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빼앗긴 뒤 독립운동가들은 이런 자장가를 불렀다오
[서평]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 항일단체 노래 총정리한 <항일음악 330곡집> 눈길
1910년 8월 29일 기어이 한반도와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게 됐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기어이’는 2가지 뜻을 가진다고 한다. 하나는 ‘마지막에 이르러서’, 다음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라는 뜻이다.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이 빼앗겨 가고 있지만 그래도 설마설마 나라마저 없애겠냐 싶던 이들에게 ‘기어이’는 첫 번째 의미일 것이고, 어떻게 해서라도 일제에 빌붙어 공을 세우고 싶었던 이들에게 ‘기어이’는 두 번째 의미일 것이다.
경술국치 107주년을 맞이해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야 할 책이 한 권 나왔다. 바로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항일음악 330곡집>(노동은 편저, 민연주식회사)이다. 무려 728쪽, 가격은 7만 5000원이다.
자장가에도 광복 의지 담아

▲ <항일음악 330곡집> 표지 ⓒ 민족문제연구소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사는 우리 역사 중 가장 중요한 대목 중 하나다. 그런데 독립운동 단체가 너무나 다양하고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설명하기 힘든 것이 우리 독립운동사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그 엄청난 노력과 희생을 느끼게 해 줄 수 있을까?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보게 됐다. 700쪽이 훨씬 넘는 어지간한 아령 무게만한 책은, 그 질감만으로도 ‘정말 엄청나게 했구나’라는 느낌이 절로 들게 한다.
책은 단순하다. 곡마다 노래의 악보 한 쪽, 노래 설명 한 쪽으로 구성됐다. 다만 노래가 330곡이나 되다 보니 700쪽이 훨씬 넘는 것이다. ‘노래 모은 것이 뭐 중요하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떠돌이 생활을 했던 독립운동가들에게 무슨 백서나 체계적인 기록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노래로 자신의 신념과 정당성을 되새기고 알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독립운동가들이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역사를 전공한 필자도 전혀 알지 못한다. 기껏해야 스코틀랜드 노래 ‘올드 랭 사인’에 애국가 가사를 붙인 ‘독립군 애국가’ 정도만 알 뿐이다.
이 책이 대단한 건 330곡 목차만 보고 있더라도 독립운동에서 어떤 세력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종교적으로는 천도교, 대종교, 기독교가 있으며, 성향으로는 보수적인 위정척사부터 공산주의자까지 다양한 세력이 있었다.
독립운동단체들이 저마다 노래를 만들었기 때문에 제목이 같은 경우가 많았다. ‘애국가’라는 제목의 노래가 총 12곡이나 되며, ‘혁명가’ 5곡, ‘독립가’ 4곡, ‘조선의 노래’ 4곡, ‘용진가’ 3곡, ‘망향가’ 3곡, ‘전진가’ 3곡, ‘운동’이 3곡이다.
항일음악 보급에 가장 매진한 사람은 독립운동가 안창호 선생, 김인식 선생, 이범석 장군이었다. 특히 안창호 선생은 ‘애국가’와 ‘학도가’를 직접 작사하기도 했다.
역사적 인물이나 독립운동가에 대한 노래도 있었다. ‘단군가’, ‘도산선생 추도가’, ‘민충정공(민영환) 추도가’, ‘안중근 옥중가’, ‘우덕순(안중근과 함께 이토히로부미 처단을 결의한 사람)의 노래’, ‘을지문덕’, ‘이동녕선생 추도가’, ‘전씨(스티븐슨 사살한 전명운 의사) 애국가’, ‘정몽주 추모가’, ‘정숙(3.1운동 당시 일제에 참혹하게 피살된 소녀) 추도가’ 등이 있다.
또한 이 책은 1910년대, 1920년대, 1930년대, 1940년대 시대순으로 노래를 나열했는데, 가사를 읽다 보면 절로 시대적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1910년대까지는 고어체에 가까웠던 우리 말이 1930~1940년대를 지나면서 현대어로 변해 가는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국어사적으로도 중요한 자료라 생각된다.
책에 숱한 노래가 있지만 필자의 가슴을 울린 노래는 ‘자장자장’이라는 노래다. 제목에서 짐작했듯이 일종의 자장가이다. 1910년대 초반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노래는 작사 작곡자가 누군지 모른다. 자장자장 3절 가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장하다 자장자장 얼는 소학교
장하다 자장자장 발셔 중대학
박사동이 되고서 영웅동이 되어라
우리나라 광복사업에 아라 자장
우리 조상 중 어떤 이들은 자장가를 부르면서도 이 아이가 자라서 광복을 이끌길 바랐던 것이다. 다음으로 가슴을 울린 것은 ‘처의 명상’이라는 노래다.
보내는 가슴 씨원하랴 부디부디 잘가시오
인제가면 언제오나 언제나오나 정치없이 떠나는 설음의길
떠나는 몸도 쓰라려요 부디부디 잘있소
인제가면 오지못할 영원의길 쓰라린 이몸도 영 못만난다오
십년만에 만난 동생 이름조차 못 묻고
떠나는 얼굴에는 눈물만 젖어 이내몸 갈길이 아득하여요
보내는 사람 가는 사람 서로서로 울면서
손을들며 인사하며 눈물 흘리며 영원한 행복의 고개를넘자
이 노래도 작사 작곡자는 모르며, 중국 요녕성 일대에서 불러졌다고 한다. 정확한 통계를 낼 순 없지만 독립군에 나선다는 것은 80~90%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용케 살아남더라도 전쟁터에 휘말려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가족을 다시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 노래 역시 장송곡이나 다름없는 “인제 가면 언제 오나”다.
이렇게 독립운동가들의 엄청난 희생이 있었기에 전 세계로부터 ‘일제가 무너지면 당연히 한민족은 독립해야지’라고 인정받았던 것이다.
독립운동가들이 부르던 330곡을 모으는 건 매우 힘든 작업이었을 것이다. 곳곳에 남아 있는 파편을 수십 년 간 모으고 모은 결과물일 것이다. 이 역작을 낸 사람은 한국근현대음악사 권위자인 고 노동은 한국음악연구소장이다.
그는 한국 근현대 음악 관련 책을 30여 권 썼으며, 논문도 400여 편이나 남겼다. 안타깝게도 노 소장은 작년 12월 2일 지병으로 작고했다. 그가 남긴 원고를 가족과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해 이 책으로 만들었다. 비록 그는 갔지만 이 책은 독립운동사를 알리는데 매우 귀중한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나라를 빼앗겼나
경술국치 107주년이다. 경술국치가 언제인지도 모를 뿐더러 우리는 경술국치가 어떤 과정에서 이뤄졌는지 거의 모르고 있다. 부끄럽기 때문에 덮어 버린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나라를 빼앗겼을까?
1910년 7월 23일, ‘강경파’인 3대 통감 데라우치가 입국했다. 그의 임무는 단순했다. 대한제국을 멸망시키고 한반도를 완전히 일제의 통제 하에 두도록 기반을 닦는 것이었다. 데라우치가 입국하자 대한제국 멸망은 기정사실화가 됐다.
친일파에게는 이제 어떻게 하면 자신의 공을 더 인정받느냐가 핵심이었다. 당시 내각을 쥐고 있던 이완용과 일본서 일진회를 거느린 송병준 사이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누가 먼저 일본의 마음에 드는 안을 가지고 깔끔하게 일을 마무리 할 것인가? 결국 이 경쟁에서 이완용이 승리하게 된다.
8월 4일, 이완용은 비서 이인직(<혈의 누>를 쓴 사람)을 통해 데라우치에게 병합을 건의한다. 데라우치는 측근들에게 “그물도 안 쳤는데 물고기가 뛰어든다”며 환영했다.
8월 중순이 되자 이완용은 병합에 반대하는 인사를 통감부에 알리며 충성심을 끊임없이 내보였다. 한편으로는 총리대신 권한으로 병합 반대파인 학부대신 이용직을 일본 수해 위문 사절단으로 보냈다. 물론 이용직은 이완용의 속셈을 간파하고 와병을 핑계로 일본에 가지 않았다.
8월 15일, 순종 황제는 이재면을 흥친왕으로 봉했다. 흥선대원군의 첫째 아들인 이재면은 동생인 고종 황제에 대해 경쟁의식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어떻게 하면 왕이나 황제가 될까 노력한 끝에 드디어 일제에 의해 왕으로 봉해진다. 이는 일제가 한일병합 때 친일성향 황실대표로 참석시키기 위한 사전 조치였다.
8월 16일, 데라우치는 한일병합조약안 초안을 이완용과 조중응(농상공부대신)에게 협의토록 했고, 18일 내각회의에서 조약 내용과 절차를 결정했다.
8월 20일부터 일제는 전국에 흩어진 군대를 한성으로 집결토록 했으며. 2명 이상 모여 회합을 한다 싶으면 무조건 체포했다. 당시 한성 각 지역 경찰서 구치감에는 수천 명이 체포된 상태라고 하기도 한다. 일제는 궁궐 인근 평균 30미터 당 군인 1명씩 배치해 삼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8월 22일, 이완용은 (병합 반대파인 이용직에게는 알리지 않고) 어전회의 개최안을 순종에게 요구했다. 순종은 순순히 응했다고 한다. 이날 오후 1시 어전회의 개최 칙명이 내려졌다. 오후 1시, 칙명에 따라 이완용은 내각 대신을 소집했고, 황실대표로 흥친왕 이재면이 함께 했다. 오후 2시 순종 황제가 회의장에 등장했다. 순종 황제는 통치권 이양을 선언하고 병합조약체결 전권위원으로 이완용을 임명한다는 안에 옥새를 찍었다.
전권위원이 된 이완용은 데라우치가 기다리는 통감관저에 ‘뛰어서’ 갔다. 오후 4시, 일본 측 전권위원 데라우치가 조약안에 서명함으로써 한일병합조약은 성립됐고, 그날 저녁 통감관저에서 연회가 열렸다. 그러나 민중의 반발과 마침 27일이 순종 황제 즉위일이라 바로 발표하지는 못하고 29일에 발표하기로 했다.
8월 23일에는 토지조사위원회 설립안이 통과됐다. 이는 한반도 토지 수탈을 위한 기반이 됐다. 8월 26일경 기자들에게 병합조약안이 통과됐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8월 28일 조약안 전문이 언론사에 전송됐다.
그리고 운명의 날인 1910년 8월 29일. 순종 황제의 조칙으로 한일병합조약안이 공표됐다. 옥새만 찍혔고 황제의 수결(사인)은 없었지만 어쨌든 대한제국은 멸망했다. 경복궁에 일장기가 내걸렸고, 새 지배자인 일본 메이지 천황 조서와 조령이 발표됐다. 대한제국은 대일본제국 조선국으로 강등됐고, 순종은 이왕 전하·고종은 이태왕 전하로 부르고 일본 황실에 배속했으며, 모든 통치권은 조선총독부(임시로 통감부)가 관장한다는 것이다.
<2017-08-29>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나라를 빼앗긴 뒤 독립운동가들은 이런 자장가를 불렀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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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가기] 항일음악 330곡집










※ 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 캠페인은 노란리본기금의 후원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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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일부터 10일까지 총 9일간 진행되는 환경운동연합 무동력 항해 캠페인의 1일 차가 지났다. 우리 환경운동연합은 해양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불법어업을 금지하고 해양쓰레기를 근절하기 위해 무동력 항해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리고 해양생태계를 살릴 해양보호구역 확대의 메시지도 함께 담았다. 오늘 그 1일 차 일정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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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연합[/caption]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과 함께한 오늘 일정은 통영시청 제2청사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해양캠페인의 첫 시작을 알렸다.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에서 해양환경이 파괴되어가는 다양한 상황을 알려줬다.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의 신종호 운영위원은 “어업 면허를 받으려면 5년마다 한 번씩 침적폐기물을 청소하고 행정기관이 확인해야 재갱신이 가능한 어업권이 있지만, 행정기관에 정보공개 청구하고 자료를 받아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동호 운영위원은 세목망으로 남획되는 어린 물고기와 생사료로 갈려버리는 물고기로 인해 앞으로 올라오지 못할 생선에 관해 얘기했다. 지욱철 의장은 해양쓰레기의 심각성과 어업강도가 높아진 어업구조에 대해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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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수중탐사를 진행하는 환경운동연합과 무동력 항해 요트 ⓒ환경운동연합[/caption]
오후는 무동력 항해팀과 합류하여 해상퍼포먼스를 펼치고 수중조사를 시작했다. 항공촬영 장비를 이용해 하늘 위에서 바라본 바다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아름다움은 수중조사와 함께 시작된 폐어구 제거 활동을 시작으로 끝이 났다. 얽히고 뭉친 폐어구들이 무더기로 올라왔다. 소형 크레인으로 폐어구들을 끌어 올리는 도중에 밧줄이 끊어져 주변에 있던 활동가가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버려진 그물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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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으로만 비춰진 바다 그 안에서 건진 폐어구 ⓒ환경운동연합[/caption]
해외에서는 방치된 어구를 Ghost Fishing이라고 부른다. 버려진 어구들에 의해 목적 없이 잡힌 물고기가 방치되어 죽는 형태다. 세계에서도 문제가 되는 해양생태계 파괴의 현장을 우리나라 통영 앞바다에서도 마주했다.
해양의 면적이 육지의 약 네 배인데 관심도는 적도 해양은 점점 파괴되어가고 있다. 인류에게 해양은 끊임없는 자원이자 대형 폐기물 집하장으로만 인식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는 2016년 1월 1일 돼서야 우리가 93년, 06년 가입한 육상폐기물의 해양배출 금지 등 해양환경보전을 위한 국제협약인 런던협약, 런던의정서를 시행했다. 오늘 올라온 어구는 불과 몇 년 안 된 어구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해양활동을 마치고 중앙사무처 최예지 활동가의 지구인생을 인터뷰했다. 통연거제환경운동연합 의장님과 지구인생 인터뷰를 마침과 함께 활동에 관심 가져주시는 기자분들의 요청을 마무리한 후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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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연합[/caption]
쉽지않았던 오늘 하루, 현장의 심각성을 되새겨 본다. 공중에서 촬영한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바다는 겉과 다르게 방치된 어구와 쓰레기로 뒤덮여있다. 우리 해양에 대해 아무도 관심 두지 않으면 미래엔 아무도 얹을 수 없다. 모두가 아는 상식이지만 지금 실천하지 않으면 미래는 어떻게 될까?
우리 모두 답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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