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철학자 화이트헤드는 평소 자신의 철학을 철학과 종교와 과학을 융합한 유기체 사상philosophy of organism이라고 불렀습니다. 좀 더 자세히 그의 철학을 들여다보면 그는 자신의 과정철학을 현대의 존재론ontology으로 주창하였음과 동시에 유기체적 세계관을 새로운 우주론 cosmology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철학자 화이트헤드
한편 우주론을 논하는 경우에 존재론을 같이 거론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우주의 근거와 작용인 및 목적인을 설명하는 우주론을 구축함에 있어서 반드시 우주의 구성원인 개별적 존재의 성격을 설명하는 존재론이 전제되어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주는 개체들의 산술적 합이 아니라 그 이상의 속성을 발현하는 창발성을 갖는 복잡계이기때문에 단순히 대수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만, 일단 존재론이 제시하는 존재의 속성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우주론이 전개되기때문에 같이 논할 수밖에 없지않나 생각합니다.
즉, 현대철학은 개체의 주체성과 공동체로의 귀속성과 연대성을 같이 논하지않을 수없기 때문에 존재론과 우주론을 같이 설명할 수밖에 없다할 것입니다!
한편, 현대의 존재론은 서구의 실체론을 과감히 폐기하고 생성론(이를 과정론,사건론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습니다!)을 과감히 받아들여야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간단히 다시 말씀드리면 생성론은 존재는 동일성을 지닌 실체substance가 아니고 단지 시공간상의 인과적 사건의 연속적 과정을 생성하는 것이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실체론에 터잡은 우주론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확인해봅니다!
실체론에서 상정하는 우주는 2가지 요소(1개의 원인과 1개의 조건)로 이루어져있다는 단순계를 모델로 하고있기때문에 그 인과율은 선형인과 linear causality또는 단순인과라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태양계안의 지구의 운행을 설명할 때 태양과 지구만을 변수로 고려하고 나머지 다른 행성들을 고려대상에서 배제시켜버립니다. 따라서 역학관계를 2개의 변수로 단순화시키기에 설명의 유용성은 있으나 실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이는 무지의 유용성이라는 주제로 나중에 따로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체론의 가장 큰 문제는 선형인과율을 따르다보니 결정론과 목적론 또한 계서적인 지배,피지배관계를 본질로 한다할 것입니다. 이에따라 인간의 자유의지는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제1원인의 작용인과 목적인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뭇 존재는 선행원인으로부터 유래하였기 때문에 모사된 후행존재는 선행존재인 원본보다 열등하다할 수밖에 없으므로 선행원인이 제시하는 작용인과 목적인을 거부할 수가 없어 그가 제시하는 담론에 예속되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하여 실체론에 비롯한 우주론은 선행 제1원인에 의해 작동되는 기계론적 세계관을 지니지않을수 밖에 없습니다!
즉, 기계의 모든 구성요소는 기계를 작동시키는 제1원인의 지시에따라 움직이는 부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할 것입니다. 이러한 기계론적 세계관에 의하면 강자만이 선행원인이 되어 후행원인인 약자는 그에 종속되는 계서적 질서를 받아들일수 밖에 없습니다.
(이에따라 니이체는 절대적인 진선미는 존재하지않으며 진리의 척도는 오로지 힘Macht, 즉 진리에의 의지밖에 없다고 도덕계보학에서 밝히고 있는데 이를 기계론적 세계관에 적용하면 오로지 제1원인의 힘에의 의지가 진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미의 기준은 강자인 성형자본의 힘,의지가 만들었기에 결국 힘의 의지,즉 강자의 힘에 의해 현대 진리는 만들어진다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특히 실체는 서로 내재적인 생성관계가 없는 독립된 존재들이기에 자신들의 생존은 반드시 강자가 약자를 약탈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어 결코 지배와 피지배라는 이분법적인 도식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자아를 끊임없이 강자에 복종시키며 타자화하는 소외를 근원적으로 벗어날 수없으며 결국 강자의 일방적 지배와 약탈만 있을 뿐 강자와 약자의 순환성을 상실하게됨으로써 종국에는 호환적 생태계는 유지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편 생성론에 근거한 우주론은 화이트헤드가 말했듯이 유기체적 세계관이라 할 것입니다!
여기서의 유기체란 생명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와 구성요소가 또는 구성요소와 구성요소가 정합적으로 꽉 짜여있으면서 상호 내재적인 생성작용을 멈추지않는 실재를 의미한다할 것입니다. 하여 세포단위의 유기체이던 우주 차원의 유기체이던 그들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서로 시공간상 분리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내재적으로 분리되지않고 생성에 같이 참여하는 존재이기때문에 모든 요소가 생성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주체로 동등하고 평등하게 참여하는 전체로서의 하나a single totality인것입니다. 하여 유기체적 세계는 단순계가 아니라 최소한 3개이상의 구성요소가 상호영향을 미치는 복잡계이기에 상호인과율 또는 복잡인과율을 따르게 됩니다. 이는 불교의 연기법과 같다할 것인데 이러한 비선형 인과는 결정론이 아닌 확률론을 따르게 되어 있어 구성요소들의 자유의지도 인과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시말하면 구성요소는 강약,대소,선후를 불문하고 똑같은 확률적 가치를 지니기에 모두 평등한 존재로 생성에 등가적으로 참여한다는 사실을 존재론적으로 보여준다할 것입니다.
그러면 유기체 사상의 과학적 근거를 알아봅시다!
우선 양자역학에서 찾아보면 양자얽힘quantum entanglement현상을 들 수있습니다. 이 이론은 아인쉬타인이 사물의 실재성과 국소성(분리성)을 증명하기위해 EPR패러독스라는 사고실험을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는데 결국 1982년 아스팩의 실험에 의해 우주는 비국소적이고 비실재적이라는 것이 밝혀졌으며 이를 양자얽힘이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하면 우주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고 영속적으로 생성변화하는 존재라는 것임을 물론 또한 우주는 분리된 것처럼보이나 실제는 분리된 것이 아니기에 분리되었으나 분리되지않은 하나! the devided undevidedness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밝힌 것입니다.
또한 우주는 그 구성요소가 모두가 내재적으로 연결된 유기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론으로 일반상대성이론을 들 수있습니다.
즉 우주의 시공간 형태는 물질의 분포가 만들고 또한 물질의 분포는 시공간의 모양이 만든다는 것으로 이는 상호연기,즉 유기체의 특징인 상호간 내재적 생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할 것입니다. 또한 극명하게 우주는 하나의 유기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론으로는 조지 가모브 박사가 주창한 빅뱅이론이 있는데 이는 우주는 하나의 특이점singularity에서 빅뱅하였다는 것으로 우주는 유기체로서의 한 몸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나아가 복잡계 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기위해 항상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를 멈추지 않는데 그 과정에 우주의 모든 요소가 창발emergence과정이든 혼돈chaos의 과정이든 되새김feed back의 과정에 모두 구성요소가 참여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하기에 로렌쯔는 아마존의 나비날개짓이 카리브해에 폭풍을 만들 수도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 또한 세계 전체가 내재적으로 생성관계를 맺는 유기체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예라할 것입니다.
또한 현대진화론, 특히 스튜어트 카우프만은 진화를 다윈주의 (자연선택) 와 신다윈주의(돌연변이) 와는 달리 생명체와 환경과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라고 보고 있으며, 특히 칼 세이건의 부인인 린 마굴리스는 공진화co-evolution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진화도 우주라는 유기체 내부의 구성요소들의 상호인과적 생성작용으로 보고있습니다.
한편 인지과학의 제3패러다임인 체화된 인지EM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은 정보처리 시스템으로서 두뇌,몸과 환경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라고 규정하는데 이는 마음이 복잡계이자 유기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한편 불교의 유식사상은 마음을 두뇌,몸과 우주의 상호작용으로 보는데 이에 따르면 우주도 정보처리시스템으로서 한 마음,즉 일심이라할 것입니다). 물론 과학은 아니지만 불교의 연기법도 우주를 유기체로 보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할 것입니다.
그러면 단지 이론적 관점이 아니라 실천론의 입장에서 왜 유기체적 세계관을 받아들여야하는지를 살펴봅시다.
우주가 구성요소들의 정합적인 연결망인 유기체라면 우주안의 모든 존재들은 개체로서 독립성뿐만 아니라 구성요소들간의 관계성도 생득적인 조건이기에 반드시인간들은 생활세계의 공동체를 구성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위한 대안으로 공동체를 제시하기도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이라는 유기체는 개체성과 관계성을 중첩적 속성으로 하기때문에 온전한 삶을 위해서는 소통과 상생의 공동체를 반드시 전제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동체는 영어로 community라고 부르는데 어원을 따지면 선물을 같이 나누는 것이라고 해석하는데 이는 공동체안에서는 모든 존재가 선물이라는 의미도 있는데 유기체에서 타자는 자아의 생성에 내재적으로 이바지하기에 타자는 항상 선물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기체의 속성상 우리는 공동체를 만들지않을 수없는 것입니다)
또한 유기체사상은 자아와 타자가 내재적 생성관계를 맺기에 자타불이라는 불교의 교리가 단순한 종교적 구호가 아니라 실상이라는 것을 밝혀줍니다(한걸음 더 나아가 유기체사상은 우주와의 합일체험을 중시하는 뭇 종교들의 신비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된다할 것입니다). 하여 유기체사상은 사랑과 자비의 존재론적 근거도 되지만 사랑과 자비가 시혜적 동정이 아니라 평등성에 기초한 나눔이라는 것을 제시하며 나아가 사랑과 자비가 개체적 차원이 아니라 구조적 차원의 개혁으로까지 승격시켜야하는 근거가 된다할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 횡행하는 이민족,특히 난민이나 다문화가정에 대해 배척하는 태도도 실체론적 존재론에 근거한 것으로 우주의 생성에 뭇 존재가 모두 평등하게 참여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알게되면 순혈주의는 설 자리가 없다할 것입니다. 하여 예맨난민과 카라반행렬은 바로 우리의 책임이기도한 것입니다.
나아가 오늘날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본과 노동을 고정되고 불변하는 실체로 보는 실체론을 벗어나서 자본과 노동이 동등한 생산성요소라는 생성론의 입장에서 자본과 노동의 일치 또는 호환할 수있는 새로운 생산양식을 반드시 모색해야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위에서 나비효과에서 언급하였듯이 아무리 작은 행동도 되새김을 통해 엄청난 결과를 이끌어내듯이 우리의 작은 행동이 역사를 바꾸는 혁명의 단초가 될 수있다는 것입니다. 하여 니이체는 노예의 도덕에서 벗어나기위해서는 자신의 위치에 맞는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를 키우라고 주문한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되새김에의한 창발효과는 자연법칙일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에도 적용될 수있기에 비록 지금은 초라해보일지 모르지만 지금 여기의 위치에서 참된 진리를 향한 권력의지를 강화하는데 최선을 다해야할 것입니다.
본 회담이 지닌 역사적 이벤트의 진행과 성격은 한국 내 모든 여론이 세밀히 다룬 주제이기에 되풀이하는 것을 생략한다. 대신에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게 된 배경과 기대를 담은 평가 그리고 6월 중에 예상되는 Kim-Trump회담을 분석하고 전망하는 글로 갈음하고자 한다.
한반도에 분단을 강요했던 외부적 조건의 변동
첫째, 문재인-김정은 남북 정상의 회담이 갖는 극적인 성격을 한반도라는 좁은 지역적 시각에서 벗어나 국제질서의 급격한 변화라는 세계적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개혁개방 이후 지난 40년간 중국이 보여주는 대국굴기의 현실과 상대적으로 미국 영향력의 퇴조가 불가피한 가운데, 푸틴에 의해 재건된 러시아의 위상이 동유럽과 중동아에서 급격히 커져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미들파워(Middle Power)로 평가할 수 있는 인도, 터어키와 이란, 아세안(ASEAN) 등이 세계무대에 전면적으로 등장하면서 국제질서의 다층적인 재편이 진행되고 있고, 동시에 트럼프라는 인물에 의해 미국 중심의 단극(Uni-Polar)체제가 급격히 해체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경제력에서 살펴보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세계경제규모의 절반을 차지했던 미국의 비중이 현재는 약 15% 수준에 머물고 있고 2020년대에는 12-13 % 수준으로 축소되면서 이후 중국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소프트파워 면에서는 더욱 극적이다.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제3세계권에서의 국가 신뢰도는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을 압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 전통적인 서방과 우방에서조차 미국을 파트너로서 대단히 회의적인 입장으로 바라보고 있다.
군사력에서는 세계군사비 지출의 40% 이상을 사용하면서 아직 절대적 위치를 지키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2030년대가 지나면서 중국의 해군력이 태평양에서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더구나 국제적 신뢰를 저버리며 ABM조약을 파기해 가면서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구축한 미사일 방어체계가 중러 양국이 개발하는 초음속 무기와 새로운 성능의 미사일에 무력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1990년 동서냉전체계의 붕괴가 30년이라는 시간적 지연을 통해 일시 미국의 일방적 주도라는 터널을 통과하면서 국제질서의 새로운 재편에 역동적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는 중이다. 이는 한반도에 분단을 강요했던 외부적 조건이 제거되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북 공히 민족의 저력과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는 시기
둘째, 현재 한반도 내 형성되고 있는 지형의 성격을 살펴보아야 한다.
남한은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산업과 경제력에서 10위권을 형성한 기반 위에 촛불 시민혁명을 성취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하는 금자탑을 세웠다.
한국의 산업화 과정은 제3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로를 통해 이루어져 왔다. 저임금과 구미 시장을 기반으로 한 수출용 소비재 경공업에서 출발하여 기간산업과 중화학산업을 동시에 진행하였고 적시에 자본과 기술집약을 통해 첨단산업으로 이행해온 셈이다. 이 과정에서 누적된 적폐인 강고한 기득권과 재벌중심의 독점이라는 장벽은 이제 높은 동력의 에너지를 담아내는 직접정치의 도입과 시민적 참여라는 제도적 혁신을 통해 훌쩍 뛰어 넘어야 하는 개혁 과제로 남겨졌다.
민주화의 출발점은 한세기를 관통하며 구한말 동학혁명이라는 사건적 인식적 자각과 다양한 개혁의 노력에서 시작되었다고 평가해야 마땅하며, 3.1혁명, 4.19 혁명, 6월 민주화운동에 이어 지난 2년간 보여준 촛불시민혁명까지 벡터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는 배달 민족의 역사적 저력에 대한 기록이며 점차 밝아오는 미래에 대한 초석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미국과 서방세계에서는 소비에트 붕괴 이후 동유럽국가군이 해체되었듯이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곧 무너질 것으로 예측하였다. 기만적인 제네바 협약을 통해 시간을 벌어가면서 북한의 붕괴와 변화를 기대하였으나 1994-1999년 간 수백만이 아사하는 혹독한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면서 오히려 내부 지배 체제를 강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소중에 이어 세계 4위권의 핵무력 강국으로 변신하였다. 북한의 핵무력화는, 비록 잘못된 판단에서 촉발되고 강대국들에 의해 강요된 이데올로기 속에 진행되었던 6.25 전쟁 이후에도, 여전히 강도 높게 지속되어온 미국의 대북한 전쟁협박을 이겨내려는 북한인민들의 총화와 노력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는 비핵화를 논하기 전에 반드시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다.
최근 북한에는 제한된 자율권과 처분권이 인정되면서 시장경제의 도입을 위한 예비적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국제적으로 고립된 매우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연평균 성장률이 기한과 조사기관에 따라 3%에서 9%에 이르고 있다 한다. 놀라운 일이다. 이는 향후 한반도 평화구축, 상호신뢰와 교류,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되는 과정에 중요한 촉매제가 될 것이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은 미국에 의해 중국이 자본제적 시장 메카니즘으로 유도되고 편입되는 국제질서의 국면적 변화 과정에서 남북한 정권 공히 자신의 통치 기반을 강화하는 시대적 역풍으로 작동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1990년대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은, 소비에트 붕괴로 인해 형성된 미국만의 단극체제라는 새로운 배경을 바탕으로, 한편에서는 북한에게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사회로 편입을 강요하면서 동시에 북한의 붕괴를 촉진하려는 이중적 의도에서 진행되어 왔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는 합리적 중도정부의 노력으로 남북간의 화해와 공존의 협력이 진행되어 왔으나 역시 미국의 단극체제라는 외부적 한계를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며, 한미 양국간의 전체적인 흐름이 수구적 성격으로 돌아서면서 지난 10년 세월의 역풍을 경험한다.
이제 4.27회담의 의미와 이후의 전개는 위에 이야기한 국제질서의 변화와 배달민족의 내부역량의 축적 그리고 상황전개를 일선에서 책임질 남북한 정부 당국자들의 성격에 따라서, 70년이후 40여년간 이어져온 7.4 공동성명 – 북방정책과 유엔동시가입 – 6.15 및 10.3. 선언의 연장선상에 새로운 변증과 질적 도약의 시대로 진입하는 것을 뜻한다.
변혁의 상황을 잘 설명해주는 복잡계 이론의 행위자 기반중심의 시스템동력(system dynamics)이 작동하는 계기적 국면을 맞이한 셈이며, 국제적 정치질서의 요동과 한반도 내 새롭게 형성된 정치조건에 대응하는 행위자들의 행보가 향후의 과정과 성과를 결정하는 핵심요소가 된다. 남북 공히 민족의 저력과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는 시기에 처해 있다고 할 것이다.
Kim-Trump회담의 성사 배경
이야기를 트럼프 미대통령으로 돌려본다. 내가 북미 정상회담이 아니라 구태여 Kim-Trump회담이라고 적는 이유는 트럼프가 미국 주류사회를 대표하고 있지 않으며, 전통적인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돌출적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전통사회는 북한을 협상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일부 개혁적 그룹을 제외하고는 민주 공화 양당에게 공히 북한은 붕괴론-굴복론-악의 축 그리고 절대로 보상을 해주어서는 안되는 불량국가로 압박과 제재를 통해 체제를 바꾸어야 하는 레짐체인지(regime change)의 대상인 것이다.
동시에 네오콘–펜타곤-군산복합체로 이어지는 일단의 극우 그룹은 북한을 극단적인 위험 집단으로 조작하면서 군사력 증강의 핑계로 삼아 왔고, 한편으로는 남한을 무기시장의 최대 소비처로 만들어 왔으며 미일 안보동맹의 하위적 파트너로서 중국과 러시아의 태평양의 진출을 최전선에서 봉쇄하는 데 활용해 오고 있다.
세계최대규모라고 할 한미군사훈련은 사실상 대북한 전쟁억지력이라는 핑계를 가장한 대중국 및 대러시아 전쟁의 예비훈련으로 보아야 한다. 소위 전략자산의 전개와 사드의 배치가 그런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남한 경제규모의 4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북한의 형편이 전면전을 수행할 수 없는 명백한 현실적 제약 조건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북한의 핵무기는 선제적 사용이 불가능한 최후 수단으로서 미국의 대북 전쟁 억지력과 마지막 보복능력으로서 기능할 뿐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반면에 오바마 전대통령의 성과와 행적을 모두 뒤집어야 한다는 묘한 심리적 강박, 오는 11월 선거를 이길만한 호재의 선점, 미국의 기본적 이익과도 과감히 충돌하는 병리적인 자기과신, 과거의 대통령들이 못한 일을 해낸다는 집념 등이 북한 핵무기 제거를 트럼프가 자신의 최우선 아젠다로 선정하게 한 배경일 것이다.
사진 출처: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한마디로 미국주류로서는 감히 생각해내지 못했을 북한과의 직접 담판을 트럼프는 자신의 정치적 행보와 승리를 위해 도박게임의 승부수처럼 던진 것이다. 이는 지난 30여 년간 북한이 미국에게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사안이기도 하다. 주한미군철수와 상관없이 비핵화와 평화협정체결 및 북미 국교정상화라는 맞교환의 주장은 김일성 주석시절 제안한 이래 북한의 일관된 입장이다.
미국 주류사회의 입장과 이해를 무시하고 트럼프가 제공한 승부수는 우리 민족에게 절호의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제공하는 셈이다. 조심해야 하는 함정은 트럼프 노름패의 성격이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라는 점이다. 그에게 Kim-Trump회담이 한반도 역사에 미치는 긴 파장의 의미를 이해해달라고 주문하는 것은 연목구어에 해당하며, 한반도 내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의 중요성을 설득하는 것 역시 마이동풍 격이다.
그의 관심은 북한의 핵무기를 제거하는 합의를 도출하여 자신의 정치적 성과로 과시해서 다가오는 중간 선거를 승리하고 차기 집권의 발판을 삼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조금 더 평가한다면, 자신의 페이스대로 따라와 준다는 가정하에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분리시켜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 전략에 편입하는 정도일 것이다.
비핵화, 지나친 낙관은 금물
이런 관점에서 비핵화에만 집착하여 Kim-Trump의 회담 성과를 너무 지나치게 낙관하는 것은 위험이 따른다. 쌍방간에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족할 수 있으며, 이는 미국과 북한 정권 모두에게 손해가 아닌 득을 제공한다. 조금 더 나가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탐색전에 그쳐도 대단한 성과이다. 지난 65년간 서로에게 손가락질하던 시절에서 신뢰를 향한 궤도수정으로 평가하면서 다음 단계로의 이행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트럼프가 처한 국내정치적 상황과 그의 조급한 성격에 미루어 보면, 극적인 일괄타결에 이르던가 아니면 얼굴을 붉히는 결렬로 귀결될 공산이 매우 높다.
일괄타결이 이루어지든 아니면 결렬로 귀결이 되든, 여전히 위험은 상존한다. 트럼프 정권이 지닌 잠정적 임시변통적 불안정적 가변적 불예측적 성격 때문이다. 그에 대한 탄핵 가능성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중간 선거를 민주당이 압승하면 불임정권이 될 가능성이 있으며, 중간선거를 가까스로 선방한다 하더라도 라이언 원내총무처럼 공화당이 지지를 철회할 수 있고, 본인이 변덕을 부릴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더하여 최근 미국이 이란핵합의 등 기존의 약속과 국제적 협의를 마구 무시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다만 미국의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은 이미 실기(失機)를 했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판단인 점에 일단 안도의 숨을 내쉰다. 이 점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수행한 큰 역할에 공을 돌릴 수 있다. 운명의 여신이 지나갈 때 옷자락을 힘껏 움켜 쥐어야 한다는 역사학자의 조언에 따라, 비록 위험이 따르더라도 기회를 반드시 잡아 전진시켜야 한다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여전히 한반도 정세 특히 전쟁의 위험여부를 가름하는 패를 쥐고 흔드는 미국과 입장을 조율하고 Kim-Trump의 만남을 주선하며 트럼프를 치켜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적절했다.
그러나 상대방의 눈치를 보며 그가 지시하는 대로 대리운전 하는 것과 조율과 개입을 넘어서서 자신의 전략을 주도적으로 추진해 가는 것은 정확히 구별해 내야 하며, 따라서 문재인 정부는 ‘운전자론’의 내용을 미국의 주문에 따른 대리운전 수준을 넘어서, 계기적 명분을 만들어 민족적 이해에 맞는 전략적 주도의 자가운전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내가 아는 미국의 지인은 이를 ‘두개의 춤 전략(Strategy as Two-steps of Dancing)’ 라는 표현으로 조언한다.
다행스럽게 북미간에 비핵화와 영구적 평화정착에 대한 일괄타결과 단계적 조치에 합의를 한다 해도 이를 ‘행동대행동’의 실천적 과정으로 담보해 내기 위해서는 매우 다양하고 섬세한 강제의 조치가 지속적으로 따라야 한다. 미국과 트럼프 당사자의 가변성 때문에 실행여부를 확신할 수 없는 Kim-Trump회담보다 민족의 역사 앞에 다짐한 남북정상회담이 향후 한반도 상황전개에 시금석이자 방향타로서 매우 매우 중요하다. 남북정상회담의 선언문은 단순히 Kim-Trump회담을 위한 징검다리가 아니라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안내하는 길라잡이 역할에 더하여 한반도에 반드시 영구적 평화정착을 강제하는 강력한 원칙으로 작동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인식 위에서 아래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몇 가지 밑그림을 제안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사진 출처: YTN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하여
역사적 이벤트로서 4.27 회담은 다분히 감동적 연출과 선언적 성격을 넘어 향후 진행해야 할 많은 내용을 소상히 제시하고 있다. 확고한 상호신뢰 위에 반드시 실천해 내겠다는 의지가 읽는 선언문이다. 특히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고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위해 점차적인 군축 논의를 합의하는 등 기대 이상의 내용을 합의해 낸 점에 높이 평가한다. 더하여 친밀성을 보탠 솔직하고 대담한 만남과 대화 그리고 가슴 벅찬 장면들을 제공했다는 점에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다만 두 정상의 결의와 향후 행보에 호사다마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앞으로 전개되는 실행적 실무작업은 혹시 있을 국제정치의 역풍적 조류와 미국정치의 급격한 변화에 상관하지 말고 대담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거침없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다.
가장 시급하게는 유엔 원조협조국에서 지난 4월초에 발표한 ‘북한의 식량 영양 보건과 질병에 관한 실태와 지원계획 보고서’에 기초하여 인도적이고 동포애적 지원을 대대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즉시 남한 정부가 비축하고 있는 쌀비축량을 가능한 만큼 북측에 제공하고 북한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의약품을 적시에 공급해 주며 의료시설의 확충을 포함하여 대규모의 의료진을 정기적으로 파견해야 한다.
민간 단체들이 신청한 방북을 허가해 주는 수준을 넘어서 학문과 연구, 문화와 체육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를 적극 권장해야 하며, 성공 여부에 상관없이 Kim-Trump회담 이후에는 곧바로 개성공단의 조업을 재개해야 하며, 금강산 관광사업도 다시 시작할 준비작업에 착수해야 하고 북한 다수의 명승지를 관광지역으로 개발하는 것을 북측과 협의해 볼 만하다. 북한에 대한 유엔 재제 결의는 북한을 대화와 회담의 장으로 끌어 내려는 것이 목적이었지 북한을 붕괴시키려 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선언문에도 언급한 철로와 육로의 연결, 통신과 에너지 개발 등 사회기반사업의 대규모 확충과 현대화에 한국기업들이 참여하는 것을 적극 알선하고 지원해야 하며,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들과 협력하여 평양 근처의 남포지역에 국제적인 산업단지를 유치하는 데 차관을 제공할 수 있도록 남한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하며, 필요하면 과감히 연대적 보증도 제공해야 한다. 평양을 중심으로 수천 수만 명의 외국인들이 상주한다면, 이는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게 한반도의 평화를 보증할 수 있는 확실한 담보물이 될 것이다.
회자되고 있는 비무장지대를 세계평화의 상징지대로 탈바꿈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고 북한과 공동으로 추진하며, 더불어 고려의 왕궁에 대한 역사적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만큼 이를 송악(개성)에 복원하는 사업을 북측과 공동으로 진행하여 한양(서울)에 있는 조선조의 왕궁들과 연계하면 세계적인 관광단지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유엔과 협력하여 세계평화와 우애에 기여하는 모든 산하 기관들을 평양 또는 인천송도에 유치하는 것을 추진해 봄 직하다. 남북의 화해를 계기로 한반도라는 민족적 영역을 넘어 동아시아의 지역 그리고 새롭게 재편되는 국제질서에 순기능적인 방향으로 기여하는 것을 구상해야 한다.
앞서 우리는 포용의 정치를 제대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선, 즉 약자의 정치적 대표성을 제대로 보장해주기 위해선 무엇보다 현대적 정당정치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기초 지식을 짚어보았다. 그런데 그 정당체계를 결정하는 가장 중대한 변수는 바로 선거제도다. 예를 들면, 소위 ‘뒤베르제의 법칙’으로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소선거구 1위대표제는 양당제를, 비례대표제는 다당제를 견인한다.
한국의 현행 선거제도는 득표-의석 간 비례성이 보장되지 않는 소선거구 1위대표제 중심의 것이다. 더구나 한국에선 이 불비례적 선거제도가 지역주의와 결합하여 작동하고 있다. 그러니 선거제도가 야기하는 민의 왜곡 현상은 심각한 지경일 수밖에 없다. 87년 체제 성립 이후 자유한국당 계열 정당들은 영남에서 50%대 득표율만 얻어도 그 지역 의석의 90%대를 점유해왔다. 한편, 민주당 계열 정당들은 호남에서 50%대 득표율만으로 80%대 점유율을 누렸다. 절반이 조금 넘는 유권자가 지지했을 뿐인데, 그 두 당은 각기 자기 지역에서 거의 모든 의석을 가져간 것이다. 국민들의 정당 지지도와 정당의 의석 확보율이 전혀 비례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민심이 이렇게 철저히 왜곡되니 약자를 위한 포용의 정치가 작동될 리 없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한국은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다. 주인인 시민들이 선거로 자기 대리인을 뽑아 그들을 통해 나라를 운영하는 체제라는 것이다. 그러니 나라가 주인 섬기는 일을 잘 못한다면, 그것도 계속해서 그렇다고 한다면, 그리하여 양극화 심화, 비정규직 증대, 청년 불안 등의 문제가 지속돼가고만 있다면, 그건 필경 선거제도에 결함이 있다는 얘기다. 선거제도가 대의제 민주주의의 본령에 따라 제대로 설계됐더라면, 주인을 잘 모시는 사람들이 대리인으로 뽑혀야 한다. 그런데 주인을 제대로 모시지 않거나 모시지 못하는 대리인이 자꾸 선출되어 나라가 제 구실을 못한다면, 그건 선거제도가 잘 못된 거라고 봐야 마땅하다. 선거제도가 나쁘면, 좋은 대리인을 뽑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지 않은가. 이런 경우엔 선거제도를 고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래서 약자들이 자기 대리인을 제대로 뽑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리하면 사회경제적 약자가 겪는 어려움은 점차 해결돼가기 마련이다.
사회경제적 약자라고 해서 정치적으로도 약자일 이유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인즉슨, 선거제도만 올바르면 사회경제적 약자는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강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선거는 1인 1표의 원칙에 따라 치러지는데, 어느 나라에서나 사회경제적 약자의 수는 강자의 수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거제도만 개혁하면 사회경제적 약자는 정치적 힘을 충분히 가질 수 있고 자신들이 바라는 정책과 제도와 법을 (대리인을 통해) 넉넉히 만들어낼 수 있다.
지금의 소선거구제를 명실상부한 비례대표제로 바꾼다고 생각해보라. 즉, 모든 정당이 전국 득표수에 비례하여 국회의석을 서로 나누어 갖는 경우를 상정해보자는 것이다. 그 경우, 예를 들어, 전국에 퍼져있는 그 수많은 소상공인들이 전체 표의 10% 정도를 못 모아내겠는가? 그 표를 한 정당에 모아주면 국회의석 300석의 10%에 해당하는 30석짜리 유력 정당을 단박에 만들어낼 수 있다. 그건 비정규직 노동자나 청년도 마찬가지다. 선거제도만 제대로 고치면, 상당한 힘이 있는 소상공인 대표 정당, 비정규직 대표 정당, 청년 대표 정당 등이 들어서면서 사회경제적 약자의 삶이 확 달라질 수 있다. 선거제도 개혁은 정말 “먹고사는 문제”다.
*초대 기후변화대사를 역임한 정래권 전 UN기후변화 수석자문관은 이 글의 공동 저자입니다.
지난 몇 주간 한국인들은 재임 기간 동안 저질렀던 부패로 인해 형사고발에 직면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반응과 관련해 끊임없이 쏟아지는 뉴스들을 접했다. 비록 이들 두 전직 대통령이 그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정치인이 사적 이익을 취한 것이 국가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인지 아니면 ‘국가 운영 시스템의 붕괴’가 더욱 심각한 문제인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 말기부터 시작해 지난 12년간 공공의 문제를 규명하고 해결책을 수립하여 이를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정부의 능력이 급격히 저하되어왔다. 우리는 적절한 자격을 갖춘 공무원의 정치적 위상 격하와 대기업으로의 권한 이양 및 부적격자인 정치인이 정부의 고위직에 임명됨으로써 직무를 수행하는 정부 관리들의 권한이 약화되는 것을 목격했다.
국가 운영 시스템에서 국가의 장기적인 복지보다 단기 이익을 더 중시하는 ‘비즈니스 친화적’ 접근방식의 장려는 정부 자체에 영구적인 피해를 가져왔다. 오늘날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홍보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반면에 실제 문제에 대한 용감하고 효과적인 장기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에는 거의 또는 전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많은 이목을 끌지 못하고 복잡한 문제 해결 과정은 미디어에서 감지되는 이미지보다 덜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정부 내에서 이러한 논쟁의 핵심은 규제 완화를 촉진하는 것인데 이는 문자 그대로 비범죄화를 의미한다. 그 결과 공무원들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에 대한 감시 관리 및 이들 영리 조직이 불법적이거나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오늘날 정책 결정 과정에서 추진 동력은 기업의 이익이 되었으며 정부는 장기적 정책을 수립하고 구현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한 문제는 규제 완화와 민영화가 연계되어 공공 인프라가 공익이 아닌 사익을 위해 운영되었기 때문에 더욱 악화되었다. 그러한 접근방식은 모든 차원에서 지역 사회에 대한 태도에 나쁜 영향을 가져왔다.
미세 먼지 대응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
한국에서 국가 운영 시스템의 붕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최근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는 대기 중 미세먼지에 대해 한국 정부가 전혀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부는 대중을 위해 오염 원인을 파악하고 장기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거나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데에 필요한 급진적 변화를 산업계에 요구하지 못하고 있다.
미세먼지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인식이 있으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코 마스크를 사용하거나 단순히 실내에 머무르고 있다. 그렇지만 정부 관리들은 시민들에게 공장 배기가스가 어떻게 이런 위험한 상황을 초래했는지를 말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울은 대기 품질 면에서 세계 최악의 도시 중 하나가 되는 시련을 겪었지만 환경부는 진지하게 대응 조치를 취할 수 없다.
정부가 미세먼지를 마치 눈이나 비와 같은 새로운 기상 유형인 것처럼 발표하면서 비 오는 날에 우산을 사용하는 것처럼 미세먼지 마스크를 착용하라거나 실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별 의미없는 문자메시지를 스마트폰으로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미세먼지는 근시안적인 단기경제성만을 앞세운 값싼 석탄,디젤등의 화석연료의 사용을 무분별하게 늘리면서 오염배출 규제를 업체의 자율규제로 전환하고 오염배출 측정을 민간 측정 대행업자들에게 위임한 ‘비즈니스 친화적’ 정책이 초래한 환경재앙이며, 정부가 취하여야 할 보다 근본적인 조치는 경고문자 발송이 아니라 석탄발전의 획기적 감축, 석탄발전소와 디젤자동차의 배출기준강화, 모든 배출오염원들에 대한 규제강화와 집행, 대중교통인프라의 획기적 개선과 확충을 통한 자가용 사용억제이다.
한국처럼 국민소득이 3만불에 달하는 나라에서 세계 최악의 미세먼지문제가 일상화 되고 있다는 것은 국가시스템의 총체적 붕괴를 의미한다. 인도 등 최빈국가들의 경우에는 재원과 기술 수준의 제약에 따른 문제로 볼 수 있지만, 한국의 경우는 재원의 문제도 아니고 기술의 문제도 아니다. 국가를 운영하는 정책 우선순위와 시스템의 문제이다.
환경규제 시스템의 붕괴
구체적인 사례를 보자. 2016년 12월 13일 의정부지방검찰청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경기북부지역의 미세먼지농도가 타 지역에 비해 극히 높은 점에 착안하여 공장등 대기배출시설이 밀접한 지역을 단속한 결과, 대기 및 수질오염물질 측정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27,458 장의 허위 측정 성적서를 발급한 측정대행업자, 환경관리업자 등 15명을 구속하고 관련자 17명을 불구속 기소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이들 업체들은 2011년부터 측정을 하지 않은 채 허위의 측정시험성적서를 발행하였는데 여기에는 의정부에서 제주에 이르기까지 전국각지의 생활 쓰레기 소각장에 대한 측정비 명목으로 21억 상당을 편취하였고, 화력발전소 건설사업등 환경영향 평가를 받아야 하는 대규모 건설사업을 포함한 588개 대상사업의 환경질을 허위로 측정하여 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하였으며, 무등록 환경영향평가업체가 정상적 영향 평가를 한 것 처럼 허위평가를 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이쯤되면 국가운영 시스템의 붕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이상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이러한 환경규제 시스템 붕괴의 실상을 모르는 일반 국민들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한국이 어째서 중국 보다 더 낟은 수준의 미세먼지 문제가 일상화 되고 있는지 의아해 하고 있다.
버스 표지판에서는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공기 중 미세먼지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모든 버스와 자동차를 전기 차량화하는 기한 설정이나 태양광 및 풍력 발전을 통한 전력 생산을 의무화할 수 없었다. 그러한 것들은 강력한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조치이며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은 그런 조치를 취할 수 없다.
지나치게 정부가 약해지면서 한국은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중국 경쟁사에게 밀릴 위험에 처해있다. 중국은 정부 정책을 통해 현명하게 전기 자동차로 대대적이고 신속하게 전환하도록 명령했으며 향후 10년간 단계적으로 석유 자동차가 폐지됨에 따라 글로벌 리더가 될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애석하게도 한국에서는 근시안적인 비즈니스 친화적 정책으로 인해 정부 기능을 약화시키도록 압력을 가해온 결과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다. 미래의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 전기 자동차는 거의 존재감이 없는 상태이다.
심지어 자동차는 대기오염의 주요 원인이 아니다. 한국 통상산업자원부 보고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5년 사이에 가스 화력 발전소의 연간 전력 생산량은 58,000 기가와트에서 111,700 기가와트로 증가한 반면 석탄 화력 발전소의 전력 생산량은 134,900 기가와트에서 203,800 기가 와트로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한국에는 59기의 석탄 화력 발전소가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지난 10년간 석탄 사용이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늘어났다. 2015년까지 10기의 석탄 화력 발전소를 폐쇄할 계획이었다. 그렇지만 2021년까지 20기의 석탄 화력 발전소 추가 계획은 취소되지 않았다.
한국인들은 전력 낭비를 조장하도록 전기 사용료에 대한 보조금이 지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대규모의 태양광 및 풍력을 사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인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거나 컴퓨터를 켤 때마다 미세 먼지가 생성된다. 그처럼 더러운 전기에 대한 의존과 대기품질의 관계를 망각한 결과가 바로 2006년 이래 매년 전력 수요가 2.5% 증가한 이유이다.
정치인들이 미세먼지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고 몇몇 시위가 있었다. OECD 보고서에따르면, 2010년도 1만7천명에 달한다고 경고하고 있음에도 정부가 위협에 대처할 효과적인 정책을 시행할 수 없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누구의 책임인가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시스템 붕괴를 정부책임만으로 돌리는 것도 해결책은 아니다. 민생이라는 구호아래 장기적인 생명보호와 맑은 공기보다는 근시안적인 이윤추구에 급급하여 값싼 전기를 요구하고 환경규제를 기업에 대한 부담으로 보고 비즈니스 친화적인 환경규제완화를 부추긴 기업과 언론의 태도도 바꾸지 않는 한 정부의 정책 기조도 바뀌기가 어렵다.
뿐만이 아니라 국민들도 이제 정말로 미세먼지를 걱정한다면, 길거리에서 시위를 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2016년도 현재 48.1%로 달하는 석탄발전으로 공급되는 더러운 전기대신 전기료를 더 내더라고 깨끗한 전기를 공급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여야 한다. 더 이상 언론의 전기값 인상이라는 겁주기에 주저하지 말고 전기값보다 생명이 더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혀야 맑은 공기를 마실 자격이 있다. 값싼 전기를 달라고 요구하면서 동시에 맑은 공기도 달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석탄 발전이 과연 얼마나 싼 걸까. 2016년 기준 석탄발전은 kWh 당 78원이며, 청정연료인 액화천연가스(LNG)는 100원이라고 한다. kWh 당 겨우 22원의 차이 때문에 우리의 생명을 담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격 차이가 나는 것은 석탄 발전에 따른 대기오염배출 기준을 낮게 유지하기 때문이다. 일본, 독일 등 선진국들도 석탄 발전을 하지만, 한국과 같은 미세먼지문제를 겪지 않고 있다. 그 만큼 강화된 배출기준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석탄발전에도 일본, 독일 등 선진국과 동일한 배출 기준을 적용한다면 LNG발전과의 가격 차이는 사실상 사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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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문제는 단순한 환경재앙이 아니라 국가시스템 붕괴의 증거이지만, 붕괴된 시스템을 바로 세우는 것은 정부만의 몫은 아니다. 더러운 전기와 깨끗한 전기를 구분하는 시민의 의식과 요구, 근시안적인 비즈니스 친화 만을 앞세우는 언론과 기업의 전기값 인상이라는 겁주기 보다는 신재생 에너지 신산업의 개척이라는 보다 미래지향적인 자세의 전환이 함께 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우리는 석탄 발전소와 관련된 모든 계획을 즉시 취소하고 향후 5~10년간 한국이 에너지를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태양광 및 풍력에 대한 막대한 공적 자금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더욱 야심적인 계획을 수립할수록 더욱 많은 공무원과 시민들이 더 열심히 일하게 될 것이다. 모든 건물에는 태양전지판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모든 자동차, 비행기 및 기타 표면에 박막 태양전지 도입을 의무화해야 한다. 그리고 에너지 낭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엄격한 단열 규제를 모든 건물을 대상으로 시행해야 한다.
환경부의 예산을 대폭 늘리고 환경부에서 공장의 자체 보고에 의존하기보다는 철저한 검사를 실시하고 점진적으로 엄격한 규제를 시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무원 제도를 다시 활성화하여 기획 및 규제가 가능한 강력한 정부 부문을 창설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정부 보조금을 통해 1년 내에 석유 자동차를 전기 자동차로 대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는 정부가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중국 문제가 있다. 비록 중국에서 발생한 오염물질들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미세먼지는 한국에서 만들어지므로 엄격한 배기가스 규제를 시행하는 한편 대기를 오염시키지 않도록 공장을 설계하고 자동차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시를 설계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한국인들이 중국 정부가 오염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은 조치를 취하기 원한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중국은 끊임없이 한국의 우수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한국이 매우 엄격한 배기가스 규제를 시행할 경우 중국은 그 정책을 벤치마킹할 것이며 따라서 긍정의 순환을 만들어 낼 것이다.
끝으로 강력한 정부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대중에 대한 교육이다. 정부는 모든 주요 공장의 정확한 배기가스 수준을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건물의 에너지 효율에 대한 공개 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시민들에게 에너지와 대기오염에 대해 교육을 제공할 토론회를 개최해야 한다. 그러한 토론회는 시민들이 함께 모여 음식과 향응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개선할 방법과 대기오염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아동 대상 교육 내용에는 대기오염 원인에 대해 객관적이고 심층적인 분석과 함께 필요한 해결책이 포함되어야 한다.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등이 지원하는 동남아 국제개발 사업에 참여했던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옆의 외국 단체는 모두 사업을 어떻게 잘할 것인가 토론을 많이 하는데 한국 팀들은 각자 컴퓨터 앞에 앉아 보고서 쓰기에 바쁘다고 한다. 외국의 한국학 연구소에 관계하는 교수들은 한국 정부의 연구지원비를 받으려면 보고할 것이 너무 많아 짜증나서 다시는 지원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실제 정부가 발주하는 각종 공모 사업을 하다 보면 지나치게 까다로운 영수증 처리 작업에 질릴 정도다. 마치 “너희는 돈을 떼먹을 준비가 되어 있지”라는 의심을 받으면서 구차한 돈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된다.
지난 몇달 동안 한국의 모든 대학의 대학평가 담당 교수들은 교육부에 제출할 서류 준비에 날밤을 지새웠다. 그런데 그들을 더 힘 빠지게 만든 것은 점수 0.1점을 올리기 위한 각종 그럴듯한 ‘말 만들기’ 작업이었다. 그 알량한 정부 지원금에 목을 맨 대학의 슬픈 풍경이다. 그렇게 해서 지원을 받게 된 대학과 탈락한 대학의 교육 성취가 실제 크게 다를까? 그래서 지원을 독식한 대학들이 정말 한국 대학교육을 선도하고 있을까?
‘진보’ 교육감이 들어서고 정권이 바뀌어도 교육당국에 제출할 각종 보고사항 처리나 지원비 따내는 일에 머리를 맞대느라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은 여전히 수업과 학생지도를 뒷전으로 돌려야 한다. 교사들 사이에서 교육문제를 토론하는 일은 오래전에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데 교육부는 교사를 평가하고, 교사는 학교생활기록부를 채우기 위해 학생의 모든 활동을 평가한다. 지금 학생들은 평가받으러 학교에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두 번의 평가 결과에 따라 개인과 조직의 운명이 좌우되는 사회에서 평가자는 수치화된 점수나 등급 매기기 시험을 선호하게 된다. 그래서 애초에는 졸업장을 자격증으로 인정하자는 로스쿨 변호사 양성 제도도 결국 시험 제도로 퇴행했고, 시험을 거쳐 입사하지 않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도저히 못 받아들이겠다는 공기업 정규직 청년들의 분노가 거세다.
예산을 집행하는 관료들은 예산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집행하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변명할 것이다. 수량화된 점수로 등급을 매기지 않고서는 이해 당사자들이 그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정, 절차가 해당 조직의 미래와 존립의 이상을 압도하면 자발성과 창의성의 싹은 아예 자랄 수도 없을 것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한국은 관료적 형식주의와 신자유주의적 효율성의 논리가 완벽하게 결합하여 성과 평가의 큰 칼이 모든 학교, 정부, 공기업의 문화를 지배하는 ‘평가국가’가 되었다. 평가 절차가 빈번하고 평가 방식이 더 정교해질수록 평가자 즉 관료의 권력은 더 커지고, 평가받는 쪽은 더 무력화되며, 그들의 온 삶은 피폐해진다.
물론 평가권력의 창궐은 사회의 도덕적 진공 상태와 맞물려 있다. 한국에서 시험 성적, 정량평가 방식이 이렇게 위세를 떨치는 이유는 그것 외에는 믿을 만한 사회정치적 권위체나 이상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 사법부 등에 대한 신뢰 수준이 언제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거의 최하위에 머물러 있는 불신사회에서 평가권력의 힘은 더 커진다. 특히 시민사회의 자정능력이 약하고 전문가 집단의 직업윤리가 없다는 것이 큰 원인이다. 직업집단 자체의 이상과 성취의 기준이 없으니 평가권력이 개입해서 본말이 전도되는 현상이 생긴다.
평가 만능주의는 구시대의 자의적 권력행사보다 진일보한 것처럼 보이나, 그것은 ‘합리’의 이름으로 ‘비합리’를 은폐할 수 있다. ‘기회의 평등’ 없이 ‘과정의 공정’은 허구적인 것이다. ‘실적’을 말하기 전에 그 실적이 무엇에 쓰기 위한 것인지 먼저 물어야 한다. ‘단기적 실적’, ‘성과’, ‘경쟁력’을 내세우는 평가권력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바로 ‘평가권력’을 제대로 심판할 수 있는 정치적 지도력과 사회적 권위가 필요하고, 재벌과 경제관료들 간의 오랜 공생관계를 끊을 수 있는 사회정치적 대항력이 있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비극은 정작 평가받아야 할 집단, 세력, 세대는 평가의 무풍지대에 있고, 평가와 무관하게 꿈과 실력을 키워야 할 사람들은 매일 지독한 평가의 칼날 위에 있다는 점이다.
달러는 국제 금융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다. 국제 금융거래의 대부분이 달러로 이루어진다. 달러는 궁극의 안전 자산으로 여겨지는 통화이다. 그러나 미국 달러의 패권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 종말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종종 약한 달러를 요구했다. 분명 이는, 그의 주장처럼,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자국 통화를 절하함으로써 미국을 상대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는 나라들에 대응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말이란 하찮은 것이며, 트럼프의 그러한 언사 자체가 달러의 향배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달러 지위의 실질적인 훼손은 보다 은밀하게 이루어지는데, 이는 미국 국가재정의 안정성과 신뢰성 그리고 제도적인 견고함을 서서히 갉아먹는 정책들로부터 나온다. 미국에서 시작된 국제 금융위기와 같은 금융 대란의 시기가 오면, 공황 상태에 빠진 투자자들은 미국 채권 시장으로 몰려든다. 의심할 여지 없이 미국 국채 및 기업 채권 시장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러의 이러한 위상을 설명하는 데는 보다 미묘하고 더욱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 신뢰다. 중대한 금융 관련 의사결정을 동반하는 통화와 주식시장으로의 자금 유출입을 살펴보면, 겉보기에는 냉담하고 감정에 좌우되지 않을 것 같은 의사결정에서도 신뢰가 왜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국내외 투자자들의 신뢰를 불러일으키고 이를 유지하는 제도에는 공개적이고 투명하며 견제와 균형으로 작동하는 민주정부 시스템이 포함된다. 이는 정치의 직접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운 중앙은행과 독립된 사법부가 관장하는 법의 지배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정부 부채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과 트럼프가 조장하는 경제적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달러의 지위가 강고한 것은 바로 미국 제도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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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강고함이 일시적인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현재 대부분의 국제 금융거래는 달러 표시를 기본으로 하고 달러로 결재되며 때로는 미국 금융기관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경솔한 재정정책이 변동성을 높이고 달러의 가치를 침식할 수 있다고 투자자들이 믿게 되면, 상황은 매우 빠르게 변화할 수 있다. 현재도 여타 통화의 거래비용 감소 그리고 중국의 위안화 등 신흥 시장 통화의 부상은 국가 간 거래의 통화 표시와 결재수단으로서 달러의 역할을 이미 잠식 중이다. 중국과 남한은 “국제거래통화”로서의 달러에 의존하지 않고 자국 통화를 사용하여 거래한다. 원유와 여타 상품 등 사실상 모든 계약을 달러로 표시한다는 논리는 쇠퇴하고 있다. 다른 힘들이 작동하는 것이다. 트럼프 통치 하의 미국은 무역과 군사 및 여타 합의에서 점점 더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로 인식된다. 미국의 국제적 신뢰가 손상되었고, 또한 트럼프가 다른 국가들을 통제하는 무기로 달러를 휘두를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져왔다. 그 결과 여타 국가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을 거치지 않는, 그들만의 결재 시스템과 채널을 구축하는 중이다. 어쩌면 지배적인 교환수단으로서 지위가 쇠퇴한다고 하더라도, 달러는 여전히 여타 통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안전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타국 중앙은행들을 비롯한 외국 투자자들이 달러 자산을 포기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미국의 제도는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건재하다. 그러나 이를 당연하게 여기다가는 커다란 비용을 치르게 될 지도 모른다. 과거 미국 정치 시스템이 심각한 불안에 빠졌을 때, 독립적인 사법부가 뒷받침하는 자유언론이 잘못을 시정하는 기제로 작동해왔다. 공화당이 다수파인 의회의 방조 속에, 트럼프는 이 모든 제도들을 공격하고 있다. 달러 패권은 단지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힘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미국 제도의 지속성과 그 활력에 달려 있기도 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서서히 약화시키는 부분이 바로 이러한 제도들이다.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들마저도 언젠가 후회하게 될지 모른다.
“남북 평화회담의 훼방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리석은 짓이거나, 워싱턴 네오콘의 정말로 사악한 계획이다.”
큰 형격인 미국과 들러리 남한이 북한과의 접경지역에서 대규모 공군 훈련을 벌이기로 한 결정을 달리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미국이 북한 국경에서 무력을 과시할 때면 언제나 그랬듯이 북한이 발작을 일으켰음은 물론이다. 분노한 북한은 이번 주로 예정된 후속 남북평화회담을 취소했다. 떠들썩하게 논의되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이제 취소되거나 연기될 위험에 처했다.
북한의 격분을 누가 비난할 수 있나? 트럼프 행정부를 대변하는 이들이 평화와 밝은 미래에 관해 떠드는 사이, 미국 공군은 B-52 중폭격기와 최신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를 준비시키고 바다에서는 미사일로 무장한 잠수함이 숨어드는 상황에서 말이다.
이 도발은 미국과 마지못한 속국 남한이 올 봄에 계획 중인 두 차례의 주요 군사훈련 중 첫 번째다. 북한이 군사훈련의 메시지를 파악하지 못할 경우, ‘극한의 천둥(Maximum Thunder)’이라고 명명된 두 번째 훈련이 기다린다.
또한 이는 트럼프와 충직한 네오콘 인사들이 이란과의 합리적 핵합의를 파기해버린 직후였다. 트럼프는 이란에게 핵무기 능력의 포기는 물론(이란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핵탄두가 장착되지 않은 중거리 미사일의 폐기,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의 헤즈볼라 및 예멘의 후티 지원 중단, 이스라엘을 자극할만한 일은 아무 것도 하지 말 것, 시리아에서의 철수를 요구했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향후 정권교체로 이어질 수 있는 완전한 항복의 요구로서 홀딱 벗으라는 식이었다. 북한을 향한 격려는 당연히 아니다.
골수 네오콘 존 볼턴이 평화협상을 훼방하고 있다는 북한의 비난은 정곡을 찌르는 것이었다. 2005년부터 2006년 사이 볼턴은 부시 행정부의 유엔 대사로 재직했다. 무슬림과 러시아에 반대하고 이스라엘에 친화적인 정책의 전통을 확립했고, 이는 떠버리 네오콘이자 현재 유엔 대사인 니키 헤일리로 이어진다.
수년간의 협상이 진행되고 난 이후인 2005년과 2006년에 미국과 북한은 핵/평화 협상 타결에 가까이 다가섰다.
여기에 볼턴이 나타났고, 북미 협상을 훼방 놓는 데 성공한다. 왜 그랬던가? 골수 네오콘 볼턴은 광적일 정도로 친 이스라엘 성향이었고, 북한이 이스라엘의 적들에게 핵무기 기술을 제공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네오콘에게는 이스라엘의 이익이 미국의 국익에 앞선다. 트럼프가 새로 임명한 국무장관 마이클 폼페이오 역시 열렬한 네오콘이다.
지난주 볼턴은 미국 텔레비전에 나와, 리비아가 걸었던 바로 그 경로를 북한이 따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실제로 암시했다. 당시 리비아 통치자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Kadaffi)는 파키스탄으로부터 약간의 핵무기 관련 장비를 구입했고,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 이후 협력의 제스처로 이를 미국에 넘겨줄 수 있었다. 대대적인 축하 속에 핵관련 장비를 미국에 넘겨주고 나자, 미국과 프랑스 그리고 영국이 리비아를 공격했고 카다피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불운했던 리비아 통치자는 결국 프랑스 간첩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것이 볼턴이 북한과 관련하여 염두에 두었던 것인가? 북한에서는 분명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 사람들은 볼턴 그리고 어쩌면 폼페이오도 북한과의 협상을 훼방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들은 적어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둔감하고도 호전적이다. 트럼프 역시 이러한 모의의 일부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이에 행복해 할 수는 없다. 트럼프의 수하들과 그에게 아부하는 인간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기도 전에 트럼프의 노벨상 수상을 떠들고 있다.
어쩌면 동북아시아에서의 막대한 투자를 보호하기 위해 미군이 무력을 과시하는 중일까? 펜타곤은 한반도의 핵 타결 제의를 비관적으로 바라본다. 평양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달콤하고도 밝은 소식이 너무도 듣기 좋아서 사실일 리가 없다는 것이다.
다수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핵무기 포기를 믿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란을 상대로 하는 트럼프의 기만과 카다피 살해를 목격하고 난 이후에는 더욱 그렇다고 본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비핵화를 이야기하면서, 북한은 왜 남한과 오키나와, 괌, 그리고 7함대에 배치된 핵무기의 제거를 미국에 요구하지 않는가? 이 중 많은 핵무기가 북한을 겨냥한다. 미국 핵무기는 인도양에 위치한 디에고 가르시아 섬 기지에 배치되어 있고, 일부는 비밀리에 일본에 숨겨졌다.
전쟁 위험을 고조시키는 봄과 가을의 군사훈련은 단연코 중지되어야만 한다. 고강도 경제전쟁으로 이어지는, 북한에 대한 무역제재를 끝내야 한다.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확립해야 한다.
지금 세간에선 재정개혁특위를 보유세특위라고 부르고 있다. 재정개혁특위가 개선을 논의하는 세금이 한두개가 아니건만 재정개혁특위가 보유세특위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은 ‘부동산공화국’ 혹은 ‘부동산 인질사회’라고 불릴 정도로 부동산에 목을 매는 나라다. 가계 자산의 8할이 부동산인 나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사정이 이렇다보니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칠 요인에 시장 참여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당연하다. 더구나 보유세는 양도소득세 이상으로 시장참여자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슈다. 재정개혁특위는 6월 중으로 종부세 개편안부터 내놓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병구 재정개혁특위 위원장은 △공시가격 실거래가 반영률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 △종부세 과표구간 및 세율 개편을 시사한 바 있다. (종부세 강화안 내달 발표..거래·재산·임대소득세 하반기 논의(종합))
나는 재정개혁특위가 현행 종부세 틀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공정시장가액비율만 현행 80%에서 100%로 상향하는 수준의 개편안을 발표하지 않길 강력히 희망한다. 그런 정도의 개편안은 미봉이며, 부동산 불로소득의 공적 환수라는 신호를 시장에 전혀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조세개혁안을 만드는 특위라면 대한민국의 적폐 중 으뜸이라 할 부동산 불로소득과 정면대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마땅하며 최소한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는 GDP의 1%수준의 보유세 강화를, 중장기적으로는 GDP의 2%수준의 보유세 강화 로드맵을 발표하는 것이 옳다.
보유세가 집값 안정효과가 없다고?
한편 보유세 개편안 발표가 임박하자 벌써부터 보유세 강화 효과가 없다거나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뉴스토마토〉의 ‘보유세 개편 초읽기…전문가들 “집값 조정 불가피“‘이라는 기사를 보면 심교언 교수와 박인호 교수의 발언이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보유세 개편과 같은 정부 정책으로 주택 가격이 변하는 것은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한정된다”, “보유세가 수요엔 영향을 미치지만 공급이 워낙 부족한 강남 집값 안정화에는 실패할 것”, “보유세 개편 타깃은 강남 지역인데 이미 강남 지역 집을 팔 사람들은 1~3월까지 다 판 상황”, “매물이 추가로 나와 급락할 가능성은 없으며 세금을 3~4배 올려봐야 약간의 하방 압력만 가해질 것”라며 보유세 강화가 집값 안정에 미치는 효과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심 교수는 보유세의 기능을 오해하고 있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사실상 없애는 정도로 보유세가 강화되는 수준이라면 특히나 강남처럼 투기적 가수요가 집중되는 지역에서 집값안정 효과는 미미할 수 있다. 그러나 보유세를 중장기적으로 국민총생산의 2%수준까지 올리겠다는 정책의지를 천명하는데도 강남 등에 투기적 가수요가 건재하고 집값이 요지부동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보유세가 그런 정도로 강화되면 투기적 가수요는 현저히 줄어든다. 투기적 가수요가 격감하면 다주택자들이 주택을 시장에 매각하려고 앞다퉈 나서기 마련이며, 투기목적으로 주택을 구매하려는 사람들도 사라진다. 그런 상황이 되면 다른 특별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주택 가격은 하향안정화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보유세의 본령은 부동산 불로소득의 공적환수이며, 가격안정효과는 부수적 효과라는 점은 늘 기억해야 한다.
또한 심 교수는 강남 등 지역의 공급이 워낙 부족하다고 말한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워낙 부족한 강남 등은 공급을 늘려야지 보유세 등을 통해 수요를 억제한다고 해서 집값이 안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심 교수의 논지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강남 불패’라고 알려졌지만, 강남의 아파트 가격도 2010년부터 2013년까지 폭락한 적이 있다. 2011년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2.2% 하락한 데 비해 강남·송파·강동구는 3.41~4.69% 떨어져 낙폭이 훨씬 컸던 것이다. 심지어 2012년 서울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이 6.6% 떨어지며 휘청거리는 동안 강남구는 무려 9.46%, 서초구·송파구·강동구는 7~10%가 폭락하며 시장에 충격과 공포를 안긴 경험도 있다.
그때는 지금보다 강남에 공급이 차고 넘쳤었단 말인가? 그 무렵에도 강남의 주택보급률은 100%를 하회했다. 단지 강남의 아파트 값이 폭락하던 시기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여파로 투기적 가수요가 소멸했던 것이고, 2014년 이후에는 대한민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난데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일관된 부동산 경기부양 올인 대책이 누적적으로 작용해 투기적 가수요가 완연히 살아났던 것이다. 입만 열면 ‘수요’와 ‘공급’을 외치는 사람들이 명심할 것이 있다. ‘수요’라면 어떤 ‘수요’라도 좋단 말인가? 최소한 ‘실수요’와 ‘투기적 가수요’는 구분할 줄 아는 양식과 지각은 갖추었으면 좋겠다.
보유세가 ‘전가’된다는 위협
위에서 언급한 <뉴스토마토〉의 기사에는 보유세 전가도 거론됐다. 박인호 숭실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가 “보유세가 높아지면 중장기적으로 주택 소유자가 나중에 팔 때 세금을 보충하고 싶어 한다”, “수요와 공급이 불균형을 이루면 세금을 세입자에게 전가하거나 향후 매수자에게 전가해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발언 한 것이다. 보유세 강화 논의가 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보유세 전가론’이 또 고개를 내민 것이다. 보유세 전가론의 논지는 간명하다. ‘부동산 부자들에게 보유세를 중과해봐야 소용없다. 부동산 부자들은 임차인들이나 매수자에게 자신들이 부담할 보유세를 전가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부자들을 잡자고 만든 보유세가 결국 서민들만 죽이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보유세 전가론’은 시장의 매커니즘에 대한 악의적 오해나 무지에 기반한다. ‘보유세 전가론’은 부동산 소유자들을 전능한 능력자로 상정한다. ‘보유세 전가론’은 부동산 소유자들이 마음 먹은대로 매매가격이나 임대료를 조정해 자신들은 보유세를 한 푼도 내지 않고 모조리 매수인이나 임차인에게 전가할 수 있다는 비현실적, 비시장적 가정을 전제로 한다. 그게 가능하다면 당장 지금이라도 보유세 소유자들이 매매가격이나 임대료를 마음대로 올리지 않을 까닭이 무엇이란 말인가? 경제학 교과서에도 나와 있듯이 토지 같이 공급이 비탄력적이고 수요가 탄력적인 재화는 조세의 전가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건물의 경우 조세 전가의 가능성이 있지만 전월세 상한제 같은 제도를 도입해 전가의 가능성을 봉쇄하면 된다.
조세 전가가 여의치 않다는 사실은 종부세 케이스에서도 경험한 바 있다. 참여정부 당시 종부세를 세금폭탄이라고 비대언론들이 저주하고 부동산 부자들은 민란이라도 일으킬 기세였다. 당시에도 종부세는 전가될 것이고, 애먼 서민들만 곡소리가 날 것이라는 비아냥이 많았다. 결과는 어땠는가? 조세 전가는커녕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말해 보유세는 전가되지 않으며 일부 전가시도가 있더라도 정부가 능히 통제할 수 있다. 죄 없는 서민을 볼모로 삼는 ‘보유세 전가론’은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파산을 선고받았다.
“여기에서 나는 사람입니다.” 히틀러 별장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남부 독일의 작은 휴양도시 베르히테스가덴에 있는 생필품 체인점 ‘데엠’(dm) 입구에 붙은 파트타임 구인공고가 인상적이었다. 창업자 괴츠 베르너는 모든 독일인에게 ‘조건 없는 기본소득 1500유로’를 지급해 억지로 노동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신조를 가진 기업가이다.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로 불리는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노동 존중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 행각에 온 나라가 분노하고 있다. 한국식 재벌체제가 경제성장의 견인차에서 걸림돌로 반전되었다는 진단이 나온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였다. 그럼에도 재벌체제는 세습으로 더욱 공고해졌고 재벌들의 영향력은 경제를 넘어 정치, 사회, 문화(언론)에까지 확산되었다. 세계경제 성장을 견인하던 한국경제는 그 사이 세계경제 성장에 견인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모피아’를 효시로 하는 ‘관피아’, 노조 탄압에서 출발한 ‘갑질’과 같은 신조어가 탄생했다. 대주주는 총수, 오너, 사주 등으로 참칭되는 ‘봉건적 자본가’의 지위에 올랐고 원래 자유롭다는 노동자는 ‘(외거)노비’쯤으로 전락했다. ‘정경유착’이란 비난에 맞서 재벌 1세대를 옹호하려고 내세우던 ‘기업가 정신’ 논리는 2세, 3세로 세습되면서 사라졌다. 오히려 부실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경영능력이 도마에 올랐고 끊이지 않는 ‘갑질’이 ‘오너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헌법에 규정된 ‘인간의 얼굴을 가진’ 경제질서가 현실에서는 지극히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실현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국가의 책임이 크다. 수출 주도 경제성장을 명분으로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기조는 특히 대기업과 대주주의 위법, 불법 행위를 방조하는 ‘관피아’가 곳곳에서 암약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를 사후적으로나마 교정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법부는 ‘사법부 독립’을 방패막이로 ‘전관예우’를 마음껏 누리는 적폐로 전락했다.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는 헌법 제119조 ①항은 기업을 기업가와 동일시하면서 기업가의 사익 편취를 뒷받침하고 있고 “경제민주화를 위한 규제와 조정”에 관한 ②항은 사실상 사문화되었다. ‘경제성장에 기여한 공로’가 감형과 사면의 사유가 되고 회삿돈을 수십 억 원 횡령해도 변제하면 죄를 묻지 않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한반도 신경제지도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전달되면서 남북경제협력에 대한 기대가 달아오르고 있다. 접경지역 땅값과 관련 기업의 주가가 서둘러 치솟고 있다. 하지만 경제통합은 고속철도나 고속도로의 연결만을 뜻하지 않는다. 법과 제도는 물론 윤리와 문화의 통합이기도 하다. 북한 경제의 재건에서 남한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북한이 이를 수용하여 남북경제협력이 ‘남한 갑질경제’의 대북 이전으로 이어지고 통일이 ‘한반도 갑질경제’를 낳는다면 ‘나라다운 나라’는 요원해질 것이다. 서독의 슈미트 전 총리는 통일 후 회고록에서 ‘조국’을 재건하겠다는 동독인의 열정을 통일과정에서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쉬웠다고 적은 바 있다. 그로 인해 경제적 성과가 미흡했을 뿐만 아니라 ‘게으른 동독인’의 인상을 남겼고 동독인의 자존심을 충분히 살려 주지 못했던 것이다. 당초 서독 정부는 ‘경제화폐동맹’을 제안했지만 동독 정부가 ‘경제사회화폐동맹’으로 확대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동독 주민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장받았다. 아울러 서독 노조는 동독 노동자들에게 통일 후 3년에 걸쳐 동독 노동자의 임금을 서독의 7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약함으로써 연대의 가치를 실천했다. 한반도 통일과정에서는 북한주민의 권익을 누가 보호해 줄 수 있을까. ‘한반도 갑질경제’가 되면 북한 주민은 남한의 비정규직 아래 새로운 제4신분쯤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면 괜한 기우일까. 통일 30년을 눈앞에 둔 독일에서 동독 출신 주민과 그 2세가 ‘2등 국민’의 지위에서 제대로 벗어나려면 반세기는 더 걸릴 것이라는 진단이다. 남북 경제통합이나 통일도 ‘사람 중심’의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한반도 갑질경제’를 차단하려는 적폐청산의 길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사단법인 다른백년은 고려대학교 평화와 민주주의연구소와 함께 오는 5월 18일(금) 저녁 7시 고려대학교 정경관에서 백년포럼을 개최합니다.
사단법인 다른백년은 ‘대한민국 권력지도’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사회권력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권력지도’ 프로젝트의 중간발표 형식으로 개최되는 이번 백년포럼에서는 제7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한민국 권력지도1 – 누가 기초지방자치단체를 지배하는가”라는 주제로 진행합니다.
한반도 전체가 4.27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선언에 흥분하고 있던 시점인 지난 4월27일과 28일 양일간 중국 삼국지 이야기의 한축이었던 오나라의 수도 우한에서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인도의 모디 수상이 아름다운 호수인 동호의 산책길을 걸으며 때로는 쉼터에 앉아 중국 명차를 나누면서 격의없는 회담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손을 잡고 도보다리에서 이야기를 나눈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어쩌면 인류 역사에 세기의 회담으로 기록될 만한 대사건이 될 수도 있는 만남에 대해 양국은 오히려 의도적으로 과도하게 보도되는 것을 자제하는 등 조용히 넘어가면서 더욱 궁금증을 일게 하는 측면이 있다. 예컨대 회담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를 공식적인 정상회담이 아닌 비공식적인 사인(私人)간의 만남처럼 다루면서, 의제도 미리 조율하고 선정하지 않은 채 격의없는 대화의 형식을 취한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사진 출처: 경향
여기서 당시 한국언론들이 보여준 호들갑과 보도의 태도에 대해 한마디 지적하고자 한다. 판문점 회담이 끝난 후 문재인 대통령은 곧바로 트럼프 미대통령과 아베 일본수상 등 세계 주요 지도자들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회담의 결과를 설명한 반면에, 시진핑 주석은 상기의 우한 회담으로 전화연결이 되지 않았고 북경으로 복귀한 후 며칠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통화가 가능하였다. 이를 두고 마치 ‘중국패싱’ 운운하면서 시주석이 서운한 심정에서 의도적으로 전화를 거절한 듯한 뉴앙스의 추측 기사가 여러 곳에 실렸다. 세계정세와 흐름에 어두운 국내 어리석은 언론들의 속좁은 식견이 벌인 해프닝으로 ‘우물안 개구리’라는 속담이 이를 두고 한 말인 듯 하다.
대국에 둘러싸인 반도에 위치한 국가의 입장에서 지정학과 지경학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특히 근현대사의 전개과정에서 난삽하게 드러난 국제정세에 대한 무지함과 무책임 그리고 망각증을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 역사에서 배움이 없으면 미래로 나갈 수 없다는 격언에도 불구하고, 현하 목격하듯이 한반도에서 냉전의 마지막 해체작업이라는 시대 흐름을 역류하는 자유한국당의 막가파식 무책임한 발언과 무뇌아적 황당무계한 처신에는 탄식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
나렌드라 모디 수상과 인도 경제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격동하는 한반도 정세의 주역으로 등장하였듯이, 국제정세 흐름의 새로운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라는 대국의 수상이자 인도인민당의 지도적 인물 그리고 향후 경제전망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고자 한다.
모디는 1950년 생으로 ‘불가촉천민’ 바로 위에 위치한 빈민 중심의 수드라 계층 출신이다. 10대부터 열차와 거리에서 차를 파는 잡상인으로 사회생활을 출발하여, 30대 젊은 시절 인도국민당에 입당하면서 입지전적 성공과 출세를 거듭한 사람이다. 학력으로는 델리에 있는 통신대학을 간신히 수료하였고 후에 구자라트주의 수상으로 취임하면서 주립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수여받는다. 독실한 힌두교인으로 하루 4시간 정도의 짧은 수면을 취하면서도 매일 요가와 명상의 수련을 빼먹지 않는 지독한 일벌레로 알려져 있다. 구자라트주 수상 당시 발생한 힌두교도의 무슬림 집단학살을 방조했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흔들림 없이 개혁과 경제정책을 추진하여 세계가 주목할 만큼 놀라는 발전의 성과를 이룬다. 인민당이 다수 여당이 된 유리한 정치환경에서 2014년 국민들에 의해 직접 선출되어 인도의 수상에 취임한 이래, 외국인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신용등급을 단계단계 올려가며 지난 수 년간 인도의 연 성장률을 한때 중국을 능가하는 7-8%대로 끌어올린다.
지난 세월 인도는 20여개 주의 세법과 거래관행이 모두 달라 경제와 산업을 인도라는 하나의 대륙으로 통합하기 어려웠으나, 모디는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안고, 기득권층과 소상인 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합세법(Common Service Tax)의 도입을 강행하였고, 내로라 하는 전문가와 경제정책 관료들의 극심한 만류를 뿌리치며 2015년 가을 단하룻밤 사이에 화폐개혁을 신속히 단행하였다. 일정 금액 이상의 부동산 거래와 투자에는 반드시 자금출처의 소명을 의무화하는 등 부패와 기득권을 혁파하고 개혁하는 과정에서 작년부터 성장률의 일시적 저하라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인생 역정에서 보여준 예의 모습대로 인도의 강점인 IT기술을 기반으로 줄기찬 정부혁신, 환경친화적 농촌(Clean India), 제조업중심( Made in India), 전자상거래와 금융의 투명성, 소규모 중소기업 중심과 벤쳐산업 육성 등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2,800불 수준의 인도 GDP가 조만간 5,000불을 달성하고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중진국 대열에 합세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한 회담의 의미와 배경
비공식 만남이라는 핑계로 일체의 성명과 합의 내용의 공개가 없었지만 양국 지도자의 우한 회동에 대한 중국방송과 외국신문에 비친 여러 기사와 보도를 종합하면서 필자 나름대로 지난 4월 27-8 양일간 있었던 회담의 의미와 배경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본다.
첫째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1949년 이래 줄곧 발생한 중인(中印)국경분쟁의 봉합과 조정에 대한 첫걸음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아래의 그림자료에서 보듯이 중국과 인도의 인접지역은 히말라야 산맥 지류의 고산지역으로 네팔과 부탄의 두 나라가 자연스레 거인 국가들을 갈라놓고 있지만 동쪽으로는 시킴 지역과 부탄에 인접한 인도령 아르나찰프나데시주 주변을 둘러싼 변경, 그리고 서쪽으로는 중국과 파키스탄을 연결하는 악사이친 회랑지역이 항상 분쟁의 불씨로 남아 있으면서 실제로 지난 수 십년 간 몇 차례의 군사충돌이 있었으며 최근에는 2017년 6월 춤비 계곡의 동트람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로 인하여 수백 명씩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특히 중국 입장에서는 야심적으로 추진하는 일대일로(BRI, Belt & Road Initiative)의 주요 투자국가인 파키스탄과 연결하는 인도 경유의 수송통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태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면서 양국간의 긴장과 대립이 매우 높아진 상태였다.
분쟁직후 모디가 백악관을 방문하여 트럼프를 끌어안은 당시, 이를 보도한 신문자료를 살펴 본다.
2017.06.27일(현지시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인도 정상회담이 이뤄진 전날 중국과 인도 동북부에서 도로를 건설하던 중국군 부대와 인도군 부대 간 충돌이 빚어졌다. 이 사건을 다룬 27일자 중국 관영언론 환구시보에는 “인도는 중국 앞에서 거만을 떨 주제가 아니다. 국내총생산은 중국의 4분의 1이고 군비투자는 3분의 1이니 중국과의 국경 분쟁은 조심히 접근하는 게 최선” 이라는 사설이 실렸다. 관영언론으로는 지나친 표현이다. 마찰이 발생한 지역은 인도와 중국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는 국경분쟁지역 중 하나인 춤비(春丕)계곡으로 부탄과 인도 영토 시킴(Sikkim)을 연결하는 핵심 길목이다. 중국 견제를 위한 전략적 동반자로서 인도를 중시했던 오바마 대통령과 달리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ㆍ기후변화 등 의제에서 모디 정부와 입장 차이를 드러내 왔지만, 26일 회담에서 모디 총리는 “미국의 번영과 성공이 인도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선언해 사실상 ‘미국 우선주의’에 지지를 표명하는 것으로 트럼프를 구워 삶았다. (이상인용).
모디는 국경분쟁으로 갈등중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불만스러운 트럼프를 끌어안고 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일방적 미국우선주의를 비난하고 세계경제포럼에서 개방적 자유무역 원칙을 옹호한 시진핑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왔다. 결국 나날이 심해지는 미국 중심의 일방주의에 크게 실망한 인도는 미국 일변의 의존관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중국과 러시아 등과 협력관계 구축이 간절했고 이를 위하여 수십 년간 지속된 중인(中印)국경분쟁부터 종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우한의 회동을 통하여 양국 지도자들은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일체의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하여 문제의 분쟁지역에서 정기적인 군사합동 훈련을 실시하고, 만약을 대비하여 항시적인 대화채널을 유지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번째는 미국과 일본이 수 년째 공을 들여온 중국봉쇄전략에 일방적 편입을 거부하고 다변다극한 국제정세의 흐름 속에 인도의 독자적인 입장을 굳건히 했다고 보여진다.
특히 일본은 지난 10여 년간 미일을 중심으로 한 태평양 동맹에 한국과 호주를 넘어서 인도를 편입시킴으로써 중국의 진출로가 인도양과 태평양으로 확장되는 것을 봉쇄하고 아시아 권역에서 일본의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인도와의 전략적 수준의 협력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엄청난 공을 들여왔다.
2015-2-30에 보도된 불룸버그의 보도내용을 살펴보면, 모디 수상과 아베 수상 간 정상회담을 통하여 미국을 대신한 듯 핵실험 중단에 따른 민간 핵기술 협력, 150억 달러에 달하는 고속 철도 건설, 경제개발 촉진을 위한 124억 달러 자금지원 그리고 중국의 해양확장을 막기 위한 해군 훈련 등을 합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이후 인도는 인도양에서 미일과 함께 연례적인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실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실망이 커지고, 더불어 일본이 약속한 경제지원과 고속철도의 공사 등이 여러 가지 이유로 지지부진하여 지면서, 인도는 미일의존관계를 벗어나 기존의 BRICS관계망에 더하여 상해협력기구SCO, 아세안 안보포럼 ARF, 유럽연합 등으로 다양하게 접촉을 넓혀가면서 다변적 균형을 추구해 가는 행보를 보여 왔다.
한마디로 시진핑과 우한에서 양인이 단독으로 사전의 아젠다 없이 만나 흉금을 열고 부담없이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의 메시지는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중국봉쇄 전략에 인도가 가담하지 않고 균형적이며 독자적인 행보를 유지하겠다는 것을 전세계에 천명한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양인의 회동이 중요한 것은 인구가 각자 13-14억에 달하는 거대한 양국이 지난 2백여 년간의 서세동점 속에 수모와 비참함을 벗어나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을 성취해 가고 이들 양국이 과거 인류역사에 차지했던 정치적 경제적 비중이 되살아 나면서 향후 국제사회와 미래의 향방에 거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에 있다.
이러한 관점을 아래의 두 개의 도표가 정확히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도표1. 영국 연구기관에서 작성한 지난 2,000년간의 GDP 비중
도표2. 산업혁명 이후 2015년 까지 GDP 비중의 변화 by ECRI(Economic Cycle Research Ins.)
도표1은 지난 2,000년간의 경제비중을 보여주는 곡선의 조합으로 영국에서 작성한 탓인지 인도의 비중이 우리가 추정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나고 있고, 압도적 제국이었던 당(唐)과 인류 최초로 상업의 시대를 연 송(宋)나라 그리고 청(淸) 3현제 시대의 풍요로 40% 수준 이상의 비중을 차지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중국의 수치가 상대적으로 적게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산업혁명이 있기 전까지 지난 18세기 동안 중국과 인도의 경제적 비중이 전세계의 50-60% 수준까지 육박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역으로 19세기 이후 2세기간 유럽과 미국 그리고 러시아를 포함하여 구미 지역이 번성을 구가하면서 약 50-60% 수준의 비중을 차지하다가 근래 들어서 급격히 축소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도표2를 참조하고 이를 PPP기준으로 재조정하여 판단하면, 2017년 기준으로 유럽과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공히 15-17% 정도, 중국은 20%, 인도가 5-6% 수준으로 추정된다. 일본과 한국 그리고 동남아를 포함하면 아시아의 비중은 이미 50%를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은 여전한 기술력과 군사력 그리고 달러라는 국제통화의 발권력을 기반으로 제멋대로 국제적 질서와 교역의 기준을 임의로 무시하거나 변경하고, 급기야 지난 5월 초에는 주요 국가들과 13년간 합의 통해 이룬 ‘이란핵합의’를 2년만에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이란과 협력을 지속하는 국가와 기업을 대상으로 세컨더리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세계대전의 위험까지 내다보며 외국 주요 언론들은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고 보도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중동 발 세계전쟁이 없길 바라지만,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제재가 이란과 관련 국가들에게 일시적으로 심각한 충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바라보면 결국은 미국의 급격한 퇴조와 함께 미국의 강요에 굴복한 국가들 역시 선택에 따른 상당한 부담과 손실을 감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합의를 깬 대가로 국제사회에서 지위가 심각하게 위축당할 것이다.
특히 중국과 인도, 그리고 러시아가 정치경제적으로 강력하게 연대하여 대응할 경우에는 미국이 가하는 충격은 대해(大海)에 잠시 이는 일과성의 파랑에 불과하며, 오히려 이들 국가들이 지니고 있는 거대한 자원과 잠재력이 향후 사태의 진행을 좌우하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필자는 중국과 인도의 두 지도자들이 어떤 정도 깊이의 인식에서 어느 수준의 이야기와 합의를 도출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위의 도표가 지난 2,000 년 간의 기록으로 보여주듯이, 역사적 도시 우한에서 우연을 가장해 이루어진 회담의 결과로 중국과 인도의 관계가 대결에서 협력을 한층 강화하는 방향으로 자리잡게 되면, 이는 한 세기 이상 인류의 미래를 좌우하는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역사의 간계를 지금처럼 깊이 느껴본 적이 없는 필자는 중국방송에 기고된 한 칼럼의 글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현대 중국과 인도 양국은 서구 국가들에 비해 매우 낙후되었다. 이런 양국이 협력을 통해 발전의 시대로 들어서면, 동양의 문명이 되살아 나게 될 것이고 아시아의 새로운 세기가 열리게 될 것이다. 세계는 지난 세기에 겪지 못한 변화의 시대를 지나고 있으며 동양 문명의 재출현(부활)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추세이다.”
In modern times, both China and India lag behind Western countries. If China and India develop through cooperation, it will help to revive oriental civilization and create a new century in Asia. The world is undergoing a major change that has not existed in a century. The re-emergence of Eastern civilization is an irreversible trend.”
하와이에 위치한 미국 태평양사령부 사령관인 해리 해리스(Harry Harris) 제독은 주호주대사로 임명되어 이달 중 업무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4월 24일, 트럼프 행정부는 돌연 해리스 제독이 주한대사로 지명되었다고 발표했다.
여러 면에서 이러한 지명은 유례없는 일이었다. 한국 정부가 북한과 평화 무드를 조성하려는 시점에 군 장성을 대사로 임명해 한국과 동아시아로 파견하는 것은 예사 일이 아니다.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를 둘러싼 민감한 이슈를 감안할 때 일본 극우와 친밀한 군 장성을 임명했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어머니가 일본인이고, 그가 일본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이 지명을 반대할 수는 없겠지만, 하필 해리스 제독이 주한대사로 지명된 순간 그에게 “욱일장(Order of the Rising Sun)”이 수여된 사실은 참 기묘하다.
주한미국대사로 지명된 미국 태평양사령부 사령관 해리 해리스 제독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고문과 학대가 자행되는 동안 그가 한 일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고문과 학대는 주도 면밀하게 구성된 법률의 사각지대 내에서 이뤄졌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떠들썩한 불법행위에 개입되면 경력이 끝장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 살고 있다.
애당초 많은 호주인들은 호전적인 맹렬 반중(反中) 해리스 제독의 호주대사 임명을 반기지 않았다. 말콤 턴불(Malcolm Turnbull) 호주 총리는 전 총리인 토니 애벗(Tony Abbot)이나 케빈 러드(Kevin Rudd) 보다는 중국에 대립각을 세우는 입장이었으나 보수적인 재계의 반대는 여전히 무마하지 못하고 있다.
미 군부 내 반중파에게는 중국과의 전쟁 추구를 반대하는 호주 내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해리스 제독이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중국의 경제압박과 채굴, 농업, 교육 등 호주 내 현안 때문에 골드만삭스조차 턴불 총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해리스 제독의 호주대사 임명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게다가 그는 보통 군 장교가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중국에 대항할 동력을 이끌 적임자다. 또한 그는 격식이나 군대의 법칙에서 벗어나 조롱과 도발을 쏟아내는 언행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런데 중국과 맞서기 위해 중요한 또 다른 국가가 있었으니 바로 한국이다. 한국에도 대중(對中)관계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목소리가 크다.
주한미국대사로는 극우파 퇴역 육군장교인 제임스 터먼(James Thurman) 전 사령관이 일찌감치 내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왜 마이크 폼페이오 (Mike Pompeo) 미 중앙정보부 국장(현 국무부장관)은 마지막 순간에 해리스 제독으로의 변경을 요청한 것일까?
이 급선회에 관한 자료는 내 평생 공개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의도는 분명하다.
최근 남북한은 11년만에 처음으로 남북회담을 갖고 합의를 도출했고, 4월 28일 발표된 공동선언문을 보면 양측이 상호협력을 위해 전반적인 의견을 나눴음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수주 또는 수개월 내에 남북한의 휴전상황이 끝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이 평화협정을 원하느냐 아니냐는 사실 상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남북관계가 급진전해 트럼프 대통령의 뒤에 버티고 있는 미 군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자, 그들은 한국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해리스 제독 같은 거물급 인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혹여 협상의 성공이 아시아 내 미국의 입지를 흔들고, 그동안 미국이 전투기와 군함, 잠수함 수의 급증을 정당화하기 위해 중국과의 전쟁 상황을 조성한 마지막 순간에 군축을 하게 될까 우려하는 쪽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중국과의 광범위한 군사대결을 추구하는 쪽에서 큰 목소리를 내왔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미국 정부 내에는 해리 해리스만큼 가차없이,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은 중국, 일본, 러시아와의 정치, 경제적 통합과 동시에 북한과의 화해를 위한 여정을 시작했고 이것이 거대한 물결이 될지도 모를 일이므로 미국으로서는 이를 막기 위해 그 무엇도 망설이지 않을 누군가가 필요하다.
추악한 해리 해리스의 출세가도
해리 해리스 제독의 경력은 그가 2006년 3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관타나모수용소[1]의 사령관으로 복무한 이후 도약했다. (부시 정부에 의하면 제네바 협약의 대상이 아닌) 이 비밀 군시설이 수용자들에 가학 행위를 하는 장소로 쓰였다는 기괴한 이야기는 수용소 경비요원이었던 조셉 힉맨(Joseph Hickman)의 저서인 Murder at Camp Delta 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이 책에서 힉맨은 해리스의 재임 기간에 발생한 수용자 3인의 죽음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당시 이 죽음은 “자살”로 발표되었는데, 최초 보고에 따르면 이 수용자들은 (정말 자살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헝겊을 목 깊숙이 밀어 넣는 방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6년간 조사를 계속한 끝에 힉맨은 이 수용소에서 향정신성 부작용이 있는 말라리아 치료제를 의도적으로 남용 투여해 수용자를 정신적으로 파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모든 일은 해리스의 묵인 또는 감독 하에 일어났다.
힉맨이 “미국의 전투실험실”이라고 칭한 이 곳에서 해당 약에 대한 결정을 내린 사람이 해리스다.
당시 운영된 고문 프로그램과 관련된 행위로 감옥에 간 사람은 CIA 전 직원인 존 키리아코 (John Kiriakou)가 유일한데, 놀라운 것은 해당 범죄행위를 대중에 공개했다는 이유로 형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는 해리스가 운영한 고문 프로그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프로그램에 인체실험도 있었다는 믿을 만한 주장이 있습니다. 상상도 못하겠고, 정말 끔찍합니다.”
이는 살아있는 수용자를 대상으로 은밀하게 화학전 연구를 진행한 것으로 악명 높은 일본제국 육군 소속 731부대와 닮았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승진한 고문 캠프 관리자는 비단 해리스 뿐만이 아니다. 현재 CIA 국장으로 지명된 지나 해스펠(Gina Haspel) 역시 광범위한 고문 프로그램을 감독했고, 그 결과 꾸준히 승진할 수 있었다.
해리스 당시 사령관은 이 수용자들의 사망원인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살을 두고 공공연히 아래와 같은 모욕적인 발언을 했다.
“그들은 똑똑하고, 창의적이고, 투지가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목숨에도, 자신들의 목숨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절망해서가 아니라, 우리에 대한 비대칭전의 일환으로 자살을 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더 존스 (Mother Jones) [2])
그는 끔찍한 정신적 학대로 목숨을 끊은 수용자들의 죽음을 비인간적인 적군의 사악한 음모로 치부했다.
이렇게 뻔뻔스러운 언동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소되지도 않았고, 해고는 커녕 연달아 승진을 한 끝에 2013년 태평양 함대의 사령관에 임명되기에 이르렀다. 같은 해 5월에는 예상을 깨고 하와이 소재 태평양사령부 전체를 이끄는 사령관으로 선발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승진의 시기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당시 태평양사령부는 군대의 전략적 계획과 책무를 약화시킨 맹목적 군국주의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했다. 태평양사령부에는 기후변화를 가장 중요한 안보위협으로 다뤄야 한다고 공언하는, 안보의 개념을 완전히 재정립하고자 하는 무리가 주요한 분파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그 중 많은 이들은 기후변화 및 기타 안보 문제와 관련해 중국과 협력이 가능하고, 나아가 미국을 위해서 중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수십년간 태평양사령부는 전기배터리와 기타 대체에너지 인프라 개발을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에 전념해왔고, 태평양 및 동아시아 지역 국가와 힘을 모아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관련 재해 발생 시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 글로벌 프로젝트를 시작한 바 있다.
말하자면 태평양사령부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파트너 국가들과 새로운 동맹의 초석을 쌓고 있었고, 이 프로젝트가 확대되었다면 한국전쟁 이후 미국 군대를 정의해 온 군사동맹체계에 직접적인 도전이 되었을 것이다 (엔드류 드윗(Andrew DeWit)).
결과적으로, 태평양사령부는 기후변화 대처 및 여러 협력 분야에서 중국과의 광범위한 논의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은 2016년 9월 3일 항저우회담에서 발표된 버락 오바마 (Barack Obama) 대통령과 시진핑 (Xi Jinping) 주석의 선언에 잘 드러난다. 이 회담에서 양국은 기후변화 대응에 힘을 모으고 군사협력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이 상황은 수익을 보장해 줄 (그리고 군 장교에게는 안락한 퇴직생활을 보장해 줄) 값비싼 함정과 전투기를 계속 팔아야 하는 무리에게 매우 거슬릴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태평양사령부가 연2회 열리는 환태평양해군합동연습, 일명 림팩(RIMPAC)에 중국 해군을 포함하기로 결정하면서 보수파들은 더욱 화가 났다. 이는 태평양사령부가 미 군부 내 존재하는 중국의 위협이라는 슬로건을 부정하는 것이자, 미국 정계의 로비스트 그리고 단지 “중국의 위협”이 아닌 인종주의적 정치의 일부로 삼는 미 본토의 극우단체로부터 정책독립을 선언하는 것을 의미했다. 태평양사령부 내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이들의 사상을 믿기 어려워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보수진영의 반발이 커짐에도 불구하고 사령부 내 기후변화 대응 노력은 수그러들 기미가 없었다. 이러한 대결구도는 2013년 3월 9일, 당시 사령관인 새뮤엘 라클리어 (Samuel J. Locklear III) 제독이 하버드대학교에서 한 연설에서 기후변화를 태평양지역의 가장 일차적인 장기 안보위협으로 꼽으면서 정점에 이르렀다. 너무 당연한 사실이라 청중은 하품을 했을지 모르지만 사실 함축된 의미를 생각하면 획기적인 발언이었다 (보스턴글로브(Boston Globe)[3]).
태평양사령부 前 사령관인 새뮤엘 라클리어 제독
높은 지적 업적으로 “군대의 하버드”로 알려진 라클리어 제독은 기후변화를 안보정책의 우선순위로 삼고, 화석연료 축소를 추진하고자 하는 태평양사령부 내 강력한 한 분파를 대표한다. 퇴역장교들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The Burden”은 화석연료의 악영향을 기후변화 뿐 아니라 군대의 효율성 측면에서 파헤치며 사령부(그리고 다른 부처들)의 관련 노력을 가장 잘 담아내고 있다.
우파진영이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았다면 라클리어 제독이 하버드에서 한 연설로 미국의 전략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도 있었다. 즉, “테러와의 전쟁”에서 벗어나 기후변화에 중점을 둔 더욱 복잡한 전략이 탄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특수부대와 정보부 예산으로 이익을 추구하거나, 전통적 항공모함전투군과 까다로운 전투기로 부를 축적하는 군부의 실세들은 이러한 상황을 용인할 수 없었다. 라클리어는 (대부분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지만) 즉각 군 내부의 맹공을 받았다. 2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가차없이 그의 자리는 해리 해리스에게로 넘어갔다.
해리스는 과거 관타나모 때와 같은 이유로 태평양사령부에 배치되었다. 반대파를 누르고 실무전문가의 반대를 넘어 최악의 미국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해리스가 중국과의 협력을 끝내거나 사령부의 기후변화 연구를 중지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일찍이 태평양사령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유력한 정계인사로 부상해 일본에서 많은 연설을 했고 (일본인들은 그를 토종 일본인으로 여긴다), 호주와 기타 아시아태평양 국가에서도 연설했다. 그의 연설은 객관적으로 전략을 평가하거나 과학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인 정치 비난에 가까웠다.
해리스도 수십억 달러를 가진 독립 연구단체를 통제할 수는 없었다. 이들은 재생에너지와 환경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해왔고 결코 포기할 뜻이 없었다. 다만 해리스는 안보 관련 논의는 그가 강조해온 “항행의 자유(freedom of navigation)[4]” 캠페인에 초점을 맞추도록 했다. 결국 “항행의 자유”란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의 섬들 인근 해역으로, 때로는 배타적경제수역 12해리 넘어서까지 미국이 정기적으로 군함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듣기 좋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필요한 도발(중국 군함이 정기적으로 하와이 해안 근처까지 항해를 한다면, 또는 미국의 하와이 영유권을 문제 삼는다면 미국은 어떻게 반응할 지 상상해보라)이 태평양사령부 전략 계획의 중심이 되었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군부 내 “중국과의 전쟁”을 추구하는 분파는 트럼프를 강력히 지지했다. 트럼프와 오랜 유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주장을 후원해줄 누군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특히 러시아 또는 이란과의 전쟁을 계획하는 그룹, 또는 “테러와의 전쟁”에 많은 투자를 한 그룹을 반대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들은 또한 기후변화와 같은 비전통적 안보 이슈에 배정되는 예산 그리고 많은 예산을 배정받는 작은 분파의 예산을 통제하기 위해 분투했다.
군대의 성격 변화
트럼프처럼 해리스도 언론에 흥분 섞인 발언을 쏟아내며 주목을 끌었고, 자신만의 헌신적인 지지자들을 확보하게 되었다. 다소 거친 스타일에 특유의 매력이 있기도 하고, 사람들은 그를 고지식할 정도로 솔직한 사람으로 인식한다.
네이비타임즈(Navy Times)는 중국전문가 보니 글레이저(Bonnie Glaser)가 한 다음의 말을 인용해 해리스를 소개했다.
“그는 마음에 있는 말을 하고, 권력자에게도 진실을 얘기하되 공개적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희귀종이죠.”
“태평양사령부가 오늘밤 싸워야 한다면, 난 그 싸움이 정정당당한 싸움이 아니길 바랍니다. 칼싸움이라면 총을, 총싸움이라면 대포를, 그것도 미국 동맹국 모두의 대포를 가지고 싸울 겁니다.”
미국 태평양사령부의 사령관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저돌적이고 격앙된 발언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그는 지난 500년간 평화를 유지하고 전쟁을 막은 모든 군사 관례들이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며 떠벌리고 있다. 그런데 누구도 공격하지 않기 위해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하는 정부 관료에 지친 군 내부에서는 그런 해리스가 활기차고 신선한 존재로 비춰진다.
그러나 해리스의 영향력이 증가하는 것은 단순히 트럼프 당선 이후 “중국과의 전쟁”을 추구하는 분파가 부상한 결과만은 아니다. 미국 정부 내 전반적으로 군대의 힘이 커지고 있는 것과 연관이 있다.
2016년 선거 이후 워싱턴 행정부가 무너졌고, 이는 결국 정부부처 중 제대로 기능을 하는 곳은 군대 하나 남게 된다는 뜻이다. 미국 군대가 발생시키는 폐기물 총량을 생각하면 이런 발언이 터무니 없이 들리겠지만, 이상하게도 군대는 특유의 경직성 덕분에 오히려 정치인의 직접적인 개입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고, 그러므로 연방정부 그 어떤 부처에서도 불가능한 장기적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제2차 세계전쟁 이후 미국에 의해 정립된 글로벌 체계의 운영을 점차 미 군부가 수행하게 되었지만, 군 장교가 정의를 위해 싸우든 부패에 탐닉하든 간에 사람들은 군대에 접근하기가 어렵고, 군대라 하면 그저 탐사보도의 주제로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미국 정치를 이해하게 어렵게 되었다. 군 장교에게 제공된 가이드라인을 보면, 민간인은 물론 다른 정부부처 또는 군대 내 다른 부서와도 교류하지 못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따라서 그간 군대의 영향력이 매우 확대되었지만, 실제로는 그리 커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그보다 더 복잡하다. 군대의 중요성이 커진 것은 행정부 붕괴의 결과일 뿐 아니라, 시민사회 와해의 결과이기도 하다. 학계와 비정부기구, 재계, 기타 시민사회의 여러 영역을 이끌었던 거물들이 체계를 잃은 채 비겁해진 나머지, 결국 자기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용감하고 조직적인 모습은 군인만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브래들리 매닝(Bradley (Chelsea) Manning)과 에드워드 스노우든(Edwin Snowden), 제프리 스털링(Jeffrey Sterling)의 전설과 그 밖에 군부와 정보국 내에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이들이 그 결과다. 이들은 분명 군국주의에 반대했으나, 역설적으로 이들이 군대 내에서 행한 일들이 오히려 군의 정치적 역할을 강화했다. 이란과의 전쟁 같은 이슈를 논할 때는 민주당이 아니라 군 부대가 야당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새로운 세상의 주인은 해리스 사령관 같은 “각 지역 전투사령부”(아프리카사령부, 중부사령부, 유럽사령부, 북부사령부, 태평양사령부, 남부사령부 )의 사령관들이다. 이들은 각 국가별 대사보다 방대한 각자의 “책임지역” 내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정치인들의 방해공작에서 자유로이 스스로 예산을 관리한다.
이들의 행동이나 예산사용내역은 제한된 몇 명만 알 수 있고, 이들의 이름은 힘없는 정치인의 우스운 주장으로 가득한 일간지에는 잘 등장 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미디어의 주목은 피하면서 군대를 출동시키고 정책을 실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디어에 전면 노출되며 곤욕을 치러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보다도 큰 능력을 가지고 있다(마이클 클레어(Michael Klare)).
태평양사령부의 사령관은 수천억 달러의 예산을 집행할 수 있어 왠만한 대기업 CEO를 넘어서는 권한을 가진다. 또한 태평양사령부 사령관은 워싱턴 정가의 의미 없는 정쟁을 무시하고 정책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다.
해리스는 이전의 주한미국대사 후보였던 빅터 차 (Victor Cha) 조지타운대학교 교수와는 확연히 다른 인물이다. 빅터 차는 워싱턴 내에서 광범위한 컨설팅을 제공하는 학자로 북한을 악마로 묘사하여 (그리 되면 컨설팅 계약도 딸 수 있을 테니)군비증강의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CSIS(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한국실장이자 선임고문으로 일한 그는 주요 방산업체의 후원 하에 군사예산을 늘리기 위해 로비와 PR 활동에도 기여했다. 한편으로는 단순한 일반화를 지양한 실제적 연구를 통해 적대적제휴: 한국, 미국, 일본의삼각안보체제 (Alignment Despite Antagonism: The United States-Korea-Japan Security Triangle)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반면 해리스는 중국의 위협에 집중해 예산을 확대하고 자신들의 권력도 확장하고자 하는 1성 장교 및 2성 장교(제독)들의 리더에 가깝다. 이들에게는 2018년 1월 19일 대중에 공개된 국방전략보고서가 성전이나 다름없다. 이 보고서에 나오는 전략은 정보부와 특수부대가 이끈 “테러와의 전쟁”을 중단하고 “경쟁국가”와의 “진짜 전쟁”에 대비해 군함과 전투기에 방대한 투자를 재개하는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해당 보고서는 “규칙에 의존한 장기 국제 질서의 쇠퇴로 인한 점증하는 국제 무질서”를 언급하며, 그 원인으로 미국의 제도적, 구조적 문제는 물론 중국과 러시아, 테러 집단의 공격적 행보를 꼽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혼돈 속에서 금융과 무역, 무역과 안보의 경계가 무너지는 가운데, 해리스 역시 안보와 경제, 문화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하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더욱 증대시켰다. 트럼프는 트럼프 자신을 위해 일하지만 해리스는 분명한 목표 하에서 실질적 예산과 전문지식을 갖춘 장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일한다.
미 상원군사위원회는 2018년 2월 14일 청문회에서 해리스를 단독 증인으로 신청했고, 그는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 군대가 중국의 점증하는 위협에 대응하는 데 있어 재원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몇시간에 걸쳐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중국과의 전쟁에 대비할 것과 일본, 한국, 호주, 필리핀, 태국의 비용부담을 대폭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프랑스와 영국, 인도에 더욱 적극적으로 중국 대항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이 증언은 과장이 좀 심했지만 현재 상원군사위원회에서 논의 중인 2018년 국방수권법안 예산인 7천1백7십억 달러 (비공개예산을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을 것) 내에서 군함과 전투기의 생산 및 보수를 담당할 기업에 퇴역 장교가 컨설팅을 제공하거나 투자를 함으로써 벌 수 있는 금액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정부기관들에 조용한 전쟁을 선포했다. 정부가 적이 된 것이며, 공화당은 이러한 혼란을 긍정적 정치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 늦은 밤 트위터를 하며 정책을 구상하다 보니 정책검토나 책임은 피하고 의사결정 전에 전문가의 의견을 구할 필요도 없어졌다. 이렇게 백악관이 정책의 세부내용을 경시한 결과 군부 내 파벌의 힘이 또 한번 강화되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단계, 클린턴 정부 후반부에 시작된 군대 기능의 사유화의 최종 이식단계에 도달했다.
전쟁은 그 어느 때보다 돈벌이의 문제가 되었다. 전쟁은 곧 주가상승과 고위 군간부의 안락한 퇴직생활 문제인 것이다. 군대는 워싱턴 정가에서, 상원의회에서, 선거에서, 무기상만이 좋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지역에서, 끊임없이 전쟁을 외치는 로비스트에 돈을 대는 투자은행, 기술기업, 방산업체와 밀접히 관계되어 있다.
군장성은 모두 한때 순수하고 도덕적인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지지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지난 20년간 군대의 리더십이 눈에 띄게 약화되었음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려 깊고, 박학다식한 정책전문가로 1940년대 중국의 공산주의와 민족주의 간 화해를 위해 노력한 존 마샬 장군(General John Marshall) 같은 인물을 찾아볼 수가 없다. 마샬 장군은 본인의 임무라 생각하면 보상을 바라지 않고 불가능한 일에도 도전했다. 5성 장군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Dwight Eisenhower) 역시 퇴임사에서 “군산복합체”에 대해 경고를 날린 바 있다. 그가 돈을 벌기 위해 방산업체와 컨설팅 계약을 추구하지 않았음은 자명하다. 사실 당시로서는 그런 계약을 하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나, 오늘날이라면 거절하면 바보 취급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의회의 리더십 약화는 훨씬 더 두드러진다. 여러분도 제이콥 제비츠(Jacob Javits), 제임스 풀브라이트(James Fulbright), 애들레이 스티븐슨(Adlai Stevenson) 등 20세기 중반의 정치인들이 자신의 결함을 인정하고, 공공서비스에 헌신하여 밤낮 없이 정책의 세부사항까지 세심히 살피고, 미국의 장기적 전략을 개발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런 정치인들은 더 이상 어디에도 없다. 아마도 1997년 퇴직한 폴 사이먼이 마지막이었던 듯 하다. 오늘날 “정치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정책의 의미를 모호하게 이해할 뿐이다. 그들은 마치 아이스크림 가게 앞 어린 애들처럼, 그저 사람들에게 돈을 받기 위해, 미디어에 좋은 인상을 남겨 표를 더 얻기 위해 애쓰는 데 시간을 쏟고 있다.
대부분의 정치인과 비교하면 해리 해리스는 전문가로 느껴진다.
해리스는 공화정 시기 원로원의 권력을 남용한 과거 로마제국의 식민지 총독과 닮았다. 또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청나라에서 급부상한 군벌과 더 유사한 듯도 하다. 과거 중국 제국에서 이들 군벌은 자신들의 점령민들과 긴밀한 경제관계를 형성하고, 독립적인 경제적, 정치적 존재로서 어마어마한 정치권력을 얻었다.
청 왕조의 부패가 심해지자 제국은 군벌이 (다양한 외세의 도움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지역들로 쪼개지고 말았다. 이 군벌은 1940년대 내내 강성한 권력을 누렸다.
군벌은 서태후의 비밀궁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그 어떤 이보다 훨씬 많은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절망한 진보세력은 중앙정부는 개념조차 잡지 못한 개혁을 수행하기 위해 위안 스카이 장군처럼 진보적인 군 지도자에 주목했다. 그러나 위안 스카이도 스스로 황제가 되기 위한 시도 끝에 점차 무자비한 정치인이 되어갔다.
해리스가 한국에서 할 일은 무엇일까?
미 연방정부의 권한이 축소되고, 군 사령관 개개인이 권력이 확대되면서, 한국인들(그리고 다른 아시아인)은 점차 혼란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한국 국회는 힘 빠진 미 국무부가 여전히 한반도 문제에 결정권을 가질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태평양사령부가 명목상으로만 국방부장관의 명령을 받는다는 사실, 그리고 전 세계 다양한 권력기관과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국방부와 사령부가 비공개로 체결한 군사, 정보, 경제 협약의 복잡한 그물은 제1차 세계전쟁을 불러온 비밀외교와 유사한 폐해를 지니고 있다.
한국 미디어는 해리스라는 사람과 그의 배경을 심도있게 보도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북한과의 우호적인 관계 형성에 트럼프가 보내는 지지를 유지할 필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해리스의 역할은 한국이 빠르게 북한과 통합을 이뤄 미국과의 군사동맹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일 게다. 미 군부의 다수가 이 군사동맹을 통해 중국의 위협에 집중하고자 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을 한들, 보수적인 한국인들조차 실체가 없는 중국의 위협에 장단을 맞추도록 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의 경제력이 성장하고 그에 따라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외교력이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을 내세우는 트럼프 행정부의 성격을 비밀에 부칠 수는 없다. 국제법과 기후변화 대응에서 발을 빼기로 한 미국의 결정 역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손실을 안겼다.
만약 해리스에게 주어진 임무가 이란과의 전쟁에 한국을 줄세우는 것이라면, 그는 앞으로 상당히 어려운 일을 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는 그런 갈등을 원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은 중국의 위협도 달갑지 않겠지만, 그러한 군사행동의 결과 발생할 러시아와의 최후 결전은 더더욱 반기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해리스 제독이 주한대사로 임명된 것이 승진인지 강등인지를 두고 질문이 많았다. 물론 그는 권력을 더욱 확장하기 위해 한국으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기후변화 같은 중요치 않은 문제를 고집스레 연구하고 있는 태평양사령부의 분파는 앞으로 어찌될까? 앞으로 해리스는 한국이 호주, 일본과 함께 중국과의 전면적인 충돌에 대비해 전열을 갖추도록 하는 데에 모든 시간을 써야할테니 말이다.
2018년 5월 2일 발간된 미국 아시아정책 전문가 크리스 넬슨(Chris Nelson)의 “넬슨리포트 (The Nelson Report)”는 워싱턴에서 개최된 일본 사사가와 평화재단(Sasakawa Peace Foundation)의 연례 “미일동맹” 컨퍼런스에서 있었던 흥미로운 논의를 인용했다.
넬슨이 일본의 퇴역 해군 제독인 타케이 토모시마(Takei Tomohisa)에게 일본과 미국, 호주, 인도 해군이 중국과 힘을 합쳐 기후변화 및 그로 인한 해수면 상승에 대응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제안하자 그 자리에 참석한 누구도 여기에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이 시점에 미 태평양사령부는 안보, 특히 바다에서 점점 더 재앙적인 양상을 보이는 기후변화에 대해 어떤 의견을 내놓을까? 오랜 해군 군가 가사처럼, “호랑이 없는 굴에는 토끼가 왕 노릇하기 마련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단호하며, 분노로 가득한 지도자이다. 자신이 적으로 “선택한 사람들”에 대한 화염과 분노를 누그러뜨릴 생각이 전혀 없다. 합당한 존경을 받지 못 한다거나 충분한 제물이 주어지지 않을 경우, 그는 심지어 세상의 종말에도 서슴지 않고 덤빌 것이 분명하다. 한편 트럼프는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들에게, 권력과 막대한 부가 보장된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보상할 수도 있다.
이번 달에 트럼프는 이와 같은 두 가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을 만나, 이전에는 갈등과 불화 외에 아무 것도 없던 곳에 평화를 창조하며 미소 지을 것을 약속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파괴자로서의 트럼프는 미국이 이란 핵합의에서 빠질 것임을 공언하면서 세계를 파멸로 한 걸음 다가서게 하고 있다.
대단히 위선적인 태도이긴 하지만, 기이하게도 두 얼굴의 지도자에게는 일관된 것으로 보인다.
이란과의 합의는, 이란이 향후 10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핵을 가질 모든 가능성을 차단했다. 부유한 국가인 이란은 원하기만 하면 상당량의 핵무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란은 지금까지 현행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을 준수하여 왔지만, 트럼프는 이를 “끔찍한”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이란과의 핵합의를 “뜯어 고칠” 수 있다고 실제로 믿는다. 이는 상당한 착각이다.
이미지 출처: 매일경제
한편 핵무기 보유국 북한은 자국의 핵무기를 제거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한반도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하는 평화협정 그리고 미국이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맞바꾸는 조건에서 말이다.
미국의 약속?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미국이 이란에게 했던 이전의 공약들 그리고 새로운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의 존재를 고려한다면, 워싱턴의 약속이란 그들이 트위터에 적은 140글자의 가치도 없다. 북한이 그런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번 달 도널드 트럼프는, 최후의 억제 수단이었던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한 나라를 설득할 참이다. 핵 없는 국가로서의 새 출발을 허용하면서다. 트럼프는 이란과의 핵합의를 폐기하여 전쟁으로 향하는 거대한 발걸음을 내딛으면서, 동시에 북한에 대한 자신의 접근 방식으로 노벨 평화상을 거머쥘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사기성이 농후하고, 행정적으로 서툴며, 점점 성추행자임이 드러나는 미국 대통령의 동네 깡패 짓을 생각하자면 그럴 수도 있겠다. 더 이상 나아가지는 말자.
스콧 피츠제럴드(Scott Fitzgerald)는 언젠가 이렇게 썼다. “최고의 지성을 판별하는 기준은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생각을 머릿속에 가지면서도 제대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트럼프가 나타났다. 이란과 북한에 대한 두 얼굴의 접근법을 가지고 말이다.
전쟁과 평화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야누스는 두 얼굴을 지녔다. 한 쪽 얼굴은 과거를 들여다보고, 또 하나의 얼굴은 미래를 응시한다. 야누스는 어떤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변화를 관장하는 신이었는데, 이는 그가 전쟁과 평화를 책임지기도 했다는 의미였다. 플루타르크는 야누스에 관하여 이렇게 저술했다.
야누스는 로마에 신전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양쪽으로 여닫는 문이 달려 있었다. 사람들은 이 문을 전쟁의 문이라고 불렀다. 평화가 찾아올 때면 문이 닫히지만, 전쟁 중에는 신전이 항상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평화는 어려웠고 거의 찾아오지 않았다. 로마의 규모가 점점 커짐에 따라 주변 야만국들과의 충돌이 늘어났고, 이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거의 언제나 전쟁 중이었기 때문이다.
평화란 실제로 대단히 어려운 법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뉴욕타임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력 충돌을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다른 민족에 대한 피해를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올바른 접근법을 우리가 채택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강대국 중 가장 호전적인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펜타곤이라고도 알려진 제국의 수도, 그 신전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슬픈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2016년 대통령 선거 기간 중 분명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난 시기의 전쟁을 맹렬하게 비난하면서도 이슬람국가와 이란, 북한, 중국, 멕시코 등 다양한 적국들에게는 번개를 내리치듯 말 폭탄을 쏟아냈다. 미국이 해외에서 벌이는 모험주의에 대한 트럼프의 기습공격은 얼빠진 반 제국주의자들의 갈채와 실망한 일부 네오콘의 비판을 불러왔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의 트럼프는 막대한 군사예산과 더욱 강화된 드론 전쟁 그리고 전 방위적인 패권을 추구하는, 더욱 전통적인 안보정책을 신봉하여 왔다.
트럼프가 일반적으로 견지하는 호전적인 태도에 비추어, 북한은 기이한 예외이다.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애초부터 트럼프가 전임자들과 동일한 접근법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평양에 대한 제재의 수위를 높였고, 중국을 설득하여 이전 동맹국의 팔을 비틀도록 설득했으며,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을 지칭하며 무절제한 단어를 쏟아냈다.
그러더니, 자신의 울음 때문에 해가 떴다고 믿는 수탉처럼, 트럼프는 2018년 벽두에 일어난 북한에서의 반전이 온전히 자신의 공적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김정은이 2018년 동계 올림픽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사실상 미국의 행동에 대한 응답이 아니었다. 북한 내부의 상황(핵 프로그램의 진전과 정치권력의 공고화)과 2017년 취임한 문재인 한국 대통령의 제안에 대한 응답이었다.
트럼프의 자기기만과 트럼프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착각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우울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 예컨대 간섭주의에 반대한다는 켄터키 상원의원 랜드 폴(Rand Paul)을 생각해보자. 트럼프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종식과 관련하여 요란스럽지만 모호한 발언을 내놓은 이후, 폴 상원의원은 마이크 폼페이오의 국무장관 지명을 지지하는 데 동의했다. (사실상 트럼프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 수행을 위해 엄청난 숫자의 권력자들을 펜타곤에 보내왔다.)
트럼프를 가지고 놀면서 완전히 딴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 “트럼프와 귓속말을 주고받는 사이”라고 자신을 생각하는 일련의 사람들 중 가장 최근의 인물이 폴 상원의원이다. 여기에는 트럼프가, 아직까지는 그저 김정은을 만나겠다는 충동적인 결정 하나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지만, 노벨 평화상을 수상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모두 포함된다. 이들에게는, 노벨상 수상이 트럼프로 하여금 한반도 통일을 영원히 지지하게 만들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이 있다.
트럼프가 아무런 조건 없이 지지하는 유일한 단 하나는 트럼프 자신밖에 없다. 대통령 집무실을 차지하고 있는 거짓 신을 이런 식으로 달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란과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뮌헨 협정의 교훈
이란이 핵무기를 향해 치닫지 않도록 차단하는 합의가 중요하다는 점을 트럼프에게 설득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대단히 많다. 이들 명단의 맨 위에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떠난 전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이 있다. 전임 국가안보국 및 중앙정보국 책임자였던 마이클 헤이든(Michael Hayden)과 공화당 출신으로 전임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리처드 루거(Richard Lugar)를 비롯하여 52명의 국가안보 최고 전문가들이 보낸 서한이 그 다음 자리를 차지한다.
보다 최근에는,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이 자신의 전설적인 카리스마가 통하는지 보려고 워싱턴을 찾았다. 이는 트럼프를 구슬려,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이란의 구미에 맞도록 협상을 “타결”시키려는 분별없는 유럽판 유화전략의 일부였다. 일찍이 틸러슨은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영국에 압력을 행사하여 이란과의 현행 합의에 담긴 “우려 사항”을 지적하는 “실무단”을 조직하고, 이란이 여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려고 시도했다. 워싱턴을 방문한 마크롱은 “새로운 협약”을 꺼내들었다. 이는 유럽의 생각과 동떨어진 것이었고, 따라서 마크롱의 일부 동료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2017년 5월 25일, 미 대통령 트럼프와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이 만나 악수를 나누는 장면/ AFP PHOTO / Mandel NGAN
그런데 이틀 전,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그리고 마크롱이 “새로운 합의가 다룰 이슈들”에 관하여 미국과 “긴밀하게” 보조를 맞출 것이라는 성명을 내놓았다.
유럽은 망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1938년 뮌헨 조약에서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단 말인가?
아무 생각도 없는 트럼프의 방식과 좀 더 마음이 통하는 인물이 베냐민 네타냐후이다. 그는 이스라엘 총리로 재임하는 기간 내내 이란과의 전쟁을 독려하는 북을 두드려왔다. 이번 주 네타냐후는 방송을 통해, 이란이 실제로 핵무기 프로그램을 시도했다고 폭로했다. 글쎄, 그건 2007년쯤 뉴스 아니던가? 어쩌면 네타냐후는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관한 증거를 잔뜩 들고서 다음 방송에 나올지도 모르겠다. “네타냐후와 함께 보는 지난 10년”이라고 불러야 할까?
그런데 네타냐후의 “폭로” 시점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란과의 핵합의를 철저하게 파괴하기 위해서 결정타를 날리려는 트럼프 편에 서서, 프랑스와 독일이 그들의 몫을 했고 이제는 이스라엘이 그 뒤를 이었던 것이다.
트럼프를 진정시키려는 시도가 대단히 안 좋은 생각임을 사람들은 언제쯤 깨닫게 될 것인가?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가 바싹 불타버린, 수많은 행정부 관료들을 생각해보라. 이처럼 불나방 같은 행동은 자신의 도덕적 잣대마저 이상하게 만들어 버린다.
다가오는 충돌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협상이 가져올 최선의 결과는, 한국인들이 스스로 문제를 풀도록 트럼프가 내버려두는 것이다. 북한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며, 정권교체를 목표로 하는 군사전략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을 펜타곤에서 찾기는 힘들다. 어쩌면 복수심에 불타는 인물인 트럼프도, 김정은과의 그럭저럭 성공적인 회담이 끝난 다음에는, 북한에 관해 까맣게 잊을 수도 있다. 북한이 더 이상 그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란에 관해서도 똑같이 이야기할 수는 없다.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는 상황을 빨리 만들지 못해서 안달이다. 현재까지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공격은 시리아에 주둔하는 이란 군사력에 제한되어 왔다. 폼페이오와 새로운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은 이란의 정권교체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인물들이다. 이란과의 핵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이란 자체를 “손보는 것”이라고 트럼프가 믿는 것 같다.
파괴자 트럼프는 2015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전쟁에 정말로 능하다. 나는 특정한 방식의 전쟁을 좋아한다. 그러나 오직 이길 수 있을 때만 전쟁을 벌인다.”
이란과의 전쟁은 사실상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전쟁은 이란에만 국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와 중국이 그들의 동맹국을 지원하기 위해 나설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과 미국 편에 설 공산이 크다. 이 충돌은 적어도 중동 전체를 화염으로 몰아넣을 것이며, 이 불길은 다른 지역으로 쉽게 옮겨 붙을 수 있다.
솔직하게 말해서, 세계대전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란이 핵무기를 신속하게 확보하는 상황이 이란 핵합의 와해의 더 나은 결과일 수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격을 억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도널드 트럼프도 핵무기 보유국 이란과 비핵화협약을 타결하는 일이 중요하다는점을 깨닫게 될지 모른다. 북한과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북한 관계의 많은 전문가들은 6월12일 싱가포르 회담을 기정 사실로 받아 들였고, 특히 북미정상회담에 실무책임을 지고 추진했던 정의용 안보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취소시키기 하루 전날까지 성사 가능성을 99.9% 라는 자신을 피력하면서 0.01%의 실패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단언까지 하였다.
반면에 ‘다른백년’은 온라인 칼럼을 통하여 지난 수 개월간 지속적으로 즉흥적인 북미회담의 가능성에 회의를 품고 낙관론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여 왔다(3월24일자 – 북미정상회담 낙관하기에는 이르다, 4월27일자 – Kim-Trump 회담은 어음거래다, 5월22일자 – 김정은 위원장 얼굴에 흙을 뿌리지 마라 등).
이젠 역으로 필자는 6월의 정상간 만남이 무산이 된 현시점이 문재인 정부의 의지 여하에 따라 비로소 북미간의 관계가 제대로 개선되고 정상화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예측의 근거를 제시하기 전에 우선 무산된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의 무산 배경
우선,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의욕을 앞세운 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1987-88년 근저로 김일성 주석이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하는 조건을 제시하면서 북미간 정상회담을 희망하며 정전협정을 종전협정으로 전환하고 한반도의 평화체제 정착과 대미수교를 제안한 바 있다. 이후 북한은 같은 입장과 제안을 미국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하여 왔다. 평창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로 물꼬가 트인 남북의 화해 분위기 속에 북한은 위의 제안을 희망을 섞어 되풀이 한 셈이다.
북한 전문가로 알려진 조셉 윤이 CNN과 인터뷰한 내용을 참조하여 보면, 사실 북한 측은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예전처럼 남한의 평양방문단에게 던져 본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핵무력 완성에 따라 경제와 산업발전에 전력을 다해야 할 북한의 입장에서는 UN을 지렛대 삼아 미국이 강요하는 외교경제적 제재와 압박을 완화시키고, 산업화와 사회기반시설에 필요한 초기자본(seed capital)을 어떠한 형태로도 형성해야 할 내부적 긴박성이 있었으리라 점은 쉽게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를 과대 포장하여 백악관에 던진 셈이다. 북미간의 핵심은 평화체제의 구축이고 북한이 당당하게 국제사회에 등장하는 것이다. 반면에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의용 실장 등은 마치 미국의 제재와 압박이 결정적 역할을 하여 북한이 협상테이블로 나오게 된 것처럼 아부하고 모든 공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리는 실수를 하였다. 더하여 지난 십 수년간 북한과 중국간의 불편한 관계가 마치 루비콘 강을 건넌 것처럼 미리 예단하고 이번 기회에 북한을 한미일 동맹에 더하여 중국봉쇄전략에 편입할 수 있다는 상상의 시나리오를 미국에게 던진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이에 대하여 장사꾼 트럼프는 자신을 부동산 재벌에서 미국 대통령까지 이끈 자기중심적 계산과 자기과시적 승부사의 장점을 발휘하여 북한의 희망이 섞인 제안을 덥석 잡아 역제안 하는 방식으로 수용하게 이른다. 오바마가 하지 못한 일(All but Obama)을 내가 해낸다는 일종의 병리적 심리와 정치적 궁지에 몰린 입장에서 탈출용 대형 이벤트가 절실했던 그로서는 북미회담을 구원의 돌파구로 판단했거나 또는 게임 패를 던지듯이 활용한 측면이 있다 할 것이다.
그런데 기대했던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공화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그리고 진보적 언론으로 평가되는 CNN과 NYT 등 미국 주류 사회가 정작 이러한 결정에 대단히 부정적인 여론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물론 네오콘 등에 의해 조작된 내용이지만 지난 60여 년간 북한을 보는 미국인들의 대부분은 반드시 망해야 하는 독재정권(regime collapse), 근거가 없이 호전적인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는 권력을 교체시켜야 하는 대상(regime change), 인권의 무풍지대로 국제적 일원으로 인정할 수 없는 불량국가(rogue state) 등으로 강하게 인식하고 있어, 이들에게는 힘과 패권으로 국제질서를 책임져야 할 미국의 대통령이 사전적 합의와 양보 없이 북한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남북 정상이 함께 연출한 판문점의 극적인 이벤트 장면과 선행적으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는 북측의 선언 등이 미국의 여론을 일부 순화시키기는 했으나, 트럼프 자신도 김정은 위원장과 만남이 실패로 끝날 경우 돌아올 엄청난 비난과 후폭풍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만에 하나,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평화협정과 북미간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진다면 이것은 네오콘 및 미 군수산업에게는 재앙을 의미한다. 단순히 남한의 군사력 증강을 핑계로 팔아먹는 연간 수십억 달러 규모의 무기판매를 별도로 치더라도, 주한미군 및 주일미군의 역할과 위상을 조정하고, 수천억 달러의 예산을 집행하는 미태평양 사령부의 조직 전체를 새롭게 검토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지난 수십 년간 마음대로 조작하고 주물러 왔던 악의 축 나라를 한 순간에 정상적인 국가로 인정하여 외교적 관계를 수립하고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하는 상황이 분명히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전히 매파인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트럼프 지시로 한편에서는 미소를 짓고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 뛰어 다녔지만, 실제로 뒤에서는 남한과 북한까지 미국의 영향권에 강하게 구속시키기 위하여 6월 전역하는 미 태평양 사령관 해리 해리스 제독을 주한대사로 미리 내정하기도 했다. 구제불능인 악질적 네오콘의 중심축인 펜스 부통령과 볼턴 등이 던진 일련 발언들은 즉흥적이거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연막작전 수준의 발언이 아니라, 네오콘과 군수산업의 이해를 대변하여 북미회담을 훼방하고 성사되지 않기를 바라는 속내에서 터져 나온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트럼프의 즉흥적이고 이기적인 역제안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일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물론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북한에 대한 진정성이 한 축을 이루기는 했지만, 미국과 역사적 담판을 짓기 위해서는 반대편에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중국과 러시아 등에 국제적인 연대와 협조를 요청하는 것은 자연스런 과정이다. 더구나 이를 계기로 저강도 전쟁행위인 UN제재를 무력화하고 북한사회를 현대화하기 위해서는 절대적 조건인 중국의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비핵화를 추진해야 하는 북한으로서는 현실적이고 탁월한 선택이다.
중국 역시 역내의 안보불안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서 북한에게 비핵화 과정으로의 진입을 조건으로 대대적인 경제적 지원과 협력을 약속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미 북한 동해안 라인에 철도 사업을 착수한 러시아 역시 한반도를 통하여 철로와 육로 그리고 에너지 공급라인이 남한을 거쳐 일본까지 연결된다면, 경제제재를 포함한 미국과 격한 대립 중에 있으며 에너지 가격 및 판로의 불안정을 겪는 입장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하는 것을 지지하고 도와주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현재의 바둑판을 흔든 것은 명백하게 미국,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 기질의 그에게 당장 승부의 패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정치적 궁지에 몰려 있는 그에게는 11월 중간선거라는 피할 수 없는 일정표가 던져져 있다.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이다
필자는 처음부터 판문점회담과 선언이 불확실한 북미정상회담보다 열배, 백배 중요하다고 반복해서 주장하여 왔다. 국제사회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눈치나 살피며 미국의 지시에 따른 대리운전의 역할을 마감해야 한다. UN의 제재가 국제사회에 던지는 명분은 북한에게 더 이상 핵과 미사일 개발을 하지 말고 협상의 자리에 나오라는 충고를 겸한 강요이다. 북한은 이에 선제적으로 호응하여 국제사회를 향해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는 장면을 공개하였고, 북미정상회담에 성실히 임하는 일련의 과정을 밟아 왔다.
앞으로 전개될 과정의 길라잡이 역할과 책임은 다시 문재인 정부에게 주어졌다고 판단한다. UN내 원조부처가 요청해서가 아니라 남한 정부가 동포애적으로 판단해서 인도적인 사안부터 시작하여 신속하게 식량과 의약품을 대거 제공하고 필요하다면 대규모 의료진을 북한에 파견해야 한다. 개성공단의 조업을 신속히 재개하되, 당장 현금거래를 문제 삼으면 물물교환으로 대체하면 된다. 중기적으로는 UN 제재를 중단시키는 외교노력에 힘을 경주해야 한다. 제재결의를 풀어야 할 명분은 충분하다. 장기적으로는 미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주도하여 동포국가인 북한이 경제적으로 재기할 수 있도록 국제적인 기구들과 연합하여 가능한 모든 영역의 지원과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먼 훗날 이루어질 통일로 나가는 첫걸음이자 초석이다.
같은 민족이라는 명분으로 그리고 한반도라는 공간에 대한 역사의 주역으로 남한 정부가 적극적으로 상황을 타개하고 주도해 나가면, 중국도 러시아도 주변국가들도 호응해올 것이고 UN 역시 반가운 속내를 드러내며 반걸음으로 따라올 것이다. 결국 문제는 다시 미국이지만 당사자인 트럼프는 아직 문을 잠그지 않았다. 6월 24일자 CNN 분석기사 중 몇 귀절을 인용해 본다.
“결국 문제가 되고 말았지만, 김정은과 대화를 나눈 것은 훌륭했다. 언제가는 그와 만나기를 매우 기대한다. 한편 억류되었던 포로들을 석방해 가족들과 함께하도록 해준 것에 대해 사의를 표한다. 정말 멋진 제스츄어였고 높이 평가한다.” 트럼프 서신중에
I felt a wonderful dialogue was building up between you and me, and ultimately, it is only that dialogue that matters. Some day, I look very much forward to meeting you. In the meantime, I want to thank you for the release of the hostages who are now home with their families. That was a beautiful gesture and was very much appreciated.”
회담을 취소하기 전에도 북한에 대한 트럼프의 표현은 약간 혼란스럽다. 정상회담은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건이긴 했다. 좀 지켜보아야 한다. “일어나지 않을 수도, 아니면 나중에 성사될 수도 있다”고 그는 이번 주초에 언급했다. “당신들은 거래를 결코 이해 못하지, 나는 경험이 아주 많거든. 당신들은 정말 모를 거야, 회담은 6월12일 열리지 않을 수도 있어”.
Trump made on North Korea sounded like a bit of a jumble. The summit was going to be historic and no one other than Trump could have made it happen … or maybe it won’t happen at all. We’ll see! “If it doesn’t happen, maybe it will happen later,” Trump said earlier this week. “You never know about deals. … I’ve made a lot of deals. You never really know. It may not work out for June 12.”
취소를 결정한 이후,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보낸 서신과 그의 공개적인 발언들을 놓고 보면, 역사를 만드느냐 아니면 나쁜 거래를 받아들이느냐는 갈림길에서 그가 선택을 강요 받는다면 전자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표현대로 하자면 “채널을 고정시켜 !”. 정상회담의 취소는 분명히 퇴각이지만, 종결이 아니라 감질나게 하는 예고편인 셈이다
In the battle between making history and avoiding a bad deal, it would appear — from both Trump’s letter to Kim and his past public statements — that he favors the former, if and when he is forced to choose. Which means, in Trump’s own vernacular, stay tuned! This is a setback, quite clearly. But Trump seems to be signaling that this may well not be the season finale but rather just a mid-season twist.
트럼프는 애매모호한 여운과 혼란을 남겼다. 우리에게 주는 분명한 메시지는 후속편의 내용을 트럼프나 네오콘의 미국이 아니라 한반도의 주인인 배달민족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함께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에게 진정한 역사를 만들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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