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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특별재판부 설치법안 두고 사법권 독립 침해 운운하는 대법원 개탄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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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특별재판부 설치법안 두고 사법권 독립 침해 운운하는 대법원 개탄스러워

익명 (미확인) | 금, 2018/11/09- 13:24

특별재판부 설치법안 두고 사법권 독립 침해 운운하는 대법원 개탄스러워

위헌인 것은 특별재판부가 아니라 사법농단

대법원, 사법농단에 책임지는 자세 없이 위헌 논란 부추겨

특별재판부는 위헌적 사법농단 해결 위한 국회의 입법권 행사

 

최근 대법원이 국회에 제출한 검토 의견서를 통해 특별재판부 설치법안이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특별재판부 추천위원회 구성 등이 사법권 독립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스스로 사법권 독립을 훼손하고 자신들의 위헌적 행위를 은폐하면서 진상규명을 가로막아왔던 대법원이 할 말이 아니다. 위헌인 것은 특별재판부가 아니라 사법농단 범죄이다.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위헌 행위에 대해 제대로 반성하지도, 책임 있게 해결하려는 의지도 보여주지 않았던 대법원이 특별재판부 설치를 두고 위헌 소지를 운운하다니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법원은 국회, 대한변협 등이 특별재판부 추천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사법권 독립의 침해’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헌법에 따르면 법원의 조직과 법관의 자격, 재판의 절차는 모두 법률로 정하도록 되어있고(헌법 27조), 법원은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한에서만 소송 절차를 규정할 수 있을 뿐이다(헌법 108조). 또한 사무분담, 사건배당 등 사법행정권이 법관의 고유한 영역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유럽 등 많은 국가에서 법관이 아닌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사법행정회의(사법행정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대법원 산하 사법발전위원회 후속 추진단 역시 사법행정회의 설치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현재 발의된 법안에 따르면 재판부 후보들 역시 모두 현직 법관이고, 2배수의 인물 중에서 1명을 대법원장이 임명하게 되어있다. 권한의 행사 주체가 여전히 대법원장인 것이다. 무엇보다 사법농단 사건의 재판부 구성 및 진행 절차를 특별법으로 정하는 것은 명백히 국회의 입법권에 속한다. 사법 신뢰가 무너진 비상한 상황에서 국회가 입법권을 행사해 사법부를 견제하는 것은 삼권분립의 원리상 지극히 당연한 책무이다. 

 

대법원은 무작위 배당을 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재판부가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무작위 배당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공정한 재판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사법농단 사건의 경우 통상대로 서울 지역 법원 내에서 무작위 배당하면 사건 관련 법관들에게 배당될 확률이 너무 높다. 관련자가 재판을 맡게 되는 것이 훨씬 심각한 불공정 재판임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재판의 불공정성을 우려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재판 공정성을 고민해야 할 기관으로써 무책임한 태도이다. 무작위 배당을 하지 않는다고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자체로 논거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복수의 특별재판부를 구성하여 그 안에서 무작위 배당하면 될 일이다. 현재 발의된 법안 역시 복수의 재판부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미 대법원은 3차례에 걸친 자체조사를 통해 사법농단에 대한 진상규명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경악스러운 재판 개입과 거래의 면면이 드러났지만, 법원은 사법농단 수사 관련 영창 청구에 대해 90%에 달하는 기각율을 보여주기도 했다. 많은 법관들이 연루되어 있는 상황에서 사법농단 재판이 공정하게 진행될 수 없을 것이라는 국민들의 의구심은 증폭되었고,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는 더욱 커졌다. 이러한 가운데, 대법원이 특별재판부 설치가 위헌일 수 있다는 의견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의견서는 법원이 사법농단에 대한 심각성과 재판 공정성을 불신하는 국민들의 인식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만 드러냈을 뿐이다. 

 

사법농단 사태에 대해 법원이 해야 할 일은 명백하게 위헌이었던 사법농단의 진상과 책임 규명에 적극 협조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특별재판부 위헌 논란만 부추기는 것은 국민의 사법불신을 가중시키고 특별재판부 설치의 필요성만 반증할  뿐이다. 만약 특별재판부 설치 법안에 미흡한 점이 있다면 이를 보완하는 의견을 제시하면 될 일이다. 국회는 소모적인 위헌 논쟁을 반복하지 말고 서둘러 특별재판부 법안과 사법농단 관여 법관 탄핵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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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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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집회 어디까지 가봤니~~?

 

#2.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

 

#3. 국회의사당, 각급법원, 대통령 관저 등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 미터 이내의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4. 19대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 앞길이 24시간 개방되었고``

 

#5. 청와대 외곽담장 ``100미터 이내에 있는 분수광장에서`` 기자회견도 하는데

 

#6. 그동안 참여연대가 수차례 문제제기 했지만.......

 

2013년 9월 26일 국회 앞 집회금지에 대해서 헌법소원

2016년 6월 9일 법원 앞 집회금지 위헌제청신청 제기

2016년 11월 18일 집시법 제11조 개정안 국회에 입법청원

 

#7.``집시법11조는 여전히`` 바뀌지 않고 ``그대로입니다``ㅠ_ㅠ

 

#8. 헌법 제21조 제1항에서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는``

 

#9. 그래서, 1월 15일 ``헌법소원을 청구했습니다!``

'누구나' ‘어떤 장소에서’ 자신이 계획한 집회를 할 것인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만 집회의 자유가 비로소온전하게 보장되는 것입니다.``

 

# 10. 과연 헌법재판소는 어떤 판단을 내릴까요?

 

 

 

 

목, 2018/01/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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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대 오만을 향한 2030의 경고

통일을 위해 통일을 잊자

 

장은주 영산대학교 교수
 


남북단일팀 논란의 교훈

새해 벽두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놀라운 선물을 제공했다.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취임 직후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반도의 긴장 상태가 고조되고 있던 가운데 처음으로 대화를 위한 물꼬가 트이는 순간이었다. 문 대통령에게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는 대회의 성공은 물론 작금의 한반도 위기 상황을 해소할 계기로 활용할 수 있는 결정적 실마리가 아닐 수 없었다. 좀 더 지켜보아야겠지만, 어쨌든 상황은 그런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매우 흥미로운 소동 하나가 있었다. 바로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에 대해 일부 선수들이 반발했음은 물론이고, 2030 세대 전반에서 그 결정에 대한 거센 비판의 움직임이 일었던 것이다. 문 대통령과 정부로서는 정말 뜻밖의 사태 전개가 아닐 수 없을 터이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정치적 문법으로 보면 국민들의 뜨거운 환호와 지지를 기대할 수 있는 일이었건만, 오히려 일부 핵심 지지층이 지지를 철회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이번 소동의 배경을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강한 민족주의적 인식틀 속에서 남북문제를 바라보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우리 청년 세대 일반은 북한을 삼대 세습이나 하는 이질적이고 기괴한 적성 국가 정도로 여기기에 남북한 통일에 대해 소극적인 정도를 넘어 적극적인 반대의 지향마저 갖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선수단과 한 마디 의논도 없이 단일팀 구성을 밀어붙이고 또 그것을 '우리 아이스하키 팀은 애초부터 메달권 밖이었다'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논리로 정당화하기까지 했으니, 청년 세대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한다.

특히 북한 선수들 때문에 오래도록 벼르고 별러 왔을 출전 기회를 제약 당하게 된 일부 선수들은 단일팀 구성이 권력자가 무슨 '낙하산'을 팀에 내려 보내는 불공정한 일로 여기기까지 했고, 많은 청년들이 그에 공감했다고 한다. 통일 같은 대의보다는 개인의 자기실현과 경쟁의 공정성이 중요하다고 보는 어떤 원초적 정의감의 표출이리라. 비록 '개인'과 '이익'에만 초점을 두는 그 정의감의 거친 즉물성을 따져 볼 필요가 없지는 않겠지만, 나는 이번 소동을 기본적으로 특히 현 정권의 중심에 있는 '86세대'의 어떤 게으름과 오만에 대한 경고라고 이해하고 싶다. 단순히 소통 미흡에 대한 몇 마디 사과로 넘어 갈 일이 아니다.

나는 우리 핵심 정권 담당자들이 작금의 한반도 문제에 대해 너무 상투적으로 '민족 통일'에 초점을 둔 낡은 80년대식 패러다임을 갖고 접근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다. 이 패러다임에 따르면, 우리 한민족은 외세에 의해 강요된 분단체제 때문에 엄청난 고통에 시달려 온 바, 통일, 곧 단일 민족국가 건설만이 그 고통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고, 남과 북의 우리 민족 구성원들은 하루빨리 그 통일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시각에서 보니, 민족적 동질성을 확인시켜 주는 단일팀 구성과 한반도기 사용은 현 단계에서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위한 가장 결정적인 일보를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터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금 우리는 청년 세대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 많은 성원들이 통일 문제에 대해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는데, 이제 그런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통일이 아니라 한반도 양국체제!

내 생각에 우리 청년 세대의 북한과 통일에 대한 거부감은 단순히 어떤 '북한 바로알기' 운동이나 '통일 교육'의 부재 탓이 아니다. 많은 우리 청년들은, 북한이 우리 사회와는 너무도 이질적인 질서와 사회 운영 원리를 가진 별종의 나라라고 여기면서, 성급한 통일은 우리 사회에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대재앙을 가져다주리라고 걱정한다. 이런 인식은 사실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닌데, 우리는 이제 이들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한반도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발전시켜야 한다.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바람직해보이지도 않은 통일이 아니라, '하나의 민족, 두 개의 국가'라는 원칙에 기초하여 한반도 평화체제를 지향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야 한다.

어렵거나 복잡한 이야기도 아니고, 전혀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솔직하게 수용하면서 문제에 접근하자는 게 핵심이다. 우리 헌법은 그 영토조항을 통해 부정하고 있지만, 휴전선 이북에는 대한민국과는 전혀 다른 이념과 조직 원리를 따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별개의 국가가 나름의 국제법적 적법성을 갖고 거의 70년 동안 존재해 왔다. UN은 우리 한국(ROK)과 조선(DPRK)의 동시가입을 승인함으로써 그러한 두 국가 체제를 승인했고, 우리나라도 적어도 소극적으로는 그 사실을 수용했다. 우리는 바로 이 현실을 좀 더 분명하게 공식화하고 그 '정상화'를 추구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체제를 완성해 나가야 한다.

가장 먼저 지금의 북미간 정전협정을 완전한 종전 및 평화 협정으로 대체해야 한다. 그 위에서 한-중 및 한-러 관계에 상응하는 북-미 및 북-일 수교를 통해 동북아 전체의 다자간 평화체제를 만들어가야 한다. 나아가 남과 북은 하나의 민족이지만 서로 다른 국가라는 점을 쉽게 변화하기 힘든 현실로 인정하면서, 국가 간 외교관계에 준하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협력 관계를 형성해 가야 한다(과거 동서독은 서로의 관계를 '내독 관계'라 부르며 그것을 '서로 평등한 보통의 좋은 이웃 사이의 관계'로 규정하고 외국 간에 교환하는 대사관 대신 '상설대표부'를 상대국 수도에 개설했는데, 이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국가보안법을 없애고, 비현실적인 헌법상의 영토 조항도 적절하게 바꾸어야 한다.

당연히 지금 진행되고 있는 남북 화해 국면은 절대적으로 지지할 일이다. 남북의 만남과 대화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화해 국면이 어떻게 발전하든, 쉽지 않을 것 같던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더라도, 지금까지의 익숙한 패러다임을 벗어던지지 못하면 상황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못하고 위기는 언제든지 재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순한 민족적 동질성은 결코 평화를 위한 굳건한 바탕이 될 수 없다. 우리 민족은 그런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가공할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었다. 우리는 이제 통일이 아니라 같은 민족이 만들어 낸 두 체제 내지 두 국가의 상호 인정과 지속적인 평화적 공존에 초점을 둔 국내적이고 국제적인 법적-제도적 장치들과 질서를 창출해 내는 방향으로 한반도의 운명을 이끌 '운전대'를 조종해 가야 한다.

독일 '동방정책'의 진짜 교훈

불가피하게 상당한 기간 동안 유지되도록 기획해야 할 이와 같은 한반도 양국체제에 대한 지향은 민족의 분단을 영구화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면 그 길은 통일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어쩌면 유일한 우회로일 수도 있다.

통일이라고 하면 문자 그대로는 다음의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붕괴와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 남한의 공산화와 북한에 의한 흡수통일, 아니면 두 체제의 수렴을 통한 통일. 그러나 어느 하나도 현실적이지 않으며, 설사 실현 가능하다고 해도 그 과정에는 온갖 무리와 폭력이 동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체제 수렴이 가장 그럴듯해 보일지 모르지만, 가령 우리는 민주주의와 세습 독재가 어떻게 수렴할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6.15 선언'이 담아내려 했던 '남북연합'이나 '느슨한 연방' 같은 개념도 많은 논리적이고도 사실적인 모순을 숨긴 억지스러운 상상물이 아닐까 한다.

만약 신뢰할만한 남북한 평화 공존 체제가 확립되고 지속될 수 있다면, 북한의 정부도 더 이상 남한과 미국의 침략 위협이라는 명분을 강하게 내세우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정부도, 지구상의 모든 국가 권력이 그렇듯이, 인민들로부터 정당성을 확보하라는 압력을 더 격렬하고 직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정당성 확보 여부는 결국 국가가 인민의 행복과 존엄한 삶을 얼마나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을 텐데, 이 요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북한의 인민들도 어떤 식으로든 정부에 대한 저항에 나설 것이다. 어쩌면 바로 이런 식으로만 통일의 과정이 비로소 제대로 시작될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그 동안 독일의 통일에서 교훈을 얻자며 빌리 브란트 수상이 펼쳤던 '(신)동방정책'을 모델로 삼아 '북방정책'이나 '햇볕정책'을 추진해 왔다. 역대 대통령들은 유독 독일에서 통일 정책 구상을 밝히길 좋아했다. 독일이 우리의 좋은 모범이라서 그랬을 터이다. 그러나 그 모든 따라하기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권의 통일정책은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기본적으로 1민족 2국가라는 불가피한 현실을 솔직하게 수용하고 그것을 일정한 방식으로 정상화하려 했던 데 그 핵심이 있음을 애써 외면해 온 것처럼 보인다. 동방정책은 결코 통일정책이 아니었다. 그 정책은 동서독의 지속적인 평화공존체제의 확립에 초점을 두고 있었을 뿐이며, 독일 통일은 그 정책에 부수된 역사적 우연의 산물일 뿐이었다고 해야 한다. 결코 평면적이어서는 안 되겠지만, 독일의 경험에서 배워야 할 가장 핵심적인 교훈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촛불혁명은 단순한 정권교체로 끝나서는 안 된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개헌 등을 통해 좀 더 완전한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한 다양한 차원의 제도적 개혁을 완수해야 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 동안 우리 민주주의를 불구화시켜 왔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 중의 하나였던 분단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결정적인 일보를 내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분단체제의 극복은 무턱대고 통일을 외친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다. 또 지금까지처럼 민족적 동질성 같은 것을 아무리 강조해 보아야 통일의 길이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통일이라는 낡은 패러다임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

어쩌면 통일을 위해서는 통일이라는 말을 아예 잊어버리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민족, 두 개의 국가'라는 엄연한 현실을 인정하고 정상화하는 데서 출발하는, 독일의 동방정책의 교훈을 제대로 담아 낸 '(신)북방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건 비현실적인 통일에 대한 전망이 아니라 한반도에 서로 이질적인 두 국가의 지속적인 평화공존을 보장할 국제 질서와 그것을 뒷받침할 국내 정치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연재합니다. 

 

수, 2018/02/1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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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주의자’ 조영삼 님 애도 성명

사드 철회 마중물이 되고자 한 ‘평화주의자’ 조영삼 님의 명복을 빌며
사드 배치와 관련된 모든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미국과 문재인 정부에 엄중히 요구합니다

 

‘이름 없는 평화주의자’ 조영삼 님이 사드 반대를 외치며 분신 선종한 사태를 당하여 우리는 참담한 심정을 가누기 어렵습니다. 진정으로 겨레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고독한 결단 속에 자신의 충심을 담은 유서를 다듬고 또 다듬었을 조영삼 님의 그 고뇌를 생각하면 우리는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조영삼 님의 명복을 빕니다. 고인의 분신과 선종에 망연자실하고 있는 가족들에게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진정으로 존경하고 사랑했으며, 그의 성공을 간절히 바란 조영삼 님이 왜 이런 형극의 결단을 내린 것입니까? 문재인 지지자인 그 분이 보기에도 너무도 상식에 어긋나는, 미국의 압력에 속절없이 무너져 버리는 문재인 정부의 모습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온 몸을 바친 것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이 사태의 책임은 무용지물이요, 백해무익이자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는 사드 배치를 강행한 문재인 정부와 그 뒤에서 촛불 혁명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을 모욕하면서까지 사드 배치를 강박한 미국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이에 우리는 사드 배치와 관련된 모든 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사드를 철회할 것을 미국과 문재인 정부에게 엄중히 요구합니다. 이것이 자신의 목숨을 던져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한 조영삼 님의 뜻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조영삼 님이 자신의 몸을 불살라 “사드 철회를 위한 미국과의 협상에서 한 방울이나마 좋은 결과의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면서 “촛불 민심을 든든한 배경으로 흔들리지 말고 초심대로 밀고 나가 성공한 정권”으로 남기를 기원한 뜻을 깊이 새겨 사드 철회의 길로 돌아설 것을 촉구합니다.

 

국민 여러분께 호소드립니다. 

 

“사드는 안 됩니다”라는 고인의 마지막 간절한 호소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사드 배치를 철회시키는 활동에 참여하여 고인의 뜻인 사드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이루는 데 함께하여 주십시오.

 

2017. 9. 20.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 소성리사드철회 성주주민대책위원회,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원회, 원불교 성주성지수호비상대책위원회, 사드배치반대대구경북대책위원회,사드배치저지 부울경대책위원회(가), 사드배치철회성주투쟁위원회, 원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수, 2017/09/2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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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셀프수사의 한계를 스스로 증명한 검찰 성폭력 진상조사단

검사 범죄행위, 검찰 셀프수사가 아니라 공수처에 맡겨야 

 

언론보도에 따르면 검찰 내 ‘성추행 사건 진상 규명 및 피해 회복 조사단’(단장 : 조희진 동부지검장, 이하 진상조사단)이 내일(4/26)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안태근 전 검사장의 불구속기소를 끝으로 사실상 활동을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한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결과로 보여주겠다”던 조희진 단장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제식구 감싸기’식 부실수사를 반복하는 등 수사의 한계를 보여준 진상조사단 활동에 깊은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안태근 전 검사장의 강제 추행과 인사상 불이익을 당한 사실을 폭로하였다. 서 검사의 폭로는 검사조차 검찰의 자체 수사를 기대하기 보다 언론에 폭로하는 방식을 택했음을 보여주었다. 검찰도 폭로 직후 검찰 내 ‘성추행 사건 진상 규명 및 피해 회복 조사단’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지난 석달간 검찰 내 수사가 진정성 있게 진행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진상조사단은 안태근 전 검사장을 사건 착수 한달이 다 된 2월 26일에서야 소환조사를 하였고, 3월 26일 진상조사단이 대검에 수사경과를 보고했지만 문무일 검찰총장의 보강 수사 지시를 받았고, 안태근 성추행 사건 무마 의혹이 제기된 최교일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에 대해서도 서면조사만 실시하는 등 부실수사, 늑장수사라고 비판받을 만한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성폭행 의혹도 제기된 진 모 검사에 대해서도 부실수사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진상조사단은 성추행 혐의로만 수사를 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는데, 이렇게 청구한 구속영장은 두 차례나 기각되었다. 또한 성추행이라는 명백한 징계사유에도 불구하고 진 모 검사를 징계없이 사직하게 한 당시 지휘라인에 대한 수사도 실시하지 않았다. 그나마 진상조사단이 긴급체포까지 했던 당시 부장검사가 징역 1년 구형에 크게 못미치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지만 ‘통상적 이유’로 항소를 하지 않았다. 수사 과정에서도 인사 기록 파일 유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해당 파일 내용이 단순한 인사 내용을 넘어선다는 의혹도 제기되었지만 진상조사단이 수사를 진척시킨다거나 이관시키는 등의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아 끝내 무마되고 말았다.

 

이처럼 검찰 진상조사단의 활동 경과나 결과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결국 검사 범죄행위에 대한 검찰의 수사 의지와 수사력은 검찰이 이들에 대해 어떻게 기소했는지 등 재판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진상조사단은 기소 내용을 보완하고 재판에서 다툴 쟁점에 대한 철저한 준비로 수사 미진을 만회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진상조사단의 한계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행태, 특히 검찰 내 수뇌부에 대한 부실수사는 한두번 봐온 것이 아니다. 더 이상 검찰의 셀프수사에 중차대한 사건을 맡겨서는 안된다. 검사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검찰의 셀프수사가 아니라 공수처를 통해 철저한 수사와 기소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국회는 조속히 공수처 설치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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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4/25-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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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차별금지법 제정을 논의하자

 

글. 정강자 참여연대 공동대표
태어날 때 세상을(鄭) 편안하게(康) 살아갈 놈(子)이라고 얻은 이름인데 아닌 것 같아 분한 마음이 좀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줄곧 일상의 재구조화를 꿈꾸며 사나보다.


모든 사람이 국가에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은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대다수 시민들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차별받아서는 아니 된다’라는 평등원칙에는 동의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차별이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 수준은 매우 낮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상의 차별문제를 다투기는 쉽지 않다. 각고의 노력 끝에 차별문제를 공론화했다 하더라도 그 해결 방안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커진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불편함은 무엇인가? 거부될 수 있는가? 위법한가? 불평등한 대우를 차별로 인식한다 하더라도, 모든 불평등이 곧 차별이 아니라면 차별 여부는 무엇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차별 문제의 핵심은 구제 방안
우리 헌법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서 각 사람의 기회균등을 천명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교육 기회균등, 근로관계에서 성차별금지, 혼인과 가족생활에서의 양성평등, 선거와 선거운동에서 평등,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지역 간의 균형발전 등에서 평등을 국가 법질서의 원리로 헌법에 담고 있다. 


공공과 민간 부문, 고용과 생활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각양각색의 차별문제에 국가가 직접 개입할 것인가?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어떤 방식으로 개입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제기된 차별에 어떠한 가치판단을 하느냐에 따라 차별의 모습은 달라진다. 결국 차별을 받았을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제받을 수 있는가가 문제다. 그래서 제도적 근거로 차별의 범주·판단기준·권리구제 등을 내용으로 하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차별금지법 제정은 2007년, 2010년, 2012년에 세 차례나 시도되었다. 법 제정을 위한 노력의 역사가 벌써 10년이다. 법안에는 무엇을 차별로 보고 금지할 것인가에 대해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학력學歷, 고용형태, 사회적신분 등을 포함하고 있다. 


2007년 차별금지법(안)이 나오자 제일 먼저 반대한 쪽은 재계와 보수 언론이다. 기업 활동을 제한한다는 주장이었다. 차별금지법은 입직에서 퇴직까지 고용의 전 과정에서 앞에 열거한 사유로 차별을 하면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 일부 보수 기독교 단체들의 성적지향 사유에 대한 반대는 보다 강력했다. 법무부는 차별사유에서 성적지향 등 7개 사유를 삭제한 법안을 입법예고했다. 인권단체들은 양보할 수 없는 인권을 타협하고 말았다는 비판과 함께 정부의 차별금지법(안)을 반대하는 운동에 돌입한다. 이후 2010년, 2012년에 다시 시도된 차별금지법 제정 검토과정에서 법무부, 일부 보수 기독교 단체, 인권단체 간의 견해 차이는 ‘삭제된 차별사유’를 둘러싸고 진전 없이 끝났다. 

 

성차별에서부터 차별금지법 제정 재논의해야
차별금지법의 제정 재논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의 차별금지법제화의 출발은 성차별금지법으로부터다.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있기 전 차별을 사회문제로 제기하고 사회운동으로 발전시키기 시작한 것은 노동운동과 여성운동이다. 인종문제를 겪지 않은 터라 가장 적극성을 띄며 차별 담론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킨 것은 여성운동의 몫이었다. 일상에서는 호주제가 엄존했고 일터에서는 임금차별은 물론 결혼·임신·출산 퇴직제, 정년차별, 성별직종분리, 유리벽·유리천정, 용모차별, 직장내 성희롱 등 현실은 암울했다.

 

여성들이 겪은 차별경험을 집단적·개별적으로 제기한 힘은 반차별운동의 동력이 되었다. 차별의 범주·판단기준·권리구제 등을 내용으로 하는 성평등 입법운동으로 이어졌고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성평등관련법이 제정되었다. 2001년 들어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되어 차별구제 업무가 시작되면서 우리 사회는 다양한 차별이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피해 당사들의 실질적인 차별구제 요구가 확산되었다. 그 동학은 장애부문으로 이어져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는 소중한 성과도 있었다. 


지난겨울 우리는 엄청난 경험을 했다. 광장의 촛불은 차별 없는 평등 세상을 염원하며 차별금지법제정을 요구했으나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선정한 100대 과제에는 빠졌다. 유감이다. 그러나 우리는 ‘시민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진실 앞에 흔들려 본 적이 없지 않은가? 

 

인권

 

월, 2017/08/2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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