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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노인이 꽃을 꺾어드니 온 세계가 봄이로다 - 박진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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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노인이 꽃을 꺾어드니 온 세계가 봄이로다 - 박진수 회원

익명 (미확인) | 수, 2018/05/02- 11:50

노인이 꽃을 꺾어드니 온 세계가 봄이로다

박진수 회원 

 

인터뷰. 주은경 아카데미느티나무 원장

정리 및 사진. 이한나 미디어홍보팀 간사

 

메인 (2)

 

 

첫 만남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2017년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8.15 행사 <당신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뒤풀이 자리였다. 매년 민주화운동과 독립운동에 헌신한 분들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 풋 프린팅 행사를 하고, 관련 유가족들이 함께 그 의미를 새기는 자리. 처음 보는 사람들이 함께 식사하는 다소 서먹하고 긴장된 분위기였다. 내 앞자리에 은퇴한 대학교수 같은 이미지의 그와 얘기하던 중, 그의 어머니가 1930년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였다는 걸 알게 됐다. 

“어머니는 맨날 경찰에게 쫓겨 다니고, 나는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어요. 나는 그림 그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완전 인텔리처럼 보이는 노인이 부모의 사상경력 때문에 초등학교밖에 못 나와 고생만 하고 살았는데, 그림을 그린다? 뭔가 강한 느낌이 왔다. 실례지만 지금 그림 보여주실 수 있느냐 물었다. 그가 수줍은 듯 작은 스케치북을 보여주었다. 크로키나 드로잉이 상당 수준이었다. 내가 참여연대에는 시민예술가가 무료로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말씀드렸다. 이렇게 해서 그의 이번 5월 전시회가 성사되었다. 전시를 앞두고, 그의 화실을 찾았다. 부평구청역 근처 작은 건물 2층 중국집 옆 작은 공간이었다.   

“어릴 때부터 안 해본 일 없이 노동하며 살았어요. 작은 공장을 운영하기도 했구요. 그런데 나이 60이 되어 난생처음 부천 원정동에 화실을 마련했는데 허구한 날 월세에 시달렸어요. 나중엔 한 일 년쯤 월세가 밀려서 내가 그때 정물풍경 그림을 열 몇 점을 주고 거길 접어야 했죠.” 

 

그때 작업실 월세라도 벌고자 그림 지도를 했지만 그를 찾아오는 이들은 하나같이 테크닉만 배우려고 했다. 심지어 나중에는 공모전에 입선해야 하니 그에게 직접 그림을 손봐달라고 하는 이도 있었다. 

“한 3년 했나. 도저히 못 견디겠더라고요. 차라리 다른 거 해서 돈 버는 게 낫지. 그래서 여기 온 뒤부터는 가르치는 건 안 하기로 했어요. 그냥 월요일마다 화실을 열어둘 테니 원하는 사람은 와서 같이 그림 그리자고 했죠. 월요일만 되면 사람들이 부지런히 찾아옵니다. 여기 홍 선생도 그중의 한 사람이에요.

 

그렇게 인천 부천 등 각지에서 모여든 젊은 화가 친구들 7~8명이 매주 1회 크로키 모임을 하고 있단다.

“젊은 사람들이 우리 노인들과 얘기를 잘 안 하려고 하잖아요. 쉰 음식같이 시큼하고 맛이 간 옛날얘기나 하니까. 그래서 조금이라도 젊은 사람들 따라가려고 열심히 책도 보고 『참여사회』도 벌써 반이나 읽었어요.”

 

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홍 선생이 한마디 거든다. 30대 나이의 홍 선생은 그와 함께 이 화실에서 그림을 그린 지 벌써 3년째다.

“선생님은 정말 젊으세요. 그림도 젊고. 생각도 젊고.”

 

화실에 놓인 그림들 중 유독 눈에 띄는 그림이 있다. 그림 속에는 가을낙엽처럼 바싹 마른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은 채 힘없이 벤치에 앉아 있다. 그 오른편에는 커다란 해바라기가 굵고 단단한 줄기를 꼿꼿이 세우며 서 있다. 

“오랫동안 여동생 집에서 머물다가 아흔이 좀 넘으셨을 때 우리 집에 모셔왔는데 그때 고속버스 휴게소에서 앉아있던 어머니 모습이에요. 그때 어머니가 저렇게 바짝 늙어 있었어요. 다행하게도 그 후 1~2년 사이에 건강이 많이 좋아지셨죠. 어머니는 처녀 때부터 늘 몸이 약하셨어요. 근데 몸이 약해도 강단이 있는 사람이 있잖아요. 절대 어디 가서 굽히지 않는…. 우리 어머니가 그랬어요.”

 

해바라기

박진수 화백이 그린 이효정 할머니의 그림. 아직 미완성이다. ⓒ박진수 

 

빨간 줄

그림 속 할머니의 아들은 차분히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어머니는 1930년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이효정 선생이다. 동덕여고를 졸업한 여성 지식인 이효정 선생, 그녀의 이야기는 이재유, 이관술 등의 활동을 담은 소설 『경성 트로이카』에 자세히 실려있다. 학교 선생님이었던 아버지 또한 울산에서 교원노조사건 등으로 옥고를 치렀고 건국준비위원회 지역간부였다. 1938년 출생인 그에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교 3학년까지가 전부라고 했다. 

“열 살 때였나? 숨어 지내던 아버지를 어머니와 함께 찾아갔던 기억이 있어요. 그게 마지막이었죠. 말도 마세요. 동네 애들이 그냥 다 나보고 빨갱이라고 그랬어요. 저 새끼 빨갱이라고..(웃음) 이육사 선생이 어머니 친척이었고, 친가 외가 쪽 모두 독립운동가들이 많았어요. ”

 

‘빨갱이’. 이 무시무시한 단어는 저승사자처럼 늘 그를 쫓아다녔다. 어머니는 늘 경찰 피해 도망 다니고, 외할머니 손에 자란 그에게, 어린 시절 유일한 즐거움은 그림이었다. 

“나는 중학교도 못 들어갔지만, 당시 중학교 선생님들이 환경 미화하는 걸 도와주고 도화지, 물감 얻어 와서 혼자 그림을 그리곤 했죠. 그때 중학교 다니던 내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와 나중에 경주의 예술가 윤경렬 선생님 집에 찾아갔어요. 내가 평생의 은사로 생각하는 분이요. 특별히 그림을 배운 건 아니고 그 집에 드나드는 예술가들 술 심부름 하며, 그들의 세계를 접했던 것 같아요 이응로, 박수근, 한묵 등 당시 최고의 예술가들을 윤경렬 선생님 댁에서 봤다니까요..”

 

하지만 그 시간도 오래가지 못했다. 60년대, 아버지가 남파간첩으로 내려왔다는 의혹 때문에 조사를 받았던 작은 아버지는 풀려난 후 음독자살을 했다. 너무도 자상했던 작은아버지였다. 형사들이 들이닥쳐 구둣발로 발길질을 당하고 집안은 쑥대밭이 되었다. 

“그 무렵 늘 정기적으로 형사들 앞에서 나의 생활을 조서형식으로 써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내 가까운 친구, 영향받은 사람을 다 써야 했죠. 그러니 스스로 가까운 사람들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어요. 윤경렬 선생님 댁도 그런 이유로 발을 끊다시피 했죠.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서울로 이사 와서 군대 제대한 뒤에는 내 담당 형사가 따로 있었어요. 다짜고짜 이런 거 저런 거 묻더니 몇 년 뒤에 또 다른 사람이 와서는 자기가 인계받았다 하더라고요. 그 뒤로도 무슨 소식 들은 거 없냐면서 계속 찾아왔어요. 한 군데서만 그러면 괜찮은데 경찰에서 오고, 중앙정보부에서 오고, 나중에는 군수사기관에서도 오더라고요. 한번은 우리 큰아들이 세 살 때였나, 군 트럭에 태워 나를 끌고 간 적도 있어요.” 

 

형사들이 왔다 가면 일하던 곳에서 쫓겨났고 가난하고 궁핍한 생활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그가 이십 대 청년에서 삼십 대의 가장이 된 후에도 주홍글씨는 지워지지 않았다. 

“신원조회에 항상 이렇게 대각선으로 빨간 줄이 그어져 있었어요. 내 동생들 다 그랬어요. 그게 스물일곱부터 시작해서 정확하게 마흔일곱 살에 없어졌으니까 거의 20년간 동향조사를 당한 거죠.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먹고살 길이 있으면 천리만리 다녔답니다. 공장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주머니에 날카로운 침이 나온다는 ‘낭중지추’라고 하죠? 난 낭중드라이버였어요.(웃음)”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엔 유독 노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 노동자라 부르기도 어려울 만큼 힘없는 사람들. “밀고 끌고 당기다.” 그가 이번 전시회 제목으로 처음엔 이 말을 생각했다 한다. 이렇듯 자신에게 힘든 삶을 안겨준 부모를 원망한 적은 없었는지 물었다. 

"그냥 그런 줄 알았어요. 우리 집은 빨갱이인데요 뭐.(웃음) 참 오랫동안 생각해봤지만 한 번도 원망을 안 했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그저 그게 아버지 어머니의 시대였고, 두 분 다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생각해요."  

 

밀다

박진수 <밀다> 2015作 ⓒ박진수 

 

원망한 적은 없어도 생채기는 남아 있었다. 어딜 가도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하던 버릇은 나이 들어도 쉽게 변하지 않았다.  

“그건 병적인 거 같아요. 어렸을 때 윽박질러놓으면 사람이 어디 가서 기를 못 펴요. 지금 내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도 신기해요. 통 어디 가서 입도 뻥긋 안 하고 살았어요. 나는 살면서 좌측통행도 한번 안 어겼답니다. 지킬 거 다 지키고, 새치기 한번 안하고 어딜 가든 늘 줄 서 있고. 근데 어느 날 대통령이 바뀌니까 우측통행하라고 해서 얼마나 당황했는지.(웃음)” 

 

대통령이 바뀐다는 것은 비단 우측통행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2006년, 대한민국 정부는 어머니 이효정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했다. 그때 어머니 나이가 93세. 그렇게 ‘독립유공자’로의 삶을 4년 누린 후 세상을 떠나셨다. 시대와 함께 그 역시 변화했다. 나이 오십이 다 되어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와 대화를 하면서 독서량이 상당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냥 서점에 가서 닥치는 대로 책을 사서 혼자 읽었어요. 아마 87년 무렵부터였을 거예요. 『전환시대의 논리』도 그때 읽었어요. 부모님의 시대와 나의 삶을 해석하는 힘을 키울 수 있었죠. 

 

되찾은 봄   

독서 외에도 그의 삶을 지켜준 건 그림이었다. 먹고 사느라 바빴던 시절에도 늘 작은 수첩에 드로잉과 스케치를 하던 그가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게 된 건 나이 육십이 되고부터였다. 

“그때 내가 운영하던 작은 주물공장을 정리했어요. 돈 받을 것도 많았지만 이러다간 평생 돈 버는 데 매달려서 아무것도 못 할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아내에게 공장 정리한 돈을 주고 이제부터 난 그림 그리겠다고 했더니 좋다, 그리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때부터 계속 그림을 그렸죠. 개인전도 몇 번 했어요. 그런데 늘 이사를 다녀서 뭐 남은 게 없어요. 난 요즘 참 행복해요. 한번은 누가 나보고 물었어요. 지금까지 살아온 동안 언제가 가장 좋았냐고. 그래서 난 지금이라고 그랬어요. 지금 이때가 가장 좋다고. 사람들하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고, 오로지 그림만을 그리며 살 수 있으니까.” 

 

어머니가 독립유공자 인정을 받게 된 것, 그림을 원 없이 그릴 수 있게 된 것 말고도 그가 세상이 바뀌었음을 느낀 건 또 있었다.  

“촛불시위 할 때는 두 번 참여했어요. 그런데 길 한 가운데로 같이 나가지 못하고 바깥에 혼자 우두커니 서 있었어요.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더라고요. ‘와, 세상이 이렇게 바뀌는구나. 이 힘은 뭔가.’ 그렇게 촛불 하나 들고 길가에 서 있었는데…. 왜 나는 그 가운데로 못 끼는지 모르겠더라고요. 항상 그렇게 밖에서 서 있었어요. 근데 뭐라고 할까, 감동이라고 할까. 저 밑바닥에부터 가라앉아 있던 뭔가가 올라와요. 올라와서는…거기서 그렇게 울었어요.”

 

그의 눈이 붉어진다. 얘기를 듣는 나도 울컥 목이 멘다. 그렇게 그는 한참 동안 광화문 한켠에 서서 지난 세월의 묵은 때들을 덜어냈다. 그리고 올해 초 참여연대 회원이 되었고 지금은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전시를 앞두고 있다. 

“회원이 되니 자부심을 느껴요. 나도 참여연대 저 끄트머리에 한 발이라도 걸쳤다는 자부심.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누가 참여연대가 뭐냐고 물으면 참여라는 건 이런 거고, 연대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저런 거라고 얘기해주고 싶은데 아직 공부가 덜 돼서.” 

 

그의 전시회 제목은 ‘시골의 노인이 꽃을 꺾어드니 온 세계가 봄이로다.’ 오랜 세월 돌고 돌아 과연 그의 세계에 봄이 온 것일까. 그에게 참여연대에서 함께해보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물었다. 

“언제 참여연대 사람들과 같이 밖에 나가 그림 그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길을 가는 데 길동무가 있어야 해요. 길동무가 없으면 사람이 금방 지쳐요. 다리 아프다고 좀 앉고 싶다고 앉으면 그냥 거기 주저 앉아버려서 못 일어서거든요. 그렇지만 동무가 있으면 “야, 해지기 전에 좀 더 가자 하며, 서로 끌고 밀고 당기면서 가잖아요. 그래서 동무가 필요한 거예요. 참여연대가 가는 길이 바로 그런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림 그리는 얘기에 그의 표정이 금세 밝아진다. 마치 18세 소년으로 돌아간 듯 형, 선, 색에 대한 이야기, 색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결코 ‘쉰 음식처럼 시큼하고 맛이 간’ 이야기가 아니라 싱그럽고 화사한 봄꽃 같은 이야기다. 여든의 나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따뜻한 봄을 맞이하고 있는 그의 전시가 기다려진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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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2017년 7월호 제225호_김성욱 | 호서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기획주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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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간 연대는 계산기로 계산되지 않는다_이은주 | 민주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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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7/08/0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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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차 소성리 범국민 평화행동

 

제8차 소성리 범국민 평화행동

평화 온다 사드 가라!

 

2018년 7월 7일(토) 오후 3시, 성주 소성리

 

남북 정상회담의 <판문점 선언>과 북미 정상회담의 공동 성명까지, 한반도 대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의 시대가 선언되었고, 남·북·미 정상은 한반도 평화체제와 완전한 비핵화 등에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북한 핵·미사일 대응용이라 주장했던 사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사드 부지 공사는 그대로 진행되고 있고, 소성리 주민들은 오늘도 아침 저녁으로 사드 기지 앞 평화행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며 불법으로 배치된 사드를 그대로 두고, 평화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

 

대결과 적대의 산물 사드는 이제 철거되어야 합니다. 2016년 7월 한미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으로부터 2년, 소성리에 모여 다시 한 번 사드 배치 철회를 외칩니다. 함께 해요!

 

  • 주최 : 사드철회평화회의 (소성리사드철회 성주주민대책위원회,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원회, 원불교 성주성지수호비상대책위원회, 사드배치반대 대구경북대책위원회,사드배치저지 부울경대책위원회(가),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
  • 후원 : 농협 351-0967-8332-83 사드저지소성리종합상황실

 

금, 2018/06/1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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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 노동 문제 활동가, 복지를 말하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인터뷰 및 정리 조준희 |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비정규 노동자 규모 1000만 명, 정규직 대비 임금 53%, 평균 근속기간 약 2년 5개월. 비정규 노동이라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용어와 건조한 숫자 뒤에는 만성적인 고용불안정과 저임금 구조에 묶인 수많은 '삶'이 있다. 그 삶에서 복지는, 사회안전망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나라 최초의 비정규 노동 전문단체인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2000년부터 17년 동안 그 삶들과 함께하고 있다. 사회보험이 품지 못하는 불안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활동가를 만났다. 노동과 복지의 선순환이 필요하다 말하는 이남신 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 참여연대

 

자기소개 부탁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이하 비정규센터) 상임활동가 이남신이라고 한다. 원래 이랜드에서 17년 동안 정규직으로 근무하다가 투쟁 과정에서 해고된 상태라, 9년차 해고노동자 이기도 하다. 비정규센터에 오게 된지는 9년째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를 소개해 달라.

비정규센터는 2000년 5월 20일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비정규 노동 전문단체다. IMF외환위기 직후부터 비정규 노동자가 과반을 넘어섰는데, 정규직 노조 중심의 노동운동이 제몫을 못하는 사이 사각지대에 있는 비정규 노동자의 처지가 날로 열악해졌다. 비정규센터는 이런 문제를 다루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활동은 크게 현장연대와 정책연대 두 축으로 나뉜다. 현장연대는 노조를 만들기 위해 투쟁하는 비정규 노동자들, 그리고 노조를 만들어서 싸우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연대하는 활동이다. 그리고 비정규 노동 단체들이 지역별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 단체 간의 네트워크인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 ‘서울노동인권네트워크’를 만들고 강화하는 일도 한다.

정책연대 측면에서는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과 분석, 대안제시 활동을 한다. 그리고 비정규노동과 관련한 통계 작업도 중요한 정책 활동이다. 비정규직 규모에 대한 우리 단체와 통계청의 논쟁은 꽤나 유명한 논쟁이 되었다. 우리는 천만 명이라고 하면, 통계청은 5백만 명이라고 하는 식이다. 우리가 판정승했다고 평가하는데, 지금도 통계청의 조사결과를 재분석하는 작업을 계속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직종별, 고용형태별 실태조사나 중앙정부, 지방정부에 대한 정책제언 등 연구용역 작업도 같이 하고 있다. 격월간으로 「비정규노동」이라는 기관지도 발행하고 있다.

 

 

원래 이랜드의 정규직 노동자였는데, 이렇게 비정규 노동 운동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이랜드 노조는 정규직 노조였다. 나는 92년도에 입사해 팀장까지 올라간 상태에서 노조활동을 했는데, 그 바람에 해고와 구속을 경험했다. 나는 크리스천은 아니었는데, 직원 대부분이 크리스천이었고 노조 간부들도 거의 크리스천이었다. “낮은 곳으로 임하라”는 성경 가르침을 노조 간부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노동에 대한 관심이 컸다기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컸었던 것 같다. 이랜드 그룹 내 비정규 노동자들의 처지를 알게 되면서 회사와 크고 오랜 싸움이 시작되었다. 어떤 목적의식에 차있었다기보다 정말 열악한 상황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마땅히 함께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했다.

물론 나도 학생운동을 했고, 야학, 위장취업도 했었기 때문에 노동운동에 대한 지향이 없었다고는 못하겠지만 이랜드에서는 그보다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겪는 열악한 처지가 투쟁의 가장 큰 이유였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사회보험(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가입률이 낮다. 어떤 원인에 기인하는가?

작년 8월 기준으로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가입률은 1/2 내지 1/3 수준이다. 급여도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사회보험은 그보다도 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가 심하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회보험 가입률이 낮은 가장 큰 원인은 고질적인 저임금 구조에 있다. 비정규 노동자 대부분이 최저임금 언저리에 있다 보니 자부담이 있는 사회보험에 대해서는 가입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사용자들은 오히려 위법사항이기 때문에 4대 보험을 가입시키고자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저임금으로 인해 당사자들이 꺼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리고 지속적인 고용이 보장된 상태가 아니라는 점도 사회보험 가입률이 낮은 이유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실업급여 같은 경우 최소 6개월을 납입해야 하는데, 해고, 폐업 등의 이유로 6개월을 못넘기고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가입하는 의미가 크지 않다. 이렇게 최저임금에 수렴되는 저임금 구조와 불안정한 노동조건으로 사회보험의 그물망에서 벗어나게 되면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다. 주무부처나 공단이 그 실태를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루살이 인생처럼 살아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중장기적 미래를 고려한 사회보험 가입은 쉽지 않다. 결국 고용불안정과 저임금 구조가 해결되지 않는 한 비정규 노동자의 사회보험 가입률은 올리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번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사회보험에 대한 부담을 경감시켜 준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임금이 올라가는 만큼 가입률도 올라갈 것이다. 결국 사회보험 가입률 자체는 결과다. 그 근본 원인인 고용안정과 생활임금 수준으로의 임금인상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선행조건이 해결된다면, 사회보험 가입률이 단번에 정규직 수준까지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더라도 70% 수준 내외로 올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본다.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 등 저임금 노동자의 사회보험료를 지원하는 두루누리 사업 등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보험료를 지원하는 정책 기조에 대해 평가한다면?

분명 필요는 하다. 그런데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복지는 2차 분배고 임금은 1차 분배다. 1차 분배인 임금이 제대로 지불되면 복지 수요는 최소화된다. 현재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면세점 이하의 소득을 얻고 있다. 그러니 재정안정에는 기여하지 못하면서 복지 수요는 극대화되는 양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생활임금 수준으로 임금이 인상되면 국가재정기반도 튼튼해지고 복지수요는 최소화되는 양상으로 전환될 수 있다. 다만 현재 지나치게 사각지대가 넓은 상황이기 때문에, 두루누리 사업 등 보험료 지원정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정부지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정규직 노조가 주축이 되는 양대노총이 사회보험 사각지대, 특히 국민연금과 고용보험 같이 삶과 직결되는 부분에 대한 책임을 가지는 것이다. 정부처럼 책임을 져야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정규직 노조가 갖고 있는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 책임의 경중을 따지자면 당연히 정부와 사용자 측이 훨씬 무거운 것이 사실이지만, 양대노총을 위시한 정규직 산별노조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지금처럼 임금격차, 사회복지 격차가 벌어진 현실에서는 노동조합이 마땅히 해야 할 책무로서 복지안전망 바깥에 있는 저임금 노동자 문제를 위해 갖고 있는 자원을 내어 놓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10인 미만 사업장의 저임금 노동자를 지원하는 정부 정책은 분명 과도기적으로 의미가 있고, 1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이나 영세 자영업자 영역으로 확대할 필요성도 있다. 이와 더불어 노동조합도 일정부분 역할을 하는 등 사회 전체가 저임금 노동자의 사회보험 가입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규직 노조가 기여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가?

결국 문제는 재원이다. 노사가 합의해서 자기 사업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정규직화 기금을 구축하는 것도 한 방법이고, 사회연대기금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사회보험 사각지대의 노동자 복지를 위해 기금을 활용하는 것이다. 통상임금과 같이 정규직 노동자들이 누리고 있는 자원을 어떤 식으로든 나눠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은 두루누리 사업을 보완하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 자체로서 실추된 노동조합의 위상 복원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노-노 간 협력도 강화될 것이다.

더불어, 사회보험 사각지대의 노동자들은 상당히 다양한 양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는 실태파악조차 힘들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도 현장 단위의 노동조합이 개입하면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복지 문제에서 노동조합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부와 사용자의 책임이 제일 무겁지만, 노조가 견인차 역할을 해줘야 할 때다.

 

 

당위성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도 정규직 노조가 나설 이유는 있어 보이는데,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잘 안 되고 있다. 우선 복지국가, 사회복지와 같은 개념을 노동의제와 별개로 보는 시각도 상당부분 존재하고,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 사회로 가는 데 있어서 복지를 개량주의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시각도 있다. 물론 지금은 달라지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로 조금씩 들어오게 되면서 달라지는 면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 간 복지 의제에 대한 체감 격차는 큰 상황이다.

나는 노동과 복지는 선순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지는 개량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혁명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미조직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견인하는 데 있어서는 복지의 역할이 필요하다. 지금도 비정규 노동자의 98%가 노동조합 바깥의 노동자들인데, 그들에게 제대로 된 복지가 제공된다는 것, 제대로 된 사회안전망이 갖춰진다는 것은 결국 노동조합 조직률 제고에 도움이 되고, 그것이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 노동자의 삶 전체에 좋은 순환을 만드는 시작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지렛대로서 노동운동을 이끌어가는 노총 지도부, 산별노조 등 정규직 노조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

 

 

사회복지 영역도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유명하다. 이와 관련한 활동경험을 소개해준다면?

특수고용노동자로서의 간병인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적은 있지만, 사회서비스 분야의 비정규 노동 전반에 대해 깊게 살펴보지는 못했다. 일부 조직화된 부문도 있지만, 사회서비스 분야는 여전히 미조직 노동자들이 많아 우리와 접점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사회서비스공단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주요부문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주목하고자 한다. 그동안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던 대표적 영역이기 때문에, 정부 정책이 사회복지 영역의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지 관심 갖고 지켜보고자 한다.

 

 

그렇다면 정부의 사회복지 영역을 포함한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과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등의 대책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방향성은 기본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사회서비스공단의 성격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판단의 여지는 있다. 결국 핵심은 고용안정성과 처우가 개선되느냐 여부다. 그런 부분을 담보할 수 있도록, 공단이 진성 정규직 일자리 공급자로서 설계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정부는 상당히 큰 규모의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고 있지만 양적인 면을 떠나 질적인 부분에서 기존 사회서비스 일자리가 갖고 있는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다고 지금 장담하기는 어렵다. 보다 면밀한 로드맵과 시뮬레이션, 예산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

어쨌든 공단 방식이 고용안정성 면에서 개선을 가져올 가능성은 높다. 그렇다면 결국 처우개선이 동반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공단이 설립된 뒤, 당사자들이 공단 내에서 노조를 조직해 협상을 통한 처우개선을 해나가야만 단단하고 짜임새 있는 고용 모델이 나올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도 사회서비스공단의 목적을 달성하고 싶다면 헌법상 보장된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의 노조 조직할 권리를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2017년 7월 12일. 태광-티브로드 원하청 교섭결렬 규탄 기자회견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최저임금 인상이었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들어가 협상하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한숨 돌리고 되돌아보니 너무 소중한 성과였다는 생각이 든다. 직접 적용 당사자가 최소 300만, 차상위 까지 포함하면 500만 이상 노동자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결정이니 말이다. 그 성과를 만드는 과정에서 양대노총이 처음으로 제 역할을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결국 이 16.4%, 1,060원의 인상은 촛불시민혁명의 힘이 나타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동안의 활동을 되돌아보면 비정규 노동운동을 하다 죽어간 사람들이 많이 기억난다. 아끼던 사람들의 죽음은 쉽게 무뎌지지 않는 상처가 된다. 그런 상처들은 내가 어려울 때, 유혹이 있을 때, 초심을 지켜야할 때 떠오르는 일종의 이정표와 같다. "내가 이 길을 가면 그 녀석이 욕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그런 이정표다. 그리고 기록되지 않은, 이름 없이 죽어간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비정규 노동 운동이 부끄럽지 않아야한다는 생각을 늘 한다.

 

 

향후 활동계획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 동안이 ‘투쟁모드’였다면, 지금은 ‘대안모드’로 돌입하고 있다. 비정규센터 조돈문 대표님이 양대노총과 더불어 일자리위원회에 노동계 대표로 들어가 있고, 그 외에도 많은 정책위원들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관련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어서 그 책임을 무겁게 느낀다. 비정규센터가 그동안 투쟁했던 목표의 상당부분이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반영되었다. 그 약속들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결국 최저임금 인상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1단계는 이룬 것으로 보고 있고, 이제 관건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다. 궁극적으로는 문재인 정부가 끝나도 계속 지속될 수 있는, 양질의 단단한 정규직 모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포석을 까는 것이 비정규 노동 전문단체의 역할이 아닐까.

다만 민간영역은 여전히 투쟁해야할 곳이 많다. 지금도 삼성전자서비스, 희망연대노조 등 간접고용노동자 문제로 열심히 투쟁을 이어가는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공공이 모범적인 사용자로서 역할 하는 만큼 그 영향이 민간으로도 확대되기 때문이다. 촛불시민혁명에 힘입어 당선된 문재인 정부 임기 안에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아우르는 비정규 문제 개선과 해결의 결정적 분기점을 만드는 활동을 활발하게 펼쳐나가고 싶다.

 

금, 2017/09/0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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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적 금융개혁과제 외면하는 금융위원회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서민금융진흥원 정비, 기촉법 폐지, 케이뱅크 사후 처리 등 난제와 “스스로의 개혁 과제”는 외면
4차 산업혁명과 금융혁신 슬로건에 금융소비자 보호 훼손될 가능성  


최근(9/18),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이하 “정무위”)에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 업무보고를 통해 향후 금융위가 추구할 정책방향과 정책과제를 밝혔다. 이 업무보고에는 ▲서민의 금융부담 완화 방안,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금융그룹에 대한 통합감독 방안 등이 포함되어 있어 종전보다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마치 “자기 스스로의 개혁은 외면하듯” 금융위의 기득권과 관련된 부분이나 과거의 정책적 잘못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는 완강하게 과거의 입장을 고수했다. ▲서민금융진흥원과 신용회복위원회(이하 “신복위”)의 연계 강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하 “기촉법”) 폐지 반대 등이 그것이다. 인터넷전문은행과 관련해서도 최 위원장은 ▲은산분리 완화, ▲케이뱅크 인가의 적법성 등을 주장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잘못된 정책들로 인한 과오를 덮기 위해 객관적 사실관계까지 외면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4차 산업혁명과 금융혁신을 내세우며 금융산업 육성을 주장하는 몸짓이 “금융회사의 건전성 제고와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감독당국 본연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소장 : 김성진 변호사)는 정권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금융개혁 정책만을 수용한 채, 자기 자신을 상대로 한 본질적인 개혁은 외면하고 있는 금융위의 문제 인식을 개탄하며,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는 4차 산업혁명의 장밋빛 환상에서 깨어나서 “금융감독기구를 금융감독기구답게” 만들기 위한 근본적 개혁에 착수할 것을 촉구한다.

 

이번 금융위의 국회 정무위 업무보고에는 ▲카드 수수료 및 이자제한법상 최고금리 인하, ▲소멸시효완성채권 소각, ▲국민행복기금 보유 잔여채권 정리, ▲장기・소액 연체채권 매입정리 등 서민의 금융 부담을 완화해 주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이 내용들은 지난 해 4·13 총선 때부터 더불어민주당이 경제민주화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던 내용이다. 또한 ▲대출모집인이나 대부광고 규제,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 등 금융소비자 보호와 관련한 부분도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내용이다. 아울러 ▲금융그룹에 대한 통합감독 방안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금융회사들이 기업집단에 포함된 계열회사 형태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금융감독의 대상을 단순히 개별 금융회사 차원이 아니라 금융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금융그룹으로 확대되는 것은 당연하고도 필요한 정책방향이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 업무보고는 이처럼 일부 긍정적이고 진일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치금융과 금융적폐를 청산하고 금융감독기구 본연의 역할을 공고히 한다는 측면에서는 많은 부족함을 안고 있다. 우선 서민금융 정책의 정상화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을 발견할 수 없다. 서민금융은 단순히 “돈을 쉽게 대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상환능력에 대한 심사를 엄격히 하고, 상환능력이 없는 서민에 대해서는 대출이 아니라 복지 혜택을 제공하고, 상환능력이 있는 서민에 대해서는 과잉대부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독하고, 상환능력을 사후에 상실한 개인 채무자에 대해서는 조기에 공정한 채무조정이 가능한 제도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특히 공정한 채무조정과 관련해서는 현재 채권자 우위인 “기울어진 운동장”을 보다 채무자 우호적인 환경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번 금융위 업무보고에는 “서민금융진흥원과 신복위간의 연계를 강화”(업무보고자료 제3쪽 중하단)한다고 하여 자금제공기관인 서민금융진흥원과 채권자를 위한 채권조정기구인 신복위간의 연관성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이 문제는 서민금융진흥원 설립 당시부터 크게 논란이 되었던 부분으로 금융위는 두 기구의 연계성을 단절하는 것을 기본 전제로 국회로부터 서민금융진흥원의 설립을 승인받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금융위는 국회와의 약속을 뒤집고 앞으로 두 기구의 연계성 강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잘못된 것으로 금융위는 두 기구의 단절을 분명히 하고, 조속하게 채무자 우호적인 채무조정 방안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기업구조조정 권한을 계속 보유하려는 금융위의 기득권 수호 노력 역시 문제가 되는 대목이다. 대우조선해양이나 성동조선 등 조선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금융위는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실기하여 막대한 규모의 공적 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구조조정 성과를 성취하지 못하였고, 반대로 한진해운의 경우에는 어정쩡한 시점에 법정관리 신청을 사실상 강제함으로써 오히려 해운업의 정상화에 걸림돌이 되었다는 평가가 많다. 금융감독 당국이 비금융회사의 구조조정에 개입하는 것은 정상적인 금융감독 업무라고 볼 수 없는 과거 관치금융 시대의 잘못된 유산일 뿐이다. 과거 도산 제도가 불비하고, 부실기업 매물을 소화해 줄 자본시장이 미성숙했던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관치에 의한 기업구조조정이 정당화될 수 있었으나, 선진국과 비교해도 거의 손색이 없는 통합도산법 체계를 갖추고, 회생전문법원까지 출범한 지금 과거의 관행과 논리만을 앞세워 관치금융을 영속화할 수는 없다. 금융위가 업무보고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자본시장을 활용한 구조조정 활성화 여건 조성”(업무보고자료 제18쪽 하단)을 위해서도 금융위가 기업구조조정을 직접 관장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따라서 관치금융을 활용한 기업구조조정을 가능하게 하는 법적 수단인 기촉법은 더 이상 연장되거나 상설화되어서는 안 되고, 일몰 시한이 도래하면 그것을 계기로 폐지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번 금융위 업무보고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금융위가 우리나라 금융의 본질적 문제점을 도외시하고 청와대와 집권 여당 그리고 시민사회가 요구해온 개혁조치의 최소한으로 수용하면서, 한편으로는 종래의 기득권을 수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권의 입맛에 들기 위해 “금융산업의 육성”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계속 활용하려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민금융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은 채 그저 표면적 과제인 소멸시효완성채권의 처리만 신경 쓰고, 금융그룹의 감독과 관련하여 계열분리명령제와 같은 구조적 교정수단에는 입을 다물고, 자본 적정성과 위험관리까지만 언급한 점은 “요구받은 최소한만 한다”는 금융위의 수동적 사고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다 우려스러운 점은 금융위가 4차 산업혁명을 운운하면서 “금융혁신지원특별법”을 제정해서 “규제 면제를 통한 시범영업”을 추진하겠다는 점이다. 그동안 크고 작은 금융사고의 이면에 금융산업 육성을 앞세워 금융건전성과 소비자 보호 규제를 완화해 온 “금융위의 무책임한 불장난”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과연 이런 금융위의 업무 방향이 또 다른 위기의 불씨를 만드는 것은 아닌지 매우 우려스럽다.

 

금융은 하루아침에 발전하는 것이 아니고, 감독당국이 규제완화를 통해서 금융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금융위는 금융회사의 건전성 제고, 공정하고 투명한 금융시장 정착, 금융소비자 보호, 금융적폐 청산과 금융사고 예방 등과 같은 금융감독 당국 본연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려고 하기보다는 “금융규제 완화를 통한 금융산업 육성”을 내세워 정권의 눈에 들고 그를 통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왜곡된 행태로 일관해왔다. 이번 금융위의 업무보고 역시 그런 구태를 그대로 담고 있다. 결국 “자기 개혁은 스스로 못한다”는 것만 확인해 준 것이다. 참여연대는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가 이와 같은 금융위의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고, 4차 산업혁명을 앞세워 금융위의 개혁을 지연시킬 것이 아니라 “금융감독기구를 금융감독기구답게” 만들기 위한 근본적 개혁에 착수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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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7/09/2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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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임금체불을 감내해야 하는 공동체’는 정의로운 공동체가 아니다

노동자의 권리 부정하는 이언주 의원의 천박한 인식 다시 드러나  
국민의당, 공당으로서 원내수석부대표의 이번 발언과 자당의 임금체불 관련 대선공약에 대한 입장 밝혀야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인 이언주 의원은 오늘(7/25) 제34차 원내대책회의에서 임금체불을 노동자가 감수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goo.gl/KonuPm). 2016년 신고사건과 근로감독을 합쳐 50만 명에 육박하는 노동자가 임금체불을 겪었다. 누구보다도 노동자의 권리 보장에 힘써야 할 국회의원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포기하는 것이 공동체의식이라고 발언했다. 마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임금체불 관행을 정당화해주는 것 같아 듣고도 믿기 어려우며,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임금은 노동자에게 생존이다. 노동자가 임금체불을 감내해야 하는 공동체는 더 이상 정의롭지 않다.  

 

이언주 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비판받자, 임금체불은 법적으로 대응할 실익이 없다는 점,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2018년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된 것은 비정규직의 확대와 극심한 사회적 양극화로 인한 빈곤층의 증가와 내수 감소를 해결하기 위해 취약계층의 소득 증대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도출된 것이다. 이언주 의원의 발언은 사회적 양극화 해소에 관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기존의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으로,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다.  

 

​우리 사회에서 임금체불은 매우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이다. 또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에 대한 저임금 문제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을 만큼 분배정의를 왜곡하고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훼손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지난 대선에서 최저임금법, 근로기준법 위반 사업주에 대한 처벌과 제재를 강화하고, 임금체불 예측시스템을 구축하며, 체불임금에 대한 부가금 및 지연이자제 도입, 체불임금 국가 우선지급 및 체당금 지급대상 확대 등 임금체불과 관련한 각종 공약을 발표하였다. 임금체불과 관련한 국민의당의 대선공약이 공약(空約)이 아니라 매년 수십만 명의 노동자가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박탈당하는 현실을 진심으로 해결하고자 만든 국민과의 약속이었다면, 국민의당은 불과 3개월 전 공개한 임금체불과 관련한 자당의 공약과 원내수석부대표인 이언주 의원의 발언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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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7/07/25-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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