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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 희망제작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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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 희망제작소 연구원

익명 (미확인) | 수, 2018/01/10- 16:54

민간독립연구소 희망제작소가 연구원을 모집합니다.

(재)희망제작소는 2006년 정부나 기업의 출연금 없이 설립된 민간독립연구소입니다. 설립 이후 시민의 아이디어 제안과 후원, 시민과 함께 하는 열린 연구를 통해 사회혁신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광장의 촛불은 ‘시민이 대한민국의 주인이다’라는 시민 권력을 다시 확인하게 했습니다. 새로운 실험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민과 함께 혁신을 만들고 싶은 열정과 의지를 갖고 있는 분을 초대합니다.

1. 모집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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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채용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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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용일정은 변경될 수 있으며, 면접 시 복장은 자유입니다.

3. 근무조건
1) 직급
– 경력에 따라 결정
2) 공통사항
– 급여 ☞ 클릭
– 복리후생 : 4대 보험, 연차ㆍ여름ㆍ경조사 휴가 등
– 근무시간 : 주 5일 09시~17시(점심시간 포함/시차출퇴근제 운영)

4. 제출서류
1) 지원방법
– 지원서와 과제 작성 후 이메일 접수([email protected])
2) 지원서
– 첨부양식 이용 (개인정보제공동의서 체크 필수)
☞ 입사지원서 다운받기 : 경영기획팀 실무 총괄(클릭) / 시민참여형 연구(클릭)
3) 과제(한글파일로 작성하며, 분량은 자유)
(1) 경영기획팀 실무 총괄
* 비영리 경영 전략(시스템 및 원칙) 효율화 방안
(2) 시민참여형 연구
* 아래 주제 중 1가지를 선정하여 기술해주세요.
– 물질적 자원이 부족한 시민사회환경에서 시민과 함께 사회혁신 연구&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방법
– 촛불혁명 이후 변화된 시민사회 연구&활동 환경에 대한 분석
4) 포트폴리오(자유양식이며 의무사항 아님)
– 이력과 활동을 설명할 수 있는 별도의 자료가 있을 경우 함께 제출
※ 서류접수 뒤 확인 메일이 발송됩니다. 메일을 받지 못하신 분은 연락주세요.

■ 문의 : 커뮤니케이션센터 경영기획팀 (02-2031-2192)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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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옆집 남자의 얼굴을 모른다. 인사 한 번 해본 적 없다. 하지만 그의 여자친구 이름은 안다. 그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술버릇을 가졌는지도 알고 있다. 방음이 되지 않는 원룸의 건물 구조 때문이다. 그도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살짝 오싹해진다.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얼굴 없는 동거인’이다. 칸과 칸 사이, 분리된 듯 분리되지 않은 생활이 매일 계속된다.
‘희망다반사’는 희망제작소 연구원이 전하는 에세이입니다. 한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시선이 담긴 글을 나누고, 일상에서 우리 시대 희망을 찾아봅니다. 뉴스레터와 번갈아 격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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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옆집 남자의 얼굴을 모른다. 인사 한 번 해본 적 없다. 하지만 그의 여자친구 이름은 안다. 그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술버릇을 가졌는지도 알고 있다. 방음이 되지 않는 원룸의 건물 구조 때문이다. 그도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살짝 오싹해진다.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얼굴 없는 동거인’이다. 칸과 칸 사이, 분리된 듯 분리되지 않은 생활이 매일 계속된다.

부실한 건물에 사는 현실이 슬프지만, 벽간소음 덕분(?)에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진부한 격언을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삶의 많은 부분에서 사람들과 끊임없이 마주한다. 가족, 학교, 친구, 직장 등을 넘어 거리에서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나와 많은 것을 공유하는 ‘사회적 동거인’인 셈이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나에게 ‘함께 사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불쾌한 일의 연속이기도 하다. 얼마 전, 건물주에게 단체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청소 아주머니가 힘들어하시니 쓰레기 분리수거에 신경 써달라는 내용이었다. 출근길 무심코 지나쳤던 건물 앞 쓰레기더미가 생각났다. 악취로 코를 틀어막았던 것도 기억났다. 마침, 실제 많은 원룸촌에서 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기사가 화제였다. ‘조금만 신경 쓰면 될 텐데…’ 공중화장실에서, 극장에서, 버스정류장에서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일부 사람들 때문에 눈살을 찌푸렸던 적도 떠올랐다. 동시에 나 역시 누군가에게 알게 모르게 불쾌함을 줬을 거라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의 행동과 삶이 다른 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작년에 읽었던 한 책의 내용을 떠올렸다.

“수도권과 대도시의 전기공급을 위해 지방 소도시에 핵발전소와 송전탑을 짓는다. 소도시 사람들은 방사능과 전자파 위험에 노출된다. 콩고의 어린아이들은 스마트폰의 배터리 원료인 코발트를 채굴하며 학대를 당한다.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사 먹을 수 있는 생수는 수원지 오염과 고갈, 페트병 양산 등의 문제를 일으킨다.”

내가 누리는 생활의 많은 것들이 다른 누군가의 비합리적인 희생 위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이 누림은 당연하지도 않을뿐더러 어쩌면 불필요하거나 과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장 내 손으로 송전탑을 없애거나 편의점의 생수를 판매 금지할 수는 없었다. 대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보기로 했다. 쓰지 않는 가전제품의 플러그를 빼고, 주전자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사실 별것 아닐지도 모른다. 번거롭고 불편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작은 행동이 모이면 누군가의 불쾌한 감정을 지우고, 또 다른 누군가의 눈물을 거둘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내가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이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의 삶이 누군가의 비합리적인 희생과 눈물이 아니라, 조금씩 모인 불편함과 번거로움 위에 피어나길 바란다.

글 : 최은영 | 미디어홍보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목, 2017/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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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강산애’는 희망제작소 후원회원들의 산행 커뮤니티입니다. 우리 사회 다양한 분야의 소셜디자이너들이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산에 오르며 희망을 노래합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건강한 모임 강산애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강산애 5월 산행은 춘천 ‘오봉산’으로 향합니다. 기암과 노송이 아기자기 펼쳐진 산길을 소양호를 바라보며 오를 예정인데요. 오봉산은 경운산이라고도 불리며, 다섯 개 암봉이 줄지어 있어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백치고개를 사이에 두고 부용산(882m)과 마주보는 높이 779m의 경운산의 주위에는 봉화산과 수리봉 등이 있습니다. 남쪽 사면에서 시작한 계류는 청평사 계곡을 이루며 소양호로 흘러드는데요. 산행 후에는 배를 타고 소양호를 유람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강과 산이 어우러진 강산애 5월 산행에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산행 일정
– 일시 : 2017년 4월 1일(토) 오전 8시
– 모이는 장소 : 지하철 2호선 종합운동장역 5번 출구(출구로 나오시면 전세버스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 산행 코스 안내
– 산행코스 : 배후령 등산로 입구 → 오봉산 방향 → 오봉산(정상) → 청평사 방향 → 구멍바위 → 청평사 급경사 방향 → 소요대 → 천단 → 칼바위 → 쇠줄지역(암릉 구간) → 청평사 → 청평사 선착장 → 소양댐(배) 이동 (점심시간 포함 4시간 정도 소요)
※ 산행코스는 현지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 하산 시, 청평사 급경사 코스는 안전산행의 주의가 필요합니다. 등산 초보자 및 당일 몸 상태가 좋지 않으신 분은 청평사 우측의 완만한 경사 지대로 우회 하산하시길 바랍니다.

○ 준비물
– 회비 : 3만 원(전세버스 이용료 포함)
– 준비물 : 점심 도시락, 과일, 간단한 간식, 물 및 산행에 필요한 복장과 장비

○ 참가문의 및 신청
– 유상모 강산애 회장 010-3746-4751
– 이원혜 희망제작소 후원사업팀 02-2031-2186
※ 산행에 관심 있는 희망제작소 후원회원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 보험 안내
– 안전사고를 대비해 레저보험에 가입하실 분들은 별도로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보험가입비는 개인부담입니다

강산애 카페 바로가기 ☞ 클릭

금, 2017/03/2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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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먹고 갈래?’는 SH서울주택도시공사와 희망제작소가 함께 준비한 ‘2016년 주민참여형 행복한 아파트공동체 만들기’ 사업의 일환이다. 층간소음, 경비원 처우 등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아파트의 문제를 공동체를 강화해 풀어보겠다는 취지의 사업이다.

* 기사 저작권 문제로 전문 게재가 불가합니다. 기사를 보기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 링크를 눌러주세요. ☞ 기사 보러가기 

금, 2017/03/24-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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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소장 권한대행 권기태)는 안산시·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과 함께 23일 오후 2시 경기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기억의 조건’ 포럼을 연다고 21일 밝혔다.

희망제작소는 한국과 독일의 사례로 기억문화의 역할과 과제를 점검하고자 이번 포럼을 기획했다. 제종길 안산시장이 ‘기억문화 조성을 위한 안산시의 노력’이라는 주제로 기조발제를 한다.

* 기사 저작권 문제로 전문 게재가 불가합니다. 기사를 보기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 링크를 눌러주세요. ☞ 기사 보러가기 

금, 2017/03/2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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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3일, 희망제작소 4층 희망모울에 예쁜 꽃길이 생겼습니다. 긴 겨울이 지나고 간절히 기다렸던 봄님을 맞이하듯, 연구원들이 손수 만든 종이꽃에 마음을 담아 감사의 식탁을 준비했습니다. 노랗고 하얀 꽃들, 초록빛 나뭇잎이 줄을 이은 꽃길을 함께 걸어보실래요?

이번 감사의 식탁에서는 봄 내음 가득한 비빔밥과 잡채, 전, 북엇국을 준비했습니다. 돌나물과 새싹, 얼갈이 된장무침을 밥 위에 올리고, 세 가지 양념을 입맛 따라 골라 뿌린 비빔밥은 그야말로 산뜻한 ‘봄’의 맛이었지요. 연구원들이 만든 게 맞냐며, 정말 맛있다고 해 주신 후원회원님 덕분에 한나절 부엌에서 흘린 땀이 더 뿌듯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희망제작소를 둘러보았습니다. 구석구석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공간을 둘러보며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들으니, 희망제작소의 활동이 마음에 더 가까이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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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희망을 만나는 꽃길로

꽃말 이름표와 준비된 질문카드를 보며, 본격적인 이야기 나눔을 시작합니다.

화양연화(花樣年華) : 꽃처럼 빛나는, 나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지금까지 살면서 나의 화양연화는 언제였나 떠올려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보낸 시간, 가족과 함께했던 순간, 생일상 차려놓고 기뻐했던 어릴 적 생일, 친구와 도보여행… 꽃같이 빛났던 시절을 나뭇잎에 적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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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마누라(그녀)를 만났을 때 숨이 멎는 듯했다”
“정년퇴직, 은퇴식 그날이 꽃 같은 날이었음”
“어릴 적, 엄마랑 바구니에 칼 한 개씩 챙겨서 쑥 캐러 가던 시절. 직접 캔 쑥으로 쑥국, 쑥털털이(쑥버무리), 쑥떡을 잔뜩 만들어놓고 그것만 먹던 시절. 가족이 있어 그 모든 것이 좋았던 시절. 문득 그때가 그리운 오늘”
“사람들과 꾸밈없이 소통하고, 내 사람이다 싶은 이들이 하나, 둘 늘어가는 요즘”
“꽃같이 빛나는 시절. 지금부터…”

나뭇잎에 남긴 모든 날이 다시, 그리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순간입니다. 후원회원님 모두가 자신의 화양연화를 추억하며 직접 만든 꽃과 나뭇잎으로 희망모울에 꽃길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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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끝날 때쯤, 문명녀 후원회원님께서 오늘 참석한 후원회원들께 감사하고 희망제작소를 사랑한다며, ‘일곱 송이 수선화’라는 노래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문명녀 후원회원님의 따뜻한 마음이 고운 목소리에 담겨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꽃처럼 곱고 화사한 후원회원님이 함께한 3월 감사의 식탁이 이렇게 마무리됐습니다. 후원회원이 아니지만, 희망제작소가 궁금한 마음에 낯섦 무릅쓰고 와주신 도원 님, 두수 님, 사랑 님, 석진 님도 반가웠습니다. 감사의 식탁에서 만난 네 분과의 인연이 희망제작소와 함께하는 꽃길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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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 다음 감사의 식탁에서 또 만나요!

– 글 : 김희경 | 후원사업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화, 2017/04/0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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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걸었다. 바람이 거셌다. 용눈이오름에서 몸 중심이 휘청거릴 만큼 제대로 드센 바람을 맞았다. 위미항에서 쇠소깍을 지나 서귀포로 접어드는 바닷길을 걷는 내내, 제주 봄바람은 엉킨 실타래처럼 사방에서 정신없이 몰아쳤다. 정방폭포 가는 길, 표지판 앞에서 걸음이 멈췄다. 제주 4·3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지슬’이 떠올랐다. ‘지슬’은 ‘감자’의 제주 방언이다.
‘희망다반사’는 희망제작소 연구원이 전하는 에세이입니다. 한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시선이 담긴 글을 나누고, 일상에서 우리 시대 희망을 찾아봅니다. 뉴스레터와 번갈아 격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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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걸었다. 바람이 거셌다. 용눈이오름에서 몸 중심이 휘청거릴 만큼 제대로 드센 바람을 맞았다. 위미항에서 쇠소깍을 지나 서귀포로 접어드는 바닷길을 걷는 내내, 제주 봄바람은 엉킨 실타래처럼 사방에서 정신없이 몰아쳤다.

정방폭포 가는 길, 표지판 앞에서 걸음이 멈췄다. 제주 4·3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지슬’이 떠올랐다. ‘지슬’은 ‘감자’의 제주 방언이다.

1948년 4월 3일, 항쟁이 일어나자 군 토벌대는 해안에서 5km 이상 떨어진 중산간 지역에 사는 모든 민간인을 폭도로 규정하는 포고령을 내리고 무차별 학살을 시작했다. 영화의 배경이 된 동광리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산으로 올라 큰넓궤(동굴)에 숨었다. 급하게 챙겨 간 게 고작 감자 몇 알이다. ‘늦어도 모레쯤이면’ 마을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다리가 불편한 노모는 감자 소쿠리를 건네며 아들 내외와 손자를 보내고 홀로 집에 남았다.
어머니를 두고 온 게 못내 마음에 걸린 아들은 다시 마을로 내려온다. 불에 타 앙상한 뼈대와 재만 남은 집터에서 검게 그을린 ‘지슬’을 발견한다. 40여 일을 큰넓궤에서 지낸 동광리 사람들은 결국 토벌대에 발각되었고 정방폭포 인근으로 끌려가 대부분 죽임을 당했다.

“정방폭포에서 희생된 86명 가운데 동광리 주민은 40여 명으로 알려졌다. 바다로 이어진 정방폭포에서 유족들은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하고, ‘헛묘’를 동광리 마을 곳곳에 만들었다.”
– 한겨레 2013년 3월 30일 자 “하늘 보고프고 바람 그리워도… 나가면 죽는 거여” 중

정방폭포는 폭포수가 바로 바다로 떨어지는 해안폭포다. 폭포수가 마치 하얀 비단을 드리운 듯 수려한 풍광으로 유명 관광지가 되었지만 지울 수 없는 슬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그런 곳이 어디 정방폭포뿐일까.

제주의 봄은 슬프다. 오랜 세월 드러내지 못한 상처의 흔적이 중산간 지역 곳곳에 웅크리고 있다. 뭍보다 따뜻한 겨울을 보낸 제주 봄바람이 유독 드센 것은 이유 없이 죽어 간 수많은 영혼의 손짓 때문일까. ‘억울하다’ 한마디 못하고 비통한 세월을 견딘 유가족의 한숨이 더해졌기 때문일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날 이후 50여 년이 지나서야 4·3항쟁의 진상규명이 시작되었다. 아무리 억누르고 짓밟아도 끈질기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진실’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오랜 어둠을 걷어내고 역사의 빛을 불러냈다.

큰 엉(언덕)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배낭에 매단 노란 리본이 바람에 흔들린다. 2014년 4월 16일, 아이들이 끝내 닿지 못한 제주의 푸른 바다가 끝없이 일렁이고 있었다.
2017년 봄, 천 일 넘게 물속에 잠겨있던 세월호가 올라왔다. 모습을 드러냈지만 선체는 아직 기울어져 있다. 금방 동굴에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동광리 사람들처럼, 곧 구조될 거라고 믿었던 아이들의 봄도 여전히 기울어져 있다. 이 봄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건 오직 그날의 진실이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차라리 유족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안고 미수습자 가족들은 진도에서 세 번째 봄을 맞이하고 있다. 올라오는 세월호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가족들을 보며 함께 울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이 눈물을 멈출 수 있을까.

더 늦기 전에 이제 누군가 대답해야 한다.

– 글 : 이원혜 | 후원사업팀 팀장 · [email protected]

목, 2017/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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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출근길, 자하문터널을 지나 신영동 쪽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소림사’(진짜 절 이름이다) 앞 만개한 벚나무가 시야에 환하게 들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별 기미가 없었는데 어느새 저렇게 활짝 피었다. ‘어? 저 벚꽃!’하는 순간 작년이 떠올랐다. 처음 출근하던 날, 공연히 몇 정거장 먼저 내렸다. 그리고 이 벚나무를 찍어 SNS에 올렸다. 벌써 1년이 지났다. 당시 그 사진에 누군가 ‘여기가 어디야? 서울이야?’라고 물었던가.
‘희망다반사’는 희망제작소 연구원이 전하는 에세이입니다. 한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시선이 담긴 글을 나누고, 일상에서 우리 시대 희망을 찾아봅니다. 뉴스레터와 번갈아 격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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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출근길, 자하문터널을 지나 신영동 쪽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소림사’(진짜 절 이름이다) 앞 만개한 벚나무가 시야에 환하게 들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별 기미가 없었는데 어느새 저렇게 활짝 피었다. ‘어? 저 벚꽃!’하는 순간 작년이 떠올랐다. 처음 출근하던 날, 공연히 몇 정거장 먼저 내렸다. 그리고 이 벚나무를 찍어 SNS에 올렸다. 벌써 1년이 지났다. 당시 그 사진에 누군가 ‘여기가 어디야? 서울이야?’라고 물었던가.

관계는 사람을 흔들어?

평생 살아온 도시의 낯선 동네로 출근한 지난 1년은 자신을 곱씹느라 하루하루가 10대처럼 길게 느껴졌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과장 같은데, 자리를 통해 얻는 관계는 분명 사람을 흔드는 것 같다. 첫 출근 후 몇 달 동안은 매일 낯선 상황 위에서 흔들리다 보니 나의 흔들리지 않는 부분이 명확히 보였다. 뜻밖에 신념이나 태도 같은 것보다 느낌이었다. 한창 업무 메일을 쓰다 말고 어깻죽지로 떨어지는 햇볕이 간절해질 때, 출장 가는 기차 안에서 독서에 깊이 몰입할 때, 이전에는 대수롭지 않던 ‘좋음’에 관한 느낌이 돌연 위안이 되었다. 생활의 변화 속에서도 좋은 건 그대로 좋다는 것이 또 좋았다.

그래서 한동안은 이 느낌을 만든 기존 관계와 과거 경험을 곱씹으며, 그 안에서 자신을 일터와 분리해 지키려 했다. 원치 않는 모습으로 흔들릴 때 나 자신에게 기댈 수 있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한 고생을 동료에게 시시콜콜 말하고 싶다든가, 누군가의 칭찬과 격려에 지나치게 위안 받아 그것에 의존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싶어 불안감이 밀려왔다. 위로의 자급자족 시스템을 완성해서 계속 혼자 좋을 줄 알아야겠다고, 모처럼 예전에 듣던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아니, 관계는 나를 밝힌다

그로부터 또 몇 달이 지나 변함없이 근사한 벚나무 너머로 출근해서 보니, 어느새 나는 밥 먹으며 업무량에 대해 투덜거리거나, “오늘 옷 괜찮은데?”라는 말에 “원래 괜찮은 편인데” 같은 뻔뻔한 대답을 웃음 섞어 주고받는 사람이 되어있다. 얼마 전에는 내가 어색하게 느꼈던 격려의 말을 자연스레 건네 놓고 속으로 당황하기도 했다. 혹시 나는 자신을 지키지 못한 걸까? 아니면 성장하고 변화한 걸까? 둘 다 아닌 것 같다. 다만 이 자리에서 이렇게 만난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볼 일 없었을 나의 어떤 측면을 알게 된 것 같다.

그러니까, 관계는 나를 밝힌다. 새로운 내가 잘 보이지 않을 때는 흔들리는 것처럼 멀미가 나고 친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그 시간은 축적된 의미로 이렇게 돌아온다. 그렇게 무언가 이해하게 되면, 나는 아주 약간 새로워질 수 있다. 벚나무처럼 또 변함없는 것은 내가 맡은 사업인데, 올해는 카피를 새롭게 써 봤다. ‘우리 안에서 나를 재발견하는 세대공감프로젝트’라는 문장을 적어놓고 좀 더 고민하다가 ‘우리를 재발견하는’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 글 : 백희원 | 시민사업팀 연구원 · [email protected]

목, 2017/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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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7일부터 2017년 4월 24일까지 총 61분이 희망제작소의 든든한 후원회원이 되어 주셨습니다.
후원회원님의 응원 한마디가 희망의 씨앗이 됩니다.
잊지 않고 늘 기억하겠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희망모자

김민영 후원회원님

바르고 좋은 활동을 응원하고 기대합니다.

희망모자

명재범 후원회원님

건강한 시민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게 앞장서서 노력해주시길 바랍니다.

희망모자

정라온 후원회원님

깨어있는 시민의 꺼지지 않는 등대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희망모자

김도요 후원회원님

가치있는 곳에 가치있게, 효율적으로 후원금을 사용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희망모자

송지나 후원회원님

고등학생 때 희망제작소를 처음 알게 됐어요. ‘대학교 가서 돈 벌면 후원해야지’라고 생각한 걸 이제 실천하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희망모자

김준영 후원회원님

더 큰 희망이 필요한 사회입니다.

희망모자

이찬영 후원회원님

평범한 사람이 웃으며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면서… 그리고 실천을 위해서..

희망모자

이두수 후원회원님

평소에 관심이 많았다가 기회가 되어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희망모자

오승원 후원회원님

희망제작소에 후원을 하게 되어 기쁩니다.

월, 2017/04/24-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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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30분, 일어나 씻고 아침밥을 준비한다. 7시 즈음 일곱 살 아이가 눈을 뜨면 아침밥을 먹인다. 아이는 전날 늦게 자거나 피곤하면 좀처럼 일어나지 못한다. 그럴 땐 더 자게 둔다. 7시 50분. 출근 시간 마지노선이다. 후다닥 옷을 입히고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어린이집은 8시까지 등원하면 죽이나 주먹밥 등 간단한 먹을거리를 챙겨준다. 다행이다.
‘희망다반사’는 희망제작소 연구원이 전하는 에세이입니다. 한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시선이 담긴 글을 나누고, 일상에서 우리 시대 희망을 찾아봅니다. 뉴스레터와 번갈아 격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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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30분, 일어나 씻고 아침밥을 준비한다. 7시 즈음 일곱 살 아이가 눈을 뜨면 아침밥을 먹인다. 아이는 전날 늦게 자거나 피곤하면 좀처럼 일어나지 못한다. 그럴 땐 더 자게 둔다. 7시 50분. 출근 시간 마지노선이다. 후다닥 옷을 입히고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어린이집은 8시까지 등원하면 죽이나 주먹밥 등 간단한 먹을거리를 챙겨준다. 다행이다.

일하는 아빠의 일상

저녁 6시. 칼퇴근 후 부랴부랴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30명 아이 중 대부분은 집으로 돌아갔고, 우리 아이 포함 두세 명 정도만 남아있다. 조금 늦으면 우리 아이만 남아있기 일쑤다. 늦게까지 어린이집에 남아 있을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아이는 등원할 때마다 묻는다. “아빠! 오늘은 몇 시에 데리러 와?” 집에 와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씻기면 금방 9시가 넘는다. 아이는 더 놀고 싶어 하고 책도 읽어달라고 하지만, 내일을 생각하면 빨리 재워야 한다.

워킹대디(Working Daddy, 일하는 아빠), 즉 나의 일상이다. 아이 엄마는 야근이 잦다. 주중에 아이를 챙기는 일은 주로 내 몫이다. 야근이 많지 않아 견딜 만 하다. 하지만 고민이다. 혼자 외롭게 자랄 아이를 위해 둘째를 갖고 싶지만 엄두가 안 나는 것이다. 첫째 아이의 태명은 ‘두리’였다. 이왕이면 둘째까지 낳자는 내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첫 아이를 키우며 이 생각은 사라지고 말았다.

현실과 동떨어진 땜질식 처방

4월 26일, 통계청은 ‘2월 인구 동향’을 발표했다. 2월 출생아 수는 3만6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4,300명(12.3%) 감소했다. 이 추세라면 올해 출생아 수가 사상 최저인 36만 명(2016년 40만6,300명) 선까지 떨어질 것으로 추정한다. 결혼과 출산이 쉽지 않은 헬조선의 현실을 반영한다. 출산율 감소는 곧 경기 위축으로 이어진다. 당장 산부인과가 문을 닫고, 어린이집이 줄고, 학교 앞 문방구가 문을 닫는다. 내수감소로 이어진 경기 위축은 고용감소로 이어지고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인구절벽을 경험하고 있는 일본은 우리의 미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세우고 2006년부터 10년간 80조 원의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결과는 처참하다. 출산율이 회복되기는커녕 급격한 하향 곡선을 그리며 곤두박질치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땜질식 처방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저출산 해결, 보육정책 개선만이 답일까?

촛불시민혁명으로 갑작스레 다가온 19대 대선, 각 후보는 (예비)부모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국공립보육시설 확충 및 아동수당 도입 등을 약속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둘째를 가져도 되겠다’라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공약의 구체성이 떨어질뿐더러 마음 놓고 아이를 키울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 사회 시스템이 튼튼하지 않기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불을 향해 가고 있다지만, 1,968만7,000명의 근로자 중 절반 가까이가 200만원 미만의 월급을 받는다. 이는 저출산이 육아정책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이가 부모의 전폭적 지원 아래 행복하게 자라고, 학교에서는 자신의 특기와 적성을 살려 진로를 찾고, 청년이 되어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립하고, 나아가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보장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행복순위 1~2위를 다투는 북유럽 국가들은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다. 가정의 달 5월, 아이가 행복한 나라, 모두가 행복한 나라를 꿈꿔 본다. “아빠 언제 데리러 와?”라는 말을 들으며 더는 마음이 짠해지는 일이 없기를.

– 글 : 송정복 | 목민관클럽팀 연구위원 · [email protected]

목, 2017/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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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처음 발을 내디딘 두 달 전, 내게 주어진 공간은 1.5평짜리 고시원이었다. 복도에 들어서면 훅 들어오는 옆 방 사람들의 숨 냄새, 최소한의 생활용품만 넣을 수 있는 가구로 꽉 찬 방. 좁은 공간에서 게처럼 옆으로 움직이며 보낸 시간은 ‘고시원’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것처럼 음울함의 생생한 구현이었다. 창문과 화장실이 함께 있다는 이유로 방세가 무려 50만 원에 육박하는 곳이었지만, 그 많은 방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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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처음 발을 내디딘 두 달 전, 내게 주어진 공간은 1.5평짜리 고시원이었다. 복도에 들어서면 훅 들어오는 옆 방 사람들의 숨 냄새, 최소한의 생활용품만 넣을 수 있는 가구로 꽉 찬 방. 좁은 공간에서 게처럼 옆으로 움직이며 보낸 시간은 ‘고시원’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것처럼 음울함의 생생한 구현이었다. 창문과 화장실이 함께 있다는 이유로 방세가 무려 50만 원에 육박하는 곳이었지만, 그 많은 방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고시원을 탈출해 찾아다닌 집들도 비좁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름 거금으로도 서울에서 얻을 수 있는 공간은 5평 내외일 뿐이다. 살림살이를 채운다면 여기에서도 게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부동산에서는 ‘이 정도면 넓게 나온 편’이라고 한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니 서울은 본래 다 그렇단다.

서울에서 좁은 것은 비단 집뿐만이 아니다. 출퇴근 시간의 버스와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배낭을 등에 메고 있을 만한 공간의 여유는 없다. 도로는 차로 가득해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식당과 카페에 가면 옆자리 사람들과 이야기가 섞이는 것 같다. 번화가 에서는 마주 오는 사람들을 민첩하게 잘 피해 다녀야 한다. 서울은 언제 어디에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서울을 벗어나면 원시사회가 된다

서울에는 사람만큼이나 일자리, 교육, 문화 등 다른 기회도 많다.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다. 2016년 서울의 인구 밀도는 1㎢당 무려 16,861명이며, 우리나라 인구의 약 5분의 1이 살고 있다. 그래서 서울 일은 곧 나라의 일이 된다. 일례로 서울의 폭염은 연일 뉴스 메인을 장식했지만, 주민들이 목숨 걸고 수년 동안 농성했던 밀양의 송전탑 문제는 그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 짤막하게만 다뤄졌다.

역사적으로 늘 있었던 중앙집중 현상은 1960~70년대 성장 위주의 거점 개발로 더욱 강화됐고 지금까지 이어졌다. 전국으로 쭉쭉 뻗은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초고속인터넷이 생겼지만, 서울에 몰린 기회는 분산되지 않는다. 높은 인구밀도로 인한 피로감은 온갖 시설과 서비스로 보상받는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지적했듯이 여전히 우리나라는 서울을 벗어나면 원시사회가 된다.

지방균형발전, 실현할 수 있을까?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공약인 지방균형발전은 수도권 규제나 행정수도 이전 등으로 시도됐다. 실제로 2011년부터 서울의 인구수는 감소추세이고, 2015년에는 통계 작성 최초로 서울에서 빠져나간 인구가 서울로 유입된 인구를 역전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렸다. 하지만 유출의 주요 요인이 무서운 전셋값에 떠밀려서라니 문제의 핵심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이다. 교통망을 늘리고 기업을 지역에 유치하는 단순한 접근이 아니라 서울 중심적 사고의 전환과 함께 혁신적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 이번 정부는 이를 어떻게 풀어낼지 지켜봐야겠다.

– 글 : 이다현 | 지역정책팀 연구원 · [email protected]

월, 2017/05/1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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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적 시민활동을 지원하는 풀뿌리사람들의 김제선 상임이사가 희망제작소 소장으로 1일 취임한다.

김 소장은 “희망제작소가 단순히 연구하는 조직이 아니라 연구하며 실천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며 “시민사회와 공공, 시장의 경계를 넘어서는 협력 그리고 지역과 지역의 연결을 통해 지역주도의 한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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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7/06/01-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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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은 없다. 결석은 안 돼!” 대학원 진학 이후, 이 두 가지는 꼭 지키고자 다짐했다. 무색하게도 개강 첫날부터 15분을 지각하고 말았다. 코리안 타임은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했건만, 결국 입이 방정이다. 일과 학습을 병행한 지 4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캠퍼스의 푸르름을 느낄 새도 없이 종종걸음으로 강의실 찾아 들어가기 바쁘고, 수업이 끝나면 캄캄한 밤의 캠퍼스를 빠져나오기에 또 바쁘다. 일-학습병행으로 한 걸음 더 성장하겠다는 의지를 활활 불태웠지만, 어느새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번씩 돌아가며 아프다는 저질체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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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은 없다. 결석은 안 돼!”
대학원 진학 이후, 이 두 가지는 꼭 지키고자 다짐했다. 무색하게도 개강 첫날부터 15분을 지각하고 말았다. 코리안 타임은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했건만, 결국 입이 방정이다.

일-학습병행 삶의 단면

일과 학습을 병행한 지 4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캠퍼스의 푸르름을 느낄 새도 없이 종종걸음으로 강의실 찾아 들어가기 바쁘고, 수업이 끝나면 캄캄한 밤의 캠퍼스를 빠져나오기에 또 바쁘다. 일-학습병행으로 한 걸음 더 성장하겠다는 의지를 활활 불태웠지만, 어느새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번씩 돌아가며 아프다는 저질체력이 되었다.

매주 20쪽씩 영어 원서를 읽어야 하고, 어려운 통계 수식 전개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논평을 밤까지 꾸역꾸역 써 내려간다. 교수님께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것을 기대했지만, 업무 후 밤 9~10시까지 수업을 듣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 머릿속에는 집에 갈 생각만 가득하다. 교수님의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기다리며 일-학습 병행의 삶에 적응하고 있다.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대학원 진학 결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현장과 동떨어진 이론은 뜬구름이라 생각했고, 이론 없는 현장은 내 생각과 질문에 덧붙일 논리적인 근거와 자신감이 부족했다. 결국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한 선택이었다. 덕분에 ‘오늘의 할 일’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치면 안 될 텐데, 걱정이다.

그래서 지금 어때요?

누군가 말했다. “잘 해내기 위해 자신에게 가혹하지는 말게나!” 그렇다. 건강해야 한다. 떨어진 체력을 부여잡기 위해 새벽 운동을 시작할까 친구에게 물으니, 러닝머신 위에서 실려 갈 일 있냐며 잠이나 자라고 타박했다.

일상은 더욱 바빠졌고, 오늘도 난 지각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달린다. 할 일이 늘어난 만큼 새로운 환경으로 삶의 풍경은 다채로워졌다. 이제 겨우 한 학기 지났지만, 현장에서 주민들과 이야기할 때 아주 조금이지만 자신감도 생겼고, 수업시간에 듣는 이론에 현장의 상황을 덧대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학기와 일은 어쩌지’라는 고민을 내려놓으련다.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선택한 일인 만큼 나다운 방법으로 조금씩 헤쳐나갈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한 뼘 크게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장을 보는 눈도 조금 더 깊어질 테고 말이다.

– 글 : 안수정 | 지역정책팀 연구원 · [email protected]

목, 2017/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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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가 6월 1일부터 김제선 신임소장과 함께 새로운 한 발을 내디뎠습니다. 희망제작소 이사회와 연구원들은 ‘연구하며 실천하는 조직’으로 단단히 자리매김하기 위한 리더는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함께 그려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움직였습니다. 김제선 신임소장은 어떤 과정을 거쳐 희망제작소에 오게 되었을까요?

희망제작소는 지난 2월 21일 이사회를 열어 소장추천을 위한 이사추천위원회(위원장 정지강, 이하 이추위)를 운영하기로 의결했습니다. 이어 희망제작소 주변 단체, 관계자, 연구원 등을 통해 신임소장 후보를 복수 추천받았습니다. 그 결과 시민사회, 학계, 행정 분야에서 활동 중인 전문가 위주로 후보 명단이 나왔습니다. 이후 이추위는 온·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신임소장 후보자를 검증하고 면담을 진행했는데요. 그 결과 5월 9일 김제선 후보가 단수추천자로 확정되었습니다. 이후 5월 26일 제2차 정기이사회에서 의결, 최종 선임했습니다.

김 소장은 지역사회에서 30여 년간 시민사회활동을 활발히 이어온 분입니다. 1995년에는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창립멤버로 참여하여 사무처장까지 10여 년간 지역사회의 변화를 일궜으며, (사)풀뿌리사람들 상임이사를 역임했습니다. 또한 김 소장은 사회적경제 기관들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등 사회혁신과 사회적경제 분야의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그간 김 소장의 활동과 해답은 늘 현장에 있었습니다. 지역은 우리 삶의 자양분이라고 여겨온 희망제작소와의 활동이 씨줄과 날줄로 엮일 수 있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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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소장은 지난 1일 취임사에서 “싱크탱크형 시민운동, 시민에 의한 사회혁신을 주창해온 희망제작소가 이제 새로운 사회변화에 걸맞은 ‘자신의 변화’를 꿈꾸고 있다”며 “연구조직을 넘어 ‘연구하며 실천하는 조직’(Think&Do Tank)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려고 다짐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향후 희망제작소 소장과 연구원이 만들어갈 변화의 지점을 면밀하게 살펴봐 주시길 바랍니다.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은 김 소장과 함께 희망제작소만의 미래를 그려가고자 합니다. ‘후원회원 곁에 있는 곳’, ‘시민이 함께하고 싶은 곳’, ‘연구원의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곳’, ‘업무 혁신을 만들어내는 곳’이 희망제작소가 되길 바랍니다. 서로가 그리는 작은 조각의 그림이 모여 한 폭의 멋진 그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희망제작소는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디며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시민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직접 실험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더 열린’ 연구와 실천을 지향하겠습니다. 우리 삶의 자양분인 지역과 지역을 연결할 수 있도록 ‘발 넓게’ 뛰어다니겠습니다. 또한 대안과 담론을 재구성하는 데 힘쓰겠습니다. 희망제작소의 핵심가치가 현장에서 빛이 날수 있도록 싱크앤두탱크로서 시민과 함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그려가겠습니다.

– 글 : 방연주 | 미디어홍보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목, 2017/06/15-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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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땅, 쿠바. 깊은 밤 첫발을 디딘 그곳은 더운 공기로 가득했다. 공항은 작고 어두침침했지만, 걱정과 달리 입국 심사를 받고 짐을 찾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뜨거운 공기를 맡으며 버스에 올라 호텔로 가는 길, 가로등 하나 없는 깊은 어둠을 지나는 그 순간에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익숙하다 못해 삶이 되어버린 ‘문명’과의 단절을 말이다.
‘희망다반사’는 희망제작소 연구원이 전하는 에세이입니다. 한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시선이 담긴 글을 나누고, 일상에서 우리 시대 희망을 찾아봅니다. 뉴스레터와 번갈아 격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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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땅, 쿠바. 깊은 밤 첫발을 디딘 그곳은 더운 공기로 가득했다. 공항은 작고 어두침침했지만, 걱정과 달리 입국 심사를 받고 짐을 찾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뜨거운 공기를 맡으며 버스에 올라 호텔로 가는 길, 가로등 하나 없는 깊은 어둠을 지나는 그 순간에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익숙하다 못해 삶이 되어버린 ‘문명’과의 단절을 말이다.

세상 어디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어떤 정보도 놓쳐서는 안 될 것 같은 한국의 인터넷 환경에 익숙했던 나. 그런 나에게 쿠바라는 곳은 절대적인 문명과의 차단과도 같았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게 만들던 스마트폰은 카메라와 시계 기능을 제외하고는 무용지물이 됐고,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국영 통신사에서 전용 카드를 구매해야 했다. (그마저도 계속 연결이 끊겨 시도하고 또 시도해야 했다) 지루한 순간의 반복은 그곳의 여유를 맛보기도 전에 불편함과 답답함을 머릿속에 박아버렸다.

나는 왜 불편했던 걸까?

10여 년 전 쿠바를 꿈꿨던 적이 있다.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지를 도서관에 박혀 이 책 저 책 읽으며 고민하던 시기에 만났던 한 자전거 여행기 덕분이었다. 그땐 무엇을 봐도 가슴이 뜨거웠고, 나도 어서 빨리 세상을 탐험하고 바꾸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여전히 텍스트에선 감동하고, 몸은 움직이지 않고, 순간순간의 열정은 모래알처럼 빠져나간다. 상상만 해도 즐거운 것들이 조금씩 사라졌다. 중독처럼 SNS를 찾고 웹서핑을 그리워하며, 호기심과 열망으로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기보다 파편적인 장면을 자랑하기 바쁘다. 그곳에서 내가 왜 불편했는지에 관한 고민 없이, 그 불편함마저 액세서리처럼 이용하는 ‘관종’(관심에 목매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빠른 것, 새로운 것, 편리한 것에 대한 집착

그래서 아직 쿠바에서의 시간을 떠올리는 게 말끔하지 않다. 내 머릿속에 박힌 불편함은 혁명, 사회주의, 경제봉쇄, 이중화폐 등의 배경과 이슈에 갇혀 대화 한마디 나눠보지 않은 쿠바인의 삶을 재단했다. 재미없는 삶, 의욕 없는 삶, 벗어나고 싶은 삶. 피상적 느낌과 섣부른 판단, 나의 기준과 세상에 맞춰 그들을 바라봤다. 내 손에 들린 카메라를 보며 자신을 찍어달라던 쿠바의 청년에게 난 어떤 눈빛을 하고 있었을까?

여행이 좋은 건, 낯선 공간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나를 만나고 만나지 못했을 너를 만나며 비우고 또 채울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툰 색안경은 비움을 훼방 놓고, 마음속에 엉뚱한 것들을 채워 버린다. 내게 남은 쿠바의 잔상이 그렇다. 빠른 것, 새로운 것, 편리한 것에 대한 선호와 집착이, 있는 그대로의 속도와 자연, 그리고 그 안의 삶에 무뎌지게 만들었다. 이건 일종의 반성문이다. 언제든 내가 다시 쓰게 될지 모를 색안경을 좀 더 빨리 자각하기 위한.

– 글 : 조현진 | 목민관클럽팀 연구원 · [email protected]

목, 2017/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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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쯤 전이다. 이 ‘옛날이야기’를 처음 꺼냈던 것이. 스물 네댓 살쯤, 첫 직장의 신입 시절이다. 당시 나에게는 까마득하던 40대 남자 부장, 차장들과 직장 앞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언젠가 아버지께 들은 그 이야기를 왜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직장 동료를 짝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다. 상대 여성은 미모가 출중해서 인기가 많았고, 이 남자도 성격이 호방하다는 평을 들었지만, ‘특정 동물’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외모 탓인지 이성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남자는 지치지도 않고 여자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여자는 곁을 주지 않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뒀다.
‘희망다반사’는 희망제작소 연구원이 전하는 에세이입니다. 한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시선이 담긴 글을 나누고, 일상에서 우리 시대 희망을 찾아봅니다. 뉴스레터, 김제선의 희망편지와 번갈아서 발송되며, 한 달에 한 번 정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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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쯤 전이다. 이 ‘옛날이야기’를 처음 꺼냈던 것이. 스물 네댓 살쯤, 첫 직장의 신입 시절이다. 당시 나에게는 까마득하던 40대 남자 부장, 차장들과 직장 앞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언젠가 아버지께 들은 그 이야기를 왜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직장 동료를 짝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다. 상대 여성은 미모가 출중해서 인기가 많았고, 이 남자도 성격이 호방하다는 평을 들었지만, ‘특정 동물’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외모 탓인지 이성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남자는 지치지도 않고 여자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여자는 곁을 주지 않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뒀다.
얼마 후, 이 여자가 ‘소박’을 맞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허니문 베이비’로 아들을 낳았는데, 아이의 외모가 그 ‘특정 동물’ 그러니까 그 ‘특정 동물을 닮은 남자’와 똑 닮았던 것이다. 아내에게 지분거리던 남자를 본 적 있던 남편은 아내를 다그쳤고, 유전자 검사도 없던 시절이라 잡아뗄 만도 하건만 여자는 결혼 며칠 전의 사건을 털어놓았다.
마지막으로 술 한 잔만 하자는 남자를 외면하기 미안해서 나갔고 어째서인지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보니 다음날 근처 여관이었는데, 그 사실을 숨기고 결혼을 했노라는 것이다. 여자는 아들과 함께 친정으로 ‘돌려보내’졌다. 친정 식구들이 난처해 하고 있을 때, 문제의 그 남자가 등장했다. 어디서 들었는지 여자가 ‘내 아들’을 낳았다는 걸 알고 왔다면서 “제가 둘 다 책임지겠다”고 했단다. 친정 집안은 박수가 터지는 분위기였고, 그렇게 여자는 그 남자와 결혼해서 살았다고 한다.

“헐!”
이렇게 외친 사람이 15년 전 그 저녁 식사 자리에는 없었다. 부장, 차장들은 “그만하면 해피엔딩이네!” 하는 반응을 보였다. “여자 입장에서는…”이라는 나의 항변은 “아들이 자기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게 낫지”, “아이 데리고 다른 데 시집가봐야 잘 살았겠어?”, “그래도 그 남자가 ‘싸나이’네. 다른 남자한테 시집가서 1년이나 살다 온 여자를 흔쾌히 받아주고. 멋지네!” 하는 말들에 묻혔다.

“헐!”
이번에는 이렇게 외친 사람이 있었다. 2017년, 희망제작소 연구원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였다. 한창 들리던 “돼지발정제는 당시 청춘들의 문화였고…”, “여자 몰래 혼인신고를 한 것은 낭만적인 탈선…”, “여중생에게 차례로 찾아가서 총각 딱지를 떼고…” 등등의 뉴스를 화제에 올리던 중 내가 다시 이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헐’이라 외친 이는 15년 전 내 나이와 비슷한, 20대 중반의 여성 연구원이었다. “성폭행해서 가정 파탄시킨 남자한테 시집가서 그 남자 애를 키우며 산다고요? 그게 말이 돼요? 실화 아니죠?”

15년 전 그분들을 탓하려는 건 아니다. 선량하고 성실한 분들이었다. 공감대의 범위가 성별을 넘지 못했을 뿐이다. 짝사랑하던 여자를 보내기 싫은 마음, 한 번 결혼했던 여성을 받아들이는 찜찜함, 또는 친아버지 밑에서 자라지 못 할 뻔한 아들의 처지 등에는 순식간에 공감했으면서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폭력을 당하고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어 버린 여성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도 ‘친구들은 다 총각 딱지 뗐는데 혼자만 못 떼면 창피하지’, ‘혈기왕성할 때는 선생님 보고 흥분할 수 있지’ 등 남성들만의 넓디넓은 공감대 범위를 흔히 체감할 수 있다.

문제는 남성들의 공감대가 전체의 공감대로 여겨지는 사회다. 여성들이 문제 제기한 것에 대해 남성들은 ‘내가 판단해 보니 별일 아니야. 여기서 더 가면 이상한 거야’라는 말을 하면서도 뭐가 이상한지 모른다. 다행히 40년 전, 15년 전과 달리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도 많아졌다. 어지간한 압박에도 중단하지 않을 만큼 강해지기도 했다. 이렇게 목소리를 내다보면 조금씩 공감대의 균형이 잡혀가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만일 ‘헐’이라는 말이 15년 전에 있었으면, 내가 그 비슷한 말이라도 외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분들의 시각과 가치관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러지 못한 게 새삼 아쉽다.

– 글 : 황세원 | 사회의제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목, 2017/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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