 현실의 진행은 그 자체가 양국체제를 열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평화협정과 북미 수교를 전후하여 한국과 조선은 정식 수교관계를 맺을 것이다. 두 나라의 정식 수교란 외국과 외국과의 수교가 아닌 ‘한 민족 두 국가 사이의 특별한 수교’다. 이 특별한 수교를 통해 한국과 조선은 서로 대표부를 교환하게 된다. 서울과 평양에 상주할 조선과 한국의 대표는 어느 외국의 대사보다 높은 지위의 장관급 공직자로 선임된다. 양국의 관계는 ‘한 민족 두 국가 간의 특수한 관계’, 즉 ‘어느 외국과의 관계보다 중요하고 높은 두 나라 사이의 관계’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이를 시작으로 점차 서울과 평양을 비롯한 한국과 조선의 여러 주요 도시에 양국의 공직자와 언론인, 기업인, 연구자와 학생들이 상주하게 된다. 또 많은 일반인들이 관광과 친지 방문을 위해 서로 오가게 된다. 이렇듯 한국에 상주하고 방문할 조선 사람과 조선에 상주하고 방문할 한국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도 아닌 그저 한민족(조선민족)의 사람이 아니라, 분명 한 민족이지만 동시에 한국 사람이거나 또는 조선 사람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한국 사람과 조선 사람이 한국과 조선 어느 곳에서든, 해외의 어느 곳에서든, 한 민족으로서 자연스럽게 만나 어울려 지내게 된다. 과거 전쟁으로 인한 상처와 오랜 시간 교류하지 못하여 생긴 차이 때문에 여러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평화와 번영의 상호 필요, 언어·문화·역사·전통의 공통 근거에 힘입어 그 어려움을 점차 극복해낼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국과 조선,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 공존체제는 점차 정착될 것이다.

코리아 양국체제가 이렇듯 정착되는 시간이 예상보다 빠르거나 느릴 수는 있겠지만, 그 변화 방향과 추세가 지난 1992년 전후와 같이 역방향으로 흘러 빠른 시간에 소멸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국제사회에서 북핵문제는 이미 오름세가 아닌 내림세의 문제가 되었다. 미국 내정에서 어떤 변화가 생기더라도 과거 조시 부시 대통령 때와 같은 초강경 반북정책이 나오기 어렵다. 조지 부시의 이라크 전쟁 실패로 미국 일극주의는 이미 종말을 고했다. 세계사의 추세가 거역할 수 없는 다극 공존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 민주당과 주류 언론은 현재 트럼프 대통령과 정쟁 중이기 때문에 북미 교섭의 성과까지도 깎아내리고 있지만, 90년대 이후 민주당의 대(對)한반도 정책을 볼 때 만일 민주당이 차기 집권하게 된다 하더라도 트럼프가 열어놓은 북미 관계 정상화의 길을 계승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의 북핵 협상이 지연된다 해도 이미 형성된 남북 화해 흐름이 중단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남북 양국의 체제 내적 정당성과 안정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대북 적대·대결 세력이 정부든 국회든 장악할 가능성도 당분간 없다. 촛불혁명이 소멸시킨 ‘남북 적대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급속하게 다시 형성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세력들은 장기적으로 볼 때 양국체제 지향으로의 노선 전환을 통해서만 이후 정치적 생존을 보장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이 세력은 양국체제 전환의 속도, 수준, 방법을 높고 적극적 전환파와 경쟁할 수도 있다. 1970년대 초 서독 사민당이 토대를 마련한 ‘동서독 양국체제’를 이후 기민당도 수용한 것과 같은 논리다.

촛불 이후 지금까지의 진행을 볼 때, 양국체제로의 전환의 흐름은 때론 빠르고 때론 느렸지만 꾸준히 지속되어왔다. 이제 코리아가 상호 주권과 영토를 인정하는 한국과 조선 양국의 평화체제·공존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추세가 되었다. 이러한 전환을 이미 잘 준비된 상태에서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머지않아 이루어질 정상 간 합의와 협정을 정치적으로 뒷받침하고 되돌릴 수 없게 공고히 할 방안, 법적·제도적 전환의 구체적 방안들, 새로운 국제관계 장기전략을 수립하는 일, 다양한 차원의 남북 교류를 지금 이 시점부터 준비해가는 것 등 할 일이 아주 많다. 지금 각계각층에서 과연 이러한 준비가 얼마나 착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때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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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2/12-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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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에서 우리는 미국의 주택 가격 폭등에 사모펀드가 어떻게 일조를 했는지 살펴보았다. 미국의 사모펀드는 규제 당국의 비호 아래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고 주택 시장에서 활개를 치고 있으며 그 와중에 서민들은 갈 곳을 잃고 길거리 노숙자로 전락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주택 시장에 뛰어든 사모펀드가 임대사업자로 변신하면서 임차인이 되어 버린 일반 서민들의 눈에서 어떻게 또다시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사모펀드의 임대업에도 당국의 규제는 어김없이 빗겨나가고 있다.

‘월가가 집주인이 되었을 때’라는 제목을 단 분석 기사의 표지 장면. 매체는 연방정부의 비호 아래 기관투자자들이 투자자와 임차인에게 각각 확실한 수익과 편의를 약속하며 임대시장의 핵심으로 등극했지만, 투자자들만 행복해하고 임차인들은 비참한 지경에 이르러 반쪽만의 약속이 되어 버렸다고 요약하고 있다. <출처: The Atlantic>

이를 위해 <뉴 퍼블릭>이 소개하는 어느 임대인의 이야기를 먼저 소개한다.

#장면 1

 남(南)로스앤젤레스의 4명의 자녀를 둔 한 싱글 맘은 주택을 월세로 임대했다. 그녀는 임대한 집의 담장이 무너진 것을 보고 주인에게 전화해서 고쳐 달라고 요청했다. 돌아온 답은 황당했다. 담장이 임차인의 개 때문에 망가졌으니 이틀 안에 500 달러(약 60만 원)를 내라는 통지였다. 그런 법이 어디 있냐고 하니 돌아온 답은 더 황당했다. “싫음 방 빼!” 그녀가 돈을 낼 유일한 방법은 그녀가 받는 주급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것뿐이었다. 그 일이 있은 뒤 몇 개월이 지나 봉급날이 변경되었다. 그래서 원래 내던 날짜에 당장 월세를 못 낼 것 같으니 며칠만 말미를 봐달라고 요청했다. 그 때 집주인에게서 돌아온 답은 “안 돼!”와 “못 내면 당장 방 빼!” 할 수 없이 그녀는 또 다시 얼마 되지 않는 주급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제 날짜에 맞춰줘야 했다.(“Slumlord Millionaires: Wall Street’s new scheme to profit off poor people,”, The New Repulic, July 24, 2014).

 

악덕 집주인 사모펀드, 블랙스톤

그런데 그 임차인의 집주인은 인근에 살지 않는다(과거엔 보통 미국에서는 임대아파트에 관리사무소를 두거나 집주인이 근처에 살고 임차인의 불만 및 편의를 즉시 봐 주었다). 그녀의 집주인은 바로 인비테이션 홈즈(Invitation Homes). 월가의 거대 사모펀드 블랙스톤(Blackstone)의 자회사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2008년 금융위기 후 파괴됐던 주택시장이 기지개를 조금씩 펴기 시작할 무렵인 2011년부터 월가의 블랙스톤은 임대 사업에 뛰어 들었다. 그런데 이들의 개입으로 임차인들의 사정이 좀 나아졌을까? 다시 말해 임차인들의 입장에서 과거 구멍가게 수준의 집주인(mom and pop landlords)에 비해 블랙스톤이 더 나은 집주인일까?

이 질문에 블랙스톤의 대답은 “물론 그렇다”이다. 그들이 내세운 이유는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자신들을 필두로 월가의 사모펀드가 주택 대량매집을 해서 임대사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그만큼 주택 공급이 늘어났고 그 결과 임대료를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연코 임차인들의 입장에선 호재라며 설레발을 쳐댄다. 그 말은 맞는 말일까? 결코 아니다. 절대로 임차인들의 사정이 나아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블랙스톤은 과거의 악덕 집주인(slumlord)도 울고 갈 정도로 더 악독하고 냉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모펀드 집주인이 도대체 어느 정도로 악질적이기에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일까?

 

악덕 영세 임대업자도 울고 갈 블랙스톤

이것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먼저 <뉴리퍼블릭>의 보도를 보자.

“임대업자 블랙스톤 악덕 집주인을 능가한다. 그들은 결정적 하자가 있는 물건들을 시장에 스스럼없이 내놓아 임대를 했고 불만을 토로하는 임차인들과의 접촉을 기피했으며 주(州)법과 지자체법을 위반했다”(“Slumlord Millionaires: Wall Street’s new scheme to profit off poor people,”, The New Repulic, July 24, 2014).

그런데 현행법을 위반하며 임차인들을 괴롭히는 신종임대업체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는 전혀 없다. 있는 것이라곤 오직 그들에 대한 자유방임만 있었을 뿐이다. 반면 거기엔 임차인의 보호를 위한 어떠한 제도적 장치도 작동하지 않았다. 이것을 증명하는 여론조사가 있다.

경제정의 시민단체인 ‘공정경제를 위한 전략행동’(SAJE: Strategic Actions for a Just Economy)과 ‘도시동맹 권리’(RCA: The Right to the City Alliance)는 캘리포니아 주의 남(南)로스엔젤레스와 리버사이드에 거주하는 292개의 거주지에서 임차인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다. 실제로 조사에는 51개의 가구가 응했는데 응답자의 85~95%가 흑인이었고 그들 중 대부분은 이 전에 집을 소유했던 평범한 소시민들이었다.

설문조사 결과 인비테이션 홈즈는 임차인들을 계약 당사자로 정당하게 다루지 않고 함부로 대했다. 임대회사가 25,000달러(약 3천만 원) 정도 들여 손을 보고 집을 임대했다지만 너무나 많은 하자가 발견되었다. 설문 응답자의 46%가 배관 문제를 거론했으며, 39%는 바퀴벌레를 비롯한 해충을, 그리고 20%가 에어콘 및 곰팡이 또는 물이 새는 천장 때문에 속 터져 했다.(“Blackstone unit Invitation Homes sued over rental house’s condition,” Los Angeles Tiems, MAY 5, 2014.; “Billion-dollar landlords: Rental-home giant under fire for unsavory conditions,” ABC7, Nov. 18, 2017; “Renter says mold at St. Petersburg home forced him to have sinus surgery,” ABCNews, April 15, 2019.). 로스엔젤레스의 한 임차인은 곰팡이 때문에 몸까지 아파지자 인비테이션 홈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과거와 같이 집주인을 만나 불만을 제기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집주인의 코빼기는커녕 말조차 건넬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인비테이션 홈스 사무실은 임대주택에서 35마일(약 56킬로미터) 떨어진 아주 먼 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차가 없으면 사무실 직원을 만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Hedge Funds: The Ultimate Absentee Landlords (Fall Preview),” The American Prospect, Sep 29, 2015.). 불만 제기를 위해 전화를 해도 안 받는다. 그러나 월세가 밀릴 때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집요하게 전화 걸어 임차인을 괴롭히고 문에다 메모를 남기고 전자 메일을 쏟아 붓는다. 자신들이 할 의무는 철저히 외면하면서 돈은 꼬박꼬박 챙기는 악덕업자! 과거의 집주인들은 아무리 악덕 집주인이었다 하더라도 이정도로 뻔뻔한 철면피는 아니었다. 그런데 사모펀드 임대업체가 훨씬 점잖은 임차인 친화적인 집주인이라니 지나던 개가 웃을 일이다.

임대주택 시장에 뛰어든 월가의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자회사 인비테이션 홈스 로고가 선명한 조지아 주의 어느 임대주택 광고 <출처: The Atlantic>

 

터진 봇물, 엑스트라 피(extra fee): “임차인님 여기 추가비용 추가요~”

그런데 과연 이것뿐일까? 전형적인 렌트비(월세임대료)도 이들 사모펀드가 임대업을 하면서 과거보다 상당히 올랐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거기에 덧붙여 과거에 집주인이 원래 관행상 내왔던(임대료에 포함되어 있던) 수도세, 조경비(건물유지비), 주차비, 쓰레기 처리비용까지 따로 더 내야 되니 어떻게 사나. 그 모든 것이 이른바 ‘엑스트라 피’(추가비용료)란 명목으로 주인이 내야 할 몫까지 임차인에게 떠넘겨진다. 물론, 이러는 데에 아무런 규제도 없다.(“Court Declares that Landlords Can’t Circumvent Rent Limits by Charging Extra for Water,” Santa Monica Daily Press, August 30, 2018.: “Rent By Another Name,” The Texas Observer, Sept. 12, 2019).

또 이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애완동물 키우면 돈 더 내야 하고, 전기료도 평상시 보다 많이 나오면 추가에 추가를 더해 왕창 뜯어 간다. 이것에 동의해야 월세 방을 임대해 준다.(“The Fido fee: Landlords increasingly charge extra rent for pets”, The Mercury News, Oct. 22, 2014.). 심지어 임대 계약 시 애초에 있지도 않았던 비용들도 임대 기간 중간에 느닷없이 집어넣어 더 내게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TV가 없어 볼 수도 없는 케이블 채널 시청료를 어느 날 갑자기 강제로 부가하는 것이다. 거기에 응하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 어떤 경우 월세 내기 전날인데도 세 안내면 내쫓겠다고 메모를 남기기도 한다.

이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AI와 같다. 사람이 아니다. 혹여 관계자를 만나면 사람하고 대면하는 게 아니고 마치 차가운 기계와 대면하는 듯이 느낄 정도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임차인의 말에는 귀를 닫고 얼굴을 돌린다. 마치 자동응답기의 기계처럼. 그렇게 월가의 신종임대업자들은 철옹성과 같은 제국이 되었다. 과거의 악덕 집주인이 최악의 경우 날강도였다면, 월가의 제국들은 과거의 악덕 집주인들마저도 두 손 두 발 들고 나가떨어질 냉혈의 로봇들이다. 아무리 날강도였다고 해도 과거의 악덕 집주인들은 적어도 그들을 향해 임차인들이 말은 할 수 있었으니까. 분통이라도 터트릴 수 있었으니까. “월세 못 내, 방 못 빼” 하며 배 째라 식으로 뻗댈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법 위에 군림하는 제국들은 임대업자란 두터운 갑옷을 입고 곤경에 처한 서민들을 도끼와 칼과 창으로 난도질을 하고 있다.

 

신종 월세(임대료) 개념 탄생시킨 사모펀드

그래서 과거의 임차인들이 냈던 월세의 개념은 저리 가고 신종 월세의 개념이 탄생했다. 그것은 바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엑스트라 피’가 덧붙여진 임대료다. 쉽게 이야기하면 예를 들어 대도시의 경우 방 하나 빌리는데 과거의 렌트비 명목의 임대료가 1,700달러(약 200만 원)라면 거기에 덧붙여 이런 저런 명목으로 뜯어가는 ‘엑스트라 피’가 1,000달러(약 120만 원)에 달해 도합 2,700달러(약 320만 원)가 된다. 그래서 온라인 오프라인 할 거 없이 표면에 제시된 임대료를 보고 방을 얻는다면 추가되는 비용 때문에 시쳇말로 대략난감(?)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면서 지갑이 얇아지는 서민들은 임대주택과 임대아파트에서 조차 밀리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임차인들은 이렇게 토로한다.

“추가비용 부가가 얼토당토 하다고 항의하면 신종 집주인들은 이렇게 말 할 뿐이다. ‘난 신경 안 써. 그것은(추가비용)은 필수사항이야’. 그들은 우리에게 더 뜯어가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으며 그 쪽 방면에는 가히 천부적이다…아마도 이들은 할 수 있다면 임차인들이 죽을 때까지 추가비용을 내게 할 수 있다. 저들이 정말로 원한다면 임대료(과거 개념의 임대료)가 0원이 되어도 모든 것을 추가비용으로 걷어 충당할 수 있다.”(“Rent By Another Name,” The Texas Observer, Sept. 12, 2019.).

“우린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 더 이상 여력 없다.”(“Slumlord Millionaires: Wall Street’s new scheme to profit off poor people,” The New Repulic, July 24, 2014).

금융위기 이후 대단위 주택압류 사태를 최대한 기회로 삼아 월가의 헤지펀드(사모펀드)가 미국에서 단독주택의 소유에 있어 어떻게 절대 강자가 되었는가를 폭로하는 기획 기사의 소개 화면. 기사는 월가의 제국이 궁극적으로 임차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유령 같은(집 근처에 살지 않는) 악덕 집주인이 되어버렸다고 제목을 달았다 <출처: The Prospect>

 

무소불위 사모펀드

왜 주택(임대)시장을 월가의 큰손들이 좌지우지하게 규제하지 않는가? 그리고 왜 임차인들을 보호하지 않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월가의 신종 임대업자들에게 규제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먼저 알아보자. 규제는커녕 그들에게는 있는 규제조차 사문화되었을 뿐 아니라, 나아가 과거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규제에 반하는 조항들이 신설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법과 제도는 임차인이 아닌 철저하게 임대업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예를 들면, 과거엔 월세를 제때 못 내도 집주인이 임차인을 강제로 쫓아내지도, 집에 발을 들여 놓지도 못했으나 이제 경고도 없이 바로 쫓아내고 있다.(“’Billion Dollar Landlords’ allegedly quick to threaten eviction, slow to repair,” ABC7, Nov. 17, 2017). 또한 다달이 내는 월세 외에 계약 시에 한 두 달치를 먼저 내고 나중에 돌려받는 보증금(security deposit)의 액수도 캘리포니아 주법에는 한도를 정해 놓았지만 인비테이션 홈즈 같은 회사는 이를 무시하고 제 맘대로 부가한다. 미국의 월세는 보통 1년 혹은 2년 단위로 계약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장기(혹은 정기) 계약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흔히 경제 사정이 매우 열악한 사람들)은 매달 700~800달러(약 80~90만 원)를 더 내야 월세 방을 얻는다. 이것은 주법을 위반한 것이다.

그러나 신종 임대업자들에겐 주법이나 지자체법 보다 자신들이 만든 법이 더 상위에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한 규약(주법과 지자체법을 완전히 무시한 법)에 어긋난 짓을 하거나 불평불만을 하는 임차인들에게 언제든지 소송해서 감옥에 처넣을 것”이라고 위협을 일삼는다.(“Slumlord Millionaires: Wall Street’s new scheme to profit off poor people,”, The New Repulic, July 24, 2014).

나아가 주나 지자체조차도 신종 임대업자들이 유리하게 법을 개정한다. 예를 들어 텍사스 주의 경우, 2017년 보일러, 히터, 에어컨, 또는 건물 시스템 등의 유지보수와 관련된 일체의 비용 부가에 한도를 없애버렸다.(https://capitol.texas.gov/tlodocs/85R/billtext/html/SB00873F.HTM). 이로써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부가하는 “추가비용의 폭발이 일어났으며, 정부가 이들 신종 임대업자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게 명시적으로 허용한 것”이라고 텍사스 주 임차인연맹(Texa Tenant’s Union) 회장 샌디 롤린스(Sandy Rollins)는 일갈했다.(“Rent By Another Name,” The Texas Observer, Sept. 12, 2019). 이로써 과거 10년 전에는 대부분 임대료에 포함되었던 것들이 이제는 추가비용이라는 명목으로 따로 임대료에 추가해서 부가되어 배 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이 연출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도대체 어느 나라 이야기인가? 선진국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과거 미국과는 완전히 달라진 세상이다.

 

통제불능의 추가비용이 불러온 비극

롤린스가 이름 붙인 “통제불능의 추가비용”의 결과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노숙자의 양산이다. 추가비용의 통제불능은 ‘거주부담능력’(housing affordability)의 위기를 불러오고 그것은 곧 노숙자 증가의 위험성과 직결된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국 전역에서 임대료의 대폭 상승엔 바로 이러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집값과 임대료는 하늘을 찌를 듯 폭등하고 있는데 비해 서민들의 임금은 정체되거나 오히려 줄었다. 이런 와중에 월가의 신종 임대업 제국들은 강제퇴거 조치 및 미지불 월세까지 끝까지 받아내는 탁월한 기술까지 보유하며 가혹하게 서민들의 등골을 짜내서 자신들의 배를 마구 불리고 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인비테이션 홈스의 데니스 던켈(Denise Dunckel) 대변인은 “미국 주택 시장 회복에 커다란 기여를 한 기관투자자들의 공로를 무시한 극도로 왜곡된 비판”이라며 “우리는 캘리포니아 및 연방 임대차법을 준수하고 있다”고 뻔뻔하게 응수했다.(“Slumlord Millionaires: Wall Street’s new scheme to profit off poor people,”, The New Repulic, July 24, 2014).

“우리는 여기서 (살고 싶어도) 경제적으로 살 여력이 없다”라는 푯말을 들고 시위에 참여한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샬럿(Charlotte)의 시민. 비평가들은 월가의 대형임대업자들이 대량매집으로 집값과 임대료를 폭등시켜서 서민들이 적정한 가격에 거주할 공간의 씨를 말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출처: The Charlotte Observer>

 

지역경제의 황폐화

월가의 신종임대사업이 초래한 문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월가의 대규모 임대사업은 주거안정성을 심대하게 훼손한다. 그 결과 서민들이 대거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둘째, 월가의 대규모 임대사업은 과거의 악덕 집주인이 양반이라 불릴 정도로 악질적이고 무도하다. 이들의 목적은 오직 막대한 이윤창출이며 그것을 위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다.(“Company bought hundreds of houses. Now, poor are getting ‘priced out,’ critics say,” Charlotte Observer, Dec. 5, 2018).

그러나 신종 임대사업은 이것들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를 노정한다. 그것은 바로 임대사업으로 번 돈들이 지역사회로 편입이 안 되고 모두 월가의 부자들의 호주머니로 흘러 들어간다는 것이다. 씬시아 스트레스맨(Cynthia Strathman) SAJE 대표는 “사모펀드의 신종 임대사업의 수익은 지역사회로 안 돌아오기 때문에 지역민들의 부의 창출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Slumlord Millionaires: Wall Street’s new scheme to profit off poor people,”, The New Repulic, July 24, 2014). 한 마디로 말하면, 이들은 월가가 빨대를 꽂은 영원한 먹잇감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지역 경제는 황폐화되고 그 속의 지역민의 삶은 더욱더 피폐해진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임차인을 위한) 없소?

규제의 사각지대 하에서 양산되는 것은 노숙자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 노숙자로 전락하는 것을 목도하면서도 왜 규제하지 않는가? 왜 임차인들을 보호하지 않는가? 아니 그 보다 왜 월가의 제국들이 주택을 대량매집하게 허용하는가?(“A massive buy-to-rent scheme is hitting the housing market,” Business Insider, Aug. 28, 2018). 왜 그들이 임대차보호법을 어겨도 그냥 눈감아주고, 나아가 그들의 배를 무한정 불릴 수 있게 도와주는 법 개정을 하는가? 이러한 모든 규제 철폐들은 바로 월가의 제국들이 주택시장과 임대시장에서 마음껏 활개 치게 한 자유주의 정책들의 일환이다. 결국, 임차인과 서민들을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이들 제국들에 대한 규제이다. 통제이다. 그런데 이들을 위한 조치들은 취해지지 않았다. 도대체 왜일까? 이것을 뒤에서 다루기로 한다.

 

<참고자료>

“The Fido fee: Landlords increasingly charge extra rent for pets”, The Mercury News, Oct. 22, 2014.

“Rent By Another Name,” The Texas Observer, Sept. 12, 2019.

“Slumlord Millionaires: Wall Street’s new scheme to profit off poor people,”, The New Repulic, July 24, 2014.

“Court Declares that Landlords Can’t Circumvent Rent Limits by Charging Extra for Water,” Santa Monica Daily Press, August 30, 2018.

“When Wall Street Is Your Landlord,” The Atlantic, Feb. 13, 2019.

“Renter says mold at St. Petersburg home forced him to have sinus surgery,” ABCNews, April 15, 2019.

“Blackstone unit Invitation Homes sued over rental house’s condition,” Los Angeles Tiems, MAY 5, 2014.

“A massive buy-to-rent scheme is hitting the housing market,” Business Insider, Aug. 28, 2018.

“Company bought hundreds of houses. Now, poor are getting ‘priced out,’ critics say,” Charlotte Observer, Dec. 5, 2018.

“This Charlotte politician is accused of helping ‘Wall Street slumlords’,” Charlotte Observer, Dec. 5, 2018.

“Billion-dollar landlords: Rental-home giant under fire for unsavory conditions,” ABC7, Nov. 18, 2017.

“Hedge Funds: The Ultimate Absentee Landlords (Fall Preview),” The American Prospect, Sep 29, 2015.

“’Billion Dollar Landlords’ allegedly quick to threaten eviction, slow to repair,” ABC7, Nov. 17, 2017.

https://capitol.texas.gov/tlodocs/85R/billtext/html/SB00873F.HTM

금, 2020/02/14-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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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극산 첫 LNG 수출

북극권에서 액화천연가스(LNG)가 생산되는 시대가 열렸다.

2017년 12월 8일. 러시아 서부 시베리아 야말반도에 세운 야말 LNG 기지에서 사상 첫 북극산 LNG가 생산됐다. 2014년 4월 시작된 ‘야말 LNG 프로젝트’가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다.

‘야말 프로젝트’란 러시아 시베리아 최북단 야말반도에 매장된 약 1조2500㎥의 천연가스전을 개발, 연간 1650만 톤의 LNG를 생산하는 사업이다. 야말반도의 천연가스 매장량은 러시아 전체의 80%, 전세계의 17%에 해당한다. 이 지역의 천연가스 매장량은 9260억 세제곱미터로, 향후 30년 동안 생산이 가능하다고 한다.

야말 가스전

한국 돈으로 30조 원 가량이 투입된 대단위 국책 사업이다. 러시아 최대 민영 가스회사인 노바텍(Novatek), 프랑스 토탈(Total), 중국 석유천연가스공사 (CNPC: China National Petroleum Corporation) 등 세계 유수 기업이 참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대통령도 관심을 쏟고 있다.

지분 구성은 노바텍 50.1%, 프랑스 토탈 20%, 중국의 CNPC 20%, 중국 실크로드 기금의 합작 법인 JSC Yamal LNG가 9.9%으로 돼 있다. 야말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첫 트레인은 2017년 12월 5일 가동을 시작했으며 8일 17만 큐빅미터의 LNG를 처음으로 선적했다.

야말의 연간 가스 생산량은 우리나라가 사할린-2 프로젝트에서 들여오는 연평균 LNG 도입량(150만t)의 10배가 넘는 규모다. 천연가스 추정 매장량도 1조2500억㎥ 정도로, 이는 우리나라가 60년 가까이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첫 LNG를 선적한 배

2017년 12월 8일. 야말반도 사베타 항구에서는 북극산 첫 LNG가 운반선박에 선적되는 역사적 순간을 축하하는 성대한 기념식이 열렸다. 푸틴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해 축사하고 선적 버튼을 눌렀다. 푸틴은 축사를 통해 “우리는 이제 북극 항로를 개발해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에 직면했다”라고 강조했다. 필자는 영하 30도의 강추위 속에서 현장을 취재했다.

사실 야말반도를 찾은 것은 이때가 2번째였다. 2016년 5월에도 야말 프로젝트의 진척 상황을 취재했었다. 2016년엔 65%의 공정율을 보이고 있었다. 2번의 취재를 통해 북극권에서 LNG를 생산하는 것이 어떤 일인지 대략적인 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위성사진 /야말반도 사베타

북위 71도. 시베리아 야말-네네츠 자치구에 있는 야말반도. 일년에 7,8월 두달을 제외하곤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툰드라 지대.

영하 60도까지 내려가고 한여름에도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극한지대다. 야말 LNG 생산기지는 가장 북쪽에 위치한 천연가스 생산지역이다. 발 밑을 파내면 곧바로 영구동토층이 나온다. 깊이는 340 미터에 이르고 영하 4도를 유지한다. 그 위로 거대한 LNG 생산시설이 들어선 것이다.

수백미터 지하에서 뽑아올린 천연가스를 보관하는 초대형 LNG 저장 탱크는 높이 52미터, 직경 80미터에 달한다. 이 시설을 유지하기 위해 얼음 밑으로 수백개의 파일을 박았는데, 이 중엔 ‘열 안정기’도 있다. 열 안정기의 역할은 냉장고랑 같아서 영구동토층이 녹지 않도록 온도를 낮게 유지하는 것이다.

마나코프 야말 프로젝트 제1 부감독은 이런 극한의 장소에 생산기지를 세움으로써 2가지 이점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첫째는 생산기지가 가스전 바로 근처에 위치하기 때문에 운송비가 덜 든다는 것이다. 둘째는, 영하 50~60의 낮은 온도가 생산성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낮은 기온 때문에 천연가스가 더 쉽게 액화되면서 10%의 비용 절감이 되고, 더 많은 LNG를 생산하게 된다는 것이다.

 

1) 야말 프로젝트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 러시아의 LNG 수출 확대 전략

러시아 천연가스 수출의 패러다임 즉, 파이프 라인(PNG) 중심에서 LNG로 변화를 모색했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그동안 파이프라인을 통해 가스를 수출했고 LNG는 사할린-II에서만 생산했었는데, 생산라인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셈이다. 크림병합 등으로 우크라이나와 갈등 관계이면서도 유럽으로 가는 파이프 라인이 여전히 가동중이고, 독일 등 북쪽으로 가는 다른 파이프 라인들도 많다. 러시아는 이제 기존 유럽 중심의 PNG 수출과 함께 LNG 확대를 통해 경쟁력 강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천연가스 수요를 노린 것이다. 에너지 조사회사인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BNEF)에 따르면 2030년 세계 LNG 수요는 2016년보다 86% 증가한 4억 79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은 심각한 대기오염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석탄화력에서 가스 화력으로 급격히 이동중이다. 미켈슨 노바텍 사장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2020년까지 아시아 LNG 시장의 증가율이 73% 정도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사베타 공항

특히 재미난 것은 야말반도 건너편 기단반도에 또다른 LNG 생산기지인 ‘북극-2 LNG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라는 점이다. 야말 프로젝트의 성공에 힘입은 노바텍이 2022년쯤 생산을 목표로 야심차게 추진중인데, 북극-2의 최대 목표 생산량은 연간 7000만 톤에 이른다. 이는 LNG 수출량을 대폭 늘리고 있는 미국의 10년 뒤 총생산량인 6200만 톤을 능가하는 규모다.

개발에 예상되는 자금은 1100억 달러(우리돈 119조 원). 천문학적인 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노바텍은 LNG 의존도가 높은 일본과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게 적극적으로 투자 제안을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현재 19% 정도인 LNG 발전 비중을 2030년엔 37%까지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누가 가장 싸게 안정적으로 공급해 주느냐가 관건인데 호주산과 미국산 LNG는 비싼 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러시아가 2040년까지 미국.아프리카 국가들과 함께 LNG 주요 수출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IEA는 보고서에서 “현재 전세계 LNG 수출의 약 60%를 카타르와 호주가 맡고 있다. 하지만 2040년까지는 미국과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이 LNG 수출을 약 900억 입방미터 늘릴 것으로 예상되며 러시아도 600억 입방미터를 더 수출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들 3대 공급원이 전세계 LNG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현재 23%에서 2040년까지는 40%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북극 가스전 개발

잠재된 방대한 러시아 북극해 천연가스전 개발 촉발했다는 것. 러시아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야말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야말 LNG’는 러시아와 프랑스.중국의 다자간 협력체계이다. 프랑스가 20%, 중국 지분은 29.9%나 된다.

실제로 야말 LNG사에 초기 주요 보직에 프랑스 토탈사의 파견자와 프랑스 LNG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었다고 한다.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의 대러 제재가 시작되면서 야말 프로젝트는 좌초 위기에 몰렸으나 이들 지원자들 덕분에 살아났다.

최초 쇄빙 LNG 선박

최초의 북극산 LNG를 운반한 선박은 세계 최초의 ‘쇄빙 LNG’인데 선박의 명칭이 ‘크리스토프 드 마르제리’이다. 이름이 함축하는 의미가 크다. 이 선박의 이름은 다름아닌 2014년 모스크바에서 사고로 숨진 프랑스 토탈사 CEO의 이름을 딴 것이다. 마르제리는 생전에 서방의 대러 제재 조치가 불공정하고 비생산적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고, 야말 프로젝트의 성공을 이끄는데 중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또 야말 프로젝트에 쓰일 ‘쇄빙 LNG 운반선’ 15척을 우리 기업이 수주했었는데 그 중 14척에 중국 금융권이 돈을 댔고, 러시아 금융권은 단 한척만 돈을 댔다고 한다. 당시 대러 제재 때문에 서방 금융권은 개점휴업 상태였다고 한다.

 

Ⓒ 북극 항로 재발견

그 동안 비현실적이라고 여겼던 쇄빙 LNG를 이용한 북극해 자원(Gas)의 수출 현실화, 그리고 북극항로의 상업운항 가치를 재발견했다는 것이다.

북극 항로는 일년에 절반 이상 두꺼운 얼음에 덮혀 있어 통상 얼음을 깨는 쇄빙선이 앞장 서고 그 뒤를 LNG 운반선이 따라가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경제성이 떨어지는 측면도 있다. 야말 LNG를 북극해를 통해 운반하려면 쇄빙기능과 LNG 운반 기능을 동시에 갖춘 선박이 필요했는데 한국의 대우조선해양이 이 갈증을 해결해줬다. 대우조선해양이 만든 ‘아크(ARC)-7’급 쇄빙LNG선은 스스로 얼음을 깨면서 나가는 LNG 운반선이다. 길이 299m, 폭 50m로 우리 나라 전체가 이틀간 사용할 수 있는 17만3,600㎥의 LNG를 싣고 최대 2.1m 두께의 얼음을 깨며 항해할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이 수주한 LNG 쇄빙선 15척은 총 48억 달러(약 5조 원) 규모다. 이 LNG 쇄빙선들은 야말 반도 사베타(Sabetta)항에서 북극항로를 통해 중국 등의 아시아와 북유럽 지역으로 LNG를 운송하게 된다.

 

2) 철제 상자 같은 버스

야말 LNG 생산 기지 근처에는 사베타 항구와 사베타 공항이 있다. 모두 생산된 LNG 운반과 기지 종사자들을 위한 기반시설인 셈이다. 일년 내내 영하권을 맴도는 기후 때문에 운송수단도 독특했다.

야말의 버스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버스라는게 꼭 직사각형 철제 상자를 대형 트럭 위에 얹어 놓은 모양새다. 눈과 얼음으로 덮힌 도로를 달려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트럭의 하상이 매우 높다. 즉 높이 2미터쯤 되는 계단을 올라서 철제 상자에 타야 하는 것이다. 날씨가 추우니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장갑을 껴서 몸이 둔한데다 이렇게 높이 오르내려야 하니 버스 몇 번 타고 나면 기진맥진해질 지경이었다.

또 북극 지역은 해를 보기 힘들다. 해가 떠봐야 오전 10시반 정도에 뿌옇게 밝아지다 2시간 뒤에 곧바로 다시 어두워진다. 낮 시간이 2시간 정도 밖에 안되는 것이다. 하루 종일 어둠이 지속된다. 그런데 이게 거의 일년 내내 지속된다. 우울증이 안 걸리는게 이상할 정도다.

하늘을 향해 뻗는 광선그 와중에 기지 한복판에서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쭉 뻗어 올라가는 흰 광선이 목격됐다. 무엇인가 했더니 가스를 태우는 것이란다. LNG 생산할 때 생기는 안 좋은 가스를 빼고 태워버리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가스를 태울 때 빛과 뜨거운 공기가 생기는데 날씨가 너무 춥고 공기가 너무 맑아서 그렇게 뚜럿하게 잘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2) 북극 개발

북극 개발은 러시아 국가 발전 측면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축이 되었다. 막대한 규모의 지하자원이 존재하고 세계 물류의 중심을 현재의 남부에서 북부로 이동시킬 수 있다는 점, 지구상 마지막 남은 청정 식수원 등의 잠재력 때문이다.

러시아는 북극 지방 영토의 약 40%를 점유하고 있는데 이 지역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은 전체 러시아 인구의 약 2%이며 GDP는 전체 GDP의 약 10% 수준이다. 러시아 전체 니켈과 코발트 생산량의 95%가 북극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가스는 80%, 구리는 60%, 중정석 및 인회석은 100%, 해산물은 15%가 북극 지역에서 개발, 생산되고 있다.

미국 지질학자들의 조사 결과를 보면, 러시아, 노르웨이, 그린란드, 미국 및 캐나다에 매장돼 있는 천연가스의 90% 이상이 러시아 북극에 집중돼 있다고 한다. 또 세계 니켈 매장량의 약 10%, 백금류 금속 매장량의 약 19%, 아연 매장량의 3% 이상이 북극에 매장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는 19세기 즈음 기온이 비교적 온화한 무르만스크와 아르한겔스크 등에서 북극 개발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북극 산업화는 1930년대 보르쿠타 지역의 석탄 채굴, 노릴스크 지역의 비철금속 채굴, 그리고 북극의 동서를 잇는 고속도로 건설을 통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2013년 러시아 북극지역 개발 전략을 승인했다. 러시아 정부는 2025년 러시아 극지방 사회경제 개발 정책 추진을 위해 150개 프로젝트를 지정하고 앞으로 몇 년 동안 5조 루블을 투자할 계획이다. 5조 루블 중 1조 루블은 정부 예산으로 지원되며, 4조 루블은 외부 투자 등에 의해 조달될 계획이다.

 

(3) 북극 개발 각축전

지구상 마지막 남은 자원의 보고, 북극을 둘러싸고 주변 나라들의 개발경쟁이 치열하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가 쇄빙선을 앞세운 자원 개발이나 군사 기지 건설 등 북극 개발에 앞장서고 있는 모습이다.

쇄빙선

북극은 연중 얼어있는 얼음 바다인데다 얼음의 두께도 2~5미터에 달해서, 북극 개발에는 얼음을 깨고 나가는 배, 쇄빙선이 필수적인 도구이다. 러시아는 36척의 쇄빙선을 보유하고 있고, 세계 유일의 원자력 쇄빙선단도 4척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쇄빙 LNG 선박까지 도입했다.

또 캐나다, 미국과 독일이 이미 쇄빙선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중국과 일본도 경쟁적으로 쇄빙선을 건조하고 있다.

2017년 4월 러시아는 북극에 사상 최대 규모의 군사기지도 건설했다.

북위 82도의 알렉산드라랜드 섬에서 러시아 국기처럼 하얀색과 파란색, 빨간색 칠을 한 건물들을 지었는데 만 4천 제곱미터 부지에 150명을 수용할 수 있고 전투기도 배치할 수 있다고 한다. 푸틴 대통령은 이 기지를 전격 방문해 빙하 지역에서 망치로 얼음을 깨기도 했다.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가 그나마 행동의 제약을 받지 않는 북극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들이 나왔다. 국제전략연구소의 히더 콘리 박사는 “푸틴에게 북극은 러시아 위신의 프로젝트이다. 북극에 러시아 국기를 게양할 수 있고 군 기지를 건설할 수 있고 자연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고 평가했다.

2014년까지만 해도 러시아는 북극 자원을 채굴할 기술이 없었지만, 몇년 만에 수평시추법 등을 자체 개발해, 북극 지하 5천 미터의 원유를 채취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러시아의 GDP, 국내총생산의 5% 정도가 북극에서 나오고 있다.

주변국들도 북극 개발 경쟁에 뛰어들고 있는데, 1982년 채택된 유엔 해양법 협약은 북극해에 대한 개별 국가의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극해와 인접한 러시아와 미국, 캐나다,노르웨이, 그린란드 등 5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 만을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와 캐나다 등이 자국의 해양영토 확장을 위한 대륙붕 연장을 놓고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알래스카, 러시아는 북동항로, 노르웨이.덴마크는 북서항로를 중심으로 군사 기지를 늘려가고 있는데 이는 북극해에 대한 ‘실효적 지배 모색 차원’으로 풀이된다.

1987년 ‘북극권 개방 선언’으로 세계 각국의 북극권 진출 가능성이 열렸지만, 실제로는 연안국들의 주권 행사가 강하게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1996년 캐나다 주도로 러시아, 미국, 스웨덴, 덴마크 등 북극권 8개 나라가 창설한 정부간 협의체 ‘북극 이사회’가 기후 변화 문제와 석유ㆍ가스 등 자원 개발과 북극 항로 등 북극 관련 모든 정책을 결정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 중국, 일본이 새롭게 옵저버 국가로 참가하면서, 북극 자원개발에 대한 투자와 쇄빙선 건조 등 실질적인 북극 파트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북극 곰

한편으로는 무분별한 북극 난개발에 대한 환경보호론자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북극개발은 역설적으로 지구온난화, 즉 빙하가 녹으면서 가능하게 된 일이다. 따라서 쇄빙선이 다니면서 개발이 본격화되면, 온난화가 더욱 가속화될 거란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또 북극에서의 유전개발이 지구온난화를 가속시킬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유전개발 과정에서 수백톤 이상의 메탄가스가 방출되고 중금속, 산성화, 오존층 파괴 등 환경오염이 가중될 우려도 높고, 이런 이유로 북극 동식물 생태계가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화, 2020/02/18-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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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지난 1월 3일 바그다드 국제공항 외곽에서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IRGC) 사령관을 드론 공격으로 살해하여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나흘 뒤, 이란은 이라크 미군 주둔 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하여 보복했다. 사건은 현재 진행 중이며 이제 미국이 국제법상 이러한 암살 행위를 저지를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는지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필자는 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2단계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솔레이마니 살해를 변호하는 미국의 논거는 무엇인가?

둘째, 미국의 주장은 국제법상 타당한가?

미국 정부는 살해 행위를 방어하기 위해 두 가지 주장을 내세운다.

첫째, IRGC는 미국이 지정한‘대외 테러조직’이라는 사실이다. 때문에 거셈 솔레이마니는 ‘테러 주모자’가 된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은 더 나아가 솔레이마니를 ‘세계 제1의 테러리스트’라고 일컬었기에 “테러로 지배했던 그의 시대가 종결했음을 알기에 안도할 수 있습니다”고 밝혔다.

둘째, 트럼프에 따르면 솔레이마니는 “미국 외교관과 군 인력을 향한 임박하고 사악한 공격을 꾸미고 있었으나 미국은 그를 현장에서 폭살하여 제거했다”고 전해진다.

얼핏 보기에 미국의 설명은 논리적으로 보이지만 국제법 아래에서 신중하게 평가해보면 정반대의 답변이 나올 수도 있다.

먼저 IRGC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아닌 일방적으로 미국에 의해 테러조직으로 규정되었다는 점, 다시 말해 미국이 일방적으로 테러조직으로 설계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국제법상 테러나 테러집단을 정의하는 보편적인 합의가 부족하기는 하지만 두 원칙에 주목해야 한다.

(1) 국제법상 특정 국가는 테러조직을 규정할 수 있는 있는 법적 권한이 없다

(2) 일반적으로 국가 기관은 테러 조직 명단에 포함되어선 안 된다.

이 두 원칙으로 미루어 볼 때 IRGC가 테러조직이라고 선언하는 미국의 입장은 좀처럼 성립하지않는다. IRGC 자산이 동결되었다가 2016년에 해제되었음에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따르면 IRGC는 전혀 테러조직이 아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IRGC는 이란 군대의 한 부서로서 이란 정부에 소속된다는 점이다. 이로 보아 미국의 첫 번째 주장은 사실 무근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두 번째 주장은 국제법상 정당한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은 솔레이마니가 위험한 존재였기 때문에 미국이 이번 ‘일촉즉발’ 공격을 서둘렀다고 주장했다. 즉, 미국은 이번 공습이 어느 정도 예상된 정당방위 차원에서 행해졌다고 주장해온 셈이다. 그러나 솔레이마니 살해는 국제법상 합법적인 정당 방위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국제법은 지속되는 무장 충돌 외의 무력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는 유엔헌장강행 규범에 명시되어 있다. 유일하게 자위권만 이 규정에서 예외로 적용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외의 경우 역시 제한적이다.

일부 규제는 유엔헌장 51조에 명시되어 있고 기타 규제는 국제법 일반원칙으로 규정되어 있다. 국제법상 ‘임박한 공격’을 포함하여 향후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력 사용은 허용되지 않는다. ‘임박한 공격’은 유엔헌장 51조에 나와있지 않다. 유엔헌장에는 정확히 “무장 공격이 발생한 (완료형) 경우”로 명시되어 있다.

임박한 공격이 무력 사용을 위한 명분이 될 수있다 해도 미국은 주장을 뒷받침해줄 확고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1월 9일, 마이크 폼페이오(Mike Pompeo) 미국 국무장관이 폭스뉴스(Fox News)에 출연하여 “거셈 솔레이마니가 모의하던 일련의 임박한 공격이 있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그는 “그 공격이 언제, 어디에서 행해졌을지는 우리도 정확히 모르지만 임박한 공격이 있었다는 점은 사실이다”고 밝혔다. 분명 공습에 대한 미국의 논지가 예견된 자위 행위라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욱이 필자는 미국이 미국 영토 내에서가 아닌 이라크에서 솔레이마니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이는 독자적인 주권 국가인 이라크의 주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이다. 현대 국제법의 초석인 주권평등 원칙에 의거하여 국가는 다른 국가의 영토에서 해당 국가의 동의 없이 군사력을 사용하거나 자신의 국내법을 집행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이 미리 이라크 정부의 동의를 얻지 않았다면 바그다드 공습으로 인한 솔레이마니 살해는 이라크의 주권을 침해한 행위이다. 아델압둘-마흐디(Adel Abdul-Mahdi) 이라크 총리가 공습으로 인해 이라크 관료 또한 사망했다고 분노를 나타냄에 따라 미국이 이라크로부터 사전 동의를 받지 못했다는 증거가 나타났다.

게다가 1월 5일, 이라크 의회는 주권의 침해로 인해 정부에게 외국 군대를 철수하도록 조치할 것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요악하면, 법률 전문가들은 솔레이마니 살해가 미국 국내법에 의해 합법적인지에 대해 상이한 의견을 나타낸다. 그러나 필자는 국제법상 이번 사건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불법이라고 생각한다.

 

훠 정신 (HuoZhengxin)

중국내 법정 대학의 교수

금, 2020/02/21-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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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북한 관계는 핵전쟁 위기, 올림픽을 통한 관계 개선, 일련의 정상회담 및 협상 결렬 등 급속한 변화의 과정을 겪었다.

그러나 평화를 위한 기회가 소멸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2017년, 북한이 핵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강화하고 트럼프와 김정은(Kim Jong-un)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설전이 ‘늙다리’ 대 ‘짧고 뚱뚱한’ ‘로켓맨’으로 악화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2017년 8월, 트럼프가 ‘지금까지 세계가 목격하지 못한 화염과 분노’를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북한을 위협해 파멸의 날을 앞당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일으켰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른바 ‘코피 전략’을 고려하면서 북한을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놀라운 외교적 반전이 있었다. 문재인(Moon Jae-in) 대한민국 대통령은 주도권을 쥔 채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Kim Yo-jong)과 올림픽과 별개로 회동했고 정의용(Chung Eui-yong) 국가안보실장과 서훈(Suh Hoon) 국가정보원장을 평양으로 보내 김정은을 만나게끔 했다. 정 실장과 서 원장이 2018년 3월 트럼프의 견해를 듣기 위해 워싱턴으로 향했을 때, 트럼프는 북한 위원장을 만나는 첫 현직 미국 대통령이 될 것을 즉석에서 합의하여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트럼프의 즉흥적 판단으로 지난 해부터 자신이 일으켰던 긴박한 사태들이 진정되었다.

이어 정상외교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외국 지도자와 회동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3월 이후 시진핑(Xi Jinping) 중국 국가주석과 5번, 문재인 한국 대통령과 4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3번, 블라디미르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과 1번 회동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 및 평화로 나아가는 긴 여정에 긍정적인 첫 걸음을 내딛었으며, 해당 과정의 전제 조건으로 신뢰 구축을 내세웠다.

그런데 2019년부터 국면이 또다시 반전되기 시작했다. 2월 하노이 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진전을 보지 못한 채 반나절 일찍 종결했다. 김 위원장은 2018년 4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완료되어 모든 자원을 경제 발전에 투입하라고 지시를 발표한 이후, 유엔 및 미국의 제재에 대한 조속한 해제조치가 행해지길 바랬다. 그는 ‘민간 경제를 저해하는’ 2016년 및 2017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을 해제한다면 먼저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탄핵여부를 결정할 뮐러(Mueller investigation) 특검조사팀 문제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해 신속히 외교 정책 승리에 열중한 트럼프는 즉각적인 비핵화라는 담판의 기회를 강조했다.

그 이후로 상황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오늘날, 북한은 비핵화의 결정 이후 리비아에 일어난 것과 같은 정권 교체를 두려워한다. 미국은 제재를 너무 일찍 완화하여 안 좋은 상황이 도래할까 망설이고 있다. 이러한 신뢰 결핍은 단계적 비핵화 협상과 한국전쟁 휴전협정을 대신할 평화 협정으로 나아가는 노력을 계속해서 방해한다.

2019년 4월, 김 위원장은 미국에게 연말까지 대북 ‘적대 정책’을 철회하는 ‘용단’을 내릴 것을 촉구했다. 리태성 북한 외무성 부국장은 시한이 다가오자 크리스마스 선물이 무엇이 될지 결정하는 것은 미국에게 달려있다는 아리송한 메시지를 발표했다. 그러나 시한이 지나도 핵 또는 장거리 미사일 시험에 대한 미국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었고, 미국과 북한 간의 협상의 여지가 사라졌다.

에반스 리비어(Evans Revere) ANU교수가 한반도 관련 특징 3가지 중 하나로 설명했듯이, 평양 내 분위기가 매파에게 유리하게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김 위원장은 2019년 12월 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연설을 통해 더욱 발전된 ‘전략적 무기’와 핵 및 장거리 미사일 시험, 실효없는 비핵화의 협상중단, 미국과의 ‘장기적인 대결구도’를 약속하는 ‘새로운 계획’을 발표했다. 찰스 암스트롱(Charles Armstrong)이 한반도 내 또 다른 특징으로 비평한 것과 같이 북한의 ‘새로운 계획’으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희망’이 거의 사라진 셈이다.

리비어 교수는 이러한 상황이 트럼프 행정부에게 ‘무시무시하고 어려운’ 정책적 선택 사항을 넘겨주었다고 말한다. 2017년의 ‘화염과 분노’로 회귀한다면 엄청난 인명 피해, ‘한반도 파괴’, ‘북한이 일본 그리고 심지어 미국 공격’까지 초래하는 끔찍한 전쟁이 발발할 위험이 있다. 반대로 북핵 문제를 묵인하는 대신 북한의 위협을 관리하기 위해 견제하고 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북한은 미국과 동맹국들에게 영구적으로 위협적인 존재로 남게 될 것이다.

리비어 교수는 제재와 압박을 강화하면 “북한이 핵무기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정권의 존속을 위협할 수 있다”면서 이로써 보다 설득력 있는 협상 기반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나타내는 전통적인 리더십의 부재, 다자주의 및 연합 형성에 대한 혐오, 중국의 봉쇄, 미국 동맹 붕괴, 미국의 도덕적 권위 상실 등은 미국이 해당 노선을 추구할 능력이 부재함을 시사한다. 암스트롱은 “트럼프가 당분간은 탄핵 심의(이는 지난 2월초에 부결되었다)와 11월까지 재선 캠페인에 주력할 것이다”고 말하며 “ 그 동안 북한과 접촉하는 행위는 재선 전망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낙관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불안한 대한민국 경제와 4월 총선에 총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의 ‘새로운 계획’에서 암시할 수 있듯이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3국 협력이 재개해야 한다. 아오키 나오코(Naoko Aoki) 비영리 단체 랜드(RAND Corporation)의 연구학자는 여러 기사를 통해 해당 국가간의 관계에 여러 긴장감이 내재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과 일본은 ‘쓰라린 경제적, 역사적 분쟁을 이겨낼 방안을 아직 찾지 못했다.’

반면에 트럼프는 미군 주둔 비용에 대해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을 약화시킬 작심을 하고 있다. 아오키는 “한국과 미국은 주한 미군에게 한국이 비용을 얼마나 지불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 간 합의의 내용은 ‘2021년 3월 효력이 끝나는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SMA)에 앞서 주일미군에 대한 주둔국 지원’ 관련 협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1994년 제네바 합의, 한반도개발기구(KEDO, 1995~2006년), 6자회담(2003~2009년)과 마찬가지로 현재 과정의 결렬은 평화를 위한 기회를 날리는 또 다른 사례가 될 것이다. 현재 상황의 전개는 한반도에서 끊이지 않는 냉전을 정착시킬 위험성이 있다.

협상으로 향하는 문은 열려 있지만 다시금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 이때 1) 6자회담 국가 간의 협력을 조율하여 북한에게 국제 사회는 핵무기를 결코 수용하지 않을 것임을 명백히 하고, 2) 북미 간에 신뢰 구축을 재활성화하며 3) 동시에 연계된 단계별 비핵화 및 평화협정 협상을 위한 지침을 타결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워싱턴 내 회의론자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상기 세 방면 모두에서 진전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한국이 지속적으로 북한을 포용하는 정책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호주국립대학교(ANU)내 동아시아 포럼(EAF)의 편집진

월, 2020/02/24-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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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어느 의회든 법안 검토는 의원의 본업이다

그렇다면 세계 다른 나라 의회에서는 법안 검토를 어떻게 하고 있을까?

미국 의회의 경우, 의원에 의하여 법안이 제출되면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된다. 위원회에 회부된 법안은 상임위원회 위원장에 의하여 소위원회에 넘겨지는데, 소위원회는 청문회 개최(미국 청문회의 경우, 입법을 위한 청문회가 높은 비율을 점한다)와 꼼꼼히 조문 하나하나를 심사하는 축조(逐條)심사를 수행한다. 물론 상임위원회에서의 이 모든 활동은 의원들 자신들이 직접 수행한다.

프랑스 의회 역시 본회의든 상임위원회든 발언을 포함한 모든 진행이 의원들에 의하여 직접 수행된다. 의원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법안의 각 조문에 대한 조문 투표를 실시한 뒤 법안 전체에 대한 전체 투표를 실시한다.

독일 의회는 각 정당 내 상임위원회마다 소그룹이 운영되고 여기에 각 정당에 소속된 정책연구위원들이 결합해 매주 화요일마다 만나서 짧게는 6주에서 길게는 6개월에 걸쳐 상임위 의제를 사전에 토론하고 조율하기 때문에 의원 개개인의 전문성도 향상되고 각 정당의 전문성도 당연히 증대되며 이는 의회의 전문성 제고로 이어진다. 소그룹에서 채택된 사항은 대부분 그대로 정당 전체의 견해로 채택된다.

정치 후진국이라 불리는 일본 국회의 경우에서도 법안에 대한 검토는 당연히 의원의 몫이다. 일본 국회에서 법안 제출은 의원법제국의 입법보좌를 받아(다만 이는 법률상 요건이 아니고 단지 참고 요건이다) 준비되고 정당 내의 절차를 거쳐 최종적으로 법률안이 확정된다. 정당 내 절차는 정당 내 정무조사회(政務調査會)나 정책심의회 부회(部會, 전문 분야별로 모이는 회합을 가리킨다)를 거쳐 정책심의회나 혹은 정책심의회 전체회의 등에서 결정한다. 나아가 총무회나 중앙집행위원회 등 상부기관의 의결을 거친다.

 

법안 검토는 입법 과정의 핵심이자 본령(本領)이며 기본

그러나 우리 국회의 경우, ‘의회’의 이러한 국제적인 보편적 기준과 너무나 상이하다.

우리 국회에서 상임위원회에서의 검토보고는 법률안의 심사 과정 중 전체 위원회에서 법률안의 제안 설명이 끝난 뒤 ‘반드시’ 전문위원이 낭독하도록 되어 있다.

그 결과 채택되는 소위원회의 수정안 내용도 전문위원의 검토 내용과 대개 일치하는 경우가 많고,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에서 지적되지 않은 문제점은 위원회 심사과정에서 대체로 거론되지도 않는 성향을 보인다. 예산안에 대한 예비심사 검토보고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니 예ㆍ결산 검토보고는 사실 이 분야에 대한 의원들의 전문성 및 시간 부족으로 법안 검토보고 경우보다 입법관료의 주도권이 훨씬 강하다.

결국 이렇게 하여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는 위원회 심사의 대강의 범위와 차원을 ‘제시’해 주며, 논의의 초점과 방향을 ‘정립’해 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뿐만 아니라 실제 심의 결과 채택되는 소위원회의 수정내용 구성에서도 매우 큰 영향력이 발휘된다.

더구나 의사 진행에 대한 세부 규칙이 정해지지 않은 가운데 국회의 입법관료들이 제시하는 선례에 대한 해석에 의하여 의사 진행상의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갈 수밖에 없는 한국 국회의 현실에서 결국 위원회 입법관료들이 위원회의 심사과정에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히 커지게 되어 있다. 실제로 위원회 운영상의 시나리오가 위원회 입법관료들에 의하여 작성되고 있으며, 위원장은 이들이 준비한 각본에 따라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검토보고서를 토대로 회의를 진행하게 되므로 검토보고서는 입법 논의의 출발점이자 결정적 변수일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법안 검토’란 입법 과정의 핵심이자 본령(本領)이며 기본이다. 사실상 입법과정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이 ‘검토’ 과정을 의원이 아닌 다른 사람이 ‘대리’하는 것은 의회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 부정이다.

국회에서는 매일같이 입법토론회와 공청회가 분주히 열리고 본회의장이나 상임위에서 법안 통과 문제로 ‘식물국회’니 ‘동물국회’니 볼썽사나운 살풍경이 벌어지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본질 왜곡을 가리는 변죽일 뿐이다.

 

공무원의 법안 검토보고’, 국민이 명령한 입법권에 대한 명백한 직무유기

상임위원회란 본래 정당 간 정책대결의 장이다. 미국 의회의 경우, 상임위원회 입법지원 인력인 스태프(Staff)는 18명의 전문위원을 포함하여 위원회당 평균 75명으로서 다수당과 소수당이 소속 의원 수에 비례하여 인원을 배정받고 소수당은 최소 1/3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독일 의회의 상임위원회 입법지원 조직은 주로 교섭단체 정책위원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어 그 총수는 2004년 현재 837명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우리 국회처럼 입법관료가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다.

사실 우리 국회에도 위원회 공무원과 별도로 이른바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이라는 제도가 존재하고는 있다. 각 교섭단체별로 의석수에 따라 배분되는데, 급여는 국회 예산에서 지급되고 국회 사무처 소속으로 별정직 공무원의 신분이다. 2019년 현재 총 인원은 67인이다. 그러나 현재의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은 당파성과 당에 대한 충성심에 비하여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정당의 정책과 관련한 전문성보다는 상당수가 기본적인 자격에 있어서 부족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실질적인 능력과 역할의 측면에서도 대단히 취약성을 노출시켜 단지 개별 정당의 운영을 지원하는 데 치우치고 있다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을 정당 관료가 형식적으로 맡으면서 당료의 임금보전책으로 활용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2003년의 경우, 32명의 교섭단체 정책위원 중 25명이 당료 출신이었고, 6명이 국회 공무원 출신이었다. 더구나 최근 들어 집권 여당의 당정책위원은 기재부, 행안부 등 행정부 현직 관료들을 ‘편법’으로 임용하는 방식으로 충원하고 있어 국회 입법과정에 행정부 관료들의 개입을 적극적이고 합법적으로 보장하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 국회의 입법권은 지금 심각한 왜곡 상태에 놓여 있다. 국회가 지금 안고 있는 문제는 수 없이 많지만, 의원 입법권에 대한 침해라는 이 문제야말로 국회의 본원적 문제라 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국민들은 자기들을 대신하여 국가 입법을 수행할 대표를 선출해 국회를 구성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에 의해 선출된 대표인 의원들이 입법을 방기한다? 자신들에게 부여된 본업을 수행하고 있지 않는 이 문제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가 또 어디에 존재할 수 있겠는가?

변질된 국회이고, 왜곡된 국회이다. ‘의회로서의 기본’이 상실되어버린, 그리하여 이미 의회라 할 수 없는 국회이다. 기본이 왜곡되어서는 모든 일이 뒤틀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회 스스로 이 문제를 개선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실제 필자가 만난 한 중진의원은 의원들이 이 문제의 개혁에 그다지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현재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법률안을 논의할 경우 국회 공무원인 전문위원이 법률안을 읽고 요지와 주요 쟁점 등을 설명하는데, 그런 ‘귀찮은’ 일을 의원들이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심리에 형성되어 굳어진 이러한 자세 자체가 이미 왜곡된 우리 국회의 모습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국민이 명령한 ‘직무’에 대한 명백한 ‘유기’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사회가 이 문제를 정면으로 인식하고 제기할 때 국회 문제도 해결될 수 있어

지식인들과 시민운동은 이 문제의 중요성과 긴급성에 대하여 인식해야 하며, 그리하여 국회 개혁운동에서 가장 선결적인 문제로 제기해야 한다. 이 문제는 입법 수행을 최고 임무로 부여받은 국회의 본질적 허구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문제이기 때문에 지식인들과 시민운동이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한다면, 이 문제는 의외로 크게 여론화될 수 있고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국회 문제를 해결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현재 우리 언론은 대개 클릭수를 노리는 자극적인 기사나 가십성 뉴스에만 주목할 뿐 언제나 기본과 근본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 사회는 더욱 혼탁해지고 더욱 분열되며, 말초와 지엽으로만 흐르게 된다. 이제 언론도 기본과 근본에 충실해 진정한 ‘사회의 목탁’으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아나운서를 비롯하여 연예인, 스포츠스타 등등 좀 유명세가 있다 싶으면 모두가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는, 그리하여 이 땅에서 국회의원이란 그저 ‘출세’와 ‘성공’의 가장 큰 상징으로 전락해버린 오늘의 비극적인 현실도 타파할 수 있다.

화, 2020/02/25-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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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준은 해방 이후 전쟁까지의 남과 북을 편력한다. 그 출발지는 서울이다. 20대 철학과 3학년생인 그는 홀로다. 어머니는 죽고 아버지는 월북하고 없다. 대신 아버지의 친구인 은행 지점장의 집에 기식해 산다. 명준의 또래인 아버지 친구의 아들과 딸도 부르주아적 생활을 즐기는 데카당하고 향락적인 대학생들이다. 이명준이 냉소적으로 묘사한 당시 한국 사회의 모습은 이러했다.

정치? 오늘날 한국의 정치란 미군 부대 식당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받아서, 그중에서 깡통을 골라내어 양철을 만들구, 목재를 가려내서 소위 문화주택 마루를 깔구, 나머지 찌꺼기를 가지고 목축을 하자는 거나 뭐가 달라요? …… 저 브로커의 무리들, 정치 시장에서 밀수입과 암거래에 갱들과 결탁한 어두운 보스들 …… 한국의 정치가들이 정치의 광장에 나올 땐 자루와 도끼와 삽을 들고, 눈에는 마스크를 가리고 도둑질하려 나오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착한 길가던 사람이 그걸 말릴라치면 멀리서 망을 보던 갱이 광장에서 빠지는 골목에서 불쑥 튀어나오면서 한칼에 그를 해치우는 거예요. 그러면 그는 도둑놈한테서 몫을 타는 것이지요. 그는 그 몫으로 정조를 사고, 돈이 떨어지면 또다시 칼을 품고 광장으로 나옵니다. …… 바늘 끝만 한 양심을 지키면서 탐욕과 조절을 꾀하자는 자본주의의 교활한 윤리조차도 없습니다. 한국 경제의 광장에는 사기의 안개 속에 협박의 꿏불이 터지고 허영의 애드벌룬이 떠옵니다. 문화의 광장 말입니까? 헛소리의 꽃이 만발합니다. ……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죽었습니다.

비루하고 천박한 욕망, 거친 폭력과 기만이 범람하는 곳, 이것이 명준이 본 남한이었다. 부르주아래야 미군 부대에 기생한 천민 부르주아요, 문화요 예술이래야 그런 부르주아 자제들의 시시덕거림에 불과하다. 이곳을 명준은 “키에르케고르 선생식으로 말하면, 실존하지 않는 사람들의 광장 아닌 광장”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 체제의 핵심에는 적대감과 폭력이 놓여 있다. 부르주아적 삶에 기식하여 살면서 그 공허감을 “삶을 참스럽게 생각하고 간 사람들이 남겨놓은 책을 모조리 찾아 읽”는 것으로 해소하는 “젊고 가난한 철부지 책벌레”인 그에게 그 적대감의 실체와 대면하는 시간이 이윽고 찾아온다. ‘S서의 형사실’에서였다. 명준이 그 적대감의 먹잇감이 되었던 이유는 ‘반일투사이자 이름 있는 코뮤니스트’였던, 이제는 월북해 없는 그의 아버지 때문이다. S서에서 명준을 담당한 첫 번째 형사는 흥미롭게도 서북 사투리를 쓰고 있다.

“좋아. 소식 자주 듣나?”
“네?”
“아, 이 새끼, 가는귀가 먹언. 말귀를 못 알아들어?”……
“네 애비 소식 말이야.”
……
“손목때기 티우디 못하간? 인나!”

명준은 겁에 질려 오뚜기처럼 벌덕 일어선다. 곧바로 얼굴에 주먹이 날아온다.

명준은 아쿠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뒤로 나자빠지다, 의자에 걸려 모로 뒹군다. 끈적끈적한 코밑에 손을 댄다. 마구 코피가 흐른다. 한 손으로 땅을 짚고 한 손을 코에 댄 꼴이 흡사 개 같다 싶어, 엉뚱하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는 쿡 웃는다. 그러자 여태까지 무서움이 씻은 듯 가신다.

“어? 이 새끼 봐, 웃어? 오냐 네 새끼레 그런 줄 알았다. 이 빨갱이 새끼야!”

이번에는 발길이 들어왔다. 간신히 피한 발길이 어깨에 부숴지게 울린다. 명준의 알 수 없는 품으로 벨이 틀린 나으리는 발을 바꾸어가면서 매질을 거듭한다. 어깨, 허리, 엉덩이에 가해지는 육체의 모욕 속에서 명준은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는다. 아, 이거구나, 혁명가들도 이런 식으로 당하는 모양이지, 그런 다짐조차 어렴풋이 떠오른다. ……

“엄살부리지 말고 인나라우. 너 따위 빨갱이 새끼 한 마리쯤 귀신도 모르게 죽여버릴 수 있어. 너 어디 맛 좀 보라우.”

해방 후 고향을 ‘빨갱이’에게 내주고 월남한 기독교 서북, 지주 서북 세력의 ‘좌익’에 대한 증오와 폭력은 잘 알려져 있다. 이 형사도 그러한 사람이었으리라. S서 형사실의 두 번째 조사에서 명준은 남한 체제 폭력성의 더 깊은 뿌리를 목도한다.

그자(형사)는 명준을 젖혀놓고 동료 쪽으로 돌아앉아서 겪은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명준은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도 또 한 번 놀란다. 그는 자기 전성 시대라면서, 일제 때 특고 형사 시절에 좌익을 다루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특고가 마치 한국 경찰의 전신이나 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 말투에는 일제 시대에, 그 학교의 전신이던 학교에 다닌 선배가, 그 소위 후배들을 앞에 놓고 옛날, 운동으로 날리던 얘기에 신명이 났을 때의 도도함이 있다. 그의 옛날 얘기를 듣고 있으려니까, 명준은 자기가 마치 일본 경찰의 특고 형사실에 와 있는 듯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형사의 얘기는 그토록 지난날과 지금을 뒤섞고 있다. 빨갱이 잡는 걸 가지고 볼 때 지금이나 일본 시절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완연하다. 일제는 반공이다. 우리도 반공이다, 그러므로 둘은 같다라는 삼단 논법. 그는 ‘아까 아까’(일본어로 빨갱이)를 거푸 지껄인다.

명준은 “벌레처럼, 그 누군가 커다란 발길이 그, 이명준을 비비고 뭉개어 티도 없이 지워버리”는 몽상에 빠진다. “나는 법률 밖에 있는 건가” 자문하고 “돈과 마음과 몸을 지켜준다는 ‘법률’의 밖에 있는 어떤 삶”이 자신의 것이 된 것을 느낀다.

환멸 끝에 명준은 남한을 버리고 북조선을 선택한다. 아버지를 찾아서도, 아버지의 신념을 찾아서도 아니었다. 다만 “보람을 느끼면서 살 수 있는 광장”, 아니, 자신과 밝은 자유를 나눌 사랑이 있는 ‘광장의 꿈’을 찾아서였다. 과연 명준은 북조선에서 그러한 광장을 찾았던 것일까.

명준이 북녘에서 만난 것은 잿빛 공화국이었다. …… 저녁노을처럼 핏빛으로 타면서, 나라의 팔자를 고치는 들뜸 속에 살고 있는 공화국이 아니었다. 더욱 그를 놀라게 한 것은, 코뮤니스트들이 들뜨거나 격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일이었다. 그가 처음 이 고장 됨됨이를 똑똑히 느끼기는, 넘어와서 바로 북조선 굵직한 도시를, 당이 시켜서 강연 걸음을 했을 때였다. 학교, 공장, 시민회관, 그 자리를 채운 맥빠진 얼굴들. 그저 앉아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아무 울림도 없었다. 혁명의 공화국에 사는 열기 띤 시민의 얼굴이 아니었다. 가락 높은 말을 쓰고 있는 자신이 점점 쑥스러워지는 것이었다. 강연 원고만 해도 그랬다. 몇 번이나 당 선전부의 뜻을 받아 고쳤다. 마지막으로 결재가 났을 때, 그 원고는, 코뮤니스트들의 늘 하는 되풀이를 이어붙인 죽은 글이었다. 명준이 말하고 싶어 한 줄거리는, 고스란히 김이 빠져버리고, 굳이 명준의 입을 빌려야 할 아무 까닭도 없는 말로 둔갑해 있었다. …… 어느 모임에서나, 판에 박은 말과 앞뒤가 있을 뿐이었다. 신명이 아니고 신명난 흉내였다. 혁명이 아니고 혁명의 흉내였다. 믿음이 아니고 믿음의 소문뿐이었다.

남한의 ‘S서 형사실’에 평행하는 북조선에서 명준의 체험은 《노동신문》 편집부 당 세포모임의 ‘자아비판회’에서 이뤄진다. 이 체험은 S서 형사실에서의 그것과는 성격을 달리하지만, 그 강도는 결코 덜하다 할 수 없다. 선배 당원들은 후보당원인 명준의 기사를 문제 삼는다. 그들은 명준이 “남조선 괴뢰 정부 밑에서 썩어빠진 부르주아 철학을 공부하던 시절의 반동적인 생활 감정에서 자신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와 같은 반동적 사고 방식을 마치 정당한 것이기나 한 것처럼 반성하려 하지 않는다”라고 비판한다. 명준은 자신의 기사는 있는 사실을 썼을 뿐이라고 항변해보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적대감과 증오다.

“인민이 쟁취한, 풍족한 물질 생산 수준에 대해서 회의적인 보도를 하는 것은, 동무 자신의 가슴과 머리 깊이 박혀 있는 소부르주아적인 인텔리 근성에 지나지 않습니다. 전체 인민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며, 빛나는 미래를 향하여 전진하고 있는 이 역사적인 마당에, 이명준 동무는 전혀 자신의 주관적 상상에 기인하는 판단으로 트집을 잡으려고 한 것입니다.” …… 명준은, 대들려고 고개를 들었다가, 숨을 죽였다. 그를 향하고 있는 네 개의 얼굴. 그것은 네 개의 증오였다. 잘잘못간에 한번 윗사람이 말을 냈으면, 무릎 꿇고 머리 숙이기를 윽박지르고 있는 사람들의, 짜증 끝에 성낸, 미움에 일그러진 사디스트의 얼굴이었다. 명준은 문득 제가 가져야 할 몸가짐을 알았다. 빌자, 덮어놓고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자. 그의 생각은 옳았다. 모임은 거기서 10분 만에 끝났다. 명준은 사무친 낯빛을 하고, 장황한 인용을 해가며, 허물을 씻고 당과 정부가 바라는 일꾼이 될 것을 다짐했다. …… 슬픈 깨달음이었다. …… 가슴에서 울리는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 옛날 그는 S서 뒷동산에서 퉁퉁 부어오른 입언저리를 혓바닥으로 핥으면서 이 소리를 들었다. 그의 마음의 방문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이번 것은 더 큰 울림이었다. 그러나 먼 소리였다. 무디게 울리는 소리. 광장에서 동상이 넘어지는 소리 같았다.

그는 침묵하는 아버지 앞에서 절규한다.

(노동신문) 편집자는 저한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명준 동무는, 혼자서 공화국을 생각하는 것처럼 말하는군. 당이 명령하는 대로 하면 그것이 곧 공화국을 위한 거요. 개인주의적인 정신을 버리시오’라구요. 아하, 당은 저더러는 생활하지 말라는 겁니다. 일이면 일마다 저는 느꼈습니다. 제가 주인공이 아니고 ‘당’이 주인공이란 걸. ‘당’만이 흥분하고 도취합니다. 우리는 복창만 하라는 겁니다. …… 저는 월북한 이래 일반 소시민이나 노동자 농민들까지도 어떤 생활 감정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알았습니다. 그들은 무관심할 뿐입니다. 그들은 굿만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끌려다닙니다. 그들은 앵무새처럼 구호를 외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인민이란 그들에겐 양떼들입니다. 그들은 인민의 그러한 부분만을 써먹습니다. 인민을 타락시킨 것은 그들입니다. 그리고 북조선의 공산당원들은, 치사하고 비굴하고 게으른 개들입니다. 양들과 개들을 데리고 위대한 김일성 동무는 인민공화국의 수상이라? 하하하 ……

전쟁 때 인민군 복장으로 남으로 내려온 명준은 이미 북의 체제에 대한 신념을 잃은 자였다. 전쟁은 그에게 “잘못하면 ‘역사’는 자기를 남겨두고 줄달음칠 것 같은 무서움”을 주었다. 해방군으로 그리고 정치보위부의 간부로 서울로 내려왔을 때 차라리 악당이 되어보자고 위악(僞惡)한다. 과거 그를 법 밖으로 몰아냈던, ‘S서’의 지하실에 끌려온 은행장 아버지 친구의 아들이자 그의 친구인 T와 마주쳤을 때였다. 명준은 그가 당했던 폭력을 T에게 휘두른다. 자신이 휘두른 폭력에도 명준은 환멸한다. 그리고 낙동강 전선에 투입된다. 전선에서 그는 조그만 동굴을 발견한다. 전선에서 우연히 재회한 애인과 그들만의 작은 동굴에서 나누는 밀회의 시간에만 삶의 의의를 건다.

“왜 이런 전쟁을 시작했을까요?”
“고독해서 그랬겠지.”
“누가?”
“김일성 동무지.”
그녀는 다시 눈을 감았다. 한참만에, 이쪽으로 돌아누우면서, 명준의 가슴을 만지작거렸다.
“자기가 외롭다고 남을 이렇게 할 권리가 있나요?”
“권리? 권리가 있어서만 움직인다면 벌써 천당이 왔을 거야.”
“김일성 동무는 애인이 없었던가보지요?”
“있어도 신통치 않았겠지.”
“이 동무가 수상이라면 어떡하시겠어요?”
“나? 나 같으면 이따위 바보 짓은 안 해. 전쟁 따윈 안 해. 나라면 이런 내각 명령을 내겠어. 무릇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민은 삶을 사랑하는 의무를 진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인민의 적이며, 자본가의 개이며, 제국주의자들의 스파이다. 누구를 묻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인민의 이름으로 사형에 처한다. 이렇게 말이야.”
“하하하.”
그녀는 남자처럼 웃었다. 그러면서 두 손으로 잡고 있는 명준의 목을 마구 흔들어댔다.
“그런 시인을 수상으로 가진 인민들만 봉변이군요.”
“시인? 아 그럼 그 과학적인 친구들이 앉아서 한다는 게 요꼴인가? 아니야.”

명준의 아이를 잉태한 여자는 전사하고 명준은 포로가 된다. 포로 송환 등록이 시작되었을 때 제삼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명준은 “바로 자기를 위해 마련된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보기에 북은 “미친 믿음이 무서운” 사회라면 남은 “숫제 믿음조차 없는 허망한” 사회다. 그러나 남은 “타락할 수 있는 자유와, 게으를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정말 그곳은 자유 마을이었다”고 야유한다.

북녘에는 이 자유가 없었다. 게으를 수 있는 자유까지도 없었다. 그건 제 멋 짓밟기다. 남한의 정치가들은 천재적이었다. 들어찬 술집마다 들어차서, 울랴고 내가 왔던가 웃으랴고 왔던가를 가슴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는 대중을 위하여, 더 많은 양조장 차릴 허가를 내준다. 갈보장사를 못 하게 하는 법률을 만들라는 여성 단체의 부르짖음은 그날 치 신문 기사거리를 만들어주는 게 고작이다. 그들의 정치철학은 의뭉스럽기 이를 데 없다. 그런 데로 풀리는 힘을 막으면, 물줄기가 어디로 터져 나올지를 다 알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자녀에겐, 진심으로, 교회에 나가기를 권유하고, 외국에 보내서 좋은 가르침을 받게 하고 싶어 한다. 이런 사회. 그런 사회로 가기도 싫다.

남에서도 북에서도, 남북 간의 전쟁 통에서도 “보람을 느끼면서 살 수 있는 광장”을 찾지 못한 명준은 차라리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땅. 하루 종일 거리를 싸다닌데도 어깨 한번 치는 사람이 없는 거리. 내가 어떤 사람이었던지도 모를뿐더러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는 곳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곳은 더 이상 어떤 광장도, 광장의 꿈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명준의 최종선택은 아무도 없는 밤, 중립국행 선상에서 망망한 바다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북조선이 표방한 ‘자유 조선’이란 일본 그리고 미국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사회를 의미했다. 그러나 명준의 눈에는 ‘보람을 느끼면서 살 수 있는 광장’이 없는, 자유 대신 ‘미친 믿음’이 지배하는 사회일 뿐이었다. 반면 남한이 표방한 ‘자유 대한’은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를 말했다. 그러나 명준이 보았던 남한은 ‘실존하는 인간이 없는 광장 아닌 광장’의 사회, 타락과 기만과 폭력이 만연한 공간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울러 물어야 할 것이다. 이명준이 냉소하고 환멸했던 ‘S서의 형사들’과 ‘자아비판회의 네 얼굴들’은 자신들 나름의 ‘자유 대한’과 ‘자유 조선’에서 어떠한 자유와 책임을 추구했을까? 과연 자유와 책임이 있기나 했을까? 그들 자신이 품었을 열정과 의지는 무엇이었을까? ‘자아비판회’의 노동당원들에게 ‘자유 조선’이란 ‘반일, 반미, 반봉건’의 조국해방의 열망이었을 것이고, S서의 그 형사들에게 ‘자유 대한’은 ‘반공·반북’의 북진통일의 열망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자유’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상대를 부정하고 소멸시킴으로써만 존립 가능하고, 생사를 건 투쟁을 통해서 그 ‘자유’를 지키는 것이 민족사 앞에 그들이 자임한 ‘책임’일 것이다. 이러한 대립적·적대적 에너지가 남과 북에 거대하게 집결하고 있었다. 전쟁은 이렇듯 해방 정국 속에서 이미 배태되고 있었다. ‘자유 조선’을 위해서, ‘자유 대한’을 위해서 서로를 불구대천의 적으로 삼았던 남과 북은 이 증오를 국지적 내전에서 전면전으로 밀고 나갔고, 전면전으로 확대된 이 전쟁은 급기야 남북의 통제권을 벗어나 국제전으로 확산되었다.

명준은 이 전쟁의 끝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자유 대한’과 ‘자유 조선’의 에너지는 이 전쟁의 와중에 죽지 않았다. 오히려 강해졌다. 전쟁은 ‘자유 대한’과 ‘자유 조선’의 체제적 권능을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절대적 힘이란 무제한적 자유이기도 하다. 그 무제한적 자유는 양편 국민대중과 인민대중 각각의 눈앞에 불구대천의 원수, 절대적 악마를 창조해냈던 위대한 마법사에게 마땅히 돌아갔던 특별한 상훈(賞勳)이었다. 무제한적 자유를 확보한 남북 두 국가체제 속에서 명준의 자유는 설 곳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명준 사후, 그가 남긴 보이지 않는 길을 헤쳐가야 했던 김낙중의 경우는 어떠했을까?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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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2/26-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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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스위스 알프스에서 열린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가장 놀라운 소식은 무엇인가? 억만장자들의 세계적인 연례 축제를 취재하는 기자들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을 맞이하는 따뜻하고 친근한 반응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전세계 재력가들은 미국 대통령과 식사를 하면서 그의 농담에 반응하고 그의 자존감을 아낌없이 높여주었다.

패트리스 모체페(Patrice Motsepe)라는 남아프리카 광산업의 억만장자 거물은 대통령에게 “아프리카는 대통령을 사랑합니다”고 말했다.

트럼프 또한 다보스포럼에 참석하는 재력가들을 치켜 세웠다. 트럼프는 당시 주변에 모인 일류 기업 CEO들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사업가’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취임 후 다보스포럼에 첫 방문을 했던 때와는 꽤 다른 분위기이었다. 2018년, 트럼프는 분명히 불안해 하는 부유층 집단과 마주했다. 이렇게 ‘미국을 우선시하는’ 대통령은 국제 무역 전쟁을 일으킬까? 대통령이 그들의 엘리트 지위를 파괴할까? 대통령은 엘리트 계층이 해온 사안을 엉망으로 만들까? 등 2년 전,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기업 운영진과 정계 실세들은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잘 알지 못했다.

2년이 지난 오늘, 불편함은 사라졌다. ‘다보스 맨’은 도널드 트럼프의 성과를 선호한다.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제50회 연차총회를 맞이하면서 대통령과 함께 무대에 올라 그에 대한 선호도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슈밥은 세계 정치 및 경제담론에 ‘긍정의 힘을 불어 넣은’ 트럼프를 극찬했다.

다보스포럼 원로는 “세계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고 말하며 “하지만 우리에게는 꿈이 필요합니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은 30분간 이어진 다보스포럼 기조연설에서 자신은 꿈을 꾸기보다 더 많은 함성을 지를 것이라고 전했다. 대통령은 자신의 정부가 ‘용솟음치는 기회의 분출’을 창출해냈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이전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경제적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자랑한 트럼프는 심지어 불평등을 넘어선 승리를 공표했다.

트럼프는 “우리는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더 이상 소수의 손에 부를 집중시키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고 발표하며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가장 포용하는 경제를 창출하여 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고 덧붙였다.

‘팩트 체커’들은 거의 즉각적으로 대통령의 다양한 주장이 전혀 옳지 않음을 파헤치기 시작하겠지만, 다보스포럼 집단은 오보를 특별히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은 트럼프가 자신들에게 이로운 인물이라고 결론지었다.

이안 브레머(Ian Bremmer) 경영 컨설팅업체 유라시아 그룹의 실력자는 “자신의 취향이 아닐 것 같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주역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 신의 선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세금과 규제를 줄이고 이미 많은 재산을 소유한 사람들이 더 쉽게 돈을 벌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신이 내린 선물, 그리고 무역 전쟁에 관한 비열함?’ 이라는 제목으로 This Week의 제프 스프로스(Jeff Spross) 기자는 ‘자유 무역’에 대한 트럼프의 공세는 “근본적으로 쇼맨의 레슬링 시합처럼 정책적 실체가 결여된 논쟁으로 귀결되어 자금 흐름과 권력 규모를 재조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전망을 보이기에는 너무 피상적입니다”고 비판했다.

1만 달러 호텔방과 43달러 핫도그를 제공하는 다보스포럼의 연례 총회는 항상 전세계 최고 부유층과 권력층으로부터 나머지 계층을 차단하는 방호벽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올해 모임에서는 해당 암시를 더욱 강하게 되살리는 것 같다.

다보스포럼은 ‘용솟음치는 기회의 분출’을 기리는 도널드 트럼프에게 갈채를 보냈다. 그러나 미국 및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용솟음치는 기회의 분출’의 영향력을 체감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몇 명이나 될까? 세계적인 조사기관 에델만 인텔리전스(Edelman Intelligence)는 올해 다보스 기념 행사 시작 직전에 한 가지 해답을 이끌어냈다.

지난 가을, 에델만은 전세계 응답자 34,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커져가는 불공평 의식’을 조사했다. 새로운 에델만 보고서 세부 사항에 따르면 선진국의 개별 가정(family) 중 3분의 1 이하에서 현재보다 5년 후의 자신들의 모습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또한 응답자 중 4분의 3 이상은 ‘서민들이 힘들게 세금을 납부할 때 엘리트 계층은 더욱 부유해진다’고 생각했다.

매년 전용기로 다보스포럼에 참석하는 슈퍼-리치와 나머지 인류는 그야말로 엄청나게 상이한 경계의 두 영역에 살고 있다. 슈퍼-리치는 부유의 세계에, 나머지 인류는 노동의 세계에 자리한다. 노동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노력과 기능에 의존하여 식비를 벌고 집을 구한다. 그들이 더 많은 돈을 벌어 잘 살기 위해서는 추가 연장근무를 하거나 또 다른 이중직업을 가져야 한다.

부유의 세계에 사는 부자들은 자신의 순자산을 급증시키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자신의 자산이 자신들을 위해 탐욕스럽게 일을 하도록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그들은 주식, 채권, 부동산 사업과 같은 자산을 거느리면서 배당금, 이자, 임대료수익 등을 얻는다. 또한 이러한 자산을 매각하면 양도 소득이 따라온다.

‘정말로 꿀같이 달콤한 이야기이다’라고 씨그램의 상속인인 에드거 브론프먼(Edgar Bronfman)이 부유의 세계에 입성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 것처럼, 이들의 거래행위는 영구적으로 부를 창출하는 기계와 같다.

브론프먼은 “100달러를 110달러로 불리는 것은 어렵습니다”고 하면서 “1억 달러를 1억 1천만 달러로 불리는 것은 가능합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수가 규제없이 부를 원활하게 축척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는 수백 만의 희생이 불가피해진다. 정부는, 부유층에게는 그들이 약간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만 세금을 부과하는 반면에, 서민들에게는 그들이 정당하게 노동하여 축적한 부를 집단적으로 쥐어짜는 온갖 방안을 항상 실행한다.

도널드 트럼프는 그러한 류의 거래를 수많이 경험해왔고, 해당 과정 속에서 다보스포럼 참가자들에게 필수적인 존재가 되었다. 세계적인 거물급 재벌은 한때 트럼프를 ‘위대한 재앙’이라고 여겼으나, 현재는 스탠포드 대학의 보수성향 후버연구소 소속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의 말처럼 “그들은 이전보다 훨씬 부유해졌습니다”. 퍼거슨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보스 2020의 알려지지 않은 불명예로운 비밀은 그들은 모두 그가 재선되길 바란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부자들이 그렇게 느끼지는 않는다. 그리고 포럼 진행된 주의 수요일, 미국에 기반을 둔 평등주의적 사상을 지닌 한 집단은 다보스포럼에 그들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해당 단체는 ‘피치포크에 대항하는 백만장자’라는 제목의 공개 질의서에서 세계 최고 부자들의 탈세의 ‘유행’을 비난하며 극도의 부를 ‘실패하는 경제 체제의 징후’라고 지적했다.

자애(자기도취)적인 백만장자 단체의 다보스포럼 2020 참석자들에게 보내는 공개 질의서에는 “그러한 이유로, 너무 늦기 전에 당신 국가 내의 백만장자 및 억만장자들에게 더 높고 공정한 세금을 부과하기를 촉구합니다”고 적혀있었다.

아비게일 디즈니(Abigail Disney) 전 유니레버 CEO이자 디즈니 상속인을 포함하여 해당 질의서에 서명한 121인 집단은 “우리는 지구 상에서 가장 특권을 누리는 인간 계층의 일원으로서 요구합니다”고 덧붙였다.

 

샘 피지개티(Sam Pizzigati)

Inequality.org의 공동편집자이자 최근 저서인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의 저자

목, 2020/02/27-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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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는 보유한 많은 Portfolio 사업을 진행하면서 아이오와 주에 있는 풍력 터빈 및 기반시설에 약 30억 달러를 투자해왔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전략에는 ‘세계 풍력의 중심, 풍력 발전 사업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국가’로 우뚝 서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

일부 투자가들은 화석 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선을 행하면서 이윤을 추구하는’ 문제와 함께 해당 사회에 대해 회사가 짊어진 책임을 반영한다고 말할 것이다. 전 세계 기업들의 연례 보고서 및 광고에서는 진심이건 아니건 현재 기업에서 위와 같은 내용을 동의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버크셔의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의 판단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오직 정부가 정책을 통하여 자신에게 수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풍력 발전에 투자했을 뿐이었다.

“우리는 생산의 부가가치에 대한 세액의 공제가 없다면 [그것에 투자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른바 오마하의 현인이 말을 더 이어갔다. 올해 초, 그는 파이낸셜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기업에게 사회에 ‘선행을 한다’는 시각을 강요하는 행위는 잘못되었다고 주장했다. 무엇 때문에 기업들 자신이 더 잘 판단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아주 어렵습니다. 거대 기업 20곳을 평가하자면 어떤 기업이 가장 잘 운영되는지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저는 공공기업 20곳의 이사로 재직해왔는데, 기업들의 행동을 평가하는 일은 점점 어렵게 느껴집니다. 아주, 아주 어렵습니다. 저는 사탕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면 사탕은 제게 좋은 것인가요? 나쁜 것인가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버크셔 경영진들이 세상을 위해 무엇이 옳은 지 분명 알았다고 해도 세상을 위한 신념을 바탕으로 투자한다고 믿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투자자인 주주들을 위한 대리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업은 주주들의 재산입니다”라고 말했다. 버크셔 조직에서는 자선 기부가 원칙적으로 배제된다.

“많은 기업의 경영진은 납세자의 재산에 대한 정부의 과세 할당을 개탄하면서도 투자자 수익에서 자신들에게 할당되는 몫에는 열렬히 동의합니다”라고 그가 씁쓸하게 지적했다. 기업에 대한 버핏 회장의 관점은 그를 이례적으로 (오마하의 현인) 만든 현 시점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시카고 대학 경제학자는 50년 전에 “사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늘리는 것이다”라는 내용을 작성했다. 이러한 관점은 최근까지도 경영대학원을 거쳐 이사회에서도 신조로 여겨진다.

버핏 회장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데 성공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가 마치 다정한 할아버지와 같은 무해한 대중적 이미지를 창조한 것이 가장 큰 업적일지도 모른다. 그는 이를 통해 다른 이들이 감히 생각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버핏 회장의 견해는 완전히 혼자가 아니다. 산업 센서를 생산하는 Cognex의 로버트 쉴만 회장은 지난 연례 보고서를 통해 “자유기업 체계와 수익에 기반한 사업을 모두 혹독하게 비난하는 추세에 우려를 표합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 라는 주제를 통한 기업들의 통제”를 문제 삼았다. 그는 정부가 여전히 기업의 ESG 관리 통제에 이르지 못했으며 “불행하게도 이러한 사항들은 거대한 투자 기관 내 펀드 매니저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산 운용자가 뮤추얼 펀드 내 투자자들이 빌려준 대리의결권을 활용하여 “사업상의 결정을 할 때 자신의 기업을 ESG 요인에 포함시키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은 주제를 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에 그들[펀드 투자자들]이 ‘당신은 이사회 및 회사 경영진이 환경, 사회 및 지배 구조 사안에 시간 및 에너지를 소비하기를 바랍니까? 혹은 당신은 그들이 당신의 주식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기를 바랍니까?’라고 질문을 한다면 그들은 압도적인 수로 후자를 선택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모럴 머니(Moral Money)는 지속 가능한 사업, 금융, 투자 내용을 다루는 본사의 새로운 주간 뉴스레터입니다. 이런 류의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이들이 소개하는 획기적인 사안에 대한 속보 및 통찰력 있는 분석을 확인해 보시길. 최근 ESG 주도형 투자 펀드의 고도 성장은 쉴만 회장이 틀렸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종업원과 지역사회 및 거래처 등의 이익을 고려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상기의 질문이 잘못된 선택을 전제로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ESG 투자펀드가 크게 확장되는 배경은, 운용자들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해당 기업의 영업 허가를 관련 기관이 취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앨런 슈워츠(Alan Schwartz) 투자은행인 구겐하임 파트너스 회장은 “수 세기 동안 우리는 대중들이 엘리트 계층의 부가 지나치다고 여길 때 두 가지 중 하나가 발생한다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부의 재분배를 위한 법규의 제정 또는 빈곤의 재분배를 위한 혁명이 그 두 가지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위태롭게 불안정해졌음을 인정하면서도, 주주들의 수익에 근시안적으로 집중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임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는다. 폴 싱어(Paul Singer)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 대표는 오히려 반대의 견해를 보인다. 정부의 나쁜 정책으로 야기된 기업들의 이사진 및 경영진의 이기적인 행동들이 ‘자본주의는 조작된 게임’이라는 인식을 형성시켜 왔다는 것이다.

싱어 대표에 따르면 기업 자본주의는 투자자가 기업을 소유하고, 투자자가 이사진을 임명하여 기업 전략을 수립하며 이사진은 전략 실행을 위해 경영진을 고용하는 시스템이다. 2017년 회의에서 싱어 대표는 그런데 현실의 상황은 역으로 경영진이 이사회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한 전략을 선택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부차적이었다. 그는 “미국의 현재 자본주의에는 엄청난 어리석음이 횡행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금융 위기를 초래한 대형 은행 경영진들의 모험적인 행동 및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이사회가 전형적인 예시라고 전했다.

위기에 대한 무능한 정책, 느슨한 통화 정책은 시민 대다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투자자들의 자산 가격을 높임으로써 자본주의에 대한 위기와 불만을 키울 뿐이었다. “금융 부문 및 자산 소유자들은 현란하게 활동하고 있는 반면에, 중산층은 위기로 인한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또한 경제적 자유를 포괄적으로 수용하는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포퓰리스트의 민첩한 공격 지점입니다.” 즉, 주주 자본주의에는 더 견고하고 확실한 통제가 필요하고, 주주 자본주의를 유연하게 방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버핏 회장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매우 단순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 그는 변화를 이끌어야 하는 주체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정부의 정책이라고 여긴다. 그는 오래된 버크셔의 석탄 발전소를 예로 들었다. “만약에 시장에만 맡긴 상태에서, 사람들이 우리가 소유한 석탄 발전소를 폐쇄하길 바란다면 이후 주주 또는 수요자가 해당 비용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수요자들이 폐쇄에 따른 비용을 지불한다는 주장에 이견이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이들이 발전시설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50%를 석탄으로부터 공급받는 지역에 거주할 경우에 폐쇄에 따른 고통이 발생하는 반면에, 그들이 다른 조건의 지역에 거주한다면 그러한 댓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겠죠. 하지만 누군가는 댓가와 비용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러한 (불균등)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도록 해야 할 지가 문제입니다. 이것의 해결은 전적으로 정부에서 담당해야 합니다.”

현 시대의 가장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투자가(워렌)는 “정부는 시장 체제를 수정(규제)하는 데에 있어 핵심의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FT ESG Team

금, 2020/02/28-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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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전염병의 유행이 도날드 트럼프와 시진핑의 지위를 위협하며, 각종 음모이론들이 펴지면서 국가 간의 국경이 닫히고 있다> FT 편집진


1348년 영국 해변가 마을인 Weymouth에 흑사병이라는 전염병이 상륙하면서 영국 인구의 30-50%가 사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세기 동안 지속된 대규모 전염병으로 이후 역사의 경로가 바뀌었다.

혹자는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하고, 다른 연구는 크림미아 반도에서 발생했다고 알려진 흑사병은 전 유럽을 황폐화 시키면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대혼란을 야기했다. 수 세기가 지난 후,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을 대량으로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대서양을 건너온 침략자들과 함께 찾아온 알 수 없는 전염병이었다.

현재 알려진 코로나바이러스의 치사율은 2% 수준으로, 지난 역사에 기록된 전염병 같은 치명적인 충격은 없을 것이지만, 현재의 문명화된 사회에서 예측할 수 있는 시나리오의 전망 역시 매우 심각하다.

이번 주 영국 정부가 추산한 최악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영국 국민의 80%가 감염되면서 50만 명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버드 대학교 공공의료분야 교수인 Marc Lipsitch의 예측에 의하면 전 세계 인구의 40-70% 정도가 감염되지만 대부분은 가볍게 앓고 회복되거나 일부는 전혀 증상을 못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공공보건 체계의 위기는 세계적 불황을 가져오면서 국제적 정치질서에 변화를 가져올 공산이 크다. 현재 시점에서 조망해보자면, 중국에 상당한 위기를 초래하고 미국 대통령선거에 크게 영향을 끼치며 국가 간의 긴장을 발생시키고 빈국들과 난민들에게 커다란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다.

 

US election: Trump vulnerability

미국 대선 : 트럼프에게 불리하다

도날드 트럼프는 잠재적인 전염병의 유행이 미국 대선 정국을 뒤흔들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는 지난 주 ‘코로나 사태는 잘 통제되고 있으며, 지금이 주식에 투자할 적기’라고 언급했다. 트럼프는 주가의 활황이 자신의 재선가동에 크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런데 전염병으로 주가가 폭락하면 선거국면이 흔들릴 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과장된 낙관과 과시에 따른 예측이 잘못되면, 자신의 재선에 발목이 잡히게 될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전염병의 대응에 매우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가 발생하였을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미래에 올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하여 국제정상회의를 유치했으며, 그 성과로 국가안보회의(NSC)내 전염병을 다루는 전담부서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부서는 해체되고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예산이 격감되었다.

전염병이 창궐하게 되면, 미국의 의료시스템에 대한 미행정부의 방침에 수많은 요구가 쏟아지면서, 민주당 경선의 선두주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주장하는 국가의료보장(medicare for all)에 대한 논쟁이 치열해 질 것이다. 미국 극우주의자들의 자유지상주의적 관행 때문에 – 이에 더하여 ‘평범한 미국인들의 자유를 박탈하려는 연방 정부의 기획’이라는 음모설이 유행하면서 – 미행정부가 중국이 우한에서 취하고 이탈리아에서는 조그만 도시들에게 시행한 검역의 봉쇄조치를 하려면 큰 곤욕을 치르게 될 것이다. 이러한 봉쇄조치를 취하면 총으로 무장한 민병대와 연방정부 간에 물리적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China: A threat to legitimacy

중국 : 권위적 통치에 대한 도전

트럼프와 달리, 시진핑은 재선 여부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사태는 그의 대중적 지지와 권위 그리고 종국에는 리더십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 해당 도시와 지역을 봉쇄하고 해외 여행을 통제하면서 시진핑의 중국은 의료체계의 비상과 경제적 위기 그리고 국제관계의 불편함 등에 직면하고 있다.

북경당국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자연의 재앙으로 규정하면서 – 시 주석과 당국의 실수라는 관련성을 배제하고 있다. 공식적인 라인은 북경당국의 신속한 결정, 과감한 조치 역량, 전염병의 창궐을 봉쇄하는 싸움에 중국인민들이 보여준 사회적 연대 등을 부각하여 과시하고 있다.

14억 인구의 절반이 이동의 자유에 제약을 받고 있고, 1억5천만 명이 자가격리조치를 취하는 등, 전례가 없는 광범한 방역의 격리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반면에 이러한 공식적인 입장이 여기저기서 도전을 받고 있으며, 우한의 전염병 예방센타에서 일하던 젊은 의사 리 웬리앙( Li Wenliang)의 죽음으로 촉발된 격렬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전염병의 초기단계에서 의사 리는 온라인 채팅방에 위험의 경고를 올렸다. 이로 인해 그는 공안에 불려 갔고, 루머를 중단한다는 약속과 자백서에 서명을 강요당했다. 죽음 직전의 병상에서 그는 성명서를 내었다 – “건강한 사회는 하나 이상의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접 시 주석을 비난하지는 않았지만, 리의 죽음직전의 증언은 시진핑이 추구해온 강자의 정치( strongman politics)에 대해 품위를 유지하면서도 통렬하게 저주한 것이다.

 

International tensions: Virus feeds enmity

국제 간의 긴장 : 바이러스가 증오를 키운다

아래 사진은 시드니 대학에서 있었던 호주 정부의 중국 여행객 출입금지 조치에 대한 항의데모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양한 음모 이야기가 퍼져 나오고 국경이 폐쇄되는 등 국제간 비난이 긴장을 고조시키기 시작했다. 중국 내 인터넷 채팅에서는 미국이 중국에 타격을 가하려고 바이러스를 만들었다는 의심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중국 당국은 이런 류의 음모설에는 일체의 언급을 하고 있지 않는 반면에 오히려 미국 쪽에서 다른 얘기가 터져 나왔다. 차기 대통령직의 야심을 지닌 호전적인 공화당 상원의원인 톰 카튼은 우한에 있는 생화학연구소에서 바이러스가 시작되었다고 암시했다.

이란에서는 정부의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감염되기 시작했다. 이란 대통령 하산 루하니는 코로나가 퍼트린 공포에 대해 ‘이란의 적이 만들어낸 음모’라고 언명하면서도 직접 만들고 퍼트린 나라들의 이름을 거명하여 비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검역의 조치와 국제여행의 제한은 국가 간의 마찰을 야기하고 있다. 중국은 14일 안에 중국을 방문한 경력이 있는 외국인의 입국거부 조치와 동시에 미국인들에게 중국을 방문하지 말도록 경고를 보내고 있는 미행정부에 대해 ‘불필요한 혼란과 소요를 야기하는 행동’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미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는 중국과 이란이 정보를 차단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는 반면에, 중국당국은 중국이 바이러스를 봉쇄하고 있는 노력에 대해 국제사회가 평가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왕이 외교부장은 ‘중국이 중국인민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구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국 내에서 상황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반-중국 정서 역시 심각하게 퍼져 나가며 북경을 비난하고 있는 반면에, 다행히 문재인 정부는 중국 방문객의 일반적 입국금지조치를 거부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바이러스가 급속히 퍼져나가면서 26개 유럽 국가 간에 맺은 국경지역 자유통행 협정(Schengen border-free travel zone)이 위협을 받고 있다. 이미 난민 문제로 문제가 된 상기 협정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등 국가에서 국경통행 시 신분확인 작업을 재개하였다. EU 규정에 따르면 공공보건이 위협을 받을 경우 국경을 폐쇄할 수 있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반드시 브러셀(Brussels)에서 확인한 명확한 지침에 따라야만 한다. 그러나 국내 정치의 압력이 증대되면, 즉흥적이고 비협조적인 조치들이 나올 위험이 다분하다.

국제간 여행만큼이나 국제간 통상무역 역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세계화는 선호받지 못하고 있으며 – 보호무역주의자들은 실업문제, 환경주의자들은 친환경정책의 비용 등으로 세계화에 기초한 무역을 비난하고 있다. 전염병의 유행은 반세계화 운동에 새로운 논쟁거리를 제공하면서, 전염병 창궐 시 부품공급(supply-chain) 취약성의 위험 등이 재조명되고 있다.

 

Refugees and poor countries

난민과 빈국들의 어려움

그리스의 모리아 지역 등에 있는 난민 캠프가 전염병 창궐에 대응할 수 있는 의료시스템을 갖출 수 있을까?

현재까지는 요행히 바이러스의 전파는 부국 또는 강력한 정부를 가진 중위소득 국가, 예건데 중국, 이탈리아, 한국 등에서만 발생하였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전파를 봉쇄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문제로 가난하고 의료체제가 빈약한 국가들로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아프리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이지리아에서 이미 첫 감염자가 보고되었다. 인도네시아와 인도 등 국가에서도 상당한 감염자가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특히 2억7 천만의 인구를 가진 인도네시아는 중국과 통상과 교류가 빈번한 국가로 현재까지 공식적인 감염의 보고는 없지만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다.

유럽과 중동 내에 설치된 난민의 군집된 캠프는 위생이 매우 취약한 곳으로 천2백만 난민이 이라크, 레바논, 터어키, 시리아 등에 산재되어 있고, 추가적으로 약 백만 명이 이란과 아프칸에 수용되어 있다. 시리아의 경우, 터어키 국경을 따라 수많은 난민이 살고 있는 Idlib지역에 군사적 공격이 진행되고 있어 전염병이 도는 경우 상황은 절망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터어키 정부는 난민들이 유럽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지 않겠다고 EU에 경고한 바 있다.

지난 주간에 코로나 바이라스는 이제 세계적 규모의 재앙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의료보건상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할 수 있을 것이지만, 바이러스 출현에 따른 국제정치적 여파는 이제 겨우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FT편집진

월, 2020/03/02-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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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을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과제 가운데 하나는 인간을 ‘재발명’하는 일이다. 만물의 영장이자 자연의 정복자로 군림해온 인간이 지구생태계의 모든 존재와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뿌리깊은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인간의 위치를 다시 규정해야 한다. 문화사학자이자 환경사상가인 토마스 베리는 이를 인간의 ‘재발명’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종의 차원에서, 비판적 숙고를 통해, 공동체의 생명체계를 고려하여,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이야기와 꿈을 공유하는 경험을 수단으로” 실천해야 하는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Thomas Berry, The Great Work, New York: Bell Tower, 1999, p.159)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고대 로마 공화정 시대의 키케로는 “인간다움”을 뜻하는 라틴어 “후마니타스”로부터 인문학(humanities)을 구상했다. 이는 세계 만물의 공통된 본질인 아르케를 탐구한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이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과 거리를 두고 인간에 집중한 결과였다. 이 때부터 인문학은 과학과 거리를 두었으며 르네상스 이후에는 인간중심주의가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탐구는 우주와 자연의 질서에 대한 이해와 분리될 수 없다. 인문학의 목표인 “인간다움”이 갖는 의미는 인간과 다른 존재의 연관 속에서 상대적으로 규정된다. 때문에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좁은 정의를 벗어나 상호 연결된 존재로서의 진정한 인간다움을 탐구해야 한다. 근대화 이후 시민계급이 갖춰야 할 교양으로 자리매김된 인문학(liberal arts)이 점차 분과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인간을 중심에 둔 통섭의 학문으로 변신하는 이유다.

환경인문학(environmental humanities)은 전지구적 생태위기에 대한 인문학의 응답으로, 2000년대 이후 환경철학, 환경사, 생태비평, 문화·생물 인류학, 문화지리학, 정치생태학,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연구, 젠더연구, 종교학 등 다양한 인문학과들 사이의 연결을 추구하는 지적 프레임워크로서 등장했다.

환경인문학이 중요한 이유는 점차 고조되는 생태위기와 생태적 인식의 중요성 때문이다. 기후위기와 자본주의위기라는 두 가지 문제는 과학기술이나 정책 영역의 한계를 넘어섰다. 1992년 UN 리우정상회의 이후 한 세대가 지났지만 기술, 경제학, 정책에 의존한 해결책은 효과를 내지 못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은 어려우며 이 부분에서 인문학은 환경문제에 개입하고 대중의 의식을 바꿔놓을 수 있다.

 

환경인문학의 정의

19세기 후반 생물학의 하위분야로 출발한 생태학이 학제적 영역으로서의 환경연구로 확장된 것은 1960년대부터이지만 대부분 자연과학의 관련 전공, 혹은 자연과학과 산업, 정책, 제도를 다루는 사회과학과의 결합이 초점이었고, 인문학은 그런 학제적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다. 물론 인문학의 여러 분과학문들은 1970년대 이후 각자 이론적 프레임과의 연관성에 따라 생태적 관점을 점차 도입했다. 환경철학이 1970년대에 나왔고, 환경사는 1980년대부터 역사학의 하위분야로서 자리잡았다. 생태비평 역시 1990년대 초반 제도화됐으며, 학제적 성격이 강한 인류학이나 지리학은 더 쉽게 생태적 사고와 결합했다. 이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나 환경적 사고를 소재로 끌어들여 분과학문의 틀 안에서 연구하는 방식이었다.

환경철학과 환경사, 생태비평의 발전은 이전까지 생태학적 사고를 지배했던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라는 이분법을 해체했다. 자연, 야생, 생태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담론적 구성물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원초적 자연”을 전제로 한 “보호” “보존” “복원” 등의 개념에 의문이 제기됐고, 환경 담론을 분석하는 것이 인문학계 환경연구의 핵심이 됐다. 자연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졌는데, 이는 자연과의 연속선상에서 인간을 파악함으로써 독립적·자율적 주체로서의 인간이라는 근대적 인간관을 극복, 보완하기에 이르렀다. 18세기 계몽주의적 사고가 이성적·합리적 인간성을 중심으로 지식체계를 재편한 것처럼, 제2의 계몽주의에 비견되는 생태적 사고는 인간과 자연이 연결된 생명관을 중심으로 스스로를 재구성할 필요에 직면했다. 이 과정에서 인문학 상호간, 인문학과 자연과학 간의 소통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생태적 인문학”을 처음 제안한 호주의 철학자 발 플럼우드는 두 가지 이론적 과제로 (1)인간을 환경 안에 재위치 짓는 것, (2)비인간을 문화적이고 윤리적인 영역 안에 재위치 짓는 것을 들었다. (Val Plumwood, Environmental Culture: The Ecological Crisis of Reason, Routledge, 2002) 즉 인간을 자연과 분리시켜 정신성을 가진 우월한 지위에 올려놓고 의미, 가치, 윤리가 없는 물리적 자연세계 안에서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조종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연-문화 이분법을 극복하자는 뜻이다. 이는 생태위기를 가져온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 인간을 비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게 하며, 하나의 연결된 세계로서 지구시스템의 동력과 변화를 고려하면서 인간적 삶의 방식과 사회구조를 재편해야 한다는 필연성으로 이어진다.

 

이론적 과제

(1)인간을 환경 안에 재위치 짓는 것

인문학에서 환경철학, 환경사, 생태비평의 역할은 인간을 환경 안에 재위치 짓는 것이었다. 심층생태학(Deep Ecology)은 생태계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자연을 인간적 측면에서 평가하고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자원 또는 물질로 파악하는 인간중심적 사고방식을 들었다. 인간을 포함한 자연을 하나의 전체로 바라보아야 하고, 인간은 최소한의 생존적 필요를 제외하고는 생명의 풍부함과 다양성이라는 근본적 가치를 해칠 권리가 없다고 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과도한 간섭을 줄이기 위해 경제, 기술, 이데올로기를 고려한 정책 변화가 필요하며 생태적 세계관으로 전환하기 위해 선불교, 노장사상, 기독교 영성주의가 고려돼야 한다. 노르웨이 철학자 안 네스와 미국의 환경운동가 조지 세션스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8개의 강령을 발표했다.

환경사의 개척자인 미국 사학자 도널드 워스터는 『Nature’s Economy: A History of Ecological Ideas』(1977, 한국어 번역서 『생태학, 그 열림과 닫힘의 역사』, 문순홍∙강헌 옮김, 아카넷, 2002)에서 18세기 이후 서구생태사상에 나타난 자연중심주의와 인간중심주의라는 두 가지 흐름을 “목가주의적 입장”과 “제국주의적 입장”으로 명명하고 양자의 긴장관계를 부각시켰다. 목가주의적 입장은 자연의 내적 가치와 인간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인정한다. 고대 및 중세의 이교도적 물활론에 기원을 둔 이 관점은 다른 유기체와의 평화로운 상호공존을 복원하기 위해 검소한 생활을 지지하며 18세기 낭만주의에서 부활했다. 기독교 전통에서 기원한 제국주의적 입장은 인간에 의한 자원의 조작성을 강조하며 이성의 엄밀한 사용을 통해 인간의 자연지배를 확립했다. 생태학의 역사는 이런 두 가지 흐름의 경합과 갈등으로 구성됐으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다양한 시대적, 문화사적 연관 속에서 끊임없이 변모하는 역동적 과정이다.

생태비평의 경우, 생태적 관점을 문학연구의 중요한 도구로 수용하면서 주제 수준에서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생태문제를 다룬 새로운 정전을 발굴했고, 전통적 고전 텍스트를 생태적으로 재해석했으며, 제국주의가 식민지의 사람뿐 아니라 생태를 어떻게 착취했는지 분석했다. 문학텍스트에서 식물, 동물, 사물, 풍경, 날씨 등 비인간 작용자의 역할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이런 과정에서 순수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판타지, SF, 에세이, 여행기, 극영화, 애니메이션, 민속지까지 텍스트의 범위가 확대됐다.

생태비평은 문학사 전체를 생태적 관점에서 재구성했으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주목함으로써 인간중심주의적 시각을 교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특히 장소성의 회복은 생태비평의 중요한 기여로 평가 받는다. 근대 이전의 설화나 서사문학, 비극 혹은 지방색문학에서 물리적 환경은 결코 장식적 배경이 아니었다. 자연환경과 대지는 나날의 삶을 방향 지으며 인간의 내밀한 정서와 상상력을 빚어내는 근원적 힘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인물의 행동과 사건이 펼쳐지는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주목 받지 못했던 자연환경은 생태비평의 발전과 함께 문학적 상상력의 중요한 원동력으로 복권됐다.

 

(2)비인간을 문화적이고 윤리적인 영역 안에 재위치 짓는 것

최신 과학적 연구성과를 수용한 포스트휴머니즘은 비인간 존재가 어떻게 인간의 역사에 간섭하는지 드러낸다. 포스트휴머니즘은 같은 용어로 묶이기 어려운 다양한 이론을 포함하고 있으나 공통적으로 다른 종, 기계, 물건, 시스템과의 관련 속에서 자유적 인간 주체를 탈중심화하는 운동이다. 포스트휴머니즘 이론의 지형은 다채롭다.

행위자-네트워크 이론(브루노 라투어)은 물질적·기호적 방식으로 서로에게 관여하는 인간과 비인간, 생물과 비생물 행위자로 구성된 이질적 사회네트워크에 강조점이 있다. 시스템 이론(니콜라스 루먼)은 개인이 사회의 부분이라는 관념을 벗어나 양자를 서로의 환경에서 작용하는 시스템으로 바라본다. 신유물론(스테이시 알라이모)은 생태적 네트워크에서 인간 주체의 구성과 물질적 흐름, 즉 인간의 마음과 육체를 “트랜스코포리얼 벡터”로 정의한다. 신물활론(제인 베냇)은 환경주의자의 방식과는 다르게 물질의 살아있는 행위성을 탐구한다. 사물이론(빌 브라운)은 사물의 외양이 인간과의 관계 및 중요성에 따라 구성됨을 밝히는 반면, 물체지향존재론(그래험 허먼)은 상호관계성에서 물체를 해방시켜 그 자체의 견지에서 탐구하면서 물체가 궁극적으로 인간지식으로부터 분리돼 있다고 주장한다. 동물연구(자크 데리다, 조르지오 아감벤, 다나 해러웨이)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정치적 함의로부터 찾는다. 복수종 민속지(안나 칭)는 인간에게만 한정되지 않는 여러 종류의 살아있는 주체들과 인간의 얽힘의 효과에 관심을 가지며, 윤리적 민속지 혹은 민속적 윤리학(도미니크 레스텔)은 의미와 관심, 영향을 공유하는 혼성 인간-동물 공동체를 탐험하기 위해 사회과학과 동물과학의 방법론을 활용한다.

이런 학문들은 서로 공통의 기반이 없거나 서로를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그럼에도 “포스트휴머니즘”이라는 라벨 아래 분류되는 넓은 범위의 이론들은 인간 존재와 의도를 포함해 네트워크의 한 행위자로서 우리를 다시 생각하도록 만든다. 인간이 동물, 식물, 자연 등 비인간주체와 독립해 존재하며 자율적으로 사고한다는 계몽주의의 자유적 인간주체의 중심성은 급격히 해체된다.

 

인류세와 인문학

크뢰첸과 스톨머가 제안한 인류세(Anthropocene)라는 개념(Crutzen and Stoermer, The “Anthropocene”, Global Change Newsletter 41, 2000, p.17-18)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지구의 물리적 변화를 일으킬 만큼 중대하다는 인식을 급속히 확산시킴으로써 많은 논쟁과 함께 학문간 융합의 가능성을 낳았다. 인류세는 1만년 전 시작된 홀로세(현세)에서 인류가 지구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 시기를 분리하자는 주장이다. 크뢰첸 등은 산업혁명이 시작된 18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제안한 반면, 루디먼은 신석기시대의 농업혁명 이후 대기 중 온실가스가 증가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William Ruddiman, The Anthropocene, Annual Review of Earth and Planetary Sciences, Vol 41: 45-68, 2013) 핵실험 성공 이후 방사성 물질의 확산, 플라스틱의 발명,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공해 등을 근거로 1950년대 이후를 기점으로 삼기도 한다.

인류세 논쟁은 인류세라는 규정이 적절한 지에 대한 지질학계의 대립에서 시작됐지만, 인류세가 또 다른 형태의 인간중심주의라는 반론을 거쳐 인간의 부정적 역할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인간의 중심적 역할과 이를 위한 사고와 가치의 재정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향으로 확산됐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은 결과적으로 다양한 텍스트를 읽고 분석하는데 장점을 가진 인문학이 환경담론에 개입하고 현실의 변화를 견인하는 가능성을 높였다.

환경담론으로서 인류세는 자원환경의 복원과 유지에 인간의 개입을 제한했던 기존 사고와 달리, 자연과학,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통합적 관점을 통해 자연-인간의 상호성을 바탕으로 인간문명이 환경문제에 긍정적으로 개입할 수 있고, 일반대중이 참여하는 공동체 문화가 필요하다는 함의를 내포한다. 인류세는 지구를 상호의존적인 하나의 복잡한 사회-생태적 시스템으로 본다. 즉, 전지구적으로 연결된 사회의 경제, 인구, 생태, 정치, 상징적·문화적 측면의 분석을 모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한다. 지구의 모든 사람과 사회를 포함하기 때문에 분과를 넘는 다리놓기와 지식생산의 개방된 시스템에 대한 접근의 기회를 제공한다.

다리 개념으로서 인류세의 가능성은 단순히 다양한 학문을 통합하는 게 아니라 학문 내부, 혹은 학문 사이의 담론적 분할을 전경화한다는 점이다. 인류세는 사회와 정책결정자에게 과학적·기술적 지식을 제공하는 자연중심주의 내러티브, 인류의 행위가 지구의 종말을 가져온다는 반성과 전망이 담긴 재난적 내러티브, 기술발전과 성장을 촉진하는 동시에 불평등과 환경재난을 야기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적하는 생태마르크시즘 내러티브, 문화와 자연의 이분법이 해소되는 포스트모더니즘 내러티브, 지구시스템의 상호의존성이란 인식을 바탕으로 한 임파워먼트(역량강화 혹은 권한부여)와 실천의 내러티브 등을 담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내러티브는 인식론의 모순을 드러내며 인류세를 경합적 개념으로 만든다. 예컨대 인류세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글로벌 변화에 대한 인간의 기여를 가리키며 여기서 인간은 ‘범죄자’로 여겨지는 단일한 글로벌 세력으로 재현된다. 그러나 인간행위자가 글로벌 규모의 변화를 일으키는 하나의 차별화되지 않은 세력으로 축소돼서 지역간의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인 차이가 사라진다면 사회적 변화가 인류세를 가져온 근본적인 동력이라는 점이 상실되고 만다. 인류세라는 개념은 또한 자연을 인간에 의해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변형되는 것으로 재상상함으로써 환경주의 정치경제의 핵심인 지속가능성과 모순을 일으킨다. 지속가능성이란 자연의 일정한 용량과 회복가능성을 전제로 하는데 비해, 인류세가 제시하는 대기와 지질의 변화는 불가역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류세의 핵심은 통합된 지구시스템을 이해하고, 이를 위한 글로벌 사회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지구화의 결과로 등장한 통합된 인간사회 역시 지구시스템의 일부로 인식함으로써 인간의 역할을 부정에서 긍정의 방향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 복잡하고 변화하는 지구시스템에 대한 인간의 영향력을 긍정하는 것은 과학적, 사회적, 경제적, 윤리적 측면을 가지며 더 지속가능하고 평등한 선택을 향한 정책 결정과 상호작용하며 돕는다.

인류세 담론의 분석에서 보듯이 환경인문학은 단순히 과학과 기술의 변화를 이해하는 개선된 방식을 제시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이런 변화의 인간적 원인, 인간과 환경 사이의 복잡한 관계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킨다. 기술적 생활세계가 변화함에 따라 인간은 이런 자연과 문화의 구성물에 대한 자신들의 관계를 끊임없이 재발명해 왔다. 자연과 문화가 결합된 이런 영역은 언어, 관념, 태도, 예술, 장소감각 등에 들어있다. 에너지 전환, 재활용 등 환경정책과 관련된 결정에서 역사, 철학, 문학, 예술에서 나온 인간적 지식을 제공받을 수 없다면 단순히 경제적 손익계산에 의존해야 한다. 그런 결정이 현명하게 이뤄지기 위해 환경인문학의 역할이 필요하다.

 

환경과 인문학의 대화

환경과 인문학은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준다. 인문학이 환경연구에 기여하는 바는 환경담론의 분석이다. 저널 “레질리언스”는 환경인문학의 존재 이유로 “환경문제를 진단하는 과학논문은 여전히 일관성 있는 지속가능성의 비전으로 번역되지 않는다. 인문학과 인문사회학에 중심적인 내러티브 기술, 비판적 사고, 역사성, 문화, 미학과 윤리학은 과학자들의 노력에 중요한 보완적 연구를 제공한다. 인문학의 생태적 가치가 지금보다 더 분명했던 적은 없다. 환경인문학은 우리의 생태적 미래에 대한 대화에서 중심에 서야 한다”(http://www.resiliencejournal.org/about/overview)고 밝혔다. 인문학은 여러 분야의 연구자료에 바탕이 된 전제를 분석함으로써 일관성 있고 조화로운 시각으로 이를 해석하고 활용하도록 돕는다. 현재 생태위기의 복합성과 지구시스템과학이 생산한 난해하고 엄청난 정보량은 인문학의 관점에서 정리될 필요가 있다.

반대로 환경연구는 인문학에게 스스로의 존재기반을 묻도록 자극한다. 인문학은 비인간세계를 배제하거나 배경으로 삼는 방식으로 “인간”에 초점을 두었으나 환경연구의 성과와 그것이 인문학의 분과학문에 끼친 영향력은 더 이상 이런 전제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자립적이고 이성적이고 결정하는 주체라는 환원주의적 설명을 거부하면서 인간을 의미와 가치가 살아있는 생태계의 참여자로 위치 짓고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타자들과 공존할 수 있는지 연구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인간성을 일컬어 “두터운 인간성(thicker notion of humanity)”(Deborah Bird Rose, etc., Thinking through the Environment, Unsettling the Humanities, Environmental Humanities, Vol.1, 2012, p. 1-5)이라 한다. 환경 안에 재위치된 주체는 인간을 자연 바깥에 놓음으로써 인간은 의미, 가치, 윤리가 없는 넓은 “자연” 세계 안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조종하고 결정할 자유가 있다고 여겨온 근대적 주체의 자연관을 넘어선다.

이처럼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문화의 양분법이 붕괴하면서 기존 지식과 사고의 체계가 불안정해진다. 즉 인문학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용의 상당 부분은 과감하게 재구성돼야 한다. 일례로 환경사가들의 연구 결과는 전통적인 인간의 역사를 더 넓은 지구사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인간의 이야기는 지질학, 진화생물학, 기후과학이 제공하는 시간에 대한 깊은 고려 위에 다시 씌어야 하는 과제와 만났다. 기존 학문의 재구성과 다양한 종류의 신생 학문은 머레이 북친이 지적했던 대로 계몽주의가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낸 기본사상이 된 것처럼 오늘날 생태주의가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종합사상이 돼야 한다는 당위성을 입증한다.

한편 인문학 연구경향의 변화는 인문학 교육의 목적과 방법을 변화시킨다. 인간의 정의가 아무리 변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란 점에서 인문학의 역할은 변함이 없다. 오늘날 인문학은 전지구적 위기에 대응하는 이론을 개발하고 현재의 도전을 받아들일 학생을 키우는 임무가 있다. 미국대학교육협회는 교육의 가치로서 “윤리적 판단, 통합성, 간문화적 기술, 계속적인 학습능력”(Hart Research Associate, It Takes More than a Major: Employer Priorities for College Learning and Student Success, Liberal Education, vol. 99 no.2, spring 2013, p. 22-29)을 들었는데, 이는 환경인문학이 추구하는 가치와 일치한다. 생태위기와 경제위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과학기술과 윤리가 첨예하게 맞서는 상황에서 환경인문학의 이론과 실천은 중요한 교육적 수단이 된다. 미래세대가 자신들 앞에 놓인 세계를 보고 그 복잡함을 받아들이며 “지구의 청지기”로서 행동하도록 능력과 용기를 줄 수 있다.

 

한윤정

한국생태문명 프로젝트 디렉터

화, 2020/03/03-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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