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세대개벽이 필요하다, 개벽세대를 양성하자

지역

세대개벽이 필요하다, 개벽세대를 양성하자

익명 (미확인) | 금, 2019/03/15- 15:23

1. K-Studies의 삼전론

슬쩍 심통이 날 뻔 했습니다. “북미회담의 결과에 크게 실망할 것 없이, 우리는 우리의 길을 묵묵히 가면 된다.”라는 말이 짐짓 태연하다 못해 한가해 보입니다. 느닷없는 협상 결렬 소식에 낙심이 심해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한 숨도 자지 못하느라 감기까지 도진 저로서는 억울한 마음마저 일어납니다. 하노이에서 인천까지 뜬 눈으로 하늘 길을 건너왔습니다. 그 아래 땅 길을 지나 평양까지 빈손으로 돌아와야 할 북조선의 30대 지도자를 생각하니 내내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귀국 시점이 3.1혁명 100주년 아침이었다는 점에서 심사는 더욱 뒤틀립니다. “도의가 펼쳐지는 신천지”, “인도적 새 문명”의 역사적 봄을 맞이하려던 회심의 계획 또한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일타쌍피, 남에도 북에도 찬물을 끼얹고 신대륙으로 잽싸게 돌아가 버린 그 놈의 갑질이 생각하면 할수록 괘씸하고 얄밉습니다. 물론 선의였다고 생각합니다. 심심한 위로의 표현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곱씹어보게 됩니다. 과연 그러한 것인가, 우리는 우리의 길을 묵묵히 가기만 하면 개벽세가 열리는 것인가 정색하고 숙고해 봅니다. 곰곰 궁리를 해볼수록 정도(正道)는 꽃길보다는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우리의 길’이라 함은 ‘개벽하러 가는 길’일 것입니다. 그 개벽로(開闢路)가 개화기의 신작로마냥 활짝 트이지 못한 사정은 시발부터 세계정세와 긴밀합니다. 1894년 동학운동이 결정적으로 좌초한 것도 국제정세 탓입니다. 자생적이든 자각적이든 조선의 내적 변화의 태동이 끊어지고 만 것도 대청제국과 대일본제국의 경합 때문이었습니다. 제2의 동학운동, 3.1혁명이 미완으로 귀결된 것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중화민국의 우산 아래 곁방살이를 시작한 임시정부는 처음부터 위태위태한 것이었으니,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부상한 양대 제국 미국과 소련의 입김은 해방 이후 더욱 드세져 분단체제로 귀착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즉 해방 이후 한국에서 개화학이 독점에 가까울 만큼의 비중으로 득세하게 된 것에도 국제정치는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보아야 온당할 것입니다. 하여 이번 북미회담 또한 단순히 남북관계, 국제관계 차원의 사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역사적이었습니다. 사상적이었습니다. 그 역사 또한 1986년 도이모이로 상징되는 미국과의 화해와 경제성장이라는 30년 수준의 호흡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베트남전쟁과 한국전쟁은 한 쌍으로 작동했습니다. 청일전쟁과 청불전쟁 또한 한 몸으로 연동했습니다. 150년 동아시아의 천하대란을 마감하는 세기적 이벤트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평양에서 하노이까지의 기차 대장정은 너무나도 풍부한 상징성으로 넘쳐흘렀던 것입니다. 제 눈에는 서세동점 이래 ‘고난의 행군’의 마침표를 찍고자 북조선의 젊은 지도자가 ‘호치민의 나라’를 찾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서세에 편승했던 나라보다는 꼿꼿하고 떳떳하게 제 길을 찾아 나섰던 나라들이 주도하는 신세기가 열리는 구나 만감에 젖어들었습니다. 비로소, 마침내, 개벽학도 만개할 수 있는 조건이 무르익는구나 고양되었던 것입니다. 얼씨구나 신이 났습니다. 절씨구나 흥이 났습니다. 수백만의 오토바이 매연으로 미세먼지 자욱한 서울보다 더 탁한 하노이 거리를 며칠째 활보하고 다닌 것도 그만큼의 기대가 부풀러 올랐기 때문입니다.

무릎이 꺽이는 실망감을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은 미국의 정치 일정과 워싱턴의 권력 지형을 보건대 조만간 다시는 이런 기회가 생기지 못할지도 모르는 염려 탓입니다. 고쳐 말하면 2019년을 개화세에서 개벽세로 일대 반전시키는 원년으로 삼고자 했던 일련의 기획들도 차질을 빚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문장으로 또박또박 옮기고 있노라니 또 다시 열불이 나고 원통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아무리 마음을 잘 쓰고자 애를 쓰나 여태 수양과 수련이 모자라 쉬이 마음이 다 잡히지 않습니다.

일백년 전, 동학운동에서 3.1운동으로의 진화에 천도교가 자리했습니다. 천도교의 수장으로서 의암 손병희는 <삼전론>을 주창했습니다. 도전(道戰)과 언전(言戰)과 재전(財戰)을 모두 감당해야 한다고 일렀습니다. 도전은 사상전입니다. 19세기 동학의 환생, 21세기 개벽학의 신생도 사상전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상만으로는 판이 바뀌지 않습니다. 뜻만 높아서는 기성의 힘이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언전도 필요합니다. 정보전이고 외교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손병희는 누구보다 국제정세의 변화를 주시하고 또 살폈습니다. 도의의 시대를 펼치기 위해서라도 강권으로 작동하는 구시대의 논리를 학습라고 연마하여 능수능란해져야 했습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기민하게 천도교 구국단을 조직하여 국제정세를 분석하고 비평하고 종합했던 까닭입니다. 아울러 도전과 언전을 지속하기 위한 재전에도 만반의 태비를 갖추었습니다. 충실한 재정을 확보하고 경제경영 능력을 키워갔습니다. 삼전론이 균형 있게 갖추어져야 비로소 든든하고 튼튼한 실력양성운동이라 하겠습니다.

k-pop에 맞추어 춤추는 하노이 청소년들

북미정상이 도착하기 전 일요일 오후 호안끼엠 호수를 가득 메운 하노이 청년들은 K-POP에 맞추어 춤을 추었습니다. 한국의 대중문화를 이미 세계인이 향유합니다. 우리가 정립하고자 하는 개벽학 또한 K-Studies가 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입니다. 만국의 만인과 만물이 교감하고 공감할 수 있는 복음을 전파하고 싶습니다. 그러하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언전과 재전에도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감기몸살로 3.1운동 100주년을 끝내 광화문에서 지켜보지 못했습니다. 골방에서 골골했던 그날의 억한 심정이 떠올라 심통을 조금 부려보았습니다.

 

2. 백년의 급진

현장에 부재했던 고로 더더욱 담론을 추적했습니다. 본디 잡지를 좋아합니다. 잡지 읽기를 사랑합니다. 저를 키운 지적 자양분의 8할이 잡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한 주에 한 번은 꼭 교보문고의 잡지 코너를 순회합니다. 여러 나라의 여러 언어의 잡지 특집을 살피는 게 취미 생활입니다. 주간지, 월간지, 계간지는 물론이고 과학지, 종교지, 패션지, 예술잡지에도 눈길을 줍니다. 단행본과는 사뭇 다른 매력이 철철 흐릅니다. 생동하고 약동합니다. 물리적 시간의 흐름에 인간적 호흡을 부여합니다. 시간을 시대로 형질 변화시키는 작업이 잡지 만들기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의 리듬을 만들어내고 시대의 무늬를 넣음으로써 역사의 나무 테를 먼저 그려가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최근 영국의 시사지 이코노미스트는 “Slowbalisation”이라는 신조어를 고안했습니다. 지구화(Globalisation)를 재치 있게 비튼 말입니다. 1990년 이후 질주하던 세계화가 둔화되고 있는 형세를 예민하게 포착해 낸 것입니다. 일본의 지성지 <현대사상>은 ”포스트-인문학“(Post-Humanities)이라는 화두를 2019년 1월호 신년 특집으로 선보였습니다. 이런 신조어들이 눈에 띌 때마다 꼬박꼬박 메모장에 기입해 둡니다. 트렌트 컬렉터로서의 기질이 다분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런 동향들이 죄다 ‘다시 개벽’의 징후가 아니겠는가, 제 논에 물을 듬뿍 부어댑니다.

뜻밖에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잡지는 드물었습니다. 대학생 시절부터 즐겨 읽었던 <역사비평>도 <황해문화>도 다른 주제를 특집으로 삼았습니다. 여전히 애정하는 <녹색평론>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인류세를 특집으로 삼은 <문화과학>은 딱 제 취향이었으나 시의성에서는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예외적으로 <창작과비평>만이 3.1운동 백년에 맞춤한 기획을 선보였습니다. 6.10 세대보다는 4.19 세대가 역사의식에 더 투철한 모양입니다. 허나 반가움이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필자의 면면부터 참신함은 부족합니다. 아니 식상합니다. 임형택, 백영서, 이남주, 창비의 내부인일 뿐더러 70대와 60대와 50대, 원로와 중진들입니다. 실제로 별다른 호응과 반향을 낳지 못했을 것입니다. 동어반복, 돌림노래의 혐의가 없지 않습니다. 동아시아학을 공부했던 석박사 시절부터 임형택 선생님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 분이 쓰신 거의 모든 저작을 탐독했습니다. 제가 배운 한문학의 8할이 그 분의 지적 작업에 가탁해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이번 글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습니다. 조소앙을 호명하고 삼균주의를 거론하면서 남북합작, 좌우합작을 논하는 것만으로는 굳이 100주년이 아니더라도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3.1의 최종목적지가 신천지의 개벽”이라고 회고했던 임시정부 관계자의 술회를 인용하고 있음에도, 정작 그 말이 뜻하는 바의 심층적 의미에는 거의 가닿지 못하고 있습니다.

상하이 임시정부의 헌장을 기초한 인물이 바로 조소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첫 문장은 “신인일치(神人一致)로 중외협응하야 한성에 기의한지 삼십유일……”이라고 시작됩니다. 서울에서 기의한 3.1운동을 “신인일치”의 소산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 문장의 첫 단어가 “신인”, 호모 데우스(Home Deus)였습니다. 독립선언서에 이어 임시정부 헌장 또한 영성적 메타포로 그득하고 그윽했던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좀처럼 개화좌파 지식인들의 눈에는 저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추적할 의욕이 솟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저 해방 이후의 분단체제를 소급 적용하여 좌우통합을 위한 사상운동의 단서를 3.1운동에서 추출해내는 것이 고작입니다.

이러한 세속주의 일방의 역사인식은 학창 시절부터 창비를 통하여 의식화 작업을 거쳤을 민주화 세대들이 주축이 된 현 정부의 3.1절 기념사에서도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습니다. 하루 전 하노이 발 악재에 기념사를 급히 수정했을지도 모릅니다만, 그렇다손 치더라도 별다른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는 범박한 문장으로 연속됩니다. ‘빨갱이’라는 말이 일제의 잔재라는 근거가 희박하고 논쟁의 소지가 큰 낭설을 발화하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직접 유관순을 거론한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등급을 높여 건국훈장까지 수여한 것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헛발 짓입니다. 미투 시대, 그간의 3.1운동사에서 조명을 덜 받은 여성을 드높이는 것이라고 우기기에도 겸연쩍은 패착입니다. 항일 민족주의라는 남성 서사에 민족 소녀의 아이콘으로 소비해 버리고 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 덕후’라는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음에도 쌍팔년도 NL식의 그 후진 감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여태 친일과 항일, 좌와 우, 20세기의 논리를 반복하고 복제하고 있을 뿐입니다. 세속 정치인의 언설도 기성 지식인의 담론도 좀처럼 만족스럽지 못한 3.1혁명 백돌이었습니다. 진보/보수를 망라하여 세속화를 향해 질주했던 백년의 급진에서 전혀 탈피하지 못한 형국입니다.

 

3. 백년의 유산

손병희의 철학

역시 관보다는 민입니다. 관변보다는 민간이 돋보입니다. 과연 동학은 국학보다는 민중 사상에 친화적입니다. 두 권의 책과 두 편의 문건이 발군이었습니다. 으뜸은 <손병희의 철학-인내천과 이신환성>이 출간된 것입니다. 3.1혁명 일백주년에 맞춤한 시의적절한 저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도의 ‘개벽촌’ 오로빌에서 생활하고 계신 김용휘 선생의 정성이 빛을 발합니다. 언감생심, 저는 대통령 기념사에 ‘개벽’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3.1운동의 총 연출가이자 지도자였던 손병희 선생만큼은 호명하는 것이 바람직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백년 후, 3.1혁명 200돌에는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느긋하고 진득하기는 힘듭니다. 너무 늦습니다. 중국의 ‘두 개의 100년’ 논의를 참조해보면 좋겠습니다. 중국공산당 창당 백주년이 2021년입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일백 돌은 2049년입니다. 창당에서 건국까지 28년이 소요되었습니다. 1919년 3.1운동부터 1948년 (분단)건국까지는 29년이 걸렸습니다. 얼추 비슷한 시간입니다. 우리도 ‘두 개의 백년’을 쌍으로 사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2048년 3.1절에는 ‘개벽절’의 위상이 확립되면 좋겠습니다. 미래의 국가수반이 직접 손병희를 기념하는 수준으로 역사인식이 심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백범 김구가 환국했을 때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손병희 선생의 묘소였다고 합니다. 백범과 의암도 동학으로 연결됩니다. 수운처럼 해월처럼 49일 기도를 통하여 제2의 동학운동으로서 3.1운동을 기획한 이가 의암이었습니다. 서로 소 닭 보듯 서먹하고 멀찍했던 서학과 동학의 연대, 천주와 천도의 연합을 꾀한 이가 의암이었습니다. 각자위심의 세속을 동귀일체의 영성으로 형질 전환시키고자 한 이 또한 의암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심과 신심과 불심이 조화를 이루어 삼위일체 삼일운동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정치인이자 종교인이었으니 ‘정치적 영성’으로 성성했던 인물이 바로 의암입니다. 1894년에는 동학혁명의 북접 통령으로 활약하고, 1904년의 갑진개화운동과 1905년의 천도교 개편을 주도했으며, 1919년 3.1운동의 배후로 지목되어 모진 고문 끝에 돌아가셨으니 ‘순교’이자 ‘순국’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19세기와 20세기를 잇는 ‘개벽사’의 적통일 뿐만 아니라, 21세기 개벽파의 롤 모델로서도 적임자입니다. 수기치인으로 내성외양을 실현한 성/속 겸장의 영성적 정치인이었습니다. 부디 <손병희의 철학>이 널리 읽혀서 그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털고 개벽사의 등뼈가 곧추세워지면 좋겠습니다.

3.1정신과 이후 기독교

또 한 권 돋보이는 저서는 <3.1 정신과 이후 기독교>입니다. 천도교만 돌출했던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협동과 합작이 아니었더라면 3.1운동이 대혁명의 수준으로까지 확산되고 심화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3.1로 말미암아 외래 종교였던 기독교는 비로소 토착화되고 민족화되고 민중화되었습니다. 일국의 독립운동이 아니라 만국의 살림운동으로 도약하는 데도 기독교의 참여는 혁혁한 공헌을 했습니다. 나라의 안과 밖으로 촘촘한 교회 조직과 선교사들의 협력으로 ‘언전’(言戰)에서도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주와 연해주는 물론이요 미주와 구주에도 일파만파 파동을 일으키며 1919년 세계사의 대장관을 연출했습니다. 가히 하나님과 한울님이 함께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만만세였습니다. 이로써 조선은 동양의 일원에서 세계의 일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동양문명의 일부에서 동서양문명을 회통하는 세계문명의 일원으로 비약한 것입니다. 다종교연합, 다문명융합의 3.1정신은 21세기 개벽학의 정립에도 무궁하고 무진한 영감을 제공합니다.

3.1 100주년 한반도 독립선언서

그 3.1정신을 계승한 문헌도 제출되었으니 바로 종교개혁연대에서 발표한 <한반도 독립 선언서>입니다. 주문이자 기도문이기도 했던 독립선언서의 진가를 제대로 재연해주고 있습니다. 5대 종단의 통렬한 성찰과 자성이 아름답습니다. 특히 성직자만 참여한 것이 아니라 평신도도 동참하여 33인을 구성했음이 돋보입니다. 천도교와 불교, 기독교를 대표하여 선언서를 낭독한 이들이 모두 여성이었다는 점도 빼어납니다. 저로서는 특히 선언의 출발과 끝맺음이 뇌리에 남습니다. “만물이 새롭게 움트는 2019년의 봄, 오늘 우리는 지금부터 백 년 전 우리 집 지구의 한반도에 울려 퍼졌던 3·1독립선언의 포효를 기억합니다.”라는 첫 문장은 우아합니다. “지금 온 인류 문명이 새롭게 찾고 있는 포스트휴먼의 길을 위해서 고난과 인내와 상생의 한반도 역사에서 배우면서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겠습니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수려합니다. 만물과 지구와 포스트휴먼의 앙상블, 자신부터 변화해가는 개벽의 외침과 깨침이 듬직합니다.

종교개혁연대 한반도 독립선언서 만세

3.1 100주년을 개벽절로 삼아도 모자람이 없다고 판단한 것은 단연 <만북으로 열어가는 새로운 100년 선언문>의 감격 때문입니다. 초고를 보았을 때부터 감탄을 쏟았습니다. 완성된 문장을 읽고서도 탄복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들린 문장이 황홀한 춤을 춥니다. 혼이 담긴 문장이 살아서 숨을 쉽니다. 개벽이라는 단어가 도합 아홉 차례나 사용되었습니다. ‘개벽선언문’이라 고쳐 말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개벽파 선언> 연재를 그만두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완미하고 완숙한 사상을 내장하고 있습니다. 영성혁명과 영구혁명을 촉구하는 세기의 명문입니다. 찬찬히 음미하면 할수록 백년은 족히 기릴 명문장이라는 판단이 굳어집니다. 지난 백년의 농축된 유산이자, 다음 백년의 청신한 지침이라 하겠습니다. 도저히 일부만 떼어서 인용하기가 아깝습니다. 통으로 가져다 옵니다.

 

새로운 100년 선언문 낭독

<만북으로 열어가는 새로운 100년 선언문>

 ! ! !

만개의 북이 울린다. 새로운 백년. 다시 개벽을 알리는 북소리. 생명평화홍익밝음이 동터 오는 한민족의 땅. 그 꿈의 땅으로 가는 8,000만의 심장이 만개의 북으로 울린다.

 3.1대혁명 10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 하늘과 만천하에 우리의 뜻을 전한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곳이 하늘이 임한 밝은 땅이며, 우리 모두 하늘의 이치대로 태어나 하늘을 품고 있는 생명임을 분명히 하노라. 모든 사람 및 뭇 생명이 평등하고, 존귀하다는 큰 뜻을 똑똑히 밝히며, 자손만대(子孫萬代)에 모든 생명이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하리라.

 때가 왔다. 다시 못 올 때가 왔다. 고난과 투쟁의 시대는 가고, 바른 뜻과 바른 사람이 서는 바로 그 때가 왔다.

 지난 100년 한민족의 수난은, 다가오는 세상에서 우리 민족이 새롭게 쓰이기 위해 필연적으로 넘어서야할 관문이었다. 지금 이곳에 개벽을 꽃 피우기 위해 수천만의 생령(生靈)이 기꺼이 거름이 되었다. 가시밭길을 이겨내면서 힘을 길렀고, 다양한 사조를 융합하는 용광로를 통과하여 드디어 동서양의 모든 문명을 회통(回通)하는 삶의 양식이 태동하고 있다.

 새 세상의 문을 열기 위해 우리는 모두 <나를 다시 개벽>할 것이다. 습관된 나가 지배하는 삶을, 하늘이 이끄는 참된 나의 삶으로 바꿀 것이다. 나의 개벽은 세상을 밝게 할 새 주인으로 깨어남이다. 우리 모두는 나로부터의 개벽을 통해 지금의 대한민국을 다시 크고, 높고, 뚜렷하게 하여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명()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길로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곳에 우리 민족 고유(固有)의 밝은 문명을 숨 쉬게 할 것이다. 그 것은 오래된 옛날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새로운 문명이다. 그 길은 생태문명으로 가는 길이며, 근대국가를 넘어 범 지구를 아우르는 문명이며, 물질을 포괄하는 정신문명으로 나 있는 길이다.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작은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민족의 운명을 바꿀 것이고, 지구 문명사에 큰 획을 그을 것이다.

분단은 비극이었으나, 시대의 운세는 그것을 더 큰 기회와 힘으로 만들려고 한다. 남과 북의 두 형제가, 가장 성숙하고 합리적인 통합의 과정을 함께 걸어서 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지 않겠는가! 남과 북의 화해는 인류에게 더 없이 큰 희망의 선물이며 양심과 연민의 새 시대를 여는 개벽의 신호탄이다. 남한과 북한이 각기 고난을 넘어 개척한 독보적인 길을 탁월한 차원에서 통일시킬 것이다.

남북한이 열리고 부산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기찻길과 자동차길이 열리게 된다. 한반도는 더 이상 외진 곳이 아니라, 동서양을 잇는 시발점(始發点)이자 종착점이 되고 있다. 우리는 이 길을 통해 한민족의 바른 뜻과 밝은 문화, 세상에 큰 도움을 주는 물자가 오가게 할 것이다.

 지난 100, 우리 민족의 개개 구성원들은 여러 인생의 길을 선택했고, 다양한 갈등을 경험했다. 이제 지난날의 모든 차이와 그에 따른 대립의 후유증을 최소화하여 작은 차이를 넘는 위대한 공존(共存)의 시대를 만들 것이다. 우리는 지난 세월 나뿐만의 이익을 위해 민족과 대중에게 큰 피해를 입힌 사람들에게도 앞날을 향해 같이 가자는 포용의 손길을 내민다.

 그들이 새 세상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위대한 포용에 상응하는 뉘우침이 있어야 한다. 공공(公共)의 영역을 사사로움으로 오염시키는 세력은 더 이상 이 땅에서 지속될 수 없다. 새 세상에 동화(同化)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변화해야 할 것이다.

 동학혁명과 31혁명으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이, 민족의 선각자들이 예견한 바로 그 개벽의 때이다. 오늘 우리는 만 북을 울리며, 동학혁명과 31대혁명의 정통성을 이어받아 스스로 하늘자손임을 자각하면서 이 세상에서 홍익(弘益)하는 인간이 될 것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삶의 모든 것을 서로 돕는 작은 공동체들을 만들 것이다. 저 옛날, 우리 조상들이 삶의 모범을 보인 두레와 같은 공동체를 본받아 지금 이곳에 맞는 옷을 입히고, 공동체들 사이의 연결망을 구축하여 작은 공동체와 큰 세계가 조화로운 새로운 문명의 본보기를 만들 것이다.

 우리 8천만 한민족은 먼저 깨어나자.

 한 사람의 작은 소리도 귀 기울여 듣는 전인(全人) 화합의 정치를 실현하고, 권리의 민주주의를 넘어 도의(道義)의 민주주의를 완성하며, 정신의 개벽을 바탕으로 마음의 경계를 허물고 국경을 넘어서는 세계정치를 선도하자

 우리는, ‘로서 온전히 존중받고 가 서로 살리는 사회경제시스템을 창설할 것이다. 그리하여 물질개벽을 바탕으로 한사람도 빠짐없이 안심과 풍요를 누릴 수 있는 만인(萬人)이 어우러지는 경제시스템을 이 땅 위에 실현하고,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독점과 빈곤의 악순환을 끊을 방향을 제시하며, 자연과 인류가 함께 진화하는 큰 흐름에 동참하자

 우리는 교육, 문화 등 사회 전반에 있어서, 사람의 본성을 깨닫고,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늘로 존중하며, 사람의 가치를 드높게 실현하는 것을 근본정신으로 삼아, 인류의 조화로운 새 몸체가 세계에 실현되도록 하자.

 마침내 하늘의 이치에 따라 순리대로 사는 삶을 이 땅위에 실현하자.

만북울림 행사

——————————————————————

공도(公道) 3

 하나. 새로운 시대의 철학을 확립한다. 정신과 물질을 균형 있게 발달시키고, 자신을 포함한 인류와 대자연의 존귀함을 더 깊이 깨닫고 함께 진화해간다. 우리는 사상수양실천을 모두 아우르는 완성된 사람이 되도록 한다.

 하나. 3.1대혁명이 전국 방방곡곡의 민회(民會)로 출발하여 오늘날의 대한민국으로 이어졌듯이, 오늘날 읍동에서부터 정치경제문화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참된 보통사람들이 주인으로 서는 새로운 민회(民會)운동을 전개한다.

 하나. 31의 정신으로 모든 사람과 사람, 사람과 뭇 생명들 사이의 벽을 허문다. 남과 북, 동과 서, 종파(宗派)와 정파(政派)를 넘어, 계층을 아우르는 대동(大同)의 정신으로 새로운 대한민국, 한민족 르네상스의 시대를 열어간다. 나아가 국경을 넘어 세계 만민(萬民)이 서로 돕고 살리는 큰살림을 이루도록 한다.

 

201931

3.1백주년 만북울림 추진위원회

 

4. 세대개벽과 개벽세대

개벽학당-새로운 하늘의 탄생

옥의 티, 단 하나 아쉬웠던 점은 두 권의 책과 두 편의 선언문에서도 청년과 청소년은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백년 전 삼일운동에 견주어 학생들의 활약이 미미했습니다. 그만큼 사회적 활력이 위축된 것입니다. 촛불혁명을 지나서도 촛불세대라고 할 만한 신진들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하노이 대장정을 감행한 북조선의 리더는 이미 30대입니다. 하건만 한국은 30년 전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 여태 나라를 끌고 갑니다. 어느 쪽이 세대교체에 성공한 젊은 국가인가 냉정하고 냉철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3.1운동 이듬해 <개벽> 창간을 주도했던 이들 또한 신청년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주도하여 1920년대의 신문화운동을 이끌고 갔습니다. 둥! 둥! 둥! 첫 문장부터 쿵! 쿵! 쿵! 심장을 뛰게 하는 <새로운 100년 선언문>을 읽으면서 거듭 작년 말 로드 스꼴라의 종강 파티가 떠올랐습니다. 그 신명하고 신바람 나던 아프리카 퍼쿠션 퍼포먼스가 귓가에 선명합니다. 그 맑고 밝은 2030 청춘의 에너지가 3.1 백돌에 정작 발산되고 분출되지 못한 점이 두고두고 섭섭합니다.

그래서 3월 6일, 개벽학당이 발족한 것일 텝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세대를 개벽해야 하겠습니다. 개벽세대를 양성해야 하겠습니다. 그들과 더불어 프로문학 또한 개화우파(모더니즘)나 개화좌파(리얼리즘)의 관점이 아니라 개벽파의 눈으로 재독하는 문학 공부를 해야겠습니다. 한국의 민주화 대서사 또한 개벽사로서 다시 쓰는 역사 공부도 병행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감각과 사상을 반영하는 새로운 매체의 창간도 거들어야 하겠습니다. 본디 저는 백 년 전 <개벽>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개벽 2.1>의 미디어를 먼저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그곳에서 컨텐츠가 충분히 누적되면 그에 바탕하여 교육을 담당하는 학당을 열어보고 싶었습니다. 그 매체와 학당을 통하여 배출되는 미래인=개벽인들이 주역이 되는 창당도 멀리 내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21세기 새 정치의 주체들이 재건하는 신문명국가, 동학국가의 탄생을 염원했었습니다. 각각 10년씩, 앞으로 30년 인생 후반전의 로드맵이었습니다.

개벽학당 개강 파티
개벽학당 아침 요가 수련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돕는 것일까요? 겹겹의 인연과 우연이 포개져 조기에 개벽학당의 문을 열었습니다. 개벽운수 아닐런가 싶을 만큼 천운과 천행이 잇따랐습니다. 게다가 교육사업과 매체사업을 동시에 진행해도 좋겠다 싶을 만큼 벽청들(개벽하는 청년들)의 역량이 출중합니다. 글 솜씨도 빼어나고 말솜씨도 뛰어날뿐더러 춤추고 노래하고 영상을 만드는 재주까지 훌륭합니다. 스케일과 스타일이 모두 흡족합니다. 사유의 스케일은 일국을 훌쩍 넘고, 표현의 스타일도 장르를 넘나듭니다. 선생과 후생의 창조적 결합으로 그들의 재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점화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가장 먼저 선생님을 초청 강사로 모셔 “한국사상사 강의”를 부탁드린 까닭입니다. 첫 강의의 반응 또한 무척 좋았다고 자평합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개벽학당 한국사상사 강의

<개벽파 선언>도 이제 이륙단계를 지나 중반전으로 들어갑니다. 그간의 서신을 통하여 19세기말과 20세기 초반에 대한 얼추의 조감도는 그려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음부터는 해방공간을 전후로 한 20세기 중엽으로 옮아가면 어떨까 싶습니다. 기왕의 해방공간사 또한 진보/보수, 좌/우가 경합하는 영토싸움의 최전선이었습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재인식>이 첨예하게 충돌했던 영역입니다. 거개가 남북분단과 좌우갈등을 주선율로 접근했습니다. 그러나 개벽의 관점으로 돌아보면 개화우파와 개화좌파의 도전과 언전 못지않게 개벽파의 쇄신과 갱신 또한 한창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천도교 이론가나 원불교 사상가, 또는 개신유교의 일파 중에서도 남북 분단을 돌파할 제도개벽을 모색했던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들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 또한 선생님의 득의와 특장이라고 생각합니다. 19세기와 21세기를 잇는 개벽사의 허리를 튼튼하게 복원해 주십시오. 독립선언(1919)과 한살림선언(1989)을 잇는 20세기 중반의 개벽사로 진입해 보고 싶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1. 권력기구에 대한 시민의 민주적통제 기제 결여, ‘87년체제의 가장 큰 허점

우리 사회에서 갈수록 ‘검찰권력’의 문제가 큰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검찰의 ‘권력 남용’과 인사권을 둘러싸고 매일 같이 논란의 연속이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일은 이 과정에서 ‘시민’의 개념이 철저히 누락된 채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는 권력기구에 대한 국민의 민주적 통제 기제의 부재는 이른바 ‘87년 체제’가 지닌 가장 큰 허점이었다. 그리고 이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2항에 대한 명백한 부정이었다.

검찰조직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권력기관이다. 지금 검찰은 법치를 말하면서 독립을 강조하지만, 법치란 결코 법치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며 오로지 민주주의 실현의 유효한 수단으로서의 법치여야 한다. 국가의 기반은 국민이고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 검찰조직을 포함한 모든 권력기구가 존재하는 것이지, 그 권력기구의 독립과 존재를 위하여 민주주의와 법치 그리고 국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회가 진정 ‘시민의 대표’라면, 지금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검찰권력’에 대한 시민의 민주적 통제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입법해야 한다.

 

검찰 기소독점주의, 시민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

‘검찰 권력’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우리 사회에서 ‘검찰 권력’이 부각되는 시기는 이른바 ‘87 체제’ 이후 들어선 문민정부부터였다. ‘법치’라는 명분을 앞세워 정치군인들이 차지하던 자리를 검찰조직이 점차 접수해나가면서 마침내 현재와 같은 ‘검찰 권력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 것이다.

‘검찰 권력’의 막강한 힘은 바로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에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검찰이 보유한 이 기소독점주의는 일제강점기인 1912년 <조선형사령>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말 그대로 일제잔재에 속한다.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는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전혀 보편적인 제도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민간인들로 구성되는 대배심(Grand Jury)이 기소를 결정한다. 그리해 시민들은 대배심, 혹은 기소를 하지 않는 검사에 대한 직무집행명령제도(mandamus)를 통하여 검찰의 기소권을 견제한다. 미국의 검사는 연방검사와 지방의 지방 검사장(District Attorney)으로 구분되는데, 연방검사는 모두 94명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공화당이나 민주당의 당적을 보유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지방 검사장은 주민들의 직선으로 선출된다.

서구 여러 나라에서는 사인(私人) 소추주의가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국가 소추주의만이 관철되면, 범죄 피해자의 피해 배상과 정당한 응보 감정을 외면하기 쉽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형사소송 절차는 또한 범죄 피해자에게 직접소추를 할 수 있는 사소권(私訴權, Action civile)을 인정함으로써 검찰의 자의적 공소권 남용에 대한 제한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사법후진국’인 일본도 2차대전 패전 후 미군정 하에서 미국의 대배심 제도 대신 검찰심사회가 설치되어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에 대한 견제 역할을 하도록 했다. 검찰심사회는 각 관할 지역에서 무작위로 추첨된 주민 11명의 심사원으로 구성되며 이 중 8명 이상의 동의로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사건에 대하여 기소 의결을 하게 되면 기소를 강제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연간 약 7,300명이 검찰심사원으로 선발되고 있다. 이밖에도 검찰심사회는 검찰 사무의 개선에 대한 건의, 권고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검찰에도 말로는 미국의 대배심과 일본의 검찰심사회를 참고해 검찰시민위원회라는 제도가 설치되었다. 하지만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할 뿐이다.

 

공적(公的) 옹호자로서의 위상을 지닌 독일의 검찰

‘검사(檢事)’라는 명칭도 일본으로부터 유래하였다. 그런데 독일에서 ‘검사’라는 용어에 대응하는 용어는 ‘Staatsanwalt’로서 ‘국가의 법률가’ 혹은 ‘국가의 변호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하여 ‘체포’나 ‘검속’의 의미를 연상시키는 우리나라의 검사와 근본적으로 달리 ‘공적(公的)’ 의미를 지닌다.

독일에서도 검찰 권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는 오랜 시간의 논의 과정을 거쳤다. 그 논의의 주요한 결과 중의 하나는 바로 검사가 피의자에게 불리한 증거만이 아니라 유리한 증거도 수집해야 한다는 검사의 “객관 의무에 관한 규정”의 명문화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독일에서 검찰은 “공적 옹호자”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우리 검찰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2. 검찰 권력통제를 위한 법적 장치, ‘법왜곡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른바 다스와 BBK 사건이 마침내 13년 만에 단죄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해당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던 특검팀은 아무런 반응도 없다. 그러나 법치란 그렇게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것이 아니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법의 정의’는 진실로 작동되고 있는 것인가? ‘법의 정의’ 실현은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마지막 보루이다. 그러나 법률을 집행함으로써 공정한 법치주의의 실현을 솔선수범해야 할 당사자들이 “사리를 추구하여 법을 왜곡”한다면 우리 사회의 정의를 지탱하는 근거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행위는 일반 범죄보다 범죄성이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 농단’ 관련자들에게 예외 없이 모두 무죄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에게 적용시켰던 이른바 ‘직권남용 혐의’란 사실상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코에 걸면 코거리, 귀에 걸면 귀거리”의 유명무실한 잣대일 뿐이다.

독일 형법 제339조는 “법관, 기타 공직자 또는 중재인이 법률 사건을 지휘하거나 재판함에 있어 당사자 일방을 유리하거나 법을 왜곡한 경우에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법왜곡죄다. 독일을 비롯하여 스페인, 노르웨이, 중국 등 적지 않은 국가에서 이러한 법왜곡죄를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법왜곡죄를 도입해야 하지 않을까?

 법왜곡죄의 신설에 대하여 ‘법적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우리 사회 일각의 반론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법적 독점’ 혹은 ‘농단’의 상황 하에서 이뤄지는 그런 ‘법적 안정성’이라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지금 정작 ‘법적 안정성’을 해치고 사법부 판결에 도전하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적지 않은 경우 아이러니하게도 검찰과 법원이다. 이명박 사건이나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은 검찰이 명백하게 ‘법적 불안정성’을 야기시킨 사건에 다름 아니다. 법원 역시 예를 들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기에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위헌 무효로 결정해놓고도 이후 대법원 소부나 하급심에서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게 이를 뒤집어 “긴급조치는 고도의 통치행위로서 정부의 배상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스스로 ‘법적 안정성’을 극적으로 동요시킨 바 있다.

사실 법왜곡죄가 존재하고 있는 독일 등의 국가에서도 해당 조항이 실제 적용되는 사례는 매우 적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가 강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법왜곡죄의 존재는 법왜곡 행위의 방지에 대한 아무런 통제 장치가 존재하지 않는 조건에서 법 집행을 담당하는 관계자들로 하여금 법왜곡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작동되는 ‘상징적 법적 기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법왜곡죄는 이미 충분한 존재의 의미가 있다.

필자는 일찍이 한 신문에 법왜곡죄 도입을 주장하는 기고문을 발표한 바 있었다. 이를 계기로 고 노회찬의원이 법왜곡죄 도입을 위해 입법토론회를 갖는 등 노력했지만,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국회에서 지금이라도 다시 논의되기를 바란다.

 

소준섭

화, 2020/11/17- 20:27
3
0

지난 11월 11일은 농민의 날이었다.

농민의 날은 참 묘하게 정해졌다. 한자로 十과 一을 합치면 土(흙 토)자가 되니 흙을 기반으로 일하고 흙에서 나오는 농산물을 국민에게 공급하는 농민과 농업을 기억하며 土월 土일을 농민의 날로 정했다. 계절적으로는 농사가 끝나가는 시기이니 적당하다. 다만 묘하다고 한 것은 농업과 관련해 여러 기념할 만한 날들이 많이 있는데 이렇게 숫자맞추기 식으로 정한 것은 국민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을 기념하는 중요한 날을 정하는 방법으로는 좀 억지스럽지 않은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각설

올해 농민의 날은 17년 만에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로 치러졌다.

17년 만이라고 하면 그 사이의 대통령들은 농민의 날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는 얘기이고 17년 전은 노무현대통령이 취임하는 해 였으니 노무현 대통령도 그 뒤에는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농민의 날 행사는 코로나 감염 우려로 청와대에서 농민들과 관계자 2백여 명만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올해는 농업이 매우 어려운 해였다. 코로나19로 인해 다른 중소 상인들과 자영업자들도 큰 고통을 겪었지만 농업은 54일이나 이어지는 장마와 3개나 몰아친 태풍으로 생산량이 줄고 맛과 품질도 떨어지는 2중 3중의 피해를 입었다.

이런 어려운 해의 농민의 날에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농민들을 격려하고 감사를 표시하여 농업의 중요성을 확인한 건 잘한 일이다.

문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농업은 생명산업이자 국가기간산업이며, 농촌은 우리 민족공동체의 터전”이라고 하고 “코로나 이후 시대를 맞아 새로운 시대의 농정을 과감하게 펼쳐가겠다”고 하였다.

이날 기념사를 조금 더 살펴보면

– 식량안보를 위해 “2030년까지 밀 자급률을 10%로, 콩은 45%까지 높이겠다.

– 살맛나는 농촌을 위해 도서관과 체육시설을 갖춘 생활 SOC 복합센터를 올해 700개에서 2025년까지 1200여 개로 늘리겠다.

– 푸드플랜 참여 지자체를 현재 예순 일곱 개에서 2022년까지 100개로 늘리겠다.

– 농촌에서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과 귀농인들이 농촌에 혁신과 활력을 불어놓고 있다.

– 우리 정부 출범 전, 20년 전 수준까지 떨어졌던 쌀값이 회복되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이날 기념사는 우리 농업의 현실과 과제를 제대로 반영하고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선 식량안보를 위해 2030년까지 밀 자급율을 10%까지 올린다고 했는데 현재 국산밀 자급율은 1%를 밑돌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밀 생산 농민과 소비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가 고작 이정도인데 아무 준비도 없이, 밀농업에 대한 지원계획이나 예산반영도 없이 10%로 늘린다? 또 콩 자급율 역시 5%를 밑도는데 논 대체작물로 콩 심는 것도 막으면서 무슨 수로 45%로 올릴지 가늠이 안된다.

살맛나는 농촌을 위해 도서관과 체육시설을 갖춘 생활SOC 복합센터가 이미 700개 만들어진 것처럼 얘기했지만 실은 일반농산어촌 개발사업의 누적 실적이고 이런 시설은 경북 고령에 한군데 있다고 하며 그것도 2018년에 완공되었고 그 이후에는 실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2025년까지 1,200개소로 늘린다는 건지 이해가 안된다.

또 젊은이와 귀농인이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지만 2019년 현재 만 30세 미만 청년 농사꾼은 전국에서 다 합쳐봐야 5백명도 안되고 귀농인도 한해 만명도 안되는데 그 나마 대부분 소득작물 중심이고 식량작물은 늙은 노인들에게 맡겨져 있는데 무슨 활력을 불어놓는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지방의 푸드플랜 계획은 특정 컨설팅 업체가 독점을 하고 B지역 푸드플랜을 컨설팅하면서 A지역에 이미 세운 계획을 ctrl+C, ctrl+V 하여 짜깁기하고 있다고 소문이 파다한데 그걸 100개 지역까지 확대하겠다는 건 각 지자체들은 알아서 시행하라는 강요에 다름 아니다. 그 컨설팅 업체 대표를 하던 사람이 지금 청와대 농수산비서관으로 들어가 있다.

쌀값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건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밥먹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쌀소비가 늘어난 탓이지 정부가 한 일은 거의 없는데 숟가락 얹을 일이 아니다. 우리 국민이 1년간 먹는 쌀 소비량이 5백5십만 톤 정도 된다. 올해 장마와 태풍으로 인해 쌀 생산량은 360만톤으로 평년의 절반 가까이 감소하여 쌀 수급을 걱정해야 할 시기에 태평한 자화자찬은 심해도 한참 심했다.

농업계에서는 도대체 이 기념사를 누가 썼냐는 질문들이 쏟아져 나온다.

문재인 정부에서 농식품부 장관을 5개월동안 공석으로 방치하였고 농업과 농촌은 수치상으로도 곤두박질 치고 있는데 너무나 안이하고 장밋빛 그림만 제시하고 있다.

국민에게 희망을 제시하는 것과 거짓 수치를 제공하여 환상을 심는 것은 다르다. 대통령이 평소 농업에 관심을 두기 어려울 것이고 올해는 코로나 방역과 남북문제, 미 대선에 촉각이 서 있었으니 농민의 날 기념사의 문구를 세세히 검토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금방 탄로날 거짓말을 대통령에게 하게 한 자는 더 이상 대통령과 국민과 농민들을 우롱하지 말고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농업을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대통령을 만들게 된다.

많은 농민들과 농업계 인사들은 남은 임기 1년 여 라도 대통령과 정부가 우리 농업 회생의 토대라도 만들고 마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사족 : 농민의 날을 정부 행정기관들은 ‘농업인의 날’이라고 한다. 그런데 농민과 농업인은 다른 말이다. 1년에 90일 동안 주말농사를 해도, 120만원의 농산물을 생산, 판매해도, 300평의 농지를 소유하고 조경수 나무를 심어놓아도, 농업회사나 영종조합에서 회계, 포장, 배송을 해도 농업인이다.

그런데 행정기관에서는 땅을 매개로 땀흘려 농사짓는 사람인 농민을 지칭하며 농업인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농민과 농업인은 다른 개념이지만 계속 농민을 농업인이라 쓰고 있다.

 

이재욱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소장

화, 2020/11/24- 20:04
4
0

엄밀하게 말해서, ‘국회(國會)’의 ‘나라 국(國) 자’가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시민의 대표”이지 결코 “국가의 대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본래 ‘국회(國會)’라는 단어가 처음 나타난 곳은 중국 고전『관자(管子)』로서 “국가의 회계(會計)”라는 뜻으로 쓰인 용어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국회’와는 전혀 다른 의미다.

현대적 의미로서의 ‘국회’라는 용어가 처음 출현한 곳은 1861년 출판된 중국의『연방지략(聯邦志略)』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국회’라는 용어가 ‘Congress’의 번역어로서 채용되어 일본으로 유입되면서 일반화되었다. 한편 우리 한국에서는 일본을 방문한 수신사의 기록인『일사집략(日槎集略)』(1881년)에 그 용례가 처음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이나 영국, 독일 등 전 세계적으로 모든 나라에서 ‘국회’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의회’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오직 일본 그리고 일본이 만들어낸 용어를 계속 ‘모시면서’ 사용하고 있는 한국에만 ‘국회’라는 용어가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시민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는용어로서의 국회(國會)’

본래 ‘의회(議會)’라는 용어는 라틴어로부터 비롯되었다. 그 의미는 “담화(談話) 방식의 변론”으로서 처음에는 ‘대표들의 집회’라는 형식으로 나타났다. 나라마다 그 명칭이 달라 영국은 의회(議會: Parliament), 프랑스는 삼부회 (三部會: Etats gen raux), 스페인은 코르테스(Cortes), 러시아는 두마(Duma) 등으로 칭해지고 있다.

원래 ‘Congress’는 ‘come together’로부터 온 용어이고, ‘Parliament’는 프랑스어 ‘parler’에서 비롯된 단어로서 ‘말하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프랑스의 ‘Etats gen raux’는 ‘세 나라의 대표’라는 의미이며, 러시아 ‘Duma’는 ‘둥근 천장이 있는 재판정’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 ‘의회’라는 용어의 어원은 ‘모이다’, ‘대표’, ‘말하다’, ‘재판정’ 등이며, 결국 이러한 개념들이 의회의 ‘내용’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국회’라는 용어는 ‘국(國)’ 자를 사용하고 있음으로써 견제 대상으로서의 ‘국가’라는 이미지를 거꾸로 차용하여 마치 “국가의 대표”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결국 “시민으로부터 벗어나 거꾸로 시민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는” 권력자의 이미지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만약 ‘국회’의 ‘국(國)’을 ‘국가’가 아니라 ‘국민’으로 파악하여 ‘국민의 대표’라고 해석하는 경우에도, 이 역시 ‘국가 신민(國家 臣民)’으로서의 ‘국민’, 즉, 통치 대상으로서의 ‘국민’으로만 간주하는 전 근대적 봉건적 시각, 결국 차별하고 군림하는 시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결국 ‘국회(國會)’라는 말은 본말이 전도된 시대착오적 용어이다. 국회를 바꾸려거든 그리하여 국회를 조금이라도 개혁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지금 당장 ‘국회(國會)’라는 그 이름부터 버려야 한다.

그렇다면 ‘국회’ 대신 어떤 용어가 타당할 것인가?

원래의 ‘실질’과 개념, 의미를 반영하여 “시민 대표의 회의체”라는 의미의 ‘민회(民會)’로 바꾸거나 ‘공민(公民)’의 회의체라는 의미의 ‘공회(公會)’라고 바꾸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하여 정부 권력(=국가 권력)이나 대통령을 견제하는 3권 분립의 한 축으로서 ‘국가의 대표’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반드시 “시민의 대표”라는 의미를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민회(民會)’라든가 ‘공회(公會)’라는 용어에 거부감이 강하다면, 가치중립적인 용어로서 최소한 다른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의논하고 회의한다.”라는 의미의 ‘의회’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게 관행화된 두 글자로 된 단어 사용에서 벗어날 필요도 있다. 즉, 아예 ‘대표(자)회의’이나 ‘대표모임’ 등으로 원래의 의미를 고스란히 담는 방안도 바람직하다.

국회를 바꾸려면, 먼저 ‘국회’라는 잘못된 말부터 버려야 한다.

 

소준섭

화, 2020/12/01- 19:43
4
0

코로나 3차 유행을 예감하면서, 한국 역시 서구와 유사한 상황에 돌입하는 것이 아닌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반면에 서구 사회는 점점 더 명료하게 서구 근대 민주주의의 한계에 봉착하는 모습이다. 코로나 1차 유행 시에 서구의 ‘기본권’ 개념은 명료했고, 아시아의 ‘파시즘’적이거나 ‘독재’적인 문화를 비판하는 데에 거리낌 없이 동원되었다. 그런데 이제 구미에서 극우세력과 코로나 부정 세력 간에 연대가 커지면서, ‘기본권’ 개념은 점점 더 극우적으로 옹호되는 ‘묻지 마 자유’의 방향으로 오용되고 있다.

이에 <피로사회>로 유명한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최근 유럽 언론에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가 서로 대립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다면 단지 코로나19 상황이라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간에 그러한 화해가 급조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그러기에는 1990년대 이후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간의 대립이 매우 완강했고,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구별되지 않는 경향 역시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한병철이 새롭게 주장하듯이 공동체 정신이 자유주의의 전제라면, 공동체주의자들은 굳이 공동체주의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구별되는 자유주의를 옹호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비판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공교롭게도 정의로운 분배의 절차를 제도화하려고 했던 자유주의자 존 롤스였다.

따라서 코로나19로 구미에서 ‘기본권’이나 ‘자유’와 같은 근대 민주주의의 초석과도 같은 개념들이 ‘이기주의’나 ‘경제적 생존’과 동일시된다고 해서, 공동체주의자가 갑자기 자유주의를 옹호하기는 어렵다.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의 수렴이 아니라, 오히려 그도 저도 아닌 제3의 다른 원칙이 필요해진 것은 아닌가? 공동체주의는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도덕적 가치의 사회적 통일성을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에, 추상적 절차에 기초하여 개인들의 권리와 연대를 조절하려는 ‘가치 다원주의’적인 자유주의와는 양립하기 어렵다. 아무리 가는 길이 급해도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건너야 한다는 말이다.

필자가 최근 한 학술지에 투고했다가 수정 재심 요청을 받아 투고를 철회한 논문에서, 필자는 ‘공동체’의 개념이 아니라 ‘상호의존성’의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공동체’는 사회 구성원이 동일한 가치를 공유함을 전제하기 때문에, 기능적으로 분화해서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가치 갈등’ 및 ‘가치 지배’의 문제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반면에 ‘상호의존성’은 가치와 무관하게 인간의 존재 조건, 즉 서로 돌봄이 필요한 개인들의 취약성이라는 조건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즉 어떤 가치로 어떤 형태의 공동체를 정당화하는가의 경험적 사실과 무관하게, 사회는 모종의 ‘연대’ 형태일 수밖에 없다는 절대적 원칙이다. ‘공동체’는 ‘상호의존성’의 조건에서 출현하지만, 그러한 조건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상호의존성’ 관계에 대한 특정 해석방식, 즉 ‘가치’에 의해 정당화된다. 따라서 특정 가치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서로 돌보는 연대의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아닌 ‘상호의존성’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유주의가 공동체주의와 수렴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상호의존성’ 개념과 관련된다. 즉 자유주의에서는 사회적 연대를 ‘상호의존성’의 결과가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들의 자발적 협동 관계’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공동체적 상호 돌봄’을 전제로 삼을 수 없으며, ‘합리적인 협동의 형태에 대한 자율적 합의’를 추구한다. 즉 ‘공동체’를 주장하려면, 가장 먼저 자유주의의 인간관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이 아니라, ‘타인과 상호의존성 속에서 사는 개인’으로 개인의 개념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를 주장하려면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서, ‘가치의 공유’까지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그런 행보는 ‘가치 지배’라는 새로운 위계와 불평등을 초래한다. 따라서 ‘공동체’로 한 발 더 내딛는 행보를 생략하고, ‘상호의존성’에서 출발해서 민주주의의 문제를 새롭게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코로나19의 n차 유행을 통해 점점 더 명료해지는 서구 근대 민주주의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개인을 집합체나 타인과 분리해서 보는 ‘개인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분리를 ‘완전한 자율과 독립’으로 고정해서 이해하는 것이 문제이다. 오히려 ‘분리’는 순간순간의 ‘사건’들에 불과할 터인데, 그것을 영구적인 개인의 실체적 속성으로 정의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주의에서 ‘책임’은 정언명령을 따르는 실천 이성 또는 개인의 합리적 성찰의 결과로 이해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개인들이 더 이상 정언명령을 따르거나 합리적일 수 없을 때, 자유주의 사회에서 책임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현재 구미에서 ‘자유’의 개념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극우적으로 오용된다. ‘경제적 생존’ 문제가 실천 이성의 정언명령이나 합리성보다 훨씬 더 시급하기 때문에, 책임 없는 자유가 ‘기본권’의 개념으로 주장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실천 이성을 장착해야 하는 사회적 존재이기에 앞서 먹고 살아야 하는 생물학적 존재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 사는 방법을 제시하는 시장 논리는 ‘상호의존성’이 아니라 ‘적자생존’의 논리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 개념에 익숙한 한국 사회가 서구 자유주의에 거울이 되어주고 또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 개념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적인 서구 사회를 한국 사회가 배워야 한다는 절충론적인 접근은 무의미하다. 한국 사회는 ‘가치 동일적 사회=공동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서, 서구 사회는 ‘자유주의적 개인 개념’에서 벗어나서, ‘상호의존성’이라는 인간 조건에 기초한 새로운 민주주의 질서를 기획하는 것이 두 사회 모두에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홍찬숙

목, 2020/12/03- 20:20
1
0

세계에서 유일하게 헌법에 규정된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우리 헌법 제12조 3항에는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명문화되어 있다.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규정은 곧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규정이다. 이러한 조항이 헌법에 규정된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오늘 우리 검찰이 과시하는 뜨거운 ‘권력의지’는 이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조항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문제의 이 조항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헌헌법에는 “체포, 구금, 수색에는 법관의 영장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었을 뿐이다. 지금처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명문화된 것은 바로 박정희 군사쿠데타 직후 이른바 ‘국가재건최고회의’가 개정한 헌법부터였다.

 

절대권력을 향한 유신권력과 검찰 권력의지의 결합

본래 ‘영장주의’는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것이다. ‘영장주의’란 수사기관의 강제 처분은 반드시 법관에 의하여 사전에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서 인신구속을 수사기관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으며, 영장발부 권한은 법관에게 전속되어 있다는 것이 그 본질이다. 이렇듯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영장주의를 천명하는 헌법 조항에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유일한 영장청구 주체로서의 검찰’ 규정은 ‘영장주의’의 본질로부터 벗어난 것이며, 그 취지와도 필연적 관계가 없는 규정일 뿐이다.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이러한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규정은 한국 외에 세계 어느 나라 헌법의 영장청구 조항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규정은 박정희 유신헌법에서 한 발 더 나가 “검사의 요구에 의하여”로 다시 개정되었다. 검사의 영장청구 권한을 더욱 강화하고 상대적으로 법관의 영장발부에 대한 재량은 축소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이는 결국 검찰의 권력 의지와 절대 권력을 행사하려는 박정희 유신 체제의 권력 의지가 결합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검사를 앞세워 영장제도를 배제한 조선형사령

검찰과 영장과의 깊은 관계, 그리하여 검찰이 지닌 그 뜨거운 권력의지의 기원은 멀리 일제 강점기의 조선형사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는 1912년 조선형사령을 제정했다. 그 핵심은 바로 영장제도의 배제로서 검사와 사법경찰에게 예심판사에 준하는 강제처분권을 부여한 것이었다. 세계 법률사상 일찍이 유례가 없는 악법 중의 악법이었다. 일제는 조선의 식민지 지배를 위해 인신구속과 구금이 가장 필수적인 요소로 파악하였다. 그리해 조선총독을 정점으로 총독이 식민지 검사를 임명하고 그 하부 보조기관으로 사법경찰관을 배치하여 인신구속과 체포를 무소불위로 자행함으로써 식민지통치 권력의 극대화를 꾀했다. 이 조선형사령이라는 악법에 의해 무수한 독립운동가들이 희생되었다.

 

눈앞의 권력에만 매몰돼 민주주의의 기본에 눈감아온 정치세력

10·26으로 열린 1980년의 ‘서울의 봄’, DJ와 YS의 신민당은 당연히 자신들이 권력을 손에 넣을 것으로 낙관했다. 이들은 그리하여 헌법 개정에서 이 영장청구 조항도 중시하지 않고 단순히 유신 헌법의 “검사의 요구” 규정을 이전의 “검사의 신청”으로 돌려놓을 것만 주장하여 관철시켰다. 당시 헌법 개정 작업에 참여했던 대한변협은 “검찰의 신청이나 요구” 규정 자체를 삭제하고 단순히 “법관이 발부한 영장”으로 수정할 것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뒤 6월 항쟁으로 다시 헌법 개정의 기회가 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눈앞에 권력에만 급급했던 야당 정치권은 오직 직선제 하나만 고치면 권좌에 오를 것이라고 다시 ‘착각’하면서 헌법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았다. 문제의 헌법상 검사의 영장청구의 독소 조항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라는 그야말로 미사여구의 수식어만 앞에 붙이는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바꾸는 데 그쳤을 뿐이다.

그리고 ‘촛불혁명’으로 다시 헌법을 바꿀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눈앞의 권력에만 도취된 채 우리의 국회는 결국 허송세월하면서 헌법에 손도 대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헌법 개정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리라.

이 땅의 정치세력은 항상 어김없이 눈앞의 권력에만 매몰된 채, 민주주의의 기본 체계, 국민주권주의와 국민 기본권에는 철저하고 완벽하게 도외시해왔다. 바로 이런 정치권의 자세와 태도 때문에 이 나라가 “나라도 아닌 나라”,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엉터리 시스템”, “시민의 민주적 통제가 전혀 갖춰지지 않은 나라”로 전락한 것이다.

우리의 이 왜곡된 비극의 족쇄는 언제나 풀릴 수 있을 것인가! 두말할 필요 없이 여기에는 이른바 ‘진보민주 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

 

소준섭

화, 2020/12/15- 20:33
5
0

벌써 4·3특별법 개정 촉구 국회앞 1인 시위가 9주차에 접어들었다. 1947년 3월 1일 제주시에서 미군정 산하 경찰에 의해 관덕정학살이 일어난 게 73년 9개월이나 된 일이다.

외롭고 지루하고 답답한 1인 시위였지만 다른 일도 일어났다. 특별한 유족 증언대회가 노상에서 열리는 것이었다. 88세 1934년생 유족이 울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세 형제가 참여했다. 벌써 네 번이나 참석한 다른 86세 1936년생 유족은 애월면 귀덕리 1구 구장아들이었다. 바보처럼 서 있는 나에게 50년 만에 중학생 동창이 찾아 와 자기 아버지가 대구형무소에서 15년형을 통지받고 복역하던 불법 수형인이었다고 고백했다. 너무나 놀라고 충격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1996년 조성봉 감독이 만든 “빨갱이 사냥”이라는 기록동영상에 경찰의 만행을 증언하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2003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모두 너무나 가슴이 저리고 뼈아픈 사연들이었다. 유족들의 이런 참여와 적극적 반응은 1998년 재경제주4·3희생자및피해자유족회가 창립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이런 우리들의 행동에 대해 한 인터넷 언론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1】

 

민간인학살의 대표적 사례인 제주학살(1947-1954)

다시 말하면 국가는 민간인 학살 피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부와 이행기 정의의 비용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제주학살(1947-1954)은 어떻게 일어났나?

지난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한민국정부 100년을 기념하여 한국 현대사를 인권의 관점에서 조망하는 3권짜리 한국인권사 총서를 냈다. 유사 이래 처음 있는 대역사였다. 여기에 필자는 “인권의 관점에서 본 제주 4·3학살과 권리회복운동”이라는 글을 써 냈다. 그 골자는 다음과 같다 :

“제주학살(1947. 3. 1 – 1954. 9. 21)은 미소 강대국의 한민족 분단과 미군의 남한 점령에서 비롯되었다. 미군은 물리적, 사회경제적 민족분단을 통해 민족자결권을 전면 침해했다. 동시에 미군의 남한점령은 일본에 대한 간접점령 방식이 아닌 직접점령이었다. 특히 미군정 경무부의 철권통치와 미군정의 실정은 남한민중의 삶을 더욱 어렵게 했다. 미군정은 신탁통치와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의 추진, 좌우합작을 통해 조선문제 해결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민족분단과 미군 점령하의 제주섬에서 제주인들은 아래로부터의 자치 기구로써 제주도인민위원회를 구성, 운영하며 비교적 미군정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1946년 미군정은 제주섬을 중앙집권국가에 강제 편입시켜 억압적 국가기구를 강화, 증강했다.

미군정 4년 시대에 제주학살은 미군정 산하 경찰이 1947년 3월 1일 시위 구경꾼을 죽인 관덕정학살로부터 비롯되었다. 일제 강점기보다 더 많은 미군정 경찰 병력 증파와 통행금지 조치가 시행되었다. 미군 대위가 현장에 존재했던 관덕정 학살에 항의하는 3·10 민관총파업에 대해 미군정 경찰은 13개월 동안 2,500여명을 대량 검거하는 반인권 조치를 강행했다.

‘제2의 미국무부’라는 오명을 듣고 있던 국제연합 총회 결의에 의해 조선임시위원단 입국과 미군정의 남한단독선거 강제 시행에 반대하는 ‘4월 3일 인민봉기’가 일어났다. 미군정 산하 경찰과 사설폭력단체의 억압에 대한 민심 폭발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군정은 이를 단순한 ‘소요’라고 상황을 오판했다. 더욱이 이후 일어난 학살들에 대한 미군정은 미군 연대장의 직접 지휘, 경찰 증강을 통한 물리적 진압, 미군의 군사상 지휘와 통제 책임을 들 수 있다.

이승만 시대의 제주도민 학살은 산간 지역 거점을 파괴하기 위해 1948년 10·17 포고령을 발동하면서 부터였다. 제주학살을 위한 군대와 경찰 출동, 피난민을 향한 군경의 가차(假借) 없는 총살형, 제주도경비사령부 창설과 공세적 운용은 중대한 인권침해 소지가 명백했다. 제주학살 출동명령을 거부한 대한민국 육군 제14연대 장병들은 제주학살 출동명령을 거부하였고, 이승만 대통령은 정부의 정당성을 위협받게 되자마자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을 통해 국내정치용 초강수로서 학살을 방조, 조장, 지휘한 책임을 모면할 수 없다. 드디어 제주도민 학살 광풍을 불러일으킨 1948년 11월 17일 ‘계엄’이 계엄법도 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동되었다. 이는 명백한 헌법 위반이었고, 국기문란이었다. 불법 군사재판과 사체 유기가 빈발했다. 미군 철수 이후 한국 군경의 제주도민학살은 반공극우보수체제 강화를 위해 ‘잔비’ 소탕이라는 명분으로 주민학살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제주섬사람들은 애도할 권리조차 박탈당했다.

개발독재시대의 범죄 은폐와 왜곡, 허위와 기만은 5·16 군사쿠데타 성공이후 국가 차원의 역사말살은 또다시 강화되었다. 30년이 지나 허위와 기만의 장벽을 허무는 소설작품이 나왔으나 망각을 강요하는 신군부 독재 등장으로 또다시 진실 찾기 시도는 좌절되었다.

그러나 박정희 시해이후 민주화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진실운동이 일어났다. 1980년대 대학생 민주화운동이 벌어지면서 대학내에서 ‘4·3항쟁’ 논의가 시작되었고, 사건발생 40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4월 운동이 일어났다. ‘4·3은 말한다’라는 제목으로 지역 언론 사상 최초의 제주학살 심층기획취재와 장기연재가 이뤄졌다. 평화적 정권교체 이후 제주학살의 진실 찾기는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4월운동의 전국화, 제주도민학살의 진실과 정의, 인권을 위한 법률 제정운동은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특별법 제정으로 나아갔다. 3년간 조사한 뒤 제주4·3에 대한 사상 처음으로 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되고, 대통령의 사과, 국가 추념일 지정이 이루어졌다. 제주는 민주주의와 인권, 이행기 정의 확립의 전시장으로 탈바꿈되어 가고 있다.“【2】

많은 국민들은 제주학살(1947-1954)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필자가 지난 2020년 10월 20일부터 국회 앞에서 제주43특별법 개정 촉구 1인 시위를 9주째 진행해 왔다. 그런데 내 앞을 오가는 시민들이 툭 던지는 말이 “4·3은 다 되지 않았어요?”라고 물어오곤 했다. 말 그대로 제주학살에 대한 정부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어느 정도 진전되었으나 정작 이들 민간인 학살 피해 인사에 대한 피해회복은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 그래서 4·3특별법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 1인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고 대답해 주면 “그러냐?”는 반응을 보였다.

 

국가 재정과 이행기 정의

지난 2020년 5월 12일 대한민국 제20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만심사소위원회가 열려 4·3특별법 개정을 위한 회의를 했다. 그러나 회의 막바지에 기획재정부 국장이 부처간 협의가 진척되지 않았다고 답변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야당의원들은 개정 반대를 노골화했고, 제20대 국회에서의 4·3특별법 개정은 무산되었다.

2021년 예산안은 555조8천억 원이다. 전년 대비 43조5천억 원, 8.5% 증액한 규모이다. 분야별 재원 배분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국방비 예산은 2조7천억 원으로 전년 대비 5.5% 증액하였다. 정부는 스마트 강군 기반 구축 및 군 사기진작 지원을 위해 군비 증액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런 예산 규모만을 놓고 볼 때 대한민국은 이미 중견강국의 반열에 올라서 있다.

<그림 1> 2021년 정부 예산안

2020년 인류를 공포와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COVID-19 방역과 퇴치를 위해 엄청난 국가 재정이 투입되었다. 그런 국가 재정 운영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사실에 주목할 필요는 있다. 그런 사정 때문에 국가 채무에 일정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사정도 고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는 대위기상황에서도 실물경제운영과 국가 채무관리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국가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양호한 국가채무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다음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봐도 그렇다.【3】

더욱이 국가별 국가부채 순위 상위 15 개국 (1980~2024)를 보아도 한국의 국가채무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괜찮은 사정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4】

우리가 생각하고 요구하고 있는 이행기 정의란 다른 게 아니다. 과거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된 국가범죄의 진상을 규명하고, 그 진상조사 결과에 따라 가해자는 책임을 져야 하며, 가해에 책임이 있다고 확인된 국가권력은 피해인사들에게 명예회복과 함께 피해회복을 해야 하며, 재발방지를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주학살(1947-1954)에 대한 3년간의 정부 조사 결과 미군정과 이승만정권의 책임이 확인되었고, 이에 따라 대통령들이 제주도민과 유족들에게 공식 사과를 했다. 이에 따라 제주학살 피해 회복을 위한 4·3특별법 개정을 서둘러 주었으면 한다는 게 이번 국회 앞 1인시위의 당면요구사항이다.

국회의원들에게 피눈물을 쏟으며 지나온 한의 세월을 이제 끝장내게 해 주십사 호소한다. 더 이상 이런 노상에서 힘들게 이루어지는 4·3 유족증언을 끝내고 싶다. 국가는 과거 공권력에 의해 정당한 이유도 없이 목숨을 빼앗긴 이들의 학살피해를 구제해 줘야 한다. 그래서 불미스런 과거사를 털어내고 미래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75년 된 분단과 냉전의 깊은 상처와 고통, 70년 된 전쟁의 참극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이번 4·3특별법 전면 개정은 그런 이행기 정의 확립의 일대 전환점이 될 것이다.

국가공권력의 잘못된 집행으로 희생된 이들의 피해 구제 입법선례들을 찾아보자. 부산·마산뿐만 아니라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이들에 대한 보상법이 있었다. 민간인 학살피해구제 입법도 있다. 거창·산청·함양민간인학살사건 배상법은 2004년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특별조치법’으로 발의되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었다.

그러므로 이제 대한민국 제21대 국회와 정부가 응답해야 한다. 국회가 제주도 민간인 학살피해회복을 위한 4·3법 개정 행동에 적극 나서 주어야 한다. 말과 구호가 아니나 행동과 실천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제주4·3”은 중대한 인권침해사안이다. 국회의원들은 이“제주4·3의 중대한 인권침해문제”를“정당과 정파, 이념과 입장을 초월해서 피해 배상하자”는 개정 법안에 대해 동의해 주어야 한다. 인륜에 반하는 범죄 피해에 대한 원상회복조치를 시행하는 일은 대한민국 헌법과 국제인권규범의 법률 가치와 정신에 밀접히 부합하는 일이다.

“4·3 해결”은 더 이상의 정쟁의 제물이 아니다. 경상도를 제외한 다른 모든 14개 전국시도의회와 전국교육감협의회가 4·3법 개정 촉구 건의안을 채택, 발표했다. 따라서 국회의원들도 제주4·3특별법 개정안 심의에 조속히 참여하여 인사치레나 말뿐이 아니라 행동과 실천으로 대한민국이 인권국가, 정의국가, 공정한 국가임을 확인해 주어야 한다. 부디 올해 2020년 이내에 제주4·3특별법 개정이 성사될 수 있도록 신속하고 정확하게 움직여 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제주도민학살에 대한 이행기 정의 실현이 지체되거나 부실해서는 곤란하다. 더 이상 이 처절하고 안타까운 대비극의 참상이 가해자 측에 의해 왜곡되거나 부정, 폄하되는 몰골을 방치할 수 없다. 피해인사 유족들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운명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더 이상 정의 실현의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4·3보상 요구 비상행동을 하는 이유

2020년 12월 14일부터 제주4·3유족회는 제주와 서울의 시민단체와 함께 4·3 보상 요구 비상행동에 돌입하였다. 추운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 엄동설한의 날씨에 연세가 많은 제주4·3유족들은 왜 뜻있는 시민들과 함께 4·3보상요구행동을 선언, 추진하고 있는 것일까?

첫째 지난 10월 20일부터 국회 앞에서 4·3특별법 개정촉구 1인 시위를 해 왔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4·3유족들이 직접행동을 해야 할 절박한 사정에 닥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 9주 동안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해 온 덕분인지 제21대 국회에서 오영훈 의원이 대표 발의한 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11월 17일, 18일 양일간 여야 의원들이 깊이 심의하여 많은 합의를 했다. 그런데 4·3 학살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조문은 잘 되지 못했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 서둘러 4·3보상 요구 비상행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2005년 국제연합 총회에서 의결된 피해자 권리장전은 민간인 학살이나 강제실종, 고문 등 중대한 인권침해를 받은 이들은 피해배상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선언했다.

둘째, 이번 4·3특별법 개정의 핵심 중 하나는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민들이 당한 학살 피해에 대해 경제적 보상을 받아내자는 것이다. 국가는 민간인 학살을 가한 이승만 정권시절 공권력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그러므로 4·3학살 피해 유족은 당연히 국가를 상대로 피해배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이번 4·3 보상 요구는 학살 피해 유족이 지닌 채권자의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가는 과거 공권력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피해 보상을 해야 하는 채무자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셋째, 이런 4·3 보상 요구에 대해 기획재정부 담당자는 국가 재정 탓을 하면서 다른 지역의 과거사가 많은데 제주 유족에 대해서만 보상을 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공무원 말은 학살 피해 유족을 위한 국가의 보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매우 부적절하고 옳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피해 유족들이 4·3보상 요구 비상행동에 나서게 된 가장 이유요 배경이다.

넷째, 4·3 유족에게 보상이 이루어지려면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다함께 4·3보상을 약속한 공약을 지켜줘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두 차례나 제주4·3평화공원에서 유족에게 거듭 사과하고, 4·3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국무총리시절 추념식에 참석하여 “제주도민 여러분이 “이제 됐다”고 하실 때까지 4‧3의 진실을 채우“겠다고 약속했다. 나아가 이 대표는 지난 11월 3일, 4·3특별법 개정을 “미래입법과제”에 포함시켜 이번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므로 이제 4·3유족들이 나서서 이런 약속들이 지켜져 서둘러 4·3 보상을 위한 특별법 개정이 되어야 한다고 외쳐야 할 때라고 보았다.【5】

다섯째, 1947년 3월 관덕정학살이 일어난 지 벌써 73년 9개월이 지나고 있으니 이번처럼 좋은 기회에 어떻게 해서든 4·3보상법으로 개정이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유족들이 살아 온 너무나 서럽고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이제 끝날 낼 때이다. 어떤 이들은 4·3보상이 피해 인들의 희생당한 대가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게 그렇게 필요한 것이냐고 반문하고 있다. 보상을 하게 되면 집안싸움도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런 걱정을 할 수는 있겠지만 4·3학살 보상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지금은 4·3보상권리를 주장해야만 할 호기이다.

 

【1】 박진우 2020 “70여 년의 한, 4·3특별법 개정 통해 풀어 달라” [현장] 국회 앞에서 40일 넘게 하고 있는 1인 시위자들의 외침

“야만적인 제주4·3학살의 주범이 미국임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연구를 하는 학자이자 재경제주4·3희생자및피해자유족회 공동회장을 맡고 있는 허상수(65)씨는 지난 10월 20일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매일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허씨는 “불행했던 과거사를 청산하기 위해 많은 나라들이 전환비용을 부담해 온 게 사실”이라며 정부 재정 탓을 하며 보상금 지급에 난색을 표하는 관료들의 생각과 발언에 대해 많은 우려를 하고 있다. “두 분의 대통령이 네 번씩이나 사과하면서 국가의 책임”을 선언한 마당에 “이제는 기재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행기 정의 확립에 나서야 한다”고 정부의 대승적 조치를 주문하였다.“

【2】 허상수 2019 “인권의 관점에서 본 제주 4·3학살과 권리회복운동” 국가인권위원회 『대한민국 인권 근현대사 제2권 국가폭력을 넘어 자유와 평화를 향하여』 pp. 39-79.

목차

1. 민족분단과 미군정 치하의 제주도

 

I. 제주인민위원회

II. 제주도민족민주주의전선

III. 미군정, 제주도를 중앙집권국가에 강제편입

2. 미군정 3년 시대의 제주학살

I. 시위 구경꾼을 죽인 관덕정학살

II. 관덕정학살에 거도적으로 항의하는 3·10 민관총파업

III. 미군정 산하 경찰의 2,500여명 대량검거와 3건의 고문치사

IV. 미군정의 남한단독선거 강제 시행에 반대한 ‘4월 3일 인민봉기’

V. 제주학살에 대한 미군정의 책임문제

3. 이승만 시대의 제주도민학살

I. 한미군사안전잠정협정과 10·17포고령

II. 제주학살 출동명령을 거부한 대한민국 육군 제14연대 장병

III. 제주도민 학살 광풍을 불러일으킨 1948년 11월 17일 ‘계엄’

IV. 미군 철수 전후 한국 군경의 제주도민학살

4. 개발독재시대의 범죄 은폐와 왜곡, 허위와 기만

I. 5·16 군사쿠데타와 망각의 강요

II. 국가 망각과 연좌제

III. 허위와 기만 그리고 금기의 장벽을 허무는 소설작품

5. 민주화 이후의 제주학살에 대한 이행기 정의 실현 운동

I. 사건발생 40년 만에 시작된 4월 운동

II. 평화적 정권교체와 제주학살의 진실 찾기 제도화

III. 제주4·3에 대한 사상 첫 진상조사보고서와 대통령의 사과, 국가 추념일 지정

【3】 중앙일보 2019. 05. 23 국가채무비율 40% 논쟁, 정해진 기준은 없다. 종합 5면.

【4】 국가별 국가부채 순위 TOP 15 (1980~2024)

【5】 이낙연 대표는 당대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통해 거듭 4·3특별법 연내 개정을 약속했다.

 

허상수

화, 2020/12/22- 20:09
3
0

우리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관이 그 양심에 따라 심판한다”는 이 말은 우리 모두에게 이미 ‘상식’처럼 굳어져 있기 때문에 이 말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헌법의 법관 양심 조항’, 일제와 박정희 잔재

하지만 사실 이러한 “법관의 양심 조항”을 헌법이나 법률에 규정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오직 우리나라와 일본밖에 없다. 예를 들어, 독일 기본법 제97조는 “법관은 독립하여 법률에만 구속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에 이 ‘법관의 양심 조항“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헌 헌법은 제77조에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독립하여 심판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정희의 5·16 쿠데타 후 1962년 개정 헌법에서 ‘양심’이라는 용어가 추가되었고, 이 조항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일본 헌법을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 일본 헌법 제76조는 “모든 재판관은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그 직권을 행사하며 이 헌법과 법률에만 구속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독일 기본법 제97조도 초안에는 양심이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법관의 양심을 법률과 동위, 또는 상위에 있는 하나의 법원(法源)으로 오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삭제하였다.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사법농단 체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반인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은 적지 않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현상은 마치 하나의 상식처럼 이미 우리 사회에 자리를 잡았고, 재벌이나 고관대작 등 힘 있는 자에게는 ‘양심’이라는 재량권을 적용하여 법률을 자의적으로 폭넓게 해석하여 너그럽게 적용시키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법관이 헌법이 부여한 그 ‘양심’을 기반으로 하여 결과적으로 ‘법률’로부터도 ‘독립’하는듯한 모습이다. 독일 헌법에서 법관의 ‘양심’이라는 문구를 삭제했던 이유가 되었던 바로 그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이 끼친 엄청난 피해가 엄연하게 존재하지만, 정작 어느 그 누구도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다. 사법농단 관련자들에 대한 ‘직권 남용’의 그물은 너무나 성겨서 유명무실할 뿐이다. 이러는 사이, 법원은 법원행정처를 비롯하여 사실상 아무 것도 변한 것 없이 ‘사법농단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국회는 왜 단 한 번도 법관탄핵을 하지 않았을까?

법관의 양심에만 시민의 운명을 맡기는 것은 결코 민주주의가 아니다. 마땅히 시민의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다. 현재 법원행정처 등 자신들만의 손으로 독점되고 있는 법원 행정사무를 유럽국가의 보편적 방식처럼 반드시 다수의 시민이 참여하는 사법평의회에 의해 운용되도록 해야 한다. 당연히 헌법상 “법관의 양심 조항”도 폐지되어야 한다.

또 재판과정에서 법을 왜곡한 법관 및 검사 등 관련자들은 ‘법왜곡죄’를 제정하여 엄벌해야 하고, 엄중한 잘못을 범한 법관은 탄핵되어야 한다.

법관탄핵은 헌법에도 명문화되어 있지만 이제껏 단 한 번도 시도조차 되지 못했다. 사법후진국인 일본에서도 법관탄핵은 대단히 흔하게 실시되고 있고, 실제로 여러 차례에 걸쳐 법관 탄핵이 실행되었다.

우리 국회는 법관탄핵이 한 번도 없었던 것에 대하여 삼권분립 정신을 중시한다든지 사법부 독립을 존중해서라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재판과 판결에 의해 언제든 자신들의 정치적 운명을 손에 쥘 수 있는 법원의 눈치를 보고 최소한 법원과 우호적인 관계를 갖고 있으려는 국회의원들의 본능으로부터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혹은 스스로 얽힌 비리 때문에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으로 몸을 낮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중앙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대법관이 맡고,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의 경우에도 판사가 위원을 겸직하고 있는 점도 선거에 목매는 국회의원에 대한 법원의 영향력을 키우는 한 요인이라 할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법원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몸을 낮추는’ 이러한 관계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기에 추진했던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법원조직법 등 6개 법안 개정안이 아직 국민들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전체 국회의원의 과반수를 훨씬 넘는 168명의 서명으로 발의되었던 점에서도 명백히 입증된 바 있다.

사실 지금처럼 검찰과 법원의 힘을 막강하게 만든 데에는 정치권의 행태도 큰 몫을 담당했다. 정치권은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그리고 입법자로서 스스로 해결해야 할 많은 일들을 언제나 그리고 반드시 고소고발만을 일삼아 자신들의 운명을 검찰과 법원의 손에 넘기는 행태를 보여왔다. 이는 스스로 입법부 자신들의 권위를 추락시킨 행위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삼권분립을 침해하고 스스로 삼권분립의 정신을 무너뜨린 것이다. 본래 법률해석에서는 입법자의 취지라는 측면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정작 스스로 입법자이면서도 아무런 주체적 의식과 노력도 없이 그 무능과 무책임성만을 여실히 드러내왔다. 삼권분립을 침해하고 삼권분립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은 다름 아닌 국회의원 자신들이다.

 

소준섭

화, 2021/01/05- 20:02
6
0

농활이라고 있었다.

농촌활동을 줄여서 그렇게 불렀다.

70년대에는 농촌봉사활동, 줄여서 「농봉」이라고 했다. 대학생들이 여름방학을 이용해 농촌으로 가서 농민들의 수고를 같이 느끼고 부족한 농촌일손을 도와주는 활동을 농촌봉사활동이라고 했다.

80년 광주항쟁을 거치면서 각성한 농민운동가들 사이에서 변혁적 농민운동론, 군부독재와 재벌독점경제에 맞서서 싸우는 계급적 농민운동론이 전개되었다. 노동자와 농민과 학생과 지식인 그룹이 민중운동의 주체가 되어 반외세, 반독재, 반독점재벌의 투쟁을 벌려야 한다고 정리하면서 여름에 대학생들이 농촌으로 가서 농민들과 일을 하는 것은 농촌에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혁명의 주체인 농민과 학생이 만나서 함께 대중을 교양하고 대중을 조직하는 활동이라고 새롭게 정리하였고 그래서 해마다 여름방학에 농촌으로 가는 대학생들의 활동은 ‘농촌활동’ 즉 「농활」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대부분 ‘농활’의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대학생들에게 학생운동과 함께 농촌활동은 필수코스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번쯤은 가 본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당시 여름방학에 가는 여름농활이 기본이었지만 학생운동에 좀 더 적극적인 학생이거나 향후 진로를 농촌에 가서 농민운동을 하겠다는 친구들은 봄과 가을, 겨울에도 가는 사계절 농활에 참여하였다.

농촌활동을 가면 새벽에 일어나 식사조는 식사를 하고 일감을 받아오는 친구들은 대원들을 보낼 농가들을 확인해서 작업배치를 하고 매일 아침 듣는 주의사항을 다시 들은 후 조별로 배치받은 작업현장으로 길을 나섰다. 지나가는 동네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인사를 하고, 조금 전에 본 사람에게도 인사를 하고 아이도 젊은이도 장년이나 노인 가릴 것 없이 먼저 인사를 하는 게 농활 수칙이었다. 일을 가서는 민폐를 끼치지 않는다고 참이나 식사도 거절하고 보통 숙소로 사용하는 마을회관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다시 오후에 가서 빡세게 일을 하고 저녁에 돌아와 저녁밥을 먹은 후 마을의 농활 주체가 지정해주는 집이나 장소로 가서 ‘장년반’, ‘부녀반’, ‘청년반’, ‘아동반’ 등의 분반활동을 하였다. 농활은 복더위가 시작되는 7월 중순에 가서 일을 하는 것도 엄청 힘들었지만 저녁먹고 진행하는 분반활동도 꽤 괴로운 일이었다. 농활자료집에 나와있는 매뉴얼화된 질문을 던지면 역시 끌려나오듯 참여하고 있는 마을주민들은 때론 현실감 떨어지는 질문에 시큰둥하게 대답하던가 때로 핀잔도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식은 땀 흘리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분반활동이 끝나면 분반활동 보고가 있고 하루 일과를 평가(비판)하고 농촌과 농업의 문제에 대해 발제를 듣거나 현장 농활 주체들로부터 강의를 듣고 하루 일과는 보통 11시가 넘어야 끝났다.

이런 전형적인 농활은 9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여기서 새삼스럽게 농활얘기를 다시 꺼낸 것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아련한 추억거리를 소재 삼으려는 것이 아니다.

80년대를 지나 90년대까지 이어져온 농활의 분반활동으로 만났던 아저씨, 아줌마, 형, 아이들은 이제 그 마을에 살지 않는다.

지금은 여러분들처럼 도시의 어딘가에서 도시 주민으로 살고 있다. 장년들은 대부분 남아서 고령화된 농촌의 마지막을 지키고 있지만 그 때 그 아이들은 물론이고 청년들의 대부분도 농촌을 떠나고 아주 일부만 농촌에 남아있다.

농촌을 떠난 사람들은 농지를 도시민들에게 팔거나 남아있는 농민들에게 소작을 주고 떠났다. 남아있는 농민들은 떠난 사람들의 농지를 사거나 빌려서 농사규모를 늘렸다. 농업으로 얻는 평당 소득은 줄어들어서 어쩔 수 없이 농지를 늘리기는 했지만 농업 생산비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서 경영악화가 심해지고 있다.

농가 호당 평균 농업총수입은 1990년에 907만8천원에서 2019년에는 3,444만원으로 4배가량 증가했지만 농업소득은 626만원에서 1026만 원으로 2배도 늘지 않았으며 농업 경영비는 281만원에서 2,417만원으로 9배 가까이 늘어났다.

농사 규모를 늘려서 총 수입은 늘어났지만 경영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나는 바람에 실질 소득 증가는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

‘억대 농민’이라 하면 농사지어서 총수입이 1억원 이상 올리는 농민을 말하지만 이들도 허울만 좋아 억대 농부이지 총수입이 1억원을 넘긴다 해도 경영비를 제외하면 실질소득은 3천만원 남짓이다. 실상은 연봉 3천만원 짜리 농민인 것이다.

올해는 자영업자, 소상공인도 어려운 해이고 공부하는 학생들도 모두 어려웠지만 농업은 긴 장마와 코로나19로 인한 노동력 수급 부족으로 특히 힘든 한 해 였다.

내년에도 기상이변과 코로나19 상황이 올해처럼 지속된다면 농업은 더 어려운 해가 될 것이다.

생산성을 높이고 주・부식 농산물 생산과 공급 계획을 잘 세워야하겠지만 농업 소득을 올리고 농민들이 영농의욕을 잃지 않도록 농민수당을 전면 시행하고 공익형 직접지불금을 올려서 농가 호당 평균 실질 소득이 3천만원 이상 보장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아 있는 농민들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든다.

20여 년 전 내가 사는 마을인 자기 고향으로 농사를 지으러 들어와 유기농업으로 가족농의 소농규모 농사를 짓던 진효가 농업수입을 올리기 위해 비닐 하우스 등 시설을 늘리고 인삼농사를 시작하는 등 농사규모를 늘려왔다. 올해는 농사짓는 것도 힘들었지만 농지면적과 노동시간을 늘려도 수입이 기대한 것 만큼 늘지 않자 다시 소농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한다. 소농으로 알뜰하게 농사지어서 적은 수입으로 소박한 삶을 살 수 있으면 이 친구의 농업은 지속되겠지만 앞으로 대학교, 고등학교 진학할 아이들이 셋이나 대기하고 있는데 잘 버티며 농사지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마지막 ‘농활’의 마지막 동네 형이었던 이 친구마저 농업을 포기하고 마을을 떠난다면 우리 농업은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지 않을까?

코로나 3차 대유행이 진행되면서 여러 가지 걱정과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로 격상되면 자영업자들은 더 힘들어 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다행히 식품 사재기로 식료품 매대가 텅비는 공급붕괴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올해 쌀 생산 부족이나 곡물 및 농산물 수입과 공급이 끊기면 TV에서나 보던 남의 나라 슈퍼마켓에서 식품과 농산물, 축산물이 바닥나는 상황을 우리가 볼 수도 있다.

위드 코로나(with Coroak19) 시대가 곧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2021년에도 농업을 둘러싼 위기 환경이 이어진다고 예상되면 국민 먹을거리 생산 안정에 대해 지금부터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농업의 스토브리그인 겨울동안 내년도 생산과 수요조절을 잘 계획하지 않으면 절망적인 상황이 올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농업정책’을 ‘식량정책’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식량계획정책’이 어떤 것인지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올 겨울을 잘 준비하여 해외농산물 수급 계획과 국내 농산물 자급계획 제고를 통해 먹을 거리 위기가 오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이재욱

화, 2021/01/12- 20:17
7
0

벡은 위험사회에서 성찰적 근대성을 선택하지 않으면 자멸만이 있을 뿐이라고 경고했다. 성찰적 근대성이란 애초 근대성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금 성찰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과거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근대성이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사회문화적 의미론으로서, 자본주의의 상부구조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이런 관점은 사실상 탈근대주의 담론으로까지 이어져서, 자본주의가 생산노동을 둘러싼 소유관계뿐만 아니라 몸과 성에 대한 물질-담론적 지배를 포괄한다고 보았다. 이런 관점에서 자본주의 비판은 탈근대성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독일 비판이론에서는 근대성을 자본주의의 가면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변증법적 관계 속에 있는 독립된 차원의 문제로서 보았다. 근대성의 핵심은 인간 이성의 발견과 계몽을 통한 자유 주체의 형성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근대성은 봉건적 지배구조 속에서 신분제적이고 종교적인 방식으로 ‘선천적이라고’ 정당화된 사회 불평등에 대한 자각이자 그로부터의 주체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 계몽이 단선적으로 발전하지 않고 오히려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역설로 귀결되는 문제에 대해 천착했다.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제도화 과정을 거치면서 계몽이 더는 주체의 해방이 아니라 과학주의, 전문가주의, 관료주의 등의 권위주의로 굳어지는 현상을 비판한 것이다.

자본주의 산업사회와 근대성 이념 간의 이러한 변증법적 관계는 19세기 독일 사회학자인 짐멜에 의해서도 논의되었다. 『돈의 철학』이라는 저서에서 짐멜은, 돈이 처음에는 기성 권력으로부터 주체를 자유롭게 하지만, 어떤 임계점을 넘으면 그때부터는 소비욕의 생산을 통해 다시 주체를 지배한다고 분석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체제와 이성에 의해 해방된 주체 간의 관계는 단선적이거나 일면적이지 않고, 매우 양면적이고 역설적이라는 것이다. 즉 해방된 주체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산업사회가 열어준 해방의 기회에 몸을 맡겨 그 흐름을 마냥 타기만 할 것이 아니라, 언제 해방이 지배로 전환할지를 비판적으로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주체적 삶을 살기 위해 요구되는 소명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생산중심주의와 사적소유 제도를 헌법의 기본 정신으로 규정하는 집단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들에게 근대적 주체란 쉼 없는 경제성장의 행군 속에서 부를 축적하는 소유자로 이해될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독일 사회학의 전통에서 보면, 이런 관점은 근대성을 자본주의 산업사회와 동일시하는 마르크스주의 유물론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극좌와 극우는 통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

아도르노는 자본주의 산업사회 형태로 제도화한 ‘계몽변증법’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독일 나치즘과 같은 ‘근대적 야만’으로 가는 행보가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숙명과도 같다고 보았다―물론 이후 『부정변증법』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나 이는 『계몽변증법』만큼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하버마스는 근대 민주주의 공론장이 정치체계로 제도화하면서 생활세계 속에서 새롭게 공론장이 등장해야 할 테지만, 생활세계 역시 식민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에 벡은 산업사회가 스스로 생산한 부산물인 위험에 의해 위험사회로 탈바꿈함으로써, 근대성이 자본주의 산업사회 이외의 ‘또 다른’ 제도적 형태로 변화할 것이라고 보았다. 말하자면 짐멜이 말한 ‘돈의 지배’로 이미 진입한 후기 산업사회에서, 새로운 주체의 출현은 인간의 혁명 아니라 ‘부작용의 정치’에 의해 주도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부작용의 정치

부작용의 정치란 시장 논리가 이미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 ‘돈의 지배’ 단계로 들어간 사회에서, 해방적 주체가 과거 시민혁명 당시처럼 계몽이나 인간 이성에 기대어 능동적으로 스스로를 주장하지 못함을 이르는 개념이다. 시민혁명 당시에는 개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구체제에 주체적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논리가 구석구석 제도화하여 부산물로 새로운 위험을 생산하고 외부화할 뿐만 아니라 그런 위험 생산에 ‘제도화한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후기 산업사회에서, 개인들의 주체화가 혁명적 양상을 보이기는 어렵다. 오히려 개인들이 위험의 당사자가 됨으로써, 주체화되도록 떠밀리는 형편이다. 의식과 이성의 주도로 주체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위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주체가 되도록 강요받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문제는 이익의 사적소유와 위험의 공유(공동 책임) 간의 모순이다. 위험을 단지 감수할 만한 리스크로 축소하여 이익만을 계산에 넣는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회계장부에서, 이익의 분배는 철저히 생산자 책임주의 원칙에 기초한다. 즉 능력주의이다. 이익 생산에 기여하는 능력―물론 여기에는 ‘능력’으로 번역되는 ‘권력’ 역시 포함된다―에 따라 이익이 분배되어 사유재산이 된다. 반면에 회계장부에 누락된 위험의 분배에는 생산자 책임주의가 적용되지 않는다. 위험 분배의 원칙은 약자 우선주의이며, 익명화한 공동책임주의이다. 여기서 정의와 공정성의 문제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산업사회는 회계장부상 이익의 측면에서는 사유재산제도에 기초하지만, 그 이면에서 ‘리스크’로 무시되는 위험의 측면에서는 공산주의 사회이다. ‘누가 위험의 생산자인가?’, ‘누가 위험 생산에 얼마나 기여하는가?’라는 생산자 책임주의 또는 능력주의 원칙은 위험 분배의 문제에서는 전혀 거론되지도 않는다. ‘모두가 똑같이’ 또는 ‘운이 나빠서 위험 취약자가 되어서’라는 매우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이유에 의해서, 위험의 공산주의가 당연시되는 것이다. 이것이 벡이 말한 ‘반쪽 근대성’이다. 근대적 이성과 계몽, 과학과 전문성이 ‘이익’이라는 일면에서만 적용되고, ‘위험’이라는 이면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위험 생산과 분배라는 이면에서는 여전히 ‘운’과 ‘재수’, ‘우연성’이 지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위험이 발생하면 갑자기 근대적 ‘사회’가 ‘공동체’로 돌변한다. 전근대적 공동체 원칙을 붕괴하여 시장이 형성되었고 그 기초 위에서 근대적 사유재산제도가 생긴 것인데, 위험이 발생하면 마치 처음부터 ‘사회’가 ‘공동체’여야 하는 것처럼 부산을 떠는 것이다.

 

헌법의 핵심은 민주주의 가치이다

현재 코로나19 아래 한국 민주주의의 상황이 보여주듯이, 위험사회의 정치는 논쟁정치이다. 그 이유는 ‘리스크’라는 개념 자체에 있다. ‘위험사회’는 ‘리스크 사회’를 번역한 것인데, ‘리스크’란 객관적으로 발생한 위험을 이르는 존재론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앞으로 발생할 위험에 대한 예측, 특히 계산되는 예측을 의미한다. 즉 리스크는 과학적 인식론 차원의 개념이다. 이것은 위험의 객관성에 대해 과학적 합의가 어려움을 말한다. 위험 생산이 이익 생산의 이면에서 베일에 싸였듯이, 위험에 대한 객관적 예측 역시 과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의 논쟁 속에 묻혀버린다. 산업사회의 주류 사회학이던 ‘기능주의’가 전제했던 ‘사회적 합의’가 불가능해진 사회가 된 것이다.

과학적 합리성에 기초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지 않은 사회라면, ‘그것이 여전히 근대적 사회인가?’라고 자문할 수 있다. ‘탈근대주의’ 관점에서 제기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독일 비판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근대성’의 핵심은 과학주의가 아니라 주체의 해방, 즉 민주주의이다. 다시 말해서, 위험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새로운 상황에 돌입한 것이다. 사회적 합의 도출이 불가능한 상태의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난제에 봉착한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을 촉구한다. 벡이 제안한 ‘성찰적 근대성’의 길이다.

현재 한국뿐만 아니라, 위험사회에서는 모든 제도적 경계들이 유동화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정치/경제 체계 간의 경계, 과학/정치 또는 경제 간의 경계, 전문성/정치 또는 경제 간의 경계, 가족/일터 간의 경계 등이 고정성을 잃고 상황 의존적으로 변화한다. 삼권분립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재 한국의 행정부는 거의 마비 상태인데, 의회의 마비와 사법부의 절차 위주 판결이 거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마치 절차가 곧 민주주의의 핵심인 것처럼 모든 문제가 절차에 대한 논쟁으로 귀결되고 있다.

독일 현대 사회학자 루만이 주장하듯이, 모든 제도적 경계들은 사회적 소통에 의해 구성된 것들이다. 그것들은 절대적 객관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연결된 사회적 행위들에 의해 의미론적으로 ‘기정사실화’한 것들이다. 그런데 위험사회에서 이익 생산뿐만 아니라 위험 생산의 문제가 부각하면서, 제도적 경계들 역시 새롭게 규정되어야 할 필요성이 대두하는 것이다. 절차는 제도적 경계와 핵심적으로 관련된 문제이다. 따라서 절차는 절대성이나 객관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소통의 문제이자 정치적인 문제이다. 절차의 정당성을 판결하는 기준은 절차 자체가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가치이다.

따라서 현재 ‘전문성’이라는 명목으로 주장되는 모든 절차 절대주의는 의심받아야 한다. 그것은 위험사회의 성찰적 근대성 명령에 따라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성찰의 원칙은 헌법의 핵심 가치인 민주주의이다. 특히 위험사회로 탈바꿈하는 현대사회에서, 헌법의 핵심은 사유재산제도도 아니고 절차 자체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급진화

위험사회의 정치는 사회적 합의 도출이 불가능한 상태의 논쟁정치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급진화만이 해독제를 제공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더 이상 직업적으로 독점될 수 없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제도화한 정치체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벡이 설명하였고 또 우리가 경험했듯이, 제도화한 정치체계는 위험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위험의 책임을 규명하지도 못한다. 위험 자체에 대해서는 밑도 끝도 없는 논쟁의 나락으로 빠져 버릴 뿐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더 많은 일반인, 더 많은 당사자들의 직접적 목소리를 통해 지켜질 수밖에 없다. 이제 전문가든 국회의원이든, 누군가를 대변하는 방식의 정당성은 약화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익의 분배라는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일면이, 위험 생산의 이면을 외부화하기 위해서 제도적 경계를 유동화하며 세력을 굳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합의가 없는 논쟁 속에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여기서 민주주의의 가치가 무엇인지가 다시금 논의되고 성찰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만인이 주체가 되는 것이다. 주체화가 독점되는 방식이 지양되어야 한다. 대의제 속에서 선출된 의원이, 전문가인 사법기관이, 과학자가, 또는 특정 이념 세력이 타인의 주체성을 압박하거나 혐오하고 주체성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자유주의자 존 롤스는 공정한 자유와 공정한 평등을 주장하고 그것을 절차화하려고 시도했다. 그가 설명한 자유란 주체적 자유를 말한다. 공정한 자유란, 자유의 격차를 없앨 수 없으나 최소한의 자유를 누리는 위치의 사람 역시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도록 그 격차가 제한되어야 함을 말한다. 아무도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자유는 없는 것이다.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의 자유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그가 주장하는 자유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자유주의적 헌법이 위험사회에서 ‘위험의 공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지만, 현재의 민주주의 헌법은 자유주의 헌법의 형태이다. 따라서 적어도 헌법의 가치를 거론하려면, 공정한 자유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롤스가 보여주듯이, 민주주의의 절차는 민주주의의 가치로부터 도출된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절차의 전문성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모든 사회구성원이 공정하게 주체성을 인정받는지의 문제이다. 이를 보장하기 위한 절차는 오히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모두에게 공정한 판단 및 참여의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다. 정보를 언론이라는 정보수집 전문가가 독점하지 못하도록, 판단을 법 전문가들이 독점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정치적 발언을 정치 전문가들이 독점하지 못하도록, 민주주의의 혈관을 정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절차이다.

 

홍찬숙

목, 2021/01/14- 19:36
3
0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린 것은 엄동설한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굳굳히 광장을 지켜냈던 촛불시민들이었다. 하지만 그 항쟁의 과실은 고스란히 야당 정치세력에게 돌아갔다. 이후 시민들에게는 단지 선거 당일의 투표와 자신들에 대한 지지 그리고 상대당에 대한 반대만이 요구되었을 뿐, 더 이상의 어떠한 정치적 권리도 허용되지 않았다.

대의민주주의는 요술방망이였고, 이 대의민주주의라는 이름 하에 ‘정당’만 쥐고 있으면 누가 싸웠든 누구의 희생으로 획득되었든 권력은 언제나 그리고 철저하게 그들의 소유물이었다.

동지는 간 곳 없고, 탄식만 남았다.

 

‘대의 원리’에 근거하여 대표자만이 정책결정 권한을 독점한다

흔히 대의제는 민주주의와 등치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말하면 대의제는 하나의 통치기구의 구성 원리, 또는 국가의 의사 결정 원리로서 단지 민주주의의 하위 체계일 뿐이다. 그것은 권력분립, 선거제도, 정부 형태, 지방자치제도 등과 같은 민주주의의 여러 형식 원리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용어법상 직접 민주주의는 직접 결정방식, 대의제의 간접 민주주의는 간접 결정방식이라고 불러야 정확하다.

한편 의회민주주의란 의회 중심의 통치 질서에서 파악되는 것으로서 엄밀한 의미에서 정부 형태와 관련된 개념이며, 이는 단지 대의제의 한 형식에 속할 뿐이다.

특히 선거로 선출된 의원은 특정 선거구민이 아니라 전체 국민을 대표하고 전체적인 공공복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대의제의 이론은 명령 위임을 부정하고 자유 위임을 주창하고 있는 바, 이는 시민 세력을 배제시키면서 그와 유리되어 결국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해왔다. 대의제가 지니는 이러한 성격은 프랑스와 영국 대의제의 역사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결국 대의제라는 간접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고착되었다. 부르주아 세력은 국민세력을 동원하여 군주를 타도한 뒤 자신들의 정파 간의 무력적 권력 투쟁을 선거를 통한 정당 간의 권력 교대 혹은 경쟁이라는 ‘대의제’의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기제를 창출해낸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자(의원)는 특정 선거민이 아니라 ‘추상적으로’ 전체 국민을 위한 전체 이익을 추구해야 하며, 국민에 책임을 지는 명령 위임을 배제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명령 위임을 배제시킨 바로 그 순간 선출된 대표자는 국민에 봉사하는 위치로부터 국민 위에 군림하는 위치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대표자의 결정은 언제나 ‘전체 국민’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전체 국민’이라는 실체가 없는 관념적 존재일 뿐이다.

대의 관계에서 대표되는 실체는 없으며 대표하는 행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의 관계에서 존재하는 것은 오직 국민이 대표자를 선출하는 행위와 대표자가 자기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행위뿐이다. 그리고 대표자의 이러한 행위는 ‘전체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그리하여 국민을 구속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의제에서의 대표자란 더 이상 선거민의 단순한 대변자가 아니며 대리인(Agent)이나 수임자(Kommissar)도 아니다. 그는 ‘전체 국민’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언제나 ‘공명정대’하게 행동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그의 결정과 판단에 영향을 주는 어떠한 힘으로부터도 독립되어야 한다고 주장된다. 물론 이러한 논리의 배경에는 탁월한 인물이 무지몽매한 국민의 의사나 명령에 따른다는 것은 당치도 않다는 우월적 의식이 깔려 있었다. 그들의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국민들은 오직 자신들을 선출할 ‘권리’ 혹은 ‘자유’가 있을 뿐 통치는 자신들처럼 탁월하고 고귀한 사람들만이 담당할 고유 영역이다.

역사적으로 시민혁명은 부르주아혁명으로 마무리되었고 시민 세력은 탄압을 받아 그 힘을 잃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의제는 굳건한 통치원리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하여 국민이 직접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대표자를 통하여 간접적으로만 정치적 결정에 참여하며, 따라서 당연히 통치자와 피치자가 별개의 존재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결국 이렇게 통치자와 피치자가 구별된다는 사실은 결국 대의제가 국민의 자기 통치를 통하여 민주주의를 실현함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의제는 ‘국민에 의한(by the people)’ 통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대의 기관을 통한 통치를 의미한다.

이러한 대의제에서 무엇보다도 대표자의 독립성 보장이 강조된다. 왜냐하면 대표자는 국가의사 결정에 있어서 항상 피치자(被治者)보다 탁월한 능력이 있으므로 대표자가 피치자로부터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대표자의 올바른 결정에 장애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민의 특수 이익보다는 일반 이익 즉, 전체 이익이 존중되며, 무엇이 전체 이익인가에 대해서는 오직 대표자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이 과정에서 대표자에 대한 시민의 통제는 철저하게 관심 밖의 문제로 전락된다. 대중이란 기껏 무지몽매한 존재이므로 애초부터 일체의 정치적 권한을 줄 필요가 없거나 혹은 체제 질서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 어떠한 정치참여의 기회도 제공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리하여 대의제는 이른바 ‘대의 원리’에 근거하여 시민을 정치적 권한으로부터 배제시킨 채 대표자만이 정책 결정의 권한을 가지고 있게 됨으로써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은 명망가인 대표자에게 독점되었다. 결국 이러한 명망가 중심의 이른바 ‘명망가(혹은 명사, 名士) 민주주의’의 통치가 대의제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명망가에 독점된 이러한 배타적 결정권은 사회 구성원 전체의 이익에 기초하여 행사되기보다는 대표자 개인의 시각에서 그리고 자신들과 관련된 이익에 의하여 행사된다. 나아가 이들 대표자는 반드시 뛰어난 자질에 의하여 대표자의 지위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재산과 사회적 영향력 혹은 이른바 ‘이너서클’의 인간관계 그리고 그를 앞세운 배후 세력의 사회경제적인 힘에 의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대 대의제가 지니는 이러한 성격은 과연 대의제가 사회 구성원 전체 이익의 공공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가, 즉 대의제 하에서 특수 기득권의 부분 이익(특수 이익)의 지배로부터 공적(公的) 업무의 공공성 보장이 가능한가라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결국 대의제란 대표자의 활동에 따르는 위험성에 대한 담보가 오직 대표자의 양심과 인격에만 맡겨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그 대표자의 양심과 인격은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이익 추구로 변질된다(여기에는 선거와 당내 주도권 장악을 위한 갖가지 정치공학도 당연히 포함된다). 대의제가 지니는 근본적인 제도적 허약성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루소는 대의제 하의 국민은 대표자를 선출할 때만 자유로울 뿐 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노예상태로 전락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었다.

 

직접민주주의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다

그러므로 대의제 민주주의는 공공선(公共善)이나 일반 의사의 지배가 아니라 정당 또는 정치인의 ‘부분 의사’가 지배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다. 다시 말하면, 현대 자유민주주의는 특정 집단의 이익과 가치가 특정 정당에 의하여 대표되는, 즉 ‘부분 의사’가 대표되는 정치 제도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최소주의적’ 대의제 민주주의 개념은 민주주의 가치를 축소시켰으며, 민주주의의 질적 발전을 결코 보장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란 시민의 정치 참여에 의하여 자유, 평등, 정의라는 기본 가치를 실현시키고 시민으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시민의 통치 형태이다. 이러한 민주주의 정신을 정확하게 실현하는 방식은 바로 직접 민주주의이다.

화, 2021/01/19- 19:14
3
0

국가의 흥망성쇠와 국민통합

새해 벽두에 민주당의 이낙연 대표는 뜬금없이 사면론을 주장해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는 사면론이 자신의 신념이라면서 국민통합을 위해 사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국민통합이란 정략적 이익,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얄팍한 책략이거나 기득권 세력끼리의 야합일 뿐 진정한 국민통합과는 인연이 없다.

심리연구소 ‘함께’ 김태형 소장

정치권이나 언론 등에 의해서 국민통합이라는 말이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오남용되고 있지만, 국민통합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주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국민통합이다. 국민이 통합되어 있는 나라는 발전하고 흥하지만 국민이 분열되어 있는 나라는 쇠퇴하고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장구한 인류역사를 통해 확증된 진리이다.

국민이 통합되어 있지 않으면 국가적 목표를 세울 수도 없고 그런 목표가 있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의 협조를 구할 수 없다. 작년부터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국민통합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부각시키고 있다. 전쟁과 같은 사회적 위기 극복, 국가적 방역전쟁의 성공 등은 국민들이 얼마나 일치단결해 국가적 목표를 위해 헌신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한 마디로 국민통합의 정도가 국가의 위기 극복능력이나 발전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남북전쟁 이전 시기로 돌아간 미국

오늘날의 자본주의 국가들은 국민통합과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자본주의 진영의 대장 노릇을 해온 미국은 오늘날 국민들이 단순히 분열되는 것을 넘어서서 국민들 사이에 적대감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2020년의 대통령 선거는 미국이 심리적인 차원에서는 이미 남북전쟁 이전의 시기로 회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미국은 전형적인 1대 99의 사회, 즉 불평등 수준이 대단히 높은 나라이다. 심각한 불평등, 양극화에 대한 미국인들의 분노와 저항은 2010년대에 계급투쟁의 성격을 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운동으로 폭발했다. 만일 이 운동이 성공했다면 미국이 지금처럼 분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적 저항운동은 실패했고 미국 사회는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중의 하나가 바로 트럼프 현상이다.

삶의 벼랑 끝에 몰리고 사분오열된 미국인들, 특히 하층 백인들은 힘을 합쳐 1%의 부자들에게 저항하는 대신 이주민, 유색인종 등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미워하고 적대시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사회 모순과 패전으로 절망감에 사로잡혔던 독일인들이 자신들의 분노를 유대인에게 퍼부었던 것처럼 미국인들은 패거리를 나누어 자신들의 분노를 상대 패거리에게 퍼붓게 되었다. 그 결과 미국은 단순히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분열되는 수준을 넘어서서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적대시하며 나아가 타도하려고 하는, 국민통합과는 아득히 거리가 먼 나라로 전락했다. 제아무리 GDP가 높고 군사무기가 우수하더라도 국민통합에 성공하지 못한 국가는 내부모순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설사 외부적 위협이 없더라도 국민들 사이의 분열과 적대로 인해 급격히 쇠퇴몰락하게 될 것이다.

 

국민통합의 조건 : 공동의 목표

국민통합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국민통합을 목청껏 외친다고 해서 그것이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국민통합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국민통합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국민들이 공동의 이해관계에 기초해 목표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구한말 의병전쟁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는 천민 출신의 두 주인공이 나온다. 노비 출신의 한 주인공은 양반의 폭정과 착취로 인해 미국으로 도피하여 미군 장교가 되고 백정 출신의 한 주인공은 일본으로 도피하여 칼잡이가 된다. 미군 장교가 된 주인공은 열정적으로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양반가 출신의 애인이 자신에게 독립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자 당신들이 되찾으려는 나라에는 나 같은 노비가 있을 곳이 있느냐고 묻는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는 서로 다르다. 평민들과 일부 양반들에게 독립은 당연히 이익이었지만 천민에게는 그렇지 않았기에 천민들은 독립운동이라는 목표를 공유하지 못한다. 만일 독립운동의 목표를 단순한 구체제의 복귀가 아니라 신분제도가 폐지된 새로운 사회 건설로 명시했다면 천민들도 기꺼이 독립운동에 참여했을 것이다. 이 드라마가 보여주듯이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으면 공동의 목표를 내세울 수 없고 단결이나 통합이 불가능하다.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려면 서로가 평등해야 한다. 불평등한 관계에 있는 양반과 노비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코로나 사태로 인해 대부분은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는데 소수는 큰돈을 벌고 있다면,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해 어떤 이들은 절망하지만 어떤 이들은 만세를 부른다면,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는 상충될 수밖에 없고 국민통합은 요원해진다. 따라서 국민통합을 이룩하려면 일단 절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이익이 되는 공동의 목표가 제시되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국민들의 이해관계가 원천적으로 일치하도록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

 

국민통합의 조건 : 심리적 동질감

국민통합이 가능하려면 또한 국민들이 서로에 대해 심리적 동질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자기와 비슷한 동질적인 사람에 대해서는 친밀감과 연대감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지만 자기와는 다른 이질적인 사람에 대해서는 경계심과 열등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 전통적으로 노동자들이 다른 사회집단보다 단결력이 뛰어난 이유 중의 하나는 동질성이 강해서다. 물론 『풍요중독사회』에서 자세히 다뤘듯이, 요즘에는 노동자들도 다층적 위계에 편입되면서 동질성이 줄어들었고 그 결과 단결력이 떨어졌다. 어쨌든 과거의 산업노동자들은 동일한 사회계급적 처지에 놓여 있었고 집단적인 노동생활 등으로 인해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리나 품성까지도 유사했다. 이렇게 노동자계급은 다른 사회집단에 비해 심리적 동질감이 특별히 강했기에 단결력이나 통합력이 우수했던 것이다.

국민들이 심리적 동질감을 느끼려면 무엇보다 사회경제적 수준이 유사해야 한다. 예를 들면 누구는 월 6~7백만 원을 버는데 누구는 월 2백만 원도 못 버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소득수준이 엇비슷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다층적 위계화에 기초하는 불평등으로 인해 국민들 사이에 동질감이 아니라 이질감이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국민통합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경제적 차이를 비롯한 국민들 사이의 각종 격차와 차이부터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진정한 국민통합이란

국민통합을 이룩하기 위한 궁극적인 해법은 국민들의 이해관계를 원천적으로 일치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한국 사회를 평등하고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로 개혁해야 한다. 즉 근본적인 사회대개혁이 필요하다. 국민통합을 이룩하기 위한 선차적인 해법은 절대다수 국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공동의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다. 공동의 목표는 적어도 공동의 목표를 실현할 때까지는 국민통합을 가능하게 해준다. 따라서 공동의 목표를 통해 일시적으로나마 국민통합을 이루고 그것을 계속 강화발전시켜나가면서 그다음 단계의 공동의 목표를 제시하는 식으로 사회개혁을 추진해나가야 할 것이다.

절대다수의 이익을 대변하는 공동의 목표가 없거나 근본적인 사회개혁을 외면하면서 국민통합을 외치는 것은 단순한 선거용 책략을 넘어서서 파쇼체제로 가는 지름길이다. 양반과 노비 간의 관계를 평등하게 만들지 않은 채 양반과 노비를 통합하겠다는 것은 양반과 노비 사이의 갈등을 부인하면서 노비의 저항을 원천봉쇄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인류 앞에 연속적으로 위기가 닥쳐올 것으로 예견되고 있는 미래에는 국가의 흥망성쇠에 미치는 국민통합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다. 자본주의가 한계상황에 봉착해 있는 현 시점에서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여 국민통합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나라들은 미국의 전철을 밟아 몰락하게 될 것이고 국민통합에 성공한 나라들이 미래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김태형

목, 2021/01/28- 19:17
7
0

트럼프의 집권 4년은 세계적으로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트럼프는 미국식 대의 민주주의의 ‘완벽한’ 절차를 통하여 합법적으로 선출된, 그것도 전통에 빛나는 미국 공화당의 후보로서 대통령에 취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집권 이후 백인우월주의의 인종차별 정책과 극단적 미국 이기주의에 토대한 국제질서 부정으로 일관하면서 전 세계를 경악시켜왔다. 마침내 극우파 시위대의 의회 난입이라는 폭거는 ‘미국 자유민주주의’의 조종을 울리는 신호탄이다.

 

미국, 직접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세계적 대제국으로 성장했다

처음 미국에 건너간 이주민들은 같이 배를 타고 와 정착한 동료들과 생활의 근거지를 형성하였는데, 이것이 곧 town이었다. 인구가 약 2천 내지 3천 명에 이르렀던 town에서 주민과 밀접한 업무는 자신들의 손에 의하여 마을집회(town-meeting)에서 직접결정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주민들이 직접 처리할 수 없는 업무는 마을에서 선출된 사람들에 의하여 처리되었는데, 그들은 주민들이 위임한 실무적인 일만 처리하였을 뿐, 공적인 일에 대한 판단은 주민들의 직접 투표로 결정하였다. town에는 주요 행정기능을 수행하는 다수의 관리들이 있었는데, 이들 역시 마을집회에서 직접 선출되었고 그 공적 업무에 충실하지 못하면 책임이 뒤따랐다.

이러한 주민 자치제도는 특히 뉴잉글랜드에서 1650년에 확고하게 정착되었고, town의 독립성 역시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았다.

미국이 세계적 대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렇듯 그 직접민주주의의 힘에 기초하고 있었다.

 

차별성 없는 미국의 두 정당, 양당제의 역설

세계적인 석학 노엄 촘스키(Noam Chomsky)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명예교수는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나눠진 미국의 정당 체제에 대하여 “기업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측면에서 사실 1당 체제다”라고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그는 미국을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 체제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체제 하에서 일반 대중들은 통제당하고 주변화 한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양상은 특히 미국과 같이 기업들의 주도력이 강한 사회에서 더욱 뚜렷하다면서 선거에서 홍보 대행 산업이 활개를 치는 것은 대중을 통제하고 주변화 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경제는 1970년대에 극적인 변화가 있었는데, 바로 금융화와 상품 수출이 강화되는 방향이었다. 여기에 부의 집중, 인구의 1%에 부가 몰리는 과격한 악순환을 조장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되었다. 이에 따라 정치력 집중도 초래되었으며, 경제 집중을 유도하는 국가 정책들이 쏟아졌고, 그러면서 정당들은 자연스럽게 자본의 휘하에 끌려갔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촘스키 교수는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도 별로 다르지 않다면서 미국의 차별성 없는 양당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사회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도 일찍이 “정치란 대기업들이 사회에 던진 그림자”라고 규정하고 이러한 상황은 “언론 등 정치 선동의 수단을 지휘하면서 은행과 부동산, 산업을 사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사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에 권력이 있는 한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석학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Eugene Stiglitz)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미국 사회가 겉으로는 민주주의가 가장 잘 발전된 국가로서 공정한 사회의 모델로서 자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1%의, 1%에 의한, 1%를 위한’ 국가일 뿐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이 글에서 “미국 의회 의원 대부분은 선출되는 순간 상위 1%의 돈으로 유지되는 상위 1%의 멤버들이 되며, 무역과 경제정책의 핵심 고위관료들은 대체로 상위 1% 출신들이다. 또한 미국의 대법원은 선거비용 지출 제한을 철폐함으로써 기업이 정부를 돈으로 움직일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고 지적하고 있다.

 

驕兵必敗, 교만한 병사는 필패한다

이제까지 미국의 양당 제도는 장기적으로 오랫동안 미국 정치의 장점으로 역할 해왔다.

하지만 그 장점은 이제 다원화되는 사회계층의 이해와 다양화되는 사회문제를 포괄해내는 데 경직성을 노정시키면서 오히려 미국 쇠퇴의 중요한 단점으로 작동하고 있다. 반면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광범한 대중에 토대한 사회(민주)당의 존재에 의하여 대중들의 이해가 보다 강력하게 정당정치에 반영됨으로써 그만큼 정치적 사회적 안정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의 원칙 못지않게 소수 의견에 대한 존중 역시 중요하다. 이 점에서 독일의 정당 명부 비례대표제는 소수 정당의 존립 근거를 마련해줌으로써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사회의 소수 그룹을 존중하기 때문에 바람직한 제도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레이건 정부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덜 내게 하고, 군사비 등을 제외한 공공 서비스와 공공 투자를 줄였다”라며 미국 사회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레이거노믹스 시대 이래 상위 1%의 소득은 지속적으로 증가한 반면 나머지의 소득은 계속 정체되고 끔찍한 실업에 시달렸다고 비판한다. 그는 “다가올 시대의 중요한 도전은 99%의 번영을 이룩하고 그들의 힘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정치에 대한 금권의 지배는 이미 구조화되었다. 개방형 경선과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므로 특혜 정책을 위하여 돈을 제공할 능력이 있는 대기업의 정치자금 기부가 기부 액수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되어 있다. 미국 정치제도는 기업들의 로비 자금에 의하여 운용되고 있고, 이로 인하여 정작 교육, 의료, 에너지 등 대중들의 삶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회경제 분야는 점점 관심을 받지 못하게 된다. 미국이 현재 세계에서 코로나 19 환자와 사망자가 많은 나라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교병필패(驕兵必敗), 건강한 신대륙의 건국 정신은 사라지고 패권국가로 너무 오래 교만하게 군림해왔다. 미국은 더 이상 아름다운 나라, 美國이 아니다. 쇠락의 추세는 비단 정치만이 아니라 그간 미국이 자랑하던 외교, 인권, 경제 그리고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현시되고 있다.

더 큰 비극은 바이든 정부에서도 그다지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소준섭

화, 2021/02/02- 19:44
6
0

한 나라 두 대통령 스캔들로 2019년을 뜨겁게 달군 베네수엘라 사태가 일어난 지도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국회도 아닌 광장에서 스스로 대통령으로 ‘셀프선언’한 야당 과이도 의원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일이다. 그는 2019년 1월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으로 선출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재선에 성공한 마두로 대통령 취임식 직후 자신이 ‘합법적’인 대통령이라고 선언했다.

물론 이는 라틴아메리카 전대미문의 정치권 ‘희극’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어설픈 시나리오와 기획,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발연기’가 그야말로 압권인 ‘작품’이었다. 국제사회를 상대로 베네수엘라 민주주의 ‘위기’라는 설정으로 일정부분 ‘흥행’을 일으키는 데는 성공을 했다. 미국이 주도하고 이에 보조를 맞춘 외신들의 호들갑스러운 ‘공모’ 덕이다.

과이도 의원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셀프임명’하자, 미국을 비롯한 서구 유럽 열강들은 앞다퉈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발표를 쏟아냈고, 아쉽게도 한국도 그중의 하나였다. 애초부터 적법한 절차나 정당성을 상실한 이 같은 ‘선언을 위한 선언’은 그저 베네수엘라에 대한 국제사회의 ‘명분’있는 개입, 더 나아가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위한 시작이었을 뿐이다. 야당조차 국내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 민주적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의지는 애초부터 없었다. 베네수엘라 야권이 지난 2년간 보여준 행보는 이를 증명하고도 남음이다.

게다가 민주적 해결이라면 대화 혹은 선거라는 장치를 통하는 것인데, 야당은 여당 지지층의 결집에 대항할 세력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거가 더는 해법이 되지 못했다. 야권과의 정치적 합의를 끌어내려는 마두로 정권의 끊임없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합의된 대화에 불참하거나 불이행하는 방식으로 한 걸음의 진전도 허용하지 않는 전략으로 일관해왔다.

지난 2년간 베네수엘라 부르주아 지배계층을 대변하는 G4의 야당 연합은 줄곧 국내적으로는 폭력적인 가두시위를 선동하고, 대외적으로는 특히 미국의 군사개입을 노골적으로 지속해서 요청해왔다. 이는 같은 해 9월 미주연합기구(OEA)의 미주상호방위조약(TIAR)을 발효, 즉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개입을 공식화하는 수순으로까지 이어진 바 있다.

그리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지난 2년간 베네수엘라 사태의 정점에 있던 자칭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홀로 ‘군림’했던 과이도 의원의 퇴장은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우선, 지난해 12월 베네수엘라에서 치러진 총선에서 여당이 277석 중 256석을 얻어 의회 권력을 다시 회복했고, 의회 권력을 통해 현 정권을 사보타지 했던 야당은 이제 국회라는 ‘합법적’인 정치적 기반을 잃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베네수엘라 야당 내에서는 물론 일반 야당 지지층 국민 사이에서도 처음부터 지지가 높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의 가장 큰 기반은 미국의 ‘선택’을 받은 인물이라는 것 뿐이다. 국내 지지기반이 취약한 상태로, 명분은 고사하고 적법한 정치적 절차나 정당성 상실, 게다가 국경을 맞대고 군사적 긴장 관계에 있는 콜롬비아 마약 범죄조직과의 연루설과 불법 자금 유용 등 그를 둘러싼 각종 의혹은 여전히 산적하다.

아래 사진[사진1]은 얼마 전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미국 의회를 ‘점령’한 일을 풍자하며 “미국의 트럼프 지지자들과 베네수엘라의 트럼프 지지자들”이라는 태그를 달고 SNS로 공유되는 사진의 일부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회의 담을 넘는 모습과 과이도 의원이 2020년 베네수엘라 의회로 들어가기 위해 의회의 ‘담’을 넘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이다.

베네수엘라에서 과이도 의원은 이미 미국의 ‘꼭두각시’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었고, 그를 빗댄 풍자와 해악은 이미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사진1] 베네수엘라에서 공유되는 과이도와 미국을 풍자하는 SNS 캡쳐화면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2019년 국회의원 의장 임기가 끝나는 과이도 의원을 이어 새로운 의장을 선출해야 했던 2020년 초 베네수엘라 의회에서 일어난 진풍경이다. 새로운 국회의장 선출을 ‘보이컷’한 과이도 의원이 뒤늦게 의회로 진입하려고 시도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2019년 과이도 의원이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2016년 거대 야당 연합으로 차베스 진영에서 국회 권력을 가져온 야당의 합의에 따른 것이었다. 즉 국회의장 자리를 주요 거대 4개 야당(G4)에서 번갈아 맏기로 하였고, 그 결과 과이도 의원 소속 정당인 민중의지(Voluntad Popular)당 차례가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임기가 끝나는 2020년 1월 그는 국회의장 자리를 내놓을 생각이 없었고, 의석수 불충분이라는 핑계로 선거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소수의 과이도 지지자를 제외한 야당 연합 G4은 정의제일당(Primero Justicia)의원을 국회의장으로 선출하며, 지난 1년간 ‘명실상부’하게 두 명의 국회의장을 두는 초법적 선택을 하며, 야당의 끊임없는 자중지란이 이어졌다.

스스로 국회의장이라는 자격을 내세워 대통령으로 셀프선언하고 1년이 지났음에도 이렇다 할 정치적 ‘성과’는 고사하고 오히려 야당 내 자중지란으로 귀결되었으나, 과이도 의원의 ‘위상’에 이만저만한 생채기가 적지 않았음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과이도 의원은 베네수엘라 야권과 그 지지층을 대변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에게 쏟아진 지나친 해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기실 베네수엘라 사회 내에서 그가 차지하는 정치적 위상이나 헤게모니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져 왔다. 어쩌면 베네수엘라 야당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줄곧 ‘무대’에 올랐던 그는 국제사회가 유일한 그의 관중이었을 지도 모른다.

미국의 그림자가 강력히 드리워진 베네수엘라의 주요 4대 야당 연합은 속칭 G4라 부른다. 과이도가 속한 소수정당인 민중의지당을 포함, 민주행동당, 새 시대, 정의제일당 등을 포함한 이 연합은 가장 극우적 성향의 집단이다.

한편, 과이도 의원의 소속 정당인 민중의지당의 실세는 레오폴도(Leopoldo)라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과이도 의원의 정치적 ‘멘토’이기도 하다. 차베스 사망 이후 끊이지 않았던 폭력사태(병원건물방화, 길거리 폭력시위 등)를 주도한 혐의로 기소되었고, 대법원판결에 따라 가택연금을 선고받았다. 얼마 전 일어난 군부 쿠데타에 가담한 정황이 드러나자 주베네수엘라 스페인 대사관에 ‘신변 보호’를 요청, 지금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생활하고 있다.

참고로 그의 아버지 레오폴도 길(Leopoldo Gil)은 지난 2015년 스페인 국적을 취득, 현재스페인 보수정당이자 집권당인 인민당(Partido Popular)소속으로 2019년부터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과이도 의원의 대통령 ‘셀프선언’ 이후 스페인이 과이도 ‘체제’를 옹호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한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레오폴도는 법의 심판을 피해 국외로 탈출하였으나, 외신들은 조국을 구하기 위해 잠시 해외로 몸을 피한 ‘애국자’인 듯 다루고 있다. 그러나, 정작 베네수엘라 국민이 궁금한 것은 그의 ‘애국행위’가 아니라, 그가 마드리드 고급 아파트에 매달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진 약 만유로(한화 1300만원)의 출처다.

최근 치러진 총선의 결과는 베네수엘라의 핑크빛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막대한 자본을 가진 부르주아 자본가 계급의 야당 연합 G4의 계속되는 정치권 사보타지,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병적인 집착은 바이든의 민주당이라고 해도 크게 달라질 일은 없을 테니까. 상기해보면, 베네수엘라를 미국 안보의 ‘위험’으로 간주한 것은 2015년 오바마 시절의 일이다.

과이도의 등장으로 국제사회가 떠들썩할 때, 카라마스 도심의 한 공원에서 레크레이션을 즐기는 모습

지금까지 베네수엘라를 다루는 거대 자본의 미디어들은 대부분 진실보다 자극적인 소재와 왜곡된 기사를 쏟아냈다. 일부 국내 언론에서는 사실관계 파악이 아닌 외신을 번역해서 나르는 일이 전부였다.

2019년 과이도 의원의 등장으로 야단법석을 떤 것은 오히려 국제사회였을 뿐 정작 베네수엘라는 평온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베네수엘라의 변화가 이를 희망하는 민중들의 지지를 받는 한, 그들의 시간은 묵묵히 그들의 편에서 흐를 것이다. 비록 국제사회의 부르주아 계급들이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선택을 끊임없이 막아설지라도.

이제는 그만 베네수엘라 민중들에게 그들의 미래를 맡겨야 하지 않을까.

 

정이나

목, 2021/02/04- 19:12
5
0

팬데믹, 즉 세계적 유행병인 코로나19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의학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대처에 있어서 ‘이동량’이나 ‘사회적 거리두기’, ‘사적 모임 제한’ 등의 표현이 등장하는 것을 볼 때, 그것이 또한 사회학적 문제임을 알게 된다. ‘사회학적’이라 함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작용하는 어떤 무엇과 관련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발병 및 확산 초기에 그 ‘어떤 무엇’은 사회적 심성 또는 지배적 규범의 문제로 해석되었다. 그리하여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 유교 문화권 국가의 ‘순종적’ 국민 덕에 방역이 잘 된다고 해석되었다. 물론 신천지 등 일부 개신교 집단에서 전체 사회보다 자기 집단에 ‘순종적’인 문화가 방역에 가장 큰 장애가 됨이 곧 밝혀졌지만 말이다. 이처럼 사회적 관계의 질서에서 ‘집단도덕’이 핵심이라고 보는 견해는 근현대 주류 사회학의 고전적인 주장이다.

다음으로, 그 사회적인 ‘어떤 무엇’은 공공의료제도라는 ‘제도’의 문제로 이해되었다. 특히 한 국제기관에서 독일의 공공의료제도를 높이 평가하여 한국보다 방역에 앞서 있다고 평가하면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내 공공의료제도의 문제가 드러나면서 그와 같은 의견이 대두했다. 그러나 스페인 등 여타 유럽 국가의 환자까지 실어와 병상을 제공했던 독일에서 코로나19 방역이 실패하여 사회폐쇄가 연장되면서, 이런 관점은 설득력을 잃었다. 또 공공제도가 잘 갖춰진 대표적 북유럽 복지국가인 스웨덴에서 난데없는 ‘집단면역 실험’을 했다가 실패하면서, 단순히 ‘제도’만의 문제가 아님이 명백해졌다. 이렇게 의료제도를 문제의 핵심으로 보는 경우는 의료사회학적인 입장이다.

최근 들어 코로나19의 감염 동선을 추적하기 어려운 경우가 잦아지면서, 사회적인 ‘어떤 무엇’의 핵심은 역학조사 및 그와 관련된 개인정보 수집의 문제로부터 점점 멀어져서 유럽과 마찬가지로 사회폐쇄 여부, 즉 개인들의 이동량 통제 문제로 넘어갔다. 결국 3차 유행에 와서는, 역학조사 중심의 초기 감염병 대응에서 실패하여 익명적, 집단적 자유제한 정책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던 유럽과 유사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서구와의 차이가 나타났다. 서구에서는 사회폐쇄에도 불구하고 이동량이 크게 줄지 않아서, 젊은이들의 파티와 사적 모임에서의 감염이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그리하여 학교나 직장과 관련된 이동량까지 줄여야 하는 문제에 직면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이동량 감소로 상당히 잘 연결되는 결과를 보여왔다.

지금까지 경과를 보면, 결국 사회적인 ‘어떤 무엇’에서의 핵심은 ‘사회적 거리’와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을 단순히 정부 방침에 잘 따라주는 ‘순종적’ 심성의 문제로 볼 것인지 아니면 다른 차원의 문제로 볼 것인지가 핵심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코로나19를 통해 드러난 또 다른 ‘사회적 거리’의 표현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택배 노동자의 과로, 아파트 경비원 폭행 주민, 정인이 사건 등의 아동학대 부모에 대한 분노를 통해 나타났다. 택배 노동자의 과로에 대한 공감은 인간적 공감의 형태로만 표출될 뿐, 과로를 강요하는 산업의 이익분배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독일에서 간호 및 돌봄 노동자의 처우개선에 대한 문제가 코로나19를 계기로 집단적 목소리로 표현되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아파트 경비원 폭행에 대한 분노 역시 노동권의 문제보다는 개인 인권의 측면에서 공감대가 확대되는 양상이다.

그러나 살인과 구별되기 힘든 양상의 아동학대에 대한 분노는 단순히 인격적 분노가 아니라 제도의 작동불능에 대한 분노이기도 했다. 아동학대 신고 절차를 제대로 따른 행위자가 시민들 개인에 한정되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경찰이나 입양기관과 같은 조직적 행위자는 모두 책임회피와 무시로 일관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가 학대 부모에 대한 인간적 분노 못지않게 컸다. 그러나 정인이에 대한 젊은 부모들의 진정성 있는 추모의 물결은, 그 이전의 세대들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전경이기도 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정인이에 대한 추모가 ‘남에 대한 추모’라는 거리감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거리감의 변화

택배 노동자, 아파트 경비원, 학대 피해자에 대한 공감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2차 집단’ 관계 속에서 개인들이 느끼는 ‘사회적 거리감’이 매우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과거의 ‘정’과는 다른 방식으로, 개인들은 ‘남’의 고통에 공감하고 있다. 과거 ‘정’은 인연 맺기와 유관한 친밀감이다. 일회적이거나 익명적인 성격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공감이 아니라, 인연 지속의 기대감 속에서 호혜적인 감정을 교류하는 것을 말한다. 즉 사회학에서 말하는 ‘1차 집단’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택배 노동자, 아파트 경비원, 아동학대 피해자에 대한 공감은 ‘연고가 배제된’ 공감으로서, 사회학에서 말하는 ‘2차 집단’적인 관계에 가깝다. 주류 사회학에서는 ‘2차 집단’ 관계의 핵심은 이익이라고 보았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결합한 ‘차갑고’ ‘계산적인’ 관계라고 규정했다. 물론 거기에도 호혜성이 성립하나, 그것은 ‘인격적 친밀감’이 아니라 ‘공적 의무’에 기초한다. 즉 만일 공감이라는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한층 추상적인 시민적 공감이다.

서구에서는 그런 시민적 공감이 공적 제도화를 낳았고, 그리하여 민주주의의 다양한 절차들이 확립되었다. 즉 서구에서 제도화는 곧 규범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실현 역시 의미한다. 그런데 택배 노동자나 아파트 경비원의 경우를 통해 보이듯이, 한국에서 공적 공감은 제도화로 쉽게 연결되지 못한다. 공감되는 개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 자체가 기대되기 어려운 현실이다. 제도화가 어려운 이유는 규범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고용자의 산업 논리가 더 우선인지, 아니면 피고용자의 인권이 더 중요한지가 사회적으로 논의된 적조차 없어서 규범이 무엇인지를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야말로 무규범의 상태이다. 또는 정인이 사건에서처럼, 제도화가 이루어진 경우에도 그 제도는 작동하지 않는다. ‘남’에게 공감하는 개인들은 제도를 따름으로써 그 규범에 동조하지만, 제도를 지켜야 할 권력기관은 제도를 무시할 만큼 규범에 무지한 것이다.

시민 개인의 시민적 공감과 제도 규범 간의 이러한 괴리는, 아마도 민주주의 절차를 권위적으로 제도화한 한국 정치사와 관련이 깊을 것이다. 즉 제도화를 위해서는 대표된 권력이 필요하고, 권력을 대표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대표자에게 이양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표현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정치사에서는 이런 중간 과정이 아예 생략되거나 아니면 단순 절차적으로만 적용되어왔다. 권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소유대상이 되어 그 자체가 이익으로서 분배된다. 권력을 대표자에게 이양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권력 대표자에게 전달이 되지 않으므로, 개인들은 추상적인 시민적 공감의 수준을 넘어 사무치게 인격적인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제도화가 개인들의 마음과 괴리되어 있는 만큼, 그리하여 제도화가 규범의 표현이 아니라 권력의 표현이 되고, 그리하여 사회적 규범이 무엇인지 확인이 안 되는데 개인들의 감정만 확인되는 상태에서, ‘남’에 대한 격한 인격적 공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내 집단’과 ‘남의 집단’을 엄격하게 나누어 이질적으로 집단 관계를 규정하던 고전적인 사회적 관계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오히려 ‘나’, ‘공감되는 다른 개인’, ‘권력기관’으로 상호작용의 대상을 삼분하여 사회적 관계를 이해하고, ‘나’를 포함한 ‘개인’과 ‘권력기관’ 간의 권력 비대칭성을 뼈저리게 인식하는 마음의 상태가 표현된 것이 아닌가 한다. 말하자면 시민 개인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권력에서 소외된’ 남들에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공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한국에서의 방역 성공은 권력기관에 대한 이러한 불신과 쌍을 이루는 듯이 보인다.

주권자로서 미약한 개인의 처지에서 신뢰할 수 없는 권력기관을 마주하여, 스스로 솔선수범해서 방역의 최전선에 있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한국에서 지금까지 방역이 성공했던 이유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렇게 성공한 방역 역시 서구의 방역 못지않게 위태로울 수 있다. 서구의 경우 개인 주권자 의식이 강한 개인들이 정부의 방역 정책을 불신하여 방역이 어렵다면, 한국에서는 제도적 권리가 약한 개인들이 최악의 상황을 예방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방역 정책을 따르기 때문이다. 시민 개인들의 이런 자발적 동원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민들의 헌신적인 솔선수범이 코로나19 이후의 한국 사회에서 ‘제도화한 권리’의 형태로 보상받아야 한다. 현재의 방역 성공은 한국의 의료제도, 경제 제도, 이익분배 방식 덕이 아니라, 오히려 그 모든 것이 불충분한 상태에서 스스로 솔선수범하고 타인에게 마음 깊이 공감하여 ‘시민적 동원’의 최고치를 만들어낸, ‘좋은 시민’들 덕이기 때문이다.

 

홍찬숙

화, 2021/02/09- 20:31
2
0

호주와 인도 일본 그리고 미합중국은 완벽하게 중국에 대항하는 나름대로 근거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굴기하는 중국과 공존하는 것이 매우 불편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소위 Quad라고 알려진 방식의 동맹에 4자가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여 지역안보에 협력하는 위험회피hedge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전적으로 합법적이다.

그러나 필자는 2가지 이유로 Ouad가 아시아의 역사적 흐름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는데, 첫째는 4자가 서로 다른 지정학적 이해를 갖고 있는 취약성이며, 둘째는 보다 근본적인 것으로 이들은 잘못된 게임을 벌리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에서 파워게임의 핵심은 군사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에 달려 있다.

우선 호주가 가장 취약하며 경제에 대한 중국의존도가 매우 높다. 호주는 지난 수십 년간 불황을 모르는 안정적 번영을 자랑하여 왔는데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호주경제가 중국과 기능적으로 같은 지역에 속하여 있다는 지정학적 조건이 있다. 2018-2019년의 통계만 보아도, 호주의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33% 이상을 차지하는데 반하여 미합중국은 겨우 5%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COVID-19에 대한 중국의 관련성 여부를 국제사회에 공개적으로 요구함으로써 면전에서 중국의 따귀를 때린 호주의 행동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설사 혐의가 있더라도 이를 신중하게 비공개적이며 개별적으로 접근했어야 한다. 이제 호주는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 처지가 되었다. 현재 모든 아시아 국가들이 중국과 호주의 대결상황에서 과연 누가 궁지에 몰릴 것인지 주의깊게 지켜보는 국면이다.

여러 상황을 종합해보면, 결론은 이미 나와 있다. 중국이 궁지에 몰리면, 아시아의 국가들이 호주의 행적을 따라 중국을 경멸할 것이고,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호주 자신도 함께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반면에 중국은 차분히 기다릴 여유가 있다. 호주의 賢者인 Hugh White가 지적하였듯이, Canberrra(호주의 행정수도)가 처한 어려움은 현실적으로 중국이 게임의 모든 패를 한 손에 쥐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관계에서의 파워는 자신의 최소희생으로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국가가 갖게 된다.

중국이 호주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파워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호주의 현직 수상인 Scott Morrison과 동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2019년 11월, 전직 수상이었던 Paul Keating은 Quad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호주 국민들을 향해 심각하게 경고한 바 있다. “광의적으로 표현하자면, Quad는 출범조차 못하고 있다”고 그는 호주의 한 전략포럼에서 지적했다. “인도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접근에 대해 이중적인 입장을 갖고 있으며, 중국에게 실제로 위협을 가하는 행동을 회피할hedging 것이다.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중국과 일본 간의 화해분위기 역시 또 다른 증거이다…. 일본은 중국에 대한 봉쇄의 실행프로그램에 여전히 서명하지 않고 있다.”

비록 최근의 국경분쟁으로 인도가 중국에 대하여 강경한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미국의 동맹국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은 다른 측면에서 역시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 호주는 다행스럽게 주변에 매우 우호적인 동남 아시아 국가들로 둘러 쌓여 있지만, 일본의 주변에는 비우호적인 이웃들인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역사적 앙금을 남아있는 한국이 있다. 일본은 이들과 어려운 관계를 맺고 있으며 때로는 긴장을 형성한다. 상대적으로 경제의 규모가 작은 러시아와 한국과 관계는 어려움에 빠지더라도 일본은 이를 관리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신형강대국으로 등장한 중국과는 관계를 상호 조정해 가야만 한다는 것을 일본자신이 너무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며, 군국주의 시절인 20세기 전반기를 예외로 하다면, 일본은 줄곧 강대한 중국과 항상 평화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여 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4개 국가들은 서로 다른 경제적 이해와 역사적 배경으로 Quad라는 동맹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점점 어려워 질 것 이다.

동아시아의 역사를 전공한 Eaza Vogel은 2019년 저술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중국과 일본 간의 1,500년이라는 장구한 역사기록은 이에 비교할 만한 사례가 없을 만큼 독특하다” 중국과 일본의 관계사를 기술하면서 그는 양국이 오랜 역사를 통하여 깊은 관계를 유지하여 왔지만, 문명의 규모와 발생에 있어서 중국이 항상 우위를 지켜왔다고 주장한다. 양국의 관계가 지난 1,500년간 대체로 평화롭게 유지되어 왔다면, 향후 1000년의 역사도 같은 패턴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유명한 가극인 ‘가부끼’처럼 관계의 변화는 매우 세밀하고 조금씩 변화를 보이면서 점차적으로 긴 시간을 두고 새로운 양상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들 양국의 관계는 하루아침에 우호적으로 변해가지는 않을 테지만, 일본은 은밀한 방식으로 중국의 핵심적인 이익을 이해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물론 중국과 일본 사이에 앞으로 많은 현안과 사건들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양국은 이를 시간을 두고 점차적으로 조정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인도와 중국 간에는 전혀 다른 문제들이 개입되어 있다. 오랜 문명을 지닌 대국으로 이들 양국은 수천 년을 지리적으로 이웃하여 지내왔지만, 히말라야 산맥이라는 지형적 조건으로 사실상 분리되어 직접적인 접촉은 거의 없었다. 불행하게도 현대의 기술로 인하여 히말라야가 더 이상 차단의 장벽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따라서 접경지역에서 양국의 군인들이 서로 직접 대면하는 기회가 빈번해졌다.

이러한 대면의 접촉은 대부분 충돌이라는 사건으로 발전하였는데, 2020년 6월에도 예처럼 충돌하는 일이 벌어졌으며 이후 중국에 대한 혐오감이 인도 전역에 휘몰아 쳤다. 향후 수년간 양국의 관계는 악화의 길을 걸을 것이며, 사태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해결해줄 때가지 중국은 차분히 기다릴 것이다. 1980년에는 양국 간의 경제규모가 대등하였지만, 2020년 현재에는 중국경제가 인도의 5배 규모로 성장하였다. 이들 대국의 장기적인 관계는 결국은 경제의 규모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1980년대에 미국의 경제가 압도하면서 냉전시대의 소비에트는 사라졌다. 참으로 우연하게, 미합중국이 2017년에 이루어진 CPTPP에 불참하면서 중국에게 의외의 선물을 안겨주었듯이, 인도는 동아시아 지역의 포괄적 경제협력기구인 RCEP의 참여를 포기하면서 중국에게 지정학적 利點을 제공하였다. 경제는 거대한 게임이 진행되는 곳이다. 미국이 CPTPP에서 발을 빼고 인도가 RCEP을 포기하면서 해당 역내의 거대한 경제의 생태시스템이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여기서 심각하게 참조할 통계자료가 있다. 2009년 당시 내국의 소비 사장 규모가 중국은 1.8조 달러이었던 반면에 미국은 4조 달러이상 이었다. 10년이 지난 2019년에는 상황이 역전되어 중국의 규모가 6조 달러, 미국은 5,5조 달러가 되었다. 더구나 향후 10년간 중국의 수입물량은 22조 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1970-1980년대의 미국의 대량소비 경제가 소비에트를 몰락시켰듯이, 향후에는 중국의 엄청난 내수시장의 규모가 국제지정학의 지형을 결정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이러한 배경이 Quad동맹의 해군함대가 인도양에서 훈련을 실시한다 해도 아시아 역사의 방향을 되돌리지 못하는 이유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Quad 4개 국가들이 경제적 이해와 역사적 배경을 달리하면서 정상적인 동맹관계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여기 하나의 뚜렷한 징후가 있다: 미합중국의 가장 강고한 동맹국인 한국을 포함하여 아시아의 어떤 나라도 Quad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 아시아의 미래는 Quad라는 4개의 영문자가 아닌 RCEP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될 것이다.

 

출처 : 포린폴리시(ForeignPolicy) on 2021-01-27.

KISHORE MAHBUBANI

동남아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외교관으로 싱가포르 외무장관을 역임하고 유엔주재 대사를 지내면서 안보리이사회의 의장직을 2년간 맡았으며, 이후 14년간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의 학장을 지냈다. 최근 “Has China Won”을 출간하여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수, 2021/02/10- 17:57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