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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시민이라는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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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시민이라는 신화

admin | 금, 2019/09/20- 23:07

교육받지 못하고, 흥미도 없고, 정보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데다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며, 이성을 따르기 보다는 열정에 이끌리거나 자기중심적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는 시민이라는 이미지는 수 세기에 걸쳐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항상 함께 따라다녔다.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정치 생활에서 여러 시민 집단들이 그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역량이 없는 평균적 시민이라는 이미지는 항상 통치자들의 선전 도구로 이용되어 왔다. 처음에는 이를 핑계로 모든 이들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았고, 나중에는 시민들이 요구하는 직접 참여 요청을 반대하는 핑계로 쓰고 있다.

여전히 이 ‘무능’이라는 단어는 레퍼렌덤 권리의 확대를 말할 때 종종 튀어나온다. 대개 평균적인 시민은 스스로 판단하고 “복잡한 현안들”에 대해 결정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주제는 수십 년간 보통 선거권의 발달에 걸림돌이 되었고, 나중에는 여성 참정권의 발목을 잡았으며, 그 후에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인 투표권을 제한하는데 악용된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한집단이 한 때 차별을 받다가 투표권을 획득해낼 때마다 그 이슈는 사라졌다.

오늘날 이 주제로 도전을 받는 것은 더 이상 민주주의와 보편 선거권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의 직접 참여권의 확대이다. 다시 말해, 평균적인 사람들이 법률을 평가하고 다듬고 저지하고 폐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한다. 여전히 “정부의 전문가들, 바로 이상적인 후견인들이 전반적으로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탁월한 지식을 갖추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최고의 수단이 무엇일지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더 나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직접 참여를 반대한다(로버트 달Robert Dahl, 민주주의에 대해Sulla democrazia, 2000). 또한 어떤 정치인이나 정치 세력에 대해 전반적으로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다는 행위는 정치적 현안들에 대해 논리적으로 생각하거나 결정하는 데 그리 성숙하지 못하고, 조작이나 착취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나아가 언론 보도에 좌우되어 특정 정당에 투표하는 평균적인 시민의 모습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국민의 권리 강화는 전혀 정치적 후퇴가 아니다

19-20세기에 무능함이라는 주제는 민주주의 체제에 맞서면서, 무엇보다 다른 유형의 사람들, 특히 보잘것없는 사람들이나 일반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확장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맞서 본색을 드러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몇몇 이슬람 국가를 제외하고 여성 투표권에 대해서는 그 어느 누구도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대신 평범한 시민들이 이 시대의 정치적 문제들을 이해하고 평가하기에는 무능하다는 인식이 현재 레퍼렌덤 권리 행사를 논할 때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사실에 비추어 그러한 논란은 근거가 없다. 만일 그랬다면 레퍼렌덤 도구를 완벽히 갖춘 민주주의 국가인 스위스는 벌써 자멸했을 것이다. 1800년대 전반에 벌써 레퍼렌덤 법조항을 도입한 후 스위스는 이기적 이익이나 평범한 사람들의 좁은 시야에 갇혀 실패한 법안이 수도 없이 쏟아질 것이라는 위협을 받았다. 스위스의 개혁주의자들은 남성 유권자 선거 덕분에 권력을 갖게 되었지만 그들의 중심 사상은 국민과 “더불어” 통치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통치에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보통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미성숙하고 정치적 결정에 참여할 능력이 없었다. 이 논란은 계속해서 순전히 대의적인 의회 체제를 합리화시켰다.
스위스에서는 그러한 체제가 1869년까지 변함없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 국가들 대부분에 여전히 그런 체제가 통용된다. 몇몇 학자들은 스위스의 민주주의는 자국 시민 대다수의 인식 불능cognitive incapacity이라는 바위에 부딪혀 박살이 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그런데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이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고 안정적인 민주국가의 하나가 되었다.

21세기 초, 여러 나라에서 정치적 결정 시 더 많은 참여 요청이 제기되었다. 유럽 각국의 국민들은 평균적으로 지적 능력 부족이라는 평가가 들어맞는 교육 수준을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토론에서 순전히 대의적인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은 계속해서 레퍼렌덤 투표 결과가 한 사회의 자유주의적이고 개방적이며 연대적인 발전에 큰 저해 요인이 될 수 있는 상황을 환기시키려 한다. 어떤 여론 조사에서는 국민발안을 통해 사형제가 다시 도입될 수도 있으며, 정치적 난민법을 거의 적용할 수 없게 될 것이고, 석유 소비세나 자동차세 등의 세금이 삭감되리라고 예측했다. 스위스에서 직접 민주주의 법 시행이 확정되고 15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이런 일들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논쟁은 한 세기 반에 걸친 민주주의 체제의 발전과 대중의 학교 교육 및 온갖 정보 전달 매체의 파급에 따른 평균적인 시민의 정치력 향상을 간과하는 듯하다.

그 외 몇몇 산업 국가들에서도 전에 없이 문화, 기술 및 교육 조건이 민주주의를 더욱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이제 더 이상 어떤 한정된 일부 사람들만이 정치적 문제를 이끌어가도록 교육을 받거나 소명을 지녔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더구나 보통 시민들에 비해 정치적 현안을 더 잘 판단할 능력이 있는 정치 엘리트가 있다고 추정할 이유도 없다. 선거와 정당 내에서 쌓은 정치적 이력이 자동으로 보통 시민으로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앞선 정치적 지성”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민주주의에서는 전문 정치인이 아닌 보통 시민들이 정치적 현안에 참여하기 위해 필수적인 정치적 성숙도를 평가하는 시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정치 계급은 그에 속하지 않는 보통 시민들과는 다른, 어떤 사회적 엘리트라는 이미지를 조성하는 경우가 있다.

반면, 주요 레퍼렌덤 법률 조항들이 보완된 민주적 체제에서 시민과 정치인의 관계는 대의적인 체제와 확연히 다르다. 전자의 경우, 정치인들이건 시민들이건 정치적 결정에 개입할 자유와 기회가 있다. 물론 행동할 기회 면에서는 다르다. 정치인들과 시민들은 서로 동등한 존엄성을 갖고 만난다.

 

정치적 결정을 독점하면서

평범한 시민들의 역량 부족을 주장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 자체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논지이다. 시민들이 단일 정치 현안에 대해 결정할 능력이 없다면, 어떻게 자신들을 위해 결정을 내리도록 입후보한 사람들을 제대로 평가할 능력이 있을 수 있겠는가?

사실 한 후보를 선출하는 경우 단지 한 사람의 도덕적, 지적 완전무결함이나 그의 역량과 능력만이 아니라, 그의 정치적 플랜도 전체적으로 알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이 여러 정당과 후보들을 선별할 능력이 있지만 구체적인 정치 현안들에 대해 판단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면 서로 모순된 이야기이다.

이러한 비판은 은연중 정치인에 대한 거의 신화에 가까운 지도자상을 제시하기도 한다. 뛰어나게 지적이고 지극히 견문이 넓으며 이성적이고 도덕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현명한 정치가, 이를테면 어느 행정 조직의 수장과 대학 교수를 완벽히 결합해 놓은 이상적인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정부가 공동선을 위해 나라를 다스리는 데 전념하는 전문가로서 어느 누구보다 국가 통치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들을 더 잘 알고 있는 전문가에게 맡겨 두어야 한다는 생각은 항상 민주적 사고의 주적主敵이었다. 보통 선거권을 얻기 위한 시민들의 투쟁이 이어졌던 시대에 이런 태도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정당성을 얻곤 했다. 로버트 달은 전문가들의 말을 이렇게 비꼬아 비유한다.

“여러분처럼 우리 또한 인간의 타고난 평등을 확고하게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동선을 이루기 위한 헌신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어떻게 그것을 더 잘 실현할 수 있을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나라를 다스리기에 훨씬 더 적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독점적인 통치권을 보장해 준다면, 우리의 지혜와 힘을 모아 공동선을 위해 힘쓰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이익도 똑같이 고려할 것입니다”(. 로버트 달, 2000년)

이는 정치적 인물의 선택을 좌우하거나 투표권을 제한하기 위해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논점이었다. 오늘날 대의적 민주주의 안에서 시민들은 단순히 대표자들을 선출하고 위임하지만, 결정은 정치인들만이 한다. 오늘날의 이탈리아처럼 레퍼렌덤 권리가 매우 제한되어 있고 레퍼렌덤 투표가 매우 드문 상태에서 상황은 비슷하다.

정치인들은 모든 종류의 수단을 독점한다. 거의 모든 주요 현안을 결정하기 위한 수단과 정치적 의제를 정하기 위한 수단 및 자신들의 입장을 선전할 금전적 재원을 활용하는 일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러한 그들의 독점적인 수단 점유는 정치인과 시민들 사이의 권력 불균형의 뿌리에서 출발한다. 아직까지 이 불균형은 두 가지 주요 논점으로 정당화되고 있는데, 선거라는 민주적 합법화 행위와 정치적 인물의 전문가적 능력이다. 민주적 선거를 통한 합법화라는 본질에 흠잡을 데가 없다면(오늘날 선출되기 위해 시행 중인 선거 시스템에 대해 할 얘기가 많겠지만), 정치적 능력의 습득을 오로지 의회 활동에만 연결시키는 무의식적인 연상 작용은 매우 의심가는 구석이 많다.

 

민주주의와 전문가 정치

보통 시민은 엘리트 정치인에 비해 무능하다는 잘못된 생각을 키우는 데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전문가들도 한몫하고 있다. 기술이 발달하고 산업 사회가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과학적 엘리트들도 항상 더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권력자들의 이익을 대변하여 민주적 대의 기관의 조정력 및 입법 능력에 도전한다. 우리 사회처럼 점점 더 복잡해져 가는 사회에서는 종종 자신의 안녕에 직접 영향을 주게 될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전문가들의 견해를 구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나 어떤 결정을 전문가들에게 자문하는 것은 더 중요한 결정에 대한 최후의 통제력을 양도하는 것과 다르다. 전자는 정부에서 전문가들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고, 후자는 어떤 엘리트 집단에게 우리가 지켜야 할 법률과 정치적 결정을 할 권한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누가 혹은 어떤 단체가 한 나라나 지역을 다스리는 과정에서 내리는 결정에서 최종 발언을 해야 하느냐에 달려 있다!” (로버트 달, 2000년). 이제 민주국가의 통치는 물리나 화학, 혹은 극단적인 경우 의학 같은 과학이 아니다.

“한편으로 실제로 모든 중요한 정치적 결정은 개인적인 것이건 정부 차원에서건 윤리적 판단을 의미하며, 이런 판단은 대개 ‘과학적’ 판단이 아니다. 게다가 항상 활용 수단에 대해 확신할 수 없고, 갈등의 여지도 크다. 곧 어떻게 목표에 도달할 것인가, 혹은 방법의 바람직함, 실용성, 수용성과 그 결과로 나올 수 있는 것들을 말한다.(”로 버트 달, 2000년)

전문가들이 시민들의 심부름꾼으로, 곧 특정 임무를 지니고 봉사하기 위해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그들이 통치자로 봉사할 자격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로버트 달을 비롯하여 가장 권위 있는 정치학자나 우리 시대 민주주의 학자들 중 누군가가 그들을 선택하라고 강요 할 수는 없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어떤 논점을 “과학적 근거가 없다”거나 전문적이지 못한 것으로 깍아 내림으로써 선출된 기관의 합법성을 부인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유권자들이 함께 모두에게 구속력을 지닌 법규를 정할 때 그 합법성을 부인할 수 없다. “전문가 정치expertcracy”에 대한 토론은 지난 정부나 주, 현 정부에서 다양한 자문을 받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지급함에 따라 더욱 뜨거워졌다. 전문가들의 자격이나 역량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더라도, 그들을 선택하여 받는 자문의 종류, 조건 등이 종종 그리 투명하지 않다는 점에서 정치인들이나 관련된 이익 집단에 의해 결정되는 위험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의 역할이 남용되지 않으려면, 정치적 엘리트들 편에서 결정 과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 목적을 위해 가장 유용한 수단의 하나는 발안권과 레퍼렌덤을 갖춘 직접 민주주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 정치”는 투명성을 요구하고, 전문가들 자체의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역할을 요청하는 시민들 자체의 역할을 강화시킴으로써 균형을 찾아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적법한 전문가들과 레퍼렌덤의 시민 발안자들은 물론 시민 유권자들 사이에 적대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민들이 행사하는 많은 공공 발안에 대한 재원은 매우 한정되어 있지만, 과학적 지식과 기술자와 전문가의 견해를 활용할 수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와 “전문가 정치” 사이에서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여, 정치적 결정을 하는 사람들과 지식과 학위를 갖춘 정당한 전문가 자격으로 조언하고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사람들 사이의 역할을 분명히 구분짓는 것이다.

잘 제도화된 레퍼렌덤 권리 체제에서 전문가들은, 그저 엘리트 정치인들만 설득하면 되는 순전히 대의적 체제에 비해 자신들의 견해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더 어렵다. 스위스의 투표를 보면 유권자들이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혹은 그에 반대하여 어떤 편견을 지니고 투표를 하지 않는다. 스위스 유권자들은 대개 전문가적 식별이나 순전히 학문적인 추론과는 상관없이 기술적 기준과 조정 평가를 결합하여 신중하게 투표한다. 스위스에서 국민들은 최종 분석에서 전문가들의 역할이 지나치게 두드러지면, 자유 시민들의 자주적 결정력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더욱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자주적 결정력은 스위스 시민들에게 매우 소중한 개념이다.

레퍼렌덤 도구를 통해, 정치 기구에 선출된 이들의 전반적 책임 제한이나 수정 없이도 극소수 정치인들의 손에 결정이 독점되는 관행은 대폭 무너졌다. 무능한 시민상은 사라지고, 능동적이고 관심이 크며 더욱 책임감 있고 정치적으로 더욱 유능하고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잘 알고 있는 시민상으로 대체되었다. 동시에 정치인 상도 바뀌었다. 소수의 다른 정치인들이나 로비스트 만을 상대하여 고차원의 결정을 함께 내리던 이미지에서, 좀 더 지상의 현실로 내려와 “보통 시민들”과 상대해야 하는 정치인 이미지로 바뀌었다. 정치인들은 이 과정을 권력이나 지위의 상실이 아니라 공감력과 인류애를 더욱 확대시킬 기회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피지배자subject에서 주의 깊고 역량 있는 시민으로

“행하면서 배운다”는 경구가 있다. 입법부에서 일하는 데 필요한 능력은 입법 절차에서 발휘됨으로써 가장 잘 드러나고 습득될 수 있듯이 직접 민주주의에서 레퍼렌덤과 발안 절차들은 마찬가지로 평범한 시민들 사이에서 정치적 능력을 키워 준다. 이런 맥락에서 직접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훈련장”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한편으로 공교육은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정치적 견해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결정적인 도구들을 갖추게 해주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투표권을 지닌 이들의 숫자가 점차 확대되면서 보통 선거권에 이르는 수단이 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1946년 보통 선거권이 도입되어 민주적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모두에게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정치 생활 참여가 선거인 투표로 끝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주로 보통 시민들을 정치
적 결정에 참여시키고 “교육할” 수 있는 도구들이 필요하다.

스위스에서 제도상 보장된 레퍼렌덤 권리는 시민들에게 정부나 정당에 좌우되지 않는 결정 권력을 부여한다. 시민들은 능동적으로 국가 운영이나 사회 발전에 참여할 수 있으므로 훨씬 더 정치적 현안을 주시할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직접 민주주의는 모든 이를 위한 공교육 및 정치적 양성 프로그램으로도 활용된다. 취리히 대학의 정치학자 마티아스 벤츠와 알로이즈 슈튜처는 이 점에서 참여권을 더 많이 누리는 시민들일수록 정치 현안에 대해서도 정보 전달을 더 잘 받고 있음을 보여주었다(마티아스 벤츠Mattias Benz, 알로이즈 슈튜처Alois Stutzer, ‘유권자들은 정치에서 더 발언권이 클수록 정보를 더 잘 전달받고 있는가? Are voters better informed when they have a larger say in politics?, “공공 선택Public Choice”에서 119번 (2004), 31~59쪽).

시민들은 목표에 도달하려면 자치적으로 공동의 협력방식을 찾아야 한다. 국민발안이나 레퍼렌덤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원의 서명 모음과 의사전달 역량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은 조직력을 개발하고, 어떻게 캠페인을 벌이고, 어떻게 자원(금전적, 물리적, 인간적)을 마련하며, 어떻게 정보를 전달하고 공공 토론을 조직하며, 어떻게 동맹을 결성하고 괜찮은 절충안을 찾으며, 어떻게 정치 권력을 다룰지를 배운다. 직접 민주주의는 그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진지하게 레퍼런뎀 캠페인의 준비와 실행 하는 것 또한 의미한다.

이탈리아 헌법 또한 시민들의 참여 증진을 규정하며, 이를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는 것으로 인정한다(이탈리아 헌법 제118조). 점차 정치적 헌신을 고무하는 방식이 강화되면서 무능력한 시민이라는 신화도 사라지고, 시민들 사이에서 신뢰를 형성하는 올바른 메커니즘이 자리잡는다. 그러나 그러한 메커니즘은 시민들의 헌신이 있을 때, 다시 말해, 시민들의 헌신과 표가 글자 그대로 “결정적”인 요인일 때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탈리아에서 공공 교육 기관들의 영향력이 약하여 이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므로 직접 민주주의의 유효성을 믿는 사람은 반드시 시민들이 필요한 역량을 습득하고 함양할 수 있는 적절하고 효과적인 방식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는 관심을 유지하고 방심하지 않으며 정보를 갖춘 시민들을 전제로 하며, 모든 국민을 대신하여 생각하고 결정할 권리를 독점하는 계몽된 소수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엘리트적 개념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잘 발달된 직접 민주주의에서는 결국 최후의 발언권은 늘 온전히 주권자인 국민의 몫이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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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양국체제적 발상을 가로막아왔던 심리적 억압 기제는 크게 외부에서 비롯된 것과 내부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이 두 개의 억압기제는 일단 겉보기에 서로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외적 억압은 상대를(즉 남은 북을, 북은 남을) 부정하는 쪽으로 작용한 반면, 내적 억압은 반대로 상대를 부정할 수 없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을 분석해보면 이 두 개의 계기가 역설적인 방식으로 서로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강렬한 ‘분단(부정)의식=내적 억압’이 결과적으로 남북 두 국가 간의 적대를 심화시켜 국가기구의 외적 억압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칸트의 정언명령이 곧잘 그러하다고 하듯, 당위는 그 당위가 강할수록 의도와는 반대되는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분단의식에 내포된 당위, 즉 분단부정의 당위 역시 그러했다. 남북은 반드시 하나여야 한다는 당위는 과연 어느 정도나 실제로 남북이 하나로 되는 데 기여했을까. 분단사에서 결정적 사건인 6·25 전쟁부터 생각해보자. 통일의 당위는 당시 남북 모두 하늘을 찌를 듯 강렬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분단의 고착이었다. 분단부정, 즉 통일에 대한 열정의 강도(强度)는 전쟁의 참혹도와, 그리고 그 결과로 생긴 분단의 고착도와 정확히 비례했다. 그때 심어진 적대와 원한을 아직까지도 다 지우지 못하고 있다. 통일을 외칠수록 통일에서 멀어지고, 분단극복을 외칠수록 분단현실이 강화되는 역설이 바로 2016년 겨울의 촛불 직전까지도 강력하게 작동했다.

당위의 정언성이 강하고 이념적일수록 그 당위의 실현을 저해하는 반대물, 장애물에 대한 부정과 억압은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다. 한반도에서 분단부정의 당위는 고도로 이데올로기적인 미소 냉전의 대립구조 안에서 작동했다. 따라서 그 당위의 정언성이 강해질수록 이데올로기적 순수와 오염의 이항 대립구도 역시 극도로 첨예해진다. 남과 북은 서로 전쟁을 한 군사적 적이자 동시에 이데올로기적 적이다. 적은 휴전선 저 밖에도 있지만, 더욱 위험한 적은 내부의 적이다. 따라서 남의 체제는 내부의 적인 ‘빨갱이’를 탐색하고 제거하는 고도의 정화 기계이고, 북의 체제는 또한 내부의 적인 ‘미제와 남조선 괴뢰도당의 끄나풀, 간첩’을 색출하여 말살하는 고도의 검열 장치이기도 했다. 이 정화와 검열의 장치는 그 속에 사는 인간의 마음과 뇌까지를 점유하여(‘내 귀의 도청장치’) 그 지배를 완성한다. 이로써 분단의 골은 인간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까지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듯 전면화된 분단체제는 커다란 고통과 함께 분단 현실에 대한 강렬한 비판의식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비판의식 역시 또 하나의 분단부정의 정언성에 기초한 당위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비판운동이 두드러지게 전개된 곳은 재야, 야당,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한국이었다.

한국의 역대 독재정권은 이러한 비판을 ‘이적’ ‘용공’ ‘친북’으로 몰아 탄압해왔다. 이들이 통치체제를 비판하면서 주장하고 있는 분단극복, 통일이란 결국 대치하고 있는 적의 편에 동조하는 통일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이러한 상황은 정치체제의 차이만 있을 뿐 남과 북에서 동형적으로 진행되어왔다. 분단체제란 이러한 분단체제 비판 세력을 식량으로 먹어치우면서, 즉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탄압하면서 자신의 몸체를 괴물처럼 더욱 키워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반면 독재정권이 비판 세력을 ‘적’으로 상정하고 탄압하는 한, 극악한 탄압을 당하는 비판 세력 역시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독재정권을 ‘적’으로 상정하고 맞서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독재정권은 비판 세력이 자신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이적단체’에 불과한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강변해왔다. 이로써 상호를 적으로 간주하여 투쟁하는 상승적 순환 구조가 남과 북의 정권 사이에서, 그리고 남 내부와 북 내부 각각에서 형성되고 교차하면서 가속도를 얻어 작동한다.(이 책, 153쪽)

결국 분단체제란 분단의 부정, 즉 자기부정을 통해 자기를 재생산하는 기묘한 체제였다. 이 기묘한 작동논리는 2중의 차원에서 전개된다. 먼저 남북의 분단체제가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체제의 목적이 분단의 극복이다. ‘조국통일’, ‘북진통일’, ‘흡수통일’, ‘붕괴통일’, ‘통일대박’, 매한가지다. 모두 분단을 부정하고 자기 중심의 통일, 즉 ‘분단의 극복’을 표방한다. 이렇듯 분단체제가 분단을 부정하면 할수록 남북 양측에서 서로에 대한 의심과 대립과 적대의 힘, 즉 분단의 장력(張力)은 더욱 팽팽하게 당겨지는 물리학이 성립한다. 그러나 분단체제의 자기생산력이란 이것만이 아니다. 이렇듯 자기생산성을 갖는 분단체제의 기득 권력을 비판하고 맞서는 힘 역시 ‘분단극복’을 표방한다. 분단을 극복해야 분단체제가 종식될 것이니 당연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단체제는 바로 이렇듯 ‘분단체제극복’을 부르짖는 세력을 기다렸다는 듯이 체제비판 세력, 내부의 적, 간첩으로 낙인찍어 잡아들인다. 수많았던 기획된 간첩사건, 체제전복사건, 내란선동사건들이 그러했다.

분단체제의 적대적 장력은 이렇듯 서로를 외부·예외로 간주하는 남북 간에 형성될 뿐 아니라, 바로 남북의 내부에 외부·예외를 설정하는 방식으로, ‘겹2중’으로 형성된다. 이 ‘겹2중’이 맞물려 돌아가는 동력 구조가 분단체제다. 내부에 외부를 설정하는 이 ‘내부 적대’의 장치 마련을 통해 ‘외부 적대’의 동력을 증폭시키는 매커니즘이다. 분단체제란 이렇듯 강고할 뿐 아니라 교묘한 자기생산 – 재생산체제다. 70여 년이나 생명을 이어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애초에 문제는 분단을 부정하는 당위의 주체가 하나일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분단부정의 당위는 무엇보다 우선 분단부정의 또 다른 당위와 생사존망의 대결 상태로 빠질 수밖에 없다. 분단부정의 당위가 또 다른 분단부정의 당위를 부르는 구조였다. 이제 그 과정은 다음과 같은 반복적 순환 사이클로 요약할 수 있다.

분단부정의 당위 → 남북 적대의 심화 → 분단독재체제의 강화 → 분단독재체제에 대한 비판의 강화 → 분단부정의 당위의 강화

이 순환은 자꾸만 반복된다. 피하고 싶은 불쾌한 증상을 자꾸만 되풀이하는 반복강박과 닮아 있다. 이처럼 철저하게 외부와 내부를 완전히 포괄한 분단구조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위가 강할수록 반대의 결과를 낳는다는 정언명령의 역설은 분단체제 70년의 현실로 완벽하게 구현되었다.

분단을 부정할수록 분단이 고착된다는 ‘분단(부정)의 딜레마’는 애초에 둘임을 부정했던 데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이 딜레마를 끊으려면 둘임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가 되자고 하면 오히려 하나가 되자는 둘이 우선 분명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고 애당초 둘이 아니라고 하면서 하나가 되자고 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의 발단이 되어왔다. 둘임을 인정하고, 하나가 되는 노력을 하자는 것이 양국체제다. 이것을 하지 못하고 ‘분단(부정)의 딜레마’에 빠져 겪어야 했던 고통은 이미 너무나 컸고 길었다. 북을 철저히 부정하면서 ‘통일대박’과 ‘종북몰이’를 양 손에 들고 휘둘렀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의 경험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촛불혁명은 유신체제로 되돌아가려 했던 총체적 종북몰이, 블랙리스트 소동을 종식시켰다. 촛불혁명 이후 이 나라의 민심은 마치 긴 악몽에서 깨어난 듯 새로운 눈으로 현실을 보고 있다. 그리고 그 힘에 기초하여 2018년 판문점 선언, 싱가포르 선언, 평양 선언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어 대한민국 대통령이 평양에서 평양 시민들 앞에서 대중연설을 하였고, 머지않아 서울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 시민들을 만나는 날도 올 것이다. 한 민족의 두 나라가 서로를 인정하면서 평화롭게 공존하며 통일로 가는 길을 준비하는 길로 접어든 것이다. ‘코리아 양국체제’, 다시 말해 ‘한 민족 두 국가의 평화체제, 공존체제’가 이미 현실로 시작된 것이다.

 

양국체제의 첫 번째 역사적 계기: 반쪽국가의식에서 양국의식으로

그렇지만 양국체제적 인식이 오직 촛불혁명과 판문점·싱가포르 선언을 통해서만 처음 생겨났던 것은 아니다. 이렇게 큰 변화에는 반드시 그에 선행하는 역사적·예비적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반에 연속적으로 벌어진 대형 사건들이 그러했다. 1987년의 민주항쟁과 1989~1991년 사이의 소련·동구권과 미소 냉전체제의 붕괴, 한소·한중 수교, 그리고 1991년의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교환으로 이어진 초대형 변화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분단체제의 지반을 처음으로 크게 흔들었다. 세계 판도 전체가 크게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변화 속에서 분단의식도 크게 흔들렸다. 분단의식은 ‘반쪽의식’이기도 하다. ‘반쪽만으론 온전하지 못하다’, ‘나뉜 반쪽은 합쳐야 비로소 온전한 하나가 된다’는 생각이다. 반쪽의식에서 양국체제 발상은 나올 수 없다. 양국체제는 두 코리아를 각각 온전한 하나의 국가로 보기 때문이다. 온전한 국가란 ‘내부의 정당성’과 ‘외부의 인정’이라는 양 측면을 모두 갖추어야 성립한다. 남북이 이 두 근거를 어느 정도 갖추기 시작한 최초의 계기는 1991년의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교환이었다. 이 두 사건은 1987년부터 시작된 세계적 대변동의 연쇄가 낳은 종합적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세계사 차원에서는 미소 냉전구조의 붕괴가 주원인이었고, 국내적으로는 87년 시민항쟁이 열어놓은 민주화 지향의 강력한 여론이 있었다.

분단의식, ‘반쪽의식’으로 보면 남북의 국가는 ‘반쪽(만의) 국가’일 뿐이다. 우선 이러한 ‘반쪽국가의식’을 벗어나지 못하면 양국체제 발상은 생겨나기 어렵다. 그러나 반쪽국가의식에도 그만한 현실의 근거가 있었다. 냉전시대 남북 국가의 내적·외적 정당성 구조 자체가 온전하지 못하고 반쪽짜리로 보이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외적 측면부터 살펴보자. 어떤 국가에 대한 외부의 인정이란 국제사회의 인정, 외국과의 수교관계로 표현되는데, 냉전시대 남북의 국제적 인정, 수교관계는 실제로 ‘반쪽짜리’였다 할 수 있다. 한국(ROK)은 미국 영향권의 국가들과만, 반대로 조선(DPRK)은 소련 영향권의 국가들과만 수교하고 있었다.8 나머지 반쪽의 인정이 없었던 것이다. 남북 모두 외부 세계의 절반으로부터만 인정받고 있다는 ‘반쪽국가의식’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내적으로도 남북은 ‘반쪽국가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1948년 두 정부의 수립 이래 남북은 자신이 통일을 목적으로 세워진 일종의 ‘경과적인 국가’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자신만이 적통자(嫡統子)고, 자신이 주도하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두 국가 모두 자신이 이미 완결되었거나 완성되어 있는 국가라고 내세울 수는 없었다. 스스로 ‘반쪽국가’이고 따라서 ‘반쪽만의 정당성을 가진 국가’라는 생각이었다. 그런 ‘반쪽국가의식’이 강할수록 통일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그래야 ‘반쪽국가’의 정당성이 충족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측이 모두 통일을 내세우고 자신만이 통일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통일은 말은 늘 좋지만 실제 의도는 상대를 소멸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냉전시대 남북의 통일정책들은 언어로 하는 전투와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총탄을 교환하듯 오갔던 통일정책, 통일방안들이 오히려 통일을 멀게 했다는 것은 역설이라기보다 당연한 결과였다.

19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은 이러한 관성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 유엔 동시가입과 기본합의서 채택을 주도했던 것은 한국의 노태우 정부였다.9 소련·동구권 붕괴 이후의 유리한 상황에서 상대를 인정해주더라도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북은 곤란한 상황이었다. 동구권 붕괴 이전까지 북은 유엔 동시가입을 반대해왔다. 통일 주도권이 자신의 편에 있다고, 자신만이 ‘조선반도’에서 유일하게 정통성을 가진 국가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정통성 없는 ‘남조선’ 정부를 굳이 유엔 동시가입을 통해 국제적으로 인정해줄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냉전의 한 축이었던 소련 중심의 ‘진영’이 무너져 국제무대에서 남과 북의 지지 균형은 한국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여기에 더해서 87년 개헌에 따라 대통령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된 한국 새 정부의 정통성을 (야권분열에 따라 군부 출신 후보가 당선되었다고 하더라도) 전면적으로 부정하기 어려웠다. 이제 북은 예전처럼 한국 정부를 무작정 반대하거나 무시할 수 없었다. 체제 유지를 위한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단국의 유엔 동시가입은 1973년 동서독의 선례가 있다. 그러나 동서독 상황이 1990년 급속한 흡수통일로 마감되었다는 사실이 북으로서는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련이 한국과 수교하고(1990년) 중국이 남북 유엔 동시가입을 지지하자(1991년 5월) 북도 입장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동서독의 경우 1973년 유엔 동시가입과 1990년 흡수통일은 별개의 사건이다. 마찬가지로 남북의 유엔 동시가입과 흡수통일을 혼동할 이유가 없다. 북은 북대로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을 하고 있었다. 그 판단의 중심에 물론 김일성 주석이 있었다. 불가피한 일이라면 오히려 이를 자신의 체제 보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살려보려 했다.

실제 유엔 동시가입이 북에 대한 국제적 공인을 담보하여 일방적 흡수통일의 가능성을 차단한다고 생각할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핵무기 철수 등 미국으로부터의 군사적 양보도 요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남북 대화가 최고조에 올랐던 1991년 하반기에는 다음 해 한미 팀스피리트 훈련 취소가 결정되었고, 미국은 한국에 배치된 핵무기를 철수하기로 결정했으며, 그로 인해 연말에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이뤄질 수 있었다. 북은 결단을 했고, 이로써 유엔 동시가입은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남북은 유엔 회원국이 되었다. 유엔 회원국은 회원국 상호의 주권을 인정하고 서로 침해하지 않는다는 유엔헌장을 준수해야 한다. 따라서 일단 형식 차원에서라도 ‘두 개의 코리아’가 온전한 국가로 공인된 것이다. ‘반쪽국가’가 아닌 ‘온쪽국가’로 인정되었고, ‘반쪽의식’ 자리에 ‘양국의식’이 생겨났다.

이는 <남북기본합의서>로 다시금 분명히 표현되었다. 3장 25조에 이르는 기본합의서의 핵심은 제1조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에 있다. 과거 냉전시대에도 주도권 경쟁 차원에서 그와 유사하거나 또는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구절들을 사용한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공격과 방어 차원의 언어 공세에 불과했다. 이번에는 분명한 합의였다. 크게 달라진 상황에 대한 인식과 이해(利害)의 공통기반이 생겼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많았지만 당시 양측은 이 합의를 통한 공존 기조의 지속에 상당한 기대와 믿음을 공유했다. 노태우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모두 크게 흡족해했다. 애초부터 각자의 적대적 체제를 오히려 강화하려는 목적을 숨기고 서로가 일시적으로 이용하였을 뿐이던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 때와는 분명히 달랐다. 이 합의로 양국의 자체적·내적 정당성 근거 역시 분명 ‘반쪽국가’에서 각자가 충족된 정당성을 갖는 ‘양국체제’ 쪽으로 이동했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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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1/22-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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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해체 이후 근대 세계사는 새로운 단계인 후기근대(late modern age)에 접어들었다. 세계인이 이를 점차 실감하고 있는데, 촛불 이후 남북 코리아는 더욱 그러하다. 새로운 시간의 실감 속에서 최원식 교수가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글 「남북연합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강조하고 코리아 남북연합이 그 촉진자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후기근대의 세계 상황이 두 코리아의 공존체제·평화체제를 가능하게 하고 있으니 이를 위한 내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평자로서는 동의하고 환영한다.

이제 촛불혁명과 판문점, 싱가포르 선언으로 그 가능성은 바로 코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촛불 직전인 2016년 5월 《프레시안》과 ‘다른백년’이 주관했던 4회 강연에서부터 평자는 공존체제, 평화체제보다 ‘양국체제’라는 개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공존체제나 평화체제는 ‘그냥 맞는 말’로 들릴 수 있다. ‘좋아.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공존과 평화를 이뤄낼 실제적 방법, 핵심고리가 중요한데, 이것이 ‘코리아 남북 양국의 주권국가(sovereign state)로서의 상호 인정’에 있다는 것이다. 결국 양국체제가 돼야 공존과 평화가 가능하다. 양국체제란 양국 공존체제, 양국 평화체제의 줄임말이다. 공존과 평화를 실현할 양국체제가 남북연합의 바탕이 될 것도 자명하다.

발제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우선 발제문은 ‘國際(inter-national)’보다 ‘民際(inter-civic)’를 중시하기에 통상 쓰는 ‘(남북)국가연합’이 아니라 국가를 빼고 ‘남북연합’이라 하는 듯하다. 국제(International)에 민간관계가 빠지는 게 아니니 민제라는 말이 굳이 따로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국제와 민제가 따로는 아니겠다. 발제문이 언급한 한중일 관계만 하더라도 국제가 안 풀리면 민제도 어려워진다. 극적 사례는 1992년 한중 수교였다. 국제를 트니 민제가 크게 열렸다. 남북관계는 국제(이 경우는 inter-national이 아니고 inter-state가 된다)가 막혀 민제는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있다 할 형국이니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남북연합 논의에서도 국가(state) 대 국가(state)로서 남북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발제문은 그와 전혀 다르게 본다. 아래 문단은 관련 주장이 집약된 것으로 보이는데, 의외로 ‘양국론’에 대한 ‘경계 긋기’로 시작한다.

최근 세를 얻고 있는 양국론에 대해서도 경계를 그을 필요가 없지 않다. 양국체제론자들의 논의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탓에 단정하긴 어렵지만 남북은 일국도 아니지만 양국도 아니다. 분단으로 두 쪽이 난듯이 보여도 남과 북은 분단체제의 드러남으로 연계된바, 분단체제를 상정하지 않은 양국론과는 애초에 무관하다. 그렇다고 그냥 일국론도 물론 아니다. 정말로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不一不二]. 요컨대 분단체제를 상정한 남북연합론을 설령 통일의 최종형태로 삼는다고 해도 그 연합이 두 나라의 단순 병치가 되기는 애시당초 그른 것이매 남북연합론은 주변 4강의 의심을 풀고 내부의 대국주의를 절약할 요체가 아닐 수 없다. 요컨대 남북연합론은 일국적 통일론과 양국적 반통일론을 가로지르는 중형국가적 분단해소론이다.

국가 대 국가의 문제를 시종 비켜가고 있다. 일국도 아니고 양국도 아니라 한다. 과연 그런가? 현실은 일 민족, 이 국가(one nation two states)이다. 둘이되 하나요, 하나이되 둘[一而二, 二而一]이다. 엄연한 사실이 그러함에도, 즉 이 두 개의 국가가 국제적으로는 모두가 널리 공인된 국가이면서, 막상 양국은 아직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이것이 문제요, 비정상 아닌가? 그러나 「발제문」은 거꾸로 본다. 이런 상태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여기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 ‘불일불이(不一不二)’라 한다. 불일불이란 불가(佛家)의 진리관[中論]을 표현하는 높고 찬란한 언어다. 진리적 불일불이가 ‘분단체제’라는 개념에도 적용되고 있다. “분단으로 두 쪽이 난듯이 보여도 남과 북은 분단체제의 드러남으로 연계된바 …… ”라고 하였다. 분단체제를 이렇듯 고도로 긍정적인 개념으로 보기 때문에, 발제자의 ‘남북연합’이 “분단체제를 상정한 남북연합론”이라 하였다. 그동안 ‘분단체제’란 말은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왔기 때문에 이를 이렇듯 고도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용법이 일반인에게는 매우 낯설다. 분단체제는 남북이 적대하는 체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국가로서 인정하지 못해왔던 체제 아닌가?

거듭 말하여, 현실은 일 민족 이 국가 상태다. 체제 보장은 북미 간에만 아니라 남북 간에도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양국체제다. 과연 무엇이 분단과 분단체제를 영구화시켜왔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둘임을 부정했기 때문에, 둘을 부정한 채로 결코 하나이자고 했기 때문 아닌가? 둘이 서로 인정하는 것이 이 함정을 벗어나는 제1보다. 돌아가는 것 같지만 그것만이 바른 길이다. 『노자(老子)』 22장에서 “곡즉전 왕즉직(曲則全 枉則直)”이라 했던 게 양국체제의 취지와 닿아 있다.

양국체제 없이 남북연합이 제대로 될까? 국(state) 간의 際가 안 열렸는데 民 간의 際가 활짝 열릴까? 그렇듯 국제가 닫힌 채로 가능한 남북연합이란 어떤 것일까? 양국체제가 성립하고 안정돼야 비로소 그 두 국가(state) 간의 남북연합이든 국가연합이든, 낮은 단계든 높은 단계든, 비로소 현실화되는 것 아닌가? 촛불혁명, 그리고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선언으로 이제 양국체제는 목전의 현실문제가 되었다. 판문점, 싱가포르 회담 한참 이전부터 줄곧 강조해온 것처럼 종전과 북미 수교는 양국체제의 입구요 일부다.

양국체제란 1973년 <동서독기본조약> 이후의 동서독 관계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동서독기본조약>에서 양독(兩獨)은 서로를 국가로서 분명히 인정했고, 기본조약 이후 미국은 동독과 수교했다. 그 두 고리가 풀리면서 양독 관계는 안정됐다. 반면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는 이 둘 다 이루지 못했다. 유엔 동시가입으로 코리아 양국체제의 외적 모양새는 일단 시작되었지만 완성되지 못했다. 불완전하고 불균형했다. 그랬기에 그 경로는 금방 닫혔다. 반면 동서독의 양국체제는 안정적으로 지속됐다. 정권이 바뀌어도 존속했다. 이런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당시 남북이 처해 있던 여러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낮은 수준에서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거꾸로 뒤집어서 그것이 마치 아주 높은 수준의 결과였던 것처럼 생각한다면 문제가 된다.

「발제문」의 ‘불일불이’ 구절을 읽으면서 연상을 금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의 유명한 “(남북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구절이다. 이 표현은 매우 외교적인 것인데, 이를 액면가보다 낮추어 읽는 것이 아니라(외교문서를 읽는 기본이다), 오히려 액면가보다 훨씬 높게 읽는 경향이 있었다. 마치 ‘남북은 국가 대 국가로 서로를 (아직 외적 조건과 내적 능력이 부족하여)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뜻이 높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남북은 애당초 두 국가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이기 때문이다’라는 식이다. 그렇게 읽으면 이 구절은 마치 ‘우리가 지금 하나는 아니지만 결코 둘일 수 없다(불일불이)’라는 높은 이상에 남북 대표가 의기투합하여 ‘우리는 결코 두 국가가 될 수 없으니 이러한 불일불이의 상태에서 곧바로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통일로 직행하자’라는 뜨거운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표현한 것이 된다. 실제로 그런 오독들이 꽤 있었다. 서로 국가로 인정하지도 않는데 연합이든 연방이든, 어떻게 가능할까? 여기에 대한 답은 여태껏 듣지 못했다.

끝으로 ‘말이 아닌 말’을 일부러 만들어낼 필요는 없겠다. 위 인용문에서 “양국적 반통일론”이 그렇다. 앞서 설명한 대로 양국체제 없이는 공존체제도, 평화체제도, 남북연합도 담보되지 않는다. 양국체제 자체가 통일은 아니지만, 어떠한 경로보다 통일 촉진적이다. 양국체제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바람직한 통일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반통일’일까? 또 이 말과 짝을 걸어놓은 “일국적 통일론”이란 뭘까? 진보진영에는 실체가 없는 것으로 안다. 북(DPRK) 역시 이 입장을 폐기한 지 오래됐다. 그럼 뭘까? 발제자의 뜻을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런 게 있다면 우스꽝스런 무엇일 듯하다. ‘말이 아닌 말’을 만든 것으로 부족하여 실체 없는 허깨비와 짝을 붙여놓은 꼴이다. 왜 이래야 했을까? 양측에 ‘극단’을 세워놓고 중간에 끼어들어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은 때로 쓸 만하다. 단, 그 양쪽 입장이 단단하고 분명해야 한다. 그럴수록 자신의 입장이 힘을 받는다. 그렇지 않고 ‘말이 아닌 말’과 ‘대립 아닌 대립’을 세워놓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식이라면 별다른 의미나 성과가 없을 듯하다. 또 그렇듯 가로지르는 게 ‘중형국가적 분단해소론’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국가’는 어떤 국가이고(일 국가? 이 국가?), 여기서 ‘분단 해소’는 어떤 해소인지(분단체제의 해소? 분단의 해소?)도 궁금하다. 어쨌거나 지금 필요한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들 사이의 ‘경계 긋기’가 아니라 존재하고 있는 것들의 공통점을 모으는 일이 아니겠나 생각해본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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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4/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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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2017년부터 준비되어 2018년 큰 물꼬를 텄고, 최근 하노이 북미회담에서 일시적 교착국면에 빠진 남북미 간 평화체제 정착은 어떻게 수순을 풀어야 할까? 남북관계든 북미관계든 핵심은 ‘신뢰의 확증’에 있다. 남북과 북미관계가 대화 지속 – 신뢰 축적의 트랙을 이어가면 남북·북미관계 서로를 선(善) 방향으로 추동한다. 그러나 지금 하노이 회담 이후 보듯, 북미관계에서 지체가 생길 수 있다. 그럴 때 남북관계의 주동성, 추동력이 더욱 부각될 수 있다. 남북관계의 게임의 차원을 바꾸는 것이, 북미관계의 게임의 차원을 바꾸는 일보다 우리의 주동력이 발휘될 수 있다. ‘양국체제론’은 남북관계가 동북아 주변관계에 최대의 주동성, 추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구상되었다.

남북관계의 고리를 획기적으로 풀어나가는 방법을 우리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 신뢰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면 된다. 신뢰에는 ‘피상적 신뢰’가 있고, ‘심층적 신뢰’가 있다. 심층적 신뢰란 가장 기본적인,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신뢰를 말한다. 남북 간에 그렇듯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신뢰가 무엇이겠는가. 남북이 서로의 존재를, 존립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명환 교수의 글에도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이 있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 정식 국교를 맺고 적대정책을 철회하더라도 남한의 존재가 위협이라는 현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고, “남북 교류가 활성화되고 북한 사회가 개혁·개방에 노출될수록 북의 체제 운영자들은 정치적 위협을 심각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 북한 당국이 자신의 주민이 친족방문을 위해 남을 왕래하는 일을 허용하는 일은 상당 기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부분이다. 김명환 교수는 이런 사정 때문에 양국체제는 어렵고, ‘남북연합만이 올바른 길’이라 하였지만, 김 교수가 언급한 내용이 필자에게는 오히려 김 교수의 주장을 반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북미 수교, 북일 수교는 가능하더라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교, 즉 ‘한조(韓朝) 수교’는 오히려 불가능하다고 보는 듯하다. 글쎄 그럴까. 북미 수교와 북일 수교라는 토픽이 미국과 일본의 정책 캐비넷에 올라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베까지도 이 판에 끼어보려 하고 있다. 그러나 북미 수교, 북일 수교는 오히려 한조 수교가 물꼬를 터줌으로써 빠르게 뒤따라올 가능성이 더욱 크다. 왜냐하면 ‘근본적 신뢰의 확증 순서’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북의 안보조건에서 미국과 일본 쪽에 자신의 존립에 대한 근본적 신뢰를 먼저 확보하려고 할 가능성은 낮다. 반면 한국과는 그 가능성이 더 높다. 촛불 이후의 국면에서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앞서 김명환 교수가 말한 “남한의 존재가 위협이라는 현실”은 이제 북에게도 더 이상 그렇게 자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스스로가 북(DPRK)의 존립에 위협이 되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물론 30년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단번에 일소한 촛불혁명의 힘, 그리고 그 힘에 의해 들어선 촛불정부의 역할 때문이다. 아니, 30년이 아니라, 코리아전쟁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의 민의가 이만큼 남북의 공존과 평화를 소망하는 방향으로 모아져본 적이 없다. 남의 한국도, 북의 조선도 이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과 조선 간에 그러한 ‘근본적 신뢰’를 확증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무엇일까? 백낙청 선생, 그리고 백 선생을 항상 충실하게 조술(祖述)하는 김명환 교수도, 그 방법이란 ‘남북연합’이라고, ‘남북연합밖에 없다’고, 되풀이해왔다. 그런데 지금 이 마당에 그 ‘남북연합’의 방책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분명히 한 것이 없다. 필자가 본 단 하나의 예외라면 백 선생이 2018년 《창작과비평》 181호에 “미국이 어느 시점에 변심하여 북을 다시 침공하거나 적대정책으로 되돌아갈 태세가 되었을 경우, 이것이 곧바로 대한민국이 가담한 국가연합에 대한 침공 내지 적대가 될 수밖에 없도록 제도화해 놓는 일”이라 한 것인데, 이 정도로 높은 수준의 ‘국가연합’이란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국가 간의 관계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누가 읽어도 당연히 그렇게 읽히는 말이다.(이렇게 읽은 것이 ‘오독’이고 ‘비약’이라는 김명환 교수의 반론에는 아쉽게도 무엇이, 왜, 어떻게 ‘오독’이고 ‘비약’이라는 것인지 설명이 없다. 다만 ‘기성 사회과학 교과서에 맞춰 재단한 탓’이라 하고 만다.)

현재 이 순간의 남북관계에서 생각해보자. 백 선생과 ‘분단체제론’에서는 현재 이 순간 역시 당연히 ‘남북연합’, ‘국가연합’ 상태다. 남북연합은 분단체제를 상정·전제하는 것이라 하니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재의 남북관계 또는 남북연합 관계에서 백 선생이 말한 바와 같이 “미국이 어느 시점에 변심하여 북을 다시 침공하거나 적대정책으로 되돌아갈 태세가 되었을 경우, 이것이 곧바로 대한민국이 가담한 국가연합에 대한 침공 내지 적대”가 된다고 어느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물론 너무나 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다. 그렇다면 백 선생이 그리는, 그렇듯 높은 수준의 ‘국가연합’까지 한참을 올라가야 할 것인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높이 올라가기 위한 첫 계단, 첫 단추가 무엇이냐다. 나는 지금껏 여기에 대한 답을 들어본 바 없다.

그 답이 어려워서 그런 것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필자가 지난 글들에서 여러 차례 설명해놓았다. 기존의 남북 간의 고통을 아주 기본적인 수준에서 느껴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다 알 수 있는 문제다. 남과 북이 서로의 존립을 보장하는 신뢰의 확증이 무엇이겠는가? 그 첫 단추가 무엇이 될까? 상대방을 적으로, 붕괴와 소멸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확증 장치다. 지금 남과 북의 상태에서 무엇이 그런 확증 장치가 될까? 남은 북을, 북은 남을, 영토와 주권을 가진 정당한 국가 대 국가로서 서로 인정하고 이를 만천하에 공표하고 상호 대표부를 교환하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과 조선 두 나라의 수교, 즉 ‘한조(韓朝) 수교’다. 이렇게 될 때 ‘분단체제’라는 과거의 룰은 폐기되고 ‘양국체제’라는 새로운 차원의 관계가 시작될 수 있다. 이 ‘한조 수교’의 역사적 파급력은 1972년 ‘동서독 수교’에 못지않을 것이다. 동서독 수교 이후 상호 교류와 협력이 크게 증가했던 것은, 상호 간의 ‘근본적 신뢰’의 문제를 일차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두 국가가 상호의 존립을 위협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지켜질 것임을 서로가 믿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2018년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역시 그러한 근본적 신뢰를 확증해가는 과정이었다. 그 결실이 머지않은 미래에 맺어지기를 바란다. 한국이 북미 대화를 잘 중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일이 있다. 남북이 만나는 모든 자리에서, 남북의 모든 논의와 합의가 어떤 쪽을 향해가고 있는지 방향감각이 무엇보다 우선 분명해야 한다. 그것은 ‘남북 간의 근본적 신뢰의 확증’이며 ‘남과 북이 서로를 정당한 국가 대 국가로 인정’하는 일이다. 북미 수교가 한조 수교에 선행하기보다, 한조 수교가 북미 수교를 성사시키는 경로가 더 현실적이다. 소위 ‘대북제제’ 문제도 ‘한조 수교’라는 역사적 임팩트에 틀 자체가 변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김명환 교수는 여전히 북은 ‘남한의 존재의 위협’을 벗어날 수 없고, 남 역시 마찬가지로 ‘북한의 존재의 위협’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할까? 한 발 물러서 생각해보자. 물론 ‘한조 수교’가 이뤄지자마자 남북이 서로에게 위협이 되는 상태가 당장 100퍼센트 깨끗하게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사에 그런 일은 없다. 그러나 ‘한조 수교’가 이뤄지면 역사적 첫 단추가 채워진다. 게임과 트랙이 달라지는 것이다. 코리아의 지난 70년 적대 상태를 생각해보면, 당장 100퍼센트는 언감생심이고, 우선 절반만 해소된다고 하여도 획기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이런 것이 바로 ‘질적 변화’다. ‘위협’은 강박이어서 붙들려 있을수록 커진다. 기존의 ‘분단체제론’에는 그러한 ‘위협’을 넘어서고 극복할 담대한 전망이 부족했다.

그렇듯 질적 변화를 이루어내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그 후의 과정 역시, 그만큼, 또는 그보다 더욱 중요할 것이다. 상호 신뢰를 확인하고 쌓아가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배려들이 교환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매우 많다. 동서독 간 성공적 교류의 선례도 있다. 나는 ‘분단체제론’이 이러한 양국체제의 전망을 아주 적극적으로 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원래 분단체제론은 분단체제를 비판하고 극복하자는 이론이었다. 분단체제론이 양국체제의 전망을 수용한다는 것은 그러한 원래의 이론적 취지와 포부에도 부합한다.

 

독일 양국체제의 경험을 다시 생각한다

끝으로 앞서 몇 차례 언급한 만큼, 동서독 사례의 의미에 대해 첨언해보려 한다. 1970년대 브란트의 동방정책과 동서독 수교(=<동서독기본조약>)의 의미를 다시 새겨볼 때가 되었다. 1990년대 초반 백낙청 선생이 분단체제론을 처음 입론하고 있을 때, 백 선생은 당시 이뤄졌던 독일의 흡수통일 사례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았고, 그래서 독일과 한반도의 분단 원인과 통일 전망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당시 백 선생이 그러한 태도를 취했던 데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동구권이 붕괴하고 동독이 서독으로 흡수통일 되었던 당시에는 ‘북한 조기붕괴론’을 펴는 사람들 중에 독일식 통일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았다. ‘북한’은 어차피 곧 붕괴될 것이니까 한국은 서독처럼 흡수통일 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그러한 생각은 물론 허황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독일의 사례를 무조건 백안시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1970년대 동서독 수교와 독일 양국체제이지, 1990년의 흡수통일이 아니다. 1972년 동서독 수교와 1990년 흡수통일은 전혀 다른 맥락에서 벌어진 전혀 다른 사건이다. 이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제는 1990년대 초반에 독일 흡수통일의 스펙터클에 눈이 팔려 1970년대의 독일 양국체제 경험의 역사적 중요성을 놓치고 있지 않았는지 다시 물어야 할 때가 되었다. 백낙청 선생과 김명환 교수도 다시 주목해주기 바라는 대목이다. 1989~1991년 당시 남북의 ‘당국자’들은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인 시각에서 양국체제의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북이 유엔에 동시가입할 수 있었고, <남북기본합의서>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볼 때도 대단한 용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정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남북 수교까지 이루었다면 코리아 양국체제는 이미 그때 성립할 수 있었다. 왜 이 길이 막혔던가? 누가 막았었나? 남쪽의 노태우 대통령도, 북쪽의 김일성 주석도 아니었다. 이들은 오히려 더 속도를 내서 이 방향으로 나가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 길을 막았던 것은, 이 책 1부 1장에서 상세히 분석해둔 바와 같이, 북미 수교를 거부하고 북의 조기붕괴를 도모했던 미국과 한국의 냉전대결 세력들이었다.

1970년대의 동서독 수교 – 독일 양국체제와 1990년대 흡수통일이 전혀 성격이 다른 사건이라는 것은, 흡수통일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반추해볼 시각을 1970년대 양국체제의 경험이 제공해주고 있다는 데서도 볼 수 있다. 독일 흡수통일의 최대 문제는 동독을 내부 식민지로, 동독인을 열등국민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통일독일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동구권 – 소련 붕괴라는 충격 속에서 통일과정이 눈사태와 같은 파국적 양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1972년 <동서독기본조약> 체결 이후 1989년 소련·동구권 붕괴 이전까지 독일의 양국체제는 동서독의 차이를 장기적이고 점진적으로 줄여나간다는 분명한 공동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독일 양국체제의 경험이 우리에게 여전히 귀중한 타산지석이 되는 이유다.

더구나 과거 독일 양국체제를 둘러싼 국제적 상황에 비해 오늘날 코리아 양국체제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훨씬 더 안정적이다. 1970~1980년대 미소 간의 적대와 대립은 오늘날 미중, 미러, 또는 중일 간의 갈등에 비해 훨씬 날카롭고 높았다. 냉전 이후 세계는 진영 간 이념 적대가 사라지고 국가 간 지역 간 상호 의존이 깊어졌다. 필자는 이러한 새로운 세계상황을 ‘후기근대’로 정의하면서, 이 새로운 역사 단계의 세계사적 의미에 대해 여러 차례 분석하고 음미해본 바 있다. 후기근대에는 과거 소련·동구권 붕괴와 같은 진영 붕괴가 발생하지 않는다. 과거와 같은 수준의 진영 자체가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중국 혹은 미국이 머지않아 과거 소련과 같이 극적으로 붕괴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이 세계의 그 많은 ‘전문가’ 중에서 단 한 사람도 없는 이유다. 그리고 이는 코리아 양국체제가, 성공적으로 정립되기만 한다면, 과거 독일의 양국체제보다 훨씬 성공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예상해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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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0/06/25-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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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 년간 중국인민공화국은 일년에 인민대표자회의(NPC)와 인민정치협상회의(CPPCC)라는 두 개의 회의를 동시에 개최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왔다. 양회로 불리는 두 개의 회의는 매년 3월에 개최되어 왔는데 올해는 COVID-19의 위기로 5월로 연기되었다.

서방사회에서는 인민대표자회의가 통과의례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국공산당과 정치협상회의의 역할과 상호작용이 점차 무게를 더해 왔으며 이번 양회의 결정들은 중국 당중심 헌법기구와 강화된 다민족의 선출권력 간의 복잡한 관계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번 양회에서 중국공산당이 중요한 몇 개의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그 중의 하나가 시민법(national civil law)이고, 다른 하나가 논쟁을 야기한 새로운 국가안전규정(new national security bill)으로 홍콩에서 지속되는 시위를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북경당국이 홍콩 내에 안전전담 조직을 설치하는 것을 허용한다. 북경당국은 안전규정의 제정을 지난 해에 감행할 수 있었으나, 이번 인민대표자회의를 통하여 선언하면서 규정의 무게를 더하였다.

인민대표자회의 대표단은 정부의 연간 업무보고를 승인하였는데 처음으로 대만에 대한 ‘평화적’ 통일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대만과 ‘비평화적’ 통일의 가능성을 암시하였다. 또한 GDP목표치를 설정하지 않았고 6%의 성장을 고수하는 대신, 일자리 창출에 방점을 두었다.

인민대표자회의와 정치협상회의의 양회는 당중심 헌법기구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공산당이 운전석을 차지하고 지배한다.

제14차 회의 이후, 공산당의 총서기가 중국국가의 주석직과 군중앙위원회의 주석직을 겸임한다. 다음으로 정치상임위원회(당중앙 지도부)의 중요한 3인이 행정부의 수상, 인민대표자회의 주석(의장) 그리고 정치협상회의 주석(의장)을 책임진다 (현재는 Li Keqiang, Li Zhanshu and Wang Yang이 맡고 있다).

이렇게 당 중심의 헌법시스템 내에서 권력의 배분이 당 중앙의 가장 중요한 4사람이 상기의 자리를 제각각 차지하면서 이루어 진다.

이러한 시스템은 당기구의 중앙위원들로서 일반주석들의 위치가 행정부의 핵심인 수상/부수상직보다 강한 권력을 가지도록 구성되어 있다. 동시에 권력의 분산보다는 통일집중의 원칙 위에 있다.

공산당과 인민대표자회의는 일상적인 긴장과 때때로 대립하는 위치에 있다. 헌법상으로는 대표자회의가 최고의 의결기구이다. 대표자회의 지위와 기능은 이론적으로는 당보다 우위에 있으며, 당은 인민대표자회의라는 헌법적 프레임 안에서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로 공산당이 대표자회의를 통제하며 공산당 총서기가 대표자회의의 주석보다 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인민의 주권개념은 대표자회의에 녹아 있다. 대표자회의와 정치협상회의는 마치 차량의 방향조향장치와 같이 자신들의 의견과 국가적 의지를 입법을 통해서 전달한다. 이런 의미에서 대표자회의는 제국의 봉인이 찍힌 현대적 형식기구로 이해할 수 있으며, 최고 권위와 주권을 상징한다. 실제로 인민대표자회의는 2980명의 참석자들이 보수를 받지 않는 임시적인 입법자로서 활동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공인의 입법기구인 셈이다.

의회 민주제도에서는 흔히 입법기구가 양원으로 분리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이론적으로 권력을 분리시키는 양원제를 거부하고 있지만, 지난 몇 년간 대표자회의와 정치협상회의는 양원제와 유사하게 입법과정의 역할을 증대하여 왔다. 헌법규정에 따라, 모든 주요 결정은 대표자회의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법적인 권한은 없더라도 정치협상회의의 자문을 사전에 거쳐야 한다. 국가의 법률의 제안과 통과는 반드시 대표자회의를 거쳐야만 한다.

입법 과정은 당의 해당위원회들이 제안, 조사와 연구, 기획의 초안, 상담과 여론취합 등 오랜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지고, 제안 이후에는 해당분야 전문가들의 검토, 숙의, 조정과 승인, 법제화와 초안의 수정을 거쳐 대표자회의의 참가자들에 의한 승인을 통과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실제 대표자회의가 개최되기 전에 진행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사전적 진행을 통해 진지한 상담과 협상, 조정과 논쟁을 통해서 수많은 수정이 이루어진다. 동시에 중앙당의 해당위원회 위원들은 양회가 개최되기 전에 중국전역을 방문하여 사전조사를 시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예를 들어, 홍콩의 국가안전규정은 1명의 거부와 6명의 기권을 제외하고 2878 참가자들의 찬성을 얻었다.

대표자회의 참석자 수數의 배정은 개별 성省과 특별지역의 인구수에 비례하여 이루어지며, 특별지역의 대표자들은 직접 선출되며, 개별 성의 대표자회의 참가자는 간접적으로 선출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정치협상회의의 참석자들은 지역의 이익보다는 해당 지역의 다양한 부문을 대표해서 구성된다. 협상회의는 통상 46개 부문으로 나누어 지는데 의료 건강 교욱 미디어 종교 자연과 사회과학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농민과 노동자들은 정치협상회의의 대표권을 갖지 않는데, 대신 당의 정치적 체계 내에서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분야의 엘리트들로 구성되는 ‘클럽’에 참여한다.

정부의 주요 지도부들은 대표자회의의 승인을 통해서 선출되지만, 이런 선출의 과정은 간접적이고 사전에 지명되고 통제된다. 중앙당의 조직부서에서 후보자들을 지명하고 통제하는 과정을 거친다. 공산당원들이 대표자회의 주요 기구에 참여하면서 당의 지침을 통하여 조직기구에서 지명한 후보들을 선출하고 승인한다. 이렇게 사전통제된 선거시스템은 당우위(黨優位) 국가시스템을 운용하는 전제가 된다.

비록 현재까지는 공산당에 의하여 대표자회의가 사전에 조직되어 진행되고 있지만, 이들 대표자회의와 공산당 간의 관계가 향후 어떻게 진화하여 중국사회가 다원화하고 국제적으로 상호관계를 형성해 갈지는 지켜보아야 할 사항이다. 지금부터 대표자회의의 참가자들이 국가의 장래와 통일에 관하여 더욱 국수적으로 변모할지 아니면 개방적으로 변해갈지 예의주시해야 한다.

 

출처: East Asia Forum in ANU on 2020-05-30.

Baogang He

호주의 멜버른에 있는 Deakin 대학교수, 국제관계학 전공.

목, 2020/06/11-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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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이 진행했던 ‘냉전-1.0’은 45년 간의 거대한 이념적 경제적 기술적 전쟁이 이었고, 세계를 핵전쟁의 위험(Armageddon)으로 몰아가며 지구상의 모든 국가뿐만 아니라 달나라까지 영향을 미쳤다.

현재 진행중인 미국과 중간의 ‘냉전-2.0’은 기존의 냉전과는 매우 다른 양상의 경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위험성과 영향력에 있어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미국에게 있어서 중국은 인구의 규모 면에 있어서도 기술적 야심이라는 측면에서 과거의 상대보다 훨씬 힘든 적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싸움은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진행될 것이 분명하다. 미국과 소련은 지구를 양분하여 분리된 형태로 각자의 영역에서 존재하였지만, 미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서로 엉켜 의존하고 있다. 2018년 현재 중국은 미국이 최대 무역대상국이었으며, 중국의 바이트댄스(ByteDance)사가 비디오 네트워크의 지분을 공유하고 있는 TikTok은 비게임 분야에서 세계 최대의 앱(app) 프로그램이고, 2019년 현재 미국의 대학에 369,548 명의 중국학생이 등록한 가운데 시진핑 주석의 따님이 2014년에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바 있다.

이와 별도로 미국과 중국의 강대국 경쟁은 기존과는 달리 전혀 새롭고 결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과거의 ‘냉전-1.0’이 재래식 군사력과 핵위협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면, 현재의 ‘냉전-2.0’은 민간사회를 통한 소프트웨어와 기술의 혁신경쟁이라는 측면이 훨씬 강하다. 인터넷은 단순히 통신수단이 아니라 통제의 기술로 진화하고 있다. 세계적 규모에서 사물인터넷(IOT)를 운용하면 수십 억의 장치를 연결하면서 지정학적 전략의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바로 이 분야에서 중국이 자신의 위상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서방의 주요 국가들이 5G 네트워크에 화웨이 장비를 적용하는 여부가 일종의 시금석이 된다. 흔히 미국과 중국의 대결적 상황은 성격이 전혀 다르며 어울리지 않는 두 국가의 지도자들 즉 트럼프와 시주석의 개인적 정치성향 때문이며 두 사람이 서로를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해석하기 쉽다.

그러나 미국 내 중국분야 최고의 권위자중 한 사람인 Orville Schell은 보다 분석적이고 위협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그에 의하면, 공화와 민주 양당이 8번을 교대로 집권해온 지난 50년 간 지속되었던, 중국에 대한 미국의 포용정책은 이제 끝장이 났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냉전이라는 높은 산의 정상에 오른 것(종결)이 아니라 겨우 중턱 어디쯤에 머물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미국의 포용정책은 아래의 두 가지 전제에 기반하고 있었으나 모두 실패하였다고 결론짓는다. 한가지는 중국이 번영을 지속하고 개방화를 진행하면 점차로 민주적 사회로 전화할 것이라고 워싱턴은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인터넷의 도입이 자유를 확산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08년 전직 대통령인 빌 클린턴은 중국이 인터넷을 차단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마치 ‘벽에다 껌을 부치는 격’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판연히 다르다. 중국은 공산당이 내부의 통제력을 전혀 늦추지 않은 상태에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거대한 경제강국으로 부상하였으며, 국제적 인터넷에 대한 중국내의 방어벽(firewall)을 강화시키는 한편, 다른 국가들의 사이버 공간에 혼란을 야기시킬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지난 주에만 중국과 연계된 선전 캠페인으로 추정되는 23,750개의 내용물을 트워터에서 추려냈다.

“우리는 총격전을 벌릴 필요는 없지만 이에 필적하는 위험한 경쟁의 전쟁에 빠져 있다”고 미국의 전역장성은 경고를 보낸다. 위싱턴의 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 책임자인 Robert Atkinson은 중국이 이미 일부의 선도산업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하였고 동시에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하여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중국은 기술분야에서 강력하게 그리고 손쉽게 미국을 압도할 것이다”. 그는 미국이 긴급하고 강력하게 자국의 산업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자유시장과 사적재산권 그리고 기업가의 정신이면 성공을 보장한다’는 기존의 흔해빠진 신념은 비역사(비현실)적이며 무책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Actkinson은, 냉전이 절정이었던 1963년 당시, 미국 연방정부는 나머지 전세계의 정부 및 민간 분야의 모든 투자액보다 많은 예산을 R&D 분야에 투입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현재는 1955년에 이루어진 GDP 비중보다도 적은 예산이 미국의 R&D에 할당되고 있다. 역설적인 것은 중국의 지도부들이 미국의 정치지도자들보다 과거 냉전에서 미국이 승리한 미국의 역사를 더 잘 숙지하고 있으며, 기술적 혁신이 국가안보의 핵심이라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출처 : 파이낸스 타임즈 on 2020-06-16.

John Thornhill

FT 혁신분야 편집책임자

금, 2020/07/3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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