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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최장수 이낙연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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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최장수 이낙연 총리

admin | 화, 2019/10/22- 21:51

한동안 조국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논란으로 정국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둘로 갈라진 거대한 열광과 분노, 냉소와 조롱이 한국 사회를 뒤덮었다. 그 와중에 이낙연 국무총리의 안정감과 신뢰감이 조용히 주목받았다. 혼란 속에서도 이 총리는 ‘책임 총리’로서 돼지열병과 태풍 방재에 전념하는 등 안정적으로 내치를 관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느덧 이 총리는 각종 여론조사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총리는 오는 22일에는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 한국 정부 대표로 참석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회담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통’으로서 일본과 외교 분쟁을 해결할 돌파구를 마련할 것으로 주목받았던 터라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총리에게는 ‘할 일은 확실히 한다’는 이미지가 계속 쌓이고 있다. 과거 고건 총리나 황교안 총리처럼 혼란스런 정국 속에서 2인자인 총리가 주목받는 일이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현재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총리에게 주목할 만큼 떨어져 있진 않다. 어느 날 갑자기 주목을 받았다고 말하기에는 이 총리의 내공도 만만치 않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총리로 지명됐된 이낙연 총리는 지금까지 큰 과오 없이 직을 수행함으로서 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최장수 총리라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자연스럽게 현재 정국에 대한 해결사 노릇도 이 총리에게 바라는 모습이 종종 관측된다. 최근에는 권노갑·정대철 전 의원 등 원로 정치인들이 이 총리를 만나 “조국 법무부 장관이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자신을 내세우는 요란한 대응은 그간 이 총리의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 차기 대권에 대한 질문에도 “아무 계획이 없다”며 말을 아낀다.

 

품격 있는 사이다 발언으로 존재감

“MBC, KBS의 불공정 보도를 본 적 있느냐?”(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

“MBC, KBS를 잘 안 본다. 오래전부터 좀 더 공정한 채널을 보고 있다.”(이낙연 총리)

“수십 조 씩 퍼붓는 복지 예산을 늘릴 때인가?”(김무성 바른정당 의원)

“복지 예산은 대부분 지난 대선 때 모든 정당들이 공통으로 공약한 것이다.”(이낙연 총리)

이 총리는 2017년 9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대정부질문에서 야당 의원들의 파상공세에도 불구하고 ‘품격 있는 사이다 발언’으로 상대방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시민들은 이 총리의 대정부질문 답변에 환호했고 그의 주요 발언 장면은 소셜미디어 등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이 총리의 존재감이 본격적으로 부각된 순간이다. 고 노회찬 의원은 이날 이 총리의 모습을 보고 “중학생을 대하는 자상한 대학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자해공갈단 같은 거였는데, 자해만 하고 공갈은 못 하는 그런 상황이 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오랜 언론인 생활과 다섯 번에 걸친 대변인 생활은 그에게 ‘말과 글’을 단련할 시간을 주었다. 명대변인으로 꼽혔던 그는 여러 차례 기억에 남을 말들을 남겼다. “지름길을 모르거든 큰길로 가라. 큰길을 모르겠거든 직진하라. 그것도 어렵거든 멈춰 서서 생각해 보라.” 2002년 10월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사퇴를 압박하는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 의원들의 공세가 최고조에 달하자 당시 선대위 대변인이었던 이낙연 총리가 남긴 논평이다. 이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취임사의 최종 정리를 맡았다. 노 대통령은 연설문을 극찬하며 토씨하나 고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달 대정부질문에서도 이 총리에게 조국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질문이 쏟아졌다. 이 총리는 비판할 것은 비판하면서도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인사청문회 이후 조 장관에 대해 어떻게 판단했느냐”라는 질문에 이 총리는 “문 대통령께 (임명 전에) 저의 의견을 충분히 말씀드렸다”며 “저의 의견을 여기서 공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이 총리가 사실상 반대 의견을 표명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 장관이 자택 압수수색 당시 담당 검사와 통화한 것에 대해서도 이 총리는 “적절하지 않다, 아쉬움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이 총리는 검찰에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인사청문회 당일 조 장관 부인을 검찰이 기소한 것에 대해서는 “검찰의 의도와 별개로 국회의 검증권한과 대통령의 인사권에 영향을 미쳤다”며 일침을 놓았다. 또한 “이미 알려져 있는 것 가운데는 사실도 있겠지만 추측에 불과한 것도 있고 거짓도 있다”며 “진실이 가려지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조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 요청에 대해서도 “훗날 저의 역할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것은 자연스레 알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21년 동안의 기자 생활 동안 네 가지를 배웠다고 한다. 첫째, 진실은 몹시 알기 어렵다. 둘째, 어느 경우에나 공정해야 한다. 셋째, 말과 글은 알기 쉬워야 하며 그러려면 평범하고 명료해야 한다. 넷째,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 일주일에 하루는 책을 읽으려 한다. 그 중에서도 진실에 신중하다는 것과 “공정을 내 브랜드로 삼고 싶다”는 말에 눈길이 간다. 이 총리는 국회의원에게 의사당에서 주먹질을 당했지만 세상에 알리지 않는 대신 동료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앞으로 그 의원 기사는 자네가 써 주게. 나는 공정할 자신이 없네.” 지금의 이 총리의 모습에서 보이는 신중하면서도 강단 있는 태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꼼꼼한 일처리, 공백 없는 삶

이 총리는 늘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꼼꼼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그의 좌우명은 근청원견(近聽遠見)이다. 가까이 듣고 멀리 본다는 뜻이다. 전남 지사 시절에는 ‘이 주사’로 불리기도 했다. 실무를 맡는 6급 공무원 같다는 의미다. 보도자료 문구 하나하나도 직접 챙긴다고 한다. 이 총리는 국회의원 시절에도 의정활동 우수로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전남 지사직 수행도 ‘100원 택시’ 정책 등 대체로 후한 평가를 받는다.

이 총리는 취임 이후 장관들의 ‘군기’를 잡는다는 소문도 났다. 보고를 제대로 못한다고 질책도 서슴지 않는다. 2017년 8월 살충제 계란 파동 당시 국정현안점검조정 회의에서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관련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자 “제대로 답변 못 할 거면 기자들에게 브리핑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이 총리의 스타일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인자한 어머니(자모)’, 이낙연은 ‘엄격한 아버지(엄부)’라는 말이 돌 정도다. 어느 날 이 총리가 장관들의 술자리에 참석한 일이 있는데 “총리님 질문 좀 하지 마세요”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매주 월요일마다 이 총리와 정례 오찬 회동을 진행한다. 2018년부터는 정부부처 업무보고를 문 대통령이 아닌 이 총리가 주재하기도 했다. 역대 정부에서 매년 신년 부처 업무보고를 대부분 대통령이 주재한 것을 보면 이 총리에게 실리는 무게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과거 신문사 논설위원 시절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마치 최근의 이 총리에 대한 경구인 것 같기도 하다. “정상외교는 단발적이지만 내정은 연속적이다. 정상외교는 효과가 금방 나타날 수 있으나 내정에 효과가 나려면 많은 절차와 시간이 소요된다. 사람들은 그것을 참기 싫어한다. 그래서 하나라도 확실히 매듭짓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전략이 필요해진다. 많은 것을 펼쳐놓고 별로 주워 담지 못한다면 펼치지 않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소수정부가 가장 의지해야 할 것은 국민의 감동이다. 감동을 주기는 어렵지만 잃기는 쉽다.”

최근 일본과의 갈등 국면에서 이 총리는 특사로 파견될 것이란 기대도 받았다. 이 총리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래 전에 장관을 하고 잠깐 쉬는 사이 한국에 들렀을 때 비 내리는 삼청각에서 소주를 마셨던 일화가 있다. 그 자리에서 이 총리는 일본이 한센병 피해자 보상에 조선인만 차등을 둔 것을 지적했고, 아베 총리는 “알아보고 시정하겠다”고 답했다. 아베 총리는 1년 뒤 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해 결국 고쳤다.

이 총리는 일본에 가게 된다면 도쿄의 이자카야에 가서 ‘곤방와(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마침 30년 전 이 총리는 도쿄 특파원 시절 아키히토 일왕 즉위 행사에 참석한 경험도 있다. 이번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 참석해서도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어떻게 보면 이 총리는 정치인으로 한 번의 낙선도 없는 ‘꽃길’만 걸어온 것처럼 보인다. 동아일보 기자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의 눈에 띄어 정계에 입문했고 성공가도를 달렸다. 언론인 출신 정치인 중에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이 총리는 가난한 농부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렵게 서울대 법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사법시험의 길을 걷지 않고 취업의 길을 택한 뒤 기자가 된 것도 어려운 집안 사정의 영향이 컸다. 한 인터뷰에서 이 총리는 “인생에서 무직 상태로 있었던 것은 기자를 그만두고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전 50일이었다”며 “이력서에 공백이 있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는 공백이 있으면 굶어죽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남지사 후보 경선에 도전할 때도 만만치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80%는 주승용 의원에게 진다고 했지만 국회의원직을 던지고 도전하는 길을 택했다. 경선 당시 돈이 없어서 광주시내 값싼 원룸에서 지냈는데 겨울에 곰팡이가 슨 바지를 입으면 피부에 달라붙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를 ‘곰팡이 같은 내 인생’이라고 곱씹으며 막판에 극적인 승리를 일궜다.

 

장점이자 단점 ‘무난함’

취임 이후 이 총리는 무난한 내정 관리를 수행해 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8년 9월에는 3년 만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확진 환자가 나오자 이 총리는 신속하게 대처해 확산을 조기에 차단했다. 조류인플루엔자, 살충제 계란 대응도 무난했으며 돼지 열병에 대한 대응도 아직까지는 괜찮은 편이다.

몇 가지 논란도 있었다. 이 총리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김영란법의 선물비 상한액 5만원을 농축산물에 한해 10만원으로 올리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농어민들을 배려한 조치였지만 결국 고무줄 규제가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남북 단일팀 구성에 대해서도 “메달권에 있거나 그렇지는 않다”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이 총리는 “가령 좋은 북한 선수 몇 사람을 추가해서라도 승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우리 선수들 사이에서도 생기고 있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해명했지만, 마치 어차피 메달권 밖이라 단일팀을 구성해도 괜찮다는 발언처럼 들려서 뭇매를 맞았다.

때로는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글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 총리는 지난 7월 우정노조가 총파업 계획을 철회하자 “한 번도 파업하지 않은 자랑스러운 전통을 지키셨다”는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노동조합이 자신의 가장 강력한 권리인 파업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 원인이 있을 텐데도 이를 두고 ‘전통’이라 표현한 것은 노동자 파업에 대한 이 총리의 경박한 인식을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 총리는 이후 해당 문구를 삭제하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주신 노조원들께 감사드린다”고 수정했다.

차기 대선주자로서 이 총리에게 관심이 쏠리고는 있지만 안정감과 신뢰감 외에 확실한 이미지를 굳히지 못한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아직까지 이 총리는 차기 대권에 대해서는 철저히 입을 다물고 있다. 언론의 집요한 질문에도 “지금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참 두려운 일” “아무런 계획도 없다” “총리가 계획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총리를 그만둔 뒤에나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2007년 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안을 두고 벌어진 여야 토론회에서 이 총리는 당시 박형준 한나라당 의원과 설전을 벌였다. 그 자리에서 박 의원은 “링컨은 민심과 함께하면 실패할 것이 없고 민심과 함께 하지 않으면 성공 없다고 했다”고 공격했다. 그러자 이 총리는 “세네카는 이런 말을 했다. 민심에 거스르기만 하면 국민에 의해 망할 것이고, 민심에 따르기만 하면 국민과 함께 망할 것이다.”라고 맞받았다.

앞으로 이 총리가 걸어야 할 길도 비슷할 것이다. 지난 10년 사이 민심은 더욱 집채만한 파도처럼 요동치고 있다. 때로는 성내고, 때로는 열정이 넘치고, 때로는 냉소하고 조롱하고 뒷짐지는 민심 사이에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진지하게 ‘민심’만을 내세우는 정치인치고 제대로 된 정치인은 없었다. 세네카의 말을 인용했던 이 총리라면, 그 길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유종민, <총리의 언어>(타래)

[신동아 2019. 7. 17]‘지일파 해결사’ 이낙연 국무총리

[노컷뉴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2019. 1. 22][인터뷰] 이낙연 “여론조사 1등? 대권 생각 자체가 두렵다”

[한겨레 2019. 5. 13] 이낙연 총리 “민주주의 끊임없이 위협”…태극기부대·일부 야당 행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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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해체 이후 근대 세계사는 새로운 단계인 후기근대(late modern age)에 접어들었다. 세계인이 이를 점차 실감하고 있는데, 촛불 이후 남북 코리아는 더욱 그러하다. 새로운 시간의 실감 속에서 최원식 교수가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글 「남북연합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강조하고 코리아 남북연합이 그 촉진자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후기근대의 세계 상황이 두 코리아의 공존체제·평화체제를 가능하게 하고 있으니 이를 위한 내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평자로서는 동의하고 환영한다.

이제 촛불혁명과 판문점, 싱가포르 선언으로 그 가능성은 바로 코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촛불 직전인 2016년 5월 《프레시안》과 ‘다른백년’이 주관했던 4회 강연에서부터 평자는 공존체제, 평화체제보다 ‘양국체제’라는 개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공존체제나 평화체제는 ‘그냥 맞는 말’로 들릴 수 있다. ‘좋아.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공존과 평화를 이뤄낼 실제적 방법, 핵심고리가 중요한데, 이것이 ‘코리아 남북 양국의 주권국가(sovereign state)로서의 상호 인정’에 있다는 것이다. 결국 양국체제가 돼야 공존과 평화가 가능하다. 양국체제란 양국 공존체제, 양국 평화체제의 줄임말이다. 공존과 평화를 실현할 양국체제가 남북연합의 바탕이 될 것도 자명하다.

발제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우선 발제문은 ‘國際(inter-national)’보다 ‘民際(inter-civic)’를 중시하기에 통상 쓰는 ‘(남북)국가연합’이 아니라 국가를 빼고 ‘남북연합’이라 하는 듯하다. 국제(International)에 민간관계가 빠지는 게 아니니 민제라는 말이 굳이 따로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국제와 민제가 따로는 아니겠다. 발제문이 언급한 한중일 관계만 하더라도 국제가 안 풀리면 민제도 어려워진다. 극적 사례는 1992년 한중 수교였다. 국제를 트니 민제가 크게 열렸다. 남북관계는 국제(이 경우는 inter-national이 아니고 inter-state가 된다)가 막혀 민제는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있다 할 형국이니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남북연합 논의에서도 국가(state) 대 국가(state)로서 남북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발제문은 그와 전혀 다르게 본다. 아래 문단은 관련 주장이 집약된 것으로 보이는데, 의외로 ‘양국론’에 대한 ‘경계 긋기’로 시작한다.

최근 세를 얻고 있는 양국론에 대해서도 경계를 그을 필요가 없지 않다. 양국체제론자들의 논의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탓에 단정하긴 어렵지만 남북은 일국도 아니지만 양국도 아니다. 분단으로 두 쪽이 난듯이 보여도 남과 북은 분단체제의 드러남으로 연계된바, 분단체제를 상정하지 않은 양국론과는 애초에 무관하다. 그렇다고 그냥 일국론도 물론 아니다. 정말로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不一不二]. 요컨대 분단체제를 상정한 남북연합론을 설령 통일의 최종형태로 삼는다고 해도 그 연합이 두 나라의 단순 병치가 되기는 애시당초 그른 것이매 남북연합론은 주변 4강의 의심을 풀고 내부의 대국주의를 절약할 요체가 아닐 수 없다. 요컨대 남북연합론은 일국적 통일론과 양국적 반통일론을 가로지르는 중형국가적 분단해소론이다.

국가 대 국가의 문제를 시종 비켜가고 있다. 일국도 아니고 양국도 아니라 한다. 과연 그런가? 현실은 일 민족, 이 국가(one nation two states)이다. 둘이되 하나요, 하나이되 둘[一而二, 二而一]이다. 엄연한 사실이 그러함에도, 즉 이 두 개의 국가가 국제적으로는 모두가 널리 공인된 국가이면서, 막상 양국은 아직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이것이 문제요, 비정상 아닌가? 그러나 「발제문」은 거꾸로 본다. 이런 상태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여기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 ‘불일불이(不一不二)’라 한다. 불일불이란 불가(佛家)의 진리관[中論]을 표현하는 높고 찬란한 언어다. 진리적 불일불이가 ‘분단체제’라는 개념에도 적용되고 있다. “분단으로 두 쪽이 난듯이 보여도 남과 북은 분단체제의 드러남으로 연계된바 …… ”라고 하였다. 분단체제를 이렇듯 고도로 긍정적인 개념으로 보기 때문에, 발제자의 ‘남북연합’이 “분단체제를 상정한 남북연합론”이라 하였다. 그동안 ‘분단체제’란 말은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왔기 때문에 이를 이렇듯 고도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용법이 일반인에게는 매우 낯설다. 분단체제는 남북이 적대하는 체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국가로서 인정하지 못해왔던 체제 아닌가?

거듭 말하여, 현실은 일 민족 이 국가 상태다. 체제 보장은 북미 간에만 아니라 남북 간에도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양국체제다. 과연 무엇이 분단과 분단체제를 영구화시켜왔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둘임을 부정했기 때문에, 둘을 부정한 채로 결코 하나이자고 했기 때문 아닌가? 둘이 서로 인정하는 것이 이 함정을 벗어나는 제1보다. 돌아가는 것 같지만 그것만이 바른 길이다. 『노자(老子)』 22장에서 “곡즉전 왕즉직(曲則全 枉則直)”이라 했던 게 양국체제의 취지와 닿아 있다.

양국체제 없이 남북연합이 제대로 될까? 국(state) 간의 際가 안 열렸는데 民 간의 際가 활짝 열릴까? 그렇듯 국제가 닫힌 채로 가능한 남북연합이란 어떤 것일까? 양국체제가 성립하고 안정돼야 비로소 그 두 국가(state) 간의 남북연합이든 국가연합이든, 낮은 단계든 높은 단계든, 비로소 현실화되는 것 아닌가? 촛불혁명, 그리고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선언으로 이제 양국체제는 목전의 현실문제가 되었다. 판문점, 싱가포르 회담 한참 이전부터 줄곧 강조해온 것처럼 종전과 북미 수교는 양국체제의 입구요 일부다.

양국체제란 1973년 <동서독기본조약> 이후의 동서독 관계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동서독기본조약>에서 양독(兩獨)은 서로를 국가로서 분명히 인정했고, 기본조약 이후 미국은 동독과 수교했다. 그 두 고리가 풀리면서 양독 관계는 안정됐다. 반면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는 이 둘 다 이루지 못했다. 유엔 동시가입으로 코리아 양국체제의 외적 모양새는 일단 시작되었지만 완성되지 못했다. 불완전하고 불균형했다. 그랬기에 그 경로는 금방 닫혔다. 반면 동서독의 양국체제는 안정적으로 지속됐다. 정권이 바뀌어도 존속했다. 이런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당시 남북이 처해 있던 여러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낮은 수준에서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거꾸로 뒤집어서 그것이 마치 아주 높은 수준의 결과였던 것처럼 생각한다면 문제가 된다.

「발제문」의 ‘불일불이’ 구절을 읽으면서 연상을 금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의 유명한 “(남북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구절이다. 이 표현은 매우 외교적인 것인데, 이를 액면가보다 낮추어 읽는 것이 아니라(외교문서를 읽는 기본이다), 오히려 액면가보다 훨씬 높게 읽는 경향이 있었다. 마치 ‘남북은 국가 대 국가로 서로를 (아직 외적 조건과 내적 능력이 부족하여)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뜻이 높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남북은 애당초 두 국가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이기 때문이다’라는 식이다. 그렇게 읽으면 이 구절은 마치 ‘우리가 지금 하나는 아니지만 결코 둘일 수 없다(불일불이)’라는 높은 이상에 남북 대표가 의기투합하여 ‘우리는 결코 두 국가가 될 수 없으니 이러한 불일불이의 상태에서 곧바로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통일로 직행하자’라는 뜨거운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표현한 것이 된다. 실제로 그런 오독들이 꽤 있었다. 서로 국가로 인정하지도 않는데 연합이든 연방이든, 어떻게 가능할까? 여기에 대한 답은 여태껏 듣지 못했다.

끝으로 ‘말이 아닌 말’을 일부러 만들어낼 필요는 없겠다. 위 인용문에서 “양국적 반통일론”이 그렇다. 앞서 설명한 대로 양국체제 없이는 공존체제도, 평화체제도, 남북연합도 담보되지 않는다. 양국체제 자체가 통일은 아니지만, 어떠한 경로보다 통일 촉진적이다. 양국체제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바람직한 통일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반통일’일까? 또 이 말과 짝을 걸어놓은 “일국적 통일론”이란 뭘까? 진보진영에는 실체가 없는 것으로 안다. 북(DPRK) 역시 이 입장을 폐기한 지 오래됐다. 그럼 뭘까? 발제자의 뜻을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런 게 있다면 우스꽝스런 무엇일 듯하다. ‘말이 아닌 말’을 만든 것으로 부족하여 실체 없는 허깨비와 짝을 붙여놓은 꼴이다. 왜 이래야 했을까? 양측에 ‘극단’을 세워놓고 중간에 끼어들어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은 때로 쓸 만하다. 단, 그 양쪽 입장이 단단하고 분명해야 한다. 그럴수록 자신의 입장이 힘을 받는다. 그렇지 않고 ‘말이 아닌 말’과 ‘대립 아닌 대립’을 세워놓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식이라면 별다른 의미나 성과가 없을 듯하다. 또 그렇듯 가로지르는 게 ‘중형국가적 분단해소론’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국가’는 어떤 국가이고(일 국가? 이 국가?), 여기서 ‘분단 해소’는 어떤 해소인지(분단체제의 해소? 분단의 해소?)도 궁금하다. 어쨌거나 지금 필요한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들 사이의 ‘경계 긋기’가 아니라 존재하고 있는 것들의 공통점을 모으는 일이 아니겠나 생각해본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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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4/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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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UN 산하의 인조주의지원조정국은 매년 2-3월 경에 북한 내 인도주의적 상황에 대한 현황보고와 지원계획을 발표하여 왔다. 다른백년은 올 3월초에 UN이 발표한 내용을 번역하여 게재한다. 비록 발표 내용 중에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으나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로 인하여 지원활동에 필요한 재원의 모금에 수 년간 어려움을 겪고 있음이 역력하다. 북한사회의 코로나 팬데믹 감염여부와 상관없이 동족도 아닌 UN 산하기구가 이토록 애를 쓰는데, 같은 민족인 남한의 문재인 정부는 지금 무엇하고 있는가?


요약:

북한의 인도주의적 현황은 지속적인 식량부족과 적정한 의료서비스의 부재로 인해 취약한 계층이 심각함을 겪는 특징을 지닌다. 여전한 낙후된 농업 인프라와 반복되는 자연재해로 인해 10.1백만 명의 인민에게 식량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며, 전 지역을 통해 10.4백만 명에게 의료서비스, 음용수, 화장실과 위생 시설의 개선이 필요하다.

 

UN 북한팀의 수행전략

UN 북한 인도지원 프로젝트 팀의 일차적 임무는 식량안전과 영양실조에 대한 대응에 있으며, 의료 음용수 화장실과 위생시설 등의 기본적 접근이 가능하도록 개선하는 것이다.

2020년 UN 북한 실행팀과 인도주의 지원팀은 5.5백만명을 위의 도표와 같이 지원대상으로 설정하고 이에 필요한 재정 107백만 불을 요청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대상(PiN)의 인원은 2019년의 10.9백만 명에서 10.4 백만 명으로 약간 축소되었는데, 중점적인 PiN의 분야-단계를 측정하는 인도주의 프로그램 순환(HPC, Humanitarian Programme Cycle)의 방법을 수정하면서 조정한 것이다. 지원대상 인원은 2019년의 3.8백만 명에서 2020년에는 5.5백만으로 크게 늘었는데, 2019년에 지적되었듯이, WHO가 지원대상을 확장하면서 5세 이하로 제한 되었던 것을 15세 이하로 확대하였기 때문이다.

여전히 낙후된 농업생산성과 반복되는 가뭄과 홍수 등으로 식량안전, 농업기반과 영양상태가 가장 우선적인 목표로 남아 있다. 불결한 음용수, 빈약한 위생 관행, 그리고 부적절한 의료 서비스로 인해 취약한 인민계층의 건강과 안녕이 위험한 수준에 놓여 있다. 이에 따라 인도적인 지원활동은 가장 취약한 아이들과 여성들에게 집중될 것이며, 지원대상 중에서 5세 미만의 영유아가 32 %, 유산모(乳産母)가 7%의 비중을 각기 차지한다.

가장 취약한 인민들, 특히 자강도 강원도 황해남북도 남포자치시 등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인도적 지원이 제대로 전달하기 위하여 UN 북한실행팀은 다음과 같은 전략목표를 설정하였다.

1) 지역에 기반하며 다분야 별로 접근하는 종합 방식을 채택하여, 가장 취약한 인민들이 영양실조에 인해 발생하는 질병과 사망률을 낮추고, 이들에게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물자를 공급한다.

2) 안전한 음용수, 화장시설, 그리고 위생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여 인민 생활의 질과 표준을 향상시키면서, 발생할 수 있는 질병과 사망을 사전에 예방한다.

3) 기후변화와 자연재해의 충격으로 취약해진 지역과 인민들에게 원상복구를 지원하고 식량안전을 개선한다.

UN과 조선인민공화국간에 체결된 전략적 협력에 대한 상호적 합의(2017-2021)에 따라 2020년 지원우선의 전략적 목표는, UN이 추구하듯이 해당국가의 정부가 스스로 계획을 수립하고 지원하는 원칙에 따라, 다음의 4개 부문에 우선하는 것을 확인한다. 1 식량 및 영양공급의 안전, 2 사회개발 서비스, 3 원상복구와 지속성 유지,  4 통계 와 개발 관리.

실행팀 계획목표는 인도주의지원부서(HCT)의 현실적 실행환경에 의존하는 바, 계획된 지원활동의 전반적 내용을 실시하는 여부는 필요한 재원을 제때에 지원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으나, 실제로 지난 십 수 년간 제대로 지원이 이행되지 못했다.

인도주의지원부서(HCT)는 지원활동에 대한 재원모금이 지원개발과 동반적 이해 그리고 공동적인 노력의 핵심사항 임을 강조하고 관리하여 왔다. 2019년 10월 23일에 착수한 적극적 모금활동은 재원모금에 협동적인 접근방식을 도입하는 추가적인 목표를 진행하고 있다. 모금애로 사항의 모니터링, 협력단체 및 재원을 활성화하는 활동을 지원하는 근거제공의 공문발송 등.

2020 지원우선계획의 실행여부를 관리하는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실행팀은 성과운영그룹 (Result Working Group, RWG)를 설치하였다. RWG가 2020년 초에 시행되도록 운용계획을 수립 중에 있다.

인도주의 프로그램 순환(HPC)의 방식에 따라, RWG는 2020 지원우선계획의 실행여부와 인주주의적 조건의 필요 및 지원의 전환여부를 관리하고 감독할 것이다.

재원모금이 실행여부와 직접적으로 연계되고 있는 까닭에, 재원모금에 어려움이 생기면 실행팀의 계획은 축소되며, 인도적인 지원활동도 위축된다. 한번 재원모금에 실패하면, 이를 다시 확보하기는 어려워 진다.

목, 2020/04/23-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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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주요 거리와 광장은 텅 비워가는 중에, 수많은 병원들은 혼잡과 고통 속에 빠져드는 것을 지켜 보노라면 가슴이 무너진다. COVID-19가 유럽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창궐하면서, 팬데믹 현상이 이후 세상을 바꿀 것이 보다 분명해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대처를 할 것이지 결정하는 오늘의 선택에 미래가 달려있다.

우선 코로나바이러스를 세계 공동(일반)의 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물론 이는 물리적 전쟁은 아니지만 전쟁유사상황에 준하는 물자이동의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위기상황에는 본능적으로 위축되고 이기적으로 되기 싶다. 이러한 반작용은 이해를 할 수 있지만 바로 패배로 가는 길이다. 혼자 해결하려 들면 싸움은 길어질 수밖에 없고, 경제적 인명적 피해는 훨씬 커지게 된다. 적(敵)은 폐쇄된 자국주의를 자극하지만, 국경을 넘어선 협력을 통해서만 이를 격퇴시킬 수 있다.

선진국가들뿐만 아니라 취약한 국가군들과 이해가 충돌되었던 지역 간에도 팬데믹을 퇴치하기 위한 국제적 접근이 필요하다. 나는 이 점을 지난 G7 외교장관 모임과 주요한 국제회의 때마다 강조하였다. 유럽연합(EU)은 이러한 노력의 일부이자 주도하는 세력이 되어야 한다.

바로 지금이 연대라는 표현이 빈 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다행히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마스크 수백만 장을 서로 교환하고 독일이 프랑스와 이탈리아 환자를 자국 내 병원으로 수용하면서 이미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 자국주의라는 조치를 넘어서서 국가간 연대로.

해당 책임부서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주요한 의료장비들의 공동구매가 용이해지고 경제촉진 구제정책에 함께 협력하고 외국에서 곤경에 빠진 국민들을 자국 내로 귀환시키는 영사활동의 협력이 이루어 지고 있다. 유럽의회에서 의결이 이루지면서, EU지도자들 간에 유럽단위의 위기관리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하기 위한 공동전략에 협력적 노력을 한층 강화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COVID-19는 국간 간에 또는 체계경쟁을 향한 전쟁이 아니다. 이미 팬데믹의 진행단계에 맞추어 유럽과 중국 그리고 기타 지역 간에 상호지원과 연대가 상호적으로 진행되어 오고 있다. 전염병이 발발되자 유럽은 중국을 지원하였고, 이제는 회복된 중국이 전세계에 의료자재와 의료진을 보내주고 있다. 지국적 연대와 협력의 귀중한 사례가 되고 있고 이를 규범화해야 한다.

COVID-19를 접근하는 한가지 선택은 이를 통해 역사를 변화시켜야 한다. 변화의 내용이 무엇이 될는지 아직 모르지만, 팬데믹이 주는 메시지와 결과에 대해 EU가 중국과 미국이 함께 공동적인 노력을 하도록 일치단결하여 목소리를 내야 한다. 상기 3개의 힘들이 함께 같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만 G20와 UN 역시 달라 질 수 있다.

단순히 정부간의 국제적 공조를 넘어서서, 과학자와 경제학자 그리고 정책입안자들 간에도 협력이 확산되어야 한다. 2008년 세계경제가 수직으로 추락하는 위기에서 구출하는데 G20의 협력이 핵심적 역할을 한 경험이 있다. 같은 선상(線上)에서 다시 한번 그리고 긴급하게 주요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이다.

국제적인 협력을 추진하는데 4가지 우선적 사항이 있다.

첫 째, 국제적인 공공선을 실행하기 위하여는 방역조치와 백신개발에 모든 자원을 공유해야 한다.  둘 째, 금융과 재정적 구제조치와 국제통상의 보호에 힘을 합하여 경제적 타격을 최소화 해야 한다.  셋 째, 건강책임 당국이 긍정 신호를 보내면 닫혀진 국경들을 호혜적 방식으로 다시 개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음해적 정보를 퍼트리는 것을 차단하기 위하여 함께 노력해야 한다.

최근에 있었던 G20 회상회의에서 상기 사항들이 일반적 형식으로 언급되었으나, 정말로 필요한 것은 당장 그리고 수주 내에 다자적이고 구체적인 실행이 유지되고 충분할 만큼 추가되어야만 한다.

추가하여 아프리카에 특별히 중점을 두어야만 한다. 지난 2014-16 년간에 있었던 에볼라 출현으로 이미 경험이 축적되어 있기는 하지만, 전 대륙을 통하여 의료시스템이 전반적으로 취약한 상태에서 감염자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많은 빈곤 국가군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선택의 여지가 없이 비공식 경제를 통하여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야만 한다. 이들 국가군에서는 상하수도 시설도 없는 상태에서 집단적인 캠프생활을 하기 때문에 손을 씻거나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전염병과 싸우기 위해서는 국가재정이 필요한데, 빈곤국가들은 재정에 대해 다음 3가지 자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 외국의 투자, 송금 그리고 관광인데. 그러나 모두 현재 상황에서 크게 타격을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투자자본은 안전지대로 신속히 흘러가 버렸고, 돈을 벌러 외국에 간 빈국의 노동자들은 실직을 당하여 본국으로 송금할 여력이 없다.

현재 세계적 규모의 불황에 직면하여 있는 가운데, 빈곤 국가들이 파탄 상황에 빠지게 하지 않으려면, 재정적 지원과 신용의 제공이 절실하다 – 그것도 매우 긴급하게. 국제금융기구와 (선진국)중앙은행 간의 협력만이 이를 풀어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전반적으로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장기적인 대립을 피할 기회가 있다. 벌써 경쟁 국가들 간에 협력의 긍정적인 신호들이 오가고 있다. 심각하게 감염된 이란에 대해 적대적 이웃이었던 UAE와 쿠웨이트 등이 지원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누구라도 동시에 다자(면)적인 전쟁을 수행할 수는 없는 일이다. UN 사무총장이 촉구하였듯이, 현재의 위기를 평화를 회복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 동안 세계는 비협조적으로 위기의 상황을 맞이했고 경고의 신호를 무시했으며 대부분 국가들은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이제는 분명해 졌다 – 모두가 힘을 합치는 것만이 앞으로 전진하는 길이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2020

Josep Borrell

유럽연합 국제관계 및 안보정책의 책임자이자, 유럽연합 집행위의 부위원장

 

<보충칼럼>

국제적 문제는 국제적 해결을 요구한다- G20의 역할론

급격히 악화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은 무엇보다 공중 보건 측면에서 비상사태이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전파되어 정부가 질병을 억제하고자 극적인 조치를 취했음에도 바이러스는 급속도로 번지면서 국제경제에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수요 감소, 공급망 교란, 불확실성 증가가 이어지면서 일자리 감소가 만연하고 회사가 폐업하고 기타 2차적 경제충격의 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근대에 발생한 가장 엄청난 보건 및 경제의 위기임이 분명하다.

사회의 접촉망을 철저하게 차단하여 바이러스 전파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막을 수 있는지에 따라 코로나-19의 경제적 충격의 영향력이 좌지우지될 것이다. 신속하고 효과적인 조치가 행해지지 않는다면 사망자 및 확진자의 급격한 증가, 보건 시스템의 과부화, 기업의 정상 운영 불가능, 세계 경제의 심각한 결과가 초래할 것이다. 경제 성과와 보건(수명) 사이의 밀접한 상관 관계를 고려할 때 경제가 어려울수록 보건부문 또한 장기적으로 더욱 심각한 영향을 초래하게 된다.

각국 정부가 대내 정책을 점차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동시에 국제적 차원 또한 경시해서는 안 된다. 만약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한다면 해외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국내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호주의 경제적 번영은 코로나-19의 지역적 확산뿐 아니라 무역 상대국 및 세계 경제가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달려 있다. 초연결 세계에서 이러한 점은 모든 국가에서 통용된다. 모든 국가는 다른 국가에서 시행된 효과적인 보건 및 경제 정책과 가능한 협력에 대해 불가피한 이해 관계를 갖는다.

G20 정상들은 이와 관련하여 코로나19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일반종합행동계획’에 속히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 G7은 공동 대응을 논의하고자 비상 화상회의를 소집하고 있다. 이에 G20은 코로나-19의 국제적 대응을 위해 주된 역할을 담당하면서, 국제적 권한에 따른 국제적 대응을 통하여 폭넓은 회원국 (주요 선진국 및 주요 개발 도상국 모두 포함)을 포용해야 하며, 세계 금융위기의 성공적 극복에 기여하여야 한다.

G20 창설의 주요 추진국인 호주는 현재 G20 정책에 목소리를 낼 특별한 책임이 있다. 코로나-19 확산방지용 국제대응을 강화하기 위한 집단간섭 및 안정적으로 세계 경제를 회복하기 위한 조정 정책 모두 G20 대책에 포함되어야 한다.

G20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필요한 세계적 리더십을 보여줄 기회와 의무가 있다. 코로나19는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고 국제 시장의 신뢰 상실과 변동성 증가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세계 금융 위기를 극복한 것처럼 G20 정상들은 전 세계 기업, 시장, 시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증가하는 불확실성과 잠재적인 경제 혼란에 맞서 신속하고 결단력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현재까지는 국가 간 조정 또는 협력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국이 이탈리아에 보낸 의료 물품과 같은 쌍방의 계획을 통해 현재 이탈리아 내 코로나19 발생을 약화시키며 인명 구조에 도움을 주고 있다. 더 많은 국가들이 함께 하면 더 많은 결과를 이뤄낼 수 있다. 국제적 협력을 통해 다른 국가와 함께 하면 국내에서 일어나는 어려운 상황을 더욱 쉽게 이겨낼 수 있다. 반대로 인종집단 및 노인계층을 차별하는 반사적인 대응은 다른 국가들이 위기에 대처하기 어렵게 만든다.

G20 정상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필수 의료물품 이용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정방안에 합의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해당 방안에는 최소한 핵심요소 세 가지가 포함되어야 한다.

첫째로 G20 정상들은 필요한 모든 의약품, 의약품, 소독제, 비누 및 개인 보호 장비의 자유 유입에 대한 수출 금지 또는 제재를 풀어야 한다. 국제 팬데믹에서는 필수 장비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 세계 보건위기 동안 ‘근린궁핍화 (beggar-thy-neighbour)’ 정책에 의존하면 다른 국가에 경제적 어려움 이상으로 훨씬 큰 피해를 주어서 궁극적으로 자국에도 피해를 입히게 될 것이다.

둘째로 국가 정상들은 필요한 의약품의 가격을 낮춰야 한다. 이는 관세, 수입 쿼터 및 정부 부과 비용을 철폐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리고 셋째로 정부는 최소한 세계 최빈국에서도 코로나-19에 대응할 수 있도록 공공보건을 위한 기금을 확대하거나 세계 보건 기구의 코로나-19 연대대응기금에 대한 사업, 자선 및 개인 기부를 장려함으로써 공공보건 재정의 규모를 조정해야 한다.

정부는 시민보호를 절대적으로 우선시해야 하면서 세계 정상들은 경제침체에서 벗어나 세계경제의 신뢰, 성장, 일자리를 복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행할 것임을 함께 다짐해야 한다. 세계 정상들이 타격을 받은 분야 및 중소기업에 공동으로 지원하겠다고 합의하면 불확실성이 완화되고 신뢰가 구축되며 중요한 시기에 경제가 기능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방안에 대한 G20 정상들의 논의는 팬데믹에 대응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증진하고 코로나-19의 사회적,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할 것이다. 호주는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대응을 주도할 기회 및 책임을 지닌다.

위기를 각국이 개별적으로 대처하려 하면 보건 및 경제적 비용이 더욱 커질 뿐이다.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위기를 타개하려면 진정한 국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바로 G20라는 조직을 통해서 가장 효과적이고 합법적인 방안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들의 정상들은 지체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출처 : 동아시아포럼(East Asia Forum), ANU. 2020/03/19.

존 WH 덴톤

파리에 기반을 둔 국제상업회의소 (ICC) 사무총장 그리고 피터 드리즈데일, 호주 국립대(ANU) 공공정책학교 부설 동아시아경제연구소 소장이자 명예교수

 

목, 2020/04/2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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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와 메르스 참사가 대통령 탄핵과 촛불혁명으로 이어진 한국의 당대 정치사를 배경으로 하여, 한국 정부는 코로나19에 매우 기민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했다. 정부의 관심은 오로지 성공적인 방역에 있었겠으나, 그 의도하지 않은 부대작용으로서 한국은 어느새 세계 민주주의의 선진국으로 우뚝 발돋움한 형국이 되었다. 절제되지 못한 신자유주의화의 파고 속에서 사회질서의 방향을 잃은 듯 보이는 영국과 미국의 자국 비판적 언론을 중심으로, 한국의 방역에 대한 칭찬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의 평가는 애초에는 매우 야박했다. 독일의 헌법학자는 한국의 확진자 동선추적 체계를 문제 삼아 보건 파시스트 국가라는 단어를 썼고, 프랑스 정부의 과학자문위원은 한국의 방역체계가 극단적으로 사생활을 침해하므로 유럽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대중적 변호사가 한국을 중국과 다르지 않은 감시국가라고 폄훼한 칼럼이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 대륙이 미국보다 먼저 코로나19의 중심지로 대두하면서, 유럽 언론의 태도는 바뀌었다. 이탈리아의 스키장이 코로나19 전파의 진원지로 알려지고,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호소에도 젊은이들이 클럽에서, 그리고 이후에는 집에서 파티 모임을 그치지 않자, 마침내 국경폐쇄와 주민 이동제한/금지 조치들이 시행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동의 자유라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그런 비상조치들이 지속하면서, 유럽의 경제적 손실과 국민 생활의 질 하락은 ‘2차대전 이후 최대 위기’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그러자 유럽에서 한국의 방역을 보는 관점이 점차 너그러워지더니 결국에는 미국·영국의 여론을 따라 칭찬을 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관심을 표명하는가 하면, 독일에서는 정부 인원을 파견하여 한국의 방역을 배우고자 했다. 독일 보건장관은 확진자 위치추적 앱의 필요성을 제안했다가 정부 회의에서 거부되었음에도, 여전히 앱 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위치추적이 아닌 블루투스 사용 앱을 개발하여 확진자와 근거리에 있는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애플과 구글이 연합하여 블루투스 방식 앱을 개발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뿐 아니라 처음에는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의 상징이던 마스크가 이제는 구미에서도 전략물자 대우를 받으면서, 때아닌 ‘현대판 해적 행위’까지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앱 사용과 함께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오스트리아는 현재 이동제한 조치를 점진적으로 완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 외의 유럽 어느 나라에서도 그와 같은 시도를 하지 못한다. 시민에게 마스크 착용을 독려하고 싶어도 의료인에게조차 마스크가 부족하고, 이동제한 외의 다른 대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식의 표적 검사를 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확진자 동선 추적이 필요한데,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법적인, 또 국민정서상의 문제 때문에 그것을 시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선진국이자 인권 수호의 전진기지인 서구 그리고 미국에서 이렇게 강력한 주민 이동제한 정책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프랑스 르 피가로지의 아시아 특파원은 프랑스 엘리트의 오만을 꾸짖는 기사로 자국 변호사의 한국 폄훼에 대응했다. 한마디로, 이 비상상황에서 ‘뭣이 중헌디?’라고 물은 것이다. 개인정보 보호를 절대시하느라 이동권 제한이라는 기본권 침해를 기약도 없이 지속하는 프랑스 사회의 모순을 따갑게 지적한 것이다.

이렇게 한국이 국경폐쇄는 물론 주민 이동제한조차 시행하지 않은 민주적 방역 선진국으로 인식되면서, 이제 민주주의 선진국에 대한 새로운 판별기준이 등장하게 되었다. 즉 개인정보 보호가 더 중한가 아니면 이동의 자유가 더 중한가? 생명권이 더 중한가 아니면 사생활 보호가 더 중한가?의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반면 정작 한국에서는 확진자 동선추적을 허용한 특별법의 합헌성이나 그것의 실질적 적용 실태 등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나 감시가 이루어진 적이 없다. 물론 비상사태이기 때문이다. 비상사태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개인정보 수집은 불가피하다는 암묵적 합의가 지배적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자유주의 전통이 약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세월호·메르스의 이어진 재난 충격으로 인해서, 한국 사회에서 ‘사생활’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기적으로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 또 생명이 우선이라는 절박감이 내재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시국에 터진 n번방 사건은 한국 사회의 개인정보 보호 개념이 지나치게 무디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조주빈이 피해자 개인정보를 이용하여 범죄를 일삼았을 뿐만 아니라, 권한 없는 공익요원이 주민의 개인정보에 불법적으로 접근하는 일이 너무 쉬웠음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또 그 와중에 한 주민센터 홈페이지에서는 n번방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8일 동안이나 공개했다.

법적 근거도 없는 해외 입국 자가격리자 전자팔찌 착용을 애교스러운 ‘손목밴드’라는 단어를 쓰며 실시하겠다고 해도, 반대보다 찬성하는 국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말하자면 저 프랑스 특파원과 함께 서구의 개인정보 보호가 생명권에 앞설 만큼 중하냐고 따지는 그 순간에, 우리는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한국 정부와 시민의 인식에 대해서도 물어야 한다. 코로나19가 한국을 새로운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떠올리며 동시에 제기한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국가적 비상시에 이동의 자유뿐만 아니라 개인정보 보호 역시 어느 정도로 제한해야 합당한가? 그것의 부작용은 무엇일 수 있는가? 또 그런 기본권 제한이 정확히 비상시국에만 한정되도록, 시민은 국가권력을 어떻게 견제할 수 있는가?

정신없이 달려온 한국 민주주의 고속열차의 속도를 잠시 늦추어 개인정보 보호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하라고, 코로나19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발 빠른 진단키트 개발이나 혁신적인 정보통신 수준과 같은 과학·산업 측면뿐 아니라 수준 높은 시민정신으로 성공적 방역이 가능했다고 자부하는 현시점에서, 그런 자부심을 유지하고 후대에도 물려줄 수 있는 길은 바로 민주주의를 더 공고히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홍찬숙

현재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 독일 뮌헨대학교 사회학 박사, 전공영역: 위험사회 및 개인화 이론, 연구주제: 현대사회의 불평등, 사회변동, 페미니즘.

금, 2020/04/24-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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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가 돌출하자 첫 번째로 확인해야 할 작업은 역사적 유사성을 검색하는 것이었다 – 1914년, 1929년 아니면 1942년? 현재까지 몇 주가 지나면서, 그리고 앞으로도 몇 주 또는 몇 개월 겪겠지만, 역사적으로 전혀 새로운 충격을 맞이하고 있는 듯하다. 일단 당장의 충격으로 미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25% 수준의 위축을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이것은 대공황 시기와 비슷한 규모이지만, 차이는 대공황 시기에는 충격이 몇 년에 걸쳐서 나타났지만, 이번 경우에는 불과 수개월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하늘아래 처음으로 겪는 돌발적 상황이다, 정말 공포스럽다.

지난 3월 초만해도 미국의 실업률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으나, 겨우 4주가 지난 3월 말에는 13% 수준으로 치솟았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다. 더구나 실업률 통계시스템이 실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충격의 첫 주차에는 3.3백만에서 2주 차에는 6.6백만 명이 그리고 연속해서 3주 차에도 6.6백만 명이 실업보험을 신청했다. 이러한 통계에 기반하여 뉴욕타임즈의 경제분석가인 Justin Wolfers는 매일 0.5%로 실업률이 오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속도의 증가라면 이번 여름에 30.0%의 실업률에 도달하리라는 추정이 비현실적인 것만도 아니다.

서구(유럽)의 경제권도 자신들이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잔인하고 심각한 경제적 충격에 직면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충격은 경기변동에 예민한 부동산과 건설업에서 시작하여 투자에 의존하는 산업엔지니어링 그리고 국제적 경쟁이 심한 자동차 산업 등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 이들 분야의 고용 비중은 대충 25%선 미만이지만, 이들의 위축은 경제영역 전반에 점차적으로 확산되게 마련된다.

코로나 방역봉쇄 조치는 서비스 분야에 직격탄을 날린다 – 소매업, 부동산 임대, 교육, 여가산업 그리고 요식업 등 – 이는 미국인의 80%가 직업으로 일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결과는 매우 즉각적이고 재앙적 일수 밖에 없다. 특히 소매업 분야는 이미 온라인 판매로 인해 심한 압박을 받아온 영역으로 임시적인 휴업은 치명적이다. 아마도 상당수의 가게들은 다시 문을 열기 어려울 것이고, 이에 고용된 수백만의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이들 가족들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충격은 다만 미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사회안전망으로 잠시의 휴직에 수당을 지급하면서 하강국면을 완화시키겠지만, 경제 전반에 걸친 붕괴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북부 이탈리아는 단순히 고급스런 관광지역일 뿐만 아니라, 해당 국가 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지역이다. 독일의 GDP는 수출에 크게 의존하면서 미국의 충격이상으로 위축될 것으로 예상한다. OECD의 최근 예측은 전(全)회원국에게 재앙적이며, 특히 바이러스 충격이 이제 시작단계인 일본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임을 암시한다. 그래도 부유한 국가들에 대해서는 일단 충격의 수준을 대충 가늠할 수 있다.

중국은 가장 먼저 지난 1월23일 격리봉쇄를 시행하였으며, 최근의 공식보도로는 약 6.2%의 실업률을 보이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1990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이다. 중국 당국은 줄곧 실업은 자본주의 국가들에게서 나타나는 문제라고 주장해 왔던 터라, 상기의 수치는 중국내의 위기상황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비공식적으로는 임시직 2억 5천만 명의 노동자들이 휴직상태라고 알려져 있으며, 이는 중국 노동자 전체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인도의 경우, 모디 수상의 갑작스런 21일간의 봉쇄명령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누가 감히 측량할 수 있겠는가? 인도의 4억7천만 명의 공식 노동자 중에 겨우 19%만이 사회안전망에 보호를 받으며, 3분의 2에 해당하는 노동자는 취업계약서조차 없으며, 1억명 수준이 임시직에 해당한다. 이들 대부분은 기약도 없이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는 인도가 분할된 1947년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이렇게 거대하게 펼쳐지는 경제의 대추락이라는 인류의 드라마는 추산(推算)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제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올해부터 전세계의 GDP를 신뢰도있게 집계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도상국가들의 경제(emerging market)가 그저 위축되고 있다는 통계 이외에는 별다른 내용을 내놓을 수 없는 처지에 빠졌다. 한 마디로 전세계 경제가 한 순간에 멈추어 섰다.

이러한 붕괴는 금융위기의 결과도 아니고, 팬데믹이 직접적으로 초래한 것도 아니며, 심사숙고한 정책적인 선택의 결과인 점이 전혀 새롭고 급진적인 사태인 것이다. 선택의 내용은 경제를 촉진하는 것보다 멈추어 세워야만 (팬데믹의)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것으로, 이는 인류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미국의 연방의회가, 사회봉쇄를 결정한 수 일만에, 평화시기에 있었던 최대규모의 재난지원책을 결정하면서 연이어 전세계에 걸쳐 유사한 조처들이 뒤따랐다. 국가재정에 매우 보수적인 독일조차 공공부채에 대한 제한을 철회하였다. 전반적으로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연대적 재정구제의 노력을 목격하고 있으며, 조처의 효과는 수 주 내지는 수개월 뒤에 판명될 것이다.

이미 한가지는 분명해졌다. 우선 당장 급한 것은 거대한 금융위기가 도래하기 전에 추세를 되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연방준비위원회의 제롬 파웰의장이 2008년에 준비된 매뉴엘에 따라 조처를 취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사실이며, 금융시장의 모든 영역을 지원하기 위해 매일 새로운 구제 프로그램이 발표되고 있다. 핵심은 연방준비위의 개입 규모에 있다. 봉쇄조치에 따른 광범한 충격에 대처하기 위하여, 이에 응당한 거대한 규모의 유동성이 파도처럼 제공되고 있다.

3월말 경에는 매일 900억 달러의 금융자산이 매입되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규모보다 큰 것이다. 평소에는 연방준비위는 초단위로 백만 달러 정도의 연방채권과 담보성 유가증권을 현금으로 스왑(교환)하여 왔다.  그런데 공포스러운 실업숫자(6.6백만 명)가 발표되던 날인 4월 9일 아침에, 연방준비위는 2.3조 달러어치 금융자산의 구매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신속하고 거대한 대응조처 덕분에 즉각적인 세계금융의 위기를 당장에는 방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장기간 지속될 수요와 투자의 격감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3월에만 미국 가구의 73%가 가계의 수입에 곤란을 겪고 있다고 보고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수입이 끊기면 당장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생필품 부족과 고통 그리고 파산으로 몰린다. 금융채무자들의 부채 불이행이 치솟을 것이고, 금융산업의 손실을 가져올 것이다. 불요불급한 지출은 미루어 질 것이고, 유럽에서는 이미 석유소비가 88% 격감되었다 한다. 신규 자동차 수요는 돌같이 동결되었고 유럽과 아시아 지역의 자동차 업체들은 재고가 쌓여 있는 거대한 주차장에 앉아 있는 꼴이다.

봉쇄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경제에 미치는 상처는 깊어지고 회복은 지연될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중국은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접근하고 있지만, 제2, 제3 돌출의 위험이 도사린 가운데 언제 어느 속도로 정상적인 생활로 되돌아 갈 수 있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극적인 의료사고를 차단한다는 것은 봉쇄조치가 수시로 취해지고 해당지역의 통행이 제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경우에는 V자형의 힘찬 회복보다는 장기간 지루하게 지연되는 양상이 예상된다.

더구나 현재의 생산과 고용이 재가동된다 하더라도 앞으로 수 년간은 금융의 불안이 계속될 것이다. 당장은 재정정책에 논란의 여지는 없을 것이고 급한대로 돈을 푸는 것에 쉽게 동의가 이루어질 테지만, 사태가 진정되면 논쟁은 싸움처럼 변할 것이다. 위에 언급하였듯이 평화시절에 유례가 없는 대규모의 공공부채를 발생시켰고 중앙은행의 재무제표에 부채를 주차시켜 놓은 꼴이다. 중앙은행들은 초저금리를 유지하면서 발생한 공공부채를 감당 못할 수준은 아니겠지만, 문제는 향후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보수적인 입장에 따르면 향후 재정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늘려서 갚아나가야 한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에 따르면, 좀더 급진적인 대안들이 존재한다. 하나는 인플레를 발생시키면서 현재의 경제조건을 과감하게 재편해가는 것이지만 이에 대한 전망은 분명하지 않다. 다른 대안은 국가부채의 면제인데 이는 공공의 파산을 점잖게 표현한 것으로 실제로 중앙은행의 재무표상에 부채로 기재하는 것처럼 그렇게 충격적인 것은 아니다. 일부의 의견은 중앙은행이 정부발행 채권의 구입을 중단하고 거대한 규모의 화폐발행으로 직접적으로 정부에 신용을 제공하는 것이 오히려 단순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지난 4월9일 영국은행이 선언한 내용과 동일한 것으로, 어떤 목적과 의도와 상관없이, 돈을 찍어내는 것이다. 보수적인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방식을 채택한 것은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보여 준다. 재미있는 것은 금융시장의 반응으로 이에 대해 심하게 항의하거나 곧바로 공황적 투매를 진행하지 않고 그저 어깨만 들썩인(little more than a shrug) 것이다. 이들은 중앙은행들이 취하고 있는 묘기행진에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반증이다.

이러한 절제된 태도는 위기를 극복하는 입장에서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침묵이 지속될 것으로 기대해서는 아니 된다. 뚜껑이 열리는 시점이 되면, ‘국가부채의 적정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정치적 공격과 논쟁이 재개될 것이다. 더구나 누적된 국가부채의 거대한 규모를 감안하면, 논쟁은 이전투구의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여기서 다시 돌이켜 볼 것은 우리가 알듯이 과거 이미 경제와 금융이 급진적인 혼란을 겪었다는 사실이다. 2008년의 금융위기 시절, 예상치 못한 불확실성에 대해 수많은 논의와 필요한 조처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왔고 이를 수확적 확률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도 경험하였다. 솔직히 전문적 예측에 의존하는 것은 오만함과 만능이라는 환상을 부추기는 것이다.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등장이라는 충격으로 포플리즘이라는 변덕스러운 정치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들이 회자되었다. 트럼프의 공격적인 통상정책과 중국과 벌이는 세계주도권 경쟁은 세계화의 미래에 대한 안이한 전망을 뒤흔들었다. 2019년까지 이러한 불확실성은 투자를 주저하게 하고 불황의 위험을 높이는 수준에 머물렀다.

중앙은행들은, 2008년 이후 극적인 개입을 정상화하고 통화량을 줄어가면서 정상적 궤도로 진입하는 와중에, 이제 경로를 급변경하며 초저금리로 회귀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결국은 다시 중앙은행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시기로 진입하는 절박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정말로 괴이한 것으로 우리는 돌출적인 불안정성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인류의 상당수가 일상에 필수적 것을 수급받지 못할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누구도 언제 팬데믹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불과 수주전인 지난 1월에는 모든 것이 정상적이었다 이전에는 돌출적인 상황이 예외적인 염려의 대상이었으나, 이제는 일상적인 것이 되었고, 모든 독감(flu)발생에 지극히 조심해야만 한다. 의학적인 비유로 말하자면 우리가 스스로 완치를 선언하려면 얼마나 더 기대려야 하는가?

봉쇄가 끝나면 지출의 규모가 반등되는 효과가 있을 수 있겠지만 얼마나 지속되겠는가?  이러한 충격에 대한 우리 경험상 분명한 반응은 위축이다. 2008년 이후 미국에서 나타난 현저한 추이의 하나가 가계 비중이 축소된 것이다. 세계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인들의 소비가 확실하게 침체되었고, 이에 따라 투자도 줄고 생산성도 정체되었다. 이러한 침체는 서구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개발도상의 시장들도 함께 침체되었다. 우리는 이를 전반적 침체(scular stagnation)라고 불러왔다.

전례없던 코로나 팬데믹의 충격에 대한 기업과 가계의 반응이 안전에 대한 싸움으로 나타난다면, 이는 복합적인 침체를 가져올 것이다. 이번 위기로 인해 발생한 공공부채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재정축소라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반대로 미래를 내다보는 정부라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주도적으로 행동해야 합리적이고 상식에 맞다.  이 지점에서 핵심은 어떤 정책적 조처를 취하고 누구를 위한 정치세력이 이를 통제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2020.04.09.

Adam Tooze

콜롬비아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이자 유럽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고 있다. 그의 최근 저서로는 “Crashed: How a Decade of Financial Crises Changed the World,”가 있고 기후위기에 대한 역사를 집필하고 있다.

토, 2020/04/25-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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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의 외딴섬 같았던 쿠바에도 바이러스는 비껴가지 않았다. 3월 11일 이탈리아 출신 관광객이 처음 확진자로 확인되었고, 세계적으로 확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터라 코로나 대응을 위한 쿠바 정부의 첫 공식발표가 이어졌다. 약 한 달간 쿠바 국적자, 거주 비자 소유의 외국인을 제외한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외국인의 입국 제한을 시작으로, 이미 쿠바 체류 중인 약 6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출국권유 등 코로나 대응을 위한 쿠바의 발 빠른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

바로 이어 초등학교를 비롯한 모든 고등교육과정을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하는 등 이른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작되었고, 의과대학의 경우 교과 내용이 포함된 과목별 학습지침을 전달받는 개별학습으로 전환되었다. 매년 4월 3번째 주 약 일주일간의 방학이 예정되어 있음을 고려한다면 실제로는 약 4주에 해당하는 조치인 셈이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코로라 바이러스로 인해 이탈리아의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치닫자 급기야 이탈리아 정부는 쿠바 의료진 파견을 공식 요청했다. 이에 쿠바 정부의 응답은 신속하게 이루어졌고, 지난 3월 21일 의사와 간호사 인력을 포함한 약 52명의 의료진을 파견한 바 있다. 지난 2014년 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수많은 인명피해를 내자 가장 먼저 의료진들을 보내 아프리카에 손을 내밀었던 바로 그 쿠바 맨발의 의사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난한’ 나라의 쿠바의 의사들이 궁금하다.

특히 재난 지역과 같은 험지와 오지 등지에서 활약상이 돋보이는 그들에게서 진정한 인류애를 느꼈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 내에서는 의사란 고소득을 보장받는 기득권층이라는 계급적 인식이 팽배하다. 그래서 의사들의 사명감, 헌신, 봉사 등은 우리에게는 친숙하지 않다. 하지만 단지 익숙하지 않다는 사실로부터 그 같은 가치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해 버리지만 않는다면, 쿠바 맨발의 의사들을 이해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를 위해 이번 코로나 사태로 쿠바에서 불거진 댓글난을 잠시 소개해볼까 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후 13일 만인 3월 24일 쿠바 의과대학은 수업의 전면 중단에 해당하는 휴교령이 아닌, 학과목별 학습지침을 전달받아 진행하는 개별학습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병원 임상 실습 경험이 누적된 3학년 이상 고학년을 우선하여 이른바 지역사회 건강상태 여부를 전수조사하는 페스키사헤(Pesquisaje)가 진행되었다. 우리나라의 준종합병원 정도에 해당하는 폴리클리닉(Policlinic)은 해당 지역사회의 진료소와 함께 일차보건의료가 이루어지는 구조다.

지역의 건강상태 전수조사는 매 학기에 한 번씩 약 일주일 동안 관할 지역의 폴리클리닉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교과 과정 일부이기도 하다. 의과대학의 학생들은 평소 분반별 배정되는 폴리클리닉에서 실습과 이론수업을 겸한다. 이번 코로나19 경우 “사회적 거리 두기” 방침에 따라,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도록 학생들의 거주지를 고려하여 집에서 가까운 폴리클리닉을 배정하여 전수조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조치가 있자마자, 소식을 전하는 신문들과 쿠바의 SNS는 초반 온라인에서 뜨거운 댓글 전쟁이 불거졌는데…

이 논쟁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은 의대생을 자녀로 둔 한 어머니의 호소이자 학생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어처구니’없는 조치라는 항변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의대에 다니는 딸을 둔 엄마이며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아주 위험한 상황에 아직 학생들에 불과한 아이들을 지역 감염자를 확인하는 전수조사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잘못된 결정으로 현재 공부하는 학생들은 우리 미래의 의사들인데 이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어리석은 일이다우리의 미래이기도 한 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대체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전수조사 과정에서 우리 아이들이 감염된다는 것을 상상해보시라당장 학생들에게 그만두라고 해야 한다 등…’

아직 졸업하지 않은 의과대학의 학생들을 ‘실전’에 참여시키는 일을 두고 의대생을 자녀로 둔 어머니의 호소는 기실 치열한 논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그녀가 남긴 의견에 쿠바 ‘네티즌’들의 댓글 융단폭격으로 더는 쟁점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재학 중인 학생을 포함, 의대 교수, 그리고 일반 시민까지 댓글 논쟁에 합류했다.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었으나 대부분 논쟁을 불러일으킨 어머니의 ‘항변’에 대해 예의 바른 답변부터 ‘냉소적’인 응답까지 모두가 어머니의 문제 제기에 ‘문제 제기’를 하는 형국이었다.

나도 의과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며, 의사가 되기 위해 의대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쿠바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역할과 의무가 있으며, 희생이 따르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선택한 전공이다지금과 같은 상황에(질병에) 언제든지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각오하고 약속했기에 의대에 올 수 있었다지금이 바로 의과 대학생으로서 그 역할이 주어진 것이며 만약 지금이라도 그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의대를 그만두면 된다 등…’

 나는 의대 교수이며, 나의 아이도 의대에 다니고 있다어머니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그러나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의사가 되어 가는 교육 과정의 일부이며 의무기도 하다.., 모두가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키도록 지도하고 있으니 너무 염려하지 마시라 등 …’

쿠바에서 아주 잠깐 불거졌던 이 같은 댓글 전쟁은 결국 쿠바 지역사회에서 의사가 되려는 사람이 갖추고 있어야 하는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헌신에 대한 가치가 사회적 동의라는 형태로 분명히 자리를 잡았구나! 라는 인상을 주는 논쟁의 과정이었다. 이를 촉발한 어머니의 절실했던 항변이 부당해서라기보다, 개인보다 공동체적 가치가 여전히 쿠바 사회에서 우세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간혹 냉소적인 반응을 감추지 못하는 쿠바의 네티즌도 여럿 존재하기 마련이다.

 쿠바에서 의사라는 직업은 지금과 같은 위급한 상황에 얼마든지 놓일 수 있다는 것을 각오한 것과 다름없다당신의 자녀가 그러한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 싫다면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 것이다(의대를 그만두면 된다는 의미로 이해됨)… 만약 당신의 자녀가 해외 미션을 나가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달러를 벌 수 있으니 선뜻 그러라고 할 것 아닌가요? …’

 한편, 코로나19로 촉발된 의대생들의 페스키사헤를 두고 일어났던 예기치 않은 논쟁 이후 이번에는 스페인에서 날아든 SNS가 학생들 사이에 공유되었다. 지셀(Geysel)이라는 이름의 여성이 쓴 것으로 그녀의 글을 전달한 사람은 그녀를 스페인의 의사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그녀의 SNS 은 쿠바 의대생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는데!

쿠바 의과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잘 들어난 쿠바에 친구들도 많아지금 하고 있는 페스키사헤를 당장 중단해 지금 전달하는 내용은 스페인에서 지셀 박사가 보내온 SNS인데, 너희가 하는 일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경고하고 있으니, 읽고 가능하면 많은 이들과 공유해. 아주 급한 거야. 지금 너희들은 지금과 같은 위험한 팬더믹 위기에 총알받이로 사용되고 있는 거라고.!…

결국, SNS의 ‘혈전’은 쿠바를 떠나 조국을 흠집 내려는 애벌레(Gusano)【1】들의 전형적인 온라인 ‘공작’으로 취급되며 마무리되었다. 물론 이 내용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 학생들의 폭발적인 반응부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들까지 반응은 다양했다. 쿠바에는 ‘표현의 자유’를 포함해 자유가 억압받는 사회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보고 싶은 순간이다. 쿠바의 억압받는 자유가 무엇인지 말이다.

쿠바도 피할 수 없었던 코로나19 사태를 둘러싼 의대생들의 SNS 설전은 쿠바 사회의 다양한 면면을 드러내는 기회이기도 했다. 쿠바 지역사회가 의사로서 요구되는 사명감과 봉사 정신을 당당히 요구하는 모습은 사뭇 놀랍다. 아주 잠깐이지만 이 댓글 전쟁이 내게 남긴 인상이 강렬했던 이유다. 과연 미래의 쿠바 의사들은 어떤 모습일까. 쿠바의 모든 의사가 맨발의 의사들을 연상케 하는 사명감과 봉사 정신으로만 무장되었을 리는 없지 않은가.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지금의 의대생들은 세계가 여전히 주목하는 보건의료시스템을 이끌어 가는 인재가 되어있을까. 앞으로 지켜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1】 Gusano 구사노라는 의미의 애벌레는 쿠바를 떠나 외국에서 살며 쿠바체제를 비난하고 조국을 등진 쿠바인들을 가리켜 은유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임.

월, 2020/04/27-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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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의 위기는 세계경제에 상처를 오랜동안 남길 것이며, 2021년에 빠른 회복을 보인다 해도 이전의 예측에 대비하여 5% 이상 후퇴를 보일 것으로 IMF가 밝혔다. 올해에는 1930대의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경제위축이 예상된다고 설명하면서 세계경제의 전망이 1월부터 급격히 악화되었고, 이는 12년 전에 있었던 금융위기를 능가할 것이라고 IMF의 수석경제분석가인 Gita Gopinath 양이 말했다.

2021년에는 플러스로 돌아서는 부분적 회복이 이루어 지겠지만 GDP는 코로나사태 이전의 규모에 밑치고 못하고 회복의 강도에도 여전히 불안한 요인들이 있다고 그녀는 추가해서 언급한다. 구체적으로 선진경제권은 6.1%, 그리고 개발도상 국가군은 1.0%의 위축이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과 인도는 여전히 플러스의 성장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경제가 반등한다고 하더라도 선진경제권에서 작년 10월에 예상했던 수치에 비하여 2021년의 경제규모가 5%정도의 위축을 가져올 것으로 IMF는 예측한다.

“이는 매우 심각한 불황이고, 기업들의 파산과 실업을 야기시키면서 상처를 남길 것”이라고 Gopina 양은 추가해서 말한다. 그녀에 의하면 개발도상 국가군들은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며, 이러한 주요 배경에는 6개월 전의 예측에 비해 1.4% 정도만 후퇴하는 중국에 의해서 유지되기 것이라고 설명한다. 만약 광범한 격리봉쇄가 2분기까지 지속되고 내년에도 정도는 약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재발된다면 타격의 규모는 두 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IMF는 추정한다.

비록 격리봉쇄가 세계 전반에 걸쳐 경제를 대규모로 위축시키지만, 팬데믹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며 “ 생명을 살리는 일과 생업을 유지하는 것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no trade-off)”라고 그녀는 분명히 못 박았다.

IMF의 2020년에 대한 예측은 많은 민간의 연구기관들이 내놓은 것보다 그렇게 비관적이지는 않다. 기금은 2020년의 총노동(조업)시간이 약 8.0% 정도 줄어들 것으로 분석하면서 중국의 경우에는 1분기, 선진경제권에서는 2분기에 주로 집중된다고 가정한다.

예측에 의하면 2020년에 경제규모가 약 3.0% 축소되는데 이는 지난 1월에 예측한 3.3%의 성장에서 6.3%가 후퇴하는 것이다. 2009년 금융 위기의 절정기에는 세계규모가 0.1%정도 축소되었다. IMF의 기준에 의하면 2.5% 이하로 성장하면 불황으로 분류하는데 이는 세계경제가 90% 기간 동안 2.5%의 수준을 상회했다는 경험에 따른 것이다.

대규모로 경기추락이 이루어지면, 비록 현업에 종업원을 유지하려는 일자리지원 프로그램이 시행되더라도 실업이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결과 IMF의 189 회원국가들의 시민들 수입은 10의 9명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미국의 경우 실업률이 2019년의 3.9%에서 올해 10.4%로 치솟다가 내년에는 9.1%로 약간 낮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유럽지역은 상대적으로 적은 변동을 보이면서 현재의 7.6%의 실업률이 내년에 10.4%로 오르다가 2021년에는 8.9%선에 머물 것이다.

IMF가 예측한대로 작년 10월의 기대치보다 5% 정도의 경제위축과 이에 따른 기업파산과 실업에 각국은 대비하여야 한다. COVID-19의 충격을 제한하려고 많은 나라들이 노력을 기울이면서 공공재정여건이 취약해 질것이다. IMF는 위기의 날카로운 칼날에서 고통을 줄이고 기업을 보호하려는 개별국가들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기금은 많은 국가들이 바이러스을 차단하려고 인구의 이동을 봉쇄한 조치들이 옳았으며, 느슨한 통제라는 다른 대안으로 대처했던 스웨덴 등 국가들도 결국은 심각한 불황을 겪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시장과 기업 그리고 우리의 일상과 일자리에 어떤 피해를 줄 것인가?’라는 뉴스레터에서 그녀는 정부의 재정지원과 중앙은행이 취하고 있는 비상조치들은, 팬테믹이 사라지고 일자리와 학교가 다시 재개되고 일자리가 늘고 소비가 정상화될 때까지, 긴 호흡으로 지속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개발도상국가들은 적정한 의료서비스와 경제적 폐해를 제한할 재원이 없다고 경고하면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보건의료 경제활동과 금융적 위기에 직면한 이들 국가들은 향후 수개월 간 선진경제권의 쌍무적인 신용제공과 국제금융기구로부터 도움이 필요하다고 설명으로 브리핑을 마감했다.

 

파이낸스타임즈(FT) 기사

월, 2020/04/27-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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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십 수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격리봉쇄로 인해 수 주간 이상 세계경제가 정지된 이후, 이러한 역사적 격변을 설명하는 가장 적합한 용어는 ‘급진적 불안정성’이라는 표현이다.

기업들이 정상을 회복하고 일자리가 정상화 될 것인가? 예전처럼 자유여행은 가능할까? 정부와 중앙은행이 쏟아붓는 화폐량이 심각하게 지속되는 불황을 방지할지 혹은 더욱 악화시킬 것인지?

한가지는 분명하다. 팬데믹은 정치와 경제의 권력구조에 영구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확실하게 나타날 것이다.

현재 우리의 발 밑에서 일어나고 있는 잠재적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 포린폴리시(FP, Foreign Policy)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두 분을 포함하여 9명의 세계적 명사들에게 팬데믹 이후 나타날 경제와 금융 질서에 대한 견해(예측)를 질의하였다.


We Need a Better Balance Between Globalization and Self-Reliance

세계화와 자국보호 간의 균형이 필요하다

경제학자들은 개별국가들이 식량과 에너지 안보전략을 추구하는 것을 비판한다. 국경없이 세계화된 지구에서 한 국가에서 수급상황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국가들에게 구하면 된다는 식이다. 그런데 지금은 국경이 문제가 되고, 마스크와 의료장비의 무역을 통제하고 이의 공급원을 찾으려고 싸움을 벌이고 있다. 코로나 위기는 기본적으로 정치와 경제의 기본단위가 개별국가임을 강력하게 확인시켜 주었다.

그 동안 가장 효율적인 공급라인을 구축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의 가장 저렴한 생산지를 찾아 전세계를 찾아 다녔다. 그런데 이러한 체계는 단순히 탄력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충분히 다변화되지도 못했고 외부충격에 취약한 것을 잊고 있었다. 재고를 최소화하는 적시(just-in-time) 생산과 공급체계는 사소한 문제들을 손쉽게 극복할 수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혼란에는 제구실을 못하는 체계임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2008년 금융위기의 회복과정에서 교훈을 배울 수도 있었다. 당시에도 상호 연계(의존)된 금융시스템은 작은 충격을 견딜 수는 있어도 시스템 자체가 불안한 것이었다.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금융시스템은 국가의 대규모 재정이 없었으면 붕괴되었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인데도 우리는 이를 잊고 말았다.

이번 팬데믹을 겪은 이후의 경제 시스템은 보다 장기적 관점을 취하며, 보다 탄력적이며, 정치적 세계화를 추월해서 진행된 경제적 세계화에서 오는 위험에 예민하게 대처해야 한다. 현재의 상황에 맞추어 개별국가들은 세계화가 가져다 주는 장점과 자국보호에 필요한 조치 사이에 균형을 찾아가야 한다.

Joseph E. Stiglitz

전 세계은행 수석경제분석가 겸 부총재 역임, 노밸경제학상 수상

 


This Wartime Atmosphere Has Opened a Window for Change

현재의 준시적 국면은 변화의 창문을 열어준다

전쟁이 일어나면 때때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외국의 침략이 아닌 바이러스의 공격이지만, COVID-19는 전시적 상황을 야기하면서 그러한 변화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팬데믹은 전시적 분위기를 형성하면서 근본적 변화가 가능한 계기를 만들어 준다.

질병이 창궐하는 분위기는 공포와 동시에 영웅적 서사를 동반한다. 바이러스라는 공동의 적과 대응하면서 사람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협력을 도모한다. 질병을 먼저 경험한 나라들은 자신들이 겪은 경험을 공유하면서 가난한 국가들에게 연대의 감정을 느낀다. 펜데믹은 줌과 같은 시스템을 통하여 우리가 함께 연대하도록 계기를 만들어 주면서, 갑자기 지구라는 세계가 좁아지고 친밀감을 더해 간다.

팬데믹이 새로운 방식과 제도를 만들어 가는 창구의 역할과 더욱 심해지는 불평등을 중단시키는 효과적인 조처를 만들어 가는 계기가 되길 희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존재한다.

아마도 많은 정부가 재난상황에 따라 개인들에게 긴급 지원하는 보조금이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나가는 통로를 열고 있는 듯 하다. 미국의 경우에는 개선된 보편적 의료보험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번 바이러스와 싸우는 전쟁에서는 오로지 한편이 되었으니, 국가 간에 위험을 공유하는 개선된 국제질서의 새로운 기구를 창설하는 동기가 될지도 모른다. 전시적 상황은 점차 사라지겠지만, 새롭게 도입된 제도는 지속될 것이다.

Robert J. Shiller

예일대 교수출신, 노벨경제학상 수상, 행동경제학의 신케인즈 이론을 주창했다

 


The Real Risk Is Politicians Exploiting Our Fears

진정한 위험은 우리의 공포를 악용하려는 정치인들이다

불과 수 주 만에 엄청난 사건이 줄을 이어 벌어졌다. 수많은 사망자, 국제공급망의 작동불능, 동맹국 간에 벌어진 의료자재의 쟁탈전, 1930년 이래 겪는 가장 심각한 경제적 위축 등은 자유무역이 가지는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사람들은 자신의 위험을 스스로 관리하면서 자유로운 여행을 포기하는 등 지난 50여 년간 줄곧 성장해온 국제이동의 흐름이 역류를 시작한다.

COVID-19 라는 충격이 시작되기 이전에 이미 세계화로 통합된 경제가 쇠퇴하기 시작했다면, 팬데믹은 세계화의 장점과 비용을 재검토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국제적 공급체계를 지닌 기업들은 이런 혼란이 야기하는 대규모의 손실과 상호의존성이 지닌 본질적 위험을 가장 먼저 체험하게 될 것이다. 미래에는 기업들이 세계화의 혼란이 가져올 위험을 계산하면서 보다 안전하고 자신의 지역에 의존하는 공급체계로 회귀할 것이다 – 한마디로 세계화의 축소이다.

세계화에 편승하면서 자본시장을 개방하였던 개발도상 국가군도 갑작스런 경제활동의 정지에 따른 불안정성에서 자신들을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자본시장에 통제를 가하게 될 것이다.  격리 조처가 점차 해소된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개인적인 위험을 스스로 관리하고 해외여행을 자제하면서 지난 반세기 동안 증가하였던 국제간 이동이 쇠퇴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위험한 것은 개인과 기업들이 유기적이고 자체적으로 세계화에서 이탈하는 것을 자유무역의 공포라는 이름으로 악용하려는 정치인들이다. 이러한 위험은 자급자족이라는 이름으로 보호무역의 제한을 가하고 공공의료라는 미명 하에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소수의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러한 흐름과 지난 50여 년간 집단적으로 유지해온 국제적 단합이라는 정신을 이용하려 한다.

Gita Gopinath

인도계 여성 경제학자, 시카고대학 교수와 IMF의 첫 여성 수석경제학자를 역임

 


Another Nail in the Coffin of Globalization

세계화라는 관(棺)에 또하나의 못질을 가하다

지난 세기 제1차 세계대전과 1930년대의 거대한 불황은 세계화 경향의 소멸을 불러왔다. 무역장벽과 자본통제의 부활과 별도로, 당시에 진행된 세계화의 소멸로 인해 40%에 해당하는 국가들이 파산상태에 진입했고, 1950년대 또는 그 이후까지 국제금융시장에 진출하지 못했다. 제2차대전이 끝나면서 브레튼-우드 체제가 합의되면서 국내적 금융 침체와 자본흐름의 광범한 통제를 이전 시기의 국제무역과 금융질서로 새로이 묶어 낼 수 있었다. 팬데믹이 야기한 불황은 아마도 1930년대의 상황과 같을 수 있으며 많은 주권국가들이 파산지경에 이를 것이다.

현재의 세계화 사이클은 연속적인 타격 즉 2008년의 금융위기, 유럽국가들의 국가부채, 브렉시트, 미중 간의 무역전쟁에 의해 부상을 당했다. 더구나 많은 국가군에서 나타나는 포플리즘으로 균형추가 자국주의로 기울어 졌다.

현재의 코로나 팬데믹은 1930년 대 이후 처음으로 선진국가들과 개발도상국가들이 동시에 겪는 위기이다. 따라서 불황은 매우 심각하고 오랫동안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1930년 대처럼 많은 주권국가들이 불시에 파산에 처할 것이고, 어려운 시기에 때 맞추어 무역제한과 자본의 통제가 등장할 것이다.

팬데믹이 통제가 되더라도(아마도 긴 과정이 필요할 것이지만), 이전의 세계화에 기초한 공급체계, 국제적 여행의 안전 등에 대한 회의, 그리고 국가 단위에서 자급체계에 대한 요구와 회복탄력성에 대한 관심이 표면화 될 것이다. 코로나 이후의 상황은 비록 세계화라는 금융제도를 브레튼-우드체계의 세계화 이전의 시대로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국제적 무역과 금융에 가하는 상처는 매우 광범위하고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Carmen M. Reinhart

하버드 케네디 학교의 국제금융시스템 주임교수

 


The Economy’s Preexisting Conditions Are Made Worse by the Pandemic

팬데믹 이전보다 경제적 조건이 더욱 악화된다

펜데믹은 이전의 세계경제 조건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긴급처방을 통해 회복은 되겠지만 개입이 결여된 상태에서 상처는 만성적으로 변할 것이다. 이러한 만성적 질병들의 첫 번째 징후는 광범한 경제의 정체현상으로 낮은 생산성과 민간투자의 수익성 저조 드리고 디플레 현상이다. 이에 따라 팬데믹 이후 사림들은 위험을 거부하고 저축을 선호하여, 수요와 혁신이 약화될 것이다.

두 번째 징후는 부유한 국가들과, 개발도상국가들 중에 약간의 예외를 두고, 나머지 제3 세계군과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다. 경제적 자국주의에 따라 부유한 국가들은 제3세계와 경제관계를 단절하려 할 것이다.

세 번째로는 안전을 선호하며 개발국가들이 지닌 위험에 때문에 무역과 금융에 대한 미국달러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가 지속될 것이다.  미국 자체에 대한 투자의 매력이 줄어들겠지만, 다른 국가들에 비해 여전히 선호가 높아지면서 불만족스러운 투자가 지속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자국주의가 강해지면서 각국 정부는 다른 국가들과 경제적 관계를 줄여갈 것이다. 물론 자급자족의 경제로 완벽하게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상기에 언급한 첫 번째(만성적 불경기)와 두 번째(자국주의)의 경향을 강화하면서 세 번째(달러수요 강세) 사항에 대한 증오가 증대할 것이다.

Adam Posen

2009-2012년 영국 금융정책위원을 지냈고 피터슨 국제경제정책연구소 소장이다

 


More Than Ever, the World Looks to Central Bankers for Deliverance

어느 때보다 중앙은행의 역할이 중요해 진다

팬데믹이 불러온 경제와 금융의 아수라장은 세계경제에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각국 중앙은행들은 자신들의 관행적 규정을 어기면서 도전에 대응해 왔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금융시장의 자산을 엄청나게 구매하고 다른 나라에 달러를 마구 공급해 왔다. 유럽의 중앙은행들은 유로화의 지원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국가와 민간의 채권 및 금융자산을 대규모로 구입한다고 약속했다.

영국은행은 정부재정을 직접 지원했다. 제3 세계의 중앙은행들, 예컨데 인도준비은행은 엄청난 위험에도 불구하고 매우 예외적인 조치들을 고려하고 있다.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은 기존의 조심스럽고 보수적인 입장을 차버리고 민첩하고 대담하며 규정을 무시한 채 현재의 상황에 대응하여 왔다.

반면에, 정부의 재정을 통한 촉진지원은 정치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고 추가적인 조치가 번거로우며 지원이 가장 필요한 곳을 확인하는 작업이 쉽지 않다.

중앙은행들은 절망적인 시기를 맞이하여, 예의 조심스럽고 보수적인 입장을 차버리고, 민첩하고 대담하며 규정을 무시한 채 대응하여 왔으며, 정치적 지도자들이 국경을 넘어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기를 꺼려할 때에도 중앙은행들은 협력의 화음을 만들어 왔다.

지금부터 앞으로 장기간, 중앙은행들은 다가오는 경제와 금융적 위기에 대응하는 전선의 최전방에서 주요 임무를 맡게 되었다. 이후 이들은 자신들에게 지워진 거대한 새로운 역할과 비현실적인 부담과 기대를 힘들어 하며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Eswar Prasad

인도출신 경제학자로 코넬대학교 무역관련 수석교수이자 Brookings 선임연구원

 


The Normal Economy Is Never Coming Back

이전의 정상적인 경제는 다시 돌아 오지 않는다

# 본 내용은 다른백년 기획특집 <해외칼럼 05>에 칼럼의 전(全)내용을 번역 게재한다.

Adam Tooze

콜롬비아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이자 유럽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고 있다. 그의 최근 저서로는 “Crashed: How a Decade of Financial Crises Changed the World,”가 있고 기후위기에 대한 역사를 집필하고 있다

 


Many Lost Jobs Will Never Return

잃어버린 일자리는 되돌아 오지 않는다

팬데믹 충격과 뒤따르는 회복과정에는 디지털화와 자동화가 가속될 전망이며, 지난 수십 년간 지속되었듯이 중위 수준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반면에 고급기술의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중위 임금은 정체되고 소득 불평등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소규모 기업들이 제공하는 저임금과 낮은 기술 그리고 개인적 서비스 직종의 일자리는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수요의 변화가, 대부분 팬데믹이 몰고 온 경제적 전이(dislocation)에 의해, 가속적으로 형성되면서 GDP의 미래 구성이 변할 것이다. 경제영역에서 서비스부문의 비중은 높아지겠지만, 소매업과 의료 여행 그리고 건강산업에서 개인서비스 영역은 위축될 것이며, 정부역할에서 대부분의 서비스가 디지털화되면서 큰 변화를 겪을 것이다.

소규모 기업들이 제공하는 저임금과 낮은 기술 그리고 개인적 서비스 직종의 일자리는 회복되지 않을 것이지만, 기본적인 영역 즉 경찰보안 소방안전 간호업무 재고관리 공공교통 그리고 요식업 분야의 일자리는 늘어나면서, 이러한 전통적 저임 분야의 일자리에 새로운 기회가 발생하고 임금과 처우개선의 압력이 높아질 전망이다.

불경기 지속되면서 비선형적이며 비정규직인 고용형태 – 파트타임, GIG 업무, 다직종 노동자 – 들이 늘어나면서 노동자들의 사회보험도 이동식으로 새로이 바뀔 것(portable benefits system)이고, 사용자라는 정의도 넓혀질 것이다. 디지털방식으로 진행되는 직업훈련으로 새로운 직종에 대한 기술이 제공될 것이다. 원격으로 일하는 능력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Wi-Fi, Broadband 등 IT 인프라의 포괄적 확장에 대한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면서, 경제활동에 있어서 가속되는 디지털화를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Laura D’Andrea Tyson

클린턴 행정부 당시 대통령 자문위원과 경제위원회 이사로 활동

 


A More China-Centric Globalization

보다 중국 중심의 세계화 가능성

COVID-19는 세계경제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꿀 뿐만 아니라, 새로운 변화 즉 미국중심의 세계화에서 중국주도의 세계화로 흐름을 가속시킬 것이다.

왜 그런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는가? 미국인들은 세계화와 개방무역에 대한 매력과 신뢰를 상실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존재와 관계없이, 미국인들에게는 자유통상이라는 합의가 이미 자신들에게 해로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반면에 중국인들은 이에 믿음을 잃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역사적 깊은 배경이 있다.

1842-1949년간 중국의 굴욕적인 역사는 자기도취(만족)와 무익한 외부세계와 관계단절에서 발생한 결과였다. 이후 지난 수십 년간에 이룬 경제적 굴기는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성과이었다. 동시에 중국인들은 어느 곳, 누구와도 경쟁할 수 있다는 문화적 자신감을 흠뻑 경험하였다.

결론적으로 나의 신작 ‘Has China Won?’에서 언급하였듯이, 미국 앞에는 두 개의 선택지가 놓여있다. 세계를 지배하는 패권국의 선두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면, 중국과 정치적 경제적 제로-섬의 국제적 경쟁(대립)을 수행해야만 한다. 그러나 만약 미국인들 삶의 안녕– 현재 매우 악화되어 있는 –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라면 중국과 협력해야만 한다. 현명한 조언자들은 후자의 협력을 제안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현재 미국 정치의 자해적 환경은 중국에 대한 화해를 선택할 것 같지 않다.

# Kishore Mahbubani의 신작 ‘Has China Won?’’의 소개는 별도로 다른백년 홈에 게재한다.

Kishore Mahbubani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외교전문가, 2001-2년간 UN 안보리 의장 역임

화, 2020/04/28-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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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달 동안 서양의 현대철학을 다시 리뷰하면서 발견한 것은 현대철학은 니체, 하이데거나 화이트헤드가 탐구해온 보편적 존재론과 포스트모더니즘(푸코, 라깡, 들레즈, 데리다 등),후기포스트모더니즘(알랭 바디우, 조르쥬 아감벤, 슬라보예 지젝 등)과 같은 사회철학, 문화철학 및 정치철학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슬라보예 지젝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철학, 문화철학과 정치철학은 모두 그 뿌리를 보편적 존재론을 실체론이 아니라 생성론에서 찾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이는 특히 니체의 생성철학과 하이데거의 실존철학 및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에 힘입은 바 크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보편적 존재론외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맑스의 변증법적 유물론 및 소시에르,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에도 힘입은 바도 크다 할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덧붙여서 말하고 싶은 것은 서양철학은 시계열적으로 가족유사성을 띄고 있기에 현대철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이건 후기포스트모더니즘이건 반드시 그의 사상적 피상속인이 스승으로 존재하기에 그들 스승의 철학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현대 철학자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푸코, 들레즈와 데리다는 프랑스출신 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니체와 하이데거 철학의 계승자이기 때문에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이해가 불가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새삼 그들의 사상의 역사적 폭과 깊이가 상상 이상으로 넓고 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오늘날 서양문명의 철학적 토대(자유, 평등, 박애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참여와 연대 등)가 만만치 않게 굳건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는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서구문명의 전통적 이념들이 최근 코로나 사태를 맞아 비상사태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서구 정신문명의 근원적인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도 제기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필자의 입장은 이러한 팬더믹은 서양 문명의 근본적 결함인 실체론적 존재론에서 기인하는 바도 있지만 도리어 산업화에 따른 독점자본주의, 국가자본주의 및 재벌독점자본주의와 그이 극단적 발현형태인 신자유주의의 모순에서 기인하는 것이 훨씬 크다할 것이며 이제는 자본주의 자체를 거부할 수 없다라는 체념으로 인해 심화된 산업화의 모순이 인간의 대응능력을 넘어서버릴 정도로 급격히 악화되버린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은 슬라보예 지젝의 지적과도 일치하는 것이기에 따라서 오늘날 마지막 현대철학자라는 칭호를 듣는 지젝의 철학을 일별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지젝의 철학적 태반으로 헤겔의 변증법과 칼 맑스의 이데올로기 이론과 라깡의 정신분석학을 들 수가 있습니다.

먼저 그는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정의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결코 들레즈를 비롯한 후대의 철학자들이 함부로 단정해버린 동일성 또는 통일성의 변증법이 아니라고 재해석하면서 헤겔은 시간성 속에서 변화와 운동을 일으키는 원리를 변증법으로 풀어보고자 한 것이지 결코 차이를 지양하고 배제하여 동일성으로 차이들을 해소해버리는 전체주의적인 철학자가 아니라고 강변하면서 그는 헤겔의 변증법을 새롭게 현대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독자적인 시각에서 ‘차이의 변증법’을 주장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헤겔은 칸트의 선험적 주체와 같은 독자적인 주체는 존재하지 아니하면 단지 주체는 타자와의 관계속에서만 자신의 존재의미를 갖게 된다고 보았기에 결국 주체와 타자 사이의 차이를 변증법을 통하여 해소시키고자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에 헤겔의 입장을 대체로 계승한 지젝은 타자를 주체의 결핍으로 보았으며 그러한 결핍의 타자를 통해, 즉 타자의 부정성과 차이성을 통해 즉자인 주체는 자신을 반성하게 되며 이후 타자의 부정을 재부정하는 재귀적 부정을 통하여 자신을 합정립synthese하게 되는데 여기서 타자는 결코 즉자로 흡수되거나 통일되어버리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지젝의 변증법은 동일성 또는 통일성이 아닌 타자(대자)를 영원히 차이로 인정하는 차이의 변증법으로 나아가게 되며 단지 차이의 타자로 인해 즉자인 주체는 한껏 고양된 재귀적 존재self-being로 다시 태어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를 우리 속담대로 해석하자면 ‘애들은 서로 싸우면서 큰다’라는 관점과 같다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즉자의 결핍을 내용으로 하는 대자인 타자를 통해 즉자는 자신의 존재의 결핍을 인식하고 반성을 하게 되며 이후 즉자는 자신을 재부정하면서 재귀적 존재로 고양되어가는 한편 영원한 차이인 대자는 자신의 존재를 즉자에 의해 지양되거나 억압받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고유한 부정성을 유지하며 존속하게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여 지젝은 즉자는 결핍과 차이인 대자를 통해 재귀적 존재로 고양되는 한편, 즉자는 차이로서의 대자(타자)를 억압하거나 지양하지 않고 즉자와 동등하게 등가적인 가치를 인정해주는 생성론의 세계관을 구축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그는 맑스의 이데올로기이론과 라깡의 정신분석학을 결합시키면서 그만의 독자적인 쥬이상스, 즉 향유의 이론을 전개시켜 나갑니다.

맑스는 이데올로기를 부르죠아의 허위의식이라고 규정하였는데 라캉은 프로이트의 생물학적 정신분석학을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 해석하면서 자아를 상상계, 상징계와 실재계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서 지젝은 맑스의 이데올로기이론을 상징계이론으로 재해석해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젝은 유아의 상상계를 거울단계로 해석하면서 소타자인 어머니를 자아로 착각하면서 자아는 이미 정신분열의 조짐을 보이는데 상징계에 이르러서는 프로이트의 아버지와 같은 대타자인 국가, 규범, 종교, 자본주의 등에 의해 주체가 수동적으로 사회화되는데 이중에서도 특히 자본주의의 자본이 만든 잉여욕망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인간의 주체가 결정적으로 형성되는데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결국은 자본이 만든 실상을 은폐한 거짓 환상에 불과하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즉, 자본이 만들어낸 잉여욕망의 이데올로기를 마치 욕망의 실상을 구현한 실재계인양 호도하고 왜곡하여 주체를 자본에 복종하는 노예로 전락시키고 있으며 결국 자본주의는 자신을 결코 전면에 드러내지 않은 채 국가, 종교, 문화, 예술 등 대타자 뒤에 숨어서 욕망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면서 인간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주인이 되고자 획책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하여 그는 무엇보다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지 않은 채 대타자들의 뒤에 숨어서 결코 자본주의 모순의 피해자들과의 전면전을 거부하는 자본의 교활한 책략에 봉사하는 잉여욕망의 이데올로기를 해체하는 작업을 빨리 시작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본은 항상 대타자들 뒤에 숨어버리기 때문에 자본주의 모순에 따른 피해자들(노동자, 무산자, 소수자등)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투쟁의식을 희석시키기 때문에 결코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혁명은 전략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지젝은 그렇다면 차선책으로 자본이 만든 상징계의 이데올로기만이라도 그 허상, 환상을 폭로하여 해체하자고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그는 실재계를 향한 향유, 즉 라깡의 쥬이상스enjoyment로서 죽음충동으로서의 향유를 제시하게 됩니다.

달리 설명하면 상징계의 이데올로기를 벗어나는 것은 주체에게는 일종의 기존 사회질서를 부정하는 자살행위와 같은 모험이기에 실재계를 찾아나서는 모험인 향유는 죽음충동이라고까지 표현한 것입니다.

결국 그는 생산양식으로서의 자본주의를 변혁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기존 상징계의 질서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법의 실현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향유를 주장한 것입니다.(이는 지젝이 맑스와는 달리 상부 구조가 하부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발터 벤야민의 이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능산적 주체는 단지 자본이 만든 잉여욕망의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 주체가 되어 스피노자의 능산적 욕망, 즉 코나투스Conatus가 만개한 실재계를 현실에 실현시킬 수 있는 향유와 차이의 변증법의 주인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한 것 입니다.

특히 그는 자본주의의 현대적 변형태인 신자유주의에 대해 엄청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그가 슬리브족 출신으로서 서구의 자유주의가 지나치게 개인주의와 결탁하면서 공동체의 연대와 공화주의를 해체하고 뷸평 등을 가속화시키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강화하는데 이바지 했다고 보았기에 이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허구성을 폭로하는데 앞장서 온 것입니다.

즉, 그는 신자유주의가 자유의 확장이 아니라 도리어 자유의 불평등을 확대, 심화시켰기 때문에 실질적인 자유의 평등을 실현하기위해서는 형식적 민주주의나 경제적 신자유주의를 배격하고 자본과 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전반적인 개입과 통제가 필요하다고 본 것으로 그 방법으로 코나투스로 가득한 실재계를 향한 향유를 제시한 것이며 대안으로 맑시즘과 기독교의 평등정신의 복원을 꿈꾸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그는 대타자에 의해 수동적으로 노예가 되도록 강요해온 자본의 잉여욕망의 이데올로기가 환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서 이를 해체하는 작업에 시민들이 새로운 인식론, 존재론과 변증법의 주체가 되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현실정치에도 앞장서서 직접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치철학은 평등을 강조한 나머지 자유주의 정신의 기틀마저 손상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하는 우려와 함께 존재의 욕망을 당위인 평등가치로 통제하는데 실패해온 역사적 경험을 반추해본다면 그의 정치철학 역시 윤리학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수, 2020/04/29-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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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COVID-19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미래의 암시를 끄집어 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대신 내게 일주일 전에 있었던 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국제질서에 대한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강의 중,나는 수강생들과 토론을 통하여 하나의 주제를 탐색하고자 하였다. 주제는 ‘미국의 전일적 단극체제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창출하려 했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좀더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 미국의 자유주의적 헤게모니에 대한 나와 동료들의 비판은 정당한 것인가?

* 자유주의의 가치(예컨데, 민주주의, 자유시장, 법치제도, 개인적 권리 등)에 기반한 국제적 질서는 현재보다 더욱 진전된 모습이 가능했을까?

* 역대 미국의 지도자들이 스마트하고 오만하지 않으며 침착하고 혹은 운이 좋았으면 자유주의라는 전략이 성공했을까?

* 지난 봄에 John Mearsheimer(시카고 대학 출신의 저명한 정치학자)가 제기하였듯이 자유주의적 헤게모니는 애초부터 실패할 수 밖에 없었을까?

* 국제사회에서 과연 자유주의적 가치와 제도를 뿌리내리고 점차적으로 확산시킬 경로가 실천적으로 가능했을까?

* 비현실적 가정이지만, 미국이 미래에 다시 주도적 위치에 서게 되면, 과거의 실책이라는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잘해낼 수 있을까?

우선적으로 토론한 것은 값비싼 대가를 치른 실패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깊이 들어가기 전에, 이미 민주주의는 세계도처에서 미국자신을 포함하여 십 수년간 후퇴하고 있었으며, 미국이 체제를 전복시킨 국가들에 있어서 민주주의가 번창하기는커녕, 해당 정부는 실패했고 미국은 비용을 치르면서 자국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미국의 후원으로 진행된 초-세계화는 2008년 심각한 금융위기가 발생시켰고, 여러 분야에서 일자리가 사라지는 정치적 고통을 수반하였으며 포플리즘이 광범하게 형성되는 역작용을 격발시켰다.

이러한 경향과 흐름의 결과로 세계화는 일부 후퇴하기 시작했고, 헝가리와 폴란드 그리고 미국에서조차 유사-독재정치가 출현하면서, 세계도처에서 권위주의가 복원되기 시작하였다.

상황이 이럴진대, 자유주의적 헤게모니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 믿는 현학적인 시각이 가능한가? 실제로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질서는 올바른 목표이며 과거의 실책에서 학습하면 미래에는 제대로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을 옹호하는 그룹에는 여전히 미국이 주도한 정부의 전복시도가 중동지역 내에 필요하다고 믿는 완고한 강경보수파(hawks)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질서는 놀랄만큼 탄력적이라고 믿는 진보진영의 학자들도 포진하고 있다. 더욱이 이런 입장을 옹호하며 연구에 매진하는 집단들은 미국의 기본정책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들이 이런 방식에 회의를 품는 것에 있다고 주장하며, 더 나가서 미국의 역할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선동적으로 주장한다.

만약 전 부통령 출신인 조 바이든이 오는 11월에 대통령을 선출된다면, 그는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수행해야 할 적극적 사도의 역할을 다시 맡아야 하며,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만들려고 애를 썼던 미국의 과거 황금기 시절로 되돌아 갈려고 무척 노력을 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회의적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자. 1992년으로 되돌아가서 당시부터 이후에 벌어진 모든 실책을 살펴볼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자유적 질서의 세계를 만들어 내고자 희망하면서 과거 20 여 년간 전개된 실수를 피할 수 있다고 믿어보자. 무엇을 얼마나 다르게 진행할 수 있을까?

이를 보다 분명한 관점으로 보자: 자유주의적 헤게모니에 보다 멋지게 접근하려면 참을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1990년(소비에트가 붕괴된 해)대에는, 한 언론인이 이를 ‘DosCapital6.0’이라고 이름 지었듯이, 미국인들은 지구화된 세계에서 성공의 마법공식을 발견한 것처럼 확신하고 모든 나라들이 모두 미국처럼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미국을 등에서 밀어주고, 역사는 가는 길을 열어주며, 세상이 옳은 방향으로 가속페달을 밟아 달리도록 지원하고 있었다.”

이런 견해는 자기도취뿐만 아니라 어설픈 낙관주의였다. 그럼에도 이들은 ‘역사의 활은 정의를 향해 현을 형성한다”고 믿고 있는 반면에 “실제로는 굽어진 현이 생각보다 길어진 것 같다(실현되지 못한 것의 표현)”라고 인지한다. 미국은 자유주의적 가치를 전파하는 데 천천히 시간을 들여 그리고 단호하지만 비군사적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연성적 자유주의 헤게모니 (liberal hegemony lite)’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연성적 자유주의 헤게모니의 관점에서는, 나토를 확대시키지 말았어야 했으며, 소위 평화동맹(PfP, Partnership for Peace)로 진행되어야 했다. PfP는 러시아를 포함하여 막 독립한 신생 동유럽 국가들과 안보협력을 형성하였어야 했고 동시에, 소비에트가 붕괴되기 전에 약속한대로, 러시아에게 신의를 지켰어야 했다.

러시아가가 점차 힘을 회복하면서 모스코바와 관계가 매우 심각해 질 수 있었다 – 아니면 그런 사태가 아직 벌어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방심한 나토의 확대(그리고 우크라이나를 2008년 동맹회원으로 지명하고 시도한 미국의 실수)에서 시작하여 현재처럼 문제투성이가 된 우크라이나의 상황까지 이른 것은 정말 이해하기가 어렵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현명한 미국이라면 경제적 세계화를 향해 보다 치밀한 접근을 추구했어야 했다. 통상과 투자에 대한 장벽을 낮추었으면 전체적으로 경제적 효과를 높이고 전반적으로 바람직하게 진행되었겠지만, 이를 지연하는 과정에서 경쟁국들은 상황에 적응하기 보다는 여러 분야에서 상대하기 힘든 경쟁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중국을 성급하게 WTO에 가입시키면서 민주주의 진영에 주요한 국가로 전환시키려는 희망은 실책이었다. 오히려 이를 통해 중국이 강력한 경쟁적 동료로 성장하는 것을 촉진시켰다. 시간을 회고해 보면, 금융시장의 규제를 지나치게 완화해서는 안되었고, 돈을 풀고 자산버블을 형성하는 것을 막아 2008년 금융위기를 피했어야 했다.

다시 되돌아 보면, 페르시아 만을 이중 봉쇄하는 전략을 취해서는 안되었고, 9/11이후 아프카니스탄을 서구식 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시키려고 시도해서는 안되었으며, 2003년 아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제거한 것은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현명한 미국이라면, ‘아랍의 봄’에 보다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했으며 리비아의 지도자 카다피를 무력으로 쫓아내서 안되었다. 반대로 시리아 내전의 발발 당시에 아사드는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대신에, 이란을 포함하여 중동의 여러 관계국들과 협력하여 전쟁상황을 신속히 종결시켰어야 했으며, 많은 생명의 희생을 막았어야 했다, 비록 아사드가 시리아의 권좌에 그대로 남아있더라도.

요약하자면, 미국은 세계에 대하여 여전히 개방되고 본질적으로 자유주의적 질서를 추구할 수는 있지만 보다 점진적이고 다양한 방식을 취했어야 했다. 상대방 국가들이 진정으로 자연스럽게 미국을 닮고 싶은 모델국가로 삼도록 경제적이고 외교적이며 서사석인 지원방식을 채택했어야 했다. 그러나 안정적으로 민주주의를 시행하기에는 불안정한 나라들에게 사회적 작업(social engineering)의 광범한 계획을 진행시켜서는 안되었다. 자신의 권력을 자진해서 포기할 의사가 없는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이 이러한 작업들에 대해 강력하게 저항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했다.

만약 미국이 위에 언급한 것처럼 연성으로 자유주의적 헤게모니를 추구했다면, 현재 직면하고 있는 모든 부정적 저항을 모면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비록 자유적 세계질서를 향한 전진이 느린 행보를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1990년대에 형성된 세계사의 전향적 계기는 지속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주의적 헤게모니를 제대로 된 경로로 선택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추진한다면 미국이 다시 주도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상기에 언급한 가상적 서술의 결함은 매우 분명하다. 이는 마치 과거의 정치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조처의 결과를 완벽하게 알고 있었고, 결정적인 국면마다 실수없이 적정한 조처를 취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완벽한 통찰력을 지닌 조지 부시 전대통령이 2003년에 이라크 침공을 결정하지 않았다거나, 혹은 후세인을 제거한 침공 이후 상황에 치밀하게 대응하는 준비를 하는데 많은 노력을 쏟았다는 이야기와 같다. 또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해서 다시 주어질 두 번째의 기회를 성공시키리라는 보장은 없다.

첫째, 어떤 잘못을 피해야 하는지 이해한다고 해도 성공적 결과를 가져올 조처의 경로가 없을 수 있다. 미국은 물론 강력하고 부자이며 안전하지만 어떤 상황의 과업은 단순히 그러한 능력의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도 있으며, 이해의 한계 밖에 존재할 수도 있다. 예컨데, 물리력을 사용해서 내부적으로 심각하게 분열된 사회를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두 번째, 미국이 최근에 겪은 절대적 상황들에 대해 전혀 다른 동류의 결정을 내렸다면,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고 미국 지도자들은 미리 향방을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선택을 취해야 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실제로 일어나던 사건들에게 얻는 교훈들이 미국이 역사가 다른 경로를 취하도록 미국이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연성적 자유주의 헤게모니는 매우 복잡한 사회적 작업을 요구하는 것이다. 학술적 용어로 표현하면, 자유주의적 세계질서는 주요한 정치적 원칙 – 민주주의, 주권, 통상과 투자와 여행 등의 낮은 장벽 그리고 개인적 권리 – 등이 보편적이라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현재의 세계는 상기의 가치들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다수인 적도 없었고, 수십 억의 사람들에게는 안전, 주권, 문화적 전통, 민족적 자치 등 다른 정치적 목표가 더욱 중요할 수 있고, 다시 말하면 민주주의를 강요한다는 것을 압력으로 받아들이면서 정치적 불안정성을 야기시킬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면, 아무리 좋은 의도의 개입이라고 해도, 민족주의와 여러 형태의 지역적 자존심을 지닌 사람들에게 증오와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다양한 저항을 야기시키게 된다.

더구나 여러 집단 간에 지나친 변화를 요구하면 할수록, 더욱 예측할 수 없는 결과들이 생기고 의도하지 않은 나쁜 영향이 나타난다. 정지적으로 전향적인 변화가 일어나면서 승자와 패자가 갈라진다 해도, 후자는 결과를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이들은 무장을 통해서 자신의 지위를 되찾으려 할 것이며, 일단 자유주의적 질서를 촉진하려는 미국의 노력을 패퇴시키려는 노력을 지지하게 된다. 가정법으로 미래의 미국지도자들이 1992-2016년 간에 벌어진 모든 실수들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해도, 이들이 자신의 임기 동안 일어나는 예측할 수 없는 사태의 진전을 여전히 잘못 다룰 것이라고 나는 분명하게 확신한다 (2016년 이후 트럼프가 저지르는 온갖 흠결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결론이다: 연성적인 자유주의 헤게모니는 미국이 과거에 저지른 (강성적인) 것보다는 조금 나을 수 있지만, 결코 하나의 원칙에 의해서 작동되는 자유주의적 세계질서라는 궁극적 목표를 실현할 수는 없다. 미국의 불간섭 또는 외교적 소극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미국이 매일 다루는 상황은 다른 국가들과 국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협력하는 과정에 때때로 자국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역지사지해야 한다. 인류 모두가 미국의 가치를 공유하면서 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만들어 가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라는 잘못된 믿음에 기초한 가공할 괴물의 상상에 갇혀있는 것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외교관 Charles-Maurice de Talleyrand은 매우 냉소적이었지만 최소한 그가 남긴 말은 옳았다 “너무 욕심내지 말고 차분하시라.”

 

출처: 포린폴리시(FP) April 21, 2020

Stephen M. Walt

하버드대학의 케네디스쿨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국제관계학의 세계적 석학이다

수, 2020/04/2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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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체제론의 양국체제론 비판

필자가 ‘양국체제’라는 개념을 명시해 처음 발표했던 것은 2016년 5월, 정동 프란체스코 회관에서의 대중 강연이었다. 양국체제란 대한민국(ROK)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 두 나라가 주권국가로서 서로 인정하여 공식 수교하고 평화롭게 공존, 교류, 협력하는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공존체제를 말한다. 1987년 이후 30년 그 거대했던 민주적 에너지가 어디로 어떻게 사라져버렸나를 반성해보자는 취지의 강연이었다. 4·19를 삼켜버렸던 ‘남북 적대의 분단체제’가 87년 6월 역시 삼키고 말았다 했다. 이렇듯 한국 현대사에서 30년 주기로 작동했던 ‘독재가 민주를 회수하는 마의 순환고리’를 끊기 위해 ‘남북공존의 양국체제’가 필요하다 했다. 그러다 그해 겨울 마술처럼 촛불혁명이 돌아왔다. 87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필자에게는 바로 그 시간이 되돌아온 것으로 보였다. 이번에는 결코 다시 실패해서는 안 되겠다, 다시금 이 에너지가 독재의 힘에 의해 회수당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더욱 분명해졌다. 대선이 순탄하게 마무리된 이후, 대중매체를 통해 칼럼 형식으로 양국체제를 다시 강조하여 알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발상이었지만 아주 흔쾌히 받아들이고 쉽게 이해해주는 이들이 많았다. 젊은 층으로 갈수록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새로운 발상에는 늘 오해와 반대가 따르기 마련이다. 2016년의 강연에서부터 예상되는 반대 논리와 그 기반을 이루는 세대와 세력에 대해 ‘돌다리 두드리듯’ 검토해본 바 있고, 이 강연 내용을 정리해서 최초로 발표한 「촛불혁명과 코리아 양국체제」라는 제목의 2017년 8월 22일 자 칼럼에서도 이를 분명히 밝혀두었다.

양국체제론에 대해 예상되는 반대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반통일론, 분단고착화론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는 앞서 살펴본 분단체제 비판론 중에서도 강경한 입장에서 제기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반대편에서의 비판인데 ‘북한’을 절대로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또 다른 강경론이다. 이 입장은 북한 정권 타도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을 주장한다. 이 두 입장은 극과 극의 반대로 보이지만 한반도 두 국가 상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뒤집어져 있을 뿐 구조적 동형이다. 양국체제가 평화통일의 전망을 실제적으로 열어준다는 점이 잘 설득된다면 이러한 반대들이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겠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두 번째 입장은 이번 촛불 정국에서 등장한 ‘태극기 – 성조기 집회’와 중첩되는 것으로 이후 양국체제론에 대한 적극적 반대 집단으로 나설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촛불 정국에서 보았듯 이 집단의 여론 확장력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아울러 이러한 두 입장을 강경하게 견지하는 층은 양적으로 그다지 크지 않고 세대적으로 점차 축소되어가는 추세다. 젊은 층일수록 이러한 입장에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래는 양국체제의 편에 있다.(이 책 2부 1장, 155~156쪽)

예상이 꼭 들어맞았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반대의 한 축이 될 것이라 본 “분단체제 비판론 중에서도 강경한 입장”을 꼭 맞췄던 것은 아닌 듯해서다. 이때 염두에 두었던 쪽은 북의 체제를 옹호하면서 통일운동의 우선성, 선차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적 통일론의 입장이었다. 물론 이 편에서의 비판을 읽어보기는 했다. 그러나 대체로 내 주장의 개요를 충실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제기한 나름대로 진지한 비판이었다. 지금까지 가장 강한 반대를 표명한 쪽은 내 예상과 달랐다.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 방향에서는 공유하는 바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쪽에서 왔다. 계간 《창작과비평》과 백낙청 선생을 중심으로 한 분단체제론 그룹이었다.

비판의 내용과 방법이 모두 특이했다. 올(2018년) 7월 중순경 한 지인의 귀띔을 받고 읽게 된 책이었다. 표지를 보면 『변화의 시대를 공부하다: 분단체제론과 변혁적 중도주의』가 제목이고 저자는 ‘백낙청 외’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 ‘창비담론 아카데미’라 부기(付記)해놓았다. 책 서두를 보면 2017년 11월부터 2018년 1월까지 매월 2회씩 총 7회에 걸쳐 백낙청 선생 외 ‘다양한 세대의 교사, 교수, 문인, 연구자, 시민운동가, 편집자 등 총 30명’이 참석하여 1990년대 이래 백 선생이 발표해온 분단체제론을 중심으로 학습·토론했던 결과를 책으로 묶은 것이라 한다. 300쪽이 안 되는 크지 않은 책에 필자를 거명한 양국체제론 비판이 4회 모임부터 7회 모임까지 10여 차례 이상 길게 언급된다. 후반부 논의의 거의 절반이 양국체제론 비판에 할애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진지한 비판은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아쉬움이 있다. 다른 견해를 일단 이해는 제대로 해놓고 비판하겠다는 모습이 별로 안 보인다. “그 양국체제론이 분단체제를 사유하지 않을 좋은 핑계가 되기 때문에 많이 유통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어서(웃음) 어떻게 효과적으로 반박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라고 물으면, “양국체제 얘기를 해보면, 체제를 갑자기 어느 날 만들자는 것 같아요. 현실이 어렵고 불편하니까 그냥 갈라서서 서로 독립하자 이런 거죠”라고 답하는 식이다. 미리 ‘틀린 이야기’라 전제해놓고, 돌아가며 비판해보자는 식이다. 이 책에는 가볍고 무책임한 ‘비판’들이 너무 많다. 이렇게 해서는 제대로 된 ‘비판’이라 보기 어렵지 않을까. 백낙청 선생과 매회 모임 사회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발언자’들이 익명으로 되어 있다는 것도 특이했다.

총정리인 마지막 모임에서는 발제에서부터 (역시 익명이다) 양국체제론 비판을 하고 있는데, 그나마 내가 쓴 글의 일부나마 인용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분단체제에 대한 불감증”의 사례라고 이야기하면서 막상 내 글과 그 글 속의 ‘분단체제’를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풀이하고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분단체제 불감증의 또 하나의 예는) 지난 모임 때도 얘기했던 김상준 교수의 ‘양국체제론’입니다. 마침 어제 《경향신문》에 「코리아 양국체제와 평창 올림픽」(2018. 1. 29)이라는 칼럼이 게재됐는데, 이건 내용이 좀 심각한 것 같습니다. 조금 읽어볼까요? 글의 뒷부분입니다. “분단체제 신봉자들은 이 모든 사실(남과 북이 한반도에서 두 국가 간의 특수한 관계로 지내왔던 사실 — 창비 편집자가 부가한 설명)들을 없었던 일로 부정하고 싶어한다. 이들은 19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 이전, 더 나아가 1987 민주화 이전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역사의 퇴행 세력이다. 영화 <1987>에 등장했던 남영동의 그 가공할 실존 인물, 박처원과 꼭 같은 사고를 여전히 품고 있는 자들이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분단체제라는 말을 자기 마음대로 쓸 수는 있겠지만, 분단체제 신봉자들이라고 한다면 이건 백낙청 선생이나 그 입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 같은데 아주 정반대로 맥락을 틀어버린 것 같아요. 분단체제 신봉자라는 용어로 분단체제론자를 비판하는 건가요?

“분단체제 신봉자들이라고 한다면 이건 백낙청 선생이나 그 입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라니? ‘분단체제 신봉자들’ 즉 박종철을 고문 살해한 박처원과 같은 인물들과 그러한 세력에 맞서는 주장을 펼쳐왔던 “백낙청 선생이나 그 입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정반대가 아닌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고, 누구도 이 두 부류를 혼동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이렇듯 누구도 상상조차하기 어려운 말을 하게 되는 이유가 뭘까.

너무나 엉뚱했지만 이해해보기 위해 그 책을 다시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나온 원인을 짐작은 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분단체제’라는 말이었다. 나에게는 분단체제와 분단체제론이 다르다는 게 흑과 백이 다른 것처럼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었다. 백낙청 선생의 분단체제론은 분단체제를 비판하고 분단체제를 극복하자고 주장해온 분단체제 비판론 아닌가? 분단체제라는 말은 일반에서도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렇듯 일반화된 의미에서의 분단체제라는 말의 뜻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도 분단체제가 좋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분단체제는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말이다.

백 선생 자신이 분단체제에 대해 내린 여러 정의 중 하나만 골라보면, 분단체제란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사회를 만들어서 대립하고 있지만 사실 남과 북의 기득권 세력은 다 같이 분단을 유지함으로써 이득을 보는 …… 남과 북의 기득권 세력이 한편에 있고 그 기득권 세력이 유지하는 분단구조에서 손해를 보는 대다수 남쪽의 국민과 북쪽의 인민들이 다른 한편에 있는, 이런 이해관계의 상충이 더 기본적인 사회구조”다. 내가 칼럼에서 말한 ‘분단체제 신봉자’란 바로 백 선생이 말한 ‘분단체제에서 이득을 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말이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입으로 ‘나는 분단체제가 좋다, 나는 분단체제 지지자다’라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분단체제 지지자’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정반대다. 타조가 머리를 모래에 묻는 것은 (그래서 자신이 숨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타조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정말 타조이기 때문이다. 분단체제 신봉자들이 분단체제라는 말을 쓰지 않는 이유는 그 말이 부정적인 말, 비판적 용어임을 그들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야말로 분단체제가 누구에게나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는 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거꾸로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발제자와 그 해당 대목에 동조했던 여러 참석자들에게는 그렇지가 않는 듯하다. ‘분단체제’란 말과 ‘분단체제론’이란 말이 그다지 구분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5회차 토론에서 한 토론자는 “보통 우리 지식인 사회에서 ‘분단체제’라는 말을 쓰는 경우와 우리가 공부하는 ‘분단체제’는 거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 …… 분단체제극복은 …… 통일을 넘어선 평화를 장기적인 기획으로 말하게도 된다”라고 말한다. 분단체제극복은 통일 이후에도 장기 기획으로 남는다 하니 이 발언자가 생각하는 분단체제는 통일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무엇이다. 이렇듯 분단체제론자 내부에서는 ‘분단체제’라는 말 자체가 그 바깥의 사람들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모종의 특별한 말, ‘분단체제론’ 자체와 뒤엉켜 하나로 융합되어버린 아주 심오한 개념이 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분단체제 신봉자’를 ‘분단체제론 신봉자’로 읽는 기상천외한 독법도 나올 수 있는 것이고, ‘분단체제’를 자신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나와 같은 사람은 “분단체제 불감증”의 사례라고 스스럼없이 거론하게 되는 것이다. ‘분단체제’라는 말 자체가 신성화되고 있지 않는가라는 느낌을 저버릴 수 없었다.

이를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된 또 하나의 계기가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인 9월 13일,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기념 토론회가 있었는데 여기서 최원식 교수의 「남북연합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라는 발표문에 대한 토론을 부탁받았다. 이 분 역시 창비에서 오래 활동하셨던 분이다. 분단체체 입장에서 양국체제론을 비판하는 그 발표문의 대목은 앞 장에서 인용한 바 있다.(이 책, 222~223쪽)

그래도 최 교수는 최소한 양국체제론을 잘 알지 못한다고 솔직히 밝혔다. 그러면서도 ‘양국론=반통일론’이라는 등식을 당연하다는 듯 쓰고 있다. 가까운 주변에서 그렇게들 이야기하기 때문일 것이다. 양국체제가 현 상황에서 통일로 갈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판단에 대한 인식이 여기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또 양국체제가 최 교수가 강조하는 남북연합과 그렇듯 무관한 것인가는 다음 장에서 검토해볼 것이다. 다만 그 대목이 흥미로웠던 것은 ‘분단체제’라는 말이 단순히 긍정적인 정도가 아니라 매우 심오하면서도 고상한 어떤 높은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분단으로 두 쪽이 난듯이 보여도 남과 북은 분단체제의 드러남으로 연계된 바”라고 하여 “분단체제의 드러남”이 분단된 남북을 이어주고 있는 생명줄과 같은 것으로 표현된다. 이런 상태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불일불이(不一不二)’라 하였는데, ‘불일불이’란 불교의 진리관을 집약하는 높고 찬란한 용어다(‘不 一不異’라고도 한다). 이렇듯 매우 높은 종교적 진리관을 뜻하는 언어로 ‘분단체제’를 해석하고 있다는 데 놀랐다. “분단체제를 상정한 남북연합론”이란 말, 그리고 이것이 “통일의 최종형태”가 될 수 있다는 말도 이어진다. 좀 혼란스런 문장이지만, 통일로 가는 데 필수적이라고 보는 ‘남북연합’은 오직 ‘불일불이의 분단체제’를 상정해야 가능하다는 뜻이겠다. 쉽게 말하면, 분단체제여야 남북연합이 가능하고 남북연합을 통해서만 통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로써 창비그룹 내에서 분단체제 자체를 적극적, 긍정적으로 보는 흐름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분단체제와 분단체제론이 별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분단체제에 대한 비판을 분단체제론에 대한 비판과 혼동하는 데 이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분단체제와 분단체제론이 혼동되고 있는 이 상태는 분명 문제적이다. 어떻게 분단체제 비판론이 분단체제를 긍정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자기모순, 자기부정 아닌가. 그럼에도 분단체제론 내부에서 그런 흐름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퍼즐을 풀어야 함을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내 나름대로 백 선생의 분단체제론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다. 너무 쉽게, 너무 빠르게 읽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글을 빠뜨렸을 수도 있다. 30년 동안 아주 많은 글을 통해 주장해온 내용이기 때문에 내 머릿속에 무질서하게 흩어져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있을 수도 있다. 내 자신 여러 글을 통해 분단체제에 대해 여러 차례 논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분단체제 불감증”이라고 자신있게 딱지 붙일 정도라면, 그 ‘분단체제론의 분단체제’는 ‘내가 생각해온 분단체제’와는 전혀 다른 무엇일 수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분단체제론 자체가 ‘내가 생각해온 분단체제론’과는 전혀 다른 무엇일 수 있음도 인정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백 선생의 분단체제론을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되었다. 과연 새롭게 다시 읽히는 부분들이 있었다. 분단체제론이 나오게 된 전후 맥락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분단체제론을 더욱 깊게 이해하고, 내 나름의 의문점들도 그런 대로 해소할 수 있었다. 이제 그 결과를 보고 형식으로 제시해보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의 핵심적인 차이 역시 더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창비 분단체제론과는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 방향에서는 공유하는 바 많을 것”이라 보았던 근거 역시 새로운 이해 위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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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0/04/30-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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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전체적인 식량의 수입의존이 70%가 넘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팬데믹 이후 세계농업의 지형변화와 수급상황은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아래의 칼럼은 남아공 전문가의 관점에서 작성된 것이나, 동남아에서 입국한 외국노동자에게 의존하는 한국농업의 입장에서도 경청하고 고민할 가치가 있는 글이다.


COVID-19 팬데믹이 국가 간의 국경을 닫아버리자, 농업분야도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과 같이 식량안보에는 전혀 문제 없을 듯 보이는 국가들마저도 새로운 장애로 인하여 저임금의 노동자들을 추방하면서 농업 필요한 일손이 부족하게 되었다. 더구나 이러한 농업노동자 수급의 붕괴라는 충격은 팬데믹이 멈춘 후에도 지속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계절적으로 외국의 노동자에 의존해온 위험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델란드 등 서유럽 국가들에게서 진행되어 왔는데 이들 국가들은 동유럽의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다. 질병과 방역에 대한 공포로 인해 국경이 폐쇄되면서, 동유럽의 노동자들이 계절에 따라 이동하지 못하면서 서유럽구가들의 곡식들이 논밭에 그대로 방치되는 상황이 시작된다.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COVID-19 위기이전부터 농업노동력의 부족을 염려하여 왔다. 미국인들은 논밭 일을 원하지 않아 농부들은 주로 계절적으로 이동해온 멕시코인들에게 의존한다. 예컨데 농업에 고용되어 유효기간이 일년 이내로 제한된 H-2A비자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이 미국 농업노동자의 10%를 차지한다.

그런데 H—2A 프로그램의 비용과 복잡함으로 인해 이민노동자의 이동에 심각한 장벽을 오랜동안 형성해 왔다. 이제부터 미국의 입국심사 공무원들이 최초신청자와 귀국노동자들에 대해 비자 인터뷰를 취소한다 해도 H-2A의 절차는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 이에 더하여 팬데믹으로 인해 고용인들은 일터에서 ‘거리두기’ 규정 뿐만 아니라 H-2A 해당 노동자들의 이동과 숙박 등에 대한 건강과 안전에 대한 부담을 앉게 되면서, 농업생산량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러한 경험을 겪으면서, 농민들은 다시 계절적 외국의 이민노동자에게 의존하는 데서 오는 위험을 되풀이하여 하지 않을 것이고 이러한 위험을 감소시키려고 농업 일에 자동화를 시도할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자동화는 상당한 초기의 투자를 필요로 하며 과일과 채소의 수확 같은 일부 작업은 자동화하는 것이 매우 어렵지만, 드론, 자동화 트랙터, 씨뿌리는 로봇, 수확작업 로봇 등의 기술발전으로 이민노동자에 대한 의존이 현격히 줄어 들 것이다.

선진 경제권 대규모의 농업인들은 이러한 조처를 취하고 있으며 개발도상 국가들의 농업인들도 노동력 부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남아프리카의 경우, 농사일에 적당한 비숙련 및 비고용의 노동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숙련 노동자의 부족을 겪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COVID-19의 봉쇄조치에도 불구하고 식량과 음식 공급은 기본적인 활동으로 분류되어, 농사일은 장애를 받지 않고 지속되어 왔다. COVID-19 이전에도 남아프리카는 2012년에 수립된 국가발전계획(NDP)에 의거 농업과 농업관련 분야에 2030년 까지 백만 명의 고용을 늘리는 목표를 가지고 있고, 이를 위해 논밭의 면적을 넓히고 노동집약적 작업을 촉진하여 왔다.

이런 계획 하에서 각종의 과실과 곡류의 생산량을 증대하여 왔고, 2012년의 72만 명의 고용을 23%가 늘어난 2019년에는 89만 명으로 확대하였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국내 시장여건 때문이 아니라 국제시장에서 자동화를 채택한 선진경제권의 농업인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면서 자동화 기술의 도입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실제로 남아프리카 NDP도 관게시설, 생산성 향상, 그리고 수출확대를 위하여 투자를 늘릴 것을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자동화가 재정적으로 가능하고 필요하기도 하다.

농토 개간에 대해서도 같은 상황이다. 남아프리카는 자연대지와 돌보지 않은 토지가 풍부하다. 맥킨지 세계보고서에 따르면 KwaZulu-Natal, Eastern Cape, Limpopo 등 지역에 개척하지 않은 농토가 대략 합해서 1.6-1.8 백만 핵타르가 존재한다. 놀고 있는 대지를 농토로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자동화가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개략적으로 정리하자면, COVID-19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대규모 농업을 진행하는 국가들의 정책입안자들과 관계자들은 자동화하려는 경향에 신중해야만 한다. 남아프리카같이 농사일을 해야 먹고사는 풍부한 노동인력과 선진경제권에서 필요로 했던 계절적 농사일에 의존해온 외국 노동자들에게 매우 불안한 미래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출처: Project Syndicate, 2020.

Wandile Sihlobo

남아프리카 농업위원회 수석경제분석가이며, ‘Finding Common Ground: Land, Equity, and Agriculture’.의 저자이다

금, 2020/05/01-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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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한국정치학계의 큰 기둥역할을 하고 계신 임혁백 교수님이 코로나 사태에 대하여 문명사적 시각으로 매우 소중한 글을 남겨 주셨다. 아래의 글은 첫 번째로 현재의 팬데믹 이전에 있었던 유럽중세의 흑사병에 대한 회상적 성찰이고, 이후 두 번째 글은 현재 진행중인 사태에 대한 분석, 그리고 마지막에는 향후 전개될 인류사회의 미래 모습에 관한 전망으로 향후 격 주간 세 번에 걸쳐 연재하고자 한다.


이 그림은 부뤼겔이 그린 Triumph of Death입니다. 패스트 창궐로 엄청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해골이 되어 춤추는 그림에서 부뤼겔은 패스트의 비극과 참상을 너무도 리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기본은 “칭기스칸과 그 후손들이 지구를 흔들자 카리프들은 넘어졌고 카이사르들은 왕좌위에서 떨었다”고 하면서 칭기스칸과 후손들의 유럽침공으로 일어난 황화(yellow peril)를 두렵게 바라보았다. 몽골과 타타르인들의 유럽침공은 중동과 유럽의 중세군주들의 권자를 무너뜨렸고, 유럽인구의 1/3을 몰살시킨 흑사병으로 중세의 봉건적 생산양식을 종언시켰고, 중세 소작농과 농노를 임금노동자로 전환시킴으로써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지배적으로 만들었고, 구빈법이라는 국가복지제도를 출현시켰다.

몽골군대에 의한 황화는 역설적으로 중세를 끝장내고 근대의 도래를 앞당기는 “의도하지 않은” (unintended consequences) 진보적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몽골군은 1346년에서 1348년 사이에 크리미아반도의 카파Kaffa시를 포위, 공격하였고 카파의 슬라브 군주가 결사항전하자 몽골군은 페스트 시체를 투석기로 성안으로 던져놓았고 카파성은 페스트가 퍼져 모든 사람들이 죽었고, 이웃 성과 도시로 번졌고, 카파를 탈출한 사람들은 콘스탄티노플, 시실리, 제노아, 베니스로 1347년에서 1348년에 도망하자 페스트는 이태리 반도로 확산되었고 베니스와 제노아의 상선에 탄 페스트 환자들이 프랑스, 스페인, 노르웨이의 번화한 항구에서 내리자 페스트는 유럽대륙으로 확산되었고, 1348년 5월 8일 영국에 상륙하자 흑사병은 유럽전역을 전염시킨 판데믹이 되었다. 흑사병으로 불리는 뷰보닉 플레이그 (bubonic plague)로 유럽인구의 1/3이 사망하는 대재앙이 발생하였다.

지오반니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에서 “교회 뒤뜰에 거대한 참호가 파졌고, 수백구의 시체가 배의 수하물칸처럼 차곡차곡 계속 쌓여져 갔다” 증언하였고, 이븐 할둔은 “파괴적 전염병은 나라를 황폐화시키고 수많은 인구를 소멸시켰다, 모든 인간이 거주하는 땅을 변화시켰다.”

뷰보닉 플레이그는 유럽전역을 휩쓸면서 유럽 전체 인구의 1/3의 생명을 앗아갔다. 페스트는 신분과 계급을 가리지 않았다. 고귀한 분들이 빈민들과 함께 속수무책으로 병마에 쓰러졌다. 엄청난 인구 감소는 봉건제적 생산양식을 파괴하고 중세를 종언시켰다.

인구감소는 엄청난 노동력 부족사태를 불러왔고, 임금을 폭등시켰다. 토지의 가치가 폭락하자 영주와 토지귀족들은 기존의 현물지급에서 현금지급으로, 물납제에서 금납제로 바꾸는데 동의하면서까지 농민들을 자신의 땅에 묶어 놓으려했으나,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지주들은 농민들이 자신의 장원을 탈출해서 자유 노동자로 변신하여 높은 임금을 주는 농장으로 이동하는 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봉건제적 생산양식이 변화하면서 봉건적 계급관계도 변화하였다. 농민들은 지주의 땅에 묶여 현물급여를 받는 농노와 소작인에서 화폐임금을 받는 농촌임금노동자로 변신하여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의 이행의 주체가 되었다. 페스트로 인한 엄청난 인구감소는 살아남은 농촌노동자의 협상능력을 강화시켰다. 지주들은 기존 임금의 3배를 주고라도 노동자를 고용하려 했다.

대토지귀족과 영국 왕은 노동조례(Statute of Laborers, 1351)를 통해 노동자들의 이동을 제한하고 임금을 흑사병 이전 수준으로 고정시키려 했으나, 노동시장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두 배 이상 상승시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임금상승과 지대하락으로 영주와 기사들의 재정은 압박을 받은 반면 노동자들은 귀족들이 입던 옷과 먹던 음식을 소비할 수 있었다. 기득권 영주와 지주들과는 달리 새로운 젠트리라는 신중산계급이 등장하였다.

그들은 토지귀족 출신은 아니나 도시에서 투기를 통해 번 돈으로 파산한 지주의 토지를 사들였고 상업적 농업의 선두에 섬으로써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의 전환을 주도하는 부르주아지를 형성하였다. 노동력부족은 국가와 토지귀족으로 하여금 농촌빈민들을 땅에 묶어놓는 조치를 강구하게 하였다. 그들은 농촌빈민들의 이동과 유랑을 금지시키고, 그 대신 그들에게 최소한의 구빈을 제공하는 잔여적 복지를 제공하였다.

그 결과 영국에서 최초로 빈민을 위한 구빈법이 출현하였다.(Poor Law Act and Statue of Artificiers, 1388) 뷰보닉 플레이그의 “의도되지 않은 결과”로 서구의 농민들은 봉건적 예속에서 해방되었고 해방된 자유노동자들과 몰락한 토지귀족의 땅을 사들인 젠트리 중산층에 의한 농업의 상업화로 봉건제 생산양식과 그에 기반한 중세의 복합시스템은 종언을 고하고, 유럽의 도시화와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앞당겨졌다. 동구의 국가와 토지귀족들의 대응은 달랐다. 동구의 국가와 토지귀족은 장원에 예속된 농민들이 자유노동자로 해방시켜줄 것을 요구하자, 강압력을 동원하여 그들을 다시 장원의 노예로 가두어놓는 재농노화(reserfdom)를 강요함으로써 봉건제의 종식이라는 시대정신에 역행하였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 지스트 석좌교수

금, 2020/05/01-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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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2001-2002년 간에 유엔안보리(UNSC) 의장을 맡았고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외교인으로 국제사회에 잘 알려진 인물인 Kishore Mahbubani가 아래 사진의 신작을 발표하면서 코로나 이후 세계질서를 미국이 아닌 중국이 주도할 것이라고 주장하자, 서구사회가 깜작 놀랐다. 이에 대해 FT의 아시아판 책임자를 역임했고 현재 미래혁신분야의 편집을 지고 있는 John Thornhill이 아래와 같은 서평을 게재하였다.


국제사회의 회의 자리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구인들이 싫어하는 아시아인의 선호 발언을 직선적으로 해 왔던 Kishore Mahbubani가 자신의 소신을 책으로 출간했다. 제목으로 뽑은 “중국이 결국 승리했나?”라는 책자는 분명히 미국인 독자들을 당황하게 하고 화까지 돋우겠지만, 이는 한편정당한 일이다.

우선적으로 이 책은 세계의 패권국으로 굴림해온 미국을 중국이 이번 세기에 강자에 자리에서 쫓아낸다는 애메한 가정을 미국 독자에 강요한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 쓴 서적에서 Mahbubani는 미국의 지배계층들이 중국을 안이하게 냉전시대의 소비에트의 재판(결말은 모두가 아는)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시간의 문제이고 정치적 중심의 주제이지만 자유를 사랑하고 시장의 전능한 힘이 주제넘게 살아남은 공산주의 지도력을 날려버릴 것으로 확신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냉전의 비유를 들어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역할이 뒤바꾸었다고 주장하는 그는 미국을 유연성을 상실하고 이념에 갇혀있으며 체제적으로 도전을 받고 있는 수퍼-파워 국가로 묘사하는 반면에, 중국을 매우 유연하며 실제적이고 전략적으로 스마트한 경쟁자라고 비유한다. “미국이 예전의 소비에트와 같고, 중국이 예전의 미국과 같이 행동한다”는 것이다.

원론적으로 단순화시켰지만, 저자는 미국의 가장 예민한 부문들을 규명해 간다. 워싱턴에서 터져 나오는 많은 적대적 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굴기하는 중국을 제대로 다룰 일관된 전략을 개발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냉전시기의 초기였던 1946년 미외교관이었던 George Kennan에 의해 적용되었던 봉쇄전략이라는 특허와 분명하게 대비시킨다.

저자는 미국의 현재 외교관들이 궁지에 몰려 있다고 지적한다: 전직 국방부 장관인 Robert Gates가 잘 지적하였듯이 미국의 전문적 외교관들보다 훨씬 많은 군부의 인물들이 국제외교 분야에서 설쳐 된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외교관이었던 그는 미국의 국내정치는 단시안적 금력(plutocracy)의 탐욕에 사로 잡혀 왔으며, 해외에 근무하는 공직자의 뇌물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 해외부패실행법안(Foreign Corrupt Practices Act)를 국내에 적용하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전략적 사고의 부재로 인해 미국은 군부의 근육질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중동에서 ‘끝낼 수 없는 전쟁(perpetual war)’에 휘말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전세계 방위비에 절반을 사용하고 있지만 소프트웨어의 시대에 군사적 물리력이 과연 얼마나 소용이 있을 것인가? 130억불을 들여서 건조한 미국의 항공모함은 수십만 불에 만들 수 있는 중국의 DF-26 미사일 한방에 쉽게 침몰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는 많은 지면을 할당하면서 미국의 사회경제적 모델은 운용의 성과를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지난 30여 년 동안 소득순위 50%이하의 시민들 소득이 감소되어온 유일한 국가이다. 같은 기간에 중국인민들은 중국 역사상 가장 괄목하게 생활의 수준을 향상시킨 경험을 체험했다”고 적고 있다.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증거하는 모든 사례를 최대로 활용하고 이에 반하는 사실들을 가능한 축소하는 것이 논객의 특징이듯이 저자 Mahbubani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미국의 실패에 대해서 난타를 가하는 반면에, 중국의 명백한 실책에 대해서 옹호하려고 한다.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으로 수천 만 명이 희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한 줄로 언급한다. 홍콩에서 진행되고 있는 소요사태를 무주택자들과 부동산거부 간의 투쟁으로 간단히 치부한다.

저자는 중국의 지도자들을 칭찬하는 데는 열정이 넘쳐나면서도 미국의 지도자들에게는 저주를 던진다. 시진핑 주석이 임기제한(隔代指定)을 폐지한 것은 분파주의와 부패와 싸움을 위해 불가피한 조처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통치는 세계에 다음 세 가지의 공공선을 선사한다고 한다: 1) 중화민족주의를 적정하게 통제하고, 2) 기후위기에 신속히 대응하며, 3) 대국굴기의 중국은 혁명의 수출기지가 현상유지를 보장한다.

현자인 통치자에 의한 지배라는 자혜로운 정치(德治)를 시진핑 주석이 중국에 실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평한다.

결론부에서 저자는 책의 제목에서 던진 질문에 직접적으로 답변하길 회피한다. 미국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많은 강점을 나열한다: 개인주의적 문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대학들 세계의 영재들을 흡인하는 매력( 35만 명의 중국인을 포함하여): 비록 트럼프가 엉망으로 만들고 있지만 잘 정비된 제도들 등. 그는 “국제정치라는 무대에서 미국과 중국과 경합은 불가피하기도 하지만 서로 피할 수도 있다”며 글의 매듭을 짓는다.

그의 저서를 읽으면서 동의하지 못하면 자극이라도 받으시길 바란다 – John Thornhill, FT innovation editor.

# by Kishore Mahbubani, Public Affairs, RRP$28, 320 pages

 

John Thornhill

FT의 아시아판 책임자를 역임했고 현재 미래혁신분야 편집인

일, 2020/05/03-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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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한국은 미국과 더불어 G20 중 양극화와 부의 집중도가 가장 심각한 나라이다. 지난 십수 년간의 가계부채증가 역시 두 나라가 비슷한 양상을 보여준다. 이에 대하여 오랫동안 공공금융과 부채문제를 깊이 연구해온 필자는 기본소득의 필요성과 유효성을 통화재정정책과 연계하여 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아래의 이야기는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 관한 도움말이며 팬데믹이 가져온 경제위기를 대처하기 위해 현재 진행되는 재난긴급지원 정책이 미래의 기본소득으로 반드시 연결되어야 할 이유를 들어보자.


CNBC.com의 지난 4월 6일자 보도에 의하면, 스페인이 유럽에서 장기적인 기본소득제도 UBI를 도입하는 것을 준비하는 최초의 국가가 될 것 같다. 스페인의 경제담당 장관은 전(全)시민들에게 지속적으로 기본임금을 국가단위에서 지불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UBI 계획을 조속한 시일 내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런던대학의 연구 교수로 재직중인 Guy Standing은 CNBC와 인터뷰에서 UBI의 도입이 없이는 세계경제의 회복이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서 ‘조만간 이루어질 UBI에 어떤 방식을 도입할 것인지에 대하여 아직 충분히 연구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어디에서 정부가 재정을 마련할 것인가’ 라는 질문은 국민들에게 경제적 안전망을 제공하는데 실제적인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지금의 위기 상황에서 미국 내 자국기업들과 월가를 위해 중앙은행이 5조 달러를 발행하듯이 정부는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면 된다. 한 평론가가 언급하였듯이 지난 4월 9일 CARES법(구제지원 관련법안)에 근거하여 1.77조 달러가 월가에 지원되었는데, 이를 130백만 미국 내 가구에 배분하면 가구당 13,600 불이 돌아가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의 헬리콥터-모니(비정상적 지원금)은 오직 월가와 기업가들만을 위해 뿌려졌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경제회복을 위해 발행하는 헬리콥터-모니는 실제로 다양한 용처로 사용될 수 있다: 인프라 건설, 각종 간접시설을 위한 개발은행에 대한 지원, 주정부 산하 대학의 등록금, 의료지원, 사회적 안전망과 UBI 등.

정부가 강제로 실시하는 방역봉쇄에 따른 현재의 위기상황은 1930년대의 대공황이래 시민들의 가계 사정을 가장 취약하게 방치하고 있고 있기 때문에, UBI는 이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에 직접적이고 가장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제도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그룹은 UBI가 인플레를 야기하고 달러의 지위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비판한다. 금본위제를 지지하는 Mike Maloney는 4월 16일자 팝캐스트에서 다음과 같이 불평을 토로했다. “콤퓨터에 추가적인 수치를 더하는 것(화폐발행)으로 우리가 부유해지지 않는다. 모두를 위한다는 구실로 비정상적인 방식을 통해 지속적으로 돈을 찍어내는 것은 당신의 주머니와 지갑에 들어있는 달러의 가치를 갉아먹는 것이고……”

이 문제점에 대해 줄곧 연구를 해온 나는 상기의 언급을 일종의 도전으로 받아들이면서, 중앙은행이 지원하는 UBI방식이 달러의 가치를 갉아먹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제대로 작동하는 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자 한다.

 

부채에 의존하는 제도에 있어서는 소비자의 경제는 만성적으로 돈이 부족하다

우선, 현대금융(MMT)의 기본원칙을 들어다 보자. 우리는 고정적이며 안정적인 통화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매일 은행에서 발행하고 소비되는 화폐통화라는 신용에 기초하고 있다. 은행이 대출을 일으키면 돈은 예금계좌로 들어가고, 대출금이 회수되면 사라진다. 한 시점에서 회수되는 금액보다 대출금이 적게 되면, 통화공급은 위축되고 이를 ‘부채디플레’라고 부른다. 디플레가 발생하면 불황과 불경기를 야기한다.

위에 언급한 헬리콥터-모니는 이러한 현상(syndrome)을 치유하기 위해 발행된 것이다. 밀턴 프리드만은 ‘디플레는 간단히 치유될 수 있으며 헬리콥터로 사람들에게 비를 내리는 듯이 돈을 뿌리면 된다’고 언급했다.

현재 화폐공급은 돈이 존재하는 방식에 문제가 생기면서 만성적인 디플레 상태에 빠져 있다. 은행들은 계좌를 만들면서 이루어진 대출금을 단순히 회수하는 것에 관심이 없으며, 이에 따라 최초의 대출금액보다 더욱 많은 액수가 항상적으로 누적되어 간다. 따라서 대출금액은 화폐공급량보다 빠르게 증가하게 되는데, 아래의 차트에서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https://workableeconomics.com/the-debt-based-economy/>

대출 부담이 채무자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커지면, 이들은 새로운 대출을 일으키지 않고 기존의 채무를 갚게 되면, 통화량이 줄어 들면서 디플레가 발생한다.

채무 바이러스(Debt virus)의 비판자들은 채무부담과 이를 갚을 수 있는 자금력 사이에 발생하는 격차를 통화의 속도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의하면, 약정 기한에 따라 채무자가 대출을 상환되면 대부자(은행)들은 총체적으로 이를 다시 경제영역으로 되돌려 빌려주면서, 해당자금은 다음 기한의 재무대차표를 담당할 채무자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이 가지는 결함은 대출로 창출된 자금은 상환이 이루어지면 소멸되는 것이지, 다시 경제영역으로 되돌아가 순환되지 않는다는 간단한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창출된 부채는 갚는 순간에 제로가 되면서 돈(통화)은 사라진다. 또한 ‘통화의 속도’가 지니는 문제점은 대부자들이 획득한 이윤을 단순히 소비자 경제로 투입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실제 우리는 두 개의 경제영역에 살고 있다 – 하나는 실물경제로 재화와 서비스가 생산되고 거래되는 소비/생산의 실물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금융의 영역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서도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다. 금융의 영역은 본질적으로 실물경제에 기생하면서 시스템 내부에 대부분의 자금을 총괄하고 있다. 문건으로 공식화 되어있지 않은 ‘연방제도의 역할’은 중앙은행의 통화량을 일상적으로 조작하여 금융시장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자신가와 투자자들이 산업의 노동자와 생산시설에 투자하는 것보다 금융의 영역에 투자하면 더욱 빠르고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은행가들과 투자자들 그리고 자산가들은 그들의 돈을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거나, 세금을 회피하는 조세천국을 찾아 외국으로 숨기거나, 또는 현금으로 보관한다. 2018년 현재 미국 기업들의 현금 보유액은 1.7조 달러에 이르고, 100불자리 지폐의 70%은 외국으로 빠져나가 있다.

 

기본소득제도는 생각보다 용이하다

반면에 생산/소비영역의 실물경제는 투자와 수요의 부족에 상시적으로 시달린다. 루즈벨트 재단에서 발간한 2017년 보고서의 제목은 ‘경제회복이란 무엇인가? 연방제도의 지속적인 통화확장의 정책에 관하여’이다.

이의 내용을 보면 GDP는 예측한 수준을 밑돌면서 하향의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6년 당시의 실질 GDP는 십년 전에 이루어진 연방의회 예산처(CBO)의 예측보다 10% 낮은 수치를 보였으며, 이를 회복할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보고서에 따르면, 빈혈병적인 성장세는 부족한 수요에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임금은 정체되어 있었고, 생산자들이 생산을 논하기 이전에 이를 소비할 수요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래 전 역사인 메소포타미아 시절에는 부채와 이를 갚을 자금 사이의 격차는 주기적으로 시행된 탕감, 즉 누적된 채무기록을 말끔히 지우면서 극복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채권자(은행)는 당시의 왕도 아니고 교회도 아니다. 단지 이들은 민간은행인으로 부채를 탕감시켜줄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더구나 이들에게 주어진 역할이라는 것이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므로, 파산에 처할 위험을 스스로 저지를 이유가 없다.

반면에 부채를 갚을 자금의 격차를 메우는 방안의 하나는 바로 UBI같이 부채의 의무가 없는 자금을 정기적으로 공급해 주는 것이다.

 

통화량을 안정시키기 위해 얼마만큼 돈을 풀어야 할까?

팬데믹에 따른 강제적 방역봉쇄는 위기의 부채상황을 더욱 악화시켰지만, 사실 경제상황은 이전부터 전례가 없는 과다한 부채의 누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소비자들의 부채와 상환능력간의 격차를 해소할 해법으로 UBI가 검토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부채에 의한 디플레가 인플레로 전환되기 전에, 헬리콥터-모니의 정책에 여유를 제공해줄 기업들의 부채, 국가와 공공기관들의 부채의 격차 역시 만만치 않다.

소비자들(가계)의 사정을 들여다 보면, 2019년 현재 가계의 80%는 생계유지를 위해 돈을 빌려야만 한다. 2019년 4월에 작성된 Lance Roberts의 차트를 참조해 보자.

2008년 이후 금융위기가 진행되면서 개인들은 소독과 부채를 합쳐도 생계유지 비용을 채울 수 없었다. 2019년 4월이 되자, 학자금과 자동차 구입용 대출은 이미 상환불능의 상태에 있거나 불능상황이 진행 중에 있었다. 마치 파도처럼 순서에 따른 개인파산, 은행파산, 그리고 부채디플레가 예측되어 있었다.

두번 째로 소개한 차트에 따르면, 개인당 소득과 생계비의 연간 격차는 15,000 불이 넘었고, 대출융자를 받아도 메울 수 없는 연간의 부족액이 3,200불을 넘어 섰다.

만약에 국가가 배당금으로 각 개인의 계좌로 매달 1,200불 즉 연간 14,200불을 입금시켜준다고 가정해 보자. 이는 위에서 보듯이 필요한 생계비와 가처분 소득간의 격차인 15,000불을 거의 메울 수 있는 수준이다. 만약 수취인들의 80%가 입금된 돈으로 생계유지를 위해 차용한 소비용 부채(신용카드, 학자금, 병원비 등)를 갚는데 사용하면, 풀린 돈은 부채를 상환하면서 사라진다.

이러한 부채의 상환(전부는 아니더라도)은 의무적일 수도 있고 자연적일 수 있다. 나머지 수취인 20%는 부채를 만들 필요가 없는 그룹으로 채무상환을 위한 국가배당금의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들은 부채상환 대신 저축을 하거나 비소비적 영역에 투자를 할 것이다.

소비재와 서비스 분야에 사용된 돈은, 물가를 인상시키지 않으면서 수요를 촉발하여 생산을 유도하고, GDP의 잠재적 예측치와 현실수치의 격차인 10%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줄 것이고, 소비자 물가에는 변동이 없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현재의 경제적 봉쇄는 공급의 부족을 가져오고 부족한 상품 및 서비스 가격의 인상을 가져오게 될 것이지만, 이는 헬리콥터-모니에 따른 수요/창출(pull)에서 오는 결과가 아니다. 반대로 공장의 조업중단과 공급의 혼란에서 야기된 거래비용의 증가에서 발생하는 비용/중가(push)의 인플레이다.

 

국제적인 선례

중앙은행의 통화공급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과거 바이마르 시절의 독일과 짐바브웨, 베네수엘라 등에서 나타난 악명높은 초-인플레의 역사를 언급하지만 이러한 사례들은 경제를 진작하려고 정부가 통화를 팽창시켜 나타난 현상이 아니었다. 이 문제를 광범위하게 연구한 Michael Hudson 교수에 따르면, “역사에 나타난 모든 초-인플레 현상은 환율의 붕괴에 따라 외채가 과다해지면서 발생했으며, 국내소비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의 과정에서 형성된 외국환율의 문제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최근 국가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돈을 풀어낸 사례로 중국과 일본 같은 나라를 들 수 있다. 지난 20여 년간 중국은 M2 통화량을 11조 중국우안에서 1800%를 증가시킨 194조 우안으로 늘려 왔지만, 같은 기간에 소비자 물가는 연간 2-3%선에 머물렀다. 풀려난 돈은 물가의 인상을 자극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GDP가 같은 속도로 성장하면서 이에 따른 통화의 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맞추어가며 조절해 온 것이다. 별도로 고려할 사항은 중국인들의 저축성향으로 이들은 소득이 중가하는 만큼, 재화와 서비스에 사용하던 소득의 비중이 비례적으로 내려간 것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소위 ‘아베노믹스’라는 대규모 경제진작 정책을 통하여 일본은행이 정부의 채권을 구입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풀었다. 일본은행은 재무제표상으로 정부발행 채권을 구매하면서 정부부채의 절반에 해당하는 액수의 화폐를 추가 발행하여 경제부문에 돈을 공급하였다. 만약 미국의 연방제도가 같은 방식을 채택하였다면, 현재의 미재무부 채권액수인 3.6조 달러의 3배에 해당하는 12조달러를 보유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이 인플레의 목표인 2.0%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오히려 유례가 없는 화폐를 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인플레가 아니라 디플레를 걱정하게 생겼다.

 

UBI와 보모국가에 대한 두려움

걱정이 많은 비판가들은 UBI를 도입하는 것이 혹 전체주의로 가는 것이 아닌지, 아니면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사회, 혹은 과잉보호의 보모국가 또는 의무적인 디지털 ID국가로 가는 통로가 될 것을 경고한다. 그러나 이중 어느 것도 UBI와 동반할 필요는 없다.

제대로 작동하면 시민 개인들이 국가에 의존해야 할 일은 없다. 마치 투자자들이 주식에 따른 배당을 받듯이, 자신의 수입에 UBI가 추가되는 것이다. 이미 여러 번의 실험을 통해 검증되었듯이 사람들이 게을러 지지 않는다. 반대로 UBI가 도입되기 전보다 더욱 적극적이며 생산적으로 변한다. 또한 현금사용을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UBI가 아니어도 현재 통화량의 90%는 이미 디지털로 이루어진다. UBI의 지급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방식 그대로 따르면 된다.

UBI는, 곤경에 빠진 시민들에게 활력적인 안전망을 제공해주는 동시에, 통화 정책에 있어서도 안정적으로 자금을 공급해 주는, 재정정책의 양 측면의 목표를 모두 만족시켜줄 수 있다. 수요/공급의 실물경제영역에서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면서도 생산성을 촉진하기 위해서, 그리고 불경기에서 오는 디플레를 방지하기 위해서, 헬리콥터-모니의 자금살포가 주기적으로 필요하다.

 

출처 : from writor’s own The Web of Debt Blog.

Ellen Brown

변호사 출신으로 공공금융제도의 의장이자 ‘Web of Debt’, ‘The Public Bank Solution’, ‘Democratizing Money in the Digital Age’ 등 13권의 책을 펴낸 저자

월, 2020/05/04-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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