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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하늘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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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하늘이 열리고 있다

익명 (미확인) | 금, 2019/03/22- 10:42

개화학에서 개벽학으로

2019년 3월 6일 수요일 아침. 서울 부암동의 산꼭대기에 위치한 여시재 대화당(大化堂)에서 개벽학당 출범식이 있었습니다. 이날 행사의 주인공은 하자센터 출신을 비롯한 여러 벽청(개벽하는 청년)들과 그들을 이끄는 이병한 선장. 사공들의 춤과 노래, 그리고 선장의 출항사를 지켜보면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제가 보고 들은 올해의 3.1운동 행사 중에서 가장 빛나는 축제였습니다. 가슴 벅찬 순간이었습니다. 「삼일독립선언서」의 마지막 문장을 빌리면, “아아! 신천지가 안전(眼前)에 전개되도다. 개화의 시대가 거(去)하고 개벽의 시대가 래(來)하도다.”에 다름 아닙니다.

개벽학당 개강식

이날 행사에 초대받은 모시는사람들의 박길수 대표님은 “큰일을 하셨다”고 이병한 선생님을 격려하였습니다. 저 역시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5년 전을 돌아보았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생활을 막 시작한 1994년, 지금의 개벽학당 청년들과 같은 나이였을 때입니다. 저는 대학로에서 막 개원한 도올서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그때의 그 모습이 재현되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자리만 뒤바뀌었을 뿐입니다. 도올서원 학생에서 개벽학당 선생으로-.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문제의식은 변함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서원과 학당을 오가고 있을 것입니다.

도올서원은 굳이 말하자면 동양학, 중국학의 범주였습니다. ‘서원’이라는 말에서부터 유학의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이에 반해 개벽학당은 한국학(K-Studies), 개벽학의 산실입니다. 동양학에서 한국학으로, 중국학에서 개벽학으로의 전환. 지난 25년 동안의 변화이자 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개벽학당 당장 로샤(이병한)

 

개벽은 나이순이 아니다

제가 개벽학당의 출항을 3.1운동 100주년의 가장 빛나는 사건이라고 선정한 것은 ‘기념행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재양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지적하신 대로 기념행사에는 청년들이 없지만 개벽학당에는 청년들이 주인공이었습니다. 행사는 일회성으로 끝나지만 양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출범식에서 보여준 학동들의 몸짓은 젊고 발랄했습니다. 신명이 넘쳐났습니다. 그야말로 하늘을 사는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의 한국사회는 이들을 받아줄 마당이 없습니다. 어른들의 나라이자 기성세대의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낼 젊은이들을 길러낼 ‘뜻’이 없습니다. 그냥 자기네들이 다 ‘해 쳐먹고’ 있는 느낌입니다. 개벽은커녕 개혁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정신세계가 20세기의 틀에서 맴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절망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남북관계보다 훨씬 비관적입니다. 남북관계는 기대라도 하게 만들지만, 한국사회는,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의 인문학계는 활로가 보이지 않습니다. 전통유학과 개화우파와 개화좌파의 삼각구도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한국철학사 서술에서는 여전히 100년 전의 실학담론과 주리주기론의 틀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100년 전의 「삼일독립선언서」에 두 차례나 나오는 ‘독창’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개벽정신이 만개한 한국근대사상은 주류 학계에서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고, 최근에는 ‘개벽’이라는 말을 쓰면 특정 종교를 옹호한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한심한 수준입니다. 총체적인 문제로는 한국사상 연구가 분야별로, 인물별로, 종교별로, 학문별로 쪼개져 있어서 ‘한국학’이라는 큰 틀을 고민하는 학자가 없습니다. 산적한 문제가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정도입니다.

개벽학당 모시는선생님 새별(조성환)

 

동아시아담론의 허구

동양포럼에서 어느 중국인 학자가 지적했듯이, 전 세계에서 개화의 독을 가장 심하게 먹은 나라가 한중일 삼국이라면, 그중에서도 가장 중독이 심한 나라는 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인문학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중국이나 일본의 상황이 우리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중국이나 일본은 우리처럼 식민지를 당한 경험도 없고 분단의 현실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들보다 개화학에 더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런 역사적 경험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동아시아론에서 벗어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적어도 1860년 동학 창시 이후부터는 한중일 삼국은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1919년 3월 1일의 ‘독립’ 선언의 의미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차이’를 직시하지 않은 채 막연하게 ‘유교’나 ‘동아시아’라는 범주로 한중일의 근대를 논하거나 동아시아의 미래를 모색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19세기 후반부터는 일본이나 중국과 같은 길을 간 것이 아니라, 인도나 아프리카와 같은 이른바 ‘제3세계’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존의 동아시아담론은 유학 아니면 개화학 중심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근대는 개벽학이 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향도 이성적 근대가 아닌 영성적 근대였습니다. 동학에서 ‘하늘’을 불러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삼일운동에서 기독교가 참여한 것도 “새 하늘 새 땅”을 건설하고자 하는 개벽정신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면 ‘동서합작’인 셈입니다. 과연 동시대의 중국이나 일본에 이런 합작품이 또 있을까 의심스럽습니다. 이것이 개벽의 길이자 개벽 정신입니다.

개벽학당 운영위원장 아띠(황지은)

 

청년들의 눈물, 어른들의 나라

개벽학당 첫날, 오후에 있었던 세미나 시간에서 몇몇 벽청들이 자기소개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북받쳐서 말문을 잇지 못했습니다. 대안학교 출신으로, ‘자발적 고졸’로 살아가는 서러움 때문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당연히 대학생인 줄 아는 한국사회에서 낄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늘 대학에서 생활하는 저로서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대학총장에서 시작해서 대학교수, 대학박사, 대학원생, 대학생 등등, 온통 ‘대학인’들만 접해 온 저로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 상황입니다. 그래서 나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이런 사회가 되었을까?” “유교경전에 대학이 있어서 ‘대학’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가 되었나.”

그리고 이틀 뒤에 참석한 협동조합연찬 모임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50대 이상이었는데, 유일하게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자기소개를 하면서 울음을 터트린 것입니다. 자기랑 같이 활동하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동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서 쏟아낸 눈물이었습니다. 그나마 자기는 이런 자리에 올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기성세대로서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또 하나의 과제가 생긴 셈입니다. 이전부터 예감은 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인 줄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한국사회는 기성세대의 독재가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삼일독립선언서」에서 자부한 “신예(新銳)와 독창(獨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신동엽의 _금강_을 읽고 있는 벽청 하야티(김지현)

 

동학혁명에서 삼일혁명으로

최근에 있었던 3.1절 100주년 기념행사를 멋지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과연 창비와 세교연구소에서 다년간 쌓아온 내공이구나 싶었습니다. 저 역시 만북울림행사와 선언문에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종교’라는 이름을 내걸지 않은 행사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선언문의 내용도 지적하신 대로 ‘개벽선언문’에 다름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개벽’이라는 말이 모두 9차례나 사용되고 있을 정도니까요. 만약에 종교단체의 선언문이었다고 한다면 ‘개벽’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특정 종교를 옹호한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대통령의 연설문에서 ‘개벽’이나 ‘손병희’가 빠진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북으로 열어가는 새로운 100년>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동학혁명과 삼일혁명을 나란히 병기하고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삼일독립운동을 동학농민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는 역사관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런 역사관이 사회 전반에 퍼졌을 때, 대통령의 연설문에도 개벽이나 손병희의 이름이 들어가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도삼장>의 첫머리에서 “새로운 시대의 철학을 확립한다”고 선언하고 있는 점도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을 수 있는 개벽학이 요청되고 있다는 신호에 다름 아니니까요.

수양하자 시간, 하와이의 영성 댄스인 훌라 수업

 

동학을 품은 서학

종교단체가 기획한 3.1운동 100주년 행사 중에서 제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강원도 원주에서 발행하는 농촌과 목회의 <3.1운동 특집기획>이었습니다. 올 봄에 나온 최신호에서 <3.1운동, 동학,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기독교를 비롯해서 동학, 천도교, 장일순에 관한 총 6편의 글을 싣고 있습니다. 3.1운동을 둘러싸고 자기 교단의 활동을 강조하기 쉬운데, 오히려 다른 교단인 천도교와 그것의 모태인 동학에 주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런 태도가 개벽이라고 생각합니다.

첫머리에 나오는 한경호 편집위원장님(횡성영락교회 목사)의 권두언 <농(農), 동학사상, 주체사상>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저도 일부만 떼어 오기가 아까워서 통으로 가져와 봅니다.

나는 동학(천도교)에 대하여 잘 모르면서 자랐다. 춘천에서의 어린 시절 사창고개 넘어가는 곳 어디에 천도교 교당(모임장소)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그 이상은 알 수가 없었다. 주위에 천도교 관련자가 아무도 없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를 통해 겨우 몇 가지 역사적인 사실만을 알 수 있었다. 조선후기 농민들의 피폐상, 조선왕조의 몰락, 크고 작은 농민들의 봉기들, 마지막으로 가장 크게 얼어난 동학혁명, 이후 손병희에 의해 천도교로 개칭됐다는 사실 정도가 아는 것의 전부였다.

청년시절에는 동학혁명이 농민혁명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보게 되었다. 동학보다는 농민전쟁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수운과 해월의 말씀과 행적도 농민봉기의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학은 이제는 시대적 사명을 다한 사상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1987년 12월초, 첫 목회지로 원주 호저면의 호저교회에 부임하였다. 부인한 지 얼마 안 된 1989년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날은 흐리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교회 앞 찻길로 사람들이 웅성거렸고 고산리에서 무슨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장일순 선생이 중심이 되어 원주의 고미술동호회 회원들이 해월 최시형 선생이 잡혀가신 호저면 고산리에 그를 기리는 비(碑)를 세웠다는 것이었다.

이후 생명운동을 하면서 장일순이 해월 사상에 대하여 설명한 내용들을 보게 되었다. 장일순은 한국 생명운동을 처음으로 주창하고 한살림운동을 촉발시킨 생명사상가인데 해월의 사상을 많이 언급하고 있었다. 해월 선생의 사상을 장일순을 통해 새롭게 접하게 되었고 크게 공감하였다. 그러고 보니 장일순은 해월을 현대 한국사회 생명운동의 사상적 원조로 불러내어 부활시킨 분이다. 부임한 호저면이 해월 선생이 은거하며 포교하다가 잡혀간 곳이고, 원주가 장일순 선생이 살고 계신 곳이라는 사실은 부임하고서야 알았다. 생명운동을 중심적인 선교과제로 삼고 실천하고 있는 나아게 이는 우연한 일이 아니요, 참으로 뜻깊은 일이었다.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는 것은 3.1운동 100주년과 동학, 그리고 기독교의 관계가 생각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동학은 그 세가 왜소해졌고, 반면 기독교는 강성해졌지만 민족 자주적인 관점에서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민족적인 어려움이 닥치면 그 해결을 내생적, 자주적으로 풀지 못하고 외생적, 비자주적으로 해결해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불교문화가 쇄락하자 유교문화를 수용‧대체하였고, 유교문화가 쇠퇴하자 서양 기독교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왔다. 반면, 동학은 유‧불‧선 3교와 기독교까지 아우르는 독자적인 사상을 제시하면서 구한말 당시의 도탄에 빠진 민중들의 삶에 희망과 비전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이후 천도교가 대중종교로 발전해가지 못한 점은 원인이야 어디에 있든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앞으로 우리 민족이 평화통일의 새로운 길을 열어 가는데 있어서 기독교권이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하나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어떻게 기독교적으로 수용하고 소화할 것인가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민족의 전통사상 특히 동학을 어떻게 기독교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고난의 한국근대사 속에서 민족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몸부림친 내생적 사상운동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특히 전 지구가 생명의 시대를 살고 있기에 동학의 생명사상은 더욱 새롭게 조명되어야 하리라고 생각된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인다면 생명을 농본주의의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하는 일이다.

3.1운동에 기독교가 기여한 것도 많지만, 천도교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당시 상황에서는 천도교의 교세가 기독교보다 훨씬 강했고, 재정적인 능력도 컸으며, 보다 주체적이고 계획적으로 대처했기 때문이다. 최근 기독교의 장로 몇 분이 동학(천도교)으로 옮겨가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의 핵심은 자주적 영성, 영혼의 탈식민지화이다.

우리는 그동안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신학적 작업에 소홀하였다. 자신의 세계 속에 갇혀서 상대방과의 대화에 소홀하였고, 그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각을 갖지 못했다. 유명한 신학자인 폴 니터는 “붓다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일 수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너’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나’를 더 정확하고 깊이 있게 발견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기독교신학이 되기 위해서는 농(農)의 시각으로 성경을 새롭게 보고, 동학사상과 주체사상을 아우르는 신학적 작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지금 다시 읽어 보아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글입니다. <선언문>이라기보다는 <고백록>에 가깝습니다. 젊었을 시절, 개벽학으로서의 동학보다는 개화좌파로서의 농민운동에 더 관심이 많았다는 고백, 아니 개벽학 자체를 몰랐다는 고백이 우리 모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기독교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전망한 글이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기독교와 천도교의 관계를 “붓다 없이 그리스도인일 수 없었다”는 폴 니터의 고백으로 대신하고 있고, 남한학과 북한학을 아우르는 한국 신학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00년 전의 동학이 서학을 품었다면 지금의 서학은 동학을 품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이라면 <개벽포럼>에도 한 번 모셔다가 말씀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1세기의 삼전(三戰)

마지막으로 손병희 선생의 「삼전론」과 선생님의 「서신」에 힘입어서 이 시대에 필요한 삼전(三戰)을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역시 도전(道戰)입니다. <만북으로 열어가는 새로운 100년>의 선언문에서도 “새로운 시대의 철학을 확립한다”고 설파했듯이, 지금 우리에게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철학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것을, 강성원 교무님의 언어를 빌려서, ‘개벽학’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인전(人戰)입니다. 개벽시대를 개척할 젊은 인재들을 길러내는 작업이 시급합니다. 개벽학당과 같은 운동이 전국 곳곳에서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지막은 심전(心戰)입니다. 한경호 목사님도 언급하신 영혼의 탈식민지화입니다. 중화(中華)와 개화(開化)의 포로와 노예에서 벗어나고, 공자(孔子)의 술이부작(述而不作)을 술이창작(述而創作)의 마인드로 전환시켜서, 「삼일독립선언서」에서 표방한 ‘독창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이 삼전의 내공이 쌓이면 한반도에 새로운 하늘이 열리리라 확신합니다. 제가 개벽학당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큰 걸음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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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의 본질은 원래 성상품화 아닌가요?”

여성 아이돌 그룹에 대한 성적 대상화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종종 이런 반응을 접한다. 평소 ‘여성 혐오’에 발끈하던 이들도 걸그룹에 대해서라면 유독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곤 한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기본적으로 아이돌의 이미지를 상품화해 판매하는 구조이며, 남성 팬의 구매로 존속하는 여성 아이돌이 그 산업의 논리 안에서 움직이는 한 성적 대상화는 필연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걸그룹을 아예 없애지 않는 이상 이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무용하지 않느냐고 냉소한다.

지금 <프로듀스 101>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한국의 여성 아이돌 그룹은 성상품과 동의어가 되어버린 듯한 인상이다. 이제는 ‘걸그룹의 성적 대상화, 괜찮은가?’라는 질문보다 차라리 ‘걸그룹의 성적 대상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나?’라는 질문이 더 유효해 보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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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경선방식으로 걸그룹 멤버를 뽑는 ‘프로듀스 101’. 예쁜 외모, 귀여운 행동, 넘치는 끼를 갖춘 걸그룹 멤버들은 남성의 판타지를 충족한다. 그런 남성적 판타지와 쇼비지니스가 만나 탄생한 것이 걸그룹이다. 그러나 남성적 판타지와 남자들의 포르노를 구분하는 경계는 매우 모호하다. (이미지 출처: http://www.good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6908)

최근 1~2년 사이 대중매체가 여성 아이돌을 성적 대상화하는 방식은 과거보다 노골적으로 변화했다. 과거에는 덜했는데 지금은 더 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타성에 젖어 ‘뻔뻔해졌다’는 의미다. 마치 매체가 계속해서 한계치를 높이며, 대중이 여성 아이돌의 성적 대상화를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 실험 중인 것처럼 보인다.

여성 아이돌 연예인의 수난은 끝없이 터져나온다. 올초 AOA의 설현은 뒷모습을 촬영한 모 이동통신사의 입간판이 화제가 되면서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뒤태’를 보여달라는 뻔질나는 요구에 응하며 “무보정 몸매”를 인증해야만 했고, 이어 촬영한 바닥에 누운 채 밧줄에 묶여있는 광고가 여성의 신체를 성적 대상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설현은 그로부터 몇 개월 뒤 ‘민족 영웅’인 안중근을 몰라봤다는 이유로 같은 그룹의 지민과 함께 ‘역사 무지’의 뭇매를 맞고 눈물을 흘리며 사죄해야 했다.

에프엑스의 멤버였던 설리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노브라’ 사진과 연인과의 스킨십 사진, 입안 가득 생크림을 머금은 사진 등을 올렸다는 이유로 여성 연예인으로서 부적절한 ‘행실’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 뿐인가. 그간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졌던 징조가 모여 폭발하듯, 상식 이하의 여성관과 인권관을 자랑하는 범죄 수준의 TV 프로그램들이 버젓이 기획되었다.

KBS 설특집 프로그램 <본분 금메달>은 철봉에 오래 매달리기를 하거나 갑자기 바퀴벌레가 튀어나오는 상황에서도 예쁜 얼굴 유지하기, 상냥한 태도 잃지 않기 등 걸그룹의 ‘본분’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테스트를 거치는 과정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가학성’ 논란을 겪었다.

얼마 전 JTBC <잘 먹는 소녀들>은 여성 아이돌을 모아놓고 그들이 먹는 모습을 선정적으로 비추고 중계하는 관음증적 컨셉트로 비난을 받았다.(두 프로그램은 모두 ‘가학적 인권침해’ 논란으로 폐지 결정되었다.) 그 밖의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성 아이돌은 빈번히 가수나 연예인으로서 하나의 주체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애교를 전시하거나 재롱을 부리는 등 남성들만으로 이뤄진 스튜디오의 ‘분위기를 살리는 꽃’으로 여겨진다.

말하자면 지금 한국의 여성 아이돌은 다음과 같은 ‘본분’을 갖출 것을 요구받고 있다.

자아가 없는 어리고 순진한 인형이면서 동시에 섹시해야 하고(섹시하게 보이되 스스로 섹스어필을 하는 ‘까진 여자’가 되어선 안 된다), 역사인식도 대중이 요구하는 방향과 수준으로 갖춰야 하며, 불시에 몸무게 검사를 해도 프로필과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날씬함을 유지하고, 그러면서도 복스럽게 잘 먹어야 한다.

바퀴벌레를 보아도 예쁘게 놀라고, 어떤 상황에서도 상냥함과 친절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즉 ‘명령만 하십시오. 분부대로 하겠사옵니다.’가 여성 아이돌에게 주어진 잔인한 본분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한 인간에 대해 인격을 배제한 채 성적 행위의 대상이라는 시각에 입각해서 생각하는 사고 체계’(위키백과)로 정의되는 ‘성적 대상화’에 다름 아니다.

‘걸그룹의 존재 이유는 성상품화에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애초의 질문으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대답은 자명하다. 한 인간이 걸그룹이라는 이유로 인격을 삭제당하고 그것을 감내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가혹하지만 이 상황에 조금이나마 균열을 낼 수 있는 것은 결국 여성 아이돌 자신의 목소리일 거라고 생각한다.

걸그룹 에프엑스의 엠버는 고정된 여성 이미지 일색인 한국 여성 아이돌계에서 눈에 띄는 ‘톰보이’로 분투해왔다. 고정된 성관념으로 자신을 재단하는 세상의 편견에 맞서 꾸준히 자신의 생각을 발언해온 그녀는 지난해 자신의 ‘중성적 이미지’에 딴지를 걸어오는 안티 팬들을 향해 SNS에 이런 말을 적었다.

“저는 여자와 남자가 하나의 특정한 외모로 제한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움은 모든 모양과 크기로부터 나옵니다. 우리는 모두 달라요. 만약 우리가 모두 같은 멜로디를 부른다면, 어떻게 하모니라는 게 있을 수 있겠어요?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판단하지 말아주세요. 우리가 모두 서로의 차이를 존중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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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에프엑스 멤버인 엠버는 걸그룹의 전형에서 벗어나 자의식을 갖춘 아티스트로 변신한 드문 경우이다. 걸그룹 멤버가 음악적으로 자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바라보는 남성의 관음증적 시선을 자각해야 하고, 그 틀을 깨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기꺼이 더 ‘까진 여자’, ‘나쁜 여자’가 돼야 한다.

지난 3월 발표한 ‘Borders(경계들)’라는 제목의 곡에서는 이렇게 노래했다.

‘엄마는 말했지 한계를 넘어갈 때/ 궁지에 몰려도 절대 무서워하지 말라고/ 그러니까 똑바로 서/ 너의 길을 위해 싸워/ 너의 길을 위해 싸워/ 너의 길을 위해 싸워’

‘SNS 악동’으로 불리우다 결국 과감한 노출사진과 ‘노브라’ 사진, 연인 최자와의 스킨십 사진 등으로 구설수에 오른 설리는 어떠한가. 그녀가 ‘관종’(관심종자) 논란에 굴하지 않고 사진을 올릴 때마다,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심한 욕설은 물론 ‘예전의 설리가 그립다’ ‘과거의 청순한 이미지를 유지하라’고 충고하는 댓글들이 줄줄 달렸다.

그녀의 행동은, (본인의 의사야 어떠했든)연애는 금기시 되며 순수한 소녀로만 머무르기를 요구받는 표백된 아이돌 세계에 날리는 속시원한 ‘카운터 펀치’로 보였다.

엠버와 설리가 한 개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더 많이 자신의 인생을 살기를, 대중의 요구에 괘념치 않는 더 나쁜 여성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많은 엠버와 설리들이 나와 주기를 기대한다.

화, 2016/07/1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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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대표적 ‘트러블 메이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이번에는 북한 김일성의 외삼촌 강진석에 대한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취소 문제로 논란에 중심에 섰다.

박 처장은 지난달 2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강진석에 대한 서훈 심사 부실 문제가 제기되자 “서훈에 연좌제가 적용될 수 없다”고 강변했다. 결과적으로 김일성 일가의 훈장 추서를 옹호한 모양새가 되면서 당장 극우 진영이 반발했다.

보훈처가 당장 상훈법을 개정해 서훈 취소를 추진하겠다고 말을 뒤집으면서, 논란은 이동휘 장지락(김산) 권오설 등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서훈 취소 문제로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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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춘 보훈처장은 지난달 28일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김일성 부모에게도 서훈을 할 수 있냐”고 묻자 “검토해보겠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념보수의 아이콘인 박 처장이 반국가단체 수괴인 김일성의 일족에게 서훈을 부여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김일성 일가인 줄 모르고 훈장을 줬던 보훈처가 현대사의 여러 측면을 내포한 김일성 일가에 대한 서훈 문제를 이렇다 할 공론화 과정 없이 서둘러 결론 내리 것이다. 박 처장이 책임을 면피하는 동안 우리 사회를 다시 한 번 보수ㆍ진보 양 진영으로 찢기고 있다.

언론에 군사기밀 유출로 군복 벗어

지금은 갈등 유발자로 여겨질 정도지만 정치인 박승춘의 시작에는 조직을 위한 자기희생(?)이 있었다. 육사 27기로 1971년 임관한 뒤 줄곧 군인의 길을 걸었던 박 처장은 2004년 7월 ‘서해 북방한계선(NLL) 무선교신 허위보고 파문’ 때 처음 언론의 조명을 받는다.

당시 해군은 무력 충돌에 앞서 남북 함정이 ‘무선 핫라인’을 통해 3차례 교신한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고, 이 같은 사실이 국가정보원과 북측 전화통지문 등을 통해 뒤늦게 확인됐다. 해군작전사령관이 상부에서 사격 중지 명령을 내릴 것을 우려해 의도적으로 보고를 누락한 사실도 드러나면서 논란이 가중됐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진상조사를 지시하면서 군 수뇌부에 대한 대대적 문책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육군 중장)으로 군 정보병과 최고책임자였던 박 처장은 당시 남북 함정간 교신 내용 등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 전달하는 돌출 행동으로 군사기밀 유출 논란을 자처하면서 상황이 급변한다.

박 처장이 사실상 ‘항명’과도 같은 언론플레이에 나서면서 군기문란 사건은 청와대와 군의 대결로 비춰지고, 결국 보고누락 사건은 노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경고’로 일단락된다. 군 기무사령부의 조사를 받게 된 박 처장이 자진전역을 신청해 군복을 벗는 것으로 정치적으로 봉합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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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춘은 2004년 북한이 NLL을 침범했을 때, 남북 함정 간의 교신내용을 언론에 유출한 혐의로 당시 합참 정보본부장직에서 해임되고, 군복을 벗었다. 그리고 곧장 정치권으로 달려갔다. 사진은 1999년 6월 서해 연평도 부근에서 일어난 우리 군함과 북한 군함과의 교전 모습. (사진 출처: http://m.blog.daum.net/spinoza1677/902?categoryId=27)

박 처장이 불명예 전역을 택한 배경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박 처장은 2011년 3월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NLL 교신 기밀유출과 관련해 “정부 어느 조직보다 상명하복하고 계통을 세워야 되는 군인으로서 적절한 행위였다고 생각하느냐”는 당시 박선숙 의원의 질문에 “소신껏 적절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스로는 정보 유출이 불명예가 아니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앞서 2009년 12월 강원 강릉에서 열린 한 안보강연에서 자신이 반기를 든 덕에 “노무현 정권이 ‘군 때리기’에서 ‘군 달래기’로 선회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임기 첫해인 2003년 10월 1일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제병지휘관으로서 국군을 대표해 군 통수권자인 노 전 대통령에 충성을 다짐했던 군인이 1년도 채 안 돼 반기를 든 것을 무훈(武勳)처럼 여겼다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군복 벗자마자 정치권행…극강 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박 처장은 군복을 벗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치권을 향해 나갔다.

전역한 지 오래지 않은 2005년 12월 한나라당 국제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게 발탁된 박 처장은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후보 공모에도 참여하는 등 정치인으로 빠른 속도로 변신해 간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박근혜 후보 캠프에 몸담는 등 박 대통령과의 인연의 끈을 놓지 않는다.

박 처장은 하지만 끝내 스스로 전장(戰場)을 떠나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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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춘 처장은 군복을 벗자마자 정치권으로 달려갔다. 거기서 공직을 얻었고, 공직을 활용해 정권재창출에 기여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윗선의 코드에 맞춰 처신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애국보수를 자처하지만, 결국 출세주의자 아니냐는 의혹이 따라붙는다.

박 처장은 2009년 1월 150여개 보수단체가 참여한 정책협의회에서 “용산철거민 사건은 친북세력과 전장의 전초전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우리사회를 단숨에 이념 대결의 전장으로 치환시켜낸다.

조갑제씨 등 우익단체 거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그의 행보는 18대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거침이 없어진다.

박 처장은 안보강연 등을 통해 “북한은 김일성이 탄생한지 100주년,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오는 2012년을 결정적 시기조성 완성의 해로 선포했다”며 “북한이 전면대결 태세를 선언한 주 전선은 북한인민군의 도발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있는 친북좌익세력”이고 역설한다.

극단적 색깔론과 이념 몰이로 그는 극우 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한다.

이명박 정부이던 2011년 2월 보훈처장으로 임명된 박 처장은 보훈처의 ‘나라사랑교육’ 등을 통해 자신만의 전쟁을 이어간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내용이 포함된 안보교육을 진행하면서 대선개입 논란을 자처했다. 박 처장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된 직후인 2013년 1월 호국보훈안보단체연합회 신년교례회에서는 “성과가 지대했다. 여러분들 뜻하신 바를 이뤘다”며 대선 개입을 시인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그러면서 “제가 2년 동안 이념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선제보훈 정책을 추진했다”고 스스로를 치하했다고 한다.

대선 앞두고 ‘국정원장 영전설’ 돌아

무관 출신이어서일까 박 처장은 늘 당당하다.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에게 큰 빚을 졌기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박 처장이 저렇게 당당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박 처장은 18대 대통령선거 개입 논란에도 흔들림 없이 자리를 보전했다. 5ㆍ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곡 지정 문제로 우리 사회를 두 쪽으로 갈라놓고도 지난 대선 당시 국민통합을 전면에 내세웠던,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문책은커녕 질책도 받지 않았다.

박 처장이 지난 2014년 보훈처가 요구한 장진호 전투참여 미군 기념비 예산 3억원이 삭감되자, 국회 정무위원장실(위원장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을 찾아가 탁자를 내리치고 고함을 치는 등 소란을 피운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청와대라는 뒷배가 없고서야 차관급인 보훈처장이 어떻게 여당 중진 의원에게 큰소리 칠 수 있겠냐고 여당 의원들조차 혀를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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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춘 처장은 역대 최장수 보훈처장일 뿐 아니라 국회에서 3번 탄핵되고도 살아남은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윗선의 절대적 신임이 없고서는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장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사진 출처: http://m.leaders.kr/news/articleView.html?idxno=25125)

더불어민주당ㆍ국민의당ㆍ정의당 소속 의원 166명은 지난달 23일 국가보훈처장 해임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해임결의안은 2013년ㆍ2015년에 이어 세 번째다. 보훈처가 올해 한국전쟁 66주년 기념 광주 지역 시가행진에 제11공수특전여단의 참여를 추진한 게 문제가 됐다. 이 부대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에게 총을 쏜 계엄군이다.

하지만 박 처장은 이번에도 건재하리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5년 6개월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박 처장은 보훈처장 역대 최장기 기록인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박기석 처장의 5년 7개월 재임 기록 갱신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하지만 19대 대통령 선거가 다가 1년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다시금 정치의 계절이 돌아오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처장에게 새 역할이 부여될 수 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기도 하다.

박 처장이 보훈처에서의 소임을 마치고 국정원장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다는 설이다. 박 처장이 군에서 30여년간 대북정보를 담당한 만큼 적임자라는 것이다. 남재준 전 국정원장이 지난 2007년 박근혜 대선캠프 때부터 안보분야 자문역으로 함께 활동했다는 점도 박 처장의 국정원 행을 점치는 근거로 언급된다.

목, 2016/07/1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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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공식 출범식이 열렸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300여 명의 하객들이 행사가 열린 서울글로벌센터 회의장을 가득 메우고, 새로 출범하는 다른백년의 미래를 축하했습니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다른백년 5인 이사들의 토크쇼. 김미경 PD의 사회로 열린 토크쇼에서 5인 이사들은 서로의 인연, 다른백년이라는 조직을 만든 이유, 향후 계획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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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백년 독수리 오형제, 5인 이사들의 토크쇼가 김미경PD의 사회로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동춘 다른백년연구원 원장은 “내가 젊었을 때는 사병, 하사관의 입장에서 장교급 선생님들을 간판으로 모시고 여러 가지 일을 벌였는데, 내가 장교의 나이가 되고 보니, 사병과 하사관을 찾을 수 없다”며 “장교의 입장이 된 뒤에도 사병을 모으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김 원장은 ”앞으로 다른백년에 젊은 학자들, 활동가들이 더욱 많이 모여서 참신한 아이디어와 활동이 분출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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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창립대회에는 300여 명이 하객이 참석해 다른백년의 출범을 축하했다. 하객들이 5인 이사들의 토크쇼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다.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주간은 “30년 넘게 신문기자로 일해오면서 항상 중립적인 자리를 지키려고 노력했다”며 “그런 직업적 태도를 통해 세상을 비판해왔지만, 그런 비판이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지 못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래서 좀 더 적극적으로 변화의 움직임에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팝페라 가수 율리아 신 교수의 노래와 프롬코리아팀의 북 공연은 행사장의 열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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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아 신 교수의 노래(왼쪽)와 프롬코리아 팀의 북 공연으로 출범식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이날 행사는 오후 7시30분에 시작해 9시쯤 마무리됐습니다.

그리고 프레시안에서도 이날 행사를 상세히 다뤘네요. (“그 많던 민주화 운동가들은 어디로 갔나”)

또 홍일표 더미래연구소 사무처장도 다른백년 출범식을 말하고 있네요. (‘시민’과 ‘주민’, 대화가 필요하다)

월, 2016/06/2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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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경향신문(2016. 6. 21)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박정희가 미국의 한국 안보 공약을 신뢰하지 못해 자주국방을 선언했듯이 중국·소련을 완전히 믿을 수 없었던 김일성도 ‘국방에서의 자주’를 추구했다. 게다가 김일성은 미국의 핵위협을 받았다. 작은 나라가 외부 도움 없이 강대국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고자 할 때 무엇이 가장 필요했을까. 핵무기다. 박정희가 원했던 것이기도 하다.

간혹 북한의 핵개발 과정을 김일성의 비핵 논리, 김정일의 핵 모호성, 김정은의 핵무장 강화라는, 지도자 개성의 차이에 따른 비연속선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60년은 핵을 위한 행진의 시기였다. 핵능력이 없을 때는 비핵을, 핵개발 초기에는 모호함을 내세울 때가 있었을 뿐이다.

이렇게 60년 3대에 걸친 간난신고 끝에 온갖 대가를 지불하고 확보한 핵무기다. 그런데 이제 와서 포기하란다고 포기할 리 없다. 그것도 과거 핵정책 실패로 ‘핵 강국’ 북한의 등장에 책임있는 당사국의 말을 들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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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하면 상응하는 댓가를 주겠다는 남한의 제안은 실현가능성이 낮다. 그동안 김씨 3대가 자위권 확보를 위해 핵에 집착해온 역사를 떠올리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북한을 향해 선 핵포기를 주장하는 것은 그저 국내용 여론조성용이거나, 이데올로기적 구호에 불과하다. 이런 시늉으로는 현실에 아무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북한에 불가역적인 핵포기를 요구하려면 먼저 남한이 불가역적인 평화체제를 보장해주는 조치를 해야 한다. 그런데 북핵을 국내 정치에 이용해온 보수세력들이 그럴 수 있겠는가?

비핵화가 우선이라는 한국의 입장은 도덕적 정당성이 있을지언정, 현실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왕이의 비핵화·평화협정 병행론도 북한을 설득하기 어려운데 ‘선(先) 비핵화’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핵실험 이전의 9·19 공동성명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한·미·중·일의 희망사항도 실현될 가능성이 낮다. 북한이 왜 4차례의 핵실험을 없던 일로 하겠는가. 되돌리기에는 늦었다. 현실을 인정, 잠정적 핵동결을 당면 과제로 받아 들여야 한다. 완전한 해결을 삼가야 한다. 완전한 해결은 대결 상태의 지속을 의미하고 대결은 북한에 핵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의 기회를 주게 될 것이다.

북한도 완전한 해결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평화협정 문제를 보자. 북한은 한·미의 선 비핵화에 맞서 선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지만 평화가 진정 북한이 원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평화협정을 포함한 평화체제를 구축한다는 건 대외관계 정상화로 외부 위협이 사라지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내부의 전체주의적 통치를 완화하고 개혁·개방으로 나아갈 것을 요구한다. 그건 김정은 정권의 미래가 불투명해진다는 뜻이다.

비핵·개방·3000, 그랜드바겐, 드레스덴 구상이 거절당한 주요 이유도 북한 체제를 급격히 바꾸는 위험한 대북 제안이기 때문이다. 핵 강국을 자처하는 지금 북한에 평화협정의 가치도 상당히 떨어졌다.

그렇다면, 원칙과 명분으로부터 눈을 돌려 한·미 연합훈련을 잠정 중단하면 핵실험도 잠정 중단하겠다는 북한의 제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핵 문제가 정말 위험한 때는 핵 위협은 높아지는데도 관계가 단절된 채 적대하고 대결하는 상황이다. 북한의 태도가 나아져서가 아니라 북한이 더 위험해졌기 때문에 간여하고 관계를 가져야 한다. 그게 시민의 생명을 책임진 정부의 책무이다.

미국은 그럴 필요가 없다. 대북 제재에만 집중하는 미국은 태평양 건너에 있다. 미국 흉내를 낼 처지가 아니다. 그런데 한국의 기득권세력, 보수층은 한·미 연합훈련에 민감하다. 협상으로 내줘도 괜찮은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주한미군 철수 및 감축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한·미동맹의 신성성을 훼손한다고 믿는다.

사실 이들도 북한과 마찬가지로 평화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적의 지위를 상실하면 북한 주적론에 기반한 정치·사회 구조가 무너진다. 종북 담론이 사라지고,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고, 주한미군이 철수하거나 감축되고, 한·미동맹의 성격이 변한다. 군비 축소로 천문학적인 국방비가 복지비로 전환되면 우리 내부의 냉전구조와 보수 헤게모니가 붕괴된다. 분단 이래 보수 기득권의 물적·정신적 토대가 사라지는 것이다.

사실 북한에 불가역적 비핵화를 원하면 남한은 불가역적인 평화를 제공해야 한다. 그게 공정한 거래일 뿐 아니라, 문제 해결의 방법이기도 하다. 한·미 훈련 중단은 북한에 그런 협상을 하겠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남북이 하나하나 주고받으며 풀어가면 평화도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남한 내부는 북한을 적으로 상정한 법제도, 정책, 각종 상징으로 얽혀 있다. 핵과 평화가 교환가능한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보수세력이 내줄 게 별로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내부 평화체제가 구축되지 않는 한 평화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문제를 감추고자 한다면 방법이 있기는 하다. 비핵화의 당위성, 통일의 필요성과 같이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가능한 의제로 시선을 모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 비핵화, 통일만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비핵화와 통일은 그렇게 당면한 위험의 해결책이 아니라 하나의 이데올로기 혹은 도그마가 되었다.

월, 2016/07/1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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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경향신문(2016. 8. 23)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낯선 풍경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반대라는 기존 입장을 과감히 폐기할 때였다. 당내 분란이 일지 않았다.

작은 차이로도 갈라지고 그 때문에 집권으로부터 멀어져도 신경 쓰지 않던 더민주였다. 이제는 상호 이견을 존중하며 당의 목표 아래 결집하는 법을 터득한 것일까? 의원들이 모두 신중해졌다.

이게 총선 이후 4개월간 더민주가 보여준 변화의 전부다. 더민주는 총선에 패배한 박근혜 정권이 온갖 자충수를 두며 억지를 부리는데도 소 닭 보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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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추미애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됐다. 추 대표는 박근혜정부의 퇴행을 막으면서 야당의 존재감을 부각시켜야 하고, 내년 대선 승리의 토대를 마련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됐다. 그럴려면 지금처럼 최대한 실책을 줄이려는 소극적인 행보로는 안 될 것이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이 무심함 혹은 신중함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혹시 열린우리당 트라우마 때문일까?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에서 대승한 뒤 조심하자며 몸을 사렸다. 이에 권력을 줬는데도 왜 개혁을 하지 않느냐는 불만이 지지층에서 비등했고, 놀란 열린우리당은 느닷없이 4대 개혁입법을 들고나왔다. 그러자 보수세력이 들고 일어섰다. 당시 보수는 총결집했고 정권은 위기에 빠졌다.

양극단을 오락가락하다 정권을 잃은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부작위의 신중함이 아니라 둘 사이의 균형을 잡는 적극적 행동이 필요하다.

대안 없는 반대의 공허함은 이명박 정권 때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그런데 대안은 야당이 개혁입법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본래 야당이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시민들도 그걸로 야당을 평가하지 않는다. 대신 야당이 어떤 의제로 집권세력과 갈등하고 타협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야당이라면 정권 비판과 견제를 소홀히 해선 안된다. 특히 박근혜 정권처럼 무슨 사고를 칠지 알 수 없는 권력을 견제하지 못해 시민을 고통에 빠뜨린다면 무능 야당으로 찍혀 다음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정권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으면 단호히 맞서야 한다. 미국의 대선후보 경선,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확인했듯이 기성 정치에 대한 반감은 세계적 경향이다. 불평등이 심화된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예방적 차원에서라도 야당은 기득권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나서야 한다.

그런데 더민주는 정권 견제를 똑똑히 하는 것도, 기득권을 깨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의제 선점으로 여론을 주도하고 있지도 않다.

사드 문제가 부상할 때 한반도 평화 구상을 내놓기는커녕 박 대통령을 추종하는 얼빠진 태도, 노동자가 삭제된 당 강령을 내놓았다가 우경화 의심을 받자 철회한 섣부른 행동, 청와대 서별관회의 청문회를 한다면서 핵심 증인을 빼주려는 허튼 선심이 그렇다.

물론 더민주가 부드러운 야당으로서 중도·보수층으로부터도 호감을 얻으려 하는 것은 평가받을 일이다. 하지만 김종인식의 돌발적 노선 전환 방식은 곤란하다. 그런 보수층 유인책은 정체성 논쟁 촉발이라는 반작용을 불러와 결국 효용성을 떨어뜨린다.

보수층 유인을 위해 기성 체제의 틀을 받아들이는 전략의 이점 역시 야당을 또 다른 기득권으로 인식하는 역효과에 의해 상쇄된다. 만일 정권교체가 하나의 기득권에서 다른 기득권으로 교체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불행한 일이다.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야당의 대선 승리는 또 하나의 사기극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노선 전환이 아닌 노선 확장을 해야 한다. 가령 종북, 안보무시, 성장소홀 등의 공세를 피할 수 있는 포용적 정책을 내놓는 것이다. 그래야 반대와 대안, 기득권 타파와 지지기반 확장전략을 적절히 조화시킨 똑똑한 배합이 가능하다.

이처럼 적극적인 조화와 균형을 이뤄가는 과정은 야당의 양보할 수 없는 가치와 목표, 현 집권세력보다 나은 정책과 리더십을 잘 드러내줄 것이다. 그 결과, 야당 선택은 대단한 결단이나 모험이 아니라, 아이스크림 고르기와 같은 부담 없는 행위로 바뀔 수 있다.

하지만 당 지도부는 승리를 안겨준 현재의 판을 흔들지 않는 게 좋다고 믿어서인가, 너무 소심하다. 말조심, 몸조심은 좋은 일이다. 다만 그건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상대 실책으로 잭팟을 터뜨린 총선 때의 행운이 대선 때 또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균형은 여건이 유리해질 때를 기다리는 안이함이 아니라, 정치적 기회를 만드는 주도적 행동에 의해 이루어진다.

혹시 더민주 집권 자체가 개혁인데 무슨 대단한 준비가 필요하냐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사실 두 보수정권의 퇴행을 고려하면 야당이 어떻게든 집권하기만 하면 지금보다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건 야당이 정권을 다 잡은 듯한 발상에서 나온 것 아닌가?

여기에서 우리는 문제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간다. 어떻게 해야 야당이 집권할 수 있는가? 조용한 집권? 꿈도 꾸지 마라.

월, 2016/08/2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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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말 공개된 ‘이정현 녹음파일’은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보도지침을 연상시킨다 (이정현-김시곤 통화내용). ‘신 보도지침’으로 불리는 이유이다.

2014년 세월호참사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김시곤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로 보도에 개입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해경비판 보도에 항의하며 특정보도를 빼달라고 강요하는 목소리가 욕설까지 그대로 생생하게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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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으로 온 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을 때, 당시 이정현 홍보수석은 단 한사람의 심기만을 살피고 있었다. “하필 (VIP가) KBS를 보셨다”는 이유로 당시 김시곤 KBS보도본부장에게 보도방향을 바꾸라고 윽박질렀다.

이와 함께 공개된 ‘김시곤 비망록’(업무 일일기록)에는 당시 길환영 KBS 사장의 보도개입 사례도 드러나 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과 국정원 댓글 대선개입 사건을 뒤로 미루라는 ‘지시’이다.

게다가 청와대 앞뜰의 아리랑 공연을 맨 뒤에 보도한 것은 문제라며 대통령 동정은 뉴스시작 20분 전에 편집해달라는 구체적 지시사항까지 기록돼 있다.

사실상의 ‘보도지침’

이에 대해 청와대와 여당은 ‘보도협조를 요청하는’ 홍보수석의 통상업무라고 강변하고 나섰다. 공영방송의 편집 및 편성에까지 시시콜콜하게 간섭하는 것이 통상적 활동이라면, 현재에도 청와대가 언론사에 ‘은밀하게’ 보도지침을 시달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전화를 받은 사람이 압박감을 느꼈다면 지시 이상일 수밖에 없다. 성적 농담에 불쾌감을 느꼈다면 성희롱으로 판단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군사정권 시절에도 정부는 보도지침이 ‘보도협조 사항’이며, ‘국내외의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 고위관계자들의 언론관이 군사독재정권과 다를 바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만 보도지침을 어겼을 경우 안기부에 끌려가 구타에 시달리거나 언론사를 폐쇄하겠다는 물리적 폭력과 협박 공갈만 사라졌을 뿐이다. ‘저강도 보도지침’이라고나 할까.

보도지침
보도지침이란 5공 당시, 문화공보부가 신문사와 방송사에 은밀히 지시한 보도 지시사항을 말한다. 당시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가 잡지 ‘말’에 이 사실을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사진 출처: http://dvdprime.donga.com/g2/bbs/board.php?bo_table=comm&wr_id=9836807)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이처럼 보도지침이라는 유령이 활개를 치고 있는 이유는 한마디로 불합리한 공영방송의 지배구조(거버넌스) 때문이다.

현재 KBS 이사회는 여당 추천 7명과 야당 추천 4명 등 모두 11명으로 구성돼 있다. 사장은 이사회에서 추천하여 대통령이 임명한다. 실질적으론 여당 추천 이사와 사장 임명은 청와대의 의중이 크게 반영된다.

현 고대영 사장은 청와대에서 낙점했다는 강동순씨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낙하산 사장’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공영방송 지배구조…정권에 종속된 방송 만들어

그러나 현행 방송법에 이사회의 정당별 할당 근거는 없다. 추천기관(방송통신위원회)과 임명권자(대통령)만 명시돼 있을 뿐이다. 이런 상태에서 국회의 관행에 따라 여당과 야당에 이사 추천권을 할당하여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법적 규정도 없는 상태에서 국회가 이사회를 구성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이사의 자격도 ‘각 분야의 대표성’이나 ‘방송에 관한 전문성 및 사회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한다는 추상적 개념으로 규정돼 있을 뿐이다.

이러다 보니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KBS의 지배구조는 국민을 도외시한 채 정치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방송’을 내세우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사장은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이사진의 다수를 추천하는 여당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이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을 추천한 정당을 무시하기 어렵다. 따라서 사장 임명 제청이나 수신료 인상안 의결 등 중요사안에 대해서는 여야 추천 이사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

필자가 야당 추천으로 지난 2013~2015년 이사로 활동한 경험을 보더라도 그렇다. 세월호 참사 당시의 KBS 내부사태로 인한 길환영 사장 해임 제청안과 후임사장 임명 제청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의결사안은 7대4로 귀결됐다. 의결은 과반출석 과반찬성으로 가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7대4 이사회’라는 자조섞인 목소리마저 나왔다. 여당 추천 이사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KBS의 경영은 청와대 의도대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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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이사회는 총 11명 중 여당 추천 인사가 7명을 차지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안이 7대 4로 의결된다. 이런 식으로 정권의 의중에 방송에 그대로 관철되는 것이다. 사진은 KBS이사회 모습. (사진 출처: 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56791)

KBS 사장의 권한은 매우 막강하다. 보도본부장 등 집행 임원은 물론, 자회사 사장과 임원들의 인사권을 장악하고 있다. 보도·제작 책임자들의 임명과 해임도 자유롭게 행사한다. 직원들의 인사이동은 말할 나위도 없다.

사장 임명권자가 대통령이다 보니 KBS 전체 임직원은 정부의 통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재선을 노리는 사장은 더욱 권력만 쳐다보며 ‘알아서 기는’ 행태에 익숙해질 것이다.

비망록에는 김 국장이 청와대의 부탁을 완곡하게 거절하자 이 수석이 직접 길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후 길 사장은 보도 관련자들을 사장실로 불러 모아 편집회의를 주재하며 해경비판 보도를 자제하라고 지시했다.

보도는 엉뚱한 방향으로 왜곡됐다. 명백한 방송법 제4조 2항(편성개입 금지) 위반이다. 징역 2년이하 벌금 3,000만원에 처할 수 있는 엄중한 위법사항인 셈이다. 법원도 길 사장의 해임무효청구 소송에서 사장의 보도개입을 인정했다.

더 나아가 김시곤 국장은 “청와대의 지시로” 길 사장이 자신에게 사표를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최근 KBS가 사드관련 해설보도와 관련하여 해설위원을 보복성으로 인사이동하거나, ‘이정현 녹취록’에 침묵했다고 비판한 자사 기자를 제주도로 유배시킨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사장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이사회마저 여당 편향이다. 게다가 이사들은 모두 비상임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정기 이사회에서 적당히 지적하고 넘어갈 따름이다. 지적사항은 지키지 않아도 그뿐이다.

이사회 독립성 확보 위한 법 개정 필요

앞서 살펴본 것처럼 현행 KBS 지배구조로는 일상화한 정권의 보도개입을 차단할 수 없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과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이사회 구성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명실공히 수신료를 내는 국민의 대표로 이사진을 구성해야 하며, 이사회가 정치적 종속상태에서 벗어나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정치적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사장으로 선임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8년 이후 지속돼온 방송법 개정논의는 아직도 무성하기만 하다. 새누리당은 영향력이 가장 높은 KBS를 손에서 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논의조차 가로막고 있다. 야당들은 의원수에 밀려 어쩔 수 없다고 발뺌한다.

이제 20대 국회는 야권이 과반이상의 의석을 점하고 있다. 이러한 변명을 설 땅을 잃게 됐다. ‘신 보도지침’ 파문으로 여론의 힘을 얻어 가속도가 붙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야당도 정권을 잡으면 KBS를 장악해야 한다는 속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방송법 개정이 올해 안에 이뤄질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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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국민의 방송’을 자처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믿는 사람은 없다. KBS가 오직 그분을 위한 ‘김비서’ 방송이라고 자조하는 목소리도 많다. KBS를 진정한 국민의 방송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20대 국회에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이기도 하다.

언론시민단체가 제안해 제1야당인 더불어 민주당이 마련한 방송법 개정안의 주요내용은 이사 및 사장 선임 방식의 개선이다.

기존 11명인 이사를 13명으로 늘리고 추천방식(여당 7명, 야당 6명)을 변경하자는 내용이다. 사장선임 과정에서도 사장후보추천위원회를 거쳐 이사회 3분의 2이상의 동의를 얻는 특별다수제를 도입하는 것이 핵심내용이다.

이밖에 편성위원회의 법제화, 이사회 회의록 공개규정 강화, 이사의 임기보장 및 정치활동 금지 명문화 등이 주요골자이다.

이사추천을 국회로 일원화함으로서 과연 정치적 독립성과 국민의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는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다른 뾰족한 방안을 찾기 어렵다. 따라서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국회에서 추천하도록 간접방식을 활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추천과정과 사유는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사회의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2명정도의 상임을 확보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장 임기는 단임으로 하되 1~2년 늘리는 방안도 거론된다. 연임을 위해 정치권력에의 종속을 자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KBS가 공영방송으로서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편성위원회와 시청자위원회 등 감시기구의 활성화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편성위원회의 구성을 법제화하고 시청자위원 선임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도 마련돼야 한다. 특히 뉴스보도 및 프로그램 제작의 독단을 방지하기 위해 보도 및 제작 책임자 선임과정에 종사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장치를 도입할 필요도 있다.

(※편집자 주: 언론 및 학계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논의는 다음의 기사 “잘못된 지배구조로 방송의 정권 예속화 극심”  참조)

방송법 개정…20대 국회 첫번째 과제 돼야 

이번 ‘신 보도지침’ 파문은 청와대의 보도개입은 물론, KBS 사장을 통한 톱다운 방식의 보도개입이 일상화해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KBS의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정치적 중립성 확보가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현재까지 언론계 학계 시민단체 정치권에서는 백 여차례 지배구조개선 방안이 논의됐다.

이제는 이를 보완 정리한 방송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등장했다.

방송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서는 방송통신위원회 및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규제기구의 구성 및 운영에 대한 제도 개선도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KBS 이사회와 마찬가지로 방통위는 3대2, 방심위는 6대3으로 여당 추천 위원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폭넓은 의와 사회적 합의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이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 확보는 민주주의의 기본명제이다. 언론이 바로서야 나라도 바로설 수 있기 때문이다.

화, 2016/07/19-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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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야미사키는 홋카이도의 북쪽 끝이다. 일본 최북단임을 알리는 비석이 있고, 그 인근에 ‘기원의 탑’이 있다. 사드 배치 결정으로 나라가 시끄러운 요즘 그 ‘기원’을 다시 생각한다.

1983년 9월 미국 앵커리지를 경유해 서울로 오던 대한항공 007편 여객기가 정상 항로를 이탈하여 러시아 상공에서 소련 공군의 공격으로 격추됐다. 이 사건으로 탑승자 269명 전원이 사망하고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기원의 탑은 이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탑이다.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을 보며 대한항공 007편이 떠오른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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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ttp://blog.daum.net/mac315/15709816)

미사일 방어는 공격용이다

창은 상대방을 찌르는 공격무기이고 방패는 몸을 보호해주는 방어무기이다. 하지만 방패가 항상 방어무기로만 쓰이는가?

만약 두 무사가 창으로 서로를 겨누고 있어 어느 일방도 상대를 찌를 수 없는 상태에서 어느 한 편만 방패를 득템하게 된다면? 그 방패는 상대방의 창을 무력화시켜 자신의 창이 상대방을 찌를 수 있게 해준다. 방패는 공격을 가능하게 해주는 수단, 공격무기의 한 부분이 된다.

미사일 방어가 공격 수단이라는 역설은 이렇게 쉽게 설명된다.

미국은 이 이유 때문에 소련이 1966년부터 모스크바 주위에 구축하기 시작한 반탄도 미사일 체계 (이제는 미사일 방어체계라 불린다)를 우려했다. 미 국무부 역사가 솔직하게 기술한 것처럼 “반탄도미사일 체계는 일방이 선제타격을 가하고 나서 상대방 미사일을 요격하여 상대방의 보복을 불가능하게 한다.”

소련이 선제공격을 하고도 보복을 받지 않는다면 선제적으로 칠 유혹은 커진다. 물론 소련도 미국의 미사일방어에 대해 같은 우려를 갖고 있었다. 상호억제의 상황에서는 방어가 공격이라는 역설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과 소련/러시아는 핵무기라는 ‘창’을 보유한 이래 미사일 방어라는 ‘방패’를 확보하기 위해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제한한 반탄도 미사일(ABM) 조약도 양국의 미사일 방어체계 개발을 중단시키지 못했다. 튼튼한 ‘방패’를 구축하여 선제공격 능력을 확보하려는 유혹을 물리치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FILE--President Nixon and  Soviet Communist Party leader Leonid Brezhnev afix their signatures to the Strategic Arms Limitations agreement in Vladmir Hall of the Kermlin, Moscow, in this May 26, 1972, file photo. Offering a ``clear and clean break from the past,'' Bush denounced the 29-year-old arms control treaty with Russia as a Cold War relic, Tuesday May 1, 2001, but softened his remarks by pledging to reduce U.S. nuclear arsenals.  (AP Photo/File)
FILE–President Nixon and Soviet Communist Party leader Leonid Brezhnev afix their signatures to the Strategic Arms Limitations agreement in Vladmir Hall of the Kermlin, Moscow, in this May 26, 1972, file photo. Offering a “clear and clean break from the past,” Bush denounced the 29-year-old arms control treaty with Russia as a Cold War relic, Tuesday May 1, 2001, but softened his remarks by pledging to reduce U.S. nuclear arsenals. (AP Photo/File)

유럽 미사일 방어(MD)를 둘러싼 미국-러시아 갈등

1980년대부터는 미국이 미사일 방어체계 연구와 배치에서 소련을 능가했다. 수소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워드 텔러가 대대적인 미사일 방어구상을 역설했고, 레이건 대통령이 전략방위구상 (통칭 ‘별들의 전쟁’)으로 구체화했다. 수백억 달러를 투자했어도 성과가 없었고, 이 구상을 시작한 원인인 소련이 붕괴했어도 미국의 미사일방어 개발은 중단되지 않았다.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아예 공식적으로 반탄도 미사일 조약 탈퇴를 선언하고 미사일 방어체계 구축에 박차를 가했다. 민주당의 클린턴 대통령도, 오바마 대통령도 이 프로그램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추진하던 유럽 지상배치 미사일 방어계획 대신 단계적 신축적 접근방법 (EPAA)를 2009년에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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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slideshare.net/RUSIEVENTS/mr-jaganath-sankaran)

1단계에서는 이지스급 구축함에 SM-3 IA 요격미사일 배치하고, 터키에 EPAA 레이더를 설치하는 한편, 미국과 유럽의 미사일방어체계를 통합했다.

2단계에서는 지상배치 이지스 체계를 루마니아에 설치했고, 3단계로 2018년까지 지상배치 이지스 체계를 폴란드에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3단계에서는 일본과 공동 개발중인 개량형 요격미사일 SM-3 IIA를 배치할 계획이다.

러시아는 미국 미사일 방어체계들이 러시아의 ‘창’을 무력화시켜 미국의 선제타격을 가능하게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2016년 5월 루마니아에 배치된 미국의 지상기반 이지스 미사일 방어체계가 방어용이 아니라 미국의 전략 핵군사력의 일환이라며, “러시아 안보에 대한 점증하는 위협을 무력화시킬 방안을 고려하도록 강요받고 있다”고 반발했다.

오바마 정부가 이란 핵미사일 위협을 EPAA의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2015년 이란 핵협상 타결에도 불구하고 EPAA를 계획대로 배치하는 것은 그 의도가 러시아 ‘창’의 무력화에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군부는 지상기반 이지스 체계에 사용되는 MK-41 발사대가 토마호크 유도미사일과 같은 중거리 미사일 발사에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미 지중해와 북해 등에 유도미사일을 배치하고 있는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가 루마니아나 폴란드에서 유도미사일을 발사하면 러시아를 타격하는데 10분도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또 현재 지상기반 이지스 체계에 배치된 요격미사일은 SM-3 IB이지만 개량형 IIA로 교체되면 러시아 ICBM을 요격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에 반발해 미사일 방어체계를 무력화시킬 미사일들을 배치.개발하고 있다. 또 일부 러시아 분석가들은 “유럽에 배치된 지상기반 이지스 체계는 러시아 미사일이 목표물이 될 것이 100% 확실하다”며 최근 시리아에서 사용된 칼리브르급 중거리 유도미사일이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 수호이 Su-34 전폭기가 사용될 수도 있다. 동북아시아에서 사드를 둔 미·중 대립은 유럽에서 벌어진 미·러 갈등의 재판이다.

일본: MD 구실로 ‘보통국가화’ 추구

일본은 아시아에서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가장 적극적이다. 섬나라라는 특성상 북한이나 중국 미사일 위협에 대비하자는 현실적 욕구가 있기 때문이고, 실제 북이 1998년 대포동 시험 발사 이후 일본의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는 빠르게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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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은 2003년 미사일 방어체계 획득을 결정했고, 주일미군이 2006년 오키나와에 패트리어트 체계를 배치한데 이어, 일본 방위성도 2010년 패트리어트 체계를 배치하기 시작, 2012년까지 PAC-3를 7곳에, SM-3 요격미사일을 장착한 이지스급 구축함을 네 척 배치했다. 앞으로 이지스 체계의 성능을 향상하고 이지스급 구축함을 여섯 척으로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일본도 ‘방어’만을 위해 미사일 방어체계에 매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은 미사일 방어를 매개로 미국과의 전략적 공조를 강화하는 한편 군사력을 행사할 수 있는 ‘보통국가화’를 실현하고 있다.

우선 미사일 방어체계 미·일 협력을 보면, 일본 정부는 2004년 국가방위프로그램 가이드라인 (NDPG)에서 미사일 방어체계 미·일 공동개발·생산 계획을 수립한데 이어 2005년에 미국과 공동으로 차세대 미사일 요격체계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일본은 지상 요격미사일 및 이지스 체계를 미국과 합동 시험하는 등 미국과 협력하고 있다. 특히 이지스 체계의 신형요격미사일 SM-3 IIA를 미국과 공동개발하고 있다. 심지어 2011년 자위대는 미사일 방어 사령부를 자위대 시설에서 미군 공군기지로 이전하기도 했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와 일체화된 시스템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민주당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2010년 NDPG이 미사일 방어 강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 자민당은 정권을 재장악한 후 2013년 이를 개정, 미사일 방어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미사일 방어체계 강화에서 불거진 문제가 ‘집단 자위권’이었고, 아베 내각은 일본이 미국이나 미군을 겨냥한 북한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2014년 헌법 해석을 수정했다.

또한 미국과 공동개발하고 있는 SM-3 요격미사일의 유럽과 한국 (?) 등 배치를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등의 명분을 내세워 무기 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해온 무기수출 3원칙을 47년 만에 개정, 무기수출을 통한 안전보장 강화와 국제 기여라는 ‘방위장비이전 3원칙’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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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북의 ‘미사일 위협’을 구실로 하여 실질적 미사일 방어능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미사일 방어를 다시 구실로 하여 무기수출금지를 완화하고 평화헌법의 해석을 수정하여 일본을 ‘보통국가화’하고 있다. 2015년 말 안보관련 법제를 채택하여 군사력을 해외에서 행사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한데 이어 헌법 개정으로 그 정점을 찍을 태세이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이 미일동맹의 틀 안에서 취해지고 있지만, 일본은 이 틀에서 벗어날 준비도 조용히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정보위성 등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독립시킬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일본 의회는 2008년 기본우주법을 통과시켜, 우주를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하겠다는 1969년 의회 결의안을 무력화시켰다. ‘평화적 목적’을 방어적 군사 작전으로 확대해석했던 것에서 한 걸음 더 나가, 기본우주법은 미사일 방어를 포함한 군사작전을 지원하기 위한 인공위성의 생산, 보유, 작동을 허용한다.

이에 따라 일본 자위대는 통신위성뿐만 아니라 정찰위성 및 조기경보위성, 추적위성 등을 획득할 계획이다. 2014년 조인된 한미일 정보공유협정이 단기적으로는 일본의 미사일 방어능력을 향상시키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독자적 미사일 방어능력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러시아: MD 반대로 결속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이 치열한 핵군비경쟁을 벌이는 동안 중국은 한 발 물러나 있었다.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및 이를 투발할 대륙간탄도미사일은 개발했지만 핵선제불사용과 최소억제전략을 견지했다.

이에 따라 핵탄두 250기를 보유하고 있으나 이를 실전 배치하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은 보유 핵탄두 7300기이고 이중 1920기를 실전 배치하고 있다.)

물론 중국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냉전시기부터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인공위성 파괴 미사일 시험 및 외기권 파괴 미사일 시험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아직 미국과 상대가 되지 않는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가 중국의 핵전력을 상대적으로 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는 전략균형 상태인 것이다.

한국에 사드 체계가 배치되면 그 레이더로 랴오닝성과 안후이성의 ICBM을 감시해서 알래스카의 지상배치 미사일방어체계로 요격할 수 있다. 윈난성이나 칭하시성의 ICBM을 공격해서 무력화시키면 중국은 무장해제되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에 놓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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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m.blog.daum.net/tsc99900jyn07hakboen/14604706)

 미국의 ‘방패’가 자국의 ‘창’을 무력화시켜 전략균형을 붕괴시키고 미국에 선제공격 능력을 허용할 수 있다는데 중국과 러시아의 이해가 일치하는 것이다.

이미 양국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운영에 대한 불편함, 미국의 중동 정책에 대한 비판, ‘민주주의 혁명’이라는 색깔혁명이 그루지야, 우크라이나에 이어 키르기즈스탄과 우즈베키스탄까지 영향력을 확대되는데 대한 우려 등을 공유하고 있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의 강력한 요청으로 나토가 러시아 접경국에 최대 5000명에 달하는 병력을 배치하는 것을 2차대전시 나치 독일의 러시아 침공작전인 바바로사 작전에 비유하고 있는 러시아는, 오바마 정부의 ‘재균형 전략’을 대중국 포위 전략으로 의심하는 중국과 전략적 이해를 같이 하고 있는 상태였다.

6월 하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공통의 전략적 이해를 ‘세계 전략적 안정을 강화할 데 대한 공동성명’으로 표명했다. 이 성명에서 전 세계에 미사일 방어체계를 일방적으로 배치하는데 우려를 표명하고 구체적으로 “유럽의 지상기반 이지스 미사일 방공망 배치 및 동북아시아의 사드 배치에 강력한 반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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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미사일 방어체계는 세계 전략적 안정을 해칠 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 국가들의 전략적 안보 이해도 손상시킨다는 것이다. 두 정상은 “그들[미국과 동맹]은 공공연하게 각국 안전을 무시하고 타국의 안전을 희생시켜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6월23일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타슈켄트 선언’에서 중·러를 비롯한 회원국 정상들이 “개별국가나 혹은 일군의 국가들이 다른 국가의 이익을 고려치 않고 일방적이고 무제한적으로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은 지역 안정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러의 입장은 일시적이거나 국지적인 것이 아니라 일관적이고 전략적이다.

한편 한미의 사드배치 결정 직후 중국 외교부는 성명에서 “강렬한 불만과 견결(堅決)한 반대”를 표명했는데, 주목할 점은 북의 핵시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 사용하던 ‘견결한 반대’라는 표현에 ‘강렬한 불만’을 추가했다는 것이다.

즉 한국의 사드 배치는 북의 핵시험 보다도 더 불만스럽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중국 정부가 일관되게 유지하던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와 안정,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이라는 세 가지에 모두 배치될 뿐만 아니라, “지역 정세를 복잡하게 하는 행동”이고 “중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에 손해를 주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대한항공 007편 사건은 미소 MD경쟁의 희생양

일찌감치 미사일 방어체계를 개발하기 시작했던 소련은 1970년대에 ‘다르얄’형 조기경보 레이더를 배치한 것을 시작으로 총 7기의 레이더를 배치하여 소련을 감싸는 레이더망을 구축하려 했다. 이 야심찬 계획은 소련이 붕궤할 때까지 완성되지 못했고, 1980년대에는 오히려 미·소 군비경쟁을 가속화하는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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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그라드의 미터 파장 레이더 《보로네즈-M》 은 모로코에서 스피츠버겐 제도, 미 동부해안의 공간을 감시합니다. 이르쿠츠크 근교에 위치한 유사한 스테이션은 미 서부해안에서 인도까지의 공간을 감시합니다. UHF 파장 레이더 스테이션이 칼리닌그라드와 아르마비르 (2개) 에서 가동되고 있습니다. 스테이션 《보로네즈》 는 알타이, 보르쿠타 근교, 오렌부르크, 크라스노야르스크 크라이에서 건설되고 있습니다. 옴스크 지역에도 계획되어 있습니다. (사진 출처: https://milidom.net/news/26310)

특히 크라스노야르스크에 설치하려던 레이더는 ABM조약을 위반한다는 의심을 받았다. 이 레이더 건설이 미 정보위성에 포착된 것이 1983년 6월이었고, 우연이었는지 그 3개월 후 대한항공 707호가 사할린 상공을 비행했다. 정체미상의 비행기가 민감한 극동 영공을 침범하자 소련은 이 지역을 감시할 수 있는 모든 레이더망을 가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 결과 미국 정보망이 소련의 레이더망에 대해 파악한 정보는 디펜스저널의 편집자 어니스트 보크만이 ‘노다지’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이 정보의 ‘노다지’에 근거해서 소련의 방공 레이더망에 구멍이 있어서 ABM조약을 위반하면서까지 크라스노야르스크에 레이더를 설치하고 있다는 미국의 의심은 더 확실해졌다.

결국 소련 당국도 이를 인정, 1989년 이 시설을 철거했다. 대한항공 707편은 냉전시기 치열하게 벌어졌던 미사일 방어 체계 경쟁 사이에 걸려든 희생양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새로운 백 년? 돌아온 구한말?

온 나라가 세월호 비극으로 충격에 빠져있던 2014년 4월 25일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안정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박 대통령의 제안에 따라” 전작권 전환 시기를 재논의하기로 했고, 그 반대급부로 “미사일 방어 체계 상호운용성 강화를 비롯한 동맹 현대화”에 합의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당시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응 역량 강화’를 명분으로 제시했다. 이 합의는 46차 한미안보협의회의에서 구체화됐다. 한.미 국방장관은 ‘조건에 기초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행을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하여 전작권 한국 인수를 연기하는 동시에, ‘포괄적 미사일대응작전개념’을 채택하여 “북한의 핵·WMD 및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한 포괄적인 동맹능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긴밀히 협의”하기로 합의했다.

2015년 제47차 한미안보협의회의는 “북한의 핵·WMD 및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한 포괄적인 동맹능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긴밀히 협의”하겠다는 합의를 그대로 되풀이했다.

지난 8일 한미 국방당국은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하면서 “북한의 핵과 대량살상무기(WMD),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한 방어적 조치라며 이를 정당화했다. 사드 배치 결정의 정치적 근거가 47차 한미안보협의회의 -> 46차 한미안보협의회의 -> 2014년 한미 정상회담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이는 2014년 정상회담 후인 12월 한·미·일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관한 3자간 정보공유약정’에 서명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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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news.joins.com/article/20352137)

미사일 방어체계를 검토하면서도 드러나듯이 미·일·러·중은 ‘창’과 ‘방패’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 불꽃 튀는 경쟁판에서 전작권을 반납하고 그 대가로 미사일 방어라는 미국의 ‘방패’를 첨단에서 들어주겠다고 나섰다.

그 덕분에 한반도 전체가 ‘대한항공 707편’의 운명을 되풀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는 지나친 것일까.

“소련에 속지말고, 미국놈 믿지말고, 되놈은 되나오고, 일본은 일어나니, 조선사람 조심하세.” 해방 직후 조선반도에서 불렸던 동요다.

유럽에서 17세기 웨스트팔리아 조약에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근대적 주권국가 개념이 한반도에서는 아직도 요원하다. 국가와 민족은 분단되어, 남쪽은 주권을 스스로 반납하며 그 댓가로 강대국 전략 경쟁 불바다에 섶을 지고 뛰어 들고 있고 북쪽은 주권을 과잉 행사하며 강대국의 전략 경쟁에 빌미를 주고 있다.

한반도에서 새로운 백 년은 근대적 주권 개념을 21세기에 맞게 구현하는 지혜를 요구한다. 그런 지혜야말로 21세기를 다른 백 년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출발점은 70여 년 전 불렀던 동요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월, 2016/08/0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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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에게 방해가 될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이슨 본>이 9년 만에 돌아왔다. 2007년 <본 얼티네이텀>이후 9년만에 제이슨 본이 돌아 온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 본 시리즈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2012년 호크 아이 제레미 레너가 주연을 맡고 토니 길로이 감독이 연출을 맡아 <본 레거시>가 개봉했지만, 본은 여전히 우리에겐 맷 데이먼이었다.

맷 데이먼은 단순히 배우나 캐릭터가 아니라 제이슨 본 그 자체로 여겨졌던 셈이다. 그런 맷 데이먼이 다시 제이슨 본으로 돌아왔고, 제이슨을 제이슨 답게 연출했던 폴 그린그래스가 다시 연출을 맡았다. 원래 콤비가 되돌아온 것이다. 기대감은 여기서 증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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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째 본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원조 제이슨 본인 맷 데이먼이 주연을 맡았다. 이 시리즈의 지지자들의 기대감이 크다. 이 시리즈가 선보인 자연주의 액션은 어느덧 액션영화의 문법이 돼버렸다. 위 왼쪽부터 개봉연도 순으로 2002, 2004, 2007, 2012년..그리고 이번 ‘제이슨 본’

본 시리즈는 액션영화의 패러다임이다. 즉, 과거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교체한 기념비적 작품이다. 그래서 본 만의 시그니처 액션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가령, 생활주변용품을 활용한 일상 액션이랄지, 카메라가 배우의 액션 동선 뒤를 따라가는 촬영기법같은 것들은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고안해내 어느새 21세기 액션 영화의 기본적 동선이 된 것이기도 하다.

영화가 개봉하자, 이번엔 또 어떤 새로운 액션 체위가 등장할까 기대와 궁금증이 높아졌다. 개봉 이후 3일 정도가 지나자 들려오는 세간의 평은 이렇게 요약된다. 재미있다.

하지만 예전만 하지 못하다. 예전만하지 못하다를 좀 더 풀어보자. 제이슨 본이 나이를 먹었더라라는 소회가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본 슈프리머시>나 <본 얼티네이텀>같은 새로운 액션 체위의 제안은 없더라, 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이 반응은 좀 더 나아가면 실망이라는 단어와 가까워진다. 본 시리즈라서 굉장히 기대했는데, 역시 세월이 지나 4번째이야기까지 되다보니 새로울 것 없더라, 프랜차이즈 영화들의 울궈먹기와 별 다를 바 없더라, 라는 실망 섞인 평가 말이다. 그런데, 난 여기서 좀 더 적극적인 옹호를 하고 싶어진다.

<제이슨 본>에서 그 실망은 현격히 줄어든 일인살상무술의 향연에서 비롯된다. 이런 식이다.

<본 슈프리머시>나 <본 아이덴티티>에서는 의외의 순간 다른 ‘요원’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엄청난 개인기와 살상 무술을 통해 ‘박살’을 내 주고 자리를 떴다. 어딘가 정보를 찾기 위해서 가는데, 그 동선이 CIA의 정보망에 발각이 되고 요원이 투입되자 탈출하기 위해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제이슨 본>에서는 추격이 시작 되고 최정예 요원들과 마주치기 바로 직전에 제이슨이 탈출하거나 혹은 한 명 정도 가볍게 밀치는 정도로 사건 현장에서 피하고 탈출하는 데 성공하는 장면이 자주 연출된다. 미리 문자나 도청으로 정보를 입수해 싸움을 피하는 장면도 여러 번이다. 만일 시시했다면 이런 장면들일 것이다.

액션 영화의 서사적 관습상, 이제 곧 피터지고 살이 찢어지는 싸움이 벌어지겠군 습관적으로 서사 근육이 위축하려던 순간 그냥, 긴장을 풀고 화면 밖으로 유유히 사라지니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제이슨은 지난 9년간 나이를 9살 더 먹었고, -물론 서사적 시간이야 좀 다르지만- 그만큼 삶에 대한 태도와 식견이 달라졌다.

9살 더 먹으면 신체는 약해지지만 적어도 정보 분석의 능력과 눈치 그리고 노하우는 는다. 말하자면, 제이슨 본에게 가장 강한 것이 이젠 몸이 아니다. 오히려 전체의 상황을 들여다보는 조감적 시선과 양심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윤리 감각이 훨씬 더 높아지고 균형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나이가 드는 것이며 아름다운 나이듦이기도 하다.

20대, 30대의 훈련된 살인병기, 제이슨이 몸을 쓰고 기술로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은 그 자체로 예술적 경지이다. 제이슨 본 시리즈의 매력은 인공미를 최대한 줄이고 인간의 몸을 최대한 살린 것으로 압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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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리즈의 자연주의는 배우들의 얼굴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세월과 함께 배우는 늙었고, 액션은 생기를 잃었다. 불혹을 넘긴 액션배우는 낼 모레면 칠순인 영국의 왕자 찰스만큼이나 어색하다. 그러나 세월은 젊음과 생기를 앗아간 대신 다른 것을 채웠다.

이 자연미는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데서도 드러났다. 공교롭게도 <제이슨 본>의 주요인물들은 모두 불혹을 넘겼다. 맷 데이먼은 70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따지자면 47살이고, 뱅상 카셀은 66년생 쉰을 넘었다. 우리의 악역 토미 리 존스님은 일흔살이 넘은 토미 옹이다.

2002년 <본 아이덴티티>부터 계속 출연해왔던 줄리아 스타일스도 어느 새 삼십대 중반을 훌쩍 넘겼다. 이제 그들이 2002년 <본 아이덴티티>때처럼 폴짝폴짝 뛰고, 정강이뼈가 부서져라 상대를 가격할 수는 없다. 이제, 그게 그들의 가장 주요한 매력은 아닐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에서 가장 매력없고, 어쩌면 기회주의적인 인물은 가장 젊은 배역 CIA의 새로운 얼굴 헤더 리이다. 그녀는 겉으로 보기엔 매우 윤리적이고 도덕적이었지만 마지막 순간 도덕성마저도 욕망의 일부이자 윤리적 포장이었음을 자백하고 만다. 토미 리 존스가 악역이긴 하지만 표리부동했던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나이에 맞게 액션도 변할 수 있다. 아니 변해야 한다. 자기 만의 방식으로 액션 자연주의를 갱신하는 작품, 맷 데이먼과 폴 그린그래스의 <제이슨 본>이다.

(※ 편집자 주: 본 시리즈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께서는 아래의 동영상 참조)

수, 2016/08/0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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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은 임명된 날 하루만 즐겁고, 남은 임기는 내내 더없이 괴롭다고들 한다. 그래서 그 하루의 즐거움이 6년의 고달픔을 이겨내게 해 주는 것도 아닐 텐데, 왜 그렇게들 대법관을 하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다고 농담을 나누기도 한다.”

김영란 전 대법관은 재임 시절 선고한 판결을 되돌아본 책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법원은 수도원이나 절간에 비유되기도 한다. 6년 동안 대법원에 감금되는 것과 다름없다는 말도 있다. 대법관은 하루 종일 자료에 치이면서 끊임없이 사건기록을 읽고 동료 법관들과 토론하고 판결문을 써야 한다. 해마다 안경의 도수를 높이는 것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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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형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이인복 대법관이 물러나는 것에 맞춰 신임 대법관 후보자로 임명제청됐다.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오는 8월 중순 열릴 예정이다. (사진 출처: http://www.urimal.org/775)

민법 이론과 실무 겸비

그 고달픔 혹은 영광의 대열에 곧 합류할 신임 대법관 후보자가 최근 발표됐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오는 9월1일에 퇴임하는 이인복 대법관의 후임으로 김재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51)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대법원은 임명 제청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법 권위자이면서 학자로서는 흔치 않게 실무경력도 갖춘 법조인이다. 수많은 연구 논문 등을 발표해 한국 법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동의안이 가결되면 오는 9월2일 대법관으로 6년의 임기를 시작한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장 이름까지는 알아도 대법원장 이름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하물며 대법관은 일반 시민들에게 낯설다. 법조 출입기자나 일선의 판사들조차 대법원장, 법원행정처장을 포함한 대법관 14명 전부의 이름을 대 보라고 하면 얼마나 정확하게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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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가운데) 등 대법관 14명 전원이 참석한 기념사진. 2013년 당시의 구성. 사법부는 입법부나 행정부에 비해 소극적인 권력기관이지만, 사법부의 결정에 따라 정책의 큰 물줄기가 바뀌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이 다른 두 기관에 못지 않다. (사진 출처: http://blog.ohmynews.com/jeongwh59/tag/%EC%A1%B0%EB%AC%B4%EC%A0%9C%20%E…)

대법원이 대통령이나 국회에 비해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적은 것도 아니다. 변호사가 형사사건에서 성공보수를 받지 못하게 하거나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설립을 할 수 있게 한 것도 대법원이다.

원세훈 국정원장이 지난 대선에 개입했다는 결정적 증거자료를 ‘증거능력이 없다’며 항소심의 ‘유죄’ 판단을 뒤집으면서 많은 이들의 속을 뒤집어놓은 것도 대법원이다.

어떤 때는 진보적인 한 걸음을 내딛다가도 어떤 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뛰어간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대법원은 검찰과 달리 대법원장을 필두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라고 보긴 어렵다. “대법원은 단일체가 아니다. 12명의 대법관(일상적 판결에 참여하지 않는 대법원장과 행정을 맡는 법원행정처장 제외)들이 투쟁하는 사상과 이론의 전쟁터다.”

두 번째 교수 출신 대법관 후보…”부인과 법 토론할 때 가장 행복”

대법원 판결의 99.9%를 차지하는 소부(대법관 4명) 판결은 4명의 전원합의가 이뤄져야 가능하다.

소부에서 합의가 되지 않거나 사회적 의미가 있는 판결은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명의 전원합의체로 가져가는데 여기서도 다수 의견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대법관의 의견을 듣고 내 의견을 고치고 또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법관 한 명 한 명의 이력과 성향을 좀 더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김재형 후보자는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명지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86년 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18기)을 거쳐 공군법무관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1992년 서울지법 서부지원, 1994년 서울민사지법 등에서 판사로 재직하다 3년 만에 법복을 벗었다.

짧은 법관 이력 중에 ‘칵테일사랑’이란 노래의 코러스 편곡자에게 2차 저작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당시 이 코러스 편곡자의 변호인이 현 서울시장인 박원순 변호사였다. 1995년부터는 모교인 서울대 법대로 돌아가 지금까지 학자의 길을 걸으며 법학도들을 양성해 왔다. 김 후보자의 부인은 지난 2월 사직한 전현정 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49)이기도 하다.

김 후보자가 취임하면 양창수 전 대법관에 이어 교수 출신으로서는 두 번째 대법관이 된다. 2014년 양 전 대법관이 퇴임한 이후 교수 출신 대법관은 2년째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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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퇴임한 양창수 전 대법관. 서울대 법대 교수 시절, 대법관으로 임명됨으로써 최초의 학자 출신 대법관이 됐다. 학계와 실무에서 ‘민법의 대가’로 꼽혔다. 현재 한양대 로스쿨 교수로 있다.

이전부터 김 후보자는 한국 민사법 분야의 권위자로 꼽혀 왔다. 민법론, 민법총칙 등 다양한 민사법 전공서적을 저술했다. 학계 출신 대법관이 다시 한 번 나온다면 ‘0순위’로 꼽힐 정도로 꾸준히 대법관 후보로도 거명돼왔다. 2011년에는 법률문화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홍조근정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대법원의 평가는 이렇다. “민법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도산법·비교법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 활동과 실무계에서의 활발한 참여와 활동을 통해 학계와 실무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김 후보자의 학구적 면모는 주변의 일화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평소 제자들에게 하루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 밤에 잠들기 전에 부인과 법 토론을 할 때라고 밝혀왔다고 한다. 술자리에서도 강의를 계속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서울대 로스쿨 학생들의 강의평가도 좋은 편이다. 수업 스터디 모임이 팬클럽처럼 발전되기도 할 정도라고 한다. 김 후보자의 대법관 임명제청 소식에 감격해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도 있었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언론보도를 검색해보면 김 후보자는 외부활동이나 방송출연, 언론인터뷰는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눈에 띄는 것도 극히 일부다.

김 후보자는 2013년 서울대 법인화 이후 1년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다룬 EBS 뉴스 인터뷰에서 법인 이사회의 과도한 권한을 경계하는 취지로 “평의원회의 기능이라든지, 권한을 강화해서 이사회를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고 밝혔다.

또 지난 5월 KBS 인터뷰에서 한자표기를 줄이고 알기 쉽게 풀어 쓴 민법 개정안이 19대 국회 임기 종료로 폐기될 위기에 놓인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기도 했다. “(민법은) 기본적인 생활관계를 규율하는 법입니다. 국민들이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수일지, 진보일지….평가 엇갈려

어떻게 보면 다소 ‘진보 성향’으로 비칠 수 있는 모습들이다. 김 후보자는 과거 대체복무제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는 2002년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에서 출간한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책에 실린 논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병역강제는 양심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것이다. 양심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도록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여야 한다. 국민의 평등한 공적 부담의 원칙은 병역거부자에게 그 부담 정도가 병역의무와 실질적으로 동일한 대체복무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병역법을 헌법불합치 결정해야 한다.”

이 논문 중에서 김 교수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 대해 “1970년대 유신독재체제와 1980년대의 정치상황은 양심범, 정치범을 양산했다”고 평가했다.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1980년 후반에는 국가보안법 등 반민주, 반통일 악법에 대한 개정 또는 폐지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매우 고무적 현상”이라며 부정적 시각을 피력했다.

그러나 김 후보자가 처음 임명제청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대법원이 너무 보수화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많았다.

더 다양한 배경과 출신의 대법관이 나오길 기대했지만 결국 새로 임명제청된 대법관 역시 ‘50대, 남성, 서울대’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임 이인복 대법관이 상대적으로 소수 의견을 많이 내 온 ‘진보성향’으로 분류됐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을 표시하는 이들이 많았다.

김 후보자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을 반대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려는 더 커졌다.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같은 파렴치한 기업 행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이 논의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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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형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지난 6월 2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옥시 재발방지 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http://news.joins.com/article/20077282).

그는 2012년 펴낸 <언론과 인격권>에 수록된 논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손해배상은 손해를 배상하는 것이다. 피해자는 손해보다 더 많은 배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 과도한 손해배상을 받도록 하는 것은 정의관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불법행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지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는 불법행위를 처벌하려고 민사책임을 이용하는 것은 법의 발전이 아니라 퇴보라고 본다고도 밝혔다. 형사처벌은 법률에 따라 이뤄지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법관의 ‘재량’에 따라 행사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논란이 일자 김 후보자는 “논문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해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침해하는 중대한 불법행위에 대한 부분은 신중히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후보자의 ‘보수 성향’에 대한 우려가 기우라는 시각도 있다. 동료인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김 후보자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문을 언급하며 이렇게 밝혔다.

“김 교수가 보수적이라고 세평이 나오는데, 그렇지 않다. 사고의 폭도 넓고 개방적이다. 꼴통보수적인 의견을 그에게서 들은 적이 없다. 민법을 기초로 한 토대 위에서 개방적 판례를 기대한다.”

이번에도 “50대 남자, 서울대, 판사 출신”…다양성 아쉬워

출신이나 배경을 가지고 대법관의 판결 성향을 가늠하는 것은 성급한 일일 수 있다.

헌정사상 세 번째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된 박보영 대법관은 호남 출신, 한양대 졸업, 이혼 경력, 현직 판사가 아닌 변호사 등의 이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많은 언론은 박 대법관이 ‘소수자’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진보적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치마 대신 바지를 입은 것이 화제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쌍용차 해고무효 사건에서 복직을 결정한 항소심을 뒤집었다. 재일동포 3세 정영환씨가 제기한 입국 거부 취소 소송도 원고 패소 판결했다.

박 대법관뿐만 아니다. 소아마비 장애인이자 서울이 아닌 지방법원 경력만 있던 김신 대법관 역시 기대를 받았지만 대부분 다수의견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돼 이른바 진보대법관으로 불렸던 ‘독수리 5형제’는 오히려 한국사회에서 주류 중의 주류 출신이었다. 경기(여)고를 졸업한 사람이 4명, 서울대 법대 출신이 4명, 법관 경력뿐인 사람이 4명, 재판연구관 출신이 4명이다. 이런 조합은 “법원에서도 쉽게 찾기 힘든 최고급 엘리트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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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대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50대 남자, 서울대, 판사 출신”. 대법관 구성이 사회의 다양한 이해와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좀 더 다양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다.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기대한다면 진짜 문제는 선출 방식에 있는지도 모른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법원장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후보를 선정한다. 후보추천위는 모두 10명인데 사실상 과반수가 대법원장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추천위에 참석하는 법원행정처장을 통해 대법원장의 의사가, 법무부 장관을 통해 대통령의 의사가 반영된다는 것이 대체적 시각이다. 대법원장이 연수원 몇 기 이상으로 하는 게 좋겠다는 구체적 의견을 내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검토 대상에 오른 이번 대법관 후보 역시 34명 중 33명이 남자, 1명이 여자였으며 대다수가 서울대 출신의 50대 후반 법원장급 이상이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현행 법원조직법 자체가 대법관의 자격을 만 45세 이상에, 20년 이상을 판사·검사·변호사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정하고 있다. 교수나 공공기관 종사자를 임명할 수 있지만 변호사 자격은 필수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대법관 자리는 ‘서울대 법대를 나온 판사 출신 남성’이 독점해 왔다. 국회 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1980년 이후 대법관 85명 중 95%가 남성, 75%가 서울대 법대 출신, 89%가 판사 출신이었다.

“양심을 따랐다면, 기존 판례 존중해야”

“헌법의 미학은 발전하고 진화한다는 것이다.” 김영란 대법관은 앞서 책에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이 지난해 방한 강연회에서 한 말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다수결의 원리를 토대로 한 기관인 국회나 행정부에서 할 수 없는 일을 할 의무가 사법부에 부여되어 있다는 자각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발전하고 진화하는 헌법의 미학은 존재할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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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대법원 9인 전원 사진. 미국에서는 이들을 ‘지혜의 아홉 기둥’이라고 부른다. 얼마 전, 스칼리에 대법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후임 대법관을 임명하는 문제를 놓고, 오바마 행정부와 공화당 우위 의회 간의 갈등이 불거졌다. 미국 대법관은 종신직이기 때문에 어떤 인물을 대법관으로 뽑는지가 커다란 정치적 쟁점이 되곤 한다. (사진 출처: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6021473981)

사법부는 법을 해석하는 기관이지만, 입법부의 입법 취지와 달리 해석해야 할 때도 있고 입법부의 부족하고 모자란 지점을 법 해석으로 메꿔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동성동본 금혼 규정은 오랫동안 당사자들을 고통 받게 했지만 워낙 소수인 나머지 그들을 대변해 입법안을 제출해 줄 국회의원이 없었다. 정작 동성동본 금혼 규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은 1997년 헌법재판소였다. 그러고도 법이 개정된 것은 8년이나 지난 2005년이었다.

그런 점에서 김 후보자의 10년 전 발언은 곱씹어 볼만하다. 그는 이번에 자신을 대법관 후보로 지명한 양승태 대법원장이 2005년 대법관으로 지명될 당시 열렸던 국회 인사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양승태 후보자가 기존 대법원 판례를 뒤집는 판결이 너무 소수라는 게 단점이 아닌가”라는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기존 판례를 따르는 태도는 존중돼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교수’ 출신이었던 양창수 전 대법관은 민감한 사건에 대해 신중함을 넘어서 정치적으로 보일 만큼 사건 판단을 너무 미룬 탓에 사건 당사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시민들이 ‘김재형 대법관’에게 바라는 것도 ‘보수적’ 혹은 ‘진보적’이라는 협애한 시각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 터다. 그저 지금, 2016년 대한민국에서 ‘상식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판단을 내려주기만 바랄 뿐이다.

금, 2016/08/0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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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한겨레신문(2016. 8. 9)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나는 성주 사람들의 지혜에 큰 박수를 보내면서도 이대의 ‘느린 민주주의’를 지켜볼 작정이다. 그들의 발랄한 행동에 박수를 보내면서 그들이 동문과 한 몸이 되기보다는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대학생들과 손을 잡는 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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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세력 개입론’…시위와 저항이 일어날 때마다 정부가 내놓는 말이다. 이것의 근원은 독재정권시절, 그리고 식민지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시위대들은 정부와 보수언론의 이데올로기 공세를 피하고, 자기 주장의 순수성을 위해 외부세력을 절단해내지만, 그럴수록 그들은 고립되고, 그들의 주장은 잊혀진다. 그런데 공화국 시민은 질서를 잘 지켜서 시민인 게 아니라,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끼어들기 때문에 시민인 것이다. 그게 공론의 장이고, 시민의 덕성이다. 외부세력론은 그런 시민의 덕성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왼쪽 사진 출처: 헤럴드경제)

1960년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마산 학생데모가 일어나자 이승만 정부는 “공산폭동과 흡사”, “오열(좌익) 조종혐의 농후하다”라고 겁주면서 데모를 주저앉히려 했다. 그러나 데모는 서울과 전국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졌는데, 그러면서도 학생들은 “우리는 공산 오열의 침투를 경계한다”, “학생들의 순수한 피, 민주당은 오용 말라”고 방어막을 쳤다.

이번 성주 사람들도 사드 반대 서울역 시위에서도 “외부세력 개입” 운운한 보수언론과 정부의 공격을 피하려고 ‘명찰’을 돌려 ‘외부세력’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고, 이화여대생들도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 반대 농성에서 ‘운동권’과 ‘외부세력’의 개입을 차단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외부세력의 개입을 법으로 금지한 예가 있었다. 바로 노조활동에서의 ‘3자 개입 금지’ 규정이 그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이 악법이 80년에서 97년까지 노조 탄압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될 수 있었던 논거도 노동 현장의 분쟁은 노사 간의 ‘순수’ 이익다툼이므로 제3자 운동권이 ‘순진한’ 노동자들을 선동해서 정치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것은 노동자들의 요구가 오직 ‘직접 근로관계’에서 발생한 이익 문제이며 노동자들을 오직 임금과 근로조건에만 관심을 가진 존재라고 보는 것이고, 사용자가 일상적으로 동원하는 정부, 법, 언론, 정치세력 등 모든 외부 지원은 ‘제3자’가 아닌 것으로 보는 점에서 사실상 노동자 노예화법이었다.

비록 3자 개입법은 없어졌어도, 이번 성주나 이대에서처럼 보수언론이나 정부의 ‘외부세력’론과 그에 맞선 저항세력의 ‘순수성’론은 이 사회에 그대로 살아 있으며, 저항세력은 군사정권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도 “나는 ‘순수’하니 내 문제에 정치권과 운동권이 개입하지 말라”고 방어막을 쳐야만 했다.

그런데 저항세력이 방어를 위해 내세운 ‘순수성’론은 당장의 탄압을 피하는 ‘자원’이 될 수 있지만, 결국은 발목을 옥죈 쇠줄을 녹여 철사로 온몸을 감는 일이기도 하다.

‘운동권’의 이념과 정치를 배격한 대기업 노조는 ‘순수한’ ‘임금인상’ 투쟁에 매진하다가 자기 이익만 챙기는 ‘귀족노조’가 되어 사회적으로 고립되었으며, 중소기업 노조는 용역폭력과 경찰, 검찰, 언론, 사법부에 알몸으로 맞서는 신세가 되어 어제의 유성기업이나 오늘의 갑을오토텍처럼 처절하고 외로운 저항을 하다 하나하나씩 사라져 갔다.

일제가 조선을 점령했을 때, 채찍 다음으로 비중을 둔 일은 교육을 통해 조선인의 정신을 노예화하는 것이었고, 그 핵심이 바로 “민도(民度)에 맞게” 교육을 한다는 것, 즉 오로지 ‘실용’에만 충실한 인간을 기르되 ‘정치’에는 일체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개돼지’론의 원조는 일제인 셈인데, 식민지 백성들이게는 먹을거리만 주되 공민으로서는 행동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논리다. 성주와 이대를 향해 날리는 ‘외부세력’론, “성주 참외 사주기”론은 모두 일제와 독재정권의 백성 노예화 작업의 반복이다. 즉 “정치는 우리가 하는 것이니 너희들의 당장의 먹을거리만 챙겨라”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제 성주 사람들은 이 ‘외부세력’론의 허구를 깨달았다. 그들은 이제 “성주뿐 아니라 한반도 사드배치 반대”를 외친다. 그들은 사드가 성주 내의 외진 곳이나 김천으로 가면, 자신들은 전자파를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결국 다른 지역 주민의 희생을 담보로 자신만 살게 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자신들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에 반해 이대생의 농성은 아직 이대 안에 머물러 있다. 과거에 학생들은 이념을 먹고 살았고, 민중들은 ‘밥’의 문제에 머물러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반대의 양상이 나타났다.

물론 이대생들의 ‘운동권 배격’ 행동을 비판할 자격이 내게는 없다. 우리 세대 사람들은 이념과 정치만 앞세우면서 민중들의 ‘밥’을 깊이 고민하지 못한 채 무책임하게 사라졌다가 자신만의 ‘큰 밥상’을 챙기려고 이념을 버리고서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성주 사람들의 지혜에 큰 박수를 보내면서도 이대의 ‘느린 민주주의’를 지켜볼 작정이다. 그들의 발랄한 행동에 박수를 보내면서 그들이 동문과 한 몸이 되기보다는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대학생들과 손을 잡는 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수, 2016/08/1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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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경향신문(2016. 8. 2)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핵 문제의 진전 없이 남북관계 발전만을 추구하거나 남북관계의 모든 사안을 핵 문제와 직접 연계하는 것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박근혜 정부의 ‘국가안보전략’ 59쪽은 핵 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발전을 동시 추구하는 ‘병진노선’을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4차 핵실험을 이유로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남북관계를 단절했다. ‘남북관계의 모든 사안을 핵 문제와 직접 연계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한 것이다. 1단계 경로 이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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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제정세를 잘 살핀 뒤 평화를 사오라고 시켰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국민의 위임(mandate)은 까먹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다가 결국 한반도 긴장과 남북관계 파탄만을 손에 들고 왔다. 더 큰 문제는 원래 위치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점이다. 애시당초 남북관계에 대한 큰 그림과 전략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른쪽 사진은 KBS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 한 장면)

이후 남북관계를 희생하며 핵 문제에 집중했지만 진전이 없다. 핵 문제 해결을 위해 동원하는 수단이 제재 말고 없는 정책적 한계 때문일 것이다.

북핵 문제의 복잡성은 제재의 단순성을 넘어서지만 박 대통령은 오직 제재뿐이다. 이를 조롱하듯 김정은은 여전히 큰소리다. 그럴수록 박 대통령은 항복을 받아내겠다는 의지로 불타오른다.

이제 박 대통령의 시야에 병진노선은 없다. 핵 문제 우선 해결도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김정은을 굴복시키는 것, 이게 새로운 목표다. 2단계 경로 이탈.

항복을 받아내려면 대북 압박을 위한 국제 협력 체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 특히 북한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중국의 협조는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이다. 중국과 갈등할 수 있는 문제는 피하고, 모든 현안을 제재에 종속시켜야 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국익에 따라 검토하겠다는 발언으로 중국을 자극했다. 북한 4차 핵실험 때 시진핑 주석이 박 대통령과의 통화를 거부한 데 대한 대응이었다.

그리고 목표도 수정된다. 병진노선이 핵 문제 우선해결로, 핵 문제 우선해결은 대북 제재로, 그리고 이젠 자신을 실망시킨 시진핑에게 교훈을 주는 쪽으로 옮겨갔다. 3단계 경로 이탈.

박 대통령은 한번 표적을 정하면 소홀히 하는 법이 없다. 남중국해가 중국 관할권에 속하지 않는다는 중재재판소 판결로 중국이 궁지에 몰릴 때 사드 배치 결정이라는 2차 공세를 했다.

사드는 핵·미사일 개발을 막는 수단이 아니다. 미사일을 막는 데 효과적이지도 않다. 그래도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외교 실패가 초래한 안보 불안으로 선택의 폭은 줄었다. 북한 위협은 더 커지고 미국은 사드 배치를 재촉한다.

이미 경로를 벗어난 박 대통령 앞에는 하나의 길만이 놓여 있다. 그가 이런 말 아니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사드 배치 외에 북한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우리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부디 제시해 주셨으면 합니다.” 다시 목표가 바뀐다. ‘어떻게 사드를 성공적으로 배치할 것인가.’ 4단계 경로 이탈.

사드 문제가 등장하면서 대치선은 북한 대 한·미·일·중·러에서 북한 대 중·러 대 한·미·일로 흩어졌다. 여기에 새로운 대치선이 교차한다. 사드 대 반사드다. 사드 편에는 한·미·일과 국내 보수세력이, 사드 반대편에는 북·중·러와 국내 비판세력, 성주 주민이 가담했다.

목표는 단순해졌지만 대립 구도는 복잡해졌다. 이때 박 대통령은 최종 해결책에 이른다. 괴담과 참외. 사드 반대 논리에 괴담이 스며들기만 하면, 성주 참외를 먹는 데 문제가 없다면…?

정부는 이제 괴담과의 전쟁, 참외 지키기란 두 개의 전선에 집중한다. 5단계 경로 이탈이다.

박근혜 정부의 짧은 외교사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사건 따라가기다.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 남북 고위급 접촉, 대북 확성기 방송, 북한 미사일 발사, 중국 전승절 참석, 시진핑과의 통화 실패와 같이 맥락이 다른 사건들을 따라 좌회전·우회전을 반복하는 과정이었다.

상대와 티격태격하다 감정 대립을 하고 결국 그것이 상황을 지배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돌발 현안을 따라 흘러가다 달도 기운 어두운 밤 어느 골짜기에 와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게 반드시 눈앞의 일을 좇는 임기응변 외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곁가지 외교, 샛길로 빠지다 길 잃는 외교로 끝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평화의 비전과 전략이 실제 외교·안보의 실천적 지침이라고 생각했다면 도중에 길을 잃더라도 그걸 나침반 삼아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걸 일회용 겉치레나 정권의 장식품으로 여기고 길을 가는 도중 버렸다면 돌아갈 수 없다.

예전에 어린아이에게 돈을 쥐여주며 가게에서 물건 사오라고 심부름시키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물론 게임이니 장애물이 등장한다. 가는 길에 다른 가게 주인이 아이의 시선을 끄는 것이다. 그러자 심부름 목적을 잊어버리고 우연히 들른 가게에서 엉뚱한 물건을 사서 돌아오는 아이가 꽤 있었다.

여기 평화를 사오라고 했더니 한 손에는 괴담을, 다른 손엔 참외를 들고 돌아온 이가 있다. 그도 무슨 심부름인지 잊은 걸까?

수, 2016/08/1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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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한겨레신문(2016. 6. 14)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구의역 안전문(스크린도어) 사고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김군의 죽음을 계기로 서울형 노동혁명을 일으키겠다고 말했다. 일단 서울시의 원인규명 작업, 책임자 처벌, 대안을 기대해 보지만, 이것은 서울시만이 감당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나는 한국의 뿌리 깊은 노동 비하 관행, 노동을 오직 비용으로만 보는 이 사회의 주류 지배층의 사고방식과 대학을 나와야 인간대접 받을 수 있다는 이 사회의 관행이 깊게 얽혀서 그를 죽게 만들었다고 본다.

그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144만원의 월급 중 100만원을 저축해서 대학에 진학하려 했다. 그가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노동조건을 감수한 이유는 생활비와 등록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며, 메트로 자회사의 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였으며, 대학을 졸업하면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었으리라.

지난 6월 2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중 숨진 김군을 추모하는 시민들이 유가족을 만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었던 그는 고용불안 때문에 피켓시위도 했다. 그러나 그는 노동자의 권리를 집단적으로 제기할 수 없었고, 임금인상도 요구할 수 없었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도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손에 공구를 들지 않는 아버지 세대 메트로 출신 간부나 정규직 직원은 400만원의 월급을 챙겨도 자신은 거의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밖에 받지 못하면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이 역 저 역 미친 듯이 뛰어다니면서 ‘노오력’해야 했다.

그가 살았다면 1년짜리 계약은 갱신되었을지 모르지만, 과연 정규직의 희망이 실현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가 되면 과연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열심히 돈을 모아 대학 졸업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자기소개서를 200번이나 써야 하는 지금의 대졸 백수 청년이 되진 않았을까?

그래도 19살의 젊디젊은 그는 이 사회가 만든 교육을 통해 정규직도 되고 관리자도 될 수 있다는 기성의 신화를 의문시할 수는 없었다. 현실을 그냥 감내하기에 그에게 ‘미래’는 너무 크게 열려 있었다. 불행히도 그에게 미래는 없었다.

노동비하/계층상승이라는 도그마는 이 사회 주류층의 이해관계에서 나온 것이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 시간제, 위험 작업장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기보다는 사무실에 앉아 있는 관리자들에게 더 높은 보상과 직업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은 자본주의 일반의 특징이 아니라 한국적 관존민비, 노동천시의 관행이고, 그 최대 수혜자들은 관료와 기업가들이다.

공기업 비용절감, 경영효율을 거의 폭력적으로 강제하면서도 자신들은 어떤 견제나 감시도 받지 않다가 퇴직 후에는 공기업에 한자리 차고앉은 이 나라 고학력 관료들의 특권과 부패, 언론과 지식인들의 반복되는 도그마 유포 역시 이해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기업이 위기에 처하면 경영자를 문책하지 않고 노동자부터 자르는 일은 가장 퇴영적인 한국식 신자유주의다.

메트로 노조는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보다는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주요 업무 아웃소싱으로 자식 같은 청년들이 저임금과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을 모르는 체했고, 시민들은 자신이 비용을 더 부담하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으며, 그들이 노동자의 파업을 죄악시하는 언론에 박수를 쳤기 때문에 청년들이 이 저임금의 위험한 노동을 감수했고, 대학 진학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다.

현재의 메트로 예산 범위 내에서도 김군은 250만원의 월급을 받을 수 있었고, 노조와 시민사회의 감시권이 있었다면 그는 2인1조의 작업팀에서 일하면서 최소한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한국만큼이나 노동자 권리가 약한 일본도 시간제나 비정규직에게는 돈을 더 얹어준다. 배관공이 교수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고,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 격차를 더 줄일 수 있다면,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노동 존중과 노동권의 개념을 가르칠 수 있다면, 김군은 정비공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면서 대학 가기 위해 그렇게 무리하게 일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금, 2016/06/24-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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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경 작가는 지난해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1995년 등단 이후 꾸준히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수작들을 선보이며 대선배 김수현 작가와 함께 현 한국드라마계의 양대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녀가 활동한 지난 20여 년 간은 국내 드라마사에서 제일 역동적인 시기였다. 데뷔 시기인 1990년대는 트렌디드라마가 처음 등장해 현대드라마의 주류문법을 완성했고, 중견작가 반열에 올라선 2000년대부터는 한류드라마와 막장드라마라는 두 가지 현상이 방송가를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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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노희경 작가(사진)는 작품성과 시청률 양 측면에서 성공을 거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이 시간 동안 드라마계에 일어난 결정적 변화는 ‘표피성’이다. 트렌디드라마가 속도감 있는 편집, 다채로운 색감의 영상, 감각적인 배경음악 등 형식미 강화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스펙터클화 하는 데 집중한 최초의 장르였다면, 여기에 스타캐스팅, 해외 로케이션, 화려한 세트 등이 더해져 외적 스케일을 한껏 키운 형태가 한류드라마였다. 그 변화의 끝에는 인간의 내면이 극단적으로 얄팍해지고 외적갈등만 자극적으로 부각된 막장드라마가 있었다.

노희경 드라마가 호평 받아온 이유는 이 극단적인 표피화의 시대를 거스르며 일관되게 인간의 내면을 탐구해왔다는 데 있다. 외적 갈등보다 등장인물들의 내적 갈등을 중심에 놓고 그 감정을 심층까지 파고들며 점층적으로 고조시켜나가는 특유의 서사 방식은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강렬한 정서적 환기력을 이끌어냈다. 그녀의 스물세 번째 드라마인 tvN <디어 마이 프렌즈>는 이러한 인간 성찰의 힘이 원숙의 경지에 도달한 노희경 최고의 걸작이다.

 

드라마에는 평균 연령 67세의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관찰자 역할인 37세 박완(고현정)을 제외하면, 86세 최고령자 오쌍분(김영옥)부터 63세 막내격인 장난희(고두심)까지, 8명의 주요인물이 모두 인생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이 노인들은 나이가 많은 이들이라기보다는 노희경 인간 탐구의 최종성장형으로서 존재에 가깝다. 노희경은 인간을 근본적으로 심층적 내면을 지닌 존재로 바라보고, 내면의 깊이가 한층 심화되는 것을 성장으로 그려낸다. 물론 이 자체는 그리 새로운 관점이 아니다. 이미 ‘속이 깊다’는 말은 ‘어른스럽다’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중요한 건 어떤 과정을 통해 내면이 깊어지는가에 있다. 노희경 작가는 그것이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녀의 인물들은 대개 극 초반에는 상처와 결핍으로 마음의 벽을 쌓고 살아가다가 곧 자신과 닮은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고 유대관계를 맺으며 성장해나간다. 이때 이들의 상처는 사회적 의미를 띠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공동체 성장의 가능성으로도 확장된다.

<디어 마이 프렌즈>에는 남편에게 학대당하는 여성들, 미혼모, 과부, 이혼녀, 장애인, 가난한 노동자의 아픔 등 그동안 노희경 작품에서 다뤄진 거의 모든 사회적 상처가 총망라되어 있다. 이 드라마가 노희경의 가장 원숙한 작품인 것은 인물들이 이러한 사회적 상처를 이해하고 유대해가는 과정을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고 밀도 높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일 인상적인 사례는 ‘보수 꼰대’ 석균(신구)의 각성서사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가족을 위해 ‘돈 버는 기계’로만 살아온 그는 자신의 노고만 중시한 나머지 철저히 이기적인 괴물이 됐다. 어느 날 아침 아내 정아(나문희)가 떠나고 혼자가 되자 비로소 스스로를 돌아본다. 자신이 그녀를 평생 노예처럼 부리고 발닦개처럼 취급해왔음을.

아내의 상처를 알아보면서 그의 시선은 조금씩 확장된다. 습관대로 버스에서 우악스럽게 자리를 뺏고 보니 쫓겨난 소녀의 장애가 눈에 들어오고, 평소 아내 친구들을 볼 때마다 쏟아낸 폭언들이 떠올려진다. 제일 심한 폭언을 퍼부었던 완이 앞에서 “세상에서 제일 큰 죄는 지 죄를 지가 모른다는 거”라고 고백하는 그의 반성은 뼈저리다.

석균의 뒤늦은 성장은 지금의 한국사회가 지닌 치명적 문제점을 시사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석균처럼 ‘먹고 살기 바빠서’라는 말로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심을 합리화하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상화된 태도다. 정부의 철학도 지배하고 있다.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약자들의 인권에서부터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사태 등 얼마나 많은 사회적 이슈들이 ‘민생’으로 포장된 경제우선주의 앞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가.

물질적 가치가 다른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현실에서 뚝심 있게 인간의 가치와 연대를 존중하는 노희경 드라마의 윤리적 태도는 지금 더욱 소중하다. 그리고 <디어 마이 프렌즈>는 이제 막 50대에 접어든 이 젊은 거장의 또 다른 20년과 성장을 기대하게 만든다.

월, 2016/06/27-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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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여 년간 주주지상주의가 팽배해지면서, 다국적 회사(corporation)의 무책임성과 비윤리성이 전 세계적인 문제로 대두되었다. 회사의 행위에 대해 그 어떤 법적 책임도 지지 않는 대주주가 회사 경영에 간섭하고 회사의 잔여이익의 최종적 취득자로 됨으로써, 다국적 회사의 비윤리적이고 무책임한 경영을 부추겼던 것이다.

세월호 참사, 백혈병, 림프종 등의 암으로 사망한 삼성전자의 노동자들, 삼성중공업의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건,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 사건 등에서 대기업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대주주는 그 어떤 도덕적, 법적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재벌가는 4% 내외의 작은 지분으로 거대 회사집단을 지배하고 있지만, 이들이 누리는 이 거대한 권력과 특권에 비해 그에 따르는 사회적 책임은 전무하다.

이러한 대주주의 책임면제는 회사법상에서 보장된 것으로서 계약권(contractual right)과 재산권(property right)이라는 모순적 권리를 둘 다 주주가 향유할 수 있도록 회사법이 보장하기 때문에 회사의 비윤리성과 무책임성이 허용되고 강화된 결과이다.

 

※ 본 글은 다른백년연구원 젊은연구자 내부 연구모임에서 김종철 교수(서강대 정치외교학과)가 발표한 것으로서,『국제정치논총』 56집 2호에 실린 논문이기도 합니다.  

월, 2016/08/22-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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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대에서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 문제로 학생들과 학교 간에 충돌이 있었다. 교육부의 평생교육 대학 설립 사업에 참여하려던 이대는 고졸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뷰티 웰니스’ 교육과정을 제안해 승인을 얻은 상태였다. 

 2016년 8월, 이대의 ‘미래라이프’ 대학

학생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학교가 돈에 눈이 멀어 학위 장사를 하는 것은 이대가 지켜온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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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교수들>은 기업화된 미국 대학의 현실과 추락한 대학교수들의 모습을 생생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미국 대학의 모습이지만, 한국 대학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미 평생교육원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새로 성인교육 단과대학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으며, 사업비 30억이 온전히 해당 사업과 교육 여건 개선에 쓰이리라는 것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 사업이 결과적으로 재학생들의 학업환경을 악화시킬 것이며, 대학교육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것으로 비판했다. 

졸업생과 동문회까지 가세하여 시위자의 수는 나날이 늘어났고, 1600여 명의 경찰 투입이라는 학교 측의 초강수에도 이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학교는 백기를 들었고, 사업은 백지화됐다.

당장은 학생들의 승리였다. 그러나 이대를 비롯한 대학의 앞날은 그리 순탄치 않아 보인다. 이번 사태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오늘날 한국의 대학들은 대체 어떤 피난길로 내몰리고 있는 것일까. 여기서 가장 먼저 챙겨야 하고, 절대 빠뜨릴 수 없는 마지막 봇짐은 무엇일까.

기업화된 대학,  위태로운 교수들

<최후의 교수들>은 신자유주의 시대 대학이 마주한 현실을 교수들이 처한 상황을 통해 살펴보고 있다. 저자 프랭크 도너휴는 오하이오 주립대 영문학과 정교수이다. 이 책에서 그는 나날이 심화되는 미국 대학의 기업화와 시장화, 그에 따른 인문학 교수들의 지위 하락을 살펴보고 있다.

도너휴에 의하면, 지금의 대학은 정규직 교수의 종말,  곧 ‘최후의 교수’의 시대를 목도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대학 교수는 종신 재직권(tenure)을 통한 신분적 안정을 기반으로, 자유로운 연구 활동을 보장받았다.

원래 대학은 중세의 길드(guild)를 배경으로 했는데, 경제적 사회적 제도적 독립을 통해 학문과 교육의 자율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교수의 신분 보장 또한 이에서 비롯됐다. 대학의 독립과 자율성은 곧 학문과 교육의 주체인 교수의 독립과 자율성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서보명, <대학의 몰락>, 동연,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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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대학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자치공동체의 모습으로 존속했다. 이는 대학의 독립성과 자율성의 기반이 됐다. 종신교수직도 학문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그러나 도너휴는 이러한 대학과 교수의 독립적, 자율적 지위는 나날이 와해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회복되기 어려울 거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이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대학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대학의 기업화, 시장화가 본격화되면서  대학은 연구와 교육이라는 본연의 기능과 역할보다는 취업과 지표에 주력해야 하는 영리 목적 기관이 되었다. 테일러주의(Taylorism)의 논리에 따라 대학의 생산성에 대한 행정과 관리가 강화됐고, 대학의 본령이었던 학문탐구와 인문교양 교육은 계량화된 연구실적과 취업률, 직업교육 강화에 밀려났다.

교수들의 지위 역시 급락했다. 교수직의 상당수가 비정규직화됐으며, 지금까지 교수직의 필요조건으로 여겨진 종직 재직권 또한 의문시됐다. 대학은 이제 더 이상 상아탑이나 교학상장의 공동체일 필요가 없으며, 교수들은 보고서와 취업률에 쫓겨야 하는 관리감독의 대상이 되었다.

위기의 학문, 인문학

이 과정에서 가장 타격을 입는 것이 인문학 전공자들이다. 기업화, 시장화된 대학에서는 생산성이 절대적 가치가 된다. 돈이 되지 않는 인문학과 그 전공자들은 가장 먼저, 가장 신속히 사라져야 할 폐기물이 된다. 

대학들은 앞다퉈 인문학 관련 학과와 전공들은 축소, 폐지했고, 인문학 교수직과 정규직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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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인문학이 퇴출된다는 소식은 더 이상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은 뉴스이다. 인문학에 적대적인 환경에서 인문학은 항상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미지 출처: http://blog.besunny.com/?p=7353)

대학은 몇몇 저명한 인문학 교수들에게만 종신재직권을 허용했기 때문에 교수 사회 내 경쟁은 더욱 가열됐다. 얼마 안 되는 종신재직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학문적이건 대중적이건, 인지도를 높여야 했고, 이 때문에 가시적인 학문적 지표들, 곧 연구물의 수와 단행본의 출간 등에 매달리게 됐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대학 개혁은 연구환경의 근간이 되는 연구비 지원과 출판 및 도서관에 대한 재정 역시 축소시켰다. 이로 인해 교수들은 자비로라도 연구와 출판의 활로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최소 투자, 최대 효과’라는 냉혹한 생산성의 논리는 교수사회에도 예외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른바 ‘열정노동’ 혹은 ‘헝그리 정신’.

인문학 전공 대학원생들 역시 해가 갈수록 줄어들었다. 인문학 전공 박사들은 실업자와 동의어가 됐다. 졸업 후 첫 일자리가 ‘맥도널드’라는 우스개소리는 당사자들에게는 전혀 우습지 않다.

도너휴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대학이 사라진 미래에는 이들을 위한 일자리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나마 학문과 교육에 대한 열정이 높은 몇몇 소수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학자와 교육자로서의 정체성을 이어가려 하겠지만, 기약 없는 ‘고속도로 인생(우리 식 표현으로는 보따리 장수)’에서 하나, 둘씩 지친 탈락자만 늘어갈 뿐이다. 바야흐로 인문학 박사 학위는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처럼 무용하고 쓸쓸하다.

미국의 경우 인문학에 대한 적대와 공격은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20세기 초부터 카네기를 위시한 자본가들이 끊임없이 대학의 인문학적 지향을 비판하고 공격했다.  

카네기는 전통적인 대학교육을 받고 졸업한 사람들을 “다른 행성에나 어울릴 녀석” 이라고 폄하했다. 셰익스피어나 호머 따위를 연구하는 일은 시간을 허비하는 쓸모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대학 교수란 노동자이기를 거부하는, 고집 세고 교만한 자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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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의 모습. 카네기도 대학의 인문학자들을 쓸모없는 인간 취급을 했다. 그래서 그는 사재를 출연해 1905년 노동자계층 자녀들을 위한 직업훈련학교로 카네기공업학교(Carnegie Technical Schools)를 세웠다. 이 학교가 이후 멜론연구소와 통합해 종합대학인 카네기-멜론대학이 됐다. 자신이 세운 학교가 그토록 경멸했던 종합대학이 된 사실을 카네기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미 당대에 ‘대학 무용론’에서부터 ‘교양대학론’, ‘실용주의 대학론’에 이르기까지 대학의 기능과 위상에 대한 온갖 논쟁이 있었으며, 이 와중에 인문학은 언제나 그 ‘무용함의 유용함’을 알지 못하는 몰이해 속에서 외롭고 고독한 존재증명을 해야 했다. 

한국의 대학, 쿼바디스?

해방 후 한국엔 미국식 시스템이 자리를 잡았다. 교육제도와 대학 체제 역시 예외가 아닌데, 한국의 대학은 기본적으로는 미국의 ‘대중 대학 모델’에 기초하고 있다. 

즉 고등교육 재정의 상당부분을 국가가 담당하는 독일이나 프랑스 등 일부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미국 대학의 경우 그 태생적 논리가 수요자 중심에 기초하고 있으며, 재정 역시 학생들이나 기업 혹은 몇몇 거대 비영리 재단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국립대는 물론이고 대다수의 사립대학들은 재정의 상당 부분을 국고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는 대학의 공공성에 근거한 지원이라기 보다는 한국적 국가주의의 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미국 대학과의 차이는 미국 대학이 비영리 재단이나 기업 등 좀 더 직접적으로 자본의 영향을 받은데 비해, 한국 대학들은 교육부를 통해 간접적으로 자본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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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겪는 첫번째 사회경험은 ‘실업’이다. 대학이 졸업생의 취업을 고민하고, 진로를 도와주는 일은 불가피하다. 모두 학자가 될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대학은 본래의 대학에서 궤도를 이탈하게 된다.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신자유주의적 대학 개혁 역시 미국에  기원을 두고 있다. 예컨대 서울대가 연구중심 대학을 표방한 것이 1990년대 중반부터인데, 이는 정확히 미국식 모델을 모방한 것이다.  서울대가 학부를 축소하고 대학원 정원을 늘리면서 연구중심 대학을 표방하자 다른 대학들도 이를 따랐다. 이는 미국의 경우에서 발견되듯이, 대학들이 위계화, 서열화되어 있는 곳에서는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언젠가부터 중앙일보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대학 순위를 매기고 공개함으로써 고등교육 기관 평가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 역시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 대학에서 이뤄진 행태였다. 

이 모든 변화의 배후에는 물론 교육부가 있다. 교육부는 대학에 대한 통제와 재정 지원을 빌미로 대학을 예속시켰다. 예컨대 1980년대 대학진학률이 80퍼센트에 이르렀던 배경에는 당시 전두환 정권 교육부의 너그러운 졸업정원제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학을 졸업한 뒤  첫번째 사회경험이 ‘실업’이고, 조만간 학령인구도  40만명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예전처럼 교육부의 후원 아래 맘 편히 ‘학생 장사’만 하기에는 생존이 위태로운 지경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가 이번에 내든 카드는 ‘대학 구조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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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학은 교육부의 손아귀에 있다. 최근에는 구조개혁이라는 명분으로 돈을 풀어 대학을 길들이고 있다. 생존이 급급한 대학으로서는 그 돈에 연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얻는 생존은 대학의 본질을 크게 훼손한 뒤에 얻은 성과에 불과하다. (이미지 출처: http://kkh1119.tistory.com/242)

최근의 BK(Brain Korea) 21, SSK(Social Science Korea), 프라임 사업(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 등은 모두 대학의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정책들이다. 이들 정책의 명분은 화려하지만, 실상은 알량한 푼돈을 쥐고, 대학들을 줄 세우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냉혹한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의 논리 앞에서 대학들은 다시 눈 먼 좀비처럼 교육부 앞에 도열한다. 앞서의 이대 사태는 이러한 맥락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어떻게 밥만 먹고 사나

그 결과 책에서 언급된 미국 대학과 교수 사회의 변화는 한국에서도 고스란히 발견된다. 이미 몇몇 대학들은 실질적으로 기업의 경영통제를 받고 있고, 인문학 관련 학과의 통폐합이나 대학 구조조정이 일상사가 되고 있다. 

대학의 강단은 스스로를 ‘일용잡직’이라고 자조하는 비정규직 강사들로 채워진지 오래이며, 인문학 박사들은 보따리 장수가 되어 오늘도 이 학교 저 학교을 헤맨다. 1-2년의 단기 계약과 저임금, 모욕적 처우 속에서 그저 지식노동자로 하루하루를 살 뿐이다. 

정규직 교수들의 사정 역시 편치 않다. 교수의 능력이 펀드나 사업따기로 평가되고, 수시로 재임용 탈락의 위협을 받는다. 논문이 아니라 보고서를 쓰느라 밤을 새고, 어떻게 하면 평가지표를 맞출까 전전긍긍한다. 학과의 생존이 자신의 생존이며, 취업률은 생존을 담보하는 유일한 필살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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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졸업생의 취업률, 인문학, 사회와 격리된 학문탐구…지금 한국의 대학은 존립의 이유를 찾기 위해 방황 중인 것처럼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대학의 본분이라는 것이다. (사진 출처: http://sgsg.hankyung.com/apps.frm/news.view?nkey=2014092900443000051&c1…)

이런 대학에서 무슨 학문을 하며, 무슨 교육이 있겠는가. 백년을 내다보는 연구, 미래인재를 키우는 교육은 공허한 빈말일 뿐이다. 

혹자는 대학 밖은 더 치열하다며 ‘우는 소리 그만 하라’고 힐난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말은 대학을 대학으로 만들었던 근본을 버리라는 말과 같다. 그걸 버리면 대학은 더 이상 대학이 아니다. 

대학은 원래 사람과 삶, 공동체에 대해 질문하고, 고민하는 곳이다. 이런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곳이 대학이다. 문제는 사람은 밥만 먹고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쓸데없는 질문을 해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매우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우리 자신에게 끊임없이 “지금 잘 살고 있는지” 묻는다.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이 맞는지, 그 길의 끝에서 행여 낭떠러지를 만나는 것은 아닌지 묻는 것이 인문학이다.  

인문학만으로는 살 수 없지만, 또한 인문학없이도 살 수 없다. 정말 우리는 인문학 없이 살기를 원하는가. 

한국의 대학에게 묻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대학 스스로 자신의 운명이나 처지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 대학이 스스로의 사명과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는지 의심스럽다.

대다수의 대학들은 기업화와 시장화에 저항하기는커녕 문제의식조차 없어 보인다. 인구는 줄어가고 평균 수명이 길어져 가는 상황에서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대학의 사정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어차피 고령화 사회에 필요한 기성세대의 재교육은 대학의 역할이고, 또 대학 자체의 개방과 유연화 역시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그렇더라도 대학이 대학 아닌 것으로 변질되면서까지 살아남는다면, 그때의 대학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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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와 교육은 대학의 양대 기둥이다. 인문학도 그 속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차분히 고민하기에는 현실의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는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말라 죽은 뒤 길을 찾으면 무슨 소용인가. 대학과 인문학에 대해 사회적 고민을 심화시켜야 할 시점인 듯 하다. (사진 출처: 건국대 제공)

나는 다소 허황되게 들릴, 공상적인 제안을 하고자 한다. 이럴 때일수록 제대로 된 인문학 교육을 강화하자!  

지금과 같은 단순한 물량공세 위주의 대학교육을 진짜 대학교육으로 질적으로 심화시키라는 것이다. 이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을 도도하게 거스르라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이상주의자의 허황된 꿈일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이상은 현실의 불가능한 꿈이었고, 그 꿈의 존재로 인해 현실도 조금씩 개선됐다. 꿈이 없는 현실은 지옥이다. 인문학은 현실의 지옥을 인간의 세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도너휴는 향후 대학에서 인문학이 극소수 대학이나 학생들의 전유물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비판적 지성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사라질 수 없는 것이기에 기업화된 대학의 한켠에서 인문학은 초라하지만 굳세게 명맥을 이어갈 것이다.

어쩌면 그런 모습은 과거 수도원에 갇혀 진리탐구와 인문교양교육을 하던 일부 스콜라들의 모습과 유사할 수 있다. 어쩌면 이토록 막강한 실용의 세상에서 오늘의 인문학자들은 벌써 그렇게 돼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최후의 교수들>은 쉽고, 속도감 있게 읽힌다. 또 미국 대학의  속사정을 여러 사례로 보여주고 있어 읽는 재미가 있다. 

번역 또한 매끄럽다. 옮긴이 차익종은 국문학을 전공하고 박사 학위를 받은, 그 자신 인문학자이다. 이런 이들 덕분에 태평양 너머의 생생한 지식을 편하게 앉아 읽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화, 2016/08/23-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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