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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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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admin | 월, 2019/09/30- 22:59

[월간경실련 2019년 9,10월호 우리들이야기2]

시민의 힘을 믿고 운동하고 있는 거죠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올해는 참여연대가 창립 2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얼마 전 9월 4일에는 창립기념식도 열렸는데요. 이번 호에서는 경실련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 참여연대의 박정은 사무처장을 만나서 참여연대와 시민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Q. 독자분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저는 참여연대에 2000년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고요. 참여연대에 대해 알지도 못한 채로 우연히 선배 손에 이끌려서 3개월만 있다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왔다가 지금까지 있게 됐죠. 평화운동 쪽에 오래 있었고요. 지금은 정치개혁, 사법개혁 활동에 많이 집중하고 있어요.

Q. 참여연대가 올해로 창립 25주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25년간 참 많은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간의 활동이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하시나요?

A. 우선, 가시적으로 보이는 성과들이 있겠죠. 요즘 토요일마다 집회도 많이 하고, 행진도 많이 하는데 집회, 시위의 자유를 확장하는 데 참여연대의 공헌이 굉장히 컸어요. 청와대 행진도 그렇고, 지금 법원이나 국회 앞에서 집회가 가능해진 것도 참여연대의 헌법소원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죠. 또 부패방지법, 기초생활보장법 같이 한국 사회에서 공직윤리와 삶의 토대가 되는 법들을 만드는데 기여한 것처럼 가시적인 것들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습니다. 권력의 입장에서 불편한 존재로 참여연대가 역할을 수행해요. 권력을 늘 감시하고 주목함으로써 그들의 불법행위를 막는 존재로서의 의미가 있어요. 시민들이 모여 자신들의 의사를 펼 수 있는 공론장을 마련하고, 안전장치 역할을 해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봐요.

또 한편으로는 연대에요. 실제 당사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고, 그들과 함께하는 것도 중요해요. 많은 시민사회단체에 같이 하자고 제안하고 함께하는 게 때로는 참여연대만 부각되어서 욕도 먹지만, 그게 참여연대의 활동원칙이기도 하고, 기본활동방식이기도 합니다. 참여연대가 잘 고수하고 유지하고 있는 전통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Q.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거나 의미 있는 활동은 무엇이었나요?

A. 2003년 이라크파병 반대 운동을 할 때, 김선일 씨가 죽은 사건이 있었어요. 이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온 국민이 인질로 잡혀 있는 김선일 씨의 구조요청을 보게 되었는데, 이 사람이 참수당했어요. 굉장히 큰 충격이었어요. 이 사건은 단순하게 침략 전쟁에 한국군대를 보내지 말라는 것이기도 했지만,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참전해야만 하는 한미동맹에 대한 문제의식,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런 비극을 마주하며 평화운동에 매진했던 게 이라크파병 반대 운동이었던 거 같아요.

또 다른 하나는, 벌써 9월인데 첫발 떼는 것도 어려운 정치개혁 운동입니다. 작년 이맘때부터 <정치개혁 공동행동> 활동을 시작했어요. 당시 몇몇 단체 실무 간사들만 모여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조직체계를 정비했어요. 선거법 개정을 위해 국회를 압박하는 활동을 작년 연말부터 많이 해왔는데 참 지치네요. 국회 스스로 안 바뀐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확인했던 한해여서 다른 의미로 기억에 많이 남는 거 같아요. 얼마 전 대법원에서 박근혜, 최순실, 이재용 관련 판결이 있었습니다. 파기환송되었지만 이들 간 정경유착이 확인됐고, 삼성의 승계 작업이 있었다는 것도 확인됐어요. 참여연대가 집중하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불법행위와도 직결되기에 되게 반가웠는데 그것보다 정개특위에서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이 더 기분 좋더라고요. 겨우 문턱 하나 넘었을 뿐이었는데. 세상이 안 바뀐다고 해도 이만큼씩은 바뀌는데. 국회의원 스스로에 관계된 것들은 정말 너무 안 바꿔요. 전적으로 그들에게 달려 있다 보니까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시각도 많은데 이걸 넘어서서 계속해보자고 하는 게 쉽지가 않은 한 해입니다. 그래도 남아있는 기간과 총선까지 국회 바꾸는 운동을 하자고 계속 얘기하고 있어요.

Q. 오랜 시간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은 시민의 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 참여연대에서는 더 많은 시민과 함께하기 위해서 어떠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A. 제가 가끔 얘기하는데 참여연대는 기적 같은 단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회원이 확 늘지는 않지만 그래도 꾸준히 가입하고 응원해주는 회원들이 있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였을 때에는 많은 시민이 시민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조직된 운동단체를 통한 문제해결을 훨씬 덜 기대하거든요. 참여연대가 더해야 되는 데 그렇지 못해 죄송할 때가 있어요. 그래도 회원을 유지해주시고 새로 가입해주시니 늘 감사할 뿐입니다.

저희가 몇 년 전에는 모든 부서에서 무조건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진행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억지로 하라고 하진 않아요. 예를 들어서 시민들이 직접 세금 문제를 말하게 하는 ‘맥주 파티’ 이런 것도 했어요. 사법농단과 관련해서 ‘부릅단’을 모집해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방청하고 소감을 나누기도 해요. 시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티를 내는 거지요. 공론화하기 위한 방식으로 다양한 시민참여 방식을 시도할 수 있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처럼 어떤 사안은 전문성으로 승부를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모든 부서가 다 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선거 개혁이나 국회 개혁은 무조건 시민과 같이해야 돼요. 이런 시민참여 사업도 참여연대 활동 기조 중 하나에요.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지역별 회원 모임이 왕성해졌어요. 회원들이 이런 자리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같이하기를 기대하는지 얘기도 듣고, 저희도 적극적으로 제안하죠. 할 게 참 많잖아요. 서명부터 스토리펀딩까지 많이 하잖아요. 우리가 다 정하고 난 다음에 회원들에게 같이 하자고 하는 것보다는 기본방향을 잡아두고 의견을 구하면서 가는 과정이 좋은 것 같아요. 참여연대가 그런 시도를 꾸준히 해서 잘 정착되면 좋겠습니다.

Q. 참여연대는 명실상부하게 한국의 대표적인 시민단체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만큼 지지하는 분들도 많고,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분들도 많은데요. 다양한 목소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A. 문재인 정부 들어서 참여연대가 이러저러한 음해와 비방의 대상이 되고 있어요. 겸허히 받아들일 비판도 있고 따끔한 조언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지나치게 악의적이에요. 보수언론, 경제지들이 특히 그렇죠. 경실련이든 우리든 정부 비판을 엄청 많이 하는데 그런 소리는 다 묻히고, 어떨 때는 ‘참여연대마저’ 이런 식으로 악의적으로 활용하죠.

가장 안타까운 건 참여연대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모른 채 언론과 우익 매체들이 악의적으로 만들어낸 콘텐츠로 참여연대를 인식하는 분이 많다는 거예요. 낙인을 찍고 거기서 끝이에요. 태극기를 들고 청와대로 행진하는 분들이 입에 ‘빨갱이’를 달고 삽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자신들이 청와대까지 행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던 단체에, 광장을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로 바꿔서 시민의 광장으로 돌려놓은 단체에 그런 비난을 퍼붓는다는 걸 모르세요.

많은 분이 참여연대는 먹고 살만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안타까운 것 같아요. 엄밀히 말하면 저희는 한 달 살이거든요. 상근자가 57명 정도 되는데, 기본 유지비용이 상당하죠. 회원 회비로 운영하다 보니, 한 달 유지비용으로 간당간당해요. 그런데 많은 분이 참여연대는 먹고 살만하니 작은 단체를 후원하자고 하시죠, 으레 참여연대는 후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편견?이 저희에게는 어려움인 것 같아요. 해외에서 참여연대를 찾아오는 단체들이나 연구자들이 많거든요. 회원 수십만 명 되는 엄청 큰 단체라고 생각했는데, 겨우 15,000명이 조금 넘는 회원이 있다고 하면 깜짝 놀라요. 더 많은 분이 한국 사회를 바꾸려 애쓰는 시민단체를 조금이라도 후원하는 데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Q.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개개인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시민단체가 나서는 것이 오히려 문제해결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시민단체들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이런 얘기는 2008년 광우병 집회 때부터 나왔어요. 그 당시에 사람들은 누군가로부터 지휘받는 걸 거부했어요. 수많은 조직되지 않는 시민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죠. 박근혜 퇴진 행동에서의 경험도 그랬어요. ‘시민의회’라는 걸 만들려다가 누가 함부로 대표를 자임하냐고 큰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죠. 맞는 말이에요. 단체들은 대표성을 자임하는 게 아니라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줘야 해요. 사람들이 의견을 얘기할 수 있고,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장을. 사람들이 잘 모를 수도 있어요. 단체들이 그런 장을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공간으로 마련한다는 것을요.

2008년 광우병 촛불 당시 조직화된 운동은 끝났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단체 활동은 고유해요.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예요. 많은 시민이 청와대 청원도 하지만, 단체들은 실제 부지런히 국회를 찾아가면서 입법운동을 한단 말이에요. 개개인이 찾아가서 하기는 어려운 부분이죠. 단체는 자신의 역할이 있어요. 물론 환경이 변하는데 부응하지 못하고 구닥다리 방식이라면 도태되겠죠. 단체가 시민과 호흡하면서 온전히 자신의 역할을 하는 건 아주 필수적이라고 생각해요.

Q. 경실련과 참여연대의 관계는 어떻게 보면 동반자고, 또 다르게 보면 경쟁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참여연대의 입장에서 경실련 활동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A. 제가 작년에 경실련 후원 행사에 갔다가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어머나 우리 활동이랑 똑같잖아’싶어서요. 우리 활동과 경실련 활동이 굉장히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죠. 근데 실제로 제가 만나는 경실련 활동가는 2, 3명뿐이에요.
과거에 경실련은 연대 활동을 거의 안 한다고 들었는데, 실제 최근 빼고는 연대 활동의 기억이 거의 없어요. 제가 경실련 내부 논의는 잘 모르지만, 조금 더 적극적으로 연대 활동을 제안하고 함께해주신다면 시민사회 운동 전체로도 든든한 일이 될 겁니다. 체육대회 같은 것도 하고, 자주 만났으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올해 경실련이 30주년을 맞이했는데요. 이 내용을 읽고 있을 경실련 회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참여연대와 경실련 모두 회원으로부터 나오는 시민의 힘은 다르지 않을 겁니다. 회원이나 시민의 응원과 지원을 정말 중히 여기고, 서로 북돋아 가며 활동한다는 점도 같을 것이고요. 경실련과 참여연대 모두 시민의 힘을 믿고 운동하고 있는 거죠. 한 단체가 30년 운영되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걸 버티게 한 힘, 회원이 있기에 가능했을 거예요. 경실련과 함께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30년 축하 인사 드립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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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이 꿈꾸는 사회를 향해 달려온지 29년이 되었습니다.

시민과 함께 걸어가는 경실련의 창립 29주년 기념식에 회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수, 2018/10/24-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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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1,2월호 – 좋은사회적기업 : 노리소리 강원두레]
 

“기초자치단체의 경우 문화예술 예산이 여전히 1% 내외로 상대적으로 다른 분야에 비해 인색합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정책이 혁신적으로 바뀌어야한다고 봅니다.

 

윤은주 회원홍보팀 간사 [email protected]

 

▲ 지난 12월 13일 경실련 강당에서 개최한 좋은사회적기업상을 시상식 (왼쪽이 엄기종 대표)

 

경실련은 어려운 경제・사회적 여건 속에서 사회적 목적을 위해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회적기업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 국내 상장기업들을 발굴하여 널리 알리기 위해 해마다 좋은기업을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습니다. 경실련 좋은기업상은 올해 27회를 맞이했고, 좋은사회적기업상은 4회를 맞이했습니다.

모두 5개의 기업이 수상을 했고, 모두 자세히 소개하고 싶지만 그 중에 특별히 공익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문화예술 전문 사회적기업인 ㈜노리소리강원두레의 엄기종 대표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Q. ‘노리소리 강원두레’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요?

A. 노리소리강원두레는 강원도를 기반으로 문화예술 사업을 통해 오늘날 새로운 생활예술 문화공동체를 구현하고자 고성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을 중심으로 설립되었습니다.

‘노리소리강원두레’ 이름은 조선시대 농촌지역에서 행해지던 전통 민속놀이인 두레놀이와 두레소리를 합성한 후 재구성하여 만든 것입니다.

 

Q. ‘노리소리 강원두레’ 소개와 현재하고 있는 활동과 주요활동 등에 대한 설명 부탁

드립니다.

A. 노리소리강원두레는 강원도 고성지역의 청장년 예술가 및 예술 강사들의 일자리 창출과 문화예술 교육 및 공연 등의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지역의 문화예술 정체성과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하여 설립된 사회적 기업입니다. 현재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생활예술 동아리 운영, 고성농악 및 고성아리랑 등 전통 민속예술의 발굴 및 전승 활동, 지역주민과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예술 교육 및 공연 프로그램 공모사업, 지역 내 문화제 및 축제 등 크고 작은 행사 대행 사업 등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고성농악보존회, 고성아리랑보존회, 고성역사문화연구소, 농가주부모임 밴드 등을 노리소리강원두레의 상주단체로 설립함으로서 지역 문화예술 활동의 산파 역할 뿐만 다문화합창단, 장애인합창단 및 고성진로체험지원센터 위탁 운영 등을 통해 지역 문화예술 발전의 매개 역할을 감당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지역 내 취약계층을 위한 시설 및 기관 단체와 MOU 체결을 통하여 무상으로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나눔 사업을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적 기업 자율 경영공시를 통해 그간의 성과와 활동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여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가치를 견고히 다져나가고 있습니다.

 

Q. 대표님 소개도 간단히 부탁드리고, 어떻게 이런 사업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특별히 사회적 기업을 하신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저는 국내에서 대학원까지 마치고 미국에서 박사과정 유학생활을 하던 중 실패하고 돌아와 방황하다 경기도 일산 및 강원도 원주에서 교육 사업을 하면서 귀향을 결심하고 2012년 고향인 강원도 고성지역으로 돌아와 문화예술 분야 전문 사회적 기업을 설립했습니다.

문화예술 분야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게 된 이유는 늘 고향의 발전을 바라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가 귀향하면서 고성지역에 꼭 필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찾던 중 2012년 당시 사회적 기업이라는 좋은 정책적 지원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역에서 본인이 잘 할 수 있고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문화예술 사업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사회적 기업이라는 정부의 지원제도가 없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빠른 시간 내에 사업적으로 자리 잡을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Q. 지역사회공헌 사회서비스 부문 최우수기업으로 선정되셨는데 문화, 예술을 매개로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연대할 때의 장점과 또는 한계나 어려움은 어떤 것들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일반적으로 문화예술은 공공재로서 정부의 지원이 없다면 운영하기가 어려운 사업 분야입니다. 현재 정부의 문화예술 예산은 2013년 이후로 2%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OECD 국가들의 문화예술 예산이 3%인 점을 감안한다면 향후 이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있어야한다고 봅니다. 특히 기초자치단체의 경우 문화예술 예산이 여전히 1% 내외로 상대적으로 다른 분야에 비해 인색한 것을 보면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정책이 혁신적으로 바뀌어야한다고 봅니다.

 

▲ 해맞이 달맞이 고성 금단작신 가면놀이 길놀이 공연

 

▲ 해맞이 달맞이 고성 금단작신 가면놀이 축제 공연

 

Q.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계시는지와 강원지역에도 경실련 지부들이 있는데,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려면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요?

A. 2019년 올해에는 고성군이 노리소리강원두레가 그동안 발굴하여 전승해가고 있는 ‘고성 금단작신 가면놀이’를 강원민속예술경연대회 종목으로 선정하여 출전하기로 하였습니다. ‘고성 금단작신 가면놀이’는 조선시대 고성지역에서 세시풍속으로 연희되던 귀한 민속자료로 향후 지역의 대표 문화예술 축제로 키워가고자 합니다.

강원도 고성지역의 경우 아직 경실련 지부가 없어서 상호 교류 소통할 기회는 없지만 인근 지역의 경실련 지부들과 교류하기를 희망합니다. 경실련 행사에 노리소리강원두레가 운영업체로 참여하거나 노리소리강원두레 주관 행사에 인근 경실련 지부가 지부 차원에서 홍보하고 참여해 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역 주민들의 경우 노리소리강원두레의 운영하는 고성역사문화연구소, 고성농악보존회, 고성아리랑보존회, 농가주부모임 밴드 등 생활예술 동아리에 회원으로 참여하여 지역 문화예술의 생산자로 함께 한다면 큰 힘이 되리라 봅니다.

 

Q. 경실련 좋은 사회적기업상을 수상하신 소감과 앞으로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나 우리사회가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요? 그리고 사회적 기업을 하고 계시거나 시작하려는 분들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A. 좋은 평가를 해주셔서 다시 한 번 지면을 통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도 사회적 기업으로서 지역의 공익적 가치, 윤리적 가치, 경제적 가치 구현을 통해 취약계층에 대한 일자리 창출 및 문화 소외계층에 대한 재능기부 등 사회서비스 제공에도 게을리 하지 않고,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노력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지역에서 사회적 기업을 통해 취약계층의 건강한 경제 생태계를 만들고자 준비하거나 하고 계신 사회적경제인들의 행운과 건투를 빕니다.

 

Q. 끝으로 앞으로 어떤 계획이나 목표를 가지고 계신지 말씀해주세요.

A. 올해 2019년도부터는 그 동안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면서 쌓아온 신뢰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노리소리강원두레의 사업을 보다 내실 있게 운영하고, 지역의 현안에 대해 지역주민들과 함께 혁신적인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전문가 초청 세미나를 주기적으로 개최하며, 지역의 자연자원과 문화자원을 활용하여 국도 7호선 고성여행 플랫폼을 구축함으로서 지역을 홍보하고 마케팅 하는데 많은 공을 들이고자 합니다.

 

▲50여평 규모의 공연장과 미술전시관, 사무실 등을 갖추고 지역 예술인들의 연습공간으로 개방하거나 예술인들의 작품을 발굴해 전시하고 있다. (사진출처: 강원고성신문)

 

월, 2019/01/28-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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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1,2월호 – 둥지내몰림 시리즈]

“재개발 무조건 중지하고,

여기가 반드시 지켜졌으면 좋겠습니다.”

 

윤은주 회원홍보팀 간사 [email protected]

 

▲ 지금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세운재개발 3구역

 

딱 10년 전 용산참사 현장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 1월 11일 인터뷰를 위해 청계천 관수교 앞 농성장을 찾아갔을 때 P사장이 보여주신 세운재개발 3구역 현장을 보는 순간 10년 전으로 되돌아간 기분이 들었습니다.

올해가 용산참사 10주기입니다. 재개발 문제로 인해 소중한 생명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렇게 큰 희생을 치르고 나서도 또 다시 대책 없이 재개발로 수많은 사람들이 쫓겨나고 있습니다. 서울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계획으로 청계천에서 60년 넘게 장사하던 상인들이 터전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청계천에서 25년간 장사하다 쫓겨나신 P사장과 청계천 생존권사수 비상대책위원회 강문원 위원장을 만났습니다.

 

Q. 지금 상황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P사장: 3구역을 기준으로 2006년도에 시행사가 집주인들과 계약을 했어요. 원래는 여기에 관광객들 대상으로 호텔을 지으려고 했대요. 그런데 중국인들 한국관광이 전면 중단되면서 투자자가 안 나타나는 거죠. 그러니까 여기에 주상복합 아파트를 짓겠다는 거에요. 작년 3월 투자자가 나타났고 그때부터 상인들 나가라고 압박을 시작한 거죠.

시행사가 2006년 계약금 주고, 작년 4월에 중도금 60% 주고, 나머지 30%는 세입자 다 내보내면 주겠다고 나온거에요. 재개발지역에서 영업보상비를 4개월치 주게 돼 있어요. 원래는 2개월이었는데 용산참사 나고 4개월로 됐지요.

시행사에서는 땅갑 많이 쳐줄 테니까 지주들에게 세입자는 알아서 내보내라고 했는데, 안 나가니까 시행사가 재촉하다가 당신들이 못하겠으면 우리가 하겠다하고 나선 거에요. 이 사람들은 이런 거 전문이거든요. 5억 5천까지 소송을 걸어요. 마지막에는 월세를 100% 올리더라고요. 심지어는 10월달에 월세를 올리면서 지나간 달 7, 8, 9월까지도 100% 올려가지고 달라고 하고 그래요. 엄청난 압박과 심리적 부담이죠. 그래서 싸우다 싸우다 안 되니까 보상 받고 다 쫓겨난거죠.

 

Q. 대체부지는 있나요? 이주하신 분들은 주로 어디로 가셨나요?

P사장: 대체부지는 없고, 일부는 아예 폐업하신 분들이 있고, 일부는 저처럼 청계천을 떠난 사람, 나머지 분들은 작년 4월 2구역 빈 가게들로 들어갔어요. 2구역은 바로 앞에 종묘공원이 있어서 제일 오래 버틸 수 있다고 판단한 거죠. 고도가 16층밖에 안되거든요. 그런데 또 그 와중에 2구역들이 원래 경기가 어렵다보니 빈 가게가 많았는데 2구역으로 서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다보니 권리금이 생기는 상황이에요. 저도 25년 여기서 기계판매업으로 장사했는데, 당분간 다른 가게 창고에 있다가 2월 중순쯤 경기도로 떠날거에요.

 

Q. 세입자 대책이나 이주비, 보상 등은 어떻게 된 건가요?

P사장: 영업보상비 4개월치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원래 3구역 전체 개발을 하면 3-2구역에 대체건물을 주기로 했었어요. 그게 시행사의 세입자 대책안이었어요. 구청에서 인허가를 받으려면 세입자 대책안을 세워야 인허가를 받을 수 있거든요. 도로 15m를 기부체납하고 그 안에 대체건물이 다 지어질 때까지 임시 컨테이너 설치해서 장사해주게끔 한다고 했는데 시행사에서 꼼수를 부려 3-1, 4, 5만 부분개발 먼저하는 식으로 하면서 전체 개발이 아니라 부분 개발이라 대체건물 지어줄 필요가 없다고 나오고 있어요. 부분개발은 대체부지를 안 해줘도 된대요. 전체 개발 할 거면서 단지 시간차인데 전체 개발이 아니라 부분개발이라 안 해줘도 된다는 거에요. 우선분양권도 해준다고 했는데, 컨테이너도 그렇고 다 물 건너 간 거 같아요.

 

 

▲ 현재 소송이 3억 걸려있어서 얼굴과 실명이 나가면 안 된다고 하신 P사장

 

Q. 지금 심정이 어떠신지요?

P사장: 심정이라는 건 말로 표현 못하지만 그냥 암울하고 무섭죠. 제가 지금 나이가 53세인데, 53세에 지방으로 가서 뭔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다시 시작해서 먹고는 살아야 되는데 무서운 거죠. 앞이 깜깜하잖아요. 여기서 25년 생활했고, 저는 전국에서 오는 손님들 상대로 물건을 구색을 다 갖춰놓고 장사했는데, 지방으로 가면 지금 물건 4/5는 지방에서는 못 팔아요.

청계천 영업생태계는 도매, 소매 다 톱니바퀴 굴러가듯 박자가 맞춰져 있어요. 협업이 잘 된다는 게 청계천의 특성인데, 이쪽에 와서 깎기도 하고, 기계 고장 나면 공구사다 고치기도 하며 서로 상생하고 있는데 극히 일부라도 더 이상 빠져나간다면 청계천은 유지하기 힘들어요.

 

Q. 용산참사 10주기 인데, 재개발 세입자 대책에 대한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P사장: 변한 거는 보상금을 조금 더 준다는 거 밖에는 변한 게 없구요. 엄청난 대규모 단지잖아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5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여기 있는 세입자들하고 모든 이해관계자들하고 협의를 하고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가지고 해결해야 재개발의 의미가 있는 거죠. 세입자도 공청회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대요. 그런데 2006년부터 그런 공청회가 한 번도 없었어요.

남대문 불 지른 사람이 괜히 불 지른 게 아니에요. 자기 땅 강제로 수용당하니까 억울해서 그걸 알리려고 불을 지른 거에요. 용산사태도 그렇고요. 그런 식으로 제2의 용산 참사같은 사태를 없애기 위해서는 서울시, 구청, 정부 그리고 이해관계자들이 만나서 서로 잘 해결될 수 있게끔 해야 합니다.

 

Q. 지금 세운재개발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보시는지요?

강문원: 리모델링이나 수정해서 고쳐서 쓸 수 있는 건 재생산이지만 다 때려 부셔서 건물 새로 짓는 건 재생사업이 아니에요. 재개발이에요. 지저분한 거는 고쳐가며 쓰는 거죠. 사람이 지저분하다고 죽여 버립니까? 여기 아파트 지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고 맨날 민원 들어와서 여기 더럽네, 저기 더럽네 하면 결국 여기 다 무너지는 거예요. 아파트 지으면 절대 안돼요. 상업지역에 무슨 아파트입니까?

청계천은 옆 가게 있는 거 이 사람이 상담해서 물건 팔고, 이런 유기적인 시스템이기 때문에 어디 따로 떨어져 나가서 장사할 수 있는 그런 구조가 아니에요. 공구가 무너지면 보석상, 시계, 과학기자재, 인쇄, 정밀가공 싸그리 다 무너집니다. 요것만 생각해서 다른 데 가서 장사하면 되지 않냐 그러는데 대다수는 나가서 아무 것도 못해요.

지금 서울시에서 다시세운 도시재상사업으로 젊은 청년창업자들이 입주했는데 그 사람들이 여기 들어온 이유가 배후단지가 너무 잘 돼있기 때문이에요. 최첨단 3D 프린터 생산하는 사장님이 스타트업 하기에 여기가 너무 좋다는 거에요. 다른 데 가면 샘플 생산할 때 1~2천만원 들어가는데 여기 오면 2~3백만원이면 다 만들 수 있으니까 여기에 창업을 한건데 양 옆의 인프라를 다 때려 부수니까 여기 온 목적이 없어지는 거죠. 그래서 청년들도 지금 하나 둘씩 저희를 찾아오고 있어요. 문제가 심각한거죠.

 

▲ 청계천 관수교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중인 강문원 위원장

 

Q. 비대위 주장은 무엇입니까?

강문원: 무조건 보존! 입니다. 현재의 가치보다 미래의 가치가 무궁무진한 지역이에요. 외국에서 와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장인들이 많아요. 이것만 할 줄 아는 사람들이에요. 딱 떼어서 다른 데 가면 도태돼요. 죽어야 돼요. 적응을 못해요. 다른 데 가서는 일을 못해요. 지저분하다, 오로지 오래 됐다, 눈에 보기 싫다, 박정희 시대 때도 이렇게 안했어요.

P사장: 재개발 무조건 중지!입니다. 재개발하고 싶으면 여기서 터전을 일구어온 세입자들한테 협의해서 같이 상생할 수 있게 협의를 해야죠. 협의 없이 무조건 땅 샀다고 나가라고 구청에서 시청에서 허가해주고 그게 무슨 재생이고, 상생입니까.

서울시 찾아가면 인허가는 중구청에 있다고 하고, 중구청 찾아가면 시장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다고 서로 미뤄요. 탁구 치는 것도 아니고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하네요.

 

Q. 경실련이나 또는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P사장: 여기 있는 비록 장사하고 물건 제조하시는 분들이 다지만 여기 있는 분들도 국가 발전을 위해서 어느 정도는 많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기업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그런 사람들도 그런 곳도 전부다 여기서 물건 납품받고 구매해가서 그렇게 큰 겁니다. 이 청계천은 말 그대로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초석이고 앞으로도 계속 이런 곳이 남아 있어야만 국가경제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많은 분들이 이 청계천에 관심을 가져 주시고 저희들한테 힘이 될 수 있는 말씀 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문원: 지저분하다고 없어질 장소가 아닙니다. 여기가 반드시 지켜졌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출처: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심정을 여쭤보는 질문은 입이 안 떨어졌습니다. 하면서도 참 죄송했습니다. 저 같아도 몰라서 묻냐는 말이 나올 것 같아서요. 무섭고 두렵다는 사장님 말씀이 계속 마음에 남습니다. 돈 벌어서 국가에 세금 내고 정당하게 가족들 먹여 살리고 애들 가르치며 살아왔는데 갑자기 길거리로 내 앉게 되는 막막한 이 분들의 심정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알까 싶었습니다.

선량한 시민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생존권을 박탈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펐습니다. 세입자를 대책도 없이 사지로 내모든 비극을 중단하고 누구나 상생할 수 있게 재개발•재건축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 나가길 바랍니다. 

월, 2019/01/2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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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1,2월호 – 지역이야기]

“이상한 나라”에서 살지 않을 용균이에게

김종현 거제경실련 집행위원장

[email protected]

 

▲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고 김용균 청년노동자의 시민분향소 (사진제공: 유재홍 시민)

 

용균아!

그 곳은 따뜻하겠지? 그리고 햇빛 들지 않고, 탄가루가 날리는 그런 곳도 아니겠지?

이곳은 남부지방이지만 한겨울로 치닫고 있어 많이 춥구나. 그리고 연일 미세먼지 발령주의보가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나는 몇 해 전 건설 현장에서 산업재해로 3개월가량 병원 신세를 진 전력이 있는 올해 50살이 된, 너보다 2배쯤 더 세상을 산 그러니까 삼촌뻘라고 할까?

산업재해 기간 중에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고, 치료기간 중에는 휴업급여도 나오고, 산재사고 이후에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여러 종류의 안내문과 때때로 근로복지공단 마크가 크게 찍힌 수건이며, 탁상용 달력이며, 여행용 세면도구 세트도 선물로 받으면서,,,,, 그리고 1년에 한번씩 산업안전교육도 받고, 현장에서 안전화, 안전모도 지급받으면서,,,, “우리나라의 노동 환경이 많이 좋아졌구나”라고 막연한 생각.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도 멍청하였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구나.

그러다가 너의 안타까운 소식을 뉴스로 접하면서 처음에는 뉴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착각했었다. 나의 유년기 시절.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를 “김용근”으로 불렀기에.

 

중학교 사회시간에 ‘이타이이타이병’에 대해서는 배웠지만, 그리고 성인이 된 후 학원 강사를 하면서 초등학생들에게 ‘이타이이타이병’이 카드뮴이라는 중금속이 몸에 축적되어 생기는 병이고 일본어 ‘이타이이타이’를 번역하면 ‘(너무 너무) 아프다, 아프다’라는 뜻이라고 친절하게 가르쳤지만, 1988년 같은 중금속인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우리나라 노동자 문송면에 대하여는 알지 못했구나. 일본은 우리보다 몇십 년 전에 중금속 중독(오염)에 대하여 사회적 경각심을 가지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음에도, 우리나라는 이보다 한참 지나서야 중금속으로 인한 산업재해를 인정할 정도였다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구나.

노동자 문상면의 ‘죽임’(죽음이 아닌 국가적 살인에 가까운)이 시발점이 되어 올림픽 준비가 한창이던 1988년 7월 우리는 또 한 번 ‘이황화탄소’라는 어렵디어려운 기체를 접하게 되고, 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을 죽이던 독가스의 원료로 사용될 만큼 맹독성을 가진 기체를 매일 접하며 인견 제조 공장에서 일하던 원진레이온 노동자 수십 명이 사망하고, 1,000여명에 달하는 피해자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이 또 한 번 슬프구나.

 

정부와 기업들은 안전화, 안전모 하나 던져주고는 자신들의 산업안전 의무를 다했다고 우쭐대고, ‘협력업체’라는 미명 아래 ‘하청업체’ 노동자로 근무케 하면서 유해시설 점검시 “2인1조 근무”, “사고 발생시 동행자가 조속하게 신고”, “산소 측정기 휴무하고 선(先) 산소 측정 후(後) 유해시설 진입, 그렇지 못할 시 진입금지(작업 중지권)”등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산업안전교육을 실시하며 “위험의 외주화”를 합법화하고 방패막이로 삼고 있다는 현실.

더욱이 노동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인 작업 중지권을 ‘작업 중지 명령 땐 대기업들 수천억 손실 우려’라는 제목의 보수 언론의 보도 행태를 보면서,,, 분노가 치미는구나.

 

전태일 열사에 이어, 문송면, 원진레이온 노동자 그리고 수십 년간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개정, 재개정에 이른 산업안전보건법. 이번에 김용균 노동자로 인해 또 한 번 산업안전보건법이 일보 전진하게 되었다네.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모든 인륜(人倫)과 도덕(道德)위에 경제논리가 군림하던 현상이 조금씩이라도 걷혀지고 있다는 현실이 반갑고, 한편으로 너무 더디어 안타깝기만 하구나. ‘이상한 나라’에서 살고 있는 아들들을 지키기 위해 기업, 국회, 정부와 싸우겠다는 용균이의 어머니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햇빛과 같은 자식을 허무하게 잃고 산산이 부서진 용균이의 아버지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우리 용균이보다 험악한 곳에서 일하는 아들, 딸들이 제대로 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살아있는 남아있는 우리들이 더욱 노력할게.

그래서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노동자의 인명을 경시한다. 기업은 노동자의 안전보건에 투자하지 않고 있다”는 국제기구의 발표나 저명한 학자의 논문이 나오록 않도록,,, “죽지 않고 건강하게 일하고 싶고, 다치지 않고 가족이 있는 집으로 퇴근하고 싶다”는 노동자 아니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할게.

 

기자 :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산재 피해자 : “아니오”

기자 : “이황화탄소가 어떤 물질인지 아십니까? 그 물질에 대해 위험교육을 받은 적이 있나요”

산재 피해자 : “아니오. 일 년에 한 번 불조심 교육을 받긴 했지만, 입사 20년 동안 한 번도 위험교육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라는 인터뷰가(원진레이온 사건을 조사하던 한겨레신문 의학전문기자의 피해자와의 인터뷰) 역사의 화석이 되어 현재와 미래에는 발생하지 않을 인터뷰가 되기를 바라며, 햇빛 따뜻한 그곳에서 영면하기를 바라네.

 

초미세먼지가 하늘을 가득 메운 2019년 1월 어느날..

월, 2019/01/2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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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1,2월호 – 이슈리포트3] – 심상정 국회 정개특위 위원장
 

“거대양당의 의원정수 확대 반대는

지독한 국회불신 이용한 기득권 유지 꼼수!”

 

윤은주  회원홍보팀 간사 / 서휘원 정치사법팀 간사

 

 

지난 10월 24일 닻을 올린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은 심상정 의원은 “진보정당 출신으로 처음 맡은 국회직이 정개특위 위원장이라는 점이 마치 숙명처럼 느껴진다“는 소회를 밝혔었습니다. 그 뒤로 정말 어디를 가도 기승전!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 도입은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국회 정개특위의 현재 상황과 계획을 들어보고, 국회개혁과 개헌 등의 주제를 가지고 심상정 의원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Q.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들이 국회의원 선출 방식에 문제가 많다고는 생각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잘 모르거나 도입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립니다. 꼭 도입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A. “현행 소선거구제는 승자독식 성격이 강합니다. 거대양당만 살아남고, 당선된 1등을 찍지 않은 표가 모두 사표가 됩니다. 한번 선거를 하면 50%가 넘는 표가 모두 반영되지 못하고 사라지죠. 모든 시민의 1인1표의 가치를 모두 반영할 수 있도록 대표성과 비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대표적인 개선방안입니다.

정당의 득표율에 의석수를 맞추는 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핵심입니다. 선거제도 개혁으로 국민을 닮은 ‘민심 그대로’ 국회가 실현되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겁니다. 승자독식 구조에서 이익을 보았던 거대양당의 독주는 끝나고, 우리 사회의 소외되었던 다양한 목소리가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Q. 현재 자유한국당, 더불어민주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소극적입니다. 두 당을 설득할 방안이 있으십니까? 더불어민주당이 원래 공약으로 제시했다가 이렇게 소극적인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A. “현재 승자독식형 선거제도로 기득권을 누린 거대양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소극적인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행 선거제도는 민심을 상당 부분 왜곡해 왔고, 이런 왜곡이 민심과 동떨어진 국회를 만드는 데 일조했습니다. 더 이상 이대로 갈 수는 없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60%에 이릅니다. 국회 개혁에 대한 열망과 지지도 압도적인 상황입니다.

정개특위는 18명 중 14명이 민주당과 한국당 소속 의원입니다. 각 당 소속 의원들이 각 당내의 당론이나 당 지도부 의견, 의원들의 중론과 무관하게 정개특위에 임할 수는 없습니다. 당 논의와 정개특위 논의를 병행해 나가야 합니다.”

 

Q. 의원정수 확대와 관련해서 국민들이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의원정수 확대는 반대하고 있는데 의원정수 확대가 필요한가요?

A. “지독한 정치 불신 속에서 의원 정수 확대를 반대하는 국민적 저항감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거대양당이 국민의 반대를 이유로 선거제도 개혁과 의원 정수를 증대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국민 불신을 방패막이 삼아 스스로 기득권을 유지하는 꼼수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에 국회가 잘한 것도 없고 매일 소모적인 대결 정치로 일관해서 국민들의 불신이 이렇게 커진 점에 있어서 가장 큰 책임 당사자가 거대양당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이렇게 국회를 개혁하고 이렇게 기득권 내려놓겠다’ 이런 진솔한 개혁방안을 가지고 국민들 앞에 무릎 꿇으면 왜 국민들이 동의를 안 하겠습니까.

저는 현재처럼 300명 범위 내에서 지역구 국회의원 수를 줄일 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의원들을 만나 보면 ‘그게 가능하냐’고 반문합니다. 그래서 국민께 정직하게 말씀드려야 합니다. 국민이 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하는 건 국회가 일도 똑바로 안 하면서 사람 수만 늘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과감한 국회 개혁 방안을 제시하면서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해 양해를 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Q.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데 국회의원들의 반응은 어떤 가요? 특권 내려놓기가 가능할까요?

A. “국민이 이겨야 국민을 위한 국회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국민이 국회의원을 통제하는 힘을 발휘해주시면 별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지금 국회의원들의 특권 중에 가장 큰 특권이 국회의원이 300명이라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국회의원 개개인이 희소가치가 있으면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만 국회의원이 됩니다. 수가 적으니 로비하기도 쉽습니다. 반대로 특권을 확 낮추고 진입장벽을 낮추면 행정부를 견제하고 민의를 대변할 국회의 힘도 강화됩니다. 머슴의 수가 늘어야 희소가치가 떨어지고 진짜 일할 사람들이 국회의원을 하려고 할 겁니다.

그동안 국회의 특권 내려놓기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출판기념회도 없어졌고, 국회의원 친인척 보좌진 채용도 금지되었습니다. 특히 국회의원 한번 하면 평생 연금 나오는 헌정회 연금도 2008년에 벌써 폐지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수십 년간 문제가 터질 때마다 개선한다고 약속해도 그대로였던 특수활동비가 전면 폐지되기도 했고요.

나까지 개혁은 성공하고, 나 빼고 개혁은 실패한다는 말이 있죠. 셀프개혁은 어느 기관이나 어렵습니다. 국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점을 국회의원들도 다들 알고는 있습니다. 특권을 내려놓기 싫은 일부가 국민의 뜻을 방패막이 삼아 현상유지하고자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촛불 이후 우리 국민의 강력한 정치개혁 의지를 외면할 수는 없을 겁니다.”

 

Q. 경실련은 국회의원 세비 동결, 국회의원 세비 결정방식 개선(독립 기구에서 결정) 입장인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경실련에서 제시한 방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고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어느 기관이나 ‘셀프개혁’은 어렵습니다. 국회 개혁에는 국민이 힘을 모아 밀어붙여주셔야 국회도 무거운 엉덩이를 뗄 수 있습니다. 저와 정의당도 세비 동결과 세비 결정방식 개선의 필요성을 누누이 말해왔죠. 선거제도 개혁은 강력한 국회 개혁과 함께 가야 합니다. 투명한 국회, 일 잘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는 문희상 의장과 유인태 사무총장이 적극적으로 작업 중에 있는 걸로 압니다.

우선 국회의원 세비를 국회의원이 정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전원 외부인사로 구성된 국회의원수당산정위원회가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수당을 정하고 국회는 이를 그대로 입법화하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돌아가신 노회찬 의원님도 특활비 폐지법안을 내면서 시민참여국회예산자문위를 신설하자는 제안을 한 적도 있습니다.

징계제도도 개선해야 합니다. 국회의원에 대한 징계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셀프징계 못하게 민간위원이 참여하는 새로운 윤리심사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외유성 해외 출장을 막을 제도적 대안도 필요합니다. 국회의원의 공무 국외 활동에 대한 심사와 평가를 국회의원이 하는 셀프심사가 아니라 시민사회에게 맡기는 개혁이 필요합니다.

모두 영국, 미국 등 의회민주주의 선진국들에서 이미 도입하고 있는 제도들입니다. 국회에 대한 더 많은 시민의 참여와 감시를 보장하는 것이 국회개혁의 핵심일 것입니다. 곧 정의당은 이와 같은 내용의 국회개혁법안을 발의할 계획입니다.”

 

Q. 지난 12월 여야 5당 합의에서 선거제도 개편과 함께 원포인트 개헌을 추진하기로 했는데 추후에 개헌 논의는 어떻게 진행할 생각이신가요? 가장 쟁점은 무엇인가요?

A. “정치는 명분이라고도 하고, 또 한쪽에서는 정치는 현실이라고도 하지만 저는 둘 다 정치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대표성과 비례성 확대라는 대의명분에 뜻을 같이 하면서도 동시에 각 정당의 현실과 이해관계를 고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에 정치개혁특위 산하에 자문위원회를 두고 시민사회, 학계, 여성계, 청년계, 언론계 등 사회 전반에서 전문가를 모시고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머리를 맞댔습니다. 자문위에서 지난 9일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국회의원 정수 확대, 투표 참여 연령 18세 하향 등과 같은 논의의 결과물인 의견서를 전달하시면서 개헌에 대해서도 제안을 주셨습니다. 선거제도 개혁 이후,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한 개헌 논의도 이어져야 한다고 제안하셨습니다.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다만 개헌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지금의 선거제도 개혁 논의도 중요하기에 지금은 선거제도 개혁에 좀 더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87년 직선제 이후에 30년 만에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내용이니까요.”

 

Q. 원포인트 개헌(권력구조 문제)은 정치적 공방으로 이어지기 쉽다고 보이는데 혹시 헌법 개정 절차를 쉽게 연성화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헌법개정 절차의 연성화는 제가 이번 20대 국회 전반기에 헌법개정특위 위원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주로 논의되었던 것으로 압니다.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제도 이전에 국민의 개헌 의지를 모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국민의 주권을 헌법이 보장하도록 한다는 가장 핵심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이번 정개특위는 골든타임을 넘어 라스트타임에 도달한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Q. 경실련에서 지난 8일 정개특위 의원들에게 의원실을 찾아다니며 의견서를 전달했는데, 잘 받아보셨는지요?

A. “네, 잘 받아보았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통한 대표성과 비례성 확대에 대해 함께 목소리를 모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개특위 안팎에서 시민사회와 오피니언 그룹이 선거제도 개혁에 함께 해주시는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경실련에서 제시한 의견들 모두 정개특위에서 끊임없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제 결실을 맺어야할 때입니다. 끝까지 함께 해주세요.”

 

Q.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을 맡으셨는데 제일 힘드신 점은 무엇인지요?

A. “아무래도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목표를 향한 구심력보다 벗어나려는 원심력이 더 큰 점이 힘듭니다. 선거제도 개혁 논의에 속도가 좀처럼 붙지 않고 있습니다. 300명 국회의원의 이해관계도 다 다르고 당마다 셈이 다르니 중지를 모으기가 참 어렵네요. 야3당이 주도적으로 선거제도 개혁을 말하고는 있지만 결국 현행 제도 하에서 정치권을 지배하는 것은 거대양당이니까요. 하루하루 날짜가 가는 것이 야속하고, 24시간이 모자라도록 애를 쓰고 있지만…

그래도 국회에서 더 노력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끝까지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87년 직선제 이후에 30년 만에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선거제도 개혁의 중요한 전환점이니까요. 또 국민들의 관심과 성원도 예년과는 다릅니다. 구체적인 제도적 장치에 대한 생각은 다를지라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열띤 토론과 지지의 목소리를 확인할 때마다 힘을 냅니다.”

 

Q. 끝으로 경실련이 올해 30주년입니다. 경실련에게 응원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황금돼지해에 다들 돈을 말하고 풍요를 기원하지만, 경제정의와 경제민주화가 실현되는 바탕 위에 지속가능한 경제발전도 가능하지 않겠어요? 경실련에서 올해도 많은 노력 해주시고, 또 그만큼 값진 성과 얻으시길 기원합니다. 정개특위와 정의당에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지난 2018년 12월 15일, 5개 원내정당 대표들이 정치개혁을 위한 합의를 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 달여 기간 동안 논의는 공전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심 의원의 말처럼 라스트타임에 도달했습니다. 정당들이 더 이상 선거제도 개혁을 당리당략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공분과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는 한국 정치를 쇄신하는 계기로 삼길 바랍니다. 

월, 2019/01/28-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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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 경실련 아카데미

❝현장에서 회원과 함께 정의를 세우자❞

경실련이 초심으로 돌아가 “회원과 함께 사회개혁을 하면서 필요한 사항들을 실사구시 정신에 입각하여 정책화(회원+정책)”하는 시민운동단체로 전환하는 기반을 점검하고 역량 강화를 위한 방안을 전국 경실련의 회원과 임원, 상근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아카데미를 개최하였습니다.

❑ 주제 : 2018년도 제1차 경실련아카데미(교육대회)
❑ 기간 : 2018년 8월 20(월) ~ 22(수)
❑ 장소 : 효문화마을(대전 중구)
❑ 대상 : 전국 경실련 회원, 임원, 상근활동가
❑ 주관 : 경실련아카데미

– 단체사진 –

– 사회인권 감수성 향상을 위한 강연(난민인권센터 김성인 사무국장) –

– 사회인권 감수성 향상을 위한 강연(다산인권센터 박진 상임활동가) –

– 년차별 상근활동가 자유 토론 –

– ‘권력감시운동’ 어떻게 할 것인가(공익재정연구소 이상석 소장) –

전국에서 모인 경실련 가족들은 열띤 토론을 통해 앞으로 경실련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한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시민사회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명사들과 함께 운동 노하우를 주고받았습니다. 아울러 이를 바탕으로 창립 할 때의 마음 그대로 늘 한결같이 시민과 함께하는 운동단체로 거듭나고자 다짐했습니다.

목, 2018/08/2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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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1,2월호 – 30주년 특집 인터뷰: 윤경로 고문]
 

“만절필동(萬折必東)이란 말이 있어요. 남북문제도 70년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반드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향해서 결국은 그날이 올 거예요. 그런 조짐이 보여요.”

 

윤은주 회원홍보팀 간사 [email protected]

 

▲ 지난 1월 14일 무악재역 인근에서 윤경로 고문을 만났습니다.

 

올해 경실련은 3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30주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작년부터 월간경실련에서는 특집 인터뷰로 고문들을 찾아뵙고 있습니다. 올해도 경실련이 꼭 만나야 할 분들을 찾아다니며 말씀을 들으려 합니다.

이번에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분과위원장으로도 활동 중이시고 상임집행위원장, 통일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셨던 윤경로 고문을 찾아 뵀습니다. 3•1운동이 갖는 역사적 의의와 남북관계 전망 등 역사학자로서 바라보는 한국근현대사에 대해 귀한 말씀들을 나눠주셨습니다.

 

Q.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입니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활동도 하고 계시는데, 3•1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100주년 기념사업 활동 소개 부탁드립니다.

A. 100년 전 3•1운동 당시는 나라의 국권이 빼앗긴 식민지 시대였어요. 일제에 우리가 강제합병 된지 10년 만에 나라가 없어지고 국권을 상실했을 때 민이, 백성이 스스로 궐기해서 일제의 무단통치하에서 독립을 찾겠다고 독립운동을 일으킨 것이지요.

그 때 독립을 외쳤지만 바로 독립은 안 됐죠. 45년까지 기다려야했죠. 어쨌든 국권을 상실했을 때 민이 중심이 돼서 독립운동을 전개했고, 그 여파로 한 달 뒤에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됐어요. 그래서 비록 임시정부, 망명정부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가진 나라를 세웠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국호가 갖는 의미를 깊이 잘 생각 안하는데 그 전에는 대한제국시대였어요 황제에게 모든 주권과 국권이 주어졌던 봉건사회였는데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대한민국이 됐다는 건 주권과 국권이 민에게 주어진 주권제민의 민국을 만들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거는 혁명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직속으로 16개 각 부처에서 모여서 위원회가 구성됐어요. 저도 기억‧기념분과위원장을 맡아서 활동하고 있는데, 3•1운동 100주년이니까 기념행사도 하지만 3•1운동이 갖는 역사성을 어떻게 현재화 하느냐 그런 것을 분과별로 의논하고 그러고 있어요. 그래서 행사도 정부나 기관에서는 후원을 하고, 주로 민이, 백성이, 시민이 중심이 된 다양한 행사들을 갖자는 컨셉을 잡아서 하려고 합니다.

 

Q. 3•1운동을 3•1혁명으로 명칭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시는데 조금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A. 혁명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개항이 시작됐는데 이 조약이 굉장히 불평등하게 맺어졌어요. 그래서 이런 불평등을 뒤늦게 알고 그걸 어떻게든지 바꿔보려고 무지 애를 썼지요. 애국계몽운동, 항일의병운동, 독립협회니 만국공동회 등 이런 운동들을 쭉 했는데, 1919년 그때까지도 운동은 많이 전개됐지만 그것이 성취하지는 못했단 말이에요. 앞의 많은 운동들이 모이고 모여서 쌓여서 3•1 혁명이 일어났다고 봐요. 앞에서 세류(細流), 물줄기와 같은 여러 모양의 운동들이 모이고 모여서 3•1 혁명을 일으켰고 그 결과 대한민국이 생겼다, 제국의 시대에서 민국의 시대로 갔다는 것은 완전히 혁명이거든요. 그 중요한 계기가 3•1운동에서 시작됐다고 보기 때문에 이전의 많은 운동과 똑같은 운동으로 보는 것은 3•1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낮춰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1911년 중국에서 쑨원을 중심으로 신해혁명이 일어났잖아요. 왜 신해혁명이라고 하나요? 하, 은, 주, 진, 한 수천 년 내려오던 봉건적인 완조를 마감하고 중화민국이 생겼기 때문이에요.

그렇다고 3.1 혁명이라는 말을 정부에서 바로 받아서 쓰는 것은 반대합니다. 그렇게 하면 반발할 사람들이 많아요. 마치 건국절 논쟁처럼 되는 건 별로 생산적이지 않아요. 이거는 학계에서 충분히 논의되도록 맡겨주는 게 좋아요. 내가 고등학교 때만 해도 다 동학난이라고 가르치고 동학난이라고 배웠어요. 지금은 동학난이라는 말 아무도 안 쓰잖아요. 동학혁명이라고 하지. 그렇게 자연스럽게 혁명이 될 거예요. 그걸 가지고 비생산적인 논쟁을 할 필요는 없어요.

 

▲ 설명하실 때마다 한자가 나오면 직접 써주시며 뜻을 정확히 알려주셨습니다.

 

Q.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도 하셨는데, 우리나라의 친일청산은 얼마나 이뤄졌다고 보시는지요?

A. 우리가 일제하에 35년 36년 식민지배를 받다보니까 대부분은 현실에 적응하면서 살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1-2년도 아니고 한 세대가 넘도록 지배를 받다보니까 자연히 거기에 순응하는 거죠.

3.1운동 때도 민족대표 33인을 뽑을 때 사실은 그 당시에 지명도가 높은 그런 분들을 민족대표로 모시려고 했는데 이 사람들이 다 거부했어요. 해봐야 바위에 겨란 던지기지 그렇게 만세 몇 번 부른다고 해서 일본이 식민지를 내놓을 사람들이 아니라고 본거죠. 해봐야 괜히 피해만 온다고 거절해서 그래도 종교인들이 양심적인 세력 아니에요. 지금은 많이 세속화 됐지만 그래서 그분들이 나서게 된 거예요.

일제 30년 오래 지배를 받다보니까 자연히 친일부역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45년 해방이 되고 새 나라를 건설했으니 이제 과거의 잘못됐던 거를 요즘 정부가 적폐 정리하듯이 한번 짚고 넘어가야 된다고 반민특위를 만들어서 일제 친일한 사람들 정리하는 그런 작업을 하려고 했죠. 그런데, 이승만 정권 자체가 국내에서 친일했던 세력들과 가깝다 보니 제헌의회에서 반민특위를 법을 만들고 실시하기로 했지만 1년도 못하고 강제해산 당했지요. 그 뒤로 60년 70년 흐른거죠.

역사학자로 역사는 무엇이냐? 했을 때, 역사는 고백하는 것이라고 봐요. 말하자면 우리의 자랑스러운 것도 역사화해야 되지만 우리가 부끄러웠던 과거의 역사도 한번쯤은 고백을 해야 된다, 정리하고 역사화 시켜야 된다 한번쯤 털어내자는 마음이 있었어요.

2005년 1차 발표하고, 2009년 11월 효창공원 백범 김구묘소 앞에서 최종 발표를 했어요. 그것이 준 사회적 파장은 상당히 컸어요.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옛날에 일제 때 내가 뭐하고 뭐했다 자랑스러워했었어요. 집안의 가문의 영광으로 말하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친일했다는 걸 자랑스러워하진 않잖아요.

 

Q. 논란도 참 많았던 것 같아요.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A. 박정희를 넣느냐 마느냐가 제일 논란이었죠. 조갑제씨가 박정희가 일본군 장교가 되기 위해 혈서를 썼다는 말은 있는데 근거는 없다고 주장했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그 근거를 찾았어요. 1931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에 박스기사로 22살의 조선의 젊은이가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는 혈서를 썼다고 실린 거예요. 일본에서 볼 때는 장한 조선 청년이었던 거죠. 처음에 집안에서 명예훼손 걸거라고 예상했는데, 예상대로 아들 이름으로 명예훼손 출판가처분 신청을 냈더라고요. 그래서 그 자로 공개하라고 해서 우리가 이겼죠. 7-8건의 소송이 있었는데 우리가 다 이겼어요. 팩트가 중요하거든요.

또 여러분도 다 알만한 인물로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이 있어요. 그 양반이 민족의 애국자로 돼 있는데, 1905년 외교권 박탈당하고 합방된 이후 엄청나게 친일적 그을 많이 썼어요. 다 높게 평가받았었는데 이 사람이 어떻게 친일이었냐며 충격을 많이 받았지요.

친일인명사전 만들었다는 거 때문에 욕도 많이 먹고 빨갱이 소리도 듣고 그랬지만 역사학자로서 굉장히 중요한 일을 했다는 자긍심이 있어요. 친일인명사전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 위원장직을 맡고 있고, 이제 10년 돼서 보완을 좀 하려고 해요. 들어간 사람들 중에 잘못된 사람은 거의 없는데 그때 빠진 사람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해외에서 밀정 노릇을 하고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거는 그 당시로서는 자료가 충분하지 못해 다 못 넣었거든요. 추가 보완활 계획이에요.

 

Q. 통일이 되기 전에는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은 끝난 게 아니라고 하는데, 현재 남북관계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A. 만절필동(萬折必東) 이란 말이 있어요. 3•운동 100주년을 맞으면서 정말 우리가 과거 100년 전의 사건을 오늘로 체화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일은 그 당시는 잃었던 국권과 주권을 되찾는 자주독립이었다면 오늘날은 자주평화라고 생각해요. ‘한반도의 자주평화’

만절필동(萬折必東)은 중국의 고사인데 중국의 황하에서부터 시작해 여러 번 수업이 꺾이며 굽이쳐 흘러도 수만리를 내려와 결국 만번을 굴절하지만 반드시 필연코 동쪽 황해바다로 물이 흘러내려간다 이런 뜻이에요. 공자가 한 말이야 이게 맞다고 봐요.

지난 70년 동안 남북가의 별의별 일들이 많았죠. 앞으로도 그런 일들이 있겠지만, 사람이 인위적으로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흐름을 그게 독재자든 어느 누구든 어느 인물, 한 시대에 의해 막아지지 않아요. 또 넘치고 또 넘고 넘어서 결국 남북문제도 이렇게 70년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반드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향해서 결국은 그날이 올 거예요. 그런 조짐이 보여요. 여기에 전제가 있다면 우리가 똑똑해야 돼요. 국민들이 지도자를 잘 뽑고 잘못하면 감시하고 이렇게 하면서 남북문제도 서서히 풀릴 것이라고 봐요.

 

▲ 윤 고문은 현재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기억‧기념분과위원장 외에도 민족문제연구소,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의 이사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Q. 경실련 전 상임집행위원장, 전 통일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셨는데, 처음 경실련과 인연을 맺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A. 내 기억으로는 89년도로 기억해요. 89년도 8월이었나 비가 많이 왔는데 명동에 있는 YWCA회관에서 처음 모였어요. 그 당시 내가 40대 중 후반 될 때인데, 그때도 데모가 많았어요. 근데 나는 NL이니 PD니 그런 건 관념적인 거 같았고, 일반 시민들에게 더 필요하고 와 닿는 부동산 문제, 경제문제 이런 게 더 급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출석하던 교회에 새마당이라는 모임에 참여하며 같이 공부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며 의식화 된 거죠. 그래서 유인물 만들어서 버스에서 나눠주고 길거리에서 나눠주고 그랬지요. 철저하게 문제를 적시하고 그거에 대한 대안을 내고 시위를 해도 합법적으로 하고 이렇게 했죠. 그런 운동이 없었으니까 언론들이 전격적으로 키워 주면서 주목을 많이 받았죠. 조직 내 갈등문제가 심각할 때 상임집행위원장을 두 번 했었고, 통일협회 활동하면서는 금강산도 많이 가고, 실무자들하고도 가깝게 지냈던 기억이 나요. 나는 경실련에서 많이 배웠어요.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고, 나의 사고의 틀이라든지 행동반경 이런 게 훨씬 넓어졌어요. 마음의 고향같은 곳이에요.

 

Q. 올해 경실련이 30주년을 맞이합니다. 경실련 회원 및 임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경실련의 가장 큰 특징은 이슈파이팅을 잘 하는 거에요. 초기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바로 이거다 하고 탁 잡아서 밀고 나갔었죠. 그러면서 옆에 있는 사람들도 동참하게 되고 회원도 늘고 그랬었죠.

근데 언제부턴가 선배들한테도 일종의 책임이 있는데 너무 정치화 됐다고 할까 여당도 가고 야당도 가고 막 찢어졌잖아요. 그러면서 시민들의 신뢰를 잃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이슈파이팅 같은 걸 잘하려면 전문가들의 활동이 활발해야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진단된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데 그런 게 옛날보다 많이 약해진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상근자들도 소명감이랄까 사명감으로 맡은 분야에서의 전문가가 되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좌우명 같은 게 있으신가요?

A. 내가 2000년도인가 상집위원장할 때였는데 미국에서 경실련 취재를 나와서 상집위원장인 나를 인터뷰 했어요. 한국의 시민운동에 대해서 인터뷰하고 마지막으로 당신 좌우명을 묻는데 이렇게 얘기했었어요.

나는 역사학도다. 어떤 문제에 부딪혀서 그 문제에 대해서 행동을 하거나 발언을 할 때 당장 내 입장에서 얘기하는 게 아니라 훗날 이 문제가 어떻게 평가될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발언하고 행동하려고 한다고 했던 기억이 나요. 당장에는 욕을 먹더라도 훗날에는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고, 당장에는 박수를 받을지라도 훗날에는 잘못될 수도 있으니 당장보다는 먼 훗날에 어떻게 평가받을 지를 생각하며 행동하고 발언하려고 해요.

화, 2019/01/2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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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19년 1,2월호 – 문화산책]

K-POP에 대한 인식 고찰

 

김건희 경제정책팀 간사 [email protected]

▲ 노을 콘서트 끝나고 나서&앵콜 도중 / 펜타곤 TENTASTIC Vol.5 ~MIRACLE~ 공연장 (사진: 김건희 간사)

 

우리나라 대중문화 역사상, 아이돌 문화는 비주류로 인식되어 왔다. 아이돌 문화를 소비하는 수요층이 젊은 여성에 집중되어 있고, 음악만이 아닌 외모와 춤을 내세워 왔기에 그들의 음악은 인스턴트화되어 소위 말하는 음악성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아이돌 가수들의 부흥기였던 2000년대 후반, 그들이 들고 나와 인기를 얻었던 곡들이 대부분 *후크송이었던 것도 대중들의 생각이 굳어지게 된 요인일 것이다.

* hook song. 한 노래에 같은 가사를 여러 번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만든 노래로,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중독성 있는 노래를 통칭한다.

시간이 지나고 음반에서 음원 스트리밍 중심으로 음악 시장의 구조가 변하면서, 음원 인기 차트의 절반은 아이돌 그룹의 노래들로 채워진 상황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좁아진 음반 시장 내에서도 각종 시상식 및 음악 방송에 반영하거나, 팬 사인회 등의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구매하는 아이돌 그룹의 음반이 매년 연간 음반 판매량 순위의 상위권을 차지한다.

아이돌 그룹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그 수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아이돌의 이른바 홍수 사이에서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활동곡의 퀄리티이다. 연차가 있고 인기가 높은 그룹일수록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그리고 팬들의 ‘코어력’ 즉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 곡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경향을 보인다. 새로운 앨범이 나왔을 때 팬들이 *스트리밍을 돌려서 초반에 음원 차트에 곡이 올라가는 것과는 별개로, 개별 곡의 퀄리티가 좋을 경우에는 아이돌 팬 이외의 대중들이 많이 듣게 되어 차트 순위를 유지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 본래는 컨텐츠를 다운로드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것을 뜻하지만, 아이돌 문화에서의 스트리밍이란 음원이나 영상을 반복적으로 재생하는 것을 말한다. 음원차트 순위나 영상 조회 수 등의 반영을 위한 작업으로, 아이돌 그룹 팬들의 일반적인 문화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 음악 시장에서 아이돌 그룹의 비중이 절대적이게 되면서,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곡에 보다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또한 이제는 국내 시장뿐만이 아닌 해외 시장의 반응 또한 살펴야 한다. 이전에는 동방신기와 보아를 시작으로 많은 아이돌 그룹이 일본 시장을 중심으로 활동해 왔지만, 현재는 국경에 구애받지 않는 여러 미디어 플랫폼들로 인해 해외 음악 팬들의 K-pop에 대한 진입 장벽이 낮아지게 되었다. 이전처럼 특정 국가의 음악 시장을 타깃으로 할 때에는 K-pop과 전반의 문화를 이해시켜야 하는 등 ‘닫힌 문’을 두드리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맞춤형 마케팅 전략을 펼치지 않아도 음악과 컨셉이 마음에 들면 해외 리스너들이 먼저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최근 음악 시장의 흐름에 따라, 이제는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음악 시장에서 가장 트렌디하고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소위 ‘3사’로 불리는 엔터테인먼트계 대기업들이 아직 비교우위를 선점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급변하고 있는 사회의 흐름 속에서 ‘중소기업’에 적을 둔 방탄소년단, 세븐틴, 여자친구 등의 그룹들이 국내외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결국은 흐름을 잘 읽는 자가 성공하는 것이다. ‘최신 유행’에 민감한 우리나라 산업 구조 하에서, 한 해의 트렌드를 예측해 보는 김난도의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도 많은 비판을 받는 것과 별개로 매년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제는 ‘마이너 문화’로써 배척하기보다는, 하나의 성장주에 대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화, 2019/01/29-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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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하반기 인턴 프로그램 후기]

“완벽하진 못했어도 후회 없는 시간들

강예진 인턴(성신여대 경영학과) [email protected]

 

12월 31일, 4개월간의 경실련 인턴 프로그램이 종료되는 날입니다. 첫 출근길 사무실 위치를 못 찾아 빗속을 20분이나 헤맸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끝을 바라보고 있다니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간 했던 일들을 적어놓은 실습일지를 쭉 읽어보았습니다. 처음 겪는 인턴생활에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일지를 다시 읽다보니 어느덧 추억이 된 하루하루가 생생하게 떠오르며 그 시간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더 나은 사회를 원한다는 한 가지 공통점만으로 시작된 경실련과의 인연은 저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세운상가 관련 자료 정리, 청년 살리기 프로젝트 참여, 국정감사 평가에 필요한 의원별 감사내용 정리, 부동산 시민강좌 수강, 경기도 행정사무감사 참관 등 여러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이를 통해 경실련이 어떤 단체이고, 어떤 활동을 하며,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수차례에 걸친 인터뷰, 토론회, 기자회견, 간담회, 세미나 등에도 참석했습니다. 논의를 반복하면서 하나의 사안에 대해서도 많은 쟁점들이 얽혀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점점 어떠한 한 가지 문제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후원의 밤 행사, 회원의 밤 행사 그리고 다른 단체들과의 교류행사 등에 참여하며 우리 사회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월간경실련 원고와 강좌 현장스케치 작성은 평소에 자신이 없었던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을 극복하기 위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한 경제정책팀에서는 각종 위원회 참석은 물론, 경실련 좋은사회적기업상과 좋은기업상 평가, 재벌 데이터 조사, 세미나 발제문 자료준비, 주식대여 금지 국민청원 시민홍보 등의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주된 업무였던 기업평가를 진행하는 동안 기업이 사회적 목표를 추구하는 동시에 이윤을 극대화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례들을 볼 수 있었지만 선뜻 답을 내리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기업이 사회와의 소통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여러 가지 법적, 경제적, 윤리적 책임을 다해간다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시민들이 주체성을 띄고 경제적 부정의를 척결하려 나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과정 속 여러 사회 경제적 현상들에 대한 이해력을 제고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계속해서 이슈를 체크하며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고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볼 수 있었던 점은 경실련 인턴생활의 큰 장점이었습니다. 다 같이 잘살 수 있는 사회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준 경실련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인턴생활 중 좋았던 점을 꼽자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는 것입니다.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인턴생활을 즐겁게 만들어주신 상근자분들, 깊이 있는 지식을 나눠주실 뿐만 아니라 친근한 모습으로도 다가와 주셨던 교수님들, 그리고 인턴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챙겨주시고 반겨주셨던 회원님들께도 모두 너무 소중한 기억을 남겨주셔서 감사했다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비록 짧게 쓰지만, 한분 한분 언급하며 감사했던 일들을 나열하고 싶은 제 마음을 알아주시리라 믿습니다.

인턴생활에 있어서 서툴렀던 적도 많았을 뿐더러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죄송한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고,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으며, 완벽하진 못했지만 후회 없는 시간들이었다고 느껴져 가벼운 마음으로 경실련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턴생활은 이렇게 마무리되었어도, 경실련이 시민의 힘으로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보며 응원할 것입니다. 2019년,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 작년 10월 24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국민연금 주식대여금지 캠페인하며 상근자들과 한 컷 / 앞줄 왼쪽이 강예진 인턴

 

화, 2019/01/2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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