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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을 보내고 기해년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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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을 보내고 기해년을 맞으며

익명 (미확인) | 월, 2018/12/24- 18:25

2019 기해년 인사말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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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운동의 성장 및 확산을 위한 지원사업Ⅱ
 차세대 여성운동 지원

 

1. 사업명
– 차세대 여성운동 지원사업

 

2. 신청사업내용

– 여성운동의 성장 및 확산을 위한 여성(주의)운동 그룹() 지원

□ 여성(주의)운동 그룹(팀) 목적사업비 지원
: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여성주의 확산 및 여성운동의 성장을 위한 다양한 사업(활동) 지원

 

3. 지원대상

– 여성(주의)운동 그룹(팀)

※ 신청 조건?
– 최소 3명 이상으로 구성
– 여성주의에 기반 한 운동 활동 경험이 3개월 이상 된 그룹(팀)
– 여성주의 확산 및 여성운동의 성장을 위한 관련 사업(활동)을 3개월 이상 지속하고 있는 그룹(팀)
– 3개월 이상의 활동 경력 제시 필요
단, 등록된 단체(기관)는 지원 불가

 

4. 신청규모
– 신청사업 당 최대 500만원 이하 지원

※ 활동과 관련된 모든 제반비용 신청 가능
※ 인건비 및 운영비 신청 가능

 

5. 신청 시 유의사항

그룹(팀)별 1개 사업에 한하여 신청 가능
사업비의 자부담 의무비율은 없음. 단, 자부담 계획이 있는 그룹()은 사업비 항목에만 자부담 내역 기재
지원사업비 기준을 초과할 경우 서류심사에서 탈락   
※ 신청지원금은 심사과정에서 조정될 수 있습니다.

7. 신청방법

① 접수기간 : 2016년 10월 19일(수) ~ 11월 30일(수)
※ 11월 30일(수), 오후 6시 도착분에 한함
※ 퀵서비스 이용 접수, 직접 방문 접수도 가능

② 접수방법 : 온라인(온라인신청 및 이메일 서류 제출)과 우편 모두 접수
※ 하나만 제출했을 경우 접수 불가능

③ 접수처 : (04001)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5길 13(서교동)
한국여성재단빌딩 5층 지원사업팀 김수현 앞

④ 제출서류

구분

세부내용

온라인
접수
※ 온라인신청서 작성 및 이메일 접수를 모두 접수해야 합니다.
① 온라인신청서 작성 : 온라인신청 Click
② 이메일 서류 제출
– 제출서류 : 지원신청서(한글파일)
※ 첨부파일명 : 2017_(지원분야)_단체명.hwp
※ 지원신청서 이외의 서류는 우편접수 시에만 제출
– 제출처 : 지원사업팀 김수현([email protected])
우편
접수
① 지원신청서 제출 공문 1부
② 지원신청서(소정양식) 4부
③ 법인설립허가증 또는 비영리민간단체등록증 사본 1부
※ 미등록단체의 경우 대표자 주민등록등본(주민번호 뒷자리 삭제) 사본 1부
※ 한국여성재단 파트너단체의 경우 대표자명의 변경 등 변경사항이 있는
단체만 등록증 제출
④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동의서(소정양식) 1부

 

7. 문의

한국여성재단 지원사업팀 김수현 과장
TEL.02-336-6385 / E-mail. [email protected]

 

[첨부파일]
0. (공모안내문)2017_성평등사회조성사업_final
4. (서식)2017_차세대여성운동지원_지원신청서

수, 2016/10/19-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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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케이블카를 막아냈습니다. 함께 설악산을 지켜주신 회원님! 고맙습니다. 어제 12월 28일, 문화재위원회는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 문화재현상변경안을 부결하였습니다. 이로써...
목, 2016/12/29-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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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자 시리즈>

다른백년은 ‘금주의인물’ 코너를 통해 매주 소개해 온 인물 가운데 이번 대선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을 추려 <대선후보자 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어떤 후보자는 소개 시점이 빨라 지금 상황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직 소개하지 않은 후보자도 있습니다.

대선 후보자들의 과거 행적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이번 시리즈가 올바른 선택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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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드에 오른 폐족, 안희정 충남도지사 (2016. 9. 13)

SNS를 든 싸움닭, 이재명 성남시장 (2016. 10. 14)

말이 통하는 보수주의자, 유승민 의원 (2017. 1. 20)

계급배반을 꿈꾸는 금수저, 남경필 경기도지사 (2017. 2. 14)

‘아스팔트 우파’의 마지막 희망,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2017. 2. 21)

길 잃은 ‘새정치’,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2017. 3. 2)

대세가 된 운명,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그가 23년 만에 거리로 나서야 했던 날, 딱 한 번 가까이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2010년 12월 크리스마스를 닷새 앞둔 날이다.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서 손팻말을 꺼내들고 1인 시위를 했다. ‘허위사실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조현오 경찰청장을 즉각 소환조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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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 앞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 전 돈을 받았다”는 발언을 한 조현오 전 경찰청장에 대한 소환조사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는 모습. 결국 조현오 전 청장은 망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살았다. (사진 출처: http://www.wikitree.co.kr/)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1987년 6월 항쟁 때 연좌농성을 한 이후 처음으로 나선 거리 시위다.

분명 ‘쇼’는 아니었다. 5분도 가만히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식사를 하러 드나드는 동안에도 그는 몇 시간이고 그곳에 서 있었다. 아침 5시30분에 경남 양산의 자택에서 일어나 식사도 어영부영한 채 서울로 온 터였다.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소탈한 태도로 그는 말했다. “분노를 이렇게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이 답답하다.”

그 후에도 후속 취재를 위해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얼치기 초짜 사회부 기자의 전화를 언제나 한결같은 태도로 받고 성실히 답해 주었다.

부드러운 원칙주의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64)의 이미지는 한 마디로 ‘굿맨’ ‘젠틀맨’이다. 민주당 내 전략통이자 비문계인 강훈 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착한 사람, 좋은 사람. 너무 굿맨이라 주변에 별난 분들을 통제하는 게 좀 서툴다.”

한때는 권력의지조차 보이지 않아 답답했지만, 확실히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이후에도 하는 말이 이렇다.

“대통령이 목표가 아니다. 자리가 목표였으면 훨씬 더 정치를 빨리 시작했을 것이다. 우리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바뀐 정치를 통해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직은 수단이다.”

“확실히 말해두겠다. 나는 정권 교체라는 국민의 열망을 구현하는 대의에만 헌신하겠다. 내가 꼭 대통령을 해야 한다는 직위에 대한 집념은 없다. 단지 현재로서는 내가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지금으로선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굿맨’인 대통령 탄생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 전 대표는 독보적인 1위를 유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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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문재인이를 제 친구로 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대통령 감이 됩니다. 제일 좋은 친구를 둔 사람이 제일 좋은 대통령 후보 아니겠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의 2002년 대선 당시 부산 유세 연설은 유명하다.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대통령감’이 된다고 믿었던 친구, 그 친구가 이제 진짜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

가난한 실향민…’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던 수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 시골집에 놀러갈 때마다 참 부러웠습니다. 우리 집은 이북에서 피란 온 실향민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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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2월, 흥남 철수작전 당시 밧줄 사다리에 매달려 수송선을 기어오르는 피난민들의 모습. 문재인의 가족도 이들 중 하나였다. 이런 가족사를 가진 문재인에 대해 ‘종북’이라는 색깔공세를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문재인 전 대표의 부모는 함경남도 흥남 출신이다. 대대로 문씨 집성촌에 살았다. 부친 문용형씨는 ‘수재’ 소리를 들었다. 명문 함흥농고를 졸업한 뒤 흥남시청 농업계장·과장을 지냈다. 1950년 12월 흥남 철수 때 월남해서 거제 포로수용소 인근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문 전 대표가 태어났고 7살 때 부산 영도로 이사했다.

적수공권으로 월남한 실향민이 자리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포로수용소에서 노무자로 일하다가 장사를 벌이기도 했지만 실패했다. 집안 사정은 극도로 어려웠다.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 강한옥씨가 좌판 옷장사, 구멍가게, 연탄배달 등을 하며 겨우 생계를 이어나갔다.

문 전 대표는 아직도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성인이 될 때까지 집에 자전거가 없어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는 월사금을 제때 내지 못해 교실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문 전 대표는 명문 경남중학교에 입학한다. 1978년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게 유일하게 보여드린 ‘잘 되는 모습’이자 “생전에 드린 유일한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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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중 졸업 사진(왼쪽). 경남고 재학시절,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이어 경남고에 진학해서도 늘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다. 그렇지만 별명은 ‘문제아’였다. 이름 탓이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학교에는 용돈 씀씀이가 크고 ‘식모’까지 있는 부유층 자제들이 많았다. 빈한한 피난민 가정에서 자랐던 그에게 세상은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갈수록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이 잦았고 술과 담배에도 손을 댔다. 학교 공부는 뒷전이 됐다. 3선 개헌 반대 데모를 하고 교련시험 때 백지 답안지를 집단으로 내는 일 등이 더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진짜 ‘문제아’가 됐다. 다만 학교 도서관에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일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공부를 소홀히 한 탓에 결국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를 한다. 당시 경희대 설립자이자 총장이었던 조영식 박사가 ‘4년 전액 장학금’을 약속하며 경희대 입학을 권유하자 법대에 수석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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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법대 재학시절, 같은 과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대학 시절에는 총학생회 총무부장으로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 수감돼 학교에서 제적된다. 강제징집돼 특전사에서 복무하게 되는데 당시 특전사 사령관 정병주와 여단장 전두환으로부터 두 차례의 최우수 특전사 표창을 수상하기도 한다.

전역 후 사법시험 준비를 하면서 학교에 복학했지만 1980년 비상계엄 전국 확대로 실시된 예비검속으로 체포된다. 청량리경찰서 유치장에서 그는 극적으로 사법시험 합격 소식을 접하고 석방된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지만 학생운동 전력이 문제가 돼 판사에 임용되지 못하자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김앤장’ 등 대형 로펌의 제안을 뿌리치고 1982년 부산으로 낙향했다.

노무현과의 만남

그 시절 노무현 변호사와의 만남은 그야말로 ‘운명’의 시작이었다. 그는 노 변호사와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면서 노동·시국사건 변호를 주로 맡으며 민주화운동에도 투신했다. 1988년에는 노무현과 함께 김영삼으로부터 정계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한다.

노무현은 정계에 입문해 청문회 스타로 떠오른다. 문재인은 그 후에도 계속 변호사로 일하며 법무법인 부산을 일궈냈다.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동의대 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을 맡기도 했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캠프에 합류,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초대 민정수석을 지냈으나 건강 악화로 1년 만에 청와대를 떠났다. 네팔 산행 도중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해 변호인단을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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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2004년, 탄핵을 당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을 맡았다. 오른쪽 사진은 2004년 3월 12일, 김기춘 당시 법사위원장이 탄핵 의결서를 헌법재판소 민원실에 접수하는 모습.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뒤 두 사람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문재인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주역이 됐고, 김기춘은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2005년에는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을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당시 한나라당은 그를 ‘왕수석’이라고 부르며 국정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한다고 비판했다. 노영민 전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참여정부 시절 국정 현안 중 95%는 문재인 비서실장 선에서 처리됐다. 끝내 의견 조율이 안 돼 노무현 대통령에게까지 올라간 국정 현안은 5% 정도도 안 된다. 그가 대권을 잡는다면 국정 현안을 파악하기 위해 불필요한 시간 낭비는 없을 것이다.”

‘왕수석’이란 비난도 받았지만 문재인 전 대표의 자기관리는 철저했다. 친구도 만나지 않고 동창회에 얼굴을 비추지도 않았고 심지어 아내에게도 백화점 출입을 자제하라고 했다.

고등학교 동창인 고위 공직자가 문재인의 방에 들렀다가 얼굴도 못 본 채 쫓겨난 적도 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골프 파동을 일으킨 이해찬 국무총리의 해임 건의를 하거나, 제안을 받지 않으면 사표를 내겠다는 교육부장관에게 ‘그렇게 하라’고 할 정도로 원칙주의를 고수했다.

국회의원, 대선후보, 야당 대표…가장 빨리 성장한 정치인

참여정부가 막을 내리자 문 전 대표는 청와대를 나와 경남 양산으로 낙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그를 다시 정치의 길로 끌어냈다. 이번에는 ‘참모’가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홀로서기였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마지막 식사에서 들은 신신당부가 정치 입문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평생 동안 이룩한 민주주의가 무너졌다. 반드시 정권교체 해야 한다. 지금 민주당 가지고는 안 된다. 시민사회까지 하는 범야권 대통합을 해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의 당부에 ‘혁신과 통합’을 만들었고 민주통합당이 구성됐다.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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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코 정치인이 되기를 마다했지만, 일단 정치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문재인은 다른 정치인이 수 십년 걸려 쌓는 경력을 단 몇 년만에 모두 거쳤다. 가장 왼쪽부터 2012년 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 의원으로 당선된 모습, 2012년 대선 후보 포스터,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대표에 당선된 모습

정치인의 길은 승리보다는 패배가 많았다.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했다. 당 대표가 됐지만 재보선에서는 대부분 패배했다. 당도 쪼개졌다. 스스로도 정치에 입문한 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당 대표 때라고 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 영입에 이은 총선의 여소야대 결과로 한시름 덜긴 했지만 여전히 물음표는 남는다.

“최고의 원칙주의자” 

문재인 전 대표에게는 늘 최고의 ‘원칙주의자’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원칙주의자다.”

KBS를 그만두고 문재인 캠프에 합류한 고민정 아나운서는 문 전 대표를 떠올리면 한 마디로 ‘원칙’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고 말한다.

“최근에도 여쭤봤거든요. 저 나온 거 본 적 있으세요? 그랬더니 정말 없다고 얘기하시더라고요. 보통은 없어도 그냥 본 거 같아요 하는데. 역시 원칙에 어긋나는 거짓말을 절대 하지 않으시는…”

“사람 좋은 문재인 말고 강한 문재인을 보고 싶다.” 시사인 인터뷰쇼에서 나온 청중의 질문에 문 전 대표는 이렇게 답한다.

“무엇이 강한 것인가? 아주 강경한 주장을 하는 것? 또는 정치에 능수능란해서 ‘정치 9단’이 되는 것?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강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모진 성품이 아니다. 그러나 원칙을 지키는 일엔 아주 강하다.”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이 지난 대선에서 찬조연설을 할 때 밝혔듯, 특유의 원칙주의와 더불어 보수주의자들도 탄복하게 만드는 ‘인성’을 갖췄다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다.

문재인 정부…과연 잘 할까?

문제는 그만큼의 정치적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문 전 대표에게는 늘 ‘과연’이란 꼬리표가 붙는다.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도 후보 본인의 호감도 증가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염증과 정권교체를 바라는 열망이 작용한 탓이 크다. 원인이 어찌됐든 손학규, 안철수, 김종인 등 함께 일했던 정치인이 늘 적대관계로 돌아선다는 이미지도 하나의 부담이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아예 노골적으로 문 전 대표의 ‘무능’을 공격한다. “최순실이 써준 거 읽는 박근혜 대통령이나 딴 사람이 써주는 거 읽는 문재인 전 대표나 다를 게 뭐가 있나.”

19대 국회에서의 최하위권 의정 활동,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사건에서 불필요한 ‘사초 폐기’ 논란만 가중시킨 회의록 공개 주장도 ‘무능하다’는 주장에 근거를 더한다.

과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민정수석 재직 시절 결국 대통령 가족을 잘못 관리해서 노 전 대통령 서거라는 비극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그가 핵심 역할을 했던 참여정부 자체가 그다지 ‘성공했다’는 평가는 받지 못하고 있다. 국정원과 검찰·법원 개혁, 이라크 파병, 국가보안법 문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떠올려 보면 더욱 그렇다.

문 전 대표는 말한다. “공과가 있었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상당한 성취를 거뒀지만 경제적 불평등, 양극화, 비정규직 문제 등의 사회·경제적 문제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나아질까. 물론 너나할 것 없이 몰려드는 탓에 옥석을 가리기 어렵겠지만 캠프 합류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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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세론이 확산되면서 캠프 인사들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유능한 인재를 영입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세 과시를 위한 무분별한 영입은 역풍이 될 수 있다. 옥석을 가리고, 어떤 사람과 어떤 나라를 만들지에 대한 믿음을 줘야 한다. 사진은 이래운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왼쪽)과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 암 투병 중인 이용마 MBC 해직기자를 만나 “언론 탄압에 앞장섰던 앞잡이들에게 철저히 책임을 묻고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는 한편 미디어특보단에는 MB 정부 시절 연합뉴스 파업의 원인이 됐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친박 뉴스’를 주도한 인물로 분류되는 이래운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이 참여해 비판을 받았다.

비리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의 남편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의 영입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삼성 출신의 양향자 당 최고위원,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인 전윤철 전 감사원장은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귀족·악성노조’로 지칭하고, 이들이 일자리 창출에 장애물이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참여정부 역시 역대 정부 중 가장 삼성과 친밀했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였다. 

문재인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이 정경유착이자 삼성그룹이라는 점에서 더욱 이 부분은 문제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낸 정태인, 청와대 정책실장이었고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 경제민주화위원장을 맡았던 이정우 같은 학자들이 이재명 성남시장 지지를 선언한 것도 불안한 마음을 가중시킨다.

물론 문재인 전 대표는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삼성이 재벌 개혁의 시작이고 핵심”이라는 입장을 밝혀 왔다.

‘귀족 노조’ 문제에 대해서도 “극히 일부의 노동자들이 누리고 있는 점을 내세워 오히려 ‘노조가 문제야’ 하는 건 문제가 있다. 정규직 노조가 양보한다고 비정규직 봉급이 올라가나?”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최근 민주당 예비후보자 토론에서 법인세나 준조세 발언을 살펴보면 여전히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너무나 ‘비정상적’인 대통령을 오래 봐 온 탓일까. 대통령이 되면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 집무공간을 만들고 “퇴근길에 남대문 시장 불쑥 들러서 그곳의 상인들과 함께 소주 한 잔 격의 없이 나누면서 대화도 나눌 수 있는 그런 대통령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문 전 대표의 말에 어쩔 수 없는 기대감이 드는 건 사실이다.

정치인 문재인의 행보가 그동안은 결코 성공적이었다고만은 볼 수 없다. 그러나 시민들은 정치인으로서 그의 딱 한 번이자 마지막 성공을 기다리고 있다.

수, 2017/03/08-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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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의 새문예지 <릿터>가 화제다. 출간 2주 만에 초판 5000부가 매진됐다고 한다. 젊은 층이 활발하게 이용하는 SNS에서 독서 후기가 줄을 잇는 걸 보면, 혁신을 표방하며 젊은 독자에게 적극적으로 말 걸기를 시도한 전략이 성공을 거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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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는 지난해 40년 간 이어오던 계간 ‘세계의 문학’을 폐간하고, 지난 8월, 새로운 형태의 문예지 ‘릿터’를 창간했다. ‘릿터’는 문학(Literature)과 ‘-하는 사람'(-tor)의 합성어다. 릿터 창간호 표지(왼쪽)와 기획이슈.

‘뉴 노멀’을 주제로 한 커버스토리에서도 청년문제에 대한 글이 선두에 배치됐다. ‘응답하라 2016은 가능한가?-20세기 청년 고아들과 뉴 노멀 시대’라는 제목의 이 글은 “청년이 사라졌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청년문제는 “높은 실업률, 저성장의 고착, 경제적 불안정의 일상화로 대표되는 시대에, 그 모순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를 말해야 할 주체의 자리에 청년이 없는 현상이야말로 “뉴 노멀 시대의 핵심 징표”라는 것이다.

청년이 사라졌다!!

사실 이 같은 ‘징표’가 진작부터 뚜렷하게 나타난 분야는 TV였다. 단적인 예가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청춘물의 실종이다.

과거 청춘 드라마는 젊은 층 뿐만 아니라 전 세대의 사랑을 받은 장르였다. 풋풋한 청춘 스타들이 등장해서만이 아니다. 당시 청춘물에서 꿈과 희망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는 1987년 이후 경제 성장과 민주화가 동시에 진행되던 ‘젊은’ 한국사회의 성장기와 궤를 같이 했다.

청춘물의 성장서사 자체가 당시 사회를 압축해서 재현하고 있었던 셈이다. 실제로 캠퍼스 드라마의 시초격인 KBS <사랑이 꽃피는 나무>가 방영된 해는 1987년이었고, 청춘 시트콤, 트렌디 드라마 등으로 분화되며 청춘물이 전성기를 누린 시기는 외환 위기 직전까지였다.

이후 한국 사회의 성장이 점점 둔화되면서 청춘물도 함께 마이너 장르로 밀려났다. 2000년대 후반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로 들어서면서부터는 TV에서 청춘물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

사회 전체가 성장의 동력을 잃었고, 청년들은 ‘삼포세대’에서 ‘N포 세대’로 이동하며 갈수록 삶의 기회를 제한당했다. 성장의 테마를 핵심으로 삼는 청춘물은 더 이상 사회와 청년의 현실을 대변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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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사라진 TV공간에는 복고와 중년이 들어찼다.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건축학개론’, ‘응답하라1994’, ‘꽃보다 청춘-페루’, ‘불타는 청춘’

청년들의 이야기가 사라진 자리를 채운 건 과거의 전성기를 되새기는 기성세대의 목소리였다. 캠퍼스는 영화 <건축학개론>과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 같은 복고물 안에서나 되살아났고, ‘청춘’은 tvN <꽃보다 청춘-페루>, KBS <불타는 청춘>처럼 중년층의 수식어로 거듭났다. 소비여력 없는 청년층 대신 구매력 있는 중년층에게 회춘의 서사를 파는데 집중한 것이다.

뉴 노멀 시대의 청춘 드라마

이러한 가운데 올해 동시에 등장한 두 편의 청춘 드라마는 특별한 주목을 요한다. 상반기 작품인 tvN <치즈 인 더 트랩>과 얼마 전 종영한 JTBC <청춘시대>이다. 두 작품은 젊은이들을 둘러싼 현실의 변화된 지형도를 예리하게 포착하며 기존의 청춘물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한 마디로 뉴 노멀 시대의 새로운 청춘 드라마라 할 만하다. 두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과거의 청춘물에서 인물들의 성장을 견인하는 꿈과 연대적 관계가 사라진 세계를 그린다는 점이다.

과거의 청년 주인공들이 꿈을 향한 의지와 우정 혹은 사랑이라는 다양한 이름의 연대를 통해 성장해 나갔다면, 이제 더 이상 그런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두 드라마가 그리는 풍경은 이 성장의 가능성이 철저히 차단당하고 모든 관계가 파편화된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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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청춘드라마에는 과거처럼 함께 꿈꾸면서, 아파하고 성장하는 청춘의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철저히 고립됐으며, 꿈을 잃었고, 관계는 파탄됐다. 이런 비정상적인 청춘의 모습이 뉴 노멀 시대의 정상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치즈 인 더 트랩>은 시작부터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기존의 캠퍼스 드라마에서 단골로 등장하던 개강파티는 훈훈한 선후배의 단합을 도모하는 자리가 아니라 회비 횡령과 누군가 이를 학교 익명게시판에 폭로하는 사건으로 얼룩진다.

여기에 수강 신청 아이디 도둑 사건, 팀플레이 점수를 둘러싼 갈등 등이 계속해서 이어지며 스릴러 못지않은 긴장감을 자아낸다.

연대는커녕 서로를 이용하고 배신하며 의심하고 혐오하는 관계의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가 <치즈 인 더 트랩>이 묘파한 뉴 노멀 시대의 캠퍼스다. 학자금 대출금과 취업을 위한 학점 경쟁 못지않게, 뒤틀리고 왜곡된 인간관계로 고통을 겪는 주인공 홍설(김고은)의 모습은 청년층의 비극이 단순히 경제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은 총체적 비극임을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비극은 <청춘시대>에서 한층 뚜렷하게 드러난다. 홍설보다 빈곤한 청춘인 주인공 진명(한예리)은 모든 관계가 무너진 세계의 한가운데 서 있다. 그녀의 가족은 동생을 식물인간상태에 빠뜨린 사고를 계기로 밑바닥 삶으로 떨어져 동생이 죽기만을 바라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진명처럼 가난한 청춘들이 모인 직장에서는 조금 더 편한 카운터 자리 하나를 놓고 집단 따돌림을 행하고, 상사는 진명의 절박한 상황을 이용해 성희롱을 비롯한 온갖 ‘갑질’을 서슴지 않는다. 친절과 호의로 다가오는 관계조차 진명에게는 부담이다.

“나 좋아하지 마요. 누가 나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약해져요. 여기서 약해지면 진짜 끝장이에요”라고 고백하는 진명의 모습은 이미 ‘삶의 한계선’에 고립된 청년들이 생존하기 위해 인간적인 관계마저 스스로 차단하는 비극의 악순환을 보여준다.

요컨대 <치즈 인 더 트랩>과 <청춘시대>가 묘사하는 우리시대 청춘의 비극은 각자도생의 가치관이 일상화된 ‘뉴 노멀’ 시대의 살풍경을 전면화한다.

두 드라마는 마지막회에 이르러 로맨스, 우정 등으로 상처의 치유를 도모하지만 어디까지나 픽션이기에 가능한 결말이다. 현실에서는 이제야 막 이 시대의 비극을 냉철하게 인지하기 시작한 단계다. 지금 각계각층에서 뜨겁게 토론 중인 ‘뉴 노멀’론도 그 인지의 한 방식일 뿐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해법은 문제를 파악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치즈 인 더 트랩>과 <청춘시대>의 의의도 거기에 있다. 오랫동안 사라졌던 청춘들이 다시 자기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월, 2016/09/0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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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은 ‘소득주도성장론’을 주창해 온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다. 소득주도성장론은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제이(J)노믹스’의 이론적 배경으로 평가 받는다.

홍 경제수석은 영ㆍ미권 명문대 출신이 즐비한 경제학계에서 이례적으로 유학을 다녀오지 않은 순수 국내파라는 이력을 자랑한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 개혁 성향의 비주류 학파 ‘학현학파’의 적자로 꼽히기도 한다. ‘분배’를 강조하는 학현학파는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서강학파’와 함께 한국 경제정책의 방향을 좌우해 양대 학파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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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입장하는 홍장표 경제수석비서관의 모습(가운데). (사진 출처: 연합뉴스)

홍 경제수석은 평소 최저임금제 강화, 정규직 전환 등을 강조해 왔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개혁과제로 실천에 옮기고 있는 과제들이다.

홍 경제수석이 문재인 정부의 실질적인 경제콘트롤타워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은 이유다.

학현학파 적통 잇는 국내파 경제학자

1960년생인 홍 경제수석은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9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뒤 대통령상을 받으며 사회과학대학 수석으로 졸업했다.

경제학에 뜻을 둔 동료 들이 유행처럼 미국행 비행기를 타거나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홍 수석은 나 홀로 서울대에 남았다. 석ㆍ박사 학위를 따면서 변형윤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이사장의 제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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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한 토론회에서 발언하는 남덕우 전 총리(왼쪽)과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 전자가 성장을 중시하는 서강학파를 대표한다면, 후자는 분배와 개혁을 중시하는 학연학파를 대표한다.

홍 경제수석은 변 이사장의 아호를 딴 ‘학현(學峴) 학파’의 일원으로 우리나라 개혁성향 경제학자의 계보를 잇는 적통으로 성장한다.

학현학파는 서강학파와 함께 한국의 경제정책을 양분해 온 양대 학파로 꼽힌다. 서강학파가 성장을 강조하며 박정희 독재정부 경제정책의 이론 배경을 제공했다면, 학현학파는 주류경제학이 내세우는 성장의 이면에 가려진 그늘을 조명하며 ‘효율보다는 형평, 성장보다는 분배’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변 이사장은 후학들에게 무엇보다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주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완성자인 알프레드 마셜이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 취임 강연에서 “경제학을 배우려거든 먼저 런던의 이스트엔드에 있는 빈민가에 가보라”며 한 말이다.

상아탑 안에만 갇혀있지 않고 참여하는 지식인의 길을 걷게 하는 DNA는 후학들에게 이어져 1990년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참여연대 등의 시민단체가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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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조선일보)

변 이사장은 서울대 상대 교수로는 유일하게 4ㆍ19 혁명 당시 교수단 데모에 참여했다.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를 비판하며 계엄령 해제를 요구하는 ‘지식인 134 시국선언’에 연루돼 해직되기도 했다.

홍 경제수석 또한 변 이사장이 주류경제학에 비판적인 개혁성향 경제학자를 중심으로 꾸린 ‘한국경제발전학회’에서 중심적 역할을 한다.

소득주도성장론 주창

부경대 경제학과 교수로 학계를 주 활동무대로 삼아온 홍 경제수석은 소득주도성장론을 가장 먼저 주창한 학자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으로 새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이 되는 이론적 바탕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소득주도성장론은 국민 개개인 소득이 늘어야 국가 경제도 발전한다는 논리다. 임금인상→소비촉진→생산증가→경제성장의 선순환을 이루는 게 핵심이다.

기업 주도 성장이 노동자의 소득 증대로 퍼지는 ‘낙수 효과’와는 반대인 ‘분수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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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국회에서 열린 ‘소득주도성장의 의미와 과제’ 토론회에서 당시 문재인 의원(왼쪽)이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이 홍장표 부경대학교 교수. (사진 출처: http://www.businesspost.co.kr)

국제적으로는 ‘임금주도성장론’에 가깝다. 영국이 현실적 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생활임금제’를 도입한 것이 최근의 예다. 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2008년 금융위기 때 대안 모델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12년 국제적 저성장의 원인을 ‘임금 격차의 블평등’에서 찾은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관심이 폭발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과도한 불평등을 피해야 경제가 성장한다”며 ‘포용적 성장’을 내세웠다. 임금주도성장론에 가까운 주류 진영의 이론인 셈이다.

홍 경제수석은 2013년 임금주도성장론을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바꿔 소득주도성장론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한다.

같은 해 문재인 대통령이 18대 대선 패배 후 1년을 즈음해 내놓은 반성문 성격의 저서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언급하면서 문 대통령의 대표적 경제공약으로 자리잡아 갔다.

문 대통령은 이 책에서 “수출 주도 성장 전략에서 내수 주도 또는 적어도 내수와 수출의 균형을 맞추는 성장전략으로 경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소득주도성장이 대안의 하나일 수 있다”고 밝혔다.

홍 경제수석은 이듬해 ‘한국의 기능적 소득분배와 경제성장’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소득주도성장론이 한국경제를 되살리는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다 분명히 했다.

“한국의 실질임금 증가율이 경제성장률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논증해 냈다. 논문에 따르면 한국경제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를 따져봤을 때 실질임금 증가율이 1%포인트 상승하면 경제 성장률이 0.68~1.09%포인트,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0.45~0.50%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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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열린 ‘포용적 성장과 소득주도성장론’ 토론회에서 홍장표 경제수석(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출처: 더미래연구소)

홍 경제수석은 소득주도성장을 위해서는 최저임금제 강화, 비정규직 차별해소와 정규직 전환 등이 필수적이라고 봤다.

아울러 법인세 최고세율의 원상회복, 자본소득세 강화, 근로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등을 통한 일자리 창출, 공정한 하도급거래 질서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새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책 방향과 맞아떨어진다.

문재인 정부가 중소기업청을 중소기업벤처부로 승격한 것도 홍 경제수석의 이론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는 평소 “소득주도성장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은 중소기업이 될 것”이라며 “자본금 2조원인 기업 한 개보다 자본금 1,000억원인 중소기업 20개가 더 낫다”고 강조해 왔다.

주로 학계에서 활동하던 홍 교수가 2003년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자문정책기획위원을 맡아서 추진한 과제도 ‘중소기업 보호 및 육성 방안 마련’이었다. 홍 경제수석은 오랫동안 초과이익공유제(협력이익배분제) 도입을 주장해 오기도 했다.

장하성 실장, 김현철 보좌관과 삼각편대

홍 경제수석은 J노믹스를 이끌어가는 핵심 역할을 맡았다. 재벌 저격수 평가 받는 장하성 정책실장, 소득주도성장론과 맥락이 비슷한 ‘국민성장론’을 주창한 김현철 경제보좌관 등과 호흡을 맞추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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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경제브레인 3인방. 왼쪽부터 장하성 정책실장, 홍장표 경제수석, 김현철 경제보좌관

다만 홍 경제수석이 부경대 경제학과, 장 실장이 고려대 경영학과, 김 보좌관이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청와대 경제브레인 3인방 모두가 학자여서 경제부처에 대한 장악력을 얼마나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다.

청와대 참모진의 개혁성향과 경제관료들의 보수성향이 충돌하면 불협화음이 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청와대는 홍 경제수석에 대해 “소득주도 성장론을 주창한 경제학자로, 해박한 이론과 식견을 바탕으로 새정부의 경제정책 콘트롤타워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적임자”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목, 2017/07/2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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