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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소득이 GDP의 30%가 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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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소득이 GDP의 30%가 넘는 나라

익명 (미확인) | 목, 2017/11/09- 10:24

보유세 카드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부는 보유세 문제 등을 다룰 조세·재정개혁특별위원회를 청와대에 설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초 조세·재정개혁특별위원회는 기획재정부에 설치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청와대의 정책기획위원회 내에 두기로 결정된 것이다. 이는 청와대가 보유세 등 증세와 관련된 예민한 현안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게다가 보유세 현실화에 미온적이던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의 태도도 보유세 현실화쪽으로 점차 기울고 있다. “부동산 보유세 인상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왔던 김 장관의 발언은 지난 달 13일 미국 방문 길에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부동산 시장이 심각해지고 그 해결책을 검토할 단계가 되면 (보유세 인상) 가능성을 아주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한 데 이어 일주일 뒤인 20일 국정감사에서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갖고 검토하고 있다”, “준비를 해놓고 있다가 정책적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것”이라는 식으로 변화했다. 

청와대와 기재부가 보유세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보다 정부의 8.2부동산 종합대책과 10.24가계부채종합대책 발표 이후에도 서울 등 수도권의 아파트 가격이 여전히 들썩이는 탓이 크다. 심지어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2분기보다 3분기 상승폭이 더 컸다. 정부가 세제(양도세), 청약, 재건축 및 재개발, 대출 등에 관한 종합대책을 내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서울 등 수도권의 아파트 가격이 확연한 안정세를 보이지 않으니 보유세 카드가 등장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보유세를 현실화한다고 해서 부동산 가격이 당장 잡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보유세 현실화 없이 투기심리를 진정시키고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긴 어렵다. 대한민국은 선진국들 가운데에서는 보유세가 낮기로 유명하다. 대한민국은 아래 그래프가 보여주듯 부동산 실효세율이 선진국 가운데 가장 낮은 축에 든다. 

 

부동산 실효세율 비교 (2014년) 

출처 : 토지+자유연구소, 토지+자유 리포트 14호

 

 

 

 

 

 

 

 

GDP대비 보유세 비중(2014년 기준)도 대한민국은 0.78%에 불과한데 이는 미국의 2.62%, 영국의 3.13%, 프랑스의 2.60%, 일본의 2.04%는 물론이고 OECD평균인 1.10%에도 크게 못미친다.

 보유세가 이렇게 낮으니 부동산을 보유하는 데 따른 부담이 거의 없고, 투기심리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낮은 보유세가 대한민국을 부동산공화국이자 투기공화국으로 만든 실증적 통계를 보면 가히 충격적이다. 남기업 외 3인이 쓴「부동산과 불평등 그리고 국토보유세」라는 논문을 보면 2007년부터 2015년까지 부동산소득(실현자본이득+임대소득)을 추산하고 있는데 2007년 같은 경우 부동산 소득이 443.4조원(실현자본이득275.5조원+임대소득167.9조원)으로 무려 GDP의 42.5%에 달했다. 최근인 2015년은 부동산 소득이 482.1조원(실현자본이득227.0조원+임대소득255.1조원)으로 GDP의 30.8%에 달했다.

 부동산 불로소득은 대표적 지대(rent)로서 공공이 만든 가치를 사유화하는 약탈행위에 다름 아니다. 지대추구가 권장되고 상찬되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나라가 정상적인 발전을 하기란 지난하다. 보유세는 ‘사유화’된 지대를 ‘사회화’하는 최적의 정책수단이다. 최적의 지대환수 수단이자 가격안정화 효과까지 있는 보유세를 문재인 정부는 하루속히 현실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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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 얼마 전 트럼프와 푸친의 헬싱키 회담을 전후로 국제 언론계 일각에서는 한 가지 소문이 떠돌았다. 즉 미국이 러시아를 끌어들여 중국에 대한 공동전선을 펼칠 것이라는 것인데, 이하는 이에 대한 환구시보의 사설이다.


 

키신저는 트럼프에게 “러시아와 연합하여 중국에 대항”하도록 부추겼는가?

2018-08-02 00:05 (현지시각)

서구 매체와 중국 인터넷에서는 요즘 추측 하나가 떠돌고 있다. 즉 트럼프와 푸친의 헬싱키 회담은 키신저가 건의해 추진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회담은 또한 지난해 6월 키신저가 모스크바에 가서 푸친을 만났다는 소문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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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레디앙미디어

분석하길, 그것은 키신저가 트럼프를 도와 크렘믈린궁에 대한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견해는 더욱 대담한 추측을 낳았는데, 즉 키신저가 트럼프로 하여금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에 대항”하도록 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The daily beast>가 얼마 전 익명의 내막을 아는 사람의 말을 인용해 가장 상세한 관련 보도를 하였는데, 점차 언론계에서는 키신저가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에 대항”하도록 건의했다는 목소리가 많아졌다. 그러나 키신저 본인과 미국 정부는 모두 이에 대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미국 매체의 보도가 “바람 없이 파도는 일지 않는다.”(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라는 뜻-주)라고 간주하는 편이다. 만약 키신저가 정말로 트럼프를 도와 러시아와 관련된 전략 구상을 하였던들 크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키신저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이며 또한 견실한 미국의 애국자이다. 그가 당시 닉슨 정부로 하여금 “중국과 손잡고 소련에 대항”토록 한 것은 미국의 국가이익을 지키기 위해서였는데, 지금 만약 그가 반대로 트럼프 정부로 하여금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에 대항”토록 추동한다면 이 역시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이며, 여기서의 사상과 행위 논리는 모두 일관된다.

문제는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에 대항”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있다. 설령 미·러 관계가 얼마간 개선된다 하더라도, 미국 측이 이 같은 행동에 사치스럽게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에 대항”한다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당시 “중국과 손잡고 소련에 대항”하는 것과 같은 뜻이거나 심지어는 전략적 등가물이라 할 수 있는가이다. 키신저의 수준이 미국 매체의 작은 편집만큼 조잡하지 않으리라 믿으며, 90세가 넘은 그가 다시 ‘국제정치 표시 당’(뭔가 깜짝 놀랄 용어나 개념을 개발하여 남들의 시선을 끌려는 세력을 일컫음-주)을 만드는 선례를 열 정도는 아니리라고 믿는다.

키신저는 아마도 트럼프로 하여금 러시아와의 긴장 관계를 완화시켜 미국이 ‘양면 전투‘를 벌이는 상황을 피하도록 격려하였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에 대항”하는 것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먼저, 미·러가 ’연합‘ 하는 일은 매우 곤란하며, 쌍방은 우크라이나·시리아 등의 여러 옭매듭이 있다. 러시아는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이고, 또 미국의 양보는 곧 유럽의 신임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다음으로, 중국에 대한 ’대항‘ 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인데, 러·중은 일찍이 국경문제를 해결하였으며 전면적 전략협력 동반자관계에 있다. 러시아가 중국에 대항하는 것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하는 것에 대해선, 이처럼 손해 보는 전략적 거래를 할 만큼 크레물린궁은 어리석지 않다.

21세기의 세계는 이미 냉전시대가 아니며, 이데올로기적 경계선이 전체적으로 보아 약화됨으로써 어떤 대국도 진정으로 이념외교나 진영외교에 빠져들지는 않는다. 유럽연합은 미국의 현존하는 동맹체이다. 미국이 “유럽연합과 손잡고 중국에 대항”하는 것은 가장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가능한가? 융커와 트럼프가 타협을 이루었지만, 마치 싸구려 남방처럼 이 같은 타협의 질량은 매우 낮아서, 유럽으로 돌아와 물 하나 건넜을 뿐인데도 각종 쟁론 때문에 전혀 딴판이 되었다.

또 미국이 “인도와 손잡고 중국에 대항”하는 일은 매우 그럴 듯해 보이며, 중·인 간의 국경분쟁 때문에 “인-태 전략‘은 단번에 실현될 것만 같다. 그러나 인도 총리 모디는 금년 들어 두 번이나 중국을 방문하였으며, 인도는 서방으로부터 이득을 얻는 동시에 중국과는 안정적인 협력관계를 발전시키는 ’교활한 전략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도는 지금까지 미국에게 전략적인 총알받이가 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유럽 및 인도와 비교할 경우, 러시아와 미국·서방의 관계는 온갖 풍파를 다 겪었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는 충분한 외교적 경험이 있는 대국으로서, 중국과 격심한 이익충돌이 발생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그는 절대 중·러 간 전면적 전략협력 동반자관계를 대항관계로 바꾸는 높은 대가를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투항서’(投名状)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키신저와 트럼프 모두 그것이 러시아에 있어서는 ‘좋은 거래’라고 간주한다면 워싱턴의 자기도취는 정말 구제불능이라 하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냉전시기의 그 같은 대삼각 관계(大三角关系)는 이미 재현되기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 시기의 국가 관계는 진영이 분명하였지만, 지금 각국 관계는 훨씬 복잡하며 미국은 중국과 경쟁하면서도 미소 대결 때와는 다른 방식을 채택할 것이 요구된다. 연합한다거나 대결한다는 이 같은 사고방식은 이미 시대에 뒤처진 것이다.

그럼에도 위에서 언급한 소문은 그래도 우리를 각성시킨다. 중국에게 있어 이후 러시아 및 기타 모든 중요 국가들과의 관계를 안정시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며, 미국의 정치엘리트들이 그들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중국인이 또 생각해볼 일은, 일본은 미국의 동아시아에 있어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데, 중국이 일본과의 긴장관계를 완화시키기 위해 더 많은 조처들을 내놓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미국이 이미 중국을 전략적 경쟁상대로 지명한 이상, 중국은 비록 미국과 첨예하게 맞서 맞대응해서는 안 되겠지만, 워싱턴이 중국을 겨냥해 통일전선의 전략적 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와해시키는 일은 마땅히 힘써야 한다.

  • 2018년 8월 7일 <레디앙미디어> 에 게재된 글입니다. 
금, 2018/08/1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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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차가 북한에 대한 이른바 ‘코피(bloody nose)’ 타격에 관해 우려를 표명한 것 때문에 주한 미국 대사 내정이 철회됐다는 보도가 잇따랐지만 이는 신빙성이 떨어지는 설명이다.

빅터 차(Victor Cha)가 트럼프 백악관과의 논의에서, 북한에 대한 이른바 “코피(bloody nose)” 타격에 관해 우려를 표명했으며 그 결과 주한 미국 대사 후보에서 탈락했다는 내용의 기사와 사설이 한국 주류 언론을 도배하여 왔다.

그러나 지극히 기본적인 조사만 해 보아도 이런 설명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드러난다. 또한 빅터 차가 세련되고 신망 높은 북한 전문가라는 주장 역시 타당하지 않다.

우선 그는 지난 1년간 완전히 침묵을 지켰다. 미국이 먼저 도발 당하지 않더라도 북한을 (핵무기를 포함하여) 공격할 수 있다고 트럼프가 공언하고, 자신의 외교 방식에 따라 여러 조치를 취하면서 국무부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대다수 고위 외교관의 사직 혹은 해고를 불러왔던 지난 1년간 말이다. 또한 그는 트럼프가 내뱉은 노골적인 인종주의적 발언과 법무부 권한의 불법적 행사에 관해서도 침묵해왔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이전에,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넘도록 주한 미국대사를 임명하지 못했다는 사실의 중대성을 따져보도록 하자. 일부 전문가들은 여전히 공석으로 남아 있는 여타 대사직도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사실상 동아시아와 세계 주요국의 대사직은 채워졌다.

더군다나 트럼프가 거의 매주 북한을 언급하며 이를 가장 중요한 안보 이슈라고 말해 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무례함이 명백하다.

대사를 임명하지 않았음은 물론 상원 외교위원회의 지명 절차도 시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대단한 모욕이라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불가사의하게도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모독 행위에 침묵하고 있다. 한국 주권을 소리 높여 옹호해야 할 보수는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에 맹목적으로 충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보를 공격한다.

에드윈 모건(Edwin Morgan)을 워싱턴으로 돌려보낸 이래, 한국에 미국 대사가 이렇게 오랜 기간 부재했던 적이 없었다.

잠깐! 에드윈 모건이 누구인가?

이전에 미국 대사의 교체가 이렇게까지 지연되었던 경우는,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가 고종의 대한제국이 일본에게 합병되는 상황을 외면하고 엘리후 루트(Elihu Root) 국무장관에게 명령하여 1905년 11월 24일 에드윈 모건 대사에게 전문을 보내 “철수하여 미국으로 복귀하라”는 지시를 내렸을 때이다. 이후 차기 미국 대사로 한국에 부임한 사람은 존 무치오(John Muccio)였다. 그로부터 45년 후의 일이다!

이번에는 한국이 식민지가 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로 인하여 미국과의 관계는 명백하게 격하되었다. 한국을 참으로 정중한 방식으로 박대하고,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며, 심지어는 한국이 아무런 목소리도 낼 수 없는 미국의 안보정책을 따르라고 요구까지 하는데도 충실한 동맹국으로 행동하도록 강요되는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은 “코리아 패싱”을 끝내겠다는 트럼프의 번드르르한 언사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런데 대사직을 위해서라면 많은 것을 기꺼이 감내하려는 빅터 차를 외면한 배후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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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차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한국 담당 디렉터로 활동하며 자신의 이름을 많이 알렸다.

이 상황에 대한 가장 섬뜩한 설명은 군부의 어떤 파벌이, 누가 어떤 생각을 하건, 군사 충돌을 강제하려고 계획 중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누군가가 이 절차를 공개적인 논의에 부쳐 방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위험성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현재 시점에서 이것이 불가피한 결론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설명은 트럼프를 반대하는 행정부 안의 누군가가, 트럼프에게서 물러나도록 할 만큼 강력한 메시지를 빅터 차에게 전달했고 이에 따라 후보 이야기가 끝났다는 것이다.

미국 연방정부 전체의 군사화 추세

큰 틀에서 보자면, 빅터 차의 지명 실패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에 대한 민간 통제가 끝났음을 의미하며, 이는 연방정부 전체의 군사화라는 커다란 추세의 일부이다.

실제로 외교의 군사화는 중동과 중앙아시아 및 여타 지역에서 상당 기간 진행되어 왔다. 중동 주요국의 미국 대사들이 연회에 사용할 새우를 튀길지 아니면 삶을지를 제외하고는 발언권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트럼프 내각과 연방정부에 임명된 전례 없이 많은 숫자의 전직 군인을 통해서 군사화 과정이 최고점에 이르렀음을 목도하고 있다. 예컨대 연방정부의 경우 육군 장군 출신의 마크 인치(Mark Inch)가 연방교도국(Federal Bureau of Prisons) 책임자에 임명되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난 11월 미국 최고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장으로 해병대 장군 출신의 존 알렌(John Allen)이 임명된 것을 보라. 브루킹스연구소의 전임 소장은 스트로브 탤벗(Strobe Talbott)으로, 그는 (그의 견해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최고의 교육을 받은 유능한 민간인이었다. 탤벗의 전임 소장은 유능한 외교관이었던 마이클 아마코스트(Michael Armacost)였다.

빅터 차가 민간의 통제를 옹호한다거나, 미국 헌법과 유엔 헌장을 존중하는 인물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부시 행정부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다수의 불법행위를 거리낌 없이 외면했고, 그 당시부터 북한이 합의를 붕괴시킨 주요 원인 제공자라는 소설을 퍼뜨렸다.

“있을 수 없는 국가 : 북한의 과거와 미래(The Impossible State: North Korea, Past and Future)” 등 빅터 차의 저서들은 북한이 다른 어떤 곳의 어떤 국가와도 다르다고 시사하면서 북한에 관한 공상적인 이미지를 세상에 내놓았다. 노골적으로 환원주의적 관점은 아닐지라도 재미있는 공상과학소설에나 어울릴 법한 이야기다.

더욱이 지난 15년에 걸친 빅터 차의 승승장구는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어 준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위상 하락과 분리할 수 없다.

이 연구소는 한때 국제관계 분야에서 지극히 유용한 정보의 제공자였지만, 이후 국가 기능과 외교 및 안보의 민영화를 관리 감독하는 컨설팅 회사로 축소되었다.

12년 전에는 필자 같은 아웃사이더도 전략국제문제연구소에 발표자로 초대되곤 했다.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인 연구소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의미 있는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곳이었다.

미국 외교정책의 두 거물이 상호작용 함으로써 균형이 이루어졌다.

한편에는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가 있었다. 키신저는 외교와 안보를 사기업화 함으로써 거대한 부를 일군 인물이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를 활용하여 자신의 키신저 협회(Kissinger and Associates)로 계약을 빨아들였다.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냉소적인 정치인 중 하나였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의 친분을 통해 권력, 돈, 더 많은 돈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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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를 미국의 주요 싱크탱크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헨리 키신저(왼쪽)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그러나 이 연구소는 이제 국가 기능과 외교 및 안보의 민영화를 관리 감독하는 컨설팅 회사로 축소돼버렸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가 있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보좌관을 역임한 브레진스키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데 분명 개방적이었지만, 자신을 학자이자 공복으로 여겼고 부나 좇는 사람이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필자가 글을 통해 브레진스키를 옹호할 때면, 일단의 사람들로부터 혹독한 공격을 당하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대실패를 설계한 사람이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러시아를 응징했던 완고한 냉전의 선봉장으로 브레진스키를 바라보는 사람들로부터였다.

브레진스키에 대한 이러한 평가에 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지만, 필자의 경험은 대단히 다른 것이었다. 브레진스키가 정치적 핍박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굳이 나서는 일을 여러 차례 목격했고, 이란과의 전쟁으로 몰아가는 움직임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보았다.

안보정책에서 기후변화의 중요성에 관한 필자의 제안에 대해 브레진스키가 여러 차례 세세한 내용의 답장을 써 보내곤 했다. 그는 자신의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며, 또한 진지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다가서려고 했다.

브레진스키가 병든 이후 그리고 작년에 작고한 이후, 전략국제문제연구소는 엄청난 추락을 경험했다. 군사 분야 계약자들과 외국 정부가 자금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점차 주도하게 되었다. 나아가 연방정부의 안보 및 외교 기능이 이른바 사실상 정치 컨설팅회사의 외주에 점차 의존하게 되었다.

필자는 가끔, 쏟아지는 정책적 혼선의 와중에 트럼프가 부상하게 된 요인이 상당 부분 브레진스키의 사망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빅터 차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가 낳은 인물이고, 아마도 그는 키신저의 지원이야말로 자신이 지닌 비장의 무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제도적 기초는 너무나도 부패한 상태이고, 분파들 사이의 충돌(FBI와 CIA의 충돌이 되었건, 백인 민족주의자들과 국제주의자들의 충돌이 되었건)이 점점 심각해져 이제는 심지어 빅터 차와 같은 인물도 쫓겨나고 있는 판이다.

이는 술집에서의 싸움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모두가 난투에 휩쓸린다. 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여전히 싸움질을 하고 있는 이들은 가장 거칠고도 비열한 자들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결정에 인종주의적 요소가 작용했다고 가정하는 것도 비합리적이지는 않다. 빅터 차는, 만일 자신이 대사직을 차지할 수 있다면, 스스로는 현명치 않다고 생각하는 많은 행위들을 그냥 현명한 것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트럼프에게 여전히 충성스럽고 가장 민감한 결정에 관해 조언하는 군부와 지역 정치의 분파들은 아직도 깊은 외국인 혐오에 빠져 있다.

이들 중에서, 미국에 대한 궁극적 위협이 멕시코인들이 아니라 아시아인과 유대인이라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화, 2018/02/0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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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개혁특위의 종부세 권고안을 접한 심정은 무참했다. 지난 달 22일 재정개혁특위의 종부세 개편안을 봤을 때 이미 기대를 접었지만, 확정된 종부세 권고안은 실망을 넘어 절망 수준이다. 재정개혁특위가 확정해 정부에 권고한 종부세 개정안은 공정시장가액비율을 5% 포인트 상향하고, 세율을 미세인상〔주택분(0.05~0.5%↑)·종합합산토지(0.25~1%↑)·별도합산토지(일률적으로 0.2%↑)〕해 고작 1조 1천억원을 추가로 증세하는 수준이다.   

재정개혁특위가 종부세 권고안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정책목표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나는 이번 재정개혁특위의 종부세 권고안이 달성하고자 하는 정책목표가 무언지 모르겠다. 보유세 개혁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정책목표는 대략 부동산으로 상징되는 자산양극화 완화, 증세를 통한 복지재원 확충, 조세형평성 제고, 부동산 투기심리 억제 등이 될 것이다. 그런데 재정개혁특위의 종부세 권고안은 이런 정책 목표 가운데 어떤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재정개혁특위가 기존의 종부세 틀 안에서 복잡하게 조합해 설계한 권고안은 공시가격 현실화도, 공정시장가액비율 100%반영도, 과세기준의 확대도 포함하고 있지 않은 미봉이고 절충에 불과하다. 그리고 공시가격 현실화, 공정시장가액비율 100%반영, 과세기준 확대 등을 통해 종부세를 대규모로 증세하지 않고는 위에 열거한 정책목표 가운데 어떤 것도 달성할 수 없다.

재정개혁특위

재정개혁특위는 왜?

도대체 재정개혁특위는 왜 이리 참혹한 수준의 종부세 권고안을 확정한 것일까?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밖에 없다. 먼저 재정개혁특위를 선해하자면 최근 완연해 보이는 대외 경제여건 및 각종 거시경제지표의 악화를 염려했을 가능성이다.

‘소규모 개방경제 구조를 지닌 대한민국은 수출의존도가 높고 따라서 대외 경제여건에 매우 민감하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최근 대외 경제여건은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지속된 10년간의 저금리 기조와 양적완화가 종료될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미중 간의 무역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신흥국 경제가 여러 곳에서 위험징후를 보이고 있다. 하반기 수출이 둔화되고 한국은행이 미 연준을 따라 금리인상을 단행하면 국내 경기는 한층 어려워 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마당에 종부세를 대거 인상하면 경기를 더욱 경색시킬 수 있다’

재정개혁특위가 대략 저런 생각을 가지고 참여정부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종부세 권고안을 만들었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백보를 양보해 국내경기를 염려했다고 하더라도, 재정개혁특위는 종부세 개혁에 관한 중장기 로드맵은 제시했어야 했다. 예컨대 재정개혁특위가 단기적으로 종부세 세부담을 급격히 올리지 않더라도 종부세를 포함한 보유세의 실효세율을 GDP의 2%수준으로 목표하고, 기간을 대략 10년 정도로 하는 종부세 중장기 로드맵을 제시했다면 재정개혁특위의 종부세 권고안은 ‘비판’이 아닌 ‘상찬’의 대상이 됐을 것이다.      

재정개혁특위를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면 재정개혁특위가 대한민국 메인스트림의 눈치를 봤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대한민국의 메인스트림은 비록 소수이지만 엄청난 힘과 강한 응집력과 큰 스피커를 가지고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종부세 과세 대상자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무려 1경1310조원(2016년 기준)에 이르는 부동산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으며,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매년 300조원이 넘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독식하고 있다. 노무현 참여정부가 만든 종부세는 대한민국 메인스트림의 역린을 건드리는 세금이다. 지금 많은 시민들은 재정개혁특위가 대한민국 메인스트림에게 굴복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재정개혁특위에겐 박정하게 들리겠지만, 재정개혁특위가 만든 종부세 권고안은 낙제점이다. 재정개혁특위가 무능해서 그런 권고안을 만들었는지, 비겁해서 그랬는지는 재정개혁특위만 알 것이다.

 

목, 2018/07/05-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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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원해 촛불 들었던 젊은이들
정권 교체 이뤘지만 좌절에 빠져
공무원 도전은 현실과의 타협안
지레 포기 말고 조직 변화 이끌라


많은 제자가 2년 전 촛불 집회에 참여했다. 그들은 당시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분명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바람대로 정권이 바뀌었다. 그런데 이들이 희망했던 일들이 새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성사되지 못해 큰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가장 큰 문제가 일자리다. 졸업한 제자 대부분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새로운 일자리가 좀처럼 생기지 않은 탓이다. 지난 50여년간 우리 주변에서 경제를 이끌어왔던 한 축인 영세 자영업자들도 속속 폐업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학생이 공무원이 되려고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정년이 보장된 예측 가능한 직업이라 지금 한국의 여러 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조조정의 충격을 겪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내 제자만 봐도 나랏일 자체에 열정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공무원직에서 독창성을 찾기 어렵고 반복적 업무만 하는 따분한 생활을 짐작하면서도 그저 타협하는 셈이다. 

정말 정부 일이 따분하고 활기가 없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용기와 상상력, 그리고 지속적인 노력만 있다면 젊은이들이 촛불 집회에서 원했던 변화를 정부 조직 안에서 얼마든지 실현할 수도 있다. 한국이 창조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정책을 펼쳐온 전통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젊은이들은 알아야 한다. 예컨대 세종대왕의 통치 철학은 도덕적 원칙에 충실한 윤리적 행정 시스템에 기반을 뒀다. 정부를 지루하고 비효율적인 집단이라고 깎아내리기에 앞서 어느 정도 부패가 존재했다 하더라도 본질에서는 공공의 이익에 전념해왔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변화를 갈구하는 일군의 젊은이들이 정부에 들어가면 그들이 빈부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할 수 있도록 공무원 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다. 비록 공무원 사회의 가장 낮은 지위에 있다 해도 적극적이고 잘 조직된 젊은이들이라면 정부의 운영 방식을 바꾸고 쇠퇴한 공동체 정신을 되살릴 수 있다.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불합리한 관행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공무원 사회 전체에 획기적 변화를 부르는 긍정적 압력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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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이뤄지는 데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우선 젊은이들이 국가의 변화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정책 토론에서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정책, 기술, 인구 통계 및 기타 업무와 관련한 주제를 스스로 탐구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다시 말해 윤리학이나 문학 서적을 읽는 것을 포함한 인문학적 교육을 공무원 일과 중 일부가 되도록 배려해야 한다. 젊은 공무원의 업무 시간이 상사인 고위 공무원을 지원하는 업무로 채워져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윤리적 인식과 지적인 정보를 갖춘 인재로 만드는 데 할애돼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게 순환보직제다. 이 제도는 젊은 정부 관료들의 전문성 구축을 방해하는 장치다. 지금이라도 이를 과감하게 없애야 한다. 대신 관심이 있는 주제와 분야를 자세하고 깊이 있게 조사·연구하도록 해 심오한 전문 지식을 개발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경영 컨설턴트나 이해가 충돌하는 다른 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정부가 자체적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젊은 관료들은 우리 시대의 중요한 문제를 토론하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실제로 이를 구현할 수 있는 해결책까지 제시할 수 있는 그룹에 속해야 한다. 정책 수립과 시행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면 그에 상응하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공무원 선발시험도 바뀌어야 한다. 헌법이나 기타 모호한 정책의 세부 내용을 암기하는 건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다. 이보다는 오히려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 조선시대 과거와 같은 전통적 시험방식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수험생들에게 통치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문제를 던지고 여기에 윤리적 원칙을 적용해 해결하는 방법을 물어야 한다는 얘기다. 

오늘날 한국은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 경제관념 탓에 현재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신뢰할 수 없는 정보를 만들어 퍼뜨리는 매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난립한 탓에 미디어 시스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 청년층의 목소리는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제대로 스며들기는커녕 오히려 차단돼 있다. 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은 없다. 하지만 도덕을 앞세우는 새 정부가 젊은 공무원들의 혁신적 잠재력을 일깨울 수 있다면 분명 우리에게 기회는 있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지구경영연구원 원장 

  • 2018년 7월 20일 <중앙일보> 임마누엘 칼럼에 게재된 글입니다. 
금, 2018/07/20-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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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나는 사람입니다.” 히틀러 별장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남부 독일의 작은 휴양도시 베르히테스가덴에 있는 생필품 체인점 ‘데엠’(dm) 입구에 붙은 파트타임 구인공고가 인상적이었다. 창업자 괴츠 베르너는 모든 독일인에게 ‘조건 없는 기본소득 1500유로’를 지급해 억지로 노동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신조를 가진 기업가이다.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로 불리는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노동 존중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 행각에 온 나라가 분노하고 있다. 한국식 재벌체제가 경제성장의 견인차에서 걸림돌로 반전되었다는 진단이 나온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였다. 그럼에도 재벌체제는 세습으로 더욱 공고해졌고 재벌들의 영향력은 경제를 넘어 정치, 사회, 문화(언론)에까지 확산되었다. 세계경제 성장을 견인하던 한국경제는 그 사이 세계경제 성장에 견인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모피아’를 효시로 하는 ‘관피아’, 노조 탄압에서 출발한 ‘갑질’과 같은 신조어가 탄생했다. 대주주는 총수, 오너, 사주 등으로 참칭되는 ‘봉건적 자본가’의 지위에 올랐고 원래 자유롭다는 노동자는 ‘(외거)노비’쯤으로 전락했다. ‘정경유착’이란 비난에 맞서 재벌 1세대를 옹호하려고 내세우던 ‘기업가 정신’ 논리는 2세, 3세로 세습되면서 사라졌다. 오히려 부실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경영능력이 도마에 올랐고 끊이지 않는 ‘갑질’이 ‘오너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헌법에 규정된 ‘인간의 얼굴을 가진’ 경제질서가 현실에서는 지극히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실현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국가의 책임이 크다. 수출 주도 경제성장을 명분으로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기조는 특히 대기업과 대주주의 위법, 불법 행위를 방조하는 ‘관피아’가 곳곳에서 암약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를 사후적으로나마 교정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법부는 ‘사법부 독립’을 방패막이로 ‘전관예우’를 마음껏 누리는 적폐로 전락했다.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는 헌법 제119조 ①항은 기업을 기업가와 동일시하면서 기업가의 사익 편취를 뒷받침하고 있고 “경제민주화를 위한 규제와 조정”에 관한 ②항은 사실상 사문화되었다. ‘경제성장에 기여한 공로’가 감형과 사면의 사유가 되고 회삿돈을 수십 억 원 횡령해도 변제하면 죄를 묻지 않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한반도 신경제지도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전달되면서 남북경제협력에 대한 기대가 달아오르고 있다. 접경지역 땅값과 관련 기업의 주가가 서둘러 치솟고 있다. 하지만 경제통합은 고속철도나 고속도로의 연결만을 뜻하지 않는다. 법과 제도는 물론 윤리와 문화의 통합이기도 하다. 북한 경제의 재건에서 남한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북한이 이를 수용하여 남북경제협력이 ‘남한 갑질경제’의 대북 이전으로 이어지고 통일이 ‘한반도 갑질경제’를 낳는다면 ‘나라다운 나라’는 요원해질 것이다. 서독의 슈미트 전 총리는 통일 후 회고록에서 ‘조국’을 재건하겠다는 동독인의 열정을 통일과정에서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쉬웠다고 적은 바 있다. 그로 인해 경제적 성과가 미흡했을 뿐만 아니라 ‘게으른 동독인’의 인상을 남겼고 동독인의 자존심을 충분히 살려 주지 못했던 것이다. 당초 서독 정부는 ‘경제화폐동맹’을 제안했지만 동독 정부가 ‘경제사회화폐동맹’으로 확대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동독 주민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장받았다. 아울러 서독 노조는 동독 노동자들에게 통일 후 3년에 걸쳐 동독 노동자의 임금을 서독의 7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약함으로써 연대의 가치를 실천했다. 한반도 통일과정에서는 북한주민의 권익을 누가 보호해 줄 수 있을까. ‘한반도 갑질경제’가 되면 북한 주민은 남한의 비정규직 아래 새로운 제4신분쯤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면 괜한 기우일까. 통일 30년을 눈앞에 둔 독일에서 동독 출신 주민과 그 2세가 ‘2등 국민’의 지위에서 제대로 벗어나려면 반세기는 더 걸릴 것이라는 진단이다. 남북 경제통합이나 통일도 ‘사람 중심’의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한반도 갑질경제’를 차단하려는 적폐청산의 길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서울신문> [열린세상]에 게재된 글을 필자의 허락을 구해 올립니다.

화, 2018/05/15-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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