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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민변은 나의 등불 : 김호철 변호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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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민변은 나의 등불 : 김호철 변호사를 만나다

익명 (미확인) | 금, 2018/03/3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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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사랑방인가요?

전 우리 민변이 이런 사랑방처럼 편안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18년 3월 민변 사무실 내 휴게공간인 사랑방에서 김호철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가 진행된 사랑방처럼 민변이 ‘소통, 공감, 편안함과 행복’의 모습으로 후배들에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소신을 밝혔다.

 

“2000년대 초반, 민변은 너무 엄숙주의에 빠져 있다고 선배들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민변 회원이라 하면 만나서 반가워 농담도 하고, 변호사로서 영업을 하다가 도움이 되었던 것을 서로 공유도 할 수 있는 건데, 민변은 너무 근엄하고 진지한 얘기만 한다고 했다가 분위기가 썰렁해졌습니다.(웃음) 아, 괜히 이야기했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조금 더 격이 없는 소통을 할 수 있고 유쾌발랄한 분위기를 더 가질 수 있도록 모임을 개선해야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뭐, 요즘 후배들도 우리를 바라보면서 너무 어렵고 엄숙주의에 빠져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할 수도 있겠지만요. (웃음)”

 

김호철 변호사는 현재 민변의 부회장이며 최근 13대 민변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민변과 함께한 그의 변호사 활동들과 차기 회장 당선인으로서 가진 포부는 어떤 것일까.

 

 

이혜정 김호철 변호사님, 얼마 전에 차기 회장으로 당선되셨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대부분의 민변 회원들이 뉴스레터를 통해 변호사님 인터뷰를 접할 텐데요, 특히 신입회원들의 경우 김호철 변호사님을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호철 1994년 변호사 개업 당시, 민변 회원이셨던 ‘고 최일숙’, ‘정영원’변호사와 함께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현 서울동부지방법원) 근처에 법률 사무소를 열었습니다. 당시 초년생에 불과했던 변호사 셋이서 그래도 변호사의 품위와 의무를 다하고자 공익적인 업무를 더불어 하자는 결정을 했고, 법무법인 ‘동부종합법률사무소’를 개설하여 2002년까지 활동했습니다. 당시 저희 세명이서 민변 국가보안법 사건의 동부관할 사건을 대부분 소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외에도 환경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환경위원장을 맡기도 했고 당시 출판홍보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민변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이혜정 와~ 활동 많이 하셨는데요? (웃음)

 

김호철 (웃음) 네, 그리고 민변 선배님의 추천으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상임위원으로 들어가 3년간 공무원 신분으로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3년간의 위원회 일을 마치고) 복귀 후에는 공백이 너무 커서 본업인 변호사 일에 전념하느라 2009년부터 2015년까지는 민변 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가 지금 회장님이신 정연순 변호사님의 제안으로 2015년도에 민변의 부회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변호사 개업과 함께 당연하듯 시작한 민변 활동, 회장후보에 출마할 의무감을 안기다.

 

이혜정 변호사가 되면 바로 민변에 가입해야겠다고 이전부터 생각을 하신건가요?

 

김호철 당연하죠. 변호사 생활은 민변활동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이재명 시장(현 성남시장)이 밝혀서 민변이 대중에게도 알려지긴 했지만, 사법연수원시절부터 우리사회 인권과 민주사회 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을 나누던 멤버들이 있었습니다.

 

이혜정 회장 후보 출마를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을 텐데요.

 

김호철 제가 자격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쉽게 나서지 못했습니다. 민변이 오랜 기간 쌓아온 사회적인 신뢰에 걸맞은 신뢰 자산을 내가 구축하고 있는가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민변 회원들을 대표해서 개별 회원들의 사정과 바람을 잘 파악하고 실현할 수 있을까… 여러모로 자신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 등록을 한 것은 20여 년간 회원으로 있으면서 의무감이 들어서 입니다. 과거에 회원들의 활동들을 쫓아가면서 죄송함과 부채 의식을 지니고 있는 와중에 후보등록자가 없어서 고민하시는 선배님들과 회원 분들을 보며, 의무감이 발동했습니다.

 

이혜정 민변 회장에 나간다고 하니 가족이나 주변 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김호철 그 점에 대해서 지금 있는 법무법인 한결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법무법인 내에 후배변호사들과의 협업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기도 하고요. 민변에서의 활동으로 인한 저의 공백을 기꺼이 감수해주는 법무법인과 후배변호사들에게 감사합니다.

가족은 뭐….(웃음) 변호사 생활 내내 가족에게 미안해하면서 눈치 보면서 살아와서.. (웃음) 이번에도 적절하게 ‘눈치껏’ 별 일 아닌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환경문제는 환경운동이 우선이고 소송은 다음이라는 원칙

 

이혜정 변호사님 프로필을 쭉 살펴보면 주로 환경전문 변호사로서 활동을 많이 하셨던데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김호철 사법연수원 시절에 환경권 학회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학회에서 공부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공해 현실을 제대로 알기 위해 찾아간 곳이 지금의 환경운동연합에서 진행한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그때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의 공해 문제, 환경 문제의 현실을 현장에서 공부할 수 있었죠. 이런 것들이 이어져 자연스럽게 환경운동 volunteer라는 저만의 정체성을 갖게 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소송이니까 환경소송을 담당하게 된 거구요.

환경소송을 할 때는 ‘환경문제는 운동이 우선이고 소송은 다음’이라는 저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임해 왔습니다. 새만금 소송과 일조 침해소송, 핵폐기장 설치 관련 소송부터 최근의 월성 원전 수명연장 취소소송까지, 운동을 우선적으로 하고 법적 판단은 보충적이고 최종적으로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임했습니다. 덕분에 관련 쟁점들이 많이 정리되었고 사회적 공방 속에서 상대측의 문제들을 충분히 인식하며 일해 좋은 결과를 많이 얻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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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직접 진행하셨던 월성원전 소송부터 최근에 생긴 신고리공론화위원회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탈핵’이나 ‘탈원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탈핵’이나 ‘탈원전’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나라를 위한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일까요.

 

김호철 인류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기후변화인데, 이는 인류의 욕망 때문에 발생한 온실가스가 가져온 인공적 위험이고 자연의 정화능력이나 순환을 교란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위협이죠. 하지만 자연을 무작정 개발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난다면 재생에너지처럼 생태계를 교란시키지 않으면서도 자연의 무한한 힘을 잘 선용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핵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핵무기 개발이라는 반생명적인 활동의 부산물이 초래하는 인공적 위험은 가공할만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탈핵’의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자연이 보유한 무한한 에너지를 얼마든지 인류에게 최대한 위험이 없는 방향으로 개발할 수 있습니다. 탈핵은 그동안 인류가 공감해온 방향이지, 시대에 역행하거나 일부 사람들의 편협한 이념적 잣대에서 비롯된 주장은 아닙니다. 재생에너지나 기존의 자연의 힘을 이용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연구와 투자를 해야 하고 법률가로서 이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혜정 최근 신입회원들의 관심사를 보면 환경 분야에 관심 있는 회원들이 많더라고요. 관련해 환경전문 변호사로서 후배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요?

 

김호철 우선은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 중 가장 (먼저) 풀어야할 숙제가 기후변화와 탈핵입니다. 법률가로서 이 문제를 풀어나갈 방법을 찾고 관심을 지속적으로 갖는 게 중요할 것입니다. 환경보건위원회를 찾아가서 예비 법조인을 위한 민변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추천드려요.

원자력 발전에 있어 가장 큰 원칙은, 진흥과 규제가 분리되어서 규제가 독립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다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서야 미미하게 지켜지는 실정이에요. 그러다보니 규제기관이 규제권한을 행사하는 틀과 체계가 잡혀있지 않고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법률가는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규제가 제대로 행사되었는지 법률적으로 살펴야 하고,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소송이나 정책 제안 혹은 정책 비판을 함으로써 시민들의 안전을 담보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원자력 발전소 하나 닫는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위험관리가 되고 있는지 감독하는 것도 법률가가 마땅히 수행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해결해야 할 중요한 사안들은 많은데 관심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또 환경보건 분야는 활동영역이 국제적으로도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의 3년 중 얻은 문제의식

 

이혜정 변호사님께서는 환경문제 외에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도 하셨습니다. 최근에는 워낙 군대 관련 사건 사고들이 많이 발생하기도 하고 관련한 사법개혁 논의도 진행되고 있는데요. 변호사님께서 경험하셨던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군대 문제는 어떠한 방향으로 해결되어야 할지, 특히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김호철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 당시 여호와의 증인이 박정희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인해 폭행과 가혹한 고문을 당하다가 사망한 사건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이 분 외에도 양심에 따라 집총거부를 주장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이 많이 계시죠. 문제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는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집총거부에 대한 양심의 순결함은 사회가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양심을 지켜주기 위한 사회적 배려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인권의 문제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법적 판단, 제도적 보완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군의문사와 관련해서는, 폐쇄적이고 통제적인 군사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어렵더라도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군복무라는 것이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 시민이 일정기간 희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민으로서의 인권이 군사법을 통해 최대한 보장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경우 민주화가 정착됨에 따라 군대 내 사망자 수가 점점 줄긴 했어요. 5공화국 시절 자살자를 비롯한 군대 내 사망자가 1,000명에 가까웠다면 노태우 시절 400~500명 정도로 떨어졌고, 김영삼 정부시절 300~200정도, 김대중 시절 100명대, 노무현 시절도 100명대 초반 유지를 하다가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면서 현재는 100명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예전보다 좋아진 거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이기 때문에 폐쇄적 군대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짓눌린차기 회장 당선인이 해야 할 일들과 회원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

 

이혜정 다시 민변으로 돌아와서요, 차기 회장으로 당선되신 만큼 앞으로 많은 회원들과 스킨십도 하셔야 할 텐데요. 김호철호 민변을 통해 그려나가고 싶은 민변은 어떤 모습인가요.

 

김호철 안 그래도 요즘 민변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고 있는데, 책을 찾다보니 (가방에 있던 민변 발전 전략 보고서 꺼내들며) 2012년도 당시 김선수 회장님 때 발간된 민변 발전전략보고서가 있더라고요. 현 회장님 역시 이 전략발전보고서에 나와 있는 과제들을 충실히 이행해 오신 것 같아서 이제는 발전전략보고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비전, 발전 전략을 세워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새로운 사무처 구성을 선결 과제로 삼고 이후에 머리를 맞대 각 위원회의 활동 역량을 충분히 모아서 새로운 세대가 민변의 주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실천적인 발전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혜정 올해 민변은 30주년을 앞두고 있고, 변곡점에 있어요. 회원들이 늘어났지만 예전만큼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생계가 어려워서 시간을 내서 민변 활동하기가 어렵다는 회원들도 있고, 일부 회원들은 회비 내는 것도 부담스러워 탈회하기도 해요. 이런 회원들을 아우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성 많은 회원들을 이끌어가면서 우선적으로 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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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철 본부와 지부 회원 간의 정서격차, 민변 활동 회원과 비활동 회원 사이의 이질감, 민변활동에 참여하는 양상의 차이, 이런 점들을 우선적으로 파악해야할 것 같습니다. 비활동 회원이 민변에 바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먼저 경청해야 할 것 같아요. 그분들이 말을 하실 수 있도록 오프라인, 온라인의 소통의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필요하면 찾아가고, 또 오시도록 하면서 거기서부터 답을 찾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질의 소통공간을 찾아가야 할 것 같아요.

 

이혜정 그런 문제가 끊임없이 고민되어 와서 인트라넷, 페이스북 민변 그룹 등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고민 지점이죠. 지금 이 자리에서 민변의 선배, 후배 변호사들에게 차기 회장으로서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말씀해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김호철 부족한 사람이 회장으로 당선 되어서 거대한 민변을 끌고 가기엔 아직 짓눌려 있어요. 짓눌린 회장 당선인이 좀 기를 펼 수 있도록, 민변이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잘 이끌 수 있도록 좀 도와달라는 그 말씀을 우선 드리고 싶어요. 많이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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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마지막으로 변호사님께 있어 ‘민변이란’ 어떤 것인가요?

 

김호철 삶의 등불이죠 (웃음). 변호사 생활을 하다보면 다양한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형성합니다. 그러다보면 자칫 일탈하기 쉬울 수도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변호사 개업 당시부터 지금까지 일탈하지 않고 나름 원칙을 갖고 (변호사 생활을)할 수 있었던 것은 민변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민변은 ‘내 삶의 등불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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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개헌 논의 워크샵 후기

유원정 회원

무더운 여름의 한 가운데, 7월 20일 민변 여성위원회의 월례회에서는 ‘헌법개정안 중 여성인권, 성차별 관련 헌법조항에 관한 검토’를 주제로 하여 무더운 여름만큼이나 뜨거운 성평등 개헌 논의 워크샵이 열렸습니다.

2017년부터 민변 여성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참석한 여성위 월례회는 저에게 항상 즐겁고 열정적이며 또 편안한 시간이었습니다. 올해 초반부터 개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성평등 개헌에 대해서는 저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관심을 갖고 살펴보고 있던 주제였기 때문에 다른 날보다 특히 더 설레는 발걸음으로 민변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헌법이 제정된 것은 1948년. 마지막 개헌은 1987년으로 무려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사회, 경제, 정치 등 모든 영역에서 변화가 있었고, 또 성평등한 사회에 대한 요구도 그 어느 때보다 커졌습니다. 성평등은 개헌 논의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핵심적인 부분인 것입니다.

민변 회의실에 도착하니, 익숙하고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습니다. 이날 워크샵의 발제는 조숙현 변호사님과 천지선 변호사님이 맡아주셨습니다.

먼저 한국여성단체연합의 개헌TF에서 논의한 내용을 회원님들과 함께 헌법 조문 순서대로 살펴보았는데, 논의된 내용은 과연 매우 흥미롭기도 했지만 이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상적인 개념을 많이 사용하는 헌법의 특성상, 성평등한 사회라는 지향점을 달성하기 위해서 단어 하나를 고르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발제가 끝나고 난 후에는 회원들 각자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개헌TF에서 이미 논의된 내용도 생각보다 방대하고 꼼꼼했으나, 역시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가진 여러 사람이 모여 논의하니 또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시된 의견들이 흥미로우면 흥미로울수록 사실 저는 성평등 개헌이 정말 너무나 어려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어 하나에 따라올 수 있는 일반적인 관념들을 생각하고, 그런 관념들이 우리 사회에 가져올 수 있는 영향을 고민하다보니, 결론이 쉽게 나지 않을 것 같은 부분들도 보였습니다. 저 스스로도 의견을 말하면서, 말이 끝나고 나면 생각이 다시 바뀌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열띤 토론이 이어지며 나온 다양한 생각들은 또 다시 개헌TF에서 논의되며 다듬어질 것입니다. 날씨도 토론도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워크샵이 끝나고 회원님들과 마시는 맥주 한잔이 너무 상쾌했던 기억이 납니다.

개헌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의 삶에 직접적으로 닿지는 않는 추상적인 단어들의 변화이지만, 그 추상적인 단어들의 변화가 우리 삶에 직접 닿는 물결이 되어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더 설레는 작업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은 푹푹 찌는 무더위도 지나가고, 선선한 바람과 풀벌레 소리와 함께 그날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민변 여성위원회 활동을 시작하고서 참석한 월례회 중 개인적으로는 가장 재미있었던 월례회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언젠가 확정된 개헌안을 제 눈으로 보게 될 날이 오겠지요? 그날에도 다시 회원님들과 모여 맥주와 함께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여성위원회뿐만 아니라 다른 민변 회원님들도요!

수, 2017/08/3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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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와 나의 어느 좋은 날

2018년을 떠나보내며, 민변 송년회 준비부터 마무리까지의 동행기 나눔

조미연 변호사

 

2018 민변 송년회는 수년간 단골무대였던 서초와 교대부근 행사 장소에서 벗어나 학동역 헤리츠에서 치러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시작은 생소하였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마무리는 여느 때와 같이 정겨웠다고 자부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제7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이쯤이면 신입이라고 소개하기 겸연쩍을 만큼 민변과 함께한 추억이 벌써 한아름인 신입변호사이자 신입회원 조미연이라고 합니다.

‘그대와 나의 어느 좋은 날’의 시작과 끝에 대한 소감을 글로 남기게 되어 스스로도 참 감회가 남다른 것 같습니다. 올해 합격 이후 상반기 신입환영회부터 지금까지 정말 많은 시간 민변과 동고동락하였습니다. 신입환영회 후기를 작성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송년회 소감이라니…. 이 글과 함께 한해를 정리하는 느낌이랄까요?

이번 송년회의 시작은 10월 24일 수요일 오후1시 사무처 회원팀 회의에서 비롯하였습니다. 회원과 조직에 관심이 많은 저는 격주에 한 번씩 열리는 회원팀 회의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하반기 와인과 함께하는 신입회원환영회’, 최영도변호사님 유작 기념행사, 영화 1991, 봄 상영회, 정기대의원회, 회원 월례회 등 수많은 행사개최를 앞두고 이날 우리는 송년회 날짜를 12월 17일 월요일로 확정했습니다. 이후 네 차례의 회의를 더 거쳐 송년회 준비가 이루어졌고 행사 장소와 사회자 섭외부터 송년회 컨셉, 프로그램, 홍보 등 많은 이야기가 오가면서 회원팀을 비롯한 사무처사람들의 일손이 더해졌습니다.

집단지성의 힘으로 탄생한 ‘그대와 나의 어느 좋은 날’이라는 설렘주의보 타이틀, 회원팀장님의 ‘회원들에게 기왕이면 더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는 열의와 기가 막힌 우연의 조합으로 탄생한 학동역 헤리츠 행사장소, 발군의 실력으로 좋은 행사 진행의 예를 보여준 신하나, 양성우 변호사님의 사회까지…. 물론 빛나는 센스로 훌륭한 행사영상을 만들어준 허진선 간사님의 노고도 빼놓을 수 없지요. 행사 준비팀의 일원이어서 그런지 부족한 점보다 좋은 점을 유독 많이 기억하는 것은 회원님들의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실거라 믿습니다.

어지간하면 풍문으로 많이 퍼져있을 행사 장소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왠지 빼놓으면 아쉬울 것 같습니다. 학동역 헤리츠는 언제나 민변의 일당백을 자처하는 이현아 차장님의 검색으로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습니다. 지난 송년회 음식이 아쉬웠다는 많은 평가에 음식이 맛있다는 후기를 중심으로 답사까지 가게 되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 무슨 인연일까요? 헤리츠 관계자분의 민변 행사개최에 대한 열렬한 호감이 우릴 반겼습니다. 대학시절 학생들의 학교를 상대로 한 투쟁에서 민변 변호사님의 도움을 기억하며 항상 민변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면서요. 이런 우연과 인연의 만남으로 우리는 작년 송년회와 동일한 비용으로 더 좋은 장소에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도움을 주셨다는 변호사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인사 드리고 민변의 소소한 복에 저도 덩달아 즐거웠습니다.

어느새 글을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은데, 정작 송년회 당일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니…. 사실 저는 행사장 입구에서 간사님들과 입장하는 회원들을 본의 아니게? 함께 맞이하고 당일 회원공연 합창단의 일원으로 비상구에서 연습하느라 정작 본식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행사영상 상영, 가입 10주년 회원 감사패 증정, 신입회원 소개, 퀴즈 등의 순서는 알고 있지만 무대 위에 서서 조명으로 인해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하나와 한결같이를 부르고 내려와 연달아 맥주를 급히 들이켰던 기억 이전에는 007음악과 함께 등장한 사회자들의 모습과 신하나 이종훈 변호사님의 신나는 한결같이 율동만이 떠오릅니다. 미쳐 공연을 못 보신 분들을 위해 민망하지만 용기 내어 영상 링크를 올립니다. 아! 유독 눈에 띄는 초록초록 스웨터를 입었던 장범식 변호사님의 모습도 잊을 수 없겠네요. 예쁘게 봐주세요.

https://youtu.be/sVi3fcHSLrc

이렇게 10명이 넘는 변호사들의 목소리가 한데 모였던 합창공연 이후 류신환 회원팀장님의 매끄러운 사회로 구석구석에 자리하는 선배님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모 선배님께서 혹시 합창공연 자발적으로 한 게 아니라면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라는 말씀이 참 유쾌하고 인상 깊었습니다. 정연순 전 회장님을 모 탁구장에 가면 볼 수 있다는 것도 기억에 남구요.

 

이후 다양한 게임과 퀴즈가 진행되었는데 소위 테이블 합심퀴즈(오신 분들은 아실겁니다)를 통해 상품에 대한 다양한 열정 발휘 장면을 목격한 것과 넘어지면서까지 휴지를 불어 올렸던 곽예람 변호사님, 어린 시절 사진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추론하는 퀴즈에서 한때 톰 보이 어린이모델로 날렸던 최용근 변호사님,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는 누구지? 라고 갸우뚱하였으나 옆자리를 돌아보자마자 사진 속 귀여운 어린이와 같은 웃는 얼굴이 보여 놀랐던 위은진 변호사님 등 적다보니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이 웃었던 것 같습니다.

송년회를 마치고 늦은 시각까지 뒤풀이에서 함께했던 분들과의 기억을 합치면 사실 지면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가볍게 써내려가며 공유하고자 했던 소감이 더 길어지면 민폐겠죠?

이번 송년회의 시작부터 끝까지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그 속의 따뜻함, 즐거움이 충분히 전해졌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참 좋았습니다. 그때의 자리를 돌아보면 웃음이 먼저 나서 내년에는 더 많은, 아직 만나 뵙지 못한 분들과 자리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물실호기(勿失好機)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뜻의 사자성어인데요. 저는 올해 민변과 좋은 기회에 함께할 수 있어 참 기뻤습니다.
민변 회원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8년 민변 송년회 사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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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8/12/2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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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지부 소식

김형일 회원

1. 경남은 전국유일의 도지사 청정구역으로 이름 높은 곳입니다. 경남 도민들은 병원도 없애고 아이들 밥도 못주겠다고 하셨던 경남 특산 도지사님을 우리만 독점할 수 없다는 아름다운 희생정신을 가슴에 품었고, 경남지부 하귀남 회원은 굳이 도지사를 송별하겠다며 경남도청 앞에서 소금을 뿌리며 떠나는 길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가장 큰 팔각도로 소금을 뿌리는 하귀남 회원 : 영상 썸네일 기준 우측 여섯번째]ⓒ경남도민일보

2. 즐거웠던 민변 정기총회 이후, 경남지부의 핵심 사업은 조선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었습니다. 2017년 노동절 경남 거제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는 800t급 골리앗 크레인과 32t급 타워 크레인이 충돌해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고, 경남지부는 별도의 법률지원단을 구성하여 피해 노동자에 대한 법률지원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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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도정운영의 모토로 삼았던 전임 도지사의 영향인지, 관할 고용노동부는 사고 발생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해 노동자들에 대한 이렇다 할 대책을 내어놓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당연히 지급해야 할 휴업수당마저 지급받지 못한 노동자가 많고, 끔찍한 사고를 목격한 노동자들에 대한 심리치료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3. 이 와중에 2017. 8. 20. STX조선 진해 조선소에서는 폭발사고가 발생하여 4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삼성 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발생한 사고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안전시설 미확보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절차들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 사고의 핵심 원인이며, 이는 하청에 재하청을 거듭하는 조선업 특유의 고용환경 때문이었습니다. 경남지부에서는 유족들을 만나 원청에 대한 손해배상에 관한 법률지원을 진행 중이며, 후속 대응에도 함께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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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경남지부 회원들은 고용노동부 통영지원 앞에서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무료 법률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정기총회에서 보셨다시피, 경남의 바다는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바다 한켠에는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참 많았습니다. 경남지부의 2017년은 아마도 조선업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와 함께 흘러갈 것 같습니다.

다음 번 경남지부 소식은 유쾌한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보겠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당장 해야 할 일을 마무리 지어야겠지요. 열심히 싸우고 좋은 소식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수, 2017/08/30-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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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지부 보고

광주민변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 최기영 회원 (광주전남지부)

 

“아빠! 광주 민변의 시간은 멈추지 않지?”
“어? 어! 응. 그렇지.”
“근데,,, 히히히 멈췄어!”
“어, 시계가 멈췄더니 그걸 갖구 저러나봐. 건전지가 다됐나봐.”

 

서두른다고 하였건만 광주전남지부 창립 19주년 기념식에 늦어버렸다. 창립 기념 인사는 다 끝나버렸겠고, 강연 진행 중 일려나? 광주지방변호사회관 6층 대회의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문이 열리자 강연자의 목소리가 바깥까지 들려온다. 강연자에 미안한 마음을 미소로 전하고 나니, 박상희 간사님이 웃음으로 다가오며 회의 자료와 떡이며 과일 등이 담긴 접시를 건네준다. 몇몇 눈이 마주친 회원들과도 눈인사를 나누고 빈자리를 휘, 둘러 찾았다. 광주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님들까지 30여 명이 열띤 강연을 듣고 있었던 터라 마침한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님은 ‘말이 칼이 될 때 –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기념 강연을 하셨다. 마음 속 편견이 혐오표현으로, 구체적 차별행위를 넘어 중대한 범죄로, 마침내 집단학살로까지 진행되는 단계는 너무도 놀라웠고 이에 대한 유럽과 미국의 대응에 관한 비교법적 고찰도 많은 점을 시사해주었다. 심지어는 모성까지도 맘충이라 폄하하는 등 여성 혐오표현이 확대되고, 여성을 향한 중대 범죄까지도 나타나고 있는 현실을 상기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경청하였다.

강연은 바로 임시총회로 이어졌다.
김정호 지부장님의 개회 선언 후 6대 지부장이었던 이상갑 변호사님은 인사말을 통해 정부의 감시자 · 비판자로서의 민변의 역할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강조하셨다.
우리 지부 7대 지부장이었던 임선숙 변호사님은 19주년을 맞이한 지부의 공로패 수상 소감을 밝히며, 변호사로서 남아있는 기억은 모두 민변과 함께 한 활동들이었다며 민변과 함께 바라는 바는 무엇이든 자신있게 해보라고 하셨다.
이어 상반기 주요 사업에 대한 홍현수 사무처장님의 보고가 있었고, 임시회의의 대미는 신입회원 가입 승인으로 장식되었다. 신입회원인 김문석 변호사님도 ‘광주 민변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는 로고가 새겨진 벽시계를 선물 받았다.
뒷풀이는 2차로 간소하게 마무리 되었다. 지부 창립부터 19년, 지나간 세월과 활동에 대한 자부심 충만한 이들부터 새로운 열정과 포부로 가득한 이들까지, 우리는 빙 둘러 앉아 노래도 한자리씩 불렀다.

돌아가는 길에 24시간 편의점에 들러 AA건전지를 샀다. 주말이면, 광주 민변의 시간이 계속 흐르도록 건전지를 갈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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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8/09/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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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의 힘을 깨닫다 >

서기호 변호사 인터뷰

 

심재섭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서기호 안녕하세요, 서기호변호사입니다. 사법연수원 29기이구요.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예비판사 2년을 포함한 12년간 판사로 근무하던 중 2012년 2월 재임용 탈락사건을 겪었고… 12년 7월경에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승계 받게 되었다가 정의당으로 소속이 변경되었습니다. 국회 법사위에서 4년간 활동한 다음 총선 불출마 선언 이후 16년 7월경 변호사 개업하면서 민변에 가입하였습니다. 사법위원회 소속으로 있긴 했는데 2년 여 동안은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변호사 업무에 적응하느라 너무 바빴고요. 심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최근 사법농단 TF 구성원으로서 민변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는데, 요즘은 사법위원회 회의에도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있습니다. 두 달 여전에 민변 사법위원회 김지미 위원장님으로부터 부위원장 맡아달라는 말씀을 듣고 수락하게 되었기에 이제는 정기회의에 빠지기 어렵게 되었네요 ㅎ

2년여 동안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다가 정리하고, 올해 8월부터 법무법인 상록에 구성원 변호사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민변 사법위원회 소속 변호사 두 분이나 계시는 법무법인 상록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심재섭 개인으로 하실 때 고용변호사님도 계시지 않았나요?

서기호 개인변호사 사무실 운영할 때, 고용변호사님도 두고 운영을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무실에 찾아오시는 의뢰인분들이, 억울한 사연을 갖고 계시면서도 증거부족 등으로 이기기 쉽지 않은 사건들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사무실 유지가 쉽지 않았어요. 전반적으로 수임료가 낮은 편으로. 그래서 올해 초부터 고민을 하던 중에 마침 법무법인 상록 변호사님들과 사법위원회 활동으로 친분도 있었고, 사무실도 바로 옆 건물이다보니 점심식사를 자주 같이 하면서 포섭되었다고나 할까요?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심재섭 포털에 검색하는 것만으로도 변호사님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데, 판사 시절 이전은 잘 안보이더라고요. 학생 때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서기호 학생 때 평범하고 공부만 주로 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초중고 동창생들이 가끔 저에게 학생 때랑 너무 달라서 당황스럽다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대학시절에 학생운동(가톨릭학생회 소속)에 깊이 관여하면서 조금씩 달라진 편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제 안에 지킬과 하이드 같은 양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제 자신에 대해 헷갈릴 때가 있어요.

심재섭 지금도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나요.

서기호 세례명은 베네딕토인데요, 2012년 이후 어려운 상황들을 많이 겪으면서 바쁘기도 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기도 해서 신앙생활에 소홀한 상황이고요. 현재는 냉담자입니다.

2016년 2월 총선 불출마 선언 후 시간적으로 3개월 여유가 생겨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35일 정도 다녀왔는데요. 그때 하루종일 걸으며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과연 신앙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하는 의문이 아직 풀리지 않아서 아직까지 냉담 중입니다.

심재섭 ‘가카빅엿’ 사건과 이후 판사 재임용 탈락 뉴스로 일약 대중의 시선에 들어온 것으로 압니다. 재임용 탈락이라는 상황에 대해 당시 소회를 말씀해 주시겠어요?

서기호 너무 길게 이야기해도 안 될 것 같고 그렇다고 짧게 넘어갈 수도 없는 질문이네요.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생각보다 큰 파장을 몰고 와서 어리둥절하기도 했고,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거죠. 법원행정처에서는 당시 저에게 10년 간 ‘하’등급 다섯 번 받았다는 이유를 제시했지만, 그 중 2009년 이후 3년 연속 받은 ‘하’등급은 신영철 대법관 촛불집회재판 개입 당시 제가 판사회의 주도하고 법원게시판에 신영철 대법관 사퇴 주장하는 글 등을 올려서 보복성 ‘하’등급을 받은 것입니다. 실제 객관적 통계 3년치 자료에 따르더라도 평균 정도였지 결코 최하등급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법원장 1인에 의한 주관적 자의적 근무평점 시스템 때문에 부당하게 3년 연속 ‘하’등급을 받으면서 재임용 탈락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시 그러한 점들에 관해 법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서 판사들에게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했지요.
그런 점들 때문인지 몰라도 저에 대한 재임용탈락처분 이후 판사들이 2주 연속 전국적으로 판사회의를 열어서 판사 근무평점 제도 및 재임용심사 제도의 개선책을 요구하는 판사회의 의결이 잇따랐습니다. 이처럼 법원행정처의 재임용탈락 사유는 말이 안 되는 것이었기에 많은 국민들께서는 그건 법원의 핑계에 불과하고 약 두 달 전 제가 SNS에 ‘가카의 빗엿’이라는 표현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때문이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심재섭 재임용 안 됐다라는 소식을 듣고 얼마 있다가 출근 못하게 되신 건가요?

서기호 재임용 탈락 통보를 받은 후 일주일 뒤에 바로 법원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12년간 판사생활 정리하기엔 1주일이란 기간이 굉장히 턱없이 부족한 기간이었습니다. 1주일동안 굉장히 많은 기자분들이 북부지방법원에 찾아와서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고, 그동안 정들었던 분들과의 이별을 맞이하는 등, 그로인해 당시 진행되던 사건을 제대로 마무리 못하고 후임 판사님께 떠넘기게 되어서 당사자분들에게도 너무 죄송했습니다.

심재섭 ‘하’등급을 받아왔던 것은 알고 계신 거였나요?

서기호 법원에서는 판사들의 매년 근무평정을 모두 비밀로 하고 있어서 당사자에게도 전혀 통지를 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2012년 2월 초 어느 날 행정처 심의관으로부터 재임용심사 대상이라는 전화 통보를 받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것도 5년간‘하’등급 받았다라는 점만 알려줄 뿐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 설명 받은 바 없습니다. 그러면서 법관인사위원회에서 소명할 기회 있는데 참석하겠느냐 물어보길래 당연히 참석하겠다고 답변하였고 법관인사위원회에 소명자료를 충분히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법관인사위원회에 참석해 보니 위원들 사이에 이미 결론은 정해져 있었고, 인사위원들 1 ~ 2명 정도가 형식적으로 몇 마디 물어보고서 끝내버리더군요. 제가 제출한 소명자료에 대하여는 아무도 물어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안 읽어보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나중에 행정소송으로 재임용탈락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을 때도 재판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구체적 통계자료, 서술형 평가 등 세부 근무평정 자료 등을 제출하라고 문서제출명령 신청을 하였습니다.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는데, 피고인 법원행정처에서는 비밀이라면서 별 도움 안 되는 몇 가지 자료 외에 핵심적인 자료들을 끝까지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1심 재판장도 문서제출 명령 신청을 기각하고, 항고, 재항고심에서도 기각해버리더군요.

심재섭 그런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전혀 생각지 못하셨나요?

서기호 판사들 사이에서는 그 전까지도 재임용 심사는 형식적이라고 내부에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판사로서 직무수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큰 잘못을 했거나 사건해결 능력이 부족하다고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도둑이 제 발 저리는지 법원행정처에서 구체적인 자료 근거를 제시하지 않아서 황당했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당시 많은 기자들이 인터뷰하러 왔을 때 기자분들 하시는 말씀이, 자기들도 언론사에서 근무평정을 받는데 그 결과를 공개해줘서 알고 있고. 이의제기할 기회도 준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가장 투명해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법원에서 오히려 비밀스럽게 근무평정이 진행된다는 점이 매우 놀랍다고들 하였습니다.

심재섭 판사를 그만두고 국회의원이 되십니다. 통합진보당에 입당을 하는데 비례대표 14번을 받으시지요. 이 숫자가, 국회를 가겠다고 마음먹으셨는지 아니어도 상관 없다였는지 애매한데, 어떠신가요? 정치를 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정치권에 들어가게 된 것은, 재임용탈락 이후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일입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제가 sns에 가카빅엿 글을 올릴 때에도 정치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걸 이유로 해서 재임용 탈락될 것이라는 것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저는 스스로 제 자신이 정치에 맞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정치하려고 사직한 것도 아니죠.
그런데 막상 재임용에 탈락되고 보니, 주변에서 이 문제를 계속 이슈화하기 위해 비례대표직을 알아보는 게 어떠냐라는 권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정치 쪽으로 계속 나가라는 것보다는 사법개혁이라는 이슈로 비례대표을 알아보라는 수준이었습니다. 실제로 재임용 탈락 사태는 대법원과 맞서는 것이라서 그냥 평범한 변호사가 된 뒤에는 이 상황을 뒤집거나 지속적으로 이슈화시키기 어렵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 변호사 한 명의 권한은 거의 없기에 결국 묻힐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죠.
이처럼 제가 정치권에 뛰어든 것은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라서 특별히 정치권과 인적 관계를 쌓아둔 것도 없었습니다. 단 하나. 오로지 단 하나,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와의 대학시절 개인적 친분(대학 1년 선배)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저는 정치권의 동향을 전혀 몰랐고 통합진보당 내부의 정치 세력 간 갈등도 전혀 몰랐습니다. 단지 이 전 대표의 진정성 하나만을 믿고 들어갔던 것인데, 뜻밖에도 통합진보당 내부의 분열 사태 등 이후 전개되었고, 그러다보니 결과적으로는 개인적 친분이 전혀 없었던 심상정, 노회찬 의원 등 정의당 분들과 4년간 인연을 맺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4년간의 국회의원 생활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법사위 활동은 제가 아는 부분이 많이 있어서 나았지만, 정의당 소속으로서의 활동 부분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심재섭 진보정당에서는 판사출신 의원이 없던 걸로 아는데. 민주당에서의 제안은 없었나요?

서기호 당시 민주당에서의 비례대표직 제안은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는 2012년 2월 하순경으로서 4월 총선이 코앞에 다가왔던 상황이라서 이미 자리가 차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판사출신이 진보정당에 맞느냐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진 못했습니다. 다만 당시 이정희, 심상정, 유시민 등 3개 주체가 통합을 한다고 하니 그렇게 진보정당이 커지는 흐름에 제가 어떠한 역할을 하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정치의 한계, 특히 현행 소선구제 하에서 진보정당의 외연이 확대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사실을 그때는 잘 몰랐는데, 4년간의 경험을 통해 특히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면서 장벽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됩니다.

심재섭 14번이면 당선되기 힘든 번호였을텐데 안 되도 된다의 마인드였나요?

서기호 원래는 6번 제안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을 거치면서 14번을 받고서라도 백의종군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로서는 일단 사법개혁을 위해 뭐든지 하겠다는 심정으로 정치권에 뛰어든 마당인지라, 국회의원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진정성이 의심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구요. 어찌보면 바보 같은 행동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마음을 비웠기에 2012년 7월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비례대표직을 승계 받는 기회를 하늘이 내려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심재섭 5시간의 필리버스터까지 한 뒤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만약에, 진짜 만약에 다시 정치를 하게 된다면 스스로 어떤 조건이 성취되어야 하겠다고 막연하게나마 설정하신 것이 있으신가요?

서기호 근본적으로는 돈과 조직이 없는 상태에서 지역구 선거를 준비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현실정치의 높은 장벽을 실감했다고나 할까요. 또한 체력적인 문제나 개인적인 여러 가지 준비부족, 한계를 느끼면서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를 깨달았습니다. 비례대표와 지역구 국회의원은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구요.
만약 다시 하게 된다면 기본적으로 체력과 그리고 재력,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한 인적 네트워크 구축 등이 있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게 다 갖춰지려면 20 ~ 30년 걸릴까요. (웃음) 어쨌든 지금 돌이켜보면 판사생활만 하다가 갑자기 곧바로 정치에 뛰어드는 것은 굉장히 무리한 도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심재섭 2000년 연수원 수료 이후 공직생활 16년을 지나고 변호사가 되었는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전관 개업, 인지도 좋고, 전관은 아닌데.. 어려움, 아쉬움?

서기호 판사로 12년 근무를 했다고 하지만, 제 경험에 비추어 적어도 적응기간이 1년 ~ 2년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판사는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역할이지만, 변호사는 처음부터 의뢰인과 만들어가는 역할이라서 매우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당사자에 동화될 위험성을 경계해야 하지만 또 한편으론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기에 그 사이에 균형을 잡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심재섭 예상과 다른 결과가 많이 있던 때도 있었나요?

서기호 그렇죠. 가장 많은 사례가 처분문서가 있는 사건에서 저는 주로 처분문서에 반하는 주장을 하는 상대방의 의뢰를 받은 적이 많습니다. 물론 제가 판사였다면 당연히 처분문서에 반하는 주장을 배척하고 의심해서 판결을 선고했을 것 같은데, 막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대변해야 하는 상황이 되다보니 처분문서 대로 판결을 선고하는 법원의 경향이 과연 맞는건지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3자 위치의 판사는 증거에 의해 판단해야 하니 객관적 서면, 처분문서의 내용을 중시할 수밖에 없겠지만, 실제 그것이 과연 진실에 부합할 것인가라는 점은 의문이 자꾸 들게 되더군요.

심재섭 민변 활동에 열심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민변에 가입하게 된 동기 내지는 민변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입니까.

서기호 사법위원회 소속으로 가입했는데요. 사법위원회는 사법개혁 분야를 다루기 때문에 저의 핵심 관심분야기도 하고 국회의원 시절에도 2 ~ 3 차례 사법위 회의에 참석하기도 해서 친숙한 편입니다. 그리고 사법위 소속이신 장주영 변호사님은 목포고 선배이고, 민경한 변호사님은 국회의원시절 민변 사법위 회의에 참석했을 때 저에게 좋은 격려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민변활동에 적극적이신 분들과 친분이 있고 사무실도 같이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되는 거 같습니다.

또 한 가지 계기는 몇 달 전 최영도 변호사님 추모행사에 참석했을 때였습니다. 유신정권 시절 부당한 재임용 탈락 사건을 겪으셨으면서도 그 이후 민변 참여연대 활동을 열심히 하셨더라구요. 그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판사출신 중에 민변 회원으로 가입한 분들은 좀 있지만 적극 활동하시는 분들은 별로 없잖아요. 성창익, 오지원 변호사 같은 예외적인 분도 계시지만, 아무래도 판사로 근무했던 기간이 오래될수록 민변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거든요. 그런데 아무튼 최영도 변호사님이 걸어오신 길은 그런 점에서 저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심재섭 최근 사법농단 TF에서 활약이 눈부십니다. 사법농단 대응이 본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으실 것 같습니다. 어떠신가요.

서기호 활약이 눈부시다는 과찬이시구요. 단지 제가 관심이 가장 많이 가는 분야이고 잘 알고 있는 분야이기도 해서 그렇게 되었을 뿐이라 생각됩니다. 오히려 함께 참여하시는 다른 민변 회원님들과의 여러 차례 회의 등을 통해서 많이 배우고 있고 조직적 대응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는 그날까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심재섭 변호사님 사건도 같이 대응하기로 했지요.

서기호 최근 사법농단 TF 회의에서 저의 재임용탈락 취소소송에 대한 법원행정처의 재판개입 사건도 함께 다루어서 이슈페이퍼 만들고 고발하는 등 다른 사법농단 피해자들 사건과 함께 포함시켜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볼 때 제 사건이 기존 긴급조치, 강제징용 피해자분들과는 성격이 많이 다른 것 같아서 반대했습니다. 그분들이야말로 권력으로부터 피해를 당하신 분들이고 직접적으로 재판거래에 활용된 사건이고. 하지만 저는 그런 차원은 아닌데다 앞의 피해자분들의 아픔에 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 사건에 우선적으로 집중해도 바쁘고 모자랄 판인데, 제 사건까지 포함시키기에 죄송한 측면도 있었구요.

하지만 그 뒤에 여러 분들로부터 제 사건이 개인적인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의 구조적인 모순을 드러내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사건이고 다수의 다른 판사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예방적 성격도 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함께 다루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그렇게 의견을 주시는데 혼자 반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서 조직의 의견을 따르기로 한 것입니다.
이 점은 스스로도 반성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그동안 제 스스로도 혼자만의 활동에 초점을 맞췄던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여러 경험을 통해 보니 12년 재임용 탈락사태 이후 거대한 사법권력에 맞서서 모순점들을 풀어나가려면 혼자 힘으로는 해결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 혼자만의 의견이나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많은 분들의 의견을 참작하고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심재섭 이번에 법원 앞 1인시위에서 첫 주자를 하셨습니다. 과거 근무지, 혹은 동료들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었을 때의 그 느낌을 전해주셔요.

서기호 처음 1인시위 이야기가 TF 회의에서 나온 뒤에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이 부분이 현 단계에서 무척 중요하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더기 영장 기각 사태를 통해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가 도를 넘어서 수사방해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점에서 분노가 극에 달하는 상황입니다. 일반 국민들의 지지를 대폭 받을 수 있는 1인 시위이고, 말없는 다수의 판사들조차도 속으로는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단지 동료 판사들의 재판에 관한 영역이라 비판적인 말을 못할 뿐이지요.

그런데 마침 첫 주자인인 김호철 회장님이 예정했던 시간에 급한 일정이 생기셨다고 해서, 이때다 하고 제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인시위를 하는 동안 알고 지냈던 동료 판사, 직원들이 지나가면서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어떤 분은 격려를 해 주고, 어떤 분은 그냥 못 본 척 지나기도 했습니다. 그냥 지나간 판사들도 속으로는 부끄럽고 뜨끔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1인시위에 많은 분들이 참여해서, 잘못된 영장 재판을 바로잡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심재섭 나중에라도 법원에서 일하실 것인가요?

서기호 기본적으로는 법원조직이 소위 법적안정성이라는 것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향후 사법농단이 바로 잡힌다 해도 제가 판사로 복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상징적인 의미에서라도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을 주시는 분도 있지만, 제게 주어진 소명을 감안하여 볼 때 법원 밖에서 할 일이 더 많이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설령 복직할 기회가 생기더라도 현재로서는 다시 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법원 밖에서 민변활동과 법무법인 상록 변호사님 등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The post [회원인터뷰] 연대의 힘을 깨닫다 – 서기호 변호사 인터뷰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금, 2018/09/1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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