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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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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의 힘

익명 (미확인) | 금, 2019/01/11- 11:08

 

1. 다른 천하

이병한 선생님, 새해 벽두에 보내주신 개벽소식 잘 받아보았습니다. 마침 새해 첫 출근길이었습니다. 천지가 잠자고 있을 때 서울에서 보낸 편지를 천지가 깨어날 무렵에 열차 안에서 읽을 수 있다니, 새삼 물질개벽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첫날 일과를 마치고 대학 근처의 심야카페에 와서 답장을 쓰고 있습니다. 곧 자정이 되려 합니다.

편지를 일독하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논어』에 나오는 “후생가외”라는 말의 의미였습니다. 대개는 후학의 <실력>의 출중함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인데,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실력>보다도 <힘>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은 세대의 기상이 넘쳐 기성세대가 두려움을 느낄 정도라는 것이죠.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프레시안》에 쓰신 글의 부제가 “유학국가에서 동학국가로”여서 깜짝 놀랐는데, 이번에는 “개벽국가의 탄생”이라는 표현에 거듭 놀랐습니다.

제가 아무리 개벽파를 자칭한다고 해도 “동학국가”나 “개벽국가”와 같은 대담한 표현은 감히 쓰지 못합니다. 지식이나 지혜는 배울 수 있을지 몰라도 기개나 기운은 압도당하는 것이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정보가 공유되는 세상에서는 “역발산(力拔山) 기개세(氣蓋世)”와 같은 패기가 정말 중요하겠다 싶습니다. 지난 겨울에 소개해주신 하자센터의 ‘공공하는 청년들’에게서도 같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트럼프가 한반도의 대통령인양 나대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거리로 뛰쳐나와 남북평화를 노래하기 시작했더니 거짓말처럼 남북대화가 시작됐다는 그 용감한 십대들 말입니다. 평화의 뒤에는 용기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이런 패기는 젊은 세대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 있었던 원광대학교 시무식에서도 박맹수 신임총장께서 “개벽대학”이라는 표현을 쓰시더군요. 신임 이사장님도 신년사에서 같은 표현을 쓰셨고요. “원광대학이 다시 개벽하여 개벽대학으로 만들자”는 취지였습니다. 이 기세에도 제가 압도당했습니다. 두 분 다 저보다는 한 세대 위의 분들입니다. 이번에는 “선생가외”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원불교 이념으로 “개벽의 일꾼”을 길러내자고 개교한 원광대학교가 왜 그동안 “개벽대학”이라는 슬로건을 내놓지 못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혹시 뭔가에 억눌려 주저주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개화(서학)나 척사(유학)에 억눌려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원광대학교의 모습이 그동안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첫 번째 화두로 제기하신 중국의 ‘다시 천하’ 이야기,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제가 모르는 중국의 근황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득 “천하위공(天下爲公)”을 “천하이공(天下二公)”으로 바꿔야 하는 시점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이 스스로를 ‘공’(보편)이라고 자처하던 시대에서 미국이라는 새로운 ‘공’이 등장하게 되었으니까요. 고공(古公)과 신공(新公)의 상박(相搏)이라고나 할까요? 아마도 이 이공(二公) 사이에서, ‘척사’와 ‘개화’ 사이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서, 김태창선생님 식으로 말하면 ‘공공’을 열기 위해서, ‘개벽’을 들고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식의 근대의 시작이었고, 그래서 “한국 근대의 탄생”은 “한국 개벽의 탄생”으로 바꿔 말할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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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시 근대

사실 제가 ‘한국의 근대’라는 진부한 주제를 다시 꺼낼 수 있기까지에는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의 ‘인도-아프리카 연구’와 선생님의 『유라시아 견문』이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동학에서 원불교에 이르는 개벽종교만으로는 “개벽이 근대”이고, 그 근대는 “영성적 근대”였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아프리카가 그랬고, 인도가 그랬고, 이란이 그랬고, 러시아가 그랬고, 지금도 그렇게 “성속합작”을 하고 있다는 전문가와 견문가의 ‘증언’을 듣고 나서야 확신이 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선생님께서 작년 5월 1일에 원광대학교에서 발표하신 <나와 동북아시아/유라시아 연구>의 충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치 『장자』에 나오는 우물 안 개구리가 동해의 자라에게 바다이야기를 처음 듣고 어안이 벙벙해졌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동안 동아시아 전통과 서구 근대에 갇혀 있던 자신의 좁은 시야를 뼈저리게 반성하게 해준 자리였습니다. 30여 년 전에 서울에서 김용옥 선생님의 동양학 저서를 처음 접했을 때, 그리고 15년 전에 일본에서 Brook Ziporyn 교수의 노장 해석을 처음 접했을 때 이후로 받은 세 번째 지적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작년에 꼽은 최고의 글은 당연히 선생님의 견문록입니다. 특히 《프레시안》에 실린 두아라 교수와의 인터뷰, 1979년의 이슬람혁명 이야기, 그리고 《한울안신문》에 실린 인터뷰가 압권이었습니다. 세상이 ‘다시 개벽’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칭 ‘개벽파’라면서 원광대에 나타나셨을 때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습니다. 이제서야 비로소 우리의 치우친 근대사를 다시 쓸 수 있는 고수가 나타났구나 하는 희망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도 한국의 젊은이들 중에는 과거의 제가 그랬던처럼, 개화와 척사 사이에서, 서학과 유학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적어도 다음 세대에게만큼은 제가 걸었던 것과 같은 정신적 방황의 길을 반복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앞 세대를 원망하면서 살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디 잊혀진 ‘개벽사’를 복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돕겠습니다.

 

3. 부채와 치유

몇 년 전에 우연히 서울의 홍은동에 있는 대종교 총본사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총본사라고는 하지만 굽이굽이 비탈길을 올라가서 산꼭대기에 허름한 건물이 두어 채 있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더 놀란 것은 창고에 방치된 채 쌓여 있는 방대한 대종교 경전과 문헌들이었습니다. 그 귀중한 문서들이 전혀 관리되지 않은 채, 방 한 곳에 랩으로 쌓여 있었습니다. 도서목록도 없었고 자료정리도 전혀 안 되어 있었습니다. 자료실이나 박물관 같은 것은 엄두도 못내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럴 인력이나 재정도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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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중추였음에도 방치되어 있는 대종교 문헌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장서각이나 안동에 있는 국학진흥원에 비교하면 너무나도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유학 연구에는 나라에서 방대한 재정을 쏟아 부으면서 정작 항일독립투쟁을 가장 치열하게 전개했다고 하는 대종교에 대해서는 왜 저렇게 냉정하고 무심하나 싶었습니다. 신종교라는 편견이 있어서일까요? 이렇다 할 가문이 없어서일까요?

저는 비록 종교는 없지만 그냥 한국의 소중한 사상자원으로 느껴졌습니다. 가문을 떠나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주벌판의 혹한의 전장에서, 혹독한 감옥에서, 수련을 해가면서 써내려간 경전과 문헌들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울대 규장각, 고전번역원, 안동의 국학진흥원… 온통 조선시대 유학을 연구하는 기관들뿐입니다. 이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한국학의 편중과 독식을 뼈저리게 절감하게 해준 사건이었습니다. 유학이 싫어서가 아니라 불균형은 불건강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오구라 기조 교수가 한국인들은 ‘우리’ 아니면 ‘남’이라고 했는데, 유학은 ‘우리’지만 대종교는 ‘남’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대종교는 비록 ‘개벽’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을지 몰라도 ‘개천(開天)’을 말했습니다. “새로운 하늘을 연다”는 개천은 “새로운 세상을 열자”는 개벽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종교도 큰 틀에서는 개벽종교이자 개벽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개벽이 ‘부채’로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전공에 상관없이 이 땅에서 인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통과의례처럼 연구해야 할 숙제 같은 느낌입니다.

개벽을 모르고서 한국의 근대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최근에 창작과 비평사에서 나온 『문명의 대전환을 공부하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근대성에 관해 토론한 책이었는데, 어느 선생님께서 “개벽파는 척사파의 일종이 아닌가요?”라는 발언을 하시더군요. 불과 몇 년 전의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개벽사상을 모르고서 한국의 근대를 논한다는 것은 계몽주의를 모르고서 서구의 근대를 논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한국의 근대에 관한 모든 논의는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모래성을 쌓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개벽의 역사는 어두운 과거, 패배한 역사라서 보기가 싫다고도 하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피해가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면서 개벽사를 읽어내려 가다 보면 거기에도 밝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부채’이자 동시에 ‘치유’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지적하신대로 중국의 지식인들이 천하를 고수하고, 일본의 위정자들이 개화에 기댈 때, 한국의 민중들은 개벽을 창안했기 때문입니다.

 

4. 개벽의 힘

지난 연말에 일본의 동북대학에서 ‘토착적 근대’를 주제로 한일공동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발표자로 참석하신 동경대학교의 이타가키 유조 명예교수께서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동학의 보편성을 설명하는 일이다”는 총평을 하셨습니다. 주최측인 동북대학의 가타오카 류 교수는 학술대회 후기에서 “한국의 동학이나 촛불혁명과 비견할만한 일본사상의 지하수맥을 발견하는 작업을 한국과의 공동연구의 형태로 지속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근대성을 주제로 몇 년 동안 지속적인 학술교류를 한 끝에 마침내 양국 연구자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졌음을 느꼈습니다. 비록 소수의 인원이었지만 해원상생의 가능성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이 “개벽의 힘”입니다.

일본 동북대학에서 열린 학술대회

학술대회가 끝나고 우리는 일본적 개벽의 흔적을 찾기 위해 하치노헤에 있는 안도 쇼에키 자료관을 방문했습니다. 18세기에 동북지방에서 활약한 안도 쇼에키는 극심한 기근에 3천여명의 농민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당시의 사무라이 지배층을 “성인의 이름을 빌려 무위도식하는 도둑놈들”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성인 중심의 지배질서를 정면으로 비판한 동아시아 최초의 사상가였습니다. 동학식으로 말하면 향벽설위에서 향아설위로의 전환을 시도했다고나 할 까요? 비록 동학처럼 세력화가 되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메이지시대에 농민들과 함께 공해반대 운동을 벌인 다나카 쇼조의 유적지를 찾아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지적하신대로 개벽의 가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서구 근대의 중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최근에 일본에서 활동하는 어느 중국인 연구자가 한국에 와서 “전 세계에서 서구 근대의 독을 가장 많이 먹은 나라는 한중일 삼국이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정곡을 찌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정작 중독이 된 당사자들은 이 말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아프리카 케냐의 작가 구기와 지 옹오는 “정신의 탈식민지화”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 디톡스 작업이야말로 개벽학에서 말하는 정신개벽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이 아직도 개벽이 여전히 진행중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으로 첫 번째 답신을 마치고자 합니다. 좋은 대화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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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기본적으로 개별적이고 주관적 요소가 강하지만, 국가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행복에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인간다움이 가능한 사회적 분위기를 유도하는 제도와 규범 그리고 자연친화적 환경 더하여 공유재가 풍요로운 조건에서, 개개인이 노력을 통하여 의식주 등 기본수요를 해결해 가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공동체적 관계 속에서 각자가 지닌 덕성과 무한한 가능성을 발현할 수 있는 조건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꼭 순서대로 나열할 일은 아니지만. 생명을 탄생시키고 유지하는데 기본 조건인 물과 공기가 으뜸을 차지할 것이다. 이것들은 원래 교환의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말하자면 신이 선물로 제공하는 자연재(自然財)들이다. 그런데 산업화 과정에서 환경이 오염되면서 자연에서 공짜로 즐기던 물이 이제는 재처리된 상품으로 변질되어 돈으로 사서 마시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속도로 대기가 오염되면 멀지 않아 필수적으로 안전 마스크를 착용하고 별도로 산소를 구매하여 달고 다녀야 할 시대가 도래할 지도 모르겠다.

환경오염과 생태의 파괴로 인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숫자로 표시되는 경제적 지표와 돈으로만 딱 한번뿐인 삶의 성공여부를 계산하고 있다. 젊은 시절과 신혼 초 십여 년을 남들이 부러워하는 강남의 핵심지역에서 살다가 혼탁함과 소란을 피하여 공기좋고 물맑은 서울변두리 지역으로 탈출한 필자는 한국 부동산 광풍의 진원지인 강남지역을 지날 때마다 지난 시절의 기억이 겹치면서 참으로 묘한 생각이 든다.

꽉 막히는 교통체증과 매연 소음 그리고 하늘의 색깔을 잊고 살아야 하는 인위적인 고층 건축물에 둘러싸여 소란과 번잡함으로 사람의 영혼을 멍들게 하는 지역을 주요 매스콤들은 주거환경과 편이성이 뛰어난 지역이라고 떠들어 댄다. 솔직하자, 교육문제는 별도로 하고 주차 지옥과 고물가 등 주거의 쾌적성(amenity)으로 따지자면 최악의 수준이지만, 부동산이라는 자산의 투기적 가치가 가장 높고 이곳에서 형성되는 인적관계로 짜여지는 부패의 장막 속에 사회적 기득권과 불공정한 기회가 주어진다고 믿으며 이곳에 산다는 사실만으로 비인간적인 품격과 비루한 지위가 저절로 높아진다는 착각 속에, 몰려드는 가수요에 때문에 강남 부동산의 불패라는 해괴한 용어가 등장했다는 것을. 대체로 강남 지역은 생명으로 주어진 자신의 삶을 사는 온사람(全人間)들이 아니라 숫자와 과욕에 포로가 된 가인(假人)들로 가득찬 세상이다. 강남을 함께 지나던 유럽 친구는 숨막히게 빽빽한 고층 건물 사이에 밀집된 아파트촌들이 불우한 사무노동자들이 집단으로 몰려 사는 불량지역으로 보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것이 제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외국인의 눈에 비쳐진 강남 주거의 팩트이다.

전통적인 경제학의 분류는 아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나열하자면, 시장에서 등가의 원칙에 의해 구매하는 사유재(私有財)와 자연과 국가 및 공동체가 제공하는 공공 또는 공유재(公有財), 그리고 생활 속에서 인연을 맺고 조우하는 사람들간에 형성되어 진행되는 관계재(關係財)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윤리철학에서 해방된 주류 경제학은 사람들의 삶을 온전히 포용하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며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기 보다는,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가공적 프레임의 논리와 숫자로 재구성하고 생명의 논리에서 벗어나 임의적으로 해석해 가기 시작했다. 벤담식 공리주의가 도입되면서 산다는 것이 양적인 측정 대상이 되었고 제본스 등 한계효용 학파가 등장하여 우리의 일상을 수식과 도표로 바꾸어 놓으면서 개개인의 인격은 도표에서 움직이는 한 개의 점을 표현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이 가지는 자연적 품성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버렸고 자연환경은 자기회복의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각자가 처한 정치사회적 위치에서 나라에게 바치는 세금을 제한 후 남겨진 자원에 경험과 기량을 동원하여 만든 노동의 결과물을 교환하고 조우했던 물물교환식 시장이 근세로 들어오면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양적인 잣대와 점의 집합으로 표현되는 수요공급의 동선을 따라 오로지 자본의 이익실현이라는 가공의 법칙을 위하여 작동하기 시작했다. 근대경제학적 논리가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공리주의가 만들어낸 양적 등가의 법칙이란 조건 속에 삶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매매하고 소비하는 양태를 사유재의 거래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 언급한 방식으로 시장 거래를 통하여 구매하고 소유하며 소비하는 사유재는 기본적으로 제로섬( zero-sum)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음식 등 소비재뿐만 아니라 각종 내구적 재화와 서비스를 포함하여 한 사람이 이를 소유하거나 소비하면 이를 타인이 함께할 수 없는 특징을 가진다. 이에 더하여 홍수처럼 쏟아지는 상업적 광고 속에서 단순히 생활에 필요해서 소유하거나 소비하는 수준을 넘어서 지나치게 과다한 소비가 마치 약물 중독처럼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측면도 있고, 베블런이 지적하였듯이 자신의 지위와 재력을 타인에게 들어내고자 하는 과시적 성격의 구매형태도 꼴사납게 돌출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에서는 아파트의 평수와 사는 지역이 자신의 사회적 신분을 알리는 기준이 되었고, 최근에는 이름깨나 알려진 외제차를 소유해야만 사회적으로 행세하는 존재인 듯 착각하게 되었다. 미술사에는 내용이 텅 빈 철학으로 천박하고 겉보기에만 그저 화려한 로코코라는 양식이 있다. 귀족 중심문화인 바로크에서 시민사회의 문화인 인상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에 나타난 양식으로 주된 배경은 상업주의와 산업시대의 초입 시대에 갑자기 부자가 된 부류들이 귀족의 흉내를 내면서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려는 욕구에서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심에 있던 미술가 루벤스의 경우, 한국에서 조영남씨가 그리하였듯이, 쏟아지는 졸부들의 그림수요를 대량 공급하기 위하여 자신이 간단히 소묘와 스케치를 마치면 수십 명의 견습 제자들이 달려들어 그림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상업적인 성공의 방식으로 정당화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예술이 지녀야 하는 순수함과 독창성을 생각한다면 혀를 찰 일이다. 서울 거리에서 흔히 보듯이, 개념없이 겉모양만 화려하게 꾸민 예식장 건물외장 모습에서 위에 언급한 로코코 양식의 끝장을 본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속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 반성적 사고능력을 상실한 한국인 졸부들의 허황되고 적나라한 모습이 내용도 없이 겉만 화려한 로코코 풍의 결혼식장의 모습과 겹쳐지는 착각이 든다.

타인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사유재와는 달리,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고 즐길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를 일단 공유재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수요공급 곡선의 원리에 갇혀 있는 주류 경제학에서는 이를 수리적 경제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외부효과라는 용어로 설명하려 한다. 대부분 시민들이 주말이면 즐기는 자연적인 산과 바다, 도로 등 교통시설, 의무적인 교육기관, 공공 미술관과 도서관, 공원과 놀이터, 전력공급과 공공의 이동수단, 공공부조로 운용되는 의료 시스템 등 사회보장 제도, 더 나가서는 일반행정 및 국방과 방역시스템 등 우리 생활 주변에 널려 있고 반드시 필요한 것이 공유재 또는 공공재이다. 사용 용도 및 성격과 유무상 여부 그리고 질적 내용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겠지만 국가와 공공기관이 개입하고 관리하면서 여럿이 함께 사용하고 소비한다는 측면에서 광의적으로 공유재라는 이름으로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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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산업의 이익과 네오콘의 지위를 위하여 항시 지구상 어딘가에서 전쟁을 치루면서 전세계 군사비의 40% 정도인 700억불 이상을 지출하는 전쟁국가 미국은 한편에서는 국내의 사회간접시설이 형편없이 낙후되었고 공공의료 체계와 초중등 교육시설 등이 상대적인 유럽국가들에게 비하여 질과 양 모든 측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저하되어 있다고 한다. 요즘 들어 한국의 젊은이들이 헬조선을 외치지만 수천만의 빈민층 미국인들은 일상적으로 “Fucking USA” 를 입에 달고 살아간다.

미국에 사는 친지 분들이 한국에 오면 공공교통과 병원사용의 편리함 그리고 소비생활 등 미국보다 지내기가 편하다고 입을 모은다. 세계 최고 부자나라인 미국의 공공적 수준이 이러할진대, 지난 민주당의 대선경선 과정에서 미국의 국방비를 대폭 줄이고 절감된 예산을 공공의료, 공공교육 그리고 사회간접시설의 개선과 확충에 써야 한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역설했던 민주사회주의파 버니 샌더스 연방상원의원이 미국 서민들을 위한 미래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반대로 국민총생산액의 55% 이상을 공공적 영역에 사용하는 덴마크는 시민들이 가장 행복한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금융기관에 지고 있는 일인당 개인의 빚도 세계에서 제일 높다고 한다. 빚더미를 안고 사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제공하는 공유재가 풍족하여, 불안과 궁핍함 대신에, 공공적 신뢰도와 함께 개별적인 행복지수도 덩달아 함께 높아진 것이다.

세계 곳곳을 출장 다녀본 경험이 있는 필자는 복지안전망 체계를 제외하면 한국이 사회적 인프라 등 공공영역에 있어서는 경제규모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잘 갖추어져 있다고 느낀다. 87년 민주항쟁의 성과와 문민정부 이래 도입한 지방자치제도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나타난 효과라고 볼 수 있다. 정치 수준과 공유재적 향유는 직접적인 함수관계를 형성한다.

여기서 한가지 반드시 언급하고 가야 하는 것은 요즈음 회자되고 있는 공유경제에 관한 것이다. 아마존 및 우버와 에어비엔비 등 벤처 전문기업들에 의해 온라인 통신기술을 기반으로 상품거래의 편익을 제공하고 기존에 투자된 고정자산과 시설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점이 크게 증대되고 있는 점에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기능과 역할 자체는 당연히 높이 평가해야 하고 다다익선의 관점으로 확대 적용하는 것이 옳은 방향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통신기술과 인터넷 환경은 모두가 공유하고 활용하며 편리함을 즐긴다는 점에서 자연재와 같은 공유적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터넷 환경과 통신기술을 활용하여 사업과 거래를 독점하는 상황을 ‘공유재’로 착각하게 만든 ‘공유경제’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데는 매우 조심해야 할 함정이 있다. 반드시 ‘공유재’와 ‘공유경제’라는 용어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인터넷과 통신기술이 제공하는 사업망의 이점과 거래의 성과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되돌려 질 때 우리는 이를 공유재적(的)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공공재적 망을 이용하여 발생하는 거래의 이익을 국가단위 또는 세계적 규모로 독점하고 지배하는 형태를 ‘공유경제’라는 미명하에 묵인한다면 향후 인류 전체가 이들 거대 기업들에게 인질처럼 통제당할 위험성을 지닌다.

위에 언급한 기업들과 구글과 폐북 등 공룡처럼 커진 국제적 벤처기업들이 포장한 ‘공유경제’라는 가면을 벗기어 내고, 이들 기업을 국제적 협의를 통하여 공공적 과정을 거친 판단과 결정으로 통제하는 일이 인류 미래의 매우 중차대한 주제로 다가오고 있다. 공유경제의 플랫홈을 공유재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플랫홈 운용과정에의 공적 개입과 발생한 초과이익을 해당 국가 또는 국제사회로 환원하는 합의와 실행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양적 잣대와 수치로 삶을 평가하고 해석하는 주류경제학이 절대로 포착할 수 없는 내용이 필자가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공동체 속 상호성에 기반하는 관계재이다. 당연히 인간이란 존재는 동물계에서 출발하여 진화해온 탓에 의식주라는 기본재를 반드시 해결해야 하며, 이는 시장과 국가의 역할이 강조되는 주된 배경이다. 의식주가 기본적으로 해결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 마음에서 우러나는 예절과 미소, 나눌수록 커진다는 도움의 손길, 함께하면 힘이 더욱 세지는 협력, 외로울 때 옆을 지켜주는 우정, 함께 즐기는 맛난 음식, 아름다운 산책길을 걷는 즐거움 등 일상의 마주침과 사건 속에서 형성되는 수많은 관계들이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소중한 주제로 다가온다.

의식주를 포함한 관계적 사건을 우리의 선조들은 동학의 가르침을 통하여 물물천(物物天) 사사천(事事天)이라고 이해했다. 사실 무형적인 의미를 지닌 ‘관계’라는 단어에 물품을 뜻하는 재(財)라는 꼬리를 붙이는 것이 설명모순이라고 느끼지만, 사유재 및 공유재와 대비하고자 하는 뜻도 있고 제3섹타 경제론이 추구하는 주제의 연속선 상에서 설명하고자 편하게 관계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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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전작 ‘다른백년을 꿈꾸자’라는 책에서도 소개한 이스털린의 역설이라는 이론이 있다. 이차원적 그라프에 국가별로 종축은 행복의 크기로 지표를 삼고 횡축은 GDP로 표시한 도표를 작성해보면 행복의 크기는 대략 15,000 – 20,000불까지는 정비례 함수로 증가하지만 20,000불이 넘어서면 횡축으로 평행선을 그리면서 GDP가 아무리 늘어도 행복의 크기는 늘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과다하게 GDP를 늘려가면 행복은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는 이론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의식주라는 기본생활을 위하여 우리는 물질적 기반조건과 적정한 사회서비스의 공급망을 필요로 하지만 이를 충족하는 단계에 이르면 물적 조건과 행복과의 정비례적 함수관계가 상실되고 지나치면 오히려 반비례적 위험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더 많은 수입을 위하여 경제적 활동에 과다한 시간을 투입하면 오히려 개별적인 행복지수가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일상에서도 흔히 체험한다.

이스털린의 역설인 재화와 행복간 관계함수는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었던 ‘저녁이 있는 삶’의 이론적 배경이기도 하거니와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주당 최장시간 52시간의 정책과도 부합하는 이야기이다. 특히 주당 노동시간을 최장 52시간으로 제한하는 것은 삶의 질적인 향상이라는 본 글의 주제와는 별도로, 노동시간 단축으로 추가로 생성되는 일자리를 공유하면서 심각한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방책이기도 하고 더 나가서는 산업의 혁신적 기제로 작동할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인간이 집중해서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의 한계는 매일 4-5시간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적정한 노동시간의 단축은 자기학습을 통하여 생산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생산공정, 경영기법, 설비개선, 신규시설투자와 더불어 새로운 과학기술 등 혁신요소의 도입을 촉진하게 된다.

몇 해 전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에 5분간 진행되는 TED 강연을 본 적이 있다. 미국의 동부벨트에서 정신과 치료 시스템을 운용하는 연구단체에서 70여 년간 긴 세월을 통하여 치료 대상을 추적해 본 결과 건강하게 오랜 수명과 행복한 삶을 누린 계층은, 돈이 많은 부자도 아니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공직자나 수입이 좋은 경영자도 아니었고, 평범하지만 사회적 참여에 열심이었고 친구가 많으며 이웃과 관계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것이 요지이었다.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결론이지만 전문가 집단에 의해 오랜 연구의 데이터를 통해서 재확인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관계재는 사유재처럼 시장의 등가적 법칙도 작동하지 않고 AóB 형태의 일대일 대응적 계약도 일방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교환되는 형식은 인격이 담아진 상호적 존중을 통하여 일대일의 맞대응보다는 방사적 형태일 수도 있고 물결과 같은 파장형태를 띨 수 도 있고 순환적인 고리형태로 나타낼 수도 있다. 교환되는 내용은 수고라는 형태의 노동과 감사라는 예의와 상대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감성의 상호적 교류가 주를 이루게 된다.  실제로 우리들 대부분, 지난 시간을 반추하면서 행복했던 장면들을 회상하여 보면, 대체로 물질적 풍요와 재력에 의해 제공된 사유재의 소유 또는 소비의 순간보다는 진심을 담아낸 상호적인 관계재의 교환과 접속들이 압도적일 것이다.

행복은 기본적으로 개별적이고 주관적 요소가 강하지만, 국가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행복에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인간다움을 사회적 분위기로 유도하는 제도와 규범 그리고 자연친화적 환경 더하여 공유재가 풍요로운 조건에서, 개개인이 노력을 통하여 의식주 등 기본수요를 해결해 가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공동체적 관계 속에서 각자가 지닌 덕성과 무한한 가능성을 발현할 수 있는 조건이다.

독과점이 통제되는 상태에서 시장적 순기능이 작동하여 일상 생활에 필요한 물질적 수요를 제공할 기반을 확대하고, 국민경제가 창출해 낸 부가가치의 적정 부분을 할당하여 국민 개개인 모두가 의식주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공공재적 기반과 사회안전망적 토대를 구축한 가운데 각자의 삶의 터전인 공동체 속에서 관계재를 꽃피우도록 하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다.

그런데 한국사회를 들여다 보면, 공직자 임명 절차에 따른 청문회마다 예외없이 겪듯이 법제와 관행이 잘못된 탓으로 모두가 하나같이 투기꾼이요, 편법을 저지른 잠재적 범죄 집단들이다. 한국사회 만악(萬惡)의 근원인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서는 토지공개념에 입각하여 적정한 보유세를 부과하고 매매차익을 회수하는 수준의 누진적 양도차익과세를 실시하기만 하면 된다. 어려울 것 없이 본질적 핵심사항의 시시비비가 너무도 분명한데도 이를 훼방하는 온갖 거짓 논리와 위록지마에 눈을 감는 어리석음이 우리의 정치권을 뒤덮고 있다. 현재의 한국사회는 인류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만큼 부동산 투기의 광풍에 휘말려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고백하고 단호한 조치로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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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인간답게 살아갈 생활재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국민경제 수준인 GDP 2만 불을 훨씬 상회하여 3만 불에 도달한 나라에 천만이 넘는 시민이 매일 열심히 땀흘려 일을 해도 형벌 같은 가난(working poor)속에 시달리고 있으니 이를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기득권의 탐욕과 횡포가 극심하고 위에 언급한 로코코 양식처럼 천박한 신자유주의의 논리가 우리의 일상을 구석구석 지배하는 가운데, 공동선을 추구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은 마냥 무지무능하고 국가 단위가 유지해야 할 공동체적 규범이 송두리째 무너졌고, 시민사회 역시 보수 진보 구별할 것 없이 각자가 속한 집단의 속좁은 이기주의와 특혜와 이해에 갇혀, 당연히 행하여야 할 이웃과 사회에 대한 사람의 도리가 사라져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는 최근 집권당의 대표가 제시한 4만불 시대가 설령 눈 앞에 도래한다 해도, 시민 개개인이 인간답게 살아가기에는 너무 어려운 우리사회의 내적 구조적 실상이 여전히 그대로 놓여 있다. 문제는 GDP 등 재화의 양적 규모가 아니라 정치적 무능에 더한 사회경제적 규범과 공동체적 관계재의 실종에 있다.

우리의 긴 역사를 돌아보며 근본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여 10만이 넘는 평양시민 앞에서 연설하였듯이 배달민족은 매우 독특하다(exceptional). 필자의 앞 글 “한국역사 속 향촌의 자치운동”에서도 기술하였듯이 이화세상과 홍익인간이라는 오랜 전승의 좌표 속에 향음주례(鄕飮酒禮)의 공동체적 규범과 율곡선생이 내세웠던 해주 향약(鄕約)의 높은 뜻을 다시 일으키고 19세기말 근대화의 길에서 민중들의 자각 속에 동학이 크게 외쳤던 사인여천(事人如天)과 유무상자(有無相資)의 정신을 실천해 가야 한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추구하였듯이 정치권이 절치부심으로 앞장서서 사람이 사는 세상을 위해 모두에게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이를 실현하도록 항심으로 노력해야 한다.

월, 2018/10/2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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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부상하는 북한이 지속 가능하고 협력적인 경제 및 사회 발전의 새로운 벤치마크를 국제사회에 제공할 수 있을까? 지정학적 변화와 새로운 기술 덕분에 국가 ‘커먼스(The commons)’에 대한 아이디어는 점점 더 실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 관계가 급속도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긴급한 문제는 더 이상 화해 과정의 다음 단계가 아니라, 정치적·경제적 및 문화적 인식에서 한반도가 향하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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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개념과 기술과 함께 제도적 변화를 향한 ‘은둔의 왕국’의 문이 열리고 있다. 정부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새로운 기반 시설 구축은 다른 국가들이 북한을 모델로 삼을 수 있는 고무적인 실험이 될 것이다.

한반도는 앞날이 기대되는 발전 속에 있지만,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다국적 기업들이 북한의 풍부한 광물 자원 개발과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여 빠른 부(富)를 창출할 약탈 경제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빈곤한 북한 주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대신 국제 투자자들이 혜택을 볼 것이다. 이는 전후 이라크가 보여줬던 청사진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월스트리트나 일본, 중국의 투자자들이 북한 경제 개발에 관여할 것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북한은 정체와 빈곤을 초래한 북한 노동당의 후진적인 경제 정책을 따를 필요도 없고, 글로벌 투자 은행과 그들이 펀딩한 컨설팅 회사에 의해 운영되는 소비 기반의 신자유주의 ‘개발’ 정책을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여기에 대안이 존재한다. 북한이 더럽고 착취적인 ‘성장’을 거부하면서도 여전히 지속 가능한 경제적 정치적 성공에 도달하는 제3의 길이 있다.

21세기의 커먼스 수용

북한을 위한 ‘제3의 길’은 바로 협력적인 경제와 사회이다. 이는 현재 부상하는 글로벌 커먼스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P2P시스템 및 커먼스 기반의 생산물(예를 들어 리눅스, 위키피디아)에 의해 교육·정치·제조 및 경제 분야에서 글로벌 커먼스가 가능해졌다. 본질적으로 북한은 처음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행해지던 것보다 더 포괄적인 방식으로 블록체인(blockchain)이나 홀로체인(holochain)과 같은 ‘검증 인터넷’을 채택할 수 있다.

사회주의 경제가 존재한다는 전제하에서 이런한 경제 혁신이 공유되겠지만, 의사 결정 과정이 사회 전체에 분산되어 권위주의 정치를 타파할 것이며, 공동체가 우선순위를 설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할 것이다.

이런 접근 방식은 북한이 국제 금융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서도 북한이 국제화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P2P재단과 서울의 커먼스 파운데이션(Commons Foundation)은 착취 및 추출 시장 경제에 대한 실행 가능한 대안인 공유 경제를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제시했다.

남한을 비롯하여 세계의 동료들과 연결시키는 글로벌 P2P경제에 북한 주민들을 포함함으로써 북한은 자신의 주민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다. 그리하여 국가나 월스트리트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서 커먼스 기반의 미시(微視) 생산을 통해 그들은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다. 북한은 값싼 노동력이나 값싼 광물 자원으로 착취당하는 대신, 자본이 아닌 사람들에 의해 작동되는 긍정적인 세계화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

요구되는 근본적인 개념 전환의 예시를 전근대 한국에서 찾을 수 있다. 1910~45년의 일제 식민지 전략은 한때 한국 마을에서 번창했던 상호 지원 공동체를 파괴했다.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그들의 땅과 전통적인 생산 수단을 빼앗은 일본의 ‘인클로저(enclosure)’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커먼스 파운데이션 창립자 최용관은 커먼스가 한국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향촌규약(향약)은 지역 사회에서 역할을 규정했지만 절대적인 소유권을 부여하지는 않았습니다. 향촌규약은 일본 식민지 시대에 파괴되었습니다. 비인간적인 경쟁에서 비롯된 불평등의 심화와 그로 인한 부의 집중이 시작되었습니다.”

커먼스는 시민들에게 초점을 맞춘 공유 경제를 창출함으로써, 부유한 국가들이 건설적이고 비 착취적인 방법으로 덜 개발된 국가와 협력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다. 게다가 커먼스 경제는 외국인 투자나 노동 착취에 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엔의 대북 제재에 명시된 경제적 상호 작용의 표준 모델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실적인 희망의 문을 보여준다.

서방 언론이 북한을 기괴하고 고립되고 신비한 국가로 묘사하고 있지만, 최근 남한과의 협상은 다른 개발도상국과 마찬가지로 금융 기관이 지배하는 무자비한 세계화 질서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북한이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필자가 제안하는 혁신은 특정한 기술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개방형 플랫폼으로서 북한이 전 세계의 지식·기술·전문 지식·금융자원에 접근할 수 있게 하여 과두정치에 빠지지 않고 경제적 전환을 이뤄낼 수 있게 한다.

커먼스 101: 무엇을 할 것인가

북한은 현대 기술이 거의 없다. 그러나 다른 국가들의 문화를 망가뜨린 상업주의나 소비자 물신주의도 거의 없다. 따라서 북한의 출발점이 제로이기 때문에 다른 국가에서는 불가능한 제도 혁신을 위한 전례 없는 기회를 제공한다.

북한은 모든 건물에서 태양 에너지 발전을 사용하도록 할 수 있다. 이 제조방식은 지역 단위에서 오픈소스 혁신을 가능하게 한다. 이 서비스는 중개인 없이 공유된다. 또한 지방 정부가 다른 국가의 다른 지방 정부와 교육 및 사회적 교류를 위한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북한은 지역 경제 자치를 구축하는 수단으로 암호화폐 및 크라우드펀딩을 사용하는 지역 협동조합을 육성하는 혁신적인 금융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크라우드펀딩의 형태로 외국인 투자를 허용하거나 전 세계 지지자들의 소액 투자를 허용할 수 있다.

북한은 진공청소기와 톱에서부터 세탁기와 태양열 발전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공동체에 맡기는 공유 경제에 포함할 수 있다. 모든 시민의 공헌을 인정하는 서비스 교환(청소, 요리부터 아동과 노인돌봄 노동까지) 프로그램을 계획할 수 있다. 노인들을 젊은이들과, 농민들을 도시 거주민들과 연결하여 새로운 문화적, 경제적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지역 농업과 미시 제조업에 뿌리를 둔 공유 경제의 커먼스를 도입하는 것은, 낭비와 경제적 격차를 촉진 할 뿐만 아니라 군사적 갈등의 주요 요인이기도 한, 오늘날 동아시아의 골칫거리인 지속 불가능한 과잉 생산을 줄이는 데 필수적이다.

북한은 양질의 고속도로와 자동차에 대한 의존성이 적다. 따라서 수송수단이 모두 전기로 작동하며 교통수단이 공유되는 도시, 자동차에 대한 필요성을 줄이는 도시를 계획하는 것이 가능하다.

북한의 개방은 건강한 P2P국제화 모델을 구축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커먼스 101: 어떻게 할 것인가

남한은 같은 언어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P2P경제를 위한 강력한 전례를 확립했기 때문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인들은 참여 정치에 대한 엄청난 열의를 보여 왔고, 2016년 ‘촛불 혁명’은 그 정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함께 나와 부패한 정치의 종식을 요구하였다.

서울시는 4년 전에 시 전역에서 공유경제를 위한 강력한 기반을 제공하는 지역 마을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또한 이 도시는 최근 서울 전역에 블록체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세대의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5,400만 달러(한화 약 620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북한은 단기 이익이 아닌 경제적, 기술적 변화의 윤리적 의미에 초점을 둔 P2P자문위원회가 필요하다. 남한도 이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신흥 경제가 빠질 수 있는 함정을 피하는 방법에 대해 전 세계로부터 조언을 구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한국광물자원공사에 따르면, 북한에 6조 달러 규모의 석탄·우라늄·철·금, 아연 및 희토류 광물이 대규모로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P2P자문위원회의 첫 번째 권고 사항 중 하나는 북한이 개발의 장기적인 환경 영향을 평가할 수 있는 충분한 전문 지식을 보유할 때까지 지하자원 개발을 동결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자원 개발, 교통 인프라 구축, P2P전문가 네트워크에 의한 도시 공간 개발에 대한 모든 제안을 검토하는 것은 중요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북한은 개방의 첫 단계에서 과도한 부채를 지는 것을 피해야만 한다. 투자자의 단기 수익을 보장하는 것을 계획의 요소로 삼지 않는 정책을 수립하도록 위원회는 도울 수 있으며, 자본 도피의 위험이 없도록 분명히 할 수 있다. 소련 붕괴 이후 과두 정치가 부상했던 것과 북한의 상황이 유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람들은 공동체 은행을 만들고 참여적 자금 조달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북한이 ‘선진국’ 산업화된 세계를 ‘따라잡아야’하는 신비하고 폐쇄적이며 불가역적인 냉전 시대의 잔재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북한은 블록체인 기술, 미시 제조업, 지속 가능한 에너지 인프라 및 국제화에 대한 P2P 접근 방식과 같은 새로운 시대, 동북아시아 및 세계를 선도하는 고무적인 실험이 될 수 있다.

화, 2018/10/30-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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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통령의 유럽방문 평가.

유럽에서의 문대통령의 메시지는EU정치 지도자들에게 혼란스럽고 초점이 명확하지 않아 설득력이 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문대통령은 부시정권 이후 일관된 미국의 ‘입증가능하며 완전하고 최종적인 북핵폐기 정책(CVID)과 최대 압박이라는 트럼프 정부의 북한에 대한 입장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으로 방향을 바꾸려 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17년간 미국의 로비에 휘둘려 왔으며, 그 중 몇몇은 매우 보수적 입장을 견지한다. 한국문제를 대해 유럽인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역사인식, 잘못된 전략, 잘못된 정치는 역사적 뿌리가 매우 깊다. 이에 대응하여, 문대통령은 그들에게 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명백한 입장을 분명히 밝혔어야 했다.  그들이 요청하지 않았어도 단호히 이야기했어야 했다. 유럽인들은 문대통령이 트럼프나 미국의 청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말할 담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고 판단하지만, 그럼에도 문대통령은 유럽인들이 트럼프와 워싱턴의 이해에 반하여 행동하기를 기대하였다. 물론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칼럼_181031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이번 유럽 방문의 상황처럼 이미 지난 9월의 국제연합총회에서도 같은 실수가 되풀이되었다. 그곳에서도 한국의 메시지는 불명확했고 모순적이었다.  당시 외교관계 위원회에서는, 그 누구도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이 어떻게 가능하게 될지 명백히 이해하고 있지 못했음에 틀림없다.  심지어 구테헤스(Guterres) 유엔 사무총장마저도 트럼프 행정부를 두려워한 나머지 문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단 한마디의 지지발언도 못한 것이다. 

문대통령이 처한 입장은 대단히 굴욕적이고 완전히 비효과적인 것이었다. 한발 물러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주시해보자. 문대통령은 미들파워를 지닌 프랑스나 영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 및 기타 유럽 국가들로부터 지지를 구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한국의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을 지지할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다. 유럽에 미치는 남한의 경제적 외교적 그리고 소프트웨어의 능력은 상당하며, 이에 상응하게 이들 국가들에게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한국은 북한에 대한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당사자이다. 한국은 지난 9개월 동안 미국 그리고 북한과 중국 러시아라는 동북아의 사회주의국가 3국과 함께 험난하기 짝이 없는 다자간 외교를 주도적으로 잘 이끌어 왔다.

남한의 입장에서, 현재 문대통령의 임기 하에서 향후 몇 달간이 결정적이다. 제한된 시간표에 모든 것이 걸려있다. 북한의 지도자와 인민 모두는 제재의 해제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일본은 북한의 제재가 해제된다면 남한을 새로운 시각에서 존경하게 될 것이다. 오직 문대통령만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트럼프는 이를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하려고 한다 해도 실패할 것이다. 볼튼이나 폼페이오 그리고 미국 정부의 다른 인사들은 제재의 해제에 반대하고 있다.

 

전략은 재고되어야 한다.

이는 문대통령과 김위원장이 트럼프를 판에서 배제한다든가 혹은 지지하는 역할을 하도록 “설득시킨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선택지임을 보여준다. 대신 트럼프는 가짜 위기를 만들어 내고 또 그것을 “해결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공을 주장할 것이다. 트럼프는, 개인적 통찰이나 이해력으로, 미국 정부가 추구했던 지난 17년 간의 극단적인 제재와 잘못된 전략적 선택지들을 클린턴 시대처럼 방향을 바꾸어 미국의 이해관계들을 제대로 이해시킬 만큼 되돌릴 만한 어떠한 관료제적 힘도 가지고 있지 않다. 기억하는가 ?  클린턴은 자신의 정부와 의회의 핵심을 통제할 수 있었고 워싱턴이 정한 외교정책을 민주당의 최전선까지 밀고 나갈 수 있었다.

트럼프의 개인적인 개방성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국제문제에서 극단적인 공화당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북한과 합의할 여지를 발견하기 어려우며, 결과적으로 미국의 외교는 북한에 대한 이지메와 협박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그 결과 볼튼(Bolton)은 멋대로 행동하게 되었다.

비록 청와대는 미들파워로서 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자산을 과시하기를 주저하고 있으나, 미국과 유럽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 한국을 지지하게 하거나 아니면 지켜보게 하는 식으로 유도할 수는 있다. 

 

마침내 제재는 사태의 진전을 위한 주된 열쇠가 되고 있다

나는 이 점에 대해 거의 2년간 줄곧 주장해 왔다. 이전부터 북한 제재의 중요성은 명확한 것이었다.  문대통령과 주변 조언자들은, 북한의 특정행위에 대한 대가로 특정제재의 해제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중요한 위치를 확보했어야 했다. 아울러 이를 통해 트럼프와 미국행정부에게 사적인 내용을 포함하여 주요한 공적인 성과의 일부로서 제공했어야 했다.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이런 일은 아마도 미국의 국가안전 보장회의(NSC)의 전 보좌관 맥매스터(McMaster)의 용인 하에서 벌어질 수도 있었다.

대신, 문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압박”이“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불렀다”는 거짓말을 용인하면서, 미국의 “북핵폐기정책”과 “최대압박”을 수용하였다. 문대통령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던 임기 초부터 그렇게 했다. 이러한 배경은 모두 비생산적이고 잘못된 입장으로서, 한국의 외교적 유연성과 일관성을 제한하고 어려움을 겪게 하였다. 위에 언급한 잘못된 인식을 불식하면서 미국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돌파구를 찾아서

과거 몇 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외교적 교착을 타파하기 위한 한가지 타개책이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이것이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청와대와 한국 정부는 충분히 검토하여 잘 준비된 그리고 현실적이며 명확한 “플랜B”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칼럼_181031(1) 연합뉴스

 

고려해야 변수들

트럼프는 정부를 통제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싱가포르 합의라든가 향후 정상회담의 어떤 합의도, 설사 그가 이행하려고 한다 하더라도, 이행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두 가지 이다. 첫째는 트럼프와 주변인들에게 싱가포르 합의가 무엇이었는지 상기시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오랜 기간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핵무기 실험이 없기 때문이 자신이 이겼다고 느끼고 있다.

트럼프가 행정부를 장악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두 번째 점은 한국의 전략으로 미국이 문대통령의 입장을 지지하거나 혹은 지켜보도록 유도하고 관망하도록 묶어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트럼프 자신이 성실하게 임한다 하더라도 그가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문대통령과 김위원장은 지금 당장이라도 합의하여 영변시설의 해체, 북한의 핵 시설에 대한 일차보고서 제공, 조사관의 실행 착수를 진행할 수 있으나, 이에 대해 미국정부로부터 어떠한 입장도 확인을 받은 바 없다.

따라서 김위원장에게는 몇 가지 선택지가 있다. 가장 최선의 선택지는 트럼프/문의 재임기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이후로는 워싱턴이나 서울로부터 진보적이고 현명한 대통령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있을 수도 있겠으나, 이것을 기대한다면 김위원장이 어리석은 것이다. 향후 2-3년이 남북한 모두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남북한이 역사를 바꾸어야 한다.

 트럼프와/문의 재임기간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김위원장은 트럼프에게 주려고 했던 것을 문대통령에게 줄 수 있다. 문대통령에게 건넨다면 문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몇 가지 유엔의 제재해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문대통령은 김위원장으로부터 넘겨 받은 것을 유엔이나 트럼프에게 다시 전달할 수 있으며 몇몇 제재가 해제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김위원장이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다음 몇 가지가 될 것이다 :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포괄핵실험금지기구( CTBTO)의 감찰 하에 영변시설의 해체이다.
제재가 해제되고 안전 및 외교관계가 수립되는 동시에, 향후 핵시설에 대한 추가 리스트가 있으리라는 명확한 설명과 함께, 곧 모든 핵시설에 대한 보고가 이루어질 때까지, 핵시설에 대한 일차 보고서의 공개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 때의 언술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최초의 보고서”는 두 가지를 확인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북한은 보고서가 불완전하다는 비판에 직면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보고서가 불충분하리라는 점이다. 둘째로, 이후의 보고서는 미국의 조치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와 포괄핵실험금지기구의 조사관들은 비핵화가 진행되는 동안 북한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미국의 조사관들도 함께 체류하겠지만, 이들이 다른 조사관들을 대신할 수는 없다. 

미국/남한의 군사연습의 관한 중단에 대한 중기적인 합의가 이루어 지고 아울러 외교적 노력이 지속된다면, 미사일의 발사나 핵실험은 중단한다는 공개적 서약에 대한 합의는 지금이라도 협상 가능하다.

 

어떠한 제재가 해제될 있을 것인가?

 남한-북한의 경제적 상호교류에 관한 유엔의 제재가 풀릴 것이다. 중대형 규모의 인프라 프로젝트에 대한 사전조사, 미사일이나 핵 혹은 대량살상무기에 직접 사용되지 않는 하드웨어와 부품들의 거래, 국제금융 기구(International Financial Institute,IFI)들에 대한 북한의 가입을 타진하는 초기 수준의 회합과 상호 방문 등이 가능할 것이다.

문대통령도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트럼프/문의 재임기간을 이용해야 한다.  이곳 워싱턴의 노련한 전문가는 힐러리 클린턴이 오바마의 한국정책을 개선시키리라고 기대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모든 정황들이 힐러리 클린턴이 제대로 된 교섭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따라서 트럼프의 재임기간이 문대통령에게는 한조각 행운일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문대통령은 대단히 훌륭한 뛰어난 일들을 해왔으며, 트럼프 시대의 잇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남한 정부는 위에서 말한 제재해제의 교섭을 제안하기 위해 김정은과 협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북한의 행동이나 유엔의 제재해제 등 각 단계에서 정확히 무엇이 필요한 가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일단 세부사항이 확실해지면, 합의는 미국에 설명되어야 할 것이고(“허락”이 아닌 설명이다), 그런 다음 중국과 러시아 일본 유럽 그 외 국가들에게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이때 남한의 외교적 접근은 남북간 합의로부터 어떠한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 각국 나라 마다 던지는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만큼 자세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이후에 남한은 “유엔으로부터 전면적인 지지를 기대할 수 있는지 또 유엔 역시 남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지 명확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청”이 아닌“기대”이다. 그리고 마침내, 남한은 “동의해 주실 수 있습니까?” 물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끝으로 합의는 유엔에 보고되고 발표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이를 지지하거나 지켜볼 것이다. 발표가 끝나면, 단계별 일정이 잡힐 것이고 북한은 이와 관련한 첫 조치들을 취하게 될 것이다.

 

북한의 경제정책을 위한 조언에 관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다른 기업들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현대를 북한에 들이고자 한 정주영의 최후의 계책으로 얼마나 심한 지경을 당했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는 북한에 대한 남한투자가 투명하고 공정한 과정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필요한 일을 하는데 부패한 협상은 필요가 없다.  

일찍이 국제사회와 미국은 1991년 소련의 붕괴를 망친바 있다. 일종의 쇼크치료 혹은 카우보이 자본주의 환경이 조성되어, 소련의 국가자산은 과두집단(oligarchs)과 정치인에 의해 탈취당했으며 국민들은 완전히 기만 당했다.

이로부터 한국이 얻을 수 있는 한가지 교훈은 미국과 국제기구는 북한을 위해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인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다양한 분야의 역량있는 전문가들을 모아야 하며, 이들이 북한과 함께 근본적인 원칙들을 도출해 내야 한다.

한국은 최고의 전문가들과 협력하고 그들의 조언을 구하여, 평양과 함께 서로 상이한 두 가지 경제체제간의 경제정책에 관한 지난 이십 년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구조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최근 많은 이들이 이에 관련된 연구들을 해왔으며 남한정부 또한 자체의 북한경제 프로젝트를 가지고 있으나, 외부의 전문적인 조언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것 이다.  

가능한 두 가지 점을 예로 들 수 있다. 북한의 역량강화(Capacity-building)가 모든 새로운 인프라 투자와 경제구조 건설의 중심적 부분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와 관련하여 브래들리 밥슨 (Bradley Babson)의 논문이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 더해서, 적절한 기술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에너지와 통신 시스템이 주도 면밀하게 계획되어야 할 것이다.

수, 2018/10/3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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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강원도 화실로 들어오는 길에 반계리 은행나무를 보러 갔다. 1년 중 시월이 맘 때면 꼭 가서 만나고 싶은 나무다. 천 년을 살아온 이 은행나무는 가을이 되면 잎이 노랗게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나는 이 나무 앞에 서서 두 손 모아 묵시로 노래 했다.

 

천년 나무 앞에서.

오전 내내 내린 비에도 안 떨어지네.

노랑 은행잎은 비바람에 지지도 않고

자기 때를 맞추어 지게 하려나 보다.

천년이 가도 의연한 은행나무여.

귀귀형용한 가지들마다 세월 비바람 사연들 다

받아 새기며 하늘 향해 두 팔 벌리니

나는 마침내 시월 상달에 대지신의 빛을 보았다.

노란빛으로 맞이하는 천신의례를 하노라.

여기 강원도 초입 문막의 신목은 따로 없구나.

반계리 천년 은행나무가 우주목이고 당산목 일세.

두 손 저절로 모아 모시나니

천년을 더 사시며 이 땅을 빛내소서.

자랑스런 새나라 새 땅 새사람 중원에서 빛나소서

칼럼_181102
문막읍 반계리 은행나무, 수령 1000년은 족히 되었다. 매년 10월 중순이면 잎이 노랗게 물들어 더욱 장관을 이룬다. 나무 높이 40미터, 둘레가 열명의 사람들이 팔을 벌려서야 겨우 잡힌다.

 천 년이 지나도 싱싱한 나무로 살아있는 반계리 은행나무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는 것이 천 년을 넘게 살면 경이롭게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천 년을 내려온 사실에 대해선 눈길을 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당장 보이는 것만 믿으려는 시대에 살기 때문인가 보다. 하지만 우리겨레는 천년을 넘게 이어온 문화가 많다.  장맛 발효음식, 온돌, 옹기, 금관, 굿, 풍물, 탈춤, 상두소리, 국악, 고구려 붓그림, 민화, 단오굿, 마을신화, 농요….. .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나열은 그만하고 천년의 무형문화가 우리 겨레의 뿌리문화가 되어 오늘의 현대 한국대중문화까지 영향을 주는 사실만은 확인하고 싶다. 우리겨레의 뿌리문화를 한마디로 특징을 말할 순 없지만 대체로 영성이 깊고, 신명이 나고, 한의 정서가 깃들고, 정이 많은 모성적 문화란 점은 그 동안 한국학에서 누누이 밝혀온 것들이다. 이런 문화를 한국의 심층문화라고 부른다. 전통문화는 시련의 역사 속에서 이렇게 ‘풍진 속 초탈’로 다져져 왔다.

 

이 심층문화는 아직도 충분히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정상적인 교육제도로 정착되지도 않고 헝클어진 채로 있다. 최근에 와서 민족문화 중흥이라는 헌법정신 차원에서 일부가 우대 보존되는 것 같지만 편의적인 발상으로 선별된다. 만일 정상적인 문화강국의 정책이 일관성 있게 펼쳐진다면 한국문화의 세계화니 한류니 민족문화 수립이니 하는 것들에 장기적 계획과 비젼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심층문화는 홀대 당하여 비주류문화로 갇혀 있다. 그나마 심층문화를 창조력으로 끌어 올리는 민간인들 덕분에 한류는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 한 복판에 예술인들과 전통장인들이 있다. 오늘은 한류의 성공적 사례로 꼽히는 BTS(방탄 소년단)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BTS는 한류문화의 세계진출 사례 중 가장 성공적인 경우로 꼽힌다. 유튜브 하루 조회수만도 4500만명이라는 신기록을 만들었고 미국 빌보드 챠트 2년 연속 1위를 차지하였다. 그들의 공연을 보러 수천명의 미국민들(주로 소녀들)이 며칠씩 탠트를 치고 4회 연속 8만명을 관람을 기록하며 트유터 팔로워 16000, 유투브 조회수18000를 기록할 정도다. 그 의 노래는 이제 유럽 거리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노래가 되었다. 이건 일본 중국 노래가 한번도 그런 적이 없는 사회에서 이제는 서구유럽의 주류음악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틀즈의 팝음악이 서구유럽의 음악문화를 바꾼 것과 맘먹는 성공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비 영미권 음악이, 가사도 한국어를 사용하는 노래로 서방 주류 음악방송을 타지 않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일인가? 그 이유를 찬찬히 찾아보자.

 

  1. BTS는 주류 언론과 방송 루트를 타지 못했다. 한국3대 메이저 음반회사에 끼어야 겨우 세계로 진출하는 구조인데 돈도 없는 방탄소년단은 유튜브를 활용했다.
  2. 유튜브에 팬덤을 형성하였다. 이는 열성팬들 인데 주로 세계 곳곳의 소녀들이다. 유튜브 조회 하루 사이에 4500만명을 조사해 보니 세계 곳곳에 골고루 널리 퍼져 있다. 주류 방송 체널을 무시하고 SNS로 일대일 소통을 하는 미디어로 꾸준히 영향을 넓혀 마침내 세계적인 주류음악을 창조했다.
  3. 음악적으로는 사우스 아프리칸 비트 음악 위로, 국악 장단과 탈춤과 추임새가 곁들고 트랩 구룹의 랩을 최신 유행의 EDM 리듬 소스가 받쳐준다. 아프리카 댄스 구아라구아라와 한국 춤이 섞이고 사바나와 북청사자놀이 이미지, 서브 컬쳐 그래픽 효과와 유라시아 건축과 한국건축양식이 섞여 백 이미지로 작동한다.- 방탄소년단 앨범 소개 글에서.
  4. 이 열성팬은 아미(ARMY)라고 명명하고 방탄소년단 측이 직접 소통하고 관리하며 관심을 저버리지 않는다. 댓 글로 반응 해주고 콘서트장에 초대장도 보내주고 생일 축하해 주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직접 팬들과 소통을 한다.
  5. 아미들은 스스로 고립을 벗어나 스스로 동아리들을 구성하고 끼리끼리 이벤트를 만들어 BTS의 메시지를 공유하고 음악 행동에 참여하고 사회적 행동도 취한다. 이제는 세계시민들에게 위로와 치유의 영상음악이 되었다.
  6. BTS는 단순히 노래만 잘하는 것이 아니다. 노래가 춤과 영상과 어울려서 종합예술을 만든다. BTS 뒤에는 스텝의 협업이 돋보인다. 작사 작곡 영상제작 안무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있는 데 가사가 특히 십대 소녀 소년들의 갈망에 부응한다. 영상은 환상적이며 칼춤이라고 할 정도로 집단적 카르스마와 리비도로 넘쳐난다.
  7. 서구인들의 반응들을 보자. BTS영상을 보면서 “걸리쉬하다, 뱀파이어다, 이런 집단무용은 처음 본다, 하나의 잘 짜여진 축제 같다, 축제기념 송 부르는 거 같다. 여러가지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 전자목소리와 진짜목소리가 혼재해, 라이브로 보고 싶다, 흰 호랑이와 불과 물과 폭풍과 모래 등 신화적 상징들을 영상에 잘 사용 한다, 나를 슬프게 하는 뭐가 있다”  갇힌 공간 속에서 웅크림과 거절의 몸부림, 절망을 넘어 해방의 몸짓들이 춤이 되고 이미지로 흐른다. 물론 랩과 힙합과 아프리카 토속춤과 탈춤이 혼재되어 있다. BTS의 미학은 동서고금의 축제미학이 화려하게 섞여 있으나 자기들이 주장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한 축제로 젊은이들의 해방을 노래한다.             
  8. BTS는 “저는 여러분의 희망이고 여러분은 저의 희망입니다.” 팬들과 늘 일체감을 강조한다. 세계의 젊은 소녀들의 현실과 미래의 심리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고 파고 든다. 젊은이들은 BTS를 보고 ‘나를 슬프게 하는 뭐가 있어서’ 그들 스스로 뭔가를 찾게 한다. 그것은 기성사회와 다른 심리적 전선을 치게 한다. 억압으로부터의 초월, 억압의 초월이다. 전자는 역사적 혁명이고 후자는 예술적 해방감이다. 미래에 ‘역사적 혁명’으로 진화 할지는 미지수 지만 ‘촛불혁명’이 필경 배경일 것이다.
  9. 동아시아3국의 다른 나라 청년들과 다르게 자유와 해방의 몸짓이 격렬하며 어딘지 슬픔과 격조(유럽 청년의 표현에 의하면 매너)가 느껴진다. 서구유럽 청년들이 유독 동양 삼국 중에서 한국의 아이돌을 좋아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21세기 불확실성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미래가 막막한 세계의 청년들에게 세계의 정치 경제 체제는 아무런 답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사랑도 불안하고 더군다나 청년이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지 매우 불안한 시대이다. 한국 사회만 삼포세대니 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의 불안한 미래는 세계사적 현상일 것이다. 여기에 젊은 예술가들이 빛을 밝힌 것이다. 세계청년들에게 심리적 위로가 되는 가사와 희망의 노래와 초월적 이미지로 K-pop의 새 경지를 보여준다. 프랑스 미국 라이브 공연에서 아미들이 보여준 공연이 끝나고 마지막 보여준 모습은 눈물이었다. 이 눈물의 의미는 후회와 성찰의 눈물로 보인다.

 주류사회에 방해 받지 않는, 무한대로 열려있는 SNS를 수단으로 해서 세계의 젊은이와 직접 소통에 성공하고 있다. 한국이라는 시대적 특수성이 국가 경계를 너머 젊은 상상력으로 모이고 예술로 형상하여 가상적 현실을 이룬다. BTS의 가상현실- 유비코터스는 젊은이들의 다른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청년들 스스로 만들어온 유비코터스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다. 20년전 ‘붉은 악마’ 현상은 국가주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하였으나, 이제는 발달된 SNS로 국경을 너머 세계의 젊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젊은 슬픔’을 극복하려는 힘이 결집하고 있다. 국가와 기성사회의 체제와 이념으로도 못 말리는 젊은이들의 신세계를 찾는 신성한 힘이 느껴진다. 방탄소년단과 아미는 현대신화를 창조하고 있었다.

 

 신화학을 집대성한 신화학의 거장 조셉 켐밸은 무수한 저서를 남겼다. 하루는 제자가 “선생님, 선생님은 신화 이야기를 책으로 많이 쓰셨는데, 신화란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인가요?” 라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신화는 신성한 힘입니다.”

 

 이 답변을 주목한다. 신화학은 20세기 인문학을 다시 종합 정리하는 21세기 인문학으로 포스트인문학이다. 20세기 인문학이 주제별로 쪼개고 쪼개서 분할 시키고 나니 인간, 자연, 우주의 유기체적 관계를 망실한 인간 중심적 학문이 되었다. 그것도 엘리트들의 아카데미즘으로 박사들만 양산시키며 세상을 하나로 보는 관점을 잃은 이기적 인간중심주의를 만연시켰다. 모든 인문학을 융합한 신화학에 와서 이 이기적 인간중심주의가 깨지기 시작한다. 선사시대 신화를 독해해봐도 그렇고 오늘날에 와서도 신화는 살아 있다. ‘신화는 신성한 힘이다’라고 한 것은 신화가 단지 과거 옛 이야기만 아니고 지금 내 안에도 있는 이야기다. 신성한 이야기라 할 적에 이것은 문학적 표현이지만 신화, 의례, 예술, 행위로 들어나는 신성한 힘을 다 뜻한다.

 

조셉 켐밸은 이어서 말한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는 행위야말로 신화다.” 오늘의 과학과 인문학으로 풀리지 않는 신성한 힘의 기적 같은 일은 얼마든지 우리 주변과 나에게도 있다. 그렇다면 종교가 말하는 기적과 영성은 무엇인가. 물론 이것들은 고대 신화시대부터 진화하며 각 지역의 큰 종교로 변화하며 오늘에 이른다. 그러나 종교가 신성한 힘을 독점하면 할수록 그 ‘신성한 힘’을 잃고 말 것이다. 자연과 인류의 모든 곳에서 발생하는 신화적 현상을 종교가 철기시대 빅갓(Big God)시대를 지나면서 지배적 독점을 한 결과 배타적 도그마 현상을 갖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과 한 짝을 이루어 제아무리 바꾸려고 해도 종교적 도그마는 해체되지 않는다. 아마 국가주의와 운명을 같이 할 때까지 ‘그들만의 종교’가 된다. 그래서 신화학적 관점으로 보면 오늘의 문화를 네 가지로 분류한다. 그들만의 신화를 갖고 사는 사람, 신화를 버린 유물주의자, 신화를 잊고 사는 세속주의자, 다시 신화를 갖는 자. 즉 재신화적 인간으로 분류한다. 그렇다. 재신화적 인간형은 배타적이고 유일신화적 종교적 도그마를 벗어나 내 안에 신성도 살리고 우주적 신성도 모시는 문화다원주의에서 산다. 세계시민을 지향하는 탈국가주의적 평화시민의 문화다. 인류가 창조한 ‘유일한 믿음의 신은 없다, 자기들이 믿고 의지하는 다양한 신화(원형문화)가 있을 뿐이다. 인류는 다양한 신화를 창조했듯이 저마다 스스로 신화를 창조한다.

 

 미래의 인간형은 세계의 젊은이들이 BTS의 노래를 따라 부르듯이 “Love Yourself, Love Myself”에 기초하는 인간형 사회일 것이다. 20세기 산업사회에 개개인을 도구로 사용했다. 그런 인간형을 기르기 위해 경쟁력 교육을 시켰다. 자기 스스로 행복을 노래해도 모자랄 판에 자학과 열등의식에 젖게 하는 성적순위 교육, 산업 일꾼 교육, 애국교육이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긍정하며 오직 나에게서 만이 희망이 있다. 희망은 나에게서 발견하고 내가 창조하는 것이다. 거기서 신화를 창조한다. 신화창조는 자기를 긍정하고 사랑하는 자기 원형 에너지로부터 만들어진다. 신성한 힘을 벗겨버리고 거대한 신의 한낱 피조물이고 국가와 사회의 모범이 되는 시민이 되는 것을 젊은이들은 거부하기 시작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BTS가 국가를 너머 서구사회까지 진출해서 당당히 세계주류가 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세계 젊음의 반란은 과거처럼 이데올로기에 맹종하는 혁명의 전사가 아니라 ‘문화 아미’가 되어가는 것이고 자기들의 신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칼럼_181102(1)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서울공원에서 열린 강명구 유라시아평화마라톤 환영문화제, 2018년 4월17일 유라시아의 절반을 달려온 강명구 마라토너를 환영하는 소년소녀들이 김봉준 작가와 타슈켄트 시민이 제작한 평화그림 깃발을 들고 환영하고 있다. 이곳 중앙아시아도 K-pop과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청년들이 많다.

그렇다면 “종교가 한계를 들어 낸 오늘날 신화를 주력은 누구입니까?” 라는 물음에 조셉 켐밸은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예술가입니다.”

 왜 그런지는 이 글에서 상세히 말하지 않으리라. 앞으로 계속 이어지는 예술가란 무엇인지,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가지만 언급한다면 20세기가 이기적 인간중심주의 인본주의 시대였다면21세기는 포스트모던이즘의 다원주의시대로 간다. 감성과 영성이 리드하는 시대가 분명하다. 나의 행복은 내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안된 다는 시민적 자각이 일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에 다원주의다. 세계의 젊은이들 중심으로 반란은 시작되었다. 그 젊은 마음들 속에 BTS가 잠시 꽂힌 것뿐이다. 이 거대한 세계청년의 문화반란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며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을 사냥하면서 유비코터스를 형성할 것이다. 그러다가 어딘가 현실공간에서 청년의 창조도시라도 만들 것인가.

 20세기 기성사회가 스스로 개혁하는 힘은 상실한 것 같다. ‘거짓 사랑’에 염증을 느낀 21세기 소년소녀들이 문화반란으로 꿈꾸는 ‘행복한 세상’을 목도하는 세상까지 왔다. 그러나 이런 가상현실적 현상은 당분간 계속 될 것이다. 촛불혁명도 다르지 않다. 시민이 꿈꾸고 이루려는 유비코터스 같은 현장을 한겨울 맛본 것이고 도로 20세기 국가주의 제도 속으로 들어가며 적폐청산을 하는 둥 마는 둥하며 ‘역사는 점진적 개혁’이라고 변명할 것이다. 이렇게 휩쓸고 한 세대를 걸친 문화전쟁을 세계는 열풍처럼 볼 것이다. 나는 기성세대에 별로 희망이 없다고 본다. 그렇게 되어 먹으며 살라왔고, 거기다 집을 짓고 시스템을 만들어 살아왔다. 청년의 반란을 수용하기에는 너무 신화를 잃어 버렸다. 자기를 창조한 신성한 힘을 버린 채 굳어졌다.

젊음만이 희망이다. 그러나 무조건 젊음만이 희망은 아니다. 저 천년의 은행나무 앞에서 비손으로 빌었다. 젊음이 보이지 않는 오랜 미래를 볼 적에, 예술에 그치지 않고 가상공간을 너머 현실공간에 초월적 상상이 창조도시로 뿌리를 내릴 적에 천년의 나무처럼 인류 미래의 희망의 싹이 나기를 빌었다. BTS 는 보여주고 있는 세계 청년문화는 집단무의식이 의식화하는 영성이 깊고, 일상을 축제화하는 신명이 나고, 한의 정서가 깃들어 있지만 슬픔을 이기고 나가는 매너 있는 젊음이 있고, 자유와 평화를 몸짓으로 외치며, 정이 많은 모성문화란 점들은 분명히 보인다. 신세계 청년문화의 비젼이 보인다.  BTS는 시련의 역사 속에서 ‘풍진 속 초탈’한 세계인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금, 2018/11/0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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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미국은 작년 말 북한이 제6차 핵실험에 이어 대류간 탄도 미사일인 화성 15호를 발사하자, 유엔 사상 유래가 없는 초강경조치로 대북제재를 강요하였다. 이는 사실상 총과 포탄을 사용하지 않은 저강도의 전쟁행위이다. 다행히 올해 초부터 북한이 평화정책으로 전환하면서 극적인 국면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국제적 상황은 급반전하고 있다. 지난 8월 9일 트럼프 미 대통령은 우주방위군의 창설을 승인하면서 향후 세계전쟁의 가능 지역은 지상뿐만 아니라 우주공간으로 확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급기야 10월 20일에는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구실로 삼아 러시아와 맺은 중거리 탄도미사일 금지 조약인 INF 탈퇴를 예고하였다. 더구나 조만간 전략적 핵무기 제한조약인 NEW START의 파기로 확대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미국이 핵무기를 현대화하고자 조만간 1조 달러의 예산을 투입할 것이라고 경고한 글로벌 리서치의 초서도브스키 교수의 경고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땅속 깊은 곳에 있는 벙커도 무력화시키고 전략적인 조준타격(surgical Target)이 가능한 초현대적 기능을 갖는 핵무기 이름 앞에 Smart 또는 Mini폭탄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세계인들에게 속임수를 쓰고 있다. Mini핵폭탄의 위력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의 5배 이상이다. 과연 한국인은 한반도 안전보장에 미국과 트럼프를 파트너로 정말 믿어도 될까? 미국의 진보 포탈 Commondreams.org의 INF 파기예고에 따른 편집기사를 옮겨 싣는다.


 

칼럼_181104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은 냉전시대에 러시아와 체결했던 핵무기 통제조약을 파기할 계획이라고 보름 전에 열렸던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조약을 파기하는 것은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인 존 볼턴이 해당 계획을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다는 보도에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토요일에 핵무기 통제조약을 철회할 것이라고 입장을 내놓은 뒤에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

가디언은 백악관에서 볼턴과 정치적 협력자들이 러시아의 위반 사실을 근거로 미국이 1987년에 러시아와 체결했던 중거리 핵전력조약(INF) 파기결정을 내린 것을 지지해달라고 행정부 관료들을 설득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기자회견 직전에 보도했다. 보도직후 핵무기 통제전문가들과 기타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이 실제 위반했다면 강력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데 동의했지만, 해당 조약파기는 유럽 동맹국들을 소외시키고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토요일에 이뤄졌던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내용에 대해 ‘이러한 갑작스러운 조약파기는 엄청난 실수’라고 비판한 미국 군축운동연합의 데릴 킴볼 등 함께 많은 사람들이 경고하였다.

몬터레이 미들베리 국제연구소의 제프리 루이스 동아시아 핵확산 방지 프로그램 담당이사 또한 그러한 경고에 동참했다. 그는 이 결정은 엄청난 실수다라고 가디안지에 얘기했다 .그는 또한 “나는 미국이 조약에 의해 금지되어온 많은 것들을 (무기 등)배치할 것이 대단히 의문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라고 언급했다.

핵무기 폐기 국제운동의 베아트리 스핀 사무총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INF 조약을 파기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자신이 진정한 안보를 구축할 능력이 없는 파괴자임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대신, 핵무기조약을 파기함으로써, 그는 미국이 새로운 핵무장경쟁에 뛰어드는데 1조 달러를 투입하도록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Glenn Greenwald기자는 트럼프 행정부와 러시아와의 관계, 특히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과 관계에 대한 언론들의 광범위한 묘사와 관련지어 INF 이슈를 결부시켰다.

트럼프는 회견 당일인 토요일에 네바다에서 열린 중간선거 캠페인 행사 이후 기자들에게 그의 INF 조약 파기 계획을 폭로했다. “러시아는 해당 협약사항을 위반했다. 그들은 수년 동안 위반해왔다. 나는 무슨 이유로 버락 오바마 전대통령이 그것에 관하여 협상하거나 파기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가 허가하지 않는 한, 그들이 핵조약을 위반하고 전세계적으로 무기를 휘두르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이익에 기여해온 국제질서를 아마도 다시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손상시켰으며, 대재앙적 기후변화에 모르는 척 눈을 감았고, 우리 정부를 망가트렸으며, 국가적 담론에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 이제 여러분께 핵무기 경쟁에 뛰어드는데 필요한 자금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할 것이다. #VoteThemOut”- 미국 군축 및 핵확산 방지 연구소의 Alexandra Bell

 “우리 모두 똑똑해지고, 우리 중 그 누구도 그러한 무기들을 개발하지 맙시다”라고 러시아 및 중국과 합의했다면, 그런 결정은 선뜻 받아 들을 것이라고 연막을 치면서도, 현재의 상황에서 트럼프는 더 많은 무기를 제조하기 위해서 필사적인 것처럼 보인다. “만약 러시아와 중국이 위반하고 있는데, 우리가 본 조약을 충실히 지킨다면, 그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또한, “우리는 군대와 더불어 엄청난 액수의 돈을 가지고 있다” 라고 말했다.

“우리는 본 조약을 종결시킬 것이며, 무기를 더 개발할 것이다. 만약 서로가 똑똑해지고, 더불어 현명해지고, 그럴 끔찍한 핵무기들을 더 이상 개발하지 말자고 얘기한다면, 나는 매우 만족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해당 조약을 위반하는 한, 우리가 그 조약을 지키는 유일한 국가가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떠 벌렸다.

CNN이 지적한 바와 같이, 냉전시대의 핵무기 경쟁 중 체결된 INF 조약은 역사적인 분수령이 되었다. 그 조약에 따르면, 러시아와 미국은 지상발사 탄도미사일과 300에서 3400마일의 발사범위를 가진 크루즈 미사일을 제거할 것이 요구되었다 .조약은 “소련 때문에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 아니며, 유럽 대륙에서의 전략적 안정을 위한 수단제공을 위해 고안된 것이다” 라고 전국무부 대변인이자 현재 CNN 군사외교 분석가인 John Kirby이 설명하면서. “유럽 동맹국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조약파기 소식을 듣고 전혀 행복해하고 있지 않다고 의심하고 있다.” 라고 언급했다.

미국 군축협회의 킹스톤 리프는 조약파기가 미국의 국제외교 관계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서 트럼프 대통령의 전쟁광인 국가안보 보좌관 덕분에 현재 파기위험에 처한 INF조약은 러시아와 체결한 유일한 군비통제 협약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가디언이 보도한 바와 같이 볼턴과 미국국가 안전보장 위원회(NSC)의 고위 무기통제 고문인 팀 모리슨은 INF와 더불어 어느쪽이든 전략적 탄두배치의 수를 1,550개로 제한하는 러시아와 체결한 또 다른 주요 군비통제 협약인 2010 New Start agreement의 계약 연장을 반대했다. 해당  협약은 2021년에 만료될 예정이며, 러시아 전대통령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와 미국 전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사이에서 체결되었다.

로얄 통합서비스 연구소의 부국장인 말콤 찰머스는 우리는 지금1980년대 이후로 가장 심각한 핵무기 통제위기에 놓여 있다. 만약 2021년 만기 예정인 전략무기에 대한New Start 조약과 더불어INF 조약이 파기된다면, 1972년 이래 처음으로 이 세상에는 핵보유국들의 핵무기를 제한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미국무부의 군비통제 관련 고위직원이었으나, 현재는 미국군축 및 핵확산방지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Alexandra Bell은 트윗에서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는 INF 조약을 포기하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재개된 군비경쟁을 확인하며, 전세계의 핵문제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데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미국 군축 및 핵확산 방지 연구소의 Alexandra Bell의 경고를 되풀이 한다. “이 행정부는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이익에 기여해온 국제질서를 아마도 다시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손상시켰으며, 대재앙적 기후변화를 모르는 체 했으며, 우리 정부를 망가트렸으며, 국가적 담론에 안좋은 영향을 끼쳤다. 이제 당신한테 핵무기 경쟁에 뛰어드는데 필요한 자금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할 것이다. #VoteThemOut”

월, 2018/11/0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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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축적 및 성장전략은 최전방 반공기지로서 미국의 묵인하에 일본형 중화학공업을 군사독재의 엄호하에 구축해 온 데서 출발한다. 이른바 ‘발전주의적’ 국가는 극단적인 중상주의적 보호주의를 한편으로, 돌격식 수출드라이브를 다른 한편으로 선발 자본주의국가를 압축ㆍ추격하는 데 놀라운 성과를 보였음은 부인키 어렵다.

하지만 1998년 IMF 위기이후 외부적 압력에 의해 이러한 ‘낡은’ 축적모델은 변경을 강요당했고, 그 결과 한국 경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체제에 불가역적으로 편입되게 된다. 지난 20년간 미국식 신자유주의 세례를 듬뿍받은 경제관료와 무엇보다 재벌류 독점자본에 의해 추동된 이 신모델은 우리 사회에 필요충분할 정도로 무사히 이식완료된다. 물론 적지 않은 정치사회적 저항이 있었지만, 한국자본주의는 이들을 한편으로는 ‘털어’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포섭할 정도의 분할지배를 관철해 내었다.

칼럼_181105(1) KBS뉴스
(사진: KBS뉴스)

한국 경제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관철되는 과정에서 중국이라는 생산기지, 판매시장, 투자대상국의 존재는 어쩌면 행운이었다. 지경학적으로 풀이하자면 강요된 유사 pseudo 섬으로서 한국이, IMF이전까지 세계시장이라는 해양세력적 축적전략 포지션이었다면 이후는 대륙세력에 기탁한 포지션이었고, 이는 차이나 이펙트라 할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차이나효과는 트랜드상으로 그 동력을 상실해 왔다.

IMF이후 한국자본시장은 초국적 금융자본에 ‘실질적 포섭’단계로 들어간다. 그 가장 주된 특징이 여의도의 월가로의 하위 동조화 현상이었다. 한국주식시장은 월가의 현금인출기로서 허술하기 짝이 없는 규제망탓에 언제든 누르기만 하면 현금이 나오는 그런 곳이었다. 한국의 개미들은 국제투기자본의 이익에 말단 영업사원이었다. 가장 늦게오르고 가장 빨리 빠지는 현상은 지금도 계속된다.

자본시장이 월가와 동조화되는 한편, 한국의 경기사이클은 중국시장과 동조화되는 경향이다. 트럼프 출현직전부터 모습을 드러낸 소위 ‘미중무역전쟁’은 중국경제에 유례없는 위기를 강제하고 있다. 모든 전쟁이 정의상 ‘어브노말’ abnormal하다는 점에서 무역전쟁이라는 표현은 잘 못된 것이다. 그것은 이제 ‘뉴 노말’ new normal일 뿐이다. 새로운 경제적 일상일 뿐이다. 이 표현은 트럼프를 ‘보호주의’라고 부르는 것 만큼 잘못된 인상을 낳고 있다. 트럼프주의는 미제조업 축적위기를 국가의 경제외적 강제를 통해 극복하려는 국가개입주의의 변형된 혹은 강압적 배리에이션일뿐이다.

미중분쟁의 최대 피해자가 한국이다. 한 때 최대 수혜국이었던 그 만큼 피해는 충격적이 될 수 있다. 전후 수십년간 미국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이라는 외부시장에 기반한 한국의 축적 및 성장전략은 이미 갈데까지 간 상태다. ‘쿼바디스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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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성장은 그 자체로 충분히 해 볼만한 선택지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허나 전두환ㆍ노태우도 누렸던 저 전설의 ‘3저호황’도, DJㆍ노무현 시절의 중국효과도 이젠 기대할 수가 없다는 게 문제다. IMF때, 2007년 금융위기때도 위기때마다 등장하는 경제패러다임의 교체는 모두 좌절했다. 내수시장은 정반대로 더 ‘졸아’ 들었고, 신자유주의적 제도와 구조는 더 공고해 졌다.

이러한 안팎의 조건만으로 보자면 소득주도성장은 그 물적 기반이 너무나 허약하다. 소득 곧 직간접 임금을 자극해 소비, 생산 그리고 투자와 일자리 사이의 선순환을 가속ㆍ강화하자는 착상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고화된 내부적 신자유주의 구조와 한국경제의 글로벌화로 인해 이 순환은 이미 분절화된지라 정책의 효과가 나오지 않는 다는게 문제다. 한국경제의 현 단계는 설사 케인즈가 되살아와 한국 경제수장이 된다 해도 답이 없다. 신자유주의 아버지 하이에크가 와도 마찬가지다. 한국경제처럼 ‘딥deep 글로벌화’ 조건에서는 바로 이 글로벌 조건의 개선때까지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백약이 무효다. 또 하나의 처방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을 거다.

대개 경제적 정책툴도 무한하지 않다. 재정, 조세, 통화, 관세, 산업, 금융, 복지, 노동정책등등 수단들이 있겠지만 그 각각의 효과만으로 비록 추세를 완화하고 방향을 미세조정할 수는 있겠지만 한국 경제를 일거에 벌떡 일으켜 세울 거로 보이지도 않는다.

중국경제가 하향하는 조건에서 남북경제가 답이 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중단기적으로 북을 값싼 노동력 및 원료공급기지로 또 판매시장으로 보는 발상은 경제보다 더 어려운 정치적 장벽을 과소평가하는 거다.

당분간은 설국열차모델이 유력할 수 있다. 슈퍼양극화말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따뜻하고 쾌적한 일등칸과 비록 바퀴벌레지만 굶지 않을 정도의 단백질을 공급해 주는 나머지칸말이다. 물론 하차를 강요하진 않는다. 하차하면 얼어 죽기때문이다. 그래서 태워는 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지속가능한 미래모델이 아님은 자명하다. 과거의 민족경제론과는 구별된다는 전제에서 구조적 자립과 주체적 혁신이 그나마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물론 여기에는 성장과 수출이라는 물신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포함된다. 낙관하기엔 현실은 너무나 엄혹하다.

 

한신대 교수

이해영

월, 2018/11/0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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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의 앞날을 여전히 점치기 힘든 상황이다. 미국은 지난 7월과 8월 500억 달러의 중국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한 이래, 최근에는 중국 하이테크기업인 푸젠진화(福建晋华)에 대해 미국 반도체회사의 경쟁력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수출제한 조치를 내렸다. 그전 처음 종싱통신(ZET)을 제제할 때만 해도 나름의 복잡한 형식상의 절차를 밟았지만, 이제는 중국에 대한 ‘기술봉쇄’를 위해서라면 아무 때나 자국기업에 거래중지를 명령할 수 있다는 태도이다.

중국의 강경한 태도 역시 변함이 없다. 얼마 전 10월 31일 열린 중국공산당 정치국회의에서는 기존 경제정책기조의 유지를 재확인하였다. “안정 속의 발전 추구”(稳中求进), “높은 질량위주 발전의 굳건한 추진”(坚定不移推动高质量发展) 등이 그것이다. 최근 중미 무역전쟁의 엄중한 분위기 속에서도 중국정부의 일관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 같은 두 강대국의 싸움은 이제 남의 일만은 아니게 되었다. 최근 한국 코스피지수가 연일 폭락하면서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을 실감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10월 한 달 새 종합주가지수가 무려 20% 이상 빠지면서, 근래 들어 최대의 낙폭을 기록하였다. 2000선 방어가 위태로워진 것은 물론이요, 한국경제를 둘러싼 사방팔방의 각종 악재들을 고려 할 때 앞으로 어디까지 추락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칼럼_181106 KORUS NEWS
(사진: KORUS NEWS)

이렇듯 애초 예상과는 달리 진행되는 상황을 접하면서, 사람들도 세기적인 두 초강대국 간의 무역전쟁을 좀 더 진지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특수전쟁’의 끝은 어디이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인지 갈수록 궁금해지게 된다. 곧 싸움을 끝낼 듯 초기에 승기를 잡고 기세등등해 하던 미국도, 최근 다우지수와 나스닥지수의 폭락사태가 보여주듯 자기가 먼저 걸어 간 싸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 이미 입증되었다. 사실 이 같은 사태는 일찍부터 예측되었던 바이다. 오늘날의 글로벌경제하에서 세계의 모든 국가는 서로 얽히고설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아무리 초강대국이라 할지라도 그런 상황에서 홀로 초연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여기서 잠깐 필자의 경험담을 꺼내고 싶다. 필자는 금년 여름에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 싸움에서 중국이 질 수 없는 이유를 나름대로 발견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당시 중국경제는 얼마간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경제성장을 이끄는 삼두마차가 모두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우선 미국과의 무역분쟁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대외무역과 수출전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1~5월 상품수출입은 6,498억 달러의 흑자를 보았지만, 서비스무역 적자가 6,887억 달러에 달함으로써 경상수지적자 폭은 389억 달러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수출입 분야의 위축과 함께 심리적인 충격도 켜서 주식시장이 연일 폭락하고 (상해종합지수 3500선→2700선), 환율도 계속 내리막길을 걸어 인민폐 절하가 지속되었다.(달러당 6.25위엔→6.7위엔) 또 그동안 ‘신상태(新常态)’ 하에서 경제성장을 이끄는 데 큰 몫을 해왔던 소비 증가폭도 한풀 꺾여 ‘피로’ 현상을 보여주었다. 소비품 소매매출액 증가율은 지난해 동기 대비 금년 5월에는 10.7%에서 8.5%로 다소 내려갔다. 임금인상율 하락, 부동산가격 상승 억제, 주식시장 불황 등 가계소득 향상을 뒷받침 해 줄 만한 요소들이 하나 같이 불안하거나 제대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에 강도 높은 ‘반부패’ 투쟁의 지속으로 기존에 ‘공금’을 이용한 간부들의 소비향락도 대폭 줄어들었으며, 이 부분도 일정 소비열기를 식히는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이러한 경제지표 자체보다도, 이처럼 다소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중국정부의 ‘구조조정’ 작업이 여전히 그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2015년부터 본격화된 철강·시멘트·아연 등의 과잉생산부문에 대한 구조조정과 기업 ‘부채 줄이기’ 작업이 여전히 꾸준히 진행 중에 있었다. 특히 후자가 아직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이었는데, 국유기업을 중심으로 재무상에 있어 과도한 부채에 대한 ‘채무의 주식 전환(债转股)’ 작업이 활발하였다.

경제의 하방압력이 커지고 대내외적인 불안 요소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중국정부가 이렇다 할 부양정책이나 현재 진행 중인 구조조정 정책을 수정하는 조처를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현 중국경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라 보여 진다. 예컨대 예전에는 일단 경기가 위축될 조짐이 나타나면 중국정부는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을 어느 정도 늦추면서 이 부분의 열기를 다시 끌어올리는 정책을 펼쳤던 기억이 난다. 이리하여 지가상승→지방정부의 재정소득 증대→정부투자확대를 통한 일련의 경기진작 사이클의 재가동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 같은 정책 변화의 조짐을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주식시장에서도 당시 3000선을 사수하기 위해 ‘국가대표팀’이 출동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상해주가지수가 2700선까지 힘없이 밀릴 때까지 이에 대한 정부의 인위적인 주가 부양 조짐을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다. 중국정부의 이 같은 태도는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

일각에선 지난 금융위기 시기인 2009년에 온자바오 정부가 ‘4조 위엔’의 화폐를 쏟았던 부양정책의 후유증을 연관시킨다. 그 때문에 다시 정부가 그러한 인위적인 케인스식 정책을 쉽게 사용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필자의 해석은 좀 다르다. 비록 작금의 중국 경기가 얼마간 어렵고 국내외적인 불확실성도 증가하였지만, 그러나 기존의 정책방향을 수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작금의 어려움은 구조조정을 완수하기 위한 정상적인 진통을 겪는 과정에 불과하며, 이러한 고비를 넘겨야만 (길게 잡아 2~3년)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각오와 나름의 자신감의 발로라고 보여 진다. 만약 필자의 이러한 판단이 맞는다고 한다면, 우리는 현 무역전의 형세를 다시 바라보아야만 한다. 즉 중국이 일방적으로 몰리고 있다는 국내 대다수 언론보도와는 달리, 미국과의 무역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처럼 자기 페이스를 지킬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국이 ‘주도권’을 상대에게 넘겨주지 않고 있다는 점을 그 무엇보다도 잘 말해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금번 중미 간 무역전쟁은 결국 ‘무승부’로 끝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 같은 형식의 이면에는 내용상으로 중국의 승리가 있다. 왜냐하면 미국의 총공세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중국이 양보한 것은 별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호 전력을 비교한다면, 미국이 비록 금융부문에서는 앞서간다고 하나 그렇다고 해서 중국을 단기간에 굴복시킬 수 있을 만큼 중국의 이 방면에 있어서의 수비가 허약한 것은 아니다. 중국의 튼튼한 제조업 위주의 경제구조와 아직 덜 개방되고 국가의 강한 통제 하에 놓여 있는 금융시장은 국제 투기자본의 활동을 크게 제약시킨다. 그들은 지금으로써는 주로 해외시장을 통해 간접적이고 ‘심리적’인 방식으로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이다. 미연준위의 금리인상 전략에도 한계가 있다. 현재의 취약한 미국의 경제성장 기조와 천문학적인 국가부채 규모는, 만약 미연준위가 무리하게 금리인상을 추진할 경우 먼저 미국 자신을 압박하고 쓰러트리게 만들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경제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경제는 올해 3% 성장률을 달성한 뒤 내년에는 곧바로 하락세로 접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이처럼 미국경제의 체질이 많이 쇠약해져 있는 상태에서, 트럼프정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 지지층의 분열과 불만으로 인해 이 싸움을 오래 끌고 갈수가 없다. 물론 이 경우 트럼프는 최소한의 체면을 살리려 할 것이며, 중국 역시 적절한 타협과 현상 유지가 목표이기 때문에 트럼프를 막다른 궁지에 몰면서 완벽한 승리를 추구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약간의 위안화절상 (무역전쟁 본격화 이전의 1달러=6.2위엔을 크게 넘지 않는 선)이나, 이전에 합의 했던 중국의 미국산 제품에 대한 구매확대 조치 등을 이행하는 정도로 충분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결국 불똥은 한국을 비롯한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튈 수밖에 없다. 미국이 자력만으로는 자국 경쟁력의 완전한 회복과 충분한 일자리 창출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리고 중국이 호락호락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상태에서, 미국이 다른 동맹국들에게 전가하게 될 ‘분담금’은 반대급부로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 때문에 중간선거 이후 비록 트럼프정부가 중미 간의 무역전에서 한발 물러선다 할지라도, 특정 분야의 개별 국가를 지목한 무역분쟁은 지속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즉, 미국의 실리 챙기기작업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며, 그 주요 대상국은 대미 흑자국가 중에서도 약소국가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바로 그 같은 케이스에 속하며, 필자가 중미 무역전쟁의 후폭풍을 계속해서 걱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화, 2018/11/0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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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지난 4일부터 시행된 이란제재에 대하여 한국정부와 주류 매스콤은 미국 행정부로부터 6개월간 보류조치를 받았다고 안도하면서 짐짓 한반도 상황은 이란과 다르다고 강변하고 있다. 참으로 부끄럽고 어리석은 발언들이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흐름 속에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한반도(북한)가 이란 다음으로 미패권주의의 희생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무모할 정도로 전일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1) 대국굴기하는 중국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여 복종시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며, 2) 군사적 기술로 대항하는 러시아를 초현대적 무기개발에 1조달러 이상을 쏟아 부어가며 굴복시키려 하고 3) 사우디를 중심으로 친미 연합세력을 구축하여 반미운동의 중심국인 이란을 종교적 갈등을 이용하여 중동아에서 축출하려는 음모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상황은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유동적인 카드에 불과하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할리우드적 과잉행동과 밥 먹듯이 거짓말을 내뱉는 트럼프에게 민족의 역사를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트럼프 정권이 이란에게 시행한 “최대 압박” 작전의 행보는 지난 일요일인 11월 4일에 감행되었다. 이를 통해 트럼프 정권은 이슬람 공화국인 이란뿐만 아니라 이와 거래하는 모든 이들에게 엄격한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지만, 제재 행보의 파급력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

미국의 의도는 이란을 고립시키는 것이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미국이 오히려 고립될 수도 있다. 특히 유럽의 반응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다. 트럼프 정권의 핵심인물 들조차도 새로운 제재를 어떤 방식으로 가해야 할지 주저할 정도로 제재의 내용은 문제투성이 이다.

칼럼_181107 VOAKOREA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사진: VOA코리아)

트럼프 정권은 이번에는 이란의 혈류를 막기 위해 정맥을 노리기로 했다. 이란의 원유와 석유화학제품 수출량을 최대한 제로에 가깝게 만들기로 한 것이다. 또한 현재 발표된 제재의 내용 중에는 이란을 SWIFT로 알려진 세계결재은행 시스템에서 제외한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여러 제재 중 어떤 것이 더 가혹한지 한마디로 말하기는 힘들다.

이란의 원유 수출량은 이미 하향 추세를 보여 왔다. 이미 지난 5월 하루에 270만 통을 수출한 것으로 이란의 원유 수출량은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이는 트럼프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통솔하는 6자 회담에서 미국을 철수시키기 직전이었다. 9월 초 원유 수출량은 하루 평균 백만 통 정도 감소하였다.

8월, 미국은 이란이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비행기와 자동차 부품들을 미국 달러로 가격이 표시된 것 상태로 구매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 후 이란의 화폐인 리알의 가치는 역대 최하로 떨어졌으며, 인플레이션은 무려 30%가 넘게 상승했다. 이란이 세계 결재 시스템인 SWIFT에서 얻는 혜택을 폐지하는 것은 이란을 달러가 지배하는 세계 경제에서 제외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른 국가, 특히 중국이나 러시아가 달러 기반 경제에서 서서히 철수할 가능성도 있다.

SWIFT에 관련된 문제는 트럼프 내각에서조차 분열을 낳았다. 재무장관인 Mnuchin과 국가 안보 보좌관이자 백악관에서 가장 이란에게 적대적인 John Bolton이 해당 문제에 대해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Mnuchin의 온건한 반대는 제재의 실행을 늦추거나 이란의 몇몇 금융 기관을 제재에서 제외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는 있겠지만, 그 이상의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15년 오바마 정권이 지지한 핵 협정은 핵 프로그램에 대해 엄격한 제재를 가하는 댓가로 이란에 가해진 무역 제재를 해제한 협정이었다. 국제 원자력 기구는 이전 맺은 협정은 아직 유효하며, 서명국인 영국, 중국, 프랑스, 독일과 러시아는 아직 협정을 철회하지 않았고, 이란과 무역을 계속하고 있다고 반복적으로 확인한 바 있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는 이미 미국의 제재를 무시하고 이란과의 경제적인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미국의 유럽 동맹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일지에 달렸다.

 

유럽의 반응

트럼프가 5월 핵 협정을 철회한 이후부터 유럽은 동요했다. 유럽 연합은 미국의 제재를 피할 수 있는 무역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특별목적회사(SPV, Special Purpose Vehicle)로 알려진 시스템은 유럽 회사들이 냉전 시대에 서유럽이 소련과 무역을 유지했던 방식과 비슷한 바터제를 도입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유럽 연합 관계자들은 트럼프의 제재 중 이란을 SWIFT의 혜택에서 제외하는 항목을 삭제하여 이란이 세계의 여러 은행 간 사업에서 제외되지 않도록 로비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 무역 시스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보전하기를 희망하는 Mnuchin이 그들을 도울 것이라 믿고 있다.

유럽 연합 집행 기관의기관장인 Jean-Claude Juncker를 비롯한 몇몇 유럽 연합 관계자들은 유로화를 범세계적 거래 화폐로 만들어 달러와 경쟁하게 만들자는 주장을 펼쳤다. Charles de Gaulle이 1967년 프랑스를 잠시 NATO에서 철수시킨 것과 독일과 프랑스가 2003년 미국이 이란을 침공하는 것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에서 반대표를 던진 것을 제외한다면, 그 동안 유럽 국가들은 세계 2차 대전 후부터 지금까지 미국에게 순종하는 자세를 취해 왔다.

큰 규모의 유럽 에너지 회사는 미국의 제재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유럽 연합이 제안한 새로운 무역 방법에 동참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프랑스 에너지 회사이자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회사 중 하나인 Total SA는 벌써 몇 달 전 이란과의 모든 거래를 중단했다.

이 달 초반, 한 미국 관계자는 유럽 연합이 제안한 바터제를 받아들일 유럽 회사는 얼마되지 않는다고 비밀리에 밝히기도 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미국이 이란에 대해 내린 결정을 유럽 국가들이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아니다. 대서양 동반자관계는 이미 훼손되었고, 오바마 내각 시절부터 생기기 시작한 금은 점점 커져가는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의 반응

아시아 국가들 역시 미국의 제재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11월 4일 이후 이란이 잃을 수출의 모든 부분을 아시아 국가들이 흡수할 수는 없겠지만, 이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

중국, 인도 그리고 대한민국은 이란의 원유를 각각 첫번째, 두번째 그리고 세번째로 많이 수입한다. 일본은 여섯번째다. 아시아 국가들도 유럽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11월 4일에 가한 제재를 피하려고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인도는 바터제를 도입해 이란의 원유를 계속 구매하는 방안과 모든 거래를 루피로 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중이다. 이미 미국의 협박을 무시하겠다고 밝힌 중국은 위안화를 사용하는 원유 거래를 환영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별로 어려운 결정이 아니다. 중국은 미국과 장기간 무역 전쟁을 하는 중이며 지난 봄에 시작된 상하이의 원유 선물시장은 글로벌 선물 계약시장의 14%를 장악했다. 계약을 통한 배송은 곧 시작된다.

트럼프 정권의 다른 외교 정책과 마찬가지로 이 제재의 정확한 내용은 아무도 모른다. 인도 같은 나라는 제재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 일본과 한국은 이미 제외를 요청한 바 있다. 유럽 연합의 SPV는 어느 정도 성공적일 수 있으나, 이는 가능성일 뿐이다. SWIFT에 관한 내부 갈등도 어떤 방향으로 해결될지 확실하지 않다.

 

미국에 미치는 장기적인 결과

달러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세계 경제의 움직임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이란제재 이전까지 외국환 시장에서 받아들여진 정설은 다른 화폐가 달러화와 경쟁하는 현실이 도래할 것이지만, 이는 먼 미래의 일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이란에 가한 제재에 대한 유럽과 아시아의 반응을 보면 이 현실은 우리의 생각보다 빨리 도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 러시아, 인도와 이란을 비롯한 신흥 강국들이 비서양동맹을 맺는 것도 조만간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동맹은 이념적인 측면보다 실용적인 측면이 강하고, 미국은 어떤 노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보다 이 동맹을 더 지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워싱턴이 이란 협약에서 철수했을 때, 모스크바와 베이징은 협약을 중시할 것을 곧바로 테헤란에 알렸다. 이렇듯 미국이 계속 반대, 특히 동맹국으로부터의 반대에 부딪힌다면, 세계 2차 대전 이후 계속되었던 미국의 패권이 흔들릴 수도 있다.

미패권의 잔혹함을 고발하는 예멘의 긂주린 여아사진

새로운 이란핵협정?

미국이 취한 모든 조치는 이란을 협상 테이블로 밀어 넣어 트럼프가 소위 말하는 “최악의 조약”을 다시 쓰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반면 테헤란은 반복적으로 자신은 현 조약이 제시하는 모든 조건을 지킬 것을 천명하였고, 다른 서명국들 역시 조약의 조건을 지키는 한 재협상의 의지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이 하는 행동은 자기 자신의 역량을 너무 과신하는 것일 수도 있고, 만약 그렇다면 국제 정세에서 고립되는 것으로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이는 트럼프가 정권을 잡으면서 더 악화된 바 있다.

워싱턴은 지난 몇 년간 제재를 남용해왔다. 이번에 실행될 제재는 말도 안될 만큼 무자비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행보를 통해 미국은 전통적으로 자신을 지지했던 동맹국마저 잃을 위기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Patrick Lawrence

주로 International Herald Tribune을 위해

몇 년간 일한 해외 특파원이자, 칼럼니스트, 수필가, 작가이자 강사입니다.

수, 2018/11/0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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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일 국회에서 열린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포용국가’를 핵심키워드로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경제 불평등을 키우는 과거의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며 포용국가를 역설했다.

칼럼_181111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포용국가를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로 제시한 대통령의 인식은 전적으로 타당

 

문 대통령은 “국민의 노력으로 우리는 ‘잘살자’는 꿈을 어느 정도 이뤘으나 ‘함께’라는 꿈은 아직 멀기만 하다”며 “우리는 경제적 불평등 격차를 줄이고 더 공정하고 통합적인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지속가능한 성장의 길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는데 적확한 인식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문 대통령은 포용국가를 “사회안전망과 복지 안에서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나라, 공정한 기회와 정의로운 결과가 보장되는 나라, 국민 단 한명도 차별받지 않는 나라”라고 정의하면서, 포용국가를 ‘정부가 진 시대적 사명’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 불평등이 그대로 불공정으로 이어졌다”며 “불평등과 불공정이 우리 사회의 통합을 해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로막기에 이르렀다”고 말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포용국가’ 강조하며…”불평등 키우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어”)

 

대통령의 국회연설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핵심내용으로 하는 포용국가 모델이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길이며,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나라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적확하고, 큰 틀에서의 방향도 타당하다.

 

부동산 문제 해결없는 포용국가는 난망

 

다만 문 대통령에게 꼭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포용국가가 성공하려면,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가능하려면 부동산 문제 해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그 조언이다.

 

대통령도 근래의 지지율 폭락이 무엇 때문인지 똑똑히 알 것이다. 지방선거 이후 수직으로 추락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서울 집값 폭등이었다. 2015년에 346.2조원(GDP의 22.1%), 2016년 374.6조원(GDP의 22.9%)이 각각 발생한 천문학적 부동산 불로소득 규모가 말해 주듯 부동산 문제 해결 없이는 소득주도성장도, 혁신성장도, 공정경제도 불가능하다. 소수의 재벌과 지주들이 가만히 앉아서 사회구성원들이 피땀흘려 만든 부를 합법적으로 약탈하는 마당에 혁신과 공정이 가능할리 없으며, 임금 보다 주거 비용이 훨씬 가파르게 오르니 소득주도성장도 공염불이다.

 

부동산을 기준으로 신분이 정해지고 정해진 신분이 세습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니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평등 운운하는 슬로건은 문학적 수사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아는 사실을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만 모르는 것 같아 답답하기 짝이 없다. 만시지탄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이제라도 부동산의 중요성에 눈을 뜨길 간절히 소망한다.

일, 2018/11/11-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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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세계경제 성장률의 30%를 떠받치던 중국이 경제의 속도조정과 구조개혁에 진입했다. 한국의 주요 언론과 전문가연(然) 떠도는 견해는 마치 중국이 미국과 무역마찰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분야에 세계 최고 권위를 지닌 Financial Times는 전혀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중국경제의 어려움은 미국에 의해 촉발된 것이 아니라 내부의 신용과잉에 따른 잘못된 투자와 과다한 부채 그리고 소비행태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오히려 미국과 무역마찰과 적당한 경제성장률 저하는 질적인 구조개혁과 지속적 조건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는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상황에 더욱 절실한 이야기이다. 한국경제와 산업은 조속히 거대한 구조적 개혁과 체질개선을 이루어내야 한다. 능히 해내지 못하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문재인 정부는 다음 총선에서 사라질 야당의 비난과 사소한 성장률 수치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흔들림 없는 소신과 의지를 갖고 근본적인 개혁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시민을 위한 개혁정부인지 기득권의 관리정부인지, 문재인 정부의 성격과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칼럼_181110

중국의 성장률은 이번 해 3분기에 6.5%로 하락했다. 세계 금융 위기 이후에 보인 가장 느린 성장률이긴 하지만, 그런 이유로 충격 받을 일이 아니다. 성장률이 감소했다고 해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다. 성장률 자체로는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오히려 경제가 튼튼해지고 있다는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특히 전세계는 중국의 성장 속도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버리고, 정말 중요한 점에 집중해야 한다. 즉 중국 경제 성장의 질과 지속가능성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성장률의 감소가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여파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 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는 매우 빈약하다. 오히려 중국의 수출액은 미화로 9월 기준 미화로 지난 달 대비하여 14.5% 성장했다. 동시에 중국은 같은 달 미국과의 무역에서 341억 달러의 흑자를 실현했다.

물론 미국과 무역에서의 마찰은 중국의 무역 성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지만, 아직까지 그러한 징후가 뚜렷이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GDP 기준 성장률의 감소는 지난 2분기의 6.7%에서 6.5%로 감소한 정도이다.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경제라면 누구도 이러한 작은 차이를 유의미하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중국이 제공한 통계가 0.2% 단위까지 정확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정말로 중국 정부의 발표 수치가 정확하다고 가정하면, 중국의 성장률은 아직까지는 매우 건강한 상황이다. 중국 정부 자신이 성장 목표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0.2%의 “하락”에 신경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국의 성장 유형이 변화했냐는 것이다. 과거 중국 정부 당국은 신용을 큰 폭으로 팽창시킴으로써 성장 목표를 달성하였다. 대부분의 경우 이는 지나친 투자로 이어졌다. 이는 당연히 과잉 생산시설이라는 낭비를 초래했고 결과적으로 부채의 청산과정으로 연결되었다.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 성장은 전혀 쓸모가 없다.

만약 오늘날 중국의 속도가 조절된 성장기조로 위에 언급한 쓸데없는 실수를 극복한 것이라면, 이는 문제가 아니라 매우 평가할만한 일이다. 성장률 감소 뒤에는 두 가지 유의미하고 유익한 변화가 있다.

하나는 자동차의 구매를 촉진하려고 억지로 적용한 뒤틀린 세금 감면을 줄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 금융 시스템의 위험성을 감소시킨 것이다.

자동차에 대한 세금 특혜를 줄인 것은, 다른 시장 요소들과 연동되어, 세계최대 자동차 시장의 매출을 크게 위축시켰다. 이로 인해 위축된 소매시장의 실질수요 증가율이 6.4%로 줄어든 것이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거대한 규모의 그림자 금융 분야를 통제하고 부채에 시달리는 지방 정부에 대한 대출을 억제하는 것으로, 금융 시스템의 위험 요소를 줄이려는 노력이다. 

반면에 지방 정부의 대출을 억제한 정책으로 인하여 기반 시설에 관한 투자의 위축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고정 투자의 증가율이 2분기의 5.2%에서 3분기의 4.4%로 떨어진 것이다. 중국 정부 당국은 이에 대해 걱정하면서, 최근 신용의 억제를 완화하겠다는 정책적 의도를 내보이기도 했다.

지방 정부로 하여금 채권발행 시장에 좀 더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조치했으며, 올해 들어 세 번째로 은행의 예금준비 제도를 변경하여 이자율을 낮추고 회사들의 신용을 높였다.

중국 정부의 목적은 분명하다. 지난 8월 이루어진 중앙 위원회의는 “외부 정세가 변화했기 때문에” 여섯 개의 경제 분야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여기서 명시된 여섯 개의 분야는 고용, 금융, 무역, 외자, 투자와 시장기대심리 이다.

베이징 중앙은 2008년 금융 위기 때 했던 것처럼 신용이 과잉 분출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탄력과 자신감을 합리적으로 유지하고 싶어한다. 여기서 어려운 점은 필요한 경제적 개혁과 조정 과정을 지속하면서도 원하는 목표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개혁적 조정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성장률의 사소한 변화는 잊어도 좋다.

성장률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월, 2018/11/1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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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여년간 이른바 ‘먼저 온 통일’라고 불리워온 북한출신 주민들이 한국사회에서 겪었던 선행 통일경험은 오늘날 평화체제 이행을 앞둔 한국사회에 시사점을 주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한국사회를 야반도주하다시피 떠났던 탈북민들의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2016년 통일연구원 탈북민 조사결과에 의하면 응답자의 16.2%가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응답하였다.

다큐멘터리영화 ‘북도 남도 아닌’ 탈남하여 유럽으로 간 탈북인들이 본 한국사회에 대해 담담하지만 솔직한 목소리를 제공한다. 그들은 단지 ‘부적응’하거나, ‘선진국 복지를 찾아’, 단순히 ‘차별 때문에’ 대한민국을 떠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국가권력의 정치적 동원, 공안기관의 지속적인 감시, 탈북자라는 낙인과 배제 등으로 한국사회에 희망이 없기에 떠났다고 말한다. 2017년 현재 한국에서 거주하는 탈북인들 역시 탈북자라는 낙인 그리고 배제로 마치 유리벽에 갇혀 있는 것처럼 답답하다고 심정을 토로한다. 한 탈북청소년이 최중호 감독에게 썼다는 쪽지, “탈북자는 언제까지 탈북자예요?‘라는 질문은 곧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우리는 얼마나 정상국가인가’ 라는 질문으로 평화이행기를 앞둔 우리에게 되물어지고 있다.


 

따뜻한 남쪽 나라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2016과 2017년에 잇달아 개봉된 두 개의 다큐영화는 탈북민 연구를 십 수년간 해온 나로서는 부끄럽고 놀랍도록 우리 사회 탈북민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잡아낸 영화이다. 뉴스타파 최승호감독의 ‘자백’과 최중호감독의 ‘북도 남도 아닌’ 다큐멘터리 영화는 ‘먼저 온 통일’이라고 불리워왔던 탈북민들이 경험한 대한민국 국가권력의 뒷모습과 한국사회의 민낯을 담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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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감독의 ‘자백’ 영화(왼)와 최중호 감독의 ‘북도 남도 아닌’ 다큐멘터리 영화(오) (사진: 영화 ‘자백’ 포스터 엣나인, 북한인권국제영화제)

한국에 온 탈북민들에게 국가권력은 야누스와 같은 존재였다. 탈북인들에게 국가는 국내취약계층보다 한단계 높은 수준의 물질적 보상을 제공하였지만 그것은 절대로 공짜가 아니었다. 입국시에는 6개월까지(현재는 3개월로 줄임) 구금이 허용되는 국정원에서 전쟁포로보다 열악한 ‘간첩 골라내기’ 실험장에 놓여 북한 내부 정보를 제공하였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간첩으로 조작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지난 10여년간 국가권력에 의해 국정원 댓글사건, 반 세월호집회 알바시위 등 불법적이고 반민주적인 행위를 수행하도록 그들은 동원되었으며, 집단교육시설인 하나원에서 3개월간 숙박교육을 거쳐 세상에 나온 이후에도 ‘신변보호’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감시상황에 놓였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 북한을 떠났던 식량난민의 일부가 한국에 입국하면서 국내에 정착하는 북한이탈주민의 수는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북한주민의 대한민국 입국이 연 1,000명을 넘어서기 시작한 시기는 2001년부터이다. 그 이후 북한이탈주민 입국자 수는 2008년에 2,914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래 점점 감소하여 2018년 9월 말 현재 입국자 수는 808명에 불과하다. 향후에도 이 정도의 감소세가 지속된다면 북한이탈주민 입국은 10년 내아니 5년 내로라도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된다. 국내 입국 북한이탈주민의 감소 원인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북한의 경제적 정치적 상황 개선, 김정은정권이 탈북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는 점은 북한주민 입국자 수 감소의 주된 요인이 된다. 그러나, 한국의 척박한 정착여건 역시 북한출신주민 입국자 수 감소의 중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입국한 탈북주민들은 ‘먼저 온 통일’이라고 불리우면서 이질적인 탈북주민들과 남한주민과 어울려 사는 과정 그 자체가 일종의 ‘통일실험’이자 ‘사람의 통일’이라고 미화되었지만 그들이 겪은 현실은 아름답지도 녹록하지도 않았다. ‘먼저 온 통일’이 대한민국에서 겪은 선행 통일경험은 무엇이며 평화체제 이행을 앞둔 한국사회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되짚어보자.

 

북도 남도 아닌세상을 찾아 나선 이명준의 후예들

 

김일성수행 기자출신의 엘리트 이수근은 귀순직후 1967년 4월 1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에는 ‘사색의 자유’마저 없다”고 말했다. 북한 탈출직후 “이 세상에 지옥이 있다면 북한이 바로 지옥이다” 라고 말했던 이수근은 다시 한국을 탈출하려다 공항에서 잡혀 위장귀순으로 몰리게 된다. 그는 “남쪽도 틀렸다. 자유도 없고, 독재이고 해서 스위스 같은 중립국에 가서 살려고 했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최인훈이 쓴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처럼 이수근이 꿈꾸었던 세상은 “북도 남도 아닌” 세상이었다.

그러면, 49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북한을 떠나 따뜻한 남쪽 나라로 온 탈북인들이 오늘날 겪는 현실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신예 최중호 감독은 북도 남도 아닌 유럽으로 떠난 오늘날 이명준들이나 이수근들의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가 가난한 호주머니를 털어 갓 설흔의 싱싱한 감성으로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 ‘북도 남도 아닌’에서 비추어주는 탈북민 인권현실은 49년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유럽 현지에서 탈남한 탈북인을 만나 가진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이 영화는 한국에 정착했던 탈북민들이 겪었던 삶과 그들이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육성으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한국에 5년간 정착했다 영국으로 떠나 살고 있는 새동네지 편집인 최승철 씨 등 한국에 정착했다 해외로 나간 이들과 2018년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민 김 씨 등이 지적하는 탈북인의 현실은 다음 네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국가권력의 정치적 동원, 공안기관의 감시, 사회의 낙인과 차별, 분리와 배제, 한성무역 사기피해사건.

 

탈남한 탈북민들은 대한민국을 어떤 나라라고 말하는가?

 

한국을 떠난 탈북민들이 보는 한국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국가권력이 입맛에 따라 탈북민을 동원하는 사회이고 유리벽이라는 차별에 탈북민을 가두어 놓는 사회이고 낙인을 찍어서 감시하는 사회이다. 한성무역 사기피해사건에서 보듯이 국가권력은 보호라는 이름으로 감시를 하지만 막상 위험에 부딪히면 정작 보호받지 못한다. 모든 탈북민들이 잠재간첩으로 의심받고 때로 간첩으로 조작되며 궁극적으로 간첩을 필요로 하는 사회이다.

 

값싸고 충성스럽게: 국가권력이 탈북민을 동원하는 사회

 

유럽에서 망명을 신청한 최승철씨는 한국에서 경험한 국가권력의 관제시위 동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탈북자들이 원해서 데모를 하는게 아니고 데모 같은 거 가면 돈 줘요. 보수단체에서 돈 줘요. 거기 가면 뭐 주니? 한국사회가 나쁜 게 뭐냐면 뒤에서 조정하는 사람 있어. 관변단체, 국가에서 하라면 하라는대로 하는 거야. 행사 동원하면 돈 주니까. 대표적인 관변단체, 그 다음에 통진당 반대한다.. 교통비로 2만원씩. 그 다음에 탈북자들 댓글 알바 잘해. 자. 이제부터 무슨 사건 생겼으니까. 부화뇌동으로 탈북자들 희동시켜 놨으니까.

 

이같은 탈북자들의 증언은 그간 jtbc언론보도에서 밝혀진 바와 같다. 공식적인 선거운동이 아니라 국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을 조작하고 반대파를 음해하기 위해 은밀하게 진행되어온 범죄행위에 탈북민들이 연루되거나 시민적인 공감대가 큰 사안을 반대하기 위해 지난 정부에서 동원되었다. 예를 들어 세월호사건 등의 반대집회의 경우에는 5개월 동안 39회에 걸쳐 연인원 1,259명이 동원되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위동원시 탈북인 1인당 2~3만원의 수당이 제공되었다. 한 탈북인은 하나원에서 나온 직후에 다른 탈북자를 통해 국정원 댓글을 달게 되었는데 그때 그가 받은 돈은 한 달에 5만원이었다. 그들이 동원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국사람이라면 고액을 받고서도 꺼려했을 더러운 일들을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알고 적은 돈으로 하는 저렴하고 어리숙한 노동력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태의 가장 근본적이고 무거운 책임은 국가권력에게 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유리벽에 갇히다: 분리하고 배제하는 한국사회

 

내가 ‘북도 남도 아닌’ 다큐멘터리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본 등장인물은 한국 거주 7년차의 한 탈북남성이다. 영상은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을 비추고, 그는 자신들이 유리벽에 갇혀 있다고 절규한다. 그는 탈북민이 유리벽에 갇혀있는 현실이야말로 10만명당 OECD 국가 최고의 자살률을 자랑하는 한국 사람보다 몇 배나 높은 자살율을 초래한 이유라고 주장한다.

 

“탈북자들은 유리벽 속에 살아. 숨 막히게 숨 못 쉬게 유리벽 속에 가둬놨거든. 유리벽이라는 차별에 우리를 유리벽 속에 탈북자들을 가둬 놨거든. 그래서 한 유리창 깨고 나가면 또 유리창이 있어.”

 

그가 말하는 유리벽은 무엇인가? 그것은 공안기관의 감시에서 한국사회의 배제 나아가 분단체제까지를 포괄한다. 그들이 느끼는 절망감은 자살관련 데이터로도 증명되는데 사망자자가 많았던 2015년 상반기에는 사망자 대비 자살률이 한때 15.2%에 달했다(원혜영 의원실, 통일부자료).

 

낙인찍는 사회, 감시하는 국가

 

탈북민들은 자신이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밝히기를 꺼려한다. 동정하거나 얕보거나. 혹은 양쪽 다이다. 영국에 거주하는 최승철씨는 사업실패이후 회의에 빠져있을 때 자신의 친구가 “너 여기(한국) 와서 아무리 해봤자 너는 탈북자 아니냐? 거긴 진짜 다르다”는 말에 영국행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한 탈북여성도 아무리 한국 사람들을 흉내내고 살아도 자신들이 한국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동조한다.

 

북한사람들은 불쌍해요. 한국에서도 편견이죠. 왜 여기 와서 절망감을 느끼는가. 외형적으로 누가 죽이는 사람 없어. 이 사람들 아무리 한국 사람들을 흉내 내고 살아도. 한국에 오니까 자유스럽잖아요. 그게 다가 아니더라구요.(국내 거주, 40대 탈북여성)

 

사회에 나온 이후에도 계속 따라붙는 국가 공안기관들의 감시는 그들에게 말 못할 고통이다. 한 탈북민은 어느 정도 보안기간이 끝나면 그 탈북자라는 멍에를 없앴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늘 자신의 뒤에 그림자가 따라다니는 격이라는 것이다. 보안기간은 한계가 명확하지 않다. 많은 탈북민들은 수년은 물론 십년이 넘어도 계속 경찰이나 기무사가 연락하고 체크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한다. 유럽으로 떠난 한 군인출신의 한 탈북자는 그는 ‘감시’라고 할 정도의 관심을 받아야 했으며 결국 그가 한국을 떠나는 한 이유가 되었다.

 

“근데 그게 다 감시거든. 어디로 이제 가고 하는거 다 보고하라는 거야. 자기는 보호차원에서 그렇게 한데, 말은 그런데 감시차원이지. 그런 것들.”

 

신변보호경찰관은 공식적으로 말하는 보호의 이유는 북한의 테러 등 탈북자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상에서 탈북여성은 다음과 같이 신변보호의 본질을 간파한다. ‘감시’이지 보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우리 진짜 살아가면서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되거나 우리 살아가는데서 이 사람들이 도움을 주거나 그런 것은 없어.”

 

 

영화 자백에 나타난 국정원식 정치: 간첩이 필요한 대한민국

 

2017년 12월 박주민 의원실 주최로 열린 합동신문시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법률 개정안 설명회에 참석한 한 탈북민은 ‘국정원 앞의 탈북민은 마치 횟집 수족관의 물고기와 같은 운명이다’ 라고 말했다. 필요에 따라 국가기관이 횟감으로도 매운탕꺼리로도 골라 쓰는 게 탈북자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최승호 감독은 영화 ‘자백’에서 유우성의 여동생 유가려가 합동신문과정에서 어떻게 자신의 손으로 오빠를 간첩으로 고발하게 되었는지 과정과 심리를 자세히 보여준다. 그녀는 170일동안이나 고립된채 독방에서 수감된 채 합동신문을 거치면서 오빠인 유우성을 간첩이라고 자백하기에 이른다. 간첩이나 위장탈북인을 가려낸다는 명분으로 행하는 이러한 과정에서 탈북인은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며 폭력과 감시를 당하게 되며, 심리적으로 수사관에게 순응하고 굴복하며 심지어 감사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탈북자는 언제까지 탈북자인가요? ”

 

“탈북자는 언제까지 탈북자인가요?” 영화감독 최중호는 한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의 청소년에게 이같은 질문을 받았다. 대답은 명확하다. 현행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법률에 의하면 북한이탈주민의 지위는 입국후 5년간으로 한정되어 있어 2013년도 입국자부터 2017년까지 입국한 북한이탈주민(탈북민) 수는 6,731명이다. 탈북자는 5년까지만 탈북자이다. 그러나 법은 국가의 안보라는 현실 앞에 언제나 가볍게 무시된다. 통일부는 탈북민 3만2천명을 호명하여 이들을 별도의 분리된 정착지원체계로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얼마나 정상국가인가? 나는 이 두 개의 영화가 그려낸 탈북민의 현실에 깊이 공감한다. 이같은 현실은 가장 앞섰다는 탈북민 정착지원정책의 뒤에 숨어 가려졌던 대한민국의 민낯이라고 본다. 분단체제 국가권력이 언제까지 탈북민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그들을 일반사회에서 격리하여 별도로 관리할 것인가? 국정원 합동신문 6개월(2018년부터 3개월로 단축), 통일부 하나원 3개월 이어지는 각종 적응교육과 제2 하나원으로 불러들여 행하는 직업훈련 등. 별도의 교육, 별도의 행정체계, 별도의 취업지원체계. 분리는 통합을 역행한다. 새로운 전달체계는 별도의 조직과 인력을 필요로 한다. 별도의 분리체계가 과연 누구를 위해 필요한 지도 근본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남북한의 통일은 단지 두 개의 국가의 통합의 문제가 아니라 폭력체제의 희생자들을 사회로 통합시켜 내는 일이며 남한 내의 통합과 평화에서 시작되어야(김동춘, 2013)”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단체제의 경계인들에게 어느 편인지 더 이상 묻지도 말고 분리하지도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분단체제가 아닌 평화로운 세상. 탈북자라는 이유로 낙인찍거나 배제하거나 분리하지 않고 감시하지 않으며 간첩으로 만들지도 않는 사회, 노동에 대한 존중이 있는 사회. 평화체제는 일부 주류사회에 속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소수자들을 인정하고 통합하는 포용국가의 건설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한 탈북청소년이 물었던 “탈북자는 언제까지 탈북자인가요? ” 이 질문은 “탈북민에게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우리는 얼마나 정상국가인가?” 라는 질문으로 이 사회를 끌어가는 어른들에게 다시 되물어져야 한다. 이 질문은 탈북민을 위해서만 필요한 질문이 아니라 평화체제 이행을 앞둔 시민 모두를 위한 질문이다. 우리 안의 국정원식 정치와 분단체제의 뒤틀린 모습을 청산하고 대한민국이 정상국가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도정에서 꼭 풀어가야 할 질문일 것이다.

 

최승호 감독의 ‘자백(Spy Nation)’. 뉴스타파. (정재홍 극본. 2016. 106분 다큐멘터리)

최중호 감독의 ‘북도 남도 아닌(Why I Left Koreas)’ (최중호 극본. 2017. 90분 다큐멘터리)

화, 2018/11/1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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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보스톤에서 뉴욕으로 그레이 하운드 고속버스를 타고 여행을 했다. 세계의 수도 뉴욕을 꼼꼼히 답사하려는 목적이었다. 원래 예정된 여행시간은 4시간 정도인데, 실제로 소요된 여행시간은 5시간 30분 걸렸다. 세계의 수도로 불리우는 뉴욕시의 인구는 2017년 기준 약 862만명에 불과해, 서울의 인구 986만 보다 작다. 그런데 왜? 뉴욕은 세계의 수도라고 불리우며,  그 근원은 어데에 있는가? 사람들에게 뉴욕은 첨단을 걷는 도시 이미지로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러한 뉴욕의 정체성이 서울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달리는 고속버스안에서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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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에서 바라 본 로우어 맨해탄

뉴욕시의 기원은 1624년 로우어 맨해탄에  뉴 암스테르담이라는 네덜란드 식민지 교역 항구로 출발했다. 그 이후 영국의 식민지하에서 뉴욕으로 개칭되었다. 뉴욕은 1785년에서 1790년까지 미국의 수도였으며, 1790년 이후 미국 최대 도시가 되었다. 뉴욕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대도시권인 뉴욕 대도시권의  중심 도시이며, 약 2,388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또한 뉴욕에서는 800개의 언어가 사용되는 언어학적으로 가장 다양한 도시임과 동시에 인종의 다양성에서도 뉴욕을 능가하는 도시는 없다. 2017년 뉴욕 대도시권은 지역총생산  1.73 조 달러를 생산해,  뉴욕시가 독립적인 국가라면, 세계 12위 정도의 GDP를 생산하고 있는 셈이다. 뉴욕은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을 여러개 갖고 있다. 전 세계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 10개중 3개가 뉴욕에 있으며, 2017년에만  6,280만명의 관광객이 뉴욕을 방문했다. 또한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은 하루 온종일, 주 7일 서비스를 제공하며 472개의 지하철 역을 연결하는 세계 최대 대중교통 시스템인 뉴욕 지하철을 갖고 있다. 로어 맨해튼 금융지구에는  월 스트리트가 자리를 잡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강한 경제력을 갖고 있는 선도적인 금융 거점이다. 또한 UN본부가 입지해 있는 뉴욕은 국제 외교에서 견줄 도시가 없는 글로벌 파워 시티임에 분명하다. 따라서 뉴욕을 세계의 수도라고 부르는데 반대할 사람이 없다.

 

보스워쉬 메갈로폴리스     

 

보스톤에서 뉴욕으로 여행하는데 출발지 보스톤 대도시권을 빠져나와 95번 고속도로 체증이 없는 구간에 진입하기 까지 1시간 넘게 걸렸다. 하지만 뉴욕 대도시권에 접근하면서 다시 차량이 심하게 밀렸다.  보스톤 대도시권과 뉴욕 대도시권은 거의 붙어 버렸음을 실감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한국의 추석 귀향길 같은 버스안에서 KTX운행으로 서울-대전간도 서로 연계가 강화되고, 집적해서 거대도시권화 해가고 있음이 떠 올랐다. 프랑스 지리학자 쟝 고트만은 미국의 북동부지역을 연구하고, 보스톤 에서 남쪽의 워싱톤 D.C까지 500마일 이상 되는 광대한 메트로폴리턴 지역을 메갈로폴리스라고 규정했다. 보스워쉬 (보스톤-워싱톤) 메갈로폴리스라고 불리우는 이 지역은 미국 국토면적의 2%정도에 불과하지만, 미국인구의 17% 약5,200만정도가 살고 있다. 세계 메갈로폴리스중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해 있으며, 미국 GDP의 20%를 생산하고 있다. 한국의 인구는 2016년 기준 5,100만명으로, 보스워쉬 메갈로폴리스 총 인구 5,200만명과 비슷하다.  보스워쉬 메갈로폴리스의 지역총생산은 OECD 선진국 영국, 프랑스보다 크며 뉴욕을 세계의 수도로 떠 받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한국이 현재 추진중인 혁신도시 정책에 보스워쉬 메갈로폴리스 경험을 한국의 KTX네트워크에 적용해 역”Y”자형 국토공간으로 재편하면 영남과 호남, 서울과 지방의 대립이 사라진 효율적이고, 균형있는 국토공간이 되리라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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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워쉬 메갈로폴리스 개념도

 

스카이라인의 출현

 

맨해탄의 상징성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로우어 맨해탄을 가로질러 20세기 전환기에 도시의 승리를 예언케 한 철교각이 고동색으로 녹슬은 브루클린 다리로 나아갔다. 다리아래 넘실대는 남색 빛 물결위로 숭어가 뛰어 오를 것 같은 이스트 강을 바라보며 르네상스 도시 프로렌스는 두오모 성당, 패션의 도시 파리는 에펠탑에 의해 상징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세계의 수도 뉴욕은 맨해탄의  초고층 건물이 지어내는 스카이라인이 상징이 아닐까?

맨해탄 초고층 건물 진화의 출발지를 찾기 위해 미국 건축가협회 뉴욕지부에서 개최한 시청주변 역사건축물 답사에 참가했다. 로우어 맨해탄에 있는 뉴욕 시청사 건물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청사 건물로써 프랑스 르네상스 풍으로 화려한 장식의 콜리니안 스타일의 기둥과 우아한 로툰다 홀을 갖춘 역사적기념건물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답사가 예정된 날 아침부터 많은 비가 내려 답사는 취소일 거라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고 집결지인 시청 공원에 나가보았다. 그러나 건축사를 전공한다는,  뉴욕 건축사 지회에서 나온 60살이 넘어 보이는 아줌마는 우산을 들고, 쏟아지는 빗줄기속에서도 시청을 포함한 주변 건물에 대한 건축적 설명을 이어 나갔다. 아마 본인이 하는 일이 뉴욕 문화의 일부라는 자부심과 뉴욕 건축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우중속의 답사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열정이 뉴욕에서 맛 볼 수 있는 분위기이다. 소위 뉴욕커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의 뉴욕에 대한 사랑과 하는 일에 대한 긍지도 뉴욕 문화를 만들어내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뉴욕은 경제력만으로, 초고층 건물이 빚어내는 스카이라인의 화려함만으로 세계 일류도시가 된 게 아니다. 만질 수는 없지만 느낄수는 있는 뉴욕만의 문화가 있기에 세계의 수도가 된 것이다.

 일전에 본 서울의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서울 역사지구 순환 셔틀버스가 텅 빈 채로 운행된다는 뉴스가 떠 올랐다. 아마도 서울이 부족한 게 하드웨어가 아니라 서울만의 문화를 뿜어내는 인적 소프트웨어가 아닐까? 자문해 보았다.

수, 2018/11/1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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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대부분 주요 언론들이 미국중간선거를 보도하면서 민주당이 하원을 되찾고, 공화당이 상원의 다수석을 선방하였다고 헤드라인을 뽑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의 승리자들은, 기득권에 안주하면서 무기력해진 민주당의 구당권파가 하원을 장악한 것을 뛰어 넘어서, 수많은 화제거리를 만들어 내며 하원의원에 당선된 다양한 인종의 여성들이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여성 후보자들의 괄목할 만한 진출이다. 잠정적 결과에 따라 최소한 108명의 여성들이 의회에 선출되거나 재선출되었다. 올해 재선에 대상이 아닌 10명의 여성 상원의원을 포함해 총 118명의 여성들이 내년 1월에 하원 혹은 상원에서 일할 예정이며, 이는 현재 107명의 여성보다 많은 숫자이다. 아래의 기사는 연방하원의원으로 당선된 유색 여성들의 투쟁 스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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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주의 연방하원의원으로 당선된 민주당 소속 Ilhan Omar의 연설장면

민주당은 하원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되찾았고, 이러한 변화에 힘입어 민주당의 내부는 미국을 갈라놓은 격차를 좁히기 위해 특히 최선을 다할 여성 지도자들이 새로운 핵심을 형성하게 될 것입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부유한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정말로 부족한 것은 자원의 부족이 아니라 정치적 용기와 도덕적 상상력의 결여입니다.”
—Rep. Alexandria Ocasio-Cortez (민주당, 뉴욕시)

여기 프로필에 나와 있는 여섯 명의 승리를 거둔 후보자들은 많은 방면에서 주목할만합니다. 선구자의 역할을 하면서 다양한 인종의 여성들은 종종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끄집어내 유권자들의 마음을 빼앗고 설득해 자기편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들 각지는 불평등을 뒤집는 것에 중점을 두면서 대담한 사회경제적 정의와 이에 관련된 아젠다를 제출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뉴멕시코 1지구의 Deb Haaland(뎁 할랜드)는 최초로 의회에 진출한 두 명의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 중 한 명이 될 것입니다(캔자스 대표로 당선된 Sharice Davids과 더불어). Haaland는 라구나 푸에블로 인디언 부족의 구성원이자 뉴멕시코주 민주당원이기 이전에 원주민의 수장이었습니다.

Haaland는 선거 캠페인이 진행되는 동안 미국에서 그녀가 본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서는 직설적으로 말했습니다. “미국은 파산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사회기반시설을 통해 부자가 된 억만장자들과 대기업들에 의해 약탈당했고, 그들은 노동자들이 비용을 더 부담하기를 요구합니다. 이제 더 이상은 안됩니다!”

억만장자들과 기업들이 사회에 공정한 기여를 하도록 하기 위해, Haaland는 트럼프 공화당 세금 개혁 폐지를 큰 소리로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개인 소득세와 법인이윤세가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녀는 또한 금융 시장 거래시 적정한 세금부과와 보다 강력한 유산(상속)세의 도입을 촉구합니다. Haaland는 또한 워싱턴에서 트럼프의 혐오스러운 이민 정책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정부의 이주민 가족들의 격리에 대해, Haaland는 자신의 가족 경험을 끄집어냈습니다. 그녀가 8살이었을 때 그녀의 할머니는 부족을 동화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인 인디언기숙학교에 강제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일한 오마르는 미네소타주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어 의회를 떠나는 키노 엘리슨의 후임으로, 현재 공석인 미네소타 5선거구에서 당선되어 의회에 진출하는 최초의 소말리아계 여성이 됩니다. 선거캠페인 내내, 불평등이란 단어가 오마르의 메시지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녀는 “우리 나라의 가장 부유한 사람들은 사람들이 계속 빈곤한 상태에 놓이게 하는 시스템을 통해 부를 축적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오마르의 경제적 정의에 대한 공약은 모든 의원후보들 중에서 가장 야심차고 상세한 공약들 중 하나였습니다. 예를 들어, 소득수준이 최하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그녀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누구에게나 시간당 15달러의 시급의 정규직 자리를 제공하는 연방(정부) 직업 보장 프로그램을 요구합니다.

최상층으로의 소득과 부가 집중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녀의 정책은 월스트리트 투기에 대한 세금 부과, 유산세(상속세)를 강화, 금융의 공정성을 위한 대형 은행 해체,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소득세 인상 등 다양합니다. 오마르는 또한 모든 사람들에 대한 메디케어(노인의료보험제도) 및 부채 없는 대학교에 대해서 지지했습니다.

이전에 난민이었던 그녀는 워싱턴에서 이민자의 권리와 경제적 정의에 대해 강력하게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슬람 공포증을 비난하기 위해 그녀는 미니애폴리스에서 아랍어 인사인 ” as-salam alai”로 승리연설을 시작했습니다.

Rashida Tlaib(라시다 틀레입)는 John Conyers가 오랫동안 차지해왔던 미시간 주 13선거구에 당선됨으로써 Omar와 더불어 의회에 입성하는 최초의 두 명의 무슬림 여성들 중 한 명이 됩니다. Tlaib는 주 입법자 및 변호사로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열성적으로 활동해 왔습니다. 선거 시작까지 단 1개월을 앞둔 상태에서, 그녀는 임금인상 및 노동조합 권리를 찾기 위한 ‘시급 15달러’ 투쟁 중 디트로이트 맥도날드 앞 거리를 막는 시위로 체포되었습니다. 여기 리스트에 있는 몇몇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Tlaib의 최우선 경제 과제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메디케어 서비스 제공, 부채 없는 대학교 실현, 부유층과 기업들에 대해 공정하게 세금 부과 등이 있습니다. 그녀는 이미 억만장자에 맞서서 이긴 적이 있습니다. 미시건주 고위 공무원들이 코크 형제가 소유한 공장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에 대한 주민들의 우려를 묵살하자, Tlaib는 코크 형제의 사유지에 무단 침입해 직접 관련 샘플을 수집했습니다. 그녀의 대담한 행동은 마침내 코크 형제로 하여금 디트로이트 강가에 있는 오염물질들을 제거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따르도록 만들었습니다.

Ayanna Pressley(아얀나 프레슬리)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 제 7선거구 연방 하원의원선거에서 당선됨으로써 매사추세츠 주를 대표하는 첫 흑인 여성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봄에 민주당 의원인 Mike Capuano를 꺾어 이변을 일으켰습니다. 이전에 보스턴 시의회에서 일해온 Ayanna Pressley는 워싱턴에서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적 평등, 부유층과의 임금 격차, 구조적 인종차별 및 총기 폭력”이라고 말했습니다. Pressley는 대중 교통 및 기타 공공 인프라구조의 개선의 강화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공평과세를 포함한 상세한 경제 정책 의제를 내세웠습니다. 월스트리트 개혁 측면에서, 그녀는 미국인 근로자들의 은퇴와 저축을 위태롭게 만드는 부정과 과실에 연루된 은행 임원에 대한 더욱 강력한 법적 처벌뿐만 아니라 상업 은행 서비스와 투자 은행을 서로 분리시키기 위한 새로운 글래스 스티걸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선거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그녀는 지리학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부유한 지역 및 가난한 지역의 사람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92세에서 60세 미만임을 지적하면서 그녀가 살고 있는 보스턴에서의 불평등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Pressley는 “이러한 종류의 차이들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체계적인 인종 차별주의를 강화시켜왔고, 소득 불평등을 증가시켜왔으며, 부유층을 유리하게 해왔던 수 십 년 동안의 정책의 산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Veronica Escobar(베로니카 에스코바르)는 Beto O’Rourke가 상원의원에 출마함으로써 공석이 된 텍사스 16 선거구에서 68%의 표를 얻어 당선되었습니다. 그녀는 휴스턴 출신의 Sylvia Garcia와 더불어 텍사스 주에서 두 명의 최초의 라틴계 하원들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이전 엘패소 카운티 판사였던 Escobar는 그녀의 고향인 미국-멕시코 국경 지역에서의 이민자 권리와 경제적 정의를 위한 투쟁에 온 힘을 쏟아왔습니다. “나는 매일 소득 불평등이 미치는 영향을 봐왔으며, 노동자 가족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을 보호하고, 제가 대변하는 가정들을 지원하는 세금개혁을 위해 싸우면서 우리의 망가진 경제체재를 바로잡기 위해서 싸울 것입니다 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Escobar가 선거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내세웠던 제안들 중 하나는 사회보장부담금의 상한선을 폐지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부유층 또한 해당 프로그램에 같은 비율로 지불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Alexandria-Ocasio Cortez(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는 지난 6월의 당내 예비선거에서 민주당 거물급인 10선의 백인 현역의원 조 크롤리를 제친 뒤, 78%의 투표를 얻어 뉴욕 14선거구에서 당선되어 새로운 하원의원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29살로서 역대 하원의원들 중 가장 어린 여성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선거까지 수개월 동안, Ocasio-Cortez는 다른 후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메디케어 서비스 제공, 부채 없는 대학교 실현, 기업 및 엄청난 부유층에 대한 세금 부과 인상등과 같은 대담하고 진보적인 제안사항들을 대세에 편입시키기 위해서 그녀의 정치적 스타 파워를 기꺼이 빌려줬습니다.

Ocasio-Cortez는 또한 화석 연료에서 100%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탄소세를 촉구했습니다. 그녀는 “현재 미국 경제는 이윤이 기후 변화를 야기시키는 대기업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선거캠페인을 진행하는 중에 말했습니다. “그런 방식은 소수의 부자들에게는 이득을 주지만, 우리 지역민들뿐만 아니라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주민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칩니다”라고 외칩니다.

Ocasio-Cortez는 화요일 밤 그녀의 수락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부유한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정말 부족한 것은 자원의 부족이 아니라 정치적 용기와 도덕적 상상력의 결여입니다.”

 

Sarah Anderson

Institute for Policy Studies에서 글로벌경제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으며,

Inequality.org의 공동편집자이다.

목, 2018/11/15-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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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자 화이트헤드는 평소 자신의 철학을 철학과 종교와 과학을 융합한 유기체 사상philosophy of organism이라고 불렀습니다. 좀 더 자세히 그의 철학을 들여다보면 그는 자신의 과정철학을 현대의 존재론ontology으로 주창하였음과 동시에 유기체적 세계관을 새로운 우주론 cosmology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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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화이트헤드

한편 우주론을 논하는 경우에 존재론을 같이 거론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우주의 근거와 작용인 및 목적인을 설명하는 우주론을 구축함에 있어서 반드시 우주의 구성원인 개별적 존재의 성격을 설명하는 존재론이 전제되어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주는 개체들의 산술적 합이 아니라 그 이상의 속성을 발현하는 창발성을 갖는 복잡계이기때문에 단순히 대수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만, 일단 존재론이 제시하는 존재의 속성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우주론이 전개되기때문에 같이 논할 수밖에 없지않나 생각합니다.

즉, 현대철학은 개체의 주체성과 공동체로의 귀속성과 연대성을 같이 논하지않을 수없기 때문에 존재론과 우주론을 같이 설명할 수밖에 없다할 것입니다!

한편, 현대의 존재론은 서구의 실체론을 과감히 폐기하고 생성론(이를 과정론,사건론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습니다!)을 과감히 받아들여야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간단히 다시 말씀드리면 생성론은 존재는 동일성을 지닌 실체substance가 아니고 단지 시공간상의 인과적 사건의 연속적 과정을 생성하는 것이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실체론에 터잡은 우주론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확인해봅니다!

실체론에서 상정하는 우주는 2가지 요소(1개의 원인과 1개의 조건)로 이루어져있다는 단순계를 모델로 하고있기때문에 그 인과율은 선형인과 linear causality또는 단순인과라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태양계안의 지구의 운행을 설명할 때 태양과 지구만을 변수로 고려하고 나머지 다른 행성들을 고려대상에서 배제시켜버립니다. 따라서 역학관계를 2개의 변수로 단순화시키기에 설명의 유용성은 있으나 실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이는 무지의 유용성이라는 주제로 나중에 따로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체론의 가장 큰 문제는 선형인과율을 따르다보니 결정론과 목적론 또한 계서적인 지배,피지배관계를 본질로 한다할 것입니다. 이에따라 인간의 자유의지는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제1원인의 작용인과 목적인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뭇 존재는 선행원인으로부터 유래하였기 때문에 모사된 후행존재는 선행존재인 원본보다 열등하다할 수밖에 없으므로 선행원인이 제시하는 작용인과 목적인을 거부할 수가 없어 그가 제시하는 담론에 예속되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하여 실체론에 비롯한 우주론은 선행 제1원인에 의해 작동되는 기계론적 세계관을 지니지않을수 밖에 없습니다!

즉, 기계의 모든 구성요소는 기계를 작동시키는 제1원인의 지시에따라 움직이는 부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할 것입니다. 이러한 기계론적 세계관에 의하면 강자만이 선행원인이 되어 후행원인인 약자는 그에 종속되는 계서적 질서를 받아들일수 밖에 없습니다.

(이에따라 니이체는 절대적인 진선미는 존재하지않으며 진리의 척도는 오로지 힘Macht, 즉 진리에의 의지밖에 없다고 도덕계보학에서 밝히고 있는데 이를 기계론적 세계관에 적용하면 오로지 제1원인의 힘에의 의지가 진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미의 기준은 강자인 성형자본의 힘,의지가 만들었기에 결국 힘의 의지,즉 강자의 힘에 의해 현대 진리는 만들어진다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특히 실체는 서로 내재적인 생성관계가 없는 독립된 존재들이기에 자신들의 생존은 반드시 강자가 약자를 약탈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어 결코 지배와 피지배라는 이분법적인 도식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자아를 끊임없이 강자에 복종시키며 타자화하는 소외를 근원적으로 벗어날 수없으며 결국 강자의 일방적 지배와 약탈만 있을 뿐 강자와 약자의 순환성을 상실하게됨으로써 종국에는 호환적 생태계는 유지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편 생성론에 근거한 우주론은 화이트헤드가 말했듯이 유기체적 세계관이라 할 것입니다!

여기서의 유기체란 생명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와 구성요소가 또는 구성요소와 구성요소가 정합적으로 꽉 짜여있으면서 상호 내재적인 생성작용을 멈추지않는 실재를 의미한다할 것입니다. 하여 세포단위의 유기체이던 우주 차원의 유기체이던 그들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서로 시공간상 분리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내재적으로 분리되지않고 생성에 같이 참여하는 존재이기때문에 모든 요소가 생성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주체로 동등하고 평등하게 참여하는 전체로서의 하나a single totality인것입니다. 하여 유기체적 세계는 단순계가 아니라 최소한 3개이상의 구성요소가 상호영향을 미치는 복잡계이기에 상호인과율 또는 복잡인과율을 따르게 됩니다. 이는 불교의 연기법과 같다할 것인데 이러한 비선형 인과는 결정론이 아닌 확률론을 따르게 되어 있어 구성요소들의 자유의지도 인과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시말하면 구성요소는 강약,대소,선후를 불문하고 똑같은 확률적 가치를 지니기에 모두 평등한 존재로 생성에 등가적으로 참여한다는 사실을 존재론적으로 보여준다할 것입니다.

 

그러면 유기체 사상의 과학적 근거를 알아봅시다!

우선 양자역학에서 찾아보면 양자얽힘quantum entanglement현상을 들 수있습니다. 이 이론은 아인쉬타인이 사물의 실재성과 국소성(분리성)을 증명하기위해 EPR패러독스라는 사고실험을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는데 결국 1982년 아스팩의 실험에 의해 우주는 비국소적이고 비실재적이라는 것이 밝혀졌으며 이를 양자얽힘이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하면 우주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고 영속적으로 생성변화하는 존재라는 것임을 물론 또한 우주는 분리된 것처럼보이나 실제는 분리된 것이 아니기에 분리되었으나 분리되지않은 하나! the devided undevidedness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밝힌 것입니다.

또한 우주는 그 구성요소가 모두가 내재적으로 연결된 유기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론으로 일반상대성이론을 들 수있습니다.

즉 우주의 시공간 형태는 물질의 분포가 만들고 또한 물질의 분포는 시공간의 모양이 만든다는 것으로 이는 상호연기,즉 유기체의 특징인 상호간 내재적 생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할 것입니다. 또한 극명하게 우주는 하나의 유기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론으로는 조지 가모브 박사가 주창한 빅뱅이론이 있는데 이는 우주는 하나의 특이점singularity에서 빅뱅하였다는 것으로 우주는 유기체로서의 한 몸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나아가 복잡계 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기위해 항상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를 멈추지 않는데 그 과정에 우주의 모든 요소가 창발emergence과정이든 혼돈chaos의 과정이든 되새김feed back의 과정에 모두 구성요소가 참여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하기에 로렌쯔는 아마존의 나비날개짓이 카리브해에 폭풍을 만들 수도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 또한 세계 전체가 내재적으로 생성관계를 맺는 유기체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예라할 것입니다.

또한 현대진화론, 특히 스튜어트 카우프만은 진화를 다윈주의 (자연선택) 와 신다윈주의(돌연변이) 와는 달리 생명체와 환경과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라고 보고 있으며, 특히 칼 세이건의 부인인 린 마굴리스는 공진화co-evolution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진화도 우주라는 유기체 내부의 구성요소들의 상호인과적 생성작용으로 보고있습니다.

한편 인지과학의 제3패러다임인 체화된 인지EM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은 정보처리 시스템으로서 두뇌,몸과 환경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라고 규정하는데 이는 마음이 복잡계이자 유기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한편 불교의 유식사상은 마음을 두뇌,몸과 우주의 상호작용으로 보는데 이에 따르면 우주도 정보처리시스템으로서 한 마음,즉 일심이라할 것입니다). 물론 과학은 아니지만 불교의 연기법도 우주를 유기체로 보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할 것입니다.

 

그러면 단지 이론적 관점이 아니라 실천론의 입장에서 왜 유기체적 세계관을 받아들여야하는지를 살펴봅시다.

우주가 구성요소들의 정합적인 연결망인 유기체라면 우주안의 모든 존재들은 개체로서 독립성뿐만 아니라 구성요소들간의 관계성도 생득적인 조건이기에 반드시인간들은 생활세계의 공동체를 구성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위한 대안으로 공동체를 제시하기도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이라는 유기체는 개체성과 관계성을 중첩적 속성으로 하기때문에 온전한 삶을 위해서는 소통과 상생의 공동체를 반드시 전제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동체는 영어로 community라고 부르는데 어원을 따지면 선물을 같이 나누는 것이라고 해석하는데 이는 공동체안에서는 모든 존재가 선물이라는 의미도 있는데 유기체에서 타자는 자아의 생성에 내재적으로 이바지하기에 타자는 항상 선물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기체의 속성상 우리는 공동체를 만들지않을 수없는 것입니다)

또한 유기체사상은 자아와 타자가 내재적 생성관계를 맺기에 자타불이라는 불교의 교리가 단순한 종교적 구호가 아니라 실상이라는 것을 밝혀줍니다(한걸음 더 나아가 유기체사상은 우주와의 합일체험을 중시하는 뭇 종교들의 신비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된다할 것입니다). 하여 유기체사상은 사랑과 자비의 존재론적 근거도 되지만 사랑과 자비가 시혜적 동정이 아니라 평등성에 기초한 나눔이라는 것을 제시하며 나아가 사랑과 자비가 개체적 차원이 아니라 구조적 차원의 개혁으로까지 승격시켜야하는 근거가 된다할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 횡행하는 이민족,특히 난민이나 다문화가정에 대해 배척하는 태도도 실체론적 존재론에 근거한 것으로 우주의 생성에 뭇 존재가 모두 평등하게 참여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알게되면 순혈주의는 설 자리가 없다할 것입니다. 하여 예맨난민과 카라반행렬은 바로 우리의 책임이기도한 것입니다.

나아가 오늘날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본과 노동을 고정되고 불변하는 실체로 보는 실체론을 벗어나서 자본과 노동이 동등한 생산성요소라는 생성론의 입장에서 자본과 노동의 일치 또는 호환할 수있는 새로운 생산양식을 반드시 모색해야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위에서 나비효과에서 언급하였듯이 아무리 작은 행동도 되새김을 통해 엄청난 결과를 이끌어내듯이 우리의 작은 행동이 역사를 바꾸는 혁명의 단초가 될 수있다는 것입니다. 하여 니이체는 노예의 도덕에서 벗어나기위해서는 자신의 위치에 맞는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를 키우라고 주문한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되새김에의한 창발효과는 자연법칙일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에도 적용될 수있기에 비록 지금은 초라해보일지 모르지만 지금 여기의 위치에서 참된 진리를 향한 권력의지를 강화하는데 최선을 다해야할 것입니다.

이것이 필자가 21세기의 우주론으로 유기체사상을 제시하는 이유라할 것입니다!

ㅡ따로 또 같이!

금, 2018/11/1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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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중국상해에서 최초로 국제수입전담박람회(CIIE)가 열리는 동안 130개국에서 2,800여 기업들이 참여하였고 한국도 200여 업체가 참여함으로써 일본과 독일에 이어 세 번째의 규모로 참가한 나라가 되었다. 미중간의 갈등과 대립 속에서도 중국이라는 대륙이 이제 우리의 산업과 미래에 어쩔 수 없는 거대한 지경학적 조건이 되었음을 명증하게 보여준다. 아래 글을 작성한 Dong Yue는 베이징에 거주하는 국제뉴스 편집자이다. 따라서 중국인의 시선에서 CIIE를 평가했다라는 편향성을 지니고 있음을 유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IIE가 갖는 국제사회의 흐름과 역사적 성격을 대체로 정확히 집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글을 아래에 실어본다. 국제무역이 갖는 개방과 호혜성이라는 주제로 일방주의와 상호주의라는 대비를 통해서 미국의 압력에 이농촌포위도시(以農村包圍都市)라는 중국공산당의 역사적 전략을 연상하게 하는 대응의 일단을 읽어볼 수 있다. 제2차대전과 중국정권 출범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PAX AMERICANA 세계질서에 대항하여 고립적인 자력갱생을 외쳤던 모택동 시절과는 격세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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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국제수입박람회의 로고와 엠블럼

지난 11월 초, 미국은 베네수엘라, 쿠바,그 리고 니카라과에 대한 강경정책을 발표 하였으며, 세 나라에 새로운 제재를 부과하였고, 이에 대해 해당 3개국은 재빠르게 미국의 행동을 비난하였다.

베네수엘라 의회의 의장 Diosdado Cabello는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금 수출에 가해진 이 제재를 “베네수엘라에 대한 민족대학살” 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는 베네수엘라의 경제에서 금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유역에서 반미 시위가 일어난 것 이외에도, 미국은 중동과 유럽에서도 분노와 근심에 불을 댕기었다.

지난 11월 2일 트럼프 행정부는 2015년에 있었던 역사적인 이란 핵 협상 이후로 해제되어 있었던 대 이란 제재를 다시 부과하였다. 이 행동은 이란과 유럽의 미국 동맹국들 사이에서 강한 비난을 받았다.

미국이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들을 “벌주는” 동안, 중국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수입을 전담하는 무역 박람회를 개최하였고 세계 130여 개국의 지도자들과 귀빈들이 축하하는 자리를 같이하였다.

11월 5일부터10일까지 상하이에서 열린 중국의 국제 수입 박람회는 세계무역의 개방화를 더욱 촉진하기 위한 노력이자, 무역의 자유화와 경제의 세계화에 대한 굳건한 지지를 의미한다.

발전목표를 이루는 두 개의 각기 다른 방식들이 세계의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방식은 다른 나라들이 치르는 비용(Zero Sum)로 자신의 발전을 이룬다. 스스로 구축한 독자적인 안보와 발전 유지를 위해, 제로섬의 사고방식으로 다른 나라들에 대해 벽과 울타리를 치는 것이다.

반면에 중국은 상호 발전과 윈-윈을 위한 협조라는 기조를 굳게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다른 나라들이 허덕이는 와중에 혼자만 잘 발전하는 나라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라는 구호를 이기적인 방법으로 사용하는 동안, 중국의 발전은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게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미국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취하는 이러한 접근방식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고립되게 만든다. 중국이 취하는 발전 방식은 인류가 공존하는 미래가 존재하는 공동체를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

이 두 방식들은 일방주의(unilateralism)와 상호주의(multilateralism)를 대표하는 셈이다.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국제 공동체 내에서 이해관계의 마찰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때 이 마찰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것은 모든 나라들, 나아가 세계 전체의 지속된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란 핵 협상의 일방적 파기, 파리 기후협약의 탈퇴, 그리고 중거리 핵 협정(INF)의 파기를 예고한 것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은 국제적 이슈에서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이러한 행동들은 해당 이슈에 연관된 상대측의 약점과 허를 찌르면서, 상황을 매우 복잡하게 만든다. 이러한 방식은 문제를 해결하는 옳은 방식이 아니다.

반대로 현재의 중국은 상호주의를 지지한다. 이해관계의 충돌이나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중국은 문제를 대화나 협조를 통해 풀어가는 편이다.

이번 국제수입 박람회는 세계의 국가들이 서로에 대해 배우고 소통하는 새로운 플랫폼이 되었다. 또한 상호간의 이익과 상호주의적 협조라는 기반 위에서 국가들이 발전계획을 이룩하는 모델을 구축하기도 했다.

시진핑 주석과의 전화통화에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수입 박람회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으며, 미국과 중국의 지도자들이 자주 그리고 직접 소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많은 나라들의 스스로의 목표를 이룩하면서도 전세계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중국의 발전 방식에서 미국이 무언가를 배울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일, 2018/11/1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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