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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BTI의 발렌타인데이] 한국,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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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BTI의 발렌타인데이] 한국, J

익명 (미확인) | 월, 2018/02/26- 12:33

한국의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J 활동가는 자신의 레즈비언 파트너와 SOGI 아카데미 교육과정에서 만났다.

이번 발렌타인 데이에도 전세계 수백만 명이 그들의 사랑을 기념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국가와 사회에서 당신의 사랑을 동등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아시아 각국의 LGBTI 활동가 다섯명이 이번 2월 14일을 어떻게 보낼지와 함께, LGBTI에 대한 모든 차별을 중단시키기 위해 각자가 바라는 점을 전해 왔습니다.

J는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를 알기도 전부터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제 27세인 그녀는 절친한 친구들에게만 커밍아웃을 했을 뿐, 가족들에게는 전혀 알리지 않았다. 가족이나 지인이 알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비영리단체에서 근무하는 J는 2년 전 SOGI(Sexual Orientation and Gender Identity) 아카데미의 단기 교육과정에 참여했다가 지금의 파트너를 만났다. J는 파트너와 함께 보낼 발렌타인데이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언제부터 자신의 성적 지향성을 깨닫게 되었나요?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건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지만,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누구에게도 차마 알릴 수 없었어요. 대학 생활은 정말 우울하고 외로웠죠.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그 이후로 커밍아웃을 하고, 내 정체성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어요.

한국의 LGBTI 활동가, J

커밍아웃할 당시 친구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제가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친구들도 모두 알고 있어요. 성소수자 친구들은 대부분 제 파트너를 만나 봤지만, 이성애자 친구들과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요. 그 친구들도 별로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파트너와 항상 손을 잡거나, 서로 볼을 맞대거나 끌어안으면서 애정을 표현해요. 저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그래서 남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관심이 없어요. 그런데 한번은 전철을 기다리면서 파트너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우리를 보고 “너희 레즈비언이냐”고 소리를 지르더군요. 그건 별로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었어요.

이성애자 커플과 비교했을 때, 한국에서 성소수자 커플이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한국 같은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우리 같은 사이는 연인으로 인정받지 못해요. 예를 들어,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시더라도 제 파트너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제가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한국에서 이성 커플은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고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어요. 때로는 일상 생활 속에서 우연히 만남이 시작되기도 하죠. 하지만 성소수자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면 특별한 ‘게이더(gaydar)’가 있어야 해요. 더욱 공을 들여야 하죠. 예를 들면 만남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거나, 퀴어 행사에 참석하거나, 퀴어인 친구들에게 다른 퀴어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는 식이에요. 이성애자에 비해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상대적으로 더 적은 것 같아요.

발렌타인 데이가 기대되겠어요.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면요?

저는 발렌타인 데이가 좋아요. 초콜릿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발렌타인 데이에는 갖가지 다양한 초콜릿이 나오니까 그게 참 좋아요.

작년 발렌타인 데이는 지금 파트너와 처음 보내는 발렌타인 데이라서 아주 특별했어요. 맛있는 초콜릿을 서로 주고 받았죠. 초콜릿을 받았을 때 파트너의 표정, 그리고 그 초콜릿의 맛과 풍미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그 때만 떠올리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져요.”

올해는 어떻게 보낼 생각이신가요? 선물은 준비했나요?

준비한 선물은 있지만, 비밀이에요! (지금 이 대답의 작성을 도와주고 있거든요!)

한국 사회와 정부의 LGBTI 대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국 사회와 정부는 우리의 존재를 지우려 하는 것 같아요. 매체에서는 두 남성이나 여성간의 사랑 또는 애정을 표현할 때 “브로맨스”나 “걸크러쉬”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죠. “게이”나 “레즈비언”의 존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아요. 동성 결혼이나 시민 결합 제도가 없기 때문에, LGBTI 커플은 오랫동안 같이 살았더라도 정부로부터 아무런 혜택이나 보호를 받을 수 없어요.

성 지향성이나 젠더 정체성에 상관 없이 모든 커플이 더욱 평등한 대우를 받기 위해 어떤 변화가 이루어지길 바라시나요?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이런 문화를 조성하려면 학교와 가정에서 퀴어 친화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해요. 이런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하죠. 또 동성 결혼도 합법화해야 해요.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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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시리아, 케냐,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의 여성들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어섰다. 활동가, 변호사, 자매, 학생인 이 여성들은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투쟁했고 일면식 없는 타인을 지지하고 나섰다. 이제는 이들이 눈부시게 빛날 차례다. 전 세계에서 인권을 옹호하고 있는 놀라운 여성들을 만나보자.

우 롱롱, 중국

우 롱롱, 중국

우 롱롱은 중국의 ‘페미니스트 5인’ 중 한 명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페미니스트 5인’은 성추행 문제를 다룬 캠페인을 계획하다 체포된 여성들을 가리킨다. 우연히도 세계 여성의 날과 맞물려 강행된 이들의 체포 소식이 알려지자 국제사회는 격렬히 반응했고, 힐러리 클린턴과 같은 사람들의 지지 표명이 이어졌다. ‘페미니스트 5인’은 석방되었지만, 여전히 정부의 감시하에 놓여 있다.

우 롱롱은 체포되기 이전에도 중국의 여성단체 ‘여성인권행동그룹’의 대표로 활동했다. 여성인권행동그룹은 대담하고 창의적인 활동을 통해 젠더 불평등과 성차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인 단체로, 여성 지원자에게 더 높은 입학 조건을 요구하는 대학의 차별적인 정책에 항의하며 삭발을 감행하거나, 가정폭력에 반대하며 붉은 잉크가 흩뿌려진 웨딩드레스를 입는 등의 퍼포먼스를 보였다.

여성은 살면서 수없이 많은 난관과 마주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주목받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우 롱롱은 말한다. “예를 들어, 성폭력 생존자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통을 겪어야 할 뿐만 아니라, 효율적인 법의 보호를 받지도 못해요. 피해자들이 비난을 받는 대신 당당하게 시정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면 성폭력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인권 활동가일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사이자 정식 상담 전문가이기도 한 우 롱롱은 현재 인권법 박사과정을 진행 중에 있다.

 


 

누라 가지 사파디, 시리아

누라 가지 사파디, 시리아

시리아의 인권변호사인 누라 가지 사파디에게 양심수의 인권을 옹호하는 활동은 사랑과 희망,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일이다. 1981년 다마스커스에서 태어난 그녀는 수년 간 변호사로 활동하며 인권과 구금 및 강제실종에 관련된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누라는 자신의 아버지가 체포되면서 정치범에 대한 인권침해의 현실을 일찌감치 접하게 됐다. 그녀의 남편인 바셀 카르타빌 사파디는 온라인에서 활동하던 활동가였지만, 2012년 시리아 정부에 체포된 후 2015년 사형이 집행됐다.

“아버지는 여러 차례 정치수로 구금되었어요.” 누라는 말한다. “저는 아드라 교도소에 있는 아버지를 면회하러 가거나 아버지의 재판을 방청하곤 했어요. 한번은 아버지를 재판장으로 이송 중이던 교도관과 언쟁을 벌인 적이 있어요. 저는 교도관과 아버지 앞에서 언젠가 꼭 변호사가 되어서 양심수를 변호할 거라고 장담했죠. 그때가 열 두 살이었어요. 그리고 바셀(누라의 남편)이 체포됐을 때, 저는 양심수 변호에 집착하기 시작했어요.”

“남편이 처형된 후, 모든 양심수 사건이 제 일처럼 느껴지더군요. 그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 제게 주어진 책임인 것 같았어요. 이 문제를 다루는 데는 여성이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해요. 시리아의 미래를 건설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니까요.”

여성들은 안전이든, 지역사회든, 혹은 평범한 일상에서든 그와 관련된 모든 난관을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음을 이미 증명해 보였어요.”


 

조이 와타기, 케냐

조이 와타기, 케냐

조이 와타기, 케냐

케냐 나이로비의 국제앰네스티 청년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조이 와타기는 수천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있는 한 청소년을 지지하고 나섰다. 노르웨이에 살고 있는 타이베흐 아바시는 의사를 꿈꾸는 18세 학생이지만, 평생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아프가니스탄으로 추방될 위기에 놓였다. 조이는 타이베흐의 학교 친구들이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연대를 표하고자 했다. 조이가 선택한 방법은 소셜미디어로 #TellNorway (노르웨이에 말한다) 캠페인에 참여해 타이베흐의 사례를 알리는 것이었다.

“노르웨이에서 10대 청소년들을 추방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슬픔을 금할 수 없었어요. 무슨 일이라도 하고 싶었죠.” 조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 케냐로 들어오던 난민들을 모두 기억해요. 소말리아, 수단, 르완다에서 온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 역시 여느 케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서 당연히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죠. 난민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고, 함께 자랐고, 평생 친구가 되었어요. 그런 친구들이 다시 추방된다고 생각하면 정말 싫을 것 같아요.”

“아프간 난민들은 그들이 떠났을 때의 똑같은 상황 속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거예요. 그건 잔인하고 부당한 일이에요. 그들은 노르웨이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이 되었고,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아야 해요. 제가 #TellNorway 캠페인에 참여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그 사람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존엄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고 결심한 거였어요.”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건 그야말로 몰지각하고 이기적인 말인데, 그 말이 계속해서 들려올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요. 벽을 세울 것이 아니라, 지지를 보내야 해요.”


샤켈리아 잭슨, 자메이카

샤켈리아 잭슨, 자메이카

샤켈리아 잭슨, 자메이카

샤켈리아 잭슨이 활동가가 된 것은 가족을 잃은 슬픔 때문이었다. 2014년 1월 20일, 샤켈리아의 오빠인 나키에아 잭슨은 일하던 식당에서 점심식사 준비에 여념이 없던 중, 경찰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자신들이 쫓고 있던 강도 용의자의 인상착의가 나키에아와 일치했다고 주장했다. 샤켈리아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 책임자의 처벌을 위해 경찰의 위협과 괴롭힘에 맞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 가족과 제가 겪은 고통 때문에 저는 오빠를 비롯해 경찰의 만행에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의 정의를 위해 싸울 수밖에 없었어요.” 샤켈리아는 말했다. “저는 사람들이 이 사건을 잊지 못하도록 오빠를 잃은 슬픔을 계속해서 알렸어요.”

“저는 제 인생을 바꾸는 선택을 했어요. 모든 사람의 정의를 보장하고, 자메이카의 공권력에 의한 폭력과 테러를 막을 수 있는 법적, 정책적 개선을 실현해 앞으로의 희생자를 막을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자메이카 정부는 이러한 제 노력이 성공하지 못하게 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지만, 저는 단념하지 않아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단념하지 않는 것은 수많은 거인들의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이에요. 국제앰네스티와 동맹 단체들은 제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세계적인 발판을 마련해 주셨어요. 이러한 다정함을 통해 저는 상처를 입었을 뿐, 무너지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자 솔리만, 이집트

아자 솔리만, 이집트

아자 솔리만, 이집트

아자 솔리만은 이집트의 고문, 임의 구금, 가정폭력, 강간 생존자를 위해 분연히 목소리를 내는 활동가다. 그녀가 공동 설립한 ‘이집트 여성법률지원센터’와 ‘정의와 평화를 위한 변호사회’는 여성을 대상으로 법률 구조, 지원 및 문해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용감하고 이타적인 활동을 벌인 덕분에 아자는 이집트 정부에 ‘스파이 및 국가안보에 대한 위험인물’로 낙인이 찍히게 됐다. 2016년 12월, 아자는 당국에 체포되어 심문을 당했다. 그녀는 짧은 기간 구금된 후 풀려났지만, 이집트의 국가 이미지를 훼손하려는 목적으로 해외 자금을 받았다는 등 다수의 혐의로 기소를 앞두고 있다. 아자는 출국 금지와 자산 동결을 당했고,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놀라운 여성은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여성의 권리와 인권을 향상시키고 지지하려는 투쟁은 힘겹고 긴 싸움입니다.”

아자는 말한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희망을 놓지 않았어요. (국제앰네스티의 Write for Rights 캠페인을 통해) 저를 향한 지지와 사랑이 담긴 엄청난 양의 메시지를 받고, 저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또 제 활동이 인정받고, 환영받고 있다는 것도 알았어요. 이제 다음 세대가 봉화를 이어받아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요. 언젠가 우리는 이 모든 역경과 고난을 뛰어넘을 수 있겠죠. 그 생각에 저는 투쟁을 계속해 나갈 수 있어요.”

온라인액션
이집트: 여성 폭력에 맞서 싸우다 / 아자 솔리만
0 명 참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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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소개된 여성들은 국제앰네스티의 Brave 캠페인 대상자입니다. Brave는 세계 각지의 인권옹호자들에 대한 인식과 보호를 강화하고자 하는 캠페인입니다. 자세한 정보는 http://www.amnesty.org/brave 를 방문해 확인하세요.
목, 2018/03/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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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8일, 인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제 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경찰 추산 300여 명이 참가한 축제에서는 당초 50여 개의 부스 프로그램과 공연, 행진이 이어질 예정이었지만 축제는 1000여 명의 호모포비아 세력의 집단적인 방해로 인해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이에 경찰은 1000여 명의 경찰 병력을 투입했으나 평화적 집회 시위를 보장해야 할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축제장에서는 호모포비아 세력에 의한 언어폭력, 구타, 물품 파손, 도난, 강간위협 등의 폭력 상황이 인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에 계속해서 보고되었다. 현장에 있던 앰네스티 활동가 또한 호모포비아 세력에게 구타당했고, 들고 있던 깃발마저 갑자기 달려든 호모포비아에게 갈취당했다. 이처럼 축제장 곳곳에서 벌어진 폭력에 경찰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고, 이어지는 폭행 신고에도 불구하고 출동하지 않았다. 평화적 집회 시위에 참여한 참가자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집회 참가자들에게 행해진 폭력을 방치하고 방관한 경찰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정당한 절차를 통해 신고한 행진 또한 호모포비아의 방해로 인해 계획대로 진행할 수 없었으나 경찰은 행진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적절하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등의 국제인권법은 국가에 평화적 집회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촉진시킬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그 의무를 저버린 경찰 및 관계자들을 강력히 규탄한다.

정부는 이날 벌어진 폭력에 대해 책임자들을 철저히 수사하고 LGBTI가 공격받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보호 조치를 약속해야 한다. 이날 축제 참가자들에게 행해진 혐오 폭력은 이를 방지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부는 즉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도입하여 소수자들이 혐오와 폭력에서 보호받고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월, 2018/09/1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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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는 정치적으로 개방되었다고 알려져 있음에도, 표현, 집회, 결사의 자유에 대한 억압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제앰네스티가 쿠바 활동을 시작한 지 50주년을 맞아, 쿠바사람들이 겪고 있는 인권문제를 만화로 엮었습니다.

 

1화 그라시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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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시엘라, 2017년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생긴 일

요즘 쿠바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요? 그라시엘라는 역도 챔피언이다. 경기가 끝난 후, 그라시엘라는 국영방송사와 인터뷰를 나눴다. 그라시엘라는 훈련할 때 정부 지원이 부족했다고 비판했다. 그 인터뷰는 방송되지 않았다. 그 후 그라시엘라는 반 혁명세력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라시엘라는 더 이상 역도를 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국가대표선수에서 영구제명 되었다. 그라시엘라는 20일 만에 새로운 직업을 구해야 했다. 이후에도 무직인 경우, ‘위험인물’로 고발당할 수 있고, 범죄자 또는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용의자로 취급받을 수 있다. 반역자 신분으로는 일을 구하기 어려웠고 기회도 별로 없었다. 유일한 일자리는 들판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일은 따분했다. 그라시엘라는 걱정이 되었다. 이 일로 버는 돈으로는 가족들을 부양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라시엘라는 다른 결정을 해야 했다. 결국 그라시엘라는 새로운 기회를 찾아 쿠바를 떠났다.


그라시엘라의 이야기는 국가대표이자 챔피언였던 호르헤 루이스Jorge Luis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호르헤 루이스는 국영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부족했으나 가족들의 응원과 노력으로 이를 극복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인터뷰는 방송되지 않았고, 선수 생활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호르헤 루이스는 국가대표에서 제명된 후, 20일 만에 새로운 일을 구해야 했습니다.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위험인물’로 고발당할 수 있습니다. 일을 구하러 가는 곳마다 호르헤를 ‘반역자’로 취급했고,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호르헤는 쿠바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수, 2017/11/2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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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는 범죄를 사라지게 할까? 사형이 희생자들에게 정의를 주는가? 사형집행을 인도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는가?
사형에 대한 해묵은 궁금증이 있다면, 사형제도에 관해 국제앰네스티에게 가장 자주하는 질문 10가지에서 답을 찾아보세요.

01국제앰네스티는 왜 사형제도에 반대할까?

사형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 즉 생명권을 침해합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잔인하며 비인간적이며 모멸적인 처벌입니다.

사형제도는 차별적입니다. 사형제도는 가난하거나, 인종적 혹은 종교적으로 소수이거나, 정신 장애가 있는 등의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훨씬 자주 사용됩니다. 어떤 정부는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침묵시키기 위해 사형을 이용합니다. 사법 체계에 결함이 있고 불공정한 재판이 만연해 있는 곳에서는 무고한 사람이 처형당할 위험이 상존합니다. 무고한 사람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로 감옥에 갇힌 경우엔 풀려날 수 있지만 사형은 결코 되돌릴 수 없습니다.

02폭력 범죄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정의를 내릴 권리가 있지 않나?

그렇습니다. 끔찍한 범죄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그 범죄에 책임져야 할 사람이 공정하게 이뤄지는 재판에서 심판받는 것을 볼 권리가 있습니다. 국제앰네스티가 사형제도를 반대함에 있어서 범죄 사실을 최소화하거나 묵과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많은 사람들이 말했듯, 사형이 진정으로 그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사형을 당하는 다른 사람의 가족에까지 고통을 확장시킬 뿐입니다.

복수는 답이 아닙니다. 정답은 폭력을 줄이는 것이죠, 더 많은 죽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 마리 딘 Marie Deans, 1972년 시어머니가 살해당하다.

 

03만약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면, 당신도 죽어 마땅하지 않은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렇지 않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복수다. 처형이나 처형의 위협은 끔찍한 신체적 정신적을 초래하는 잔인한 것이다. 범죄자를 처형하는 사회는 그 사회가 비난하고 있는 범죄자의 폭력과 똑같은 폭력을 저지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04사형제도가 범죄를 예방하지 않나?

연구에 따르면 사형이 징역형에 비해 범죄를 더 효과적으로 억제한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사실, 사형을 폐지한 나라들의 범죄율은 증가하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범죄율이 낮아지기도 했다. 캐나다의 2008년 살인율은 사형이 폐지된 1976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05테러리스트는 사형해도 되지 않을까?

정부는 종종 테러 공격으로부터 국가안보를 “보호”하고 있다고 설명하기 위해 사형을 이용한다. 그러나 사형제도가 있다고 해서 그들이 믿고 있는 신념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 예를 들면 자살 폭탄 테러범- 을 막을 수는 없다. 게다가 사형집행은 테러조직으로 하여금 테러리스트를 순교자로 만들어버릴 가능성 또한 있다.

‘테러리즘’ 혐의를 받는 피고인은 불공정한 재판을 거쳐 사형을 선고받을 확률이 특히 높다. 많은 경우 고문에 의한 ‘자백’에 근거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특별 또는 군사법원이 민간인에게 사형을 선고하기도 하는데 이는 국제기준에 위반하는 것이다.

[사형]은 범죄와 싸우고 있다고 사람들로 하여금 착각하게 만드는 가장 값싼 정치적인 방법입니다.

– 얀 반 루옌, Jan van Rooyen, 법학 교수

 

06영원히 가둬두는 것보다는 처형하는 편이 낫지 않나?

유죄를 선고받은 사람이 나중에 알고 보니 죄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있다. 수형인이 살아있는 한, 재활을 희망하거나 무죄임이 밝혀질 수도 있지만 사형은 그러한 가능성을 차단시켜버린다. 사형은 되돌릴 수 없다.

 

07사람을 인도적이고 고통 없이 처형하는 방법이 있을까?

어떤 형태의 처형도 비인도적이다. 독극물 주사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참수, 감전, 가스, 교수형 등의 다른 형태의 처형보다는 덜 엽기적이고 덜 야만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다소 인도적인 것으로 선전된다.

하지만 사람을 ‘인도적’으로 죽이는 방법의 진짜 모습이란 사형집행을 대중의 입맛에 맞게 보이도록 꾸며낸 것에 불과하다. 사형집행을 하는 정부가 살인자처럼 보이도록 하는 대신 말이다.

 

08사회가 사형을 원하는데 대체 앰네스티가 무슨 상관인가?

가장 중요한 기본권인 생명권을 포함한 인권은 전 세계의 보편적 지지를 받고 있다. 사형을 종식시키자는 우리의 지속적인 요청은, 세계의 주요 종교들이 강조하는 자비, 연민, 용서와 일치한다. 지금까지 140개국이 법적으로나 사실상 사형을 폐지하여 사형을 끝내려는 소망이 세계 대부분의 지역의 문화와 사회에 의해 공유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인권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우리 중 최고의 사람인지 최악의 사람인지 관계 없이.

– 국제앰네스티

 

09만약 여론이 사형제도에 찬성한다면?

사형에 대한 여론의 강력한 지지는 그것이 범죄를 감소시킬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 그것을 뒷받침할만한 증거가 없는데도 많은 정부들이 이 잘못된 믿음을 홍보하고 있다. 여기엔 사형으로 야기되는 중요한 요소들을 간과하고 있다. 무고한 사람을 처형할 위험, 불공정한 재판, 사형의 차별적인 성격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우리는 이러한 정보들이 공개적이어야하며 정부가 공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인권 존중을 증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사형에 대한 의미 있는 논쟁이 가능하다.

누군가를 처형하겠다는 결정은 여론에 의해 결정될 수 없다. 정부가 방향을 잡아야한다.

 

10사형폐지를 위한 싸움은 이기고 있는지?

그렇다. 오늘날 전 세계 국가의 2/3가 사형을 완전히 폐지하거나 더 이상 집행하지 않고 있다. 비록 몇 단계 후퇴도 있었지만 세계적인 사형폐지의 추세는 분명하다. 2015년 한 해에만 피지, 마다가스카르, 수리남이 사형을 폐지했다. 부르키나파소, 몽골, 한국도 마찬가지나 다름없다. 유럽은 사실상 사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사형을 포기하는데에 가장 부정적이었던 미국마저도 서서히 사형 반대의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대만의 앰네스티 활동가들이 사형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홍콩의 앰네스티 활동가들이 (I♡대만 피켓을 들고)사형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수, 2018/04/1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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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네이스탯(Anna Neistat), 국제앰네스티 선임 조사국장

<왕좌의 게임>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Winter is coming.” 불길한 미래를 예언하는 이 유명한 한마디는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 이 말은 기나긴 여름이 지나면 혹독한 겨울이 찾아온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겨울이 되면 세계에 대재앙이 도래할 것이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바로 ‘죽은 자들의 군대’ 다. 이렇게 엄청난 위협에 비하면 그동안의 암투와 배신, 불화는 사소하고 무의미해 보인다.

인권옹호자로서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정치적으로 우위를 점하려 책임을 전가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우리에게도 겨울이 찾아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인권 보호가 더 이상 의미 없는 행위로 전락하게 된, 암울한 미래가 말이다.

우리의 ‘여름’은 길고 풍요로웠다. 70년 전인 1948년, 세계 각국은 한자리에 모여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했다. “국적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의 인권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처음으로 명시한 선언이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헌신하겠다는 선언문을 마련한 것은 오랫동안 인류의 참혹하고도 암울했던 ‘긴 밤’을 견뎌낸 생존자들이었다. 이들은 가스실, 인종청소처럼 민간인들이 대규모로 고통받는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려고 뜻을 모았다.

그 이후, 세계인들은 각지에서 놀라운 성과를 이룩해냈다. 여성과 LGBT의 인권을 보장했고, 권력을 남용하는 정부에 맞서 일어섰고, 절대 쓰러지지 않을 것 같았던 전체주의 정권을 무너뜨렸으며, 국가 원수들이 마땅한 처벌을 받게 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들어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암울한 시기를 거치고, 다시는 같은 참상을 반복하지 말자고 선언했던 사람들이 지금의 사회를 본다면 몰라볼 정도의 변화를 이룩한 것이다.

우리가 막아낼 공격은 더 이상 개인이나 공동체의 권리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인권보호제도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위협에 맞서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과거로 퇴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70년이 장밋빛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장벽을 지키는 ‘나이트워치’처럼, 우리 인권옹호자들은 조금 더 가까이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위협을 경계하고 알리는 것은 물론, 심각한 인권침해를 막아내는 역할까지 했다.

혹독한 겨울바람을 막아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원칙은, 모든 정부가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원칙이 최근 들어 역사상 가장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드라마 속 웨스테로스 사람들은 여름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우리도 똑같이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가 막아낼 공격은 더 이상 개인이나 공동체의 권리에 대한 것이 아니다. 서로 동맹을 맺고 일부의 불량 국가를 처단하는 수준도 아니다. 이제는 인권보호제도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위협에 맞서야 한다. 존 스노우와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실제적인 전투를 앞두고 하나로 단결해야 한다.

이처럼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위협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불과 지난 몇 년 동안, 정치인들은 외국인 혐오, 여성 혐오, ‘타인’들에 대한 비인간화를 내세우면서 유권자들의 불안과 박탈감을 노골적으로 이용해 승리를 취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선전 문구는 점점 선동적인 목소리로 변해서, 이로 인해 차별과 증오범죄, 폭력이 발생하고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얼마 전 샬러츠빌에서 벌어진 백인우월주의 폭동도 그 예다.

국가 정부들은 ‘안보 우려’라고 모호하게 정의된 개념을 이용해, 고문이나 즉결 처형을 금지하는 등의 인권적 제약을 무시하고, 그러한 행위를 정당화했다. 이러한 수법을 이용한 국가는 미국, 러시아, 이집트, 나이지리아, 터키, 필리핀 등으로 아주 다양했다.

러시아, 중국과 같이 보편적인 인권이라는 개념 자체를 끊임없이 위협했던 국가들은 이제 더욱 대담해졌으며, 국제적 수준의 논의에서 더욱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거나, 논의 자체를 지연시키는 경우도 잦아지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국이나 영국과 같이,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인권의 수호자였던 국가들조차도 급격하게 태세를 전환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마치 세르세이 라니스터처럼, 염치없게도 자국만의 편협한 이익을 추구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국익을 위해 인권을 희생해야 한다는 비열한 주장을 늘어놓는다.

미국과 영국이 이러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민주주의와 인권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다른 국가 역시 너무나도 쉽게 그렇게 행동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의사전달 수단을 동원해 나의 권리와 타인의 권리를 위협하는 자에게 맞서 큰 소리로, 끈질기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인류 근대사의 가장 암울한 시기를 거쳐 마련된 지금의 인권보호제도가, 이제 또다시 황혼 속으로 잠겨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여지가 없다. <왕좌의 게임>에서 언급되는 또 하나의 흉흉한 말을 인용하자면, 밤이 찾아오면 “사방이 어둠과 공포로 둘러싸일 것”이다. 이 전투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로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지난 “겨울”의 혹독함을 지나치게 빨리 잊어버린 사람일 것이다.

이처럼 강력한 힘에 맞서 인류의 공동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하나 되어 행동에 나서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온갖 기준을 내세워 분열시키려는 시도에 저항하고, 자국 정부라도 마땅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할 것이다. 확성기를 들든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든, 모든 의사전달 수단을 동원해 나의 권리와 타인의 권리를 위협하는 자에게 맞서서 큰 소리로, 끈질기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 이들을 받아들이고, 불의와 위협에 맞닥뜨린 사람들 및 공동체에 지지와 연대를 보여야 한다.

<왕좌의 게임> 세계에서는 길고 혹독한 겨울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인권은 꼭 그런 결말을 맞이해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모두 함께 인권을 위한 촛불을 밝게 켜 둔다면, 어둠은 곧 사라질 것이다.

목, 2017/09/0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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