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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다시 개벽의 신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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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다시 개벽의 신바람이-

익명 (미확인) | 금, 2019/01/25- 11:41

1. 개벽의 바람

이병한 선생님, 두 번째 편지 잘 받아보았습니다. 먼저 편지를 쓰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는 말을 듣고서 저도 덩달아 기뻤습니다. 뭔가 답답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서요. 마침 엊그제 원불교대학원대학교의 김경일 총장님도 페이스북에서 비슷한 표현을 쓰셨더군요. “서구 근대문명이 들어올 때 위정척사나 개화파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동학류의 개벽에 대한 자리매김이 늘 고민이었는데 (『한국 근대의 탄생』을 읽으니) 이것을 풀어낼 단서를 찾아주신 것 같아 저도 가슴이 후련했습니다.” 아마도 전통(척사파)과 현대(개화파)라는 양분법으로 단절된 한국사상사에서 ‘근대’(개벽파)라는 연결고리를 찾으셔서 이런 표현을 쓰신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뭔가 막혀있는 지금의 상황을 뚫을 수 있는 사상적 실마리는 역시 ‘개벽’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성환 사진2 유상용선생님과
유상용 선생님과~

실제로 요즘 제 주위를 보면 여기저기에서 개벽바람이 불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한국 근대의 탄생』을 읽으셨다는 유상용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30년 동안 국내외에서 공동체운동을 하다가 개벽으로 돌아오신 분인데, 그 귀환의 심정을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고 계십니다: “나는 92년 이래로 정신과 물질이 고루 발달한 풍요로운 이상사회를 지향하는 ‘야마기시즘’을 현실사회에 실현하기 위한 실천과 활동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된 나의 ‘뿌리찾기’의 과정에서 시작된 탐구와 실천의 한 과정일 뿐이지 전부는 아니다. 뿌리찾기 과정에서 도착한 곳은 조선 정신의 용출인 개벽사상이었고, 그것을 사회화하기 위해 시도했던 것이 원불교사상을 기반한 새로운 사회 만들기였다. … 작년 말에 나는 다시 돌아왔다, <개벽>으로 -. 한국의 상황에서, 지금 여기로, 뿌리에서 올라오는 울림으로, 나의 느낌으로…”

이렇게 ‘다시 한국’으로 귀환하신 분과 원광대학교에서 6시간 동안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30년 동안의 체험과 실천에서 우러나오는 ‘말씀’으로부터 개벽학과 관련해서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가령 동학은 일종의 한국인의 사상적 뿌리찾기로 해석할 수 있고,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개벽적 주체의 정립이며, 한살림은 생산성 중심의 과학농업에서 철학에 기반한 인문농업으로의 전환을 시도한 운동이다 등등… 유상용 선생님도 며칠 뒤에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리셨더군요.

“요즘 동학‧증산‧원불교 관련 글들을 읽으며 그 때 선조들의 바람은 무엇이었는지, 시대적 과제와 자각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많이 읽고 떠올려 보았다. 특히 최제우 선생은 조선과 동양의 몰락을 감지하고, 유학이 당면한 과제를 알고, 기독교-서학의 내용이 의미있다는 것을 이해한 후에, 유학이 현상의 관찰에 머물러 초월을 몰랐고, 서학이 초월을 인간 밖에 두어 외화되었다고 판단하고서, 스스로 기도를 통한 초월적 체험을 시도하여 새로운 길을 열고, 양쪽의 모순을 극복한 ‘내안의 하느님을 모시는’ 시천주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고 이해하게 되었다. 전에도 비슷하게 생각했었지만, 조선 문명의 절실한 과제의 해결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이해하니 더욱 선생과 선조들의 마음이 가깝게 느껴진다.”

탁월한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초월의 문제와 관련해서 동학의 입장에서 유학과 서학의 한계를 지적한 부분은 왜 개벽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사상사적으로 정확히 짚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분들의 도움을 받으면 이 시대에 필요한 개벽학을 정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날 유상용 선생님의 소개로 마침 익산에 오신 이남곡 선생님도 함께 만나뵐 수 있었습니다. 30년 전에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감옥에서 나온 뒤에 어느 사찰에 들어가서 「혁명에서 개벽으로」라는 글을 쓰신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벽’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냐고 여쭤봤더니 “밝음을 창출하는 에너지”라는 한마디로 명료하게 정의해 주셨습니다. 어둠과의 싸움이나 정치적 투쟁이 아니라 “자기 안의 밝음을 신장시키려는 노력”이라는 것입니다.

순간 저는 한국의 전통적인 ‘신명사상’과 장일순 선생의 ‘보듬는 혁명론’이 떠올랐습니다. ‘신명’이 바로 ‘밝음의 에너지’이고, ‘신명난다’는 말은 “밝은 기운이 나온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투쟁이나 저항의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전환시키는 길은 밝음의 에너지로 상대를 보듬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남곡 선생님이 작년에 『논어: 삶에서 실천하는 고전의 지혜』의 개정판을 내셨다고 하는데, 이런 마인드로 『논어』를 독해하셨다면 저로서는 일종의 『개벽논어』와 같은 느낌이 듭니다.

 

2. 창조성과 도덕성

선생님의 편지에서 두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점은 “정신을 개벽하여 물질을 개벽하자!”는 역발상입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정신개벽은 ‘서구중심주의’로부터의 탈피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최제우가 ‘중국중심주의’로부터의 탈피를 ‘다시 개벽’이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종래의 성학(聖學)을 술(述)하지 않고 동학(東學)을 작(作)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한국 근대의 시작으로 보았습니다. 적어도 사상사적으로는 이렇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국중심주의나 민족주의로 나가자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사실 모든 ‘중심주의’로부터의 탈피가 정신개벽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지요. 천도교나 원불교 경전에서 마음/정신의 최고 상태를 ‘자유심’이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로운 마음/정신 상태가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새로운 생각, 새로운 학문, 새로운 동학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다고 봅니다. 뭔가에 얽매여 있는 상태에서는 새로움을 창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새로움’이 바로 이남곡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밝음’이나 한국사상에서 말하는 ‘신명’ 그리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유레카’와도 상통하고요. 아울러 이렇게 정신이 개벽되면, 즉 정신이 자유로워지만 창조적인 주체가 될 수 있고, 이렇게 창조성이 발현될 수 있을 때 새로운 물질개벽의 차원이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것이 ‘창조경제’이고, 인문디자인의 관점에서 본 정신개벽과 물질개벽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해석입니다.

조성환 사진2 새교포럼 박맹수 강연1
세교포럼 박맹수 강연(왼)

물론 정신개벽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자각하여 구세하자”는 자각정신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지난주에 창비빌딩에서 있었던 세교포럼에서 원광대학교 박맹수 총장님이 “문명전환기에 다시 보는 한국근현대사상”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셨는데, 이에 대해 세교연구소 고문이신 백낙청 교수님께서 이중과제론적 입장에서 코멘트를 하셨습니다. 원불교에서 말하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슬로건의 의의는 이 시대를 물질개벽, 즉 자본주의의 시대로 설정하고 그것에 대한 정신적 대응으로써 정신개벽을 주장했다는 데에 있고, 그래서 원불교에는 근대적응(물질개벽)과 근대극복(정신개벽)이라는 이중과제가 다 들어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이 한마디에 그동안 말로만 듣던 백낙청교수님의 이중과제론의 내용이 명료하게 들어왔습니다. 아울러 원불교의 개벽론이 지니는 현대적인 의미도요. 물론 개인적으로는 “물질개벽=자본주의”보다는 “물질개벽=과학혁명”이라고 하는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과학혁명과 자본주의가 현실적으로 맞물려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강같습니다.

저는 이런 의미의 정신개벽을 나타내는 말이 개벽파가 주장한 ‘도덕’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월 최시형이 말하는 ‘도덕문명’(『해월신사법설』「기타」)이나, 소태산 박중빈이 말하는 물질문명과 대비되는 ‘도덕문명’(『대종경』 「교의품」 32장)이 그러한 예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정신개벽이라는 말에서 도덕성과 창조성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읽어내고 싶습니다. 도덕성이 원 문맥에 충실한 개념이고, 선생님이나 백낙청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자본주의라는 근대를 극복하는 정신적 태도나 삶의 자세라고 한다면, 창조성은 정신개벽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신을 개벽해서 물질을 개벽하자”는 선생님의 역발상에서의 정신개벽은 이렇게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성환 사진2 새교포럼 박맹수 강연2

 

3. 한국학과 신동학

마지막 부분에서 “동학을 연구하기보다는 신동학을 하자!”는 선생님의 제언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다만 제가 ‘개벽사’라는 사상사 서술에 집착하는 이유는 역사에 대한 인식이 우리의 실천을 결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이 실천이나 현장을 우선시하는 분들과 저 같은 연구자와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학의 틀을 바꾸고 싶습니다. 척사와 개화, 유학과 서학에 치우친 한국학에서 ‘척사-개화-개벽’이 천지인(天地人) 삼재처럼 균형이 잡힌, ‘유학-서학-동학’이 삼발이처럼 정립된, 그런 한국학을 그리고 싶습니다. 유학이 동아시아라는 전통적 배경이고, 서학이 세계라는 현대적 환경이라고 한다면, 동학은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재적 풍토입니다. 그래서 어느 것 하나 소외되고 무시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현재적 풍토는 잊혀지고 무시된 감이 있습니다. 그것이 개벽이라는 근대였습니다. 이 폄하되고 경시된 한국적 근대에 대한 기억을 복원시키는 일이야말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균형잡힌 한국학이 정립되지 않으면 실천도 방향을 상실하리라 생각합니다. 개벽의 근대를 제외한 유학 중심의 ‘전통과 현대’라는 틀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제 입장에서는 “동학을 연구하는” 것도 일종의 “동학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한국 근대의 탄생』의 출간을 인연으로, 한평생 실천현장에 몸담고 계셨던 실천가들을 만나 뵙고, 아울러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자극을 받고서, 저도 비로소 실천에 대한 필요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도 새로운 ‘자각’이 생겨난 셈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25년이 문헌연구-사상연구에 치중했다고 한다면, 앞으로의 25년은 실천현장에 계셨던 분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새로운 ‘학’의 정립과 실천에도 힘을 기울이고 싶습니다.

 

4. 언어의 한계

마지막으로 맨 처음에 제기해 주신 ‘일본의 개벽’이니 ‘토착적 근대’에 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는 것으로 이번 답장을 마치고자 합니다. 당연히 지적하신대로 일본의 개벽파를 상정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에는 개벽파라고 할만한 운동은 희미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도 동의하시는 바입니다. 다만 우리와 같은 개벽의 흔적이 있는지를 찾고 싶었고, 그것이 안도 쇼에키와 같은 사상가가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결코 한국 개벽의 원형이나 시작이 일본에 있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동학=개벽’의 가장 큰 사상사적 의의는 중국적 성인질서로부터의 탈피인데, 이런 주장을 안도 쇼에키가 이미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안도 쇼에키는 사회운동의 차원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이것이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였다고 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관점이 제가 ‘근대=자본주의’와 등치시킬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세계’의 관점에서 보기보다는 ‘한국’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입니다(물론 한국은 세계 안에 있지만요-.). 그래서 근대의 기준이나 내용을 규정할 때에도 저로서는 중국(유학)과의 관계가 중요해지고요. 마치 서양 근대가 중세(신학)와의 관계 속에서 나왔듯이 말입니다. 단지 관점이 달라서 표현이 달라질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개벽’이라는 표현은 ‘한국의 근대’라는 표현과 유사하게 생각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즉 modern의 번역어로서의 ‘근대’라는 말을 한국의 ‘개벽’을 설명하기 위해서 차용해서, 그 상대적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서 ‘영성적 근대’니 ‘자생적 근대’라는 말을 썼듯이, 이번에는 반대로 한국의 ‘개벽’과 유사한 현상을, 즉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이라는 현상을 일본사상사에서 찾아서 적용해 본 용어입니다. 그래서 서양의 근대와 한국의 근대의 내용이 완전히 일치할 수 없듯이, 한국의 개벽과 일본의 개벽도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토착적 근대’니 ‘비서구적 근대’니 하는 용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시기에 굳이 ‘토착’이니 ‘비서구’니 하는 용어를 쓸 필요가 있느냐는 문제제기에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방편적인 용어에 불과합니다. 서구중심주의를 상대화시키기 위해서요. 가령 김치가 한국의 토착음식이라고 할 때, 김치의 재료나 요소가 한국에만 국한된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해외에도 김치가 보급되고 있는 상황에서 김치가 한국만의 음식이라는 뜻도 아니고요. 다만 김치라는 음식이 나온 고장이 한국이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존재론적으로는 모든 게 연결되어 있지만요. 토착적 근대니 비서구적 근대라는 말도 이 정도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우려하는 것은 보편이니 지구화니 글로벌이라는 말에 의해서 놓칠 수 있는 한국이라는 로컬이나 지역이나 특수성이었습니다. 이것은 제 전공이 한국사상사이기 때문에 강조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오랜만에 개벽에 대해 쓰고 나니 가슴이 후련해졌습니다. 요즘 많은 분들이 개벽에 대해 호응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힘이 납니다. 선생님을 비롯하여 여러분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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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안보 보좌진들의 사드 배치에 대한 입장과 행보는 매우 걱정스럽다.  문제를 너무 안이하고 단편적으로 파악하고 접근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국방부의 보고과정에서 4대 발사대의 한국내 반입을 고의로 누락한 사건을 대통령에 대한 심각한 항명사건으로 판단하고 철저하고 신속한 조사를 명했을 때만 해도 상당수의 국민들은 사드 배치의 전반적인 조사를 통하여 국민들의 마음을 속 시원하게 해줄 중대한 조치가 나오기를 내심 기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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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골프장에 4기의 발사대를 비공개로 추가 반입했으면서도 이를 새 정부에 보고하지 않은 사실은 국기문란 행위에 해당한다. 그 배후로 김관진 전 안보실장과 한민구 국방장관이 지목되고 있다. (이미지 출처: 한겨레신문)

그러나 국방 예산권을 쥐고 있다는 미국의 일개 상원의원의 청와대 면담 이후 전반적인 흐름이 변하면서 조사의 범위를 보고누락의 과정과 환경영향 평가라는 실무적인 주제로 제한하면서 결국 시간을 끌어 국민의 여론을 잠재우며 사드 배치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품게 한다.

문재인정부, 사드 배치 근본적 해법 모색해야 

발사대 4대의 반입에 대한 보고누락과 배치에 대한 환경영향은 당연히 실무적 과정으로 조사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드 문제는 실무적 절차와 내용을 넘어서 핵심적인 문제로 미국의 중국과 북한을 향한 미사일 방어체계에 한국을 일방적으로 편입시키고 있는지 여부와 앞으로 전개되는 미일 합체적 군사동맹체계에 한국이 하위적 동반자로서 종속되고 있는지 과정을 살펴보면서 문재인 정부는 자주국방과 주권외교라는 관점에서 당당한 정치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민적인 동의를 구해야 하는 등, 매우 중차대한 국가적이며 역사적인 아젠다로 다루어야만 한다.

내용의 격이 다른 이야기이지만, 최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몇 개월 전에 전임 오바마 대통령이 파리기후협약에 가입을 결정하고 이를 시행하기 위한 집행기구를 돕기 위해 승인한 수 조원의 지원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미국의 일부 산업계의 이해를 해치고 자신의 정치적 판단과 다르다는 이유를 설명으로 내세웠다.

촛불시민혁명의 덕분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사드의 배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을 매국적 행위와 부패혐의 그리고 불법적이며 자주국가에게 치욕을 안긴 일련의 배치의 과정에 대해 주권적 조치로서 이를 낱낱이 밝히지 못한다면, 트럼프 정부만도 못한 치졸한 허수아비 정권으로 전락하면서, 문재인 후보를 믿고 선택한 국민들을 크게 실망시키는 것이다.

트럼프가 파리기후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을 구실로, 문재인 정부는 과거정권이 잘못 내린 결정은 파기시킬 수 있어야 한다.

지난번 칼럼(‘누가 사드 배치를 원하는가‘)에서 밝힌 내용에 이어서 지난 몇 년간 벌어졌던 벌어졌던 참으로 희한한 사건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본다.

박근혜정부의 어이없는 사드 배치 결정

첫 번째는 박근혜 정권의 사드 배치 결정의 과정에 관한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2016년 중반까지만 해도 사드 배치에 대하여 미국에서 검토를 요청받은 바도 없고 미국과 협의한 바도 없고 더욱이 이를 결정한 사실이 없다고 반복하여 공언하여 왔다.

이는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권 시절에도 미국이 한국정부에 줄기차게 MD의 참여를 강요하여온 사실에 부합한 것으로, MD의 참여는 동아시아 정세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일대의 사건이기에 양대 정권에서는 온갖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미루어 온 사안이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7월에 들어오면서 MD의 편입을 상징하는 사드 배치를 기습적으로 발표한다. 더구나 사드 배치를 발표하면서도 이는 결코 미국의 MD에 편입하는 것이 아니라는 너무나 가증스런 거짓말을 뻔뻔하게 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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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뉴스타파)

최종건 연세대 교수는 사드를 배치하면서 MD에 편입되지 않는다고 강변하는 것은 마치 최신형 갤럭시 S8을 구입하면서 온라인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식의 상식 이하의 발언이라고 일축한다.

앞선 칼럼에서도 암시하였듯이, 사실상 한국의 미국 MD 편입은 박근혜 정권이 2014년에 전작권의 무기연기를 요청하면서 이미 양해각서라는 형식으로 가서명하여 이루어졌고, MD 프로그램의 첨병 역할을 하는 사드 배치의 최적지가 제작사인 록히드 마틴사에 의해 바로 현재의 성주 지역로 선정되였다는 소문이 항간에 돌기 시작하였다.

성주지역이 최적지인 까닭은 이미 두 군데 X-band 레이더가 설치된 일본 본토 및 오키나와 지역과 삼각법을 형성하는 가장 이상적인 지역이라는 설명까지 붙어 다닌다.

일본, 북핵 핑계로 군사대국화

두 번째는 일본 아베 정권하에서 벌어지는 해괴한 사건들이다.

지난 5월27일자 파이낸스타임즈의 고정 칼럼인 ‘노트북’의 필자는 한 일본여성을 만난 경험을 적고 있다.

일본 사회의 오피니언 그룹에 속하는 그 일본여성은 항상 방사선에 대비하는 알약을 가지고 다닌다는 고백을 했을 때, 이를 황당하다고 생각한 필자는 당연히 몇 년 전에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 때문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일본 여성의 답변은 북한의 핵공격을 대비하여 상비하고 다닌다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을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일본의 분위기를 느꼈을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정보가 입수되면 신간센의 운행을 중단하고, 방송으로 거리의 시민들에게 방공호로 대피하라는 훈련 방송이 나가고, 각 가정마다 대피장소를 마련하도록 강권하고 있으며, 당연히 대부분 시민들은 핵공격에 대비한 비상식량을 구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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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7일 일본 북부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공격 대응태세 점검을 위해 실시한 첫번째 모의 훈련에서 초등학생 학생들이 웅크리고 앉아 있다.  (사진출처: 뉴스위크)

과연 아베 정권은 정말로 북한이 일본을 선제적으로 핵공격을 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일까?

필자의 대답은 이러하다. 간교한 아베는 북핵 실험을 구실로 전 일본인들에게 전쟁의 위험을 과장하고 이러한 분위기를 이용하여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소위 정상국가라는 미명하에 군사대국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일본의 비판적인 지식인들과 언론의 입을 봉쇄하기 위하여 마치 과거 ‘치안유지법’을 연상하게 하는 ‘공모죄’ 법안을 발의하여 의회의 심의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미일합체적 군사동맹을 수치로 느껴오던 일본사회가 중국이 굴기하면서, 아베 정권 이후로는 적극적으로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오히려 주도해 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MD 체계의 핵심인 요격미사일을 미국의 지원 하에 일본이 주도적으로 개발해 나가고 있으며 레이저 광선을 이용하는 가공할 미래의 무기를 구상하고 있다 한다.

아베 정권이 온 일본국민들을 공포에 몰아 놓으면서까지 실시하고 있는 것은 북한의 핵공격에 대한 대비가 아니라, 미국과 연합하여 북한에 대해 선제공격을 준비하는 과정이고, 선제 공격후 예상되는 북한의 보복공격에 대한 예비훈련인 셈이다.

더 나가서는 중국의 군사대국화를 봉쇄하면서 옛 대동아 공영권의 추억을 되살리려 하는지도 모른다.

중국, 사드를 자국 위협용으로 파악

세 번째는 중국의 대응과 한국에 대한 경제적 보복조치에 관한 것이다.

중국이 경제대국을 넘어서 군사대국화하고 국제정치에서도 미국을 압도하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미국이 중국에게 상당한 군사적 실력행사를 할 것으로 중국지도부는 항상 긴장하고 있다.

중국 군사전문가들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지 않은 남중국해의 어느 지점에서 미국과 국지전적인 군사대결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예측하는 가운데, 당연히 북한의 핵무장이 가장 위험한 이슈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한반도에 사드가 배치된다는 것은 우선 북한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사드와 함께 배치되는 X-band의 기능이 중국의 군사전략을 탐색하고 무력화하기 위한 선발적 조치라고 파악한다.

중국은 핵전략에 관한 한, 그 동안 매우 절제하는 방어적 방식을 취하여 왔다. 미국이 핵탄두를 7000여 기 이상 보유하고 있는데 반하여, 300대 수준으로 제한하여 상대방 공격에 대한 효과적인 보복 공격력을 보유함으로써 전쟁을 억제하는데 주력해 왔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동풍 3호라고 불리는 중거리 탄도미사일은 2-3000 KM 안에 있는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면서 중국에 접근하는 미군의 주요 군사능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여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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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중국은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주일 미군기지를 효과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최신형 탄도미사일 둥펑(東風)-16B의 실사격 장면을 관영 CC TV를 통해 공개했었다. (사진 출처: http://egloos.zum.com)

그러나 최근 미일합체적 군사력의 증강에 이어 한국내 사드 배치는 명백히 중국의 봉쇄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판단하면서 이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한 예로 중국은 북한핵에 대해서 ‘강고한 반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반면에,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해서 한층 강한 표현인 ‘심각한 불만과 강고한 반대’라는 용어를 사용해 왔다. 더구나 최고 지도자인 시진핑 주석까지 나서서 여러 번 사드 배치에 대한 우려와 반대의 입장을 표명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가 사드 배치를 주도적으로 수용한 점에 대해 매우 분노하였으리라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물론 최근 중국의 한국에 대한 경제적 제재는 대국답지 못하고 상황을 해결하는데 도움은커녕, 한국내 반중 감정까지 야기하면서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중국 지도부는 경제보복조치를 통해서 한국정부에게 사드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판단하고 있는지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경제제재의 수위는 상당한 수준으로 조정될 것으로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사드를 철수하지 않는 한, 중국정부의 한국기업에 대한 불이익조치는 계속될 수 밖에 없다.

또 중국 인민들에게는 한국이 적성협력국이라는 이미지를 지니게 함으로써 한국상품의 중국시장 접근에 큰 한계로 작동할 것임이 분명하다.

한편 중국은 제한적 방어개념의 핵전략에서 공세적 주도개념으로 전환하여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동풍 4호를 실전배치하고 향후 수천기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동아시아의 핵전쟁 위험성이 급격히 높아지게 되었다.

사드배치, 국내 절차 따라야

마지막으로 박근혜가 탄핵되어 권력이 공백인 상태에서는 동아시아 군사전략의 일대 변화를 가져오는 사드 배치를 더 이상 진행해서는 안되는 사안이었다.

수구적 세력의 일부에서 사드 배치는 기존의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준하여 미군이 배치를 결정하면 한국 정부는 이를 수용하고 지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철저하게 잘못된 주장이고 매우 자해적 발상이다.

우선 상호방위조약에 준한다 하더라도 국내법상의 절차와 과정을 당당하게 거쳐야 한다. 대통령이 공석인 가운데 긴박한 유사 상황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고 배치를 강행한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매국적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위에서 누누이 설명하였듯이, 사드 배치는 단순히 군사기술적인 사안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군사전략적 균형에 심대한 변화를 가져오면서 지정학적 조건에 일대의 위기를 촉발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상호방위조약의 범위를 넘어서서 국가주권적 행위가 개입되어야 만 한다.

반드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서 주권적 통치적 판단이 이루어 질 때까지 진행을 당연히 보류했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일정이었던 2017년말 배치계획을 앞당기어 마치 도둑고양이가 생선을 훔치는 듯 지난 3월 한미군사 훈련과정 중 일방적으로 한국 땅에 반입을 시킨 후, 차기 정권이 혹시나 무효화시킬지 염려한 나머지 선거를 불과 며칠 앞둔 4월말에 군사작전을 실시하듯 성주에 배치를 감행하였다. 이 당시 성주군민들을 적군처럼 상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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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성주군 성주골프장에 미군 사드 발사대가 하늘을 향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곳에 4기의 발사대가 비공개로 추가 반입된 사실을 보고받고, 철저한 진상 조사를 지시했다.(사진 출처: https://www.voakorea.com)

미국내 의회 보수파와 펜타곤 그리고 로마시대의 총독부를 자처하는 미태평양 사령부의 의도는 명백하다.

첫 째는 한국은 군사적으로 미국의 속국이라는 메시지이다.  두 번째는 새로 등장하는 개혁정부를 미국의 입맛대로 길들이겠다는 신호인 셈이다. 세 번째는 미국과 핵심동맹인 일본의 이익을 위해서는 한국은 희생시킬 수 있다는 천명이다.

새로운 한미관계 정립해야 

이제 새로이 들어 선 문재인 정부가 사드 배치를 둘러 싼 현안에 대해서 취해야 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단순히 절차와 과정의 문제를 넘어서서 핵심과 본질에 다가서야 한다.

우선, 사드 배치를 결정한 배경을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 만의 하나, 미국과 맺은 MD 편입의 가서명이 근거라면, 새로운 정부에게 인수 인계되지 않은 가서명은 무효 임을 선언하고 자주국방의 기초위에서 새로운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지정학적으로 미국의 MD에 편입해서는 절대로 아니 되며 반드시 자주적인 미사일 방어체계(KAMD)로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MD에 비밀히 가서명을 추진한 모든 인사들을 밝혀내고 처단해야 한다.

대통령이 탄핵되어 대행인 체제에서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차대한 사안을 일방적으로 진행한 경위를 밝히고 이를 추진한 행위자들을 밝혀내야 한다.

더 나가서 이를 기화로 50년이 넘은 미군지위협정( SOFA)에 대한 재협상을 시작해야 하며, 전작권을 시급히 반환 받아 자주국방, 주권외교의 위상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기초를 분명히 하되, 서로의 이해가 명백히 충돌하는 한미일 군사동맹은 재고되어야 한다.

사드 배치에 관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이 주권국가로서 분명하고 단호할 때만이 한미관계가 새롭게 정립되면서 양국 모두에게 진정한 우방과 동맹으로서 굳건한 협력이 이루어 질 수 있으며, 이러한 한미협력 관계 속에서만이 서로의 역할을 분담해 가면서 북핵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 더 나아가서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이 가능해 진다.

한국은 이제 50년 전의 나라가 아니다. 세계인들이 우러러 보는 촛불혁명의 이름으로 미국의 잘못을 지적하고 함께 인류의 미래를 열어갈 선도국가들의 깃발이다.

월, 2017/06/0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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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에 이어 ‘이탈리브(Italy+Leave)’도 올 것인가. 지난 5일 이탈리아 시민들은 국민투표에서 개헌안을 부결시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부결되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던 마테오 린치 총리는 사임을 표명했다.

개헌안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던 포퓰리스트 정당 오성운동과 극우정당 북부동맹은 승리의 깃발을 치켜 올렸다. 부패와 성추문으로 물러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마저 이 틈을 타고 부활할 기세다.

오성운동과 북부동맹은 집권하면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당장 오성운동은 조기 총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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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트럼프 현상, 브렉시트, 프랑스의 국민전선 등 미국과 유럽에 반기득권정치 바람이 불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오성운동이 이를 대변한다. 최근 현직 총리가 추진한 국민투표에서 부결표를 던질 것을 호소하는 베페 그릴로 오성운동 대표의 모습. (사진 출처: http://www.blitzquotidiano.it/)

정치 풍자로 TV 퇴출

개헌안은 상원을 축소하고 지방분권을 축소하는 등 국정 운영을 효율화하자는 내용이었다. 그 자체로는 반대 의견이 클 이슈는 아니었다. 연초만 해도 개헌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뭘까? 시민들의 반대는 개헌안 자체가 아니라 현 린치 정부, 나아가 기성 정치세력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됐다. 그 중심에 오성운동의 탄생 주역이자 대표를 맡고 있는 코미디언 출신 정치인 베페 그릴로(68)가 있다. 그릴로 대표는 이번 투표를 앞두고 “이탈리아는 진흙탕에 빠졌다”며 린치 정부에 대한 심판을 호소해 결국 승리했다.

그릴로 대표는 1948년 이탈리아 제노바 리구리아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했으나 학업을 끝까지 마치진 않았다.

고교 졸업 후부터 우연히 코미디언의 길로 들어선 그는 이탈리아의 유명 TV 진행자 피포 바우도에게 발탁된다. 이후 각종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해 활발하게 정치·사회 풍자를 하며 이름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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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코메디언으로 활약할 당시의 모습 (사진 출처: http://foto.ilmessaggero.it/)

1986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담은 ‘그릴로 메트로 쇼’를 맡기도 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87년 당시 총리였던 베티노 크락시 당시 총리를 TV 쇼에서 비판했다가 공영방송 RAI 등에서 퇴출당한다.

그릴로 대표는 1993년 잠깐 RAI의 라이브쇼에 출연했다가 1500만 명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그의 풍자를 참지 못했고 결국 1990년대 이후 거의 TV 방송에 나오지 못하고 만다.

그릴로 대표는 공적 재원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집권 정당의 선전 목적에 따라 남용된다고 비판했다. 결국 TV로부터 타의로 ‘망명’한 그가 선택한 것은 국내외 거리 공연이었다. 그는 욕설을 섞은 거침없고 자유로운 화법으로 기성 정치권의 부패와 무능을 신랄하게 비판해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공연은 많을 때 1년에 100회 이상 열렸다.

‘키보드 선동가’로 명성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자 그릴로 대표는 소셜미디어를 또 하나의 무기로 삼았다. 2000년 즈음 블로그를 개설했다. 암울한 시대는 역설적으로 그릴로 대표의 주가를 더 높여줬다.

2001년 미디어 재벌이자 기업가 출신의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두 번째 집권에 성공한다. 베를루스코니는 공영방송까지 장악해 실질적으로 주류 언론 거의 전부를 틀어쥐고 여론조작에 나선다.

언론이 기성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를 수렴하지 못하고 진실조차 뭉개자 그릴로 대표의 블로그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다. 그릴로 대표가 종종 이명박 정부 시절 한국의 ‘나는 꼼수다’와 비교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의 블로그는 정치·경제이슈부터 환경·노동문제까지 모두 다뤘다. 언론은 그를 ‘키보드 선동가’로 부르기도 했다. 블로그 내용은 이탈리아·영어·일본어 등 3개 국어로 제공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008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블로그 중 하나로 그의 블로그를 꼽았다. 방문자 수 기준으로 세계 10위 안에 들기도 했다. 그의 트위터 역시 20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다.

그릴로 대표의 블로그를 찾던 사람들은 단순한 팬덤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블로그에서 각종 사회 문제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던 시민들은 각 지역 공동체에서 오프라인 모임까지 갖게 된다. 지역별로 작은 모임에서 다양한 이슈들을 논의하는 그룹은 2년 만에 전국적으로 650개나 생겨난다.

2006년 총선에서 베를루스코니 정권이 물러나고 로마노 프로디 총리가 이끄는 좌파가 집권한다. 그러나 프로디 정권은 경제회복에도 실패하는 등 신통치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릴로 대표는 2007년 기성 정치인들에게 욕을 퍼붓자며 ‘V-day’ 축제를 기획한다. ‘V’는 ‘Vaffanculo’이라는 이탈리아어의 약자로 ‘빌어먹을’ ‘썩 꺼져’ ‘엿 먹이다’라는 뜻이다. 이 집회에는 2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쏟아져 나온다. 블로그와 소셜미디어로 조직된 최초의 이탈리아 정치 집회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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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베페 그릴로가 기획한 V-day 포스트.

하지만 2008년 총선에서 또다시 베를루스코니가 승리한다. 심지어 부패 비리 혐의로 재판 중이었던 베를루스코니의 승리에 이탈리아는 충격에 빠진다.

결국 그릴로 대표와 뜻을 함께하는 이들은 기성 정치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시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자는 운동을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오성운동’이다. 기성 정치에 대한 회의감 때문에 이름조차도 ‘정당’이 아니라 ‘운동’이라고 붙였다.

반기득권 풀푸리 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 확대와 반부패, 유럽연합(EU) 탈퇴를 기치로 내건 오성운동은 2009년 10월 인터넷을 통해 만들어진다. 오성이란 좌우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오직 시민들을 위한 일을 하겠다는 그들이 내세운 다섯 가지 새로운 목표 ▲공공수도 ▲인터넷 접속권리 ▲지속가능한 교통수단 ▲지속가능한 개발 ▲생태주의를 뜻한다.

오성운동은 부패한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반감이 크다. 국회의원 임금을 일반 노동자 임금 수준으로 삭감하고, 국회의원도 2선까지만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패정치인들은 출마를 금지하고, 국회의원들에게 헌법교육 및 시험을 의무화하자는 방안도 내놓는다. 정당 보조금도 중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성운동은 실제로 선거자금 국고보조를 거부하고 시민들에게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지원을 받았다.

이와 함께 오성운동은 기성 정치권으로서는 다소 황당하게 들릴 만한 정책들도 내놓는다. 전 국민 인터넷 무료 사용, 전 국민 기본소득 보장, 근로시간 20시간으로 단축, 자유무역 반대 등이다. 이런 정책들에 대해 우파는 ‘과대망상’ 좌파는 ‘무정부주의자’라는 비난을 쏟아낸다.

다소 거칠어 보일지는 몰라도 그들의 정책은 인터넷을 통해 3년간 이어진 토론과 투표의 결과물이었다. 1000여 개의 지역 모임 50만 명의 참여자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했다. 이 정책을 만든 오성운동 당원들은 2013년 총선에서 후보로도 직접 나선다. 이 후보들 역시 인터넷을 통한 경선에서 최종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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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총선에서 오성운동은 창당 4년 만에 제1 야당이 되는 기염을 토했다. 고무보트를 타고 환호하는 군중의 바다 위에서 즐거워 하는 베페 그릴로의 모습.

선거 결과는 놀라웠다. 창당 4년 만에 제1야당이 된 것이다. 전체 유권자의 25.5%에 해당하는 870만 표를 얻었고 무려 163명이 의회에 진출한다. 스튜어디스, 싱글맘, 남자 간호사, IT 기술자 등 정치 경험이 없는 30~40대가 무더기로 당선됐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도 오성운동은 로마(비르지니아 라지)와 토리노(키아라 아펜디노)에서 시장을 배출했다. 정당 지지율은 30%에 육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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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로마 역사상 첫번째 여성시장으로 당선된 비르지니아 라지(왼쪽)와 토리노 시장으로 당선된 키아라 아펜디노. 

오성운동의 인기에는 이탈리아의 암울한 상황도 한몫하고 있다. 유로존 3위의 경제 대국인 이탈리아는 정부 부채 비율이 133%에 이르고, 은행 부실대출은 3600억 유로나 된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97년보다 낮아졌고, 실업률도 11%를 웃돌아 고용률이 그리스를 제외하면 EU에서 가장 낮다. 청년실업률은 40%대에 육박했다.

41살의 젊은 린치 총리는 2014년 집권하면서 이탈리아의 전 분야를 개혁하겠다고 나섰다. 공공부문 감축, 재정지출 축소 등 긴축정책을 펼치며 ‘제2의 토니 블레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경제는 개선되지 않았고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런 상황에서 “이탈리아는 완전히 망가졌으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기존 시스템을 버리고 시민혁명으로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는 그릴로 대표의 주장은 설득력 있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오성운동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앞서 로마 시장으로 당선된 라지는 공약으로 내걸었던 쓰레기와 교통문제 개선은커녕 시정 장악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릴로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인터넷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오성운동의 직접민주주의 시스템을 남용하고 당 내부의 반발을 묵살한다는 비판도 제기돼 왔다. 실제 2013년 당선된 의원 163명 중 37명이 축출되거나 탈당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다시 코미디언으로 돌아가나?

그릴로 대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것이 인기의 비결이었겠지만, 때로는 거센 비난도 함께 몰고 온다. 지난 5월 무슬림으로 신임 런던 시장이 된 사디크 칸을 두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자살폭탄을 터뜨리는 광경을 보고 싶다”며 저열한 농담을 던졌다가 뭇매를 받았다.

세상은 그의 발언에서 불안함부터 읽어낸다. 유로존을 탈퇴하겠다, 국가 채무를 재조정하겠다는 등 세계 금융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그의 모습에 2013년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로 그릴로 대표를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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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페 그릴로는 기성 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배경으로 인기를 얻었다. 기성정치에 대한 거침없는 야유와 조롱에 대중들은 환호했다. 정치판에 감자를 먹이는 시늉을 하는 그의 모습.

그릴로 대표는 과거 차량 운전 사고를 내 3명을 숨지게 해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도 있다. 2013년 총선에도 이 때문에 출마하지 않았다. 총리가 될 생각도 없다고도 밝혀 왔다. “정치에 직접 몸을 담그지 않으면서 훈수만 두는 비겁한 사람”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의 모습에서 결국 정치인은 어디에 발을 딛고 서 있어야 하는지를 느낄 수 있다.

“군중의 초현실적 환상을 활용할 줄 알고 손쉽게 분위기를 바꾸며 필요한 순간에 가장 정확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 그릴로 대표의 멘토였고 최근 타계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다리오 포는 그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릴로 대표가 인기를 끌고 이탈리아 정치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한국의 모습과 흡사하다. 보수 정권 10년을 거치면서 주류 언론은 정권에 장악 당했고 정치는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지리멸렬한 모습만을 반복하고 있다.

그릴로 대표는 종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비견되기도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이재명 성남시장 같은 인물이 떠오르기도 한다. 방송에서 멀어지면서 오히려 더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개그맨 김제동의 ‘거친 버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탈리아 현지 언론들은 개헌 국민투표 이후 그릴로 대표가 정계은퇴를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릴로는 지쳤고, 본업인 코미디 무대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릴로 대표는 2014년에도 젊은 간부들에게 당을 맡긴 뒤 떠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지만 뜻대로 되진 않았다. 오성운동의 집권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큰 지금, 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목, 2016/12/2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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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사회의 주요한 문제로서 몇 가지를 열거한다면 우선 1)저출산 등 인구 통계학적으로 활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 2)불황의 도래와 더불어 사회안전망의 미비로 심각한 불안이 사회전반을 짓누르고 있다는 점, 그리고 3)양극화의 심화에 따라 사회가 제대로 유지될 수 수 없는 만큼 불평등이 점점 누증되고 있다는 현실을 들 수 있다.

저출산의 문제는 그간 정부가 중심이 되어 여러 강도 높은 정책적 대응을 시도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핵심적인 것은 앞선 칼럼(행복한 나라에선 아이가 자란다)에서 언급했듯이, 젊은 세대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회적 환경과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우리사회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인구의 자연스런 감소는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로 받아드려야 한다. 백년 단위의 시간에서 보면 화석에너지의 고갈에도 지속가능한 환경적 조건으로 한반도에 상시적으로 거주하는 인구의 머리수가 점차적으로 조절되고 균형적으로 회귀하는 것은 바람직스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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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kidd.co.kr/news/185003)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전례없는 불황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불황이 구미가 겪었던 1920년대의 공황시대보다 훨씬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금융시스템의 실패(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사기와 수탈적 작동)와 정치 제도의 무능과 역작용, 이로 인한 양극화의 심화와 사회적 갈등증대, 그리고 지구온난화와 자원 및 에너지의 고갈 등으로 지난 수백 년간 인류가 향유해 왔던 고도의 성장기가 이제는 종말을 고했다고 판단한다.

3가지 복지국가 유형

따라서 앞으로는 과거처럼 높은 성장률에 의존한 사회경제적 운용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저성장 또는 탈성장이라는 새로운 조건위에서 국가의 미래전략을 구상하는 것이 현명하고 현실적인 방책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우선 복지체계를 파악하는 시각이 다양하게 갈라진다. 시장중심의 보수적 입장에서는 탈성장시대로 진입하면서 복지재원이 기본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가난한 빈민계층을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선별적 정책을 중심으로 저부담-저복지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진보진영를 대표하는 북유럽의 노르딕 모델처럼 존엄-정의-연대 라는 사민주의의 철학에 기초하여 국가가 보편적 복지를 강화하여 모든 국민들의 삶을 보살피고 감싸안는 ‘인민의 집’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폭넓은 편차가 존재한다.

제2차 대전 이후의 고도성장이 가능했고 이상적인 완전고용 상태라는 경제적 황금기를 거친 1920-1930년 동안은 나라별로 내용을 달리한 다양한 복지체계의 방식에 별다른 차별성이 부가되지 않았다. 그러나 19 70년대 중동발 오일쇼크가 충격적으로 다가오면서 불황형 인플레와 경험해 보지 못한 높은 실업문제가 대두되자 그동안 시행하였던 복지정책의 성과와 유효성이 나라마다 방식에 따라 큰 격차를 보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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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blog.daum.net/prettybeans/5150058)

저부담-저복지 또는 시장중심의 영미형 복지방식은 자산가와 기업에게 유리한 지형을 제공하면서 외형적 경제총량의 수치는 그런대로 양호하지만 내부에 불평등과 양극화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심화시켰다.

정책적 방향을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인기영합적으로 대응해 왔던 라틴국가들은 가족적 이기주의를 중심으로 비리, 부패, 투기와 더불어 도덕적 해이가 심각해지면서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이라는 조롱감이 되었다.

반면에 사회연대와 산업혁신적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임금정책과 사회합의를 기반으로 보편적 원칙에 입각하여 사회수당과 서비스를 제공하여 왔던 노르딕 국가들은 성장률과 더불어 사회후생와 인간계발 및 행복지수 등 모든 분야에서 현재까지도 가장 우수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불황일수록 복지 확대 필요

필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요점은 요즈음처럼 경제가 어렵고 불황의 늪이 깊을수록 오히려 복지정책을 과감히 확대하고 사회안전망 체계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고, 정책방식에 따라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서구의 최근 역사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십년 전부터 복지라는 화두를 한국사회에 던져온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는 이러한 북유럽식 정책을 ‘역동적 복지’라고 명명했다.

공자님 역시 논어의 계씨편(季氏篇)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데 내용을 현대적으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부족함을 탓하지 말고 나누지 못함을 걱정하고, 가난함을 탓하지 말고 함께하지 못함을 걱정하라. 나누고 함께하면 모두가 편안하다. 백성 모두가 편안하면 나라가 어려워도 기울어질 걱정이 없다’

이 얼마나 영명하고 위대한 선언인가 !

소득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일자리’라는 주제로 앞선 칼럼(어떻게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까)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우선적으로 산업경제 활동의 영역에서 최저 임금의 수준을 그저 시간당 만원이라고만 규정할 것이 아니라, 사회평균임금의 7-80% 수준 이상으로 정하는 것이 사회연대라는 점에서 규범적이며 정책적으로도 효과적이다.

산업별 직종별 사업장별 이라는 삼동(三同)의 조건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반드시 관철시켜야 하며, 저임구조를 혁파하기 위해서 비정규직 임금이 반드시 정규직 임금보다 높게 책정되어야 한다.

복지체계를 구축하기위해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조세체계의 전반적 개혁을 필요로 하겠지만 우선적으로 토지보유세를 포함하여 불로소득인 자산소득에 대해서 포괄적이고 강력한 누진세를 강화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부의 세습

가장 근본적인 불평등의 원인은 소득의 차이를 넘어서 세대 간에 부와 지위가 계승되고 축적되는 현실이다. 부모세대로부터 세습되고 승계된 자산의 누적이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한국사회는 수직적 계층적 세대적인 이동성에 커다란 장벽이 형성되고 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지난 200여 년간 통계를 통해 밝혔듯이 자산의 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크게 앞지르는 조건 (r>>g)에서는 자산의 세습적 누적은 불평등을 지속적으로 확대시킨다.

2016년 현재 한국의 피케티 지수( ß:국민 순자산/일년간 국민총생산, 12000조/1600조)는 7을 넘어서 8에 근접하고 있다고 한다.

천민적 자본주의가 극성을 피우고 탐욕적 제국주의가 설치던 유럽사회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는 주요 제국들의 자산불평등 지표인 피케티 지수가 7 수준에 접근하였던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다행히 전쟁이 끝나고 자산가치가 폭락하면서 3-4 수준으로 안정적 조정이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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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그래프에서 국내총생산 대비 국민순자산(자산-부채)의 값을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한국은 2012년 말 현재 7.72배로 다른 나라보다 높다. 이는 세계 금융시장이 통합돼 자본수익률이 평준화됨을 고려하면 자본소득의 비중이 선진국보다 높다는 것을 의미하며, 노동 발생 소득과 달리 자본에서 나오는 소득이 부유한 소수에 집중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 한국의 자산불평등 수준은 유럽의 경험에서 보면 내부에 폭동과 전쟁을 유발할 만큼 심각한 지경이나, 한국전쟁을 경험한 남북분단 상황과 군사정권부터 시행되었던 각종 공안과 통치기구 및 제도적 규제가 여전히 건재하면서 폭발적 상황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다고 보여 진다.

피케티 지수에서 비교하여 보았듯이, 극심한 자산의 불평등 격차를 내부적으로 조정해 내지 못하면 비록 절차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타협으로 일부 전진을 이루어 내더라도, 우리사회의 미래는 근본적으로 매우 불안하고 결국은 파국에 이를 것이다.

따라서 소득불평등의 합리적 해소와 사회연대에 기초한 복지시스템의 구축에 더하여, 극심한 자산의 격차를 시정하는 제도적 절차적 방안을 준비하고 시행해 가는 것이 한국사회 미래의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편법 대물림 부추기는 상속, 증여법

‘자산 불평등 해소’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우선 상속과 증여에 관하여 재벌중심으로 이루어진 과거의 관행과 현행법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수십 년간 부자들의 상속관행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우선 일정 자산 이상을 형식적으로 설립한 공익 또는 문화 재단에 출연하여 법규정상으로 공제혜택을 받아 고액의 세금을 피한 후에 재단에 자의적으로 개입하고 운영하는 방식이다.

결국 재단의 재산을 자신들의 사적 소유형태로 변질시켜 사용하는 수법이다. 박근혜 형제들이 소유권을 놓고 살인극까지 추정될 만큼 눈꼴사나운 싸움판을 벌렸던 육영재단을 연상하면 아주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2)또는 상속 또는 증여할 법인의 주식가격을 실제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조작하거나 액면가의 우선주로 배당하여 상속 또는 증여의 과정에서 법으로 정한 고액의 세금을 피해 매우 축소된 액수만 납부하고 이후에 적정한 기간을 두고 정상화시키는 방법을 취하여 왔다.

예컨대 주당 십 만원의 가치가 있는 주식을 온갖 수단과 기법을 도입하여 주당 만원수준으로 축소하여 상속 또는 증여를 행하여 법에 규정된 상속세를 수십 배로 줄여서 납부한 후 상당기간을 두고 서서히 가격을 원래의 십만 원대로 복귀시키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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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sisapress.com/)

3)최근에는 삼성과 현대차 등 대규모 재벌그룹들이 취한 방식으로 가문의 상속자들이 조그만 기업을 다점주주의 비상장형태로 창업하여 재벌의 계열기업으로 편입시킨 뒤 계열기업들의 일감과 거래를 일방적으로 몰아주어 매출과 이익을 급속히 확장시키면서 적정규모로 성장하면 상장을 통해 재벌의 핵심 모기업으로 재편하는 수법이다.

이를 통하여 삼성의 이재용과 현대차의 정의선이 소유한 주식의 이익률이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연간 50-80% 수준의 놀라운 수치를 실현해 왔다. 통상 자본수익률은 최우수 상장기업이라고 하더라도 10-20%를 넘지 못하는 것이 상식이다. 세계기업사에서 단연 챔피언을 차지할 놀라운 기적을 (비리와 부정을 통해) 이룬 것이다.

한마디로 적정한 세금을 내야 할 재벌그룹의 실현이익을 내부거래를 통하여 상속 2세대가 다점주주로 있는 계열기업에 이전시킨 불공정 거래이자 불법적 행위이다.

이외에도 필자가 알지 못하는 기상천외한 방식과 꼼수로 다양하게 탈세와 절세를 진행하여 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행법에 의하면 상속 또는 증여에 대하여 상당한 공제를 통하여 일반시민들에게는 가계상속에 대하여 세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으로 자세한 규정과 절차와 세율이 정해져 있다. 개인의 경우 기본공제 2-5억 원에 더하여 인적인 추가공제와 예외적 공제를 제한 후 과세대상 금액에 대하여 10-50%의 누진세율이 적용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최고세율인 50%는 과세대상 금액이 30억을 넘는 경우에 적용된다.

여기에 문제점으로 등장하는 것이 기업의 지속적 경영환경이라는 미명으로 행하지는 기업상속 공제제도이다.

2016년 현재 기업의 규모와 상속자의 경영연수에 따라서 최고 200-500억 정도를 공제해주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참여정부시절인 2007년만 해도 중소기업에 한하여 1억 정도를 공제해주던 것이 이명박 정권이 집권하면서 100억 규모로 공제액수가 늘어나고 박근혜정권이 들어서면서 급기야 500억 규모까지 확대되었다.

기업상속이라는 핑계로 이루어진 공제금액의 급격한 확대는 지난 9년간 집권한 ‘새누리’라는 정당의 성격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새누리 당의 배후에 유력한 자산가와 기업주들이 ‘새누리’를 상대로 얼마나 치열하게 로비하고 서로 간에 비리로 얽혔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세법상에는 사후관리와 실사 등 그럴듯하게 규정을 만들어 놓았으나, 임의적 해석과 비리가 개입할 소지가 다분하여 부패한 세무 마피아들이 제 마음대로 활약하기에 너무나 편한 독소조항이기도 하다.

또한 최근 신문 기사에서도 다룬 내용으로 부동산 부자들이 이러한 세법상 허점과 임의 규정을 악용하여 개인 소유의 고가 부동산을 사전에 임의 법인으로 귀속시켜 법적 규정에 합당하게 상속 또는 증여를 진행하면서 200-500억의 기업승계공제의 혜택을 받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 되고 있다고 한다.

재산권의 범위와 한계

취득, 사용, 처분, 증여 및 상속 등 복합체로서 사적 재산의 통합적 소유권은 처음부터 절대적 필연적 논리로서 형성된 것이 아니었다. 봉건 시대의 군주와 영주와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재산권 보호라는 개념이 인간의 존엄처럼 마치 양도할 수 없는 절대적 권리처럼 우연스럽게 형성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적 재산권의 보호가 시민들의 일반적 의지로 형성된 민주주의 일반적 규범으로서 경제적 질서와 원칙과 길항하고 대립하는 경우 어디에 우선권을 두고 어느 범위로 타협하고 조정할 것인지 재산권보호의 우선성과 범위의 내용은 여전히 기본적인 논쟁의 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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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정치철학자 존 로크(사진)는 모든 자연은 공동의 소유이며, 개인의 노동이 들어간 생산물에 한해 그 사람의 소유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렇게 형성된 재산도 어디까지 개인의 몫이고, 어디까지 사회의 몫인지에 대해 논란이 분분하다.

사적 권리로 재산권을 행사하는 것이 해당 사회의 집단적 번영의 기본적 조건을 축소시키고 위협을 가할 때, 이를 공공적 민주적 과정을 거쳐서 통제하고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과 이를 통제하고 제한하는 경우 경제의 활성화와 거래의 지속적인 안정성을 크게 해칠 것이라는 입장이 대립한다.

그러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희화적 농담이 현실로 통용되는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사적 재산권의 무제한적 권리가 사회의 균형적 지속을 명백하게 위협하고 부패를 양산하며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마땅히 이를 제한하고 통제하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있다.

특히 국민경제를 일방적으로 지배할 만큼 거대한 규모로 성장한 재벌기업들의 소유와 경영권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사회와 정치권력들이 민주적 개입을 통해 통제하여야 한다.

또한 사적 권리로서 재산 소유권의 범위와 기간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는 확실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일차적으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조건에서 본인 자신에게 한정하여 부와 재산을 자유롭게 취득하고 사용하며 처분하는 권리와 별도로, 이차적으로 자신의 범위를 넘어서 타자에게 양도하고 승계할 권리는 반드시 분리하여 검토해야 한다.

생산과정에 투입된 자원은 출발부터 개인에게 귀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자연적으로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부여된 것이다. 토지, 햇볕, 물, 공기 등 자연의 공공재는 처음부터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시장경제의 성과는 활동중심인 생산조직과 거래조직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다양한 기여를 통하여 성취된다. 생산과정에서 투입된 다양한 형태의 노동과 기술은 해당 사회의 교육체계, 사회적 시스템, 역사적 전승 등이 결합된 통합체로서로 이루어진 것이다. 동시에 생산물이 유통되고 소비되는 과정은 국가와 사회라는 행정적 문화적 인프라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한 개인의 성취로만 귀속시킬 수 없다.

개인의 사적 권리로서 자신의 노력에 의해 취득한 부와 재산에 대한 사용과 처분권을 인정하고 보호하는 것은 한 나라의 경제시스템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고 지속하기 위한 일반적이고 필수적 위임 사항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반면에 이를 타인에게 양도하고 승계하는 일을 허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시각에서 다루어야할 주제이다.

존 롤즈가 이야기한 것처럼 사회경제적 규범과 원칙의 범위 안에서 자유로운 개인이 근면과 재능과 기회와 능력을 통해 이루어낸 성취는 기본적으로 합리적이고 공정한 절차를 거쳐 사회 모두가 공동으로 향유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현행보다 상속세 강화해야

개인적 귀속지분을 사용과 처분을 넘어서 타인에게 일방적으로 양도하거나 다음세대에게 상속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인정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일정한 범위 내에서 용인하고 생물적 종족승계라는 개인적 욕망과 타협을 이루는 것이 일종의 보상과 추임 효과로서 경제활동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본다.

이에 대하여 일부학자들은 개인의 기여에 대한 귀속지분을 단 10%(상속세 최고 누진세율 90% 적용)로 제한하자는 강경한 입장에서 현재 한국 상속세법처럼 50% 수준까지 인정하자는 현실적 입장이 있을 수 있다.

현재 인구의 0.1%도 안되는 재벌가문이 4-50%의 상당한 민부를 독자치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필자는 현재 과세금액 30억 이상에 50% 세율을 적용하는데 보태서 누진적으로 100억 이상의 금액에는 80% 세율을 적용하자는 입장이다.

최대 80%의 세율은 과거 구미의 골디락스 황금시기에 대부분 나라에서 적용했던 수준이며, 케인즈 이론의 정통적 계승자인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제임스 미드 교수의 주장처럼 생산된 경제적 부가가치에 대한 자본가 기여도가 20% 수준이라는 가설에 근거한 것이다.

만약 위의 필자 주장이 현실적으로 경제의 지속적인 운용에 어려움을 주고 단기적인 혼란을 조장하여 당장의 도입과 시행이 어렵다고 한다면, 10년간의 예비기간을 두고 매년 3-5%를 올려가며 점차적으로 확대적용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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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magazine.hankyung.com/)

동시에 기업상속을 명분으로 도입한 별도의 공제제도를 폐지하여 예외가 없는 상속 및 증여 세제를 적용하되, 비상장 기업의 경우처럼 처분이 어려운 고정자산성 상속재산의 경우에는 세금지불 방식을 세대를 거쳐 20년 이상 장기간 나누어 분할 납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본다.

필자의 주장의 대안으로, 피케티가 주장하였듯이 10-50억 규모의 포괄적 자산에는 매년 1.0%, 50억 이상의 자산에는 2.0%의 별도 자산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적용할 수도 있다. 또한 ‘불평등을 넘어( Inquality, What can be done)’의 저자인 앳킨슨의 제안처럼 평생 동안 받은 상속+증여 재산에 대해 누진적 자산취득세를 최고 80% 세율로 적용하여 시행하는 방안도 있다.

어떠한 방안을 채택하더라도 세금납부를 거부하고 해외로 재산을 도피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협력을 위한 세계조세행정기구의 창설이 필수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사회적 상속’ 운동을 제안한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사회를 짓누르는 불평등을 해소하고, 위에서 제기한 고율의 누진적 상속세의 시행을 앞당기며, 유력한 자산가들의 재산을 사회적 환원 또는 귀속을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필자는 유력 종교단체 지도자들에게 ‘사회적 상속운동’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제는 종교단체들이 한국사회의 개혁에 실천적으로 앞장서야 한다.

2010년 불교계의 문수 스님이 이명박 정권에게 극심해지는 불평등의 해소를 요구하며 소신공양을 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정부가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책을 시행하도록 요구하기에 앞서 종교단체들이 스스로를 자정하고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 사찰이던 교회이던 이제는 재물을 종교 내부에나 가상의 천국에 쌓아 두어서는 아니 된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재물로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에게는 성난 채찍을 휘둘렀고, 성자 프란체스코는 헐벗은 걸인에게 외투를 벗어 입히고 집잃은 농부에서 살던 움집을 내주었다. 또한 1891년 교황 레오13세 당시 ‘새로운 사태’라는 공의회 선언을 통하여 함께하는 사회규범을 밝혔다.

세존 역시 깨달음과 진리를 위하여 세속의 권좌를 물리친 후 헤진 가사를 걸쳐 입고 하화중생(下化衆生)의 길로 나셨고, 동학에서는 ‘유뮤상자(有無相資 相生之道)’를 생활의 지침으로 삼았다.

서민들의 삶이 총체적 위기에 처한 이때, 나라를 구하기 위해 종단마다 사회적 상속운동의 기반이 될 가칭 ‘사회투자기금’을 설립하여 재력이 있는 신자들에게 자신들이 평생동안 노력하여 모은 자산을 자손들에게 상속하는 대신 사회투자기금에 기부(상속)하여 한국사회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데 마중물 역할을 하도록 앞장서 주길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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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fairsync.com/)

사회적 상속은 관례적인 일반 기부행위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후자는 자신이 직접 관여하는 단체를 설립하거나 임의적 기관을 지정하여 자신의 재산을 이전시키는 것이나, 사회적 상속운동은 기부자 자신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공익성을 가진 제3의 인물들이 이사진과 집행부를 구성하는 가칭 ‘사회투자기금’이라는 기관에 재산을 기부(상속)하여 객관적이고 공개적으로 자산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모집된 기금은 대략 다음과 같은 방식과 절차로 진행할 것을 간절히 제안한다.

  1. 각 종교단체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공익적 인사들로 가칭 ‘XXX사회투자기금’의 이사회를 구성하고 집행부를 선정한다. 투자기금은 공익재단에 준하는 지정기부의 세제혜택을 받도록 한다.

  2. 상기 기금에 유산자 신자들이 가계상속 대신 기부헌납한 자산은 오로지 한국사회 미래의 경쟁력과 혁신적 창업 그리고 사회적 경제 분야에 집중하여 지원하고 투자한다.

  3. 자산운용을 위임받은 집행부는 모집된 기금을 비영리적 지원과 수익적 사업으로 분류하여, 비영리적 영역은 관련 전문기구를 통하여 주로 장학, 교육, 학술, 연구개발 등 활동에 지원하고, 수익적 사업은 창업투자기관들을 통하여 청년창업, 혁신적 벤처, 중소기업의 신규사업,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등을 선정하여 투자하도록 한다.

  4. 상기의 공헌전문기구와 창업투자기관은 객관적 절차와 심의를 걸쳐 선택하고, 일 년 단위로 사업의 진행과 성과에 대하여 제3의 기관을 통하여 감사하고 평가하여, 계속사업 여부를 결정한다.

현재 서울시와 금융기관들이 출자하여 운영하는 사회투자기금과 사회연대은행에 자산운용기금을 결합시킨 것을 원형적 모습으로 연상하면 될 것이다.

위에 언급한 사회투자기금은 원칙적으로 복지와 자선의 사업에 투입하지 말아야 한다. 복지와 사회안전망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중심이 되어 관련부처의 조직과 서비스 전달체계 및 연기금을 통하여 시행되어야 마땅하다.

반복하자면 사회투자기금은 한국사회의 역동적 미래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집중투자 되어야 ‘사회적 상속’이라는 참 뜻에 합당하다.

공정한 경제질서, 더불어 잘사는 사회

사회적 규범과 정치적 합의를 거친 원칙에 의하여 사회경제가 운용되고 합리적이고 투명한 시장의 기제가 작동하고,  금융시스템이 사기와 수탈 방식이 아니라 모두에게 균등한 원칙에 의해 자금을 원활하게 공급하여 모든 분야의 산업 활동이 왕성해져 근면하고 재능이 뛰어나고 기회포착에 능한 부자가 나타나서 급기야는 한국에서 세계 제일의 갑부가 탄생한다면, 이는 비난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모두가 박수치고 함께 기뻐할 일이다.

사회적으로 합의하고 정치적으로 조정하여 운용된 사회경제의 성과물 일부분을 복지에 할애하여 국민 모두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삶의 기초재를 제공하는데 부족함이 없고, 적정하고 공정한 시스템이 작동되는 가운데 개인과 조직이 성취한 재무적 성공과 집적이 가족단위의 세습적 형태가 아니라 사회 모두가 공유하는 방식으로 재구성되어, 연대적이며 혁신적인 방식으로 미래의 일자리를 위해 재투자 될 수 있다면, 이는 가히 공자님도 그리워하던 대동사회(大同社會)라 칭할 만 할 것이다.

월, 2017/03/13-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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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그는 지난 50여 년간 검사·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검찰총장·법무부 장관, 국회의원·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내며 한국 현대사의 오욕의 순간 어디에나 검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미국 현대사 곳곳에 흔적을 남긴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처럼.

하지만 솔직하고 성실했던 포레스트 검프와 달리 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몰랐다”는 류의 해명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부정해왔다. 형사처벌을 피해가며 자신의 과오에 대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35살에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장 올라 75살에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지낸 그가 “아무것도 모른다”며 자신의 존재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있는 것은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만큼 초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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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은 지난 40년동안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장면에서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박근혜정부 들어 공작정치의 막후설계자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현대사에 신화적 존재로 남을 것만 같았던 김기춘(77)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다시 국정 농단 사태로 국회와 국민에게 호출되고 있다.

‘내부자’ 로서 수 십년간 권력을 누려온 그의 잘잘못이 이번엔 제대로 드러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흑역사’가 고스란히 녹아든 지금의 사태를 명명백백 밝히기 위해서도 그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유신 헌법, 간첩 조작 등 주도한 유신독재의 앞잡이

1939년 11월 경상남도 거제에서 태어나 그는 “머리가 비상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경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대학 3학년인 1960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그는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장학회의 1기 장학생이 되며 박정희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는다.

“가치 중립적 타협, 화합은 없다…회색 지대 無(무)…강철같은 의지로 대통령, 대한민국 보위.”, “국가 정체성과 헌법 가치 수호 노력.”, “전사들이 싸우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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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이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도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법률지식에 능통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잡은 것은 오히려 죽은 김영환 전 민정수석이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잡은 것과 같다. 그렇지만 김영환의 업무일지에 대해서도 김기춘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sbs)

최근 공개된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기록된 그의 말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 일가와 인연은 맺은 뒤 그는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보위’에 온몸을 바친다. 물론 그가 강철같은 의지를 보이며 보위했던 대상은 박정희·박근혜 대통령 등 특정 정권과 반공주의라는 일그러진 가치였다.

그가 현대사에 본격적으로 자신의 발자취를 남긴 것은 1972년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하면서다. 1967년 부산지검 검사, 1969년 서울지검 검사를 거쳐 1971년 법무부 법무과 검사로 출근한 김 전 실장은 신직수 당시 법무부 장관의 눈에 들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단장 시절 법무 참모를 지내기도 했던 신 장관은 이후 요직마다 김 전 실장을 데리고 다니며 그의 ‘후견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부정하지만,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했던 헌법학자 한태연은 2001년 한국헌법학회가 연 ‘역사와 헌법 학술대회’에서 “신직수 장관과 김기춘 과장이 주동이 돼 안을 모두 만든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당시 언론 본도를 보면 김기춘은 텔레비전에 나와 유신헌법을 해설했다고도 한다.

5.16장 학생이 박정희 정권의 근간이 됐던 유신체제의 설계자 역할을 한 것이다.

그는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 똘똘’이라는 별명을 지어줄 만큼 정권의 보위에 최선을 다했다. ‘후견인’ 신직수 장관이 1973년 중앙정보부장이 되며 불러들인 김 전 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부인 고 육영수 여사에게 총을 겨눈 문세광의 자백을 하루 만에 받아내 35살의 나이에 대공수사국장에 오른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 전 실장을 신뢰하는 계기가 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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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은 유신헌법 제정에 기여한 공로로 30대의 나이에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에 올랐다. 그리고 간첩조작사건 등으로 유신독재정권의 첨병 역할을 했다. 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은 아직도 당시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공수사국장시절의 김기춘의 모습.

대대적인 간첩조작 사건을 지휘하며 박정희 체제를 유지하는데도 핵심적인 열할을 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자백>이 다룬 ‘학원침투 북괴간첩단’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한국에 있던 재일동포 유학생을 간첩으로 몰아간 사건으로 사건 관련자들은 중앙정보부에서 엄청난 고문을 당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재심에서 이들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여러 인터뷰와 글에서 “김기춘은 유신정권 7년 중 4년 반을 중정 대공수사국장을 지내며 본격적인 조작 간첩 사건의 시대를 열었다”고 지적했다. <자백>에서 이를 묻는 말에 김 전 실장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유서대필 사건 기획…초원복집 사건에도 기사회생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된 뒤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과정에서도 김 전 실장은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는 부인하지만 5공화국 실세 허화평에게 장문의 충성맹세 편지를 보낸 일화는 세간의 입에 오르내린다. (‘법 주무르며 누린 ‘기춘대원군’의 40년 권력’)

심재륜 전 고검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그에 대해 “높이 평가할 만한 면이 있기는 하더라. 검사 때 법무부 장관 눈에 띄려고 날마다 장관 집 앞 언덕에 올랐던 노력, 남들 잠자는 시간에 일어나 하염없이 벌인 그 노력이 놀라웠다” 고 평가하기도 했다. (“식물정부 수사에 눈치 볼 이유 있나?“)

전두환 정권에서 와신상담하던 그는 노태우 정권 출범 뒤 검찰총장에 오르며 다시 칼을 휘두른다. 그는 유신헌법 대신 반공주의라는 무기를 들고 민주화 운동 탄압의 선봉에 섰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그는 “좌경세력은 무좀과 같아서 약을 바르면 일시적으로 치유된 듯하다가도 다시 나타나곤 한다. 체제수호에 검찰의 모든 역량을 투입하라”고 검찰 간부들에게 역설했다고 한다.

그는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뒤 법무부 장관에 올라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을 지휘하기도 했다. 물론 이 사건은 2015년 5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법무부 장관에서 물러났지만 그의 ‘악명’을 전국에 떨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1992년 12월11일, 그는 초원복집에 김영환 부산시장, 박일룡 부산경찰청장 등을 불러모아 “부산 경남 사람들 이번에 김대중이 정주영이 어쩌냐 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 등의 말을 하며 제14대 대통령 선거 관권 개입 방안과 지역감정 조장 계획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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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1월, 초원복집 사건과 관련해 검찰해 출두하는 모습. (사진 출처: 경향신문)

한국 정치사에 치욕적인 사건으로 기록된 초원복집 사건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도 이 자리에서 나왔다 (참고로 그의 아내는 광주 출신이다.). 이때 검찰이 김 전실장을 불구속 기소하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가 1993년 4월 위헌심판제청 신청을 내고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검찰의 공소가 취소됐다.

‘기춘대원군’…현대사의 살아있는 악마

초원복집 사건이 발목을 잡을 듯했지만 ‘처세의 달인’으로 불릴 만큼 그는 이후 국회의원으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복귀하며 노년까지 권력의 정점에 선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태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으로서 헌법재판소에 탄핵안을 접수하고, 이후 박근혜 대통령 원로자문그룹인 ‘7인회’의 멤버로서 정권창출의 일등 공신이 되는 등 2000년대 이후에도 한국 정치사의 굵직한 사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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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하고 퇴행적인 박근혜정부의 배후에는 김기춘이 있었다. 그는 7인회 멤버로 박근혜정부의 탄생에 기여했고, 이후 비서실장으로 박근혜정부의 퇴행을 막후에서 주도했다. 그는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권력 주변에 기생하며 온갖 반민주적 악행을 저지른, 현대사의 전무후무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현재까지도 최순실도,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도 “몰랐다”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김영한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비망록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언론 탄압 등에서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음에도 말이다.

비망록에서 엿보이는 그의 사고는 여전히 50여 년 전 유신체제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권력의 정점에서 계속 자리를 유지한 것은 한국 사회 과거 권위주의 정치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가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질지, 역사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을지는 아직은 불투명하다. 하지만 광장에 타오른 수백만의 촛불을 통해 한국 사회는 변화를 선택했다.

최근 국회 국정농단 의혹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최순실 씨를 모른다”고 시종일관 주장하던 김 전 실장이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 누리꾼의 제보에 당황하며 “죄송하다. 저도 나이 들어서…. 최순실이라는 이름은 이제 보니까 제가 못 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고 말을 바꿨다.

그의 신화에 균열이 나기 시작하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장면인듯싶다.

화, 2016/12/2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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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신문에서 ‘한국의 안보는 사드 또는 한미FTA를 통해 풀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싱크탱크 연구자의 글을 볼 때마다, 나는 그들이 다른 별나라에서 사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갖곤 했다.

그러나 지난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한국 새정부의 동아시아정책방향과 남북관계개선을 위한 정책과제’ 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의 사회자로 참석했을 때, 나는 지금까지의 대북정책이 방향을 틀어 새로운 물길을 내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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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한 필자(왼쪽)와 코스텔로(가운데, 오른쪽은 통역).

이 세미나는 문재인 새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회에서 가진 대북관계에 관한 첫 세미나로서, 새로운 변화를 감지하는 데 큰 의미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세미나는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연구회, 김근태재단, 그리고 코리아컨센서스 연구원, 그리고 인재근, 강창일, 홍익표, 이인영 의원들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대북정책의 새로운 물결

발제와 토론의 내용은 흔히 한국의 세미나에서 보는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내용을 넘어서서 매우 솔직하고 대범했다. 세미나 내용은 전문적 수준의 깊이를 담아내면서 한국의 근현대사의 맥락 속에서 얽혀진 사회문화적 관점을 담아 서울과 워싱턴의 새로운 정치적 전개를 암시했다.  

이 자리를 빛내준 사람은 스테판 코스텔로였다. 그는 코리아타임즈에 고정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한국문제 전문가이자 ProGlobal Consulting 대표이다. 그는 지난 15년 간 한국문제를 다루는 한미 간의 주요 자리에 초대조차 받지 못했고, 워싱턴의 싱크탱크들도 외면해왔던 인물이다.

그는 김대중 전대통령의 재야시절 워싱턴에 머물 때 인연을 맺어, 그를 위한 재단에서 일하면서 김 전대통령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노력을 전세계의 지도자들과 연대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또 김 전 대통령의 국제적인 비젼을 견지하면서 함께하는 진보적인 인사들과 더불어 이를 세계의 지성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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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포린어페어에서 벌어진 김대중과 이광요의 논쟁은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그리고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를 둘러싼 논쟁으로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논쟁에서 김대중은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양립 가능성을 주장했다. 사진은 포린어페어에 실린 김대중의 논문.

코스텔로 씨는 1994년 싱카포르 이광요 수상이 ‘민주주의는 아시아의 가치가 아니다’ 라고 주장했을 때, 김 전대통령의 이를 반박하는 성명을 영어권에 알리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 정치권에는 세계적 수준의 논쟁과 주목을 받을만한 인물이 없다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그는 워싱턴이 한반도에 대해 매우 보수적 입장을 취하고 있을 때에도 변함없이 포용정책을 주장해 왔으며, 사드배치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의 진보인사들에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이번 세미나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견해를 밝힐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그가 무시당했다는 사실보다는 긴 세월 동안 미국의 북한에 대한 대립적 구도에서 비롯된 결과이기도 한다.

이번 세미나는 중국 전문가인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와 러시아 전문가인 백준기 교수의 진보적인 견해를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두 분은 그동안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가 추구한 군사대결전략이 매우 위험한 것이었음을 솔직하게 밝혔다.

이 교수는 중국이 그간 한반도에 취했던 조정자의 역할에서 앞으로는 개입정책을 취할 것으로 전망했다.  

백 교수는 한미일을 함께 묶어 군사전략을 취하는 것은 지역의 개별국가마다 지정학적 역사와 지향점이 다르다는 점을 무시한 사려없는, 매우 위험한 게임임을 지적했다. 16세기이후 일본은 군사적 팽창을 추구해 온 반면에 한국은 항상 균형적 입장을 취해 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들은 미국이 평양에 취하는 비합법적인 위협이 마치 정상적 과정이라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결함에서 벗어나, 서울의 핵심 인사들이 독자적인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다는 인상을 줬다. 

북한에 대한 4가지 거짓말

코스텔로는 한국의 새정부는 그간의 ‘고래 사이에 낀 새우’라는 입장에서 벗어나 외교와 안보의 새로운 아젠다를 주도할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러시아의 푸틴, 미국의 트럼프 그리고 중국의 시진핑 등이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한 도덕적 권위와 민주적 명성을 부러워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나가서 미국인들은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된 탄핵과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세미나에서 가장 돋보인 그의 주장은 수 십년간 북핵 문제 해법의 주류로 대접받으며, 공론을 호도했던 4가지 거짓말(myths)을 폭로하고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거짓말은 북한의 비이성적 지도자는 지역의 집단적 안보와 경제적 협력 가능성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핵무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실제로 북한은 합의를 만들고자 노력해왔고, 합의 내용을 이행하고자 했다. 그럼에도 언론들은 매번 실패를 되풀이 한 제재와 봉쇄정책만이 유일한 해법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두 번째 거짓말은 북한은 합의내용을 존중하지 않았고, 따라서 미국이 북한을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1994년 제네바 합의는 매우 신중한 협상을 통해 쌍방의 협정이 이루어졌지만, 부시 행정부가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북한 정권의 전복을 추구했다는 것이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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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거짓말은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는 방법은 ‘최대한의 협박과 봉쇄’ 외는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과거 한미 양국(클린턴과 김대중 시절)이 취한 포용정책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북한은 협박을 당했을 때만 위협적 방식으로 대응했을 뿐이다. 북한에 압력을 가했을 때만 지역의 안보가 실제적으로 위험해졌다

네 번째 거짓말은 1990년대의 포용정책은 한국과 미국은 전혀 얻은 것이 없는 일방적 북한 퍼주기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당시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했다는 점은 한미 양국의 대단한 성과였다.  평양은 2000년,  고위급 인사를 워싱턴에 파견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미국의 의구심을 떨쳐내고, 신뢰를 얻으려고 했다.

이 모든 사태를 거꾸로 돌린 것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적대정책이었다.  공들여 협정한 제네바 합의를 저버리는 것은 부당한 처사인데도, 당시 체니 부통령은 “악마와의 협상은 필요없어. 그냥 굴복시켜”라고 말했다. 

한국이 주도하는 대북정책

또 다른 토론자였던 임마뉴엘 페스트라이쉬 Asia Insitute 소장은 한국에서 오래 산 지한파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9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수구 정권에서 지내오면서 우리는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고 군사적 증강과 감성적 대립만이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수 있다는 잘못된 보도에 익숙해져 있다. 

또한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무기 확산을 제한하겠다는 기본 약속을 어기고, 국제 법규를  위반해 가면서 오로지 군사적 방식으로만 지역 안전과 발전을 추구했는데, 그로부터도 16년이 지났다.

더 멀리 돌아보면, 러시아와 중국 등과 함께 만들었던 유엔의 원칙을 파기하고, 유엔헌장의 이행약속을 어긴 1951년으로부터 66년이 지났다”

사회자로서 감회를 말하자면, 미국 내에도 평화를 추구하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며 함께 협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따라서 당사자인 한국은 이제부터라도 강력한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상황을 주도해가야 한다.  

앞으로 이와 같은 대담한 세미나를 더욱 자주 열면서 대북 포용정책에 기반한 실천가능한 기획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화, 2017/05/1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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