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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도청 의혹, 고대영 그리고 200만 원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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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도청 의혹, 고대영 그리고 200만 원 저널리즘

익명 (미확인) | 토, 2017/10/28- 17:46

2011년 6월 24일, 이른바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이 일어났다. 전날 비공개로 열린 민주당 내부 회의를 누군가 몰래 녹취해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한선교 의원은 도청 의혹을 부인했다. 민주당은 KBS 기자가 비공개 회의를 도청해 한선교 의원에게 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KBS는 자사 기자가 도청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한선교 의원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KBS 장 모 기자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한선교 의원은 경찰에 출석하지 않았고 서면조사로 마무리됐다. 또 경찰이 조사할 당시 장 모 기자는 이미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바꾼 뒤였다. 장 기자는 6월 23일 사용했던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잃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진실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 채 수사는 종결됐다.

▲ 도청 의혹 사건이 발생할 당시 KBS 정치부 기자들은 대부분 영전을 거듭했다.

▲ 도청 의혹 사건이 발생할 당시 KBS 정치부 기자들은 대부분 영전을 거듭했다.

야당의 비공개 회의록을 입수해 여당에 갖다 준 의혹은 KBS 기자들의 취재윤리에 심각한 오점을 남겼다. 하지만 KBS 간부들의 반성은 없었다.

진짜 문제 되는 건 그런 거죠 일단 회사의 민원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기자가 동원됐다는 것도 잘못됐지만 부정확한 방법으로, 정확하지 않은 방법으로 뭐라고 확실하게 얘기할 수 없는 그러한 방법을 통해서 (민주당의) 정보를 취득했고 그리고 그것을 상대 당에게 넘겼잖아요. 이건 당사자가 된 거고 일종의 공작을 한 거죠. 정치공작을 그 행위자가 된 거잖아요. 기자가 기자는 관찰자잖아요. 기자는 국민을 대신해서 취재하고 보도하는 사람이지 정치 공작하는 사람이 아닌데 그 역할도 했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저널리즘에 심대한 위기가, 윤리위반이 된 거죠.

김현석 기자 / 2012년 KBS 새노조 위원장

도청 의혹 사건이 일어난 지 6년이 흘렀다. 진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 시절 청와대 문건이 공개됐다. 민주당 도청 의혹사건으로 KBS 김인규 사장과 고대영 본부장이 궁지에 몰렸던 2011년 9월 27일 작성된 문건이다. ‘도청 의혹사건은 경찰의 무혐의 처리 수사발표를 통해 부담 경감’ 이라고 적혀있다. 실제 문건이 나온 지 석 달 뒤 2011년 12월, 검찰은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불기소처분했다.

KBS에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 요직을 독점해 온 한 무리의 기자들이 있다. 이들이 등장한 것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당시 KBS 사내 게시판에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특보 출신 김인규 씨를 사장으로 옹립하자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정치부 기자들을 중심으로 기수별 모임을 갖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임의 명칭은 2012년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문건에 자세히 나온다.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문건 중 라는 문건이다. 이 문건을 보면 김인규 사장을 지지하기 위해 결성된 이 모임을 ‘수요회’라고 적시하고 있다. 수요회 회장은 이정봉 씨, 수요회를 이끄는 인물은 고대영 보도총괄팀장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고대영 씨는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KBS 자회사 사장을 거쳐 현재 KBS사장까지 올랐다.

▲ KBS 고대영 사장

▲ KBS 고대영 사장

고대영 사장이 승승장구하는 사이, KBS 뉴스의 공신력은 땅에 떨어졌다. 고대영 씨는 보도본부장 시절 사원투표에서 2/3의 불신임을 받기도 했다. 고대영 보도국장 시절 대표적인 편파방송 사례가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보도였다. 당시 조선일보는 국정원장이 노무현 대통령 수사에 개입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고대영 사장,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200만 원 받았다는 진술 나와

이 사건과 관련해 최근 국정원 적폐청산TF가 보도자료를 냈다. 당시 KBS담당 국정원 직원은 고대영 보도국장에게 국정원장의 수사개입 뉴스를 보도하지 않는데 협조하는 조건으로 현금 200만 원을 집행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KBS는 국정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수사에 개입한 사실을 한 번도 보도하지 않았다.

▲ 국정원 적폐청산TF 보도자료

▲ 국정원 적폐청산TF 보도자료

고대영 사장은 자신을 임명해 준 박근혜 정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 당시 이병기 비서실장의 지시사항을 기록한 문건이 공개됐다. 이병기 비서실장은 주요 국정 현안에 관한 언론대응을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고대영 사장 체제의 KBS는 청와대의 지시사항을 충실히 반영한 뉴스를 보도했다. 공영방송 KBS가 청와대의 나팔수로 전락한 것이다.

▲ 청와대 이병기 비서실장 지시 사항 문건

▲ 청와대 이병기 비서실장 지시 사항 문건

지난 10월 26일 국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고대영 사장은 국정원으로부터의 200만 원 수수 의혹 등에 대해 수많은 기자와 KBS 노조원들이 해명을 요구했지만 그는 부인하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 국회 앞에서 KBS 노조원들의 해명요청에 침묵하고 있는 고대영 사장

▲ 국회 앞에서 KBS 노조원들의 해명요청에 침묵하고 있는 고대영 사장

고대영 사장은 지난 9월 민주당 도청의혹사건 진상규명에 앞장 서 온 정필모, 이영섭, 박종훈 기자를 상대로 각각 9천만 원을 지급하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자신과 KBS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것이다. 도청 의혹 사건의 주역들이 여전히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KBS.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날 길이 아직 멀다.


취재작가 오승아
글 구성 정재홍
촬영 권오정
취재 연출 이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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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정부의 공식 통보에 따라 지난달 30일 부로 활동 종료 조치를 받은 가운데, 지난해 초 해양수산부가 법제처에 특조위 활동 시한에 대한 법령해석을 요청할 당시엔 부처 실무진 협의를 거쳤지만 이를 철회하는 과정에선 어떤 주체들이 어떤 협의를 했는지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고 있어 ‘자의적 해석’에 따른 조치였다는 정황이 짙어지고 있다. 나아가 법제처 해석 철회를 주도했던 공무원들이 청와대와 여당의 세월호 특조위 활동 방해에 깊이 연루됐던 전력이 있어 특조위 활동시한에 대해 해수부 차원을 넘어서는 밀실협의가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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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해수부가 지난해 2월 2일 세월호 특조위의 활동 시한에 대해 법제처에 법령 해석을 요청한 공문 일체를 입수했다. 이 공문에 첨부된 ‘법령해석요청서’에 따르면 당시 해수부는 세월호 특별법 제6조(위원회의 구성 등)와 제7조(위원회의 활동기간) 및 부칙 제3조(위원회 위원 임기의 적용례)가 서로 충돌해 2가지 해석이 가능하다고 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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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이른바 ‘갑설’은 부칙 제3조를 우선 적용해 ‘최초로 임명된 위원회 위원의 임기는 이 법의 시행일(2015년1월 1일)부터이므로 설령 위원회가 2015년 2월 1일에 구성된다고 해도 위원의 임기(1년)가 2015년 12년 31일에 종료(6개월 연장 요청이 없을 경우)됨에 따라 위원회 활동도 같은 날 종료된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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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른바 ‘을설’은 특별법 제7조 ‘위원회는 그 구성을 마친 날부터 1년 이내에 활동을 완료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만약 위원회가 특별법 시행일(2015년 1월 1일) 이후인 2015월 2월 1일에 구성된다면 위원회 임기는 2016년 1월 31일에 종료되고, 위원의 임기도 이에 맞추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부칙 제3조는 ‘특별법 시행일 이전에 위원회가 구성되었을 경우 위원의 임기를 적용하기 위해 규정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가능하다고 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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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해수부는 자체적인 법령해석으로는 ‘갑설’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함께 제시하면서 법제처의 해석을 공식 의뢰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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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해수부 요청에 따라 법제처는 지난해 2월 16일자로 공문을 보내 2월 24일 오후 2시 법령해석심의위원회가 개최될 예정임을 밝히면서 해수부의 의견을 공식 전달할 사무관급 이상 직원을 출석시켜달라고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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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해수부는 이 심의가 예정됐던 2월 24일 오전 법제처에 돌연 공문을 보내 ‘의뢰했던 법령해석에 대해 추가로 검토할 내용이 있으니 심의를 보류해달라’고 요청한다. 이어 한 달이 더 지난 3월 30일에는 ‘법령해석을 철회해달라’는 공문을 보내 모든 것을 백지화시킨다.

지난달 27일 해수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은 이와 관련한 질의에 나섰다. 김영석 해수부 장관은 “처음에는 특조위 활동시한에 대한 해석이 불분명하다고 생각해 법제처 해석을 의뢰했다가 내부 검토 결과 명확하게 해석되는 사안이라고 판단해 요청을 철회했다”는 원론적 답변을 내놨다.

그러나 뉴스타파 취재 결과 몇몇 석연치 않은 구석들이 발견됐다. 우선 최초 법령해석을 의뢰했던 해수부 내 부서와 최종 철회를 요청한 부서가 서로 달랐다는 점이다. 지난해 2월 2일 법제처에 법령해석을 의뢰한 공문과 2월 24일 해석 보류를 요청한 공문의 작성 부서는 기획조정실 산하 규제개혁법무담당관실이었던 반면, 최종 철회를 요청한 공문의 작성 부서는 해양정책실이었다.

더욱 이상한 점은 최초 법제처 해석을 의뢰하기 전까지는 해수부 규제개혁법무담당관실 직원 3명(김모 사무관, 최모 담당관, 박모 법무관)과 본부 소속이던 김남규 서기관 등이 법령해석을 위한 협의를 거친 끝에 ‘법제처 해석을 의뢰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던 반면, 법제처 심의를 유보하고 최종 철회하는 과정에서는 이들 실무진의 협의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 규제개혁법무담당관실의 김모 사무관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법제처 해석을 의뢰하기 전 김남규 서기관을 포함한 ‘세월호 특조위 관련 업무 지원 TF’ 직원들과 함께 특조위 활동기한에 대한 법령해석을 위한 회의를 몇 차례 가졌는데, 참석자들마다 견해가 모두 달았고, 이에 따라 법제처 해석을 의뢰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을 내리고 공문으로 정식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 얼마 뒤 김남규 서기관으로부터 ‘내부적으로 좀 더 검토할 것이 있으니 법제처에 법령해석 유보 공문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렇게 진행했다”고 말했다.

당시 해수부 규제개혁법무담당관실에 파견 근무 중이던 박모 법무관의 기억도 거의 같았다. 그러나 박 법무관은 “법제처 해석 의뢰 단계에서는 직원들의 견해가 각각 제시되고 취합되는 과정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이 요청이 철회되는 과정에서는 특별한 회의나 의견 취합 절차는 없었다”면서 “그 판단은 실무선이 아니라 ‘윗선’에서 이뤄진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뉴스타파는 당시 규제개혁법무담당관실 직원들과 함께 법령해석 논의에 참여했던 김남규 서기관(현 해수부 수산정책과장)에게 연락해 ‘법령해석 철회 과정에서 어떤 단위에서 어떤 주체들 간에 협의가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러나 김 서기관은 “너무 오래된 일이라서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법제처 의뢰를 철회한 공문의 최종 전결자였던 연영진 해수부 해양정책실장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지만 “내부적으로 상당한 검토를 한 결과 부칙 제3조를 우선 적용하는 것이 명확한 해석이라고 판단되어 법제처 의뢰를 철회한 것”이라는 원론적 답변만 내놨을 뿐 역시 이런 결정이 누가 어떤 단위에서 논의해 판단한 결과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정리하면 해수부는 세월호 특조위가 설립준비를 하고 있던 지난해 1월 말부터 이미 활동시한을 언제까지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실무 단위의 논의를 진행했지만 결론을 얻을 수 없어 법제처에 공식적인 법령해석을 의뢰했지만, 이후 이를 유보하고 최종 철회하는 단계에서는 누가 어떤 근거로 판단을 내렸는지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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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당시 해수부의 법제처 법령해석 철회 공문의 결제라인에 이름이 올라 있는 두 공무원의 전력이 눈길을 끈다. 먼저 규제개혁법무담당관실과의 법령해석 논의를 주도하고 법제처 해석 철회 공문의 결제자로도 이름이 올라 있는 김남규 서기관은 앞서 2014년 12월 말부터 세월호 특조위 설립준비지원단에 파견돼 있었다. 김 서기관은 2015년 1월 16일 조대환 당시 특조위 부위원장(여당 추천)의 지시로 특조위 내부 자료를 김재원 새누리당 수석부위원장에게 전달해 결과적으로 ‘세금도둑’ 발언이 나오도록 만든 인물이다. 김 서기관은 2015년 1월 21일 특조위 전원위원회 도중 김재원 의원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조대환 부위원장에게 바꿔주다가 뉴스타파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바로 다음날인 22일 김 서기관은 조대환 부위원장이 특조위 파견 공무원 전원을 무단으로 철수시키는 조치에 따라 해수부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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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령해석 요청 철회 공문의 최종 결제자였던 연영진 정책실장도 마찬가지다. 현재 세월호 인양추진단장인 연 실장은 새누리당 수석전문위원으로 파견돼 있다가 2015년 1월 7일부로 해수부 해양정책실장으로 복귀해 세월호 특조위 관련 업무를 주도했다. 연 실장은 특히 2015년 11월 큰 파장을 일으킨 ‘특조위의 BH 조사에 대한 대응 문건’을 국회 새누리당 농해수위 의원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뉴스타파 취재 결과 확인됐던 인물이기도 하다.

특조위 활동시한에 대한 법제처 법령해석 철회 공문의 최종 결제자로 기재된 두 인물이 청와대와 여당 사이를 오가며 특조위 활동 방해에 조력한 전력이 있다는 사실은, 당시 세월호 활동시한을 최대한 단축시키려는 방향의 논의가 해수부 차원을 넘어서 ‘윗선’의 의중에 따라 진행됐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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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로 활동 종료 통보를 받은 특조위는 여전히 내년 2월까지가 활동 시한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현재 정부 전산망이 끊기고 홈페이지 관리 권한마저 박탈당해 실질적으로 어떤 업무도 할 수 없는 상태다. 인양된 선체에 대한 조사도 불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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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야기한 것은 근본적으로 세월호 특별법 상의 특조위 활동기한에 대한 해수부의 일방적인 해석이었지만, 해수부는 당초 실무진들의 판단에 따라 법제처에 의뢰했던 법령해석을 누가 어떤 기준과 판단에 따라 최종 철회하기로 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2016년 국정감사에서 해수부를 상대로 이 문제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는 오는13일 예정된 종합감사 뿐이다.

화, 2016/10/0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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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년 전 할머니가 남긴 목소리

<뉴스타파 목격자들> 제작진은 18년 전 촬영한 8mm 테이프 하나를 다시 꺼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테이프의 존재도 잊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한일 양국 간의 일본군 ‘위안부’ 협상 타결 소식을 듣고 테이프를 찾았습니다.

▲ 1991년 故 김학순 할머니는 한국에서는 최초로 ‘위안부' 피해를 증언했다.

▲ 1991년 故 김학순 할머니는 한국에서는 최초로 ‘위안부’ 피해를 증언했다.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8mm로 촬영했는데, 故 김학순 할머니의 생전 마지막 증언이 담겨 있습니다. 김학순 할머니는 1991년 8월 14일 국내 거주자로서는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증언하셨습니다. 수십 년 동안 제기하지 못했던 ‘위안부’ 문제가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공론화 됐습니다.

2) 1997년 7월, 상계동 임대아파트

18년 전, 1997년 7월, 그날은 무척 무더웠습니다. 제작진은 서울 상계동 임대아파트에서 김학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할머니는 지병으로 늘 누워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날만은 단정하게 차려 입으시고 꼿꼿하게 앉아 취재진을 맞이했습니다. (당시 촬영은 현재 뉴스타파 목격자들 제작에 참여중인 박정남 PD가 맡았습니다.)

▲ 1997년 7월, 제작진은 김학순 할머니의 자택에서 인터뷰 했다. 할머니는 5개월 뒤 지병인 폐질환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 1997년 7월, 제작진은 김학순 할머니의 자택에서 인터뷰 했다. 할머니는 5개월 뒤 지병인 폐질환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우리 죽으면 우리 죽은 뒤, 나 죽은 뒤에는 말해줄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싶은 생각에 내가 이제 나이가 이만치나 먹고 제일 무서운 것은 일본사람들이 사람 죽이는 거, 제일 그걸 내가 떨었거든. 언제나 하도 여러 번 봤기 때문에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끌려가서도 봤지만도 사람 죽이는 걸 너무 많이 봤고 그렇기 때문에 젊어서는 사실 무서워서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어)
– 1997년 7월 김학순 할머니 생전 마지막 인터뷰 중

인터뷰는 1시간 20분 동안 진행했습니다. 더 시간을 내 말씀을 듣고 싶었지만 할머니의 건강문제로 더 이상 인터뷰를 진행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김학순 할머니는 어떻게 일본군에 끌려가 ‘위안부’가 됐고, 어떤 수모와 고초를 겪었는지, 그리고 수치스러웠지만, 위안부 피해를 처음으로 증언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우리 정부에, 일본 정부에 무엇을 바라는지 말씀하셨습니다.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정말 기가 막혀요. 그 어마어마한 군인들이 강제로 달려들 때는 정말 기가 막혀서 하도 입술을 깨물고 도망을 가려고 뿌리치고 도망을 나오다가 붙잡혀서 끌어가면 당하면서도 어떻게 기가 막하고 가슴 아프고 말이 안 나와. 그때 생각을 안해야지 하면 내 마음이 아주 그냥 더 어떻게 할지를 모르겠어요, 그냥 그때 생각을 하면…
– 1997년 7월 김학순 할머니 생전 마지막 인터뷰 중

김학순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 1924년 만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후 어렵게 살다가 16살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가 ‘위안부’가 됐습니다. 일본군이 운영하던 수용시설에서 온갖 능욕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 끔찍했던 고통은 평생 커다란 멍울이 됐습니다.

16살 난 것을 딱 끌어다 가서 그 군대에다가 일본 군대에 넣어서 그렇게 참 강제로 그 모양을 해서 사람 이 꼴 만들어서 평생을 이렇게 혼자 살면서 참말로 남 안 보는 데에서 밤 날 눈물로 세상을 살게 하니 정말로 그 분을, 그 화를 어떻게 해야 풀지를 모르겠어. 아주. 너무 분하고 억울하고. 기가 막혀서 생각할수록 아주… 생각할수록 분하고 원통하고 죽겠어. 아주 그냥 아주. 정말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주 펄펄 뛰다가 내가 죽겠어 그래서 더 이렇게 이렇게 되는가 봐 숨을 제대로 못 쉬고 그러는가 봐, 호흡곤란이…
– 1997년 7월 김학순 할머니 생전 마지막 인터뷰 중

▲ 생전 김 할머니는 거북이를 키웠는데, “내가 오래 사나 ‘네’(거북이)가 오래사나”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 생전 김 할머니는 거북이를 키웠는데, “내가 오래 사나 ‘네’(거북이)가 오래사나”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생전 김학순 할머니는 집안에 거북이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거북이를 보며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거북이)가 오래 사나, 내가 오래 사나. 한번 해보자”, 그렇게 “110살이든 120살 까지든 살아서 내 귀로 직접 일본 정부와 일왕의 사과를 듣겠다”던 김학순 할머니는 인터뷰 후 5개월이 지난 1997년 12월 겨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날의 인터뷰가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이 되었습니다.

김학순 할머니 생전에도 일본 정부는 민간 기금 지원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김학순 할머니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돈 몇 푼 줘서 그 일을 이제 무마하게 하려고. 이제 나라에서 우리는 사죄를 하고 이제 배상을 해라. 이렇게 되고 있고 사죄는 거기에서 할 수가 없다는 징조로 나오면서 하는 소리가 이제 배상도, 정당한 배상을 할 수가 없으니까 얼마만큼 위로금으로 모금해서 일본에서 여성단체들이 모금을 해서 200만 엔인가 얼만가 일본 돈으로 200만 엔인가 얼마인가 위로금을 준다. 우스키 게이코가 그런 소리를 하는데 우리는 절대 그런 그럴 수는 없다. 그건 ‘천만에’다 말이야 위로금이라니 왜 우리가 위로금을 받아? 뭐 했다고 위로금을, 천만에 그럴 수는 없다 정정당당하게 사죄하고 배상해라.
– 1997년 7월 김학순 할머니 생전 마지막 인터뷰 중

“日王(일왕) 으로부터 직접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야겠다.”

김학순 할머니는 일본 왕 (인터뷰 당시 김학순 할머니는 천황이 아닌 일왕이라고 표현했습니다.)으로부터 범죄 사실을 상세히 고백받고 진심어린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반드시 일왕으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다고 힘줘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법에 따라 배상을 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역사교육을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렇게 병마와 힘겹게 싸우면서도 일본의 사죄를 받기 전에는 눈을 감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내 수치는 둘째 문제야. 둘째 문제 억울한 생각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어 전 세계에서 지금 가만히 생각해봐. 세상에 일본에서 전쟁을 한다고 해서 자기네는 전쟁이 아니고 무슨 아시아 여러 나라를 위해서 했다고 독립을 시켜서 했다고 이런 소리를 하지만 말답지 않은 소리를 말이지 그것이 말이 닿는 소리야? 일본이 전쟁을 했기 때문에 이런 피해 본 나라가 한 두 나라야? 아시아에 이 여러 나라가 피해를 봤는데 그렇다면 자기네가 잘못을 스스로 뉘우치고 이렇다 할 사죄 한마디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이야. 원체 인간이라면 난 다른 사람 다 필요 없어 일본의 저이는 천황이라 하지만 난 일왕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 일본 왕이니까 일왕이라고 하지 일왕한테 그때 일은 자기네가 잘못했다 전쟁 시작한 것은 잘못했다만 그건 반드시 사죄해야 된다 생각해 다른 사람도 필요 없어 일본에 다른 사람도 다 필요 없어 일본의 일왕이 사죄를 해야지 다른 사람이 무슨 소용 있어. 그렇잖아.
– 1997년 7월 김학순 할머니 생전 마지막 인터뷰 중

▲ 김학순 할머니는 세상을 떠난 지 18년 만에 소녀상 옆 석상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일본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지 못하고 있다.

▲ 김학순 할머니는 세상을 떠난 지 18년 만에 소녀상 옆 석상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일본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할머니는 끝내 소원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학순 할머니가 떠나신 지 18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일본 정부의 태도는 그때 보다 더 나아졌을까요? 우리 정부는 할머니가 ‘사과’를 받으실 수 있도록 충분한 노력을 해 왔을까요?

어쨌든 내가, 어쨌든 끝나기 전에는 내가 안 죽는다 110살까지도 살란다. 120살까지도 살란다 지금 그러고 악을 쓰고 있잖아 그냥 내 직접 내 눈으로, 내 귀로 (사과를) 들어야 하겠다고.
– 1997년 7월 김학순 할머니 생전 마지막 인터뷰 중

3) 2016년 1월, 소녀상을 지키는 젊은이들

▲ 영하 15도가 넘는 한파에도 청년 학생들이 20일 넘게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을 지키면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 영하 15도가 넘는 한파에도 청년 학생들이 20일 넘게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을 지키면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영하 15도를 오르내리는, 올 겨울 들어 가장 차가운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는 소녀상을 지키려는 청년들의 노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벌써 20일이 넘었습니다. 보온병이 얼고, 이가 시리는 추위가 계속되는데도 침낭과 비닐에 의존해 노숙을 하고 있습니다. 밖에서 잠을 자기에 날이 춥지 않느냐는 물음에 한 여학생이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리는 고작 20일이지만, 할머니들은 20년을 계속해서 싸워오셨잖아요.


자료제공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진제공 : 안해룡, 이토 다카시
취재작가 : 이우리, 박은현
글 구성 : 정재홍
연출 : 박정남

화, 2016/01/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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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한국 국정원 카카오톡 해킹기술 강구– 국가정보원, 휴대폰과 컴퓨터 해킹 프로그램 사들여– 카카오톡 대화 해킹 기술 개발 문의 시인– 전직 국정원장들 불법 도·감청 및 불법 온라인 캠페인 지시로 유죄 선고 받아뉴욕타임스는 AP 통신을 받아 14일 한국 국가정보원이 해외의 한 보안업체로부터 해킹 프로그램을 구매한 사실을 시인했으며 그뿐만 아니라 카카오톡 해킹기술 개발을 의뢰하기도 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기사는 이병호 ...

수, 2015/07/15-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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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고되면서도 또한 사소롭지 않았고,
공직의 소방대원인 우리에게는 그 모든 노동이
각자의 가족을 먹여 살리는 밥벌이인 동시에
인명에게 다가가는 임무를 지닌 자로서의 사명이었다.
– 오영환 소방관

가장 위급한 순간, 사람들은 보통 119를 누른다. 화재진압, 교통사고 등 긴급 구조 등 늘 위험 속으로 소방 공무원들은 뛰어든다.

재난 현장은 전쟁터입니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 할지라도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 최주 소방위

그러나 이들이 감내해야 할 몸과 마음의 상처는 언제나 상상 그 이상이다. 그들의 헌신의 대가는 무엇이었을까?

업무상 사고를 당했지만 치료비를 걱정하는 소방관들

지난 8월 광주광역시 서부소방서 소속 노석훈 소방장이 전신주에 붙어있는 벌집을 제거해달라는 119 신고를 바고 출동했다가 2만 2천 볼트 고압선에 감전돼 화상을 입었다. 그는 왼쪽 손목을 잃고 오른 팔에도 4도 이상의 큰 화상을 입었다. 그러나 노 소방장은 그 날, 자신이 전신주에 오른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내가 아니면 다른 동료가 올라갔을 테고, 더 나쁜 결과가 발생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 노석훈 소방장

사고 당시 언론은 ‘윤장현 광주광역시시장과 한전병원의 긴급작전으로 노 소방관을 살렸다’는 소식을 알렸다. 하지만 광주시장도, 한전병원도 해결해줄 수 없는 치료비 문제가 남았다. 아내 이민정 씨는 “소방공무원이 공무를 집행하다 사고를 당했으니, 간병만 신경쓰면 된 줄 알았다”고 말한다.

▲ 지난 8월 사고 이후 노석훈 소방장은 크고 작은 수술만 10회 이상 진행했고, 현재도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 지난 8월 사고 이후 노석훈 소방장은 크고 작은 수술만 10회 이상 진행했고, 현재도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지난달까지 노 소방장이 자비로 부담한 치료비만 2천만 원이 넘는다. 치료와 재활을 얼마나 더 해야하는지 기약이 없으니 그가 내야하는 치료비가 얼마가 될지 역시 알 수 없다. 화상 치료 분야에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치료재와 치료보조재, 약제가 개발되는데 공무원연금공단의 공무상특수요양비 지급기준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의수 비용이다. 절단된 손을 대신할 의수 비용도 만만치 않다. 노 소방장이 제작의뢰한 의수는 3천8백만 원이다. 그러나 공무원연금공단의 ‘재활보조기구 지급기준’에 따르면 의수 구입비용으로 지급되는 돈은 550만 원이 전부다.

550만 원으로는 손 모양만 흉내낸 ‘미관용 의수’ 만 가능하다. 아내 이민정 씨는 손을 구부릴 수 있는 정도의 기능이 있는 의수를 선택했다. 어느 날 갑자기 팔목을 잃어버린 남편에게 최소한 그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앞으로 감당해야 하는 비용이 아득한 건 어쩔 수 없다. 공무원연금공단의 지급 기준은 2007년 개정됐다. 2015년 지급 신청을 하는 노 소방장에게는 낡은 기준으로 보인다.

업무중 사고위험성은 크지만, 제대로 인정 못받아

뉴스타파 목격자들 취재진이 만난 다른 소방관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2008년 환자를 옮기다 허리에 통증을 느끼고 치료를 받았던 최주 소방위는 공상 신청을 했지만 ‘퇴행성 질환인 디스크는 공무와 인과관계 요소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고려대 김승섭 교수 연구팀이 전국의 소방관 8천2백여 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 가운데 39%가 디스크 진단을 받았고, 진단 시기는 대부분 ‘소방관이 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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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비인두암 4기 판정을 받은 금성웅 소방장도 걱정이 많다. 비인두는 코 뒷부분과 목의 위쪽에 있는 호흡기의 관문이다. 크고 작은 화재 현장에서 구조대원으로 활동해 온 지 20년 째. 금 소방장은 호흡기 질환인 비인두암과 자신이 20년 동안 노출돼 온 유독 가스 등에 상관관계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법원은 폐암과 소방공무와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공무원연금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 지난 3년 간 부상을 당한 120명의 소방관 중 공상 처리된 소방관은 단 21명에 불과하다. 심지어 화재 진압 중 화상을 당해도 본인이 치료비를 부담해야 할 정도로 소방관들의 처우는 열악하다.

▲ 지난 3년 간 부상을 당한 120명의 소방관 중 공상 처리된 소방관은 단 21명에 불과하다. 심지어 화재 진압 중 화상을 당해도 본인이 치료비를 부담해야 할 정도로 소방관들의 처우는 열악하다.

만성적인 장비 부족,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

소방관하면 흔히 화재 진압을 떠올리지만, 이들의 업무는 훨씬 광범위하다. 응급환자 이송, 문 개방, 벌집처리 등을 요구 등 광범위하다. 119전화가 서울 지역에서만 12초에 한번 꼴로 울린다.

넘쳐나는 출동건수에 인원과 장비는 늘 부족하다. 실제 대한민국 소방대원 한 사람은 평균 1340여명 국민의 안전을 담당한다. 미국과 프랑스가 1000여 명. 일본과 홍콩은 800여 명 수준이다.

모든 문제의 핵심에는 인력 부족이 있어요.
예를 들어 출동에 필요한 직제상의 정원이라는 게 있는데, 지역별로 직제 상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출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해요.
–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

인력 부족 문제는 지방으로 갈수록 더 심각하다. 목격자들 제작진은 한 개 군 전체를 관할 지역으로 하는 소도시 규모의 중심소방서를 찾았다. 겉보기에는 화재나 구조 구급시 필요한 소방 장비는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특수 차량을 움직일 대원이 부족했다. 대형 소방차량을 혼자 몰고 나가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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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력 충원이 어려운 걸까? 소방관 99%가 지방직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각 지자체는 이른바 ‘총액인건비제’에 따라 전체 공무원 숫자가 묶여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헌신하면서도 정작 그 업무로 인해 그들의 생명이 위협 받았을 때, 국가로부터 버림받고 있는 게 대한민국 소방관들의 현실이다.


취재작가 이우리
글 구성 김근라
연출 김한구

월, 2015/11/2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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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삼성전자서비스센터 협력업체 소속 A/S 기사 진 모 씨가 건물 외벽에 있는 에어컨 실외기 수리를 하던 중 추락해 숨졌다. 그런데 이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이 ‘위험의 외주화’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 간접 고용된 A/S 기사들은 원청에서 직접고용을 했다면 작업 환경이 이렇게까지 열악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 지난 6월 23일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협력업체 소속 A/S 기사 진 모 씨가 건물 외벽에 있는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하던 중 창문안전대가 떨어지면서 추락해 숨졌다.

▲ 지난 6월 23일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협력업체 소속 A/S 기사 진 모 씨가 건물 외벽에 있는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하던 중 창문안전대가 떨어지면서 추락해 숨졌다.

고객서비스의 대부분을 직접 담당하는 이들은 전국 100여 개에 달하는 협력업체 소속이다. 그들은 어떤 작업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것일까?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A/S 기사들의 작업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한 시간 한 콜’ 시스템, 수당과 직결돼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A/S 기사는 늘 촉박한 일정에 쫓긴다. 한 시간 내로 한 집의 수리를 완료해야 하는 이른바 ‘한 시간 한 콜’ 시스템 때문이다.

A/S 기사 이정구 씨가 텔레비전 수리 의뢰를 받아 처음으로 고객을 찾은 시각은 8시 50분. 1시간의 작업 끝에 텔레비전 고장 원인을 찾았지만 부품이 없어 수리를 하지 못했다. 실적에 포함되지 않는 ‘미결’로 처리됐다.

미결로 처리되면 기사에게 출장비가 나오지 않는다. 수리 기사 입장에서는 허탕을 치고 만 것이다. 다음 집은 10시까지 도착해야 하지만 이동시간에 밀려 15분 늦게 도착했다. 이 곳 역시 미결로 끝났다.

가까우면 10분, 20분. 먼 거리는 20분, 30분 정도 거리가 있어요. 그걸 포함해서 50분 동안 수리를 해야 하는 거예요. 계속 일이 힘들고 밀려날 수밖에 없고… 이정구 /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협력업체 A/S 기사

11시30분. 세 번째 가정을 방문했다. 이 곳은 수리 부품을 챙겨 재방문한 곳이어서 실적이 인정됐다.
오전 내내 작업을 했지만 이정구 씨에게 인정되는 실적은 단 한 건 뿐이다.

▲ 이정구 씨는 점심도 먹지 못한 채 네 집을 방문했지만 실적에 포함된 것은 한 집 뿐이다.

▲ 이정구 씨는 점심도 먹지 못한 채 네 집을 방문했지만 실적에 포함된 것은 한 집 뿐이다.

저는 해드리고 싶은데 부품이 없어서 못 해 드리는 거니까… 그런데 물론 회사에서 평가할 때는 이 기사는 오늘 처리 건이 적을 것이고 그 다음에 당일 처리, 약속 잡은 거 바로 약속해서 수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 평가는 낮아지겠죠. 이정구 /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협력업체 A/S 기사

한 협력업체 사무실 게시판에는 기사들의 순위가 붙어있다. 완료한 작업 건수에 관한 실적 순위다.

▲ 처리 건수를 토대로 점수를 메겨 수리기사들의 순위가 정해진다.

▲ 처리 건수를 토대로 점수를 메겨 수리기사들의 순위가 정해진다.

이 실적에 따라 기사들의 임금이 달라진다. 현재 이 회사 A/S 기사의 경우 기본급은 130만 원, 처리 건수 60건을 넘겨야 건당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서비스 기사들은 이 건당 수수료 체계가 기사들의 안전과 무관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내 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시간이 돈이거든요. 내 급여 자체가 오전에 한 건 하면 똑같은 일이지만 이 한 건을 안전 장비를 갖추고 처리하려면 오전을 다 써야 하거든요. 서비스를 한 시간에 대한 보상이 아니고 한 건에 대한 보상을 받기 때문에 안전 장비를 착용하고 진행할 수 없는 거고…라두식 /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지회장

작업 시간 맞추기 위해선 안전 장치 확보 불가능

삼성전자 A/S 기사 박영환 씨는 주로 에어컨 수리를 담당한다. 얼마 전 숨진 진 모 씨와 같은 역할이다. 그가 에어컨 수리 요청을 받고 첫 번째로 간 곳은 한 아파트 7층. 30kg에 달하는 실외기 수리는 자칫 잘못하면 무게중심이 흐트러져 추락의 위험이 있다. 그러나 수리 중 그가 의지할 것은 베란다 난간 뿐이었다. 난간 이외에 다른 안전 장치는 없었다.

▲ 아파트 7층에서 난간에만 의지한 채 에어컨 실외기 수리 중인 박영환 A/S 기사

▲ 아파트 7층에서 난간에만 의지한 채 에어컨 실외기 수리 중인 박영환 A/S 기사

고층 실외기 작업을 할 때 가장 안전한 방법은 이동식 발판을 갖춘 ‘스카이차’를 불러 외부에서 작업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전을 확보해주는 ‘스카이차’를 요청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합하면 1시간 내 작업을 완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간에 쫓기고 돈에 쫓기고 그렇게 빨리빨리 처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전 장비를 못하게 만들어 내는 거죠.박영환 /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협력업체 A/S 기사

소비자가 가전제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 중 하나는 A/S, 즉 사후 서비스다. 삼성전자는 이를 토대로 업계 고객만족도 1위 기업이 됐다. 이 화려한 명성 아래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들이 있다. 하지만 수리기사 중 누구도 자신이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직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이제는 별 느낌 없어요. 사실 우리는 상관 없잖아요. 우리 직원들하고 상관 없는 거니까 삼성 이름을 가지고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삼성 직원이 아닌 거죠.박영환 /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협력업체 A/S 기사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측은 A/S 기사의 작업 중 안전 확보와 건당 수수료 체계와 관련해 “도급 계약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직접 사용자가 아니기 때문에 법적인 책임이 없다”고 밝혔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로 올해 에어컨 판매량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금, 2016/07/15-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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