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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 무역전쟁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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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 무역전쟁의 원인

익명 (미확인) | 금, 2018/10/05- 11:00

현재 중미 간 무역전쟁이 한창이다. 미국은 1차로 지난 7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총 500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산 수입품에 추징관세를 부과한데 이어, 최근 다시 2,000여억 달러에 대한 추가적인 관세를 부과하였다. 중국도 이에 맞서 미국산 제품에 대해 상응한 보복관세를 매김으로써 맞대응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이제 누구의 눈에도 양국이 전면적인 무역전쟁에 돌입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현재 세계경제를 이끌고 있는 G2 두 나라 간의 무역전쟁은 분명 국제질서 전반과 한반도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핵무기의 존재 때문에 강대국 간의 갈등이 ‘전쟁’으로 전면화할 수 없는 오늘날 조건에서, 이렇듯 거의 전 산업에 걸친 대규모의 ‘전면적 무역전은 전쟁을 제외한 강대국 간 갈등의 최고 표현 형식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열강들은 먼저 자신의 세력권을 배타적으로 ‘블럭화’ 하였는데, 이 같은 보호무역을 실시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면 전쟁이 시작되었다.

칼럼_181005 바이두
사진: 바이두

그렇다면 이렇듯 양국 간에 무역전이 전면화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우선, 금번 무역전쟁은 오바마정권 때 본격화한 ‘아시아 회귀전략’으로 대표되는 대중국 억제전략의 연장이자, 그 새로운 발전단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바마정부의 ‘아시아회귀전략’ 은 처음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한 ‘대리전적 갈등’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당시 미국은 필리핀을 앞세우고,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역내 관련국들의 권리주장을 적극 부추기면서 그 배후에서 이들을 지원하는 형국을 취하였다. 이 단계는 필리핀정부의 국제중재법원에의 제소가 승소판결을 받은 2016년7월에 정점에 달하였다. 그러나 이후 점차 기세가 누그러지면서, 특히 당해 말 실시된 필리핀 대선에서 아키노정부를 잇는 친미파가 정권을 상실하고 현재의 비교적 자주적이며 친중국 성향의 두테르테 신정부가 탄생함으로써 ,이 단계에 있어 미국의 전략은 거의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남중국해 카드가 실패로 끝나면서 미국은 할 수 없이 새로운 전장을 물색하게 된다. 이 경우 미국에게 남겨진 것은 ‘대만’ 과 ‘무역전쟁’ 두 개의 카드라 할 수 있다. 그중 대만 카드는 자칫 중미관계의 근저를 뒤 흔들면서 진짜 ‘전쟁’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위험한 카드이기에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예컨대, 대만독립파인 현 민진당 정부가 미국의 지원을 믿고 진짜로 독립을 선언할 경우, 중국은 ‘반국가분열법’에 의해 자동적으로 대만을 무력통일하게 된다. 그럴 경우 미국의 입장은 매우 난처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트럼프정부로서도 대만카드에 대해선 아직까진 신중한 접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무역전쟁’이 중미 대결의 제2단계 주요형식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둘째로, 미국 내부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에 대해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로부터 지금의 중미대결이 ‘무역전쟁’이라는 형식을 빌려 표출할 수밖에 없는 직접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파생되는 다른 문제들, 예컨대 미국이 자신의 동맹국으로까지 무역전을 확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역시도 이해할 수 있다.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는 미국의 경우 내적 연관을 갖고 있다. 이들은 ‘쌍둥이 적자’로 일컬어지는 대단히 미국적인 현상인데, 1980년대 중반 레이건정부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쌍둥이 적자’ 가운데 발단은 ‘재정적자’라 할 수 있다. 즉, 재정적자를 메꾸기 위해 미국정부가 달러 발행을 남발하게 되고, 그 다음 증가된 달러를 가지고 국내의 공급부족에 따른 물품 결핍을 해외수입을 통해 메우다 보니 무역적자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세계 기축화폐인 달러를 보유한 미국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참고로 미국의 재정적자는 아래 표에서 보듯 현재 이미 GDP의 130%에 육박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나라 같으면 파산선고를 해야 할 수준이다.

칼럼_181005(1)
출처: 한국 국가통계포털 (KOSIS)

어떻든 이 같은 재정적자로 인해 야기된 ‘무역적자’는 최종적으로 국내의 산업공동화고용문제를 야기한다. 이 때문에 미국의 통치세력으로서는 언제까지나 이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지 못한 기층 대중들의 불만이 이미 위험수위에 이르러 미국사회 불안의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트럼프는 정작 이 같은 대중들의 불만을 등에 업고 등장하였기 때문에,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고 차기 재선을 노리고 있는 그로선 어떻게든 일자리문제에 있어 내세울 만한 업적을 만들어야 만하는 처지이다. 그를 위한 좋은 소재가 바로 타국과의 무역 분쟁을 이슈화 하는 것이다. 트럼프정부는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거대한 무역적자가 바로 중국을 비롯한 대미 흑자국가들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들로부터의 수입을 규제함을 통해 국내 산업과 일자리를 보호하겠다는 낡은 공약을 내걸고 있다.

마지막으로, 트럼프라는 ‘우연적 요소’ 역시 간과될 수 없다. 사실 앞서 열거한 두 가지 요인 사이에 모순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완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트럼프이기 때문이다. 그간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세계 각국의 개방화와 지구화시대의 경제일체화를 선도하여 왔다. 이처럼 시대적 흐름을 이끌어 왔기에 미국은 탈냉전 이후의 지구화시대에 있어 패권국가로서의 지위와 리더십을 지금까지 어느 정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앞서 쌍둥이 적자와 관련된 부분은 사실상 미국에게 ‘보호무역주의’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비록 유일패권을 노리는 미국에 있어 대중국 억제전략이 시급한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그간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부정하면서까지 지구화시대에 역행하는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앞뒤가 맞지 않다.

이 같은 상황에서 워싱턴 정가의 정통노선과 이질적인 트럼프의 등장은 얼마간 이 같은 모순을 완화시켜 줄 수 있다. 트럼프는 이 경우 하나의 ‘우연적’ 사건으로 간주될 것이며, 미국 전략의 내적 모순에 대한 일종의 절충적 해결방안으로 치부되게 될 것이다. 사실 트럼프 자신이 매우 모순적인 존재이다. 그가 이끄는 행정부는 얼핏 보아도 상호 충돌하는 정책들로 가득 차 있다. 예컨대, 한편에선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국내 일자리 창출을 위해 동맹국들과 얼굴을 붉히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같은 포퓰리즘적 국수주의 정책을 미국 내에선 ‘신고립주의’라고 부른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최근 오바마정부가 어렵사리 성사시킨 이란과의 협정을 파기하면서까지 중동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강력한 미국’ 노선의 관철을 위해 군비를 대폭 증강하는 정책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며, 트럼프정부가 여전히 세계 패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트럼프의 돌출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개성’은 워싱턴의 정통엘리트들을 한편에선 골치 아프게 하면서도, 다른 한편 그의 ‘파격’과 ‘돌발성’은 미국의 서로 다른 전략 목표들 간의 모순을 은폐시켜 준다.

우리는 이상에서 금번 중미 간 무역전쟁이 기존의 대중국 억제전략의 한 단계 발전이자 ‘쌍둥이 적자’의 누적과 관련되어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와 동시에 새로 등장한 트럼프정부의 독자적인 경제·정치 정책이라는 우연적 요소 역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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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체제의 순환고리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

백낙청 선생은 1997년 쓴 「분단체제극복운동의 일상화를 위해」를 통해, ‘국가연합(남북연합)’을 자신이 1990년대 초반 이래 제기해온 ‘분단체제론’의 새로운 맥점으로 제시했다. 이 제시는 시기적으로 절묘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민주정부 10년’이 시작되었다. 통일문제에 경륜이 깊은 김대중 대통령과 미국 민주당 클린턴 정부와의 궁합이 맞아떨어져 1999년에는 ‘페리 프로세스’에 남북미가 합의할 수 있게 되었고(1994년의 제네바 합의는 북미 간의 합의였다), 2000년에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져 6·15 공동선언을 내놓을 수 있었다. 더욱이 공동선언의 제2조는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라고 하여 분단체제론이 1997년 이래 새롭게 강조했던 (국가 또는 남북) ‘연합’ 통일 방안에 대해 드디어 남북이 모두 합의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6·15 선언 직후 백 선생은 이 조항의 합의가 “획기적”이라 썼고, 더 후일인 2012년에 쓴 「포용정책 2.0을 향하여」에서는 이 조항이 “6·15 공동선언의 가장 빛나는 성취에 해당”한다고 극찬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어 들어선 노무현 정부에서는 우선 2005년 백 선생 자신이 “남·북·해외가 함께 만든 ‘6·15 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의 남측대표라는 중책”을 맡아 “3월과 6월 및 8월에 금강산과 평양, 서울에서 각기 공동행사를 치르는 등 ‘6·15 시대’가 크게 활력을 되찾는 현실을 체험”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2007년의 10·4 정상선언으로 “남북연합의 건설은 …… 이미 시작되었”다고 후일 회고한다. 당시 고위급회담에 총리가 나가고, 그 총리 회담의 정례화가 언급되고, 정상회담도 수시로 열자는 언급이 오갔던 것 등이 바로 “(남북)연합기구에 해당하는 조치들이 많이 마련된” 것이었다고 풀이하고 있다.

이상 백낙청 선생의 여러 회고를 종합해보면, ‘남북연합’은 1989년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 처음 등장하여, 6·15 선언에서 버전 1.0을 완성하고, 2007년 10·4 선언에서 1.5가 이뤄지며 (2012년 대선 때 백 선생이 제안한 ‘2013년 만들기’에서의 버전 2.0 기획은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으로 무산되었지만) 이제 촛불 이후에 2012년 대선 실패로 유실되었던 그 버전 2.0의 완성을 기다리고 있는, 시간의 축을 따른 직선적, 선형적 성장도면이 그려진다. 간단히 도식하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위 <그림 3>은 내가 겪어왔고, 생각해왔던 ‘87년 이후 지난 30년’, 1987년 6월에서 2016년 촛불 직전까지의 상(像)과 크게 다르다. 내 실감 속에서 그 30년은 ‘분단체제의 마의 순환고리’가 87년의 거대했던 민주 동력을 서서히, 그리고 완전히 삼켜버린 시간이었다. 그 느낌을 실감 그대로 전하기 위해서 촛불혁명 이전인 지난 2015년 12월 17일, 필자가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했던 강연을 강연문 그대로 인용하면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2015년이 채 보름도 남지 않았다. 새해가 되면 87년 이후 29년째다. 87년 태어난 아기가 우리 나이로 서른이 된다. 한 세대가 지났다. 벌써 그런가. 87년의 벅찼던 희망과 기대가 어제 일 같은데, 벌써 그렇다. 그 30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세상은 어떻게 변했는가?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다는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누구는 지금이 1972년의 유신 전후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말하고, 누구는 더 거슬러가 1894년 청일전쟁 전야의 상황과 비슷하다고까지 말한다.

민주화운동 세력은 87년 6월 항쟁 이후 이제 대한민국은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민주주의의 다리를 건넜다고 확신했다. 4·19 때처럼 역사가, 민주주의가 거꾸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결코 없다고. 60 – 70 – 80년대 30년 동안, 4·19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힘이 자라났고, 그랬기에 그 철벽같았던 전두환 군사독재를 밀어뜨릴 수 있었다고. 이제 한국은 제대로 된 민주국가, 정상국가가 되었다고. 어둠의 임계점을 넘어 광명의 땅으로 들어섰다고. 세계도 환호하며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고. 역사발전의 곧고 탄탄한 정상궤도로 확실히 진입했다고. 다소의 저항이 있겠지만 시대의 대세는 돌이킬 수 없다고. 그런데 시간이 꼬여버린 듯하다. 다 지나왔다고 생각해왔던 시간 안으로 거꾸로 다시 떠밀려가고 있다는 느낌이니 말이다.

지난(2016년) 10월 ‘백년포럼’에서 이부영 전 의원은 87 민주화운동 성취 이후, 주도 세력에게 ‘그림’, ‘로드맵’이 없었다고 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림이 분명했다. 그 그림은 4·19 이후 30년의 민주화운동이 산출한 것이다. 이 그림은 직선 몇 개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그림 4>)

문제는 이 그림에 있었다. 87년의 주도 세력은 이 그림처럼 앞에 열린 길이 탄탄한 평지 위의 직선 길이라고 생각했다. 87년을 통해 획득한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를 열심히 하면, ‘경제사회적·실질적 민주주의’가 자연스럽게 따라 이뤄질 거라고 생각했다. 잔잔한 호수 위에 돌을 하나 첨벙 던지면 차츰차츰 퍼져가는 가는 동심원처럼.

그런데 그 후 30년의 실제는 어떠했는가. 87년 10주년에는 ‘IMF 사태’를 당했다. 20주년에는 ‘6월 항쟁을 통해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 내지 정치적 민주주의는 달성했으나 경제·사회 면에서의 실질적 민주주의는 여전히 부실하거나 심지어 후퇴했다’는 식의 진단들이 나왔다. 이제 30년이 코앞인데, 이제는 그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 정치적 민주주의조차 제대로 ‘달성’된 것이었는지 의문이 드는 지경이다.

나는 87 주도 세력이 개인 욕심에 빠져 민주화의 대업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는 식의 설명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진단은 흔히 동기가 의심스럽거나, 혹은 너무 단순하여 그렇듯 의심스러운 동기에 이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런 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정치권으로 들어간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할 이유도 없는 것 같다. 중요한 점은 나름 열심히 한다고들 했는데 엉뚱한 곳에 와 있는 원인이 뭐냐다. 직선을 따라 30년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다시 둘러보니 왠지 출발한 지점으로 다시 돌아와 있다는 느낌, 기분 좋지 않은 데자뷔, 기시감이다.

이 강연 당시(2015년 12월)는 박근혜 정부의 전성기였다. 그때의 사회 분위기를 기억하는 분이라면 모든 게 막힌 듯 얼마나 암담했는지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87년의 에너지는 완전히 실종된 것으로 보였다. 민주주의는 철저히 재갈 물리고 총체적 블랙리스트가 정치, 사회, 학술, 문화 전방위를 지배했다. 남북관계는 뿌리까지 얼어붙어서 오히려 87년 이전인 전두환 정부 시기보다 대화가 더 막혀 있다고 느낄 지경이었다. 이제는 수십 년이 갈 ‘제2의 10월 유신’이 목전에 왔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러다 이 강연 4개월 후, 4·13 총선이라는 최초의 반전이 왔다. 그러나 그 후에도 박근혜 정부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촛불혁명이 왔다. 87년 역시 그러했다. 당시 누구도 87년 6월과 같은 거대한 ‘판 갈이’를 예상하지 못했다. 4·19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를 회고하여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새벽은 결국 온다’거나 ‘민주주의는 역시 반드시 승리한다’라고 낭만적으로 칭송하는 데 그친다면, 좋게 말해 순진하다. 엄격히 반성해봐야 할 일이다. 도대체 한국 사회에는 어떤 마(魔)가 씌워 있기에 세계를 놀라게 한 그토록 대단한 민주혁명이 연이어 벌어졌음에도 그것이 모두 번번이 독재로 회귀하고 말았는가? 촛불혁명이 또다시 같은 운명을 겪지 않게 되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2018년 촛불 이후 백 선생의 지난 시간의 회고를 보면 그런 긴박감, 절박감, 위기의식, 그 30년의 진행 상황에 대한 회오나 반성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동안 남북연합 잘 해왔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잠시 정체가 있었지만, 이제 다시 해온 대로 남은 길 그대로 마저 밀고 나가면 된다는 식이다. <그림 3>의 남북연합 완성의 직선도와 <그림 4>의 민주화 완성의 직선도는 그래서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역사적 이정표를 세웠고, 2005년 9·19 합의와 2007년 2·13 합의는 북핵문제 해결의 경로를 예시했으며, 같은 해 <10·4 남북정상선언>은 종전과 평화체제문제를 화두에 올렸다.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물어야 한다. 그럼에도 왜 6·15 선언 이후 채 몇 개월이 안 되어서부터 강한 ‘퍼주기’ 후폭풍에 시달려야 했고, 6자회담의 중요한 합의들은 왜 금방 휴지 조각이 되어야 했으며, 10·4 선언의 성과는 오히려 왜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총체적 종북몰이의 단골 먹거리 메뉴로 역용당해왔던 것일까. 과연 그 성과들은 ‘포용정책 버전 1.0, 1.5, 2.0’에 이르는, 그리고 이르게 되고야 말, 순탄한 직선적 상승 코스였던 것일까. 오히려 이 과정은 그 상승만큼의, 아니, 그 상승 폭을 오히려 능가했던 후폭풍과 역풍을 수반하여 그 직선의 방향을 하향으로 짓누르고 구부려 뜨려 결국 앞으로 나간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원주(圓周)를 따라가 역방향으로 돌아갔던 것 아닌가? 즉 분단체제가 다시금 강화되고 있었고, 그에 따라 그 가공할 ‘마의 순환고리’가 굉음을 일으키며 다시금 작동하기 시작했던 것 아닌가? <그림 5>처럼 말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많은 이들이 ‘분단체제의 역풍’이 다시 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을 때, 백 선생은 상황이 좋지 않음을 인정하면서도, 결론적으로는 “결코 그렇게만 볼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여전한 신념이다 …… 회복 불능은 아니다. 심지어 정지 상태도 아니다. 한반도식 통일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궁극적으로는 시민참여 통일과정으로 될 가능성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라고 썼다. 이미 시작된 남북연합이 돌이킬 수 없는 추세가 되었기 때문에 분단체제는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그의 신념 때문이었다.

이러한 분단체제론의 사고법에는 분단체제가 시대를 역진하여 민주혁명 이전의 상태로 완전히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반복적 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그 ‘마의 순환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절적 단절’이 필요하다는 사고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양적 변화의 사고법만 존재한다. 이는 <그림 3>의 남북연합의 직선도에서 유추할 수 있다. 남북연합의 증가만큼 분단체제는 감소한다. 역시 직선적 관계다. 백 선생이 신념을 가지고 말하듯 남북연합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추세로 항상 작동한다. 간혹 정부 간의 길이 막히더라도 백 선생이 제기했던 ‘시민참여 통일과정’의 길로 더욱 열심히 나가면 된다. 그렇게 하여 남북연합의 힘이 커지는 만큼 분단체제의 힘은 계속 약화된다.(<그림 6>)

분단체제는 어차피 ‘흔들리고, 무너지고, 해체되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그런 분단체제가 다시 강고해질 수가 없다. 그리하여 어느덧 분단체제는 더 이상 그다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닌 것으로 인식된다. 이미 별다른 힘을 쓸 수 없는, 사멸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게 하나 있다. 그 ‘사멸의 끝’은 어디일까? 과연 <그림 4>에서 굵은 직선은 분단체제가 0이 되는 지점에 언제나 도달할까? 과연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혹시 영원한 점근선 아닐까? ‘지평선 도달하기’와 같은 것 말이다. 그 사멸의 끝은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에 있다. 자, 그러니 분단체제의 완전한 사멸에 이르기까지 흔들리지 말고 계속 나가자. 그러나 지평선이란 다가가는 만큼, 정확히 그만큼, 더욱 멀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저 지평선에 도달할 그 시점(즉 분단체제가 종식될 그 시점)이 남북연합이 완성된 ‘1단계 통일’ 때일지, 아니면 그 이후 더욱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질 ‘2단계 통일’ 때일지 전혀 명확하지 않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어느덧 이 과정에서 ‘분단체제’가 이제는 별로 유해하지 않은, 잘 길들여진, 순치(馴致)된 존재가 되어버린 듯하다. ‘남북연합’과 ‘과정으로서의 남북연합’ 그리고 ‘과정으로서의 통일’은 ‘분단체제를 상정’한다고 하니, 이제 분단체제는 1단계, 2단계 통일의 전제, 바탕이 된다. 더 나아가 인류의 보편문제의 해결을 지향하는 원대한 분단체제론의 장도(長途)를 동반하는 충직한 종자(從子)가 되어버린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진정 고민되는 것은 그렇듯 한가한 ‘먼 미래문제’가 아니다. 과연 민주혁명의 동력을 (4·19와 87년 6월) 그토록 완벽하게 말아먹고 말았던 ‘분단체제의 마의 순환고리’를 지금 여기서 (촛불혁명 이후) 어떻게 완전히 끊어야 하느냐라는 절박한 현실의 문제다. 지금껏 해온 대로 ‘남북연합’ 열심히 하고, 혹시 정부가 시원치 않으면 ‘시민참여 통일과정’을 마찬가지로 열심히 하면, 결국 문제없다는 것이 분단체제론의 해법이었다. 그러는 어느 사이 분단체제론에서 ‘분단체제’는 이제 별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으로 되어버린 듯하다. 오래 전부터 ‘흔들리고’ ‘허물어지고’ ‘해체되어’ 왔다고 하였으니, 어느 사이 이제는 무해(無害)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일까?

그러나 이런 방식의 사고법으로는 분단체제를 결코 빠져나올 수 없고(빠져나올 생각이 별로 없다), ‘마의 순환고리’를 끊을 수도 결코 없다(그런 게 반복적으로 작동한다고 보지도 않는다). 분단체제론의 사고법은 양적 점증(漸增), 점변(漸變)론이다. 백 선생이 제시해온 ‘남북연합’과 ‘시민참여 통일과정’을 열심히 하면(점증), 분단체제는 서서히 사라지고 통일은 서서히 온다(점변). 결국 현상유지론이다. 반면 양국체제론은 ‘질적 단절’을 주장한다. 분단체제는 마의 순환고리를 통해 대략 30년을 주기로 완강하고 반복적으로 작동해온 강력한 실체다. 확실한 ‘질적 단절’을 통해서만 끊어낼 수 있다. 분단체제를 끊어내야, 현상을 타파해야만, 비로소 통일의 길이 열린다. 그러나 분단체제론에는 이러한 ‘분단체제 현상타파’의 사고법이 없다. 어느덧 ‘분단체제 현상유지론’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일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만 실제로 통일로 가는 길은 “두루뭉수리 …… 어물어물 진행되는 통일” 과정이라고 할 뿐, 그 실체가 묘연하다.

‘분단체제의 마의 순환고리’는 이미 4·19 이후 30년 동안에도 한 차례 작동했던 바 있다. 박정희 – 전두환 정권은 일체의 비판과 저항을 용공·좌경·친북으로 몰아치면서 ‘비상국가체제’의 철옹성을 높이 세웠다. 이 과정에서 4·19 주도 세력은 처절하게 무력화되고 말았다. 과연 그때 통일론이 없고, 통일에 대한 의지와 열망이 없고, 분단체제극복운동이 없어서, 4·19는 그렇듯 실패해버리고 말았던 것일까? 이어 87년의 거대한 민주적 에너지가 이윽고 그 ‘비상국가체제’를 종식시킨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힘조차 동구권 붕괴 이후 ‘북한붕괴론, 흡수통일론, 북핵위기론’이라는 새로운 교의로 무장한 신(新) ‘비상국가체제’ 세력에 의해 다시금 ‘종북’, ‘퍼주기 세력’으로 몰려 다시금 ‘귀 빼고 뭣 뺀 당나귀’처럼 무력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순치되었던 것은 분단체제가 아니라, 그 분단체제를 끝장내보겠다 했던 저항 세력, 87년의 민주 동력이었다. 그 시간 역시 30년이었다. 87년 6월은 과연 승리한 것인가? 아니다. 4·19가 그랬던 것처럼 실패했다.

암울했던 2015년 겨울의 강연에서 나는 그것을 쓰라리게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쓰라렸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내 자신 80년대의 대변동에 미미한 일부였을지라도 풍찬노숙해가며 온몸을 던졌던 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몽땅 말아먹은 이유를, 아프지만, 아파도 견디면서, 꼼꼼하게 추적해보았다. 그 결과 악몽 같은 과정이 ‘반복’된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그 핵심에 ‘남북의 극단적 적대’를 동력으로 작동하는 ‘분단체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을 ‘마의 순환고리’ ‘분단체제의 반복강박’이라 불렀다.

절망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반대로 절망을 빠져나가는 길을 찾자는 것이었다. 반드시 찾아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원인을 모르는 게 문제다. 원인을 확실히 알면 해법이 반드시 있다. 그 12월의 강연에서는 평화체제, 공존체제를 이야기했다. ‘분단체제’가 문제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분단체제에서 공존체제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뭔가 아직 석연치 않았다. 평화체제, 공존체제는 좋다. 누구나 좋다고 한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그 평화체제, 공존체제를 이룰 수 있는가? ‘분단체제’를 종식시킬 열쇠, 핵심이 뭔가? 여기에 답하지 못하면 ‘그냥 좋은 말’ ‘공자님 말씀’하고 끝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질적 단절’의 그 고리가 무엇인가?

강연 이후 오래 생각했다. 답은 가까운 데 있었다. 양국체제였다. 그것을 2016년 5~6월의 4회 대중강연에서 밝힐 수 있었다. 그리고 2017년부터 대중적인 매체를 통해 칼럼 형식으로 가능한 널리 알려 나갔다. 양국체제가 현실화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로 보았기 때문이다. 2018년 4·27 판문점 회담 결과를 예견하는 글을 마지막으로 칼럼 활동은 일단 접었다. 이제는 큰 흐름이 잡혀가는 것으로 보였고, 그 상황에서 그런 방식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일단 다했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책 출판을 준비했다. 그것이 학자로서 해야 할 남은 숙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서 양국체제의 발상을 압축하여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마의 순환고리’는 ‘분단체제’를 통해 작동한다. 어떤 시스템도 동력이 끊어지면 정지하듯이 어떤 역사적 체제도 그 선행조건이 사라질 때, 같이 사라진다. ‘분단체제’는 미소 냉전과 남북 적대라는 두 개의 동력(선행조건)으로 작동되어왔다. 90년대 초 미소 냉전이 이윽고 종식되었음에도 분단체제가 존속해온 이유는 남은 동력인 남북 적대가 존속했기 때문이다. 이 적대를 해소해야 분단체제가 씌워놓은 마(魔)와 주술(呪術)에서 풀린다. 우선 남과 북이 서로 상대가 자신을 소멸시키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게 돼야 한다. 남과 북처럼 참혹한 전쟁을 한 사이에서 그 믿음이 완전해지기는 어렵다. 그나마 현실적으로 가장 분명한 것은 서로를 국가 대 국가로 완전히 인정하는 공식적·제도적인 조치들이다. 서로의 주권과 영토를 인정한다고 서로 그리고 세계만방에 약속하는 것이다. 그것이 양국체제다. 서로 정식 수교하여 대표부를 교환하고 이를 시발로 교류의 폭을 점차 늘려가는 것이다. 한국(ROK)과 조선(DPRK) 두 나라의 수교는 ‘한조(韓朝) 수교’다. 한조 수교는 코리아 양국체제가 공식화되는 첫 단추가 된다.

국가 간 수교가 적대관계 해소에 미치는 영향은 한중 수교에서 볼 수 있다. 서로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했던 수교 이전과 이제 서로 100만명씩 서로의 땅에 거주하고 있는 수교 이후의 차이는 너무도 명백하다. 남북 수교가 한중 수교만큼 당장 빠른 효과를 내기는 어렵겠지만, 수교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수준의 교류와 협력이 이뤄질 것은 분명하다. 분단체제론이 강조해온 남북 민중연대, 시민연대도 이때 비로소 본격화될 수 있다. 여기서 반드시 빠뜨려서는 안 될 문제가 있다. 양국체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북미 적대 역시 풀어야 한다. 미소 냉전이 종식되었음에도 한반도에서 냉전의 여파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것은 그 파생물이었던 남북 적대와 함께 북미 적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북미 역시 전쟁을 한 사이다. 그러나 미국은 전쟁을 했던 중국, 베트남과 이미 수교했다. 북미 적대 해소의 가장 현실적인 방법 역시 북미 수교에 있다. 따라서 양국체제는 남북 수교와 북미 수교를 통해 현실화된다. 남북 수교와 북미 수교가 이뤄지면 ‘분단체제’는 동력을 잃고 해소된다. ‘마의 순환고리’ 역시 따라서 끊긴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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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5/27-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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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은 구제금융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기사를 낸 <블룸버그>

#사례:

뉴욕 주 와쇼(Warsaw, NY)의 가족 식당 주인은 25명 종업원 고용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식당 내에서 손님 받을 수 없어 매상이 확 줄은 사장은 드라이브 스루로 음식만 사가게 하고 간간히 빵과 치즈 등도 함께 파는 궁여지책을 동원해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고 있다. 그러나 역부족이다. 이에 사장은 소상공인 재난지원금 대출인 급여보호프로그램을 이용하려 30년간 거래한 지역 은행에 12만5천 달러(약 1억 5천만 원) 대출을 신청했다. 그러나 은행에서 돌아온 답은 돈이 다 떨어져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14 years in 14 days: Inside the chaotic rollout of the SBA’s PPP loan plan to save America’s small businesses,” Fortune, April 30, 2020).

소상공인을 위한 구제금융이 시작된 지 14일도 안 돼 다 소진 됐다는 <포춘>지 기사

 

코로나19에 직접 타격 받은 소상공인과 서민

미국 정부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미국 경제가 1920년대 대공황급 이상으로 악화될 것을 우려해 선제적 방어에 나섰다. 엄청난 돈을 풀어내기로 했다. 그런데 막대한 이 긴급재난지원금을 갚을 이들은 정작 누구인가? 돈이 곳간에서 흘러 넘쳐서 준 것이 아니라 빈 곳간에서 돈을 찍어서 풀어낸 것이니 향후에 납세자들이 이 돈을 갚아야 한다. 그리고 향후란 그리 먼 미래도 아니다. 현재 50세 미만의 직장인들이 갚아야 할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Who Will Pay For the Coronavirus Bailout? If you’re under 50 and Working, You Will,” Fortune, April 21, 2020).

돈을 찍어 푸는 것이 사망 직전의 미국 경제를 살릴 유일한 방법임을 일단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좋다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에게 우선적으로 쓰여야 할까? 답은 명확하다. 이것을 갚아 나가야 할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들은 국민들이고 서민들이다. 당장 실탄이 필요한 이들에게 가야 한다. 한시가 급한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서민들이 일하는 곳은 대부분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사업체다. <뉴욕타임스>가 만든 아래 표를 보면 큰 그림이 보인다. 미국에선 고용근로자 500명을 기준으로 그 아래를 중소기업으로 그 이상을 대기업으로 분류하는데,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사업체에 민간부문 근로자의 거의 절반이 고용되어 있다. 그리고 100명 미만의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체에서 대부분의 서민들이 일을 한다. 2016년 현재 6천만 명에 이르는 근로자가 3,100만 개의 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Where the Small-Business Relief Loans Have Gone,” New York Times, May 7, 2020). 그래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에게 인공호흡기를 달아 그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일단 막는 것이 매우 시급한 일이다. 그것이 곧 일반 서민을 보호하는 지름길이기에 그렇다.

미국 민간부문 근로자의 업체(고용자수)별 고용 현황

소상공인 자영업체에 미국의 민간부문 근로자의 거의 절반이 고용되어 있다 <출처: 뉴욕타임스>

정부가 소상공인들을 돕겠다며 내놓은 돈은 이제까지 6,600억 달러(약 809조 원: 1차 3,490억 달러(약 429조 원); 2차 3,100억 달러(약 380조 원))이다. 이름은 급여보호프로그램(Paycheck Protection Program:이하, PPP), 그걸로 직원의 급료를 주고 해고하지 말라는 취지로 붙인 이름이다.(João Granja 외, 2020). 그런데 그 돈은 제대로 쓰였을까? 그렇지 않아서 문제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혜택을 본 이들은 매우 적고 대부분 PPP 구경도 못했으니까. 그렇다면 그 돈은 도대체 어디에 어떻게 쓰였을까?

 

대기업이 낚아채간 소상공인 재난지원금(PPP)

영세자영업자 같은 소상공인에게 주라고 국가가 푼 돈이 어디로 갔는지는 위 사례의 식당 사장의 말을 들어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돈이 어떻게 다 떨어졌는지 곧 알게 되었다. <루스 크리스 스테이크 하우스>(Ruth’s Chris Steak House)같은 큰 체인점이 정부가 돈 풀자마자 바로 신청해서 수백만 달러를 가져갔다. 그런 큰 회사는 일 년에 수백만 달러를 번다. 정말 화가 났다. 그런 대형 식당 체인이 소기업인가. PPP라는 게 원래 소상공인 도우라고 조성한 돈 아닌가? 근데 왜? 도대체 왜 그 돈이 그들에게 갔는가?”(Fortune, April 21, 2020).

이런 상황은 와쇼의 식당 사장만 겪는 게 아니다.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뉴욕시에서 6개의 식당을 경영하며 310명을 고용한 제법 큰 소상공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도 PPP를 신청했지만 단박에 거절됐다. 그의 입에서도 “범털(큰 회사)들은 구제금융 받고, 나 같은 개털들은 못 받고 이게 말이 되나?”하는 분통이 터져 나왔다.(“‘The Big Guys Get Bailed Out’: Restaurants Vie for Relief Funds,” New York Times, April 20, 2020).

그럼 큰 식당 체인들은 도대체 얼마나 타 갔을까? 100개 이상의 점포에 5천 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는 <루스 크리스 스테이크 하우스>가 2천만 달러(악 245억 원)을 받았다. 전국에 189개 점포를 갖고 8천 명의 직원을 갖고 있는 햄버거 체인점 <쉐이크 쉑>(Shake Shack)은 1천만 달러(약 123억 원), 샌드위치 체인점 <포트벨리>(Potbelly)는 전국에 약 500개 점포가 있고 직원 수는 6천 명에 이르는데 이 회사도 소상공인 구제금융 1천만 달러를 받았다.(New York Times, April 20, 2020). 또 다른 대형 체인 <제이 알렉산더스>(J. Alexander’s)도 1,510만 달러(약 185억 원)의 PPP를 따냈다.(“Firms With Trump Links or Worth $100 Million Got Small Business Loans,” NBCNews, April 25, 2020). 요새 말로 ‘득템’(좋은 것을 획득했다는 신조어)했다.(그것이 득템인 이유는 조금 뒤에 밝히겠다).

이것을 두고 식당, 술집, 호텔 등 사업체의 사교단체인 <뉴욕시접객업소연맹>(NYC Hospitality Alliance)은 “정말 분노와 짜증이 난다. 정부의 지원은 소상공인 영세 자영업 식당에게 가야 마땅하다”는 성명을 냈다. <미국식당협회>(National Restaurant Association)에 따르면 3월 이후 4월 중순 현재까지 미국에서 약 8백만 명의 식당 종사자 또는 노동력의 3분의 2가 해고당했다. 식당업계는 3백억 달러(약 36조7천억 원)의 손실을 입었고, 4월말까지 추가로 5백억 달러(약 61조 원)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추정했다.(New York Times, April 20, 2020). 대기업체인 보다 영세 식당들의 타격이 컸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전자는 코로나사태가 단기간 내에 끝나지 않아 셧 다운(정상영업중지)이 연장되더라도 버틸 여력들이 있어 잘 넘길 것이지만, 영세자영업자들은 버티지 못하고 약 3분의 2가량이 사라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세업자를 살리라고 제공한 구제 금융을 덩치 큰 대기업이 톡 채가 버렸다. 대기업의 가로채기는 다른 곳에서도 벌어졌다.

 

소상공인 구제 금융에 숟갈 얹은 호텔 등 대기업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거의 300개에 이르는 상장기업들이 소상공인 구제금융 중 10억 달러(약 1조 2천억 원)을 가져갔다. 예를 들면, 텍사스 주 달라스시 에 기반 한 호텔회사 애쉬포드 주식회사(Ashford Inc.)는 리츠 칼튼 등의 특급호텔을 소유한 호텔업계 제왕이다. 이런 회사가 7,600만 달러(약 934억 원)의 PPP 구제 금융을 받았다. 애초에 신청은 간 크게도 총 1억2천6백만 달러 (약 1,544억 원)을 했다. 그 절반가량을 따낸 것이다.(“Public Companies Received $1 billion in Stimulus Funds Meant for Small Businesses,” Washington Post, May 2, 2020; “Luxury Hotel Company Is Biggest Beneficiary of Small-Business Funds,” New York Times, April 22, 2020).

소상공인 구제금융 받아간 대기업 중 호텔업계의 제왕인 애쉬포드 소속 리츠 칼튼 아틀랜타 호텔의 전경. 이 호텔은 PPP로 2천9백만 달러를 받아냈다 <출처: 뉴욕타임스>

도대체 어떤 대기업이 이런 짓을 했느냐는 비난이 비등했지만, 소관부처인 중소기업청(The Small Business Administration, 이하 SBA)은 양심불량 기업들의 명단을 공개하길 꺼렸다.(뭐가 구리긴 구린 모양새다). 그러나 매체는 그동안 과거에 공개됐던 대출 프로그램 정보를 종합해 몇몇 회사 이름을 밝혀냈다.(우리나라 대부분의 맹탕 기자들과는 좀 다르다고 해야 하나?). 그때 단서가 됐던 것은 바로 회사 대표(CEO)의 연봉이었다. 캘리포니아 주의 인공지능회사 <베리톤>(Veritone)은 2018년도 대표의 연봉이 1,870만 달러(약 230억 원), 동생이 1,390만 달러(약170억 원)를 받는 대기업이다. 그런데 이 회사는 이번에 650만 달러(약 80억 원)의 PPP를 받았다.(Washington Post, May 2, 2020).

뉴저지 주의 제약회사 <애퀴스티브 테라슈이틱스>(Aquestive Therapeutics)의 대표 연봉은 작년에 260만 달러(약 31억 원), 올해 이 회사는 소상공인 구제금융 480만 달러(약 59억 원)를 받았다. 복제약회사인 <웨이브 라이프 사이언스>(Wave Life Sciences)는 720만 달러(약 88억 원)의 PPP를 챙겼는데 회사 대표의 2018년 연봉은 580만 달러(약 71억 원)였다.(Washington Post, May 2, 2020). 회사 대표가 그렇게 엄청난 연봉을 챙기는 큰 회사이면서도 소상공인을 위한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마저 한 치의 주저함 없이 채간 것이다. 이들이 왜 부자가 되었는지 알만하다. 챙길 건 확실히 챙기자가 이들의 모토!

 

14일 내에 14년 치 지원금(1PPP) 소진그 많던 소상공인 재난지원금은 다 어디로 갔나?

그렇게 영세자영업자 구제를 위한 정부재난 지원금은 정작 그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에 소진되었다. 특히 4월 3일 발효된 PPP는 14일이 되기도 전에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재무부 산하 중소기업청(SBA)이 보통 소상공인을 위해 대출프로그램으로 잡은 액수가 일 년에 300억 달러(약30조7천억 원)가 안 된다. 그런데 SBA의 14년 치 소상공인용 대출금액 보다 더 많은 코로나19 대응 PPP가 14일이 되기도 전에 동나 버린 것이다.(Fortune, April 30, 2020). 대부분 상장사인 대기업의 호주머니 속으로 홀랑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전국의 소상공인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그래서 2차 PPP가 또 발주되었다. 1차 때 보다 대기업이 몸을 조금 사린 것 같지만 여전히 대기업이 채간 돈이 훨씬 많다. 다음 <뉴욕타임스>의 도표를 보라.

1백만 달러(약 12억 원) 이상의 거액대출이 초기 재정지원에 큰 부분 차지한다. 첫 번째 PPP의 경우, 소수 5% 기업에게 대출금 전체의 거의 절반이 갔다. 대기업이 채갔다. 15만 달러(약 1억 8천만 원) 미만의 소액을 빌린 소상공인은 전체 대출자의 70%를 차지하지만 빌려간 액수는 PPP의 15%에 불과하다. 2차 PPP는 조금 눈치가 보였는지 소액대출이 늘었다(1차 대출액 평균 20만6천 달러; 2차 평균 7만9천 달러). 15만 달러 미만의 소액대출은 PPP의 37%를 차지했다. 그러나 1백만 달러 이상 대출을 챙긴 대기업은 대출자의 1%에 불과하지만 받은 액수는 PPP의 4분의 1이 넘는다.(“Where the Small-Business Relief Loans Have Gone,” New York Times, May 7, 2020).

1,2차 소상공인대출(PPP) 대출액별 현황

소상공인대출(PPP) 중 1백만 달러가 넘는 대출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출처: 뉴욕타임스>

<뉴욕타임스>분석에 따르면 소상공인의 25%만이 정부지원을 받았다.(“Failing to Help Those Who Need It Most,” New York Times, April 24, 2020). 공간적으로 보면, 코로나로 타격을 가장 많이 받은 지역은 3월 4월 현재까지 뉴욕과 뉴저지 주이다. 그러나 시카고대학과 MIT대학의 학자들이 분석해 본 결과 이런 지역의 소상공인들은 PPP지원을 적게 받았고, 오히려 코로나의 직접적인 타격이 덜한 지역에서 지원을 더 많이 받는 불균형 현상이 벌어졌다.(João Granja 외, 2020; New York Times, May 7, 2020; Washington Post, May 2, 2020). 한 마디로 코로나 대응 PPP가 코로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애먼 데로 가버린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관련 인물들이 따간 PPP

그렇다면 어떤 대기업들이 소상공인을 살리라고 준 돈들을 날름 삼켜버린 것일까? 어떤 루트로? 다음의 예를 보면, 그 실마리를 풀 수 있다.

<홀라도르 탄광>(Hallador Coal)이란 회사가 있다. 이 회사가 PPP로 타간 돈은 1천만 달러(약 123억 원)이다. 그런데 이 회사가 로비스트로 고용한 이는 다름 아닌 트럼프 행정부에서 ‘스캔들 메이커’로 악명이 높았던 스콧 프루이트(Scott Pruitt)이다. 그는 환경청장(EPA)으로 취임한 직후부터 에너지업계 로비스트가 제공한 10만 달러(1억2천만 원)를 받고 모로코 여행을 하는 등의 온갖 지저분한 문제로 구설수에 올랐다. 한 마디로 청렴과는 거리가 먼 쓰레기 탐관오리다. 그러나 그를 감싸고 도는 트럼프에 의해 청장직을 유지하다 결국엔 사임했다. 그런데 그가 자리에서 물러나자마자 간 곳이 바로 홀라도르다. 그는 지금 홀라도르를 위해 대정부 로비스트로 맹활약 중이다. 동시에 현재 그는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14건의 죄목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Fossil Fuel Firms Linked to Trump Get Millions In Cornavirus Small Business Aid,” The Guardian, May 1, 2020; “Firms With Trump Links or Worth $100 Million Got Small Business Loans,” NBCNews, April 25, 2020; “E.P.A. Chief Scott Pruitt Resigns Under a Cloud of Ethics Scandals,” New York Times, July 5, 2018).

뇌물 등 온갖 비리 추문에 휩싸였으나 트럼프의 비호 아래 버티던 스콧 프루이트가 사임을 두고 <아틀랜틱>은 그의 사임으로 엄청난 추문이 과연 덮어질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는 사임 후 <홀라도르 탄광>의 로비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그 회사는 소상공인 구제금융 1천만 달러를 따냈다.

<리노 리소시스>(Rhino Resources)란 탄광회사도 1천만 달러의 PPP를 받았다. 그런데 그 회사의 전임 사장이 누구였나 하면, 현재 트럼프의 <미국광산안전보건청>(mine saftey and health administration)의 수장인 데이비드 자테잘로(David Zatezalo)다. 이게 끝이 아니다. <라마코 리소시스)(Ramaco Resources)라는 탄광회사는 무려 840만 달러(약 103억 원)을 따냈다. 어떻게? 현재 회장 랜디 애킨스(Randall Atkins)가 <미국에너지국>(Dept. of Energy)의 석탄위원회위원이기 때문이다. 이런 예는 더 댈 수 있다. 그러나 독자들의 귀가 더러워질까봐 멈춘다.

이렇게 현재 트럼프 행정부와 연줄을 가진 전 현직 관료들이 물심양면으로 애쓰는 통에 소상공인을 살리기 위해 만든 정부재원에 대기업들이 침을 발라 꿀꺽하고 자신들의 배를 채웠다. 물론 그들은 그런 연줄이 전혀 돈을 타내는데 작동하지 않았다고 극구부인하고 있다. 비리 저지르고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사람 보기 드물다. 이런 것은 동서고금 마찬가진가 보다. 하긴 잘못을 시인할 인간이면 아예 그런 짓을 저지르지는 않을 공산이 클 터. 어쨌든, 이렇게 해서 사양산업인 화석연료 생산 대기업이 소상공인 긴급재난지원금으로 따간 돈이 무려 5천만 달러(약 613억 원), 그 중 트럼프 행정부와 연계된 회사가 가져간 PPP는 <가디언>추산 2,800만 달러(약 343억 원), <엔비시뉴스>추산 1,830만 달러(약 224억 원)이다.(“Fossil Fuel Firms Linked to Trump Get Millions In Cornavirus Small Business Aid,” The Guardian, May 1, 2020; NBCNews, April 25, 2020; “Coal Snags $31 Million in U.S. Stimulus Loans for Small Business,” Washington Post, May 5, 2020).

소상공인 대출 낚아채간 석탄회사란 제목의 <워싱턴 포스트> 기사

트럼프 행정부와 관련된 인사로 인해 PPP를 받은 회사는 화석연료 회사 이외에도 많다. <크로포드 유나이티드>(Crawford United)와 <플로테크 인더스트리>(Flotek Industries)가 그 예로 각각 370만 달러(약 45억 원), 460만 달러(약 56억 원)를 받았고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작자들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해외대사 등의 요직과 특혜를 받은 회사의 이사 등의 중역을 돌아가며 맡고 있다. 소위 회전문 인사의 당사자들이 정부 돈을 타내는 데 거간꾼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NBCNews, April 25, 2020).

 

은행과 단골고객의 상부상조

앞에서 언급했듯 소상공인의 몫을 채가는 이런 비열한 짓의 선두주자는 단연코 트럼프 행정부와 연줄이 닿는 대기업이다. 그 다음은 어떤 방식이 동원되었을까? 소상공인옹호 시민단체인 <중심가연맹>(the Main Street Alliance)대표 아만다 볼란틴(Amanda Ballantyne)은 “은행과 돈독한 관계를 쌓아온 기업”이 PPP를 따갔다고 말한다.(NBCNews, April 25, 2020). 은행과 짬짜미 한 기업들이 타갔다는 뜻이다.

대형은행들은 PPP신청을 받을 때 하나의 원칙을 가지고 대출신청을 받았다고 호언장담했다. 이전 회에서 필자가 말했던, 선착순 규칙이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는 두 개의 줄을 만들었다. 하나는 진짜 소상공인을 위한 줄, 다음은 속성 줄(왜 이렇게 요사이 패스트트랙이 유행하는 줄 모르겠다)인 기존의 단골 대기업을 위한 줄. 예를 들면 제이피모건(JPMorgan)이 그렇게 두 개의 줄을 세웠다. 그런데 대기업은 솔직히 줄을 설 필요도 없다. 전화 한 통이면 끝나는 줄이니까. 아니면 먼저 은행 측에서 고객에게 전화를 했을 수가 있다. 이렇게 좋은 대출조건이 있는 상품이 나왔으니 신청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먼저 타진을 했을 수가 있다. 이것저것 다 논외로 치더라도 영세자영업자들은 대출 받는데 제출해야 하는 서류작업에 서툴다. 그러나 대형회사들은 능숙하며 완벽하게 서류를 꾸며낼 준비가 언제나 돼있다. 이미 게임이 안 되는 것이다.(New York Times, April 24, 2020).

소상공인 대출을 대행하는 대형은행이 선착순 규칙을 어겨 소상공인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는 <뉴욕타임스> 기사 제목

또 대출 대행 은행은 자기들과 관련 있는 인사가 있는 기업에게 우선적으로 대출을 해 주었다. 스마트폰 보호 장구를 만드는 기업인 <재그주식회사>(Zagg Inc.)는 무려 940만 달러(약 115억 원)의 지원을 키뱅크(KeyBank)를 통해 받았다. 그런데 현재 회사 대표가 키뱅크의 과거 고위 임원이었다. 웃긴다. 서로서로 챙겨주기 그런 건가? 이 때문에 볼란틴은 정책입안자들이 소상공인지원프로그램을 연줄과 은행단골고객이 아닌 실질적인 소상공인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가도록 규정을 정비해야한다고 일갈하고 있는 것이다.(NBCNews, April 25, 2020).

그렇다면 정부의 구제금융 분배를 대신한 대행사인 은행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수수료다. 그들이 고작 한 일이라곤 신청 받아 정부 돈을 자신들 입맛대로 나눠준 것뿐인데 엄청난 수수료까지 챙겼다. 미국공영라디오방송(NPR)에 따르면 대출대행 은행이 수수료로 거둔 금액은 무려 100억 달러(약 12조 원)가 넘는다.(“Here’s How The Small Business Loan Program Went Wrong In Just 4 Weeks,” NPR, May 4, 2020).

그들이 대기업에게 우선적으로 거액의 돈을 선뜻 대출해 준 데에는 또다른 야비한 이유가 있다. 대출 규모가 클수록 수수료가 더 높기 때문이다. 물론 대출 서류 작성 등 거기에 들어가는 시간과 정력이 다수에게 소액대출을 해줄 때 보다 덜 들어가는 것은 덤이다. 결국 종합하면, 소상공인에게 가야할 구제 금융을 이들 은행들도 챙겼다는 뜻이다. 단골고객인 대기업과 짝짜꿍하면서. 이런 걸 보고 우린 말한다. 벼룩의 간을 내먹는다고. 그러면 일이라도 제대로 할 것이지, 이게 뭐람. 하긴 아무런 정부의 제제가 없는 곳에서 이들처럼 안 하는 것이 바보취급 받을 테니 저들의 행보는 저들로서는 무척 합리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정부가 나서서 대기업을 감싸고도는 판에 누구 탓을 하랴.(이것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말하겠다).

 

대형회사의 PPP가 득템인 이유

 그러면 이쯤에서 다음의 질문이 나와야 한다. 상장기업인 대기업들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소상공인 대출에 슬쩍 숟가락을 얹으려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기업이 굳이 죽어라 PPP 돈을 빌리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500명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한 대기업이 소상공인을 위한 PPP를 받을 수 있었는가?

먼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다. 대기업이 노린 것은 바로 탕감이다. 탕감을 노리고 PPP를 받는 것이다. 무슨 말일까? PPP는 다른 대출과 달리 탕감가능성이 있는 대출이다. 대기업은 탕감 받기에 유리하다고 판단해서 그토록 PPP를 타내려고 애썼던 것이다.(New York Times, May 7, 2020). 탕감 받는 조건은 6월 30일까지 직원을 해고 하지 않는 것이다.(New York Times, April 20, 2020). 이 조건은 소상공인보다 덩치가 큰 대기업이 지키는 것이 더 쉽다. 왜냐하면 덩치가 크면 그만큼 그 시한까지 고용 유지가 쉬우니까.

이에 비해 소상공인들은 규모가 워낙 작고 영세하다 보니 그게 어렵다. 미국에 팬데믹이 시작되자마자 소상공인들은 이미 직원들을 많이 내보냈다. 일단은 실업보험을 타게 하고 사태가 나아지면 다시 고용할 요양으로 나름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 일단은 소나기는 피하는 게 상책이니까. 그러나 문제는 코로나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를 장기전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미국 전역이 경제 재개를 다 허용한 것도 아니다. 즉 열고 싶어도 못 열 수 있다. 또 열었다한들 파리만 날리고 있고, 십중팔구 앞으로도 그렇게 될 공산이 매우 크다. 사업이 팬데믹 이전처럼은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 말은 곧 고용을 그 이전으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말과 같다. 그것은 소상공인에겐 대출금 탕감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말과 같고, 그것이 현실화되면 대출은 고스란히 빚으로 떠안게 된다는 의미다.(“Small Businesses Counting on Loan Forgiveness Could Be Stuck With Debt,” New York Times, May 6, 2020).

소상공인 구제금융은 탕감 가능하지만 그 요건을 만족 시킬 수 있는 것은 대기업이지 소상공인들은 아니다. 그래서 탕감을 염두에 두고 대출을 받은 소상공인들은 자칫하면 이자와 함께 원금도 갚아야 해서 빚더미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뉴욕타임스> 기사

게다가 문제가 그것만 있는 게 아니다. 소상공인이 PPP를 받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수십 번 신청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노’ 밖에 없다.(“Denied, Deferred and Ignored: 13 Applications, and No Relief,” New York Times, April 24, 2020). 설사 PPP를 받는다 한들 탕감은커녕 빚더미에 앉을 공산이 큰 데다, 또 규정이 너무 까다로워서 받아 놓고도 한 푼도 쓰지 못하고 손도 못 댄 소상공인들이 많다. 반드시 급여로만 대출금의 75%를 써야 한다는 단서 조항 때문이다.(“Some Small Businesses That Got Aid Fear the Rules Too Much to Spend It,” New York Times, May 2, 2020). 이미 직원들을 내보냈는데 어찌하란 말인가. 이런 걸 두고 엎친데 덮친 격, 설상가상이라 하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소상공인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는 와중 대형회사는 6월말까지의 고용은 식은 죽 먹기니 일단 타고 보자하고 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6월말의 시한만 지나면 탕감 받고 직원들을 가차 없이 자를 것이 뻔하다. 누구에겐 PPP가 생명줄이자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만, 누구에게는 먹고 입 싹 씻을 수 있는 그저 눈먼 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득템이란 표현을 썼던 것이다.

어쨌든 대기업이 PPP를 거의 다 채가자 엄청난 비난이 일었다. 이에 재무부장관 므누신이 2백만 달러(약 24억5천만 원)이상 대출자(대기업만 가능)에 대한 조사가 들어갈 것이고 법적책임도 물을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완전 뒷북이다. 이에 몇몇 회사들이 받은 돈을 토해내겠다고 발표했다. 호텔체인점 <에쉬포드>, <쉐이크 쉑> 햄버거, <루스 크리스 스테이크 하우스> 등이 슬그머니 발을 뺀 것이다.(“Hotel Group Will Return Tens of Millions in Small Business Loans,” New York Times, May 2, 2020).

 

짜고치는 고스톱: 탕감받기 위해 로비해 법령 바꾼 대기업

이제 다음 질문에 답할 차례다. 어떻게 500명 이상의 직원을 가진 대기업이 500명 미만의 소상공인 구제 금융을 받았는가? 이 대답을 하기 전에 재무부장관 므누신이 1차 PPP가 소진되고 나서 대기업을 향해 뒷북을 친 것에 대한 평가를 해야 한다. 그러면 저 질문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답을 확보할 수 있다.

왜 재무부와 SBA는 초장부터 PPP 시행 계획을 세밀하게 하지 않았는가? 이번 경우(코로나19)가 전례가 없는 것이라 경황이 없어서?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고용인 500명을 기준으로 벌어진 PPP 자격 요건을 보면 처음부터 너무나 꼼꼼히 대기업을 위해 정책과 법안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니까 그렇다. PPP 법안은 500명 이상의 종업원을 둔 대기업이라도 회사 전체로 보지 않고 회사에 속한 물리적 장소 1개 당 직원이 500명 이하면 PPP를 받을 수 있게 허용했다. 쉽게 이야기 하면 이렇다. 수백(십) 개의 체인점과 수천 명의 직원을 고용한 식당체인과 호텔체인이라고 하더라도 체인점 단 한 곳의 직원이 500명만 넘지 않는다면 전체 회사에 소상공인이 탈 수 있는 자격요건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완전 꼼수다. 물론 이런 꼼수도 이들 업계의 집요한 대정부 및 대의회 로비를 통해 이루어진 혁혁한 성과다.(New York Times, April 20, 2020).

이렇게 정치권은 철저히 대기업 편이다. 대기업에게 뭔가를 주지 못해 안달을 한다. 물론 그래야 자신들이 주워 먹을 콩고물이 떨어지니까. 그러니 실로 일로매진할 수밖에. 소상공인과 서민들을 위해 일해 봤자 그들에게 떨어지는 콩고물은 없다. 도의적 책임과 사명? 바랄 걸 바라자. 그들의 안중엔 그런 것은 없다. 소상공인과 거기서 일해 생계를 유지하는 서민들 생각일랑 그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그러니 저런 짓을 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기준 선 500명과 관련한 특혜가 한 가지 더 있다. 이것은 다음 회에서 알아보기로 하자.

 

다윗과 나단

이렇게 소상공인을 위한 PPP는 구멍이 숭숭 난 채 내가 말하는 제국들(탐욕과 부정 및 반칙에 찌든 극소수 부자들, 엘리트들)의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정작 생명줄이 필요한 이들에겐 지푸라기 하나 던져주지 않고 모터보트를 타고 있는 이들에게 기름을 더 넣어준 격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원성이 하늘을 찌르자 제국 중 어떤 것들은 슬그머니 PPP를 돌려주기로 했단다. 그러면 다인가? 생각해 보라. 그것이 도둑질 하고 들키니까 제자리에 갖다 놓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 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반환하면 범죄 아닌가? 자격도 없는 것들이 정경유착과 로비로 규정을 수정해 자격 있는 것으로 둔갑하고 또한 갖은 연줄 동원해 없는 자들에게 돌아갈 것을 가로챘다. 그건 명백한 범죄다. 한도 끝도 없는 욕심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제국들이 그렇게 PPP를 가로챈 사이 생명줄 놓친 자영업자들은 줄도산 하고 노동자들은 실업자로 전락했는데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 일자리는 그들에겐 유일하게 남은 호구지책이었다. 번듯한 직장도 아니고 그저 허드레 일자리였다. 그것마저 낚아 채갔으면서, 그래서 남의 가정을 파괴했으면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가? 돈을 반환하기로 했으니 끝이란 말인가? 하긴 누가 뭐래도 PPP를 꿍치고 앉아 뱃속을 채울 요량인 대기업도 있긴 하니 더 이상 뭐라고 말하겠는가. 그러니 뭐 잘못 한 게 있느냐고 적반하장으로 안 나오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것인지. 남의 나라 일이지만 참 답답하기만 하다.

이 대목에서 구약성서의 나오는 다윗 왕과 나단 선지자의 삽화가 떠오른다. 나의 지도교수 피터 버거(Peter Berger)가 가끔 언급하던 매우 유명한 이야기다. 다윗은 자신을 위해 전장에 나가 싸우는 우리아의 아내에 꽂혀서 간통을 저지른다. 그것이 발각 날까봐 충신 우리아를 일부러 최전선에 보내 죽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아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삼는다. 왕의 이 비열한 범죄는 유야무야 끝날 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 날 선지자 나단이 다윗 앞에 선다. 그리고 이런 이야길 꺼낸다. 여기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다. 부자는 양과 소가 많고 가난한 자는 가진 것이라곤 오직 새끼 양 한 마리뿐이다. 어느 날 부자에게 손님이 왔고 부자는 자기 양과 소를 잡아 손님을 대접하지 않고 가난한 자의 새끼 양을 빼앗아 그걸 잡아 대접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은 불같이 화를 냈다. 당장 그 자를 잡아 오라고 사형에 처하겠다면서. 그 때 나단이 다윗을 보며 말 했다. 왕이여 그게 바로 당신이다. 그 순간 다윗은 고꾸라져 자신의 죄를 회개한다. 이런 다윗 같은 제국을 기대하는 것은 한낱 부질없는 꿈일 터…

 

참고 자료

“Coal Snags $31 Million in U.S. Stimulus Loans for Small Business,” Washington Post, May 5, 2020.

“E.P.A. Chief Scott Pruitt Resigns Under a Cloud of Ethics Scandals,” New York Times, July 5, 2018.

“Firms With Trump Links or Worth $100 Million Got Small Business Loans,” NBCNews, April 25, 2020.

“Fossil Fuel Firms Linked to Trump Get Millions In Cornavirus Small Business Aid,” The Guardian, May 1, 2020.

“Small Businesses Counting on Loan Forgiveness Could Be Stuck With Debt,” New York Times, May 6, 2020.

“Public Companies Received $1 billion in Stimulus Funds Meant for Small Businesses,” Washington Post, May 2, 2020.

“Here’s How The Small Business Loan Program Went Wrong In Just 4 Weeks,” NPR, May 4, 2020.

“Where the Small-Business Relief Loans Have Gone,” New York Times, May 7, 2020.

João Granja ,Christos Makridis, Constantine Yannelis, and Eric Zwick, “DID THE PAYCHECK PROTECTION PROGRAM HIT THE TARGET?,” NBER WORKING PAPER SERIES, Working Paper 27095, May 2020.

“‘The Big Guys Get Bailed Out’: Restaurants Vie for Relief Funds,” New York Times, April 20, 2020.

“The U.S. Needs Way More Than a Bailout to Recover From Covid-19,” Bloomberg Businessweek, April 30, 2020.

“14 years in 14 days: Inside the chaotic rollout of the SBA’s PPP loan plan to save America’s small businesses,” Fortune, April 30, 2020.

“Luxury Hotel Company Is Biggest Beneficiary of Small-Business Funds,” New York Times, April 22, 2020.

“Hotel Group Will Return Tens of Millions in Small Business Loans,” New York Times, May 2, 2020.

“Some Small Businesses That Got Aid Fear the Rules Too Much to Spend It,” New York Times, May 2, 2020.

“Who Will Pay For the Coronavirus Bailout? If you’re under 50 and Working, You Will,” Fortune, April 21, 2020.

“Failing to Help Those Who Need It Most,” New York Times, April 24, 2020.

“Denied, Deferred and Ignored: 13 Applications, and No Relief,” New York Times, April 24, 2020.

금, 2020/05/29-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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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의 ‘뉴노멀’에 대한 논의들이 쏟아지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 우리는 한국 사회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생각을 공유한 바 있다. 그 결과 2016-17년의 ‘촛불혁명’이라는 정치변화가 가능했고, 그 기반 위에서 코로나19의 성공적 방역 역시 가능했다. 말하자면 매우 한국적인 특성을 가진 세월호 재난은 한국 정치에 어떤 임계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어서 닥친 코로나19가 제2차 세계대전만큼 또는 그보다 더 참담한 세계적 재난으로 작용하면서, 그것은 이제 세계 차원의 어떤 임계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세계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것이다.

대체로 코로나 19 이후의 ‘뉴노멀’은 ‘디지털화’나 ‘그린뉴딜’로 상상된다. 그러나 ‘새로운 정상성 또는 규범’을 의미하는 그 표현은 단순한 기술변화, 즉 ‘디지털 방향으로의 전환인가 아니면 저탄소 뱡향인가?’의 문제로 축소될 수 없다. ‘정상성’이나 ‘규범’은 사회학의 핵심 개념이다. 따라서 ‘뉴노멀’은 사회의 변화, 즉 다차원적 사회적 관계들의 형태 및 성격에서 변화가 불가피함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이해되는 것이 적절하다. 코로나19가 초래한 새로운 문제들은 각 사회 내외에서 경제적 충격만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심층에서 사회적 관계들 역시 변화시킬 것이다.

예컨대 여행 제한이나 국경봉쇄로 인한 이동성의 급작스러운 정지는 자동차 산업과 항공산업에 대한 국고지원이나 실업률 급증의 문제―물론 실업은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로만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의 사회가 대유행 전염병(팬데믹)과 공존하는 사회일 수밖에 없다면, 자율주행차, 전기자동차, 수소자동차, 저탄소 배출형 항공기로의 생산 전환이라는 디지털화, 저탄소화의 문제뿐만 아니라, 물리적 이동량 자체 및 그 구성에서 계속 변동을 예상해야 할 것이다. 대유행 전염병 상황에서 언제든 소환될 수 있는 ‘사회적 거리 두기’와 이동성은 밀접히 연관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사회적 거리 두기’는 ‘물리적 거리 두기’를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점차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킬 것이다. 사회학에서는 물리적 이동성과 사회적 이동성이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것으로 논의해왔다. 또 이동성 제한으로 외국인 계절노동자 등의 사용에 문제가 생기면, 노동시장의 수요-공급 불일치(미스매칭)에 대한 해결책도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디지털화가 불가능한 영역에서 노동시장의 미스매칭이 계속 사회경제적 문제로 등장할 터인데, 그중 돌봄 영역과 관련하여 서구에서는 이미 문제가 드러났다. 예컨대 미국과 독일에서 코로나19와 관련한 간호사들의 집회가 있었다. 미국의 간호사 집회는 마스크 등 보호장비 부족 때문이었다. 독일의 경우에는 코로나19를 계기로 간호사의 임금상승이 이루어졌으나 인력 부족으로 인해 그들이 여전히 과도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시위가 일어났다. 한국의 경우에는 돌봄 문제가 노동시장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피해자 집중 발생 부문―정신병동과 노인요양시설 등―의 문제로 주목을 받았다. 방역에 자원하고 헌신하는 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했으나, 노동조건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헌신적 태도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서구에서 코로나19 확산이 의료체계 붕괴에 대한 공포로 연결된 데에는, 공공의료 체계의 약화나 붕괴 못지않게 돌봄 노동시장의 문제 역시 작용했다.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4차 산업혁명의 시나리오에서 종종 간과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돌봄과 저숙련 서비스직에서 일자리가 계속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대표적인 일자리로서 돌봄 일자리가 꼽힌다. 산업화한 사회들의 고령화 추세로 인해서 돌봄 일자리는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는데, 대유행 전염병이 일상화한다면 돌봄 일자리에 대한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 또 확대되는 디지털화 속에서 콜센터와 같은 서비스직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 콜센터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한국에서는 이들이 코로나19의 취약집단으로 등장한 바 있다. 또 최근에는 저숙련 서비스업에서의 불안정 고용 관행으로 인해 ‘n잡을 뛰는’ 경우가 늘면서, 서비스업 종사자의 감염 위험성이 부각되기도 했다.

증가하는 돌봄 일자리와 저숙련 서비스직 일자리와의 공통점을 찾자면, 다음의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이런 일자리들이 저임금, 불안정 노동, 나쁜 노동환경의 속성을 갖는 여성 일자리들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코로나19 이후의 ‘뉴노멀’로 제시된 디지털화나 그린뉴딜의 정책 속에서 이런 일자리들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현재 논의되는 ‘뉴노멀’에서 고려되는 현실은 절반의 현실에 불과하고, 그 절반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다른 절반이 완전히 배제된다. 이것은 기존의 ‘노동’ 개념이 남성의 노동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여성 노동은 돌봄이나 감정노동과 같이 ‘타인과의 관계’라는 요소들을 포함하는데, 바로 그런 이유에서 그것은 ‘노동’이 아니라 ‘규범’의 문제, 즉 ‘여성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행위’로 여겨지고 있다.

노동을 타인과의 관계로부터 분리하는 이런 경향은, 페미니스트 정의론자들이 ‘분배 패러다임’이라고 부르는【1】 방향으로 발전한 사회계약론의 전통 속에서 확립되었다. 사회계약론은 자유주의 정치이론의 기초로서 근대 헌법과 현대 사회정책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다. 과거 한국에서 헌법은 단지 수입된 서양의 근대적 제도에 불과했다. 80년대 후반의 ‘민주화 개헌’으로 헌법이 국민에게 한층 가까워진 것이 사실이나, 그것이 일반 국민의 정치 감정 속에서 뜨겁게 소환된 것은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였다. 이런 의미에서 세월호 참사는 한국 민주주의 정치의 임계점이 된 것이다.

한국적 위험이었던 세월호 재난이 한국에서 자유주의 정치원리를 ‘정상적인 규범’으로서 대중화―일종의 근대화 따라잡기로서―했다면, 코로나19 이후 기대되는 세계적 ‘뉴노멀’은 돌봄과 서비스 노동의 증가 문제와 관련하여 자유주의 정치원리에 체계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성격의 것이다. 말하자면 코로나19를 계기로 더욱 두드러진 돌봄과 서비스 노동의 불가피성으로 인해서, 코로나19 이후의 ‘뉴노멀’은 단순한 기술혁신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계약의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의 개념, 그리고 그것의 기초가 되는 ‘개인’과 ‘자유’의 개념까지, ‘뉴노멀’의 새로운 사고가 이루어져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지적되어야 하는 새로운 사회계약의 문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지금까지 말한 바와 같이 ‘새로운 노동’ 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또 다른 문제는, 인간이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생물체’ 또는 ‘물질적 존재’라는 사실이다. 이 두 문제는 기존 사회계약론의 전제들을 완전히 뒤집는 혁명적 성격을 갖는다. 왜냐면 기존 사회계약론은 어쩌면 버섯처럼 땅에서 불쑥 솟아났을 법한 ‘독립적이고 분리된’ 개인들의 ‘이성적 사고’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먼저 돌봄노동이나 감정노동과 같은 페미니즘의 노동 개념은 ‘분리된 개인’이라는 사회계약론의 출발점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인간 역시 ‘생명체’라고 보는 물질적 관점은 ‘이성적 사고의 주체로서 개인’이라는 사회계약론의 출발점에 문제를 제기한다.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최초의 사회형태는 가족이나 친족과 같이 혈연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회계약론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친부살해’와 같은 방식으로 아들들이 가부장적 친족 관계로부터 개인화한 상태를 근대 정치의 원초적 상황으로 규정했다. 따라서 사회계약의 주체는 아버지와 동등한 남성이다. 그런데 근대화 당시 남성들은 아내의 법적 권리를 자신의 권리 속에 완전히 복속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사회계약의 주체인 남성들은 가족이라는 사생활영역의 주인인 ‘가장 남성’을 의미하게 된다.【2】 페미니스트들은 이로부터 공적 영역(정치)과 사적 영역(가족)이 법적으로 분리되고, 가족 및 여성의 권리와 관련된 문제들은 공적 논의에서 사라지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고전적 사회계약론의 이러한 기본 구도가 복지 자유주의로 발전한 롤즈의 ‘정의론’까지 이어지면서, 그것은 결국 현대 ‘분배 패러다임’의 골격을 형성했다. 가정폭력이나 돌봄,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 등이 ‘정의’의 문제로 인식되지 못하는 이유를 페미니스트들은 자유주의의 기본 전제인 이러한 ‘남성적, 소유적 개인주의’에서 찾는다.【3】

여성뿐 아니라 서구의 ‘가장 남성’ 상에서 벗어나는 모든 범주, 즉 장애인 등 의존적인 사람이나 흑인 노예 등이 모두 사회계약의 주체인 ‘개인’ 개념에서 배제되었다. 그리하여 ‘개인’이란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을 두는 ‘합리적’ 선택의 주체로 정의되었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개인’의 모습이 남성의 삶 중 일정 시기 동안에만 가능한 존재 형태일 뿐이라고 비판해왔다. 남성들도 돌봄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노동능력을 상실하면 다시 돌봄 관계 속으로 돌아간다. 또 근대화가 진전하면서 여성에게도 법적 시민권이 인정되고 확대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남성 중심적 ‘개인’ 개념은 ‘시민’ 개념과 점점 더 괴리를 넓혀왔다.

뿐만 아니라 대유행 전염병 코로나19를 전후로 돌봄이 점점 더 생활과 노동의 영역에서 중요성을 얻고 있다. 또 현대로 올수록 혼인과 남성의 지배로부터 여성들이 점점 더 풀려나기를 추구하거나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새로운 정상성 또는 규범’으로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계약의 주체인 ‘개인’ 개념이 이제 더 이상 ‘가족의 구성원 및 재산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남성 가장’ 개념과 일치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관계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돌봄 관계 속에 위치한 개인’의 관점에서, 그리고 ‘스스로를 부양해야 하는 개인’까지 포함하도록 ‘개인’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새롭게 정의된 ‘개인’ 개념에 기초하여 사회계약과 분배의 프레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인간 역시 바이러스에 취약한 생명체이자 물질이라는 또 다른 문제 역시, 사회계약론에 근본적 수정을 요구한다. 한편으로는 개인을 단순히 데카르트적인 ‘생각하는 존재’로 규정한 사회계약론의 기본 구도에서 벗어나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생태계를 롤즈처럼 다음 세대와 공정하게 나눠야 할 자원으로만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기서는 인간과 생태계 간의 ‘위험 관계’가 고려되어야 한다. 롤즈는 사회계약이 ‘협동적 사회구성원’ 간의 정의로운 계약이어야 한다고 보았는데, 이제 사회계약은 ‘협동적 지구구성원’ 간의 정의로운 계약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문제를 울리히 벡은 공론정치의 의제 변화―글로벌 위험사회와 세계시민주의 정치―의 문제로 보았고, 라투르는 ‘사물의 의회’라는 지구정치(cosmopolitics)의 관점에서 본 바 있다.【4】

그런데 여기서 어떤 관점을 취하든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물질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이성적 주체로서의 인간을 이어주는 고리가 바로 ‘돌봄’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돌봄 관계’와 ‘위험 관계’는 새로운 사회계약론을 구상하는 데서 반드시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1】아이리스 매리언 영, 『차이의 정치와 정의』, 김도균·조국 역, 모티브북, 2017; 낸시 프레이저, 『전진하는 페미니즘』, 임옥희 역, 돌베개, 2017.

【2】캐롤 페이트먼, 『남과 여, 은폐된 성적 계약』, 이충훈·유영근 역, 이후, 2001.

【3】캐롤 페이트먼, 위의 책; Susan M. Okin, Justice, Gender, and the Family, New York: Basic Books, 1989; 낸시 프레이저, 위의 책; 마사 누스바움, 『역량의 창조』, 한상연 역, 돌베개; 에바 키테이, 『돌봄: 사랑의 노동』, 김희강·나상원 역, 박영사, 2016.

【4】울리히 벡, 『글로벌 위험사회』, 박미애·이진우 역, 길, 2010; 브뤼노 라투르,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홍철기 역, 갈무리, 2009.

화, 2020/06/0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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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도서관이 왜 국회에 존재하는지를 아는 국회의원은 단 한 명도 없다

당신은 국회도서관에 대하여 무엇을 알고 있는가? 국회도서관이 왜 존재하고 있으며, 원래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가?

사실 국회도서관이 무슨 목적으로 국회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며,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기관인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은 별로 없다. 아니 거의 없다.

국회도서관이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국회의원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국회의원만이 아니라 국회 직원, 심지어 국회도서관 직원 자신들조차도 거의 생각해본 적도 없고 또 아무런 인식도 관심조차 없다.

 

국회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진열하고 읽는 그런 곳이 아니다

 국회도서관이 과연 어떠한 성격을 지니고 무슨 업무를 수행하는 곳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1) ‘국회도서관’이라는 명칭에는 왜 ‘도서관’ 앞에 ‘국회’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으며, 이렇게 ‘국회’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고 한다면 (2) 과연 ‘국회’와 관련하여 어떠한 임무를 그 특성으로 하는 도서관인가가 분명하게 규정되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회도서관은 도서의 수집, 정리, 보존 업무를 위주로 하는 일반 도서관이 아니다. 지금과 같이 일반 사람들이 들어가 책을 보고 자료를 찾는 그런 도서관이어서는 안 된다. 국회도서관이란 어디까지나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하여 국회 내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국회’라는 명칭이 붙게 된 것이다.

영국 하원도서관의 『의회도서관을 위한 가이드』에는 “의회도서관은 입법부의 의원 및 증가하고 있는 의원의 보좌관이라는 특정하게 한정된 이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국회도서관은 과연 이러한 존재 목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인가?

 

세상에 이런 의회도서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의회조사처의 역사를 살펴보면, 1900년대 초에 의회도서관 직원의 능력만으로는 대규모 연구기관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에 봉착했기 때문에 도서관 내에 입법정보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별도의 기구를 설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의회조사처는 처음에 의회도서관의 6개 부서 중 하나의 기구로서 출발했지만 현재는 오히려 의회도서관 전체보다도 질적인 측면에서 훨씬 중요한 부서로 발전하였고, 오히려 의회도서관이 의회조사처의 업무를 지원하는 거대한 정보 저장소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세계 의회기구에서 해외정보 조사 업무는 모두 ‘의회조사처’ 기구에 소속되어 있다. 미국을 비롯하여 프랑스, 독일, 영국 의회에서는 외교안보와 국제관계를 담당하는 ‘조사처’의 부서에서 수행하고 있다. 일본 역시 입법고사국의 해외정보조사실에서 수행하고 있다.

사실 우리 국회 입법조사처의 직무 범위에도 ‘외국의 입법동향 분석 및 정보의 제공’(입법조사처법 제3조 5항)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도 해외정보 조사 업무는 여전히 국회도서관에 두고 있어 전체 입법지원 업무가 효율적으로 수행되지 못한 채 중첩되어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아니 사실을 그대로 밝히자면, 국회도서관 내에 의회정보실과 법률정보실에 관련 석박사급 인력을 유지하면서 오직 그들을 활용해 국회도서관의 조직 유지 및 확대만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국회도서관 내 전문 인력에게 승진의 기회나 계장 및 과장 등 간부의 길은 철저히 봉쇄되어 있다.

세계적으로 의회 기구에서 ‘조사처’ 조직이 도서관과 별도로 분리된 프랑스 의회도서관은 직원수가 29명, 독일은 91명에 지나지 않는다. ‘조사처’가 통합되어 있는 영국의 경우에는 도서관 직원이 총 226명인데, 그 중 조사실에 82명이 배치되어 있다. 즉, ‘조사처’ 조직이 분리된 의회도서관은 기본적으로 100명 규모를 넘지 않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일본과 미국의 경우에는 의회도서관이 국립중앙도서관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이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는 우리의 경우와 전혀 단순 비교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현재 우리나라 국회도서관의 정원은 300명이 훨씬 넘는다. 이미 입법조사처가 별도로 설치되어 있는 상황에서 ‘순수 도서관 기능’만을 수행하는 데 현재의 인력이 적정규모인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뒤바뀐 국회도서관의회도서관이란 사서가 지휘해서는 안 된다

현재 국회도서관의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은 거의 사서(司書)로 구성되어 있다. 국회도서관의 ‘의회정보실장’이나 ‘법률정보실장’이라 하면, 일반 사람들은 대단한 의회전문가 혹은 법률전문가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 직책들은 사서직 혹은 행정직이 담당하고 있다. 조직 구성에 있어서 기본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조직 운용의 원칙을 지키고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그것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정확히 배치한다는 뜻이다.

의회도서관이란 사서가 독점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이다. 독일 의회도서관은 일반 사서와 레퍼런스(입법지원 담당) 사서로 구성되는데 레퍼런스 담당 사서는 연구직으로서 일반 사서의 상위에 있다. 또 일본 국회도서관 입법고사국의 전문조사원의 대우는 행정부 1급에 준해왔다.

한편 사서에 관한 공무원 직제도 미국에서 일반 사서는 GS-7등급(GS; General Schedule, 미국 공무원은 GS-1등급부터 GS-15등급까지 분류되어 있다. GS의 숫자가 클수록 고위직이다)이고 전문성과 경력에 의하여 GS-9등급부터 GS-12등급으로 분류된다(그 이상의 등급도 가능은 하다). 이에 비하여 미국 의회도서관의 의회조사처 수석 연구원의 경우는 GS-18등급까지 승진할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 100에서 1016까지 순차적으로 구분된 공직 분류지수 중(숫자가 높을수록 직위가 높다) 일반직 사서(주제전문 사서 포함)의 지수는 204에서 779에 속해 있다. 여기에서 780은 우리나라로 말하면 3급에 해당하고, 결국 일반직 사서는 3급 이상의 간부직에 임용될 수 없음을 의미하고 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또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국회도서관은 본래의 존재 이유와 다른 길을 걸어왔다. 본말은 전도되고, 그 위상은 뒤바뀐 채 왜곡되었다. 감시가 결여되면 반드시 부패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이제 좀 관심을 가지고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본래의 설치 목적에 부합하는, 국회도서관다운 국회도서관으로서의 위상이 복원되어야 한다.

화, 2020/06/02-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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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구성된 국회에서도 역시 ‘법사위’가 커다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주지하는 바처럼, 우리 국회에서 법사위의 힘은 막강하다. 바로 법사위가 모든 법률안의 체계ㆍ자구 심사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사위는 모든 상임위원회 중에서도 ‘상원 아닌 상원’ 혹은 ‘제2원(院)’이라 칭해지기도 한다.

그간 우리 국회에서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법사위의 ‘월권’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법사위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법안을 스톱시킬 수 있고, 때로는 소관 상임위에서 의결한 법안 내용 자체를 수정하여 상임위 간 갈등이 빚어진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2013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불산가스 등의 유해물질 배출 기업에 대해 해당 사업장 전체 매출액의 최고 10%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지만, 법사위는 규제 기준을 대폭 완화하여 5%의 과징금 부여로 낮췄다. 뿐만 아니라 단일 사업장의 경우 매출액 대비 2.5% 이하의 과징금을 매기도록 했다. 이에 대해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법사위가 재계의 입법로비에 무릎을 꿇고 자구 체계를 벗어나는 월권을 했다며 크게 반발하였다.

 

제헌의회; “자구 정리를 법사위에 부탁할 수 있다

그런데 법사위의 체계ㆍ자구 심사 조항이 처음부터 오늘날처럼 철옹성의 룰로 군림했던 것은 아니었다.

제헌의회 당시 국회법의 해당 조문은 단지 “제3독회를 마칠 때에 수정결의의 조항과 자구의 정리를 법제사법위원회 또는 의장에게 부탁할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그 뒤 1951년에 개정된 국회법은 “위원회에서 입안 또는 심사한 법률안은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를 경유하여야 한다. 단, 법제사법위원회는 법률안의 체계와 형식에 대한 심사를 하여 소관위원회에 회송한다.”라고 규정하여 처음으로 ‘법사위 심사’ 규정이 출현했다. 하지만 이 당시의 해당 조항에 대한 개정안 제안 취지는 “본회의 시간을 절약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법사위 심사’는 본회의 3독회 체제 중 본회의 1독회 전에 이뤄지는 보조적 기능에 지나지 않았다.

법사위의 체계ㆍ자구 심사에 공식성이 부여된 것은 2공화국 국회법에서였다. 1960년 9월 26일에 개정된 국회법은 “위원회에서 법률안의 심사를 끝내거나 또는 입안한 때에는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하여 체계와 자구에 대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라고 규정하였다. 다만 당시에도 여전히 본회의 3독회 체제 하에 본회의 2독회에서 축조심사가 이뤄졌기 때문에 본회의에 부의되기 전에 행해지는 법사위의 체계ㆍ자구 심사는 그 의미와 역할이 상대적으로 작은 것이었다.

 

유신정권이 확립한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권한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사실은 다음의 사실에 존재한다. 즉, 오늘날과 같이 법사위의 체계ㆍ자구 심사 기능이 막강해진 것은 바로 1973년 유신정권에서 이뤄진 국회법 개정이라는 점이다.

박정희 정권은 1963년에 이어 1973년에 다시 국회법을 개정하여 그간 본회의에서 시행하도록 규정되어왔던 축조심사 기능을 소관 상임위에 이전시켰다. 동시에 위원회 심사를 거친 안건에 대하여 질의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였다. 이제 법사위의 체계ㆍ자구심사 기능은 마침내 오늘날처럼 극대화되고 ‘법제화’, 제도화되었다.

이렇게 하여 법사위의 ‘제2원’ 기능을 분명하게 보장했을 뿐 아니라 유신정권의 유정회에 의해 보장된 집권 다수당의 본회의 ‘문지기’ 역할을 법사위가 담당할 수 있게 제도화한 것이다(서복경, “법제사법위원회 ‘제2원 기능’의 역사적 기원에 관한 연구”, 「의정논총」 제10권 제2호, 2015년).

 

상임위의 평등성과 의원의 평등대표성 원리에 위배

의회 상임위원회에서 소관 위원회의 결정을 다른 위원회가 존중하는 이른바 ‘위원회 소관주의(Jurisdictionalism)는 중요한 의회 규범 중 하나이다. 우리 국회처럼 법사위가 여타 상임위에서 이미 심사, 의결한 법안에 대한 체계ㆍ자구 심사를 함으로써 위원회 위에 옥상옥으로 군림하는 것은 위원회의 평등성 원리 그리고 국회의원의 평등 대표성 원리에 대한 심각한 침해에 해당된다.

세계 어느 의회에도 우리와 같은 법사위의 이러한 ‘제2원’ 권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미국 의회에서는 각 상임위원회 내에 ‘축조심사회의(Mark up)’가 구성되어 여기에서 수정안 작업과 체계ㆍ자구 심사의 기능을 수행한다. 즉, 체계ㆍ자구 심사는 세계 모든 나라 의회에서 너무도 당연하게도 각 상임위원회에서 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스스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바꾸지 않으면 불신 당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국회는 과거 군사독재 권력에 의한 국회 무력화와 통제의 유제(遺制)에 포획되어 있다. 이 ‘유제’를 ‘군사독재의 잔재’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단순한 ‘잔재’가 아니다. 왜냐하면 독재 권력이 만든 그 제도와 시스템들은 거의 변화됨 없이 현재까지도 거의 원형 그대로 유지되고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국회의원들 자신들이 이러한 군사독재의 유제나 잔재, 혹은 적폐에 계속 안주하여 무임승차해왔던 것이 가장 핵심적인 장애물이다. 동시에 지식인을 포함한 거의 모든 사람들도 이 적폐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가 지금과 같이 그 적폐의 틀과 관행을 개혁하지 않고 그대로 안주하고 있는 한,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더욱 심화된다. 바꾸지 않으면 불신 당할 수밖에 없다.

법사위의 체계ㆍ자구 심사 문제는 과거 독재권력 유제의 중요한 한 요소로서 이 땅의 정치발전과 민주주의 전진을 위해 반드시 개혁되어야 할 우리 시대의 중요한 과제이다. 왜곡으로 가득 찬 우리 국회는 이제부터라도 한 가지 한 가지씩 바꿔나가 의회로서의 ‘기본’과 ‘원칙’을 복원시켜야 하며, ‘법사위 문제’ 역시 이러한 차원에서 의회로서의 최소한의 원칙과 기본을 갖춰 정상화되어야 한다.

월, 2020/06/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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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초반부터 불어 닥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돌림병(COVID-19)의 세계적 유행과 확산은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자본주의세계체제가 누려왔던 기성 질서와 관성이 매우 허약한 무용지물이었음이 판명되었다. 그래서 모든 인류와 나라는 이념과 체제를 가리지 않고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온전히 그 이전과 다른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고 있다. COVID-19의 대유행은 모든 산업분야에 엄청난 충격과 영향을 끼침으로써 세계적 경제난, 경기침체, 실업난, 부도, 파산을 낳고 있다. 무역국가인 한국경제역시 극심한 어려움을 노사 양측이 겪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구시대적 정치관행과 생활문화, 세계관 및 인생관까지도 변화를 강요받고 있다.

이 복합위기는 불확실성과 불안정, 불안을 특징으로 한다. 이 다중위기는 목전의 COVID-19로 인한 돌림병위기와 경제위기,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위기로 겹쳐서 몰려들고 있다. 그래서 멀지 않은 장래에 인류의 생존과 희망을 위협하고 있다. 더욱이 분단모순을 떠안고 있는 한국은 이 복합위기들을 극복, 지양하기 위해 모든 국가역량을 한데모아 대통령을 정점으로 총력대응하고 있다. 그래서 나름대로 돌림병 확산을 저지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어 K-방역모형은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새로운 포준, 새로운 정상(New Normal)로 호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경제개발협력기구 가입국 가운데 산업재해·자살율·노인 빈곤율 세계1위이며, 기후악당국가로 혹평을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한국판 뉴딜의 구체적인 사업으로 ① 디지털 인프라 구축 ② 비대면 산업 육성 ③ 국가기반시설 스마트화 등을 제시했다. 그리고 단지 이틀 뒤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그린 뉴딜이 화두”라고 선언하고,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국토교통부 등의 합동 서면 보고를 지시했다.

정부 수반과 국무위원뿐만 아니라 노조 및 주요 사업자단체 대표까지 참석한 범국가적 비상경제회의는 6차 회의에서 앞으로 5년 동안 76조원 재정 투자를 통해 경기진작 등 국난극복을 의결했다(2020. 6. 1.)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말 그대로 국난극복을 위해 중앙정부가 지닌 재정역량을 모두 걸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고 말하자마자 13조원 규모의 ‘한국판 그린뉴딜’ 사업추진이 발표되었다. 일부에서는 시장주의정권시기 녹색성장의 판박이가 아니냐고 지적했다. 주지하다시피 이명박 정권의 녹색성장정책은 저개발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 추진되었던 것들이었다. 한국과 같이 중후장대한 중화학공업입국이고 수출만을 지상과업으로 삼는 무역국가에서 지속 불가능한 정책이었다.

녹색성장은 생태효율성(eco-efficiency)이라는 지표로써 나타낼 수 있는, 경제성장을 위한 환경보호책으로 추진해야 했거나 지속가능한 성장(sustainable growth)의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더욱 가관이었던 점은 사실상 또 다른 개발주의에 경도된 녹색성장정책으로써 4대강개발과 원자력발전 증설을 위해 토목건설기업들이 획책한 명분이었다. 대통령의 한 마디로 녹색성장정책은 정권 최대의 국책사업으로 둔갑했다. 기존의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을 무력화하고, 녹색성장기본법 제정과 시행으로 그 극단을 찍었다. 한때 한국 대통령은 녹색성장을 주도하는 글로벌 리더쉽을 구가하기도 했다. 그를 위해 국민세금이 쏟아 부어졌다.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법제 역시 이 녹색성장기본법체제에서 국가계획으로 완성되어 앞으로 10년, 30년 이후 기후변화 대응계획이 수립되어 에너지, 산업, 건축, 교통, 농업, 생태서비스 보전, 독성 없는 환경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선진국에 가까운 정책기반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계획만큼 이산화탄소배출 감축정책에 의한 가시적 효과가 미흡하고, 기후변화대응 계획의 총괄 및 조정기능이 부족하며 체계적 이행점검 수단이 부재하여 계획과 실적, 정책 효과간 격차가 크다는 데 있다.【1】

제레미 리프킨은 앞으로 10년 이내 시점인 2028년 화석연료 문명은 종말을 고하게 되며 지구 생명체를 구하기 위한 대담한 경제 계획으로써 그린 뉴딜을 주창했다. 지구온난화에 가장 책임이 있는 4대 핵심 부문, 즉 정보 통신 기술(ICT) 부문, 전력(에너지) 및 전기 유틸리티 부문, 운송 및 물류 부문, 건축물(주거와 상업·산업·기관 건조물) 부문에서 연소시 이산화탄소 배출하는 화석연료 산업과 절연하고, 저렴하고 새로운 녹색 에너지를 채택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민주당 오바마 정부의 파리기후변화협정 참여를 거부, 공식 탈퇴함으로써 그의 시장주의 반환경 행보를 거침없이 내디뎠다. 그러나 미국 하원 민주당 의원들은 2019년 2월 7일 미국판 그린 뉴딜 결의안을 채택했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 1.5특별보고서로 시작된 논의에 주목하여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0-60% 감축하고, 2020년 이산화탄소 배출 없음(Net Zero)에 도달해야 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동시에 미국 사회에서 부의 불평등과 차별해결이 시급하며, 세계 대전쟁을 준비하는 것과 같은 태세로 그린 뉴딜을 실행해야한다며 5개 목표를 제안하며 10년 동안 기반을 구축해야 할 14개 부문 인프라와 산업을 열거했다. 트럼프 정부가 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수행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유럽(EU) 그린 딜은 심화되는 기후위기로 지구상 800만 종 중에 100만 종의 생물종 멸종 위기에 있다고 진단하고,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책이자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8개 목표를 제안했다(2019. 12, 11.). 예를 들면 새로운 성장은 정의롭고 번영하는 사회로 나가야 하며 모든 전환은 정의롭고 포용적이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2030, 2050 기후 목표 상향 조정, 친환경 에너지 공급, 청정 순환경제를 위한 산업변화, 에너지 절약, 자원 고효율적 건축, 지속가능하고 스마트한 교통시스템, 공정하고 건강하고 친환경적 농업 시스템 구축, 생태서비스 및 생물다양성 보존 및 회복, 독성 없는 환경을 위한 오염물질 배출 제로(zero)화 등을 목표로 하고 20개 사업내용을 제시하였다. 영국도 탈퇴하는 흔들리는 유럽체제에서 개별 국가들이 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집행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미국과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이산화탄소배출을 많이 해 왔던 공업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3중의 복합위기에 처한 한국정부가 야심차게 추진을 선언한 뉴딜정책은 어디로 나아갈까? 첫째, 사상 최대 규모의 재정투입에도 불구하고 ‘고용 없는 성장’을 거듭해 온 정보통신산업부문에서 어떤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둘째, ‘생산성 역설’(productivity paradox)을 얼마나 빨리 뛰어넘을 것인가? 미국에서 메인 컴퓨터가 처음 개발되어 산업현장에 맨 처음 투입된 분야가 인구조사통계와 은행, 항공기예약시스템이었다. 당시 미국은행에서는 세계 최고 기술수준의 전산화에 처음 성공하여 이제 설비생산성 효과를 잔뜩 기대하였으나 투입 대비 산출 효과는 이에 거이 미치지 못하였다. 초기 기술을 생산 및 서비스 현장에 적용한 뒤 투입 대비 산출 효과를 셈해 보고, 생산성 제고가 많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였으나 생산성 효과를 낳는 데에는 시간과 비용,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이런 현상을 싸잡아 부른 게 바로 ‘생산성 역설’이었다. 앞으로 한국에서도 더 많은 정보통신산업기술을 도입, 적용하게 될 때 매번 이런 생산성 역설과 시행착오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셋째, 산업현장에 신기술 도입과 적용은 불가피하게 탈숙련화 및 기술적 실업을 낳게 될 터인데 이를 만회할 만큼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넷째, 한국판 뉴딜과 그린 딜의 사업 내용을 일별해 볼 때 몇 개 산업부문, 몇 개 재벌 계열사들만 사업 이득을 볼 수 있는 ‘특혜 경제 시비’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다섯째 기존 상품시장경제체제를 뒤흔들고 있는 대전환의 시대임에 도 불구하고 ‘인간노동 소외’를 지양할 탈상품화 전략은 부재한 것일까? 총자본의 대공세에 맞설 총노동의 협상력 부실, 대응역량 결핍, 진부한 일규주의 투쟁노선, 기업별노조체제의 한계, 이면헌법이 지배하는 1948년 체제를 탈피하지 못한 분단체제, 국제법상 기술적 전쟁상태 등 여러 가지 구조적, 행태적 제약조건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국면 전환을 위한 집단대응에 많은 아쉬움이 남아 있다.

이제 한국판 그린 딜에 대해 잠시 눈을 돌려보자. 한 마디로 드는 느낌이다 : 그럴듯한 그린 딜 정책만으로 뭘 이룰까? 한국의 대표적 환경운동단체 전 사무총장의 한 마디는 더욱 난감하다.【2】

첫째 그린 딜 전략 평가에 앞서 무엇보다 먼저 한국의 지속가능발전정책은 ‘이행 결함’의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무현 정부 내내 많은 이들이 참여하여 나름대로 국제적 수준에서도 인정할만한 구색을 갖춘 국가지속가능발전계획을 수립했고, 지속가능발전기본법도 제정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녹색성장을 추진하다고 이를 모두 뒤집어 버렸다. 예를 들면 이명박 정권은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을 단순히 ‘지속가능발전법’으로 격하시켰다. 더욱이 하위범주인 녹색성장만을 위해 ‘녹색성장기본법’으로 상위에 올려놓고, 그럴듯한 정책으로 포장, 시행했다. 환경부뿐만 아니라 전 부처에 녹색성장 관련 부서가 신설, 운영되었다. 이런 문제에 아무런 개념과 철학이 없던 박근혜 정부도 이를 답습했으나 환경부 등 부처내에서 녹색성장 부서는 대부분 사라졌다.

둘째, ‘지속가능발전’, ‘녹색성장’, ‘그린 뉴딜’은 단일하고 직선적 선형 정책들이 아니다. 이들 정책들이 지닌 복합성, 다중성, 을 이해하고 이에 걸맞게 대응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지속가능한 발전은 원래의 개념상 ‘현재 세대와 미래세대의 욕구와 필요성, 지속가능성’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지속가능한 발전’은 환경보호도 하면서 경제성장을 하고, 사회 통합, 문화다양성도 병행적으로 추구하고 동시에 실현하는데 있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려면 서로 충돌하거나 배치되고 있는 가치나 지향들을 조정, 타협, 순치하려는 집중적이고 집요한 노력과 비용이 필요하다. 시장주의자들에게 녹색성장은 단지 친환경 경제성장에만 치중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셋째, 한국에서 녹색 뉴딜은 어떠한가? 문대통령의 녹색뉴딜 지향은 대전환시대 출구전략으로서 유용한 선택이라고 적극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행정부 밖에서의 논의에 쫓아가보자. 지난 5월 6일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 한국형뉴딜TF 단장, 에너지전환포럼, 그린피스 공동 주최로 “코로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한국판 뉴딜’의 주요과제, ‘그린뉴딜’ 기후위기대응과 에너지전환을 통한 한국사회 대전환 모색”을 부제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그린뉴딜”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2명의 경제학자가 발표했다. 다음날 국무총리 주재 목요포럼에서 전직 광역도지사 출신의 국회의원 당선자가 “코로나 이후 변화된 세상,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앞당기자”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5일 뒤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에 이어 그린 뉴딜을 위한 4개 부처 공동보고를 지시했다. 2일 뒤 신임 집권여당 원내대표는 “21대 개원 즉시 한국판 그린뉴딜기본법 추진”을 발표했다. 6월 5일 대한민국 기초지방정부 226개 단체장들은 기후위기비상선언에 서면동의하고 선포식을 국회에서 가졌다. 한국판 녹색 뉴딜 정책 입안과정은 속도전 양상 그 자체이다.

넷째, 그렇다면 그 녹색 뉴딜 정책의 추진방향은 적확한가? 한 마디부터 하자면 기존 정책들의 재탕이 너무나 많다. 새롭고 담대한 정책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직업 관료들이 서류 캐비넷이나 컴퓨터 폴더에 있었던 이런저런 정책들을 골라내 열거한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이런 기시감은 필자 혼자만의 느낌이 아니다. 앞서 소개한 미국과 유럽의회의 녹색 뉴딜 정책만큼도 세밀해 보이지 않다. 만일 “녹색의 산업화, 산업의 녹색화”를 기조로 한다면 산업자원부와 환경부가 기존 정책을 병렬적으로 열거할 게 아니라 관계부처 장, 차관들이 말 그대로 머리를 맞대고 공동협력방안을 새롭게 도출해 내어 시장 수용성과 사회 수용성 평가에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단지 그렇게만 해서는 아니 될 일이다. 이산화탄소 배출 제로와 사회적 불평등 해결, 일자리 창출이라는 얼핏 이질적으로 보이는 정책목표들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버리고 포기하고, 무엇을 지켜야 할 것인지 과감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단순한 정책 혼합(policy mix)가 아니라 정책통합(policy integration)을 해야 한다. 하나 더하기 하나(1 + 1)는 단순히 둘(2)이 아니라 둘 반(2.5)이거나 셋(3), 또는 그 이상의 결과를 낳을 새로운 정책목표 설정과 사업내용이 마련되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한국경제 체질 자체를 교체할 수도 있다는 대전환기 경로변경을 고려해 봐야 한다. 국민경제의 변화 없이 지속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을까?

녹색 뉴딜 정책은 큰 우산정책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고 한다. 2030년 이산화탄소 배출량 절반 감소, 2050년 온실가스 배출 제로, 지속가능한 사회형성을 대목표로 한다면 이를 위해 회복력을 갖추면서도 탈탄소 경제아래 빈곤을 없애는 기후변화 대응을 하고, 노동·환경·안전을 확보하는 정의로운 전환, 탈 원전과 탈 탄소 산업으로 전환하면서 일자리 양산, 순환경제를 하면서 일자리 확보, 지역 정부 녹색 뉴딜, 지역 먹거리·에너지·경제전환 공동체 구성과 운영, 이를 위한 정부 예산 배정과 책임(탄소배출 제로를 위한 예산배정, 탄소배출영향평가제도 도입과 시행) 등 정책 묶음(패키지)을 동시에 입안,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기획재정부 전체업무의 녹색전환부터 선결되어야한다. 이제 정부 부처간, 정부와 노사정간, 정부와 시민사회간, 정부와 국회간 올바르고 바람직한 방향을 찾아가기 위해 더 많은 의견수렴과 합의, 정책조율이 필요하다.

촛불혁명은 구체제 유습과 낡은 관행의 청산과 함께 새로운 질서를 통해 새로운 체제 형성, 다시 말하자면 새로운 체제로 이행, 전환해야만 그 이름값을 다할 수 있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새롭게 만들어 내어 국리민복과 이용후생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2년 이내 그리고 제20대 국회의원 임기 4년 이내 이를 위한 입법과 제도 정비, 행정력 발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금은 바로 그런 일들을 실행하기에 적기이다. 지속가능한 대한민국 건설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 지속가능성 제고의 첩경이 되어야 한다.

 

【1】 이유진 2020 1.5°C를 위한 정세전망 “기후위기 대응과 그린뉴딜” 대한민국 기초지방정부 기후위기비상선언 발제자료. 2020. 06. 05.

【2】 페이스북 염형철 게시글과 댓글: 바로가기 클릭

수, 2020/06/10-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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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주:

한국에는 ‘백년의 급진’이란 저서로 알려져 있는, 중국의 삼농三農문제 최고 전문가 원톄쥔溫鐵軍 (전)인민대학교 교수가 중국 인터넷 신문 포털 ‘오늘의 헤드라인今日頭條’에서 2월중순부터 매주 1회 세차례에 걸쳐 “팬데믹 영향하의 글로벌라이제션 위기”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강연을 행했다. 매 강연은 수백만명의 시민, 청년 대학생, 지식인들이 시청하는 등, 뜨거운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강연자의 동의하에 이를 녹취 번역해 ‘월간 공공정책 4월호’에 게재된 것을 ‘공공정책’지의 허락으로 ‘다른백년’에도 옮겨싣는다.


나는 우선 ‘글로벌라이제이션 위기’를 역사적으로 삼단계로 구분하고자 한다. 그 첫번째는 전자본주의 식민지시기, 두번째는 자본주의의 산업자본발전시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1970~80년대부터 시작된 금융자본주의시기이다.

전자본주의 식민지시기에 유럽사회에 존재하던 초기산업자본은 세계의 여타 대륙, 즉 남북미주, 아프리카, 오세아니아를 1차산업의 원재료 생산지, 그리고 노예노동 공급원으로 삼아서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수행하였다. 식민화 과정에서 벌인 그들의 반인륜적인 행위의 대가는 주로, 근대민족 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부락에 거주하는, 피식민지의 원주민과 ‘생태환경’이 지불하게 하였다. 즉, 이 시기의 ‘글로벌라이제이션 위기’는 유럽식민주의자들이 아니라, 이들 제3세계 민중들에게 닥친 것이었다.

제2차 글로벌라이제이션은 산업자본 중심이었는데, 대부분 지역성을 갖고 있었고, 공업화 열강국들에 집중됐다. 즉, 자본은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고, 노동계급은 국경을 초월하여 노동잉여를 착취하는 전세계의 자본가계급에 무장투쟁을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1921년 창당한 중국 공산당도 마르크스의 국제주의를 받아들여, 강령과 그 실행에 반영하였다. 그런데, 산업/공업자본이 과잉생산을 하게 될 때, 그 생산에 참여한 무산계급은 구매여력이 부족하여,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고, 경제위기가 오는데 이것을 자본주의의 기본모순이라고 하고, 이런 내적 모순에 의한 충돌은 전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초기에 독일은, 주로 해상을 통해 영역을 넓혀 나간 영국인들의 식민주의 전략을 본받아서, 대륙진출을 시도했다. 철도를 깔아, 터키,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그리고 동아시아로 진출할 계획을 세웠다. 즉, 산업자본이 생산과잉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소비시장을 개척하려 한 것인데, 이것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의 계기가 됐던 장소인 세르비아, 즉 발칸반도가 바로 독일이 터키로 진입하기 위한 철도를 놓는 출발점인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자본주의 내부의, 즉 다른 국적을 가진 산업자본간의 갈등에서 비롯한 충돌이다. 레닌이 말한 제국주의의 전쟁인 것이다.

서방세계에서 벌어진 두번째 생산과잉은 1929-33년의 대공황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유럽에서는 전쟁이 일어난 반면, ‘국가자본주의’옹를 채택한 미국과 소련은 위기를 적절히 넘길 수 있었다.

미국은 루즈벨트의 뉴딜정책, 즉 신국가주의를 내걸고, 과잉생산능력을 초대형 국가인 북미대륙의 내부 인프라 건설에 사용했다. 만일, 역으로 독일이 일차대전 발발전에 의도했던대로 유라시아 철도를 건설하면서, 자국의 과잉생산능력을 해소했다면, 전쟁과 패망에 이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루즈벨트는 철도를 놓고, 고속도로를 깔고, 댐을 건설하면서 미국의 위기를 극복했다.

소련의 경우 레닌이 인정하고 스탈린이 계승한 국가자본주의 발전경로를 따르게 되는데, 이러한 국가주의적 발전정책을 통해서, 산업자본의 내부 충돌과 전쟁을 면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제2차 글로벌라이제이션 위기는 산업자본의 위기라고 말할 수 있고, 자본주의 발전 원칙에 의해서 반복적으로 야기되는 생산과잉이 역시 내부 충돌과ᅠ전쟁의 반복으로 귀결되게 된다. 2차대전 이후, 미소의 냉전시대가 열리면서,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진 않지만, 한반도 전쟁이라든가 베트남전쟁 등, 국지전이 반복되면서, 해당지역은 역시 산업자본의 내부모순과 충돌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미소가 진영을 나눠, 미국의 경우, 40년대의 마셜플랜을 통해 서유럽을 개발하고, 소련은 동유럽을 개발했다. 그리고 한반도 전쟁과 그 이후의 회복과정을 통해, 미국은 전쟁을 지원하는 동시에 일본의 공업화를 추진하고, 소련은 전후에 중국으로 대량의 공업설비를 이동시켜 중국을 공업화시켰다.

이렇게 굴기한 미국, 유럽, 일본이 1960~70년대에 다시 생산과잉위기를 맞게 되는데, 주로 노동집약형 산업을 위주로, 새로운 생산기지를 찾게 된다. 서방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 칠레 등의 라틴아메리카 국가, 아시아의 일본은, 소위 네마리 용/ 호랑이에게 산업을 대규모로 이전하게 된다. 한편, 서방은 산업이전후, 사회모순과 갈등, 대립이 점차 약화되는 가운데, 인권과 사회의 발전, 복지 등의 가치를 추구하게 되고, 북구의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모델, 그리고 북구의 정도에는 못미치지만, 역시 지나치게 약탈적이지 않은, 서유럽의 ‘라인모델’이 만들어지게 된다. 일본 역시 산업구조가 장비제조업 및 기술집약형 산업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전체 동아시아의 자본주의 모델이 완성된다.  즉 대영제국 식민주의 시절에 시작되고 미국이 계승한 앵글로-아메리칸 모델이 지역별로 서로 다른 자본주의의 세가지 모델을 파생시키게 된 것이다.

서방이 산업자본을 이동시키면서, 선택한 지역은 모두 권위주의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60년대에 산업이전이 시작되고, 70년대에 대규모 이전, 80년대에 규모를 달성하는데, 서방세계의 산업을 인수한 중남미 국가 모두 군사독재정권이었다. 동아시아는 한국의 박정희 정권, 계엄을 유지한 대만 장제스의 국민당 정권, 싱가폴, 태국,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이 역시 모두 권위주의 혹은 군사독재국가였다. 제1세계가 이전시킨 노동집약형 산업은 일반적으로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 격렬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아직 노동운동 역량이 형성되지 않았거나, 형성이 쉽지 않은, 권위주의 국가들이 선호된 것이다. 역으로, 사회적 갈등이 줄어든  서구사회는 인권과 사회복지, 공공윤리 등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사회를 발전시키는데, 이러한 갈등과 모순이 함께 국외로 이전된 덕으로 볼 수도 있다. 발전된 사회와 낙후된 사회의 제도차이는 이런 역사적 맥락을 갖는다. 앵겔스는 낭만적 국제주의에 머물렀던 마르크스와 달리, 이런 자본의 국적과 그에 따른 국가별 차이를 인식했고, 영국의 노동계급이 식민지에서 착취한 초과 잉여를 분배받음으로써 귀족화한점을 정확히 지적했다. 앵겔스는 마르크스보다 오래 살았기 때문에, 국제 사회의 변화를 더 장기간 관찰한 결과로 얻게된 통찰이다.

그래서, 서구사회의 어떤 이념으로 어떻게 포장을 하든, 우리가 객관적으로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보며 이해하게 되는 것은, 세계체제의 변화과정에서 ‘비용’이 국가간에 이전 혹은 전가된다는 것이다.

산업자본이 글로벌라이제이션을 달성한 80년대 이후, 서방과 그 우두머리격인, 앵글로아메리칸 국가인 미국과 영국은  금융자본에 의한 글로벌라이제이션 시기로 이행하게 된다. 특히, 미국은 국제통화인 ‘달러’를 찍어내서, 산업자본을 인수한 개발도상국이 생산한 물품을 소비하고, 대금을 결제한다. 또, 모든 산업생산국가들은 이렇게 얻은 외화, 즉 국제통화를 비축해 놓아야만, 원재료, 상품과 서비스의 국제교역을 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영미가 자국 GDP의 80%를 금융서비스업으로 구조전환하는 경제고도화를 달성하면서, 역시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도 독점하게 되는데, 이것이 금융자본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인 것이다. 그래서, 서방의 산업이 이전된 국가들에게는 역시 자본수출국가의 금융자본과 이에 수반한 제도의 도입이 요구된다. 제도 도입 과정에서 사람이 파견돼, 지도, 감독, 조정이 필요하고, 이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요구 받게 된다. 이렇게 산업자본의 글로벌 재배치국면에서 금융자본은 막대한 초과수익을 달성한다.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산업자본은 최저가의 생산요소를 제공하는 국가를 찾아 나서게 되고, 가치사슬내에서 국제적 분업이 이뤄지면서, 어떠한 국가도 더 이상, 하나의 제품을 엔드-투-엔드end-to-end로 생산할 수 없게 됐다. 특히 서방국가는 노동생산요소가 값싼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와 같은 나라들을 찾아 생산기지를 이동하는데, 이를테면, 패션과 같은 경공업 제품이라면, 서방세계는 브랜드를 갖고, 생산은 개발도상국이 담당한다. IT산업이라면, 저부가가치의 소프트웨어 인프라를 구축하는, 프로그래머 역할은, 영어가 가능하고, 값싼 고급인력이 풍부한 인도로 이전되지만,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적 재산권은 여전히 서방국가에 귀속된다.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에 이상이 생기면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거는데, 전화를 받아드는 것은 역시 아웃소싱된 인도의 서비스 회사, 콜센터에 위치한 인력들이다.

이제 금융자본주도하에 가상자본주의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이뤄지고, 자본주의는 한층 더 고도화를 달성한다. 제조업뿐 아니라 서비스업도 이렇게 전세계적인 국제분업에 동참하고, 각 가치사슬의 고리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그중 하나의 고리만 유실되어도, 글로벌 위기상황을 맞게 된다. 오늘 강의 내용은 이처럼 어떠한 가치판단도 배제한, 자본주의의 발전 역사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서술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중국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 이것은 글로벌라이제이션 위기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 중국의 많은 생산현장에 여전히 노동자들이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데, 복귀율은 3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2020년 2월17일 당시). 선진국들 대부분이 중국에 대한 높은 산업의존도를 갖고 있는데, 미국만해도 30%에 이른다. 중국에 대한 산업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경제에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중국은 국가의 적극적인 교육투자로, 노동자들의 수준이 높고, 거의 대부분 산업의 생산능력을 갖고 있으며, 주로 중간재 부품의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중국의 부품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 최종 제품을 생산하는 한국, 일본, 미국, 유럽 등 모든 국가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럼 다음 단계로 중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기업이 줄도산하고, 대량실업사태가 발생한다. 기업대출금은 불량채권이 되고, 은행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된다. 전체 경제상황 악화에 따라서, 금융권 부실이 이어지고, 이미 상당한 적자수준을 보이는, 중앙과 지방정부의 재정이 악화한다. 올해 구직시장에 나올 800만 대졸자들도 일자리를 얻을 수 없게 된다. 중국에 연결된 산업의 가치사슬에 위치한 다른 국가들이 영향을 받게 되고, 그들이 입는 타격은 다시 중국에 되돌아온다. 그래서, 중앙정부는 전심전력을 다해서, 방역대책에 나서는 동시에, 노동자들의 일터 복귀를 독려하는 것이다. 중국의 생산이 멈추면, 전세계적 경제위기가 발생한다.

금융자본은 이럴 때 어떻게 움직이는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상황을 복기해보자.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당시에 QE(Quantitive Easing), 양적완화라는 개념을 미국에서 만들어냈다. 사실은 대량으로 화폐를 찍어내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한 것이다. 당시의 위기는 실물경제가 아니라 금융자본이 초래한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돈을 찍어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에 나눠줬고, 이들이 석유나, 식량, 원자재와 같은 commodity시장에 투자하게 해서 위기를 넘겼다. 미국은 국제통화인 달러를 발행하고, 금융자본으로 세계경제를 지배한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은, 이렇게 전가된 금융자본 비용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갑자기 늘어난 달러 때문에, 당시 석유선물은 가격이 네배 이상 뛰었고, 밀과 같은 식량은 두배 이상 뛰었다. 당시 무려 30여개국이 기아 문제를  겪게 됐는데, 이는 역사적 식민화와도 관계가 있다. 미주나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대륙 등이 식민지 시절 밀가루를 주식으로 삼는 유럽 식문화를 받아들였고, 한편으로 이 지역의 농업은 다국적 농산업 기업이 지배하게 됐다. 그래서, 이들 지역의 많은 후진국과 개발도상국가들은, 자국의 식량대신, 커피, 사탕수수, 목화 등을 플랜테이션 재배하고, 밀과 같은 식량은 다시 수입해서 공급해야 하는데, 넘치는 달러 유동성 때문에, 갑자기 폭등한 밀의 가격을 감당할 수 없어서, 굶주림에 처하게 된 것이다. 석유는 또 어떤가, 중국은 70%이상의 석유를 수입하고 있고, 역시 유가변동에 의한 타격을 입게 된다. 미국이 뿌린 달러 때문에, 전세계 모든 국가들이 인플레이션을 겪게 되고, 중국과 같은 큰 나라는, 겉으로 보기에는 이를 무난히 소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속병이 들었다. 치솟는 에너지와 원재료 가격에 대응하기 위해, 역시 인민폐를 대량으로 발행하고, 이렇게 공급된 유동성이 중국 경제를 실물경제에서 가상경제, 즉 거품경제로 이행하게 만들었다. 2009~2010년을 전후하여, 부동산, 주식투기열풍이 전국을 뒤덮은 것이 그 결과적 현상이다. 특히, 농촌에서 마을단위로 부패한 기층간부와 범죄집단이 결탁하여, 살인, 폭력, 사기 등의 수단으로 축재하고, 이러한 투기에 참여한 사례가 많다. 일단, 거품이 발생하면, 조정은 쉽지 않다.

미국은 QE1~ QE4를 거쳐 2013~2014년에 들어서야 양적완화를 멈추고 디플레이션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그렇다면, 국제금융자본 외에 누가 인플레이션으로 예기치 않은 이익을 봤나 ? 에너지 생산국인 러시아의 푸틴이 전성기를 맞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스타가 됐다. 차베스는 국유화된 석유를 팔아 얻은 초과수익으로 빈민들을 위한 각종 포퓰리스트 정책을 펼쳤고, 심지어, 라틴아메리카의 쿠바와 같은 이웃 나라들을 지원하여 반미국전선을 형성했다. 이란도 석유주권을 사용해서 상당한 이익을 봤다. 그래서 이 나라들은 미국의 주적이 된다. 반면, 중국은 자국 경제에 발생한 거품을 떠안으면서, 미국을 도와준 덕에, 적으로 지목되는 시기를 늦출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당시에는 차이메리카나 G2로 불리며 미국의 파트너 대접을 받고, 경제발전을 지속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야기한 국제수요의 지속적 하락속에 생산과잉 문제가 고질병이 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신농촌건설이나 향촌진흥과 같은 중국내의 인프라건설이고, 이는 중국판 뉴딜정책에 해당한다. 당연히 대부분 국유기업이 이를 주도하게 되고, 투자생산성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농촌과 저개발된 내륙지역에 대한 인프라 투자는 근본적으로 단기수익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고, 사기업이 뛰어들 리 없다는 점에서, 이는 공리공론의 교과서적 비판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중국 농촌 99% 마을에 포장도로가 깔리고 100% 전기가 보급됐다. 이는 농담삼아 케인즈식 정책을 설명하는, 땅을 파고 다시 이를 묻는 식으로 만든 GDP가 아니라, 인민의 실제적 복리가 되는 인프라건설이다. 농민들은, 도시처럼, 수치상의 경제적 효과를 위해서, 자원을 낭비해가며, 밤에 전등을 켜놓지 않는다. 또, 고속도로가 아닌, 농촌의 도로에서 통행비라도 걷지않는 이상, 어떻게 투자수익을 바로 회수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미국이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수출한 인플레이션을 중국은 고통스럽게 감내했고, 이제 2014년부터 다시 미국이 수출한 디플레이션도 소화했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살아남았고, 전세계 산업자본은 여전히 큰 문제없이 돌아간다. 여기서 부품을 만들고, 밖으로 보내져 완성돼, 브랜드가 붙여진다. 이것이 오늘날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실제 시스템이다.

지난번 세계금융위기를 겪어내며, 중국은 ‘신농촌건설’을 통해서, 현급 이하의 농촌을 발전시키고, 성진화城鎮化 이뤄냈다 (역자주: 중국의 행정단위는 성省-시市-현縣/구區로 내려가는데, 농촌의 현은 우리의 군郡에 해당하지만, 인구나 면적으로 따지면, 도道규모에 더 가깝다. 중국에서는 흔히 도시화城市化 대신에 성진화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일반적으로는 도시화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대도시에 집중되는 도시화 보다는 농촌지역의 읍면, 소도시의 인프라 확충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러한 별도의 표현을 사용한다) 인프라가 갖춰져서 중소기업이 농촌에 자리잡을 수 있게 됐다. 이번 위기를 통해, ‘향촌진흥정책’을 관철시켜야 한다. 농촌에 다양한 산업이 자리잡을 수 있게 하고, 생태적인 개발을 추진하며, 가난을 구제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시 국가의 투자가 필요하고, 당연히 단기 투자회수는 기대할 수 없다. 중국과 같은 대국만이, 거대한 국토안의 농촌에서 이런 내부투자를 받아 안을 수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중국이 무너진다면, 전세계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중국은 이번에도 전세계에 배치된 산업자본시스템을 떠받쳐야 하고 동시에 글로벌화한 금융자본도 지탱해야 한다.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모두가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좀 더 분석이 필요하다. 미국은 2018년부터 끊임없이 중국에 무역전쟁을 도발하고 있는데, 목적이 무엇인가? 70년대 브래튼우즈협약을 포기한 이후, 미국 달러는 전세계 결제화폐의 70%를 차지하고, 외화준비금의 60%를 점유하고 있다. 미국은 금융자본의 핵심대국으로서, 금융을 통해 돈을 벌고, 3D업종을 포함한 제조업은 다른 나라에 떠넘긴지 오래이다. 하지만, 금융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는 쉽지 않다. 월스트리트가 고용하는 인력은 고작 30만명에 지나지 않는다. 산업이 국외로 이동하면서, 실업률이 높아질 수 밖에 없고, 실업으로 잡히지 않는 비정규직은 훨씬 더 많다. 당연히 소득세를 포함한 세수가 줄고,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서 재정을 메워야 한다. 그러려면 다시 금융에 의존하면서 금융산업만을 키워주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금융자본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은 더욱 심화한다.

오바마가 문제를 해결해보려 했지만, 금융자본이 배경인 민주당 정권하에서, 한계만 절감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와 그에 앞선 산업공동화는, 두 전직 대통령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니, 오바마를 탓해도 소용없다. 장기 호황을 누리던, 클린턴의 신경제 이후, 2001년 닷컴버블의 붕괴로, 글로벌 산업자본은 탈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미국 국내적으로는 금융화 진전, 투기적 파생상품 시장의 비대화로, 2008년 금융위기의 기반이 마련됐고, 산업자본은 국외로 이동했다. 마침, 장쩌민, 후진타오 집권하의 중국은 대규모 인프라 투자로 산업기반을 강화했고, 저임금에 교육수준이 높은 노동력이 풍부한 중국이 이들에게 선호된 것은 (늘 중국 정치 체제를 비판하는) 정치적 판단과는 상관 없이, 저비용, 고효율, 고수익을 추구하는 자본의 속성일 뿐이다. 이렇게 중국이 세계 최대의 산업자본국가가 된 것이다. 중국은 이제 역사상으로도 공업생산총량과 수출입량이 최대이고, 금융자본총량마저도 최대인 국가인데, 이것은 중국을 포함한 특정 국가의 의도가 아닌, 글로벌 자본의 성과물이다. 대분류상 중국 산업의 2/3는 외자가 지배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외자가 아니라, 중국이 발행한 채권을 통해, 국유기업을 강화하고, 내륙건설에 힘을 쏟아, 현재 위치를 유지하려고 한다. 이때 등장한 트럼프가, 미국 노동자, 농민을 대변하여,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ke America great again”라고 외친다. 하지만, 실제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글로벌 금융자본의 강화이고, 이를 지탱하는 것이 군사패권주의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 다시 군수산업, 우주항공산업과 같은 주요 장비제조산업이 도사리고 있다. 여기서, 첨단무기 등의 주요부품은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제조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일반 부품은 해외에서 수입할 수도 있는데, 만일, 미국의 이런 요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다시 금융 재제를 통해 생산국가를 협박한다. 물론, 이도 안되면, 다시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

다시 정리하자면,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과정에서, 원재료 시대의 식민지 글로벌라이제이션, 산업화 시대의 산업자본 글로벌라이제이션, 그리고 금융화 시대의 금융자본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이어지면서, 변함없이 자본주의의 내부적 모순에 의해 위기가 반복되게 된다. 그러므로 코로나19 팬데믹이 새로운 위기를 촉발하는 것은 객관적인 역사발전법칙에 다름아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움직임들이 발생할까? ‘종속이론’에 의하면,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중심국가에 대한 의존을 벗어나 독립적인 주권을 확보하려면 단절(de-linking)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명한ᅠ’세계체제론’ 4인방 학자중 한명인 사미르 아민의 견해이다. 중국 현대사에서 여러번의 이와같은 단절이 발생하는데, 1949년, 1960년에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 최근 우리 연구팀은 1949년의 사태를 분석한 ‘탈종속去依附’이라는 저서를 출간하기도했다.

‘단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팬데믹 상황을 겪고 난후 정말로 주의깊게 들여다 봐야 할 곳은 어디인가? 그것은 바로 농촌이다. 모두가 정부의 방역대책만을 이야기 한다. 전쟁의 최전선에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농촌에서 벌어진 일들을 회고해봐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농촌 기층 간부들이 무식하고, 어처구니없다고 비판한다. 황당한 정부선전이나 앵무새처럼 따라하고 정부시책을 로보트처럼 실행한다고. 하지만, 중국이 이번 사태를 극복하는데 최대의 숨은 공신들이 바로 이들이다. 이들이 마을을 효과적으로 봉쇄했기 때문이다.

방역을 위한 의료자원이 가장 부족한 곳이 어디였나? 바로 농촌이다. 도시에서 일하는, 수억의 중국 노동자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또한 농촌이다. 그들이 설을 맞아 인산인해가 되어 고향에 돌아갔지만, 농촌은 코로나-19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 대부분의 농촌 마을에서 단 한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2003년 사스SARS사태가 발생했을 때, 마침 우리 그룹은 농촌에서 향촌학교를 운영하고 있었기에 상황을 분석해볼 기회가 있었다. 농촌 마을의 생산 역량은 아직 파괴되지 않았고, 완전한 단절, 봉쇄 속에서도 자급자족, 자립생존이 가능하다. 이는 바꿔 말하면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맞서는 서구 지식인과 활동가들이 외치는 행동강령인 ‘로컬라이제이션’이 이미 이루어져 있다는 뜻이다. 글로벌라이제이션 위기에 맞서는 중국 사회의 진정한 역량은, 여전히 외부에서 기인한 리스크를 저비용으로 차단할 수 있는, ‘로컬’ 향촌사회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다시 중국 정부가 내세우는 향촌진흥정책, 생태문명건설 정책을 치열하게 살펴봐야 한다. 중국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21세기의 발전전략을 다시 숙고해야 한다. 단지 거버넌스 능력뿐아니라 발전모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화, 2020/06/16-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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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2019년 《녹색평론》 1~2월호에 실은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이 책 3부 3장)에 대해 서울대 김명환 교수가 같은 책 3~4월호에 「한반도 평화와 분단극복을 위하여 — 김상준 교수의 분단체제론 비판에 대해」라는 글을 올렸다. 분단체제에 대한 백낙청 선생과 필자의 인식(‘마의 순환고리의 작동’)에는 상통하는 점이 많지만, 백낙청 선생의 분단체제론에는 체제전환, 질적전환의 발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필자의 비판은 ‘적중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필자가 문제를 제기한 이상, 김명환 교수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하는 부분에 대해 보완하여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논의가 생산적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장면과 방식을 좀 바꾸어서 대화를 이어가보기로 한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의 교착 상태를 풀어가는 방법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당면한 실제적 문제를 놓고 이야기해야 서로의 차이도 구체화되고 또 서로가 모아질 수 있는 방향도 선명해질 것 같아서다.

 

게임의 룰과 차원을 바꿔라

2019년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미 간 비핵화와 체제안정 보장의 딜(deal)은 한동안의 밀월관계 이후 일단 교착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2018년 6월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의 북미관계가 밀월로만 계속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미국이 이제 유명해진 CVID, 즉 ‘완전하고(complete), 검증 가능하며(verifiable), 불가역적인(irreversible) 핵 파괴(destruction)’를 요구한다면, 북측 역시 똑같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체제안전보장(Guarantee)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CVID를 요구한다면 북 역시 마찬가지로 CVIG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진행되면서 2018년 하반기부터 CVID 대신 FFVD라는 용어도 쓰이고 있다.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의 약자다. 파괴(destruction)라는 군사적이고 공격적인 용어 대신 비핵화(denuclearization)라는 정치적이고 전문적인 용어를 썼으니 CVID보다는 완곡한 표현이다. 그러나 무어라 쓰던 FFVD 역시 FFVG로, 즉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체제안정보장’으로 바꾸어 대응할 수 있는 용어라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상호 큰 요구를 맞대놓고 있는 이러한 성격의 협상은 애당초 단기간에 마무리될 일이 아니었다. CVIG – FFVG 없이, CVID – FFVD만 하라 할 수는 없다. 그런 건 딜이 될 수 없다. 이 딜은 애초부터 서로의 실행 정도를 확인해가면서 단계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현재의 교착국면은 주의 깊은 관찰자들에게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의 일부였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대비하면서 준비해왔어야 할 방침이 무엇일까? 이야기가 생산적이려면 이런 문제를 함께 검토해보아야 한다.

축구사(史)에서는 요한 크루이프(Johan Cruyff)라는 대 선수가 축구를 바꿔놓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요즘 중재자냐 플레이어(선수)냐라는 말도 있는 모양이지만, 이렇게 경기 자체의 차원을 바꾸어놓는 대 선수도 있다. 경기의 개념을 바꾸어놓는 것이다. 이 정도면 대 선수이자, 동시에 대 중재자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중재란 낮은 수준의 중재가 있고, 높은 수준의 중재가 있다. 낮은 수준의 중재를 브로커(brokerage)라고 하고, 높은 수준의 중재를 arbitrate라 한다. 후자는 기존의 룰이나 패턴을 한 차원 뛰어넘는 높은 수준의 중재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차원 높은 중재자(arbitrator)란 경기의 규칙과 개념 자체를 바꿔놓는 큰 행위자를 말한다.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도 그런 것이었다. 그때 빌리 브란트는 대 선수이자 대 중재자였다. 남북 코리아도 같은 길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1988~1991년 ‘양국체제’의 첫 기회가 열렸던 순간이었다. 이때 남북이 유엔에 동시가입했고, <남북기본합의서>도 교환되었고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도 가능했다. 그런데 왜 1992년부터 뒤집히기 시작해 1994년에 이르면 완전히 파탄이 나고 말았던가? 아주 엄밀한 분석이 필요한 대목이다. 필자는 이 책 1부 1장에서 그런 작업을 시도해보았다. 이 글의 흐름과 연관된 핵심적인 부분만 인용해본다.

첫째, 양국체제로의 전환을 이끌어간 내부 주도 역량의 한계다. 그 한계의 배경에는 87년 민주항쟁 이후 민주화 역량의 분열이라는 뼈아픈 변수가 있다. 이 분열은 양국체제의 출발을 불안정하게 했고, 이후 체제전환을 지속해 나갈 힘을 크게 약화시켰다. 두 번째는 소련·동구권 붕괴 이후 북이 느끼는 체제 위협이 커짐에 따라 발생한 북핵문제다. 이로 인해 북미, 남북 간 높아진 적대적 긴장은 양국체제의 동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결국 이 두 가지 원인이 결합되어 양국체제의 첫 시도는 너무도 짧은 시간에 실패로 종결되고 말았다. (이 책, 61~62쪽)

분단 – 전쟁 – 정전 상태의 지난 70년, 남북은 시종 적대적 대결관계를 해소하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양측은 줄곧 통일을 주장해왔으나 그런 상태로 통일이 이루어질 리 없었다. 우선 상대를 인정할 수 있어야 했다. 진정 하나가 되자 하면 먼저 서로 인정하는 둘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전쟁까지 하면서 적대해왔던 상대를 인정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자신이, 그리고 서로가, 안팎으로 온전하고 정당하며 안정되게 서야 한다. 이 조건이 무르익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17~2018년 촛불혁명과 북핵 완성,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라는, 각각이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세 요소가 한 시점에 합류하면서 그 조건이 무르익었다.

한국(ROK)의 촛불혁명은 4·19와 87년 민주항쟁이 미처 이루지 못했던 이 나라의 민주적 정통성의 필요충분조건을 비로소 충족시켰다. 4·19 직후 장면 정부와 87년 이후 노태우 정부는 필요조건은 갖췄으나 충분조건은 갖추지 못했다. 4·19는 세계냉전의 한가운데서 발생하였으나 냉전의 흐름에 맞서는 민주분출이었다. 그럼에도 민족화해의 봄으로 이어지기에는 시대의 제약이 너무나 컸다. 반면 87년 민주항쟁은 89년 이후 냉전 해체와 중첩되어 있었기에 그 가능성이 실재했다. 그리하여 분단 이후 처음으로 양국체제로의 첫 문이 잠시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87년 민주화 동력의 분열로 그 가능성은 충분히 현실화될 수 없었다. 이제 2016~2017년의 촛불혁명은 남북 대결과 적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소시켰고 그 힘은 온전히 민주정부로 이어졌다. 반쪽국가가 아닌 온전한 한 국가로서 안정된 정당성과 자신감을 갖춘 것이다. 그렇기에 2017년 북미 간 전쟁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남북 화해, 북미 화해의 길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 결실이 2018년부터 맺히기 시작했다.

소련·동구권 붕괴 이후 미소 냉전이 해소되었지만 곤경에 빠진 조선(DPRK)을 미국은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붕괴를 위한 제재와 압박을 높였다. 그 결과 ‘북핵문제’가 본격화했다. 북핵 개발과 제재 압박의 벼랑 끝 줄다리기는 1990년초부터 시작되어 2017년까지 계속됐다. 이 30년 위기와 긴장 속에 북미 간만이 아니라 남북 간의 대결과 적대의식도 고조되어왔다. 이 적대와 대결의 고조를 한국의 촛불혁명이 먼저 끊었다. 그리고 조선의 ‘핵 완성’ 선언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북핵문제의 해결은 북핵 완성을 통해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또 그 역설은 미국 정치의 국외자인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과 만나 현실화의 실마리를 갖게 되었다. 2018년 벽두부터 남북이 화해의 물꼬를 텄다. 핵 완성을 통한 조선의 자신감과 촛불혁명을 통한 한국의 자신감이 서로 당당하게 만날 수 있었다. 이어 한국이 북미 협상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을 성공적으로 중재함으로써 영영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남북미 간 화해의 협주가 가능해졌다. 이제 남북미는 종전과 평화협정, 그리고 북미 수교와 한반도 비핵화를 일정에 올려두고 있다.(이 책, 69~71쪽)

그러면 지금은 어떠한가? 하노이 회담 불과 며칠 전에 ‘자유조선’이라는 해괴한 단체가 스페인의 조선(DPRK) 대사관을 습격해 주요 문서를 탈취해갔다. 데자뷔, 익히 보아왔던 일이다. 2005년,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을 발표한 지 하루 만에 뱅코델타아시아(BDA)의 북측 거래를 정지시키는 금융제제를 한 일을 생각해보자. 당시 이 일은 미국 재무성 강경파가 주도한 일로 알려졌다. 또 이번 스페인의 조선 대사관 습격은 미국 CIA나 FBI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작전’이었다고 보도되고 있다. 국제적 비난이 커지자 미국은 습격에 가담한 일부를 잡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미국은 지금 ‘그런 척’이라도 해야 한다. 국제법상 큰 도발이었으니 빤한 일을 저질러놓고 나 몰라라 하고 있으면 국제적 비난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일들이 준비된 시나리오에 따라 질서 있게 진행되고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지금 미국 정부 내부도 잘 알려진 것처럼 코드가 뒤섞여 정리가 되지 않는다. 부서끼리 또는 부서 내부에서도 치고받는 암투가 심각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의 룰’을, ‘게임의 차원’을 어떻게 바꾸어갈 것인가?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처럼, 하노이 회담 이후, 아주 오래된 게임의 옛 선수들이 경칩 맞은 두꺼비들처럼 다시 나와 슬슬 몸을 풀면서 이 상황을 매우 즐기고 있다. 머지않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일이 촛불 이전으로 되돌아가 줄 것을 대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 이 게임은 이제 다시 과거로 퇴행하고 말 것인가? 이 상황을 분단체제론은 어떻게 말할까?

분단체제론에는 ‘게임의 룰’, ‘게임의 차원’을 바꿔 나갈 뜻이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분명치 않아 보인다. 이렇게 될 것을 몰랐느냐고, 바로 그런 것이 바로 ‘분단체제’라고, ‘분단체제’란 결코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라는 말만 되돌아올 것 같다. 물론 빠져나가는 문은 있다. ‘남북연합’, ‘국가연합’이다. ‘분단체제’란 미국 중심의 ‘근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하위체제로서 그 상위체제가 ‘변혁’되지 않는 한 결코 바뀔 수 없다. 단 남북연합을 열심히 하면 분단체제는 조금씩 약화될 수 있다. 그러니까 분단체제라는 게임의 룰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게임의 룰 안에서 ‘남북연합’이라는 전술을 열심히 구사하면 어느 날에는 분단체제라는 게임도 결국 바꾸어질 수 있다는 것이 되겠다. 《녹색평론》 1~2월호의 필자의 글에서 김명환 교수가 아파한 것으로 보이는 분단체제론의 ‘직선적·선형적 도면’이 바로 그런 것이다.(이 책 3부 3장)

이 <그림>들에 대한 설명에서 말했듯 분단체제론에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질적 단절’이 필요하다는 사고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양적 변화의 사고법만 존재한다. 이는 <그림 3>(이 책, 271쪽)의 남북연합의 직선도에서 유추할 수 있다. 남북연합의 증가만큼 분단체제는 감소한다. 역시 직선적 관계다. 백 선생이 신념을 가지고 말하듯 남북연합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추세로 항상 작동한다. 간혹 정부 간의 길이 막히더라도 백 선생이 제기했던 ‘시민참여 통일과정’의 길로 더욱 열심히 나가면 된다. 그렇게 하여 <그림 6>처럼 남북연합의 힘이 커지는 만큼 분단체제의 힘은 계속 약화된다.”(이 책, 276~277쪽)

다시 말하면, 최소한 지금까지의 ‘분단체제론’에는 ‘분단체제’라는 게임의 규칙과 차원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계속 분단체제 안에서 뛰자는 이야기를 벗어날 수 없었다. ‘남북연합’도 ‘분단체제’라는 게임의 일부가 되었다. ‘분단체제’를 비판하자고 시작했던 ‘분단체제론’이 어느덧 분단체제를 받아들이면서 그 안에서 적당히 변화시켜가자는 이론이 되어버린 것이다. 더 나아가 이제 분단체제론자들에게는 분단체제가 단순히 소극적·부정적 상태가 아니다. 남북을 연결시켜주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분단체제’는 ‘남북연합의 전제’가 된다고 한다. 그토록 강조하는 ‘남북연합’은 ‘분단체제를 상정해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이리하여 ‘분단체제’는 이제 오히려 매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개념으로 180도 변해버린다. 놀라운 마술과 같은 일이다. 상세한 논의는 필자가 ‘양국체제론의 곤경과 역설’이라 하여 분석했던 「양국체제론과 분단체제론 — 상호 이해를 위한 서장」(이 책 3부 2장)을 참조해주기 바란다.

‘남북연합’은 1989년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처음 포함된 후 한국의 역대 정부가 모두 인정해왔던 용어다. 2001년 6·15 회담에서는 남북 정상이 ‘남북연합’에 합의하면서 남북 양측이 모두 인정하는 용어가 되었다. 그만큼 공식화된 언어고, 정치적인 표현이다. 그 말은 이제 ‘남북연합’이라는 말이 ‘분단체제’라는 기존의 게임의 언어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분단체제’와 ‘남북연합’이 동거하는 방식으로 거의 30년을 그래왔다. 이제는 그런 상태를 벗어날 때가 되었다. 우선 촛불혁명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북핵문제의 본질도 명확해졌다. 북측도 체제 보장이 되면 비핵화하겠다고 밝히고 나왔다. 미국 역시 과거의 게임을 계속하는 데 한계에 이르고 있다. 이제는 분단체제라는 게임 자체를 바꿀 때가 된 것이다. 그것이 ‘양국체제론’의 메시지였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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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0/06/18-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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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자들을 정리하면서 느낀 소회를 적어 봅니다.

현대철학은 니이체와 프로이트 및 마르크스으로부터 시작되는데, 니이체는 존재는 생성이다라고 선언하면서 서구의 존재론인 실체론을 폐기하고 생성론을 새로운 존재론으로 제시하였으며 프로이트는 인간을 이성적인 인식의 주체가 아니라 무의식의 지배를 받기에 칸트의 주체철학은 종말을 고했다고 선포하였으며 마르크스는 서구의 관념론을 거부하고 유물론적 변증법을 제시하면서 물적 토대에 대한 구조적인 변혁의 필요성을 설파하였습니다.

한편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마르크스는 토대인 생산양식의 혁명을 주장하였으며(마르크스는 혁명은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엥겔스의 객관적인 결정론을 버리고 토대의 모순이 극대화된 임계상황에서 정치적 의식화를 통한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의지가 고양되었을때 토대인 자본주의의 혁명이 일어난다고 보았습니다), 한편 후기 포스트모더니스트인 슬라보이 지젝은 상부구조인 이데올로기의 혁명을(대중의 계급의식이 소멸함에 따라 토대의 혁명은 불가능해졌기에 상부구조가 만들어낸 허위의식인 이데올로기의 혁명이라도 이루어야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혁명은 토대와 상부구조의 동시적 변혁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결국 유와 무가 둘이 아니듯 불교의 중도사상과 양자역학 의 중첩성의 원리를 진리로 받아들인다면 어느 하나만의 혁명은 온전한 변혁이 아니기에 결코 그에 따른 희생에 비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한편 마르크스의 혁명이 종국에 실패한 것은 상부구조에 위치한 욕망의 상대적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고 단지 상부구조는 토대에 종속된다고 해석하였기 때문인데 이는 이분법적인 실체론에 입각한 유물론의 필연적인 결론이라 할 것이므로 욕망의 본성을 반영하지 아니한 새로운 생산양식의로의 혁명의 성공가능성은 애초부터 희박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토대에 대해 상부구조의 상대적 독자성, 즉 상대적 결정론을 주장한 발터 벤야민이나 조르주 루카치의 견해를 계승한 지젝의 상부구조의 혁명론도 현실적으로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결코 절반의 치유책에 불과하기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생존을 위한 대중의 기본적 욕망의 결핍을 대부분 해소하였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욕망의 절대적 결핍상태를 벗어나는 것을 넘어서서 자본이 자신의 확장 및 심화를 위하여 생산한 잉여욕망을 마치 본래적인 인간의 욕구인 것처럼 왜곡시켜버렸기 때문에 대중은 무한한 잉여욕망을 당연한 본성인 것처럼 추구하다보니 결핍에 따른 계급의식 또는 투쟁의식을 상실하였다할 것입니다.

따라서 자본이 만든 잉여욕망을 주입시키는 이데올로기(허위의식)를 못 벗어난 대중이 어떻게 이데올로기가 허위의식임을 깨닫고 이를 해체할 수 있을까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물론 이에 대해 진지전 이론을 개진한 안토니오 그람시는 전통을 옹호하는 전통적 지식인 대신에 유기적 지식인이 전선의 참호에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드러내어 이를 해체하는 진지전을 펼침으로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국가나 자본을 해체하여 재구성 하자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하여 자본이 만든 잉여욕망의 노예로 전락한 대중보다는 깨어있는 유기적 지식인이 중심이 되어 이데올로기를 해체하자는 의미에서의 혁명이론운 제시한 그람시의 이론이 더욱 실현가능성이 있지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현실을 볼 때 지식인들은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해 유물적인 심층분석 보다는 특정 정치집단이나 특정 진영의 이데올로기나 포플리즘의 전위로서 정치적 구호에 흡수되어 자신의 변혁적 역할을 방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착잡함을 금하지 않을 수없습니다. 예를 들어 아직도 한국사회를 진보 또는 보수의 이항대립적 대결구도로 해석하면서 피상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문제해결을 시도할 뿐 결코 한국의 국가재벌독점자본주의의 기본 모순에 대해서는 과감히 눈을 감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면 참으로 답답함을 금치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온전한 혁명은 상부. 하부구조의 동시적 변혁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보는데 언듯 이러한 생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바램이 아닌가 생각하기에 인간에게는 온전한 혁명은 이상적인 꿈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하는 좌절감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대중은 물론 지식인조차 자본이 만든 잉여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토대와 상부구조를 변혁할 선구적 대안을 제시하는 지식인의 지혜와 토대를 변혁할 대중의 결집된 주체의식과 투쟁의지가 가능하지 않다고 보게 되는 것이며 나아가 이들을 전위에서 창도하고 대안을 설계할 수 있는 유기적 지식인도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인간은 결국 토대와 상부구조를 주체적, 자발적인 혁명에 의해서는 불가하므로 결국 외부적 사건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라고 슬프지만 어쩔 수없이 추단해봅니다. (그나마 한국사회의 시민운동은 정치권력, 경제권력과 사회 권력에 대해서 저항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시민사회의 독립성과 자구성을 확보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시민운동이 시민단체운동으로 협소하게 왜곡되어버리고 그나마 시민이 아닌 실무자 중심의 운동으로 전락해버렸으며 그 결과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면서 시민운동을 한 단계 레벨업을 시키기보다는 대부분이 정치운동으로 흡수되면서 결코 시민운동과 주체는 물론 목적과 작동방식이 다른 정치운동의 하부구조로 전락해버려 시민운동의 존재의미마저 의심받는 처지에 몰리게 되었기에 이제는 시민운동에 대한 기대마저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면 페스트에 의해 중세가 몰락하고, 세계대전에 의해 근대가 몰락한 역사가 반증하고 있듯이 현대 산업화의 모순에 따른 인간사회의 불평등과 지구적 차원의 파괴도 인간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서는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라는 회의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하여 이번 코로나 팬더믹 사태가 인간의 생존방식과 생산양식의 변환을 가져올 사건, 즉 알랭 바디우의 진리사건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따라서 데리다의 ‘부재의 진리’를 찾는 노력도 우리에게 그나마 혁명의 당위성을 가르쳐주고 있읍니다만 이 또한 관념적 철학자의 현실불가능한 꿈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래도 지젝은 불가능에 도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만.

그러나 여기서 고민해야할 문제점은 현재의 생산양식이 가지고 있는 모순은 다른 생산양식으로 대체해야 할만큼 치명적인 결합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수정자본주의 또는 사회적 복지국가를 통하여 이미 자본주의 모순을 완화시켜왔기에 다른 보완재로 치유가 가능한 것인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사회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기본모순인 계급모순외에 한국만의 독특한 재벌자본주의에 따른 독점모순과 나아가 신자유주의에 따른 불평등 모순 및 기타 부가적 모순인 분단모순 및 지역모순 등을 열거할 수가 있는 바, 과연 그러한 모순들이 한국사회 시스템으로 하여금 정상적인 방법으로 치유불가능한 치명적 상황을 만들었기에 대체재가 필요한 임계상황인지 아니면 재정비하거나 보완하는 차원으로 치유가 가능한 상태인지를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으나 어떤 결론이 나던지간에 이들을 치유하는 방식은 결국 구조적인 접근방식으로 분석하고 해답을 내놓아야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사 진보정권이라하여도 지금껏 계급과 계층 및 집단을 망라하여 한국사회 모순에 대한 구조적인 진단과 근본적인 치유책에 대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해집단을 초월하여 진지한 연구와 성찰과 변혁의지가 부재한 실정이었다고 생각하기에 긴 안목으로 한국사회를 구조적으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과학적 자세를 갖춘 열린 대중과 유기적 지식인의 참여와 연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금, 2020/06/19-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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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가 지나간 곳엔 시체가 즐비하다. 흔히 사모펀드를 기업사냥꾼이라 부른다. 그러나 사모펀드는 기업사냥꾼이라 불리는 것도 모자라 사냥한 후에는 기업을 완전히 시체로 만들어 버리고 장사를 지낸다. 그래서 나는 사모펀드를 ‘기업장의사’라 부른다. 사모펀드가 어떤 식으로 기업의 흡혈귀와 장의사 노릇을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미국의 예를 보기 전에 먼저 우리나라 예다. 경상북도 영덕으로 가보자.

사모펀드가 기업장의사임을 즉시적으로 보여주는 뉴욕타임스 기사. “어떻게 사모펀드가 신발소매업 체인점 페이리스(Payless)를 장사 지냈는가”란 기사 제목이다.

 

경북 영덕주민들 두 번 울린 사모펀드

경상북도 영덕에 가면 영덕풍력발전단지가 있다. 바람의 언덕이라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 뒤에 지역주민들의 분노와 눈물이 있다. 이 풍력발전공사를 외국계 사모펀드 회사가 이른바 “먹튀”(먹고 튄다는 속어)를 했기 때문이다. 호주계 사모펀드 맥쿼리PE가 영덕풍력발전공사를 인수한 것은 2011년, 200억 원을 들여 유니슨 등으로부터 매입했다. 그리고 2019년 삼천리그룹의 삼탄에 매각했다. 7년간 맥쿼리가 소유주로 있는 동안 올린 수익은 630억 원. 그러나 현재 회사는 자본잠식상태다. 깡통회사란 뜻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2018년 한 해만 보더라도 영덕풍력발전은 한 해 동안 약 81억 원의 매출에 영업이익은 약 19억3천만 원을 올렸다. 하지만 이자비용으로 45억 원을 지출해야 했다. 이렇게 7년간 맥쿼리에 이자비용(전환사채 차입에 대한)으로 지출한 것이 총 319억 원이다. 결국 모든 것을 계상하면 결손금 117억 원이 자본총액 40억 원을 초과해서 자본잠식 상태에 놓인 것이다. 빚밖에 남는 게 없는 것이다. 그러나 멕쿼리는 2013년 영덕 근처의 영양풍력발전공사까지 인수했다가 작년 영덕풍력발전까지 한데 묶어 삼탄에 1천9백억 원을 주고 매각했다. 이로써 수백억 원의 매각 수익에 이자, 거기에 7년 동안 올린 수익을 쏙 빼먹고 튄 것이다. 영덕군이 올린 수입은 부지 대부료로 매년 331만 원 받은 것이 전부. 각종 기반시설 지원 등에 군민 혈세가 들어간 것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지역 경제 활성화라며 기대한 일자리는 고작 7명이다.

그럼 이게 다일까?

새 인수자 삼탄 역시 사모펀드와 은행을 끼고 영덕 및 영양풍력발전공사를 차입매수 했다. 각각 192억 원과 854억 원을 30년간 대출로 연리 12%의 이자를 내도록 했다. 해서 영덕과 영양풍력발전공사는 연간 각각 23억 원, 102억 원의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이익을 내봤자 아무 소용없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계속될 것이다. 영업을 할수록 손해만 쌓인다. 더 못 버티고 곧 문을 닫을 것이다.(『영남경제』, 2019. 9. 5; 2019, 9. 6; 2019, 9. 18).

 

기업흡혈귀와 장의사 사모펀드의 기업 고사 방식

다른 나라(미국) 이야기를 먼저 하면 관심이 덜 할 것 같아서 우리나라의 사례를 먼저 들었다. 그렇다면 사모펀드가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법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이것을 보면 사모펀드가 왜 기업장의사와 기업흡혈귀란 명칭이 어울리는지를 알 수 있다.

첫째, 사모펀드는 경영상태가 안 좋은 회사를 좋게 만들겠다는 명분을 들고 회사를 싼 값에 매입하거나 돈을 빌려준다. 그리고 경영에 감 놔라 배 놔라 참견을 한다. 이 뒤에 따라오는 명분들은 수익을 내는 튼실한 회사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질의 일자리도 창출 하겠다는 것이다. 매입 대상 업체는 둘 중 하나다. 상장사의 주식을 대거 매입해 상장을 폐지해 나중에 재상장해 매각 수익을 얻거나, 비상장사를 사서 상장사와 합병하는 우회상장을 통해 가치를 높여 매각해 수익을 얻는 방식이다. 공통된 것은 사정이 어려운 회사가 사냥의 대상이다.

둘째, 그러나 그 명분은 말만 그럴 뿐, 회사의 구성원이나 회사 자체를 위하지 않고 오로지 주주나 소유주의 이익 실현을 위해서 무지막지한 구조조정 등을 강행한다. 그렇게 해서 장부상으론 이전 보다 괜찮은 회사로 거듭난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리고 매각해 막대한 이익을 남긴다. 즉 회사의 정상화나 건실화 등이 목표가 아니고 오로지 산 것 보다는 비싼 값에 매각하는 것이 사모펀드의 목표다.

셋째, 회사를 매입할 때 절대로 자기의 돈으로만 하지 않는다. 남의 돈을 빌려 매수한다. 즉 차입매수(leverage buyouts)를 한다. 그 빚과 이자는 고스란히 회사에 떠넘긴다. 그러나 알맹이(수익)는 철저히 주주들과 소유주의 몫이다. 그러면 회사엔 뭐가 남는가. 계속해서 손실만 쌓이고 고사하는 것밖엔 다른 방도가 없다. 사정이 안 좋은 회사에 도움은커녕 설상가상으로 빨대를 꽂은 격이다.

넷째, 이렇게 부채더미를 쌓고 있는 회사는 위험하기 그지없다. 그러면 사모펀드는 이런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 어떤 짓을 하는가? 부채에 대한 파생금융상품인 “대출채권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loan obligations, 이하 CLO)을 발행한다. 부채를 담보로 해서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 또 한 번 재미를 보는 것이다. 노리는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위험분산, 나머지 하나는 수수료로 인한 수익창출이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장사를 하다가 실제로 위험이 닥쳐도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국가가 그 위험을 떠안아 주니까. 구제금융으로. 이들이 그 때 내세우는 명분은 대마불사다. 자신들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 이렇게 노나는 장사가 어디 있을까? 잘 나갈 땐 그 열매를 온전히 자신들의 몫으로, 위기가 닥쳐 망할 땐 국가가 나서서 국민의 혈세로 대신 메워준다.

코로나19가 악성 회사채를 가지고 무모한 노름을 하고 있는 월가(사모펀드)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고 기사를 낸 뉴요커

CLO는 2008년 금융위기를 몰고 온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때 월가에서 써먹던 “부채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s, CDO)의 사촌 격으로 작동 원리는 똑 같다. CDO는 대형금융회사가 서브프라임업체로부터 받은 불량채권에 대한 위험을 분산하고 동시에 투자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써먹었던 일종의 대출에 대한 보험 상품으로 우량과 불량대출을 섞어서 위험이 없는 것처럼 살짝 분칠해 파는 것이다.(김광기, 『정신차려 대한민국』, 2012). 본질 면에서 CDO와 똑같은 CLO는 대형금융회사나 사모펀드 자체가 발행, 관리 및 판매한다. 그렇게 거짓되게 위험을 분산한 것처럼 보이게 한 후 투자자를 모아 수수료까지 챙긴다. 그러나 위험은 인위적으로 희석되어 가려졌을 뿐 여전히 상존하고 있으며, 위기가 오면 그 실체가 드러난다. 그러면 사모펀드는 망하게 된다. 이 때 그들이 들고 나올 것이 바로 앞서 언급한 대마불사론이다. 2008년 월가가 써먹던 수법 그대로 전수받은 것이다. 이게 바로 금융주도자본주의(finance-driven capitalism)의 실상이다.

 

잉글랜드은행 전 총재 마크 카니의 경고

잉글랜드은행(Bank of England)의 전 총재 마크 카니(Mark Carney)는 2019년 1월 영국 하원에 나와 전 세계적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회사부채(corporate debt)의 폭증에 대해 경고했다. 당시는 코로나 때도 아니고 트럼프가 “나(미국)홀로 잘나가!”하면서 경제의 호황을 자랑하던 때다. 카니는 파행적인 회사부채 시장을 2008년 금융위기 때에 견주어 경고했다. 회사부채 시장에서의 이른바 “약식대출”(covenant lite loans: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확인하는 절차(검사)를 생략한 채 이루어지는 대출)의 만연이 “서브프라임과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채권인수’(no doc underwriting)라는 의미에서 그 때와 동일선상에 있다”고 증언했다. 2019년 1월 현재 차입대출의 85%가 약식대출이다(Bank of England, Financial Stability Report, Issue No. 44, November 2018; “Leveraged loans at pre-crisis levels — and I’m worried, says Carney,” The Times, Jan. 17, 2019; “The risky ‘leveraged loan’ market just sunk to a whole new low,” Business Insider, Feb. 17, 2019).

급증하는 회사채와 레버리지대출을 2008년 금융위기에 견주어 경고하고 있는 잉글랜드은행 전 총재 마크 커니 <출처: 타임스/로이터스>

그런데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영국은행 총재의 저런 경고는 개 코로도 듣지 않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사실 수십 년 전에는 소위 잘나가는 회사라면 높은 신용등급과 과도한 부채의 회피가 그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것은 완전히 구식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돈 놓고 돈 먹는 금융주도자본주의에 편승한 뒤로는 사모펀드가 이것을 선도했다. 인수와 자사주매입을 위해 많은 대출이 이루어졌고 차입매수가 성행했다. 미국 연준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4분기부터 2019년 4분기까지 비금융권기업의 회사부채는 총 6조1천억 달러(7,527조 원)에서 10조1천억 달러(1경2,463조 원)로 증가했다.

회사부채는 채권발행으로도 조달되었지만 위에서 말한 새로운 형태의 이른바 “레버리지대출”(leveraged loans)의 확산으로도 이루어졌다. S&P글로벌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9년까지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에까지 대출해준 협조융자(syndicated loan: 둘 이상의 은행이 공통의 조건으로 기업에 자금을 융자해주는 대출) 총액은 5,540억 달러(684조 원)에서 1조2천억 달러(1,481조 원)로 급증한다. 이런 레버리지대출은 앞에서 언급한 CLO를 창출하는데 사용되었다. 2019년 말까지 7천억 달러(864조 원) 상당의 CLO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말하자면 빚을 놓고 그것에 대한 금융상품이 투자 상품으로 따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위험천만한 돈 놓고 돈 먹는 돈 놀이가 지금 월가에서 사모펀드 주도하에 가진 자들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The Coronavirus Is Exposing Wall Street’s Reckless Gamble on Bad Debt,” New Yorker, May 24, 2020). 문제는 그런 돈 놀이에 말려든 기업들과 거기에 속한 종업들이 말라 죽어나가고 있다는 데 있다.

 

백화점의 서거: 니만마커스와 JC페니

5월 초 미국의 유명 백화점체인 두 개회사가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니만마커스와 JC페니다.(“Neiman Marcus and the demise of the US department store,” Financial Times, May 8, 2020; “J.C. Penney, 118-Year-Old Department Store, Files for Bankruptcy,” New York Times, May 15, 2020). 두 회사는 모두 미국 백화점 업계의 대명사이다. 니만마커스는 최고급백화점이고, JC페니는 서민들을 위한 백화점이다. 두 회사의 역사는 각각 113년, 118년으로 둘 다 유서 깊다. 이를 두고 대부분의 매체들은 코로나 사태와 디지털시대에 맞는 변신에 실패를 파산신청의 원인으로 꼽고 있는데 내가 보는 견해는 다르다.

물론, 앞서 언급한 이유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코로나사태가 백화점에 직격탄으로 작용한 것은 도표에서 보듯 부인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미 이들 백화점이 두 손 두 발을 들 수밖에 없었던 기저질환이 도사리고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경제는 주식과 부동산 빼고는 나아진 게 없었다. 그 대표적 예가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쇼핑몰들의 폐쇄다. “쇼핑몰의 서거 경제학과 향수”라는 제목의 2015년 뉴욕타임스 기사

그 기저질환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2008년 이후 미국 경제가 살아났다고 하지만 증시와 부동산시장만 호황이었을 뿐 나머지 부문에서는 오히려 나아진 것이 없었다. 백화점의 서거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백화점과 단독 점포가 들어선 대규모 쇼핑몰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 전역에서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쇼핑몰은 미국인들에겐 애틋한 정서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딱히 재미라고는 달리 찾을 수 없는 건조한 미국식 삶 속에서 그나마 쇼핑도 하고 사람구경도 하고 놀기도 하는 곳이 쇼핑몰이기 때문이다. 하교 후 청소년들이 친구들과 친목을 도모하던 곳 중 하나도 쇼핑몰이다. 그런 곳이 문을 닫으니 뉴욕타임스 같은 곳은 쇼핑몰의 서거가 향수를 불러온다고 제목을 달아 기사화를 했던 것이다.(“The Economics (and Nostalgia) of Dead Malls,” New York Times, Jan. 3, 2015). 그런 기사가 났던 것이 2015년이다. 그리곤 마침내 이제 백화점의 종언까지 고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는 이미 휘청거리며 넘어지고 있던 백화점의 발에 살짝 걸린 돌부리와 같다. 다시 말해, 코로나가 미국 백화점 사망의 주효한 원인은 아니다. 이미 코로나 이전에 심각한 기저질환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니만마커스와 JC페니 등이 파산보호신청을 하자 백화점의 서거를 알리는 2020년 4월 뉴욕타임스

 

기업장의사 사모펀드에 의해 이미 고사 중이던 업계

나머지 기저질환은 사모펀드 때문에 생긴 것이다. 따라서 이번 파산신청의 주된 원인은 사모펀드다. 이것들의 농단으로 백화점들이 완전히 작살났다. 바야흐로 디지털시대에 온라인 쇼핑으로 노선을 바꾸고 재기할 자구노력과 자생력조차 사모펀드는 완전히 압살했다. 수익이 나는 족족 배당금과 이자로 현금을 다 빼갔으니 그렇다. 어떻게? 맨 처음 우리나라 영덕풍력발전공사의 경우에서와 같이 말이다.

대표적으로 백화점 업계의 귀공자 니만마커스가 어떻게 엄청난 빚만 짊어진 채 빈껍데기만 남은 회사가 되었는지 보자. 현재 니만마커스의 부채는 50억 달러(약 6조2천억 원)이다. 심각한 수준이다. 2005년 사모펀드 TPG와 워버그핀커스(Warburg Pincus)는 51억 달러(약 6조 3천억 원)로 니만마커스를 차입매수 한다. 그리곤 2013년 사모펀드 아레스매니지먼트(Ares Management)와 캐나다연기금운용회사(CPPIB)에 60억 달러(약 7조 4천억 원)를 주고 매각한다. 이들 회사는 니만마커스의 가격을 높이기 위해 2015년 기업공개(IPO)를 시도하려했으나 불발로 끝났다. 니만마커스는 지난 2년 동안 50억 달러의 부채를 조정해 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이자는 수억 달러가 지출되었다. 2018년 마지막 회계보고엔 49억 달러(약 6조5백억 원)의 수익이 있었다. 그러고도 빚이 50억 달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은 매해 나는 수익이 한 푼도 안 남기고 거의 다 주주들의 배당과 이자 지불로 빠져 나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디스는 니만마커스의 부채를 두고 “지탱하지 못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The Pandemic Helped Topple Two Retailers. So Did Private Equity,” New York Times, May 14, 2020;“J.C. Penney, 118-Year-Old Department Store, Files for Bankruptcy,” New York Times, May 15, 2020). 이런 판에 온라인쇼핑으로 전환하려는 자구노력을 어떻게 하는가? 그것도 돈이 들어가는 일종의 투자인데 말이다. 거기에 들어갈 돈들이 주주들과 소유주에게 배당금과 이자로 다 홀랑 가버리는데….

 

사모펀드가 손 댄 소매업체마다 좀비기업으로

그렇다면 백화점만 그럴까? 아니다. 사모펀드가 손 댄 소매업체마다 사정이 똑같다. 그리고 기업은 회생은커녕 시체로 거듭나고 있다. 대표적 예를 두 곳만 더 보자. 옷가게 제이크루(J. Crew)와 중저가신발업체 페이리스(Payless)다.

먼저, 2011년 사모펀드 TPG와 레오나드그린&파트너스(Leonard Green & Parners)가 제이크루를 30억 달러(약 3조7천억 원)에 차입매수 한다. 소비자 옹호 단체인 <미국금융개혁연대>(Americans for Financial Reform)이 추산한 바, 2011년 이후 제이크루는 소유주인 사모펀드에게 배당금, 이자 및 수수료로 7억6천만 달러(약 9천4백억 원)를 지불했다. 니만마커스와 마찬가지로 온라인쇼핑 등의 영업 전환 모색 등에 들어갈 돈은 한 푼도 없이 사모펀드가 탈탈 털어갔는데 무슨 자구노력이 가능했겠는가.(New York Times, May 14).

페이리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12년 사모펀드 골든게이트캐피탈(Golden Gate Capital)과 블룸캐피탈(Blum Capital)이 페이리스를 20억 달러에 차입매수 했다. 2015년 1월을 기준으로 과거 2년 동안의 에비타(EBITDA: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기업의 현금창출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를 보면 기가 막힌다. 페이리스는 그 기간에 3억2,200만 달러(약 3,986억 원)의 에비타(세전이자지급전이익)를 올렸다. 그러나 주주들에게 배당금으로 3억5,200만 달러(약 4,357억 원), 그리고 이자로 8,300만 달러(약 1,027억 원)가 돌아가서 손실만 기록했다. 이것을 쉽게 계산하면, 회사로 1달러(약 1200 원)가 들어올 때마다, 소유자에겐 1.09달러(약 1350원)가 대출자에겐 0.26달러(약 322 원)가 돌아가게 되어서 1달러 벌 때마다 계속해서 0.35달러(433 원)의 빚이 쌓이는 꼴이다.(“How Private Equity Buried Payless,” New York Times, Jan. 31, 2020).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딱 그 짝이다.

뉴욕시 진보단체인 <대중민주의센터>(The Center for Popular Democracy)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이후 파산한 소매점 체인 14개 중 10개가 사모펀드가 소유주로 밝혀졌다.(New York Times, May 14). 이렇게 기업은 시체가 되고, 사모펀드는 살이 통통 오른 승냥이와 장의사가 된다. 그리고 또 다른 먹거리와 시체거리를 찾아 어슬렁거린다.

 

워런과 코르테스는 왜 코로나사태 동안 기업의 인수합병 금지를 주장 했는가?

그러니 회사들로서는 어떤 노력을 경주해도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가 덮쳤고 완전히 고꾸라졌다. 그렇다면 사모펀드 입장에서는 언제가 그들에겐 가장 호기인가? 바로 헐값에 기업을 살 수 있을 때다. 가지고 있다가 적당한 기회를 봐서 비싸게 팔면 되니까. 이 칼럼시리즈 초반에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부동산 투자의 철칙인 “바이(buy), 픽스(Fix), 앤드 셀(Sell)”이 여기서도 그대로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헐값에 사서 비싸게 팔 기업이 사라지면 사모펀드에겐 안 좋은 시기다. 따라서 코로나19야 말로 그들에겐 최적기다. 기업사냥을 하기에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위험과 위기는 사모펀드의 전가의 보도와 같은 것이라 사모펀드가 정말로 오매불망 기다리는 시간이다. 위험을 빙자해 고수익을 올렸으니(CLO가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 위험을 회피하면서 동시에 위기가 있어야만 장사가 되는 모순이 사모펀드가 떼돈을 벌 수 있게 하는 주된 동력이다. 또한 위기 시엔 파산하는 기업체가 즐비하다. 그것들을 헐값에 거머쥘 수 있으니 위기란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위기는 사모펀드에겐 노다지인 셈이다. 죽어가는 회사를 기사회생 시키는 데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직 관심은 그걸로 더 큰 돈을 버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사모펀드가 막강한 현금동원 능력을 가지고 기세가 등등한 사이 이들에게 더 많은 투자가 들어오고 그걸 가지고 전 세계 사업들에 마수를 뻗치며 제국으로 등극하고 있는 것이다.(“Scary Times for U.S. Companies Spell Boom for Restructuring Advisers,” New York Times, March 3, 2020; “Some Big Investors Smell Profit in Virus-Plagued Companies,” New York Times, April 3, 2020).

이 때문에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과 오카시오 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가 코로나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의 인수합병을 금지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인수합병이 대다수는 사모펀드에 의해 벌어지기 때문이다.(“Elizabeth Warren and AOC’s Call for a Merger Ban May be a Moot Point,”, CNN, May 5, 2020).

 

사모펀드가 이끈 금융주도자본주의의 폐해

소위 미국식 선진금융의 핵심은 전 산업부문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금융화라 한다. 그것이 주도하는 자본주의를 금융주도자본주의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그것을 주도하는 선두에 현대의 제국 사모펀드가 있다.

산업자체가 이런 식으로 바뀌면 두 가지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 하나는 기업이 저렇게 좀비가 되고 파산에 이르게 되면, 거기에 종사하던 근로자는 어떻게 되겠는가. 모두가 실업자가 된다. 이런 펜데믹 시기에는 영원한 실직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2018년 현재, 미국에서 사모펀드가 소유한 회사에 약 880만 명의 근로자가 있으며, 이 회사들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5%를 차지한다.(New York Times, Jan. 31, 2020).

두 번째 문제는, 노동이 신성하다는 가치는 사라지게 된다. 경상도 말로 “쌔(혀)가 빠지게” 노력해서 돈 버는 것에 대한 회의가 많은 사람들에게 일 게 뻔하다. 이것은 경제와 관련한 관념과 가치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세상 어디에 저런 젖과 꿀이 흐르는 장사가 있겠는가. 땀 흘려 일 안하고 남의 돈 빌려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기술만 터득할 수 있다면 누구나 득달같이 덤벼들어 하려 들 것이다. 이게 바로 금융주도자본주의의 폐해다. 경제와 노동 가치의 왜곡, 그것은 기업의 시체가 늘비해진 상황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것을 막을 방법은 딱 하나. 규제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미국에서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는 월가의 대형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보다 훨씬 더 느슨하다. 그 틈을 타고 제국들이 탐욕의 눈이 박힌 머리를 바짝 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완화와 당국의 방치는 한국이 더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와중 우리에게도 사모펀드란 이름이 어느덧 익숙해지고, 이윤에 이악스런 자들은 남 보다 한 발 더 빠르게 사모펀드에 벌써부터 발을 담갔다. 사모펀드의 구성요건이 49명 미만에서 그 이상으로 풀어졌으며, 10%이상을 한 종목에 투자하는 것이 금지하는 “10% 룰”의 제한에서도 사모펀드는 제한이 없다. 500만 원 미만의 소액으로도 투자가 가능하게 문을 열어 놨다. 그리고 그 결과 이미 작년 우리나라의 사모펀드 시장 규모는 2천조 원을 넘겼다. 사모펀드의 규제완화는 정권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한국경제』, 2019. 5. 1; 뉴시스1』, 2019. 10. 4; 『한국경제매거진』, 2019. 6; 『동아일보』, 2018. 9. 28; 『이뉴스투데이』, 2020. 5. 28). 그리고 이 와중 어떤 이들은 막대한 이윤을, 어떤 이들은 소중한 노후자금까지 날리고 있다. 지금 한가하게 미국의 사모펀드 걱정할 때가 아닌 것이다.

 

참고자료

김광기, 『정신차려 대한민국』, (서울:랜덤하우스코리아), 2012.

“영덕풍력발전 매각한 맥커리는 호주의 최대 투자금융,” 『영남경제』, 2019. 9. 5.

“경북 영덕풍력발전 외국계 사모펀드 기업사냥하는 동안 손 놓고 있었던 영덕군,” 『영남경제』,2019. 9. 6.

“외국계 사모펀드의 고리대금에 멍들은 영덕·영양풍력발전,” 『영남경제』, 2019. 9. 18.

“자산운용시장 2000조원 돌파 “사모펀드 규제 완화로 위험성↑”,” 『한국경제』, 2019. 5. 1.

“2015년 사모펀드 규제완화 후 은행 파생상품 판매 49% 늘어,” 『뉴시스1』, 2019. 10. 4.

“사모펀드, ‘고공행진’…쏠림은 ‘우려’,” 『한국경제매거진』, 2019. 6.

“사모펀드 규제완화… 한국판 ‘엘리엇’ 생긴다,” 『동아일보』, 2018. 9. 28.

“금융위, 코로나19발 구조조정 위해 1조펀드 모은다,” 『이뉴스투데이』, 2020. 5. 28.

“Leveraged loans at pre-crisis levels — and I’m worried, says Carney,” The Times, Jan. 17, 2019

“The risky ‘leveraged loan’ market just sunk to a whole new low,” Business Insider, Feb. 17, 2019

Bank of England, Financial Stability Report, Issue No. 44, November 2018.

“The Death of the Department Store: ‘Very Few Are Likely to Survive’,” New York Times, April 21, 2020.

“The Economics (and Nostalgia) of Dead Malls,” New York Times, Jan. 3, 2015.

“Neiman Marcus and the demise of the US department store,” Financial Times, May 8, 2020.

“The Coronavirus Is Exposing Wall Street’s Reckless Gamble on Bad Debt,” New Yorker, May 24, 2020.

“Hertz, Car Rental Pioneer, Files for Bankruptcy Protection,” New York Times, May 22, 2020.

“J.C. Penney, 118-Year-Old Department Store, Files for Bankruptcy,” New York Times, May 15, 2020.

“The Pandemic Helped Topple Two Retailers. So Did Private Equity,” New York Times, May 14, 2020.

“How Private Equity Buried Payless,” New York Times, Jan. 31, 2020.

“Scary Times for U.S. Companies Spell Boom for Restructuring Advisers,” New York Times, March 3, 2020.

“Some Big Investors Smell Profit in Virus-Plagued Companies,” New York Times, April 3, 2020.

“Elizabeth Warren and AOC’s Call for a Merger Ban May be a Moot Point,”, CNN, May 5, 2020.

 

김광기 경북대 교수의 연재 ‘인사이드 아메리카’는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화, 2020/06/2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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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2017년부터 준비되어 2018년 큰 물꼬를 텄고, 최근 하노이 북미회담에서 일시적 교착국면에 빠진 남북미 간 평화체제 정착은 어떻게 수순을 풀어야 할까? 남북관계든 북미관계든 핵심은 ‘신뢰의 확증’에 있다. 남북과 북미관계가 대화 지속 – 신뢰 축적의 트랙을 이어가면 남북·북미관계 서로를 선(善) 방향으로 추동한다. 그러나 지금 하노이 회담 이후 보듯, 북미관계에서 지체가 생길 수 있다. 그럴 때 남북관계의 주동성, 추동력이 더욱 부각될 수 있다. 남북관계의 게임의 차원을 바꾸는 것이, 북미관계의 게임의 차원을 바꾸는 일보다 우리의 주동력이 발휘될 수 있다. ‘양국체제론’은 남북관계가 동북아 주변관계에 최대의 주동성, 추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구상되었다.

남북관계의 고리를 획기적으로 풀어나가는 방법을 우리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 신뢰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면 된다. 신뢰에는 ‘피상적 신뢰’가 있고, ‘심층적 신뢰’가 있다. 심층적 신뢰란 가장 기본적인,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신뢰를 말한다. 남북 간에 그렇듯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신뢰가 무엇이겠는가. 남북이 서로의 존재를, 존립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명환 교수의 글에도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이 있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 정식 국교를 맺고 적대정책을 철회하더라도 남한의 존재가 위협이라는 현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고, “남북 교류가 활성화되고 북한 사회가 개혁·개방에 노출될수록 북의 체제 운영자들은 정치적 위협을 심각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 북한 당국이 자신의 주민이 친족방문을 위해 남을 왕래하는 일을 허용하는 일은 상당 기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부분이다. 김명환 교수는 이런 사정 때문에 양국체제는 어렵고, ‘남북연합만이 올바른 길’이라 하였지만, 김 교수가 언급한 내용이 필자에게는 오히려 김 교수의 주장을 반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북미 수교, 북일 수교는 가능하더라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교, 즉 ‘한조(韓朝) 수교’는 오히려 불가능하다고 보는 듯하다. 글쎄 그럴까. 북미 수교와 북일 수교라는 토픽이 미국과 일본의 정책 캐비넷에 올라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베까지도 이 판에 끼어보려 하고 있다. 그러나 북미 수교, 북일 수교는 오히려 한조 수교가 물꼬를 터줌으로써 빠르게 뒤따라올 가능성이 더욱 크다. 왜냐하면 ‘근본적 신뢰의 확증 순서’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북의 안보조건에서 미국과 일본 쪽에 자신의 존립에 대한 근본적 신뢰를 먼저 확보하려고 할 가능성은 낮다. 반면 한국과는 그 가능성이 더 높다. 촛불 이후의 국면에서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앞서 김명환 교수가 말한 “남한의 존재가 위협이라는 현실”은 이제 북에게도 더 이상 그렇게 자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스스로가 북(DPRK)의 존립에 위협이 되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물론 30년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단번에 일소한 촛불혁명의 힘, 그리고 그 힘에 의해 들어선 촛불정부의 역할 때문이다. 아니, 30년이 아니라, 코리아전쟁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의 민의가 이만큼 남북의 공존과 평화를 소망하는 방향으로 모아져본 적이 없다. 남의 한국도, 북의 조선도 이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과 조선 간에 그러한 ‘근본적 신뢰’를 확증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무엇일까? 백낙청 선생, 그리고 백 선생을 항상 충실하게 조술(祖述)하는 김명환 교수도, 그 방법이란 ‘남북연합’이라고, ‘남북연합밖에 없다’고, 되풀이해왔다. 그런데 지금 이 마당에 그 ‘남북연합’의 방책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분명히 한 것이 없다. 필자가 본 단 하나의 예외라면 백 선생이 2018년 《창작과비평》 181호에 “미국이 어느 시점에 변심하여 북을 다시 침공하거나 적대정책으로 되돌아갈 태세가 되었을 경우, 이것이 곧바로 대한민국이 가담한 국가연합에 대한 침공 내지 적대가 될 수밖에 없도록 제도화해 놓는 일”이라 한 것인데, 이 정도로 높은 수준의 ‘국가연합’이란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국가 간의 관계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누가 읽어도 당연히 그렇게 읽히는 말이다.(이렇게 읽은 것이 ‘오독’이고 ‘비약’이라는 김명환 교수의 반론에는 아쉽게도 무엇이, 왜, 어떻게 ‘오독’이고 ‘비약’이라는 것인지 설명이 없다. 다만 ‘기성 사회과학 교과서에 맞춰 재단한 탓’이라 하고 만다.)

현재 이 순간의 남북관계에서 생각해보자. 백 선생과 ‘분단체제론’에서는 현재 이 순간 역시 당연히 ‘남북연합’, ‘국가연합’ 상태다. 남북연합은 분단체제를 상정·전제하는 것이라 하니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재의 남북관계 또는 남북연합 관계에서 백 선생이 말한 바와 같이 “미국이 어느 시점에 변심하여 북을 다시 침공하거나 적대정책으로 되돌아갈 태세가 되었을 경우, 이것이 곧바로 대한민국이 가담한 국가연합에 대한 침공 내지 적대”가 된다고 어느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물론 너무나 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다. 그렇다면 백 선생이 그리는, 그렇듯 높은 수준의 ‘국가연합’까지 한참을 올라가야 할 것인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높이 올라가기 위한 첫 계단, 첫 단추가 무엇이냐다. 나는 지금껏 여기에 대한 답을 들어본 바 없다.

그 답이 어려워서 그런 것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필자가 지난 글들에서 여러 차례 설명해놓았다. 기존의 남북 간의 고통을 아주 기본적인 수준에서 느껴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다 알 수 있는 문제다. 남과 북이 서로의 존립을 보장하는 신뢰의 확증이 무엇이겠는가? 그 첫 단추가 무엇이 될까? 상대방을 적으로, 붕괴와 소멸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확증 장치다. 지금 남과 북의 상태에서 무엇이 그런 확증 장치가 될까? 남은 북을, 북은 남을, 영토와 주권을 가진 정당한 국가 대 국가로서 서로 인정하고 이를 만천하에 공표하고 상호 대표부를 교환하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과 조선 두 나라의 수교, 즉 ‘한조(韓朝) 수교’다. 이렇게 될 때 ‘분단체제’라는 과거의 룰은 폐기되고 ‘양국체제’라는 새로운 차원의 관계가 시작될 수 있다. 이 ‘한조 수교’의 역사적 파급력은 1972년 ‘동서독 수교’에 못지않을 것이다. 동서독 수교 이후 상호 교류와 협력이 크게 증가했던 것은, 상호 간의 ‘근본적 신뢰’의 문제를 일차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두 국가가 상호의 존립을 위협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지켜질 것임을 서로가 믿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2018년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역시 그러한 근본적 신뢰를 확증해가는 과정이었다. 그 결실이 머지않은 미래에 맺어지기를 바란다. 한국이 북미 대화를 잘 중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일이 있다. 남북이 만나는 모든 자리에서, 남북의 모든 논의와 합의가 어떤 쪽을 향해가고 있는지 방향감각이 무엇보다 우선 분명해야 한다. 그것은 ‘남북 간의 근본적 신뢰의 확증’이며 ‘남과 북이 서로를 정당한 국가 대 국가로 인정’하는 일이다. 북미 수교가 한조 수교에 선행하기보다, 한조 수교가 북미 수교를 성사시키는 경로가 더 현실적이다. 소위 ‘대북제제’ 문제도 ‘한조 수교’라는 역사적 임팩트에 틀 자체가 변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김명환 교수는 여전히 북은 ‘남한의 존재의 위협’을 벗어날 수 없고, 남 역시 마찬가지로 ‘북한의 존재의 위협’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할까? 한 발 물러서 생각해보자. 물론 ‘한조 수교’가 이뤄지자마자 남북이 서로에게 위협이 되는 상태가 당장 100퍼센트 깨끗하게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사에 그런 일은 없다. 그러나 ‘한조 수교’가 이뤄지면 역사적 첫 단추가 채워진다. 게임과 트랙이 달라지는 것이다. 코리아의 지난 70년 적대 상태를 생각해보면, 당장 100퍼센트는 언감생심이고, 우선 절반만 해소된다고 하여도 획기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이런 것이 바로 ‘질적 변화’다. ‘위협’은 강박이어서 붙들려 있을수록 커진다. 기존의 ‘분단체제론’에는 그러한 ‘위협’을 넘어서고 극복할 담대한 전망이 부족했다.

그렇듯 질적 변화를 이루어내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그 후의 과정 역시, 그만큼, 또는 그보다 더욱 중요할 것이다. 상호 신뢰를 확인하고 쌓아가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배려들이 교환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매우 많다. 동서독 간 성공적 교류의 선례도 있다. 나는 ‘분단체제론’이 이러한 양국체제의 전망을 아주 적극적으로 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원래 분단체제론은 분단체제를 비판하고 극복하자는 이론이었다. 분단체제론이 양국체제의 전망을 수용한다는 것은 그러한 원래의 이론적 취지와 포부에도 부합한다.

 

독일 양국체제의 경험을 다시 생각한다

끝으로 앞서 몇 차례 언급한 만큼, 동서독 사례의 의미에 대해 첨언해보려 한다. 1970년대 브란트의 동방정책과 동서독 수교(=<동서독기본조약>)의 의미를 다시 새겨볼 때가 되었다. 1990년대 초반 백낙청 선생이 분단체제론을 처음 입론하고 있을 때, 백 선생은 당시 이뤄졌던 독일의 흡수통일 사례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았고, 그래서 독일과 한반도의 분단 원인과 통일 전망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당시 백 선생이 그러한 태도를 취했던 데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동구권이 붕괴하고 동독이 서독으로 흡수통일 되었던 당시에는 ‘북한 조기붕괴론’을 펴는 사람들 중에 독일식 통일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았다. ‘북한’은 어차피 곧 붕괴될 것이니까 한국은 서독처럼 흡수통일 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그러한 생각은 물론 허황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독일의 사례를 무조건 백안시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1970년대 동서독 수교와 독일 양국체제이지, 1990년의 흡수통일이 아니다. 1972년 동서독 수교와 1990년 흡수통일은 전혀 다른 맥락에서 벌어진 전혀 다른 사건이다. 이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제는 1990년대 초반에 독일 흡수통일의 스펙터클에 눈이 팔려 1970년대의 독일 양국체제 경험의 역사적 중요성을 놓치고 있지 않았는지 다시 물어야 할 때가 되었다. 백낙청 선생과 김명환 교수도 다시 주목해주기 바라는 대목이다. 1989~1991년 당시 남북의 ‘당국자’들은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인 시각에서 양국체제의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북이 유엔에 동시가입할 수 있었고, <남북기본합의서>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볼 때도 대단한 용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정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남북 수교까지 이루었다면 코리아 양국체제는 이미 그때 성립할 수 있었다. 왜 이 길이 막혔던가? 누가 막았었나? 남쪽의 노태우 대통령도, 북쪽의 김일성 주석도 아니었다. 이들은 오히려 더 속도를 내서 이 방향으로 나가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 길을 막았던 것은, 이 책 1부 1장에서 상세히 분석해둔 바와 같이, 북미 수교를 거부하고 북의 조기붕괴를 도모했던 미국과 한국의 냉전대결 세력들이었다.

1970년대의 동서독 수교 – 독일 양국체제와 1990년대 흡수통일이 전혀 성격이 다른 사건이라는 것은, 흡수통일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반추해볼 시각을 1970년대 양국체제의 경험이 제공해주고 있다는 데서도 볼 수 있다. 독일 흡수통일의 최대 문제는 동독을 내부 식민지로, 동독인을 열등국민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통일독일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동구권 – 소련 붕괴라는 충격 속에서 통일과정이 눈사태와 같은 파국적 양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1972년 <동서독기본조약> 체결 이후 1989년 소련·동구권 붕괴 이전까지 독일의 양국체제는 동서독의 차이를 장기적이고 점진적으로 줄여나간다는 분명한 공동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독일 양국체제의 경험이 우리에게 여전히 귀중한 타산지석이 되는 이유다.

더구나 과거 독일 양국체제를 둘러싼 국제적 상황에 비해 오늘날 코리아 양국체제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훨씬 더 안정적이다. 1970~1980년대 미소 간의 적대와 대립은 오늘날 미중, 미러, 또는 중일 간의 갈등에 비해 훨씬 날카롭고 높았다. 냉전 이후 세계는 진영 간 이념 적대가 사라지고 국가 간 지역 간 상호 의존이 깊어졌다. 필자는 이러한 새로운 세계상황을 ‘후기근대’로 정의하면서, 이 새로운 역사 단계의 세계사적 의미에 대해 여러 차례 분석하고 음미해본 바 있다. 후기근대에는 과거 소련·동구권 붕괴와 같은 진영 붕괴가 발생하지 않는다. 과거와 같은 수준의 진영 자체가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중국 혹은 미국이 머지않아 과거 소련과 같이 극적으로 붕괴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이 세계의 그 많은 ‘전문가’ 중에서 단 한 사람도 없는 이유다. 그리고 이는 코리아 양국체제가, 성공적으로 정립되기만 한다면, 과거 독일의 양국체제보다 훨씬 성공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예상해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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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0/06/25-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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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법 제40조는 국회의원의 상임위원 임기를 2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당초 제헌의회 때 상임위원 임기는 의원의 임기와 같이 4년이었다. 그랬던 것이 1953년 1월 22일 국회법 개정에 의한 이승만 정권의 국회 무력화 과정에서 1년으로 단축되었다가 다시 1963년 11월 26일 박정희의 제3공화국에서 2년으로 연장되었다. 그러나 제3공화국 당시 본회의 중심 체제를 상임위 중심 체제로 전환한 것은 의회기능 강화의 목적이 아니라 독회제도 폐지 등 행정부 안의 신속한 국회 통과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특히 이 상임위 중심 체제는 말이 상임위 중심이었지 의원의 정책전문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상임위 중심체제에서는 극히 기형적인 “임기 중 상임위원 개선(改選) 제도”였을 뿐이다. 이 점에서 “임기 중 상임위원 개선제도”는 권위주의 정권에 의한 의회 무력화의 도구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현재 국회의장 임기도 2년이다. 국회의장 임기도 제헌의회 때는 4년이었다. 그러나 1951년 3월 15일 당초 임기 4년이던 국회의장 임기를 “국회 운영의 원활을 기하기 위해” 1년 임기제로 개정하고자 했다. 이 개정안은 심지어 “토의시간만 허비하는 전원위원회 제도 폐지”를 제안하기도 했다. 결국 반발에 부딪혀 의장 임기는 2년 임기로 수정되었다.

 

국회의원의 업무 전문성은 어떻게 높아질 수 있는가?

우리 국회에서 의원들의 업무 전문성에 있어서의 취약성은 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받고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그 취약성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제도적으로 관행적으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의원의 업무 전문성이란 임기 동안 혹은 선수(選數)를 쌓으면서 “동일한 상임위원회를 유지”함으로써 업무 전문성을 축적하는 것이다. 미국 의회의 경우 의원의 업무 전문성은 상임위를 중심으로 업무 전문성이 축적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에는 집권당 내 위원회를 중심으로 전문성이 축적된다. 미 의회에서 상임위원회는 의회와 행정부 간의 정책결정의 중심무대로서 따라서 자연스럽게 상임위를 중심으로 한 정책형성은 의회 활동의 중심으로 되었다. “한 상임위 내에서의 선임 순위가 위원장이나 간사로 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는 미 의회의 불문율, 즉 ‘선임우선제’는 위원회 내의 승진에 대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자동적이고 공평한 원칙이었다.

한편 일본은 자민당 일당독재가 고착화되는 과정에서 법안과 예산 심의가 의회 위원회가 아니라 자민당 내 정책결정기구인 정무조사회로 되었고, 이 정무조사회의 각 부회(部會)가 의회 위원회 역할을 대신하였다. 그리하여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동일 위원회와 부회를 유지하면서 관청과의 인적 네트워크 및 영향력을 확보하면서 이른바 ‘족(族)의원’의 위치를 확보하게 됨으로써 관련분야의 정책전문가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의원들이 2년마다 상임위를 변동할 뿐 아니라 상임위 배정 뒤 임기 2년 중에도 수시로 상임위를 변동하고 있다. 실제 역대 국회의원 임기 중 상임위 변동률은 50%를 상회한다. 심지어 최근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상임위원장을 1년씩 ‘쪼개기’로 맡는 것이 관행화되고 있다. 또한 현역의원이 재선될 경우 전임기의 상임위를 그대로 유지하는 비율도 40%를 넘지 못한다. 미국 재선의원의 90%가 전임기의 상임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과 전혀 딴판이다. 더구나 우리 국회는 1963년에 김종필에 의해 도입된 당정협의체제는 행정부 주도 하의 정부여당 협의기구로 오늘날까지 존속하면서 의회와 상임위 위상을 크게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동되어왔다.

임기 중 상임위의 빈번한 변동과 재선 시 상임위 변동은 의원의 업무 전문성 축적에 결정적 저해 요인이다. 상임위 변동으로 소관 업무 및 관련 행정부처 역시 변경되고, 의원은 물론 보좌진도 새로 업무를 파악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원과의 통로를 어렵사리 뚫어 놓아봤자 그 다음 만나면 이미 소속 상임위가 바뀌는 바람에 다시 다른 의원을 알아봐야 하는 고충을 겪어야 한다.

의원들의 업무 전문성은 의회 발전의 중요한 토대이다. 우리 국회의 정상화와 발전을 위해서는 한 의원이 동일 위원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함으로써 업무 전문성을 축적해야 한다. 상임위원 임기는 의원 임기와 일치되어야 하며, 또한 재선 시에 전임기와 동일한 상임위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국회는 너무 오래 이승만-박정희 체제의 관행에 머물러 있다. 이제 권위주의 정권이 국회 무력화를 위해 만들어놓은 국회 상임위 2년 체제를 벗어나야 한다.

 

적대적 공존’, 그 나눠먹기의 시작

본래 우리 국회도 상임위원장은 다수당이 독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국가 의회든 의회의 일반적 형태이다. 그런데 우리 국회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탄생된 이른바 ‘87 체제’의 여소야대 4당 체제 정국에서 상임위원장을 의석 비율에 따라 배분하게 되었다. 긍정적 측면에서 평가하자면, 이는 의회 상임위 활동에서 독점을 해소하고 공존과 균형 그리고 타협의 공간을 제공했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측면에서 평가한다면, 여야 나눠먹기의 전형적 형태라 할 수 있다.

당시 여소야대 4당 체제에서는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 조항도 신설되어 각 당이 정책연구위원을 ‘나눠 갖게’ 되었다. 그리고 줄곧 여당의 몫이었던 국회도서관장 자리도 제1야당의 몫으로 가져가기로 되었고, 이 관행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이 과정은 당시 제1야당으로 올라선 평민당의 의도가 관철되었다고 평가될 수 있다. 물론 이는 DJ의 구상과 ‘철학’이 반영된 셈이었다. 이러한 DJ식 정치는 “상인적 현실감각”에 대한 강조에서 드러나듯, 독점된 권력을 분배하고 균점하는 계기로 작동되었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나눠먹기’, ‘기득권의 공존’ 혹은 개량주의라는 단점 역시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우리 국회의 고질적 폐단이기도 한 여야 간 ‘적대적 공존’의 토대로 기능해온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장기적으로 살펴본다면,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은 우리 국회의 중요한 폐단인 “나눠먹기” 혹은 “적대적 공존”이 관행적으로 구축되는 중요한 계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수, 2020/07/01-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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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2020년 새해가 밝고 1월부터 진행해온 기획칼럼 <김상준의 코리아 양국체제>는 총 25회로 구성하여 매주 수요일에 소개하였으며,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게재하면서 마무리합니다.


2016년 5~6월 필자가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관에서 ‘백년학당’ 4회 강연을 하면서 ‘한반도(코리아) 양국체제’란 말을 처음 썼을 때 청중들은 그런 말을 처음 듣고 낯설어 했다. 3년이 지난 이제는 일반에 상당히 널리 알려지고 통용되는 언어가 되었다. 그간의 현실의 변화가 그만큼 컸다. 촛불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코리아 양국체제를 말하기 시작했던 것은 세계사의 큰 흐름이 그러한 방향으로 움직여가고 있다는 필자 나름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한국 정치는 끝없이 퇴행하고 있었지만, 코리아 역시 결국에는 세계사적 흐름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 말을 처음 꺼낸 이후 코리아에서의 변화가 이렇게 빠를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촛불 이후에도 코리아 양국체제의 전망은 여론의 향배 속에서 아직 희비의 롤러코스트를 타고 있는 듯하다.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7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9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연설이 이어질 때는 코리아 양국의 평화공존이 바로 내일로 다가온 듯 희망에 부풀었다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나자 다시 낙담하고, 7월에 또 남북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회동하자 다시금 희망의 돛을 한껏 올리는 식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그렇게 일희일비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날씨(weather)는 변덕을 부리지만 기후(climate)에는 일관되고 안정된 흐름이 있다. 분단체제는 분명히 가고, 양국체제는 분명히 오고 있다.

세계변화의 장기추세에 대한 생각은 코리아 양국체제를 처음 제기했을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처음 제기했을 때의 어두움을 생각하면 오늘의 현실은 비교가 전혀 불가능할 만큼 밝다. 그러니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고, 명백하게 오고 있는 코리아 양국 평화공존 체제를 위해 미리 준비해두어야 할 일들이 그만큼 많아지고 있음에 유념해야 하겠다.

양국체제는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과연 얼마만큼 준비되어 있는 것일까? 머지않아 지난 70년 적대해온 한국과 조선이 정상적 관계를 맺고 평화롭게 공존하게 될 것이다. 그때를 위해 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 이러한 전망 속에서 국제관계의 장기 전략은 얼마나 준비되고 있는가? 사회 각계의 법적·제도적, 재정적·경제적 준비는 얼마나 하고 있는가? 사회심리적, 문화예술적, 학술적 준비는 어떤가? 그러한 여러 준비들이 지금부터 제대로 착실히 이뤄지고 있는지 잘 점검해보아야 할 때다.

다행히 유사한 선례는 있다. 동서독 양국체제 20년의 경험이다. 이 기간 동서독은 매우 많은 과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물론 동서독과 남북 코리아는 다르다. 전쟁을 했었다는 부담은 동서독보다 더 어려운 조건이고, 냉전 종식 이후라는 상황은 보다 유리한 조건이다. 어쨌든 선례는 선례일 뿐, 코리아 양국체제는 또 하나의 완전히 새로운 역사일 것이다. 단지 하나의 새로운 역사가 아니라 독일 동방정책의 임팩트를 능가하는 세계사적 차원의 사건적 역사일 것이다. 코리아 남북의 각계각층의 눈 밝은 이들은 세계사적 안목과 큰 용기를 가지고 다가오고 있는 코리아 양국체제를 준비해야 한다.

 

세계사적 사건으로서의 촛불혁명과 체제전환

양국체제를 처음 제기했을 때 필자는 통일에 조급하지 말자, 양국체제가 안정되고 30년쯤 잘 운영되면 그때 통일은 자연스럽게 다가올 것이라고 했다. 이제 같은 말이지만 조금 다르게 말하고 싶다. 다가오고 있는 양국체제의 현실을 남북의 모든 사람들이 착실하게 준비하고 다져가는 그 과정이 바로 통일로 한 걸음씩 다가가는 길이 될 것이라고.

이제 우리는 ‘코리아의 70년 내전체제=분단체제’를 뒤로 하고 ‘코리아 양국체제’로 향하는 새 길로 접어들었다. 역사적 대전환이다. 70년의 관성을 떨쳐낸 촛불혁명은 한국과 코리아만의 역사적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진정으로 세계사적인 사건이었다. ‘코리아의 70년 내전체제=분단체제’란 미소 양 진영 간의 세계내전의 부산물이었다. 그러나 이미 30년 전, 미소 냉전이 종식되었음에도 유독 동아시아에는 ‘유사 냉전’이 지속되어왔다. 핵심 원인은 바로 ‘코리아 내전체제=분단체제’가 종식되지 못하고 연장되었던 데 있다. 이제 그 고리를 한국의 촛불혁명이 완전히 끊어낸다면, ‘동아시아 유사 냉전’의 고리 역시 따라서 끊기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동아시아에서 유사 냉전 상태가 완전히 소멸되어 평화가 정착되면, 세계사는 새로운 성숙의 단계로 진입하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한국의 촛불혁명과 코리아 체제전환의 성공은 다만 코리아의 성공에 그치지 않는다.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사 대전환의 회전축이 된다.

촛불혁명으로 이제 우리는 목표와 방향을 갖게 되었다. 촛불혁명이 향해 가는 이 ‘대전환’은 결코 쉽고 간단한 과정이 아닐 것이다. ‘70년의 관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발걸음마다 관성의 힘이 들러붙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힘이 들 때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목적도 방향도 없이 악몽에 가위눌려야 했던 촛불 이전의 시간을 돌이켜 보기로 하자. 한 발 한 발을 떼어가는 노고가, 때론 더디 가고 때론 돌아가는 그 모든 노력 자체가, 이제는 큰 보람이다. 큰 품과 큰 지혜를 모아가는 깨달음의 과정이 된다. 지난 70년은 너무나 부자연스러웠고 너무나 길었다. 이제 사라져가는 시간이다. 시간은 촛불의 편이다. 시간보다 강한 존재는 없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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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0/07/02-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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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회는 더욱 통제된 사회로 이끌어가는 듯한 여러 특징들을 보인다. 정보통신 기술의 ‘민주적’ 잠재성은 명백하다. 그러나 경제적 통제의 역학(소수의 다국적 대기업이 실상 정보통신산업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이 매우 강하며 신자유주의 시장의 공격성이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세계적인 위기는 새로운 불안의 요인을 하나 더 추가시킨다. 곧 안정이라는 주제가 사생활 및 시민들의 권리를 밀어낼 위험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보통신은 다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네트워크는 동시에 여러 가지를 의미할 수 있으며, 분명 민주주의의 질을 높이기 위해 중요한 공공 장소가 될 수도 있다”De Blasio, 2014.

 

시민들의 인터넷 참여: 참여의 미래인가?

인터넷은 시민들 대부분의 직접 참여 방식으로서 이미 오래 전부터 정보와 통신, 정치적 활동을 위한 기반이 되었다. 인터넷은 전통적인 정치적 심의 형태를 대체하지 않지만, 많은 절차를 간편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온라인 참여예산처럼 오로지 인터넷을 통해 가동하는 방법이 있고, 공공 조사 등의 다른 방법들은 직접 접촉하지 않고는 할 수 없다. 이런 방식으로 적어도 인터넷 공간에서 의사소통 채널들이 교차되고, 평범한 시민들과 행정가 및 선출된 정치인들 사이의 거리를 크게 좁힌다.

무엇보다 e-정부(세금 신고, 온라인 기부 요청, 디지털 행정 등)와 e-민주주의 혹은 디지털민주주의, 곧 온라인 도구의 사용을 통한 정치적 선택과 선호의 표현을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 컴퓨터 공공 행정(e-정부)으로는 시민들이 공공 기관의 서비스와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해 주는 모든 인터넷 신청에 국한된다. 행정적 절차가 정보기술적 방식으로 전개되어 직접 사무실로 찾아가는 것이 불필요해진다. 서비스는 더 빠르고 신속해지고, 행정은 더욱 투명하고 접근하기 쉬워진다. 적어도 인터넷에 익숙한 시민들에게는 그렇다.

디지털민주주의의 경우, 시민들은 이제 단지 공공 서비스의 고객이나 수혜자가 아니라 정치 의지의 형성과 정치적 현안들에 대한 소통 및 결정 과정의 동반 파트너이다. 인터넷 참여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여 정치적 결정과 심의 과정에 시민들의 능동적 참여를 허용하는 방법을 모두 포괄한다. 시민들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조사나 검사를 위해 접촉하고, 행정가나 정치인들과 대화에 들어가고, 청원서와 법제 안에 서명하고, 마지막으로 전자 방식으로 투표할 수도 있다.

물론 시민들의 정치 참여는 직접적인 만남과 집회, 사람들과 직접 만나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도 활발해진다. 현장에서의 만남은 원칙적으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활동과 병행할 수 있다. 모든 것을 고려하여 인터넷은 더 큰 참여를 위해 그저 확고한 추진력이 될 뿐만 아니라 각각의 참여 형태를 활발히 전개하기 위한 기술적 전제 조건이 되기도 한다.

오늘날 이탈리아에서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시민들 사이에서 어떤 형태의 참여민주주의와 컴퓨터민주주의가 시행되고 있는가? 개인들 사이에서나 블로그, 소셜네트워크, 시민들이 운영하는 컴퓨터 카페와 광장 등에서 활용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과 별도로, 공식 참여나 제도적 참여 면에서 이탈리아는 다소 움직임이 둔한 편인 듯하다. 전자-디지털 방식의 결정 및 심의 방법의 활용은 참여할 시민 단체 및 참여 방식의 목적과 성격, 프로그램 관리에 활용할 수 있는 기금이나 법적인 틀에 달렸으며, 특히 정치적 의지에 달렸다.

 

점차 더욱 다양화되는 인터넷 참여 형태

보통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방법들은 광범위한 절차에서 쌍방향식으로 구체적 목적에 활용될 수 있다. 단순한 공식 정보전달에서 시작하여, 심사를 위한 시민 자문과 쌍방향식 토론을 거쳐, 서명과 전자투표를 통해 시민들의 직접 참여에 도달한다. 인터넷을 통한 참여 부문에서 완전히 네트워크상에서 시행하는 방법과 다른 온라인과 오프라인 참여를 병행하는 방법을 구분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대개 온라인 구성 요소들(가령 모든 서류, 교육 활동, 일정 등을 모아 해당 기초자치단체 사이트에 싣는 예비 단계의 공공 서비스)을 통해 고전적인 방식을 확대하는 것을 말한다. 유럽 차원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첫 번째 도구인 유럽 시민들의 발안은 전자 서명 모음부터 시작하여 주로 네트워크상에서 시행된다. 다음 네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a) 인터넷 청문회

이미 널리 파급된 방법으로 현재 공공 기관과 대의 기구들도 특정 주제를 토론하고 모든 참여자들이 자신의 제안과 입장을 낼 수 있도록 이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대개 공공 기관에서 임명된 에디터들의 도움을 받는 공개 포럼은 개방형open end 온라인 토론 또한 허용한다.

b) 정치인들과의 온라인 약속

인터넷상에서 제한된 시간 동안 서면 교환과 문답식의 화상 채팅을 바탕으로 하는 공개 모임을 말한다. 온라인 공개 약속은 인터넷상에서 직접 중계될 수도 있다.

c) 온라인 청원

기초자치단체에서부터 유럽연합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공공 기관들은 해당 웹포털을 통해 청원서나 요구사항들을 제출할 기회를 제공한다. 보통 이탈리아를 비롯하여 여러 나라 국회들은 자신들의 사이트를 만들어 청원서를 제출하게 한다. 집단 청원은 공개 토론 플랫폼이나 국제 비정부 단체들에서 시작했는데, 예를 들어, AVAAZ와 change.org가 있다. 전자 청원권은 전자 서명 모음과 연결시킬 수 있는데, 정한 기간 안에 요청사항을 지지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 해당 기초자치단체 포털 사이트에 등록된 청원서를 열어 서명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d) 전자 서명 모음과 e-투표

온라인 참여는 투표권을 지닌 시민이면 누구든 온라인으로 국민발안 법제안이나 실행적 레퍼렌덤 요청서에 서명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며, 광장이나 기초자치단체 관청을 직접 찾아가 서명할 수도 있다. 미래에는 국민발안 법제안을 추진하려는 요청 자체를 온라인으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참정권은 미래에는 전자 투표로 보완될 것이며, 이는 스위스나 에스토니아 같은 여러 나라에서 이미 도입되었다.

 

세계의 전자 투표

무엇보다 먼저 e-투표를 투표자를 식별할 수 있는 직접 전자 등록시스템과 구분해야 할 것이다. 투표자는 POS(Point of Sale의 약자. ‘판매 시점 정보 관리’를 뜻한다─역자 주) 비슷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스마트카드를 받는다. 투표소의 집계 작업을 간소화 하기 위한 이 전자 투표 기기는 인도, 브라질, 미국에 널리 보급되어 있으나 대다수의 민주국가들에서는 아직 서류 신원 확인과 손으로 하는 집계가 주류를 이룬다.

더 중요한 것은 인터넷 투표, 곧 좁은 의미의 전자 투표이다. 인터넷을 통해 유권자들은 그 시스템의 웹 인터페이스에서 돌아다니며 자기 기초자치단체 선거 사무소 사이트를 연다. 투표자 신원 확인은 홈뱅킹과 비슷하게 웹사이트에서 확인 조회를 통해 하거나 전자 신분증(에스토니아의 경우 참조)으로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면 시스템은 모니터에 선거 용지를 보여준다. 유권자는 자신의 선택을 표시하고 화면상에서 일치하는지 확인한다. 투표자가 확인을 누르면, 작성한 투표 용지는 선거 서버에 전달된다. 투표 집계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투표소나 거주 구역 차원에서 결과를 집계하여 2차적으로 중앙 차원에서 그 결과를 모으거나, 혹은 모두가 중앙으로 집중되는 디지털 집계도 있을 수 있다.

오늘날 유권자들은 표를 직접 투표함에 넣거나 우편으로 투표한다. 전자 투표는 시민들이 컴퓨터, 스마트폰, 타블렛 등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온라인으로 투표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한 목적으로 직접하는 선거나 우편으로 보내는 투표와 더불어, 유권자들은 비밀번호를 받아서 그것으로 자기 기초자치단체의 포털에 접속한다. 그 다음에 단 한차례 자신의 표를 표시하면, 그 표는 암호 처리되어 무기명으로 전자 투표함에 저장된다. 해당 기초자치단체의 선거 위원회만이 전자 투표함을 열고 표를 해독하여 집계를 실시할 수 있다.

전자 투표는 종래의 종이로 된 선거표의 대안이 아니라 추가적이고 보완적인 형태로서 몇몇 나라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투표함에 하는 투표 및 우편 투표와 더불어 쓰이고 있다. 프랑스, 에스토니아 등의 몇몇 국가에서는 e-투표가 투표 참여율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독일과 노르웨이는 실험 후 전자 투표 시스템에 큰 당혹감을 갖게 된 나라들이다. 노르웨이의 지방 기관들 및 지역 발전부는 2003년 온라인 투표를 위한 플랫폼 도입과 더불어 시작된 시험 기간이 끝난 2014년 6월 모든 e-투표 방식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투표의 정확성 인증을 보장하지 않는 시스템의 안정성에 대한, 의회에서의 지속적인 토론 끝에 그런 선택이 나온 것이다. 결국 시민들 편에서 전통적인 시스템을 선호하여 비밀 및 자유 투표의 원칙을 지킬 생각이었다.

독일에서는 2009년 헌법 재판소에서 디지털 투표는 선거 시행시 적절한 방법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여 모든 형식의 디지털 투표를 폐지하였다. 독일 중앙 정부는 2000~2006년 사이에 직접 전자 등록기(DRE: 직접 기록 전자 시스템Direct Recording Electronic Systems)로 실험단계를 시작하여, 시민들 사이에서 운용 소프트웨어의 기능과 그 신뢰도에 대한 큰 우려가 일었다.

프랑스와 에스토니아는 e-투표가 유효하고 신뢰할 수 있는 투표 시스템으로 수용되어 편견과 불안을 극복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프랑스인들은 이미 2003년부터 새로운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대의원을 선출할 수 있었다. 유권자들의6 0% 이상이 이 시스템을 전통 시스템보다 선호했다. 뒤이어 2007년 대통령 예비 선거를 위해 750개 투표소에서 같은 방법이 시행되어, 기록적인 투표율을 기록했다. 프랑스에서는 현재 해외 거주 유권자들이 전자 투표를 이용할 수 있다.

에스토니아는 모든 시민들에게 인터넷을 통한 투표 기회를 보장하는 최초의 나라들 중의 하나다. 2005년 에스토니아 유권자들은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와 디지털 신분증, 컴퓨터에 연결된 스마트카드 인식기를 활용하여 지역의 정치적 책임자 선출에 각자의 선택을 표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후 이 방법은 전국적 선거로도 확장되었다. 현재 인터넷 플랫폼은 시민들의 신뢰를 얻어 성장했는데, 2014년에는 유권자의 30% 이상이 전통 방식 대신에 e-투표를 이용할 것을 선택했다. 이 네트워크 시스템의 편의는 의무적으로 투표소를 찾아갈 필요가 없이 집에서 편리하게 투표를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 투표는 투표 참여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에스토니아의 유권자들은 그 외에도 각자의 핸드폰으로 에스토니아 경찰에서 주는 PIN 암호가 있는 SIM 카드를 활용하여 전자 투표를 위한 신원을 확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투표 자체는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한다. 에스토니아 유권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컴퓨터, PIN 암호, 전자 신분증 확인 기기뿐이다. 이렇게 어떤 인터넷 접속 스테이션에서도 투표할 수 있지만, 사전 투표날에만 할 수 있다. 에스토니아는 세계 최초로 정치 분야에서 완전 온라인 투표를 선포한 나라이다.

핀란드는 2008년 헬싱키의 기초자치단체 선거에서 처음으로 전자투표를 시험했는데, 232표의 집계가 누락되어 선거를 다시 치러야 했다. 2010년 1월 20일, 핀란드 정부는 전자 투표의 최신 발전 상황을 관찰해 보겠다는 뜻과, 다른 한편으로는 비전자적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16년 기초자치단체 선거에서는 새로운 전자 투표를 시험했다.

스위스의 기초자치단체 및 칸톤 차원 레퍼렌덤 투표는 근 150년 동안 굳어진 관행이었다. 1980년대부터 도입된 우편 투표를 널리 활용함으로써, 유권자들과 선거 관리자들이 원거리에서 진행하는 긴 투표 절차의 운용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금세기 초, 법적 구속력이 있는 첫 e-투표를 시험해 보는 것이 논리적인 수순이었다. 스위스는 에스토니아와 함께 전자 투표 형식DFAE(Democrazia diretta moderna 현대 직접 민주주의, 2018년)을 도입한 첫 나라들 가운데 하나다. 2004년부터 14개 칸톤에서 200여 차례의 실험이 성공적으로 실시되어, 많은 유권자들이 전자 방식으로 투표할 수 있게 되었다. 몇몇 기초자치단체에서 한 첫 시험 이후, 2010년경 여러 칸톤들이 무엇보다 해외 거주 유권자들을 위해 전자 투표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연방 정부는 보안상의 이유로 2015년 여름 여러 칸톤에서 e-투표 시스템의 허가를 취소했다. 2017년 2월, 이 투표 채널의 활용기회는 26개 칸톤 중 6개 칸톤에서 약 15만 명의 시민들만 이용했다. 2017년 4월 5일, 연방의회는 시험 단계를 종료하고 전자 투표의 보편적 활용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입법 작업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연방과 칸톤의 의원들 및 학자들로 구성된 관련 전문가 위원회는 2018년 3월 작업을 마무리했다. 곧 스위스에서 전자 투표가 우편 투표와 투표함 투표 외에도 보통 투표의 세 번째 투표 채널이 될 것이다. 2019년 중으로 칸톤 시민 2/3가 인터넷을 통해 투표할 수 있게 될 것이다DFAE(Democrazia diretta moderna 현대 직접 민주주의, 2018년).

그러므로 연방의회는 소위 ‘투표의 비물질화dematerialization’, 곧 종이 없는 투표라는 길을 열기로 결정했다. 투표 절차는 디지털화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부분적으로나 전반적으로 유권자들에게 종이 문서(투표 용지, 확인 용지 및 관련 봉투, 투표 설명 발) 송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스위스에서는 2019년 연방 국회 선거를 위해서도 e-투표 채널들을 이용할 터인데, 무엇보다 75만 명의 해외 거주 스위스인들이 이를 활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들 중 단 1/5만이 전자 투표 의사가 있는 이들의 명부에 등록했다. 스위스에서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표를 확인하는 시스템 또한 가동된다. 곧 모든 시민들은 자신이 이미 투표를 했는지, 또 자신의 표가 전자 집계로 등록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유럽연합의 차원에서는 유럽 시민들의 발안ECI: European Citizens’ Initiative을 위해 물리적 종이 서명뿐만 아니라 온라인 전자 서명 또한 허용한다. 유럽연합은 이 점에서 디지털 시대가 제공하는 새로운 가능성에 개방적이다. 유럽연합의 모든 시민들은 어느 곳에서든 서명할 수 있으며, 그저 자국의 선거 투표권을 지닌 유럽연합 시민으로서 각자의 신분을 증명하기만 하면 된다. 사실 유럽연합 내의 엄청난 거리 상의 문제가 캠페인을 위한 서명을 모으는 것을 어렵게 하기 때문에, 전자 서명권은 서명하는 사람도 발안 위원회도 시간과 에너지와 비용을 절약하게 해 주는 거부할 수 없는 기회이다. 서명은 단순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유럽 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의 해당 사이트에 자신의 신분 확인증의 정보를 넣어 등록하면 된다. 나머지 국민 청원 및 집단 청원에 그런 전자 서명 방법이 이미 스위스, 에스토니아, 미국 및 베네주엘라 등 여러 다른 나라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쓰이고 있다. 서명 모음 기한은 ECI가 공식적으로 시작되고 나서 1년 동안이다. 온라인 디지털 서명은 해당 국가의 당국에서 증명되며, 그러므로 이탈리아에 규정되어 있듯이 “서명 인증” 요청은 전혀 없다.

이탈리아에서 유권자들이 표한 선택의 투표와 집계를 위한 전자 시스템이 자리를 잡는 데 고전하고 있는데, 정확도, 투명성 및 사생활 보호 측면의 위험을 걱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1년부터 다양한 실험이 실시되어, 특히 투표소에서의 전자 투표와 전자 집계(사르데냐, 리구리아, 풀리아, 라치오)를 실험했다. 그런 첫 시도들은 내무부 덕분에 시작되었다. 약 1만 3천 개 지구에서 처음에는 시각적 인식 도구를 활용하고, 그 다음에는 좀더 오랜 컴퓨터화 시스템을 활용하여 실시했다. 최근에는 풀리아 주 멜피냐노와 살렌토라고 알려진 마르티냐노의 레체 지방 기초자치단체들에서 실시된 프로젝트 e-투표는 화면의 터치스크린을 기반으로 하는 첨단 시스템을 활용했다. 이는 2013년 멕시코에서 이미 레퍼렌덤 자문 기간 동안 활용된 기술이다. 실험은 모두 긍정적인 결과를 나타냈으며, 사람들은 혁신과 디지털화, 사회2.0를 얘기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런 실제적인 결과가 없다.

2015년 롬바르디아는 자문형 레퍼렌덤의 경우 전자 투표를 도입하는 주 법률을 승인했고, 2017년 10월 22일 자문형 레퍼렌덤에서 이 실험이 성공을 거두었다. 전자 투표 시스템에 대해 찬반 토론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탈리아에서는 아직 지켜야 할 실제적 지침이나e- 투표 방향으로 유도해 갈 정치적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는다.

 

전자 투표의 효과

여러 조사에서 나타나듯, e-투표는 두드러질 만큼은 아니더라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참여를 증가시킨다. 스위스나 에스토니아, 미국에서처럼(지방 선거), 전자 투표는 지금까지 정치적 참여에서 기권하려 했던 사람들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으며, 이는 모두를 위한 전자 투표의 전반적 도입이 가져오는 결과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레퍼렌덤 권리 활용을 위한 문턱을 낮추어, 구조적, 제도적 장애물들을 더욱 쉽게 극복할 수 있다. 국민발안, 확정적 레퍼렌덤, 청원 등은 적은 비용으로 짧은 기간 안에 시행할 수 있다. 이런 시민들의 요구에 응하려면 공공 행정 관청과 특히 기초자치단체의 선거 사무소들이 준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여러 목록에 오른 후보들에 대한 분리 투표가 이미 우편 투표로 가능해졌듯이 더 쉬워질 것이며, 후보의 예비 선거와 정당이나 커다란 조직의 내부 투표도 더욱 용이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정당의 판도가 그 영향을 크게 받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제네바 칸톤에서 관찰한 모든 선거에서, “전자 선거”를 한 사람들의 선택은 투표함이나 우편 선거를 한 사람들의 선택과 일치했다. 그러므로 e-투표에 호의적인 이들은 모든 정당에 고루 분포되어 있는 듯하다.

전자 투표는 시민, 정치인 및 직접 활약하는 다른 주역들 사이의 구조적 불균형을 줄여주고 더욱 평등한 민주주의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자 투표는 이미 대부분 정치에 관심이 없는 그 사회 계층을 참여시켜 내지는 못하는 듯하다. 실제로 전형적인 e-투표 유권자의 사회-인구통계학적 전망은 전통적 유권자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결국 인터넷은 레퍼렌덤 권리와 연결된 절차들을 간소화하고 용이하게 해 준다. 서명 모음, 발안 및 레퍼렌덤의 홍보, 온라인 투표는 기술-조직적 차원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시킨다. 전자 서명 모음의 이득은 명백하다.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접근은 더 쉽고 즉각적인 것이 된다. 군소 단체들과 자금력이 없는 발안자들 또한 국민발안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디어 겨루기에는 수수한 이력을 지닌 이들 또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위험도 있지만 기회도 많다.

몇몇은 해커들의 선거 사무소 공격, 수백만 유권자들의 정보 조작 및 위키누출Wikileaks 식으로 그 정보가 인터넷에 유출되는 사태 등 악몽 같은 시나리오를 염려한다. 수백만 시민들의 사생활 보호권이 침해 될 수 있는 이런 종류의 사건은 시민들의 전자 투표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의 상실을 가져올 수 있고, 민주주의 절차의 전문가들과 혁신가들에게 하나의 파국이 될 것이다. 어쨌든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과 프로그램이 이미 갖추어져, 경제와 행정 등의 다른 부문에서 벌써 여러 해 동안 작동하고 있다(예를 들어 홈 뱅킹과 전자 청구서). 어떤 경우든, 전자 투표 시스템을 한 개인 기업에 맡기는 것은 삼가해야 한다. 투표 용지의 집계 또한 개인 업체들에게 맡길 수 없다.

이 시점에서 또 다른 반대 의견이 제기된다. 만일 레퍼렌덤이나 발안 요청을 위한 서명이 인터넷상의 다른 모든 호소를 위한 서명처럼 그렇게 쉬워진다면 엄청나게 요청이 폭등하여 직접 민주주의는 평가 절하되고 말지 않을까? 국민발안의 물결이 레퍼렌덤 도구 사용을 폭등시키게 될 것을 두려워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어쨌든 국민발안을 마련하고, 법적 허용성이라는 여과 장치를 거치고 온갖 지지 자료를 준비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지적 수고를 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여과 장치와 제한을 생각할 수 있다. 한편으로 서명 모음의 용이성을 고려하여 요청하는 서명의 최소 인원수를 높일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전자 서명의 최대 인원수를 제한 할 수 있다. 여러 유럽 국가에서 이미 선구적으로 시작한 이 모든 절차가 성숙되려면 아직 10~20년은 걸릴 것이다. 디지털화는 끊임없이 전개되고 있어서, 이미 다음 세대에 투표함과 투표 용지, 수작업 집계 등이 시대 착오적인 현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예측할 수 있다.

 

정보 격차digital divide와 민주적 격차democratic divide 사이의 디지털민주주의

디지털민주주의는 무엇인가? 정보통신을 다루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민주적 절차의 적용과 지원이다. 인터넷과 정보통신 기술은 정치적 의사소통을 혁신시켰을 뿐만 아니라 투명성과 참여와 민주주의 자체를 강화시키기도 했다. 전자민주주의는 e-정부, 곧 전자 행정과 구분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자민주주의는 e-투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훨씬 그 너머로 나간다.

인터넷은 공적인 공간을 재정의하고 확대시킨다. 19세기의 신문이 호기심과 교육을 자극하고, 그렇게 민주주의를 지원했듯이, 인터넷은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방식을 변경하고 확장시킨다. 시민들의 정치적 권리는 정치적 대리인들의 선거로 끝날 수 없으며, 그 어떤 정당에도 속하지 않고 선거를 초월하여 정치 생활에 헌신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정치적 주인공들의 역할에서 온라인 미디어와 비정부 기구들의 역할이 늘어나고 있으며, 정치적 활동가들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대항 권력을 만드는 주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새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 그들의 재선 가능성은 그저 인터넷 캠페인뿐만이 아니라 입법 회기 동안 수행한 그들의 성과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많은 정치인들은 시민들과 유권자들과 대화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웹사이트를 갖고 있다. 한편 change.org, AVAAZ, Campact, wemove.org 등이 이끄는 인터넷 캠페인은 선거 캠페인을 바꿀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과 그들 유권자들 사이의 관계 자체를 바꾼다. 선거는 이전 입법 기간 동안 그들이 했던 일에 대한 일종의 레퍼렌덤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230년이 흐른 후, “대표 없이는 세금도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라는 원칙의 가르침에서 이제 우리는 명백히 “관계 없이는 대표도 없다No representation without connection ”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정치에서 인터넷의 영향은 자기 생각을 쉽게 전파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매체인 라디오와 TV에서 정보와 오락을 섞어 전달하는 것과는 달리 무엇보다 쌍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고 참여의 질을 높여 준다는 것에 있다. 이러한 특징들을 지닌 인터넷은 막강한 시민 정치 참여 도구가 될 수 있다.

전자 투표 시스템을 갖춘 직접 민주주의나 결정권이 없는 심의민주주의에서 인터넷은 시민들과 행정부 및 의회 사이에서 쌍방향의 정치적 의사소통을 확대시켜 시민들에게 더 큰 참여의 길을 터 주었다. 보통 전문 언론인들이 만드는 매스미디어가 제공하는 주로 수동적인 공적 공간과는 달리, 인터넷은 이론상 양방향으로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들의 현안과 요청을 정치적 의제에 올려 제기할 역량을 얻고, 의사소통에서 이미 부분적으로 자율성을 다시 획득했다. 뉴스와 논평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경계선은 매우 유동적인 것이 되었다. 게다가 “매스미디어”의 원리(소수에서 다수로)에 인터넷은 “다수에서 다수로”와 “소수에서 소수로”라는 온라인 소통 공간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로 만들어진 공적 공간은 계속해서 서로 뚜렷이 구분되는, 여러 작은 “부분 공간subspace”, 소통이 단절된 매체들로 작게 조각나고 있다.

전자민주주의는 참여를 위해 온갖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겠지만, 이는 또한 하나의 도전을 제기하기도 한다. 인터넷 접속 가능성에서 시민들 간에 존재하는 사회적 구조적 불평등을 극복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런 불평등을 “정보 격차digital divide”라는 용어로 표현했는데, 인터넷 활용 면에서 사회 계급에 따라 격차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탈리아에서 인터넷 연결은 2016년 인구의 63%에 달하여, 3천 7백 67만 명의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나이대에 따라 확실한 차이가 드러나기도 한다. ‘디지털 원주민들digital natives’은 인터넷과 함께 성장했고, ‘디지털 이주민들digital immigrants’은 새로운 미디어를 성인이 되어서 알게 되었으며, 일부 노령층에서는 그 매체들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디지털 금욕주의자digital abstinent). 그러므로 몇몇 학자들은 민주적 격차democratic divide(국민들 중 인터넷을 사용하는 이와 사용하지 않는 이들 사이의 격차)의 발생, 혹은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 활용의 새로운 문화와 우월한 역량을 지닌 새로운 민주주의 엘리트의 출현을 염려한다. 이러한 현상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그런 매체에 대한 시민 교육이나 전반적인 구성, 나중에 특히 그런 매체를 이용하여 민주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경보 격차는 점차 사라져야 할 것이 분명하지만, 전반적인 디지털 정보 역량을 보급하고, 모두가 디지털민주주의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교육 및 정보 입수 수준과 관련된 사회적 계급 간의 민주적 격차에 대해서도 선행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럴 경우에 민주주의의 전반적인 질은 인터넷을 통해 악화되기보다는 향상될 것이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목, 2020/07/02-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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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좌담은 줄곧 한반도 평화정책을 표방해온 문재인 정부가 지난 2년간 ‘왜 대북전단 문제에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마련됐다. 좌담에는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탈북민 김민경(가명) 씨, 탈북민 정착 사업을 하고 있는 양영창 선교사, 탈북아동공동체 우리집의 마석훈 대표 세 명을 초청했다. 좌담회 사회는 김화순(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위원)이다.


사회: 지난 6월 일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되었고, 남북한의 긴장이 고조되다 잠시 쉬고 있습니다. 북측은 지난 6월 4일 김여정 당중앙위 제1부부장 명의로 남측을 비난하는 담화를 발표하였으며, 이튿날 통일전선부 대변인 명의로 대남 관계를 대적(對敵) 관계로 규정한다고 언급하고 잇달아 담화 발표 및 대남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지금 잠시 진정국면에서 접어들었습니다만, 이처럼 남북한의 긴장관계가 격화된 계기에는 박상학 등 일부 탈북민들이 북한으로 보내는 대북전단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대한민국 정부는 왜 지난 2년간 대북전단문제에 대해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았을까?”가 궁금합니다.

 

대한민국 주권 가지고 할 수 있는게 그렇게 없습니까?”

사회: 반갑습니다. 세 분을 좌담회에 모시고, 대북전단 살포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안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내 주시겠습니까?

김민경: 시작하기 전에 제가 남한에 온 지 6년이 되어가지만 북한출신으로서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묻는데요. 대한민국 주권 가지고 할 수 있는게 그렇게도 없습니까? 이명박시대에 삐라를 하라고 탈북인단체를 부추긴 것은 그럴만했다고 치고요. 그때는 북한이 붕괴하기를 기대하는 정권이었으니까. 그런데 평화로 가자는 방향으로 시대가 바뀌었는데 문재인 정부는 왜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까요? “결국 평화라는건 미국이 허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잖아요. ”남북관계는 쇼였나요?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대결시대에는 삐라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는데 약속을 내챙개치고 삐라라니, 언론의 자유라니. 지난 2년간을 통해 우리가 깨달은 건 평화라는 건 미국이 승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잖아요. 결국 한반도 평화는 안된다는 겁니까?

사회: 뼈아픈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남북한관계 파국의 원인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대북전단사건부터 복기하여 원인과 책임을 찾아 이런 일이 다시 없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선 대북전단의 발생 원인부터 이야기해볼까요?

마석훈: 대북전단 풍선을 날리는 원인을 ‘특별함이 주는 중독현상’ 때문이라고 봅니다. 탈북자분들이 남한에 와서 세뇌가 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탈북자분들이 북쪽이 아니라 오히려 남쪽 사회에서 세뇌가 된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왜 남한에 왔나? 그러면 흔히 자유 찾아 왔다고 하지만 정말 자유를 찾아왔는가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한에 와서 출세하려면 튀어야 한다는 게 일부 탈북자들의 생각입니다. 여기에 온 사람이 3만 3천입니다. 박상학 씨는 대북전단을 어제 날렸고, 앞으로도 계속 날릴 것입니다. 학생운동 할 때처럼 구속되어도 나와서 또 하고. 그게 옳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 박상학 씨는 이미 하나의 확신범 같이 본인은 대북전단을 날려야지만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방식으로 ‘북한과의 문제를 야기하는’게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대북전단살포 문제는 정치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에 대한 처벌도 엄중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도 민주화를 위해 산다는 게 얼마나 가난하고 어려운지 겪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집단만 민주투사가 될까?”

양영창: 마선생님이 원인을 잘 짚어주셨습니다. 돈 대는 단체들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돈대는 단체로 ‘미국의 소리’가 이번에 뉴스에서 지목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많습니다. 제가 아는 단체는 미국에 있는 교포단체인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돈을 댄다고 하면서 정작 민주주의가 없습니다. 한인교포들은 미국 국민들보다 트럼프를 더 지지합니다. 최고존엄을 저격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들의 생각이 무엇이기에 탈북민들을 분란시키는가? 아는 탈북민 친구들과 전화를 해보면 선생님 그렇게라도 하면 우리 식구들이 얻어먹을 거 아니예요? 그런다. 태극기 들고 있는 친구. 태극기는 5만원이다. 대북전단은 그것보다 더 돈을 많이 줍니다. 당일 치기도 하고 1박 2일도 하고. 이들을 조정하는 팀들이 누군지 밝혀내야 합니다. 나는 탈북민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고 그냥 한국사람으로 그냥 우리 사회 일원으로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석훈: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집단만 왜 정의투사, 민주투사가 되어가는지 그 현상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한국 말고 그런 사례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미국에도 소수지만 가고, 캐나다 영국에도 몇 백 명이 있는데 정치행위에 나서는 탈북자집단은 한국 말고는 없습니다. 즉, 캐나다에 간 탈북자들 영국 등에 있는 탈북자들은 왜 생계에만 천착해서 살아갈까라는 측면을 생각하면 답이 나옵니다.

양영창: 요즘 단체들의 창업지원을 하러 많이 돌아다니다보니 풍선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언론에는 자유북한운동연합이나 큰 샘과 같은 몇 개 단체 이름만 나왔습니다. 기실 방송 듣고 넘어오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전단살포가 자기네들의 이득과 단체들의 이득과 돈 때문에 한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과거 초기에 이민복 씨가 했을 때부터 (대북전단을 보내는 것을) 직접 보았는데, 대북전단살포가 그렇게까지 효과적이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북전단살포를 생각 외로 많이 합니다. 문제는 (대북전단) 돈을 대주는 팀들인데 그들이 뒤로 다 빠져 있습니다. 재정(돈)을 대주는 팀들이 누구인지 언론은 잘 모릅니다. 이러다가 대북전단살포법을 만든다고 해도 일이 잘못되다 보면 (탈북민) 몇 명만 때려잡고 말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김민경: 마선생님 말씀처럼 캐나다에 간 사람들은 그곳을 너무 좋아합니다. 거기 가니 스트레스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남북한이 싸우는 짬에 끼워지는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거기 가서 오히려 북조선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찾게 됩니다. 저도 캐나다에 가서 미국에서 자금을 받아 아시아방송을 운영하는 탈북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북한 인권을 하는 사람이 몇 있고, 방송을 하는 정도이지 여기처럼 심하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남한에 ‘수요’가 있기 때문에 대북전단을 보내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봅니다. 반공주의 프레임이 가동되면서 반공주의가 생존의 열쇠인 그런 세력들. 그런 사람들이 탈북자를 돌격대를 만들어 내세웁니다. 그들은 남남갈등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해방 후 북에서 넘어온 월남자들 일부가 서북청년단을 뭇고 앞장에 서서 상대진영을 말살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듯이 말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국정원에서 이용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은 안보강사로 다 내보냈습니다. 그들은 안보강연을 통해 북한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키우고 반공주의를 강화시키는데 일조했죠.

또한 남한의 정부와 국민들이 용인해온 결과이기도 합니다. 사회적으로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였다면 주류사회의 눈치를 보면서 정착하고 살아가야 할 소수집단인 탈북자들이 과연 그들이 그렇게 했을까요? 이런 행위들을 너무 당연시했던 같습니다. 북한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이 남한 사람들 속에 뿌리 깊게 있기 때문에 북한은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는 생각이 오늘에 이르게 된거죠. 또한 한미동맹으로 얽혀 있는 남한내에서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과 아시아 패권전략에 따른 문화적 침투의 일환으로 미국의 자금이 국내에 상당히 유입되면서 기생하는 세력들이 생겨나기 마련이죠.

 

“막말을 해도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북한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

사회: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수요가 있기에 풍선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서북청년단을 이용했던 그 세력이 수요처다. 보수를 지칭하는 분단세력들이 지금 대북풍선의 원인이다라는 지적을 남북한 분들 공통적으로 지적해주셨습니다.

김민경: 대북전단살포를 요구하는 세력은 돈도 많습니다. 언론들은 이런 것을 지적해야 하는데 이 같은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남한에 오니 자유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억이 막히는데 여기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뭔가? 오히려 분단 70년동안 자유를 말살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하던 세력이 바로 그들입니다. 제가 가장 본질적으로 말하고 싶은 핵심적인 이야기는 개인의 자유가 아무리 중하다 한들 생명권보다 더 중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과연 개인의 자유가 생존권을 우선할 수 있냐? 그들의 표현의 자유 운운 하면서 삐라 날리면 접경지역 주민들은 생명위협에 노출됩니다. 연평도 포격사건을 비롯해서 삐라 때문에 남북간 총성이 오고간 사례들이 많죠. 이 문제를 제기하고자 합니다. 언론에서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말살한다고 말하죠. 요즘 어떤 판사도 표현의 자유를 말살한다고 했죠. 자유가 아니라 방임입니다. 삐라 내용도 정제된 언어가 아니라 일베 수준의 저열한 내용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냉전시대에나 날리던 삐라를 평화이행기에 들어선 오늘날까지 날리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행위입니다.

사회: 저도 엊그제 제가 패러글라이더 한 분을 만나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6년 전에 불법적인 전단살포 행위를 통일부가 나서서 변호했다는 군요. 특히 대북풍선을 날리는 북한접경 지역은 항공관리법이 적용되는 특수지역이어서 법으로 금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탈북단체들이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오히려 10년 가량 정부의 묵인과 비호를 받으며 대북 전단 살포용 풍선을 버젓이 날려왔습니다. 전단 살포용 풍선이나 드론이나 똑같이 항공안전법 제2조 제3호에 같이 규정되어 있는 “초경량비행장치”에 해당하며 각각은 “기구류”와 “무인비행장치”에 속하기에 불법입니다.​ 접경지역에서는 패러글라이드도 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북전단을 풍선으로 띄우는 것에 항공법에 저촉된다는 지적을 국회의원이 당시 청문회에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통일부 관료들이 말이 안되는 해석을 했다고 합니다. 왈, 지상통제장치가 없기 때문에 대북전단 풍선은 항공법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렸다고 합니다. 【1】대북전단을 날려도 된다는 거지요.

정부가 전단을 막을 수 있는 상황이었고 교통부, 국방부 등까지 관련되었는데 왜 그랬을까? 대강 짐작이 가지요. 통일부에서 법의 해석을 무리하게 하면서까지 대북 전단살포를 허용했다. 한마디로 전단풍선살포는 정부의 허용 내지는 대북상대의 일종의 심리전으로 인정받은 행위였던 겁니다. 마선생님이 ‘왜 한국에서만 그러냐.. 다른 지역에서는 그러지 않는데’라고 말하는데, 탈북민들이 전면에 나서는 이유는 국가 정부가 탈북민들을 앞에 세웠기 때문입니다. 국정원 댓글부대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하겠지요. 탈북단체들은 그 앞장에 서서 생존해왔습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국가가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민경: 한마디로 분단세력이죠. 북한이 나쁘다는 것을 극대화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박상학이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고 계속 요구합니다. 대한민국의 토착세력이 문제입니다. 새터민이 아니라 헌터민들이 문제입니다. 저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북한’에 대한 인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중국이 독재하는 것을 다 알지만, 중국에다 대고 너네 왜 독재하냐고 삐라를 날리지는 않습니다. 왜냐? 우리가 중국을 함부로 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북한에는 막 해도 됩니까? 북한에 대고 온갖 표현을 해도 용납이 되는 남한사회 전체의 인식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삐라의 변질, 돈 주는 사람들은 왜 북의 최고 존엄을 겨냥하는가?”

양영창: 과거에 정부가 독려하고 돈을 주었는데 북에서 이야기가 나오니까 (탈북민을) 잡아넣겠다고 합니다. 차라리 왜 이렇게 대북전단을 하느냐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지방에 가서 대북전단을 하는 탈북민을 만났더니 그들이 한번 정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봤냐? 고 합니다. 내가 너희 국회의원 하려고 그러냐? 고 물어보았더니, 그렇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처음에 삐라를 시작했을 때 강화에서 이민복 씨가 주로 했는데 지금같이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돈을 주는 사람들의 요구가 많이 변화한 것 같습니다. 최고존엄을 건드리면 안되는데. 이 사실은 탈북자들이 더 잘 압니다. 나는 최고존엄을 건드리라고 돈을 주는 사람들이 그렇게 요구한게 아닌가 의심합니다.

어떻게 삐라가 이렇게까지 변질이 되었는지 돈이 어떻게 들어갔고 왜 이렇게 이들이 하는지가 밝혀져야 합니다. 그런데, 언론과 이야기해보니 기자들은 문제를 ‘탈북민’전체로 돌립니다. 나는 법을 어기면 제재는 따라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은 탈북민사회가“대북전단 살포는 안된다.” “가족들이 피해를 본다”고 강하게 소리치고 있습니다. 때려잡는게 아니라 탈북민들과 이야기할 것은 이야기해야 할 때입니다. 이미 다음 세대가 대북전단 살포행위를 이어받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돈을 주는 세력이 있는 한,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회: 양선교사님 말씀은 돈을 주는 쪽에서 최고 존엄을 건드리는 쪽으로 푸시를 했다. 이제는 공론의 장에서 이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탈북민사회에 이 문제에 가지고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정리하겠습니다.

김민경: 대북전단 풍선날리기 문제는 남한의 정치풍토와 관련이 있습니다. 남한의 진보진영이 70년 동안 위축되었습니다. 진보진영을 공격할 때 쓰는 키워드가 있죠. 빨갱이, 종북, 북한 이 세 가지입니다. 지금도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데 있어서 진보 진영을 공격하는데 있어 반드시 북한이 동원됩니다. 아주 강력한 무기죠. 정치꾼들이 북한 인권을 빌미로 색깔론을 부추기고 앞장에 내세우던 인물들이 있죠. 그런 사람이 국회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할 가장 절실한 사람들”

사회: 대북전단을 북한에 날리는 행위의 원인이 탈북민을 사주하는 분단세력에게 있다는데 여기 모인 분들 간에 이견은 없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논의를 통해 탈북인들의 대북전단 행위에 대해 대화적인 접근을 해서 설득할지 아니면 강력한 법적 제재를 할 것인가로 의견이 나뉘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더 이야기해볼까요? 이 문제에 대해 여러분의 의견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석훈: 저는 지금 공론의 장에서 논의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봅니다. 이 문제가 가시화되어 법이 만들어지게 되었으니까요. 한 가지 더 문화적인 측면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북한 분들이 나오는 이만갑, 모란봉을 보면 탈북여성들은 미녀만 나오는가? 여성은 모두 미녀고 남자들은 김일성대학출신이고. 제가 보는 탈북민들은 보통 사람들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뭔가 특별한 사람들을 발굴해내려는 문화가 존재합니다. 미국에 가보니 난민의 경우 경비를 3개월에 뱉어내도록 하는데, 한국에 온 탈북민들은 각종 공짜들이 늘어나기만 합니다. 특례입학 등 다른 방법으로 정착한다. 여명학교, 원불교 한겨레학교에 들어가는 돈, 돈을 기부하는 분들은 바로 이 삐라 만드는 사람들의 좋은 자양분입니다. 우리 사회에 자리잡은 탈북민에 대한 공정하지 못한 기부행위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대북전단을 하는 사람들이 구속되면 효과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감옥에 가면서까지 그 일을 계속할 사람은 해야지 어쩌겠어요?

김민경: 우리 북한이탈주민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라도 대북전단행위를 이번에 근절해야 한다고 봅니다. 박상학을 비롯하여 탈북민전체가 혐오의 대상으로 되면서 10년간의 정착노력이 부정당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대북전단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빨리 정리해야 합니다. 남북관계가 70년간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렵게 오늘까지 오게 된 과정을 모든 국민들이 지켜보았습니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남북화해노력을 80%까지 지지했습니다. 그만큼 평화에 대한 갈망이 높다는 거죠. 오늘날에 와서 평화를 깨뜨리는 것은 범죄이고. 더 이상 분단과 반공에 기생하던 풍토를 청산해야 합니다. 탈북민은 우리 사회의 소수자로 축소되어 살아가는 사람인데 남한 사회에서 제대로 관계를 가지고 살려면 이 문제가 근절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우리 탈북자들이 남북관계해결의 이해당사자입니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할 가장 절실한 사람들이고, 우리가 남북화해의 매개체가 되어야 할 사람들인데 일부 탈북자들의 행동으로 남북갈등을 부추기는 촉매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대북전단 픙선을 날리는 사람들 때문에 탈북자 집단이 사회 혐오집단으로 낙인되고 정착과정에서 우리의 모든 노력이 부정당할 우려가 커지는 현실에 살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깨어나야 합니다.

양영창: 그렇지 않습니다. 탈북민이 소수자로 된 것은 삐라 사건만은 아닙니다. 탈북민에 대한 남한 사람들의 생각이 표출되었다고 봅니다. 이 사건만이 아니라 보수정권에서도 그렇다. 법적 제재 전에 논의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마석훈: 이런 시점에 탈북민사회를 대변할 수 있는 단체나 어른이 없다는 게 정말 안타깝습니다. 탈북민에게 신뢰를 받는 단체나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도 안타깝습니다. 이런 상황이 왔을 때 중재를 하는 존재 하나 만들어내지 못 했다는 게 부끄럽습니다.

양영창: 제가 가장 힘든 게 그것입니다. 국내에서 정착지원활동을 하고 해외에서 일을 20년 넘게 했는데 내가 무엇을 했는지 자괴감이 듭니다. 너무 힘듭니다. 내가 왜 이 사역을 했나 싶습니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이해하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북한도 지금 군사행동을 멈추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쉼표를 가지고 직접 탈북민 자신이 나서서 목소리를 내봅시다. 뒤에서 이야기할게 아니라 보수는 서로 목소리를 내서 잘잘못에 대해 이야기 하자. 우리가 남남갈등 하지 말고, 원수가 안 되었으면 좋겠다.

 

통일부가 대북사업과 탈북민 사업 양자를 함께 하는게 가능한가?”

사회: 이 좌담회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왜 지난 2년간 대북전단문제에 대해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았을까?”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입니다. 참석자 모두가 한마디씩 해주셨으면 합니다.

양영창: 대북전단 풍선에 반대하는 생각을 가진 단체들은 논의의 자리가 있으면 오겠다고 해요. 한 번씩은 다 와서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방송에 나서 시끄러워집니다. 대북풍선을 날린 사람들이 나와서 함께 깊게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대북전단살포를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그 내막을 알지 못합니다. 탈북민이 한 사람의 구성원이라고 인정한다면 법내용에 대해 알고 논의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직은 시기가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법이 만들어지면 포괄적으로 법내용이 만들어지면 발표하고 서로 문제제시도 하고 방향을 잡아가는게 촛불정부인 더불어민주당의 방식이어야 합니다. 왜 자꾸 왜 논의의 장을 열어야 하냐고 주장하냐면, 탈북민들은 지금 불안하고 애가 타기 때문입니다. 왜 이 방법을 쓰지 않는가? 빈대 한 마리 잡는데 초가삼간을 왜 태우냐. 정부가 그동안 잘못했다. 풍선을 하도록 했고 전단내용을 바꾼 세력이 있는 한 피해자는 탈북민이 됩니다. 나는 그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사회: 이 사태를 수습하려면 양선생님 이야기처럼 공론의 장에서 대화하는 자리가 많이 있어야 하는데. 통일부나 하나재단 모두 작년 탈북모자사망 사건 때 무력했습니다. 남북하나재단이 이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까요? 누가 이 단체들을 연결해서 그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석훈: 탈북민을 관리한 기관에서 그런 자리를 마련하는 게 맞긴 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중요한 사건이 생기면 남북하나재단은 늘 자기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 일을 하라고 월급을 주는 건데. 대북전단은 인권운동이 아니라 상업적 운동입니다. 이미 하느니 마느니 합의할 수준은 넘어섰습니다. 관련법도 제출이 되었고 이재명지사가 경기도에서 행정권으로서 접경지역 출입금지라든가 고발할 수 있는 근거가 있으니, 이제 법을 시행하는 단계가 되었다. 합의는 이미 지나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현재 여당이 압승을 했습니다. 설문조사 결과도 그렇습니다. 대북전단에 대해 반대하는 국민여론이 60%를 넘어 70%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대북전단을 하니 마니 합의하거나 논의할 시점은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김민경: 과연 남북문제 해결에 있어 국회가 한 일이 뭐냐? 남북 간의 비방을 안 하기로 합의했던 4.27성명 발표 후 국회는 이를 뒷받침 하는 법안 하나 내지 않고 팔짱을 끼고 강건너 불구경 하듯 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남북관계가 파탄나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르죠. 문재인정부를 공격할 구실이 생기니까요. 직무유기죠. 대북전단에는 정치세력과 기독교, 미국의 대북관련 단체들을 비롯한 다양한 세력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자제를 권유하는 방식으로 방지할 수 없습니다. 평화를 파괴하는 범죄로 규정하고 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저도 사회자의 입장을 떠나 탈북민문제 연구자로서 제 생각을 한 마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사건은 과연 통일부가 대북사업과 탈북민 사업 양자를 함께 하는게 가능한가라는 가장 본원적인 문제를 제기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촉망받던 김연철장관이 아무 일을 하지 못한 채 사표만 내고 떠났는가? 이와 유사한 형태로 작년 탈북모자사망 사건때도 결국 하나재단 고경빈 이사장이 사표를 내고 나가는 것으로 마무 리짓고 말았는데 조직체계의 근본적인 혁신없이 어공 윗사람 한 사람의 사표로 마무리지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늘공 조직의 과감한 쇄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북전단이 왜 방치되었는지 국회가 대한민국 정부가 왜 지난 2년간 대북전단문제에 대해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았을까?”라는 시민들의 상식적인 의문에 답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개성공단 등 통일 각분야에서 부딪히고 있는 답답함과 장벽을 제거할 수 있는 길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 경향신문. 2014. 10.23. <북한 비판 풍선은 되고 정부 비판 풍선은 안된다?.. 정부, 항공법 적용 제각각>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대북 전단 살포가 비행금지구역인 휴전선 인근에서 이뤄지게 될 경우 항공법으로 규제가 가능한지에 대해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한 결과 대북 전단 살포용 대형풍선은 지상에서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기 때문에 항공법 적용대상인 초경량 비행 장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토, 2020/07/04-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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