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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1]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본 ‘미투 운동’의 사회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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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1]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본 ‘미투 운동’의 사회적 의미

익명 (미확인) | 일, 2018/04/01- 17:44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본 ‘미투 운동’의 사회적 의미1

 

 

이나영 |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새로운 페미니즘은 사회적 평등을 위한 진지한 정치운동의 단순한 부활이 아니”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견고한 계급-카스트 제도를 뒤집어 업는 것”을 목적으로 한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혁명의 두 번째 물결”(슐라미스 파이어스톤, 1972, 『성의 변증법』(The Dialectic of Sex)

 

지금 현재 우리 사회는 ‘미투(#MeToo) 운동’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파도를 타고 있다.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1월 29일 JTBC 뉴스룸 시간에 나와 검찰 내 성폭력 피해를 밝힌 이후, 여성들의 피해 사실 폭로는 문화예술계, 학계, 종교계, 정치계 등 전 방위적으로 확대되는 중이다. 당시 인터뷰 자리에서 서 검사는 왜 이런 폭로를 하게 됐는지 이유를 밝히면서, 성폭력 관련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가 더 이상의 피해를 입지 않고 근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무엇보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 사회 권력 구조의 상층부에 놓여 있다고 여겨진 고위직 검사마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성폭력 피해에 노출되고, 이에 문제제기하는데 8년이나 걸렸다는 사실은 한국사회 전반을 아래로부터 흔들었다. 그의 이야기처럼 “자신이 돌고 있는 것인지 세상이 돌고 있는 것인지” 몰라 “꾹꾹 삼키고 또 삼켜냈던” 경험들이 오랫동안 억눌렸던 여성들의 기억을 세상으로 끄집어내는데 기여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음모론과 진영논리에 빠져 피해자의 의도를 의심하고 평소의 행실을 따져 물으며 피해자의 자격을 운운한다.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그간 저지른 수많은 가해 행위들을 성찰하기는커녕 성폭력을 ‘성도착증’으로 병리화하거나 특정 개인을 악마화하며, ‘터치는 있었으되 성폭력은 없었다’며, 남의 집 불구경 하듯 희희낙락 정쟁에 활용하기 바쁘다. 심지어 문제를 제기하고 공론화하며 사안의 본질인 성별 권력관계와 성차별적 구조를 이야기하는 여성들을 ‘페미나치(페미니스트 나치의 줄임말)’로 몰아 낙인화하기도 한다. ‘여자들이 문제’니 분리하고 배제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시 문제는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다. 

 

아직도 진행 중인 이 운동을 정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지난 한 달 반 동안 필자가 가장 많이 받았던 몇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운동의 ‘잠정적’ 의미를 살펴보려 한다. 단순히 ‘개별적 감정의 분출’ 정도로 ‘오해,’ 또는 축소하고 역사적 흐름을 역행하려는 시도가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성평등 결핍된’ 민주주의와 ‘미투 혁명’

“의원실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여성을 일종의 ‘소모품’이나 ‘꽃’ 정도로 치부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ㄱ씨는 “어떤 의원실에 예쁜 비서가 들어왔다고 하면 금세 소문이 나고 몇 달 있으면 ‘내가 OO랑 잤는데 말이야…’ 식의 ‘무용담(?)이 돈다”면서 “정작 그 여성 앞에서는 정중한 척, 예의바른 척 행동하면서 온갖 성희롱·성추문이 일어난다”고 했다. 현재 국회를 떠나 사기업에서 근무 중인 ㄴ씨는 “의원님이 수행비서도 아닌 여비서를 자꾸 업무에 대동하는 일이 있었다”면서 “몇 달 뒤 그 비서가 그만뒀는데 의원실 사람들은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하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 그 의원님은 요즘 밤잠을 못 주무셨을 것”이라고 했다“(국회 대나무 숲, 경향신문, 2018년 3월 10일).2) 

 

우선, 현재의 ‘미투 운동’이 ‘남녀관계,’ 혹은 개인 간 발생하는 성희롱과 무관한 ‘권력형,’ 혹은 ‘갑질’ 성폭력의 문제일까? 그저 ‘나쁜 손버릇’, ‘자제하지 못한 성욕’, 개인의 ‘비도덕적 행위’, ‘성추문’, 혹은 특정 조직의 ‘특수문제’일까? 남성지배사회에서 성별 권력관계와 무관한 권력형 성폭력이란 개념은 애초에 성립 불가능하다. 성별(gender) 자체가 권력관계를 내장하고 있다. 단순히 동등하되 이분법적으로 나뉜 남성성과 여성성, ‘적절히’ 배분된 역할이 아니다.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성별은 이미 존재하는 권력관계의 효과이며 새로운 권력관계를 생성하는 원인이다. 남성(성)만 인간의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여성(성)은 열등한 것, 부차적인 것, 성적인 것, 심지어 ‘낮은 사회적 지위’ 자체를 의미한다. 중학교 남학생이 여성 교사를, 남성 환자가 여성 의사를 성희롱할 수 있는 이유이다. 물론 그 남성과 여성은 성별 질서뿐 아니라, 계급, 인종, 성적 정체성, 장애여부 등 다양한 차이들로 구성되어 있다.3) 그러므로 성폭력은 기본적으로 성별권력 관계에서 파생하지만, 다른 차별구조와 교차해 더 심화되거나 약화되기도 한다. ‘성폭력은 구조적 성차별의 문제’라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해야 조직 및 집단 간 차이와 특수성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이유이다. 

 

둘째, 한국의 ‘미투 운동’이 헐리우드 발 #MeToo 운동의 후속, 아류, 혹은 변종일까? 그렇지 않다. 길게는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부터 진행된 동등권운동, 반식민지독립운동, 짧게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에 본격화된 진보여성운동 단체들의 형성과 반성폭력운동, 여성인권운동, 2000년을 전후로 진보운동권 내 성폭력 문제를 제기한 ‘100인 위원회’, 더 최근에는 ‘성폭력 피해 경험 말하기’, 2015년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진행된 ‘성폭력 필리버스터,’ ‘#OO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 이르기까지, 한국여성운동의 오랜 역사를 먼저 봐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돌출된 운동이 아니라, ‘관습’과 ‘문화’란 이름으로 정당화되어 왔던 차별구조에 지속적으로 의문을 던지며 저항하고, 시대를 거슬렀던 여성들의 역사 속에서 이번 ‘미투 운동’을 맥락화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여성시민들은 오랫동안 기득권, 반민주, 독재, 부패 세력, 식민지 ‘백성 마인드’를 갇힌 ‘보수 세력’에 저항해 왔으며, 계급부정의 이외에 다른 영역에 무감한 ‘진보 세력’들과도 쟁투해 왔다. 진영을 넘나들며 형성한 남성연대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여성인권 향상을 위해 전진해 왔다. 서구의 여성운동에서 ‘물결’(WAVE)이라는 용어가 파장, 파동, 물결, 파도의 다중적 의미를 지니듯, 한국의 경우도 잠복과 돌출, 후퇴와 전진, 흩어짐과 뭉침, 진지전과 전면전 등을 통해 파장을 일으키고 커다란 파도를 만들며 세상을 변화시켜 왔던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여성들에 의해 주도 되었으되 세계를 흔든 ‘미투 운동’의 원조로 일본군 성노예제로 고통당하셨던 김학순 할머니의 커밍아웃을 기억해야 한다. 가해자의 지속적인 부인에 분통을 터뜨리며 세상에 나왔다고 했던 할머니의 증언은 반세기 가까이 봉인되었던 끔찍한 성노예제의 실상을 폭로하며 전 세계 시민들을 무지의 늪에서 일깨웠다. 덕분에 국내는 물론 다른 나라의 피해자들 또한 앞 다투어 세상에 나왔다. 가부장제와 식민주의 지배체제 하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진 중층적 부정의와 싸우며 피해자에서 생존자로, 다시 활동가로 변화하던 할머니들의 모습 덕분에 우리 시민의식은 또 얼마나 많이 성장했던가. 미국의 #MeToo 운동과 서지현 검사의 용감한 고백이 이번 ‘미투 운동’의 도화선 혹은 변곡점은 될 수는 있으되 원인이 아닌 이유이다. 

 

셋째, ‘진보진영’ 내에서 유독 사건화가 많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수진영이 더 ‘도덕적’이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서구 여성운동 ‘제2의 물결’을 상기하면 답이 나옵니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진보적 학생운동과 시민운동 영역에 있던 여성들은 남성혁명가들이 지향하던 민주, 평등, 해방이라는 가치가 여성들에도 동일하게 적용해 달라고 호소하는 바로 그 순간 부인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일상 속에서 개인이 겪는 사적인 문제가 거대한 구조에 기인한다는 신좌파의 구호가 여성들에게만 유독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여성들은 진보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했던 ‘성혁명’이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를 해소하기는커녕, 더 취약한 상황으로 내모는 상황에 분노했다. 여성을 남성의 성적 욕망을 배출하는 ‘쓰레기통’, 혹은 언제든 받아주는 ‘용기’로 취급하면서, 공적 영역에서는 여전히 보조적인 존재로 비하하고 배제하는 남성들의 태도에 격분한 것이다. 여성들은 분연히 일어나 의식고양 모임을 구성하고 여성만의 조직을 만들며 ‘여성문제’라 치부되던 사안들을 본격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구호는 그래서 당시 페미니스트들의 핵심 구호가 되었다. 개별적 문제가 결코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결과 때문이 아니며, 여성들의 고통이 사소한 것이 아니라 구조적 차별의 결과이기 때문에 주요한 정치적 의제로 다뤄져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해방의 주체와 대상 모두에 여성이 빠져 있다는 인식, 민주주의, 평등, 인권이라는 가치에서 여성은 배제되어 있다는 인식이 여성들을 페미니스트로 각성시킨 것이다. 이들은 동등참여,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물론, 낙태죄 폐지와 재생산권,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데이트 성폭력, 음란물, 성상품화 등을 공론화하고 이론화하며 변혁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단순히 기계적 ‘양성평등’이나 형식적 권리 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이 아니라 뿌리 깊은 성차별 문화를 해체하고자 전 방위적 혁명을 요구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진보 운동권 내 성차별과 성폭력 문화가 결국 서구 역사상, 아니 전 세계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친 거대한 페미니스트 운동의 물결을 결과한 것이다. 보수 진영에서 성폭력과 성차별에 대한 고발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는 그래서 자명하다. 그들은 진보적 가치 자체를 체화하고 실천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성차별에 무감함은 물론, 성평등 감수성를 장착한 여성들이 애초에 진입하기 어려운 토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미투 운동’은 그래서 감히 ‘미투 혁명’이라 부를 수 있다. 주로 진보진영의 여성들, 페미니스트로 각성한 여성들이 주도하는 이 운동은 아마도 한 세기 이상 진행된 한국 ‘여성해방’ 운동의 역사에서 가장 커다란 해일이 될 것이다. 지난 대선 시기 페미니스트들의 주된 구호인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를 상기하면 2018년 ‘미투 운동’은 성평등이 결핍된 ‘민주주의’를 완성하고자 하기에 ‘제2의 민주화 운동’이며, 구체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아래로부터 분연히 일어난 ‘시민 혁명’이다.

 

넷째, 여성들의 ‘폭로’는 왜 지속될까? 왜 개별적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끄집어내고 있을까? 물론 처벌은커녕 지속적으로 사실을 부인하고, “지금도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가해자, 심지어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며 사회적 타살을 감행한 남성들에 대해 쌓였던 개별적 분노가 폭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피해자의 말에 귀기울기는커녕 가해자를 두둔하고 2차 가해를 일삼던 우리 모두에 대해, 구멍 난 법과 제도조차 작동하지 않았던 현실에 대해, 일제히 공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믿을 구석이라곤 유사한 경험을 한 다른 여성들의 목소리와 지지밖에 없기에, 보이지 않는 피해자들을 지속적으로 호명하고 상호 말걸기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너무 어려서”, “뭔지 몰라서”, “말해도 소용이 없어서”, “소문이 두려워” 잊고자 했던, 그 봉인된 기억과 마주하고 재해석하고, “치유된 줄[만] 알았던” 상처를 들여다보고, 쓰다듬고 치유하는 중이기도 하다. 서지현 검사의 말대로 “내 잘못이 아니었다”고 다독이면서, 미처 생각지 못한 다른 이들의 상처도 다시 돌아보고 있다. 일본군 성노예제의 생존자들처럼 말이다. “사랑합니다”, “응원합니다”, “지지합니다”, “힘내세요” 등 피해자들 옆에, 뒤에 함께 서서 그저 응원하고 손잡겠다는 메시지는, “나도 같은 여자다” 라는 선언과 연결되며, “가슴이 터질” 듯, 그래서 “한잠도 자지 못하고,” “눈물이 흐르는” 감정으로 공유된다. 

 

‘근근이’ 살아남은 자들 간 형성된 이 공감대는 희생되고 사라져 간 자들의 ‘이유’를 묻는 행위로 연결된다. 이 심문의 과정은 “너무 어려서” “그게 뭔지 몰라서” “내 잘못인 줄 알아서” “말해도 소용이 없어서” “소문이 두려워” 묻어 두었던 개인의 경험과 필연적으로 만난다. 잊고자 했던 그 “봉인된” 기억 속으로 자맥질하다 보면, “치유된 줄[만] 알았던” 상처 내면에 깊이 잠복해 있던 두려움에 대한 예기치 못한 돌출을 경험하게 된다. 끔찍한 피해를 당해도 그 피해 사실을 누가 알까 두렵고, 뒷담화의 먹잇감이 될까 두렵고, ‘잘못 찍혀 조직을 떠날까,’ 사회적 경력을 포기할까 두렵고, 세월이 지나 ‘그 세계를 떠난 후’에도 가해자를 다시 만날까 무섭고, (또) 찾아올지 몰라 두렵고, 보복할지 몰라 밤길을 되돌아보고, 발신인 없는 전화에 심장이 덜컹하고 머리카락이 쭈뼛 서던 수많은 날들을 떠올리면, 그 공포는 기실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그리고 지금, 여기, 늦은 밤길을 지날 때, 낯선 남자와 엘리베이터를 탈 때, 새로 사귄 애인과 함께 있을 때, 술자리에서, 혹은 남성지배적 조직에서 ‘여전히’ 느끼는 일상의 불안 또한 과거의 그 감각과 ‘몸서리치게’ 얽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 올라오는 이 감정들은 기억의 퇴적층에 켜켜이 쌓여 있던 여성 공통의 억압된 경험들의 집단 아우성이다. 더 나아가, 그때 말하지 못한 나, 중단시키지 못한 나, 사과를 요구하지 못한 나, 다른 이들이 고통을 당할 때 선 듯 손 내밀지 못한 나, 외면한 나, 듣지 않은 나. 우리 모두는 사건을 묵인하고 방조하고 동조한 자이자, 가해자이며, 시스템에 순응한 자이자, 종내는 차별적 구조를 재생산한 책임을 진 자라는 죄책감마저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공식/비공식적으로 피해자를 응원하고 자신의 피해의 경험을 들여다보며 쓰다듬는데 그치지 않고, 각자의 반성문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조민기씨 등의 자살로 반동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지 않나? 지금 사태의 책임은 모두 남성들에게 있다. 한 도지사의 성폭력이 왜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는지 잘 생각해 보자. 그가 평소 자유와 인권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했을 뿐 아니라, 통상 가해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일성인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아래로부터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그럴만한 ‘환자’ 혹은 ‘악마’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가부장적 남성중심 사회에서 남자로 키워진 모든 사람들이 가해행위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우리 모두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럴만한 남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불같이 일어나고 있는 ‘미투 운동’은 수직적 위계문화 속에서 타인을 통제하고 지배하고 제압하고 군림해야만 남자답다고 여기는 사고, 폭력적 남성성을 획득하고 실행하던 수많은 남성들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성폭력은 여성문제가 아니다. 성차별적 구조를 만들고 누리고 공기처럼 혜택을 마시고 재생산해 온 남성들의 문제이다. 시대가 바뀌었고 시민의식이 성장했음에도 여전히 가부장적 인식에 사로잡혀 여성을 동등한 시민, 동지, 동료로 보지 않았던, 그래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여전히 여성스러움과 성적 매력을 풍겨야 하고 남성들의 요구에 순종적으로 응해야 한다고 여기며, 배제하고 비하하고 희롱하고 무시하고 때리고 성폭력을 행사했던 남성들의 문제다. 

 

그러므로 폭력의 제3자이자 동조자, 묵인자, 방관자인 우리는, 이번 기회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행했던 가해 경험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일생을 통해 축적된 가해자성을 성찰하는 일은 구조적 부정의의 (재)생산 회로를 끊기 위한 실질적 노력과 연결되어야 한다. 의료, 보건, 안전, 교육, 과학 체계 등 모든 지식에서 인간의 모델일 남성이었을 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전반이 남성에 의해 장악되어 왔고, 남성들의 이익에 영합해 왔으며, 이들의 특권을 유지하는 도구였음을 인지하고 계속 드러내야 한다. ‘여성문제’가 아니라 ‘남성문제’라는 새로운 명명작업을 통해 프레임을 전환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성폭력, 성희롱, 성매매, 음란물, 디지털 성폭력 등 전방위적으로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 그 가해자가 대부분 남성이라는 사실은 24시간 남성을 지배하는 의식과 무의식이 전면적으로 개조되지 않는 한 변화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지닌 이 인식론적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성별 간 극심한 인식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번 ‘미투 운동’을 사회변화를 위한 계기로 승화시키기 위해, 스스로가 일상에서 자행한 일들을 차분히 성찰해야 한다. 법과 제도의 변화는 전제 조건일 뿐이다. 미세한 세포조직처럼 곳곳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성차별적 의식과 구조-우리 사회의 가장 오랜 적폐-를 개혁하는데 나부터 적극 동참해야 한다.

 

 

‘모두’를 위한 촛불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여성들은 그간 사소한 일이라고 무시하거나, 무지함으로 ‘면피’하려 하거나, 심지어 ‘물타기’ 등 진영논리로 끌고 가려했던 모든 이들의 갖은 시도를 돌파하면서 생존자에서 증언자로 나서고 있다. 피해자의 자격을 묻던 이들에게 가해자의 보편성을 이야기한다. 개인의 아픔을 헤집고 직시하며 생을 걸고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전면화함으로써 기존의 선/악, 진보/보수라는 이분법을 넘어, 민주주의에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 직시하자고 주문하고 있다. 여성은 아직도 인간이 아니며, 대한민국은 ‘아직도 모두를 위한 나라가 아니’라고 절규하고 있다. 촛불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성녀이거나 여왕이거나 유명한 남성의 적극적 내조자이거나 총애 받는 애첩이거나 기생이거나, 사회면을 장식할 만큼 유명한 범죄극의 주인공이 아니면 세상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던 시절, 미친 여자, 괴물, 마녀, 더러운 **, ‘개혁망상증에 걸린 정신착란’, ‘신경증 환자’, ‘혁명 히스테리 환자’, ‘정신 나간 주정뱅이’ 등 각종 조롱과 모욕과 손가락질과 공격에도 ‘여성도 인간’이라고 외쳤던 몇몇 여성들의 이야기와 사후 반동의 역사를 잠깐 소개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자 한다. 

 

올랭프 드 구즈 

남자여, 그대는 정의로울 능력이 있는가? 이 질문을 그대에게 던지는 건 여자다. 적어도 이 권리만큼은 여자에게서 빼앗지 말아 달라. 말해 보라. 내 성(性)을 억압할 권한을 누가 그대에게 주었는가? 그대의 힘인가? 그대의 재능인가? …

모든 여성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 

『여성의 권리 선언』 중 (1791)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나는 여성이 처한 비굴한 의존 상태를 위장하기 위해 남성이 선심 쓰듯 내뱉는 귀엽고 여성스러운 어구들과, 여성의 성적 특징으로 간주되어 온 나약하고 부드러운 정신, 예민한 감성, 유순한 행동거지 등을 거부하고, 아름다움보다 덕성이 낫다는 걸 밝히려 한다…여성이 인간 대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내 소원…

『여권의 옹호』 중 (1792)

 

나혜석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라.” 

“이혼고백서” 중 (1934)

 

여자들의 가장 큰 영예는 조용히 겸손의 베일을 쓰고 은거지의 그늘에서 그들 성별의 덕성을 가꾸는 데 있다. 남자들에게 길을 가리키는 건 여자들이 할 일이 아니다(자코뱅 당원들의 반발, 브누아트 그루, 2014: 71).4)

 

저 남자 같은 여자, 여자 남자, 살림은 버려두고 정치를 하려 했고 범죄를 저지를 무분별한 올랭프 드 구즈를 떠올려 보시오. 자기 성별의 미덕을 망각한 것이 그녀를 처형대로 이끌었습니다(쇼메트 검사, 브누아트 그루, 2014: 87-88). 

 

‘남성’들의 시대는 종착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듯하다. 여자가 열등하고 무지하고 비이성적이며 ‘몸뚱이’에 불과한 도구적 존재로 비하하고 조롱하고 공격하고 권리를 박탈하고 억압하고 지배하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가장 대규모로 진행된 ‘대여성집단사기사건’은 끝장을 보고 있다. 여성들은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며, 세상을 보다 정의롭게 바꾸기 위해 일어서고 연대할 것이다. 과거를 식민화하고 현재를 착취하며 미래마저 약탈하고 있는 오랜 남성 연대의 해체를 위해, 그래서 다음 세대의 ‘우리’들이 조금은 더 인간답게 살기 위해. 

 

이제 당신이 응답할 차례이다. 봉건적 사고로 케케묵은 남성성의 옷을 벗지 못해 우리 사회전반을 다시 퇴행시킬 장본인이 될 것인가, 보다 나은 민주주의 사회를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인가. 

 


1) 이 글의 내용은 필자의 칼럼들과 최근 있었던 토론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글의 일부와 겹침을 밝힌다. 참고: “#MeToo 운동 긴급 토론회”(한국여성단체연합, 2018년 2월 26일); “이제 남성이 변해야 한다”(정동칼럼, 경향신문, 2018년 2월 5일); “‘미투 운동,’ 거대한 사회변혁의 파도”(정동칼럼, 경향신문, 2018년 3월 5일); “미투는 제2의 민주화 운동”(시론, 중앙일보, 2018년 3월 10일); “미투운동의 사회적 의미와 과제”(미투운동의 사회적 의미와 과제, 국회 토론회, 2018년 3월 14일).

2) “‘의원님은 딸 앞에서도 바지내리시나요’, 정치권으로 간 미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3101113001…

3) 가령, 수직적이고 폐쇄적이며 남성이 지배적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집단에서 비정규직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 손쉽게 일어나고, 성폭력 문화가 더 심각할 수 있다. 백인 이성애 남성 중심의 조직일수록 성소수자 이주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심하고, 이들에 대한 성폭력이 발생할 확률이 높습니다. 

4) 브누아트 그루 저, 2014.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 서울: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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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주민소환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홍준표 주민소환 서명에 대한 신속한 검수를 요구한다.

 

오늘 홍준표 경남지사를 소환하기 위한 주민소환 서명이 검수에 들어간다. 그 서명은 아집과 독선으로 똘똘 뭉쳐 패악을 일삼던 홍준표 지사를 심판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120일 동안 거리에서, 마을에서, 직장에서 하나하나 받았던 서명이다. 또한 그 서명은 안하무인 도지사에 의해 유린당한 도정을 끝내고 도민을 위한 민주적 도정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36만 도민의 소중한 의지가 담긴 서명이다. 따라서 선관위는 서명 하나 하나를 소중히 여기고 빠른 시간 안에 검수를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국민의 민주를 향한 의지가 강하게 표출되었으며 우리는 총선을 통해 국민들의 민주에 대한 염원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 있었다. 경남에서도 새누리당은 도민에게 심판 당했다. 그리고 그것은 박근혜 정권의 독재회귀와 민생파탄에 대한 심판이자 패악적인 홍준표 도정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준표도지사의 막말은 이어지고 안하무인의 태도는 바뀌지 않고 있다. 홍준표 지사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고 도민에게 사과하지도 않고 있다. 그는 스스로 변할 수 없음을 지금까지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하여 우리는 홍준표지사에 대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홍준표 소환의 그날을 기다린다. 도민의 손으로 홍준표를 심판하고 도민의 힘으로 민주적 도정을 세우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다시는 홍준표와 같은 독선적 인물이 도정을 유린하고 패악을 일삼지 못하도록 단호히 응징하고 도민의 요구에 따라 도정이 이루어지는 민주적 도정을 튼튼한 반석위에 세우는 그날을 간절히 기다린다.

이제 민주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흐름이다. 이제 민주는 거부할 수 없는 도민의 염원이자 요구이다. 선관위는 도민의 염원을 명심하고 신속하게 주민소환 서명에 대한 검수를 완료할 것을 요구한다.

 

2016년5월9

 

홍준표경남지사주민소환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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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6/05/1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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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확대 캠페인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잘 한다!

[회원확대 캠페인 ④]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잘 한다! 

시민여러분의 참여만큼, 참여연대도 자라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으로 권력을 감시하고 민주주의를 더 키우겠습니다!

 

참여연대는 100여명의 자원활동가와 1만여 개 노란리본 지역 가게들에 배포했습니다. 
앞으로도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노란리본을 나누겠습니다. 

 

'권력감시의 대표작' 국회 감시 전문사이트 '열려라 국회'를 새단장했습니다. 
20대 국회의원들의 의정 활동도 꼼꼼히 기록하겠습니다. 

 

"이젠 안 사요" 옥시 제품 불매운동(#옥시불매) 캠페인도 벌이고 있습니다. 

기업의 불법행위 재발을 막기 위해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앞장서겠습니다. 
 


* 참여연대 활동보기

- ['서촌길 노랗게 물들이기’ 시즌2] 서촌이 노랗게 물들고 있습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노란 리본 공작소' 자원활동가 모집 

[열려라 국회 웹사이트] 국회의원들의 성적표 

- [이젠, 안 사요! '옥시' 제품 불매운동 캠페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손을 잡아주세요!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엄정하고 신속한 수사를 촉구한다 

 

정치 권력에 맞선 참여연대의 꾸준한 감시 활동!

정부지원금 0%

참여연대는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으로 쑥쑥 자라납니다!  ( 지금 바로 회원가입 클릭 )

화, 2016/05/03-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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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확대 캠페인 ②] 이 정보 모르고 뽑지마오!

국회가 지난 4년간 한 일, 유권자 선택을 위한 정보로 알려드려요.

참여연대의 흔들림 없는 권력감시운동.
이번에는 4.13총선에서 유권자들의 올바른 선택을 돕는 정보 제공활동으로 이어집니다. 

지난 4년간 유권자와의 약속 제대로 지켰는지, 
누가 서민을 울리는 법을 만들려고 했는지
누가 국민들이 원하는 진상규명을 방해했는지 낱낱이 기록했어요.

 

정치권력에 맞선 참여연대의 감시활동
회원가입으로 참여연대에 힘을 보태주세요! (클릭)


*참여연대 활동보기

- [새누리당 공약이행 평가 프로젝트] 집권여당은 유권자와 한 약속, 얼마나 지켰나
- [이슈리포트] 한국사회 주요 이슈에 대한 19대 국회의원 발언과 태도
- [이슈리포트] 19대 후반기 국회, 디딤돌·걸림돌 법안 표결 보고서
- [이슈리포트] 19대 국회 나쁜 법안, 누가 발의했나
- [3분 총선] 총선 관한 모든 정보를 한 손에 (http://www.vote0413.net)
- [홈페이지] 열려라 국회 - 국회의원들의 성적표를 속속들이 보여드려요! (바로가기 클릭)

 

  *홈페이지 자료실에서 더 많은 보고서와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클릭)

목, 2016/03/3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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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삐딱하게 들고 옆으로 째려보는 눈빛이 강렬하다. 검은 똑단발에 짙은 눈썹, 검은 안경테는 상상 속의 B사감을 연상케 한다. 분명히 웃고 있지만 올라가지 않은 입꼬리에선 묘한 결연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모습이 담긴 사진을 두고 한 유명 변호사는 SNS에 이렇게 남겼다. ‘아주 더러운 사진’, ‘개시건방진’

단 5글자, ‘페미니스트’로 자신을 소개한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 벽보 이야기다. 1990년생, 여성, 소수 정당인 녹색당 소속.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장을 낸 신 후보는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가 될 만하다. 그런데 신 후보가 다른 유력 정당의 후보들보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압도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향한 혐오들

바로 이 다섯 글자, ‘페미니스트’ 때문이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신 후보의 벽보가 훼손됐다고 신고된 건이 무려 27건. 특정 후보의 선거 벽보를 훼손하는 것만으로도 실정법 위반이 되는 상황에서 특정 후보에 대한 이처럼 열성적인 혐오를 드러낸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신 후보를 향해 “시건방지다”고 표현한 중년의 남성 변호사는 당당하게 “나도 찢어버리고 싶다”고 밝혔다가 논란이 되자 SNS의 글을 지웠다.

‘1990년 신지예’가 서울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낸 데엔 올해 초 폭풍처럼 밀려온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한다. 신 후보는 출마선언문에서 학창시절 친구들과 모여 수다를 떨다가 누군가 “성폭력 당해 본 사람?”이라고 묻자 그 자리에 있던 다섯 명이 모두 손을 들었던 기억을 앞세웠다. 미투 운동이 확산되자 많은 남성들은 “세상에 변태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혀를 찼다. 일부 ‘변태’들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일상의 구조 속에 켜켜이 쌓인 불편함을 봐달라고 외치자 그제야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그 마저도 언론에 드러난, 피해자들이 갖은 용기를 내며 폭로한 사례들을 통해서였을 거다. 신 후보는 미투에서 이어진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여성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일”이며 “내 엄마와 이모, 언니와 동생이 겪었고 겪고 있고, 겪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봤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성평등, 인권 분야 대표 공약…“여성에 대한 구조적 폭력 해결해야”

정치의 최전선에 뛰어든 28세 여성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공약들은 간단하지만 명확했다. 성평등, 인권, 미세먼지, 주거·기본소득, 동물·에너지. 5가지 큰 틀에서 그가 꿈꾸는 서울이 설명된다. 성평등 이행각서를 도입하고 불법촬영 피해자에 대한 지원 조례를 제정하는 것,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고 임신중지 여성을 지원하는 것, 육아호봉제를 적용하는 것은 미투 운동을 넘어 최근 홍대 ‘몰카’ 사건, ‘낙태죄’ 폐지 집회, 여성들의 상의 탈의 시위, 혜화역 시위 등을 통해 힘이 더해진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압축한 듯하다. 신 후보는 출마선언을 통해 “당연한 듯 벌어지고 있는 임금차별, 유리천장, 낙태죄, 생리 혐오, 성폭력, 가부장제의 억압은 개인만의 것이 아니다. 사회적인 문제이자 정치적 문제다”라고 외쳤다. 이어 “여성이 겪는 구조적 폭력을 해결하지 않고서 한국 사회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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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후보의 벽보의 시선을 사로잡는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의 문구에서 ‘ㅅ(시옷)’의 글씨체는 2년 전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을 계기로 많은 여성들이 하얀 리본을 들고 거리를 나선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신 후보가 “이 사건 이후 이어지는 여성 운동과 백래시(반발)의 두려움에도 일어서는 자매, 동료들을 보면서 페미니스트 정치인으로서 뿌리 깊은 여성 혐오와 성차별에 맞서 싸우기로 다짐했다”는 결심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얇은 테의 안경은 그동안 ‘예쁜 여성’에겐 금기시되다시피 했던 안경을 부각시켜 여성성을 벗어난 당당함을 강조하려 했다고 디자이너는 밝혔다. 한 방송사의 여성 아나운서가 동그란 안경을 쓰고 나왔을 때, 그것이 그동안 금기였는지조차 희미할 만큼 낯선 화제가 됐다. 누군가 나를 에워싸고 옭아매지도 않았지만 움추려든 어떤 자세가 너무나 익숙한. 누군가 “너는 여자니까 이래야 한다”, “너는 여자니까 이것 밖에 못 한다”고 말하고 나를 가둬둔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어쩐 일인지 내 안에는 수많은 잣대들이 스스로를 향하고 있던 것처럼 말이다.

 

신지예 후보가 꿈꾸는 유토피아… “여성이 이끄는 소수자들의 평등”

신 후보는 그런 유리창을 깨버리자고 소리친다. 여성의 안에 있던, 그리고 여성을 가두고 있던 울타리 곳곳의 유리창을 말이다. 여성이 앞장서서 장애인과 성소수자, 이민자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들과 평등을 만들어 가자고 한다. 그게 바로 신 후보가 말하는 페미니즘이 꿈꾸는 ‘유토피아’인 것이다.

신 후보는 청년 문제에도 오랜 관심을 기울였다. 청년기업 오늘공작소 대표를 맡고 있는 신 후보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사회적기업 ‘이야기꾼의 책 공연’에서 창업멤버로 일했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나누는 청년들끼리 모여 함께 책을 읽고 공연도 하고, 특히 인문학과 기술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사회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는 그룹이 오늘공작소라고 그는 소개한다.

청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로 그 문제가 이어지기 때문에 청년 문제는 단순히 그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인과 지역 문제까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담겼다.

부자들의 재산세를 강화하는 대신 20~24세 청년들에게 기본 소득을 지급하고, 공공임대주택 등의 주거정책을 강화하는 방안을 비롯해 동성커플 등을 위한 동반자 조례 제정, 채식선택권 보장, 장애인 탈시설 지원센터 설치 및 운영 등의 공약이 그가 초점을 맞춘 청년과 지역사회를 아우르는 인권을 향한 고민에 맞닿아 있다. 녹색당 후보답게 시립 동물병원을 설치하거나 동물 긴급구조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는 것, 탈핵에너지 전환을 위한 지역 에너지 시스템 구축 방안도 공약에 포함됐다.

 

대체 누가, 어떤 이유로 “시건방지다”고 말할 수 있는가

‘시건방지다’는 표현은 보통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어디 감히?”라는 말이 이어질 법한 불쾌함을 표시할 만한 형용사다. 중년의 남성 변호사가 20대 여성 정치인에게 ‘시건방지다’고 비난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나이 때문만은 아니리라. 젊은 여성이 구의원도 아닌 서울시장에 떡하니 출사표를 내서 건방지다 한 것이었을까. 선거에 나온 주제에 눈을 내리깔지도 않고 오히려 치켜세우며 입 꼬리를 올려서 였을까. 만약 신 후보의 구상이 터무니없게 여겨졌거나 그야말로 왠지 ‘시건방진’ 생각이라는 판단이 들었다면 사진을 찢어버리고 싶다는 등의 비난 대신 조목조목 공약을 비판했어야 더 품위가 있었을 것이다.

처벌받을 것을 알고도 벽보 속 신 후보의 눈을 후벼 판 이들의 대담함은 또 어디서 나왔나. 마치 남성을 혐오한다는 뜻으로 변질된 채 해석되고 있는 ‘페미니스트’라는 슬로건을 내건 후보라, 남성들을 혐오하는 대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에서였을까.

각종 성폭력 관련 이슈를 놓고 이상하리만치 성별 대결이 극심해지고 있는 와중에서도 연일 뉴스를 달군 이 20대 ‘시건방진’ 여성 후보를 향한 다양한 반응은 과연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신 후보의 득표율에도 빼곡히 다 담기지 못할 이 숙제들을 풀어가기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화, 2018/06/12-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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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용기가 퍼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미투에 대한 여러 말들로 여전히 우리는 상처받고 있습니다.

미투에 대한 편견에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

미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 사회에 언제나 존재해 왔던 미투에 대해  들읍시다. 

그리고 서로의 용기가 되어, 나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합시다. 

 

당신의 #MeToo는 무엇인가요? 

 

 

언제 : 5/11(금) 오후 7시

어디 : 참여연대 1층 카페통인

무엇 : 1/ 강연 한국성폭력상담소 오매 활동가 

           <미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여성운동의 흐름 속에서 미투운동 바라보기> 

        2/ 테이블 토크 <미투하지 않아도 되는 일상을 위해>

누구 : 청년참여연대와 미투운동에 관심있는 청년 누구나

참가비 : 5,000원 (다과비)

문의 : 02-723-4251 (청년참여연대) 

 

참가신청(클릭) 

 

 

월, 2018/04/3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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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참여연대는 3.8 세계 여성의 날기념 제34회 한국여성대회에 <국립국어원, 그게 최선입니까?> 부스로 참여했습니다. 청년참여연대는 이번 행사에서 청년공익활동가학교 21기에서 진행한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 '페미니스트' 정의 2항 삭제를 위한 서명운동 캠페인 부스를 차렸고, 수많은 시민과 함께 여성인권의 오늘을 바라보고 이야기했습니다. 행사 참여 후기는 이원희 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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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청년참여연대는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행사에 참여하여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 대사전 ‘페미니스트’ 정의 2항 삭제 서명운동 부스를 진행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희 캠페인에 수많은 분들이 서명과 지지를 해주셨습니다. 저는 먼저 피켓을 들고 있을 때 고생한다고 사진도 찍고 응원해주신 분들, 그리고 서명과 지지문구를 남겨주신 분들께 정말 꼭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페미니스트’ 정의 2항 삭제 서명운동에 많은 분이 더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여성의 날 기념행사에는 저희뿐만 아니라 많은 단체가 다양한 의제들과 함께 참가했습니다. 저는 여러 부스도 한번 돌아보면서 12가지의 인권의 날들을 소개하는 책자, 페미니스트 스티커, 제주 4.3 유적지도 , 촛불 청소년 인권법 3종 세트 프린트, “정치, 이제 여성이 한다!” 피케팅, 그리고 자신이 고른 여성게임캐릭터 카드와 같이 집에 가득하게 들고갈 만한 기념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저는 여러 젠더들을 칭하는 명칭들이 세분하게 많이 있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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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는 제가 위에 말한 것 처럼 처음에는 각종 부스와 축하공연과 함께 축제의 분위기를 만들어 가기도 했지만, 그 이후에는 제 마음을 무겁게 하기도 했습니다. 미투운동에 대한 발언 때문이었습니다. 미투운동으로 겨우 용기를 내었지만,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감수하게 만드는 지금의 사회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피해자분들이 자신의 가정과 직장을 잃고 살아가야 하는지, 왜 이곳에서 울면서 발언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발언이 끝난 후에는 3.8 행진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광화문에서 시작된 행진은 경복궁 사거리 그리고 종각역을 돌아서 다시 광화문으로 이어졌고, 행진을 하는 동안 사회자님의 열정과 음악 그리고 깃발들은 다시 한 번 축제의 분위기를 느끼게 했습니다. 행진은 훌륭하게 질서를 시키며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행진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고 행진을 하면서 저도 같이 당당해 질 수 있었습니다.

 

행진이 끝난 후에는 올해의 여성운동상, 성평등 디딤돌 시상 그리고 성평등 걸림돌 발표도 진행하였는데, 성평등 걸림돌을 결정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는 말에 저는 큰 공감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성평등에 걸림돌이 되는 기업, 사람, 사건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입니다.  제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성차별적 사건들, 들려오는 언행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행사에 참여한 여러 정치인의 발언을 들을 수 있었고, 저는 그분들이 그 의지를 이어가기를 바라며 계속 지켜보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사실 이번에 여성, 성평등 운동에 처음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참여해보면서 가장 놀랍게 느껴졌던 것은 얼마나 미투운동과 같은 여성운동에 부정적 이미지가 씌워져 있는 지 였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직접 본 여성운동은 사회 질서 파괴, 정치적 공작들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본 것은 성평등 민주주의를 외치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들밖에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계속 여성운동과 미투운동을 지지할 것입니다.

 

20180304_청년참여연대_제34회한국여성대회  20180304_청년참여연대_제34회한국여성대회

화, 2018/03/0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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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서명운동

 

국립국어원, 그게 최선입니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페미니스트’ 정의 2항, 

“예전에,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삭제 및 수정에 동참해주세요!

 

 

페미니스트는 ‘여성에게 친절한 남성’ 일까요?

최초

1. 여권신장 또는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사람

2. 여성을 숭배하는 사람, 또는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

 

2015년

1. 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 

2. 여자에게 친절한 남성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017년

1. 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 

2. 예전에,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국립국어원의 ‘페미니스트’ 정의는 잘못된 성 인식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현 정의 2항,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오해를 일으키고, 성차별을 조장합니다. 국립국어원의 잘못된 성 인식에 우려를 표하며, ‘페미니스트’ 정의 2항을 삭제하고 정의를 추가할 것을 요구합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바른 이해, 성차별 없는 사회를 향한 첫걸음을 위해 현 정의 2항 삭제를 촉구하는 서명에 참여해주세요! 서명은 국립국어원에 제출할 예정입니다. 

 

 

어떻게?  

  1. 온라인 서명에 참여해주세요! >>Bit.ly/이게최선
  2. SNS(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서명 링크와 함께 #국립국어원_그게_최선입니까? 를 올려주세요 
  3. 3월 4일(일) 12시, 서울 광화문광장 '청년참여연대' 부스에서 만나요! 

 

 

 

 

문의 : 청년참여연대 (02-723-4251)

 

 

금, 2018/02/2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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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국내 적용방안 모색을 위한 연속토론회(사회발전 분야) &n...
월, 2015/06/15-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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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스플레인(mansplain)이란 말을 들어보신적이 있으신가요? 최근에 등장한 용어로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의 합성어입니다. 남성이 여성을 기본적으로 뭔가 모르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말을 일방적으로 쏟아 붓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맨스플레인을 주제로 한 대회(?)가 열렸는데요? 이름하여 ‘천하제일 맨스플레인 대회’입니다. 약 일주일간 접수된 글 중 1위를 차지한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자) 여자애들 00이 싫어하는 거, 예쁘고 인기 많아서잖아

(여자) 아니, 걔가 동기들 간에 이간질을 해서 평판이 좀 그래

(남자) 에이, 아니잖아. 인기 많으니까 질투하는 거잖아.
여자애들은 자기보다 예쁘고 인기 많으면 다 질투하잖아

(여자) 내가 여잔데, 여자라고 다 그러는 거 아니거든

(남자) 네가 그 심리를 어떻게 아냐. 여자들 심리는 다 그래

공감이 가는 면도 있고, 순위를 가리는 대회이다 보니 다소 과장된 면도 있어 보입니다. 특히 남자들 입장에선 뭐 그 정도 가지고 까칠하게 그러느냐고 할 수도 있을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가볍게 웃고 넘기기엔 여자들 입장에선 무척이나 자주 경험하는 짜증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특히 맨스플레인을 하는 남성이 여성에 대해 갖는 기본적인 인식을 살펴보면 그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습니다.

우선 이 말이 처음 나오게 된 배경부터 살펴보죠. 2008년 미국의 웹사이트 ‘톰 디스패치’엔 한 편의 기고문이 실립니다. 제목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인데요. 여성인 필자가 파티에서 만난 한 남자에게 자신이 작가라고 밝히자, 남자는 최근 자신이 본 책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시종일관 여성 필자의 말을 끊으며 계속해서 늘어놓았다는 경험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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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고문은 그동안 남자들에게 가르침당하고, 무시당하고, 말을 가로채인 경험을 한 수 백 명의 여자들에게 공감을 얻으며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확산 됩니다. 이를 계기로 ‘맨스플레인’이란 말은 2010년 뉴욕타임즈 올해의 단어에 선정되고, 2014년엔 옥스퍼드 온라인 영어사전에 수록되기까지 합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맨스플레인의 문제에 대해 살펴볼까요? 기고문의 필자인 리베카 솔닛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여자라면 누구나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이런 현상 때문에 여자들은
어느 분야에서든 종종 괴로움을 겪는다.

따라서 여자들은 나서서 말하기를 주저하고,
용감하게 나서서 말하더라도 경청되지 않는다.

이에 여자들은
자기불신과 자기절제를 익히게 되는 데 비해
남자들은 근거 없는 과잉 확신을 키운다.

– 리베카 솔닛,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중 –

솔닛의 설명에서 눈치 챌 수 있듯이 맨스플레인은 일상적인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세대 페미니즘을 여성 참정권 추구로, 2세대 페미니즘을 제도적,문화적 평등 추구로 구분할 경우 후자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솔닛은 페미니즘이 이미 완료된 사업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고 주장합니다.

여성들이 맨스플레인이라는 신조어와 페미니즘이라는 되찾은 용어로 조명하고자 하는 현실은 페미니즘이 이미 완료된 사업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여성은 아직 평등한 세상에 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페미니즘의 투쟁에서 핵심 과제는 우선 여성을 신뢰할 만하고 경청할 만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 리베카 솔닛,『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중 –

솔닛의 말에서 특히 눈길이 가는 부분은 ‘신뢰할 만하고 경청할 만한 존재’라는 표현입니다. 맨스플레인, 즉 남자가 여자를 가르치려 드는 태도를 보이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자를 ‘지적으로 부족하고 잘 모르는 존재’라고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성적인 특성을 지적인 특성으로 일반화시키는 문제가 있는 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맨스플레인과 관련된 논란이 있었습니다. UN여성 친선 대사로 임명된 영화배우 엠마 왓슨에게 한국의 한 칼럼니스트가 쓴 글 때문인데요. 칼럼의 주된 내용이 ‘페미니스트’인 엠마 왓슨에게 진정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형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논객들이 해당 칼럼에 대한 반박글을 내놓으며 뒤늦은(?) 맨스플레인 논란이 불붙게 됩니다. 반박글의 주된 내용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우선 칼럼에서 소개하는 페미니즘에 대한 설명에 오류가 많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페미니즘에 대해 잘 모르고 아는 체를 했다는 지적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당신은 잘 모를 것이다’라고 전제한 후 페미니즘에 대해 ‘가르치려는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분노를 한 것이죠.

그 중 논란이 됐던 표현 하나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말랄라의 페미니즘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온 경험의 소산입니다. 당신이 연설에서 술회한 당신 성장기의 ‘여성스럽지 않음’에 사람들이 별난 눈길을 보낸 것과는 경험의 질이 다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살았던) 말랄라라는 페미니스트에 비해 (좋은 환경에서 곱게 잘 자란)엠마 왓슨은 ‘경험의 질’이란 면에서 ‘페미니스트’로서는 충분치 않다는 의미인데요, 거칠게 말하면 ‘고생도 별로 해 보지 못한 네가 진정한 페미니즘이 뭔지 잘 알겠어?’라는 뉘앙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필자는 바로 다음 문장에서 두 사람을 비교하려 드는 건 아니라고 말하지만, 글의 전체적인 구조가 일단 주장하고 바로 뒤에 ‘꼭 그런 건 아니다…’라는 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진정성에 의심을 살만 합니다.

더구나 칼럼의 필자는 ‘남성’입니다. 정말 ‘경험의 질’이 진정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를 가를 요체라면 평생 (우월적 지위를 누리는) 남자로만 살아 온 필자가 ‘여자’인 엠마 왓슨의 경험에 질을 논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되고 맙니다.

어떻게 단 한 순간도 여자였던 경험이 없었던 그 사람은 평생을 여자로 살아온 엠마 왓슨에게 “경험의 질이 다릅니다”라고 평가하듯 말할 수 있었을까.
도대체 뭘 근거로 본인이 UN홍보대사인 엠마 왓슨보다 인권에 대해 더 잘 안다고 판단하는 걸까.

– 허핑턴포스트, <엠마왓슨 보기 부끄럽다> 중 –

차라리 애초에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를 가지고 최근의 페미니즘에서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 자기 나름의 비판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랬다면 자연스러운 페미니즘 논쟁이 됐을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상대방은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내가 가르쳐 주마’라는 틀에 굳이 스스로를 밀어 넣음으로 인해서 주장하는 모든 바가 ‘맨스플레인’이란 함정에 갇혀 버리고 만 것이죠.

그런데 생각해 보면 ‘맨스플레인’이 꼭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니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라고 시작하는 말은 여자들만이 아니라 남자들, 특히 어린 남자들의 경우 매우 자주 듣게 되니까요. 그런 말을 자꾸 듣다 보면 남자들 역시 주눅이 들어 말을 못하게 되죠.

한편 파티에서 레베카 솔닛에게 자신이 본 책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솔닛의 말을 계속 잘라 먹던 한 남자는 솔닛의 친구가 내뱉은 한 마디에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이 친구(솔닛) 책이라니까요.

수, 2015/10/0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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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여자에게 친절한 남자?! 페미니즘=차이를 없애는 것?!

  지난 1월, 여성연합은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대한 오인과 몰이해를 강화하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대한 뜻풀이 수정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개정된 내용도 이전 뜻풀이와 별반 달라진 점이 없다고 하네요.(부들부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카드뉴스를 통해 확인 해보세요!↓↓↓


<당신이 국립국어원에게 할 수 있는 액션!>

1. 국립국어원을 귀찮게 해주세요!
ex. 국립국어원 트위터 계정(@urimal365)에 멘션 보내기,
전화 하기, 메일 보내기, 국립국어원 앞에서 짜장면 먹기(??)

2. 항의 피켓 인증샷 찍고 해시태그를 달아주세요!
ex. ‪#‎국립국어원‬ ‪#‎차이를차별로바꿔라‬ ‪#‎친절한남자를삭제하라‬

캠페인에도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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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5/07/22-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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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와 차별, 어떻게 다른가?

  1탄에 이어 2탄입니다!

  국립국어원은 페미니즘을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차이를 없애야 한다는 견해" 라고 말하는데요.
  차이와 차별은 전혀 다른 뜻이죠! 페미니즘이 없애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카드뉴스를 확인 해보세요!↓↓↓

<당신이 국립국어원에게 할 수 있는 액션!>

1. 국립국어원을 귀찮게 해주세요!
ex. 국립국어원 트위터 계정(@urimal365)에 멘션 보내기,
전화 하기, 메일 보내기, 국립국어원 앞에서 짜장면 먹기(??)

2. 항의 피켓 인증샷 찍고 해시태그를 달아주세요!
ex. ‪#‎국립국어원‬ ‪#‎차이를차별로바꿔라‬ ‪#‎친절한남자를삭제하라‬

캠페인에도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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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5/07/2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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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가 친절한 남자라고?

  마지막 카드뉴스입니다..(흑흑)

  국립국어원은 이번 페미니스트 정의에서도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를 포기하지 못했는데요.
  페미니스트가 친절한 남자일까요...?

  자세한 내용은 카드뉴스를 확인 해보세요!!↓↓↓

(feat. 국립국어원은_활동가도_춤추게한다.jpg)

<당신이 국립국어원에게 할 수 있는 액션!>

1. 국립국어원을 귀찮게 해주세요!
ex. 국립국어원 트위터 계정(@urimal365)에 멘션 보내기,
전화 하기, 메일 보내기, 국립국어원 앞에서 짜장면 먹기(??)

2. 항의 피켓 인증샷 찍고 해시태그를 달아주세요!
ex. ‪#‎국립국어원‬ ‪#‎차이를차별로바꿔라‬ ‪#‎친절한남자를삭제하라‬

(캠페인에도 쭈욱~~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국립국어원
#차이를차별로바꿔라
#친절한남자를삭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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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5/07/22-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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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차 한국여성대회 – 성평등을 향해 전진하라! 퇴행의 시대를 막는 연대의 파도?

3.8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열리는 제38차 한국여성대회‼

성평등한 세상을 원하는 모든 이들이 인종, 나이, 국적, 성별정체성 등등과 관계없이 모여 서로를 확인하고, 즐기고, 외치고, 어울리는 자리입니다. 이 뜻깊은 행사에 참여연대도 함께 합니다.

다양한 부스 체험도 하고 공연과 전시도 즐기고 흥겨운 몸짓도 하는 그날의 서울광장에, 여러분도 참여연대와 함께 해주세요.

? 일시 : 2023년 3월 4일(토) 오후 12시~오후 5시
? 장소 : 서울광장
? 주최 :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8회 한국여성대회 조직위원회
? 주관 : 한국여성단체연합

The post 제38회 한국여성대회 – 성평등을 향해 전진하라! 퇴행의 시대를 막는 연대의 파도 appeared first on 참여연대.

토, 2023/03/0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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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xe_content"><h1>참여연대, 정부에 성평등 임금공시제 도입 계획 질의</h1> <h2>한국 성별임금격차, OECD 회원국 중 가장 심각해</h2> <h2>정부는 성평등 임금공시제의 민간기업 적용 위한 입법조치 진행해야</h2> <p> </p> <p>참여연대는 오늘(4/11) 성평등 임금공시제 도입과 관련하여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에 질의서를 발송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후보 당시 성별임금격차를 경제협력개발기구(이하 OECD) 수준으로 줄이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고용주에 성별임금격차 현황보고 의무와 성별임금격차 개선계획 수립의무를 부여하는 '성평등 임금공시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습니다. 또한 2017.7.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도 2018년까지 성평등 임금공시제 도입을 국정과제 중의 하나로 제시했으나 아직 도입은 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참여연대는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에 성평등 임금공시제 도입을 위한 로드맵이 있는지 여부, 민간기업 대상 성평등 임금공시제 도입을 위한 정부입법계획 등을 질의했습니다.</p> <p> </p> <p>OECD 기준(2017년, <a href="http://bit.ly/2VxM2a4&quot; rel="nofollow">http://bit.ly/2VxM2a4</a&gt;)으로 한국의 성별임금격차 비율은 34.6%이며, 이는 남성이 100만 원을 벌 때 여성은 65만 원을 번다는 것으로 한국은 OECD 회원 국가 중에서 성별임금격차가 가장 크고, OECD 평균 임금격차인 13.8%(2016년 기준)의 2배가 넘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합니다. 국회가 2018.12.7. 공공기관의 성별 임직원 임금 현황을 공시하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최근 서울시가 ‘서울시 투자·출연기관’을 대상으로 직원들의 성별, 고용형태별 임금·근로시간 등 정보를 서울시 누리집에 공시하는 성평등 임금공시제 도입 계획을 밝히는 등 성평등 임금공시제 관련하여 일정 부분 사회적 진전이 있었으나, 도입 예정인 성평등 임금공시제는 공공기관에만 한정되어 성별임금격차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볼 수 있는 민간기업에 적용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p> <p> </p> <p>참여연대는 정부가 대선 공약과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약속한 성평등 임금공시제를 빠른 시일 내에 시행할 것을 주장합니다. 한편 모든 대선 후보들이 성평등 임금공시제 도입을 공약하였던 사실을 강조하면서 국회에 계류 중인 △노동자가 사업주에게 동일노동 노동자의 임금정보를 청구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을 규정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안번호: 2009582, 대표발의: 김수민의원), △근로자의 성별·고용형태별 근로자의 수 및 평균임금 현황을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고용정책 기본법 개정안(의안번호: 2001665, 대표발의: 김삼화의원) 등 성별임금격차 관련 법안들이 활발히 논의되어야 합니다. </p> <p> </p> <p>남녀고용평등법 제8조 제1항에 "사업주는 동일한 사업 내의 동일 가치 노동에 대하여는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는 바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적극적인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합니다. 참여연대는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한 성평등 임금공시제 도입을 비롯하여 성별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와 국회의 활동들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계획입니다. </p> <p> </p> <p> </p> <blockquote> <h3 style="text-align:center;">성평등 임금공시제 도입 계획 관련 질의서</h3> <p> </p> <p>경제협력개발기구(이하 OECD) 기준(2017년, <a href="http://bit.ly/2VxM2a4&quot; rel="nofollow">http://bit.ly/2VxM2a4</a&gt;)으로 한국의 성별임금격차 비율은 34.6%입니다. 이는 남성이 100만 원을 벌 때 여성은 65만 원을 번다는 것으로 한국은 OECD  회원 국가 중에서 성별임금격차가 가장  크며, OECD 평균 임금격차인 13.8%(2016년 기준)의 2배가 넘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합니다.</p> <p> </p> <p>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기에 성별임금격차를 OECD 수준으로 줄이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고용주에 성별임금격차 현황보고 의무와 성별임금격차 개선계획 수립의무를 부여하는 '성평등 임금공시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으며, 2017.7.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도 2018년까지 성평등 임금공시제를 도입하겠다고 재차 발표하였지만 아직 도입은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p> <p> </p> <p>국회가 2018.12.7. 공공기관의 성별 임직원 임금 현황을 공시하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최근 서울시가 ‘서울시 투자·출연기관’을 대상으로 직원들의 성별, 고용형태별 임금·근로시간 등 정보를 서울시 누리집에 공시하는 성평등 임금공시제 도입 계획을 밝히는 등 성평등 임금공시제 관련하여 일정 부분 사회적 진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입 예정인 성평등 임금공시제는 공공기관에만 한정되어 성별임금격차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볼 수 있는 민간기업에 적용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p> <p> </p> <p>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 제8조 제1항은 "사업주는 동일한 사업 내의 동일 가치 노동에 대하여는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민간기업 등 사업장에서 성별 임금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고, 사용자는 정기적으로 동일임금원칙 실현을 위한 경영보고서를 제출 및 공개해야 하는 등 적극적인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합니다.</p> <p> </p> <p><strong>관련하여 참여연대는 아래의 내용을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에 질의합니다.</strong></p> <p> </p> <ul> <li>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2018년까지 성평등 임금공시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으나 아직까지 도입되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여성가족부는 2018.1.31. 발표한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18~2022) (<a href="http://bit.ly/2uTqSrp&quot; rel="nofollow">http://bit.ly/2uTqSrp</a&gt;)에서 성평등 임금공시제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을 추진하고,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부진 사업장에 대해 성별임금격차 현황 및 해소방안 제출 의무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strong>‘성평등 임금공시제’ 도입을 위한 로드맵이 있는지 질의합니다.</strong></li> </ul> <p> </p> <ul> <li>민간기업을 대상으로 한 ‘성평등 임금공시제’는 남녀고용평등법상 임금자료 제출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마련하는 등 입법조치가 필요한 사항입니다. 현재 국회에는  △노동자가 사업주에게 동일노동 노동자의 임금정보를 청구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을 규정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안번호: 2009582, 대표발의: 김수민의원), △근로자의 성별·고용형태별 근로자의 수 및 평균임금 현황을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고용정책 기본법 개정안(의안번호: 2001665, 대표발의: 김삼화의원) 등 성별임금격차 관련 법안들이 계류되어 있습니다. <strong>성평등 임금공시제의 민간기업 적용을 위한 정부의 입법 계획을 질의합니다.</strong></li> </ul> <p> </p> <ul> <li>남녀고용평등법 제8조 제1항에서 규정하는 <strong>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기반하여 어떠한 성차별 해소방안을 강구하고 있는지 질의합니다.</strong></li> </ul> <p> </p> </blockquote> <p><a href="https://docs.google.com/document/d/15avb0Ou9hxPPm6oZ9D-wRpys5RGcAREU6no…; rel="nofollow">보도자료 [원문보기/다운로드]</a></p></div>
목, 2019/04/1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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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참여연대는 4월 7일 토요일에 홍대앞에서 열린 성차별성희록끝장집회에 참가했습니다. 미투가 바꿀 세상, 우리가 만들자! 라는 슬로건으로 열린 집회, 그 세상을 만들러 함께했습니다. 이번 집회 후기는 성평등분과에서 활동하는 김연 님이 써주셨습니다:)

 

YC20180407_미투집회

 

엄청나게 추운 날이었다. 봄이 찾아오나 싶었더니 꽃샘추위가 강타한 서울은 집회를 하기에는 너무 시렸다. 한참을 망설이다 발걸음을 옮긴 홍대입구 역도 추운 날씨는 마찬가지였다. 그냥 쉴 걸 그랬나, 집회는 앞으로도 또 있을 텐데, 여러 핑계들이 내 발목을 붙잡아 왔다. 여섯 시가 조금 안되어 도착한 집회 현장은 내가 여태까지 가 본 곳들 중 가장 협소했다. 사람들도 적고, 준비도 어설퍼 보였다.

 

이런저런 불만들이 쌓여 가던 중, 자유발언대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발언이겠거니 싶었다. 지루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고 앰프 소리도 너무 컸다. 설렁설렁 들어야지, 하던 내게 발언자의 목소리가 꽂혀 들어온 건 순간이었다. 그 짧은 찰나 나는 그의 목소리가 눈에 보인다고 느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때조차 수없이 많은 것들을 참아내야만 하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나는 그가 되어 있었다. 감히 이런 표현을 쓰는 것에 대한 양해를 구하고 싶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고 함부로 말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그 순간 완전히 그였다. 우리 모두는 그 순간 그였을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모두가 당했던 폭력이었다. 내가, 우리가 애써 무시하고 또 어떨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참아왔던 폭력들을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모두에게 알렸다. 이것이 폭력이라고. 아프다고. 하지만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소리치고 또 소리치고 말 것이라고.

 

YC20180407_미투집회

 

행진 때는 사람 수가 더 늘어난 것 같았다. 자유발언에서 느낀 감정들을 어떻게든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에 팔이 아파도 계속 플래카드를 높이 들었다. 정말 많은 이들이 우리를 보고, 가리키고, 또 촬영했다. 그들이 어떤 의미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건, 그들 속의 단 한 명이라도 우리를 보고 연대의 희망을 얻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최근 일부러 뉴스를 피하고, 전시회 등을 찾아다니며 나름대로 혼자만의 ‘힐링’을 해왔다. 어쩌면 나는 잊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힘들게, 너무나도 어렵게 목소리를 내 준 이들을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면 편하니까. 모른 체 하면 그냥 그렇게 살아갈 수 있으니까. 미투라는 거대한 물살이 밀려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나는 금세 피로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집회에 나가 있는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과거의 내가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 그런 외면은 결국 나 혼자만의 것이라는 걸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다짐하고 싶다. 다시는 외면하지 않겠다. 끝까지 손을 꽉 잡고, 연대하겠다. 우리는 우리를 낫게 할 것이다. 더 이상 다치지 않게 할 것이다.

 

YC20180407_미투집회

 

화, 2018/04/1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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