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북핵 해법과 한반도 양국체제

지역

북핵 해법과 한반도 양국체제

익명 (미확인) | 수, 2017/09/13- 09:40

북의 6차 핵실험 이후 천하의 여론방·토론방이 뜨겁다. 의견백출, 백가쟁명이 나쁘지는 않지만 어쩐지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이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문제가 큰 데다 워낙 변수가 많고 그조차 매우 복잡하게 꼬여 있기 (또는 그렇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보니 문제를 보는 시각과 주목하고 강조하는 지점이 백인백색이다. 국제적으로도 관련 당사국마다, 또 그 내부에서도 입장과 관점에 따라 강조점이 크게 다르다.

양국체제는 중성미자와 같은 전혀 새로운 발상

이럴 때 전혀 새로운 착상이 필요하다. 복잡하게 어질러진 테이블을 싹 밀치고 백지 위에서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중성미자
물리학에서 ‘중성미자’의 발견은 우주 탄생의 비밀을 밝혀줄 핵심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중성미자처럼 해방 이후 70여 년 동안 생각하지 못해왔던 것이 한반도 양국체제 아닐까? (이미지: 인터넷 캡처)

일례로 물리학에서 ‘중성미자(neutrino)’의 발견이 그렇다. 방사선 방출로 원자의 성격이 변할 때, 기존 입자와 새로운 입자의 에너지 합이 일치하지 않았다. ‘에너지 불변의 법칙’에 위배되는 골치 아픈 현상인데,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전혀 새로운 발상이 나왔다. 보이지 않고 관측되지 않는 미세입자가 이 변환 과정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이라고. 역사적으로 뛰어난 착상들이 종종 그러했듯 이 생각도 처음에는 황당하다고 조롱받았다.

그러나 이 착상에 몰두한 이들이 결국 그 존재를 입증해냈다. 애초에 ‘보이지 않고 관측되지 않는다’고 하였던, 그래서 조롱을 받았던 이 입자는 이제 물리학·우주론의 최대 총아가 되었다. 지구와 태양의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가 하면, 우주 탄생의 비밀을 밝혀줄 핵심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보이지 않기는커녕 알고 보니 가장 많은 입자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몸을 수조 개의 중성미자가 투과하고 있다. 다행히 건강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양국체제’가 중성미자 같은 것 아닐까? 해방 이후 70여 년 동안 생각하지 못해왔던 것, ‘보이지 않고 관측되지 않았던 것’이 한반도 양국체제 아닐까? 반드시 하나라고 생각해왔던 것이 문제 해결을 오히려 가로막고 있는 것 아닐까? 실은 하나가 아니라 둘인데 말이다. 그 70여 년 간 좌든 우든 남이든 북이든 통일을 말해왔다. ‘분단’은 일시적이고 ‘통일’은 항구적이다 라고. 오직 하나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만 알면 곤란하다. 둘을 생각해 볼 때다.

반드시 하나여야 한다가 남북의 독재 불러

반드시 하나라고 하니까 70년 동안 피차 죽기로 악착같았던 것 아닌가? 먹히지 않으려고 말이다. 서로 인정하고 제각각 잘 살아보자고 하면 안 되나? 절대로 불가능한가? 그렇다면 도돌이표다. 피차 사생결단, 죽기로 악착같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남이든 북이든 독재가 판쳤다. 독재를 끊어 보자고 4·19를 하고, ‘서울의 봄’을 하고, ‘광주항쟁’을 하고, ‘6월 민주화 대항쟁’을 했지만, 결국 다시 독재가 되돌아 왔다. 다이하드(die hard)였다. 잡초보다 끈질겼던, ‘독재가 민주를 회수하는 마의 순환고리’였다. 이제 위대한 촛불이 또 한 번 독재를 끊었다. 이번에는 영영 끊어야만 하겠다.

그 지긋지긋했던 ‘독재의 순환고리’가 먹고 살았던 것이 ‘분단체제’다. 통일을 해야 하는데 저기 휴전선 너머 남에, 휴전선 너머 북에, 불구대천의 원수, 적이 있다. 이 흉악한 적과 맞서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독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독재자들은 이야기해 왔다. 그것을 유신 독재라 하든, 인민 독재라 하든, 이름을 뭐라 그럴 듯하게 붙이든, 그것은 그냥 적나라한, 창피할 정도로 아주 지독한 독재였을 뿐이다.

남북정상회담

한반도 양국체제란 간단하다. 한국(ROK)과 조선(DPRK)이 수교하여 공존하는 것이다. 한국이 중국, 러시아와 수교한 것처럼, 조선도 미국, 일본과 수교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정상(正常)이다. 이미 다 유엔 회원국들이다. 유엔헌장에 회원국들은 서로 주권을 인정한다고 되어 있다. 유엔 회원국들끼리 수교를 안 하고 있는 게 비정상일 따름이다.

한 민족이 두 나라를 이룬다는 것이 하등 이상할 이유가 없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멀쩡히 잘 살고 있다. 옛적 통일신라와 발해도 멀쩡히 잘 살았다. 서로 하나라고, 반드시 통일하겠다고, 아등바등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둘이라고 오가지 못하나?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자유로워진다. 서로 비자 받아 오가면 된다. 경제 협력이 안 되나? 이거야 지금보다 안 될 수는 없으니 두 말하면 잔소리다.

발해 신라
한 민족이 두 나라를 이룬다는 것이 하등 이상할 이유가 없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도 그렇지만 우리 민족도 옛적 통일신라와 발해가 멀쩡히 잘 살았지 않은가. 서로 하나라고, 반드시 통일하겠다고, 아등바등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양국체제일 때 남북협력 오히려 더 증진될 것

둘이 되더라도 초반에는 관계가 안정되기까지 덜컹거림이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익숙해지는 데 필요한 잠시 동안의 물리적 상수일 뿐이다. 시작이 반이다. 남과 북이, 한국과 조선이, 서로를 인정하겠다는 결심을 확고하게 굳히는 것, 그 합의를 이루는 것이 우선이고 중요하다. 이 결심이 진실하고 솔직하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면 된다.

하기로 하면 남 탓할 일이 많기는 하겠다. 그러나 남 탓 이전에 우리 내부를 먼저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한국과 조선이 이렇게 움직여 갈 때, 주변 어느 나라도 이 길을 대놓고 반대하거나 방해하지 못한다. 도대체 어떤 나라가 그럴 권리와 명분이 있다고 나서겠는가? 세계가 축하할 것이다. 세계를 평화롭게 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문정인 대통령 통일ㆍ외교ㆍ안보 특별보좌관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국제정치 학계의 권위자이자 외교ㆍ안보 전략가다. 사회과학 논문 인용 색인에 등재된 논문이 40여편에 달한다.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 모두 참여했다.

학자이지만 거침이 없다. 민감한 현안이라도 학자적 소신에 따라 발언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북한의 핵 동결을 조건으로 한미훈련을 축소해야 한다” “한미동맹이 깨진다고 하더라도 전쟁은 안 된다”는 발언으로 보수 진영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 특별보좌관으로서 발언 수위가 선을 넘은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문 특보는 학자로서의 의견이라며 굽히지 않는다.

문정인-중앙
문정인 대통령 통일ㆍ외교ㆍ안보 특별보좌관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국제정치 학계의 권위자이자 외교ㆍ안보 전략가다.(사진 출처:중앙일보)

키 180㎝에 몸무게 80kg으로 고교 시절‘한 주먹’ 하기도 했던 문 특보는 국제사회의 ‘문제아’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대화’라는 생각이 확고하다. 힘(군사력)으로 제압하겠다는 건 현실적이지 못할 뿐더러 힘으로 제압할 수 있다고 한들 얻을 게 없다고 본다. 한반도가 핵 전쟁터가 돼 버린다면 전세계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

문 특보는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에서 이어진 대북포용 정책인 햇볕정책 설계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2016년 6월 연세대 교수직에서 퇴임한 문 특보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구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학자로서의 마지막 혼신을 쏟고 있다. 문 특보는 세간의 비관적 전망과 달리 연말쯤 한중 정상회담이 열리고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활로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친다.

 

미군철수 여론 살피러 온 미 대표단과 인연, 정치학자 길로

문정인 특보는 1951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5형제 중 둘째였던 그는 종목을 가리지 않고 운동경기에 선수로 참여할 정도로 스포츠를 즐겼다. 180㎝ 큰 키로 체격 조건이 유독 좋았다. 오현고 시절 씨름ㆍ유도 선수로 시합에 자주 나섰고, 투포환 던지기 실력은 수준급이었다고 한다. 글쓰기 소질도 남달라 제주도내 백일장 수필부문에서 장원을 2년 연속 차지하기도 했다.

문 특보는 1969년 한국외국어대 이탈리아어학과에 입학했지만 이내그만두고 다시 시험을 봐 연세대 철학과(70학번)로 진학한다. 연대 학보 ‘연세춘추’에서 기자로 또 편집국장으로 일하면서 인생의 항로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문 특보는 애초 대학 졸업후 신문사에 취직할 작정이었다. 학보사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학보사 활동을 한 이들에겐 일반적 관례와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972년 미 국무부가 주최한 아시아ㆍ태평양 10개국 학생지도자 회의에 연세춘추 편집국장 자격으로 한국 대표로 선발되면서 생각이 달라진다. 4개월간 미국 전역을 돌아보면서다. 문 특보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우연히 하게 된 미국 여행을 통해 세계를 보는 안목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진 군 생활에서도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 만한 경험을 쌓게 된다. 첩보를 총괄하는 국군정보사령부에 배속되면서 국제관계와 관련한 각종 보고서를 접할 수 있었다. 자연스레 국제정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국가정보원 1차장 등을 지낸 대표적 통일ㆍ외교ㆍ안보 전문가 이수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 특보와 군 생활을 함께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에서 제대한 1976년 한 선배의 권유로 이슬람과 인연을 맺게 되는 색다른 경험도 한다. 한국이슬람중앙연합회 국제담당 사무차장으로 일하면서 영어로 된 이슬람 관련서적 13권을 국문으로 번역했다. 보수 정치권 일각에서 종교 문제로 문 특보에 대한 트집잡기를 하는 배경이다. 문 특보는 이와 관련해 “불교 집안에서 태어나 스스로 불교신자라 여기다 2년 동안 이슬람교로 개종하기도 했다”며 “미국 유학 때는 기독교에 가까웠지만, 지금 제 종교를 묻는다면 종교가 없다가 정답”이라고 말했다.

정치학자를 향해 발을 내딛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대학 4학년 때 찾아온다. 1978년 한국을 찾은 미 공화당 전국위원회 관계자들을 수행, 통역을 맡은 것이다. 미 공화당 인사들은 당시주한미군 철수 논란이 불거지자 한국 여론을 살피기 위해 방문했다. 이 인연은 5년간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미 메릴랜드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졌다.

메릴랜드대에서 정치학 석ㆍ박사학위를 받은 문 특보는 1985년 ‘X터키대 정치과 조교수를 시작으로 월리엄스대, 튜크대 교수 등으로 자리를 옮기며 한동안 미국에서 활동했다. 미국 국제정치학회 부회장을 맡는 등 미국 학계에서 명성을 날렸다. 학계를 대표하는 ‘미국통’으로 꼽히는 배경 중 하나다. 그러던 1994년 연세대 정외과 교수로 부임하며 한국으로 귀환한다.

»çÁø-00>¾Ç¼öÇÏ´Â ³²ºÏÁ¤»ó     ³²ºÏÁ¤»óȸ´ãÀ» À§ÇØ 13ÀÏ ¿ÀÀü Æò¾ç¼ø¾È°øÇ׿¡ µµÂøÇÑ ±è´ëÁß´ëÅë·É°ú Á÷Á¢ ¿µÁ¢³ª¿Â ±èÁ¤Àϱ¹¹æÀ§¿øÀåÀÌ ¹àÀº Ç¥Á¤À¸·Î ¿ª»çÀûÀÎ ¾Ç¼ö¸¦ Çϰí ÀÖ´Ù.        2000.6.13   (Æò¾ç=»çÁø°øµ¿ÃëÀç´Ü)
문정인 특보는 국민의정부에서 참여정부로 이어진 대북 포용정책인 햇볕정책을 설계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간 두 차례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에 모두 참여했다.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 모두 참여… 햇볕정책 설계자

문 특보는 국민의정부에서 참여정부로 이어진 대북 포용정책인 햇볕정책을 설계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분단 55년만인 2000년 6월 평양에서 이뤄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의 정상회담과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ㆍ김 위원장의 정상회담 등 그간 두 차례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에 모두 참여했다.

문 특보는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정성회담 동안두 정상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특별수행원으로 1ㆍ2차 정상회담에 참여했던 인물은 문 특보를 제외하면 남북 경협문제로 참여했던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윤종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 특보는 한 인터뷰에서 “1차 정상회담 때의 6ㆍ15공동선언이 총론이라면 2차 정상회담의 10ㆍ4 공동선언은 각론에 해당된다”며 “10ㆍ4 공동선언 중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은 참으로 획기적이었는데 그 계획이 제대로 진행됐더라면 연평도 포격과 같은 안타까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참여정부에서는 ‘동북아시대위원장’을 맡아 동북아평화번영 정책 수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국정원장, 외교부 장관, 통일부 장관, 대통령 안보보좌관 등 외교ㆍ안보 라인에 빈자리가 생길 때마다 하마평에 이름이 오르내릴 정도로 신임을 받았다. 문 특보는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캠프에 참여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을 이어간다. 지난 대선 캠프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좌장 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NLLħ¹ü ÝÁ°æºñÁ¤Àº ¼­Çر³ÀüÀÇ ÁÖ¹ü  ÀÌ´Þ 14ÀÏ ¼­ÇØ»ó ºÏ¹æÇѰ輱(NLL)À» ħ¹üÇß´Ù ÇØ±º ÇÔÁ¤ÀÇ °æ°í»ç°ÝÀ» ¹Þ°í Åð°¢ÇÑ ºÏÇÑ °æºñÁ¤Àº 2002³â ¼­Çر³Àü ´ç½Ã Çѱ¹ °í¼ÓÁ¤À» ±â½À°ø°ÝÇÑ ÇÔÁ¤À̾ú´ø »ç½ÇÀÌ µÚ´Ê°Ô µå·¯³µ´Ù. »çÁøÀº  2002³â  ¼­Çر³Àü´ç½ÃÀÇ ¸ð½À./±¹¹æ/      2004.7.19   (¼­¿ï=¿¬ÇÕ´º½º)
문 특보는 “2차 정상회담의 10ㆍ4 공동선언 중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이 제대로 진행됐더라면 연평도 포격과 같은 안타까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사진 출처: 연합뉴스)

“북한 요구 못 들어줄 이유 없다”… 美태도 변화 주문

학계를 대표하는 ‘미국통’이자 ‘북한통’인 문 특보는 핵ㆍ미사일 등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대화라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한다. 북한이 원하는 건 국제사회가 북한을 주권국가로서 인정하고, 내정간섭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굳이 미국을 겨냥해 핵ㆍ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고 잇단 도발을 하는 것도 결국 미국으로부터 확실한 체제보장을 받아야 한다는 현실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거다.

문 특보는 특히 “북한의 요구를 못 들어줄 이유가 없다”며 미국 측의 태도 변화를 줄기차게 주문하고 있다. 북ㆍ미간에 말 폭탄을 주고받으며 긴장을 고조시켰던 9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군사 옵션까지 거론하자 문 특보는 “많은 분들이 한미동맹이 깨진다고 하더라도 전쟁은 안 된다고 한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문 특보는 “북한 지도부 궤멸과 핵 자산을 없애는 정치적 목표나 군사 지휘부를 궤멸 시키는 군사적 목표 모두달성이 어려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무모하게 (군사행동을) 한다면 인류에 대한 죄악이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북미 간 군사 충돌이 일어난다면 재래식보다 오히려 핵전쟁으로 발전되는 것 아닌가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문 특보가 거듭되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북한 핵 동결을 전제로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는 ‘쌍 잠정중단’도 고려해야 한다”며 이른바 쌍 잠정중단론을 거듭 주장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 특보는 지난 6월 미 워싱턴 방문 당시 내놓은 한ㆍ미 연합군사훈련 축소 발언으로 논란이 불거진 점을 의식한 듯 최근에는 “정부의 입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학자로서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핵 동결을 전제로 대화는 가능하지만, 북한이 비핵화를 해야만 대화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어려운 얘기”라며 “현실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는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곧잘 거론되는 군사 옵션은 쉽게 입에 오르내리긴 하지만 현실적이지 못할 뿐더러 정치적ㆍ군사적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하루빨리 북한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거듭 호소하고 있다. 문 특보는 9월 27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10ㆍ4선언 10주년 기념식 특별강연에서 “북한이 핵탄두를 100개 가지면 지금과 협상 테이블이 또 달라진다”며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라 북한 편”이라고 강조했다.

 

 

수, 2017/10/18- 14:31
142
0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한 보고서가 최근 유엔총회에서 공개됐다.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에 의해 작성돼 유엔총회에 제출된 이 보고서는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복잡한 양상이며 변화하고 있는 중”이라면서 “심각한 위반 양상이 지속적으로 목격되고 특히 억류된 사람들의 상황이 우려되지만 한편으로는 정부가 국내의 그리고 외국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과거와 비교하면 사회의 더 많은 분야에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북한의 혼재된 상황을 고려하면,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창출된 기회를 활용하는, 현장에서의 즉각적이고도 실제적인 변화 가능성을 고려하는 평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특히 “지난 1년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고조는 인권에 관한 대화에 심각한 장애가 되어 왔다”면서 “국제사회는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현재의 노력을 지원하고 적대감을 완화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남한이 추구하고 있는 관계개선 정책을 통해 인권 의무에 관한 대화를 시작할 수도 있고, 최고 지도자의 부패 척결과 통치방식의 개선 약속이 효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주민의 자유와 존엄을 보장하고 북한 정부가 국제협력의 틀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이러한 가능성을 온전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권고하는 한편 국제사회에 대해서는 “유엔 헌장의 원칙과 실질적 정책변화의 긴급함에 발맞춰 적절한 자원과 전문기술을 제공함으로써 북한을 지원해야만 한다”고 촉구했다.

이 보고서의 결론부와 권고사항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북한-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결론>

북한인권 혼재된상황, 변화 가능성 고려하는 평가 필요

1.북한의 인권상황은 몇 가지 측면에서 복잡하며 변화하고 있다. 독립적인 인권감시기구의 접근이 제한되고 있지만, 심각한 위반 양상이 지속적으로 목격된다. 특히 억류된 사람들의 상황이 우려된다. 외국에서 본국으로 강제 송환된 주민들의 상황 역시 우려된다.

납치된 외국인들의 소재에 관한 조사에는 전혀 진전이 없고, 정치적인 고려가 한국전쟁 이후 헤어진 이산가족의 재상봉을 여전히 가로막고 있다. 비공식 경제의 빠른 확산이 공공분배시스템의 구조적인 결핍을 보완하여 왔고 일부 사람들에게는 여행을 한다거나 사업을 벌일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이는 만연한 부패를 그 대가로 치른 결과이다.

정부가 국내의 그리고 외국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사회의 더 많은 분야에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은 유엔 인권기구에 접근하고 특정 권리의 실현방안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는 조치를 취했다. 북한 내부에서 활동하는 국제 비정부기구의 지원 속에 여타 조치들 역시 진행되는 중이다.

북한의 혼재된 상황을 고려하면,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창출된 기회를 활용하는, 현장에서의 즉각적이고도 실제적인 변화 가능성을 고려하는 평가가 필요하다.

2. 지난 1년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고조는 인권에 관한 대화에 심각한 장애가 되어 왔다. 국제사회는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현재의 노력을 지원하고 적대감을 완화해야만 한다. 남북대화는 1953년 휴전선을 경계로 헤어져 다시 만나기를 갈망하는 수천의 이산가족들은 물론 모든 한반도 주민을 위한 것이다. 남북대화 속에 인권에 관한 고려를 포함하기 위해서는, 지역적 그리고 국제적인 조치가 취해져야만 한다. 동시에 북한은, 아직까지 거의 충족되지 못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생존 및 발육 관련 필요 사항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만 한다. 북한으로 하여금 우선순위를 이와 같이 전환하도록 하는 데에는, 충돌을 방지하고 신뢰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3. 북한 주민의 보호를 주창하는 데에서 책임성을 요구하는 일은 여전히 핵심적이며, 관리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방안은 다양하다. 국제형사재판소 기소 가능성에 관한 논의가 지속되면, 최근 유엔 인권기구와의 접촉하고 있는 북한 정부가 인신매매, 고문과 감금시설에서의 학대, 성폭력과 성차별적 폭력 등 몇몇 중대한 위반에 대하여 즉각적인 구제와 치유를 보장할 수 있다. 남한이 추구하고 있는 관계개선 정책을 통하여 인권 의무에 관한 대화를 시작할 수도 있고, 최고 지도자의 부패 척결과 통치방식의 개선 약속이 효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북한은, 주민의 자유와 존엄을 보장하고 북한 정부가 국제협력의 틀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이러한 가능성을 온전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국제사회의 각국 역시, 유엔 헌장의 원칙 그리고 실질적 정책변화의 긴급함에 발맞춰, 적절한 자원과 전문기술을 제공함으로써 북한을 지원해야만 한다.

 

북한-mbc
유엔의 북한인권 결의안 채택 장면. (이미지: MBC 방송 화면 캡처)

<권고사항>

강제 송환된 이들에 대한 처벌이나 보복 삼가야

  1. 이 특별보고서는 북한에게 다음을 권고한다.

(a) 강제 송환된 이들에 대하여 어떠한 형식의 처벌 혹은 보복을 삼가야 한다.

(b) 중국 국경 인근의 수용소를 포함하여, 외국에서 돌아온 어린이와 남녀에게 폭력을 행사한 감금시설 관리를 조사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c) 국제적십자위원회, 유엔 국가별 팀의 관련 기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국제 인권기구와 관련 시민사회조직 등이 감금시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d) 북한 국내에서 그리고 외국과의 관계에서, 정보와 소통의 제한을 철폐해야 한다.

(e) 남한과 이산가족 상봉을 재개하고 상봉을 신청한 북한의 가족들에게 공정하고도 투명한 지원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f) 납북 일본인에 대한 조사를 재개하고, 향후 대화 의제에 납북된 남한 주민의 사례를 포함해야 한다.

(g) 인권 규범에 의거하여, 주민이 필수 공공 서비스에 접근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건넨 뇌물을 수령한 중앙 및 지방 관리에 대하여 조사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h) 식량배급에 관한 공정한 기준을 확립하고, 감금시설 수용자 등 가장 취약한 이들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i) 장애인의 권리와 관련하여 특별보고서와의 협력을 지속하고, 가능한 기술지원을 확인하기위해 인권이사회의 특별 절차에 접근해야 한다.

(j) 권고사항 이행에 대한 정기 보고를 포함하여 협약의 주체와 지속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k) 북한의 인권상황에 관한 특별 보고서의 의무를 기준으로 여타 유엔 인권 시스템과 협력해야 한다.

(l) 유엔의 임무 수임자(mandate holder)가 가까운 장래에 북한을 방문할 수 있도록 초청해야 한다.

 

남한, 대북 교섭에서 인권을 우선순위로 둬야

2. 이 특별 보고서는 남한에 다음을 권고한다.

(a) 북한과의 교섭 노력에서 인권에 관한 북한의 의무를 높은 우선순위 의제로 두어야 한다.

(b) 경제 및 인도적인 분야에서의 향후 협력에서, 북한 공공 서비스 분배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제고하고 차별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c)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의 권고에 따라,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된 사람들 모두의 권리와 안전을 온전하게 확보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유엔, 북한과 신뢰와 평화를 형성하려는 시도 지원해야 

3.이 특별 보고서는 유엔에 다음을 권고한다.

(a)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가 북한 인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충분하게 평가해야 한다. 특히 제재가 주민의 생계를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에 관하여 초점을 두어야 한다.

(b)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고립을 감소하기 위하여, 유엔 회원국 및 비정부기구 등이 북한과 신뢰와 평화를 형성하려는 시도를 지원해야 한다.

(c) 북한에 대한 기술지원 프로그램을 확립해야 한다. 취약 그룹의 상태에 특히 유의한, 모니터링과 평가에 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포함해야 한다.

(d) 포괄적이고 주기적인 평가에서 나온 권고와, 필요한 경우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를 포함하는 여타의 협약과 권고 중 수용된 사항을 이행할 수 있는 능력을 북한에 배양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e) 정책 전환을 압박하는 실질적 수단을 통하여, 인권 침해에 대한 북한의 책임성을 증진해야 한다.

(f) 감금시설 수용자를 비롯한 가장 취약한 그룹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확산을 추구해야 한다.

 

시민사회, 감시와 함께 대화 늘려야

4. 이 특별 보고서는 시민사회기관들에게 다음을 권고한다.

(a) 유엔 인권이사회 및 여타 협약을 기준으로 삼아 북한의 인권상황을 감시해야 한다.

(b) 인권에 관하여 북한과 대화할 기회를 늘려가야 한다. 여기에는 인접한 아시아 개발도상국들과의 대화 역시 포함된다.

(c) 북한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권단체들은, 기술지원 프로젝트의 수혜가 돌아가야 할 가장 취약한 그룹을 확인함과 동시에, 당국 간의 가교 역할을 지속해야 한다.

(d) 후원자들과의 교류를 지속하고, 인도적 지원과 갈등 예방 그리고 인권감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를 이행할 능력을 배양하는 데 후원자들이 지원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월, 2017/10/23- 10:22
350
0

1.역공당하고 있는 촛불혁명

촛불혁명의 진로에 중대한 장애가 생겼다. 지난 9월 3일 북의 6차 고강도 핵실험 이후 날로 높아지고 있는 북미-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 탓이다. 촛불혁명에 눌려 숨죽이고 있던 세력들이 이러한 상황을 반기기라도 하듯 아연 활기를 띠고 촛불혁명을 역공하기 시작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8월 22일자 칼럼에서 촛불혁명은 한반도 양국체제를 통해서 완성될 것이라 했다(링크, “촛불혁명과 한반도 양국체제” http://thetomorrow.kr/archives/5628). 양국체제란 한반도 남북의 두 국가가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체제를 말한다. 이러한 상태로 성공적으로 진입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촛불혁명의 성패가 달려있다는 뜻이었다.

명제는 흔히 먼저 역순으로 입증되곤 한다. 예를 들어 A는 B를 통해 C로 간다는 명제는 물론 이 명제가 순서대로 진행되었을 때 증명된다. 그러나 흔히 현실에서 이러한 명제의 증명은 먼저 거꾸로 이루어지곤 한다. B를 틀어막았을 때 A가 C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이 먼저 분명해지는 것이다. 촛불혁명(A), 양국체제(B), 촛불혁명의 완성(C) 간의 관계도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479460687320
촛불혁명은 한반도 양국체제를 통해서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북의 6차 핵실험 이후의 비상한 위기 상황을 마치 왕가뭄에 단비라도 만난 듯 달갑게 맞이하는 쪽은 촛불혁명 이후 침묵해왔던 냉전대결세력들이다. 그들은 이제 한국이 ‘핵 갑(甲)질의 인질’이 되었고, 북의 ‘남조선 혁명 프로세스’는 현실이 되었다고 흘러간 옛 노래를 다시 틀어대고 있다(9월10일. 류근일, [주간조선]). 통일이 눈앞에 왔다면서 박근혜의 ‘통일대박’ 타령에 장단을 맞추어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갑자기 곡조를 바꿔 ‘적화통일’이 눈앞에 왔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그렇게 바뀌나? 북이 그 핵을 다 만들어가는 동안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 네 차례의 핵실험) 난 몰라라 방관하면서 큰 소리만 쳐왔던 것이 오늘 이 순간 그런 말을 하고 싶어서였나? 대결국면을 강경 일변도로 몰아가 김정은의 주가를 한껏 높혀 준 것이 트럼프라면, 그 결과 만들어진 위기 상황을 가장 즐기는 쪽, 즉 가장 큰 이득을 취하는 쪽은 이 나라의 냉전대결세력이다.

따라서 촛불혁명이 호명했던 ‘적폐세력’이란 바로 그 냉전대결세력이 아닐 수 없다. 그 세력이 한국전쟁 이후 70년 가까이 떵떵거렸던 터전이 남북 간 대결체제였다. 이제 미사일이 날고 죽음의 백조가 뜨고 북미 간 남북 간 긴장이 높아지니 이 세력은 비로소 물 만난 물고기처럼 펄떡이고 있다. 작년 가을 촛불 이후 크게 위축되었던 세력이 다시금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 세력이 다시 힘을 얻는 만큼, 촛불혁명 앞의 장애물은 높아져 간다.

따라서 적폐청산이란 결국 냉전대결세력의 청산이다. 촛불이 ‘적폐세력’을 청산대상으로 지목한 이유는 이 세력이 대한민국의 국익에 더 이상 하등의 기여를 하지 못하는 세력이 되었음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한때 이들은 독재는 해도 산업화와 안보에 기여했다고 자임했다. 그러나 이제 알고 보니 이들의 이익은 대한민국의 포괄적 이익에 어느 하나 기여하는 게 없다. 오히려 죄다 거꾸로 서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헬조선을 조장하고 국정을 농단하고 안보상황까지를 오히려 위태롭게 만들어왔다. 통째로 적폐요 민폐다.

 

2. 양국체제는 30년 전 이미 초석 놓여진 것

한반도 양국체제의 정착은 ‘대한민국의 포괄적 이익’과 합치되는 길이다. 그렇다면 이 경로가 한반도 상황에서 구체적인 현실로 조성되기 시작했던 시점을 우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로써 양국체제로 가려 했던 힘과 그 길을 가로막는 힘의 연원과 성격을 이해하게 된다.

그 시기는 1987년 민주항쟁과 1989-1991년 간의 냉전해체 기간이다. 이 시기는 민주세력 내에서도 분열이 생기지만, 냉전세력 내부에서도 일정한 분열이 생겼던 시기다. 매우 중요한 시점이었다.

우선 87년 민주화 세력은 분열하여(양김 분열) 노태우 정부에 정권을 헌납하는 우를 범했지만, 노태우 정부는 동서냉전종식의 기류 위에서 적극적인 북방정책을 펼쳤다. 남북화해 정책도 펼치기 시작한다. 이것을 두고 ‘3당합당=보수대연합으로 몰아가기 위한 기만책에 불과했다’라 하고 만다면 이는 사태의 절반만을 짚은 것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줘야 한다. 노태우 정부는 냉전해체의 세계적 흐름에 나름 적극적으로, 민감하게 대응했다. 아울러 이는 87년의 여파가 여전히 컸기 때문에 정권 정통성 확보 차원에서 이러한 기조를 채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기도 하다.

6월
87년 민주세력의 분열이 없었다면 민주통합정부의 북방정책은 남북의 더 깊은 신뢰 속에 진행되었을 것이고, 유엔동시가입은 필시 양국체제로 결실을 맺었을 것이다. 유엔동시가입 체제란 2국가체제다. (사진: 민주화기념사업회)

이런 배경 위에서 노태우 정부는 집권 초기인 88년부터 7·7 선언을 통해 남북 간 대결노선을 끝낼 것을 제안하게 된다. 한국은 소련, 중국과 관계 개선하고, 북한은 미국, 일본과 관계 개선하는 데 협조할 것이라고까지 했다. 이 역시 단순히 수사적 기만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당시 냉전해체기의 대세 속에서는 상당히 실현성 있어 보이는 제안이었다. 실제로 말로만 끝나지 않았다. 그 연장선에서 1991년 9월 남북이 유엔에 회원국으로 동시 가입하고, 그해 12월 남북기본합의서를 교환했다. 이로써 남북이 최초로 두 개의 주권 국가임을 국제적으로 그리고 남북 상호 공식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이 상태가 한반도 양국체제의 시발점이었다. 필자가 주장하는 양국체제는 새로운 무엇이 전혀 아니다. 30년 전인 그 때 이미 초석이 놓여졌다.

양국체제는 여기서 한 발만 더 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한국이 중국, 러시아와 수교한 것처럼 북도 미국, 일본과 수교하고, 남과 북도 두 개의 정상국가로 수교하면 되었다. 남과 북이 먼저 수교하고 이를 발판으로 북과 미국, 일본의 수교를 이끌어가는 수순이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당시까지 남북대화의 상황은 여기까지의 거리가 실제 한 발짝이었다. 진실로 큰 정치를 하는 정치세력, 지도자라면 진보·보수를 떠나, 남과 북을 떠나 이 방향으로 밀고 나갔어야 했다.

바둑을 복기해 보면 결정적 패착 지점이 있다. 87년 민주항쟁을 결국 박근혜 신유신 체제로 귀결된 ‘실패한 바둑’으로 본다면(촛불혁명은 새로운 시작으로 보아야 한다), 그 결정적 패착점들은 무엇이었을까? 두 점, 87년 양김의 분열, 그리고 92년 북방정책의 역전이라고 본다.

87년 분열했던 한 세력이 냉전대결 세력에 합류하여(1990년 YS의 3당 합당) 이후 오히려 북방정책 역전의 주역이 되었다. 92년 대선 국면에서 양김 간의 경쟁이 북방정책, 남북화해정책에 제동을 거는 방향으로 작동했던 것이다. YS는 노태우 정부의 남북화해 기조의 지속이 DJ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했다. 87년의 패착, 92년의 패착은 이렇게 서로 맞물려 있다.

노
1988년 7∙7 선언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에 문호를 개방하고, 남북 경제교류가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북한의 연형묵 총리를 만나는 노태우 전 대통령.

 

3. 1국가2체제로는 남북문제 풀리지 않아

만일 87년 민주세력의 분열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민주통합정부의 북방정책은 남북의 더 깊은 신뢰 속에 진행되었을 것이고, 유엔동시가입은 필시 양국체제로 결실을 맺었을 것이다. 유엔동시가입 체제란 2국가체제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정상화하는 것이 양국체제다. 양국 간 수교가 그 핵심이다. 물론 주요 주변 국가들과의 교차승인이 병행된다. 이러한 상태가 되었다면 북핵 위기가 현재와 같은 정도로 심각해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 북핵 위기에 오히려 신이라도 난 듯 기세를 올리고 있는 세력도 일찍이 사라졌을 것이다.

혹시 양국체제가 아닌 1국가 2체제(일국양제)와 같은 것은 어떠한가? 그러나 이런 방식은 중국-홍콩처럼 어느 한쪽의 규모와 힘이 압도적으로 클 때나 가능하다. 오늘날도 1국양제를 주창하고 있는 중국은 대만의 유엔가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남북문제는 그런 방식으로 풀리지 않는다. 통일의 지향이 있다면 오히려 이를 깊이 묻어두어야 한다. 그럴수록 통일은 살아난다. 반면 통일을 꺼내놓고 목표로 하면 할수록 통일은 요원해진다. 이러한 기막힌 사정은 이 땅에서 살아본 사람들만이 안다.

한반도 상황에서 당장 1국가 2체제를 하게 된다고 하면 통일을 목전의 목표로 두는 여러 구상들이 뒤섞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30년 전 당시 남북의 상태에서도 통일을 당면한 목표로 하는 것은 무리였다. 만일 그런 방향으로 실제로 진행하려 하였다면 남북 모두에서 거센 후폭풍에 휘말렸을 것이다. 실제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화해 정책이 결국 후폭풍에 휘말려버린 데는 1국양제냐 양국체제냐의 전략 판단이 분명치 못하고 애매했던 이유도 있다. 이제 우리는 분명한 판단을 해야 한다.

물론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의 상황은 이미 양국체제를 실현시킬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 이전 87년 이후부터 첫 단추가 잘못 꿰어져 있던 탓이다. 90년 3당합당으로 만들어진 ‘기울어진 운동장’을 돌이키거나 바로잡을 만큼의 힘이 당시의 두 정부에는 없었다. 오직 2016-2017년의 쓰나미와 같은 촛불혁명에 의해서만 가능했다.

이번 촛불혁명 이전에 그럴 수 있었던 역사적 가정은 오직 87년 민주세력이 단합된 힘으로 민주통합정부를 구성했다고 생각했을 때만 가능하다. 그러한 조건 위에서 당시 남북 두 국가가 수교하여 공존하는 양국체제를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다면, 한반도는 오늘날의 위태로운 상황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큰 안정과 번영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한반도의 남북만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관계도 더욱 안정된 상태에 있을 것이다.

이 길을 우리는 30년 전에 놓쳤다. 딱 한 걸음을 떼지 못해서 말이다. 양국체제란 전혀 없던 목표를 갑자기 인위적으로 만들어 달성하자는 것이 아니다. 30년 전에 눈앞에서 놓쳤던 기회를 이번에는 꼭 잡아 반드시 이루어내자는 것이다. 미처 떼지 못했던 그 한 걸음을 이제 마저 가자는 것이다.

 

4. 여전히 강고한 촛불의 힘, 남북위기 돌파 동력으로

현재의 상황을 보면 30년 전에 비해 좋아진 점도 있고, 나빠진 점도 있다. 87년 후 30년만의 새로운 범민주항쟁, 즉 촛불혁명은 민주세력의 분열을 허용하지 않았다. 촛불혁명은 촛불정부로 이어졌다. 탄핵찬성-적폐청산으로 모아진 촛불의 동력은 여전히 강하다. 이 단합된 힘을 유지해 갈 때, 촛불혁명은 반드시 완수될 수 있다. 촛불혁명의 내적 동력을 견실하게 유지해가기만 한다면 어려움을 오히려 기회로 반전시킬 계기가 반드시 찾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외적 환경은 30년 전과 비교해 더 좋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30년 전에 비해 미국은 중국을 훨씬 더 경계하고 있다. 또 30년 전에 비해 북한은 더 공세적이고 피해의식이 강한 나라가 되었다. 아울러 큰 합리성 위에서 공동보조를 취하기 어려운 정부가 미국에서 집권 중이라는 사실도 우리에게 핸디캡이다. 이런 조건들이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제한하고 있다.

그렇다고 외적 변수가 모두 나빠진 것은 아니다. 30년 전에 비해 세계 상황에 대한 일반의식은 오히려 우호적인 쪽으로 바뀌었다. 이제 과거의 냉전체제, 또는 90년대 미국 일극주의는 확실히 과거의 일이 되었다. 학자들만이 아니라 세계의 일반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세계에 벽이 없다. 이제 오히려 미국의 트럼프 지지자나 유럽의 극우파 정도만이 세계에 벽을 새로 세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자연스럽다거나 보기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세계인들은 많지 않다. 대한민국 국민들도 물론 마찬가지다.

그 중에서도 북미간의 막말 전쟁은 가장 불미스러운 현상에 속한다. 보기 딱할 뿐 아니라, 한반도 남북 모두에 가공할 결과를 가져올 현실적 전쟁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돌출 현상의 원인 해소에 대중적 관심, 세계인의 관심을 모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 어려움을 오히려 기회로 반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화, 2017/10/24- 08:35
328
0

트럼프 방한 즈음 시민평화행동

 

트럼프 방한 즈음 시민평화행동 Peace Sunday

전쟁반대 평화협상 PEACE NOT WAR

 

2017년 11월 5일 일요일 오후 2시, 광화문 세종로 공원

출연 김제동, 성미산마을합창단, 신나는섬, 우리나라

집회 후 도심 평화행진이 이어집니다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가 어느 때보다 고조되어 있는 지금, '한반도에서 전쟁도 불사하겠다'던 트럼프가 한국에 옵니다. 한·미 정상은 북한에 대한 압박 정책, 한미연합군사훈련과 미 전략자산 순환 배치, 방위비분담금 등의 동맹 관련 현안을 협의·결정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북·미가 서로를 향해 호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지금, 평범한 시민들의 생각은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핵 선제공격 위협 중단,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을 중단하고 대화와 협상 여건을 조성해야 합니다.

 

트럼프 방한 즈음, 광화문에 모여 PEACE NOT WAR 평화의 메세지를 전달해요!

 

트럼프 방한 즈음 시민평화행동

 

화, 2017/10/31- 14:31
130
0
 홍석현 한반도포럼 이사장이 ‘트럼프의 새로운 대북전략은 실제 효과적일 수 있다’란 제목의 기고문을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했다. 글로벌미디어 플랫홈인 ‘더 월드포스트(The WorldPost)’에 공동게재된 기고문에서 홍 이사장은 “지난 8일 한국 국회연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힘을 통한 평화’라고 하는 ‘트럼프 독트린’을 선언했다”며 “한국 국민들은 ‘힘을 과시하는 목적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 내 비핵화뿐 아니라 한반도의 지속적 평화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는 트럼프의 발언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홍 이사장은 “북한에 최대한 압박·제재를 가해 코너로 몰아넣으면서도 대화를 위한 문을 활짝 열어놓아야 한다”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책임 있는 고위 당국자나 특사가 직접 평양을 방문하거나 제3국에서 북한 측과 만나 미국의 ‘4노즈(Four Nos)’ 원칙을 확인시켜주는 것이 의미 있는 대화를 향한 여건을 만드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월드포스트는 워싱턴포스트(WP)와 싱크탱크인 베르그루엔 연구소가 공동 설립했다. 홍 이사장의 글 전문을 소개한다. 

한국 국회의 연단에 섰던 도널드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자극적 언사로 소통하던 트럼프가 아니었다. 국제사회 일반에게 보내는 그의 메시지, 특히 평양을 향한 그의 메시지는 매우 명확했고 표현 역시 감탄할 정도로 절제된 것이었다. 지난 9월 유엔 연설에서와는 다르게, 북한을 끝장내겠다고 위협하지 않았고, 김정은을 ‘리틀 로켓맨’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사실상 트럼프는 김정은의 이름을 단 한 번 언급했을 뿐이다.

대신 그는 트럼프 독트린이라 불릴 만한 언명을 내놓았다. 즉 힘을 통한 평화이다. 미국은 갈등이나 대결을 추구하지 않지만 결코 이를 회피하려고 하지 않으며, 평화를 원한다면 항상 강력한 힘을 지녀야만 한다고 트럼프는 말했다. 남한 정부는, 무력시위의 목적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 북한의 비핵화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지속 가능한 평화에 관하여 대화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트럼프를 환영했다. 남한 국민은, 한반도에서 또 다시 역사상 최악의 잔혹함이 되풀이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약속에 안도했다. 실제로, 평화야말로 우리 한국 국민이 가장 바라는 것이다.

 

평양과의 핫라인

전쟁의 위협 속에 있는 우리에게 트럼프가 제시한 해결방안이 만족스러울지는 모르지만, 주의해야할 점 역시 있다. 평양의 핵과 미사일 도발을 억제하기 위하여 미국이 전략 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할 때, 워싱턴은 전략 자산의 전개가 평양의 군사행동으로 이어지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반드시 보장해야만 한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만약 북한이 미군 전투기를 격추시키는 일이 벌어진다면, 이는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비극적 실수에 대비할 수 있는 완충 수단이 전혀 없다.

상황이 대단히 불안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평양과 워싱턴 사이의 핫라인은 물론 남북한 간의 군사적, 외교적 채널을 긴급하게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위험한 난제

김정은이 현재의 한반도 위기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김정은의 궁극적 목표는 대륙 간 핵탄도 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전에 김정은이 국제 사회의 압박과 제재에 굴복할 것 같지는 않다. 완성된 핵무기와 미사일을 지렛대로 삼아 워싱턴과 빅딜을 성사시키려는 것이 김정은의 숨은 목표일 수 있다.

3554573_XJQ
상황이 대단히 불안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평양과 워싱턴 사이의 핫라인은 물론 남북한 간의 군사적, 외교적 채널을 긴급하게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미지 출처: KBS)

이 단계에 이르게 되면, 남한에게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될지 모른다. 미국 본토가 북한의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의 직접적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면, 워싱턴의 핵우산 및 남한에 대한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라는 확신이 흔들리게 된다. 북한은 이를 최대한 이용하여 남한을 다방면에서 위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이 실질적으로 핵보유국임을 무시하고 북한을 억제하고 봉쇄하는 전략을 취할 경우, 남한은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이게 된다.

김정은이 그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지금과 같이 무모하게 밀어붙인다면 앞서 말한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이러한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김정은을 멈춰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요구가 동시에 터져 나오면, 한반도에서 군사충돌의 가능성이 증가하게 된다. 만일 트럼프가 군사 옵션을 선택한다면, 그 시기는 북한이 핵무기를 완성하기 이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동북아시아가 전쟁에 휩싸이는 상황은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하여 어느 나라도 원하지 않는 악몽이다.

너무 늦기 전에 협상해야 한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핵무기 프로그램을 완성하기 전에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기 위하여 모든 가능한 수단을 활용해야만 한다. 다음은 협상을 시작하기 위해 취해야 할 조치들이다.

C0A8CA3C00000150CA9A8B7400032ACA_P2
(이미지:연합뉴스)

우선, 평양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을 가하면서도, 북한과 대화할 수 있는 모든 문호를 활짝 개방해야만 한다. 북한에 대한 전례 없는 압박에는 원유 수입의 추가 제한, 해외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의 추가적인 감축, 평양과의 외교관계 축소 등을 포함한다. 북한을 궁지로 몰아넣어야만 한다.

트럼프 정부의 4불(4 NO) 원칙은 유의미한 협상 조건을 창출하는 첫 단계가 될 수 있다. 미국은 북한의 정권교체, 북한의 붕괴, 한반도의 급격한 통일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38선 이북에의 파병을 원치 않는다고 확언했다. 이러한 4불 원칙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 관료 혹은 특사가 평양을 방문하거나 제3국에서 북한의 대화 상대와 만나야만 한다.

 

비핵화 이후에도정권 유지 가능하다고 김정은 안심시켜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나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의 경우와 달리, 비핵화 이후에도 북한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김정은을 안심시켜야만 한다.

남북한에 더하여 미국과 중국이 고위급 2대2 회담을 개최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 없이 미국이 군사행동으로 치닫는다면, 남한과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기 힘들 것이다.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을 완성하여 배치하는 날이 오더라도 워싱턴의 핵우산이 남한과 일본을 방어할 것이라는 명시적 선언을 트럼프에게 들을 수 없었다. 미국이 이를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남한과 일본 국민은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 할 이유가 무엇인지 묻기 시작할 것이다.

확고한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 및 일본을 한 편으로 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다른 한 편으로 하는 균열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부드럽지 않을 경우, 북한에 대한 보다 강도 높은 제재에 합의하기 힘들어진다. 남한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한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베이징과 모스크바를 설득하여 워싱턴 및 도쿄와 협력하도록 하는 작업을 지속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남한이 북미 대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남북 대화가 그 선행 조건일 수밖에 없다. 북한과 미국의 대화는, 경제와 문화 그리고 스포츠 채널을 비롯하여, 막후에서 시도되어야만 한다.

김정은이 트럼프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길 바란다. 김정은이 손에 넣고자 하는 무기는 그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주지 못 할 뿐더러, 정권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릴 뿐이다.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밝은 미래로 가는 길을 찾아야만 한다. 남한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월, 2017/11/13- 08:35
185
0

사드를 더 이상 추가 배치하지 않을 것이며 나토와 유사한 한미일 군사동맹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한국의 최근 발표에,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를 결국 정상궤도로 복귀시키고 동아시아의 평화적 통합으로 향하게 하는 돌파구라며 환호했다.

그러나 내게는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다. 우선 중국과의 합의가, 그 내용이 어찌 되었건, 전적으로 불투명하다. 미일과의 군사 및 정보 분야 비밀 합의와 유사하게, 이제 중국과의 비밀 합의가 병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진정한 해결책이란 중대한 전략적 이슈에 관한 투명성을 강조하여 비밀주의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특정한 외교 관계에서는 단기적으로 비밀주의가 필요하기도 하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말이다.

한국에게 필요한 것은 공개적인 논의다. 중국과 한국, 미국, 일본의 광범한 전문가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에게 논의를 개방하고, 진정한 안보 위협이 무엇인지를 공개적으로 토론해야 한다. 논의해야 할 위협에는 미사일과 사이버 전쟁뿐만 아니라 사막화의 확산 및 해수면의 상승(해수 온난화)이 포함된다. 과학적인 접근법에 기초하는 공개적인 논의가 이루어진다면, 북한의 ‘위협’에는 긴장완화로 가장 잘 대처할 수 있으며, 북한의 핵무기는 기후변화와 같은 재앙에 비해 작은 위협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바로 드러날 것이다.

나는 아직 그같은 논의가 벌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가 그런 논쟁에 전문가들을 불러 모으고, 안보 전문가들이 진실과 대중 앞에 서도록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과학적인 분석이 이루어진다면,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미사일 방어 전략의 상당 부분이 근거를 잃게 될 것이다.

C0A8CA3C0000015B3CA370AD0014A3BD_P4
(이미지: 연합뉴스)

‘엉터리 전문가’ 중심의 안보 논쟁

만약 그런 논의가 있다고 해도 안보 논쟁의 기본 가정은 점점 더 엘리트 중심으로 돼 가고 있다. 언론은 극소수의 전문가들만이 문제를 다룰 수 있다고 가정한다. 거대 기업의 재정 후원을 받는 워싱턴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와 같은 싱크탱크의 전문가들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했던 이른바 이들 ‘싱크탱크’(미국 의회에서의 연설이 아니라!)들은 군수기업의 재정 후원을 받으며, 안보에 관하여 극도로 편향된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워싱턴 방문 중 국제전략문제연구소에서의 연설을 거부하기를 원했다.

나는 미국인이고, 남한의 진정한 안보 위협에 관하여 정확한 분석을 내놓을 수 있는 미국 전문가를 다수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 언론에서는 이런 인물들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Bruce Klingner)와 컬럼비아대학교 수미 테리(Sue Mi Terry)의 견해가 실린다. 두 사람은 모두 민간기업의 컨설턴트로서 거액을 받고 있으며, 미국과 한국의 안보정책과 관련된 모든 직책에서 사임하라고 요구해도 충분할 만큼의 상충된 이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이들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북한의 행동에 관하여 근거 없는 해석을 자유롭게 내놓고 있으며, (적어도 그들만큼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며) 미국과 국제사회에 보다 정확한 평가를 제공할 수 있는 전문가들로부터 결코 이의제기를 받지 않는다.

그 결과 문재인 대통령은, 명확한 한국의 입장도 없이 또한 현 시점의 진짜 안보 이슈에 관한 솔직한 토론도 없이, 단기적인 우군을 확보하기 위해 강대국들을 이리저리 찾아다니고 있다. 문 대통령이 점점 더 (후에 황제가 된) 고종처럼 보인다.

3462412_dHf
(이미지: KBS)

미사일 방어와 정보 공유의 진정한 본질

사드 미사일방어 시스템의 배치와 최근의 한일 정보공유 프로그램은, 군사정책의 중대한 전환이라는 점에서 서로 연관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보다 큰 의미가 포착되지 않고 있다.

우선, 이런 변화를 그리고 여타의 많은 안보 및 군사정책의 전환을 배후에서 밀어붙이는 압도적 힘은,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응으로서 그리고 점점 더 호전적으로 변해가는 중국을 저지하기 위해서 미국과 남한 및 일본의 확고한 동맹을 확립하려는 작업이다. 다수의 전문가는 사드가 북한 미사일을 억제하는 데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하며, 오히려 중국에 대한 심각한 자극일 뿐이라고 믿는다. 1,000개 이상의 핵무기를 지닌 중국이 아니라, 300개 미만의 핵무기를 지닌(현재 그렇다) 평화를 애호하는 중국을 훗날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은 세계 인구의 1/6을 차지하며 세계경제에 없어서는 안 될 일부이다. 중국을 봉쇄한다는 관념은 미국 경제의 극히 제한된 규모를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제도 변화의 배후에 숨어 있는 보다 심각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우리가 가장 우려해야 할 바는 책임성과 투명성이 되어야만 한다. 사드와 미사일방어 시스템은 남한과 일본 및 미국을 타격하기 위해 북한에서 날아오는 핵미사일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사실상, 동북아시아 및 세계의 군사동맹국 그리고 미국에 존재하는 포괄적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고려한다면, 무엇보다 사드는 미사일 발사를 포착하고 그 첫 번째 조치로서 이를 격추하기 위해 요격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이다. 요격 미사일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지 여부가 미사일을 발사하는 행위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미사일 발사는 전쟁 행위이다. 실질적으로 통합 미사일 방어 시스템이란 타국의 적대행위가 포착되고 전쟁으로 가는 첫 번째 조치가 취해지는 지점이다. (일반적으로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그러한 타국으로 가정되고 있지만 언론에서는 오로지 북한만 언급된다.)

만일 적대행위가 실수에 의한 것이라면 어찌 될 것인가? 더 나아가 타국의 행위를 의도적으로 잘못 해석할 경우는 어떠한가? 대단히 심각한 이 문제가 논의의 중심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소름끼치게도 모두가 침묵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적대행위 시작의 결정을 어떻게 내릴 것인가이다. 한미일 군사행동의 통합이 점증하는 가운데, 위기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관한 선례가 확립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실수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먼저 적대행위에 대응할지 여부에 대한 결정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이상적인 세계에서라면, 북한(혹은 중국)에서의 적대적인 미사일 발사에 관한 정보가 미국 대통령(트럼프)에게 전달되고, 미국 대통령은 일본과 한국의 지도자와 상의하여 함께 결정하게 될 것이다.

누구도 의사결정이 이런 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이 자국의 정보에 기초하여, 그 정보에 관한 한국이나 일본의 검토 없이, 결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안이 미사일 방어이기 때문에, 결정은 몇 분 안에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고 따라서 미국 내에서조차 주의 깊게 검토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 바로 이것이 미사일 방어 시스템이 정말로 위험한 이유다. 날아오는 미사일을 저지하는 데는 성공하지도 못하면서, 적절한 협의나 책임성도 없이 지구적 차원의 전쟁을 빠르고 쉽게 시작하도록 만들 수 있다.

이 까다로운 문제를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행동의 개시를 결정할까? 미국 헌법에 따르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헌법 조문은 현대 미국 정치를 잘 설명하지 못한다. 매티스 국방장관이 공개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거부 의사를 표명하고 미군의 상당 부분이 트럼프 정권에 공공연히 반기를 드는 지금 상황에서, 미국이 전쟁을 치를 것인지 결정할 주체가 백악관일지는 확실치 않다.

북한이나 중국의 미사일 발사가 어떤 방식에 의해 적대적 군사행동으로 규정될 것인지 알고 있다고 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일반 시민에 대하여 나아가 미국이나 일본 혹은 남한의 지도자에 대해서조차 투명성과 책임성을 담보하지 않은 채, 미군 내에서 결정이 내려질 수 있을 무시무시한 모호성이 존재한다.

1_gari1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Dr. Strangelove)」의 한 장면.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미국의 한 미치광이 장군이 소련에 대한 증오를 억누르지 못한 나머지 소련으로 핵폭탄을 발사해 전 지구가 핵폭발에 휩쓸리게 된다.

‘북한의 적대행위’ 오판 위험이 진짜 위험 

우리는 정보 공유에 관한 새로운 합의라는 측면에서 이 이슈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일 명백한 위협이 존재하고 미국과 일본 간, 미국과 한국 간, 그리고 일본과 한국 간의 정보 공유가 이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이 공유된 정보 속에서 효과적으로 협력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이라면, 여기에 강력한 논리적 근거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이 그러한가? 의심스럽다.

우선 정보 공유의 실질적 절차가 전혀 투명하지 않으며, 서명된 합의문을 보고서도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 차라리 우리 모두가 우려해야 할 바는,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이 군사행동을 취할지 여부에 관한 결정 절차를 불투명하고 책임성이 없는 시스템에 떠넘기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행동의 과거 선례도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처음부터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사납게 고조되었다. 유럽 각국 사이에 있었던 일련의 비밀 외교협약들(해당 국가의 일반 시민들에게 드러났던 적이 결코 없었다)이 독일, 프랑스, 잉글랜드, 러시아,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을 좌지우지했기 때문이다. 협상을 위한 공간도 선택지도 전혀 없었다. 의사결정 절차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이들 정보공유협약이 유럽을 제1차 세계대전으로 끌고 들어간 비밀외교와 마찬가지인가? 그 유사성이 상당한 것 같아 두렵다. 만일 정보라는 것이 현장의 상황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 절차는 반드시 공개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들리는 바에 의하면(나로서는 협약의 기밀 사항에 접근할 방법이 없다), 각국은 적대행위 개시를 어떻게 결정할지 명확하지 않고 그 결정이 일반 시민은 물론 지도자들에게서조차 동떨어질 수밖에 없는,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0709_562_18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쿠바로 향하는 소련 선박을 검색하는 미국 구축함.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그저 나쁜 정책의 문제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테크놀로지 자체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 무기체계가 점점 더 자동화되어 감에 따라 인간은 의사결정 절차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있다. 무기체계의 자동화는 긍정적이라는 게 당연시돼 왔지만, 그런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란 존재하지 않는다.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알 수 있듯이, 위기를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지 않도록 막은 것은 미국과 러시아 군인들 각각의 개별적 결정들이었다. 우리의 생존에서 그 같은 책임성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언론은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 위험을 과대 포장하는 데 엄청난 시간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중대한 이슈에 대해서는 완전한 침묵을 지키고 있다. 북한이 실제로 미사일 공격을 감행할 위험보다 어떤 사건을 북한의 적대행위로 잘못 해석할 위험이 더 크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화, 2017/11/21- 09:15
169
0

67년에 걸친 한국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방안을 찾아야 할 시기이다. 군사충돌의 위험이 닥쳐오는 와중에서도, 아직 종결되지 않은 미국의 가장 오랜 전쟁이자 세계사에서 가장 유혈이 낭자했던 전쟁의 진실에 관하여 미국 국민은 거의 모른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추진했던 1953년의 휴전협정, 최소 200만에서 최대 400만 명의 군인 및 민간인의 죽음을 불러왔던 3년간의 “치안활동(police action)”을 중단하는 그 휴전협정은 오래 전에 잊혔다. 미국과 남한 및 이들의 유엔 동맹국들과 북한의 군사 지도자들 간에 체결된 이 협정은, 냉전 초기에 벌어졌던 이 전쟁에 마침표를 찍는 정식 평화협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미국과 북한 간 합의의 일환으로, 플루토늄을 함유하는 사용 후 핵연료를 확보하기 위해 1994년 11월 영변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출발에 앞서 미국 국무부 관리가 이처럼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 관하여 내게 상기시켜 주었다. 사용 후 핵연료 저장장소로 난방 설비를 가져가면 어떻겠느냐고 국무부 관리에게 제안했었다. 국제원자력기구의 보장조치(IAEA safeguards) 속에서, 한겨울에 고준위 방사능 연료봉을 격납용기에 넣는 북한 사람들에게 난방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국무부 관리는 화를 냈다. 적대행위가 종료된 지 40년이나 지났지만 적에게 어떠한 편의를 제공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그들이 해야 할 일(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강추위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2
북한이 핵무장 국가로 가게 되는 씨앗은 미국이 1953년의 휴전협정을 휴지조각으로 만듦으로써 뿌려졌다. 1957년부터 미국은 협정의 핵심 조항, 즉 더 이상의 무기를 한반도에 반입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을 위반했다.

제네바 합의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1994년 봄과 여름에 미국은, 첫 번째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플루토늄을 생산하려는 북한과 충돌하게 되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기초한 김일성을 직접 만나는 외교력을 발휘한 덕분에 세계는 벼랑 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994년 10월 12일 서명된 제네바 합의의 대체적인 윤곽은 바로 이러한 노력으로부터 나왔다. 이 합의는 지금까지 미국이 북한과 맺은 유일한 정부 간 협정이다.

제네바 합의는 양국 사이의 비확산 협정으로, 한국전쟁의 종식으로 가는 문을 열 수도 있었다. 플루토늄 생산을 동결하는 대가로 중유의 공급과 경제협력 그리고 두 기의 현대식 경수로를 건설한다는 데에 북한이 동의했다. 궁극적으로는 당시 북한의 핵시설을 해체하고 사용 후 연료를 북한 외부로 반출한다는 것이었다. 남한은 두 기의 경수로 건설을 준비하는 데에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두 번째 임기에 접어든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과 보다 정상적인 관계를 수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대통령 자문이었던 웬디 셔먼은 중장거리 미사일을 제거한다는 북한과의 합의가 2000년 대통령 선거에 의해 뒤집어지기 전까지 “거의 타결 직전”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협상은 공화당 의원 다수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리고 1995년 하원을 차지한 공화당은 협상을 결렬시킬 결정적 장애물을 투척했다. 북한으로 향하는 중유의 선적과 플루토늄 함유 물질의 확보를 방해했던 것이다.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클린턴 행정부의 노력은 북한 정권의 교체라는 노골적인 정책으로 대체되었다. 부시는 2002년 국정연설에서 북한이 “악의 축”을 구성하는 국가라고 선언했다. 부시는 9월,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국가들에 대한 선제공격을 요구하는 국가안보정책을 이야기하면서 명확하게 북한을 지목했다.

2002년 10월 북미 양자회담에서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가 북한에게 “우라늄 농축 비밀 프로그램을 중지하지 않으면 가혹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던 배경이다.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여전히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1999년 당시 미국 의회와 언론이 모두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북한은 제네바 합의를 철저하게 이행하여 8년간 플루토늄 생산을 동결했다.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안전조치는 경수로 건설이 충분하게 진행되는 시점까지 연기될 것이며 그 지체가 위험해 보일 경우 합의를 수정할 수 있음이 제네바 합의에 명시되었다. 설리반의 최후통첩이 나온 직후, 북한은 사용 후 핵연료에 관한 보호조치를 중단하고 플루토늄 추출과 핵무기 생산을 시작했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침공을 준비하던 바로 그 시기에 전면적 위기의 불이 당겨진 것이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 관련 교착상태를 해소하려던 부시 행정부의 노력, 이른바 6자회담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북한 정권을 교체하겠다는 미국의 완강한 고집, 그리고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하지 않으면 의미 있는 협상에 들어갈 수 없다는 부시 대통령의 “아니면 말고” 식의 요구 때문이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다가옴에 따라, 북한으로서도 2000년 선거 이후 얼마나 갑작스럽게 합의가 뒤집혔는지를 기억해야만 했다.

1710_258_3
1994년 10월 12일 서명된 제네바 합의. 이 합의는 지금까지 미국이 북한과 맺은 유일한 정부 간 협정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할 무렵, 북한은 핵무기와 대륙 간 탄도 미사일 보유를 향한 노력을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전략적 인내‘라고 일컫는 오바마의 정책은 대체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속도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특히 김일성의 손자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하면서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와 한미 군사훈련 기간의 연장은 북한의 강력한 도발을 불러왔다. 북한 정권의 궤멸을 목적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지금 벌이고 있는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의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 시위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과 더욱 강력한 핵실험만 가속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핵무기 보유국으로서의 북한을 다루는 문제

북한이 핵무장 국가로 가게 되는 씨앗은 미국이 1953년의 휴전협정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던 때 뿌려졌다. 1957년부터 미국은 협정의 핵심 조항(제13항의 네 번째)을 위반했다. 해당 항목은 더 이상의 무기를 한반도에 반입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미국은 결국 수천 개의 전술 핵무기를 남한에 배치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핵포탄, 미사일 핵탄두, 지하관통 폭탄, 바추카 핵포탄, (20킬로톤) 핵배낭 등이 포함된다. 1991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HW 부시는 모든 전술 핵무기를 철수했다. 그러나 전술 핵무기 철수 이전의 34년간 미국은 핵무기 경쟁을 촉발해왔다. 한반도에 주둔하는 자국 군대를 통해서 말이다! 남한에 쌓여가는 대량의 핵무기는 북한으로 하여금 서울을 궤멸할 수 있는 재래식 포대를 전진배치하게 만든 주요 원인이었다.

현재 남한의 일부 군사 지도자들이 미국 전술 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북한 핵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미국 핵무기의 존재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급증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지 못 했다. 당시는 “제2의 한국전쟁”이라고 불렸던 시기로, 1천명 이상의 한국군과 75명의 미군이 사망했다. 특히 북한군은 1968년 미 해군의 정보함 푸에블로호를 나포하여 1명의 승조원을 살해하고 82명을 인질로 잡았다. 결국 푸에블로호는 미국에 반환되지 않았다.

북한은 오랫동안 미국과의 양자 대화를 통해 불가침 조약에 이를 것을 요구해왔다. 미국 정부는 북한의 평화협정 요구를 번번이 일축해왔는데, 주한미군의 축소를 통해 남한에 대한 공격을 배가하려는 북한의 속임수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의 잭슨 딜(Jackson Diehl)은 북한이 실제로는 평화적 해결에 관심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와 같은 정서에 공감을 표했다. 북한이 “정당방위를 위한 핵무기를 협상 테이블에 결코 올리지 않을 것”이라는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 김인룡의 언급을 인용하면서, 딜은 편리하게도 “미국이 적대행위를 계속하는 한”이라는 김인룡의 중대한 경고를 생략해버렸다.

1431255158_00530981601_20150511
북한의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미사일 시험 발사를 지켜보는 모습. 북한의 <노동신문>에 실린 사진이다,

지난 15년 동안 북한과의 전쟁을 준비하는 군사훈련의 규모가 커지고 그 기간이 길어졌다. 코메디센트럴 채널의 인기 프로그램 데일리쇼(Daily Show)의 진행자 트레버 노아(Trevor Noah)는 최근,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6자 회담의 미국 측 책임자였던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Hill)에게 군사훈련에 관해 질문했다. 힐이 “우리는 북한을 공격할 계획을 한 적이 없다.”라고 단언했다. 힐이 잘못 알고 있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2016년 3월의 군사훈련에는 “선제적인 군사행동”과 “북한 지도부를 표적으로 하는 특수부대의 참수작전”이 포함되었으며 이 계획에 미국과 남한이 동의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의 기사에서 미국의 군사 전문가는 이 같은 계획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지만 계획이 실행될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고 말했다.

매년 이루어지는 전쟁대비훈련은 계획이 실행될 가능성이 얼마나 되건, 임박한 전쟁의 공포 속에 살아가는 북한 주민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잔인한 억압을 영구화하거나 심지어 더욱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북한을 방문하는 동안 우리는, 한국전쟁 중 미군 항공기가 떨어뜨린 네이팜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학살됐는지에 관해 북한 정권이 주민들에게 끊임없이 선전하는 것을 보았다. 1953년 무렵 미군의 폭격은 북한의 거의 모든 건물을 파괴했다. 몇 년이 지난 후, 케네디와 존슨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딘 러스크(Dean Rusk)는 “움직이는 북한의 모든 것, 서 있는 모든 건물”에 폭탄을 투하했다고 말했다. 이후 수년 동안 북한 정권은 주민의 대피훈련에 사용할 방대한 지하터널을 건설했다.

북한의 핵무기 포기를 기대하기에는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 북한 정권의 교체를 실속 없이 추구하면서 제네바 합의를 폐기했던 순간 그 다리는 무너졌다. 북한에게 핵무기를 늘려야 할 강력한 동기를 제공하고 이에 필요한 시간을 벌어줬을 뿐이다. 최근 틸러슨(Tillerson) 국무장관은 “우리는 북한 정권의 교체나 붕괴를 추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틸러슨의 언급은 트럼프 대통령의 호전적인 트위터 메시지, 그리고 전직 군사정보 관료들의 무력위협 속에 묻혀 버렸다.

결국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양측의 직접 협상과 선의의 표시를 수반할 것이다. 한미일의 군사훈련 축소 혹은 중지와, 이에 상응하는 북한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시험의 유예 등이다. 이러한 조치들은, 군사력과 경제제재가 북한 정권에 대항하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는 미국 국방관료들로부터 커다란 저항을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제네바 합의의 성립과 붕괴로부터, 정권교체의 추구가 지니는 함정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냉전의 끝자락을 평화적으로 마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제 핵군비통제협정(nuclear arms control agreement)일지도 모른다. 상대방이 자신을 살해할 계획을 품고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을 어떤 방법으로든 협상에 나서도록 설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수, 2017/12/06- 15:07
234
0

북핵 문제가 새로운 페이지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29일 ‘화성-15형’ 미사일을 발사하고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계속해서 ‘최대의 압박’ 전략을 구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1994년 북핵 위기 때 클린턴 행정부가 실제 북한 타격까지 논의했다는 기밀문서가 최근 해제돼 주목받기도 했지만, 지금이 더 위험한 시기일 수 있다는 탄식까지 나온다.

반전의 기운도 감지된다. 아직 북한의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은 미완성일 공산이 크지만, 북한은 적어도 이 마지막 단계로 넘어가지 않겠다는 ‘미끼’를 가지고 미국과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미국 역시 이제 북한이라는 골칫덩이가 자칫 미국 본토까지 피해를 입힐 수 있을 정도로 위협이 되면서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도 있다. 어쩌면 두 나라가 전격적으로 핵동결과 제재 해제를 맞바꿔 합의하고 관계 개선을 이뤄낼 수도 있다.

이런 시기에 제프리 펠트먼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58)이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닷새간 북한을 다녀왔다. 유엔 고위급 관계자의 방북은 2010년 2월 펠트먼의 전임자였던 린 파스코 사무차장, 2011년 10월 발레리 아모스 인도주의 업무조정국장 이후 아주 오랜만이다. 북한이 펠트먼 사무차장의 방북을 타진한 것은 이미 지난 9월 유엔 총회기간이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북한은 ‘화성-15형’ 발사 다음날인 지난달 30일에야 유엔에 ‘공식 초청장’을 보냈다.

펠트먼 사무차장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소집된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방북에 대해 “이런 위험한 시기에 출구를 모색하고 협상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반드시 잡아야만 하는 기회”라고 말했다. 9일 북한에서 귀국한 뒤 경유지인 베이징에서도 “북한은 현재의 상황이 가장 긴박하고 위험하다는 것에 동의했다”며 “이 상황은 오직 외교적 해결책으로 풀 수 있다. 계산착오를 막고 분쟁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채널을 여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펠트먼의 방북이 북미 관계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펠트먼은 평양을 찾아 리용호 북한 외무상 등을 만났고, 조선중앙통신은 펠트먼의 귀국 소식을 전하며 “유엔과 의사소통을 정례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모든 채널이 막힌 상태에서 북한이 유엔을 대화창구로 삼으려 하고, 유엔 역시 ‘북핵 중재자’로 나서려 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NHK에 따르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한 대화의 틀을 만들려 했다”며 펠트먼의 방북 배경을 설명했다.

유엔이 중재에 나서더라도 여전히 대화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펠트먼은 당초 일정보다 체류 기간을 하루 더 연장하긴 했지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의 면담은 성사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 김정은은 북중 접경지역을 시찰하고 있었다. NHK는 북한이 펠트먼과의 대화에서 핵·미사일 개발은 미국 탓이라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했다고 전했다.

302C8EBF-6685-45D5-BE41-41C8B53CFC92_w1023_r1_s
평양을 방문한 제프리 펠트먼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왼쪽)이 7일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만났다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 중동 분쟁 현장을 발로 뛴 정통 외교관

펠트먼 사무차장은 30여년 간 미 국무부에서 일한 정통 외교관 출신이다. 아랍어, 프랑스어, 헝가리어에도 능통하다. 1959년 미국 오하이오주 그린빌에서 유대인 부모 아래 태어났다. 인디애나주의 볼 주립대에서 역사와 미술을 전공했다. 이어 터프츠대 플레처 국제관계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6년 미 국무부 외교국에 들어가 아이티 포르토프랭스 영사관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1988에는 주 헝가리 미 대사관에서 일했고, 1991년에는 로런스 이글버거 당시 국무부 부장관실에서 동·중유럽 지원 담당 특별보좌관으로 일했다.

요르단 대학에서 아랍어를 공부한 펠트먼은 이후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담당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는 1995년 텔아비브에 있는 주 이스라엘 미 대사관에서 근무하면서 가자지구 경제문제를 담당했다. 1998년에는 주 튀니지 미 대사관에서 정치 및 경제 부문 책임자로 일했다. 2000년에는 당시 마틴 인디크 주 이스라엘 미 대사의 특별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2000~2001년간 진행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평화 프로세스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2001년에는 예루살렘 주재 미 영사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뒤인 2004년에는 아르빌의 이라크 임시정부에서 근무하기도 했으며 이후 2008년까지는 레바논 주재 미 대사로 일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는 국무부 중동(근동) 담당 차관보로 재직했다.

정무담당 사무차장으로 일하기 시작한 것은 2012년이다. 당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임명했다. 정무담당 사무차장은 분쟁지역 갈등 해결이라는 유엔 본연의 임무를 총괄한다는 점에서 사무차장급 부서장 중에서도 가장 핵심 요직 중 하나로 꼽힌다. 사무총장에게 국제적 안보 이슈에 대해 조언하면서 아프리카, 중동, 아프리카 등에서 직접 현장을 뛰며 예방 외교와 평화 증진, 평화 유지 활동을 한다. 유엔의 국제적 중재 역할을 감독하면서 매년 수십 개 회원국에서 이뤄지는 선거 지원 임무도 총괄한다. 외교 관례상 국가의 장관급 대우를 받는다.

이력에서 알 수 있듯 펠트먼은 얽히고설킨 중동 문제, 특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현장을 발로 뛰며 겪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에는 중동 화해 무드 정착에 일조했다. 2009년 3월 당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중동 담당 차관보였던 펠트먼을 시리아에 특사로 파견한다. 전임 부시 행정부 시절 ‘악의 축’으로 지칭할 정도로 최악이었던 시리아와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취지였다. 시리아 방문 중 펠트먼은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평화협상을 지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펠트먼 방문 뒤 미국은 부시 행정부 시절 철수시켰던 시리아 대사를 재파견하기도 했다.

2010년 말 튀니지에서부터 불기 시작해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쓸기 시작한 ‘아랍의 봄’ 당시에도 현장을 지켜봤다. 2011년 1월 튀니지 혁명 때는 국무부 중동담당 차관보로서 직접 방문해 “미국은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리비아의 카다피 국가원수가 튀니지 혁명을 ‘외세의 이익’에 이용당했을 뿐이라고 비판하자 이를 일축한 것이다. 3월에는 반정부 시위가 격화됐던 바레인에 특사로 파견되기도 했다.

펠트먼은 리비아에서 카다피가 실각하는 과정에서 카다피의 핵심 측근인 무사 쿠사 리비아 외무장관의 망명 이탈을 중개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2011년 5월에는 리비아 반군의 거점 도시 벵가지를 직접 방문해 반군의 대표기구인 국가위원회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재확인해 주기도 했다. 8월에는 “카다피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카다피가 즉각 권좌에서 물러나는 것이며 이는 리비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책”이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으로서는 2014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충돌이 일어나자 이를 중재하기 위해 노력했다. 2015년에는 이슬람국가(IS)가 세계 평화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경고하면서 IS를 추종하는 트위터 계정이 5만여 개, 각 계정의 팔로워가 평균 1000여명에 이른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6년에는 시리아 내전 중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의 알레포 폭격이 처벌받아야 할 전쟁 범죄이며 책임자를 색출해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올해 초에는 트럼프 차기 미 대통령을 겨냥해 이란 핵 합의를 꾸준히 지켜나가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지난해 미 대선 당시에는 힐러리 클린턴의 e메일이 공개되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공개된 e메일에서 클린턴재단의 직원 더그 밴드는 2009년 레바논계 나이지리아인 사업가로 클린턴재단 기부자인 길버트 샤구리의 청탁을 받고 힐러리의 측근인 셰릴 밀스에게 연락해 ‘레바논 업무를 실질적으로 다루는 사람을 샤구리와 연결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역시 힐러리의 측근인 후마 애버딘은 펠트먼 당시 주 레바논 대사를 소개해줬다는 것이다.

R658x0
펠트먼 사무차장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당국자들이 자신과 대화에 열중했다면서, 북한 측에 핵과 미사일 개발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공동체에 우려라는 의견을 재차 전했다고 말했다.

■ 북미 대화의 시발점?

세계의 분쟁 현장을 누벼 온 ‘베테랑 외교관’ 펠트먼이 이번 북한 방문에서는 어떤 성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교도통신은 지난 11일 자성남 주 유엔 북한 대사가 펠트먼 사무차장과 회담하고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의 법적 근거를 검증할 국제 법률전문가 포럼 설치를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결의의 부당성을 부각하려는 것이지만, 여기엔 미국의 참여도 인정해 북미 대화를 재개하려는 의도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방북 성과에 따라서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 가능성까지도 점쳐진다. 펠트먼의 방북이 트럼프 행정부와의 조율을 거쳤다는 점도 기대를 갖는 이유다.

반면 그저 북한이 ‘대화 가능성’이라는 메시지를 보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압박 공조 움직임에 균열을 내려고 한 것일 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인이자 국무부의 정통 외교관 출신인 펠트먼이 유엔 대표 자격으로 가지만 어떤 식으로든 미국의 메시지도 전할 것이라는 해석에 대해 미 국무부 역시 “지금은 대화할 시기가 명백히 아니다” “펠트먼이 미국의 메시지를 갖고 간 것은 분명히 아니다”라고 못 박기도 했다. 결국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못 만난 것 자체가 ‘미국의 메시지’가 없어서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북한의 펠트먼 방북 요청은 유엔이 제재 하에서도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해 오고 있다는 점에서 새 사무총장 취임 이후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정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해석도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어쨌건 펠트먼의 방북이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대화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지 않을 수 없다. 펠트먼은 12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에 방북 결과를 설명한 뒤 기자들과 만나 “리용호 북한 외무상 등과 15시간 넘게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전쟁방지를 할지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방북은 새로운 교류의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하면서, 국제사회와 관계를 맺을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보내라고 촉구하고,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군사 핫라인 같은 소통 채널을 열어야 한다고 당부했다고도 밝혔다. 펠트먼은 이번 북한 방문이 지금까지 한 일 중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고도 했다.

마침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12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우리는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 첫 만남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트럼부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북한과 회동할 수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결국 북한 핵·미사일을 둘러싼 문제는 북한과 미국의 태도 변화에 달린 문제다. 펠트먼 방북이 북미 간 대화의 시발점이 될지 아니면 그저 의례적인 제스처에 불과할지 지켜볼 일이다. 펠트먼 사무차장은 “우리 논의가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는 시간이 알려주겠지만, 우리는 문을 조금 연 것 같다”고 말했다.

 

금, 2017/12/15- 16:31
127
0

연금행동은 21대 국회 회기가 시작된 2020년 5월 30일부터 2021년 6월 30일까지 발의된 기초연금법, 국민연금법,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3개 법안을 중심으로 현황을 제시하고 내용을 평가한 이슈페이퍼를 발행하였습니다.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 주요 내용 요약 >

첫째, 점점 더 많은 연금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국민연금법 발의건수만 보더라도 지난 20대 국회는 16대 국회보다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21대 국회 역시 불과 1년이 지났지만 총 56개 법안이 발의됐다. 이런 증가는 그만큼 노인 빈곤과 노후 불안의 심각성과 사회적 관심이 증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둘째, 그러나 실제 법안 처리률은 다른 법안 평균보다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21대 국회 역시 국민연금법 6.7%, 기초연금법 6.3%, 퇴직연금법 12.5%로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셋째, 국민 노후를 위해 중요한 여러 개정안이 ‘발의와 임기만료 폐기’를 반복하고 있다. ▷국가 지급보장 명문화, ▷출산(양육) 및 군복무 크레딧 개선, ▷장애·유족 연금, 분할연금 개선, ▷국민연금 관리운영비 국고지원 확대, ▷국민연금기금 공공투자 확대, ▷기초연금 국고 부담 확대, ▷1년 미만 단기간 노동자 및 초단시간 노동자에 대한 퇴직급여 대상 확대 등은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되는 중요한 과제다.

넷째, 국민연금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은 이미 지난 20대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돼 2020년 7월 1일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1년이 넘도록 시행되지 않고 있다. 기재부가 예비타당성 검토 등을 구실로 예산을 배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더욱 절실한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이 하반기부터라도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

다섯째, 문재인 정부는 국민연금 강화를 위한 정부안을 발의하지 않았다. 기초연금 급여 인상에 대해서는 정부안을 발의했던 것과 대조적이며, 국민연금 강화에 대한 개혁 의지가 낮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이슈페이퍼 첨부파일 참조
2021_이슈페이퍼_21대_연금법안_현황과_평가.pdf
2021_이슈페이퍼_21대_연금법안_현황과_평가.hwp

The post [이슈페이퍼] 21대 국회 연금법안 현황과 평가 appeared first on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목, 2021/07/08- 01:02
2
0

 열어보지도 못한 ‘초대장’이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12일(현지시각)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 첫 만남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일단 만나보자. 북한이 원한다면 날씨 얘기를 할 수 있다. 사각 테이블인지 둥근 테이블인지에 흥미를 갖는다면 그것에 관해 얘기할 수도 있다. 일단 최소한 테이블에 앉아 얼굴을 마주 봐야 되지 않겠냐.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포기할 준비를 하고 대화 테이블로 돌아오라고만 얘기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라고도 틸러슨 장관은 밝혔다. 한국 국제교류재단과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실의 주최로 워싱턴에서 열린 ‘환태평양 시대의 한미 파트너십 재구상’ 토론회에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뒤 정부 고위 관계자가 처음으로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를 말하자 반응은 뜨거웠다. 미국이 그동안 내건 ‘북한의 핵포기’라는 선결조건의 철회로 보였기 때문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감동적이고 환영한다”고 밝혔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생각과 제안에 대해 환영한다”고 말했다. 국내 언론들도 ‘한반도 정세 중대 분수령’, ‘파격적 선언’, ‘북핵 국면 전환의 계기’ 라며 모두 북한의 반응에 집중했다. 다만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북한이 도발과 위협을 중단하고 대화에 복귀해야 한다는 미국 쪽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으로 평가한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반전’은 북한이 아닌 미국에서 벌어졌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가 다음 날인 13일(현지시각) “대북 정책은 바뀌지 않았다. 분명히 지금은 대화의 때가 아니다. 북한은 추가적인 도발을 자제하고 비핵화를 향한 진지하고 의미 있는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해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조차 같은 날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이 평화로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신뢰할 만한 대화를 할 의지가 있다면 우리는 대화에 열려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과의 ‘엇박자’에 틸러슨 장관조차 15일(현지시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장관급 회의에서 대화의 전제로 ‘북한의 위협적 행동의 지속적인 중단’을 언급했다. 북한이 입장을 밝힐 

틈도 없이 ‘틸러슨 발언’은 사흘 만에 해프닝으로 끝났다.

00502492_20161212
(사진 AFP 연합뉴스)

 ■ 트럼프 정부 첫 국무장관 된 석유 사업가

 트럼프 대통령처럼 틸러슨 장관도 기업가 출신이다. 1952년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난 틸러슨 장관은 텍사스대 공대(토목공학)를 졸업한 뒤 1975년 엑손에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석유 산업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던 틸러슨 장관은 매니저, 인접주 경영 총괄, 예멘과 러시아 근무를 거치며 1999년 합병된 엑손모밀의 부회장에 올랐다. “최고경영자(CEO)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지만 그는 2006년 총괄부사장에 임명됐다.

 석유 산업에 매진한 덕에 틸러슨 장관은 러시아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됐다. 러시아에서 일하는 동안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와 협상을 벌이다 인연을 맺어 2012년 러시아 ‘우정 훈장’까지 받았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이끈 러시아 제재에도 부정적이었던 그다. 이윤을 쫓던 기업가였던 그는 차드, 파푸아뉴기니, 베네수엘라, 리비아 등 국제투명성기구의 상위권 부패국가와 거래하기도 했다.

 정치나 공직 경험이 전혀 없는 그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국무장관으로 내정했다. 인준안이 2월1일(현지시간) 상원에서 찬성 56표 대 반대 43표로 통과되면서 미국의 외교사령탑이 됐다. 틸러슨 장관의 임명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뒤 밝힌 ‘대북 강경책’의 연장선으로 이해됐다. 그는 청문회에서 “우리가 세계를 이끌지 않으면 세계는 더 깊은 혼란과 위험으로 빠져들 것”이라며 미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이란과 북한 같은 대항세력들이 국제규범을 거부하기 때문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며 “중국의 (북한) 유엔 제재 이행 강제를 위한 조처(세컨더리 보이콧·3자 제재)를 검토하는 건 적절하다”고 그는 말했다.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서면답변에서도 “북한이 이웃국가와 국제사회에 제기하는 다수의 도전들을 ‘선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새 접근법을 만들기 위해 유관기관, 동료들과 긴밀히 협력하겠다”며 “새로운 전략에는 ‘군사력을 통한 위협’에서 외교적 해법까지 모든 선택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겠다”고 밝혔다. 지난 3월 한·중·일 순방에서도 틸러슨 장관은 “과거 20년간의 대북정책은 실패했다.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도쿄)”, “전략적 인내는 끝냈다. 지금은 북한과 대화할 때가 아니다(서울)”, “한반도 긴장이 꽤 높고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는데 시각과 느낌을 공유했다(베이징)”라고 발언했다. 미국 대통령과 국무장관의 대북 강경책을 향한 일치단결에 한반도에는 불안의 파도가 넘실대는 듯했다.

 ■ 미 대통령·국무장관 ‘북한이몽’에 흔들리는 한반도

 하지만 예상과 달리 두 사람의 ‘북한이몽’이 더 큰 불안 요소가 됐다. 틸러슨 장관은 지난 8월22일(현지시각) “북한 정권이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자제의 수준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어 기쁘다. 가까운 장래에 언젠가 대화의 길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며 대화의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9월30일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 “우리는 북한에 ‘대화하고 싶은가’라고 묻는다. 우리는 평양에 여러 접촉선을 갖고 있다”는 틸러슨 장관의 발언이 북미 대화 재개의 희망을 갖게 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10월1일(현지시각) “틸러슨에게 ‘리틀 로켓맨(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협상을 시도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켓맨한테 잘 대해주는 것이 25년간 효과가 없었다. 지금이라고 효과가 있겠나?”라는 트위터로 틸러슨 장관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untitled
(사진:연합뉴스)

 비슷한 시기 틸러슨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을 ‘멍청이’라고 불렀다는 보도까지 터졌다. 10월14일(현지시각) 미국 <엔비시>(NBC) 방송은 틸러슨 장관이 7월 국방부에서 열린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멍청이”라고 불렀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은 즉각 이 보도에 대해 부인하거나 해명했지만 ‘갈등설’에 이어 ‘경질설’까지 나오면서 사태는 수습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틸러슨 장관이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했다 백악관 눈치에 바로 거둬들인 최근의 상황을 가볍게 보기는 어려워졌다. 틸러슨 장관이 꾸준히 북한과의 협상을 주장했지만, 트럼프 대통령도 같은 생각일지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선택이 북한과의 대화인지 강경대응인지 알쏭달쏭한 탓에 남북뿐 아니라 국제사회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금, 2017/12/22- 10:40
144
0

중국의 CGTN (China Global TV Network)에 최근 실린,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일고 있는 남북 화해 분위기, 북한 측의 의도, 이에 대한 미국 측의 우호적이지 않는 태도 등에 대한 기사다. 번역문과 영문 원본을 전재한다.(다른백년 편집자)

 

조선인민공화국은 미국이 한반도 인근에 핵 항모전단을 파견함으로써 평양과 서울의 화해 과정을 “방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의 리용호 외무상은 지난 수요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남북대화가 바람직한 결과를 맺고” 있지만, 워싱턴은 “남북이 함께 평화를 계획하는 시점에 한반도 인근에 핵 항모전단을 비롯한 전략자산을 전개함으로써 고의적인 상황 악화를 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리용호는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 타격”을 준비 중이며, 2월과 3월에 걸쳐 개최되는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이후 남한과 대규모 군사훈련을 계획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 외무상은 유엔 안보보장이사회가 남북 화해 과정을 환영하고 “주변 국가들”이 이를 저해하지 못하도록 해 줄 것을 요청했다.

 

평양이 보내는 “상반된 신호”

평양의 핵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을 둘러싼 1년의 긴장 이후, 북한과 남한은 1월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대화를 오랜만에 가졌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승인한 양측의 합의에 따르면, 북한과 남한의 선수단은 다음 주 금요일 개막행사에 함께 입장하며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구성하여 올림픽에 참여할 예정이다.

지난 목요일 북한 선수들이 남한의 도시 강릉에 위치한 올림픽 선수촌에 도착했고 인공기를 내결었다.

또한 140명 규모의 북한 삼지연 오케스트라는 남한에서 두 차례에 걸쳐 콘서트를 개최할 계획이다.

그러나 미국은 평양의 대화 제안 의도를 의심하여 왔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서울과 워싱턴의 이간을 시도한다는 우려 속에서, 지난 화요일 백악관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펜스(Mike Pence) 부통령을 올림픽에 참석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이간질”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다수의 미국 언론은, 평양이 동계올림픽 개막을 단 하루 앞둔 다음 주 목요일에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포함하는 건군 70주년 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i

중국의 싱크탱크 차하얼학회(Charhar Institute)의 선임연구원 왕총(Wang Chong)은 북한의 동계 올림픽 참가와 열병식 준비에 관해 언급하면서, 평양이 “상반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를 상대로, 북한이 “평화를 애호하는 국가”이지만 동시에 자국 주민들 앞에서 “체면이 구겨지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점을 전달하고자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조셉 윤(Joseph Yun)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지난 목요일 핵무기를 둘러싼 교착 상태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옵션이 여전히 고려되고 있지만 워싱턴의 군사 옵션이 “임박”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DPRK: US is ‘disturbing’ inter-Korean reconciliatio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 has accused the United States of “disturbing” the reconciliation process between Pyongyang and Seoul, by sending nuclear powered aircraft carrier strike groups in the vicinity of the Korean Peninsula.

In a letter sent to UN Secretary General Antonio Guterres on Wednesday, DPRK’s Foreign Minister Ri Yong Ho said “good results are borne in the inter-Korean dialogue,” but Washington is “seeking to intentionally aggravate the situation by introducing the strategic assets including nuclear powered aircraft carrier strike groups into the vicinity of the Korean Peninsula at a time when north and south of Korea are charting a course of peace together.”

Ri accused the US of preparing for “preemptive strike” against the DPRK and planning to conduct a large-scale joint military drill with South Korea, after the PyeongChang Olympic and Paralympic Winter Games in February and March.

The DPRK’s foreign minister called on the UN Security Council to welcome the process of inter-Korean reconciliation and discourage the “neighboring countries” from undermining it.

Pyongyang’s ‘mixed signals’

After a year of tensions on the peninsula over Pyongyang’s nuclear weapon and missile program, the DPRK and South Korea conducted rare talks in January to facilitate the DPRK’s participation in the PyeongChang Games.

According to the agreement between the two sides that has been approved by the 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IOC), delegations of the DPRK and South Korea will march together at the opening ceremony next Friday, and the two sides will form a united women’s ice hockey team to compete in the Olympics.

On Thursday, the DPRK’s athletes arrived at the Olympic Village in South Korean city Gangneung, where the DPRK’s national flag was raised.

In addition, the DPRK’s 140-member Samjiyon Orchestra will hold two concerts in South Korea.

The US, however, has been suspicious about Pyongyang’s motives behind its overture for talks. Amid concerns that DPRK leader Kim Jong Un is trying to drive a wedge between Seoul and Washington, US President Donald Trump has decided to send his deputy Mike Pence to attend the games to prevent the DPRK from “hijacking” it, a White House official said Tuesday.

Flash plugin failed to load

Meanwhile, multiple US media outlets have reported that Pyongyang is planning to celebrate the 70th founding anniversary of its armed forces with a massive military parade next Thursday, just one day ahead of the opening of the Winter Olympics.

Commenting on the DPRK’s participation in the games and its plan to stage the military parade, Wang Chong, a senior fellow from Chinese think tank Charhar Institute, said Pyongyang is “sending mixed signals”. The country wants to tell the world that it is a “peace-loving nation,” but at the same time it does not want to “lose face” in front of its own people, he added.

Joseph Yun, US special envoy on the DPRK, said on Thursday that all options remain on the table for solving the nuclear standoff, but he does not think Washington is “close to” the military option.

월, 2018/02/05- 13:31
206
0

경향신문
문재인 대통령이 9일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악수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에 의하면 ‘워싱턴 룰’이란 것이 있다 합니다.

미국의 대외정책 기초로 군사우선주의를 채택하게된 배경을 지칭하는 용어로, 대충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국제적 질서의 규칙은 미국이 정한다.
  2. 규칙을 강제하기 위하여 전세계에 미군을 배치한다
  3. 규칙을 위반하는 국가는 미국이 경제적 군사적 응징을 가한다.

한반도의 현재적 군사충돌의 위기는 북한의 주체적 국가생존전략과 위의 언급한 워싱턴룰에 의거한 미국의 군사우선주의 간의 충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진행되어 온 북핵문제는 일방적 강압적 미국의 북한붕괴전략 때문으로 모든 일차적 책임이 미국에게 있습니다.

이것이 한반도 위기의 핵심이자 본질입니다. 따라서 미국이 군사우선주의와 북한붕괴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한반도에 평화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주도적 ‘한반도 운전자론’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군사우선주의에서 상호주의, 협력주의, 평화우선주의로 전환시키는 것이 요체입니다. 평화의 제전, 인류의 축제인 평창올림픽은 이러한 펑화로의 반전의 계기를 제공하는 천우신조의 기회입니다.

문재인 정부에게 강력히 요청합니다. 자신의 상전이 한국대통령인지 미태평양사령관인지도 구분 못하는 송영무에게 강력한 경고장을 날려 평창 이후 일체의 무모한 군사작전을 전개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고, ‘미국의 푸들’ 노릇만 하는 안보외교라인에 일대 쇄신을 가하여 평창 기간 동안 전세계 만방에 한국의 원칙이 주권외교 자주국방 민족우선임을 분명히 천명하고 흔들림없이 추진해 나가야합니다. 한반도의 주인은 바로 우리이고 당연히 한반도의 미래와 운명은 우리가 결정해 나가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북한과 미국에게도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합니다. 평창 이후에도 한반도에서 일체의 군사도박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 땅에서 핵을 사용하는 전쟁이 일어나면 한반도만 사람이 살 수 없는 참혹한 땅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거대한 국가도 파멸하는 공도공멸(共倒共滅)의 길로 들어설 것입니다. 이미 국제적사회에서 외교적으로도 규범적으로도 고립되어 세계인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마당에 서로를 향한 전쟁노름은 양국 모두에게 스스로 무덤을 파는 자살행위가 될 것입니다.

sbs
평창 올림픽 이후 ‘평화 로드맵’은 미국이 일체의 무모한 군사작전을 전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이미지: sbs).

우리가 소망하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출구와 북미간의 평화협정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다시 말하면 92년 북미간에 합의한 제네바 협정 (Agreed Frame, AF)의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것 입니다. 문제는 이미 북한이 핵무장 강국을 선언한 현재 시점에서 위에 언급한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과정의 경로에는 매우 세심하고 긴 호흡의 인내를 요구하는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대략의 과정을 구상해 보면, 한미간 군사훈련의 축소 또는 중단에 답하는 북한의 핵 및 미사일의 추가개발 중단 (freezing), 경제적 외교적 제재의 완화 조치에 응하는 북한의 IAEA 사찰 수용 (fact-finding), 제재의 해제와 대규모의 경제지원에 화답하는 북한의 대미 핵보복 능력의 최소수준으로 축소 (rolling –back), 마지막 단계로 북미간 평화협정체결 및 동아시아의 상호안전 및 평화기구 창설을 통한 북한의 핵능력 해체 (peace-making) 등 단계적 내용을 담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압박과 제재를 대신하여 역지사지하는 대화와 포용만이 평화로 가는 비밀스런 통로입니다.

월, 2018/02/12- 11:15
21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