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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호주에 가다] 세번째 이야기 - 채식 메뉴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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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호주에 가다] 세번째 이야기 - 채식 메뉴가 있나요?

admin | 월, 2019/09/16- 22:01

호주에서 생계를 위해 일식 레스토랑에서 웨이터 일을 한지도 어느새 6개월이 넘어섰다꽤 많은 손님들이 채식 메뉴나 글루텐 프리로 조리가 가능한지 물어온다다른 식당에 가도 베지테리언이나 비건을 뜻하는 ‘V’표시가 된 메뉴들이 있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딱히 전문 식당이 아닌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매장에도 베지테리언 햄버거나 피자 메뉴가 준비되어있다한국에 있는 채식을 하는 주변인들로부터 채식 메뉴가 흔치 않아 곤란을 겪었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단체 회식 혹은 외부 행사 진행 중 지급된 도시락이나 식단이 채식이 아니었는데 따로 뭔가를 요구하기에는 눈치가 보여 굶거나자비로 다른 음식을 먹었다는 내용이었다아마도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호주에 오면 이것저것 시도해볼만한 새로운 메뉴들이 많아 꽤 멋진 식도락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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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호주 프렌차이즈의 베지테리언 메뉴들



 




 사람들이 채식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개인의 건강을 위해서환경을 위해서동물 복지를 위해서혹은 어느 날 갑자기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되어서어느 날 갑자기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되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의 주인공은 루마니아에서 온 Cosmin이다그가 몇 년 전 영국에 머물 때어느 날 눈을 뜨자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평소 육식에 대한 반감이 있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고기를 보니 무언가 역한 느낌이 들어 채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그는 이후에 고기를 먹으려고 몇 번 시도 했지만 거부감이 들어 결국은 포기하고 채식주의자로 지내오고 있다자신도 갑자기 그냥 그렇게 된 것이기에 다른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반감은 없다고 Cosmin은 말했다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람이 이렇게도 변하는 구나’ 하고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Hannah는 고등학생 때 공장제 축산에 대한 다큐를 보고 채식을 선택했다공장제 축산이라는 시스템에 대한 반대라는 의식적인 측면 보다는 심적으로 동물이 죽는 것에 마음이 아픈 것이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채식을 하는데 있어서 말레이시아와 호주에서 체감 되는 차이점이 있나 물어보자 자신은 항상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기에 차이를 못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집에서 다른 가족들이 채식을 하지 않는데 마찰은 없었냐는 질문에는 고기를 조리한 음식 냄새에 반감이 없고고기와 함께 조리한 야채도 먹는 편이라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고 한다.



 호주에서 태어난 모리셔스인 2세인 Nazaar는 건강의 문제로 채식을 선택하게 된 케이스이다채식을 하기 전까지 자주 아프고 피부에 반점이 자주 올라왔다고 한다그런데 어느 날 자신이 닭고기를 먹으면 피부 반점이 올라오는 것 같아 닭고기를 한동안 먹지 않았더니 같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체질적으로 채식이 맞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이후 채식으로 전향하자 소화불량 등 평소에 만성으로 지니던 증상들이 사라지고몸도 가벼워지며 스트레스도 덜 받고집중력도 올라가는 것을 체감했다고 한다이후로 Nazaar는 지금까지 채식을 유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채식주의 까지는 아니더라도 육류 섭취를 좀 줄여보려고 생각하는데먹는 것을 좋아하고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나로서는 고기가 들어간 음식에 자꾸 손이 가는 것을 멈추기가 어렵다공장제 축산을 생각하면서 세 네 번에 한번은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메뉴를 선택하려고 노력한다잡식인 인간이 고기를 먹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하지만 거대화집적화된 고기 공장에서 소비되기 위해 길러지는 동물을 생각하면 지금 인간은 동물을 과하게 잡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린피스를 비롯해서 몇몇 환경단체들은 건강 문제를 비롯해 산림 파괴동물 복지탄소 배출토양 및 물 오염을 이유로 채식을 권장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한국에서도 동물 보호 단체들의 캠페인으로 인해 동물 복지 문제에 대한 이슈는 꽤 널리 알려져 있다공장제 축산업의 경우 최소 투입 최대 산출이라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생물이 다루어진다그렇기에 가축이 태어나서 상품이 되는 과정 중에 동물 복지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같은 공간에서 더 많은 동물을 길러내고짧은 시간에 더 큰 고기를 얻기 위한 기준으로 유전자사육장먹이를 결정한다동물 복지와 건강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방목형(Cage free) 농장이 생겨나고는 있지만 대세가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집적화된 축산업은 토양과 물을 소비하고사료로 쓰일 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한다예를 들어 두부 120g을 생산하는데 배출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0.47kgCO₂ eq.* 인데 반해 같은 양의 소고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5.365kgCO₂ eq. 가 배출된다.







* 온실가스 인벤토리란 온실가스 배출원과 배출량을 체계적으로 구성한 리스트를 뜻합니다. 단순히 온실가스 배출량이 얼마인지 확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근거자료로 활용이 되므로 각 배출원 또한 명확히 파악이 되어야 합니다. 온실가스 인벤토리 산정의 대상이 되는 온실가스는 교토의정서 상의 6대 온실가스로, 직접 온실가스로 알려져 있는 CO2, CH4, N2O, HFCs, PFCs, SF6 입니다. 이 온실가스들은 각 온실가스 별로 배출량이 산정된 후 지구온난화 지수를 곱하여 CO2를 기준으로 환산됩니다. 주로 ton(kg) CO2 eq.로 표시됩니다.



- 출처 : 국립수산과학원 홈페이지




 



온실가스 중 하나인 CH4는 메탄을 뜻하는데 이 메탄은 방귀의 성분에도 포함되어 있다. 2003년 뉴질랜드에서는 정부가 소나 양 등의 가축이 뀌는 방귀에 대해서 방귀세를 부과하려는 시도를 했으나 농민들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었다에스토니아에서는 실제로 소 한 마리당 한화 약 14만원 정도의 방귀세를 부과하고 있다고 한다방귀에 세금을 부과하는 우스우면서도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에서 축산업에서 생산되는 메탄으로 인한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반추동물(되새김동물)은 위가 4~5개 되는데 이들의 위에서 미생물들이 음식물을 분해할 때 메탄이 생성된다전 세계의 소와 양염소 등 모든 가축이 발생시키는 메탄가스는 전 세계 메탄가스 배출량의 약 37%를 차지한다그리고 이 메탄가스는 동일 부피의 이산화탄소보다 열을 가두는 능력이 21배 높기 때문에 지구온난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이런 사실들을 미루어 생각하면 육류 소비를 줄이는 것이 지속가능한 지구를 꿈꾸는데 꽤 도움이 되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는 메인 요리라고 하면 대부분 고기가 들어간 것이 많다그리고 회식과 같이 무언가를 함께 먹으면서 하는 사회적 활동이 잦기 때문에 채식을 접하고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 사회적으로 채식에 대한 인식의 폭이 확장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된다그렇다고 당장 나 스스로도 입맛을 바꾸기 어려운 마당에 모두가 채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다만 채식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폭과 기회가 늘어나면 세상이 조금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채식주의자들이 겪는 불평들을 줄이기 위해서든동물을 위해서든환경을 소모하는 속도를 줄이기 위해서든 그것이 결국 사람을 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육류소비를 줄이기 위해 반드시 채식주의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비틀즈의 멤버로 잘 알려진 폴 메카트니는 코펜하겐 2009년 기후변화 협약 전에 있었던 벨기에 토론회에서 고기 없는 월요일(Meat Free Monday)’* 운동을 제안했다그리고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이에 참여하고 있다서울시는 산하 161개 공공기관 구내식당에서 일주일에 하루 채식 식단을 마련해서 이를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환경 보호동물 복지건강 등 뭔가 무거워 보이는 내용들이 줄줄이 엮여 있지만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 주 월요일 친구와 함께 맛있는 채식 식당을 찾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 www.meatfreemonday.co.kr : ‘고기 없는 월요일홈페이지에서는 채식에 관련한 소식뿐만 아니라 채식 레시피를 공유하는 공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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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호주에 가다>는 필자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하며 바라본 일상에서의 환경 이야기를 담습니다. 

<필자 소개>

이재욱 전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원

생태지평연구소 전 연구원이자 전 프리랜서 기타 강사.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며 무턱대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온 33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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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오염’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키워드 중 하나인 플라스틱, 이 친구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건 지난 2020년 5월이었다. 누구든 두 팔 벌려 환영하는 황금연휴 기간에 부모님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든든하게 챙겨먹은 탓이었는지 연휴가 끝날 때까지 소화불량 증상이 나를 괴롭혔다. 결국, 연차를 하루 더 써 찾아간 병원에서 ‘맹장염 소견이 보이니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라’는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많은 검사들을 끝내고 나니 막상 내 손에 쥐어진 결과는 예상 밖의 병명이었다.


“여기 이 동그란 게 보이시죠? 이게 바로 난소에 생긴 7cm 혹입니다.”


 자궁내막증으로 인한 난소낭종, 그것이 내 정확한 병명이었다. 상당히 큰 크기의 혹이 장기를 눌러 소화가 안됐을 것이고, 위치가 좋지 않아 복강 내 압력에 의해 터지게 되면 복막염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언제 혹이 터질지 모른다는 말에 큰 병원의 산부인과 예약을 잡고 빠르게 수술까지 진행했다. 내 인생 첫 수술이었다. 병실에서 만난 같은 질환을 가진 환우들과는 아침마다 정확한 발병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충에 대해 토론하곤 했다. 이 질환은 가임기 여성에게 자주 발견되는 병이고 관리만 잘 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들의 소견이 있었지만, 자칫 생식기능에 장애가 생길 수 있다는 불안감은 수시로 날 찾아오곤 했다. 퇴원 후에는 힘겨운 호르몬 치료를 하며 절대 재발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환우 카페에 가입해서 멀리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바로 플라스틱이었다. 플라스틱은 가볍고, 처리하기도 쉽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편리함 하나만으로 소비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재료다. 이런 플라스틱을 멀리해야한다니 가능하긴 한 일인 것일까? 하지만 플라스틱으로부터 용출되는 환경호르몬 ‘비스페놀A’가 ‘에스트로겐’과 같은 기능을 하여 호르몬 교란을 일으킨다는 사실1) 은 그동안 사용해왔던 플라스틱이 내가 겪은 일을 불러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비스페놀A는 고강도 플라스틱, 영수증 감열지 등에 사용되며 우리의 일상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물질은 지난 2018년 8월, 영유아 식품을 담는 용기에는 사용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규제하는 등 행간의 이슈가 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국내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의해 식품 포장용기나 화장품 등에 해당 물질을 사용할 수 없도록 관리하고 있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던 플라스틱에서 나온 물질이 체외로 배출되지 않고 몸 안에 축적될 수 있다는 사실은 지금도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하지만 불안 속에 죄책감과 함께 쌓여가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경계하던 것도 잠시, 아침엔 생수병에 든 물을 마셨고, 저녁엔 배달용기에 담긴 마라탕을 먹었다. 일상 속에 익숙해져 버린 플라스틱 사용으로 어쩌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플라스틱 없이 단 하루를 사는 것조차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줄여나가야 하는 것을 잘 알지만 그만큼 쉽지 않다는 점도 느껴졌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책상 위엔 두 개의 플라스틱 병이 놓여있다. 


 어쩌면 나는 ‘편리함’이라는 그늘 아래 내 몸과 환경에 책임지지 못할 일들을 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플라스틱과 함께 한 시간만큼 환경도, 나도 병들어가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개인위생에 대한 민감함이 증폭되며 플라스틱 사용이 더 익숙해지고 사용량도 늘게 되었다. 자연스레 내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 드는 플라스틱, 이제 내게는 가볍지만 더 이상 가볍지만은 않은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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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유스토리(Youth Story)는 기후위기의 끝에서 청년이 당신에게 보내는 이야기를 담고자 하였습니다.


4부 필자 : 남채연

도시재생기업(CRC) 협동조합 상4랑 사무국의 막내.

사람이 남기는 다양한 흔적들로 이루어진 도시 내 모든 공간의 탐구를 좋아하는 지리학도.

수, 2021/02/24-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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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중순 즈음부터 주변 지인들에게서 호주에 산불이 심각하다고 들었다며 나의 안부를 물어오는 연락이 잦아졌다. 당시에 뉴스를 통해 꽤 큰 산불이 진행 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워낙 거리가 멀어 괜찮다고만 답을 했었다. 부끄럽게도 1월이 되어서야 이것이 매우 심각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14일에 한국행을 앞두고 정신없이 호주에서 만난 인연들과 작별인사를 하며 지내던 1월 5일 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 환기를 시키려고 창문을 열자 무언가 타는 냄새가 들어왔다. 당시에는 근처 공사장이나 비어있는 부지에서 뭔가를 태우는 줄로만 생각했으나 창밖을 내다본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매캐하고, 탁한 공기가 멜버른 전체에 가득했다. 마치 미세먼지가 심한 날의 서울처럼. 1년간의 멜버른 생활동안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산불지역에서 동쪽 방향으로만(멜버른과 반대 방향) 흘러가는 줄 알았던 연기의 영향이 멜버른까지 덮친 것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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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13일 밤 11시 멜번 시내의 야경, 도시에 연기가 자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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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6일 밤 10시 멜번 시내의 야경, 깨끗한 시야를 볼 수 있다.

내가 지내던 외곽지역을 포함해서 도심까지 상황은 전부 같았다. 연기냄새가 가득했고, 왕복 4차선 건너편의 건물이 흐리게 보일 정도였다. 대기의 순환으로 며칠 뒤에는 변하리라 기대했던 마음과는 다르게 동일한 날씨가 내가 마지막 여행을 떠나던 1월 7일까지도 계속되었다. 공항에서는 시야문제로 결항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호주에서 산불은 번개에 의한 점화로 자연 상태에서도 발생하며 매년 발생했던 일이다. 하지만 보통 며칠 혹은 길어야 한 달 이내에 불길을 잡을 수 있었던 근 몇 년과 최근 산불은 다르다. 이번 호주 남동부의 산불은 2019년 9월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무려 4개월 이상 이어지고 있다. 1월 15일 정도에 남동부 전역에 비가 내려 불길이 좀 잦아들었다고 하지만 불길을 잡기에는 부족했다. BBC의 발표에 따르면 1천만 헥타르의 땅이 불탔다고 하는데 이는 남한 전체 면적과 같다. 화재로 인한 직접적 인명 및 재산 피해 뿐 만 아니라 추정치 최소 10억 마리 이상의 야생동물의 사망과 동식물의 서식지가 사라져 멸종 위기에 놓였다. 또한 나무가 다 타버린 땅에 내린 비로 인한 산사태 우려 및 오염수의 유입으로 인한 수중 생물의 떼죽음 그리고 대기 오염으로 인한 피해도 무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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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위성 히마와리 8호가 찍은 호주 산불 위성 사진 에니메이션 (2019.11.08. 00:20~06:10) 
/ 출처 : CIMSS Satellite Blog

 매년 있었던 산불이 이번에는 왜 이렇게 거대한 재앙으로 변하게 되었을까? 이번 화재에서는 ‘화재적운’이라는 새로운 기상현상이 나타났는데 거대한 화재가 발생시키는 연기구름은 비를 뿌릴 가능성은 낮으면서 번개를 떨어뜨리기에 방화선을 넘어 새로운 화재의 시작으로 연결된다. 이 낙뢰와 건조한 환경이 빠른 속도로 산불을 번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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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적운 (pyrocumulonimbus cloud) / 출처 : 호주 기상청

 하지만 화재적운 또한 이번 산불에서 처음 관측된 것처럼 일정 이상의 규모에서만 발생하는 것이라면 무엇이 이번 호주의 산불을 일정 규모 이상으로 커지게 된 원인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이는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 호주의 남동부는 2019년 기상관측 이래 가장 건조한 1~8월을 기록 할 만큼 역사상 가장 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피해 지역 중 많은 곳의 기온은 40℃ 중반에 달하며, 호주에서 가장 더운 시드니 교외 지역은 지난 4일 48.9℃까지 기온이 올라갔다.1)  이 같은 지구온난화만이 이번 산불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이번 호주 화재가 발생하기 전 호주의 평균 기온 상승폭은 전 세계 평균 기온 상승폭보다 0.3℃ 높았다.2) 이는 호주 산불 관련 뉴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도양 쌍극자 현상(IOD, India Ocean Dipole)’이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인도양 다이폴이라고도 불리는 이 현상은 인도양의 서쪽인 아프리카 동부와 오세아니아 서쪽의 해수온도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대류 현상이다. 이 현상은 아프리카 동부에는 강수량을 증가시키지만 오세아니아 쪽에서는 강수량을 감소시킨다. 결국 기후변화의 종합적 영향이 걷잡을 수 없는 산불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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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 쌍극자 현상(IOD) / 출처: Watchers.NEWS 홈페이지

기후변화에 의한 결과는 이번 산불만이 아니다. 해수 온도 상승이나 집중 호우 등 기상이변 현상이 2011~2017년 사이 호주 인근 해양 생태계를 절반 가까이 훼손시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호주의 유명한 해양 관광지인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의 경우 산호 사망률이 90%에 달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3) 또한 인도양 쌍극자라는 대류 현상은 당연하게도 인도양 외의 대류권에도 영향을 준다. 다시 말하면 지구 전체의 기후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번 인도양 쌍극자 현상으로 인해 한국에는 이전보다 따뜻한 겨울이 왔다. 기후변화라는 말에 단순히 지구온난화만을 생각하며 녹아가는 빙하 위의 북극곰만을 떠올리는 것은 기후변화에 대한 지극히 일부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극심한 폭염과 한파, 슈퍼 태풍, 폭우와 가뭄, 생물종의 멸종, 숲의 파괴가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또한 기후변화는 경제와 사회적 문제에도 영향을 준다. 생물생태계가 파괴되면서 농업과 어업의 경제활동이 달라지고, 기후변화에 의한 비용을 지불하기 어려운 저개발국가와 저소득층에게 삶의 질 저하를 가져오는 등 인권 문제를 발생시킨다.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의 문제가 제기된 것은 최근 1~2년 사이의 일이 아니다.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강도의 국제협약인 ‘교토 의정서’가 1997년 채택된 것을 생각하면 전 세계가 이미 20여 년 전부터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지해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 억제를 위한 인류의 노력은 아직 충분치 못하다. 세계기상기구(WMO)가 2019년 9월에 발표한 ‘2015-2019 전 지구 기후보고서(The Global Climate in 2015-2019)’에 따르면 현재 지구의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1℃ 상승했으며, 이전 5년(‘11~’15)보다 0.2℃ 상승했다고 한다. 지구의 온도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는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폭 목표치를 2℃에서 1.5℃로 조정해서 기후변화를 억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2℃에서 멈추려면 현재보다 3배의 노력이, 1.5℃에서 멈추려면 현재보다 5배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이제는 국제연합이, 정부가, 지방 단체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변화를 시작해서 지방 단체가, 정부가, 국제연합이 더 강력한 기후변화 억제 정책을 시행할 수 있게 움직여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호주 산불을 통해 보아야 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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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호주에 가다>는 필자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하며 바라본 일상에서의 환경 이야기를 담습니다. 


<필자 소개>


이재욱 전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원


생태지평연구소 전 연구원이자 전 프리랜서 기타 강사.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며 무턱대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온 33살.

화, 2020/01/2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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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아테네를 여행하고 있었다. 새벽잠에서 깨어 파르테논 신전 주변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보랏빛 하늘에 분홍빛 어스름이 퍼지고 있었다. 주인이 없는 고대의 신전의 주인공은 개였다. 길거리 개들은 여기저기를 분주히 돌아다녔다.  
아테네 거리에는 개들이 많았다. 홀로 삶을 꾸리고 있는 것인지, 집에 있다가 나처럼 산책 나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거리의 개들은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했다. 
선진국이라면 ‘유기견’ 신고를 받고 출동한 요원이 그들을 데려갔을지 모른다. 신고한 사람도 가여워하는 마음이 앞섰을 것이다. 이 개의 주인을 제발 찾아주세요. 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 채.
인도 출신 영국의 동물지리학자가 영국 개와 인도 개의 통치 시스템을 분석한 적이 있다. 영국에는 두 가지 개가 존재한다. 반려견과 유기견. 동물복지 선진국인 영국에서 반려견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은 삶의 질을 누린다. 그러나 길거리 개는 이 나라 법 제도에 없다. 그래서 반려견 아닌 모든 개는 ‘유기견’으로 분류되어, 대체로 동물보호소 입소 후 주인을 기다리다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다. 대개의 선진국의 법 제도가 반려견 아니면 유기견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반면 인도에서는 길거리 개의 ‘존재’가 인정된다. 거리에서 뻔뻔하게 낮잠을 자고, 구걸하다가 발에 채일지라도, 개는 납치되어 안락사되지 않는다. 인도 말고도 여러 나라가 그렇다. 태국 치앙마이의 길거리 개는 아침 저녁 제 끼니를 챙겨주는 친절한 사람들을 차례로 방문하며 매일 규칙적인 여행을 한다. 여러분도 동남아시아에서 이런 개들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인도 한가운데를 안방처럼 퍼 자고 있는 개를. 그들은 주인이 없다고 안락사 되지 않는다.
영국과 인도, 두 나라 개 중에 어떤 개가 행복할까? 삶은 개별적이고 행복은 지수화할 수 없어 부질없는 질문이다. 그러나 그간 내 생각이 좁고 편협했던 건 확실하다. 
영국으로 대표되는 문화권에서 개는 삶과 죽음의 담벼락을 위태롭게 걷는다. 누군가의 소유일 때는 행복하게 지내지만, 누군가에게 버려지는 것은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다. 반면, 인도로 대표되는 문화권에서 개는 도시 생태계의 다양성 아래 존재한다. 어느 정도 독립적이고 어느 정도 보살핌을 받는다. 물론 그들이 영국 개보다 항상 행복하다는 건 아니다. 선진국의 ‘우아하고’ ‘제도적인’ 안락사의 반대편에 전근대적인 학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독립적이고 자유로워 보이는 개와 고양이를 관찰하고 사진을 찍었다. 자유와 속박은 극단에서 우리를 유혹한다. 그러나 우리는 무한의 자유도 무한의 속박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는다. 그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둘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하는 게 인생의 지혜라는 것도.  
그날 낮, 파르테논 신전에 오르고 있었는데, 전망 좋은 자리를 누런 개가 차지하고 엎어져 자고 있었다. 너의 집은 어디니? 조금만 비켜줄래. 나도 좀 낮잠을 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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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잠들었는데 신이 잠깐 왔다 간 순간, 소음과 혼란에서 갑자기 완벽한 조화가 찾아든 순간, 영원에 닿아있는 이 시간을 우리는 '에피파니'라고 부릅니다. 세계를 여행하며 만난 동물과 자연에 대한 짧은 생각을 한 장의 사진과 함께 담아봅니다.

<필자 소개>
남종영 생태지평연구소 운영위원 / <한겨레> 기자
15년 전 캐나다 처칠에서 북극곰을 만난 뒤 기후변화와 고래, 동물 등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월, 2020/12/2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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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산불로 희생된 생명을 추모하고
기후위기 대응 촉구를 위한 촛불집회

◎일시: 2020년 1월 13일(월) 오후 7시~8시
◎장소: 광화문 교보빌딩 앞(주한 호주대사관 앞)
◎주최: 기후위기 비상행동

우주에서도 관측될 만큼의 대규모 산불이 몇써 몇달째 호주를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호주 산불로 이미 대한민국 영토와 맞먹는 면적이 불에 타 지금까지 최소 27명이 죽고 코알라 캥거루 등 10억 마리 동물의 생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재산과 환경피해는 감히 집계가 안될 정도입니다.

산불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치닫게 된 근본 원인은 기후변화에 있습니다. 호주에서 매해 산불이 반복됐지만, 역대 최악의 이상 고온과 건조 현상은 산불을 극대화하는 조건을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대형 산불은 그 자체로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기후 위기의 악순환마저 우려됩니다.

초유의 비상사태 속에서도 호주 지도층의 미온적 대처는 기후 위기에 대한 정부의 안일한 인식을 드러냈습니다. 한국도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할 처지가 아닙니다. 최근 최악의 폭염을 겪는 등 일상적 대책만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호주는 유사합니다. 파리협정에서 합의한 지구온난화 1.5℃ 방지를 위해 유엔이 권고한 온실가스 배출 제로 목표의 수립을 한국과 호주 모두 무시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온실가스 배출 제로 목표를 수립해 사회경제 전반의 전환을 추진해나가야 합니다.

시민들이 호주 산불로 희생된 주민과 동식물을 추모하고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기 위한 이번 촛불 집회에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02-735-7067

토, 2020/01/11-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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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저어새 전국동시모니터링 때문에 볼음도에 갔다 왔다. 강화도에서 뱃길로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볼음도는 넓은 모래갯벌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는, 강화도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섬이다. 볼음도 바로 앞, 저어새가 번식하던 수리봉은, 예전에 한 TV 다큐멘터리 촬영 팀이 마구 난입한 이후 번식을 포기한 곳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수리봉 주변 갯벌을 포함해 볼음도 인근에서 모두 66개체의 저어새들이 관찰되었다. 

어쨌거나 오랜만에 찾아가는 볼음도라 기대에 부풀어 배에 올랐다. 때가 때인지라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린 승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선실 풍경이 약간은 침울한 듯, 어쩌면 그로테스크해 보이기까지 했다.
배가 출발하자 이내 연안여객선 본연의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갈매기 때문이다. 긴 고동 소리와 함께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배가 출발하자, 여기저기서 날아오르는 괭이갈매기의 소란한 날갯짓과 함께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 던져 준 ‘시옷깡’을 향해 달려드는 괭이갈매기들의 치열한 경쟁과 요란스레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 이게 바로 배를 타는 재미 아니겠는가.


갈매기 알쓸신잡

바다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새 중 하나가 바로 갈매기 종류다. 가장 흔하게 만나는 괭이갈매기부터 전 세계에 100여 마리밖에 없다는 뿔제비갈매기까지, 우리나라에는 대략 30여 종의 갈매기들이 산다. 

갈매기는 물과 떨어질 수 없는 새다. ‘갈’은 물을, ‘기’는 뜸부기, 비둘기, 따오기처럼 새를 뜻하는 우리말이다. 물에서 사는 새라는 뜻이다. ‘매’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는데, 갈매기의 옛 이름이 ‘갈며기’인 걸 감안하며, ‘멱을 감는다’고 할 때 그 ‘멱’이 변한 게 아닐까 추정하기도 한다. 즉 갈매기는 물에서 멱을 감으며 노는 새라는 것이다. 갈매기는 바닷새의 대명사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의 주요 바닷가 도시들, 부산, 포항, 군산, 영덕, 울진 등이 시를 상징하는 새로 갈매기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말 옛 이름 중에는 ‘해고양이’가 있는데 아마도 갈매기의 울음소리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자로는 ‘구(鷗)’를 써서 백구, 해구 등으로 불렀다. “백구야 훨훨 나지를 마라. 너 잡을 내 아니란다.”라는 민요에 나오기도 한다. 오래 전에 재미있게 봤던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은 갈매기 식당이라는 뜻이다.

해방 이후 운행되던 열차 중에 새 이름을 딴 것은 비둘기호와 갈매기호 두 종류이다. 특급피서열차로 출발한 갈매기호는 이후 몇 차례 구간이 바뀌다가 70년대 중반에 폐지됐고, 서울~부산을 오가던 비둘기호는 완행열차의 대명사로 지속되다가 2000년에 사라졌다.


갈매기는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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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관찰되는 30여 종의 갈매기 중에 괭이갈매기, 검은머리갈매기, 뿔제비갈매기, 쇠제비갈매기, 한국재갈매기 등이 우리나라에서 번식하는데, 이중 괭이갈매기는 독도, 홍도, 칠산도, 신도 등 주요 무인도에서 대규모로 번식하는 흔한 텃새이다. 이런 대규모 번식지들은 대부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봄, 가을 이동시기에 우리나라를 통과하는 제비갈매기류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갈매기들이 북반부에서 번식하고 겨울에 우리나라를 찾는 겨울철새다. 

갈매기는 도요새와 함께 버드워처들이 무척 까다롭게 생각하는 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성조가 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연령에 따른 깃털갈이가 복잡한데다, 강한 햇빛과 바람에 의한 탈색과 마모가 심하기 때문이다. 

사시사철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갈매기는 괭이갈매기다. 마치 고양이처럼 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그렇게 생각하고 듣다보면 꼭 고양이다. 괭이갈매기는 다른 종들에 비해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두 가지 동정키만 잘 들여다보면 된다. 먼저 부리. 노란색 부리 끝이 검고 위아래에 붉은색 반점이 있다. 재갈매기를 비롯한 다른 갈매기류들은 대체로 부리 끝 아랫부분에 붉은 반점이 있는 경우가 많고, 세가락갈매기처럼 아예 노랗거나 큰부리제비갈매기처럼 검은색이어서 괭이갈매기와 닮은 부리를 가진 종은 없다. 다음은 꽁지깃. 다른 갈매기들은 꽁지깃이 하얀색인데 비해 괭이갈매기는 흰색 꽁지깃 끝에 넓은 검은색 띠가 있기 때문에 구별하기가 쉽다. 그렇다고 만만하게 볼 건 아니다. 부리와 꽁지깃의 동정키는 성조를 기준으로 할 때다. 어린 새를 포함하면 복잡해진다. 성조일 때는 완전히 하얀색 꽁지깃을 가지지만, 유조 시절에는 꼬리 끝에 검은색 줄무늬가 있는 종들도 많기 때문이다. 갈매기, 재갈매기, 한국재갈매기, 큰재갈매기, 줄무늬노랑발갈매기, 붉은부리갈매기 등이 그렇다. 우리나라의 갈매기들을 계절별, 연령별로 구별할 줄 안다면 굉장한 내공의 소유자라고 보면 된다. 


갈매기계의 아이돌

갈매기는 생각보다 큰 새다. 먼 갯벌에서 쉬고 있거나 하늘 높이 날고 있는 모습만 염두에 두어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비둘기보다 약간 큰 정도의 새로 생각한다. 그러나 소형 제비갈매기류를 제외하면 대부분 몸길이만 50센티미터 이상, 날개 편 길이는 1미터 이상으로 웬만한 오리만큼 크다. 유럽과 북미, 대서양 연안에 서식하는 큰검은등갈매기(great black-backed gull)는 세상에서 가장 큰 갈매기로 알려져 있는데, 몸길이 75cm, 날개 편 길이 160cm의 어마어마한 덩치를 자랑한다. 

어쨌건 갈매기는 귀여운 새와는 거리가 좀 멀다. 손에 든 시옷깡을 향해 사나운 눈매로 돌진해 올 때는 위협감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갈매기 무리 중에도 귀요미 그룹이 있다. 다른 갈매기들에 비해 몸집도 작고(딱 멧비둘기 사이즈다) 생김새도 무척 색다르다. 검은 두건을 쓴 갈매기랄까. 검은머리갈매기다. 중국동북부 해안지역과 우리나라에서 번식하고 대만, 일본, 베트남 등지에서 월동하는 검은머리갈매기는 전 세계 생존개체가 15,000개체 안팎인 국제적 보호종이다. 1990년대 후반에 시화호에서 번식이 확인된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현재는 500개체가량이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화호를 비롯해 인천 송도, 영종도가 주된 번식지인데, 검은머리갈매기가 번식 장소로 선호하는 염생식물이 자라는 개활지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지역이 개발 압력이 높은 곳이라는 사실이다. 이 지역의 광범위한 개활지 자체가 갯벌 매립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고, 지속적으로 개발 사업이 진행되는 곳이다 보니 번식 상황이 무척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송도만 하더라도 6,8 공구에서 11공구로, 다시 9공구로 매년 쫓겨 다니며 위태롭게 번식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난민 상태마저도 언제까지 이어질지 불투명하다.

독특한 외모 덕분에 다른 갈매기들과 헷갈릴 수 없는 검은머리갈매기지만, 복병이 있다. 붉은부리갈매기, 고대갈매기가 같은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로 겉모습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크기로 보자면 검은머리갈매기〈붉은부리갈매기〈고대갈매기 순이지만, 세 마리가 나란히 서 있지 않는 한 필드에서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쉽게 보기 힘든 고대갈매기는 제외하고 검은머리갈매기와 붉은부리갈매기만 비교해 보자. 번식기가 되면 둘 다 검은 두건을 쓰지만, 검은머리갈매기는 목까지 두건을 내려 쓰는데 비해 붉은부리갈매기는 정수리까지만 걸치는 수준이다. 또한 붉은부리는 첫째날갯깃이 검은색이고 검은머리는 검은색에 흰색 반점이 있다. 날개를 접고 있으면 붉은부리의 꽁지깃 위로 길게 뻗은 깃이 검게 보이지만, 검은머리는 검정색 바탕에 흰 반점이 여러 개 있다. 부리도 동정 포인트다. 검은머리갈매기는 검은색 부리를 가지고 있지만 붉은부리갈매기는 이름 그대로 더 길고 붉은 부리를 가지고 있다. 겨울에는 검은두건을 쓴 갈매기를 볼 수가 없다. 세 종 모두 비번식기인 겨울철에는 두건을 벗어버리고, 눈 뒤에 검은색 반점만 흔적처럼 남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붉은부리갈매기의 영어명이 ‘Black-headed gull’라는 점이다. 검은머리갈매기가 영미권에 살았다면 아마 그 이름은 검은머리갈매기가 차지했을 것이다. 동양이건 서양이건 보는 눈은 비슷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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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공동체의 미래

갈매기처럼 집단으로 생활하는 새들은 소통 능력이 뛰어나다. 괭이갈매기는 태어난 지 열흘가량 지나면 부모와 형제의 소리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음성신호들은 위험을 알리는 경고음(Alarm call), 집단 내 일상적 의사소통을 위한 교감음(Contact call), 천적에 대한 전투 신호인 공격음(Aggressive call)으로 나뉜다. 평소에 들을 수 있는 고양이 소리(Mew call)는 교감음의 하나인데, 둥지로 돌아올 때나 암수가 교대할 때, 짝짓기할 때, 어미한테 먹이를 달라고 조를 때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된다.

볼음도 행 페리가 출발할 때, 왁자지껄 내는 그 소리 역시 교감음일 터, “야, 야, 배 출발한다.” “쟤, 시옷깡 들고 나온다. 아까 건 너무 짜던데….” “새치기 하지 마.” “얌마, 잘 보고 다녀. 부딪힐 뻔 했잖아.” 등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관찰력과 상상력만 동원한다면 배 꽁무니를 쫓아오는 갈매기들의 일상을 엿들을 수 있다. 

공동체를 형성하는 갈매기들은 외부 침입에 대한 방어도 집단적으로 한다. 사실 갈매기는 매우 용맹한(사나운) 새다. 간혹 모니터링 때문에 바닷새 번식지에 가는 경우가 있다. 배가 섬 근처에 도착하면 벌써 새들이 경계하며, 겁이 많은 놈들은 일찌감치 날아서 도망가기도 한다. 그러나 두려운 웅성거림과 소란 속에서도 갈매기들은 둥지에 버티고 앉아서 ‘쟤들 뭐야?’하는 눈초리로 흘낏 쏘아보곤 만다. 우리가 배에서 내리면 대부분의 새들이 하늘로 날아오르지만, 여전히 갈매기는 요지부동, 둥지 쪽으로 다가갈라치면 그제야 날아오른다. 도망가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꺼번에 떠올라 이쪽저쪽에서 집단적으로 몰려들어 사람들을 위협하며 똥 폭탄을 떨군다. 갈매기처럼 집단적으로 번식하는 종들의 집단방어 전략으로 ‘모빙(Mobbing)’이라고 한다. 갈매기 번식 섬에 가려면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써야만 한다. 

자신들의 공동체를 지키려는 갈매기들의 집단방어 전략이 놀랍기도 하지만, 이 공동체의 미래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오늘도 외포리 선착장에는 시옷깡을 차지하기 위한 갈매기들의 쟁탈전이 한창이다. 전형적인 포구의 모습이지만, 이들의 모습을 볼 때면 마음 한편이 착잡해지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새들의 삶터를 무지막지하게 밀어 버리면서, 한편에서는 기껏 과자 부스러기 몇 개 적선하듯 뿌려대며 낄낄대는 우리네 천박성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럽다. 내년에는 송도에서 검은머리갈매기들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괭이갈매기의 시끄러운 소리는 또 언제까지 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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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여상경  생태교육허브물새알 협동조합 관리자




강화로 흘러들어와서 어쩌다 새를 보기 시작, 덕분에 심심치 않게 시간 보내며 남은 여생을 준비하고 있는...

화, 2020/09/29-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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