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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민변은 나의 등불 : 김호철 변호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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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민변은 나의 등불 : 김호철 변호사를 만나다

익명 (미확인) | 금, 2018/03/3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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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사랑방인가요?

전 우리 민변이 이런 사랑방처럼 편안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18년 3월 민변 사무실 내 휴게공간인 사랑방에서 김호철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가 진행된 사랑방처럼 민변이 ‘소통, 공감, 편안함과 행복’의 모습으로 후배들에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소신을 밝혔다.

 

“2000년대 초반, 민변은 너무 엄숙주의에 빠져 있다고 선배들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민변 회원이라 하면 만나서 반가워 농담도 하고, 변호사로서 영업을 하다가 도움이 되었던 것을 서로 공유도 할 수 있는 건데, 민변은 너무 근엄하고 진지한 얘기만 한다고 했다가 분위기가 썰렁해졌습니다.(웃음) 아, 괜히 이야기했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조금 더 격이 없는 소통을 할 수 있고 유쾌발랄한 분위기를 더 가질 수 있도록 모임을 개선해야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뭐, 요즘 후배들도 우리를 바라보면서 너무 어렵고 엄숙주의에 빠져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할 수도 있겠지만요. (웃음)”

 

김호철 변호사는 현재 민변의 부회장이며 최근 13대 민변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민변과 함께한 그의 변호사 활동들과 차기 회장 당선인으로서 가진 포부는 어떤 것일까.

 

 

이혜정 김호철 변호사님, 얼마 전에 차기 회장으로 당선되셨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대부분의 민변 회원들이 뉴스레터를 통해 변호사님 인터뷰를 접할 텐데요, 특히 신입회원들의 경우 김호철 변호사님을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호철 1994년 변호사 개업 당시, 민변 회원이셨던 ‘고 최일숙’, ‘정영원’변호사와 함께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현 서울동부지방법원) 근처에 법률 사무소를 열었습니다. 당시 초년생에 불과했던 변호사 셋이서 그래도 변호사의 품위와 의무를 다하고자 공익적인 업무를 더불어 하자는 결정을 했고, 법무법인 ‘동부종합법률사무소’를 개설하여 2002년까지 활동했습니다. 당시 저희 세명이서 민변 국가보안법 사건의 동부관할 사건을 대부분 소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외에도 환경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환경위원장을 맡기도 했고 당시 출판홍보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민변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이혜정 와~ 활동 많이 하셨는데요? (웃음)

 

김호철 (웃음) 네, 그리고 민변 선배님의 추천으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상임위원으로 들어가 3년간 공무원 신분으로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3년간의 위원회 일을 마치고) 복귀 후에는 공백이 너무 커서 본업인 변호사 일에 전념하느라 2009년부터 2015년까지는 민변 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가 지금 회장님이신 정연순 변호사님의 제안으로 2015년도에 민변의 부회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변호사 개업과 함께 당연하듯 시작한 민변 활동, 회장후보에 출마할 의무감을 안기다.

 

이혜정 변호사가 되면 바로 민변에 가입해야겠다고 이전부터 생각을 하신건가요?

 

김호철 당연하죠. 변호사 생활은 민변활동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이재명 시장(현 성남시장)이 밝혀서 민변이 대중에게도 알려지긴 했지만, 사법연수원시절부터 우리사회 인권과 민주사회 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을 나누던 멤버들이 있었습니다.

 

이혜정 회장 후보 출마를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을 텐데요.

 

김호철 제가 자격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쉽게 나서지 못했습니다. 민변이 오랜 기간 쌓아온 사회적인 신뢰에 걸맞은 신뢰 자산을 내가 구축하고 있는가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민변 회원들을 대표해서 개별 회원들의 사정과 바람을 잘 파악하고 실현할 수 있을까… 여러모로 자신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 등록을 한 것은 20여 년간 회원으로 있으면서 의무감이 들어서 입니다. 과거에 회원들의 활동들을 쫓아가면서 죄송함과 부채 의식을 지니고 있는 와중에 후보등록자가 없어서 고민하시는 선배님들과 회원 분들을 보며, 의무감이 발동했습니다.

 

이혜정 민변 회장에 나간다고 하니 가족이나 주변 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김호철 그 점에 대해서 지금 있는 법무법인 한결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법무법인 내에 후배변호사들과의 협업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기도 하고요. 민변에서의 활동으로 인한 저의 공백을 기꺼이 감수해주는 법무법인과 후배변호사들에게 감사합니다.

가족은 뭐….(웃음) 변호사 생활 내내 가족에게 미안해하면서 눈치 보면서 살아와서.. (웃음) 이번에도 적절하게 ‘눈치껏’ 별 일 아닌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환경문제는 환경운동이 우선이고 소송은 다음이라는 원칙

 

이혜정 변호사님 프로필을 쭉 살펴보면 주로 환경전문 변호사로서 활동을 많이 하셨던데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김호철 사법연수원 시절에 환경권 학회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학회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공해 현실을 제대로 알기 위해 찾아간 곳이 지금의 환경운동연합에서 진행한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그때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의 공해 문제, 환경 문제의 현실을 현장에서 공부할 수 있었죠. 이런 것들이 이어져 자연스럽게 환경운동 volunteer라는 저만의 정체성을 갖게 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소송이니까 환경소송을 담당하게 된 거구요.

환경소송을 할 때는 ‘환경문제는 운동이 우선이고 소송은 다음’이라는 저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임해 왔습니다. 새만금 소송과 일조 침해소송, 핵폐기장 설치 관련 소송부터 최근의 월성 원전 수명연장 취소소송까지, 운동을 우선적으로 하고 법적 판단은 보충적이고 최종적으로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임했습니다. 덕분에 관련 쟁점들이 많이 정리되었고 사회적 공방 속에서 상대측의 문제들을 충분히 인식하며 일해 좋은 결과를 많이 얻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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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직접 진행하셨던 월성원전 소송부터 최근에 생긴 신고리공론화위원회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탈핵’이나 ‘탈원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탈핵’이나 ‘탈원전’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나라를 위한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일까요.

 

김호철 인류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기후변화인데, 이는 인류의 욕망 때문에 발생한 온실가스가 가져온 인공적 위험이고 자연의 정화능력이나 순환을 교란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위협이죠. 하지만 자연을 무작정 개발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난다면 재생에너지처럼 생태계를 교란시키지 않으면서도 자연의 무한한 힘을 잘 선용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핵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핵무기 개발이라는 반생명적인 활동의 부산물이 초래하는 인공적 위험은 가공할만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탈핵’의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자연이 보유한 무한한 에너지를 얼마든지 인류에게 최대한 위험이 없는 방향으로 개발할 수 있습니다. 탈핵은 그동안 인류가 공감해온 방향이지, 시대에 역행하거나 일부 사람들의 편협한 이념적 잣대에서 비롯된 주장은 아닙니다. 재생에너지나 기존의 자연의 힘을 이용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연구와 투자를 해야 하고 법률가로서 이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혜정 최근 신입회원들의 관심사를 보면 환경 분야에 관심 있는 회원들이 많더라고요. 관련해 환경전문 변호사로서 후배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요?

 

김호철 우선은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 중 가장 (먼저) 풀어야할 숙제가 기후변화와 탈핵입니다. 법률가로서 이 문제를 풀어나갈 방법을 찾고 관심을 지속적으로 갖는 게 중요할 것입니다. 환경보건위원회를 찾아가서 예비 법조인을 위한 민변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추천드려요.

원자력 발전에 있어 가장 큰 원칙은, 진흥과 규제가 분리되어서 규제가 독립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다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서야 미미하게 지켜지는 실정이에요. 그러다보니 규제기관이 규제권한을 행사하는 틀과 체계가 잡혀있지 않고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법률가는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규제가 제대로 행사되었는지 법률적으로 살펴야 하고,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소송이나 정책 제안 혹은 정책 비판을 함으로써 시민들의 안전을 담보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원자력 발전소 하나 닫는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위험관리가 되고 있는지 감독하는 것도 법률가가 마땅히 수행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해결해야 할 중요한 사안들은 많은데 관심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또 환경보건 분야는 활동영역이 국제적으로도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의 3년 중 얻은 문제의식

 

이혜정 변호사님께서는 환경문제 외에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도 하셨습니다. 최근에는 워낙 군대 관련 사건 사고들이 많이 발생하기도 하고 관련한 사법개혁 논의도 진행되고 있는데요. 변호사님께서 경험하셨던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군대 문제는 어떠한 방향으로 해결되어야 할지, 특히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김호철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 당시 여호와의 증인이 박정희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인해 폭행과 가혹한 고문을 당하다가 사망한 사건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이 분 외에도 양심에 따라 집총거부를 주장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이 많이 계시죠. 문제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는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집총거부에 대한 양심의 순결함은 사회가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양심을 지켜주기 위한 사회적 배려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인권의 문제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법적 판단, 제도적 보완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군의문사와 관련해서는, 폐쇄적이고 통제적인 군사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어렵더라도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군복무라는 것이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 시민이 일정기간 희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민으로서의 인권이 군사법을 통해 최대한 보장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경우 민주화가 정착됨에 따라 군대 내 사망자 수가 점점 줄긴 했어요. 5공화국 시절 자살자를 비롯한 군대 내 사망자가 1,000명에 가까웠다면 노태우 시절 400~500명 정도로 떨어졌고, 김영삼 정부시절 300~200정도, 김대중 시절 100명대, 노무현 시절도 100명대 초반 유지를 하다가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면서 현재는 100명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예전보다 좋아진 거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이기 때문에 폐쇄적 군대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짓눌린차기 회장 당선인이 해야 할 일들과 회원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

 

이혜정 다시 민변으로 돌아와서요, 차기 회장으로 당선되신 만큼 앞으로 많은 회원들과 스킨십도 하셔야 할 텐데요. 김호철호 민변을 통해 그려나가고 싶은 민변은 어떤 모습인가요.

 

김호철 안 그래도 요즘 민변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고 있는데, 책을 찾다보니 (가방에 있던 민변 발전 전략 보고서 꺼내들며) 2012년도 당시 김선수 회장님 때 발간된 민변 발전전략보고서가 있더라고요. 현 회장님 역시 이 전략발전보고서에 나와 있는 과제들을 충실히 이행해 오신 것 같아서 이제는 발전전략보고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비전, 발전 전략을 세워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새로운 사무처 구성을 선결 과제로 삼고 이후에 머리를 맞대 각 위원회의 활동 역량을 충분히 모아서 새로운 세대가 민변의 주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실천적인 발전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혜정 올해 민변은 30주년을 앞두고 있고, 변곡점에 있어요. 회원들이 늘어났지만 예전만큼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생계가 어려워서 시간을 내서 민변 활동하기가 어렵다는 회원들도 있고, 일부 회원들은 회비 내는 것도 부담스러워 탈회하기도 해요. 이런 회원들을 아우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성 많은 회원들을 이끌어가면서 우선적으로 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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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철 본부와 지부 회원 간의 정서격차, 민변 활동 회원과 비활동 회원 사이의 이질감, 민변활동에 참여하는 양상의 차이, 이런 점들을 우선적으로 파악해야할 것 같습니다. 비활동 회원이 민변에 바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먼저 경청해야 할 것 같아요. 그분들이 말을 하실 수 있도록 오프라인, 온라인의 소통의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필요하면 찾아가고, 또 오시도록 하면서 거기서부터 답을 찾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질의 소통공간을 찾아가야 할 것 같아요.

 

이혜정 그런 문제가 끊임없이 고민되어 와서 인트라넷, 페이스북 민변 그룹 등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고민 지점이죠. 지금 이 자리에서 민변의 선배, 후배 변호사들에게 차기 회장으로서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말씀해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김호철 부족한 사람이 회장으로 당선 되어서 거대한 민변을 끌고 가기엔 아직 짓눌려 있어요. 짓눌린 회장 당선인이 좀 기를 펼 수 있도록, 민변이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잘 이끌 수 있도록 좀 도와달라는 그 말씀을 우선 드리고 싶어요. 많이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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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마지막으로 변호사님께 있어 ‘민변이란’ 어떤 것인가요?

 

김호철 삶의 등불이죠 (웃음). 변호사 생활을 하다보면 다양한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형성합니다. 그러다보면 자칫 일탈하기 쉬울 수도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변호사 개업 당시부터 지금까지 일탈하지 않고 나름 원칙을 갖고 (변호사 생활을)할 수 있었던 것은 민변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민변은 ‘내 삶의 등불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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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설립 30주년 기념행사 참석 후기]

 

청년 30년, 한길로 함께

민변 인천지부 사무처장 한 필 운 변호사

한필운변호사

 

총회 가는 길

 

민변 총회날, 갑작스럽게 변호인 접견이 잡혀 인천구치소에서 접견을 마치고, 조금 늦었지만 설레는 마음을 안고 강남순환도로를 탔습니다(가는 길에 심심하지 말라고 많은 도움 주신 조미연 변호사님 감사드립니다).

 

평일 오후에 열리는 총회라서 일찍 참석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었지만, 어서 빨리 총회를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이유는 저의 ‘첫 총회’ 참석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경남지부 회원님들께서 성대히 맞아 주신 작년 총회가 저의 ‘첫 총회’였는데, 총회에 참석한 저의 소감은 ‘참 좋다’였습니다. 촛불 혁명 이후의 총회이기 때문이었는지, 통영 중앙시장 맛집이 너무 맛있었기 때문인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바라본 한려수도가 아름다웠기 때문인지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그날 그 경험이 너무 좋아서 이번 총회도 꼭 가서 참석하고 싶었었습니다(아마도 가장 좋은 것은 뒤풀이였겠지요. 통영에서 둘째날 늦은 새벽에, 제가 많이 취해 있었다면 죄송합니다).

 

한 시간 즈음 늦은 시각에 회장에 도착하여 윤대기 지부장님 옆에 앉은 순간부터 민변 설립 30주년 기념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세 장면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민변 창립회원이신 한승헌 변호사님의 ‘(축사 아닌)축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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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께서 민변 회원이시므로 셀프 축사를 하지는 않겠다 하시며 시작하신 ‘축사’는, 이제 막 민변을 알아가는 저에게 큰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스스로를 ‘노병’이라 칭하시며, 민변 간판 값이 올랐으니 지분을 달라고 하시는 유쾌한 농담은 큰 가르침을 위한 프롤로그였습니다. 이어서 후배회원님들께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이시라며 던져주신 다음의 세 가지 가르침은, 아마도 제가 앞으로 30년 민변 활동을 하면서 두고두고 되새길 가르침인 듯합니다.

 

인권변호사라 스스로 말하지 말라.

내가 의롭다 하여, 다른 이를 배척하지 말라.

민변 변호사가 다른 변호사와 다른 이유는 ‘사서 고생’하기 때문이다.

 

선배님의 가르침을 모두 받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앞으로 민변 변호사로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되새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두 번째는 민변 30주년 행사를 위해서 오랫동안 연습을 하셨던 중창단의 공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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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첫 곡부터 손수건 꺼내서 사용했습니다. 요즘 왜인지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나는데, 야속하게도 중창단 회원님들 때문에 터져버렸습니다.

 

세 번째는 민변 30년의 변론을 낭독한 ‘낭독 공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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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경찰서성고문사건의 변론을 시작으로 촛불혁명의 성명서까지 우리 역사 곳곳에서 울려퍼졌던 아름다운 민변의 언어들을, 감동적으로 되새길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이번에도 손수건 사용했습니다).

한 가지 특별히 놀랐던 것은, 영문 의견서를 낭독하신 회원님의 놀라운 발음이었고, 한 가지 특별히 아쉬웠던 것은, 제가 그 영어를 해석할 수는 없었다는 점입니다.

 

마지막 순서로 창립회원 선배님들을 무대위로 모시고 함께 부른 아침이슬에 또다시 손수건을 꺼내야 했던 기억,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으로 뒤풀이 행사를 진행하신 김준우 변호사님의 센스 넘치는 진행, 윤대기 지부장님과 인천지부 회원들, 김남근 부회장님과 서중희 위원장님까지 한데 모여 술잔을 기울이던 뒤풀이의 기억까지 모두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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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기억

 

이번 행사 참석도 역시 ‘참 좋다’라는 기억만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올해 총회와 기념행사가 특별히 좋았던 이유가, 가르침을 받아서인지, 감동을 받아서인지, 뒤풀이에서 좋은 분들과 맛있는 술을 많이 마셔서인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매번 이렇게 민변 회원님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민변이 좋고, 민변에서 만난 사람들이 좋다는 것이겠지요. 좋은 것에는 이유가 없고, 사랑에 빠지는 것은 설명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청춘

 

노동위원회 뒤풀이 장소에서 한 신입변호사님께서 남긴 건배사가 ‘청·바·지’였습니다.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청년시기를 맞는 민변의 청춘도 다시 한 번 지금부터일 것입니다.

민변과 저의 나이가 비슷하니(뭐, 완전히 비슷하지는 않습니다), 저의 청춘도 지금부터이겠지요.

이제 청년의 꿈으로 날아오를 청춘 민변에서, 저 역시 청춘 30년을 함께하게 될 것입니다.

한 길로, 참 좋은 이 느낌 그대로, 함께 날아오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소속위원도 아닌 저에게 밤새도록 술을 사주신 노동위원회 정병욱 위원장님과, 밤새도록 반겨주신 노동위원회 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마셨으면 자동 가입이다’라는 통보도 감사드립니다.

목, 2018/05/3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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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혁1

 

대설주의보가 내린 빙판길 위를 거침없이 달리는 변호사. 민변 언론위원장 이강혁 변호사를 만나보았다. 9년 경력의 기자였던 그는 지금 법조인으로서 언론의 영역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7년 만에 파업에 마침표를 찍은 MBC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동시에 여전히 아픈 손가락인 KBS와 언론 생태계 전반을 걱정하는 그의 솔직한 생각을 알아볼 수 있었다. 반쪽짜리 성공으로 끝날 수 없는 돌마고(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파티의 아름다운 피날레를 위해 오늘도 이강혁 변호사는 달린다. 아이스 스케이팅도 마다하지 않는 언론 지킴이 이강혁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강혁최종

 

민변 언론위원회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특히 언론위원장으로서 맡은 직무는 무엇인지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언론위원회는 영어로 대외적으로 소개할 때 ‘committee on media’, 즉 ‘언론매체에 관한 위원회’예요. 하지만 언론의 자유는 좁은 의미의 언론매체만의 문제는 아니잖아요. 표현의 자유 전반으로 이해되기도 해서, 그 모든 것을 다 하냐고 묻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잠재적으로는 그렇게 할 수도 있고 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역사적으로 언론위원회는 언론 매체 중심으로 활동을 해왔어요.
처음 언론위원회 조직을 만든 안상운 변호사님께서 언론매체의 문제, 그중에서도 언론의 왜곡·과장 보도로 인한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시작했어요. 이걸 중심으로 오긴 했지만, 활동 영역을 넓혔어요. 언론보도 피해자 구제에서는 언론이 대상화되어있지만, 언론을 중심에 놓고 언론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활동도 하고 있어요.
정리하자면, 활동영역의 기본은 언론 보도의 피해자 구제 지원이에요. 그 유관분야로 우리 민변을 언론과의 관계에서 수호하는 역할도 하고 있어요. 민변 회원들도 언론 보도의 피해가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특히 조·중·동에 의해 종북으로 매도당하고 공격받기도 해요. 그때 언론위원회가 소송을 대리하기도 합니다. 나아가 언론매체가 바로 설 수 있도록 언론매체 내부에서의 개혁운동 같은 것을 지원하기도 해요. 대표적인 예로 현재 방송개혁을 위한 양대 공영방송 파업에 결합하여 지원하는 활동을 들 수 있고요. 조금 더 나아가서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언론의 자유 개념이 포괄적이기 때문에 더 폭넓게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둔 채 다양한 관심을 두고 추가의 활동 영역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분들이 오셔서 어떤 활동을 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폭이 넓어질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하는 위원회입니다.

9년 넘게 신문기자 생활을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떠한 계기로 변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신문기자가 된 것 자체가 투철한 계획이나 적성이라든가 장래 진로와 전망을 확실히 정리한 상태에서 되었다기보다는 상황에 의해 불가피하게 된 면이 있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당시만 해도 보편적으로 민주화운동·학생운동에 많이 참여하는 분위기였고, 저도 그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운동에 참여했어요. 그 과정에서 감옥에도 다녀오다 보니 소위 말하는 블랙리스트 대상자가 되었고요. 그래서 다른 분야로 갈 수는 없었고요. 노동운동을 하거나, 언론사도 다른 언론사가 아닌 ‘한겨레신문’ 밖에 대안이 없었어요. 이 두 가지의 선택지 가운데에서 고민했는데, 나름대로 학생운동도 하고 그 당시에는 투철한 혁명가가 되겠다는 생각도 하긴 했습니다만, 저는 백면서생 스타일이고 미국식 자유주의적인 성향도 가지고 있고 급진주의적인 성향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동운동은 여러모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한겨레신문에 입사하여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사실은 직업으로서의 기자 생활이 아주 잘 맞았던 것 같지는 않아요. 우리 언론사들에서는 제도의 틀에 맞서 소위 ‘곤조’, 즉 근성을 부리고 거칠게 싸우며 공격적으로 하는 것이 권장되는 분위기거든요. 그래야 특종기사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최근 문재인 대통령 중국 방문 과정에서 중국 경호원들과의 충돌과정에서도 (관련 기자님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편린이 드러났죠. 이것이 제 서생적인 기질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겨레신문 동료들이 인간으로서, 그리고 우리 시대에 살면서 품는 지향성 면에서 굉장히 존경할만한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배우고 즐겁게 생활했습니다. 하지만 직업적으로 안 맞는 부분들 때문에 계속 고민을 했죠.
그러다 정권 교체(김대중 대통령 당선)가 이루어지고 (표현이 왜곡되어 들릴 수 있고 한겨레에 계신 분들이 오해할 수도 있어 조심스럽지만) 한겨레신문이 일종의 여당지가 되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굳이 그곳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고 개인적으로 더 하고 싶은 일, 더 맞는 것을 찾아도 될 것 같아서 다른 직업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퇴직하고 처음에는 사법시험을 준비했는데 건강 문제 등으로 실패했죠. 그 후 생계를 위해 고등학생 대상 논술학원 강사를 몇 년 했습니다. 그러다가 보다 안정적인 활동을 하려면 아무래도 변호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마무리 짓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로스쿨 1기로 들어가 변호사가 되었고, 이 시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기자가 직업으로서 맞지 않은 것 외에 구체적으로 변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 그 점에 관해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안타깝고 아쉽게 생각했던 점이 있어요. 한겨레신문이 좋은 선·후배가 모인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한 구성원’이기 때문에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어떤 기사를 쓰기 싫은데도 써야 하는 것 등이요. 타사처럼 위에서 억압하거나 안 좋은 기사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서도 의견 차이가 있어요. 제가 워낙 개인주의적이고 못된 성미라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이런 면에서 ‘나 혼자 간섭받지 않고 알아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해봤을 때 변호사가 떠올랐어요.
또, 언론사 기자 생활이 소모적인 부분이 많았는데, 자기계발을 하면서 공부를 하고 실력을 쌓고 싶었어요. 일반적인 학문 공부를 하는 것이 제일 좋겠습니다만, 생계에 대한 압박이 있어 도저히 그 나이에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법학을 다루는 변호사를 선택했는데, (신문사의 동료들에게 죄송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라는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지금이 기자 때보다 더 맞는 것 같아서 후회 없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6

 

변호사가 된 후에 여러 소송을 수행하셨을 텐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소송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작년에 신문법시행령에 대해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결정을 얻어낸 헌법소원 사건(2015헌마1206)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박근혜 정권이 (이미 드러난 공영방송 등에 대한 개입 외에) 인터넷언론 쪽에도 개입을 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2015년 당시에도 이런 정황을 포착하여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어요.
인터넷신문의 기준은 신문법과 신문법시행령에 규정되어 있는데, 기존에는 상시로 고용해야 하는 취재 및 편집 인력을 3인 이상 요구했거든요. 그런데 문체부에서 기업들 대상의 신뢰하기 어려운 설문조사 결과 등을 내세워 ‘인터넷신문들이 기업체를 공갈하고 안 좋은 쪽으로 쓴다, 언론계의 물을 흐리고 질을 떨어뜨린다’는 등의 논리를 펴면서, 신문법시행령의 인터넷신문 인력 기준을 3인에서 5인으로 개정했어요. 인터넷신문 업계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1인 미디어나 2인, 3인 미디어 수준이 많은 것이 인터넷신문의 현실이거든요. 당장 사람을 더 고용한다는 것은 인건비가 들어간다는 얘기잖아요. 그런데 이런 매체들은 더 많은 자본을 투자하기 힘들기 때문에 결국 문을 닫으라는 이야기인 셈이에요. 그때 당시 조사한 바로는 절반 이상의 기존 인터넷매체가 폐업을 고민했었고, 그래서 충격이 컸죠. 이 시행령 개정 배경으로는 앞서 언급한 나름 내세운 명분은 있었지만, 사실은 인터넷 언론을 완전히 장악해나가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고 봤습니다. 신문 쪽에서는 ‘한경오 진영’이 있긴 합니다만 조·중·동이 꽉 잡고 있고, 공영방송을 완전히 장악한 것은 물론 종편에서도 JTBC를 제외하고는 자신들이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통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야가 ‘인터넷’ 언론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기준 요건 강화를 통해 많은 인터넷신문사들의 문을 닫게 하고 시장 자체를 재편하는 계기로 삼으려 했던 거죠.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1인 미디어가 가능한 시대잖아요. 소수의 인력으로 하더라도 특정 전문 분야를 성실하게 지속해서 취재하고 보도한다면 기존의 대형매체들이 하지 못하는 영역을 다룰 수 있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물론 영세한 업체 중 문제가 있는 업체도 있긴 하지만,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우면 안 되듯이 당시 개정한 시행령처럼 과도한 기준을 요구해서 이에 미치지 못하는 매체들은 모두 없어지게 하면 안 되는 거죠. 이런 측면에서 너무 획일적이고 지나친 입법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어요.
사실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도 신문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한 기존 정권에서 임명한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헌법재판소 재판관들도 최소한의 자유주의적인 언론관에 입각해서 이건 너무 심하다고 인정한 것 같아요. 그래서 7:2로 위헌이라는 판단을 받았고, 덕분에 많은 인터넷신문들이 문을 닫지 않고 살아나게 됐습니다. 그종사자 분들한테도 그렇고, 무엇보다 언론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칠 시도를 막아냈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현재까지 KBS는 파업 중이지만, MBC는 최근 김장겸 사장이 해임되고 해직된 최승호 PD가 사장으로 내정됐습니다.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남다른 감정을 느끼실 것 같습니다.

일단 저 자신도 그렇고, 많은 분이 양대 공영방송인 KBS와 MBC의 언론인들에 대해서 많이 실망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2012 MBC 파업이라든가 열심히 언론을 바로잡기 위해서 노력한 분들이 계시다는 걸 압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방송이 엉망으로 왜곡돼 갈 때 무엇을 하셨는지, 더 적극적인 노력이나 저항을 할 수는 없었는지 등에 대해서 의심이나 약간의 불신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파업을 MBC는 마무리했지만, KBS는 지금도 진행하고 있잖아요. 소위 무노동무임금 원칙에 의해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여러 달 파업을 하고 계시는데, 몇 달 동안 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거든요. KBS 같은 경우에는 최근에 사태의 분기점으로 강규형 이사 해임 사전통지가 되면서, 저도 파업을 이끄는 새노조 위원장께 “이젠 파업을 접으시라, 너무 힘드니까”라고 그렇게 권유를 많이 했는데 “힘들더라도 끝까지 확실하게 매듭을 지어야 한다. 그래야 교훈이 남는다.”라며 투쟁을 끝까지 이어가겠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이런 모습들과 아울러, 영화 <공범자들>을 통해 2012 MBC 파업 이후 지속해서 싸워오고 고통받아온 뜻 있는 방송인들의 노력을 생생하게 눈으로 보면서, 적어도 이런 움직임과 운동을 주도하는 분들은 나름대로 다시 기회를 가질 자격과 어떤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과 믿음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지금 와서 파업에 참여하는 분 중에는 대세를 따라서 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말씀드린 것처럼 꾸준하게 싸워오고 지금도 절절하게 실천하는 분들은 정말 진정성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분들을 중심으로 공영방송이 개혁되고 제자리를 찾아갈 희망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5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동안 공영방송 장악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 핵심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무섭게 했죠. 국정원까지 동원해서요. 특히 노조가 저항하니까 플랜을 만들고 그 플랜에 맞춰 해바라기 언론인들에게 지시를 내려서 노조 활동을 하거나 뜻있는 언론인들을 한직으로 부당인사를 하는 등의 식으로요. 물론 정권이란 가해자가 있고 이것이 핵심이지만, 이외에도, 주체적인 반성이란 면에서 본다면 결국 중요한 것은 언론사 내부에서 양지를 좇은 해바라기 언론인들의 문제이겠죠.
정권이나 자본 등 외부의 유혹이나 압력은 항상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거든요. 그래서 내부에서 스스로를 지켜내는 주체의식이 중요한데, 그런 부분에서 타락한 해바라기 언론인들이 호응을 했기 때문에 이 정도까지 악화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특히 결과적으로는 비슷했을지 모르겠지만, 많은 국민들이 공영방송에 대해 심각한 불신을 가지게 됐던 부분이 그런 것들 때문이었으리라는 면에서 굉장히 그 문제가 컸죠. 노조 파업 하시는 분들도 주목하고 있는 사안인데, 정권의 언론장악을 내부에서 협조해주고 이를 통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한 분들에 대해서 법적인 차원이든 도덕적이고 직업적인 차원이든 확실한 책임추궁과 청산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론인들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받고 중요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절대로 그렇게 처신을 해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교훈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변 언론위원회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파업에 연대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매주 금요일에 불금파티라고 외부 지원 단체 연대 집회가 있습니다. 저나 위원님들이 참석하면서 연대를 꾸준히 했죠. 개별적인 법률 지원에 대해서는 대표적인 예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해임통지를 한 KBS 강규형 이사 사안을 들 수 있습니다. 그분이 애견 동호회 활동을 하는데, KBS 법인카드로 동료 동호인들에게 밥을 사주는 등의 비리가 드러났습니다. KBS 이사들 문제가 제기되니까, 애견 동호회 분들이 KBS 노조에다가 제보를 한 거죠. 그런데 그걸 알고 그분이 제보를 한 사람들에게 협박성 문자를 여러 날 보냈습니다. 모 유명 사립대 교수님인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교수님의 말이라 생각하기 힘든 폭언적 내용이 가득한 채로요. 그래서 언론위 소속 위원이신 서창효 변호사님이 KBS노조를 대리해 강부영 이사를 고발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파업에서 내용으로 봤을 때 제일 크게 쟁점으로 부각됐던 것은 ‘공공기관 경영진의 임기를 정권교체 과정에서 보장해야 하는가’하는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2008년도에 노무현 정권에서 이명박 정권으로 교체되면서 KBS에 정연주 사장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을 이명박 정권에서 쫓아내기 위해서, 어떻게 보면 외형적으로는 지금과 비슷하게 KBS 이사를 바꾸고 이어 사장을 바꾸는 수순을 진행했습니다. 나중에 판결을 통해서 위법이라는 판단을 받긴 했습니다만, 이미 임기가 지난 뒤라 원상회복은 못 했죠. 당시 사태와 이번 투쟁이 외형적으로는 비슷하기 때문에 뒤집어서 보면 우리가 그 과오를 또 범하는 것이 아니냐, 안 좋은 전례를 남길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있었습니다. 근데 그 문제에 대해서 다른 언론단체들은 상대적으로 깊게 고민을 하지 않고, 적폐 세력이 말도 안 되는 얘기 하는 것으로 치부해버리거나, 우리는 어떤 논리에도 흔들리지 않고 일관되게 지지한다는 식으로만 대부분 정리를 했죠.
하지만 우리 민변 언론위원회 같은 경우는, 특히 법률적인 문제도 많이 깔렸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죠. 역으로 저쪽에서 소송한다고 큰소리치며 이미 법정공방 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이고, 당장 정연주 사장님 판결 때 우리가 이겼던 것처럼 소송에서 우리가 질 수도 있는 문제이지 않습니까. 만일 우리가 지게 된다면 역사적으로 그 과오에 대한 책임 문제, 또 나아가서 사회 전체의 적폐청산과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부담이 클 수 있습니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죠.
그래서 그 부분을 나름대로 언론위원회에서 심도 있게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공영방송 경영진 같은 경우 ‘일반적으로는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임기를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예외적으로 해임하지 않을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임기 보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해임 절차 규정이 대통령 탄핵처럼 세부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기에 이전의 판례나 일반적인 단체법 법리를 적용해 절차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는 등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정리해서, 가장 먼저 성명으로 발표했고 위원장 명의로 오마이뉴스에 기고해서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물리적으로 당장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영방송 정상화 투쟁의 정당화 논거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나름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4

 

공영방송 장악 금지와 관련한 여러 법률안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권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독립된 언론을 위해 추진해야 할 법적 과제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근혜 정권 말 즈음에 ‘언론 장악 방지법’이라고 당시에 야 3당인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국민의당이 같이 법안을 만들어 놓은 게 있습니다. 기존 KBS‧MBC 이사 구성이 일방적으로 여 쪽에 편향되어 있었다면, 이 법안의 핵심적인 내용은 7대 6으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자는 것입니다. 특히 사장 선출과 선임을 할 때는 편향성을 가지지 않는 사람을 사장으로 해야 한다는 취지로, 3분의 2 동의를 받는 ‘특별 다수제’가 있습니다. 결국엔 야 쪽의 동의를 받아야만 하는 거죠. 이게 현 여권(옛 야권)의 기존 입장이었습니다. 사실 이 법안은 지금의 자유한국당이 여당 지위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지 않겠느냐 하는 압박감에 많이 시달리면서, 최소한의 보험용으로 이만큼의 견제선은 확보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정리되고 제시된 성격이 강합니다.
그런데 이 법안이 나온 이후에 촛불혁명이 일어났고, 촛불혁명에서 확인한 에너지와 요구는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봤을 때 지금 얘기한 언론장악방지법안은 여당이나 대통령으로부터는 조금 자유로운 거리를 둘 수 있지만, 정치권 전반, 즉 기존 정당들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입법부의 각 교섭단체가 추천해서 이사들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이 법안을 시행하면 각 당의 세력 구도에 따라 이사회가 구성되고 제어되는 구조가 되거든요.
그래서 이게 과연 정답이냐는 문제 제기가 쭉 있었고, 문재인 대통령도 집권 뒤 그런 맥락에서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었죠. 언론사 노조들, 언론 단체들에서도 같은 문제 제기가 있었고요. 이런 맥락에서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 등을 정치권에만 맡길 게 아니라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가미하여 국민들의 뜻을 반영하도록 하자는 대안이 주장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이사를 전부 선출한다는 것은 어렵더라도 일부나마 선출해서 민의를 직접 대변하는 이들 국민 선출 이사가 여·야 추천 이사 간에 의견이 갈릴 때 캐스팅 보트가 되는 구조로 가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이미 이런 법안을 제출한 상태이고요. 대표적 언론단체인 민언련에서도 그런 방안을 낸 상태입니다. 심지어는 방송법 개정을 계속 반대하다가, 또 최근에는 언론장악방지법안 식으로 개정을 하자고 하던 자유한국당마저 지금 말한 새로운 근본적인 요구가 나오다 보니까 강효상 의원이 새로운 법안을 제출한 상태입니다. 이 강효상 의원 안은 직접 국민들이 참여하는 방식은 아닌데, 각 사회·직능단체들의 추천으로 공영방송 이사회를 구성하는 방식으로서, 정치권에 그냥 맡겨놓는 것보다는 나름 진전된 방식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안의 문제점은 명확한 기준 없이 추천 단체들을 아예 명시해놨는데, 속이 들여다보이게 교총이라든지 (조‧중‧동이 주도하는) 신문협회라든지 자유한국당 입장에서 우호적이라 생각하는 단체들을 여럿 포함시켜놨다는 점이죠.
따라서 걸러서 보기는 해야 합니다만, 어쨌건 결국 언론장악방지법안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쟁점 구도가 형성되어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롤 플레이어로서 안을 내놓아야 할 더불어민주당은 아직 새로운 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 측인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지금 막 자문기구를 통해서 안을 만들어 내고 있고요. 새해 1, 2월 정도에 그런 안들까지 나오게 되면, 정권에 좌지우지 되지 않도록 언론 독립을 법제도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논의가 각 세력의 안을 토대로 본격화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핵심적인 방향은 여야 정치권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가미하는 것이겠죠.

 

추상적인 의미의 직접 민주주의 도입을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인 형태로써 도입되어야 할 안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다양한 논의들이 이뤄지고 있는데, 아직 민변 언론위원회에서는 결정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세부적으로 말하긴 그렇습니다. 다만, 얼마 전 운영됐던 신고리 원전 공론화위원회처럼, 무작위로 국민들에게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 선출과정에 참여하겠는지 의사를 물어서 의사가 확인된 분들을 상대로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선출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보통 ‘국민참여단’ 이렇게 표현하고 있죠. 세부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는 더 연구할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목, 2017/12/2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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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는 왜 거리로 나섰는가

 

류하경 회원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정권과 재판거래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우리는 대법원 동문 앞에서 지난 6월 5일 “사법농단규탄 법률가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전 11시 30분 취재열기는 뜨거웠다. 많은 수의 변호사, 법학교수들이 분노 담긴 규탄 발언을 쏟아냈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 선언문 낭독이 있었다. 선언문은 기자들에게 사전에 배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선언문 말미에 농성돌입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5일전인 5월 31일 초동모임을 갖고 긴 토론 끝에 천막농성을 결의했다. 이 내용이 알려질 경우 보안상 문제가 생겨 천막농성 시작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어서 비밀유지에 만전을 기했다.

 

낭독자가 선언문의 마지막 문장을 읽었다.

 

“시대를 밝히는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되새기며, 그리고 법원에 대한 분노를 모아 위와 같은 내용으로 법률가 시국농성을 선언합니다.”

 

문장이 마무리되는 그 때,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투쟁 노동자들이 미리 준비한 천막을 대법원 동문에서 서초역 6번 출구로 가는 인도 위에 펼쳤다. 10여초나 되었을까 천막은 금세 설치되었다. 마이크를 잡고 소리쳤다. “지금 농성천막이 설치되었습니다. 현 시간부로 법률가 농성 시작을 선언합니다. 자, 참가자 여러분 모두 천막으로 가서 빨리 앉아주십시오.” 법원 경위와 주위에 서있던 경찰들은 우리 쪽으로 다가올 엄두도 내지 못했다. 너무나 순식간이었고 천막을 지키려 달려간 우리 숫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함성과 박수로 농성이 시작되었다. 오늘까지 10일차 노숙농성이다.

 

1971년 최초의 사법파동이 있었다. 판사들이 공안사건에 자꾸 무죄를 내리는 것이 박정희는 맘에 들지 않았고 결국 서슬퍼런 군부독재가 양심껏 재판하는 판사들을 손보기 시작하자 이에 법원 전체가 들고 일어난 것이다. 독재자 박정희의 칼은 검찰이었다. 서울지검 공안부는 대표적인 소신 판사인 이범렬 부장판사를 표적 수사하여 관례상 접대를 이유로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 접대자체가 전혀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법원은 시기와 대상의 형평성을 보건대 정황상 소신 판사에 대한 표적수사로 결론지었고, 이를 독재정권이 법원의 독립성에 도전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전국 법관의 1/3인 153명의 판사가 사표를 제출했다. 박정희는 법무부장관에게 수사중지를 지시하고 대법원장은 법관처우개선을 약속하면서 사법파동이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당시 대법원장을 찾아가 법관들의 항의를 전달한 7명의 판사 중 스스로 사직한 홍성우, 김공식 판사를 제외한 나머지 최영도, 목요상, 김인중, 금병훈, 장수길 등 5명의 판사는 모두 재임명에서 탈락했다. 이후에도 1988년 2월 소장 판사 335명이 5공화국에서 중용되었던 김용철 대법원장 재임명을 반대하며 성명을 발표하면서 시위하여 결국 김용철 대법원장이 사퇴하였고(2차 사법파동), 1993년 6월에는 판사 40여명이 군부독재에 협조한 사법부의 자기반성을 촉구하며 항의하여 대법원장이 사퇴하기에 이른 일도 있다(3차 사법파동). 그리고 2003년, 판사 160여명이 기수 서열에 따른 보수적 남성 법원장만이 대법관이 되는 관례에 항의하며 대법관 제청에 반대하는 연명을 제출했다(4차 사법파동).

 

이처럼 법원은 지난 군부독재 시절 권력의 폭압적 분위기에서 그릇된 재판을 했거나, 정당한 지휘권과 인사권을 침해당한 역사가 있다. 그런데 작금의 사법파동은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다. 법원이 사사로운 제 이익을 위해서 스스로 정권에 부역한 것이다. 특히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법원이 박근혜 정권과 거래한 재판들이 모두, 노동자·사회적약자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가장 마지막으로 법원에 기댄 사건들이라는 점이다. 1차~4차 사법파동에서 피해자가 법원 또는 판사였다면, 이번 사법파동에서는 법원과 판사가 가해자가 되었다. 그래서 사법파동이 아닌 “사법농단”이라고 역사에 기록해야 한다.

 

문제가 된 대법원 판결들을 살펴보니, 사법농단의 피해자는 투쟁하는 노동자, 가난한 서민, 독재의 폭력에 저항하다가 희생된 과거사 피해자들이었다. 법원은 제도에 희생된 약자를 권력에 아부하기 위한 ‘협상카드’로 사용함으로써 이들을 두 번 죽였다. 대법원이 정권의 하수인이 되었다. 강요에 의한 굴복이 아닌 자발적·적극적 부역이기에 이는 조금도 감경될 수 없고 오히려 가장 엄하게 가중처벌 되어야 할 역사범죄다.

 

변호사도 중요한 직접 피해자다. 재판이 이 모양이면 우리가 쓰는 서면이 다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재판이 이 모양이면 국민이 권력자를 찾아가지 무엇 하러 변호사를 선임하겠는가. 변호사는 독립성과 공정성을 스스로 내팽개쳐 버린 법원에서 더 이상 재판을 할 수 없다. 심판이 부패하고 경기장이 무너져 내렸는데 선수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시합 준비에만 매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우리는 거리로 나왔다.

 

대법원 앞에서 법률가들이 천막 노숙농성에 돌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일상적이지 않은 사태에 일상적으로 대응할 수는 없다. 초유의 사법농단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에 법률가들이 책상머리와 법정을 벗어나 초유의 노숙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피해 당사자들 외의 국민 대다수는 이 사태가 어떻게 역사를 후퇴시켰는지, 그 피해의 규모와 향후 예방의 필요성에 대해 크게 절감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법농단에 대한 사회적 파장은 지금보다는 더 커져야 한다. 독립적이며 공정하여 시시비비를 가리고 정의를 세우는 주춧돌이어야 할 법원이 썩어버리면 힘의 논리와 권모술수만이 지배하는 정글에서 모두가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문명의 파괴다. 역사의 종말이다. 대통령이 권력을 팔아먹은 국정농단에 버금가거나 이를 능가하는 심각한 사태다.

 

그렇다면 사안의 엄중함을 누구보다 깊이 알고 있는 우리 법률가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야 한다. 법률가들이 행동함으로써 사회적 공론을 주도하고 토론의 장을 열어,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이 사법농단 사태를 부각시켜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거리로 나서게 되었다.

 

금, 2018/06/1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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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대구지부 조직활동의 가장 큰 특징은 매주 목요일 만나는 점심 회의에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항은 점심 모임 회의에서 보고되고 결정되며, 부설기관인 인권센터의 소송구조사건 변론상황도 함께 공유하고 있습니다. 지난 기간동안 있었던 변론사건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2017. 8~ 2018. 3.)

1. 원폭피해소송

17. 8. 3. 원폭기자회견 3

2017년 8월 3일 최봉태 변호사를 단장으로 해서 대구지부에서는 원폭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조정 신청을 대구지방법원에 제출하였습니다. 미국 정부와 원폭제조사‧한국 정부를 상대로 원폭 피해자들의 치유, 권리규제를 위한 법적 투쟁을 시작하기로 했으며, 한국인 피해자들이 미국의 원폭 사용이 위법 행위라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당사자들이 제기한 조정 신청 취지는 원폭제조사에 원폭 투하 행위의 위법성을 묻고, 미국 정부의 사죄, 대한민국 정부의 피해자 구제를 위한 책임 있는 행동 등을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8월 21일 서울중앙지법으로 이송되어 9월 18일 우리 정부만을 대상으로 첫 조정 재판이 열렸으나 조정불성립 되어 현재 재판 중입니다.

 

2. 대구 여중생 성폭행  항고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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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40대 중반의 남성 학원 원장이 자신이 운영하는 학원 수강생인 중3 여학생과 늦은 밤, 아무도 없는 불 꺼진 학원 강의실에서 문을 잠그고 성관계를 가졌으며 다음날 학생이 학교 보건교사 등과 상담 후 경찰에 성폭행을 신고하여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2017년 3월 서부지청은 아동‧ 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강간) 혐의에 대해 피의자가 폭행, 협박 또는 위계, 위력을 사용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 없음 불기소 처분을 내렸습니다. 피해 여중생 측 법률대리인을 맡은 박정민 변호사는 위력에 의한 강간 또는 아동복지법상 성적 학대행위라며 2017년 9월 검찰에 항고장을 제출하였습니다. 대구고등검찰청은 아동복지법위반에 대한 항고를 받아들여 고검에서 직접 수사해 처리하는 직접경정(재기수사) 결정을 하였고, 아동복지법위반(아동에대한음행강요·매개·성희롱등)으로 기소하여 현재 재판 진행 중입니다.

 

3. 박성수 씨(2) 명예훼손 사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전단지를 만들어 전국에 배포한 혐의(명예훼손 등)로 구속기소된 사회운동가 박성수씨 사건은 민변본부의 김인숙 변호사와 민변대구지부 이승익, 류제모, 김미조 변호사가 주축이 되어 변론을 진행하였습니다. 1심에서 전부유죄,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으나 항소심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투어진 명예훼손죄에 대하여 무죄, 정보통신법 위반에 관하여 일부 유죄‧ 일부 무죄, 집시법위반과 정통법 일부 유죄에 관하여 벌금 200만원 선고받았습니다. 현재 상고심 계속 중에 있습니다.

박성수씨가 만든 전단지를 대구시당 앞에서 배포한 혐의(명예훼손)로 재판에 넘겨진 변홍철씨와 신동재씨 역시 각각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대구지부는 201711월부터 신입회원 사무실 방문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목요일점심모임 회의를 마치고 참석한 회원들과 함께 사무실에서 다과와 담소를 나누는 일정입니다. 사무실에서 변호사님들을 뵈니 더욱 더 반가워하시고 변호사로서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 마음을 담은 작은 선물 전달 등 짧지만 뜻깊은 소통의 시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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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에 본부 소속 권영국, 김동창 변호사님께서 경주에 사무소를 개설하면서 대구지부소속 회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작년 송년회에 참석하신 두 분 사진으로 대구지부 소식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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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3/2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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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위가 주관하여 3월 6일부터 3월 31일까지 총 10강으로 진행된  <제 7회 노동법 실무교육>을 수료한 신입변호사의 수강후기입니다.

노동법 실무교육 수강 후기

 

박용범

 

  한가롭던 2월 중순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민변 노동법 실무 떴어!

  그렇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민변 노동법 실무교육 공지가 언제 뜨나 기다리고 있었다. 우연히 SNS에서 공지를 보고 한번 들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참석한 게 아니라 이미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2월 한 달 동안 아무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면서도 이거 하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아! 3월에는 민변 가서 노동법 공부해야지.

  민변 노동법 실무교육에 가겠다고 결심한 데에는 학교 선배의 조언이 컸다. 작년에 민변 교육에 참석했던 선배로부터 정말 훌륭한 강의이니 나중에 꼭 들으라는 얘기를 들은 때부터 이미 부러움 반, 기다림 반의 심정으로 나중에 꼭 참석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2016년 민변에서 했던 실무수습의 좋은 기억 때문이다. 너무나도 더웠던 2016년 8월 민변에 와서 민변 노동위원회와 법무법인 시민에서 실무수습을 했던 경험은 나의 짧았던 로스쿨 생활 중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꼽고 싶다. 그리고 그때부터 결심하고 있었다. 변호사시험을 치고 나면 꼭 다시 민변에 가야겠다고.

  시간을 더 거슬러서 내가 로스쿨에 와서 왜 처음으로 노동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생각해본다. 내가 다닌 로스쿨은 이른바 세무특성화 로스쿨이었는데 입학 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세법 수업을 많이 들어야 취업이 잘된다는 말이었다. 이런 말에 대해선 막연한 거부감을 느꼈다. 이왕에 법을 공부하게 되었으니 취업보다는 다른 뭔가를 하고 싶었다. 공익활동에 관심에 있다면 적어도 노동법은 잘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일단 노동법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듣다보니 좀 많이, 네 과목이나 듣게 되었다. 꼭 집어 구체적으로 말하긴 쉽지 않았지만 돈 많이 버는 자리보다 공익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자리면 좋겠다는 생각, 세무나 기업 관련 사건보다는 노동사건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이어져 노동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민변 노동법 실무교육에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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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변에서의 노동법 강의는 역시 기대한대로 모두 훌륭했다. 내가 감히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 평가한다는 건 언감생심이지만, 한 가지 말하자면 모든 강의가 각각 다른 방식으로 훌륭해서 더욱 좋았다. 한 강의에서는 모든 노동 사건의 유형을 일목요연하게 표로 정리해서 배웠고(이 표는 취업하면 꼭 사무실 책상에 붙여놔야겠다), 산재보험 신청절차를 실제 진행된 기록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배우기도 했다.(생각했던 것보다 신청 서류가 무척 복잡해서 놀랐다. 변호사는 의학까지 알아야 되는 걸까?) 또 이제는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유명한 사건을 직접 담당하신 변호사님으로부터 직접 그 사건에 대해 듣기도 했고, 흠모해 마지않던 변호사님의 강의는 한마디 한마디를 허투루 흘려보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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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출발하는 신입 변호사로서 가졌던 진로와 공익활동에 대한 고민, 또 내가 과연 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들이 이 강의를 듣고서 시원하게 해결되었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같은 길을 지나서 저 멀리까지 나아간 선배 변호사님들의 존재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주었다. 역시 고민도 혼자 할 것이 아니라 밖에 나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고민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제는 변호사로서의 첫발을 떼어 보려고 한다. 내가 과연 어떤 변호사가 될 수 있을지는 지금부터 내 손에 달릴 일이겠지만, 2018년 3월, 변호사시험을 치고서 처음으로 들었던 이 노동법 실무교육을 앞으로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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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4/25-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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