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조국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논란으로 정국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둘로 갈라진 거대한 열광과 분노, 냉소와 조롱이 한국 사회를 뒤덮었다. 그 와중에 이낙연 국무총리의 안정감과 신뢰감이 조용히 주목받았다. 혼란 속에서도 이 총리는 ‘책임 총리’로서 돼지열병과 태풍 방재에 전념하는 등 안정적으로 내치를 관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느덧 이 총리는 각종 여론조사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총리는 오는 22일에는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 한국 정부 대표로 참석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회담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통’으로서 일본과 외교 분쟁을 해결할 돌파구를 마련할 것으로 주목받았던 터라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총리에게는 ‘할 일은 확실히 한다’는 이미지가 계속 쌓이고 있다. 과거 고건 총리나 황교안 총리처럼 혼란스런 정국 속에서 2인자인 총리가 주목받는 일이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현재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총리에게 주목할 만큼 떨어져 있진 않다. 어느 날 갑자기 주목을 받았다고 말하기에는 이 총리의 내공도 만만치 않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총리로 지명됐된 이낙연 총리는 지금까지 큰 과오 없이 직을 수행함으로서 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최장수 총리라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자연스럽게 현재 정국에 대한 해결사 노릇도 이 총리에게 바라는 모습이 종종 관측된다. 최근에는 권노갑·정대철 전 의원 등 원로 정치인들이 이 총리를 만나 “조국 법무부 장관이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자신을 내세우는 요란한 대응은 그간 이 총리의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 차기 대권에 대한 질문에도 “아무 계획이 없다”며 말을 아낀다.
품격 있는 사이다 발언으로 존재감
“MBC, KBS의 불공정 보도를 본 적 있느냐?”(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
“MBC, KBS를 잘 안 본다. 오래전부터 좀 더 공정한 채널을 보고 있다.”(이낙연 총리)
“수십 조 씩 퍼붓는 복지 예산을 늘릴 때인가?”(김무성 바른정당 의원)
“복지 예산은 대부분 지난 대선 때 모든 정당들이 공통으로 공약한 것이다.”(이낙연 총리)
이 총리는 2017년 9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대정부질문에서 야당 의원들의 파상공세에도 불구하고 ‘품격 있는 사이다 발언’으로 상대방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시민들은 이 총리의 대정부질문 답변에 환호했고 그의 주요 발언 장면은 소셜미디어 등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이 총리의 존재감이 본격적으로 부각된 순간이다. 고 노회찬 의원은 이날 이 총리의 모습을 보고 “중학생을 대하는 자상한 대학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자해공갈단 같은 거였는데, 자해만 하고 공갈은 못 하는 그런 상황이 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오랜 언론인 생활과 다섯 번에 걸친 대변인 생활은 그에게 ‘말과 글’을 단련할 시간을 주었다. 명대변인으로 꼽혔던 그는 여러 차례 기억에 남을 말들을 남겼다. “지름길을 모르거든 큰길로 가라. 큰길을 모르겠거든 직진하라. 그것도 어렵거든 멈춰 서서 생각해 보라.” 2002년 10월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사퇴를 압박하는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 의원들의 공세가 최고조에 달하자 당시 선대위 대변인이었던 이낙연 총리가 남긴 논평이다. 이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취임사의 최종 정리를 맡았다. 노 대통령은 연설문을 극찬하며 토씨하나 고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달 대정부질문에서도 이 총리에게 조국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질문이 쏟아졌다. 이 총리는 비판할 것은 비판하면서도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인사청문회 이후 조 장관에 대해 어떻게 판단했느냐”라는 질문에 이 총리는 “문 대통령께 (임명 전에) 저의 의견을 충분히 말씀드렸다”며 “저의 의견을 여기서 공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이 총리가 사실상 반대 의견을 표명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 장관이 자택 압수수색 당시 담당 검사와 통화한 것에 대해서도 이 총리는 “적절하지 않다, 아쉬움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이 총리는 검찰에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인사청문회 당일 조 장관 부인을 검찰이 기소한 것에 대해서는 “검찰의 의도와 별개로 국회의 검증권한과 대통령의 인사권에 영향을 미쳤다”며 일침을 놓았다. 또한 “이미 알려져 있는 것 가운데는 사실도 있겠지만 추측에 불과한 것도 있고 거짓도 있다”며 “진실이 가려지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조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 요청에 대해서도 “훗날 저의 역할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것은 자연스레 알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21년 동안의 기자 생활 동안 네 가지를 배웠다고 한다. 첫째, 진실은 몹시 알기 어렵다. 둘째, 어느 경우에나 공정해야 한다. 셋째, 말과 글은 알기 쉬워야 하며 그러려면 평범하고 명료해야 한다. 넷째,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 일주일에 하루는 책을 읽으려 한다. 그 중에서도 진실에 신중하다는 것과 “공정을 내 브랜드로 삼고 싶다”는 말에 눈길이 간다. 이 총리는 국회의원에게 의사당에서 주먹질을 당했지만 세상에 알리지 않는 대신 동료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앞으로 그 의원 기사는 자네가 써 주게. 나는 공정할 자신이 없네.” 지금의 이 총리의 모습에서 보이는 신중하면서도 강단 있는 태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꼼꼼한 일처리, 공백 없는 삶
이 총리는 늘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꼼꼼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그의 좌우명은 근청원견(近聽遠見)이다. 가까이 듣고 멀리 본다는 뜻이다. 전남 지사 시절에는 ‘이 주사’로 불리기도 했다. 실무를 맡는 6급 공무원 같다는 의미다. 보도자료 문구 하나하나도 직접 챙긴다고 한다. 이 총리는 국회의원 시절에도 의정활동 우수로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전남 지사직 수행도 ‘100원 택시’ 정책 등 대체로 후한 평가를 받는다.
이 총리는 취임 이후 장관들의 ‘군기’를 잡는다는 소문도 났다. 보고를 제대로 못한다고 질책도 서슴지 않는다. 2017년 8월 살충제 계란 파동 당시 국정현안점검조정 회의에서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관련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자 “제대로 답변 못 할 거면 기자들에게 브리핑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이 총리의 스타일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인자한 어머니(자모)’, 이낙연은 ‘엄격한 아버지(엄부)’라는 말이 돌 정도다. 어느 날 이 총리가 장관들의 술자리에 참석한 일이 있는데 “총리님 질문 좀 하지 마세요”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매주 월요일마다 이 총리와 정례 오찬 회동을 진행한다. 2018년부터는 정부부처 업무보고를 문 대통령이 아닌 이 총리가 주재하기도 했다. 역대 정부에서 매년 신년 부처 업무보고를 대부분 대통령이 주재한 것을 보면 이 총리에게 실리는 무게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과거 신문사 논설위원 시절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마치 최근의 이 총리에 대한 경구인 것 같기도 하다. “정상외교는 단발적이지만 내정은 연속적이다. 정상외교는 효과가 금방 나타날 수 있으나 내정에 효과가 나려면 많은 절차와 시간이 소요된다. 사람들은 그것을 참기 싫어한다. 그래서 하나라도 확실히 매듭짓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전략이 필요해진다. 많은 것을 펼쳐놓고 별로 주워 담지 못한다면 펼치지 않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소수정부가 가장 의지해야 할 것은 국민의 감동이다. 감동을 주기는 어렵지만 잃기는 쉽다.”
최근 일본과의 갈등 국면에서 이 총리는 특사로 파견될 것이란 기대도 받았다. 이 총리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래 전에 장관을 하고 잠깐 쉬는 사이 한국에 들렀을 때 비 내리는 삼청각에서 소주를 마셨던 일화가 있다. 그 자리에서 이 총리는 일본이 한센병 피해자 보상에 조선인만 차등을 둔 것을 지적했고, 아베 총리는 “알아보고 시정하겠다”고 답했다. 아베 총리는 1년 뒤 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해 결국 고쳤다.
이 총리는 일본에 가게 된다면 도쿄의 이자카야에 가서 ‘곤방와(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마침 30년 전 이 총리는 도쿄 특파원 시절 아키히토 일왕 즉위 행사에 참석한 경험도 있다. 이번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 참석해서도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어떻게 보면 이 총리는 정치인으로 한 번의 낙선도 없는 ‘꽃길’만 걸어온 것처럼 보인다. 동아일보 기자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의 눈에 띄어 정계에 입문했고 성공가도를 달렸다. 언론인 출신 정치인 중에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이 총리는 가난한 농부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렵게 서울대 법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사법시험의 길을 걷지 않고 취업의 길을 택한 뒤 기자가 된 것도 어려운 집안 사정의 영향이 컸다. 한 인터뷰에서 이 총리는 “인생에서 무직 상태로 있었던 것은 기자를 그만두고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전 50일이었다”며 “이력서에 공백이 있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는 공백이 있으면 굶어죽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남지사 후보 경선에 도전할 때도 만만치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80%는 주승용 의원에게 진다고 했지만 국회의원직을 던지고 도전하는 길을 택했다. 경선 당시 돈이 없어서 광주시내 값싼 원룸에서 지냈는데 겨울에 곰팡이가 슨 바지를 입으면 피부에 달라붙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를 ‘곰팡이 같은 내 인생’이라고 곱씹으며 막판에 극적인 승리를 일궜다.
장점이자 단점 ‘무난함’
취임 이후 이 총리는 무난한 내정 관리를 수행해 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8년 9월에는 3년 만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확진 환자가 나오자 이 총리는 신속하게 대처해 확산을 조기에 차단했다. 조류인플루엔자, 살충제 계란 대응도 무난했으며 돼지 열병에 대한 대응도 아직까지는 괜찮은 편이다.
몇 가지 논란도 있었다. 이 총리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김영란법의 선물비 상한액 5만원을 농축산물에 한해 10만원으로 올리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농어민들을 배려한 조치였지만 결국 고무줄 규제가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남북 단일팀 구성에 대해서도 “메달권에 있거나 그렇지는 않다”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이 총리는 “가령 좋은 북한 선수 몇 사람을 추가해서라도 승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우리 선수들 사이에서도 생기고 있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해명했지만, 마치 어차피 메달권 밖이라 단일팀을 구성해도 괜찮다는 발언처럼 들려서 뭇매를 맞았다.
때로는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글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 총리는 지난 7월 우정노조가 총파업 계획을 철회하자 “한 번도 파업하지 않은 자랑스러운 전통을 지키셨다”는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노동조합이 자신의 가장 강력한 권리인 파업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 원인이 있을 텐데도 이를 두고 ‘전통’이라 표현한 것은 노동자 파업에 대한 이 총리의 경박한 인식을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 총리는 이후 해당 문구를 삭제하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주신 노조원들께 감사드린다”고 수정했다.
차기 대선주자로서 이 총리에게 관심이 쏠리고는 있지만 안정감과 신뢰감 외에 확실한 이미지를 굳히지 못한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아직까지 이 총리는 차기 대권에 대해서는 철저히 입을 다물고 있다. 언론의 집요한 질문에도 “지금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참 두려운 일” “아무런 계획도 없다” “총리가 계획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총리를 그만둔 뒤에나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2007년 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안을 두고 벌어진 여야 토론회에서 이 총리는 당시 박형준 한나라당 의원과 설전을 벌였다. 그 자리에서 박 의원은 “링컨은 민심과 함께하면 실패할 것이 없고 민심과 함께 하지 않으면 성공 없다고 했다”고 공격했다. 그러자 이 총리는 “세네카는 이런 말을 했다. 민심에 거스르기만 하면 국민에 의해 망할 것이고, 민심에 따르기만 하면 국민과 함께 망할 것이다.”라고 맞받았다.
앞으로 이 총리가 걸어야 할 길도 비슷할 것이다. 지난 10년 사이 민심은 더욱 집채만한 파도처럼 요동치고 있다. 때로는 성내고, 때로는 열정이 넘치고, 때로는 냉소하고 조롱하고 뒷짐지는 민심 사이에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진지하게 ‘민심’만을 내세우는 정치인치고 제대로 된 정치인은 없었다. 세네카의 말을 인용했던 이 총리라면, 그 길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3월 30일)에도, 매서운 기세로 확산 일로를 치닫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그 공포와 고난과 고통에 더하여, 우리가 하나의 지구촌에 살고 있는 생명공동체임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거의 세계 모든 나라에서 국경폐쇄나 이동금지조치가 내려지고 있지만 그것은 이번 사태의 악화를 막기 위해 취해지는 일시적인 조치로서, 폐쇄나 단절이 그 장면의 주제가 아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하나로 통해 있음’을, 그리고 인간이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사례이다.
이번 사태로 사망하신 분들이나 그 유족의 슬픔은 말할 것도 없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살신성인하는 의료진, 그리고 확산 방지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분들과 헌신하는 봉사자들, 이에 호응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하나하나가 거룩하고 아름답고, 슬프다. 슬픔과 고통의 바로 그 자리에서 감동과 의지가 더 화려하게 피어나는 것을 볼 때, 각성과 참회, 감사와 희망이 교차한다. 각국에서 취해지는 조치들은, 인류 역사에서 ‘마지막 세계대전’이던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임에 분명한 극단적인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바야흐로 1백 년 만에 맞이하는 세계적인 대전(大戰) – 3차 세계대전의 상대가 ‘적국(敵國) 인민(人民)’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라는 사실은 한편으로 공포감을 주지만 한편으로 (박멸의 대상이 ‘人間’이 아니라는 점에서)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1차, 2차 대전과 마찬가지로 이번 세계대전도 근대 세계의 폐해(인간의 삶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바이러스의 침투 경로가 확장된 것)로 인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제3차 세계대전’은 근대 세계의 종말을 재확인하고, 기대컨대는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다시 개벽 시대’를 재조명하는 등불이 될 것이라고 전망해 본다.
앞서 말한 안도감은 근원적으로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 인류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통의 고난 경험’을 공유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나의 種으로서의) ‘인류’에 다시 한 걸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는 데서 온다. 그것은 인류[人間]를 지금 당장, 지구상에서 현재보다 더 높은 위치로 올려놓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인류가 지구상의 생명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즉 N분의 1로서 자리매김하여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 스스로의 생명력을 고양하는 길이고, 가장 ‘자연스러우며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태도이며, 또한 가장 지속가능하고 행복 지향에 적합한 현실-존재 인식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지난 20세기 내내 끊임없이 경계의 대상이 되어 왔던 인간중심주의(human-centralism), 시나브로 그 입지가 좁아져 왔으나 여전히 현실적으로 위력을 떨치고 있는 그 파멸적 근대 문명의 기저에, 분명한 구멍=문(門)을 만드는 일이다. 이 문을 통해 우리 인류와 지구생명공동체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을 일러 ‘다시 개벽 시대’로의 진전이라고 하면, 적확할 것이다. 이 개벽에 즈음해서야 비로소 우리는 ‘인류’가 된 것이다.
기회는 늘 위기와 함께, 낙관적인 상황은 언제나 비관적인 상황과 함께 온다. ‘인류공동체, 지구공동체, 생명공동체’를 존재/인식이 거의 일치하게 경험/인식하는 ‘다시 개벽 시대’의 도래와 함께, 우리는 이제 인간이 치명적인 멸종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되었으며, 사방이 생명에 위협적인 지뢰투성이인 지역/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실감하게 되었으며, 전 지구적 차원에서 그리고 전 인류의 지평에서 공통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목격하고 경험하고 공감할 수 있는 물질적, 정신적, 소통적(疏通的) 토대가 구축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인류) 집 문 앞에 배달된 택배(과제)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되겠지만(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만), 그 종식을 알리는 ‘카톡 알림’은 그다음 택배(‘코로나20’일지, ‘코로나v.2’일지 모르지만)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초인종을 소리에 불과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 세계의 수많은 전문가들이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인류는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위험 요소에 더욱 빈번하게 노출될 것이며, 그 위험의 강도도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다시 말해 코로나19로 인한 지금의 사태는 빙산의 일각으로, 그 아래에는 훨씬 더 크고 무거운(무서운) 위험 요소들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대기 중이라는 것이다.
답은 언제나 문제 속에 있기 마련이다. 코로나19의 대량 감염국 중국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중국보다도 빠른 속도로 확진자가 늘어나던 2월 초순경만 해도 세계인의 의심스런 눈초리가 한반도로 쏟아졌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국민들은 끊이지 않는 돌발변수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침착하고 의연하게 사태를 수습해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은 역전되었다. 이제 전 세계 각국에서 한국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한국을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 지구촌을 감싸고돈다. 이번 사태 직전에 있었던 BTS(방탄소년단)의 K-POP 세계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에 이어서, 현재의 상황은 대한민국의 현 위치가 우연적이고 일회적인 것이 아님을 확인하게 하는 또 하나의 쾌거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자화자찬으로 치달아서도 안 되고, ‘국뽕’으로 흘러서도 안 된다. 분명한 것은 이것은 우리끼리 알고, 우리끼리 (이 성공적인 대응의 혜택을) 누리고 말 사태는 아니라는 점이다. 작더라도 실질적이고 실제적이며 실용적인 의미를 발굴하고, 발견하고, 발전시켜 인류 전체에 베풀어 나가야 한다(弘益人間 在世理化). 필자가 보기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에게 이번 사태는 ‘세월호 이후’와 ‘촛불 혁명 이후’의 일로써 다가왔다. 재난이 일어나는 방식(‘세월호’ ‘메르스’)을 잊지 않고, 평화 시에 전쟁을 준비하는 그 자세로 방역 시스템과 의료체계를 정비해 왔으며(의료체계-의료보험제도 등-의 대부분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갖추어진 것이지만, 대한민국의 메이저 의료기관은 메르스 이후 유사한 사태에 대비한 훈련을 주기적으로 진행해 왔다), 또 그것을 극복하는 한국인 특유의 방법론(‘촛불혁명’의 그 위대한 참여정신)이 결합되어서 이번 코로나19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시민)의 반응과 대응은 전 세계 국가에게 모범이 되고 온 인류에게 희망이 될 여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는 우리가 세월호와 아이들을 잊지 않은 덕분[性靈出世]이며, 메르스의 비극을 외면하지 않은 덕분[臥薪嘗膽]이다. 무엇보다 문제에 정면으로, 정직하게, 정성껏 대응하는 것이 그 문제 해결의 정 도(正道)라는 것을 생생히 보여준 점이, 이번 사태 진전에서 대한민국의 첫 번째 인류사적인 기여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이번 사태로 인하여 목숨을 잃은 분들, 고통과 고난을 겪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후폭풍 (특히 경제나 생활-학생들의 학사일정 등)’ 등을 생각할 때, 이번 사태는 지난 세월호나 메르스(에볼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전면적인 전환의 숙제를 우리에게 지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국내나 동아시아 일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전 인류에 걸쳐 전면적으로 전개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개벽신문>을 통해 여러 차례 밝혔듯이 ‘촛불혁명’은 120여 년 전의 ‘동학농민혁명’의 경험으로부터 이어져 온 면면한 이력을 갖는다. 동학농민혁명은 ‘서세동점’의 정점과 ‘동학의 다시개벽’의 전망이 부딪친 사건이며, 그런 점에서 ‘근대세계’와 ‘근대 이후 세계’, 즉 다시개벽 시대의 전초전에 해당하는 사건이었다. 이번 코르나19는 바로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 인류가 도달한 근대세계, 그 대서사의 한 단락이 매듭지어진다는/지어져야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데에 첫 번째 의미가 있다. 이번 사태에 즈음하여 서구 소위 ‘선진국’ 또는 ‘서구사회’가 보여준, ‘결과적으로’ 지리멸렬함과 그로 인한 시민들의 피해는 단지 국가 지도자의 입장 차이나 국가 시스템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선진문명’이 놓여 있는 자리, 딛고 있는 토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본다. 한국 정부와 국민(시민)에 주어진 숙제는 이 위기를 ‘아국운수(我國運數) 먼저 하여’ 극복할 뿐만 아니라, ‘포스트 코로나’의 세계체제를 어떻게 재구축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과 예시, 그리고 비전을 제시해 주는 데까지 닿아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바로 ‘다시개벽’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속히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고,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또 돌아가서 도 안 된다. 문자 그대로 ‘널뛰듯’ 폭락과 폭등을 되풀이하는 증시 상황은 이번 사태에 즈음한 경제의 팬데믹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오늘 현재(3월 말) 시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3,000조원이라는 거액의 예산을, 이번 사태로 인해 ‘위기’에 빠진 경제가 더 깊은 수령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아 내기 위해 책정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것도 ‘우선’ 그 정도이고, 여차 하면 후속 투입도 마다하지 않을 기세이다. 어느 누구랄 것 없이, 어떤 부문이랄 것 없이 부도와 파산의 위기에 내몰리는 기업, 자영업자와 그에 딸린 수십, 수백만의 경제 인구를 생각할 때, 아니 사실은 전 세계 모든 인류의 삶(생활, 경제)에 영향을 끼칠 이번 사태의 후폭풍을 생각할 때 경제 붕괴가 일어나는 일을 상상할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인 것처럼 보기는 한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 보면, 이번 사태 수습의 목표점이 사태 발생 이전, 물질적 풍요 문화적 만끽이 난무하던 그 상황, 이른바 ‘일상으로 돌아가기’, 경제적으로 발전을 거듭하던 그 시절로의 복귀하는 것이어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멈춤!’의 첫 번째 경고판을 지나친 후과가 이 정도이다. 두 번째 경고판이 있을지, 곧장 절벽이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제라도/이제야말로 근대세계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근대문명, 현대문명, 물질문명의 질주를 멈추고 진로를 수정하는 일이다. 백척간두진일보란 바로 지금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벼랑 끝, 벼랑과 벼랑 사이, 그 너머에는 ‘다시개벽’의 새 시대가 놓여 있다. 과거로의 회귀, 예전 일상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새로운 인간-하늘 관계, 새로운 인간-인간 관계, 새로운 인간-만물 관계를 경천(敬天)과 경인(敬人)과 경물(敬物) 같은 개벽적 관점에서 모색하고 실천하는 것만이, 이번 사태에 즈음하여 우리가 치른 고통과 희생에 값하는 길이다.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대한국민(시민)’의 지혜로운, 은혜로운, 감동적인 일거수일투족 – 전 세계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일동일정(一動一靜)에 이미 그 씨앗이 싹트고 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자가 격리, 사회적 거리 두기, 통행금지, 여행금지, 국경폐쇄, 도시봉쇄 들은 ‘잠시 멈추어 보자’는, ‘참회의 자리/시간을 만들자’는, 보이지 않는 그 속에서 보이는 것을 찾고, 들리지 않는 그 가운데서 들리는 소리를 들어보자는, 홀로가 됨으로써 다시 동귀일체(同歸一體)를 생생(生生)하게 생득(生得)하는, 전일적(全一的) 생명으로서의 인류 양심(養心)-하늘[天]의, 거룩한 개벽의 소리이다. 하나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 ‘다시개벽의 그 시대’가 열리고 있다.
2020년을 삼켜버린 코로나19는 앞으로 제법 긴 시간 많은 이들의 기억에서 잊히지 않을 바이러스가 될 것이다. 각자의 경험과 기억의 방식으로 지금의 위기를 느긋하게 회자하기에는 상처들이 깊다. 중국을 시작으로 현재는 유럽을 휩쓸고 있고, 이제는 미국을 필두로 전 아메리카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단시간 감염자와 사망자 수가 마치 기록경신 경쟁이라도 하듯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우리 모두에게 가져올 파장이 얼마만큼일지는 아직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이 질병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글로벌 위기인 것은 분명하다. “세계는 하나”라며 ‘공동’의 번영을 외치며 달려온 21세기가 아니던가. 그럴듯하게 들리는 공허한 번영의 외침에 묻혀버린 10억 빈민들의 목소리는 온 간데없다. 전 세계 부는 2000년 117조 달러에서 2014년 262조 달러로 증가했지만, 부유한 상위 20%가 부의 94.5%를 차지했다. 이 사실이 더는 놀랍지도 않은 현실이다. 가히 21세기 신자유주의가 선사한 ‘걸작품’이 아닐 수 없다.
세계의 질서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특히 20세기 후반 유일한 ‘슈퍼파워’로 등극한 미국의 독무대에 열광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단연 자본주의 국가들의 지배계급이다. 이들은 시장의 논리가 항상 옳지 않다는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믿음을 지지해주는 단단한 근거나 사실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세계적으로 부가 넘쳐 나는 21세기에 10억의 빈민들을 양산하는 시장이라면 무엇이 문제인지 질문이 먼저여야 하지 않는가. 적어도 경제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것이라면 말이다.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는 빈곤과 불평등이라는 고질적인 악순환의 고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지역의 맹목적인 시장주의자들은 대부분 극우파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자본주의 만세’를 무조건 외치는 자들일 확률이 100%이다. 이른바 라틴아메리카 매판자본의 뿌리이다. 미국 지배계급의 이익은 이들과의 계급적 공조로 보장되었고, 이들이 헐벗은 민중들의 저항을 받는 ‘어려움’에 처하면 미국은 주저 없이 군대를 파견해서 이들을 도왔다. 이들의 공생관계가 라틴아메리카 근현대사 비극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21세기 벽두에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반미·반제를 외치며 등장했으니 북쪽 ‘이웃’ 국가의 반응이 어떠했을지는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다. 심지어 21세기 사회주의라니! 1959년 쿠바의 ‘악몽’을 떠올렸을까. 이후 라틴아메리카 역내의 브라질, 에콰도르,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등 소위 미국을 ‘찬양’하지 않는 정부들이 속속 들어서며 역내 정치지형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적지 않은 성과이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역내 정치의 롤러코스터 같은 과정에서 극우 정치화되지 않은 국가는 베네수엘라뿐이다. 물론 그 대가는 혹독하다. 반정부 정치인을 임시 대통령으로 지목하는 우스꽝스러운 ‘희극’ 정도 연출하는 것은 이제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5년간 계속되는 경제봉쇄와 전 세계 15개국 국가들의 은행에 있는 50억 달러(한화 6조 원)를 동결하며 모든 금융거래를 차단하고, 베네수엘라 경제를 마비시키기 위한 모든 수단이 동원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라틴아메리카 좌파정부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전 인류가 국적이나 인종에 상관없이 세계화 이후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미국의 볼썽사나운 행보는 점입가경이다. 지난 26일 코로나19의 여파로 미국 국민의 안전도 위태로운 지경에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과 그 행정부 각료들에게 마약 불법밀매 혐의를 물어 체포 명령을 내렸다. 심지어 마두로 대통령에 대해 천오백만 달러(약 170억원)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마두로와 그 행정부 각료들이 마약 불법밀매를 이용해서 미국에 마약이 넘쳐 나도록 조장했다는 혐의다. 물론 조잡한 증거들만 넘쳐 날 뿐이다. 혐의를 증명할 수 있는 명백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론 베네수엘라를 향한 미국의 병적인 집착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코로나19사태를 대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미국은 고전적 카드인 “마약 불법밀매”를 꺼내 들었다. 1989년 미국의 파나마 침공 당시 노리에가 대통령을 납치하기 위해 사용했던 시나리오와 판박이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에는 당시 파나마 침공을 기획한 인물들이 포진해 있다는 것은 우연일까.
베네수엘라는 코로나19 진단 장비조차 구매하는 것을 방해하는 미국을 강력히 비난하며, 경제제재의 부당함과 위법성을 강력히 규탄하는 것으로 맞섰을 뿐이다. 국제사회가 침묵하고 있는데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처절한 몸부림이다. 미국을 상대로 끝나지 않는 전쟁을 치르는 것과도 같다.
그러는 사이, 미국에서는 지난 29일 의료보험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에서 치료를 거부한 17살의 소년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보스턴 병원에서 코로나19 치료를 받은 미국의 한 시민은 한화 4천만 원에 해당하는 병원비를 지급해야 한다며 경악했다. 비록 개인 의료보험을 가진 경우라도 치료비가 수백만 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는 예사롭지 않다.
미국의 경우 약 4천만 명이 의료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인구로 추산되고 있다. 8천만 명은 불완전한 개인 의료보험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미국 인구의 절반 약 1억 6천만 명만이 그나마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민간보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인구 절반에 해당하는 1억이 넘는 미국의 국민은 코로나19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기층민중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남미 대륙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강력한 경제 파워블럭 중의 하나인 브라질의 상황은 조금 다를까. 현재 남미의 가장 극우적인 성향을 보이는 볼소나로 대통령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국 영토 내 미군 주둔을 ‘파격적’으로 제안하는 것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현재 코로나19 사태를 다루는 그의 행보는 한층 더 엽기적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단지 가벼운 ‘감기’에 불과할 뿐이며, 브라질 사람들에게는 이미 면역체계가 만들어져 있으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유지해야 한다고 독려하고 있다. 최근 이를 더는 참지 못한 연방 주지사들이 자체적으로 대안 방안을 마련하자, 오히려 볼소나로 대통령은 이를 보이콧 하도록 대국민 선전을 위해 거액의 돈을 쏟아붓는 것으로 응수했다. 코로나19가 브라질 경제에 악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신념이다. 그의 행보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연상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들에게 진정 경제적 가치에 우선하는 것은 없는 것일까.
얼마 전 G20 화상 정상회담이 열렸다. 코로나19로 발생한 전례 없는 위기를 각 국가의 공조와 연대를 통해 극복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과는 딴판으로 이참에 눈엣가시였던 베네수엘라를 제거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베네수엘라 민중들은 우려와 분노를 감추지 않는다.
카라카스에서 살며 문화 운동을 하는 간호사 알레한드라는 말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봉쇄에 따른 약품 부족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미국의 지치지 않는 내정간섭과 군사 개입의 움직임”이라고.
S Nathan Park, 한국계 미국변호사로 워싱턴 소재 Kobre & Kim 법률사무소에 근무하며, 지난 2월말 포린폴리시에 COVID-19가 한국에 창궐한 배경에는 사이비종교와 발목잡는 야당 그리고 수구언론이 있다는 칼럼을 써서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강고하기만 했던 한미동맹이 트럼프 행정부가 미군의 한국주둔 비용을 현재의 923백만 불에서 4,700백만 불로 5배의 인상을 요구하면서 시험대에 올랐다. 이런 무지막지한 인상 요구는 한국이 동맹으로서 부담하고 있는 다양한 공헌의 내용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고, 아마도 취소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핵심적 동맹 간의 신뢰는 이미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상당한 내상(內傷)이 발생한 셈이다.
한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스스로 중요성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동맹이다. 한국은 2018년 기준으로 GDP 대비 국방비 비중이 2.6% 수준으로 독일의 1.2 %와 일본의 0.9%는 물론 미국이 나토에 제시하고 있는 2.0% 수준을 넘어 섰다. 2020년 현재, 400억불의 국방예산으로 전세계 지출순위 10대 국가 중 하나이며 2022년에는 5위 내지는 6위의 순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서울당국이 주한미군에게 부담하는 상기의 923백만 불은 평택에 캠프 ‘험프리’를 건설하는데 지출한 100억 불, 그리고 지난 십 수년 간 미국으로부터 구매한 군사무기 비용 200억불은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미국 국민들이 오해하듯이 북한과 마주한 DMZ을 지키는 병력은 주한미군이 아니라, 바로 한국군 자신들이다.
미국은 협상과정에서 5배라는 인상요구를 철회하겠지만, 방위비 분담문제로 보여준 뻔뻔함을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비용분담이라는 매우 예민한 주제는 동맹 간의 연대라는 형식적 예의를 갖추면서 배후에서 진행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시끄럽고 공개적으로 협상을 요구하면서 한국 내 정책결정권자들을 화나게 하였고 반대여론을 자극하였다.
지난 1월에 예외적으로 국무장관 폼페이오와 국방장관 에스퍼가 연명하여 월-스트리트 신문에 한국측에 방위비 인상을 요구하는 칼럼을 게재하였다. 아무런 근거의 제시도 없이, 이들은 한국이 주한미군의 주둔에 드는 직접경비의 1/3 정도만 부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설령 이 주장이 사실이라고 인정하더라도, 5배의 인상 요구는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167% 수준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요구는 점잖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아직 다수의 한국시민들은 미군의 한국주둔을 지지하지만, 5배인상 요구에는 의견이 갈라지면서 다수가 반대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동맹인 한국당국자를 어려운 지경에 빠뜨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가까운 장래 중국이 미국의 일차적 경쟁자로 부상해 오는 것이 확실한 현실에서, 동맹으로서 한국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한미 간 동맹은 외줄다리에 서있고 조만간 한국이 중국의 진영에 편입될 것이라는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른 허황된 이야기이다. 다만 최대의 통상 파트너로서 한국은 중국의 압력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현실이다. 미군이 한국 내 지역에 사드를 배치하면서 중국으로부터 수억 불에 달하는 경제적 제재를 받는 동안 미국은 제재를 완화시킬 아무런 도움도 한국측에 제공하지 못했다.
일방적이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대처하면서 가장 중요한 동맹으로부터 지원을 받는다는 확신이 없는 처지에 빠지면 한국은 어떻게 행동할까? 한국이 최근 몇 년간 소리없이 군사력을 증강시켜온 사실이 그에 대한 답변을 암시한다. 2016년 말에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현재 대통령의 안보실에 근무하는, 김현종씨는 당시 트럼프가 한국에 대해 방위비 인상을 요구할 것에 대비한 예비적인 답변서를 작성했다.
그는 다음의 5 가지를 반대급부로 받아낼 수 있다면 방위비 부담인상에 대한 협상에 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핵폐기물 재처리 능력, 달러와 원화 간의 스왑, 인공위성 발사대의 기술제공, 3,000천 톤급 핵잠수함 건조능력, 800 킬로 이상의 지대지 미사일 능력.
오비이락처럼, 그가 청와대에 합류한 이후, 그러한 방향으로 정확히 진행되고 있다. COVID-19의 팬데믹이 세계금융시장을 위협하자. 서울과 워싱턴은 600억 불 규모의 스왑 협정을 체결하였다. 한국해군은 2019년 10월에 핵잠수함 건조계획을 발표하였다. 최근 소식에 의하면, 한미 간에 지대지 미사일 사정거리를 완화한다는 잠정적 합의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군사력 증강은 표면적으로 ‘북한에 대한 저지력’이라고 설명하지만, 실제는 그런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 한국의 당국은 미래에 미국의 안전보장이 없는 경우를 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의 일부 당국자들은 이러한 방향을 환영할지 모르지만, 한국의 군사력 증강은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의 고도화된 군사력은 미국의 국익에 도움되기 보다는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십 수년 안에 한국과 일본 간에 상황이 악화되어 마치 인도와 파키스탄과 같은 군사적 적대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다.
이러한 결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국의 정책이 전환되어야 한다. 2020년 말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를 패배시키고 전지구적으로 동맹들을 소원하게 했던 그의 외교정책에 종지부를 찍어야만 한다. 만약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여 한국에게 방위비 분담인상을 계속 강요하면, 한미동맹은 정말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현재의 세계는 자유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경제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부패에 마주하고 있으며, 시간이 경과하면서 더욱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한국은 지난 70여 년 동안 다양한 형태의 부패문화로 고통을 받아 왔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이에 용감히 맞섰고, 2016년과 2017년에는 촛불혁명을 일궈냈다. 그 결과 한국은 힘겹게 그러나 꾸준히 부패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있다.
정부의 변화를 요구하며 결성된 대한민국 서울의 촛불시민운동 <출처: 여성평화걷기(Women Cross DMZ)>
희망하건대, 한국의 경험이 모범이 되어 개발도상국들이 부패의 노예가 되지 않고 경제 발전을 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부패에 관하여 풍부한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다음의 두 가지 한계를 지녔다.
첫째, 부패의 복잡성을 다루기에는 너무나 협소하게 정의된 부패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둘째, 부패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의 범위를 충분히 다루지 못한다.
기존 연구의 대부분은 부패를 타인의 희생을 통해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행되는 위법활동 정도로 정의한다. 그러나 일부 법규와 조직은 부패를 제도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음을 반드시 지적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부패를 “타인 또는 타 집단의 안녕을 희생시키면서 개인 또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행되는 모든 위법 또는 비도덕적 인간활동”이라 정의하고자 한다.
본 글의 목적은 한국의 경험을 근간으로 부패와의 싸움을 용이하게 해줄 적절한 방안을 찾는 것이다.
본 글은 다섯 부분으로 구성된다
제1절에서는 한국의 부패 경험을 바탕으로 부패의 유형을 분류한다. 부패와 부패에 관여한 개인 및 조직의 활동을 짝지어 보면 쉽게 부패의 유형을 분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제2절에서는 부패의 진화 단계를 설명한다. 부패의 현상이 단계별로 진화한다고 판단되며, 부패의 수준, 내용, 영향은 단계에 따라 다양하다. 따라서 적절한 반(反)부패 방안을 찾기 위해서는 부패의 내용이 어떤 단계에서 모습을 드러내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3절에서는 부패를 통해 얻는 이익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을 논한다. 실제로 한국에서 부패의 열매를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잔혹하고 정교한 전략이 활용되었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제4절에서는 부패의 영향을 다루되, 이를 경제적 영향과 도덕적 영향으로 구분하고자 한다. 당연히 두 가지 유형의 영향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이 둘이 상호 결합되면 한 나라를 망가뜨릴 수 있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제5절에서는 어떻게 한국인들이 지난 70여 년간 목숨 걸고 기본적인 인권 침해를 견디어 가며 부패에 맞서 싸웠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동시에 어떻게 민주적 정부가 한국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부패와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이 경험한 부패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알리고자 한다.
1.부패의 유형 분류
부패는 진행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 및 조직이 관여했는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다음의 부패 유형은 다른 국가에서도 일어나고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a)노골적인 공적자금 도용
한국에서 가장 악명높은 부패는 수십 억 달러에 달하는 공적자금 횡령일 것이다. 우익 진영의 대통령, 공무원, 공기업 사장, 연구기관의 수장, 심지어는 유치원 원장들까지 자금을 횡령했다.
특히 전두환 장군이 대통령 재임 시 미화 2억 달러 이상을 횡령한 사건은 악명이 높다. 이로 인하여 그는 부패와 권력남용으로 옥살이를 했다. 당시 법원은 그에게 횡령한 금액을 정부에 갚도록 명령했으나, 그는 은행 잔고 260달러가 전(全)재산이라고 우기면서 여전히 한국 사법체계를 우롱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 중에는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를 통해 수십억 달러의 공금이 사라진 것으로 의심된다. 현재도 이에 대한 수사는 진행 중이다.
사립 유치원이 정부 보조금의 대부분을 공공연하게 사적으로 착복하여 보석 구입 및 개인 용도로 사용한 사건 역시 공금횡령의 또 다른 예시다.
b) 특혜를 통한 부패
특혜를 거래하는 시장은 거대하다.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길고 긴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러나 공무원에게 뇌물을 건네면 법과 규제를 건너뛸 수 있는 특혜를 얻을 수 있다.
예컨대 공무원에게 뇌물을 지급함으로써 합법적인 또는 불법적인 건축허가를 좀 더 빠르게 받을 수 있다. 뇌물만 있으면 그린벨트를 주거용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혜의 공급자는 공공기관이며, 그 수요를 결정하는 것은 기업이다. 특혜의 대가는 특혜의열매를 금전적 가치로 환산한 것에 기반한다.
이러한 특혜의 시장 가격은 곧 뇌물의 액수가 된다. 뇌물의 액수를 판단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건설업계가 분양금액의 5%를 뇌물로 제공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즉, 뇌물의 총액이 수백억 달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c) 정보의 도용을 통한 부패
한국에서는 증시 및 토지개발 감독을 담당했던 공무원이 퇴직 후 부자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국토부의 고위 공무원으로서 미리 국가의 토지개발계획을 파악한 후, 타인의 이름을 빌려 토지를 매입하여 엄청난 매매차익을 얻는 것이다.
증권시장 감독기관의 직원은 기업의 투자계획에 대한 기밀정보에 접근, 해당 주식을 매도 또는 매수하는 방식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다. 이들이 이러한 기밀정보의 절도를 통해 얼마나 많은 불법이익을 챙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d) 조달과정의 부정부패
정부와 정부 산하 수많은 기관은 매년 수십억 달러를 재화 및 서비스 구입에 소비한다. 국방분야 하나만 보더라도 한국은 연간 미화 500억 달러를 쓰고 있다. 정부 및 관련 기관이 재화와 서비스를 조달하기 위해 실제 가격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지급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
정부가 지급하는 가격과 실제 가격 사이의 차액은 공급자와 구매자가 나눠 가진다. 이를 소위 “킥백”, 즉 리베이트라 한다. 군사 장비 조달 분야의 경우, 장비 구매가의 10%정도가 킥백(뇌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e) (사법분야) 자의적 결정라는 부패
자의적 거래 역시 또 다른 형태의 강력한 부패가 아닐까 한다. 부패한 사법 체계 하에서는 범죄와 부패를 저지른 자가 뇌물로 사법과정에서 자의적 결정권을 살 수 있다.
경찰은 제아무리 범죄와 부패의 흔적이 뚜렷해도 범인이 권력자라면 뇌물을 받고 체포하지 않는다. 검찰은 용의자가 뇌물을 줄 용의가 있는 기업인이라면 분명한 부패 사건이라 해도 수사하지 않는다. 또한 검찰은 수사를 통해 명백한 부패의 증거가 드러난다 해도 뇌물을 제공한 혐의자들을 기소하지 않는다. 그동안 여러 재벌 회장들이 부패 혐의를 받았지만 실제 재판까지 이어진 일은 드물었다.
설사 유죄 판결이 난다고 해도, 이들은 곧 석방되었다. 그리고 검찰이 유죄 증거를 제시해도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사례가 많았다.
f) 입법과정의 부패
재벌이 국회의원에게 위장 선거운동 자금을 지급하는 대신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률의 통과를 사주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바다.
대한민국 국회가 채택하는 법률은 재계와 기타 이익단체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법에 가장 예민한 단체는 대기업이다. 실제로 대기업들은 그들에게 불리한 법은 막고, 유리한 법은 조장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특화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여러 법률 중에서도 노동 관련 입법과정이 가장 빈번하게 대기업 로비의 타깃이 된다.
그동안 재벌은 입법부에 엄청난 뇌물을 써서 노동친화적 법률의 채택을 막아왔다. 한국의 저임금,장시간 노동의 배경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g) 일자리 제공이라는 부정부패
또 다른 유형의 부패는 바로 일자리의 거래이다. 한국의 강원 카지노는 뇌물을 받고 일자리의 80%를 국회의원의 지인 또는 박근혜 정부 당시 실력자들에게 불법으로 제공했다.
최순실씨(비리 및 불법 정책개입으로 20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는 거액의 뇌물을 받고 장관, 판사, 기타 고위 공무원 임명에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2. 부패의 진화 단계
한국의 부패는 다음의 단계를 밟으며 진화했다.
경제개발과 정경유착
부패한 집권층 형성
부패한 조직의 네트워크 구성
1단계) 경제개발 및 정계와 재계 간 유착
일본과 한국의 경제기적을 이룬 주요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일본주식회사 그리고 한국주식회사라는 개념이다. 이들 주식회사에서 정부와 기업은 하나의 회사인 것처럼 행동한다는 뜻으로, 이들은 경제 정책과 개발을 위한 동등한 파트너에 가깝다.
이와 같이 긴밀한 정부와 기업의 협력은 필연적으로 공업화와 경제개발의 계획 및 이행 과정을 통해 정경유착으로 이어졌다.
박정희 전대통령과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 회장,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결탁한 이야기는 전설에 가깝다.
정경유착 단계는 한국경제가 비상하던 시기와 맞물렸다 (1960-1970). 역설적으로 한국주식회사 그리고 정부와 기업의 결탁으로 한국은 채 30년도 되지 않아 극빈상태에서 벗어났다.
2단계) 집권층 부패의 형성
경제개발이 박차를 가하고 경제개발계획이 시행되면서, 계획의 성공을 위해 관료제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특히 경제기획부처는 경제계획 성패의 요체가 되었다. 그 결과, 경제기획부처 구성원과 재무부처 고위공무원, 기타 공무원 등은 위에서 설명한 유착에 관여하였다. 이는 정계-관료-재계의 삼자 유착으로 귀결되었다.
이 삼자 유착이 한강의 기적에 막대한 기여를 했다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만 이러한 유착을 면밀하게 감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해당 유착의 당사자들은 경제개발의 성과를 멋대로 사익을 위해 전용하고자 했다.
이 구성원들은 목적 달성을 위해 친밀한 하나의 계층을 형성함으로써 자신들의 불법적, 비도덕적 활동을 은폐했다. 그리고 이들은 배타적인 집권층이 되었다. 대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그 대가로 대기업에게 각종 특혜를 배분하는 것도 해당 집권층의 역할 중 하나였다.
정부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대기업에 공공의 자원을 제공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정책 금융이 가장 매력적인 정책이었다. 시장의 금리가 20%를 상회할 때에 정부는 5% 미만의 금리에 거액의 대출을 지원했다.
해당 자금은 공업화와 수출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이렇게 제공된 정책 금융 중 일부는 공장의 건설과 수출을 위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렇게 빌린 자금을 5%보다 훨씬 높은 금리로 사채시장에 대출하는 방법으로 큰 부를 축적했다.
대기업에게는 세금혜택도 주어졌다. 이들은 무료로 산업공단에 입주할 수 있었고, 산업용지로 활용될 예정이었던 토지를 받아 일부를 부동산 투기에 사용하기도 했다. 이들 재벌은 온갖 허가와 특혜를 받았으며, 분명치 않은 이유로 엄청난 장려금과 보조금을 챙겼다.
이렇게 집권층을 형성하는 단계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진행되었다. 20여 년 기간 동안 세계경제가 신자유주의로 활발히 재편성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신자유주의는 대기업에게 더 큰 힘을 주는 반면, 정부의 권력은 상당 부분 약화시켰다. 기업에게는 이러한 상황에서 뇌물 공여를 통해 유리한 정책을 조작하기가 더 쉬워졌을 것이다.
80-90년대는 한국 산업이 중화학공업으로 변모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를 통해 한국의 대기업은 무제한에 가까운 자금줄을 손에 넣게 되었다.
3단계) 부패 조직의 네트워크 형성
이렇게 형성된 집권층은 미디어와 학계, 보수 시민단체와 불법 수익을 공유함으로써 스스로를 더욱 공고히 할 필요를 느꼈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부패의 네트워크가 확대되면서 부패 공동체가 조직적으로 확립되었다.
부패 공동체의 목적은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넓혀 반부패세력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잘 방어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사회는 한편에서는 보수와 진보, 다른 한편에서는 부패세력과 반부패세력라는 이중적 구조로 분열되었다.
이러한 부패 조직의 네트워크는 진보세력이 집권한 2000년대에도 작동되었다. 즉 김대중 전 대통령(1997~2002) 및 노무현 전 대통령(2003~2008))의 기간에도 살아남았다.
물론 해당기간 동안 보수진영의 부패 네트워크는 부패 활동의 속도를 늦추어야 했다. 하지만 조직의 확대와 강화를 위한 예비적 투자는 계속 진행되었다.
이후 2008년에는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2013년에는 박근혜가 그 뒤를 이으면서 한국의 우익정당은 9년 간을 집권했다(2008~2017). 이 기간동안, 부패 공동체는 몸집을 키우며 부패 활동을 확대하고 가속화했다.
실제로 상기 9년의 기간 동안 한국의 부패 정도는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사독재 시절보다 심각했다. 결과적으로 박근혜는 25년 형을 선고 받았으며, 이명박은 15년 형과 함께 추가 범죄 혐의로 고발당한 상태다.
3. 부패의 이익을 비호하는 전략
부패 조직의 이익을 비호하기 위한 전략은 다음을 포함한다.
첫째,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집권 당시 보수정권은 반대파의 목소리를 잠재우고자 수십만 명의 무고한 시민을 학살했다.
둘째, 언론의 자유는 잔혹한 경찰 또는 뇌물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여기서 정말 슬픈 것은 대부분의 언론사가 재벌들의 광고수수료 없이 살아남지 못하며, 때문에 광고가 뇌물로 쓰인다는 점이다.
한국의 3대 유력 신문사는 조선, 중앙, 동아(일명 조-중-동)인데, 한국 내 주요 일간지의 전체 판매부수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1910~1945)에도 존재했으며, 친일적인 보수 일간지로 일관하여 왔다. 이후 부패 공동체를 비호하기 위해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받아 왔다.
셋째, 한국의 첩보기관은 진보, 반부패 세력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평범한 시민을 간첩으로 몰았다. 이들 시민들은 공권력의 남용과 기타 불법 탄압의 피해자가 되었다.
넷째, 보수정권에 불리한 내용을 발표한 학자는 해당 연구비를 박탈당했다.
한국에는 “뉴라이트”라는 학술단체가 있는데, 이들은 일본의 한반도 강점을 정당화한다. 일본은 한국인을 위해 한국경제를 개발하고자 헸을 뿐이라는 내용으로 근대사 교과서를 바꾸기도 했다.이들은 세계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25만 명에 달하는 한국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성노예 범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뉴라이트 학자들은 유권자의 보수 정권 지지를 유도하기 위해 우익진영과 함께 진보세력을 “빨갱이”라 비난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다섯째, 보수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 약 1만 명의 예술가, 가수, 영화배우 및 소설가 등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정부의 지원에서 배제되었다. 영화 “기생충”의 감독인 봉준호 역시 다른 감독들과 함께 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여섯째, 부패 공동체는 대한민국 6ㆍ25 참전 유공자회 및 다양한 노인단체를 포함, 우익성향의 시민단체에 자금을 제공한다. 그러면서 해당 단체 회원들은 진보세력을 비판하는 가두시위에 참여한다. 결국 이들의 집회 참여를 위해 최종적으로 돈을 지급하는 최종 당사자는 재벌이다.
마지막으로, 부패 공동체를 확장하고 공고히 하기 위한 또 다른 방법으로 정략결혼을 선택한다. 이러한 경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건 우익 정치인과 재벌가 자제들간의 혼인이다.
4. 부패의 부정적 영향
부패로 인한 주요 부정 영향은 경제적 영향과 도덕적 영향을 구분할 수 있다.
a) 경제적 영향
부패는 단기적으로는 국가 경제의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일본의 사례처럼 수십 년이 지속되는 디플레이션을 가져올 수 있다.
경제적 영향은 미시경제적 영향과 거시경제적 영향으로 나눌 수 있다.
미시경제적 영향은 다양한 모습을 가진다. 경쟁을 감독하는 조직 및 기구가 부패한 경우, 대기업을 편애하여 시장의 공정한 경쟁 추구를 훼손하고, 중소기업의 경쟁력 상실을 초래할 수 있다.
정부가 뇌물을 받고 파산기업을 구제하는 경우, 파산기업의 수명은 길어지겠지만 그 결과 한국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다.
부패한 정부의 조달 체계는 형편없는 품질의 재화 및 서비스 구매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 한국은 킥백(뇌물)을 받으려다 잠수를 할 수 없는 잠수함을 구매한 바 있다.
부패의 거시경제학적 영향은 미시경제학적 영향만큼이나 좋지 않다.
집권층의 수출 중심 정책으로 GDP가 상승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수출만으로는 이들이 내세우는 낙숫물 효과를 만들어내지도, 일자리를 창출하지도 못한다. 오히려 실업률은 상승하고, 공정하고 공평한 소득의 분배가 어려워진다.
한국의 경우, 전체 기업 수의 99%가 중소기업이다. 그리고 이들이 전체 일자리의 87%를 창출한다. 그럼에도 집권층은 친재벌, 반중소기업 정책을 도입했다.
수출 중심 정책은 수출의 증가에 기여했다. 동시에 이는 재벌의 수익을 확실히 끌어올렸다. 재벌의 수익이 커졌다는 것은 뇌물로 쓸 돈도 많아졌다는 의미이다.
친재벌 정책의 또 다른 특징은 재벌의 수익을 위해 중소기업을 착취한다는 것이다. 우익정권 시절에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이 개발한 신기술을 훔치도록 용인했으며, 중소기업에 지급해야 할 금액을 제 때 지급하지 않아 계약을 위반했고, 하도급 계약시 일방적으로 하청계약의 가격을 낮추기도 하였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는 잘 알려져 있듯이 매우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중소기업의 발전을 막았으며, 보통의 시민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망가뜨렸다. 최악인 것은 이러한 정책으로 내수산업의 발전이 지연되는 동시에,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b) 도덕적 영향
부패의 도덕적 영향은 경제적 영향보다 훨씬 더 파괴적이다.
한국의 오랜 속담 중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말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청와대가 부패의 뿌리라고 믿는다. 다시 말해 윗물이 흙탕물이기 때문에 아랫물도 엉망이라는 것이다. 부패는 물이 흐르듯 한국 사회 전역으로 퍼졌다.
우익정권 하에서 부패세력은 돈의 축적을 1차 목표로 삼았다. 인간은 돈의 노예가 되고, 돈은 법은 물론, 유교적 가치, 심지어는 신보다 위에 섰다.
돈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고, 사회계층을 결정한다. 재벌 총수는 왕이요, 그 일가는 왕족이 된다.그리고 왕 중의 왕은 삼성그룹 회장이다. 실제로 우익정권 당시 한국은 삼성공화국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재벌은 전직 장관들을 고용하여, 마치 정부보다 자신들이 더 권위있는 것처럼 으스대며 부와 권력을 뽐냈다. 돈 없는 전직 장관들은 친재벌 정책을 위해 로비하며 배를 불렸다.
돈의 힘은 부와 권력을 가진 자가 가난한 자를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는 일명 “갑질”을 불러왔다.세계는 2014년 발생한 “땅콩회항”사건을 기억할지 모른다 .당시 대한항공 회장의 장녀는 기내에서 땅콩 봉지를 열지 않고 제공했다는 요상한 이유로 욕설과 함께 기내 직원을 폭행했다.
대형교회 목사들은 매년 수백만 불의 소득을 벌며 왕이 된 듯 돈과 권력을 남용하면서 신도들을 학대하기도 했다. 사실 수많은 목사들이 교회 자금을 훔쳤다는 의심을 받아왔지만 범죄 혐의 없음으로 풀려났다. 뇌물이 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많은 기업에서 직원들은 업무와 관련 없는 일에 강제로 동원된다. 부패한 보수 지도자들이 사회에 미치는 위험한 도덕적 영향은 돈의 숭배, 정직과 품위, 진실의 파괴, 상호존중과 사랑의 상실로 요약해 해석할 수 있다.
5. 부패에맞선 시민들의 전쟁
만일 한국이 경제 성과로 계속 세계의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독재와 부패에 맞서 싸운 한국시민들 덕분이다.
사실 2016년에서 2017년까지 이어진 촛불혁명 이전에도, 수백만 한국인들은 거리로 나가 부패한 대통령들에 용감하게 맞섰다. 1960년 4월에는 이승만에게, 1979년에는 박정희에게, 1980년 봄과 그리고 1987년 6월에는 전두환에 저항했다.
그리고 2016년 말에서 2017년 4월까지 8개월 동안 한국 사회 각계 각층의 연인원 17백만 명이 차가운 거리 위로 나가 외쳤다. “박근혜를 탄핵하라! 부패를 청산하라!”
촛불혁명은 성공적이었고, 부패하고 파괴적이었던 9년간의 보수정권을 끝내고 민주정권을 세웠다.그렇게 문재인은 대통령이 되었다.
문대통령은 민주진영에서 탄생한 세 번째 대통령이다. 처음은 김대중 대통령이었고 (1998-2002),두 번째는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2003-2008).
김대중 대통령은 노동조합 결성을 독려하고, 기존의 노동조합을 회생시키고, 진보 시민운동을 육성하면서 반(反)부패세력을 강화했다. 나아가 재벌에는 내부순환출자 중단과 투명한 회계처리를 요구하며 대규모 개혁을 이끌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의 자유 보장과 경찰 및 검찰, 법원, 첩보기관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 애썼다. 부패공동체에게 노무현 정부의 조치는 실질적인 도전이었기에 이들은 온갖 거짓 이유를 들이대며 대통령 탄핵을 공모하였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결국 탄핵되지 않았고, 임기를 끝까지 마쳤다. 그러나 부패공동체가 가장 우려한 것은 공정사회와 평등 민주주의에 대한 노무현의 정치적, 이념적 유산이었다.
이러한 유산을 말살하기 위해 수구세력은 노대통령의 아내, 권양숙 여사가 고급 시계를 뇌물로 받아 논두렁에 숨겼다는 가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 이야기는 이명박 우익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노무현의 퇴임 후에도 그의 일가에 대한 공권력, 보수언론, 검찰의 괴롭힘은 지속됐다. 이는 노무현에게 견디기 힘든 부담이었고, 그는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한국 우익세력이 얼마나 깊숙이 부패에 관여하고 있는지, 이들이 왜 이런 허무맹랑한 가짜 뉴스를 만들어 부패한 부자들에게 매달리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고, 70여 년간 축적된 부패의 문화를 청산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지금 부패를 도려내지 못한다면 정상적이고 건전한 국가로 살아남기 어렵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에 문대통령은 아래와 같은 반(反)부패 조치를 도입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거시적 조치와 미시적 조치로 분류해볼 수 있다.
a) 거시적 반부패 조치
거시적 조치에는 북한과의 평화 프로세스, 소득분배의 개선이 포함된다.
남북한 평화 프로세스는 북한이 더 이상 남한을 위협하지 않는 화해국면을 추구한다.
그동안 우익세력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선거에서 승리하는 등 남북 간의 긴장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마치 군사독재가 북한 문제를 처리할 더 좋은 자격이 준 것 마냥 행동했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한 사회경제 정책 중 하나는 바로 공정한 소득 분배를 통해 경제성장을 꾀하는 것이다. 정부는 최저임금을 인상하려 했고(불행히 중단되었다), 국민연금을 확대했으며, 노인을 위한 소득 수당을 제도화했다. 동시에 주당 근로시간을 감축하려 했고(역방향으로 수정되었다), 부동산세제의 개편을 시도하는(시행되지 못했다) 한편, 부유층의 소득상승은 늦추고 빈곤층의 소득상승은 가속화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러한 정책은 경제성장의 건전한 근간을 세우는 효과가 있다. 빈곤층이 더 많은 수입을 올리고, 부패와 “갑질”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
b) 미시적 반부패 조치
민주정부는 부패와 싸우고자 여러 미시적 조치 또한 시행하고 있다.
우선, 부패의 여러 원인 중 하나는 청와대 직원의 영향력 행사라고 판단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에는 어떠한 영향력 행사도 발생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모친은 지난 2년간 가족 외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가족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보수 언론의 가짜 뉴스를 피하기 위해서다.
두 번째, 문대통령은 권력기관의 기능을 크게 줄였다. 예컨대, 국가정보원의 기능을 국제 정보의 관리로 국한시켰다. 우익정권 하에서 국정원은 정부에 반대하는 자들을 북한 간첩으로 몰아 체포하는 기능을 맡은 바 있다.
뿐만 아니라 기무사령부를 폐지했다. 기무사는 본디 군대의 위법행위를 막는 기능을 담당했으나,우익정권을 비판한 자들에 대한 불법감찰에 관계하였다.
세 번째, 부패 공동체가 자행한 것이 분명한 부패 및 범죄 사건을 재수사하는 위원회를 임명했다. 예컨대, 과거 법무부 전직 차관이 여성을 강간한 사건이 있었는데, 뇌물과 우익정권 내 권력자와 유지한 관계 덕분에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네 번째, 부패 공동체의 편에 서서 기자노조를 탄압한 일부 언론사의 사장이 교체되었다.
다섯 번째, 유치원 원장이 공적자금을 도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유치원법을 포함, 다양한 반(反)부패 법안을 통과시켰다.
여섯 번째, 우익진영의 부패 공동체에 가담한 전 청와대 직원들은 처벌을 받았다.
일곱 번째, 검찰과의 싸움이다. 아마도 문재인 대통령이 시작한 싸움 중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한다. 한국의 검찰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체제를 가지고 있다. 범죄 및 부패를 수사할 권한을 가진다. 경찰도 물론 수사권을 가지지만, 최종적 판단은 검찰의 몫이다. 뿐만 아니라, 검찰은 독점적 기소권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수천 건의 부패 및 권력남용 사건이 고발되었지만, 검찰의 벽을 넘어 법원까지 간 일은 거의 없었다.
요약하면 한국은 사법권을 독점한 부패한 검찰 때문에 부패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었다.
한국에는 검찰을 제어할 수 있는 권력이 없다. 대통령 조차도 검찰을 어쩌지 못한다. 어찌 보면 검찰이 부패문화의 가장 강력한 방어벽 역할을 잘하여 왔던 수호자인 셈이다.
검찰에 맞서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은 검사를 포함한 고위공무원을 감독하는 제도인 공수처 법안을 통과시켰다. 싸움 하나를 겨우 이겼다. 그러나 부패문화를 완전히 청산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부패의 궁극적인 수호자는 돈이다. 보수세력이 지난 70여 년간 부패로 쌓은 돈은 수천억 달러에 달한다. 현금, 부동산, 주식의 형태로 세계 곳곳에 은닉했다. 이 때문에 한국사회가 부패문화를 완전히 부수기까지는 민주정권이 10년 이상, 어쩌면 20년 이상 필요할 지 모른다.
교훈
한국사회가 경험한 부패로부터 몇 가지 교훈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부패는 진화의 첫 단계, 즉 정계와 재계 양자 간 유착단계에서 반드시 차단시켜야 한다.
둘째, 일단 부패가 집권층을 형성하는 단계에 이르면, 아주 어려운 대응책이 요구된다.
셋째, 부패조직의 네트워크를 청산하려면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현재의 한국이 그런 경우이다.
넷째, 부패의 청산을 위해 정부에만 항상 의존할 수는 없다. 정부 자체가 부패한 일도 많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현재의 문재인 민주정권이 부패와의 싸움을 잘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부패를 청산하는 과정에는 평범한 시민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시민들이 반드시 함께 참여하여야 한다.
조셉 정(Joseph H. Chung)
퀘벡대학교 몬트리올캠퍼스 (UQAM) 경제학 교수이자 동 대학 Centre d’Études sur l’Intégration et la Mondialisation (CEIM) 산하 동아시아연구소(OAE) 부소장.
미국의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3월 23일 현재 16개 주, 9개 현(county), 3개 도시의 1억 5천 8백만 명의 미국인이 이른바 자택격리 명령(shelter-in-place order)이 내려졌다. 이것은 긴급한 상황 이외의 모든 출입을 금지하며 집에만 머물러 있으라는 일종의 이동제한 명령(stay-at-home order)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대번에 다음 질문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집이 없는 사람들은 어찌하나? 이번 회에선 신종코로나 발 세계 경제의 대침체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미국에서 이들 취약계층이 어떠한 곤경 속에 처해있는지를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아울러 이런 서민들의 고통과는 아랑곳없이, 악재조차 호재로 혹은 호기로 삼아 승승장구하는 제국들에 대해 짚어보기로 한다.
억만장자들에게 신종코로나는 남의 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온 버니 샌더스는 “억만장자들에게 코로나 창궐, 이런 것은 그저 남의 일이다. 결국 코로나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서민들이다”라고 조 바이든과의 경선 토론장에서 이야기했다.(“Bernie Sanders: ‘If you’re a multimillionaire … you’re going to get through’ the coronavirus pandemic,” CNBC, March 16, 2020). 가장 비싼 의료보험 있고,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진 대부호들이야 설사 신종코로나가 걸린다 한들 그게 문제나 되겠느냐면서. 문제는 국민 중 겨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이 태반인데 이런 이들에게 코로나는 정말로 재앙이라고 이야기했다. 여기서 샌더스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것은 바로 미국의 극심한 불평등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의 코로나의 창궐이 곧 서민들 삶 자체의 궤멸을 의미함을 지적하고 있다.
이동제한 명령이 내려진 캘리포니아 지역 사정을 알리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 1면 가판대 사진 <출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자택격리 명령의 허구 : 그럼 집 없는 사람은?
코로나 창궐에 대비하기 위해 가장 취약한 계층인 노숙자에게 내려진 명령은 “텐트서 꼼작 마!”이다. 여태껏 쏟아져 나오는 노숙자 퇴치를 위해 보통 낮에는 경찰과 노숙자들이 쫓고 쫓는 상황이 연출됐었다. 그러나 코로나 창궐이 염려되자 대부분의 지역에서 내려진 조치는 “노숙자는 텐트에서 머물라”이다.(“To combat virus, L.A. will let homeless encampments stay up throughout the day,” Los Angeles Times, March 17, 2020). 얼마나 웃기는가? 텐트가 자택인가? 언제는 텐트는 집이 아니라며 죽어라 쫓아내려 하더니만 이제는 텐트가 집이니 그냥 가만히 죽치고 거기만 있으란다. 이게 무슨 대책인가? 가뜩이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존해야 하는 노숙자들이 코로나로부터 가장 먼저 보호받아야 할 대상임을 인식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들이 감염원의 인자로 간주해 텐트서 처박혀 나오지 말라 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방기(放棄)를 넘어 인권침해다. 게다가 자택격리 명령으로 주요 다중시설 이를테면 공공도서관, 빌딩 등이 폐쇄되었다. 그나마 그곳은 노숙자들이 손과 얼굴을 씻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그런 곳들마저 폐쇄된 마당에 이들이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이것뿐이리라. “(코로나?) 걸리면 죽는 거지 뭐.(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If I get it, I die’: homeless residents say inhumane shelter conditions will spread coronavirus,” The Guardian, March 19, 2020. ; “For the homeless, coronavirus is a new menace in a perilous life,” Washington Post, March 21, 2020). 현재 미국엔 약 50만 명의 노숙자들이 있으며, 그들 중 약 65%가 노숙자 대피소에서 밤이슬을 피하고 있으나 약 20만 명의 나머지 노숙자들은 길거리에서 비유가 아닌 문자 그대로 풍찬노숙을 하고 있다.(“‘Wash your hands’ is tough advice for Americans without soap or water,” The Guardian, March 23, 2020).
샌프란시스코 노숙자에게 꽃을 건네는 시민 <출처: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종코로나 염려는 차라리 호사
그렇다. 이런 그들에겐 건강염려는 호사(豪奢)일 런지도 모른다. 정녕 그들에겐 그것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놓여 있으니 말이다. 당장 먹고 살 문제. 그것에 비하면 잠복기가 2주나 걸리는 코로나 같은 것은 그들에겐 문제 축에도 들지 않으니까. 목구멍이 포도청인 까닭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노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서민들도 지금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왜냐면 코로나로 일들이 끊겨서.
현재 미국의 학교도 우리처럼 폐쇄했다. 그러나 학교가 아니면 삶을 이어나가기 힘든 이들이 있어 점심시간에만 잠시 여는 학교가 미국에 많다. 아이들의 돌봄이 필요해서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뉴욕타임스는 텍사스주 브렌햄(Brenham)의 6명의 자녀를 둔 부부 이야기를 소개했다. 엄마는 33세의 상이용사, 남편은 목수. 그러나 코로나 창궐로 남편의 일거리는 없어지고 6명의 자녀를 도저히 먹일 방법이 없어 한 끼의 식사는 무료급식으로 때운다. 학교는 코로나로 폐쇄됐으나 무료급식이 필요한 아동들이 많아 점심 무료급식을 학교 운동장에서 드라이브스루(차에서 내리지 않게 하고 음식을 주는 방법)로 제공하고 있다. 그나마 엄마는 아이들 먹이느라 식사는 굶기 일쑤. 만일 학교의 무료급식이 없었다면 “스트레스로 멘탈이 완전히 붕괴했을 것”이라며 자신의 굶주림은 외려 문제가 아니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딱한 사정은 단지 이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폐쇄 중에도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학교는 텍사스를 비롯해 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오리곤 등 여러 주에서 시행 중이다. 또 점심 한 끼뿐만 아니라 다음 날 아침 두 끼까지 가져가는 아동들이 계속 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의 학군에서는 거의 1만 1천 명의 학생들이 두 끼의 식사를 무료로 가져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하루 동안 아이들이 먹는 식사의 전부다. 미시간대학의 사회사업학과 쉐퍼(H. Luke Saefer)교수는 “[코로나사태처럼] 일이 잘못됐을 때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이들이 바로 서민들이며 또한 회복되는 데에도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층이 바로 그들이다.”라고 말했다.(“Coronavirus and Poverty: A Mother Skips Meals So Her Children Can Eat,” New York Times, March 20, 2020).
서민들의 가장 큰 걱정은 다음 달 임대료
그런데 먹을거리 걱정이 저런 식으로라도 해결이 된다면 서민들에게 그다음 가장 큰 걱정거리가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임대료다. 위에서 소개한 6명의 자녀를 둔 여성도 가장 큰 걱정거리가 매달 어김없이 돌아오는 1,000달러(약 120만 원)의 임대료라 말했다. 당장 수입이 없으니 그렇다. 워싱턴포스트는 현재 시점(2020년 3월)에서 대다수 미국인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임박한 다음 달(4월) 임대료라고 보도했다.(“Many Americans’s Biggest Worry Right Now is April 1 Rent and Mortgage Payments,” Washington Post, March 22, 2020). 물론 임차인이 아니고 집을 소유한 서민들이라 해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 대부분의 집값을 은행에서 대여해서 집을 소유한 것이라 매달 이자와 원금을 갚아야 하는데 지금 일거리가 갑자기 뚝 끊겨 소득이 없으니 그렇다. 소득이 끊겨도 단 한 달 만이라도 버틸 여유 자금이 미국인들 대다수가 없다.
3월 현재 많은 미국인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다음 달(4월) 임대료와 주택할부금이라는 워싱턴포스트의 기사 제목. 정부가 주는 1200달러짜리 수표가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많은 이들은 그것은 임대료를 충당하지도 않을 것이고 또 설사 그렇다 해도 그들이 돈을 지불하기 전에는 도착하지 않을 것이라 우려를 표하고 있다는 부연설명이 달려있다. <출처: 워싱턴포스트>
미국 경제는 전인미답의 영역으로: 그 와중 빠르게 급증하는 실업률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경제가 지금 전인미답의 영역(uncharted waters)로 접어들었다고 선언했다.(“Coronavirus Recession Looms, Its Course ‘Unrecognizable’,” New York Time s, March 21, 2020). 즉 과거 전례가 없던 대혼란 속으로 진입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가 올 2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 30.1%가 될 것으로, 그리고 불라드(James Bullard) 연준 세인트 루이스 은행장은 50% 하강할 것으로 내다봤다고 보도했다.(“Morgan Stanley, Goldman See Virus Causing Greater Economic Pain,” Bloomberg, March 23, 2020). 옥스퍼드 경제연구소(Oxford Economics)의 미국경제팀장인 다코(Greg Daco)는 “이것이 단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을 겪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왜냐면 이런 급작스러운 경기 하강은 선진국에선 유례가 없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심지어 10년 전의 금융위기와 1920년대 대공황 때조차도 사람들에게 집 밖으로 나가지 마라거나 여러 사람과 모이지 말라 했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경제는 결국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고 그것은 사람들이 만나 교류해야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뉴욕타임스는 이를 ‘전시적 곤경’(wartime privation)이라 말한다.(New York Times, March 21, 2020).
이번이 ‘전시적 곤경’이라 불리는 이유는 바로 그 직접적 타격을 서민들이 최초로 입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강력하게. 2008년 금융위기가 월가에서 시작되어 서민들에게 미치기까지는 그래도 시간이 조금 걸렸다. 직장에서의 해고는 월가의 은행들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나머지 직종의 해고와 실물경제 하강은 그것과는 시차가 조금 있었다. 그러나 이번 신종코로나는 그 경우가 완전히 딴 판이다. 사람들의 이동이 멈추니 영세자영업자들이 먼저 그 타격을 고스란히 맞는다. 식당, 이발소, 선술집 등의 업종이 줄줄이 타격이다. 이를 두고 매씨(Gabriel Mathy) 아메리칸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침체는 아마도 서비스 부분에서 시작된 세계에서 유례없는 최초의 경기침체다”라고 지적한다. 소상공인들과 영세자영업자들은 현금보유도 얼마 없고 신용도 제한적이다. 다른 큰 회사들처럼 채권을 발행할 수도 없다. 따라서 손님이 끊기면 바로 존폐의 기로에 놓이며 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폐업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거기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벌써 이들의 대량 해고가 시작되었다.(New York Times, March 21, 2020).
3월 19일 미 노동부는 실업수당 신청자가 28만 1천 명으로 전주와 비교해 33%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201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다.(“Unemployment Spikes 33% Amid Coronavirus Pandemic,” US News and World Report, March 19, 2020). 그러나 이 수치는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가 전망한 그다음 주 수치 225만 명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그러나 한 주가 지나 이런 전망은 완전히 빗나간 것으로 판명됐다.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3월 셋째 주 주간 신규 실업수당 신청자는 328만 3천 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한 주 만에 신규 실업자 수가 300만 명이 늘었다.(“Coronavirus Live Updates: U.S. Jobless Claims Are Highest Ever; House to Take Up $2 Trillion Stimulus,” New York Times, March 26, 2020).
옥스퍼드 경제연구소의 다코는 4월 미국의 실업률을 10%로, 재무부 장관 스티븐 무누신(Steven Mnuchin)은 효과적인 개입이 없다면 실업률이 20%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심지어 연준의 불라드(James Bullard)는 30%까지 나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New York Times, March 21, 2020; Bloomberg, March 23, 2020; “As layoffs skyrocket, the holes in America’s safety net are becoming apparent,” Washington Post, March 19, 2020).
2008년 금융위기 회복은 허상: 실업률 폭증이 그 증거
볼 스테이트 대학 경제학과 힉스(Michael Hicks)교수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3월이 미국 역사상 가장 최악의 해고 수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말했다.(Washington Post, March 19, 2020).
이렇다면 이러한 대량 해고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이들은 이런 실업대란 사태가 단순히 코로나로 발생했다며 코로나 탓을 돌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코로나 사태가 어떤 촉발요인은 되었지만, 이러한 급작스러운 실업대란은 미국이 그동안 말해주지 않는 미국 경제의 실체 때문이라고 본다. 코로나 사태는 단지 그것을 들춰내 미국 경제의 민낯을 보여주는 역할만 했을 뿐이다. 이 말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번 실업대란은 바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미국의 경제가 회복되었다고 선언하며 우쭐댔던 것이 모두 허상이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동안 미국은 경제 회복의 증거로 고용률의 증가, 즉 실업률(2019년 10월 현재, 3.6%)의 저하를 내세웠다. 그런데 그것은 허드레 일자리의 증가로 뚝딱뚝딱 만든 숫자 놀음에 불과했다는 것이 이번 코로나 사태로 여실히 드러났다. 즉, 그것은 튼실한 일자리가 아니었다. “눈 가리고 아웅”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정부가 나서서 실업률이 최저치로 낮아졌다며 “이것 봐라. 실업률이 얼마나 낮은가. 그래서 미국인은 행복하다!”라며 미국의 경제 회복을 아무리 발표를 해도 공허하기만 했던 것이다. 왜냐면 서민들의 삶은 금융위기 이후에도 전혀 개선된 것이 없었으니까.
만약 미국 정부의 발표대로 국가 경제가 그리고 서민들의 삶이 나아진 것이 사실이었다면 이런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서민들이 이처럼 추풍낙엽처럼 일시에 대량 해고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왜냐면 아무리 해고가 밥 먹듯이 쉬운 미국이라 해도 그래도 좋은 직장이라면 그렇게 쉽게 근로자를 내보내지 않을 테니까. 어느 정도는 뜸을 들일 테니까. 그래도 큰 기업은 이런 상황에서 어느 정도(단 한 두 달이라도)는 버틸 능력이 있으니까. 다시 말해 진정한 경제 회복은 뭐니 뭐니 해도 서민들의 직업 안정성의 보장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정반대다. 그래서 신종코로나 사태로 사람들을 일터에서 대거 몰아내고 있으니 실업률이 갑자기 높아진 것이다. 애초에 서민들이 취업했다는 직장이 번듯한 직장이 아니었다. 파트타임, 기간제,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등의 일자리 채운 것으로 정부가 고용률의 증가와 실업률의 하락이라고 얼버무렸다. 그런데 어찌 되었든 그런 허드레 일자리에서조차 밀려나 이렇게 실업률이 높아지면 그것은 곧 금융위기 이전으로 곧장 회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미국 경제가 아무것도 금융위기 이후 달라진 것도 나아진 것도 없다는 것을 이번 대량 해고 사태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탕발림한 실업률과 고용률 지표에서 사탕을 싹 제거하자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즉 지표들은 그저 숫자 장난이었고 신기루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그 와중 서민들은 두서너 개의 아르바이트로 연명하고 있었을 뿐이다. 코로나 사태로 하루아침에 이런 짓거리가 들통 난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다가오는 침체의 폭풍이 밀려오고 있다는 기사 제목에 달린 뉴욕타임스의 일러스트레이션 <출처: 뉴욕타임스/아담 심슨(Adam Simpson)
모래로 쌓은 성
그렇다면 금융위기 이후에 전 세계가 그 깊은 신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에도 미국 홀로 시쳇말로 “잘 나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미국 홀로 경기가 좋았다는 것은 누구를 위한 축제의 판이었던 것일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속도가 더디더라도 잘못된 것들을 시정 해 기초 체력을 다져서 튼실한 경제를 재건하기보다는 임시방편으로 구멍 난 곳을 돈을 찍어 처발라 메우고 그 열매는 모두 극소수의 가진 자들, 즉 제국이 취했다. 그리고 그 돈들은 죄다 돈 놓고 돈 먹는 놀이인 금융자본으로 치환되어 금융화(financialization: 산업에서 금융 부분이 비대해지는 것: 필자의 『부자는 어떻게 가난을 만드는가?』참조)는 더욱더 박차를 가하였다. 그 결과는 주식시장의 활황과 부동산의 폭등, 즉 이들 시장에 잔뜩 낀 거품이었다. 그리고 그 주역은 대형금융회사가 아닌 사모펀드였다. 그러나 이들은 초록이 동색. 사모펀드조차 월가에 속한 것이니까. 우리의 비례 정당만이 ‘위성’이 아니다. 미국의 사모펀드 또한 월가의 위성 투자사이다. 겉으로만 보면 얼마나 그럴듯한가? 한없이 오르는 주식과 부동산. 특히 미국 외부에서 보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금융위기 이후에 쏟아부은 돈 때문인 것은 쉽게 간과했다.
2년 전부터 예견되었던 거품 붕괴와 침체: 터트리기 위해 만들어진 거품
그러나 그러한 눈부신 금융화의 진전이 모래로 쌓은 성이었다는 것이 이번 신종코로나 사태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렇게 부풀려진 자산시장의 거품이 완전히 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발발하기 전에 미국의 거품 붕괴의 위험성은 이미 2년 전부터 예견되었다. 이런 예견은 단지 전문가들만 할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다. 왜냐면 거품은 언젠가는 반드시 꺼지게 마련이니까. 필자도 강연 등 기회 있을 때마다 이것을 줄곧 알렸었다. 물론 귀담아듣는 이가 별로 없어 문제지만.(“Economists Think the Next U.S. Recession Could Begin in 2020,” Wall Street Journal, May 10, 2018.; “U.S. Economy Flashes Signs It’s Downhill From Here,” Wall Street Journal, Oct. 29, 2018.; “The Economy Faces Big Risks in 2019. Markets Are Only Now Facing Up to Them.”, New York Times, Dec. 7, 2018). 비유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자신의 거대한 몸 때문에 바로 서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거인이 돌부리에 발이 걸려 완전히 넘어가듯, 바로 이번 신종코로나 사태가 그런 돌부리 역할을 한 것일 뿐이다. 코로나는 방아쇠 역할은 했지만 이미 거인은 쓰러지고있는 중이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Coronavirus Could Spark a Global Recession,” U.S. News &World Report, March 16, 2020).
코로나: 월가가 바라마지 않던 책임 전가의 호재
어쩌면 월가를 주축으로 한 제국들은 오히려 코로나가 무척 반가울 수도 있겠다. 왜냐면 거품은 반드시 꺼질 텐데 그 책임을 다른 데(코로나)로 돌릴 수 있을 테니까. 2008년엔 금융위기 주범으로 몰려 얼마나 호된 뭇매를 맞았었는가? 그렇게 보면 코로나 사태 같은 악재는 제국들엔 확실히 호재! 마치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과 같다(쓰러지는 제국들의 기업은 어찌하고 이런 소리를 하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은 조금만 기다려 주기를 바란다. 곧 뒤에서 그 답이 나온다). 이것저것 떠나 제국들은 악재든 호재든 모두 자신들의 호재로 만드는 데 귀재다. 보라. 어떤 제국은 경기하강에 내기를 해서 떼돈을 벌고 있지 않은가? 2천 7백만 달러(약 329억 원) 가지고 단숨에 100배를 번 펀드 회장도 있다.(“Bill Ackman claims firm made $2.6bn betting on coronavirus outbreak,” The Guardian, March 25, 2020). 거품이 이는 동안 재미를 톡톡히 본 제국 중 그것이 꺼질 것을 감지한 이들은 이미 정리할 것들은 다 팔아 곳간을 두둑이 채워두었다. 그리곤 악재에 베팅까지 해 또 한 번 재미를 보는 것이다. 제국에게는 어려운 장사란 없다. 그들에겐 모든 장사가 다 누워 떡 먹는, 그렇게 쉬운 것이다. 그런데 그것만일까?
가재는 게 편: 트럼프는 ‘대기업이 우선!’
전례가 없는 코로나 사태 폭탄으로 미국 경제가 위기에 몰렸다며 트럼프 발 경기부양 패키지 법안이 상원에서 통과되었다. 미국의 한 해 예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물경 2조 2천억 원(약 2천 7백조 원)의 현금이 시중에 쏟아진다. 그러나 그중 성인 한 명당 1,200달러(약 146만 원) 지원되는 2,500억 달러(약 304조 원)와 실업급여 등에 사용될 2,500억 달러를 빼면 나머지는 모두 기업을 위한 돈 들이다. 이것이 바로 코로나 재난으로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인 서민들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기업을 우선하는 정책을 편다고 트럼프가 비난받는 이유이다. 확실히 가재는 게 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앞서 “왜 쓰러지는 제국의 기업이 있는데 코로나 같은 악재가 호재가 될 수 있느냐”는 의문에 대한 답이다. 제국의 기업은 악재에 아무리 손해를 보아도 그것을 벌충해줄 든든한 뒷배가 있다. 곧 친기업 정책을 펴는 제국의 친구, 아니 그들의 하수인인 든든한 정치인과 지도자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제국의 친구들이라고 해도 정치인들이 맨입으로 제국을 위해 돈을 풀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가재가 게 편을 그냥 들어주지는 않는다. 제국은 그의 하수인들이 움직일 만큼 기름칠을 한다. 나랏돈을 받아내기 위해서 사활을 건 대 정치권 로비전을 벌이면서. 가디언지는 워싱턴의 로비스트들이 수십억 달러의 코로나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광란의 전쟁에 너도나도 앞다퉈 뛰어들었다고 보도했다.(“Washington lobbyists in frenzied battle to secure billion-dollar coronavirus bailouts,” The Guardian, March 20, 2020). 이 때문에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 나왔던 엘리자베스 워런이 일찌감치 코로나 사태 구제금융은 기업이 아닌 노동자들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Any Coronavirus bailout must put workers first: Sen. Elizabeth Warren,” USA Today, March 20, 2020). 그런데 이런 말 하는 사람들은 다 ‘아웃’이다. 미국 정치계 물 사정이 다 그렇다.
‘노동자 우선인 구제금융’ 주장하는 샌더스
물론 기업이 도산하면 거기의 근로자들이 대량 해고되니 기업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조건을 달아야 한다. 근로자의 해고 금지라든지 급여의 삭감 금지 등의 전제조건 말이다. 그런데 그런 단서 조항 없이 기업에 무작정 돈을 살포하면 그다음은 어찌 될지 뻔하다. 결국 그 모든 돈은 최고위 임원진들의 보너스와 주식을 보유한 부자들의 호주머니 속으로만 홀랑 흘러가게 된다. 근로자들은 나 몰라라 내칠 것이 분명하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선 구조조정이 필수라면서. 이런 모든 일은 이미 2008년 금융위기 때 겪었던 터라 예견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선수도, 게임의 룰도 그때와 바뀌지 않았고 유사한 게임은 계속되고 있다. 한 번 승자는 모든 것을 독식하는 게임, 게다가 계속해서 승자가 되는 이상한 게임. 그렇다면 이런 게임에서 감히 제국을 상대하는 서민들의 운명은? 그들의 승률은 백전백패.(Callahan, The Cheating Culture; Giridharads, Winners Take Al; Milanovic, Global Inequality 참조).
그래서 샌더스가 경기 부양 구제금융이 대기업이 아닌 노동자에게 먼저 제공되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부득이하게 대기업에 제공될 경우 근로자를 위한 전제조건을 달아 지급되어야 한다면서. 그러나 거의 모든 주요 언론이 왜 샌더스는 실질적으로 결판이 난 것과 진배없는데 경선을 포기하지 않고 저런 딴죽을 거냐면서 비아냥거린다. 소위 진보언론이라는 뉴욕타임스조차. 심지어 워싱턴 포스트는 코로나로 많은 미국인이 피해를 보고 있는 이때 단 한 사람 유일하게 샌더스만 수혜를 입고 있다고 빈정댄다. 소위 진보언론이라는 것들이 코로나의 유일한 승자가 될 제국들은 놔두고 외려 이것을 지적하는 샌더스를 공격하다니!(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밝히기로 한다).(“As Coronavirus Crisis Unfolds, Sanders Sees a Moment That Matches His Ideas,” New York Times, March 26, 2020. ;The coronavirus is hurting millions of people. But there’s one person who could benefit. Washington Post, March 26, 2020).
샌더스의 말대로 구제금융이 서민에게 먼저 맞추어져야 하는 이유는 거품 붕괴의 모든 덤터기를 결국 중산층 이하 서민들이 온전히 뒤집어쓰게 되니 그렇다.(“The Middle Class Faces Its Greatest Threat Since the 1930s,” Brookings, March 20, 2020). 이렇게 악재가 왔을 때 제국들은 유유히 손 털고 장을 떠나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의 몫. 경기 하강의 직접적인 타격은 아무 죄 없는 서민들에게 가해진다. 따져 보라. 그들이 거품을 끼게 했는가? 그들이 금융화를 가져왔는가? 그들이 사모펀드를 했는가? 그들이 집을 마구 사들였는가? 그들이 주식을 했는가? 그들이 한 일이라곤 어려움 속에서도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이일 저일, 두 서너 개의 허드렛일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한 죄밖에 없다.
“보통사람은 못 받는 코로나 테스트를 어떻게 부자들과 명망가들은 받는가?”란 제목의 영국 매체 가디언 기사 캡처
코로나 위험 속 퇴거 위험에 놓인 임차인들
그리고 일이 끊기고 실업자가 되고, 그래서 수입이 없으면 사는 곳에서 나가야 하는 압박과 처지로 내몰리게 되는 게 서민들이다. 지금쯤 그들은 다음 달 임대료 지급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아마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이 어떤 때인가. 코로나 사태로 밖에 나가면 걸린다고 집에 머무르라 하지 않는가. 이른바 ‘쉘터 인 플레이스’ 명령! 그런데 방세를 못 내면 당장 방을 빼란다. 임대차 보호법은 거의 사문화 되었다. 특히 사모펀드가 집주인으로 등극한 이후에는 더더욱. 악덕 집주인들에겐 피도 눈물도 없다.(“’No heart. No understanding’: During coronavirus, renters face eviction uncertainty,” MSNBCNews, March 20, 2020).
워싱턴포스트는 코로나 사태로 뒤숭숭한 이 시점에 집주인에게서 가차 없이 방을 빼라는 퇴거통지를 받은 위스콘신주 밀워키(Milwaukee)에 사는 66세의 할머니를 소개하고 있다. 만성기관지염과 만성폐쇄성 폐질환을 가지고 있는 이 할머니는 밖에 나가면 자기 같은 기저 질환자의 경우 특히나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지금 공포에 떨고 있다.(“Facing eviction as millions shelter in place,” Washington Post, March 22, 2020).
트럼프는 3월 17일 “미국주택도시개발부(HUD)가 주택소유자와 임차인이 주택 압류와 퇴거하는 것을 4월 말까지 유예하는 즉각적인 조치를 곧 취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것은 허언이었다. 적어도 임차인들에게는. 전국적으로 3,000만 명에 이르는 주택소유자들은 돈을 못 내 쫓겨나는 것에서 60일간의 유예기간을 주었지만, 임차인들은 아니었다. 이렇게 지금 코로나 사태 속에서 퇴거명령 처지에 처한 임차인들은 전국적으로 4,000만 명. 그러나 이들을 위한 보호책은 아무것도 없다.(Washington Post, March 22, 2020; “Most renters won’t receive eviction protections amid coronavirus pandemic under Trump proposal,” Fortune, March 20, 2020).
이제 임차인들에게 고작 남은 유일한 희망은 정부가 경기부양 패키지로 쏜다는 현금 1200 달러. 그러나 이전 회에서 이야기했듯이 대도시의 임대료는 사모펀드의 장난질로 엄청나게 올랐다. 그 돈 가지고는 턱도 없다. 설사 준다 해도 임대료 지급 날짜를 맞출지도 의문이다.(Washington Post, March 22, 2020). 그래서 트럼프가 쏜다는 현금은 기껏해야 언 발에 오줌 누기다. 그리고 소상공인들에게 대출해 준다는 돈들도 그림의 떡이다. 그것도 대출인데 이 사태가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 아닌데 또 빚을 져서 어떻게 갚는단 말인가. 그들이 이 시점에서 원하는 것은 대출 그 이상의 생명줄이다.(“Small Businesses Seek a Crisis Lifeline Beyond Loans,” New York Times, March 23, 2020; “Checks to Americans will ease the coronavirus slump, but they may not be much of an economic stimulus,” Los Angeles Times, March 18, 2020). 그러나 그것은 철저히 외면되고 오로지 구제금융의 혜택은 또다시 제국으로만 향하고 있다.
도표: 미국인 평균 수명은 소득 상위 1%의 남성이 하위 1%의 속한 남성보다 15년 더 오래 살며, 여성의 경우 기대수명이 10년 차이가 난다 <출처: 가디언>
코로나는 누구나 걸릴 수 있으니 공평하다?
코로나는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걸릴 수 있어 공평하다는 말이 나온다.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존슨 총리도 걸렸으며, 배우 톰 행크스와 그의 부인도 걸렸으니 말이다. 그런 거 보면 코로나가 신분을 안 가리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하긴 코로나바이러스에 눈이라도 달렸겠는가.
하지만 그 공평하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왜냐면 테스트를 받을 수 있는 자는 지체 높은 고관대작들이었으니까. 제국들이었으니까. 그들은 테스트를 받아 확진 판정을 받는 것조차 대서특필된다. 어떤 이들은 그런 테스트를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데 말이다. 이들은 조명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제국은 이들에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서민들이야 죽든 말든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직 자신들만 오케이면 된다. 자기들만 조명받으면 된다. 자기들만 병원 가서 테스트받고, 걸리더라도 병원 치료하고, 이제 다 나았네 하며 언론의 플래시를 받으면 된다. 자신들만 이 난국은 잠시 피하면 된다. 아니다. 제국은 이 난국을 또다시 자신들의 배를 불릴 절호의 기회로 삼을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벌써 그런 시도는 시동을 걸었다.
그래도 사태가 사태인지라 뒤통수가 몹시 따가웠는지 미국의 제국들이 서민들을 위해 고작 만들었다는 것이 테스트는 무료로 검사해주겠다는 조치였다. 그러나 걸렸으면 치료는 돈 내고 하란다.(“Coronavirus Tests Are Now Free, but Treatment Could Still Cost You,” New York Times, March 19, 2020). 몇천만 원이 나올지 모르는 병원비를 어찌하라고. 누가 감히 그렇게 하겠는가? 그것은 오히려 서민들을 두 번 울리고 완전히 절망에 빠트리는 것과 같다.(“Why are the rich and famous getting coronavirus tests while we aren’t?,” The Guardian, March 21, 2020). 그리고 그렇게 사태는 늘 과거처럼 변함없이 흘러가면서 미국인의 경제적 불평등은 수명의 불평등으로 고대로 이어진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부자와 빈자의 평균 수명은 10년 이상(남자는 15년, 여자는 10년) 차이가 난다.(“If Americans are better off than a decade ago, why doesn’t it feel that way?,” The Guardian, Nov. 5, 2019). 이것은 어김없이 이번 코로나 사태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슬프게도 돈 앞에서는 수명조차 불공평하다.
참고자료
김광기, 『부자는 어떻게 가난을 만드는가?』(파주: 21세기북스), 2016.
Callahan, David, The Cheating Culture: Why More Americans Are Doing Wrong to Get Ahead (New York: NY: Havest Book, 2004).
Giridharads, Anand, Winners Take All: The Elite Charade of Changing the World (New York, NY: Alfred A. Knopf, 2018).
Milanovic, Branko, Global Inequality: A New Approach for the Age of Globalization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16).
이탈리아 헌법은 각 주의 주 법률에 지방법과 행정 조례에 대한 발안과 레퍼렌덤 권한을 규정할 권리를 부여한다(헌법 제123조 3항). 헌법 1999년 제1호, 2001년 제2호 법률을 근거로 각 주는 주 차원에서 직접민주주의를 더욱 강화시키고 확대할 권한을 얻었다. 이런 개혁으로 이들은 그때까지 아직 헌법에 규정되지 않은 새로운 레퍼렌덤 도구와 참여 방식들을 도입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제118조 4항에도 이렇게 규정되어 있다. “국가, 주regioni, 대도시, 현province및 기초자치단체들comuni은 보완성(중앙 정부는 지방 정부가 행하기 어려운 업무를 보완한다는 원칙─역자 주)의 원칙을 기반으로 전반적인 관심 활동의 전개를 위해 개개인 및 단체로서 시민들의 자율적인 발안을 장려한다.” 통상 법령의 주이건 특별 자치주이건 거의 모든 주들은 레퍼렌덤 설치에 대한 새로운 법률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확대를 위한 초안 작성 단계
이탈리아의 주들은 레퍼렌덤 설치를 시행하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존재하는 권리들의 모체를 따랐다. 국민발안(국민투표에 부칠 권한이 없는)법 제안과 자문형 레퍼렌덤, 특히 전국 차원의 법폐지를 위한 레퍼렌덤과 같은 선상의 주 법률 폐지를 위한 레퍼렌덤 등이 있다. 현재 고전적 형태의 국민발안(제안적 레퍼렌덤, 5장 참조)을 규정할 수도 있겠지만, 발레 다오스타, 사르데냐 및 볼자노 자치주에서만 레퍼렌덤 투표권에 연결된 국민발안을 도입했다. 다른 자치주인 트렌티노는 어떤 명확한 법 제안을 레퍼렌덤 투표에 부칠 권리를 규정하지 않은 채 그저 일반적인 형태의 국민발안만을 도입했다. 시칠리아에서 레퍼렌덤에 관한 주법은(2004년 1항) 제안적 레퍼렌덤을 승인하지 않는다. 아오스타 및 티롤 남부 지방의 모범을 따라 캄파니아는 새로운 법령으로 “법폐지를 위한 레퍼렌덤”을 도입했다.
라치오 주의 2004년 새로운 법령(제62항)에는 국민발안의 법제안 허용이 공고된 후 한 해 안으로 주의회가 이를 심의하지 않는다면, 이는 제안적 레퍼렌덤에 부쳐질 수 있다고 규정한다. 만일 레퍼렌덤 결과가 유권자 과반수가 투표에 참여하여 유효표의 과반수 이상을 얻었다면 그것은 승인을 뜻한다. 그 경우 60일을 넘기지 않고 “의회는 그 법 제안을 검토해야 한다.”
트렌티노 주에서도 이런 형태의 불완전한 제안적 레퍼렌덤 이상으로 발전되지 않았다. “레퍼렌덤이 긍정적인 결과를 얻는다면, 주 정부Giunta 혹은 주 의회Cosiglio는 3개월 안으로 레퍼렌덤 결과의 실행을 위한 발안과 법률 조항을 채택한다”(트렌티노 주 법 제3호/2003년 제16조). 심의 권한이 없는 레퍼렌덤을 말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 주에서 3만 명의 유권자들은 주 의회에 법률 제안을 제출할 수 있다(FVG 주법 제5호/2003년, 제 123조). 이것이 1년 안에 상정될 경우, 레퍼렌덤 투표에 넘겨진다(50% 참여 정족수로). 만일 유권자들의 승인을 받으면 주 의회는 법률 제안을 검토해야 하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사르데냐에서도 주 의회는 국민발안 법률 제안 심의로 제 기능을 다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주 의회의 그런 식의 심의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러므로 국민투표는 심의 효력이 없으며, 모든 결정권이 주 의회의 수장에게 집중된다.
주 라치오,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 및 사르데냐에서 채택된 “제안적 레퍼렌덤”의 모델들은 하나의 제안적 레퍼렌덤 이상으로 “강화된” 국민 입법 발안의 양상을 띤다고 한다. “강화되었다”는 것은 주 의회가 일정 기간 안에 그들의 의사를 표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정 기능이 있는 레퍼렌덤 투표가 아니다. 그러므로 스위스의 모델과는 상당히 다르며, 법적 효력 면에서 심각한 한계를 지닌 모델이다.
현재 주 내부에 국민발안의 허용성을 평가하기 위한 독립적인 기구들도 존재한다(보증 위원회). 그런 방식으로 허용성의 판단은 대의 기구, 곧 정당에서 내리는 대신, 법률가들과 그외 전문가들로 구성된 한 공정한 기구에 양도된다. 이는 직접 민주주의 제도를 강화시키는데, 불안이나 정치적 동요, 실패 등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외적인 경우(사르데냐, 롬바르디아, 에밀리아-로마냐, 토스카나, 발레 다오스타 및 볼자노 주)를 제외하고는 모든 주에 50% 참여 정족수가 그대로 시행되고 있다. 다른 주들에서는 정족수가 35%~45% 사이를 맴돈다. 이런 정족수는 아직 기권 캠페인에서 벗어나기에는 지나치게 높지만 개선된 것은 확실하다.
레퍼렌덤 투표를 요청하기 위해 필요한 서명 인원 기준점은 최소 시칠리아의 0.99%에서 바실리카타에 규정된 최고 10%까지 폭넓은 비율을 보인다. 대체적으로 이 기준점은 유권자의4 % 선이다.
몇몇 주들은 주 법률에 심의 참여의 원형적 도구들 또한 규정해 놓았는데, “공공 조사관”이나 “공공 토론”, 법령의 결정 절차에서 시민들의 “자문 형태”, 입법 절차 중에 자문을 구하거나 정책적 지침을 규정하기 위한 “단체 등록부” 등이 그 도구들이다. 토스카나 주는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장려하고자 “주 차원의 참여를 위한 기관”을 설치했다. 이 방법들은 참여를 돕기 위해 유용하지만, “결정권이 있는” 레퍼렌덤 권한들, 곧 좁은 의미의 직접 민주주의를 대신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모든 형태와 모든 채널의 시민 자문을 활용하여 대의원과 유권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개선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때로 공정하고 올바른 법규를 갖춘 레퍼렌덤 권한을 통해 주권자인 시민들이 바랄 때마다 그들에게 최종 발언권을 주어야 하는 필요 자체를 없애지는 않는다. 이는 모든 차원의 정부에서 유효한 원칙이다.
요컨대, 주법으로 설정된 권한이라는 관점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틀은 전국적 상황에 비해 조금 낫다고 하더라도 아직 그리 안심할 수 있는 사정은 아니다. 그 어떤 주에서도 강력한 형태의 레퍼렌덤 권리와 레퍼렌덤을 위한 새로운 법규를 채택하도록 그들에게 제공된 법적 영역을 전부 활용하지는 못했다. 심지어 70여 년 동안 같은 정당이 지배하는(SVP, 1993년부터는 PD와 연립으로 구성) 볼자노 자치주도, 한 시민 운동에서 제기한 5건의 국민발안 법제안과 두 건의 레퍼렌덤 투표 촉구에도 불구하고, 아직 고답적이고 제한적인 2005년 직접 민주주의에 관한 주법 개혁을 완성하지 못했다.
이런 권리들의 적용 현실은 그러므로 비참한 편이다. 뒤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이탈리아의 주에서 시민들은 이런 권리에 의존하는 예가 극히 드문데, 효과적이고 잘 잘동하는 레퍼렌덤 도구가 없고, 주 차원의 주요 입법권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족수와 다른 실질적 장애물에 좌절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참여권 면에서 실제적으로 가장 발전한 곳의 하나인 볼자노 주에서조차2 001년부터 현재까지 단 세 차례의 투표가 기록되었다. 한 차례는 제안적 레퍼렌덤(2009년, 정족수에 도달하지 못하여 실패), 또 한 차례는 정부 형태에 대한 주 법률 관련 확정적 레퍼렌덤(2014년 법률 기각), 그리고 주 의회에서 반포한 자문형 레퍼렌덤(2016년, 유권자들이 승인한 사안)이다.
부정적 측면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주 법률을 심층 분석하지 않고도 현재 직접민주주의의 주 차원의 법률에서 다양한 결함을 찾아 볼 수 있다.
각 주의 대다수는 아직 제안적 레퍼렌덤, 곧 “고전적” 국민발안을 도입하지 않았다. 이는 정치인들에게 박차를 가하기 위해 시민들의 손에 쥐어진 가속 장치이다. 제안적 레퍼렌덤의 도입은 도로 한가운데 멈춰 서 있으며 잘 규정해 놓은 곳에서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발레다오 스타와 볼자노 주에서 도입한 형태들은 더욱 효과가 큰 반면 트렌티노와 라치오, 사르데냐 및 프리울리 베네치아 쥴리아에서 규정한 것들은 좁은 의미에서 국민발안이 아니다.
참여 정족수는 헌법으로 규정된 의무가 아니지만, 주 차원에서도 계속해서 직접 민주주의 법률을 오염시키고 있다. 단 다섯 주에서만 50%의 정족수에서 근소하게 낮아지는 데 성공했다(롬바르디아 40%, 에밀리아 로마냐와 토스카나 40%, 사르데냐 33.3%). 그러나 33.3%의 정족수도 아직 기권 캠페인을 자극할 만큼 충분히 높다. 주 차원에서 이 권한이 가동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과단성 있는 정당이 레퍼렌덤에서 참여 정족수 폐지를 위해 나서야 할 것이다.
주 정부Giunta에서 승인된 주 법률에 대해서건 행정 법령에 대해서건 그 법이 발효되기 전에 법정法定 발안권이나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이 규정되어 있지 않다. 주 정부는 대규모나 예산도 큰 프로젝트나 공공 사업의 실현에서 점점 더 큰 권력을 지닌다. 그러므로 시민들이 “긴급 제동권”, 곧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 권한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국민투표에서 지나치게 많은 정책적인 사안, 특히 국세-관세 관련 사안들을 배제한다. 게다가 주의 역량은 이미 크게 제한되어 있다.
투표 개시 및 실시 절차 관련 법안들 또한 여전히 뒤쳐져 있다(제도적 정보권, 지출금 상환, 지나치게 형식적인 서명 모음 방법, 부재자 우편 투표 및 전자 투표 등등)
각 주들에는 아직 선택권이 많지 않다
이탈리아 중앙 정부의 법규는 현재 모든 주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재가동할 수 있게 해준다.
레퍼렌덤 도구의 폭을 넓히며, 특히 곧바로 제안적 레퍼렌덤(국민발안)과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을 도입하고, 그렇게 주 혹은 현의 행정부에서 행정 법령의 형태로 결정한 대규모 사업들에 대해 시민들이 의사를 표명할 수 있게 해 주는 헌법 제123조의 의도를 실현 가능하게 만들고,
법정 발안권을 도입하고, 이미 존재하는 법정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을 보완하며,
참여 정족수를 폐지하거나 줄이되, 적어도 덜 치명적인 차원으로 참여 정족수를 줄이고(15~20%까지),
발안이나 레퍼렌덤에 착수하기 위해 필요한 서명 인원수를 낮추고, 참여를 장려하기 위한 모음 방식으로 발안 위원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형사상의 책임하에 그 서명을 공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발안의 주창자들을 위해 보다 공정한 법률과 보다 견고한 보장으로 헌법 제118조의 정신과 의도를 실행에 옮긴다. 지출금 상환, 모든 유권자들에게 정보 소책자를 발송하여 시민들의 정보권 보장, 모두에게 열려있는 전문가 무료 상담 등.
허용성의 판단을 보증 기구에 맡기어 레퍼렌덤 발안 초기에 판단을 하게 하며,
지나치게 많은 문제들을 레퍼렌덤에 부칠 수 있는 사안에서 배제하지 않고,
우편 투표와 전자 투표를 시험하고 인터넷 서명 모음 가능성이 도입되어야 한다. 이는 롬바르디아에서 이미 시행 중이며 2017년 10월 20일의 자문형 레퍼렌덤 시에 적용되었다.
요컨대, 주 차원의 레퍼렌덤 권리의 두 번째 세대 또한 다른 나라들에서 연방이나 지방 단위에서 실시하는 직접 민주주의 형식과 대조해보면, 이용할 수 있는 기관들이나 적용 법령에 관해서나 아직 매우 제한적이다. 주나 자치주Provincia autonoma나 좀 더 앞으로 나아간 곳(아오스타와 볼자노)에서도 국민들은 2003년과 2005년 승인된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제한적인 법들을 넘어서는 데 큰 관심을 보였다. 주 차원의 직접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은데, 그것은 주 정부의 기존 정당에 대한 무관심과 반감 때문이고, 레퍼렌덤 권리를 시행할 수 있게 하는 헌법 및 국가법(L. 352/1970)의 개혁이 부재한 상황에서 근본적인 변혁을 일으킬 수 없는 주 법률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어떻게 도달할 수 있을까? 주에서 공공 여론은 지금까지 이런 종류의 직접 참여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당과 정치적 엘리트 계층은 아직 개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시민들 자신도 아직 지방 정치의 질을 개선시키기 위한 그런 도구들의 잠재력을 깨닫지 못했다. 정치적 참여는 ‘예술을 위한 예술’ 식의 빈말이 아니라 대의원들을 견제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자극하며, 명백히 국민들의 이익에 반하는 정부의 결정을 막는 데 의미가 있다. 얼마나 민주주의가 실천되고 있는가는 시민들 자신이 얼마나 공익을 잘 돌보느냐에 달렸으며, 주와 기초자치단체의 행동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삶의 질 자체이다. 곧 시민들에게 더 큰 권력을 줌으로써, 정치의 ‘성과’가 나아지고 정치인들과 지역 행정 기관의 책임의식이 개선된다. 이탈리아의 주에서는 그러므로 시민 정치 참여권 적용의 제3단계에 착수할 필요가 있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미패권주의자들이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을 제거하고 군사쿠데타를 시도한 몇 번의 공작이 실패하자, 미법무부가 급기야 지난 3월말 마두로를 테러와 마약거래자로 체포명령을 내렸다. 더구나 망명하여 미정보기관의 하수인으로 포섭한 베네수엘라 전직 군장성 알칼레의 이름을 사용하여 마치 베네수엘라 시민이 정당하게 고발한 것처럼 조작되었다.
Nicolas Maduro(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미국시민 여러분께 깊은 애정을 담아 인사를 전하면서, COVID-19의 팬데믹이 창궐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여러분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전념해야 할 미국의 행정부가 베네수엘라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한 몇 번의 사건에 대하여 고발하고자 합니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지난 3월 26일 미행정부는 베네수엘라 공화국의 대통령인 본인, 니콜라스 마두로를 포함하여 정부의 고위 공무원에 대하여 아주 심각한 가해행위(체포명령)를 진행하였습니다.
상기의 가해 행위는 미국의 사법체제가 공식적인 고발을 제기하기도 전에 행하여지면서 그 자체가 불법적일 뿐만 아니라, 마약거래와 테러라는 거짓 고발을 조작하고 정당한 베네수엘라 시민의 권위로 제기된 사법 행위로 위장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시도는 대통령인 본인과 고위공직자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는 자에게 국제적인 보상이라는 황당한 제안을 포함하고 있기에, 저는 미국 법무부의 고발 배후에 있는 사악한 음모를 여러분께 책임지고 고발해야 한다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가해가 있기 하루 전인 3월 25일 베네수엘라 공화국은 ‘대통령과 가족 그리고 고위직 공무원들을 제거하려는 공작이 콜럼비아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여론을 향해 공개적으로 비난하였으며 동시에 베네수엘라 전직 장군이었던 클리버 알칼레(Cliver Alcalae)가 군사적 공작의 책임자임을 고발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비난은, 베네수엘라 국경 근처인 콜롬비아 북쪽의 도로가 통제되고 해당국의 경찰병력이 민간차량에 전쟁무기들을 장착한 상황을 확인한 이후, 분명한 책임을 지고 진행한 것입니다.
조사에 의하면, 상기 지역에 대한 군사적 장악은 콜롬비아 지역 내에 있는 캠프에서 훈련된 베네수엘라 전직 군인들과 콜롬비아 군대 그리고 용병들을 위해 기획된 매우 정교한 무기보급작전의 일환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3월 26일 상기에 언급한 클레버 알칼레는 콜롬비아의 바란킬라라는 도시에 머물면서 콜롬비아의미디어 매체를 통해 자신의 군사적 공작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작전의 책임자이고 군사적 무기는 후안 콰이도의 지시에 의해 구매된 것임을 고백하였습니다. 공화국의 국회의원인 콰이도는 스스로 공화국의 대통령이라고 주장하면서 조국 안에서 워싱턴의 협력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역시 군사무기는 공화국 정부와 조직의 주요 인사들을 암살하려는 군사작전과 쿠데타를 진행하려는 목적으로 구입한 것임을 확인하였습니다.
알칼레는 무기구매 계약에 콜롬비아 정부의 확인 아래 진행되었으며, 자신과 콰이도, 미국인 고문, 콜롬비아 대통령 이반 듀께(Ivan Duque)의 정치고문인 후안 렌돈 등이 공동 서명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러한 고백에 직면하여 미국 행정부는 제 서신의 초두에 언급한 비상식적인 고발을 공개적으로 진행하였고, 어처구니 없게도 알칼레가 미국이 고용한 용병이 아니라 마치 베네수엘라의 합법적인 시민인 것처럼 고발인에 그의 이름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조국에 테러를 가하도록 미국에 의해 매수된 인물입니다.
상기의 사실에 더 이상의 증거를 언급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알카레가 콜럼비아 보안군대에 체포된 이후 미국의 정부기관에 즉각적으로 투항한 것으로 추정되며, 체포된 자가 수갑도 차지 않은 채 체포한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며, 곧바로 VIP 항공편으로 미국으로 이송되었던 사실이 있습니다. 이는 사전에 기획된 각본에 따라 해당 인물을 미국의 대리인으로 삼고자 했던 것임을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실패한 군사작전은 원래 모든 베네수엘라 시민들이 COVID-19 팬데믹과 싸우고 있는 시점인 지난달 말에 실시하려고 계획되었던 점을 상기해야 합니다. 모든 인류가 팬데믹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때를 악용해서 말입니다.
한편 저의 조국은 팬데믹과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데, 감염의 곡선이 완만해지고 있으며, 보건의 규칙을 준수하도록 강제하는 한편 대규모의 방역격리를 유지하면서, 아주 적은 수의 확진자와 사망자만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에 근거하여 베네수엘라의 볼리비안 정부는 전세계의 정치적 기구와 사회적 운동단체에서 활동하는 모든 친구들에게 도날드 트럼프 행정부가 저지르는 무자비하고 범죄적인 조처들에 대해 경고를 보내고자 합니다.
그들은 COVID-19가 창궐하여 미국인들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역내에 있는 국가들의 주권을 침해하는 공작, 특히나 베네수엘라 국민들을 위해(危害)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팬데믹이라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국행정부는 자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국제적인 협력에는 관심이 없고, 의약품과 의료장비 그리고 식량 공급을 차단하는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제재를 중단하거나 유연하게 완화하라는 국제사회의 요구를 거절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제재의 강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동시에 북미지역에서 거주하면서 경제와 보건의 위기에 처한 베네수엘라 시민들을 본국으로 송환하려는 인도적인 목적의 항공기 운항조차도 금지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심각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는 전례없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모든 국가들과 관계를 존중하고 상호협력을 유지할 것과, COVID-19와 같은 상황에서, 서로의 차이는 보류하고 각국의 정부들과 책임을 함께 공유할 것을 확고한 의지로 천명하고자 합니다.
매우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미국시민 여러분들께 비상식적이고 악의적인 고발행위에 대한 저의 호소에 지지를 요청합니다. 이러한 고발 행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무차별적으로 행하여진 역겨운 매카시즘의 재탕으로, 당시에 정적에 대하여 무조건 공산주의자로 몰아쳤듯이, 이번에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테리리스트 또는 마약 밀거래자라는 구실로 상대방을 제거하려는 수작인 것입니다.
현재의 베네수엘라에 가하는 비열한 가해행위를 비난하고 무력화하는 것은 미래에 워싱턴이 다른 민족과 정부에 대해 유사한 공작을 시도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전세계의 친구들이여, 당신들에게 확언하건대, 베네수엘라는 평화를 위해 굳건히 투쟁할 것이며, 어떠한 조건에서도 우리가 지난 200년 동안 이룩해온 주권과 독립의 길을 방해하는 제국주의자들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이들의 공작에도 불구하고 COVID-19 팬데믹과 직면하여 국민들의 생명과 건간을 지켜나가는 신성한 의무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서신을 통해 저와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팬데믹으로 인해 현재 심각한 고통을 받는 모든 세계시민들에게 연대를 보냅니다. 우리가 겪어온 모든 고난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오로지 함께 협력할 때만이 앞으로 전진할 수 있습니다. 자기우선주의와 개인적 이기주의를 추구하는 정치와 경제 모델은 현재의 상황에 대처할 수 없는 실패작임이 분명해 졌습니다. 우리 다 함께 정의와 사회적 평등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굳건하게 전진합시다. 인류의 행복과 진실이 우리의 행동이 지향하는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베네수엘라와 많은 나라들에게 가해진 (미제국주의) 범죄적 제제에 대해 비난을 가하면서, 저의 조국과 인민들에게 끊임없이 보내주는 여러분의 연대를 소중히 여깁니다. 이번 서신을 통해 저의 존경과 애정을 다시 한번 확인을 드리며, 희망과 존엄이 넘치는 미래를 만들어 가는 노력에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피케티의 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 역시 대단한 논쟁을 불러오고 있다. 한마디로 99%의 일반시민과 미래세대를 위한 정치경제학자임을 분명히 하며, 이번 신작에서도 자신의 기본입장인 일정액 이상의 자산가에 대하여 국제공조적인 강력한 누진과세를 주장하고 있으며, 이렇게 확보한 재정을 기반으로 젊은 세대에게 기본자산(프랑스 경우, 1억5 천만원)을 제공할 것을 제안하고 나섰다.
이에 깜짝 놀란 자산가 계급은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할 이데올로거를 물색하기 시작하였고 FT 지면에 비판적 서평을 제공한 라구람 라잔이 대표적 인물이다. ‘99% 대 1%’를 위한 경제(조세)논쟁이 시작된 셈이며, COVID-19 이후 경제질서의 재구성에 핵심적 주제가 될 전망이다.
토마 피케티 (Thomas Piketty)가 저술한 영향력 있는 2013년 저서 «21세기 자본»의 팬들은 오래 기다려온 속편에 열광할 것이다. 속편은 훨씬 묵직하고 (말 그대로 영어판은 1000페이지 이상으로 구성되었다), 엄청난 학문적 내용을 담으면서 현실 세계를 향한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저서는 불평등 타개를 위한 아이티(Haitian)혁명과 같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봉기에 대해 매혹적으로 설명하고 프랑스 혁명과 같이 잘 알려진 사건에 대해도 흥미로운 세부 사항을 담았다.
불평등 해소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국가를 향해 대규모 재분배 프로그램을 실행하도록 요구를 담고 있는 피켓티의 신작은 그를 따르는 신봉자에게 새로운 내용을 제시한다. «자본과 이데올로기»에 넘쳐나는 것은 우선 그의 야심이다. 피케티는 노예제도, 봉건제도, 식민주의, 카스트와 같은 시대에 걸친 사회 제도를 ‘불평등 레짐’이라 총칭한다.
피케티가 위에 언급한 역사적 제도의 주요 특성을 어찌 평가하는 지를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는 여러 가지 경우의 역사적 자료를 활용하여 수입 및 자산의 재분배를 조사하며 오늘날 상황이 과거의 혐오스러운 사건과 얼마나 유사한지 보여준다. 우리가 주변 상황에 대해 우려하지 않고 있다면 이제라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확고한 암시를 제시한다.
피케티는 마르크스(Marx)와 달리 사회 구조(상이한 집단의 재산 소유권 및 경제적 지분)가 생산 기술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마르크스는 쟁기를 통해 봉건제 영지가 가능했고 증기 기관이 발명됨으로써 자본주의 시대의 공장이 운영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피케티는, 대신에, 재산권 및 재산권 분배의 특징은 주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피케티의 주장은 일종의 대중세뇌(brainwashing)를 시사하는 듯 한 이중적 표현이다.
분명히 봉건 유럽의 성직자, 인도의 브라만 및 영국 국교회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사회 내에서 최고 계층을 차지하기 위해 대중의 생각들을 조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산 및 전쟁 기술보다 이데올로기가 권력과 지위를 더욱 보편적으로 결정했다는 점은 불분명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본 저서가 강조하는 지점은 분명하다. 만약 불평등이 주로 이데올로기에서 기인한다면 개혁가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바꿔야 한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 유권자들은 표면상 민주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점차 증가하는 불평등 수준을 억제하기 위해 왜 노력하지 않는가?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노동계층은 자신들의 진정한 이해 관계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허위의식(계급과 계급의식)’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피케티는 직접적으로 해당 질문을 다루지 않지만 평범한 대답을 넌지시 던진다. 대중에게 단지 구체적 자료가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남긴다. 예를 들어 그는 1901년 프랑스에서 누진상속세가 공표된 이후 발표된 통계가 “’평등주의적 프랑스’라는 관념 약화”에 도움이 되었다는 주장에 논쟁을 제기한다.
그는 “프랑스는 진보의 반대자들이 묘사하는 ‘소규모 자작농의 국가’와 전혀 비슷하지 않다”는 점을 시사했다. 피케티는 진정한 경제 불평등 상태를 문서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고, 이런 증거를 통해 유권자들의 변화를 촉구하고 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변화를 추진해야 하는가? 피케티는 일상적 수입, 소유적 자산, 환경오염의 탄소배출에 대해 고율의 누진세를 요구한다. 이후에도 누군가가 부를 계속 유지한다면 분명히 상속에 따른 재산 덕분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공산주의에 현혹되지 않았으며 국가가 모든 재산을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중소기업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주장한다. 피케티는 성공한 사업가가 지나친 부를 축적하지 않고 납세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성공의 길을 열어주는 ‘잠정적(임시) 소유권’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정부는 재정수입을 활용하여 더욱 평등한 교육 체계를 만들고, 모든 젊은 계층이 학업에 더욱 매진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기본적 자본을 제공하며, 모든 시민들이 세후 평균소득의 60%에 달하는 최저 기본소득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말로, 그는 우리에게 유토피아의 꿈같은 사회를 그려 준다. 이는 진지한 안건이며 전 세계의 상당 부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또한, 최근 이코노미스트/유고브의 여론 조사에서는 미국에서 30세 이하의 민주당원 중 60 퍼센트가 버니 샌더스 (Bernie Sanders) 또는 엘리자베스 워렌 (Elizabeth Warren)을 지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분석의 결과는 상당히 잘못되게 유도되었다. 피케티의 자료 해석은 의문스러우며, 그가 제시한 방안들은 번영을 추구하는 과정에 훨씬 방해가 될 수 있다. 더욱이 그는 더욱 공평하고 민주적인 참여를 원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세계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시위 운동을 무시하라며 거대 엘리트 계층의 중앙집권적 계획을 추진한다.
먼저 자료분석부터 시작한 피케티는 공동연구자들과 함께 수입 및 자산에 대해 자료를 수집해왔다. 하지만 어떤 결론적 추론에도 불구하고 사전적인 강력한 가정은 여전히 필요하다. 피케티는 본 저서와 이전 저서에서 오늘날 부유층은 대개 유한계급이라고 가정한다. 마치 엄청난 금융 재산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수익을 얻었으나 결국 일부 재산의 극히 일부에 대해서만 세금을 낸 리릴안 베탕쿠르 (Liliane Bettencourt) 화장품 회사 로레알의 상속인과 같다고 말이다. 그녀와 같은 사람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일이 어떻게 해로울 수 있겠는가?(당연한 일이다).
피케티는 혁신적 평등주의의 꿈을 포기했기 때문에 소련 공산주의가 붕괴했다고 탓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편향적인 시선일 뿐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베탕쿠르는 오늘날의 부유층을 대표하지 않으며 특히 미국의 부유층과 다르다. 미국 상위 계층의 소득은 대부분 레이건 (Reagan) 대통령의 세금인하 이후인 1980년대에 증가했다.
필자의 동료 에릭즈윅 (Eric Zwick) 및 공동 저자들이 전미 경제연구소에서 발간한 논문에서 밝혔듯 사업가들은 공동경영과 같은 기업구조로 옮겨가고 있는데, 이들의 급여소득이 현재의 이윤 또는 자본금 이익률로 오해의 소지가 있게 기술되어 있었다. 그들은 해당 부분을 수정하면서 오늘날 미국의 최고 소득자들은 변호사, 의사, 자동차 딜러와 같이 자수성가 형 ‘일하는 부자’이고 신체적 노동이나 자본 수익을 통하지 않고 자신들의 기술을 통해 수입을 벌어들인다는 사실을 밝혔다.
만약 오늘날 부자 계층에게 피케티가 원하는 만큼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세금을 부과하면, 노력으로 형성되는 생산활동 및 조세 수입에 상당히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부유한 기업가들이 자신들의 부를 스스로 처분할 통제권을 지니면, 이미 보여준 바 있듯 자신들의 자산을 좋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한 가지 장점이 있다.
검증되지 않은 기업가들에게 부를 물려주면 얼마나 많은 재원이 낭비될까? 잠정적 소유권은 사회의 생산성 제고에 매우 해로울지도 모른다. 피케티는 유럽과 미국이 높은 누진세도 불구하고 강력한 성장을 누렸던 1950년에서 1980년 사이의 화려한 전후 시기를 가리키며 그러한 주장을 일축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바램이 이루어질 수 있는 증거가 될까? 타일러 코웬(Tyler Cowen)과 로버트 고든(Robert Gordon)이 주장해 왔듯이 전쟁 이후 급격한 성장은 폭격을 입은 도시의 재건, 대공황 이후 막혔던 무역의 재개, 여성의 노동력 참여 증가와 같은 특별한 요소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경우는 반복될 가능성이 낮고 그것들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해당 사건을 통해 강력한 교훈을 얻어내기란 어렵다.
뿐만 아니라 전후 시절이 그렇게 좋았다면 유권자들은 왜 대처와 레이건의 진보적 정책을 수용함으로써 그 시기를 종결시켰으며 프랑수아 미테랑 (François Mitterrand) 대통령은 1981년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불과 몇 년 만에 사회주의 안건을 포기했을까? 피케티는 소련 공산주의의 붕괴의 원인이 혁신적 평등주의의 꿈을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편향적 사고일 뿐이다. 소련이 흔들리기 훨씬 전부터 영국 및 미국 내에서는 높은 세금과 큰 정부를 대한 환멸이 팽배했다. 이에 대해 피케티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절세 및 탈세를 막아야할 정권시절에 국제조세제도를 강구하지 못했다며 비난한다.
그의 주장은 이 점에 더욱 강경할 지 모른다. 피케티가 선호하는 ‘매우 높은 수준’ 고액의 세금시기 (1950-1979)에는 실제로 미국에서 징수한 개인 소득세가 GDP의 7.6 퍼센트 정도로 세금이 낮아진 것으로 추정되는 반면에 그가 탐탁치 않게 여기는 1980-2018년 기간에는 평균이 더욱 높은 7.9 퍼센트로 나왔다.
피케티는 오늘날 국제적 합의 및 나은 정보를 통해 세금의 허점을 없앨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당시 허점이 만연했다면 높은 누진세가 강력한 성장과 병행한다는 그의 주장과 맞지 않는다. 1950년에서 1979년 사이 높은 수준의 세금 시기에 사실 아무도 해당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다면 실제로 높은 세금을 시도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과세 및 재분배를 향한 피케티의 일관된 집념은 그의 전반적인 이상을 흐리게 한다. 조세정책은 불평등(특히 탈세)의 유일한 원인이 되지 못한다. 무역, 기술, 승자독식 시장, 독점 규제 등 분야에서 불평등을 기술하는 그의 의견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그의 설명에서조차 정부가 더욱 많이 재정을 지출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피케티는 양질의 교육을 평등하게 받을 수 있어야 하는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최고의 교사들이 낙후된 지역 내의 문제학교를 기피하는 국립 중앙집중식 프랑스 제도를 비난한다. 아주 부유한 계층에게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제공되는 충분한 교육자원이 문제를 바꿀 수 있을까? 중산층 교육행정가들은 계급적 이해관계라는 관점을 따르지 않고 더욱 빈곤한 학군보다 그들이 선호하는 중산층 학군에 더 많은 재정 자원을 할당하는가?
마지막으로, 참여사회주의라는 피케티의 매혹적인 이상에는 근본적인 모순이 존재한다. 즉, 약간의 민주주의와 약간의 평등주의를 선택의 메뉴에서 고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유럽에서 이러한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더욱 큰 강제성이 필요할 것이라고 인정한다. 유럽연합으로 형성된 초국가집행 단위에서는 개별국가의 거부권이 없고, 모든 회원 국가에 공통된 재정준칙이 적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유계층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
그렇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민주적이면서도 중앙집권화 될 것이며 다수에 대한 독재행위가 도덕적으로 간주될 수 있다. 사람들 대부분은 미래에 대한 통제에 대한 판단력이 거의 없을 것이다. 많은 영국 국민들은 바로 이러한 유럽의 관점에서 브렉시트 투표를 거부했다. 더욱 나쁜 것은 스위스 등 유럽연합의 외부에 있는 국가들이 피케티가 구상하는 유럽 연합으로 이루어진 초국가의 정책에 반대한다면 그는 해당 국가들에게 인정사정 없는 제재로 위협할 것을 제안한다. 물론 오믈렛을 만들려면 계란을 깨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나폴레옹 (Napoleon)이나 로베스피에르 (Robespierre)에 해당하는 말이지 사회 민주주의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오늘날 불평등은 현실적인 문제이지만 단순히 수입 또는 자산에 대한 불평등뿐만 아니라 기회, 능력에 대한 접근, 지역에 대한 불평등이다. 부유층을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뒤쳐진 계층이 새로운 기회를 찾도록 돕기 위해 더 많은 지출 및 세금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를 위해서는 신빙성이 떨어지는 오래된 정책이 아닌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 본서에 쓰여진 많은 학문적 성과를 읽고 배워라. 하지만 해결책을 찾으려면 더욱 회의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자본과 이데올로기» 저자: 토마피케티 (Thomas Piketty), 역자: 아서 골드해머 (Arthur Goldhammer), Belknap Press 펴냄, 권장소매가: £31.95/$39.95, 1104 페이지
코로나바이러스의 방지용으로 의료자재들에 대한 국제적 수요가 폭증하는 가운데, 독일 경찰조직에 배달되어야 할 마스크 선적물량이 미국으로 빼돌려지고 다른 국가들이 입찰에 응하지 못하도록 고가의 가격으로 투찰하는 등 미국의 해적 행위에 대한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베를린 당국에 의하면, 독일경찰조직을 위해 주문되었던 N95의 마스크 20만 장이 태국에서 항공편 환적 중에 미국으로 빼돌려 졌다고 한다.
베를린 주 내무장관 Andreas Geisel은 이러한 행위를 ‘현대판 해적질’이라고 비난하면서 독일정부가 워싱턴에 국제적 교역질서를 준수하도록 요청할 것을 청원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무리 위기적 상황이라 하더라도 대서양 협력국들 사이에 서부개척 시기에나 있을 법한 강도 짓을 해서는 안된다.”
독일 언론들은 해당 마스크의 공급사인 미국 3M이 중국에서 생산한 것으로 보도하고 있으나, 정작 공급자인 3M은 베를린 경찰에게서 주문을 받은 기록이 없으며 상기 기사의 출처가 어디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독일 측은 의료자재들이 부족해지자, 미국 행정부가 항상 그랬듯이, 시장에서 마음대로 미국의 힘을 마구 휘두르며 국가 간에 마구잡이 경쟁을 야기시키고 있다며 일치된 목소리로 비판하고 나섰다.
파리를 포함하는 프랑스의 핵심지역 Île-de-France의 주요 책임자인 Valérie Pécresse는 미국이 야기한 마스크 쟁탈싸움을 ‘보물찾기’라고 이름 지었다.
“관행상 우리가 구매가능한 마스크 물량을 확보했는데도 미국인들이 – 나는 미국정부라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 (고가의 가격으로) 투찰하면서 우리를 배제시켰다. 미국인들은 싯가의 3배를 제시하였고 그것도 현장에 직불하겠다고 제안하였다. 우리는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투찰할 수 없었고, 지불조건도 인수 후 품질검사가 끝난 후에나 가능하다. 결국 우리는 응찰에 실패하였다”고 현지 TV 방송에서 이야기하였다.
그녀는 계속해서 프랑스 다른 지역책임자들의 증언을 보태어 다음과 같이 이어갔다 “확인할 수 없는 미국 구매자들이 마스크 물량, 그것도 겉포장에 ‘프랑스’이라고 인쇄된 물량들에 대해 투매를 하였다.”
이미 COVID-19가 심각하게 감염된 지역인 대서부(Grand Est)지역 의회의 의장인 Jean Rottner 박사도 RTL라디오 방송에 나와 말한다 “우리는 반드시 싸워야 한다” 그는 연이어 트위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빼돌려진 2백만 장의 마스크는 프랑스가 공식적으로 주문하지는 않았지만 과거의 관행상 우리에게 양도되어야만 했다” 프랑스 미디어들은 이를 ‘마스크 전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미국회사인 3M사는 일반의료용 마스크보다 보호기능이 뛰어난 호흡질환용 마스크(respirator)인 N95를 중국 포함하여 여러 해외 생산기지에서 생산해 왔는데, 지난 금요일 트럼프 행정부에게서 미국향(向) 선적물량을 대거 증가하도록 요구를 받았으며 중국정부로부터 1천만 장의 마스크 선적에 대해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동시에 3M은 미국 행정당국으로부터 미국 내에서 생산하는 마스크를 캐나다와 남미지역으로 수출할 수 없다는 통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당 회사는 이러한 요구는 의료 분야 종사자들에 필요한 공급물량조차 중지하라는 것으로 인도주의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해당국가들로부터 보복조치를 당하는 불이익을 발생시킬 것을 경고했다.
“만약 이런 일이 강행된다면, 결국은 미국 내 공급할 수 있는 호흡질환용 마스크 공급량이 줄어들게 될 것이고, 이는 우리나 행정당국이 추구하는 것과 배치되는 일이다” 라고 진술했다.
캐나다 수상인 Justin Trudeau 역시 미국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며, 미국 역시 캐나다로부터 의료자재를 공급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마스크와 의료자재들의 쟁탈전에는 미국은 매우 유리한 장점을 갖고 있는데, 항공화물 수송능력이 중국에 비해 3배나 되고 연방과 주정부 그리고 민간 수요에 대응하는 수많은 수입업체들이 상하이에서 활동 중에 있다.
상하이에서 활동 중인 무역상인 Michael Crotty은 뉴욕 타임즈에게 ‘중국의 생산공장들은 이런 전쟁상황에서 최고가를 지불하는 고객을 선호한다며, 이런 기회(초과이익을 가질)는 흔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친분 관계가 때때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억만장자인 Robert Kraft는 매세츄세스 주지사인 Charlie Baker에게 보잉 767기를 빌려주어 마스크 1.2백만 장과 의료보호장구들을 매세츄세스로 항공편으로 운송하도록 도왔다.
이 항공기는 뉴잉글랜드의 영웅(Patriot)인 농구팀의 전용으로 구입한 두 대의 비행기 중 하나이며, 뉴욕에 있는 중국 영사 Huang Ping의 도움을 받아 주말에도 영사관을 열어 필요한 절차와 서류를 갖출 수 있었고, 심천 공항에서 승무원들이 입국절차를 생략한 채 비행기에 대기하고 있는 상태에서 3시간 만에 화물적재가 이루어졌고 단 3분만에 이륙허가가 떨어졌다.
공화당 소속의 Baker 주지사는 도착한 비행기 앞에서 감동적으로 울먹이며 말했다 “이번 의료보호장구(gear)는 대단히 특별합니다. 이런 보호장구들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힘들고 도전적인 일이라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닙니다. 저는 현장에서 일하는 의료진과 환자들을 지켜주는 보호장구들을 구입하는 특별한 노력을 계속할 것입니다. 점점 더 많은 물량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처럼 미국의 여러 주정부들과 연방정부는 각자 장비들을 구입하는데 치열한 경쟁을 벌리고 있다. 뉴욕 주지사인 Andrew Cuomo는 ‘마치 50 개 주정부가 e-Bay에서 서로 먼저 물품을 구매하려고 싸움질을 하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트럼프가 자신의 정치적 선호에 따라 자신이 높이 평가하는 주를 우선으로 지원할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각 주지사들은 연방정부의 재고가 급속히 소진되는 것을 가만히 지켜만 볼 수가 없게 되었다. Baker주지사는 트럼프와 통화에서 아래와 같이 불평하였다 “세 번의 좋은 물량 기회 모두, 연방정부에게 선수(先手)를 놓쳤다. 만약 누군가 물량을 가지고 있고 당신(연방정부)과 나(매세츄세스 주정부)사이에 판매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매번 놓칠 수 밖에 없다”. 이후 트럼프가 정부 간에 충돌이 생기면 연방정부가 응찰을 포기하라고 말하기는 했다.
미 연방정부의 비상관리국(Emergency Management Agency)이 개입하여 미국 구매업자들 간의 싸움을 조정하고는 있지만 분배의 네트워크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못하고, 오히려 민간업체들이 더 잘할 것이라고 변명을 대고 있는 실정이다. ‘연방정부는 의료자재들의 수출을 금지하는 것을 포함하여 자재수급을 비공식적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다.
브라질 역시 중국으로부터 의로보호 장구를 구매하려 하였지만 실패하였다고 밝혔다. 브라질 보건장관 Luiz Henrique Mandetta은 “고가응찰이라는 문제가 개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4월초 현재 미국은 세계에서 제일 많은 25만 명의 확진자와 6천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마스크 등 주요한 보호장구의 물량확보가 절대적인 상황이다.
출처: 영국 가디안 (The Guardian)
<관련 논평>
현대판 해적질로 미국의 지도력이 침몰하고 있다
최근 독일 당국은 독일경찰조직을 위해 주문한 20만장의 마스크가 태국에서 항공화물 환적 과정에서 고가로 투찰한 조직에 의해 미국으로 빼돌려 졌다고 공개적으로 미국을 고발하였다. 이 뉴스는 최근에 벌어진 여러 사건 중 하나로, 거래 관행상 공급이 예정되었던 의료자재들이 워싱턴에 의해 싯가의 3-4 배에 해당하는 고가로 투찰(投札)하면서 마지막 순간에 행선지가 바뀐 사례들에 대해 비판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피해를 본 국가군에는 캐나다와 프랑스가 포함되어 있다. 캐나다 수상인 트뤼도는 이를 매우 염려스러운 사태로 받아들인다고 말하면서 캐나다에 할당된 물량은 반드시 캐나다로 반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프랑스의 로트너 박사는 미국인들이 마지막 순간 응찰에 가담하여 3-4배 가격으로 그것도 현장에서 현금을 지급하면서 우리의 주문량을 빼돌리고 있다고 불평했다.
COVID-19 확진자가 수십 만 명에 달하면서, 미국은 이제 바이러스 감염의 중심국가가 되었고, 사전의 준비가 없었던 탓에 여러 주정부들이 갑자기 의료자재 구매에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이런 상황에 이르자, 세계 지도국가로서 자신감을 보여 왔던 미국은 자국 상황에 대해 적정하게 대처하기는커녕, 비윤리적인 행태로 시장을 교란시키며 동맹들을 어려움에 빠뜨리고 있다.
미국은 건국이래 수많은 위기에 직면해 왔지만, 이번 COVID-19 돌출과 같이 충격적인 사태를 맞이해본 적이 없는 듯 하다. 과장된 말이 아니다. 지난 100년을 돌이켜 보아도, 대불황과 제2차 세계대전, 진주만 기습, 소련과 핵전쟁 대치 그리고 9/11 사태 등을 겪어 왔지만 이번 COVID-19 사태처럼 미국 내부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명성에 먹칠을 하며 제국이 무릎을 끊게 한 일은 일찍이 없었다.
국가경제가 이처럼 절단이 난 적도 없으며, 4월초 기준으로 25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했고 10만 명이상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에 따라, 주정부 단위로 제각각 의료자재의 부족을 해결하는 일에 절망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지난 세기 미국은 여러 번에 걸쳐 유럽의 동맹들을 지원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껴 왔으나, 이번처럼 국가가 진흙탕 속에 처해져, 자신을 위한 생존의 정치(survival politics)라는 긴박한 절망감으로 다른 국가들을 어려움에 빠트리는 적이 없었다. 미국의 주정부들이 시장 가격의 4배로 투찰(投札)하며 마스크, 호흡기 등 의료자제를 구매하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는 것은 미국 전통의 신뢰, 안정 또는 힘의 정치 모습이 아니다.
반대로 이는 재앙이라는 신호이다. 재앙이라는 표현은 가볍게 사용할 단어가 아니지만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불가피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초기 대응은 경멸스러울 만큼 무능하고 사전준비가 없었으며, 그 결과로 이 세계 어느 지역보다 심각한 전염상태를 보이고 있다. 최상위 지도력의 부재와 주정부 단위 간에 진행되는 불협화음은 국가의 대처능력을 박살내고 국가단위의 전략도 부재하여, 따라서 코로나바이러스는 더욱 창궐하고 있다. 가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몽땅 잘못 돌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 결과로 단순히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까지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현재 미국은 국제적 현안에 대해 동맹들을 안심시키고 지원하는 지도적 국가로서 역할을 하기는커녕, 괴팍스럽고 억척스럽게 동맹들을 어려움에 빠트리고 있다. 더구나 이런 상황이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유럽의 동맹들이 미합중국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워싱턴 자체가 대응과정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커다란 부채를 짊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상황이 트럼프 대통령이 추구해온 정책인 ‘America First’이란 독트린과 뒤섞이면서, 미국은 유럽을 단순히 연대의 파트너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목표를 추구하는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제 유럽대륙의 국가들은 워싱턴과의 관계가 현재의 상황이 종료되면 이전으로 돌아 갈수 있다고 믿지 않게(doubtful) 되었고, COVID-19의 사태는 미국과 ‘유럽 또는 타동맹’ 간의 관계를 ‘America First’ 에서 ‘America Only’로 빠져들게 하였다.
출처: CGTN
Tom Fowdy
영국 Durrham 과 Oxford 대학에서 국제관계 정치학을 전공했고 세계주요 언론에 영국, 미국, 중국 그리고 북한에 관련한 칼럼을 쓰는 자유기고가
한국사회의 새로운 전환을 위한 담론을 실천하고 있는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이래경 이사장이 다른백년 홈페이지에 ‘기획칼럼-이래경의 제3섹터 경제론’이라는 이름으로 1년 반 동안 연재한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 책 『시민주권 시대의 정치경제론』은 촛불혁명 이후 한국 사회의 로드맵을 제안하는 내용이다. 격변과 전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탐욕적 시장경제의 폐해를 극복하고, 참여와 혁신 그리고 연대에 기초한 시민경제로 전환하는 로드맵은 저자 나름의 ‘해방과 자유의 논리’이다.
저자가 2018년에서 2019년 동안 연재한 ‘제3섹터 경제론’의 토대는 촛불혁명이었다. 촛불혁명은 기득권에 포획되어 박제화 된 형식적 민주 제도와 절차의 한계를 뛰어넘어 시민주권과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요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사회의 성찰과 새로운 좌표’라는 주제를 ‘제3섹터 경제론’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하면서 저자는 촛불혁명의 의미를 반추하고, 시장과 공공의 영역에서만 바라보고 해석해 왔던 기존의 경제론을 시민의 영역, 좀 더 구체적으로는 ‘시민주권과 시민권력’의 관점에서 재구성을 시도했다.
저자에 따르면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 해결의 핵심은 제2섹터인 시장을 중심으로 제1섹터인 공공영역과 제3섹터 부문을 종속적으로 연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각각의 역할로 분리시켜 상호보완적이며 병렬적으로 각자의 역할을 맡도록 하면서 궁극적으로 제3섹터의 몸집을 키워나가는 데 있다. 정부는 축적된 과학기술과 지식을 효율적으로 운용하여 산출된 시장경제의 성과를 제3섹터의 영역으로 적정하게 옮겨 나르는 양수(PUMPING)의 몫을 담당해야 한다. 즉 미래의 무한한 일자리의 보고인 제3섹터 영역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이것이 저자의 문제의식을 함축한 ‘제3섹터 경제론’의 핵심이다.
출판사 서평
촛불혁명 이후 정치적 영역에서 직접민주주의를 통한 시민권력의 실현은 한국사회의 역사적 이정표이다. 저자는 책에서 시민권력을 위한 물적 기반의 재구성을 위하여 조세정책의 양수역할과 사회적 경제의 실천을 통한 삼투막 기능을 제안한다. ‘정부에 의한 양수와 삼투막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며 강화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12장 ‘조세개혁과 사회적 상속에 대하여’, 13장 ‘사회적 혁신과 전환을 위한 로드맵’, 14장 ‘협력과 공유의 사회를 꿈꾸며’ 등에 잘 나타나 있다.
한편 저자는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모든 시민의 존엄과 탁월성을 구현하는 기본소득과 기본자산 및 선택적 복지청구권 도입을 주장한다. 나아가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라는 기존 경제학의 이론적 허구를 폭로하면서, 역사적 사회적 선택적 그리고 시천주의 존재로서 인간이 지닌 가능성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인간 본연의 모습에 기초한 사회주의를 시원적으로 고민했던 사를 푸리에와 이를 실현하려 했던 로버트 오웬, 그리고 20세기 일본 시민사회의 전설로 남아 있는 가가와 도요히코라는 인물 등을 2장 ‘인간품성에 대한 재발견’, 4장 ‘형제애적 실천에 대하여’ 등에서 살펴보고, 한국인들의 혈통 속에 흐르는 공동체적 유전인자 밈과 풍속을 5장 ‘한국역사에서 배우는 향촌의 자치운동’에서 조명하고 있다. 또한 명백하게 한계에 도달한 자본제적 시장경제의 문제점과 성격을 고발하고 대안을 담은 내용을 3장 ‘자유주의에 대한 성찰과 비판’, 6장 ‘사유재, 공유재 및 관계재 그리고 행복’, 7장 ‘길 잃은 자본주의 위기에 대응하는 다양한 흐름’, 8장 ‘자본의 탐욕에 갇혀 있는 기업사회 비판’ 그리고 9장 ‘시장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해석을 위하여’에 담았다.
모든 것은 정치로 통하고 정치에서 결정된다는 말이 있듯이, 현재 한국사회 현안의 모든 근원은 정치제도와 절차적 과정의 결함에 있으며, 이를 직업적으로 다루고 있는 정치인들이 일차적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11장 ’한국사회,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 15장 ‘행정사법관료는 공복인가 관비인가’는 적폐가 청산되지 못한 역사적 한계와 제도의 결함 뒤에 숨어 기회주의적 행위를 일상적 관행으로 삼아온 행정사법 관료제의 폐해를 지적하는 글이다. 저자는 국회 구성에 있어서 100% 연동비례제, 시민소환제 및 시민발안과 연동된 국민투표 등 직접민주제 도입은 촛불시민혁명 이후 이제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정신이 되고 있다고 확신한다.
인간다움을 보장하는 최저임금제와 노동시간 제한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며, 한국 경제 규모에 걸맞는 사회안전망이 구축되어야 마땅하다. 이는 현대국가에 있어 정언적 의무사항에 해당한다. 핵심은 시행의 여부가 아니라 의지를 담아내는 해당 정책의 정합성과 현실성, 일관성의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1장 ‘시대의 현안’과 17장 ‘스핀햄랜드 및 노동자기금의 경험에 대한 성찰’에 담았다.
저자소개
저자 : 이래경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부 입학 후, 1975년 서울대생 김상진 할복자살 사건과 1980년 광주민주항쟁과 관련된 일련의 시위로 두 번 제적을 당했다. 서울대학교 공대생으로서는 처음으로 1996년에 명예졸업장을 취득했다. 다양한 사회 경험 후 독일의 대표적 기계공업사와 합자한 (주)호이트한국 대표이사를 27년간 역임했다. 민청련 발기인 및 초대 상임위원, 민주기업가회의 회장, 한반도재단 이사 및 운영위원장, 국민주권연구원 상임이사를 지냈으며 지역 시민사회 중심의 보살핌 운동을 지향하는 사단법인 일촌공동체를 설립했다.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공동대표를 지낸 후 현재 사단법인 다른백년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철든 이후 시대와 사건 속에서 정신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너와 내가 우주이고 역사’라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서로 만나야 연대가 있고, 진보의 방향으로 ‘다른 백년’이 시작된다는 믿음으로 활동 중이다.
모두가 느끼듯이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점은 의심에 여지가 없지만, 이러한 돌출사태가 새로운 세계질서(NWO, New World Order)의 출범을 알리는 왕좌의 역할을 할지, 또는 많은 이들이 학수고대하였듯이 세계화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것에 머물지, 의견이 나뉘어 있다.
The COVID-19 Game-Changer
COVID-19는 게임체인저
지난달 중국에서 처음 시행하고 이후 서구 전 지역으로 확산된 COVID-19에 대한 현재 같은 엄청난 봉쇄적 방역조치를 세계는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했다.
오로지 공공보건이라는 이유로, 마치 계엄령이 내려진 듯, 수 주간 고립되어 식료품과 의약품 그리고 은행거래와 같은 기본적 서비스 외에는 외출을 금한 적은 지난 전쟁의 시기에도 없었다.
전례가 없는 사태로 인해 어떤 물리적인 충돌(전쟁)보다 급격히 국민경제가 황폐화되면서, 국유화와 공적 구제의 논의가 시작되고 있으며 시민집단들은 어느 때보다 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빠졌다.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벌어지고 우리들 삶이 며칠 사이에, 극적으로 표현하자면 하룻밤 사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서구인들은 망연자실하고 있다.
연극하듯이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사실들에 대해, 겨우 정신을 차려가며 코로나바이러스가 새로운 질서NWO를 가져올 왕좌의 출현인지, 모두가 학수고대 하였듯이 세계화에 치명타를 날리는 사건이지, 두 개의 입장으로 나뉘어져 논쟁이 시작되고 있다.
NWO vs. Anti-Globalization
새로운 질서NWO vs 반세계화
각 입장마다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관점들을 지니고 있다.
새로운 질서NWO라는 관점은 서방의 정부들이 경제의 주요한 영역을 통제하고 장악하거나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내부에서 다시 두 개의 상반된 입장(사회주의로 이행과정이냐, 본질적으로 파시즘화이냐)으로 갈라진다.
이들에 의하면, 일단 초기에는 각국 정부가 돌발적 사태에 대해 독자적이지만 비슷한 유형의 대처를 진행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공동적인 노력을 통하여 지정학적 또는 지구적 차원의 일반적 계획을 수립할 것이고, 현재의 긴급한 의료위기 상황에 대응한 ‘지구적 정부’의 구축을 위해 노력하면서 결국은 모든 영역에 걸쳐 ‘지구적 정부’의 영향이 커지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반면에 반세계화라는 입장에서는, 트럼프와 몇몇 서구 지도자들처럼 즉각적으로 전략적 영역의 산업에 대한 부품공급체계(supply chains), 예를 들어 제약과 의료기기 생산, 등을 해외기지에서 국내로 회귀시키기를 원할 것이며, 가까운 미래에 지구는 결코 평평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듯 경제적 ‘자국우선’주의의 회귀경향을 사회적 정치적 영역으로 확산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국경개방, 자유무역, 유엔조직 등은 과거의 산물이며, 국가주의라는 시대정신, 국경강화, 공정한 무역(관세징수), 정치적 다자주의의 축소 등으로 대치된다는 것이다.
The Death of The “Old World Order”
구질서의 종말
현재의 시점에서 미래에 관한 상기의 두 가지 관점 중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날지 또는 두 관점이 서로 섞이면서 하이브리드적 시나리오로 진행될 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다만 구질서(OWO, Old World Order)는 결코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구질서OWO란 단극체제, 양극체체 또는 다극체제 중 무엇이라 칭하던지, 미국과 소련 또는 중국 간의 내부경쟁을 통하여 하나의 세계를 지향 하던 경향성을 의미한다.
이런 흐름은 트럼프가 등장하면서 역류하기 시작했으며 주로 통상분야에서 강하게 나타난 반면에 국가 간의 국경선을 넘나드는 인적 자유이동에는 미미한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COVID-19 발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뒤늦게나마 협력적 대응이 가장 효과적 인 것을 인정하면서도, 물론 트럼프가 선두에 서서 시작했지만 많은 국가들도 역류적인 경향에 따라 자국의 이익에 우선하려는 본능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과 경향은 신자유주의가 가르치는 국제관계에 대한 교의, 즉 같은 가치와 이해를 공유하는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같은 행동의 지침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불신하는 것이며, 실제로 신자유주의적 교의가 증명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소위 세계적 명사들에 의해 인용되었던 온갖 화려한 언사와 형식과 현란함을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추구했던 예의 협력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은 신속하게 ‘신자유주의’를 포기하고 ‘신현실주의’로 돌아섰다.
The NWO
새로운 질서
지구적 규모의 위기가 초래되면서 새로운 질서이론NWO이 추구하는 변화가 이루어 질 듯도 싶다. 지난 시기의 비협조적이었던 혼돈상황에서 벗어나 보건위기에 대응하는 긴급조치를 통하여 보다 협력적 방향으로 나가는 것은 자연스런 해법이며, 새로이 형성된 국유화된(nationalized) 경제권(특히 EU 안에서) 간에 형성될 합동재건기금(joint reconstruction fund) 그리고 정기적으로 실시될 다자간의 봉쇄훈련이라는 ‘비상법규’를 매개로 경제적 정치적 영역으로 확장되어 갈 듯 하다.
그러나 Schengen Zone(유럽 26개국이 참여한 무관세 지역)은 이번 위기를 통해 최소한 원형 그대로의 형태로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며, 지난 몇 주간 실시된 방역의 봉쇄라는 연쇄적 퇴행(reaction)과정에서 개별국가마다 자신의 이해를 방어하기 위해 어떻게 반응했는지 결과에 따라 향배가 결정될 것이다.
이번 위기 또는 유사한 사태가 향후 전개될 경우, 국가단위(또는 EU라는 지역단위)에서 즉각적인 봉쇄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아마도 주도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개별국가 단위에서 생존을 위하여 폐쇄적 자급자족의 양상을 보일 것이고, 이는 실제적으로 지역단위의 중앙 결정에 따라 협력한다는 기존 합의에 반하여, 역설적으로 반세계화의 교의에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Anti-Globalism
반세계화
실제 지속적으로 반세계화적 시나리오를 향해가면서 개별국가 단위에서, EU같은 초국가적인 지역단위 대신에, 자국 내 유기적이며 자급자족의 경향을 내보이면서, 한편에서는 여전히 과거에 추구하였던 세계화라는 강력한 전설(legacy)속에 갇혀 있으면서도, 독자적인 국가주권을 더욱 강화하려 할 것이다.
이는 필자가 연전(年前)에 묘사한 트럼피즘의 경향이 현실화되는 것을 의미하며, 성향이 같은 국가들이 모여 가치와 이해를 공유하면서 신자유주의와 신현실주의가 모순적으로 결합된(twist) 형태로 협력을 모색해 나갈 것이다.
기존 세계화의 종말은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BRI)에 가입하는 것보다 트럼피즘을 수용하는 소수의 국가들에게 이점을 가져다 줄 것이다. 전자(BRI)의 경우에는, 중국이 미국보다 2개월 먼저 겪은 COVID-19로부터 회복된 장점(다시 재발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에서 특별한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이후에 전개될 지구적 규모의 체제 변화에서 많은 것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취해야 하는 접근은 거대전략의 이해(利害)를 확산시키기 위하여, 복잡계 이론과 전략사고(Chaos Theory & Strategic Thought)에 의거하여, NWO의 관점에 따라 비대칭적인 세계질서를 창출하는 것이다.
다시 표현하자면, 트럼피즘을 추구하는 미국은 반세계화 모델을 선호하는 반면에 중국은 새로운 질서NWO모델을 지지한다.
Predictable Constants
예측가능한 상수들
앞의 두 가지 상반된 관점 중의 하나 또는 하이브리드적으로 미래의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몇가지 변하지 않을 상수들이 존재한다.
우선은 국제적 백신 캠페인의 성공 여부에 따라 사회적 세계화라는 사람들의 자유왕래가 급격히 축소되면, 국가단위에서 과거 서구사회에서 기본적 자유로 묘사되었던 내용들을 희생시켜 가면서라도 개별정부가 스스로를 위하여 전례없이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사회적 변화의 하나로 모든 시민들은 일정 나이에 이르면 군대복무와 같이 의무적으로 공공의료 봉사에 참여하여 향후 또 다른 보건위기가 발생하면 의료진을 대신하게 될 것(또는 긴급상황 시 정부의 계획에 의하여 해당되는 정부조직 내 또는 사회봉사에 대체근무)이며, 또한 대중언론매체들에 대한 검열관리가 강화될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 있어서도 개별정부들은, 이를 사회주의적이라 부르던 파시즘적이라 칭하던, 경제활동에 대한 통제를 늦추지 않을 것이며, 개별시민들이 정부에 보다 많이 의존하게 되는 대신 사회적 혜택(이전소득 등)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새로운 질서NWO와 반세계화 관점의 차이만큼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국가 간의 관계가 지구적 규모의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던가(NWO), 협력을 기피하던가(반세계화), 아니면 지역적 수준에 집중(하이브리드)하는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다.
Concluding Thoughts
결론적 내용들
새로운 질서의 도래가 이루어질지, 아니l면 기존의 세계화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지 아직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어떤 결과가 이루어지던, 현재의 상황은 세계가 수년 전부터 염려해 왔던 블랙스완(검은백조, 아주 예외적인 상황)의 사건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개별적 방역의 봉쇄조치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강화되어 갈 것이며, 결과적으로 서서히 현존의 질서를 대치하며 새로운 세계의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제목처럼 던져진 화두에 대한 확실한 모습이 언제쯤 이루어질 것인지 시간적 프레임은 불확실하지만 한가지 가장 중요하게 지켜보아야 하는 변수는, 진행중인 위기로부터 다양한 개별국가들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선호하는 방식인 반세계화와 중국이 지향하는 새로운 질서NWO간에 이루어지는 경쟁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듯이, 중국이 위기로부터 먼저 회복되어 세계를 돕는데 앞서 나가는 반면에, 이러한 상황은 차후 트럼프가 취하는 행보에 따라 전향적인 방향으로 변할 수도 있다. 누가 승자가 되던 누가 패지가 되던 누가 웃고 누가 울게 될지는 알 수는 없어도, 위에 언급한 세가지(NWO, 반세계화, 하이브리드)의 시나리오에 따라서 세계는 개선되거나 악화되는 두 가지의 방향 안에서 크게 변하게 될 것이다.
이 칼럼 기사는 ‘One World’에서 발췌된 것입니다, 2020-03-20
Andrew Korybko
모스크바에 주재하는 미국인으로 아프리카-유라시아에 대한 미국전략, 중국의 일대일로 및 하이브리드(이념선전, 제재, 문화, 홍보조작 등)전쟁에 대한 국제정치 전문연구자
조지 고든 바이런【1】은 장시〈Childe Harold’s Pilgrimage〉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자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유명해져 있었다.”(I awoke one morning and found myself famous) 는 말로 소감을 표현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우리는 이렇게 표현해야 할 것이다. “어느 날 아침에 잠에서 깨어 보니 우리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We awoke one morning and found ourselves to live in another world).
코로나-19 전염병이 맹렬하게 확산 중인 상태에서 코로나-19 이후의 변화된 모습을 예측하는 것은 너무 주제 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초래한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사태의 진행을 예의주시하고 이미 발생한 예후를 조심스럽게나마 진단해보는 것은 결코 이르지 않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세계로 양분될 것이라는 점이다. 즉, 각국이 처한 조건에 따라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우리가 이전에 살았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 되어있을 것이다.
세계1차대전이 끝날 즈음 미국 시카고에서 시작된 스페인독감은 2년여에 걸쳐서 2,500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내면서, 전사자 900만 명이었던 세계1차대전보다 2배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스페인독감이 전세계에 빠르게 확산된 것은 전쟁의 종식에 따른 각국 병사들의 본국 귀환 때문이었다. 전쟁이라는 이벤트가 없음에도 코로나-19가 이렇게 빠른 시일내에 팬데믹이 된 것은 지구촌의 세계화에 있다. 이번 코로나-19의 팬데믹은 신자유주의가 주조한 세계체제 그 자체가 전염병을 팬데믹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기능을 하였다.
신자유주의의 두 가지 기제가 작동하였다. 하나는 자본과 무역의 자유화에 따라 무역의 주요 대상이 과거의 자원이나 완성품에서 소재와 부품으로까지 확장된 가치사슬의 글로벌화(Global Value Chain)에 따른 인적교류 증대다. 또 하나는 정부의 공공지출을 삭감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교의에 따라 각국의 사회복지와 공공의료 프로그램의 축소다. 그 결과가 이번 코로나-19의 빠른 팬데믹 확산이다.
이렇게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한 지역에서 발생한 전염병이 순식간에 전지구적으로 확산하는 것을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가 구축한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코로나-19 확산의 고속도로 역할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한 대응은 가장 원시적인 방법인 국경을 통제하고 개인의 이동을 금지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물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편입된 정도에 따라 각국의 통제의 수준은 다르겠지만 기본적인 대응은 국경 통제다. 이번 사태로 셍겐조약에 따라 역내 국가들의 자유로운 이동권이 보장된 EU조차도 역내 국가들의 국경 통제로 셍겐조약【2】의 정신은 실종되었다.
국경 통제와 개인의 이동권 제한으로 특징되는 지구촌의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에서 양 극단의 모델을 보여주는 두 개의 나라가 있다. 혹자는 한국식 모델과 중국식 모델을 얘기하지만 오히려 더 극명하게 차이를 보여주는 곳은 남한과 북한의 모델이다. 북한은 아예 국경을 봉쇄하였고 국내적으로는 최장 40일간의 격리,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를 통해서 가장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e) 정책을 실행했다. 반면 남한은 국경을 열어놓았으며 사회적 거리두기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방식으로 이뤄졌고 국제적인 호평속에서 개방모델의 전형을 보여줬다. 세계 각국은 남한과 북한의 두 모델 사이에서 어떤 국가는 더 강력한 통제를 다른 국가는 좀 더 느슨한 방식으로 대처방식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상태에서 불가피한 가택연금이나 다름없는 자가격리라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가장 원시적인 대책이지만 전염병을 차단하는 가장 강력한 조치다.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국가간의 자유로운 이동은커녕 집밖도 못나가는 기묘한 형국이다. 각국은 말 그대로스트레스 테스트【3】를 받고 있는 중이다. 각국은 생존을 위해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개인의 자유에 대한 통제와 함께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쏟아내면서 이 힘겨운 스트레스 테스트를 겪고 있다.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와 역학조사를 위해 개인의 사생활을 완전히 발가벗기고 있는 상황이 뉴노멀이 되었다.
남한과 북한의 두 모델은 글로벌한 세계체제 속에 편입된 정도를 반영한 대처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북한 모델은 미국과 UN안보리가 강요한 경제제재로 강제된 모델이다. 북한이 방역물자 등을 외부에서 들여올 방법이 없는 조건에서 국경을 봉쇄한 것은 최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남한은 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자본시장, 상품시장, 인적교류 등 모든 분야에서 개방하였고, 이후 각국과 FTA를 체결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전면적으로 깊숙이 편입되었다. 이런 조건에서 남한의 코로나19에 대한 개방적 대처 또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잘 알다시피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워싱턴 컨센서스【4】의 이데올로기에 따른 결과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198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었던 라틴아메리카를 시발로 1990년대 동구 사회주의권의 시장경제로의 체제전환과 함께 가속화되었고 이어서 아시아 외환위기를 거치고 각국이 FTA를 체결하면서 지구촌을 거침없이 세계화 하였다. 거침없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이 지구촌 주민들과 국가들을 양극화의 정점으로 끌고 가던 순간에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였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천지는 불인(天地不仁)하다고 했듯이 코로나-19는 지구촌의 구석구석을 강타하였다. 공공의료시스템을 갖춘 곳은 그나마 덜하지만 이를 갖추지 못한 나라들의 가난한 사람들을 정확하게 타격하였다. 코로나-19의 국가간 전파 초기에 숙주가 된 감염자들은 비즈니스든 아니면 여행이든 해외를 나다니는 사람들이었지만, 국가 내의 지역감염이 되는 순간 무방비 상태에 있던 가난한 사람들이나 노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주요 표적이 되었다. 코로나19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 층들이 바로 이들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만들어낸 부의 양극화로 가난해진 사람들, 그리고 국가의 공공지출 삭감으로 공공의료시스템이 망가져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노인 등 병약자들이 코로나19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것이다. 신자유주의 물결이 지나간 곳에서는 ‘국유화’ 단어는 사라졌고 ‘민영화’가 이를 대체했다. 이런 과정에서 의료의 공공성은 약화되었다. 미국의 경우 빈민층은 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는 ‘국유화’라는 단어를 다시 소환하고 있다. 스페인은 의료시설을 일시적으로 국유화했고 미국은 전시법까지 동원하였다.
양극화로 불평등이 만연된 세계에서 코로나-19는 단계적으로 빈민층에게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 먼저 코로나-19에 대한 예방, 진단, 치료, 자가 격리 등 코로나-19에 대한 노출과 대처에서 불평등 문제다. 미국의 경우가 전형적이다. 한국의 경우 진단에서 치료까지 무료인 반면 미국의 경우는 정부가 개입하기 전까지는 공공의료제도의 취약으로 민간의료보험이 없는 경우 400만 원 정도의 진단비용이 들었다.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보험에 가입할 형편이 되지 못하는 개인은 수천만 원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여 치료 자체를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 재택근무가 확산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빈민층이 종사하는 직종은 재택근무와는 거리가 멀다. 가장 단적인 예가 밀집된 곳에서 일하는 콜센터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업무 특성상 마스크를 착용할 수도 없고 재택근무를 할 수도 없는 직종으로 코로나-19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가 야기할 다음 단계는 경제 불황이다. 이 불황에 따른 고통을 1차적으로 겪는 층도 빈민층이다. 구체적으로 서비스업종의 자영업자, 고용안정성이 없는 시간제 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 월세입자 등이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코로나-19가 짧은 기간에 종식되지 않고 상대적으로 장기화되면 이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될 것이다. 대응책이라고는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사회적 격리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길거리 자영업이 1차적으로 타격을 받고, 이어서 노동유연화(해고의 용이성)가 높은 국가들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순차적으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영업 단절을 겪는 자영업자들과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사라진 노동자들에게 마트의 사재기 뉴스는 남의 얘기일 뿐이다. 수입이 끊어진 상태에서 매월 꼬박 꼬박 지불해야 하는 상가 임대료 및 주택 임대료는 이들에게 지불 위기를 가져다 줄 것이다. 이런 상황에 가장 노출된 사회가 미국이다.
코로나-19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지만 그 피해의 결과는 신자유주의가 주조한 세계를 거울처럼 반영할 것이다. 각국은 신자유주의에 편입된 정도에 따라 그에 걸맞는 정도의 대처와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말을 뒤집으면 코로나-19 사태가 몰고 올 빈민층 고통 편담을 전사회적 고통분담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사회적 연대의 힘에 따라 그 사회적 비용은 각 나라별로 달리 나타날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민중의 사회적 연대의 힘이 얼마나 조직되어 있느냐에 달렸다. 사회적 연대의 힘이 약한 사회는 그만큼 더 사회적 갈등이 폭발할 것이다.
코로나-19로 가장 위험한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에서 순식간에 코로나-19가 확산된 것은 트럼프 정부의 어설픈 대응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미국이 신자유주의 종주국이라는 점을 간과하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미국은 신자유주의 교의가 작동되는 시스템 그 자체다. 2008년 금융위기의 발원지임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처방을 하지 못하고 신자유주의 체제 작동 메카니즘을 유지한 채 모기지로 집을 구입했던 서민들과 미국 밖의 나라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면서 임기응변식 땜질 처방으로 위기를 넘겼을 뿐이다. 코로나-19 사태는 형편없는 공공의료시스템, 세계에서 가장 쉽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노동유연성, 방역물자의 해외 아웃소싱으로 인한 미국 내 제조업 부재 등 미국의 취약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미국이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저항력이 얼마나 취약한지 잘 보여주는 것이 실업수당 신청 숫자다. 본격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된지 일주일 만인 3월 셋째주(15-21일) 실업수당 신규 신청자가 328만 건을 넘겼다. 이 수치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향후 단기간에 코로나-19를 잠재우지 못하면 1920년대 대공황 시기보다 훨씬 많은 실업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공포스러운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은 미국의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이 고용유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구조조정이 가능하게 만든 극단적인 노동유연화 정책 때문이다.
이런 사태의 심각성 때문에 발 빠르게 미의회는 2조2천억 달러(약 2천700조원) 규모의 경기부양 패키지 법안을 통과시켰고 그 중 22.7%인 5천억 달러(616조원)를 2천5백억씩 실업수당(실업보험 포함)과 개인에 대한 지원을 포함하였다. 연소득 7만5천 달러 이하 개인에게는 1,200 달러의 현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응급처치를 하였지만 문제는 코로나-19를 조기에 통제하지 못하면 미국이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치솟을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면 미국은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가 가장 강력하게 지배하는 사회적 양극화가 정점에 이르러 빈부격차가 극심하고 공공의료 시스템이 형편없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종차별과 같은 편견이 심하며 총기 소유 자유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폭동과 같은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가장 농후한 국가가 미국이다. 최근 미국에서 총기 판매 급증이 이를 반영하고 있다. 미국이 코로나-19가 촉발시킨 미국-내 모순을 국내적으로 수습하지 못하면 그 불똥은 경제적 차원이던 전쟁 차원이던 미국 밖으로 전가될 것이다.
코로나-19는 현재 진행형이며 그 확산의 정도에 따라 지구촌에 어떠한 파장을 일으킬지 그 폭과 깊이에 대해 미지수다. 이에 대한 각국의 정책 또한 이제 시작 중이다. 코로나19는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흐름에 각 나라가 능동적이든 피동적이든 동승할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신자유주의 정책의 다양한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우리의 의식, 관념, 경제시스템, 국제질서, 국가 정책의 자율성 등 우리사회의 모든 가치와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테스트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사회적 연대 또한 테스트할 것이다. 코로나-19가 더 지나가봐야 알겠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새로운 대안이 모색되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1】 George Gordon Byron. 영국의 시인. 1788~1824.
【2】 1985년 프랑스, 서독, 네델란드, 벨기에, 룩셈부르그 등 5개국이 맺은 조약으로 국경 개방조치가 주 내용임. 이후 EU가 창설되면서 참여국이 확대되었다.
【3】 경제와 경제외적 변동에 대해 금융기업이 얼마나 대처할 수 있는지를 평가
【4】 1980년대 말 워싱턴에 소재하는 미재무부, IMF, WB 등이 개발도상국과 90년대 사회주의권의 체제전환 과정에서 관철한 정책들을 일컫는다. 공공지출 삭감 등의 긴축재정, 변동환율제와 외환시장 개방, FDI와 무역자유화, 공기업 민영화, 탈규제 등의 정책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 이데올로기 컨센서스를 말한다.
1986년 4월 당시 미국 대통령인 George H.W. Bush 가 사우디를 방문하여 당시 통치자였던 Fahd 왕에게 원유가격을 올리라고 청원했던 일이 있었다. 불과 몇 개월 만에 가격이 60% 이상 추락하자, 저렴해진 원유가는 미국에 양날의 칼이 되고 있었다. 소비자들은 주유소에서 저가의 에너지를 즐길 수 있었지만, 미국 자국 내의 석유생산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2018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G20 회의에서 조우하고 있는 푸틴, 트럼프 그리고 사우디왕세자 모하메드 빈 살람의 사진
이 때가 백악관이 석유가격을 올리는 정책을 추구한 마지막 기록이었다. 이제 다시 트럼프가 사우디와 러시아에 압력을 가해 산유량을 줄이도록 압력을 가하면서, 70% 정도가 떨어진 원유가격이 반등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원유의 저가는 미국 내 세일가스업체들을 마구 흔들어 대며 해고와 파산이 줄을 잇고 있다.
이런 배경으로 국제적 시선이 4월 9일로 예정된 OPEC 동맹의 화상회의와 곧이어 열릴, 미국도 참가하는, G20 에너지 장관 회의 결과에 쏠리고 있었다 (장관회의에서는 일 10백만 배럴의 감산에 대한 OPEC, 미국 그리고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했다). 이전에 비엔나에서 열렸던 OPEC과 Non-OPEC 국가들 간의 회의에서 러시아는 사우디가 요구하는 상당한 감산에 대해 거부한 바 있었다. 그 결과 사우디는 공급량을 대폭 늘리면서 재앙적인 가격인하를 촉발하였고, 곧바로 배럴당 가격이 20불 이하로 추락하였다.
그러나, 가격의 수준이 붕괴한 첫 번째 이유는 코로나 팬데믹에 직면하여 세계경제가 급격히 정체되면서 원유수요가 격감한 데 따른 것이다. 작년 대비 올해 4월 원유 수요는 25% 정도가 줄어들었고 이는 백년 만에 나타난 감축현상이다. 정제 제품인 가솔린과 디젤 그리고 항공유에 대한 수요가 없어지자, 바다와 육지에 설치된 원유 저장고가 순식간에 채워지고 있다. 더 이상 원유를 저장할 곳이 없어지면서, 산유시설들은 조업을 중단시킬 수 없는 처지에 빠지고, 일부 시장에서는 가격은 마이너스까지 떨어질 기세이며, 수요자에게 오히려 웃돈을 주면서 재고를 소진시켜야 할 지경이 되었다.
십년 전 만해도 자국 내 수요의 60%를 수입해야 했던 미국의 대통령이 원유가격을 올려야 한다고 고집하는 일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이후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세일암반에서 원유를 축출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 미국은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 되었다. 일부 고품질의 원유를 여전히 수입하긴 하지만 대신 다른 원유를 수출하면서,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원유 수입국이 아니다.
이러한 반전은 국내에 일자리와 투자 등 많은 혜택을 가져왔으나, 원유 가격이 붕괴되자 소비자들이 저가의 에너지를 즐기는 이점을 뛰어넘는 훨씬 커다란 고통과 폐해를 불려오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팬데믹으로 소비자들의 이동이 봉쇄되어 정유소에서 석유를 소비할 수 없게 되면서 더욱 심각해 졌다.
불과 수주 만에 트럼프는, 소비자들의 값싼 유가에 대한 축복에서 미국의 석유산업이 심각한 위기를 맞아, 고함을 지르는 처지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사우디 왕세자 모함메드에게 산유량을 줄이는 협상을 진행했다며 트윗터에 “ 석유가스 산업을 위해 엄청난 일을 해냈다”고 과시했다. 동시에 연방 상원의원들은 사우디에게 덤핑혐의조사, 관세부과, 무역제한, 제제, 비경쟁조처, 사우디 내에 미군지원의 축소 및 철수 등을 포함하여 엄청난 경제적 압력으로 협박을 진행하였다.
모스코바와 리아드(사우디)는 다른 모든 산유국들도 참여한다는 조건에서 감산할 의향을 밝혔다. 이에, 원유가격의 추락이 너무나 심각한 까닭에, 미국 내에서 생산이 가장 많아 쿼터량을 통제하는 권한을 가진 ‘텍사스 철도위원회’는 곧바로 합의가능한 쿼터량을 결정하기 위한 청문회 소집을 4월 14일로 요구하였다.
그 동안 미국의 정치인들의 OPEC 고가정책을 질타해온 역사를 아는 이들에게는 이제 OPEC이 러시아뿐만 아니라 텍사스 그리고 미국의 여러 주정부들과 함께 가격유지를 위해 협상한다는 것은 상상이 안되는 장면이다.
그러나 실제 다음의 5가지 이유로 인해 국제적인 석유카르텔 또는 합의내용으로 가격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는 어려운 것오로 판단한다.
첫째, 산유국의 여러 나라들이 함께 감산을 실행할 유효한 기구(mechanism)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산유국들과 소비국들 간의 서로 이해를 달리하는 조직들이 존재하고 있다. 1973년 아랍이 석유파동을 일으키자 주요 석유소비국가들은 국제에너지기구(Int’l Energy Agency, IEA)를 창설하여 긴급 석유비축을 운용하는데 합의하였으며, 현재는 중국과 인도가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반면에 산유국들은 OPEC과 러시아와 같은 Non-OPEC으로 나뉘어 있다. 더구나 최대의 소비국이자 생산국이 된 미국이 OPEC 기구밖에 있으며 다른 산유국들과 효과적인 대화의 창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미국, 러시아, 사우디 등이 참여하는 G-20에서 감산을 지지하는 역사적인 선언을 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했다), 이 기구에는 이해를 달리하는 주요 소비국가들도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G-20는 석유가격 협상에 합당한 조직이 아니다.
두번 째, 설령 산유국들이 함께 현재 생산량의 감축량을 다룰 협상이 진행된다 해도, 미국이 협상테이블에 내놓을 내용이 별로 없다. 왜냐하면 미국의 석유생산은 수천의 개별적 기업들의 경제적 이해관계 속에서 이루지면서, 연방정부가 이를 직접적으로 통제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이미 G-20 실무회의에서 미행정부 단위로 감산을 책임있게 약정할 수는 없으며, 단지 감산을 위한 계획만을 제시할 수 있을 뿐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론적으로는 택사스나 오클라호마 같은 주정부 단위에서 감산을 요구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텍사스 철도위원회’가 OPEC 기구처럼 기능하여 감산의 쿼터를 정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석유생산업체들은 이를 반대할 것이다. 과거의 경험에서, 유전과 유전 별로 사정이 천차만별인 상태에서, 쿼터를 정해서 할당하고 가격을 통제하고 수입을 규제하는 방식은 음모에 가득 찼던 비잔틴 제도와 같아 미국 석유산업계는 감산과 수출을 규제하려는 주정부의 통제를 기후행동주의자와 이들에 동조하는 정치인들의 행동방식과 비슷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거부할 것이다.
세번 째는 시장이 기능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석유산업은, 정부가 요구하는 것과 관계없이, 2020년 말까지 최소한 일간 1백만 배럴 이상으로 감산할 것이고, 가격이 떨어지면 다음 해에는 더욱 감산할 것이다. 세일가스 분야는 성격이 조금 다른데 생산의 사이클이 매우 짧아 전통적인 석유생산업체들보다 손쉽게 생산량을 축소시킬 수 있으며 동시에 증산도 쉽게 할 수 있어서 시장수급의 균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가격의 붕괴는 해당기업과 종업원들에게만 고통을 안겨 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금융적 측면에서도 재조정이 진행되면서 가장 취약하게나 부채가 많은 기업들이 사라지게 된다. 세일가스 자원은 여전히 경제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어서 재무상태가 양호한 기업들이 취약한 업체들을 인수할 것이고 가격이 회복되면 생산이 재개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살아남은 세일가스 업계는 경쟁력이 제고되겠지만, 과거보다는 느린 속도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네번 째, 사우디와 러시아는 여전히 다른 산유국들이 감산하도록 주도할 수 있는 유효한 외교력을 지니고 있다. 과거에도, 공화당 계이던 민주당 계이던, 미국의 대통령들은 위급한 상황(예컨데, 카트리나허리케인, 리비아내전 등)을 맞이하면 줄곧 사우디에게 원유가격을 안정시키도록 요청하여 왔다. 지금 같은 시기에도 사우디는, 상당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원유가격을 합당하게 조절할 유의미한 여분의 능력을 지니면서, 국제적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다. 이에 리아드를 지지하는 동맹으로서 미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미연방의회의 협박 역시 유효한 수단이다.
미국이 가한 제재로 인해 미국과 러시아 간의 석유외교는 복잡하다. 트럼프는 제재완화라는 당근과 추가적인 제제압력이라는 채찍을 동시에 사용하면서 러시아가 가격협상을 지지하도록 유도하려 할 것이다. 트럼프가 푸틴에게 석유가격에 대한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 러시아 최대 석유회사인 Rosneft는 자신이 소유한 베네수엘라내의 자산을 다른 러시아 회사에게 팔아 넘김으로써, 미국이 푸틴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Rosneft의 거래에 가한 제재를 풀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다섯 째, 저가의 원유가격에서 수반되는 다양한 결손들을 관리하는 수단들이 존재한다. 연방정부는 경제활성화 조치를 통해서 불황에 타격을 받는 지방조직, 주정부 그리고 노동자들을 구제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정책입안자들은 세일가스 산업의 수입에 의존해온 석유생산 지역을 돕기 위해 공공지출을 확대하여 교육과 인프라 등에 투자하는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앞의 긴박한 위기에 대응하며 소란을 피우는 것보다, 석유의 소비를 감소시켜 – 이산화탄소의 배출도 줄여가면서 – 원유 가격의 불가피한 사이클에 취약한 미국의 약점을 낮추려는 장기적인 조처를 취해야 한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팬데믹은 사라지고 경제는 다시 회복될 것이다. 이 와중에 발생한 원유가격사태에서 배울 가장 중요한 교훈은 세계제일의 산유국이라는 강점은 동시에 위험과 취약성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G-20 회의에서 비록 사우디와 러시아 그리고 미국 간의 역사적인 협력이 선언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과장된 연출#일 뿐이다. 당장 미국이 취해야 할 옵션은 리아드와 러시아에 협력을 구하는 전화를 하는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시장을 통하여 미국 석유산업계를 조정하고 축소해 가는 것이다.
# OPEC+ 감산합의에 대하여 멕시코가 반발하고 거부하면서 파장과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이 멕시코할당 감산 쿼터량까지 책임지면서 임시 봉합할 수 있다 하더라도, 미국은 이를 실행할 강제력이 없으며 지속적인 석유수요 감소로 인한 산유국 내의 이해충돌은 언제라도 폭발할 개연성을 항시적으로 지니고 있다.
2020-04-08, 포린폴리시 칼럼에서
Jason Bordoff
오바마 행정부 당시 국가안보회의의 주요 인사로 대통령 특별보좌관을 지냈으며, 현재 콜롬비아 대학교 국제공공분야의 세계에너지정책 담당책임 교수직을 맡고 있다.
생태문명이 단지 유토피아적 아이디어라는 의견에 대해 우리는 생태적 토대 위에 사회를 재건하기 위한 첫 걸음을 떼었을 때 실제 세계가 어떻게 보이는지 알려줄 수 있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생태문명을 위해 일하는 게 그들에게 희망을 준다고 이야기한다. 베이비 부머부터 밀레니얼 세대까지 희망의 상실이 가장 큰 화두가 된 시대에 이런 희망은 어떻게 가능할까.
기후변화에 대해 자주 강연하는 이들은 좌절의 위험을 안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 데이터를 스크린에 올릴 때마다 방 안의 분위기가 심각해진다. 청중들은 날마다 더욱 공포스러운 데이터가 전 세계에서 신문에 나온다고 느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희망을 붙잡아두려고 애쓴다. 때로는 축구코치처럼 말한다. “괜찮아, 할 수 있어, 이번 시합을 이길 수 있다니까!” 어쨌든 우리는 절망이 우리의 가장 큰 적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과제가 불가능한 것처럼 들리면 사람들은 포기할 것이다. 위기가 요청하는 일들을 하지 않을 것이다. 목소리 높은 제안자나 힘있는 활동가가 되는 대신 압도적인 절망에 빠질 것이다.
공개 대담이 끝나고 발표자들끼리 술이나 커피를 한잔 하려 모일 때 우리의 대화는 더욱 진지해진다. 최신 데이터는 무엇을 가리키며 기후 모델은 무엇을 예측하는가. 정부와 기업들은 무엇을 하거나 안하고 있는가. 이런 대화를 듣고 있자면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인류는 분명한 진리를 깨닫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일까. 최악의 경우, 즉 인류가 살아남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맞아떨어지면 어떻게 할까. 경제적∙환경적 붕괴를 방지하기엔 이미 너무 늦었을까. 과학적∙사회적 정보를 끼고 살면서 우리 전문가들도 절망을 이기기 위해 몸부림친다.
매우 위험부담이 크다. 만약 우리가 기후위기에 대한 응답에 실패한다면 우리가 아는 것만 해도 150만종에이르는 생명을 유지하는 지구의 용량이 파괴되는 걸 보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매우 거대하고 복잡하다. 과학부터 철학까지, 정치부터 경제까지, 농업부터 교육까지 여러 분과학문과 분야에 걸쳐있다. 요구되는 개혁의 규모도 엄청나다. 전 세계의 국가, 산업, 그리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제외한 전 세계 중산층 소비자들의 생활양식이 바뀌어야 한다. 이런 현실인식은 깊은 걱정을 만들어내며 쉽게 우울, 냉담, 절망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오래된 응답이 자본주의의 영향과 글로벌 착취구조를 목격하는 이들을 유혹한다. 어떻게 하면 거대한 규모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젊은이들과 활동가들의 눈에서 빛나는 이상주의는 우리 앞에 던져진 문제의 규모에 눌려 사그라질 수도 있는데 말이다.
‘생태문명’: ‘뭔가’ 하는 빅 아이디어
생태문명이란 개념은 이런 상황에 직접 응답한다. 환경운동단체, 시위, 행동주의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그 모두에 깊이 의존하면서도 “큰 그림”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방식으로 이들을 보완한다. 장기적으로 확장된 현실주의라 생각하면 된다. 문명적 변화를 공부한다는 것은 결코 이상적인 일이 아니다. “걱정 마, 완벽한 문명이 곧 올 거야”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팔을 걷어붙이고 지속 불가능한 근대문명 다음에 올 문명의 기초를 쌓는 것이다. 그것이 5년이 걸리든 50년이 걸리든, 점진적으로 전환하든 격렬하게 붕괴하든 말이다.
그렇다면 왜 문명적 변화라는 거시적 관점은 우리에게 희망을 줄까.
(1) 방향을 제시한다. 생태문명이라는 가능성을 사색할 때 인간의 문명이 진정으로 지속 가능하려면 어떻게 조직돼야 하는지 숙고하게 된다. 이런 목표를 더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세운다.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사회에 대한 개념이 분명해짐에 따라 현재의 정책에 대한 분명한 지침이 생긴다. 최소한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대략의 로드맵, 즉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약간의 아이디어를 얻는다. 황야에서 목적 없이 방황하다 보면 희망이 사라진다. 그러나 목적지를 알면 아무리 큰 산이 앞을 가로막더라도 희망이 생긴다.
(2) 통합적 비전에서 나온다. 생태문명이라는 용어 자체가 희망을 준다. 이 말은 인류의 장기적 목표로서 다 함께 오랫동안 지속 가능하게 살아가는 글로벌 문명, 자원을 공유하고 소수의 잘못으로 다수가 고통 받지 않는 문명을 뜻한다. 우리가 당면한 위기의 복합적 성격은 똑같이 복합적 해결책을 통해서만 풀어갈 수 있다. 문명적 변화라는 비전을 제시하는 생태문명은 시스템 전환을 위한 시스템적 전략을 요청한다.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의 끝없는 목록이 우리를 압도한다. 그러나 통합적 접근법을 채택함으로써 길고 파편화된 문제들의 목록은 통합적인 문명 시스템이라는 렌즈를 통해 재정렬된다. 수없이 잘게 쪼개진 사회적, 환경적 문제들이 하나의 문명적 문제로 모아짐으로써 보다 통제할 수 있다고 느껴지고 희망의 감각을 불어넣는다.
(3) 이미 지금 여기서 실현되고 있다. 로드맵이 생기면 행동이 가능해지며 이것이 새로운 희망을 준다. 목표에 이르려면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차이를 만들어낼 때 기분 좋게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절망은 절대적으로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때 온다. 우리가 병과 캔을 재활용하고 운전을 덜하거나 전기자동차를 타고 지구적으로 생각하되 지역적으로 행동하면, 환경을 보존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기가 있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이런 실천들이 그 자체로 기후변화를 막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이런 단계에서 우리는 성공을 다르게 정의해야 한다. 이제 기후변화나 멸종을 피할 수 없다. 이미 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 성공이란 새로운 문명으로 전진하는 것이며, 이런 방향으로의 활동이라면 경제적 붕괴를 비켜가든, 붕괴한 다음 재건하든 모두 가치 있는 일이다. 새로운 문명을 향한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고, 생태문명이 출현하고 있다.
(4)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 희망의 마지막 근거는 좀 이상하게 보이지만 아마 가장 심오한 것인데, 바로 현실주의(realism)이다. 미래에 일어날지 모르는 두려운 일을 억누르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근심을 더욱 깊게 만든다. 반면 두려움을 꺼내놓고 직시하면 이상한 종류의 자유가 느껴진다. 현재의 “현대문명”과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 사이에는 깊은 협곡이 있다. 이런 위협은 우리가 적기에 대응하지 않아서 생긴 “현실”이다. 그대로 두면 세계화에 토대한 현재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구조의 상당 부분이 붕괴될 것이다. 그 결과는 엄청날 것이다. 우리가 당면한 게 무엇인지 알 때 가장 피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전지구적 상황을 확실히 가늠해보더라도 우리가 개입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우리가 어디 있는지 아는 것(사실주의), 우리가 어디로 가는 지 아는 것(목표),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아는 것(로드맵), 그것을 하는 것(행동주의),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할 수 있음을 아는 것(희망)은 전환을 만들어낸다. 지속가능한 문명을 향한 여정은 놀라운 기술적 돌파, 기득권층의 막대한 자원 공유, 나머지 계층의 자발적인 자기희생이 있다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다. 그게 아니면 생태문명에 도달하기 전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골짜기를 먼저 건너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우리는, 우리 중 누군가는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장기적 결과를 깊이 고려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심오하고 현실적인 희망을 준다.
틀을 만들고 협력을 장려하기
생태문명은 일반적인 환경주의,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위한 “녹색”운동과 어떻게 다를까.
정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식량, 물, 에너지 같은 특정 영역의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강한 압력을 받는다. 물론 우리에게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농업과 경제에서 지속가능한 관행을 만들고 재생에너지를 개발하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를 줄이는 생활 방식을 장려해야 한다. 많은 비영리단체들이 이런 다양한 분야에서 눈부신 활약을 한다. 정책 관련 일을 하지 않는 단체들은 풀뿌리 혁신과 운동을 지지하거나 새로운 영감을 주는 비전을 개발한다. 그러나 다양한 분야의 정책을 이어주는 다리가 필요하다.
가장 구체적인 데서 가장 통합적인 데까지 연속성을 생각해보자.
(1) 특정 이슈에 대한 전문적 토론: 인도의 표범 보존하기, 원자력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하기.
(2) 에너지 분야 같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
(3) 두 분야 사이의 토론: 어떻게 에너지와 교통이 연관돼 있나.
(4) 어떤 이슈, 예컨대 기후변화를 전도시키는데 필요한 여러 단계들에 대한, 분야를 가로지르는 토론.
(5) 여러 단계와 분석을 글로벌 행동계획으로 통합하는 틀.
(6) 새로운 이야기, 패러다임, 혹은 통합적 사고 같은 세계관.
생태문명이라는 개념은 이중 5단계에서 작동한다. 앞의 4단계에서 마지막 6단계로, 그리고 마지막 6단계에서 각각의 단계로 가도록 만든다. 문제를 통합적으로 보고, 각 분야들 사이의 연관성을 찾고, 장기적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분야들 사이의 연결을 만든다.
협력을 장려하는 것과 틀을 만들어내는 것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협력을 장려하고 유지하는 것은 네트워크를 작동시키고, 조직적 구조를 만들어 지원하고, 소통을 유지하고, “활발한 후원자”를 발굴하고, 컨퍼런스와 공적 행동을 조직하는 것을 뜻한다. 365.org(편집자주: 작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빌 맥기번이 이끄는 글로벌 기후변화 NGO), 그린피스, 시에라클럽, 세계야생동물기금 같은 단체들은 이런 일을 매우 잘 한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아우르는 틀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르다. 지속가능한 미래 문명은 사회의 모든 분야를 다시 디자인하는 차원의 틀이 필요하다. 이런 통합성은 특정 환경분야의 성취가 아닌, 문명적 변화를 요구한다. 모든 분야의 활동은 이런 목표를 향한 과정의 단계에서 각자 어떤 역할이 필요한지에 근거해 평가돼야 한다. 전체 숲을 바라볼 수 있다면 개별적 나무들을 어떻게 보전해야 할 지 알 수 있다.
“통합적, 시스템적, 장기적”이라는 방향은 환경운동을 규정하고 구조화하고 수행하는데 중요한 지침이다. 문명의 차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들의 연관성을 추적함으로써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고 다듬고 시험하고 적용할 수 있다. 이것이 식량정의, 농업개혁, 식수, 여성과 소녀들의 역량강화, 사회적∙개인적 생활양식 변화까지 아우른 전 분야의 협력을 유지하는 필수적 틀이다. 특정 정책분야에서 일하는 씽크탱크, 특정한 개혁을 주장하는 단체들은 생태적 전환의 핵심이다. 그러나 장기과정의 조정을 위해서는 예컨대 종교간의 연합이나 정부, 산업, NGO 사이의 협력처럼 사회 여러 분야를 가로지르는 통합이 요구된다.
심지어 여러 분야에 걸친 제안조차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다. 폴 호컨의 최근 저서인 『드로다운(Drawdown)』(국내번역서 제목은 『플랜 드로다운』) 은 “지구 온난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지금까지의 제안을 모두 망라한 계획”으로 소개된다. 저자는 기후변화에 대한 100가지 해결책으로 “드로다운 아젠다”를 구성했다. 에너지, 식량, 여성, 도시건설, 토지이용, 교통, 재료, 그리고 “매력적인 미래에너지”로 분야를 나눴다. 호컨은 매우 다양한 분야를 한 권의 책으로 모으는 작업을 통해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묻고 싶은 것은 기후변화와 그것에 기여한 수십 가지 요소들이 문명적 변화라는 보다 넓은 운동 속에서 어떻게 자리매김되느냐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 앞에 놓인 자기희생에 필요한 희망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궁금하다. 기후변화를 막으려면 단순히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서로 다른 분야들을 개념적으로 연결하는 글로벌 차원의 사고가 필요하다. 다양한 분야를 가로지르는 높은 수준의 통합이 시급하며, 이론적으로 더욱 정교하고 높은 수준에서 어떻게 변화를 만들어낼지 사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백캐스팅’: 목표를 향한 행동을 만들어내기
장기적 목표를 분명히 함으로써 현재의 행동에 지침을 제공할 수 있다. 학자들은 이 과정을 ‘백캐스팅’ 이란 용어로 부른다. 백캐스팅은 미래의 특정한 결과에서 시작해서 현재의 조건으로 거슬러 내려오는 반전 예측 기술이며 1970년대 이래로 주요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사용돼왔다. 우리는 종종 50년 후의 미래에 성취하고 싶은 결과를 그려볼 수 있지만, 그렇게 되려면 현재 어떤 단계가 필요한지 확실히 모른다. 디자인 연구에서 사람들은 미래의 사건이나 상황을 제안한 다음, 현재로 이동해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어지는 타당한 인과 사슬을 구성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현재에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면서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한다. 이와 반대로 백캐스팅은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가능한 한 자세히 서술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장기적 성과를 촉진할 수 있는 단기계획 및 정책목표를 끌어낸다.
‘리버스 엔지니어링’(역공학)이란 용어 역시 함축은 약간 다르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사용된다. 컴퓨터과학에서 유래한 이 개념은 하드웨어이든 소프트웨어이든 완성된 제품을 분해해서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보고 다시 새로운 결과를 내도록 조립한다. 리버스 엔지니어링은 전체에서 부분으로 움직이며, 그런 다음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시 조립한다. 이 기법을 은유로 가져오자면, 우리가 원하는 성과를 내기 위해 사회의 부분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볼 수 있도록 생태문명이라는 넓은 개념을 조심스럽게 분석하거나 쪼개볼 수 있다.
용어가 무엇이든, 핵심 아이디어는 같다. 미래에서 시작해서 현재 필요한 행동을 끌어낸다. 원환을 추적하고 재추적하는 게 필수적이다. 현재의 의사결정에 대한 지침을 얻기 위해 기 위해 우리가 원하는 결과(지속가능한 사회)로부터 백캐스팅하기, 그리고 현재의 의사결정이 가져온 성과가 목표를 이루는 단계로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내다봄으로써(forecasting) 목표를 보다 분명히 하고 백캐스팅을 더욱 정확하게 만들며 나아가 현재의 행동을 방향 짓는 일이 반복돼야 한다.
이것이 생태문명 운동이다. 각각의 분야를 가로지르는 생태적 원리에 기초한, 새로운 종류의 문명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거슬러 내려와 일해야 한다. 백캐스팅은 현재의 환경정책을 결정하는데 기준을 제시한다. 학자와 지도자들은 우리가 실제 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대조한다. 예컨대 에너지와 교통 분야에서 현재의 관행들은 기후변화를 가속화시켜 현재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시스템에 위협이 된다. 대체에너지 자원과 지속가능한 교통에 대한 예측은 생태적 원리에 기반한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보다 구체적으로 상상하도록 해준다. 다시 한번 백캐스팅함으로써 정책입안자들은 현재 시점에서 보다 자세한 목표와 전략적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
정부, 종교지도자들, 그리고 많은 경우 NGO 지도자들도 이런 방식을 잘 채택하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민간분문에서는 백캐스팅 기법을 많이 응용한다. 산업계는 미래의 수요공급 패턴을 계산하고 가용자원과 수요를 추산한다. 그런 다음 미래상황에 대한 예측에 기반해 투자를 결정한다. 아마 이런 종류의 계산이 석유회사 쉘로 하여금 수소차 개발을 선도하게 했을 것이다. 앞서 말한 드로다운 프로젝트는 여러 분야에 걸쳐 기후변화를 늦추는 방법들을 모았으며 이는 중요한 진전이다. 그러나 백캐스팅 기법을 활용했더라면 특정한 문명적 목표를 위해 어떻게 다양한 단계를 통합하고 우선순위를 정할지, 여러 다양한 요소들이 합쳐지면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질문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실적인 희망
백캐스팅 기법을 작동시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동의는 무엇일까. 우선 목표에 동의해야 한다. 우리는 진정으로 생태적인 문명이 목표라고 생각하는데 이 목표는 얼마든지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목표를 어떻게 이름 짓든, 이런 문명은 기계와 개인보다 유기체와 생태학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만이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이항대립으로 세계를 표현하지만, 새로운 사고는 세계를 구성하는 두 용어쌍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생각하는 철학을 가르친다. 개인들의 소비에 대한 욕망이 인류를 붕괴의 끝까지 데려왔다면, 생태적 원리 위에 세워진 사회는 상호의존성, 즉 경쟁보다는 협력을 중심에 두는 데서 출발할 것이다. 보다 효율적인 기술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공동의 이익을 목표로 살기 전까지는 아직 전환운동에 완전히 참여한 게 아니다.
우리는 장기적 비전, 즉 현재 많은 이들이 하는 일을 넘어선 비전에 중점을 둔다. 상황을 개선하려는 많은 노력들이 있고, 그것을 지지하거나 돕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들은 에너지, 교통, 무역, 개발, 농업, 교육, 도시화, 경제, 정치, 국제관계 등 모든 분야에 걸쳐있다. 그러나 우리 목표는 현재 구조를 “개선”하는 게 아니라 현재 구조를 “전환”하는 것이 돼야 한다.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려면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뒤 캠프 1, 2, 3, 4로 계속 목표를 옮겨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환경주의를 넘어 “녹색화”를 넘어, 지속가능한 발전을 넘어, 물질주의를 넘어, 자본주의를 넘어, 사회주의를 넘어, 심지어 생태정의도 넘어 계속 나아가야 한다.
재생에너지를 예로 들어보자. 풍력이나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사용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현재 에너지 소비수준을 유지하면서 탄소배출량을 줄이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지속가능성”이란 용어는 종종 현재의 생활방식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사용된다. 반면 생태문명이 재생에너지 사용을 장려할 때는 자연과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현재의 착취적 시스템”을 넘어서는 보다 근본적인 전환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는 생활양식과 소비수준을 바꾸는 마인드셋의 전환이다.
현재 상황은 희망이 없지 않다. 전문가들이 우리에게 요청하는 행동은 정확하고 시급하다. 전 세계의 NGO, 용기 있는 개인, 종교 공동체, 몇몇 정부와 기업들이 필요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 구체적이고 희생적이기까지 한 단계들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 그리고 승산을 가늠하는 일은 여전히 부족하다. 일부 환경주의자와 활동가들은 우리가 열심히 하면 재난을 피할 수 있다는 낙관적 생각을 갖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데이터나 현재 사람들이 취하는 태도를 보면서 이미 늦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희망 없이 사는 것은 행동을 무력화시키지만, 순진한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것 역시 무기력으로 빠지는 절망을 낳는다. 제3의 가능성은 생각과 행동에 지침을 주는 접근인데, 이 역시 태도라는 중요한 문제로 돌아간다. 현재 지구의 상황을 문명적 변화로 통합하기 시작하면 “현실적이면서 장기적인” 새로운 종류의 희망이 생긴다.
현실적인 희망에는 두 가지 토대가 있다. 첫째는 지금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활양식을 바꾸고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강화하고 자급자족 기술을 배워서 탄소발자국을 급격하게 줄이자. 이런 지식을 나누고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고 전환운동을 확산시키자. 이미 전세계에서 인류는 움직이고 있다. 아직 난파위험에 빠진 배를 되돌릴 시간이 있다. 만약 우리가 지금 이렇게 하지 못하더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남아있다. 현재의 우리 문명이 새로운 사막과 농작물이 자라지 않는 황무지, 오염된 물과 공기를 만들어낸다면 문명의 하부구조는 붕괴하고 우리 문명은 앞선 다른 문명들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생존자들이 지속 불가능한 문명을 다시 만든다면 또다시 같은 운명을 겪을 것이다. 오로지 지속가능한 문명만이 살아남고 오래 번성할 수 있다. 그래서 장기적 해결책은 단 하나, 진정으로 생태적 문명을 만드는 것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이런 문명을 만들기 위해 한걸음씩 내딛는 것이 현실적인 희망의 토대이다.
연방의회 바이에른 아욱스부르크 지역구 의원 울리케 바르 (Ulrike Bahr, 사회민주당•SPD) 의원실 답변으로 본 독일 연방의회의 입법과 의원의 역할:
상임위원회 법안 검토보고 및 토의과정을 중심으로
작성자: 지역구 보좌관 크라취(Kratzsch)
<각 교섭단체는 상임위원회별로 주제에 따라 “검토보고 의원”을 둔다>
1. 연방의회의 한 의원이 공약사안 등과 관련하여 야심적인 법안을 발의하고자 하는 것을 상정하였을 때, 이 과정에서 의원, 의원실, 의회공무원 등이 어떠한 역할로 어느 정도의 기여를 하는가?
답변:
a) 의원의 역할
바르 의원은 ‘가족위원회’(가족/노인/여성/청소년 위원회 약칭) 및 그 산하 ‘시민연대소위원회’ 상임위원이다. 추가로 보건위원회 및 가족위원회 산하 아동소위원회 대리위원이다(해당 상임위 및 소위 상임위원 궐석 시에 대리).
연방의회 의원들은 다양한 상임위 가운데 적절한 위원회에 배정받음으로써 전문정치가가 된다. 각 원내 교섭단체는 한 상임위 내에 전문 주제에 따라 각각 전문 검토보고 위원을 둔다. 바르 의원은 가족위원회에서 “아동‧청소년복지, 시민연대, 취약아동건강” 사안 등에 대한 전문검토 보고자이다.
법안이 연방의회에 발의되는 것과 관련하여 먼저 구분해야 할 것은, 누가 발의자이고 어느 상임위가 주관 상임위인가이다. 그러므로 바르 위원의 경우, 가족부가 주관상임위이고 해당법안이 바르 의원의 전문검토보고 분야에 해당하는가가 관건이 된다.
대부분의 연정교섭단체의 법안은 해당 부처에서 준비되고, 내각(국무회의)에서 의결되어 의회에 발의된다. 이어서 연정 교섭단체는 법안의 변경 여부에 대하여 토의를 한다. 의원발의법안은 사실상 야당의원들이 발의하는 것인데 의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바르 의원이 찬성한 “동성혼인허용법(민법개정)”을 사례로 본 당과 의원의 역할을 보자면)
연방의회가 열리는 매주 사회민주당(SPD)은 의원 전원이 참석하는 의원총회를 개최한다. 여기에서 연방의회 본회의를 앞두고 논의될 법안과 의결될 법안에 대한 토의가 이루어진다. 당에는 연방의회의 각 상임위원회 구성에 상응하는 원내 교섭단체 워크그룹(Arbeitsgruppe/AG)이 존재한다. 각 워크그룹 대표는 여기에서 현안의 내용과 각 상임위원회의 토의 및 표결 결과에 대하여 설명을 한다.
이 과정에서 예컨대 바르 의원은 관련 상임위원회와 사회민주당 소관 워크그룹의 논증을 비교하여 어느 입장을 따를 것인지를 결정한다. 당의 표결 권고(당론)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각 의원은 여기에서 자기 당의 모든 의원과 최고위원회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개진할 수 있다. 표 분산을 막기 위해서 당론 구속이 존재하는데, 원내 교섭단체는 의원총회가 진행되는 동안에 해당 워크그룹 대표를 통해 소속의원들에게 표결권고(당론투표)를 전달한다. 하지만 의원들은 법적으로 이에 구속받지는 않는다.
매 상임위원회 회의가 있기 전에 당의 상임위원들은 소속 당 워크그룹과 만나, 상임위 회의에 대비한 논의를 한다. 검토보고자들은 상임위에서 토의될 사안에 대하여 정보를 제공하며, 여기서 의원들은 특정 사안이나 법안에 대한 토론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정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 당 소속 워크그룹이 상임위에서 법안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가 조율된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워크그룹이 스스로 이니셔티브를 주도하고자 하면 스스로 법안이나 의안을 작성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연정의 상황에 따라 연정파트너와 조율을 하고 각 교섭단체별 의결을 거쳐 상임위나 본회의에 회부되어야 한다.
검토보고자는 상임위에서 다른 교섭단체에 대하여 자기 교섭단체가 사안에 대하여 어떻게 결정하였는지에 대하여 설명한다. 예컨대 바르 의원의 검토보고 사안인 경우 바르 의원이 워크그룹 및 다른 동료의원과 원내 교섭단체의 제1 대화창구가 된다. 바르 의원은 검토보고에 충실을 기하기 위하여 유관 기관 및 활동가들과 수많은 면담을 진행한다. 물론 비판적 견해도 환영한다. 이로써 자신의 결정이 가능한 현실적이고 정의롭게 내려질 수 있도록 최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형성하기 위해서이다. 바르 의원은 교섭단체 내 워크그룹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판단과 평가 및 바람직한 수정사항 등을 다른 위원들에게 전달한다.
b) 각 의원의 보좌진
보좌진은 바르 의원을 위해 내용적인 작업을 한다. 문의사항에 대하여 리서치를 하고, (전문가) 소견을 청취하고, 간담회 일정을 준비하며 의원을 위한 현안보고서를 작성한다. 특정사안에 있어 불명확성이 존재하는 경우 바르 의원에게 완전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보좌진이 활용할 수 있는 거대한 정보원으로서 예컨대 연방의회학술서비스(입법지원실)와 연방통계청 등이 있다. 보좌진들은 다른 의원실로부터 정보를 입수하기도 하며 소속 당 보좌진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c) 정당의 전문위원
사회민주당 원내 교섭단체에는 각 상임위에 상응하는 워크그룹에 최소한 1명의 전문위원을 배치하고 있다. 전문위원은 의원들과 보좌진들을 응대하여 법안 제출 및 토의 과정에서 이들을 내용적으로 지원한다. 전문위원들은 워크그룹 대표들과 밀접하게 공조한다. 각 의원실의 업무가 전문위원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할 수 있다. 전문위원들은 다른 원내 교섭단체들, 특히 연정 파트너와의 회합을 주선하여, 법안의 논쟁 부분을 적시에 인지하고, 필요한 경우 의견 조율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주나 지자체 의원 보좌진과의 공조는 이루어지지 않는데, 이는 법이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민주당 당중심부도 사회민주당 원내 교섭단체와는 별도로 움직인다.
d) 연방의회 공무원
연방의회학술서비스(입법지원실)의 학술지원직(입법조사관)들은 현안들에 대한 정보를 중립적으로 의원들에게 제공한다. 이러한 작업은 단지 의원이나 의원실의 의뢰가 있는 경우에만 이루어진다. 이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각 의원실에 달려있다.
상임위원회를 위해 일하는 연방의회 직원들은 조직 관련 사무지원인력으로서 일한다. 이들은 의사규칙의 준수를 살피면서 회의록을 작성한다. 입법과정에는 내용적으로 일체 개입하지 못한다.
이와 달리 각 부처의 공무원들은 법안 작업을 하며 법안의 구성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이들이 부처의 정치적 의지와 지시에 구속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법안 ‘검토’를 의원 아닌 다른 사람이 ‘대리’한다면, 그것은 의회라 할 수 없다>
2. 법안의 발의 및 상임위원회 토의 과정
a) 상임위원회 참석자: 상임위원회 위원
상임위 위원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 대리참석자가 지정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대리위원이 존재한다. 보좌진이나 입법조사관에 의한 대리는 불가능하다. 회의는 위원회가 선출한 위원장에 의해 진행된다. 위원장은 회의를 가능한 중립적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검토보고자는 각 원내교섭단체의 의원이며, 이들이 가장 먼저 법안과 의안에 대하여 발언을 한다.
연방의회 상임위원회 직원은 표결‧발언권이 없이 회의에 참석하여 회의진행을 지원하고 회의록을 작성한다.
연방정부 장관 및 차관 또는 부처의 대표단은 의원의 질문이 있는 경우 배석한다.
공청회 전문가는 해당 전문사안과 관련하여 초빙되어 의원들에게 해당 사안에 대하여 의견을 진술하고 질의응답을 한 후 해당 사안에 대한 토의가 끝나면 퇴장한다. 공개 공청회인 경우는 예외이지만, 일반적으로 상임위원회는 비공개로 진행된다.
연방의회학술서비스(입법지원실) 입법조사관의 경우, 미리 신청 등록을 한 경우 ‘등록된 게스트’로 상임위원회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허용되지만, 발언권은 주어지지 않는다.
b) 상임위원회 회의 진행
상임위원장에 의한 개회선언
의사일정의 소개
간사(일반적으로 워크그룹 대표)들이 회의 시작 전 진행일정에 대해 최종 합의: 당일 토의사항에 대한 연기라든지 표결 진행 등
검토보고자의 보고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의원의 직무이며, 입법조사관(전문위원)이 대신할 수 없다. 상임위 위원이 회의에 참석할 수 없는 경우, 반드시 대리위원을 지명하여야 한다.
c) 상임위 법안 토의 및 의결 과정
법안이 상임위에 도달하면 토의가 시작되는데, 각 원내 교섭단체의 입장을 표명하는 검토보고로부터 시작된다. 이어서 법안의 세부사항에 대한 토의가 이루어지며, 이는 연방의회 의사규칙이 정한 순서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진행된다. 모든 수정요청 사항은 위원회 다수결로 확인되어야 한다.
연정 원내 교섭단체들의 검토보고자들은 각 당 워크그룹 대표들과 때로는 부처 대표단과 회합을 갖고 위원회 표결을 준비하기 위하여 자체 검토보고자 회의를 갖는다. 종종 심야에 이르기까지 아주 오래 걸리는 토의과정에서 법안의 세부사항들이 연정 파트너들 사이에 조율되고 확정된다.
법안의 세부사항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면 위원회는 이에 대한 표결을 실시하며 본회의의결 권고안을 작성한다. 위원장은 결과를 접수한 후 직권으로 수정안을 본회의에 회부한다.
3. 법안발의자로서 본회의 의결과정에서 의원의 역할 여부?
사회민주당은 대연정 파트너이고 대부분의 법안은 각 부처에서 올라오며, 그 법안들의 토대는 연정협약이라고 할 수 있다. 바르 의원의 경우 소관 검토보고자로서의 지위에서 관련 법안에 대하여 코멘트를 하고 평가를 할 수 있다. 사전에 당 워크그룹에서 의견조율을 한 후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수정제안도 할 수 있다.
법안은 본회의에서 3회독을 거치며, 각 원내교섭단체가 본회의에서 법안에 대해 코멘트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이 역할을 (상임위) 검토보고자인 의원이 담당한다.
<이 글은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학모 연구위원이 2018년 9월 독일 연방의회 아욱스부르크 지역구 의원 울리케 바르 의원실에 보낸 질의에 대한 답변으로서 독일어 원문을 박학모 연구위원이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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