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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에너지전환은 애국운동이다

에너지전환은 애국운동이다
홍종호(경제학 박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문재인 정부가 선보인 대표적인 국내 정책을 꼽으라면 단연 소득주도성장과 에너지전환일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동반성장과 균형발전,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에 해당한다. 문재인 정부 5년이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소득주도성장과 에너지전환 정책의 성공 여부로 문재인 정부를 평가할 것이다. 과거 정권의 사회경제 정책들과 확연히 차별화되기에 논쟁적이기도 하다. 소득주도성장은 기존의 생산성과 투자 중시 성장방식에서 소득양극화와 내수부재 타개를 통해 성장을 모색해 보자는 전략이다.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도 정책수단에 대한 준비가 철저했다는 인상을 받기는 쉽지 않다. 보편적 성장전략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많다. 최근에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사이에서 정부가 고민하는 모양새다. 에너지전환 정책은 다르다. 역사적으로 산업혁명은 새로운 에너지원이 주도했다. 석탄, 석유, 전기가 그것이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다음을 이어받을 태세다. 재생에너지는 지속가능발전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인류 가치와 거대 트렌드에 부합한다. 기후변화 대응과 융합기술 기반 신산업 창출에 최적이다. 그만큼 보편적이고 혁신적이며 민주적이다.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설비와 발전량은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2017년 재생에너지 신규시장 투자규모는 2800억달러로 다른 발전원 시장을 압도한다. 반면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성적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순수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2016년 기준 2% 정도다. OECD 회원국 평균 24%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시대 흐름이 분명하고, 우리의 현재 위치도 파악되었으니 늦었지만 발동을 걸자는 것이다. 한탄하거나 거부하기엔 시간이 없다. 조속히 호랑이 등에 올라타야 한다. 몇 가지 제안이 있다. 첫째, 정부는 에너지전환을 경제정책이자 성장전략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전환이라는 화두는 환경과 인권을 내세운 시민사회에서 출발했지만, 이를 꽃피우는 데 성공한 나라들은 예외 없이 경제정책으로 발전시켰다. 독일 정부는 에너지전환 정책의 제1 목표를 신산업 발전과 일자리 창출에 두고 있다. 아직 정부는 에너지전환을 환경과 안전이라는 좁은 범주에 가두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에너지전환은 혁신성장을 견인하고, 일자리를 만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소상공인이 함께 먹고살 수 있는 포용성장의 조건을 두루 갖췄다. 그러니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에너지전환을 실행하기 위한 경제 부처와 사회 부처 간 유기적 정책협력과 청와대의 정책조율이 필수적이다. 둘째, 에너지전환에 대한 산업계와 국민의 신뢰성, 정책수용성을 높여야 한다. 산업계는 이명박 정부 시절 녹색성장 정책을 믿고 재생에너지에 투자했다가 크게 손해 보고 사업을 접은 아픈 기억이 있다. 또다시 정부가 양치기 소년이 돼서는 안된다. 재생에너지 시장을 확대하고 입지규제를 합리화하며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살리는 세심한 정책이 수반돼야 한다. 재생에너지는 아직 우리 국민에게 낯선 대상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대규모 태양광 발전시설을 속도감 있게 건설할 필요가 있다. 송·배전 시설투자가 동시에 이뤄져 사업효율을 높여야 한다. 새만금 지역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전북도민과 대화하며 멋진 태양광 농장을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caption id="attachment_193846" align="aligncenter" width="640"]
새만금 해상풍력개발사업 조감도 ⓒ새만금개발청[/caption]
셋째, 반(反)에너지전환론자들의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발언에 너무 신경 쓰지 않으면 좋겠다. 궁극에는 에너지전환의 진정성과 실력으로 승부하는 길밖에 없다. 여론조사에 나타나듯 국민의 마음은 이미 에너지전환으로 돌아섰다. “묻지마 탈원전이 경제위기의 원흉”이라는 어느 언론인의 독설 정도는 웃어 넘겼으면 한다. 원자력 발전은 기술적·경제적 대안이 없었을 때 중요한 전력 공급원이었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방식은 달라지고 비중은 줄어들어야 한다. 현재와 미래 세대에 너무나 많은 비용부담을 지우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원전이 서서히 경쟁력을 상실해 가는 현상은 이제 낯설지 않다. 뜻있는 원자력 전문가들이 에너지전환의 큰 틀에서 자신의 발전과 국가 기여를 고민할 줄 믿는다.
광복절에 생각해 본다. 에너지전환은 애국운동이다. 재생에너지는 안전하고 깨끗한 우리 에너지다. 석탄, 석유, 원자력 같은 전통 에너지원과 비교해 생산에 따른 부작용이 현저히 적다. 날로 경쟁이 격화되는 세계 재생에너지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내수시장을 키워야 한다. 에너지 효율 기술개발과 적용, 모든 경제주체의 소비절약 노력이 함께한다면 국가 에너지 경쟁력은 날로 높아갈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후손을 사랑하고 국토를 아끼는 세대의 모습이 아닐까? 3㎾짜리 가정용 태양광을 설치하신 부모님께 새삼스레 감사하다. (이 글은 8월 15일자 경향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지구를 착취와 실험의 대상으로 보는 거대 자본사회는 소규모 마을 공동체를 쫓아내고 그 지역을 마구잡이로 개발한다.
소수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자들 앞에서, 자연과 함께 어울려 살다가 언젠가는 지구에 되돌려 주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저 조롱의 대상이다.
영화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기후변화 문제의 선두에 있는 전 세계 여러 공동체의 이야기다.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는 도시와 떨어진 지역에 소규모의 마을을 이루고 한 곳에서 평생을 살고 있거나
또는 대도시에 살더라도 어느 날 돌아보니 기후변화문제의 최전선에 떠밀려 직접적인 피해를 본 사람들이다.
감독 나오미 클라인이 4년에 걸쳐 전 세계를 돌며 촬영한 이 영화는 미국 몬태나주의 파우더강 유역부터 캐나다 앨버타주의 타르샌드까지,
인도 남부 해안마을부터 베이징까지 여러 이야기를 엮어 탄소 배출과 경제 시스템의 문제를 연결시킨다.
영화는 “실패한 경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현재의 기후변화 위기를 정면 돌파하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감독은 이처럼 논쟁적이면서 흥미로운 생각을 발전시켜 나간다.
기후변화 문제가 아주 심각해 한계에 이르렀고, 이 한계가 사람들의 행동을 만들어냄으로서 역설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고 있을까.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말이다.
관객을 겁에 질리게 만들어 기후변화문제에 함께 항의하게 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이 영화를 관람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알게 된다.
사회가 발전하고 지구가 착취당하면서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한 번 이 영화의 주인공들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아직 포함되지 않은 듯하나 그것은 시간문제인’ 공동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여러분이 곧 주인공이 될 수도 있는 영화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를 각종 소모임을 통해 편한 장소에서 관람할 수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를 검색하면 영화에 대한 자세한 안내가 있는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볼 수 있고, 공동체 상영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맹동산의 영양풍력발전공사 현장. ⓒ 김병기[/caption]
이제 우리는 이른 새벽 신성한 잠자리에서 일어나 자신들에게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태초로부터 물려받은 신적 에너지, 태양과 바람을 우리의 후손들에게 상속해줄 수 있겠는가? 바람과 태양과 대화하는 법을 우리의 미래에 가르쳐줄 수 있는가? 바람으로 가는 길을 그들에게 열어줄 수 있는가? 태양의 들녘과 바람의 거리에서 생을 보냈던 생태주의자 예수는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도 끝까지 생태적이었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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